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대화 그리고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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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김의수 교수의 성평등 에세이 사랑은 대화 그리고 배려 I. 호텔식 아침식탁 우리 집 아침 식사는 빵이다. 식탁을 준비하는 일은 온 가족이 함께 한다. 온가족이라야 우 리 부부와 장모님 세 사람이다. 아내는 기본 메뉴를 결정한 사람이다. 식빵과 다른 빵들을 종종 바꿔가며 준비한다. 두어 가지 치즈를 준비해 놓고, 딸기 쨈은 봄에 집에서 직접 만들 고, 피넛 버터도 매일 식탁에 올린다. 주말에는 신선한 야채와 파프리카, 올리브, 견과류 등에 맛있는 드레싱 소스를 곁들인 푸짐한 샐러드를 준비한다. 장모님은 과일을 갈아 쥬스 를 만들고, 야채를 씻으며 과일을 깎아 예쁘게 썰어 놓으신다. 나는 식탁에 접시받침과 접 시, 포크와 나이프를 꺼내놓고 치즈와 쨈 등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그리고 커피를 내리고 (주말에는 아내가 드립커피를 내린다) 커피 잔을 따뜻하게 데워서 커피를 따른다. 이렇게 준비된 우리의 식탁은 화려한 호텔식 아침식탁이 된다. 내가 강의하러 전주에 가 있는 날이 나 아내가 바쁜 주중에는 약식으로 차리지만 주말에는 언제나 풍성한 서양식 아침 식탁이 된다. 식사가 끝나면 내가 설거지를 한다. 나는 시간여유가 많은 원로교수이지만 아내는 아직 한창 바쁘게 활동한다. 그래서 아침에도 바쁘게 나가는 날이 많다. 우리 둘이 살 때는 주로 내가 아침 식탁을 준비했다. 아내는 야 행성이어서 밤에 일을 많이 하고, 아침에는 바빠서 빵도 못 먹고 나가는 날이 자주 있었다. 나는 몇 가지 과일을 갈아 만든 진한 생과일 쥬스와 커피를 화장대에 갖다 놓는다. 아내는 화장하는 시간에 잠시 쥬스 한잔,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출근했다. 나는 설거지 후에는 청소 며 세탁을 하고, 세탁물을 잘 개켜서 거실 탁자 위에 가지런히 쌓아 놓는다. 아내가 퇴근하 면 왜 서랍에 넣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저건 오늘 나의 가사노동 노획물인데 자랑을 하고 넣어야지. 아내는 피식 웃는다. 장모님이 미국에서 5년동안 생활하고 돌아오신 후 우리와 함께 생활하신다. 장모님이 오신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서양식 아침식사를 하고 있지만, 주요 가사노동은 장모님이 도맡으신 다. 그러니까 나는 하루 일과 중 절반쯤을 잃은 셈이다. 그 대신 나는 여유롭게 운동을 즐 기고, 책 읽는 시간도 더 많아졌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설거지와 청소 그리고 멀리 수퍼 에 가서 시장 봐 오는 일이다. II. 가사노동 공유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토론을 하다보면 그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 15년 전보다 지금 남학생들은 가사노동 분담에 더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 이 총각 때 하는 말과 결혼 후 하는 행동 사이에는 간극이 큰 편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부 엌일에 대해 거리감을 표현하는 학생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 1 -

나는 쓰레기 버리는 일도 가끔 한다. 장모님이 더 많이 하시지만, 내가 나가는 길에 들고 나가는 경우도 자주 있다. 종량제 봉투를 들고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도 가지 고 간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하나도 힘든 일이 아니다. 자취 생활을 하는 남학생들은 당연히 음식물 쓰레기를 스스로 들고 나가서 버린다. 그런데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들은 잘 하지 않는다. 집에서 설거지를 돕는 남편들도 밖에 음식물 쓰레기 들고 나가는 일은 꺼려하 게 된다. 그만큼 가사노동 공유가 덜 됐다는 징표일 거다. 외국생활을 하고 돌아온 남편들 도 외국생활 중에는 자연스러웠던 가사노동이 한국생활을 하면서 차차 어색해지거나 소홀해 진다고 고백한다. 나는 시골 읍에서 자라 서울에서 공부하고 독일에 나가 여러 해 생활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지방도시인 전주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우리의 생활방식은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그리 고 문화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개인의 성장 과정마다 변하고, 개인차도 크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차이와 변화 중에도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과 가치가 있게 마련이다. 이 치에 어긋나는 일들은 합리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일방적 수직적 관계는 수평적으로 변한 다. 경직되고 폐쇄적인 태도들은 개방적으로 되고, 지나친 도시화 문명화는 부작용을 수반 하여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게 한다. III. 된장국 끓이는 남자 아침식사를 밥으로 하는가, 빵으로 하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사람마다 할 말이 많을 거다. 어느 것이 몸에 좋을지, 어느 쪽이 준비하기가 쉬운지, 그리고 가족들이 어떤 메뉴를 선호 하는지, 비용은 어느 쪽이 얼마나 더 드는지, 고려할 사항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정하기도 쉽지 않다. 내가 자주 듣는 얘기는 아내가 빵으로 식사를 하고 싶어 해도 남편이 싫어하기 때문에 그냥 기존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빵이 맛이 있어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도 직장 여성들의 경우 아침 식사 준비 시간이 너무 부담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식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어머니 손맛을 평생 잊지 못한다. 그렇지만 집 을 떠나 생활하면서 누구나 다른 음식에 적응하고, 새로운 음식도 접하면서 변해간다. 유학을 하거나 이민을 가게 되면 어차피 그 나라 음식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저런 경우를 생각해보면 집안에서 식생활을 변경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과 상호 배려이다. 남편의 기호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건강과 시간적 경제적 조건 등을 고려하면서 의견을 조정하면 여러 가지 좋은 방안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종종 아침에 국물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면 콩나물국이나 된장국을 스스로 끓여 먹는다. 아내가 끓여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지 않는다. 국은 아내보다 내가 더 잘 만드는 음식이기도 하다. - 2 -

IV. 사랑의 위력 모든 것은 변한다. 나의 식생활도 언제나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와 아이 들이 커서 타지로 떠났을 때는 다르다. 젊은 여성이 아이들 건강이나 식습관을 위해서 자신 이 원하는 서양식 식탁을 유보하더라도 머지않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구를 지나치게 서둘러 억제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파트너와 대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기 마 련이다. 사랑은 상호적이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과거에 우리사회는 남자 중심이어서 아내들은 대부분 남편의 기호에 맞춰주기만 했다. 아직도 가부장제 가족주 의가 훨씬 우세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좋은 일이 아니다. 평등하고 상호적인 관계로 서둘러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점차 여성 상위 시대로 변화해 갈 것이고, 혼자 자란 여성이 공주처럼 자기 좋은 것만 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그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언제나 원칙은 상호주의다. 지난 학기 한 남학생은 자신이 채식주의자가 됐다고 고백했다. 왜 그렇게 됐냐고 물으니, 여자 친구가 채식주의란다. 그런데 왜 채식주의냐고 물으니, 햄버거 커넥션이라는 동영상을 보고 결심하게 됐다는 거다. 맥도널드사로 대변되는 햄버거는 고기와 치즈 그리고 빵과 약 간의 야채로 만들어진 인스턴트식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다. 그런데 고기와 치즈를 생산하기 위해서 망가지는 열대림과 사료로 들어가는 곡식 및 채 소를 생각하니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세계 식량난 해결을 위해서도, 오존층 파괴 방지를 위해서도 채식주의는 꼭 필요한 일이다. 나도 그런 사실을 유학시절에 배워서 알았는데.. 나는 결단력 있는 제자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우리 함께 토론을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는 편인가? 나의 요구는 무엇이고, 파트너의 바람은 무엇인가? - 3 -

아동과 여성이 행복한 세상 I. 천사와 같은 아이들 살기 좋은 사회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행복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떤 사회일까?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어떤 말보다도 한숨이 먼저 나온다. 이름을 부르기조차 싫은 어린이 대상 흉악범들을 생각하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우리는 정말 부지런히 서둘러 이런 문제를 해결 해야 한다. 우리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행복한 사회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들이 행복 해야 부모들이 행복하고, 사회가 행복한 것이다. 어린 시절에 상처를 입고 압박을 받은 사람 은 성인이 되어 너그러운 마음과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 어렵다. 갓난아기가 얼마나 귀여운지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그저 아기를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한 미소가 감돈다. 미운 일곱 살이 지금은 훨씬 앞당겨졌다고 하지만 서너살 꼬마 들이 뛰노는 모습은 바로 천사들의 모습이다. 그건 사춘기 반항을 일삼는 10대 청소년들로 올라가도 별로 다르지 않다. 순수함이 있고, 자연스러움이 있는 아동 청소년들은 누구나 풋풋하고 귀엽다. 그들의 모습도 그렇고 그들의 마음도 그렇다. 나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매일 매일 아이들 때문에 너무도 힘들어하는 엄마들의 일상을 전혀 모른단 말인가? 3개월짜리 아기든 세 살짜리 아이든 엄마는 언제나 힘들고 지치 는데, 무슨 천사 타령인가? 물론 엄마들이 힘든 건 사실이다. 아무리 착한 아이라고 하더라도 하나의 아이를 키우는 수고는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러나 어느 때는 그렇지만 또 어느 때는 아이가 너무도 귀엽고 너무도 자랑스럽다. 천사와 같은 모습과 마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른 들과 비교하고, 세상에 물든 사람들과 비교하여 하는 말이다. II. 폭력은 행복의 요람 가정도 지옥으로 만든다 흉악범들의 주요 피해자들이 여성과 어린이들이라는 점은 생각할수록 가슴 아픈 일이다. 그 런 범인들은 가끔 나타나서 온 사회를 뒤흔들어 놓는다. 그래도 범인이 잡히고 나면 우리는 다시 잊어버리고 살아가게 된다. 만약 그런 자들을 잡아 가두지 못하고 그냥 함께 살아간다 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끔찍할까? 그런데 소수의 흉악범들만 잡아 가두면 문제는 해결될까? 어린이 학대와 어린이 성폭력의 대부분이 가족과 지인들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짚어 봐야 한다. 가장이 폭력을 휘두르는 가정의 일상생활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아내든 아이들이든 그들은 마치 흉악범과 함께 살아가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공포증, 우울증, 가족 불신 등 으로 지옥 같은 생활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가정폭력과 성폭력 방지 특별법이 제정된 후 폭력에 대한 예방과 상담 그리고 피해자 보호 등이 많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웃에 그런 피해자들이 너무 많아 답답한 마음이다. 멀쩡한 가정이 알고 보니 폭력 가장에게 시달리고 있고, 그 피해자인 아내는 자립 능력이 충분할 뿐만 아니라 가해자인 남편을 경제 적으로 돌보며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아이들 - 4 -

의 인생마저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모를까? 다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 은 왜일까? 가정폭력을 주제로 학생들과 함께 한 세미나에서 범죄사회학 교수는 전문가 발제를 통해 피 해아동의 가족유형에 대한 통계를 보여주었는데, 모자가정이나 재혼가정보다는 일반가정이 훨씬 더 많았고, 일반가정보다도 부자가정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학 대 가해자의 특성은 양육태도 및 방법 부족이 가장 크다는 점도 보건복지부 자료를 통해 보 여주었다. 우리는 이른 바 결손 가정 이 각종 범죄의 주범이라고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모자가정보다 일반가정에 가정폭력 피해자가 더 많다는 사실은 결국 아버지가 학대 의 가해자로서 가장 문제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따라서 인권에 대한 의식은 전 국민이 교육 과정과 생활 문화를 통해 새롭게 배우고 익혀야 한다. 특히 아버지가 되려면 먼저 인 권의식부터 갖춰야 한다. III. 종합 학문적 연구주제 흉악범 범죄사회학이나 범죄심리학이 화급히 달려들어 심층연구, 종합연구에 몰두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분석학, 여성학, 생물학, 유전자 공학 그리고 엉뚱하게도 정치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들이 다 달려들어 연구해야 할 주제가 우리사회 흉악범이다. 흉악범은 온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으며, 어린이 청소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다. 싸이코 패 스라는 용어도 서양 것이지만, 그런 끔찍한 범죄는 선진국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어서 우리 사회가 여러 가지로 더 발전하더라도 그런 현상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인간 세상 의 한계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2009년 새해 벽두부터 온 국민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희대의 흉악범 강호순의 범죄 건수들 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을 때 나에게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일어났다. 정말 소름 끼 치는 범죄자에 대한 공포와 분노가 하나고, 다른 하나는 모순되게도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이 었다. 그동안 여러 건의 부녀자 실종사건이 있었는데, 그 각각이 모두 다른 범죄자들에 의 해서 저질러진 것이라면 어떻게 하나, 수많은 살인범들이 우리의 주변에 여기 저기 설치고 있어서 언제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사회라면 우리 사회는 저주받은 사회가 아닌가? 그 런데 저 많은 일들을 저지른 저 놈을 잡았으니 이제 우리는 다리 뻗고 잘 수 있겠구나, 그 런 엉뚱한 생각이 스치는 거였다. 소름끼치게도 그 놈은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확실히 미친놈임을 드러내는 말 같은데, 어 딘지 서양식으로 미친 것 같다. 인세로 자식들 먹고 살게 하고 싶다니! 범죄소설 매니아들 은 그에게 책을 쓰게 하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 그의 모든 범죄가 낱낱이 다 밝혀질 거 라고 기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림도 없다. 그 놈은 아무리 인세를 많이 줘도 결코 자신을 끝까지 다 드러내지 않을 거다. 사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자신이 어떻게 병들어 있는지, 어디서 어떻게 꼬이고 맺히고 찌그러져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아마도 책을 쓰라면 끝없이 새로운 범죄를 만들어 내는 범죄기획서를 작성할 뿐일 거다. - 5 -

그러나 내가 가졌던 안도와 기대가 얼마나 어리숙한 것이었는지, 마지막 단계에 와서 확 드 러나 버렸다. 놀랍게도 그동안 쌓여 있는 미해결 여성 실종 사건이 2만 여건이나 된다는 것 이다. 강호순이 아무리 많은 사건을 저질렀어도, 또 다른 휴악범들이 아직도 여기 저기 남 아 있다는 통계 아닌가! 검찰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강호순은 폭력 가정에서 자랐고, 청년 실업자였으며, 개 사육과 깊은 산속 벌꿀 생산, 성매매, 준수한 외모와 고급 승용차 사용 등 몇 가지 요소들의 결합으로 그런 끔찍한 살인을 계속 저질렀다고 한다. 그건 바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단면이므로 결국 우리사회는 흉악범을 양산해 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 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잠시 잠잠한 듯하던 흉악 범죄, 묻지마 살인이 다시 횡행하고 있으 니 이런 사태들을 어찌해야 하는가? IV. 체벌과 폭력이 없는 학교는 가능한가 폭력이 문제되는 것은 학교도 마찬가지다. 매일 매일의 생활이기 때문에 교사든 학생이든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곳은 행복한 공동체가 아니라 지옥 같은 장소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체벌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고시절에 맞았던 일들은 모두 가볍게 망각하고 살아왔다. 더구나 남자들은 군 생활 동안에 차원이 다른 체벌을 경험했기 때문에 중고시절의 체벌은 굳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리고 요즘 청소년들을 보면 체벌 없 이 교육을 시키기가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조용히 생각해보고 이 주제 에 집중해 토론을 해 보면 체벌과 폭력은 평생에 남는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 은 교육이 아니고 인격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선배나 동급생에 의한 폭력도 친구 사이의 일 상적 다툼의 단계를 넘어서면 정신적 충격을 동반하게 된다. 교사들의 과도한 체벌이 공개될 때마다, 체벌을 금지할 것인가 사랑의 매는 허용할 것인가 에 대한 논란이 반복되어 왔다. 지난 몇 년 사이에는 진보교육감들이 추진한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관련하여 체벌 문제가 뜨거운 논란이 되었다. 우리는 유교적 가부장주의와 특히 군 사문화 속에 살아오면서 강압에 의한 교육과 통치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매를 들어 교육 을 시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이 아직도 많다. 교육학 이론뿐만 아니라 범 죄예방 이론에서도 물리력을 동원한 훈육 방식은 오히려 역효과라는 사실이 이미 상식이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는 아직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 이 많이 있다는 얘기다. 학생들의 세미나에 참석한 한 대안학교 졸업생의 증언에 의하면 학 교에서 체벌의 기준을 학생들이 스스로 정하도록 하였더니 나름대로 합리적인 기준을 정했 을 뿐만 아니라, 점차로 체벌이 필요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학생 폭력 조직의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학교에서의 폭력 문제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다. 더구나 요즘에는 폭력조직의 가해가 아니더라도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이 너무도 자주 자살 하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안타깝다. 과도한 학습 부담만으로도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 을 시도하는 학생이 너무 많은 터에 동료 학생들의 폭력 때문에 희생당하는 학생들이 많다 는 것은 제도권 학교에 대한 불신과 회의를 조장한다. 이 문제를 대하는 교육당국의 태도도 많은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사법부나 경찰 당국에서도 그렇듯이 교과부에서도 이런 사건이 - 6 -

터지면 언제나 강력한 처벌 대책만 발표한다. 가해 학생들의 행적을 학생기록부에 기록하여 대학입시에 반영한다는 방침을 세우는 바람에 보다 교육적 접근과 근본적인 교육 혁신을 요 구하는 진보교육감들과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 아동, 청소년, 여성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 두에게 깊은 성찰적 삶의 태도가 먼저 요청된다. 압축 성장의 길을 달려 온 우리 기성세대 가 흘린 땀이 얼마나 허망할 수 있는가를 돌아보고 이제는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과 인권 그리고 교육과 문화에 대한 희망을 보지 못한다면 젊은 세대들 은 미래를 이어갈 의지와 희망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유럽은 우리보다 먼저 저 출산의 문 제로 고민해왔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성평등과 복지의 수준을 자랑하는 유럽에서도 여성들 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려면 성평등과 복지의 수준을 더 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평 등과 복지는 고사하고 아직 기본적인 안전과 인권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정말 아이들 앞에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다. 파트너와 토론을 아동과 여성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는 시민모임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하지 않을까? 느림의 철학, 생명의 철학을 실천하는 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 7 -

개방된 성, 아름다운 문화 독일 유학 가서 받은 두 번째 문화충격은 성 개방이었다. 유럽에 성이 개방되어 있다는 얘 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으로 대하고 보니 충격이었다. 기차역에는 포르노 영화관이 있었고, 여름에 여학생들은 캠퍼스 잔디밭에서 팬티만 입은 채 엎드려 일광욕을 즐겼다. 그리고 연애하는 남학생들은 여학생 기숙사에 와서 동거하다시피 했다. 애인과 손 을 잡고 등교하던 남녀는 캠퍼스에서 각자의 강의실로 헤어지는 지점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길게 키스를 나누었다. 문화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일로 받은 충격은 점차 진정되었고, 문화 차이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 었다. 우리 중에는 저 정도 분위기라면 여기저기서 성 폭행 사건이 터질 거라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개방된 성문화는 오히려 그런 걸 예방해 준다. 성이 금지된 나라에 살던 나는 일광욕 하는 여학생을 조금 더 오래 감상하고 싶어서 타고가 던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끌고 걸어갔다. 동양을 생각하며 다시 돌아보니 정부에서 엄격 한 기준을 가지고 통제한다는 점이 다를 뿐 건강한 사람들이 성적 욕망을 가지고 있고 욕구 충족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성이든 이데올로기든 문화는 사회구 성원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폐쇄적이면 거기에 따른 부담이 있는 것이고, 개방적이 어도 마찬가지다. 결국 구성원들이 원하는 만큼,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조정하고 정 리하여 생활해 나가는 것이다. 미국은 섹스 대신 총기를 허용하고, 유럽은 총기를 금하고 섹스를 허용했다고 말하지만, 왜 그렇게 됐을지도 따져 볼 일이다. 철학적 인간학은 인간이 폭력과 평화의 양 극단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고, 맑고 고상한 정신과 욕망과 열정의 육체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총기 소지는 자기보호에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엄청난 사회문제가 되 고 있는 오늘날에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총기 관련 업자들의 이기주의를 국민여론이 압 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테러를 일삼는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지금도 순결주의를 강요하고 있지만 이미 오래전 킨제이보고서는 미국인들의 성 생활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보 여준 바 있다. 한국의 성 문화가 기형과 왜곡으로 뒤 덮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도시화, 현대화의 급격 한 진전도 원인일 테지만, 독재자들이 외화수입을 올린답시고 기생관광을 허용하고, 비판적 사회 관심을 돌리기 위해 퇴폐적인 성문화를 조장했기 때문이다. 장발과 미니스커트는 단속 하면서 룸살롱 접대문화는 허용하고, 전통윤리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주입시키면서 권력자들 과 기업인들은 제왕처럼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따로 놀았기 때문이다. 하루를 살아도 제왕처럼? 인구가 많은 서울에서 오솔길을 찾아 홀로 조용히 산책을 즐기거나, 우아한 카페에 가서 호 - 8 -

젓한 분위기로 독서와 음악을 즐기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서울보다 지방이 문화 적 삶의 질이 높을 수 있다. 일상에서 우아하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곳도 인 간다운 환경에서 가능할 것이다. 많은 남자들은 로마 황제처럼 원하는 대로 맘껏 욕구를 충 족시키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건강한 사회라면 그런 것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정치꾼들과 장사꾼들은 조폭들과 손을 잡고 전 사회를 성매매화시켰다. 성이 개방된 어떤 선진국도 학교나 주택가 주변에 성매매가 가능한 모텔과 술집을 인가하지 않는다. 대 학생과 직장인이 우리처럼 성매매를 가볍게 생각하는 나라는 드물다. 성매매의 만연은 남녀 의 인격적 만남을 어렵게 하고, 개방적이고 아름다운 성문화를 불가능하게 한다. 성이 개방 된 나라도 고민은 있다. 그래도 그들의 고민이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