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보고서 북한 어린이 건강실태 보고서 -전염성 질환을 중심으로 ( 사 )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이 보고서는 행정자치부의 <2002 년 민간단체 지원사업> 기금 지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주소 135-080,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667-13 역삼빌딩 402호 전화 3453-9756, 팩스 3453-9759 홈페이지 www.healthchild.org 이메일 help@healthchild.org
북한 어린이 건강실태 심포지움에 부쳐... 안녕하십니까.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가 활동을 시작한지 5 년, 그리고 법인으로 활동을 한지는 1 년이 넘었습니다. 이제 북녘 어린이들의 건강실태에 대하여 의학적으로 검토하는 자리를 세 번째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는 1997년 6월에 활동을 시작한 후로 열두 차례에 걸쳐 의 약품과 원료 그리고 의약품 생산설비를 보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방북을 통해 우리가 보낸 물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업에 대하여 북측 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기도 하였습니다. 올해는 통일부, 행정 자치부의 도움을 받아 의약품과 생산설비를 지원하였고 또한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원본부의 특성에 맞게 회원들이 소속되어 있는 직역에 걸맞는 지원품목을 선택하려는 노력도 있었으며 그에 따른 소속원들의 더욱 적극적인 성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는 북한의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 등을 통해 북녘의 어린이 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북녘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의약품이나 의료 용품 그리고 의약품 생산설비를 보내는 것이 우리 활동의 핵심입니다. 지원사업을 하다보면 때로는 힘에 부칠 때도 있고 기운이 빠질 때도 많습니다. 우리의 노력만 큼 북측에서 호응해 오지 않을 때는 답답하기도 합니다. 남측에서 일어나는 대북지원사업에 대한 회의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더 욱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조건과 상황은 참으로 가변적이어서 과연 어느 쪽 으로 갈지 예측을 어렵게 합니다. 바깥으로는 북의 핵 문제에 얽힌 갈등이 민족의 삶을 위협하고, 안으로는 평화와 통일의 문제가 민족의 앞날을 가리기보다 작은 집 단의 이익을 쫒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위협을 받습니다. 지원본부 또한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운영을 위해 필요한 재정을 회원들 의 회비에 의존하다 보니 항상 쪼들리는 살림을 하고 있습니다. 법인이 되면서부터
제기되었던 사무실의 안정적 운영은 몇 회원의 헌신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숙제입니다. 재정 문제 말고도 크고 작은 많은 어려움에 맞닥트릴 때 가 많습니다. 이제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지금의 북녘의 어린이의 상황이 어떠한지를 묻는 질문에 답하는 자리를 가지려 합니다. 어떠한 조건이 현재의 북녘의 기본적 경제 상황을 가져왔는지, 그것이 보건의료체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어린이에게 끼 친 피해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영양 및 건강 실태는 어떠한지, 특히 저항력이 떨어 질 때 기승을 부릴 전염병은 어떠한지 등등에 관하여 이야기하려 합니다. 는 이번 심포지움을 준비하면서 수차례에 걸쳐 자체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지원본부 많은 자 료를 모으고 정리하신 백재중 선생님께 큰 감사를 드리며 좋은 말씀을 해주실 토론 자 선생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북녘 어린이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이들 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되새겨 보는 좋은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02년 11월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이사장 심재식
자료집을 읽기 전에... 2002년 11 월, 한반도에 긴장과 평화의 분위기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한때 서해교 전 등 어려움도 있었으나 한반도에 흐르는 평화의 물결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이산 가족 상봉이 금강산에서 진행되고 남북 교류가 이어졌으며 아시안 게임을 통해 우 리는 동포임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북한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 복하기 위해 7 월 경제개혁을 실시한 이후, 일본과의 국교 교섭, 신의주 특구 개방 등 파격적인 정책들을 시행하였습니다. 느닷없이 핵문제가 등장하여 긴장을 높이고 도 있습니다. 북한의 어려움이 알려지기 시작한 1995년 이후 남쪽의 많은 민간단체들은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지원 사업에 헌신하였으며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 력은 위기에 처한 어린이들을 구하고자 하는 인도주의적 열망과 나아가 이 땅에 평 화와 통일을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북한 어린이들의 현실이 크게 개선되었다는 믿음을 현 재 우리는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북한 어린이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에 우리는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들을 멈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도 1997년 이래 북한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해 많은 의약품 을 지원해 왔습니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수년간 일을 진행해 오면서 이제는 보 다 넓게 그리고 장기적인 지향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고민의 결과 < 북한어린이건강실태, 2002 년 보고서> 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보고서를 통해 북한 어린이의 영양과 건강에 관한 문제들을 정리해 보고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보고서의 문제의식을 공유 하고 장점과 한계가 활발히 검토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작업들이 내년에도 연속 작업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보고서에는 북한의 현실에 관한 수많은 통계치들과 수치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신빙성 있는 자료들만 인용하려고 애썼지만 확인이 어려운 경우도 일부 있었습니 다. 보고서는 주로 대북지원에 참여하는 국제기구나 민간단체들의 자료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시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부분적으로는 이들의 사업성 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 그리고 북한 당국의 노력 등을 살펴 볼 자료가 부족하여 이 부분을 충분히 고려할 수 없었 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남측의 민간단체나 정부 당국의 노력에 대한 기술이 부정확 하거나 미흡한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의가 아님을 이해해 주시고 지적 해 주시면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지원본부의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북녘 어린이들의 현실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북녘 어린이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2년 11월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차 례 1. 북한의 최근 위기 상황에 대한 이해 1) 경제적 위기의 시작...1 2) 자연재해의 충격...2 3) 최악의 상황으로...4 4) 계속되는 위기상황...6 5) 북한의 식량 사정...9 6) 북한의 에너지 사정...20 2.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붕괴 1) 북한 보건의료 체계...24 2) 붕괴의 시작...27 3) 자연재해에 따른 위기의 심화...28 4) 북한 보건의료의 현실...29 3. 북한 어린이에 관한 인구학적인 변동 조사 1) 인구 구성과 평균 수명의 변동...42 2) 사망률과 기근 관련 사망자 추정...43 3) 중국 체류 북한 난민을 통한 간접 조사...49 4) 어린이 인구 구성...52 5) 출생률과 어린이 사망률...54 4. 북한 어린이의 영양 및 건강 실태 1) 기근이 어린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58 2) 북한 어린이의 영양 실태...60 3) 북한 어린이의 성장 장애...68 4) 칼로리 부족과 칼로리- 단백 부족...72 5) 비타민 및 미네랄의 부족...72 6) 모자 보건의 문제...76 7) 감염성 질환의 증가...80 8) 사회적 보호 기능의 마비...81 5. 북한 어린이 전염병 실태
1) 전염성 질환의 증가...84 2) 예방접종률의 감소...87 3) 질병별 분석...94 (1) 설사병...94 (2) 호흡기 감염증...99 (3) 소아마비...101 (4) 홍역과 백일해...106 (5) 파상풍...107 (6) 결핵...108 (7) 바이러스성 간염...117 (8) 말라리아...119 (9) 기생충 감염...130 (10) 피부 전염 질환...131 (11) 에이즈(HIV/AIDS)...131 6. 북한 어린이의 건강을 위한 지원 1) 영양개선을 위한 지원...133 2) 필수 의약품의 지원...136 3) 모성 보호 프로그램...140 4) 어린이질병의 통합관리...142 5) 상수도와 공중 위생...143 6) 지역사회 일차 의료지원...146 7) 재난 대비 및 대응 프로그램...147 8)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148 7. 대북 지원 사업의 전망 1) 대북 지원 사업의 성과와 한계...151 2) 보건의료 분야 지원 사업 평가...154 심포지움 자료 1. 남북한 개방시대의 감염질환 및 대책( 국립보건원 방역과장 이종구)... 157
부 록 1. 1998년 9-10 월 시행한 북한 어린이 영양조사 보고서...166 2. 제5 차 아동보호 아태각료급회의 북한 보고 자료(2001년 5 월, 북경)...176 3. 대북지원단체들의 활동과 현황...180 4.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유엔아동기금( 유니세프) 의 대응..198 5.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의 역사와 활동...207
1. 북한의 최근 위기 상황에 대한 이해 1) 경제 위기의 시작 1995년 이전 북한 사회는 풍족하지는 않았으나 나름대로 기존의 사회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었다. 북한에서의 경제위기는 1980 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의 경제 사정도 계속 악화되어 석유, 식량 등을 수입하는데 쓸 수 있는 외화가 부족하 였고 국제 신용도도 낮아 외상 거래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북한은 1980년대 후 반에는 3% 대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1990년대 들어서는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 였다. 1993년에서 1996년 사이 GDP가 50% 정도 감소하였는데 이는 일인당 소득이 481 달러까지 감소한 것을 의미한다. 2001년도의 1인당 GNP는 457달러라고 북한 당 국이 보고하고 있다. 1) 1980년대 북한의 식량 생산은 5-6백만 톤이었으나 1990년대 초반 4-5백만 톤으로 감소하였으며 93-94년도에는 3 백만 톤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 한의 연간 식량 소요량이 600만 톤 정도인데 자체 생산이 450-500만 톤 정도라면 부족분인 100-150 만 톤은 외부에서 수입을 해 오는 수밖에 없었다. 자체 생산이 감 소할수록 식량의 대외 의존도는 증가하게 된다. 1990년 이전 만해도 그런대로 곡물 수입에 의해 부족분을 메울 수 있었으나 1990 년대 들어 사회주의권의 몰락에 따른 무역의 감소와 북한 경제사정의 악화로 식량 공급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전만 해도 동맹국으로부터 무상지원을 받거나 우대가격으로 싼 값에 식량을 수입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소련 과 중국의 경제 사정도 악화되면서 이러한 지원도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특히 중 국은 흉작으로 인해 자체 식량 공급 부족을 겪게 되면서 1994년 대북 수출을 중단 하게 된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더해 1993 년의 냉해, 1994년의 우박 피해 등 자연피 해가 늘었으며 1995,6년에 이르러 대홍수를 겪으면서 식량위기는 본격화하기 시작 한다. 이 시기 이후 식량 생산은 연간 3 백만 톤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북한에서 식량 부족이 현실화된 것은 1992년 이전부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 다. 이 시기부터 공식 배급망(PDS, public distribution system) 을 통한 식량 배급 이 감소하기 시작하였으며 하루 두 끼 먹기 운동 도 이 때부터 시작하였다고 한 1) UNOCHA. Consolidated inter-agency appeal 2002, DPR Korea
다. 2) 공식적인 배급망의 비가동으로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장마당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인 것으로 보인다. 2) 자연재해의 충격 1995년 7-8 월 대홍수는 유사 이래 최대의 홍수였다. 전국 200 여개 시, 군중에서 북쪽에서 서쪽으로 걸쳐 있는 145 개 시, 군이 홍수의 피해 보았으며 전체 인구 2100만 명 중에서 10만 가구 50만 명이 집을 잃고 이재민이 되었으며3) 520여만 명 은 다양한 정도의 홍수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4) 직접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당시 지방 정부가 제공한 자료에 근거해 보면 황해도의 경우 15 만 명이 집을 잃었으며, 30만 톤의 식량 즉 당시 도민의 6 개월 식량이 소실되었다. 12 개의 학교, 14개의 병 원, 그리고 50 개의 진료소가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었다. 황해도에 있는 16개 군 중 에서 8개 군의 식수 공급체계가 파괴되었으며 136개 저수지 중에서 42개가 파괴되 었다. 5) 평안북도 박천군의 경우, 하루에 728mm의 비가 내려 13,199헥타르의 경작 지 중 7,000헥타르가 침수되고 4,700명의 인구 중 1,300명이 집을 잃었다고 한 다. 6) 90년대 들어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던 북한은 엄청난 자연재해에 대처할 능력을 이미 상실한 상태였다. 1995년 8월 북한의 유엔대표부는 유엔기구들에 긴급 구호요청을 하기에 이르며 이에 유엔인도지원국(UNDHA) 은 수해지역을 현장 방문한 후 9월 12일에 대북지원관련 유엔기구들이 국제사회에 대북지원을 호소하게 되었 다. 이 때부터 북한 사회의 경제적 어려움과 자연 재해의 피해가 외부에 본격적으 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북한에 대한 지원도 시작되었으나 아직까지는 활발한 상태 는 아니었다. 다음 해인 1996 년도에도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1996년 여름 비슷한 시기에 다시 큰 홍수가 닥쳤다. 1995년에 비해 심하지는 않았으나 누적된 피해로 인해 상 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1996년의 수해로 8개 도 117 개 시군에서 가옥, 공공건물, 2) 좋은 벗들, 탈북식량 난민 1,694명 면담 조사결과 보고서 1998.12.12(www.jungto.org) 3) UN DHA. DPR Korea-Floods Situation Report No.5. 1995.9.5 4) IFRC. DPR Korea: Situation Report No.03. 1997.7.31 5) UN DHA. DPR Korea-Floods Situation Report No.4. 1995.9.1 6) UN DHA. DPR Korea-Floods Situation Report No.5. 1995.9.5
탄광 등을 비롯한 공장과 시설, 논밭 등이 침수되고 서해안의 곡창지대도 대량 파 괴되었으며 이로 인해 유실된 곡물만 100 만 톤에 달한다고 한다. 1995년의 홍수로 인한 피해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홍수가 발생하여 식량 부족이 더 욱 가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1995년과 96 년에 걸친 대홍수 이후 식량 위기가 본격화하였다. 당시 많은 사람이 사망하였으며 7) 55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곡물도 12% 인 120만 톤 정도 유실되 었다고 한다. 이러한 자연 재해는 북한이 지니고 있던 경제적 취약성의 문제와 결 합하면서 극심한 식량부족을 야기하고 나아가 공중보건에도 위협적인 사태가 초래 되었다. 대홍수와 비료 부족 등으로 인해 곡물 생산이 1984년 810만 톤에서 1996년 430 만 톤으로 감소하였다. 식량 수입으로 부족분을 다 충당하지 못해 1996-1997년 기간 식량 부족량은 230 만 톤에 이른다. 8) 1996년도의 경우 홍수로 인한 곡물 손실 을 고려하면 실제 식량 생산량이 250만 톤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기의 식량 부족은 300-350만여 톤에 이르는 것으로 볼 수 있 다. 9) 1996년 북한의 국제 지원을 포함한 곡물 수입계획량이 115만 톤인 것을 감안 하면 순수 부족분만도 200 만 톤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95-1996년 기간에 40 만 톤에 이르는 국제적인 지원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1997년 2-4월에는 일인 당 배급량이 홍수 이전의 585g에서 100-150g 으로 감소한 상태였다. 10) 3) 최악의 상황으로 1997년 봄 가뭄이 심해 7월말에는 저수지의 바닥이 드러나 논에 물을 댈 수 없을 정도였다. 8월21일 서해안 3개 도에 밀어 닥친 해일로 농경지에 짠물이 들어 식량 생산에 영향을 미쳤다. 11) 가뭄과 해일로 인해 그해 식량 생산량이 소하였다고 한다. 식량 생산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70만 톤 정도 감 7) 186 명이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다. 8) FAO/WFP. FAO/WFP crop and food assessment mission to DPR Korea. December 1996. Rome, Italy 9) 법륜. 북한 식량난의 원인과 대북지원의 논리. 1997.3 (www.jungto,org) 10) FAO/WFP. FAO/WFP crop and food assessment mission to DPR Korea. December 1996. Rome, Italy 11) IFRC. DPR Korea Health and nutritional support. 1997.11.25
계속되는 자연재해와 사회 기반 시설의 파괴로 1997년은 북한 주민에게 어려운 해가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지속된 식량 부족과 사회 전반의 피폐화가 가장 극에 달한 시점이 1997 년을 전후한 시기로 보인다. 1997년 한 보고에는 다음과 같이 적 고 있다. 12) 북한 당국은 1997년 4월 134명의 어린이들이 굶어 죽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하였다. 이 뉴스는 95년 북한의 큰 수해 이후 그 곳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국제 식량 원조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제 곧 밀어 닥칠 대량 아 사의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최근 2-3년간 지속된 엄청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북지원 관계자들의 증언은 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확인 사실도 부분적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식량 부족으로 인한 피 해는 보다 더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하였다. 1997년 북한은 최악의 식량난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최악의 기근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 6세 이하의 어린이들은 유아원에 들어갈 수 있으며 여기서는 하루에 150g을 추가 로 배급받을 수 있었으나 97년 3월 유엔의 현장조사에서는 유아원 출석률이 40-80% 로 줄었으며 자강도에서는 추가적인 배급도 중단된 상태였다. 13) 유아원, 유치원, 학교 등 어린이 시설은 오히려 식량 지원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곳이었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지원되는 식량도 일차적으로 이런 시설을 통해서 배급되었으나 정 말로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어린이는 이 곳에 출석하지도 못하고 거리를 떠돌아다 니고 있었다고 한다. 하루 섭취 칼로리의 30% 는 공식배급망에서 제공하는 것 말고 다른 곳에서 보충하였으며 일차적으로 장마당이라고 부르는 농민시장이 그 역할을 맡았으나 장마당에서도 충분한 식량을 구할 수는 없었다. 먹을 것을 찾아 장마당을 떠도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결국 야생 식용식 물, 나무껍질 등을 대용으로 섭취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를 통해 충분한 영양을 얻 을 수는 없었다. 식량난이 악화되면서 북부 중국과의 접경 지역 주민 중심으로 중국에 체류하는 난민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조선족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는 연변자치주 중심으로 식량 난민이 증가하기 시작하는데 1997년 이전 중국에 머물고 있는 북한 난민은 3 만여 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그 수가 계속 증가하여 1998년 중에는 10 12) 북한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외, 북한어린이의 참상과 의약품지원에 대한 심포 지움 자료, p41, 1997.10.11, 13) CDC, Status of public health --DPRKorea, April 1997, MMWR. 1997.6.20
만 명 이상까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1997년까지는 대부분 식량을 구하여 북한으 로 돌아갔으나 1998 년 들어서는 계속 체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14) 4) 계속되는 위기상황 북한의 식량 생산은 1995년부터 계속된 재해로 인해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가 1998년과 1999년 안정적인 성장을 보이는 듯하였지만 2000 년 다시 감소하였다. 2000년에는 1999년에 비해 식량 생산이 30% 정도 감소하였다. 이러한 감소는 가뭄 등 자연재해, 농업용수 부족 등 그동안 누적된 문제가 농업기반의 구조적인 취약성 과 맞물려 위기가 증폭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점차 식량위기가 만성적이고 구조 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으며 해결을 위해서는 단순한 식량지원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착수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강하게 대두되기 시작한다. 북한 의 위기가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지만 황폐화 된 산림과 같 이 이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준비의 부족, 그리고 위기 발생시 이를 빠 르게 복구할 수 사회적 자원의 부족 등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는 장기적인 해결이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이 강구되기 시작하였 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북한의 경제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북한 경 제가 1999년 6.2% 를 기록한데 이어 2000년도에도 1.3% 를 기록하였으며 2001년도에 는 실질 GDP 기준으로 3.7% 증가하여 1999년 이래 연속 3년째 플러스 성장을 기록 하였다. 15) 그러나 여전히 북한은 식량난 해결을 위해 국제 지원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1997 년까지의 국제적인 지원은 식량, 의약품 등 대개 응급 지원이 주류를 차 지하였으나 1998년부터는 지원의 내용이 재활과 개발 부분으로 점차 이동하기 시작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식량 및 의약품 등 기초적인 지원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남북 관계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1995년 대홍수 이후 국제기구 및 외국의 구호단체들뿐만 아니라 남측에서의 인도주의적인 지원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1997 년 말 남쪽에서의 금융위기로 인해 관심이 일시적으로 위축되기도 하였지만 김대중 14) 윤여상. 중국내 탈북자에 대한 전망과 해결 방안의 모색. < 아시아 난민 실태 와 북한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NGO 의 역할> 워크샵 자료. 1999.10.10-16 15) 한국은행, 2001년 북한 GDP 추정결과, 보도자료 2002.5.14
정권이 들어선 후 일관되게 시행된 햇빛정책의 결과 었고 2000년 6월 15 일에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1999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 북한의 위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2001년도에도 자연재해는 계속되고 있고 식량 및 에너지 또한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50년 이래 가장 추운 겨울을 지내고 난 이후 80 년만의 최악의 봄 가뭄을 겪었으며, 이어서 닥친 홍수 등으로 인해 생산 량이 현저히 감소하여 180 만 톤 정도의 식량이 부족할 것으로 파악되었다. 2001년 10월 9-10일 북한 강원도 지역에 36시간 동안 엄청난 비가 내렸는데 12시간 만에 400mm이상의 기록적인 강우량을 보여 강원도 지역에서는 1910년부터 강우량을 측정 한 이래 최악의 홍수였다고 한다. 16) 당시 원산시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는데 원산 시에서만 3 천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 북한의 큰물피해대책위원회와 공동으로 수해 실태 조사를 벌인 유엔인도지원국(UNOCHA) 은 10월12일 발표에서 사망 81 명, 부상 82 명, 실종 27명의 인명 피해와 1만1 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보고하였다. 58개의 다리가 파괴되었으며 농경지 2천 헥타르가 침수되어 수확을 할 수 없게 되 었다. 평양, 원산간 철도가 여러 곳 끊겼으며 원산시의 전기시설과 전화를 비롯해 제방과 수로 등도 파괴되었다. 17) 2001년 상반기 동안 북한과 유럽 국가간의 관계는 긴밀해진 반면 미국에 부시 정 권이 새로 들어서면서 대북 정책이 재검토되기 시작하였고 그 여파로 남북간 대화 는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9월11일 미국에서 충격적인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뒤이 어 아프카니스탄에서의 보복전이 시작되면서 많은 난민이 발생하였다. 이들 난민의 실태가 속속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지원이 이곳에 몰리기 시작하였고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줄기 시작하였다. 9.11테러 이후 북한의 외환 사정도 급속히 나빠져 식량을 수입할 수 있는 능력도 감소하였다. 외화 수입 창구였던 무 기 판매, 일본으로부터의 송금, 금강산 관광 수입의 감소 등이 모두 감소하면서 북 한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북한의 위기가 극복되고 있다는 징조가 보이지 않고 있지만 국제적 지원은 크게 감소 추세에 있다. 2002년 7월 들어서는 북한의 경제 시스템에 큰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으 로 관측되고 있다. 식량배급제 폐지, 인금인상, 화폐제도 손질 등인데 변화의 핵심 16) BBC 방송. 2001.10.23 17) IFRC. DPRK: Floods appeal No.34/2001 operations update No.4 Final report. 2002.7.23
이 되고 있다. 쌀의 경우 1kg의 국정가격이 8전인데 비해 시장가격은 49원에 이르 러 수백 배의 가격차이가 있어 1백원의 월급으로는 쌀 2kg 밖에 살 수가 없었다. 7 월부터는 무상에 가깝던 식량 배급을 농민시장 가격 수준으로 올리고 대신 임금을 20-30 배 정도 올린 것이다. 아직 7월에 단행된 경제개혁에 대해 평가하기는 이르 다. 그러나 몇 가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쌀의 경우 국정 가격을 올린 이후 농민 시장의 쌀 가격까지 덩달아 오르는 인플레이션 현상을 보이고 있어 구매력이 취약 한 계층의 경우 부족한 식량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인센티브 의 적용으로 일을 하려는 노동력이 증가하고 있으나 마땅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 해 노동력 과잉 현상을 빚고 있다. 2002년 8월초에는 홍수로 인해 모두 9만 헥타르의 농경지가 침수를 당했는데 황 해남도와 평안남, 북도의 피해가 가장 심했다. 그리고 8월말-9월 초 사이에 태풍 루사로 인해 강원도 지역이 심한 피해를 당했다. 5) 북한의 식량 사정 성인 한 사람의 하루 최소 칼로리 요구량을 2100칼로리라고 할 때 75% 정도를 배 급한다고 하면 일인당 일년에 167kg 이 필요하다. 한국은행의 보고에 따르면 2002년 도 북한의 곡물 수요량 추정치가 정상배급기준을 적용할 경우( 성인 700g/ 일) 626만 톤이며 22% 감량배급 기준을 적용할 경우는(546g/ 일) 536 만 톤이다. 18) 세계식량계 획은 2002년도 식량 수요량을 북한 인구 2천3백만여 명 기준으로 하여 495만 7천 톤으로 추정하고 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대략 5백만 톤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세계식량계획과 식량농업기구의 자료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세계식량계획과 식량농업기구는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기 시작한 1995년부터 해마다 2 차례( 추수 후인 6월과 11 월) 곡물작황실태조사와 평가(food and crop assessment) 를 실시하고 있다. 이 조사는 위성 자료, 정부가 제공하는 자료, 구호단체들과의 토론, 현장 조사 등의 자료를 종합하 여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조사 보고 된 북한의 곡물 생산량 18) 한국은행, 2001년 북한 GDP 추정결과, 보도자료 2002.5.14
그림 1-1. 북한의 식량 생산량19) 을 < 그림 1> 에 표시하였다. 20) 1995/96년 시즌21)에 407만 톤을 기록한 후 400만 톤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으며 2000/01년 시즌에는 257만 톤으로 최악의 곡 물 생산량을 보였고 01/02년 시즌에는 366 만 톤, 02/03년 시즌에는 384만 톤 정도 의 공급량을 예상하고 있다. 1998년부터 진행된 유엔개발계획 주도의 농업복구와 환경계획(a griculture recovery and environmental plan, AREP) 에 의한 이모작의 확대, 재배 곡물의 다양화, 비료 제공 등에 힘입어 농업생산량은 증가하였으나 식 량 부족을 해결하기에는 부족한 양이다. 이러한 식량 수요량과 국내 생산량을 고려할 때 북한에서의 식량 부족분은 95/96 년 시즌 147 만 톤, 96/97년 시즌 193 만 톤, 97/98년 시즌 183 표 1-1. 세계식량계획의 대북 식량 지원 실적22) 구분 1995.12-96.5 96.6-97.3 97.4-98.3 98.4-99.6 99.7-00.12 규모( 톤) 21.000 70.000 400.000 600.000 876.933 금액( 백만 달러) 9.76 25.9 170.7 345.8 357.6 대상 인원( 백만 명) 0.5 1.6 4.7 6.7 8 19) FAO/WFP Special report: FAO/WFP crop and food supply assessment mission to the DPR Korea, 2002.10.28 20) WFP/FAO report 21) 95/96년 시즌이면 95년 11월부터 다음해 추수가 마무리되는 96년 10월까지 를 지칭한다. 22) 홍양호. 대북 인도적 지원 실태와 향후 과제. 통일경제 2001.9에서 인용
만 톤, 98/99년 시즌 104 만 톤, 99/00년 시즌 133 만 톤, 2000/01년 시즌 219 만 톤, 01/02년 시즌 130 만 톤. 02/03년 시즌 108만 톤 등 대홍수 이후 해마다 적게는 100 만 톤, 많게는 200만 톤 이상이 되어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이나 원조에 의존할 수밖 에 없었다. 가장 식량 위기가 고조되었고 기근에 의한 피해가 심했던 시기가 95-98 년이다. 이 시기의 세계식량계획의 식량 지원량은 < 표1-1> 에서 보는 것처럼 부족량 에 턱없이 모자라는 양이었다. 1999년 이후 북한의 위기상황 대해 외부에 자세히 알려지면서 지원량이 증가하여 식량 위기가 어느 정도 고비를 넘길 수는 있었지만 구조적인 문제 자체가 해결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외부 지 원이 중단되면 식량 위기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볼 수 있다. 2001/02 년 시즌(2001년 11월부터 2002년10 월까지의 기간) 의 식량 사정도 전보다 크게 개선되지는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식량계획과 식량농업기구는 일년에 두 차례 북한의 식량 사정을 평가하여 보고서를 제출 하는데 2002년 7월29일 발표한 상반기 평가 보고에는24) 2002년도 130만 톤의 식량 부족을 추정하고 있다. 이는 2002 년도 밀, 보리, 감자 등 봄 추수에 대한 현장 조 사 후에 발표한 것으로 01/02년 시즌 총 수확량을 365만 6천 톤으로 추정하여 계산 한 것이다. 00/01년 시즌의 총 수확량 257만 톤에 비하면 42% 의 증가를 보이지만 00/01년 시즌에 워낙 가뭄이 심했던 것 을 고려하면 예년 수준을 회복한 것에 불과하다. < 표 1-2> 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세계식량계획은 01/02년 시즌 북한의 곡물 생산 예상량이 365만 6천 톤이고 총 수요량은 495만 7천 톤이기 때문에 약25% 에 해당하 는 130 만여 톤이 모자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에서 북한이 수입할 수 있는 양을 10만 톤 정도로 보고 7월 말 현재까지 지원을 받았거나 지원 약속된 양 81만 9천 톤을 제하고 나면 대략 38만 2 천 톤 정도의 식량 부족이 예상된다. 북한은 부족한 식량에 대해서 상거래와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데 2002년도 에는 미국(15만6 천 톤), 한국( 옥수수 10 만 톤), 핀란드(20 만 톤) 로부터 세계식량계 획을 통해 인도적 지원을 약속 받은 상태이다. 중국은 지난해 장쩌민 주석이 방북 했을 때 20 만 톤을 지원하기로 한 바 있고, 태국이 식량 30만 톤을 신용판매하고 23) FAO/WFP Special report: FAO/WFP crop and food supply assessment mission to the DPR Korea, 2002.7.29, 2002.10.28 24) FAO/WFP Special report: FAO/WFP crop and food supply assessment mission to the DPR Korea, 2002.7.29
표 1-2. 2002 및 2003 곡물 연도의 식량 수요 및 공급 예측 ( 단위: 천 톤) 2002 년도* 2003년도 총 공급 예상량 3,656 3,837 재고 국내 생산 3,656 3,837 - 가을 시즌 3,215 3,451 - 겨울/ 봄 시즌 441 386 총 수요 예상량 4,957 4,921 식용 사료용 종자 기타 ( 추후 후 손실분 포함) 658 691 수입 필요량 1,301 1,084 상업적 수입 100 100 남한의 지원(40 만톤)** 300 응급구호지원( 지원 예정분 포함)*** 819 126 부족량 382 558 * 2002년도 수치는 7월의 report, 2003년도 수치는 10월의 report에서 인용 하였음 0 3,855 300 144 0 3,893 178 160 ** 남한에서의 40만톤 지원 중 10만 톤은 2002년에 소비하고 30만 톤은 2003 년 중에 소비 예정. 2002 년 수치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 쌀, 옥수수, 밀, 밀가루 옥수수/ 콩 혼합물 포함. 콩류, 식물성 기름 등은 제 외함 베트남도 쌀 5 천 톤을 지원할 예정이다. 25) 2002년도 들어서 공급배급망을 통해 1천5백만 명이상의 비농업 소비자에게 배급 되는 식량은 성인 1인 기준 하루 식량 배급량이 4월까지는 대략 300g 정도였고, 5월 250g, 6월 350g, 7월 300g, 8월 300g 으로 변동을 보이고 있다. 이 정도의 배급량은 전년에 비해 48% 가까이 증가한 양이지만 작년도에 곡물 생산 량이 최저로 감소하였던 점을 감안하면 예년 수준을 회복한 정도이다. 가장 취약한 가정에 대해 일부 지역에서는 대체 식품이나 채소를 추가로 배급하기도 한다. 모자 라는 식량은 전국에 형성되어 있는 장마당에서 구할 수 있으나 많은 비용을 지불하 여야 하고 양도 충분하지가 않다. 따라서 필요 식량의 많은 부분을 외부 지원에 의 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02년 10월에 발표된 보고서에서는 2002 년도 북한의 곡물 생산량을 작년(01/02 년 시즌의 공급량) 보다 4.9% 정도 증가하였고 2000/01년 시즌보다는 49% 정도 증가 한 384 만 톤으로 추정하고 있다. 95/96년이래로 가장 많은 수확량을 기록했으나 여 25) 한계레신문. 2002.7.25
전히 국내 수요량을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양이다. 02/03년 시즌의 총 수요량 492만 톤에 비하면 공급량이 108 만 톤 정도 부족이 예상된다. 상업적 수입 이 10 만 톤 정도, 남한에서 지원 받는 40만 톤 중 내년 소비 예정인 30 만 톤, 이미 지원을 약속받은 12만 6천 톤을 제하고 나면 여전히 55만 8천 톤 가량이 부족할 것 으로 예상된다(< 표 1-2>). 표 1-3. 세계식량계획의 식량 지원 수혜자 수 예측26) 대상 2002년도 2003년도 고아원 (0-16 세) 7,100 8,683 탁아소 (6 개월-4 세) 1,356,400 1,255,411 유치원 (5-6 세) 649,600 618,702 인민학교 (7-10 세) 1,394,100 1,349,530 고등중학교 (11-16 세) 676,000 - 노인 365,000 550,887 도단위 아동병원 입원 어린이 24,400* - - 도단위 아동병원 입원 어린이의 보호자 24,400 23,175 군단위 아동병원의 중증 영양장애 어린이 60,000* - - 산모 및 수유부 357,000 207,999 취로사업(FFW) 참가자 및 부양가족 1,200,000 2,175,000 춘궁기 144,000 - 재난대비 250,000 246,913 총 6,423,600 6,436,300 *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린이는 각각 자기 연령층( 탁아소, 유치원, 학교 등) 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따로 계산하지 않음 세계식량계획은 1995년부터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 오면서 해마다 국제사회에서 목표액의 90% 이상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 2002년도에는 식량 지원 목표량 을 61만 1천 602 톤( 약 2 억 달러) 27) 으로 정하고 북한 주민 640만 명을 대상으로 지 원을 계획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목표인 81만 톤( 약 3 억 달러) 에 비해 25% 감소된 규 모이다. 이와 같은 지원 계획에 따라 각국에 원조를 호소하고 있으며 6월말까지 한 국. 미국, 핀란드로부터 약속 받은 45만6천 톤을 포함하여 85% 에 해당하는 양을 확 26) FAO/WFP Special report: FAO/WFP crop and food supply assessment mission to the DPR Korea, 2002.7.29, 2002.10.28 27) 구체적으로는 곡물(52 만 톤), 기름(2 만 톤), 콩류(2.6 만 톤), 가공식품(2.4 만 톤), 설탕(1 만 톤), 분유 등이다. 세계식량계획은 2001년 총 73만 톤의 식량 을 지원(733,834 톤) 하였는데 이는 2001 년 대북지원 목표량(81 만 톤) 의 91% 에 해당하는 양으로 구체적인 지원 내용은 일본 쌀 32 만 톤, 미국 밀가루 등 29 만 톤, 한국 옥수수 10만 톤, 호주 밀가루 1 만 톤 등이었다.
보하고 있다. 세계식량계획을 통해 지원되는 식량들은 < 표1-3> 에 나와 있는 것처럼 2002년도에 탁아소, 유치원, 인민학교, 고등중학교, 고아원 등의 어린이들과 산모, 노인들 그 리고 취로사업(FFW) 28) 참가자 등 모두 642 만여 명에게 일차적으로 지원되고 있다. 어린이 시설 등을 통해 지원되므로 시설에 출석하지 않는 어린이들에게는 국제기구 에서 식량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2003년도에는 고등중학교 학생에 대한 지원이 제외되고 산모 및 수유부에 대한 지원은 감소할 예정인데 이는 일부 농촌 지역의 경우 자체 식량 조달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대상에서 제외하였기 때문이 다. 노인에 대한 지원은 확대하였다. 그리고 2002년 7월의 경제개혁으로 인한 과잉 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해 취로 사업에 대한 지원은 대폭 증가할 계획이다. 29) 최근 들어 지원 식량 확보량의 부족으로 세계식량계획은 5월초부터는 영양에 대 해 가장 영향을 받는 유아와 산모들을 보호하기 위해 640여만 명의 대상자 중 67만 6천명의 고등중학교 학생과 36만 5천 명의 노인 등 1백만 명이상의 대상자에 대한 식량 지원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5 월에 들어 지금 북한에서 한 세대가 없어지려한다 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된 기사가 있었다. 5월3일 재미한국청년 연합이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 아시아지역 담당국장 존 파월과 함께 최근 북한의 식량 사정에 대한 브리핑과 질의응답을 갖는 컨퍼런스콜을 가진 바 있다. 이 자리 에서 존 파월은 지금 북한 상황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한 세대가 없어져버 리는 것 이라는 말을 했다. 30) 이들에 대한 지원이 8월에 재개되었으나 9월부터는 다시 1백만 명에 가까운 서부 지역 인민학교 어린이와 25만 명에 이르는 고등중학교 학생과 14만 명 이상의 노인 28) Food-For-Work(FFW) 즉 일을 하고 난 후 그 대가로 식량을 지원 받는 것 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취로 사업과 유사한 개념이다. 대개 국제기구나 지원 단체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노동력을 제공하고 식량을 지원받 고 있다. 염전의 복구사업, 어린이 영양식 생산사업, 산부인과 병원의 복구사 업, 병원과 학교의 난방 시설 복구사업, 어린이시설에 위생적인 화장실 신축 사업 등의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1년에는 1-9월 사이에 207개의 사 업이 진행되었고 이에 대해 약10 만 톤 정도의 식량이 제공되었다. 2002년도 가을시즌의 사업으로 채택이 되면 사업이 진행된다. 60여 가지의 사업 제안이 된 상태이고 일정한 평가 후 29) FAO/WFP Special report: FAO/WFP crop and food supply assessment mission to the DPR Korea, 2002.10.28 30) 프레시안(www.pressian.com), 2002.5.8
에 대한 지원이 감소하거나 중단되었다. 10월부터는 46만 명의 유치원 어린이와 25 만 명의 산모 및 수유부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고 11월부터는 92만 명 이상의 탁아 소 어린이에 대한 지원이 중단될 예정이다. 31) 그렇게 되면 세계식량계획이 지원 대 상으로 하고 있는 인구의 절반 이상에 대한 식량 지원을 중단하게 되는 셈이다. 11-12월에 서부 해안 지역에 대한 지원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려면 72,500톤의 곡 물이 필요한 상황이며 2003년 초반 시기까지 고려하면 더 많은 양의 지원이 필요하 다. 2003년 1.4분기의 지원을 위해서는 13 만 톤의 곡물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만 약 내년 초까지 추가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동해안 지역의 150만 명에 대한 식량 지원이 중단될 것이다. 32) 세계식량계획의 지원이 중단되면 이제는 전적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공식배급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현재 1인 당 300g 정도의 배급 수준을 보이는 현실을 감안한 다면 앞으로 식량 부족 사태는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공식배급망을 통한 식량 지 급은 1인당 매일 300g 정도 유지되다가 9월에 360g 으로 증가하게 된다. 양강도나 함경북도는 여전히 300g 정도인 반면 평양은 400g 까지도 증가하였다고 한다. 이러 한 배급량 증가는 태국으로부터의 쌀 수입에 의한 것이다. 가을 추수가 시작되고 남한으로부터의 식량 지원이 이루어지게 되면 좀 더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제 난민들조차 식량농업기구가 정하고 있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 500g의 배급을 받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이처럼 식량 원조가 줄어든 이유는 주요 식량 기부국이 9.11 테러 이후 피폐해진 아프카니스탄으로 발길을 돌린데다가 부시 행정부가 계속 북한을 위험국가로 몰아 세우고 있으며 북한 자체의 경제 사정도 악화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작년까지 식량지원을 해 준 일본 정부가 2001년도 12월 발생한 북한 공작선으로 추정되는 괴 선박 침몰사건이후 식량 지원 약속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원인의 하나이다. 일본 은 2001년도에 50 만 톤을 지원했었다. 2002년 6월말 서해안에서 남북간에 교전이 일어나는 등 장애도 있었으나 8월 들어 남북간에 다양한 형태의 교류가 재개되면 서 식량지원에도 돌파구가 마련되었다. 남한 정부는 재고 쌀 40만 톤을 20년 장기 차관 형태로 지원하기로 함으로써 북한의 식량 사정은 당장의 위기를 넘길 수 있게 되었다. 33) 이 쌀들은 9월부터 시작해서 2003년 1월까지 모두 5개월에 걸쳐서 북에 31) WFP. WFP Emergency report No.40 of 2002. 2002.10.4 32) WFP. WFP Emergency report No 43 of 2002. 2002.10.25
지원될 예정이다. 북한 주민들은 식량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비교적 최근에 먹게 된 대체 식품 외 에 전통적인 야생 식품을 채집해서 먹고 있다. 야생식품은 전통적으로 특히 농촌지 역에서 채집해 오던 식품을 지칭한다. 여기에는 식용 가능한 나물, 나무껍질, 도토 리, 그리고 해안에서는 해초 등이 포함된다. 앞으로 국제기구의 지원이 줄어들면 이들 야생 식품에 대한 의존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34) 특히 북동지역과 같은 오 지에서 이런 문제가 더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식량난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여러 가지를 지적하 그림 1-2. 북한에서의 1989-2002년의 비료 사용량35) 고 있다. 첫째는 북한은 기본적으로 농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국토의 20% 만이 농사를 지울 수 있는 평야여서 식량 생산을 위해서는 산림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황해도 일대를 제외하고 평지보다 산지가 압도적으로 많은 불리한 지형적 조건 등으로 인해 농지 확보를 위해 산림을 개간하기 시작하였 으나 이러한 산림 개간은 산림의 황폐화로 이어지고 이는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에 대해 취약한 상황을 초래하여 되었다. 두 번째는 집단 농장과 같은 농업 경제의 비 33) 세계식량계획을 통하지 않은 지원이다. 지원 시작 후 10년 후 부터 갚아나 가며 톤 당 265달러이고 이자는 1% 이다. 34) OCHA, DPR Korea OCHA Situation Bulletin, 2002.3.2 35) FAO/WFP Special report: FAO/WFP crop and food supply assessment mission to the DPR Korea, 2002.10.28. 북한 농업성의 통계를 근거로 작 성되었으나 남한에서 지원받은 20 만 톤, 유럽연합에서 지원받은 12만 4 천 톤의 비료가 계산에 포함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효율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며, 세 번째는 영농장비와 농업기술의 낙후, 그리고 비료산업과 같은 관련 산업의 붕괴 등의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원료의 부 족으로 비료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으며 농기계들도 연료와 수리 부품이 없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병충해 예방을 위한 살균제와 농약도 부족하다. 북한 은 대남 협상에서도 비료 지원을 요청하였으며 남한 정부는 적십자사를 통해 요소, 복합비료 등을 계속 지원하고 있다. 북한의 비료 사용량은 1980년대 후반 이후 계 속 감소하고 있으며 1998년 최소 수치를 기록했다가 최근 4년간은 매년 20만 톤 정 도의 비료만을 소비하고 있다(< 그림 1-2>). 비료 사용량이 급격하게 감소한 것은 국내 생산이 에너지 부족, 노후한 시설, 원료 부족 등의 원인으로 제대로 이루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자연 재해의 피해이다. 상습적으로 냉해가 존재하 는데다 지나친 농지개간사업으로 인한 산림의 황폐화로 인해 대홍수시에 적절한 대 응이 어려웠다는 지적이 있다. 36)37) 북한의 산림 훼손 상태는 심각한 것으로 보이 는데 38) 추운 날씨와 에너지 공급 부족으로 주민들은 나무를 잘라 난방과 조리에 사 용함으로써 더욱 악화되고 있다. 중국과의 북경지대에서는 목재가 바터 무역의 수 지맞는 상품으로 종종 식량과 교환된다. 벌거벗은 산들로 토양침식이 늘어나고 기 후의 변화를 가져와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가 늘어나고 있다. 39) 북한의 식량 사정은 단지 농업 정책의 변경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 다. 결국 경제 자체가 회복되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농업 생산에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을 확보해야 하고, 부족한 식량을 달러를 지급하고 사올 수 있어야 외부 지원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이는 모두 경제 회복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6) 북한의 에너지 사정 36) 법륜, 북한식량난의 원인과 대북지원의 논리. 1997.3 ( 출처:www.jungto.org) 37) 강정구. 북한 식량난과 사회변화. 북한 1999, 민족의 희망 찾기. 정토출판 사, 1999 38) 북한에서 1997년까지 최소 98,000헥타르의 산림이 황폐화 되었으며 그 이 후로도 가정에서의 연료 공급과 농지 개발 등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산림이 황폐화되었다고 한다. 1997년 자료에서는 가장 산림이 황폐화가 심한 지역 에 나무를 심기 위해서 다. 5천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필요할 것이라고 보고 있 39) 와인가트너, 대북지원이 북한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1999.10.15 빅토리아 대학 강연 내용 요약, 출처 : www.kotra.or.kr
북한의 전기 사정은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다. 2001년 1월에 들어서 온성이나 라진의 경우 전기가 평균적으로 하루에 1-2시간밖에 들어오지 않으며 어떤 날에는 1 시간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40) 현재 에너지난으로 북한의 전 공장 중 20% 만 이 가동하고 있으며 가정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다. 미국 노 틸러스 연구소의 자료에 따르면 41) 조사대상이 된 북한의 농가당 한 해 전력 사용량 이 남쪽 가구가 두 달 쓰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농가의 전체 에너지 사 용량의 76% 는 벌크형 석탄이며 전기는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8% 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 북한 전력 사정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장기간에 걸쳐서 정전 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42) 북한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만성적인 에 너지 부족이다. 식량난과 더불어 전력난으로 일컬어지는 에너지 위기는 북한 경제 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번영하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 위기의 시작은 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중국과 러시아로부터의 식량 및 석 유의 지원이 대폭 감소한다. 연간 44만 톤에 이르던 러시아의 석유 공급량이 4만 톤으로 감소한다. 거듭된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로 인한 탄광, 발전설비 등의 피 해, 석탄과 수력 위주의 경직된 수급체제 등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달러가 부족하기 때문에 에너지원을 수입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는 것도 한 원인이다. 탄 광뿐만 아니라 수력 발전시설의 대부분도( 최고 85% 까지) 대홍수 기간에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북한의 주요 수력 발전 시설 일부분의 위치가 홍 수가 심하게 일어났던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홍수에 의해 하구 쪽으로 씻겨간 부분 이 상당하다고 하지만 사실 확인은 안 되고 있다.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석유를 제대로 공급할 수 없다 보니 석탄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북한의 에너지원별 공급구조를 보면 2000년의 경우 석 탄이 71.7%, 수력이 16.2% 로 전체 에너지 공급의 87.8% 를 차지하고 있으며 석유는 7.1% 에 그치고 있고 나머지가 5% 정도이다. 43) 1999년 1차 에너지의 석탄의존도가 세계평균 23.5%, 남한의 경우 21% 인 것에 비하면 굉장히 높다. 이 같은 에너지 수 40) 좋은 벗들. 2000년 1 월 국경지역 난민 보고서. 2000.2.26 41) 한겨레신문 2002.6.9 42) F. David. 북한 에너지 분야의 현 상황과 향후 전망. 1997.9. www.kotra.co.kr 43) 김경술. 북한의 에너지 수급실태와 전망. 월간 통일한국 2002. 7.
급 구조는 해외로부터의 에너지 수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국산 에너지의 생산 및 소 비를 극대화하려는 정책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승리화학공장과 봉화화학공장 등 북한에 있는 두 곳의 정유설비의 원유정제능력은 연3백50만 톤에 달하나 원유 수입 량이 50-100만 톤에 불과하므로 가동률이 30% 에 못 미치고 있다. 북한의 에너지 정책이 석탄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중반 이 후 석탄 생산량은 계속 감소한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80년대 말 약 4천300만 톤 에 달했던 석탄 생산량이 92년도에는 2천920 만 톤, 99년도에는 2천 100만 톤으로 감소한다. 44) 2000년의 생산 실적이 1985년의 60% 에 불과한 실정이다. 석탄 매장량 의 고갈, 탄광시설과 채탄 장비의 노후화, 채탄 조건 악화 등으로 생산량이 감소하 게 되고 결과적으로 전력 생산이 감소하므로 채탄 장비나 화차의 가동이 어려워져 생산은 더욱 감소하는 악순환의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거듭된 수해로 인해 저 지대의 많은 탄광들이 심각한 침수 피해를 입었으나 완전히 복구되지 않아 생산 감 소의 원인이 되고 있다. 2000년 북한의 발전설비 규모는 7백55만2천kW로 그 가운데 52.8% 는 수력설비로 나머지 47.2% 는 화력설비로 구성되어 있다. 설비 규모 면에서는 남한의 15.6% 에 해 당하나 정상적인 수준의 가동률을 확보한다면 현재 북한의 전력 수요를 충당하는데 충분한 규모로 평가되고 있다. 남한의 수력 발전 비중이 2% 인데 반해 북한은 절반 을 넘어서고 있다. 기존의 화력 발전소들이 석탄 부족으로 정상 가동을 못해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 고 있고, 봄과 여름의 가뭄으로 인해 댐의 저수량이 감소하여 수력 발전에 의한 전 기 생산도 감소하였다. 겨울에 들어 전기 사정이 악화되는 것은 겨울에 물이 얼어 서 발전소가 가동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존 전기 회선들은 낡고 훼 손 되었으며 전기선도 부족한 실정이다. 유엔개발계획(UNDP) 은 수력과 화력 발전량 의 30% 가 배전망을 지나는 과정에서 손실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력 생산을 늘리기 위해 북한은 전국의 강이나 지류에 소규모 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나 45) 전기 요구량을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44) 통일부. 최근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추진방향. 2001.12. 45) 와인가트너, 대북지원이 북한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1999.10.15 (www.kotra.or.kr) 97년5월부터 99년7월까지 2년 넘게 세계식량계획 평양 사무소장으로 근무한 와인 가트너씨 부부가 콜롬비아 주에 있는 빅토리아 대 학에서 99년10월15 일 행한 연설 내용의 요약이다.
현재 건설 중인 KEDO 원자력발전소46)가 정상 가동될 때까지는 북한의 전력 사정 이 호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북한의 전력부문 회복을 위해서 일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노후된 발전시설을 복구하고 현대화하는 것이다. 몇몇 발전소를 제외하고는 송배전 설비 거의 전체를 개보수해야 할 정도라고 하니 막대한 자본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도 남북의 에너지 협력은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 다. 46) 2백만 KW 정도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2.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붕괴 1) 북한의 보건의료 체계 북한은 사회주의의 원칙에 따라 국가가 보건의료자원을 독점 관리하면서 예방의 학적 방침에 따라 보건의료정책을 진행하였다. 초기에는 사회주의 원칙에 따라 의 료망을 확충하고, 공중위생관리, 모자보건, 약품 생산, 의료인력 양성 등에 진력해 왔으며 1960년 전반적 무상치료제를 법적으로 선포하고 1961년 의사담당구역제의 개념을 도입하면서 어느 정도 북한의 의료체계가 윤곽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북 한 사회의 기본 이념인 주체사상이 사회 각 분야에 적용되면서 보건의료분야에서도 주체의학을 강조하고 있는데 주체적 인민보건제도의 성숙을 위해 북한은 1980년 4 월 인민보건법을 제정하였다. 47) 인민보건법에서는 보건의료정책의 내용 및 특징을 무상치료제, 예방의학적 방침에 의한 건강보호, 의사담당구역제, 주체적인 의학과 학 기술 등 네 가지로 집약하고 있다. 전반적 무상치료제는 인민보건법 제9 조에 국가는 모든 공민에게 완전한 무상치 료의 혜택을 준다 는 규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북한에서는 건강진 단, 상담, 예방접종, 진단을 위한 검사, 수술, 투약, 분만 등 모든 진료 내용이 무 상으로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완전 무상치료제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예를 들면 모든 노동자들은 기본 임금의 1% 를 사회보장비로 공제당하며 직장을 다니지 않는 경우는 약값 명목으로 치료비를 내야한다. 그리고 농민들이 도시로 이송되어 치료 를 받을 경우에도 치료비를 지불한다. 48) 북한은 의사담당구역제에 대해 의사들이 일정한 주민 지역을 맡고 그 지역 담 당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돌보는 주민들에 대한 건강관리 책임제로서 보건사업 에서 우리 당의 예방의학적방침을 철저히 관철하며 인민들에게 완전하고 전반적인 무상치료제의 혜택을 원만하게 하는 의료봉사조직이 기본형식이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 49) 이러한 체계는 소아과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소아과의사담당구역제가 운영 47) 김옥주. 북한의 보건의료제도. 북녘어린이건강실태와 보건의료지원방향에 관 한 학술회의. 2002.7.5 48) 통일교육원. 북한의 보건의료정책의 주요 내용과 실태는 어떠한가? (www.uniedu.go.kr) 49)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소아과전서 3-1. 1988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북한의 의학교과서에는 소아과의사들이 담당한 주민지역 의 어린이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돌보는 건강관리책임제이며 어린이들 속에 우리 당 의 예방의학적 방침과 전반적 무상치료제의 혜택이 철저히 실현되게 하는 의료봉사 조직의 기본 형태이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는 다시 지역담당제와 직장( 활동단 위) 담당제의 두 가지 형태로 나뉘어지는데 지역담당제는 담당지역 안에 있는 탁 아소, 유치원, 인민학교, 고등중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과 집에 있는 어린이들의 건강관리와 의료 봉사를 전적으로 책임지면서 담당지역 밖의 탁아소, 유치원에 나 가는 어린이들에게도 의료봉사를 보장 하게 되는데 이는 도시 노동자구와 읍 소재 지 및 리 단위에서 실시된다. 직장담당제는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의 어린이들( 탁 아소, 유치원, 학교에 나가는 어린이들) 을 담당하여 그들의 건강관리를 책임지고 진행 하게 되는데 실제적으로는 이들 두 가지 형태가 배합되어 적용되고 있다. 낮 에는 탁아소, 유치원, 학교에서 담당의사의 건강관리를 받으며 집에 있는 기간에는 거주지의 담당구역의사로부터 건강보호를 받게 된다. 이 제도에 따르면 담당구역사 업을 맡고 있는 병원 및 진료소의 의사들은 주간 근무 시간의 절반 이상을 담당구 역에 나가 위생선전, 위생개조, 소독, 예방접종 등 위생 방역 사업을 조직. 집행하 며 검진, 상담 등을 체계적으로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1주일 에 한 번 정도 자신의 담당구역에 나가 보건 진료 활동을 하게 되며 1명의 의사가 200명에서 300 명, 농촌의 경우는 500명 내외를 대상으로 진료를 해야 하므로 규정 대로 사업을 진행하기는 어렵다. 50) 북한의 보건의료 관련 행정기관으로는 중앙에 보건성이 있고 도와 직할시에는 보 건국과 보건처가 있어 의료 행정을 관할하고 있다. 북한의 보건의료 전달체계는 네 단계로 되어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리, 동 진료소나 리 인민병원인 1차 진 료기관으로 리 단위에는 전국적으로 7 천여 개의 진료소가 있다. 이곳에서 인력, 시 설 및 재료가 부족하여 치료가 어려운 환자는 후송의뢰서를 발급받아 2차 진료 기 관인 시, 군 인민병원으로 후송되는데 2차 진료기관은 전국에 433개소가 있으며 진 료 상한 기간은 1 개월이다. 3차 진료기관은 도 인민병원으로 진료기간은 3개월이며 대부분의 경우 여기서 치료가 종결된다. 중앙의 진료기관인 의대 병원이나 중앙병 원인 4차 진료기관은 3 차 기관에서 후송된 장기 환자나 중앙에 거주하는 응급환자, 50) 통일교육원. 북한의 보건의료정책의 주요 내용과 실태는 어떠한가? (www.uniedu.go.kr)
당 간부 등을 대상으로 진료를 시행한다. 51) 북한의 의사 수는 인구 10만 명당 568명 정도로 의사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호 사 수가 적은 편이며 병원의 병상 수는 10만 명당 1,383병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편이다. 52) 그동안 북한의 보건의료체계가 많은 성과를 이룬 것도 사실이다.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전염성 질환의 관리나 어린이 및 산모 사망률 감소 등에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제3 세계 국가에서는 하나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그 러나 최근의 경제 위기는 북한 보건의료체계에도 큰 영향을 미쳐 그동안의 많은 성 과를 잃어버린 상태이다. 2) 붕괴의 시작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붕괴 조짐은 1990 년대 초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한 무역의 감소, 경제 성장의 둔화 등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조짐이 싹트기 시작한다. 무역의 감소로 인해 병원이나 진료소는 필수 의약품, 의료장비, 소독기, 냉장장비 등 의료 자원의 결핍으로 사실상 마비되기 시 작하였으며 예방접종과 같은 1차적이며 기본적인 진료 기능도 점차 제 기능을 상실 해 가고 있었다. 53) 북한 보건의료시스템이 이처럼 취약해지기 시작한 것은 일차적 으로 물자부족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초반부터 정상적인 식량 배급 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물자 부족은 전 사회적 인 현상으로 보건의료 분야의 물자 부족은 이를 반영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일차적 으로 타격을 받기 시작한 것이 전반적 무상치료제이다. 무상치료의 내용이 부실해 지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면 병원에 약품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입원치료를 받으면서도 필요한 약품은 가정에서 시장을 통해 구입을 해 의사들에게 가져다주어야 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54) 의약품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인해 쉽게 얻을 수 있는 한약( 고려약) 51) 백화종. 보건의료산업의 남북협력 방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회의자료. 2000.9.29. 52) WHO. Emergency programme in DPR Korea 2000. Dec 1999 53) 황상익. 북한 기아문제의 의학적 접근: 탈북 의사 증언을 중심으로. 54) 김순희. 북한의료의 실태. 출처: 한민족복지재단(www.kwfw.or.kr)
이 일차적인 치료제로 쓰이기 시작하는 비율이 증가하는데 거의 70% 에 까지 육박하 고 있다고 한다. 진단은 서양의학에 의하고 치료는 일차적으로 한약을 투약하는 것 이 북한의 현재 치료지침이다. 1995년 이전까지만 해도 70% 정도가 현대의학에 의 존하고 30% 정도는 전통의학에 의존하던 양상이 현재는 완전히 역전된 상태이다. 55) 한약이 갖고 있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재 북한 어린이에게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감염성 질환이나 비타민 부족과 같은 영양 결핍 등에는 전혀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3) 자연재해에 따른 위기의 심화 1995-96년의 대홍수는 그나마 유지되고 있던 북한의 보건의료시스템을 완전히 붕 괴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1995년 대홍수 당시 북한에서는 의료장비의 손실 이 310 만 달러, 의약품 손실이 210만 달러에 이른다고 세계보건기구 관계자들이 보 고한 바 있다. 당시의 조사에서는 20 개의 병원, 65 개의 일차의료 진료소, 244개의 진료소, 150 개 모자보건센터가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56) 이와 같은 보 건의료분야에 대한 직접 피해뿐만 아니라 경제적 타격에 의한 이차적인 영향은 더 큰 결과를 초래하였다. 파괴된 보건의료 시설을 복구하는 것도 경제난으로 인해 어려움에 봉착한다. 무 엇보다도 식량위기가 가시화되면서 급기야 굶어 죽어가는 주민이 발생하기 시작한 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주민들은 적절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가 하면 식량 부 족으로 인한 영양결핍으로 인해 질병에 대해 취약해지게 되고 이로 인해 신체적인 조건은 악화되지만 보건의료시스템은 이미 이러한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이다. 1980 년대까지 이루어 놓았던 보건의료체계의 정비, 수명 연장 등 의 성과가 무너져 내린다. 북한 당국이 공개한 자료에서도 이러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병원이 있지만 병원에는 환자가 없다. 병원에 가도 약이나 필요한 의료 용품이 없을뿐더러 겨울철에는 난방이 잘되지 않고 식사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까지 갈 교통편도 원활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전염병 예방, 예방접 55) Bipin Kamar Verma. Health as a bridge for peace (A case study -DPRKorea) 1999.5.4 56) UN DHA. DPR Korea-Floods Situation Reports No.3 1995.8.31
종 등 예방사업도 최소 수준으로 감소한다. 북한 당국은 식량위기에 처해 대외적으로 현실을 인정하고 국제 사회에 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가장 시급한 식량 지원이 최우선적인 요구사항이었지만 의약품 과 같은 의료물품도 중요한 지원 품목이었다. 1995 년 대홍수 이후 국제적십자연맹, 유엔아동기금,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들과 남쪽의 민간단체들이 보건의료 분야 에 대한 지원을 시작하였고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 지원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서 식량생산이 약간 증가했다는 것 말고는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가 크게 개선되었다고 판단하기는 이른 상황이다. 여전히 북한은 국제적인 지원에 의 존하고 있으며 지원이 끊기면 심각한 어려움에 다시 맞닥트려야하는 상황이다. 그 렇다고 국제적인 지원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보건의료 분 야에 대한 지원기금도 부족하여 이 분야에서의 만성적 위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 다. 4) 북한 보건의료의 현실 의약품의 부족 의약품 부족 현상은 대홍수 이후 현실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이전에도 전반적인 물자 부족으로 의약품이 부족 현상이 있기는 하였지만 한약을 대용하는 등의 방법 으로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었으나 대홍수 이후 그러한 해결 방법으 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1997년의 보고에는 홍수피해와 원료의 부족으로 1995년 이래로 의약품 생산이 60% 가까이 감소하였다고 한다. 57)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약 산업의 피폐화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가 있을 것이 다. 어느 정도 제약 공장들은 있지만 원료나 전기의 부족. 수송의 문제 등으로 인 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전신마취에 필요한 약품의 부족으로 목 수술을 국소 마취 하에서 시술하기도 하 57) Yasukawa T, Travel report summary: DPRKorea March 10-April 2, 1997. Geneva, Switzerland: WHO, Division of Emergency and Humanitarian Action, 1997
며 항생제, 수액제, 비타민제, 응급치료제 등 기초적인 필수 의약품도 부족하다. 양약은 평남순천제약, 평양제약, 라남제약 공장, 신의주 마이신 공장 등에서 생산 하는데 항생제와 어린이 영양제 등을 생산하고 있다. 항생제는 주로 순천제약 공장 에서 생산하고 있으나 원료 공급이 안되어 생산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약품 공급은 중앙에서 도 단위 약품공급소로 공급되고 이는 다시 군 단위 약품 공급소로 공급되며 여기서 병원 약국이나 해당진료소로 공급된다. 약국은 도, 군 단위 병원 마다 있으며 일반 주민들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처방을 받아 병원 약국에서 약 을 무상으로 공급받는다. 판매용 약국은 의사의 처방 없이 판매할 수 있는 약을 취 급하는데 리 단위마다 하나씩 있으며 약은 군 단위 약품공급소에서 공급받지만 90 년대 이후에는 약의 공급이 부족해서 거의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테라마 찐 이라는 항생제의 예를 들면 12알 포장으로 보통 1원 50전 정도였으나 장마당에 서는 15원에서 20 원에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공식적 진료가 아닌 개인이 야매 로 진료하고 비싼 진료비를 받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58) 수액제의 경우는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나마 수액제를 살균된 사이 다병에 담아서 사용하기도 한다. 59) 대학병원급 소아과 병동의 어린이 환자들 중 우 리가 링거액이라고 부르는 수액제 주사를 맞고 있는 어린이가 드물다는 것도 이러 한 물자 부족을 반영한다. 수액제는 설사병과 같이 심한 탈수 환자에게는 아주 중 요한 치료 수단의 하나이다. 수액제의 부족은 곧 어린이에게 흔한 설사 환자를 제 대로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수액제는 중환자나 수술 환자의 치료 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품이다. 북한에서 수액제는 도 단위, 시, 군 단위 병원 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공장에서의 대규모생산은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수액제의 질과 안전성에 대해서는 국제기구 요원들 사 이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60) 탈북약사의 증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포 도당이나 링거액을 제조하는데 수도시설이 나쁘고 증류수 기계가 제 역할을 못하거 나 멸균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로 이렇게 만들어진 정맥주사용 약 들은 적어도 토끼 3마리에다 실험 주사를 놓아 최소 4시간 부작용을 측정하여 안전 58) 이경희. 탈북 인사대담. BCG 접종 못해 결핵성 뇌막염 많이 발생 통일한 국. 2002.6 59) 엘리자베스 로젠탈. 보건의료체계의 붕괴가 북한의 위기를 더하고 있다. New York Times. 2001.2.20 60) WHO. Emergency programmes in DPRK 2000. Dec 1999
성을 확보한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런 과정까지 무시하고 주사하다 보니 이로 인한 부작용이 종종 나타난다고 한다. 61) 안전성 문제 때문에 수액제 품질을 향상시키는 문제에 대한 지원을 보건당국이 세계보건기구에 요청한 바도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효과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중국 체류 난민 대상의 조사에서도(< 표 2-1>) 62) 북한에 거주하는 최근 동안 병 원에서 치료 받지도 못하고 약도 쓰지 못했다 고 답한 난민이 전체의 63.4% 였으 며 병원에서 진단받고 약은 개인이 샀다 고 답한 경우는 34.7% 였다. 이 결과는 사실상 공식적인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에 인접한 지역에서는 중국에서 밀반입된 약품 표 2-1. 중국체류 난민들의 병원 치료 및 투약 실태 가족 중 환자가 발생했을 때 사례 수( 개) 비율(%) 병원 치료도 못 받고 약도 쓰지 못함 330 63.4 병원에서 진단받고 약은 개인이 샀음 181 34.7 병원에서 면비 치료를 받음 1 0.2 기타 9 1.7 계 521 100 을 쓰기도 한다. 2002년도의 보고에 따르면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여전히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63) 당장 국내 생산 시스템의 붕괴로 인해 정상적이 국 내 생산이 되지 않고 있어 대부분 외부로부터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어린이에게 흔한 호흡기 감염증이나 설사병과 같이 적절하 게 치료하면 회복될 수 있는 감염병들이 의약품의 부족으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항생제와 경구수분보 충제제의 공급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실정이다. 64) 이러한 의약품 부족 현상이 단 기간 내에 해결될 전망은 없어 보인다. 북한 사회의 경제적 회생을 전제로 한 제약 산업에 대한 투자는 요원해 보이며 우선 순위에서도 다른 분야에 밀리는 것으로 61) 이경희. 탈북 인사대담. BCG 접종 못해 결핵성 뇌막염 많이 발생 통일한 국. 2002.6 62) 좋은 벗들. 북한 주민의 북한사회 인식 발표. 2000.6.29 (www.jungto.org) 63) UNICEF. UNICEF Humanitarian action: DPR Korea program donor update 2002.5.29 64) UNICEF. UNICEF Humanitarian action: DPR Korea program donor update 2002.5.29
판단된다. 그렇다고 외부 지원만으로 북한의 의약품 수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의약품 부족으로 인해 최근 북한에서 한약에 대한 비중은 이전 보다 높아지고 있 다. 양약 공급의 부족으로 인해 이를 대체해서 투약하기 위한 것이 일차적인 목적 이다. 최근에는 수출 전략 상품으로의 개발이 증가하고 있어 약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북한 내각 보건성은 시, 도 별로 약초 증산을 위해 약초 심기와 재배, 채취, 보관사업 등을 전군중적 운동 으로 전개하고 있다. 병원에는 일반적으로 자격을 갖춘 약사들이 있는 한약 담당 부서를 운용하고 있으며 병원 안에 있는 정 원에는 약초들을 기르기도 한다. 65) 군 단위 이상의 인민병원에서는 자체 생산하는 약초에 의존하고 있어 의사도 연간 15일 동안 약초를 채취하며 약초 재배의 달 (4-5 월, 9-10 월) 을 두고 있기도 하다. 의대생들도 약초 재배에 참여하고 있다. 대 학은 1년에 12-14 주, 전문대는 10 주 정도 동원되고 있다. 66) 현재 북한에서 사용하 는 의약품의 70% 정도가 직접 기른 약초 치료제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결과 진 단은 서양의학의 방법으로 치료는 한약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북한에서 일반적인 진료 지침이 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한의사가 아닌 일반 의료인들도 한약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의료 기구 및 장비, 의학 지식의 문제 북한 사회의 전반적인 물자 부족은 의약품뿐만 아니라 의료 기구, 기기, 장비 등 에서도 나타난다. 첨단 장비나 시설은 둘째치고라도 진료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의료 용품이나 기구 등의 부족도 심각한 상황이다. 남포와 함흥에 의료기기 생산 공장이 있다고 하나 공급량과 질이 형편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진단이나 검사와 관련한 기구, 장비의 부족은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있어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체온계, 체중계, 청진기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진료 기구도 부 족하여 기본적인 환자 정보를 확인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고 한다. 진단 에 필요한 엑스레이 필름 부족도 심각하다. 예를 들면 결핵과 같은 질환의 경우 엑 스레이 촬영은 필수적인데 진단뿐만 아니라 치료의 경과를 확인하는데 있어서도 중 65) 와인가트너, 대북지원이 북한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1999.10.15 빅토리아 대학 강연 내용 요약, 출처 : www.kotra.or.kr 66) 백화종. 보건의료사업의 남북협력 방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회의자료. 2000.9.29
요하다. 의사들은 엑스레이 검사를 받는 환자 옆에 서서 형광 스크린에 나타나는 결과를 직접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들은 방사능에 장기간 직접 노출되어 이로 인한 질환으로 고통 받기도 한다. 67) 이 때문에 사망한 의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환 자들은 제 때 촬영을 못해 진단 자체가 지연되기도 하며 필름이 없어 처음 상태와 비교하여 경과를 판단하는데도 애를 먹는다고 한다. 결핵의 경우 객담 검사를 통한 결핵균의 확인이 가장 중요한데 검사 시약도 부족하여 일반적으로 널리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말라리아의 진단도 혈액을 채취해서 현미경으로 말라리아를 직접 확 인하는 비교적 간단한 과정을 거치지만 혈액을 채취하는 기구, 슬라이드, 현미경 등 이에 필요한 물품이 부족하여 말라리아 대유행 초기에는 증상에 근거하여 진단 을 내릴 뿐 정확한 진단이 어려웠었다. 지금은 대부분 외부에서 지원 받은 기구나 물품을 이용해서 진단을 내리고 있다고 한다. 진단의 지연이나 부정확성은 적절한 치료를 어렵게 하고 전염성 질환의 경우 질병의 전파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게 된 다. 정밀 진단 장비들의 경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판단된다. 갑상선 기능 검사와 같은 동위원소를 이용하는 혈액검사는 시도 단위의 병원에서도 제대로 시행 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초음파와 같은 장비는 구역병원68) 단위에서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며 컴퓨터 전산단층촬영(CT) 과 같은 첨단 진단장비는 전국적으로 도 드물다. 치료에 필요한 기기, 기구, 장비의 어려움도 마찬가지이다. 의사들은 필요한 수 술 도구를 인근 고철가게에서 망치질해서 직접 만들어 쓰기도 하고 다리가 부러진 어린이에게 재료가 없어서 나무판자와 거즈로 다리를 고정시키기도 한다. 붕대가 부족해 몇몇 시골 병원에서는 붕대를 만들기 위해 직접 목화를 키우기도 한다고 한 다. 북한에서 의수, 의족이 필요한 장애인은 11,000여 명에 이르지만 이들 재활 기 구들도 제대로 공급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69) 병원이나 어린이시설에 입원한 중 67) 엘리자베스 로젠탈, 의료체계의 붕괴가 북한의 위기를 더하고 있다. 뉴욕타 임즈 2001.2.20 68) 여러 명의 호담당의사가 있는 한개 구역을 담당하는 병원으로 남한의 경우 한개 구 정도에 해당한다. 호담당의사는 10-15 가구로 구성되는 인민반을 5 개 정도 담당하면서 방문 진료 등의 업무를 맡는다. 69) ICRC. News ICRC prepares to launch program for amputees 2001.7.18.
증 영양부족 어린이의 반 이상이 식량이 아닌 재활 관련 물품의 부족 때문에 제대 로 치료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70) 북한에서는 안경을 쓴 어린이를 찾아보기 힘 들다고 하는데 안경 하나 값이 북한 노동자 한달 월급과 맞먹기 때문에 눈이 나빠 도 안경을 낄 수 없으며 특히 콘택트렌즈는 너무 비싸 웬만한 가정에선 아예 살 엄 두도 못 낸다고 한다. 71) 보다 전문적인 치료 분야에 들어가면 사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심장 수술은 몇몇 병원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었고 만성 또는 급성 신부전의 치료에 필요한 인공신장실 의 경우는 김만유 병원에 2대의 투석기가 있다고 하나 제대로 사용되고 있지 않으 며 신장 등 이식 수술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 72) 수혈을 위한 혈액제제의 공급도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혈액제제는 수술 환 자, 출혈 환자, 외상 환자 등의 치료에서 중요한 치료제임에도 불구하고 혈액제제 를 관리할 수 있는 장비와 기술의 부족으로 현재 북한에서 심각한 문제의 하나로 제기되고 있다. 국제기구도 이러한 사정을 감안 이에 대한 지원을 부분적으로 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한 상태이다. 최근에 세계보건기구에서 북한의 혈액 공급 체계에 대해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73) 평양에 있는 중앙혈액원에 서는 2만 5천 명 정도의 헌혈을 포함하여 모두 4만여 명이 제공한 혈액을 보유하고 있는데 혈액을 제공하는 사람은 미리 자신의 혈액을 기증하여 검사를 받고 이상이 없으면 실제 필요한 경우 혈액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기증하는 혈액양 자체는 북한에서 필요한 양을 충당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평양의 중앙혈액원에는 냉장 시설과 발전기 등 세계보건기구에서 제공한 장비들이 있어 어느 정도 유지가 되고 있지만 지방의 혈액원이나 병원 등에서는 정전시를 대비한 발전시스템이 없이 국내 에서 생산한 냉장고 정도만 갖추고 있다. 장비뿐만 아니라 수혈 관계 전문 인력의 확보와 교육도 질관리 측면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계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태이 다. 74) 70) OCHA, Consolidated Inter-Agency Appeal for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2002, 2001.11.26 71) 인터뷰기사. 안과 수술차 방북한 공영태 박사. 중앙일보(www.joins.com) 72) 박상은. 북한의 보건의료 현황과 주요 질병 대책. 대한의사협회지. 2001; 44(3):258-264 73) WHO. News from DPR Korea Aug 2002 74) 세계보건기구는 최근의 조사를 바탕으로 2003년부터 북한의 수혈체계 개선
북한의 사정에 밝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북한의 진료 장비나 시설이 남쪽의 경 우와 비교할 때 15년에서 30 년 정도 뒤쳐져 있는 것 같다. 80년대 초반 이후 의료 장비의 국내 생산은 물론 외국으로부터의 도입도 거의 중단 상태인 것으로 보이며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것들도 대부분 70년대에 도입된 것들이 많은데 이제는 고장 나거나 노후화되어 가동에 애를 먹는다고 한다. 의학 지식의 측면에서도 북한에서는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주 체의학을 강조하여 자신들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오랫동안의 고립으로 인해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의학적 발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그리고 현대 의학이 무형의 지식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신의 기구나 장비들의 사용과 결합되어 발전하는 경우도 많아 기 구나 장비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의학 지식을 사용할 수 없게 되 기도 한다. 북한에서 백내장 수술을 집도했던 안과 의사의 말에 따르면 북한에서 제일 좋다는 평양의대 병원의 경우도 백내장 수술을 남한에서 20여 년 전에 하던 방법으로 한다고 한다. 75) 대북지원을 진행하는 국제기구나 민간단체 실무자들의 보 고에 따르면 예방접종이나 어린이 건강을 위한 지침, 임신, 출산을 위한 지침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하는 가이드라인들도 최근의 의학적 발전을 반영하지 못하는 내 용들이 현재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데 이들 지침들을 국제적 기준에 맞게 개정하는 작업들도 대북 의료지원 사업의 중요한 분야가 되고 있다. 병원 시설의 문제 환자들이 머물면서 치료를 받게 되는 병원 시설도 문제이다. 직접적으로 진단이 나 치료 과정과는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난방, 식수, 식사 문제 등은 환자의 진 료에 중요한 요소들이다. 난방에 필요한 석탄의 부족, 의료기관에서 난방을 유지하 는데 따르는 어려움 등이 있고 76) 제공되는 식수가 위생적이지 않으며 제공되는 식 사 또한 충분하지 않으므로 병원과 같은 의료기관에서의 정상적인 서비스 지원이 을 위한 지원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평양의 중앙혈액원과 두개의 지역 센터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예정하고 있으며 예산 마련을 위 해 2002-2003년도에 약 81만 7 천 달러 모금을 계획하고 있다. 75) 인터뷰기사. 안과 수술차 방북한 공영태 박사. 중앙일보(www.joins.com) 76) WHO. WHO Health Briefing DPR Korea March 2000, 2000.3.31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가 없다. 외국 언론에 보도된 어느 북한 어린이병원의 모 습을 보면 간접적으로나마 그 실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2001년 2월20일 뉴욕타임즈 톱 1면에 실린 엘리자베스 로젠탈 기자의 기사가 전하고 있는 2001년 겨울의 북한 병원의 모습이다. 77) 북한 평안남도 평성시 어린이병원의 싸늘한 병실, 희미한 불빛 아래서 김육과 광선 두 어린이는 그들의 침대 위에 놓인 자그마한 장난감을 맥없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두 아이는 너무 허약해서 아무데도 흥미를 두지 않았고 너무 추워서 두꺼 운 붉은 이불 밑에서 나올 수 없었다. 바깥은 영하 10 도, 병실 안에 온기를 내는 것은 난로 하나뿐이었다... 두 아이는 원래 12살이지만 체구가 8,9살 아이 정도 밖에 안 된다. 여러 해 동안 조금밖에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겨울 두 아이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에 온 건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설사병 때문이지만 약해진 몸은 그조차 감당해 내지 못했다. 시멘 트벽으로 된 좁은 병실 안에서 6 명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는 두 아이, 그들의 눈 은 초점 없이 멍하고 소매 밖으로 팔은 불쏘시개 같다. 피부엔 상처딱지가 가득하 고 머리카락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여기서 보듯이 병을 치료하는 병원이 기본적으로 난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 다. 입원시 필요한 난방이라든지 대부분의 조건은 가정에서 가져와 충족을 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단순한 난방의 문제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전기 사정으로 인한 문제 도 심각하다고 한다. 정밀한 의료기기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전기 자 체의 공급이 제대로 안되어 기본적인 진료 활동도 지장을 받고 있다. 2002년도 4월 북한의 병원을 방문하고 온 독일 국회의원과 기자들의 보고에서 병원에서의 전기 사정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엿볼 수 있다. 그들이 방문했던 황해남도 벽성에 있는 병원에서는 하루에 서너 시간 전기가 공급되는데 수술 중에 전기가 나가버리면 하 던 수술을 중간에 중단해야 한다고 한다. 자가 발전기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다. 78) 대북지원사업의 과정에서도 전기로 인한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공 급되는 전기의 전압과 주파수가 불안정하여 지원하는 설비 중에서 전기를 필요로 77) 엘리자베스 로젠탈, 의료체계의 붕괴가 북한의 위기를 더하고 있다. 뉴욕타 임즈 2001.2.20 78) Michael Fischer. North Korea asks nations for help. AP. 2002.5.23
하는 정밀 기계류의 경우 전압과 주파수를 보정해 줄 수 있는 장치를 별도로 지원 을 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원해 준 설비 자체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병원에서 사용하는 장비들은 정밀한 경우가 많아 전기 문제가 큰 장애가 되고 있다. 특히 수술 장비, 정밀 진단 장비. 혈액 저장용 냉장고, 백신 저장용 냉장고, 중환자 치료 장비 등 많은 중요한 장비들이 전기에 의해 가동되고 있는데 불안정한 전기사정으로 인해 진료 과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문제는 북한의 에 너지 사정이 해결되기 이전에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 식수와 공중위생 문제 현재 북한에서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물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수인성 질환이 증가하고 물과 관련한 질병 발생이 증가하여 보건의료 분야에 큰 위협이 되 고 있다. 최근의 보고에서도 북한 농촌 지역 주민의 65% 이상이 수인성 질환에 걸 릴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은 어린이들에게 더 크게 나타난다. 어린 이들에게 발생하는 설사병은 영양 겹핍, 면역 저하, 위생의 문제 등 복합적인 원인 의 결과이겠지만 공급되는 물이 안전하지 않은 것도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다. 북한의 식수 보급률은 1994년 86% 에서 1996년 53% 로 감소하였고79) 용수 생산량도 1994년 일인당 304리터에서 1998년에는 일인당 289리터로 감 소하였으며 그 후로도 계속 감소하였다고 한다. 80) 1998년 영양조사와 동시에 시행 표 2-2. 북한 주민의 식수 이용에 관한 조사 ( 단위: %) 조사연도 수도 우물 수동펌프 공동수도 기타 1998(MICSI) 74.3 16.3 8.2 1.2 0.2 2000(MICSII) 81.1 10.7 6.6 1.6 0 된 1차 MICS조사에서는 전체 가구의 74.3% 만이 수도관을 통해 식수를 공급받고 있 었다. 2000년도에 실시된 2차 MICS 조사에서는 약간 개선된 것을 알 수 있다(< 표 2-2>). 수도 시설은 되어 있지만 얼마나 충분히 그리고 안심하고 물을 마실 수 있는지가 문제이다. 가정에서의 수도에 의한 식수 공급은 극히 제한적이다. 2000년도에 식수 79) National Report DPR Korea, The 5th Ministerial Consultation for the East A and Pacific Region 2001.5 80) UNOCHA. DPRK sector report: water and environmental sanitation. June 2002
공급이 하루에 2 시간 정도로까지 제한되고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81) 수도로 공급되 는 식수의 안전성에도 심각한 우려의 소리가 높다.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 공 급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 대홍수 기간에 식수원, 식수 정화 및 공급 시스템이 많이 파괴된 후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 우가 많다. 부속품이 부족하기도 하고 장비가 오래되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도 한 다. 전력 부족으로 빈번하게 정전이 되어 정수장에서 그나마 가동하는 장비들을 제 대로 작동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원활하지 못한 수압의 변화로 정화되지 않은 물이 수도관으로 역류되어 들어와 오염된 물이 가정으로 공급되기도 한다. 물을 정 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소독 물질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지표수의 수질 보전을 위 해서는 매년 7 천 톤의 염소가 필요하지만 이를 충분히 공급하지는 못하고 있다. 염 소의 부족으로 정화 시설들이 염소 처리 없이 물을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주민들은 물을 끓여 먹도록 하고 있으나 물을 끓일 연료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리 고 산림의 황폐화와 반복되는 가뭄으로 인해 지표수 및 지하수도 계속 감소하고 있어 어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노후화된 수도 파이프 때문에 그나마 공급되고 있는 물이 새 나 간다는 것이다. 평양시 식수 공급시스템에 대한 평가에서 생산되는 식수의 50% 이상 이 수도관을 통해 누출되고 있다는 보고는 82) 그 심각성을 말해 주고 있다. 상수관 과 하수관이 같이 매장되어 있어 관이 심하게 부식되는 경우 하수가 상수관으로 역 류되어 들어가 식수가 오염되는 것도 문제를 악화시키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이다. 도시 지역이 농촌보다 수도파이프를 통한 물 공급에 더 의존하다 보니 수인성 질환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98년 조사에서 보면 79%가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어 이 곳을 통한 식수 오염의 가능성도 있으며 특히 도시지역의 경우는 거주지 바로 옆에 있는 경우가 많아 건강에 대한 또 다른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공급되는 물의 양이나 질을 측정하고 관리하는데 필요한 기구나 장비도 부족하 다. 식수가 오염될 경우 오염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고 제대로 복구해야 하는데 이 러한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린이 보육시설에 81) UNICEF. UNICEF Emergency programmes in DPRK Donor update 2000.2.24 82) UNOCHA. DPRK sector report: water and environmental sanitation. June 2002
서는 설사 치료에 도움이 될만한 깨끗한 물을 구하기도 어렵다. 물을 끓여 마시는 데 필요한 연료도 부족하고 손발이나 몸을 깨끗하게 씻는데 필요한 비누도 부족하 다.
3. 북한 어린이에 관한 인구학적인 조사 1) 인구 구성과 평균 수명의 변동 1995년 이후 북한에 밀어 닥친 위기 이후에 북한 사회의 인구 구성에 어떠한 변 화가 일어났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해 누구도 명확한 답 변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단지 이러이러할 것이라는 추정만이 난무하고 있 다. 식량 부족으로 사망한 사람이 20여만 명에서부터 3백여만 명이라는 설까지 다 양하다. 그것은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 이다. 사망자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인구관련 자료도 부정확한 경우가 많아 간접적 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계청이 제시하고 있는 평균 수명 비교를 보면(< 표3-1>) 남한의 경우 1993년 이후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 북한의 경우 1995년 수명이 1993년 보다 오히 려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감소는 1997년에도 계속되다가 1999년 에야 겨우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적인 발표는 사뭇 다르다. 평양방송이나 내각 기관지인 민주 조선 등에서는 평균 수명이 해방 전 38.4세에서 최근 74.5세로 2배 정도 증가했다 고만 밝히고 있다.2000년 7월 유엔에 제출한 인권보고서를 통해서도 평균 수명이 74.5 세라고 밝히고 있다. 북한에서 주장하는 74.5세는 아마도 1995년 대홍수 직전 에 추산한 평균수명으로 생각된다. 83) 2001년 5 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동의 발전과 권리 보호를 위한 동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 각료 회의 에서 북한의 최수헌 외무성 부상은 북한 주민의 평균 수명이 93년도 73.2세에서 1999년도 66.8세로 감소하였 표 3-1. 남북한 평균 수명 비교84) 평균 수명 1993 1995 1997 2000 남한 전체 72.8 73.5 74.4 75.9 남자 68.8 69.6 70.6 72.1 여자 76.8 77.4 78.1 79.5 북한 전체 남자 63.6 59.8 59.8 62.9 여자 69.3 64.7 64.5 67.4 다고 인정한 바 있다. 85) 남한의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83) 연합뉴스. 2001.7.30 84) 통계청 www.nso.go.kr
95 년 대홍수 후에 북한 주민의 평균 수명이 감소한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 가족보건복지협회와 유엔인구기금(UNFPA) 이 공동으로 발표한 2001 세계인 구현황보고서 에서는 2001년도 북한 주민의 평균 수명을 남자는 63.9 세, 여자는 68.1 세로 추정하고 있다. 86) 2) 사망률과 기근관련 사망자 추정 홍콩 까리따스(CARITAS) 대표단이 1997년 7월 방북한 보고서에는 한 탁아소 120명 어린이 중 10% 인 12 명이 사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이 부분적이고 극단 적인 사례일 수도 있지만 당시 식량난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이고 외국 구호단체의 행동반경이 그렇게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보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 다고 할 수 있다. 대홍수 이후 급격히 증가한 사망자 수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전과 이후의 사망률을 비교해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면 간접적으로나마 증가 된 사망자 수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분적인 자료이기 하지만 북한의 연간 조사망률이 1960년 인구 1,000명 당 17명 에서 1992년에는 6명으로 감소하였으며87) 1994년에는 8.8명 수준에서 대홍수 이후 인 1995-1997년에는 12.1 명으로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88) 이 기간의 사망 률 차이가 3.2명이므로 이 정도의 사망률 차이가 재난과 관련하여 추가로 사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의 인구를 2천2백만 명으로 한다면 이 기간동안 연간 7-8 만 명이 추가로 사망한 것으로 나오며 1998년은 국제지원에 힘입어 절반 수준인 4 만 명 정도 발생한 것으로 보면 1995-1998년 4년간 약 27만 명 수준으로 이 기간 총 사망자 102만 명의 약 26% 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89) 다른 보고에서 북한 당국은 사망률이 1994년 1000명 당 6.8명에서 1998년 9.3명으로 늘어 37% 가 증가하 85) National Report DPR Korea, The 5th Ministerial Consultation for the East A and Pacific Region 2001.5 86) 연합뉴스. 2001.11.7 87) Eberstadt N, Banister J. The population of North Korea, Berkeley, California: University of California, 1992 88) 김옥주. 북한의 보건의료 제도. 북녘어린이 건강실태와 보건의료 지원방향에 학술 회의. 2002.7.5 89) 김옥주. 북한의 보건의료 제도. 북녘어린이 건강실태와 보건의료 지원방향에 학술 회의. 2002.7.5
였다고 하였다. 이는 북한의 큰물피해대책위원회 간부가 지난 99년 5월 북한을 방 문한 세계식량계획 관계자에게 밝히면서 알려졌다고 하는데 북한의 전체 인구를 2 천2백만 명으로 가정할 때 사망률 차이를 따지면 매년 5만5천명이 더 사망한 것으 로 나타나므로 90) 결국 1995-1998년 4년간 22만 명이 더 사망했다는 추산이 가능하 다. 91) 여기서의 사망률 추산은 1998년 사망률이 1995-1997년과 같다는 가정 하에서 가능한 수치이다. 실제 1998년도에는 식량 위기가 다소 완화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바 사망률이 감소하였다고 보면 22만 명 이상이 추가로 사망하였을 것으로 보 인다. 위의 두 가지 보고에 근거해서 계산하면 4년간 추가 사망자 수를 대략 25만 여 명 안팎으로 비슷하게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자료들은 사망자수를 실제 보다 적게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의 문이 있다. 다른 자료들을 검토해 보자. 국제사면위원회는 98년 연례인권보고 서 를 통해 지난 3년 동안 200 만 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92) 그리고 98년 8월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미 하원조사단은 지난 3년 동안 2천3000여만 명의 북한 주민들 가운데 매년 최저 30만 명에서 최고 80만 명 정도가 식량 부족으로 사망했 다 고 밝히고 있다. 93) 3년간 비슷한 정도의 사망률이었다고 가정하면 3년간 90만 에서 240 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난다. 1999년 2월 남한 정보 당국은 북한 사회 안전성 내부 문건을 인용해 1995년부터 1998년까지 기아 등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25-300 만 명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앞서의 분석보다 적게는 4 배, 많게는 10배까 지 차이가 나는 결과이다. 이런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연간 조사망률이 인구 1,000명 당 21명에서 44 명 정도가 되어야 한다. 94) 과연 이 정도의 사망률이 가능한 가에 대한 답을 얻기는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조사 자료가 있다. 미 국 존홉킨스 대학 연구진이 1998년 여름 중국과 북경의 접경지대에서 중국으로 넘 어온 400명의 난민을 대상으로 1995년 이후 세대 변동을 추적 조사한 결과 90) 인구 천명 당 사망률 차이가 9.3-6.8 = 2.5명으로 이 차이는 곧 대홍수 이후 재난과 관련한 사망률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1995년부터 1998년까 지 9.8명으로 동일한 사망률을 적용한 것이므로 기아가 가장 극심했던 1996-1997년 사이에 더 많은 사망자가 있다고 보면 이 수치는 더 증가할 것이 다. 91) 연합뉴스. 2001.6.3 92) 연합뉴스. 2001.7.18 93) 연합뉴스. 2001.7.18 94) 기준 시점이 되는 대홍수 이전 사망률을 8% 로 가정했을 때의 수치이다.
1995-1997년 동안의 평균 연 조사망률이 42.8 명이라는 결과를 보고한 적이 있다. 95) 이는 사망추정 최고치에 근접한 결과이다. 그러나 연구대상이 중국으로 넘어간 난 민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들이 식량위기로 인한 어려움을 가장 극심하게 겪었 을 것이라는 추정을 쉽게 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수치를 북한 전체로 확대하기 는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체류 난민 1,694명을 대상으로 한 좋은 벗들의 조 사에서는 1996년 연간 조사망률이 인구 1,000명 당 82.7 명, 1997년은 182.1명로 훨 씬 더 나쁜 결과를 보여준다. 96) 그러나 이 조사 연구는 수차례에 걸쳐 다른 시기에 실시된 것으로 대상자 수는 많지만 조사 방법에서는 존홉킨스 대학 연구진의 조사 방법보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이 문제이다. 가장 취약한 연령층인 어린이들의 사망자 수를 추정해 보고 전체 사망자 수와 비 교해 보자. 마찬가지로 사망률 차이를 통해 사망자수를 계산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보았다. 유엔아동기금의 자료에 따르면97) 5세 이하 사망률이 1990년 1,000명당 30명에서 1996년 55 명으로 증가하였다. 당시의 북한의 5세미만 어린이의 총수가 220만-250만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사망률 차이 즉 인구 1,000명당 25명 은 매년 5만5천-6만 명의 5세 미만 어린이가 추가로 사망하였다는 계산이 가능하 다. 1995-1998년 4년간 비슷한 사망률을 적용하면 22-25만 명이라는 수치가 나온 다. 미국 질병관리센타(CDC) 의 보고에는98) 1996년 한 해 56,000명의 어린이가 설 사, 전염병, 기아관련 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비슷한 수치이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1994년에서 1996년 사이 5세 미만 어린이의 조사망률은 1,000 명당 31에서 58명로 증가하였는데99) 사망률 차이 즉 인구 1,000명당 27명은 매년 6 만-6만7천여 명의 추가 사망을 의미하며 4년간 24-27만여 명의 5세 미만 어린이 추 가 사망자의 발생을 의미한다. 95) Robinon WC et al. Mortality in North Korea migrant oudeholds: a retrospective study. The LANCET. 1999;354:291-95 96) 좋은 벗들, 탈북식량 난민 1,694명 면담 조사결과 보고서 1998.12.12 (www.jungto.org) 97) UNICEF. A humanitarian appeal for children and women 2001 98) CDC, Status fo Public Health --DPRKorea, April 1997. MMWR, 46(24):561-5, 1997.6.20 99) 유엔아동기금과 북한 보건성 관리와의 비공식적인 대화에서 나왔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남한의 5세 미만 어린이 조사망률은 인구 1천명 당 20명 정도 이며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에서는 120-200 명 정도 수준이다.
2001년 5월 북경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북한의 보건성 관계자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00) 1993년까지 5세 이하 어린이의 사망률이 1,000명당 27명에서 1999년 48 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자료에 근거해서 계 산해 볼 때도 5세미만 어린이가 매년 4만6천-5만2 천여 명 정도, 4년간 17-20만여 명이 추가적으로 더 사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상의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17-27만여 명의 5세미만 어린이가 4년간 재난과 관련하여 사망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5세미만 어린이의 사정이 이렇다면 전체 사망자를 25만여 명으로 추정한 것은 너 무 적게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5세미만 어린이 총 수 220-250만여 명은 북한 전 체 2,200만여 명의 1/10에 해당하는 수이므로 전체 사망자 수는 훨씬 더 증가 할 것으로 보인다. 5세 미만 어린이들이 가장 취약한 연령층인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 도 절대 인구수가 적기 때문에 전체 사망자 추정을 위해서는 이런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1995-1998년 기간에 추가로 사망한 주민 수가 백만 명 이상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998년 1년 동안 남한의 전체 사망자 수는 24만 여 명인데 이중에서 5세 미만 어린이의 비율은 0.7% 인 1,700 여 명에 불과하다. 101) 이상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1995-1998년 4년간 그 이전과 비교해 볼 때 추가로 더 발생한 사망자 수가 백만 명 이상까지로 추정된다. 이 수치는 대홍수이후 국가 적 대재난과 관련하여 발생한 추가 사망자수를 나타낸다. 여기에는 식량부족으로 인한 단순 기아 사망자, 영양결핍 등 악화된 신체조건이나 질병 발생 등으로 인한 이차적 사망자 그리고 보건의료체계 붕괴 등으로 인해 이전 같으면 생존할 수 있었 던 환자가 사망한 경우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일본 사이타마 대학의 요시다 교수는 1999년 11 월 언론에 기고한 글을 통해 북한 전역의 식량 사정을 관찰해온 모튼 씨 102) 가 기아와 관련된 사망자 수가 300만 명이라는 것은 과장되었으며 실제 사망 자 수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포함해 1 백여만 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고 전 한 바 있어 103) 이런 추산을 뒷받침한다. 1999 년 이후의 인구 변동에 관한 구체적인 보고들은 많지 않다. 북한의 식량위기 100) National Report DPR Korea, The 5th Ministerial Consultation for the East A and Pacific Region 2001.5 101) 통계청. www.nso.go.kr 102) 북한 주재 세계식량계획 대표 103) 연합뉴스 1999.11.19
가 1997년을 정점으로 최고조에 달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 때를 기점으로 사망률은 감소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대홍수 이전으로 회복되었다는 근거들을 찾 을 수는 없었다.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사망원인에도 변화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이래로 북한에서의 사망률의 주요 원인은 남한에서와 마찬가지로 감염성 질환에서 점차 만성 질환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재난 이후 극심한 식량 부족으로 직접적으 로 기아에 의한 사망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기 시작하며 영양부족에 의해 면역력이 저하되거나 난방 부족, 오염된 식수 음용, 불결한 환경 등으로 인해 감염성 질환도 증가하면서 이로 인한 사망자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단순히 감염성 질환의 증가뿐 만 아니라 보건의료시스템의 붕괴로 인한 의약품 부족, 부실한 진료 등으로 인해 치료가 가능한 상태인데도 사망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어린이나 노 인과 같은 취약한 계층에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 초래하게 된다. 어린이들에게서 호흡기 감염증이나 설사병이 크게 증가하고 이로 인해 사망하는 수도 증가하고 있 다는 단편적인 보고들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표 3-2. 중국 체류 북한 난민 연구에서의 3년간의 출생률과 사망률 연도 인구수 출생자 수 조출생률 인구 조사망률 사망자 수 인구 1 천 명당) 1 천 명당) 1995 1732 23 13.3 50 28.9 1996 1665 21 12.6 76 45.6 1997 1570 11 7.0 88 56.0 계 55 11.0* 214 42.8* * 3년 평균 3) 중국체류 북한 난민을 통한 간접 조사 북한의 인구관련 자료는 현장에서의 직접 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북한 당국 의 발표나 간접 조사에 근거하여 추정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간접적인 조사로는 1998년 중국 체류 북한 난민을 대상으로 시행된 미국 존홉킨스 대학 연구진의 조사 가 대표적이다. 104) 1998년 여름 3개월간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대에서 최근에 중국 으로 넘어온 440명의 난민을 대상으로 1995년 이후 세대의 변동을 추적하여 사망 104) Robinon WC et al. Mortality in North Korea migrant households: a retrospective study. The LANCET. 1999;354:29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