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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viii 본 연구는 이러한 사회변동에 따른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전문대 학의 역할 변화와 지원 정책 및 기능 변화를 살펴보고, 새로운 수요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문대학의 기능 확충 방안을 모색하 였다. 연구의 주요 방법과 절차 첫째, 기존 선행 연구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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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간물은국방부산하공익재단법인한국군사문제연구원에서 매월개최되는국방 군사정책포럼에서의논의를참고로작성되었습니다. 일시 장소주관발표토론간사참관 한국군사문제연구원오창환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허남성박사 KIMA 전문연구위원, 국방대명예교수김충남박사 KIMA객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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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2015년 여름호 Vol.1 No.2 www.kinu.or.kr + 정세와 쟁점 분석 신뢰의 기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스탠퍼드대학교 교수 통일청사진과 통일준비 고유환 동국대학교 교수, 통일준비위원회 위원 한반도 통일의 길: 정권진화와 연방제 통일 조 민 통일연구원 부원장 + 연구 동향과 서평 붉은 자본가들의 갈망: 중국 신흥 부유층에 대한 인류학 성과 Anxious Wealth 서평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소비에트 심성사의 한 차원 속삭이는 사회 1, 2 서평 법칙 서평 홍 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미국의 재균형(Rebalancing) 전략의 한반도 시사점 Augmenting Our Influence: Alliance Revitalization And Partner Development 서평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미중 전략적 재보장과 한반도 Strategic Reassurance and Resolve: U.S.-China Relations in the Twenty-First Century 서평 황지환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21세기 세계질서와 미중관계 World Order / China Goes Global: The Partial Power / Is the American Century Over? 서평 이지용 국립외교원 교수

KINU 통일 플러스(+) 는 북한 통일 관련 정책적 학술적 쟁점을 발굴하여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국내외 최신 연구동향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것을 통해 북한 이해도를 높이고 통일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해 발간하고 있 습니다.

KINU 통일 플러스(+) 2015년 여름호 Vol.1 No.2 발 행 처: 통일연구원 발행인:최진욱 편집인:박형중 등 록: 제2-02361호 (97.4.23) 발 행 일: 2015년 6월 25일 주 소: (137-756)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217 통일연구원 전 화: 02-2023-8000 홈페이지: http://www.kinu.or.kr c통일연구원, 2015 본지에 수록된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당 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목 차 Contents 정세와 쟁점 분석 1 신뢰의 기원 _03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스탠퍼드대학교 교수 2 통일청사진과 통일 준비 _13 고유환 동국대학교 교수, 통일준비위원회 위원 3 한반도 통일의 길: 정권진화와 연방제 통일 _29 조 민 통일연구원 부원장 연구 동향과 서평 1 붉은 자본가들의 갈망: 중국 신흥 부유층에 대한 인류학 성과 _49 Anxious Wealth 서평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2 소비에트 심성사의 한 차원 _61 속삭이는 사회 1, 2 서평 홍 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3 미국의 재균형(Rebalancing) 전략의 한반도 시사점 _73 Augmenting Our Influence: Alliance Revitalization And Partner Development 서평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4 미중 전략적 재보장과 한반도 _87 Strategic Reassurance and Resolve: U.S. China Relations in the Twenty First Century 서평 황지환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5 21세기 세계질서와 미중 관계 _99 World Order / China Goes Global: The Partial Power / Is the American Century Over? 서평 이지용 국립외교원 교수

정세와 쟁점 분석 1 신뢰의 기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스탠퍼드대학교 교수 2 통일청사진과 통일 준비 고유환 동국대학교 교수, 통일준비위원회 위원 3 한반도 통일의 길: 정권진화와 연방제 통일 조 민 통일연구원 부원장

정세와 쟁점 분석 신뢰의 기원 * 1 2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 스탠퍼드대학교 교수 신뢰란 일종의 심리적 상태로 개인, 조직, 국가와 같은 상대가 정직하고 예측 할 수 있으며, 호의적으로 행동할 것에 대한 가정이다. 때문에 신뢰는 모든 형태의 사회 협력에 중요하다.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사람들은 상대를 위해 일할 수 없고 일할 의지도 없어질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상호이익을 도모할 수 없다. 신뢰는 상대에게 정직함과 예측 가능함, 호의적 행동과 같은 것을 기대하는 심리 적 부산물`로 신뢰 자체가 미덕은 아니다. 우리가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를 신뢰 하게 된다면, 타인을 신뢰하지 않을 때 보다 더 쉽게 이용당할 것이다. 기회주의자 들은 상대방의 신뢰를 악용하는데, 이는 믿음을 주고 배신하는 사기(confidence scams)의 단초가 된다. 그러므로 사회적 협력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신뢰 그 * 본 글은 통일연구원이 2015년 5월 6일에 개최한 제5회 샤이오포럼의 기조연설문을 번역한 것임. (번역: 유승희 연구원, 감수: 연구관리본부, 대외협력팀). **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스탠퍼드 프리만 스포글리 국제학 연구소 정치학 교수이며 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 From the Industrial Revolution to the Globalization of Democracy(2014)의 저자이다. 정세와 쟁점 분석 신뢰의 기원 _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3

자체라기보다는 신뢰를 만들 수 있는 믿을 만한 행동이다. 필자는 이러한 행동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이라고 규정한 바 있으며, 이는 사람들이 정직성 신뢰성 등의 규범을 공유하며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신뢰는 경제와 정치 모두에 중요하다. 경제적 관계에서 신뢰는 거래비용을 감소 시킨다. 신뢰가 낮거나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 간에도 협업은 가능하나 복잡한 계약, 법적 제도, 소송, 국가의 강제 등과 같은 형식적 과정이 필요하다. 반면에 상대방을 신뢰한다면, 변호사나 법정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서로 간의 협업이 수월 하고 계약을 성사시킬 수도 있다. 현대에서는 법의 지배 없이는 비지니스를 진행 할 수 없지만, 신뢰와 신뢰할만한 행동은 경제가 원활해지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실례로 실리콘 밸리는 기술자, 기업가, 벤처 투자가, 관리자 간에 높은 수준의 신뢰가 있었고, 때문에 타 지역에 비해 첨단 기술 산업을 성공적 육성이 가능했다. 또한 신뢰는 정치체제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중요하다. 정부가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고, 시민을 온갖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며, 서비스와 공공재를 제공하기 위해 서는 시민이 정부를 신뢰해야 한다. 시민이 정부가 법을 공정하게 집행할 것이라고 믿으면, 그들은 자발적으로 법에 복종하고 정치제도를 정당하다고 여길 것이다. 반면에 시민이 정부의 공정성을 신뢰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의 문제를 직접 처리 하고자 할 것이다. 경찰의 치안 능력을 믿지 못하고 사설 보안요원을 직접 고용 하거나, 정부가 자신의 돈을 남용할 것이라는 생각에 세금을 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손해 볼 것을 예상하여 자신의 이익부터 챙기려 할 것이다. 19세기 이탈리아 남부에 마피아가 등장한 것은 정부가 개인의 재산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 이다. 마피아 단원들은 사적 재산권의 보호를 위해 고용되었지만 고용주로부터 등을 돌렸다. 신뢰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개인 그 자체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공동체를 형성 할 때, 그들의 이해관계를 표출하고 관철시킬 수 있게 된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 에서 자발적 결사체(voluntary association)가 밀집된 네트워크, 즉 현대 시민 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가 적합하게 기능 4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하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사회적 동원이란 가족과 개인의 삶부터 공적 인 이슈까지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일종의 의지를 말한다. 토크빌의 주장 처럼 시민 사회는 참여의 매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정당 가입이나 투표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방식이고, 정치 참여에 대해 교육 받는 배움의 장이다. 마지막으로 국제관계에서도 신뢰는 중요하다. 주변국을 위협하지 않고 예측 할 수 있는 대외 정책을 추진하는 국가는 평화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같은 의지를 가진 주변국과 더 쉽게 협력을 구축할 수 있다. 보통, 국가 간에는 아주 기본적 수준의 신뢰만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전쟁은 특정 행동, 즉 의도치 않았 다고 해도 상대방이 위협으로 해석한 행동에 의해 발발했다. 신뢰는 동맹 관계에서 특히 중요한데, 국가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국제적 동반자에 대해 온건하게 행동 하기 때문이다. 신뢰의 기원 만약 신뢰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신뢰의 근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네 가지 근원(sources)이 있다. 인간생물학(Human Biology), 문화적 가치의 공유(shared cultural value), 제도(institutions), 그리고 반복적 상호작용(repeated interaction)이다. 가장 기본적 형태의 신뢰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가족 안에 존재한다. 유전적으로 친족 안에서는 서로 이타적으로 행동하게끔 되어있다. 어린 아이들은 무력하고 의존적이기 때문에 그들이 성장하면서 정상적으로 원숙하기 위해서는 부모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다행히 일반적으로 양육에 대한 생물학적 욕구는 부모가 자식 에게 옳은 행동을 하도록 한다. 국가는 이러한 생물학적 사실에 기인하여 가족 관계에서 오용과 부주의에 의해 신뢰가 깨지지 않는 한 그들의 관계에 개입하지 않고자 한다. 생물학에 기반을 둔 상호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 는 사회성의 형태로 정세와 쟁점 분석 신뢰의 기원 _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5

인간은 친구와 호의를 주고받고, 호의를 베푼 상대에게는 도덕적 의무를 느끼는 경향을 말한다. 상호적 이타주의는 시민 사회의 근원이 되며, 다양한 네트워크와 비공식적 사회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기본이기도 하다. 가족과 친구에 대한 편애는 생물학적 형태를 띠고 있으며, 문화와 역사적 시간을 뛰어 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다른 형태의 신뢰가 없다면 우리는 생물학적 형태의 신뢰로 복귀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물학적 형태의 신뢰는 다소 제한적이다. 가까운 지인이라는 협소한 범위에서만 작동하고, 보다 광범위한 사회에서는 안정적으로 신뢰를 형성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실제로 이러한 생물학적 신뢰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공권력을 가진 계층이 특혜를 타인이 아닌 친지나 친구들에게 베푸는 경우 부패가 발생한다. 신뢰의 두 번째 근원은 문화적 가치의 공유이다. 문화적 체제는 사회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가장 첫 단계이다. 문화는 정직한 행동이나 약속의 이행 등 특 정한 형태의 도덕적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거짓말, 간통, 도둑질, 살인과 같은 반사회적 행동을 제재한다. 유사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를 더욱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세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많은 부분은 서로 다른 문화적 집단이 인접하여 불신의 기류를 이룰 때 일어난다. 물론 문화의 공유가 신뢰 가능한 행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유사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서로를 속이고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나아가 문화적 집단 내 높은 신뢰 수준이 외부인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기도 한다. 지도자들은 때때로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통의 신을 믿지 않거나 그들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 타인을 악으로 규정하고 공격한다. 이런 연유로 문화는 종종 다문화화 되는 세계 속에서 가족이나 친구의 범위보다는 넓지만 사회 전체보다는 좁은 신뢰의 테두리 (radius of trust) 를 형성하기도 한다. 문화적 가치의 공유가 항상 당연하지는 않으므로 인류 사회는 다양한 정치 제도 를 발전시켜왔다. 친구나 가족, 또는 공유하는 문화만으로는 다양하고 넓은 사회를 아우르는 신뢰적 행동을 배양하기에 불충분하다. 그 결과 개인의 감정을 배재하고 6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시민권과 법치에 기반하여 시민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국가가 나타나게 되었다. 외부인들과 교역을 하는 상업 사회에서도 혈연 또는 종교로 인한 네트워크만으로 는 당면한 복잡한 상호작용을 아우를 수 없었기 때문에 법적 제도들이 생겨났다. 현대적인 자유주의 제도들이 근대 유럽 초기에 나타나게 된 원인은 종교개혁 이후 의 신구( 新 舊 ) 교도들 간의 지속적인 갈등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은 현재 독일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인명이 희생된 30년 전쟁과 같은 참혹한 결과를 야기했다. 문화의 공유만으로는 적극적 사회 협력은커녕 사회적 평화를 보장하기 에도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주의적 관용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신뢰의 마지막 근원은 반복적 상호작용을 통한 자발적 발생이며, 이는 국제관계 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다.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한 사건에서 두 개인의 상호작용이 속은 자의 보수(sucker s payoff) 로 인해 사회적으로 불만족스러운 균형상태(suboptimal equilibrium)에 도달하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한 죄수가 상대방을 신뢰하는 행동을 한다면, 다른 죄수는 이를 악용하는 것이 합리 적인 선택이 된다. 따라서 두 죄수들은 상호이익을 가져다주는 협력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나 같은 죄수 간에 죄수의 딜레마가 반복적으로 발생되고, 죄수들이 상대의 과거 행동들을 기억하면 이들의 계산은 바뀌게 된다. 로버트 액설로드(Robert Axelrod)는 반복적인 죄수의 딜레마에서 맞대응(tit-for-tat) 전략은 행위자 들의 협력적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한명이 정직한 행동에는 정직한 행동으로 답하고 반대로 기회주의적(opportunism) 행동은 엄히 처벌한 다면, 궁극적으로 신뢰에 기반을 둔 상호이익이라는 결과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조건에서 사회적 협력이 발생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게임이론 들이 발전되어 왔다. 맨커 올슨(Mancur Olson)은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집단 행동을 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큰 집단은 개인이 타인의 호혜적 행동에 무임승 차할 위험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협력의 진화를 위해서는 상대가 신뢰할 수 있는 행동을 할지의 여부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즉, 과거 정세와 쟁점 분석 신뢰의 기원 _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7

의 행동을 기억하고 기회주의를 적절하게 제재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신뢰는 각기 다른 근원들이 서로 연관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문화적 가치의 공유 그 자체만으로는 두 개인이 신뢰할만한 방식으로 행동할 것 임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행동을 더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협력이 더 수월해진다. 반대로, 서로 다른 문화 간의 불신 은 대부분 서로의 행동을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미국의 많은 지역 경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지역 상업은 유사한 배경을 가진 이주민들 간에 서로 특혜를 주는 소수민족 집거지(ethnic enclaves) 와 함께 발전했다. 유사하게 우리의 인식적 감정적 행동의 대부분은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 을 더욱 잘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의 결과를 통해 진화된다. 상대의 과거 행동을 잘 기억하거나 표정이나 제스처를 정확하게 해석함으로써 상대방의 의도를 더욱 잘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적응 우위(adaptive advantage) 에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할 때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은 진화적 관점으로 볼 때, 계산의 합리성을 강화시킨다. 일례로 언어, 표정, 소리 등을 담당하는 전 두엽 피질이 집단 간의 경쟁을 통해 발달한다는 증거가 있는데, 이는 다시 집단 내의 협력을 원활하게 한다. 국제관계와 북한 사례에의 적용 신뢰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일반적 배경은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지에 대해 의미 있는 교훈을 줄 수 있다. 만약 남북한 간 신뢰 관계가 구축될 일말 의 가능성이라도 존재한다면, 이는 특정한 형태의 신뢰에 기반을 둬야 할 것은 자명하다. 과연 제도가 한국과 북한의 간극을 줄이는 데에 유용할 것인가? 지난 몇 년 동안 한반도 통일이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와 관련 논의가 있 었다. 두 국가의 정치적 이질성을 고려한다면 한국과 북한이 갖는 각각의 요소가 8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결합된 하이브리드 체제(hybrid regime)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북한의 전제적이고 억압적 정치체제를 고려한다면 한국의 민주적 제도가 북한으로 확산 되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통일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이 이러한 형태의 통일을 자발적으로 수용한다는 시나리오 역시 실현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필자는 북한이 점진적인 중국식 개혁을 채택하고, 계획경제를 탈피하는 소위 연 착륙(soft landing) 의 시나리오 또한 비현실적이라는 입장이다. 북한 지도자들 은 낮은 정도의 자유화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통제 할 수 없을 만큼의 변화에 대한 요구로 증폭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 시나리오는 북한의 내부적 갈등, 봉기, 내전으로 인한 붕괴를 전제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 로 가는 길은 외교정책적 난제를 동반한다. 한국의 제도 하에서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은 1990년대 독일 통일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생물학과 문화의 공유도 신뢰를 보장 할 수 없다. 한국과 북한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적 동일성을 가지고 있었고 역사를 공유하고 있었으며, 생물학적인 유사성도 높았다. 실제로 6 25 전쟁으로 인해 많은 이산가족이 발생되었다. 남북 분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김 일성이 북한의 정권을 장악하면서 강요된 이념이 원인이다. 이념적 분단은 더욱 심화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물학적, 문화적 속성까지 띠게 되었다. 북한 주 민은 영양실조의 만연으로 한국에 있는 친지들보다 육체적으로 왜소해졌다. 분단 이후 삼대( 三 代 )가 지나면서 북한 주민의 생활 풍습(habits) 또한 매우 달라졌다. 따라서 이념이 사라지고 남한과 북한이 정치적으로 통일된다고 해도 두 집단 사이 에 중요한 차이점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이는 불신의 원천이 될 것이다. 만약 생물학적 유사성, 공유하는 문화나 제도가 신뢰를 형성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면, 신뢰는 반복되는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배양 될 수 있다. 칸트(Immanuel Kant)는 악의 사회(society of devils)라도 협력이 자기 이익에 부합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악인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나갈 것 이라 말한 바 있다. 상대방을 신뢰하기 위해 반드시 상대방의 선의를 믿을 필요는 없다. 상대방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믿으면 된다. 냉전 시기의 정세와 쟁점 분석 신뢰의 기원 _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9

핵 억지는 가치나 제도의 공유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과 소련은 서로 의 핵 억지력을 확신하였으며 두 초강대국은 상대방이 핵무기에 의한 전멸을 피 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던 것이다. 만약 상대가 일관적 으로 행동하지 않고 불확실성을 보였다면 이러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국제사회는 북한과 양자 거래를 상당히 축적했지만 경험이 특정한 신뢰를 형성하는 데 도움 되지는 않았다. 1990년대 후반 햇볕정책 이 시작된 이후, 한국 은 국제 사회의 지지를 기반으로 북한과 화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북한은 원조의 공급로(aid pipeline)만을 목적으로 교류에 참여했고, 이후에 더 많은 원조를 받아 내기 위한 도발적 행동을 감행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과의 반복된 게임은 신뢰 구축이 아닌, 다른 행위자가 북한의 의도에 대해 갖는 냉소주의만 키워왔다. 만약 국가 간에 신뢰가 형성되기 어렵다면,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개인들 간에 신뢰는 가능한지, 그리고 이러한 신뢰가 민중 차원에서 구축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 가질 수 있다. 신뢰 구축은 거시적 접근보다 미시적 접근이 더 유리하다. 빌리 브란트(Willy Brandt)가 주도한 동방정책(Ostpolitik) 등을 통해 베를린 장 벽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동유럽에서는 정치적 발달의 기반이 구축되고 있었다. 이러한 형태의 데탕트는 정치 차원에서 이루어졌지만 문화적 차원에서 더욱 주요 하게 작용했다. 동독인은 처음으로 서독의 미디어에 노출되었고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며, 분단을 넘어서 친구나 친척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브란트 초기 수년 동안 이러한 교류의 정치적 효과를 체감할 수 없었지만, 이후 동독인의 일부는 서독의 실상이 동독 정부의 주장과 차이가 있음을 서서히 자각했다. 현재 로서는 민중 차원의 형식의 신뢰 구축이 어떠한 가능성들을 가지고 있는지 예측 하기가 어렵다. 필자는 항상 북한 정치체제가 부패하고 엘리트층 자신에게도 위험 하다고 자각하는 사고의 진화가 정치적 변화를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의 경직된 시스템으로부터의 이탈은 너무도 큰 개인적 정치적 위험을 동반하며,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 격동의 변화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는 한 아무도 개혁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신뢰 구축은 이러한 점에 주목 해야 한다. 10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마지막으로 신뢰의 구축은 다른 집단으로 대상이 변화해야 한다. 필자는 체제의 거듭되는 실패에도 남북이 통일되지 않고, 북한이 존속되는 이유는 내재된 정통성 이 아닌 유일한 동맹국인 중국의 지원 때문이라 생각한다. 중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북한의 붕괴와 민주국가인 한국으로의 흡수 통일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꾸준히 밝혀왔다. 물론 중국 역시 북한의 행동에 대해 종종 실망감을 드러냈고, 중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개발이나 도발적 행보를 지지 할 이유가 없으며, 거듭 평양의 행동을 난처해했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 자체가 중국 고위층이 북한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지 않는다. 과거 독일 통일은 구소련의 몰락으로 인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도 하에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 NATO의 영향력은 북러 국경까지 확대되었다. 중국의 지도층은 독일 통일과 유사하게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신뢰 구축의 실질적 과업의 대상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즉, 북한 뿐 아니라 중국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의 개혁이든, 혼란 이든, 내부적 붕괴든 통일 시나리오는 중요하지 않다. 통일된 새로운 정부가 근본 적으로 중국의 국익에 적대적이지 않음을 확신해야 한다. 아마도 중국 지도층은 통일 국가의 정치체제보다는 대외정책의 방향성에 더욱 큰 관심을 둘 것이다. 이는 한반도 통일이후 동북아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지금껏 중국은 동맹국인 북한의 입지가 약해지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핑계로 이 사안에 대한 논의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의 과정은 한반도에 새로운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근간이 될 수 있다. 정세와 쟁점 분석 신뢰의 기원 _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11

정세와 쟁점 분석 통일청사진과 통일 준비 고유환 동국대학교 교수, 통일준비위원회 위원 1. 머리말 우리 민족은 해방 이후 통일 정부를 수립하지 못하고 분단돼 이념과 체제를 달리 하면서 반목하고 산지 어느덧 70여 년이 됐다. 탈냉전 시대인 현재에도 한반도 에는 냉전의 관성( 慣 性 )이 남과 북을 지배하고 있다. 한반도 분단은 우리 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장애인 동시에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제약하는 멍에다. 이념과 체제가 부모 자식, 형제자매의 생사확인과 만남을 가로막는 모순 은 하루빨리 극복돼야 한다. 그동안 남북한 당국이 막대한 분단비용을 소모하면서 체제경쟁을 지속함에 따라 분단고통은 커지고 이질화는 심화되었다. 무한경쟁의 지구촌시대에 소모적인 분단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우리는 통일이 민족은 물론 개인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 아래 통일의 당위와 목표, 통일 과정과 절차, 그리고 통일 조국의 미래상을 확고히 정립하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바람직한 통일국가의 미래상은 한반도 구성원 모두에게 자유와 복지, 그리고 인간 의 존엄성이 함께 보장되는 행복한 통일 이 되어야 한다. 정세와 쟁점 분석 통일청사진과 통일 준비 _ 고유환 13

이 글에서는 통일준비위원회 출범 이후 본격화되고 있는 평화통일 기반 구축과 관련한 문제를 통일청사진, 통일대박 론, 작은 통로 론, 통일비용 등과 관련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통일준비위원회 출범 분단 70여 년이 되도록 통일을 이루지 못한 데는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남과 북의 대립 갈등, 북한의 수령중심의 유일체제 구축과 삼대 세습, 대북정책을 둘러 싼 우리 사회 내부의 남남갈등, 주변 국가들의 두개의 한반도 정책 등이 복합적 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북 관계 진전이 어려운 근원은 불신에 있다. 원죄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신뢰를 쌓으려면 정책의 일관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의 기조가 바뀌고, 북한은 5년마다 바뀌는 남측 정부를 길들 이기 하거나 기싸움 한다며 임기 초반 한 두 해를 흘러 보낸다. 집권 3년 차 무렵 남북 관계를 재설정하여 일을 하려고 하면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이 벌어 지고, 선거 때가 되면 친북 좌파 시비가 되살아난다. 햇볕정책 을 둘러싼 남남 갈등에서 확인한 것처럼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념갈등은 지역갈등과 결합돼 정치적 으로 이용된다. 친북 좌파 정권의 잃어버린 10년 이란 정치구호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고유환 2015/04/30). 분단 이후 역대 정부 모두 나름대로 통일 준비를 해왔지만 정책의 일관성을 발휘 하지 못했다. 박근혜정부가 범정부적 통일준비기구인 통일준비위원회(약칭 통준위) 를 만든 것은 민 관협업을 통해서 내실 있는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본격화하겠다 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일준비위원회(이하 통준위)는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아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여 투명성 있게 통일논의를 펼쳐가고, 통일헌장과 통일 방안 등 통일청사진을 만들어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통일 준비를 추진해 나가는 범정부적 통일준비기구라고 할 수 있다. 통일준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14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규정 에 의하면 통준위는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고, 통일 추진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며, 민 관 협력을 통하여 한반도 통일을 체계적 으로 준비하기 위한 심의 기구다(통일준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 2014년 3월 31일 제정, 제1조와 제2조). 분단 70여 년 만에 뒤늦게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게 된 배경에는 이명박정부 시기부터 단절된 남북 관계의 비정상 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이 반영된 것 으로 보인다. 2003년 11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평화통일 기반 구축 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2004년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다 라고 하면서 통일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다. 같은 해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를 발표하면서 통일준비위원회 발족을 공식화했다. 통일대박론과 함께 경제혁신 계획을 밝히는 담화에서 통준위 발족을 언급한 것은 한계에 도달한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통일에서 찾 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2014년 7월 15일 한반도 평화통일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대통령 소속 통일준비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통준위는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고 민간 위원 30명, 국회 2명, 정부위원 11명, 국책연구기관장 6명 등 총 50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통일준비위원회는 다양한 배경과 철학을 가진 인사들이 참여하여 한반도 의 통일청사진을 마련하는 한편, 남북 관계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다양한 협력 사업을 개발하고, 남북 관계와 통일문제에 관한 국민 공감대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 통일준비위원회에는 기획재정부, 외교부, 국방부,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 장관들과 총리실 국무조정실장,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이 정부위원 으로 참여한다. 또한 통일 준비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고 민간협업을 촉진하기 위해 통일연구원, 국립외교원, 한국개발연구원, 국방연구원, 국토연구원, 국가안보 전략연구원 등 6개 기관의 장이 참여한다. 여기에 국회 여야 정책위원회 의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함으로써 통일준비위원회는 명실상부한 범정부적인 통일준비 기구로 발족하게 됐다. 정세와 쟁점 분석 통일청사진과 통일 준비 _ 고유환 15

통일준비위원회는 외교안보, 경제, 사회문화, 정치법제도 등 4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했으며, 30여 명의 전문위원들이 관련분야 전문성을 바탕으로 분과위 활동을 함께 한다. 통일준비위원회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기 위해 시민 자문단, 통일교육자문단, 언론자문단 등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시민자문단은 시민단체, 직능단체 등 총 12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통일교육자문단에는 대학 총장 30여 명, 고교 교장 20여 명이 참여한다. 그리고 언론자문단에는 언론인 2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3. 통일청사진의 기본 방향과 과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로 한민족 모두가 풍요롭고 자유롭게 생활하며,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을 만들고자 합니다 라고 밝혔다. 소모적인 분단체제의 비정상을 청산하고 한반도 구성원 모두 의 자아실현이 가능한 행복한 통일시대 를 열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일준비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우리는 통일을 앞당기는 노력과 함께 통일 과정 과 통일 이후 벌어질 여러 상황과 문제에 대비한 시나리오와 로드맵을 만들고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통일 준비는 평화통일에 초점을 맞추되 다양한 가능성 에 대한 시나리오별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급변사태론이 전면 에 부각되서는 안 될 것이다. 통일 준비의 우선 과제는 범국민적 초당적 합의에 기반하여 통일헌장과 통일 방안을 새롭게 만들고 대북 통일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는 통일청사진을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일반의지 를 모아 통일헌장과 통일 방안을 만들고, 이를 정책적 방법론적 기초로 해서 통일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통일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이뤄야 할 통일의 상대인 북한이 우리의 통일청사진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다. 16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기존에 합의한 7 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 15 공동선언, 10 4 선언 등의 합의 정신에 맞게 통일청사진을 만들도록 노력 해야 할 것이다. 통일헌장과 통일 방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하는 등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역대 정부가 추진해왔던 통일 방안과 통일정책의 긍정적 교훈을 계승하면서 실현가능한 기존 남북합의들을 복원하여 이행해 나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통일청사진을 만드는 일을 지속하면서도 통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당장 할 수 있는 일들부터라도 적극 시행 해야 할 것이다. 독일, 베트남, 예멘 등 통일을 달성한 나라들의 경우 거창한 통일청사진이나 통일 방안에 의해서 통일을 실현했다기보다 숨겨진 통일전략 에 의해 통일을 달성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서독은 동방정책 에 따라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을 체결하고 일관성 있는 교류 협력을 추진했다. 독일은 이미 25년 전에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통일을 달성했다. 총과 대포에 의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탈냉전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조류와 동서독 간의 꾸준한 교류 협력이 장벽을 붕괴시킨 것이다. 서독의 작은 발걸음 정책 과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 은 동서독 간 인적 물적 교류 를 꾸준히 확대하면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나갔다. 독일 통일을 결정적으로 가능 하게 했던 요인은 사회주의권 개혁 개방과 미소 간의 평화공존 합의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은 국제정세의 변화를 통일달성의 유리한 환경으로 활용해서 통일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헬무트 콜 전 서독 수상이 말한 것처럼 독일은 역사가 열어 준 기회의 문 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문 안으로 들어가 통일을 달성했던 것이다 (손기웅, 고유환 외 2014). 독일의 통일 경험에 비춰보면 우리의 통일 노력은 일관성이 없었고 전략도 구체 적이지 않았다. 또한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세계사적 흐름을 통일의 촉진 요인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독일 통일은 거창한 통일 방안에 의한 것이 아니다. 작은 발 걸음 이 모여 통일의 대업을 이룬 것이다. 동서독의 경우 수많은 간첩사건과 서독 정세와 쟁점 분석 통일청사진과 통일 준비 _ 고유환 17

으로 탈출하는 동독주민에 대한 총격사건이 발생했음에도 교류 협력을 지속하고 통일을 달성했다. 우리의 경우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은 7년째 중단되고 있으며,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태 이후 5 24 조치가 취해져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류협력은 5년째 거의 중단됐다.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에 따른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와 남북 관계 차원의 제재강화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통일을 위한 작은 통로가 거의 다 막혀 버렸다. 남북 관계는 규범적 도덕적 기준만으로 풀 수 없다. 우리는 수많은 통일 방안을 내놓고도 통일을 달성하지 못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일을 위한 거대 담론보다는 실천 가능한 작은 발걸음을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독일의 통일 경험에 비춰 볼 때 우리는 통일청사진과 통일 방안 등과 관련한 거대 담론을 둘러싸고 많은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통일청사진은 당위론적이고 규범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북한의 반발을 불러오지 않는 통일청사진 을 만들려면 당위론적이고 보편성을 갖춘 추상성이 높은 통일청사진을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남갈등을 일으키고 북한의 반발을 불러올 통일헌장과 통일 방안 이라면 굳이 새롭게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통일부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 통일문제를 전담하는 부처와 자문기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든 것은 정파를 초월한 초당적 범국민적 통일 준비를 추진하고 이를 일관성 있기 추진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통일정책과 관련한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일관성 있는 대북 통일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통준위가 당면한 남북 관계 현안과 관련한 의견수렴과 정책심의 및 건의, 그리고 정책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4. 작은 통일 을 위한 작은 통로 열기 박근혜정부는 김대중 노무현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10년, 이명박정부의 대북 강압정책 5년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에 기초해서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하고자 18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한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3년 차지만, 아직 이명박정부 시기부터 단절됐던 남북 관계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경색국면이 장기화하면서 남북 당국 간 불신도 커지 고 있다. 남북 관계가 장기간 단절됨으로써 개성공단을 제외한 대북투자기업과 남북 경협사업에 뛰어들었던 영세업자들의 경제적 손실과 고통은 커지고 있다. 대북사업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국민들도 남북 관계 경색과 소모적인 대립갈등 으로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한국경제가 장기 침체기로 빠져든 것도 남북 갈등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 가 한 원인일 수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를 복원하고 대륙의 북방 경제로 경제영토를 넓혀야 할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통일기반구축과 통일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 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통일의 방식으로는 작은 통일(경제공동체) 에서 시작하여 큰 통일(정치통합)을 지향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같이 박근혜정부의 통일구상은 신뢰프로세스를 통한 평화통일 기반 구축 한반도 경제공동체 수립 민족공동체 통일 이라는 3단계의 점진적 접근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국립외교원 2014, 8).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유화와 강경 사이에 균형을 잡아 대북정책을 진화시키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후보시절 대화에 전제조건이 없고 남북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김정은도 만날 수 있다 고 하여 조건없는 대화를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북한은 하루빨리 핵을 내려놓고, 평화와 공동발전의 길로 나오길 바란다 고 밝혔다. 박근혜정부는 핵을 가진 북한과 공동발전을 모색 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억지력을 바탕으로 남북 간 신뢰를 쌓아나가 겠다는 대북정책 기조를 밝혔다. 통준위 출범과 함께 박근혜정부는 통일대박론 을 실현하기 위한 작은 통로 를 먼저 열 것을 주장하는 등 작은 통일 로부터 큰 통일 로 나아가야 한다는 쪽으로 통일정책의 기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작은 통로 론은 이명박정부 시기 다시 부각한 북한붕괴론과 급변사태론을 극복하고 실천 가능한 분야부터 교류 협력을 확대해서 점진적인 통일을 달성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세와 쟁점 분석 통일청사진과 통일 준비 _ 고유환 19

박근혜정부 집권 2년 차를 맞은 지난해 초부터 남과 북은 통일대박론 과 중대 제안 을 내놓고 관계 복원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 남과 북은 고위급접촉 을 갖고 상호 비방 중상 중단에 합의했다. 하지만 합의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남과 북은 합의이행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북한은 남측의 언론 들이 그들 지도자 체제 등과 관련한 무차별적인 비방 중상을 일삼는다고 불만을 표시했고, 우리 정부는 자유언론의 특성상 이를 말릴 수 없다고 하면서 방관했다. 그러자 북측도 주민들과 관리들을 동원해서 남측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공세를 강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3월 28일 구동독 지역인 드레스덴을 방문해서 인도적 문제 해결과 민생 인프라건설 지원,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 3대 제안을 했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해 4월 12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서 황당무계한 궤변으로, 논의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 면서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드레스덴 3대 제안에 대해 그들의 경제난을 부각시키면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여 접근하는 체제통일(흡수통일) 정책이라고 의심하면서 부정적 입정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8월 7일에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1차 회의에서 정부의 통일정책 목표는 평화통일이며,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교류 협력을 점진 적으로 확대해 평화통일 기반을 구축하겠다 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 상의 흡수통일 배제 선언 으로 볼 수 있다. 급변사태나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부정 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공공연하게 흡수통일을 추진하지는 않겠다고 말함으로써 드레스덴 선언을 불순한 체제통일 야망 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의 반발에 적극적 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모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8 15 경축사에서 남북이 실천 가능한 사업부터 행동 으로 옮겨서 서로의 장단점을 융합해 나가는 시작을 해 나가는 것이 시급한 과제 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남과 북은 서로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작은 통로부터 열어나가고, 이 통로를 통해 서로 이해해 가면서, 사고방식과 생활양식부터 하나로 융합해 가는 것이 필요 하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환경 협력의 통로, 민생의 통로, 문화의 통로 를 시급히 열자고 북측에 요구했다. 20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하지만 북한은 작은 통로부터 열자는 남측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정치군사적 대결을 해소하는 근본문제 부터 해결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북한이 상호 적대적 군사행동 중지와 남북대결의 악순환의 고리 끊기, 북미 적대 관계 해소와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 근본문제를 제기하는 데 비해서, 박근혜정부는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 있는 행동,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천안함 연평도사태 등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 등을 요구하면서, 인도적 대북지원과 동북아국가들 사이의 비정치적 분야에서의 협력을 강조하는 등 기능주의적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과 북이 작은 통로를 열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 로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을 중지하고 평화구축에 대한 진정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정착이 이뤄져야 교류 협력이 확대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지난해 8 15 경축사에서 밝힌 작은 통로 열기 제안에 대해 지금과 같이 북남 사이의 정치군 사적 대결상태가 최악의 형편에 이른 조건에서 그것이 과연 실현될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하면서, 북남 합의들을 전면이행하고 6 15 통일시대에 활성화되어온 각 분야별, 분과별 협력교류기구들을 되살리면 북남 관계는 저절로 개선되게 된다 (로동신문, 2014/08/22) 고 주장했다. 2014년 10월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참석하여 남북 간 고위급 접촉이 이뤄졌다.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국가체육지도 위원장 겸 당비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등 북한 권력의 최고 실세 3인이 인천을 방문하여 우리 정부 인사들과 접촉하고 2차 남북고위급접촉을 갖기로 합의했다. 황병서 군총정치국장은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로 열어가자 고 말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의 오솔길 론은 작은 것에서부터 신뢰를 쌓아 관계를 개선해나가자는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와 맥락이 이어 지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작은 통로는 민생통로인 데 비해, 북한 이 생각하는 오솔길은 정치군사적 작은 길인 것 같다. 남측의 작은 통로론과 북측 의 오솔길론이 이익의 조화점을 찾기 위해서는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호혜적인 접촉통로를 많이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남북 관계 복원의 정세와 쟁점 분석 통일청사진과 통일 준비 _ 고유환 21

큰 물줄기를 잡고 지방정부와 민간단체들이 나서 다양한 형태의 접촉면을 넓혀 나가야 큰 통일 도 가능할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작은 통로가 활짝 열리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고 평화구축에 대한 진정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정착이 이뤄진다면 교류 협력이 확대될 것이다. 작은 통로를 열기까지는 남북 당국 간 대화 등 신뢰회복을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5. 통일대박 론과 통일비용 문제 박근혜정부는 집권 2년 차를 맞아 2014년 1월 6일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 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다 라고 밝히면서 통일담론이 되살아 났다. 통일 부담론 회의론 기피론 등 젊은 세대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폄으로써 통일 방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통일대박론은 한편으로는 분단의 평화적 관리정책을 넘어 적극적인 개입정책을 통해서 통일을 조기에 달성하고 통일의 편익을 누리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대비하여 통일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뜻 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분단이 장기 지속되자 분단모순을 당연시하며 많은 분단비용을 치루면서도 통일 문제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국민들이 늘어났다. 통일이 가져올 편익이 많기 때문에 통일대박론에 따라 통일지향적인 대북정책을 펴는 것은 바람직하다. 통일 대박론은 통일 미래세대가 통일문제를 더 이상 기피하지 않고 자기 이익, 국가이익, 민족 이익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유환 2014/01/16).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남북한의 대립과 전쟁위협, 핵위협에서 벗어나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가야만 한다 고 주장 했다. 점차 한계에 도달해가고 있는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통일에서 찾자 는 주장이다. 22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통일은 많은 편익을 가져오는 동시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통일 비용 추산과 재원마련은 통일 준비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통일비용 문제가 부각하면 통일 부담론과 회피론이 나올 수 있는 민감한 문제다. 통일비용은 통일방식과 시기에 따라 비용추산이 달라질 수 있다. 추산방법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나지만 어쨌든 통일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많이 들어간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 많은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와 함께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서도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이명박정부 때 통일세 논의를 제기했다가 국민들의 시큰둥한 반응으로 구체화 하지 못했다. 이명박정부는 통일세 추진을 유보하고 순수 민간 차원의 통일비용 마련을 위한 통일항아리 를 만들었지만, 실제로 모금한 금액은 수억 원에 불과 했다. 통일항아리 모금운동은 통일부가 지출한 홍보비용보다 적은 액수를 모금 하고 해프닝으로 끝난 바 있다. 그만큼 국민들의 자발적인 통일비용 조달이 어렵 다는 것을 시사한다. 국민들은 통일의 당위는 인정하지만 비용분담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회피론도 과도한 비용분담과 부작용을 의식하기 때문 일 것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연말정산 과정 중 세금 부담의 증가로 인한 거센 반발을 목격할 수 있다. 현 단계에서 통일재원 마련을 공론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 우선해야 할 일은 연간 1조 2000여억 원에 이르는 남북협력기금 미사용액 이라도 매년 통일기금으로 적립해나가는 것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시급한 것은 분단비용을 감소시키면서 통일비용을 줄이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통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선 우선 정치통합에 앞서 환경, 민생, 문화 등 남과 북 사이의 작은 통로를 많이 만들어 소득 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도록 전략적 대북 개입정책을 본격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민생인프라 지원을 통해서 남북 주민들 간의 생활 공동체를 만들고 경제력 격차가 좁혀지면 통일비용도 줄게 될 것이다. 통일비용을 줄이는 통일전략 차원의 대북지원도 적극 검토해 봐야 한다. 우리의 대북지원이 북한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시장화를 촉진하고 북한체제의 아래로 부터의 변화를 추동해나간다면 통일비용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통일비용을 걱정 정세와 쟁점 분석 통일청사진과 통일 준비 _ 고유환 23

하기 보다는 통일 이후 시행할 남북 통합계획을 수립하고 점검하는 노력에 집중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통일비용보다 통일이 가져다 줄 편익을 부각하면서 통일 회의론을 극복하고 남북협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데 초점을 모아야 할 것이다. 6. 맺음말 박근혜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한 평화통일 기반 구축 을 통일 대북 정책의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 드레스덴 선언, 작은 통로론 등을 내놓고 북한이 호응해 오기를 희망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이명박정부가 추진했던 체제통일(흡수통일) 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고, 우선 한미 합동군사연습과 비방 중상 중지, 특히 대북전단 살포 중지부터 진정성을 보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통일대박론에 따라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독일 통일모델을 원용한 대북정책 구상을 연이어 밝히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서독의 작은 발걸음 정책 과 접근을 통한 변화 전략 이 동서독 간 인적 물적 교류를 꾸준히 확대하 면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나갔다는 점에 착안하여 작은 통로 열기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작은 통로부터 열자는 남측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정치군사적 대결을 해소하는 근본문제 부터 해결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명박정부 때 단절됐던 남북 관계가 7여 년 동안 단절됨에 따라 남과 북 사이 의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다. 남북 관계가 장기간 단절되면서 남북 사이에 있었던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천안함 연평도사태 등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제재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향상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에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대남 위협을 지속함으로써 남북 관계 복원의 동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마련한 대화의 기회는 회담 대표 의 격 의 문제와 대북전단 살포 문제로 판이 깨졌다. 24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작은 통로를 열기 위해서는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와 시민단체 등 다양한 행위 주체들이 남북 관계 개선의 일원으로 나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 체제의 국가권력이 과도한 힘을 가지고 대북 관계의 모든 부문을 장악하고 통제 하고 있다. 과거 냉전 시대라면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을 우려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의 체제역량이 우월해서 역통일전선 전술 이 가능한 시기다. 5 24 조치 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수많은 남북경협 사업자가 도산하고, 지자체 와 시민 사회의 교류 협력사업도 거의 차단됐다. 큰 통로는 막더라도 북한을 변화 시킬 수 있는 작은 통로들은 열어 놓아야 한다. 지자체들이 해왔던 대북사업을 중앙정부가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는 것도 제고돼야 한다. 남북협력기금 등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일정 규모 이상의 대북지원의 경우는 중앙정부가 통제하더라도 지자체 차원의 인도적 대북사업은 지방정부의 책임으로 권한을 위임하는 것도 검토해 봐야 한다. 지난 분단 70년의 경험에서 보더라도 제재와 압력으로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명박정부는 시간은 우리 편이라면서 기다리는 전략 으로 일관 하다가 북핵능력의 향상을 막지 못했다. 북한의 압축적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서는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작은 통로론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흔히 올해가 남북 관계 복원의 골든타임 이라고 한다. 벌써 5개월이 지났으니 남은 몇 개월이 관계 개선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남북 관계의 1년은 길지 않다. 통상 실시하는 한미 합동군사연습 기간에는 다시 긴장국면으로 진입하고, 선거가 있는 기간에는 여론의 눈치를 살피느라 과감한 관계개선을 추진하지 못한다. 한미 합동군사연습과 재보궐선거가 끝나는 지금부터 8 15 광복절까지가 남북 관계를 풀 결정적 시기다. 8월 말에 을지프리덤가디언(UFG: Ulchi Freedom Guardian) 연습이 예정돼 있어 그전에 남북 관계를 풀지 못하면, 올해도 그저 광복 70주년을 자축하는 해 로 끝나고 말 것이다. 매년 반복하는 일이지만 3~4월과 8월에 한미 합동군사연습이 있고,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남북 관계도 가다 서기를 반복해 정세와 쟁점 분석 통일청사진과 통일 준비 _ 고유환 25

왔다. 그러다가 북한의 핵실험, 장거리로켓 발사, 대남도발 등의 변수가 생기면 그나마 진전됐던 남북 관계마저 다시 후퇴하기 일쑤였다. 분단 70년을 맞는 올해, 정치권이 남북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열지 못하면 국민 들로부터 그동안 뭘 했느냐는 눈총을 받게 될 것이다. 모든 잘못은 북한에 있다 고 하면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많은 통일 방안과 담론에도 불구하고 왜 남북 관계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우리 모두의 자성이 필요하다. 대북전단 문제가 핵, 미사일, 남북교류협력 등 남북 현안을 압도하고 다양한 접촉 통로를 막는 비정상 은 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 올해가 가지는 역사적 의의를 고려할 때 남북 관계와 통일문제 등과 관련한 담론은 무성하게 나올 것이다. 통일 청사진과 담론을 성과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국민들의 실망감은 더욱 커지고 남북 불신도 높아질 것이다.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작동시키려면 중단된 남북고위급 접촉의 재개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남북고위급 대화를 통해서 지난 시기에 있었던 남과 북 사이의 불미스런 일들에 대한 포괄적 정리를 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26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참고문헌 국립외교원. 통일한국 2040보고서: 글로벌 리더 통일한국. 국립외교원, 2014. 손기웅 고유환 외. 행복한 통일 로 가는 남북 및 동북아공동체 형성을 위한 통합정책: EC/EU사례분석을 통한 남북 및 동북아공동체 추진방안. 서울: 통일연구원, 2013. 고유환. 통일준비위원회 출범과 작은 통로 론. Korea Policy(코리아정책저널). 2013(가을호). 고유환. 통일대박론을 실현하려면. 한국일보. 2014.01.16.. 남북관계의 시간. 한국일보. 2015.04.30. 로동신문. 2014.08.22. 정세와 쟁점 분석 통일청사진과 통일 준비 _ 고유환 27

정세와 쟁점 분석 한반도 통일의 길: 정권진화와 연방제 통일 - 광복 70년, 분단 70년 조 민 통일연구원 부원장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지금 광복( 光 復 ) 을 말할 때가 아 니다. 한반도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에야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광복을 맞이하게 된다. 70년 동안 동강난 산하에서 광복 을 이야기하고 자축하기에는 참으로 부끄 러운 일이다. 올해는 분단 70년이 되는 해이다.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비극적 소극( 笑 劇, tragic farce) 의 70년 분단사를 되돌아본다면, 올해의 광복절은 깊은 성찰 속에서 통한과 자숙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분단 70년! 이제 분단사는 역사적 에피소드 가 되기에는 너무나 긴 세월로 접어 들었다. 1947년에 발표된 동요 우리의 소원은 독립(통일) 은 남북한 모두의 민족 적 애창곡으로 불린다. 그런데 지금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찾는데 통일 의 노랫말조차 점점 가물거리는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정세와 쟁점 분석 한반도 통일의 길: 정권진화와 연방제 통일 _ 조 민 29

1. 통일은 무엇인가? 1-1. 통일: 정상( 正 常 )의 회복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멀지 않다! 이는 자연의 이치( 理 致 )이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와는 달리, 한반도에는 분단의 어둠이 짙게 드리워졌지만 통일의 여명은 좀 처럼 밝아오지 않고 있다. 한반도 분단구조는 세계사의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우 강고한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군사적 긴장과 소강, 대화와 단절의 패턴이 반복되는 가운데 쉽사리 해체되기 힘든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 내부의 대결적 구심력과 동북아 4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한반도의 남과 북을 견인하는 원심력이 상호 내응하면서 분단구조를 새롭게 주조( 鑄 造 )하고 있는 안타까운 형국이다. 분단은 비정상이다. 분단은 남북한 주민 개개인의 의식, 삶의 행태, 집단적 존재 양태, 정치의식과 정치행태 등 모든 분야에서 정상성( 正 常 性 )을 왜곡시킨다. 통일 은 정상의 회복이다. 비정상이 개인적 차원에서나 공동체적 수준에서나 일상화 되고 내면화된 상황에서 정상의 회복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통일은 정상의 회복이자, 새로운 정체성이 확립되는 계기가 된다. 모든 국민, 특히 우리의 청년 학생층이 통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희망찬 전망과 통일비전 의 제시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통일은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겠다는 각오 와 시련의 연속이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남북한 주민 모두의 삶의 정상을 회복하고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통일의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한민족은 지난날 세계사의 피동적 존재이자 강대국 패권정치의 객체에 불과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남의 손에 맡겼던 비자주적인 역사였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은 우리 민족의 바람과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 었지만, 평화와 통일은 반드시 우리의 의지와 역량으로 이루어내야 한다. 이제는 통일을 주저하거나 회피해서는 곤란하다. 독일이 세계사적 변화 속에서 우연히 찾아온 통일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통일의 기회를 스스로 찾고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한반도 통일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 30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필연이다. 1-2. 통일: 평화혁명 * 통일은 평화혁명 이다. 한반도 통일은 반드시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남 북한 국가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혁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통일은 평화혁명 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은 파괴와 건설 의 과정이다. 통일은 분단체제의 낡은 질서의 파괴 타파 위에서 8천만 한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창조적 건설 의 과정 이다. 그와 함께 통일은 해체와 통합 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통일은 분단질서를 해체하고, 남북한 국가 운영의 원리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하나로 묶는 길이기 때문이다. 북한 지역의 경우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해체 즉, 지령경제체제의 해체를 가져 오며 소유권 제도의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 이에 국가적 사회적 협동적 소유 형태의 많은 부분이 사적 소유로 전환되고, 정치 부문에서는 개인숭배의 수령 독재체제가 없어져 정치적 자유와 다당제에 의한 의회정치제도가 도입된다. 언론, 종교, 사상 및 양심의 자유 등이 보장됨으로써 북한 사회 전반에 걸쳐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또한 남한도 한반도가 하나의 정치경제체제로 진입함으로써 공간 인식 체계의 변화, 지역 문제, 새로운 정체성 문제 등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겪게 된다. 말하자면 통일은 새로운 건국, 제2의 건국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unification)과 통합(integration)은 다르다. 통일은 두 개의 국가가 하나 의 국가 로 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서로 다른 국가 또는 정치적 실체(political entity=polity)가 하나로 결합되는 정치적 국제법적 사건(event) 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통일로 우리는 비로소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one nation, one country) 상태를 달성하게 된다. 통합은 하나의 국민(one people) 형성을 뜻한다. 통합은 두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지금 한국 사회의 균열 단층선인 지역, 이념, 계층, 세대 간 갈등 의 측면에서 통합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국가 라는 분단 정세와 쟁점 분석 한반도 통일의 길: 정권진화와 연방제 통일 _ 조 민 31

구조 위에 하나의 국가, 두 개의 국민 의 분열 상태가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 경우 통합은 분열의 극복 을 통한 국민 통합을 지향하는 과제가 된다. 다른 하나는 남북 관계에 적용되는 통합론이다. 통일로 가기 위해 우선 남북한 간 상호 등질적인 부문간의 조화와 융합의 과정이 요구된다. 예컨대 경제 통합, 정치 통합, 사회문화 통합 등이 거시적 통합이라면, 법 행정 통합, 교육체계 교과내용 통합, 보건의료 통합, 과학기술분야 통합 등은 미시적 통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통일이 둘로 나눠진 민족, 국가, 국토가 하나가 되는 분단의 극복 이라면, 통합 은 한국 사회 내부의 분열의 극복 과 함께 남북 간 다양한 부문에서의 조화와 융합 을 의미한다. 통일이 정치적 법적 차원의 가부( 可 否 )의 문제이자 특정한 역사 적 시점이 명확히 결정되는 사건이라면, 통합은 각 부문의 내적 결합의 수준과 심화의 단계를 의미한다. 통일과 통합의 관계는 어떠한가? 우리는 지금까지 선( 先 ) 통합/후( 後 )통일 의 논리에서 한반도 통일 문제를 점진적 단계적으로 접근해왔다. 즉, (낮은 수준)통합 통일 (높은 수준)통합 의 차원에서 바라보았다. 이는 법 제도적(de jure) 통일에 앞서 먼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의 통합을 통한 실질 적인(de facto) 통일을 추진하자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남북 간 경제 부문 및 사회문화 부문의 통합을 위해 교류 협력이 중시되었고, 교류 협력의 확대 추진을 위해 한반도 평화 구축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그럼에도 한반도 평화 구축의 과제는 북한 핵문제로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사실 비핵평화와 남북한 공동 번영의 문제는 북한체제의 진정한 변화 없이는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북한체제의 진정한 변화 를 전제로, 또는 변화를 추동하기 위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 이 기대 되는 상황이다. 2.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생각을 바꾸면 새로운 길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 가능성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제 우리는 통일 문제를 한반도 문제 해결의 32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첫 머리에 놓을 필요가 있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평화는 절대 가치이다. 그러나 분단평화 는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다. 논리적으로 통일을 통한 평화 즉, 통일평화 가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를 보장 한다. 따라서 분단평화에서 통일평화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통일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 상태를 이루는 길이다. 분단 프레임에 갇힌 상태에서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 구축은 불가능하다. 분단 프레임을 극복하지 않으면 한반도 의 공고한 평화와 번영을 보장받을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의 대북 통일정책은 분단의 평화적 관리 즉, 분단평화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그러나 한반도 안팎의 국제정세의 근본적인 변화는 그처럼 안이한 대응으로는 미래를 열어가기 힘들게 만든다. 여기에다 지금 북한 문제는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심각한 우려 속에서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왔다. 북한체제의 미래 전망은 한층 불투명하고 불확실해 졌고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은 더 이상 강 건너 불 이 아니다. 북한 지배층은 북한 주민의 생존과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상실한 지 오래다. 북한 동포의 삶과 미래를 우리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 동서양 간 문명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세계사적 전환 과정 속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동아시아의 역학 구도는 한국의 존재 방식의 근본 적인 변화와 함께 새로운 대응 양식을 촉구하고 있다. 한반도가 두 개의 분단국가 인 상태로는 이 거대한 구조적 전환 과정에서 미래를 보장받기 어렵다. 섬 아닌 섬 에 갇혀 살아오면서 우리는 만주 벌판과 광야를 울리던 저 웅혼 장쾌한 기백을 잊고 살았다. 통일은 이 한 뼘 땅에서 왜소하고 억눌린 심성이 탁 트이면서 우리의 청년들이 대륙으로 세계로 나래를 활짝 펴고 비상( 飛 翔 )하는 길이다. 지금 한국은 새로운 국가 발전 전략의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하는 한반도와 동북아 경영 마인드 의 확립에서 시작된다. 한반도 동북아 경영 마인드야말로 21세기 한국의 비전과 세계전략의 초석이 된다. 셋째, 통일은 한국 근현대사의 역정( 歷 程 )을 한꺼번에 해소하는 일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역사도 없고, 이웃 나라를 괴롭힌 경우도 없는 평화민족 이다. 제국주의 침탈기의 근대적 국민국가 수립의 실패,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제 강점기 정세와 쟁점 분석 한반도 통일의 길: 정권진화와 연방제 통일 _ 조 민 33

의 치욕, 전쟁의 참화와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 을 이룬 우리가 다시 한번 세계 속에 우뚝 서는 길이다. 남북한 함께 손잡고 대동강의 기적 을 일구는 일이다. 통일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화합과 공동 번영의 장( 場 )이 된다. 21세기 평화문화 의 산실( 産 室 )이자 허브가 된다. 그리하여 통일한국은 독창적이고 고유한 한반도 문명 으로 인류사에 기여하는 선도국가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3. 어떤 통일인가? 한국의 잘 살아보세! 라는 집단열정(élan)과 북한의 고르게 살자! 라는 집단 의지(ethos)는 이미 세계사적 승부로 판가름 났다. 그렇다고 우리가 승리의 팡파르 를 울리면서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할 이유는 없다. 통일이 비록 지상명제( 至 上 命 題 ) 라고 하더라도 과연 어떤 통일인가 하는 문제가 보다 중요하다. 통일이 창조적 건설 이라면 이제 남북한 통일의 기본 방향은 고르게 잘 살아보세! 로 나아가는데 있다. 남북한 주민 모두의 집단 열정과 의지 위에서 그야말로 고르게(고루고루) 잘사는 나라 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통일은 장밋빛 전망으로만 접근할 수 없다. 통일국가의 형태, 사회운영 원리, 노동 문제, 그리고 북한의 소유제 해결 방식 등 어느 것 하나도 쉽지 않은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통일한국의 국가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 체계를 북한 지역에 적용하는 방식을 북한 주민이 그대로 수용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오랜 분단 시기 동안 형성된 북한의 독특한 정치문화와 자율성을 존중해야 함께 만드는 미래가 가능하다. 북한 지역에 남한의 정치 및 행정체계를 그대로 덮어씌우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는 자칫 정복의 또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3-1. 연방제 통일 * 통일한국은 중앙집권적 단일 국가형태를 지양해야 한다. 그동안 남북한 모두 34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형태를 유지해왔지만, 통일국가는 정치적 다원성과 자율성 이 보장되는 다양한 지방정부로 구성되는 국가형태가 바람직하다. 사실 지금까지 정치 경제 문화 인구 등 모든 부분에서 과도한 서울 중앙 집중 집권 체제는 지방의 소외와 배제 속에서 서울 중앙 권력의 장악을 위한 지역갈등 구조를 배태 시켜 정상적인 국가 운영의 한계를 가져왔다. 또한 남북한 생산력과 생활수준의 차이 등을 고려할 때 모든 법적 정치적 권리 의무가 동일하게 적용되는 방식의 통일은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중앙정부의 지원 조정 역할 속 에서 지역정부의 정치적 자율성과 창의적 경영을 존중하는 연방제 방식의 통일 국가형태가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통일을 계기로 서울 중앙 의 집중 집권 구조를 극복하고 중앙정부와 다양한 지역정부 간의 통일성과 다양성이 보장되는 한반도형 연방제 국가형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통일 방안 = 한반도형 연방제 통일 통일국가는 분권 자치 의 원리가 충분히 보장되는 다수의 지역정부로 구성되는 한반도형 연방제 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통일국가는 군사권, 외교권, 주요 내정권(거시경제 지표 관리, 전국 차원의 치안권 등)의 중앙(연방)정부에의 귀속을 전제로 지역정부 차원에서 분권과 자치의 원리가 구현되는 국가형태가 바람직하다. 남한의 17개 지방자치단체, 북한의 9~10개의 행정단위를 고려하여 지리적, 문화 전통적, 교통권 및 경제권을 기준으로 지역정부의 수를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역정부 수 조정의 경우 분단 이전의 전통적 지역 단위(8~ 13개)의 역사성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이처럼 통일한국은 하나의 중앙(연방)정부 와 더불어 다양한 지역정부의 자치와 자율성 하에서 지역정부 스스로의 책임 아래 국가발전을 추구해나가게 된다. 통일국가는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과 자원을 지역정부에게 배분하고 이를 통해 지역정부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북돋우게 된다. 연방국가인 통일한국은 동북아 평화질서 구도에 부합하는 평화국가이며 남한과 북한이 민주적 구조 속에서 정치적 통합을 순조롭게 이룰 수 있는 국가형태이다. 이러한 연방제 국가야말로 남한 사회의 지역적 정치균열 구조를 타파하고 북한 정세와 쟁점 분석 한반도 통일의 길: 정권진화와 연방제 통일 _ 조 민 35

사회의 자치 자율성을 존중하며 민주적 생활영역 보장을 확대시킬 수 있다. 통일한국은 2개의 정치체를 연방제로 통일하는 남북 연방제 를 지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연방국가가 2개의 지방정부로 이루어진 사례는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2개의 지역정부가 하나의 연방국가로 통합되는 것은 연방국가의 구성 원리에 비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방국가는 어느 경우에나 다수의(대개 10개 이상) 지방정부를 구성요소로 하는 바, 통일한국은 한반도 전역에서 전통적 경제 적 문화적 차원의 독자적 정치체를 구성할 수 있는 10개 이상의 지역정부로 구성 된 통일국가의 완성형으로서 연방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일국 양제 또는 특별자치 지역 설정 방안은 통일의 과도기적 형태로 궁극적인 통일국가형태는 아니다. 이러한 연방주의에 기반한 연방제 통일이 우리의 통일 방안이어야 한다. 통일한국은 한반도 남과 북의 다양한 지역정부의 대의민주주의를 활성화시켜 지역 사회의 정치적 통합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새롭게 재편된 지역정부 각각의 활기찬 에너지를 중앙(연방)정부로 통합하여 국력의 증진을 도모할 수 있다. 분권화 를 위해 남한 지역에서는 적극적인 시민 사회의 활동과 지방 정치문화의 육성이 필요하며, 북한 지역에서는 중앙(연방)정부의 민주화 지원정책과 함께 시민 사회의 육성을 위한 정부의 지원과 남한 시민단체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분권화 자체 가 통일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므로 상당 기간 동안 중앙정부의 조정과 지원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통일한국의 통일 헌법은 중앙정부의 지역정부에 대한 우위를 보장하면서 중앙정부와 지역정부의 역할을 조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3-2. 공정한 시장 경제와 소유권 문제 시장 경제의 문제로, 통일 한반도에 어떠한 시장 경제를 접맥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독일 통일의 경우, 동독의 사회주의 경제와 서독의 사회적 시장 경제 의 친화성이 양독 주민의 통합을 이끄는데 주요한 요인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서독의 시장 경제 이념보다 사회적 시장 경제의 실제와 복지 체계에 동독의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자유시장 경제의 한계와 36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여 시장 경제의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한다. 통일 준비로 노동 문제에 대한 대안 모색이 매우 긴요하다. 독일 통일은 신자유 주의 시대 이전에 이루어져 노동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지 않았다. 실업과 노동 문제는 사회적 안정과 통일의 성패를 가름하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통일이 블루 오션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 문제 해결의 전망을 보여야 한다. 더욱이 통일이 우리 국민 대부분의 기회의 배제 속에서 개발논리에 휩싸인 소수 대자본의 향연으로 귀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적극 불식시켜야 한다. 북한의 소유제의 근간이 하루아침에 흔들려서는 곤란하다. 토지, 기업소, 대규모 의 연합기업 등 생산수단의 국가적 소유와 농장의 협동적 소유 등의 북한 소유제도 를 해체 방식은 매우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예컨대 북한 인구의 대략 30%를 차지하는 농민층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은 협동농장의 공동소유 및 공동(협동적) 생산 방식에 기반한 공동의 이익과 가치 창출 모델로의 전환이 바람직하다. 북한 농업의 근간 즉, 협동적 소유와 공동생산 방식의 공동체적 근간을 허물지 않고 유지됨으로써 통일 과정에서 충격을 줄일 수 있고 농촌과 농업을 떠나 남한으로 대량 이주하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농업 분야에서 농장원들의 공동소유를 법 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사적 소유권 전환으로 인한 충격과 대다수 농민의 몰락과 이농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협동적 소유제도에 기반한 협동농장의 생산물은 공동체의 소비와 시장 판매를 통한 이익 창출을 도모할 수 있다. 이 경우 소유권의 매매 이전 권리의 행사는 한시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사유화 문제는 통일국가의 발전전략과 사회정의의 원리에 입각하여 특히,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수렴되 어야 한다. 사유화 방식이 급격히 추진된다면 엄청난 혼란과 함께 공공 자산은 대부분 재벌의 전리품이 되고 만다. 일정 기간 동안 국유화 원칙의 존중 위에서 단계적인 사유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유화 문제에 대한 독일식 방식이 한반도 통일 과정에 적용되어서는 곤란하다. 여기서 열거하지 않은 숱한 문제가 통일 과정에 쌓여 있다. 우리가 통일을 말할 정세와 쟁점 분석 한반도 통일의 길: 정권진화와 연방제 통일 _ 조 민 37

때 반드시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 사회의 국가운영 원리와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즉, 성찰적 접근 이야말로 통일 문제 이해에 대한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4. 어떻게 통일로 가는가? 우리는 평화적 합의 통일 의 원칙 위에 점진적 통일 을 추구하고 준비해야 한다. 평화적 합의 통일의 원칙에는 별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북한의 급변 사태에 의한 급작스런 통일 상황을 상정해야 할 경우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들이닥치는 통일 상황을 충분히 예상하고 대비해야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당장 하나의 국가체제를 구성하여 남북한 주민 모두 동등한 권리 의무의 주체인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되기에는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혼란이 따른다. 따라서 북한의 급변 사태는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러한 상황이 닥칠 경우 당장의 통합보다는 일정 기간 북한 지역을 특별행정구역 으로 삼는 완전한 통합의 과도기적 단계의 설정이 불가피해진다. 이런 측면에서도 합의 통일의 대원칙 위에 점진적이고 단계 적인 접근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통일이 평화적 합의 통일 이어야 한다면, 북한 주민의 결단(합의) 없이 통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와 함께 남한 국민의 통일의지 와 북한 동포들과 함께 살겠다 는 각오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통일의지를 드높이는 한편, 통일 담론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그와 함께 통일은 남한과 북한이 모두 함께 변화 해야 하는 바, 이에 남한 사회에서는 진영구도가 극복되어야 하며 북한에서는 정권 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4-1. 북한의 정권진화 북한은 계획과 시장 의 불안정한 타협으로 그럭저럭 진창을 걸어가듯(muddling through)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김정은 정권의 태생적인 불 38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안정 속에 세습통치자의 정신불안이 측근 처형과 단말마적 공포통치 형태로 드러 나고 있다. 북한 정권이 억압과 물리적인 통제력에 기반한 폭력적 독재체제로부터 경제회복 과 인민 생활의 개선을 통한 어느 정도 순화된 권위주의체제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이를 정권진화(regime evolution) 로 바라볼 수 있다. 이는 사실 독재체제로부터 곧장 민주주의체제로의 이행을 추구하기보다는 한 단계 진화된 권위주의체제 즉, 부드러운 독재로의 이행을 뜻한다. 현재의 북한체제는 조그마한 변화의 싹을 키우기가 무척 어려운 조건이며, 집단적 차원의 민주화 요구와 움직임 자체가 엄청난 희생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능하다. 북한 독재체제의 즉각적인 해체와 몰락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북한체제의 변화를 위한 제재 압박 전략은 북한에게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전략이다. 그럼에도 북한의 정권교체(regime change) 주장이 반복적으로 제기 되어왔으며, 최근에도 북한 붕괴론과 함께 정권교체 주장이 군사전략적 차원에서 제안되고 있다. 정권교체 논리보다 협상과 외교를 통해 점진적으로 정권을 변화 시키는 정권진화 방안이 합리적이며 현실가능한 방도이다. 여기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몇몇 국가의 성공적인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한 개발독재 패러다임은 북한 이 국가발전 전략으로 긍정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협력을 통한 변화 가 북한의 정권진화 를 끌어내며, 이는 평화적 체제이행의 한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상호 위협감축, 신뢰증진 및 상호신뢰를 통한 점진적인 체제 변화에 초점을 맞춘 정치적 안보적 접근으로 추진될 수 있다. 정권진화는 무엇보다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우호적이고 충분히 가능한 편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정권진화와 경제성장 간의 선후 문제가 제기 될 수 있으나, 양자는 상호 선순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정권진화는 경제성장 을 가능케 하고, 경제성장은 정권진화를 이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정권진화 없이 경제성장은 기대하기 힘들며, 경제성장 없이 북한의 정권진화를 유도하기 어렵다. 정세와 쟁점 분석 한반도 통일의 길: 정권진화와 연방제 통일 _ 조 민 39

북한의 정권진화는 두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다. 즉, 당 국가(정) 중심체제로의 이행, 그리고 선군( 先 軍 )정치가 선민( 先 民 )정치 선경( 先 經 )정치로 나아가는 데서 정권진화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정권교체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옵션이 아 니며, 더욱이 북한 붕괴론도 비약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정권 차원에서의 적절한 변화가 불가피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에 북한식 개발독재체제 로의 진전이 기대된다. 개발독재는 경제 발전과 국가번영을 앞세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고 민주주의를 유보하면서 산업화와 근대화 목표를 추진해 나가는 독재를 말한다. 개발독재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 시아 등 지구상에서 예외적으로 아시아 국가들에서만 성공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아시아적 현상이라고 하겠다. 북한은 껍데기만 남은 사회주의 체제 위에서 시장 논리에 따른 돈벌이와 투자 유치에 혈안이 되고 있다. 일인 장기집권에다 실질적으로 통치권의 부자세습 형태 를 보이고 있는 싱가포르의 경우, 세계로 열린 개방 경제를 통한 경제적 성공과 번영으로 국민은 자유의 유보를 받아들이고 있다. 싱가포르는 북한 통치층이 선군 정치를 국가경제의 회복과 인민의 삶의 개선을 위한 선민 선경정치로 진화해야 함 을 말해주는 좋은 사례이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 에 대한 전향적인 결단을 내리는 한편,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경제 개발 전략을 추구한다면 북한 식 개발 독재체제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정권진화의 방향은 다음의 <표>로 이해 할 수 있다. <표> 정권진화 수령 독재체제 개발독재체제 선군정치 군부 주도 경제 침체 핵 프로그램 고수 남북 단절 폐쇄체제 선민( 先 民 ), 선경( 先 經 )정치 당 정 중심 경제성장 핵 프로그램 타협 남북 협력 개방체제 40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북한의 정권진화를 위해서는 다음 두 방향의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선 김정은 정권의 실리 추구 분위기를 유도하고, 이에 협력해야 한다. 그와 함께 통일 대장정에 나서기 위해 통치엘리트층 대상의 과거 불문 원칙 의 선언이 필요 하다. 1 김정은 정권 실리 추구 유도 북한은 자원수출, 경제특구 및 관광특구, 인력송출 등의 방식으로 선군사상 선군정치의 수령 독재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체제유지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이러한 방식의 경제회복 전략을 추구하는 측면도 있다. 김정은 정권은 김정일 시대와는 달리 이념을 떠나 실리 추구 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 경제 성장에 대한 관심과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에 김정은 정권의 실리 추구 에 부응 하는 우리 정부의 전향적인 대응과 대북 협력이 요망된다. 요컨대 북한의 특구전략 남북공동 프로젝트 제의, 외자유치를 위한 협력, 시장 경제 학습 지원 등의 다양한 방식의 대북제의가 중요하다. 2 대화합 을 위해 북한 통치엘리트층 대상의 과거 불문 원칙 선언 북한 정권진화 유도 차원에서 통치엘리트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통일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을 해소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즉, 출구(exit)를 틔워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북한 통치엘리트층을 대상으로 통일 후 미래 보장을 선언 해야 한다. 통일 사회에서 분단 시대의 과거사 규명 으로 사회적 갈등이 초래되어 새로운 분열이 나타난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도적 사안을 제외하고, 체제 대결과 갈등의 시대였던 분단국가 상황에서 일어났던 과거사 는 묻지 않는다는 대승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에 우리는 지금부터 북한 통치엘리트들을 향해 통일 후 과거사를 일체 묻지 않는다 는 과거불문 원칙 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인도적 사안은 면책의 시효가 없으며 반드시 밝히고 책임을 묻는다는 원칙도 함께 선언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의 통치 자료와 기억들은 역사적 증거물로 보관 하되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밝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처럼 북한 통치 정세와 쟁점 분석 한반도 통일의 길: 정권진화와 연방제 통일 _ 조 민 41

엘리트의 변화에 대한 불안감과 통일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시킴으로써 통치엘리트 들의 대남 적개심과 두려움을 약화시키는 한편 대남의존을 유도하면서 통치엘리트 층의 수령체제에 대한 구심력의 완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북한 의 정권진화를 위해 통치엘리트층의 차원에서 남한을 비롯한 외부세계와의 연계를 주선하고 관계망을 심화시키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4-2. 남한의 진영구도 해소 북한과 통일 문제 인식에 대한 진보좌파와 보수우파의 진영 논리가 극복되어야 한다. 진보좌파는 북한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않고 핵 인권 세습 의 문제를 외부 (외세) 탓으로 보는 그릇된 인식과 그에 따른 비현실적인 논리를 지양해야 한다. 진보좌파는 문명 사회를 조롱하고 북한 주민의 신체와 인성 구조까지 피폐화시킨 데는 결코 외부의 탓이 아니라 철저히 김씨( 金 氏 ) 왕조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반외세 자주 논리를 과대평가하여 북한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북한에 대해 이러저러한 변명을 제공하는 우리 사회의 진 보좌파는 사실 평화 의 기치를 내세우면서 남한 주도의 통일을 거부하거나 유보 하려는 입장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크다. 반면, 북한 붕괴론의 입장에서 통일을 말하는 보수우파의 맹목적이고 매우 단순 한 발상도 희화적이다. 북한에 대한 배타적 증오심, 북한체제의 내구성에 대한 몰이해, 북한 붕괴의 다양한 경로와 엄청난 리스크에 대한 인식 부재 등 그야말로 아메바적인 사고 유형 즉, 단세포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보수우파 는 스스로 지배 정당성의 문제에 대한 도덕적 콤플렉스의 탈출구를 한국의 경제적 성공과 반공 반북 에서 찾아왔다. 따라서 북한의 실패와 위기가 곧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싸여 있지만, 복잡한 통일 경로와 대내외적 통일 상황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아메바=단세포적 사고 유형이 보수우파의 유전자적 속성이기도 하지만, 통일에 대한 구상력이 전혀 없는 까닭에 위기 상황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통일로 이끌기보다는 대개 대미 의존적 국방안보 강화 주장으로 귀결되고 만다. 더욱이 보수우파는 자유민주주의 42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와 시장 경제 에 대한 개념적 이해와 합의의 토대를 넓히려는 노력을 색깔론 으로 매도하는 관행을 아직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중도( 中 道 ) 통일론: 자유롭고 균등한 사회, 부강한 통일한국 북한의 미래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 더욱이 실질적인 핵보유국 북한은 우리에게 매우 위협적이고 위험한 실체로 부각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우리의 활로를 개척 하는 길이다. 요컨대 북한이 실패국가(a failed state) 이고 인권과 민주주의가 철저히 외면되고 있는 폭압체제라는 분명한 판단 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확신 속에 북한과 함께 미래를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의 진보좌파의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주장도 중요하지만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 인 대북 및 대외(대미)인식 위에 통일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와 더불어 보수우파가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대미 의존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한국 근현대 사의 역정( 歷 程 )에 대한 성찰적 입장에서 진정으로 북한과 함께 하는 통일 과정과 통일미래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상투적인 얘기로 들리겠지만, 합리적인 진보 와 성찰적인 보수 가 만나는 지점이 중도( 中 道 ) 이며, 이 중도 통일은 자유롭고 균등 한 사회에 부강하고 자랑스러운 통일한국으로 가는 길잡이가 된다. 5. 한반도는 하나다! 통일한국, 플랫폼국가(Platform State) 한반도는 하나다! 한반도 문제 즉,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미래는 한반도 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한다. 통일로 한반도는 하나가 된다. 한반도 통일은 동 아시아 지역에서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잔흔을 청산하는 일이며, 20세기 후반 냉전 체제의 잔영을 완전히 지우는 세계사적 쾌거가 된다. 통일로 한민족은 비로소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열어가는 중심국가로 우뚝 서면서 21세기 인류 문명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정세와 쟁점 분석 한반도 통일의 길: 정권진화와 연방제 통일 _ 조 민 43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평화와 통일의 문제는 한반도 내부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근대 이래 동아시아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의 판가름과 새로운 질서 형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19세기의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이어 20세기 일제 식민지 해방 후 한반도에서 벌어진 중국(소련)과 미국 간의 전쟁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의 세기적 패권 대결이었던 사실로 판명된다. 이처럼 한반도는 동아시아 의 지정학적 구도 속에서 자주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한 채 강대국 패권구도의 피동 적 존재로 전락해왔다. 더욱이 분단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간 한반도의 남과 북을 분할 통제(divide & control) 하는 방식으로 동북아 지역의 역학구도를 유지해 왔다고 하겠다. 따라서 분단 극복은 비자주적인 분할 통제 상황을 타파하고 한반도의 위상과 존재 방식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자기 운명의 주체로 우뚝 서는 길이 된다. 한반도 분단 = 동북아 분단, 한반도 통일 = 동북아 평화번영 한반도의 분단은 동북아의 분단을 낳았다. 한반도의 분단으로 동북아 지역은 한반도를 분단 벨트로 하여 진영 간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은 동북아 지역의 분단구조인 진영 간 대결구도를 해소하고 동북아의 공고한 평화와 공동번영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세계 4대 군사 강국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지역에서 대립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 한반도 통일로 동북아 대립 구도가 해소된다면, 한반도는 세계의 평화허브 (peace hub)가 되면서 21세기 세계사를 새롭게 쓰는 인류사적 위업을 이룬다. 우리가 앞서 이 길을 열어가야 한다. 통일로 한반도 문명이 온전히 이어짐으로써 동북아 문명의 올바른 회복이 가능 해진다. 통일로 한민족이 황하문명( 黃 河 文 明 )과는 다른 요하문명( 遼 河 文 明 )의 주역 임을 확인하고 그 위상을 회복함으로써 대중 관계에서는 중국 문명과는 다른 연원 의 새로운 인류 문명의 한 축을 부각시킬 수 있다. 그와 더불어 한반도 통일로 한국 고대 문명(가야, 백제, 고구려 문명)이 일본의 정치적 구심인 천황제와 대 44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화혼( 大 和 魂 ) 의 뿌리였다는 사실을 널리 인식시키는 한편 동아시아의 새로운 문명 창출의 주역이 됨으로써 한국 근대사의 왜곡과 치욕을 해소하게 된다. 향후 30년 의 역사를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통일을 국가전략 목표로 확립해야 한다. 분단국가 상태로 한국은 더 이상 발전이 어렵다. 또 분단국가로서는 중국과 미국의 분할 통제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통일을 국가전략 목표에 적극적 으로, 실천적으로 끌어넣어야 한다. 통일로 가는 길에 그리고 통일한국은 플랫폼 국가 로서 위상을 확립해야 한다. 플랫폼은 출발도 하고 도착도 하는 곳이다. 세계를 향해서 우리의 가치, 메시지 등을 내보내면서 동시에 세계를 품는 그런 플랫폼 국가 가 바람직하다. 동아시아 의 중심이 베이징이나 도쿄가 아니라 서울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는 지정학적 그리고 지경학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세계가 동아시아로 오는 이때, 중일 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상당한 레버리지가 있다. 적어도 한반도 문제 에서만은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하는데, 이는 경제, 국방안보, 문화 그리고 리더십 부문에서 강한(단단한) 중견국가 위상을 확립하는데 달려 있다. 한편 한반도 통일은 전 세계 약소국가와 고통 받는 인류에게 희망찬 복음이 될 수 있다. 식민지 경험, 전쟁과 폐허 속에서 그야말로 제국주의의 침탈과 강대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세계사의 객체로 피동적 존재에 불과했던 한반도가 세계 제국 의 틈바구니에서 우뚝 서서 세계 대국들의 화해와 협력의 장( 場 )이 되는 모습은 인류사적 쾌거가 될 수 있다. 통일국가는 대한민국 헌법정신인 자유, 평등, 평화, 인권, 민주, 복지 이념의 구현 위에서 21세기 인류사의 새로운 희망의 등대가 될 것이다. 한반도 통일은 국제정세의 변화를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분단평화 가 현상유지(status quo)론이라면, 통일평화 는 현상변경론에 기반하고 있다. 더 이상 기다리는 통일 이 아닌 다가가는 통일 을 추구해야 한다. 21세기 한반도 통일의 기회는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통일은 오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통일의 기회를 창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적극적으로 정세와 쟁점 분석 한반도 통일의 길: 정권진화와 연방제 통일 _ 조 민 45

통일의 기회를 만들고, 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우리의 의지와 역량으로 통일 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 이 부분은 필자의 통일비전과 통일담론의 확산 통일의 새벽이 동터오는가, (통일연구원 Online Series, 2014.03.01.)의 논지를 보완 발전시킨 글임. * 연방제에 관한 부분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통일협회 주최, 통일환경의 변화와 통일방안의 재검토 (2014.08.13.)의 발표글인 통일방안의 재검토와 연방제 프로젝트 새로운 통일방안 마련을 위한 시론 의 일부분을 인용하였음. 46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연구 동향과 서평 1 붉은 자본가들의 갈망: 중국 신흥 부유층에 대한 인류학 성과 Anxious Wealth 서평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2 소비에트 심성사의 한 차원 속삭이는 사회 1, 2 서평 홍 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3 미국의 재균형(Rebalancing) 전략의 한반도 시사점 Augmenting Our Influence: Alliance Revitalization And Partner Development 서평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4 미중 전략적 재보장과 한반도 Strategic Reassurance and Resolve: U.S. China Relations in the Twenty First Century 서평 황지환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5 21세기 세계질서와 미중 관계 World Order / China Goes Global: The Partial Power / Is the American Century Over? 서평 이지용 국립외교원 교수

연구 동향과 서평 붉은 자본가들의 갈망: 중국 신흥 부유층에 대한 인류학 성과 - John Osburg, Anxious Wealth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중국의 신흥 부유층: 돈과 도덕성 중국의 신흥 부유층은 무엇을 갈망하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이에 대해 답을 한다. 21세기 중국 신흥 부유층들이 돈과 함께 새로운 도덕적 우월성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 인류학 교수인 오스버그(John Osburg)의 Anxious Wealth: Money and Morality Among China s New Rich (2013)는 중국 시장 경제 발전 과정에서 성장한 신흥 부유층들이 누구이며, 어떻게 자본을 축적하고,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인류학적 성과이다. 이 책은 엘리트 네트워크, 부패, 불평등, 물질주의, 섹슈얼리티(sexuality), 남성 공모( 共 謀 ), 신뢰의 상실 등 탈(post)마오 시대 중국 사회의 주요 이슈들을 중국 쓰촨성( 四 川 省 )에 있는 도시 청두(Chengdu)에서 3년 이상의 인류학적 관찰을 통해 다루고 있다. 주요 연구 주제는 네 가지이다. 첫째, 청두 기업가들 사이의 남성성 (masculinity), 섹슈얼리티, 협력(alliances)이다. 둘째, 엘리트 네트워크와 부패 이다. 셋째, 청두 엘리트 사이에 소비, 지위, 인식이다. 넷째, 여성 기업가들과 뷰티 경제(beauty economy)이다. 연구 동향과 서평 붉은 자본가들의 갈망: 중국 신흥 부유층에 대한 인류학 성과 _ 박영자 49

인류학 연구 성과인 이 책은 미국 외교전문지 Foreign Affairs가 선정한 2013년 발간된 국제관련 최우수 저술 30권 중에 선정되어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인류학 분야에서는 이례적인 성과다. 정치학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국제관계학 및 지역학 연구 환경에서 최근 인류학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 배경은 탈냉전 이후 20년 이상 다양한 세계에서 뉴턴식의 정형화된 인과론이나 선형모델로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현상이 출몰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다양성 인지에 기반해 인간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인류학이 주목받고 있다.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인류학의 독창적 특징은 연구 대상보다는 연구의 시각이나 접근 방법에서 드러난다. 여타 근대 학문들은 인간의 신체 구조 기능 변화 병리 현상 및 정치 경제 사회 심리적 행태들을 각각 구별되는 독립적 분석 단위로 설정한 후 연구한다. 이에 반해 인류학은 인간과 인간 사회의 여러 현상 및 구조 들이 상호 분리된 별개의 것들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상호 연관된 것이라고 인식 하며 접근한다. 중국 변화의 총체적 접근(Holistic Approach): 인류학의 성과 20세기 중반 이후 사람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중국 사회의 구조 및 가치를 다룬 인류학적 연구 성과들이 발표되었다. 구조에 초점을 맞춘 대표 학자는 왕(David Wank)이고, 가치에 초점을 맞춘 대표 학자는 얀(Yunxiang Yan)이다. 왕은 중국 신흥 부유층의 사회적 관계망 및 자본축적 방법을 관료와 기업가들 간의 후견주의 (clientelism), 즉 후견 피후견 연계 모델(patron client tie model)로 그 실태와 구조를 분석하였다(David Wank 1995a, 1995b, 1996). 한편, 더 미시적 영역에 주목한 얀은 중국 사회구조 변화와 함께 드러난 일상인들의 의식 및 가치 변화를 가족과 일상 생활에서 펼쳐지는 사랑, 친교, 그리고 개인주의 양상을 중심으로 밝히었다(Yunxiang Yan 2003, 2009). 이러한 연구들은 1980~90년대에 초점을 맞추어 개혁개방 전후 중국인과 중국 사회의 행위 구조 및 가치에 대한 성과를 이루었다. 기존의 연구 성과들에 기반한 50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이 책은 구조와 가치라는 양대 무게 중심을 유지하면서 중국 신흥 부유층의 자본 축적 구조와 생활 양상 및 의식을 다루고 있다. 때문에 전환기 중국인과 중국 사회 를 다룬 총체적 접근의 인류학적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 인류학은 인간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연구 관점과 방법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 첫째, 총체적 관점이다. 인류학은 인간 및 사회의 여러 현상들과 분야들을 상호 관련된 하나의 총체로 인식하고 종합적으로 접근한다. 둘째,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다. 인류학은 인간 사회의 모든 현상과 측면 들에 대한 다양성을 전제로 연구한다.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체와 의식의 특징과 행태가 상이하고 사회적 문화적 양상들 또한 다양 하다. 셋째, 비교의 시각이다. 다양성을 전제하는 인류학의 특성은 인간과 인간 사회의 현상들을 비교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넷째, 상대성이다. 인류학은 다양한 인간과 사회 양상들을 연구할 때 어떤 것이 더 좋거나 나쁜지 또는 정상인지 비 정상인지 등을 평가하지 않는다. 도덕적 우열을 평가할 수 있는 절대적 가치나 기준이 있다고 인식하지 않기에 모든 양상을 상대적인 시각에서 파악한다. 이 때문 에 인류학은 가치에 대한 상대적 연구 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인류학이 여타 인문 사회과학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은 참여관찰을 기본으로 하는 연구방법이다. 인류학 연구방법의 두드러진 특성은 현지조사이다. 자료수집 및 기존 이론 또는 가설을 검증하는 수단으로 현지조사를 수행한다. 인류 학자는 실재하는 인간 생활영역의 생생한 공간 현장에 들어가 직접 참여하고 그들 의 생활을 체험하면서, 관찰 및 질문하거나 역사적 기록문서들을 발굴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료를 수집한다. 이러한 연구방법으로 인해 인류학을 현장과학이라고도 한다. 현지조사 과정에서 수집된 자료를 활용하여 한 인간 사회의 문화를 역동적 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기록에 초점을 맞춘다하여 민족지( 民 族 誌 )학으로 불리 기도 한다. 연구 동향과 서평 붉은 자본가들의 갈망: 중국 신흥 부유층에 대한 인류학 성과 _ 박영자 51

중국의 신흥 부유층은 누구인가? 이 책은 개혁기 중국의 신흥 기업가들, 국가기업 매니저들, 정부 관료들로 구성 된 엘리트 네트워크의 성장을 규명한다. 이들은 공산당 독재를 근간으로 개혁기 중국의 정경유착 과정에서 탄생한 붉은 자본가 들이며, 사적 기업 및 국가소유 기업 전체에 매우 다양한 개인들로 구성된 기업가들이다. 이들의 출신과 배경 또한 매우 다양하다. 신흥 부유층에 대한 경멸적 개념은 바오파후( 暴 发 户, parvenu)이다. 전형적 으로 농촌의 향진기업 발전을 배경으로 성장한 바오파후는 문화적으로 세련되지 못하고 교육수준이 낮으며, 그들의 부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적절하지 못한 취향과 천박한 개인 수준으로 상징된다. 이들의 성공에 대해서는 종종 운 좋은 기회 의 혜택으로 묘사되거나 파렴치한 부당 이득자로 평가되곤 한다. 붉은 자본가들 중에서는 전통적으로 개혁기 이전 중국 사회에서 부와 권력의 상층부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개혁개방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특권을 향유하는 이들이 있다. 중국 사회에서 이들은 구이주( 贵 族, nobility)로 불리는데, 유럽 귀족 계층에게 사용했던 것과 동일한 개념인 고결한 귀족(Nobility) 을 의미한다. 이들 은 대개 고위직 정부 관료와 그들의 가족으로 구성된다. 한편 이 책에서 주목하는 신흥 기업가들은 출신성분으로 보면 그다지 부유하지 않고 정치적 권력이 거의 없는 보통 가정 출신이다. 이 기업가들 대부분은 정치적 커넥션, 부유한 가계나 친척들, 영향력있는 친구들을 통해 장기 지속적 성공 이 라는 성장 배경을 갖는다. 특권층인 구이주와 대조적으로 이들 대부분은 스스로에 의해 그리고 사회 그룹 사이에 중상위 계층 또는 고액 연봉자 계층 으로 명명 된다. 중국의 신흥 부유층이자 붉은 자본가 멤버인 이들은 중국의 개혁개방이 진화 하는 과정에서 새롭고 강력한 그룹으로 성장하였으며 상업과 정치의 여러 측면을 주도하였다. 52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

어떻게 부를 축적하는가? 남성성, 섹슈얼리티, 그리고 협력 저자는 대개 남성들로 구성된 그들의 네트워크를 규명하였다. 중국의 부유층 으로 구성된 이 네트워크들이 남성 동맹의 형제애(brotherhood), 충성, 후견의 윤리에 의해 규율된 젠더화된 사회적 구성물(gendered social formations) 임 을 밝히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중국 신흥 기업가들 사이에 남성성, 섹슈얼리티, 협력을 키워드로 남성 공모와 젠더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이 남성 엘리트 네트워크들은 연회, 음주, 도박, 여성 호스티스들을 동반한 방탕 한 놀이 등의 레저 경험 및 사업상 주고받는 후견 피후견 공생 관계로 엮여 있다. 공적 영역의 비즈니스 관계 측면에선 경제적 이권과 정치적 권력이 공식 비공식 영역 모두에서 거래되거나 환류된다. 흔히 남성들의 사적 영역이라 칭해지는 방탕 한 유흥과 성(sex)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이들 남성 엘리트 사이에 마피아식 공모와 정서적 친밀감이 형성된다. 이들의 공 사 관계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이권 과 권력을 둘러싼 남성 연대 및 충성 복종 의식이 형성 및 강화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시작되어 80년대 이후 전면화된 중국 시장 경제 발전 과정에서 의 사회적 계층 재구성 관련 연구는 사회과학에서 많이 다루어졌고 상당한 연구 성과물이 발표되었다. 또한 일상생활과 가족생활의 변화 및 전환기 중국인들의 가치 혼란과 변화들에 대한 연구도 상당하다. 성과물들에 비해 저자는 중국 개혁기 재구성된 사회계층이 사회적 성( 性 )인 젠더(gender)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및 관계 들을 생산했고, 이데올로기와 관계들이 역으로 중국의 사회경제적 변화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붉은 자본가들의 부패와 꽌시 네트워크 이 책이 주목하는 중국 비즈니스 세계에서 꽌시( 關 係, connection) 의 진화와 관련해서 상당한 선행 연구가 있다. 그 관계 구조와 부패 양산의 특성 등에 대해 서는 이미 많은 성과물이 발표되었다. 기존 연구 성과를 총괄해 볼 때 부패와 후견 연구 동향과 서평 붉은 자본가들의 갈망: 중국 신흥 부유층에 대한 인류학 성과 _ 박영자 53

주의(clientelism)는 지대추구(rent seeking)와 깊은 상관성이 있다. 지대추구는 공적 부문을 통해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양상이다. 사회적으로 국가권력을 통해 부를 축적하려는 필요와 욕구가 강하게 드러나는 사회를 지대추구 사회 (rent seeking society)라 정의한다. 이는 국가권력이 주도하는 지대(rents)의 창출과 배분이 부를 축적하는 데 중요 한 기제로 작용하는 사회로 특히 권위주의 독재국가에서 흔히 나타난다. 지대추구 사회로 가장 널리 연구되어진 1980~90년대 중국의 경우, 각종 지대를 매개로 관료와 기업가가 후견 피후견 모델을 구축하고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만연한 부패 양상을 드러냈다. 이러한 양상이 꽌시로 상징되며 중국에서는 후견주의와 동일한 개념이다(Flora Sapio 2009). 개념적으로 부패는 표준적인 행동기준으로부터의 일탈을 의미하고 그 기준에는 공익, 공공의견, 법규범이 있다. 이 세 가지 기준은 중첩되는 부분이 상당하나 각각은 분석 초점이 상이하고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이 중 가장 보편적 기준으로 활용되는 것은 법규범이다. 법규범에 따르면 부패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즉, 본인과 가족, 친구 등의 사적(private regarding) 이득을 위해 공직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다. 대개 부패구조는 2명의 당사자 간 거래로, 1명은 공직에 있는 사람이고 다른 1명은 사적 영역에 있다(James C. Scott 1972). 부패는 후견 피후견 또는 공 사 영역 간 네트워크에 의해 작동된다. 그러므로 부패는 후견주의와 연계된다. 앞서 다루었듯 후견주의는 후견 피후견 연계 모델 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는 높은 지위(the patron)와 낮은 지위(the client)에 있는 사람들 간에 물질적 유인 선물 제공 서비스 수행 과정에서의 불 평등한 교환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후견주의는 물질 및 비물질적 이익과 혜택 을 얻기 위해 유지된다. 거래(교환) 과정에서 더 중요한 측면은 정치적 후견(the political support)이다. 피후견인은 이 후견 관계를 통해 정치적 보호, 특혜, 사회 적 위신 등을 획득할 수 있다. 후견인은 그의 개인적 권력 또는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 그 커넥션을 활용한다. 54 KINU 통일+ 201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