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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船 遊 를 통해 본 洛 江 연안지역 선비들의 집단의식 김 학 수 * 1) Ⅰ. 머리말 Ⅱ. 洛 江 의 공간적 특성과 선유 전통 : 공간에 대한 주관적 인식과 상징 창출 Ⅲ. 17세기 洛 江 연안지역 선비들의 선유와 집단의식: 寒 旅 學 人 을 중심으로 1. 소통과 사교 : 文 化 공감 1) 徐 思 遠 의 琴 湖 仙 査 船 遊 : 玩 樂 齋 의 낙성과 儒 林 雅 會 2) 鄭 逑 의 洛 江 船 遊 : 師 弟 同 行 의 春 日 抒 情 2. 학문과 연대 : 學 術 공감 1) 鄭 逑 의 龍 華 船 遊 : 寒 岡 學 의 팽창 과 타자의 시선 2) 鄭 逑 의 蓬 山 浴 行 : 뱃길을 따라가 는 한강학의 거점들 3) 寒 旅 門 人 의 開 津 船 遊 : 洛 江 에서 기약한 근기 영남의 학적 제휴 Ⅳ. 맺음말 국문초록 洛 江 은 영남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자 학술과 문화, 정보가 유통되는 거 대한 소통의 장이었다. 특히, 16세기 이후 사림파의 성장과 더불어 낙강 은 이른바 강거문화와 접목되어 누정들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누 정들은 영남 선비들의 학술문화 공간으로 기능했다. 교유 또는 종유로 불리는 사귐의 문화를 중시했던 사림들은 詩 會, 遊 山, 船 遊, 講 會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친분과 정리를 다졌고, 학문을 주고 받 았다. 강회가 선비로 행세하기 위한 학문적 일상이었다면 시회, 유산, 선 * 한국학중앙연구원 국학자료조사실장(책임연구원) / 전자우편 : ksoya@aks.ac.kr 41

2 유는 학문적 원기를 재충전하는 휴식의 과정이자 서로간의 연대와 결속을 강화하는 단합의 자리였다. 낙강에는 저 아득한 옛날부터 배가 다녔고, 또 배를 매개로 한 놀이문 화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 경관 및 누정으로 대표되는 학술문화공 간과 접목된 뱃놀이문화 가 활성화 된 것은 조선시대였다. 선유문화는 학 파의 형성기라 할 수 있는 16세기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학파의 발전 기인 17세기부터 더욱 보편화 되었다. 1,000리를 상회하는 낙강의 유역 중에서도 선유문화가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운 곳은 상주 인동 성주 칠곡 대 구 고령 영산 창녕 함안에 이르는 낙강 중류지역이었고, 이런 문화를 양성한 인적 집단은 鄭 逑 張 顯 光 이 중심이 된 寒 旅 學 人 들이었다. 이 글은 17세기 낙강의 선유문화를 만개시켰던 한려학인들의 선유 양 상을 집단의식과 결부시켜 검토한 것이다. 17세기 낙강 연안지역 선비, 즉 한려학인들에 있어 선유는 일견 평범한 일상의 하나로 비쳐질 수 있었 지만 그 이면에는 치밀한 기획과 의도가 깔려 있었다. 우리가 무심코 지 나칠 수 있는 날자 하나도 그들은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꼼꼼이 택일한 것이었고, 배 안에 오른 사람도 일정한 자격과 조건을 갖춘 선택된 사람 들이었으며, 또 그들이 경유하거나 정박 유숙했던 누정 또한 단순히 하루 를 쉬어가는 여관이 아니었다. 한려학인에 있어 선유는 학문적 집단의식의 확인 또는 강화의 과정이었 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사건화시켜 미담 또는 고사로 전승되게 했고, 또 이들이 경유했던 누정은 집단의식의 매개체인 학문적 벨트와도 같았다. 정구의 한강학파(문인: 342명), 장현광의 여헌학파(문인: 355명)가 17세기 초반 영남학파의 실체였음을 고려할 때 본고에서 살펴 본 선유는 한려학파 형성과 발전의 과정을 설명하는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주제어 船 遊, 寒 旅 學 人, 洛 江, 琴 湖 仙 査 船 遊, 龍 華 船 遊, 蓬 山 浴 行, 開 津 船 遊, 玩 樂 齋, 浮 江 亭, 漁 牧 亭, 鄭 逑, 張 顯 光, 徐 思 遠, 趙 任 道, 裵 尙 龍, 許 穆 42

3 Ⅰ. 머리말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영남의 중앙지대를 관통하여 남해로 유입되는 낙 강은 영남의 젖줄로 기능해 왔다. 총길이 km에 이르는 낙강은 그 유역도 방대하거니와 선사시대 이래로 인간이 터를 잡아 살아왔고, 이 과 정에서 다양한 문화를 축적시켰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낙강을 기준으로 경상도를 左 道 (또는 상도)와 右 道 (또는 하도)로 구분되었는데, 이러한 행 정적 구분은 문화의 형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 예컨대, 좌도= 退 溪 學 派, 우도= 南 冥 學 派 나 상도= 仁, 하도= 義 라는 등식체계는 그러한 인식의 단적인 반영이었다. 낙강의 사회적 기능과 문화적 색채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있어야 하겠지만 조선시대, 특히 16세기 이후 사림시대의 낙강은 영남의 선비문 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그 주요 연안지역인 예안 안동 상주 인 동 성주 대구 현풍 고령 영산 창녕 함안 밀양 김해는 영남의 사 림문화 내지는 영남학파의 상징적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퇴계 학파는 청량산으로 대표되는 산문화와 결부시켜 얘기되고 있지만 風 月 潭, 濯 纓 潭 으로 상징되는 강문화적 요소를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아울러 풍산 상주권의 서애 우복학파, 인동권의 여헌학파, 성주권의 한강학파도 낙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형성, 발전하였다. 낙강 연안에 위치한 옥연정사, 도남서원, 부지암정사, 사양정사 등은 바로 이들 학파의 상징적 공간들이 었다. 강은 물산과 정보가 오고가는 생활과 소통의 공간이자 사교의 공간이었 다. 조선시대 낙강 연안의 선비들은 강안 곳곳을 점하여 누정을 지었다. 누정은 단순히 음풍농월을 일삼는 유희의 공간이기보다는 그 시대의 학술 문화를 담아내는 살롱(Salon) 으로 기능하는 가운데 선유로 지칭되는 집 단놀이 를 촉진시켰다. 누정이 詩 會, 학문토론으로 일컬어지는 靜 적인 학 1) 李 重 煥, 擇 里 志 八 道 總 論 < 慶 尙 道 >. 43

4 술문화의 자리였다면 뱃놀이는 동적인 속성이 강한 사교와 회합의 마당이 었다. 조선시대 낙강 연안의 선비들은 너무나 다양한 방식으로 즐겼고, 그 이유나 장소, 참가자 또한 정해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이유가 그 때마다 다르다고 해서 그럴만한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니었고, 정해진 장소가 없다 고 해서 사교의 동선을 이탈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참가 자격에 제한이 없는 듯 했지만 일정한 규율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선비들에 있어 놀이 를 빙자한 엄연한 사교 행위였고, 破 閑 을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사회 학문 적 결속과 연대의 방식이었다. 거기에 명사 또는 聞 人 이 개입되면 그 공 간과 그 모임은 사림사회의 고사 또는 상징이 되어 후세에 영향을 미쳤다. 이황의 풍월담 탁영담 주유가 그랬고, 정구의 용화선유 와 봉산욕행 이 또 한 그러했다. 이 글은 조선후기, 특히 17-18세기 낙강 연안지역 선비들의 집단의식 의 성격을 선유를 통해 추적해 본 것이다. 그들에게는 다소 如 常 스러워 보일 수 있는 선유가 낙강이라는 공간과 어우러져 어떤 양태의 집단의식 으로 구체화되는가를 추적하는 것은 이 시기 이 지역 사림들이 삶과 문화 를 어떻게 디자인했는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이것은 영남학파의 팽창기인 17세기 초중반 낙강 연안을 거점으로 형성되었던 한 려학파가 자기 시대의 산천과 공간을 어떻게 활용했고, 또 그것이 그들의 학문적 소통과 연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와 관련해서도 일정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Ⅱ. 洛 江 의 공간적 특성과 선유 전통 : 공간에 대한 주관적 인식과 상징 창출 16세기 중엽 이후 사림의 성장과 더불어 낙강은 강 이라는 자연환경을 넘어 사림의 학술 문회의 거점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세기에 형 44

5 성, 발전했던 영남학파도 낙강의 물줄기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 었다. 예컨대, 퇴계학파는 상류 예안과 안동을 중심으로 배태된 것이었고, 풍산 상주 등 중상류 연안을 거점으로 하는 서애 우복학파나 인동~성주에 이르는 중유지역을 아우른 한려학파도 그 연장 선상에 있었다. 2) 특히, 한 강학파는 성주 칠곡 대구 일대는 물론 현풍 고령 영산 창녕 함안 등 낙강 중 하류 지역을 포괄했다는 점에서 강문화 와의 연관성이 가장 깊은 학파였 다. 3) 강은 인간이 왕래하고, 물산이 유통되는 소통의 공간이다. 육로 이동에 제약이 따르던 전통시대에 있어 강은 조세가 운반되고, 상선이 드나드는 삶의 현장으로서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정보를 수렴 또는 퍼트리면서 문 화를 만들어갔다. 더구나 강은 수려한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학술문화 활 동 및 휴양의 공간으로서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낙강 연안의 사림들이 일찍부터 溪 居 또는 江 居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배경도 여기 에 있었다. 이황의 도산서당, 조목의 월천서당, 유성룡의 옥연정사, 장현광 의 부지암정사, 정구의 사양정사 등은 모두 강거문화의 소산들이었다. 이런 전통은 서원의 입지에도 영향을 미쳐 도산서원(예안), 역동서원(예 안), 虎 溪 書 院 (안동), 병산서원(안동), 도남서원(상주), 동락서원(인동), 사 양서원(칠곡), 도동서원(현풍) 등 영남지역 핵심 원우의 대다수가 낙강 연 안에 위치하였다. 강문화의 발달은 자연히 누정문화의 발달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조선시 대만해도 예안에서 김해에 이르는 낙강 연안에는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룬 수려한 누정들이 흥폐를 반복하며 낙강의 격을 한 단계 높여주었다. 16세기 중엽의 학자 관료였던 주세붕은 攬 秀 亭 記 에서 낙강 및 낙강으 로 유입되는 5대 支 江 의 대표적 누정으로서 칠원의 買 浦 樓 景 釀 臺, 선산의 2) 김학수, 17세기 嶺 南 學 派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 문, ) 김학수, 조선중기 寒 岡 學 派 의 등장과 전개, 한국학논집 40, 계명대학교 한 국학연구원,

6 月 波 亭, 상주의 黃 家 亭 觀 水 樓 閒 燕 堂, 양산의 臨 鏡 臺, 김해의 悅 親 亭, 의령 의 十 玩 堂, 진주의 冥 鴻 亭 矗 石 樓, 산음의 換 鵝 亭, 영천의 明 遠 樓, 안동의 映 湖 樓, 밀양의 嶺 南 樓, 양산의 雙 碧 樓 등을 꼽았다. 4) 하지만 낙강의 누정문화는 여기 에 국한될 수 없었고, 17세기 이후 에 더욱 발전하였다. 앞에서도 잠 시 언급하였지만 도산서당, 월천서 당, 옥연정사, 부지암정사, 사양정 사 등은 낙강 연안의 학술 문화공 간을 대표하는 존재들이었고, 특히, 안동 하회의 옥연정사는 안음의 搜 勝 㙜, 단양의 龜 潭 과 더불어 湖 嶺 의 3대 可 居 處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힐만큼 5) 수려한 입지와 경관을 자랑하였다. 이 외 예안의 愛 日 堂, 濯 淸 亭, 孤 山 亭, 안동의 歸 來 亭, 伴 鷗 亭, 石 門 亭, 선산의 詠 歸 亭, 梅 鶴 亭, 대구의 霞 牧 亭, 浮 江 亭, 暎 波 亭, 고령의 漁 牧 亭, 浮 來 亭, 鶴 巖 亭, 영 산의 蒼 巖 亭, 合 江 亭, 칠원의 翔 鳳 亭, 함안의 伴 鷗 亭 등도 조선후기, 그림1. 河 隈 畵 屛 - 陶 山 書 院 (제1곡). 특히 17세기를 대표하는 누정들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었다. 한편 낙강 연안의 경승 및 누정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도화로 제작되 었는데, 류중영의 河 隈 畫 屛 이 대표적이다. 이 그림첩은 류중영이 사환시 4) 周 世 鵬, 武 陵 雜 稿 卷 6, 別 集 < 攬 秀 亭 記 >. 5) 李 萬 敷, 息 山 集 卷 12, 愚 潭 尋 訪 錄. 46

7 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는 목적에서 화가를 시켜 제작한 것으로 陶 山, 安 東 府 治, 石 門 亭, 壽 洞, 輞 川, 河 隈, 九 潭, 知 保 등 河 隈 ( 河 回 ) 상하 류의 경승 8곳의 그림이 담겨 있다. 6) 사신 영접 등 공무차 의주에 왔다가 정주목사 류중영으로부터 이 그림을 회람한 鄭 惟 吉, 朴 淳, 辛 應 時 등은 제 영을 통해 감상의 기쁨을 표현했고, 유중영의 간곡한 부탁을 받은 이황은 기꺼이 서문을 붙여 도화 제작을 기념해 주었다. 7) 강거 전통에 바탕한 누정문화의 발달은 조선시대 사림들의 여가문화에 도 커다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船 遊 또는 舟 遊 로 불리는 뱃놀이 였다. 뱃놀이는 본질적으로 여가 선용을 위한 놀이문화의 성격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선유는 개인적 놀이이기보다는 집단성을 추구하는 속성이 크다. 그것이 신분이나 직업이 든, 나이든, 혈연이나 학연이든 어떤 공감대나 일체감을 바탕으로 놀이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집단의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그 형식은 놀 이였지만 그 놀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연고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또 그 놀이의 과정은 아름다운 경관에 대한 감상이나 휴식의 차원을 넘어 6) 河 隈 畵 屛 은 제1곡 陶 山 書 院, 제2곡 安 東 府 治, 제3곡 石 門 亭, 제4곡 壽 洞, 제5곡 輞 川, 제6곡 河 回, 제7곡 九 潭, 제8곡 知 保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중영 당대의 그림은 현존하지 않고, 1828년 화가 李 義 聲 이 개작한 것이 지금 전하고 있다. 맨 앞의 폭에는 李 滉 의 서문과 鄭 惟 吉 의 제영이, 맨 마지막 폭에는 1829년에 지은 鄭 元 容 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정원용은 정 유길의 9세손으로 헌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 이황은 이 그림첩의 범위를 하 회 상하류라 했지만 사실은 예안에서 풍산에 이르는 방대한 거리이다. 제1곡 도산서원 의 경우 원그림에는 도산서당 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石 門 亭 은 金 誠 一 의 정자이며, 수동은 류중영 집안의 전장이 있던 곳으로 후일 그 아들 류 성룡이 이곳에 묻혔다. 풍산현 磨 崖 里 에 소재한 망천 은 절벽이 奇 壯 한 경승 지이다.( 永 嘉 誌 卷 2, 山 川 < 輞 川 絶 壁 > ; 金 養 根, 東 埜 集 卷 7, < 輞 川 記 >). 하회는 풍산유씨 류중영 가문의 세거지이고, 하회 인근에 위치한 구담 은 순천김씨의 집성촌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예천 경내인 지보는 동래정씨 鄭 惟 吉 집안의 선대 고향이다. 동래정씨는 흔히 會 洞 鄭 氏 로 불리는 서울의 문벌가문이지만 15세기 초중엽까지는 예천 知 保 에 살다가 정유길의 증조 鄭 蘭 宗 이 상경종사하면서 문호가 극도로 번창하였다. 7) 李 滉, 退 溪 集 卷 5, 續 內 集 < 題 柳 彦 遇 河 隈 畫 屛 幷 序 >. 47

8 사교, 화합, 결속 등 사회적 활동의 연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림2. 河 隈 畵 屛 - 河 回 (제6곡) 그림3. 河 隈 畵 屛 - 石 門 亭 (제3곡) 조선시대 낙강 연안지역 선비들에 있어 선유는 워낙 일상적이고 빈번했 기 때문에 그 사례를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어렵다. 8) 다만 여기서는 유형 별로 몇 가지 예를 언급하기로 한다. 먼저 동일 직업군끼리의 선유 사례 로는 1491년 의성현령 兪 好 仁, 상주목사 姜 龜 孫, 함창에 낙향해 있던 洪 貴 達 및 상주통판 신현, 상주교수 이인우 등이 상주에서 개최한 洛 江 泛 8) 문집류를 통해 선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인사로는 李 賢 輔, 李 滉, 柳 仲 郢, 權 好 文, 金 榮 祖, 金 坽, 金 涌, 金 是 榲, 李 象 靖, 李 頤 淳 (이상 예안-안동류지 역), 趙 靖, 李 埈, 鄭 經 世, 鄭 宗 魯 (이상 함창-상주지역), 金 宗 直, 鄭 逑, 張 顯 光, 金 烋, 徐 思 遠, 趙 任 道, 李 潤 雨, 權 濤, 李 玄 逸, 李 萬 敷 (이상 인동-칠원지역) 등이 있다. 48

9 舟 가 대표적이다. 9) 참가자의 신분으로 보면 同 官 주유처럼 보이지만 유호인이 김종직의 문 인이라는 점, 강구손이 1498년 무오사화 당시 사림의 변호에 노력한 점, 홍귀달이 1504년 연산군의 후궁 간택에 불응하다 교형에 처해진 점 등을 고려한다면 이 모임도 따지고보면 점필재문인 또는 친사림계 인사들의 회 합적 셩격이 컸다고 하겠다. 한편 조선시대 선비들은 소동파의 적벽부 에 바탕을 둔 선유를 가장 전 형적인 형태로 인식한 것 같다. 그 대표적 사례는 이황의 풍월담 선유에 서 찾아볼 수 있다. 이황은 1560년과 1562년 두 차례에 걸쳐 문인들과 함께 東 坡 故 事 에 따라 풍월담에서 선유한 바 있었는데, 특히 1562년에 는 조목, 김부필, 김부의, 김부륜, 금난수 등 예안지역 문인들이 대거 참여 하여 성회를 이루었다. 10) 소동파적 풍류를 표방하면서도 師 友 會 合 의 아취 가 강했던 이 선유는 영남학파에서는 또 하나의 고사가 되어 전승되었는 데, 1622년 이준 등 상주 사림들의 낙강범주, 11) 1623년 김휴 등 여헌 문인들의 선산 영귀정 선유도 12) 이를 본받은 것이었다. 특히, 1802년 이 이순 비롯한 역동 도선서원 사림 약 15명이 참여한 풍월담선유는 이황의 고사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13) 이처럼 조선시대 낙강 연안지역 선비들의 선유는 대체로 동일 학파내 사우회합 의 성격이 두드러졌지만 학파 상호간의 연대를 시사하는 기획적 인 선유도 있었다. 1634년 장현광을 중심으로 하는 인동 선산권의 여헌학 파와 전식 김지복을 중심이 된 상주권 우복학파의 상주주유는 그 단적인 사례가 된다. 14)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講 信 契 의 결성으로 집약되는 연대 양상은 인 9) 兪 好 仁, 㵢 谿 集 卷 7, < 洛 江 泛 舟 詩 跋 >. 10) 李 頤 淳, 後 溪 集 卷 6, < 風 月 潭 旣 朢 續 遊 錄 序 >. 11) 李 埈, 蒼 石 續 集 卷 5, < 洛 江 泛 月 詩 序 >. 12) 金 烋, 敬 窩 集 卷 7, < 詠 歸 亭 泛 舟 記 >. 13) 李 頤 淳, 後 溪 集 卷 6, < 風 月 潭 旣 朢 續 遊 錄 序 >. 14) 申 悅 道, 懶 齋 集 卷 6, < 拜 門 錄 >. 49

10 조반정 이후 여헌 우복학파가 영남학파의 주도세력으로 부상하던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서 15) 주유의 사회적 의미와 관련하여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風 月 潭 船 遊 ( 李 滉 과 퇴계문인), 洛 江 泛 舟 ( 李 埈 및 상주 유림), 詠 歸 亭 泛 舟 ( 金 烋 및 여헌문인)와 같은 사우회합 형태의 주유가 가 장 활성화 된 곳은 인동-칠원 함안에 이르는 낙강 중류지대였고, 학파상으 로는 한려학파가 그 중심에 있었다. 정구 장현광 및 그 문인들은 낙강 연 안에 구축되어 있었던 강거기반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시로 선유를 즐겼고, 그 때마다 20여 명에서 많게는 70-80명의 선비들이 참가하여 분위기를 크게 고조시켰다. 대부분의 경우 선유는 누군가가 주인이 되어 師 와 友 를 초청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고, 며칠 동안 여러 구역과 공간을 순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려학파의 선유 양상과 특징, 집단의식의 성격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1601년 서사원 장현광 등의 금호선사선유, 1605 년 정구의 낙강선유, 1607년 정구 장현광 등의 용화선유. 1617년 정구 및 한강문인의 봉산욕행, 1643년 배상룡 조임도 등의 개진선유 등을 통 해 좀 더 구체적으로 검토하기로 한다. Ⅲ. 17세기 낙강 연안지역 선비들의 선유와 집단의식 : 寒 旅 學 人 을 중심으로 1) 徐 思 遠 의 琴 湖 仙 査 船 遊 : 玩 樂 齋 의 낙성과 儒 林 雅 會 서사원이 금호강 仙 査 에서 사우문인들과 뱃놀이를 한 것은 1601년(선 15) 김학수, 17세기 嶺 南 學 派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1 조34) 3월 3일이었다. 그에게 있어 1601년은 매우 의미로운 한 해였는데, 2월에 玩 樂 堂 가 낙성되었기 때문이었다. 30세에 伊 水 와 洛 水 가 합류하는 곳에 지은 伊 川 精 舍 가 젊은 시절 면학의 공간이었다면 16) 52세에 낙성한 완락재는 만년 강학처이자 대구지역 樂 齋 學 의 상징적 공간이었다. 청소년기에 蔡 應 麟, 全 慶 昌, 鄭 師 哲 과 사우문인관계를 맺고 학문에 진력 했던 서사원은 28세 되던 1577년(선조10) 鄭 逑 를 사사하게 된다. 서사원 의 한강문하 입문은 사승의 외연 확대를 넘어 한강학의 대구지역 확산의 실마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자못 컸다. 또한 그는 張 顯 光, 孫 處 訥 등의 석학들과 교유하는 한편으로 31세부터는 후배들을 지도하기 시작 했는데, 樂 齋 年 譜 에서 확인되는 첫 번째 문인은 한려문인으로 더 잘 알 려진 李 彦 英 이었다. 이후 그는 이천정사에서 본격적인 강학에 들어가 문 인을 양성했고, 최소 50여명에 이르는 그의 문인은 대구 칠곡 성주 인동 등 주로 낙강 중류 연안지역에 분포하였다. 학문적 입지와 권위의 상승, 문도의 증가는 강학거점의 확대로 이어졌 는데, 완락재의 건립은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이었다. 옛날 최치원의 노닐 던 자리에 건립된 완락재에는 敬 齋 와 義 齋 를 비롯하여 洗 心 池, 武 陵 橋, 爛 柯 臺, 鳶 魚 臺 등이 딸린 아름다운 장소였다. 이곳에서 그는 문인들에게 심경, 태극도설 등을 강론하며 학문에 더욱 빠져드는 한편 주자 친 필의 夙 興 夜 寐 네 글자를 모사하여 완락재의 벽에 걸어 면학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었다. 그렇다고 서사원이 완락재에서 학문에만 힘쓰며 건조 한 일상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담장 너머로 때 이르게 핀 매화 한가지를 꺽어 경상감사 李 時 發 에게 보낼 만큼 완락재에서의 그의 삶에는 여유와 운치가 넘쳐 흘렀기 때문이다. 이렇듯 완락재에서 공부하는 기쁨과 가르치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있던 1601년 3월 초 어느날 장현광이 일군의 선비들과 함께 서사원을 찾아왔 16) 徐 思 遠, 樂 齋 集 年 譜 卷 1, < 己 卯 > 是 年 築 伊 川 精 舍 精 舍 在 於 伊 洛 之 會 左 圖 右 書 栽 花 蒔 藥 日 與 士 友 講 磨 義 理 51

12 다. 좌중에 함께 있었던 呂 大 老 는 이 날의 회동을 기약하지 않은 우연한 만남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17) 선비들의 방문은 필시 완락재의 낙성을 축 하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완락재 아래로 흐르는 봄날의 강물은 뱃놀이의 욕망을 한없이 자극했 다. 조금 전까지 가랑비가 내리던 하늘도 어느새 쾌청하게 개어 선비들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선사 옛 절 아래에서 배에 오른 23명의 선비들 은 10리에 펼쳐진 거울처럼 맑고 투명한 강물에 몸과 마음을 모두 맡겼 고, 강 언저리에서는 한 창 피어나는 꽃과 휘엉청 늘어진 버들이 이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춘3월이라는 좋은 시절, 낙강의 아름다운 경치, 경물 과 기꺼이 호흡하는 선비들의 마음, 배 안에서 도란도란 담소를 즐기는 유쾌함을 주인과 객이 함께 하였기에 이날의 주유는 四 美 와 二 難 이 갖 추어진 낙강의 勝 事 였던 것이다. 18) 땅거미가 질 무렵 일행은 하루를 묵을 요량으로 浮 江 亭 에 들렀다. 河 濱 縣 霞 山 洞 에 소재한 부강정은 본디 尹 大 承 이 지은 정자였다. 윤대승은 성 주 사람으로 1564(명종19)에 생원에 입격했을 뿐 크게 드러난 인물은 아 니었다. 그러나 그는 1577년(선조10) 외선조 沈 義 의 유고인 大 觀 齋 亂 稿 를 편차하여 金 克 一 權 應 仁 에게 후지를 부탁할만큼 文 雅 한 사람이었다. 19) 낙강과 금호강의 합류처에 터를 잡은 부강정은 본래 신라 왕이 노닐던 곳으로 임란 전까지만해도 정자 주변에는 노송 몇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고 한다. 20) 두 강에 임하고 노송에 에워싸인 부강정의 아름다운 경관은 문인들의 내방을 재촉하였는데, 그런 아름다움은 문인들의 시문를 통해 17) 呂 大 老, 鑑 湖 集 卷 2, < 琴 湖 同 舟 詩 序 > 德 晦 於 行 甫 同 志 友 也 適 自 玉 山 來 而 從 之 遊 者 衆 皆 不 期 而 會 也 18) 呂 大 老, 鑑 湖 集 卷 2, < 琴 湖 同 舟 詩 序 > 微 雨 乍 晴 天 雲 共 影 岸 花 汀 柳 紅 綠 醮 江 十 里 許 錦 屛 物 色 盡 爲 一 鏡 中 有 矣 四 美 二 難 俱 幷 一 時 人 世 間 百 年 一 幸 之 勝 事 也 19) 沈 義, 大 觀 齋 亂 稿 < 書 大 觀 齋 集 後 >( 金 克 一 撰 ). 20) 權 文 海, 草 澗 集 卷 2, < 次 尹 上 舍 大 承 浮 江 亭 韻 >( 細 註 ) 亭 基 卽 新 羅 王 所 遊 處 傍 有 老 松 數 株 世 傳 新 羅 舊 物 云 52

13 더욱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21) 땅거미가 지자 배를 부강정에 댔다. 정자는 곧 上 舍 尹 大 承 이 지은 것 이다. 용마루 기와는 병란 때 불에 탔는데, 상사가 죽은 지 채 10년도 되 기 전이었다. 황량한 臺 는 홀로 저녁비 속에 머물러 있고, 소나무와 국화 의 그림자가 빈 뜰에 얽혀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山 陽 의 감회를 일으키게 했다. 강촌에 어둠이 찾아와 정사에 들어가 쉬었는데, 방이 몇 칸에 지나 지 않아 일행들을 다 수용할 수가 없어 나와 士 彬 ( 李 奎 文 )은 學 可 ( 李 宗 文 ) 의 집으로 돌아가 잤다. 22) 그러나 부강정은 임란의 참화를 겪으면서 크게 파손되었고, 이윽고 주 인마저 사망함으로써 예전의 화려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선유 일행이 하필 부강정을 유숙처로 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부강정과 일행 중 누군가와의 관계성에서 찾을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가장 눈여겨 볼 사람은 李 宗 文 ( )이다. 본관이 전의인 이종문 집안은 본디 전형적인 近 畿 양반이었으나 아버지 조부 李 佖 대에 대구로 낙남했다. 아버지 李 慶 斗 는 파평윤씨 윤황 집안과의 혼인을 통해 세거의 기반을 다지는 한편으로 임란 당시에는 곽재우의 의진에서 활동하여 23) 집안의 사회적 입지를 크게 신장시켰다. 전의이씨의 존재가 영남의 사람 사회에서 한 층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이경두의 아들 이종문, 손자 李 之 英 之 華 대였다. 이종문은 크게 현달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목민관으로서 많은 치적을 남겼고, 임진왜란 때는 27 세의 나이로 서사원, 손처눌 등과 창의하여 서면 대장에 추대될 만큼 사 람의 신망이 높았다. 이후 그는 정구 장현광 서사원 등 낙강 중류 연안지역 21) 李 瑀, 玉 山 詩 稿 < 題 大 丘 浮 江 亭 亭 主 尹 大 承 孝 彦 >. ; 權 文 海, 草 澗 集 卷 2, < 次 尹 上 舍 大 承 浮 江 亭 韻 >. 22) 呂 大 老, 鑑 湖 集 卷 2, < 琴 湖 同 舟 詩 序 >. 23) 全 城 世 稿 卷 2, 洛 浦 集 ( 李 宗 文 ) < 追 先 錄 >. 53

14 의 석학들과 교유하며 학문의 외연을 넓혀갔는데, 그가 완락재의 낙성을 기념하는 주유에 동참하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었다. 이종문은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했고, 풍류를 즐기는 강호처사로서의 풍 모 또한 남달랐던 것 같다. 이런 정황은 그가 경영했던 霞 鶩 亭 의 존재에 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정자는 李 德 馨 등 명사들이 제영을 남길만큼 경 치가 아름다웠고, 인조가 綾 陽 君 시절에 찾은 적도 있는 낙강의 명소였다. 후일 인조는 이종문의 큰아들 李 之 英 을 접견한 자리에서 하목정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로써 하목당은 입지의 마땅함과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에다 인조와의 인연이 더해지면서 그 명성 을 국중에까지 떨치게 되었던 것이다. 공(이종문)의 큰아들이 散 官 으로 입시하자 왕께서 그를 알아보시고 앞 으로 나오라고 명하시고는 너희 집안의 霞 鶩 亭 은 강산의 빼어남이 있고, 아주 좋은 자리에 터를 잡았다. 고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정자에 附 椽 을 하지 까닭이 있느냐 라고 하시기에 지영이 대답하기를 士 庶 人 의 개인 집이라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고 하자 상께서 정자와 私 室 은 차 이가 있으니 마땅히 지붕을 고쳐 이고 부연을 하는 것이 옳다 고 하시고 는 내탕고의 은자 200냥을 내려주어 지붕의 수리에 쓰게 하라고 명하셨 다. 그리고는 霞 鶩 堂 세 대자를 내려 문미에 걸게 하셨다. 24) 가산의 넉넉함과 타고난 풍류 취향은 이종문으로 하여금 강거 기반의 확대를 재촉했고, 이 과정에서 부강정도 어느 시기에 그의 소유가 된 것 같다. 이종문이 부강정을 인수한 것은 집안의 혼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 다. 앞에서 언급한 것 터럼 이종문의 아버지 이경두는 윤황의 사위였는데, 윤황의 아들이 바로 부강정의 창건자 윤대승이었다. 결국 부강정은 이종 문의 외가,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외숙의 정자였던 것이다. 추측컨대, 이종문은 윤대승의 사망에 뒤이어 임진왜란까지 겹쳐 외가의 족적 기반이 24) 全 城 世 稿 卷 2, 洛 浦 集 ( 李 宗 文 ) < 霞 鶩 亭 剙 修 顚 末 >. 54

15 약화되자 부강정을 대신 관리해오다가 자신의 소유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데, 25) 이런 정황은 아들 이지화가 부강정의 중건을 주관한 사실에서 26)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부강정은 대구와 京 山 ( 星 州 ) 두 고을 사이에 있다. 강에 매우 가깝고 돌을 쌓아 터를 만들었는데, 마치 泗 濱 의 浮 磬 과 같아 이런 이름을 얻었 다 한다. 강의 위 아래로 물가에 임해 지은 정자가 10여 개인데, 유독 이 정자만이 가장 빼어나고 오래되었다. 나의 벗 이군 而 實 ( 李 之 華 )이 그 형 세와 경치를 그림으로 그려 나에게 기문을 청했다. 27) 임진왜란으로 훼손된 부강정이 새롭게 단장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 요하였지만 28) 1601년 당시만해도 부강정은 낙강의 기관이자 사림 회합의 명소로서 여전히 주목을 받았고, 이종문은 사실상의 주인 자격으로 同 舟 일행을 맞아들였던 것이다. 이후 부강정은 1605년 정구의 이른바 을사선 25) 전의이씨 이종문 집안이 외가의 경제적 기반을 물려받은 사례는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예컨대, 李 元 禎 이 京 山 志 를 편찬할 당시 이종문의 아들 李 之 華 이 살던 성주 上 國 村 은 본래 병조판서를 지낸 李 潑 의 구거였으나 중종 연간인 16세기 초반에는 증손서인 沈 義 에게 傳 繼 되었다가 늦어도 17세기 초 반 경에는 전의이씨가 이를 물려받아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부강정과 상국 촌은 불과 10리 남짓한 거리에 있었는데, 선사 선유시 부강정이 협소하여 여 대로 등 일부가 잠을 자러 갔다고 한 學 可 ( 李 宗 文 )의 집이 상국촌에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결국 전의이씨는 상국촌과 부강정으로 상징되는 강거 기반을 외가 또는 선외가로부터 물려받았는데, 부강정이 윤대승(외숙) 이종 문(생질)으로의 전계 과정을 거쳤다면, 상국촌은 이발 청송심씨( 沈 義 ) 파평 윤씨( 尹 滉 尹 大 承 )를 거쳐 전의이씨( 李 宗 文 之 華 )의 세거지가 되었던 것이다. ( 李 元 禎, 京 山 志 卷 1, 各 坊 < 上 國 村 > 및 卷 6, 寓 居 < 沈 義 >) 26) 全 城 世 稿 卷 3, 茶 浦 集 ( 李 之 華 ), < 浮 江 亭 原 韻 >( 亭 本 先 生 外 先 世 尹 氏 舊 物 而 爲 兵 火 所 壞 至 是 重 剙 之 ) ; 李 植, 澤 堂 集 別 集 卷 12, < 浮 江 亭 上 樑 文 > ; 續 集 卷 6, < 浮 江 亭 >. 27) 李 敏 求, 東 州 集 卷 3, < 浮 江 亭 記 >. 28) 부강정 중수시 상량문의 찬자 李 植 ( )과 중수기의 찬자 이민구 ( ) 생몰년을 고려한다면 늦어도 1647년 이전에 중수된 것은 분 명하다. 55

16 유 시에도 주요 경유처의 하나로서 손을 맞이하게 된다. 부강정에서 하루를 묵은 일행이 남은 일정을 챙길 무렵 정자 뜰은 여기 저기서 모여든 선비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새벽에 내린 비로 적삼이 축 축하게 젖어들었지만 뱃놀이만큼은 그만 둘 수 없었다. 총 23명으로 확대 된 일행은 다시 배 위에 올랐고, 선상에서 지을 시의 韻 자가 주어졌을 때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배 안의 열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운자는 주자의 武 夷 精 査 雜 詠 의 맨 마지막인 漁 艇 詩 [ 出 載 長 烟 重 歸 裝 片 月 輕 千 巖 猿 鶴 友 愁 絶 棹 歌 聲 ]였다. 명색이 지역을 대표하는 선비들의 아회( 雅 會 )에 시가 빠 질 수 없었고, 이왕이면 그들이 가장 닮고 싶어했던 주자의 시를 분운하 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결과였다. 23명 가운데 郭 大 德 徐 恒 鄭 鋌 을 제외한 스무 사람이 나이 순으로 운자를 배당받아 서로 다투듯 시를 지었 다. 그러나 시작의 솜씨가 한결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여대로는 유독 이종 문이 시를 짓지 못해 벌주를 마셨다고 기술하였지만 29) 실제로는 그를 포 함한 5명이 시를 짓지 못했다. 흥취에 젖은 탓인지 장현광은 시를 다듬을 마음이 전혀 없었고, 늑장을 부리던 여대로는 주위의 성화에 못이겨 하는 수 없이 시를 짓는 30) 등 크고 작은 일화가 속출했다. 선유의 본질이 완락 재의 낙성을 기념하고, 대자연 속에서 낯익은 사람과 만나 정담을 나누며 소통하는데 있었지 아름다운 시를 짓는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여대로로부터 시를 다듬지 않았다는 핀잔을 들은 장현광의 시는 이런 정 서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29) 呂 大 老, 鑑 湖 集 卷 2, < 琴 湖 同 舟 詩 序 > 諸 賢 爭 唱 迭 和 而 獨 李 上 舍 學 可 坐 桃 李 園 不 成 罰 浮 之 以 太 白 此 依 金 谷 酒 籌 也 30) 呂 大 老, 鑑 湖 集 卷 2, < 琴 湖 同 舟 詩 序 > 得 晦 得 長 字 亦 無 意 琢 句 僕 被 諸 友 所 迫 不 得 已 續 其 眉 56

17 그림4. 琴湖仙査船遊圖 -완락재 및 선유 장면 금호선사선유록 에 이름을 올린 23명의 선비는 서로 어떤 관계에 있 고, 또 어떤 연유로 하루 또는 이틀을 함께 보내며 회포를 풀고 정리를 31) 張顯光, 旅軒集 卷1, <無題唫>. 57

18 다질 수 있었을까? 위로는 52세(서사원) 노인으로부터 아래로 21세( 朴 曾 孝 金 克 銘 ) 청년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초월한 모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럴만한 공감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지연 학연 혈연에 주목할 필요가 있 을 것 같다. 좌목에 따르면, 23명의 선비들은 대구(13)를 중심으로 성주 (3), 인동(2), 영천(2), 김산(1), 창녕(1), 서울(1) 등 총 7개 지역에 거주한 것으로 나타난다. 대구지역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서사원의 주거 및 강학 기반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었다. 그리고 학문적으로는 한강 여헌 낙재문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낙재문인의 비중이 두드러진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금호선유는 대구지역 낙재문인들이 완락재의 낙성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한 행사였고, 여대로, 장현광 등 평소 서사원과 친분이 깊은 인사들이 賓 으로 초빙되었던 것이다. 선유 이후 낙재문인 金 克 銘 이 여대로에게 서문을 부탁한 것도 32)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위 <표1>에서 7번째로 등록된 宋 後 昌 까지는 서사원의 사우그룹이라 할 수 있고, 그 이하는 주인인 서사원과 빈인 장현광의 문인 또는 수행그룹 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 23명은 서로 직간접적인 혼맥으로 얽혀 있었 는데, 이종문은 서사원의 고모부이고, 서사진 서사선 서항은 종제 및 아들 이며, 정선은 처이종동서로서 4촌의 척분이 있었다. 그리고 여대로는 이종 문의 아우 李 宗 澤 의 장인이었다. 결국 선사 선유는 서사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던 지연 학연 혈연 성을 재확인하는 과정으로서 17세기 초반 낙강 중류 연안지역 선비들의 삶과 연대의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의 하나였다. 비록 선유 일행에 는 들지 않았지만 아버지 이종문을 시종하는 과정에서 아회를 지켜보았던 32) 呂 大 老, 鑑 湖 集 卷 2, < 琴 湖 同 舟 詩 序 > 金 秀 士 克 銘 恐 勝 事 淪 沒 謀 作 他 日 之 面 目 而 囑 余 爲 之 序 58

19 이지영 지화 형제가 선유 이듬해인 1602년 2월 서사원의 문하에 입문한 사실은 33) 이 지역 선비들의 집단의식 형성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시사하 고 있다. 순번 성명 거주 주요 사승 운자 비고 1 徐 思 遠 ( ) 달성 寒 岡 門 人 出 2 呂 大 老 ( ) 김산 寒 岡 門 人 載 李 宗 文 의 사돈 3 張 顯 光 ( ) 인동 長 4 李 天 培 ( ) 성주 寒 岡 門 人 烟 5 郭 大 德 (1558-미상) 달성 6 李 奎 文 (1562-미상) 성주 重 徐 思 遠 의 고모부 7 宋 後 昌 (1563-미상) 창녕 歸 8 張 乃 範 ( ) 인동 寒 岡 旅 軒 樂 齋 門 人 裝 9 鄭 四 震 ) 영천 旅 軒 門 人 片 10 李 宗 文 ( ) 달성 月 / 不 作 11 鄭 鏞 (1567-미상) 달성 輕 / 不 作 한강문인 鄭 錘 의 형 12 徐 思 進 (1568-미상) 달성 樂 齋 門 人 天 / 不 作 徐 思 遠 의 종제 13 都 聖 兪 ( ) 달성 寒 岡 樂 齋 門 人 猿 14 鄭 鑰 (1572-미상) 달성 巖 / 不 作 鄭 鏞 의 종형 15 鄭 錘 ( ) 달성 寒 岡 樂 齋 門 人 鶴 16 都 汝 兪 ( ) 달성 寒 岡 樂 齋 門 人 友 17 徐 恒 (1574-미상) 달성 樂 齋 門 人 徐 思 遠 의 아들 18 鄭 鋌 (1575-미상) 달성 鄭 錘 의 아우 19 鄭 銑 (1579-미상) 달성 寒 岡 樂 齋 門 人 聲 / 不 作 鄭 錘 의 아우 徐 思 遠 과 4촌 척분 20 徐 思 選 ( ) 달성 寒 岡 旅 軒 樂 齋 門 人 愁 徐 思 遠 의 종제 21 李 興 雨 (1579-미상) 성주 絶 22 朴 曾 孝 (1581-미상) 영천 棹 23 金 克 銘 (1581-미상) 서울 樂 齋 門 人 歌 33) 徐 思 遠, 樂 齋 集 年 譜 卷 1, < 壬 寅 > 李 之 英 李 之 華 幷 來 學. 이후에도 이들 형제는 1603년 서사원이 강회를 열어 心 經, 近 思 錄, 小 學, 退 溪 集 등을 강론할 때 參 講 했다. 특히, 이지영은 1611년 근사록 강론시에도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1615년 서사원이 사망하자 문생의 자격으로 치제했 다.( 徐 思 遠, 樂 齋 集 年 譜 卷 3, 祭 文 < 門 生 李 之 英 >) 59

20 1605년(선조38) 3월에 접어들면서 대구 칠곡 일원의 한강문인들은 긴장 어린 마음으로 스승을 맞을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한강문인들 사이 에는 이 달 중순께 정구가 칠곡 및 大 谷 일원에 소재한 선대 묘소를 참배 한다는 사실이 통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34) 정구의 이번 걸음의 본질 적인 취지야 물론 성묘에 있었지만 문인들로서는 영접에 신경을 쓰지 않 을 수 없었다. 더구나 정구 평소의 성품을 고려할 때, 숙소와 음식 하나 하나에도 각별한 정성을 기울여야 했다. 문인을 대표하여 영접을 주관한 사람은 한강문하의 최선배격인 서사원이었다. 정구의 대구행은 한 창 외 연을 확대해가고 있던 한강학파의 결속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었지 만 서사원으로서는 몇 해 전인 1601년에 지은 완락재에 정구를 초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사정이 이러했기에 그는 조바심을 더해가며 3 월 초순부터 내심 영접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고, 이때만해도 돌발 변수가 생기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구가 성묘 일정을 앞당기면서 영접 계획은 커다란 차질을 빚 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당초 3월 중순께로 예정되었던 성묘행이 갑 자기 초순으로 당겨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정구는 3월 6일에 고령의 漁 牧 亭 을 출발하여 대구 인근의 老 多 村 에 투숙했다는 소식이 풍문으로 들려 왔다. 당황한 서사원은 문인 두 사람을 미리 보내 정구 일행의 동정을 살 피게 했지만 이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았다. 8일 오후. 선생께서 타신 배가 尺 城 아래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나는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작은 배를 저어 강 입구로 급히 내려가니 선 생의 행차는 이미 浮 江 亭 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황공하여 배에서 내 려 뭍으로 올라가 포복한 채로 들어가 절을 하고 뒤늦음을 사과했다. 都 生 과 金 生 이 그릇 정탐한 허물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는가 35) 34) 정구는 1603년 이래로 서사원에게 여러 번 편지를 보내 팔거현 大 谷 소재 외가 선영의 성묘 계획을 통지한 바 있다.( 鄭 逑, 寒 岡 集 卷 3, < 答 徐 行 甫 思 遠 >( 癸 卯 )) 60

21 정구와 서사원은 불과 일곱 살 터울에 지나지 않았지만 포복하고 들어 가 예를 갖출 정도로 사제간의 질서는 엄격했던 것이다. 그나마 일행 중 에 낯익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서사원의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이들은 정 구가 고령 어목정에서 배를 빌려 성묘행을 나설 때부터 수행한 朴 廷 璠 郭 赾 李 厚 慶 李 嶨 李 蘭 貴 등으로 모두 한강문하의 동문들이었다. 정구가 고령에서 성묘행에 나선 까닭은 자세하지 않다. 다만 어목정에 서 배를 띠울 때 일부 문인들이 그를 수행했고, 중도에 노다촌을 거쳐 부 강정을 들렀다는 사실 자체는 이번 걸음이 단순히 성묘행에 그치지 않음 을 뜻했다. 고령 우곡에 소재한 어목정은 朴 廷 琬 의 정자인데, 수행문인 중 의 한 사람인 박정번은 그의 아우였다. 고령 우곡의 禮 谷 桃 津 일대는 조 선초기 이래 고령박씨 朴 景 의 후손들이 강력한 재지적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들은 박경의 5세손 朴 潤 溢 澤 3형제 대에 이르러 정인홍 정구 등과 사우문인관계를 형성하며 영남의 대표적 명가로 발돋움하여 흔히 桃 津 朴 氏 로 일컬어졌다. 과거 현풍의 沓 谷 에서 고령 도진에 이르는 강안 의 요로를 점유하고 있었던 박씨 일문은 일찍부터 강거 및 누정문화를 꽃 피워 박정완의 어목정을 비롯하여 박윤의 竹 淵 亭, 박택의 樂 樂 堂, 박정번 의 浮 來 亭 과 鶴 巖 亭 이 조성되었고, 36) 박정번의 손자 朴 應 衡 은 南 皐 亭 을 건립하여 가문의 전통을 이어나갔다. 결국 정구는 성묘행은 낙강 중류 연안에 마련된 문인들의 강거( 江 居 ) 거점들을 십분 활용하는 형태로 기획되었는데, 3월 8일 정구 일행이 부강 정을 찾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구가 부강정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서사원은 스승을 완락재로 모시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날이 저문 탓에 하는 수 없이 함께 유숙하게 되었다. 부강정에서 하루를 묵은 정구는 불순한 일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정 을 강행하였고, 점심 때가 되기 전에 선사에 도착했다. 준비된 남녀를 타 35) 徐 思 遠, 樂 齋 集 卷 7, < 爲 寒 岡 鄭 先 生 東 遊 記 >. 36) 輿 地 圖 書 高 0 < 樓 亭 >. 61

22 고 완락재로 들어간 정구는 늦은 아침을 들었고, 서사원의 요청으로 만오 무렵부터는 술자리가 베풀어졌다. 인근 선비 70여 명이 참석한 잔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었고, 정구의 옛 친구인 郭 再 謙 과 柳 聖 兪 는 직접 주 과를 준비하고 자제를 대동하고 방문하는 성의를 보였다. 이 날 저녁 서 사원은 혼자 스승과 동숙하는 영광을 누렸는데, 사제간에 어떤 대화가 있 었는지는 알길이 없다. 완락재에서 하룻밤을 묵은 정구는 연경서원 원장 손처눌이 올린 술잔을 받은 다음 족회를 위해 읍내로 나들이를 떠났다. 박정번 곽근 이후경과 함 께 배를 타고 정구를 수행한 서사원은 이날의 사제동행을 자연의 오묘한 도와 호흡하는 과정, 나아가 주자의 무이구곡의 뱃놀이에 견줄만한 한강 문하의 성사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정구의 동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다. 선비들의 운집은 말할 것 도 없거니와 경상감사 李 時 彦 이 군관을 보내 급한 공무로 인해 함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오는가 하면 10일 저녁에는 완락재에서 孫 處 約 등 대구향교 유생들의 술잔을 받기가 무섭게 張 顯 光 이 인동에서 달려 왔기 때문이었다. 37) 11일 정구가 大 谷 선영을 찾아 치제하는 날이다. 성묘를 마친 정구는 박정번 곽근이 대기시켜 둔 배를 타고 다시금 부강정에 들러 하루를 묵었 다. 예기치 못한 방문은 주인 이종문을 더욱 흥감케 했지만 정구가 아침 부터 일정을 재촉한 탓에 일시 안절부절키도 했다. 12일. 맑음. 선사 서재 산장 徐 思 述 이 어제 齋 中 에서 술을 돌리지 못했 다 하여 齋 儒 들과 함께 정자 안에서 잔을 올렸다. 선생께서는 배를 빨리 띄우라고 재촉하셨는데, 주인은 미처 일행의 아침밥을 차리지 못하고 있 었다. 내가 감히 나아가 주인의 뜻을 말씀드리고 남여를 잠시 대문 밖에 머무르게 했다. 주인은 창졸간에도 성찬을 준비하여 부족함이 없었으니 선생을 존숭하는 정성이 또한 가상하였다. 38) 37) 徐 思 遠, 樂 齋 集 卷 7, < 爲 寒 岡 鄭 先 生 東 遊 記 > 62

23 조반을 마친 정구는 손처눌 손처약 도응유 등의 수행을 받으며 모든 일 정을 마무리하고 성주로 돌아가게 된다. 전후 7일에 걸친 여정의 본래의 목적은 성묘 및 족회 참여였지만 정구는 대부분의 시간을 문인들과 함께 보냈고, 이 과정에서 박정번 곽근 이후경 이학 이난귀 서사원 손처눌 정선 곽재겸 유성유 손처약 서사술 도응유 도성유 등 무려 70여명의 인사들이 배 행 또는 내알 영접했다. 후술하겠지만 1617년의 봉산욕행이 한강문하 후 진 들의 주선 속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 모임은 서사원으로 상징되는 선 진 과의 회동이라는 측면이 강했다. 그리고 그가 경유했던 어목정 부강정 낙재 선사서재도 문인들의 정자 또는 강학공간이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정구 재세시 낙강 연안의 누정들은 정구와 그 문인들이 소통 교유하는 학 술문화의 구심점이자 매개체로서의 성격이 컸고, 이런 모임을 통해 한강학 파는 내부적 결속력을 더욱 키워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정서는 이른바 을사주유 의 사실상의 주관자였던 서사원의 감회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선생께서) 나와 같이 용렬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문하를 출입하 도록 허락하신 지가 벌써 30여 년이 되었다. 난리 속에서도 목숨을 부지 하여 말석에서나마 가르침을 듣게 되었고, 오늘 저녁에 또 小 窩 ( 玩 樂 齋 )를 찾아주셔서 10년 전 우연히 대답했던 것을 이루게 되었으니, 그 큰 영광 과 은혜를 어찌 만에 하나라도 형용하여 사례할 수 있겠는가? 39) 6박 7일의 일정을 마친 정구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행사의 여운만큼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한강문인들은 저간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고, 서서원이 그 앞장을 섰다. 서사원은 3월 9일 비바람이 몰아치던 악 천후 속에서도 사문의 盛 會 를 더욱 빛내기 위해 주중에서 손처눌에게 시 를 부탁한 바 있다. 이에 손처눌은 즉석에서 붓을 잡아 시를 완성한 뒤 정구에게 올렸다. 40) 이 시의 존재가 알려지자 당시의 모임에 참여했던 선 38) 徐 思 遠, 樂 齋 集 卷 7, < 爲 寒 岡 鄭 先 生 東 遊 記 >. 39) 徐 思 遠, 樂 齋 集 卷 7, < 爲 寒 岡 鄭 先 生 東 遊 記 >. 63

24 비들은 다투듯 차운하여 도유성유 등 40여명의 작품이 모아졌고, 41) 심지 어 개인 사정으로 모임에 참여치 못했던 7-8명의 인사들까지 기꺼이 화 답시를 보내옴으로써 을사선유 는 한강문하의 승사로서 두고두고 회자되 기에 이른다. 낙강의 선유 사례 가운데 지금 살펴볼 龍 華 山 下 同 泛 만큼 길이 회자되 는 경우도 많지 않다. 한강학파의 종사 정구 등 총 35명의 선비들이 용화 산 아래 도흥강에서 뱃놀이한 역사를 지칭하는 용화산하동범 은 1620년 조임도의 龍 華 山 下 同 泛 錄 後 序 라는 글을 통해 영남의 선비사회에 새롭게 환기되었고, 1758년(영조34) 박상절이 당시의 사적을 담은 沂 洛 編 芳 을 편찬하는 단계에서는 낙강의 빼놓을 수 없는 고사가 되었다. 정구가 함안행을 결행한 것은 1607년 1월 27일이었다. 이보다 앞서 정 구는 동월 13일 안동부사에 임명된 상태였다. 비록 부임할 생각은 없었지 만 조만간 상경하여 사직 상소를 올린 뒤에 환향할 요량이었다. 42) 그래도 군왕의 명을 사양하는 일인지라 사직소를 꾸미는 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이런 저런 일로 심경이 복잡했던 정구는 묵은 과제도 풀 고 머리도 식힐 겸 남행을 결심한 것이었다. 묵은 과제란 碑 材 를 수색하는 일이었다. 정구는 함안군수 재직시(1587) 에 묘갈로 쓸 돌[ 石 ]을 구해다 도흥강변에 보관해 둔 바 있었다. 그러나 20년 동안이나 그 소재가 묘연하여 애를 태웠는데, 이 참에 잠수부를 동 40) 孫 處 訥, 慕 堂 集 卷 3, < 自 浮 江 亭 陪 先 生 沂 流 向 伊 川 徐 行 甫 以 舟 中 吟 屬 余 俾 表 榮 感 之 誠 余 乃 得 頭 字 仰 呈 先 生 行 史 >. 41) 都 聖 兪, 養 直 集 < 乙 巳 春 拜 迎 寒 岡 先 生 扵 浮 江 亭 奉 和 慕 堂 孫 丈 韻 ( 細 註 ) 是 年 三 月 寒 岡 先 生 自 漁 牧 亭 舟 行 宿 仙 查 書 齋 樂 齋 先 生 與 一 鄕 士 友 七 十 餘 貟 迎 候 扵 浮 江 亭 勸 孫 丈 共 賦 詩 以 記 勝 事 余 亦 賡 和 焉 > 42) 김학수, 정구( )의 학자 관료적 삶과 안동부사 재임, 嶺 南 學 제 17호,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5 원해서라도 반드시 찾아낼 생각으로 한겨울 나들이를 단행한 것이었다. 43) 아울러 그는 이미 3-4년 전부터 成 景 琛 을 방문키로 한 약속도 44) 이번 기 회에 지키고 싶었다. 이에 정구는 1607년 정월 27일 張 顯 光, 李 蘭 貴, 柳 武 龍, 李 忠 民 등을 대동하고 영산으로 향했고, 이날 저녁에는 창암 소재 곽재우의 忘 憂 亭 에 서 하루를 묵었다. 45) 이튿날 그는 배를 타고 龍 華 山, 合 江 亭, 鵝 湖, 靑 松 寺, 道 興 步, 奈 內 村, 景 釀 臺, 鱸 魚 巖, 藕 浦, 伴 鷗 亭, 蒼 巖 亭 등 영산 칠원 함안 일대의 奇 觀 들을 남김없이 감상하였다 순번 성명 거주 사승 비고 순번 성명 거주 사승 비고 1 鄭 逑 성주 南 冥 門 人 19 朴 震 英 함안 寒 岡 門 人 2 郭 再 祐 영산 南 冥 門 人 20 李 明 憼 함안 李 佶 의 侄 3 朴 忠 後 함안 군수 21 李 明 念 함안 4 張 顯 光 인동 鄭 逑 의 질서 22 辛 膺 영산 5 李 佶 함안 南 冥 門 人 23 李 明 慤 함안 6 成 景 琛 함안 寒 岡 門 人 24 李 明 悆 함안 7 辛 礎 영산 25 安 侹 함안 寒 岡 門 人 8 趙 埴 함안 26 李 時 馠 고령 寒 岡 門 人 9 李 潚 함안 李 瀞 의 弟 27 郭 瀅 현풍 郭 再 祐 의 子 10 盧 克 弘 창녕 寒 岡 門 人 鄭 逑 의 생질 28 李 道 一 영산 寒 岡 門 人 李 厚 慶 의 侄 11 辛 邦 楫 영산 寒 岡 門 人 29 李 蘭 貴 성주 寒 岡 門 人 12 趙 垹 함안 趙 埴 의 弟 30 柳 武 龍 성주 寒 岡 門 人 13 李 厚 慶 영산 寒 岡 門 人 高 弟 31 趙 任 道 함안 旅 軒 門 人 趙 埴 의 子 14 羅 翼 南 함안 32 李 道 輔 영산 寒 岡 門 人 李 厚 慶 의 子 15 李 道 孜 영산 李 厚 慶 의 侄 33 李 瀣 영산 16 兪 諧 영산 寒 岡 門 人 34 李 忠 民 칠곡 寒 旅 兩 門 17 李 明 怘 함안 寒 岡 門 人 李 佶 의 侄 35 崔 門 柱 寒 岡 門 人 18 李 道 由 영산 寒 岡 門 人 李 厚 慶 의 侄 43)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龍 華 山 下 同 泛 錄 後 序 >. 44) 鄭 逑, 寒 岡 集 卷 3, < 答 成 仲 珍 景 琛 >. 45)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龍 華 山 下 同 泛 錄 後 序 >. 46) 朴 尙 節. 沂 洛 編 芳. < 座 目 >( 龍 華 山 下 同 泛 錄 ). 65

26 . 47) 선유의 주요 무대였던 도흥진[도흥강 도흥탄]은 낙강의 본류와 지 리산에서 발원하여 의령 정암진을 통해 유입되는 남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수량이 풍부하여 뱃놀이에 적합하였고 48), 창암 용화산 등 주변 경관이 매 우 수려하여 고려 이래로 이름난 누대들이 흥폐를 반복해 왔다. 49) 특히 정구 일행이 거쳐간 景 釀 臺, 鱸 魚 巖 은 奈 內 최고의 기승을 자랑하는 아름 다운 곳이었다. 50) 도흥진: 군성의 동북쪽 40리에 있다[ 代 山 里 ]. 강은 두 줄기의 원류가 있는데, 하나는 문경의 主 屹 山, 하나는 삼척의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상주 땅에서 합류, 한 도를 종횡으로 흘러 낙강[상주], 月 波 亭 (선산), 茂 溪 津 (현 풍), 蔚 於 津 (초계)을 이루어 여러 고을의 경계가 되고, 의령에서 鼎 巖 津 과 합류하여 岐 江 이 되어서는 동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5리 쯤에서 이 나루가 된다. 다시 景 釀 臺 를 지나 買 浦 津 (칠원), 攬 秀 亭 三 浪 浦 (이상 밀양), 黃 山 江 47) 박상절의 沂 洛 編 芳 에는 선유시의 주요 경유처가 龍 華 勝 集 (1 圖 ), 靑 松 暮 磬 (2 圖 ), 道 興 搜 石 (3 圖 ), 奈 內 淸 賞 (4 圖 ), 景 釀 奇 矚 (5 圖 ), 藕 浦 追 帆 (6 圖 ), 平 沙 落 雁 (7 圖 ), 蒼 巖 同 舟 (8 圖 ) 등 총 8개의 그림(판화)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가운데 靑 松 暮 磬 은 선유 일행이 청송사 앞 강물을 지나며 고사의 종소리 를 듣는 상황, 道 興 搜 石 은 정구가 강안에 배를 대고 비재를 수색하는 장면, 景 釀 奇 矚 은 경양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강산의 기이한 경관, 藕 浦 追 帆 은 趙 埴 趙 垹 趙 任 道 가 작은 배를 타고 일행과 합류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맨 마지막의 蒼 巖 同 舟 는 창암정에서 하루를 유숙한 정구 일행이 뱃놀이를 시작 하는 장면인데, 시간상으로 맨 첫 광경이라 할 수 있다. 48) 1607년 정구 등의 뱃놀이 외 대표적인 것으로는 1629년 조임도가 거창 출 신의 林 眞 怤 및 裵 弘 祉 弘 5(이상 裵 大 維 조카), 申 東 望 時 望 (이상 郭 再 祐 외 손) 등 지역 인사들과 함께 도흥탄 경양대 우포 창암 망우정 합강정에 이르는 경로를 주유한 것을 들 수 있다.( 澗 松 集 別 集 卷 1, < 過 從 錄 >) 49) 함안 지역에서 풍류주인을 자처했던 趙 任 道 는 < 柰 內 新 居 說 > 및 < 過 從 錄 > ( 澗 松 集 別 集 卷 1)에서 鱸 魚 巖, 景 釀 臺 [ 李 仁 老 曾 所 作 亭 之 地 ], 周 益 昌 舊 居, 곽재우의 忘 憂 亭, 馬 山 亭, 靑 松 寺, 合 江 亭 등을 도흥강 일대의 명승으로 꼽았고, 周 世 鵬 은 < 攬 秀 亭 記 >( 武 陵 雜 稿 卷 6 別 集 )에서 칠원의 買 浦 樓 와 景 釀 臺 를 이 지역의 명승으로 거론했다. 50)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柰 內 新 居 說 >. 者 曰 鱸 魚 巖 景 釀 臺 李 銀 臺 仁 老 曾 所 作 亭 之 地 66

27 (양산), 三 叉 江 (김해)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51) 선유가 즐겁다고 본무를 팽개칠 수는 없는 법이다. 뱃머리가 일찍이 빗 돌을 묻어둔 도흥보에 이르렀을 때 정구는 배를 멈추고 몸소 수색작업을 감독하였지만 끝내 돌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비록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는 못했지만 이날의 선유는 도흥촌에서 그 절정을 맞았다. 정구 곽재우 박 충후 장현광을 비롯하여 모두 35명의 선비들이 모여들었기에 영산 창녕 함 안 세 고을이 들썩일만했고, 여헌문인 조임도는 급보를 받고 달려오는 수 고로움을 마다치 않았다. 52) 참가자의 대부분을 이룬 함안 영산지역 선비들은 존경의 마음과 정중한 예법으로 정구 일행을 영접했다. 趙 埴 은 직접 주식을 마련하여 대접하는 성의를 보였고, 영산 출신의 전군수 辛 礎 는 함안향교 교생과 함께 일행에 게 술을 대접했는데, 술상은 자못 簡 潔 했고 禮 儀 는 더없이 和 敬 했다고 한 다. 조식이 접대에 정성을 들인 것은 장현광과의 각별한 관계 때문이 고 53), 신초의 성의는 死 生 을 함께 했던 곽재우와의 인연 때문으로 생각된 다. 54) 총 35명의 선유 참가자 가운데 함안 영산(창녕)지역의 선비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함안과 영산이 정구의 遺 愛 處 라는 점이 크게 작용 51) 鄭 逑, 寒 岡 全 書 咸 州 誌 < 山 川 > 道 興 津. 52) 당시 조임도는 칠원의 장춘사에서 글을 읽고 있었는데, 1월 27일 이현(정구 장현광)에게 인사를 여쭈라는 아버지 조식의 편지를 받았고, 그날 저녁 함안 으로 와서 하루를 묵은 뒤 아버지 및 숙부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도흥보로 가서 선유 일행과 합류하였다.(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龍 華 山 下 同 泛 錄 後 序 >) 53) 趙 埴 은 크게 드러난 사람은 아니지만 장현광과 교유가 깊었고, 년 경 인동의 가락동에 이주하여 살 때에는 장현광을 수시로 방문하여 교분을 쌓았다. 아들 조임도가 여헌문하를 출입하고, 초명인 幾 道 에서 任 道 로 이름을 바꾼 것도 장현광의 권유 때문이었다.(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就 正 錄 >) 54) 辛 礎 는 1597년 7월 火 旺 城 수성 당시 의병장 곽재우 휘하에서 助 戰 將 으로 활동한 바 있다. 67

28 하였다. 이런 연고로 인해 이들 지역에는 일찍부터 한강문인들이 광범위 그림5. 沂 洛 編 芳 - 道 興 搜 石 그림6. 沂 洛 編 芳 - 藕 浦 追 帆 하게 포진하였는데, 35명 가운데 무려 16명이 한강문인이다. 특히 盧 克 弘 과 李 厚 慶 은 각기 창녕과 영산지역 한강문인의 핵심으로서 정구와는 인척 관계로도 얽혀 있었고, 安 侹 李 明 怘 또한 함안지역 한강문인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었다. 55) 후일 李 象 靖 또한 沂 洛 編 芳 序 文 에서 정구를 이황의 적전으로 칭송하는 한편 泗 水 (칠곡 泗 陽 精 舍 ] 및 성주 인동 함안 영산을 한 강학파의 핵심 거점으로 규정하며 그는 정구가 활동하던 나아가 여맥이 미치던 시대의 洛 江 을 영남 道 學 의 연수로 평가하기에 이르렀던 것이 다. 56)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용화동범 은 비석을 찾는데 본질이 있었던 55) 안정은 정구 사후 咏 歸 亭 앞에 대를 쌓고 先 師 寒 岡 先 生 之 臺 라 이름할만큼 정구에 대한 경모심이 특별했다.( 鄭 逑, 寒 岡 全 書 檜 淵 及 門 錄 卷 3, < 安 侹 > 先 生 歿 築 臺 于 咏 歸 亭 前 立 石 題 曰 先 師 寒 岡 先 生 之 臺 ) 56) 朴 尙 節. 沂 洛 編 芳 < 序 文 >( 李 象 靖 ) 寒 岡 先 生 早 遊 陶 山 之 門 退 而 講 授 於 泗 水 之 上 星 仁 咸 0 之 間 盖 彬 彬 多 君 子 之 風 焉 寒 岡 陶 山 之 正 傳 而 洛 水 又 濯 纓 之 下 流 也 不 待 百 年 之 久 而 其 正 聲 之 續 出 於 門 人 高 弟 之 手 使 洛 派 一 帶 便 爲 道 學 之 淵 68

29 것이 아니었고, 범연한 '뱃놀이행사 는 더욱 아니었다. 그 형식은 주유를 매개로 한 사림들의 회합의 자리였지만 참가자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이 모임은 창녕 영산 함안지역 한강문인들의 대회합의 성격을 분명히 지니고 있었고, 그것은 또한 한강학파의 외연 확대 및 기반 강화와 맞물려 있었 다. 결국 창녕 함안지역은 정구 중년의 환력처로서 일찍부터 그의 학문적 영향력이 크게 미쳤던 곳이었고, 영산 창녕은 혈연 학연의 중복적 관계망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한강학파의 주요 거점의 하나로 인식된 곳이었다. 용 화산하동범록 은 이처럼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었던 한강학파의 학문적 결 속과 연대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여흥이 무르익자 정구는 이 모임을 특별하게 기념하고 싶어 했다. 이에 명필로 이름난 함안의 진사 李 明 怘 가 57) 명을 받들어 좌목을 작성하였는 데, 용화산하동범록 은 이런 과정을 통해 문헌화 되었던 것이다. 선생께서 제생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늘의 모임은 참으로 성대하였으 니 어찌 기록으로 남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하셨다. 이에 진사 이명 호가 명을 받들어 종이와 붓을 가져다 기록하였는데, 정선생을 首 題 로 하 여 곽우윤( 郭 再 祐 ) 박영공( 朴 忠 後 ) 장선생( 張 顯 光 ) 순으로 써내려 갔고, 그 뒤로는 벼슬을 따지지 않고 나이 순으로 성명 자 생년 거주 및 회집한 월일 을 직서했다. 기록이 완성되자 선생께서 문인에게 명하여 간직하게 했 다. 58) 조임도는 용화산하동범록 이 정구의 지시에 따라 어느 문인의 집에 갈 무리되었다고 하였지만 기락편방 의 편자 박상절은 이와는 조금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원본은 정구가 가지고 갔고, 좌중에 남아 있던 부본을 참여자 중 누군가가 수습하여 간수한 것이라 한다. 59) 源 " 57) 鄭 逑, 寒 岡 全 書 檜 淵 及 門 錄 卷 2, < 李 明 怘 > 以 文 藝 筆 法 鳴 於 世 58)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龍 華 山 下 同 泛 錄 後 序 > 69

30 그렇다면 1620년 조임도에게 용화산하동범록 의 존재를 제보해 준 안정 ( 安 侹 )이 곧 부본을 간수한 장본인이었을 가능성이 짙다. 안정의 자료 제공은 조임도가 용화동범 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60) 조임도의 표현처럼 용화동범 은 분명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성 대한 회집이었지만 정담만 주고받은 아니었다. 때로는 좌중을 긴장시키는 대화도 오고갔는데, 조임도의 저술인 就 正 錄 에는 당시의 대담 한 토막 이 아주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망우당 곽우윤이 웃으며 한강 정 선생에게 말씀하기를, 나의 소견에는 여헌이 한강보다 낫다. 고 하자 한강 선생은 답하기를, 영공( 令 公 )의 소견 이 옳습니다. 옳습니다. 고 했다. 우리 고을의 노인인 鵲 溪 成 公 ( 成 景 琛 )이 나이가 가장 높았는데, 손을 저으며 말씀하기를, 우선 이러한 말씀을 하 지 마시오. 우선 이러한 말씀을 하지 마시오. 나는 단지 우리 스승이 있음 을 알 뿐이오. 라고 했다. 영산 斯 文 李 畏 齋 ( 李 厚 慶 ) 어른은 곽우윤을 돌아 보고 말씀하기를, 영공의 의논은 西 河 사람과 같음이 있다. 하고는 서로 한바탕 재미있게 말씀하고 파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곽우윤의 말씀은 질박하여 꾸밈이 없고 한강의 대답은 탁 트여 사사로움과 인색함이 없었 으며, 작계가 우선 이러한 말씀을 하지 말라고 한 것과 외재가 서하 사람 이라고 배척한 것도 스승을 높이고 도를 호위하는 뜻에서 나온 것이니, 사문의 성대한 모임을 어찌 다시 얻을 수 있겠는가. 61) 이 인용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조임도가 전달코자 했던 메시지이다. 영남학계의 기대주로 부상하고 있던 장현광에 대한 곽재우의 거침없는 평 가 정구의 사심없는 수용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하려는 좌중의 노력 사 59) 朴 尙 節, 沂 洛 編 芳 板, < 朴 尙 節 後 識 > 盖 當 日 舟 遊 寒 岡 先 生 命 修 是 錄 正 本 則 先 生 藏 諸 硯 匣 而 去 一 通 錄 藁 遺 在 座 間 幸 賴 會 中 人 收 拾 善 傳 因 以 流 播 於 世 60)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龍 華 山 下 同 泛 錄 後 序 >. 61) 張 顯 光, 旅 軒 集 續 集 卷 9, 附 錄 < 就 正 錄 >. 70

31 문의 미담으로 마무리되는 이 대담은 정구에 비견되는 장현광의 위상을 담아내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조임도가 여헌문인들과의 상 호 조율 속에서 취정록 에 용화동범 기사를 수록했고, 62) 더구나 탈고 후 사단의 가능성을 우려한 것을 볼 때, 63) 이 대담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 고 수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임도 외에 당시 좌중에 있었던 인사, 특히 한강문인 가운데 어떤 누구도 이 대목을 언급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이 대담이 결코 사문의 미담으로만 여겨지지 않았 음을 의미했다. 물론 조임도는 피치에는 여헌문인으로서의 사승인식 이 강 하게 깔려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용화산하동범 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 라보게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1617년 7월 20일 새벽 정구는 蔡 夢 硯 郭 永 禧 李 天 封 李 彦 英 李 潤 雨 裵 尙 龍 李 命 龍 柳 武 龍 李 蘭 貴 李 壆 鄭 天 澍 등 열 두 문인의 수행을 받으며 배에 올랐다. 신병 치료를 위해 국중의 名 泉 으로 명성이 자자한 동래 온정으 로 64) 가기 위해서였다. 마침 동래부사로 재직 중인 문인 황여일이 봄부터 온정을 새로이 정비하고 숙소를 증축하여 스승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 지만 한동안 말미를 얻지 못하다가 겨우 일정을 잡은 것이었다. 主 伯 ( 東 萊 府 使 )은 지난 봄에 이미 선생께서 이곳에 와서 목욕하실 것이 라는 말을 듣고는 2 室 1 廳 규모의 초옥을 별도로 건립하였는데, 매우 정 결했다. 지금 선생을 따라 오는 자들이 많은 것을 알고는 다시 임시 가옥 62) 張 應 一, 聽 天 堂 集 卷 2, < 答 趙 致 遠 >( 戊 寅 ). 63) 趙 任 道, 澗 松 集 卷 3, < 與 張 經 叔 應 一 >( 己 卯 ). 64) 成 俔, 慵 齋 叢 話 卷 9, 今 我 國 六 道 皆 有 溫 井 而 惟 京 畿 全 羅 道 無 之 東 萊 溫 泉 最 好 有 泉 如 匹 練 從 地 湧 出 引 水 作 斛 其 暖 如 湯 可 飮 亦 可 煖 酒 倭 人 來 朝 者 必 求 浴 班 衣 往 來 充 斥 州 縣 不 勝 其 苦 矣 71

32 2간을 지어 제자들이 거처할 곳으로 삼았으니, 그 정성을 족히 알 수 있 었다. 65) 그가 배에 오른 칠곡 枝 巖 에서 동래 온정까지는 물길 710리에 뭍길 20 리를 가야하는 원행이었다. 66) 그가 물길에 사용한 배는 도동서원 소유로 원장 郭 赾 이 정갈하게 수리하여 하루 전에 대기시켜 둔 것이었다. 67) 7월 26일 목적지에 도착한 정구는 온정에서 한 달을 꼬박 한 달을 묵었고, 8 월 26일 동래를 떠나 9월 4일 泗 水 로 돌아오게 된다. 전후 45일이 소요된 동래행의 취지야 물론 욕천욕에 있었지만 그곳으 로 가는 길은 船 遊 를 겸한 여행이었다. 아울러 이 여행은 이미 정구에게 는 시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익숙했던 낙강의 풍물을 재음미하며 자연과 더욱 합일해 가는 수양의 과정이었고, 낙강 연안에 포진해 있었던 문인 제 자들과 정담을 나누고 학문을 토론하는 회합의 장이었다. 봉산욕행록 에 따르면, 욕행시에 만난 사람은 약 300명이고, 이 가운데 한강문인은 약 80명이다. 이는 정구가 봉산 욕행 통해 자신의 문인[342명] 가운데 25% 와 회합을 가진 셈이고, 특히 칠곡 대구 현풍 고령 창녕 함안 영산 밀양 김 해 등 낙강 연안지역의 문인[209명]은 약 40%가 수행 또는 문안했음을 뜻했다. 68) 65) 鄭 逑, 寒 岡 全 書 蓬 山 浴 行 錄 <7 月 26 日 > 午 到 溫 井 浴 所 主 伯 去 春 聞 有 先 生 來 浴 之 言 別 築 草 屋 二 室 一 廳 極 其 精 潔 今 聞 從 者 多 來 又 造 假 家 二 間 爲 諸 弟 子 容 接 之 所 可 見 其 誠 款 也 7월 28일 황여일은 3간 규모의 假 家 와 2간 규모의 廚 舍 를 다시 지어 각기 시종인들의 휴식처와 하인들의 거접처로 제공했다. 이처 럼 황여일은 여러 채의 임시가옥이 건립하여 각종의 편의를 제공하였지만 이 윤우 등 수행문인들은 동래부 衙 內 의 召 募 廳 에서 잠을 자는 경우가 많았다. 66) 7월 20일 枝 巖 道 東 書 院 까지 수행 150리, 7월 21일 도동서원 昌 寧 까지 수 행 50리, 7월 22일 창녕 景 釀 臺 (칠원)까지 수행150리, 7월 23일 경양대 本 浦 까지 수행 50리, 7월 24일 본포 黃 山 (양산)까지 수행 150리, 7월 25일 梁 山 下 龍 塘 (김해 양산경계)까지 수행 60리, 7월 26일 하룡당 溫 井 (동래)까 지 육행 20리였다. 67) 鄭 逑, 寒 岡 全 書 蓬 山 浴 行 錄 <7 月 20 日 > 船 則 道 東 院 船 也 院 長 郭 赾 前 期 粧 理 於 數 日 之 內 極 其 精 緻 亦 見 其 誠 意 也 使 郭 慶 馨 郭 楊 馨 乘 其 舟 遡 流 而 上 前 一 日 已 泊 于 枝 巖 矣 72

33 깔끔한 船 粧 만큼이나 배 안의 분위기도 담박 진솔하였지만 여정에는 지 켜야 할 규율이 있었다. 여행 이틀째인 7월 21일 이를 어기고 白 戱 를 행 했다는 까닭으로 공사원 李 天 封 이 문책을 받은 것도 69) 이 때문이었다. 사 제간의 위계질서도 매우 엄격하여 下 船 할 때는 반드시 肩 輿 또는 藍 輿 등 가마에 오름으로써 도보로 이동하는 문인들과는 차별을 두었다. 그리고 7 월 24일부터는 直 日 이 정해져 그날그날의 노정을 세밀하게 지휘 감독하며 전체 일정을 소화해 나갔다. 70) 회연급문록 에 수록된 한강문인은 342명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仕 宦 居 喪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부득이 동래행에 동참할 수 없었던 사람도 있었겠고, 또 乘 船 인원을 고려한 측면도 없지 않았겠지만 정구가 수많은 문인 중에서도 평소 신망하던 소수의 인사들만 대동한 까닭은 무엇이었을 까? 어쩌면 정구는 이번 여행이 낙강을 주유하는 생애의 마지막 기회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당시 그의 나이가 75세의 고령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낙강 유람이 이번이 마지막이라면 道 東 書 院 을 거쳐 山 海 亭 에 이르는 걸음도 다시금 기약하기 어려웠다. 주행 첫 날인 7월 20일 도동서원 西 上 齋 에서 하루를 묵고 21일에 김굉필의 산 소를 참배한 것이라든지 7월 25일 신산서원[산해정]을 봉심한 뒤에 동래 로 간 것은, 정구에게 있어 동래 욕행이 결코 신병 치료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님을 웅변하는 것이었다. 68) 김학수, 조선중기 寒 岡 學 派 의 등장과 전개, 한국학논집 40,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10, p ) 鄭 逑, 寒 岡 全 書 蓬 山 浴 行 錄 <7 月 21 日 > 先 生 以 舟 中 失 律 擧 白 戱 罰 李 叔 發 ( 李 天 封 : 筆 者 註 ) 盖 曾 以 叔 發 定 公 事 員 故 也 70) 蓬 山 浴 行 錄 에 등장하는 직일 수행자는 李 李 天 封 李 道 孜 李 堉 李 厚 慶 이다. 직일 수행자 중에는 이들 외에 盧 垓 가 있으나 위의 5인과는 그 비중이 같지 않다. 직일 임무는 7월 24일에 시작되어 8월 25일까지 약 한 달간 유지되 었는데, 노해의 경우는 8월 24~25일까지 이틀에 그쳤다. 그 나머지는 5인 이 윤번제로 하여 평균 5회씩을 수행했다. 73

34 지암을 출발한 정구 일행은 浮 江 亭 을 지나 금강 앞 여울에서 아침을 먹 었다. 元 堂 浦 를 거쳐 老 多 巖 에 이르러서는 예정대로 李 簬 李 등과 합류 한 뒤 잠시 배를 멈추고 간단한 술자리를 가졌다. 막 배를 출발시키려는 데 新 安 현감 金 中 淸 이 이윤우 편에 시를 보내왔다. 봉화 출신의 김중청 은 정구가 안동부사에 재직할 때 입문하였는데, 그의 시에는 병으로 인해 여로에 동참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71) 이에 정구는 편지를 보내 성의에 답하였고, 72) 이윤우 등 10인[ 李 彦 英 盧 世 厚 李 李 潤 雨 盧 垓 李 道 長 李 天 封 李 蘭 貴 裵 尙 龍 李 堉 ]의 동문들이 주중 에서 화답시를 짓는 장면은 舟 上 詩 會 를 방불케 했다. 덕산을 지나 저물녁에 쌍산의 수문에서 이언영과 작별한 일행은 映 波 亭 을 거쳐 도동서원에서 첫날밤을 묵었고, 주행 2일째인 7월 22일에는 고령 의 漁 牧 亭 과 浮 來 亭 을 지나 창녕 경계의 牛 山 촌가에서 유숙하게 된다. 지암에서 우산 촌가에 이르는 물길 200리 동안 정구 일행은 부강정 노다 암 영파정 도동서원 어목정 부래정을 지나왔는데, 이곳은 일찍이 정구가 유 람 경유한 바 있는 江 岸 文 化 의 거점들로서 한강문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역사문화적 공간들이기도 했다. 정구는 성주 칠곡 일대에 걸쳐 있었던 주거기반, 창녕현감, 함안군수를 지낸 사환 경력, 낙강 연안에 밀집, 분포하고 있었던 사우문인의 관계망 등으로 인해 누구보다 낙강과 그 주변의 명소들을 유상할 수 있는 조건이 좋았고 기회도 많았다. 그럼에도 이를 기념하고 노래한 작품은 극히 적은 데, 아래의 시는 그 대표작이라 할만하다. 71) 이로부터 2년 뒤인 1619년 6월 김중청은 정구와 함께 부강정 아래에서 주유 하게 됨으로써 이 때의 아쉬움을 풀게 된다.( 金 中 淸, 苟 全 集 年 譜 < 己 未 >(1619) 六 月 旣 望 陪 岡 老 泛 舟 浮 江 亭 下 ) 72) 鄭 逑, 寒 岡 集 續 集 卷 2, < 答 金 城 主 中 淸 >. 不 誣 矣 74

35 이 시는 정구가 함안군수를 그만 둔 이듬해인 1589년의 작품으로 추정 되는데, 노세후는 당시의 주유를 이렇게 추억하였다. 정구가 7월 22일에 경유한 고령의 漁牧亭과 浮來亭은 각기 박정완과 박정번의 정자이다. 한강문인인 박정번은 임란 때 형 廷琬과 더불어 왜구 를 격파하는데 공을 세웠고, 한 때 예빈시 주부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생애의 대부분을 산수벽에 빠져 강호에서 보냈고, 만년에는 文淵齋를 건 립하여 후진 양성에도 열정을 보였다. 군은 倻川과 낙수 사이에 집이 있었는데, 빼어난 곳을 골라 학암 부래정 사를 짓고 종로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고, 만년에는 문연재를 건립하 여 이따금 고을의 자제들을 모아 강송하여 얻는 바가 매우 많았다.75) 박정번은 정구보다 7년 연하에 지나지 않았지만 정구를 스승으로 깍듯 하게 섬겼으며, 을사주행 당시에는 출범처인 어목정에서부터 사문을 배 종키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산수벽도 1610년을 기점으로 臥遊의 대 상이 되고 만다. 1610년 3월 8일 경상도사 裵大維가 공무 수행차 부래정 73) 鄭逑, 寒岡集 續集 卷1, <泛舟洛江 分韻萬頃蒼波欲暮天 得波字> 74) 鄭逑, 寒岡全書 蓬山浴行錄 <7月20日>. 75) 鄭仁弘, 來庵集 卷13, <主簿朴君墓誌銘幷序>. 75

36 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調 病 중이었다. 76) 배대유의 표현처럼, 그는 부래 정의 뜰을 가득 채운 매화와 송죽 그리고 활기차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 며 화사한 봄기운을 느끼며 쾌차를 염원했겠지만 이로부터 채 1년이 되지 않아 향년 62세로 생을 마감했다. 아래는 그의 죽음을 애도한 정구의 만 사와 제문이다. 성품이 湖 山 을 좋아하는 벽이 있어 50여년이나 누렸음에도 스스로는 그것을 癖 이랄 것도 없이 여겼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사람들이 어렵게 여 기고, 세상에서도 드문 일인데 하늘이 그렇게 만들어 준 것도 우연은 아 닐 것입니다. 아! 맑은 낙강에 언제 다시 배를 띄워 함께 뱃놀이 할 수 있겠으며, 언제 다시 浮 來 亭 에서 함께 술잔을 주고받을 수 있겠습니까? 78) 이처럼 박정번은 정구가 인정한 산수광이었고, 정구 역시 여러 번 도진 을 왕래하며 부래정과 학암정에 족적을 드리웠던 것이다. 79) 비록 봉산욕 행시에는 어목정과 부래정을 들르지는 않았지만 필시 정구는 1617년 7월 21일 도진 부근을 지나며 지난날을 회상했을 것이다. 7월 22일 창녕에서 생질 盧 克 弘 이 차려 온 아침을 먹고 출발한 정구 일행은 沙 幕 에서 초계군수 李 光 胤, 전 함양군수 李 大 期 의 영접을 받았다. 76) 裵 大 維, 慕 亭 集 卷 4, < 巡 部 日 記 >( 萬 曆 庚 氏 本 道 都 事 時 ). 77) 鄭 逑, 寒 岡 集 卷 1, < 挽 朴 君 信 廷 璠 >. 78) 鄭 逑, 寒 岡 集 續 集 卷 1, < 祭 朴 君 信 廷 璠 文 >. 79) 鄭 逑, 寒 岡 集 續 集 卷 8, < 答 吳 翼 承 長 > 爲 造 先 墓 之 碣 來 到 高 陽 之 陶 津 方 留 朴 君 信 家 耳 76

37 월천 내암문인이었던 이광윤은 1612년 조목의 예천 鼎 山 書 院 종향과 관련 하여 정구에게 자문을 구한 인연이 있었고, 80) 후일 1620년 8월에는 광해 군의 명으로 정구에 대한 사제문을 짓기도 한다. 81) 초계 출신의 이대기 역시 내암문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구와도 교유가 깊었고, 임해군 옥사 때는 정구의 全 恩 論 에 적극 동조하였다. 82) 한편 이광윤 이대기와 헤어진 정구 일행이 馬 首 院 인근을 지날 무렵 작 은 해프닝이 벌어졌다. 창녕현감 尹 民 哲 이 정구를 영접하기 위해 강변에 장막을 치고 기다렸으나 일행이 그냥 지나쳐 버리자 당황한 현감이 작은 배를 타고 급히 따라와 간신히 헌작하였으며, 창녕 선비들도 별도로 채비 를 하고 기다렸으나 이번에는 배를 댈 수가 없어 회합이 이루어지지 못했 다. 일행이 탄 배가 영산 경내인 기강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기강 인근에 인가가 적어 숙식이 불편하고, 무엇보다 도흥에서 자 신을 기다리고 있을 이후경을 빨리 만나려는 마음에서 주행을 재촉한 정 구는 도흥탄에 조금 못미쳐 창원부사 신지제, 이석경 후경 도자 도유 도일 도 보 도순 등 벽진이씨 일문의 인사를 비롯하여 이흡 정육 신유임 등 약 30명 에 이르는 영산 함인지역의 선비들의 마중을 받았다. 인근에 숙소를 봐 두었던 이석경 등이 그곳을 옮겨갈 것을 청했으나 촌 가에서의 유숙을 마땅찮게 여긴 신지제가 경양대 아래에 자신이 마련한 숙소로 이동할 것을 권하자 정구가 이를 따랐다. 야심한 시각에 숙소에 도착한 일행은 차등을 두어 잠자리를 정했다. 정구와 이석경 두 사람만 신지제가 준비한 숙소에서 잤고, 이후경 이윤우는 인근 촌가에서, 노극홍 이서 이천봉 이육 등은 배 안에서 잤다. 밤에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자 정 구는 배 안에서 자는 제자들 걱정에 잠을 설쳤다고 한다. 80) 李 光 胤, 瀼 西 集 卷 5, < 上 鄭 寒 岡 先 生 禀 立 祠 書 > ; 鄭 逑, 寒 岡 集 卷 4, < 答 李 克 休 光 胤 >. 81) 鄭 逑, 寒 岡 年 譜 卷 3, < 遣 禮 官 致 祭 文 >( 弘 文 館 校 理 李 光 胤 行 ). 82) 이상필, 남명학파의 형성과 전개, 와우출판사, 2005, pp

38 7월 23일 조반 후 주중의 집기를 乾風한 일행은 함안 경내인 斗巖臺로 향했다. 창원부사 신지제가 마련한 주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여에서 내 린 정구는 잠시 휴식하며 강산의 수려함을 크게 칭상하였다. 小宴을 마친 일행은 전날 도흥에서 만난 영산 함안 사우들과 작별하는 대신 이석경 후 경 도자 도일을 합류시켜 배종그룹을 확대, 강화하였다. 소임을 다하고 돌 아가려는 신지제를 억지로 붙잡아 함께 하행길에 오른 일행의 시야에 정 자 하나가 들어왔다. 바로 망우정이었다. 곽재우가 망우정에서 사망한 것 이 1617년 4월 10일이었고, 현풍 仇知山에다 안장된 것이 동년 8월이었 으므로 이 때는 채 장례를 치르기도 전이었다. 충의대절의 상징이면서도 결코 순탄치 않은 만년을 보냈던 곽재우의 삶 에 비감을 느낀 일행은 술잔을 기울이며 감회를 토로하게 된다. 이에 신 지제 노극홍 이윤우 이서 이천봉 이후경 이도자노해 이육 등 수행인원 대부분 이 시를 지어 저마다의 심경을 표현했는데, 아쉽게도 봉산욕행록 에 수 록되어 전하는 것은 9수 뿐이다. 이 가운데 신지제와 이후경의 시를 소개 하기로 한다. 83) 鄭逑, 寒岡全書 蓬山浴行錄 에는 淸 으로 표기되어 있다. 84) 鄭逑, 寒岡全書 蓬山浴行錄 에는 莊 으로 표기되어 있다. 85) 申之悌, 五峰集 別集, <景釀臺下次李茂伯潤雨韻 陪寒岡遊>. 蓬山浴行錄 에는 신지제의 시를 여타 수행원들이 차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여기에 는 도리어 신지제가 이윤우의 시를 차운한 것으로 되어 있다. 78

39 저녁 무렵 본포에 도착한 일행은 이날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촌가에서 유숙하게 된다. 봉산욕행록 에 입각할 때, 마수원(창녕) 기강(영산) 도 흥(함안) 경양대(칠원) 두암대(함안) 망우정(영산)을 지나오는 동안 정 구는 두암대에서 강산의 수려함을 칭송했을 뿐 그 외 별다른 언행이 발견 되지 않는다. 심지어 망우정을 지나면서도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정구가 용화동범 하루 전인 1607년 정월 27일에도 묵은 바 있던 망 우정은 1602년 곽재우의 정자로 흔히 창암 강정( 江 亭 )으로 불린다. 87) 1601년 영암 적소에서 해배된 그는 잠시 琵 瑟 山 에 은거하다 이 때에 와 서 영산 창암에다 88) 정자를 짓고 만년 은거처로 삼았던 것이다. 1607년 정구의 유숙은 낙성 5년만에 이루어진 佳 客 의 내방에 다름 아니었고, 이 후에도 곽재우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生 食 하며 신선 도인처럼 살다 1617년 4월 10일 고종하였다. 망우정은 곽재우의 그 비범했던 행적만큼이나 그 傳 繼 과정이 남달랐 다. 여느 사람들처럼 곽재우도 자신의 강정이 길이 보존되기를 갈망했지 만 그 방법은 사뭇 달랐다. 그는 진정 산수를 즐기고, 또 능히 이것을 수 호할 수 있는 어진이[ 賢 ] 에게 정자를 전수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 다. 이는 곽재우에 있어 망우정은 사물이 아니라 후세 사람들까지 향유해 야 할 사림의 문화공간이었고, 그 이면에는 세월이 흘러 주인이 바뀌어도 자신의 정신만큼은 올곧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램이 녹아 있었던 것이다. 86) 李 厚 慶, 畏 齋 集 卷 1, < 寒 岡 先 生 有 蓬 山 浴 行 時 昌 原 府 使 申 順 乘 船 來 待 岐 江 行 至 斗 巖 先 生 入 宿 村 舍 與 陪 行 門 徒 於 舟 中 呼 韻 相 和 > 87) 郭 再 祐, 忘 憂 集 年 譜 < 萬 曆 三 十 年 壬 寅 > 賜 環 入 琵 瑟 山 餐 松 辟 糓 又 就 0 山 滄 岩 新 築 江 亭 扁 以 忘 憂 永 謝 烟 火 蕭 然 若 一 道 人 也 88) 현재의 행정 지명은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이다. 79

40 내가 보기에 강상에 들어선 정자들 가운데 잘 수호되는 것이 드문데, 그 까닭은 무엇인가? 어진이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이 정 자를 사사로운 재물로 여기지 않고 군에게 주는 것은, 군에게 산수를 즐 기고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 나의 정자를 잘 수호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 이다. 군은 나와 같은 마음으로 어진이를 얻어 이것을 넘겨주고, 뒷날의 어진이 또한 군과 같은 마음으로 수호할만한 어진이에게 전수한다면 길이 보존될 수 있을 것이다. 89) 곽재우에게 있어 이도순은 전혀 타인은 아니었다. 이도순은 곽재우의 맏사위 辛 膺 의 사위였으므로 두 사람은 조손관계로 맺어져 있었던 것이다. 주변에서는 곽재우의 擇 賢 傳 繼 를 기려 정자의 이름을 與 賢 亭 으로 바꿀 것을 권유하며 90) 새 정주에 대한 기대를 표명했지만 불행하게도 이도순 이 단명함으로써 前 賢 의 기대와 당부는 퇴색일로에 처하고 만다. 강정( 忘 憂 亭 ) 주인 郭 灘 이 큰 잔으로 세잔씩 술을 따르고 아침밥을 지 어 제공했다. 탄은 죽은 좌윤 곽상공의 부실에서 난 아들이다. 상공께서 돌아가신 후 江 舍 가 오래도록 비게되자 탄이 그 곁에 와서 살면서 수리한 것이 많았으니 그 뜻이 가상하여 주인 이라 하였다. 91) 위 인용문은 1635년 조임도가 제향차 신산서원으로 가다 망우정을 들 렀을 때의 상황을 서술한 것이다. 조임도의 표현에 따르면, 이도순의 사망 이후 망우정[여현정]은 주인을 잃고 방치되었고, 이를 보다 못한 서자 郭 89) 郭 再 祐, 忘 憂 集 卷 2 < 以 江 舍 與 李 道 純 書 > 吾 觀 作 亭 於 江 上 者 鮮 有 能 守 之 者 其 故 何 哉 以 不 能 與 賢 也 今 吾 不 私 一 亭 與 之 於 君 者 知 君 有 喜 好 山 水 之 心 而 可 以 守 吾 亭 也 君 能 以 吾 心 爲 心 得 賢 而 與 之 後 之 賢 者 亦 以 君 心 爲 心 傳 之 於 可 守 之 賢 則 可 以 永 終 不 墜 矣 90) 趙 任 道, 澗 松 集 卷 4, < 與 賢 亭 記 >. 91)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遊 觀 錄 > 江 亭 主 人 郭 灘 行 酒 三 大 杯 設 朝 飯 供 之 灘 故 左 尹 郭 相 公 副 室 子 也 相 公 乘 化 之 後 江 舍 久 空 灘 也 來 居 其 側 多 所 補 葺 其 志 可 嘉 故 目 之 爲 主 人 也 80

41 灘 92)이 간신히 보수,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망우정은 곽재우의 사망 이후 채 20년이 되지 않아 크게 황폐해졌고, 17세기 후반에 이르면 그 터만 남게 된다. 93) 한편 7월 22일 정구가 신지제의 안내를 받아 하룻밤을 묵었던 경양대 는 칠원의 雩 浦 서안에 94) 있다. 돌기한 바위 정상에 1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천연의 평탄한 대가 만들어져 있다. 일명 地 巖 潭 이라고도 하는데, 그 아래는 수심이 매우 깊어 명주실 한 타래를 풀 수 있을 정도라 한다. 명 칭의 유래는 자세하지 않으나 조임도는 景 物 이 잘 빚어진 술과 같이 조화 롭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해석하였다. 95) 일찍부터 남도 경승의 하나로 주목을 받은 경양대는 고려 무신정권기의 문인 李 仁 老 가 정자를 짓고 놀았고, 96) 여말선초에도 李 詹, 卞 季 良 등 수다한 묵객들의 창작의 공간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역 출신의 주세붕은 경양대를 龜 城 八 景 의 하나로 꼽았 고, 97) 조임도의 간송집 에는 경양대와 그 주변의 경관을 노래한 시가 10수 가까이 수록되어 있으며 98), 申 夢 參 의 江 居 二 十 一 詠 99) 에서도 경양 92) 곽재우에게는 2자[ 瀅 活 ]6손[ 汝 < 汝 楫 (이상 瀅 의 자) 汝 植 汝 梓 汝 樞 汝 松 (이상 活 의 자)]과 2서[ 辛 應 成 以 道 ]5외손[ 辛 東 望 時 望 李 道 純 (이상 辛 膺 의 자녀) 萬 江 萬 河 (이상 成 以 道 의 자)] 및 두 서자[ 灘 沐 ]가 있었다. ( 許 穆, 記 言 別 集 卷 16, < 忘 憂 堂 郭 公 神 道 碑 銘 >) 93) 權 斗 經, 蒼 雪 齋 集 卷 3, 詩 ( 鷲 城 錄 ) < 從 蘇 津 泛 月 訪 蒼 巖 郭 忘 憂 精 舍 遺 址 至 辛 徵 君 夢 參 江 亭 止 宿 値 徵 君 不 在 歸 路 次 安 詞 伯 玖 韻 > 94)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칠서면 계내리 진동마을 일대이다. 95) 趙 任 道, 澗 松 集 卷 4, < 景 釀 臺 下 船 遊 記 > 臺 之 名 義 余 未 之 詳 焉 Ⅳ 云 景 物 之 涵 混 如 麴 糱 之 醞 釀 故 命 之 以 景 釀 也 96)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柰 內 新 居 說 > 景 釀 臺 李 銀 臺 仁 老 曾 所 作 亭 之 地 97) 周 世 鵬, 武 陵 雜 稿 卷 3 原 集, < 龜 城 八 絶 >. 주세붕은 南 亭 子, 擇 勝 亭, 靑 龍 山, 漢 文 閭, 右 景 釀 臺, 買 浦 樓, 柳 洞 村, 武 陵 洞 을 8경으로 쳤다. 98) 趙 任 道, 澗 松 集 卷 1, < 追 次 李 子 粹 道 純 遊 景 釀 臺 下 韻 > ; < 上 浦 江 墅 伏 呈 季 父 > ( 丁 未 春 ) ; 卷 2, < 初 夏 船 遊 >( 戊 辰 ) ; < 乙 丑 殷 秋 梁 侯 龜 翁 約 與 鎭 海 柳 使 君 璞 漆 原 南 使 君 烜 0 山 金 使 君 希 說 前 府 使 裵 公 弘 祿 辦 船 遊 於 景 釀 臺 下 先 訪 余 於 柰 內 余 於 是 時 適 以 仁 原 君 致 奠 事 出 在 平 廣 家 奴 走 通 向 晩 乃 歸 梁 侯 方 虛 坐 待 之 責 余 避 客 故 以 詩 謝 之 > ; < 泛 舟 景 釀 臺 下 >( 乙 巳 夏 ) ; 續 集 卷 1, < 登 景 釀 臺 口 占 > ; < 泛 舟 景 釀 臺 81

42 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24일. 맑음. 먼동이 틀 때 배를 출발시켰다. 거쳐 온 관내의 경양대 등 여러 곳을 돌아보니 마치 신선의 경계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엊 그제는 이곳을 밤에 지나치는 바람에 등람치를 못했으니 큰 흠사가 아닐 수 없었다. 100) 이윤우의 표현대로 정구 일행은 경양대에 도착한 것은 22일 밤이었고, 그 다음날은 다른 일정에 쫒겨 경양대와 그 주변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 지만 칠원 지역에서도 정구의 자취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한 때나 마 정구가 주익창의 구기를 입수하여 칠원 땅에서 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음을 101) 고려할 때, 정구에게 있어 창녕~칠원에 여정은 너무나도 익 숙한 풍물을 재음미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구가 여정이 유람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한강 선생께서 일찍이 온정 걸음을 하시면서 德 巖 公 ( 李 碩 慶 )을 방문하 시자 부군은 두 형과 함께 시립했다. 선생께서 심경, 근사록 및 性 理 諸 書 를 시험하셨고, 또 태극도설, 대학연의, 洪 範 등의 책을 질문 하시자 부군께서 곁에서 응답하심에 합당하지 않음이 없었다. 102) 下 >. 특히 조임도는 1628년 4월 영산 출신의 李 道 輔 兪 亨 吉 李 浣, 창녕출신의 梁 晅 李 汝 章 및 이들의 자제인 李 澂 ( 道 輔 의 子 ) 梁 暻 ( 咺 의 弟 ) 등과 함께 용화산에서 경양대에 이르는 경로를 주유한 내용을 < 景 釀 臺 下 船 遊 記 >에 자세하게 적고 있다. ( 趙 任 道, 澗 松 集 卷 4) 99) 辛 夢 參, 一 庵 集 卷 1, < 江 居 二 十 一 詠 >( 戊 辰 ). 100) 鄭 逑, 寒 岡 全 書 蓬 山 浴 行 錄 <7 月 24 日 > 昧 爽 發 船 回 望 所 經 館 內 景 釀 臺 等 處 怳 然 如 在 神 仙 境 界 中 因 昨 日 夜 過 不 得 登 覽 爲 一 大 欠 事 也 101)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柰 內 新 居 說 > 柰 內 之 北 少 西 有 千 尺 斷 岸 臨 江 斗 起 若 巨 鼇 縮 於 殼 裏 而 窿 然 出 其 背 者 乃 故 周 處 士 益 昌 築 室 藏 修 之 舊 基 也 寒 岡 先 生 欲 居 而 未 果 焉 102) 李 道 一, 消 憂 軒 集 卷 下, 附 錄 < 家 狀 >. 82

43 이처럼 그는 문인들을 만나 환담을 나누면서도 그들의 학업을 점검, 면 려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바로 봉산욕행 을 강학의 확대 과정이자 문도 규합의 또 다른 형태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7월 24일 이른 새벽 본포를 출발한 정구 일행은 空 明 軒, 攬 秀 亭 을 지나 중로에 밀양부사 李 弘 嗣, 경상도사 安 璹 과 합류한 뒤 彌 5, 三 浪 浦 를 거쳐 저녁 무렵 양산에 도착하여 黃 山 驛 에서 묵었다. 이 날은 다른 날에 비해 내방 인사가 크게 줄어 여정은 한결 한산하였 지만 정구에게는 자못 의미가 있는 하루였다. 어렸을 때 배운 吳 健 의 기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침부터 素 食 하였고, 밀양부사 이홍사 가 마련한 주연도 사양했다. 대신 그는 두 번이나 배를 세우는 여유를 보 였고, 산천의 아름다움에 대한 칭찬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처음 배를 댄 곳은 밀양 땅 彌 5였는데, 안숙 이홍사가 이 일대의 경관을 자랑한 때문이 었다. 磊 津 인근인 미례는 覓 5 또는 明 5로 별칭되며, 산수가 수려할 뿐만 아니라 103) 곡창지대로도 유명했다. 본래 밀양부의 속현 수산현의 경내였 던 이곳에는 1450년 밀양부사 李 伯 常 이 건립한 德 民 亭 이 있었다. 104) 총 6칸 규모로 건립된 덕민정은 조운과 물산의 요충지였던 수산현의 객사였 다. 그 뒤 1538년(중종33) 밀양부사 張 籍 이 덕민정 서남쪽에 정자를 새로 이 건립하였고, 1539년 신임 부사로 부임한 魚 得 江 이 단청을 입힌 뒤 남 수정이라 명명하였다. 후임 부사로 부임한 朴 世 垕 는 1542년 영남루를 중 수하고 남은 材 瓦 를 활용하여 남수정을 수리하는 한편 그 서북쪽에 10칸 규모의 縣 舍 를 증축하였다. 103) 이 일대의 경관을 노래한 대표작으로는 정사룡의 < 覓 5 雜 詠 >( 湖 陰 雜 稿 卷 3, 賜 告 錄 )을 들 수 있다. 104) 新 增 東 國 輿 地 勝 覽 卷 26, 慶 尙 道 密 陽 都 護 府 樓 亭 < 德 民 亭 >. 83

44 장적 어득강 박세후의 노력에 의해 낙강의 東 岸 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남수정의 빼어난 경관은 1543년 주세붕의 기문을 통해 더욱 세상에 알려 지게 된다. 그는 攬 秀 亭 記 에서 낙강 및 낙강으로 유입되는 5대 支 江 에 위치한 樓 亭 堂 臺 중에서도 남수정을 최고로 꼽았던 것이다. 105) 그러나 안타깝게도 덕민정과 남수정은 임란 때 화소되어 106) 구경할 수는 없었지 만 언덕에 올라 강 아래를 내려 본 정구는 남수정의 구기를 비롯한 미례 강산의 경관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107) 이후 안숙 이홍사와 작별한 정구는 삼랑포에 이르러 다시 하선하여 주 변을 돌아본 뒤에 未 時 무렵에 양산 땅에 들어선 다음 저녁 무렵 黃 山 에 도착, 인근 역촌으로 이동하여 유숙하였다. 이 날(7월24일) 저녁 정구는 수행 문인들에게 당초 일정에는 없었던 신산서원 봉심 의사를 전달했고, 7월 27일에는 문인들과 함께 이황의 禮 疑 答 問 의 막바지 간행작업을 세 심하게 챙겼다. 그리고 공식 일정상으로는 동래에서 온욕에 한창이던 동 년 8월에는 조식의 문묘종사소 를 짓는 열의를 보였다. 1 7월 25일. 맑음. 새벽에 배를 움직여 蒜 山 앞 여울에서 아침을 먹었 다. 김해부사 ( 曺 繼 明 이 아이를 보내 문안했다. 三 叉 江 앞 여울을 지나자 부사가 사람과 말을 整 齊 하여 선생을 맞았다. 선생께서는 서원에 들어가 서는 誠 正 堂 에서 휴식을 취했다. 從 者 가 먼저 사당에 들어가 향을 피운 뒤 두 번 절하고 나왔다. 조금 있다가 선생께서 부축을 받아 廟 庭 에 들어 가서는 부복하여 절을 올린 뒤에 다시금 성정당에서 쉬었다. 선생께서는 정묘년(1567)에 산해정에서 남명선생을 뵌 지 지금 51년이 되었는데, 廟 105) 周 世 鵬, 武 陵 雜 稿 卷 6, 別 集 < 攬 秀 亭 記 >. 106) 이후 남수정과 덕민정의 구기는 숙종 때 낙강의 범람을 예측, 守 山 倉 에 불을 질 러 백성을 구제하는데 공을 세운 金 淇 의 賜 牌 地 가 되었다고 한다.( 嶠 南 誌 密 陽 樓 亭 < 攬 秀 亭 >) 107) 鄭 逑, 寒 岡 全 書 蓬 山 浴 行 錄 <7 月 24 日 > 密 陽 府 使 李 弘 嗣 入 謁 都 事 安 璹 以 片 舟 追 至 話 次 盛 稱 彌 5 江 山 之 勝 先 生 命 泊 舟 彌 5 下 遂 以 藍 輿 下 船 登 岸 臨 江 歎 賞 久 之 84

45 室 이 위치한 자리가 산해정의 옛 터라고 한다. 부사가 들어가 배알하여 잠시 茶 5를 행했다. 선생은 견여를 배로 내려오셨고, 부사가 下 龍 塘 까지 호송했다. 108) 2 7월 27일. 선생께서 윤우에게 명하여 퇴계 이선생의 禮 疑 答 問 의 大 目 을 정사케 하셨다. 8월 초3일. 선생께서 五 服 沿 革 圖 및 이선생의 예의답문 의 題 目 을 강정하셨다. 초8일. 선생께서 윤우에게 오복연혁 도 를 정사토록 명하셨다. 109) 년 가을 8월, 남명 선생의 문묘종사를 청하기 위한 소회가 고 령에서 열리니 모인 이가 수백 명이었다. 정선생께서 상소문을 지으시고 는 진사 李 의 이름으로 보내셨는데 외람되게도 내가 擇 疏 를 맡아 선생 의 상소문을 뽑게 되었다. 110) 신산서원 봉심 이황 저술의 정리 작업 남명종사소 의 기초로 이어지 는 일련의 행위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는 정구에게 있어 봉산욕행 은 생 의 종점에서 학문의 연원을 찾고 또 추양하는 회심에 찬 행보였음를 뜻했 고, 그 기저에는 자신이 남명 퇴계 두 학파를 아우르는 영남 유학의 리더, 즉 영남맹주의식 이 깔려 있었다. 111) 17세기를 살았던 낙강 연안 지역의 선비 가운데 선유 취향이 단연 특 별했던 사람은 조임도였다. 함안 劒 巖 里 출신인 그는 장현광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旅 門 十 賢 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고, 퇴계 남명 양 학파의 융화 108) 鄭 逑, 寒 岡 全 書 蓬 山 浴 行 錄 < 七 月 二 十 五 日 >. 109) 鄭 逑, 寒 岡 全 書 蓬 山 浴 行 錄 < 七 月 二 十 七 日 >. 110) 河, 滄 洲 集 卷 2, < 新 安 語 錄 >. 111) 김학수, 조선중기 寒 岡 學 派 의 등장과 전개, 한국학논집 40, 계명대학교 한국 학연구원, 2010, pp

46 에도 크게 기여한 학자였다. 112) 함안의 세족이었던 그의 집안은 강거 기반 또한 탄탄하여 아버지 조식 은 上 浦 에다 별서를 경영하였고, 113) 숙부 趙 垹 은 천혜의 경승지인 斗 巖 臺 에 반구정을 지어 유식처로 삼았다. 임란 때 함안에서 의병을 일으켜 鼎 巖 津 등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던 조방은 난후 반구정에 은거하여 노년 을 보냈다. 특히 반구정은 곽재우의 망우정과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 주보는 위치에 있어 조방은 작은 배를 타고 수시로 망우정을 왕래하며 곽 재우와 더불어 도의를 강마했다고 한다. 114) 집안의 강거 전통은 조임도에게 그대로 이어져 1618년에는 칠원의 내 내에 翔 鳳 亭 을 지었고, 115) 1633년에는 영산의 용산촌에 합강정을 건립하 게 된다. 상봉정이 일종의 피세처였다면, 합강정은 전형적인 수양과 학문 의 공간이었다. 望 慕 庵, 沙 月 樓, 臥 雲 軒, 鳶 魚 臺, 鱸 魚 巖 등 인공과 자연이 조회를 이룬 합강정은 심신 수양과 독서의 최적지였고, 松 菊 梅 竹 외에는 어떤 雜 卉 도 용납지 않았던 주인의 고집에서는 선비의 꼿꼿한 기상이 느 껴졌다. 116) 상봉정 합강정으로 상징되는 강거 기반은 조임도의 선유 취미를 더욱 부채질한 것 같다. 일찍이 조임도는 1607년 아버지를 따라 용화동범 에 도 참여했거니와 그의 문집 澗 松 集 에는 사우들과 선유한 기록에 곳곳에 남아 있다. 1626년 7월에는 韓 夢 參 ( ), 朴 道 元 ( )과 함께 낙강에 배를 띄워 내내 일대를 유람했고, 117) 동월 12일에는 역시 한몽삼, 박도원 등과 함께 김굉필의 제향처인 道 東 書 院 및 길재를 향사하 는 吳 山 書 院 을 거쳐 장현광의 강학처인 不 知 巖 精 舍 에 이르는 코스를 주유 112) 許 捲 洙, 南 冥 退 溪 兩 學 派 의 融 化 를 위해 노력한 澗 松 趙 任 道, 南 冥 學 硏 究 11,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龍 華 山 下 同 泛 錄 後 序 > 114) 盧 相 稷, 小 訥 集 卷 30, < 伴 鷗 亭 重 修 記 > ; 許 傳, 性 齋 集, < 伴 鷗 亭 記 >. 115) 趙 任 道. 澗 松 集 年 譜 < 戊 午 > 避 地 居 漆 原 之 奈 內 翔 鳳 亭 成 116) 趙 任 道. 澗 松 集 年 譜 < 癸 酉 >. 117) 趙 任 道. 澗 松 集 卷 4, < 奈 內 船 遊 序 記 後 跋 >. 86

47 한 바 있었다. 118) 尋 賢 錄 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 듯 전후 14일이 소요 된 이 주유는 유람이기보다는 어진이의 자취를 찾아가는 순례적 성격이 강했는데, 그 종착점에는 그가 가장 존경했던 스승 장현광이 있었던 것이 다. 한편 조임도는 1628년 여름에는 李 道 輔, 兪 亨 吉, 楊 晅, 李 浣, 李 斐 然, 李 澂, 楊 暻, 李 滹 등과 함께 경양대 아래에서 뱃놀이를 했고, 1629년 3월 에는 임진부 등과 함께 창암 아래에서 주유하며 곽재우의 망우정을 봉심 한 바 있었다. 119) 過 從 錄 이라 명명된 창암 주유는 한 의인( 義 人 )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위의 심현록 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이 때 그는 裵 大 維 의 자질 裵 弘 祉 弘 5, 곽재우의 외손자 辛 東 望 時 望 등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는데, 정작 그의 영접에 애를 쓴 사람은 배대유의 孽 子 였다. 이후 조임도는 신산서원 원장에 재직하던 1635년 3월 제향에 참여하기 위해 합강정에서 김해까지 주행한 바 있었다. 이 때 그는 망우정, 본포, 남수정을 경유하여 신산서원에 도착했고, 제향을 마친 뒤에는 산현, 감로 사, 만경대, 멱례, 풍영대, 망우정을 거쳐 합강정으로 돌아왔다. 120) 주행 의 취지는 서원 제향에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유불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과 만나 대화했고, 강안에 펼쳐진 수려한 자연 경관과 누정들을 마음 껏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처럼 조임도는 일생 수많은 선유를 즐겼지만 그 형태와 성격은 저마 다 조금씩 달랐다. 내내선유 가 궁지에 처한 조임도를 위로하기 위해 사 우들이 마련한 자리였다면 심현록 은 학문의 연원을 찾아가는 구도의 여 정이었다. 경양대선유 가 자연의 선물을 마음껏 누리는 휴식의 시간이었 다면 과종록 은 어진이에 향한 경모의 마음을 담은 존현 의 걸음이었고, 유관록 에는 유림 영수로서의 자존의식, 풍류주인으로서의 자신감이 강하 118)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尋 賢 錄 >. 119)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過 從 錄 >. 120)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遊 觀 錄 >. 87

48 게 반영되어 있었다. 조임도가 기획, 주최했던 많은 선유 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은 1643년에 3월 고령에서 있었던 開 津 船 遊 였다. 이 행사는 여문십현 조임 도와 한강고제 裵 尙 龍 이 공동 주관했다는 점에서 寒 旅 會 合 의 성격이 컸고, 許 穆 이 빈으로 초청되었다는 점에서는 近 畿 과 嶺 南 의 학문적 제휴의 과 정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본디 개진선유 는 1642년 겨울 조임도가 선산으로 성묘가는 길에 성주 에 사는 배상룡을 방문한 자리에서 제의한 것이었다. 장소를 고령 개진으 로 한 것은 이 곳이 수량이 풍부하여 선유에 적합했을뿐더러 성주와 함안 의 중간 지점이라는 상호 왕래상의 편의를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121) 조임도와 선유를 기약한 배상룡은 허목에게 초청의 편지를 보냈고, 허 목으로부터 개진에서의 회합을 손꼽아 기다릴 뿐이라는 답장이 왔다. 122) 이런 과정을 거쳐 배상룡과 조임도의 묵은 약속은 1643년 3월 17일에 비 로소 실행을 보게 된다. 하지만 허목이 갑작스런 발병으로 인해 불참하게 됨으로써 좌중을 매우 안타깝게 했다. 조임도가 선비 曺 碩 護 와 함께 개진으로 왔을 때 배상룡은 이미 아들과 조카 그리고 사위를 데리고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일행 중에 범상치 않은 선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정구의 손자 鄭 惟 燾 ( )였다. 만 남은 곧 정담으로 이어졌고, 정겨운 대화에 술이 빠질 수 없었다. 한 창 술잔이 오고갈 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하는 수 없이 일행은 도동서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곳에서 일행은 김굉필의 봉사손 金 大 振 으로부터 환대를 받았고, 뒤이어 郭 衛 國, 郭 以 昌, 郭 弘 㘽 등 현풍 선 비 10여명의 영접을 받았다. 곽위국, 곽이창은 현풍지역을 대표하는 한강 문인이었고, 곽홍재는 시임 도동서원 원장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주유 2일 째인 3월 18일에 모임을 파하려했으나 김대진과 곽홍재가 한사코 만류하 121)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開 津 期 會 錄 >. 122)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開 津 期 會 錄 > 遂 定 日 還 棲 數 閱 月 許 煕 和 遁 庵 公 傳 致 裵 丈 書 其 大 要 開 津 會 屈 指 遣 日 云 88

49 는 탓에 서원에서 하루를 더 묵었다. 3월 19일 일행은 김굉필의 사당에 참배한 뒤 배를 타고 개진으로 가서 산회하게 된다. 개진과 도동서원에 이르는 전후 사흘간의 일정은 여느 선유와 별반 다 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곱씹어 볼 것이 많다. 인적 구성부터가 심상치 않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배상룡과 조임도는 각기 당시 한강 여헌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들이었다. 조임도가 開 津 期 會 錄 에서 배상룡을 정구의 晩 年 高 弟 로 평가한 것도 결코 치사가 아니었 고, 123) 조임도는 여문십현 의 한 사람으로서 여헌학파 내에서 그 위상이 확고했다. 124)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허목과의 친분도 매우 두터웠다. 개진선유 가 있 기 직전인 1643년 봄 조임도는 창원에 우거하고 있던 허목을 방문한 바 있었다. 비록 허목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 방문은 허목이 용화산 靑 松 寺 로 자신을 찾아준 것에 대한 답방이었다. 125) 한편 배상룡은 허목이 영남지역의 동문들과 교유하는데 결정적인 역할 을 담당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배상룡과 허목의 교유는 1617년 경 거 창 객관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두 사람은 1655년 배상룡이 사망할 때까 지 40년간 교유를 지속했고, 배상룡이 사망하자 허목은 그를 위해 묘갈명 을 지었으며, 배상룡의 종손자 裵 正 徽 는 허목의 문인이 됨으로써 양측의 관계는 세교로 발전해 갔다. 126) 1629년 이윤우가 간행한 정구의 五 先 生 禮 說 分 類 를 허목에게 증정한 사람도 배상룡이었던 것이다. 늘 공을 찾아가 老 德 으로 섬겼다 고 자술했 123) 趙 任 道. 澗 松 集 別 集 卷 1, < 開 津 期 會 錄 > 藤 庵 寒 岡 鄭 先 生 晩 年 高 弟 也 其 宏 材 偉 器 足 以 有 爲 於 世 而 不 幸 盛 年 抱 王 裒 之 痛 廢 擧 杜 門 終 其 身 識 者 惜 之 公 嘗 執 經 岡 門 聞 心 學 之 要 講 5 之 目 先 生 愛 重 之. 124) 김학수, 旅 軒 學 派 의 형성과 전개, 여헌 장현광 연구, 태학사, 2009, pp ) 趙 任 道. 澗 松 集 年 譜 < 癸 未 > 春 訪 眉 叟 許 公 時 眉 叟 寓 居 昌 原 嘗 訪 先 生 於 龍 華 山 之 靑 松 寺 至 是 先 生 委 訪 眉 叟 而 不 遇 126) 許 穆, 記 言 卷 19, 原 集 藤 庵 處 士 墓 銘.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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