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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도 1> 불좌상, 4 세기, 하버드대학색클러미술관 (Rhie, Marylin M., Early Buddhist art of China and Central Asia 1, Leiden: Brill, 1999-2002, PL.1)
中國史硏究 第91輯 (2014. 8) 28 <도3> 장천리1호분 예불도 모사 <도2> 太安3年(457년)銘 석불좌상, 높이 41.5cm, 東京 개인소장 (松原三郞, 中國佛敎彫刻史論, 東京: 吉川弘文館, 1995, p. 27a) 우의 사자상은 그 자리 그대로이며, 라진 것은 중앙의 화 이 사라지고 박 산향로가 등장한 것이다. 중앙의 다 박산향로를 향해 인물이 양 에 서있고, 그 로 사자가 앞다리를 세우고 다리를 어 이 를 인 위 의 자세로 아 있다. 동일한 구성은 고구려 장 리 1 의 예불도에서도 찾아 수 있다(도3). 운 에도 적지 않은 수의 향로가 등장하는데, 역시 불 하단중앙이나 형 부조 하 단 중앙에 사되어 있다. 중앙의 다 박산향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공양자 이 늘어서 있기도 하고, 앞서 본 것처 좌우 한 의 사 자상과 함 구성되기도 한다(도4).7) 달 병 커 옆 란 뒤 붙 천 소 뒷 蹲距形 꿇 앉 호분 볼 강석굴 감 묘 엉덩 커 탑 란 쭉 럼 쌍 께 6) 中國 장의 금동불좌상을 가장 이른 예로 수도 있지만(조용중, 앞 의 글, 1994, p. 102의 57), 정 한 제작 시기를 알 수 고, 그 진위 여부를 단할 수 어 이 글에서는 제 한다. 7) 필자는 지상사, 사 이나 佛 像과 같은 각 조상 등이 서로 는 다르지만, 조각을 배치하는 리는 동일하다고 각한다. 다시 말해 2차 의 공 에 진 각 조상 는 3차 의 지상사 이나 사 을 하기 어 려운 제적 여 일 때 우 과적인 방 이며, 이 을 축 된 지상사 혹은 新田集 소 볼 圖 판 확 없 없 외 원 석굴 원 碑 종 원 간 새겨 경 종 건 비 매 원 효 비 규모 생 원 원 법 석굴 원 소 개착 원
佛 의 象臺座 香, 그 이미지와 함의 (林玲愛) 博山 29 爐 <도5> 박산향로, 하북성 滿城 劉勝墓, B.C.2세기 후반, 높이 26cm, 석가장 하북성박물관 (임영애) <도4> 운강석굴 제12굴 주실 남벽제2층서측 불감 ( 中國石窟 雲岡石窟 2, 平凡社, 1989, 圖9) 대좌 중앙의 박산향로는 기본적으로 한대에 유행하였던 상적인 박 산향로의 양 그대로이다(도5).8) 아 로부터 향로를 치는, 가 늘고 기, 그리고 양 동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지 차이가 있 다면 향로 주위로 연 이 어 르고 있다 지, 이 향로를 누 가가 고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향로를 머리에 이기도 하고, 양 으로 기도 하며, 어떤 우는 2 의 인물이 함 향로를 다. 사 성 성도 출 8 (490)의 불상 대좌에도 박산향로를 머리에 이고 있는 인물이 보인다(도6, 7). 이 인물은 우에 다 등장하는 것은 통 모 긴 둥 래 받 승반 山모 꽃 피 오 든 군 받 손 받 경 명 께 받든 천 토 齊 永明 年 모든 경 8) 사 이라고 보아도 방하다고 본다. (373-396) 이 지은 에 로 박산향로라는 이 시작되었고, 이후 6세기 전 子, 香 와, 香 의 기 등에 그 이 이 등장한다. 이처 박산향로 라는 이 정작 한 대 문 기 에서는 보이지 않고 있어 이 향로를 박산향로 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향로의 은 크게 중 하 지 않으며, 다만 이 향로의 특이한 형상이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에 관심 이 있다. 석굴 원 무 東晉 孝文帝 張敞 晉東宮舊事 반 梁 昭明太 爐賦 록 헌 름 비 銅博山 소 爐賦 럼 명칭 傅縡 博山 명칭 록 명칭 요 더 큰
中國史硏究 第91輯 (2014. 8) 30 아니며, 보된 대좌의 크기에 라 라진다. 확 따 달 <도7> <도6>의 하단 부분 본격적인 유행은 6세기부터이다. <도6> 석조상, 남조,제(永明8年 490년), 이때부터는 박산향로의 크기가 사천성 성도시 서안로 출토, 64 45.6cm, 져 방형 대좌에서 향로가 차지하는 사천성 성도시 문물고고연구소 (NHK, 中國文明展, 2000, 圖99) 중이 지며, 대좌 다 진다. 6세기 불상 대좌에는 남조와 북조를 론하고 나 히 박산향로가 였 다. 이 시기 불상 대좌에서 향로가 놓이지 않은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그 자가 많다. 이 중 특히 2012 하북성 장현 에서 대 출 된 상 을 주목할 필 가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기 이 있는 예가 많고, 이 이 동위, 북제의 수도인 에 인 한 사 로 6세 기를 대표하는 작 이라고 해도 이 기 때문이다.9) 역시 위 에 기, 연화문의 과 양 으로 구성된 박산향로가 대좌 중앙에 배치되어 있으며, 에서 어 른 연 이 향로를 고 있 커 비 커 마 막 숫 거 토 란 백옥 년 쓰 임 習文鄕 요 년 곳 鄴 품 둥 새겨 손색 爐身 山모 근 찰 없 승반 뚜껑 승반 피 오 꽃 감싸 9) 2012 에 출 된 성 불상을 조사할 수 있도 기 를 련해주 중국사 과 고고연구 慶 장 이 글을 빌어 사한 음을 전한다 中國 硏究 硏究, 佛 像 ( 2012-4), pp.3-6. 년 토 학원 업 소 柳 社會科學院考古 址北吳藏 敎造 록 柱 前소 회 마 님께 감 所 河北省文物 所 鄴城考古隊 埋葬坑的發現與發掘 考古 신 마 회 ; 河北臨漳縣鄴城遺
佛 의 象臺座 香, 그 이미지와 함의 (林玲愛) 博山 31 爐 <도8> 道智造釋迦像, 東魏 武定4年(546), 2012년 하북성 임장현 習文鄕 출토, 업성박물관 (임영애) <도9> 李迴香造太子思惟像, 東魏 武定2年(544), 2012년 하북성 임장현 習文鄕 출토, 업성박물관 (임영애) 기도 하다(도8, 9). 또 을 만 내 동자가 머리와 양 으로 향 로를 이고 있다(도10). 동일한 구성은 남조의, 代 불상이나 보 상에서도 찾아 수 있는데, 역시 단조롭게 여 만큼 은 두 몸 반쯤 민 손 齊 볼 梁 겨질 살 패턴 모
中國史硏究 第91輯 (2014. 8) 32 <도10> 대좌, 東魏, 2012년 하북성 임장현 習文鄕 출토, 업성박물관 (임영애) <도11> 석조상, 梁 中大通5年(533), 사천성 성도 만불사지 출토, 사천성박물원 (임영애) 유사하다. 대표적으로는 사 성 성도 만불사지에서 출 된 中大 5 (533)像이 있는데, 역시 동자형 인물이 머리에 다 박산향로를 이 고 아 있다(도11). 이 은 대부 하고 배가 한 전형적인 동 자형으로, 양대에 번역된 阿吒婆拘鬼神大將 佛陀羅尼經 에는 머리에 향로를 이고 공양하는 이 을 天人이라 하였다.10) 향로를 중앙에 대좌의 형식은 불상과 보 상을 불문하고 동일한 천 토 年 커 앉 분 통통 볼록 上 둔 란 살 梁 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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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史硏究 第91輯 (2014. 8) 34 대좌의 박산향로는 꼭 불상 대좌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어서 도교 의 像에서도 인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도교는 5세기 렵 교로 체계화되면서 노자의 이미지가 형상화되었지만, 역시 6세기에 가장 많은 예가 남아있다. 老君이라 고도 불리는 노자의 이미지는 부처 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머리에 관을 고 있고, 수 이 있으며, 른 에 부채 즉 麈尾를 었다는 정 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14) 이러한 상 을 극 하게 보여주는 예가 서 안 림박물관의 노자 가 像이 다.15) 북위 熙平2 (517)에 제작된 높이 2미터의 像인데, 앞면에는 노자의 상이, 면에는 부처의 상이 져 있다. 앞서 언급한 머리의 관과 수 의 차이가 었다면 노자 별하기 어렵다. 노자 <도12> 도교삼존상, 北周 天和3年(568), 상과 불상을 東京藝術大學大學美術館(大阪市立美術館, 와 부처의 대좌 부 에도 역시 동일 道敎の美術, 2009, 圖72) 한 박산향로가 져 있다. 도교상 만 단독으로 제작된 우에도 대좌에는 늘 동일한 박산향로와 사자가 있다. 동 예술대 장 天和3 (568) 老君像에도 머리에 관을 고 른 에 주미라고 불리는 부채를 노 아 역시 박산향로와 사자로 구성된 대좌를 인할 수 있다(도12). 碑 확 무 종 太上 쓰 염 오 손 황 명 비 석 碑 年 碑 뒷 새겨 염 없 판 분 새겨 경 경 오 학 소 年 石造 손 든 쓰 군 래 확 14) 도교의 像과 불교 像의 상 하는 특징에 관해서는 J mes, Je M., "S me Ic gr phic r ems i E r is - his Sc p res i hi (Archi es Asi Ar 41, 1989), p.72를 조하기 바 다. 15) S ephe Li e, ism he Ar s hi ( he Ar I s i e hic g, 2000), pp.166-168. 碑 o ono v t C of n a o 碑 a an ttl 통 P obl n a a ly Dao t Budd t 참 란 t Tao and t t of C na T an ul tu n C t n t tut na of
佛 의 象臺座 香, 그 이미지와 함의 (林玲愛) 博山 35 爐 <도14> <도13>의 하부 (임영애) <도13> 己丑銘 아미타불비상, 689년경, 높이57.5cm, 국보 제367호, 국립청주박물관 (임영애) 한편 일기 라의 불상에서도 동일한 구 성을 찾아 수 있다.16) 바로 연기지역의 연 화사 인 (678)불 상, 기축 불 상(689 ), 연화사 조칠존상인 데, 향로는 연 침과 기다 기, 그리고 화려하게 장식된 동체로 구성되어 있다(도13, 14). 앞서 5세기 중-후 의 장 리 1 예불 도 대좌에서도 동일한 구성이 있었지만, 이후 연기지역 불 상의 등장 이전까지는 공 으로 남아있다. 6세기 한국의 불교조각이 성하여 동 일한 형식의 대좌를 인할 수는 지만, 유사한 형식의 불 상이 존 재하였을 가 성이 있다. 중국에서 이러한 구성의 대좌가 유행하는 시 기가 6세기이며, 이미 7세기 에는 대부 삼단대좌로 전환되었지만 淳元 (683) 佛 像처 7세기 후 까지도 잔존했던 점을 상기하면 통 신 볼 무 명 비 명 꽃 받 란 비 년 석 둥 반경 천 호분 비 백 영 확 없 비 능 경 永 年 銘 碑 분 럼 반 16) 한국에서 불교조각에 표현된 향로에 주목한 연구는 두 편이 있다. 연, 羅 代 香 像 硏究: 에 나타난 浮彫를 중심으로 (고려대 교 대 사 위 청구논문, 2008), pp.1-144 지 이, 우리나라 기 불상의 기 과 그 의미: 불교조각에 나타난 향로를 로 하여 ( 인문사 과 연구 10-1, 2009), pp.43-58. 이 중 의 논문은 불교조각 내에서 향로가 놓인 위치 나 박산향로와 향로 등을 구 하지 않고 기술하고 있는데, 대좌에 놓인 향로 와 려나 天人이 에 쥐고 있는 향로를 두 같은 의미로 해 하기는 곤 하다고 각한다. 임소 新 下 학원 석 爐 圖 石造物 학 학 ; 강 초 능 근거 회 모 석 뒤 병 승 란 분 손 생 병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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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도 15> 화상석의서왕모부분, 後漢, 116 101cm, 銅山縣北洞山, 徐州漢畵像石藝術館 ( 中國畵像石全集 第 4 卷, 山東美術出版社, 2000. 圖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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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史硏究 第91輯 (2014. 8) 42 楊孟元 화상 를 주목할 필 가 있다. 문 입구에 해당하는 폭 37cm 가량의 에는 아 에 박산향 로 그리고 른쪽 상단에 곤륜산 위에 아 있는 서왕 가 있다. 동일한 구성은 섬서성 淸潤墓門 각에서도 찾아 수 있는데(도 16), 이는 박산향로 위쪽으로 곤 륜산에 아 있는 서왕 의 세계 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 할 수 있다. 서왕, 곤륜산, 박산향로와 관 련된 화와 앙은 랜 기 동안 중국인 의 음을 움직였 다. 특히 서왕 의 존재는 고대 중국인 에게 아주 중 하였다. 서왕 는 한때 도교의 교 체계 淸潤墓門의 좌우 화상석, 後漢, 에 포섭되어 도교의 으로 숭배 <도16> 130 32cm, 섬서성 淸潤縣 출토, 되기도 하였지만, 잘 알려진 대 淸潤縣文物管理所 ( 中國畵像石全集 第5卷, 山東美術出版社, 2000. 圖201-202) 로 남북조시대에는 불교가 성행 하고 동시에 도교가 체계화되면서 급속히 그 힘을 잃어갔다.40) 이후 서왕 는 불상에게 자 의 자리를 내어주게 되는데, 이러한 상 과 불 상 대좌의 박산향로는 관하지 않다.41) 앞서 보 던 것처 대좌 중앙의 박산향로는 도교, 불교를 가리지 석묘 요 석판 래 오 앉 모 석 볼 앉 모 석 모 신 신 오 간 마 모 요 모 종 신 모 신 황 무 았 럼 40) S z e hi, r sce e ce i i e ssi he Q ee M her he Wes i Me ie hi (S r i ersi ress, 1993), pp.32-43. 41) 애, 중국 기 불교조각의 남방루트 재검, 위의 책, 2008, pp. 25-48 결국 서왕 가 지녔던 권위와 지위는 지상에서는 불상으로 전이되었으며, 미술에서는 주도로 계 되어 그 주도적인 지위를 넘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한정희, 중국 화에 보이는 墓主 의, 미술사 연구 261, 2009, pp.115-116). u ann t t Ca 임영 ; 묘 ll T an n d val C nd n and D v n na tanfo d Un v 초 Pa on; T u n ot of ty P 토 모 분 묘 승 분묘 벽 겨 圖 변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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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史硏究 第91輯 (2014. 8) 44 Ⅳ. 삼단대좌로의 전환 앞서 기술한 대로 특히 6세기 불상 대좌에는 불상, 보 상의 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박산향로가 등장한다. 욱 흥미로운 점은 당대가 되면 대좌의 박산향로가 사라지고 중대가 잘 한 삼단대 좌가 출현한다는 것이다.44) 물론 당대에도 서안박물관의 불삼존상(도 17)이나 淳元 (683) 佛 像처 像 와 같이 여전히 대좌의 박 산향로가 등장하는 예가 잔존하기는 하는데, 이 부조 은 대좌의 박 산향로가 삼단대좌로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그 과정을 잘 보여준다. 박산향로가 삼단대좌로 바뀌게 된 배 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살 종류 더 록 永 年 銘 碑 럼 造 碑 경 <도18> 불좌상, 북제, H.85cm, 산동성 제성시 출토 (山口縣立萩美術館 浦上記念館, 山東省 石佛展, 2008, 圖48) <도17> 불삼존상, 7세기, 西安博物院 (奈良國立博物館, 大遣唐使展, 2010, 圖107) 44) 물론 7세기이후 당대 의 불상 불화 아 대좌, 그리고 송,, 금, 대 이후 불상의 대좌에도 드물지만 향로가 등장하는 예 이 있지만, 앞서 이 글의 각주 2에서 언급한 것처 다 의 화에 주목한 것이어서 이 후 의 몇몇 예 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 돈황석굴 및 래 원 요 럼 커 외 큰 란 흐름 변
佛 의 象臺座 香, 그 이미지와 함의 (林玲愛) 博山 45 爐 있겠지만, 당대에 독립적인 환조 불좌상이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 한 것과 관련이 깊다고 본다. 부조가 아닌 환조로 독립적인 불상을 제 작하게 되면서 삼단대좌의 형식을 롭게 고안해 내었는데, 이 때 그 이 본 뜬 것이 바로 방형대좌 중앙에 부조로 표현되던 박산향로의, 기, 의 삼단구성이 아닌가 한다. 산동성 제성시에서 출 된 북제의 불좌상(도18), 703-704 에 만 어진 서안시 보 사에 있는 불삼존상(도19, 20)은 연화삼단대좌와 박산향로가 기본적으로 동일한 구성 을 잘 보 여준다. 이처 곤륜산 [박산향로], 수미 산, 삼단대좌는 기본적으로 동일 한 구성이다. 고 대 중국인 은 곤륜산을 쉽게 를수 는이 상 세계로 인식 하였다. 삼단인 데다가 중단이 <도19> 불삼존상, 703-704, <도20> 賈士達等造阿彌陀 섬서성 서안시 寶慶寺, 개인소장 佛坐像, 上元元年(674), 잘 하여 쉽게 (奈良國立博物館, 大遣唐使展, 南宮后底閣村出土, 하북성 2010, 圖67) 석가장박물관 (임영애) 를 수 지만 그 에 도 하기를 했다. 곤륜산 이미지는 박산향로라는 기물로 재현되기도 하였고, 불교가 유입된 이후에는 불교의 수미산 이미지에 투 되기도 하였다. 고대 중국인 에게는 곤륜산도 수미산도 두 우 주의 축 이며, 세상의 중심이라는 공 관념이 보편화되어 있었기 때문 이다. 실제로 서왕 가 위치해야할 장 에 불상의 이미지를 대체한 후 한대의 수많은 예 은 이후 중국인 이 곤륜산과 수미산을 동일한 관 념으로 이해할 수밖에 었던 상 을 잘 알려준다.45) 새 승반 둥 爐身 토 년 경 임 럼 오 없 록 오 곳 달 없 염원 영 모 통 모 소 없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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