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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미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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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시아리뷰 제3권 제2호(통권 6호), 2013: 13~32 지식인과 신념의 전통 : 세카이 와 한반도 문제* 한상일 국민대학교 명예교수 지식인의 중요한 사회적 기능의 하나는 각 영역에서 신념의 전통 을 이어가고 설명하고, 수정하고, 그것을 공통의 문화로 전환하여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고 다음 세대로 전수하는 것이다. 이 글은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의 중심체라고도 할 수 있 는 월간지 세카이 가 한반도 문제에서 어떠한 신념의 전통 을 이어가려고 했나를 찾아보는 데 있다. 전전( 戰 前 )의 현상 에 대한 솔직한 자기반성, 사회정의,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논조의 공정성 을 담보로 1946년 1월 창간한 세카이 는 1960년대 이후 한반도 문제를 가장 집중적으로 취급한 언론매체다. 먼저 세카이 의 성격과 창간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 고, 이어서 창간 이후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한국관계의 논문, 인터뷰, 여행기, 좌담회 등의 내용을 분석했다. 분석의 결과는 세카이 와 진보적 지식인들은 남한을 퇴화하는 나라, 북한을 지상의 낙원 으로 보는 오류와 편견을 보였고, 이는 결과적으로 한일관계에 바람직하지 못한 신념의 전통 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했음을 지적했다. 주제어 세카이, 진보적 일본 지식인, 남한, 북한 I. 한국을 보는 두 개의 시선 전통적으로 일본 지식인은 보수와 진보의 구별 없이 한국을 특수한 이웃으 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메이지 유신 이후 일 본 지식인이 한국을 보는 시선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개화시 켜야 할 대상 으로서의 한국관이다. 이러한 시각은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후쿠자와 유기치( 福 澤 諭 吉 )의 조선관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조선을 하나의 작은 야만국( 一 小 野 蠻 國 ) 으로 보았던 후쿠자와에 의하면 일본은 조선 의 국세가 미개하다면 이를 인도해야 하고, 국민이 고루하다면 이를 깨우치도록 * 이 글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가 주관하는 아시아 포럼에서 2013년 11월 14일 진보적 일본 지식인과 한일관계: 세카이 와 한반도 문제 라는 주제로 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2 14 아시아리뷰 제3권 제2호(통권 6호), 2013 이끌어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福 澤 諭 吉, 1959). 즉 그에게 한국은 지도 와 개화 의 대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침략 을 위장한 연대 의 대상으로 발전했다. 이는 후쿠자와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다루이 도키치( 樽 井 藤 吉 )의 대동합방론( 大 東 合 邦 論 ) 이나, 또는 오이 겐타로( 大 井 憲 太 郞 )가 주도했던 오사카( 大 阪 )사건 (1885)의 동기 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던 한국관이다. 또 다른 하나의 시선은 이익선 으로서의 한국관이다. 일본의 독립과 안전보 장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본토, 즉 주권선의 방어와 함께, 주권선의 안 전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인접 지역, 즉 이익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전 의 일본 대외정책의 근간은 이익선 을 대륙으로, 시베리아로 그리고 동남아시아 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었다. 한반도는 이 이익선의 요체이고 최전선에 있었다. 메이지 유신 후 일본의 지식인들은 일본의 안보와 국력확장을 위해서는 대륙으 로 통하는 문 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를 선점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없었다. 만 일 한반도가 제3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간다면 일본의 안보가 위태로울 뿐만 아 니라 대륙 진출의 길이 막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대륙낭인의 선구적 인물이 라 할 수 있는 아라오 세이( 荒 尾 精 )가 일찍이 일본의 영토 보존과 대륙 진출을 위 해서는 조선부식의 뜻을 완결 해야 한다는 것도 같은 뜻이라 할 수 있다. 정한 론 이나 후쿠자와의 탈아론 도 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개화 의 대상과 이익선 이라는 한국을 보는 두 시선은 결코 서로 배치되거나 상충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호 보완적이었다. 메이지 이후 한반도를 식 민지화 하는 과정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후 일본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관의 심층에도 이러한 두 시선 이 여 전히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한국을 국제사회에서 공존하면서 경쟁하고 협조하 는 보편적 외국이라기보다는 특수한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특수 하다는 것은 강화도 조약 이후 1905년 을사강제조약에 이르는 식민지화의 과 정과 그 후 40년에 이르는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특수성 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개화 와 이익선 의 대상이라는 의미에서 특수성 을 뜻한다. 한국 민주화 돕기 나 부산적기론 이 그것이다. 보수 지식인이나 정치권이 주도한 부산적기론 은 한국 땅 최남단이라 할 수 있는 부산에 적기( 赤 旗 ), 즉 붉은 공산당 깃발이 나부끼면 일본도 공산화의 위험
3 지식인과 신념의 전통 한상일 15 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 해야 하고, 한국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기초를 마련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이 일본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논리다. 이는 한일회담 촉진의 중 요한 명분으로 작용했다. 보수 정객이나 관리, 또는 보수 지식인들은 한일국교 정상화는 한국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안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부산적기론 은 한국전쟁 때도, 1980년의 광주사태 때도 등장했다. 개화 의 대상으로서 한국관은 한국의 민주화 돕기 로 나타났다. 진보적 지식 인들이 주도한 민주화 돕기 의 심층에는 한국인은 억압 체제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다는 전제, 일본은 한국인을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명의식, 그렇게 함으로써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보상할 수 있다는 심리,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 한반도 통일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이 한데 엉켜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정치, 사회, 경제적 토양이 그들의 논리와 행동을 정당화시키기에 충분했다. 박정희 유신체제와 전두환 시대와 맞물려 있는 1960년대 이후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진보적 일본 지식인들은 한반도 문제에 관하여, 특히 한국의 민주 화 를 돕는다는 이름으로 열정적으로 발언했다. 그들은 민주화, 인권, 인도주의, 자유 등을 명분으로 삼고 한국적 현상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발언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내 반체제 세력과 연대해 독제체제 의 붕괴를 유도할 것을 촉구했다. 진보적 지식인의 이러한 논리와 사명의식의 밑바탕에는 한국을 지도 해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 있었다. 한일국교정상화, 유신, 김대중 납 치, 광주사태를 거치면서 지도의 논리는 더욱 강화되었다. 전후 진보적 지식인의 결집체라 할 수 있는 이와나미( 岩 波 )서점의 월간 종합잡 지 세카이( 世 界 ) 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에 관한 세카이 의 보도는 오류 와 편견 그리고 비이성적인 판단과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 지 금에 와서 되돌아본다면 이러한 세카이 의 보도는 세카이 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한일 두 나라의 국민교류에 부정적 역할을 했다. 일본인에게 그릇된 한반 도와 한국인의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한국에는 민중폭력혁명의 씨앗을 뿌려주 었다.
4 16 아시아리뷰 제3권 제2호(통권 6호), 2013 세카이 의 한반도관계 보도 성향과 내용을 찾아보기 전에 먼저 이와나미서 점의 세카이 가 어떤 매체인지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II. 세카이, 어떤 잡지인가? 세카이 의 창간은 이와나미출판사의 창업자인 이와나미 시게오( 岩 波 茂 雄 )의 발의로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창간 실무를 담당했고, 그 후 초대 편집장으로 상 당 기간 잡지를 이끈 요시노 겐자부로( 吉 野 源 三 郞 )는 창간의 계기를 일본의 무조 건항복 다음 날 이와나미가 들려준 패전의 의미에서 찾고 있다. 메이지( 明 治 ) 이래 서구의 문화를 열심히 공부하고, 동양의 문화도 새롭게 다시 보 면서 겸허하게 노력해온 일본이 그 겸허함을 잊어버리고, 자기 주제도 모르면서 오 만에 빠져 당치도 않은 폭력을 휘두른 것이 이번 전쟁이라는 것이 이와나미의 생각 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표현에 의하면 일본의 패전은 천벌( 天 譴 )이고, 이제 오만함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吉 野 源 三 郞, 1966). 다시 시작 하는 첫 번째 일이 종합잡지를 발간하는 것이었다. 이와나미는 일 본이 스스로 자초한 개벽 이래의 최대의 국욕( 國 辱 ) 인 개전과 패전 은 도의와 문화의 사회적 수준이 낮은 데서부터 기인 하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도의 와 문화가 본래의 지위를 상실하고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민족적 불행과 국가적 굴욕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이와나미가 종합잡지를 창간하겠다 는 의지는 새로운 일본의 도의와 문화 건설에 있었다. 이와나미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모여 동심회( 同 心 會 )를 만들고 창간을 서 둘렀다. 동심회 회원은 당시 문화, 언론, 학계, 미술, 작가를 대표하는 최고의 지 성인들이 모였다. 아베 요시시게( 安 部 能 成 ), 시가 나오야( 志 賀 直 裁 ), 무샤코지 사네 아츠( 武 者 小 爐 篤 ), 쓰다 소기치( 津 田 左 右 吉 ), 야마모토 유조( 山 本 有 三 ), 와츠지 데츠로( 和 辻 哲 郞 ), 다나카 고타로( 田 中 耕 太 郞 ), 요코다 기사부로( 橫 田 喜 三 郞 ), 고이즈미 신조( 小 泉 信 三 ), 오우치 효에( 大 內 兵 衛 ), 야나기 무네요시( 柳 宗 悅 ), 이시바시 단잔( 石 橋 湛 山 ), 마츠 모토 시게하루( 松 本 重 治 ), 히로츠 가즈오( 廣 津 和 郞 ), 야스다 유키히코( 安 田 靭 彦 ) 등이
5 지식인과 신념의 전통 한상일 17 그 일부다. 창간 준비는 이와나미의 오랜 친구이면서 동심회 회장인 아베 요시시게의 책 임 아래 진행되었고, 실무는 요시노 겐자부로가 담당했다. 전전의 현상에 대한 솔직한 자기반성과 비판, 문화를 대중과 연결하는 사명, 논조의 공정성과 불편 부당, 그리고 세대를 초월한 대화의 광장을 만든다는 뚜렷한 편집원칙을 가지고 출범했다. 전후 일본 지성 의 상징이었던 종합잡지 세카이 는 패전으로부터 4 개월 후인 1945년 12월 창간호(1946년 1월호)를 내놓았다. 초판 8만 부가 순식간 에 다 팔렸다. 창간호의 글들은 세카이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권두논문이라 할 수 있 는 아베 요시시게의 글에서는 일본이 필요로 하는 도덕 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오늘 일본에서 도덕의 위치는 대단히 위태롭다. 그러나 오늘 일본에서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도덕이다. 도덕은 현실에 서서 이상을 우러러 보고, 그리고 그 이상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인간의 행동이다 ( 剛 毅 と 眞 實 と 智 慧 と を ). 그 외에 천황기관설을 주장했던 미노베 다츠기치( 美 濃 部 達 吉 )의 민주주의와 우리 의회제도, 원로경제학자 오우치 효에의 직면한 인플레이션, 국제법학 자 요코다 기사부로의 국제민주주의의 원리, 문인 무샤코지 사네아츠의 패전 과 자신이 원하는 세계, 도쿄의 폐허를 배경으로 한 부랑아의 삶을 통해 전쟁 의 불길도 태워버리지 못한 주옥( 珠 玉 )의 존재를 그린 소설가 시가 나오야의 단 편 회색의 달 등이 수록되었다. 창간호 글들이 시사하고 있는 것과 같이 초기 세카이 의 보도와 편집방향은 도덕과 문화 확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일본이 나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1949년부터는 1년에 한 번씩 중요한 이슈를 중 심으로 특집 을 편집했다. 최초의 특집은 평화 문제 (1949/3월호)였고, 두 번째는 세계평화와 강화 문제 (1950/4월호)였다. 1952년부터는 특집의 빈도가 잦아졌고, 1955년부터는 거의 매호를 특집 중심으로 편집했다. 대체로 195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의 논조는 주로 일본의 진로에 역점을 두고 있다. 점령통치, 강화조약, 심화되고 있는 냉전, 소련의 동향과 중국대륙의 변화, 55년 체제의 성립 등 국내외의 격변 속에서 일본의 진로와 국제사회에서의 위 상을 어떻게 확립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필진은 올드
6 18 아시아리뷰 제3권 제2호(통권 6호), 2013 리버럴리스트(old liberalist) 로 알려진 인물들이었다. 동심회 회원 외에 자주 등장 하는 인물들은 미노베 다츠기치, 시미즈 이쿠타로( 淸 水 畿 太 郞 ), 난바라 시게루( 南 原 繁 ), 야나이하라 다다오( 矢 內 原 忠 雄 ), 쓰루 시게토( 都 留 重 人 ), 야마가와 히토시( 山 川 均 ), 야나기타 구니오( 柳 田 國 男 ), 오츠카 히사오( 大 塚 久 雄 ), 쓰루미 유스케( 鶴 見 祐 輔 ), 료야 마 마사미치( 蠟 山 政 道 ), 구노 오사무( 久 野 收 ), 나카노 요시오( 中 野 好 夫 ) 등 대체로 메 이지 시대에 태어나 다이쇼 데모크라시와 쇼와 군국주의를 체험한 사람들이었 다. 1960년대 이후 필진의 세대가 바뀌면서 논조의 방향도 점차 마르크시즘에 경 도하는 경향을 나타냈고, 반미( 反 美 ) 반자민당, 친사회주의 노선의 색채를 드러 냈다. 미일안보조약의 폐기를 주장하고,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열렬히 지지하고, 미국의 베트남 정책과 이에 협조하는 일본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1946년 5 월호에 그의 대표적 논문( 超 國 家 主 義 の 論 理 と 心 理 )을 발표했던 마루야마 마사오( 丸 山 眞 男 )가 1956년 이후 세카이 에 거의 글을 쓰지 않았던 것도 이념적 충돌 때 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동안 한반도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에 이르기까 지 한반도에 대한 세카이 의 관심은 크지 않았다. 창간 후 1972년까지 세카 이 는 단 두 번의 특집을 - 조선동란 3년 (1953/6), 일한조약조인 이후 (1965/9) - 할애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재일조선인 북송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세 카이 는 초기부터 친북한 노선을 명백히 드러냈다. 그러나 1972년 12월호의 특 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장 이후 세카이 는 마치 한반도정세를 다 루기 위한 잡지인 양 이상할 정도로 한반도 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반 남친북( 反 南 親 北 ) 노선의 길을 걸었다. 1973년 한 해만 4차례 특집 (5, 9, 10, 11월호) 을 꾸몄다. 김대중 납치와도 맞물려 있는 이 시기부터 세카이 는 한반도를 중 요한 주제로 상정했다.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과 다큐멘트, 김대중 납치 사건 도 이때부터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야스에 료스케( 安 江 良 介 )가 편집 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였다. 한반도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으나 그 주제는 과거 식민지 시대에 대한 반 성도 아니었고, 일본 내에서 차별 대우를 받고 있는 재일( 在 日 ) 조선인이나 한국 인에 대한 인도주의적 관심도 아니었다. 인권, 도덕, 평화, 휴머니즘을 강조하면
7 지식인과 신념의 전통 한상일 19 서도 실상은 한국정부 타도 와 김일성 대변 으로 일관하는 불가사의한 태도를 보였다. 이 시기 한반도 문제에 관한 세카이 의 기사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 로 비이성적이고 편향된 보도였으며, 많은 오류와 편견을 드러냈다. III. 오류와 편견 1. 식민지 시대에 대한 인식 오류의 시작은 한반도에 관한 첫 기사에서부터 나타났다. 세카이 에 등장하 는 최초의 한반도 관계 기사는 식민지 시대를 그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나를 잘 보여주고 있다. 1946년 5월호에 게재된 조선통치에 대한 반성 이라는 논문 이 그것이다.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교( 京 城 帝 國 大 學 敎 )의 교수였던 스 즈키 다케오( 鈴 木 茂 雄 )가 집필한 이 논문은 제목과 달리 식민통치의 정당성과 시 혜론을 펴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일본이 실시한 동화정책은 이념적으로나 철학적 으로 선의 에 바탕한 것이었으나, 이를 실천하는 방법 이 졸렬했기 때문에 실패 했다는 것이다. 식민통치라는 원죄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다만 통치방법에 대 한 후회 였다. 이는 도의와 문화에 의한 새 질서 창조 라는 창간 정신에도 부합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전의 현상에 대한 솔직한 자기반성과 비판 이라는 편 집원칙에 배치되고 있다. 뒷날 한국을 방문한 야스에 료스케 편집장은 어떻게 이런 기사가 실렸는지 의아하다고 하면서 조선 지배의 잘못을 근본부터 추궁 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의식 속에서는 전전과 전후가 계속 되었고, 세카이 지식인도 이에 자유롭지 못했음을 솔직히 인정했다. 2. 재일조선인 북송 재일조선인 북송에 대한 세카이 의 태도와 보도는 이와나미서점과 세카이 의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오점 의 하나다. 일본정부는 인도주의라는 이름 아래 1959년 12월 14일 1차로 975명의 재일조선인을 북한으로 송환했다. 귀국사업
8 20 아시아리뷰 제3권 제2호(통권 6호), 2013 으로 알려진 재일교포 북송 프로젝트는 1984년까지 계속됐다. 이 기간 동안에 일본인 배우자를 포함하여 9만 3,344명의 재일교포가 북한으로 보내졌다(일본인 처와 자녀 6,839명). 테사 모리스-스즈키(Tesa Moris-Suzuki)의 실증적 연구가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이 귀국사업 은 일본 정부, 외무성, 일본적십자사, 진보적 언론매체 가 합작한 인도주의를 가장한 가장 비인도적 사업 이었다. 1 실질적으로는 추방 이나 다름없는 북송을 인도적 조치 로 위장하기 위하여 일본의 언론은 북한을 이상적이고도 완벽한 사회주의체제로 만들어 선전했다. 그 최전선에 세카이 가 있었다. 세카이 는 재일교포의 북송을 민족의 대이동, 인류역사상 볼 수 없었던 큰 평화운동, 제2의 8 15 광복의 감동, 자유권에서 공산권으로의 집단 대이동, 조국 건설과 통일투쟁에 참여하려는 숭고한 정신의 구체적 실천, 일본과 북한의 우호의 다리 등으로 찬양하면서 앞장서서 지원하고 나섰다. 그리고 한국에서 전개되는 북송반대운동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 하여 반일감정을 부추겨 내부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한 이승만의 술책 이 라고 평가했다. 귀국사업에 더 많은 조선인들을 참여시키기 위하여 세카이 는 북한을 지 상의 낙원, 또는 노동이 즐거운 나라 로 선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본에 서 차별대우와 실업 상태에 있었던 귀국자들은 정말로 극락정토( 極 樂 淨 土 ) 에 안 착했다고 세카이 는 전했다. 그리고 귀국자들은 모두가 희망에 따라 취직하고, 주택을 공급받고, 전액 국가가 부담하는 교육을 받고, 사회보장이 완벽하게 보 장된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전파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 었다. 귀국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조총련의 한 지도자가 1963년 실제로 북한을 보고 난 후 귀국운동과 북의 실상을 다음과 같이 고발하고 있다. 북조선은 지상의 낙원이다 라고 조총련이 선전하고 일본의 좌익 매스컴도 북조선 1 귀국사업 에 참여했던 관계자, 탈북자, 연구가들의 고발을 통해서 뒷날 귀국사업 과 북한의 실 상이 많이 알려졌다. 예를 든다면, 金 元 祚, 凍 土 の 共 和 國 - 北 朝 鮮 幻 滅 紀 行 ( 亞 紀 書 房, 1984); 石 田 收, 北 朝 鮮 の 日 本 人 妻 からの 手 紙 ( 日 新 報 道, 1994); 鄭 箕 海, 歸 國 船 - 北 朝 鮮 凍 土 への 旅 立 ち ( 文 藝 春 秋, 1997); 宮 崎 俊 輔, 北 朝 鮮 大 脫 出 - 地 獄 からの 生 還 ( 新 潮 社, 2000); 高 崎 宗 司 / 朴 正 鎭, 歸 國 運 動 とは 何 だったのか - 封 印 された 日 朝 關 係 史 ( 平 凡 社, 2005) 등 참조.
9 지식인과 신념의 전통 한상일 21 예찬 기사를 게재했다. 그것 때문에 지상의 낙원을 찾아 많은 사람이 북조선으로 갔다. 그러나 북조선사회의 현실은 대대적으로 선전한 것과 같은 지상의 낙원은 아니었다. 비인도적 노예사회이고, 공산주의라는 독재와 수탈의 야만사회다. 귀국 자는 모두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의약품과 생활필수품의 결핍, 아니, 살아가는 모 든 자유가 박탈된 속에서 울어야만 했다( 關 貴 成, 1963). 귀국자들은 세카이 가 선전했던 것처럼 극락정토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죽 음의 동토( 凍 土 )에서 인간 이하의 비참하고 불행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북송대 열에 합류했던 일본인 처는 다시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죽어갔다. 결국 세카 이 는 많은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배우자를 인도주의와 평화라는 이름으로 죽음 의 땅으로 내모는 역할을 앞장서서 수행했다. 3. 남북한의 허구와 실상 세카이 는 전후 일본인에게는 어두운 한국 이미지[ 像 ]를 심어주었다. 그리고 한국에는 북한을 추종하며 민중폭력혁명을 꿈꾸는 세력의 씨를 뿌렸다. 그 후유 증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식민지 지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시작한 세카이 는 1960년대, 특히 한 일국교정상화 전후부터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다 1970년대와 1980 년대를 지나면서는 마치 한반도 문제를 다루기 위한 잡지인 것처럼 남북한의 정치 사회 경제 문제를 세카이적 시각을 가지고 기사화하여 독자에게 전달 했다. 특히 북한방문기, 김일성 회견기 그리고 TK생( 生 )이라는 익명의 한국 으로부터의 통신 을 연재하면서 북한은 희망찬 인민의 국가 이고, 한국은 권력 의 억압과 기아 속에서 민중이 허덕이는 암울하고도 절망적인 사회 로 만들었다. 한반도 문제를 다루면서 세카이 는 시종 반한친북( 反 韓 親 北 )의 논조를 지속함 으로써 퇴화하는 한국, 발전하는 북한 이라는 이미지를 독자들에게 심어주었 다.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세카이 는 인권, 민주, 평화, 정의, 진실이라는 이름 으로 남한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북한을 찬양했다.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한 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희망이 없는 반통일적이고 반민족적인 독재체제
10 22 아시아리뷰 제3권 제2호(통권 6호), 2013 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의 삶은 처참하고 암담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그 반대였다. 자주적이고, 정의롭고, 활력이 넘쳐흐르고, 인권이 보장되어 있으며,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는 밝은 내일을 약속하고 있는 지상의 낙원이었다. 남한을 이끌어온 이승만은 북진전쟁광, 미제국주의 주구 로, 박정희는 광인 ( 狂 人 ), 피해망상증 환자 로, 전두환은 살인마 로 불렀다. 그러나 북한의 김일성 은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였다. 김일성은 정치보다 휴머니즘을 우선하는 민중 의 영웅이었고, 전문가들이 모르는 것까지 알고 있는 전지전능한 신 과 같은 존 재였다. 세카이 는 북한 당국이 발표한 통계나 성명은 절대시하면서 한국정부의 발 표는 모두 조작 으로 몰아갔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가 체제를 연장하기 위한 대중동원의 수단으로 보도하면서, 북한의 천리마운동은 소극주의를 배제하고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한 자발적 인민운동으로 찬양했다. 실패로 끝난 북한 특 수요원의 청와대 습격(1968)은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 주적 내발적( 內 發 的 ) 혁명운동 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정부가 발표한 것처럼 북한 의 테러가 아니라 박정희체제에 항거하는 혁명적 상황에서 전개된 인민의 혁명 무장투쟁 이라는 것이었다. 미 정보함 푸에블로 호의 납치(1968)나 미 정찰기 추 격(1969)은 한국의 스파이를 북한에 잠입시키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규정 했다. 북한이 아니라 미국의 도발이라는 것이었다. 대한항공기 폭파사건(1987)은 한국정부의 조작이고, 3김과 노태우의 구도로 치른 대통령 선거(1987)에서 노태 우가 당선된 것은 컴퓨터 조작의 결과라고 기사화했다. 이러한 기사들은 다시 한국으로 역수입되어 정부 비판의 무기 로 활용되었다. 1954년 이후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세카이 는 15편의 북한방문기 를 게 재했다. 방문자들은 정치인, 언론인, 작가, 교수, 노동운동가들이었다. 방북기는 모두 하나같이 황당무계한 북한의 허구적 발전상을 그대로 선전하고, 김일성의 지도력을 찬양했다. 예를 든다면, 한 경제학자의 방북기에 의하면 1946년의 공 업생산지수를 100으로 했을 때 30년 후인 1976년의 지수는 1만 5,536으로 성장 했다. 농업 성장 또한 1974년에 이르러 1946년에 비해 21배 증가했다. 북한을 방문했던 아사히신문 의 한 기자에 의하면 북한은 문자 그대로 천리를 달리
11 지식인과 신념의 전통 한상일 23 는 하늘의 말, 천리마 의 추세로 발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은 김일 성의 현지지도 와 초인적 서사시적 노력 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정말 경제학자 가 이런 통계를 믿었고, 언론인의 천리마 추세의 발전 은 과연 현장취재의 결과 였을까? 세카이 는 1972년부터 1991년 사이에는 10회의 김일성 회견기 를 게재했 다. 정치인, 교수, 언론인과 이루어진 회견기지만 10회 가운데 6회는 세카이 의 편집장과 사장, 그 가운데도 5회가 세카이 와 이와나미서점을 이끌었던 야스 에 료스케와 이루어졌다. 1971년 7월 키신저 미 국무장관의 중국 방문으로 시작 된 미중관계 개선, 남북대화, 일중관계 개선 등의 변화에 맞추어 1972년부터 김 일성이 세카이 에 등장했다. 김일성은 세카이 지식인과 혁신계 정치인들과 의 회견을 통해서 주체사상을 전파했고, 북한의 발전상을 선전했으며, 사회주의 식 통일정책을 홍보했고, 반미사상을 고취했고, 일본 안의 좌파 지식인과 한국 의 반체제 세력의 연대를 촉구했다. 세카이 는 북한의 홍보지로, 그리고 김일 성의 대변자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했다. 한반도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급한 세카이 의 필진은 당시 일본은 물론 세계 적으로도 명망 있는 인물들로 구성돼 있었다. 2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을 위시 한 다수의 문인, 국제정세에 정통한 국제정치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언론인, 평론가, 예술인 등 가장 지성적이고도 이성적인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북한의 현상과 김일성에 대해서만은 그렇게 비이성적이고 무 비판적이고 찬양으로 일관했을까? 일본의 진보적 지성을 대변하는 세카이 의 편집장일 뿐만 아니라 대표적 출판사인 이와나미서점의 사장이 김일성의 발언 을 마치 신의 교시 처럼 받들고 그것을 세계에 전파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진정으로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있는 곳이라고 믿었을까? 암울한 남한, 밝은 북한 이라는 편집방향은 무엇에 근거한 것일까? 2 도쿄여자대학의 학장인 스미야 미키오( 隅 谷 三 喜 郞 ), 도쿄대학의 후쿠다 간이치( 福 田 歡 一 ), 사카 모토 요시카즈( 坂 本 義 和 ), 와다 하루키( 和 田 春 樹 ), 와세다대학의 니시다 쥰( 西 川 潤 ), 정치인 우츠노 미야 도쿠마( 宇 都 宮 德 馬 ), 기무라 도시오( 木 村 俊 夫 ), 이와이 아키라( 岩 井 章 ), 노벨수상자인 오에 겐 자부로( 大 江 健 三 郞 )를 위시한 작가 요시노 겐자부로( 吉 野 源 三 郞 ), 오다 마코도( 小 田 實 ) 등은 많은 필자의 한 부분이다.
12 24 아시아리뷰 제3권 제2호(통권 6호), 2013 하는 의문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4. 핵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북한은 일찍부터 핵 개발에 열중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러나 대외적으로는 이를 부인했고, 세카이 가 그 역할을 대행했다. 세카이 는 1976년 처음으로 김일성에게 핵 개발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 때 김일성은 우 리들에게는 핵무기를 생산할 돈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생산해서 실험할 장소도 없다 고 부인했다. 한 걸음 더 나가 한반도와 같이 좁은 땅에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은, 세카이 가 전하는 김일성의 표현에 의하면 어 리석은 자 였다. 왜냐하면 좁은 한반도에서의 핵은 모두가 함께 멸망하는 결과 를 초래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용할 수도 없는 핵을 많은 비용을 들여 개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세카이 는 김일성의 핵 개발 부인을 크게 홍보했다. 1991년 핵사찰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도 세카이 는 김일성과의 회견을 통해 서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다 는 것을 거듭 강조하면 서, 김일성은 한반도를 비핵지대이자 평화지대 로 만들 것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카이 는 김일성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여과 없이 국 제사회에 전달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핵을 부인하면서 북한은 핵 개발을 꾸준히 추진했다. 2003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고 2006년, 2009 년, 2013년에 걸쳐 세 차례 핵 실험을 실시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 세계를 향하여 핵보유국임을 당당하게 선언하고 있다. 일본 또한 핵 위협에 무겁게 짓 눌려 있다. 핵폭탄 경험을 가진 유일한 국가인 일본의 대다수 국민은 미국의 핵잠수함 이 일본 영해에 진입하는 것 자체도 반대할 정도로 핵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 였고 강경한 입장이었다. 세카이 가 늘 그 앞장에 서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 에 대해서만은 이상할 정도로 관대한 입장을 보였다. 북의 핵 개발이 확인된 후 에도 세카이 는 러시아 및 중국과의 군사동맹이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북한 이 핵병기나 생화학무기 개발에 주력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거나, 일본에서
13 지식인과 신념의 전통 한상일 25 는 이해할 수 없는 제3세계의 논리가 있다 거나, 에너지 공급과 경제적 어려움 에 직면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핵 개발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는 등 북 한의 핵 개발을 용인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서 오랫 동안 세카이 의 간판 필자로 활동해온 오에 겐자부로는 북한이 2차 핵 실험 (2009)을 실시한 직후에도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 사이의 신뢰관계가 없으면 핵 무기 폐기가 시작될 수 없다. 우리들이 싸우지 않는 태도를 일관한다면 북한과 의 관계에서 신뢰를 만들어내는 커다란 조건이 되지 않을까 라고 발언하여, 북 한의 핵 개발을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5.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세카이 는 1973년 5월호부터 TK생이라는 익명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을 연재했다(제1신은 1972년 11월 15일 발송한 것으로 게재되었음). 이 연재는 1988년 3월까 지 계속되었다. 1972년 유신 과 함께 시작한 통신 이 17년이라는 긴 세월 지속 되었지만, 그 내용은 다섯 범주로 묶을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하고 단순한 구도라 할 수 있다. 첫째는 박정희와 그의 정치권력 집단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비인 도적이고, 비도덕적이며, 극악무도한 정권인가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둘 째는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것이 끝없이 황폐하고, 암담하고, 처참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비인간적인 체제를 무너뜨리고 인간다운 사회를 건 설하기 위해서는 민중저항운동을 전개하고, 종국적으로는 민중폭력혁명을 완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는 한국의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 일본의 의식 있는 사람들이 한국의 민중혁명세력과 연대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 섯째는 북한의 사회상이 남한보다 밝고 희망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통신의 정 보원( 情 報 源 )은 당시 한국 사회에서 떠도는 유언비어, 지하유인물, 대학가의 대자 보, 익명의 발언, 또는 통혁당의 지하방송 등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 어느 것 하 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88년 당시 편집장 야스에 료스케와 인터뷰를 가졌던 중앙일보 의 최철주 도쿄특파원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통신 이 보도한 대로라면 한국은 민중혁 명 에 의해 열대여섯 번은 뒤집혀졌어야 했다. 그러나 세카이 지가 원하는 대
14 26 아시아리뷰 제3권 제2호(통권 6호), 2013 로 한국은 붕괴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새로 태어 났다( 崔 喆 周, 1988). 그러나 통신 이 일본이나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세카이 를 읽으면서 성장한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한국은 어둡고, 비참하고, 보잘 것 없는 나라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북한이 남한보다 우월한 사회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정보가 통제되 었던 당시의 한국인들에게는 비밀리에 유통된 통신 은 온갖 유언비어의 진원 지가 되었고, 북한을 추종하는 민중폭력혁명 세력이 확산될 수 있는 토양을 만 들어주었다. 통신 이 범한 가장 큰 오류는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처럼 거짓 보도했다는 사실이다. 최철주와 가진 인터뷰에서 야스에 료스케도 TK생은 80% 정도가 사 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자신은 60% 정도가 사실일 것 이라고 밝혔다. 필자나 편 집인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보도했다는 것이다. 이는 진리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는 이와나미 시게오의 정신이나, 진리를 바탕으로 도의와 문화의 새질서 창조라는 세카이 창간정신, 그리고 공정성을 무엇보다 소중히 한다는 편집원칙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이와나미서점은 세카이 에 연재된 통신 을 1974년부터 1980년 사이에 4권 의 <이와나미신서( 岩 波 新 書 )>로 출판했다. 신서판( 新 書 版 )의 뒤표지 이면에는 신서 발행의 의미를 비판적 정신을 충분히 단련하고, 일본의 진보적 문화유산을 되살려 국민적 긍지를 되찾고, 민중의 생활과 연결된 신선한 문화 건설 (1949) 에, 휴머니즘의 정신을 간직하고, 국민이 자주적으로 살아가는 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1970), 인간의 기본적 권리의 신장, 사회적 평등과 정의의 실현, 평화적 사회의 건설, 국제적 시야에 서서 풍부한 문화 창조 (1977)에 있음을 선언하고 있 다. 통신 의 신서 발행이 과연 이 취지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까? 1980년 7월 이후의 통신 을 신서로 발행하는 것을 중단한 것을 보면 이와나미서점도 그렇 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IV. 보편적 외국 2013년 10월 1일 서울에서 개최된 제8회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 에 세카
15 지식인과 신념의 전통 한상일 27 이 와 깊은 인연을 가진 두 사람이 참석하여 강연했다. 한 사람은 도쿄대학교 명예교수인 와다 하루키( 和 田 春 樹 ), 다른 한 사람은 오랫동안 세카이 의 편집을 책임졌고, 현재는 이와나미서점의 사장인 오카모토 아츠시( 岡 本 厚 )다. 와다의 전 공은 러시아역사이지만 1970년대 이후 세카이 를 통해 한반도 전문가로서 지 위를 굳혔다. 그는 박정희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한국과 일본의 민중연대투 쟁 을 제안하고 이를 위해 행동할 정도로 반( 反 )남한 논조를 지속했다. 17명의 생 명을 앗아간 1983년의 아웅산 폭파 사건이 터지자, 와다는 북한의 폭탄 테러가 아니라 한국정부 내부의 인물 이 행한 것으로 기사화했다. 3 친북노선을 지속했 던 그는 1987년 5월 북한을 방문한 후 북한이 서서히 민주화의 방향 으로 변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파주의 기조강연에서는 동북아 위기의 첫 번째 요소를 북한 으로 지적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6자회담의 파기, 미국과 의 대결구도를 동아시아가 안고 있는 위기의 근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 고 남북 간의 긴장도 북한의 일방적인 정전협정 무효와 선언으로 개성공업단 지도 오랫동안 폐쇄된 상태 (2013년)라고 진단하고 있다. 1987년의 상황진단과는 크게 달라진 인식이다. 이와나미서점의 사장인 오카모토는 세카이 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을 읽 으면서 자란 세대다. 1977년 이와나미에 입사하여 세카이 편집부에서 시작하 여 1986년부터 2012년까지 16년 동안 편집장으로 세카이 를 이끌었다. 그리고 2013년 이와나미서점의 사장에 이르렀다. 전후세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 히 한반도를 특수한 관계에서 보고 있고, 그것은 세카이 에서 물려받은 유산 이기도 하다. 오카모토는 이와나미서점의 100년과 동아시아 라는 강연에서 전후 일본 지 식인의 한국인식이 출발점부터 잘못이 있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일본 지식인 중에는 근대 이전의 문명의 스승인 중국 에 대해서는 전쟁을 하면서도 경의와 공포를 느끼고 있던 사람이 많았다. 그러 나 이웃나라 조선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다. 중국 침략전쟁에는 반 3 그러나 그는 뒷날 그의 책 北 朝 鮮 遊 撃 隊 国 家 の 現 在 (1988)에서 북한 공작원의 소행이라고 수정하여 기록했다.
16 28 아시아리뷰 제3권 제2호(통권 6호), 2013 성의 뜻을 나타내도 조선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는 나쁜 일을 했다 라고 하는 의 식보다는 뒤처진 사람에게 혜택을 베풀었다는 의식이며, 오히려 경모하는 분위 기마저 있었다. 이와나미서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러한 잘못된 조선에 대한 자세 를 고치 도록 한 것은 야스에 료스케가 세카이 의 편집장을 맡으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오카모토는 한국에 대한 인식, 한국의 민주화 돕기, 남북통일 문제 등에 대해 서 야스에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야스에가 편집한 한국으 로부터의 통신 이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전혀 보도될 리 없는 한국 내 민주화 운동, 군정의 탄압 양상 등을 전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을 고조시 키고 잘못된 자세를 고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의 민주화를 도 왔다는 것이다. 그는 야스에가 북한의 김일성과 신뢰 관계를 맺고, 남한의 김대중과도 친구 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남북 양쪽 모두와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남북분단의 극 복에 일본인이 무엇인가를 돕기 위함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남북 조선의 사 람들이 가장 괴로워하고 있는 문제를 일본인이 도와 해결한다면 그것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속죄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는 것이다. 그러나 야스에가 너무 빨리 죽음으로서 일본인이 담당해야 할 분단 극복의 사명이 좌절되었다고 애석하게 여기고 있다. 한국을 지도 해야 한다는 의식과 한반도 통일에 기여해 야 한다는 사명감 이 그대로 배어 있다. 오카모토는 16년의 세카이 편집장을 마감하는 2012년 5월호 편집후기 에도 같은 뜻의 글을 남기고 있다. 그는 김 근태, 광주의 여인, 북한 외교관 의 입을 빌려 세카이 는 한국의 민주화를 위 하여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오카모토의 주장대로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강한 관심이 한국으로부터의 통 신 에 의해서였다면, 그 관심 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일본 인에게는 어두운 한국 과 밝은 북한, 독재자 박정희 와 위대한 지도자 김일 성, 겨울 공화국, 한국 과 지상의 낙원, 북조선 이라는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주 었다.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의 민족공조, 외세로부터 민족자주, 미군 철수를 위 한 반제반미투쟁 이라는 통일논리는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도 깊숙이 침 투되어 반미반정부 투쟁의 원리로 작동했다. 그리고 제3국인에게도 잘못된 한
17 지식인과 신념의 전통 한상일 29 국관을 심어주었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통신 의 많은 부분은 진실이 아 니라 한국의 정국을 혼란시켜 붕괴시키기 위한 선동 이었고 공작 이나 다름없 었기 때문이다. 오카모토는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전하려는 태도가 있으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사회를 바꾸어가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 로 밝히고 있다. 과연 세카이 는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한반도 문제를 독자들 에게 전하려 했을까? 오카모토가 애석하게 여기는 것과 달리, 야스에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남북관계가 달라졌을까? 남북분단이 극복되었을까? 김일성-김정 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왕조 세습 도 없었고, 북한이 민주화되었을까? 핵 개발 도 없었을까? 야스에가 김일성이나 김대중과 신뢰관계를 맺은 것처럼, 북조선 의 인민 또는 남한의 국민 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었을까? 그 대답은 자명하 다. 세카이 의 지식인들은 인권, 자유, 평화, 도덕 등을 표방하면서 한국을 여전 히 지도 해야 할 특수한 이웃으로 상정하고, 그 틀 속에서 한반도를 보려고 했 다. 남과 북의 분단적 상황이 그들의 시각과 사명의식을 더욱 강화했다. 패전 후 좌편향 이념이 강화된 일본의 지적 풍토 속에서 그들은 북한의 공산주의체제가 성공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환상과 기대에서 남과 북을 바라보았다. 일본에서 실현 불가능한 사회주의체제를 이상향으로 삼고, 그들의 환상적 이상향이 북한 에서 실현되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환상과 기대는 남과 북의 현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북한을 지원 해야 할 체제로, 그리고 남한을 붕 괴 시켜야 할 대상으로 상정하고, 그 자신들의 역할에 역사성 을 부여했다. 그러 나 그것이 오류였고 오판이었음을 오늘의 한반도가 보여주고 있다. 한일관계가 보다 정상적인 궤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일본인, 특히 지식인들 의 심층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을 보는 특수성 에서 벗어나 보편적 외국으로 간주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렇지 못한 것 같다.
18 30 아시아리뷰 제3권 제2호(통권 6호), 2013 V. 세카이 의 사명 세카이 는 한국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오류를 범했다. 또한 중국의 문화혁 명에 대한 평가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세계사의 흐름을 냉철히 보지 못하고 이념에 매몰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세카이 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세카이 는 55년 체제 성립 후 반 ( 半 )영구적 자민당 지배 속에서 진보의 가치를 대변했고, 정책적 우경화를 제어 하면서 보수와 이념적 균형을 지켜내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비무장중립론 을 이상으로 평화헌법을 고수하면서 미일안보조약, 외교노선, 개헌, 재무장 등 과 같은 문제에 대해 진보세력을 대변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다. 또한 패전으로 인한 정신적 방황 속에서 문화적 도덕적 지적 역량을 축적하는 데 지대한 영 향을 미쳤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 영향력이 무( 無 )에 가까울 정도로 쇠 잔해졌고, 이는 일본을 위해서 대단히 불행한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처럼 복고주의와 우익이 대두하는 시기, 진정한 진보와 자유주의 세력의 결집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특히 민주당의 패배 후 일본의 정치가 일당보 수체제로 갈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보수의 2대 정당으로 발전할 것인가의 기로 에 서 있는 오늘, 진보의 이념과 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는 창업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와나미서점과 창간 70주년을 바라보는 세카이 의 몫이라고 생각 된다. 이와나미 시게오는 100년 전 서점을 개업하면서 거짓 없고 왜소( 矮 小 )하지 않 는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 하고, 생활은 낮게 생각은 높게, 옳은 것은 영원히 옳아야만 한다 는 신념을 경영의 원칙으로 삼았다. 그리고 세카이 는 천지에 는 대의가 있고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다. 진리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일본 국민은 패전을 확인하지만 스스로 비겁함 없이 타는 듯한 정열로 진리를 향하 여 전진해야만 한다 고 천명하면서 출발했다. 이와나미서점과 세카이 는 지금 이야말로 창업정신과 창간취지를 되새기면서 진보와 자유주의의 전통을 재건해 야만 할 때가 아닐까?
19 지식인과 신념의 전통 한상일 31 투고일: 2013년 12월 9일 심사일: 2013년 12월 20일 게재확정일: 2013년 12월 23일 참고문헌 崔 喆 周 TK 生 의 代 父 야스에 료스케. 月 刊 中 央 4. 출판도시문화재단 아시아, 경계를 넘어서. 제8회 파주북시티 국제포럼. 한상일 지식인의 오만과 편견. 서울: 기파랑. 關 貴 成 眞 つ 二 つの 祖 國 續 樂 園 の 夢 破 れて. 東 京 : 全 貌 社. 吉 野 源 三 郞 創 刊 まで - 世 界 編 集 二 十 年. 世 界, 1 月 號. 鹿 野 正 直 岩 波 新 書 の 歷 史. 東 京 : 岩 波 書 店. 朴 正 鎭 日 朝 冷 戰 構 造 の 誕 生, 1945~1965: 封 印 された 外 交 史. 東 京 : 平 凡 社. 福 澤 諭 吉 朝 鮮 の 交 際 を 論 ず. 福 澤 諭 吉 全 集 8. 東 京 : 岩 波 書 店. 安 倍 能 成 岩 波 茂 雄 傳. 東 京 : 岩 波 書 店. 竹 內 洋 革 新 幻 想 の 戰 後 史. 東 京 : 中 央 公 論 社. Morris-Suzuki, Tessa Exodus to North Korea: Shadow from Japan s Cold War. New York: Rowman & Littlefield.
20 32 아시아리뷰 제3권 제2호(통권 6호), 2013 Abstract The Sekai and Korea: The Japanese Progressive Intellectuals and the Postwar Tradition of Belief Sang-il Han Kookmin University An important role of intellectuals in any society is to invent tradition of beliefs by inheriting, reorienting, and transmitting social knowledge and cultural values. This paper scrutinizes Japanese intellectuals role in inventing a certain Japanese postwar tradition of belief toward Korea by analyzing the monthly journal of Sekai ( 世 界 ). First published in January 1946, the journal firmly established itself as a leading progressive journal, upholding the principles of 1) reflecting on the imperialist past and war ; 2) promoting social justice and freedom and democracy ; and 3) maintaining fairness of criticism. The Sekai is also one of the few journals that paid both intensive and extensive attention to the events that occurred in the Korean peninsula. By examining all types of materials related to Korea in Sekai from its first issue in the 1940s to recent issues in the 1990s, I argue that the journal produced a tradition of beliefs based on prejudices and biases against Korea by presenting South Korea as a degenerating nation and North Korea as a paradise on earth to the Japanese people. Such a tradition of beliefs, in turn, played a negative role in rebuilding Japanese-South Korean relations in the post Korean War period. Keywords Sekai, progressive intellectuals, South Korea, Nor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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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문태영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로 227-24 (697-858) Tel: 064)735-6500 Fax: 064)738-6522 www.jpi.or.kr No. 2013-16 한일관계의 구조변화와 일본의 국가보수주의 신정화 (동서대학교 국제학부 부교수)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국제체제, 동북아체제,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정치경제체제에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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