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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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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39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이승일 김대호 정병욱 문영주 정태헌 허영란 김민영 지음

4 발간사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동북아 세 나라는 오랜 옛날부터 독자의 문화를 꽃피움과 동시에 여러 면에서 문화를 공유해왔습니다. 한자라는 문자의 공 유뿐만 아니라 사상, 예술, 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교류의 심화가 그것을 웅 변해주고 있습니다. 교류의 역사는 각 나라의 문화적 특수성과 자부심 때 문에 때때로 갈등의 면도 나타났습니다. 역사가 현재의 필요에 의해 재조명되면 상대방의 역사를 훼손하고 민족 적 자존심까지 상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역사 갈등 등이 그 예입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잘못된 역사인식과 문제점을 직시하며 종합적 연구 조사와 체계적인 정책 개발을 수행함으로써 올바른 역사 이해를 도모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올바른 역사 이해야말로 동북아시아의 갈등을 해소하고 미래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할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5 수 있는 관건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됩니다. 이번에 간행되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는 이러한 동 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의 하나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일제 식민통치 방식에 대한 연구와 식민지 사회의 특징을 다룬 연구를 싣 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전자에 속하는 경성신사( 京 城 神 社 )와 일제의 조선 관 습조사 사업을 다룬 연구는 식민 지배자들의 조선사회 인식과 그것의 제 도화를 통해 식민지 지배의 성격을 고찰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편의 논문은 식민지 시대 조선인 노동자의 강제동원과 개별 기업의 책임을 다루 고 있습니다. 식민지 사회의 특징을 다룬 나머지 네 편의 글은 [식민지 근대 화론]으로 불리기도 하는 경제성장론 식민지상의 인력개발론, 식민지 인식, 생활수준 향상론, 근현대사 인식을 분석한 논문입니다. 이번에 간행하는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는 2007년도 재단에서 지 원한 연구수행 성과물의 일부를 모은 것입니다. 이 연구 업적을 출간함에 있어 무엇보다도 우리 재단의 연구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여 훌륭한 학문적 결실을 연구총서로 내어놓게 된 여러 연구자들에게 축하와 함께 깊은 감사 의 말을 전합니다. 이러한 연구는 단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 차원 을 넘어 우리 학계의 학문적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 학계의 학문적 역량이 동북아역사재단을 통하여 한층 높아지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와 같은 연구 성과가 더욱 알려지기를 바라 마 지않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성원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2008년 12월 12일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발간사

6 차례 책머리에 _ 10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이승일 I. 머리말 _ 13 II. 근대 일본 정부의 민사관례조사 사업 _ 16 III. 대한제국 법전조사국의 관습조사 사업 _ 22 IV.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법 제정과 조선 관습 _ 48 V. 조선민사령 제11조 [관습]과 법인화 _ 55 VI. 맺음말 _ 년대~1930년대 초 경성신사와 지역사회의 관계 김대호 경성신사의 운영과 한국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I. 머리말 _ 73 II. 경성신사의 초기 모습 - 남산대신궁의 설립과 경성의 초혼제 _ 78 III. 1910년대~1920년대 초반 경성신사의 운영과 씨자조직의 결성 _ 경성신사 운영 주체의 변화 _ 88 6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7 2. 경성신사 씨자조직의 결성과 조선인 흡수 시도 좌절 _ 경성신사에서 지내는 여러 제사 _ 경성신사 마츠리의 시작과 확대 _ 신사의 운영 경비에 대한 조선인들의 반발 _ 126 IV. 1920년대 중반~1930년대 초 경성신사의 확장과 조선인의 포섭 _ 조선신궁의 건립과 경성신사의 위상 조정 _ 경성신사의 적극적인 조선인 흡수 _ 국혼신의 합사 _ 경성신사의 경내 확장 _ 경성신사에 대한 기타 지원 _ 170 V. 맺음말 _ 174 경제성장론의 [인력개발] 인식 비판 정병욱 I. 1994년 역사학계의 토론회 - 문제의 소재 _ 성장이냐 손실이냐 _ 성장의 양면성과 해방 후 연속성 _ 개발의 주체와 관점 _ 또 다른 [문제의 소재] _ 194 II. 인력개발론의 변화 - 안병직을 중심으로 _ 사라진 것 - 왜곡과 계급의식 _ 새로운 것 - 소농사회론 _ 203 III. 단선적 기원론의 문제점 - 에커트를 중심으로 _ 205 IV. 최근의 비판을 보면서 - [자기개발]의 문제점과 대안 모색 _ 209 차례 7

8 [경제성장론]의 식민지 인식에 대한 비판적 검토 문영주 I. 머리말 _ 215 II. 경제성장과 문명론 _ 식민지 경제의 성장지표 _ [탈민족 문명사]론 _ 224 III. 식민지 현실의 양면 _ 통계의 주관성 _ 경제성장의 이면 _ 229 IV. 맺음말 _ 235 경제성장론 역사상의 연원과 모순된 근현대사 인식 정태헌 I. 머리말 - 근대주의 역사인식과 식민사학의 친연성 _ 245 II. 자본주의와 식민지자본주의의 차이 _ 근대국가, 자본주의 성립의 기본 조건 _ 국가 없는 자본주의, 식민지자본주의 _ 식민지 인식 부재의 경험, 전향과 동화 _ 257 III. 경제성장론 식민지상의 [근대문명론] - 국가인식의 결여 _ 국가와 민족을 배제한 [근대적 개인]론 _ 신고전파적 시장만능론 _ 변용된 정체성론@타율성론 _ 270 IV. 경제성장론의 허구적 대한민국 [정통론] - 국가론의 돌출 _ 276 V. 맺음말 _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9 생활수준 향상론 비판 허영란 생활과 경험이 없는 생활수준 논의의 한계 I. 머리말 _ 287 II. 생활수준 향상론의 함의 _ 289 III. 생활수준 비교의 거시적 기준 _ 293 IV. 생활수준 논쟁 _ 298 V. 거시적 추계와 역사적 사실성 _ 305 VI. 생활 속의 식민지 경험 _ 310 VII. 덧붙이는 말 _ 313 식민지 시대 조선인 노동자의 강제동원과 개별 기업의 책임 김민영 메이지광업(주)의 사례 I. 머리말 _ 319 II. 강제동원과 기업의 책임 _ 야마다 쇼지의 국가 및 기업 책임론 _ 고쇼 다다시의 기업 책임론 - 미불금과 공탁문제 _ 322 III. 메이지광업(주)의 강제동원과 기업 책임 _ 니시키 탄광의 강제동원 _ 히라야마 탄광의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 _ 해방 전후 히라야마 탄광의 조선인 강제동원 _ 337 IV. 맺음말 _ 347 Abstract 351 찾아보기 362 차례 9

10 책머리에 역사학은 시대적 환경의 산물이다. 이 때문에 역사학자로서 현실을 어떻 게 보고 그에 따른 문제의식을 어떻게 설정하는가 하는 자문을 늘 하게 마 련이다. 19세기 말 이래 늘 그러했지만 특히 21세기 들어 한반도를 둘러싼 국내외적 환경이 쉽지 않다. 급격한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비축해가는 중국의 신 ( 新 )중화주의 대두, 일본 사회의 고질적이고 뿌리 깊은 우익 내셔널리즘의 파고는 21세기 동북아의 미래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미국발 금융경제의 위기는 세계경제의 위기로 번져 외풍에 취약한 한국 경제 역시 짙은 위기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현실적으로 공존과 평 화의 역사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가 아닐 수 없다. 20세 기 전반기 침략과 전쟁이 지배했던 동북아 역사의 실패를 통해 오늘과 내 일을 기획해야 하는 시점이다. 10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11 이 책은 2007년 동북아역사재단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연구를 하나로 묶어낸 성과이다. 게재된 7편의 논문은 일제 식민통치 방식에 대한 연구와 식민지 사회의 특징을 다룬 연구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전자에 속하 는 경성신사( 京 城 神 社 )와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을 다룬 연구는 식민 지배자들의 조선사회 인식과 그것의 제도화를 통해 식민지 지배의 성격을 고찰한 글들이다. 후자에 속하는 5편의 글은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불리 기도 하는 경제성장론, 식민지상의 인력개발론, 식민지 인식, 생활수준 향 상론, 근현대사 인식을 분석한 논문이다. 역사인식은 당연히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단순히 과거사 평가의 차이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결국 오늘과 내일의 동북아 평화에 반하는 식민지 시대 인식까지 거침없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이 책의 연구들이 지향하는 바는 단순히 한국을 침략하고 수탈하고 전쟁에 동원한 일제의 만행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근대정신 에 입각해보더라도 인권과 평화, 민족자결 정신을 짓밟은 과거의 야만적 군 국주의 행위를 자발적으로 반성하고 조사하거나 인근 국가에 진정성을 갖 고 사과한 적이 없다. 제국과 식민이라는 20세기 전반기의 침략과 전쟁 경 험을 한일 양측이 모두 역사화하지 않는다면 공존과 평화를 지향해야 하 는 21세기 한일관계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이 책의 의의 역시 20세기 전반기의 불행한 한일관계를 현재로부터 역사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이를 통해 공존과 평화의 한일관계학을 정립하려는 시도라는 점에 있다. 이 책의 연구 지원에서부터 출판에 이르는 모든 수고를 안은 동북아역 사재단에 감사드린다. 2008년 11월 18일 필자들을 대표해서 정태헌 씀 책머리에 11

12 J a p a n e s e C o l o n i a l R u l e a n d { C o l o n i a l M o d e r n i t y }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이승일 국회기록보존소 기록연구사 I. 머리말 II. 근대 일본 정부의 민사관례조사 사업 III. 대한제국 법전조사국의 관습조사 사업 IV.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법 제정과 조선 관습 V. 조선민사령 제11조 [관습]과 법인화 VI. 맺음말

13 I. 머리말 이 연구의 목적은 1908~1910년 사이에 법전조사국( 法 典 調 査 局 )이 실시 한 한국 관습조사 사업의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일제에 의해 조사된 [관 습]의 성격을 밝히고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법 정책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 쳤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 이 당시의 관습조사 사업은 단순히 사회조사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일제의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고 한 국인에게 적용될 한국 법전 편찬을 위해서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특히 관습조사 사업에 의하여 조사된 일부의 [관습]은 식 민지 이후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법인( 法 認 )되었고 식민법 제정에서도 중 요한 역할을 하였다. 현재까지 통감부 시기의 관습조사 사업에 관한 연구는 역사학계에서 는 이루어진 바가 없고 법학계에서 현행 민법의 연혁을 조사하기 위하여 진행되었다. 법학계의 연구는 조선총독부가 1938년에 관습조사 사업을 모두 마치고 작성한 결과 보고서인 조선구관제도조사사업개요( 朝 鮮 舊 慣 制 度 調 査 事 業 槪 要 ) 와 예규( 例 規 ), 통첩( 通 牒 ), 조선고등법원판례 등 에 의존하고 있다. 이 자료들은 조선 관습에 대한 법전조사국과 조선총독 윤대성(1991a), 일제의 한국 관습조사 사업과 민사관습법, 논문집 13-1, 창 원대;윤대성(1991b), 日 帝 의 韓 國 慣 習 調 査 事 業 과 傳 貰 慣 習 法, 韓 國 法 史 學 論 叢 :박병호 교수 화갑기념(2), 박영사;윤대성(1992), 韓 國 不 動 産 ニ 關 スル 調 査 記 錄 의 연구, 논문집 14, 창원대학교;이상욱(1986), 韓 國 相 續 法 의 成 文 化 過 程, 경북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鄭 鍾 休 (1989), 韓 國 民 法 典 の 比 較 法 的 硏 究, 創 文 社 ;정긍식(2002), 韓 國 近 代 法 史 攷, 박영사; 朴 賢 洙 (1993), 日 帝 의 朝 鮮 調 査 에 관한 硏 究,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13

14 부의 최종적 결과만을 기록하고 있을 뿐, 관습이 조사되는 과정과 조사된 관습이 관습법으로 정립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기존의 연구에서는 관습조사 사업의 피조사자 규모를 알 수 없었고, 피조사자의 계층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기초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법전조사국 및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각종 조사사업의 객관성과 그 성격을 판단하기 어렵다. 이 연구에서는 관습조사 사업의 과정과 방법 등을 중심으로 한국 관 습조사 사업의 성격을 밝히고, 조사된 관습의 성격을 분석하도록 하겠다. 이를 위하여 대한제국의 사법제도 개혁과 한국 법전 편찬을 주도하였던 우메 겐지로[ 梅 謙 次 郞 ]의 입법 구상을 파악하려고 한다. 통감부가 추진하였던 한국 법전 편찬 구상은 조선이 완전 식민지로 편 입되면서 좌절되었으나 관습조사의 기법과 조선 관습의 민사법으로의 전 환 구상은 여전히 유효하였다. 이와 같은 통감부 시기의 민사법 구상은 조 선총독부의 초기 구관주의적( 舊 慣 主 義 的 ) 민사법 구상으로도 연결되었다. 이와 같은 연구를 위해서는 새로운 사료( 史 料 )의 발굴과 해석이 필요 하다. 특히 한국 관습조사 사업을 비롯하여 1907년 이후 한국 사법제도 개편에 관한 주요 법령을 기안( 起 案 )한 우메 겐지로의 문서들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일본 법정대학( 法 政 大 學 )에 소장되어 있는 韓 國 立 法 事 業 擔 任 當 時 ニ 於 ケル 起 案 書 類 는 매우 방대한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기안서류에는 우메 겐지로가 직접 필사한 관습조사 문제를 비롯하여 1906년부터 1910년까지 우메 겐지로가 작성한 한국 정부의 각종 법률안 초안이 실려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조사사항], [토지, 건물의 매매 교환 양여 전당에 관한 법률], [토지건물 소유권 증명규칙], [부동산법 요지], [재 판소 개량 의견 요지], [재판소의 구성], [한국에서의 재판제도 개정에 관한 14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15 비견], [사법권위임협약의 실시에 관한 비견], [법률조사국 관제], [통감부사 법청 관제] 등 모두 30건이 넘는 중요 문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문서들 을 통하여 1906년부터 1910년 사이에 공포된 한국 정부의 법률 및 칙령 안들이 모두 우메 겐지로의 손에서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우 메 겐지로가 작성한 법률안 초안과 공포된 법률안을 세밀히 비교 검토하 면 좀 더 유의미한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선행 연구에서 이용하지 못한 규장각, 국사편찬위원회 소 장 관습조사보고서( 慣 習 調 査 報 告 書 ) 를 직접 이용하여 식민지 관습조사 사업의 구체적 양상을 살피고자 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1910년에 간행된 관습조사보고서 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으나, 1910년의 관습조사보 고서 는 전국 각지의 지역 조사보고서를 편찬한 결과이다. 따라서 각 지 역의 조사보고서와 비교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지역 조사보고서를 검토 하게 되면 조사기법과 피조사 대상자들의 사회적 신분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조사된 관습이 법적인 관습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전조사국에 의하여 조사된 관습은 식민지 이후에도 조선 민사령에서 일부 법인되었다. 그리고 조선민사령 제10조~제12조는 조선 관습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조선민사령 제11조와 제12조 등 의 조선 관습을 인정하는 조항이 어떻게 제정되었고, 또 그러한 인식은 어 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15

16 II. 근대 일본 정부의 민사관례조사 사업 일본 정부는 근대화를 추진하고 서구 열강과 대등한 국제적 지위를 획득 하기 위하여 시급히 추진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불평등한 조약관계를 철 회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일본 정부가 추진한 불평등조약 개정 교섭은 영 사재판권의 철폐와 관세 자주권의 회복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열강 들은 영사재판권 철폐 조건으로서 일본에 법전 편찬과 재판제도의 정비 를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사법제도 개편과 근대적 법전 편찬에 국가적 역량을 투입하였다. 일본 정부의 근대적 법전 편찬의 노력은 1870년대 초 반부터 나타났다. 1870년(명치 3년) 10월 에토 신페이[ 江 藤 新 平 ]가 구미 열 강과 병립하여 영사재판권을 철폐하기 위하여, 태정관 제도국에 민법회 의를 설치하고 미쓰쿠리 린쇼[ 箕 作 麟 祥 ]가 번역한 프랑스 민법을 기초로 하여 민법 편찬을 개시하였다. 제도국이 1871년(명치 4년) 8월에 좌원( 左 院 )에 합병되기까지의 기간에 민법 결의 79개조가 성립하였는데, 그 내용 은 프랑스 민법 제1권 사권( 私 權 )의 향유, 상실 및 제2권 신분증서의 부분 에 해당하는 것이다. 민법 결의에서 중요한 내용은 신분증서 제도이다. 1871년에는 이미 호적법이 제정되어 대장성 호적료( 戶 籍 寮 ) 관할하에서 이른바 임신호적( 壬 申 戶 籍 )이 작성되고 있었다. 이에 비하여 민법 결의의 牧 英 藤 原 明 久 편(1993), 日 本 法 制 史, 靑 林 書 院, 259~260쪽. 石 井 良 助 편@ 丘 秉 朔 역(1984), 일본의 근대화와 제도, 교학연구사, 210쪽. 牧 英 藤 原 明 久 편(1993), 앞의 책, 332쪽. 川 島 武 利 谷 信 義 (1958), 民 法 ( 上 ), 講 座 日 本 近 代 法 發 達 史, 勁 草 書 房, 6 쪽. 16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17 신분증서 제도는 국민을 [가( 家 )] 단위가 아니라 각 개인을 단위로 등록하 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일본의 현상에 비추어 지나치게 개인주 의적 성향이 심한 것으로 판명되어 일본 정부 내에서도 상당한 논란이 있 었다. 결국 1873년 10월에 에토 신페이가 실각하면서 이 법전 편찬 사업은 중단되었다. 이후에도 프랑스 민법전을 모방하여 민법 초안이 작성되기도 하였고 일본 전통의 관습을 반영한 민법전이 구상되는 등 다양한 시도들 이 있었다. 1875년에는 좌원이 폐지되어 민법전의 기초를 사법성이 담당하게 되 었다. 같은 해 8월에 사법성에 민법과가 설치되었고 특히 1876년 5월에 사 법성 고문이었던 힐(G. W. Hill)의 건의를 수용하여 민법전을 기초하기 위 한 준비 작업으로 일본 전역에 걸친 관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 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1876년 5월에 지방관례취조국( 地 方 慣 例 取 調 局 )을 설치하여 이쿠타 구와시[ 生 田 精 ], 森 敬 斐 가 민사관례의 조사를 담당하도 록 하였다. 출장관이 조사결과를 보고하면 이쿠타 구와시, 森 敬 斐 가 이를 취사선택하여 항목별로 편찬하는 작업을 거쳐서 1877년 5월에 민사관 례유집( 民 事 慣 例 類 集 ) 이, 1880년에는 전국민사관례유집( 全 國 民 事 慣 例 類 集 ) 이 사법성 장판( 藏 版 )으로 간행되었다. 민사관례 조사와 함께 1876년(명치 9년) 6월부터 민법전의 조문 기초가 개시되었다. 이때 작성된 민법 초안은 사법경에게 제출되었는데, 프랑스 법 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시민적 성격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민적 井 ケ 田 良 治 外 (1982), 日 本 近 代 法 史, 法 律 文 化 社, 71~72쪽. 정긍식(2002), 앞의 책, 224쪽.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17

18 성향의 민법 초안은 결국 폐기되었다. 초안이 폐기된 후 다시 1880년에 원 로원 내에 민법편찬국이 설치되었다. 민법편찬국은 4개의 과가 있었다. 제 1과는 부아소나드(Boissonnade)가 지은 프랑스어 초안을 일본어로 번역 하는 것, 제2과는 편찬에 필요한 어휘의 편성, 즉 적당한 번역어를 창조하 는 것, 제3과는 법조의 일본문을 수정하는 것, 제4과는 일본의 관습을 조 사하는 등의 사무를 맡았다. 관습조사에 관해서는 이미 1878년(명치 11년) 초안 작성과 병행해서 일본 전국의 관습을 조사하게 하고 1877년에 민사 관례유집 을 출판하였으나 제4과는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재산법에 대해서는 외국과의 거래 및 조약 개정의 필요와 국내에서 자 본주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 태서주의( 泰 西 主 義, 서양주의)를 취하게 되 었고, 1876년 이래로 사법성의 외국인 고용인이었던 부아소나드에게 기초 를 의뢰하였다. 이에 반하여 신분법은 일본의 풍속과 습관에 근거해 제정 하기로 하여 일본인이 기초하기로 하였다. 부아소나드 중심의 민법전은 여러 차례 수정되어 1886년에 물권, 인권 및 제3편 제1부의 특정명의 획득법이 내각에 상정되었으나 초안의 상신과 동시에 민법편찬국이 폐지되어 그 사무는 사법성에 이관되었다. 이후 법 전 편찬은 법률취조위원회가 담당하여 결국은 이른바 [구민법( 舊 民 法 )]이 1893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구민법 내용이 당시 일본 사회의 수준에 비추어 보면 너무나 민주적, 급진적이었다고 비판받았고, 호즈미 노부신게 [ 穗 積 陳 重 ]는 {민법이 나와서 충효가 망한다}라고 하는 등 반대 의견이 강 하게 대두되었기 때문에 법전 편찬 논쟁을 거치면서 부아소나드 민법전은 김성수(1998), 日 本 民 法 立 法 過 程 에서 브와쏘나드에 관한 연구 序 說, 論 文 集 18집, 경찰대학, 1764~1765쪽. 18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19 결국 사장되었다. 결국 새로운 민법전은 독일 법전의 영향을 받아 제정되었다. 따라서 일 본의 근대 민법은 부아소나드로 대표되는 프랑스 민법과 독일 민법의 혼 합계수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약 5개월간 시행된 일본의 전국 적 민사관례조사( 民 事 慣 例 調 査 )와 상사관례조사( 商 事 慣 例 調 査 )의 결과가 어떻게 반영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일본민사관례유집( 日 本 民 事 慣 例 類 集 ) 과 일본상사관례유집( 日 本 商 事 慣 例 類 集 ) 10 은 모두 사법성에서 편찬한 것으로 다키모토 세이이치[ 瀧 本 誠 一 ]가 교열을 하여 도쿄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은 해제, 범례, 본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범례에는 조사지역과 조사자, 진술자가 모 두 기록되어 있어서 근대 일본의 관습조사 사업의 양상과 그 내용을 파 악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일본민사관례유집 11 해제에는 본서가 법전 편찬의 참고자료로 조사 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어, 구관조사의 결과가 일본 민법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미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민사관례 조사는 민법 편찬 관계 위원 이 각 부현에 순회 출장을 가서, 지방관이 미리 선정한 구관고례( 舊 慣 古 例 ) 에 암숙( 暗 熟 )한 민간의 고로( 古 老 )를 직접 면담하고, 민사관례에 대하여 위원이 일일이 그들에게 심문( 尋 問 )하여 얻은 결과를 찬집( 纂 輯 )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범례에서는 가장 중요한 조사지역의 선정 기준을 밝히고 있다. 인구 石 井 良 助 편@ 丘 秉 朔 역(1984), 앞의 책, 206~214쪽. 10 日 本 民 事 慣 例 類 集 과 日 本 商 事 慣 例 類 集 은 1880년(명치 13년)에 간행되었 으나 판매본이 아니었기 때문에 1932년에 재간행한 것이다. 11 司 法 省 (1932), 日 本 民 事 慣 例 類 集, 白 東 社.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19

20 가 많으면 관례도 역시 다양하기 때문에, 각국( 各 國 ) 구성( 舊 城 ) 소재의 군 ( 郡 ) 등 호구가 조밀한 지역에서 민사관례를 채록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신 현( 新 縣 )이 설치된 지역 및 개항지와 같이 현재 호구가 조밀하다고 하여도 여러 지방의 인민이 새롭게 모여서 구관고례가 없는 경우에는 생략하였다. 일본의 민사관례 조사지역은 인구가 조밀하다고 하여 선택된 것만이 아 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인구가 집중 거주하여 구관고례를 형성한 지역 이 선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홋카이도[ 北 海 道 ]는 2개 군만을 조사 하여 채록하였고, 오키나와[ 沖 繩 ]는 후일에 채록하기로 하여 당시 구관조 사에서는 생략하였다. 당시에 수행된 구관조사 방법의 한계도 지적하고 있다. 즉, 진술인은 조 사지역의 지방관이 고례에 암숙한 사람 중에서 미리 선정해두었으나 순회 위원이 1개 지방에 4~5일밖에는 체류( 滯 留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당 구관 의 사정을 완전히 파악하여 채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의 민사관례 조사가 매우 짧은 기간에 수행되었고 조사 인원과 피조사자(진술자)의 수도 매우 적었던 것과 관계가 있다. 표 1에서 알 수 있듯이 근대 일본의 민사관례 조사는 한국에 비해서 조사지역이 많았으나 상대적으로 조사기간은 짧았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정부의 법전조사국에서는 모두 86개 군을 대상으로 약 2년 7개월간 진행 하였으나, 일본은 187개 군을 대상으로 1876년 5월에 시작해서 같은 해 11월에 종료하였으므로 약 7개월 동안 조사를 수행한 셈이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총 562명을 조사하였다. 조사대상 군이 모두 187 개 군이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보면 1개 군에 약 3명의 피조사자가 배정되 었음을 알 수 있다. 민사관례의 조사결과는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는데 조사보고서는 질문 20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21 표 1 _ 일본 민사관례 조사지역 및 진술자 상황 畿 內 東 海 道 東 山 道 總 數 國 數 5 國 數 1 國 數 7 郡 數 27 北 海 道 郡 數 2 西 海 道 郡 數 23 陳 述 人 數 60 陳 述 人 數 3 陳 述 人 數 44 國 數 21 國 數 11 國 數 3 郡 數 43 北 陸 道 郡 數 19 山 陰 道 郡 數 9 陳 述 人 數 141 陳 述 人 數 78 陳 述 人 數 31 國 數 12 國 數 2 國 數 12 郡 數 28 山 陽 道 郡 數 4 南 海 道 郡 數 32 陳 述 人 數 113 陳 述 人 數 10 陳 述 人 數 82 총 郡 數 187 총 陳 述 人 數 562 日 本 民 事 慣 例 類 集. 표 2 _ 일본민사관례유집 의 구성 제1편 인사 제2편 재산 제3편 계약 제1장 신분, 제2장 출산, 제3장 혼인, 제4장 死 去, 제5장 실종, 제6장 주소, 제7장 친족, 제8장 양자, 제9장 후견, 제10장 조합 제1장 재산의 소유, 제2장 家 産 相 續, 제3장 토지 제1장 계약의 諸 事, 제2장 의무의 證, 제3장 매매, 제4장 대차, 제5장 附 託, 제6장 書 質 入, 제7장 滿 得 免 除 사항을 적시하고 그에 대한 응답을 채록한 내용이 실려 있다. 채록의 끝부 분에는 반드시 채록한 지방의 명칭을 적시함으로써 어느 지방의 관례인지 를 분명히 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조사보고서의 체계는 프랑스 민법의 영향을 받은 법학제요방식 (Institutiones)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민법 논쟁을 거치면서 독일 민법의 영향을 받아 학설휘찬방식( 學 說 彙 纂 方 式, Digesta;Pandekten)으로 변형되 었다. 그리고 민법을 시행한 이후에는 가족법 분야에서 새로운 문제가 많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21

22 이 발생하여 1911년에 인사관례전집( 人 事 慣 例 全 集 ) 을 간행하였다. 상법 에 대해서도 민법과 마찬가지로 구관조사를 하고 이에 근거하여 상법전 을 기초하였다. 관습조사의 결과는 일본민사관례유집 과 함께 상사관 례유집 으로 간행되었다. 12 일본의 법전 편찬에서 구관조사가 차지하는 위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민법전 편찬의 역사는 프랑스 민법과 독일 민법의 수용 과 정에서 참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 법전의 경우에는 외국의 법전에 대 한 연구가 거의 없었으며 일본의 민법과 상법이 유일한 참고 법령이었다 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당시 한국 법전을 주도하였던 인물들이 모두 일본 인 사법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III. 대한제국 법전조사국의 관습조사 사업 한국에서의 근대적 사법제도 실시와 한국 법전 편찬은 일제의 식민정책 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일본은 1905년에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드디 어 한국에 대한 직접적 간섭과 지배를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정부 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한국에서의 우월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 며, 1905년에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한국의 외교사무를 일본 외무성이 감 리 지휘하고 일본의 외교 대표자가 한국의 신민과 국외 이익을 보호할 것 을 명시하였다. 13 이와 함께 과거 한국과 외국 열강이 맺은 조약의 실행을 일본 정부가 완수하는 대신에, 일본 정부의 중개 없이는 앞으로 어떠한 12 정긍식(2002), 앞의 책. 13 日 韓 協 約 ( ), 韓 國 倂 合 史 料 1권, 36~41쪽. 22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23 국제적 조약이나 약속을 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였다. 을사조약은 한국의 조약체결권을 일본 정부가 행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향후 외국 열강이 한국 정부에 대하여 불평등조약을 체결하는 것에 대하여 견제장치를 마 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과 열강이 기왕에 맺었던 불평등조약을 곧바 로 부정할 수는 없었다. 14 따라서 일본 정부는 외국 열강이 과거에 획득한 한국에서의 치외법권 및 협정세율 등에 관한 종전의 권리와 지위를 어떻 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점에 정책의 포커스를 맞추었다. 일본 정부가 한국과 서구 열강이 맺은 불평등조약을 철폐하려 한 이 유는 근대 일본의 조약 개정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일본도 서구 열강과 불평등조약을 체결하고 영사재판권을 인정하는 등 독립국으로서 의 역할이 제한된 적이 있었다. 일본 정부는 근대화를 추진하고 서구 열 강과 대등한 국제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하여 시급히 추진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불평등한 조약관계를 철회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일본 정부가 추 진한 불평등조약 개정 교섭의 주안점은 영사재판권의 철폐와 관세 자주권 의 회복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열강들은 영사재판권 철폐 조건으로 서 일본에 법전 편찬, 재판제도의 정비를 요구하였고 15 이에 따라 명치 정 부는 사법제도 개편과 근대적 법전 편찬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일본은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활용하여 한국에도 적용하려 하였다. 우 선 치외법권과 관련해서는 근대적 사법제도를 한국에 공포하여 외국인에 대한 법권( 法 權 )을 장악하고, 세율에 관해서는 일본 정부와 열강 간의 조 14 日 韓 協 約 ( ), 韓 國 倂 合 史 料 1권, 36~41쪽. 15 牧 英 藤 原 明 久 편(1993), 앞의 책, 259~260쪽.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23

24 약 개정의 시기를 기다려서 필요한 협정을 체결하기로 하였다. 16 일본 정 부는 이미 체결된 한국과 외국과의 조약을 곧바로 부정하지는 못하였으 나 일정한 절차를 거쳐서 소멸시키려 하였으며, 1905년 이후 일본 정부의 대한정책은 한국에 대한 열강의 간섭을 부정하고 일본의 독점적 지배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특히 치외법권 폐지의 문제는 한국의 독점적 지배를 위해서는 필수적 이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한국의 사법제도 개혁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 이었다. 을사조약은 한국의 외교업무를 일본 정부가 행사한다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고 사법제도의 문제는 한국 내정에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 에, 을사조약 자체에 의해서는 사법제도 개혁을 위한 합법적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당시까지 일본 정부가 채택하고 있었던 일본인 고문을 통해서는 한국 내정을 변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일본의 침략 구상에 맞도록 한국 내정을 개편하기 위해서 통감부가 고 안한 것이 [시정개선협의회( 施 政 改 善 協 議 會 )]였다. 이토 히로부미[ 伊 藤 博 文 ] 는 통감으로 취임하고 곧바로 협의기구로서 [시정개선협의회]를 출범시켰 다. 시정개선협의회는 이토 히로부미가 직접 참석하고 한국 내각의 각 대 신들이 참여하는 비공식적인 기구였는데, 여기에서는 통감부의 개혁 구 상들을 한국 대신으로부터 추인받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을사조약을 계기로 한국의 외부( 外 部 )가 폐지되고 대외업무를 통감부에서 직접 관장 하였기 때문에 시정개선협의회는 주로 한국 내정을 일본 주도로 전환하 는 기구였다고 볼 수 있다. 16 韓 國 保 護 權 確 立 ノ 件 (1905년 4월 8일 閣 議 決 定 ), 韓 國 倂 合 史 料 1권, 3~4 쪽. 24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25 한국의 사법제도를 일시에 개혁하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곤란하 였기 때문에 이토 히로부미는 1906년에 일본인 법무보좌관을 용빙( 傭 聘 ) 하고 부동산법조사회를 설치하여 부동산 관련 법규들을 정비하는 데 치 중하였다. 일본인 법무보좌관들은 한국의 주요 거점 재판소에 파견되어 한국인 지방관들의 지방재판에 조언을 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한국 의 지방관들은 일본인 법무보좌관들의 건의를 자신의 고유 업무인 재판 사무를 간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서로 간에 갈등이 심화되었다. 법무보좌관에 의한 사법개혁은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을 계기로 일 제의 대한정책이 강경하게 변하면서 개편되었다. 1907년 일본 정부와 한 국 정부 사이에 새롭게 체결된 정미7조약에서 한국의 사법제도 개혁에 대 한 구체적인 내용이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정미7조약을 근거로 1907년에 새로운 재판소구성법이 공포되었다. 재판소구성법 공포를 통한 사법과 행 정의 완전한 분리가 실현되었고, 17 새로운 재판소에서 필요한 한국 법전도 편찬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1907년 12월 23일 법률 제8호 재판소구성 법, 법률 제9호 재판소구성법시행법, 법률 제10호 재판소설치법 등이 새 로 공포됨으로써 일본재판소 조직을 거의 그대로 모방하여 한국에 도입 하였다. 1907년 재판소구성법의 특징은 기존의 관행이었던 관찰사 및 부 윤이 갖고 있던 재판권을 완전히 박탈했다는 점이다. 17 이와 함께 지방재판소 및 구재판소( 區 裁 判 所 )에 전임 판@검사를 두고, 지방관은 재판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구재판소에서는 판사 단독으 로 재판을 행하고, 공소원 및 대심원은 정수의 판사로 조직된 부( 部 )에서 17 日 韓 協 約 ( ), 韓 國 倂 合 史 料 2권, 634쪽; 日 韓 協 約 規 定 實 行 ニ 關 スル 覺 書 案 ノ 件 ( ), 韓 國 倂 合 史 料 2권, 627~629쪽.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25

26 합의하여 재판을 하도록 하였다. 18 새로운 재판소 조직에 따른 막대한 비 용과 법조 인력의 문제는 차관 도입과 일본인 사법관을 직접 임용함으로 써 해결하였다. 19 그리고 통감부는 1907년 12월 23일 재판소구성법을 새로 공포하면서 칙령 제60호로써 법전조사국 관제를 공포하고, 경복궁 내에 법전조사국 을 설치하였다. 20 법전조사국은 기존의 부동산법조사회와는 달리 한국의 민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및 부속 법령의 기안을 목적으로 설 치되었다 년 12월 31일에는 최병상( 崔 秉 相 ), 고정상( 高 鼎 相 ), 유진혁 ( 柳 鎭 爀 )과 일본인 平 木 勘 太 郞, 山 口 慶 一 등 8명이 임명되었고, 1908년 1 월 1일에는 구라토미 유자부로[ 倉 富 勇 三 郞 ]를 위원장에, 우메 겐지로를 고 문에 임명하고 김낙헌( 金 洛 憲 ), 유성준( 兪 星 濬 ), 마쓰데라 다케노[ 松 寺 竹 雄 ] 등을 위원으로 임명하여 체제를 갖추었다. 22 법전조사국 위원은 표 3과 같이 대부분 일본인 판검사 출신들로 충원되었다. 23 법전조사국 고문에 우메 겐지로가 임명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 다. 우메 겐지로는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 사법제도 개편과 민법전 편찬을 년 재판소구성법에 의해 설립된 재판소는 大 審 院, 控 訴 院, 지방재판소 및 區 재판소로 구성되었고, 3심제도를 채택하였다. 19 請 議 書 第 39 號 ( ), 法 部 大 臣 請 議 日 本 人 法 官 任 用 內 規 ( 奎 24565); 指 令 第 292 號 ( ), 內 閣 法 部 去 來 文 ( 奎 17763); 舊 韓 國 官 報 (융희 2년 5월 20일). 20 內 閣 往 復 文 ( 奎 17755) 년 12월 23일 칙령 제60호, 舊 韓 國 官 報 (융희원년 12월 26일). 22 정긍식(2000), 日 帝 의 慣 習 調 査 와 그 意 義, 改 譯 版 慣 習 調 査 報 告 書, 31쪽. 23 법전조사국관제는 梅 謙 次 郞 이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梅 謙 次 郞 文 書 에 는 法 典 調 査 局 官 制 와 法 律 調 査 局 官 制 가 함께 실려 있다. 26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27 표 3 _ 법전조사국 직원 1908 倉 富 勇 三 郞 1909 倉 富 勇 三 郞 위원 조사과 회계과 위원 사무관 서무과 조사과 회계과 松 寺 竹 雄, 安 住 時 太 郞 (법부서기관), 膳 鉦 次 郞 (검사), 國 分 三 亥 (검사), 中 村 竹 藏 (판사), 城 數 馬 (판사), 渡 邊 暢 (판사), 兪 星 濬 (법제국장), 金 洛 憲 (형사국장), 李 始 榮 (민사국장) 小 田 幹 治 郞 (사무관, 조사과장), 川 崎 萬 藏 (사무관보) 山 口 慶 一 (회계과장) 崔 秉 相, 高 鼎 相, 柳 鎭 爀, 平 木 勘 太 郞 (번역관보로 추측됨) 渡 邊 暢 (판사), 中 村 竹 藏 (판사), 城 數 馬 (판사), 膳 鉦 次 郞 (검사), 國 分 三 亥 (검사), 松 寺 竹 雄 (서기관), 安 住 時 太 郞 (서기관), 金 洛 憲 (형사국장), 李 始 榮 (민사국장), 兪 星 濬 (내각법제국장) 小 田 幹 治 郞 山 口 慶 一 (과장), 八 田 岩 吉, 室 井 德 三 郞 (이상 사무관보) 川 崎 萬 藏 (과장), 安 藤 靜, 平 木 勘 太 郞, 下 森 久 吉 (이상 사무관보), 최병상, 高 鼎 相, 柳 鎭 爀, 金 東 準, 方 漢 復, 丹 羽 賢 太 郞 (이상 번역관보) 山 口 慶 一 (과장), 川 原 信 義, 岩 谷 武 市, 中 州 政 美 (이상 사무관보) 舊 韓 國 官 報 ; 內 閣 往 復 文 (규( 奎 )17755). 추진하기 위하여 용빙한 인물이었다. 1906년에는 부동산법조사회 회장으 로서 한국의 토지관계법을 정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며 이후 관 습조사 사업과 한국 정부의 각종 법령을 기안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 다. 우메 겐지로는 금후 제정해야 할 법률로 형법, 민법, 호적법, 변호사법, 토지이용법 등을 열거하였다. 이 중에서 민법에 대해서는 메모의 형식으 로 다음과 같이 개략적인 구상을 적어놓았다. 一. 당사자의 일방 또는 쌍방이 일본인 기타 외국인일 때는 일본 민법을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토지에 관해서는 한국법에 의하고 신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27

28 표 4 _ 법전조사국의 내부 기구 부서 서무과 조사과 회계과 주요 업무 문서의 접수@발송@번역@편찬@보존에 관한 사항, 보고에 관한 사항, 직원의 신분 및 진퇴에 관한 사항 법령의 기안 재료수집에 관한 사항, 위원회에 관한 사항 예산 및 결산에 관한 사항, 경비의 수지에 관한 사항, 물품의 구입@ 사용@보관에 관한 사항, 사용인의 傭 入 에 관한 사항 法 典 調 査 局 分 課 規 程, 舊 韓 國 官 報 4081호( ). 분에 관해서는 본국법에 의하는 것을 본칙으로 할 것 一. 당사자 쌍방이 한국인일 때는 구관에 의할 것 一. 따라서 한국의 관습을 조사하고 간단한 민법을 제정할 것 24 일본 정부가 한국 사법제도 개혁의 빌미로 제시하였던 다양한 개혁구 상은 한국 정부의 독립국화를 지향한 것은 아니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비 롯한 통감부 사법관료가 추진한 한국 법전은, 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국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일본인이 관계된 민사사건에 대해서는, 토지에 관한 법규를 제외하고 일본 민법을 적용하기로 하고 한국인 상호 간의 민 사사건에 대해서만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사자 쌍방이 한국인인 경우에만 한국 법전을 적용한다는 것은 한국에서의 주요 법권을 일본이 장악하고, 한국의 완전한 독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전조사국의 한국 관습조사 사업은 이와 같은 통감부의 대한정책과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었다. 한국 관습조사 사업을 계획하였고 그 조사방 24 今 後 制 定 ヲ 要 スル 法 律, 梅 謙 次 郞 文 書 ( 日 本 法 政 大 學 所 藏 ). 28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29 법과 절차 등을 종합적으로 관장하였던 우메 겐지로는 관습조사의 범위 를 민사 및 상사관습으로 확정하고, 각 조사원이 다양한 관습을 취사선 택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개인의 주관을 피하고 통일적인 조사를 위해서 206개의 조사 항목을 작성하였다. 제1편 민법:총칙 20문, 물권 30문, 채권 54문, 친족 53문, 상속 23문 제2편 상법: 총칙 4문, 회사 1문, 상행위 11문, 手 形 (어음) 1문, 해상 9문 민법의 경우에는 180개 항, 상편의 경우에는 26개 항의 질문 사항이 만들어졌다. 상법 부분이 상대적으로 문항의 수가 적은데 그것은 1906년 부동산법조사회의 상거래와 관련한 관습조사와 법령의 정비가 일정하게 완료된 측면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일본의 민사관례 조 사에서는 37개의 조사사항이 작성되어 그에 대한 답변이 작성되었다. 오 히려 한국의 관습조사 항목이 일본에 비해 많다. 한국은 일본 정부에게는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에 조사해야 할 항목도 많았던 것이다. 이와 함께 관습조사 문제 범례를 만들어 각 질문에 대해 조사상 유의할 사항을 자세히 기록하고 이를 인쇄하여 조사원에게 소지 하도록 하였는데, 이 중에서 중요한 것만을 들면 다음과 같다. 1 본편 중에서 부동산법조사회에서 조사한 문제로서 대개 분명한 것 이 적지 않지만, 또 관습이 아닌 것으로 의문되는 것도 많기 때문에 만일 고려할 것이 있으면 이를 언급한다. 2 한국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관습에 대해서 대개 모든 문제를 망라하였을지라도 만약 본편에 언급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참고할 관습을 발견하면 반드시 조사한다.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29

30 3 법률 전문가가 아니면 법률문제와 덕의[ 德 義, 도덕 - 인용자]문제의 구별을 명확히 하는 자가 드물다. 고로 조사원은 특별히 이 구별에 유의하여 조사할 것을 요한다. 25 위 지침은 법률문제와 도덕문제를 구별하여 조사할 것을 강조하고 있 는데, 이것은 각 조사원들의 주관적 요소의 개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규정 한 것으로 보인다. 관습조사의 목적이 민사법전 제정에 있었기 때문에 한 국의 보편적인 관습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우메 겐지로가 작성한 [조사문제]를 보면, 한국 관습에는 존재 하지 않는 개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 관습에는 일본 민법 적 의미의 [가독상속( 家 督 相 續 )], [가( 家 )], [은거( 隱 居 )], [씨( 氏 )], [거소( 居 所 )] 등의 개념이 없었지만, 조사문제에서는 이러한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 였다. 이와 같이 한국 관습에 존재하지 않는 용어들을 사용한 것은 한국 관습과 일본 민법과의 이동( 異 同 )을 조사하여 일본 민법과 유사한 체제 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26 이에 대해 우메 겐지로는 다음과 같이 일본 민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조선 관습을 조사하는 이유를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명칭은 대부분 일본과 한국이 동일하지 않지만, 정확한 조사를 하기 위 해서는 일본의 명칭을 기초로 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생각하여 본편 중 고의로 일본의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조사원은 한국의 명칭을 조 사하고 그 의의도 역시 가능한 한 정확히 조사하는 것을 요한다 法 典 調 査 局 (1908), 慣 習 調 査 問 題. 26 朝 鮮 總 督 府 中 樞 院 (1938), 朝 鮮 舊 慣 制 度 調 査 事 業 槪 要, 15쪽. 27 法 典 調 査 局 (1908), 앞의 책. 30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31 즉, 우메 겐지로를 비롯한 당시 일본인 조사자들은 한국 관습과 일본 민법 간의 개념상의 차이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조사문항에서는 일본 민 법 용어를 사용하고, 그에 해당하는 한국 관습을 그대로 조사하는 방식 을 취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민사 관습조사는 조선 관습의 실체를 구명하는 것이 목 적이기는 하였지만, 조사기법 및 주체에 의해서 일본 민법적 개념이 투영 된 관습법이 형성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 을 채택한 것은 일본 민법과 한국 관습과의 차이를 드러내면서 한국 관 습을 조사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후 제정될 한국 법전이 한국적 상황을 일정하게 반영하더라도 일본 민법전과 유사한 체제를 갖추도록 하 기 위해서이기도 하였다. 법전조사국에서는 부동산법조사회와 마찬가지로 전적조사( 典 籍 調 査 ) 와 실지조사( 實 地 調 査 )를 병행하였는데, 전적조사에서는 조선의 법전류와 예법서, 각종 문기( 文 記 ) 등을 조사하였다. 법전조사국이 한국의 현행 관 습을 조사하려 했으면서도 조선 재래의 각종 법전류와 예서( 禮 書 ) 등을 조사한 이유는 당시 일부 관습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있어서 과거 법규를 통하여 관습의 실체를 명확히 하고, 또 관습의 연원( 淵 源 )을 파악하여 규 범을 확정하려 했기 때문이다. 1910년 관습조사보고서 를 보면 문헌조사에 관계된 각종 문헌들을 확인할 수 있다. 관습조사보고서 는 경국대전, 대전회통 을 비롯한 조 선시대 법전류와 예서 및 각종 문서들을 나열하고 있다. 당시 부동산법조 사회에 참여한 바 있었던 아사미 린타로[ 淺 見 倫 太 郞 ]는 우메 겐지로에게 조선인에 대한 실지조사는 무익하고 실효가 없으므로, 구기문서( 舊 記 文 書 ) 조사를 선행해야 한다고 건의하였으나, 우메 겐지로는 기록에 대한 조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31

32 사를 생략하는 것은 아니라고 간단히 답변하였다. 28 아사미 린타로의 언 급을 통하여 당시 법전조사국이 문헌조사보다 실지조사를 중심으로 한 국 관습을 조사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관습조사보고서 에 인용된 각종 법전과 문헌을 보면 아사미 린타로의 지적과 같이 미흡한 느낌이 있 다. 실제 조사한 문헌도 법전을 제외하면 4종에 지나지 않는다. 또 전체에 걸치는 것이 아니라 예서에 편중되어 있으며, 특히 청원서( 請 願 書 ), 소장( 訴 狀 ), 계약서( 契 約 書 ) 등 각종 서식을 수록한 유서필지( 儒 胥 必 知 ) 를 누락시 켰다. 법전의 경우 주요 법전을 조사하였으나, 변화하는 관습을 직접 반영 하는 수교( 受 敎 ) 등을 제외한 것도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문서는 위에서 처럼 법령의 양식을 포함하여 71종, 이를 제외하면 59종을 수록하였는데, 이것만으로는 당시의 법률생활의 실태를 모두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 다. 29 또 표 3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법전조사국 직원들을 보면, 한국의 고문 헌들을 정리할 한국인 학자들의 참여가 없고, 한국인들은 번역관의 역할 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관습조사 기간이 1908년 5월부터 1910년 9월까 지 2년 4개월이었기 때문에 치밀한 전적조사는 사실상 어렵지 않았나 생 각된다. 실지조사는 부동산법조사회와 동일한 방법이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 는데, 부동산법조사회에서는 일본인 이사관과 한국인 관찰사, 부윤, 고로 등에게 질문하고 답변한 것을 채록하는 방식을 취했다. 법전조사국의 조 28 淺 見 倫 太 郞 (1921), 朝 鮮 法 系 ノ 歷 史 的 硏 究, 法 學 協 會 雜 誌 39-8, 33~34 쪽. 29 정긍식(2002), 앞의 책, 239쪽. 32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33 사 방식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되어 있는 연구는 없으나, 국사편찬위원회 가 소장하고 있는 안성( 安 城 )지역 조사보고서를 통하여 법전조사국의 조 사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안성지역 실지조사는 川 原 信 義 사무관보가 실 시하였고, 1908년 12월 8일부터 12월 27일까지 20일간 매일 3명씩 조사 하는 것을 원칙으로 조선인들을 직접 불러서 질문하고 그 응답을 채록하 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30 8일부터 27일까지 모두 60회에 걸쳐서 46명의 조선인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30 안성지역 조사를 통하여 관습조사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조선인들 의 계층 및 신분에 대해서 일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당시 한국 법전이 민사 와 상사를 통합한 [민상통일법전( 民 商 統 一 法 典 )] 형식 31 을 취하고 있었기 때 문에, 206개 질문 항목에 적절하게 응답할 수 있는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 이 선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질문 사항 중에서 상사에 관한 것은 등 상업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질문하였고, 민사에 관한 것 중에서 친족 및 상속은 유교적 예제에 익숙하고 당시 인민들의 관습을 폭넓게 알고 있었던 군수, 면장, 이장, 중추원의관, 참봉, 사인( 士 人 ) 등에게 질문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909년도의 조사 상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함경남도 갑산지방 의 관습조사는 월 13일에 법전조사국 사무관보 下 森 久 吉 이 조사 하여 구라토미 유자부로에게 조사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범례에는 이 조사 가 1909년 9월 14일부터 10월 13일까지 30일 동안 함경남도 갑산군아( 甲 山 郡 衙 )에서 별지 기명( 記 名 )의 인원으로서 행한 것으로 나와 있다. 32 갑산 30 法 典 調 査 局 (1908), 앞의 책. 31 鄭 鍾 休 (1989), 앞의 책, 89~92쪽.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33

34 표 5 _ 안성지역 관습조사 응답자 신분 신 분 성 명 인원 횟수 齊 任 趙 鐘 億, 孫 永 根 (2회), 權 明 壽 3 4 客 主 金 成 五 (3회), 朴 舜 瑞, 朴 雲 三, 金 重 權 (2회) 4 7 商 金 天 浩, 朴 承 志 (2회), 鄭 士 弘, 朴 舜 若, 金 重 權, 張 敬 集, 朴 桂 琬, 柳 南 秀 8 9 農 崔 秉 純, 崔 元 溥, 李 龍 夏, 南 啓 恒 4 4 典 當 業 李 基 恒, 李 圭 琬 2 2 面 里 長 李 萃 榮, 權 鐘 大, 嚴 祐 永, 趙 秉 均, 趙 載 熙, 李 九 淳 (2회), 金 享 倍 7 8 郡 守 李 承 鉉 ( 前 ) 1 1 中 樞 院 議 官 鄭 耆 朝 ( 前, 2회), 金 重 權 ( 前 ), 金 泓 ( 前 ) 3 4 主 事 朴 勝 友 (2회), 李 瑢 儀 ( 前, 2회), 朴 弼 秉, 李 善 儀, 李 鎬 臣 5 7 正 尉 尹 錫 祐 ( 前 ) 1 1 參 奉 朴 泰 秉 ( 前, 2회), 李 源 世 ( 前, 2회) 2 4 士 人 洪 在 益 1 1 敎 員 崔 弘 燮 1 1 水 舂 主 朴 承 元 (2회) 1 2 敎 官 任 成 鎬 ( 前 ) 1 1 객주 및 문학박사 申 肅 熙 (3회) 1 3 出 身 李 旭 薰 1 1 합계 46명 60회 法 典 調 査 局, 調 査 報 告 書 (안성지역). 위 인물 중에서 客 主 와 商 의 김중권은 동일인물로, 중추원의관의 김중권은 다른 인물로 처 리하였음. 지역의 조사보고서 별지에는 모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에 는 별지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범례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 과 같다 法 典 調 査 局 (1909), 調 査 報 告 書. 34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35 <범례> 1 보고서를 일목요연하게 하기 위하여 기재하는 방식은 되도록 분류 주의( 分 類 主 義 )를 채용하고, 또한 보고서는 기억하지 못할 것을 우 려하여 조사한 그날로 매일매일 정리하여, 초고를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때때로 문장이 되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다. 또한 오자, 탈자 도 가끔씩 있을 것이다. 진실로 부끄러움을 누를 수 없다. 2 조사할 때 응답위원들에게 조사의 중대함을 이해시키고, 동시에 그 응답을 신중하게 하기 위하여 문헌비고( 文 獻 備 考 ), 대전회통( 大 典 會 通 ), 대명률( 大 明 律 ) 등의 옛 문헌을 참조하는 노력을 했지 만, 보고서에는 이의 기재를 생략했다. 3 이름은 사실의 손님이며 명칭과 실질을 비교하면 관습의 진상을 살 필 수 있다. 그러므로 되도록 정확하게 듣고자 노력했다. 안성지역과 갑산지역의 조사 상황을 보면 약 20~30일이 걸렸으며, 대 개는 지방관아로 피조사자를 직접 불러서 조사를 하고 응답을 그대로 채 록하는 방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갑산지역의 범례를 통하여 보고서는 조사가 모두 완료된 이후에 작성한 것이 아니라 매일 응답한 결과를 정리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안성과 갑산지역은 일반조사 지역으로서 조사문제 전체에 관해서 조 사하였는데, 법전조사국은 일반조사뿐만 아니라 특수사항에 관한 조사 를 위해서 9개 도 38개 지역 33 을 선정하여 특별조사를 실시하였다. 특히 안성지역 조사보고서는 조사문항의 전체 답변자 신분을 파악할 수 있지 만, 각 문항에 대해서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선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공주( 公 州 )지역 조사보고서는 각 질문 사항에 관한 33 중복조사 지역 16개 지역을 포함한 것이다.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35

36 답변자 신분을 적시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어 안성지역 조사보고서의 문 제점을 보완할 수 있다. 우선 특수조사 지역은 조사문제 전체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일부 특별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사항만을 조 사하였기 때문에 조사의 범위, 대상, 기간에서 차이가 있었다. 법전조사국 사무관보인 平 木 勘 太 郞 은 1910년 4월 13일에 충청남도 공주지방의 소작 및 기타 관습에 대한 조사 명령을 받고, 4월 22일부터 28일까지 7일간 조사하였다. 일반조사에 비하면 조사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조사 항목 수의 차이 때문이었다. 일반조 사는 206개 항목 전체를 조사해야 하지만 특수조사는 1개 혹은 필요한 몇 개의 항목만을 조사했기 때문이다. 공주지방에서는 소작, 전질( 轉 質 ), 입회( 入 會 ), 어음 및 수형, 34 동사( 同 事 ), 영급전( 永 給 田 ), 계, 보( 洑 ) 등 8종류에 관한 관습을 조사하였다. 공주 지방의 관습조사는 주로 농업 및 상사( 商 事 ) 관습을 중심으로 하였기 때 문에 응답자들은 대부분 농민@상인 등 직접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자들 로서 약 42명에 달하였다. 35 각 항목당 조사자 신분을 살펴보면, 조사문항과 직접 관련이 있는 생 업의 종사자이거나 이해관계가 있는 계층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소작에 관해서 응답한 인물들의 사회적 계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응답자들은 34 於 音 과 手 形 은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었다. 다만, 어음의 경우에는 조선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한 것이지만, 手 形 은 [ 手 形 條 例 ]에 의해서 발행되었다는 차이 가 있다. 공주지역 조사 당시 手 形 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아직 발행@ 受 授 된 적이 없었고, 중국인 및 일본인이 이따금 발행할 뿐이었다. 法 典 調 査 局 (1910), 公 州 地 方 二 於 ケル 特 別 調 査 書 ( 中 B16BBE-6),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35 法 典 調 査 局 (1910), 위의 책. 36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37 표 6 _ 공주지역 조사 항목과 답변자 조사 항목 답변자 인원 소작 公 州 郡 主 事 李 正 鉉, 辰 頭 面 면장 大 依 鉉, 要 堂 面 면장 權 重 大, 城 頭 面 면장 吳 驎 善 4 轉 質 商 朴 星 七, 辛 乃 京, 典 當 局 閔 泳 善, 木 洞 面 면장 李 象 吉, 南 部 面 면장 朴 永 眞 5 入 會 (추정) (5) 어음 및 수형 南 部 面 班 竹 里 이장 金 德 仁, 東 部 江 景 里 이장 李 昌 淑, 포목상 成 周 桓, 商 朴 春 又, 郡 主 事 李 正 鉉 5 계 (추정) 5 同 事 公 州 읍내 상인 成 君 鎭, 同 金 用 佑, 同 金 壽 聖, 同 朴 元 直, 牛 井 面 면장 盧 榮 5 永 給 田 (추정) (5) 洑 牛 井 面 雲 山 里 면장 盧 榮, 牛 井 面 銅 川 里 이장 朴 魯 俊, 牛 井 面 丹 坪 里 면장 李 順 素, 牛 井 面 銅 川 里 金 化 實, 同 崔 孝 根, 同 8 卞 元 西, 同 吳 正 先, 洑 관리인 吳 鳳 洙 法 典 調 査 局 (1910), 公 州 地 方 二 於 ケル 特 別 調 査 書 ( 中 B16BBE-6). 위 도표에서는 入 會, 契, 영급전의 조사자가 나와 있지 않은데, 이 부분은 바로 위 질문 사항 의 답변자와 동일한 것으로 처리하였다. 면장이 대부분이고 주사가 1명이다. 당시에 면장 정도의 직책을 수행할 정도면 해당 지역에서도 일정한 규모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소작에 관해서는 지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응답이 기록되 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보( 洑 )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주로 이장, 면장이 피조사자로 채택되었고 보 관리인이 1명이다. 표 6을 보면 모든 관습에 걸쳐서 면장, 이장, 주사 등이 상대적으로 많 은 수를 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각종 분쟁에 관해서 일반인들 보다 쉽게 접할 수 있고 또 분쟁을 처리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37

38 한편, 공주에서 수행한 특별조사의 결과를 보면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조사보고서에는 {4월 26일 우정면( 牛 井 面 ) 면장 및 보의 관 리자 등을 소환하여 캐물어 보았지만 대강의 개요도 엿보아 알 수 없었 다. 그래서 다음 날 4월 27일 오전 7시부터 공주군 주사( 主 事 ) 오카다[ 岡 田 雅 尾 ]와 동행하여 공주읍에서 2리( 里 ) 30정( 町 )(헌병 分 遣 所 의 實 測 이정 표에 의함) 떨어진 곳에 있는 우정면 동천리( 銅 川 里 )에 가서 통천보( 通 天 洑 ) 의 관개( 灌 漑 )로써 전답을 경작하는 사람 중에 가장 이해관계가 많은 사 람, 또 그 마을에서 장로( 長 老 )로서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을 소 환하였다. 그들과 함께 그곳에서 대략 30정 떨어진 마곡면( 麻 谷 面 )에 있 는 통천보의 실지( 實 地 )를 답사하는 한편, 보에 대한 여러 가지 조사를 하 였다} 36 라는 대목이 있다. 이것은 특정 조사 항목에 대하여 법전조사국이 피조사자를 선정하는 방식과 조사의 기법을 일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 다. {통천보의 관개로써 전답을 경작하는 사람 중에 가장 이해관계가 많은 사람} 또 {그 마을에서 장로로서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을 소 환}, {통천보의 실지를 답사}라는 표현은 조사 항목과 직접 이해관계가 있 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였고 오랜 경험이 있어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 정할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필요한 경우에는 실지 조사를 수행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조사방법을 사용한 이유는 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일본인들도 파악하고 있었으나 보에 관한 한국의 관습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조선의 보에 대해서 체계적인 조사를 실시한 전남지 역 조사에서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전남지역의 보의 관습을 또다시 36 法 典 調 査 局 (1910), 앞의 책. 38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39 조사한 것은 이 지역에서 한국의 보 관습이 발달해 있었기 때문으로 생 각된다. 표 7은 1910년 5월 25일부터 6월 26일까지 조선의 보에 관한 관 습을 조사한 것이다. 이 조사는 법전조사국 사무관보 岩 吙 武 市 가 작성하 여 7월 10일 구라토미 유자부로에게 제출한 것이다 공주지역의 보에 관한 관습에 관해서는 주로 면장과 이장을 조사하였 으나 전남지역 피조사자의 직업을 보면 농민, 주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 다. 보에 관해서는 농업을 하는 사람이 해당 관습의 내용을 가장 잘 파악 할 수 있기 때문에 선정하였고 주사의 경우에는 해당 지역에 대한 이해가 밝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에 관한 조 사는 전남 4개 지역, 모두 21명을 대상으로 33일간 진행되었다. 보에 관련 해서 매우 상세한 조사가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는 조사보고서이다. 한편, 영급전과 삼포( 蔘 圃 )에 관한 특별조사 보고서도 국사편찬위원회 표 7 _ 특별조사 항목: 洑 에 관한 관습조사 조사지역 직 업 성 명 조사지역 직 업 성 명 府 主 事 金 海 雄 농업 趙 由 錫 府 主 事 李 尙 黙 농업 朴 源 奎 전남 전남 士 商 公 員 金 仲 善 농업 池 應 鉉 務 安 府 光 州 郡 衙 농업 金 永 錫 농업 崔 敎 永 농업 朴 致 完 농업 趙 明 錫 농민 朴 潤 東 郡 主 事 金 孝 燦 前 主 事 吳 翔 學 농업 金 齊 俊 전남 지방위원 鄭 遇 卿 전남 농업 金 萬 拜 羅 州 郡 衙 농업 金 鳳 魯 順 天 郡 衙 농업 鄭 瑩 奎 상업 金 亨 俊 前 主 事 南 廷 學 상업 張 亨 允 洑 에 관한 관습 (국사편찬위원회).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39

40 에 소장되어 있어 그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표 8은 삼포와 영급전에 관 한 특별조사를 한 것으로 이 표가 의미 있는 것은 매우 다양한 계층의 인 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각 지역의 관습조사보고서 를 통하여 당시 일제에 의하여 수록된 관 습이 매우 다양한 계층들의 답변을 채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반조사 사항에 관해서는 206개 항목에 관하여 답변할 수 있는 다양한 계층의 인 물들이 피조사자로 선정되었고, 특수조사의 경우에는 해당 관습이 발달 한 지역을 대상으로 직접 관련이 있는 계층의 인물들이 피조사자로 선정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이해관계인, 대하여 법 적인 분쟁을 다룰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 혹은 경험자 등으로 구성되 표 8 _ 특별조사 항목: 蔘 圃 에 관한 보고(개성, 풍덕, 장단)( ) 조사지역 개성 ( 郡 衙 ) 풍덕 ( 郡 衙 ) 長 湍 ( 郡 衙 ) 피조사자 蔘 政 局 上 林 국장, 齊 藤 監 視 部 長, 기타 직원 朴 郡 守, 李 主 事, 馬 主 事, 기타 직원 蔘 業 組 合 員 孫 鳳 祥, 同 孔 聖 學, 同 姜 福 源, 同 金 圭 章, 同 金 瀅 植, 同 李 彦 周, 同 金 昌 玉, 商 業 會 議 所 員 黃 石 圭, 同 崔 聖 求, 同 秦 尙 炯, 同 鄭 在 勳, 同 林 鎭 文, 紳 士 李 健 爀, 同 金 祚 永, 同 姜 福 源, 同 金 慶 琬, 同 朴 圭 極, 漢 湖 農 工 銀 行 出 張 所 小 鹿 島 지점장 居 間 尹 東 圭 開 城 區 재판소 北 條 판사 재무서 閔 서장, 금융조합 佐 藤 이사 兪 郡 守, 同 申 郡 主 事 기타 직원 面 長 金 敢 植, 里 長 高 化 淳, 金 潤 榮, 池 汝 雲, 李 性 稷, 里 長 申 鉉 重, 面 長 李 庚 植, 申 興 均 李 郡 守 同 尹 郡 主 事, 面 長 鄭 善 好, 성균관 司 業 朴 晋 燮, 紳 士 朴 恒 黙, 頭 民 盧 在 厚, 面 長 金 準, 里 長 申 仁 均, 面 長 許 霧, 同 尹 命 學, 紳 士 柳 琻, 李 泰 榮, 財 務 署 上 部 主 事 40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41 어 있다. 이상의 조사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37 일반조사 지역은 우메 겐지로가 작성한 206개 질문 항목에 대하여 모 두 조사하여 그 결과를 채록한 것이고 특수조사 지역에서는 법전조사국 에서 특별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일부 관습에 대해서만 조사한 점이 차이이다. 그리고 중복조사 지역은 일반조사와 특수조사를 모두 실 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보면 사실상 일반조사 지역은 32개 지역과 16개 지역을 합하여 48개 지역이고, 특수조사 지역은 22개 지역과 16개 표 9 _ 특별조사 항목: 永 給 田 에 관한 관습조사 37 조사지역 피조사자 조사지역 피조사자 郡 衙 朴 郡 守, 李 主 事, 馬 主 事, 기타의 직원 蔘 業 調 査 員 孫 鳳 祥, 孔 聖 孝, 郡 衙 李 郡 守, 尹 郡 主 事 면장 鄭 善 好, 金 準, 許 霧, 尹 命 孝 李 泰 周, 金 奎 章 신사 朴 德 黙, 柳 滄, 李 泰 榮 開 成 商 業 會 議 所 員 黃 石 圭, 崔 聖 求, 秦 尙 烱, 鄭 在 勳, 朴 鎭 文 紳 士 李 健 爀, 金 祚 永, 姜 福 源, 長 湍 頭 民 盧 在 厚 里 長 申 仁 均 金 慶 琓, 吳 景 玉, 金 得 烱, 李 圭 弘, 姜 宗 錫, 朴 圭 植 거간 尹 東 圭 成 均 館 司 業 朴 晋 變 재무서 上 部 主 事 개성구재판소 此 條 判 事 郡 衙 兪 郡 守, 申 郡 主 事, 재무서 閔 署 長 기타 書 記 郡 衙 李 郡 主 事, 尹 五 榮, 愼 在 喊, 豊 德 面 長 金 敢 植, 高 化 淳, 金 潤 榮, 坡 州 朴 薰 陽, 趙 應 奎, 李 裕 奭, 李 泂 榮, 池 汝 雲, 李 性 稷, 申 鉉 重, 且 相 祖, 金 根 培, 安 東 奎 李 庚 植, 申 興 抣 永 給 田 에 관한 조사보고서(개성, 풍덕, 장단, 파주), 국사편찬위원회. 37 永 給 田 에 관해서는 1910년 5월 13일에 法 典 調 査 局 事 務 官 補 宝 井 裕 三 郞 이 倉 富 勇 三 郞 에게 보고하였다. 조사지역은 開 城, 豊 德, 長 湍, 坡 州 지방이다.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41

42 지역을 합하여 38개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조사 지역은 해당 도 ( 道 )에서 지방의 중심지 중심으로 선정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수조사 지역의 선정 기준은 조사대상 관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예컨대,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는 특수조사는 보, 삼포, 영급전 등 인데 조사지역은 각 관습이 대표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는 지역을 선택하 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특수조사 지역이 서로 중복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시간과 비용의 절약을 위하여 한 지역을 조사하면서 여러 관습을 동시에 조사한 것으로 보인다. 안성과 공주지역을 기준으로 하여 전국의 조사지역으로 확대하면, 일 반조사 지역 13개 도 32개 지역, 중복조사 지역 8개 도 16개 지역으로 2,208여 명의 조선인을 상대로 2,880회의 조사를 벌였던 것으로 추측된 다. 또 특수조사 지역은 9개 도 22개 지역, 중복조사 지역 8개 도 16개 지 역으로 모두 1,596명의 조선인을 상대로 조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 반조사와 특수조사를 모두 합하면 약 3,804명의 조선인을 상대로 실지조 사를 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38 피조사자의 사회적 계층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계층 은 군수, 면장, 이장, 주사( 主 事 ), 서기( 書 記 ), 두민( 頭 民 ), 신사( 紳 士 ), 삼업조 합원( 蔘 業 組 合 員 ), 거간, 판사, 재무서장, 금융조합이사, 은행관계자, 농업, 보 관리인, 제임, 객주, 상, 농, 전당업, 중추원의관, 참봉, 정위, 교원, 교관, 객주 및 문학박사 등 매우 다양하다. 이 중에서 군수, 면장, 이장, 주사 등 38 법전조사국의 조사보고서는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와 국회도서관 등에 소장되 어 있는데 일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慶 州 東 萊 昌 原 大 邱 調 査 書, 公 州 地 方 ニ 於 ケル 特 別 調 査 書, 大 邱 郡 ニ 於 ケル 調 査 報 告 書, 東 萊 郡 ニ 於 ケル 調 査 報 告 書, 調 査 報 告 書, 調 査 報 告 書 ( 東 萊 ). 42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43 이 가장 많은 수를 점하고 있고 농업, 상업 관련자가 그 다음을 차지하고 있다. 조사지역을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표 10과 같다. 39 이상과 같은 방법으로 법전조사국은 1908년 5월 말부터 12월 말까지 경기도, 충청남북도,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 등 7개 도의 조사를 완료하 였고, 1909년에는 황해도,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강원도 조사를 완료하 표 10 _ 관습조사 지역 일반조사 지역 중복조사 지역 특수조사 지역 39 계 경기도 서울, 인천, 안성 개성, 수원 여주, 풍덕, 장단, 파주, 연천 10 황해도 해주, 황주 재령, 서흥, 안악, 봉산 6 평안남도 안주, 덕천 평양, 진남포 숙천 5 평안북도 강계, 영변 의주, 용천 정주 5 충청남도 예산, 온양, 은진 공주 강경, 연산 6 충청북도 충주, 청주, 영동 3 경상북도 상주, 안동 대구, 경주 성주, 포항 6 경상남도 진주 부산, 마산, 울산 밀양, 김해, 용남 7 전라남도 제주 광주, 목포 나주, 법성포, 순천 6 전라북도 남원 전주, 군산 금산 4 함경북도 경성, 경흥, 회령, 성진 4 함경남도 함흥, 원산, 갑산, 북청 4 강원도 춘천, 금성, 원주, 강릉 4 계 13개 도, 32개 지역 8개 도, 16개 지역 9개 도, 22개 지역 70 정긍식 역(2000), 改 譯 版 慣 習 調 査 報 告 書, 한국법제연구원. 39 특수조사는 특별조사가 필요한 관습이 대표적인 곳을 선정한 것으로 추정된 다. 예컨대 蔘 圃 에 관한 관습은 개성, 풍덕, 장단 등을 조사지역으로 선정하였 고 洑 에 관해서는 전남지역을 주로 조사 지역으로 선정하였다.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43

44 여, 전국적 조사사업은 일단 마무리하였다. 1910년에 들어와서는 재조사 가 필요한 사항 및 특히 상세한 조사를 요하는 사항에 대하여 이른바 [특 별조사]를 실시하였다. 40 각 지역의 조사활동은 모두 개별적으로 조사보고서를 작성하여 법전 조사국 위원장인 구라토미 유자부로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1910년 9월 법전조사국의 폐지와 함께 조사활동을 중지하고, 10월에 잔무 정리 차원 에서 전국에서 취합한 각 지방의 관습조사보고서 에 채록된 관습을 분 석하여 한 권으로 된 관습조사보고서 를 최종적으로 착수하였다. 41 그리 고 1910년 12월에 구라토미 유자부로가 조사보고서를 [관습조사보고서] 라고 명명하여 데라우치[ 寺 內 ] 총독에게 보고하고 인쇄@배부하였다. 42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과 한국의 관습조사는 일정한 차이가 있 었다. 우선 조사 시기를 보면 일본의 경우에는 약 7개월 동안 수행하였으 나 한국은 2년 5개월간 지속되었다. 관습조사의 규모도 차이가 있다. 일 본은 모두 187개 군을 조사하였으나 한국은 일반조사, 특별조사, 중복조 사 지역을 모두 포함하여 86개 지역을 조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에는 대개 1개 군당 3~4일 정도 조사하였으나 한국의 경우 에는 대략 20~30일 정도였다. 이렇게 일본 본국보다도 한국에 대한 관습조사의 규모가 컸던 이유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이해가 높지 않았던 것과 관련이 있다. 일본 정부는 지방관례 조사를 일본인이 직접 수행하였기 때문에 일본의 관례에 대한 40 특별조사보고서 및 상세한 조사를 위해 재조사한 보고서도 국사편찬위원회에 일부 소장되어 있다. 41 慣 習 調 査 報 告 書 凡 例. 42 朝 鮮 總 督 府 中 樞 院 (1938), 앞의 책, 19쪽. 44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45 이해도가 매우 높았으나 한국의 관습조사는 대한제국 정부가 수행한 것 이 아니라 법전조사국에 소속되어 있었던 일본인 조사관들에 의해서 수 행되었기 때문이다. 통감부 시기의 관습조사 사업은 한국인들의 관습을 조사하기 위해서 실시되었지만 조사 항목의 작성이나 한국 관습에 접근하는 기본적인 태 도는 일본 민법적 개념을 기초로 진행되었다. 43 따라서 관습조사 사업에 의해 파악된 한국 관습은 일본인의 시각에서 조사되고 인식된 관습이었 다. 한국 민법전 편찬이 일본인에 의해서 주도되었기 때문에 일본 민법의 체제와 내용이 한국 관습에 투영된 형태로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관습조사보고서 에 나타난 관습은 [조선 재래의 관습]에 [일본 민법적 시각]이 일부 투영된 것이었다. 한편, 관습조사 사업은 근대적 기법으로 실시된 한국 역사상 최초의 전국적 관습조사였다는 점에서 법제사적 의미가 있다. 44 비록 관습조사 보고서 가 우메 겐지로를 비롯한 일본인들에 의해 조사되었고 조선 재래 의 문헌조사가 취약하기는 했지만, 조사기법 중에서 실지조사를 강조하였 으므로 대한제국 말기의 현행 관습을 상당히 반영하고 있었다. 관습조사 보고서 는 [일본 민법적 시각과 한국 관습], [근대적 법전체제와 전근대적 관습법] 간의 긴장관계 속에서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에 기초하여 확립된 조선 관습은 당시의 사회적 현실을 일부 반영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조사된 조선 관습은 한국 법전에 반영될 예정이었다. 45 원 43 物 權, 債 權, 能 力, 居 所, 住 所, 家 督 相 續, 後 見 등의 용어가 대표적이다. 44 심희기(1992), 書 評 國 譯 慣 習 調 査 報 告 書, 法 史 學 硏 究 13. 심희기도 관습 조사보고서 의 사료적 가치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평가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45 법전조사국이 기안한 법령으로는 刑 소송규칙, 토지가옥소유권증명규칙, 민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45

46 래 법전조사국이 추진했던 한국 법전은 민법과 상법을 하나의 법전으로 통합한 [민상통일법전]이었고, 이 법전을 기초로 형법, 호적법, 변호사법, 토지수용법 등을 제정할 예정이었다. 관습조사보고서 에서 확인된 조선 관습은 한국인들의 법률생활을 지배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통감부는 한국 법전으로 한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민형사 분쟁 을 처리할 계획이 없었다. 우메 겐지로는 한국 법전의 성격에 대해서 {당 사자 일방( 一 方 ) 또는 쌍방( 雙 方 )이 일본인 기타 외국인일 때는 일본 민법 을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토지에 관해서는 한국법에 의하고 신분 법에 관해서는 본국법에 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할 것}, {당사자 쌍방이 한 국인일 때는 구관에 의존할 것}, {따라서 한국의 구관을 조사하고 간단한 민법을 제정할 것} 46 이라 하여 한국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 였다. 47 즉 한국 법전이 편찬되더라도 일본인과 외국인은 한국 법전이 아 니라 일본 민법에 의해 규율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벌어 지는 모든 민형사 분쟁을 한국 법전과 일본 민법이라는 이원체제로써 규 율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우메 겐지로의 언급에 의해서 한국 법전의 제한적 성격을 알 수 있 사소송기한규칙, 토지가옥소유권증명규칙시행세칙 및 민적법 등이 있다. 한편 민사소송법을 기초로 하고 1909년에 위원회를 개최하여 심의를 마쳤으나 좀 더 강구할 점이 있어서 成 案 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상법의 제정도 일본 상법의 규 정과 실제 관습과의 異 同 에 대하여 각 도에 걸쳐서 주요한 지역의 조사를 마쳤 지만 합병과 함께 기안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46 梅 謙 次 郞 (1909), 韓 國 の 法 律 制 度 に 就 て( 下 ), 東 京 經 濟 雜 誌 1514호, 796쪽 [ 鄭 鍾 休 (1989), 앞의 책, 42쪽 재인용]. 47 梅 謙 次 郞 (1910), 韓 國 の 合 邦 論 と 立 法 事 業, 國 際 法 雜 誌 8-9, 740쪽. 46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47 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가 추구했던 보호국화 정책에 입각한 법제정책의 핵심은 외국의 치외법권 철폐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법전 의 편찬도 이 목적에 영향을 받았다. 즉, 한국 독립을 형식상으로 유지하 면서도 치외법권을 철폐하여, 한국 내에서의 각종 법률사건에 대해서는 일본 민법과 한국 법전이 동시에 통용되도록 하였다. 즉, 한국 민법은 한 국인 사이의 분쟁에서만 규율하고, 한국인과 간의 분쟁에 서는 일본 민법을 적용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관습조사 사업으로부터 시작된 한국 법전 편찬 사업은 1910년 8월 29일에 한국 병합이 이루어면서 폐기되었다. 그것은 이토 히로부미가 추진했던 보호국화 정책이 일본 정부에 의해서 부정되고, 일본의 대한정 책이 완전 식민지화 정책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식적으로 독 립국 체제를 유지하면서 한국에서의 외국의 치외법권을 철폐한다는 이토 히로부미의 [한국 법전 편찬] 구상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국 관 습조사 사업은 조선총독부가 설치된 이후 식민지 법제정책을 수립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한 국 법전의 기본 원칙이었던 일본인 및 외국인의 민형사 분쟁에 관해서는 일본 민법을 적용하고, 한국인 상호 간의 분쟁에 국한하여 한국 법전을 적용한다는 것은, 한국 법전 폐기 이후에도 1910년 9월 조선민사령안( 朝 鮮 民 事 令 案 )에서 또다시 구현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주도로 진행됐던 약 4년 8개월간의 통감부를 통한 조 선 지배에서 일제는 조선사회의 구조와 관습, 정체 등에 대해서 상세히 파 악할 수 있었고 식민지화를 위한 기초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년 한국 병합 이후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식민정책 수립이 원활하게 진행 된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였다. 특히 재판제도와 민형법( 民 刑 法 ) 제정 과정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47

48 에서 조선총독부는 일본 본국 정부와 식민법제에 대한 전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었는데, 조선총독부는 일본 정부와의 협의에서 상당한 정도로 조선 관습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을 갖고서 협상에 임했다. 당시 식민법제 의 제정을 담당하고 있던 인물들이 대개 4년 정도 한국의 사법행정에 참 여하거나 혹은 판검사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 법제에서 조 선의 특수성이 일부 반영될 수 있었다. IV.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법 제정과 조선 관습 관습조사 사업은 1909년에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 정부가 한국 병합을 결 정하면서 그 성격이 전환되었다. 1909년 사법권 위탁조약을 체결하면서 한국법부를 폐지하고 통감부재판소령을 공포하여, 한국의 재판제도는 소 멸되고 일본의 재판소가 한국에서 사법사무를 담당하는 체제로 전환되 었다. 이에 따라 이토 히로부미와 우메 겐지로가 추진한 한국 법전의 편찬 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초기에는 법전 편찬을 위하여 관습조사 사업이 시행되었 으나, 한국 병합이 결정된 이후에도 여전히 관습조사는 필요하였다. 다만 식민지 조선의 관습조사 사업의 성격이나 규모가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 었다. 원래 조선총독부는 통감부 시기의 법 인식을 일부 계승하려 하였다. 조선총독부가 1910년 9월 무렵에 기안한 조선민사령(안)은 통감부 시기 의 법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보호국화 정책하에서의 한국 법 전 편찬은 일본인 및 외국인이 개입된 민사사건의 경우에는 일본 민법을, 쌍방이 한국인인 경우에는 구관을 적용한다는 입장이었다. 48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49 법전조사국에 의해서 조사된 관습은 관습조사보고서 에 수록됨으로 써 법원( 法 源 )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1910년 8월에 한국이 병합되었으나 조선총독부는 조선인의 민사법을 일본 민법으로 이 식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 관습이 법적 규범으로 활용될 가능성 이 높았다. 조선총독부는 통감부 시기의 민사법 제정의 원칙을 상당 부분 수용하려는 자세를 취하였다. 조선총독부의 방침이 법제화된 것이 아래 의 1910년에 기안된 조선민사령안이다. 조선민사령( ) 제1조 민사에 관한 사항은 민법, 상법 및 그 부속 법률에 의한다. 제1조 부속 법률은 조선총독이 정한다. 제2조 부동산에 관한 권리에 관하여는 민법 제2편 의 규정에 의하 지 않고 종래의 예에 의한다. 제3조 조선인간( 朝 鮮 人 間 )의 민사에 관하여는 제1조의 규정에도 불구 하고 종래의 예에 의한다. 부칙( 附 則 ) 본령( 本 令 )은 일( 日 )부터 이를 시행한다. 48 위 조선민사령안은 1910년 9월 30일과 10월 1일에 공포된 조선총독 부관제 및 조선총독부재판소령과 함께 공포될 예정이었다. 조선총독부 재 판소를 새로 설치하고 재판소에서 재판에 필요한 민형사 법제를 공포하 려 했던 것이다 犯 罪 卽 決 例 民 事 爭 訟 調 停 ニ 關 スル 件 及 辯 護 士 規 則 ヲ 定 ム, 公 文 類 聚 (1-2A-011, 類 1108) ( 인터넷 홈페이지는 2003년 6 월 1일 당시의 주소임.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49

50 위 조선민사령은 통감부 시기와 유사한 방식으로 민사체제를 구축할 것을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인에 대해서는 조선 관습을 적용한다는 취지와 조선인과 사이의 사법에 대해서는 일본 민법을 적 용한다는 취지는 1909년 일본칙령 제238호와 동일한 정신에서 비롯된 것 이라 할 수 있다. 제1조는 민법, 상법 및 부속 법률을 민법에 의거한다는 [일본 민법주의] 49 를 채택하고 있으나, 제3조에서 {조선인간의 민사에 관 하여 제1조 규정에도 불구하고 종래의 예}에 의거하도록 하였다. 여기에 서 [종래의 예]는 1909년 일본 정부가 한국의 사법권을 탈취하면서 확립 한 민형사법제 원칙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조선인 상호 간의 민사사건에 관해서는 일본 민법이 아니라 조선의 관습 및 구한국법령에 기초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특히 위 조선민사령의 이유서에서는 {조선에서는 한국 병합 결과 민사 에 관해서는 일반적으로 내지의 예에 의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다 음의 사항은 예외로 한다}고 하여 1910년 9월 조선민사령안이 제1조에서 일본 민법 및 상법 의용( 依 用 ) 원칙과 더불어 조선적 특성을 식민지 법제 에 반영하려 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유서에서 예외로 들고 있는 것 은 모두 3가지 항목으로서 {1 토지에 관한 권리, 2 조선인의 친족 및 상 속, 3 조선인 사이에 있어서는 당분간 내지의 예에 의하는 것보다는 차라 리 종래 그대로 하는 것이 시의에 적절하다고 인정}하였다 [ 日 本 民 法 主 義 ]는 조선지역의 민사사건에 관해서 일본 민법을 依 用 한다는 [ 日 本 民 法 延 長 主 義 ]를 뜻하고, [ 朝 鮮 舊 慣 主 義 ]는 조선인 사이의 민사사건에 관해서 는 조선 관습을 적용한다는 [ 朝 鮮 舊 慣 溫 存 主 義 ]를 뜻한다. 50 犯 罪 卽 決 例 民 事 爭 訟 調 停 ニ 關 スル 件 及 辯 護 士 規 則 ヲ 定 ム, 公 文 類 聚 (1-2A-011, 類 1108) ( 50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51 1910년 9월의 조선민사령은 내용상으로는 우메 겐지로가 추진했던 한국 법전 구상을 일정하게 계승하는 것이다. 우메 겐지로가 구상했던 한 국 법전은 1 토지에 관해서는 한국법에 의하고, 2 신분법(친족 및 상속, 호 적)에 관해서는 본국법에 의하고, 3 한국인 상호 간의 분쟁에 대해서는 한국 법규를 적용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와 같은 민사체제는 당시 일 본 식민법제의 기본 원칙을 형성하고 있었다. 즉 1908년 8월 28일에 공포 된 대만민사령( 臺 灣 民 事 令 )에서도 동일한 원칙이 관철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민사령 제1조는 대만민사령 제1조와 완전히 동일한 내용이고, 제2조 와 제3조도 거의 유사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년 9월의 조선 민사령안은 법제적으로 대만민사령과 동일한 내용으로서, 식민 초기 조선 총독부는 대만형 민사체제를 지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08년 대 만민사령과 1910년 9월의 조선민사령안은 조선인 및 대만인에게는 일본 민법 적용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관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는 점에서 서로 동일한 민사체제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조선 의 법적 지배에서 급격한 변동을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 조선민사령은 1910년 9월 무렵에 조선총독부가 내각으로 제령안을 발송한 상태에서 폐안되었다. 1910년 9월의 조선민사령안은 각 의결정까지 이르지 못하고 법제국 심의과정에서 폐안되었지만, 식민 초기 조선총독부의 조선법제 방침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년 단계에서는 일본 정부가 더 이상 구관주의적 민사법 체제 년 8월 28일 律 令 제11호 臺 灣 民 事 令, 外 地 法 制 誌 4권, 149~150쪽.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51

52 를 유지할 의향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52 조선총독부와 일본 정부는 조선 관습을 식민법제에 어떻게 반영할 것 인가를 둘러싸고 갈등하였고 결국은 1912년에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 가 일정하게 타협하여 새로운 만들었다. <1912년 조선민사령> 제1조 민사에 관한 사항은 본령 기타의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 우를 제외하고는 다음의 법률에 의함. (이하 생략) 53 제10조 조선인 상호 간의 법률행위에 대해서는 법령 중 공공의 질서에 관계없는 규정과 다른 관습이 있는 경우에는 그 관습에 의한다. 제11조 제1조의 법률 중 능력, 친족 및 상속에 관한 규정은 조선인에게 이를 적용하지 않는다. 제11조 조선인에 관한 전항의 사항에 대해서는 관습에 의한다. 제12조 부동산에 관한 물권의 종류 및 효력에 관해서는 제1조의 법률 에 정한 물권을 제외하고는 관습에 의한다 년의 원칙으로서 일본 본국의 민법, 상 법, 민사소송법, 형법, 형사소송법, 기타 일본의 현행법에 의하도록 하였지 만, 조선의 현상에 비추어 내지법에 의할 수 없는 것 또는 이것에 의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인정되는 것에 대해서는 적당한 예외 규정을 설치하거나 52 당시 제령은 조선총독의 상주 척식무대신 경유 내각 법제국 심의 각 의결정 내각총리대신 천황 재가 후 공포되었다. 53 일본 민법, 상법, 민법시행법, 상법시행법을 비롯하여 총 23개 법률을 나열하고 있다 년 3월 18일 制 令 제18호 朝 鮮 民 事 令. 52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53 또는 종래의 예( 例 )에 의하게 하였다. 55 원래 민사에 관해서 일본인에게 적 용하는 실체 법규는 영사재판 시대부터 일본 법에 의거해오고 있었기 때 문에 1912년의 조선민사령에서는 대체로 그 당시까지의 사실을 법적으 로 확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인에게 적용했던 실체 법규는 조선회사령 ( 朝 鮮 會 社 令 ), 이식제한령( 利 息 制 限 令 ), 수형조례( 手 形 條 例 ) 등이 있었을 뿐, 기타는 조선의 관습에 의한 것이 많았지만, 민법@상법@민사소송법 등 일 본 민법을 적용받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56 이와 같이 한국 병합 이후에도 조선지역 56 내에서의 각종 법률행위는 당사자에 따라서 적용하는 법규가 서로 달랐던 것을 1912년의 조선민사령에서는 일본인, 조선인 및 외국인 을 각각 구별 없이 동일한 법률로 규율하는 것을 일반적인 원칙으로 삼았 다. 57 조선의 법규를 통일하는 것에 대해서도 원래 일정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특히 조선에만 시행하기 위해 새롭게 법규를 제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또 조선을 위한 특별 법규를 설치하지 않고 내지 의 법규에 의준( 依 準 )하는 것도 역시 하나의 방법이다. 만약 내지와 조 선 사이에 비상한 사정의 차이가 있어서 절대로 내지의 법규에 의하기 어렵다면 처음부터 조선을 위해 특별 법규를 설치하지 않으면 안 되지 만 내지와 조선은 이와 같은 사정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신령( 新 令 )에 년 3월 22일 司 法 官 ニ 對 スル 訓 示, 朝 鮮 統 治 三 年 間 成 績 附 錄 總 督 諭 告 及 訓 示, 62쪽. 56 朝 鮮 施 政 方 針 及 施 設 經 營 ( ), 寺 內 正 毅 文 書. 57 朝 鮮 民 事 令 要 旨, 倉 富 勇 三 郞 文 書 ; 朝 鮮 民 事 令 ヲ 定 ム, 公 文 類 聚 第 三 十 六 編 明 治 四 十 五 年 ~ 大 正 元 年 第 十 六 卷 衛 人 獸 畜, 願 訴, 司 裁 判 所 ~ 刑 事. (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53

54 서는 민사형사도 대체로 내지의 법규에 의하고 그 법규 중에서 조선의 사정에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에 한하여 특별 규정을 설치하였 다 년의 조선민사령은 1 조선과 내지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으며, 2 조선의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것은 특별 규정을 설치한다는 법 인식을 기초 로 제정된 것이었다. 위와 같은 원칙에 의해서 1910년 9월 조선민사령안 의 {조선인 상호 간에는 관습을 적용한다}는 방침이 부정되었고, 그 대신 에 조선과 일본과의 특수한 차이가 있는 것에 한정하여 특별 규정을 설치 하는 쪽으로 민사법이 확립되었다. 1912년의 조선민사령은 조선인 상호 간의 민사사건에 대해서도 일본 민법을 적용한다는 일본 민법주의가 관철되었다는 점에서, 1910년 9월의 조선민사령안에 비하여 관습의 적용 범위가 크게 축소되었다고 볼 수 있 다. 따라서 조선의 민사법제는 조선 독자의 특별법규 형태가 아니라 일본 의 민법을 그대로 의용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었고 의용 범위 내에서는 조 선과 일본의 법제는 동일한 내용을 갖게 되었다. 1910년 한국 병합 당시까지 일본의 식민지 민사법 원칙이던 구관주의 적 민사체제는 1912년에 일본 민법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조선민사령이 등장하면서 부정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본 민법과 조선 관습 간에 객 관적으로 차이가 있었던 능력, 친족, 상속, 부동산물권 등에 관해서는 일 본 민법이 아니라 조선의 구관을 적용하였고, 조선 재래 구관의 법제화는 특별법제의 작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관습법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을 58 朝 鮮 司 法 事 務 ニ 關 スル 新 制 度 ノ 梗 槪, 倉 富 勇 三 郞 文 書. 54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55 통해서 조선민사령 체제로 흡수되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조선민사령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은 조선총독부와 일본 정부의 조선인 법제정책이 민 법주의( 民 法 主 義 )를 근본 원칙으로 설정하고 조선 관습을 일부 영역에 국 한하여 법인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1912년의 조선민사령 체제는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가 서로 합의했 던 조선통치안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 체제의 변화는 조선총독부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의 식민정책의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다. 1912년의 조선민사령은 내용상으로는 제1조에서 일본 민법을 의용함으로써 일본 민법적 원리가 조선 법제의 기본 원칙으로서 확립되었으나, 조선민사령 제 10조~제12조 영역에서는 조선의 관습을 적용함으로써 구관주의도 일부 인정하였다. 따라서 조선민사령은 일본 민법주의적 원리와 조선 구관주의 적 원리가 서로 모순관계를 형성하면서 확립되어 있었다. 법제 형태상으 로는 일본 민법이 의용되는 범위에서는 성문법( 成 文 法 ) 체제를 확립하였 으며 또 한편으로는 조선 관습을 법인함으로써 관습법( 慣 習 法 ) 체제도 용 인( 容 認 )하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일본 민법과 조선 관습이 병존하는 이 원적 체제를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59 V. 조선민사령 제11조 [관습]과 법인화 1912년의 조선민사령에서 민사에 관한 사항은 제1조 규정에 의하여 민 59 대만민사령의 경우에도 폭넓은 관습주의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민사 령과 같은 일본 민법 - 관습법 체제는 일본의 식민법제의 특징으로서 자리 잡 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55

56 등의 실체법과 민사소송법, 인사소송수속법, 비송사건수속법 등 의 절차법의 규정에 의거할 것을 밝혔다. 절차법과 관련해서 조선민사령 은 일본 법령과 다른 특별 규정을 설치하였고, 실체법에서도 조선 관습의 효력을 인정하는 예외 조항을 설치하였다. 즉, 조선인 상호 간의 법률행위 에 대해서는 법령 중 공공의 질서에 관한 규정과 다른 관습이 있는 경우 에는 관습에 의거할 수 있도록 하였고(제10조), 등에 관 해서는 조선 관습에 의거하도록 하였다(제11조). 그리고 일본 민법상의 물 권과 더불어 관습법상의 부동산물권도 동시에 인정하였다(제12조). 그러 나 조선민사령 제10조부터 제12조까지의 관습은 적용 범위와 대상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조선민사령 제10조는 {조선인 상호 간의 법률행위에 대해서는 법령 중 공공의 질서에 관계없는 규정과 다른 관습이 있는 경우에는 그 관습}에 의거하도록 하였는데, 우선 제10조의 관습은 조선인 상호 간의 법률행위 에 국한하여 적용되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인과 외국인의 법률행위 및 이 들과 조선인 사이의 법률행위에는 관습이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제10조 의 규정은 공공의 질서에 관계되는 법규, 60 즉 강행법규에 위배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임의법규에 관련된 행위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60 공공의 질서에 관한 법규는 당사자 의사 유무를 불문하고 준수되기 때문에 강 행법규이다. 관습법은 원칙적으로는 공공의 질서와 관련되지 않는 법규이지만, 조선의 친족 및 상속에 관한 관습법은 주로 강행법에 속한다. 공공의 질서에 관 련되지 않는 법규는 任 意 法 規 이고, 임의법규는 各 人 이 그것을 따르고 따르지 않는 것은 본인의 자유이고 任 意 이다. 즉 법률행위에 있어서 임의법과 다른 의 사를 표시하고 그 의사에 따라서 결정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任 意 法 이라 부른 다. 近 見 繁 造 (1924), 朝 鮮 戶 籍 法 規 詳 解, 87~88쪽. 56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57 표시한 의사가 법률 규정과 똑같이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은 법 해석을 엄격히 하면, 강행법규가 존재하는 부분에서는 관습법규는 존재 하지 않거나 혹은 효력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법적 효 력을 갖고 있었던 조선 관습 중에서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등 의 강행법규에 속하는 규정을 조선에 적용하게 되면, 이 법규가 적용되는 부분에 관해서 조선의 관습은 법적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61 조선민사령 제10조는 일본 민법 제92조 규정 62 에 상당하는 것으로 강행법규를 보완 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 법례 제2조에 의하면 공공의 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에 반( 反 )하지 않는 관습은 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인정 되는 사항 및 법령의 규정이 없는 사항에 관해서는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인 상호 간의 법률행위에 관한 관습 가운데 법령 중 공공의 질서와 관련되지 않는 규정, 즉 임의규정과 다른 관습 및 선량 한 풍속에 반하지 않는 관습은 법원( 法 源 )으로 인정되었다. 63 또 조선민사령 제11조에서 능력, 친족 및 상속에 관한 규정은 일본 민 법을 조선인에게 적용하지 않고 조선 관습에 의할 것을 규정하였다. 조선 민사령에서는 제1조와 제11조를 병존시킴으로써, 제11조 영역에 관해서 조선 관습법을 민족적 속인법( 屬 人 法 )으로 인정하였다. 따라서 제1조에서 규정했던 민법 기타 법률의 사항에 관한 규정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에게 적용되는 것이었고, 조선인과 일본인이 관계된 법률관계에 있어서도 61 近 見 繁 造 (1924), 위의 책, 88쪽. 62 일본 민법 제92조는 당사자가 관습에 의한다는 의사를 가지는 경우에 한하여 관습에 依 할 수 있다는 취지를 정한 것이다. 63 吉 田 平 治 郞 (1923), 朝 鮮 に 於 ける 慣 習 と 民 事 法 規 との 關 係, 司 法 協 會 雜 誌 2 권 4호, 4~5쪽.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57

58 제10조와 달리 조선 관습을 적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조선 관습법 중 에서 친족 및 상속에 관한 영역은 모두 공공의 질서에 관한 강행규정이기 때문에, 제10조와 달리 각 당사자들이 조선 관습법과 다른 법률행위를 하 면 그 행위는 무효가 된다. 위 조선민사령 제10조~제11조의 관습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령과 동일한 효력을 부여받았고, 민사령의 주요 내용인 민법, 상법, 기타의 법령 중 관습과 상이한 임의법규의 적용을 배척하고 이러한 규정에 앞서 적용 되었다. 64 제10조는 강행법규를 보완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지만, 제11조 영역은 공공의 질서에 관한 강행법규에 속하기 때문에 조선 관습이 당사 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법적 효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민사령 제11조는 친족 및 상속에 관한 실체적 내용을 규 정했던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조선 관습을 법원으로 인정했다는 의미 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법적 효력을 갖는 관습이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확 정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이와 같이 조선민사령에서의 특례조항은 조선총독부로 하여금 조선 관습의 실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요구하였 다. 원래 관습이란 성문의 형식을 띠는 것이 아니라 불문( 不 文 )의 형식을 띠고 있고, 또 사회적 감정을 반영하고는 있지만 그 구체적 내용이 대단 히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65 조선민사령 제11조는 조선인의 관해서 관습에 의한다는 것만을 명시하고 있을 뿐, 관습법이 형성되는 방 식과 확정의 주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당시 조선총독부에 의해 법인 된 관습은 관습조사보고서 에 서술되어 있는 것에 큰 영향을 받았다. 왜 64 吉 田 平 治 郞 (1923), 위의 글, 4~5쪽. 65 南 雲 幸 吉 (1935), 現 行 朝 鮮 親 族 相 續 法 類 集 : 喜 頭 兵 一 의 序, 1~2쪽. 58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59 냐하면 관습조사보고서 에 서술되어 있는 조선 재래의 관습이 재판소와 조선총독부의 각종 통첩 및 회답( 回 答 ) 등 다양한 경로와 방식에 의해서 관습법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관습조사보고서 는 비록 일본인들이 일본 민법적 개념을 기초로 조 사한 것이었지만, 한국 역사상 최초로 전국 단위로 한국인들의 각종 관습 을 실지조사@전적조사를 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현행 관습을 일정하게 반 영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관습조사 사업이 일본의 식민정책의 일 환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일본 민법적 개념의 투영은 불가피했다. 일 본 민법과 조선 관습의 유착@결합은 1909년 민적법( 民 籍 法 )에서 확립된 일본식 호적제도에서 비롯되었다. 관습조사보고서 를 발행하면서 일제 는 1909년 민적법을 현행 법령으로 취급하여 조선의 친족제도와 상속제 도를 재해석함으로써, 일부 영역에 있어서는 조선 관습도 아니면서 일본 민법도 아닌 이 양자가 서로 결합된 [식민지적 관습법]을 창출하였다. 그리고 관습법인( 慣 習 法 認 )의 주체 역시 조선총독부 당국이었기 때문 에 일본 민법적 시각이 투영된 관습법의 성격을 일부 갖고 있었다. 66 대만 의 왕타이셩[ 王 泰 升 ]도 식민지 시기 대만의 관습법이 청( 淸 ) 통치시기의 관습규범과는 달랐다고 언급하고 있고, 그 이유를 총독부 법원에 의한 관습법 정립이라는 시각에서 해석하고 있는데 67 이와 같은 해석은 한국 법사학계와 매우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식민지 시기에 정립된 관습법은 총독부 행정당국 및 사법당국 66 이상욱(1986), 앞의 글; 鄭 鍾 休 (1989), 앞의 책;박병호(1992), 일제하의 가족 정책과 관습법 형성과정, 법학 33-2, 서울대학교;정긍식(2002), 앞의 책. 67 王 泰 升 (1999), 臺 灣 日 治 時 期 的 法 律 改 革, 聯 經.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59

60 의 법적 승인 및 규제에 기인하는 것과 더불어 사회 변동에 따른 관습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관습은 규제에 의해서만 정립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당시의 사회적 상태를 반영하기 때문이 다. 68 일본 민법 개념에 의한 변형이라는 구도뿐만 아니라,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전통적 관습법 체제가 근대적 법전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의 변형도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즉, 조선 재래의 모든 관습이 법적 효 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당시의 법적 신념과도 부합해야 한다. 일본 법례 제2조에는 {공공의 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에 반하지 않는 관 습}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갖도록 하였는데, 조선민 사령에서의 관습도 역시 공공의 질서 및 선량한 풍속이라는 제한을 받았 던 것이다. 당시 조선의 모든 관습이 보편성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특정 지방에서 관습으로 유지되고 있던 것이 다른 지방에서는 관습으로 인정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각 지역의 조사보고서들을 취합 하여 하나의 관습조사보고서 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각 지역 간의 관습 의 충돌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이 경우 조선총독부는 각 지방의 관습 68 조선사회의 변화를 수용하여 관습법 및 성문법규를 변경한 대표적 사례는 협 의이혼 및 재판상 이혼의 관습법 정립과 조선부동산등기령의 개정이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의 논문 참조. 이승일(1999a), 日 帝 時 代 親 族 慣 習 의 변화와 朝 鮮 民 事 令 개정에 관한 연구 - 朝 鮮 民 事 令 제11조 제2차 개정안을 중심으로, 한국학논집 33, 한양대학교;이승일(1999b), 식민지 조선의 次 養 子 연구, 역사와현실 34;이승일(2000), 일제 식민지시기 宗 中 財 産 과 [ 朝 鮮 不 動 産 登 記 令, 사학연구 61, 한국사학회. 60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61 과 고문헌( 古 文 獻 )을 고려하여 전국적 성격을 띠거나 혹은 문헌적 연원이 있는 관습을 채택하였다. 관습조사보고서 는 그 자체가 관습법을 선명( 宣 明 )하지는 않았으나 법원의 판결 및 총독부 통첩, 회답을 결정하는 데 1차적으로 참고사항이 되었다. 실제로 재판소 판례 및 통첩, 회답 등을 살펴보면 대부분 관습조 사보고서 를 인용하여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관습조사보고서 에 수록된 관습은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될 법원( 法 源 )으로서의 관습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시 관습의 법적 승인 과정, 즉 법인의 절차가 필요하다. 69 조사 된 관습이 법원으로 인정되는 법인화 과정을 살펴보면 식민시기에 정립된 관습법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다. 조선민사령 제11조와 관련하여 분쟁이 있을 경우에, 법적 규범력을 띨 수 있는 것은 크게 4가지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 정무총감, 법무 국장이 발( 發 )하는 통첩 및 회답에 의한 방식이다. 재판 혹은 민적( 民 籍 ) 사무에서 관습법의 내용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났을 경우에, 정무총감 및 법무국장의 명의로 관습법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방식이다. 법무국장은 조선총독의 입법권을 대행하고 법원 등을 감독하였고, 70 정무총감은 조 선총독을 보좌하여 조선총독부 전반에 걸쳐 책임을 지기 때문에, 이들에 의한 회답과 통첩은 관습에 관한 조선총독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조선 관습에 관해서 포괄적인 입장 표명이 필요한 것은 관통첩 ( 官 通 牒 )의 형식으로 발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민적 사무에 관해서는 각종 통첩 및 회답이 직접 효력을 발할 수 있었고, 재판장의 조회에 따른 69 정긍식(2002), 앞의 책, 234쪽. 70 정광현(1967), 韓 國 家 族 法 硏 究, 서울대학교 출판부, 24쪽. 일제의 조선 관습조사 사업 활동과 식민지 법 인식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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