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전기 한일관계사 연구 현황 서론 고려 전기 한일관계사 연구 성과 개관 고려 전기 대일관계사의 연구 경향 특징및전망 결론 Ⅰ. 서론 우리나라에서 고려 전기 왜구 발흥 이전 경인왜구 충정왕 년 의 한일 관계사에 관한 연구는 질적 양적으로그다지 주목할만 하지 않다 고려시대 뿐만 아니라 한일관계사 전반에 걸친 연구가 우리나라에서보다는 일본에서 훨씬 더 활발하지만 특히 고려전기 의 한일관계사는 다른 시대보다도 그 정도가 심하다 그리고 연구 경향도 일본에서는 전 반적으로다루고 있는데 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년 이후의 왜구 관련 논문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왜구의 침구 이에 대한 대응이라는 시각에서의 연구가 주된 것이 다 그에 비하여 일본에서는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 을 포함하여 삼별초에 이르기까 지 동아시아 더 나아가서는 세계사라는 관점에서 폭넓게 인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즉 일본에서는 한일관계사가 아니라 동아시아 또는 세계사의 일부분으로한일 일려 관 계사가 연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우리 학계에서의 한일관계사 연구 경향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왜구토벌 내용으로일관하던 분위기에 서 고려시대 전 시기에 걸쳐 연구가 행해지게 되었고 연구 경향도 일본과 중국과의 관 계사를 통하여 파악하고자 하는 방향으로괄목하게 나타난다 그리하여 본고에서는 최근에 변화하고 있는 고려 전기 한일관계에 관한 연구성과를 일본에서는 등으로 불리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 용어 대 신 몽고의 고려 일본 침공 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제 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 권 정리하여 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연구성과의 내용과 그 경향성의 변화에 대한 것을 살 펴 보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의 고려 전기 한일관계사 연구 성과의 특 징과 전망까지 살펴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Ⅱ. 고려 전기 한일관계사 연구 성과 개관 먼저 고려시대에 관한 일반적인 연구 그 과정에서 고려전기 한일관계사의 연구가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관심을 받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여러 학회의 활동이나 세미나 등의 횟수도 조사해야 할 것이지만 본고에서는 역사학보 에 수록된 회고 전망 을 대상으로하여 그 대강을 살펴보고자 한다 역사학보 의 회고 전망 은 제 호의 년과 년의 연구성과를 검토하 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고려전기 대일관계사의 연구는 이미 일정한 성과물이 나왔고 그 결과물들이 한국사 내지는 기타 서적에서 통설화되었다고 간주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본고에서는 역사학보 에 회고 전망 이 수록되기 시작한 시기를 기점 으로하여 년에 정리된 내용까지를 검토 자료로활용하였다 즉 최근 년간 한국 사학계의 고려전기 대일관계사에 관한 연구 성과 검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년과 년의 고려사 연구 성과 검토를 담당한 홍승기 는 편의 저서 편저 권 그리고 편의 논문을 대상으로하여 주제별로연구 성과를 정리하였다 목 차에서 알 수있듯이 소유경작 문벌과 귀족 기원과 변화 원칙과 실제 권력과지배 지방과 중앙 민족과 민족의식으로구분하여 정리하고 있다 그는 이 가운데 민족과 민 한국사에서 그 대강을 설정하였다고 볼 수있다 그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크게 무역 관계 표류 민 송환 관계 사신교환 관계로 구분해 볼 수있다 년에 한일관계 연구서로 한일관계사학회 동북아역사재단 편 전쟁과 기억 속의 한일관계 경인문화사 에는 고려 전기의 여일관계에 관한 주제가 없다 그리고같은해 월에 몽고의 고려 일본 침공과 한일관계 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회의 한일문화 교류기금 동북아역사재단 주최에서왜구발흥 이전 시기 관련된 발표가 있었는데 현재 일정한 연구물이 출간되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의 주제만을 밝히는 정도에서 그치겠다 이날의 주제는 몽골내습과 접촉 기조강연 의 세기 전반에 있어서 의 한 단면 삼별초 여일관계 의 과 의 일본침공 이후의 이다
족의식의 항목에서 고려시대의 외교사 연구에서 특기할 점으로고려 일본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 예로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 한국민족문화 집 에 편의 일본관계 논문이 수록된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이 논 문들은 전기웅의 나말려초의 대일관계사연구 채상식의 여 몽의 일본정벌과 관련 된 외교문서의 추이 김기섭의 세기 왜구의 동향과 고려의 대응 정용숙의 고 려 일본의 왕실 혼인에 대한 검토 세기를 중심으로위은숙의 고려시기 한국과 일본의 촌락구조 비교 연구 등이다 이 연구들에 대하여 홍승기는 연구의 대부 분이 새롭고 관계사건 비교사건 고려 일본의 사정을 고르게 고려하여 연구를 진행하 였다는 점을 들어 일정한 학문적 기여를 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일방적으로한국민족에 편드는 연구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경향을 지적하 면서 장득진의 고려말 왜구침략기 민의 동향 에 대하여 이 연구가 감추어져 있었던 민의 존재를 알려 주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서구적 안목에서 민족주의를 이해하고 있다 고 하였다 앞에서살펴본바같이 년 년에걸쳐총 편의 논문 가운데 고려 전기의 대일관계사 연구는 편이다 이어 년의 회고 전망 을 정리한 김광철 은 고려시대에 관한 연구 저서 권 과 논문 편을 확인하였다 그는 머리말에서 편의 연구 결과를 크게 정치 경제 사회 사상 문화 으로구분하고 정치 항목에서 대외 민족의식의 항을 두어 성과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 편의 연구 편의 연구 성과는 고려전기의 고려 거란 여진의 상호관계가 편 여몽전쟁 편 원 간섭기의 국가성격 편 원 명교체기의 고려 의대외노선 편 발해 관련 민족의식 관련 논문 편으로일본 관계 외교사는 없다고 하였다 지논문 년의 고려사 연구 성과를 정리한 박종진 은 저서 권 박사학위 논문 편 학술 여편 을 대상으로하고 있다 이 글의 대외관계 군사제도 항에서 박종진 은대외관계 연구에 대하여 편의 논저를 제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고려 일본과의 관계는 이영의 일본인이 보는 왜구의 정체 경인 이후 왜구 일본 국내 정세를 중 부산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국사관논총 여 편이라고 한 것은 각주에 제시되어 있는 논저 목록이 여편이 되고여기에서저서 박 사학위논문을 빼면 여 편이 된다 본문에는논문이 편으로 되어 있는데 쪽 교정 단계에 서어떤 착오가 있었던 듯하다
제 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 권 심으로 를 소개하고 있다 이 해에 이영의 저서 가 간행되었 다 이 저서는 제목이 왜구 관련이 있지만 그 내용 가운데는 왜구 이전의 대일관계사 논문도 편 있다 일본어로된 저서라서 우리 학계의 연구 성과라고 할 수 있을지 없을 지는 확언이 서지않지만 한국인에 의하여 이루어진 성과이다 년의 고려 시기 회고 전망 을 정리한 이익주 는 저서 편 학위논문 편 일반논문 편을 대상으로하였다 이익주에 따르면 편의 저서 편의 논문들을 분야별로분류해 보면 대외관계사는 편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일본과 관련된 연구는 편이다 이병로의 세기 한일 양국의 대외교섭에 관한일고찰 이영의 경인 년 왜구 일본의 국내정세 로이가운데 고려 전기 관련된 것은 이병로 의연구이 다 이병로의 연구는 세기 양국 간의 교섭 실태를 분석한 것으로일본 규슈지역의 상 인들과 고려의 교섭 사례에 주목함으로써 주로 중앙정부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하였던 한일관계사를 달리 보고자 하였다 년에 회고 전망 을 정리한 채웅석 은 저서 권 편저 권 연구논문 편 을 대상으로하였다 그런데 채웅석의 분류에는 대외관계에 관한 항목이 없고 논문 말 미의 언급하지 못한 논저들에중국관련논문 편이보일뿐이다 이 해에는 고려 전 시기에 걸쳐 연구 성과가 전혀 없었다는 의미이다 년에 회고 전망 을 정리한 도현철 은 저서 편 학위논문 편 일반논문 여 편을 대상으로하였다 도현철은 이 정리에서 다른 주제들 이라는 항에서 대외관 계사 연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대상은 중국과의 관계이 다 이에 비해 일본과의 관계사는 이정수의 중세 일본에서의 고려동전 유통 과박 평식의 고려후기의 개경상업 을 거론하고 있다 그 가운데 고려 전기 관련된 연 구는 이정수의 것으로서 그는 이 연구를 통하여 중세 일본에서 발견되는 고려 동전의 출토가 고려 일본의 밀접한 교류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소개하지 못한 역사비평 동경대학출판부 대구사학 대구사학회 국사관논총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중세사 연구 한국중세사학회 국사관논총
논문 항에서 해양사 관련된 연구 성과를 소개하고 있다 강봉룡의 한국해양사의 전 환 해양의 시대에서 해금의 시대로 의 해역세계 가운데 제주도 고 려 이다 년의 회고 전망 을 정리한 한기문 은 저서 권 편저 권 학위논문 편 논문 편을 대상으로하였다 이 시기의 연구 성과로서는 장동익의 일본의 일기자료 에 수록된 고려왕조 관계 기사의 연구 이재범의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과 동 방견문록 이있다 장동익은 일본의 일기 자료에 수록된 고려왕조 관계기사를 검 토하여 종류의 일기에 건의 자료가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한국측 연대기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한일 양국사이의 접촉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이재범은 동방견문 록 에 기록된 여원연합군의 일본 정벌에 대한 내용이 차 원정만 기록하고 사실의 정 확성도 떨어진 사실을 밝혀내고 이 때문에 유럽에 일본보다 고려에 대한 호기심이 위축 된 결과를 낳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 두 연구는 기존의 자료에 대한 내용을 보충하거나 인식을 달리 하게 하였다 국사연구휘보 년의 회고 전망 을 정리한 구산우 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하는 한 에 국어국문학 철학 방면의 글들이 다수 소개되어서 자신이 대상으로 한 연구 성과를 통계적으로밝히는 것에 정확성을 기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도 정치 사상 분야의 글들이 많이 발표된점 공동기획연구가 적지 않았던 점을 긍정 적 성과로 꼽았다 그는 대외관계사에서 장동익에 의해일본관계자료가나온 것을 큰 업적이라고 하였다 장동익은 이미송 원 기록에 실린 고려 관련 자료를 집성한 학계의 큰 공로자인데 그 후속으로 이번에는 일본 관련 자료를 정리하여 큰 족적을 남겼다 구 산우는 장동익의 일본고중세 고려자료연구 에 관해서 대외관계 연구에서 흔히 중국이나 북방 민족이 세운 왕조의 외교관계만을 중시하고 이들과 맺은 외교관계에 관한기록만을 으로이용하는 학계의 연구풍토가 고정 관념에 불과한 것으로이 러한 시각이 한시 바삐 수정되어야 할 것임을 이 책은 실증적으로 웅변 하였다고 평가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 집성을 통하여 최근 한 중 일을 중심으로한 동북아 도서문화 도서문화 퇴계학과 한국문화 경북대 퇴계연구소 군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서울대출판부
제 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 권 시아의 동향이나 경제 성장을 통해 한국의 국가 위상이 강화되는 추세에 발맞추어 한국 사에서 요즘 부쩍 인기 주제로부각되는 외교관계사나 문명교류사의 관점에서 고려시 기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가능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고 하였다 이 함께 구산우는 수군 관련 자료집인 고려시대수군관련사료집 에 관해서도 이 책은 관점을 달리하면 지금까지 공백 지대로남겨진 해양교류사 연안지역사 연구에 도 활용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년에 이루어진 기획 공동연구로는 고려시기 마산의 행정지역인 합포현을 통해 지역 정체성의 일면을 찾고 이후 일본의 정벌기지로 활용되기까지의 역사상을 부각시킨 연구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삼별초의 대몽 항쟁이 국내외 정세에미친영향과관련된연구 가나오기도 하였다 삼별초에 대한 인 식은 정치사적에서만 아니라 한일관계사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내용이다 고려 시대 부산의 대외교류 관련된 연구 도 진행되었다 년도의 연구 성과를 정리한 이진한 은 저서 논문을 합하여 여편을대상 으로하였다 그 가운데서 대일관계에 관하여 편의 논문을 들고 있다 이영의 무신정 권 성립의 국제적 계기 비교사적인 관점을 통한 고찰 과 배상현의 삼별초의 남 해항쟁 이다 이영은 세기 말 고려 일본에서 무인정권이 성립되는 원인을 비교 사적으로살펴보았다 고려 일본 모두 대송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귀족들의 사치품 수 입이 증가하였는데 이는 관리의 부패 민심이반을가져왔고 대송무역으로조세가 증 가하여 백성들을 고통스럽게한것이무신란의 배경이 되었다고 정리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관계사를 직접 연구한 내용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한일 양국사의 비교라는 점에 서 유의할 만하다 배상현은 삼별초가 수군을 거느리고 남해 연안의 조창을 장악하고 공 부수송을 차단함으로써 개경 정부를 경제적으로 압박하였고 금주에서는 대일교섭을 모색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의 항쟁이 기층민과 이해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국가 구산우는 장동익이 다음해일련의자료집을묶어내기까지의 과정 자료의 공유 및 심화된 연구를 위한 저자의 제안을 밝힌 보다 진전된 고려시대사 연구를 위한 기초 다지기 역사학보 역사학회 도소개하고 있다 임원빈 김주식 이민웅 정진술 신서원 김광철 고려시대 합포지역사회 한국중세사연구 한국중세사학회 김윤곤 삼별초정부의 대몽항전과 국내외 정세변화 한국중세사연구 한국중세사 학회 이종봉 고려시대 부산지역의 대외교류 항도부산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논문집 한국방송통신대 역사 경계
를 지향한 것이라고 하였다 앞으로삼별초의 연구는 일본정벌과 관련지어서도 연구되 어야 할 주제이다 년도의 회고 전망 을 정리한 김병인 은 저서 권 논문 편을 대상으로 하였다 그는 대외관계 및 교류사에서 대일관계 논문으로 윤용혁의 여원군의 일본침입 을 둘러싼 몇 문제 년 차 침입을 중심으로 를 소개하고 있다 윤용혁은 년의 차 침입을 중심으로여원군의 일본침입에 대한 몇 가지 문제를 논의하며 한 국사 최초의 본격적 해외파병이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 고있다 그밖에 이재범의 고려 말 조선전기의 왜구 사천 을 소개하고 있으나 이는 고려후기 왜구 창궐과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윤용혁의 연구성과만이 왜구 이전의 대일 관계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년의 연구 성과에서부터 년까지의 결과를 보면 고려 전기 대일관 계 연구는 아주 일천함을 알 수 있다 역사학보 의 회고 전망 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고려 전기의 대일관계 연구는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 한국민족 문화 집에 편의 일본관계 논문이 수록된 사실을 제외하면 전혀 없는 때도 있고 많 아봐야 고작 건 정도이다 대체로한 연구자가 대상을 건 정도로하였다면 에 도 미치지 못한다 고려 전기 한일관계사가 질량 면에서 그다지 두드러지다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그 까닭은 우선 고려전기 대일관계에 관련된 기본적인 문헌기 록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기는 주로북방으로부터의 침략에 시달린 시기였 고 또 선진 중국 문화를 흡수하기에 분주한 시기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 대일관계가 상 대적으로소홀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사는 주로왜구의 활동과 연관된 것이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서문화 군사 그러나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의 한국인에 의한 연구 한편으로는 일본사의 시 각에서 연구한 연구물도 다소소홀히 취급한 감이 있다 회고 전망 을 담당한 연구자들이 국 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한국사연구휘보 를 저본으로 하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에서의 연구 성과 위주로할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기학의 고려 일본의 상호인식 일본 역사연구 과 세기의 동아시아 고려 일본 인문학연구 한림대학교 등과 이 병로의 일본측 사료로 본 세기의 한일관계 대구사학 대구사학회 이영의 동경대학교 출판부 등을 찾을 수 있는데 아마도 이보다 더 많은 연 구 성과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제 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 권 일본과의 적대적 민족 정서로 말미암아 비교적 원만한 관계가 형성되었던 왜구 발흥 이 전의 고려의 대일관계 연구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상황이연출되었다 따라서 상대적 으로대일관계사 연구가 왜구의 침구 이를 토벌한 민족의 정기를 부각시키는데 주력 하였던 경향이 있다 이러한 우리나라에서의 민족주의 일변도 대외관계사 연구에 대하 여 일정한 검토 반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이미 이루어진 연구 성과를 수집하고 유형별 시기별 분야별로구분 정리하여 현황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해야 할 필요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Ⅲ. 고려 전기 대일관계사의 연구 경향 전장에서 고려 전기의 연구가 질량 면에서 미진하다는 평가를 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고려시대의 대일관계는 어떤 경향성을 가지는가를 확인해 보도록 하자 이미 전장에서 살펴 본 연구 성과를 유형별 주제별로분류해 보도록 하자 우선 사료류를 살펴보면 장동익의 고려시대수군 관련사료집 이 있다 사료집의 편찬은 주제별 논문 연구를 활성화하는 기초 작업으 로학문의 저변확대를 할 수 있는 직접적인 학문 활동이다 최근 년 이내에 이러한 기초적인 작업이 수행되었다는 사실은 고무할 만한 사실이라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먼저 장동익의 를 살펴보도록 한다 본 저서는 이미 같 은 연구자가 고려 중국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기초 자료로집대성한 과 에 이은 것으로고려 관련된 주변국의 자료를 총망 라한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괄목할만한 연구 성과이다 연구자는 집필후기 에서 본서의 간행에 대하여 시간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 자료의 중요성보다는 일본 전적에 대 한 사적해제 정도로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고 겸양의 말을 하였지만 본서의 간행은 한 일관계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저본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고 학계에 대한 공헌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본서는 크게 본편과 부록으로 임원빈 김주식 이민웅 정진술 서울대학교 출판부 서울대학교 출판부 신서원
구분되며 본편 장과 부록 장으로편성되어 있다 본편에서는 일본 고중세 자료에 수 록된 고려 관계 기사의 개관에 이어 일기류 고문서 편찬 기록류 서발 제기류에 수록된 기사를 원문과 함께 자료 소개 내용 개요를 붙여 자료의 이해도 활용도를 높여주고 있다 부록은 중세 자료에 수록된 고려왕조 이전시기및 조선왕조 관련된 기사 일 본에 건너간 각종 자료에 소개된 기사를 수록하고 있다 따라서 제명은 고중세라고 하였 지만 고중세 관련사실만이 아니라 고중세 자료에 있는 전시기의 사실을 망라한 자료집 성이라고 해야 마땅한 연구 성과이다 다음으로고려시대수군관련사료집 에 관해서이다 이 편저서는 제명은 수군 관련 이지만 그 내용은 해양과 관련된 모든 사항들이다 편저자들이 스스로실질적인 내용 에서는 직접적인 수군관련 사료보다는 보다 광범위한 해양활동사 관련된 사료의 내용 이더많다 고밝힌 바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고려사 고려사절요 의 수군관련 내용만 색출하여 정리하였다 이렇게 한정된 사료만으로이 사료집을 발간하 게 된 것은 현실적인 능력의 한계로인한 것 이라는 편저자들의 지적과 같다 그러나 이처럼 국내 사료만이라도 충실히 정리하였다는 사실은 소중한 연구 성과라고 할 수 있 을 것이다 그리고 저서류로는 한국민족문화 호 에 편의 일본 관계 논문이 수록되어 있 는 것이 유일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저서는 정기간행물의 특집 형식으로일본과 관련 된 내용이 소개되어 있는 것으로 엄밀히 구분하자면 단행본 저서의 성격으로 볼 수는 없다 여기에 수록된 편의 논문 가운데서 고려 전기의 대일관계 연구는 건이다 이 건에 대해서는 논문류에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 시기에 간행된 저서류로는 이영의 를들수있다 그런데 이 저서는 일본에서 발간되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당해년의 회고 전망 의대상 저서로는 취급되지 않았다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제기되는데 국내 연구 성과를 전망할 때외국에서 간행된 연구 성과의 취급 문제이다 외국에서의 연구 활동은 국내에서 파악 하기에는 정보도 그다지 없고 하여 어려움이 있기 하지만 가급적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 직하다고 여겨진다 본서는 고려 전기가 아닌 왜구가 주를 이루는 글이지만 고려 전기 관련된 편의 논문이라고 할 수 있는 글이 있다 제 장 원정기의 일본 고려 교류에 관한 일고찰 제 장 중세전의 일본과 고려 제 장 원구 일본 고려 관계이다 제 장은 부산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동경대학출판부
제 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 권 고려 초부터의 대일 관계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제 장에서는 고려전기의 가장 공 식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국가 국가 간의 진봉선 관계에 대한 서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장에서는 여몽연합군과 일본 고려 관계를 서술하고 있는데 조이 이장용 삼 별초 같이 여몽연합군 이전의 외교관계를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논문류로는 년부터 년까지의 연구 성과가 편 밖에 없다 논문류가 년에 편이라는 사실은 년에 편도 발표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전기웅의 나말여초의 는 세기부터 고려 문종대인 세기까지 의 고려 일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다 본고에서 필자는 양국의 관계가 각 시기마 다어떤 양상으로나타나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양국의 국내사정과 정부 간의 공식 교류 가어떠한 관련 속에서 변화하고 있는가에 대해 유의하고자 하였다 또한 한반도의 경우 나말여초는 신라의 지배체제가 붕괴하면서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가 성립되어 가는 시점 에 있었으므로이 과정에서 일본과의 교섭 목적 둘째 지금까지 주목되지 않았던 민간 교류관계에 유의하여 정부 간의 공식적인 교섭보다 민간 해상세력에 의한 교섭이 주도 적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세기 후반에 이르면 수취체제의 붕괴로 의무장봉 기가 일어나고 지방호족이 독자적인 세력으로대두하게 되면서 대외활동도 호족세력의 경제적 교류가 주를 이루게 된다 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궁예 일본과의 관계에 대 해서는 언급이 없으며 단지 왕건을 통하여 서남해안 일대를 장악하였다는 서술로그치 고있다 궁예 때는 서남해안을 궁예가 장악할 수 있었으나 왕건에 의하여 축출된 다음 고려는 전국을 경영해야 했으므로서남해안의 해상권의 우위를 후백제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물론 왕건도 나주의 경영에 힘을 기울이고 년 강주장군 윤웅의 귀순 년전이산 노평포 서산돌산등 개 을 함락시켜 세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당시 견훤은 절영도 부산 송도 의 명마를 보낼 수 있을 정도로남해안에서 세력을 굳히고 있 었던 것이다 그러나 견훤은 후백제 왕의 칭호를 받아내는 등 남중국과의 통교는 활발하 였지만 일본과의 통교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다고 정리하고 있다 김윤곤은 삼별초정부의 대몽항전과 국내외 정세변화 에서삼별초는민족적자주국 방의 군인세력 일통삼한의 전통을 수호하고 칭제건원을 주창하였던 왕정 복구 세력 그 리고 지방 토착 세력의 연합정권으로서 불퇴전의 용기로 몽고 세력과 싸워 패퇴하였다 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시각에서 삼별초의 항쟁을 다루었지만 그 싸움의 목적이 일본 정벌과 제해권을 확보하려고 했던 점 에서 삼별초의 항전을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보았 전기웅 한국민족문화
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채상식의 여 몽의 일본정벌과 관련된 외교문서의 추이 는 그동안 주의 깊게 살피 지 않았던 여몽연합군에 대하여 동아시아의 대단히 중요한 사건으로인정하면서 몽고 고려가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하여 여몽은 동정 이전에 차례 에 걸쳐 일본에 사행을 파견한 사실과 이에 대한 일본 가마쿠라막부의 행동이 강경일변 도였음을 밝혔다 그배경으로는 남송에서 대몽항쟁에 적극적인 경향을 띠었던 임제종 승려들의 활동이 있었을 것으로추정하였다 일본측 사료로본 세기의 한일관계 세기 한일 양국의 대외교섭에 관한 일고찰 등이병로의 두 연구는 시기별로 연구해 온결과이다 먼저 전자에 대해서는 연구자가 일본인의 전통적인 한국관에 대한 비판으로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자 는 세기에 들어서도 일본 지배층이 여전히 고대 한국을 일본의 으로인식하고 있 었음을 비판한다 이러한 왜곡된 일본의 역사관으로 말미암아 이시기에 있었던 견훤과 왕건이 보낸 외교사절을 국가에서 보낸 사신이 아니라 조공사 정도로인식하게 되었다 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과 함께 후백제가 년대에 두 번에 걸쳐 일본에 사신을 보낸 것은 고려 신라가 연합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이들 세력에 위협을 느껴 새로운 돌파구 를 마련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뒤 번 에걸친외교사절을 일본에 파견한 이유에 대해서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자신의 위 업을 과시하려고 한 행위였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종래 일본측의 주장인 고 려가 후백제 신라의 잔존세력이 일본과 손잡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파견한 조 공사로인식하고 있다는 통설에 대한 비판적 견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고려 일본의 관 계는 세기말이 되면서 고려에서 파견한 사신에 대한 대응조처로교역사를 파견하여 세기 중엽 이후 단절된 고려의 교역에 본격적으로나서고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어서 이병로는 세기의 고려 일본과의 관계를 고찰하였다 본 연구에서 연구자 는 세기의 고려 일본과의 내왕 사실을 건 적출하여 양국 관계의 성격을 구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고려는 북방민족의 대두로일본과의 교역에 소극적인 정책으로전환 하였으며 교역자체도 관 주도로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방민족과 김윤곤 대구사학 대구사학 대구사학회 대구사학회
제 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 권 의 대치로자칫 국가체제에 위험이 될 수 있는 해상세력의 출현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 에 일본과의 교역에 소홀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세기 중엽 이후에는 일본측이 오히려 한반도에 건너가 교역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고려는 규슈지역의 일부세 력을 고려의 세계 질서에 편입시켜 관리함으로써 위축된 해외교역을 보완하였다고 한 다 그리고 양국 간의 문제가 되는 것은 서로가 상대방을 조공국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정상적인 외교관계는 가지지 못하고 첩장의 용어를 둘러싸고 외교적 마찰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장동익의 일본 일기자료에 수록된 고려왕조 관계 기사의 연구 는 연구자 자신이 일찍부터 한국사 연구의 한계의 하나인 자료의 함을 보완하기 위하여 애써 온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일본에 있는 고려 관계의 자료들을 모아 그 현황과 상태를 정리한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각종 자료에 수록되어 있는 고려왕조 관계 기사를 대 략 여 건을 찾았다고 한다 이 자료들을 유형별로분류하면 일기류가 종에 건 편찬 기록류가 종에 건 고문서 자료 건 서발 제기류 건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고려왕조측의 외교 수립을 위한 사신 및 국서의 파견 양국인의 왕래 표류 민의 송환 한반도 문물의 일본 전래 등에 관한 자료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자료들 가운데 일기류는 내용 자체가 극히 간단하여 이를 통해 고려 일본의 외교 관계의 추이까지 살펴 볼 수는 없다고 자료의 한계도 아울러 지적하고 있 다 그러나 한국측의 연대기에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한일 양국 사이에 이루어졌던 접촉 사실 및 고려 일본 양국 사이에 이루어졌던 인적 교류 및 문물 교류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어서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일기류를 다시 로 나누어 그 종과 건수를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종류의 일기 에나타난 고려 관계 기사 건의 내용을 시기별로정리하여 수록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연구자는 건의 기사를 날짜별로정리하여 모두 건으로나누면서 중복이 많이 있음을 지적하고 고려측의 자료를 보완할 수 있는 주목되는 기사만을 간략히 정리 하여 앞으로의 이 분야 연구자들에게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 실제로이러한 자료의 발굴과 정리는 학문 연구의 기초가 되는 사업으로그 중요도는 말로 다할수없을것이 다 연구자는 결론적으로고려 전기에 해당하는 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일기에 한국측 의 연대기에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는 한일두나라사이의접촉 및 표류민의 송환에 대한 사실이 다수 기록되어 있고 그 밖에 여원연합군의 일본 정벌에 대한 기사가 많이 퇴계학과 한국문화 경북대 퇴계연구소
수록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일본에서의 형편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하였다 이재범의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과 동방견문록 은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에 수록되어 있는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에 관한 기사에 관하여 그 실증성에 의문을 품 고 지위를 밝히고자 하였다 연구자는 동방견문록의 구술자인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의 측근에 있었던 인물이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원 조정에서 최대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에 대한 정보가 너무 소략하고 부정확하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들어 간 해가 년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그해가제차여원연합군의 일본 정벌이 있었던 해인데 동방견문록에는 그에 관한 내 용은 없고 제 차 일본정벌에 관한 내용만 있다는 데서 다시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하여 연구자는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 갔었다고는 해도 그 연대가 불분명할 뿐 만 아니라 쿠 빌라이의 총애를 받는고위직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고 있다 또한 마르코 폴로가 일본의 이라고 간주되는 지팡구를 황금의 나라라고 유럽에 소개하여상대적 으로고려에 대한 호기심을 유럽사회에서 위축시켰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다소 아전 인수격인 논증이 보이지만 그동안 소홀했던 여원연합군에 대한 관심을 제기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이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 사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학계에서 관심이 부족했다는 것이 아쉬움의 소산이라 고할수있을것이다 이정수의 중세 일본에서의 고려동전 유통 는 일본에서 발견되고 있는 고려 동전 에 관한 것이다 연구자는 일본에서 대량의 동전을 매장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의 재액에 대처하기 위하여 재화를 비축하는 방법의 하나로서의 인 경우가 있고 다른 하나 는 토지를 개발할 때 토지의 불신에 봉헌하는 주술적인 전화로써 신불로부터 토지의 용 익권을 매입하거나 혹은 허가를 취득하는 관념을 전제로한 의 경우가 있다고 했 다 그리고 고려의 해동통보가 일본의 비축전에서 다수 발견되는데 이 동전을 기초로 하여 당시의 고려 일본과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본 연구에서의 주목한 바는 첫째 고 려전기의 저화 유통정책과 대외교류를 통해 고려동전의 일본 유출 과정을 추정해 보고 둘째 일본 중세의 전화 유통 상환과 일본내비축전의 출토 현황을 개관하고 마지막으 로비축전 내의고려동전의출토현황을 통해 그 정치 경제적 의미를 살피고 있다 이러 군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한국중세사 연구 한국중세사학회
제 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 권 한 과정에서 고려의 동전이 어떻게 일본에 유출되었는가 하는 것을 밝히는 것은 당시의 고려 일본의 관계를 물류의 유통과정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계기로 매우 유용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연구자는 고려 동전이 유출되어 중세 일본에 유통되었던 원인을 고려의 국내외 사정과 관련짓는다 고려 동전의 일본유출은 고려정부의 화폐정 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고려 건국 이후 성종대까지 고려왕조의 기틀이 확립되는 과 정에서 생산력의 증대 함께 국내외 상업이 발달하였다 이 함께 금속화폐 유통의 필 요성이 적극 제기되면서 성종 년 철전 주조 이후 세기 초반 숙종대까지 동전의 주조 유통이 정부 차원에서 적극 시도되었다 하지만 고려 국내의 동전 유통정책은 동 전의 신용력 미비 등 여러 요인으로인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민간 유통에서 동전이 거부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결과 동전은 관청이나 민간의 창고에 쌓 이게 되었고 다른 상품과 같이 하나의 상품으로상인 등의 손에 의해 일본으로유출되 었을 것으로추정되었다 그리고 고려동전은 북해도에서 구주지역까지 거의 일본 전역 에서 발굴되고 있는데 그 종류는 동국통보 동국중보 해동통보 해동중보 삼한통보 삼 한중보 등의 종류로목종과 숙종 연간에 주조된 화폐가 거의망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수량의 순서는 해동통보 동국통보 동국중보 해동중보 삼한통보 삼한중보의 순이라 고한다 배상현의 삼별초의 남해항쟁 은 삼별초의 항쟁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데 향토사 적 입장에서 접근한 것이 특이하다 이 관련하여 동아시아적 관심도 제고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학계에서는 삼별초는 대몽항쟁과 관련짓거나 계급투쟁적인 측면에 서의 관점이 주를 이루고 있다 본 연구도 단적으로 말하자면 민족항쟁적인 측면에서의 연구라고 할 수 있지만 종전의 연구보다 차별화되는 점은 삼별초의 남해에서의 항전을 집중적으로다루면서 그 남해항전의 성격을 새롭게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특히 종전의 관찬사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지의 설화 같은 지역의 구전자료를 이용하여 생생하게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보다 구체적으로삼별초의 실상에 접근할수있게 하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삼별초의 지도층 가운데 한사람으로문한을 담당하 였을 정도로지식인 계열로분류될 수있는유존혁의 존재에 깊이 천착하고 있다 그리 하여 남해를 거점으로한 세력들이 일본과의 외교활동에 깊이 간여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른바 를 보내는 등의 외교활동이 남해 중심의 세력에 의하 여 추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해세력은 수군을 앞세워 개경정부 역사 경계
몽고군을 상대로치열한 항쟁을 벌이는 한편 내륙으로는 재지세력 내지 지식인들의 동 조를 이끌어 내면서 지지층을 넓히고 있었고 를 통해 보다 강력한 항몽전선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도모하고 있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삼별초의 성격은 어디까지 나 고려라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었고 항몽이라는 차원에서 일본과의 제휴를 꾀 하였다는 의미이다 삼별초를 독립된 단위로해석하는데 까지는 이르지 않고 있다 그러 나 삼별초 내의 권력구조 그들의 기능을 보다 구체화 시켰다는 점에서 종래의 연구 성과에서 진일보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윤용혁의 여원군의 일본침입을 둘러싼 몇 문제 년 차 침입을 중심으로 는 연구자가 여원군의 일본 칩입에 있어 고려가 주요 당사국의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역할에 대한 연구가 거의 시도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이 한국사에서 최초의 해외 파병이라는 점에서 일본측의 연구를 한국 입장에서 검토할 필 요가 있다는 점도 요구하고 있다 마땅한 지적이라고 할수있다 아울러 본 연구에서는 차 원정군의 규모에 있어 여러 설이 있으나 만 천여 명이었으리라는 점 원정군의 군선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백척보다 미달한 숫자였으며 특히 대선 백척은실제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실증적으로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연합군 패전의 원인도 대풍우가 영향을 주긴 하였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미 연합군 은 군수보급의 문제에서 차질을 빚고 있었기 때문에 철군을 결정한 뒤였다는 결론을 도 출하여 일본에서의 지배적인 주장인 대풍우설에 대하여 이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봉종의 고려시대 부산지역의 대외교류 는고려시대부산지역에서 대외 교류가 대외관계의 전개에 따라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중심으로살펴 본 연구이다 그러므로 부 산을 중심으로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대일관계에 대해서도 정리 한 부분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고려의 대일관계를 시기로나누고 시기에 해당하는 왜구 이후 시기를 제외한 앞의 시기를 검토하였다 연구자는 기인 세기는 고려에서 사신을 집중 파견하여 외교관계를 가지려고 하였지만 일본에서 고려의 침략에 대한 두 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일관계가 형성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세기 여진의 도이적이 일본 침략을 계기로양국의 관계가 새롭게 전개됨에 따 라 일본의 상인은 팔관회적 질서 아래상업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는 세기에 지속되어 상인에 의한 상업 활동이 전개될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고 도서문화 항도부산 제 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제 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 권 려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공무역의 형태는 일본이 고려에 대하여 진봉하는 방식이 었다고 파악하였고 사무역도 개경에 가는 일본상인들이 금주를 거쳐 갔기 때문에 부산 과의 교역이 전개되었음을 밝혔다 지역적인 측면에서 대일관계를 검토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고려 전기에 관한 연구물들은 그 편수는 많지 않으나 상당히 다양한 성 격을 갖고 있다 사료집과 함께 논문의 내용에서도 세기 세기 삼별초 여원연합군 등 시기별로마치 안배한 것과 같은 내용들이다 이러한 경향은 비록 양은 많지 않지만 고려전기 한일관계사에 대한 관심의 폭이 넓어지고 다양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있다 Ⅳ. 특징및전망 무엇보다도 이 시기 연구의 특징은 그동안 연구자들이 갈망해 오던 일본에서의 자료 를 집대성한 자료집이 출간되었다는 것을 큰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아야 할 것이다 이 미 일본학계에서는 통용되어 오고 있던 자료이지만 장동익 등의 연구자에 의하여 국내 에 집대성되어 소개되었다는 점이 크게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는 이러한 일을 하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어서 크게 참고가 된다 그가 자료집을 발간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필자가 역사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던 년대 초기에는 자료의 구득에 어려움이 많았음을들수있다 전공분야를 달 리한 은사들의 서가에 꽂혀 있던책들을 통해 일본인 학자들의 논문을 읽은 적이많았 다 그 논문에 인용되어 있던 자료가 중국 책인지 일본 책인지도 알 수없는상태였으며 이를 구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래서 다른 고려사 전공자들과 마찬가지로고려사 고려사절요 같은 연대기에 주로의존하여 글을 썼기에 각주에 인용된 책이 항상 위의 책 이아니면글자를 바꾸어 앞의 책 이 대부분이어서 늘 허전한 바가 많았었다 이점은비단필자만이느낀 것은 아닐 것이고 동학들도 함께느낀아쉬움이었을 것이다 둘째는 년대 이후 거의 여 년간 문헌사학을 연구했던 많은 학자들이 한국측의 문헌인 연대기 문집 금석문 등의 자료에만 한정하여 연구를 수행해왔던 한계를 벗어나 장동익 보다 진전된 고려시대사 연구를 위한 기초 다지기 역사학보
고자 함이다 기성학자들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으나 늘 자료 부족을 내세우는 한편 일부 소장 학자들에 의한 새로운 이론적 방법의 구사에 대해서는 자료의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강한 거부감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는 한국전쟁 전후에 활약 했던 학자들이 외국의 자료를 부분적이나마 이용하기도 했던 전통을 계승하지 못한 채 현실에 안주했던 결과이다 필자 역시 실증사학의 한계에 젖어 있는한사람으로서 스스 로를비판하는 동시에 학문 후속 세대들에게 보다 많은 자료를 접할 수있는작은여건 이나마 제공하고자 하는 욕심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흔히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것이 바로사료를 집대 성하는데 꼭 맞는 표현이라는 것은 선학들이 지적한 대로다 그동안 일본에서의 여일관 계사 연구는 우리 학계보다 수준이 높다는 것은 잘알려져 있다 질의 면은그렇다하더 라도 양의 면에서는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일본에는 고려전기 관련 된 자료가 남아 있으나 우리에게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앞에서 인용한 바 같이 한국 학계의 분위기가 일본의 사료를 손쉽게 접근할 수 있지 못하였다 그러 나 이제 일본에서 이용되는 사료를 집대성함으로써 한일관계사에서 일본자료를 직접 대 할 수 있는 기회가 가능해졌다 따라서 이 분야에 있어서 괄목한 성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한편이시기연구의특징이라면 역시 일본 사료를 이용한 연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장동익의 사료집성이 나오기 이전에도 일본 사료를 이용한 연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 다 전기웅 이병로등의 연구가 그것이다 또한 이영에 있어서도 일본 사료를 인용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이러한 현상은 바람직한 것으로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윤용혁의 경우 같이 여원연합군의 일본 정벌에 대하여 정면에서 사료 검토를 통한 자신의 고유한 주장을 피력한 연구도 있다 그러므로최근 년여 간 국내에서의 고려전기 대일관계사 연구의 특징을 말하라고 하면 사료집의 편찬에서부터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양적인 면에서의 부진함이 큰 문제로지 적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분 명하지만 그 양성에 관한 대책을 논하기란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동일한 주제에 대한 한일 양국 간의 견해 차이가 아직도 커다란 장벽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어떻게 보면 본고의 주제인 연구 성과 의 정리는 무관할 것으로보이지만 연구 경향의 차이는 관계사의 입장에서 볼때공 장동익 앞 글
제 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 권 동연구등을위한커다란 장애물이 되므로 잠시 일별하고자한다 이양국간의민족주 의적 성향의 역사관에 따른 커다란 벽이 첨예하게 나타난 분야는 여원연합군의 일본정 벌 이다 이 사건에 관한 것은 양국 간의 호칭 의 차이에서도 나타나지만 그 내용에 대한 교육의 차이도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해외파병의한사례로생각하려는 경향 이있다 그러나 일본은 이 사건을 대륙으로부터의 약탈적이고 야만적인 침략으로간 주하고 이에 대하여 전 일본인이 일치단결한 태도로물리쳤다는 교육을 하고 있다 특 히 일본정벌의 직접적인 피해지인 이키 에서는 그 정도가 유달리 심각하다 이키에 서 년에 원구 주년을 맞이하여 발간한 에는 여 원연합군의 잔인성을 강조한 표현과 내용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먼저 이책에서는 비참하다는 의미의 일본어 무고이 의 어원이 여몽연합군의 침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 다 무고이 는 몽고를 뜻하는 무쿠리 고려를 뜻하는 고쿠리의 첫 자에서 따온 것이라 는 것이다 그리고 연합군이 대마도에서 중과부적 대 만 천 의 일본군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죽였으며 속속 섬 안으로들어 모든 민가에 불을 질렀고 남녀노소를 가 리지 않고 모두죽여 지옥처럼 참혹하게 되었다 고 한다 또 연합군이 최후까지 분전 했던 인 의 머리 몸을 잘라 섬 안을 끌고 다녔다 고 서술하기도 한 다 연합군의 잔혹한 행위는 이키에서도 자행되었는데 대마에서 마찬가지로 섬 안의 남자들은 참살되고 생포된 여자는 손바닥에 구멍을 뚫어 그곳으로 줄을 꿰어 뱃가에 묶 어 두었다 고 표현한 곳도 있다 더 나아가 연합군은 패전하여 귀국하면서도 이키 쓰 시마에 상륙하여 동남 동녀 인을 붙잡아포로로쿠빌라이에게 보냈다고 기록하였 다제차정벌때도연합군의 잔학상은 임산부의 배를갈라태아를 꺼내고 젖먹이아 이는 넙적다리를 잡아 찢고 포박한 남녀는 귀나 코를베어 버리고 그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였다 또 젊은 여자는 강간을 하고 저항하면 손에 구멍을 뚫어 줄에 꿰어 지면에 끌고 다니거나 뱃가에 걸어 놓았다 고하여잔학함의 상징으로교육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 침공 등이 일반적인 표현이다 일본에서는 등으로 불린다 윤용혁 앞논문 본서에서 같은 서술은 일본 학계의전반적인정서라고할수는없을것같다 또한 학술서가 아닌 향토사 일방의소개서이므 로본고에서다루는대상으로 반드시 적합하다고할수만은없다 단지이러한정서가일부에 남아 있다는사실을소개하는 정도에서 취급하였음을 밝혀 둔다
Ⅴ. 결론 지금까지 지난 년 동안의 고려 전기 대일관계에 대한 연구 현황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적인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고려전기의 대일관계 연구는 다른 분야에 비하여 현저히 연구 성과물이 적었다 비록 연구 성과의 대상으로삼은 연구물이 총망라되었다고 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년 동안에 연구 성과물이 전혀 없었던 해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한 해에 편의 논문이 나왔던 년을 제외하고 나면 한해에 평균 편 이상의 연구물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상대적으로대중관계 연구 성과물이 많은 편이다 둘째 최근의 연구 성과물 가운데 특이한 점은 한일 관계 연구에 도움을 줄 수있는 자료집이 발간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의 간행은 일본 내에 있는 문헌 가운데 고려 관련 있는 사실을 전부 발췌하여 수록한 자료집으로 앞으로 이분야연구에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생각한다 이 연구서에 수록된 기록들 이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된 내용은 아니지만 이처럼 한자리에 집대성하였다는 것은 이 시기 한일관계사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 다고 하겠다 셋째 우리나라에서의 한일관계사의 연구 경향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것도 특징 가 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종래 거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었던 여원연합군의 일본 정벌 에 관한 연구 성과가 점차 보이고 있어서 주목된다 그리고 삼별초에 대한 시각의 변화 도주의깊게 보아야 한다 종래 관찬 사서의 기록에 의한 민족주의적 경향에서 향토의 구술사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보려고 하는 시도도 있었다 마지막으로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일본은 아직도 자국사적 입장이라는 높은 벽이 헐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에 관한 시각에서 첨예하게 나 타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해외파병이라는 사실로인정하고 이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데 비해 일본에서는 대륙으로부터의 침구 이에 대한 설욕과 승전을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고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의 관계사 측면에서 한일관계사를 위하 여 극복해야 할 과제로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