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관논총_39집.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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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희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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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高麗初期 歸化 漢人에 대하여 朴玉杰* 머리말 Ⅰ. 歸化의 背景 Ⅱ. 歸化 事例 Ⅲ. 歸化 動機와 經緯 1. 歸化人의 成分과 歸化動機 2. 入國經路 Ⅳ. 漢系 歸化人에 대한 收容策과 同化策 1. 收容策 2. 同化策 Ⅴ. 歸化 漢人의 役割과 影響 맺음말 머리말 羅末麗初의 역사적 진통을 겪으면서 후삼국을 통일하고, 豪族勢力을 결합하여 中 央集權體制로의 완성을 추구했던 高麗前期의 성격은 관점에 따라 견해를 달리 할 수 도 있지만 대체로 獨自性 開放性 多樣性으로 집약할 수 있다. 10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르는 이 시기는, 중국에 있어서 唐의 멸망과 5代 10國의 亂立, 契丹族의 勃興, 宋의 建國, 女眞族의 擡頭 등으로 이어지던 동아시아 세계의 격 동기였다. 이와 같은 중국 내부의 혼란과 북방민족의 활발한 움직임은 중국의 주변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약화시켰고, 고려로 하여금 외세의 간섭이 없는 가운데 독 자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 또한 시대적인 상황에 따른 외부세계와의 폭넓은 접촉을 통하여 축적된 역사적 경 험은 高麗로 하여금 開放性이라고 하는 특징적인 면모를 갖추게 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고려는 골품제도 속에서 行政機能에 대한 인식보다 신분체제의 관념이 분명 했던 신라사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행정기능과 신분체제를 분리시킨 통치체제를 수 립해 나간 새로운 모습의 사회로 성장하였다. 새로운 지배세력의 형성과 신분질서의 정립과정에서 儒敎政治理念에 입각한 官制가 성립되어 가고 있었다고는 하나 신라시
2 國史館論叢 第39輯 대와는 달리 여러 지역의 豪族이라든가 국내외의 다양한 세력이 참여함으로써 동시에 多樣性을 지닌 사회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사회발전이나 대외관계에 있어서 이와 같은 경향들은 국제정세의 推移나 국내사정 의 변화에 따라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고려시대 전 기간을 통하여 일관성있 게 이어져 갔던 가장 뚜렷한 현상의 하나로 파악된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북방민족 계 국가들과는 물론 宋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건국초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사정 이 불리하게 전개되어 갔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이러한 성격이 계속 견지될 수 있 었던 것은 羅末麗初의 역사적 진통을 극복하면서 역사 발전과정에서 축적되어 온 民 族文化의 力量과 자신감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국 초기 고려가 직면하고 있던 최우선의 과제는 무엇보다도 前代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기반과 질서를 다지는 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강력한 中央集權體制의 확립을 위해서는 지방 호족세력을 지배체제 내부로 끌어들여야 했으 며,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질서와 운영원리가 모색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고려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 지식과 경륜을 갖춘 많은 인 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漢系 歸化人의 귀화를 가능하게 해 준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되었던 것 이다. I. 歸化의 背景 우리 민족이 華夏系를 중심으로 형성된 漢人과 접촉을 갖게 된 것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듯이 漢人의 한반도 이주현상도 고려시대에 들어와 처음 시작된 것은 아 니었다. 古代社會이래로 중국은 先進文化를 소유하고 있었던 만큼 주변 민족들에게 있어서 흠모와 동경의 대상이 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중국인들 자신도 전통 적인 華夷思想에 입각하여 주변 민족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있었으며 직접 간접으 로 영향을 주어왔으므로 이러한 풍토 위에서 일찍부터 빈번한 접촉과 교류가 이루어 졌던 것이다. 따라서 고려가 건국 초기부터 그들을 문화적 선진국으로 인식함은 물론 정치적 권 위의 상징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중 국의 정황이 극도의 혼란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던 것은, 신라 말기 이래로 對中通好에 있어서 後三國을 비롯한 모든 세력들이 문화적 경제적 목적 에서 보다도 국제적인 지위나 정치적 배경을 획득하기 위한 데 더 큰 의의를 두고 있었다1)는 사실에서도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 亞州大學校 史學科 助教授.
3 그 전형적인 예를 甄萱과 王建사이에 오갔던 서신을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927년 (太祖 10, 敬順王 1) 12월 견훤이 왕건에게 보낸 서신 내용 가운데, 前月 7일에 吳越國使 班常書가 와서 王의 詔旨를 전하기를, 卿과 高麗는 오랫동안 함께 隣盟을 맺고 사이좋게 지내오다가 요사이 양쪽 質子가 다 죽음으로해서 드디어 和親의 舊好를 잃고 서로가 국경을 침범하여 干戈를 쉬지 않음을 알았노라. 지금 使 臣에게 전하여 卿의 나라에 가게 하노니 또 고려에도 移牒하여 마땅히 서로 화친하 여 기리 평화를 누리도록 하라 고 하였다. 나는 尊王의 義를 敦篤히 하고 事大의 情 을 깊이하는 터이라 詔諭를 들음에 이르러 곧 삼가 받들고자 한다. 다만 그대가 罷 兵하고자 하여도 능히 하지 못하고 곤궁하면서도 그래도 싸울까 염려하여 지금 詔書 를 베껴 보내니 유념 하여 자세히 알아두기 바란다2) 라고 하였는데 한 달 후인 이듬해 정월, 王建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답하고 있다. 吳越王 殿下는 德이 洽足하여 邊方 外族을 포용하고 仁이 깊어 小國을 사랑하는지 라 특히 몸소 詔勅을 내려 이 땅에서 싸움 멈추기를 타일러 이미 가르침을 받았으니 감히 尊奉하지 않으리오. 만약 그대가 공손히 그 뜻을 받들어 凶機를 다 거둔다면 오직 上國의 어진 은혜에 副態할 뿐 아니라 또한 東海에 끊어진 王統을 이어나가게 하는 것이다. 만약에 허물을 능히 고치지 않는다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할 것이 다.3) 이들 서신은 똑같이 渡唐 유학경력을 갖고 있던 崔承祐와 崔致遠에 의해 각각 작 성4)된 것이라고 하는데 당시 杭州를 중심으로 江南 兩浙地方에 자리를 잡고 있던 吳 越國은 왕건의 고려보다는 견훤의 후백제와 빈번한 교류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5) 이 무렵 고려는 오히려 後唐이라든가 後晉과의 관계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 이다.6) 1) 金库基, 新羅末에 있어서의 地方群雄의 對中通交 ( 黃義敦古稀紀念史學論叢, 1960) 및 李基白 2) 三國史記 권50, 甄萱傳 및 高麗史 권 1, 世家 太祖 10년 12월조. 高麗初期에 있어서의 五代와의 關係 ( 韓國文化硏究院叢書 1, 1960) pp 참조 3) 高麗史 권1, 世家 太祖 11년 정월조. 4) 東史綱目 권5下, 景文王 4년 12월조. 5) 三國史記 권50, 敷置傳에 의하면 甄萱은 後百濟를 세운 900년과 918년에 이미 吳越國과 사신을 교환한 바 있다. 吳越國王의 詔書는 甄萱의 所請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李丙燾, 韓國史 中世篇, 震檀學會 編, 乙酉文化社, 1961, p. 146). 6) 李基白, 앞의 논문 p. 76 참조.
4 國史館論叢 第39輯 그렇지만 고려에는 이미 919년(太祖 2)과 923년에 歸化한 曾彥規, 朴巖 등의 文士 가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후백제를 통한 간접적인 것이기는 하였지만 班常書가 가지고 온 吳越國王의 조서를 놓고 견훤과 왕건이 공방을 별이던 서신의 내용 속에서 이들이 똑같이 명분으로 내세운 慕華的 性向의 일단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고려의 통일과 더불어 유교적 정치이념이 자리를 잡고 文治主義 의 성격이 굳어지면서 더욱 심화되어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언제든 지 권위의 상징이요, 문화적으로 흠모와 동경의 대상이었던 중국으로부터 漢人의 歸 化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홍미있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Ⅱ. 歸化 事例 漢系의 귀화 사례 는 高麗史 에 의하면 건국 초기인 919년 (太祖 2)부터 시작되 어 睿宗때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전개되었지만 후기에 오면 거의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다음은 高麗史 등의 기록을 중심으로 이들의 귀화 사례를 정리해 본 것이 다. 표 1 漢系의 歸化 事例 순번 년 월 일 성명 출신지 1 919년(太祖 2) 9월 曾 彥 規 吳 越 國 19일 2 923년( 6) 6월 朴 巖 20일 3 956년(光宗 7) 雙冀 後周 4 959년( 10) 雙哲 년(穆宗 8) 周 佇 宋 溫州 년(顯宗 3) 3 王福,錢華. 宋 人 월 5일 楊太,葉清, 王弩,李太, 林惜 7 ( ) 6월 14 葉居腆,林德 宋 人 일,王晧 년( 4) 1월 戴 翼 宋 閨人 18일 년( 6) 윤 歐 陽 徵 宋 泉州人 <표> </표> 성분 경위 및 기타 내용 文 士 來 投 前 代理評事 侍御 文士? 從薛文遇來 以病留 來 拜爲佐丞 來投 授禮賓注簿 來投? 文士(?)? 來投 來投 授儒林郞守宮令 賜 衣物田莊 來投
5 월 년( 14) 11 陳 億? 월 11? (?) 劉 志 誠 宋 楊州人 文 士 生沒年 ( 金石 追 p.83.劉志誠墓誌銘 년(德宗2)1월8 劉守全 등 宋 來奔 일 14人 13 ()6월 申流 등 12人 년(文宗4)윤11 曹 一 契丹 漢兒 來投 월18일 년(6)6월5일 張 廷 宋 進 士 來 授秘書校書郞 16 ()8월19일 高 士 文 宋 咸州人 沒 蕃 人 自東女眞來投 년(9)9월16 黃忻등 宋 都 綱 請遣還長男 王 許之 일 3父子 년(11)7월18 張 琬 占 術 人 試 遁甲三奇法六壬占授太 일 史監候 년(13)8월6 黃文景,蕭宗 宋 泉州人 商 人 制 許留 일 明,江朝東 醫人 년(14)9월17 盧 寅 宋 進 士 有文才 授秘書省校書郞 일 년(15)6월6 陳渭 進 士 爲秘書校書郞 渭有文藝 일 蕭鼎, 蕭遷 曉 音 律 爲闇門承旨 葉盛 爲殿前丞旨 년(22)8월17 愼脩, 進 士 命太子 試詩賦於玉燭亭 일 陳潛古 儲元賓 년(文宗25)5월 周 沆 宋 人 文人(?) 禮賓省主簿, 本以文藝見用 14일 犯臓罪 년(宣宗8)8월 田 盛 善 書 札 敦請留止且加職秩以勸來者 陳養 有武藝 25? (?) 劉 載 宋 泉州人 文人(?) 隨商船來 試以詩賦 授千牛 衛錄事 년(肅宗元)9월 惠珍, 省聰 宋 僧 各爲明悟三重大師 21일 년(6)1월19 邵挂, 文人(?) 王召試于文德殿幷授八品 일 陸廷俊, 官 劉伋 년(7)4월13 章 忱 投化宋人 進 士 幷召試 賜別頭及第
6 國史館論叢 第39輯 일 년(容宗元)7월 陳養 郞 將 試閱兵手 各賜物 24일 陳高, 兪坦 譯語 년(5)6월4일 女樂 2人 宋 明州 歌 妓 召見 년(7) 林 完 宋 潼州 進 士 別賜乙科( 金石追 p. 128 林光墓誌銘 ) 년(11)12월 52 人 宋 來 년(12)1월3 6 人 漢 自遼來投 일 34 ()2월8일 3人 35 ()4월10일 6人 36 ()6월11일 3人 37? (?) 蘷中立 宋 樂 人 來投 爲樂官 38? (?) 胡 宗 旦 宋 福州人 有 文 藝 高麗史 권97,劉載附 39? (?) 愼 安 之 開封府人 有 文 藝 愼條의 子 년(仁宗2)5월 杜道濟, 宋 明州人? 隨商船到本國不還 許令 24일 祝延祚 任便居住 년(13)11월 趙 彦 宋(?) 橋人 년(毅宗2)10월 張 喆 宋人 李深 智之用과逆謀 * 특별히 典據를 밝히지 않은 것은 모두 高麗史 世家 및 列傳 기록에 의함. * 년월일은 震檀學會 編, 韓國史 年表의 朔閏表에 의거 換算한 것임. * 金石追 는 韓國金石文追補. 위의 표 1 은 고려전기 漢系 歸化人의 사례 전체를 집계한 것으로 총 42회, 155 명에 달하고 있다. 이 가운데 ㊲의 蘷中立과 ㊶ 趙彥의 경우 확실지는 않으나 일단 귀화사례에 포함시켰다.7) 그런데 漢系의 귀화사례는 이 밖에도 훨씬 더 많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8) 특 7) 高麗史 권96, 列傳 金富佾傳에 宋樂人蘷中立 來投爲樂官 及歸誦其辭於帝前 이라 하였 고, 趙彥은 僑人 이라고만 하였으므로 확실하지는 않으나 歸化했던 사실이 분명하므로 포함 한 것이다. 지금까지 漢人의 귀화사례를 정리한 것으로는, 朴玉杰, 高麗時代 歸化 漢人에 관 한 硏究 ( 首善論集 7, 1982)와 金渭顯, 高麗의 宋遼金人投歸者에 대한 收容策 ( 遼金 史硏究, 裕豊出版社, 1985) 및 南仁國, 高麗前期의 投化人과 그 同化政策 ( 歷史敎育論 集 8, 1986) 이 있다. 8) 이를테면 光宗 때 翰林學士 知貢擧를 지낸 王融과 같은 인물을 南中國 吳越國 출신으로 추정 한 예가 그것이다(李基東, 羅末麗初 近侍機構와 文翰機構의 擴張 ( 歷史學報 77, 1978, pp 참조). 王融에 관해서는 그 밖에도 麗初의 勳臣閥族 출신이거나 新羅貴族 後裔인 지 확실지 않다(姜喜雄, 高麗初 科擧制度 導入에 관한 小考 韓國史論文選集 Ⅲ, 一潮 関, 1976)고 한주장이라든가, 眞觀禪師碑文을 소개한 가운데 南中國에서 修學했거나 활동한
7 히 太祖에서 穆宗에 이르는 7代, 근 1백년 동안 이들의 귀화가 5회에 불과하다는 것 은 高麗史 초기 기록의 疏略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高麗 史 의 초기 기록이 零星 한 이 유로 高麗史 는 그 編纂過程에서 黃周亮 등이 완 성한 7代實錄 36권이 아닌 略撰實錄을 이용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주장9)이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의 귀화 사실에 관한 기록 또한 不實을 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를 입 증하는 기록으로, 定海縣言 民亡入高麗者約八十人 願奉表還國 10) 이라 한 것이라든가, 王城有華人數百 多閩人因賈舶至者11)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들 기록이 비록 12세기 무렵의 사정을 전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당시 開京에 들어와 거주하고 있던 南中國系 귀화인만 해도 그 규모가 수백명 에 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高麗史 에 보이는 인물 가운데 姓貫未詳者, 失世系者 가 많이 있는데 이들 가운데 중국계 귀화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라고 한 李樹健 교수의 주장12) 이라든가 姓氏관계 문헌에서 특별히 고려시대 중국 漢系 歸化人과 관련이 깊은 것으 로 보이는 성씨나 投化 姓氏 같은 것들이 자주 눈에 띄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이 들의 귀화사례가 기록 에서 많이 누락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族譜라든가 이 를 토대로하여 작성한 각종 姓氏관계 문헌은 紛飾이 심해 史料로서의 가치가 떨어지 고, 조선시대 譜學의 발달과 더불어 대부분의 姓氏가 중국으로부터 東來한 것처럼 내세워 始祖를 雅化하는 풍조가 유행했던 관계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는 어려 움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姓氏와 本貫이 널리 사용되면서 정착한 것이 고려초기부 터였고,13) 그 始祖가 중국에서 왔다고 하는 姓氏 가운데는 실제와 일치하는 경우도 인물(許興植, 韓國中世社會史資料集, 亞細亞文化社, 1976, p. 82 참조)로 본 예가 있다. 9) 高麗史 編纂 때 傳存된 高麗實錄 중 初期實錄(7代實錄 포함)이 略纂實錄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金成俊, 高麗七代實錄編纂과 史官 ( 韓國中世政治法制史硏究, 一潮閣, 1985) p. 125에 詳述 되어 있다. 10) 宋史 권487, 高麗傳 紹興 2년 (1132, 고려 仁宗 10) 閏4월조. 定海縣은 浙江 鎭海縣으로 吳越國의 望海縣을 宋이 改置한 것이다(蔵勵和 等編, 中國古今地名大辭典», 臺灣 商務印書 館, 1932). 11) 宋史 권487, 高麗傳 慶元間 ( )조. 12) 12) 李樹健, 高麗前期 土姓硏究 ( 大丘史學 14, 1978) PP.2 10; 高麗前期 高級官人의 成分 ( 韓 國中世社會史硏究», 潮閣, 1984) PP 참조.
8 國史館論叢 第39輯 상당히 있는 것이 사실이 다. 예컨대 文宗때 귀화한 愼脩를 시조로 하고 있는 居昌 愼氏와 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밖에도 公村 葉氏, 宜寧 余氏, 龍宮 曲 氏, 牙山 胡氏, 大邱 夏氏 등 宋에서 귀화한 것으로 전하는 성씨를 비롯하여 후기에 이르러서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성씨가 중국에서 귀화한 인물을 시 조로 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고려시대의 漢系 歸化人의 숫자는 기록에 전하 는 것보다도 훨씬 많았으리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Ⅲ. 歸化 動機와 經緯 漢系 歸化人의 귀화는 앞의 표 1 에 의하면 고려전기, 그 중에서도 특히 11세기 顯宗 무렵부터 睿宗 12년까지 약 1백년 동안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물 론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高麗史 편찬 당시의 사정이라든가 이에 따른 記錄의 分量, 充實度 등이 당연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시기에 특별히 漢系 歸化人의 귀화가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들의 귀화는 金의 등장과 蒙古의 간섭이 시작되는 후기에 들어서면 거의 그 자 취를 감추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이들의 역할이 고려외 건국과 통일, 그리고 발전과 정과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표 2 漢系 歸化人의 歸化 時期別 分布 <표> 시기 기 간 太 祖 定 宗( ) 光 宗 景 宗( ) 成 宗 穆 宗( ) 顯 宗 靖 宗( ) 文 宗 順 宗( ) 宣 宗 睿宗12( ) 眷宗13 仁 宗( ) 毅宗 ( ) 합 계 </표> 사 례 (회) 인 원 (명) 위의 표 2 는 건국 이후 毅宗 末年까지 252년의 기간을 대략 30년을 前後로 한 13) 許興植, 高麗時代의 本과 居住地 ( 高麗社會史研究, 亞細亞文化社, 1980) p 李樹 健, 本貫과 土姓 ( 韓國中世社會史研究, 一潮閣, 1984) p. 10. 宋俊浩, 韓國의 氏族制에 있어서의 本貫 및 始祖의 問題一韓中兩國의 傳統社會를 比較하는 立場에서 ( 歷史學報 109, 1986, pp ; 朝鮮社會史硏究», 潮閣, 1987).
9 간격으로 끊어 8개의 시기로 나누어 집계한 것이다. 여기에서 보면 제 1,2,3기나 제 7,8기에 비해 제 4,5,6기가 월등하게 많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은 女眞, 契丹 등 北方系 歸化人의 귀화 추세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결국 이들의 귀화는 고려의 건국과 중국 내부의 혼란, 契丹의 성쇠, 고려사회 의 발전, 金의 건국 등 國內外의 情況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어 그 결과의 하나로 표출되었던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1. 歸化人의 成分과 歸化動機 이들의 성분과 귀화동기의 검토를 위해 일단 여기서는 전체 漢系 歸化人 가운데 제4기와 제6기에 포함되어 있는 96명의 집단 귀화인을 다른 일반 漢系 歸化人과 구 분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부류의 漢系 歸化人은 1033년과 년 두 시기에 집중적으로 등장할 뿐 다른 시기에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들은 성명도 알려지지 않은 단순한 피난민들이었던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14) 따 라서 실제로 분석의 대상이 되는 숫자는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59명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들 나머지 59명의 귀화동기와 경위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도 그 리 풍부 한 편은 아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이들에 관한 기록은 지나치게 간결 하여 집단적인 귀화의 경우는 물론 개인적인 귀화라 해도 거의 전부가 後續 記事없 이 단 1회로 끝나고 말아 이것만 가지고는 상세한 내용을 분석하기가 어렵다. 高麗 史 列傳에 올라있는 인물도 다른 민족 출신의 귀화인 보다는 많은 편이기는 하나 불과 8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을 보면, 雙冀,15) 周佇,16)劉載(附 胡宗旦, 愼安之),17)) 林完18) 등 별도의 傳이 있는 인물 6명과 그 밖에 雙冀 傳과 愼安之 傳에 각각 첨부 되어 간략히 소개된 雙哲, 愼脩까지 합쳐 모두 8명인데 이들을 소개한 열전의 내용 도 한결같이 當代에 국한되어 있고, 단편적인 지식만을 전해주고 있어 큰 도움을 못 주기는 마찬가지이다. 14) 먼저 1033년 劉守全 등 14인과 申流 등 12인의 來奔은 그 무렵 대외적인 충돌이 없었던 점 으로 보아 기근을 피해 온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宋史 권10, 仁宗 明道 원년(1032)조에 보면 是歲 京東淮南江東 飢 라고 했는데 이듬해에도 이들 지역에서 餓死者가 많이 나왔던 것으로 보아 이들의 來奔은 일단 기근에 그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1116년과 1117년 5차에 걸친 漢人 70 명의 귀화는 遼 金의 교체기에 난을 피해 온 것이 확실하다. 15) 高麗史 권93, 列傳. 16) 위의 책 권94, 列傳. 17) 위의 책 권97, 列傳. 18) 위의 책 권98, 列傳.
10 國史館論叢 第39輯 표 3 漢系 歸化人의 成分 士 商人 구분 官 人 文 文 人 進士 郞 將 都 綱 醫 人 僧 侶 樂 人 占 術 譯語 계 인원수 <표> </표> 이와 같은 사정으로 전체 가운데 제한적이나마 개인의 행적이나 신상에 관해 파악 이 가능한 경우는 그 중에서도 일부인 40명에 불과하다. 표 1 의 자료를 토대로 분석이 가능한 이들의 성분을 분류해 보았다. 위의 표 3 에서 볼 때 가장 많은 계층은 文士 文人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실제 로 文士 라고 明示된 예는 초기에 온 4명 뿐이다. 文宗 이후에는 進士가 있을 뿐 文 士라고 표기한 예는 없다. 그러므로 13명 중 나머지 9명은 有文藝者, 善書札 그리 고 아무런 호칭이 없지만 文人이 분명한 경우 등을 모두 합친 수이다. 다음으로 進 士 8명, 商人과 樂工 樂人 각 5명, 官人, 譯語, 僧侶 각 2명 그리고 武人, 醫人, 占術 人 각 1명 順이다. 여기에서 文士 文人, 進士, 官人은 다같이 일정 한 교육을 받은 지 식인이므로 同類라고 할 수 있는 데 그 숫자는 23명이나 되어 전체 가운데 압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고려가 이들 지식인의 포섭을 위해 얼마나 관심을 기울 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며, 동시에 그 노력의 결과에서 얻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그 밖의 商人이라든가 樂人 樂工, 譯語, 僧侶 뿐만 아니라 醫人, 武人(郞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능을 가진 이들이 들어오고 있는데 이것은 다음의 기록에 비추 어 볼 때 당연한 결과였다. 즉, 1081 년(文宗 35) 西女眞 漫豆 등이 왔을 때 禮賓省 이 上奏한 내용 가운데, 舊制 本國邊民 曾被蕃賊所掠 懷王自來者 與宋人有才藝者外 若黑水女眞 竝不許入19) 한다는 기록으로 보아 宋人이라 해도 재예가 있는 자만을 받아들인다고 하는 원칙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보다 앞선 시기에 고려에서 太僕卿 金良鑑이 宋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도, 又表 求醫藥畵塑之工 以敎國人 詔羅拯募願行者20) 19) 위의 책 권9, 世家 文宗 35년 8월 己未조. 20) 宋史 권487, 高麗傳 熙寧 7년 (1074)조. 東史綱目 7下, 文宗 27년 (1073) 8월조와 靑莊 館全 書 권22, 宋史筌 高麗列傳 熙寧 6년조에도 동일한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으나 宋 史 와 이들 나머지 두 개의 기록 사이에는 1년의 차이가 있다.
11 라 하여 醫藥과 畵塑 職能者까지 모집해을 정도로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고려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재예있는 漢系 歸化人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들의 귀화등기는 遭亂避禍와 같이 일종의 망명적 성격을 띤 경우도 없지 않았으나, 특히 漢系 歸化人의 경우에는 개인적인 출세나 보다 나은 대우를 받기 위 한 목적에서 스스로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귀화한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당시 중국내부의 사정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것 같다. 당시 宋에서는 인재가 적체되어 경쟁이 치열하였으며, 進士로 선발되었다 하여도 관료로 나아가는 길이 容易하지 않았다.21) 특히 당시 中央 政界의 고위 관직 은 북중국 지방출신들에 의해 독점되었기 때문에 남중국인의 官界진출은 더욱 어려 운 형편이었다. 그러므로 활발한 교역으로 고려에 왕래가 빈번하였던 商人들을 통하 여 고려의 소식을 접한 남중국계 출신 인물들이 고려로 몰려온 것은 당연한 결과였 다. 2. 入國經路 다음으로 그러면 이들은 어떤 경로를 통하여 고려로 들어왔는가에 관하여 알아보 고자 한다. 宋史 高麗傳에 定海縣에서 보고하기를, 高麗에 도망해 들어 간 백성 약 80명을 還國시키고자 한다 고 한 것이라든가 또 王城(開京)에 華人 수백 명이 있 는데 商船을 타고 온 間人이 많았다 고 한 기록 등으로 보아 알 수 있듯이 商船을 타고 온 南中國 東部海岸地方 사람들이 많았다. 표 4 漢系 歸化人의 出身 지방별 分布 吳越國 : 2 溫 州: 1 閨 人: 1 泉 州 : 4 明 州 : 2 潼 州: 1 福 州: 1 開封府: 1 <표> </표> 楊州:1 咸州:1 위의 표 4 는 출신지방을 확실히 알 수 있는 15명 만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여 기에서 볼 때 이들은 대부분 泉州, 明州, 吳越國, 溫州, 福州 등 福建路 출신이 다. 이 지역 사람들이 특히 많은 것은 이들 지역이 일찍부터 해상을 통한 무역이 활발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상선을 따라온 사람으로 周行, 劉載, 僧 惠珍, 胡宗旦, 愼修 등이 있으며, 文宗때 귀화한 黃折 등 3父子와 黃文景, 蕭宗明은 商人이었다. 이 러한 사실을 놓고 볼 때 漢系의 귀화는 宋商의 활동과 특별히 긴밀한 관계에 있었음 21) 馬端臨, 文獻通考 권30과 31, 擧士조에 의하면, 太平興國 2년(977) 貢士 5천 2백명 중 考取 된 進士는 109명에 불과하였는데 그 뒤로는 웅시자 중 10% 정도가 합격함으로써 합격자 수는 증가 하지만 이들의 官界진출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고 한다.
12 國史館論叢 第39輯 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상인들은 그들에게 있어 고려에 관한 지식을 전해주던 창구 였으며, 그들이 고려로 들어올 때 호송하는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려전기의 漢系 歸化人은 집단으로 귀화한 경우와 같이 특별한 경우를 제 외하고 는 거의 모두가 海路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北中國과 滿 洲를 經由하는 陸路를 택할 경우 契丹이나 女眞의 지역을 통과해야 했으므로 이를 피해 해로를 이용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들의 입국 경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古代 이래 한반도와 중국대륙을 연결하는 항로는 크게 北中國航路와 南中國航路로 나눌 수 있다. 북중국항로는 다시 遼東半島에서 한반도의 西海沿岸으로 연결되는 遼 東沿岸航路 (老鐵山 경유 항로)와 山東半島에서 黃海道 西岸을 잇는 최단거리의 西 海橫斷航路로 구분되며, 남중국항로는 중국 東部海岸을 따라 산동반도까지 북상한 후 북중국항로로 이어지는 북중국경유 항로와 중국 東南海岸에서 한반도 西南端으로 직행하는 東支那海斜斷航路로 나뉘어진다.22) 그런데 사실상 남중국항로 중 북중국경 유 항로는 산동반도까지 올라와 북중국항로의 두 길로 연결되므로 결국 당시의 韓 中간의 항로로는 요동반도를 지나 한반도 서해안으로 연결되는 遼東沿岸航路와 산동 반도에서 직접 황해도 西岸으로 건너오는 西海横斷航路 그리고 東支那海斜斷航路 등 셋이 있었던 셈이다. 이들 가운데서 고려전기에 주로 이용되었던 항로는 가장 북쪽에 있는 遼東沿岸航 路를 제외한 두 개의 항로였다. 고려와 송 양측은 대개 11세기 중반까지는 산동반도 에서 출발하는 西海横斷航路를 이용하였고, 그 이후에는 東支那海斜斷航路를 이용했 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다음의 기록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① 淳化 四年(993, 成宗 12) 二月 靖等自東牟趣八角海口 得思柔所乘 海船及高麗水 工 即登舟自芝岡島順風泛大海 再宿抵蜜津口登陸 行百六十里抵高麗之境 曰海州 ② 大中祥符 八年(1015, 顯宗 6) 詔登州置館於海 次以待使者 ③ 天禮 三年(1019, 顯宗 10) 九月 登州言 高麗進奉使禮賓卿崔元信至秦王水口 遭風 覆舟 漂失貢物 ④ 天聖 八年(1030, 顯宗 21) 明年二月歸辭 賜予有差 遣使護送 至登州 其後絕不 通中國者四十三年 이상은 모두 宋史 高麗傳에 나오는 기록이다.23) ①은 宋의 答禮使 秘書丞直史館 22) 那波利貞, 朝鮮支那間の航路及其推移に就て ( 內藤博士頌專紀念論叢, 1930). 孫兌鉉, 韓國海運史 (亞成出版社, 1982). 23) 宋史 권487, 高麗傳에 나오는 이들 기록은 東史綱目 이나 靑莊館全書 권22, 宋史筌
13 陳靖 등이 고려의 賀正使 白思柔 일행과 함께 고려로 을 때의 상황이고, ②는 고려 의 御史民官侍郞 郭元이 사신으로 갔던 때의 설명이며, ③은 고려 사신 崔元信의 遭 難을 기록한 것이고, ④는 顯宗 21년(1030) 御史民官侍郞 元顏이 귀국할 때의 일을 기록한 것으로서 이들 모두가 산동반도 登州를 경유했음을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④에서 보듯이 元潁 일행이 다녀간 이후로 43년 동안 사신의 왕래가 두절 되고 말았다. 이것은 당시 宋 遼 세력 판도의 변화에 따른 것이겠으나 이로부터 登州 를 경유하는 西海橫斷航路의 이용이 어려워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그 이후의 기록들을 보면 더욱 확실하다. ⑤ 熙寧 二年(1069, 文宗 23) 其國禮賓省移牒福建轉運使羅径云 ⑥ 往時 高麗人往反皆自登州 (熙寧) 七年 (1074, 文宗 28) 遣其臣金良鑑來言 欲遠 契丹 乞改塗由明州詣闕 從之 이들도 역시 宋史 高麗傳의 기록으로, 이 무렵이 되면 이미 福建省 등 남중국으 로 항로를 바꾸고 있으며, 특히 ⑥에서 보듯이 契丹을 멀리 피하여 明州를 경유할 것을 청하였는데 송도 이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후 西海橫斷航路를 피하고 東支那海斜斷航路를 이용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 만 仁宗 원년(1123) 고려에 다녀간 徐兢의 宣和奉使高麗圖經 을 통하여 다시 한번 확인해 보기로 한다. 徐兢이 고려에 다녀간 것은 北宋이 金에 쫓겨 남쪽으로 밀려나 기 4년 전의 일이었다. ⑦ 元豊( ) 이후부터 매번 朝廷에서 사신을 보내려면 언제나 明州 定海 에서 出航하여 바다를 가로질러 北으로 간다. 배 운행은 모두 夏至 뒤에 南風을 이용하는데 바람이 순조로우면 5일이 못되어 곧 海岸에 닿는다.24) 여기에서 보듯이 1078년 무렵 이후에는 송과 고려의 사신이 왕래할 때는 매번 東 支那海斜斷航路를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넓은 바다를 횡단해야 하는 관 계로 바람이 중요하였기 때문에 夏至 뒤 南風을 이용한다고 하였는데 이와 같은 사 정은 다음 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高麗 列傳에도 전하는데 다만 宋史 가 1년씩 늦은 것으로 되어 있다. 24) 徐兢, 宣和奉使高麗圖經 권3, 封境條, 自元豊以後 毎朝廷遣使 皆由明州定海放洋絕海而北 舟行皆乘夏至後南風 風便不過五日即抵岸焉.
14 國史館論叢 第39輯 표 5 월별 歸化事例 回數 <표> </표> 月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未詳 計 事例(回) (1) (1) (1) (1) (2) (3) (3) 9 (21) * ( ) 안의 숫자 12회는 실제 歸化 日字가 아니므로 不明으로 본 것이며, 未詳 9 회는 귀화시기를 전혀 알 수 없는 사례이다. 표 5 는 앞의 표 1 의 42회 사례를 기초로 하여 작성 한 것으로 특히 6월이 가장 많은 것은 夏至 후 南風을 이용한 때문이며, 나머지는 앞선 시기에 다른 항로 를 이용했거나 드물게 육로를 이용한 예일 것이므로 별다른 특징이 나타나지 않았다 고 할 수 있다. 한편 徐兢 일행도 汴京을 떠나 明州로 나와 定海縣에서 출발, 黑山島로 건넌 후 한반도의 서해안을 거슬러 올라와 禮成港에 닿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明州를 출발 한 것은 5월 28일, 群山島에 도착한 것은 6월 6일이었는데 돌아갈 때는 바람이 맞지 않았던지 42일이나 걸렸다고 한 것을 보면 앞에서 5일이 못되어 해 안에 닿는다 고 했던 것은 실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漢系 歸化人 가운데는 文士, 進士 등 지식인과 각 분 야의 才藝者들이 상선을 타고 해로를 따라 고려에 들어와 살게되었다. Ⅳ. 漢系 歸化人에 대한 收容策과 同化策 漢系 歸化人에 대한 고려의 정책은 크게 보아 收容策과 同化策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고려는 이민족인 이들 귀화인을 받아들임에 있어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이렇게 받아들인 자들을 고려인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조치들을 취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들에 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1. 收容策 고려의 귀화인 일반에 대한 수용책은 본래 소극적인 規制策과 적극적인 誘致策의 양면성을 지닌 것으로 이해된다. 먼저 소극적인 규제책의 대표적인 예로 1081년(文宗 35) 西女眞 漫豆 등 17인이 가족을 데리고 내투해 왔을 때 禮賓省에서 奏한 다음의 기록이 있다.
15 舊制에 本國 邊民으로 일적 蕃賊에게 拉致되 었다가 고국을 그리워하여 스스로 돌아온 자와 宋人으로 才藝있는 者 이의에 黑水靺鞨과 같은 자는 모두 入住함을 허 락하지 않았아오니 漫豆 등도 또한 舊制에 의하여 돌려보내소서 하니 禮部尙書 盧旦 이 奏하기를 漫豆 등은 비록 無知한 자 들이라 할지라도 義를 思慕하여 왔으니 거절 할 수 없습니다. 마땅히 山南州縣에 安處하게 하여 編戶로 삼게 하소서 하니 (王이) 이를 받아들였다.25)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① 宋人 有才藝者는 받아들이고 黑水女眞은 不許入하는 舊制가 있었다26)는 것과, ② 女眞이라 해도 慕義而来 하면 舊制를 따르지 않고라도 받아들여 編戶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고려의 귀화인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이 결국은 人力의 확보에 있었음을 보 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先進文物의 導入과 文翰官, 外交人力의 확보를 위한 漢 系 知識人의 포섭이라든가 國防, 技術, 農業 勞動人力의 확보에 그 목적을 두었던 것 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고려의 소극적인 규제책 은 처음에는 어떠했는지 알 수 없으 나 사실상 來者不拒 라고 하는 명분에 밀려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女 眞의 경우에도 실제로 귀화해 온 자들을 돌려보낸 예는 단 두번에 불과했던 것이 다 27) 다음으로 적극적인 유치책의 경우를 보면, 대부분 漢系 歸化人에 많이 적용되었음 을 알 수 있는데 점차 儒家的 분위기에 젖어가던 고려에서는 마치 고대 중국사회의 皇帝나 諸侯들의 예를 모방하려는 경향도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즉, 서로 간에 門戶를 개방하고 외부에서 온 인재를 등용하여 쓰는 것을 帝또의 善德을 입증하는 증표처럼 내보이려는 그런 의식이 잠재해 있었던 것이다. 다음에서 특히 그러한 분 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1052년(文宗 6) 宋 進士 張廷이 왔을 때 禮賓省 校書郞에 임명하고 敎書를 내리기를, 魏의 樂毅는 燕王을 돕고, 吳의 陸機는 晋室에 歸依했으니 모두 때를 만나 契合함 이 같도다. 그대는 二謝의 名流요 三張의 世襲으로 俊造에 올라 聲價를 날리고 우아 25) 高麗史 권9, 世家 文宗 35년 8월 己未조, 西女眞漫豆等十七人 挈家來投 禮賓省奏曰 舊制 本國 邊民 曾被蕃賊所掠 懷王自來者 與宋人有才藝者外 若黑水女眞 竝不許入 今漫豆亦依舊 制遣還 禮部 尙書盧旦奏曰 漫豆等雖無知之俗 慕義而來 不可拒也 宜處之山南州縣 以爲編戶 從之. 26) 舊制에 入住를 허락하는 부류로 宋人 才藝者 외에 本國 邊民으로 蕃賊에게 잡혀갔다가 스스 로 돌아온 者가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本國 邊民에는 東界나 北界에 들어와 살고 있던 女 眞도 포함 되었을 것이다. 27) 高麗史 권3, 世家 成宗 4년조에 於時 女眞來奔者二千餘人 皆資給遺還 이라 한 예와 高 麗史 권20, 世家 明宗 15년 8월조에 是月 金男女十八人 來投 登州霜陰縣 下詔發還 이라 한 예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契丹이나 金과의 외교적인 관계를 의식하여 취했던 조치였다.
16 國史館論叢 第39輯 함을 빛내어 몸을 바르게 하도다. 天下를 周遊하여 매인 바 없으니 장부의 뜻을 폄 이요, 인연이 본래 있어 君子외 나라에 이르렀도다. 이미 선비를 얻은 昌運에 합하니 깊이 어진 이를 생각하는 안타까움을 위로하노라. 너에게 文職을 수여하여 나의 朝 網을 돕게하노니 他山의 돌은 진실로 나의 소용에 附合함이요 合浦의 구슬은 돌아감 을 생각하지 말고 信任할 수 있는 한결같은 마음을 밀어 마침내 千乘의 國運을 도울 지어다. 그대에게 敎書 한 통과 함께 衣帶와 綵段과 白銀 등 物을 賜하노니 이르거 던 받을지어다28) 라 하고 있다. 중국의 故事를 장황하게 들어가면서 天下를 周遊하여 君子의 나 라에 이르렀도다 라든가 文職을 수여하여 나의 朝網을 돕게 하노니 마침내 千乘 의 國運을 도울지어다 라는 등의 표현에서 修辭的 과장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 실이나 중국인의 전통적인 汎世界觀과 같은 맥락에서 문호를 개방하고, 인재를 받아 들이는 것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기는 듯한 느낌 또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고려의 건국 초기는 후삼국을 통일했다고는 하나 얼마 동안은 弱體政權의 범주에 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치, 군사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경제 등 모든 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통일전쟁의 수행 으로 막대한 인구와 농경지의 손실 등 국력의 소모가 컸으며, 後代에 오면서도 잇단 외적의 침입과 국내의 갖가지 役事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또한 고려초기에는 統一主體勢力이 거의 武將 출신이었고, 五代末 宋初에는 契丹 의 勃興으로 중국에 파견하는 유학생의 수가 감소하고 있어29)王儒(本名 朴儒)나 金 岳, 崔凝 그리고 중국에 유학한 경력을 가지고 있던 崔彥撝, 張儒 등 소수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文翰을 담당할만한 인물이 절대 부족한 형편이었다. 이러한 사정때문에 太祖는 일찍부터 崔承老와 같은 유망한 젊은이를 元鳳省에 소속시켜 학문을 닦게 하 고,30) 西京에 學校를 설치하는31) 등 人才養成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바 있다. 그러 나 당장 필요한 文翰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국의 정세나 외교문서 작 성에 정통한 漢系 文士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 28) 위의 책 권7, 世家 文宗 6년 6월 戊寅조, 宋進士張廷來 授秘書校書郞敎曰 魏之樂毅翼彼燕王 吳之陸機歸諸晋室 皆因遭際 式契一同 汝二謝名流 三張世襲 登俊造 而飛價曄傾雅而飾身 周 遊不樹縱 丈夫之志 寅緣有素臻君子之邦 旣諧得士之昌 深慰思賢之竭 授汝文職 輔予朝網 他 山之石 諒符於我用 合浦之珠 休擬於言旋 預推肩一之心 終贊廣千之運 今賜汝敎書一道 井賜 衣帶綵段白銀等物 至可領也. 29) 定宗 2년(947), 崔彥撝의 아들인 光胤이 앞서 貢士로 後晋에 들어갔다가 契丹에게 사로잡혔 다고 한 것으로 보아 太祖 때에도 유학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밖에 다른 예는 보 이지 않으며 宋에 보낸 유학생 도 景宗 원년 (976) 金行成과 姜戩, 成宗 5년 (986) 崔罕과 王琳, 穆宗 원년 (998) 金成積 등이 있을 뿐이다. 30) 高麗史 권93, 列傳 崔承老傳, 年十二 太祖召見 使讀論語 甚嘉之賜鹽盆 命隸元鳳省學 生. 31) 위의 책 권74, 選擧志 學校조에 의하면 太祖 13년(930)에 西京에 學校를 創置했다.
17 이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비롯된 漢系 知識人의 적극적인 유치책은 특별히 고려전기에 성행했던 것으로, 고려는 이를 통하여 外交, 文翰人力의 확보와 선진문물의 수입을 꾀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光宗이 雙冀를 등용할 때 그 재주를 사랑하여 表請爲 僚屬 32)하였다거나, 1091년 (宣宗 8) 田盛과 陳養에게 敦請留止하고 職秩을 加해주어 來者를 勸將하라 33)고 한 예가 있으며, 仁宗 때 杜道濟와 祝延祚의 경우도 明州에서 두차례의 독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上表請留 34)하여 끝내 이들을 받아들였던 것 이다. 그러나 고려에서는 이들을 관직에 등용할 때 처음부터 아무런 절차나 격식도 없이 무조건 임명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 雙冀의 예를 보면, (光宗이) 불러보고 뜻이 맞으므로 그 재주를 사랑하여 上表하여 僚屬으로 삼을 것을 청하고 드디어 擢用하여 갑자기 元甫 翰林學士 承旨에 超遷하고 한 해가 넘지 못하여 文柄으로써 除授하니 당시의 輿論이 過重하다고 하였다35) 고 하였는데 여기서 불러보고 뜻에 맞았다(引對稱旨) 는 것만 가지고는 그것이 구체 적으로 어떤 절차를 의미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으나 또이 召見하는 일종의 면접시 험과 같은 절차를 거쳤으리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예는 穆宗 때 온 周符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學士 蔡忠順이 그 재간 있는 것을 알고 가만히 奏하여 머물게 하였다 36)는 것인데 여기서도 非公開로 王을 접견하는 면접의 절차를 거치고 있다. 다만 周行의 경우는 어쩌면 薦擧 의 예를 따른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그런데 文宗 때에 들어오면 제도적으로 시험에 의한 등용의 기록이 보이기 시작한 다. 다음 사료들을 통해 그것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命有司 試宋投化人張琬業遁甲三奇法六壬占 授太史監候37) 命太子召宋進士愼脩陳潛古儲元賓等 試詩賦於玉燭亭38) 禮賓省奏 宋人楊震 隨商船而來 自稱擧子 屢試不中39) 32) 위의 책 권93, 列傳 雙冀傳, 光宗愛其才 表請爲僚屬. 33) 위의 책 권 10, 世家 宣宗 8년조, 制曰 敦請留止 且加職秩 以勸來者. 34) 위의 책 권 15, 世家 仁宗 2년 5월 庚子조, 初 明州杜道濟祝延祥 隨商船到本國不還 明州 再移 文取索 國家上表請留. 35) 위의 책 권93, 列傳 雙冀傳, 引對稱旨 光宗愛其才 表請爲僚屬 遂擢用 驟遷元甫翰林學士 未逾歲授以文柄 時議 以爲過重. 36) 위의 책 권94, 列傳 周f宁傳, 學士蔡忠順知其有才 密奏留之. 37) 위의 책 권8, 世家 文宗 11년 7월 壬辰조 38) 위의 책 권8, 世家 文宗 22년 8월 丁巳조.
18 國史館論叢 第39輯 劉載 試以詩賦 授千牛衛錄事參軍40) 宋人邵珪廷俊劉伋 來投 王召試于文德殿 竝授八品官41) 위의 사료 중 은 文宗, 은 宣宗, 은 肅宗 때의 기록인데 有司, 太子, 禮 賓省 또는 王이 직접 詩賦 등으로 심사하여 官職에 임명하였다. 이로 보아 대개 1057년(文宗 11) 이후에는 이 들에 대한 임용절차가 어느 정도 法規化되어 가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高麗史 選擧志의 科擧기록이나 高麗列朝登科錄, 海 東榜目 에는 물론, 이들을 토대로 각종 文集類 및 1次 史料인 金石文까지 정리하여 작성했다고 하는 高麗禮部試登科錄 42)에도 위의 사례들과 일치하는 날짜에 시행된 科擧나 及第者가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들 시험은 일반 과거와는 별도로 운 영되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이들 시험은 일종의 非公開 특별시험이었던 것이다. 이 러한 사정은 宋史 권487, 高麗傳의 密試其所能 誘以祿仕 라 한 대목과도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1102년 (肅宗 7) 이후에 오면 또 다른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并召試投化宋進士張忱 賜別頭及第43) 宋進士林完 別賜乙科44) 宋進士王逢辰 別賜乙科45) 위의 史料들은 앞의 과는 달리 高麗史 選擧志에 그 내용이 전하고 있어 漢系 歸化人의 등용절차가 완전히 제도화하였음을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다 만 이들은 製述業 중에서도 別頭及第, 別賜乙科 라고 하여 특별취급이 되고 있는데, 別頭 는 과거에서 외국 특히, 宋人 及第者들에게 부여한 특례적인 조치였다.46) 이렇게 1102년 이후 일단 틀을 갖추었던 고려의 漢系 지식인 등용제도는 明宗 때 王逢辰을 마지막으로 끝나고 말았다. 말기에 이르러 망명해 온 소수의 漢系 지식인, 관료가 관직 에 나아가는 경우가 있었으나 이들에 대해서는 일정한 원칙같은 것은 39) 위의 책 권9, 世家 文宗 35년 4월 壬午조. 40) 위의 책 권97, 列傳 劉載傳. 41) 위의 책 권11, 世家 肅宗 6년 1월 庚辰조. 42) 許興植, 高麗科擧制度史硏究 (一潮閣, 1981) pp 附錄 Ⅱ 참조. 43) 高麗史 권73, 選擧 1 肅宗 7년 3월조 44) 위의 책 권98, 列傳 林完. 45) 위의 책 권73, 選擧 1 明宗 14년 9월조. 46) 別頭 는 賓貢 과는 다르다. 許興植, 앞의 책 p. 250에서 賓貢은 國子監試에서 당시 星主로서 半獨立的인 王國을 유지했던 耽羅의 王子에게 아량을 보인 科擧였다 고했는데 中國에서도 新羅나 高麗의 文士에게 보인 科擧를 賓貢이라 했다. 그러므로 別頭 는 크게 보아 科擧의 特例라는 의미에서는 賓貢과 같은 성격이라 할 수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분명히 구분하여 사용되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9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면, 다음으로 이렇게 등용된 漢系 知識人들이 어떤 初仕職을 받고 있는가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확인이 가능한 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初仕職과 官階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6 漢系 歸化人의 初仕職과 官階 姓 名 歸 化 時 期 初 仕 職 (官品) 前 職 및 기 타 雙 哲 959년 (光宗 10) 佐丞 (3 품) 後周 侍御, 守淸州 朴 巖 923년 (太祖 6) 春部少卿 (4 품) 吳越國 文士. *925년의 官職임. 雙 冀 956년 (光宗 7) 元甫 翰林學士 ( ) 武勝軍節度巡官 將仕郞 試大理 評事 歐 陽 徵 1015년 (顯宗 6) 右拾遺 (6 품) 宋 泉州人 陳 養 1091년 (宣宗 8) 郞將(西班) ( ) 有武藝. *1106년 初入仕. 周 佇 1005년 (穆宗 8) 禮賓注簿 (7 품) 宋 文士 周 坑? 禮賓省注簿 ( ) 臟罪로 1071년 (文宗 25) 追放 蕭 宗 明 1059년 (文宗 13) 權知閤門祗候 ( ) 됨. * 1061년 初入仕 劉 載 宣宗時? 千牛衛錄事參軍 (8 품) 宋 泉州人 (文士?) 邵珪, 劉汲 1101년(肅宗 6) 并八品官 ( ) 宋人 (文士?) 陸 廷 俊 眷宗時 左右衛錄事 ( ) 宋 福州人, 文士 胡宗旦 戴 翼 1013년(顯宗 4) 儒林郞 守宮令 (9 품) 宋 閩人(文士?) 劉 志 誠 顯宗時? 將仕郞 內園丞 ( ) 金石追 p.83 劉志誠改葬墓 張 廷 1052년(文宗 6) 秘書省校書郞 ( ) 誌銘 張 琬 1057년( 11) 太史監候 ( ) 宋 進士 盧 寅 1060년( 14) 秘書省校書郞 ( ) 遁甲三奇法, 六壬占에 能함. 陳 渭 1061년( 15) ( ) 宋 進士 葉 盛 ( ) 殿前丞旨 () 章 忱 1102년(肅宗 7) 將仕郞 禮賓注 ( ) 曉音律 簿同正 ( ) 賜別頭及第 * 1061년 葉盛과 함께 보이는 蕭鼎, 蕭遷은 똑같이 音律에 밝았으나 吏屬인 閤門 承旨에 임명되었으므로, 제외함. <표> </표> 위의 표 6 에서 볼 때 雙哲, 雙冀 父子와 朴巖을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5품 이상 의 品階나 高位 官職에 등용된 예는 없다. 그런데 사실상 雙哲에게 제수되 었던 佐 丞은 초기의 官階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가 實職을 담당하였는지는 확실치 않 다.47) 또한 923년(太祖 6)에 온 吳越國 文士 朴巖의 경우 春部少卿은 그가 後唐에 사
20 國史館論叢 第39輯 신으로 갔을 때48)의 관직이므로 初仕職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들 3명 은 예외에 속하는 경우라고 하겠다. 또한 陳養의 郞將과 蕭宗明의 權知閤門祗候도 각각 귀화한지 15년과 2년이 지난 뒤의 관직이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6품과 7품으로 분류한 나머지 3명의 관직도 그 것이 반드시 初仕職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므로 이들의 대부분은 몇 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8품 이하의 초사직에 임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初仕職階가 대부분 8품이나 9품이었다고는 하나 반드시 전부가 다 이렇게 좋은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아예 官階나 官職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閤門承旨와 같이 吏屬에 속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1096년(肅宗 원년) 省聰, 惠珍의 경우49)와 같이 僧職에 제수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秘書省 校書郞이라든가 禮賓省 注簿와 같은 中央 部署의 要職에 등 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또한 官階 가운데 최하위라고 할 수 있는 將仕郞(從9品 下)이 나 儒林郞(正9 品 上)을 받으면서도 실제로는 그보다 上位職에 임용되는 예가 자주 있는 것을 볼 때 이들에 대한 고려의 대우가 어떠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漢系 歸化人의 귀화는 일반적인 귀화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기도 하였다. 물론 이들의 귀화는 자신의 의사에 의한 자발적인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抑 留나 勅留 등으로 고려에 머물다가 정착한 자들도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 보여주는 예로, 王城有華人數百 多閩人因賈舶至者 密試其所能 誘以祿仕 或强留之終身朝廷使至 有 陳牒來訴者 即 取以歸50) 라고 한 기록에서 보듯이 비밀리 그 재능을 시험하여 벼슬을 주고, 강제로 종신토록 머물러 살게 한 경우까지 있었던 것이다. 47) 高麗史 권75, 百官志 鄕職조에 의하면 佐丞은 3品, 元甫는 4品에 해당된다. 그런데 末松 保和, 高麗初期兩班について ( 靑丘史草 1) p. 148에서는 이러한 官階는 당초에는 京鄕 의 구별없이 사용되었던 단일 品階였는데, 成宗 때 와서 京官의 品階가 새로 제정됨에 따라 舊制인 이러한 명칭이 鄕職의 品階로 轉化되어 사용되었다고 했다. 따라서 여기 보이는 佐 丞은 鄕職陪라기 보다 는 中央官階였을 것이다. 48) 新五代史 권74, 四夷附錄 第3 高麗 同光 원년 (923) 조에는 遣使廣評侍郞韓信一 副使春 部少卿朴聚來 라 하였으나 五代會要 권30, 高躍傳에는 이들이 925년에 간 것으로 되어 있고, 東史綱目 제5下에는 923년 고려에서 간 사신은 倉部郎中 金樂과 錄事參軍 金幼卿으 로 되어있다. 49) 高麗史 권 11, 世家 肅宗 원년 9월 戊申조, 以宋僧省聰惠珍 各爲明悟三重大師. 50) 宋史 권487, 高麗傳.
21 同化策 일반적으로 귀화인에 대한 동화책은, 외국에서 귀화해 온 이들을 국가의 한 구성 원으로 인정하고 생업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결국은 국가에서 정 한 일정한 役이나 租税 등의 의무를 부담하는 피지배자로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었 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밝혀보고자 하는 것은 첫째, 고려는 어떠한 조치 를 통해 이들을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였는가, 둘째, 이들의 생계를 돕기 위한 시책은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선 첫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것은 編戶 이다. 편호는 戶籍에 編 入된 戶를 말하는 것으로 백성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官階나 官職에 임명된 자체가 곧 호적에 편제된 것을 의미하므로 官人으로 등용이 된 이들은 이러한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漢系 歸化人의 경우, 대부분 편호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며, 德宗 2년이나 睿宗 11,12년에 온 자들과 같 이 특수한 경우에는 편호의 걸차가 적용되었을 것이나 그 구체적인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다음으로 고려가 이들 漢系 귀화인의 생업을 돕기 위하여 어떤 조치들을 취했는가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歸化人에 대한 同化策의 내용은, 관직을 주거나 爵位를 授與하는 授職 授爵, 그리 고 田地나 家屋, 물건 등의 賜與, 租税나 徭役을 일정기간 동안 감면해주는 조치 등 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가 국외에서 이주하는 귀화인들의 생 계를 보장해주기 위해 취해진 것이나 당연히 그 대상에 따라 각기 상이하게 적용되 었다. 이를테면 일반적인 귀화인에 대한 授職 授爵은 단순히 명예나 형식에 지나지 않는 예도 많았으나 漢系 歸化人의 경우 그것이 실질적이었다는 점에서 특히 北方 女眞系의 경우와 판이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들에 대한 授職 授爵이 명예나 형식이 아니었음은 이미 앞에서 상술하였으므로 여기서는 그 이외의 사항에 대하여 알아보 기로 한다. 귀화인의 정착을 위해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田地나 家屋, 衣服과 같은 물건들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漢系 歸化人에게 田地나 家屋, 물건 등을 賜與한 분명한 事例 는 다른 系統의 歸化人에 비해 아주 드물다. 1013년 (顯宗 4) 戴翼에게 儒林郎 守宮 令을 除授하고 衣物과 田莊을 주었다51)는 기록과 1052년 (文宗 6) 張廷에게 秘書省 校書郞을 제수하고 衣帶와 綵段白銀 등을 준 기록,52) 그리고 1106년(睿宗 원년) 陳 養, 陳高, 俞坦 등의 재주를 시험해보고 각각 물건을 하사하였다53)는 기록이 전부이 51) 高麗史 권4, 世家 顯宗 4년 1월 庚戌조, 宋閩人戴翼 來投 授儒林郞守宮令 賜衣物田莊. 52) 주 28) 참조.
22 國史館論叢 第39輯 다. 그 밖에 귀화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1031년 (德宗 즉위년)54)과 1039년 (靖宗 5)55)에 衣服과 綿布를 지급한 두 개의 사례가 있기는 하나 이것은 漢系 귀화 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같은 사례만으로 漢系 귀화인에 대한 田地나 家屋, 물건의 賜與가 없었 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田宅이나 물건의 賜與가 授職 授爵과 동시에 행해지 는 것이 일반적인 慣例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예일 뿐 대개의 경우 오히려 授職 授 爵 자체가 田宅이나 물건의 賜與를 전제로 한 것이므로 구태여 일부러 기술할 필요 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즉, 授職 授爵이 되면 그에 따라 당연히 田地나 家屋, 물건의 賜與가 행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예를 통해 그것을 확인해 보기로 한다. 이때 光宗이 投化한 漢人들을 厚待하여 臣僚들의 家屋 및 딸을 골라 주었으므로 하루는 弼이 奏하기를, 臣이 사는 집이 좀 넓으니 바라건대 進獻코자 하나이다 라고 하니, 光宗이 그 緣故를 묻기에 대답하기를 지금 投化人이 官職을 택하여 벼슬을 하 고 집을 택하여 居處하게 되니 世臣 故家는 도리어 많이 그 處所를 잃었나이다. 어 리석은 제가 성심으로 子孫을 위하여 생각건대 宰相이 살던 집은 그 소유가 아니니 臣이 생존하는 동안에 請컨대 取하도록 하소서 臣은 薄棒의 餘分으로 다시 작은 집 을 지어 후회가 없도록 하겠나이다 라고 하였다. 光宗이 怒하였으나, 마침내 마음으 로 뉘우쳐 다시는 臣僚들의 家屋을 빼앗지 않았다.56) 위의 사료는 漢系 귀화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重用하였던 광종에 대하여 당시 직언을 잘하기로 이름이 났던 徐弼이 불만을 토로한 내용으로 여기에서 臣僚들의 家 屋을 징발하고 딸을 골라 投化人들에게 주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로 보아 田地와 家 屋, 물건 등은 漢系 歸化人에게도 지급된 것이 분명하나 官僚로 進出한 이들에게는 授職 授爵과 동시에 행해진 것이 아니라 별도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귀화인에 대한 토지지급의 한 형태인 投化田에 대하여 검토해 보기로 한 다. 投化田에 관해서는 그 구체적인 내용이 전하는 것이 없고, 다만 고려말 田制改革 을 주도한 趙浚의 上書文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유일한 단서가 되고 있을 뿐이 53) 高麗史 권 12, 世家 睿宗 원년 7월 癸丑조, 御重光殿西樓 召投化宋人 陳養譯語陳高俞坦 試閲 兵手 各賜物. 54) 위의 책 권5, 世家 德宗 즉위년 11월 庚寅조, 命有司 賜諸國投化人 衣物綿絮. 55) 위의 책 권6, 世家 靖宗 5년 12월조, 制曰 候在大寒 風雪嚴凝 言念貧窮 必至凍餘 其外國投 化人 及沒蕃懷土男女共八十餘人 有司量其老幼 各賜綿布. 56) 위의 책 권93, 列傳 徐弼傳, 時光宗 厚待投化漢人 擇取臣僚第宅及 與女之 一日 弼奏曰 臣 居 第稍寬 願以獻焉 光宗問其故 對曰 今投化人擇官而仕 擇屋而處 世臣故家 反多失所 臣愚 誠爲子孫計 宰相居第 非其有也 及臣之存 請取之 臣以祿俸之餘 更營小第 庶無後悔 光宗怒 然卒感悟 不復奪臣僚第宅.
23 다. 이러한 뒤로부터 閑人, 功蔭, 投化, 入鎭, 加給, 補給, 登科, 別賜의 名目이 代마다 더하여 가니 田地를 管掌하는 官員은 煩瑣를 감당하지 못하고, 土地를 주고 받아들 이는 법이 점차 해이해져 약삭빠른 자들이 이 틈을 타서 기만하고 은폐함이 끝이 없 는지라 이미 仕官하고 出嫁한 자도 오히려 閑人田을 먹고 있으며 行伍를 밟지 않은 자가 함부로 軍田을 받아 아비는 숨겨 감추어 사사로이 자식에게 주고, 자식은 가만 히 도적질하여 公에 돌리지 않습니다. 이미 役分田을 먹고 또 閑人田을 먹으며 또 軍田을 먹어도 授受하는 官員은, 그 이미 現職으로 官에 있어서 마땅히 役分田을 받 아야 할 자인지, 仕官하지 않고 出嫁하지 않아 마땅히 閑人田을 받아야 할 자인지, 또 그 자신이 과연 府兵인지, 그 父가 과연 鎭邊에 入戌하는지, 그 祖父가 과연 다른 나라로부터 來投하였는지를 묻지 않습니다.57) 이것은 田制改革을 주장하기 위한 이유로서, 土地의 私有化와 兼併이 성행함으로 써 田政이 극도로 문란하였던 당시의 실상을 지적한 내용의 일부이다. 그런데 投化 田의 성격은 뒤이어 그가 제시한 田制改革案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投化田 向國之人 食之終身 身歿即還公 受官職有口分田者 不許58) 한다는 것이다. 이 案이 그 후에 받아들여져 그대로 시행이 되었는지의 여부는 확실 치 않다. 그러나 위의 두 사료를 통해 投化田에 관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첫째, 投化田이라는 용어는 고려말에 와서 처음 보이는 것이기는 하나 귀화인에게 토지를 지급한 예는 이미 앞에서도 보았듯이 그 이전부터 있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投化田 자체는 일반적인 田宅賜與의 경우와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그 존재와 支給 目的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投化田의 지급 대상이나 授受原則 등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위에서 제시한 趙浚의 田制改革案에 歸化한 者가 終身토록 먹도록 하고 죽으면 국가에 반 납하게 하며 官職을 받거나 口分田을 받은 자는 가질 수 없게 한다 는 규정을 새 로 두려한 것으로 보아 본래 일정한 法規가 정해져 있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 나 어떠튼 여기서 말하고 있는 投化田은 그 이전에 생업의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 57) 위의 책 권78, 食貨1 田制 辛福 14년 7월조, 自是以來 閑人功蔭投化入鎭加給補給登科別賜 之名 代有增益 掌田之官 不甚煩瑣 授田受田之法 漸致隳弛 兹猾乘間 欺蔽無窮 已仕已嫁者 尙食閑人之田 不踐行伍者 冒食軍田 父匿挟私授其子 子隱盜而不還於公 旣食役分 又食閑人 又食軍田 授受之官 不問其已見任在官 而當食役分者耶 未仕未嫁 當食閑人者耶 其身果府兵歟 其父果入戌於邊鎭歟 其祖果自異國而來投者歟 58) 위의 책 권78, 食貨 1 田制.
24 國史館論叢 第39輯 渤海 軍士나 女眞, 契丹 등 北方系 歸化人에게 지급하였던 토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 님은 분명하다. 요컨대 投化田은 自作 耕作地가 아니라 일종의 收租地의 성격을 띤 것59)으로 본래 특별한 社會的 身分이나 지위를 가졌던 귀화인 가운데서도 특히 관직 이나 별다른 職役이 없어 토지를 받지 못했던 일부 귀화인에게 제공되었던 특전이었 던 것이다. 셋째, 後期에 들어와 田制의 문란으로 토지가 부족해짐에 따라 귀화인에 대한 토 지 지급도 더욱 제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후기에 오면서 일반적인 귀화 인의 경우에 있어서도 田宅의 지급보다는 米穀이라든가 綿布, 衣服, 馬匹 등 衣, 物의 지급이 보편화되어 간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후기에는 특히 權力을 專横하는 귀화인들이 많이 등장 하여 불법적으로 토지를 점유하는 사례가 속출하였는데 投化 田 또한 이들에 의해 土地占奪의 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것 같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投化田은 귀화인에 대한 일반적인 토지의 지급과는 달 리, 특별한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고 귀화했으나 따로 토지를 지급받을 수 없 었던 일부 귀화인에게 지급되었던 收租地였으며, 후기에 田制가 解弛해지면서 성행 하여 불법적인 토지 점탈의 한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 밖에 귀화인의 同化策에 포함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으로 일정 기간동안 租 税나 徭役 등을 감면해 주는 조치를 들 수 있다. 그러나 高麗史 등 어떠한 기록에 도 이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朝鮮 初, 주로 野人과 倭人 向化者를 대상으로 한 租税와 徭役의 減免措置 규정이 經國大典 에 실려있는 것으 로 보아60)고려시대에도 비록 法規化된 것은 아닐지라도 귀화인에 대한 조세와 요역 의 감면조치가 있었으리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Ⅴ. 歸化 漢人의 役割과 影響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토대로 이들 漢系 歸化人의 역할과 영향에 관하여 알아보 고자 한다. 특히 漢系 歸化人 가운데는 관직을 제수받아 관료로 진출한 자들이 많았 으므로 관료로서의 경력을 분석해보는 작업을 통하여 이들이 수행한 역할이 어떤 것 이었는가를 검토 해 보고자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관료로 나아가 文翰이나 外交 등을 담당하면서 高位 官職에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음에 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59) 姜晋哲, 高麗土地制度史硏究 (高大出版部, 1980) p 그러나 白南雲, 朝鮮封建社會經濟 史(上) (改造社, 1937) pp 에서는 投化田을 모든 歸化人에게 지급된 토지로 보았다. 60) 經國大典 에는, 向化人에 대해 3년 동안 免税한다 (戶典, 收税條)는 규정이 世宗 28년 처 음 新設되었다는 내용과, 向化新來人에 대해 10년 동안 徭役을 減免한다 (兵典, 復戶條)는 규정이 실려 있다.
25 官歷이 확인되는 예는 9명에 불과 하다는 사실이다. 高麗史 등의 기록을 통하여 확인이 가능한 자들의 官歷을 정리하면 표 7 과 같다. 표 7 에서 이들이 받은 初仕職이나 官歷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뚜렷한 특 징을 지니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이들은 秘書省, 翰林院, 寶文閣 등의 文翰職에 등용된 사례가 많았다. 이와 같은 文翰職은, 武臣執權期 이후에 간혹 예외적인 사례가 있었다고는 하나 대체로 科擧及第者로 구성된 官府였는데61) 특히 이들 가운데는 雙冀, 盧寅, 劉載와 같이 知 貢擧를 歷任한 인물도 3명이나 되고 있다. 표 7 漢系 歸化人출신 官僚의 仕官歷 人 名 官 歷 典據 및 備考 雙 冀 956년 (光宗 7) 元甫翰林院學士 958년(9) 翰林 高麗史 권93, 列傳. 院學 士知貢擧 960년(11) 知貢擧 961년(12) 知貢擧 周 佇 1005년 (穆宗 8) 禮賓省注簿 1011년(顯宗 2) 禮部 高麗史 권94, 列傳. 侍郞中 樞院學士 1013년(4) 修撰官 1018년( 9) 右常侍 10 21년(12) 翰林學士 1022년(13) 禮部尙書 劉 志 誠?(顯宗?)內園丞-?년(?) 禮賓注簿?년(?) 閤門祗候, 金石追 P.83 劉志誠 副使, 引進使 년(?) 知閤門事?년(?) 判閤門事? 墓誌銘 년(?) 禮賓少卿?년(?) 禮部侍郞?년(?) 禮賓卿 生沒年代, 972년 1039?년(?) 禮部尙書, 工部尙書 1039년(靖宗 5) 尙書 년 右僕射, 卒. 盧 寅 1060년 (文宗 14) 秘書省校書郞 1070년(24) 起 高麗史 권8 9, 世家. 居舍人知貢擧 1071년(25) 尙書右丞 左諫議大夫 1073년( 27) 殿中監1075년 (29) 左散騎常侍 1077년(31) 禮部尙書 愼 條 1068년(文宗 22) 歸化 1075년(29) 侍御史 1101 高麗史 권97, 列傳 년 (肅 宗 6) 守司空 左僕射 參知政事, 卒. 劉載附. 劉 載?(宣宗?) 千牛衛錄事 1098년(肅宗 3)太子侍讀 高麗史 권97, 列傳 1102년 (7) 右諫議大夫 1104년(9) 禮部侍郞 및 世 家. 同知貢擧 左諫議大夫 1109년 (眷宗 4) 左散騎常侍 <표> </표> 61) 文翰職은 國初부터 있어온 것으로 秘書, 史館, 翰林, 寶文閣, 御書, 同文院 등 6局을 말하며 禁內學館이라 불리기도 했다. 高麗史 百官志에 의하면 이들은 典校寺, 春秋館, 藝文館, 寶 文閣 으로 정리가 되었고, 여기에 成均館과 國子監이 추가되었는데 이들 官府는 科擧及第者 로 구성 된 것으로 볼 수 있다(許興植, 高麗科擧制度史硏究, 一潮閣, 1981, p. 102 참조).
26 國史館論叢 第39輯 1112년(7) 禮部尙書, 吏部尙書 1113년(8) 尙 書右僕射 文德殿學士 1118년(13) 守司空 尙書左 僕射, 卒. 胡 宗 旦?(睿宗 初) 左右衛錄事 1111년(6) 權知直翰院 高麗史 世家 및 권?(?) 右拾遺知制誥 1117년(12) 起居郞 , 列傳 劉載 附. 년(15) 寶文閤待制? (仁宗?) 起居舍人 愼 安 之 1109년 (睿宗 4) 派宋 使臣?(?) 知水州事?(?) 高麗史 世家 및 권 兵部尙書?(?) 三司使判閤門事 97, 列 傳 劉載 附. 林 完 1131년 (眷宗 9) 文科及第 監門衛錄事 1135년( 高麗史 권98, 列傳 13) 禮賓注簿 1123년 (仁宗 元年) 右正言 1129년 및 (7) 禮部 員外郞 1134년(12) 國子司業知制誥 金石追 p.128 林光 1136년(14)中 書舍人?(?) 禮部侍郞?(?) 墓誌銘 戶部尙書, 禮部尙書 1147년 (毅宗 元年) 知樞密院 事 1148년(2) 判秘書省事 1150년 (4) 守司空 左僕射, 卒. 둘째,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禮賓省, 禮部, 閤門 등에서 奉職한 자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들 官府는 賓客, 宴享, 朝會, 祭享, 禮義를 비롯하여 學校, 科擧之政을 관 장하는 중요 부서였던 것이다. 셋째, 그 밖에 中樞院, 守宮署, 御史臺, 三司와 같이 왕과 긴밀한 관계에 놓인 직책 에 등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은 이들이 왕의 특별한 신임을 받고 있었음 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위에 든 이들은 거의가 文翰이나 儀禮 등을 담당하면서 중앙의 핵심 부서에서 활약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왕을 보좌하고 때로는 왕의 諮問역할까지 수 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들이 중앙 官職 이외의 職에 임명되지 않았다는 사실 은 外職 경력을 가진 사례가 愼安之62)1인 뿐이 라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추세는 후기에 이르러서도 그대로 지속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225년 (高宗 12) 崔瑀의 奏請에, 本國文物禮樂 一尊華制 其自宋國來者 許於臺省 政曹淸要之職 隨才擢用63) 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漢系 歸化人이 여전히 臺省政曹의 淸要職에 起用이 되고 있음 62) 高麗史 권97, 列傳 劉載 附, 知水州 爲政淸肅 吏畏民懷, 新增東國輿地勝覽 권9, 水 原都 護府 名宦조에는 宋開封府人 父脩文宗朝 隨海舶來 安之事睿宗 出知水州爲政淸肅 吏 畏民懐 라 하였다. 63) 高麗史節要 권 15, 高宗 12년 12월조.
27 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선진문화의 경험자로서 중국을 비롯한 당시의 국제정세나 물정에 밝 은 사람들이었으며, 文藝에 능한 지식인둘이었으므로 新生 高麗가 새로이 갖춰야 할 여러 가지 제도라든가 정책 분야의 적임자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한계 귀화인들의 경륜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준 것은 光宗이었다. 광종의 이들에 대한 지나친 우대와 과감한 개혁64)의 시행은 다른 신하들의 비난과 불평의 대상이 되기는 하였으나65) 이러한 사실은 한편 이들 귀화인이 고려의 국가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이들의 역할로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政治制度나 社會改 革의 참여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과거제도의 시행인데 科擧制度가 雙冀의 건의에 의하여 958년 (光宗 9)에 처음으로 실시되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로 이것이 고려사회 에 미친 영향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66) 그러나 제도의 개혁이나 시행에 있어서 이들 漢系 귀화인의 역할이 과거제도 하나 에 국한한 것이었다고 만은 볼 수 없다. 崔承老가 光宗의 治績을 評한 대목 가운데, 雖重華風 不取華之令典 雖禮華士 不得華之賢才67) 이라고 하였는데, 光宗이 中國風의 것을 중히 여겼다고는 하나 좋은 法式과 좋은 인 재를 취하지 못했다고 하는 이와 같은 비난은 光宗의 施策 가운데서도 특히 漢系 歸 化人 정책에 대하여 가해진 것이 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983년 (成宗 2) 科擧에 서 崔承老 자신이 직접 知貢擧를 맡았던 사실이라든가 그 밖의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과거제도가 그의 비난의 대상이 아니었음은 自明하다. 그렇다면, 그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제도란 어떤 것이었을까? 일단 그가 올렸던 時務 28條 가운데 다음 조목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華夏의 制度는 쫓지 않을 수 없으나 그러나 사방의 습속이 각기 土性을 따름이라 다시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禮樂詩書의 가르침과 君臣, 父子의 도 리는 마땅히 中華를 法하여 비루함을 고치도록 하고 나머지 車馬, 衣服制度는 가히 64) 李基白 編, 高麗光宗硏究 (一潮閣, 1981) 참조. 65) 光宗의 漢系 歸化人 優待策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던 대표적인 인물은 徐弼이었다(주 56 참조). 또한 高麗史 권93, 列傳 崔承老傳에도 及雙冀見用以來 崇重文士 恩禮過豊 由是 非才濫進 이라 하여 光宗을 비난하고 있다. 66) 姜喜雄, 高麗初 科擧制度의 導入에 관한. 小考 ( 韓國史論文選集 Ⅲ 高麗篇, 一潮閣, 1976 p. 76 참조. 67) 高麗史 권93, 列傳 崔承老傳.
28 國史館論叢 第39輯 土風에 인하도록 하여 사치와 검약이 中庸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므로 반드시 같이 할 것이 없습니다.68) 여기서 禮樂詩書의 가르침과 君臣父子의 도리 이외의 車馬, 衣服制度 같은 것은 구태여 중국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필요없다고 주장한 중국의 法式이 과거에 행해졌거나 혹은 그 당시 널리 행해지고 있었음을 反證하는 것이도 하다. 특히 成宗은 중국의 문물에 크게 心醉해 있던 인물이었다. 契丹이 침입 해 왔을 때 그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前民官御事 李知白이 영토를 떼어주고 和 親하자는 당시의 朝議에 대하여 땅을 떼어 敵國에 바치기 보다는 차라리 先王의 燃 燈, 八關, 仙郞 등의 儀式을 다시 행하고 他國의 異法을 행하지 않음으로써 국가를 보호하고 태평을 누려야 한다 69)고 한 것은 바로 成宗의 中國趣向에 대한 신랄한 攻 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을 통해 볼 때 光宗에서 成宗 年間에 이르는 시기에 갖춰졌 던 여러가지 제도나 개혁이 立案되고, 시행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사례가 많이 참작 되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이 가며, 이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漢系 귀화인이 적 극 개입함으로써 그 결과 自省의 소리도 높아지게 되었던 것이 다. 이로 보아 당시 관료들 가운데 중국의 제도나 문화에 가장 정통하였을 이들 漢系 歸化人의 참여가 흔히 알려져 있듯이 科擧制度 하나에 한정되었던 것으로 볼 수는 없다. 雙冀의 경우 武勝軍節度巡官이나 大理評事를 지낸 그의 前歷이 말해주듯이 科擧及第者로서 지방 과 중앙의 司法官廳에서 法紀 관계업무를 맡아보면서 일찍이 後周의 개혁에도 참여 한 경험이 있는 인물70)이었고, 1011년(顯宗 2) 周佇의 건의로 進士試에서 糊名法이 채택된 것을 보면71)제도나 개혁 면에서의 이들의 역할은 상당히 광범위한 것이었던 게 분명하다. 한편 이들은 外交分野에서도 많은 활약을 보여 주었다. 周佇의 경우, 性謙恭 工文翰 交聘辭命 多出其手 恩遇無比72) 라 했고, 愼安之의 경우에도, 68) 위의 책, 華夏之制 不可不遵 然四方習俗 各隨土性 似難盡變 其禮樂詩書之敎 君臣父子之道 宜法中華 以革卑陋 其餘車馬衣服制度 可因土風 使奢儉得中 不必苟同. 69) 위의 책 권94, 列傳 徐弼傳, 且與其輕割土地 棄之敵國 易若復行先王燃燈八關仙郞等事 不 爲他方異法 以保國家致大平乎 (중략) 時 成宗樂慕華風 國人不喜故 知白及之 70) 姜喜雄, 앞의 논문 p ) 高麗史節要 권3, 顯宗 2년 12월조, 是歲 禮部侍郞周起 奏定進士糊名試式 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周起는 周佇이다. 72) 高楚史 권94, 列傳 周行.
29 善醫藥 曉漢語 凡移南北朝文牒 多出其手73) 라 하여 이들이 중국으로 보내는 外交文書 작성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였옴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愼安之는 1109년 (睿宗 4) 6월 金商祐, 韓皦如와 함께 宋에 使節로 다녀오기도 하는데74) 이처럼 직접 使臣으로 파견된 예로는 923년(太祖 6)에 歸化한 吳越國 文士 朴巖도 있었다.75) 이처럼 고려초기에 있어서 漢系 歸化人들은 정치제도나 사회개혁, 외교분야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고위 관직자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지 나친 우대는 관료들 사이에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이것이 광종 11년 이후 광 종 말년까지 이어졌던 政變의 한 要因으로 작용함으로써 雙冀와 같은 인물도 이 시 기에 거세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雙冀는 961년(光宗 12) 세번째 로 知貢擧를 지낸 것을 마지막으로 그 이후에는 어디에서도 그에 관한 기록을 발견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주로 官吏로 진출했던 漢系 歸化人들의 역할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 러나 이 밖에도 漢系 귀화인 가운데는 각 분야에서 여러가지 기능을 보유한 이들이 많이 있었던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데 앞에서 이미 살펴 보았듯이 商人이 나 武人, 僧侶, 譯語 등의 신분을 가진 이들도 있 었고, 醫術이나 占術, 音律 등에 造詣가 깊은 자들도 있었다. 이들 역시 두드러지지는 않으나 자신들이 속한 분야에서 나름대로 고려사회에 영향을 주었을 것임에 틀림없 다. 특히 이들이 외국인 출신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당연히 自國語에 能通하였을 것임 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이들은 중국과의 외교에 직접 通譯으로 기용되거 나 중국어 훈련에 활용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漢系 歸化人 가운데는 譯語로 陳高, 俞坦이 있었다. 그 밖에도 무역이나 醫藥, 音樂 등의 분야에서 특별한 技藝를 가진 자들이 많이 있었음으로 이들이 각기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맺음말 이제까지 검토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漢系 歸化人의 歸化는 고려 건국 73) 위의 책 권97, 列傳 劉載 附 憤安之조. 74) 위의 책 권13, 世家 睿宗 4년 6월 戊寅조. 75) 新五代史 권74, 高麗傳, 同光元年(高麗 太祖 6년) 遣使廣評侍郎韓信一 副使春部少卿朴巖 來.
30 國史館論叢 第39輯 초기부터 시작되는데 대체로 12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그 중에서도 이들의 歸化가 가장 빈번했던 것은 太祖 光宗 年間과 文宗 年間이 었다. 漢系 歸化人에 대한 고려 의 적극적인 태도를 감안해 볼 때 이들의 귀화가 이처럼 두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시기가 바로 고려가 이들을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한 시기였음을 의미하 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 가운데는 戰亂이라든가 政變 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망명의 성격을 띠고 귀화 해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漢系 귀화인들의 귀화는 대부분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귀화한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漢系 귀화인의 처지에서 볼 때 보다 나은 地位나 처우를 획득할 목적으로 귀화한 이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이러 한 특징을 이루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고려는 처음부터 文翰이나 外交文書 작성에 능한 지식인 출신이 라든가 특정한 才 藝를 가진 자들을 위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여러 분야에서의 人才를 필요로 했던 고려초기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 하겠다. 이러한 필요 에 의해 등용되기 시작한 지식인 출신의 漢系 歸化人들은 光宗代에 와서 특히 우대 되었다. 그러나 이들 漢系 歸化人들에 대한 지나친 優待는 두 가지의 相反된 결과로서 나 타났다. 즉, 이같은 優待策은 당시 고려와 빈번한 교류를 갖고 있던 중국 동남 해안 지방 등 여러 지역에 널리 流布되어 漢系의 귀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 편으로는 動舊大臣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 러한 사정으로 光宗에 의해 중용되었던 雙冀를 비롯한 漢系 歸化人들은 거세되었으 며, 漢系 귀화인 전체에 대한 일반의 인식도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이후 점차 고려가 안정기에 들어감에 따라 漢系 歸化人들의 역할은 축소되어 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고려에서는 漢系 歸化人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초기에는 아무런 절차없이 殊 恩殊禮로 받아들이던 태도를 바꿔 이들을 選別해서 받아들이는 정책을 택하였다. 선 별 기준은 대개 才藝가 있는 자로 제한을 하였으며, 王이 직접 接見하여 시험하거 나 그 所業에 따라 科目을 정하여 일반 科擧와는 별도의 시험을 보였는데 文宗 이후 에는 別頭 라는 것을 일반 科擧안에 따로 두어 선발하였다. 이들에 대한 처우를 보면, 官職에 임용되는 경우 특별한 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8品이하의 初仕職이 주어졌으며, 累遷하여 3品 이상의 고위 官職에 오르는 자도 적 지 않았다. 그러나 高麗史 列傳에 立傳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이들이 소속되었던 官府 는 대개 중앙의 핵심부서로 文翰을 담당한다든가 王의 측근에서 諮問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이들은 官職에 따라서 高麗의 양반 계급과 마찬가지로 각 종의 특혜를 享有할 수 있었다. 그러나 官吏로 등용될 수 없었던 그 밖의 漢系 歸化
31 人들은 良人의 신분으로 살아가거나 다른 여러 민족 출신의 귀화인들과 마찬가지로 취급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들의 대부분이 특별한 職能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高麗社會 각 분 야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것이 확실하다. 商人이라든가 僧侶, 醫人, 樂人 등은 물론 기타 일반 평민이 되었던 자들도 정착하여 살아가는 동안 각기 자신들이 속한 분야 에서 기술 산업 문화에 걸쳐 여러가지 형태로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고려는 건국 초기의 王權 安定과 자체적인 발전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移 住해 오는 歸化人들을 필요에 따라 받아들이고, 또 적절히 이용하였다. 이러한 사실 은 전적으로 고려 문화의 자주성과 독자성에서 기인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여러가 지 사정이 있었을 것이나 고려시대를 통하여 이들 가운데 뚜렷한 門閥이나 權門으로 뿌리를 내린 家門이 하나도 없었던 사실에서 고려가 얼마나 강한 전통의 사회였는가 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고려초기 사회전환기에 있어서 중국 선진문물의 導入과 성공 적인 定着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왕권 안정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존재들이었다. 또한 이들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外來的, 異質的 요소가 古代이래로 계승되어 온 傳統 위에 가미 됨으로써 다채롭고 개성있는 고려 특유의 문화를 창출해낸 것이 며, 이것은 바로 고려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60-Year History of the Board of Audit and Inspection of Korea 제4절 조선시대의 감사제도 1. 조선시대의 관제 고려의 문벌귀족사회는 무신란에 의하여 붕괴되고 고려 후기에는 권문세족이 지배층으 로 되었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새로이 신흥사대부가 대두하여 마침내 조선 건국에 성공 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조선양반사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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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렇게까지 군대를 가려고하냐,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조차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군대는 하루하루를 소종하게 생각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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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60 1 1 200 2 6 4 7 29 1975 30 2 78 35 1 4 2001 2009 79 2 9 2 200 3 1 6 1 600 13 6 2 8 21 6 7 1 9 1 7 4 1 2 2 80 4 300 2 200 8 22 200 2140 2 195 3 1 2 1 2 52 3 7 400 60 81 80 80 12 34 4 4 7 12 80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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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북한의 국제시장 접근 노력: 무역과 외자유치 분야 국제시장 접근을 위한 학습 및 인적 교류 결론: 국제화의 양면성과 정책적 시사점 26 / 서 론 / 27 28 / / 29 북한의 국제시장 접근 노력: 무역과 외자유치 분야 30 / / 31 32 / / 33 34 / / 35 36 / / 37 38 / / 39 국제시장 접근을 위한 학습 및 인적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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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後期 座主 門生 關係의 變化와 그 性格 元 干涉期를 중심으로 柳 浩 錫* Ⅰ. 머 리 말 Ⅱ. 座主 門生의 關係와 그 性格 Ⅲ. 試驗官의 政治的 社會的 背景 Ⅳ. 科擧의 運營과 國王 Ⅴ. 座主 門生 關係의 發展과 그 實態 Ⅵ. 맺 는 말 Ⅰ. 머 리 말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고려시대의 좌주와 문생이란 문신을 선발하기 위한 과거시험, 특 히 禮部試의 시험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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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가나다 순 머 리 말 2006년 12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 i - - ii - - iii - 평가 영역 1. 교육계획 2. 수업 3. 인적자원 4. 물적자원 5. 경영과 행정 6. 교육성과 평가 부문 부문 배점 비율(%) 점수(점) 영역 배점 1.1 교육목표 3 15 45점 1.2 교육과정 6 30 (9%) 2.1 수업설계 6 3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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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77 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78 2. 1 2 3 4 5 6 7 8 9 10 11 12 79 80 II 81 82 II 83 84 II 85 86 II 87 s t r e t c h i n g 88 II 89 90 II 91 d a n c e s p o r t s 92 II 93 ;4#; 94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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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북한에대한이해를돕기위해통일교육원에서발간한교재입니다. 각급교육기관등에서널리활용하여주시기바랍니다. 차례 Ⅰ. 북한이해의관점 Ⅱ. 북한의정치 차례 Ⅲ. 북한의대외관계 Ⅳ. 북한의경제 Ⅴ. 북한의군사 Ⅵ. 북한의교육 차례 Ⅶ. 북한의문화 예술 Ⅷ. 북한의사회 Ⅸ. 북한주민의생활 차례 Ⅹ. 북한의변화전망 제 1 절 북한이해의관점 Ⅰ. 북한이해의관점 Ⅰ. 북한이해의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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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구 http://www.kbc.go.kr/ 텔레비전의 폭력행위는 어떠한 상황적 맥락에서 묘사되는가에 따라 상이한 효과를 낳는다. 본 연구는 텔레비전 만화프로그램의 내용분석을 통해 각 인 물의 반사회적 행위 및 친사회적 행위 유형이 어떻게 나타나고 이를 둘러싼 맥락요인들과 어떤 관련성을 지니는지를 조사하였다. 맥락요인은 반사회적 행위 뿐 아니라 친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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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가을 24호 2_ . 02 03 04 08 10 14 16 20 24 28 32 38 44 46 47 48 49 50 51 _3 4_ _5 6_ _7 8_ _9 10_ _11 12_ _13 14_ _15 16_ _17 18_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에서 개식사를 하는 김구(1940.9.17) 將士書) 를 낭독하였는데, 한국광복군이 중국군과 함께 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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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는 선 5 월 월말 성취도 평가 국어 2쪽 사회 5쪽 과학 7쪽 자르는 선 학년 5 13 4 47 1 5 2 3 7 2 810 8 1113 11 9 12 10 3 13 14 141 1720 17 15 18 19 1 4 20 5 1 2 7 3 8 4 5 9 10 5 월말 성취도평가 11 다음 보기 에서 1 다음 안에 들어갈 알맞은 말을 찾아 쓰시오. 각 나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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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v vi vii viii ix x xi 61 62 63 64 에 피 소 드 2 시도 임금은 곧 신하들을 불러모아 나라 일을 맡기고 이집트로 갔습니다. 하 산을 만난 임금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어요. 원하시는 대로 일곱 번째 다이아몬드 아가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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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末 趙浚과 鄭道傳의 改革 방안 柳昌圭* Ⅰ.머리말 Ⅱ. 趙浚과 鄭道傳의 통치체제론 Ⅲ. 趙浚과 鄭道薄의 경제개혁안 Ⅳ. 趙浚과 鄭道傳의 병제개혁안 Ⅴ. 鄭道傳과 趙浚의 개혁 안의 의미 Ⅵ. 맺 음 말 Ⅰ. 머 리 말 趙浚과 鄭道傳이 조건 건국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던 인물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 다. 李成桂가 가지고 있었던 군사력을 배경으로 조준과 정도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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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융합 과학 2011년도 1학기 중간고사 대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빅뱅 우주론에서 수소와 헬륨 의 형성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4 서술형 다음 그림은 수소와 헬륨의 동위 원 소의 을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 우주에서 생성된 수소와 헬륨 의 질량비 는 약 3:1 이. (+)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전기적 중성인 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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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1 02 254 7 255 01 256 7 257 5 10 15 258 5 7 10 15 20 25 259 2. 어휘의 양상 수업 도우미 참고 자료 국어의 6대 방언권 국어 어휘의 양상- 시디(CD) 수록 - 감광해, 국어 어휘론 개설, 집문당, 2004년 동북 방언 서북 방언 중부 방언 서남 방언 동남 방언 제주 방언 어휘를 단어들의 집합이라고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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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Global 한국 팝음악, 즉 K-POP이 일본 내 한류 열풍의 선봉에 나섰다. 인기 걸그룹 카라가 도쿄 아카사카의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데뷔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_ 이태문 통신원 또다시 열도 뒤흔드는 한류 이번엔 K-POP 인베이전 아이돌 그룹 대활약 일본인의 일상에 뿌리내린 실세 한류 일 본에서 한류 열풍이 다시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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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Story 2012. 9. 13. Story 16호 STORY Korean Wave Story 2012 STORY STORY 12 호 2012 한류동향보고 Korean Wave Story 2012 Korean Wave Story 2012 (2012년 1/4분기) 12 호 12 호 2012. 4. 9. 2 3 4 5 轩 辕 剑 之 天 之 痕 我 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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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란? 자 기 반 성 유 형 밀 당 유 형 유 레 카 유 형 동 양 철 학 유 형 그 리 스 자 연 철 학 유 형 춤이란? 물 아 일 체 유 형 무 아 지 경 유 형 댄 스 본 능 유 형 명 상 수 련 유 형 바 디 랭 귀 지 유 형 비 타 민 유 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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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史館論叢第 26 輯 國史館論叢第 26 輯 國史館論叢第 26 輯 國史館論叢第 26 輯 國史館論叢第 26 輯 國史館論叢第 26 輯 國史館論叢第 26 輯 國史館論叢第 26 輯 國史館論叢第 26 輯 - 19 - 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요컨대 귀족관료들의 대토지 소유의 결과는 국가재정의 궁 핍을 초래시켰음은 물론이고, 권력과 재력을 배경으로 왕권쟁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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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2 / 6 첨부 1. 공급품 목록 및 납기일정 번호 품명 모델명/사양 Vendor 단위 수량 납기 비고 1 (샘플기판) 6Layer, FR-4, 1.6T, 1온스, 2 (샘플기판) 3 (샘플기판) 4 (샘플기판) 5 (샘플기판) FRONT PANEL BOARD 3종 1. 샘플기판은 Board 별 성능시험용 2. 샘플 기판 후 Board 별 육안점검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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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Focus3 우리나라 복합개발사업 발전방향에 관하여 Ⅰ. 서 론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도시집중화로 인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통 등 여러 측면에서 도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지금처럼 무계획적이고 성장일변도의 도시화는 미래에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문제점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는 지난세월 우리가 무분별하게 추구해 왔던 수익성 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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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우주 이야기 항공기에 숨어 있는 과학 및 비밀장치 항공기에는 비행 중에 발생하는 현상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과 학이 스며들어 있다. 특별히 관심을 갖고 관찰하지 않으면 쉽게 발견할 수 없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객실 창문에 아주 작은 구멍이 있고, 주 날 개를 보면 뒷전(trailing edge) 부분이 꺾어져 있다. 또 비행기 전체 형 상을 보면 수직꼬리날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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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年 度 國 監 - 農 林 海 洋 水 産 ( 附 錄 )) 1 2 (2000 年 度 國 監 - 農 林 海 洋 水 産 ( 附 錄 )) (2000 年 度 國 監 - 農 林 海 洋 水 産 ( 附 錄 )) 3 4 (2000 年 度 國 監 - 農 林 海 洋 水 産 ( 附 錄 )) (2000 年 度 國 監 - 農 林 海 洋 水 産 ( 附 錄 )) 5 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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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3년 7월 25일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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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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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내지(6장~8장)최종 2007.8.3 5:43 PM 페이지 168 in I 덕수리 민속지 I 만 아니라 마당에서도 직접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장팡뒤의 구조는 본래적인 형태라 고 할 수는 없으나, 사회가 점차 개방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폐쇄적인 안뒤공간에 위치하던 장항 의 위치가 개방적이고 기능적인 방향으로 이동해가는 것이 아닌가 추론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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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hipping Association 조합 뉴비전 선포 다음은 뉴비전 세부추진계획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 조합은 올해로 창립 46주년을 맞았습니다. 조합은 2004년 이전까 지는 조합운영지침을 마련하여 목표 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추진해왔습니 다만 지난 2005년부터 조합원을 행복하게 하는 가치창출로 해운의 미래를 열어 가자 라는 미션아래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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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DVD CHOICE dvd dvd?!!!! [1] [2] DVD NO. 1898 [3] Days of Being Wild 지금도 장국영을 추억하는 이는 많다. 그는 홍콩 영화의 중심에 선 배우였고,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거짓말 같던 그의 죽음은 장국 영을 더욱 애잔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 이 장국영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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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기본소득 응답하라! 기본소득 06 Q.01 07 Q.02 08 Q.03 09 Q.04 10 Q.05 11 Q.06 12 Q.07 13 Q.08 14 Q.09 응답하라! 기본소득 contents 16 Q.10 18 Q.11 19 Q.12 20 Q.13 22 Q.14 23 Q.15 24 Q.16 Q.01 기본소득의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세요. 06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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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貴族社會의 經濟的 基盤 1. 田柴科體制下의 土地制度 2. 手工業 3. 商業과 對外貿易 Ⅱ. 貴族社會의 經濟的 基盤 1. 田柴科體制下의 土地制度 (1) 建國 직후의 狀態와 役分田의 設置 9세기말一10세기초의 後百濟의 혼란상태는 高麗王朝 및 개창 자인 王建에 의하여 수습되었다. 그는 일찌기 후삼국의 하나인 泰 封의 왕 弓裔의 副將으로 활약하다가 9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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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객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8호) 객사는 영조 35년(1759년)에 지어진 조선 후기의 관청 건물입니다. 원래는 가운데의 정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대청, 오른쪽에 서대청, 앞쪽에 중문과 외문 그리고 옆쪽에 무랑 등으로 이 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정당과 동대청만이 남아있습니다. 정당에서는 전하 만만세 라고 새 긴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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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Road Map 2 14 28 32 34 36 38 40 43 44 47 51 55 56 58 64 66 67 69 70 72 79 86 88 89 92 93 96 99 100 103 104 105 107 108 110 114 115 117 119 124 126 127 129 131 131 133 135 136 137 140 141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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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2 목차 편집자의 말 ------------------------------------------------------------------------------------- 3 한국의 * 상1 개괄 한국의 병역거부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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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s p x f p (x) f (x) VOL. 46 NO. 12 2013. 12 43 p j (x) r j n c f max f min v max, j j c j (x) j f (x) v j (x) f (x) v(x) f d (x) f (x) f (x) v(x) v(x) r f 44 r f X(x) Y (x) (x, y) (x, y) f (x, y) V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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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Midas 2011 06 브라질은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 개최, 고속철도 건설, 2007년 발견된 대형 심해유전 개발에 대비한 사회간접자본 확충 움직임이 활발하다. 리오데자네이로에 건설 중인 월드컵 경기장. EPA_ 연합뉴스 수요 파급효과가 큰 SOC 시설 확충 움직임이 활발해 우 입 쿼터 할당 등의 수입 규제 강화에도 적극적이다.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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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 國史館論叢 第50輯 ( 韓國史時代區分論, 1973)이란 논문이 주목되고 있다. 그는 고려전기 이후 무신집권 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사회는 古代的인 사회에 속하고 조선시대부터가 中世的 封 建社會이며, 武臣執權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는 2세기에 걸친 긴 기간을 겪는 동안에 古 代社會를 극복하여 中世社會를 형성하는 과도기적인 전환기를 경과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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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법 원 제 1 부 판 결 사 건 2012두6605 사업시행계획무효확인등 원고, 상고인 원고 1 외 1인 원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담당변호사 이인재 외 2인 피고, 피상고인 서울특별시 종로구청장 외 1인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외 3인 원 심 판 결 서울고등법원 2012. 2. 2. 선고 2011누16133 판결 판 결 선 고 201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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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October 2005 현 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새롭 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 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 면,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의 믿음이나 지식에 제한을 받는다. 이미지는 언어, 혹은 문자에 선행한다. 그래서 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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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4 45 2012 46 47 2012 48 49 추억의 사진 글 사진 최맹식 고고연구실장 죽음을 감지하고 미리 알아서 죽은 미륵사지 느티나무 이야기 느티나무가 있던 자리 미륵사지는 가장 오랫동안 발굴 작업이 이뤄진 곳 미륵사지는 발굴 종료 당시, 우리나라 발굴 역사상 가장 오랫 동 안 발굴했던 유적이다. 1980년 7월 7일 발굴을 시작해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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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1 4 PART 01 소비윤리를 논의하기에 앞서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소비문화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소비윤리는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문제 인식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현대 소비사회에 나타나는 소비문화의 특성과 그에 따른 문제점에 대해서는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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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요 약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를 겪으며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변 동은 정책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정책은 기존의 정책 방향과 내용을 유지 변화시키면서 정책을 계승 완료하게 된다. 이러한 정책 변화 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과 조직,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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