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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택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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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록 사료집 본문에 있는 사료는 가급적 생략하였습니다.
2 1장 선사시대 단군의 건국 이야기 옛날에 환인(불교의 석가제환인타라 에서 유래)의 서자 환웅이 있었는데, 천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매우 부러워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아차려 삼위 태백( 三 危 太 伯 )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 게 할 만하였다(홍익인간= 弘 益 人 間, 천부인권이 아니 라 인본주의를 표현). 이에 천 부 인(칼[힘], 거울[부], 구 슬[주술]) 세 개를 주어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 웅은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청동기 시대의 주거지인 야산, 구릉지대) 밑에 내려와서 이곳을 신시( 神 市 )라 불렀다. 그는 풍백 우사 운사(농경생활 임을 알 수 있다)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형벌 선악 등을 주관(사유재산의 성립과 계급의 분화에 따른 지배조 직 마련)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리고 교화시켰다(재세 이화= 在 世 理 化 ). 이때 곰과 호랑이가 같은 굴에 살았 는데, 환웅에게 찾아와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환웅이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 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곰은 약속한 지 3 7일(21) 만에 여자가 되었으나, 호랑이는 이를 지키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환웅이 웅녀 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단군왕검( 檀 君 王 儉 )이라 하였다. <삼국유사> 8조의 법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이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 는 곡식으로 배상시키며, 도둑질한 자는 그 집의 노비 로 삼되, 용서받기를 원하는 자는 1인당 50만 전을 내 야 한다. 그러나 비록 용서를 받아 보통 백성이 되더라 도 역시 수치를 씻지는 못해 결혼을 하고자 해도 짝을 구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 아 문단속을 하지 않고 살았다. 여자들은 모두 정조를 지키고 신용이 있어서 음란하고 편벽된 짓을 하지 않 았다(부인정신불음벽= 婦 人 貞 信 不 淫 僻 ). 농민들은 대 나무 그릇에 음식을 먹고, 도시에서는 관리나 장사꾼 들을 본받아서 술잔 같은 그릇에 음식을 먹는다. <한서>, 지리지 공후인( 公 厚 引, 공무도하가) 공무도하( 公 無 渡 河 )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공경도하( 公 竟 渡 河 ) 임이 그예 물을 건너시네. 타하이사( 墮 河 而 死 )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당내공하( 當 奈 公 何 ) 임이여, 이 일을 어찌할꼬. 부여 부여는 구릉과 넓은 못이 많아서 동이( 東 夷 ) 지역 가 운데서 가장 넓고 평탄한 곳이다. 토질은 오곡을 가꾸 기에는 알맞지만 과일은 생산되지 않았다. 사람들 체 격이 매우 크고 성품이 강직 용맹(부여는 중국과 친선관 계여서 좋게 기록<기록으로서의 역사>)하며 근엄하고 후 덕하여 다른 나라를 노략질 하지 않았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편 여름에 사람이 죽으면 모두 얼음을 넣어 장사 지내 며,(장례를 오래 지속시키는 정장< 停 葬 >) 사람을 죽여서 순장을 하는데 많을 때는 백 명 가량이나 된다. 장사 를 후하게 지내는데, 곽은 사용하나 관은 사용하지 않 는다.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되어 오곡이 영글지 않으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려 왕을 바꾸어야 한다. 하거나 죽여야 한다. 하였다.(연맹국가여서 왕의 힘이 약함)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았다. 도둑질을 하면 12배로 변상케 했다. 남녀 간 에 음란한 짓을 하거나 부인이 투기하면 모두 죽였다. 투기하는 것을 더욱 미워하여 죽이고 나서 시체를 산 위에 버려서 썩게 한다. 친정집에서 시체를 가져가려 면 소와 말을 바쳐야 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편 부여(2014.서울시 7급) 시조의 성은 고씨인데, 기골과 모양이 뛰어나고 기이 했다. 일곱 살에 의연함이 더하였고, 스스로 활을 만 들어 쏘니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것을 주몽이라 하니, 이로써 이름을 삼았다. <삼국사기> *개로왕이 북위에 사신을 보내 말하였다. 우리나라는 고구려와 더불어 근원이 부여에서 나왔다. <삼국사기> 2 사료집
3 고구려의 건국 시조 동명성왕은 성이 고씨이며 이름이 주몽이다. 부여의 금와왕이 태백산 남쪽에서 한 여자를 만 나게 되어 물은즉, 하백(물의 신)의 딸 유화라 하는지 라 금와왕이 이상히 여겨 그녀를 방에 가두어 두었는데 햇빛이 따라와 비추었다. 그녀는 몸을 피하 였으나, 햇빛이 따라와 기어이 그녀를 비추었다. 이로 인하여 그녀는 잉태(아버지가 불확실 함)하였고, 마침내 알 하나를 낳았다.(난생설화) 한 사내아이가 껍데 기를 깨고 나왔다. 기골과 모양이 뛰어나고 기이했다. 일곱 살에 의연함이 더하였고, 스스로 활을 만들어 쏘 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것을 주몽이라 하니 이로써 이름을 삼았다. 주몽의 어 머니가 비밀을 알고 아들에게, 장차 이 나라 사람들 이(금와왕의 아들 들) 너를 죽이고자 하니 너의 재간으 로 어디 간들 못 살겠느냐? 지체하다가 욕을 당하지 말고 멀리 도망하여 큰 일을 이루어야 한다. 라고 타 일렀다. 주몽은 그를 따르는 세 사람과 함께 도망하여 강가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리가 없어 강을 건널 수 없었고, 추격병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주몽이 강물에 고하여, 나는 천제의 아들이고 하백의 외손이다. 오 늘 도망하여 여기까지 왔으나 추격병이 쫓아오고 있 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라고 외치자, 물고기와 자 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니 주몽이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졸본천으로 갔다. 그 곳 땅이 기름지 고 아름다우며 산천이 험하였다. 마침내 그곳에 도읍 하기로 하였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고 를 성씨로 삼았다. <삼국사기> 고구려의 특성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평원과 연못이 없어서 계곡을 따라 살며 골짜기 물을 식수로 사용하였다. 좋 은 밭이 없어서 힘들여 일구어도 배를 채우기는 부족 하였다. 사람들의 성품은 흉악하고 포악하여 노략질 하기를 좋아하였다.(고구려는 중국과 대립관계여서 나쁘 게 기록<기록으로서의 역사>) 그 나라 안의 대가 (부족장)들은 농사를 짓지 않으며 좌식자( 坐 食 者, 일 하지 않는 자)가 만여 명이나 된다.(고구려는 산악지대 여서 약탈경제적 요소가 강함<하지만 근본 경제는 농경임>) 하호( 下 戶, 평민)는 식량과 고기와 소금을 멀리서 져 다 이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10월에 하늘에 제사 지 낸다. 온 나라가 대회를 가지므로 동맹( 同 盟 )이라 한 다. 그 풍속은 음란하며, 남녀가 결혼하면 곧 죽 어서 입고 갈 수의를 미리 조금씩 만들어 둔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편 고구려의 정치 조직 나라에는 왕이 있고, 벼슬로는 상가 대로 패자 고추 가 주부 우태 승 사자 조의 선인이 있다. 신분이 높고 낮음에 따라 각각 등급을 두었다. 왕의 종족으로 서 대가는 모두 고추가로 불린다. 모든 대가들은 사자 조의 선인을 두었는데, 명단을 반드시 왕에게 보고 해야 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편 골장제(2013.수능) 우마의 생산이 적고, 싸울 때는 창을 가지고 보병전을 잘하였다. (중략) 집안 사람들이 죽으면 가매장하 였다가 뼈를 추려 커다란 목곽안에 묻었다. 목관 안에 는 살아있을 때의 모습을 나무로 만들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옥저편 민며느리제(2013.지방직 9급) 고구려 개마대산 동쪽에 있는데 개마대산은 큰 바닷 가에 맞닿아 있다, (중략) 그 나라 풍속에 여자 나 이 10살이 되기 전에 혼인을 약속한다, 신랑 집에서는 여자를 맞이하여 다 클 때까지 길러 아내를 삼는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옥저편 동예 동예는 대군장이 없고 한대 이후로 후, 읍군( 邑 君 ), 삼로( 三 老 ) 등의 관직이 있어서 하호( 下 戶 )를 통치하 였다. 예( 濊 )의 풍속은 산천을 중요시하여 산과 내마 다 구분이 있어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동예편 사료집 3
4 삼한 귀신을 믿어서 나라의 읍들이 각기 한 사람씩 세워 천신에게 제사하는 것을 주관하게 하였으니 그 이름 을 천군이라 하였다. 나라마다 각각 소도라 부르는 별 읍이 있는데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긴다. 모든 도망 온 자들이 소도에 이르면 돌려보내지 않으니 도적질을 좋아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삼한편 2장 고대의 정치 중원 고구려비 5월에 고구려 대왕이 상왕공( 相 王 公 )과 함께 동이 매 금(마립간)을 만나 영원토록 우호를 맺기 위해 중원 ( 中 原 )에 왔으나 신라 매금이 오지 않아 실행되지 못 하였다. 이에 고구려 대왕은 태자공( 太 子 公 ) 전부( 前 部 ) 대사자( 大 使 者 )인 다우환노( 多 于 桓 奴 )로 하여금 이곳에 머물러 신라의 매금을 만나게 하였다. 12 월 23일에 신라 매금이 신하와 함께 고구려의 대사자 다우환노를 만났으며,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고구려 군대로 하여금 신라 국내의 중인( 衆 人 )을 내지( 內 地 ) 로 옮기게 하였다. 중원 고구려비 광개토 대왕의 왜구 격퇴(2014.법원직) 영락(광개토대왕의 연호) 9년(399) 기해에 백잔( 白 殘,백 제)가 서약을 어기고 왜와 화통하므로 왕이 평양으로 내려갔다. 신라 왕(내물마립간)이 사신을 보내 아뢰기 를, 왜군들이 국경에 가득 차 성지( 城 地 )를 부수고, 노략질을 하니 구원을 요청합니다. 하였다. 이에 왕 은 영락 10년(400)에 보병과 기병 도합 5만 명을 보 내 신라를 구원하였다. 남거성을 쳐서 신라성에 이르 니, 그곳에 왜군이 가득했다. 고구려 군대가 도착하자 왜군이 퇴각하였다.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 ( 任 那 加 羅, 금관가야로 추정)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곧 함락되었다. 그리고 신라인들을 안치시켜 지키게 하였다. 신라의 농성을 공략하니 왜구는 위축되어 궤 멸되었다. 광개토 대왕릉 비문 해설 4세기 무렵 고구려는 신라 지역에 침입한 왜구를 격 퇴하는 과정에서 신라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해 지역에 있던 금관가야가 쇠퇴하고 내륙 지역의 대가야 가 새로운 맹주국으로 성장하였다. 한편, 이 자료는 일본 학 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임나일본부설 의 근거로 이용되고 있 다. 일본 학자들은 문장 전체의 주어를 왜로 보아, 왜가 신 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 가야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 로 삼았다고 해석함으로써 일본의 한국 침략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이용하였다. 자기 나라 왕을 대왕 이라 칭하고 신라 왕을 매금이 라 표기했다. 당시 고구려 국력의 강대함과 독자적 천 하관, 문화의식을 보여 준다. 5세기 장수왕 때 건립되 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제의 성립 과정 주몽은 큰 아들 비류, 둘째 아들 온조 두 아들(유리)을 두었다. 주몽은 본시 북부여에도 아들을 두었는데, 그 가 찾아오자 그를 태자로 삼았다. 비류와 온조는 태자 를 두려워하여 마침내 오간, 마여 등 10인의 신하를 거느리고 남으로 떠나니 그를 따르는 백성이 많았다. 마침내 한산에 이르러 비류는 미추홀(현재의 인천)에 자리를 잡고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해 10명 의 신하의 보필을 받으니 이를 십제( 十 濟 )라 하였다. 비류는 미추홀이 습하고 물이 짠 곳이어서 살지 못하 고 돌아와 위례를 보매 백성들이 평안히 살고 있는지 라 부끄러워 죽었다. 비류의 신하가 모두 위례에 합류 하고 즐거이 온조를 따르게 되자 이름을 백제( 百 濟 ) 라 고쳤다. 국왕의 핏줄이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부여 를 성씨로 삼았다. 시조는 온조왕이며, 그 아버지는 추모 또는 주몽이라 한다. 온조왕 원년 5월에 동명왕 묘를 세웠다. 다루왕 원년 정월에 왕이 시조 동명왕 묘에 배알하였다. <삼국사기> 4 사료집
5 백제의 관등(2014.경찰간부) 이 나라의 의복은 고구려와 대략 같다. 나솔 이상 은 관( 冠 )을 은꽃으로 장식한다. 장덕은 자주색 띠, 시덕은 검은 띠, 무독부터 극우까지는 모두 흰 띠 를 착용한다. 칠지도(2001 법원직) 이 칼은 모든 군대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마땅히 후왕( 侯 王 )에게 줄 만하다. 아직까지 이런 칼이 없었다.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 寄 生 聖 音 )이 일부러 왜왕을 위해 만들었다. 후세에 전하 도록 하라. 백제의 해외 진출 백제국은 본래 고려(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 1,000여 리에 있었다. 그 후 고려가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는 요서를 차지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을 진평 군(진평현)이라 한다. <송서> 처음 백가( 百 家 )로서 바다를 건넜다 하여 백제라 한 다. 진대( 晉 代 )에 고려(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 니 백제 역시 요서, 진평의 두 군을 차지하였다. <통전> 그 나라(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 진대( 晉 代 )에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 역시 요서, 진평의 두 군의 땅을 차지하여 스스 로 백제군을 두었다. <양서> 고구려와 백제의 전성시에는 백만의 강병으로 남으로 양쯔 강 유역인 오월을 침공하고, 북으로는 산둥 지방 과 요서 지방에 걸친 지역을 흔들어서 중국의 큰 두 통거리가 되었다. <삼국사기> 근초고왕의 고국원왕 공격(2014.법원직) 겨울에 왕이 태자와 함께 정예 군사 3만 명을 거느리 고 고구려에 쳐들어가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고구려 의 왕 사유가 힘을 다해 싸워 막다가 빗나간 화살에 맞아 죽었다.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국서 우리 백제는 고구려와 함께 조상이 부여에서 나왔으 므로 선조들의 시대에는 옛 정을 두텁게 하여 지냈더 니 그(장수왕)의 조상 소(고국원왕)가 경솔하게 이웃 나라와 우호 관계를 깨뜨리고 직접 군사를 거느려 저 희 국경에 함부로 침입하였을 때, 저의 조상 수(근구 수왕)가 군사를 정비하여 번개같이 내달아 기회를 포 착하여 그들을 추격하여 싸움이 벌어지자마자 소의 머리를 베어 달았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한동안 그들 이 감히 남쪽으로 얼씬 못하다가, 고구려가 점차 강성 해져 우리는 능멸과 침략을 받게 되어 원한이 맺히고 화를 당함이 30여 년, 재물이 다하고 힘이 다하여 점 차 저절로 쇠약해졌습니다. 만일 황제의 인자와 간절 한 긍휼( 矜 恤,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줌)이 멀리 미치지 않는 것이 없다면 속히 장수를 보내어 우리를 구해 주소서. <삼국사기> 결혼 동맹 백제 동성왕은 신라 이벌찬 비지의 딸과 혼인한 후 병사 3천 명을 보내 신라군을 도와 고구려 병사의 포 위를 풀게 하였다. <삼국사기> 관산성전투(2013.지방직 9급) 왕은 신라를 습격하기 위하여 친히 보병과 기병 50명 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 拘 川 )에 이르렀는데, 신라의 복병이 나타나 그들과 싸우다가 살해되었다. 사료집 5
6 신라의 건국 이야기 진한 땅의 여섯 마을 중 하나인 고허촌의 촌장이 나 정이라는 우물의 옆의 숲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말은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그 자리에는 큰 알이 하나 있었다. 그 알에서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와 촌장은 그 아이를 데려다 길렀다. 여섯 마을 사 람들은 그 출생이 신기하고 이상했으므로 그를 높게 받들고 존경하여 그를 임금으로 세웠다. 큰 알이 박과 같았으므로 성을 박으로 삼았다. <삼국사기> 진흥왕 순수비 8월 21일 계미에 태왕( 太 王 )이 국경을 돌아보고 돌에 새겨 기록하였다. 세상의 도리가 진실에 어긋나고, 그 윽한 덕화가 펴지지 아니하면 사악함이 서로 다툰다. 따라서 제왕은 연호를 세워 스스로를 닦아 백성을 편 안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황초령비 단양적성비(2010.정보통신 경찰) 이때에 이곳 출신의 야이차에게 교( 敎 )하시기를 중 에 옳은 일을 하는 데 힘을 쓰다가 죽게 되었으므로 이 까닭으로 이후 그의 처인 삼( 三 ) 에게는 이( 利 ) 를 허( 許 )하였다. 교( 敎 )하기를 이후로부터 나라 가 운데에 야이차와 같이 옳은 일을 하여 힘을 쓰고 다 른 사람으로 하여금 일하게 한다면 만약 그가 아들을 낳건 딸을 낳건 나이가 적건 (많건) 대를 이어 포상하 리라. 원광의 걸사표 왕이 고구려가 영토를 자주 침범함을 불쾌하게 여겨, 수나라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를 치려고 원광에게 걸 사표를 지으라 하였다. 원광이 가로되, 자기가 살려 고 남을 멸하는 것은 승려의 도리가 아니나, 제가 대 왕의 땅에 살며 대왕의 곡식을 먹고 있으니 어찌 감 히 명령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대가야(2012 경찰간부) 시조는 이진아시왕이고, 그로부터 도설지왕까지 대략 16대 520년이다. 최치원이 지은 석이정전 에는, 가 야산신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지에게 감응되어 뇌질 주일과 뇌질청예 두 사람을 낳았다. 뇌질주일은 곧 이 나라 의 시조인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뇌질청예 는 금관국의 시조인 수로왕의 별칭이다. 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을지문덕의 여수장우중문( 與 隋 將 于 仲 文 )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궁구했고, 오묘한 계산 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 전쟁에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도교의 특징)을 알았으면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삼국사기> 연개소문(2014.경찰간부) 동부대인 대대로가 사망하자, 아들인 그가 마땅히 그 뒤를 이어야 할 것이지만, 나라 사람들이 성품이 잔인 하고 포악하다 하여 미워하였기 때문에 뒤를 잇지 못 하게 되었다. 그가 머리를 조아리며 여러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그 직위를 임시로 맡기를 청하면서, 만약 옳 지 않은 행위를 하면 폐하여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하 였다. 여러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마침내 그 직에 오 를 것을 허락하였다. 김유신(2014.경찰간부) 이 날 소정방이 부종관 김인문 등과 함께 기벌포에 도착하여 백제 군사와 마주쳤다. 정방은 신라군이 늦게 왔다는 이유로 군문에서 신라 독군 김문영의 목 을 베고자 하니, 그가 군사들 앞에 나아가 황산 전투 를 보지도 않고 늦게 온 것을 이유로 우리를 죄주려 하는구나. 죄도 없이 치욕을 당할 수는 없으니, 결단 코 먼저 당나라 군사와 결전을 한 후에 백제를 쳐야 겠다. 라고 말하였다. 6 사료집
7 만파식적( 萬 波 息 笛 )(2006.서울시 9급) 이 섬의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합하여 하나가 되는지라. 왕은 이 기이한 소식을 듣고 현장에 거동하였다. 이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 의 이치를 물으니, 용은 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 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 가 나는지라, 이 대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삼국사기> 해설 만파식적은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감은 사를 지은 후(682) 용으로부터 영험한 대나무를 얻어 만들 었다는 피리로, 단군 이야기에 나오는 천부인( 天 符 印 ), 진평 왕의 천사옥대( 天 賜 玉 帶 ), 이성계의 금척( 金 尺 ) 등과 같이 건 국할 때마다 나타난 신성한 물건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것 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설화는 신문왕 때의 전제 왕권 강 화와 왕실의 번영 평화를 상징한다. 토지 제도의 변화 신문왕 7년(687) 5월에 문무 관료전을 지급하되 차등 을 두었다. 신문왕 9년(689) 1월에 내외관의 녹읍을 혁파하고 매 년 조( 租 )를 내리되, 차등 있게 하여 이로써 영원한 법식을 삼았다. 성덕왕 21년(722) 8월에 처음으로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였다. 경덕왕 16년(757) 3월에 여러 내외관의 월봉을 없애 고 다시 녹읍을 나누어 주었다. 소성왕 원년(799) 3월에 청주 거노현으로 국학생의 녹읍을 삼았다. 삼한 의식의 변화 최치원은 마한은 고구려,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 라고 말하였다. 춘추(무열왕)는 김유신과 한마음으로 정치를 하여 삼 한을 통일하였으니 나라에 공을 세운 것이 매우 크다. 당나라 현종이 성덕왕에게 조서를 내려 삼한이 사이 좋게 잘 지내 오늘날 어질고 의로운 나라로 일컬어지 고 있다. 라고 하였다. 태조(왕건)가 견훤에게 지난번에 삼한이 화를 당하고 흉년으로 전국이 황폐해져 백성들이 많이 도적이 되 었다. 라고 말하였다. <삼국사기> 4년(788) 가을에 나라 서쪽 지방에 가뭄이 들고 누리 가 발생하였으며 도적이 많이 일어났으므로, 왕이 사 신을 보내 위로하고 안정시켰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원성왕 4년 7년(815) 가을 8월 초하루 기해에 일식이 있었다. 서 쪽 변방의 주와 군에 큰 기근이 들고 도적이 벌떼처 럼 일어났으므로 군사를 내어 이를 토벌하였다. 큰 별 이 익성( 翼 星 )과 진성( 軫 星 ) 사이에 나타나 서쪽으로 향하여 갔는데, 뻗쳐진 빛의 길이가 여섯 자쯤 되고 너비가 두 치( 寸 ) 가량 되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덕왕 7년 3년(821) 봄에 백성들이 굶주려 자손을 팔아 생활하 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덕왕 13년 3년(889) 나라 안의 여러 주와 군에서 공물과 조세 ( 貢 賦 )를 보내오지 않아, 나라의 창고가 텅 비어 나라 의 씀씀이가 궁핍하게 되었으므로 왕이 사자를 보내 독촉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도적들이 곳곳에서 벌 떼 처럼 일어났다. 이에 원종( 元 宗 )과 애노( 哀 奴 ) 등이 사벌주를 근거로 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왕이 나 마 영기( 令 奇 )에게 명하여 붙잡게 하였다. 영기가 적 의 보루를 멀리서 바라보고는 두려워 앞으로 나아가 지 못하였으나, 촌주 우련은 힘껏 싸우다가 죽었다. 왕이 칙명을 내려 영기를 목 베고 나이 10여 세 된 우련의 아들로 촌주의 직을 잇게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성왕 3년 당나라 소종 경복 원년은 신라 진성왕의 재위 6년이 다. 이때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가 곁에 있어서 국권 을 농간하니 기강이 어지럽고 해이하였으며, 기근이 더해지니 백성들은 떠돌아다니고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삼국유사> 기이 2 후백제 견훤 사료집 7
8 당나라 19대 황제(소종, )가 중흥을 이룰 때, 전쟁과 흉년 두 가지 재앙이 서쪽(당)에서 멈추어 동 쪽(신라)으로 왔다. 어디고 이보다 더 나쁜 것이 없었 고 굶어 죽고 싸우다 죽은 시체가 들판에 즐비하였다. 해인사 묘길상탑기 발해의 건국 과정 발해 말갈의 대조영은 본래 고구려의 별종( 別 種 )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조영은 가속을 이끌고 영주로 옮 겨 와 살았다. 만세통천( 萬 世 通 天 ) 연간( )에 거란의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키니, 조영은 말갈의 걸 사비우와 함께 무리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망명하여 요해지를 차지하여 수비를 굳혔다. 진충이 죽자, 측천 무후가 이해고에게 명하여 남은 무리를 토벌케 하니, 해고는 먼저 걸사비우를 무찔러 베고 천문령을 넘어 조영을 바짝 뒤쫓았다. 조영이 고구려 말갈의 무리를 연합하여 해고에게 항거하자, 왕의 군대는 크게 패하 고 해고만 탈출하여 돌아왔다. 이때 마침 거란과 해 ( 奚 )가 모두 돌궐에 항복하므로 길이 막혀서 그들을 토벌할 수 없게 되었다. 조영은 마침내 무리를 거느리 고 동으로 가서 계루의 옛 땅을 차지하고, 동모산에 웅거하여 성을 쌓고 살았다. <구당서> 무왕(2013.지방직 9급) 왕이 신하들을 불로 흑수말갈이 처음에는 우리에게 길을 빌려서 당나라와 통하였다. (중략) 그런데 지금 당나라에 관직을 요청하면서 우리나라에 알리지 않았으니, 이는 분명히 당나라와 공모하여 우리나라 를 앞뒤에서 치려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동생 대문예와 외숙 임아상으로 하여금 군사를 동원 하여 흑수말갈을 치려고 하였다. <신당서> 발해와 통일 신라의 문화적 경쟁 875년 발해의 오소도가 신라의 이동보다 높은 점수를 얻어 수석의 영광을 차지하자, 최치원은 일국의 수치 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라며 치욕스럽게 여겼다. 그 후 신라의 최언위가 오소도의 아들인 오광찬보다 높 은 점수를 얻어 합격하자, 당에 있던 오소도가 자기 아 들을 최언위보다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신당서> 해설 발해와 신라의 대립은 당에서 등제 서열 같은 문화 적인 우월 경쟁으로 나타났고, 이는 당의 이이제이 정책으 로 더욱 조장되었다. 발해는 처음에는 당과의 무력 대결을 피할 수 없어 8세기 초 장문휴를 보내어 산둥 지방을 공격 하기도 하였으나 8세기 후반 이후 친선 관계를 맺었다. 발해의 촌 발해는 사방 2,000리며, 곳곳에 마을이 있는데 모두 말갈 부락이다. 백성에는 말갈이 많고 토인(고구려 유 민)은 적다. 모두 토인이 촌장을 하는데, 대촌의 촌장 은 도독이라 부른다. <유취국사> 3장 고대의 경제 삼국의 수취 제도(2008. 지방직 7급) 부세( 賦 稅 )는 명주 베 및 곡식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바에 따르며, 빈부( 貧 富 )를 헤아려 차등 있게 내 도록 한다. <주서> 열전 이역 고려 인세( 人 稅 )는 베 5필에 곡식 5석이다. 유인( 遊 人 )은 3 년에 한 번을 내는데, 10인이 세포( 細 布, 가는 실로 짠 고운 베) 1필을 같이 낸다. 조( 租 )는 호( 戶 )마다 1 석, 차등 호는 7두, 하등 호는 5두이다. <수서> 열전 동이 고려 부세( 賦 稅 )는 베 명주 삼베 및 쌀 등으로, 그 해의 풍흉을 헤아려 차등 있게 내도록 하였다. <수서> 열전 이역 백제 2월에 한수 동북의 모든 부락의 15세 이상 되는 장정 을 징발하여 위례성을 수리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왕 42년 8 사료집
9 일선계( 一 善 界 ) 정부( 丁 夫 ) 3천 명을 징발해서 삼년 ( 三 年 )과 굴산( 屈 山 ) 두 성을 고쳐 쌓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소지마립간 8년 가 있었다. 바다 가운데 섬에서 길러 필요할 때 활로 쏘아서 잡아먹었다. 곡식을 꾸어서 갚지 못하면 노비 로 삼았다. <신당서> 진대법 7월 서리가 내려 곡물이 상하니 백성이 굶주리므로 창고를 열어 백성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겨울 10 월에 왕이 질양에서 사냥하실 때 길가에서 어떤 사람 이 우는 것을 보고 어째서 우느냐고 물었다. 대답하되 신은 가난하여 품팔이로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올 해는 흉년이 들어 품팔이를 할 수 없고, 한 되나 한 말의 양식도 얻어 쓸 수 없어 웁니다. 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아, 내가 백성의 부모가 되어 백성을 이러한 극한 지경에 이르게 하니 나의 죄다. 하고 의 복과 먹을 것을 주어 살아가게 했다. 그리고 곧 내외 관청에 명하여 홀아비, 과부, 고아, 그리고 늙고 병들 었거나 가난하고 궁핍하여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는 자들을 조사하여 구휼토록 하였다. 또 소속 관리에게 명하여 매년 봄 3월부터 7월까지 관청의 곡식을 내어 백성의 식구가 많고 적음에 따라 등급을 정하여 꾸어 주고 겨울 10월에 갚게 하는 규정을 만드니 내외가 크게 기뻐하였다. <삼국사기> 해설 통일이 되면서 왕실과 귀족은 이전보다 풍족한 경제 기반을 가졌다. 귀족은 국가에서 준 토지와 곡물 외에 물려 받은 토지, 노비, 목장, 섬도 가지고 있었다. 서민을 상대로 한 고리대업도 수입원의 하나였다. 귀족은 당이나 아라비아 에서 수입한 비단, 양탄자, 유리그릇, 귀금속 등 사치품을 사용하였다. 4장 고대의 사회 정복민을 노비로 만든 사례 고구려 사유(고국원왕)가 보병과 기병 2만을 거느리 고 와서 치양(황해도 백주)에 주둔하고 군사를 나누 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왕(근초고왕)이 태자에게 군사 를 주니 곧장 치양으로 가서 고구려군을 급히 깨뜨리 고 5,000명을 사로잡았다. 그 포로를 장사에게 나누 어 주었다. <삼국사기> 삼국의 수취 제도 (백제) 다루왕 6년(33) 2월에 나라 남쪽의 주 군에 영을 내려 처음으로 논을 만들게 하였다. 구수왕 9년 (222) 봄 2월에 담당 관청에 명하여 제방을 수축하게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 지증 마립관 3년(502) 3월에 주 군의 책임자 에게 각각 명하여 농사를 관장케 하였고, 처음으로 소 를 부려 논밭갈이를 하였다. <삼국사기> 통일신라 하대 귀족의 생활 재상가에는 녹( 祿 )이 끊이지 않았다. 노동( 奴 憧 )이 3,000명이고 비슷한 수의 갑옷과 무기 소 말 돼지 정복민을 노비에서 해방한 사례 가야가 배반하니 왕(진흥왕)이 이사부에게 토벌하도 록 명령하고 사다함에게 이를 돕게 하였다. 사다함이 기병 5,000명을 거느리고 들이닥치니 일시에 모두 항 복하였다. 공을 논하였는데 사다함이 으뜸이었다. 왕 이 좋은 농토와 포로 200명을 상으로 주었다. 사다함 은 세 번 사양했으나 왕이 굳이 주자, 받은 사람은 놓 아주어 양민을 만들고 농토는 병사에게 나누어 주었 다. 이를 보고 나라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였다. <삼국사기> 임신서기석(2012.사회복지직) 임신년 6월 16일 두 사람이 함께 맹서하여 쓴다. 지 금으로부터 3년 이후 충도( 忠 道 )를 유지하고 과실이 없기를 하늘에 맹서한다. 만약 이를 잃으면 하늘로부 터 큰 죄를 얻을 것을 맹서한다. 만약 나라가 불안하 사료집 9
10 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지면 가희 (충도를) 행할 것 을 맹서한다. 또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서 하였다. 시 상서 예기 춘추를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 서하되 3년으로 하였다. 골품제의 성립 배경 신라는 그 관료를 세울 때 친속( 親 屬 )을 상으로 하며, 그 족의 이름은 제1골, 제2골이라 하여 하눈다. 형제 의 딸이나 고종 자매, 이종 자매를 모두 처로 맞아들 인다. 왕족을 제1골로 하여 처도 같은 족인데 자식을 낳으면 모두 제1골로 한다. 제2골의 여자와 혼인하지 않으며 비록 혼인하더라도 언제나 첩으로 삼는다. <신당서> 해설 골품제는 처음에는 왕족을 대상으로 한 골제와 왕경 내의 일반 귀족들을 대상으로 한 두품제가 별개의 체제로 성립하였다. 진평왕 때에 이르러 왕족 내부에서 다시 성골 이 분리되어 성골과 진골이라는 2개의 골과 6두품에서 1두 품에 이르는 6개의 두품 등 모두 8등급의 신분으로 구성되 었다. 7세기 중반에 성골이 사라졌고 통일 이후에는 1두품 에서 3두품에 이르는 신분의 구별도 차츰 사라져 일반 백성 과 비슷하게 되었다. 골품에 따른 일상생활 규제 평민의 경우 모자는 명주와 베를 쓰고, 겉옷과 바지는 베를 쓰고, 띠는 구리나 철을 쓰고, 가죽신은 주름무 늬로 된 가죽과 자색 가죽을 금하고, 가죽 띠는 철과 구리로 장식하고, 신은 삼 이하를 쓰고 베는 12승 이 하를 쓴다. 평민 여자의 경우 겉옷은 무늬 없는 베나 명주를 쓰고, 속옷은 거친 명주 또는 민무늬 명주나 베를 쓰고, 바지는 거친 명주 이하를 입고, 겉치마는 명주 이하를 쓴다. 옷고름은 무늬 있는 비단 이하를 쓰고 띠는 무늬 있는 비단이나 명주 이하를 쓰고, 버 선목은 무늬가 없는 것을 쓰고 버선은 거친 명주나 민무늬 명주를 쓴다. 빗은 흰 상아와 뿔 이하를 쓰고 비녀는 놋쇠나 돌 이하를 쓰고 색깔은 4두품 여자와 같다. <삼국사기> 잡지 제2 복색 4두품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는, 말 안장은 자단 침 향 회양목 홰나무 산뽕나무를 금하고 또한, 금 은 옥으로 꾸미는 것을 금하고 안장 언치(안장 밑에 까 는 방석)는 쇠가죽과 말가죽을 쓰고 안장 방석은 가 죽을 쓰고, 말다래는 버드나무나 대나무를 쓰고, 재갈 은 쇠를 쓰고, 등자는 나무와 쇠를 쓰고, 가슴걸이와 고들개는 쇠힘줄이나 삼 같은 것으로 잡아매게 하였다. <삼국사기> 잡지 제2 거기( 車 騎 ) 골품제의 모순 최치원이 당에 가서 벼슬을 하다가 고국에 돌아왔는 데 전후에 난세를 만나 처지가 곤란하였으며 걸핏 하 면 모함을 받아 죄에 걸리겠으므로 스스로 때를 만나 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다시 벼슬할 뜻을 두지 않았 다. 그는 세속과 관계를 끊고 자유로운 몸이 되어 숲 과 강이나 바닷가에 정자를 짓고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으며 책을 벗하여 자연을 노래하였다. <삼국사기> 설계두는 신라 귀족의 자손이다. 일찍이 친구 네 사람 과 술을 마시며 각기 그 뜻을 말할 때 신라는 사람을 쓰는데 골품을 따져서 그 족속이 아니면 비록 뛰어난 재주와 큰 공이 있어도 한도를 넘지 못한다. 나는 멀 리 중국에 가서 출중한 지략을 발휘하고 비상한 공을 세워 영화를 누리며, 높은 관직에 어울리는 칼을 차고 천자 곁에 출입하기를 원한다. 라고 하였다. 그는 621 년 몰래 배를 타고 당으로 갔다. <삼국사기> 해설 골품 제도는 신라 사회를 이끌어간 근간이 되는 신 분 제도였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골 귀족의 특권과 지 위를 보장하는 독점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신 라 사회의 발전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신라에서는 진골 귀족이 아니면 중앙이나 지방의 장관직에 오르지 못했 음은 물론, 결혼이나 가옥 수레 등의 일상생활과 사회 활동 역시 골품에 따라 제한되었다. 흥덕왕의 사치 금지령 사람에게는 위와 아래가 있고, 벼슬에도 높음과 낮음 이 있어 명칭과 법식이 같지 않고 의복 또한 다른 것 이다. 그런데, 세상의 습속은 점점 각박해지고 백성들 은 다투어 사치와 호화를 일삼고 오로지 외래품의 진 10 사료집
11 귀한 것만을 숭상하고 토산품의 야비한 것을 싫어한 다. 그리하여 예절이 분수에 넘치는 데 빠지고 풍속이 파괴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옛 법에 따라 엄한 명령을 베푸는 것이니, 그래도 만약 일부러 범하는 자 가 있으면 국법에 따라 엄히 다스릴 것이다. <삼국사기>, 흥덕왕 9년 5장 고대의 문화 국학 국학은 예부에 속한다. 신문왕 2년에 설치하였는데, 경덕왕이 태학으로 고쳤고, 박사 조교가 있고, 대사는 2명으로 진덕왕 5년에 두었는데, 경덕왕이 주 부로 고쳤다. 교수하는 법은 주역 상서 모시 예기 춘추좌전 문선으로 나누어 학업을 닦게 하였는 데, 박사나 조교 1명이 혹은 예기 주역 논어 효경을 가르치고, 혹은 춘추좌전 모시 논어 효경을, 혹은 상서 논어 효경 문선으로써 교수한다. <삼국사기> 설총의 <화왕계> 어떤 이가 화란(모란)에게 말하였다. 두명 장미꽃과 할미꽃이 왔는데 어느쪽을 취하고 어느쪽을 버리시겠 습니까? 화왕이 말하였다. 장부(할미꽃)의말도 일리 가 있지만 어여쁜 여자(장미)는 얻기가 어려운 것이 니 이일을 어떻게 할까? 장부가 다가서서 말하였다. 저는 대왕이 총명하여 사리를 잘 알줄 알고 왔더니 지금 보니 그렇지 않군요. 무릇 임금된 사람치고 간사 한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정직한 자를 멀리하지 않는 이가 적습니다. 이때문에 맹가(맹자)는 불우하게 일생 을 마쳤으며 풍당(중국 한나라 사람)은 머리가 희도 록 하급 관직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옛날부터 도리가 이러하였거늘 저인들 어찌하겠습니까? 화왕이 대답 하였다. 내가 잘못했노라 내가 잘못했노라 이에 왕 (신문왕)이 얼굴 빛을 바로 하며 말하였다. 그대(설 총)의 우화는 진실로 깊은 뜻이 담겨 있도다. 기록해 두어 왕자의 경계로 삼게 하기 바란다. 라고 하고는 설총을 높은 관직에 발탁하였다. <삼국사기> 최치원의 난랑비 서문 독서삼품과(2013.법원직) 원성왕 5년 9월, 자옥을 양근현(양평)의 수령으로 삼 으니 집사 모초가 반박하여 말하기를 자옥은 문적(독 서삼품과)으로 관직에 나오지 않았으니 수령직을 맡 길 수 없다. 하였다. 이에 시중이 말하기를 그가 문 적 출신은 아니지만 일찍이 당에 가서 학생이 된 일 이 있으니 어찌 등용하지 못하겠는가. 하였다. 이에 왕이 좇았다. <삼국사기> 춘추죄씨전이나 예기나 문선을 읽어 그 뜻을 잘 통하 고 논어 효경에도 밝은 자를 상( 上 )으로 하고, 곡례 논어 효경을 읽은 자를 중( 中 )으로 하고, 곡례 효경 을 읽은 자를 하( 下 )로 하되, 만일 5경 3사와 제자백 가의 서( 書 )를 능히 겸통하는 자가 있으면 등급을 넘 어 등용한다. <삼국사기> 나라에 현묘한 진리(현묘지도, 금척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고 한다. 그 가르침을 세운 근원은 천제 환웅의 신시 배달국 역사에 상세히 실려 있다. 질적인 내용은 유교 도교 불교의 삼교의 핵심이 모두 다 포함되어 있으며, 우리 풍류교(천부사상 삼일사상 하나사상) 에서 접목되어 다른 종파로 파생되어 나간 것이다. 이 를 테면, 집에 들어오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 가면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공자) 유교의 가 르침이요, 매사를 근본(천부 하나)에 충실하면 일이 저절로 이루어지며, 말이 없이도 가르침이 행해지는 것은 주주사(노자) 도교의 근본이며, 모든 악한 일은 짖지 않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실행함은 축건태자 (석가)의 불교로 변해 간 것이다. <삼국사기> 최치원의 토황소격문(역적 황소에게 보내는 격문) 옛날 동탁처럼 배를 불태울 때가 되어서는, 사슴 처럼 배꼽을 물어뜯는 후회가 있을지라도 시기는 이 사료집 11
12 미 늦을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진퇴( 進 退 )를 참작하 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라. 배반하다가 멸망하기보 다 어찌 귀순하여 영화롭게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다만, 너의 소망은 반드시 이루게 될 것이니, 장부의 할 일을 택하여 표범처럼 변하기를 기할 것이요, 못난 이의 소견을 고집하여 여우처럼 의심만 품지 말라. 티끌 속에 시방( 十 方 )을 머물고 일체( 一 切 )의 티끌 속 에 또한 이와 같다. 무량( 無 量 )한 먼 겁( 劫 )이 곧 한 찰나( 刹 那 )요, 한 찰 나( 刹 那 )가 그냥 무량( 無 量 )한 겁( 劫 )이다. 해설 황소의 난은, 당나라 말기 안 사의 난 이후 지방 절 도사들이 세력을 점차 확대하면서 중앙의 지배력이 흔들리 고 백성에 대한 수탈이 강화되자, 농민들 중심으로 일어난 반란이다. 이 난 이후 당나라는 23년간 존속하지만 명맥만 유지했을 뿐, 근본적으로 당나라가 붕괴되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의 대중화(2013.국가직 7급) 원효는 이미 계를 범하고 설총을 낳은 후로는 속인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라 일컬었다. 우 연히 광대들이 놀리는 큰 박을 얻었는데 그 모양이 괴이했다. 그 모양대로 도구를 만들어 화엄경의 일체 무애인은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난다. 라는 문구에서 이 름 지어 무애라 하며 곧 노래를 지어 세상에 퍼뜨렸 다. 일찍이 이것을 가지고 많은 촌락에서 노래하고 춤 추며 교화하고 음영하여 돌아왔으므로, 가난하고 무 지몽매한 무리들까지도 모두 부처의 호를 알게 되었 고, 모두 나무아미타불 을 부르게 되었으니 원효의 법 화는 컸던 것이다. <삼국유사> 의상(2012.사회복지직) 문무왕이 도읍의 성을 새롭게 하고자 의상에게 문의 하였다. 의상은 말하였다. 비록 궁벽한 시골과 띳집 ( 茅 屋 )이 있다 해도 바른 도( 道 )만 행하면 복된 일이 영구히 지속될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면 여러 사람 이 수고롭게 하여 훌륭한 성을 쌓을지라도 아무 이익 이 없을 겁니다. 왕이 곧 공사를 그쳤다. 신라 말기 선종 불교의 영향 승려 도의가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가 당나라 서당 대 사의 깊은 뜻을 보고 지혜의 빛이 스승과 비슷해져서 돌아왔으니, 그가 그윽한 이치를 처음 전한 사람이다. 그러나 메추라기의 작은 날개를 자랑하는 무리 들이 큰 봉새가 남쪽으로 가려는 높은 뜻을 헐뜯고, 기왕에 공부했던 경전 외우는 데만 마음이 쏠려 선종 을 마귀 같다고 다투어 비웃었다. 그래서 도의는 빛을 숨기고 자취를 감추어 서울에 갈 생각을 버리고 마침 내 북산에 은둔하였다. 봉암사 지증 대사 적조 탑비문 화엄 사상(2010.법원직) 법과 성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으며( 法 性 圓 融 無 二 相 ), 모든 법은 움직임이 없이 본래 고요하다( 諸 法 不 動 本 來 寂 ). 하나 속에 모든 것이요, 많은 것 속에 하나다( 一 中 一 切 多 中 一 ). 하나가 곧 모든 것이요, 많은 것이 곧 하나이다( 一 卽 一 切 多 卽 一 ). 한 티끌 속에 시방 세계가 머금어져 있고( 一 微 塵 中 含 十 方 ), 모든 티끌 속 이 또한 이와 같다( 一 切 塵 中 亦 如 是 ). 헤아릴 수 없이 먼 시간이 곧 한 생각이요( 無 量 遠 劫 卽 一 念 ), 한 생각이 곧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다( 一 念 卽 是 無 量 劫 ). 해설 교종은 경전과 석론( 釋 論 :석가의 가르침) 등을 중 시하는 종파인 반면 선종은 불립문자 즉 경전보다 참선을 중시하는 종파로서 당나라 때 달마대사와 조계 혜능 등에 의해 시작된 종파이다. 선종은 통일 전후에 신라에 수용되 었으나 널리 퍼지지는 못하였다. 784년에 도의가 본격적으 로 남종선을 배우고자 당나라에 간 이래 혜소, 혜철, 무염 등이 뒤를 이었고, 이들 선사들은 820년대 초에 처음 귀국 한 도의를 뒤따라 차례로 귀국하였다. 신라 사회의 변화로 선종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으나 도의 자신 은 교종의 반발로 서울인 경주에서 교화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고 설악산에 은거하고 말았다. 일( 一 )안에 일체( 一 切 )요, 다( 多 )안에 ( 一 )이다. 일( 一 ) 이 곧 일체( 一 切 )요, 다( 多 )가 곧 일( 一 )이다. 한 작은 12 사료집
13 사택지적비문 갑인년 정월 9일, 내지성의 사택지적은 해가 쉬이 감 을 슬퍼하고 달이 어렵사리 돌아옴이 서러워 금을 캐 어 귀중한 당을 짓고 옥을 파서 보배로운 탑을 세웠다. 우뚝 솟은 자애로운 모습은 빛을 토해 구름을 보내고, 뾰족하니 슬픈 모습은 성스러운 밝음을 머금어. <삼국사기> 제망매가(월명사) 살고 죽는 길이 여기 있기도 두렵고 여기 있고 싶어 도 안 되어 간다는 말도 못하고 가십니까 가을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서 나고도 가는 곳 모르는구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나리. 나, 도 닦으며 기다리리라. <삼국유사> 6장 중세의 정치 견훤 견훤은 상주 가은현(경북 문경 가은) 사람으로 본래 의 성은 이씨였는데, 후에 견으로 성씨를 삼았다. 아 버지는 아자개이니 농사로 자활하다가 후에 가업을 일으켜 장군이 되었다. 지금 내가 도읍을 완산(전주)에 정하고, 어찌 감히 의자왕의 쌓인 원통 함을 씻지 아니하랴. 하고, 드디어 후백제 왕이라 스 스로 칭하고 관부를 설치하여 직책을 나누었다. <삼국사기> 궁예(2014.경찰간부) 궁예는 신라 사람으로 성은 김씨이고, 아버지는 제47 대 현안왕 의정이며, 어머니는 현안왕의 후궁이었다.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스스로 선종( 善 宗 )이 라 이름지었다. 신라 말기에 정치가 거칠어지고 백성들은 흩어져서 왕성( 王 城 )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주현( 州 縣 ) 중에서 조정을 반대하거나 지지하는 수가 반반이었으며, 이곳저곳에서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 나서 개미같이 모여드는 것을 보고, 선종은 어지러운 때를 틈타서 무리를 끌어 모으면 자기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북원(원주)의 도적 집단 괴수 양길( 梁 吉 )에게 투탁( 投 託 )하였다. 양길이 그를 잘 대우하고 일을 맡겼으며, 군사를 나누어 주어 동쪽으로 신라 영토를 공격하게 하였다. 선종이 스스로 무리들이 많아서 나라를 창건하고 임금이라 일컬을 만하다고 생각하여 중앙과 지방에 관직을 설 치하기 시작하였다. 선종이 왕이라 칭하고 사람 들에게 이르기를 이전에 신라가 당나라에 군사를 청 하여 고구려를 격파하였기 때문에 옛 서울 평양은 오 래되어서 풀만 무성하게 되었으니 내가 반드시 그 원 수를 갚겠다. 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태조의 훈요 10조 1. 나라의 대업은 반드시 부처의 힘을 입어야 하므로 선종과 교종의 사원을 창건하고 주지를 보내어 각각 다스리도록 하되, 간신들이 승려들의 청탁을 들어 각 사원을 다투어 빼앗는 일이 없도록 한다. (불교 상승) 2. 사원을 함부로 세우면 나라의 운수가 오래가지 못 한다고 도선이 말했으니, 도선이 산수의 형세를 살펴 서 세운 사원 외에는 마음대로 사원을 창건하지 못하 도록 한다. (풍수지리 사상) 3. 맏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올바른 법도이지 만, 만약 맏아들이 어리석으면 둘째 아들이 왕위를 잇 게 하고, 또 둘째 아들 역시 불초한 경우에는 나머지 형제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추대하는 자를 왕이 되게 한다. (왕위 계승 방법) 4. 우리나라는 사람도 땅도 중국과 다르니 반드시 중 국의 제도를 따를 필요가 없다. 거란은 야만의 나라이 고 풍속과 언어 또한 다르니 의관( 衣 冠 ) 제도( 制 度 ) 를 함부로 본받지 않도록 한다. (전통 문화 존중, 거 란 배격) 5. 서경( 西 京 )은 수덕( 水 德 )이 순조로워 우리나라의 중요한 곳이니, 철마다 서경에 가서 머무르기를 모두 100일이 넘도록 하여 그곳의 안녕을 이루도록 한다. (서경 중시) 6. 짐( 朕 )이 지극히 원하는 것은 연등( 燃 燈 )과 팔관 ( 八 關 )이다. 연등은 부처를 섬기는 것이요, 팔관은 천 령( 天 靈 )과 오악( 五 岳 ) 명산( 名 山 ) 대천( 大 川 ) 용신 사료집 13
14 ( 龍 神 )을 섬기는 것이니, 후세에 간신이 이를 더하거 나 줄일 것을 건의하지 못하도록 한다. (민심 수습) 7. 신하의 곧은 말은 따르고, 헐뜯는 말은 멀리한다. 백성을 부리되 농사철을 피하고, 요역을 가볍게 매기 며, 농사짓는 일의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 어진 정치 를 하되 상벌을 도리에 맞게 하면 음양( 陰 陽 )이 순조 로울 것이다. (간언의 경청, 민생 안정) 8. 차령( 車 峴, 車 嶺 ) 이남 공주강( 公 州 江, 금강) 밖은 산지의 형세가 모두 거슬리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으 니, 그곳의 인심도 또한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 을 등용하여 권세를 쥐게 하면 혹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호남 배척) 9. 나라의 관직을 함부로 늘리거나 줄이지 말며, 만약 공( 功 )이 없는 자, 사사로이 친한 자나 친척 등에게 관직을 주어 백성의 원망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한다. 사나운 나라가 이웃에 있으니 항상 조심하고, 병졸들 을 잘 돌보아 그 가운데 뛰어난 자에게는 관직을 더 해 준다. (관리 임용) 10. 옛 고전과 경사( 經 史 )를 많이 읽어 나라 다스리는 일에 거울로 삼는다. (유교 정치) 사심관 제도 태조 18년(935) 신라왕 김부(경순왕)가 항복해 오니 신 라국을 없애고 경주라 하였다. 김부로 하여금 경주의 사심관이 되어 부호장 이하의 관리 임명을 맡게 하였 다. 이에 공신이 이를 본받아 제각기 자기 출신 지역의 사심관이 되었다. 사심관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고려사> 기인 제도 건국 초에 향리의 자제를 뽑아 서울에 볼모로 삼고, 또한 출신지의 일에 관한 자문에 대비하게 하였는데, 이를 기인이라 하였다. <고려사> 최승로의 5조 정적평(2012.서울시 9급)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만약 광종이 처음과 같이 늘 공손하고 아끼며 부지런히 하였다면, 어찌 타고난 수명이 길지 않고 겨우 향년 50에 그쳤겠습니까? 최승로의 시무 28조 전제 왕권의 견제와 중앙 집권적 정치 질서를 수립하 고자 한 개혁안으로 현재 22조가 전해진다. 1. 요지( 要 地 )를 가려 국경을 정하고, 그 지방에서 활 잘 쏘고 말 잘 타는 사람을 뽑아 국방을 맡도록 하소서. 2. 불사( 佛 事 )를 많이 베풀어 백성의 고혈( 膏 血, 기름 과 피)을 짜내는 일이 많고, 죄를 지은 자가 중을 가 장하고, 구걸하는 무리들이 중들과 서로 섞여 지내는 일이 많습니다. 원컨대 군왕의 체통을 지켜 이로울 것 이 없는 일은 하지 마소서. 3. 우리 왕조의 시위하는 군졸은 태조 때에는 그 수효 가 많지 않았으나, 뒤에 광종이 풍채 좋은 자를 뽑아 시위하게 하여 그 수가 많아졌습니다. 태조 때의 법을 따라 날쌔고 용맹스런 자만 남겨 두고 그 나머지는 모두 돌려 보내어 백성의 원망이 없도록 하소서. 4. 왕께서 미음과 술과 두부국으로 길가는 사람에게 보시( 布 施 )하나, 작은 은혜는 두루 베풀어지지 못합니 다. 상벌을 밝혀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한다면 복을 오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일은 임금의 체통이 아니오니 폐지하소서. 5. 태조께서는 수년에 한번씩 사신을 보내어 사대의 예를 닦았을 뿐인데, 지금은 사신뿐 아니라, 무역으로 인하여 사신의 왕래가 빈번하니, 지금부터는 사신 편 에 무역을 겸하게 하되, 그 밖의 때에 어긋나는 매매 는 일체 금지하도록 하소서. 6. 불보( 佛 寶 )의 돈과 곡식은 여러 절의 중이 각기 주 군( 州 郡 )에서 사람을 시켜 관장하며, 해마다 장리( 長 利, 비싼 이자)를 주어 백성을 괴롭게 하니 이를 모두 금지하소서. 7. 태조께서 나라를 통일한 후에 군현에 수령을 두고 자 하였으나, 대개 초창기에 일이 번다하여 미처 이 일을 시행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청컨대 외관( 外 官, 지방관)을 두소서. 9. 관료들로 하여금 조회할 때에는 모두 중국 및 신라 의 제도에 의하여 공복을 입도록 하여 지위의 높고 낮음을 분별하도록 하소서. 11. 풍속은 각기 그 토질에 따라 다른 것이므로 모든 것을 반드시 구차하게 중국과 같게 할 필요는 없습니 다.(자주적) 12. 공물과 요역을 공평하게 하여 백성들이 살 수 있 게 하소서. 14 사료집
15 13. 우리나라에서는 봄에는 연등( 煙 燈 )을 설치하고 겨 울에는 팔관( 八 關 )을 베풀어 사람을 많이 동원하고 노역이 심히 번다하오니, 원컨대 이를 감하여 백성이 힘을 펴게 하소서. 14. 임금께서는 스스로 교만하지 말고 아랫사람을 공 손히 대하고, 죄지은 자는 모두 법에 따라 벌의 경중 을 결정하소서. 16. 중들이 다투어 절을 짓는데, 수령들이 백성을 동 원하여 일을 시키니 백성이 매우 고통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엄히 금하소서. 17. 근래에 사람들이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 고 재력만 있으면 다투어 큰 집을 지으니 그 폐단이 많습니다. 제도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헐어 버리도록 명하여 뒷날에 경계가 되게 하소서. 18. 신라 말기에 불경과 불상을 만드는 데 모두 금과 은을 사용하여 사치가 지나쳤으므로 마침내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근래에도 그 풍습이 없어지지 않았으니 엄중히 금하여 그 폐단을 고치게 하소서. 19. 삼한 공신의 등급에 따라 그 자손을 등용하여 업 신여김을 받고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음서제 실시 주장) 20. 불교를 행하는 것은 몸을 닦는 근본이며, 유교를 행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근원이니, 몸을 닦는 것 은 내생( 來 生 )을 위한 것이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곧 오늘의 일입니다. 오늘은 지극히 가깝고 내생은 지 극히 먼 것이니,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구하는 일이 또한 그릇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21. 우리 왕조는 종묘사직의 제사는 아직 법대로 하 지 않으면서 산악( 山 嶽 )과 성수( 星 宿 )에 대한 초제는 번거롭게 합니다. 그 제사의 비용은 모두 백성으로부 터 나오는 것입니다. 민심을 얻으면 그 복이 기원하는 복보다 많을 것이니, 제사를 지내서는 안 됩니다. 22. 광종이 노비를 안검하니 천한 노예들이 주 인을 모함하는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런즉, 선대의 일에 구애되지 말고, 노비와 주인의 송사를 판결할 때는 분명하게 하여 후회가 없도록 힘 써야 합니다. <고려사절요> 어사대(2014.서울시 7급) ᄀ 어사대에서 대부경 왕희걸, 우사낭중 유백인, 예부 낭중 최복규, 원외랑 이응년 등이 서경 분사( 分 司 )에 서 토지를 겸병하여 재물을 모으고 있음을 탄핵하고 그들을 관직에서 파면할 것을 요청하니 왕이 이 제의 를 좇았다. - 고려사 - ᄂ 궁녀 김씨는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요석택( 邀 石 宅 ) 궁인이라고 불렀다. 경주 사람 융대가 자기는 신 라 원성왕의 먼 후손 이라고 거짓말하고 양민 5백여 명을 노비로 만들어서 김씨에서 주었으며 또 평장 한 인경, 시랑 김낙에게 주어서 후원자로 삼았다. 어사대 에서 이것을 알고 심문하여 그 실정을 확인하고 이들 을 처벌할 것을 왕에게 고하니 목종은 김씨에게서는 동( 銅 ) 일백 근의 벌금을 받고, 한인경과 김낙은 지방 으로 귀양 보내라고 명령하니 듣는 사람들이 모두 다 치하하였다. <고려사> 식목도감 국자감의 학부별 입학 자격, 교육 과정, 수업 연한 및 학생 정원 등을 규정한 학칙을 상세하게 제정하였다. 첨사부(동궁사무를 관장한 관창)에 지급할 공해전의 규 모, 소속 관원을 보조할 수행원의 정원 배정 등 첨사 부 운영에 필요한 여러 가지 시행 규정을 정하였다. 강예재(2014.경찰간부) 예종 4년 국자감에 7재를 두어, 주역( 周 易 )을 공부하 는 곳을 여택, 상서( 尙 書 )를 공부하는 곳을 대빙, 춘추( 春 秋 )를 공부하는 곳을 양정, 무학( 武 學 )을 공부 하는 곳을 강예라 하였다. 대학에서 최민용 등 70인 과 무학에서 한자순 등 8인을 시험 쳐 뽑아, 나누어 여기서 공부하도록 하였다. 좌주와 문생의 관계 문생이 좌주를 대할 때에는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대 하는 예를 취한다. 평장사 임경숙은 4번이나 지공거 가 되었는데 몇 해 지나지 않아, 그의 문하에 벼슬을 한 사람이 10여 명이나 되었고, 문생들을 거느리고 사료집 15
16 뜰 아래서 절을 하니, 임경숙은 마루 위에 앉아 있고, 악공들은 풍악을 울렸다. 이를 보는 사람들이 하례하 고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보한집> 문벌 귀족의 사치(2010.지방직 7급) 왕이 관란사에 행차하니, 김돈중 등이 절의 서쪽 대( 臺 ) 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휘장 장막과 그릇이 사치스럽 고 음식이 진기하여 왕이 재상( 宰 相 ) 근신( 近 臣 )들과 더불어 흡족히 즐기고 김돈중 김돈시에게 백금 각 3정 과 비단 각 10필과 거란산 실 70근을 하사하였다. <고려사> 해설 대표적 문벌 귀족:안산 김씨(김은부), 인주 이씨 (이자겸), 해주 최씨(최충), 파평 윤씨(윤관), 경주 김씨(김부식) 문벌 귀족의 대외 정책 신이 그윽이 보건대 한나라가 흉노에 대하여, 당나라 가 돌궐에 대하여 혹은 신하를 칭하고, 혹은 공주를 시집보내어 무릇 화친할 만한 것은 하지 않음이 없었 습니다. 오랑캐 나라에 굴복하여 이를 섬기는 것은 국 가를 보전하는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일찍이 성종 때 에 변방을 지키는 데 실책하여서 요나라의 침략을 촉 진하였으니 진실로 국가를 보존하여 후회함이 없게 하십시오. <고려사> 이자겸의 난(2013.법원직) 왕이 어느 날 홀로 한참동안 통곡하였다. 이자겸의 십팔자( 十 八 字 )가 왕이 된다는 비기( 秘 記 )가 원인이 되어 왕위를 찬탈하려고 독약을 떡에 넣어 왕에게 드 렸던바, 왕비가 은밀히 왕에게 알리고 떡을 까마귀에 게 던져주었더니 그 까마귀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고려사>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묘청 등이 왕께 아뢰기를 신 등이 서경의 임원역 땅 을 보니, 이는 음양가( 陰 陽 家 )에서 말하는 대화세( 大 華 勢 )입니다. 만약 서경에 궁궐을 세워 거처를 옮기시 면 금나라가 폐백( 幣 帛 )을 가지고 와 스스로 항복할 것이며, 36개 나라가 다 신하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정지상 등이 왕께 아뢰기를 대동강에 상서로운 기운 이 있으니 이는 천 년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일입니 다. 청컨대 위로는 천심과 아래로는 백성들의 바람에 따르시어 금( 金 )을 타도하소서. 하였다. 왕이 어찌하 면 좋은가 물으니 이지저가 금( 金 )나라는 강적이니 가벼이 하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니 왕이 그만두었 다. 황주첨 등이 또 칭제건원할 것을 아뢰었으나 왕이 듣지 아니하였다. 묘청의 무리가 쉬지 않고 말하 기를 그치지 않았으나 왕이 끝내 듣지 않았다. <고려사>, 묘청 신채호의 서경 천도 운동에 대한 인식 역대의 사가들은 서경 천도 운동을 다만 왕사( 王 師, 김부식)가 반적( 反 賊 )을 친 전쟁으로 알았을 뿐이었으 나, 이는 근시안의 관찰이다. 실상은 이 전쟁이 낭( 郎 ) 불( 佛 ) 양가 대 유가의 싸움이며, 국풍파 대 한학파 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 사 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이니, 묘청은 곧 전자의 대표 요, 김부식은 후자의 대표였던 것이다. 이 전쟁에서 묘청 등이 패하고 김부식이 승리하였으므로 조선의 역사가 사대적 보수적 속박적 사상, 즉 유교 사상에 정복되고 말았거니와, 만일 이와 반대로 김부식이 패 하고 묘청 등이 승리하였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 진 취적 방면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니, 이 전쟁을 어찌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 一 天 年 來 第 一 大 事 件 ) 이라 하 지 아니하랴. 신채호, <조선사 연구초> 만적의 개경 북산 연설 경계난( 庚 癸 亂, 정중부와 김보당의 난) 이후 국가의 공경대부는 모두 천예( 賤 隸 )에서 나왔다. 왕후( 王 侯 ) 와 장상( 將 相 )이라고 어찌 처음부터 씨가 다를까 보 냐. 때가 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만 어찌 근골( 筋 骨 )을 수고롭게 하며 매질 밑에서 곤욕 을 당해야만 하는가? 우리가 각기 상전을 죽이고 노 예 문적을 불살라 삼한에 천인을 없게 하면, 공경장상 ( 公 卿 將 相 )은 모두 우리가 얻을 수 있다. <고려사> 16 사료집
17 공주 명학소의 난 당시의 격문 우리 지역을 승격시켜 현( 縣 )으로 삼고, 또 수령을 설 치하여 안무( 按 撫 )하고는, 돌이켜 병사( 兵 士 )를 발하 여 내토( 來 討 )하고 우리의 모처( 母 妻 )를 잡아 가두니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차라리 칼날 아래 죽을지언 정 끝내 항복하지 않고 반드시 왕경( 王 京 )에 이르고 야 말겠다. 서희의 외교 담판 1(2013.국가직 7급) 소손녕:나는 대조( 大 朝 )의 귀인이니 그대가 마땅히 뜰에서 배례( 拜 禮 )하여야 하는데, 어찌하여 그냥 서 있는가? 서희:신하가 군주에게는 아래에서 절하는 것이 예라 고 할 수 있지만, 양국 대신이 상견( 相 見 )하는 데 어 찌 이와 같이 하겠소? 소손녕:그대 나라는 신라 땅에서 났소. 고구려 땅은 우리의 소유인데 그대 나라가 침식하였고, 또 우리와 국경을 맞닿았는데도 바다를 건너 송( 宋 )을 섬기고 있소. 그 때문에 오늘의 출병이 있게 된 것이니 만일 땅을 떼어서 바치고 조빙( 朝 聘 )을 닦으면 무사할 수 있을 것이오. 서희:아니오. 우리나라는 곧 고구려의 땅이오. 그러 므로 국호를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하였으니, 만일 영토의 경계로 따진다면 그대 나라의 동경이 모두 우 리의 경내에 있거늘 어찌 침식이라 하리오. 그리고 압 록강의 내외도 또한 우리 경내인데 지금 여진이 가로 막고 있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더 심하오. 만일 여 진을 내쫓고 우리 옛 땅을 돌려보내어 도로를 통하게 하면 감히 조빙을 닦지 않으리오. 윤관의 별무반 조직 신이 오랑캐에게 패한 것은 그들은 기병인데 우리는 보병이라 대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왕 에게 건의하여 새로운 군대를 편성하였다. 문 무 산 관, 이서, 상인, 농민들 가운데 말을 가진 자를 신기 군으로 삼았고,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20살 이상의 남자들 중 말이 없는 자를 모두 신보군에 속하게 하 였다. 또 승려를 뽑아서 항마군으로 삼았다. <고려사절요> 최충헌의 봉사10조(2012.서울시 9급) 이의민은 성품이 사납고 잔인하여 윗사람을 업신여 기고 아랫사람을 능멸했습니다. (중략) 원컨대 폐하께서는 태조의 바른 법을 따라서 이를 행하여 빛 나게 중흥하소서. 이에 삼가 열 가지 일을 조목별로 아룁니다. 1. 국왕은 참위설을 믿어 새로 지은 궁궐에 들지 않고 있는데, 길일을 택하여 들어갈 것. 2. 근래 관제에 어긋나게 많은 관직을 제수해 녹봉이 부족하게 됐으니 원제도에 따라 관리의 수를 줄일 것. 3. 근래 벼슬아치들이 공 사전을 빼앗아 토지를 겸병 함으로써 국가의 수입이 줄고 군사가 부족하게 되었 으니, 토지대장에 따라 원주인에게 돌려줄 것. 4. 세금을 거두는데 향리의 횡포와 권세가의 거듭되 는 징수로 백성의 생활이 곤란하니 유능한 수령을 파 견하여 금지케 할 것. 5. 근래 각 지역의 관리들이 공물 진상을 구실로 약탈 행위를 일삼고 사취하기도 하니 공물 진상을 금할 것. 이규보의 시(2010.경북 교행 9급) 서희의 외교 담판 2(2013.경찰간부) 그들(거란)이 고구려의 옛 땅을 찾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들의 병력이 성대한 것만을 보고 갑 자기 서경이북을 떼어 준다면 이것은 올바른 계책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삼각산( 三 角 山 ) 이북은 모두 고구려의 옛 강토인데 그들이 한없는 욕심으로 강요 한다고 해서 다 주시겠습니까? 알몸을 갈옷으로 가리고 하루에도 얼마나 땅을 갈았던가. 벼 이삭 파릇파릇 돋아나면, 고생스럽게 호미로 김을 매지. 풍년 들어 천 종 곡식을 거둔다 해도 한갓 관청 것밖에 되지 않는다오. 어쩌지 못하고 모조리 빼앗겨, 하나도 차지하지 못한다오. 어쩔 수 없이 풀뿌리 캐먹다가, 사료집 17
18 굶주림에 지쳐 쓰러진다오. 이규보 해설 이규보는 이 시에서 몽골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 도했을 당시 농민의 힘겨운 생활을 표현하였다. 고려첩장(2014. 국가직 9급) 이전 문서에는 몽고의 연호를 사용하였는데, 이번 문서에서는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전 문서에는 몽고의 덕에 귀의하여 군신 관계를 맺었다고 하였는데, 이번 문서에는 강화로 도읍을 옮 긴 지 40년에 가깝지만, 오랑캐의 풍습을 미워하여 진도로 도읍을 옮겼다고 한다. 충선왕( 서울시 7급) 휘( 諱 )는 장( 璋 )이고, 몽고의 휘는 익지례보화( 益 智 禮 普 化 이지르부카)이다. 선왕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제국대장공주( 齊 國 大 長 公 主 )이다. 을해년 9월 정유일 에 출생하였다. 성품이 총명하고 굳세며 결단력이 있 었다. 이로운 것을 일으키고 폐단을 제거하여 시정에 그런대로 볼 만한 것이 있었으나 부자( 父 子 ) 사이는 실로 부끄러운 일이 많았다. 오랫동안 상국( 上 國 )에 있었는데, 스스로 귀양가는 욕을 당하였다. 왕위에 있 은 지 5년이며, 수는 51세였다. <고려사절요> 해설 충렬왕과 제국대장 공주사이에 태어난 충선왕은 모 후인 제국대장 공주가 사망하자, 원에서 귀국하여 충렬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던 후궁인 무비와 왕의 측근들을 처형하였 고 충렬왕에게 선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공민왕(2013.서울시 9급) 첫째, 세신( 世 臣 )과 대족( 大 族 )은 서로 뿌리를 뻗어 연결하여 가려주고 있으며, 둘째 초야의 신진들은 귀 하게 되면 문벌이 한미한 것을 부끄러워하여 대족들 과 연결하고 혼인하여 그 처음 뜻을 모두 버리며, 셋 째, 유생들은 유악하고 또 문( 門 生 )이니 좌주( 座 主 )니 동년( 同 年 )이니 하여 서로 파당을 만들어 정에 끌리 니 이 삼자는 모두 쓸 것이 못 된다. 라 하였다. 이에 세상과 관계 없는 독립한 인물(신돈)을 얻어, 그를 크 게 등용하여 오래된 폐단을 개혁할 것을 생각하였다. <고려사>, 신돈 왕이 변발( 辮 髮 )을 하고 호복( 胡 服 )을 입고 전상에 앉 아있었다. 이연종이 간하려고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 었더니, 왕이 사람을 시켜 물었다. 이연종이 말하기를 변발과 호복은 선왕( 先 王 )의 제도가 아니오니, 원컨대 전하는 본받지 마소서. 고려 말 왜구의 침략 조령을 넘어 바닷가까지 수백 리를 가면 홍해라는 고 을이 있다. 땅이 가장 궁벽하고 험하나 어업 염업이 발달하고 비옥한 토지가 있었다. 옛날에는 주민이 많 았는데, 왜란을 만난 이후 점점 줄다가 경신년(1380) 여름에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고을은 함락되고 불탔으 며 백성들이 살해되고 약탈을 당해 거의 없어졌다. 그 중에 겨우 벗어난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마을과 거리는 빈 터가 되고 가시덤불이 길을 덮으니, 수령으 로 온 사람들이 먼 고을에 가서 움츠리고 있고 감히 들어오지 못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양촌집> 진포 해전(2011.국가직 7급) 우왕 6년(1380) 가을 왜구는 500여 척의 함선을 거느 리고 진포로 쳐들어와 충청 전라 경상도의 주군을 돌며 약탈과 방화, 살육을 일삼았다. 고려 조정에서는 나세 최무선 심덕부 등을 보내어 최무선이 만든 화 포로 왜선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배가 불타 갈 곳이 없게 된 왜구는 옥천 영동 상주 선산을 다니면서 이 르는 곳마다 폐허로 만들었다. <고려사>, 우왕 황산 대첩 (2011.국가직 7급) 이성계가 군사를 이끌고 남원에 도착하니, 왜구가 이 미 포진하고 있었다. 이성계는 적장 가운데 나이가 어 리고 용맹한 아기발도(아지바투)를 사살하는 등 선두 에 나서서 전투를 독려하여 수많은 왜구를 도륙하였 다. 이 전투에서 고려군은 1,600여 필의 군마와 무기 18 사료집
19 를 노획하였고, 살아 돌아간 왜구는 거의 70여 명뿐 이었다. <고려사>, 우왕 이성계의 요동정벌반대(2008.법원직) 지금 요동을 정벌하는 것은 네 가지 불가한 점이 있 습니다. 소로써 대를 거역하는 것이 첫째요, 여름에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그 둘째입니다. 개정 전시과( 改 定 田 柴 科 ) 문무 양반 및 군인 전시과를 개정( 改 定 )하였다. 제1과 전( 田 ) 100결 시( 柴 ) 70결 내사령 시중, 제2과 전 95결 시 65결 내사시랑평장사 치사시중, 제 18과 전 20결 산전전부승지 영사 서사 이 한도 에 미치지 못한 자는(한외과의 존재를 보여준다) 모두 전 17결씩 지급하는 것을 상식( 常 式 )으로 삼았다. 경정 전시과( 更 定 田 柴 科 ) 7장 중세의 경제 문종 30년에 양반 전시과를 경정( 更 定 )하였다. <고려사> 권 78, 식화지 1 전제 전시과조 전시과 고려의 토지 제도는 대개 당의 제도를 모방하여 개간 된 토지의 넓이를 총괄해서 그 기름지고 메마른 것을 나누어 문무 백관에서부터 부병( 府 兵 ) 한인( 閑 人 )에 이르기까지 과( 科 )에 따라 전지와 시지를 주었는데, 이를 전시과라 한다. 죽은 후에는 모든 토지를 반납하 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러나 부병은 나이 20세가 되면 비로소 땅을 받고 60세가 되면 반환하는 데 자손이나 친척이 있으면 전지를 물려받게 하고, 없 으면 감문위에 소속시켰다가 70세 이후에는 구분전을 지급하고, 그 나머지 땅을 환수하였으며, 죽은 다음에 후계자가 없는 자와 전사한 자의 아내에게 모두 구분 전을 지급하였다. 또한, 공음 전시과가 있어 과에 따 라 지급하여 자손들에게 전하게 하였다. <고려사> 전시과 제도 시정 전시과( 始 定 田 柴 科 ) 직( 職 ), 산관( 散 官 ) 각 품( 品 )의 전시과를 시정( 始 定 ) 하였는데, 관품의 고저( 高 低 )를 논하지 않고(광종의 사 색공복제를 기준으로 지급한다는 뜻이다) 다만 인품( 人 品 ) 으로서 정하였다. 공음전의 시원( 始 原 ) 경종 2년(977) 3월에 개국 공신 및 향의귀순성주( 向 義 歸 順 城 主 ) 등에게 훈전( 勳 田 )이 50결로부터 20결에 이르기까지 차등 있게 사여( 賜 與 )되었다. 현종 12년(1021) 5월 공음전이 제정되었는데, 공음전 은 직자( 直 子 )가 죄를 범한 경우 그 손자에게 이급( 移 給 )하도록 하였다. <고려사> 권 78, 식화지 1, 전제 공음 전시조 고려 말 토지 겸병의 폐단(2012.경찰간부) 당시에 겁령구(원공주의 시중을 들기 위해 고려로 따 라온 사속인), 내수, 천구까지 다 사전( 賜 田 )을 받아 서 그 중 많은 자는 수백 결에 이르렀다. 그들은 보통 농민을 유인해서 전민들로 만들고 또 민전으로서 그 부근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전조를 거두어들였 으므로 주현에서는 세납이 들어올 곳이 없었다. 승려의 상공업 활동 승려들이 심부름꾼을 시켜 절의 돈과 곡식을 각 주군 에 장리를 놓아 백성을 괴롭히고 있다. <고려사절요> 지금 부역을 피하려는 무리들이 부처의 이름을 걸고 돈놀이를 하거나 농사, 축산을 업으로 삼고 장사를 하 사료집 19
20 는 것이 보통이 되었다. 어깨에 걸치는 가사는 술 항아리 덮개가 되고, 범패를 부르는 장소는 파 마 늘의 밭이 되었다. 장사꾼과 통하여 팔고 사기도 하 며, 손님과 어울려 술먹고 노래를 불러 절간이 떠들썩 하다. <고려사> 해설 고려는 <도선비기>에 의거하여 국가의 비보사찰을 정하여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도록 하고, 그 절에는 사원전과 노비를 지급하였다. 귀족들도 자기 가문의 절을 짓고 토지와 노비를 기증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또 국가 적으로 연등회와 팔관회를 개최하고, 국립 여관의 구실을 하던 원( 院 )을 절에서 관리하게 하였다. 8장 중세의 사회 재상지종 이제부터 만약 종친으로서 같은 성에 장가드는 자는 황제의 명령을 위배한 자로서 처리할 것이니 마땅히 여러 대를 내려오면서 재상을 지낸 집안의 딸을 취하 여 부인을 삼을 것이며 재상의 아들은 왕족의 딸과 혼인함을 허락할 것이다. 만약 집안의 세력이 미비하 면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철원 최씨 해주 최씨 공암 허씨 평강 채씨 청주 이씨 당성 홍 씨 황려 민씨 횡천 조씨 파평 윤씨 평양 조씨는 다 여러 대의 공신 재상의 종족이니 가히 대대로 혼인할 것이다. 남자는 종친의 딸에게 장가가고 딸은 종비( 宗 妃 )가 됨직하다. <고려사> 해설 충선왕은 하교( 下 敎 )를 통해 왕실과 혼인할 수 있는 재상지종을 발표하였다. 재상지종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공신 및 재상의 가문으로 대체로 고려 후기의 권문세족을 가리킨다. 노비의 신분 상승 평량(평량은 사노비이며 독립된 경제생활<자신의 토지 소 유가능>을 영위하며 주인에게 신공을 바치는 외거노비)은 평장사 김영관의 집안 노비로 경기도 양주에 살면서 농사에 힘써 부유하게 되었다. 그는 권세가 있는 중요 한 길목에 뇌물을 바쳐 천인에서 벗어나 산원동정의 벼슬을 얻었다. 그의 처(평량의 처는 사노비이며 주인집 에 살면서 잡일을 돌보는 솔거노비)는 소감 왕원지의 집 안 노비인데, 왕원지는 집안이 가난하여 가족을 데리 고 가서 위탁하고 있었다. 평량이 후하게 위로하여 서 울로 돌아가기를 권하고는 길에서 몰래 처남과 함께 원지의 부처와 아들을 죽이고 스스로 그 주인이 없어 졌으므로 계속해서 양민으로 행세할 수 있음을 다행 으로 여겼다. <고려사> 해설 일천즉천제도에 의하면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천민이 면 자식은 천민이다. 평량은 노비에서 벗어났으나 평량의 처도 노비에서 벗어나야 평량의 자식이 노비에서 벗어나기 에 처의 주인과 아들을 죽인 것이다. 고종 45년 2월 최의가 집안 노비인 이공주를 낭장으 로 삼았다. 옛 법제에 노비는 비록 대공이 있다 하더 라도 돈과 비단으로 상을 주었을 뿐 관직을 제수하지 는 않게 되어 있다. 그런데 최항이 집정해서는 인심을 얻고자 처음으로 집안 노비인 이공주와 최양백, 김인 준을 별장으로 삼고, 섭장수는 교위로 삼았다. <고려사절요> 천자수모법 1540년 안동의 노( 奴 ) 복만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그 런데 복만이 다른 집의 비( 婢 )와 혼인한 연고로 두 딸 은 모두 그쪽에 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복만은 자 기 주인인 이씨에게 자식 한 명당 논 16복( 卜 ), 밭 3 복, 화로 1기, 큰 소 두 마리에 상당한 재산을 헌납할 수밖에 없었다. * 복( 卜 ):결부제에서 토지의 면적을 표시하는 단위 고려 시대 농민 보호책 진전(황폐해진 경작지)을 개간하여 경작하는 자는 사 전(개인 소유지)의 경우 첫해에는 수확 전부를 가지 고, 2년째부터 경작지의 주인과 수확량을 반씩 나눈 다. 공전(국가 소유지)의 경우는 3년까지 수확의 전 부를 가지고, 4년째부터 법에 따라 조( 租 )를 바친다. <고려사> 20 사료집
21 고려시대 토지 무릇 토지의 등급은 묵히지 않는 토지를 상으로 하고, 한 해 묵히는 토지를 중으로 하고, 두 해 묵히는 토지 를 하로 한다. <고려사> 고려 시대 재산 상속 어머니가 일찍이 재산을 나누어 줄 때 나익희에게는 따로 노비 40구를 물려주었다. 나익희는 제가 6남매 가운데 외아들이라 해서 어찌 사소한 것을 더 차지하 여 여러 자녀를 골고루 화목하게 살게 하려 한 어머 니의 거룩한 뜻을 더럽히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사양 하자 어머니가 옳게 여기고 그 말을 따랐다. <고려사> 고려 시대 여성의 지위 박유는 (충렬왕 때) 대부경에 임명되었다. 왕에게 글 을 올렸는데, 원나라 사람들이 들어와서는 인원 수의 제한 없이 장가를 들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사람들이 모두 북쪽으로 흘러가게 될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처와 첩을 둘 수 있 게 하되, 관품( 官 品 )에 따라서 그 수효를 줄여서 평민 에 이르면 한 명의 처와 한 명의 첩을 얻을 수 있도록 하소서. 그리고 여러 첩들이 낳은 아들도 본처가 낳은 아들처럼 벼슬을 할 수 있게 한다면, 짝이 없어 원망 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고 인구도 점점 늘어날 것입 니다. 라고 하였다. 부녀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원망 하고 놀라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때마침 박유가 왕 의 행차를 호위하고 따라갔는데 어떤 노파가 손가락 질하며 첩을 두자고 주장한 자가 바로 저 늙은이다. 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거리와 골목에서 마구 삿대질을 하였다. 당시 재상들 가운데 자기 처를 무서워하는 자들이 있어서 더 이상 그 논의를 못하게 하였고, 결국 이 주장은 시행되지 못하였다. <고려사>, 박유 열전 매향(2009.일반경찰) 미수기언 에 이르기를 삼척에 매향안( 埋 香 岸 )이 있 는데, 충선왕 2년(1310)에 향나무 2백 50그루를 묻었 다. 고 하였다. 여기에서 (향도)라는 이름이 시작되 었는데, 후에 이들이 상여를 매었다. 고 하였다. 이들이 모일 때 승려와 속인이 마구 섞여 무리를 이 루었다고 하니 (향도)의 시초는 불교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성호사설> 9장 중세의 문화 균여의 보현십원가 마음의 붓으로 그리는 부처 전에 젓누온 몸은 법계 끝나도록 이르거라 진진 부처 찰 찰찰마다 뫼실 바이신 법계 차신 부처 구세 다 예 하살저 아으 신어의업 무피염 이에 부지런이 사맛다라 고려 속요 청산별곡(2014.경찰간부) 살어리 살으리랏다 청산( 靑 山 )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 靑 山 )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잉 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사료집 21
22 이랑공 뎌렁공 하야 나즈란 디내와숀뎌. 오리도 가리도 바므란 또 엇디 호리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난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난 위증즐가 태평성대( 太 平 聖 代 ) 날러는 엇디 살라 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난 위증즐가 태평성대 잡사와 두어리 마나난 선하면 아니올셰라 위 증즐가 태평성대 셜온님 보내압노니 나난 가시난닷 도셔오쇼셔 나난 위증즐가 태평성대 <악장가사> 삼국사기 지금의 학사와 대부들은 5경과 제자백가의 글, 진한 이래 역대의 역사에는 혹 두루 통하여 상세히 말하는 자가 있어도 우리나라의 일에 대해서는 도리어 그 시 말( 始 末 )을 까마득히 알지 못하니 심히 한탄스러운 일이다. 하물며 신라 고구려 백제가 나라를 열어 대 치하였으나, 능히 중국에 예절을 갖추어 통하였으므 로 범엽의 <한서>나 송기의 <당서>에는 모두 삼국의 열전이 있다. 그러나 중국 국내 기사는 자세히 기술하 고, 외국 기사는 소략하게 서술하였으므로, 우리나라 기사는 상세히 실리지 않았다. 또한, 그에 관한 옛 기 록은 표현이 거칠고 졸렬하며 사건의 기록이 빠진 것 이 있으므로, 이로써 군주와 왕비의 착하고 악함, 신 하의 충성됨과 사특함, 나라 일의 안전함과 위태로움, 백성의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을 모두 펴서 드러내어 권하거나 징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뛰어난 재주를 가 진 사람을 얻어 능히 일관된 역사를 이루어 만대에 전하여 빛내기를 해와 별처럼 하고자 한다. 김부식, <삼국사기> 도토리 노래 이른 새벽 장닭 울음소리에 단잠을 깨어 촌 늙은이는 도시락을 싼다. 천길 만길 높은 저 위태로운 산에 올라 가시넝쿨을 휘어잡고 원숭이와 싸우면서 하루 아침이 다 가도록 도토리를 줍건만 도토리는 광주리에도 차지 않고 양 다리만 목나무대 같이 굳고 주린 창자는 소리쳐 운다. 윤여형, <동문선> 신라는 성심껏 중국을 섬겨 육로 해로를 오가는 사신 이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았다. 늘 자제들을 보내어 중국에 가서 숙위( 宿 衛 )하게 했고 국학에 들여보내 강습시켰다. 이로써 성현의 풍속과 교화를 입어 미개 한 풍속을 변혁시켜 예의가 있는 나라로 만들었다. 또 당나라 군사의 위엄을 빌어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 고 그 땅을 얻어 군현을 삼았으니 융성한 시대라 이 를 만하다. 그러나 불법( 佛 法 )을 숭상하여 그 폐해를 알지 못하고 마을마다 탑과 절이 빽빽이 늘어서 국가가 날로 쇠퇴해 갔다. 김부식, <삼국사기> 국순전 순( 醇 )의 기국( 器 局 )과 도량은 크고 깊었다. 출렁대고 넘실거림이 만경창파와 같아 맑게 해도 맑지 않고, 뒤 흔들어도 흐리지 않으며, 자못 기운을 사람에게 더해 주었다. 일찍이 섭법사(설화에 나오는 인물)에게 나 아가 온종일 담론할 때 자리에 있는 모두가 놀랐다. 임춘 신은 아룁니다. 고대의 열국에서도 각기 사관( 史 官 )을 두어 사실을 기록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 해동의 삼국 에 있어서도 역년( 歷 年 )이 오래되어 마땅히 그 사실 을 서책에 기록하여야 할 것이므로 늙은 저에게 명하 여 이것을 편찬하게 하셨는데, 스스로 돌아보건대 부 족함이 많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진삼국사기> 표 22 사료집
23 (2014년 국가직 7급) 국왕의 명령을 받아 편찬한 기 전체 사서로 편찬 동기를 학사대부( 學 士 大 夫 )가 우리 역사를 알지 못하니 유감이다. 중국 사서는 우리나라 사실을 간략히 적었고 고기( 古 記 )는 내용이 졸렬하므 로 왕, 신하, 백성의 잘잘못을 가려 규범을 후세에 남 기지 못하고 있다 라고 하였다. 연표 3권, 본기 28권, 지 9권, 열전 10권 등 총 50권으로 구성되었다. 동명왕편 서문 지난 계축년(명종 23) 4월에 <구삼국사>를 얻어 동명 왕 본기를 보니 그 신이한 자취가 세상에서 이야기되 고 있는 것보다도 더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믿지 않 고 귀( 鬼 )나 환( 幻, 헛깨비)으로만 생각하였는데, 여러 번 탐미하여 점점 그 근원을 찾아 들어가니, 환( 幻 )이 아니라 성( 聖 )이며, 귀( 鬼 )가 아니라 신( 神 )이었다. 하 물며 국사는 직필( 直 筆 )해야 하는 글이라 어찌 망전 ( 妄 傳 )하겠는가. 김 공 부식(김부식)이 국사를 중찬 ( 重 撰 )하면서 자못 그 일을 생략하였으니, 생각하건대 공( 公 )은 국사란 세상을 바로잡는 글이므로 크게 신 이한 일은 후세에 보일 것이 못된다고 하여 생략한 것이 아닐까? 동명왕의 일은 변화, 신이로써 여러 사람의 눈을 현혹하는 것이 아니요, 실은 창국 ( 創 國 )의 신적( 神 迹 )이라, 이를 서술해 두지 않으면 후인들이 장차 어떻게 보겠는가. 그러므로 시를 지어 기록하여 무릇 천하로 하여금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 의 도임을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동국이상국집> 해동고승전 (먼 옛날) 세상을 떠돌며 살던 백성들은 / 그 성정이 대체로 거칠어 / 임금의 명을 거스르거나 / 나라의 영 을 따르지 않는 일이 많았다. / 듣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 것(부처님의 가르침)을 / 비로소 만나고서는 / 그 거친 성정이 바뀌어 선하게 되고 / 참다운 가르침 에 따라 안으로 닦으니 / 이는 곧 불법( 佛 法 )을 만난 인연에 따른 까닭이로다. 각훈 <삼국유사>의 역사의식 대체로 옛날 성인( 聖 人 )은 예절과 음악을 가지고 나 라를 세웠고, 인( 仁 )과 의( 義 )를 가지고 백성들을 가 르쳤다. 때문에 괴력난신( 怪 力 亂 神, 괴상한 일이나 힘 이나 어지러운 일, 귀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왕( 帝 王 )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부명( 符 命 )을 얻고 도록( 圖 錄 )을 받게 된다. 때문에 보통 사 람과는 다른 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뒤에라야 큰 변의 틈을 타서 대기( 大 器 )를 잡아 대업을 이룩할 수 가 있었던 것이다. 일연, <삼국유사>, 제1권 기이편 <제왕운기>의 민족의식 요하 동쪽 땅에 따로 한 천지가 있으니 뚜렷이 중국 과 구획을 지어 나누어져 있도다. 큰 파도 만경에 걸 쳐 삼면을 에워싸고 북쪽에 육지가 줄처럼 이어져 있 네. 가운데 땅덩이 천 리가 바로 조선이니 강산의 아 름다운 경치, 그 이름 천하에 퍼졌구려. 이승휴, <제왕운기> 성리학의 수용과 발전 안향은 학교가 날로 쇠퇴함을 근심하여 양부( 兩 府 )에 의논하기를 재상의 직무는 인재를 교육하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만년에는 항상 회암 선생(주자)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경모하였 으므로 드디어 호를 회헌이라고 하였다. <고려사> 해설 안향은 고려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공로로 16세 기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소수 서원)에 모셔 졌다. 공민왕의 성균관 중건 성균관을 다시 짓고 이색을 판개성부사 겸 성균관 대 사성으로 삼았다. 이색이 다시 학칙을 정하고 매 일 명륜당에 앉아 경전을 나누어 수업하고, 강의를 마 치면 서로 더불어 논란하여 권태를 잊게 하였다. 이에 학자들이 많이 모여 함께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 사료집 23
24 는 가운데 정자와 주자의 성리학이 비로소 흥기하게 되었다. <고려사> 관도 배우지 않을 수 없고, 경도 배우지 않을 수 없 다. 내가 이 말에 감복하였다. <대각 국사 문집> 불교 비판 유자( 儒 者 )의 도는 음악이나 남녀 관계와 같이 모두 일상생활에 대한 일로서 누구나 동일합니다. 여기에 지극한 이치가 존재합니다. 불교는 이와 같지 않습니 다. 친척을 버리고 남녀 사이를 끊고 석굴 안에 홀로 앉아 조의목식( 朝 衣 木 食 )하면서 속세를 떠납니다. 공 허한 것을 보고 신조를 삼으니 어찌 평상의 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출가한 자들을 본업( 本 業 )에 돌 려보내고 불교 집단에 편입해야 합니다. 모든 사찰을 국가 기관에 소속시키고 그 노비와 재산도 함께 나누 어 소속시켜야 합니다. 정몽주의 상소문 불씨가 그 최초에는 걸식하면서 먹고 살 뿐이어서, 군 자는 이것을 의로써 책망하여 조금도 용납함이 없었 는데도, 오늘날에는 저들이 화려한 전당과 큰 집에 사 치스러운 옷과 좋은 음식으로 편안히 앉아서 향락하 기를 왕자 받드는 것 같이 하고, 넓은 전원과 많은 노 복을 두어 문서가 구름처럼 많아 공문서를 능가하고, 분주하게 공급하기는 공무보다도 엄하게 하니, 그의 도에 이른바 번뇌를 끊고 세간에서 떠나 청정하고 욕 심없이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정도전, <삼봉집>, 불씨잡변 해설 불씨잡변( 佛 氏 雜 辨 ) 은 정도전의 불교 비판서로 불 교 철학 자체를 비판 부정하는 이기 철학을 본격적으로 전 개하였다. 불교 교리의 핵심이 되는 인과설( 因 果 說 ) 윤회설 ( 輪 回 說 ) 화복설( 禍 福 說 ) 등을 비판하여 불교가 허학( 虛 學 )이 고 성리학이 실학( 實 學 )이라는 것을 논술하였다. 의천의 사상 (가) 진수 대법사가 말하였다. 관( 觀 )을 배우지 않고 경( 徑 )만 배우면 비록 오주( 五 周 )의 인과( 因 果 )를 들 었더라도 삼중( 三 重 )의 성덕( 性 德 )에는 통하지 못한 다. 경을 배우지 않고 관만 배우면 비록 삼중의 성덕 을 깨쳤으나 오주의 인과를 분별하지 못한다. 따라서 (나) 교리를 배우는 이는 내적(마음)인 것을 버리고 외적인 것을 구하는 일이 많고, 참선하는 이는 밖의 인연을 잊고 내적으로 밝히기를 좋아한다. 둘 다 편벽 된 집착이고 양극단에 치우친 것이므로, 양자를 골고루 갖추어(내외겸전) 안팎으로 모두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대각 국사 문집> 해설 (가)는 이론과 실천을 함께 강조하는 교관겸수( 敎 觀 兼 修 ), (나)는 내적인 공부(선종)와 외적인 공부(교종)을 모두 갖추자는 내외겸전( 內 外 兼 全 )으로 대각 국사 의천의 핵심 사 상이다. 조용히 생각하옵건대, 우리나라에도 옛적 제관법사가 대사의 교관( 敎 觀 )을 강연하며 해외까지 유통시켰으 나 그것을 익혀 전하는 일이 끊어져 지금은 없습니다. 제가 분발하여 몸을 돌보지 않고 스승을 찾아 도를 묻던 바, 이제 전당( 錢 塘 )의 자변대사 강석에서 교관 을 이어받고 대략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후일 고국에 돌아가면 목숨 바쳐 선양하여 대사께서 중생 을 위하여 가르침을 펴신 노고의 덕에 보답할 것을 이에 서원합니다. 대각국사문집 권14 지눌의 정혜결사문 한마음( 一 心 )을 깨닫지 못하고 한없는 번뇌를 일으키 는 것이 중생인데 부처는 이 한마음을 깨달았다. 깨닫 고 아니 깨달음은 오직 한마음에 달려 있으니 이 마 음을 떠나 따로 부처를 찾을 것이 없다? 하루는 같이 공부하는 사람 10여 인과 약속하였다. 마땅히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림에 은둔하여 같은 모임을 맺자. 항상 선을 익히고 지혜를 고르는 데 힘 쓰고, 예불하고 경전을 읽으며 힘들여 일하는 것에 이 르기까지 각자 맡은 바 임무에 따라 경영한다. 인연에 따라 성품을 수양하고 평생을 호방하게 고귀한 이들 의 드높은 행동을 좇아 따른다면 어찌 통쾌하지 않겠 는가? <권수정혜결사문> 24 사료집
25 해설 지눌은 서울을 중심으로 권문세족의 원당( 願 堂 )으로 전락한 불교계의 폐단을 바로잡고 신앙 본연의 자세를 회복하 기 위하여 수선사를 조직하여 순수 신앙 운동을 전개하였다. 르침을 전도하여 좋은 인연을 맺은 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지눌(2014.경찰간부) 한 마음( 一 心 )을 깨닫지 못하고 한없는 번뇌를 일으 키는 것이 중생인데, 부처는 이 한 마음을 깨달았다. 깨닫고 아니 깨달음은 오직 한 마음에 달려 있는 것 이니 이 마음을 떠나서 따로 부처를 찾을 곳은 없다. 먼저 깨치고 나서 후에 수행한다는 뜻은 못의 얼음 이 전부 물 인줄을 알지만 그것이 태양의 열을 받아 녹게 되는 것처럼 범부가 곧 부처임을 깨달았으나 불 법의 힘으로 부처의 길을 닦게 되는 것과 같다는 것 이다. 혜심의 유불 일치설 <기세계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두 성인을 중국에 보내어 교화를 펴리라 하셨다. 한 사람은 노자로 그는 가섭보살이요, 또 한 사람은 공자로 그는 유동( 儒 童 )보살이다. 이 말에 의하면 유 ( 儒 )와 도( 道 )의 종( 倧 )은 부처님의 법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방편은 다르나 진실은 같은 것이다. 공자는 삼( 參 )아, 내 도는 하나로 꿰었다. 하였고, 또 아침 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하였다. <진각 국사 어록> 해설 진각 국사 혜심에 의해 주창된 유불 일치설은 유교 와 도교의 뿌리는 모두 부처의 법에서 흘러나온 것이므로, 그 본질은 같은 것이라는 학설이다. 그러나 불교를 국교로 하고 있는 고려에서 유교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불교가 쇠 퇴하고, 이미 유교가 새로운 질서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불 일치설은 고려 말 성리학을 수 용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게 된다. 요세(2012.경찰간부) 대사는 <묘종>을 설법하기 좋아하여 언변과 지혜가 막힘이 없었고 대중에게 참회 수행을 권하였다. (중 략) 왕공대인과 지방 수령, 높고 낮은 사부 대중 가 운데 결사에 들어온 자들이 300여 명이나 되었고, 가 서긍의 고려도경 색이 푸른데 사람들은 이를 비색( 翡 色 )이라 한다. 근 년에 들어와 제작이 공교해지고 광택이 더욱 아름다 워졌다. 술병의 형태는 참외와 같은데, 위에는 작은 뚜껑이 있고 마치 연꽃에 엎드린 오리 모양이다. 10장 조선의 정치 왕도 정치 임금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 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으니, 임금의 아름다운 점은 순종하고 나 쁜 점은 바로 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 은 막아서, 임금으로 하여금 가장 올바른 경지에 들게 해야 한다. <조선경국전> 왕도 정치 군주는 천명( 天 命 )의 대행자이지만 천명과 천심( 天 心 ) 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민심에 의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만약 군주가 자기의 의무와 책임인 인정 ( 仁 政 )을 져버려 민심을 잃게 되면 천심 천명이 바뀌 고, 천심 천명이 바뀌면 군주는 교체될 수 있다. <조선경국전> 정도전의 재상 정치(2014.서울시 7급, 2013 국가직 9급) 임금의 직책은 재상 하나를 잘 뽑는 데 있다. 재상은 위로는 임금을 받들고 아래로는 백관을 통솔하여 만 인을 다스리는 것이니 그 직책이 매우 크다. 또한 임 금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 결같지 않으니 재상은 임금의 아름다운 점은 순종하 고 나쁜 점은 바로 잡아 임금으로 하여금 대중( 大 中 ) 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재상의 역할이다. <조선경국전> 사료집 25
26 6조 직계제 의정부의 서사를 나누어 6조에 귀속시켰다. 처음에 왕(태종)은 의정부의 권한이 막중함을 염려하여 이를 혁파할 생각이 있었지만, 신중하게 여겨 서두르지 않 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단행하였다. 의정부가 관장한 것은 사대문서와 중죄수의 심의뿐이었다. <태종실록> 상왕(단종)이 어려서 무릇 조치하는 바는 모두 대신 에게 맡겨 논의하여 시행하였다. 지금 내(세조)가 명 을 받아 왕통을 계승하여 군국 서무를 아울러 모두 처리하며 조종의 옛 제도를 모두 복구한다. 지금부터 형조의 사형수를 제외한 모든 서무는 6조가 각각 그 직무를 담당하여 직계한다. <세조실록> 신문고 고할 데가 없는 백성으로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품은 자는 나와서 등문고( 登 聞 鼓 )를 치라고 명하였다. 의정 부에서 상소하기를 서울과 외방의 고할 데 없는 백 성이 억울한 일을 소재지의 관청에 고발하여도 소재 지의 관청에서 이를 다스려 주지 않는 자는 나와서 등문고를 치도록 허락하소서. 그 중에 사사롭고 (남에 게) 원망을 품어서 감히 무고(없는 일을 거짓으로 꾸며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것)를 행하는 자는 반좌율( 反 坐 律, 거짓으로 죄를 뒤집어씌운 사람에게 그 해당 벌을 주는 것) 을 적용하여 참소(남을 헐뜻어서 없는 일을 꾸며 고하는 것)하고 간사하게 말하는 것을 막으소서. 하여 그대로 따르고, 등문고를 고쳐 신문고( 申 聞 鼓 )라 하였다. 또 한, 법을 맡은 관청으로 하여금 등문한 일을 추궁해 밝히고 아뢰어 처결하여 억울한 것을 밝히게 하였다. <태종실록> 의정부 서사제 6조 직계제를 시행한 이후 일의 크고 작음이나 가볍 고 무거움이 없이 모두 6조에 붙여져 의정부와 관련 을 맺지 않고, 의정부의 관여 사항은 오직 사형수를 논결하는 일뿐이었다. 그러므로 옛날에 재상에게 위 임하던 뜻과 어긋남이 있고, 6조는 각기 모든 직무를 먼저 의정부에 품의하고, 의정부는 가부를 헤아린 뒤 에 왕에게 아뢰어 (왕의) 전지를 받아 6조에 내려 보 내어 시행한다. 다만 이조 병조의 제수, 병조의 군사 업무, 형조의 사형수를 제외한 판결 등은 종래와 같이 각 조에서 직접 아뢰어 시행하고 곧바로 의정부에 보 고한다. 만약 타당하지 않으면 의정부가 맡아 심의 논박하고 아뢰어 시행토록 한다. <세종실록> 해설 조선의 사법 기관은 행정 기관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이에 수령이나 관찰사가 주로 재판을 맡았는데,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상급 기관에 항소하거나 신문고 를 쳐서 억울한 일을 호소할 수 있었다. 영조 말년 충청도 충주의 홍선보가 살인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다. 이에 그의 아내는 갓 태어난 아들 차기 를 맡기고 서울로 올라가 신문고를 치려다 실패하고 죽는다. 그 후 열 살을 넘긴 아들 차기가 신문고를 두 드리지만 왕에게는 보고조차 되지 않고, 다행히 길에 서 형판을 만나 문제 해결의 약속을 받지만 오래 전 에 문서가 소실되어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자 아들 차 기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 신문고를 치려다 중도에 굶 주리고 병들어 14세에 죽고 아버지는 간신히 옥에서 풀려난다. 홍양호, <이계집> 태종(2011.국가직 7급) 그는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권세있는 신하는 공신 이든 처남이든 가리지 않고 처단하고, 6조를 직접 장 악하여 의정부 재상중심의 정책운영을 국왕중심체제 로 바꾸었다. 이조 전랑의 역할 무릇 내외의 관원을 선발하는 것은 3공에게 있지 않 고 오로지 이조에 속하였다. 또한, 이조의 권한이 무 거워질 것을 염려하여 3사 관원의 선발은 판서에게 돌리지 않고 낭관( 郎 官 )에게 오로지 맡겼다. 따라서 이조의 정랑과 좌랑이 또한 3사의 언론권을 주관하게 26 사료집
27 되었다. 3공과 6경(의정부의 3정승과 6조 판서)의 벼슬 이 비록 높고 크나, 조금이라도 마음에 차지 않는 일 이 있으면 전랑( 銓 郞 )이 3사의 신하들로 하여금 논박 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전랑의 권한이 3공과 견 줄 만하였다. 이것이 바로 크고 작은 벼슬이 서로 엮 이고 위와 아래가 서로 견제하여 300년 동안 큰 권세 를 농간하는 신하가 없었고, 신하의 세력이 커져서 임 금이 제어하기 어려웠던 근심이 없었던 까닭이다. <택리지> 해설 조선의 인사는 고급 관료들의 회의에서 3명을 추천 하여 그 중 한 사람을 왕이 낙점하는 것이었는데, 이조 전 랑이 인사 회의에서 추천자 명단을 기록하게 되어 있어 자 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추천을 거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조 전랑이 의견 일치가 쉽지 않은 3사의 의견 통 합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사림 전체의 의견을 대변할 정 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대간 대간은 마땅히 위엄과 명망이 우선되어야 하고 탄핵 은 뒤에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위엄과 명망이 있는 자는 비록 종일토록 말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스스 로 두려워 복종할 것이요, 이것이 없는 자는 날마다 수많은 글을 올린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더욱 두려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강의( 剛 毅 )한 뜻과 정직한 지조가 본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한 채 한갓 탄핵 만으로 여러 신하들을 두렵게 하고 안과 밖을 깨끗이 하려 한다면 기강은 떨쳐지지 못하고 원망과 비방이 먼저 일어날까 두렵다. 천하의 득실과 백성들을 이해 하고 사직의 모든 일을 간섭하고 일정한 직책에 매이 지 않는 것은 홀로 재상만이 행할 수 있으며 간관만 이 말할 수 있을 뿐이니, 간관의 지위는 비록 낮지만 직무는 재상과 대등하다. <삼봉집> 해설 조선은 유교의 왕도 정치를 이상으로 삼고 민본주의 를 정치의 핵심 과제로 중시하였으며, 특정한 권신의 횡포 나 국왕의 전제를 방지하기 위해 3사(사간원, 사헌부, 홍문 관)를 두어 서경과 간쟁의 기능을 담당하게 하였다. 3사의 관원들 중에서도 사간원과 사헌부 양사의 관원들을 대간이 라고 하였는데, 이들은 청렴하고 성품이 강직한 사람들 중 에서 임명되었으며, 재상이나 판서의 정치적 간섭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정치 권력 간에 균형과 견제의 원리가 지켜 질 수 있었다. 비변사(2014.경찰 1차) 김익희가 상소하여 말하기를, 요즘 이 기구가 큰 일 이건 작은 일이건 모두 취급합니다. 의정부는 한갓 겉 이름만 지니고 육조는 할 일을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 니다. 이름은 변방을 담당하는 것 이라고 하면서 과거 에 대한 판정이나 비빈 간택까지도 모두 여기서 합니 다. 라고 하였다. 경재소와 유향소 고을에서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 형에게 불경하는 자, 친족 간에 불복하는 자, 인척 간에 불화하는 자, 남에게 신의가 없고 남을 구휼해 주지 않는 자가 있 으면, 유향소에서 그에 대한 징계를 의논할 수 있으 며, 아전으로 백성의 재물을 침탈하는 자가 있으면, 이곳에서 징계를 의논할 수 있다. <경국대전> 공론 백성들이 모두 그렇다고 동의하는 내용이 곧 공론( 公 論 )이다. 공론은 온 나라 안 사람들로부터 나타나 이루 어지는 것이므로 그것을 막을 수 없으며, 공론에 따를 때 바로 국시( 國 是, 나라의 갈 길)가 정해지는 것이다. 이이, <율곡전서> 조의제문( 弔 義 帝 文 ) 정축 10월 어느 날에 밀성( 密 城 )으로부터 경산( 京 山 ) 으로 향하여 답계( 踏 啓 )역에서 자는데, 꿈에 신이 칠 장( 七 章 )의 의복을 입고 훤칠한 모양으로 와서 스스 로 하는 말이 나는 초나라 회왕( 懷 王 ) 손심( 孫 心 )인 데, 서초 패왕 항우( 項 羽 )의 죽인 바 되어 빈 강에 잠 겼다 하고 문득 보이지 않았다.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강에 잠겼다는 말은 없으니, 정녕 항우가 사람을 시켜 서 비밀리에 쳐 죽이고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드디어 문을 지어 조( 弔 )한다. 김종직 문집 사료집 27
28 무오사화(2014.국가직 7급) 유자광이 하루는 소매 속에서 한 권의 책자를 내놓았 는데, 바로 김종직의 문집이었다. 그 중에서 조의제문 ( 弔 意 帝 文 )과 술주시( 述 酒 詩 )의 내용을 지적하면서 여 러 추관들에게 이는 다 세조를 지목한 것이다. 김일 손의 악은 모두가 김종직이 가르쳐서 이루어진 것이 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즉시 스스로 주석을 만들어 글귀마다 풀이를 하여 왕께 아뢰기를 김종직이 우리 전하를 헐뜯는 것이 이에 이르렀으니, 그 부도덕한 죄 는 마땅히 대역으로 논해야 하고, 그가 지은 다른 글 도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이 마땅치 않으니 아울러 모 두 불태워 버리소서. 하니 왕이 이에 따랐다. 임금이 교지를 내렸다. 지금 그(김종직)의 제자 김일 손이 찬수한 사초 내에 부도덕한 말로 선왕의 일을 터무니없이 기록하였다. (중략) 성덕을 속이고 논 평하여 김일손으로 하여금 역사에 거짓을 쓰는 지경 에까지 이르렀다. 이긍익, <연려실기술>, 무오사화 조광조의 절명시(2010.국가직 9급)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 사랑하듯이 하고 / 나라를 내 집안 근심하듯이 했노라. 밝은 해가 이 땅을 비치고 있으니, / 내 붉은 충정을 밝혀 비추리라. 임꺽정(2014.지방직 9급) 이 인물을 중심으로 한 도적 무리는 조선 전기 도적 가운데 그 세력이 가장 컸으며, 명종 14년부터 명종 17년까지 주로 활동하였다. 이들이 거점으로 삼았던 지역은 백정들이 많이 사는 지역과 공물이 운송되며 사신들의 왕래가 빈번하여 농민들의 부담이 무거웠던 역촌( 驛 村 ) 지대 및 주변에 갈대밭이 많은 곳 등이었 다. 이들은 이러한 곳을 거점으로 약탈 살인 방화를 서 슴지 않았다. 을해당론( 乙 亥 黨 論, 1575) 현량과(2014.법원직) 지방에서는 감사와 수령이, 서울에서는 홍문관과 육 경( 六 卿 ), 대간이 등용할 만한 사람을 천거하여, 대궐 에 모아 놓고 친히 대책으로 시험한다면 인물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하 지 않았던 일이요, 한( 漢 )나라 현량과의 뜻을 이은 것 입니다. <중종실록> 김효원이 알성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이조 전랑 의 물망에 올랐으나, 그가 윤원형의 문객이었다고 하 여 심의겸이 반대하였다. 이때 양편 친지들이 각기 다 른 주장을 내세우면서 서로 배척하여 동인, 서인의 말 이 여기서 비롯하였다. 효원의 집이 동쪽 건천동에 있 고 의겸의 집이 서쪽 정동에 있기 때문이었다. 동인의 생각은 결코 외척을 등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서인 의 생각은 의겸의 공로가 많을 뿐더러 선비인데 어찌 앞길을 막느냐는 것이었다. 이긍익, <연려실기술> 조광조의 도학 정치 법도가 정해지는 것과 기강이 대강 서게 되는 것은 일찍이 대신을 공경하고 그 정치를 맡기는 데 있지 않은 것이 없사옵니다. 임금도 혼자서 다스리지 못하 고 반드시 대신에게 맡긴 뒤에 다스리는 도가 서게 됩니다. 전하께서 정말로 도를 밝히고 홀로 있는 때를 조심하는 것으로써 마음을 다스리는 요점을 삼으시고, 그 도를 조정의 위에 세우시면 기강은 어렵게 세우지 않더라도 정해질 것입니다. 조광조, <정암집> 해설 이조 낭관 김효원은 시골 출신으로 33세가 되던 해 인 1565년(명종 20) 장원 급제를 했지만, 과거 합격 전 외척 인 윤원형의 집에 잠시 머물렀다는 이유로 6년간 출세의 길 이 막혀 있었다. 이조 참의 심의겸은 명종의 처남으로 명문가 출신답지 않게 몸가짐을 조심하며 겸손한 생활을 하였고, 윤원형이 외척으 로서 권세를 휘두르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여겼다. 누이인 인순 왕후의 도움으로 이조 참의의 자리에 올랐다. 28 사료집
29 광해군의 외교 정책 경들은 이 오랑캐들을 어찌할 것인가? 우리나라 병력 으로 막을 만한 형세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지난번 명나라에서 구원병을 두 번이나 요청해 왔을 때 응하 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경들은 어찌 내 뜻을 헤아 리지 못하고 우리 군사가 투항한 사실을 명나라에 알 리려고만 하는가? 내 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이를 절통해 하는도다. 지금 우리나라가 계책으 로 삼아야 할 것은 군신 상하가 모두 일에 힘써 군사 를 기르고 장수를 뽑으며 인재를 거두어 쓰고 백성의 걱정을 덜어주어 인심을 기쁘게 하며, 둔전을 개간하 고 병기를 조련하며 성을 잘 수리하는 것이다. 이 모 든 것을 정리한 후에야 정세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화가 바로 이를 것이니 어 찌 두렵지 않겠는가? <광해군일기> 인조반정의 명분(2013.경찰 1차) 적신 이이첨과 정인홍( 鄭 仁 弘 ) 등이 또 그의 악행을 종용하여 임해군( 臨 海 君 )과 영창 대군을 해도( 海 島 )에 안치하여 죽이고... 대비를 서궁( 西 宮 )에 유폐하고 대 비의 존호를 삭제하는 등 그 화를 헤아릴 수 없었다. 선왕조의 구신들로서 이의를 두는 자는 모두 추방하 여 당시 어진 선비가 죄에 걸리지 않으면 초야로 숨 어버림으로써 사람들이 모두 불안해하였다. 또 토목 공사를 크게 일으켜 해마다 쉴 새가 없었고, 간신배가 조정에 가득 차고... 임금이 윤리와 기강이 이미 무너 져 종묘사직이 망해가는 것을 보고 개연히 난을 제거 하고 반정( 反 正 )할 뜻을 두었다. <조선왕조실록> 윤집의 척화론 화의로 백성과 나라를 망치기가 오늘날과 같이 심한 적이 없습니다. 중국(명)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곧 부 모요, 오랑캐(청)는 우리나라에 있어서 곧 부모의 원 수입니다. 신하된 자로서 부모의 원수와 형제가 되어 서 부모를 저버리겠습니까. 하물며 임란의 일은 터럭 만한 것도 황제의 힘이어서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먹 고 숨쉬는 것조차 잊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나라가 없 어질지라도 의리는 저버릴 수 없습니다. 어찌 차마 화 의를 주장하는 것입니까. <인조실록> 최명길의 주화론 화친을 맺어 국가를 보존하는 것보다 차라리 의를 지 켜 망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으나, 이것은 신하가 절개 를 지키는 데 쓰이는 말입니다. 자기의 힘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경망하게 큰소리를 쳐서 오랑캐의 노여움을 도발하여 마침내는 백성이 도탄에 빠지고 종묘와 사 직에 제사 지내지 못하게 된다면 그 허물이 이보다 클 수 있겠습니까. 늘 생각해 보아도 우리의 국력은 현재 바닥나 있고 오랑캐의 병력은 강성합니다. 정묘 년(1627)의 맹약을 아직 지켜서 몇 년이라도 화를 늦 추시고, 그 동안을 이용하여 인정을 베풀어서 민심을 수습하고, 성을 쌓으며 군량을 저축하여 방어를 더욱 튼튼하게 하되, 군사를 집합시켜 일사불란하게 하여 적의 허점을 노리는 것이 우리로서는 최상의 계책일 것입니다. <지천집> 삼수병 때문에 난전발달(2012.국가직 7급) 외방 곳곳에서 도적들이 일어났다. 나는 청하기를 당속미 1천석을 군량으로 하되, 한 사람당 하루에 2승 씩 급료를 준다면 사방에서 군인으로 응하는 자가 모여 들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얼마 안 되어 수천 명을 얻어 조총 쏘는 법과 창 칼 쓰는 기술을 가르치고 초관 과 파총을 세워 그들을 거느리게 하였다. 도 당번을 정 하여 궁중을 숙직하게 하고, 국왕의 행차가 있을 때에 이들로써 호위하게 하니 민심이 점차 안정되었다. <서애집> 해설 난전의 성장은 훈련도감 군인에서 비롯되었는데, 이 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봉급으로 받은 면포를 팔거나 수공업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판매하였는데, 시전상인 과 달리 전안에 오르지 않았고, 시역을 지지 않으면서도 상 업에 종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았다. 사료집 29
30 제승방략 체제(2010.국가직 7급) 을묘왜변 이후 김수문이 전라도에서 처음으로 도내의 여러 읍을 순변사 방어사 조방장 도원수와 본도 병 사 수사에게 소속시키니 여러 도에서 이를 본받았다. 이리하여 한번 위급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멀고 가까운 곳의 군사를 모두 동원하여 빈 들판에 모아놓 고 1,000리 밖에서 오는 장수를 기다리게 하였다. 그 러므로 장수는 아직 때 맞추어 이르지 않았는데, 적은 이미 가까이 오게 되니 군심이 동요하여 반드시 궤멸 하는 도리밖에 없다. 유성룡의 <상제> 속오군 비변사가 아뢰기를, 신역( 身 役 )의 유무와 공사천( 公 私 賤 )을 막론하고 조련을 감당할 만한 자로만 대오를 편성한 것으로, 그 본뜻은 다만 위급한 향촌 방어에 쓰려는 것이지, 병조가 교체 상번( 交 替 上 番 )시켜서 부 역군으로 쓰게 하자는 것은 아니었는데, 천인뿐만 아 니라 양반 유사( 儒 士 ) 아전( 衙 前 )의 무리로서 토목의 역사를 견디지 못하는 자까지도 그 속에 섞여 있습니 다. 그런데도 병조가 원군의 수효가 적다 하여 연이어 징발하여 교체하므로, 그 군병들이 조총, 활, 화살을 다 팔아 식량을 구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또 의복까지 파는데, 심한 자는 저자와 마을에서 구걸을 하여 원망이 자자하니. 선조실록 붕당 정치의 폐해 신축 임인년(경종 대 신임사화) 이래로 조정에서 노론, 소론, 남인의 삼색( 三 色 )이 날이 갈수록 더욱 사이가 나빠져 서로 역적이란 이름으로 모함하니 이 영향이 시골에까지 미치게 되어 하나의 싸움터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서로 혼인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당색( 黨 色 )끼리는 서로 용납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 르렀다. 대체로 당색이 처음 일어날 때에는 미미하였 으나 자손들이 그 조상의 당론을 지켜 200년을 내려 오면서 마침내 굳어져 깨뜨릴 수 없는 당이 되고 말 았다. 근래에 와서는 사색( 四 色 )이 모두 진출하여 오 직 벼슬만 할뿐, 예부터 저마다 지켜온 의리는 쓸모없 는 물건처럼 되었고, 사문( 斯 文 )을 위한 시비와 국가 에 대한 충역은 모두 과거의 일로 돌려 버리니. (영조 대 완론 탕평책 실시 이후의 상황) 이중환의 <택리지> 이인좌의 난(2013.서울시 9급) 적( 賊 )이 청주성을 함락시키니, 절도사 이봉상과 토포 사 남연년이 죽었다. 처음에 적 권서봉 등이 양성에서 군사를 모아 청주의 적괴( 賊 魁 ) 이인좌와 더불어 군 사 합치기를 약속하고는 청주 경내로 몰래 들어와 거 짓으로 행상( 行 喪 )하여 장례를 지낸다고 하면서 상여 에다 병기( 兵 器 )를 실어다 고을성 앞 숲 속에다 몰래 숨겨 놓았다. 이인좌가 자칭 대원 수라 위서( 僞 書 )하여 적당 권서봉을 목사로, 신천영을 병사로, 박 종원을 영장으로 삼고, 열읍( 列 邑 )에 흉격( 凶 檄 )을 전 해 병마( 兵 馬 )를 불러 모았다. 영부( 營 府 )의 재물과 곡식을 흩어 호궤( 犒 饋 )하고 그의 도당 및 병민( 兵 民 ) 으로 협종( 脅 從 )한 자에게 상을 주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4년 3월 탕평비문(2013.경찰 1차) 두루 하면서 무리 짓지 않는 것이 곧 군자의 공심이 고( 周 而 不 比 乃 君 子 之 公 心 ) 무리 짓고 두루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소인의 사심이 다.( 比 而 不 周 寔 小 人 之 私 心 ) 해설 영조는 원만해 편벽되지 않음은 곧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고, 편벽해 원만하지 않음은 바로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이다. 라는 문구를 새긴 탕평비( 蕩 平 碑 )를 성균관 입구 에 세웠다. 또한, 1772년에는 과거 시험에도 탕평과를 시행 하고, 같은 해 동색금혼패( 同 色 禁 婚 牌 )를 집집마다 걸게 하 여 같은 당파끼리 혼인하는 것을 금하였다. 또한, 탕평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오른 묵무침을 탕평채라 할 정도로 탕평책 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하였다. 영조의 탕평 교서(2014.서울시 7급) 붕당의 폐해가 요즈음보다 심각한 적이 없었다. 처음 에는 예절 문제로 분쟁이 일어나더니, 이제는 한쪽이 다른 쪽을 역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조정의 대 30 사료집
31 신들이 서로 상대 당을 공격하면서 반역인가 아닌가 로 문제를 집중하니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정책이 나오지 못하고, 정책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다. 이제 유배된 사람들의 잘잘못을 다시 살피도록 하고, 관리의 임용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탕평의 정신을 잘 받들어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라. <영조실록> 이른 것은 오로지 전하께서 그들의 사기를 선도( 善 導 ) 하여 배양하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는 간( 諫 )하는 상소가 드물어진 것을 참으로 이 조정 에 결함이 없어서라고 여기시고, 대각의 의논이 고요 하고 잠잠한 것을 당론( 黨 論 )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 이라고 여기십니까? <영조실록> 영조의 탕평책(2014.법원직) 당론( 黨 論 )의 폐단이 거의 1백 년이나 되었으니 어찌 갑자기 크게 변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세월을 두고 힘 쓰면 혹 줄어드는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지극 한 정성으로 탕평하시면, 신하로서 어찌 감동하는 마 음이 없겠습니까? 영조 대 상언과 격쟁(2010.국가직 7급) 근래 지방의 민심이 사나워 수령을 능멸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이전에 성상께서 행차하는 길에, 황주와 해 주의 백성이 수령에 대한 불만을 성상의 수레 앞에서 호소하여, 수령을 바꾸어 달라고까지 하였습니다. 백 성들의 이 같은 풍습은 이전에는 들어 보지 못한 것 입니다. 성상은 이들을 고양군에 가두라고 한 다음 특 별히 어사를 보내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모두 석 방하라 하였습니다. <영조실록> 이조 전랑의 약화 이조 전랑이 자신의 후임자를 추천하는 법을 없애도 록 명하였다. 임금은 늘 조정의 붕당을 근심하였는데, 이조 전랑을 선발할 때가 되면 두 당( 黨 )에서 서로 감 싸고 억제하며 싸우기를 그치지 않으니, 임금은 그들 이 하는 짓을 싫어하고 미워하여 이미 경장(낡은 제 도를 고쳐 새롭게 함)할 뜻을 가지고 있었다. <영조실록> 정조의 만천명월주인옹( 萬 川 明 月 主 人 翁 ) 자서( 自 序 ) 달은 하나이며 물은 수만이다. 물이 달을 받으므로 앞 시내( 川 )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다. 달의 수는 시내의 수와 같은데 시내가 만 개에 이르더라도 그렇 다. 그 이유는 하늘에 있는 달이 본디 하나이기 때문 이다. 달은 본래 천연으로 밝은 빛을 발하며, 아래로 내려와서는 물을 만나 빛을 낸다. 물은 세상 사람이 며, 비추어 드러나는 것은 사람들의 상( 象 )이다. 달은 태극( 太 極 )이며, 태극은 바로 나다. <홍재전서> 정조의 탕평책(2014.국가직 9급) 국왕은 행차 때면 길에 나온 백성들을 불러 직접 의 견을 들었다. 또한 척신 세력을 제거하여 정치의 기강 을 바로 잡았고, 당색을 가리지 않고 어진 이들을 모 아 학문을 장려 하였다. 침전에는 탕탕평평실( 蕩 蕩 平 平 室 ) 이라는 편액을 달았으며, 하나의 달빛이 땅 위 의 모든 강물에 비치니 강물은 세상 사람들이요, 달은 태극이며 그 태극은 바로 나다. 라고 하였다. 고금도서집성(2012.국가직 9급) 국왕께서 왕위에 즉위한 첫 해에 맨 먼저 도서집성 5 천여권을 연경의 시장에서 사오고, 또 옛날 홍문관에 간직했던 책과 명에서 보내온 책들을 모았다. 창덕 궁 안 규장각 서남쪽에 열고관을 건립하여 중국본을 저장하고, 북쪽에는 국내본을 저장하니, 총 3만권 이 상이 되었다. 3사의 언론 활동 억제 오늘날의 대각(사헌부와 사간원)은 사기가 땅에 떨어 져서 거의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풍습이 이에 사료집 31
32 무예도보통지(2012.지방직 9급) 곤봉 등 6가지 기예는 척계광의 기효신서에 나왔는데 장헌세자가 정사를 대리하던 중 기묘년에 명하여 죽장창 등 12가지 기예를 더 넣어 도해로 엮어 새로 신보를 만들었고, 상( 上 )이 즉위하자 명하여 기창 등 4가지 기예를 더 넣고 또 격구, 마상재를 덧붙여 모두 24가지 기예가 되었는데, 검서관 이덕무, 박제가에게 명하여 주해를 붙이게 했다. <정조실록> 어느 수령이 보낸 물건은 매우 넉넉하다고 말한다. 이 름있는 관리들이 말하는 것이 이러하다면 지방에서 거둬들이는 것이 반드시 늘어날 것이다.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겠는가. 라고 한탄하면서 눈물을 흘려 마지 않았다. 정약용, <목민심서> 해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감사와 수령은 나라의 대도( 大 盜 )요, 향리는 굶주린 솔개와 같다. 선비는 도포 입은 도적이다. 라고 하며 세도 정치를 비판하였다. 신해통공(2014.사회복지직) 내가 장단 적소에 있을 때 해서 면포 상인의왕래가 끊이지 않은 것을 보았는데 길 가는 사람들이 통공 발매의 효과라 하였다. 작년 겨울 서울의 면포 가격이 이 때문에 등귀하지 않아 서울 사람들이 생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백두산 정계비(숙종 38) 오라총관 목극등이 국경을 조사하라는 교지를 받들어 이곳에 이르러 살펴보고 서쪽은 압록강으로 하고 동 쪽은 토문강으로 경계를 정하여 강이 갈라지는 고개 위에 비석을 세워 기록하노라. 강희 51년(1712), 5월 15일 정조의 척사학교(2013.국가직 7급) 오늘날 사설( 邪 說 )의 폐단을 바로 잡는 길은 더욱 정 학( 正 學 )을 밝히는 길밖에 없다. (중략) 연전에 서 학( 西 學 ) 서적을 구입해 온 이승훈은 어떤 속셈이든 지 간에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전 현감 이승훈을 예산현으로 귀양을 보내고, 이 외 시골 백성에게도 상줄 만한 백성은 상주어야 할 관서가 있어야 하니 묘당( 廟 堂 )에서는 소관관서를 철 저히 감독하라. (중략) 이렇게 교시한 뒤에도 다시 서학( 西 學 )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찌 정부가 있 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척사학교> 세도 정치의 폐단(2010.법원직) 가을에 한 늙은 아전이 대궐에서 돌아와서 처와 자식 에게 요즘 이름있는 관리들이 모여서 하루 종일 이 야기를 하여도 나랏일에 대한 계획이나 백성을 위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 오로지 각 고을에서 보내오 는 뇌물의 많고 적음과 좋고 나쁨에만 관심을 가지고, 어느 고을의 수령이 보낸 물건은 극히 정묘하고 또 간도 협약 제1조 청 일 두 나라 정부는 토문강을 청국과 한국의 국경으로 정하고, 강 원천지에 있는 정계비를 기점으 로 하여 석을수( 石 乙 水 )를 두 나라의 경계로 한다. 제3조 청 정부는 이전과 같이 토문강 이북의 개간지 에 한국 국민이 거주하는 것을 승인한다. 그 지역의 경계는 별도로 표시한다. 통신사의 파견(2008.국가직 9급) 일본 사람이 우리나라의 시문을 구하여 얻은 자는 귀 천현우를 막론하고 우러러 보기를 신선처럼 하고 보 배로 여기기를 주옥처럼 하지 않음이 없어, 비록 가마 를 메고 말을 모는 천한 사람이라도 조선 사람의 해 서( 楷 書 )나 초서( 草 書 )를 두어 글자만 얻으면 모두 손 으로 이마를 받치고 감사의 성의를 표시한다. 통신사(2012.서울시 9급) 묘시에 시도를 떠나 겨우 5리 정도 나아가 전도를 지 났다. 여러 배들이 북과 꽹과리를 두드리면서 힘써 노 저어 앞으로 나아가니, 소리가 산과 바다를 울렸다. 32 사료집
33 겨울 날씨가 노 젓는 사공들이 땀을 흘릴 정도였다. 홍우재, <동사록> 11장 조선의 경제 성리학의 경제관 검소한 것은 덕( 德 )이 함께하는 것이며, 사치는 악 ( 惡 )의 큰 것이니 사치스럽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할 것이다. 농사와 양잠은 의식( 衣 食 )의 근본이니, 왕도 정치에서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전에 공상( 工 商 )에 관한 제도가 없어, 백성들 중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자들이 수공업과 상업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백성이 줄어 들었으며, 말작(상업)이 발달하고 본실(농업)이 피폐 하였다. 이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경국전> 해설 자료의 성리학적 경제관은 크게 세 가지이다. 검약 중시, 농사와 양잠 중시, 그리고 상업 천시이다. 한 마디로 상공업을 억제하고 중농 정책을 실시하여 자급자족 경제 구 조를 유지하는 것이 성리학적 질서와 부합한다고 본 것이 다. 지배층의 이러한 경제 관념이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쳐 조선 전기까지는 상공업과 화폐 유통이 전반적으로 부진하 였다. 과전법 문종(고려시대의 왕) 때 설정한 구역을 기준으로 경기 (고려는 경기, 조선은 경기도)에 소속될 군현들을 정하 고, 좌 우도로 나누어 배치한다. 여기에 과전을 설치 하고, 1품으로부터 9품과 산직에 이르기까지의 관리 를 18과로 나누어 이를 지급한다. 경성( 京 城 )에 살면서 왕실을 시위하는 자는 과에 따라 토지를 받는 다. 제1과는 재내 대군으로부터 문하시중에 이르기까 지로 150결이고, 제18과는 권무(임시직), 산직으 로 10결이다. (2013.지방직 9급) 공양왕 3년 5월, 도평의사사가 글을 올려 과전( 科 田 )을 지급하는 법을 정할 것을 요 청하니 왕이 따랐다. 경기는 사방의 근본이니 마땅히 과전을 설치하여 사대부를 우대한다. 무릇 경성에 거 주하여 왕실을 시위하는 자는 직위의 고하에 따라 과 전을 받는다[18등급으로 나누어 150(제1과) 10(제18 과)결까지 지급]. 토지를 받은 자가 죽은 후 그의 자 식이 있고 수신하는 자는 남편의 과전을 모두 물려받 고, 자식이 없이 수신하는 자의 경우는 반을 물려받는 다. 부모가 모두 사망하고 그 자손이 유약한 자는 휼 양전으로 아버지의 과전을 전부 물려받고, 20세가 되 면 본인의 과에 따라 받는다. <고려사>, 식화지 (전하께서) 국내의 토지를 몰수하여 국가에 귀속시키 고 식구를 헤아려 토지를 나누어 주어서 옛날의 올바 른 전제( 田 制 )를 회복하려 한 것인데, 당시의 구가( 舊 家 ) 세족( 勢 族 )들이 자기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입 을 모아 비방하고 원망하면서 온갖 방해를 하여 백성 들로 하여금 지극한 정치의 혜택을 입지 못하게 하였 으니, 어찌 한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뜻을 같이하는 2 3명의 대신과 함께 전 시대의 법을 강구 하고 현실에 알맞은 것을 참작하여 국내의 토지를 측 량하여 파악한 다음 토지를 결 수로 계산하여 그중의 얼마를 상공전( 上 供 田 ) 국용전( 國 用 田 ) 군자전( 軍 資 田 ) 문무역과전( 文 武 役 科 田 )으로 분배하고 한량으로 서울에 거주하면서 왕실을 호위하는 자나 과부로서 수절하는 자, 향역( 鄕 驛 )이나 도진( 渡 津 )의 관리 또는 서민과 공장( 工 匠 )으로서 공역을 맡는 자에 이르기까 지 모두 토지를 분배해 주었다. <조선경국전> 직전법의 시행 대사헌 양지가 상소하였다. 과전( 科 田 )은 사대부를 기르는 것입니다. 장차 직전( 職 田 )을 두려고 한다는 데, 조정의 신하는 직전을 받게 되지만 벼슬에서 물러 난 신하와 무릇 공경대부의 자손들은 1결( 結 )의 토지 도 가질 수 없게 되니 이는 대대로 국록을 주는 뜻에 어긋납니다. 관리들이 녹봉을 받지 못한다면 서민과 다를 바가 없게 되어 세신( 世 臣 )이 없게 될 것이니 이 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조실록> 사료집 33
34 공법의 제정 각도의 수전 한전의 소출 다소를 자세히 알 수가 없 으니 공법에서의 수세액을 규정하기가 어렵다. 지금 으로부터는 전척( 田 尺, 토지를 측량하는 자)으로 측량한 매 1결에 대하여 상상( 上 上 )의 수전에는 몇 석을 파 종하고, 한전에서는 무슨 곡종 몇 두를 파종하며, 상 상년에는 수전은 몇 석, 한전은 몇 두를 수확하며, 하 하년에는 수전은 몇 석, 한전은 몇 두를 수확하는지, 하하( 下 下 )의 수전에서는 역시 몇 두를 파종하고 한 전에서는 무슨 곡종을 몇 두를 파종하며, 상상년에는 수 한전 각기의 수확이 얼마며, 하하년에는 수 한전 각기의 수확이 얼마인지를, 각 관의 관둔전(관청 의 비용이나 군비를 마련하기 위한 땅)에 대해서도 과거 5년간의 파종 및 수확의 다소를 위와 같이 조사하여 보고토록 합니다. <세종실록> 해설 공법이란 전분 6등법과 연분 9등법의 다른 이름이 다. 조선의 조세 제도는 1결의 최대 생산량을 300두로 정하 고 매년 풍흉을 조사하여 그 수확량에 따라 납부액을 조정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종 때에 조세 제도를 좀 더 체계 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토지 비옥도와 풍흉의 정도에 따라 전분 6등법, 연분 9등법으로 바꾸고 조세 액수를 1결당 최 고 20두에서 최저 4두로 인하하였다. 연분 9등법의 폐단(2008.법원직) 무릇 백성의 근심은 재해를 살피는 것이 밝지 않고 등분을 정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감사 가 수령을 뽑아 보내어 답험하게 하면 수령은 길만 따라가서 위관에게 맡기고 위관은 서리에게 맡깁니다. 서리는 산 넘고 물 건너는 험한 길을 꺼려서 평탄한 길로만 다닙니다. 음식 접대를 받고 뇌물을 기대합니 다. 그러므로 힘 있는 자에게는 곡식이 여물어도 재해 를 입은 것으로 하고, 가난한 자에게는 재해를 입어도 여문 것이라 합니다. 수령은 많이 거두어들이는 데에 힘쓰므로 흉년이 들어도 흉년이 아니라고 하고 곡식 이 조금만 잘 되어도 아주 잘 되었다고 하여 그 등급 을 높입니다. 애달픈 백성들은 어디에 호소하겠습니 까? <중종실록> 시전 왕도의 제도에 따르면 (궁) 왼쪽에는 종묘, 오른쪽에 는 사직을 둔다, 앞에는 조정, 뒤에는 시장을 둔다. 시전은 일반 백성이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고 조정이 나 왕실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중히 여기는 것이 다. 도성 안에 시전은 앉아서 하는 장사를 위한 것이 다. 큰 것이 여섯 개 있는데, 이를 육의전이라고 한다. <만기요람> 장시 장사꾼이 의복 등을 판매하며, 심지어는 신 갓끈 빗 바늘 분( 紛 ) 같은 물품을 가지고 무지한 백성에게 교묘하게 말하여 미리 그 값을 정하고 주었다가 가을 이 되면 그 값을 독촉해서 받는다. <세종실록> 경인년(1470) 흉년 때 전라도 백성이 서로 모여들어 점포를 열어 장문( 場 門 : 시장)이라 칭하고, 사람들이 이에 의지하여 목숨을 유지하였다. <성종실록> 임진왜란 이후 백성은 정해진 곳 없이 교역으로 생활 하는 것이 마침내 풍속이 되었다. 각 읍에서 장시가 서는 것이 적어도 3,4곳이 되어 한 달 30일 내에 시 장이 열리지 않는 날이 없다. <선조실록> 짚신에 감발 치고 패랭이 쓰고 꽁무니에 짚신 차고 이고 지고 이 장 저 장 뛰어가서 장돌뱅이들 동무들 만나 반기며 이 소식 저소식 묻고 듣고 목소리 높여 고래고래 지르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외쳐 가며 돌 도부장사하고 해 질 무렵 손잡고 인사하고 돌아서네 다음날 저 장에서 보세 <민요> 해설 농촌의 장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5세기 말이었다. 정부는 농민들이 농업을 버리고 상업에 몰릴 것을 우려하여 장시를 막았으나 일부 장시는 정기시로 정착되어 갔으며, 16세기 중엽에는 전국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34 사료집
35 전세 제도의 폐단 무릇 백성의 근심은 재해를 살피는 것이 밝지 않고 등분을 정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은 데 있습니다. 감사 가 수령을 뽑아 보내어 답험하게 하면 수령은 길만 따라가서 위관에게 맡기고 위관은 서리에게 맡깁니다. 서리는 산 넘고 물 건너는 험한 길을 꺼려서 평탄한 길로만 다닙니다. 음식 접대를 받고 뇌물을 기대합니 다. 그러므로 힘 있는 자에게는 곡식이 여물어도 재해 를 입는 것으로 하고, 가난한 자에게는 재해를 입어도 여문 것이라 합니다. 수령은 많이 거두어들이는 데에 힘쓰므로 흉년이 들어도 흉년이 아니라고 하고 곡식 이 조금만 잘되어도 아주 잘되었다고 하여 그 등급을 높입니다. 애달픈 백성들은 어디에 호소하겠습니까? <중종실록> 넓혀 행한다면 방납의 폐단은 머지않아 저절로 개혁 될 것이다. <율곡전서> 군포제의 폐단 대사헌 양연이 아뢰기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인데, 백성들의 고생이 지금보다 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 는 모자란 군액의 번가( 番 價 )가 무겁기 때문입니다. 보병이 한 번 군역에 종사하면 들어가는 비용이 베 3 동(1동 = 50필)까지 되므로 가난한 백성들이 파산하 여 집이 망하고, 두 번 군역에 종사하면 지탱할 수 없 어 도망쳐 흩어집니다. 도망치면 그 일족에게 거두기 때문에 일족도 견디지 못하고 모두 흩어집니다. 군정 이 모자라는 이유는 모두 이 때문입니다. <중종실록> 공납의 폐단 강원도 감사 황희가 장계를 올리기를, 도내 영서 지 방 각 고을 민호의 수는 원래 9천 5백 9호인데, 근래 에 기근으로 흩어져 없어진 호가 2천 5백 67호이며, 현재 남아 있는 호는 6천 9백 42호입니다. 이 때문에 본래의 농지 6만 1천 7백 90결 중 황폐한 것이 3만 4 천 3결이나 됩니다. 그런데도 종전에 번성할 때 정한 공물의 수량이 지금까지도 그대로여서 기근으로 겨우 살아가는 가구들이 자기 집의 공물도 감당하지 못하 는 판에 도망한 집안의 공물까지 부담하게 되니, 그 폐해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도에 서 생산되지 않으면서 부득이 나라 살림에 사용해야 할 물건 외에 잡다한 공물은 다시 감면해 주어 백성 이 살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세종실록> 수미법 해주의 공물법을 보면 토지 1결마다 쌀 한 말을 징수 하고 관청은 스스로 물품을 마련하여 서울에 바치기 때문에 백성들은 쌀을 낼 줄만 알지 다른 폐단은 거 의 듣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백성을 구하는 참으로 좋은 법이 될 수 있다. 만약 이 법을 사방으로 16세기 농민들의 처지 백성으로 농지를 가진 자가 없고, 농지를 가진 자는 오직 부유한 상인과 사족( 士 族 )의 집뿐입니다. <중종실록> 근래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나 공공연하게 노략질을 하며 양민을 죽이고 방자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여 도 주현에서 막지 못하고 병사( 兵 使, 병마절도사)도 잡지 못하니, 그 형세가 점점 커져서 여러 곳으로 퍼 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서울에서도 떼로 일어나 빈 집 에 진을 치고 밤이면 모였다가 새벽이면 흩어지고 칼 로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명종실록> 지방에서 토산물을 공물로 바칠 때, (중앙 관청의 서 리가) 공납을 일체 막고 본래 값의 백 배가 되지 않으 면 받지도 않습니다. 백성이 견디지 못하여 세금을 못 내고 도망하는 자가 줄을 이었습니다. <선조실록> 해설 16세기에 이르러 조선의 조세 제도는 근본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양반들의 농장 확대로 농민들은 토지 를 잃고 유망하거나 소작농으로 전락하였고, 방납의 폐단이 발생하면서 부담도 갑절 이상 증가하였다. 이에 토지를 버 리고 떠도는 농민들이 증가하였고, 일부 유망민들이 도적이 사료집 35
36 되어 양반가를 습격하거나 공물을 빼앗기도 하는 사건이 벌 어졌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임꺽정이었다. 영정법 시행 인조 갑술년(1635) 토지 조사 사업 뒤에 마침내 연분 9등법을 혁파하였다. 삼남 지방은 각 등급으로 결수 를 정해 조세 대장에 기록하였다. 영남은 상지하( 上 之 下 )까지만 있게 하고, 호남과 호서 지방은 중지중( 中 之 中 )까지만 있게 하였다. 나머지 5도는 하지하( 下 之 下 )로 정하여 세금을 징수하였다. <만기요람> 방납의 폐해 김개가 아뢰기를 신이 지난번 전라도에 있을 때 들 은 바로는 사다새의 살을 약으로 사용하므로 전라도 바닷가 7읍에서 번갈아 진상한다. 하였습니다. 당초 생산되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생산되 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진상할 차례가 돌아오면 백성들에게 그 값을 징수하여 평안도 산지에 가서 사 옵니다. 또는 서울 상인이 가지고 있으면 먼저 바치고 그 고을에서 값을 받기도 합니다. 하였다. <명종실록> (선조 원년 5월 을해) 조식이 상소를 올렸다. 예로부터 권신, 외척, 환관으로서 나라를 마음대로 했 던 자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서리( 胥 吏 )가 나라를 마 음대로 했던 것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지방 토 산물의 공납을 일체 막아 한 물건도 상납하지 못하게 합니다. 공물을 바치는 사람이 구족( 九 族 )의 것을 모 으고 가업을 팔아 넘겨 관사( 官 司 )에는 내지 않고 개 인에게 냅니다. 본래 값의 백 배가 아니면 받지도 않 습니다. 나중에는 계속할 수가 없어서 빚을 지고 도망 하는 자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어찌 주현 백성의 공 납이 간사한 아전들이 나누어 갖는 것이 되리라고 생 각이나 했겠습니까? 어찌 전하가 온 나라의 부( 富 )를 누리면서도 종놈의 방납( 防 納 )한 물자에 의지하리라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선조실록> 대동법 시행 선혜법이 경기에 시행된 지 근 20년이 되는데, 백성 들이 매우 편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8도에 두루 행 해지면 곧 8도의 백성들이 가히 그 혜택을 입을 것입 니다. 그런데 광해군 때 각 관청의 하급 관리들과 모 리배 세력가들이 갖가지 훼방을 놓아서 그 편리함을 알고도 시행치 못함이 오래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 금은 온갖 부담이 겹쳐져 있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모름지기 일대 개혁책으로 민심을 수습할 방책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일시에 전부는 못하더라 도 우선 2, 3도에라도 먼저 시행하여 봄과 가을에 1 결당 10두씩 쌀을 거두면 60만 석이 될 것입니다. <인조실록> 토지 1결마다 2번에 걸쳐 8두씩 거두어 본청에 수납 하고, 본청은 그때의 물가 시세를 보아 쌀로써 공인에 게 지급하여 수시로 물건을 납부하게 하소서. 라고 하 니, 임금(광해군)이 이에 따랐다. 도고의 활동 그(허생)는 안성의 한 주막에 자리 잡고서 밤, 대추, 감, 배, 귤 등의 과일을 모두 사들였다. 허생이 과일 을 도거리로 사두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치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과일값은 크게 폭등하 였다. 이어서 허생은 그 돈으로 곧 칼, 호미, 삼베, 명 주 등을 사가지고 제주도로 들어가 말총을 모두 사들 였다. 말총은 망건의 재료였다. 얼마 되지 않아 망건 값이 10배나 올랐다. 이렇게 하여 허생은 50만 냥에 이르는 큰 돈을 벌었다. 박지원 <허생전> 해설 조선 후기에는 상품을 매점매석하여 가격 상승과 매 매 조작을 노리는 허생과 같은 도고 상인이 등장하였다. 도 고라는 말은 본래 공인들이 공납품을 미리 사서 쌓아두던 창고를 뜻하는 말이었는데, 뒤에는 독점적인 도매상이라는 뜻의 도고라는 말과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공인, 시전 상인, 사상, 여각, 객주 등이 모두 도로로 이익을 얻었다. 36 사료집
37 군포제의 폐단과 균역법 나라의 100여 년에 걸친 고질 병폐로서 가장 심한 것 은 양역이다. 혹 한 집안에 부자, 조손이 군적에 한꺼 번에 기록되어 있거나, 혹은 3, 4명의 형제가 한꺼번 에 군포를 납부해야 하며, 또한, 이웃이 견책을 당하 고 친척이 징수를 당하고, 젖먹이는 젖 밑에서 군정으 로 편성되고, 죽은 사람은 지하에서 징수를 당하며, 한 사람이 도망하면 열 집이 보존되지 못하니, 비록 좋은 재상과 현명한 수령이라도 역시 어찌할 바를 모 른다. <영조실록> (2012.사회복지직) 양역을 절반으로 줄이라고 명하 였다. 구전( 口 錢 )을 한 집안에서 거두게 되면 주인 과 노비의 명분이 문란해진다. 결포( 結 布 )는 정해진 세율이 있어 더 부과하기 어렵다. 호포나 결포는 모두 문제가 있다. 이제 군포를 1필로 줄이도록 하고 감소된 액수를 채울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라. <영조실록> (2011.법원직) 감면한 것을 계산하면 모두 50여 만 필에 이른다. 돈으로 계산하면 1백여 만 냥이다. 아문 과 군대의 비용을 줄인 것이 50여 만 냥이다. 부족한 부분은 어세, 염세, 선세와 선무군관에게 받은 것, 은 여결에서 받아들이는 것으로 충당하였는데, 모두 합 하면 십수만 냥이다. 이 법이 시행된 후 바닷가 백성의 원성이 하늘까지 이르고 여러 사람들의 원망이 들끓었기 때문에 신이 몇 차례 상소하여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 법의 시 행으로 부족해진 경비를 여기저기에서 긁어모아 충당 하느라 오히려 그 폐단이 심합니다. <영조실록> 이 법(이앙, 移 秧 )은 제초( 除 草 )에 편하나 만일 한 번 만 큰 가뭄을 만나면 실수하니 농가의 위험한 일이다. <농사직설> 견종법 지금 사람들이 보리를 심은 때는 모두 밭두둑(이랑) 사이(고랑)에 심는다. <임원경제지> 이앙법 금지 숙종 24년(1698)에 호조 판서 이유( 李 濡 )가 경연에서 아뢰기를 모내기는 작은 노력으로 많은 효과를 거두 므로 제도( 諸 道 )에서 하지 아니하는 곳이 없어 풍속 을 이루었으니, 지금 비록 일체 금단하기 어려우나 만 약 가뭄 때를 만나면 수근( 水 根 )이 있는 곳에는 비록 심한 실패에 이르지 않더라도 높고 건조한 곳에 모내 기를 하는 자가 있으면 각별히 논죄할 일을 권농절목 ( 勸 農 節 目 ) 에 보태어 넣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증보문헌비고> 상품 화폐 작물의 재배 농민이 밭에 심는 것은 곡물만이 아니다. 모시, 오이, 배추, 도라지 등의 농사도 잘 지으면 그 이익이 헤아 릴 수 없이 크다. 도회지 주변에는 파밭, 마늘밭, 배 추밭, 오이밭 등이 많다. 특히 서도 지방의 담배밭, 북도 지방의 삼밭, 한산의 모시밭, 전주의 생강밭, 강 진의 고구마밭, 황주의 지황밭에서의 수확은 모두 상 상등전의 논에서 나는 수확보다 그 이익이 10배에 이 른다. <경세유표> 이앙법 부종( 付 種, 직파법)은 양곡의 소출이 적고 주앙( 注 秧, 이앙법)은 양곡의 소출이 배이며 공력( 功 力, 노동력) 은 반뿐인데, 부종은 공력이 배가 된다. <일성록> 상품 작물은 작물 재배의 목적이 판매에 있었다. 따라 서 상품 작물의 재배는 농민의 소득을 이전보다 높여 주었다. 당시 널리 인기 있고 높은 이윤을 보장해 주는 작물은 담배, 목화, 약재, 채소 등이었는데 논이나 밭 농사보다 수 배의 이익이 있었다고 한다. 16세기에 전 래된 담배는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지방에서 많이 재 배되었으며, 채소는 주로 도시 주변에서 재배되었다. 사료집 37
38 조선 후기 상품 화폐 작물(2014.법원직) 이른 새벽 보슬비에 담배 심기 참 좋다네 담배 모종 옮겨다가 울 밑 밭에 심어 보세 금년 봄엔 가꾸는 법 영양법을 배워 들여 황금 같은 잎담배를 팔아 일 년 살아보세 민영 수공업의 발달에 따른 폐단 지금 각 지방에서 무쇠점 옹점 침점 등 여러 가지 점촌들이 생겨나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군역을 도 피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점촌으로 밀려들고 있어 일반 부역 대상자들과 군역 대상자들이 날로 줄어들 고 있다. 지방관들은 오히려 이들을 비호하고 점촌들 에서 바치는 물건들로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있다. <승정원일기> 민영 수공업의 발달 동국의 풍속으로 유기(놋그릇)를 가장 귀하게 여겨 아침 저녁으로 밥상에 올리는 그릇으로 모두 유기를 쓰고 있다. 옛날에는 오직 권세 있는 집이나 부 유한 집에서만 유기를 사용했다. 오늘날은 두메산골 오두막집에서도 유기를 쓰지 않는 곳이 없고 대개 3, 4벌씩은 다 갖고 있다. 이에 따라 곳곳에서 장인들이 작업장을 만들어 유기를 주조한다. 호남 구례 유기가 나라 안에 이름이 나 있다. 근년에는 송도인이 만드는 유기도 좋다고 한다. <임원경제지> 선대제(2008.지방직 7급) 3월에 삼씨 뿌려 7월에 삼을 쪄서 닷새 동안 실 잇고 이어 열흘 동안 씻고 씻어 가는 손에 북을 들고 가는 베 짜냈더니 잠자리 날개 같아 한 줌 안에 담뿍 들 듯 아깝게도 저 모시, 남쪽 장사치에 다 주고 베 값이라 미리 받은 돈은 관청 빚에 다 털렸는데 베 짜는 저 아가씬 언제 보나 석새삼배 그나마 너무 짧아 정강이도 채 못 가리누나. <이계집> 상품 경제의 발전과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 조정에서 은이 나는 곳에 은점 설치를 허가만 내주면 돈 많은 장사꾼은 각자 재물을 내어 일꾼을 모집할 것입니다. 땅이 없어 농사짓지 못하는 백성들은 점민 이 되기를 원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 모여 살며 은 을 캐어 호조와 각 영, 고을에 세를 바치고, 남는 대 로 물주에게 돌릴 것입니다. 땅 없는 백성들도 그것에 의지해서 살아나갈 수 있으니 공사 간에 유익한 일입 니다. 어찌 백성들에게 폐단이 되겠습니까. <경제야언> 조선 후기 광산촌의 모습 황해도 관찰사의 보고에 의하면, 수안에는 본래 금광 이 다섯 곳이 있었다. 두 곳은 금맥이 다하였고, 세 곳만은 금맥이 풍성하였다. 그런데 지난해 장마가 심 해 작업이 중지되어 광군들이 흩어졌다. 금년(1799) 여름에 새로이 39개소의 금혈을 팠는데, 550여 명의 광군들이 모여 들었다. 이들은 일부가 도내의 무뢰배 들이지만, 대부분은 사방에서 이득을 쫓아 몰려온 무 리이다. 그리하여 금점 앞에는 700여 채의 초막이 세 워졌고, 광군과 그 가족, 좌고(상가를 가지고 장사하 는 사람), 행상, 객주 등 인구도 1,500여 명에 이른다. 갑자기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그 곳에서는 생필품의 가격이 폭등하는 사태가 종종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비변사등록>, 정조 23년 해설 민영 수공업의 발달에 따라 그 원료인 광물의 수요 가 급증하게 되면서 금, 은, 구리 등의 채굴을 촉진시켰다. 특히 청과의 무역으로 은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은광의 개발 이 활기를 띠었다. 17세기 말에는 거의 70개소의 은광이 개 발되었고, 18세기 말에는 상업 자본이 채굴과 제련이 쉬운 사금 채굴에 몰리면서 금광의 개발도 활발해졌다. 이앙법의 보급으로 광작이 유행하면서 소작지를 잃고 광산으로 모여 든 농민들의 노동력이 이러한 현상을 가능하게 하였다. 신해통공(금난전권 철폐) 5, 6년 전부터 서울에서 놀고먹는 무리들 가운데 평 시서에 출원하여 시전을 새로 낸 자가 매우 많아졌다. 이들은 상품을 판매하는 일보다 난전 잡는 일을 주로 38 사료집
39 한다. 심지어 채소와 기름 젓갈 같은 것도 새로 생긴 시전 때문에 마음대로 거래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 때문에 지방민이 가져오는 일상의 생활용품을 사고팔 아 먹고사는 서울의 영세민들은 금난전권 의 피해를 입어 장차 거래가 끊어질 형편이다. <비변사등록>, 영조 17년 6월 좌의정 체제공이 왕께 아뢰기를, 평시서로 하여금 30 년 이내에 신설된 시전을 모두 혁파하게 하십시오. 그 리고 형조와 한성부에 분부하여 육의전 이외에는 금 난전권 을 행사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도리어 처벌 하십시오. 그러면 상인들은 자유롭게 매매하는 이익 이 있을 것이고 백성들은 생활이 궁색하지 않을 것입 니다. 하였다.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물으니, 모두 옳 다고 하여 그를 따랐다. <정조실록> 해설 시전 상인들은 정부가 지은 건물에서 관청 수요품을 조달하면서 금난전권이라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18세기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금난전권을 내세운 시 전 상인들의 횡포가 심해짐에 따라, 물가가 상승하고 영세 상인과 도시 빈민의 생활을 크게 압박하자 1721년(정조 15) 정부는 육의전 이외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하였다. 포구 상업 우리나라는 동, 서, 남의 3면이 모두 바다이므로, 배 가 통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배에 물건을 싣고 오 가면서 장사하는 장사꾼은 반드시 강과 바다가 이어 지는 곳에서 이득을 얻는다. 전라도 나주의 영산포, 영광의 법성포, 흥덕의 사진포, 전주의 사탄은 비록 작은 강이나 모두 바닷물이 통하므로 장삿배가 모인 다. 충청도 은진의 강경포는 육지와 바다 사이에 위치 하여 바닷가 사람과 내륙 사람이 모두 여기에서 서로 의 물건을 교역한다. 매년 봄, 여름에 생선을 잡고 해 초를 뜯을 때에는 비린내가 마을에 넘치고, 큰 배와 작은 배가 밤낮으로 포구에 줄을 서고 있다. <택리지> 해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포구가 새로운 상업의 중심 지가 되었다. 포구의 상거래는 장시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종래의 포구는 세곡이나 소작료를 운송하는 기지의 역할을 하였으나 18세기 이후 포구들이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하면 서 포구를 거점으로 선상, 객주, 여각 등이 활발한 상행위를 하였다. 12장 조선의 사회 반상제의 확립 과정 성종 13년 4월 신해 사헌부 대사헌 채수가 아뢰었다. 어제 전지를 보니 통역관 의관을 권장하고 장려하고 자 능통하고 재주가 있는 자는 동서 양반에 발탁하여 쓰라고 특별히 명령하셨다니 듣고 놀랐습니다. 무릇 벼슬에는 높고 낮은 것이 있고 직책에는 가볍고 무거 운 것이 있습니다. 약사 통역관은 사대부의 반열에 낄 수 없습니다. 의관 역관 무리는 모두 미천한 계급 출신으로서 사족이 아닙니다. <성종실록> 삼강행실도 인류의 도는 진실로 삼강 밖에서 나오는 것이 없고, 천성의 참됨은 진실로 만대에 같은 것입니다. 마땅히 앞선 사람들의 행실에 대한 기록을 모아 오늘의 모범 을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윽이 살펴보건대, 임금에게 충성하고 아버지에게 효도하고 남편에게 절개를 바치 는 것은 하늘의 법칙에 근본을 둔 것입니다. 신하로서 이것을 하고 아들로서 이것을 하며 아내로서 이것을 하는 것은 순종하는 땅의 도리에 근원을 둔 것입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동방 고금의 서적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모두 보았습니다. 그 가운 데 효자 충신 열녀로 우뚝 높아서 기록으로 남길 만 한 사람을 각각 110명씩 찾아내었습니다. 앞에는 그 림으로 그리고 뒤에는 사실을 기록하였으며, 모두 시 를 붙였습니다. <삼강행실도> 삼강행실도(2012.국가직 7급) 천하의 떳떳한 다섯 가지가 있는데 삼강이 그 수위에 있으니, 실로 삼강은 경륜의 큰 법이요 일반 가지 교 화의 근본이며 원천입니다. 간혹 훌륭한 행실과 높 은 절개가 있어도, 풍속습관에 옮겨져서 보고 듣는 자 사료집 39
40 들의 마음을 흥기시키지 못하는 일도 또한 많다. 내가 그 중 특별히 남달리 뛰어난 것을 뽑아서 그림과 찬 을 만들어 중앙과 지방에 나누어 주고. 고 하시고 (후략) 비같이 한다. 진실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심지어 시전 상인이나 군역을 지는 상민까지도 서로 양반이 라 부른다. <일성록> 족보의 의미 내가 생각하건대 옛날에는 종법이 있어 대수( 代 數 )의 차례가 잡히(위, 아래의 관계가 뚜렷해짐)고 적자와 서자 의 자손이 구별지어져 영원히 알 수 있었다. 종법이 없어지고는 족보가 생겨났는데, 무릇 족보를 만듦에 있어서 반드시 그 근본을 거슬러 어디서부터 나왔는 가를 따지고 이유를 자세히 적어 그 계통을 밝히고 친함과 친하지 아니함을 구별하게 된다. 이로써 종족 간의 의리를 두터이 하고 윤리를 바르게 할 수 있다. <안동 권씨 성화보> 해설 종법이란 중국 주나라 때 성립된 종족의 조직 규정 이다. 대종(본가)과 소종(분가)으로 이루어지는 종법은 가족 제도의 토대였으며 가족 윤리를 중시하는 조선 사회가 지탱 할 수 있는 중요한 원리였다. 이를 구체적으로 문서화한 것 이 족보이다. 족보는 종족 간의 종적 관계를 명확히 하고 종족 간의 내부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향약(2004.국가직 9급) 이제부터 우리 고을 선비들이 하늘에 부여한 본성을 근본으로 하고, 국가의 법을 준수하며 집에서나 고을 에서 각기 질서를 바로잡으면 나라에 좋은 선비가 될 것이요, 출세하든지 가난하게 살든지 서로 의지가 될 것이다. 굳이 약속을 만들어 서로 권할 필요도 없으며 벌을 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진실로 이를 알 지 못하고 올바른 것을 어기고 예의를 해침으로써 우 리 고을 풍속을 무너뜨리는 자는 바로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백성이다. 벌을 주지 않으려 해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근래 아전의 풍속이 나날이 변하여 하찮은 아전이 길 에서 양반을 만나도 절을 하지 않으려 한다. 아전의 아들 손자로서 아전의 역을 맡지 않는 자가 고을 안 의 양반을 대할 때, 맞먹듯이 너나하며 자( 字 )를 부르 고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 <목민심서> 재가( 再 嫁 ) 금지 경전에 이르기를 믿음은 부인의 덕이다. 한 번 남편 과 혼인하면 종신토록 고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삼종( 三 從 )의 의( 義 )가 있고, 한 번이라도 어기는 예가 없는 것이다. 세상의 도덕이 날로 나빠진 뒤부터 여자의 덕이 정숙하지 못하여 사족( 士 族 )의 딸이 예의를 생각지 아니해서 혹은 부모 때문에 절개 를 잃고, 혹은 자진해서 재가하니, 한갓 자기의 가풍 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실로 성현의 가르침에 누를 끼친다. 만일 엄하게 금령을 세우지 않는다면, 음란한 행동을 막기 어렵다. 이제부터 재가한 여자의 자손은 관료가 되지 못하게 하여 풍속을 바르게 하리라. <성종실록> 중인(2012.지방직 9급) 공( 公 )은 열일곱에 사역원( 司 繹 院 ) 한학과( 漢 學 科 )에 합격하여, 틈이 나면 성현( 聖 賢 )의 책을 부지런히 연 구하여 쉬는 날이 없었다. 경전과 백가에 두루 통달하 여 드디어 세상에 이름이 났다. 공은 평생 고문을 좋아하였다. 서얼(2013.수능) 조선 후기 신분제의 동요 옷차림은 신분의 귀천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어 찌 된 까닭인지 근래 이것이 문란해져 상민과 천민이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 것이 마치 조정의 관리나 선 옛날에는 이웃 나라의 어진 선비들이 오지 않을까 걱 정하였는데, 지금은 나라 안의 인재를 쓰지 않고 혹시 라도 그들이 등용될까 염려합니다. (중략) 그들은 신하가 되어서 임금을 가까이 모실 수 없으니 군신의 의리가 멀어지고, 자식이 되어서도 감히 아버지를 아 40 사료집
41 버지라 부르지 못하니 부자의 인륜이 어그러지게 됩니다. 심지어 그들을 버 리고 먼 일가붙이를 양자로 삼고 있으니 하늘의 이치 를 어김이 너무나 심합니다. <규사> 하여 반역의 법률로 다스려 신유년 앞뒤로 인명이 크 게 손상하였으나 한 사람도 그 원인을 알아보지 않았 습니다. (중략) 이 도는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 기까지 날마다 사용하고 늘 실행해야 할 도리이니 가 히 해가 되고 난( 亂 )으로 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향촌 질서의 변화 (가) 근래 사족들이 향교에 모여 의논하여 수령을 쫓 아내는 것이 고질적인 폐단입니다. <영조실록>, 영조 7년 (나) 영덕의 구향( 舊 鄕 )은 사족이며, 소위 신향( 新 鄕 )은 모두 향리와 서리의 자식입니다. 근래 신향들이 향교를 주관하면서 구향들과 서로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승정원일기>, 영조 23년 (다) 요사이 수령들은 한 고을을 제멋대로 다스려 다 른 사람이 그 잘못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수령이 옳 다고 하면 좌수 이하 모두 그렇다고 합니다. <비변사등록>, 영조 36년 해설 (가) 시기에는 사족들이 똘똘 뭉쳐 수령을 쫓아낼 만 큼 향촌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나) 시 기에는 향촌 사회를 지배하던 사족들이 신향의 도전을 받고 있다. 부농층은 관권과 결탁하여 성장하면서 양반의 명단인 향안에 참여하고 향회를 장악하고자 하였다. (다) 구향과 신 향의 싸움으로 결국 관권이 강화되고 아울러 관권을 실질적 으로 장악하고 있던 향리 세력이 강화되었다. 정하상의 상재상서(재상에게 올리는 글) 죽은 사람 앞에 술과 음식을 차려 놓는 것은 천주교 에서 금하는 바입니다. 살아 있을 동안에도 영혼은 술 과 밥을 받아먹을 수 없거늘 하물며 죽은 뒤에 영혼 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먹고 마시는 것은 육신의 입 에 공급하는 것이요, 도리와 덕행은 영혼 양식입니다. 사람의 자식이 되어 어찌 허위와 가식의 예로써 이미 돌아간 부모를 섬기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천주교를 금하시는 것은 그 뜻이 정녕 어디에 있습니까? 먼저 그 뜻과 이치가 어떠한지 물 어보지도 않고 지극히 죄악이라는 말로 사교( 邪 敎 )라 후천개벽과 보국안민을 주장한 동학 사상 사람이 곧 하늘이라. 그러므로 사람은 평등하며 차별 이 없나니 사람이 마음대로 귀천을 나눔은 하늘을 거 스르는 것이다. 우리 도인은 차별을 없애고 선사의 뜻 을 받들어 생활하기를 바라노라. 최시형의 최초 설법 때가 왔네. 때가 왔네. 다시 못 올 때가 왔네. / 뛰어 난 장부에게 오랜만에 때가 왔네.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 하리. / 무수 장삼 떨쳐 입고 이 칼 저 칼 넌줏 들어 호호망망 넓은 천지 한 몸으로 비켜서서 / 칼 노래 한 곡조를 때여 때여 불러내니 용천검 날랜 칼은 해와 달을 놀리고 / 게으른 무수 장 삼 우주에 덮여 있네. 만고 명장 어디 있나 장부 앞에 장사 없네. / 좋을시 고 좋을시고 이내 신명 좋을시고. <용담유사> 서양은 싸우면 이기고 치면 빼앗아 이루지 못하는 일 이 없으니 천하가 멸망하면 또한 입술이 떨어지는 탄 식이 없지 않을 것이니 보국안민의 계책이 장차 어디 서 나올 것인가. <동경대전> 나는 이 땅 동쪽 나라에서 도를 받은 것이지, 서에서 받은 것이 아니다.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나 그 땅에 서 교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나는 도를 이 땅에서 받 았으며, 또 이 땅에서 떨칠 것이다. <동경대전> (2008.국가직 9급) 서도( 西 道 )로써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겠는가 하니 아니다. 영부의 모양은 태극의 그 림과 같고 혹은 활 궁( 弓 )자를 겹쳐 놓은 것과 같다. 이 부적을 받아 가지고 사람들의 병을 고치며 또 내 사료집 41
42 주문을 받아 가지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위하 게 하라. 그러면 너도 역시 오래 살아서 온 세상을 이 롭게 할 것이다. 홍경래의 격문 평서대원수는 급히 격문을 띄우노니 관서의 부로( 父 老 )와 자제와 공 사 천민들은 모두 이 격문을 들으라. 무릇 관서는 성인 기자의 옛 터요 단군 시조의 옛 근 거지로서 의관(유교 문화를 생활하는 사람)이 뚜렷하 고 문물이 아울러 발달한 곳이다. 그러나 조정에 서는 관서를 버림이 분토( 糞 土 )와 다름없다. 심지어 권세 있는 집의 노비들도 서토의 사람을 보면 반드시 평안도놈 이라고 말한다. 어찌 억울하고 원통하지 않 은 자 있겠는가. 지금 임금이 나이가 어려 권세 있는 간신배가 그 세를 날로 떨치고, 김조순 박종경 의 무리가 국가 권력을 오로지 가지고 노니, 어진 하 늘이 재앙을 내린다. 이제 격문을 띄워 먼저 여 러 고을의 군후( 君 侯 )에게 알리노니, 절대로 동요하지 말고 성문을 활짝 열어 우리 군대를 맞으라. 만약 어 리석게 항거하는 자가 있으면 철기 5,000으로 남김 없이 밟아 무찌르리니, 마땅히 속히 명을 받들어 거행 함이 가하리라. 해설 평안도는 일찍부터 대청 무역과 상업으로 부를 축적 한 상인들이 많았다. 또한, 조선 후기 광산 개발의 활성화로 많은 몰락 농민들이 평안도로 몰려들었다. 홍경래는 이러한 사회 경제적 배경 하에서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커진 지역민의 불만과 당시 세도 정권의 부패를 이용하여 봉기하 였다. 이에 영세 농민, 중소 상인, 광산 노동자들이 그를 적 극 지원하였다. 그리하여 한때 청천강 이북 지역을 장악하 고 크게 위세를 떨치기도 하였다. 홍경래의 난(2008.국가직 9급) 서토( 西 土 )에 있는 자 어찌 억울하고 원통하지 않을 자 있겠는가. 막상 급한 일을 당해서는 과거에는 반드시 서로( 西 路 )의 힘에 의지하고 서토의 문을 빌 었으니 400년 동안 서로의 사람이 조정을 버린 일이 있는가. 지금 나이 어린 임금이 위에 있어서 권세 있 는 간신배가 날로 치성하니 홍경래의 난(2014.국가직 9급) 보잘 것 없는 나, 소자가 어린 나이로 어렵고 큰 유업 을 계승하여 지금 12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나는 덕 이 부족하여 위로는 천명( 天 命 )을 두려워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민심에 답하지 못하였으므로, 밤낮으로 잊 지 못하고 근심하며 두렵게 여기면서 혹시라도 선대 왕께서 물려주신 소중한 유업이 잘못되지 않을까 걱 정하였다. 그런데 지난번 가산( 嘉 山 )의 토적( 土 賊 )이 변란을 일으켜 청천강 이북의 수많은 생령이 도탄에 빠지고 어육( 魚 肉 )이 되었으니 나의 죄이다. <비변사등록> 임술 농민 봉기(2012.사회복지직) 주민 수만 명이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손에 나무 몽둥이를 들고 무리를 지어 진주 읍내에 모여 서리들 의 가옥 수십 호를 불사르고 부셔서 그 움직임이 결 코 가볍지 않았다. 병사가 해산시키고자 하여 장시에 나가니 흰 수건을 두른 백성들이 땅 위에서 그를 빙 둘러싸고는 (중략) 여러 번 문책했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병영으로 병사를 잡아 들어 가서는 이방 권준범과 포리 김희순을 곤장으로 수십 대 힘껏 때리니 여러 백성들이 두 아전을 그대로 불 속에 던져 넣어 태워버렸다. 최근 남쪽에서 일어나는 난은 양민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궁민( 窮 民 )이 일으킨다. 이들은 생활할 만한 자산이 없으므로 밤낮 원망하고 난을 생각한 지 오래 되었다. 비록 의리를 말하면서 그들을 타일러도 따르 지 않는다. 요사이 남쪽 농민들의 소란은 대개 이들이 주동한 것이며 양민은 단지 협조자일 뿐이다. 고환당수초 해설 고환당수초 은 진주민란(1862)을 목격한 강위( 姜 瑋 : )의 시문집이다. 42 사료집
43 13장 조선의 문화 훈민정음 창제 서문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 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엽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 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해시계(앙부일구)(2013.법원직) 이것을 혜정교와 종묘 앞에 처음으로 설치하여 해 그 림자를 관측하였다. 집현전 직제학 김돈이 명을 짓기 를, 리를 부어서 그릇을 만들었는데, 모양이 가마 솥과 같다. 지름에는 둥근 송곳을 설치하여 북에서 남 으로 마주 대하게 했고, 움푹 파인 곳에서 (선이) 휘 어서 돌게 했으며, 점을 깨알같이 찍었는데, 그 속에 도( 度 )를 새겨서 반주천( 半 周 天 )을 그렸다. 길가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백성도 이것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라고 하였다. 경국대전 서문(2014.사회복지직) 천지가 광대하여 만물이 덮여 있고 실려 있지 않은 것이 없으며, 사시의 운행으로 만물이 생육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성인이 제도를 만드심에 만물이 기쁘게 보이지 않은 것이 없으니, 진실로 성인이 제도를 만드 심은 천지 사시와 같은 것이다. 경국대전(2012.사회복지직) 세조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다. 우리 조종의 심후하신 인덕과 크고 아름다운 규범이 훌륭한 전장( 典 章 )에 퍼졌으니 (중략) 또 여러 번 내린 교지가 있어 법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관리들이 재주가 없고 어리석어 제대로 받들어 행하지 못한다. (중 략) 이제 손익을 헤아리고 회통할 것을 산정하여 만대 성법을 만들고자 한다. 고려사의 특징 임금이 말하기를, 고려 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천변과 지괴를 정사( 正 史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전 례에 의하여 다시 첨가하여 기록하지 말고, 또 그 군 왕의 시호는 아울러 실록에 의하여 태조 신성왕 혜종 의공왕이라 하고, 묘호와 시호도 그 사실을 인멸하지 말 것이며, 그 태후 태자와 관제도 또한 모름지기 고 치지 말고, 오직 대사천하( 大 赦 天 下 )라고 한 곳에는 천하 두 글자만 고칠(기록보전주의) 것이요, 또한 천하 를 경내로 고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세종실록> 고려사 서문 대개 지난 시기 흥망이 앞날의 교훈이 되기에 이 역 사책을 편찬하여 올리는 바입니다. 이 책을 편찬 하면서 범례는 사마천의 <사기>를 따랐고, 기본 방향 은 직접 왕에게 물어서 결정했습니다. 본기 라고 하지 않고 세가 라고 한 것은 대의명분의 중요함을 보인 것입니다. 신우 신창을 세가에 넣지 않고 열전으로 내려놓은 것은 왕위를 도적질한 사실을 엄히 밝히려 한 것입니다. 충신과 간신, 부정한 자와 공정한 자를 다 열전을 달리해 서술했습니다. 제도 문물은 종류에 따라 나눠 놓았습니다. <고려사> 동국통감(2014.경찰 1차) 일찍이 세조께서, 우리 동방에는 비록 여러 역사서가 있으나 장편으로 되어 귀감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 다. 라고 말씀하시고, 관리들에게 명하여 편찬하게 하 셨지만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주상께서 그 뜻을 이어받아 서거정 등에게 편찬을 명하였습니 다. (중략) 이 책을 지음에 명분과 인륜을 중시하고 절의를 숭상하여, 난신을 성토하고 간사한 자를 비난 하는 것을 더욱 엄격히 하였습니다. 사료집 43
44 사림파의 기자 추앙(2010.지방직 7급) 우리 동방에도 백성이 살아온 지 중국에 뒤지지 않는 데, 아직 예지를 지닌 성인이 나오시어 군사( 君 師 )의 구실을 다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물론 단군께 서 제일 먼저 나시기는 하였으나 문헌으로 상고할 수 없다. 삼가 생각하건대, 기자께서 우리 조선에 들어오 시어 그 백성을 후하게 양육하고 힘써 가르쳐 주시어 머리를 틀어 얹는 오랑캐의 풍습을 변화시켜 문화가 융성하였던 제나라와 노나라 같은 나라로 만들어 주 셨다. 이이, <기자실기> 이언적의 군주론(2007.국가직 7급) 대저 정치하는 요령은 그 강( 綱 )이 하나 있고 그 목 ( 目 )이 10개가 있습니다. 강이란 것은 체( 體 )이니 정 치를 하는 본령이오, 목이란 것은 용( 庸 )이니 정치를 마련하는 법입니다. 일강이란 무엇을 이름인가? 군주의 마음가짐입니다. 서정의 번잡함과 만민의 수 효가 많음도 치란휴척의 기틀은 군주의 마음에 근본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군주의 마음 이 바르면 만사가 다스려지고 인심이 순하여 화기가 돌며, 군주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만사가 배루되고 인심이 순하지 못하여 악기가 올 것이니 필연적인 이 치입니다. 이언적의 십강십목소( 十 綱 十 目 疎 ) <성학십도>(2012 지방직 9급) 이제 이 도와 해설을 만들어 겨우 열 폭밖에 되지 않 는 종이에 풀어 놓았습니다만, 이것을 생각하고 익혀 서 평소에 조용히 혼자 계실 때에 공부하소서. 도가 이룩되고 성인이 되는 요체와 근본을 바로잡아 나라 를 다스리는 근원이 모두 여기에 갖추어져 있사오니, 오직 전하께서는 이에 유의하시어 여러 번 반복하여 공부하소서. 그런데 후세의 통치자들이 천명을 받아 최고 통치자 의 직책을 맡게 되면, 그 책임이 지극히 크고 막중합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 통치자는 어찌하여 몸 과 마음을 스스로 올바르게 다스리는 일은 엄격하게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오히려 왕이 백성들의 추대에 마음이 들떠 스스로 성인인 체하고 오만 방자 한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 국 가를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이 일을 어찌 이상한 일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가 혼란한 지금 신하 된 사람이라면 최고 통치자를 인도하여 도리에 합당 하도록 여러 방면으로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퇴계집> 이( 理 )가 모든 것의 출발점 천하의 모든 사물은 반드시 각각 그렇게 되는 까닭이 있으며 바로 그렇게 되어야 하는 법칙이 있는데 그것 이 이( 理 )이다. 무릇 모든 사물은 모두 능히 그렇게 되는 것이니 이는 사물에 앞서 존재한다. 4단과 7정이 다 같이 하나의 정감이지만 4단은 인의 예지(사덕)라는 본성에서 발동해 나오고, 7정은 기질 에서 발동해 나온다. 4단은 이치가 발동하여 기 운이 따라오는 것이고( 理 發 而 氣 隨 之 ), 7정은 기운이 발하여 이치가 타고 올라오는 것이다( 氣 發 而 理 乘 之 ). <퇴계집> 주자를 철학적으로 심화시킨 이황(2013.경찰 2차) 그는 우주만물의 본질은 순수하고 착한 형이상의 이 ( 理 )로서 모든 만물은 그 점에서 모두 착하고 평등하 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가 형이하로 발현되는 것이 기 ( 氣 )로서, 기의 세계는 천차만별의 불평등으로 나타난 다고 주장했다. 그의 학설은 주자의 견해를 철학적으 로 심화시킨 것으로, 결과적으로 형이상학적인 원칙 과 규범과 명분을 존중하는 학문으로 발전하게 되었 다. 이( 理 )와 기( 氣 )의 관계 이( 理 )가 아니면 기( 氣 )가 근거할 데가 없으며 기가 아니면 이가 의거할 데가 없다. 이미 두 개 물건이 아 닌 즉, 또한 하나의 물건도 아니다. 하나의 물건이 아 니니 하나이면서도 둘이고, 두 개의 물건이 아니니 둘 이면서도 하나이다. 하나의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무 엇을 말하는가? 이와 기는 서로 떨어지지 않을 수 없 으나 묘하게 결합된 가운데 있다. 이는 이고 기는 기 44 사료집
45 이지만 혼돈 상태여서 틈이 없으며 선후가 없으며 떨 어졌다 붙었다 하는 일이 없으니 두 개의 물건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두 개의 물건이 아니다. <율곡집> 이( 理 )와 기( 氣 )는 논리적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현실 적으로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모든 사물에 있어 이는 기의 주재 역할을 하고, 기는 이의 재료가 된다는 점에서 양자는 불리( 不 離 )의 관계에 있다. 일물( 一 物 )이 아닌 까닭에 일이면서 이요, 이물 ( 二 物 )이 아닌 까닭에 이이면서 일이다. <율곡집> <향약집성방> 서문 예전에 판문하 권중하가 여러 책을 뽑아서 <향약간이 방>을 짓고 그 후 조준 등과 함께 약국 관원에게 명 하여 다시 여러 책을 상고하고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경험한 처방을 취하여 분류해서 편찬한 다음 인쇄하 여 발행하였다. 이로부터 약재를 구하기 쉽고 질병을 치료하기 쉽게 되어 사람들이 모두 편하게 여겼다. 그 러나 방서(약방문을 적은 책)가 중국에서 나온 것이 아직 적고 약 이름이 중국과 다른 것이 많기 때문에 의술을 전공하는 자들이 미비하다는 탄식을 면치 못 하였다. 이에 우리 주상 전하(세종)께서 특별히 유의 하시어 의관을 골라 매양 사신을 따라 북경에 가서 방서를 널리 구하게 하였다. 세종 13년 가을 집 현전 직제학 유효통 전의 노중례 부정 박윤덕에게 명하여 다시 향약방에 대해 여러 책에서 빠짐없이 찾 아 낸 다음 분류하여 증보하게 해서 한 해가 지나 완 성되었다. 합하여 85권으로 바치니 이름을 <향 약집성방>이라 하였다. <동문선> 해설 <향약집성방>은 세종 15년(1433)에 왕명으로 편찬 된 향약과 한방에 관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조선에서 생산 되는 약재가 조선인에게 더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약의 토착성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방서와 고려 후기 이후에 발전되어 온 향약 방서들이 거의 인용되었다. 성종 때 마지 막 부분인 향약본초를 발췌하여 한글로 번역 출판하였다.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내용도 있지만 민간에서 우리나라 약재를 가지고 쉽게 약을 쓸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이와 함께 의학 백과사전인 <의방유취>도 간행되 어 15세기에는 조선 의 약학의 자주적 체계가 마련되어 민 족 의학이 크게 발전하였다. 정초의 <농사직설> 서문 풍토가 같지 않으면 농법도 같을 수 없다 하여 세종 이 각 도의 감사( 監 司 )에게 명하여 주현의 노농( 老 農 ) 들에게 지역에 따라 경험한 바를 자세히 듣고 수집하 도록 해서 본서를 편찬하게 되었다. 칠정산(2014.사회복지직) 왕께서 학자들에게 명하여 선명력과 수시력 등 여러 역법의 차이를 비교하여 교정하도록 하였다. 또한 정 인지, 정흠지, 정초 등에게 명하여 태음통궤 와 태양통궤 등 중국 역서를 연구하여 우리 실정에 맞는 이 역서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음악의 기능 악( 樂 )은 하늘이 내어 사람에게 보낸 것이니, 허( 虛 ) 에서 나와 자연히 이루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 마음을 움직이고 맥박을 뛰게 하여 정신을 막힘없이 흐르게 한다. 다른 소리를 합하여 하나로 하는 것은 임금이 위에서 어떻게 이끄느냐에 달려 있다. 바 르게 이끄는 것과 거짓되게 이끄는 것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나며, 풍속이 번영하고 쇠퇴하는 것도 모두 여 기에 달려 있다. 따라서 악( 樂 )이야 말로 백성을 다스 리고 교화하는 큰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악학궤범> 해설 유교에서 음악은 백성을 교화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또한, 음악은 국가의 각종 의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 에 다른 무엇보다도 중시되었다. <악학궤범>은 성종 때 성 현 등이 의궤와 악보를 정리하여 엮은 악서이다. 그 내용은 12율의 결정과 여러 제향에 쓰이는 악조에서부터 악기의 진 설( 陳 設 ), 의물( 儀 物 ), 관복( 冠 服 )에 이르기까지 음악 연주에 필요한 사항들을 빠짐없이 수록하였으며, 당시의 아악 당악 향악 등 음악 전반을 포함하였다. 사료집 45
46 <동문선>의 자주 의식 우리나라의 글은 송이나 원의 글이 아니고, 또한 한이 나 당의 글도 아니며, 바로 우리나라의 글인 것입니 다. 마땅히 중국 역대의 글과 나란히 천지 사이에 행 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찌 사라져 전함이 없게 하겠습니까? 저희들은 높으신 위촉을 받자와 삼 국 시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사 부 서 문 등 여러 가지 문체를 수집하여 이 가운데 문장과 이치가 아주 바르고, 교화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취하여 분 류하고 정리하였습니다. <동문선> 동문선(2012.지방직 9급) 전하께서는 신 서거정 등에게 명해 제가의 작품을 뽑아 한 질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전하의 위 촉을 받아 삼국시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 辭 ), 부( 賦 ), 시( 時 ), 문( 文 ) 등 여러 문체를 수집하여 이 중 문장과 이치가 순정하여 교화에 도움이 되는 것을 취하고 분류하여 130권을 편찬해 올립니다. 초기의 시조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 변성( 邊 城 )에 일장검을 집고 서서 긴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김종서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 秋 草 )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 牧 笛 )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 客 )이 눈물겨워 하노라. 원천석 어숙권의 패관잡기 (2013.경찰간부) 이들(서얼)의 자손들을 과거에 응시하고 벼슬에 진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옛 법이 아니다. 그런데 경국대전 을 편찬한 뒤로부터 금고( 禁 錮 ) 를 가하기 시작했으니 아직 백년도 되지 않았다. (다 른 많은 나라에서) 금고하는 법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런데 경대부( 京 大 夫 )의 자식으로서 다만 외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대대로 금고하여 비록 훌 륭한 제주와 사용할 만한 기국( 碁 局 )이 있어도 끝내 머리를 숙이고 시골에서 그대로 죽으니 참으로 가 련하다. 황진이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서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어져 내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더냐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백두산 돌은 칼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 먹여 없애고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어찌 대장부라 하겠는가. 남이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재 관동별곡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관동 팔백 리에 방면(관찰사)을 맡기시니, 어와 성은이야 갈수록 망극 하다. 연추문 들이달아 경회 남문 바라보며, 하직하고 물러나니 옥절(옥으로 만든 신표)이 앞에 섰다. 평구 역 말을 갈아 흑수로 돌아 드니, 섬강은 어디메오, 치 악이 여기로다. 소양강 느린 물이 어디로 든단 말고. 정철 46 사료집
47 오우가 나의 벗이 몇이나 있느냐 헤아려 보니 물과 돌과 소 나무, 대나무다. 게다가 동쪽 산에 달이 밝게 떠오르니 그것은 더욱 반가운 일이로구나. 그만두자, 이 다섯 가지면 그만이지 이 밖에 다른 것 이 더 있은들 무엇하겠는가? 윤선도 성리학 비판 1. 송나라 때에 와서 정자와 주자 두 선생이 6경의 뜻 을 다시 환하게 밝혔다. 그러나 경에 실린 말의 근본 은 비록 하나이지만 실마리는 천 갈래 만 갈래이다. 이 때문에 나는 좁은 소견으로 얻은 것을 대강 기술 하여 그 이름을 사변록( 思 辨 錄 )이라 하였다. 박세당, 사변록 2. 나의 저술 의도는 주자의 해석과 다른 이설을 제기 하려는 것보다 의문점 몇 가지를 기록했을 뿐이다. 만 약 내가 주자 당시에 태어나 제자의 예를 갖추었더라 도 감히 구차하게 뇌동하여 전혀 의문점을 해소하기 를 구하지 못하고 찬탄만 하고 앉아 있지는 못했으리 라. 반드시 반복하여 질문하고, 생각해서 분명하게 이 해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윤휴, 도학원류속 인물성동론 1. 모든 사물은 음양오행의 기( 氣 )로 이루어져 있으므 로 이( 理 )인 오상( 五 常 ), 즉 인 의 예 지 신의 도덕 성을 균등하게 부여받았다. 이간 2. 사람과 사물이 귀하고 천함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하늘이라는 절대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과 사물은 균 등하다. 인간의 관점에 집착하여 사물을 천하게 보고 인간을 가장 귀한 존재로 보는 생각이야말로 진리를 해치는 근본 요인이다. 홍대용 인물성이론(2013.국가직 7급) 만물이 생기고 나면 바르고 통( 通 )한 기운을 받은 것 이 사람이 되고, 편벽되고 막힌 기운을 받은 것이 물 건이 된다. 물건은 편벽 되고 막힌 기운을 받았기 때 문에, 이( 理 )의 전체를 받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기질 을 따라 본성 역시 편벽되고 막히게 된다. (중략) 사람만은 바르고 통한 기운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가장 영묘하여 건순과 오상의 덕을 모두 갖추었으니, 그 지극한 것을 확충하면 천지에 참여하여 만물을 화 육하는 것을 돕는 것도 모두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는 사람과 물건의 다른 점이다. 인물성이론 물( 物 )에도 인 의 예 지라는 도덕성이 있다. 다만 인간은 그 전체를 가지고 있지만 물( 物 )은 일부분만 가지고 있다. 사람과 동물이 인 의 예 지 신과 같은 고차원적인 도덕성에서는 본질적인 차이를 갖는다. 한원진 양명학 1. 치양지설( 致 良 知 說 ):지( 知 )는 심( 心 )의 본체이다. 심은 자연히 지를 모이게 한다. 아버지를 보면 자연히 효( 孝 )를 안다. 형을 보면 자연히 공손함을 안다. 어 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자연히 측은 을 안다. 이것이 곧 양지( 良 知 )이니 밖에서 적당히 청 탁해서 아는 것이 아니다. 양지라는 것은 맹자가 이른바 시비( 是 非 )의 마음은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 다. 고 한 것이다. 시비의 마음은 생각을 기다려서 아 는 것이 아니고 배움을 기다려서 할 수 있는 것이 아 니다. 그러므로 양지라 한다. <전습록> 2. 지행합일설( 知 行 合 一 說 ):무릇 사람은 반드시 음식 을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은 뒤에야 먹는 것을 안 다.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마음은 곧 뜻이요, 곧 행 ( 行 )의 시작이다. 먹는 맛의 아름다움과 싫어함은 반 드시 입에 들어간 뒤에야 알게 되니, 어찌 입에 들어 가지고 않았는데 이미 먼저 먹는 맛의 아름다움과 싫 어함을 알겠는가 앎은 행함의 시작이도, 행함은 사료집 47
48 앎의 완성이다. 성학( 聖 學 )은 단지 이 하나의 공부이 니, 앎과 행함을 두 가지 일로 나눌 수 없다. <전습록> 유형원의 토지 개혁론 농부 한 사람이 토지 1경을 받아 법에 따라 조세를 낸다.(자영농 육성정책) 4경마다 군인 1인을 낸다. 사대 부로서 처음 학교에 입학한 자는 2경을 받는다. 내사 에 들어간 사람은 4경을 받고 병역 의무를 면제한다. 현직 관료는 9품부터 7품까지 6경을 받는다. 정 2품 은 12경을 받는다. 9품에서 2품까지 조금씩 차등을 두어 지급한다. 모두 병역 의무는 면제하여 현직에 근 무할 때는 별도로 녹을 받는다. 퇴직하였을 때는 받은 토지로 생계를 유지한다. 토지를 받은 자가 죽으 면 국가에 반납한다. <반계수록> 이익의 한전론 국가는 마땅히 한 집의 생활에 맞추어 재산을 계산해 서 토지 몇 부를 한 집의 영업전으로 하여 당나라의 제도처럼 한다. 땅이 많은 자는 빼앗아 줄이지 않고 모자라는 자도 더 주지 않는다. 돈이 있어 사고자 하 는 자는 비록 1,000결이라도 허락해 준다. 오직 영업전 몇 부 안에서 사고 파는 것만을 철저히 살핀 다. <곽우록> 이익의 6좀론(2010.국가직 7급) 농사를 힘쓰지 않는 자 중에 그 좀이 여섯 종류가 있 는데, 장사꾼은 그 중에 들어가지 않는다. 첫째가 노 비요, 둘째가 과거요, 셋째가 벌열이요, 넷째가 기교 요, 다섯째가 승니요, 여섯째가 게으름뱅이들이다. 저 장사꾼은 본래 사민( 四 民 )의 하나로서 그래도 통화의 이익을 가져온다. 소금 철물 포백 같은 종류는 장사 가 아니면 운반할 수 없지만, 여섯 종류의 해로움은 도둑보다도 더하다. 여전론(2012.경찰 2차, 지방직 7급) 이제 농사짓는 사람은 토지를 가지고 농사짓지 않는 사람은 토지를 갖지 못하게 하려면 여전제를 실시해 야 한다. 산골짜기와 시냇물의 지세를 기준으로 구역 을 획정하여 경계를 삼고, 그 경계선 안에 포괄되어 있는 지역을 1여( 閭 )로 한다. 1여마다 여장( 閭 長 )을 두며 무릇 1여의 인민이 공동으로 경작하도록 한다. 여민들이 농경하는 경우 여장은 매일 개개 인의 노동량을 장부에 기록하여 두었다가, 가을이 되 면 오곡의 수확물을 모두 여장의 집에 가져온 다음 분배한다. 이때 국가에 바치는 세와 여장의 봉급을 제 하며, 그 나머지를 가지고 노동 일수에 따라 여민( 閭 民 )에게 분배한다. <여유당전서> 해설 정약용은 농가 30호를 1여로 하고, 여장의 지휘 하 에 공동 경작하고, 세납을 공제한 수확을 여민의 노동력에 따라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사( 士 )의 경우 농업 개선에 기여하는 경우에만 농민의 10배 정도의 토지를 주 고, 그렇지 않으면 사 농 공 상 등 생업에 종사시켜야 한 다고 생각하였다. 여전제가 보급되면 전국 농민의 자산이 비슷해져서 토지 겸병이 일어나지 않으며, 노동량에 따라 보수가 책정되므로 근로의 습관도 좋아질 것이라고 보았다. 정전제 오늘날 나라 안의 땅이 사전( 私 田 )이 아닌 것이 없다. 장차 어찌할 것인가. 큰일을 하는데 어찌 세법을 돌아 볼 것인가. 무릇 모든 토지를 우물 정( 井 )자로 나누어 9구역으로 나눈 연후에 그 값을 물어서 공전 한 구역 은 관에서 그 값을 내되 대략 후하게 하고, 사전 여덟 구역은 주인에게 묻는다. 만약 여덟 구역이 모두 일가 ( 一 家 )의 전( 田 )이면 역시 옛날대로 두게 하여 분열치 않도록 한다. 다만 주인으로 하여금 경작을 할 여덟 명의 인부를 조달토록 하여 여덟 구역을 나누어 주되 일부( 一 夫 )로 하여금 두 구역을 가지지 못하게 하면 이것이 곧 정전( 井 田 )이다. <경세유표> 48 사료집
49 탕론 대저 천자란 어찌하여 존재하게 되었는가? 하늘에서 비 내리듯 내려와서 천자가 되었는가, 아니면 땅속에 서 샘솟듯 솟아나서 천자가 되었는가? 다섯 가구가 1 린( 一 隣 )이 되므로 다섯 가구에서 추대된 사람이 인 장( 隣 長 )이 되고, 다섯 린이 1리가 되므로 다섯 린에 서 추대된 사람이 이장( 里 長 )이 되고, 다섯 리가 1현 이 되므로 다섯 리에서 추대된 사람이 현장( 縣 長 )이 된다. 여러 현장이 공동 추대를 받은 사람이 제후가 되고 제후들이 공동으로 추대한 사람이 곧 천자( 天 子 ) 이다. 그러므로 천자란 군중의 추대에 의해서 이루어 진 것이다. 군중의 추대에 의해서 천자가 되는 것이므 로 군중이 추대하지 않으면 천자가 될 수 없다. <여유당전서> 원목(2007.국가직 9급) 백성이라는 것은 곡식과 피륙을 제공하여 목자를 섬 기고, 또 가마와 말을 제공하여 목자를 송영하는 것이 다. 결국 백성은 피와 살과 정신까지 바쳐 목자를 살 찌게 하는 것이니, 이것으로 보자면, 백성이 목자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아니다.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 목자가 백성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 이다. 애초에 이 세상에는 백성이 있을 뿐이다. 거기 에 무슨 목자가 있었겠는가. 다만 백성들이 평화스럽 게 한데 모여서 살았을 뿐이다. 그때 마침 한 사람이 이웃 사람과 언쟁을 하다가 해결을 보지 못하고 그들 은 공담( 公 談 )을 들어 보려고 그 마을 노인에게 가서 시비를 판단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로는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 노인을 추존하여 이정( 里 正 ) 이라고 불렀다. 그 후에 여러 마을 사람들이 서로 다 투다가 해결을 보지 못하면 그 마을에서 재주도 있고 또 학식이 높은 노인을 찾아가서 시비를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부락 사람이 모두 그를 추모하고 존대 하여 당정( 黨 正 )이라고 불렀으며, 또 열 당의 사람들 이 서로 다투다가 해결을 못하자 그 당 중에서 가장 인기 있고 덕이 있는 노인을 찾아가서 시비를 판단하 였다. 많은 당의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여 주장( 州 長 ) 이라고 불렀다. 이에 여러 주의 장들이 모여 한 사람 을 추대하여 장의 자리에 앉히게 되었으니 이것이 국 군( 國 君 )이 되었다. <여유당전서> <기예론> 짐승들이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단단한 발굽과 뿔을 가지고 자신을 보호하듯이, 인간은 지혜로운 생각과 교 묘한 연구로써 기예를 익혀서 살아가게 태어났다. 기예는 한 사람의 성인보다 뭇 사람들의 경험과 의견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의 지혜가 모이면 더욱 정교해지고 세대가 흘러갈수록 더욱 발전하게 된다. 오랑캐의 기예 라도 우수한 것이 있으면 받아들여야 한다. 정약용 유수원의 상공업론 지금 양반이 명분상으로는 상공업에 종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만 그들의 비루한 행동은 상공업자보다 심한 자가 많다. 학문이 없어도 세력만 있으면 부정하 게 과거에 합격하고 그렇지 않으면 음직을 바라거나 공물 방납과 고리대를 하거나 노비를 빼앗기 위한 소 송을 벌여 생활한다. 상공업을 두고 천한 직업이 라 하지만 본래 부정하거나 비루한 일이 아니다. 그것 은 스스로 재간 없고 덕망 없음을 안 사람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물품 교역에 종사 하면서 남에게서 얻지 않고 자기 힘으로 먹고 사는 것이다. 어찌 천하거나 더러운 일이겠는가. <우서> 해설 중상 학파 실학의 선구자 유수원은 부국강병의 방안 으로 상공업 진흥론과 화폐 유통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산 업의 피폐를 과도한 농본 사상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규정하 고, 농업과 함께 상업도 균등하게 진흥시킬 것을 주장하여 전통적인 말업 관념( 末 業 觀 念 )을 불식시키고자 하였다. 홍대용의 지전설(2014.경찰간부) 실옹이 말하였다. 대저 땅덩이는 하루에 한 바퀴를 돈다. 지구 둘레는 9만 리이고 하루는 12시간이다. 9 만 리 넓은 땅을 12시간에 도니 그 속도는 번개나 포 탄보다 더 빠르다. 땅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돌기 때 문에 하늘의 기( 氣 )가 세차게 부딪쳐 허공에 쌓이고 땅에 모이게 된다. 이리하여 위아래에 세력이 있게 되 니 이것이 지면의 세력이다. 땅에서 떨어지면 이 세력 은 없어지게 된다. 또 자석은 쇠를 당기고 호박은 티 사료집 49
50 끌을 당긴다. 근본이 같은 것끼리 서로 작용함은 만물 의 이치이다. 불꽃이 위로 올라가는 것은 해에 근본을 두고 있기 때문이고, 조수가 위로 솟는 것은 달에 근 본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만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 은 땅에 근본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의산문답> 천체가 운행하는 것이나 지구가 자전하는 것은 그 세 가 동일하니 분리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만 9만 리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이 처럼 빠르며, 저 별 들과 지구와의 거리는 겨우 반경( 半 徑 )밖에 되지 않는 데도 몇 천만억의 별들이 있는지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천체들이 서로 의존하고 상호 작용하면서 이루고 있 는 우주 공간의 세계 밖에도 또 다른 별들이 있다. 칠정( 七 政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 성)이 수레바퀴처럼 자전함과 동시에 맷돌을 돌리는 나귀처럼 둘러싸고 있다. 지구에서 가까이 보이는 것 을 사람들은 해와 달이라 하고 지구에서 멀어 작게 보 이는 것을 사람들은 오성( 五 星 :수성, 금성, 화성, 목 성, 토성)이라 하지만 사실은 모두가 동일한 것이다. <담헌집> 중국은 서양과 180도 정도 차이가 난다. 중국인은 중 국을 중심으로 삼고 서양을 변두리로 삼으며, 서양인 은 서양을 중심으로 삼고 중국을 변두리로 삼는다. 그 러나 실제는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 사람은 땅에 따 라서 모두 그러한 것이니 중심도 변두리도 없이 모두 가 중심이다. <의산문답> 해설 조선 시대 성리학적 세계관은 지구 방형설과 천동설 을 기본으로 하면서 중화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익, 김석문, 홍대용 등은 서양 과학의 영향을 받아 지구 구형설과 지전설을 주장하여 성리학적 세계관을 비판 하였다. 특히, 홍대용은 사신을 따라 중국에 간 후 독일 선교 사들로부터 천문학을 비롯한 서양 과학 기술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 <담헌집>에 실려 있는 <의산문답>은 실옹과 허자 사이에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글로 그의 과학 사상이 담겨 있다. 여기에서 그는 서양 과학 기술을 적극 수용하여 지전 설과 무한 우주론 등을 주장하였다. 또한 천문 연구를 위해 혼천의를 만들고 사설 천문대인 농수각을 세우기도 했다. 박지원의 <한민명전의> 한전법을 만들어 모년 모일 이후 이 법보다 많은 자는 더 이상 사들이지 못하게 하고 법령 공포 이전에 사들 인 것은 비록 산천을 경계로 할 정도로 넓어도 불문에 붙입니다. 그들의 자손이 있으면 분배해 주는 것을 허 락합니다. 그 중에 혹은 숨기고 실제로는 법을 지키지 않는다든지 법령 공포 후에 법의 제한을 넘어서 땅을 더 점유하는 자는 백성들이 적발하면 백성에게 주고, 관에서 적발하면 몰수합니다. 이렇게 하면 수십 년이 못되어 나라의 토지는 균등하게 될 것입니다. 박지원의 <양반전>(2013.국가직 7급) 양반이란 사족( 士 族 )을 높여서 일컫는 말이다. 정선 ( 停 船 ) 고을에 어떤 양반이 살고 있었는데, 어질고 책 읽기를 좋아하였다. 고을 군수가 부임할 적마다 방문 하여 인사하였는데, 살림이 무척 가난 하였다. 그래서 관가에서 내주는 환자( 還 子 )를 타서 먹었는데 결국 큰 빚을 졌다. 그러자 마을 부자가 양반의 위세를 부 러워해서 양반을 사겠노라 권유하니 그 양반은 기뻐 하며 승낙하였다. 박제가의 사상(2013.지방직 9급) 비유하건대, 재물은 대체로 샘과 같은 것이다. 퍼내면 차고, 버려 두면 말라 버린다. 그러므로 비단옷을 입 지 않아서 나라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게 되면 여공 ( 女 工 )이 쇠퇴하고, 쭈그러진 그릇을 싫어하지 않고 기교를 숭상하지 않아서 공장(수공업자)이 도야(기술 을 익힘)하는 일이 없게 되면 기예가 망하게 되며, 농 사가 황폐해져서 그 법을 잃게 되므로, 사 농 공 상 의 사민이 모두 곤궁하여 서로 구제할 수 없게 된다. <북학의> 문벌이 좋은 집 사람 외에도 재주와 덕이 뛰어나거 나, 또 한 가지 기예라도 있는 사람을 반드시 천거하 라. 옳게 천거한 자에게는 상을 주고 천거하는 데에 폐단이 있는 자에게는 벌을 준다 하면, 이제 먼 지방 에 혼자서 착함을 닦고 선비와 하류 계층의 사람으로 50 사료집
51 서 똑똑하고 거룩한 인재는 모두 조정에 들어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학의> 해설 박지원의 실학은 그의 제자인 박제가에 의해 더욱 체계화되었다. 박제가는 청에 다녀온 후 <북학의>를 지어 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주장하는 한편, 상공 업의 발달, 수레와 선박의 이용 등을 역설하였다. 또한, 생 산과 소비의 관계를 우물물에 비유하면서 생산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절약보다 소비를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익의 역사 인식 지금 사람들은 조선에서 나서 조선의 일은 전혀 모른 다. 심지어는 <동국통감>이 있어도 누가 읽는가? 라 고 말하니 그 그릇됨이 이와 같다. 동국은 스스로 동 국이니 그 역사의 규제와 처세도 스스로 중국사와는 다름이 있는 것이다. <성호집> 안정복의 삼국 인식 삼국사에서 신라를 으뜸으로 한 것은 신라가 가장 먼 저 건국되었고, 뒤에 고구려와 백제를 통합하였으며, 고려는 신라를 계승하였으므로 편찬한 것이 모두 신 라의 남은 문적을 근거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편찬한 내용이 신라에 대하여는 약간 자세히 갖추어 져 있고 백제에 대하여는 겨우 세대만을 기록했을 뿐 없는 것이 많다. 고구려의 강대하고 현저함은 백 제에 비할 바가 아니며 신라가 자처한 땅의 일부는 남쪽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김씨(김부식)는 신라 사에 쓰여진 고구려 땅을 근거로 했을 뿐이다. <동사강목> 유득공의 발해 인식 고려가 발해사를 짓지 않았으니, 고려의 국력이 떨치 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옛날에 고씨가 북쪽에 거 주하여 고구려라 하였고, 부여씨가 서남쪽에 거주하 여 백제라 하였으며, 박 석 김씨가 동남쪽에 거주하 여 신라라 하였으니, 이것이 삼국으로 마땅히 삼국사 ( 三 國 史 )가 있어야 했는데 고려가 이를 편찬하였으니 옳은 일이다. 부여씨가 망하고 고씨가 망하자 김씨가 그 남쪽을 영유하였고, 대씨가 그 북쪽을 영유하여 발 해라 하였으니, 이것이 남북국으로 마땅히 남북국사 ( 南 北 國 史 )가 있어야 하는데 고려가 이를 편찬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저 대씨가 누구인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땅이 누구의 땅인가? 바로 고구려 땅 이다. 동쪽과 서쪽과 북쪽을 개척하여 이보다 더 넓혔 던 것이다. 김씨가 망하고 대씨가 망한 뒤에 왕씨가 이를 통합하여 고려라 하였는데, 그 남쪽으로 김씨의 땅은 온전히 소유하였지만, 그 북쪽으로는 대씨의 땅 을 모두 소유하지 못하여, 그 나머지가 여진족에 들어 가기도 하고 거란족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발해고> 8도의 지형 특징 및 인심 우리나라 8도 중에 평안도 인심이 제일 순후하고, 다 음은 경상도의 풍속이 질박하다. 함경도는 오랑캐와 인접하여 백성들이 모두 굳세고 억세며, 황해도는 산 수가 험악한 까닭에 백성들이 대부분 모질고 사납다. 강원도는 산골 백성으로 대부분 어리석고, 전라도는 오로지 교활함을 숭상하여 그른 일에 동화되기 쉽다. 경기도는 서울을 제외한 야읍( 野 邑 )은 인물이나 소산 물이 보잘것없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리( 勢 利 )만을 따 른다. 이것이 8도 인심의 대략이다. 그러나 이는 서민 을 두고 한 말이요, 사대부의 풍속에 이르러서는 또한 그렇지 않다. 이중환, <택리지> 지형이 주는 생활 조건 우리나라는 산이 많고 들이 적어 다니기에는 불편하 므로 온 나라의 장사꾼은 대부분 말에다 화물을 싣는 다. 그런데 목적한 곳이 멀면 노자는 많이 허비되면서 소득이 적다. 그러므로 물자를 실어 옮겨서 교역을 하 는 이익보다 못하다. 이중환, <택리지> 안정복의 천주교 비판 서양 책이 들어와 우리 학자들이 가까이하고 있으나 여기서 얻을 것은 천문과 기하뿐이다. 사대부 이승훈 사료집 51
52 이 북경에 가서 서양 책을 들여온 뒤 정조 7, 8년에 젊은 학자들이 천주학을 받들고 상제가 직접 내려온 듯이 소란을 피운다. 평생 유학을 하던 자들이 하루아 침에 이교에 귀의하였음은 진실로 애석한 일이라. 이 제 <천학고>를 지어 그것이 중국에서 들어온 지 오래 된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천학고> 조선 후기 서민 문화 양반:나는 사대부의 자손인데. 선비:아니, 나는 팔대부의 자손인데. 양반:팔대부는 또 뭐야? 선비:아니, 양반이란 게 팔대부도 몰라? 팔대부는 사 대부의 갑절이지 뭐. 양반:첫째, 지식이 있어야지. 나는 사서삼경을 다 읽 었네. 선비:뭣이, 사서삼경? 나는 팔서육경도 읽었네. 양반:도대체 팔서육경이 뭐냐? 초랭이:나도 아는 육경, 그걸 몰라? 팔만대장경, 중 의 바라경, 봉사 안경, 처녀 월경, 약국 길경 (도라지), 머슴 새경(품삯) 사설시조 작가 모름 두꺼비 파리를 물고 두엄 위에 치달아 앉아 건넌산 바라보니 백송골이 떠 있거늘 가슴이 선뜻하여 풀쩍 뛰어내리다가 두엄 아래 자빠 져 버렸구나. 마침 나였기에 망정이지 피멍들 뻔하였도다. <청구영언> 관찰사 절제사도 완전히 차지하네. <여유당전서> 시랑( 豺 狼 ) 이리여, 승냥이여! 삽살개 이미 빼앗아 갔으니, 닭일 랑 묶어 가지 마라. 자식은 이미 팔려 갔고, 내 아내는 누가 사랴! 내 가 죽 다 벗기고, 뼈마저 부수려나. 우리의 논밭을 바라보아라. 얼마나 크나큰 슬픔이더 냐. 강아지풀도 못자라니, 쑥인들 자랄손가. 살인자는 이미 자살했는데, 또 누구를 해치려느냐. <여유당전서> 애절양 이것은 가경 계해년(1803) 가을에 내가 강진에 있으 면서 지은 것이다. 그 때에 노전( 蘆 田 )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보( 軍 保 )에 들어가고 이 정이 소를 빼앗으니, 백성이 칼을 뽑아 그 양경을 스 스로 베면서 하는 말이, 내가 이것 때문에 이러한 곤 액을 받는다. 하였다. 그 아내가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편의 양경을 가지고 관청에 나아가 울며 하소연하였으나 문지기가 막아 버렸다. 내가 듣고 이 시를 지었다. 백성을 다스리는 자가 백성의 실정은 걱 정하지 않고, 다만 속례( 俗 例 )만 따르므로 그때에 어 떤 한독( 悍 毒 )한 백성이 이러한 변을 저지르고 말았 으니 불행함도 심한 일이다. 가히 두렵지 않은가. <여유당전서> (2009.서울시 9급) 시아버지 삼년상 벌써 지났고, /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이 집 삼대 이름 모두 군적에 실렸네./ 억울한 하소연 하려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이정은 으르렁 대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네 하일대주( 夏 日 對 酒 :여름날 술을 마시며) 떵떵 거리는 수십 집안이 대를 이어 가며 국록을 먹는다. 서로들 돌아가며 싸우고 죽이면서 약한 이를 고기 삼아 힘센 놈이 먹어 치우네. 세력을 휘두르는 대여섯 집안 재상 자리 대감 자리 모두 다 차지하고 52 사료집
53 14장 근대사회의 전개 흥선대원군 대원군이 집권한 후 어느 회의석상에서 음성을 높여 여러 대신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리( 千 里 )를 끌어다 지척( 咫 尺 )을 삼겠으며, 태산을 깎아 내려 평지를 만 들고, 또한 남대문을 3층으로 높이려 하는데, 여러분 들은 어떻게 생각하오? 라고 물었다. 대개 천리 지척이란 말은 종친을 높인다는 뜻이요, 남대문 3층 이란 말은 남인을 천거하겠다는 뜻이요, 태산을 평지 로 만들겠다는 말은 노론을 억압하겠다는 의사이다. <매천야록> 경복궁 타령 남문을 열고 파루를 치니 계명산천이 밝아온다. 에헤야 어허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후렴) 을축 4월 갑자일에 경복궁을 이루었네. 우리나라 좋은 나무는 경복궁 중건에 다 들어갔네. 덜커덩 소리가 웬 소리냐 경복궁 짓느라고 헛방아 찧 는 소리다. 석수장이 거동을 보소 방망치를 갈라 잡고 눈만 껌벅 거린다. 남문 밖에 막걸리 장수야 한 잔을 걸러도 큰아기 솜 씨로 걸러라. 경복궁 역사가 언제나 끝나 그리던 가족을 만나 볼까. 예전에는 면제되던 자라도 신포를 바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근세조선정감> (2013.법원직) 호역( 戶 役 )으로써 군역( 軍 役 )을 대 신하고 호수( 戶 數 )에 따라 귀천( 貴 賤 )과 존비( 尊 卑 )를 물론하고 일체로 부역( 賦 役 )을 균평하게 한다 면 내는 자는 심히 가볍고 거두는 자도 손실이 없을 것입니다. 경복궁 타령(2012.경찰 2차, 2012.지방직 7급)) 에 에헤이야 얼널널 거리고 방에 흥애로다 을축년 4월 초3일에 경복궁 새 대궐 짓는데 헛방아 찧는 소리다 조선의 여덟 도 좋다는 나무는 경복궁 짓노라 다 들 어간다 도편수란 놈의 거동 보소 먹통 메고 갈팡질팡한다 (생략) 도편수란 놈 거동보소. 먹통 들고 갈팡질 팡한다. 우리 나라 좋은 나무, 이 궁궐 짓는 데 다 들어간다. 양이 보국책( 攘 夷 保 國 策 ) 유시( 諭 示 ) 1.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화친한다면 이는 나라를 파 는 것이다. 2. 해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교역을 허락한다면 이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3. 적이 서울에 다다를 때 도성을 버리고 도망간다면 이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호포법( 戶 布 法 ) 나라의 제도로서 인정( 人 丁 )에 대한 세( 稅 )를 신포( 身 布 )라고 하였는데, 충신과 공신의 자손에게는 모두 신 포가 면제되었다. 이 법이 시행된 지도 이미 오래됨에 턱없이 면제된 자가 매우 많았다. 근래에 와서는 무릇 사족이란 자는 모두 신포를 바치지 않고, 그 모자라는 액수를 평민에게 덧붙여 징수하여 보충하고 있었다. 대원군은 이를 수정하고자 동포( 洞 布 )라는 법을 제정 하였다. 가령 한 동리에 2백호가 있으면 매 호에 더부 살이 호가 약간씩 있는 것을 정밀하게 밝혀내어 계산 하고, 신포를 부과하여 고르게 징수하였다. 이 때문에 척화비 洋 夷 侵 犯 서양 오랑캐가 침범함에 非 戰 卽 和 싸우지 않음은 화의하는 것이요 主 和 賣 國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해설 병인양요 직후 양이보국책과 척화비문을 작성하였 다.(척화비 건립은 신미양요 직후에 이루어졌다,) 사료집 53
54 강화도조약(2013.법원직) 저번에 사절선이 온 것은 오로지 수호( 修 好 )때문이니 우리가 선린( 善 隣 )하는 뜻에서도 이번에는 사신을 전 위( 專 委 )하여 수신( 修 信 )해야겠습니다. 사신의 호징츤 수신사라하고 김기수를 특별히 차출하고 따라가는 인 원은 일을 아는 자로 적당히 가려서 보내십시오. 이는 수호 조약을 체결한 뒤에 처음 있는 일이니, 이번에는 특별히 당상관을 시켜 서계( 書 契 )를 가지고 들어가게 하고, 이 뒤로는 서계를 옛날처럼 동래부에 내려 보내 어 에도로 옮겨 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승정원일기> 주청( 淸 ) 미국 공사 로우가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문 청국에 부임한 이래로 조선에 관해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백방으로 수집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 다. 조선은 매년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이지만 실 제로 독립 국가이다. 실제로 조공 사절은 사무역과 상 거래를 위하여 조선 종이나 고려 인삼 등을 가득 실 은 대상을 거느리고 중국에 들어온다. 이와 같이 존속 해 온 조공 이외에는 조 청 양국 간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듯하다. 조선은 청국이 조선의 정치를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간주하고 있다. 본인은 조선과 협상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조 일 수호 조규 부록 제1관 각 항구에 주재하는 일본인 또는 관리관은 긴 급 사태가 있는 경우에 지방관에게 고하고, 한국 여행 을 할 수 있다. 제2관 공문 사송( 公 文 使 送 )의 편의를 제공하여 비용 을 사후 변상하도록 할 수 있다. 제3관 일본인이 개항장에서 지기( 地 基 )를 조차( 租 借 ) 하여 거주하는 것을 인정한다. 제4관 부산에서의 일본인의 자유 활동 지역을 방파제 로부터 동서남북 조선 기준 10리로 한정한다. 제5관 개항장에서의 조선인 임고( 賃 雇, 임금 고용)를 허용하고, 정부의 허가를 받을 경우 일본에 왕래할 수 있다. 제7관 일본 화폐가 조선 내에서 물건 구매 시 상호 통용되도록 허용한다. 제9관 일본 측량선이 해안을 측량하다 사고를 당한 경우, 긴급 피난하도록 적극 협력한다. 조 일 무역 규칙 제6칙 조선국 항구에 머무르는 일본인은 미곡과 잡곡 을 마음대로 수출할 수 있다. 제7칙 일본국 정부에 소속된 선박들은 항구세를 납부 하지 않을 수 있다. 조일 수호 조규 속약 제1조 부산 원산 인천 각 항의 간행이정을 확장해 각 50리로 하고 2년 후를 기해 다시 각 100리로 한 다. 1년 뒤에 양화진을 개시장으로 한다. 제2조 일본국 공사 영사 및 그 수행원과 가족의 조선 각지 여행을 허가한다. 여행 지방을 지정함은 예조에 서 하되 증서를 발급하고, 지방관은 증서를 검사하고 여행자를 호송한다. 조 일 통상 장정 제37관 만약 조선국에 가뭄 수해 병란 등의 일이 있 어 국내 식량 결핍을 우려하여 조선 정부가 잠정적으 로 쌀의 수출을 금지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1 개월 전에 지방관이 일본 영사관에게 통고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때에는 그 시기를 미리 항구의 일본 상 인에게 두루 알려 그대로 지키게 해야 한다. 조선책략 조선의 땅은 실로 아시아의 요충을 차지하고 있어 형 세가 반드시 다투게 마련이며, 조선이 위태로우면 중 국도 위급해질 것이다. 러시아가 영토를 넓히려고 한 다면 반드시 조선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렇 다면 오늘날 조선의 책략은 러시아를 막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을 것이다. 러시아를 막는 책략은 무엇인 가? 중국과 친하고( 親 中 國 ), 일본과 맺고( 結 日 本 ), 미국과 이어짐( 聯 美 邦 )으로써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 미 국을 끌어들여 우방으로 하면 도움을 얻고 화를 풀 54 사료집
55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과 이어져야 하는 까닭이다. 매국( 主 和 賣 國 )하려는 신료들을 처단해야 합니다. 홍재학의 상소문 영남 만인소(2013.지방직 7급) 청나라는 우리가 신하로서 섬기는 나라로, 신의를 지 켜 속방이 되어 온 지 2백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무엇 을 더 친할 것이 있겠습니까? (중략) 일본은 우리 에게 매여 있던 나라입니다. 3포 왜란이나 임진왜란 때의 숙원이 아직 풀리지 않고 있는데, 만일 그들이 우리가 허술한 것을 알고 공격하면 장차 이를 어떻게 막겠습니까? (중략) 미국은 우리가 본래 모르던 나라입니다. 돌연히 타인의 권유로 불러 들였다가 그 들이 우리의 허점을 보고 어려운 청을 강요하면 장차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입니까? (중략) 러시아은 본래 우리와는 혐의(싫어하고 미워할)가 없는 나라입 니다. 공연히 타인의 말만 믿고 틈이 생기면 우리의 체통이 손상되게 됩니다. 또, 이를 빌미로 저들이 군 사로 침략해 온다면 장차 이를 어떻게 막을 것입니까? <일성록>, 만언 척사소 대개 서양의 학문은 천리( 天 理 )를 어지럽히고 기강을 소멸시킴이 심함을 다시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서양 의 물건은 태반이 음탕하고 욕심을 유도하며, 윤리와 강상을 깨뜨리고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히며, 천지에 거역하는 것들입니다. 서양의 학문과 물건은 귀로 들 으면 창자가 뒤틀리고 또한 십자가의 상을 받들 지 않는다 해도 야소( 耶 蘇 )교의 책을 읽게 되면 성인 에게 죄를 얻는 시작입니다. 전하의 백성들은 과연 귀 와 눈과 코와 입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위정척사는 정조 이래로 내려온 조정의 기본 정책으로 서 아직도 그 의리가 빛나고 있는데, 고종의 친정 이래 로 일본과 서양의 똑같은 해를 모르고 일본과의 통상 을 주장해 온 결과 사설( 邪 說 )과 이의( 異 議 )가 횡행하 여 조선의 사태가 위급하기 비길 데가 없습니다. 양물 ( 洋 物 )과 야소( 耶 蘇 )라는 사교의 위세로 공맹( 孔 孟 )의 큰 도는 날로 사라지게 되어 가정에는 윤리가 깨지고 예의가 허물어져 그 결과 종묘사직이 무너질 위기에 있습니다. 국왕은 더욱 위정척사의 대의를 밝혀 주화 조 미 수호 통상 조약(1882) 제5조 무역을 목적으로 조선국에 오는 미국 상인 및 상선은 모든 수출입 상품에 대하여 관세를 지불해야 한다. (2008.법원직) 제14조 조약을 체결한 뒤에 통상 무 역 상호 교류 등에서 본 조약에 부여되지 않은 어떠 한 권리나 특혜를 다른 나라에 허가할 때에는 자동적 으로 미국 관민에게도 똑같이 주어진다.(최혜국대우) 조 영 수호 통상 조약 제1관 1. 대조선국 대군주와 대영국 대군주 애란국 ( 愛 蘭 國 ) 겸 인도국의 연합 왕국 여제 폐하 및 그 후 대사군( 後 代 嗣 君 )과 그 인민으로 더불어 피차 간 영 원한 평화와 우의가 있을 것이며, 차국인이 피국에 가 면 그 나라에서 반드시 생명, 재산, 안정의 보호를 받 는다. 2. 다른 나라와 분쟁시 두 나라는 조약을 맺은 만큼 중간에서 잘 조처해야 한다. 제3관 1. 재조선 영국 인민 및 그 재산은 영국에서 파 견한 법률과 소송을 처리하는 관원이 전적으로 관할 한다. 제4관 1. 제물포, 원산, 부산(부산항이 적합하지 않을 시는 그 부근의 타항) 등 항구와 한양의 양화진(혹은 그 부근의 편리한 다른 장소)을 개방하고 통상을 허 가한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 개화론 외국의 문명을 취해서 미개한 나라에 퍼뜨릴 때는 모 름지기 적절히 취사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문명에는 밖에서 드러나는 사물과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신의 구별이 있는데, 밖으로 드러나는 문명은 취하기 쉽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문명은 찾아 내기 어렵다. 나라의 문명화를 꾀함에 있어서는 어려운 쪽을 먼저 하고 쉬 운 쪽을 나중에 해야 한다.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의 개략> 사료집 55
56 해설 후쿠자와 유키치는 현재 일본의 최고 액면가 지폐인 만 엔권에 그려져 있는 인물로 19세기 일본의 근대화 시기 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이며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 는 인물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개화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 을 끼쳤다. 그러나 그의 문명 개화론은 후에 탈아론( 脫 亞 論 ) 으로 바뀌면서 일본 정부의 대륙 침략을 지지하는 국가주의 로 변질되었다. 았지만 지금은 맞지 않으며, 저쪽에는 좋지만 이쪽에 는 좋지 않은 것도 있어, 곧 고금의 형세를 살피고 피 차 사정을 비교하여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리는 것 이 곧 개화의 큰 도인 것이다. 서유견문 제 14편, 개화의 등급 영선사(2012. 사회복지직) 개화사상의 확산 외국의 교( 敎 )는 사( 邪 )로서 마땅히 멀리해야 하지만, 그 기( 器 )는 즉 리( 利 )로서 가히 이용후생의 바탕이 될 것인즉, 농 상, 의약, 수레, 배 등의 종류는 어찌 꺼려서 멀리하겠는가? <일성록>, 고종 19년 9월 5일, 곽기락의 상소 오경석은 중국에서 가져온 여러 가지 책을 유홍기에 게 주어 연구할 것을 권하였다. 어느 날 유홍기 가 오경석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개혁할 수 있 겠느냐고 묻자, 오경석은 먼저 북촌의 양반 자제 중에 서 동지를 구하여 혁신의 기운을 일으켜야 한다고 대 답하였다고 한다. 오세창의 회고록 이들이 받은 교육 내용은 주로 서양의 말과 문장, 탄 약 제조, 화약 제조, 제도, 전기, 소총 수리 등이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에는 자질이 부족하여 교육에 어 려움을 느끼다가 자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항로의 상소문 양이( 洋 夷 )의 화( 禍 )는 홍수나 맹수의 피해보다도 훨 씬 심각합니다. 전하께서 부지런히 힘쓰시고 경계하 시어 안으로는 관리들로 하여금 사학( 邪 學 )의 무리를 잡아 베이시고, 밖으로는 정병으로 하여금 바다를 건 너오는 적을 정벌하게 하옵소서. 사람 노릇을 하느냐, 짐승이 되느냐 하는 고비와 존속하느냐 멸망하느냐 하는 기틀이 잠깐 사이에 결정되오니, 조금이라도 지 체해서는 아니 되옵니다. 태극기 제작과 게양( ) 새로 만든 국기를 묵고 있는 누각에 달았다. 기는 흰 바탕으로 네모졌는데 세로는 가로의 5분의 2에 미치 지 못하였다. 중앙에는 태극을 그려 청색과 홍색으로 색칠을 하고 네 모서리에는 건( 乾 ) 곤( 坤 ) 감( 坎 ) 이 ( 離 )의 4괘( 四 卦 )를 그렸다. <사화기략> 개화의 등급(유길준) 무릇 개화란 인간의 온갖 만물이 가장 아름다운 경지 에 이르는 것을 일컫는데, 개화에는 인륜 개화, 학술 개화, 정치 개화, 법률 개화, 기계 개화, 물품 개화가 있다. 인륜 개화는 천하만국을 통하여 그 동일한 규모 가 천만년을 지나도 장구함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정 치 이하의 여러 개화란 시대에 따라서 변개하기도 하 고 지방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맞 기정진의 노사문집 (1882)(2014.기상직) 저들 교활한 오랑캐는 자기들의 생각하는 바를 눈 속 의 못으로 삼아 갖은 방법을 다하여 구멍과 간격을 뚫어 반드시 우리와 교통을 하고자 바랄 뿐이니 그 밖에 또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만일 교통의 길을 열면 저들의 영위하는 바는 사사건건 뜻대로 이루어 져서 점차 막힘이 없어 2 3년이 지나지 않아서 전하 의 백성으로서 서양 사람으로 변하지 않는 자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전하는 장차 누구와 더불어 임금 노릇을 하시려 하십니까. 56 사료집
57 최익현의 5불가소 일단 강화를 맺고 나면 저들은 물화를 교역하는 데 욕심을 낼 것입니다. 저들의 물화는 모두 지나치게 사 치스럽고 기이한 노리개로, 손으로 만든 것이어서 그 양이 무궁합니다. 우리의 물화는 모두가 백성들의 생 명이 달린 것이고, 땅에서 나는 것이므로 한정이 있습 니다. (중략) 저들이 비록 왜인이라고 하나 실은 양적입니다. 저들이 비록 왜인이라고 하나 실은 양적( 洋 賊 )입니다. 강화가 한번 이루어지면 사학( 邪 學 ) 서적과 천주의 초 상화가 교역하는 속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 안 가서 선교사와 신자의 전수를 거쳐 사학이 온 나라 안에 퍼지게 될 것입니다. 얼마 안가서 집집마다 사학을 받들고 사람마다 사학에 물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그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고 신하가 그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게 되어, 예의는 시궁창 에 빠지고 인간들은 변하여 금수( 禽 獸 )가 될 것입니다. <면암집> 제물포 조약 제1조 금일부터 20일 안에 조선국은 흉도를 체포하고 그 괴수를 엄중히 취조하여 중죄에 처한다. 일본국은 관리를 보내 입회 처단하게 하되 만일 그 기일 안에 체포하지 못할 때는 응당 일본국이 처리한다. 제2조 일본 관리로서 해를 당한 자는 조선국이 예로 서 장례를 치르고 그 뒤를 후하게 한다. 제3조 조선국은 5만 원을 내어 해를 당한 일본 관리 들의 유족 및 부상자에게 주도록 한다. 제4조 흉도의 폭거로 일본국이 받은 피해 및 공사를 호위한 육해군 경비 중에서 50만 원은 조선국이 채워 준다. 해마다 10만 원씩 5개년 동안 완납한다. 제5조 일본 공사관에 군인 약간을 두어 경비한다. 병 영의 설치 및 유지비는 조선국이 부담한다. 제6조 조선국은 대관을 특파하고 국서를 보내 일본국 에게 사죄한다. 조 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1882년(고종 19)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된 양국 상인들의 수륙 통상에 대한 규정이다. 임오군란 진압 을 위한 청군의 주둔을 배경으로 체결되었는데, 조선 이 청의 예속국이라는 규정의 명시와 청에게 치외법 권, 내지 통상권, 연안 어업권, 청 군함의 연안 항행 권까지 허용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 과 같다. 1 이 장정은 중국이 속방( 屬 邦 )을 우대하는 뜻에서 상정한 것이고, 각 대등한 국가 간의 일체 균점하는 예와는 다르다. 2 상무 위원의 파견 및 양국 관원의 처우를 규정하 였다. 북양 대신과 조선 국왕의 위치는 대등하다. 3 조선에서의 중국 상무 위원의 치외법권을 인정한다. 4 조난 구호 및 평안도 황해도와 산동 봉천 연안 지방에서의 어채를 허용한다. 5 북경과 한성의 양화진에서의 개잔( 開 棧 )* 무역을 허락하되, 양국 상민의 내지 채판( 內 地 采 辦 )*을 금하 고 필요할 경우 지방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6 책문 의주 훈춘 회령에서의 개시와 홍삼 무역과 관련된 세칙을 정한다. 7 조선국 윤선 운항 및 중국 병선의 조선 연해 내왕 정박, 장정의 증감은 북양 대신과 조선 국왕의 자회 ( 咨 會 )로 결정한다. * 개잔:화물을 쌓아 두고 객상이 유숙하며 장사하는 곳 * 내지 채판:내륙 지방의 시장에 상품을 운반해 판매하는 상행위 해설 조 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의 성립 결과, 조선 내정 에 대한 청의 간섭이 본격화되어 ᄀ 이홍장의 추천으로 정 치 외교 고문으로 마젠창과 묄렌도르프 초빙, ᄂ 외교 통 상 사무를 관장하는 통리아문(이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의 설치, ᄃ 군제의 개편, ᄅ 1883년 10월 각 개항장에 공 서( 公 署 )와 분서( 分 署 )를 설치하여 상권의 확대 등을 추진하 였다. 그러나 서구 열강 및 일본 등은 청의 조선에 대한 종 주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은 1883년 7월 조 일 통 상 장정을 체결하여 최혜국 대우를 규정했고, 영국과 독일 도 통상 장정의 체결 과정에서 자국 상인들의 조선에서의 상행위를 인정받았다. 이에 따라 다음해 2월 청도 무역 장 정의 4조를 개정하여 내지 채판이 허용되었다. 이에 따른 청 상인들의 영향력 확대로 조선의 무역 수지 적자가 늘어 났고, 개항장과 서울을 거점으로 한 청 상인들의 내지 시장 침투는 시전 상인과 개항장 객주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사료집 57
58 윤선학의 상소 군신 부자 부부 장유의 윤리는 인간의 본성에 부여 된 것으로 천지를 통하여 만고 불변의 이치이고, 위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도( 道 )가 됩니다. 이에 대해 배 수레 군사 농사 기계의 편민 이국( 便 民 利 國, 국민을 편하게 하고, 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은 외형적인 것 으로서 기( 器 )가 됩니다. 신이 변혁을 꾀하고자 하는 것은 기이지 도가 아닙니다. <승정원 일기>, 고종 19년 곽기락의 상소문(1881)(1881년 이 상소문이 계기가 되어 통리기무아문(1881)이 설치되었다.) 여러 가지 조목 중에서 가장 급히 실시해야 될 일은 내수( 內 修 )를 하되 자강( 自 强 )의 방도를 취하여 적의 침입을 물리칠 수 있고 그리하여 침략을 받게 될 근 심을 없애는 데 있다. 외국의 교( 敎 )는, 즉 사( 邪 )로서 마땅히 멀리해야 하지만, 그 기( 器 )는, 즉 리( 利 )로서 가히 이용후생( 利 用 厚 生 )의 바탕이 될 것인즉, 농 상 의학 군대 주차( 舟 車 ) 등은 어찌 이를 꺼려 멀리하 겠는가? 해설 도기 분리( 道 器 分 離 ), 서기 수용( 西 器 受 容 ):곽기 락 윤선학 등의 진보적 유생들이 주장한 것으로 삼강오륜 이 천부의 변함 없는 이치로서 도( 道 )이며, 선박 농기계와 같이 편민 이국( 便 民 利 國 )을 위한 것은 기( 氣 )라고 규정하여 정신 문명과 물질 문명을 구분하여 서양의 물질 문명을 수 용하자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은 척사론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채서 사상[ 採 西 思 想,서양( 西 )의 좋은 점만 가려서 ( 採 ) 받아들이자는 주의( 思 想 )]이라는 평가도 있다. 제물포 조약 제5조 일본 공사관에 군인 약간을 두어 경비한다. 병 영의 설치 및 유지비는 조선국이 부담한다. 톈진 조약( ) 제1조 청국은 조선에 주둔한 군대를 철수한다. 일본 국은 공사관 호위를 위해 조선에 주재한 병력을 철수 한다. 제2조 앞으로 만약 조선에 변란이나 중대 사건이 일 어나 청 일 두 나라나 어떤 한 국가가 파병을 하려고 할 때에는 마땅히 그에 앞서 쌍방이 문서로써 알려야 한다. 그 사건이 진정된 뒤에는 즉시 병력을 전부 철 수시키며 잔류시키지 못한다. 제3조 조선에 변란이 일어나 양국 중 어느 한 나라가 군대 파견의 필요가 있을 때에는 사전 통보하여 동시 에 군대를 파견하고 사건이 해결되면 즉시 철수하여 병력을 잔류시키지 않는다. 갑신정변에 대한 평가 개화당의 실패는 우리에게 매우 애석한 일이다. 내 친 구 중에 갑신정변의 내용을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일류 수재들이 일본인에게 이용당해 그처 럼 크나큰 착오를 저질렀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라 고 하였다. 어찌 일본인이 진심으로 김옥균을 성공하 게 하고, 성의있게 조선의 운명을 위해 노력하겠는가? 박은식, <한국통사> 한성 조약( ) 제1조 조선국은 국서를 보내 일본에 사의를 표명할 것 제2조 해를 입은 일본인 유족과 부상자에게 보상금을 지불하고, 또 상인의 재물이 훼손 약탈된 것을 변상 하기 위해 조선국은 11만 원을 지불할 것 제4조 일본 공사관 신축지 및 신축비 2만 원을 지불 할 것. 제5조 일본 호위병의 막사는 공관 부지를 택하여 정 하고, 제물포 조약 제5관에 비추어 시행할 것. 부들러의 중립화론 서양에 2, 3의 소국이 있는데 대국들 간 상호 보호함 으로써 그 소국이 받는 이익은 실로 크다. 만약 서양 대국들이 교전을 한다해도 소국은 단지 천여 명을 변 경에 주둔시켜 자국을 지키게 하고 지금 조선의 실정으로 말하면 청국이 군대를 파견하여 세비를 써 가며 이 나라에 주둔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경내( 境 內 )를 지키지 못하여 강한 인국( 隣 國 )이 침입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선 은 청국의 후정( 後 庭 )이자 러시아 일본 양국과 더불 58 사료집
59 어 변계( 邊 界 )를 연접하고 있어서 반드시 서로 다투 는 곳으로 되어 있다. 배척하는 것을 도리어 사류( 邪 類 )라고 배척하는가? 보은 집회 유길준의 중립화론 이제 우리나라는 지역으로 말하면 아시아의 인후( 咽 喉 )에 처해 있는 것이 유럽의 벨기에와 같다. 지위는 중국에 조공하던 나라로서 불가리아가 터키에 조공하 던 것과 같으나 동등한 권리로 각국과 조약을 맺은 것은 불가리아에도 없던 바요, 조공하던 나라로서 왕 이 책봉을 받던 일은 벨기에에도 없던 일이었다. <유길준 전서> 김옥균(2014.기상직) 밖으로는 널리 구미 각국과 신의로써 친교하고, 안으 로는 정치를 개혁하여 어리석은 인민을 문명의 도( 道 ) 로써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상업을 일으켜서 재정( 財 政 )을 확충하고 군사를 길러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할 수만 있다면 영국은 마침내 거문도에서 철수하게 될 것입니다. 그 밖의 여러 나라도 역시 침략의 뜻을 버 리게 될 것입니다.(국왕 폐하께 대한 탄원( , 김옥균 동경매일신문 발표문 ) 교조 신원( 敎 祖 伸 寃 ) 운동 우리들의 뜻은 대선사의 지극한 억울함을 풀고자 함 입니다. 선사의 가르침은 오직 유교 불교 도교의 도 ( 道 )를 합하여 충군( 忠 君 ) 효친( 孝 親 )하며 지성( 至 誠 ) 사대( 事 大 )함에 있습니다. 삼례 집회 동학의 정치 운동화 지금 왜양( 倭 洋 )의 도적 떼가 나라 한복판에 들어와 어 지럽힘이 극에 달하였다. 진실로 오늘날 서울을 보건 대 오랑캐의 소굴이나 다름없다. 오늘의 원수요, 병인 년의 치욕을 차마 어찌 말로 할 수 있겠으며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무릇 왜양은 개와 양과 같다는 것 은 비록 어린애라 할지라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 다. 그런데 명석한 재상으로 어찌하여 우리가 왜양을 전봉준의 격문 우리가 의( 義 )를 들어 이에 이름은 그 본의가 전연 다 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려고 함이라. 안으로는 탐학의 머리를 베 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쫓아 내몰고자 함 이라.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 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리라. 민( 民 )은 국가의 근본이다. 우리들은 비록 초야의 유민( 遺 民 )이나 군토( 君 土 )를 먹고 군의( 君 衣 )를 입고 있으니, 국가의 위망을 앉아서 볼 수는 없다. 팔로( 八 路 )가 마음을 같이하고 억조( 億 兆 )가 묻고 의논하여 이제 의기( 義 旗 )를 들어 보국안민( 輔 國 安 民 )으로써 생 사를 같이 할 맹세로 삼는다. 오늘의 광경이 비록 놀라 운 일이나 결코 두려워하여 동요하지 말라. 각기 민업 ( 民 業 )을 평안히 하고 태평한 세월을 함께 빌며 임금 의 덕화( 德 化 )를 모두 누리게 되면 천만다행일까 한다. 창의문 보국안민의 방책은 생각지 않고 서울 밖에 좋은 집을 마련하여 자기만 온전할 것을 도모하여 오로지 벼슬 과 녹만 훔치니 이 어찌 도리라 할 수 있겠는가. 비록 우리가 초야의 유민이지만 임금의 땅에서 먹고 임금 의 옷을 입는 자로서 국가의 위망을 좌시할 수는 없 다. 나라의 위태로움을 어찌 앉아서 보겠는가! 전국의 백성이 한 마음이 되고 억조창생이 상의하여 지금 의 로운 깃발을 올리니 보국안민으로서 사생의 맹세를 삼는다. 농민군 4대 강령 1. 사람을 죽이지 말고 가축을 잡아먹지 말라. 2.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하라. 3. 일본 오랑캐를 몰아내고 나라의 정치를 깨끗하게 한다. 4. 군대를 몰아 서울로 들어가 권세가의 귀족을 모두 없앤다. 오지영, <동학사> 사료집 59
60 동학군 12개조 기율( 紀 律 ) 1. 항복하는 자는 대접한다. 2. 곤궁한 자는 구제한다. 3. 탐학한 자는 추방한다. 4. 순종하는 자에게는 경복한다. 5. 도주하는 자는 쫓지 않는다. 6. 굶주린 자는 먹인다. 7. 간사하고 교활한 자는 그치게 한다. 8. 빈한한 자는 진휼한다. 9. 불충한 자는 제거한다. 10. 거역하는 자는 효유한다. 11. 병든 자에게는 약을 준다. 12. 불효한 자는 죽인다. 김윤식, <속음청사> 동학 농민군의 폐정 개혁안 12개조 1 도인( 道 人 )과 정부와의 사이에는 숙혐( 宿 嫌 )을 탕 척( 蕩 滌 )하고 서정( 庶 政 )을 협력할 것.( 정부가 동학 교도를 탄압하였다.) 2 탐관오리는 그 죄목을 사득( 渣 得 )해 일일이 엄징 할 것.(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심하였다.) 3 횡포한 부호배( 富 豪 輩 )를 엄징할 것.( 양반 지주와 토호들의 횡포가 심하여 농민들이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4 불량한 유림( 儒 林 )과 양반배( 兩 班 輩 )를 엄징할 것. 5 노비 문서는 불태워버릴 것.( 신분 차별이 심하였다.) 6 칠반천인의 대우는 개선하고 백정 머리에 쓰는 평 양립( 平 壤 笠, 평랑갓)은 벗어 버릴 것. 7 청춘과부( 靑 春 寡 婦 )의 개가를 허락할 것.( 과부는 개가할 수 없었다.) 8 무명 잡세( 無 名 雜 稅 )는 일체 거두어들이지 말 것. ( 법에도 없는 잡다한 세금이 많았다. 이후 갑오개혁 때 조세법률주의를 실시하였다.) 9 관리 채용은 지벌( 地 閥 )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 할 것.( 민씨 정권의 세도 정치와 관직 매매로 인해 국정 이 문란해졌다. 이후 갑오개혁 때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 의 영향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었다.) 10 왜( 倭 )와 간통( 奸 通 )하는 자는 엄징할 것.( 일본 에 대한 농민들의 반감이 강하였다.) 11 공사채( 公 私 債 )를 막론하고 기왕의 것은 모두 무 효로 할 것.( 농민들 중에는 관리와 지주의 수탈 때문에 빚을 진 사람들이 많았다.) 12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 分 作 )하게 할 것.( 땅 없는 농민들이 많았다.) 해설 칠반천인:백정, 장인, 기생, 노비, 상여꾼, 무당, 광대 제2차 농민 봉기 때의 격문 일본이 구실을 만들어 군대를 동원하여 우리 임금님 을 핍박하고 우리 국민을 어지럽게 함을 어찌 그대로 참을 수가 있단 말이오. 지금 조정의 대신은 망 녕되고 구차하게 생명을 유지하며, 위로는 군부를 위 협하고 밑으로는 국민을 속여 왜이( 倭 夷 )와 연결하여 삼남의 국민에게 원한을 사며 망령되게 친병( 親 兵 )을 움직여 선왕의 적자( 嫡 子 )를 해하려 하니 참으로 그 무슨 뜻이오. 선유방문병동도상서소지등서( 宣 諭 榜 文 竝 東 徒 上 書 所 志 騰 書 ) 전봉준의 죽음과 관련된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전국) 새야 새야 녹두새야 웃녘 새야 아랫녘 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함박 쪽박 열나무 딱딱 후여 (전라도)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어서 바삐 날아가라 댓잎 솔잎 푸르다고 봄철인 줄 알지 마라 백설이 휘날리면 먹을 것 없다. (원주) 새야 새야 팔왕새야 네 무엇하러 나왔느냐 솔잎 댓잎이 푸릇푸릇 하절인가 하였더니 백설이 펄펄 흩날리니 저 강 건너 청송녹죽이 날 속 인다 오지영 <동학사> 60 사료집
61 전봉준의 절명시(전봉준이 처형되기 직전에 쓴 시) 시래천지개동력( 時 來 天 地 皆 同 力 ) 때가 이르러서는 천지와 함께 했으나 운거영웅부자모( 運 去 英 雄 不 自 謀 ) 운이 가니 영웅도 스스로 꾀할 바가 없다. 애민정의아무실( 愛 民 正 義 我 無 失 ) 백성을 사랑한 정의에 내 잘못은 없다. 애국단심수유지( 愛 國 丹 心 誰 有 知 ) 나라를 사랑하는 붉은 마음 누가 알아 줄까? 전봉준 공초 문) 작년(1894) 3월 무슨 사연으로 고부 등지에서 민 중을 크게 모았는가? 답) 고부 군수(조병갑)의 수탈이 심하여 의거하였다. 문) 너는 해를 입지 않았는데도 소란을 일으킨 것은 무슨 이유인가? 답) 일신의 해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 어찌 남자 의 일이 되리요. 민중이 억울해하고 한탄하는 고로 백 성을 위하여 해를 제거코자 한 것이다. 문) 고부에서 난을 일으킬 때 동학이 많았느냐, 원민 ( 寃 民 )이 많았느냐? 답) 의거할 때에 원민과 동학이 합하였으나 동학은 적고 원민이 많았다. 문) 흩어져 돌아간 후에는 무슨 일로 군대를 봉기하 였는가? 답) 안핵사 이용태가 내려와 의거 참가자 대다수가 일반 농민( 農 民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동학으 로 통칭하고 체포하여 살육하였기에 다시 봉기하였다. 문) 전주 화약 이후 군대를 일으킨 이유가 무엇이냐? 답) 그 후에 들은즉 일본이 개화라 칭하고 처음부터 민간에게 일언반구도 공포함이 없고 또 알리는 글도 없이 군대를 거느리고 우리 서울에 들어와 밤중에 왕 궁을 공격하여 임금을 놀라게 하였다. 하기로 초야의 백성들이 충군애국의 마음으로 분개함을 이기지 못하 여 의병을 규합하여 일본인과 접전하여 이 사실을 일 차적으로 묻고자 함이었다. (2012.법원직) 피고는 일본 군대가 대궐에 들어갔다 는 말을 듣고 필시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자 하는 뜻인 줄 알고 일본병을 물리치고 그 거류민을 국외로 쫓아낼 마음으로 다시 기병( 起 兵 )을 도모하였 다. 9월경 태인을 출발하여 삼례역에 이르러 그곳을 기병하는 핵심 본부로 삼았다. 군국기무처(2013.국가직 9급) 총재 1명, 부총재 1명, 그리고 16명에서 20명 사이 의 회의원으로 구성되었다. 이밖에 2명 정도의 서기 관이 있어서 활동을 도왔고, 또 회의원 중 3명이 기 초 위원으로 선정되어 의안의 작성을 책임졌다. 총재 는 영의정 김홍집이 겸임하고, 부총재는 내아문독판 으로 회의원인 박정양이 겸임하였다. 홍범( 洪 範 ) 14조 1. 청에 의존하는 생각을 버리고 자주 독립의 기초를 세운다. 2. 왕실 전범( 典 範 )을 제정하여 왕위 계승의 법칙과 종친과 외척과의 구별을 명확히 한다. 3. 임금은 각 대신과 의논하여 정사를 행하고, 종실 외척의 내정 간섭을 용납하지 않는다. 4.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나누어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5. 의정부 및 각 아문의 직무 권한을 명백히 한다. 6. 납세는 법으로 정하고 함부로 세금을 거두지 않는 다.(조세법률주의<동학과 갑오개혁>) 7. 조세의 징수와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 度 支 衙 門 )의 관할에 속한다. 8. 왕실의 경비는 솔선하여 절약하고, 이로써 각 아문 과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한다. 9. 왕실과 관부( 官 府 )의 1년 회계를 예정하여 재정의 기초를 확립한다. 10. 지방 제도를 개정하여 지방 관리의 직권을 제한한다. 11. 총명한 젊은이들을 파견하여 외국의 학술 기예 ( 技 藝 )를 견습시킨다. 12. 장교를 교육하고 징병을 실시하여 군제의 근본을 확립한다.(광무개혁때 징병제 선포) 13. 민법 형법을 제정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 전한다. 14. 문벌( 門 閥 )을 가리지 않고 인재 등용의 길을 넓힌다. <고종실록> 고종 31년 12월 12일 사료집 61
62 탁지아문:1894년 갑오개혁이 추진되면서 의정부 아래 설치된 8아문( 衙 門 ) 중의 하나로 탁지아문은 국 가 재정을 총괄하고 각 지방의 재무를 감독하였다. 1895년에는 탁지부( 度 支 部 )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2차 갑오개혁(2012.법원직) 제1호 내가 재가한 공문 식제( 式 制 )를 반포하게 하고 종전의 공문 반포 규례는 오늘부터 폐지하며 승선원, 공사청도 아울러 없애도록 한다. 제3호 내가 동지날에 백관들을 거느리고 태묘( 太 廟 ) 에 나아가 우리나라가 독립하고 모든 제도를 이정( 釐 正 )한 사유를 고하고, 다음 날에는 태사( 太 社 )에 나아 가겠다. 제4호 박영효를 내무대신으로, 서광범을 법무대신으 로 (중략) 삼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이상은 총리대신 김홍집, 외무대신 김윤식, 탁지대신 어윤중, 학무대신 박정양이 칙령을 받았다. 갑오개혁(유길준의 글)(2013.수능) 지금 조선의 개혁은 행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조선인 입장에서 세 가지 부끄러움이 있다. 세 가지 부끄러움 이란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고 일본의 권고와 압박을 받았기 때문에 본국 인민에 대해 부끄러운 것이 그 하나요, 세계 만국에 대하여 부끄러운 것이 그 둘이 요, 천하 후세에 대해 부끄러운 것이 그 셋이다. 이 세 가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중략) 오직 개혁 을 잘 이룸으로써 독립을 보존하고 남에게 굴욕을 당 하지 않으면서 개화의 실효를 거두어 보국안민 ( 保 國 安 民 )하게 되면 오히려 허물을 벗어날 수 있다. 소학교령(3차 갑오개혁, 국가직 7급 기출) 제1조 소학교는 아동의 신체 발달에 맞추어 인민 교 육의 기초와 생활상 필요한 보통 지식과 기능을 가르 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소학교는 관립 소학교 공립 소학교 사립 소학교 등의 3종이며, 관립 소학교는 정부 설립, 공립 소학교 는 부( 府 ) 혹은 군( 郡 ) 설립, 사립 소학교는 사립 학 교설립과 관계된 것을 말한다. 로젠 니시 협정 러시아와 일본 양국은 조선의 주권과 완전 독립을 확 인하는 동시에 내정에는 직접 간섭하지 않는다. 러시아와 일본 양국 정부는 조선이 러시아 혹은 일본 에 대해 권고 또는 조언을 요구할 경우 군사 교관이 나 재정 고문의 임명에 관해 사전에 서로 협상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독립 협회의 활동 이제 대조선국이 독립국이 되어 세계 만방을 어깨에 겨누니 이는 우리 대군주 폐하의 위덕이 떨침이요, 우 리 대조선국의 유사 이래의 광영이요, 우리 이천만 동 포의 행복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념할 실적이 없으 므로 이에 공공의 의견으로 독립협회를 발기하여 전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새로이 세우고, 전 모화관을 새로 고쳐 독립관이라고 하여 옛날의 치욕을 씻고 후 인의 표준을 만들고자 함이요, 그 부근의 땅에 독립 공원을 이루어 그 독립문과 독립관을 보전코자 하니 성대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돌아보건대, 그 공역 이 커서 큰 비용이 될 것이니 힘을 합치지 않으면 성 취를 기약치 못할 것이다. 대조선 독립 협회 회보 1호 나라의 나라됨이 둘이 있으니 가로되 자립( 自 立 )하여 타국에 의뢰하지 않는 것이요, 가로되 자수( 自 修 )하여 나라에 정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하늘에 서 우리 폐하에게 내리신 바의 하나의 대권입니다. 이 대권이 없은즉 그 나라가 없습니다. 때문에 신( 臣 ) 등 은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 협회를 설치하여 위로는 황 상의 위를 높이고, 아래로는 인민의 뜻을 굳게 하여 억년 무강( 無 疆 )의 기초를 확립하려 합니다. 안 으로는 정장( 政 章 )을 실천하시고 밖으로는 타국에 의 뢰함이 없게 하시어 우리 황상의 권을 자주( 自 主 )하 시고 우리나라의 권을 자립( 自 立 )하신즉, 비록 십 백 의 강적이 있을지라도 누가 감히 함부로 하오리까? 독립 협회가 고종 황제에게 올린 구국 선언 상소( ) 62 사료집
63 윤치호 등의 인권 옹호 상소(1898) 어떤 자는 말하기를 백성의 권한이 성하면 임금의 권 한이 반드시 줄어들 것이라 하니, 사람의 무식함이 이보다 심하겠습니까. 만일 오늘날에 이와 같은 민의가 없다면, 정치와 법률은 따라서 무너져서 어떤 모양의 재앙의 기미가 어디에서 일어날지 모르는데, 폐하께서는 홀로 생각이 여기에 미치지 아니하십니다. 신 등의 충성된 분노가 격하여 품고 있는 생각을 진 술하였지만, 대단히 황송하여 조처할 바를 알지 못하 겠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재량하여 살펴주십시오. 백정 박성춘의 관민 공동회 연설문(1898) 나는 대한의 가장 천한 사람이고 배운 것이 없습니 다. 그러나 충군애국의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 이 에 나라를 이롭게 하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려면 관민 이 합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차일에 비유하건 대, 한 개의 장대로 받치면 튼튼하지 못하나, 많은 장 대로 받치면 매우 튼튼합니다. 2. 외국과의 이권에 관한 계약과 조약은 해당 부처의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함께 날인하여 시행할 것.(입헌 군주제 주장) 3. 재정은 탁지부에서 전담하여 맡고, 예산과 결산을 국민에게 공포할 것. 4. 중대한 범죄는 공판하고, 피고의 인권을 존중할 것. 5. 칙임관(고급 관리)은 정부에 그 뜻을 물어 과반수 가 동의하면 임명할 것.(입헌군주제 주장) 6. 정해진 규정을 실천할 것. 독립 협회의 의회 설립 운동 제1조:중추원은 의정부 자문에 응하고 다음의 사항 을 심사, 의정한다. ⑴ 법률, 칙령안, ⑵ 의정부(의정부<태종> 내각<2차 갑 오개혁> 의정부[1896년<고종건양1>] 내각[1907년<순 종 융희 1>])가 결의하여 상주하는 일체 사항, ⑶ 중추원 의 임시 건의 사항, ⑷ 인민의 건의를 채용하는 사항 제2조:중추원은 다음의 직원으로 구성된다. 의장 1 인, 부의장 1인, 의관 50명으로 선임하고, 그 반수는 독립 협회의 회원 투표로 선거하며, 나머지 반수는 국 왕이 임명한다. 중추원 관제 관민공동회(2013.법원직) 나라라 하는 것은 사람을 두고 이름이니, 만일 빈 강 산에 초목금수만 있고 해와 달만 내왕하는 곳이면 어 찌 나라라고 칭하리오, 그러므로 사람이 토지에 의거 하여 나라를 세울 때 임금과 정부와 백성이 동심 합 력하여 나라를 세웠나니, 백성의 권리로 나라가 된다고 말하는 것이요. 해외 강국이 와서 나라 를 빼앗는데 종묘사직과 임금과 나라 이름을 그대로 두고 사람의 권리와 토지 이익만 가져가고 또 총명 강대한 백성을 옮겨다 가두고 주장을 하나니, 관 민이 합심하여 정부와 백성의 권리가 절반씩 함께 한 후에야 대한이 억만 년 무강할 줄로 나는 아노라 헌의 6조 1. 외국인(이권수호운동)에게 의지하지 말고 관민이 합 심하여 황제권(전제군주제 인정)을 공고히 할 것. 국민 참정권 운동(2014.법원직) 정부에서 일하는 관리는 임금의 신하요, 백성의 종이 니 위로 임금을 섬기고 아래로는 백성을 섬기는 것이 라. 바라건대 정부에 계신 이들은 관찰사나 군수들을 자기들이 천거하지 말고 각 지방 인민으로 하여금 그 지방에서 뽑게 하면, 국민 간에 유익한 일 이 있는 것을 불과 1 2년 동안이면 가히 알리라. 독립신문, 하의원 설치 금지에 관한 기사 하의원이라 하는 것은 백성에게 정권을 주는 것이라. 정권을 가지는 사람은 한 사람이든지 몇 만 명이든지 지식과 학문이 있으면 민국에 유익한 정치를 시행할 것이다. 무식하면 한 사람이 다스리나 여러 사람이 다 스리나 국정을 그르치기는 마찬가지요. 무식한 세계 에는 군주국이 도리어 민주국보다 견고함은 고금 사 사료집 63
64 기와 구미 가국 정형을 보아도 알지라 우리는 외국 사람과 교제한 후에 몇 해 동안에 배운 것이 지 권련 먹는 것 한 가지 밖에는 없으니 무슨 염치로 하 의원을 어느 새 꿈이나 꾸리오. 독립신문, 광무 2년, 관민공동회 나라라 하는 것은 사람을 두고 이름이니, 만일 빈 강 산에 초목금수만 있고 해와 달만 내왕하는 곳이면 어 찌 나라라고 칭하리오, 그러므로 사람이 토지에 의거 하여 나라를 세울 때 임금과 정부와 백성이 동심 합 력하여 나라를 세웠나니, 백성의 권리로 나라가 된다고 말하는 것이요. 해외 강국이 와서 나라를 빼앗는데 종묘사직과 임금과 나라 이름을 그대로 두 고 사람의 권리와 토지 이익만 가져가고 또 총명 강 대한 백성을 옮겨다 가두고 주장을 하나니, 관민 이 합심하여 정부와 백성의 권리가 절반씩 함께 한 후에야 대한이 억만 년 무강할 줄로 나는 아노라 황국중앙총상회(2014.사회복지직) 이단체는 본격적으로 자신을 수호하는 운동을 벌이기 에 앞서 정부로부터의 허가 과정에서 유배에 처해진 회장의 유배 해제를 주장하는 강경한 상소를 올렸다. 정부의 반응이 소극적이자 이 단체는 독립협회의 민 권운동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 그들의 운동에 부합하 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이 단체는 독립협 회가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전개한 노륙법과 연좌법의 부활 저지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수구 세력의 독립 협회에 대한 비판 이른바 협회라는 것은 무슨 명목으로 만민 공동 회요, 독립 협회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이른바 임금에 게 충성을 다하고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폐하를 침 범하고 나라에 화( 禍 )를 가져오며 인심을 선동하고 외부에서 엿보는 놈들과 결탁하여 나라를 없애버리려 는 데 적중할 뿐입니다. <고종실록>, 사회 진화론에 의거한 세계 질서 파악 조물주는 기름진 땅과 지하자원을 쓰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누가 되었든 인간 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라고 만드신 것이다. 이러 한 넓은 사고와 기업 정신을 갖춘 나라는 덜한 나라 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독립신문, 대한국 국제( ) 제1조 대한국은 세계 만국이 공인한 자주 독립국이다. 제2조 대한 제국의 정치는 전제 정치이다. 제3조 황제는 무한한 군권을 향유한다. 제4조 신민이 황제의 군권을 침손할 경우는 신민의 도리를 잃은 자로 본다. 제5조 황제는 육 해군을 통솔하고 편제를 정하며, 계 엄과 해엄의 권한을 갖는다. 제6조 황제는 법률을 제정하고 반포와 집행을 명하며, 국내 법률 개정 및 대사 특사 감형 복권의 권한을 갖는다. 제7조 황제는 행정 각부의 관제와 문관의 봉급 제정 혹은 개정권과 행정 칙령을 내릴 권한을 갖는다. 제8조 황제는 문무관의 임명을 행하며 작위, 훈장 및 기타 영전을 수여 혹은 박탈할 권한을 갖는다. 제9조 황제는 각 조약국에 사신을 파견 주재하게 하 며 선전 강화 및 제반 조약을 체결할 권한을 갖는다. 도량형 통일(2007.국가직 9급) 도량형을 획일케 하는 것은 나라의 선무( 先 務 )로 신구제( 新 舊 制 )에서 좋은 점을 참작하여 규칙을 만들어 반시( 頒 示 )하고 새로 만든 바, 두( 斗 ), 승( 升 ), 형( 衡 ), 척( 尺 )을 이제 활용할 것이니 먼저 한성 및 항시( 港 市 ) 대도회로부터 촌리( 村 里 )까지 두루 미치게 하여, 이로써 답습한 오류를 씻어 모두가 대동( 大 同 ) 하게 해야 할 것이다. 관보, 1903 해설 1차 갑오개혁 때의 도량형 통일은 일본식 단위의 통 일이였는데 광무개혁 때의 도량형 통일은 서구의 표준에 맞 게 일부 수정한 것이다. 64 사료집
65 화폐개혁 제1조 광무 5년 2월 2일 칙령 제4호 화폐 조례를 준 거하여 본위 화폐를 금으로 하고, 기왕 발생한 화폐는 신화폐와 교환 혹은 환수할 것 제3조 구백동 화폐의 교환 및 환수는 광무 9년 7월 1 일부터 개시할 것 제4조 구백동 화폐의 교환 만료 시한은 만 1년 이상 으로 탁지부 대신이 정할 것 제5조 구백동 화폐의 교환 시기 만료 이후에는 그 통 용을 금지할 것 광무개혁 (2009.국가직 7급) 제2조 전답 산림 천택 가옥을 매매 양도하는 경우 관계를 반납한다. 제3조 소유주가 관계를 받지 않거나, 저당 잡힐 때 관 허가 없으면 모두 몰수한다. 제4조 대한제국 인민 외 소유주가 될 권리가 없고, 외 국인에게 명의를 빌려주거나 사사로이 매매 저당 양 도할 경우 법에 따라 처벌한다. <순창군훈령총등> 을미의병 원통함을 어찌 하리. 국모의 원수를 생각하며 이미 이 를 갈았는데, 참혹한 일이 더욱 심하여 임금께서 또 머리를 깎으시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의관을 찢긴 나 머지 또 이런 망극한 화를 만났으매, 천지가 번복되어 우리 고유의 이성을 보전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부모 에게 받은 머리털을 풀 베듯이 베어 버리니 이 무슨 변고입니까. 이에 감히 먼저 의병을 일으키시고 서 마침내 이 뜻을 세상에 포고하노니, 위로 공경( 公 卿 )에서 아래로 서민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가 애통하 고 절박한 뜻이 없겠습니까. 유인석, 창의문 제2차 한 일 협약(을사조약):원명은 한 일 협상 조 약( 韓 日 協 商 條 約 ) 제1조 일본 정부는 한국이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 를 감리 지휘하고, 일본 영사는 외국에서의 한국의 이익을 보호할 것. 제2조 일본 정부는 한국과 타국 간에 현존하는 조약 의 실행을 완수할 임무가 있으며,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는 어떠한 조약이나 약속 을 하지 않기로 서로 약속함. 제3조 일본국 정부는 그 대표자로 하여금 한국 황제 폐하 아래 통감( 統 監 ) 1명을 두되, 통감은 전적으로 외교에 관한 사항을 감리함을 위하여 경성에 주재하 고, 한국 황제 폐하를 내알( 內 謁 )하는 권리를 가지며, 한국의 각 개항장 및 그 밖에 일본 정부가 필요하다 고 인정하는 지역에서 이사관( 理 事 官 )을 설치해, 본 협약의 조관을 완전히 실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일체 의 사무를 관장하도록 함. 해설 을사늑약은 이른바 을사오적(이완용, 박제순, 이지 용, 이근택, 권중현)에 의해서 체결되었으나 최종 결재권자 인 고종은 이에 대한 재가를 거부하였으므로 이 조약은 원 천 무효이다. 민영환의 유서 슬프다! 국치와 민욕이 이에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 경쟁 속에서 모두 멸망하게 되었다. 무릇 삶을 요하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음을 기하는 자는 반드시 삶을 얻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어찌 모르겠는 가. 영환은 다만 한번 죽음으로써 우러러 황은에 보답 하고 우리 2천만 동포에게 사죄하노라. 시일야방성대곡 지난날 이등 후작(이토 히로부미)이 한국에 옴에 어 리석은 우리 국민이 크게 환영하였더니, 천 만 뜻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우 리 대황제 폐하의 거룩하신 뜻이 강경하여 거절하였 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이등 후작 스스 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개 돼지 만도 못한 이른바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 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하였던 것이다. 아! 사천 년의 강토와 오백 년의 사직을 다른 나라에 갖다 바치고, 이천만 국민들을 타 사료집 65
66 국의 노예가 되게 하였으니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이천만 타국의 노예가 된 동포여! 살 았는가? 죽었는가? 단군 기자 이래 사천 년 국민정신 이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황성신문, 안중근 의거 나는 의병의 참모 중장이지 폭도가 아니다. 일본군이 야말로 폭도이다. 적장은 그 우두머리이다. 내가 적장을 공격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을사5조약을 강제 체결한 것. 둘째, 정미7조약을 강제 체결한 것. 섯째, 황제를 폐위시킨 것. 넷째, 군대를 해산시킨 것. 다섯째, 이권을 약탈한 것. 여섯째, 동양의 평화를 교란한 것. 안중근의 시 장부가 세상에 처한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만들 것인가, 영웅이 때를 만들도다. 천하를 웅혼하게 바라보라, 과연 언제 업을 이룰꼬. 동풍은 점점 차가워지는데 장사의 뜻은 점점 뜨거워 진다. 분개해 한번 떠남에 반드시 그 목적을 이루리로다.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 1900년대 지금은 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뻗어 오는 시 대이다. 동양 인종은 일치단결해서 서양 세력의 침략 을 극력 방어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로 되어 있다. 수 백 년 이래 서양 나라들은 도덕을 잊고 무력을 일삼 으며 경쟁심을 양성해서 침략만을 일삼고 있다. 러시 아가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다. 러 일 전쟁은 서양의 동양에 대한 침략과 각 민족 간 의 경쟁으로 인한 전쟁이다. 이 전쟁을 일본은 좋은 명분으로 내세웠다. 즉, 그것은 동양 평화를 유지하 고 한국 독립을 견고히 한다. 는 것이었다. 러 일 전 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은 일본이 강했기 때문이 아 니라 한국 백성이 일본의 선전 명분을 믿고 일본을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승한 일본은 강화 조 약 성립을 전후해서 한 청 양국 인사의 동양 평화의 소망을 저버렸으며 그들이 선전했던 동양 평화 유지 의 약속도 저버리고 말았다. 특히 한국의 독립은커녕 국권을 빼앗아 한국민과 원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 국인들은 이제 일본에게 속은 것을 깨닫고 의병을 일 으켜 독립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한국의 국권이 회복되지 않으면 모든 세계인들 이 일본의 한국 병합을 알고 일본이 한국 침략 후 만 주와 중국을 차례로 침략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경계 와 대책을 세우는 데 부심할 것이다. 일본의 한국 국 권 박탈은 의리 배반뿐만 아니라 서양 세력에게 어부 지리를 주고 동양 평화를 영구히 깨어 버리는 것이다. 을사조약에 대한 최익현의 저항 1. 포고팔도(사농공상의 줄임말)(의병 포고문) 아, 원통하도다! 오늘날의 국사를 차마 말로 할 수 있 으랴. 옛날에 나라가 망할 때는 종사만 멸망할 뿐이었 는데, 오늘날 나라가 망할 때는 인종까지 함께 멸망하 는 구나. 옛날에 나라를 멸망시킬 때에는 전령으로 하 더니 오늘날 나라를 멸망시킬 때에는 계약으로 하는 구나. 전쟁으로 한다면 그래도 승패의 판가름이 있겠 지만 계약으로 하는 것은 스스로 망하는 길로 나아가 는 것이다. 아! 지난 10월 20일의 변(을사늑약)은 전 세계 고금에 일찍이 없었던 일일 것이다. 우리에게 이웃 나라가 있 어도 스스로 결교( 結 交 )하지 못하고, 타인을 시켜 결 교하니 이것은 나라가 없는 것이요, 우리에게 토지와 인민이 있어도 스스로 주장하지 못하고 타인을 시켜 대신 감독하게 하니, 이것은 임금이 없는 것이다. 나 라가 없고 임금이 없으니 우리 삼천만 인민은 모두 노예이며 신첩일 뿐이다. 남의 노예가 되고 남의 신첩 이 된다면 살았다 하여도 죽는 것만 못하다. 2. 격문 작년 10월에 저들이 한 행위는 오랜 옛날에도 일찍이 없던 일로서, 억압으로써 한 조각의 종이에 조인하여 500년 전해오던 종묘사직이 드디어 하룻밤에 망하였 으니, 천지신명도 놀라고 조종( 祖 宗 )의 영혼도 슬퍼하 였다. 자기 나라 임금을 죽이고 다른 나라 임금 까지 침범한 이등박문은 마땅히 세계 여러 나라가 함 께 토벌해야 할 역적이다. 66 사료집
67 이위종의 한국을 위한 호소 (1907년, 헤이그 만국 기 자 협회에서 행한 연설) 한국 국민과 정부는 한국의 독립 유지와 영토 보전을 위하여서라는 일본의 정중한 약속을 신임하고 일본과 동맹 관계를 맺었다. 이 조약의 결과로서 한국은 일본 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작전을 위한 발판이 되어 주었 고, 또 한국 국민과 정부는 일본이 러시아와 싸우는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수단을 다하여 일본을 지원하였 다. 그러나 전후 일본은 태도가 바뀌어 한국 영토 를 강점하고 미개간지를 보상도 없이 약탈해 갔고, 대 신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에 반항 하는 한국인을 총칼로 진압시켰다. 파괴를 본 적이 없었다. 1개월 전까지는 번잡하고 유 복하던 촌락이 지금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기와 조 각과 회색의 잿더미, 타다 남은 찌꺼기 더미가 줄지어 있었다. 대한 자강회 취지문 무릇 우리나라의 독립은 오직 자강(스스로 강해지기 위 하여 힘쓰는 것)의 여하에 있을 따름이다. 자강의 방법을 생각해 보면, 다름 아니라 교육을 진작함과 식 산흥업( 殖 産 興 業, 생산을 늘리고 산업을 일으킴)에 있다. 무릇 교육이 일어나지 못하면 민중의 슬기가 열리지 못하고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면 국부가 증가하지 못 한다. 의병장 이인영의 해외 동포에게 보내는 격문 (2013. 법원직) 동포여! 우리들은 단결하여 우리 조국을 위해 몸을 바 쳐 우리의 독립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야만적인 일본인의 극악무도한 탄압과 불법 행위를 전 세계에 호소해야 합니다. 그들은 교활하고 잔인하며 진보와 인도의 적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본인과 그들의 첩자 들, 협력 분자들, 그리고 야만적인 군대를 제거하는 데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일본 외교 문서 서울진공작전(2012.지방직 7급) 용병( 用 兵 )의 요체는 고립을 피하고 일치단결하는 데 있다. 각 도의 군사를 통일하여 뚝이 무너질 듯 근기 ( 近 畿 ) 지방으로 밀려들어가면 온 천하를 우리 보물 로 하기는 불가능하더라도 한국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리하게 될 것이다. 신민회 설립 취지문(2011.서울시 9급) 신민회는 무엇을 위하여 일어 남이뇨? 민습( 民 習 )의 완고 부패에 신사상이 시급하며, 민습의 우미( 愚 迷,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움.)에 신교육이 시급하며, 열심 의 냉각에 신제창( 新 提 唱 )이 시급하며, 원기의 모패 ( 耗 敗 줄고 시듦)에 신수양이 시급하며, 도덕의 타락 에 신윤리가 시급하며 실업의 조췌( 凋 悴, 시듦.)에 신 규범이 시급하며, 정치의 부패에 신개혁이 시급이라. 천만 가지 일에 신( 新 )을 기다리지 않는 바 없도다. 무릇 우리 대한인은 내외를 막론하고 통일 연합으로 써 그 진로를 정하고 독립 자유로써 그 목적을 세움 이니, 이것이 신민회의 원하는 바이며 신민회의 품어 생각하는 까닭이니, 간단히 말하면 오직 신정신을 불 러 깨우쳐서 신단체를 조직한 후에 신국( 新 國 )을 건 설할 뿐이다. 주한 일본 공사관 기록(1909) 신민회의 설립목적(2001.국가직 9급) 영국 기자 매켄지(Mckenzie)의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 중에서(1907)(2007.국세청 9급) 내가 제천에 도착한 것은 이른 가을 더운 여름날이었 다. 눈부신 햇빛이 언덕 위에 나부끼는 일장기를 쪼이 고 일본군 보초의 총검을 비추었다. 나는 말에서 내려 와 잿더미 위를 걸었다. 나는 일찍이 이렇게 철저한 동지를 발견하고 단합하여 국민 운동의 역량을 축적 할 것. 교육 기관을 설치하고 청소년의 교육을 진흥할 것. 각종 상공업 기관을 만들어 단체의 재정과 국민의 부력을 증진할 것. 사료집 67
68 신민회의 독립군 운동 기지 건설 운동 1. 독립군 기지는 만주 일대에 설치하되 후일 독립군의 국내 진입에 가장 편리한 지대를 최적지로 결정한다. 2. 최적지가 선정되면 자금을 모아 일정 면적의 토지 를 구입한다. 3. 토지가 매입되면 국내의 애국적 인사들과 청년들 을 중심으로 계획적으로 집단 이주하여 신한민촌을 건설하고, 토지를 개간하여 경제적 자립을 실현한다. 4. 한민촌에는 강력한 민단을 조직하고, 특히 무관 학 교를 설립하여 사관을 양성한다. 5. 무관 학교를 중심으로 강력한 독립군을 양성한다. 6. 강력한 독립군이 양성되면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 하여 독립 전쟁을 일으켜서 국내에 진입하고, 국내 각 계각층의 국민과 내외 호응하여 실력으로 일본 제국 주의를 물리치고 국권을 회복한다. 주요한, <안도산 전서> 우리는 바른대로만 신문을 할 터인 고로, 정부 관원이 라도 잘못하는 이 있으면 우리가 말할 터이요, 탐관오 리들을 알면 세상에 그 사람의 행적을 펴일 터이요, 사사로운 백성이라도 무법한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 신문에 설명할 터임... 또 한쪽에 영문으로 기록하기는 외국 인민이 조선 사 정을 자세히 모른즉, 혹 편벽된 말만 듣고 조선을 잘 못 생각할까 보아 실상 사정을 알게 하고자 하여 영 문으로 조금 기록함... 화폐 정리 사업(1905)(2013.국가직 9급) 제1조 구 백동화 교환에 관한 사무는 금고로 처리케 하여 탁지부 대신이 이를 감독함 제3조 구 백동화의 품위( 品 位 ), 양목( 量 目 ), 인상( 印 象 ), 형체( 形 體 )가 정화( 正 貨 )에 준할 수 있는 것은 매 1개에 대하여 금 2전 5푼의 가격으로 새 화폐로 교환 함이 가함 서전서숙 교가 불함산(백두산)이 높이 있고 서전서숙 창립하니 인일기백( 人 一 己 百 ) 공부하니 두만강이 둘렀는데 총준재자( 聰 俊 才 子 ) 운집이라 구국안민 하여 보세. 황성신문 만약 진심으로 국권을 만회코자 한다면, 눈앞의 치욕 을 참고 국가의 원대한 계획을 도모하여 일체의 병기 를 버리고 각자 향리로 돌아가, 각기 산업에 종사하여 자산을 저축하고 자제를 교육하여 실력을 양성하면 다른 날에 독립을 회복할 기회를 기대할 수 있을 것 이다. 독립신문 창간사(2011.경찰 1차) 우리는 첫째, 편벽되지 아니한 고로 무슨 당에도 상관 이 없고, 상하귀천을 달리 대접하지 아니하고, 모두 조선 사람으로만 알고, 조선만을 위하여 공평히 인민 에게 말할 터인데, 우리가 서울 백성만 위한 것이 아 니라 조선 인민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대언하여 주 려 함. 상인들의 의식 변화 서울 시전 상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상업을 하는데 올바른 대신들의 공정한 법률 밑에서 장사를 해야 생 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근일 정부 대신들 밑에서는 상 업도 못 하겠다 하고 그저께부터 각기 폐시하고 독립 협회와 총상회의 목적에 따라 비록 군밤 장사까지라 도 모두 일심이 되어 회중 소청에 가서 합동하였다는 데, 경무관 안환씨가 순검들을 많이 데리고 각 상인을 압제하여 억지로 가게 문을 열라고 한즉, 상인 제씨가 서로 말하기를 우리도 충군 애국하는 마음으로 소청 에 가서 합동하겠는지라, 지금은 전과 달라 관인의 무 례한 압제를 아니 받겠노라. 경무청에서 우리에게 자 본금을 주어 장사시키기에 가게 문을 열어라 어찌하 라 무슨 참견이뇨, 우리도 자유 권리로 하는 일이니 다시는 이따위 수작을 말라하니, 안 경무관도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알더라고 하더라. 독립신문, 황무지 개간권 반대 상소 우리나라는 삼림 천택( 川 澤 ) 원야( 原 野 ) 황무지가 10 분의 8 9이며, 나라와 백성의 소유로서 장부에 등록된 68 사료집
69 토지는 10분의 1 2밖에 되지 않는데, 10분의 8 9를 남에게 넘겨주면 백성들의 생활 밑천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일본인의 재산과 부의 원천으로 되어 버릴 것이며 황성신문 국채 보상 운동 취지서(2014.경찰간부) 국채 1,300만 원은 우리 대한 제국의 존망에 직결된 것이다. 이것을 갚으면 나라가 보존되고 이것을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할 것은 대세가 반드시 그렇게 이르 는 것이다. 현재 국고에서는 이 국채를 갚아 버리기 어려운, 즉 장차 삼천리 강토는 우리나라와 백성의 것 이 아닌 것으로 될 위험이 있다. 토지를 한번 잃어버 리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대한매일신보, 동도 서기론 외국의 교( 敎 )는, 즉 사( 邪 )로써 마땅히 멀리해야 하 지만, 그 기( 器 )는, 즉 리( 利 )로서 가히 이용후생의 바 탕이 될 것인즉, 농 상 의학 군대 등은 어찌 이를 꺼려 멀리하겠습니까? 곽기락 <상소문> 경부 철도가(1908):최남선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 소리에/ 남대문을 등지고 떠나 가서 빨리 부는 바람의 형세 같으니/ 날개 가진 새라 도 못 따르겠네. 관왕봉과 연화봉을 둘러보는 중 / 어느덧 용산역에 다다랐도다. 교육 입국 조서( 敎 育 立 國 詔 書, ) 세계의 형세를 보면, 부강하고 독립하여 잘사는 모든 나라는 다 국민의 지식이 밝기 때문이다. 이 지식을 밝히는 것은 교육으로 된 것이니, 교육은 실로 국가를 보존하는 근간이 된다. 교육은 그 길이 있는 것이니, 헛된 것과 실용적인 것을 먼저 구별하여야 한다. 이제 짐은 정부에 명령하여 널리 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길 러 새로운 국민의 학식으로써 국가 중흥의 큰 공을 세 우고자 하니, 국민들은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덕과 건강과 지식을 기를지어다. 왕실의 안전이 국민들의 교육에 있고, 국가의 부강도 국민들의 교육에 있도다. (2013.경찰간부) 세계의 형세를 두루 살펴보건대 부 강하고 독립하며 응시( 凝 視 )하는 모든 나라는 모두 다 그 인민의 지식이 개명하였도다. 이 지식의 개명은 곧 교육의 선미( 善 美 )로 이룩된 것이니, 교육은 실로 국가를 보존하는 근본이라 하리로다. 그러므로 짐은 군사( 君 師 )의 자리에 있어 교육의 책임을 지노라. 또 교육은 그 길이 있는 것이니 헛된 이름과 실제 소용 을 먼저 분별하여야 하리로다. 근대 학교의 설립 목적 지금 세상이 바뀌었다. 백 가지 제도가 다 새로워지지 만 인재 교육이 제일 급한 일이다. 본 아문은 소학교 와 사범 학교를 세워 먼저 서울에서 실시하려고 한다. 위로는 공경대부의 아들에서 아래로는 평민 자제에 이르기까지 다 이 학교에 들어와 여러 가지 글을 배 우며 대학교, 전문 학교도 세우려 한다. 학무아문 고시, 지금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데 우리가 그저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이 아름다운 강산, 선인들이 지켜온 강토 를 원수인 일본인들에게 내맡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총을 드는 사람, 칼을 드는 사람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백성들이 깨어 나는 일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를 모르 고 있으니 그들을 깨우치는 것이 제일 급한 일이다. 우리는 우리를 누르는 자를 나무라기만 해서는 안 된 다. 내가 못생겼으니 남의 업신여김을 받는 것이 아니 냐. 내가 오늘 이 학교를 세우는 것도 후손을 가 르쳐 만 분의 일이라도 나라에 도움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승훈, 오산 학교 개교식 식사, 1907 황현의 절명시(2007.법원직 9급) 亂 離 袞 到 白 頭 年 (난리곤도백두년) 난리를 겪다 보니 백두년( 白 頭 年 )이 되었구나. 幾 合 捐 生 却 末 然 (기합연생각말연) 몇 번이고 목숨을 끊으려다 이루지 못했도다. 사료집 69
70 今 日 眞 成 無 可 奈 (금일진성무가내) 오늘날 참으로 어찌할 수 없고 보니 輝 輝 風 燭 照 蒼 天 (휘휘풍촉조창천) 가물거리는 촛불이 창천( 蒼 天 )에 비치도다. 妖 氣 掩 翳 帝 星 移 (요기엄예제성이) 요망한 기운이 가려서 제성( 帝 星 )이 옮겨지니 九 闕 沈 沈 晝 漏 遲 (구궐침침주루지) 구궐( 九 闕 )은 침침하여 주루( 晝 漏 ) 더디도다. 詔 勅 從 今 無 復 有 (조칙종금무복유) 이제부터 조칙을 받을 길이 없으니 琳 琅 一 紙 淚 千 絲 (임랑일지루천사) 구슬 눈물은 주룩주룩 실타래처럼 쏟아지네. 해설 경술국치가 체결되자 지식인, 선비로서의 절개를 지켜 자결하면서 지은 시이다. 윤곡은 송나라 때 몽골의 침입을 받자 가족과 함께 자결 한 선비, 진동은 송나라 때 국가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 간 언하다 죽은 관리이다. 신채호의 <독사신론( 讀 史 新 論 )>(2007.국가직 7급) 국가의 역사는 민족의 소장 성쇠의 상태를 서술할지 라. 민족을 빼면 역사가 없을지며, 역사를 빼버리면 민족의 그 국가에 대한 관념이 크지 않을지니, 오호라 역사가의 책임이 그 역시 무거울진저, 내가 요즘 각 학교의 교과용 역사를 보건대 가치있는 역사가 거 의 없도다. 제1장을 보면 우리 민족이 중국 민족의 일 부인 듯하며, 제2장을 보면 우리 민족이 선비족의 일 부인 듯하며, 마침내 전편을 다 읽으면 어떤 때는 말 갈족의 일부인 듯하다가 어떤 때는 몽고족의 일부인 듯하며, 어떤 때는 여진족의 일부인 듯하다가 어떤 때 는 일본족의 일부인 듯하니, 오호라 과연 이와 같을진 대 우리 몇만 평방 리의 토지가 모두 남만북적의 수 라장이며, 우리 4천 년 산업이 모두 열국의 경매물이 라 할지니 과연 그러한가. 어찌 그러하리요. 신채호의 역사와 애국심의 관계 오호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의 귀에 항상 애국이 란 한 글자가 울리게 할까. 가로되 오직 역사로써 할 지니라. 오호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에 눈에 항 상 나라라는 한 글자가 배회하게 할까. 가로되 오직 역사로써 할지니라. 오호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의 손이 항상 나라를 위하여 움켜잡게 할까, 가로되 오직 역사로써 할지니 라. 오호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의 발이 항상 나라 를 위하여 용약하게 할까. 가로되 오직 역사로써 할지 니라. 오호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의 뇌가 나라를 위하여 심사하게 할까. 가로되 오직 역사로써 할지니 라. 오호라,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의 피눈물이 나라 를 위하여 끓게 할까. 가로되 오직 역사로써 할지니라. 역사가 어떠한 것이기에 그 효과의 신성함이 이와 같 은가. 가로되 역사라는 것은 그 나라 그 국민의 변천 소장( 消 長 )한 실제의 자취이니, 역사가 있으면 그 나 라가 필흥( 必 興 )하나니라. 나라가 허다하매 역사도 허 다하나 외국사를 읽음은 타를 알고 자기를 알며 경쟁 에 도움을 주는 것뿐이니, 애국심을 방조함은 능히 가 하나 애국심을 주동함은 불가능할지라. 그러므로 여 기서 말한 역사는 본국사만 가리킴인 것이다. 오호라, 내가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지며, 사람들 로 하여금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지어다. <대한 협회 회보> 제2호, 박은식 고구려 영락대왕 묘비 등본 을 읽고 무릇 역사는 국가의 정신이요, 영웅은 국가의 원기( 元 氣 )라. 살펴보건대 지구상의 야만적이지 않은 국가의 국민들은 모두 그 역사를 존중하고 숭배하는데 그 국 민의 문명 수준이 높을수록 역사를 더욱 존중하고 영 웅을 숭배하나니, 그 역사를 존중함과 영웅을 숭배함 이 곧 그 국가를 사랑하는 사상이라. 현채의 <유년필독> 우리가 이 나라에 났으니 이 나라는 자기 나라요, 우 리가 이 몸이 있으니 이 몸은 곧 자기 몸이라. 그러한 즉 자기 나라라 함은 타국이 있기 때문이요, 자기 몸 이라 함은 타인이 있기 때문이며, 자기의 자유로운 권 리는 사람마다 응당하게 가진 바이고, 타인이 감히 빼 앗지 못할 바이다. 우리나라도 또한 그러한지라. 타국 의 간섭을 물리쳐 독립을 지킨 후에야 자기 나 라라고 할 수 있다. 70 사료집
71 유길준의 <서유 견문록( 西 遊 見 聞 錄 )> 개화란, 사람의 천만 가지 사물이 지극히 선하고 아름 다운 이상적인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오륜 으로 규정된 행실을 독실히 지켜서 사람으로서의 도 리를 알면 이는 행실의 개화이며, 학문을 연구하며 만 물의 이치를 밝히면 이는 학문의 개화이며, 국가의 정 치를 정대하게 하여 국민들의 태평스러운 즐거움을 누린다면 이는 정치의 개화이며, 법률을 공평하게 하 여 국민들이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면 이는 법률의 개화이며, 기계의 규모를 편리하게 하여 많은 사람들 에게 이용토록 하면 이는 기계의 개화이며, 물품의 제 작을 정교롭게 하여 사람들의 후생을 이바지하고 거 칠고 조잡한 일이 없도록 한다면 이는 물품의 개화인 것이다. 못한 물건들이라. 또 나라로 말할지라도 대포와 총의 힘을 빌려서 남의 나라를 위협하여 속국도 만들고 보 호국도 만드니, 불한당이 칼이나 육혈포를 가지고 남 의 집에 들어가서 재물을 탈취하고 부녀를 겁탈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오? 2. 이인직의 <혈의 누>(1906) 옥련이 조선 부인을 교육할 마음이 간절하여 구씨(구 완서)와 함께 혼인 언약을 맺으니, 구씨의 목적은 공 부를 힘써 하여 귀국한 후에 우리나라를 독일국과 같 이 연방도를 삼되, 일본과 만주를 한데 합하여 문명한 강국을 만들고자 하는 비사맥(비스마르크) 같은 마음 이요, 구완서와 옥련이가 나이 어려서 외국에 간 사람들이라, 조선 사람들이 이렇게 야만되고 용렬한 줄은 모르고,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제 나라 형편을 모르고 외국에 유학한 소년 학 생의 의기에서 나오는 마음이라. 주시경의 국어와 국문론 전국 인민의 사상을 돌리며 지식을 다 넓혀 주려면 불가불 국문으로 각색 학문을 저술하며 번역하여 남 녀를 불문하고 다 쉽게 알도록 가르쳐 주어야 될지라.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들은 한문을 구경 도 못하였지만 저렇듯 부강함을 보시오. 우리 동방도 사천여 년 전부터 개국한 이천만 중 사회에 날로 때 로 통용하는 말을 입으로만 서로 전하던 것도 큰 흠 절이어늘, 국문 난 후 기백 년에 사전 한 권도 만들지 않고 한문만 숭상한 것이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리오. 지금 이후부터는 우리 국어와 국문을 업수이 여기지 말고 힘써 그 문법과 이치를 탐구하며, 사전과 문법과 독본들을 잘 만들어 더 좋고 더 편리한 말과 글이 되 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온 나라 사람이 다 국어와 국민을 우리나라 근본의 주장 글로 숭상하고 사랑하 여 쓰기를 바라노라. <서우> 제2호, 해에게서 소년에게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 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꽉.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 것 두려움 없이, 육상( 陸 上 )에서, 아무런 힘과 권( 權 )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꽉. <소년> 창간호, 창가 권학가( 勸 學 歌 ) 신소설에 나타난 외세에 대한 상반된 인식 1. 안국선의 <금수 회의록>(1908) 지금 세상 사람들은 외국의 세력을 빌어 의뢰하여 몸 을 보전하여 벼슬을 얻으려 하며, 타국 사람을 부동하 여 제 나라를 망하게 하고 제 동포를 압박하니, 그것 이 우리 여우보다 나은 일이오? 결단코 우리 여우만 학도( 學 徒 )야 학도야 청년 학도( 靑 年 學 徒 )야, 벽상( 壁 上 )의 괘종( 掛 鐘 )을 들어 보시오. 한 소리 두 소리 가고 못 오니, 인생( 人 生 )의 백 년( 百 年 ) 가기 주마( 走 馬 ) 같도다. 지은이 미상 사료집 71
72 최남선의 경부철도가(2010.경북 교행)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 소리에 남대문을 등지고 경성역 떠나 나가서 빨리 부는 바람 같은 형세니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 늙은이와 젊은이 섞여 앉았고 우리네와 외국인 같이 탔으나 내외 친소( 親 疎 ) 다같이 익히 지내니 조그마한 딴 세상 절로 이루었네. 박은식의 유교 구신론(2013.서울시9급) 무릇 동양의 수천 년 교화계( 敎 化 界 )에서 바르고 순 수하며 광대 정미하여 많은 성인이 뒤를 이어 전하고 많은 현인이 강명( 講 明 )하는 유교가 끝내 인도의 불 교와 서양의 기독교와 같이 세계에 대 발전을 하지 못함은 어째서이며, 근세에 이르러 침체 부진이 극도 에 달하여 거의 회복할 가망이 없는 것은 무슨 까닭 이뇨. 그 원인을 탐구 하여 말류( 末 流 )를 추측하 니 유교계에 3대 문제가 있는지라. 그 3대 문제에 대 하여 개량( 改 良 ) 구신( 求 新 )을 하지 않으면 우리 유교 는 흥왕할 수가 없을 것이며 여기에 감히 외람 됨을 무릅쓰고 3대 문제를 들어서 개량 구신의 의견 을 바치노라. 1) 유교파의 정신이 전적으로 제왕 측에 존재하고 인 민 사회에 보급할 정신이 부족함이요. 2)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세계의 주의를 바꾸려고 생각을 강론하지 아니하고 또한 내가 동몽(학생)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동몽이 나를 찾는 주의를 지킴이요. 3) 우리 유가에서 쉽고 정확한 학문(양명학)을 구하지 아니하고 질질 끌고 되어 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공 부(성리학)를 전적으로 숭상함이라. 서북학회 월보 제1권 조선 불교 유신론( 朝 鮮 佛 敎 維 新 論 ) 불교의 유신은 마땅히 먼저 파괴를 하여야 한다. 유신 이란 무엇인가? 파괴의 자손이다. 파괴란 무엇인가? 유신의 어머니다. 어머니 없는 자식이 없다는 것은 대 개 말로써는 할 줄 알지만, 파괴 없는 유신이 없다는 점에 이르러서는 아는 사람이 없다. 어찌 비례의 학문 에 있어서 추리해 이해함이 이리도 멀지 못한 것일까? 그러나 파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무너뜨려 없애 버리 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구습 중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을 고쳐서 이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 게 한다는 것뿐이다. 한용운, <조선 불교 유신론> 승려 교육을 논하다. 승려 교육에 있어서 급선무가 셋이 있다. 첫째, 보통학이다. 보통학이란 사람의 의복 음식에 비길 만하다. 양의 동서와 인종의 황백을 따질 것도 없이, 사람이라면 다 의복을 입고 음식을 먹어서 살아 갈 줄 아는 터이니, 의복을 안 입고 음식을 안먹는 자 가 있다고 하면, 이는 며칠이 못 가서 그가 이 세상과 하직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둘째, 사범학이다. 승려 가운데 15세에서 40세 까지 조금이라도 재덕이 있는 자를 가려 배우게 하고 그 과정에 있어서는 보통학 사범학 불교학을 화합 가감해서 적절을 기한다면 가르친 지 4, 5년 안에 소 학교의 교사가 모자라지 않을 뿐 아니라, 불교학계의 상황이 다시 사람으로 하여금 한 번 보기만 해도 구 역질할 생각은 안 느끼게 할 것이다. 이렇게 혁신하여 향상하고 후퇴함이 없다면 장래에 있어서 불교가 세 계에 큰 광명을 발하게 됨이 오직 이 일에서 생겨날 것이다. 셋째, 외국 유학이다. 인도에 가 배워서 부처님과 조 사들의 참다운 발자취를 찾게 하며, 널리 경론으로 우 리나라에 전해지지 않은 것을 구하여 그 중요한 것을 골라 번역해 세계에 펴게 할 필요가 있다. 한용운, <조선 불교 유신론> 대종교 대종교는 그 전 이름을 단군교라 칭하고 명치 42년 (1909) 음력 정월 15일 조선 경성부에서 나철이 자고 로 조선 민족 간의 신앙에 있어 조선 민족의 시조이 며 국조라고 전승하여 온 단군을 숭봉하며, 이에 귀일 함으로써, 조선 민족정신의 순화( 醇 化 ) 통일과 조선 민족의식의 양양을 도모함과 동시에, 조선 민족 결합 의 강화에 의하여 독립 국가로서 조선의 존속을 목표 로 하고, 다수 동지와 함께 결성하여 스스로 제1세 교 72 사료집
73 주라고 한 단체로서, 그 교리라는 것은 유일무이의 천 신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대종교 총본부 편, 임오십현 순교 실록, 1971 셋째, 대한 제국 정부는 외국과의 조약 체결과 기타 중요한 외교 안건, 즉 외국인에 관한 특권 양여와 계 약의 처리에 관해서는 미리 대일본 제국 정부와 협의 하도록 한다. 15장 민족의 독립운동 포츠머스 강화 조약( ) 1.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정치 군사 경제상의 특별 권 리를 승인한다. 2. 러시아는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카라후도: 樺 太 島 )을 일본에 할양한다. 3. 요동 반도의 조차권과 장춘 여순 간의 철도를 일 본에 양도한다. 4. 양국 군대는 만주에서 동시에 철수하고, 동등한 권 리로 상호 이권을 존중한다. 한 일 의정서 제4조 제3국의 침략이나 내란으로 인하여 대한 제국 황실의 안녕과 영토의 보전에 위험이 있을 경우에는 대일본 제국 정부는 속히 형편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 목적을 위하여 대한 제국 정부는 대 일본 제국 정부의 행동을 위해 충분한 편의를 제공하 고, 대일본 제국 정부는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 여 군사 전략상 필요한 요충지를 자유롭게 수용할 수 있다. 제5조 대한 제국 정부는 대일본 제국의 승인 없이는 제3국과 이 의정서에 반하는 조약을 맺을 수 없다. 을사늑약(을사조약, 제2차 한 일 협약) 제1조 일본국 정부는 재동경 외무성을 경유하여 금후 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감리( 監 理 ), 지휘 하며, 일본국의 외교 대표자 및 영사는 외국에 재류하 는 한국의 신민( 臣 民 ) 및 이익을 보호한다. 제2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타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수할 임무가 있으며, 한국 정부는 금 후 일본국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는 국제적 성질 을 가진 어떤 조약이나 약속도 하지 않기로 상약한다. 제3조 일본국 정부는 그 대표자로 하여금 한국 황제 폐하의 궐하에 1명의 통감( 統 監 )을 두게 하며, 통감은 오로지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기 위하여 경성(서 울)에 주재하고 한국 황제 폐하를 친히 내알( 內 謁 )할 권리를 가진다. 이위종의 한국을 위한 호소 (1907년 7월 8일 헤이그 만국 기자 협회에서 행한 연설) 한국민과 정부는 한국 독립의 유지와 영토 보전을 위한다는 일본의 약속을 믿고 러시아와 싸우는 데 있 어서 일본을 도왔다. 그러나 전후 일본은 태도가 바뀌 어 한국 영토를 강점하고 미개간지를 보상도 없이 약 탈해 갔고, 대신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체결한 바 있 다. 이에 반항하는 한국인을 총칼로 진압시켰다. 미국 The Independent지, 한 일 외국인 고문 용빙에 관한 협정서(한 일 협정 서, 제1차 한 일 협약) 첫째, 대한 제국 정부는 대일본 제국 정부가 추천하는 일본인 1명을 재정 고문으로 삼아 재무에 관한 사항 은 모두 그의 의견에 따른다. 둘째, 대한 제국 정부는 대일본 제국 정부가 추천하는 외국인 1명을 외교 고문으로 하여 외부( 外 部 )에 용빙 ( 傭 聘 )하여 외교에 관한 주요 업무를 일체 그 의견에 따른다. 제3차 한 일 협약( , 한 일 신협약) 제1조 한국 정부는 시정 개선에 관하여 통감의 지도 를 받을 것. 제2조 한국 정부의 법령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 분은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칠 것. 제3조 한국의 사법 사무는 보통 행정 사무와 이를 구 분할 것. 제4조 한국 고등 관리의 임면은 통감의 동의로써 이 를 행할 것. 제5조 한국 정부는 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을 한국 사료집 73
74 관리에 용빙할 것. 제6조 한국 정부는 통감의 동의 없이 외국인을 한국 관리에 임명하지 말 것. 기유각서( , 한국 사법 및 통감 사무 위탁 에 관한 각서) 첫째, 한국의 사법과 감옥 사무가 완비되었다고 인정 될 때까지 일본 정부에 위탁한다. 둘째, 일본 제국 정부는 일정한 자격이 있는 일본인 한 국인을 재한국 일본 재판소 및 감옥 관리로 임용한다. 셋째, 재한국 일본 재판소는 협약 또는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것을 제하고 한국인에 대해 한국법을 적 용한다. 넷째, 한국 지방 관청 및 공사는 각각 그 직무에 따라 사법 감옥 사무에 있어서는 재한국 일본 당해 관청의 지휘, 명령을 받고 또는 이를 보조한다. 다섯째, 일본 정부는 한국 사법 및 감옥에 관한 일체 경비를 부담한다. 한 일 병합 조약( , 경술국치, 국권 피탈) 제1조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 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준다. 제2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앞 조항에 기재된 넘겨준 다고 지적한 것을 수락하는 동시에 완전히 한국을 일 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락한다. 제3조 일본국 황제 폐하는 한국 황제 폐하, 태황제 폐 하, 황태자 전하와 그들의 황후, 황비 및 후손들로 하 여금 각각 그 지위에 따라서 적당한 존칭, 위신과 명 예를 받도록 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연금을 줄 것을 약속한다. 일진회의 한 일 합방 건의문(1909) 러 일 전쟁 당시 일제는 자신의 손해를 돌보지 않고 우리가 러시아 인의 입 안에 한 덩어리 고기가 되는 것을 면하게 해 주고 동양 모든 평화를 유지하거늘, 우리가 이 선린주의를 따르지 못하였으니 외교권을 다른 나라에 양여하고 보호 조약을 성립시키는 데 이 른 것도 우리 한국인이 스스로 취한 바요. 조선 태형령( 朝 鮮 笞 刑 令, ) 제1조 3월 이하의 징역 또는 구류에 처하여야 할 자, 100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할 자 중 다음 각 호에 해당할 때는 그 정상에 따라 태형에 처할 수 있 다. 제6조 태형은 태( 笞 )로서 볼기를 치는 방법으로 집행 한다. 제11조 태형은 감옥 또는 즉결 관서에서 비밀리에 집 행한다. 제13조 본령은 조선인에 한해 적용한다. 경찰범 처벌 규칙(1912)(2011.법원직) 제1조 다음의 각호에 해당하는 자는 구류 또는 과료 에 처한다. 2. 일정한 주거 또는 생업 없이 이곳저곳 배회하는 자 8. 단체 가입을 강요하는 자 14. 신청하지 않은 신문, 잡지, 기타의 출판물을 배부 하고 그 대금을 요구하거나 억지로 그 구독 신청을 요구하는 자 20. 불온한 연설을 하거나 또는 불온 문서, 도서, 시가 ( 詩 歌 )를 게시, 반포, 낭독하거나 큰 소리로 읊는 자 21. 남을 유혹하는 유언비어 또는 허위 보도를 하는 자 <조선 총독부 관보> 사이토 총독의 조선 민족 운동에 대한 대책 1. 조선인 관리를 재조사해서 일본에 절대 충성을 다 하는 자로 만듦으로써 관리를 강화한다. 2. 신명을 바칠 핵심적 친일 인물을 골라 귀족 양반 부호 실업가 종교가 등에 침투시켜 친일 단체를 만 들게 한다. 3. 각종 종교 단체도 중앙 집권화해서 그 최고 지도자 에 친일파를 앉히고 일본인 고문들을 두어 어용화시 킨다. 4. 양반 유생 가운데 직업이 없는 자에게 생활 방도 를 주는 대가로 이들을 선전과 민정 염탐에 이용한다. 5. 조선인 부호에게는 노동 쟁의 소작 쟁의를 통해서 노동자 농민의 대립을 인식시키고 일본 자본을 도입 해 연계를 맺게 하며 매판화시켜 일본 측으로 끌어들 인다. 74 사료집
75 6. 농민을 통제 조종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유지가 이끄는 친일 단체를 만들고, 그들에게 국유림을 불하 해 주는 한편, 입회권을 주어 회유 이용한다. 치안 유지법(1925) 제1조 국체를 변혁 또는 사유 재산 제도를 부인할 목 적으로 결사를 조직하거나, 또한 그 내용을 알고 이에 가입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 전항의 미수자도 이를 처벌한다. 제5조 제1조 제1항, 제3조의 죄를 범하게 할 것을 목 적으로 금품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공여하거나 또는 신입( 申 ) 혹은 약속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함, 그 점을 알고 공여를 받거나 또는 그 요 구 혹은 약속을 한 자도 또한 동일하게 처벌한다. 황국 신민 서사문 <아동용> 1. 우리는 대일본 제국의 신민( 臣 民 )입니다. 2.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께 충성을 다합 니다. 3. 우리들은 인고단련( 忍 苦 鍛 鍊 ) 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성인용> 1. 우리는 황국 신민이다. 충성으로써 군국( 君 國 )에 보답하련다. 2. 우리 황국 신민은 신애협력( 信 愛 協 力 )하여 단결을 굳게 하련다. 3. 우리 황국 신민은 인고단련( 忍 苦 鍛 鍊 )의 힘을 길러 황도( 皇 道 )를 선양( 宣 揚 ) 하련다. 친일 문학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쟁에 나감이 소원이러니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으면 나도 사나이였으면 귀한 부르심 입을 것을 노천명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토지 조사령(1912) 제1관 토지의 조사 및 측량은 본령에 의한다. 제4관 토지 소유자는 조선 총독이 정하는 기간 내에 주소 씨명, 명칭 및 소유지의 소재 지목 자번호( 字 番 號 ) 사표( 四 標 ) 등급 지적 결수( 結 數 )를 임시 토 지 조사국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단, 국유지는 보관 관청이 임시 토지 조사국장에게 통지해야 한다. 조선 총독부 관보, 회사령(1910) 제1조 회사의 설립은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한 다. 제2조 조선 외에서 설립한 회사가 조선에 본점이나 또는 지점을 설립하고자 할 때는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5조 회사가 본령이나 혹 본령에 의거하여 발하는 명령과 허가 조건에 위반하거나 또는 공공질서와 선 량한 풍속에 위반하는 행위를 할 때 조선 총독은 사 업의 정지 지점의 폐쇄 또는 회사의 해산을 명한다. 병참 기지화 정책 일본 내지에서는 중공업 부문에 투입할 여공을 모집 하는 것이 아주 어렵고 공업용 토지는 아주 비싼 곳 을 매입해야 한다. 전력 요금도 비싸다. 이와 같은 점 들을 고려할 때, 어떻든 조선 쪽으로 나아가는 것 외 에는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1933년부 터 일제와 만주 간에 새로운 관계가 발생함으로써 만 주 산 원료를 이용하는 공업 및 만주에 공급해야 할 제품 공장도 자연히 일본과 만주 사이에 위치하는 조 선에 설치하는 것이 유리한 점이 많을 것이다. 우가키 <조선의 장래> 국가 총동원령(1938) 제1조 국가 총동원이란 전시(전시에 준할 경우도 포 함)에 국방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의 전력을 가 장 유효하게 발휘하도록 인적 및 물적 자원을 운용하 는 것을 말한다. 사료집 75
76 제4조 정부는 전시에 국가 총동원상 필요할 때에는 칙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국 신민을 징용하여 총동 원 임무에 종사하게 할 수 있다. 제7조 정부는 전시에 국가 총동원상 필요할 때는 칙 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노동 쟁의의 예방 혹은 해결 에 관하여 필요한 명령을 내리거나 작업소의 폐쇄, 작 업 혹은 노무 중지, 기타의 노동 쟁의에 관한 행위의 제한 혹은 금지를 행할 수 있다. 제8조 정부는 전시에 국가 총동원상 필요할 때에는 칙 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물자의 생산 수리 배급 양도 소지 및 이동에 관하여 필요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신고산 타령(중 일 전쟁 이후 인적 물적 자원의 수탈 을 그린 노래)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지원병 보낸 어 머니 가슴만 쥐어 뜯고요, 어라어랑 어허야 양곡 배급 적어서 콩깻묵만 먹고 사 누나.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정신대 보낸 어 머니 딸이 가엾어 울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풀만 씹는 어미 소 배가 고파서 우 누나.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금붙이 쇠붙이 밥그릇마저 모조리 긁어 갔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이름 석 자 잃고서 족보(창씨개명)만 들고 우누나. 대한 광복회의 활동 오인( 吾 人 )은 대한( 大 韓 )의 독립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오인( 吾 人 )의 생명을 희생에 공( 供 바침)함은 물론, 오인( 吾 人 )이 일생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시 에는 자자손손( 子 子 孫 孫 )이 계승하여 수적( 讐 敵 ) 일본 을 완전히 구축( 拘 縮 )하고 국권을 광복하기까지 절대 불변하고 일심육력( 一 心 戮 力 )할 것을 천지신명( 天 地 神 明 )께 서고( 誓 告 )함. 대한 광복회 서약문 대한광복회의 활동(2012.경찰 3차) 대한광복회는 경주에서 대구로 향하던 일제의 수송 차량을 습격하여 거액의 현금을 빼앗은 뒤 이 자금으 로 무기를 구입하였고, 각 지방 부호들의 재산 상태를 조사한 후 그 재산에 비례하여 독립 운동 자금을 납 부하도록 배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한광복회는 독 립 운동에 비협조적이거나 자금 제공을 거부하는 자, 또는 일제에 밀고하는 친일파를 처단하여 광복의 의 지를 온 세상에 밝혔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전 관찰 사 장승원과 도고 면장 박용하 사살 사건이었다. 대한 독립 선언서(무오독립 선언서, 1918) 독립군아 일제히 봉기하라! 독립군은 천지를 휩쓸라! 한번 죽음은 인간의 면할 수 없는 바이니 개돼지와 같은 일생을 누가 구차히 도모하겠는가? 살신성인하 면 2천만 동포는 마음과 몸을 부활하니 어찌 일신을 아끼며, 집을 기울여 나라에 갚으면 3천리 옥토는 자 가의 소유이니 어찌 일가를 아끼랴. 우리 같은 마음, 같은 덕망의 2천만 형제자매여! 국민의 본령을 자각 한 독립임을 기억하고 동양의 평화를 보장하고 인류 의 평등을 실시하기 위한 자립임을 명심하여 황천의 명명을 받들고 일체의 못된 굴레에서 해탈하는 건국 임을 확신하여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완성하자. 대동단결 선언( ) 융희(순종의 연호) 황제가 삼보(토지 인민 정치)를 포 기한 8월 29일은 바로 우리 동지가 삼보를 계승한 8 월 29일이니, 그 간에 한순간도 숨을 멈춘 적이 없음 이라, 우리 동지는 완전한 상속자니 저 황제권이 소멸 한 때가 곧 민권이 발생한 때이요,(공화정으로 대동단결 할 것을 강조) 구한국 최후의 날은 곧 신한국 최초의 날이니 무슨 까닭이오. 우리 한국은 처음부터 한국인 의 한( 韓 )이요, 비( 非 )한국인의 한( 韓 )이 아니라. 한국 인 간의 주권 수수( 授 受 )는 역사상 불문법의 국헌이 요, 비한국인에게 주권을 양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효요, 한국의 국민성이 절대 불허하는 바이라, 따라 서 경술년 융희 황제의 주권 포기는 곧 우리 국민 동 지에 대한 묵시적 선위( 禪 位 )니 우리 동지는 당연히 삼보를 계승하여 통치할 특권이 있고, 대통( 大 統 )을 상속할 의무가 있도다. 76 사료집
77 2 8 독립 선언서( ) 1 본 단은 한 일 합병이 우리 민족의 자유 의사에서 나오지 않고, 우리 민족의 생존 발전을 위협하고 동 양의 평화를 유린하는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독립을 주장함. 2 본 단은 일본 의회 및 정부에 조선 민족 대회를 소 집하여 대회의 결의로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기 회를 주기를 요구함. 3 본 단은 만국 평화 회의에 민족 자결주의를 우리 민족에게 적용하기를 요구함. 4 앞에서 요구한 내용이 실패할 때에는 일본에 대하 여 영원히 혈전을 선언함. 이로써 발생하는 참화는 우 리 민족이 그 책임을 지지 않음. 조선 청년 독립단 대표 공약 3장 금일 오인의 차거 ( 此 擧 )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오,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 逸 走 )하지 말라. 최후의 일 인까지, 최후의 일 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요구를 쾌히 발표하라. 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야, 오인의 주장과 태도로 하여금 어디까지든지 광명 정대하게 하라. 대한민국 임시 정부 헌장 신인 일치( 神 人 一 致 )로 중외 협응( 中 外 協 應 )하여 한성 에서 의( 義 )를 일으킨 이래 30여 일에 평화적 독립을 3백여 주에 광복하고, 국민의 신임으로 완전히 다시 조직한 임시 정부는 항구 완전한 자주 독립의 복리로 아( 我 ) 자손 여민( 子 孫 黎 民 )에 세전( 世 傳 )하기 위하여 임시 의정원의 결의로 임시 헌장을 선포하노라.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로 함. 제2조 대한민국은 임시 정부가 임시 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여 이를 통치함.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 이 없고 일체 평등함. 제4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종교 언론 저작 출판 결 사 집회 통신 주소 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 유함. 제5조 대한민국 인민으로 공민 자격이 있는 자는 선 거권 및 피선거권이 있음. 제6조 대한민국 인민은 교육, 납세 및 병역의 의무가 있음. 제7조 대한민국은 신( 神 )의 의사에 의하여 건국한 정 신을 세계에 발휘하며 나아가 인류의 문화 및 평화에 공헌하기 위하여 국제 연맹에 가입함. 제8조 조 대한민국은 구황실을 우대함. 제9조 생명형, 신체형 및 공창제를 전폐함. 제10조 대한민국은 국토 회복 후 만 1년 안에 국회를 소집함. 대한민국 원년 4월 대한민국 임시 정부 의정원 문서 이승만의 외교독립론(2006.국가직 9급) 일본을 상대로 무장 투쟁을 벌인다는 것은 공연한 힘 의 낭비입니다. 우리는 일본을 압박할 수 있는 강대국 을 상대로 일제의 부당성과 우리의 독립 열망을 전하 여 독립을 얻어야 합니다. 국민 대표 회의 소집 우리들은 오직 과거 수년간의 경험에 의하여 국민의 대단결 이라는 절실한 각오 아래 장래를 준비하고, 운 동상 일대 기운을 수집함에 이르렀음은 앞날을 위해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대단결, 이것은 오늘날 독립 운동 성패의 갈림길이며, 우리 운동의 절 실한 문제는 오직 여기에서 해결할 것이다. 이에 본 주비회( 籌 備 會 )는 시세의 움직임과 민중의 요구에 따라 과거의 모든 착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완 전하고 확실한 방침을 세워서, 우리들의 독립운동이 다시 통일되어 조직적으로 진행하도록 하고자 한다. 이에 국민 대표 회의 소집 사항도 주비하여 책임을 지고 성립시킨 것이다. 국민 대표 회의 준비 위원회 선언서 6 10 만세 운동 때의 격문 조선 민중아! 우리의 철천지원수는 자본 제국주의 일본이다. 이천만 동포야!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 사료집 77
78 만세 만세 조선 독립 만세 조선 민족 대표 김성수 최남선 최린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때의 격문 학생 대중들이여 궐기하라! 검거된 학생은 우리 손으 로 탈환하자. 언론 결사 집회 출판의 자유를 획득하라, 식민지 교 육 제도를 철폐하라. 조선인 본위의 교육 제도를 확립하라! 사회 과학 연구의 자유를 획득하자. 전국 학생 대표자 회의를 개최하라. 용감한 학생, 대중이여! 최후까지 우리의 슬로건을 지지하라. 그리고 궐기하라. 전사여! 힘차게 싸워라. 해설 학생의 날(11. 3):1953년 국회에서는 11월 3일을 만장일치로 학생의 날 로 제정하였다. 1973년에 유신 선포 로 폐지되었다가 1984년에 부활되었다. 신채호의 조선 혁명 선언( ) 1 내정 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가 누구이냐? 3 1 운동 이후 강도 일본이 또 우리의 독 립운동을 완화시키려고 송병준 민원식 등 매국노 한 둘을 시키어 이따위 광론을 부름이니, 2 일본 강도 정치 하에서 문화 운동을 부르짖는 자 가 누구이냐? 문화는 산업과 문물의 발달한 총적( 總 積 )을 가리키는 명사이니, 경제 약탈의 제도하에서 생 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전도 의문이거늘 하물며 문화 발전의 가망이 있으랴? 검열 압수 모든 압박 중에 몇몇 신문 잡지를 가지고 문화 운동 의 목 탁으로 스스로 떠들어 대며, 강도의 비위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 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의 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3 제1은 외교론이니, 이조 5백 년 문약( 文 弱 ) 정치가 외교 로써 나라를 지키는 으뜸 계책으로 삼아 그 말 세에 더욱 심하여, 청원서나 열강의 공관에 던지 며, 탄원서나 일본 정부에 보내어 국가 존망, 민족 사 활의 대( 大 )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의 처분으로 결정하기만 기다렸도다. 4 제2는 준비론이니, 을사조약 당시에 여러 나라 공 관에 빗발 돋듯하던 종이 쪽지로 넘어 가는 국권을 붙잡지 못하며, 정미년의 헤이그 특사도 독립 회복의 복음을 안고 오지 못하매, 이에 차차 외교에 대하여 의문이 되고 전쟁 아니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생겼다. 그러나 군인도 없고, 무기도 없이 무엇으로써 전쟁을 하겠느냐? 경제가 날로 곤란하고 생산 기관이 전부 박탈되어 입 고 먹을 방책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실업 을 발전시키며, 교육을 확장하며, 더구나 어디서 얼마 나 군인을 양성하며 양성한들 일본 전투력의 백분의 일에 비교라도 되게 할 수 있느냐?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는 외교, 준비 등의 미몽 ( 迷 夢 )을 버리고 민중 직접 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 언하노라. 강도 일본을 쫓아 내려면 오직 혁명으로만 할 수 있으며,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쫓아 낼 방법이 없는 바이다. 우리의 민중을 깨우쳐 강도 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신생명을 개척하자 면 양병 10만이 폭탄을 한 번 던진 것만 못하며, 천억 장의 신문 잡지가 한 번의 폭동만 못할지니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 大 本 營 )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 없는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 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서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서 사회를 수 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이봉창의거(김구의 글)(2012.법원직) 아침 일찍 프랑스 공무국에서 비밀리에 통지가 왔다. 과거 10년간 프랑스 관헌이 나를 보호하였으나, 이번 에 나의 부하가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것에 대해서는 일본의 체포 및 인도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이 다. 중국 국민당 기관지 <국민일보>는 한국인이 일 왕을 저격했으나 불행히도 맞지 않았다. 고 썼다. 윤봉길 의사가 어린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2010.경북 교행 9급)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 78 사료집
79 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의 술을 부어 놓 아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마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이랴! 그 사랑 갚으리, 우리의 뜨거운 피로! 기어코 보답하리, 이 목숨 다하도록! 우리는 이 산과 저 산으 로 모든 것을 잊은 채 뛰고 달렸다. 이범석, <우등불> 봉오동 전투 때 홍범도의 작전 명령 장비를 가지고 산에 들어가 잠복하라. 일본군은 마을 과 사방을 수색한 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판단한 후 틀림없이 학교로 들어갈 것이다. 그때 재빨리 사방을 포위하라. 그리고 내가 발포하거든 학교를 향하여 일 제히 사격을 하거라. 그러나 절대로 헛쏘지는 마라. 탄환은 곧 목숨이다. 탄환이 없는 총은 몽둥이에 지나 지 않는다. 꼭 적을 쓰러뜨릴 자신이 있을 때에만 사 격을 해야 한다. 청산리 대첩 승리 후 북로 군정서에서 임시 정부에 보고한 승리 요인 ⑴ 생명을 돌보지 않고 용전분투하는 독립에 대한 군 인 정신이 먼저 적의 심리를 압도한 것. ⑵ 양호한 진지를 미리 점거하고 완전한 준비를 하여 사격 성능을 극도로 발휘한 것. ⑶ 임기응변의 전술과 예민 신속한 활동이 모두 적의 의표에서 벗어나서 뛰어난 것. 청산리 전투 당시 군가 ⑴ 생명을 돌보지 않고 용전분투하는 독립에 대한 군 인 정신이 먼저 적의 심리를 압도한 것. ⑵ 양호한 진지를 미리 점거하고 완전한 준비를 하여 사격 성능을 극도로 발휘한 것. ⑶ 임기응변의 전술과 예민 신속한 활동이 모두 적의 의표에서 벗어나서 뛰어난 것. 북간도 동포들의 헌신적 지원 교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되었다. 굶주림! 그러 나 이를 의식할 시간도 먹을 시간도 없었다. 마을 아 낙네들이 치마폭에 밥을 싸 가지고 빗발치는 총알 사 이로 산에 올라와 한 덩이 두 덩이 동지들 입에 넣어 주었다. 얼마나 성스러운 사랑이며, 고귀한 선물 간도참변(2007.법원직 9급) 용정촌에서 40리 가량 떨어져 있는 한 마을은 왜군이 야간에 습격하여 청년을 모조리 죽였으니 밤마다 죽 는 사람이 2, 3명씩 되었다. 이는 1920년 10월의 일 이다. 당시의 참사를 현지에 있던 미국인 선교사 마틴 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0월 31일, 연기가 자욱하게 낀 찬랍 파위[ 瓚 拉 巴 威 ] 마을에 가보았다. 사흘 전 새벽에 무장한 일개 대대가 이 기독교 마을을 포위하고 남자라면 늙은이, 어린이 를 막론하고 끌어내어 때려 죽이고 조지훈 <한국 민족 운동사> 미쓰야 협정( ) 재류 조선인이 무기를 휴대하고 조선 내 침입을 엄금 하여, 이를 위반하는 자는 조선 관헌(총독부)에 인도 한다. 중국 관헌은 재만 조선인 단체를 해산시키고 무장을 해제하며, 소지 무기와 탄약을 몰수한다. 중국 관헌은 일제가 지명하는 독립운동 지도자를 신 속히 체포하여 일본 경찰에 인도한다. 중국, 일본 관부는 불령단 취체의 실황을 상호 통보한 다. 그 대가로 조선의 일본군은 국경을 넘어 만주 영 역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한 중 연합군의 결성 한국 독립군과 중국 호로군의 합의 내용(1931) 1 한 중 양군은 최악의 상황이 오는 경우에도 장기 간 항전할 것을 맹세한다. 2 중동 철도를 경계선으로 서부 전선은 중국이 맡고, 동부 전선은 한국이 맡는다. 3 전시의 후방 전투 훈련은 한국 장교가 맡고, 한국 군에 필요한 군수품 등은 중국군이 맡는다. 조선 혁명군과 중국 의용군의 합의 내용(1932) 중국과 한국 양국의 군민은 한뜻으로 일제에 대항하 사료집 79
80 여 싸우고 인력과 물자는 서로 나누어 쓰며, 합작의 원칙하에 국적에 관계없이 그 능력에 따라 항일 공작 을 나누어 맡는다. 한국 광복군 사령부, <광복> 사, 집회, 통신, 주소 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항 유한다.(자유권) 제5조 대한민국의 인민으로 공민 자격이 있는 자는 선거권 및 피선거권(보통선거권<국민투표권+공무담임 권>)을 가진다. 조선 민족 혁명당 정강 1 원수 일본의 침략 세력을 박멸하여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을 완성한다. 2 봉건 세력 및 일체의 반혁명 세력을 숙청하여 민 주 집권의 정권을 수립한다. 3 소수인이 다수인을 괴롭히고 해치는 경제 제도를 소멸하여 국민 생활상 평등 제도를 확립한다. 9 토지는 국유로 하고 농민에게 분급한다. 10 대규모의 생산 기관 및 독점적 기업을 국영으로 한다. 11 국민 일체의 경제적 활동은 국가의 계획 아래 통 제한다. 12 노동 운동의 자유를 보장한다. 13 친일 세력의 일체 재산과 국내에 있는 적 일본의 공 사유 재산을 몰수한다. 14 자유 평등 상호부조의 원칙에 기초하여 전 세계 피압박 민족 해방 운동과 연락 협조한다. 조소앙의 삼균주의 보통 선거 제도를 실시하여 정권을 균( 均 )히 하고, 국 유 제도를 채용하여 이권을 균히 하고, 공비( 公 費 ) 교 육으로써 학권( 學 權 )을 균히 하며, 국내외에 대하여 민족 자결의 권리를 보장하여서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불평등을 혁파하여 제거할 것이니, 이로써 국 내에 실현하면 특권 계급이 소멸하고 소수 민족의 침 몰을 모면하고, 정치와 경제와 교육의 권리를 고르게 하여 높낮이를 없이 하고 동족( 同 族 )과 이족( 異 族 )에 대하여 또한 이렇게 한다. 대한민국 임시 헌장( )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로 한다.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 이 없고 일체 평등(평등권)하다. 제4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종교, 언론, 저작, 출판, 결 대한민국 임시 정부 건국 강령( ) 1 삼균 제도를 골자로 한 헌법을 실행하여 정치와 경제와 교육의 민주적 실시로 실제상 균형을 도모하 며, 전국의 토지와 대생산 기관의 국유화가 완성되고 전국 학령 아동의 전수가 고급 교육의 무상 교육이 완성되고 보통 선거 제도가 구속 없이 완전히 실시되 어 극빈 계급의 물질과 정신상 생활 정도와 문 화 수준이 최고 보장되는 과정을 건국의 제2기라 함. 2 보통 선거에는 만 18세 이상 남녀로 선거권을 행 사하되 신앙 교육 거주 기간 사회 출신 재정 상황 과 과거 행동을 분별치 아니하며, 선거권을 가진 만 23세 이상 남녀 피선거권이 있되, 각 개인의 평등과 비밀과 직접으로 함. 3 대산업 기관의 공구와 수단을 국유로 하고, 토지 광산 어업 농림 수리 소택과 수상 육상 공중의 운수 사업과 은행 전신 교통 등과 대규모의 농 공 상 기업과 성시 공업 구역의 건물과 공용적 주요 산 업은 국유로 하고, 소규모 및 중등 기업은 민간 소유 로 함. 4 6세로부터 12세까지의 초등 기본 교육과 12세 이 상의 고등 기본 교육에 관한 일체 비용은 국가가 부 담하고 의무로 시행함.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대일 선전 포고문( ) 우리는 3천만 한국 인민과 정부를 대표하여 삼가 중 영 미 소 캐나다 기타 제국의 대일 선전이 일본을 격패케 하고 동아를 재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됨 을 축하하며, 이에 특히 다음과 같이 성명한다. 1 한국 전 인민은 현재 이미 반침략 전선에 참가하 였으니, 한 개의 전투 단위로서 추축국( 樞 軸 國,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선전한다 년 합병 조약과 일체의 불평등 조약의 무효를 거듭 선포하며, 아울러 반침략 국가인 한국에 있어서 의 합리적 기득 권익을 존중한다. 80 사료집
81 3 한국 중국 및 서태평양으로부터 왜구를 완전히 구 축하기 위하여 최후 승리를 거둘 때까지 혈전한다. 4 일본 세력 하에 조성된 창춘 및 난징 정권을 절대 로 승인하지 않는다. 5 루스벨트 처칠 선언의 각 조를 견결히 주장하며, 한국 독립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것을 적용하여 민주 진영의 최후 승리를 축원한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 김구, 외무부장 조소앙 회사령 ( ) 제1조 회사의 설립은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12조 제1조의 허가를 받지 않고 회사의 설립 행위 를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5천 원 이하 의 벌금에 처하고 부실 신고를 하여 허가 받은 자도 이와 같다. 한국 광복군 선언( )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대한민국 원년(1919)에 정부가 공포한 군사 조직법에 의거하여 중화민국 영토 내에 광복군을 조직하고 대한 민국 22년(1940) 9월 17일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를 창설함을 선언한다. 한국 광 복군은 중화민국 국민과 합작하여 우리 두 나라의 독 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기 위해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을 계속한다. 우리 민족의 확고한 독립 정신은 불명예스러운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무자비한 압박자에 대한 영웅적 항쟁을 계속하여 왔다. 이때 우리는 큰 희망을 갖고 우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우리의 전 투력을 강화할 시기가 왔다고 확신한다. 우리들 은 한 중 연합 전선에서 우리 스스로의 부단한 투쟁 을 감행하여 동아시아 인민들의 자유와 평등을 쟁취 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김구의 백범일지 중 왜적이 항복한다 하였다. 아! 왜적이 항복! 이것은 내 게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 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수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할 준비를 한 것도 다 허사이다. 시안[ 西 安 ]과 푸양[ 阜 陽 ] 에서 훈련을 받은 우리 청년들에게 여러 가지 비밀 무기를 주어 산둥에서 미국 잠수함에 태워 본국으로 들여 보내어 국내의 중요한 곳을 파괴하거나 점령한 뒤에 미국 비행기로 무기를 운반할 계획까지도 미국 육군성과 다 약속이 되었던 것을 한번 해 보지도 못 하고 왜적이 항복하였으니 조선 물산 장려회의 취지서 우리의 빈약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노라. 이에 대하여는 물론 근대의 정치이며, 제도이며, 습관 이 부패하고 해이하여 농공상을 천시하고 오직 사( 士 ) 만 존중하며, 당쟁을 유일의 정략으로 하고 형식적인 문장을 최선의 교육으로 하였으니 이와 같이 된 것이 다. 그러나 이것들은 다 원인이요 근인( 根 因 )은 아니 라. 이에 우리는 일대 근인이 있음을 간파하였으니, 두터이 자급치 아니함이라 하노라. 환언하면 조선 물 산을 장려치 아니함이니, 그러므로 우리가 이에 대서 특필하고 소리 높여 외치는 바는 자작자급하자 함이 니, 즉 조선 물산을 장려함이오, 또 환언하면 보호 무 역을 의미함이니 이것이 우리 조선인에게 가장 큰 문 제라 하노라. 물산 장려회 궐기문 내 살림 내 것으로. 보아라. 우리의 먹고 입고 쓰는 것이 거의 다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이 것이 제일 세상에 무섭고 위태한 일인 줄을 오늘에야 우리는 깨달았다. 피가 있고 눈물이 있는 형제자매들 아, 우리가 서로 붙잡고 서로 의지하여 살고서 볼 일 이다. 입어라. 조선 사람이 짠 것을, 먹어라. 조선 사 람이 만든 것을, 써라. 조선 사람이 지은 것을. 조선 사람. 조선 것. 사회주의자들의 물산장려운동 비판(2013.법원직) 이 운동의 사상적 도화수가 된 것은 누구인가? 저들 의 사회적 지위로 보나 계급적 의식으로 보나 결국 중산 계급임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적어도 중산 계 급의 이익에 충실한 대변인인 지식 계급 아닌가, 사료집 81
82 실상을 말하면 노동자에게는 말할 필요가 없는 것 이다. 그네는 자본가 중산 계급이 양복이나 비단 옷을 입는 대신 무명과 베옷을 입었고, 처들 자본가가 위스키나 브랜디나 정종을 마시는 대신 소주나 막걸 리를 먹지 않았는가? 이리하여 저들은 민족적, 애국적 하는 감상적 미사( 美 辭 )로써 눈물을 흘리면서 저들과 이해가 전연 상반한 노동 계급의 후원을 갈구 하는 것이다. 이성태, <동아일보> 민립대학설립운동(2014.법원직) 민중의 보편적 지식은 보통 교육으로 능히 수여할 수 있으나 심원한 지식과 심오한 학리는 고등 교육에 기 대하지 아니하면 불가할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거니 와 사회 최고의 비판을 구하며 유능한 인물을 양성하 려면 최고 학부의 존재가 가장 필요하도다. 문자 보급 운동 물산장려운동(2014.법원직) 비록 우리 재화가 남의 재화보다 품질상 또는 가격상 으로 개인 경제상 다소 불이익이 있다 할지라도 민족 경제의 이익에 유의하여 이를 애호하며 장려하여 수 요하며 구매하지 아니치 못할지라. 민립 대학 발기 취지서(2011.법원직) 우리들의 운명을 어떻게 개척할까? 정치냐? 외교냐? 산업이냐? 물론 이러한 사업들이 모두 다 필요하도다. 그러나 기초가 되고 요건이 되며, 가장 급무가 되고 가장 선결의 필요가 있으며, 가장 힘 있고 가장 필요 한 수단은 교육이 아니면 불능하도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 조선인도 세계의 일각에서 문화 민족의 일원으로 다른 나라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우리 들의 생존을 유지하며, 문화의 창조와 향상을 기도하 려면 대학의 설립을 빼고는 다시 다른 길이 없도다. 정치와 외교도 교육을 기다려서 비로소 그 효능을 다 할 것이요. 산업도 교육을 기다려서 비로소 그 작흥 ( 作 興 )을 기할 것이니, 교육은 우리들의 진로를 개척 함에 있어서 유일한 방편이요, 수단임이 명료하다. 그 런데 교육에도 단계와 종류가 있어서 민중의 보편적 지식은 이를 보통 교육으로써 능히 수여할 수 있으나, 심원한 지식과 깊은 학문적 이치는 이를 고등교육에 기하지 아니하면 불가할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거니 와, 사회 최고의 비판을 구하며, 유위유능( 有 爲 有 能 ) 의 인물을 양성하려면 최고 학부의 존재가 가장 필요 하도다. 문맹 앞에서 항상 밑 모를 함정이 횡재했으니 그들이 가는 길에는 위험과 저주가 따라다닐 뿐이다. 그리고 부인의 생활을 보라. 그들이 무지 몽매하기 때문에 그 생활은 일층 저열하고 향상되지 못하지 않는가, 전 인 구의 1천분의 20밖에 문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학령 아동의 3할밖에 취학할 수 없는 현하 조선 상태에서, 간단하고 쉬운 문자의 보급은 민족이 가질 최대의 긴 급사라 하겠다. 조선 일보, 브나로드 운동 선전문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여름 방학에 고향의 동 포를 위하여 공헌하지 아니하시렵니까? 가령 글을 모 르는 이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위생 지식이 없는 이 에게 위생 지식을 주고, 이러한 일을 아니하시렵니까? 당신이 일주일만 노력하면 당신의 고향에 문맹이 없 어질 것이요, 당신이 일주일만 노력하면 당신의 고향 에 위생 사상이 보급될 것입니다. 동아 일보, 월 테제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공장 노동자와 경작을 포기할 수 없는 빈농을 당으로 끌어들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지식인 서클의 조직이라는 옛 방법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특히, 공장과 노동조합에 서 볼셰비키 대중 작업에 착수할 경우에만 이 거대한 과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집중적인 작업들 은 노동자, 농민 조직 내에서 그리고 신구의 민족 혁 명 대중 조직들-신간회, 형평사, 천도교 등-속에서 82 사료집
83 이루어져야 하며, 그중 몇몇은 반종교 단체들이다. 이 들 단체 내의 투사들을 획득하기 위해 분투하면서 공 산주의자는 민족 개량주의자나 여타 기회주의적 지도 자들의 냉담성과 우유 부단성을 폭로해야만 한다. 공 산주의자들은 조직 작업에서 세포의 기계적 조직 등 과 같은 기계적 방법을 피해야 한다. 어질 대중의 조직과 훈련 및 교육에 있는 것이니 대 중 자체의 분투를 거세하고 외교 양해만으로써 마치 려는 형태의 정치적 세력에 대하여는 처음부터 싸우 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일보, 이광수의 저술 1. 민족 개조론(1922) <개벽>에 발표하여 열등 민족은 우세 민족에 지배당 하기 마련이다. 조선 민족은 허황되고, 나태하고, 일 에 즈음하여 용기가 없고, 이기적이어서 단결력이 없 다. 그리하여 일본 민족에 비하여 열등하므로 민족 개 량을 해야 한다. 라고 하였다. 2. 민족적 경륜(1924)(2012.국가직 9급) 그러면 왜 지금에 조선 민족에게는 정치적 생활이 없 나? 그 대답은 가장 단순하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한 이래로 조선인에게는 모든 정치적 활동을 금지한 것 이 첫째 원인이다. 지금까지 해 온 정치 운동은 모 두 일본인을 적대시하는 운동뿐이었다. 이런 종류의 운동은 해외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조선 내에서는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일대 정치적 결사를 조직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신간회 강령과 투쟁목표(2014.국가직 9급 기출) 3대 강령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진함. 우리는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함.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함. 투쟁 목표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 일본인의 조선 이민 반대 산업 정책을 조선인 본위로 우리는 조선 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해방의 실현을 도모한다. 우리는 전 민족의 총역량을 집중하여 민족적 대표기 관이 되기를 기한다. 우리는 일체의 개량주의 운동을 배척하여 전 민족의 현실적인 공동 이익을 위하여 투쟁한다. 정우회 선언(1926) 민족주의적 노력의 집결로 인하여 전개되는 정치적 운동의 방향에 대하여는 그것이 필요한 과정의 형세 인 이상, 우리는 차갑게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다. 아니 그것보다도 먼저 우리 운동 자체가 벌써 종래에 국한되어 있던 경제적 투쟁의 형태에서 보다 더 계급 적 대중적 의식적 정치 형태로 비약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전환기에 달한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적 세 력에 대하여는 그 부르주아적 민족주의적 성질을 명 백하게 인식하는 동시에 또 과정상의 동맹자적 성질 도 충분히 승인하여 그것이 타락하는 형태로 출현되 지 아니하는 것에 한하여 적극적으로 제휴하여 대중 의 개량적 이익을 위하여서도 종래의 소극적 태도를 버리고 분연히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 으로부터 얻을 최대 수확은 개량적 이익의 실용에 있 는 것보다도 오히려 그것을 위하여 분투하는 중에 얻 신간회의 해소론에 대한 견해 차이 해소론자들은 해소는 한 조직체의 해산을 뜻하는 해체 와는 달리 한 운동에서 다른 운동으로 전환하는 변증 법적 자기 발전을 뜻하는 것 이라 하여 해체와 구별하 였다. 그러나 신간회는 사실상 해체되어 해소와 해체 의 구별이 없어졌다. 1. 신간회의 해소 주장 시민(봉급 생활자, 자영업자 등)의 개량주의적 정치 기반으로 변질한 신간회는 무산 계급(농민, 노동자)의 투쟁욕 성장에 장애가 되고 있다. 노동자 투쟁과 농민 투쟁을 강력하게 펼치기 위해서는 신간회를 해소하고 노동자는 노동조합으로, 농민은 농민 조합으로 돌아 가야 한다. <삼천리>, 월호 사료집 83
84 2. 해소파에 대한 충고 조선인의 대중적 운동의 목표는 정면의 일정한 세력 (일본 제국주의)을 향해 집중되어야 할 것이니, 민족 운동과 계급 운동은 동지적 협동으로 함께 나란히 나 아가야 할 것이요, 그 내부에 영도권이 다른 세력이 섞여 있으므로 전체적으로 제 살 깎아먹는 식의 과오 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안재홍, <비판>, ㆍ8월호 최초의 어린이날 선전문:방정환 作 (추측) 1. 어린 사람을 헛말로 속이지 말아 주십시오. 2. 어린 사람을 늘 가까이 하시고 자주 이야기하여 주 십시오. 3. 어린 사람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 십시오. 동아 일보, 조선의 백정은 어떠한 지위와 어떠한 압박을 받아 왔 던가? 과거를 회상하면 종일토록 통곡하여도 혈루를 금할 길이 없다. 1923년 4월 25일, 조선 경남 진주에서 조선 형평사 발기인 일동 조선어 학회 사건에 대한 예심 판결문 치안 유지법 위반 피의 사건에 관하여 예심을 수행하 여 종결. 결정한 것이 다음과 같음. 주문( 主 文 ):피고인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정태진에 대한 본건을 함흥 지방 법원의 공판에 부침. 이유:소화 6년 이래로 피고인 이극로를 중심으로 하 여 문화 운동 중 그 기초가 되는 어문( 語 文 ) 운동의 방법을 취하여 그 이념으로써 지도 이념을 삼아 가지 고, 겉으로는 문화 운동의 가면을 쓰고 조선 독립을 목적한 실력 배양 단체로서 본건이 검거되기까지 10 여 년이나 오랫동안 민족 운동을 전개하여 온 것이다. 근우회 창립 취지문 우리는 운동상 실천에서 배운 것이 있으니, 우리가 실 지로 우리 자체를 위하여 우리 사회를 위하여 분투하 려면, 우선 조선 자매 전체의 역량을 공고히 단결하여 운동을 전반적으로 전개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일어나라! 오너라! 단결하자! 분투하자! 조선 자매들 아! 미래는 우리의 것이다. 근우회 행동 강령 여성에 대한 사회적 법률적인 일체의 차별 철폐 일체의 봉건적인 인습과 미신 타파 조혼 방지와 결혼의 자유 부인 노동에 대한 임금 차별 철폐 및 산전 산후 임금 지불 부인과 소년공에 대한 위험한 노동 및 야업 폐지 형평 대회 취지문(2013.서울시 7급)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은 인류의 본령이다. 그 러한 까닭으로 우리는 계급을 타파하고 모욕적 칭호 를 폐지하고 교육은 장려하며 우리도 참다운 인간이 되는 것을 기하자는 것이 우리의 주지이다. 지금까지 일제의 역사 왜곡 조선인은 다른 식민지의 야만적이고 반 개화적인 민 족과 달라서 문자 문화에 있어서는 문명인에게 떨어 지지 않는다. 따라서 예로부터 전해 오는 역사책도 많 고, 또 새로운 저술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전자는 헛되 이 독립국의 옛 꿈을 떠올리게 하는 폐단이 있다. <한국통사>라고 하는 재외 조선인의 저서는 진상을 깊이 밝히지 않고 함부로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 역 사책이 인심을 어지럽히는 해독은 헤아릴 수 없다. 조선사 편수회의 조선사 편찬 요지 개항 당시 조선에는 자본의 축적도 없었고 기업적 정 신에 충만한 계급도 없었다. 대규모 생산을 감당할 수 있는 기계도 기술도 없었다. 아니, 이러한 것들의 존 재를 희망하는 사정도, 필연케 하는 조건도 구비되어 있지 아니하였다. 거기에 있었던 것은 오직 쌀 보리 의 생산자인 농민, 여가 노동에 가까운 수공업자, 잉 여 생산물, 사치품의 거래자인 상인, 이들 위에서 모 든 권리를 향유하고 모든 잉여를 흡수하는 관리 양반 들뿐이었다. 자본주의 생성의 조건과 거의 정반대의 요소뿐이라고 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자본 주의는 출발점에 있었으나 외국의 자본과 기술 능력 84 사료집
85 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가타, 조선에 있어서의 근대 자본주의의 성립 과정, <조선 사회 경제사 연구>, 1933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교와 국사가 망하지 않 으면 그 나라도 망하지 않는 것이다. 오호라 한국의 백 은 이미 죽었으나, 이른바 혼은 살아 있는가, 없는가? 박은식, <한국통사( 韓 國 痛 史 )> 서문 실증 사학( 實 證 史 學 ) 역사 연구의 임무는 생활 진전의 일반적인, 인간에 대 한 보편한 법칙을 발견하는 데에도 있는 것이나, 또 민족의 구체적인 생활의 실상과 그 진전의 정세를 구 체적으로 파악하여, 역사로서 그것을 구성하는 데에 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연구의 도정에서도, 무슨 일반적인 법칙이나 공식만을 미리 가정하여 그것을 어떤 민족의 생활에 견강부회( 牽 强 附 會 )하는 방법을 취해서는 안 된다. 생활의 발전에 인류 일반을 통해서 보편적인 통로가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또 그런 것을 연구하는 여러 가지 학문, 예를 들면 인 류 일반을 통해서 고고학 경제학 민속학 종교학이 나 신화학 등의 성립을 의심할 수 없다. 개체가 전체에 관련하는 것은 그 개체를 조금도 변경 함이 없이 전체에 관련시킬 수 있다. 일개의 사건이 그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으면서 넓게 그 시대 전 체에, 또 국민, 민족의 전반에 관련하여 이해되고, 다 시 인간 전체에 있어서 고찰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 이다. 어떠한 원칙을 실증하고 결론을 단정함에는 정 밀한 관찰과 확고한 사실을 전제로 할 것이요, 독단적 해석과 기계적 적용은 진리를 탐구하는 방도가 아니 요, 참 과학적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상백, <조선 문화사 연구 논고( 朝 鮮 文 化 史 硏 究 論 考 )> 나라는 형( 形 )이고 역사는 신( 神 )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라는 멸망할 수 있으나 그 역사 는 결코 없어질 수 없다고 했으니, 이는 나라가 형체 라면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형 체는 없어졌지만, 정신은 살아 남아야 할 것이다. 이 것이 내가 역사를 쓰는 까닭이다. 정신이 살아 있으면 형체도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 혼( 魂 )이 살면 백( 魄 )도 산다. 대개 국교( 國 敎 ) 국학 국어 국문 국사는 혼( 魂 )에 속한 것이요, 전곡 군대 성지( 城 地 ) 함선 기계 등은 백( 魄 )에 속하는 것으로 혼의 됨됨은 백에 따라 죽고 아( 我 )와 비아( 非 我 )의 투쟁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 我 )와 비아( 非 我 )의 투쟁이 시간에서 발전하며 공간으로 확대되는 정신적 활동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 리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 역사라 하면 조선 민족이 그리되어 온 상태의 기록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아 라 하며 무엇을 비아 라고 하는가? 무 릇 주체적 위치에 선 것을 아 라 하고, 그 밖에는 비 아 라 하는데, 이를테면, 조선 사람은 조선을 아 라 하 고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을 비아 라 하지만 그들은 조선을 비아 라고 하고 각기 제 나라를 아 라고 하며, 무엇이든지 반드시 중심이 되는 아 가 있으면, 아 와 대립하는 비아 가 있고, 아 와 비아 의 접 촉이 잦을수록 비아 에 대한 아 의 투쟁이 더욱 맹렬 하여, 인류 사회의 활동이 그칠 사이가 없으며 역사의 앞길이 완성되어질 날이 없으니, 그러므로 유교와 낭 사 사상, 사대와 보수, 지주와 농민 계층의 대립을 강 조 기록인 것이다. 신채호, <조선 상고사> 총론 해설 역사는 대내적으로는 계급 대 계급의 모순 상극을 지양하고, 대외적으로는 민족 대 민족의 주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항쟁사라고 규정하고, 대립 관계와 극복의 과정에서 문화가 확대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는 변증법적 발전론의 입장에서 정신사 중심의 유심 사학( 唯 心 史 學 )으로 역사를 파악할 것을 주장한 것이었다. 5천년 간 조선의 얼 조선의 시조는 단군이시니 단군은 신이 아니요 사람 이시라. 백두의 높은 산과 송화의 장강을 터전으로 하 여 조선을 만드시매 조선 민족은 단군으로부터 생기 고, 조선의 정교( 正 敎 )는 단군으로부터 열리었다. 무 릇 우리 선민으로서 어떠한 일이던지 스스로 큰 흔적 을 남긴 것이 있다면 단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얼은 남이 빼앗아가지 못한다. 얼을 잃었다면 스 사료집 85
86 스로 자실( 自 失 )한 것이지 누가 가져간 것이 아니다. 누구나 어릿어릿하는 사람을 보면 얼 빠졌다고 하고, 멍 하니 앉은 사람을 보면 얼 하나 없다고 한다. 얼 이 란 이같이 쉬운 것이다. 그런데 얼 하나의 있고 없음 으로써 그 광대 웅맹함이 혹 저렇기도 하고 그 잔루 구차함이 이렇기도 하니, 얼 에 대하여 명찰 통조( 明 察 通 目 北 #)함을 실로 거론하기 어렵다 할 수도 있다. 정인보 조선심( 朝 鮮 心 ) 조선 글은 조선심( 朝 鮮 心 )에서 생겨난 결정인 동시에 조선학을 길러 주는 비료라 하려니와 조선 글이 된 이래 9세기 동안에 조선의 사상계는 자는 듯 조는 듯 조선학의 수립에 대하여 각별한 진전을 보지 못하였 다. 그러나 오늘날은 차차 구사상에서 벗어나 신사상 의 자극을 받게 된 조선인은 조선을 재인식할 때가 왔다. 한편으로는 신문화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한편 으로는 조선학을 잘 만들어 세계 문화에 기여가 있어 야만 할 것이니 이는 문화 민족으로서 조선인에게 부 과된 대사명인가 한다. 문일평, <사안으로 본 조선> 조선학 근일에 사용하는 조선학은 광의( 廣 義 )로는 종교 철학 예술 민속 건설 할 것 없이 조선 연구의 학적 대상 이 될 만한 것을 모두 포함한 것이나, 협의( 狹 義 )로는 조선어, 조선사를 비롯하여 순( 純 ) 조선 문학 같은 것 을 주로 지칭하여야 한다. 문일평, <호암 전집> 사회 경제 사학(2014.경찰간부) 우리 조선의 역사적 발전의 전 과정은 가령 지리적 조건 인종학적 골상 문화 형태의 외형적 특징 등 다 소의 차이는 인정되더라도, 외관적인 소위 특수성은 다른 문화 민족의 역사적 발전 법칙과 구별되어야 하 는 독자적인 것이 아니며, 세계사적 일원론적인 역사 법칙에 의하여 다른 제 민족과 거의 동일한 발전 과 정을 거쳐 온 것이다. 그 발전 과정의 빠름과 느림, 각 문화의 특수한 모습의 짙고 옅음은 결코 본질적인 특수성이 아니다. 백남운, <조선 봉건 사회 경제사( 朝 鮮 封 建 社 會 經 濟 史 )> 사적 유물론 조선사 연구는 과거 역사적 사회적 발전의 변동 과정 을 구체적 현실적으로 밝혀 내고 실천적 동향을 이론 화하는 것을 임무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인류 사회의 일반적 운동 법칙인 사적 변증법에 따라 그 민족 생 활의 계급적 관계 및 사회 체제의 역사적 변동을 구 체적으로 분석하고 다시 그 법칙성을 일반적으로 추 상화함으로써만 가능하다. 그것은 전 인류사의 한 부분으로서 세계사적 규모에 있어서 현대 자본주 의의 이식 발전 과정을 본질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지구상의 사회 평원( 社 會 平 原 )으로 자료 를 제시하게 될 것이다. 백남운, <조선 사회 경제사( 朝 鮮 社 會 經 濟 史 )> 신민족주의 사학 1 나는 신민족주의 입장에서 이 민족사를 냈다. 민족의 단합이 없이 민족의 완전한 자주 독립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민족 문화의 세계적 발전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민족의 단합은 오직 진정한 신민 족주의에서만 얻을수 있을 것이다. 조선 민족사 는 결국, 우리 민족이 과거에 민족으로서 어떻게 생활 하였느냐 하는 사실을 민족적 입지에서 엄정하게 비 판하여 앞으로 우리 민족의 나아갈 진정한 노선을 발 견하는 데 그 연구 가치와 의의가 있다. 2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적 지배를 꿈꿀 때도 아니요, 계급 투쟁만을 일삼을 때도 아니다. 계급 투쟁은 민족 내부의 분열을 초래할 것이며, 계급 투쟁의 길은 우리가 반드시 취해야 할 필요는 없고 민족 균등이 실현되는 날 그것은 자연 해소되는 문제다. 손진태, <조선 민족사 개론> 천도교의 자주 독립 선언문(1922) 존경하는 천도교인과 민중 여러분! 우리 대한은 당당한 자주 독립국이며, 평화를 애호하 는 세계의 으뜸 국민임을 재차 선언합니다. 지난 기미 년의 독립 만세 운동은 곧 우리의 전통적인 독립의 86 사료집
87 의지를 만방에 천명한 것이고, 국제 정세의 순리에 병 진하는 자유 정의 진리의 함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무력적인 압박으로 말미암아 우리 의 자유와 평화 등을 주장한 자주 독립 운동은 가슴 아프게도 꺾였습니다. 우리의 독립을 위한 투쟁 은 이제부터가 더욱 의미가 있고 중요합니다. 뜻 맞는 동지끼리 다시 모여 기미년의 감격을 재현하기 위해 재차 일어나, 끝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신명을 바칠 것을 결의하고 선언합니다.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한 약속이여. 한바다 복판 용솟음 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대종교의 적극적 항일 활동 대종교의 간부인 서일이 독립군의 수령으로 그 교도 를 이끌고 일본에 항전하였으니, 대종교는 곧 반동 군 단의 모체로서 종교를 가장한 항일 단체이다. 이 단체 가 중국의 영토에서 활동하고 있으므로 책임을 지고 이를 해산시켜야 한다, 미쓰야 협정(1925) 불교 유신론 불교의 유신은 마땅히 먼저 파괴를 해야 한다. 유신이 란 무엇인가? 파괴의 자손이다. 파괴란 무엇인가? 유 신의 어머니이다. 세상에 어머니 없는 자식이 없다는 것은 대개 말로써는 할 줄 알지만, 파괴 없는 유신이 없다는 점에 이르러서는 아는 사람이 없다. 어찌 비례 ( 比 例, 예를 들어 견주어 봄)의 학문에 있어서 추리해 이해함이 이리도 멀지 못한 것일까? 그러나 파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무너뜨려 없애 버리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구습 중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을 고 쳐서 이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뿐이 다. <조선 불교 유신론( 朝 鮮 佛 敎 唯 新 論 )> 꽃 - 이육사(조선혁명간부학교 출신)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방울 나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없는 날이여! 북쪽 쑨드라에도 찬 새벽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 따라 꿈속에 가듯 걸어만 간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므 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울어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접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그날이 오면(1930) - 심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 人 磬 )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 恨 )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 六 曹 )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사료집 87
88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이 영광의 날 나도 사나이였더면 나도 사나이였더면 귀한 부르심 입는 것을!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 指 針 ) 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 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 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 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 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 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 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 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 싸고 돕니다. 오장( 伍 長 ) 마쓰이 히데오 송가 - 서정주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가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같은 미국 군함!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 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하여 향 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부인 근로대 - 노천명 부인 근로대 작업장으로 군복을 지으러 나온 여인들 머리엔 흰 수건 이마 숙 이고 바쁘게 나르는 흰 손길은 나비인가 총알에 맞아 뚫어진 자리 손으로 만지며 기우려 하니 탄환에 맞은 광경이 머리에 떠올라 뜨거운 눈물이 피잉 도네 한 땀 두 땀 무운을 빌며 바늘을 옮기는 양 든든도 하다 일본의 명예를 걸고 나간이여 훌륭히 싸워 주 공을 세워 주 나라 생각하는 누나와 어머니의 아름다운 정성은 오늘도 산만한 군복 위에 꽃으로 피었네. 반 국가자( 反 國 家 者 )에 대한 권고문 - 최남선 황량한 산하를 정처 없이 배회하는 제군! 밀림의 원시 경에서 현대 문화의 광명도 보지 못하고 불행한 맹신 때문에 귀중한 생명을 초개같이 버리고 있는 가엾은 제군! 빈약한 수백 정의 총을 가지고 정예 수백만 군 대에게 저항을 시도하는 제군들의 어리석음에 개탄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조선 내의 2천 3백만 동포는 일 본 제국의 위광 아래서 과거의 편협한 민족주의적 관 념을 최후의 일 인까지 완전히 청산하여 일본 제국의 신민된 광영 하에 격세의 감이 있는 번영의 길을 걷 고 있다. 오호! 밀림에 방황하는 제군, 이 권고문을 보고 즉시 최후의 단안을 내려 갱생의 길로 뛰어 나오라! 부끄러 움을 부끄러움으로 알고 참회할 것은 참회하고 이제 까지의 불완전한 생활에서 이탈하여 동포애의 따뜻한 온정 속으로 돌아오라.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 노천명 남아면 군복에 총을 메고 나라 위해 전장에 나감이 소원일러니 88 사료집
89 16장 현대사회의 발전 대한민국 임시 정부 건국 강령 제1장 강령 임시 정부는 13년에 대외 선언을 발표하고 삼균 제도 의 건국 원칙을 천명하였으니, 이른바 보통 선거 제 도를 실시하여 정권을 균( 均 )히 하고, 국유 제도를 채 용하여 이권을 균히 하고 공비( 公 費 ) 교육으로써 학 권( 學 權 )을 균히 하며, 제3장 건국 삼균 제도를 골자로 한 헌법을 실시하여 정치 경제 교육의 민주적 시설로 실제상 균형을 도모하여, 전국 의 토지와 대생산 기관의 국유화가 완성되고 전국의 학령 아동 전체가 고등 교육의 무상 교육이 완성되고 보통 선거 제도가 구속 없이 완전히 실시되어, 조선 독립 동맹의 강령 조선 독립 동맹은 조선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 를 전복하고 독립 자유의 조선 민주 공화국을 수립할 목적으로 다음 임무를 실현하기 위해 싸운다. 1 전 국민의 보통 선거에 의한 민주 정권의 수립 6 조선에 있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일체 자산과 토 지를 몰수하고 일본 제국주의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대기업을 국영으로 귀속하며 토지 분배를 실시한다. 9 국민 의무 교육 제도를 실시하고 이에 필요한 경 비는 국가가 부담한다. 광복절 노래(1945)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카이로 선언( ) 각 군사 사절단은 일본국에 대한 장래의 군사 행동을 협정하였다. 3대 동맹국(미 영 중)은 일본국의 침략 을 정지시키며 이를 벌하기 위하여 이번 전쟁을 속행 하고 있는 것이다. 위 동맹국은 자국을 위하여 어떠한 이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또 영토를 확장할 의도 도 없다. 동맹국의 목적은 일본국이 1914년 제1 차 세계 대전 개시 이후에 탈취 또는 점령한 태평양 의 도서 일체를 박탈할 것과 만주 대만 및 팽호도( 膨 湖 島 )와 같이 일본국이 청국으로부터 빼앗은 지역 일 체를 중화민국에 반환함에 있다. 또한 일본국은 폭력 과 탐욕으로 약탈한 다른 일체의 지역으로부터 구축 될 것이다. 앞의 3대국은 조선 인민의 노예 상태에 유 의하여 적당한 시기(또는 적당한 절차를 거쳐)에 맹 세코 조선을 자주 독립시킬 결의를 한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3대 동맹국은 일본국과 교전 중인 여러 국 가와 협조하여 일본국의 무조건 항복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중대하고도 장기적인 행동을 속행한다. 포츠담 선언(1945년 7월 26일) 조선 건국 동맹의 강령 1 각인 각파를 대동 단결하여 거국 일치로 일본 제 국주의자의 제 세력을 구축하고 조선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할 것. 2 반추축 제국(연합국)과 협력해 대일 연합 전선을 형성하고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저해하는 일체 반동 세력을 박멸할 것. 3 건설부면에 있어서 일체 시정을 민주주의 원칙에 의거하고 특히 노동 대중의 해방에 치중할 것. 카이로 선언의 여러 조항은 이행되어야 하며, 또한 일 본국의 주권은 혼슈 훗카이도 규슈 시코쿠와 연합 국이 결정하는 여러 작은 섬들에 국한될 것이다. 맥아더 사령부 행정 명령 제1호( ) 제1조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와 조선 인민에 대 한 통치의 전 권한은 당분간 본관의 권한 하에 시행 된다. 제2조 정부 공공 단체 및 기타의 명예 직원과 고용 인, 또는 공익 사업 공중 위생을 포함한 전 공공 사 업 기관에 종사하는 유급 또는 무급 직원과 고용인, 사료집 89
90 또 기타 제반 중요한 사업에 종사하는 자는 별명이 있을 때까지 종래의 정상적인 기능과 업무를 실행하 고 모든 기록과 재산을 보존 보호하여야 한다. 제3조 주민은 본관 및 본관의 권한 하에서 발포한 명 령에 즉각 복종하여야 한다. 점령군에 대한 모든 반항 행위 또는 공공 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를 감행하는 자 에 대해서는 용서 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 제4조 주민의 재산 소유권은 이를 존중한다. 주민은 본관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일상의 업무에 종사하라. 가거라 삼팔선(1947) 아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 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련만 남북이 가로 막혀 원한 천리 길 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탄한다. 미 군정청의 귀속 농지 처리 첫째, 소작지 또는 소유지가 2정보 이하인 자를 대상 으로 하되 매각되는 토지의 소작인에게 우선권을 주 며 다음에는 그 외의 농민, 농업 노동자, 북한으로부 터 이주한 재민( 災 民 )과 농민, 해외로부터 온 귀국 농 민 등으로 한다. 둘째, 농지의 대가는 당해 토지의 주생산물 연간 생산 고의 3배로 하고 지불은 20%씩 15년간 현물 납입하 게 한다. 셋째, 분배된 농지의 매매 임대차 저당권 설정 등은 일정 기간 금지한다. 여운형이 조선 총독에게 요구한 5개 조항 1. 전국적으로 정치범, 경제범을 즉시 석방할 것. 2. 서울의 3개월 분 식량을 확보할 것. 3. 치안 유지와 건국 운동을 위한 정치 운동에 대하여 절대로 간섭하지 말 것. 4. 학생과 청년을 조직, 훈련하는 데 대하여 간섭하지 말 것. 5. 노동자와 농민을 건국 사업에 동원하는 데 절대로 간섭하지 말 것. 해설 여운형은 일본인의 무사 귀환을 보장하는 대가로 조 선 총독에게 5개 조항을 요구하였다. 일본의 항복 선언이 있자 곧바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결성하였으며 이를 개편하여 조선 인민 공화국과 인민 위원회를 건설하였다. 1945년 10월 말에는 전국 7도, 12시, 131군에 각급 인민 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선언 우리의 당면 임무는 완전한 독립과 진정한 민주주의 의 확립을 위하여 노력하는 데 있다. 이러한 사 회적 요구에 의해 우리 건국 준비 위원회가 결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본 준비 위원회는 우리 민족을 진정 한 민주주의적 정권에로 재조직하기 위한 새 국가 건 설의 준비 기관인 동시에 모든 진보적 민주주의적 제 세력을 집결하기 위하여 각계각층에 완전히 개방된 통일 전선이요, 결코 혼잡된 협동 기관은 아니다. 왜 그런고 하면 여기에는 모든 반민주주의적 반동 세력 에 대한 대중적 투쟁이 요청되는 까닭이다. 과거에 그 들은 일본 제국주의와 결탁하여 민족적 죄악을 범하 였다. 금후에도 그들은 해방 조선을 그 건설 도중에서 방해할 가능성 있나니 이러한 반동 세력, 즉 반민주주 의적 세력과 싸워 이것을 극복 배제하고 진정한 민주 주의 실현을 위하여 강력한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 여야 할 것이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건국 강령( ) 새 정권이 수립되기까지의 일시적 과도기에서 본 위 원회는 조선의 치안을 자주적으로 유지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의 완전한 독립 국가 조직을 실현하기 위하여 새 정권을 수립하는 한 개의 잠정적 임무를 다하려는 의도에서 아래와 같은 강령을 내세운다. 1. 우리는 완전한 독립 국가의 건설을 기함. 1. 우리는 전 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본 요 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정권의 수립을 기함. 1. 우리는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내 질서를 자주 적으로 유지하며 대중 생활의 확보를 기함. 90 사료집
91 조선 인민 공화국의 시정 방침( ) 1. 일본 제국주의의 법률 제도 즉시 폐기 2. 일본 제국주의와 민족 반역자들의 토지를 몰수하 여 농민에게 무상 분배함. 3. 일본 제국주의와 민족 반역자들의 광산 공장 철 도 항만 선박 통신 기관 금융 기관 및 기타 일체 시설을 몰수하여 국유로 함. 4. 민족적 상공업은 국가의 지도 하에서 자유 경영을 허가함. 5. 공업의 급속한 발달을 위한 제 정책의 실시 6.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신앙의 자유 7. 18세 이상 남녀 인민(민족 반역자는 제외함.)의 선 거권 향유 8. 모든 특권을 말살하고 전 인민의 절대 평등 9. 부인의 완전한 해방과 남녀 동권( 同 權 ) 10. 8시간 노동제 실시 11. 최저 임금제 확립 한국 민주당 성명서 요지( ) 1. 국내적으로 단결하여 환국하는 대한민국 임시 정 부를 맞이하고 이 정부로 하여금 4국 공동 관리의 군 정으로부터 완전한 자유 독립 정부가 되도록 지지 육 성할 것. 2. 임정을 부인하는 무리는 허용할 수 없으며 건국 준 비 위원회의 전반기 무모한 행동 과정을 질책하며, 건 준의 인공국 조직에 반기를 들 것. 모스크바 3상 회의의 주요 내용 1. 조선을 독립 국가로 재건하기 위해 조선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수립한다. 2. 조선에서 임시 정부 구성을 원조할 목적으로, 먼저 그 적절한 방안을 연구 조정하기 위하여 미 소 공동 위원회가 설치될 것이다. 3. 공동 위원회의 제안은 최고 5년 기한으로 4개국 신탁 통치의 협약을 작성하기 위하여 미 영 소 중의 4국 정부가 공동 참작할 수 있도록 조선 임시 정부와 협의한 후 제출되어야 한다. 4. 남 북 조선에 관련된 긴급한 제 문제를 고려하기 위하여 또한 남조선 미합중국 관할 구역과 북조선 소 련 관할 구역의 행정 경제 면의 항구적 균형을 수립 하기 위하여 2주일 이내에 조선에 주둔하는 미 소 양 군 사령부 대표로써 회의를 소집할 것이다. 미 국무성 문서, 워싱턴 1. 신탁 통치 반대 우리 3천만은 영예로운 피로써 자주 독립을 획득해야 할 단계에 들어섰다. 동포여! 8 15 이전과 이후, 피차 의 과오와 마찰을 청산하고 우리 정부 밑에 뭉치자. 그리하여 3천만의 총 역량을 발휘하여 신탁 관리제를 배격하는 민족 운동을 전개하자. <대한민국사 제1권> 카이로 포츠담 선언과 국제 헌장으로 세계에 공약한 한국의 독립 부여는 이번 모스크바에서 개최한 3상 회의 신탁 관리 결의로써 수포로 돌아갔으니 신 탁 관리제를 배격하는 국민 운동을 전개하여 자주 독 립을 완전히 획득하기까지 3천만 전 민족의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라도 흘려서 싸우는 투쟁 개시를 선언 한다. ⑴ 3천만 전 국민이 절대 지지하는 대한민국 임시 정 부를 우리의 정부로서 세계에 선포하는 동시에 세계 각국은 우리 정부를 정식으로 승인함을 요구함. ⑵ 우리는 5천 년의 유구한 문화를 가진 민족으로서 도저히 4국 관리 하에 신탁 통치를 받지 못함을 미 영 중 소 원수에게 통고함. ⑶ 현재 국토 남북으로 진주하고 있는 미 소 양군의 즉시 철퇴 요구를 연합군에 통고함. ⑷ 완전한 자유 독립을 획득할 때까지 3천만 전 민족 을 들어 탁치 반대 운동을 결사적으로 계속할 것을 4 개국에 통고함. 신탁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위원회(김구 중심)의 서울 시민 반탁 시 위 대회 선언문, 신탁 통치 찬성 모스크바 3상 회담의 결정을 신중히 검토한 결과 이 번 회담은 세계 민주주의 발전에 한 걸음 나아간 것 이다. 이러한 국제적 결정은 금일 조선을 위하여 가장 정당한 것이다. 문제의 5년 기한은 그 책임이 3 상 회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장구한 일본 지배의 해 사료집 91
92 독 및 민족적 분열에 있으므로 우리 역량에 따라 달 라질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사 제1권> 적극적으로 실행을 기도할 것. 7. 전국적으로 언론 집회 결사 출판 교통 투표 등 자유를 절대 보장하도록 노력할 것. 독립신보, 이승만의 정읍 발언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공위가 재개될 기색도 보 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치 않으니, 우 리는 남한만이라도 임시 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선 이북에서 소련이 물러가도록 세계 공 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니, 여러분도 결심하여야 될 것이다. 그리고 민족 통일 기관 설치에 대하여 지금까 지 노력하여 왔으나 이번에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 통 일 기관을 서울로 올라가 즉시 설치하게 되었으니 각 지방에 있어서도 중앙의 지시에 순응하여 조직적으로 활동하여 주기를 바란다. 좌 우 합작 7원칙( ) 1. 조선의 민주 독립을 보장한 모스크바 3국 외상 회 의 결정(선임시정부수립, 후신탁통치)에 의해 좌 우 합 작으로 민주주의 임시 정부를 수립할 것. 2. 미 소 공동 위원회의 속개를 요청하는 공동 성명 을 발표할 것. 3. 토지 개혁에 있어서 몰수, 유( 有 )조건 몰수, 체감 ( 遞 減 ) 매상 등으로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여하며 시 가지의 기지 및 대건물을 적정 처리하며 중요 산업을 국유화하여 사회 노동 법령 및 민생 문제 등을 급속 히 처리하여 민주주의 건국 과업 완수에 매진할 것. 해설 처음에 좌익측은 토지의 유조건 몰수가 지주의 이익 을 대변하는 것이라며 반대하였으나 결국 중요 산업은 국유 화하되 토지 개혁은 체감 매상 으로 하여 지주의 이익을 어느 정도 보장하고, 농민에 대한 토지 분배는 무상으로 하였다. 4. 친일파 및 민족 반역자를 처리할 조례를 본 합작 위원회에서 입법 기구(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장:김규 식>)에 제안하여 입법 기구로 하여금 심리 결정케 하 여 실시케 할 것. 5. 남북을 통하여 현 정권하에 검거된 정치 운동자의 석방에 노력하고 아울러 남북 좌우의 테러적 행동을 일체 즉시로 제지토록 노력할 것. 6. 입법 기구에 있어서는 일체 그 권능과 구성 방법 운영 등에 관한 대안을 본 합작 위원회에서 작성하여 남북 협상 금번 우리의 북행은 우리 민족의 단결을 의심하는 세 계 인사에게는 물론이요, 조국의 통일을 갈망하는 다 수 동포들에게까지 금번 행동으로써 많은 기대를 이 루어 준 것이다. 그리고 남북 제정당 사회 단체 연석 회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며 민족의 생존을 위해 서는 우리 민족도 세계의 어느 우수한 민족과 같이 주의와 당파를 초월하여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행동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 의회는 자주적 민 주적 통일 조국을 재건하기 위해서 양 조선의 단독 선거와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미 소 양군의 철 퇴를 요구하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다. 우리는 행 동으로써만 우리 민족이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 한 것뿐 아니라 사실로도 우리 민족끼리는 무슨 문제 든지 협조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증명하였다. <해방 40년> 김구의 통일 정부론 한국이 있어야 한국 사람이 있고, 한국 사람이 있어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또 무슨 단체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자주 독립적 통일 정부를 수립 하려는 이때에 있어서 어찌 개인이나 자기 집단의 사 리사욕에 탐하여 국가 민족의 백년대계를 그르칠 자 가 있으랴? 마음속의 38도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도선도 철폐될 수 있다. 현실에 있어서 나의 유일한 염원은 3천만 동포와 손을 잡고 통일된 조국 의 달성을 위하여 함께 노력하는 것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 需 要 )로 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 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도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 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김구,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사료집
93 김규식 나는 항상 조선 문제는 조선 사람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남북 연석회의는 잘 진행되 었다. (중략) 지난 세월 나는 미국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었지만, 지금부터는 조선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겠다. 제주도 출동 거부 병사 위원회 성명서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우리는 조선 인민의 자식이며 노동자 농민의 자식이다. 우리는 조국의 방위와 인민 의 권리와 복리를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우리는 제주도의 애국 인민을 무차별하게 학살 하기 위해 우리를 제주도로 출동시키려는 명령에 대 해, 조선 인민의 자식으로서의 사명 하에 이것을 거부 하고 사랑하는 동포를 위해 결연히 일어섰다. 여수신보, 대한민국 헌법 전문(1948)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 국민은 기 미 3 1 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 한 위대한 독립 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 국 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 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 제 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 하여 안으로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 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 평화의 유지에 노력하 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정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 로이 선거된 대표로써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대한민국 국회(제헌 국회) 의장 이승만 반민족 행위 처벌법 제1조 일본 정부와 통모하여 한 일 합병에 적극 협력 한 자,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 또는 문서에 조 인한 자와 모의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1/2 이상을 몰수한다. 제2조 일본 정부로부터 작위를 수( 受 )한 자 또는 일 본 제국 의회의 의원이 되었던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또는 유산의 1/2 이상을 몰수한다. 제3조 일본 치하 독립 운동가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 상 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는 사형, 무기 또 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한다. 제4조 다음 각 호 중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0년 이 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5년 이하의 공민권을 정지하 고, 그 재산의 전부 흑은 일부를 몰수할 수 있다. 1. 습작한 자 2. 중추원 부의장, 고문 또는 참의가 되었던 자 3. 책임관 이상의 관리가 되었던 자(기술관은 제외) 4. 밀정 행위로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 5. 독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거나 그 단 체의 수뇌 간부로 활동하였던 자 6. 군 경찰의 관리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민족에게 해 를 가한 자 7. 비행기 병기 탄약 등 군수 공업을 책임 경영한 자 8. 도 부의 자문 또는 결의 기관의 의원이었던 자로 서 일정에 아부하여 그 반민족적 죄적이 현저한 자 9. 관공리가 되었던 자로서 그 직위를 악용하여 민족 에게 해를 가한 악질적 죄적이 현저한 자 10. 일본 국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각 단체 본부의 수뇌 간부로서 악질적인 지도적 행동을 한 자 11.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각 기타 각 부분에 있어서 민족적인 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본 침략주의와 그 시책을 수행하는 데 협력하기 위하여 악질적인 반 민족적 언론, 저작과 기타 방법으로써 지도한 자 이광수의 변명 이광수는 반민 특위에서 다음과 같은 변명의 말을 하 였다. 해방이 1년만 늦었어도 조선 사람들은 황국 신민의 대우를 받았을 것입니다. 창씨 개명 안 한 사람, 신사 참배 안 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됩니까? 우리 국민은 문맹자도 많고, 경제 자립도 어려워 일본과 싸워 이길 힘이 없습니다., 나는 민족을 위해 친일했소. 내가 사료집 93
94 걸은 길이 정경대로( 正 經 大 路 )는 아니오마는 그런 길 을 걸어 민족을 위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아 주오. 도쿄까지 가서 학병을 강요하게 된 것은, 학병을 나 가지 않으면 학병을 나가서 받는 것 이상의 고생을 할 것 같았기에 나가라고 권했다 나의 친일은 부득이 민족을 위해 한 일이다. 제6조:다음의 농지는 본법으로 매수하지 않는다. 1. 농가로서 자경 또는 자영하는 1가구 당 총 면적 3 정보 이내의 소유 농지. 단, 정부가 인정하는 고원 산간 등 특수 지구에는 예외로 한다. 제12조:농지의 분배는 1가구당 총 경영 면적은 3정 보를 초과하지 못한다. 반민 특위에 대한 이승만의 성명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하였다 하더라도 헌법 정신에 위반되면 그 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회에서는 치안 혼란을 선동하고 있다. 즉, 경찰의 동요를 일으킴은 치안의 혼란을 조장하는 것이다. 특 위의 몇몇 사람은 그러한 일을 고의로 행하고 있다. 우리가 공산당과 싸우는 것은 그들이 조국을 남의 나 라에 예속시키려는 반역 행위를 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다. 과거에 친일한 자를 한꺼번에 숙청하였으면 좋을 것인데 지나간 군정 3년 동안에 못한 것을 지금 에 와서 단행하면 앞으로 우리나라가 해 나갈 일에 여러 가지로 지장이 많을 것이다. 우리가 건국 초창에 있어서 지난날에 구애되어 앞날에 장애가 되는 것보 다 앞으로 세울 사업에 더 노력하여야 할 것이요. 지금 반란 분자와 파괴 분자가 곳곳에서 살인 방화하여 인명이 위태하며 지하 공작이 긴밀한 이때 에, 기왕에 죄가 있는 자라도 아직 보류하고 목하( 目 下 )의 위기를 정돈하여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지혜로 운 정책이 아닐까 하는 바이다. 신문, 굳세어라 금순아 / 작사 작곡 박 시춘 노래 현인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 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이하 생략) 진보당 선언문 우리 국민 대중을 이렇듯 비참한 생활 형편에 빠뜨리고 통일을 숙원하는 모든 동포로 하여금 이렇 듯 절망과 비애 속에 허덕이게 한 것은 도대체 그 무 슨 까닭입니까? 동족 상잔적인 6 25의 참변을 일으킨 저 공산 역도들의 침략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뿐이 아닙니다. 지주 자본가로서 미 군정에 중 용되었던 한국 민주당 중심의 고루한 보수적 정치 세 력과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 정치를 장악하고 민주주 의의 이름 밑에 반 전제적 정치를 수행해 온 특권 관 료적 정치 세력의 과오에 기인하였다는 것도 농지 개혁법 제5조:정부는 다음에 의하여 농지를 매수한다. 1. 다음의 농지는 정부에 귀속한다. (가) 법령 및 조약에 의하여 몰수 또는 국유로 된 토지 (나) 소유권의 명의가 분명하지 않은 농지 2. 다음의 농지는 본법 규정에 의하여 정부가 매수한다. (가) 농가 아닌 자의 토지 (나) 자경하지 않는 자의 농지 (다) 본법 규정의 한도를 초과하는 부분의 농지 (라) 과수원 종묘포 상전 등 다년성 식물 재배 토지 를 3정보 이상 자영하는 자의 소유인 다년성 식물 재 배 이외의 농지 진보당 강령 1. 우리는 원자력 혁명이 재래할 새로운 시대의 출현 에 대응하여 사상가 제도의 선구적 창도로서 세계 평 화와 인류 복지의 달성을 기한다. 2. 우리는 공산 독재는 물론 자본가와 부패분자의 독 재도 이를 배격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 여 책임 있는 혁신 정치의 실현을 기한다. 3. 우리는 생산 분배의 합리적 계획으로 민족 자본의 육성과 농민 노동자 모든 문화인 및 봉급 생활자의 생활권을 확보하여 조국의 부흥 번영을 기한다. 4. 우리는 안으로 민족 세력의 대동단결을 추진하고 밖으로 민주 우방과 긴밀히 제휴하여 민주 세력이 결 정적 승리를 얻을 수 있는 평화적 방식에 의한 조국 94 사료집
95 통일의 실현을 기한다. 5. 우리는 교육 체제를 혁신하여 점진적으로 국가 보 장제를 수립하고 민족적 새문화의 창조로서 세계 문 화에의 기여를 기한다 부정 선거 지시 비밀 지령 1. 40% 사전 투표:투표 당일 자연 기권표와 선거인 명부에 허위 기재한 유령 유권자표, 금전으로 매수하 여 기권하게 만든 기권표 등을 그 지역 유권자의 4할 정도씩 만들어, 투표 시작 전에 자유당 후보에게 기표 하여 투표함에 미리 넣도록 할 것. 2. 3인조 또는 5인조 공개 투표:자유당 후보에게 투표 하도록 미리 공작한 유권자로 하여금 3인조 또는 5인조 의 팀을 편성시켜, 그 조장이 조원의 기표 상황을 확인 한 후 다시 각 조원이 기표한 투표 용지를 자유당 측 선거 운동원에게 제시하고 투표함에 넣도록 할 것. 3. 완장 부대 활용:자유당 측 유권자에게 자유당 이 란 완장을 착용시켜 투표소 부근 분위기를 자유당 일 색으로 만들어 야당 성향의 유권자에게 심리적인 압 박을 주어 자유당에게 투표케 할 것. 4. 야당 참관인 축출:민주당 측 참관인을 매수하여 참관을 포기시키거나 여의치 않을 때는 적당한 구실 을 만들어 투표소 밖으로 축출할 것. 동아 일보, 고려 대학교 4 18 선언문 1. 기성세대는 자성하라. 2. 마산 사건의 책임자를 즉시 처단하라. 3. 우리는 행동성 없는 지식인을 배격한다. 4. 경찰의 학원 출입을 엄금하라. 5. 오늘의 평화적 시위를 방해하지 말라.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東 學 年 )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 中 立 )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대학 교수단 4 25 시국 선언문 이번 4 19 참사는 우리 학생 운동 역사상 가장 큰 비 극이요, 이 나라의 정치적 위기를 초래한 중대 사태이 다.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규정( 糾 正 :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음.)이 없이는 이 민족의 불행한 운명을 도저 히 만회할 길이 없다. 우리 전국 대학교 교수들은 이 비상 시국에 대처하여 양심에 호소로써 다음과 같이 우리의 소신을 선언한다. 이 대통령은 즉시 물러가라. 부정 선거 다시 하라, 살인귀를 처단하라 마산 서울 기타 각지의 학생 데모는 주권을 빼앗긴 국민의 울분을 대신하여 궐기한 학생들의 순진한 정 의감의 발로이며, 부정과 불의에 항거하는 민족 정기 의 표현이다 선거는 불법이다. 공명 선거에 의하여 정 부통 령 선거를 다시 실시하라.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을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같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지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 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 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 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원임을 자랑 한다. 일제의 철추( 鐵 鎚 )하에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 사료집 95
96 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파는 영광 스럽기만 하다.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회 4월 혁명 제1 선언문 허정 과도 정부의 과도 정부 5대 시책 첫째, 반공주의 정책을 한층 더 결실 착실하게 전진 시킨다. 둘째, 부정 선거 처벌 대상을 책임자와 잔학 행위자에 게만 국한한다. 셋째, 혁명적 정치 개혁을 비혁명적 방법으로 단행한다. 넷째, 4월 혁명에서 미국의 역할을 내정 간섭 운운하 는 것은 이적 행위로 간주한다. 다섯째, 한 일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일본 인 기자의 입국은 허용한다. 민족적 민주주의를 장례한다. 민족사는 바야흐로 위대한 결단을 요구하는 전환기에 섰다. 4월 항쟁의 참다운 가치성은 반외세 반매판 반봉건에 있으며, 민족 민주의 참된 길로 나아가기 위한 도정이었으나, 5월 군부 쿠데타는 이러한 민족 민주 이념에 대한 정면적인 도전이었으며, 노골적인 대중 탄압의 시작이었다. 민족적 민주주의는 수렵적 정보 정치를 합리화하기 위한 독화의 미소를 띠었다. 국제 협력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 민족의 치떨리는 원 수 일본 제국주의를 수입, 대미 의존적 반신불수인 한 국 경제를 2중 예속의 철쇄로 속박하는 것이 조국의 근대화로 가는 첩경이라고 기만하는 반민족적 음모를 획책하고 있다. 한 일 굴욕 회담 반대 총학생 연합회( ) 박정희 군사 정권의 혁명 공약 첫째,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 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 체제를 재정비, 강화할 것입 니다. 둘째,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 협약을 충실히 이행 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견고히할 것입니다. 여섯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 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한 일 굴욕 회담 반대 일본에의 예속으로 직행하는 매국의 한 일 굴욕 회담 을 전면 중지하라. 농민 노동자 소시민의 피눈물을 밟고 서서 홀로 살쪄 가는 매판성 악덕 재벌을 처형하고 재산을 몰수하라 이래의 온갖 부정부패 사건을 자진 폭로하고 그 원흉을 조사 처단하라 이래 구속된 정치범을 즉각 석방하라. 학생 총연합회의 결의문 3선 개헌에 대한 국민의 반대 우리는 이제 3선 개헌을 강행하여 자유 민주에의 반 역을 기도하는 어떤 명분이나 위장된 강변에도 현혹 됨이 없다. 헌정 20년간 모든 호헌 세력들의 공통된 신념과 결단 위에서 전 국민의 힘을 뭉쳐 단호히 이 에 대처하려 한다. 집권자에 의해서 자유 민주에의 기 대가 끝내 배신당할 때, 조국을 수호하려는 전 국민은 요원의 불길처럼 봉기할 것이다. 우리는 날로 그 우방 을 확장시키고 있고, 선악의 대결과 진부( 眞 否 )의 결 전에서 용솟음치는 결의를 가지고 있다. 자유 국민의 조국은 영원하다. 영원한 조국을 가진 국민은 용감하다. 전 국민이여! 자유 민주의 헌정 수호 대열에 빠짐없이 참여하라. 3선 개헌 반대 범국민 투쟁 위원회 유신 헌법 제39조 대통령은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토론 없이 무기명 투표로 선거한다. 제40조 통일 주체 국민 회의는 국회의원 정수의 3분 의 1에 해당하는 수의 국회의원을 선거한다. 제53조 대통령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 경제상 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 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 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 96 사료집
97 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내정 외교 국방 경제 재정 사법 등 국정 전반에 걸 쳐 필요한 긴급 조치를 할 수 있다. 제54조 대통령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 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 또는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 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제59조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 대통령 긴급 조치 1호 1.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5.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 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 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 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6.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 상 군법 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3 1 민주 구국 선언문( )(2007.국가직 9급) 우리는 이 나라의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민주 구국 선언을 선포하는 바이다. 1. 이 나라는 민주주의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 2. 경제 입국의 구상과 자세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 어야 한다. 3. 민족 통일은 오늘 이 겨레가 짊어진 최대의 과업이 다. 이때에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이 있다. 그것은 통일된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한 최선의 제도와 정책이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대헌장이다. 다가오는 그 날을 내다보면서 우리는 민 주 역량을 키우고 있는가, 위축시키고 있는가?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이하 생략) 5 18 민주화 운동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그 대답은 너무 간단합니다. 너무나 무자비한 만행을 더 이상 보고 있 을 수만 없어 너도나도 총을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정부 당국에서는 17일 야간에 계엄령을 확대 선 포하고 일부 학생과 민주인사, 정치인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구실로 불법 연행하였습니다. 18일 아 침에 각 학교에 공수부대를 투입하고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에게 대검을 꽂고 돌격 앞으로! 를 감행하였고, 이에 우리 학생들은 다시 거리로 뛰쳐나와 정부 당국 의 불법 처사를 규탄하였던 것입니다. 계엄 당국 은 18일 오후부터 공수부대를 대량 투입하여 시내 곳 곳에서 학생 젊은이들에게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였 으니! 광주광역시 5 18 사료 편찬 위원회, <5 18 광주 민주화 운동 자 료 총서 2> 전두환 취임 선언문 이제 새 시대의 진군을 알리는 민주 정의의 횃불이 올랐다. 정의 사회를 구현하고 통일 민주 복지 국가를 건설하는 우리의 꿈을 실현할 민족 대행진이 시작되 었다. 6월 민주 항쟁(2012.국가직 7급) 오늘 우리는 전 세계 이목이 주시하는 가운데 40년 독재 정치를 청산하고 희망찬 민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거보를 전 국민과 함께 내딛는다. 국가의 미래요 소망인 꽃다운 젊은이를 야만적인 고문으로 죽여 놓 고 그것도 모자라서 국민을 속이려고 했던 현 정권에 게 국민의 분노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 주고, 국민적 여망인 개헌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4 13 호헌 조치를 철회시키기 위한 민주 장정을 시작한다. 우리는 4 13 호헌 조치가 무효임을 전 국민의 이름 으로 선언하며 이 땅에 민주 헌법이 서고 민주 정부 사료집 97
98 가 확고히 수립될 때까지 이 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호헌 반대 민주 헌법 쟁취 운동 본부 대한민국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 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과 불의 에 항거한 4 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 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 유 민주적 기본 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 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 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 적인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 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 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 쳐 국민 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87년 10월 29일 6 23 평화 통일 외교 선언 1. 조국의 평화적 통일은 민족의 지상 과업이므로 평 화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계속 경주한다. 2. 남북한은 서로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침략을 하 지 않아야 한다. 3. 남북 대화의 구체적 성과를 위하여 성실과 인내로 써 계속 노력한다. 4. 북한이 우리와 같이 국제 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반 대하지 않는다. 5. 북한과 함께 유엔(UN)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 으며 유엔 가입 전이라도 유엔 총회에서 한국 문제 토의 에 북한 측이 같이 조정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6. 호혜 평등의 원칙하에 모든 국가에 문호를 개방한다. 7. 대한민국의 대외 정책은 평화와 선린에 그 기본을 두고 있다. 상호 불가침 협정 1. 절대로 무력 침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에 약 속한다. 2. 상호 내정 간섭을 하지 않는다. 3. 현행 휴전 협정은 준수되어야 한다. 7 4 남북 공동 성명(요지) 쌍방은 다음과 같은 조국 통일원칙들에 합의를 보았다. 1.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 지 않고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 행사에 의 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해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 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2. 쌍방은 긴장 완화 중상 비방 중지 무장 도발 중지 합의 3. 남북 간 제반 교류 실시 4. 적십자 회담 적극 협조 5. 서울과 평양 사이 상설 직통 전화 개설 6. 남북 조절 위원회 구성 운영 7. 합의 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함. 평화 통일 3대 기본 원칙 선언 첫째,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하여 남북한은 상호 불가침 협정을 체결하여야 한다. 둘째, 남북한 간의 상호 문호를 개방하고 신뢰를 회복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남북 대화를 성실히 진행시 켜야 하며, 다각적인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이 바탕 위에서 공정한 선거 관리와 감시 하에 토착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자유 총선거를 실시하 여 통일을 이룩한다. 7 7 선언(1988,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 1. 남북 동포 간의 상호 교류와 해외 동포들의 자유로 운 남북 왕래 2. 이산가족의 서신 왕래 및 상호 방문 3. 남북한의 교역 98 사료집
99 4. 비군사적 물자에 대한 남한의 우방과 북한의 교역 을 반대치 않음. 5. 남북한 간의 소모적인 경쟁 대결 외교의 종식 6. 북한과 남한 우방과의 관계 개선 및 사회주의 국가 와 남한 측의 관계 개선 특별 선언은 북한을 같은 민족으로 포용하여 민족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한다는 내용으로 북한의 대화 방침과 맞물려 남북 국회 회담 등 남북 대화의 촉매제가 되었으며, 사회주의권과 경제 교류 및 수교 등 북방 정책을 추진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남북 기본 합의서(1991,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남과 북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7 4 남북 공동 성명에서 천명된 조 국 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치 군사적 대결상 태를 해소하여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다 각적인 교류 협력을 실현하여 민족 공동의 이익과 번 영을 도모하며,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 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 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 통일 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 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 중한다. 제2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아 니한다. 제9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략하지 아니한다. 제13조 남과 북은 우발적인 무력 충돌과 그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 당국자 사이에 직통 전화 를 설치 운영한다. 제15조 남과 북은 민족 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 전체의 복리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 원의 공동 개발, 민족 내부 교류로서의 물자 교류, 합 작 투자 등 경제 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제18조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자유로운 서신 거래와 왕래와 상봉 및 방문을 실시하고 자유 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실현하며, 기타 인도적으로 해 결할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다 남북 공동 선언문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 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 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 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 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 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 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 협력을 통하여 민족 경제를 균형적 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 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 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이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헌법(1948) 제1조 우리나라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다. 제2조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 제5조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생산 수단은 국 가, 협동 단체 또는 개인 자연인이나 개인 법인의 소 유이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사회주의 헌법(1972) 제4조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마르크스 레닌 주의를 우리나라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조선 노 동당의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침으로 삼는다. 제89조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주석은 국가의 수 반이며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국가 주권을 대표 한다. 제93조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주석은 조선 민주 주의 인민 공화국 전반적 무력의 최고 사령관, 국방 위원회 위원장이 되며 국가의 일체 무력을 지휘 통솔 한다. 사료집 99
100 김일성 헌법 서문(1998)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 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 조국이 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주체적인 혁명 노선을 내 놓으시고 여러 단계의 사회 혁명과 건설 사업을 현명 하게 령도하시어 공화국을 인민 대중 중심의 사회주 의 나라로,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 국가로 강화 발전시키었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사회 주의 헌법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적인 국 가 건설 사상과 국가 건설 업적을 법화한 김일성 헌 법이다. 국민 교육 헌장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 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 로 삼는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 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 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 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 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언론 자유 실천문( ) 우리는 오늘 우리 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관을 극복 할 수 있는 길이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한다. 본질적으로 자유 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 종사자 들 자신의 실천 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 받거나 국 민 대중이 찾아다 쥐어 주는 것이 아니다. 1. 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 간섭도 우리 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한다. 2. 기관원의 출입을 엄격히 거부한다. 3. 언론인의 불법 연행을 일체 거부한다. 만약, 어떠 한 명목으로라도 불법 연행이 자행되는 경우 그가 귀 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한다. 100 사료집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KR000****4 설 * 환 KR000****4 송 * 애 김 * 수 KR000****4
한국사 문제1급
1 2. 1. 3. 2 4. 5. 6. 7. 8. 3 9. 10. 11. 12. 4 13. 다음 중에서 고려 시대 문화재를 모두 고른 것은? [2점] 15. 다음 주장을 입증하는 근거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을 받기 전까지는 제도 운영, 국왕 및 왕실 구성원 명칭, 국가 의례에서 실질적인 황제국을 지 향하였다. ① 원구단을 만들어 하늘에
60-Year History of the Board of Audit and Inspection of Korea 제4절 조선시대의 감사제도 1. 조선시대의 관제 고려의 문벌귀족사회는 무신란에 의하여 붕괴되고 고려 후기에는 권문세족이 지배층으 로 되었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새로이 신흥사대부가 대두하여 마침내 조선 건국에 성공 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조선양반사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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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20 2011.2.16 5:53 PM ` 3 여는 글 교육주체들을 위한 교육 교양지 신경림 잠시 휴간했던 우리교육 을 비록 계간으로이지만 다시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 선 반갑다. 하지만 월간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솔직히 나는 우리교 육 의 부지런한 독자는 못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깨너머로 읽으면서도 이런 잡지는 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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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렇게까지 군대를 가려고하냐,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조차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군대는 하루하루를 소종하게 생각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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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객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8호) 객사는 영조 35년(1759년)에 지어진 조선 후기의 관청 건물입니다. 원래는 가운데의 정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대청, 오른쪽에 서대청, 앞쪽에 중문과 외문 그리고 옆쪽에 무랑 등으로 이 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정당과 동대청만이 남아있습니다. 정당에서는 전하 만만세 라고 새 긴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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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v vi vii viii ix x xi 61 62 63 64 에 피 소 드 2 시도 임금은 곧 신하들을 불러모아 나라 일을 맡기고 이집트로 갔습니다. 하 산을 만난 임금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어요. 원하시는 대로 일곱 번째 다이아몬드 아가씨를
(012~031)223교과(교)2-1
0 184 9. 03 185 1 2 oneclick.law.go.kr 186 9. (172~191)223교과(교)2-9 2017.1.17 5:59 PM 페이지187 mac02 T tip_ 헌법 재판소의 기능 위헌 법률 심판: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면 그 효력을 잃게 하거 나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 탄핵 심판: 고위 공무원이나 특수한 직위에 있는 공무원이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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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이 책에서는 단순히 가난한 관리들의 이야기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사심 없이 헌신한 옛 공직자들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공과 사를 엄정히 구분하고,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공무를 처리한 사례,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최부, 송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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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 2 - - - - 4 - - 5 - - 6 - - 7 - - 8 - 4) 민원담당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의 결과와 함의 국민신문고가 업무와 통합된 지식경영시스템으로 실제 운영되고 있는지, 국민신문 고의 효율 알 성 제고 등 성과향상에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치 메 국민신문고를 접해본 중앙부처 및 지방자 였 조사를 시행하 였 해 진행하 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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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스승님이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알라는 위대하다! 위대하다! 알라는 알라는 위대하다! 특집 특집 기사 특집 기사 세계 세계 평화와 행복한 새해 경축 세계 평화와 평화와 행복한 행복한 새해 새해 경축 경축 특별 보도 특별 특별 보도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도가니! 스승님과의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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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290 5 291 1 1 336 292 340 341 293 1 342 1 294 2 3 3 343 2 295 296 297 298 05 05 10 15 10 15 20 20 25 346 347 299 1 2 1 3 348 3 2 300 301 302 05 05 10 10 15 20 25 350 355 303 304 1 3 2 4 356 357
내지-교회에관한교리
내지-교회에관한교리 2011.10.27 7:34 PM 페이지429 100 2400DPI 175LPI C M Y K 제 31 거룩한 여인 32 다시 태어났습니까? 33 교회에 관한 교리 목 저자 면수 가격 James W. Knox 60 1000 H.E.M. 32 1000 James W. Knox 432 15000 가격이 1000원인 도서는 사육판 사이즈이며 무료로
2015년9월도서관웹용
www.nl.go.kr 국립중앙도서관 후회의 문장들 사라져 버릴 마음의 잔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해에도 배추농사에서 큰돈을 남은 평생 머릿속에서 맴돌게 될 그 말을 다시 떠올려보 만졌다 하더라도 지난 여름 어느 날 갑자기 들기 시작한 았다. 맺지 못한 채 끝나버린 에이드리언의 문장도 함께. 그 생각만은 변함없을 것 같았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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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의식의 원칙 논문은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야 한다. 주제 의식은 논문을 쓰는 사람의 의도나 글의 목적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협력의 원칙 독자는 필자를 이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논리적 엄격성의 원칙 감정이나 독단적인 선언이
할렐루야10월호.ps, page 1-12 @ Normalize ( 할 437호 )
www.hcc.or.kr [email protected] Hallelujah News PHOTO NEWS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제437호 2007년 10월 7일 (주일) 화요청년찬양부흥회 날짜: 10월 16일, 11월 6일, 11월 20일 12월 4일, 12월 18일 (매달 1 3주 화요일) 장소: 할렐루야교회
#7단원 1(252~269)교
7 01 02 254 7 255 01 256 7 257 5 10 15 258 5 7 10 15 20 25 259 2. 어휘의 양상 수업 도우미 참고 자료 국어의 6대 방언권 국어 어휘의 양상- 시디(CD) 수록 - 감광해, 국어 어휘론 개설, 집문당, 2004년 동북 방언 서북 방언 중부 방언 서남 방언 동남 방언 제주 방언 어휘를 단어들의 집합이라고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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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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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나날을 그리다 안전한 나날을 그리다 01 16 22 28 32 36 40 44 50 54 58 02 62 68 90 94 72 98 76 80 102 84 03 04 106 142 110 114 118 122 126 130 134 148 154 160 166 170 174 138 05 178 182 186 190 194 200 204 208 212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발행일 : 2013년 7월 25일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정]--------------------------------------------
가해하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쌍해서이다 가해하고 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을 것 같아서이다 보복이 두려워서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화가 나고 나쁜 아이라고 본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이 없다 따돌리는 친구들을 경계해야겠다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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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ㅣ반딧불이ㅣ뒤엉켜 버린 삶, 세월이 흘러도 풀 수 없는.. 실타래 벌써 3년째 시간은 흘러가고 있네요. 저는 서울에서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가족들과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답 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엄마의 죽음을 잊으려고 하였습 니다. 그러다 여기서 고향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들의
1. 2. 3. 4. 5.
1. 2. 3. 4. 5. 1 10 11 12 13 14 부여는 그 도장에 예왕지인( 濊 王 之 印 : 예왕의 인장)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 나라에는 오래된 성이 있는데, 이름을 예성( 濊 城 )이라 고 한다. 본래 예맥의 지역인데, 부여가 그 가운데 왕으로 있었다. 1 15 16 17 18 19 20 1 2 21 2 22 1 2 23 24 1 2 25 26
10월추천dvd
2011 10 DVD CHOICE dvd dvd?!!!! [1] [2] DVD NO. 1898 [3] Days of Being Wild 지금도 장국영을 추억하는 이는 많다. 그는 홍콩 영화의 중심에 선 배우였고,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거짓말 같던 그의 죽음은 장국 영을 더욱 애잔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 이 장국영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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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Group 2006 AUTUMN Volume. 02 Focus Group 2006 AUTUMN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 모두를 가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 곳에 서서 한쪽 길이 덤불 속으로 감돌아간 끝까지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쪽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이
Gwangju Jungang Girls High School 이상야릇하게 지어져 이승이 아닌 타승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텔에 여장을 풀고 먹 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념 아래 게걸스럽게 식사를 했다. 피곤하니 빨리 자라는 선생님의 말 씀은 뒷전에 미룬 채 불을 끄고 밤늦게까지 속닥거리며 놀았다. 몇 시간 눈을 붙이는 둥 마 는 둥 다음날 이른 아침에
4 7 7 9 3 3 4 4 Ô 57 5 3 6 4 7 Ô 5 8 9 Ô 0 3 4 Ô 5 6 7 8 3 4 9 Ô 56 Ô 5 3 6 4 7 0 Ô 8 9 0 Ô 3 4 5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 선거의 의미와 필요성 ① 선거의 의미`: 우리들을 대표하여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을 말합니다. ② 선거의 필요성`: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일을 의논하고
33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문 * 웅 입주자격소득초과 34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송 * 호 입주자격소득초과 35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나 * 하 입주자격소득초과 36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최 * 재 입주자격소득초
1 장지지구4단지 ( 임대 ) 59A1 김 * 주 830516 입주자격소득초과 2 장지지구4단지 ( 임대 ) 59A1 김 * 연 711202 입주자격소득초과 3 장지지구4단지 ( 임대 ) 59A1 이 * 훈 740309 입주자격소득초과 4 발산지구4단지 ( 임대 ) 59A 이 * 희 780604 입주자격소득초과 5 발산지구4단지 ( 임대 ) 59A 안 *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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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60 1 1 200 2 6 4 7 29 1975 30 2 78 35 1 4 2001 2009 79 2 9 2 200 3 1 6 1 600 13 6 2 8 21 6 7 1 9 1 7 4 1 2 2 80 4 300 2 200 8 22 200 2140 2 195 3 1 2 1 2 52 3 7 400 60 81 80 80 12 34 4 4 7 12 80 50
문화재이야기part2
100 No.39 101 110 No.42 111 문 ᰍℎ᮹ šᯙŝ $* ᗭ} 화 재 이 야 기 De$** 남기황 ᰍℎ šᯙŝ $* ᗭ} 관인은 정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이 필요한 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편찬토록 하여 그 이듬해 문서 따위에 찍는 도장 이다. 문화재청은 1999년 (1447) 만든 석보상절을 읽고나서 지은 찬불가(讚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100 No.39 101 110 No.42 111 문 ᰍℎ᮹ šᯙŝ $* ᗭ} 화 재 이 야 기 De$** 남기황 ᰍℎ šᯙŝ $* ᗭ} 관인은 정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이 필요한 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편찬토록 하여 그 이듬해 문서 따위에 찍는 도장 이다. 문화재청은 1999년 (1447) 만든 석보상절을 읽고나서 지은 찬불가(讚
나하나로 5호
Vol 3, No. 1, June, 2009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KACPR) Newsletter 01 02 03 04 05 2 3 4 대한심폐소생협회 소식 교육위원회 소식 일반인(초등학생/가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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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2012.7.25 6:14 PM 페이지1 2012년 8월 1일 수요일 16 종합 고려대장경 석판본 판각작업장 세계 최초 석판본 고려대장경 성보관 건립 박차 관계기관 허가 신청 1차공사 전격시동 성보관 2동 대웅전 요사채 일주문 건립 3백여 예산 투입 국내 최대 대작불사 그 동안 재단은 석판본 조성과 성보관 건립에 대해서 4년여 동안 여러 측면에 서 다각적으로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2 목차 편집자의 말 ------------------------------------------------------------------------------------- 3 한국의 * 상1 개괄 한국의 병역거부운동 -------------------------------------------------------------------------
2014학년도 수시 면접 문항
안 경 광 학 과 세부내용 - 남을 도와 준 경험과 보람에 대해 말해 보세요. - 공부 외에 다른 일을 정성을 다해 꾸준하게 해본 경험이 있다면 말해 주세요. - 남과 다른 자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말해 주세요. - 지금까지 가장 고민스러웠던 또는 어려웠던 일과 이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 자신의 멘토(조언자) 또는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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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 상징물 1. 광진구 마크 녹음이 가득한 아차산과 한강에 비친 아차산의 음영을 나타내는 두 삼각형, 광진 나루를 보여주는 돛단배로 이루어져 있다. 광진구의 유구한 역사와 미래를 나타내 는 백색과 한강의 깨끗한 환경을 상징하는 청색을 바탕으로 광진구의 힘찬 도약과 화합을 상징한다. 2. 새 - 까치 3. 나무 - 느티나무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모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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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hipping Association 조합 뉴비전 선포 다음은 뉴비전 세부추진계획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 조합은 올해로 창립 46주년을 맞았습니다. 조합은 2004년 이전까 지는 조합운영지침을 마련하여 목표 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추진해왔습니 다만 지난 2005년부터 조합원을 행복하게 하는 가치창출로 해운의 미래를 열어 가자 라는 미션아래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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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JEONNAM DRAGONS FOOTBALL CLUB MATCH MAGAZINE VOL.136 / 2014.10.16 Preview Review News Poster PREVIEW K LEAGUE CLASSIC 32R JEONNAM VS SEOUL / 14.10.18 / 14:00 / 광양축구전용구장 서울과 뜨거운 한판 승부! 전남드래곤즈가 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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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02 8 9 32 33 1 10 11 34 35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원만한 생활과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다양한 기능 사회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가구 가족 규모의 축소와 가족 세대 구성의 단순화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 1인 또는 1인 이상의 사람이 모여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 타나는 가족 구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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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도서관총서 1 경기도 도서관 총서 경기도도서관총서 1 지은이 소개 심효정 도서관 특화서비스 개발과 사례 제 1 권 모든 도서관은 특별하다 제 2 권 지식의 관문, 도서관 포털 경기도 도서관 총서는 도서관 현장의 균형있는 발전과 체계적인 운 영을 지원함으로써 도서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되 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를 통해 사회전반의 긍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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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융합 과학 2011년도 1학기 중간고사 대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빅뱅 우주론에서 수소와 헬륨 의 형성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4 서술형 다음 그림은 수소와 헬륨의 동위 원 소의 을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 우주에서 생성된 수소와 헬륨 의 질량비 는 약 3:1 이. (+)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전기적 중성인 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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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의 여성인력 현황 및 전문화 방안 연구 한국여성개발원 발간사 Ⅰ....,.,....... .. Ⅱ. :...... Ⅲ.,,. ..,.,.... 9 1 1.. /.,. PD,,,,, / 7.93%. 1%... 5.28% 10.08%. 3.79%(KBS MBC), 2.38 %(KBS MBC) 1%...,. 10. 15.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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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가을 24호 2_ . 02 03 04 08 10 14 16 20 24 28 32 38 44 46 47 48 49 50 51 _3 4_ _5 6_ _7 8_ _9 10_ _11 12_ _13 14_ _15 16_ _17 18_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에서 개식사를 하는 김구(1940.9.17) 將士書) 를 낭독하였는데, 한국광복군이 중국군과 함께 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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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05 17 18 2006. 05 19 20 2006. 05 21 22 2006. 05 23 24 01 26 2006. 05 27 28 2006. 05 29 30 2006. 05 31 32 2006. 05 33 02 34 2006. 05 35 36 2006. 05 37 38 2006. 05 39 03 04 40 2006. 05 41 05 42 2006.
국어 순화의 역사와 전망
전문용어의국어화 강현화 1. 들어가기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 사용의 전형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전문 용어의 사용자가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포 될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출발점을 시작으로 과연 전문 함 용어의 국어화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2. 전문 용어 연구의 쟁점 2.1. 전문 용어
레이아웃 1
Seed Money Bank Savings Banks vol.126 Seed Money Bank Savings Banks + vol.126 www.fsb.or.kr 20163 + 4 Contents 20163 + 4 vol.126 www.fsb.or.kr 26 02 08 30 SB Theme Talk 002 004 006 SB Issue 008 012 014
학부모신문203호@@
02 05 06 08 11 12 2 203 2008.07.05 2008.07.05 203 3 4 203 2008.07.05 2008.07.05 203 5 6 203 2008.07.05 2008.07.05 203 7 8 지부 지회 이렇게 했어요 203호 2008.07.05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은 여전히 건재하다! 우리 학부모들은 근 2달여를 촛불 들고 거리로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 평균 ( 만원 ) 자녀상태 < 유 자 녀 > 미 취 학 초 등 학 생 중 학 생 고 등 학 생 대 학 생 대 학 원 생 군 복 무 직 장 인 무 직 < 무 자 녀 >,,.,.,.,.,.,.,.,.
. 대상자의속성 -. 연간가수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평균 ( 만원 ) 전 국,........,. 지 역 도 시 지 역 서 울 특 별 시 개 광 역 시 도 시 읍 면 지 역,,.,.,.,.,. 가주연령 세 이 하 - 세 - 세 - 세 - 세 - 세 - 세 세 이 상,.,.,.,.,.,.,.,. 가주직업 의회의원
5권심층-양화1리-1~172
526 527 528 529 530 531 532 332 333 332 사갑 제례 음식준비 334 335 333 진설 334 사갑제례 335 음복 8시부터 8시 30분 사이에 제사에 참여했던 가족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고인의 부인은 제사에 참여한 이 들에게 제사 음식과 반찬거리(깻잎 등)를 골고루 싸 주었고 마을에 거주하는, 제사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기본소득문답2
응답하라! 기본소득 응답하라! 기본소득 06 Q.01 07 Q.02 08 Q.03 09 Q.04 10 Q.05 11 Q.06 12 Q.07 13 Q.08 14 Q.09 응답하라! 기본소득 contents 16 Q.10 18 Q.11 19 Q.12 20 Q.13 22 Q.14 23 Q.15 24 Q.16 Q.01 기본소득의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세요. 06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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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는 선 5 월 월말 성취도 평가 국어 2쪽 사회 5쪽 과학 7쪽 자르는 선 학년 5 13 4 47 1 5 2 3 7 2 810 8 1113 11 9 12 10 3 13 14 141 1720 17 15 18 19 1 4 20 5 1 2 7 3 8 4 5 9 10 5 월말 성취도평가 11 다음 보기 에서 1 다음 안에 들어갈 알맞은 말을 찾아 쓰시오. 각 나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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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가나다 순 머 리 말 2006년 12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 i - - ii - - iii - 평가 영역 1. 교육계획 2. 수업 3. 인적자원 4. 물적자원 5. 경영과 행정 6. 교육성과 평가 부문 부문 배점 비율(%) 점수(점) 영역 배점 1.1 교육목표 3 15 45점 1.2 교육과정 6 30 (9%) 2.1 수업설계 6 30 2.2
지도학발달06-7/8/9장
3 1 7 17 95101G 421d 221 2 3 4 1971 34 12 1804 1866 1972 31866 4 1 5 33 1866 3 6 31866 3 1803 1877 1804 1866 2 02333 318 4 51 633 3 6 2022 222 31866 1955 1931 3 916 7 1925 1925 10 9 1862 65 8 7 2 1931
정부3.0 국민디자인단 운영을 통해 국민과의 소통과 참여로 정책을 함께 만들 수 있었고 그 결과 국민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정책 개선안을 도출하며 정책의 완성도를 제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각 기관별 정부3.0 과제에 적용하여 국민 관점의 서비스 설계, 정책고객 확대 등 공직사회에 큰 반향을 유도하여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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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eyesurfer. All rights reserved.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매일경제신문] 04면 종합 -9- 2007년 11월 14일 수요일 [내일신문] 17면 산업/무역 - 11 -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매일경제신문] 37면 인물 - 16 -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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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288-5854 Print ISSN 2289-0009 online DIGITAL POST KOREA POST MAGAZINE 2016. APRIL VOL. 687 04 DIGITAL POST 2016. 4 AprilVOL. 687 04 08 04 08 10 13 13 14 16 16 28 34 46 22 28 34 38 42 46 50 54 56
(중등용1)1~27
3 01 6 7 02 8 9 01 12 13 14 15 16 02 17 18 19 제헌헌법의제정과정 1945년 8월 15일: 해방 1948년 5월 10일: UN 감시 하에 남한만의 총선거 실시. 제헌 국회의원 198명 선출 1948년 6월 3일: 헌법 기초 위원 선출 1948년 5월 31일: 제헌 국회 소집. 헌법 기 초위원 30명과 전문위원 10명
연구노트
#2. 종이 질 - 일단은 OK. 하지만 만년필은 조금 비침. 종이질은 일단 합격점. 앞으로 종이질은 선택옵션으로 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종이가 너무 두꺼우면, 뒤에 비치지 는 않지만, 무겁고 유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두꺼우면 고의적 망실의 위험도 적고 적당한 심리적 부담도 줄 것이 다. 이점은 호불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단은 괜찮아 보인다. 필자의
ÀÚ¿øºÀ»ç-2010°¡À»°Ü¿ï-3
2010 희망캠페인 쪽방의 겨울은 유난히 빨리 찾아옵니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오르는 기름 값은 먼 나라 이야기 마냥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내 몸 하 나 간신히 누일 전기장판만으로 냉기 가득한 방에서 겨울을 보내야 합니다. 한 달에 열흘정도 겨우 나가는 일용직도 겨울이 되면 일거리가 없어, 한 달 방값을 마련하 기 어렵고, 일을 나가지 못하면 밖으로 쫓겨 날
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5월전체 2005.6.9 5: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개 지역지식재산센터 를 통해 발명가와 중소기업들에게 기술개발에서 선진국은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어린이 비만예방 동화 연극놀이 글 김은재 그림 이 석
캥거루는 껑충껑충 뛰지를 못하고, 여우는 신경질이 많아졌어요. 동물 친구들이 모두 모두 이상해졌어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멧돼지네 가게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염소 의사 선생님은 상수리나무 숲으로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답니다. 상수리나무 숲에는 어떤 비법이 숨겨져 있는 지 우리 함께 숲으로 가볼까요? 이 동화책은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緊 張 冷 戰 體 制 災 難 頻 發 包 括 安 保 復 舊 地 震 人 類 史 大 軍 雷 管 核 禁 忌 對 韓 公 約 ㆍ 大 登 壇 : : : 浮 上 動 因 大 選 前 者 : : : 軸 : : : 對 對 對 對 對 戰 戰 利 害 腹 案 恐 喝 前 述 長 波 大 産 苦 逆 說 利 害 大 選 大 戰 略 豫 斷 後 者 惡 不 在 : : 對 : 軟 崩 壞
감사회보 5월
contents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동정 및 안내 상장회사감사회 제173차 조찬강연 개최 상장회사감사회 제174차 조찬강연 개최 및 참가 안내 100년 기업을 위한 기업조직의 역 량과 경영리더의 역할의 중요성 등 장수기업의 변화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윤정구 이화여자대학교
광주시향 최종22
광주시향 최종22 2015.8.26 4:22 PM 페이지1 VOL.7 2015. 09 9월 4일(금) Masterwork Series Vl 프랑스 기행 9월 22일(화) 가족음악회 팝스콘서트 광주시향 최종22 2015.8.26 4:23 PM 페이지23 20세기 이전의 유명한 작곡가가 쓴 비올라 곡은
0.筌≪럩??袁ⓓ?紐껋젾001-011-3筌
3 4 5 6 7 8 9 10 11 Chapter 1 13 14 1 2 15 1 2 1 2 3 16 1 2 3 17 1 2 3 4 18 2 3 1 19 20 1 2 21 크리에이터 인터뷰 놀이 투어 놀이 투어 민혜영(1기, 직장인)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가치가 있는 일을 해 보고 싶 어 다니던 직장을 나왔다. 사회적인 문제를 좀 더 깊숙이 고민하고, 해결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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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anhak Foundation News VOL. 150 * 2011. 12. 30 논단 이슈별 CSR 활동이 기업 충성도에 미치는 영향 : 국가별 및 산업별 비교분석 최 지 호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Ⅰ. 서론 Ⅰ. 서론 Ⅱ. 문헌 고찰 및 가설 개발 2. 1. 호혜성의 원리에 기초한 기업의 사회적 투자에 대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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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희은 강 석우의 커버스토리 인기코너 남자는 왜 여자는 왜 를 이끌어 가고 있는 김용석, 오숙희 씨. 2007 06 I 여성시대가 흐르는 곳 I 04 >>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의 소순임 씨를 찾아서 I 창 가 스 튜 디 오 I 08 >> 여성시대의 남자 김용석, 여성시대의 여자 오숙희 I 편 지 I 14 >> 아이들의 용돈 외 I 여성시대 가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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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비계획의 기본구상 5.1 유적 및 유구 정비 복원 사례연구 5.1.1 미륵사지(彌勒寺址) 미륵사지는 삼국유사 백제 무왕조에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師子寺)로 가는 길에 용화산 밑의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나 왕비의 청에 의하여 이곳을 메우고 3개의 불당과 탑, 회랑 등을 세웠 다는 기록이 있으며, 미륵사의 배치는 삼원병렬식(三院竝列式)으로 동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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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내지(6장~8장)최종 2007.8.3 5:43 PM 페이지 168 in I 덕수리 민속지 I 만 아니라 마당에서도 직접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장팡뒤의 구조는 본래적인 형태라 고 할 수는 없으나, 사회가 점차 개방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폐쇄적인 안뒤공간에 위치하던 장항 의 위치가 개방적이고 기능적인 방향으로 이동해가는 것이 아닌가 추론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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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77 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78 2. 1 2 3 4 5 6 7 8 9 10 11 12 79 80 II 81 82 II 83 84 II 85 86 II 87 s t r e t c h i n g 88 II 89 90 II 91 d a n c e s p o r t s 92 II 93 ;4#; 94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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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102 103 104 105 혁신 17과 1/17 특히 05. 1부터 수준 높은 자료의 제공과 공유를 위해 국내 학회지 원문 데이 >> 교육정보마당 데이터베이스 구축 현황( 05. 8. 1 현재) 구 분 서지정보 원문내용 기사색인 내 용 단행본, 연속 간행물 종 수 50만종 교육정책연구보고서, 실 국발행자료 5,000여종 교육 과정 자료 3,000여종
단양군지
제 3 편 정치 행정 제1장 정치 이보환 집필 제1절 단양군의회 제1절 우리는 지방자치의 시대에 살며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주민의 복지증진을 꾀 하고 있다. 자치시대가 개막된 것은 불과 15년에 불과하고, 중앙집권적 관행이 커 서 아직 자치의 전통을 확고히 자리 잡았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며, 앞으로의 과제 가 더 중요하다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우리지역 지방자치의
2002report220-10.hwp
2002 연구보고서 220-10 대학평생교육원의 운영 방안 한국여성개발원 발 간 사 연구요약 Ⅰ. 연구목적 Ⅱ. 대학평생교육원의 변화 및 외국의 성인지적 접근 Ⅲ. 대학평생교육원의 성 분석틀 Ⅳ. 국내 대학평생교육원 현황 및 프로그램 분석 Ⅴ. 조사결과 Ⅵ. 결론 및 정책 제언 1. 결론 2. 대학평생교육원의 성인지적 운영을 위한 정책 및 전략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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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85 86 87 88 89 1 12 1 1 2 + + + 11=60 9 19 21 + + + 19 17 13 11=60 + 5 7 + 5 + 10 + 8 + 4+ 6 + 3=48 1 2 90 1 13 1 91 2 3 14 1 2 92 4 1 2 15 2 3 4 93 1 5 2 6 1 2 1 16 6 5 94 1 1 22 33 55 1 2 3 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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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학회지 2004;25:721-739 비만은 심혈관 질환, 고혈압 및 당뇨병에 각각 위험요인이고 다양한 내과적, 심리적 장애와 연관이 있는 질병이다. 체중감소는 비만한 사람들에 있어 이런 위험을 감소시키고 이들 병발 질환을 호전시킨다고 알려져 있고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을 호전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런 믿음을 지지하는 연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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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5 128.491 156.559 12 23 34 45 안녕하십니까? 본 설문은 설악산과 금강산 관광연계 개발에 관한 보다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귀하께서 해주신 답변은 학문적인 연구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다가오는 21세기 한국관광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할 것입니다.
새국어생활제 14 권제 4 호 (2004 년겨울 )
새국어생활제 14 권제 4 호 (2004 년겨울 ) 네티즌들이궁금해하는어원몇가지 (3) 115 새국어생활제 14 권제 4 호 (2004 년겨울 ) 네티즌들이궁금해하는어원몇가지 (3) 117 새국어생활제 14 권제 4 호 (2004 년겨울 ) 네티즌들이궁금해하는어원몇가지 (3) 119 새국어생활제 14 권제 4 호 (2004 년겨울 ) 네티즌들이궁금해하는어원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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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0 0 9 M I N I S T R Y O F C U L T U R E, S P O R T S A N D T O U R I S M 2009 M I N I S T R Y O F C U L T U R E, S P O R T S A N D T O U R I S M 2009 발간사 현재 우리 콘텐츠산업은 첨단 매체의 등장과 신기술의 개발, 미디어 환경의
*표지-결혼과가정 2012.10.23 3:59 PM 페이지1 태산아이인쇄그룹(국) 2261-2488 2540DPI 175LPI James W. Knox 시리즈 성령의 열매 James W. Knox 지음 김영균 옮김 도서출판 킹제임스 신국판 352쪽 값 12,000원 성경적 종말론 James W. Knox 지음 김영균 옮김 도서출판 킹제임스 신국판 220쪽 값
2015-05
2015 Vol.159 www bible ac kr 총장의 편지 소망의 성적표 강우정 총장 매년 1학년과 4학년 상대로 대학생핵심역량진단 (K-CESA)을 실시한지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진 단은 우리 학우들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직업인으로서 핵심역량을 어느 정도 갖추었나를 알아보는 진단입니다. 지난번 4학년 진단 결과는 주관처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41호-소비자문제연구(최종추가수정0507).hwp
소비자문제연구 제41호 2012년 4월 해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용약관의 약관규제법에 의한19)내용통제 가능성* : Facebook 게시물이용약관의 유효성을 중심으로 이병준 업 요약 업 규 규 논 업 쟁 때 셜 네트워 F b k 물 규 았 7 계 건 됨 규 규 업 객 계 규 므 받 객 드 객 규 7 말 계 률 업 두 않 트 접속 록 트 른징 볼 규 업 내
해피메이커 표지.indd
Contents _ 02 _ 04 _ 06 _ 08 _ 14 _ 15 _ 16 _ 21 _ 24 _ 30 _ 32 _ 35 _ 38 _ 44 _ 56 _ 62 _ 66 _ 68 _76 _84 _86 _92 _112 COVER STORY CEO Message 02 03 KSD HISTORY HISTORY 2006-2010 2011-2012 04 05 ISSUE
<52452D30342DB3F3C3CCB0E6B0FCB0A1C4A1C6F2B0A1BFCDB0FCB8AEB9E6BEC82830363031323129B1E8B1A4C0D32E687770>
KEI 2005 RE-04 연구보고서 농촌의 경관가치 평가와 관리 방안 - 심미적 경제적 가치와 환경정책 김광임 박용하 최재용 박재근 박소현 KEI 2005 RE-04 연구보고서 농촌의 경관가치 평가와 관리 방안 - 심미적 경제적 가치와 환경정책 김광임 박용하 최재용 박재근 박소현 - i - - ii - - iii - - iv - - v - - vi -
화보 끝없는,, 끝나지 끝나지 않는 않는 즐거움 끝없는 얼음벌판 인제빙어축제 강원도 인제군 내설악 지류와 내린천의 관문인 소양호, 눈 덮인 내설악의 환상적인 경관을 배경으로 은빛 빙어를 주제로 펼쳐 지는 축제가 있다. 바로 인제빙어축제이다. 인제빙어축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 민국 대표축제이다. 10회 축제기간 동안 방문객 100만 명 돌파(2007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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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성은 인간이 태어난 직후부터 시작되어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므로 성과 건강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청소년기에 형성된 성가치관은 평생의 성생활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 성문화의 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성과 건강 단원에서는 생명의 소중함과 피임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성매매와 성폭력의 폐해, 인공임신 중절 수술의 부작용 등을 알아봄으로써 학생 스스로 잘못된 성문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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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산업중분류, 조직형태 및 동별 사업체수, 종사자수 단위 : 개, 명 금정구 서1동 서2동 서3동 Geumjeong-gu Seo 1(il)-dong Seo 2(i)-dong Seo 3(sam)-dong TT전 산 업 17 763 74 873 537 1 493 859 2 482 495 1 506 15 519 35 740 520 978 815 1 666 462
춤추는시민을기록하다_최종본 웹용
몸이란? 자 기 반 성 유 형 밀 당 유 형 유 레 카 유 형 동 양 철 학 유 형 그 리 스 자 연 철 학 유 형 춤이란? 물 아 일 체 유 형 무 아 지 경 유 형 댄 스 본 능 유 형 명 상 수 련 유 형 바 디 랭 귀 지 유 형 비 타 민 유 형 #1
2016년 신호등 10월호 내지.indd
www.koroad.or.kr E-book 10 2016. Vol. 434 62 C o n t e n t s 50 58 46 24 04 20 46 06 08, 3 3 10 12,! 16 18 24, 28, 30 34 234 38? 40 2017 LPG 44 Car? 50 KoROAD(1) 2016 54 KoROAD(2), 58, 60, 62 KoROAD 68
目 次 第 1 章 總 則 第 1 條 ( 商 號 )... 1 第 2 條 ( 目 的 )... 2 第 3 條 ( 所 在 地 )... 2 第 4 條 ( 公 告 方 法 )... 2 第 2 章 株 式 第 5 條 ( 授 權 資 本 )... 2 第 6 條 ( 壹 株 의 金 額 )..
제 정 1973. 2. 28 개 정 2010. 3. 19 定 款 삼성전기주식회사 http://www.sem.samsung.com 目 次 第 1 章 總 則 第 1 條 ( 商 號 )... 1 第 2 條 ( 目 的 )... 2 第 3 條 ( 所 在 地 )... 2 第 4 條 ( 公 告 方 法 )... 2 第 2 章 株 式 第 5 條 ( 授 權 資 本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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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140242-000001-08 2013-927 2013 182 2013 182 Contents 02 16 08 10 12 18 53 25 32 63 Summer 2 0 1 3 68 40 51 57 65 72 81 90 97 103 109 94 116 123 130 140 144 148 118 154 158 163 1 2 3 4 5 8 SUMMER
A000-008목차
1 농어촌 지역과 중소도시 및 대도시 낙후지역에 150개의 기숙형공립 고교를 설립하여 학생의 80% 정도가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는 시설을 준비하겠습니다. 농어촌 지역과 중소도시 등 낙후지역에 150개의 기숙형공립고교를 설립 학생의 80% 정도가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는 시설을 준비하고, 기숙사비는 학생의 가정형편을 반영한 맞춤형 장학금으로 지원하여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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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48.6% 남 51.4% 40대 10.7% 50대 이 상 6.0% 10대 0.9% 20대 34.5% 30대 47.9% 초등졸 이하 대학원생 이 0.6% 중졸 이하 상 0.7% 2.7% 고졸 이하 34.2% 대졸 이하 61.9% 직장 1.9% e-mail 주소 2.8% 핸드폰 번호 8.2% 전화번호 4.5% 학교 0.9% 주소 2.0% 기타 0.4% 이름
Drucker Innovation_CEO과정
! 피터드러커의 혁신과 기업가정신 허연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Doing Better Problem Solving Doing Different Opportunity ! Drucker, 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 1999! Drucker, 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1 [2]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MBL활용화학실험 수일고등학교 윤 상 2 [2]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MBL활용화학실험 구성고등학교 류 우 3 [2]2018개방실험-학생2기[
1 [1]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3D프린터이해와활용 상현고등학교 2 1 28 유 훈 2 [1]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3D프린터이해와활용 수원고등학교 2 6 24 정 찬 3 [1]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3D프린터이해와활용 수원고등학교 2 8 3 김 헌 4 [1]2018개방실험-학생2기[
현안과과제_8.14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적 파급 영향_150805.hwp
15-27호 2015.08.05 8.14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적 파급 영향 - 국민의 절반 동참시 1조 3,100억원의 내수 진작 효과 기대 Executive Summary 8.14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적 파급 영향 개 요 정부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침체된 국민의 사기 진작과 내수 활성화를 목적으로 오는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이에 최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