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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왕조 능 원 묘 명칭에 관한 연구 용역 보고서> 조선왕조 능 원 묘 기본 사료집 -부록 : 능 원 묘의 현대적 명칭표기 기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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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차 례 서 장 : 조선왕실의 능 원 묘 제도 11 제 1부 능 원 묘 기본 사료 Ⅰ. 능호( 陵 號 ) 및 묘호( 廟 號 )를 결정한 유래 1. 건원릉( 健 元 陵 ) 정릉( 貞 陵 ) 헌릉( 獻 陵 ) 영릉( 英 陵 ) 현릉( 顯 陵 ) 장릉( 莊 陵 ) 사릉( 思 陵 ) 광릉( 光 陵 ) 창릉( 昌 陵 ) 공릉( 恭 陵 ) 경릉( 敬 陵 ) 선릉( 宣 陵 ) 순릉( 順 陵 ) 정릉( 靖 陵 ) 희릉( 禧 陵 ) 66

4 16.온릉( 溫 陵 ) 태릉( 泰 陵 ) 효릉( 孝 陵 ) 강릉( 康 陵 ) 목릉( 穆 陵 ) 장릉( 章 陵 ) 장릉( 長 陵 ) 휘릉( 鰴 陵 ) 영릉( 寧 陵 ) 숭릉( 崇 陵 ) 명릉( 明 陵 ) 익릉( 翼 陵 ) 의릉( 懿 陵 ) 혜릉( 惠 陵 ) 원릉( 元 陵 ) 홍릉( 弘 陵 ) 영릉( 永 陵 ) 융릉( 隆 陵 ) 건릉( 健 陵 ) 인릉( 仁 陵 ) 수릉( 綏 陵 ) 경릉( 景 陵 ) 예릉( 睿 陵 ) 135

5 39.홍릉( 洪 陵 ) 유릉( 裕 陵 ) 139 Ⅱ. 원( 園 )의 명칭이 정해진 내력과 피장자 1. 순창원( 順 昌 園 ) 수경원( 綏 慶 園 ) 영회원( 永 懷 園 ) 의령원( 懿 寧 園 ) 효창원( 孝 昌 園 ) 소경원( 昭 慶 園 ) 휘경원( 徽 慶 園 ) 순강원( 順 康 園 ) 영원( 英 園 ) 소령원( 昭 寧 園 ) 수길원( 綏 吉 園 ) 영휘원( 永 徽 園 ) 숭인원( 崇 仁 園 ) 191 Ⅲ.묘( 墓 )의 내력과 피장자 1. 대빈묘 (제20대 경종 사친 장희빈) 회묘 (제10대 연산군 사친 파평 윤씨) 207

6 3.경빈묘 (제13대 명종 후궁 경빈 이씨) 원빈묘 (제22대 정조 후궁 원빈 홍씨) 선빈묘 (제22대 정조 후궁 선빈 성씨) 화빈묘 (제22대 정조 후궁 화빈 윤씨) 경빈묘 (제24대 헌종 후궁 경빈 김씨) 귀인묘 (제19대 숙종 후궁 경주 김씨) 귀인묘 (제25대 철종 후궁 밀양 박씨) 귀인묘 (제25대 철종 후궁 평양 조씨) 귀인묘 (제26대 고종 후궁 이씨) 귀인묘 (제26대 고종 후궁 이씨) 귀인묘 (제26대 고종 후궁 양씨) 귀인묘 (제26대 고종 후궁 광산 김씨) 귀인묘 (제26대 고종 후궁 해주 정씨) 귀인묘 (제26대 고종 후궁 덕수 장씨) 소의묘 (제19대 숙종 후궁 강릉 유씨) 숙의묘 (제25대 철종 후궁 나주 범씨) 숙의묘 (제25대 철종 후궁 김해 김씨) 숙의묘 (제25대 철종 후궁 온양 방씨) 숙의묘 (제16대 인조 후궁 나씨) 숙의묘 (제23대 순조 후궁 밀양 박씨) 숙의묘 (제24대 헌종 후궁 김해 김씨) 숙원묘 (제16대 인조 후궁 장씨) 235

7 25.공주묘 (제4대 세종 1녀 정소공주) 공주묘 (제11대 중종 5녀 인순공주) 공주묘 (제17대 효종 1녀 숙신공주) 공주묘 (제18대 현종 1녀 명선공주) 공주묘 (제18대 현종 2녀 명혜공주) 공주묘 (제26대 고종 1녀) 옹주묘 (제21대 영조 4녀 화억옹주) 옹주묘 (제23대 순조 4녀 영온옹주) 옹주묘 (제26대 고종 1녀) 옹주묘 (제26대 고종 2녀) 왕녀묘 (제14대 선조의 딸) 왕녀묘 (제21대 영조 1녀) 왕녀묘 (제21대 영조 6녀) 대군묘 (제8대 예종 1남-인성대군) 대군묘 (제23대 순조 2남) 대군묘 (제25대 철종 1남) 대군묘 (제26대 고종 1남) 대군묘 (제26대 고종 3남) 대군묘 (제26대 고종 4남) 왕자묘 (제26대 고종 4남) 왕자묘 (제26대 고종 5남) 완왕묘 (제26대 고종의 아들) 257

8 47.경혜공주묘 (제5대 문종 1녀) 경혜공주묘 (제5대 문종의 부마 정종의 묘) 경선군묘 (소현세자 1남) 경완군묘 (소현세자 2남) 영빈묘 (제19대 숙종 후궁 영빈 김씨) 명빈묘 (제3대 태종 후궁 명빈 김씨) 연산군묘 (제11대 연산군 및 부인 거창 신씨) 의친왕묘 (제26대 고종 2남) 덕혜옹주묘 (제26대 고종 3녀) 광화당묘 (제26대 고종 후궁) 삼축당묘 (제26대 고종 후궁) 수인당묘 (의친왕 후비) 광해군묘 (제15대 광해군 및 부인 문화 유씨) 안빈묘 (제17대 효종 후궁 안빈 이씨) 성묘 (제14대 선조 후궁 공빈 김씨, 광해군 사친) 준경묘 (태조 5대 조부묘) 영경묘 (태조 5대 조모묘) 276

9 제 2부 : 능 원 묘의 현대적 명칭 표기안 Ⅰ.능 원 묘 의 현대적 명칭 표기안 1. 연구 목적 및 과정 현황 및 분석 288 Ⅱ. 능 원 묘 명칭 표기 방식 변경안 제안 294 Ⅲ. 능 원 묘 명칭 표기 방식 변경안을 적용한 결과 1. 능 (40기) 원 (13기) 묘 (64기)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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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장: 조선왕실의 능 원 묘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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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조선왕실의 능 원 묘 제도 조선의 예치와 국가의례 조선은 유교(儒敎) 국가로 호칭될 정도로 유교의 정신이 국가 통치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 사회였다. 국가의 운영에서 의례가 중시된 것은 유교 정신이 국가 통치에 근간을 이루었던 까닭이었다. 즉 물리적 강제력을 수반하는 법치(法治)가 작동하는 가운데서도, 예치(禮治) 곧 예(禮)에 입각한 통치가 법치에 못지않게 중요시되었던 것이다. 조선 사회에서는 법적 제도장치 역시 유교 정신에 입각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조선 사회를 이끌어간 위정자들은 제도장치를 운영하는 정신적 규율에 해당하는 예법을 매우 중요시하였으며, 이 예법을 통해 더욱더 유교정신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중세적 신분질서와 그에 입각한 사회운영 원리를 사회 구성원 각각에게 강제적으로 지키도록 하는 것이 법치라 한다면, 예치는 그것을 사회 구성원 전반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 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커다란 사회적 갈등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국가 경영 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수단이 바로 예치였고, 예치가 큰 의미를 갖고 작동한 덕택에 조 선사회는 비슷한 단계의 다른 여느 사회에 비해 원만하게 운영될 수 있었다. 우리는 조선왕조가 50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장기간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여러 측면에서 사회 경제적 발전을 이루 면서도 다른 사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각한 변란을 덜 겪으며 사회가 운영될 수 있 었던 점도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으나, 예치가 작동하였다는 점을 가벼이 보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2. 상장례와 능 원 묘 조선사회에서 예치가 중요한 비중을 점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 을 것이다. 예치가 차지한 비중에 비추어볼 때,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에서 유교 의례 가 지니는 중요성은 대단히 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유교 의례 가운데서 국가 적으로 가장 중요시된 것이 길례(吉禮)와 흉례(凶禮)였다. 이를 다시 국가와 왕실로 나누 어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왕실과 국왕에게 가장 중요하였던 것이 흉례 즉 상장(喪葬)에 대한 의례였으며, 이는 민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여러 윤리 규범 가운데서 효(孝)가 충(忠)과 함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례와 장례가 중요시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사회 통합의 기능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여러 인격신과 자연신에 대한 제사 의례인 길 례(吉禮)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길례에서도 종묘(宗廟)에서의 의례가 가장 중요

14 시 되었는데, 이것도 같은 이치였다. 특히 왕실과 왕실 구성원들은 사회에서 가장 존귀 한 존재로서 최고의 권위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에 모든 신료와 백성들에게 전범(典範)으 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했으며, 이에 따라 상례와 장례의 거행에 큰 공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이 건국될 무렵에는 정신문화에서 불교가 큰 비중을 차지하였던 고려시대의 전통 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어서, 상례와 장례에도 불교식 의식으로 거행되는 경우가 많았 다. 고위 관원 가운데서도 원찰(願刹)을 짓는 일이 많았다는 기록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왕실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유교식 상례 및 장례 의식을 사용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 왕조의 능(陵) 원(園) 묘(墓)는 그러한 장례 의식의 소산물이다. 3. 왕권의 정통성과 효 왕조사회에서 국왕의 정상적인 즉위는 선왕(先王)의 죽음에 의해 이루어진다. 비록 세 자가 이미 책봉되어 있다 하더라도, 국왕이 승하하기 전에 의정부 대신(大臣)들이 입회 한 가운데 누가 왕위를 계승할 것인지에 대해 남긴 유언이 사왕(嗣王)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근거였고, 사왕은 사망한 선왕에 대해 상주로서 국상을 치르는 도중에 즉위 의례 를 거행하였다. 특히 유교문화권의 경우는 국왕으로서의 자질 중 상당 부분이 선왕에 대 한 상례와 장례를 얼마나 잘 치렀는가에 의해 평가되기 때문에, 국상과 국장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국왕의 즉위의례가 흉례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국가의례에 대한 기본 규정집이라 할 국조오례의(國朝五 禮儀) 이래, 각종 국가 의례에 대한 문헌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국조오례 의 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주요 참고 대상이 되었던 통전(通典) 에 수록되어 있는 당 (唐)까지의 역대 중국 왕조의 의례와 당(唐) 당시의 개원례(開元禮), 명(明) 시대의 명집 례(明集禮) 등에는 모두 황제의 즉위 의식이 황제가원복(皇帝加元服) 이라는 제목으로 가례(嘉禮)의 첫머리에 올라 있으며, 이에 이어 황제가 태묘(太廟)에 배알하고 황실의 어 른들에게 인사하는 절차 등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국왕의 즉위 의례가 흉례의 한 부 분으로 들어와 있는 것은 조선시대 학자관료들의 독특한 사고방식이 반영된 결과라 보 아야 할 것이다. 능의 위치를 정하고 조성하는 일은 먼저 승하한 왕비나 국왕의 장례 때 미리 이루어 지기도 하지만, 대개 초상이 난 때부터 시작된다. 비록 조선의 왕릉이 역대 중국 왕조의 능에 비해 규모가 작기는 하나, 이러한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였다고 할 수 있

15 조선왕실의 능 원 묘 제도 15 다. 4. 문화재로서의 능 원 묘 조선왕조 왕실 구성원의 분묘는 피장자의 지위에 따라 그 호칭에 능(陵) 원(園) 묘(墓) 의 구별이 있다. 능은 국왕(國王)과 왕비(王妃)의 무덤임을 나타내며, 왕세자(王世子)와 왕 세자빈(王世子嬪), 국왕의 사친(私親)이나 추존된 국왕의 사친으로서의 선왕의 후궁(後 宮) 등의 무덤은 원이라 한다. 그리고 여러 왕자(王子)와 공주(公主), 옹주(翁主), 일반 후궁들의 무덤을 이르는 용어로는 일반적 분묘와 마찬가지로 묘로 호칭되었다. 현재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있는 조선왕실의 능 원 묘는 대한제국 시기의 것을 포 함하여 능 40기, 원 13기, 묘 64기 등 총 117기가 존속되고 있다. 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은 경기(京畿) 지역에 조성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왕실 구성원의 무덤도 2품 이상 관 원들의 무덤과 아울러 경기 지역에 조성하도록 되어 있어서, 능 원 묘는 대부분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경기도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다만 조선이 건국되기 전에 사망한 조선왕 실 선조의 분묘나 왕위(王位)에서 쫓겨나 유배지인 영월에서 사망한 뒤 영월 지역에 묻 혔다가 뒤에 복위가 이루어져 분묘도 능으로 격상되었던 단종(端宗)의 장릉(莊陵) 등의 예외가 있을 뿐이다. 여기서는 이 가운데 왕릉을 중심으로 살피기로 한다. 5. 능호와 묘호, 시호 조선시대에 국왕이 사망하면 국가는 빈전도감(殯殿都監)과 국장도감(國葬都監), 산릉 도감(山陵都監) 등 3도감을 설치하여 상례와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하였다. 빈전도감은 국 왕의 시신을 안치하는 빈전의 설치에서부터 상례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각 단계의 제사 와 관련된 의례 및 대행왕(大行王)과 사왕(嗣王)의 호위 등을 담당하였으며, 국장도감은 장례에 대한 일을, 산릉도감은 왕릉 축조를 담당하였다. 국왕이 사망한 뒤 장례를 치르기까지는 3개월에서 5개월의 기간이 걸리며, 상례를 마 치고 돌아가신 국왕의 신위를 종묘(宗廟)에 모시기까지는 2년의 기간이 걸린다. 이 사이 에 선왕의 시호(諡號)와 묘호(廟號) 및 능호(陵號)가 정해진다. 조선 국왕의 공식적인 시 호는 중국으로부터 받는데, 조선에서 세 가지의 시호 안(案)을 정해서 보내면 중국에서 그 가운데 하나를 결정하는 방식을 취하였으므로 실상은 조선에서 정하는 셈이었다. 중 국에서 시호를 정하여 보내오면 조선 조정의 신료들도 시호를 정하여 올리게 된다. 능호 와 묘호는 모두 조선에서 자체적으로 논의하여 정하였다. 능호는 말 그대로 능의 이름이

16 조선왕실의 능 원 묘 제도 16 며, 묘호는 종묘에 받드는 신위에 사용하는 호칭이다. 6. 능의 입지 조선의 왕릉은 일부 평지에 조성된 경우가 없지 않으나, 대개는 산등성이에 자리하고 있다. 왕릉의 위치는 국왕이 승하한 뒤 그때마다 지관을 보내 택지하여 정하였는데, 풍 수지리설에 따라 길흉을 논하는 풍조가 만연하여 흉하다는 이유로 천장을 한 사례도 8 차례나 있다. 조선초기의 능은 대체로 고려 때의 형식을 따라 지하에 석실(石室)로 현궁 (玄宮)을 조성하고, 그 앞에 부장품을 넣기 위한 석실 곁방을 설치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봉분의 앞쪽에는 정자각(丁字閣)을 설치하고, 그 동쪽에는 비각(碑閣), 남쪽에는 고방(庫 房)과 재실(齋室)을 두었다. 이러한 체제는 석실로 된 현실을 회격(灰隔)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 외에는 대체로 조선후기까지 유지되었다. 7. 능의 수와 피장자 조선의 국왕은 대한제국 시기까지 합하여 모두 27명이다. 그럼에도 남한에 존재하는 조선시대의 능이 42기에 이르고 있고, 북한에도 이 숫자에 포함되지 않은 10기의 능이 있어서 그 수가 50기를 넘는다. 이처럼 역대 국왕의 수에 비해 능의 수가 많은 것은 다 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후대에 추존하여 국왕의 지위를 부여받은 경우로 덕종, 진종, 장조, 문조 등이 있다. 이들의 분묘도 모두 왕릉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묘의 규모와 체제도 반드시 여느 왕릉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둘째, 한 국왕이 복수의 왕비를 맞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중종, 선조, 숙종, 영조 등 오래 재위한 국왕의 경우 대체로 왕비가 둘 이상이었다. 재위 기간이 짧더라도 왕비 가 일찍 사망한 예종, 경종의 경우 역시 왕비가 두 명인데 비해, 세종, 현종, 순조의 경 우에는 30년 이상씩 재위했으나 왕비는 한 명이었다. 특히 초기에는 본래 부인이 두 명 이었던 태조를 제외하면 세조 때까지 왕비는 모두 한 명이었다. 셋째, 왕이나 왕비 한 쪽만을 매장한 단릉(單陵)인 경우가 적지 않은 때문이다. 두 번 째 사례에서 왕비는 대개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단릉일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 의 능은 합장릉이라기 보다는 왕과 왕비가 가까운 곳에 매장되는 경우가 보통이었는데, 같은 구릉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 또는 동원이릉(同原異陵)이라 부르는 형 태와 정자각을 중심으로 좌우로 위치한 구릉에 각각의 능을 쓴 이원이릉(異原異陵)이라

17 조선왕실의 능 원 묘 제도 17 부르는 형태의 것들이 있다. 이상은 모두 단일한 능의 명칭 아래 2, 3기의 봉분이 자리 잡은 경우이다. 왕릉으로는 태조의 건원릉을 제외하면 왕위에서 축출당해 불행한 죽음을 당한 단종의 장릉만이 단릉으로 되어 있다. 8. 조선시대의 능의 의미 능(陵)은 한(漢) 때부터 중국 황제의 무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무덤이 커다란 언덕과 같은 규모로 만들어졌던 데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역대 중국 정통 왕조의 황제릉과 비교한다면, 조선의 왕릉은 규모와 장식이 다를 뿐 우리의 전형적인 봉분(封墳) 형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왕조 의 능의 명칭이 정해져 있는 양상을 살펴보면, 언덕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국면 전반을 단위로 하여 능(陵) 으로 호칭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한 예로 서오릉에 자리 잡고 있는 명릉의 비에 씌어져 있는 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朝鮮國 肅宗大王 明陵(조선국 숙종대왕 명릉) 仁顯王后 祔左(인현왕후 부좌; 이상 우측 비 전면의 글) 朝鮮國 仁元王后 祔右岡(조선국 인원왕후 부우강; 좌측 비 전면의 글) 조선국(朝鮮國)은 조선왕조의 국호(國號) 즉 나라 이름이고, 숙종(肅宗)은 조선왕조의 제 19대 국왕의 묘호(廟號)이다. 돌아가신 국왕에게는 묘호 외에도 시호(諡號), 존호(尊 號) 등을 올리게 되나, 가장 대표적인 호칭으로 사용되는 것이 묘호이며, 따라서 우리에 게도 국왕의 여러 호칭 가운데 대개 묘호만이 알려져 있다. 숙종의 첫 왕비는 인원왕후 (仁元王后)이고 인현왕후는 인원왕후가 사망함에 따라 새로 얻은 왕비 즉 계비(繼妃)이 며, 명릉(明陵)은 능호 즉 능의 호칭이다. 능호는 능을 가리킬 뿐 아니라 능에 묻힌 인 물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왕과 왕비가 함께 묻힌 경우에는 왕을 뜻하는 말 로 사용되는 것이 보통이다. 즉 기록에서 명릉이 인물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면, 그 것은 곧 숙종을 뜻하게 된다. 숙종의 능과 인현왕후의 능은 나란히 자리 잡은 쌍분의 형태를 이루고 있고, 같은 언 덕의 왼쪽 기슭에 인원왕후의 능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명릉의 비문에 씌어진 글의 내용은 이상의 능 3기를 합쳐 명릉 으로 호칭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에 도 능이라는 명칭이 한편으로는 하나의 구릉 즉 언덕으로 간주되는 국면 전반을 포괄하 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나타내며, 아울러 왕과 왕비의 능이 나란히 조성될 경우

18 조선왕실의 능 원 묘 제도 18 그 명칭은 왕릉의 명칭으로 인식되었음을 나타낸다. 명릉과 함께 서오릉에 위치하고 있는 능 가운데서 영조의 첫 번째 왕비인 정성왕후의 능이 있다. 이 능의 이름은 홍릉으로, 정자각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북쪽에서 내려다보 면 오른쪽)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성왕후는 영조 33년 사망하였는 데, 당시에는 영조의 능이 나란히 배치될 것을 전제로 하여 조성하였었다. 그러나 영조 가 계비인 정순왕후와 함께 능을 쓰게 된 까닭에 홍릉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왼쪽, 전 통적 관점에서 보면 오른쪽이 비어 있는 기이한 형태로 남게 되었다. 9. 문화재로서의 왕릉에 대한 인식 강화 필요성 국조오례의 등의 규정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국왕이 주관해야 할 국가 의례는 대단 히 많았다. 그러나 실제 국왕이 주관하는 의례는 종묘(宗廟)에서의 제사와 선왕의 능에 대한 제사 정도에 그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종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직(社稷)의 의 례도 규정대로라면 국왕이 주관하여야 하나, 종묘와는 달리 섭행(攝行)을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흔히 국가를 상징하는 존재로 언급되는 사직조차도 국왕이 직접 제사를 올리는 경우 가 드물었던 것과 달리 역대 국왕이 선왕들의 능을 직접 찾아가서 제사하는 일은 잦았 다. 이로부터 조선시대 당시에는 왕릉이 지니는 의미가 대단히 각별하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17세기 이후 조선의 국왕이 선왕의 능을 찾는 일은 전보다 더 잦아지는데, 이는 조선사회의 지배이념으로 기능하였던 성리학의 위세가 더욱 강화됨에 따라 국왕의 왕통 에서의 정통성을 확인하려는 노력도 그만큼 강화되었음을 나타낸다. 이에 따라 왕릉의 중요성도 더 높아지고 있었다. 우리 역사는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으로 개편된 뒤 일본의 식민지로 지배받는 경험을 하였고, 3.1운동 이후 출범한 임시정부 때로부터 민주공화정이 표방되었다. 식민지로부 터의 해방에 이어 민주공화정 정부가 수립된 지도 이제는 60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이 러한 현재의 시점에서 왕릉의 의미가 과거와 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현존하는 왕릉들을 문화재로만 보고 지나치기에는 역사적 중요성이 매 우 크다는 것을 짚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조선왕조 또는 대한제국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면, 그 왕릉은 문화재가 아니라 여전히 국가 의례의 중심 대상물로 기능하고 있을 것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왕릉은 문화재 이상일 수는 없으나, 여느 문화재 보다도 조성 당시의 역사적 실상을 알고 나서 마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19 제 1부 능 원 묘 기본 사료

20 조선왕실의 능 원 묘 제도 20

21 Ⅰ. 능호(陵號) 및 묘호(廟號)를 결정한 유래 1. 健元陵 <조선의 제1대 국왕 태조의 능> 건원릉은 태조가 죽은 뒤 그의 아들인 태종의 명을 받아 서울 가까운 곳에서 능지를 물색하다가 검교참찬의정부사(檢校參贊議政府事) 김인귀(金仁貴)의 추천으로 하륜(河崙) 이 나가 살펴보고 택정했다고 전한다. 능은 기부(基部)를 12각(角)의 둘레돌[護石]로 싸고 둘레돌 밖으로는 석난간(石欄干)을 두르고, 석호(石虎) 넷, 석양(石羊) 넷을 번갈아 바깥쪽을 향해 배치하여, 능 배후에 석 호가 나란히 오도록 되어 있다. 능 전면에 혼유석(魂遊石)이 놓였고, 그 양쪽에 망주석 (望柱石)이 하나씩 서 있으며,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태조 (太祖) : 1335(충숙왕 복위 4) 1408(태종 8), 재위 조선 제1대 왕.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성계(成桂)이다. 자는 중결(仲潔), 호는 송 헌(松軒)이다. 등극 후에 이름을 단(旦), 자를 군진(君晉)으로 고쳤다. 이자춘(李子春)의 둘째 아들로 화령부(和寧府 : 영흥)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최한기(崔閑奇)의 딸이다. 비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 계비는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이다. 어려서부 터 총명하고 담대했으며, 특히 활솜씨가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자춘은 1356년(공민왕 5) 고려의 쌍성총관부 공격 때 내응해 원나라 세력을 축출하 는 데 공을 세워 고려의 벼슬을 받았으며, 1361년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朔方道萬戶兼 兵馬使)로 임명되어 동북면(東北面) 지방의 실력자가 되었다. 이성계는 이러한 가문의 배경과 타고난 군사적 재능을 바탕으로 활약하면서 무장으로 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성계는 1362년 정월 친병(親兵 : 私兵) 2,000명을 거느리고 개 경 탈환작전에 참가하여 가장 먼저 입성해 전공을 세운 뒤, 원나라 장수 나하추(納哈出) 의 침입, 덕흥군(德興君)의 침입, 삼선(三善) 삼개(三介)가 지휘한 여진족의 침입 등을 격퇴하고, 특히 1377년(우왕 3) 황산대첩(荒山大捷)을 거둬 창궐하던 왜구의 기세를 꺾 어 민심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뒤로도 여진족 호바투(胡拔都), 함주에 침입한 왜구를 격 퇴하는 무공을 세운 뒤, 1388년 최영을 도와 임견미(林堅味) 일당을 제거하는 데 성공 함으로써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올랐다. 이해 봄에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장악하 고, 마침내 1392년 7월 공양왕을 원주로 내쫓고 새 왕조의 태조로서 왕위에 올랐다. 태조는 즉위 초에는 국호를 그대로 고려(高麗) 라 칭하고 의장(儀章)과 법제도 모두

22 능 원 묘 기본 사료 22 고려의 고사(故事)를 따를 것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차츰 새 왕조의 기틀이 잡히자 새 왕조의 국호를 조선(朝鮮) 으로 정하고 한양(漢陽)으로 천도하여 새 왕조의 기반과 기본 정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왕자 사이에 왕위계승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는 불행을 겪었다. 1408년 5월 24일 창덕궁(昌德宮) 별전(別殿)에서 승하했다. 시호는 강헌지인계운성문 신무대왕(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며, 묘호(廟號)는 태조(太祖), 능호는 건원릉(健元 陵)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사료 上上昇太上王尊諡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 廟號太祖 禮曹啓: 神主返魂, 禮經 所 載, 寫眞奉祀, 後世所爲 今我上昇太上王梓宮山陵安厝之後, 當依古禮, 奉迎神主, 以行返 虞及祔等祭; 神懿王后, 不可以眞容配祀神主, 其先所奉安仁昭殿眞容, 捲藏櫃中, 亦以神主 配祀, 以待三年祔廟, 然後奉安太上王眞容, 仍以神懿眞容配, 庶古今禮典, 竝行不廢 下 議政府 상승(上昇)하신 태상왕(太上王)의 존시(尊諡)를 올리기를 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至仁啓 運聖文神武大王)이라 하고, 묘호(廟號)를 태조(太祖)라 하였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신주(神主)로 반혼(返魂)하는 것은 예경(禮經) 에 실려 있는 것 이요, 사진(寫眞)으로 봉사(奉祀)하는 것은 후세에서 하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 상승(上 昇)하신 태상왕의 재궁(梓宮)을 산릉(山陵)에 안치한 뒤에 마땅히 고례(古禮)에 따라 신 주를 받들어 맞아 반혼제(返魂祭) 우제(虞祭) 부제(祔祭) 등의 제사를 행하여야 합니 다.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진용(眞容)을 신주 대신 배사(配祀)할 수 없으니, 먼젓번 인소 전(仁昭殿)에 봉안(奉安)한 진용은 궤 속에 간직해 두고, 신주로써 배사하여 3년 뒤에 부묘(祔廟)토록 하며, 그 연후에 태상왕의 진용을 봉안한 다음 신의왕후의 진용을 배향 (配享)하면, 거의 고금의 예전(禮典)이 아울러 행해져서 폐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니, 의정부(議政府)에 내렸다. 태종실록 권 16, 8년 8월 7일(임오) 2. 貞陵 <조선의 제1대 국왕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 1396년(태조 5)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가 죽자 태조는 능역을 황화방(皇華坊) 북원(北原 지금의 정동)에 정하였으나 태조가 죽은 뒤인 1409년(태종 9) 묘를 사을한

23 능 원 묘 기본 사료 23 (沙乙閑 지금의 정릉) 골짜기로 옮겼다. 1410년 태종은 정릉의 석물 중 일부인 병풍석 을 광교(廣橋)의 돌다리로 사용했으며, 그 밖의 석재나 목재들을 태평관(太平館) 건립 시 부속재로 이용했다. 1581년(선조 14) 삼사(三司)에서 신덕왕후 강씨의 시호와 존호를 복귀하고, 정릉을 회복하자는 논의가 있은 뒤, 1669년(현종 10) 송시열(宋時烈) 등이 다 시 신덕왕후 강씨를 종묘에 배향해야 한다는 차자(箚子)를 올림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인 복구 작업과 이에 따른 수호군 및 모든 상설(象設)을 구비하게 되었다. 신덕왕후(神德王后) :? 1396 (태조 5) 흔히 조선 태조의 계비(繼妃)로 호칭된다. 본관은 곡산(谷山 또는 信川)이며, 판삼사사 (判三司使) 강윤성(康允成)의 딸이다. 신덕왕후가 이성계의 조선 건국 과정에 참여하여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 뒤 계비가 된 배경에는 신천 강씨의 권문세족으로서의 위치가 컸다. 아버지 윤성과 그 형제들은 충혜왕 공민왕 때 권문세가로서 위세를 떨쳤다. 1356년 (공민왕 5)에 원나라의 파병 요청으로 장사성군(張士城軍)의 토벌군이 동원된 적이 있는 데, 이 때 원나라에서 파견된 사신이 바로 원나라의 이부낭중(吏部郎中)의 직위를 가진 이성계의 재종숙 나해(那海)와 숭문소감(崇文少監)의 직위를 가진 강씨의 오빠 순룡(舜 龍)이었다. 이와 같이 고려 말기 권문세족의 배경을 가진 강씨는 이성계의 둘째 부인으로, 위화도 회군을 할 당시에는 포천 철현(鐵峴)의 농장을 맡아 살림을 따로 하고 있었다. 조선이 개국되자 1392년 8월에 현비(顯妃)로 책봉되었다. 신덕왕후의 친가는 이성계의 권력 집 중과 조선개국 과정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는 많은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사후 존호와 능호를 각각 신덕(神德)과 정릉(貞陵)으로 정하였다. 개국공신들의 헌의로 국모를 높이는 뜻의 공신수릉제(功臣守陵制)를 채용하여 조선의 항식(恒式)으로 삼았고, 개국공신 이서(李舒)에게 수릉직을 맡게 하였다. 그런 뒤 기제(忌祭)를 맞아 경복궁 내 강씨의 처소를 인안전(仁安殿)으로 정하고 영정을 봉안했다가 이듬해 9월 정릉에 영각 (影閣)을 지어 옮겼다. 1399년(정종 1) 기일에 흥천사(興天寺)를 원당으로 삼아 제사할 때 태상왕(太上王 : 태조)도 참례하였다. 태조가 사망한 뒤 1409년(태종 9) 2월에 묘를 사을한(沙乙閑)곡에 이장했다가 다시 한강 남쪽 공현(鞏縣)의 뒤에 이장하여 왕비의 제례를 폐하고, 봄 가을 중월제(中月祭) 로 격하시켰다. 그 뒤 1412년 기제는 서모나 형수의 기신제(忌辰祭)의 예에 따라 3품관 (三品官)으로 제사를 대행하게 하였다.

24 능 원 묘 기본 사료 여년 뒤인 1581년(선조 14) 11월 먼저 3사(三司)에서 신덕왕후의 시호와 존호를 복귀하고, 정릉을 회복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6개월여 만에 정파된 바가 있다. 이 때 중신들은 건원릉비(健元陵碑)에 신의(神懿) 신덕이 열거되어 있고, 강씨가 차비(次妃)로 서술된 점, 태조가 정한 강비의 시책(諡冊)에 칭송이 엄연한데 그 뜻과 달리 후대인들이 부묘(祔廟 : 종묘(宗廟)에 신주(神主)를 모시는 일)를 폐하고 능을 옮겨 중대한 원(寃)을 남게 한 것 등이 모두 천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하였다. 현종 때에 이르러 정통명분주의에 입각한 유교이념이 강조되고 예론이 크게 일어나자 강씨의 부묘 문제가 다시 대두하였 다. 1669년(현종 10) 2월 판중추부사 송시열 등이 차자를 올린 것 계기로 이 해 9월 강 씨의 기신제가 8월 11일로 고정되어 200여년 만에 복구되었던 것이다. 시호는 순원현경신덕왕후(順元顯敬神德王后)이고, 능호는 정릉(貞陵)으로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있다. 소생으로 왕자 방번(芳蕃), 방석(芳碩)과 경순공주(敬順公主)를 두었다. 사료 奉常寺議獻顯妃尊號曰神德王后, 陵號曰貞 봉상시에서 현비의 존호를 신덕왕후(神德王后)라 하고 능호(陵號)를 정릉(貞陵)이라 의 논해서 올렸다. 태조실록 권 10, 5년 9월 28일(계미) 葬神德王后于聚賢坊北原, 號貞陵 宗親百官釋服, 具朝服返魂於 仁安殿後, 以白衣黑帶視事 設王后魂殿都監 신덕왕후(神德王后)를 취현방(聚賢坊) 북녘 언덕에 장례하고 정릉(貞陵)이라 이름하였 다. 종친과 백관이 복(服)을 벗고, 조복(朝服)을 갖추고서 인안전(仁安殿)으로 반혼(返魂) 한 뒤에, 백의(白衣)와 흑대(黑帶)로 정무를 보았다. 왕후의 혼전도감(魂殿都監)을 설치하 였다. 태조실록 권 11, 6년 정월 3일(병진) 3. 獻陵 <조선의 제3대 국왕 태종과 비 원경왕후의 능> 1420년(세종 2) 원경왕후가 죽자 현재의 위치에 능 자리를 정하고, 능호를 헌릉이라 하였다. 당시 상왕이던 태종의 명령에 따라 불교적 요소를 제거하여 조선식의 능의 체제 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도비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25 능 원 묘 기본 사료 25 태종(太宗) : 1367(공민왕 16) 1422(세종 4), 재위 이름은 방원(芳遠), 자는 유덕(遺德)이다. 태조의 다섯째 아들로,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이다. 비는 민제(閔霽)의 딸 원경왕후(元敬王后)이다. 고려말 성균관에서 수학하여 1383년(우왕 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388년(창왕 즉위 년)부터 이듬해까지 문하시중 이색(李穡)의 서장관이 되어 남경(南京)에 다녀왔다 년(공양왕 4) 3월에는 이성계(李成桂)가 해주에서 사냥하다 말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은 것을 기회로 수문하시중 정몽주(鄭夢周)가 간관(諫官) 김진양(金震陽) 등을 시켜 공양왕 에게 상소하게 하여 정도전(鄭道傳) 등 이성계파의 핵심인물을 유배하고 이성계까지 제 거하려 할 때 이방원이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 조영규(趙英珪)등을 시켜 정몽주를 격살 함으로써 대세를 만회하였다. 같은 해 정도전 등과 공작하여 도평의사사로 하여금 이성 계 추대를 결의하게 하여 공양왕을 폐위시킨 뒤 이성계를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조선이 개국되자 1392년(태조 1) 8월에 정안군(靖安君)으로 책봉되었으나, 개국공신 책록에서 제외되고 세자 책봉에서도 탈락하였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 도전과 세자 방석(芳碩) 등을 제거한 뒤 의흥삼군부우군절제사와 판상서사사(判尙瑞司 事)를 겸하여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다. 1400년 방간(芳幹)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박포(朴苞) 등이 주동이 된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한 뒤 세자로 책봉되어 이 해 11월 정종의 양위를 받아 등극하였다. 태종은 공신과 외척을 대거 제거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의정부 - 육조 - 하급 중앙관 서로 이어지는 중앙 관제와 도 - 주 군 현 - 면, 리로 이어지는 지방통치체제를 정비 하여 국왕중심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였다. 또한 즉위 이전에 사병(私兵)을 혁파한 데 이어 중앙군의 군정, 군령체계를 정비하고 지방의 국방 병력을 육군과 수군으로 구분하 여 지휘체계를 갖추어 군사제도 역시 강력한 왕권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정리하였다. 특 히 여러 차례에 걸쳐 양전사업과 호구조사를 시행하여 조세 자원을 전에 비해 배 이상 으로 늘림으로써 통치 기반을 확고히 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사찰 소속 토지와 노비의 정리도 이와 같은 기조 위에서 단행되었다. 법전의 조종성헌존중주의(祖宗成憲尊重主義) 를 확립한 것 또한 주요 공적으로 꼽힌다. 1418년 성덕신공상왕(聖德神功上王)의 존호를 받았다. 1421년에는 성덕신공태상왕으 로 가봉(加封)되었다.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이다. 묘호(廟號)는 태종이다. 능호는 헌릉(獻陵)으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산 13번지 1 호에 있다.

26 능 원 묘 기본 사료 26 원경왕후(元敬王后) : 1365(공민왕 14) 1420(세종 2)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비(妃).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 霽)의 딸이다. 1382년(우왕 8) 이방원(李芳遠)에게 출가하였으며, 1392년(태조 1)에 정 녕옹주(靖寧翁主)에 봉해졌다. 1400년(정종 2) 2월에 이방원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세자빈이 되어 정빈(貞嬪)에 봉 해졌다. 이 해 11월에 이방원이 정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어 정비(靜妃) 의 칭호를 얻게 되었다. 태종이 외척 세력을 제거한 것과 관련하여 불화를 빚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해 후덕왕대비(厚德王大妃)로 봉하였다. 1420년 7월 56세로 죽었다. 소생은 세종과 양녕(讓寧), 효령(孝寧), 성녕(誠寧)의 3대 군과 정순(貞順), 경정(慶貞), 경안(慶安), 정선(貞善)의 4공주가 있다. 시호는 창덕소열원경왕후(彰德昭烈元敬王后)이다. 능호는 헌릉(獻陵)으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산 13번지 1호에 있다. 사료 禮曹請上大行厚德王大妃諡元敬王太后, 陵號曰獻, 從之 예조에서 대행후덕왕대비(大行厚德王大妃)의 시호를 원경왕태후(元敬王太后)라 올리고, 능호(陵號)는 헌(獻)이라 하기를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실록 권 9, 2년 8월 25일(신유) 4. 英陵 <조선의 제4대 국왕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능> 본래의 영릉은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사망하였을 때 광주(廣州) 서쪽 기슭에 하나의 봉분 아래 석실(石室)로 된 현실(玄室) 둘을 두는 형태로 조성되었으며, 1450년 (문종 즉위년) 세종이 사망하자 합장하였었다. 이때의 영릉의 체제는 조선왕조 왕릉의 기본 형태를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구(舊) 영릉까지 신도비를 세웠으나, 이후의 능에는 신도비를 세우지 않게 되었다. 세조 때부터 영릉의 위치가 좋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천장 논의가 일었으며, 결국 1469년(예종 1) 현재의 위치인 여주로 옮겨졌다. 이 새 영릉은 세조 때부터 시작된, 석실이 아닌 회격(灰隔)으로 합장한 형태이다. 세종(世宗) : 1397(태조 6) 1450(세종32), 재위

27 능 원 묘 기본 사료 27 이름은 도(祹), 자는 원정(元正)이다. 태종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 (元敬王后閔氏)이다. 비는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昭憲王后)이다. 1408년(태종 8)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지고, 1412년 충녕대군에 진봉(進封)되었으며, 1418년 6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가 같은 해 8월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원 래 태종의 뒤를 이을 왕세자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이었으나, 태종은 양녕대군이 자신이 이룩한 정치적 안정과 왕권을 이어받기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충녕대군을 왕세 자로 삼은 뒤 두 달 만인 1418년 8월 10일 선위하였으니 이 사람이 세종이다. 세종은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 사업과 훈민정음의 창제,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공법(貢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업적을 남 겼다. 시호는 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고, 묘호는 세종(世宗) 이며, 능호는 영릉으로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있다. 예조판서 정인지(鄭麟趾)가 제술한 영릉지 (英陵誌) 가 있다. 소헌왕후(昭憲王后) : 1395(태조 4) 1446(세종 28) 조선 제4대 왕 세종의 비(妃). 본관은 청송(靑松). 문하시중 심덕부(沈德符)의 손녀이 고, 영의정 온(溫)의 딸이며,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안천보(安天保)의 딸이다. 1408년(태 종 8) 충녕군(忠寧君) 도(祹)와 가례(嘉禮)를 올려 빈(嬪)이 되고, 경숙옹주(敬淑翁主)에 봉해졌다. 1417년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에 개봉(改封)되고, 이듬해 4월 충녕대군이 왕세자 에 책봉되자 경빈(敬嬪)에 봉해졌으며, 같은 해 9월에 내선(內禪)을 받아 즉위하니 12월 에 왕후로 봉하여 공비(恭妃)라 일컬었다. 그러나 1432년(세종 14)에 중궁(中宮)에게 미칭(美稱)을 올리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라 하여 1432년에 왕비로 개봉되었다. 부친 심온의 옥사(獄事)가 일어나 폐비의 논의가 있었으나, 내조의 공이 인정되어 일축 되었다. 1446년에 52세로 죽자 헌릉(獻陵) 옆에 장사지냈다. 뒤에 세종의 능인 영릉(英 陵)으로 이장하였다. 시호는 선인제성소헌왕후(宣仁齊聖昭憲王后)이고, 능호는 영릉으로 경기도 여주군 능 서면 왕대리에 있다. 사료

28 능 원 묘 기본 사료 28 議政府與六曹參判, 集賢殿提學同知春秋館事以上, 同議啓大行大王諡號曰, 英文睿武仁 聖明孝, 廟號曰世宗, 從之 의정부에서 육조의 참판과 집현전 제학,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이상의 관원과 함께 의논하여 대행대왕(大行大王)의 시호를 영문예무인성명효(英文睿武仁聖明孝)라 하 고, 묘호를 세종(世宗)으로 아뢰니, 그대로 따랐다. 문종실록 권 1, 즉위년 3월 10일(갑인) 5. 顯陵 <조선의 제5대 국왕 문종과 비 현덕왕후의 능> 1452년(문종 2) 문종이 죽자 건원릉(健元陵) 동쪽 산에 장사지냈다. 정자각 뒤로 나란히 서 있는 2개의 언덕 위에 왕과 왕비의 능이 각각 단릉처럼 동원 이강(同原異岡) 형식으로 배치되었다. 능의 형식은 국조오례의 의 표본인 구영릉(舊 英陵)의 제도를 따라 병풍석의 방울과 방패무늬가 없고 고석(鼓石)도 4개로 줄었다. 구 영릉이 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옮겨졌으므로, 현존하는 능 가운데 국조오례의 양 식을 따른 가장 오래된 능이다. 왕비의 능은 본디 경기도 안산군(安山郡)에 있었으나, 문종이 즉위하여 현덕왕후가 되 면서 능호를 소릉이라 한 뒤, 1452년(단종 즉위년)에 문종과 합장되면서 현릉으로 바뀌 었다. 현덕왕후는 1457년(세조 3) 단종 복위운동과 관련되어 신주가 철거되었다가 1513년(중종 8) 왕릉 왼쪽 산으로 옮겨왔다. 문종 : 1414(태종 14) 1452(문종 2), 재위 이름은 향(珦), 자는 휘지(輝之). 세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이다. 비는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권전(權專)의 딸인 현덕왕후(顯德王后)이다. 1421년(세종 3)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450년 37세로 왕위에 올랐다. 세종은 각종 질환으로 인해 1437년 일치감치 세자(문종)에게 서무(庶務)를 결재하게 하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442년 군신(群臣)의 반대를 무릅 쓰고 세자가 섭정(攝政)을 하는 데 필요한 기관인 첨사원(詹事院)을 설치하고, 세자로 하 여금 왕처럼 남쪽을 향해 앉아서 조회(朝會)를 받게 하고, 국가의 중대사를 제외한 서무 는 모두 세자의 결재를 받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수조당(受朝堂) 을 짓고 세자가 섭정을 하는 데 필요한 체제를 마련했으며, 1445년부터 세자의 섭정이 시작되었다. 이

29 능 원 묘 기본 사료 29 섭정은 세종이 죽기까지 계속되었으며 이로 인해 문종은 즉위하기 전부터 실제적인 정 치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따라서 문종 시대의 정치 방법과 분위기는 세종 후반기의 그 것과 크게 변함이 없었다. 문종은 유학(儒學)뿐 아니라 천문(天文)과 역수(曆數) 및 산술(算術)에도 정통했고, 예 초 해서(隷 草 楷書) 등 서도에도 능하였다. 그러나 몸이 약해 재위 2년 4개월만에 39세로 병사하였다. 시호는 공순흠명인숙광문성효대왕(恭順欽明仁肅光文聖孝大王)이고, 묘호는 문종(文宗) 이며, 능호는 현릉(顯陵)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현덕왕후(顯德王后) : 1418(태종 18) 1441(세종 23) 조선 제5대 왕 문종의 비(妃).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권전(權 專)의 딸이다. 1431년(세종 13) 세자궁에 선임되어 승휘(承徽)에 올랐다. 1433년경 양 원(良媛)에 진봉되었다. 1437년 종부시소윤 봉려(奉礪)의 딸 순빈(純嬪)이 부덕하여 폐 빈된 뒤 세자빈이 되었다. 성품이 단아하고 효행이 있어 세종과 소헌왕후(昭憲王后)의 총애를 받았다. 1441년 원손(元孫 : 뒤의 단종)을 출생하고 3일 뒤에 죽었다. 같은 해 현덕(顯德)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경기도 안산시 고읍산(古邑山)에 예장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년) 현덕왕후에 추숭되었다. 혼전호(魂殿號)는 경희전(景禧殿), 능호는 소릉(昭陵)이라고 명명되었다. 1452년(단종 즉위년) 문종과 합장되면서 현릉(顯陵)으로 개호되었다. 1454년 인효순혜(仁孝順惠)의 존호가 추상되었고, 같은 해 문종의 신주와 함께 종묘에 봉안되었다. 1457년(세조 3) 현덕왕후의 어머니 아지(阿只)와 동생 자신(自愼)이 1456년에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사형당하고, 아버지 전이 추폐(追廢)되어 서민이 되는 사건이 일어나 아들 노산군(魯山君)이 군(君)으로 강봉(降封)되자 이에 그 어미 된 자가 왕후의 명호를 유지함은 마땅하지 않으니 추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개장해야 한다. 는 의정부의 계(啓) 에 따라 폐위되었다. 이와 함께 종묘에서 신주가 철거되고, 평민의 예로 개장되었다. 1471년(성종 2) 남효온(南孝溫)이 추복(追復)을 건의한 이래 여러 차례 추복 건의가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1513년(중종 8) 종묘에 벼락이 치자 그것을 계기로 재차 논의되면서 전교(傳敎)로 추복되고, 현릉 동쪽에 이장되었다. 신주는 종묘 문종실(文宗 室)에 봉안되었다. 친가(親家)도 1699년(숙종 25) 단종의 부묘(祔廟)와 함께 신원되었다. 소생으로는 단종과 영양위(寧陽尉) 정종(鄭悰)에게 시집 간 경혜공주(敬惠公主)가 있다.

30 능 원 묘 기본 사료 30 시호는 인효순혜현덕왕후(仁孝順惠顯德王后)이다. 능호는 현릉(顯陵)으로 경기도 구리 시 인창동에 있다. 사료 議政府據禮曹呈啓: 顯德嬪仍舊謚, 追崇爲王后, 魂殿號爲景禧殿, 陵稱 昭陵 從之 의정부에서 예조의 정문(呈文)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현덕빈(顯德嬪)을 옛날 시호대로 추숭(追崇)하여 왕후(王后)라 하고, 혼전(魂殿)은 경희전(景禧殿)이라 하고, 능(陵)은 소릉 (昭陵)이라 칭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문종실록 권 2, 즉위년 7월 1일(계묘) 議政府, 六曹, 集賢殿, 春秋館二品以上議啓: 大行大王諡曰欽明仁肅光文聖孝, 廟號曰 文宗, 陵曰顯 의정부, 육조, 집현전, 춘추관 2품 이상이 대행대왕(大行大王)의 시호를 의논하여 아뢰 기를 흠명인숙광문성효(欽明仁肅光文聖孝) 라 하고, 묘호(廟號)는 문종(文宗) 이라 하 고, 능(陵)은 현릉(顯陵) 이라 하였다. 단종실록 권 1, 즉위년 6월 17일(무인) 上御勤政殿, 受群臣賀 八道監司, 亦進箋陳賀 仍行飮福禮, 頒敎于中外曰: 事作於一時, 而議生於後世 作於一時者, 不能無圖爲之失, 生於後世者, 必求其是非之 歸 苟拘一時已定之事, 而無更復之擧, 則其失爲重, 而後世之議, 誠可畏也 今我祖宗, 奉先之孝, 對越之敬, 高出百王, 廟貌 陵寢之制, 悉遵古章, 無間可議 顧惟顯德王后, 久 廢廟享, 陵寢不治 頃因講官之言, 考究其由, 追廢之擧, 出於一時大臣謬請, 而非先王本 意 乃以此博詢于朝, 商度累月, 群議僉同, 予意已決 肆用祭告太廟, 追復位號, 開舊昭 陵, 遷付顯陵之左, 去昭陵舊號, 合稱顯陵 又於本月初六日, 躋祔神主于宗廟, 配享文宗之 室 於戲, 事不可苟且而因循, 旣擧追復之禮, 情有所感發而興起, 將見厚德之民 상이 근정전(勤政殿)에 나아가 여러 신하들의 축하를 받고, 팔도의 감사(監司)도 전문 (箋文)으로 축하를 드렸다. 이어 음복례(飮福禮)를 행한 다음 중외에 반교(頒敎)하였다. 일은 한 시대에 이루어지고 그에 대한 논의는 후세에 나는 것인데, 한 시대에 이루 어지는 일이란 그 계획의 잘못이 없을 수 없는 것이며, 후세에 나는 논의란 반드시 그 시비의 귀결을 구하는 것이라, 한 시대의 이미 정해진 일에 구애되어 다시 고치는 처사 가 없다면 그 잘못이 중하여 후세의 논의가 참으로 두렵다. 이제 우리 조종(祖宗)의 선 조를 받드는 효성과 천지신명을 대하는 정성이 백왕(百王)에 뛰어나고, 종묘와 능침(陵 寢)의 제도를 모두 옛 법을 준행하였으니 논의할 것이 없으나, 오직 현덕왕후(顯德王后)

31 능 원 묘 기본 사료 31 에게는 오래도록 종묘 향사를 폐하고 능침을 돌보지 않았는데, 지난번 강관(講官)의 말 에 따라 그 이유를 상고해 보니, 폐위하게 된 것은 한때 대신(大臣)들의 그릇 청한 데에 서 나온 것이요, 선왕의 본의가 아니었다. 이것으로 조정에 널리 물어서 여러 달 동안 상의하자, 여럿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나의 뜻도 이미 결정되어, 이처럼 제사를 드려 태 묘(太廟)에 고유하고 위호(位號)를 추복(追復)하였으며, 옛 소릉(昭陵)을 옮겨 현릉(顯陵) 의 좌측에 모신 다음, 소릉의 옛 칭호를 버리고 현릉과 합하여 명칭하였으며, 또 본월 초엿샛날에 신주를 종묘에 올려 모셔 문종실(文宗室)에 배향하였노라. 아! 일은 구차히 인순할 수 없으므로 이미 추복의 예를 거행하였으니 정이란 감동된 바가 있으면 흥기하는 것이라, 장차 후덕(厚德)하여지는 백성을 보리라. 중종실록 권 18, 8년 5월 6일(계유) 6. 莊陵 <조선의 제6대 국왕 단종의 능> 단종이 세조의 왕위 찬탈로 1457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유배되었다 가 상왕복위계획이 탄로되어 죽음을 당하자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비밀리에 장례를 치렀다. 1580년(선조 13) 정철(鄭澈)의 장계(狀啓)로 묘역을 수축하고 표석을 세웠다. 1681년(숙종 7) 대군(大君)으로 추봉되었으며 1698년 복위되어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했다. 상설(象設)은 추봉된 정릉(貞陵)의 예에 따라 난간과 무석을 설하지 않았 고, 양식은 간단하게 작은 후릉(厚陵) 석물의 것을 따랐다. 따라서 장릉의 석물은 숙종 영조 연간에 만들어진 왜소하면서도 간단한 능 석물의 선구를 이룬다고 할 수 있겠다. 단종(端宗) : 1441(세종 23) 1457(세조 3), 재위 이름은 홍위(弘暐). 아버지는 문종이며, 어머니는 현덕왕후 권씨(顯德王后權氏)이다. 비는 여산부원군(礪山府元君) 송현수(宋玹壽)의 딸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宋氏)이다. 1448년(세종 30) 8세 때 의정부의 청으로 왕세손에 책봉되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 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452년 5월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경복궁 천추전(千秋殿)에서 죽자 그 뒤를 이어 근정전(勤政殿)에서 즉위하였다. 문종의 고명을 받은 영의정 황보 인 (皇甫仁), 좌의정 남지(南智), 우의정 김종서(金宗瑞) 등이 측근에서 보좌하였다. 또한 집 현전 학사 출신인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하위지(河緯地), 신숙주(申叔舟), 이개 (李塏), 유성원(柳誠源) 등은 지난날 집현전에서 세종으로부터 보호를 부탁받았으므로 측

32 능 원 묘 기본 사료 32 근에서 협찬하였다. 1453년 10월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정권을 빼앗고자 권람(權擥), 한명회(韓明 澮) 등 측근들의 계책에 따라 좌의정 김종서(金宗瑞)를 그의 집에서 죽이고, 영의정 황 보 인(皇甫仁), 병조판서 조극관(趙克寬), 이조판서 민신(閔伸), 우찬성 이양(李穰) 등을 대궐로 불러와서 죽였다. 일의 시비를 가리기도 전에 정권은 수양대군의 수중으로 넘어 가, 수양대군이 영의정으로서 군국의 중대한 일을 모두 위임받아 처리하였다. 1455년 윤6월 수양대군이 조정의 여러 신하들과 의논하여, 왕의 측근인 금성대군(錦 城大君)이하 여러 종친, 궁인 및 신하들을 모두 죄인으로 몰아 각 지방에 유배시키기를 요구하자 그에 따랐다. 이러한 주변 정세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단종은 마침내 수양대 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어 수강궁(壽康宮)으로 옮겨 살았다. 1456년(세조 2) 6월 상왕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사건이 일어났다. 복위 사건의 주동 인물은 지난날 집현전학사 출신인 몇몇 문신과 성승(成勝)과 유응부(兪應孚) 등 무신들 이었다. 그러나 계획이 실행되기도 전에 동모자인 김질(金礩)의 고발로 결국 실패하고, 이 사건의 주동 인물 중 많은 사람이 사형을 받게 되었다. 이어서 상왕도 이 사건에 관 련되었으므로 서울에서 내쫓자는 주장이 나와 1457년 6월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 이 해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노산군의 숙부 금성대 군(錦城大君)이 다시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었다. 이에 다시 노산군에서 서인 으로 강봉 되었다가 10월 마침내 죽음을 당하였다. 1681년(숙종 7)에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 전 현감 신규(申奎)의 상소에 의해 복위가 결정되었다. 시호를 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敦孝大 王)으로, 묘호를 단종으로 추증하고, 능호(陵號)를 장릉(莊陵)이라 하였다. 사료 十一月初八日, 領議政柳尙運等, 會于賓廳, 議上大王諡曰: 純定安莊景順敦孝, 中正 精粹曰純, 大慮慈仁曰定, 好和不爭曰安, 履正志和曰莊, 由義而濟曰景, 慈和徧服曰順 廟號端宗 守禮執義曰端 陵號莊陵 王后諡曰: 定順, 純行不爽曰定, 和比于理 曰順 徽號端良齊敬, 守禮執義曰端, 中心敬事曰良, 執心克莊曰齊, 夙夜儆戒曰敬 陵號思陵 11월 초8일에 영의정 유상운(柳尙運) 등이 빈청(賓廳)에 모여 대왕의 시호 올릴 것을 의논하기를, 순정안장경순돈효(純定安莊景順敦孝) 라 하고, 중정정수(中正精粹)를 순 (純)이라 하고, 대려자인(大慮慈仁)을 정(定)이라 하며, 호화부쟁(好和不爭)을 안(安)이라 하고, 이정지화(履正志和)를 장(莊)이라 하며, 유의이제(由義而濟)를 경(景)이라 하고, 자 화편복(慈和徧服)을 순(順)이라 한다. 묘호를 단종(端宗) 이라 하고, 수례집의(守禮

33 능 원 묘 기본 사료 33 執義)를 단(端)이라 한다. 능호(陵號)를 장릉(莊陵) 이라 하소서. 하고, 왕후의 시호를 올려서 말하기를, 정순(定順) 이라 하고, 순행불삽(純行不爽)을 정 (定)이라 하고, 이치에 화비[和比于理]함을 순(順)이라 한다. 휘호(徽號)를 단량제경 (端良齊敬) 이라 하고, 수례집의(守禮執義)를 단(端)이라 하고, 중심경사(中心敬事)를 양(良)이라 하며, 집심극장(執心克莊)을 제(齊)라 하고, 숙야경계(夙夜儆戒)를 경(敬)이 라 한다. 능호를 사릉(思陵) 이라 하소서 하였다. 단종실록 권 14 부록 7. 思陵 <조선의 제6대 국왕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 정순왕후는 당초에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敬惠公主)의 정씨가(鄭氏家) 묘역에 묻혔고, 정씨가에서 위패(位牌)도 모시게 하였다. 1698년(숙종 24) 단종복위와 더불어 정순왕후로 추상(追上)하여 종묘에 부향(祔享)되 고, 묘를 높여 사릉이라 하였다. 석물(石物)제도는 장릉(莊陵)과 마찬가지로 난간과 무석 (武石)을 생략한 후릉석양(厚陵石樣)을 따른 것으로, 숙종 때의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정순왕후(定順王后) : 1440(세종 22) 1521(중종 16)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의 비(妃)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부사 송계생(宋繼生)의 증손 녀이고, 지중추원사 복원(復元)의 손녀이며, 판돈녕부사 현수(玹壽)의 딸이다. 1453년(단종 1) 간택되어 이듬해에 왕비에 책봉되었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함에 따 라 의덕왕대비(懿德王大妃)에 봉하여졌으나, 이듬해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 등이 실패함 으로써 1457년(세조 3)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유배되자 부인으로 강등되었다. 1698년(숙종 24) 노산군이 단종으로 추복(追復)되자 다시 정순왕후로 추복 되어 신위가 창경궁에 옮겨졌다. 시호는 의덕단량제경정순왕후(懿德端良齊敬定順王后)이고, 능호는 사릉(思陵)으로 경기 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에 있다. 사료 十一月初八日, 領議政柳尙運等, 會于賓廳, 議上大王諡曰: 純定安莊景順敦孝, 中正 精粹曰純, 大慮慈仁曰定, 好和不爭曰安, 履正志和曰莊, 由義而濟曰景, 慈和徧服曰順

34 능 원 묘 기본 사료 34 廟號端宗 守禮執義曰端 陵號莊陵 王后諡曰: 定順, 純行不爽曰定, 和比于理 曰順 徽號端良齊敬, 守禮執義曰端, 中心敬事曰良, 執心克莊曰齊, 夙夜儆戒曰敬 陵號思陵 11월 초8일에 영의정 유상운(柳尙運) 등이 빈청(賓廳)에 모여 대왕의 시호 올릴 것을 의논하기를 순정안장경순돈효(純定安莊景順敦孝) 라 하고, 중정정수(中正精粹)를 순 (純)이라 하고, 대려자인(大慮慈仁)을 정(定)이라 하며, 호화부쟁(好和不爭)을 안(安)이라 하고, 이정지화(履正志和)를 장(莊)이라 하며, 유의이제(由義而濟)를 경(景)이라 하고, 자 화편복(慈和徧服)을 순(順)이라 한다. 묘호를 단종(端宗) 이라 하고, 수례집의(守禮執 義)를 단(端)이라 한다. 능호(陵號)를 장릉(莊陵) 이라 하소서. 하고, 왕후의 시호를 올려서 말하기를, 정순(定順) 이라 하고, 순행불삽(純行不爽)을 정 (定)이라 하고, 이치에 화비[和比于理]함을 순(順)이라 한다. 휘호(徽號)를 단량제경(端 良齊敬) 이라 하고, 수례집의(守禮執義)를 단(端)이라 하고, 중심경사(中心敬事)를 양 (良)이라 하며, 집심극장(執心克莊)을 제(齊)라 하고, 숙야경계(夙夜儆戒)를 경(敬)이라 한 다. 능호를 사릉(思陵) 이라 하소서. 하였다. 단종실록 권 14 부록 8. 光陵 <조선의 제7대 국왕 세조와 비 정희왕후의 능> 1468년(세조 14)과 1483년(성종 14)에 축조했다. 이 능은 세조의 유언에 따라 병석 을 없애고 석실은 회격(灰隔)으로 바꾸어 꾸몄으며 병풍석에 새겼던 십이지신상은 난간 동자서주에 옮겨 새겼다. 능 배치는 두 언덕을 한 정자각(丁字閣)으로 묶는 동원이강(同 原異岡)의 양식을 수립하였으며 이러한 양식은 광릉이 최초로, 이후의 능역 조성에서도 이용되었다. 세조(世祖) : 1417(태종 17) 1468(세조14), 재위 이름은 유(瑈). 자는 수지(粹之). 세종의 둘째 아들이고 문종의 아우이며, 어머니는 소 헌왕후 심씨(昭憲王后沈氏)이다. 왕비는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尹氏)이다. 타고난 자질이 영특하고, 명민(明敏)하여 학문도 잘했으며, 무예도 남보다 뛰어났다. 처음에 진평대군(晉平大君)에 봉해졌다가 1445년(세종 27)에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봉 해졌다. 대군으로 있을 때, 세종의 명령을 받들어 궁정 안에 불당을 설치하는 일에 적극

35 능 원 묘 기본 사료 35 협력하였다. 또한 승려 신미(信眉)의 아우인 김수온 (金守溫)과 함께 불서(佛書)의 번역 을 감장(監掌)하고 향악(鄕樂)의 악보(樂譜)도 감장, 정리하였다. 1452년(문종 2)에는 관 습도감도제조 (慣習都監都提調)에 임명되어 국가의 실무를 맡아보았다. 1452년 5월에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심복인 권람(權擥), 한명회(韓明澮) 등과 함께 정국 전복의 음모를 진행시켜 이듬해 1453년(단종 1) 10월, 이른바 계유정난 을 단행하였다. 하룻밤 사이에 폭력으로 정국을 전복시키고 군국(軍國)의 대권을 한 손 에 쥔 그는 자기 심복을 요직에 배치, 국정을 마음대로 처리하였다. 조정 안에 있는 반 대 세력을 제거하고 밖에 있던 함길도도절제사(咸吉道都節制使) 이징옥 (李澄玉)마저 주 살, 내외의 반대 세력을 모두 제거하였다. 1455년 윤6월 단종에게 강요하여 왕위를 수 선(受禪)하였다. 1456년(세조 2) 6월에 좌부승지 성삼문(成三問) 등 이른바 사육신(死六臣)이 주동이 되어 단종 복위를 계획했으나 일이 발각되자 이 사건에 관련된 여러 신하들을 모두 사 형에 처하였다. 뒤따라 집현전을 폐지시키고 경연(經筵)을 정지시켰으며, 집현전에 소장 된 서적은 모두 예문관에 옮겨 관장하게 하였다. 이 해 6월에 상왕(上王 : 端宗)이 사육 신의 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 강원도 영월에 유배시 켰다. 이어서 경상도의 순흥에 유배되어 있던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노산군 복위를 계획 하다가 일이 발각되자 노산군을 죽이게 하였다. 세조는 정정이 안정됨에 따라 왕조정치의 기준이 될 법전의 편찬에 착수하여 왕조 일 대(一代)의 전장(典章)인 경국대전 의 호전(戶典)과 형전(刑典)을 반행하였다. 세조는 신하들을 통솔함에 있어 자기에게 불손하는 신하는 가차 없이 처단하고 자기에게 순종 하는 신하는 너그럽게 대하였다. 또한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의정부의 서사제(署事制)를 폐지하고 육조 직계제(直啓制)를 시행하였다. 따라서 승정원 기구는 점차 강화되고 이러 한 추세 하에서 1468년에 원상제(院相制)가 설치되었다. 이는 세조가 말년에 와서 다단 한 정무의 처결에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또 후사의 장래 문제도 부탁하려는 의도 에서 설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으로 세조는 1468년 9월에 병이 위급해지자, 여러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왕세자에게 전위(傳位)하고 그 이튿날에 죽었으니, 세조 가 왕권의 안정에 얼마나 주의를 집중시켰는가를 알 수 있다. 시호는 승천체도열문영무지덕융공성신명예흠숙인효대왕(承天體道烈文英武至德隆功聖 神明睿欽肅仁孝大王)이고, 묘호는 세조(世祖)이다. 능호는 광릉(光陵)으로 경기도 남양주 시 진접면 부평리에 있다. 정희왕후(貞熹王后) : 1418(태종 18) 1483(성종 14)

36 능 원 묘 기본 사료 36 조선 제7대 왕 세조의 비(妃).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판중추부사 증영의정 윤번(尹韜) 의 딸이다. 1418년(태종 18) 홍주 군아(郡衙)에서 태어났다. 1428년(세종 10)에 가례를 행하였다. 처음에는 낙랑부대부인(樂浪府大夫人)에 수봉되었다. 1452년(단종 즉위년) 수 양대군이 김종서 등을 제거하는 거사 때 모의가 새어나가 손석손(孫碩孫) 등이 만류하였 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중문에 이르자 정희왕후가 갑옷을 들어 입혀서 용병(用兵)을 결 행하게 하였다. 1455년(세조 1) 왕비에 책봉되었다. 1457년 존호를 자성(慈聖)이라 하였다. 1469년 (예종 1) 흠인경덕선열명순휘의(欽仁景德宣烈明順徽懿)의 존호를 더하였다. 또 1471년 (성종 2) 원숙휘신혜의신헌(元淑徽愼惠懿神憲)을 가상하였다. 예종이 14세로 즉위하자 정희왕후가 수렴청정 했는데, 조선왕조에서 처음 있는 일이 었다. 예종이 재위 1년 2개월 만에 죽자 세조의 맏아들인 덕종(德宗 : 예종의 형)의 둘 째 아들 자을산군(者乙山君 : 뒤의 성종)이 그 날로 즉위하였다. 이는 조종조(祖宗朝)에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齊安大君)이 어렸고, 또 성종에게 형 월산 대군(月山大君)이 있었는데도 바로 그 날 즉위한 것은 정희왕후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 다. 성종 또한 13세의 어린 나이였으므로, 정희왕후가 7년 동안이나 섭정하였다. 1483년 3월 30일 온양에 있다가 행궁에서 죽으니 수가 66세였다. 덕종, 예종과 의숙 공주(懿淑公主) 등 2남 1녀를 두었다. 시호는 자성흠인경덕선렬명순원숙휘신혜의신헌정희왕후(慈聖欽仁景德宣烈明順元淑徽 神惠懿神憲貞熹王后)이다. 능호는 광릉(光陵)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있 다. 사료 傳于院相寧城君 崔恒及都承旨權瑊曰: 大行大王尊號, 未及加上, 遽爾賓天, 追悼罔 極, 今欲速上諡號 古者踰月而定諡, 此雖人子不死其親之意, 然旣已斂殯, 今復何言? 速上 尊諡, 此太妃及予之至願也 恒對曰: 政丞 六曹參判以上, 會議以啓 當考古制 遂議啓: 傳曰: 其速召議政府堂上 曾經 廟號曰神宗 睿宗 聖宗, 諡號曰烈文英武 神聖仁孝, 魂殿曰永昌 長慶 昌慶, 陵號曰景陵 昌陵 靖陵 上覽之, 令瑊問曰: 天體道四字, 本尊號也, 而謂予曰仍之, 乃今除去, 是誘我也 向予謂韓繼禧曰: 數 今乃只限八字, 以予爲幼沖而若是耶? 承天體道四字, 似爲虛也, 故臣實議除 知? 廟號不得稱爲世祖乎? 承 勿限字 左右皆索然, 無以對 左議政朴元亨啓曰: 上曰: 大行大王再造功德, 一國臣民, 夫誰不 河東君 鄭麟趾等曰: 八字則臣等非所敢限 我國祖宗諡號, 率用四字 六字 八字而止, 故倣此而議 世祖則我朝有世宗, 故未敢擬議 時旣有世祖, 又有世宗, 今稱世祖何妨? 僉曰: 上曰: 漢 此則臣等未及思之 且繼禧再謂臣等曰:

37 능 원 묘 기본 사료 何限八字? 待罪 然不以上敎傳之, 故未會上意, 請待罪 繼禧亦曰: 37 臣未明白宣傳, 臣亦 俄而命中官饋酒, 令更議之改啓 諡曰承天體道至德隆功烈文英武聖神明睿仁孝大 王, 廟號曰世祖 瑊以啓, 上曰: 仁孝上加懿肅, 陵號曰泰陵, 殿號曰永昌 仍命勿待 罪 원상(院相) 영성군(寧城君) 최항(崔恒)과 도승지 권감(權瑊)에게 전교하기를, 대행대왕 의 존호(尊號)를 미처 올리지 못하고 갑자기 승하하시니, 추도(追悼)하는 마음이 망극하 여 이제 시호(諡號)를 속히 올리고자 한다. 예전에는 달을 지나서 시호를 정하였는데, 이 는 비록 아들이 그 어버이를 죽은 것으로 하지 아니하는 뜻이나 이미 염빈(斂殯)을 하였 으니, 이제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 속히 존시(尊諡)를 올리는 것이 태비와 나의 지극 한 소원이다. 하니, 최항이 대답하기를, 옛 제도를 상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 다. 전교하기를, 그것을 속히 의정부 당상과 일찍이 정승을 지낸 이와 육조의 참판 이 상을 불러서 회의하라. 하니, 드디어 의논하여 계달하기를, 묘호(廟號)는 신종(神宗), 예종(睿宗), 성종(聖宗) 중에서, 시호는 열문영무신성인효(烈文英武神聖仁孝)로, 혼전(魂 殿)은 영창(永昌), 장경(長慶), 창경(昌慶) 중에서, 능호(陵號)는 경릉(景陵), 창릉(昌陵), 정릉(靖陵) 중에서 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보고 권감으로 하여금 묻게 하기를, 승천체도(承天體道) 네 글자는 본래 존호 (尊號)인데, 내게 이르기를 그대로 한다고 하였다가 이제 없앴으니, 이는 나를 꾀는 것이 다. 저번에 내가 한계희(韓繼禧)에게 이르기를 자수(字數)를 제한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제 여덟 자로만 제한하였으니, 내가 어리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하는가? 하니, 좌우에 서 모두 삭연(索然)하여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좌의정 박원형(朴元亨)이 아뢰기를, 승천체도 네 글자는 헛된 것 같기 때문에 신이 참으로 의논하여 없앴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대행대왕께서 재조(再造)한 공 덕은 일국의 신민으로 누가 알지 못하겠는가? 묘호(廟號)를 세조(世祖)라고 일컬을 수 없는가? 하니,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 등이 아뢰기를, 여덟 글자는 신 등이 감 히 제한한 바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조종(祖宗)의 시호가 모두 4자, 6자, 8자에 그쳤기 때문에 이를 모방하여 의논한 것입니다. 세조는 우리 조종에 세종(世宗)이 있기 때문에 감히 의논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한(漢)나라 때에 세조가 있고 또 세종이 있었는데, 이제 세조로 하 는 것이 어찌 거리낌이 있겠는가? 하니, 모두 말하기를, 지 못하였습니다. 또 한계희가 재차 신 등에게 이르기를, 가? 이는 신 등이 미처 생각하 어찌 여덟 자로 한정할 것인 하였으나, 상교(上敎)라고 전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성상의 뜻을 알지 못하였으 니, 대죄(待罪)하기를 청합니다. 못하였으니, 신도 대죄하겠습니다. 하고, 한계희가 또 아뢰기를, 하였다. 신이 명백하게 전하지

38 능 원 묘 기본 사료 38 한참 있다가 중관(中官)에게 술을 대접하도록 명하고 다시 의논하여 고쳐서 계달하게 하였다. 시호를 승천체도지덕융공열문영무성신명예인효대왕(承天體道至德隆功烈文英武 聖神明睿仁孝大王) 으로 하고, 묘호는 세조(世祖) 로 하여 권감이 계달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인효(仁孝) 위에 의숙(懿肅)을 더하고, 능호(陵號)는 태릉(泰陵)으로, 전호(殿 號)는 영창(永昌)으로 하라. 하고, 인하여 대죄하지 말도록 명하였다. 예종실록 권 1, 즉위년 9월 24일(경진) 高靈君 申叔舟, 自廣州來復命, 啓曰: 議定也 臣請更與二品以上同議 上, 議定 因出御書示叔舟曰: 凡加君上諡, 必與國人同議, 未可以二三大臣之 命議政府 曾經政丞 六曹參判以上 春秋 藝文館堂 廟號曰世祖, 諡號曰承天體道至德隆功烈文英武聖神明睿 懿肅仁孝, 陵號曰泰(殿) 陵, 魂殿曰永昌 叔舟啓曰: 御書諡號, 無以尙之 但昔 唐玄宗陵號曰泰陵, 泰字雖好, 然玄宗非令德之主, 請改之 且承天體道烈文英武, 大行王生 時尊號, 先稱八字而後加諡 傳曰: 卿言甚是, 然須與衆議之 陵曰光陵, 諡曰承天體道烈文英武至德隆功聖神明睿懿肅仁孝 傳曰: 叔舟出與諸宰僉議, 可 고령군 신숙주(申叔舟)가 광주(廣州)로부터 돌아와서 복명하고 아뢰기를, 무릇 임금 에게 시호를 더하는 것은 반드시 나라 사람들과 더불어 같이 의논할 것이고, 두세 대신 만으로 의논하여 정할 수 없으니, 신은 청컨대 다시 2품 이상과 더불어 같이 의논하소 서. 하였다. 의정부에 명하여 일찍이 정승을 지낸 자와 육조의 참판 이상과 춘추관, 예문관의 당상 (堂上)이 의논하여 정하게 하고, 인하여 어서(御書)를 내어서 신숙주에게 보이기를, 묘 호는 세조 로, 시호는 승천체도지덕융공열문영무성신명예의숙인효대왕 으로, 능호는 태릉 으로, 혼전(魂殿)은 영창 으로 한다. 하니, 신숙주가 아뢰기를, 어서의 시호 는 더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옛날 당(唐)나라 현종(玄宗)의 능호가 태릉인데, 태(泰)자가 아무리 좋을 지라도 현종은 좋은 임금이 아니니, 청컨대 고치소서. 또 승천체도열문영 무 는 대행왕이 살아계셨을 때의 존호인데, 먼저 이 여덟 자를 일컬은 뒤에 시호를 더 할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경의 말이 매우 옳으나 모름지기 여러 사람과 더불어 의논하라. 하였다. 신숙주가 나가서 여러 대신과 더불어 같이 의논하여, 능은 광릉(光陵) 으로, 시호는 승천체도열문영무지덕융공성신명예의숙인효(承天體道烈文英武至德隆功聖神明睿懿肅仁 孝) 로 하였더니, 전교하기를, 좋다. 하였다. 예종실록 권 1, 즉위년 9월 25일(신사) 命召議政府 六曹 館閣堂上 弘文館, 議大行大王大妃諡號 陵殿號與祭禮 鄭昌

39 능 원 묘 기본 사료 孫 尹弼商 沈澮 盧思愼 權瑊 李德良議: 39 婦人從夫, 今大行新陵, 與光陵, 雖異穴, 同一洞內, 不可別稱陵號 但兩陵旣異穴, 丁字閣所宜別設 世人以母祔葬父之塋內, 則三 年內倂祭其父, 雖非禮文所載, 亦人情之所不得不爾也 禮緣人情, 求之神道, 豈相遠哉? 依 文昭殿例, 宗親輪番, 以吉禮倂祭, 何如? 李陸 李則 李孟賢 李世弼 柳允謙議: 宋 仁宗 慈聖皇后 曺氏 葬仁宗永昭陵北二百二十步, 陵無別稱, 諸陵無不皆然 今依此例, 以 東西別之爲便 但丁字閣合於一處, 則事有多礙, 果如禮曹之議, 各建何如? 健 金宗直 閔師騫 申從濩 安潤孫 金應箕 宋軼 李均 黃啓沃議: 柳洵 成 歷代皇后祔葬者 非一, 而陵無別稱, 皆用皇帝陵號 今大行王妃陵號, 亦稱光陵, 而若有別稱之時, 依薄太后 長南陵 閻皇后恭北陵之例, 稱東光陵, 何如? 今山陵, 雖在光陵兆域之內, 旣非同穴, 若不 別立丁字閣, 則神路迂曲, 有妨事體, 別立丁字閣爲便 若三年內倂祭光陵之事, 此非合葬倂 祭之例, 而吉凶不宜相干, 光陵勿倂祭, 何如? 從昌孫等議 昌孫等僉議, 上諡大行大妃曰 貞熹 大慮克就: 貞, 有功安人: 熹 殿號曰泰慶 傳曰: 等意, 何如? 咸曰: 予欲加上大行大妃尊號, 於卿 與世祖尊號 字數相准, 無以爲加也 명하여 의정부, 육조, 관각(館閣)의 당상관과 홍문관 관원들을 불러서 대행대왕대비(大 行大王大妃)의 시호(諡號)와 능전(陵殿)의 호(號)와 제례(祭禮)를 의논하게 하였다. 정창손(鄭昌孫), 윤필상(尹弼商), 심회(沈澮), 노사신(盧思愼), 권감(權瑊),이덕량(李德 良)이 의논하기를, 지어미는 지아비를 따르는 것인데 이제 대행대왕대비의 새 능(陵)이 광릉(光陵)과 비록 혈(穴)은 달리 하였더라도 같은 골[洞]의 안에 있으니 따로 능호(陵 號)를 일컬을 수 없습니다. 다만 두 능이 이미 혈을 달리 하였으므로 정자각(丁字閣)은 마땅히 따로 설치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머니를 아버지 무덤 안에 부장 (祔葬)하면 3년 안에는 그 아버지를 함께 제사하니, 비록 예문(禮文)에는 실린 바가 없 다고 하더라도 인정으로써 그렇게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예(禮)는 인정에 인연한 것인데 신도(神道)로 추구하더라도 어찌 서로 멀겠습니까? 문소전(文昭殿)의 예에 의하여 종친 이 번갈아가면서 길례(吉禮)로써 함께 제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이육(李陸), 이칙(李則), 이맹현(李孟賢), 이세필(李世弼), 유윤겸(柳允謙)은 의논하기를, 송(宋)나라 인종(仁宗)의 자성황후(慈聖皇后) 조씨(曹氏)를 인종의 영소릉(永昭陵) 북쪽 2백 20보 (步) 지점에 부장(祔葬)하였는데, 능에 다른 칭호가 없고 여러 능도 모두 그렇지 않은 것 이 없으니 이제 이 예에 의거하여 동 서로 <칭호를> 분별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다만 정자각은 한 곳에 집합되어 있으면 일에 구애됨이 많은 것은 과연 예조의 의논과 같으 니 각각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며, 유순(柳洵), 성건(成健), 김종직(金宗直), 민사 건(閔師騫), 신종호(申從護), 안윤손(安潤孫), 김응기(金應箕), 송질(宋軼), 이균(李均), 황 계옥(黃啓沃)은 의논하기를, 역대 황후를 부장(祔葬)한 것이 한 사람만이 아니지만, 능 에 딴 칭호가 없고 모두 황제의 능호를 썼으니 이제 대행왕비의 능호도 광릉(光陵)으로

40 능 원 묘 기본 사료 40 일컫고 만약 구별해서 일컬을 때가 있으면 박태후(薄太后)의 장남릉(長南陵)과 염황후 (閻皇后)의 공북릉(恭北陵)의 예(例)에 의하여 동광릉(東光陵)으로 일컫는 것이 어떻겠습 니까? 이제 산릉(山陵)은 비록 광릉 지역 안에 있다 하더라도 이미 같은 혈(穴)이 아닌 데 만약 정자각을 따로 세우지 아니하면 신로(神路)가 꼬불꼬불하여 사체(事體)에 방해 로움이 있으니 따로 정자각을 세우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그리고 3년 안에 광릉에 아울 러 제사하는 일은, 이것이 합장하여 함께 제사하는 예가 아닌데 길흉을 서로 저촉되게 하는 것은 마땅치 못하니, 광릉과 아울러 제사하지 마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는데, 정창손 등의 의논에 따랐다. 정창손 등이 여러 사람의 의논으로 대행대비의 시호(諡號)를 정희(貞熹)로 올렸는데, 크게 생각하여 성취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貞)이요, 공(功)이 있어 사람을 편안하게 하 였다는 것이 희(熹)이다. 전호(殿號)는 태경(泰慶)으로 하였다. 전교하기를, 내가 대행대비의 존호(尊號)를 더하여 올리고자 하는데 경(卿) 등의 뜻은 어떠한가? 하니, 모두 말하기를, 세조(世祖)의 존호와 자수(字數)가 서로 같으니 더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예종실록 권 1, 즉위년 11월 1일(임진) 9. 昌陵 <조선의 제8대 국왕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합장릉> 왕릉과 왕비릉이 동원이강(同原異岡) 형식으로 조성되었으며, 석물(石物) 배치는 국 조오례의(國朝五禮儀) 의 예에 따랐다. 난간석의 기둥머리는 연잎과 연주문(連珠紋)이 보편적이지만, 창릉의 큰 석주는 둥근머리 밑에 환상받침을 마련하고 사각 석주로 변천 되어가는 형식을 하고 있어 당시 일부 남아 있던 고려 왕릉의 석주 양식을 반영한 것으 로 보인다. 예종(睿宗) : 1450(세종 32) 1469(예종 1), 재위 이름은 황(晄)이며, 세조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파평부원군 윤번(尹璠)의 딸 정희왕 후(貞熹王后), 비(妃)는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의 딸 장순왕후(章順王后)이다. 계비는 우 의정 한백륜(韓伯倫)의 딸 안순왕후(安順王后)이다. 처음에는 해양대군(海陽大君)에 봉해졌다가 1457년(세조 3)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1468년 9월 7일 세조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아 수강궁(壽康宮)에서 즉위하였다. 재위 1

41 능 원 묘 기본 사료 41 년 2개월 만에 20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즉위 초에는 세조의 유명을 받들어 한명회, 신숙주 등 대신을 원상(院相)으로 삼아, 이들이 서무를 의결하게 하였다. 1468년(예종 즉위년)에는 직전수조법(職田收租法)을 제정하였다. 이 해에 남이(南怡) 강순(康純) 등이 반역을 도모하다 사형 당하였다. 9월에 상정소제조(詳定所提調) 최항(崔恒) 등이 경국 대전 을 찬진했으나 반포를 보지 못하고 승하하였다. 예종은 19세에 즉위했으나 세조비 윤씨가 수렴청정하고, 신숙주, 구치관 등이 원상으 로서 서정을 의결하여 왕권은 약화된 시기였다. 그러나 예종은 세자로 있을 때인 1466 년부터 승명대리(承命代理)로 정치 경험이 있고 세조의 정치 방법에 영향을 받았다. 재 위기간이 약 14개월에 불과하다. 시호는 양도흠문성무의인소효대왕(襄悼欽文聖武懿仁昭孝大王)이며 능호는 창릉(昌陵) 으로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에 있다. 안순왕후(安順王后) :? 1498(연산군4) 조선 제 8대 왕 예종의 계비. 본관은 청주(淸州)로 청주부원군 한백륜(韓伯倫)의 딸이 다. 1460년(세조 6)에 한명회(韓明澮)의 딸이 세자빈에 책봉되어 가례를 행하였으나 이 듬해에 병사하자 1462년 세자빈에 간택되었고, 1468년 예종이 즉위하자 왕비에 책봉되 었다. 그러나 이듬해 예종이 병사하여 1471년(성종 2)에 인혜대비(仁惠大妃)에 봉해졌 고, 1497년(연산군 3)에 명의대비(明懿大妃)에 책봉되었다. 소생으로는 제안대군(齊安大 君)과 현숙공주(顯肅公主)가 있었다. 시호는 인혜소휘제숙안순왕후(仁惠昭徽齊淑安順王后)이고, 능호는 창릉(昌陵)으로 경기 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의 서오릉(西五陵) 묘역에 있다. 사료 曾經政丞 議政府 六曹 春秋館二品以上會議, 上大行王諡號曰欽文聖武懿仁昭孝, 廟 號曰睿宗, 陵曰昌陵, 魂殿曰景安 일찍이 정승을 지낸 관원과 의정부, 육조, 춘추관의 2품 이상의 관원이 모여 의논하여 대행왕(大行王)의 시호(諡號)를 올려 흠문성무의인소효(欽文聖武懿仁昭孝) 라 하고, 묘호 (廟號)는 예종(睿宗) 이라 하고, 능(陵)은 창릉(昌陵) 이라 하고, 혼전(魂殿)은 경안(景 安) 이라 하였다. 성종실록 권 1, 즉위년 12월 18일(정묘)

42 능 원 묘 기본 사료 恭陵 <조선의 제8대 국왕 예종의 비 장순왕후의 능> 장순왕후는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의 딸로 세자빈 때 죽었으므로, 1461년(세조 7) 묘 를 만들 때 왕후의 능이 아닌 세자빈 묘로 조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난간석과 병풍석이 생략되었고, 석양 석호 각 두 마리만 능을 보호하 고 있다. 봉분 앞에 상석과 장명등이 있으며 양쪽 끝에 석마와 문인석이 서 있다. 1470년(성종 1) 능호를 공릉이라 했고, 장순왕후로 추존되었다. 장순왕후(章順王后) : 1445(세종 27) 1461(세조 7) 조선 제8대 왕 예종의 비(妃). 본관은 청주(淸州). 자헌대부 삼사좌복야 문열공(資憲大 夫三司左僕射文烈公) 한상질(韓尙質)의 증손녀이고, 상당부원군 (上黨府院君) 영의정 한 명회(韓明澮)의 딸이며, 어머니는 고려의 문하시중 민지(閔漬)의 5대손인 한성부윤 대생 (大生)의 딸이다. 내외가가 당대의 문벌인 가문에서 태어난 한씨는 아름답고 정숙하여 1460년(세조 6) 세자빈(世子嬪)으로 책봉되어 가례를 행하였다.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1461년 원손(元孫 : 仁城大君)을 낳은 뒤 병으로 인하여 녹 사(錄事) 안기(安耆)의 집에서 요절하였다. 시호는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順王后) 이고, 능호는 공릉(恭陵)으로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봉일천리에 있다. 사료 命曾經政丞 議政府 六曹 春秋館二品以上, 會賓廳, 議章順嬪諡號 陵號 懿敬世子諡 號 廟號 陵號 粹嬪徽號 高靈君申叔舟 上黨君韓明澮 綾城君具致寬 寧城君崔恒 領議 政洪允成 上洛君金礩 左議政尹子雲 右議政金國光 左參贊任元濬 刑曹判書咸禹治 戶曹判書徐居正 工曹判書梁誠之 禮曹判書金謙光 吏曹參判鄭蘭宗 工曹參判鄭崇祖 禮曹參判李承召 兵曹參判李永垠 大司諫金壽寧 大司憲李克墩等議啓: 章順嬪諡號曰, 徽仁昭德章順王后 齊仁淑德章順王后; 陵號曰順陵 恭陵 懿敬世子諡號曰, 溫文懿敬 王 仁順懿敬王; 廟號曰, 懿敬廟 懿廟; 陵號曰, 懿敬陵 敬陵 粹嬪徽號曰, 慈粹王妃 仁粹王妃 議上, 傳曰: 章順嬪諡號, 以徽仁昭德章順王后, 陵號恭陵; 懿敬世子諡號, 以溫文懿敬王, 廟號懿敬廟, 陵號敬陵; 粹嬪徽號, 以仁粹王妃, 稱上 考妣墳及當代外祖考妣墳致祭節目曰: 又議大行大王外祖 大行大王外祖貞靖公尹璠, 當依前例施行; 當代外祖 襄節公韓確夫妻, 則上旣爲大行大王之後, 稱外祖考妣爲難, 依先王外祖墳例, 所在官, 奉敎 致祭何如? 從之

43 능 원 묘 기본 사료 43 일찍이 정승을 지낸 사람과 의정부, 육조, 춘추관의 2품 이상에게 명하여 빈청(賓廳) 에 모여서 장순빈(章順嬪)의 시호(諡號), 능호(陵號)와 의경세자(懿敬世子)의 시호(諡號), 묘호(廟號), 능호(陵號)와 수빈(粹嬪)의 휘호(徽號)를 의논하도록 하니, 고령군(高靈君) 신 숙주(申叔舟), 상당군(上黨君) 한명회(韓明澮), 능성군(陵城君) 구치관(具致寬), 영성군(寧 城君) 최항(崔恒), 영의정 홍윤성(洪允成), 상락군(上洛君) 김질(金礩), 좌의정 윤자운(尹 子雲), 우의정 김국광(金國光), 좌참찬 임원준(任元濬), 형조판서 함우치(咸禹治), 호조판 서 서거정(徐居正), 공조판서 양성지(梁誠之), 예조판서 김겸광(金謙光), 이조참판 정난종 (鄭蘭宗), 공조참판) 정승조(鄭崇祖), 예조참판 이승소(李承召), 병조참판 이영은(李永垠), 대사간 김수녕(金壽寧), 대사헌 이극돈(李克墩) 등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장순빈(章順嬪) 의 시호(諡號)는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順王后) 또는 제인숙덕장순왕후(齊仁淑德 章順王后)로 하고, 능호는 순릉(順陵), 또는 공릉(恭陵)으로 하고, 의경세자(懿敬世子)의 시호(諡號)는 온문의경왕(溫文懿敬王) 또는 인순의경왕(仁順懿敬王)으로 하고, 묘호(廟號) 는 의경묘(懿敬廟) 또는 의묘(懿廟)로 하고, 능호는 의경릉(懿敬陵), 또는 경릉(敬陵)으로 하고, 수빈(粹嬪)의 휘호(徽號)는 자수왕비(慈粹王妃) 또는 인수왕비(仁粹王妃)로 하도록 하소서. 하였다. 의논이 올라가니, 전교(傳敎)하기를, 장순빈의 시호는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 順王后)로 하고, 능호는 공릉(恭陵)으로 하고, 의경세자의 시호는 온문의경왕(溫文懿敬 王)으로 하고, 묘호는 의경묘(懿敬廟)로 하고, 능호는 경릉(敬陵)으로 하고, 수빈의 휘호 는 인수왕비(仁粹王妃)로 일컬어 올리도록 하라. 하였다. 또 대행대왕(大行大王)의 외 조고비(外祖考妣)의 분묘(墳墓)와 당대 외조고비(當代外祖考妣)의 분묘에 치제(致祭)하는 절목(節目)을 의논하기를, 대행대왕의 외조(外祖)인 정정공(貞靖公) 윤번(尹璠)은 마땅 히 전례(前例)에 의거하여 시행하도록 하고, 당대 외조(當代外祖)인 양절공(襄節公) 한확 (韓確)의 부처(夫妻)는 주상께서 이미 대행대왕의 후사(後嗣)가 되었으니 외조고비로 일 컫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선왕) 외조의 분묘의 예에 의거하여 현지의 관원이 교지(敎旨) 를 받들어 치제(致祭)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성종실록 권 2, 즉위년 1월 22일(신축) 11. 敬陵 <조선의 추존 국왕 덕종과 비 소혜황후의 능> 덕종(德宗)과 비 소혜왕후(昭惠王后)의 능으로 능호(陵號)는 1456년(세조 2)에 경릉으 로 정해졌다. 능제(陵制)는 동원이강형식(同原異岡形式)으로 왼쪽이 왕, 오른쪽이 왕후로

44 능 원 묘 기본 사료 44 되어있어 일반적인 왕우비좌(王右妃左)의 형식과 다르다 왕후는 생전에 덕종이 추존되어 왕비로 책봉되었으므로 능제도 왕릉의 형식을 갖추어 야 했으나 왕은 세자로 승하하였고, 또 부왕인 세조의 박장주의(薄葬主義 : 장례를 간소 히 하려는 정책)와 소혜왕후의 주장에 따라 세자묘제로 하였다. 이후 추봉되는 능의 전 례(前例)가 되었다 석물은 왕릉 왕후릉 모두 화강석으로 하였고, 왕후릉의 석난간주두(石欄干柱頭)는 창 릉식(昌陵式)을 따라, 건원릉(健元陵 : 太祖陵) 등 조선왕조의 전형적인 석난간과 모양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덕종(德宗) : 1438(세종 20) 1457(세조 3)) 조선 전기의 종실. 초명은 숭(崇), 이름은 장(暲)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 가 세조이며, 어머니는 참판 윤번(尹璠)의 딸 정희왕후(貞熹王后)이다. 성종의 아버지인 까닭에 추존되었다. 1445년(세종 27) 도원군(桃源君)에 봉해지고, 1455년(세조 1)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한확(韓確)의 딸 소혜왕후(昭惠王后) 한씨를 비로 맞아 월산대군 (月山大君)과 성종을 낳았다. 어려서부터 예절이 바르고 글 읽기를 즐겼으며 해서(楷書) 에도 능하였으나, 병약하였다고 한다. 1457년 병이 크게 들어 21명의 승려가 경회루(慶 會樓)에 공작재(孔雀齋)를 베풀고 병의 치유를 빌었으며, 의정부 당상관, 육조판서와 좌 찬성 신숙주(申叔舟), 도승지 한명회(韓明澮) 등도 함께 참여하여 속한 쾌유를 기원하였 다고 한다. 그러나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20세의 나이로 죽었다. 능은 경릉(敬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에 있다. 1471년(성종 2)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시호는 의경(懿敬)이다. 사료

45 능 원 묘 기본 사료 45 命曾經政丞 議政府 六曹 春秋館二品以上, 會賓廳, 議章順嬪諡號 陵 號 懿敬世子諡號 廟號 陵號 粹嬪徽號 高靈君申叔舟 上黨君韓明澮 綾 城君具致寬 寧城君崔恒 領議政洪允成 上洛君金礩 左議政尹子雲 右 議政金國光 左參贊任元濬 刑曹判書咸禹治 戶曹判書徐居正 工曹判書 梁誠之 禮曹判書金謙光 吏曹參判鄭蘭宗 工曹參判鄭崇祖 禮曹參判李 承召 兵曹參判李永垠 大司諫金壽寧 大司憲李克墩等議啓: 章順嬪諡號 曰, 徽仁昭德章順王后 齊仁淑德章順王后; 陵號曰順陵 恭陵 懿敬世子 諡號曰, 溫文懿敬王 仁順懿敬王; 廟號曰, 懿敬廟 懿廟; 陵號曰, 懿敬 陵 敬陵 粹嬪徽號曰, 慈粹王妃 仁粹王妃 議上, 傳曰: 章順嬪諡 號, 以徽仁昭德章順王后, 陵號恭陵; 懿敬世子諡號, 以溫文懿敬王, 廟號懿 敬廟, 陵號敬陵; 粹嬪徽號, 以仁粹王妃, 稱上 又議大行大王外祖考妣墳 及當代外祖考妣墳致祭節目曰: 大行大王外祖貞靖公尹璠, 當依前例施行; 當代外祖襄節公韓確夫妻, 則上旣爲大行大王之後, 稱外祖考妣爲難, 依先王 外祖墳例, 所在官, 奉敎致祭何如? 從之 일찍이 정승을 지낸 사람과 의정부, 육조, 춘추관의 2품 이상에게 명하여 빈청(賓廳) 에 모여서 장순빈(章順嬪)의 시호(諡號) 능호(陵號)와 의경 세자(懿敬世子)의 시호(諡號) 묘호(廟號), 능호(陵號)와 수빈(粹嬪)의 휘호(徽號)를 의논하도록 하니, 고령군(高靈君) 신 숙주(申叔舟), 상당군(上黨君) 한명회(韓明澮), 능성군(陵城君) 구치관(具致寬), 영성군(寧 城君) 최항(崔恒), 영의정 홍윤성(洪允成), 상락군(上洛君) 김질(金礩), 좌의정 윤자운(尹 子雲), 우의정 김국광(金國光), 좌참찬 임원준(任元濬), 형조판서 함우치(咸禹治), 호조판 서 서거정(徐居正), 공조판서 양성지(梁誠之), 예조판서 김겸광(金謙光), 이조참판 정난종 (鄭蘭宗), 공조참판 정승조(鄭崇祖), 예조참판 이승소(李承召), 병조참판 이영은(李永垠), 대사간 김수녕(金壽寧), 대사헌 이극돈(李克墩) 등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장순빈(章順 嬪)의 시호(諡號)는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順王后), 또는 제인숙덕장순왕후(齊仁淑 德章順王后)로 하고, 능호는 순릉(順陵), 또는 공릉(恭陵)으로 하고, 의경세자(懿敬世子) 의 시호(諡號)는 온문의경왕(溫文懿敬王), 또는 인순의경왕(仁順懿敬王)으로 하고, 묘호 (廟號)는 의경묘(懿敬廟), 또는 의묘(懿廟)로 하고, 능호는 의경릉(懿敬陵), 또는 경릉(敬 陵)으로 하고, 수빈(粹嬪)의 휘호(徽號)는 자수왕비(慈粹王妃), 또는 인수왕비(仁粹王妃) 로 하도록 하소서. 하였다. 의논이 올라가니, 전교(傳敎)하기를, 장순빈의 시호는 휘인소덕장순왕후(徽仁昭德章 順王后)로 하고, 능호는 공릉(恭陵)으로 하고, 의경세자의 시호는 온문의경왕(溫文懿敬 王)으로 하고, 묘호는 의경묘(懿敬廟)로 하고, 능호는 경릉(敬陵)으로 하고, 수빈의 휘호

46 능 원 묘 기본 사료 46 는 인수왕비(仁粹王妃)로 일컬어 올리도록 하라. 하였다. 또 대행대왕(大行大王)의 외조 고비(外祖考妣)의 분묘(墳墓)와 당대 외조고비(當代外祖考妣)의 분묘에 치제(致祭)하는 절목(節目)을 의논하기를, 대행대왕(大行大王)의 외조(外祖)인 정정공(貞靖公) 윤번(尹 璠)은 마땅히 전례(前例)에 의거하여 시행하도록 하고, 당대 외조(當代外祖)인 양절공(襄 節公) 한확(韓確)의 부처(夫妻)는 주상(主上)께서 이미 대행대왕의 후사(後嗣)가 되었으 니 외조고비(外祖考妣)로 일컫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선왕(先王) 외조의 분묘의 예에 의 거하여 현지(現地)의 관원이 교지(敎旨)를 받들어 치제(致祭)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 니까?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성종실록 권 2, 즉위년 정월 22일(신축) 傳于承政院曰: 懿敬王, 今已封崇, 議上陵號.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의경왕(懿敬王)을 이제 이미 봉숭(封崇)하였으니, 능호 (陵號)를 의논하여 올려라. 하였다. 성종실록 권 13, 2년 12월 14일(신사) 議政府 六曹參判以上會議懷簡大王廟號, 以章 孝 安擬啓, 傳曰: 更擬他號 以德 順 獻擬啓, 遂以德爲定, 仍傳曰: 議 祔 廟事 金國光以爲: 鄭昌孫 韓明澮 金礩 尹子雲以爲: 宗廟 恭靖大王當權遷西夾室 麟趾等又云: 置別廟而享祀, 依文昭殿 其議不一 更議以啓, 昌孫等啓曰: 又 鄭麟趾 曺錫文 尹士昕 昌孫等又云: 當加構 文昭殿亦當加構 若加構宗廟, 則遷祖宗神主於假室, 於心未安, 恭靖大 王親未盡而遽遷夾室, 亦違於禮 然以二事較其輕重, 寧加構宗廟 況不遷之主, 今已四位, 則萬世之後, 必加構矣 且文昭殿, 則五室外勿造有世宗遺敎, 其旨只以太祖爲不遷, 竝高 曾 祖 禰爲五而已 今不遷之主已四室, 必不得已加構, 故臣等以爲, 加構爲便 等啓曰: 恭靖大王雖出夾室, 其爲享祀一也 今議不一如此, 在上斟酌處之耳 麟趾 從麟趾 等議 의정부, 육조의 참판 이상이 모이어 회간대왕(懷簡大王)의 묘호(廟號)를 의논하고, 장 (章) 효(孝) 안(安)으로 의계(擬啓)하니, 전교하기를, 다시 다른 호(號)를 헤아려 아뢰 라. 하였다. 또 덕(德) 순(順) 헌(獻)으로 의계(擬啓)하니, 드디어 덕(德)으로써 정하고, 이어서 전교하기를, 부묘(祔廟)하는 일을 의논하라. 하였다. 정인지(鄭麟趾), 조석문(曹錫文), 윤사흔(尹士昕), 김국광(金國光)은 말하기를 공정 대왕(恭靖大王)은 마땅히 권도로 서협실(西夾室)에 옮겨야 합니다. 하고, 정창손(鄭昌 孫), 한명회(韓明澮), 김질(金礩), 윤자운(尹子雲)은 말하기를, 영건하여야 합니다. 하였다. 정인지 등이 또 이르기를, 마땅히 종묘(宗廟)를 더 따로 묘우(廟宇)를 두어서 향

47 능 원 묘 기본 사료 사(享祀)하되 문소전(文昭殿)에 의하소서. 하고, 정창손 등이 또 이르기를, 47 문소전(文 昭殿)도 또한 마땅히 더 넓혀야 합니다. 하여, 그 의논이 한결같지 아니하였다. 다시 의논하여 아뢰게 하니 정창손 등이 아뢰기를, 만약 종묘(宗廟)를 더 넓힌다면 조종(祖宗)의 신주(神主)를 가실(假室)로 옮겨야 하니,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고, 공정대왕 (恭靖大王)은 친진(親盡)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협실(夾室)로 옮기는 것도 또한 예(禮)에 위배됩니다. 그러나 두 일을 가지고 그 경중(輕重)을 비교하면, 차라리 종묘를 넓힘이 낫 겠습니다. 더구나 옮기지 못하는 신주[不遷之主]가 이제 이미 4위(四位)인 즉, 만세(萬 世)의 뒤에는 반드시 더 넓혀야 할 것입니다. 또 문소전(文昭殿)은 5실(室) 이외에는 짓 지 말라는 세종(世宗)의 유교(遺敎)가 있었으니, 그 뜻은 단지 태조(太祖)만 옮기지 못하 는 신주가 되고, 고(高), 증(曾), 조(祖), 예(禰)를 아울러 다섯이 될 따름입니다. 이제 옮기지 못하는 신주가 이미 4실(室)이니, 반드시 더 넓혀야 하는 까닭으로 신 등 은 더 넓히는 것이 편한 줄로 여겨집니다. 하고, 정인지 등이 아뢰기를, 공정대왕(恭 靖大王)은 비록 협실(夾室)로 내더라도 그 향사(享祀)하는 것은 한결같습니다. 이제 의논 의 한결같지 않음이 이와 같으니, 성상께서 짐작하여 처리하실 것입니다. 하니, 정인지 등의 의논을 따랐다. 성종실록 권 60, 6년 10월 6일(임오) 上懷簡王廟號曰德宗 회간왕(懷簡王)의 묘호(廟號)를 덕종(德宗)이라고 올렸다. 성종실록 권 60, 6년 10월 9일(을유) 12. 宣陵 조선의 제9대 국왕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능 1495년(연산군 1)에 현재의 위치에 능 자리를 정하였고 1530년(중종 25) 왕비가 죽 자 왕비릉도 같은 곳에 동원이강식(同原異岡式)으로 배치하였다. 세조의 유교(遺敎)에 따 라 석실을 쓰지 않았을 뿐 제반 제도는 국조오례의 國朝五禮儀 에 준하였다. 장명등 (長明燈) 양식은 헌릉(獻陵 : 태종릉)을 본뜬 것 같으며, 석인(石人)은 몸에 비하여 얼굴 이 커져서 전체적으로 입체감이 상실된 보다 퇴화된 양식을 나타낸다. 성종(成宗) : 1457년(세조 3) 1494(성종 25), 재위 1469~1494

48 능 원 묘 기본 사료 48 조선 제9대 왕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혈(娎)이다 세조의 손자로 덕종(德宗 : 세조의 長子로 追尊)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영의정 한확(韓確)의 딸 소혜왕후(昭惠 王后)이고, 비(妃)는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의 딸 공혜왕후(恭惠王后)이다. 계비(繼妃)는 우의정 윤호(尹壕)의 딸 정현왕후(貞顯王后)이다. 1461년(세조 7) 자산군(者山君)에 봉해졌다가 1468년 잘산군(乽山君)으로 개봉(改封) 되었다.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못 되어 덕종이 죽자 세조가 궁중에서 키웠다. 1469년에 예종이 죽고 그 아들이 아직 어리자, 정희대비(貞熹大妃 : 世祖妃)가 한명회, 신숙주 등 대신들과 의논해 형 월산군(月山君)의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로 그를 왕위에 올렸다. 13 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7년간 정희대비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했고, 1476년(성종 7)에 친정을 하였다. 1476년 공혜왕후가 아들이 없이 죽자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 윤기견(尹起腔)의 딸 숙의 윤씨(淑儀尹氏)를 왕비로 삼았다. 그러나 계비가 된 윤씨는 원자(뒤의 燕山君)를 낳 고 왕의 총애가 두터워지자 여러 다른 빈을 투기할 뿐 아니라 왕에게까지 불손하였다. 1479년 윤씨를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고 1482년에는 사사(賜死)했는데, 뒤에 갑자사 화의 원인이 되었다. 세 왕비와 여덟 후궁에게서 아들 19명과 딸 11명을 낳았다. 제10 대 왕 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아들이며 제11대 중종이 된 진성대군 역(晉城大君悶)은 정 현왕후 윤씨의 아들이다. 시호는 강정인문헌무흠성공효대왕(康靖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이고, 묘효는 성종(成宗) 이다. 능호는 선릉(宣陵)으로 광주(廣州)에 있었는데, 현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과 함께 있다. 정현왕후(貞顯王后) : 1462(세조 8) 1530(중종 25)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계비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우의정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 윤호(尹壕)의 딸이다. 신창(新昌) 공아(公衙)에서 출생하여 1473년(성종 4) 대궐에 들어 가 숙의(淑儀)에 봉하여졌고, 1479년 6월 연산군의 생모인 왕비 윤씨가 폐위되자 이듬 해 11월에 왕비로 봉하여졌다. 1497년(연산군 3)에 자순(慈順), 1504년에 화혜(和惠)라 존호되었다. 1530년(중종 25) 8월 경복궁에서 죽었으며, 1남 1녀를 두었다. 시호는 자순화혜소의흠숙정현왕후(慈順和惠昭懿欽淑貞顯王后)이고, 능호는 선릉(宣陵) 으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다. 사료

49 능 원 묘 기본 사료 三月己酉上尊謚曰: 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 廟號曰: 49 成宗 3월 26일[己酉]에 존시(尊諡)를 인문헌무흠성공효대왕(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으로 올 리고, 묘호(廟號)를 성종(成宗)이라고 하였다. 성종실록 권 297, 25년 12월 24일(기묘) 四月己未葬于宣陵, 魂殿號曰: 永思 4월 6일[己未]에 선릉(宣陵)에 장사하고 혼전(魂殿)의 이름을 영사(永思)라고 하였다. 성종실록 권 297, 25년 12월 24일 (기묘) 議政府 六曹 弘文館 藝文館 春秋館二品以上, 會賓廳, 議 大行王謚及廟號 陵 號 殿號, 謚曰: 仁文憲武欽聖恭孝 廟號曰: 成 陵號曰: 宣 殿號曰: 永思, 從尹弼 商 盧思愼 愼承善 韓致亨 魚世謙 李克墩 鄭文炯 柳輊 韓間 權侹 權健 安琛 議也 成俊 成健 洪貴達 李則 尹孝孫 柳洵 成俔議曰: 廟號一字, 極其德, 而稱 之 古今帝王徽號, 莫如仁字 大行王盛德至化, 前古罕比 以仁稱上, 實是衆議 今以 中朝有 仁宗皇帝, 諱避之, 臣等以謂, 不可 廟號, 中朝所不知, 而我國所私稱也 若嫌中 朝則廟號不亦宜稱也 旣不嫌中朝, 而稱上廟號則中朝廟號, 斷不可避 我太祖 太宗之號, 旣不避中朝, 何至於此, 而有疑乎? 非仁字, 不能符 大行之德, 請勿避稱上, 何如? 傳曰: 我國, 非盡諱中朝之事 稱上仁宗之議, 予以爲可, 其問于政丞 且書仁, 成二字, 釋義 以啓 弼商等啓: 我國, 臣事中朝 犯其廟號, 臣等以爲未安 雖曰: 中朝不知 脫有知之, 恐不可也 成宗, 亦足以包括矣 且於廟號, 不得上仁字, 故於徽號, 巳稱上 矣 釋成宗字義以啓, 從之 弘文館直提學表沿沫等上箚: 伏聞, 今議廟號, 或以仁 或以成, 竟以成稱上 謹按, 謚法曰: 不足以盡 大行王之盛德 傳 曰: 爲人君, 止於仁 安民立政曰, 成 此, 自古帝 王 徽號, 莫如仁 字 臣等雖不得與議謚之列, 反覆熟計, 以仁稱上, 不謀而同, 是實公論, 甚協輿情 今避 中朝廟號, 不加美號, 臣子之心, 甚未安 一加廟號, 百世不改, 伏惟上裁 의정부, 육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5품 이상이 빈청(賓廳)에 모여서 대행왕의 시호 및 묘호(廟號) 능호(陵號) 전호(殿號)를 의논하였다. 시호는 인문헌무흠성공효(仁文憲武 欽聖恭孝)라 하고, 묘호는 성(成)이라 하고, 능호는 선(宣)이라 하고, 전호는 영사(永思) 라 하였는데, 윤필상(尹弼商), 노사신(盧思愼), 신승선(愼承善), 한치형(韓致亨), 어세 겸(魚世謙), 이극돈(李克墩}), 정문형(鄭文炯), 유지(柳輊), 한간(韓間), 권정(權侹), 권건(權健), 안침(安琛)의 의논을 좇은 것이다. 성준(成俊), 성건(成健), 홍귀달(洪貴 達), 이칙(李則), 윤효손(尹孝孫), 유순(柳洵), 성현(成俔)이 의논드리기를, 묘호(廟號) 한 글자는 그 덕을 한껏 청하는 것이니, 고금 제왕의 휘호(徽號)가 인(仁) 자 만한 것이

50 능 원 묘 기본 사료 50 없습니다. 대행왕의 거룩한 덕과 지극한 교화는 모든 사람의 공론인데, 지금 중조(中朝) 에 인종황제(仁宗皇帝)가 있다 하여 피하니, 신 등은 그것을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묘 호는 중조에서 모르는 바요, 우리나라에서 사사로 칭하는 것입니다. 만약 중조에 대한 혐의로 말한다면, 도대체 묘호를 칭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중조에 대한 혐의에 불구 하고 묘호를 올릴 바에는, 중조의 묘호와 저촉된다 하여 피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 태조 태종의 칭호가 이미 중조에 있는 것을 피하지 않았으니, 어찌 오늘날 여기에 대 하여 의심이 있겠습니까. 인(仁) 자가 아니면 대행왕의 덕에 맞을 수 없으니, 피하지 말 고 칭하여 올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우리나라에서 중조의 일을 다 피하는 것은 아니니, 인종(仁宗)을 칭하여 올리자는 의논을 나는 옳다고 생각한다. 정 승에게 묻고, 또 인(仁) 성(成) 두 글자의 해석을 써서 아뢰라. 필상 등이 아뢰기를, 하였다. 우리나라가 중조를 신하로서 섬기는데, 그 묘호를 범하는 것은 신 등은 미안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중조에서 알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 혹 알게 될 수도 있으니, 안 될 것 같습니다. 성종(成宗)이라 해도 또한 족히 인(仁) 자의 뜻을 포함 할 수 있습니다. 또 묘호에 인(仁) 자를 올리지 못하므로 휘호(徽號)에 이미 칭하여 올렸 습니다. 하고, 성종(成宗)의 글자 뜻을 해석하여 올리니, 그대로 따랐다. 홍문관 직제학 표연말(表沿沫) 등이 상차(上箚)하기를, 엎드려 듣자오니, 지금 묘호를 의논하면서 혹은 인(仁)으로 하자 하고, 혹은 성(成)으로 하자고 하다가 마침내 성(成)으 로 칭하여 올리기로 하였다 합니다. 삼가 상고하건대, 시법(諡法)에 백성을 편안케 하 고 정사를 세운 것을 성(成)이라 한다.[安民立政曰成] 하셨으니, 이것으로는 대행왕의 거룩한 덕을 다 표현하지 못합니다. 전(傳)에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그친다.[爲人君 止於仁] 하였으므로 자고로 제왕의 아름다운 칭호로 인(仁) 자 만한 것이 없습니다. 신 등이 비록 시호를 의논하는 반열에 참여하지는 못하였으나, 거듭 깊이 생각건대, 인(仁)으로 칭하여 올리자는 것이 의논하지 않고도 생각이 같으니, 이것이 실로 공론이 며 여러 사람의 마음에 아주 맞는 것입니다. 지금 중조의 묘호(廟號)를 피하여 아름다운 칭호를 올리지 않으니, 신자(臣子)의 마음에 심히 미안합니다. 묘호를 한 번 정하면 백세 에 고치지 못하는 것이니 위에서 재량하소서. 하였다. 연산군일기 권 2, 1년 1월 14일(무술) 傳于弘文館曰: 予以爾等之言, 告于大妃, 大妃敎曰: 稱某大王, 足矣, 不宜稱宗 嘗欲自號, 未就而薨 大行王嘗曰: 予於國家無功, 且大行事大之誠, 至矣 若以僭擬 之號稱上, 則大行在天之靈, 豈安於心哉! 攷其成字, 亦非不好, 可從前議 等更啓: 宗 直提學表沿沫 若以事大論之, 則我太祖及事皇朝太祖, 太宗亦及皇朝太宗, 而曁後猶稱太祖 太 權柱曰: 我世宗事大之誠, 非不至也, 而稱上太宗 以皇帝之廟號, 如不稱廟號則

51 능 원 묘 기본 사료 51 已, 若稱之則徽號有限, 不得不同 況大行王親事成化皇帝, 不事洪熙皇帝, 而洪熙在位纔一 年, 與大行相去久遠, 其可獨避之乎? 大行平日之言, 是, 盛德之尤美者 臣等久侍經幄, 深 知大行之盛德, 稱上仁字, 是出公議 今議謚者, 非不欲以仁字稱上也, 特拘於犯中朝廟號, 而避之耳 臣等顧念大行之德, 非仁字不足以盡之 沿沫等又啓: 王在平時嘗曰: 予無功德, 百歲之後, 只稱某王足矣, 不宜稱宗 臣等伏聞上敎, 大行 以大行王之盛德, 謙讓不 居, 辭愈謙, 而德愈光, 以仁稱上, 允孚於實 帝王廟號, 古無仁字, 至宋仁宗, 群臣極稱盛 美, 始上仁字 史臣贊曰: 爲人君, 止於仁, 帝誠無憾焉 大行王盛德 神化, 不下於 宋仁宗, 而臣子上號, 獨不如宋朝人臣乎? 若嫌中朝廟號, 一切避之, 則稱宗, 亦不可也 我 太祖, (宗) 與 皇朝太祖同時 我祖宗事大之誠, 非不至也, 而猶不避之 名實相孚, 不 得不爾, 況皇朝仁宗, 卽洪熙皇帝也 與大行王, 時之先後, 大相夐遠, 斷不可以此避也 若承大行王平昔之意, 不稱宗則巳矣, 今旣稱(宇) 宗, 非仁字不可 議謚諸宰, 更議之 權健 安琛議: 傳曰: 其召昨日 尹弼商 盧思愼 愼承善 韓致亨 魚世謙 李克墩 韓間 權侹 臣等以爲, 謚法, 自周而始 歷漢 唐, 未有以仁爲號, 至宋始稱仁宗 周及漢 唐之臣, 非不知仁字之爲美, 其不稱仁, 意有所在 歷代聖王, 莫盛於周文 武 文 武之後, 成王爲盛, 而謚之以成, 其爲美德明矣 今按謚法, 惇厖淳固曰成, 此, 仁之體 也; 安民立政曰成, 此, 仁之效也 貴賢親 親 曰仁, 此則指仁之一事而言, 豈得與成字比 乎? 且以字義論之, 仁, 四德之一, 成則集衆善而言, 孔子之集大成, 是也 議者以爲, 非仁 字, 不足盡大行之德 臣等以爲, 凡稱號, 先書廟號, 次書謚號八字 今以仁字, 加諸八字 之上, 豈不足以形容盛德乎? 我朝, 至誠事大, 無有僭擬 至於廟號, 獨犯 皇帝之謚可乎? 議者又以爲, 我朝廟號, 中朝所不知, 勿避可也 臣等以爲, 中朝賜謚, 不過二字, 不足以盡 盛德 故私上謚號 廟號耳 然不可以中朝所不知, 而敢爾犯之也 故自祖宗朝, 皆諱避, 未嘗犯之 今若稱仁, 直犯仁宗皇帝之謚, 不避僭擬之失, 則臣子奉上之誠, 安在, 大行在天 之靈, 以爲何如? 議者又以爲, 太祖 太宗之號, 亦旣不避 臣等以爲, 開基之主, 謂之太祖; 繼太祖者, 謂之太宗, 歷代通稱, 非私號也 議者又以爲, 仁宗皇帝在位纔一年, 與大行王相 去久遠, 其可獨避乎? 臣等以謂, 自大明太祖以後, 於我國, 皆有君臣之分, 豈可以在位久 近 時之先後, 以爲輕重, 而或避 或否乎? 未知此等議論, 出於何禮? 大行盛德, 與周成同 稱, 心猶以爲不足, 況以宋仁比擬乎? 臣等雖無狀, 當以周家群臣爲法, 不必效宋朝之臣 成俊 成健 洪貴達 尹孝孫 成俔等議: 生物之心, 而仁, 君之大德 議者云: 臣等意以爲, 成之與仁, 輕重相懸 仁者, 天地 成乃集大成之成, 亦是美稱 臣等以爲不然 加 大於成, 故成字爲美 若只著成字, 則何曾比擬於仁? 今以嫌於中朝, 而避之, 則我朝稱宗, 本不當爲也 太祖 太宗, 旣不避中朝, 何獨至於仁, 而疑之? 今觀弘文館所啓, 正如臣等之 議 在朝大小群僚, 孰無是心? 如以臣等之言爲不可, 博採群議, 以副輿望 議 從弼商等

52 능 원 묘 기본 사료 52 홍문관에 전교하기를, 내가 그대들의 말대로 대비께 고하였더니, 대비의 말씀이 대 행왕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국가에 공이 없었으니, 모대왕(某大王)이라고 칭 하는 것이 족하고 종(宗)이라 칭할 것 없다. 하시어, 일찍이 스스로 칭호를 지으려 하시 다가 이루지 못하고 승하하셨다. 하시고, 또 대행대왕께서 사대(事大)하는 정성이 지극 하셨는데, 만약 참람되게 중조와 같은 칭호를 올린다면, 하늘에 계신 대행왕의 영(靈)이 어찌 마음이 편하시겠는가. 성(成) 자도 상고해 보니, 좋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앞서 의논 대로 따르는 것이 좋겠다. 하매, 직제학 표연말 등이 다시 아뢰기를, 만약 사대(事大) 로 논한다면 우리 태조께서 황조(皇朝)의 태조를 섬기셨고 태종께서도 황조의 태종을 섬 기셨는데도 승하하신 뒤에 오히려 태조 태종으로 칭하였습니다. 권주(權柱)는 아뢰기를, 하고, 우리 세종이 사대(事大)하는 정성이 지극하지 않는 것이 아 니었으나 <그 선왕을> 태종으로 칭하여 올렸습니다. 황제(皇帝) 묘호 때문에 <우리 나 라에서> 묘호를 칭하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만약 묘호를 칭한다면 아름다운 칭호가 한정이 있으니 <중조의 칭호와> 같지 않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대행대왕께서는 성화 황제(成化皇帝)를 친히 섬기고, 홍희황제(洪熙皇帝)는 섬기지 않았으며, 홍희는 위(位)에 있은 지 겨우 1년이었고 대행대왕과 연대가 서로 먼데 <태조 태종께서 피하지 않던 것을> 유독 여기서만 피해야 하겠습니까 <대비께서 말씀하신> 대행왕의 평일의 말씀은 이 거룩한 덕 중에 더욱 아름다운 것입니다. 신 등이 경연(經筵)에 오래 모시어 대행왕 의 거룩한 덕을 깊이 아옵는데, 인 자(仁字)로 칭하여 올리자는 것이 공론에서 나온 것 입니다. 지금 시호를 의논하는 사람들이 인(仁) 자로 칭하여 올리고자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특히 중조의 묘호를 범한다는 데에 구애되어 피하는 것입니다. 신 등이 생각하 옵건대, 대행왕의 덕은 인(仁) 자가 아니면 다 표현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연말 등이 다시 아뢰기를, 신 등이 엎드려 하교를 듣자오니, 대행왕께서 평일에 일 찍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공덕이 없으니 백세 후에도 다만 모왕(某王)으로 칭하면 족하 다고 하셨다. 하옵는데, 대행왕의 거룩하신 덕으로 겸손하게 사양하여 자처하지 않으 시어, 말이 더욱 겸손할수록 덕이 더욱 진실로 빛나는 것이니, 인(仁)으로 칭하여 올리는 것이 진실로 실상에 맞습니다. 제왕의 묘호에 옛적에는 인(仁) 자가 없었다가, 송(宋)나 라 인종(仁宗)에 이르러 여러 신하들이 그의 아름다운 덕을 극히 칭송하여 비로서 인 (仁) 자로 칭하여 올렸는데, 사신(史臣)이 찬(贊)하기를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그친 다 하였으니, 제(帝)는 참으로 여기에 부족할 것이 없도다. 하였습니다. 대행왕의 거룩 한 덕화가 송(宋) 인종(仁宗)보다 못하지 않은데, 신자(臣子)가 시호를 올리는 것은 유독 송나라 신하만 못하다는 말입니까. 만약 중조의 묘호를 범한다고 일체 피한다면, 종(宗) 을 칭하는 것도 또한 불가합니다. 우리 태조가 황조(皇朝)의 태조와 동시(同時)였으며 우 리 조종의 사대하는 정성이 지극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오히려 피하지 않은 것은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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