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육원은 한반도 주변정세와 통일문제 및 북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매년 통일문제 이해 와 북한 이해 를 발간해 오고 있습니다. 이 책자가 각 급 교육기관 및 통일교육 현장에서 통일문제와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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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통일교육원은 한반도 주변정세와 통일문제 및 북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매년 통일문제 이해 와 북한 이해 를 발간해 오고 있습니다. 이 책자가 각 급 교육기관 및 통일교육 현장에서 통일문제와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3 1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 제1절 통일의 의미와 필요성 9 1. 통일의 의미 9 2. 통일의 필요성 11 제2절 통일의 기본구상과 미래상 통일의 기본구상 통일의 미래상 17 2 제1절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국제질서와 동북아 정세 국제질서의 변화 : 탈냉전과 21세기 신 국제질서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 28 제2절 주변국가의 한반도 정책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44 제3절 통일환경의 변화와 우리의 대응 49

4 3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제1절 우리의 통일정책과 통일방안의 발전 통일정책 기조 역대 정부의 통일정책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65 제2절 상생공영의 남북관계와 비핵 개방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비핵 개방 대 공동체 통일구상 77 4 남북관계의 제3절 북한의 통일방안 북한의 대남전략 북한 통일방안의 변천 북한 통일방안의 평가 89 전개 제1절 남북분단과 대한민국의 건국 남북의 분단 대한민국의 건국 전쟁 102 제2절 남북관계의 전개 : 갈등과 협력 갈등과 긴장의 남북관계 대화와 협력의 남북관계 남북 교류협력과 인도적 문제 해결 추진 123 제3절 남북관계의 발전방향 년대 이후의 남북관계 남북관계의 발전방향과 과제 147

5 5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제1절 분단국의 통일사례와 교훈 분단국 통일사례 분단국 통일의 교훈 160 제2절 통일의 편익과 미래비전 통일비용과 통일편익 통일한국의 미래비전 167 제3절 통일을 위한 우리의 과제 부록 1. 대한민국 헌법 남북공동성명 남북사 이의 화 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남북공동선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한반도 신 평화구상 그랜드 바겐 대 공동체 통일구상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218

6 표 Tables 표 2-1 세계 주요 국가별 국방비 비교 42 표 3-1 3대 공동체 통일구상 체계 79 표 3-2 남북한 통일방안 변천(1948~현재) 92 표 3-3 남북한 통일방안 비교 93 표 4-1 대한민국 건국 과정 102 표 4-2 국군 및 유엔군 인명 피해 105 표 4-3 민간인 인명 피해 105 표 4-4 남북기본합의서 구성 및 이행 체계 119 표 ~2011 남북교역액 현황 126 표 ~2011 북한이탈주민 입국 추이 138 표 5-1 통일비용과 통일편익 167 표 년 통일한국의 경제적 위상 170

7 1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 제1절 통일의 의미와 필요성 제2절 통일의 기본구상과 미래상

8 01 통일이란 분단 이전 상태로의 회귀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체제를 하나로 통합하여 자유민 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존중 등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공동체의 건설을 의 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은 민족구성원 모 두에게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미래의 기회라고 볼 수 있다. 02 통일은 분단으로 인해 굴절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공동체 건설을 통해 우리 민족 의 총체적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적 편익의 창출, 이산가족의 고통 해소, 한반도의 전쟁 위험 제거를 통한 동북아의 평화 증진 등을 위해서도 남북통일은 절실하다. 03 통일국가의 미래상은 우리의 통일방안에서도 제시하고 있듯이 자유 복지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선진일류국가의 실현이다. 통일국가 는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와 활동영역의 확대를 제공하며,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9 제1절 통일의 의미와 필요성 1. 통일의 의미 우리는 반세기 이상 분단의 고통 속에 통일된 민족국가를 확립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일제강점으로부터의 해방이 통일 민족국가 수립 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국토가 분단된 데 이어 6 25 전쟁을 겪으면서 분단이 고착화되었다. 이 같은 고통의 역사 속 에서도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 동안 놀라운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 룩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산업화,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한 국가 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분단 상황의 지속은 불필요한 국력낭비와 이산가족의 고통, 자원의 분할 사용 등과 같은 여러 측면에서의 폐해와 이로 인한 민족 의 발전과 번영을 저해하고 있다. 또한 분단의 장기화는 남북 간 이질 화, 경제 격차 등의 심화로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한편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커다란 소망인 동시에 우리나라가 당면한 중요 제1장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 9

10 한 과제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국제사회는 탈냉전, 세계화의 흐름 속에 자국의 실리추구를 위한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했다. 이 같은 변화 추세 속에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시대적 과제는 통일을 통 한 새로운 성장 동력의 확보이다. 통일을 이룩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통일은 분 단극복을 의미하지만 단순히 분단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 하지 않는다. 그것은 국토의 재봉합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 제에 기초하여 서로 다른 두 체제를 하나로 통합하는 새로운 민족공 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통일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 니라 미래를 향한 새로운 역사의 창조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지리적 측면에서의 통일은 국토의 통일이다. 국토의 통일은 통 일국가 건설의 물리적 기반을 제공한다. 우리 민족은 수천 년 동안 한 반도라는 지리적 공간 속에서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면서 살아왔기에 국토의 통일은 구성원 모두가 한반도 내의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왕 래하고 거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통일은 단순 한 국토 면적의 합계가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생활권의 확대를 가 져올 것이다. 둘째, 정치적 측면에서의 통일은 체제의 단일화를 뜻한다. 우리 민 족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단일한 정치체제 속에서 살아왔다. 하나의 국가와 민족으로 이어져 온 장구한 역사에 비교하여 볼 때 60여 년의 분단은 결코 긴 것이 아니다. 남북 간에 단일한 정치체제를 만드는 것 은 분단 극복을 위한 핵심 요소이다. 셋째, 경제적 측면에서의 통일은 경제권의 통합을 의미한다. 남과 북 은 분단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와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 로 나뉘어졌고 경제생활권 또한 남북으로 단절되었다. 국가 간 경제통 합이 진행되고 있는 작금의 국제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보다 풍요로 운 선진일류국가를 견인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체제로 민족경제의 통 합이 시급하다. 넷째, 사회적 측면에서의 통일은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동일한 언어와 문화, 생활방식을 공유하며 살아왔다. 그 10 통일문제이해 2012

11 러나 분단의 장기화로 남북 간의 이질화가 심화되어 한민족으로서의 동질감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로 다른 남북 주민들의 내 면적인 의식과 가치관, 생활방식을 하나로 동화시키는 내적 통합을 이 루는 것이야말로 통일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통일은 두 개의 남북한 체제가 하나로 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통일은 남북한 주민들이 한민족, 하나의 국민이라고 느끼는 상 태를 의미한다. 즉 통일은 분단된 국토가 하나 되는 것은 물론 정치적 으로 대립되었던 체제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고, 경제적으로 서로 다른 제도를 하나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며, 남북 주민사이에 내면화된 이질 적인 문화를 하나로 다시 탄생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통일은 둘로 나누어진 국토와 제도와 민족과 생활이 모 두 진정한 하나로 거듭나는 과정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창조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2. 통일의 필요성 우리에게 통일은 왜 필요할까? 우리 국민들은 통일에 대한 기대감보 다는 통일과정에서 예상되는 경제적 부담과 사회혼란 등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통일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되고 있다. 통일의식에 관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들은 통일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서는 대체로 긍정적이나 통일의 혜택보다는 비용이 더 클 것이라는 우 려 때문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통일이 이뤄지기를 원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소극적인 통일의식이 적극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즉 통일은 사회 경제적 혼란보다 훨씬 큰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확 신과 함께 21세기 민족의 번영과 발전, 개인의 삶의 질 향상과 행복 등을 위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요구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 로 통일의 필요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훼손된 민족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하다. 본래 우리 민 제1장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 11

12 족은 동일한 언어와 문화, 혈통을 지닌 단일한 민족으로서 수많은 국 난을 겪으면서도 공동체 의식을 갖고 단결하여 통일국가를 발전시켜 온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난 60여 년 동안의 분단으로 인한 대결과 갈등은 민족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따라서 통일은 분 단으로 인해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새 로운 민족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또한 분단 이후 다른 체제와 사회로 나뉘어져 살아오면서 문화적으 로도 점차 이질화되고 있다. 통일은 같은 민족으로서 이러한 이질화 를 극복하고 우리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하다. 둘째는 통일이 되면 다양한 편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전쟁 위협을 해소하여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할 뿐 아니라 내부 이념 적 대립을 종결함으로써 사회통합과 국론결집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국가발전의 새로운 에너지로 승화될 것이다. 또한 통일로 인한 안보위 협의 해소는 국가신용등급과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여 코리아 디스카 운트 (Korea discount)에서 코리아 프리미엄 (Korea premium) 이 라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나 성장속도가 둔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통일은 새로운 성장 동력과 시장의 확보를 통해 비약 적 성장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즉 통일은 일차적으로 국토면적의 확 장과 인구증가로 인한 내수시장 확대를 가져온다. 이와 더불어 남한 의 자본과 기술이 북한의 노동력과 지하자원과 결합하여 시너지 효 과를 창출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게 한다. 한편 통일한국은 해양과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요충지에 위치하 고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을 살려 태평양, 중국, 시베리아, 유 럽, 아시아를 연결하는 물류 및 교통의 중심지역으로 부상할 것이다. 이와 같이 통일은 내수시장의 확대와 대륙으로의 진출 등을 통해 기 업에게는 새로운 성장활로의 개척을, 개인에게는 다양한 직업선택과 취업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셋째는 남북 구성원 모두에게 자유와 인권과 행복한 삶을 보장하 기 위해 필요하다. 특히, 이는 남북 이산가족과 북한이탈주민 등 분단 12 통일문제이해 2012

13 으로 인해 겪고 있는 고통의 해소와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차원에서 통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의 삶의 개선은 북한주 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유와 복지, 인간의 존엄과 가치 존중이라 는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이와 같이 우리가 통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분단으로 인해 지불 하고 있는 비용과 폐해를 없애고 보다 나은 삶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 다. 통일은 분단에 따른 유 무형의 비용을 소멸시키고 새로운 이득을 창출함으로써 국가 사회뿐 아니라 개인의 삶의 질도 향상시킬 것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통일의 필요성을 개인적 차원과 국가 사회적 차원 에서 재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개인적 차원에서 통일은 남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의 고통을 해소하고 남북 간에 자유롭게 오가며 살 수 있는 등의 다양한 선택 의 기회를 부여할 것이다. 이는 통일이 남북 구성원 모두에게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보장하여 자유와 복 지, 인간의 존엄과 가치, 인권 존중이라는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국가 사회적 차원에서 통일은 전쟁 위협을 제거하고 이에 따른 소모 적인 경쟁과 대결로 지불하고 있는 자원과 민족적 역량의 낭비를 없애 준다. 이에 따라 군사비 감소, 자연자원과 인적자원의 상호 보완적 활용 등 규모의 경제에 따른 이득 확보로 비약적 발전을 기약할 수 있을 것 이다. 즉 통일은 한반도에 단일 경제권을 형성함으로써 인적 물적 자 원을 확대시키고 경제규모를 키워 세계강대국으로 나아갈 기초를 마 련해 줄 것이다. 한반도는 해양과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 지만 분단으로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진로가 막힌 상황 이다. 통일을 이룬다면 활동무대가 한반도 전역으로 확장되고, 나아 가 유라시아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함으로써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취 할 수 있을 것이다. 제1장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 13

14 통일은 우리 민족의 번영과 발전뿐 아니라 한반도를 태평양, 시베리 아, 유럽으로 이어지는 세계경제의 중심지로서, 그리고 동북아 지역에 서의 평화 및 공동발전을 선도할 국가로 국제적 위상을 높여줄 것이 다. 이는 통일 후 독일이 유럽의 중심국가로서 위상을 확보하고 유럽 통합을 가속화시켜 유럽 각국의 경제적 시너지 효과를 달성한 것을 볼 때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통일은 21세기 한민족의 새로운 비상과 선진일류국가로 의 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통일로 우리 민족은 훼손된 민족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여 정신적 물질적으로 행복 한 삶이 보장되는 민족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14 통일문제이해 2012

15 제2절 통일의 기본구상과 미래상 1. 통일의 기본구상 우리 민족의 당면과제인 통일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우 리가 지향하는 통일국가는 민족구성원 모두에게 자유와 행복, 민족 의 생존과 번영이 보장되는 국가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통일국가 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통일의 접근방식은 통 일을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에 의해 점진 적 단계적으로 이루어 나간다 는 것이다. 통일문제를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통일이 기본적으로 한국사회의 질적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 라서 한국사회의 변화 방향과 통일 미래상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중 요하다. 통일이 수반하는 사회적 혼란, 경제적 비용, 정치적 부담 등의 문제는 폭넓은 국민적 공감대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통일의 목표가 민족구성원 모두의 자유와 인권, 행복이 보장 되는 민주국가건설이므로, 통일에 이르는 과정과 절차도 민주적이어 제1장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 15

16 야 함은 자명하다. 즉 통일시기, 통일절차, 통일국가의 미래상 등의 문 제에 대해 국민 모두의 견해가 민주적으로 수렴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러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민적 합의에 의해 추진되는 통일은 반 드시 평화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데 기초하고 있다. 우리는 통일을 염원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통일지상주 의가 아니라 정당한 방식과 평화적 절차에 의한 통일을 추구한다. 평 화통일에 대한 염원은 반세기가 넘는 분단 속에서 우리 민족구성원의 합의사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분단, 전쟁 등의 고통을 경험하면 서 민족생존을 위한 평화정착 노력이 당연하고 절대적인 과제라고 인 식하게 된데 따른 것이다. 따라서 남북이 평화정착과 통일을 지향한다 면 우선 생산적인 대화와 호혜적인 교류협력을 추진하여 상호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분단 이후 오랜 시기 경쟁과 대립 속에 축적된 상호 불신을 해소하고 진정한 평화를 이루기까지는 비교적 오랜 시간과 노 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점을 고려하여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두 체제 가 점진적 방법을 통해 상호 신뢰를 조성하는 과도기를 거쳐 기능적으 로 통합되면서 궁극적으로 통일에 이르는 접근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의 단계적 점진적 통일정책은 1989년에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 으로 공식화되었으며, 이 통일방안은 1994년에 민족공동체통일 방안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으로 발전되었다. 이 후의 정부에서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의 정책기조를 계승하고 있다. 2010년 8 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평화공동체 경제 공동체 민족공동체 등 3대 공동체 통일구상 은 민족공동체 통일방 안을 계승하면서 공동체의 기능적 측면을 보다 구체화시킨 것이다. 평 화 경제 민족이라는 3대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한반도의 실질적 평 화를 정착시키고 남북한 주민 모두 풍요롭고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민족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에서 제시한 민족공동체 는 민족 구성원 전 체의 결합과 공동생활의 방식과 권역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민족공 동체는 우리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는 당위이며 통일을 가능하게 하 는 힘의 원천이다. 민족공동체가 지향하는 통합의 개념은 남북이 같 16 통일문제이해 2012

17 은 민족으로서 공동체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경제, 사회, 문화공동체 를 발전시키고 궁극적으로 하나의 정치공동체를 형성하여 통일국가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통일을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하나의 민족 공동체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이뤄나간다는 기조 위에서 통일과정을 화해협력단계, 남북연합단계, 통일국가 완성 의 3단계로 설정하 고 있다. 남북은 경제ㆍ사회ㆍ문화 등 각 분야의 교류협력을 통해 상호 적대감과 불신을 해소시켜 나가는 화해협력단계 와 평화를 제도화하 고 민족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과도기적 통일체제인 남북연합단계 를 거쳐 하나의 정치공동체로 통합을 실현하는 통일국가 완성 을 이 룬다는 것이다. 이같이 우리의 통일방안은 민족사회의 통합이 국가통일의 성취로 이 어진다는 선 민족공동체 건설, 후 통일국가 수립 이라는 통일의 기본 구상과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사회공동체의 형성이 국가체제의 성립보다 선행하며 현실적으로 진정한 통일은 체제통합만 이 아닌 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고 통합을 이룰 때 가능하다는 사실 에 입각한 것이다. 또한 우리의 통일방안은 점진적 접근방법이 보다 합리적이고 효과적 이라는 전제 하에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킨 후 통일을 추구한다는 입 장을 체계화한 것이다. 남북이 화해협력을 통해 상호 신뢰를 쌓아 민 족공동체를 건설해 나가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정치통합의 기반을 조 성해 나간다는 방안이다. 2. 통일의 미래상 통일한국은 한민족 모두에게 자유, 평등, 민주, 복지, 정의 등 인류 의 보편적인 가치를 구현하는 국가체제여야 한다. 이런 방향에서 통일 한국의 미래상은 보편적 가치가 존중되고 풍요로운 삶이 보장되는 자 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근간으로 삼는 민족공동체국가이다. 우선 통일한국이 지향하는 기본 이념은 자유민주주의이다. 우리가 제1장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 17

18 건설할 통일국가는 근본적으로 인류 역사에서 보편적으로 추구해 온 기본 가치들을 구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인류가 근대국가의 발전 과 함 께 추 구 해 온 자 유, 평 등, 복 지 라 는 보 편 적 이 고 핵 심 적 인 치들을 구현해 나가는 가장 효과적인 체제이념은 자유민주주의이다. 자유와 평등의 조화,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의 균형, 자 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절충 등으로 표현되는 자유민주주의는 지금까 지 인류가 지향하는 어느 정치이념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존중하는 정치이념이다. 또한 정치적으로 투표권, 참정권, 정부 선택권 등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고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시장경 제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념이다. 통일한국이 지향해야 할 또 다른 기본 이념은 민족주의이다. 여기서 말하는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과의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열린 민족 주의 를 의미한다. 남북통일의 정당성은 무엇보다 분단되어 있는 한민 족의 정치적 문화적 공간을 일치시키는 통일된 민족국가의 형성에 근 거하고 있다. 또한 통일한국의 민족주의는 우리 사회 내 소수의 다양 한 인종과 문화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열린 민족주의 를 지향한다. 우리 사회는 세계화의 대세 속에서 점차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고 있 어 통일미래에 형성할 민족공동체는 혈연적 의미의 폐쇄적 민족개념을 넘어 열린 민족의 개념을 수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지향하 는 통일한국의 민족공동체는 혈연에 기초한 폐쇄적 민족주의가 아니 라 다른 민족과 그들의 문화도 이해하고 존중하는 개방적 자세를 지 닌 열린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가치와 이념에 따라 각 분야에서 구현해 나갈 통일한국의 미 래상의 구체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다. 첫째, 통일한국의 정치체제는 국민의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의회와 복수 정당제도를 갖춘 대의제 민주주의제가 될 것이다. 통일 직후 남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정치적 이념의 차이, 경제력의 격차, 사회 문화 적 가치 및 관습의 차이 등 다양한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통일국가 18 통일문제이해 2012

19 에는 이러한 격차로 인한 갈등의 해소, 남북주민의 자발적 참여의식 제고, 국민의 다양한 이익 반영, 정치세력 간의 이견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제도와 지방자치제, 복수정당제 등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둘째, 통일한국의 경제체제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복지 증 진에 상대적으로 우월한 체제임이 입증된 시장경제 체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유재산 제도와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된 시장경제 체제 는 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 후의 경제발전에서 도 알 수 있듯이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을 잘 살게 하는 제도임 이 입증되었다. 통일한국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자유경제, 개방경제 를 지향하며 번영과 복지의 실현을 통해 국민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국가이어야 한다. 셋째, 통일한국의 사회체제는 정치, 경제체제와 같이 민주적이고 개 방적이며 인간중심적인 체제를 지향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중심적인 사회체제란 인간 존엄성을 최고의 중심 가치로 삼아 모든 제도와 정 책을 인간 존중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중점을 두는 체제이다. 이에 따 라 통일한국은 민주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유, 인권, 평등, 복지라는 보 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여야 한다. 넷째, 통일한국의 문화는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 즉 인본주 의로서 민족의 전통문화에 뿌리를 두는 것이어야 한다. 통일한국은 전통문화 속에서 민족의 동질성을 추구하면서 민족문화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통일한국의 문화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것이 되어 야 한다. 폐쇄적, 획일적 문화체제로는 다문화의 시대상황과 국제환경 속에 민족문화의 발전을 도모해 나갈 수 없게 될 것이다. 다섯째, 대외적으로 통일한국은 평화지향적이며 비핵평화국가여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정착을 통해 동북아 평화공동체 건설에 기여하며 세계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국가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이어 한반도의 영구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는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의 균형과 조화를 모색하여야 한다. 강화된 국가역량을 바탕으로 평화 생산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 제1장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 19

20 할 때 통일한국은 국제 평화와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 수호에 적극 기 여하는 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제고시킬 수 있을 것이다. 20 통일문제이해 2012

21 2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제1절 국제질서와 동북아 정세 제2절 주변국가의 한반도 정책 제3절 통일환경의 변화와 우리의 대응

22 01 탈냉전 이후의 국제질서는 냉전시대에 비해서 복합적이고 유동적이다. 기본적으로 미국 주 도의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있으며 영국과 프 랑스, EU, 러시아와 같은 전통적인 강대국들 이 국제문제를 두고 협력과 경쟁의 관계가 유 지되고 있다. 한편,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 신 흥국들의 부상으로 오늘날 국제질서의 모습은 다극화의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동북아 는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 북한의 군사도발 등 으로 인해 균형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02 동북아 각국의 대외정책 역시 변화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은 전통적인 우방국과의 동맹체제를 유지 강화하는 한편, 다자주의적 인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미 일 동맹 을 유지하면서 자국의 독자적 역할을 강화시 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를 추구하고 있으며, 러시아 역시 회복된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문제에 개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03 변화하는 국제질서와 동북아 정세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관련 국가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한반도 통일환경 역시 국제체제의 성격에 크 게 영향을 받으며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북핵 문제 해결은 물론 바람직한 통일여건의 조성 을 위해서도 우리는 주변국의 협력을 얻고 국 제사회의 지지를 통해서 우호적인 통일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23 제1절 국제질서와 동북아 정세 1. 국제질서의 변화 : 탈냉전과 21세기 신 국제질서 1980년대 말 냉전이 끝나면서 국제질서는 근본적인 재편의 과정을 밟게 되었다. 냉전의 종식으로 20세기 후반 국제질서의 큰 축을 이루 었던 양극체제는 붕괴되고 동서 진영 간 대립구도도 종식되었다. 냉전 이 끝나면서 탈냉전기 과도적 상황 속에서 형성된 새로운 국제질서의 주요 특징은 이념, 체제 간의 대립이 현저히 감소된 반면, 평화와 경제 발전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 종식 후 동유럽 국가들을 휩쓴 자유민주주의 혁명의 결과 상당수 공산권 국가들이 체제전환에 성공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세계사의 보편적인 추세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 21세기에도 민주화와 개방화, 다원화의 물결은 꾸준히 이어지 고 있다. 2003년 그루지야의 벨벳(장미)혁명,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 령선거에서 나타난 오렌지혁명, 그리고 2005년 3월 중앙아시아 키르기 스스탄에서 15년 독재자 아카예프를 종식시킨 레몬혁명 등은 민주화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23

24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 RtoP, R2P) 이란 전통 적으로 주권국가가 그 국민의 안전을 보호 할 권한과 책임을 갖지만 보호 책임 원칙에 따르면 해당 국가가 자 국민의 안전을 보호 하지 못할 경우 국제사회가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민이 내전, 반란, 억압 혹은 무정부 상태 등 국가의 실패(failed state)등으로 인해 심각한 인권유린, 인도적 재앙 등의 피해를 볼 경우, 그 리고 해당 정부가 그 상황을 중지하 거나 역전시킬 의지와 능력이 없는 경우, 또한 국가 자체가 불법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국제사회의 보호책임 원칙이 적용됨을 의미한다. 물결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지난 2010년부터 이어져온 중동과 이슬 람권의 반독재 및 민주화 요구, 다원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지속적 으로 표출되고 있다. 2010년 12월 벤 알리 대통령의 23년 철권통치를 종식시킨 튀니지 의 시민혁명에서 유래된 재스민 혁명은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의 하 야, 리비아 카다피 대통령의 몰락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리비아 사태 는 유엔 안보리가 적극 개입하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시민군 (반군)을 지원하여, 결국 40여 년간 통치해온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이 붕괴되는 사태를 초래하였다. 이와 같은 유엔과 국제사회의 조치 는 대규모 인권유린에 대한 강제적 관여로서 탈냉전 시대에 인도적 개 입 (Humanitarian Intervention) 또는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 RtoP, R2P)의 원칙이 적용된 최초의 사례로서 거 론되고 있다. 탈냉전 시대의 국제질서의 개념은 몇 가지 측면에서 냉전 시대와 구별된다. 첫째,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미국을 중 심으로 국제문제를 해결하고 협력하는 지도체제가 형성되 었다. 국제정치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탈냉전의 국제체 제가 가진 성격이 단극체제(uni-polar system) 또는 다 극체제(multi-polar system)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과거 냉전시기 미 소 초강대국 간 의 양극체제(bi-polar system)가 해체된 이후, 국제체제 가 미국 중심의 질서와 안정을 추구해왔다는 점에는 이견 이 없다. 실제로 탈냉전 이후, 국제질서는 미국 중심으로 형성 조정되 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분쟁 조정능력, 경제력, 군사력 등 유일 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국가역량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각 종 수치로도 잘 드러난다. 군사비를 살펴볼 때, 미국은 전 세계 군비 의 절반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규모 및 보유 자본량, 생 산력과 소비의 규모, 자본의 조정력을 가진 국제경제력 역시 여타 국가 가 갖고 있는 능력을 상회한다. 무엇보다 리더십과 소프트파워 측면에 있어서 미국은 그 스스로 또는 미국 주도로 조직된 국제협력체를 중 심으로 각종 국제문제의 해결 능력을 표출해오고 있다. 24 통일문제이해 2012

25 둘째, 탈냉전 시대에는 국제체제의 주요 행위자와 갈등의 요인이 변 화했다. 냉전시기 국제안보의 문제가 국가 단위와 체제를 중심으로 형 성되었다면 탈냉전이 도래한 이후에는 다양한 비국가 행위자와 집단 들이 국제문제의 행위자로 등장하였다. 또한, 과거 국제문제의 갈등 과 이슈가 이념과 체제와 같은 정치 군사적 요인이었다면 탈냉전의 국 제문제는 경제적 이슈와 종교, 민족, 자원 등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 양한 형태로 변했다는 점이다. 세계화와 정보혁명의 영향으로 이와 같 은 행위자와 갈등의 요인은 더욱더 복잡해졌다. 특히, 안보 아젠다와 안보주체 역시 다양해졌는데 안보 위협의 주체 면에서는 다양한 비국 가 행위자가 국제관계의 전면에 등장했으며, 기존의 안보 논의도 주로 영토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전통적인 개념에서 다양한 행위자들 이 참여하는 비전통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는 등 냉전시기의 단순성과 는 크게 달라졌다. 종교분쟁과 자원분쟁, 폭탄테러, 비대칭 위협이라 는 새로운 안보요인도 생겨났다. 셋째, 탈냉전 시기에는 국제질서의 중심축의 변화가 수반되었다. 우 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관계를 지배해온 강대국 간 전략적 관계 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냉전의 종식으로 미 러 전략관계가 재정립됨에 따라 유럽이 상대적으로 평화로워졌고, 그 결과 국제정치의 중심축이 유럽으로부터 아시아 태평양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아시아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커졌으며,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경계와 일본의 안보역할 증대를 추구하는 경향 이 두드러졌다. 이처럼 일본을 끌어안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군사력 배치의 중심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기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잠재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중국의 정치, 군사적 팽창을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가장 큰 잠재적 위협으로 여 기고 있다. 탈냉전과 21세기를 시기적으로 단정할 수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 나 타나는 각종 문제와 현상들을 단순히 새로운 현상이라고 한정하여 인식하기도 어렵다. 오늘날에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형태의 질서와 변화, 갈등의 요소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탈냉전의 일 반적인 현상들도 함께 공존하고 있다.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25

26 그러나 21세기 국제질서가 지속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은 명 백하다. 그 변화의 핵심은 냉전시대 강대국 간의 대결 구도 대신 더 복합적이고 다극적인 질서가 혼재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국제체제가 단극성인지 아니면 다극성인지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결론 내리기 어 렵다. 다만, 현재의 국제체제에서는 행위자 간 힘의 배분에 변화가 일 어나고 있는 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국제 정치에서 규모는 크지만 그동안 경제적으로 침체해 있던 거대 국가들 이 세계화의 영향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루면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 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쇠퇴가 아니라 중국, 인 도, 브라질 등 신흥 국가들의 부상이다. 1_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가 펴 낸 Global Trends 2025 보고서 도 2025년까지는 국제질서가 더욱 복합적으로 변하고, 미국이 여전히 초강대국으로 남겠지만 지금보다 는 덜 지배적인 국가 로 변모할 것 으로 예측하고 있다. 2025년경 국 제질서는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의 부상과 함께 세계화로 인한 경제 발전, 인구 증가, 지역적 발전 격차 등으로 인해 더욱 다극화될 것이 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초 국가적 안보 어젠다가 등장하는데 식량, 에너지, 물 등이 고도의 신 전략자원으로 등장하면서 이를 둘 러싼 각축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 하고 있다. 21세기 세계질서의 특징은 첫째로 복합성 이다. 엄밀히 말해서 21세 기의 신 국제질서 역시 미국 중심의 헤게모니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 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제력과 힘을 가진 규모의 국가들의 조정 과 협력이 요구되는 다원화 다극화된 질서가 형성되고 있음을 인식해 야 한다. 이 두 가지의 요소가 함께 작동하는 것이 21세기 신 국제질 서의 특징인 것이다. 예를 들면, 정치 군사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국 이 지배하는 단극적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반면, 정치 군사 이외의 경 제, 산업, 금융, 사회, 문화와 같은 측면에서는 힘의 분포가 미국의 유 일 주도로부터 분산되는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1 세계화와 시장경제의 확산의 결과 신흥부상국, 특히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의 경제성장과 다양한 민족적 관점의 분출은 정보혁명 덕분에 더욱 확 대 재생산되고, 이들의 주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곧 주요 국제문제 에 있어서 갈수록 합의가 어려워짐을 의미한다. 이는 곧 미국이 여전 히 초강대국이긴 하지만 혼자 힘으로 국제문제를 리드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특징은 세계화와 정보혁명의 영향으로 전통적 안보와 는 다른 차원과 이슈, 즉 인간안보(human security)와 포괄안보 (comprehensive security)의 개념이 대두되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와 신기술, 에너지 배분 등을 둘러싼 대립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테러, 국제 갈등 및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은 여전히 중요한 국제 안보의 문제로 남을 것이고, 세계화에 따른 양극화의 결과로 테러조 26 통일문제이해 2012

27 직은 존속할 것이며, 첨단기술의 손쉬운 획득으로 이들의 테러역량도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이념적 대결은 사라지고 그 대신 세계화의 후 유증과 글로벌 세력판도 변화가 갈등의 주된 원인이 될 것이다. 21세 기의 국제질서에서는 군사력, 정치력과 같은 전통적 안보 의 개념뿐 만 아니라 경제력과 자원, 테러, 국제범죄, 기후변화, 인간안보와 같은 비전통적 안보 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국제질서의 변화에 따라 국제안보의 위협요인도 변하고 있다. 이것 은 하이브리드 위협 2 이라는 용어로 표현되기도 하며, 전쟁의 상황에서 도 전쟁의 유형이 과거처럼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여준 다. 과거에는 통상적으로 전쟁의 양상을 첨단전과 비첨단전, 재래전과 비정규전, 혹은 기동전과 게릴라전 등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오늘 날의 전쟁은 비정규전의 야만성에 정규전의 파괴성이 더해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안보환경은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띠 고 있다. 정치 경제 군사적 힘의 분산, 새로운 강대국의 부상, 대량살 상무기의 확산, 비국가 행위자의 영향력 증대 등이 전쟁양상의 복합성 을 초래하고, 다양한 행위자의 개입 등이 전통적 비전통적 분쟁의 경 계를 허문다. 특히 WMD로 무장한 국가의 붕괴나 불안정은 WMD 물질, 무기, 기술의 급속한 확산을 초래하고 국제적 위기로 비화될 가 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현재 국제체제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미 국 주도의 헤게모니와 주요 국가들의 역할, 그리고 다극화된 행위자들 이 상호작용하면서 국제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해 나가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국제체제는 미국 중심 체제 또는 미국 주도의 체제라고 보는 것 이 타당하며, 그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 EU의 영향력 확대 등을 의미 깊게 평가한다 할지라도 미국의 협력과 상호작용이 없는 국제정치와 시장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조정해 나갈 수 없다. 그러나 미국도 이들 국가들의 협조와 지원 없이 독자적인 힘만으로는 정치와 외교, 교역과 환율, 테러와 분쟁과 같은 국제문제의 요인들을 제어하기 어려운 국제환경에 놓여있다. 2_오 바 마 행 정 부 가 발 표 한 4 개 년 국방검토보고서(QDR) 는 21세 기 국제안보의 핵심위협을 하이브 리드 위협(hybrid threats) 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위협 은 광범위한 능력과 위협 유형, 포 괄적 스펙트럼이 특징이며, 전면전, 비정규전, 테러 및 범죄활동까지도 전쟁수단으로 포함하는 개념이다.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27

28 2.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 동북아 지역의 정세는 최근 들어 중요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중국의 부상과 일본, 그리고 한반도 문제가 있다. 지 난 10여 년 사이에 아태지역의 정치경제적 위상은 크게 강화되었다. 동 아시아 지역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유례없이 역동적 특성을 보여 주면서 세계경제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그러나 동북아 정세는 기본적으로 냉전적 요인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불안정한 상태이다. 이 지역은 세계 군사비 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군사비 증가율도 연 8% 이상으로 연평균 3~4%인 다른 지역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이는 동북아가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냉전적 대립과 갈등이 첨예했던 지역이었으며,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 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북한의 지속적인 군사도발 로 말미암아 동북아 국제체제의 안정성을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예 를 들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2009.4)와 2차 핵실험(2009.5)은 역내 안보정세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북한은 천안함 폭 침 사건( )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 등을 저질러 동북아 지역의 긴장을 크게 고조시킨 바 있다. 동북아 지역에서는 중국이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증대해 나가고 있 는 상황 속에서 미국이 여전히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 클린턴 행정부 시절, 탈냉전 이후 동북아 지역에서 개입과 확대정책 (engagement & enlargement policy)을 통해서 국익을 수호하면 서 보다 적은 비용으로 균형자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 해 미국은 한국 및 일본과의 동맹체제 유지, 중국과 러시아와의 정치 경제적 협조관계 발전, 북한과의 관계개선 등을 도모하여 유일 초강대 국으로서의 지위를 바탕으로 역내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 하였다. 특 히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경제적 협력관계 심화와 전략적 대립 의 딜레마 속에서 일본과의 안보관계 강화를 통한 중국 견제, 동북아 에서의 안보비용 절감 등을 도모해 왔다. 부시 행정부는 힘을 통한 평화 를 추구하는 등 미국 주도의 외교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특히 9 11 테러 이후에는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 28 통일문제이해 2012

29 크에서의 반테러 전쟁에 영국 일본 등이 적극 공조하였다. 현재의 오 바마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국제협력과 다자적 접근을 중시하며 미국 의 리더십 회복을 모토로 기존 동맹국들과 국제기구와의 다양한 파 트너십을 구축하면서 필요에 따른 직접대화와 강력하고 직접적인 외교 (tough and direct diplomacy)를 추진하고 있다. 한편, 외교와 군사, 경제력 등을 대외정책에 종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경제대국 지위에 상응하는 정치 군사대국의 면모를 갖추려 하고 있다. 일본은 미 일 안보동맹의 기본 틀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 로 군사력 증강, 유엔 평화유지군활동(PKO) 참여, 자위대의 해외파 병,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 획득 추진, 대외원조의 전략적 이용 등을 통해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북핵 문제와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 한 미 일 동맹체제의 한 축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일본의 대외정책은 미 일동맹 중심의 국익추구를 목표로 외교, 안 보, 경제정책 등을 구현해 왔다. 2009년 출범한 민주당의 하토야마 정부는 일본 내 미군기지 이전 문제 등과 관련하여 미국에 대해 독자 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으나, 2010년 6월에 출범한 민주당의 간 나오 토 총리체제는 기존의 전통적인 미 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노력하 였다. 2011년 8월 30일 출범한 노다 요시히코 총리도 이러한 연장선상 에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동북아 국제정세에서 주목해야 할 가장 큰 변화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 중 관계의 조정이다. 현재 미국은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로 중 국을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은 갈등과 협력 속에 섣부른 대결이나 충돌은 피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미 중 관계의 전 반적인 유화적 기조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미국은 중국의 군비현대화 추세를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인도양, 서태평양 지역까지 군사전 략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3 미 중은 2011년 1월 19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양국관계 를 협력적 건설적으로 발전시키는 한편, 군사 경제 무역 에너지 대테러 등 각 분야에서 교류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남북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질서에 대해서도 한반도 비핵화, 군사적 긴장완화, 남 북대화 개최 등을 합의했다. 이와 같이 미 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 3_중국은 자국의 해양방어선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로 확장하고 있다. 동중국해는 중국과 일본 간 의 영토 문제인 센카쿠열도( 釣 魚 島 댜오위다오)를 두고 충돌이 계 속되는 지역이다. 또 남중국해에서 는 남사군도( 南 沙 群 島 )나 서사군 도( 西 沙 群 島 )의 영유권 및 석유 천 연가스 개발을 둘러싸고 베트남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과 중국 간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2010년 3월 중국은 남중국해의 해 양 권익을 대만이나 티베트 문제와 같이 주권 영토와 관계되는 핵심 국가이익 이며, 타협의 여지는 없다 고 선언했다.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29

30 30 통일문제이해 2012 핵화 문제가 강조된 것은 긍정적 신호이지만, 미 중은 우라늄 농축프 로그램(UEP) 등 민감한 사안에서는 이견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중국 의 대한반도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뀔지는 미지수이다. 탈냉전이 도래하고 구 소련이 해체된 이후, 러시아는 초강대국으로 서의 지위와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정치 경제적 불안정으로 인해 신 국 제질서 형성과정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러시아는 자원과 에너지,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력을 회복하고 있으며, 정치력을 확대해 나가려는 대외정책을 구가하고 있다. 최근에 는 국제무대에서 강대국에 합당한 지위와 외교적 자율성 획득을 추 구하고 있다. 상하이협력기구(SCO)는 1996년 역내 평화와 안보, 안정을 위한 공조 체제 구축 등을 목적으로 중국, 러시 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 크스탄이 참가한 가운데 상하이에서 열린 5개국 회담에서 처음 거론되었 고, 이어 2000년에 우즈베키스탄이 합류하여 2001년 6월 상하이에서 정 식 출범한 기구이다. 그밖에도 이 기 구 는 정 치 경 제 무 역 과 학 기 술 문 화 에너지 등 광범위한 분야의 협력 관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는 동북아시아에서도 중국 및 북한과의 기존 관계를 유지하 는 동시에 한국 미국 일본과의 관계발전을 통하여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에서도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한다. 먼저, 러시아는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속에서 미국의 독주 에 대한 견제, 무기 수출, 상하이협력기구(SCO)를 통한 중 앙아시아의 안정화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배경에 서 대외적으로는 유라시아주의 노선 하에 실리와 안보 중시의 실용주의적 전방위 외교를 견지하고 있다. 러시아 는 시베리아와 극동지역 개발을 국가과제로 설정하고 있으 며,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될 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APEC) 정상회의에 대비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는 동북아와 한반도의 현안에 대해서 전략 적인 반대 또는 지지를 표명하는 방식으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 다.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특정 국가와 협력관계를 형성하지만 또 다 른 현안에 대해서는 외교적 입장을 달리한다. 예를 들어서 천안함 폭 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사건과 관련하여서도 러시아는 합동조사 단의 결과를 불신하고 다른 주장을 하면서 애매모호한 입장을 표명 하는 등 한반도 문제에서의 전략적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조치를 통해서 러시아는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 등의 영향력을 견제하면서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 하고 있는 것이다.

31 동북아 지역에는 역내 강대국 간의 역학관계에서 파생하는 문제 이 외에도 몇 가지 불안정 요인이 있다. 첫째, 동북아 지역에는 남북관계 와 중국 대만 관계 등 분단국의 통일문제뿐만 아니라 영토와 자원 문제를 둘러싸고 역내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가능성 이 상존하고 있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북아는 세계에서 가 장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하였으나, 1990년대 말 동아시아 외환위기 를 겪은 바 있고, 이러한 위기는 경제성장 이면에 잠재되어 있던 국가 간 문제와 국가 내부의 사회적 문제라는 불안정성을 드러내고 있다. 셋째, 동북아 지역에서는 국가 간 갈등요인의 표면화와 경제력 향상을 통한 군비증강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불안정 요인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지역에는 지역안 보에 대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안보 부문에서는 아세안지 역포럼(ARF), 아태안보협력이사회(CSCAP), 동북아협력대화(NEACD) 등과 같은 협력조직이 있으며, 경제 부문에서는 아태경제협력회의 (APEC)가 있으나 구속력 있는 협력기구로 기능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동북아 지역의 다자간 협력기구 창설은 이 지역이 안고 있 는 영토 국경분쟁 및 군비경쟁 등 안보 위협요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 고, 경제협력을 증진한다는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며, 이 점에 대해서는 역내 국가들이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결론적으로 탈냉전 이후 동북아 정세의 중요한 변화는 중국의 부 상, 미국 중심의 동맹 강화와 함께 러시아의 재등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동북아의 정세변화는 한국의 대내외 정책과 상호 영향 을 미치며 한반도 통일 환경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31

32 제2절 주변국가의 한반도 정책 1. 미국 (1) 동북아 정책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기조는 기존의 양자동맹 체제 강화 와 더불어 범지역적 지역안보 체제의 추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1세기의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를 강화시켜야 한다고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는 동맹의 중요 성은 아시아 지역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책기조에 따 라 그는 한국, 일본, 호주와의 동맹을 강화하고 이들이 안정과 번영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동맹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왔다.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이후 북한 핵 문제와 중국, 일본 등 지역 세 력 간 패권 경쟁 가능성 등 냉전 이후 동아시아의 새로운 안보위협 요 인에 대응함은 물론,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 국의 경제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지역시장으로의 접근을 확보하고, 미 국중심의 전략구도를 정착함으로써 21세기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주도 32 통일문제이해 2012

33 하기 위하여 동아시아를 중시하는 정책을 추구해 왔다. 또한 미국은 기존의 양자 간 안보체제를 중심축으로 동아시아 지역 내 전진 배치 를 계속 유지함과 동시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다자간 안보대화 와 협력을 추진하였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다자간 안보구도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게 된 것은 북한의 핵개발 가능성, 중국의 군사력 증강 등 냉전 종식 이 후 발생한 동아시아 지역의 불안요인에 기인한다. 즉, 미국은 세계에 서 가장 활발한 경제성장 지역인 동아시아에서 현재와 같은 유동적인 정세가 계속될 경우 역내국가 간 군비경쟁이 심화됨과 동시에, 미국이 이러한 역내 안보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대 중국 정책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의 부상이 향 후 수년간 미국의 외교에 가장 중대한 도전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을 대하는 최선의 방법 은 중국을 국제체제 속으로 더 깊이 끌어들여 정 치, 경제, 환경, 안보 등 전 분야에서 공동의 목표 를 추구하는 것이다. 중국을 책임 있는 이익상관자 (responsible stakeholder) 로 규정한 부시 행정부 의 대중국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에게 국제규범 을 준수하는 국가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6자회담 미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 등과 관련해서는 중국의 지원과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무역불균 형 문제, 티베트 사태와 달라이 라마문제, 중국의 인권개선문제 등과 같은 과제도 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미 중 관계는 복잡하고 미묘하 며, 이들의 미래는 분명히 불확실한 요인들을 안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은 대외정책에 있어서 일부 선언적인 목표에 있어서는 공감대를 표시 하면서 실질적 이익의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서 한때 난관을 조성했던 것은 미 일 동맹의 조정문제였다.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정부의 대미 독자외교 노선, 특 히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선언은 미 일 관계에서 외교 갈등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33

34 34 통일문제이해 2012 과 혼선을 초래하였다. 민주당 하토야마 정부는 지난 2006년 자민당 정부가 후텐마 기지를 2014년까지 오키나와 내 슈워브 미군기지로 이 전키로 합의했던 사항을 대등한 미 일 관계 구축을 주장하면서, 해 외 이전으로 방향을 선회한다고 공약하는 등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지난 2006년 서명한 미국과의 합의를 이행하면 민주당의 공약과 정체 성이 타격을 받을 것이고, 합의를 파기한다면 미 일 관계가 타격을 받 을 것이 예상되는 문제였다. 그러나 간 나오토 체제가 등장한 이후, 결국 양국은 동맹을 우선하는 차원에서 후텐마 문제를 합의했다. 클 린턴 국무장관과 마에하라 외상은 2011년 1월 6일 워싱턴에서 열린 2+2회담(외교 국방장관 회담) 에서 기지이전 문제는 2010년 5월의 미 일 합의사항에 따라 실시하며 오키나와 부담 경감에 협력한다 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며 유보하였다. 그러나 이와 달리 2011년 8월에 출범한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미일동맹이 외교의 축이라고 공언하면 서 후텐마기지 이전문제에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군사 동맹의 측면에서 후텐마 기지문제는 오키나와 주둔 미군 8,000명의 괌 이전과 미 본토 일부 부대의 일본 이전, 주일 미군기지 내 병력 이동 등 주일 미군 재편 계획과 연관되어 있다. 미 일 동맹은 일본과 한국의 3각 동맹을 기축으로 삼아온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현재의 미 일 동맹은 일본 정권 의 변동으로 인한 일부 조정과정을 겪은 것이지, 근본적인 균열은 아 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근, 미국과 일본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처와 제재,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와 관련하여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 상(Proliferation Security 서도 가장 적극적인 동맹관계를 보여준 것처럼 동맹은 공 Initiative, PSI)은 핵, 미사일 등 대 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방지하 기 위해 2003년 5월에 발족한 국제 협력체제이다. WMD 비확산을 위해 가입국 간의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 (2) 한반도 정책 시 합동작전도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2009년 5월 26일에 가입하였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대체적으로 연속성과 유사성을 보이 는데 동아시아 전략 역시 변화보다는 연속성의 측면이 더 클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동 맹체제의 기본구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 일본, 호주 등과의 동맹을 중시할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 다. 오바마의 한 미 동맹정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되며, 21

35 세기전략동맹 이라는 기존 부시 행정부 시기의 기본 틀은 계속해서 유 지되거나, 강화되어진 한 미동맹의 현실에 맞도록 일부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 미 양국은 지난 2010년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 최된 G20 정상회의 에서 2012년 4월 17일로 계획된 전작권 전환시점 을 2015년 12월 1일로 3년 7개월 연기하기로 합의하였다. 4 이는 북한 의 군사도발과 동북아의 안보정세를 고려하여 한반도 상황이 안정될 시점에 전시작전권을 이전하는 합의를 뜻하며, 기존의 군사동맹은 더 공고화하는 제도적 합의이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북한의 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안정이다. 첫째로 미국은 북한 핵의 완전한 폐 기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6자회담과 같은 다자주의적인 방식의 평화 적 해결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은 핵 보유국 인정, 미국 과의 관계정상화, 대북 경제지원,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및 주한 미 군 철수 등의 주장을 통해서 사실상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체 제안전을 보장받으려고 한다. 미국은 중국과의 협조,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와 같은 국제제재, 동맹국들과의 공조를 통해서 북 핵 문제 해결을 시도해왔으며, 앞으로도 이 문제는 동아시 아 안보정책의 핵심적인 요인이 될 전망이다. 한편 한ㆍ미 양국은 핵안전을 위한 국제협력을 도모하 는 핵안보정상회담( , 서울)에서 북한 미사 일 발사 철회라는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성과를 거두 었다. 특히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보상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언급하면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2ㆍ29 합의에 의한 대북지원을 철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북한이 4월 13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함에 따라 미국은 24만 톤의 영 양식을 제공하겠다는 대북 지원계획을 철회하였다. 둘째로는 미 북 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문제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009년 11월 19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검증 가능하 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약속을 이행한다면 북한이 제기해 온 미 북 관계 정상화,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 체결, 경제지원 등을 검 토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평화체제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는 북한 의 2차 핵실험( )에 대응하 기 위해 2009년 6월 12일 유엔 안보 리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대북제재 결 의안을 말한다. 이 결의안은 소형무 기를 제외한 북한의 무기관련 물자의 대외수출 금지, 인도주의적 개발 목 적 등을 제외한 금융지원 금지 및 북 한 국적 화물선에 대한 공해상의 검 색 조치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4_전시전작권 전환 연기는 북한의 도발(2009년 장거리 미사일 발사 와 제2차 핵실험 감행, 2010년 천 안함 폭침 사건 등)에 따른 안보위 협에 대한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연 합 사 해 체 이 후 한 미 간 의 군 사적 준비상태와 북한과 중국 등 주변국의 정치적 일정을 고려하여 한 미 정부 간에 합의한 것이다. 전 시작전권 전환 시, 한미연합사는 해체되고 이후 한국의 합동군사령 부(JFC)와 주한 미군의 한국사령 부(USKORCOM)가 각각 창설돼 공동방위체제로 전환될 예정이다.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35

36 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가 핵심이다. 그것은 곧 미국과의 평 화협정 체결과 한 미 동맹의 해체 및 주한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것 으로서, 비핵화 진전 없이 섣불리 평화체제를 추진하다가는 평화를 가장한 북한의 전술에 끌려갈 개연성이 크다. 미국은 과거부터 평화 적 절차와 협상에 의한 평화체제 구축을 지지해 왔다. 그리고 남북 당 사자들이 합의하여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전까지는 정전협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방해 왔다. 마지막으로 한 미 동맹은 미 일 동맹과 더불어 미국의 동북아 동맹 의 주요 사안이다. 또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인 한 미 동맹관 계를 통해서 북핵 문제와 한반도 현안에 대처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도 남북관계의 경색, 특히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북한의 행태 를 막는 첫 번째 관건은 한 미 간의 군사적 공조이다. 오바마 정부 출 범 이후, 북한의 도발로 증대된 한반도의 불안정성 해소와 한국의 대 북정책 추진에 있어서 미국과의 동맹체제는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 다. 특히 미국은 동북아와 태평양 지역 전반의 안보상황 뿐만이 아니 라 한반도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2012년 1월 미국은 2개의 전쟁 동시 개입전략을 사실상 포기하는 새로운 국방전략을 발표하였음에도 불 구하고,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은 한반도의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현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2. 일본 (1) 동북아 정책 동북아 지역에서 일본은 미 일 동맹체제 하에서 안보 강화, 자원 및 시장의 안정적인 확보, 해상 수송로의 보호를 국가이익으로 하여 글 로벌 차원에서의 안보역할 증대, 잠재적 위협에 대한 방어 및 견제, 동 아시아 경제의 주도 등과 같은 정책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첫째, 안보적 측면에서 일본은 미 일 동맹체제 하에서 안전보장을 확보하면서도 자국의 경제력에 걸맞게 안보역할을 증대함으로써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오바마정부 36 통일문제이해 2012

37 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서 일본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문제 협조는 물론 환경, 기후변화, 군축, 비확산 문제 등 을 중심으로 미국과 협력을 확대하면서 미 일 동맹의 가치를 부각시키 고있다. 아울러 일본은 2008년 12월 신 테러대책 특별조치법 을 개정 하여 인도양에서의 급유지원 활동을 2010년 1월까지 연장하는 등 테 러와의 전쟁 에 대해 협력의사를 명백히 하였다. 구체적으로 하토야마 정부는 동아시아공동체론 을 주장하면서 오키 나와의 미 해병대 기지 이전을 요구하는 등 대미관계에서 독자성을 신 장시키려다 미국과의 외교 갈등과 혼선을 초래했다. 이어 2010년 6월 출범한 간 나오토 정부는 그 같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대한 언급 없이 미 일 동맹의 강화에 주력하였으며 2011 년 8월 출범한 노다 정부도 기본적으로 이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둘째, 일본은 지역강국으로서 중국과 경쟁이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 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해군력 증강이 남중국해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해 동남아를 사실상 중국의 동맹권으로 만들 가능성을 우려하 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미 일 동맹체제를 동아시아 지역안정의 기초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신뢰조성과 다자외교 의장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셋째, 일본은 미 일 무역마찰 해소, 수출 및 첨단산업 주도의 비교 우위 확대 등 기존의 경제적 우위를 유지하면서도, 세계경제의 블록화 추세에 대비하여 자원과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를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일본 주도의 지역경제권 을 구축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경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국 의 경제적 부상에 대비하고 화교 경제권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 하여 싱가포르에 이어 한국 및 ASEAN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자유무역 협정도 제안하였다. 기본적으로 한 국 ASEAN 싱가포르와의 연계를 통하여 중국을 견제한다는 것이 일 본의 전략적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군사력 증강에 따른 지역대국화 를 경계하는 한편, 경제 분야에서 일 중 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 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일 중관계는 다시 하향곡선을 그리는 추세이다.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37

38 2010년 9월 7일 동중국해 센카쿠 열도 인근 해상에서 일본 해상보안 청 순시선과 중국 어선 간의 충돌사고가 발생했다. 일본은 나포한 중 국 어부 14명을 며칠 후에 석방했으나, 영해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체포 했던 중국인 선장은 억류됐다. 이에 대해 중국은 자국 공무원의 일본 관광 전면 중단, 간 나오토 총리와의 중 일 정상회담 백지화, 일본인 4 명의 간첩혐의 체포, 첨단 제품에 필수적인 희토류( 稀 土 類 )의 일본 수 출 원천 봉쇄 등 대일 전면적 공세를 전개했다. 중국의 강경한 반응에 일본정부는 재판 없이 중국선장을 석방했다. 이 사건은 부서지기 쉬운 전략적 호혜관계로서의 일 중 관계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21세기의 새로운 국제정치와 경제적 환경 속에서 일본이 취 하고 있는 동북아 정책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은 동 북아 지역에서의 세력균형의 다원화 현상에 따른 갈등 및 위협 증대 가능성 억지, 일본의 군비증강에 대한 역내 국가들의 우려 불식 등을 주요 정책기조로 하고 있다. 둘째, 일본과 중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협력관계를 심화시켜 왔으나, 일본은 최근 수년간 지속된 중국 의 방위비 급증, 동중국해에서 중국군 활동증가 등 중국의 군사대국 화를 경계하고 있는 바, 미 일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의 잠재적 위협 에 대응해 나갈 것이다. 한편 경제면에서는 중국은 일본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며, 일본 역시 중국의 제3의 교역상대국으로, 세계 금융위기 의 극복을 위해서라도 양국은 서로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셋째, 일본은 동북아 지역에서 자국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영향력 확보를 위 해 자위대의 활동영역을 확대하는 등 보통국가 로 나아가려 하고 있 다. 이는 9 11 테러 이후의 각종 테러위협,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위협 등 전 세계적이고 지역적인 새로운 안보환경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2) 한반도 정책 일본은 경제력에 상응하는 정치 군사적 역할 증대를 통하여 한반도 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일본의 한반도 정책목표는 한 반도의 위기상황 발생을 방지하면서 한반도에 대한 정치 경제적 영향 력을 확보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목표에 따라 그간 일 본은 한국에 대한 공식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 내지는 북한 38 통일문제이해 2012

39 의 체제붕괴는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에 치명적일 수 있으므로 핵을 포함한 북한 군사력의 점진적 제거와 개혁 개방 유도를 통한 체제전환 이 한반도 평화정착의 최선책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일본은 근본적인 안보문제의 차원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이 동북아의 안정에 중요하며, 북한이 한국에 대해 위협요인으로 존 재하는 한 일본에 대해서도 잠재적인 위협요인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 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일본정부는 한 일 우호협력 관계를 한반 도 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일본은 냉전구조의 와해와 한 러 및 한 중 수교에 자극받아 북한 과의 수교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핵, 미사일 및 납치문제를 둘러싸고 양국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2007년 9월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후쿠다 내각이 출범하면서 일 북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가 증대되었으 나, 2008년 9월 내각교체 이후 국교정상화 협상은 정체된 상태이다. 일 북 수교 재개에 최대의 관건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자 문제이다. 2008년 6월과 8월 양국은 실무협의를 거쳐 북한이 납치자 문제를 재조사하고, 일본은 대북제재 조치를 일부 해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 러나 아소 내각 출범 후 일본이 대북 강경입장으로 선회하고,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우선시함으로써 합의사항이 실현되지 않은 채 일 북 관계는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6자회담에서의 북한 핵 검증 합의도 출실패,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의 발 생, 일본 내 부정적 대북여론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양국이 납치문 제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도발로 인해서 증대된 동북아의 불안정성은 한 일 간 안보 관계의 강화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한 일 우호 관 계를 지향하는 일본의 기본 입장은 노다 요시히코 정부에서도 이어지 고 있다. 한 일 관계는 향후 경제교류의 활성화, 자유무역협정 협상진 전, 북한 비핵화 등 양국 간 교류가 더욱 긴밀해지고 있다. 그러나 독 도문제, 교과서문제, 위안부문제 등으로 갈등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 다. 이들 문제는 역사인식이나 국가관과 연결된 것이어서 결코 쉽게 해 소되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39

40 한 일 협력을 제약하는 또다른 요인도 있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적절한 자성 없이 자위대의 해외군사 활동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경 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지난 2010년 12월, 신 방위대강 5 을 발표하면서 자위대의 활동을 확대하고 방어군사력의 범위를 폭넓게 운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이는 무엇보다 최근 벌어진 북 한의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높아진 한반도 사태에 대한 우려를 명분으로 또는 이를 염두에 두고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일본은 심지어 한반도 유사시 일 본인 피해자 등을 구출하기 위해 직접 자위대가 나서서 행동할 가능 성을 언급했다. 간 나오토 총리의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출동 발언 은 자위대의 해외 무력 행사를 금지한 헌법 9조에도 불구하고 자위대 의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는 일본 정치권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 가되어 왔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노다 정부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 지를 요구하면서 경계태세를 강화하였다. 일본은 북한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회로 활용하기 위하여 노 력하고 있다. 3. 중국 5_2010년 12월 발표된 일본의 신 방위대강 의 핵심은 2011년 기존의 전 수 ( 專 守 ) 방 어 에 서 동 적 ( 動 的 ) 방 위력 개념의 도입하여 자위대를 지 역적으로 유연하고 폭넓게 운용하 겠다는 것이다. 전수방어는 자위대 의 목적에 걸맞게 주변지역에 불안 정 요인이 되지 않을 최소한의 방 위력만을 갖추는 기반적 방위력을 의미한다. 40 통일문제이해 2012 (1) 동북아 정책 21세기 중국의 국가전략 목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국내외 적 균형을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대외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경제력의 성장과 더불어 군사력을 포함한 종합국력을 배양하 고, 이를 기초로 국가의 통일과 아울러 책임대국으로서 전 지구적 지 역적 질서 수립에 적극 참여하고자 한다. 2002년 중국공산당 제16차 당 대회에서 후진타오 체제가 출범하면서 천명된 중국의 국력증대 목 표는 2007년 제17차 당 대회에서 재확인되었다. 주요 내용은 2020년 까지 국내총생산을 4배로 늘려서 소강사회( 小 康 社 會 )를 최우선적으 로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소강사회는 기본적인 먹고 사는 문제를 해 결한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빛을 감추어 밖으로 드러 내지 않고 힘을 기른다 는 의미의 도광양회( 韜 光 養 晦 )를 기반으로 평 화로운 부상을 강조하는 화평굴기( 和 平 堀 起 )의 전략을 밝혔다. 후진

41 타오는 경제발전 및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확립에 유리한 국제환경 을 조성하고, 신장된 국력에 상응하는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는 것을 국가목표로 삼고 있다. 중국은 책임 있는 대국의 이미지를 구축함으 로써 주변국의 경계를 완화함과 동시에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이는 주변국과 신뢰형성을 통한 안정된 안보환경을 구축하려는 선린외교와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책임대국외교, 다자외교, 선린외교, 경제외교 등은 후진타오 정부의 새로운 외교이념인 조화세계론( 和 諧 世 界 論 ) 6 으로 발전되었다. 중국의 국가전략이나 동북아 전략에 대한 논의는 중국의 부상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중국은 이제 글로벌 질서는 물론 동아시아 국 제질서에서 강대국으로의 변환을 모색하고 있다. 21세기 국제질서에서 중국의 부상은 외형적으로 관찰 가능한 각종 지표에서 명확히 드러 난다. 중국은 1978년에 개혁 개방 정책을 실행한 이래, 세계에서 가장 경제성장이 빠른 국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지난 10년간 중국경제의 외형적 팽창은 놀라울 정도다. 중국의 부 상은 경제와 군사 양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2010년 중국은 무역규 모 면에서 세계 2위로 성장했으며, 외국인 직접투자는 단연 세계 제일 이다. 중국은 현재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나아가 2005년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일본의 최대 무역상대국이 되었다. 군사 분야의 경우는 중국의 부상이 잠재적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동아시아의 군사비는 전통의 강대국이 밀집한 유럽과 절대액수에서 점차 대등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 세계 군사비의 비 중으로 보면 2001년과 2011년 사이에 유럽의 군사비 비중이 31%에서 22%로 줄어든 반면, 아시아의 비중은 16%에서 19%로 증가하였다. 또 지난 10년간 아시아 지역의 군사비 증가율은 1.7배로 미국과 동일 한 수준이다. 세계 군사비 증가율이 1.5배임을 감안하면 아시아의 군 사비 증가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_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주장한 외교이념으로, 서로 다른 문명과 다양한 발전경로를 인정하 면서 경쟁과 공존이 함께 하는 국 제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41

42 표 2-1 세계 주요 국가별 국방비 비교 순위 국가 국방비(억 달러) GDP(억 달러) GDP 대 국방비(%) 국민 1인당 국방비(달러) 1 미국 6, , ,270 2 중국 , 프랑스 , ,049 4 영국 , 독일 , 일본 , 사우디아라비아 412 4, ,436 8 러시아 , 호주 , , 한국 245 8, 출처 : 2010 국방백서, 2010, p.270 이러한 중국의 부상에 대해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우려를 갖 고 있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경계심을 무마하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평 화부상론을 내세우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군사력 증강, 미 일 군사동맹의 강화, 일본의 헌법 개정 움직임과 해외 군사활동 증 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발사와 핵실험에 따른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 불안 등을 주된 위협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동북아는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주변지역이면서 동시에 미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과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특수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중국의 책임대국 외교와 선린외교가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지역이다. 또 한 이 지역은 중국에게 있어 자국의 경제성장은 물론 중국위협론을 불 식시키기 위해 경제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중요한 지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은 동아시아를 대국외교, 선린외교, 경제외교, 대개도국 ( 對 開 途 國 )외교 등이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전략지역으로 인식하고 있 다. 여기에다 미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고 냉전의 유산과 이에 따른 전통 안보위협과 탈냉전적 특징인 비전통 안보위협도 공존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정세인 식과 대외전략을 감안하면 중국의 동아시아 정책목표는 역내 불안요 인을 안정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경제발전에 주력할 수 있는 평화로운 42 통일문제이해 2012

43 환경을 창출하는 한편, 경제협력을 통해 자국에 유리한 동아시아 질 서를 구축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2) 한반도 정책 중국은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현상유지(status quo)를 원한다. 이는 중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평화로운 주변 환경이 필요하다는 기조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 북한체제의 붕괴 방지를 추구 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중국의 전략적 우위를 통한 한반도에서의 영 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도 이러한 전략기조에 불안요인이 되는 것은 북한의 핵 개발이다. 중국은 1990년대 제1차 북핵 위기 이후 원칙적으로 북한과 미국 양자 간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주장해 왔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일관된 태도를 표명한 것 외에는 북핵문제의 국제화를 반대하면서 불개입의 방관적 입장을 취하였다. 미 중 양국은 6자회담과 한반도 비핵화의 실현, 한반도 및 동북아 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거듭 밝히고, 유엔 안보리 결의 1874 호 이행과 평화적 수단을 통해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강조 하였다. 또한 중국이 유엔제재 결의안 이행과 관련하여 금융제재 등 에 있어 미국에 협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9년 7월 중국 단둥 세관이 북한이 밀반입하려던 미사일 부품 원료인 바나듐 70kg을 압 류한 조치도 대북 제재를 위한 국제공조에 일부 협력하는 모습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는 일정한 양면성이 존재하는데, 그것 은 중국의 대북정책이 겉으로 드러나는 외교적 수사와 실제 행동 간 에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과거 6자회담 개최와 진전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미국과 협조를 통해 북핵문제 해결에 협조하는 행동을 보였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원하지 않지만 북한 의 붕괴 역시 원하지 않는다. 특히 중국은 천안함 폭침 사건 관련 유 엔 안보리 성명에 동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의 주체로서 북한 을 명기하는 것에는 반대하였다. 오히려 여러 차례의 북 중 정상회담 (2010년 5월, 8월, 2011년 5월)에서 중국이 북한에 경제지원 제공 등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43

44 을 통해 우호적인 북 중 관계를 유지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중국은 연평도 포격 사건과 관련하여서도 한반도 문제가 유엔 안보리 에 회부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핵안보정상회담 기간 중에 가진 한ㆍ중 정상회담에서 중국 후 진타오 주석은 북한에 대해 미사일 발사보다 민생을 챙겨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발사중지를 권고하였고, 발사 후에는 유엔 성명에 동참하 는 적극적 입장을 보였다. 동시에 냉정과 절제를 가지고 북한의 문제 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소극적 입장도 보였다. 이러한 양면성은 북 한이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등과 같은 비정상적 불법활동을 지속할 경우 보편적 가치가 강조되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이해와 입지가 좁 아지는 중국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한반도를 일종의 완충지대로 갖고 있기를 원한다. 그런 이유 로 핵 실험과 같은 북한의 퇴행적인 행동을 수사적인 차원에서 비난 하지만 북한체제의 붕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떠한 종류의 제재 조치에는 전략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이후에도 중국은 북한의 지도체제를 계속해서 지지할 것이라고 표명하는 등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국은 한반도와 주변정세의 안정이 중국의 이익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붕괴를 방지하는 한편, 동시에 미국 과 한반도 문제에는 선택적으로 협력하며,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필요 한 외부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4. 러시아 (1) 동북아 정책 역사적으로 러시아는 안보적 차원에서 동북아의 전략적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여 왔다. 이는 러시아가 동북아 지역의 세력균형 관계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면 아 태지역 전체에 대한 영향 력 행사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동북아 안보정책은 역내 전략 환경을 자국에 불리하지 않 44 통일문제이해 2012

45 도록 전체적인 균형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조성하여 역내 문제에 심 도 있게 관여한다는 입장 하에 추진되고 있다. 러시아의 동북아 정책 목표는 역내 신 국제질서 재편과정에 적극 동참, 일본의 재무장 및 군 사 대국화 견제,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유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영향력 확대, 다자간 안보협력기구 창설 등으로 요약된다. 러시아는 유라시아주의 의 대외정책 노선 하에서 실리와 안보 중심 의 실용주의적 전방위 외교를 지속하면서 신 국제질서 재편과정에 적 극 동참하고 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취임 후인 2008년 5월 중국 을 방문하여 양국 간 제반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러시아와 중국은 푸 틴 총리의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참석(2008.8)과 원자바오 총리의 모 스크바 방문( )을 통해 에너지 협력과 미국발 금융위기에 공동 대응하기로 하였다. 이렇듯 러시아는 미 러 정상회담(2008.4)을 비롯하여 상하이협력기 구 정상회의(2008.8), 중 러 총리회담( ), APEC 정상회의 및 G20 정상회담( ), 중 러 국경분쟁 타결(2008.7), G20 정상회의 ( ) 등 경제발전과 안보증진을 위한 국제협력을 강화해 왔다. 동 시에 미국 견제를 겨냥한 중 러 전략적 동반자 관계 유지, EU 관계강 화, 북핵문제 해결의 중재자적 역할 강화, 이라크전쟁 반대와 UN의 역 할 확대 주장 등 독자적인 국제적 영향력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시에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 러시 아가 참여하는 다자간 안보협력체제 구축을 지지하고 있는 입장이다. 또한 러시아는 종전의 강한 러시아 에서 잘사는 러시아, 비전 있는 러시아 로 정책을 선회하면서 동북아 국가들과 군사적 동맹보다는 경 제협력의 파트너로서 관계 맺기를 희망하고 있다. 러시아는 동북아 지 역에서 시베리아 및 극동지역 개발과 관련하여 중요한 경제적 이해관 계를 갖고 있으며 동북아 지역 국가, 특히 미국 일본 한국의 경제력이 시베리아 개발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전반적인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 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러 일 양국은 G8 정상회담,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정상 회담을 개최하였으나 양국 간 포괄적인 협력 관계의 확대 및 심화의 장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45

46 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쿠릴 열도 4개 섬 분쟁해결을 위한 어떤 합의점 도 도출하지 못하였다. 러시아는 국토의 균형발전 및 2012년 APEC 정 상회담 준비를 위하여 2007년 11월 정부령으로 2013년까지 극동 바이 칼 사회경제발전 연방프로그램을 채택하여 250억 달러가 넘는 개발투 자 계획을 실행하고 있고, 에너지 의존경제를 벗어나기 위한 산업다변 화 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프로그램의 주요 파트너 중 하나 이며, 이는 러 일 경협을 확대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러시아는 그루지야와의 전쟁을 계기로 EU의 대 러시아 에너 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정책에 대응하여 동북아 국가들과의 에너지 협력을 강화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처럼 러시아의 동북아 정책은 향후 이 지역 국가와의 경제협력, 역내 국가들의 시베리아 개발 참여 유도, 역내 경제협력기구에의 참가, 동북아 경제권에의 참여 등과 같 이 경제적 고려를 우선하는 목표를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2) 한반도 정책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목표를 중심으로 추진 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 한국과의 경제교류와 협력을 통한 실익 추구, 북한에 대한 영향력 복원,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 보 등이다. 첫째, 러시아는 국내 정치안정과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주변환 경 조성 차원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남북 간의 대화를 통한 평화정착이 무엇보다도 긴요하 다고 인식하고 있다. 러시아는 한 러 정상회담( )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북핵 문제의 포괄적이고 긍정적인 해결 에 한국과 인식을 같이 하고, 이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 하였다. 둘째, 러시아는 한국의 자본을 유치하여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의 경 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경제교류와 협력을 추진해 왔다. 특히 한 러 정상회담(2008.9)에서 한 러는 양국 관계를 상호 신뢰의 포괄 적 동반자 관계 에서 전략적 협력의 동반자 관계 로 발전시켜 나가기 로 합의하였다. 양국은 정상회담기간 중 에너지, 자원, 나노, IT, 우 46 통일문제이해 2012

47 주, 원자력 등의 분야에서 26건의 협정을 체결하였다. 더욱이 2008년 APEC 정상회의 중 치러진 한 러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 양국 간 실질 협력 강화, 2012년 여수 박람회 개최 및 블라디보스토크 APEC 개최, 극동 시베리아 개발 등에도 협력해 나가 기로 하는 등 양국 간의 전략적 협력의 동반자 관계가 더욱 심화 발 전 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7월 9일 이탈리아 라쿠일라에서 개최된 G8 확대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한 러 양국은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문제, 국제금융 위 기 대처, 투자 증진 등을 논의하였다. 2010년 11월 11일 G20 정상회 의 기간 중에 가진 한 러 정상회담에서는 러시아 석유 가스 광물자윈 의 공동개발과 러시아산 천연가스 한국 공급 및 러시아 전력망 현대 화 사업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경제협력의 문제와는 별개로, 국제정치적 상황 하에서 러시 아는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국제합동 조사단의 결과 를 불신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대의견 개진과 애매한 입장표명을 통해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치려는 전략적 행태를 취한 바 있다. 셋째, 러시아는 남북한 균형접근을 지속하는 가운데 지난 2000년 대 초반에는 북한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였지만, 최근 수 년간은 정상급 상호 방문은 물론 총리급 이상의 고위급회담도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2009년 4월 라브도프 외무장관은 매드베데프 대통령 의 친서를 휴대하고서도 방북기간 중 북한 최고통치권자를 만나지 못 하였다. 그러나 양국은 연해주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경제지원 협력을 추진하는 가운데 나진과 하산(Hassan)을 연결하는 철도 개 보수 및 나진항 조차를 통한 항만 철도 물류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더욱 이 2011년 8월 25일 김정일과 메드베데프 대통령과의 북 러 정상회담 에서 남 북 러 가스관사업의 가능성이 논의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가 스관사업은 전력망 구축, 철도건설사업 등과 연계될 수 있지만, 근본 적으로 남북관계의 안정유지와 밀접하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넷째, 러시아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전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47

48 통적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북 러 관계를 정상화하고 이를 통하 여 남북한 균형정책을 유지시키려 하고 있다. 한편 천안함 폭침 사건 과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해서는 남북한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입장 을 취하기도 하였다. 반면 핵안보정상회담 기간 중에 가진 한ㆍ러 정상 회담에서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미사일 발사보다 민생을 우선해 야 한다고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를 최대한 높이고 이를 활용하려는 현 실주의적 국제정치의 양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의 대 한반도 정책은 한반도 및 주변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기존의 경제 통상이익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외교 안보 이익 도 동시에 중시하는 정책으로 전환하여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러시아 의 한 반 도 정책 은 북 한 동 향, 한 러 관계, 미 러 관계 등 에 따 라 변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 자 역할을 수행하며 북한의 핵 보유에는 반대하면서도 미국의 강경한 대북 군사적 압력은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과 일본 에 대해서는 경제협력을 병행하면서도 국제현안에 대해서는 철저한 이 익 확대 개념에 의거하여, 전략적 반대 또는 선택적 공조의 입장을 취 할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폭침 사건 시 취한 러시아의 의도를 분석해 본다면, 향후 대 동북아 및 한반도 전략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48 통일문제이해 2012

49 제3절 통일환경의 변화와 우리의 대응 21 세기 국제질서 속에서 동북아 지역의 질서도 관련국의 이해관 계에 따라 계속해서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 반도 통일환경도 변모하고 있다. 한반도 통일은 남북한의 민족문제인 동시에 국제문제이다. 한반도 통일에 의한 한반도 질서의 변화는 동북 아 지역질서의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관련국의 이해관계에 직간접 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북한의 핵문제는 관련국의 핵심사 안 중 하나로 관심이 집중되어 왔다. 북한의 핵문제 해소 없이 한반도 의 평화와 안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관련국의 입장과 정 책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9월 21일 코리아소사이어티, 전미외교협회 (CFR), 아시아소사이어티가 공동 주최한 오찬간담회 연설을 통해 북 핵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식으로서 그랜드 바겐 (Grand Bargain)을 제안하였다. 2009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천명한 한반도 신 평화 구상 의 연장선상에서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부분을 폐기함과 동시에 북한에게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의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49

50 본격화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는 국제 비확산 논의의 핵심 사안 중 하나가 되었다. 우 리정부는 비핵 개방 3000 을 추진하고 있다. 통일을 위해서나 한반도 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핵문제 해결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 다. 한반도 통일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북한 핵문제가 해결 되어야 한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주변국들의 공통된 관심사이며,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협력과 다자주의적인 해결이 필수적이다. 북핵의 다자주의적 해결을 위한 주요국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실 제로 한반도 관련국가 모두가 한반도의 비핵화에 뜻을 같이 하고, 이 를 위해 6자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여 왔다. 그러나 현 재, 북핵 협상은 답보상태에 있다. 북한은 지난 2010년 1월 18일, 평 화협정 논의에 앞서 6자회담에 복귀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선 제 재해제를 주장하면서 거부하였다. 더구나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으로 인하여 6자회담이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 다. 다만 미국과 북한은 2012년 2월 23~24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고 위급회담에서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유예,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등 비핵화 사전 조치를 취하고, 미국은 24만 톤에 해당하는 영양지원을 하기로 합의 하였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동북아 지역 차원뿐만 아니라 세계 적 수준에서도 미국의 국익에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주요 전략적 목 표로 설정하여 왔다. 핵이 없는 세계 를 주요 기치로 내세우는 오바 마 행정부는 포용적 기조 하에 비확산이라는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느슨하게 관리되고 있는 모든 핵무기들을 안전하게 봉인시키려 한다. 이를 위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새로운 핵물질의 생산을 저지하는 협 상을 추진하여 테러리스트들이 그 같은 물질을 절대 확보하지 못하도 록 노력하고 있다. 그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하 여 북한 핵과 관련된 조직과 인물에 대한 금융적 제재조치를 모색하 고 있다. 중국은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 공식적으로 북한의 비핵화에 동의 50 통일문제이해 2012

51 하고 있지만, 이를 위한 대북한 제재조치에는 미온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구체적으로 중국은 북한의 제1차 핵실험( )에 대한 유 엔 안보리의 1718호 제재조치( )에서 소극적 입장을 보였다. 반면 중국은 북한의 제2차 핵실험( )에 대한 유엔의 1874호 제재조치( )에서 북한의 핵 개발 혹은 보유를 불용하는 입장 에서 협조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미국은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 이 후 7월 한 미 연 합 훈 련 과 8월 한 미 을지훈 련 실시를 통 하 여 북 한 의 군사적 도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한 미동맹의 강화에 주력하여 왔다. 반면 중국은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보다 한반 도의 전쟁방지를 강조하면서 북한체제 유지에 우선적 비중을 두어 왔 다. 오히려 여러 차례의 북 중 정상회담을 통하여 우호적인 북 중 관 계의 유지 및 강화를 시도하여 왔다. 또한 연평도 포격 사건과 관련하 여 한반도 문제가 유엔 안보리 논의에 회부되는 것에 반대하고 한반 도의 안정유지를 위한 6자회담의 재개를 주장하여 왔다. 북 중 관계는 전통적 관념으로 보면 지정학적 이해가 얽힌 이른바 순망치한( 脣 亡 齒 寒 ) 관계이며, 북한은 중국의 완충지대라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북 중 간에는 이데올로기적 동질성과 6 25 전쟁 을 통해 축적된 동지애 등이 아직 남아있고, 북 중 우호조약을 통한 군사적 함의를 지닌 동맹관계라는 인식이 보편화 되었다. 이러한 연장 선상에서 우호적인 북 중 관계를 유지하려는 중국의 대 북한정책은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지역적 이익을 가져 올 수 있다고 중국이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지도자 국가로 역할을 원할 경우,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시험을 비롯한 비정상적 활동을 하는 북 한을 지원하는 것 자체가 세계적 차원에서 중국의 국가이익과 상충되 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 핵실험과 관련하여 유엔 의 제재조치의 준수, 천안함 폭침사건 관련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등 과 같은 국제규범과 국제기준을 준수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이해관계에 부합된다는 논리를 가지고 대 중국외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2012년 1월 9일 베이징에서 개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51

52 최된 한 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와 안정에 대한 공동 목표를 재확인하면서 한 중 간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는 성과를 산 출하였다. 또한 한 중 교역액이 2,200억 달러를 넘고 있는 현실에서 FTA협상 개시를 제안함으로써 한 중관계의 상호 의존성과 협력의 필 요성을 더욱 확대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미 중 관계에서 보면 대만문제, 중국의 군사적 팽창, 자원 확보 및 위안화 절상문제 등을 놓고 대립하고 있으나, 미 중 양국의 안보와 경 제의 상호 침투와 상호 의존으로 인하여 오바마 정부 이후 여러 차례 의 미 중 전략 및 경제대화(2009.7, )의 개최 등 기본적으로 협 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실제 2011년 5월 미 중 전략 및 경제대화에 서는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공통이익이 모순과 이 견보다 훨씬 더 크다는 인식이 강조되었다. 이를 한반도와 관련하여 보면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의 긴장완화, 평화유지, 한반도 비핵화라 는 공통된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 한 점에서 적어도 북한 핵문제에 있어 한 미 중 공조체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이를 공고화시키기 위하여 최대한의 노력을 전개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들 문제가 일본 및 국제평화와 안정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며, 결코 용 인 할 수 없 다 는 점 을 명 확 히 하 면 서, 북 한 의 대 량 살 상 무 기 와 미 사 일의 개발, 보유, 배치 등을 포기시키기 위한 조치로서 한 미 중 러 4 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추구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에 기 초한 화물검사나 추가적 제재조치를 단호히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일본인 납치문제는 바로 일본 국권의 침해이자 인권침해라고 규 정하면서 이의 해결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전력을 기울일 것을 천명 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한반도 통일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북한 핵문제 의 해결이 전제되어야 한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한반도 주변국가의 공통적 관심사로 북한 핵문제의 해결 없는 한반도 통일을 기대하기 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도 국제협력 은 필수적이다. 국제공조의 핵심은 6자회담에 의한 북한의 비핵화 달 52 통일문제이해 2012

53 성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역할이다. 그러나 북한은 2010년 1월 18일 선 제재조치 해제를 요구하면서 평화협정 논의에 앞 서 6자회담에 복귀하라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정면으로 거부함으로 써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었다. 더구나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 북한의 도발로 인해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6자회담의 성사는 더욱 불투명하게 되었다. 2011년 1월 미 중 정상회담 이후 한 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미 북 대화를 2011년 7월과 10월 두 차례 가졌 으나 의미 있는 결과를 산출하지 못하였다. 이렇듯 동북아시아와 한반도는 주요한 강대국들과 주변국들의 국 제정치의 장이다. 주변국들은 그들의 이해관계와 국가이익을 추구하 며, 이러한 입장에 따라 각국의 외교정책과 대외정책이 입안되고 조정 되어지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각국이 처한 상황 을 바탕으로 남북한의 통일과 한반도 문제를 인식하는 수준에 의해 서 차이점을 보이는 것이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을 두고도 각국의 입장은 달랐다. 미국은 천안함 폭침 사건 관련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 발표 직후 한 미연합훈련과 을지훈련을 실 시하는 등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방지하기 위한 공조를 강화했다. 반 면 중국은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보다는 한반 도의 전쟁방지를 강조하면서 북한의 현상유지에 비중을 두었다. 오히 려 지난 2010년부터 중국은 북한과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우호 적인 관계를 강화하여 왔다. 또한 중국이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등의 한반도 문제가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는 것에 반대하고 6자회담의 재 개를 주장하자, 북한은 6자회담 재개 용의를 표명하고 무조건적 남북 대화를 제안하였다. 이에 미국과 우리 정부는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 한 책임 있는 조치와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야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반도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들의 국가이익이 표출되는 지역이다. 동북아의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교차하게 만드는 북한의 핵 문제와 군사도발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각 국의 입장은 상이하다. 기본적으로 각국의 대외정책의 기본개념과 국 가이익에 의해서 정책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이 표출되 제2장 주변정세의 변화와 통일환경 53

54 고 조정되는 결과에 의해서 동북아 국제질서와 특성은 영향을 받는 다. 이러한 현상을 놓고 볼 때, 우리는 통일정책과 남북관계를 구상 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한반도와 동북아 국제체제의 특성을 잘 이해하 고 고려해야 한다. 체제의 특성을 잘 이해해야만 각국을 잘 설득시키 고 유리한 통일여건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2년 북한은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을 가속화해 나갈 것이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관련 국가들은 최고지도자를 새로 선 출하는 해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불확실성과 변 동성이 확대된 상태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는 한 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국제공조를 강 화하여 북한의 도발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한편, 주변국과 긴밀한 협 조를 통해 우호적인 통일환경 조성에 힘써야 할 것이다. 54 통일문제이해 2012

55 3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제1절 우리의 통일정책과 통일방안의 발전 제2절 상생공영의 남북관계와 비핵 개방 3000 제3절 북한의 통일방안

56 01 우리의 통일방안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이 다. 이 통일방안은 남북한이 화해협력 단계와 남북연합 단계를 거쳐 1민족, 1국가, 1체제, 1정 부의 통일국가를 수립한다는 단계적, 점진적 통일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의 통일정책에서 견지해 온 일관된 기조 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평화적 통일, 민족성원 모두의 자유와 인권 및 민족의 번영이 보장되 는 통일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02 정부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실질적 평화정착 실현을 통한 평화공동체, 북한주 민의 삶의 질 개선과 남북 간 경제격차의 축소 를 통한 경제공동체, 한민족 모두의 존엄과 기본권, 자유 복지의 보장을 통해 행복한 삶 이 보장되는 민족공동체 건설을 통일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의 성공적 실현을 통해 한반도 평화통일의 실질적 토대를 확충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03 북한의 통일방안에서는 통일을 오직 해방 과 혁명 의 논리에서만 접근해 왔다. 북한은 이러 한 논리를 기초로 하여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 고 있다. 1민족, 1국가, 2정부, 2제도라는 기본 원칙을 유지하면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술 상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57 제1절 우리의 통일정책과 통일방안의 발전 1. 통일정책 기조 1970년대에 남과 북이 대화의 시대를 연 지도 어느덧 40년을 바라 보고 있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갈등과 협력이 교차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어온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 정부의 평화공존과 통일을 향한 굳건한 의지와 꾸준한 노력에 힘입어 긍정적 방향으로 진 행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통일은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 과정이며, 미래를 위한 우리 의 선택이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여 그것을 효율적으로 실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 점에서 통일정책은 국 익과 합리성에 기초한 정치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정책은 통일 된 민족국가의 확립을 목표로 설정하고, 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 하면서 남북관계를 관리 개선해 나가려는 정부의 정치적 선택인 동시 에 구체적 표현이다. 통일방안은 통일에 대한 정부의 입장, 통일의 원칙, 통일에 대한 접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57

58 근방식과 함께 그 실행계획까지 포함하는 구체적 밑그림이다. 대체로 공익에 기초한 국가의 다른 정책과 마찬가지로 통일정책과 방안도 시 대적 상황, 국민의 여망, 정부의 정책적 의지 등에 따라 변화되기 마련 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통일정책이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완 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예전과 단절된 형태로 제시되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부의 입장은 통일정책의 기본을 분 명히 견지하는 가운데, 보다 현실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보완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통일정책에서 견지해 온 일관된 기조는 1 민주적 절차에 의 한 평화적 통일, 2 민족성원 모두의 자유와 인권 및 민족의 번영이 보장되는 통일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인식은 당 위론적 차원에서 현실적 차원으로 변화되어 왔다. 이러한 변화는 선 평화, 후 통일 의 정책기조를 수립한 1970년대를 분기점으로 북한체제 의 존재에 관한 현실 인정 및 대화상대 인정여부에 기초해서 나타났 다. 특히 냉전 이후의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하여 1989년에 한민족공 동체통일방안 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통일정책을 확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과 북은 남북관계 좌표를 규정하는 남북기본합의 서 를 채택함으로써 남북관계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2. 역대 정부의 통일정책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1970년대 이전까지 통일정책과 관련 하여 우리 정부가 밝힌 첫 공식적 입장은 이승만 대통령이 유엔의 대 한민국 승인( )후에 있었던 제1회 제헌국회 폐회식에서 우리 가 유엔과 협의하여 이북에 자유선거를 실시하고, 100명 내외의 이북 의원들을 선출하여 국회의 비워둔 자리를 보충하도록 할 것을 천명한 북한지역 자유총선거론 이었다. 이후 1960년 4 19 혁명 으로 자유당 정부가 무너지고, 7 29 선거 에서 집권하게 된 민주당 정부의 통일정 책은 기본적으로 유엔 감시하의 남북 자유총선거 였다. 그러나 5 16 군사쿠데타를 통해 구성된 군사혁명위원회는 혁명공약 에서 반공체제의 재정비 강화와 함께 국토통일을 위한 실력배양을 통 58 통일문제이해 2012

59 일의 기본방향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실력배양론과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의한 국토통일론을 거쳐 1966년 1월 18일 국회에 보낸 대통령 연두교서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의 지상명제를 조국통일로 규정하 고, 그 전제로서 조국 근대화를 강조함으로써 선 건설, 후 통일 의 정 책기조를 분명히 하였다. 1969년 닉슨 독트린과 미 중 접촉, 일 중 접촉 등으로 인한 국제정 세의 변화 속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토대로 통 일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 직접적 출발점이 바 로 1970년 8월 15일 광복절 제25주년 대통령 경축사에서 발표된 평 화통일구상 선언 이다. 이 선언을 계기로 북한 지역에도 공산정권이라 는 사실상의 정권이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러한 바탕 위에서 남 북 간의 대화와 협상, 교류와 협력을 통해 평화통일의 여건을 조성해 나가겠다고 천명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평화통일구상 선언 의 기본정신에 따라 인도적 차원에서 진행된 남 북 적십자 회담과 병행하여, 남북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당국 간 공 식문서라 할 수 있는 7 4 남북공동성명 이 1972년 7월 4일 발표되었 다. 공동성명의 핵심은 통일의 세 가지 원칙, 즉 자주, 평화, 민족대단 결에 대한 남북 간의 합의였다. 평화통일구상 선언 ( )의 주요 내용 긴장상태 완화를 통한 평화적 방법에 의한 통일 접근 강조 북한에 대해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이나 폭력혁명에 의한 대한민국 전복 기도 포기 촉구 남북한 사이의 인위적 장벽 단계적 제거 용의 북한의 유엔 참석 불반대 남북한 간 선의의 경쟁 다짐 7 4 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남북관계는 인도적 차원의 적십자회담 과 함께 정치적 차원의 대화인 남북조절위원회 회의가 진행되는 새로 운 단계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7 4 남북공동성명은 북한이 1973년 8 월, 우리의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선언(6 23 선언) 을 이유로 남북조절위원회 회의를 일방적으로 중단함으로써 유명무실화되고 말 았다. 1973년 6월 23일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6 23 선언은 평화통 일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방하고, 통일환경 개선을 위한 개방적이고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59

60 실리적인 통일외교정책을 천명한 것으로, 총 7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 다. 또한 1974년 1월 18일에는 북한에 남북불가침협정 체결 을 제의하 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정부가 1974년 8월 15일 북한에 제안한 것이 남북 간의 평화공존과 평화통일을 위한 평화통일 3대 기본원 칙 이다. 이 원칙의 내용은 첫째, 평화통일을 위해서 한반도의 평화 정 착과 남북 간의 대화와 교류가 필수적 과정이라는 점, 둘째, 남북 총 선거를 위해서 남북 간의 신뢰조성과 동질화가 촉진되어야 한다는 점, 셋째, 총선거 실시와 관련하여 정부수립 후 지속되어 온 유엔 감시 하 라는 조건을 공정한 선거관리와 감시 로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우리 민족의 지상과업으로 규정 한반도 평화 유지의 필요성 및 남북한 내정불간섭 및 불침략 남북공동성명에 입각한 남북대화를 위해 지속 노력 북한의 국제기구 참여 불반대 남북 유엔 동시가입 불반대 모든 국가와의 상호 문호개방 평화선린에 입각한 대외정책 및 우방국들과의 유대관계 공고화 재천명 6 23 선언 ( )의 주요 내용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 은 종전의 선 건설, 후 통일 에서 선 평화, 후 통일 로 정책기조를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고, 선 평화, 후 통일 의 통일정책 기조는 그 이후 우리 정부 통일정책의 기본이 되고 있다. 전두환 정부는 1982년 1월 22일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통해 민족화 합 민주통일방안 을 제시하였다. 이 통일방안은 통일은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거하여 겨레 전체의 의사가 골고루 반영되는 민주적 절차와 평화적 방법으로 성취되어야 한다. 는 기본 원칙에 입각하여 통일헌법 의 제정으로부터 남북 총선거를 통한 통일 민주공화국 완성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 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평화통일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민족 민주 자유 복지를 목표로 하는 통일국가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통일을 과정으로 보고 분단의 현실로 부터 출발하여 통일의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셋째, 완 전한 통일국가를 이루려면 그 과정에서 민족화합이 선행되어야 함을 60 통일문제이해 2012

61 제시하고 있다. 넷째, 남북한 총선거의 규범으로서 남북한 대표가 협 의하여 제정하게 될 통일헌법 및 이 헌법에 따라 통일 민주국가를 완 성시키는 과정과 절차를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이어 1982년 2월 1일 민족화합을 위한 실천조치로서 서울-평양 간 고속도로 건설, 이산가족들의 우편교류 및 상봉실현 등 20개 항에 걸 친 구체적 시범사업을 남과 북이 함께 추진해 나갈 것을 북한에 제의 하였다. 1987년 개정헌법은 처음으로 통일과 관련한 내용을 규정하였다. 헌 법전문에서는 조국의 평화통일 사명 을 천명하고 제4조에서 자유민 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의 수립과 추진 을 명시하였 다. 또한 제66조 제3항에서는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고 규정하였다. 이처럼 헌법에 통일 관련 조항을 규정함으로써 통일이 관념의 문제가 아닌 현실적 실천과제임을 확인하 였던 것이다. 1988년 2월 25일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과거와 다른 차원에서 새로 운 남북관계의 정립을 위한 노력을 전개하였으며, 그러한 노력은 1988 년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 7 선언) 과 1989년 9월 11 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으로 구체화되었다. 7 7 선언 ( ) 주요 내용 남북동포의 상호교류 및 해외동포의 남북 자유왕래 개방 이산가족 생사 주소 확인, 서신왕래, 상호방문 적극 주선 남북한 간 교역 및 문호개방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 및 비군사적 물자에 대한 우방국과 북한 간 교역 용인 남북 간 소모적 경쟁 및 대결외교 종결, 국제무대 상호 협력 북한과 미국 및 일본, 한국과 소련 및 중국과의 관계개선 7 7 선언 은 북한을 대결의 상대가 아니라 선의의 동반자로 간주하 고, 남과 북이 함께 번영을 이룩하는 민족공동체 관계를 발전시켜 나 가는 것이 통일조국을 실현하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남북 간의 대결구조를 화해의 구조로 전환시켜 나가는 데 필요한 조치의 기본방향을 제시한 정책선언이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은 1989년 9월 11일 국회에서 노태우 대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61

62 통령의 특별선언을 통해 발표되었다. 이 방안은 남북 간의 교류와 협 력을 통해 먼저 민족공동체를 회복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 적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 한다. 통일의 원칙으로 자주 평화 민주 를 제시하고 통일국가의 미래 상으로는 자유 인권 행복 이 보장되는 민주국가를 제시하였다. 통일 국가의 수립 절차는 남북대화의 추진으로 신뢰를 회복해 나가는 가 운데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민족공동체 헌장 을 채택하고, 남북의 공 존공영과 민족사회의 동질화, 민족공동생활권의 형성 등을 추구하는 과도적 통일체제인 남북연합(The Korean Commonwealth) 을 거 쳐, 통일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국회와 통일 정부를 구성함으로써 완전한 통일국가인 통일 민주공화국을 수립하 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주 평화 민주의 통일 3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분단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민족공동체 회복이라는 중간과정을 거쳐 최종 통 일을 실현한다는 점이다. 셋째, 남북 간의 상호협력과 공존공영의 관 계를 증진시켜 통일기반을 조성해 나가는 과도적 통일체제인 남북연 합 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남북 간의 모든 현안문제를 협 의 해결해 나간다는 입장에서 민족동질성의 회복을 위한 교류협력의 추진과 병행하여 정치 군사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간다는 점이다. 다섯 째, 자유 인권 행복이 보장되는 민주국가 건설이라는 통일국가의 미래 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이 1990년 9월 서울 에서 개최되었고, 1992년 2월 평양에서 개최된 제6차 회담에서는 남 북기본합의서 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및 분과위원회 구성 운영 에 관한 합의서 가 발효되었다. 또한, 같은 해 5월과 9월에 개최된 제7 차, 제8차 회담에서는 각종 분야별 부속합의서를 채택 발효시켰다. 그 러나 북한이 이러한 합의사항 이행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대화를 일방적으로 중단시킴으로써 남북기본합의서는 실천되지 못하였다. 1993년 2월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천명 하는 등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모색하였다. 또한 지난 정부의 통일방안 62 통일문제이해 2012

63 을 계승하고 보완하여, 1994년 8월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민족공동 체통일방안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을 제시하였 다. 이 통일방안은 점진적 단계적으로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통일을 이루어 나간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는 통 일 환경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이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고 남북 사이의 체제경쟁도 사실상 종결되었다 는 인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사회주의체제의 구조적 모순과 세계질서의 재편에 주목하여 제시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은 통일정책의 추진방향을 다음과 같이 구체 화하고 있다. 첫째, 통일은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져 야 한다는 통일의 기본철학과 통일의 원칙 및 통일조국의 미래상을 밝혔다. 둘째, 통일은 7천만 민족이 다 함께 잘 살기 위한 것이며, 그 러기 위해서 민족공동체의 건설을 통해 국가통일을 실현해가야 한다 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셋째, 통일의 주체는 민족구성원 모두임을 강 조하였다. 넷째, 북한 내 급변사태 발생 등 예기치 않은 통일 상황에 도 대처할 수 있는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다섯째,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의 포기와 개혁 개방을 촉구하였다. 여섯 째, 민족분단의 종식에 있어서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 을 강조하였다. 일곱째, 통일에 따르는 부담과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는 국민의 자세를 일깨우고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그리고 현재의 이명박 정부는 민족공동 체 통일방안 을 대한민국의 통일방안으로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김대 중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우선적 목표로 설정하고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추진하였다. 화해협력 정책은 우리가 먼저 선의( 善 意 )를 갖고 남북관계 개선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임으로써 북한이 스스로 변화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선의( 善 意 ) 에 북한의 선의가 이어져 선순환적인 남북관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통일을 이루기 위해 남과 북이 특수관계 속에서 공존공영하며 협력을 통해 분단 상황을 평화적으로, 통일 지향적으 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는 인식 하에 남북관계 개선에 최대 역점을 두 고 대북정책을 추진하였다. 2000년 6월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개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63

64 최하여 남북관계 개선방향과 당면 실천과제 5개 항을 담은 6 15 남 북공동선언 을 채택하였다. 그 점에서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은 성급 한 통일의 추진이 아니라 평화통일 기반조성을 위해 안보와 화해협력 을 병행 추진하면서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려는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합의이 행차원에서 분야별 남북회담 추진을 통해 인적 물적 교류를 증대시킴 으로써 한반도 평화와 화해 분위기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남북교류의 양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2002년 10월 에 제기된 제2차 북핵 위기의 발발로 인해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당시 안보환경은 9 11 테러 이후 대량 살상무기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 미국 국내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 로 바뀐 상황이었고, 그런 맥락에서 제기된 북핵 문제는 한반도 평화 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안보와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로 간주되었기 때 문이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증진과 남북한 공동번 영 실현 및 동북아 공동번영 추구를 목표로 하는 평화번영정책을 추 진하였다. 그리고 정책목표의 달성을 위해 1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2 상호신뢰 우선과 호혜주의, 3 남북당사자 원칙에 기초한 국제협 력, 4 국민과 함께 하는 정책을 추진원칙으로 제시하였다. 2007년 10 4 선언 (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을 통해 남북은 상이한 체제에 대한 상호 존중을 토대로 정치, 군사, 경제, 사회문화, 인도주의, 외교 등의 영역에서 통일을 위한 공동사업을 추진할 것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북핵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북한의 변화도 우리 국민 의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합의 추진된 남북교류협력, 대북 지원 등은 국민적 합의와 지지를 이끌어내기에 미흡한 것이었다. 따라 서 국민들이 우려하는 사항을 감안하여 비핵화의 진전과 함께 남북 협의를 통해 실천 가능한 방안을 검토해 나갈 필요가 있다. 64 통일문제이해 2012

65 3.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 (1) 통일의 기본철학과 접근시각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은 통일철학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와 통일 접근시각으로서의 민족공동체 건설을 2대 지주로 삼고 있다. 첫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는 우리의 통일정책이 자유민주주의 의 철학적 바탕 위에 서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 반영되어 있다. 통일철학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는 구성원 각 자의 권리 자유 보장, 사회적 배제의 배격, 남북한의 다양성 존중 등 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가 통일로 가는 과 정이나 절차에서뿐만 아니라 통일국가에서도 일관되게 추구되어야 할 가 치여야 한다는 점을 확고히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둘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는 통일의 접근시각으로서 민족공 동체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상호 부조를 중심가치로 하는 공동체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개인들의 결사체를 의 미한다. 민족정체성은 민족의 안정과 정착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필수요 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 제시된 민족공동체 는 동일한 혈연을 가진 우리 한민족 구성원 전체의 운명 적 결합과 공동생활 양태 및 권역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민족공동체란 민족을 하나로 묶는 뿌리이며, 우리 민족이 재결합할 수밖에 없는 당위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힘 의 원천이다. 따라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통일에 의 접근방법은 남북이 같은 민족으로서 경제 사회 문화 공동체를 형 성하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통합을 통해 정치공동체를 달성함으로 써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국가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민족공동체 정신은 우리 민족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느 냐 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민족통일을 통해 국가통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처럼 민족공동체 개념은 통일을 특정 집단 또는 계급의 문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65

66 제로 보거나, 어떻게 권력을 배분하느냐 에 초점을 맞춘 북한의 연방 제와 확연히 구별된다. (2) 통일의 원칙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통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자주 평화 민주 를 통일의 기본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자주 의 원칙은 우리 민족 스스로의 뜻과 힘으로, 그리고 남북 당사자 간의 상호 협의를 통해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평화 의 원칙은 통일이 전쟁이나 상대방에 대한 전복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직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다. 아무리 통일이 민족의 지상과제라 하더라도 무력이나 폭력을 통하여 달성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 6 25 전쟁이나 베트남, 예멘 사례의 교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셋째, 민주 의 원칙이란 통일은 민족구성원 모두의 자유와 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민주적 통합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 칙이다. 이는 통일에 이르는 과정과 절차가 민주 원칙에 입각하여야 함은 물론 통일된 조국 또한 7천만 민족구성원 모두가 주인이 되는 민주국가여야 함을 의미한다. (3) 통일의 과정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통일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하 나의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 방향에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기조 하에 통일의 과정을 3단계로 설정하고 있다. 즉, 화해협력 단계와 남북연합 단계를 거쳐 궁극적으로 1민족 1국가 1체 제 1정부의 통일국가를 완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화해협력 단계는 남북 간의 적대와 불신을 줄이기 위해 상호 협력의 장( 章 )을 열어가는 단계이다. 분야별로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 하면서 이 단계는 남북기본합의서 를 규범으로 하여 남북이 각기 현 존하는 두 체제와 두 정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분단 상태를 평화적으 로 관리하는 단계를 의미한다. 66 통일문제이해 2012

67 둘째, 남북연합 단계는 화해협력 단계에서 구축된 상호 신뢰를 바 탕으로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이 더욱 활발해지고 제도화되는 단계이 다. 이 단계에서 남북은 상호 신뢰를 더욱 다지면서 평화정착과 민족 의 동질화를 촉진시켜 나가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이 단계는 남북이 서로 다른 체제와 정부 하에서 통일 지향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통합 과정을 관리해 나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셋째, 1민족 1국가의 통일국가 완성단계는 남북연합 단계에서 제정한 통일헌법에 따라 남북 자유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국회를 구성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여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국가를 완성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민족통일과 국가통일을 동시에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통일된 국가는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정치적 경 제적 자유가 보장되고 복지와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국가가 된다. 그러나 통일국가의 수립이 모든 문제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 다. 같은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룩하였다고 하더라도 오랜 분단상 태의 지속에서 비롯된 이질성으로 인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겨날 수 있다. 따라서 민족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되도록 지속 적으로 노력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마디로 우리의 통일방안은 남북이 우선 화해협력을 통해 상호신 뢰를 쌓고 민족공동체를 건설해 나가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정치통합 의 기반을 조성해 나가려는 방안이다. 반세기 이상의 분단 상황 하에서 형성된 상호 불신과 차이를 해소 하고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과도적 중간과정이 필요한 것은 분명 하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과도적 통일체제로서 남북연합의 단계 를 설정한 것은 비교적 실현 가능성이 높은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남과 북의 이질화된 사회를 하나 의 공동체로 회복 발전시켜 나가는 가운데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 을 통해 1민족 1국가의 통일조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데 그 정당성과 합리성이 있다. 또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통일국가의 미래상에 따라 남북이 하나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통 일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67

68 제2절 상생공영의 남북관계와 비핵ㆍ개방ㆍ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1) 추진 배경 우리는 지금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새로운 방법 을 모색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나, 아직 남북 간의 불신은 해소되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이 제시되고,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가 발효된 이래, 우리의 대북정책은 남북관 계 개선을 통하여 한반도 평화정착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주력해 왔 다. 이는 남북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통해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평화통일을 위한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두 차례에 걸친 북한의 핵실험 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는 중대한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 실험은 우리의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인 동시에 국제적 비확산 질서 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었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은 어려운 대내외적 여 건 속에서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남북교류 68 통일문제이해 2012

69 협력의 확대와 남북 간의 신뢰구축 노력에도 커다란 손상을 입혔다. 비핵화는 한반도 평화, 통일과 민족의 이익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 며, 남북간 상호 신뢰구축은 우리가 추구하는 민족공동체 형성의 핵 심 조건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에 따라 북한의 핵 폐기와 이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의 실현은 남북관 계 발전과 우리의 대북정책 추진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로 부각되게 되 었다. 한편, 그간의 남북관계는 외형적으로는 크게 성장했지만, 그 내용 에 있어서는 우리 국민들의 기대와 요구에 부합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의 확대와 발 전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나 군사적 긴장완화 등 당면한 안보적 현안 에서의 남북 간 대화와 협력은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또한, 우리의 인도적 지원과 협력은 계속되어 왔지만, 냉전과 분단의 상처로 남아 있는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등에서는 국민들이 납득 할 수 있는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남 북관계가 지속가능하고 실질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치, 경제, 인도적 문제들에서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문제도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그동안의 남북관계 경험, 그리고 이에 대한 각계의 의견 과 관심은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다방면에 걸친 노력 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는 기존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한 차원 높은 실질적 협력관계로 발전시 켜 나간다는 관점에서 실용과 생산성에 기초한 상생공영의 남북관계 발전 을 추구하는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 을 제시하였다. (2) 추진 기조 상생공영의 대북정책 비전은 실용과 생산성에 기초한 상생공영의 남 북관계 발전을 통해 한반도 평화통일의 실질적 토대를 확충하는 것 이다. 이는 당면한 안보위협 요인인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이와 병행하여 남북 간 대화와 협력도 기존의 양적 확대를 넘어 보다 진정성 있는 대화와 협력으로 발전시킴으로써, 남북관계를 새로운 협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69

70 력관계로 한 차원 높게 도약시켜 나가고자 하는 것 이다. 기존에 추진되어 왔던 남북관계를 한 단계 뛰 어 넘어 비핵화와 평화정착, 북한의 경제재건과 남 북경제공동체 형성을 통해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실질적 토대를 확충해 나가고자 하는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남북관계 발전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부가 국정 전반 에서 추구하고 있는 실용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 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노력은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되, 그 속도와 방식에 있어서는 실용과 생산성, 남북관계의 실질적 발전, 그리고 과거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요구를 반영하여 창조 적으로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은 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4가지 추진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실용과 생산성에 기초하여 정책을 추진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남북관계를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나가자 는 것이다. 실용과 생산성을 판단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으로 1 국 민적 동의, 2 비용대비 성과, 3 북한주민의 삶의 질 향상, 4 북한 의 발전 촉진 여부, 5 평화통일에의 기여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원칙에는 철저하되, 유연한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원칙이다. 북한의 핵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하고 남북 간에 진정성 있고 내실 있는 대화가 추진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되, 접근방식은 현실을 고려하여 유연하게 대처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정부 는 올바른 남북관계의 정립을 위해서 북한의 비핵화와 무력도발 억 제, 무력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가 필수적이라는 대북정책의 원칙 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그러한 정책기조는 연평도 포격도발 1주년 ( )을 맞아 재확인된 바 있다. 다만, 정부는 그러한 원칙의 토대 위에서 비정치 비군사 분야, 인도적 분야 등에 대한 남북 간 협력 문제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발휘함으로써 한반도 긴장이 완화되고 남 70 통일문제이해 2012

71 북 간의 대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의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자 한다. 그러한 정책방향은 조계종의 팔만대장경 판각 1천년 고불법회 참석 방북( ~9.7) 승인,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 의 평양방문( ~15) 승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 7대 종단 대표 의 방북( ~24) 승인,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개성공단 방문 ( ) 승인, 개성공단 애로를 해소하기 위한 개성공단 소방서 의 료시설 건립 및 출퇴근 도로보수 결정( ) 등 최근 정부가 시 행한 일련의 유연화 조치를 통해서 반영되고 있다. 셋째, 국민 합의를 기반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한다는 원칙이다.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 정책을 추 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 합의의 원칙은 정책의 전 과정에서 다 양한 형태의 국민 참여를 보장하고, 국민에게 최대한 정보를 공개하여 대북정책을 투명하게 추진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남북협력과 국제협력의 조화 를 원칙으로 한다. 현실적으로 한반도 문제는 남북문제임과 동시에 국제문제이기도 하 다. 이러한 현실에서 남북협력이 국제협력과 조화를 이룰 때 우리의 국 익 실현은 물론 남북관계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북 핵문제가 발생한 이후에는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남 북협력을 국제협력과 조화시켜 나감으로써 남북관계를 통해 북핵문 제의 해결을 촉진하고, 국제사회가 우리의 통일을 지지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의 신뢰를 쌓아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3) 추진 과제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원칙 있는 대북정책 을 통해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현하고, 평화통일의 실질적 토대를 확충하고자 노력해 왔다. 이는 남과 북이 상호 존중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와 민족공동체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 다. 그동안 정부는 북한 비핵화와 남북한 상호 존중 없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물론이고 남북관계도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북한의 비핵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남북 간 상호 존중에 입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71

72 각한 호혜적 협력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우리 정부 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개발과 함께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과 같은 무력도발을 계속하여 왔다는 점에 있다. 향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대북 억지력을 확보하는 한편 북한의 국제적 약속이 행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게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일 것과 무력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지속적으로 요 구하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5 24 조치 를 유지하 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맥락에서 정부는 그동안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 하면서, 북한의 변화에 기초한 새로운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통일의 실질적 기반을 다지고자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 유도, 바른 남 북관계 정립, 통일에 대비한 준비 등을 정책추진목표로 설정하고, 그 실현을 위해 꾸준히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2012년의 한반도 정세는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매우 커지는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금은 북한 지도부의 변화와 미래선택이 가져올 한반도 정세의 변화 및 도전을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통일의 토대로 승화시키기 위해 우리의 지혜와 역량을 결집해야 할 때이다. 이 에 정부는 현 상황의 안정적 관리와 미래를 위한 남북관계의 발전 및 통일미래 준비가 필요하다는 판단아래 능동적인 통일정책을 정책기본 방향으로 설정하였다. 이상의 상황인식에 기초하여 우리 정부는 1 한반도 평화와 안정관 리 2 남북관계의 정상적 발전 3 실질적 통일미래 준비를 3대 정책 목표 로 설정하고, 그 실현을 위해 다음과 같은 8개 핵심과제 에 중 점을 두고 있다. 첫째 목표와 관련해서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관리를 위한 두 축으로 서 한반도 정세 주도와 남북 간 대화채널 구축을 핵심과제로 선정하 였다. 전환기의 한반도 정세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한반 도 문제를 남북당사자 주도와 주변국 협조를 통해 해결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남북이 주도적인 역할 을 하고 유관국의 고위인사 전문가를 대상으로 전략대화를 활성화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예방적 차원에서의 기민한 상황관리를 위해 유관 72 통일문제이해 2012

73 부처 간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핵심 적 과제는 남북 간 대화채널 구축으로서 유연한 정책추진을 위한 대 화채널 개설과 함께 고위당국자 간 대화개설, 핵심현안 타결추진 및 남북관계 발전방안 협의를 위한 남북대화의 안정적 유지를 주요내용 으로 삼고 있다.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경제공동체 형성, 그리고 인도적 문제 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안을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 과 북이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대북정책의 기조와 원칙의 토대 위에서 유연성 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그동안 올바른 남북관계의 정립 을 목표로 정부가 추진해 온 북한의 핵문제 해결과 무력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는 양보할 수 없는 대북정책의 기조와 원칙임이 분명하 다. 다만, 정부는 이러한 기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비정치 비군사 부 문, 인도적 차원의 문제 등을 통해 방법론적 유연성을 발휘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둘째 목표와 관련해서는 남북관계의 정상적 발전을 위해 인도적 문 제 해결과 평화 경제 민족 의 3대 공동체 구축을 추진하고자 한다. 인도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이산가족의 상봉 정례화뿐만 아니라 전면적 생사확인, 서신교환, 고향방문 등을 실현하도록 노력하고, 국 군포로 납북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범정부 납북자대책기구 설치 외에 다양한 해결방안을 구체화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취약계층 지역을 대상으로 한 필수의약품, 기초의료장비, 보건의료지원, 영양개선 사업 등 인도적 지원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촉진하기 위해서 상호 협력적 인 도주의를 구현해 나갈 것이다. 다음으로 평화 경제 민족 의 3대 공동체 구축을 위해 정치 군사적 신뢰증진과 북한 경제회복 지원 그리고 민족동질성 회복 추진을 위 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자 한다. 정치 군사적 신뢰증진을 위해서 는 기존 합의정신의 준수, 무력충돌 방지 대책 마련, 비가역적 비핵화 실현 등이 필수적이며, 북한 경제회복 지원을 위해서는 개성공단의 안 정적 발전 추진과 남북 간 경협사업 성과 한계 등에 대한 정책적 검토 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해서는 문화재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73

74 발굴 보존, 겨레말큰사전, 교향악단 공연, 체육교류 등의 학술 문화 예술 교류와 함께 백두산 화산, 수해방지, 산림협력 등의 재난재해와 환경협력을 추진하고자 한다. 셋째 목표와 관련해서는 4가지 핵심과제를 선정하였다. 우선 통일재 원 마련을 위해 통일계정 을 법제화하고 정부 민간 출연금 등으로 올 해부터 적립을 개시하고자 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젊은 세대에는 자 신감을, 북한주민에게는 희망을 주는 시그널 효과(Signal Effect)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통일의지 결집을 위 해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한 통일혜택 공론화 사업과 함께 사회지도층을 대상으로 한 통일정책 최고위과정을 신설 운영하 고자 한다. 다음으로 북한이탈주민 2만 3천명 시대를 맞아 북한이탈주민의 안 정적 정착을 위해 자립 자활 지원 강화에 주력하고자 한다. 북한이탈 주민의 성공적 사회정착은 우리 사회의 통일준비 역량의 바로미터라 는 판단아래 정부는 정착교육 인프라 확대와 함께 사회적 기업, 영농 정착 확대 등 희망일터 만들기와 취약계층 자활지원 및 직업능력강화 프로젝트 추진 등 북한이탈주민의 정착과 성공을 지원하는 희망 프 로젝트를 추진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미래세대의 통일의지를 고양하 기 위해 청소년체험캠프 개최 및 리더그룹 활동 지원, 찾아가는 학 교통일교육 확대, 청소년 눈높이 교육과 소통 강화 등 젊은 층의 눈 높이에 맞는 통일교육을 구현하고자 한다. 그리고 국제적 차원에서는 주변4국과의 고위정책협의 정례화, 국제적 협조분위기 조성, 독일통일 통합과정 실무관리 및 문건공유 등을 통한 통일정책에 대한 국제사회 협력 확보 및 독일통일 경험의 체계적 공유를 중심으로 통일외교를 적 극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추진과제들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 민적 합의가 밑받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국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전방위 국론결집을 통해 남북관계 의 발전을 모색하고 통일준비를 철저히 해 나가고자 한다. 74 통일문제이해 2012

75 2. 비핵 개방 3000 (1) 비핵 개방 3000의 특징과 함의 비핵 개방 3000 은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남북한 상생과 공영을 실 현하기 위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다. 비핵 개방 3000은 북한의 핵 폐기 결단을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동시에 남북한 공동번영의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일대 프로젝트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북한이 핵 폐기의 결단을 내린다면, 한국은 국제사회와 함께 10년 내 에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기본 구도 하에 이를 위해 북한의 핵 폐기 진전 상 황에 따라서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의 경제재건 및 주민생활 개선 을 위한 5대 분야(경제 교육 재정 인프라 생활향상)에 걸친 포괄적 패 키지 형태의 지원 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비핵 개방 3000은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의 개념 안에서 구 체적인 추진 전략을 지니고 있으며, 그 자체가 하나의 큰 얼개로서, 세 부내용은 향후 남북대화 등을 통해 유효적절하게 채워나가게 된다. 큰 틀에서 보면 핵문제 해결의 진전에 따라서 단계적으로 북한을 도 와주는 실천계획을 뜻하는 한편, 북한의 비핵화 이전이라도 인도적 지원과 삶의 질 향상 프로그램 등을 제공할 수 있으며, 비핵화의 단 계에 맞추어 대북지원을 확대하여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유도하는 방 안 등을 담고 있다. 또한, 비핵 개방 3000은 통일비전을 포함하고 있다. 비핵 개방 3000 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남북한 인적 물적 교류가 심화되면서 사실 상 남북사이의 경제공동체가 실현될 것이다. 한국이 4만 달러 시대를 열고 북한이 3천 달러 수준에 도달하면, 통일비용도 줄이고 사회적 충격을 흡수하면서 안정적인 평화통일의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3,000 달러가 된다는 것은 중산층의 성장을 뜻하며, 북한 이 이 수준에 도달할 때 남북 간 통일에 관한 논의도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75

76 (2) 한반도 신 평화구상과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한반도 신 평화구상 은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밝힌 것으로,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포괄적 구상이 자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근원적 처방을 제시한 것으로서, 비핵 개방 3000 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한반도 신 평화구상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정치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며,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근원적으로 위협해온 북한의 핵을 폐기하고, 재래식 무기를 감축하여 상호 신뢰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핵 포기 결심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적극 지원하며,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 끌어 내는데도 앞장선다는 것이다. 남과 북이 불과 4km 사이에 엄청 난 중화기와 병력으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상태에서 실질 적인 화해와 협력을 이룰 수 없다. 무기와 병력을 줄이면 진정한 평화 로 나아갈 수 있으며, 함께 경제를 일으키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반도 신 평화구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둘째, 북한 경제발전을 위한 국제 협력 프로그램의 실행이다. 셋째, 남북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남북고 위급 회의의 설치이다. 넷째, 경제 교육 재정 인프라 생활향상 등 대북 5대 프로젝트의 추진이다. 다섯째 남북 간 재래식 무기의 감축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은 이명박 대통령이 전미외교협회 (CFR), 코리아소사이어티, 아시아소사이어티가 공동주최한 간담회 연 설( )을 통해서 밝힌 것으로 비핵 개방 3000 을 기본으로 한반도 신 평화구상 의 연장선상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 적인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랜드 바겐은 북한 핵문제 관련 협상과정에서 타협과 파행, 진전과 후퇴를 반복해 온 과거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북한 핵문제를 근본 적으로 해결하려는 새로운 통합적 접근법 모색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그동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양자 또는 다자간 회담이 개최되었고 몇 가지 합의가 도출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기 76 통일문제이해 2012

77 도 전에 파기되거나 후속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과거의 접근 방식 이 북한 핵 프로그램의 일부분에 대해 부분적 단계적 해결을 모색한 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랜드 바겐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6자회담을 통해 북 핵프로그램의 핵심 부분 폐기와 동시에 북한에 대해 확실한 안전보장 과 국제 지원을 본격화한다. 둘째, 북핵 폐기의 종착점에 대해 명확한 합의를 토대로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5개국 간의 협의 를 통해 구체적인 행동 방안을 마련하여 추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 로 그랜드 바겐은 핵 포기 결단을 확실히 보여주는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부분의 폐기를 포함하고 있는데 구체적 요소는 5개국 간 협의를 통해 정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폐기는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견지해 온 기본 원칙이다. 북한의 핵은 북한 스스로의 안전은 물론 한반도의 장래를 어렵게 할 뿐이며, 핵이 있는 한반도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 북한은 핵을 포 기하는 것이 결국 자신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상생공영 과 비핵 개방 3000 을 바탕으로 그랜드 바겐 과 한반도 신 평화구상 을 추진하고 있다. 핵의 위험성을 없애고 첨예한 군사대치를 줄이며 경제번영을 추구하는 남북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관계의 새 패러다임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서 한반도에서의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고 평화통 일의 실질적 토대를 만들어 갈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패러다임의 구 현을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원칙 있게 발전시켜 나가고 인도주의를 실 천하며, 우리 내부의 통일역량을 강화해 나가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3. 3대 공동체 통일구상 건국 이후 격동기를 거치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추진해 온 우리는 이제 선진화를 통해 더 큰 대한민국 과 선진일류국가 를 건설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는 우리 국민 모두가 자유와 복지를 누림 으로써 인간적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민족공동체를 건설하겠다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77

78 는 꿈과 역사적 소명의식을 간직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 점 에서, 통일은 민족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면서 우리가 구상하는 미래의 큰 그림 속에 반드시 포함되는 역사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통일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과제임에 틀림없지만, 문제 는 그것을 어떻게 준비하느냐 하는 것이다. 통일이 반드시 우리에게 다 가올 미래라고 할 때, 통일에 대한 준비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함 은 물론이고, 그것은 적극적 통일준비 로의 전환을 위해 인적, 물적, 정책적 역량의 강화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평화 경제 민족 의 3대 공동체 개념을 구체적 통일구 상으로 제시하였다. 3대 공동체 통일구상 은 우리 정부의 통일방안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변화 흐름을 반영한 평 화통일의 미래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3대 공동체 통일구상의 기본개 념과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 핵문제 해결을 통해 한반도의 실질적 평화정착을 실현 함으로써 평화공동체 를 만들고자 한다. 평화공동체를 건설하기 위 해서는 그랜드 바겐을 통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실행하는 등 한 반도 평화유지를 위한 실질적 과제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 째, 우리 민족 구성원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의 경제공동체 를 이루고자 한다.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해서는 비핵 개 방 3000 프로젝트의 본격 가동을 통해 북한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 함과 동시에 남북 간 경제격차를 축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이러 한 과정을 통해 한민족 모두의 존엄과 기본권, 자유, 복지, 행복한 삶 이 보장되는 민족공동체 를 건설하고자 한다. 평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 민족공동체는 단계적 기계적 선후관계가 아니라, 기능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중첩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다만,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가 북한의 비핵화를 비롯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정착이기 때문에 평화공동체 실현은 평화통일로 가는 과정의 출 발점이 될 것이다. 이상의 3대 공동체는 상생과 공영의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형성될 78 통일문제이해 2012

79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한의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안 정과 평화정착이 필요하며,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남과 북은 더 큰 평화, 더 큰 협력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동안 우리가 남북관계에 있어 서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변화라고 하겠다. 표 3-1 3대 공동체 통일구상 체계 주요 내용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 민족공동체 북한 핵문제 해결을 통해 한반도 실질적 평화정착 실현 남북한 군비통제 등 한반도 평화유지를 위한 실질적 과제 추진 남북 교류협력의 안정적 발전, 남북 간 경제통합 촉진 국제사회와의 협조를 통해 북한 경제 개발 지원 비핵 개방 3000 프로젝트 본격 가동을 통해 북한주민의 삶의 질 개선 및 남북 간 경제격차 축소 민족동질성 회복, 통일을 위한 상생공영의 남북관계 완성 한민족 모두의 존엄과 기본권, 자유, 복지가 보장되는 공동체 건설 추진 과정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 민족공동체 는 단계적 선후 관계가 아니라 상호 중첩적으로 진행 평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가 기능적으로 상호 작용하면서 시너지 효과 창출 남북 간 교류협력이 심화되고 발전되면 그것은 동시에 경제공동체 그리고 민족공동체의 실현을 촉진 현재로서는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정착이 가장 시급한 과제 지금까지의 소극적 분단관리에서 적극적 통일준비로 전환하기 위해 서는 3대 공동체 통일구상을 현실적으로 구체화하는데 필요한 기반 을 마련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제 우리는 통일에 제대로 대비하기 위해 통일재원 조달방안에 대한 본격적 논의를 착수할 시점에 와 있 다. 남북경협 확대나 북한경제 재건 등의 통일준비를 위해서는 당연히 재원이 필요하다. 문제는 재원마련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도 출해 내느냐에 있다. 사회적 합의의 도출과 합리적 대안 모색을 위해 서는 바람직한 통일의 방향은 무엇인지, 통일이 가져올 편익과 가치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통일과정에서의 과제와 해결책은 무엇인지 특히 여기에 투입될 재원규모와 조달방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공론 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서 진행 중인 통일준비 공 론화는 내부 통일역량 강화는 물론 우리 스스로 주도적이고 적극적 으로 통일을 준비해 나간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79

80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정부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통일재원 조성 을 위한 법제화 방안을 마련하였다. 그것은 남북협력기금 내에 기존 남북협력계정 외 통일계정(통일항아리) 을 신설하는 방향으로 정하였 다. 정부는 통일계정을 2013년부터 기금운용계획상 남북협력계정과 통일계정으로 분리 운용하기로 하고, 정부출연금, 민간출연금, 남북협 력기금 불용액, 다른 법률에서 정한 전입금 또는 출연금, 통일계정 운 용 수익금,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수입금으로 재원을 구성하 였다. 정부는 이상과 같은 통일계정 재원적립을 통해 우리의 통일의지와 자신감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동시에 국민들의 통일의지를 결집하고 북 한 주민에게 희망을 주려는 데에 정책적 의의를 두고 있다. 사실상 통 일준비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는 통일계정은 통일비용을 세대 간에 분담하자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 점에서, 통일비용은 성격상 미 래를 위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통일 전후의 통합과정에서 발생 되는 비용인 통일비용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 리는 통일로 얻게 되는 통일편익이 훨씬 더 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 가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통일비용은 한시적이지만 통일편익은 무 한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특히, 통일편익이 분단비용의 해소는 물론 유무형적 가치의 산출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통일은 엄청난 편익과 효 용을 창출하는 거대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통일이 되면 안 보 위협이 사라짐과 동시에 분단비용이 없어지는 편익이 발생할 것이 다. 또한 통일한국은 독일, 프랑스, 영국처럼 인구 8천만을 보유한 중 견국가로서 세계 중심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80 통일문제이해 2012

81 제3절 북한의 통일방안 의 대남전략은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에는 북한기본적으로 변함이 없다. 이러한 대남전략을 기초로 한 북한의 통일방안은 시대적 조건과 환경에 따라 변화해 왔다. 북한은 1960년 8 15 해방 15주년 경축대회에서 처음으로 남북의 제 도를 그대로 두는 과도적 형태인 남북연방제 통일방안을 제기하였 고, 1973년 고려연방공화국 이라는 단일 국호에 의한 연방제 실시를 골자로 하는 고려연방제 를 주장하였다. 1980년 10월 10일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을 제시하면서 종전 처럼 통일까지의 과도적 조치로서의 연방제가 아니라 완성된 통일국가 형태로서의 연방제를 주장하였다. 1990년대부터 북한의 연방제는 약간의 전술적 변화를 보였다. 북한 은 1980년대 말 소련 해체와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로 인한 외교적 고 립과 경제난 등으로 체제 유지에 불안을 느끼게 되자 남북공존을 모 색하였다. 북한은 1991년 신년사에서 잠정적으로는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더 높여 나가는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81

82 방향에서 연방제 통일을 완성하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 한 연 방 제 를 주 장 하 였 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를 제기하였다. 북한 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주년 기념 평양시 보고대회 ( )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 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원칙에 기초하되 남북한 정부가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가지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1. 북한의 대남전략 북한은 하나의 조선 이라는 통일관에 기초하여 통일문제를 오직 해방과 혁명 의 논리에서만 접근하여 왔다. 그 논리에 따르면 북한은 전 조선혁명 을 위한 혁명기지이고, 남한은 미 제국주의자들의 강점 하에 있는 미( 未 )해방지구로서 혁명투쟁의 현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 있어서 조국통일은 남조선혁명을 전제로 하는 통일이 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기치 하의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북한은 대내외 정세변화에 따라 민주기지론 에서 민족공조론 에 이 르기까지 조금씩 그 형태를 달리해 왔다. 그동안 북한이 구사해온 대 남전략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남조선혁명을 위한 북한의 대남전략은 해방 직후인 1945년에 민주 기지론 이란 형태로 처음 제시되었다. 이것은 미군의 남한 점령으로 전 국적 범위에서 혁명을 추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지역의 혁명역량 을 먼저 강화하고, 그 역량을 바탕으로 전 한반도의 공산혁명을 완수 한다는 전략이다. 북한이 민주기지론 을 기본적인 대남혁명 전략으로 채택한 것은 해 방직후 여러 면에서 북한 지역이 남한 지역에 비해 우세하였던 유리한 조건을 활용하여 전 한반도의 공산화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한은 1970년에 초창기의 민주기지론 에서 한 단계 발전된 민족 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 전략을 공식 채택하였다. 이는 남조선혁명은 남한의 혁명세력이 주체가 되어 수행해야 한다. 는 것으로, 우선 남한 82 통일문제이해 2012

83 에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한 다음, 2단계로 사회주의 혁명을 진행시킨다는 단계적 혁명론 이다. 북한이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전략 을 주장하게 된 것은 6 25 전쟁 이후 분단이 장기화됨으로써 남과 북에 서로 상반된 정치 사회 체제가 고착화되어 무력 적화통일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북한이 남한 혁명의 성격을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 혁명 으로 규정하고 혁명의 주인을 남한 인민 자신이라고 선동하는 것은 이러한 인식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은 1964년 남조선혁명을 완성하는 실천 요소로서 이른바 3대 혁명역량 강화 를 내세웠다. 즉 북한 체제의 혁명역량, 남조선 혁 명역량, 그리고 국제적 혁명역량의 강화 를 내용으로 하는 3대 혁명역 량 강 화 노 선 이 다. 3대 혁명역량 강화 노선은 대내적으로는 민주혁명기지 노선에 기초 하여, 남조선 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혁명기지로서의 북한의 능력과 역 할을 제고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체사상에 의한 북한주민 들의 정치사상적 무장 강화,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을 통한 경제역량 강화, 혁명의 승리를 보장하는 수단으로서의 군사역량 강화 등을 강 조하고 있다. 대남 차원에서는 우리 사회 내부의 모순을 최대한 첨예화시키고 지 하당 조직의 확대, 다양한 형태의 통일전선 형성 등으로 사회혼란을 유도하여 우리 사회 내부에서 인민혁명이 일어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국제혁명 차원에서 한반도 공산화 통일을 용이하게 할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병행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2001년 1월 개최한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 는 2001년 대회 에서 외세와의 공조를 배격하고 민족공조로 통일문 제를 우리민족 자체의 힘에 의하여 해결해 나가자 고 제의하는 등 민 족공조 를 통일운동의 핵심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2002년 10월 제2차 북핵 위기가 대두되면서부터 북한은 민족공조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83

84 로 조 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위한 운동과 투쟁을 벌이는 것은 핵전쟁 위험을 막고 민족자주통일을 가져올 수 있다. 고 주장하였다. 2003년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서도 한반도 정세를 조선민족 대 미국 간의 대 결 이라고 규정하면서 민족공조를 통해 미국의 대북 압살책동을 분 쇄해 나갈 것 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북한이 민족공조 를 내세우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 내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동시에 우리 측의 대북 지원이 민족의 상부상조 전통에 의한 것이라는 대주민 선전논리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평가된다. 북한의 대남전략은 우리 사회의 반미 자주화와 친북 연공화( 聯 共 化 )를 통해 한반도 적화통일을 이루어낸다는 궁극적 목표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다. 바로 이러한 대남전략을 기초로 한 북한의 통일방안은 시대적 조건과 환경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다. 북한의 통일방안의 변천을 시기별로 간략히 정리해 보면, 초기 통일 방안은 하나의 조선 논리에 입각한 민주기지론 에 의한 무력적화 통 일이었다. 그것을 대남 위장평화 공세 속에서 실행에 옮긴 것이 6 25 남침이었다. 민주기지론은 1960년 4 19 혁명 이후에 남조선혁명론 으 로 발전되었고, 이때 북한은 과도적 조치로서 남북연방제 를 처음으 로 제기하였다( ). 1970년대 이래 대남 적화통일의 기본전략은 남조선 혁명전략 과 조국통일전략 으로 구성되며, 북한은 그러한 전 략기조 하에 남북대화와 대남공작 또는 평화공세와 대남공작강화 를 병진 배합하는 전술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그 전략에 기초하여 남조선 혁명론과 연방제 통일방안 은 1973년의 고려연방제 를 거쳐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으로 구체화되었으며, 1980년대 말 이래로는 체제방어 논리에 입각한 당국 간 대화와 통일전선 구축 을 통해 위기극복과 함께 적화통일 전 략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1991년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에 기 초한 연방제로 전환되었다. 이하에서는 북한의 통일방안의 기본모형이라고 할 고려민주연방공 화국 창립방안 이 제시된 1980년대 이후의 통일방안을 중점으로 살펴 84 통일문제이해 2012

85 보고자 한다. 2. 북한 통일방안의 변천 (1) 정권수립에서 1970년대까지의 통일방안 광복 후 6 25 전쟁까지 북한의 통일방안은 민주기지론 에 입각한 무력 통일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은 이미 1945년 12월 17일 북 조선을 통일된 민주국가를 위한 강력한 민주기지로 전변시킬 것 을 선 언하였다. 여기서 민주기지 란 전 한반도를 볼셰비키화하기 위한 공산 주의의 기지를 의미한다. 그러한 북한의 기본입장은 김일성이 1955년 4 월 모든 힘을 조국의 통일독립과 공화국 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건설 을 위하여 라는 테제를 통하여 민주기지 건설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에 서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1960년대에 들어와 민주기지론 을 견지하면서 평화통일 제 안과 남조선혁명 이라는 이중전략을 구사하였다. 남조선혁명의 실천 수단으로 제기된 것이 남북연방제 라 할 수 있다. 남북연방제에 관한 구상을 최초로 북한에 제공한 사람은 쿠즈네소프 소련 외무성 부상 이었다 혁명 직후 한반도 정세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을 비공식 방문한 그는 연방제 구상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김일성은 연방제 로 남조선을 끌어안아 소화시킬 수 있다 고 보고 1960년 5월 20일 노 동당 정치위원회에서 연방제 연구의 필요성을 제안하였다. 그 후 약 3 개월간의 연구 토론 기간을 거쳐 김일성은 1960년 8월 14일 8 15 해 방 15주년 기념연설 에서 처음으로 연방제를 제의하였다. 김일성은 이 연설에서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이 민주주의적 기초 우에서 자유로 운 남북총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평화적 조국통일의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편 이라고 하면서 만일 그래도 남조선 당국이 아직은 자유로운 남북총선거를 받아 들일 수 없다면 과도적인 대책으로서 남북 조선의 련방제를 제의한다 고 하였다. 그 내용은 당분간 남북의 현재 정치제도를 그대로 두고 조선민주 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독자적인 활동을 보존하면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85

86 서 두 정부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최고민족위원회를 조직하여 남북 조 선의 경제 문화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는 방법으로 실시하자 는 것 이었다. 이렇게 볼 때, 당시 북한의 제의는 표면상으로는 연방제를 나 타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국가연합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남북연방제 는 1971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4기 5차 회의 시 현 정 세와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촉진시킬 데 대하여 라는 북한 외상 허담 의 보고에서 8개 항의 대남 제의를 통해 다시 제시되었고, 그 후 김일 성은 우리의 6 23 선언 의 발표가 있은 당일인 1973년 6월 23일 체코 슬로바키아 공산당 총서기 구스타프 후사크 환영대회의 연설을 통해 조국통일 5대강령 을 내놓았다. 이는 허담의 8개 항을 단순화한 것인 데 그 요지는 1 남북 간의 군사적 대치상태의 해소와 긴장상태의 완 화, 2 남북 간의 다방면적인 합작과 교류의 실현, 3 남북의 각계각 층 인민들과 각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는 대민족회의 소집, 4 고려연방공화국을 국호로 하는 남북연방제(이른바, 고려연방제 )의 실시, 5 고려연방공화국이라는 단일국호에 의한 유엔 가입 등이었다. (2)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북한은 1980년 10월 10일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김일성의 사업 총 화보고를 통해 기존의 통일방안과 제안들을 다시 정리한 고려민주연 방공화국 창립방안 (이른바, 고려민주연방제 )을 제시하였다. 그 내용 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선결조건, 연방제의 구성 원칙, 10대 시정 방침으로 나눌 수 있다.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의 특징은 첫째, 고려 에다 민주 를 첨가 하여 선전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과도적 대책 또 는 당분간 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음으로써 외형상 완성된 형태의 연 방국가라는 점이다. 셋째, 한국에 대해 무장해제에 가까운 선결조건 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넷째, 민족 자주 등의 개념을 이용하는 용 어 혼란 전술을 포함한 심리전적인 10대 시정방침 을 제시한 점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선결조건 으로 그 내용을 보면 남한에서의 군사파쇼통치 의 청산과 민주화 실 현이라는 명분으로 반공법 국가보안법 등 파쇼악법의 폐지 및 폭압 통 86 통일문제이해 2012

87 치기구의 제거, 모든 정당 사회단체들의 합법화 및 모든 정당 사회단 체 개별인사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 보장, 민주인사 애국인사들의 석 방, 군사파쇼 정권의 민주정권으로의 교체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긴장상태의 완화 및 전쟁위험의 제거라는 명분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 정으로 바꾸기 위한 미국과의 협상, 주한미군의 조속한 철수, 조선의 내정에 대한 미국의 불간섭 및 두 개의 조선 조작책동의 중지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연방제의 구성 원칙을 보면 1 남과 북이 사상과 제도를 인 정하는 기초 위에서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 시하는 연방공화국을 창립, 2 남과 북이 동수의 대표로 연방 국가 의 최고 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고 그 상임기구로 연방 상설위원회를 조직하여 남과 북의 지역 정부를 지도하는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의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첫째, 이른바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선결조건 으로서 이는 남조선혁명 론 발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남북이 서로 상대방에 존 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위에서 연방제 를 하자고 했으나 두 제도에 의한 연방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셋째, 국호 국가형태 대외정책의 노선 등을 일방적으로 결정하 고있다는 점이다. 넷째, 통일 이전에 남북 간에 실시해야 할 사항들을 연방제가 실현되었을 때의 시정방침으로 제시함으로써 남북 간의 교 류와 협력의 실시를 기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연방헌법 등 연 방의 형성에 따르는 구체적 절차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3) 연방제 통일방안의 전술적 변화 1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에 기초한 연방제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북한의 연방제는 약간의 전술적 변화를 보 였다. 소련의 해체와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 에 처하자 북한은 체제유지에 불안을 느끼고 남북공존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1991년 신년사를 통해 1민족 1국가 2제도 2 정 부 에 기 초 한 연 방 제 를 제 기 하 였 다.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87

88 북한은 잠정적으로는 지역 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되 점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더 높여나가는 방향에서 연방제 통 일안을 점차적으로 완성할 것 임을 밝혔다. 북한이 이처럼 지역자치정 부가 외교권, 군사권, 내치권을 갖는 지역자치정부 권한강화론 을 들 고 나온 것은 사실상 동독이 서독에 흡수된 통일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이 제기한 1민족 1국가 2제 도 2정부 에 기초한 연방제 주장은 통일보다는 체제 보전에 더 역점을 두고 있어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보다 수세적 방어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북한의 통일방안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 도, 두 개 정부 에 기초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을 창설하여 통일을 이 루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를 상술하면, 첫째, 통일국가의 형태는 남 북 두 지역 정부가 동등하게 참가하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의 연방국가이며, 제도통일은 후대에 일임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통 일국가의 성격은 자주 평화 비동맹의 독립국가로 규정해 놓았다. 둘째, 통일과정과 관련하여 북한은 연방제 실현의 선결조건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을 표명하면서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선결조건 을 제시하였으며,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전 민족 대단결 10대 강령 을 채택하면서도 우리 측 에 대해 외세의존 정책 포기, 미군 철수 의지 표명, 외국 군대와의 합 동 군사연습 영구 중지, 미국의 핵우산 탈피 등 4가지 사항을 요구조 건으로 제시하였다. 셋째, 통일원칙과 관련하여 북한은 7 4 공동성명의 통일 3원칙 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북한은 자주원칙을 주한 미군 철수와 미 국의 간섭배제로, 평화원칙을 한국의 군사력 현대화와 군사연습 중지 로, 민족대단결 원칙을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공산당의 합법화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넷째, 통일이념에 있어서 북한은 주체사상과 공산주의를 내세우고 있으며, 통일의 주체는 인민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섯째, 통일과정과 관련하여 고려연방제안은 과도적 기구를 상정하 88 통일문제이해 2012

89 지 않고 민족통일 정치협상회의 개최 통일방안 협의결정 고려 민주연방공화국 선포 등의 과정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며, 통일국가 의 기구로서 최고민족연방회의, 연방상설위원회를 내세우고 있다. 2 낮은 단계의 연방제 북한은 2000년 6 15 남북공동선언 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 를 제 시하였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 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안경호 조 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이 2000년 10월 6일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제시 20돌 기념 평양시 보고대회 를 통해 처음으로 밝혔다. 즉,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원칙에 기초하되 남북의 현 정부가 정치, 군사, 외교권을 비롯한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보유한채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구성하는 것 이라고 하였다. 이 내용은 2000 년 12월 15일자 노동신문을 통해서 다시 확인되었다. 이후 북한은 2001년 12월 9일 노동신문과 2002년 1월 7일 평양방 송을 통해 6 15 공동선언 이 연방제 방식의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라 고 주장함으로써 연방제 통일의 당위성에 맞추어 해석하려 하였다. 그 러나 이의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자, 북한은 2002년 5월 30일 자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북과 남이 통일방안에 대해 완전히 합의하 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통일방안의 공통점을 인식한 데 기초하 여 그것을 적극 살려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의미 라고 해 명하였다. 3. 북한 통일방안의 평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의 통일전략은 선 남조선 혁명, 후 공산화 통일 노선으로 체계화하여 전개되어 왔고, 사회주의체제에 의 한 조국통일이라는 북한의 전략이 쉽게 변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일성 사후 발표된 김정일의 통일 관련 논문 및 서한을 살펴보면, 북한은 대남전략 차원에서 남한의 통일역량 강화를 저해하는 한편 남한정부를 배제하려는 기존의 통일전선 전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7 7_김정일은 1997년 6월 19일 논문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 을 고수할 데 대하여 와 1997년 8 월 4일 논문 위대한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 그리고 1998년 4월 18 일 서한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조 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 자 를 통해 자신의 통일노선과 대 남정책을 발표하였다. 특히 4월 18 일 서한에서 제시한 민족대단결 5 대 방침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조 선 논리와 남한의 연북 화해 정 책 을 주장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1 민족의 대단결은 철저히 민족자주의 원칙 에 기초 2 애국애족의 기치, 조국 통일의 기치 밑에 온 민족이 단결 3 우리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려 면 북과 남 사이의 관계를 개선 4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고 외 세와 결탁한 민족 반역자들, 반통 일세력을 반대하여 투쟁 5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이 서로 내왕하 고 접촉하며 대화를 발전시키고 연 대와 연합을 강화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89

90 또한 2002년 10월 제2차 북한 핵문제의 대두와 함께 소위 민족공 조 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북한은 2003년 신년공동사설에서 한반도 정 세를 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 로 규정함으로써 핵문제와 관련한 미 국의 대북 압박정책에 맞서 남북이 공동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민족공조론은 우리 내부에 반미 분위기를 조성하고 내부 분 열을 조장하여 남남갈등을 유발시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측으로 부터 지원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년 신년공동사설에서 제시된 민족중시, 평화수호, 단합실현 의 3대과 업을 통해 연대성을 강조한 것이나 2008년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민 족공조 원칙을 강조하며 10 4 선언 의 철저한 이행을 주장한 것과 그 리고 2009년 신년공동사설에서 우리민족끼리 를 기치로 통일전선을 강조한 것도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통일방안은 기본적으로 적화통일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전술 적 방안에 불과하며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연방제의 선결 조건을 요구함으로써 상대방의 실체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상 남조선혁명을 의미하는 남한 내 인민민주주의 정권 수립과 함 께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 미군 철수 등을 연방제의 선결조건으로 요 구하는 것은 상대방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으로서, 양측의 현실을 인 정한다는 남북기본합의서의 기본 취지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이처럼 논리적 차원에서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며 자신의 주장을 보편적으로 적용시키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둘째, 선결조건과 연방구성 원칙 사이에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선결조건에서는 상대방의 이념과 체제를 부정하면서도 연방제 의 구성 원칙에서는 남북의 사상 제도의 차이를 상호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하나의 연방국가를 형성하자고 주장하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 다. 또한,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상호 인정한다 는 연방제의 구성 원 칙도 우리 측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연방제의 선결조건 이 충족된 상태인 남쪽의 인민민주주의와 북쪽의 사회주의 체제를 상호 인정하는 것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셋째, 연방정부와 지역정부 간의 관계설정이나 연방정부의 구성방법 등에 있어서 비현실성을 드러내고 있다. 원래 연방제란 자치권을 가진 90 통일문제이해 2012

91 복수의 지방정부들이 연방헌법을 통해 주권을 독점하는 중앙(연방)정 부를 구성하는 통합 형태를 의미하나, 북한의 연방제는 중앙정부와 이 념과 체제가 다른 남과 북의 지역정부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상 이념과 체제가 다르면서 연방의 방식으로 통일을 이룩한 사례가 없는 바, 현 실적으로는 지역정부 간 이념과 체제가 다른 경우에 연방의 실현 가능 성은 거의 없다고 하겠다. 또한, 연방정부의 구성과 관련하여 이질적인 이념과 체제의 대표로 연방정부를 구성할 경우, 상호 간의 대립이나 입 장차이로 전반적인 의사결정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이 1991년에 내세운 1민족, 1 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 와 2000년에 제시한 낮은 단계 의 연방제 는 대내외적 상황에 따른 전술적 변화에 불과한 것으로, 결 국 연방 창설을 예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1980년의 고려민주연방공화 국 창립방안 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북한의 통일방안은 북한 체제의 규범적 당위성에만 기초 한 것으로서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남북공통의 가치나 행동양식에 기반을 둔 합리적 통일방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볼 때, 남북 양측의 통일방안은 <표 3-2>에서 와 같이 기본적으로 통일의 기본철학, 통일의 원칙, 전제조건 존재 여 부, 통일과정, 통일 실현절차, 통일국가의 형태와 기구, 미래상 등에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91

92 표 3-2 남북한 통일방안 변천(1948~현재) 구분 남한 북한 1948~ 1960 제1공화국 (이승만정부) 유엔 감시하 남북한 자유 총선거에 의한 통일론 김일성 정권 민주기지론(민족해방론)에 의한 무력적화통일론 제2공화국 (장면 정부) 남북자유총선거론 (유엔 감시하) 1960 년대 남북연방제 (1960) 제3공화국 (박정희 정부) 선 건설 후 통일론 (1966) 1970 년대 제4공화국 ( ) 평화통일외교정책선언 ( ) 선 평화 후 통일론 (1974) 고려연방제 (1973) 조국통일 5대강령 1980 년대 제5공화국 (전두환 정부) 제6공화국 (노태우 정부)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 (1982)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1989)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 (1980)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 1990 년대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 (1994)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계승 (1998)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에 기초한 연방제 (1991) 민족대 단결론 2000 년대 노무현 정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계승 (2003) 김정일 정권 낮은 단계의 연방제 (2000) 민족 공조론 이명박 정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계승 (2008) 92 통일문제이해 2012

93 표 3-3 남북한 통일방안 비교 구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 고려연방제 통일방안 통일철학 자유민주주의 주체사상 통일원칙 자주, 평화, 민주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남조선혁명, 연공합작, 통일 후 교류협력) 통일주체 민족 구성원 모두 프롤레타리아 계급 전제조건 - 국가보안법 폐지, 공산주의 활동 합법화, 주한미군철수 통일과정 화해 협력 남북연합 통일국가 완성 (3단계) 민족사회 건설 우선 (민족통일 국가통일) 연방국가의 점차적 완성 (제도통일은 후대에) 국가체제 존립우선 (국가통일 민족통일) 과도통일 체제 남북연합 - 정상회담에서 남북연합헌장 을 채택, 남북연합 기구 구성 운영 남북합의로 통일헌법초안 국민투표로 확정 - 통일국가 실현절차 통일헌법에 의한 민주적 남북한 총선거 연석회의 방식에 의한 정치협상 통일국가의 형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국가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연방국가 통일국가의 기구 통일정부, 통일국회 (양원제) 최고민족연방회의, 연방상설위원회 통일국가의 미래상 자유 복지 인간존엄성이 보장되는 선진 민주국가 - 제3장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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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4 남북관계의 전개 제1절 남북분단과 대한민국의 건국 제2절 남북관계의 전개 : 갈등과 협력 제3절 남북관계의 발전방향

96 년 해방 이후 한반도는 대내외적인 요인 에 의해 단일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남북으 로 분단되었으며, 북한의 남침으로 6 25 전 쟁과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게 되었다 전쟁 발발 62년이 되는 지금의 한반도는 세계적 수준에서의 탈냉전에도 불구하고 여전 히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냉전의 고도( 孤 島 ) 로 남아 있다. 02 분단 이후 남북관계는 갈등과 대결 속에서 대 화와 협력이 공존하는 이중성을 보여 왔다. 최 근에는 북핵 문제,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 평도 포격 도발 등으로 인하여 군사적 긴장이 고조됨으로써 갈등 국면이 심화되었다. 03 남북대화는 1970년대 초 남북적십자회담을 시 작으로 전개되었으며, 이후 남북고위급회담,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장관급회담 등 다양한 수준과 분야의 회담이 개최된 바 있다. 향후 남북대화는 북한이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에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임하는가에 따라 실질 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04 우리가 지향하는 남북관계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원칙 있는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한 반도에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 부는 굳건한 안보를 바탕으로 북한의 바람직 한 변화를 유도해 나가고 있다.

97 제1절 남북분단과 대한민국의 건국 19 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과거 식민 지배를 받 았던 많은 민족들이 해방되었다. 한반도 역시 일본 군국주의 의 패망과 함께 1910년 이래 35년 동안의 고통스런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났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식민 지배의 종식이 곧바로 단일국가 의 수립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20세기 후반기의 세계를 지배하게 될 냉전의 급류가 한반도를 뒤덮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1945년 에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현재에도 한반도에서 지속되고 있는 남북 분단과 대립이 구조적이고 체제적으로 형성된 시기는 바로 해방과 6 25 전쟁 사이였다. 한반도 분단 구조의 형성과 그것의 정치적 효과는 이 시기의 사건들에 의해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절에서는 첫째, 남북 분단이 이루 어지는 원인과 그 과정을 정리하고, 한반도 분단의 특징을 서술한다. 둘째, 한반도의 38도선 이남에서 대한민국이 건국되는 과정을 살펴본 다. 셋째, 1950년의 6 25 전쟁을 겪으면서 한반도 분단이 고착화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97

98 1. 남북의 분단 (1) 분단의 원인 남북관계의 전개 과정에서 출발점이 되는 것은 바로 남북 분단이다. 남북 분단은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지속적이고도 강력 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사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분 단의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1945년 8월과 9월에 시작된 소련과 미국 의 한반도 분할 점령이다. 둘째, 1946년 초의 신탁통치를 둘러싼 한반 도 내의 균열 구조이다. 셋째, 한반도 독립국가 수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946년과 1947년에 개최된 미 소 공동위원회의 결렬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고, 한 반도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 해방 이후 한반도의 독 립에 관한 문제는 이미 열강들 사이에서 논의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 한창이던 1943년에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제스 등은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회담을 갖고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 킬 것을 결의하였고, 1945년에 개최된 포츠담 회담에서도 한국의 독 립을 재확인하였다. 하지만 해방 직후 한국은 전승국의 입장에 서지 못하고 한반도의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연합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역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직후에 소련과 미국의 군대가 한반도의 북쪽 과 남쪽에 각각 진주하면서부터 해방과 독립 정부 수립의 희망에 들 떠있던 한반도의 초기 지형은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소련과 미국의 진주는 그것이 어떤 형태였든지 간에 사회체제의 속성과 국가 수립의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얄타 회담의 결정에 따라 1945년 8월 9일에 참전한 소련군 이 북쪽 지역을 점령하였으며, 미군은 1945년 9월 8일에 남쪽 지역에 들어왔다. 미국 측은 소련이 한반도를 단독으로 점령하는 것을 막고 한반도에 잔류해 있던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기 위하여 38도선의 분 할 점령을 제안하였다. 소련이 이에 동의하여 한반도는 광복과 동시 에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가게 되었다. 소련과 미국의 군사 98 통일문제이해 2012

99 적 주둔은 한반도를 세계에서 가장 격렬한 정치적 소용돌이의 장으로 만들었다. 남쪽에 진주한 미군은 군정을 선포하고 직접 통치의 방식을 취하였 다. 미군은 한국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국내 세력을 지원하여 자유 민주주의 체제인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후원하였다. 북쪽에 진주한 소련군은 군정을 통해 김일성 세력을 집중 지원하면서 토지개혁과 산 업국유화 등 소련이 입안한 조치들을 실시해 나갔으며, 나아가 한반도 에 대한 소련의 노선에 입각하여 북쪽에 공산주의 정부 수립을 지원 하였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소련 양국 군대의 주둔과 군정의 실시는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2) 분단의 과정 이후 한반도의 분단은 다양한 과정을 거치면서 진행되었고, 더욱 공 고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의 분단은 무엇보 다도 국제적인 상황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45년 8월 15 일에 미국과 소련을 양대 축으로 하는 반파시즘 연합전선이 해체되고 냉전이 본격적으로 개시되면서 한반도는 지역적으로 분단되었다. 한반 도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지역적으로 나누게 된 이 분단은 세계적 냉전 구조와 국내의 이념적 갈등이 결합하면서 한반도의 냉전을 초래 하였다. 해방 직후부터 6 25 전쟁 직전까지 한반도의 분단은 세 가지 성격의 분단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게 된다. 먼저 첫 번째 분단은 지역적인 분단이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해방 직후부터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 에 의해 38도선을 중심으로 지역적으로 분단되었다. 한반도의 남북분 단은 이 분단으로 구획된 각각의 지역이 이후 자체적인 동학( 動 學 )과 정치적 구조 속에서 분단의 역사적 과정을 걸어가게 만들었다. 두 번째 분단은 이른바 체제상의 분단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소 련 군정은 남쪽과 북쪽에서 각각 상이한 정책들을 실시하였다. 북쪽 에서는 산업 국유화 등의 사회주의 정책이 실시되면서 소련에 우호적 인 사회주의 체제가 수립되고 있었고, 남쪽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기 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수립되고 있었다. 이로써 한반도에는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99

100 북위38도선을 경계로 상이한 체제가 형성되어 분단되게 되었다. 세 번째 분단은 광복 이후 하나의 한국이 이루어지지 않고, 갈등과 아픔 속에서 남과 북에 각기 상이한 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당시 소련 과 북한은 남북 총선거를 통해 통일정부를 수립하기로 한 유엔 결의 를 거부하였다. 이에 따라 선거가 가능한 남쪽에서만 총선거를 실시 하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수립하였으며, 유엔은 이를 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다. 한편 북쪽에서는 이러한 유엔 결 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1948년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 국을 수립하였다. 이후 이러한 분단 과정을 돌이킬 수 없는 성격의 구조로 만든 것이 바로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 25 전쟁이다 전쟁이 휴전으로 끝나면서 분단은 결과적으로 더욱 고착화되었고, 이 전쟁은 향후 남 북관계의 기본 성격을 규정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한반도의 분단은 우리가 냉전을 보면서 연상할 수 있는 모든 적대적 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분단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었다. 그 분단은 냉 전이 전 지구적으로 개시되기 이전에 한반도에 찾아왔으며 다른 모든 곳에서 냉전이 끝난 오늘날에도 한반도에 여전히 계속 남아 있다. 2. 대한민국의 건국 해방 당시 한반도 질서를 규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던 강대국인 미 국, 영국, 소련의 외상이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회담을 개최 하여 한반도에서의 임시정부 수립과 신탁통치안을 가결하였다. 하지 만 이것의 실행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독 립 정부 수립을 기대해 왔던 우리 민족은 당연히 한반도 신탁통치 결 정에 반대하였으며 전국적으로 반탁 운동을 전개하였다. 좌익 계열도 처음에는 신탁 통치안에 반대하여 반탁 운동에 동참하였다가 곧바로 신탁 통치에 대한 지지 운동으로 선회하였다. 당시 신탁통치는 곧 식 민지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남쪽 주민들은 신탁통치를 반대하였다. 결국 1945년 8월 해방 국면에서 미 소 양군 100 통일문제이해 2012

101 의 주둔이 잠정적인 영토적 분단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1946년 1월의 찬탁, 반탁을 둘러싼 커다란 갈등은 정신적이고 이념적인 분단에 해 당하는 것이었다. 한반도 문제가 2차례에 걸친 미 소 공동위원회에서 해결되지 않자 1947년 9월에 이 문제는 유엔에 상정되었다. 그해 11월 유엔 총회에서 는 미국이 제안한대로 신탁통치를 거치지 않는 한국의 독립과 유엔 감시하의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 총선거를 통한 한국통일 방안이 결 의되었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이관하는 것에 반대했던 소련 은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의 북한 입국을 막았다. 소련의 반대에 직면 한 유엔 소총회는 1948년 2월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남한만의 총선거를 실시하는 안에 대해서 반탁 운동을 전개 해 온 세력은 다시 크게 둘로 나누어 대립하였다. 이승만과 한국민주 당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하며 남한만이라도 즉각 총선 거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김구를 중심으로 한 한국 독립당 계열은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미국과 소련 양군의 철수 와 남북지도자의 협상에 의한 총선거를 주장하였다. 한편으로는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고 통일된 정부 를 수립하고자 하였던 유엔의 결의가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불가능해 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김구와 김규식 등이 전개한 남북 협상도 실패로 끝남에 따라 통일된 정부 수립을 위한 제도적 대 안들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1948년 5월 10일에 한반도 역사 상 최초로 민주적인 보통 선거에 의해서 남한만의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1948년의 5 10 총선거로 선출된 제헌 국회의원들 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고, 7월 17일에는 대 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민주공화국 체제 의 헌법을 제정하였다. 이 헌법은 대한민국이 3 1정신 을 계승한 민주국가임을 확인하였다. 제헌 국회는 7 월 20일에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시영을 선출 하였으며,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를 구성하고 해방 3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01

102 주기가 되는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 다. 이승만 대통령은 조병옥, 장면, 장기영 등을 파리에서 개최되는 제3 차 유엔총회에 파견하였다. 그해 12월 8일 대한민국 승인은 유엔총회에 서 41대 6, 기권 2로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었고, 12월 12일 속개된 유엔 총회에서는 48대 6으로 가결되었다. 유엔총회는 같은 날 유엔 총회 결 의 195호를 통해서 대한민국 정부가 합법적으로 수립되었음을 선언하 였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은 유엔 총회의 승인을 받아 민주적인 절차 에 의하여 수립된 한반도 내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출범하게 되었다. 표 4-1 대한민국 건국 과정 일 자 내 용 광복 ~25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한반도 임시정부 수립 및 5년간 신탁 통치 결의 (1차) (2차) 미 소공동위원회, 임시정부 수립 문제 논의 (결렬) 유엔 총회, 한국임시위원단 구성 유엔 총회, 유엔 감시 하에 인구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 실시 결의 소련,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38도선 이북지역 입북 거부 유엔 소총회, 선거가 가능한 남한지역만 총선거 실시 결의 총선거 실시 대한민국 헌법 제정 공포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 유엔 총회,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내의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승인 전쟁 남북관계에서 가장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이자 분단비극의 시작은 1950년 6월 25일부터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 25 전쟁이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공산화 시키기 위해 민주기지론을 내걸고 치밀한 계획 하 에 남침 전쟁준비에 들어갔다. 김일성은 소련과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 하여 군사 비밀 협정을 맺었고 남침전쟁을 위한 북한군의 역량을 강화 102 통일문제이해 2012

103 하였다, 소련으로부터는 탱크와 야포, 항공기 등 당 시의 최신 무기를 도입하여 전면 공격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1949년과 1950년 사 이에 중국의 국 공 내전 등의 전투 경험이 있는 조선 인 수만 명을 북한군에 편입시켜서 북한군의 전력을 강화해 나갔다. 한편, 북한은 남침을 위해 군사력을 대대적으로 증강시키는 한편,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대내외적 여 건을 조성하는데 주력했다. 특히 남북 지도자들 사 이의 협상을 주장하거나 평화통일 선언서를 유엔에 보내는 등과 같은 위장평화공세 를 펼치면서 남침 시점을 계산하고 있었다. 당시의 동북아시아의 국제 정세는 중국이 내전을 통해서 중국대륙을 공산화시 키고 소련과 북한은 한반도의 공산화 시도를 논의 하는 등 불안정성이 가중되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방위 개입선을 후퇴시키고 한국 에 주둔하고 있던 전투 부대를 철수한 다음, 1950 년 1월 12일에는 한반도와 타이완을 미국의 태평 양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애치슨 라인 (Acheson Line)을 발표하였다. 소련을 방문한 김일성(1949.3) 이 시기를 무력통일전쟁의 호기로 판단한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휴일 새벽, 선전포고도 없이 38도 선 전역에 걸쳐서 전차를 앞세운 기습 남침을 개시 하였다. 국군은 북한군의 월등한 화력과 전투력에 밀려 침공 사흘째 인 6월 28일에 서울을 완전히 빼앗기고 후퇴를 거듭하였고, 8월에는 낙동강 이남까지 후퇴하여 부산일대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북한의 수 중에 떨어지게 된다. 미군과 국군은 낙동강 전선에 최후 방어선을 형 성하고 전투를 벌이게 된다. 한편, 북한의 침략에 따라 미국은 1950년 6월 26일,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를 소집하여 북한의 불법 남침을 침략행위 로 규정하고 북한 군의 군사공격을 격퇴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 데 필 남침을 승인한 소련 문서( )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03

104 요한 원조를 대한민국에 제공할 것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엔군 총사령부를 설치하기로 하였으며, 미국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대한민국에 대한 군사지원을 개시하 였다. 이리하여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군 이 조직되어 한국에 파견되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을 격퇴시키고 1950년 9 월 15일에는 국군 해병대와 유엔군이 인천상륙 작전을 성 공시켜 전세를 역전시키고 9월 28일에는 서울을 수복하 였다. 국군 1사단은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 북진에 들어 섰고 10월 2일에는 유엔군도 38도선을 넘었다 전쟁 경과 맨발로 피난 가는 소년 하지만 그해 10월 19일에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 6 25 전쟁에 불법적으로 참전하였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초기 에는 전세가 다시 역전되었으나 이후 일진일퇴의 공방전 이 장기간 계속되었다 전쟁 중반부인 1951년 초여름 부터 전선은 교착상태 빠져들었고. 소련은 유엔을 통하여 휴전을 제의하게 된다. 이에 유엔군이 응함으로써 1951년 7월부터 판문점에서 본격적인 휴전회담이 열렸고 장기간 의 협상 끝에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전쟁은 엄청난 인적 물적 손실을 초래하였다. 군인 으로만 추정할 때, 대한민국은 6 25 전쟁으로 약 14만 명 이 전사했고, 약 45만 명이 부상당했으며, 행방불명 및 포로가 3만여 명이 발생했다. 연합군은 전사자 약 4만여 명, 부상자 약 10만여 명, 행방불명 및 포로가 약 1만 명이 발생했다. 북한군과 중공군 등 공산 군 측의 인명피해는 약 18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민 간인 사망자는 약 37만 명, 부상자는 약 23만 명, 납치 및 행방불명 자는 약 39만 명에 달했으며, 이 외에도 다수의 피난민과 전쟁미망인, 전쟁고아 등이 발생했다. 104 통일문제이해 2012

105 표 4-2 국군 및 유엔군 인명 피해 (단위 : 명) 구분 전사 사 망 부상 실종 포 로 계 한국 137, ,742 32, ,479 연합군 40, ,280 9, ,881 계 178, ,022 42, ,360 출처 : 2010 국방백서, 2010, p.249 표 4-3 민간인 인명 피해 학살 사망 부상 납치 행방불명 계 기타 (단위 : 명) 373, , , ,968 피난민 : 320만여 명, 전쟁미망인 : 30만여 명, 전쟁고아 : 10만여 명 출처 : 2010 국방백서, 2010, p.249 한편, 6 25 전쟁으로 인하여 국토의 주요 지역이 황폐화 되었으며, 도로, 항만, 토지 등 산업 기반과 상하수도, 주택, 학교 등 생활기반 을 포함한 사회자본이 대부분 파괴됨으로써 막대한 재산상의 피해를 입었다. 남한의 경우 생산 시설의 40% 이상이 파괴되어 경제가 거의 마비되었으며, 공업부문에서만 입은 피해액이 1억 2천만여 달러에 달했 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 역시 대부분의 주요 산업 기반과 자원생산 시 설이 잿더미가 되었다. 이렇듯 6 25 전쟁은 남북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 로 6 25 전쟁은 북한이 한반도의 공산화 무력통일 노선을 실현하기 위 해서 철저하게 계획한 남침 전쟁으로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가져왔다. 둘째로 6 25 전쟁은 남북관계에 있어서 북한의 이중적인 행태를 체 득한 사건이다. 김일성은 평화통일을 내세우면서 협상회담을 제안해 놓고 침략전쟁을 벌였다. 셋째, 6 25 전쟁은 1945년 이후 진행 중에 있던 세계적 규모의 냉전 체제 구축의 가장 뚜렷한 상징의 역할을 함으로써 미국과 소련 중심 의 냉전체제를 고착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냉전 시기에 이 정도 규모 의 전쟁은 6 25가 유일했을 정도로 냉전기간 최대의 전쟁이었다. 전쟁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05

106 으로 서로에 대한 적대의식이 강화되었고 극도의 증오감이 상호 간에 내면화 되었다. 이로써 남북은 서로 이질적인 사회로 나아가면서 대립 화되었고 분단은 더욱 공고화되었다. 그리고 6.25 전쟁 이후 한반도의 남과 북에는 매우 상이한 체제가 성립하게 되었다. 남쪽의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시장경제가 확립되었다. 북쪽의 북한에서는 무력 통일노선에 기반을 둔 공산독재와 계획경제체제가 형성되었다. 마지막으로 6 25 전쟁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냉전의 개막을 알리는 인류의 전쟁이었으며 우리 국민에게 자유민주주의와 국가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대한민국이 유엔 참전국들과 함께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한 세계자유수호전쟁 이며, 자유민주주의 가 승리한 전쟁 이라는 세계사적 의의도 간과할 수 없다. 106 통일문제이해 2012

107 제2절 남북관계의 전개 : 갈등과 협력 된 이후 남북관계는 한편으로는 갈등, 대결, 전쟁으로 상 분단처를 입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화해와 협력이 공 존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남북관계는 갈등과 협력의 극단을 오가며 진자( 振 子 ) 운동을 해 왔다. 이것이 바로 남북관계가 갖는 이중적인 성 격이다. 이하에서는 지금까지 남북관계가 전개되어 왔던 그 역사적 흐 름과 사건들을 갈등과 협력의 남북관계로 나누어서 고찰해 본다. 1. 갈등과 긴장의 남북관계 남북관계에서 발생해 왔던 갈등과 대결의 역사적 사건들은 우리 민 족에게 많은 상처와 절망을 안겨주었다. 특히 1950년의 6 25전쟁을 필두로 하여 남북관계에서 발생한 갈등의 원인은 대부분 북한의 공 세적인 대남전략에서 비롯되었다. 북한의 남침으로 개시된 6 25 전쟁, 1960년대의 무장공비 침투사건들, 1970년대의 도발과 1980년대의 아 웅산 및 KAL기 폭파 테러사건들, 1990년대 이후의 서해교전들이 그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07

108 러했으며,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 그러하였다. (1)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도발 : 청와대 기습사건과 무장공비침투,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등 1960년대에 북한은 남조선혁명론에 근거하여 대남 전략을 공세적으 로 구사하였다. 이 전략에 따라 북한은 대한민국에서의 지하당 건설 시도와 남조선혁명 운동을 위한 방편으로 수차례에 걸쳐 국지적인 군 사적 모험을 감행하였다. 먼저 북한은 1960년대에 무장한 게릴라를 침투시켜 박정희 대통령 등 우리 측의 요인을 암살하고자 이른바 청와대 기습사건 을 일으켰 다. 1968년 1월 21일에 북한군 제124군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휴 전선을 넘어 침투하여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를 습격하려 한 사건이었 다. 이들은 경찰 검문에 걸리자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4대의 시내버스 에 수류탄을 던져 무고한 시민들을 살상하였다. 이 사건으로 7명의 군경과 민간인이 무장공비들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군경수색대는 2월 3일까지 31명의 공비 중 1명을 생포하고 도주한 2명을 제외한 28명을 사살하였다. 이 사건은 우리 측에 커다란 충격을 주어 우리 측이 국방력을 강화 하고 향토예비군을 창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후의 북한의 게릴 라 침투에 대비하여 군대 내에 공비전담 특수부대가 편성되었고 전방 에는 155마일 휴전선 전역에 걸쳐 철책선이 구축되었다. 이 철책선은 지금도 여전히 한반도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 되고 있다. 북한은 같은 해인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3차례에 걸 쳐 울진 삼척 지구에 무장공비 120명을 침투시켰다. 침투한 무장공비 들은 11월 3일 새벽 주민들을 모아놓고 대검으로 찌르는 등 만행을 저지르고 뒤늦게 도착한 주민들은 돌로 때려 살해하기도 하였다. 군경 과 예비군이 본격적인 토벌에 착수하여 12월 28일까지 약 2개월간 계 속된 작전에서 공비 113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하였다. 이 사건으 로 우리 측에서도 군경과 일반인 등 20여 명이 사망하는 많은 희생을 치렀다. 108 통일문제이해 2012

109 북한은 1970년대에 들어와서도 초반까지는 남조 선혁명론에 기반을 둔 대남정책을 계속 구사하였다. 물론 1970년대 초반의 국제적인 해빙 무드와 닉슨 독트린으로 분단 상황 속에서도 어느 정도 긴장완 화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북한은 간헐적으로 도발 적 행동을 일으켜 남북관계에서 갈등 유발하였다. 대표적인 사건은 1976년 8월 18일에 발생한 판문 점 도끼 만행 사건이다. 당시 북한은 판문점 공동 경비구역(JSA)에서 나뭇가지 치기 작업을 하던 유 엔군 소속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국군과 미군 병사 9명에 게 중경상을 입히는 한편, 유엔군 트럭 3대와 초소를 모두 파괴하였 다. 사건 발생 후 주한 미군사령부는 전투준비 태세 명령을 내렸으며, 오키나와 등지의 전폭기 대대 및 해병대를 한국에 급파하고 항공모 함 레인저호와 미드웨이호를 한국 해역으로 이동시키는 등 강경한 대 응태세를 취하였다. 한 미 양국의 강경한 태도에 북한의 김일성은 8월 21일 유엔군 사령관에게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북한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러한 북한의 무장 게릴라 침투 사건 및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등은 우리 사회에 대북한 위기의식과 반공 분 위기를 확산시켰다. 나아가 남북관계에 지대한 상처를 남기면서 분단 의 고통을 한층 심화시켰다. (2)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도발 : 아웅산 테러 및 KAL기 폭파, 1차 북핵위기, 잠수함 침투 등 1980년대에 들어와 북한은 이전의 게릴라 침투방 식과는 달리 폭탄테러를 잇달아 가하면서 남북관계 를 극도로 긴장시키고 악화시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83년의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과 1987년 의 KAL기 폭파사건이다. 북한은 1983년 10월 9일 미얀마를 친선 방문 중 이던 전두환 대통령 및 수행원들의 아웅산 국립묘 소 참배 때에 이들을 암살하기 위해 폭탄을 폭발시 북한에 의해 폭파된 미얀마 아웅산 묘소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09

110 켜 부총리와 장관 등 수행원 17명을 사망케 하고 14명을 부상시키는 테러를 감행하였다. 당시 이 사건은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군인 들이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미얀마 정부는 이 사건 직후 북한과 외 교 관계를 단절하는 한편,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추방하였다. 이 사 건으로 코스타리카, 코모로, 서사모아 등 3개국이 북한과의 외교를 단절하였으며, 미국과 일본 등 세계 69개국이 북한에 대한 규탄 성명 을 발표하였다. 한편, KAL기 폭파사건은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인 1987 년 11월 29일 북한 공작원에 의해 발생하였다. 1987년 11월 28일 밤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한 대한항공 858기가 11월 29일 공중에서 폭파당한 사건이었다. 이 여객기에는 중동에서 귀국하던 한국인 근로 자 93명과 외국인 2명을 포함한 승객 95명과 승무원 20명 등 모두 115명이 탑승하고 있었고 전원이 사망하였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20세기 세계의 한 축을 구성하던 사회 주의 체제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붕괴하였고, 중국과 베트남 등 잔존 사회주의 체제는 개혁 개방이라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탈 냉전 시대에도 북한은 여전히 개혁 개방을 수용하지 않고 고전적 독재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도처로부터 제기되는 위기 상황에 대하여 냉전적 방식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었다. 이는 남북관계에도 좋 지 못한 영향을 미쳤으며, 한반도가 여전히 탈냉전 시대에 냉전의 고 도( 孤 島 )로 남게 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미 북 제네바 기 본 합 의 는 북한 이 핵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 ( 93.3)한 이후 미국과 북한이 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여 1994 년 10월에 채택되었다. 주요 내용으 로 북한은 IAEA 안전조치협정 이행 및 특별 사찰 수용, 5MWe 원자로의 폐연료봉 봉인후 제3국으로 이전, 북 한 지역내 경수로 발전소 제공, 경수 로 1기 완성시까지 연간 중유 50만톤 제공 등이다. 그러나 북한이 2002년 10월 농축우라늄 핵프로그램의 추진 으로 북 미 제네바 합의를 위반함으 로써 합의사항 이행이 중단되었다. 1991년과 1992년은 남북 간에 남북기본합의서, 한반 도 비핵화 공동선언,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 해빙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지만 다음 해인 1993년부터 곧바 로 1차 북핵 위기에 돌입하는 등 긴장 국면이 조성되었다. 1994년 10월에 미 북 제네바 합의에 의해 북한 핵문제 해 결 절차가 합의되었지만, 북한은 1996년 4월에 우리 측의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비무장 지대 유지 관리 임무의 포기를 선언하고 북한군을 판문점에 일시적으로 진입시켰 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전쟁 위기론을 급속도로 확 산시켰다. 110 통일문제이해 2012

111 게다가 같은 해 1996년 9월 18일에 강릉시 해안 가에 북한의 소형 잠수함이 좌초되어 발견되는 사 건이 발생하였다. 군경과 예비군이 소탕작전에 돌입 하였고, 이후 사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11명의 북 한군 사체를 발견하였다. 도주한 북한군을 추적하 여 13명을 교전 끝에 사살하였으나 우리 측에서도 군인 11명, 경찰 예비군 2명, 민간인 4명이 피살되는 등 인명 피해를 입었다. 또한, 1998년 6월 22일에 강원도 속초시 앞바다에서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 1 척이 표류하다 우리 해군 함정에 의해 6월 23일 새 벽 동해안으로 예인되었다. 이 잠수정에서는 승조원과 공작원 등으로 추정되는 9구의 시신이 자폭한 채 발견되었다. 강릉에 침투한 북한 잠수함 (3) 2000년대 도발 : 서해 NLL 침범, 개성공단 근로자 억류, 장거리 미사일 발사, 핵 실험 등 2000년대 이후 북한이 조장했던 갈등과 긴장은 이전과는 다른 양 상으로 이루어졌다. 북한은 서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함으 로써 세 차례에 걸쳐 남북 간에 교전을 야기하였고 미사일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핵실험,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등으 로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와 세계를 긴장시켰다. 먼저, 북한은 1999년부터 2009년까지 서해상에서 북방한계선을 침 범함으로써 세 차례의 군사적 충돌을 일으켰다. 제1차 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 북한 경비정 6척이 연평도 서방 10km 지점에서 북방한계선을 넘어 우리 측 영해를 침범해 들어와 우리 해군의 경고를 무시하고 우리 측 함정에 선제사격을 가함으로써 결국 남북 함정 간의 치열한 포격전으로 발전하였다. 북한의 북방한 계선 무단침범은 정전협정 의 정신과 쌍방이 지금 까지 관할한 구역을 인정 키로 한 남북기본합의서 를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였다. 이 전투는 6 25 전쟁 이후 남북의 정규군 간에 벌어진 첫 해상 전투였다. 대청해전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11

112 제2차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에서 남북 사이에 또 다시 벌어진 전투이다. 이 전투는 1999년의 제1차 연 평해전에서 대패한 북한이 계획적으로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여 우리 해군을 의도적으로 공격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우리 해군 6명이 전 사하고 18명이 부상하였으며 북한 해군도 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 였다. 대청해전은 2009년 11월 10일 서해 북방한계선 부근인 대청도 동쪽 약 9km 지점에서 발생하였다. 이번에도 북한은 북방한계선을 무단 침 범하여 남하하였고 우리 해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격을 개시하여 전투가 이루어졌다. 다행히 우리 해군의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북한은 남북관계에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내면서 갈등을 조장한 것이다. 한편, 북한은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두 차례의 핵실험을 감행 하면서 한반도와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북한 핵문제는 1990년대 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1992년에 남북이 합의하였던 한반도 비핵화 에 관한 공동선언 에도 불구하고 1993년에 제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 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1992년 영변 핵 단지의 미신고된 2개 의 시설에 대해 특별사찰을 요구하였으나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1993 년 3월 핵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하였으며, 1994년에는 IAEA에서 공식 탈퇴하였다. 이에 클린턴 정부는 영변 핵시설 폭격까지 검토하는 등 상황은 최악의 위기로 치달았다. 한반도에서 6 25 전쟁 이후 최대 의 안보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다행히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그리고 북한의 핵동결 대가로 경수로 2기를 건립하고 연간 50만 톤의 중유 를 지원하며 미 북 관계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의 제네바 합의 를 통해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였다. 2002년부터 본격화된 제2차 북핵 위기의 직접적인 발단은 2002년 10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 프로그램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혹이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6자회담이라는 다자간 협 의 틀이 만들어졌고 2003년 8월에 첫 회의를 시작하였다. 2005년 9 월 개최된 제4차 6자회담에서 9 19 공동성명 을 도출하였다. 하지만 BDA문제로 미 북 간 입장이 대립하면서 6자회담은 장기간 지체되었 고 교착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은 2006년 7월 5일 미사일 발사 112 통일문제이해 2012

113 및 10월 9일에 1차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그 이후 2007년 2월 13일 9 19 공동성명 을 이행하기 위한 초기 조치(2 13 합의)에, 그리고 같은 해 10월 3일 추가 조치에 합의(10 3 합의)하면서 다시 협상의 길로 들 어섰다. 2009년 5월 25일 북한은 제2차 핵실험을 감행하였다. 당시 북한은 4월 5일부터 미사일을 연속으로 발사하여 대외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 규탄하였으며, 유엔은 대 북 제재 결의안 1874호를 가결하였다. 또한 북한군은 2008년 7월 11일 우리 측 금강산 관광객에게 총격 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비인도적인 사건을 저질렀다. 그리고 북한 은 2008년 12월 1일 육로 통행 제한조치를 취한데 이어, 2009년 3월 30일부터 8월 13일까지 136일간 개성공단에서 근무하고 있던 우리 측 근로자를 억류함으로써 개성공단의 안정적 발전을 저해하였다. (4) 2010년 이후의 도발 :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2010년에 들어와 북한은 위협이 아니라 실제로 군사적 도발을 감행 하였다. 가장 충격적인 반인도적 도발 사건은 3월 26일의 천안함 폭침 사건과 11월 23일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다. 이 두 사건으로 우리 장병들과 무고한 민간인들이 북한의 도발에 희생되었다. 북한은 2010년 3월 26일 잠수함정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을 감행하 여 우리 해군 초계함 천안함을 폭침시켰다. 이 도발 사건으로 우리 해군 46명이 희생되었다. 북한의 천 안함 폭침 사건은 대한민국을 공격한 명백한 군사 적 도발로서 무력위협과 무력행사를 금지하는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과 일체 적대행위의 정지를 보장 하는 정전협정 제2조 제12항,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무력 사용을 금지하는 남북기본합의서 제2장 제9조 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6 25전쟁, 아웅산 폭파사건, KAL기 폭파사건 등이 자신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해 왔던 북한은 이 사건도 자 북한에 의해 폭침 후 인양된 천안함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13

114 신의 소행이 아니라 오히려 남한 측이 날조했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남북관계에 긴장과 전쟁 위협을 더욱 고조시켰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 은 5월 2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북한은 대한민국과 국제사회 앞에 서 사과하고 사건 관련자를 처벌할 것 을 요구하였고, 남북 간의 교역 과 교류의 전면 중단과 북한 선박의 우리 영해 항행 금지 등을 내용 으로 하는 5 24 조치 를 발표하였다 대북조치 주요내용 제주해협 포함 우리 측 해역 북한선박의 운항과 입항 금지 남북 간 일반교역은 물론 위탁가공교역을 위한 모든 물품의 반출 반입 금지 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를 제외한 북한지역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방북 불허 및 북한주민과의 접촉 제한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 불허. 현재 진행중인 사업의 투자확대도 금지. 개성공단의 생산 활동은 지속되도록 하되 체류인원은 축소 운영 대북지원사업은 원칙적으로 보류. 다만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순수 인도적 지원은 유지 한편, 국제사회에서도 북한의 천안함 만행 사건에 대해서 강력하게 규탄하였는데, 유럽 의회는 6월 17일에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내 놓았고, G8 정상회의에서도 북한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 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6월 1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설명하였으며 유엔은 7월 9일 안전보장이사 회의 의장성명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천안함 폭침 사건을 규탄하였다. 북한은 2010년 11월 23일 우리 영토인 연평도에 대해 포격 도발을 감행하였다. 이에 우리군도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은 연평도내의 군부대뿐 아니라 민가를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 으로 이루어졌다. 이 포격 도발로 우리 해병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민간인은 2명이 사망하고 다수 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또한 건물도 133동이 파 손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며, 주민들은 하루아침 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파손된 민가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은 6 25전쟁 이래 한국 영 토에 대한 북한의 첫 번째 공격이라는 점과 민간인 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를 근저에서 파괴한 매우 중대한 도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114 통일문제이해 2012

115 국제사회도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세계 각 국은 북한의 비인간적 도발행위에 대해 분노하고 이를 규탄하였다. 천안함 폭침 사건과 마찬가지로 연평도 포격 도발 역시 정전협정, 유 엔 헌장, 남북기본합의서 등을 위반한 군사적 도발이다. 정부는 북한 의 연평도 포격 도발 행위는 대한민국에 대한 명백한 무력 도발 이며 민간인에 대해서까지 무차별 포격을 가한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는 사실을 북한에 분명히 밝히고 이에 대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것 을 강력히 요구했다. 우리 국회도 11월 24일 북한의 무력도발행위 규 탄 결의안 을 채택하여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포함한 연평도 일대에 북 한의 불법적이고도 비인도적인 포사격행위로 무고한 인명피해가 있었 으며, 이는 대한민국에 대한 중대한 무력도발행위 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탄하였다. 이명박 대통령도 11월 2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북한도 변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북한의 도발을 인내해 왔지만 돌아 온 것은 핵개발과 천안함 폭침에 이은 연평도 포격이었다 면서 북한에 대해서 강력히 규탄하고 국방력 강화와 국민의 안전을 강조하였다. 한편 2012년 4월 13일,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난과 만류에도 불구 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발사 직후 폭파되어 실패로 돌아 갔지만 이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금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 안 1874호를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자,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 정을 위협하는 도발적 행위였다. 유엔 안보리는 4월 16일,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여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규탄과 대 북 제재 강화를 결의하였다. 우리 정부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대한 민국과 국제사회에 대한 중대한 도발적 행위이자 심각한 안보 위협으 로 판단하여 유관국 및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공조하는 등 북한의 장 거리 미사일 발사 문제에 대응하였다. 국회도 5월 2일 본회의에서 북 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행위 규탄 결의안 을 통과시켰다. 이렇듯 세계적 차원에서 탈냉전이 진행된 지 20여 년이 경과한 21세 기에도 한반도는 여전히 긴장과 도발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분단 이후 전쟁, 긴장, 도발을 끊임없이 일으키면서 이 러한 악순환을 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세습 독재 체제의 안 정과 유지를 목표로 하는 위기관리 체제를 운용하면서 두 차례의 핵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15

116 실험, 수차례의 미사일 발사, 비인도적인 군사 도발 등 한반도 평화를 근본적으로 와해시켜 왔다. 이러한 북한의 도발행위는 남북관계에서 긴장과 갈등 국면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으며, 국제사회가 북한의 호전 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2. 대화와 협력의 남북관계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현 시기까지 남북관계는 긴장과 갈등 국면이 항시적으로 존재하였지만 협력과 대화의 국면들도 교차해 왔다. 이러 한 긴장과 협력의 공존 관계는 한반도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반영 하는 독특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 이후 남북 간에는 적대의식과 대립의 심화로 대화나 교류 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북 사이에 갈등 국면과는 다른 분위기가 조 성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70년대부터였다. 1970년대에 들어 국제적 인 냉전의 완화를 배경으로 남북 사이에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대화 와 교류가 시작되었다. 남북대화는 1972년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적십자회담이 개최 되면서 시작되었고, 7 4 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남북조절위원회 등 정치 분야 회담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중반에는 남북회담이 경제, 체육 분야로도 확대되었다. 그러나 1970~1980년대의 남북대화는 냉 전체제를 기반으로 한 적대적 대결구도라는 근본적인 제약을 극복하 지 못함으로써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1990년대에 남북관계는 짧은 해빙기를 맞이하였다. 남북의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고위급회담을 개최하여 정치, 군사, 경제, 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남과 북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내용 등을 협의 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로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 발효되기에 이르 렀다. 그러나 1993년에 일어난 제1차 북핵 위기로 인해 남북 간 신뢰형 성과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진전을 가져오지는 못하였다. 2000년 이후에는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이를 계기로 각종 각급의 남북대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북한은 남북 116 통일문제이해 2012

117 대화에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급기야 천안함 폭침 과 연평도 포격 등 연이은 대남 군사 도발을 감행하여 남북 간에 실 질적 대화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지금까지의 남북대화의 흐 름을 중심으로 그동안 개최되었던 남북회담의 주요 내용들을 분야별 시기별로 정리하고 그 의미를 살펴본다. (1) 남북적십자회담, 남북조절위원회 1971년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는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적 십자회담을 북한에 제의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산가족들의 주소와 생 사확인, 방문과 상봉, 서신왕래, 재결합, 기타 인도적 문제해결 등 5 개항을 의제로 하여 1972년 8월부터 7회에 걸쳐 남북적십자 본회담이 개최되었다. 1985년 5월 제8차 본회담에서는 분단 40년 만에 처음으 로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하였고,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이산가족 고 향방문 및 예술 공연단의 서울 평양 동시 교환방문이 이루어졌다. 그 후 1992년 5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 은 8 15를 계기로 이산가족 노부모 방문단 및 예술단의 서울 평양 동 시교환 을 실시하기로 합의하였으나 북한이 정치적 색채가 강한 혁명 가극 공연을 고집함으로써 성사되지 못하였다. 또한, 1990년대 중반 이후 계속된 북한의 식량난을 돕기 위해 1997 년 남북적십자 간의 5차례 접촉이 베이징에서 이루어져 남북적십자 간 구호물자 전달절차에 관한 합의서 가 채택되었고, 이에 따라 대북 구호 물자의 전달이 이루어졌다. 한편, 1972년 5월 2일부터 4일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평양 을 방문하여 김일성 수상과 회담을 가진 데 이어 북한의 부수상 박 성철이 서울을 방문하여 박정희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이 결과로 7 4 남북공동성명 이 발표되고, 남북조절위원회가 발족되었다. 남북 조절위원회 회의는 각각 3차례의 공동위원장회의와 본회의 및 간사회 의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1973년 8월 우리의 6 23 선언 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대화 중단을 선언하였으며, 이후 1979년 2월 17일부터 남북조절위원회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17

118 대표 간에 세 차례 접촉이 있었으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2) 남북고위급회담 1988년 12월 28일 강영훈 국무총리는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에 게 서한을 보내 남북 간의 상호 신뢰구축과 긴장완화 문제를 포괄적 으로 협의 해결하기 위한 남북총리회담 개최를 제의하였다. 이에 대해 북한은 남북고위급 정치 군사회담 개최를 제의하면서, 이를 위한 예비 회담을 1989년 2월 8일에 열 것을 제안하여 왔다. 쌍방은 1989년 2월부터 1990년 7월까지 판문점에서 여덟 차례의 예 비회담과 두 차례의 실무접촉을 통해 남북고위급회담 개최에 관한 합 의서를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1990년 9월 4일부터 7일까지 서울에서 제1차 회담이 개최되었으며 1992년 9월까지 서울과 평양에서 총 8차 례의 회담이 진행되었다. 제4차 회담( ~25, 평양)에서 쌍방 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남북기본 합의서)를 채택할 것과 합의서 내용의 구성에 대해 합의하였다. 남북 은 이 같은 합의를 토대로 제5차 회담( ~13, 서울)에서 기존 쟁점사항들에 대한 조정을 거쳐 전문과 25개 항으로 된 남북기본합의 서를 채택하였다. 이와 함께 한반도 핵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대표접촉을 12월 안에 개 최하기로 하는 등 3개 항의 공동발표문을 채택하였다. 이 합의에 따 라 1991년 12월 26일부터 12월 31일까지 판문점에서 3차례에 걸쳐 대 표접촉이 진행되어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이 채택되었다.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1992년 2월 18일부터 21 일까지 평양에서 진행된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정식 발효되었다. 제7차 회담( ~8, 서울)에서는 남북연락사무소 설치 운영에 관한 합의서 와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 남 북교류협력공동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 를 발효시키고, 남북 화해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제8차 회담( ~18, 평양)에서 남북은 남북화해의 이 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남북 불가침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118 통일문제이해 2012

119 부속합의서, 남북교류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를 발 효시켰으며, 남북화해공동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 의 발효 와 함께 4개 공동위원회의 제1차 회의 일자와 장소를 합의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같은 해 10월 31일 화랑훈련과 한 미 연합 독수리훈 련, 팀스피리트 훈련 등 우리의 연례적인 군사훈련을 구실로 11월 5일 부터 1주일 간격으로 열릴 예정이던 4개의 공동위원회의 참석을 일방 적으로 거부하고 제9차 회담에도 불참함으로써 남북고위급회담은 중 단되었다. 표 4-4 남북기본합의서 구성 및 이행 체계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 )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 ) 남북고위급 회담 (총리급) ( ~ , 8회 개최) 화 해 부 속 합 의 서 ( ) 화해공 동위원회 구성 운영 합의서 ( ) 불 가 침 부 속 합 의 서 ( ) 군사 공 동위원회 구성 운영 합의서 ( ) 교 류 협 력 부 속 합 의 서 ( ) 교류협력공동위원회 구성 운영 합의서 ( ) 핵통제공 동위원회 구성 운영 합의서 ( ) 남북정치분과위원회 ( ~8.28, 7회 개최) 남북군사분과위원회 ( ~9.5, 8회 개최) 남북교류협력분과위원회 ( ~9.3, 7회 개최) 남북고위급회담 대표접촉 ( ~ , 10회 개최) 남북기본합의서 및 화해 부속합의서 이행기구 남북기본합의서 및 불가침 부속합의서 이행기구 남북기본합의서 및 교류협력 부속합의서 이행기구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행기구 남북화해 공동위원회 남북군사 공동위원회 남북경제교류협력 공동위원회 남북사회문화교류협력 공동 위원회 남북핵통제 공동위원회 ( ~12.17, 13회 개최) * 합의서 날짜는 채택일 기준임. (3) 남북정상회담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1주년에 즈음한 기자회견( )에서 북 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남북정상회담 을 추진하겠다. 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94년 6월 20일 국무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19

120 총리 명의의 전화통지문을 북한 정무원 총리 앞으로 보내 남북정상회 담 개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부총리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예비접촉 을 가질 것을 제의하였고, 북한이 이에 호응함으로써 1994년 6월 28 일 판문점 평화의 집 에서 정상회담 예비접촉이 이루어졌다. 이 예비접촉에서 남북한은 정상회담을 1994년 7월 25~29일 평양에 서 개최하기로 하는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합의서 를 채택하였 다. 이후 남북정상회담 실무절차를 협의하기 위한 제1차 대표접촉이 1994년 7월 1일 판문점 통일각 에서, 제2차 대표접촉이 7월 2일 판 문점 평화의 집 에서 개최되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절차 합의서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이 사망( )함에 따라 7월 11 일 북한은 우리 측 유고( 有 故 )로 예정된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연기하 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위임에 의하여 통지한다 는 서한을 보내옴 으로써 남북정상회담은 무기 연기되고 말았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2월 취임사에서 북한이 원한다면 정상 회담을 개최할 용의가 있다 고 한 이래, 당시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남북정상회담과 특사교환을 제의하면서 북한의 호응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와 항구적인 평화 및 남북 화 해협력을 촉구하는 베를린 선언( )이 나왔고, 이후 북한이 남 북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명해 옴에 따라 2000년 3 월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남북 당국자 간 첫 접촉을 가졌으며, 그 후 베이징에서 수 차례 협의를 가졌다. 그 결과 4월 8일 남북한은 김정 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는 데 합의하였다. 이후 5차례의 남북 간 판문점 준비접촉 과정에서 절차 관련 문제와 항목별 구체적 내용은 1994년 남북정상회담 절차합의서를 기준으로 하기로 하였으며, 경호 통신 등 실무접촉과 체류 일정 및 선발대 방북 등의 일정도 합의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김정일 국 방위원장과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이산가족 문제, 경제 및 사회 문화교류 문제 등 5개 항을 담고 있는 6 15 남북공동선언 을 120 통일문제이해 2012

121 채택하였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김 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가졌으며 남북은 정전체제의 종식 과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직접 관련된 3 자 혹은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 내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 제를 협력적으로 추진하는데 합의하였다. 또한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서 공동사업을 하기로 하였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당국 간 고위 협의기구인 남북장관 급회담을 중심으로 각 분야별 회담이 개최되었으며, 2007년 정상회담 이후 장관급회담은 총리회담으로 격상되었다. 장관급회담을 통해서는 남북관계 주요 일정을 조정하고 제반 현안을 협의하였으며, 경제협력추 진위원회(경추위) 등 실무회담에서는 합의사항의 구체적 이행문제에 대 해 협의하였다. 북한의 핵문제, 이라크전쟁 등 여러 위기 속에서 남북회 담은 간헐적으로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기도 하였으나, 경제협력분야와 관련해서는 구체적 이행사항이 많아지고 회담내용도 전문화되었다. (4) 최근의 남북대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남북 간 모든 문제들은 대화를 통 해 실질적으로 해결해 나간다. 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면서 주요 계기시마다 남북대화를 제의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앞으로 7천만 국민을 잘 살게 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통일의 문을 열 기 위해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만나서 가슴을 열고 대화해야 한다 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6 15 공동선언 과 10 4 선언 의 무조건적인 이행과 비핵 개방 3000 의 폐기를 요구하며 대남비난 을 지속 전개하였고, 2008년 3월 29일에는 남북 당국 간 대화와 접 촉 중단을 일방적으로 선언함으로써 남북대화가 사실상 단절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북한에 진정성 있는 남북대 화를 계속 촉구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4월 17일 한 미 정상 회담을 위한 방미 기간 중 서울과 평양에 상설대화기구 를 교환 설치 할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 7월 11일 국회 개원 연설, 8월 15일 광복절 및 건국 60년 기념사, 9월 23일 민주평통 지역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21

122 회의 개회사 등을 통해 전면적인 남북 간 대화를 거듭 제의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같은 해 10월 2일 북한의 요청으로 제37차 남 북군사실무회담이 판문점 평화의 집 에서 개최되었으나,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 문제와 관련한 공방으로 남북 간 대화를 복원시키는 계기 가 되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이후 북한은 남북관계 전면차단을 포함한 중대결단을 실행하겠다 는 위협적 발언을 지속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12일 남북 직통전화 단 절을 선언하고, 12월 1일부터는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제한 조치를 시 행하였다. 이에 대해 정부는 6 15 공동선언 과 10 4 선언 의 이행을 위해 구체적으로 협의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으며, 북한의 조치가 남 북간 합의사항에 위반됨을 지적하면서 제반조치의 철회를 강력히 촉 구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관계 경색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며 대 화를 거부하였다. 북한은 과거에도 우리 측의 새 정부 출범 시에 대남 비난을 강화하면서 남북대화를 일방적으로 중단한 바 있다. 국민의 정부 시기에는 5회에 걸쳐 34개월 동안 남북대화를 중단하였고, 노무 현 정부 시기에도 2회에 걸쳐 16개월 동안 중단하였다.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중단되었던 남북대화는 2009년 4월 들어 재개되었고, 2009년과 2010년에 걸쳐 총 14차례의 각종 남북대화가 이루어졌다. 개성공단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무 접촉이 2009년 4월 21일 개최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세 차례 당국 간 실무회담(6.11, 6.19, 7.2)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8월 26일부터 28일까지 남북적십자회 담이 금강산에서 개최되어 이산가족 상봉 등 2개 항에 합의하였으며, 10월 14일에는 임진강 수해방지 실무회담이 개성에서 개최되었다. 2010년에 들어와서도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하여 제4차 남북당국 간 실무회담(2.1)이 개성에서 개최되었으며, 금강산 관광 및 개성 관광 문제와 관련하여 남북당국 간 실무회담(2.8)이 개성에서 개최되었다. 또한 개성공단의 3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남북실무접촉(3.3)이 이 루어졌다. 또한 이산가족 상봉을 실행하기 위한 남북적십자 실무접촉 (9.17, 9.24, 10.1)이 세 차례 개성에서 이루어졌다. 이 실무접촉을 통해 서 남북한은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개최하는데 합의하였다. 그리고 10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이 122 통일문제이해 2012

123 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인도주의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남북적십 자회담을 개성에서 개최하였다. 이 회담에서 우리 측은 매월 1회 이산 가족 상봉을 정례화할 것을 제안하였지만 북한 측의 거부로 합의를 보지 못하였다. 또한 11월 25일 개최 예정이었던 남북적십자회담도 11 월 23일 감행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무산되었다. 북한은 천안 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전례 없는 무력도발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 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천안함 폭침을 전면 부인하고 연평도 포격의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하였다. 한편, 북한은 2011년 들어 연초부터 우리에 대해 무조건적인 당국 간 대화를 제의하였다. 정부는 북한에 대해 진정성 있는 대화를 촉구 하면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와 추 가 도발 방지에 대한 확약과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확인을 위한 당국 간 회담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2011년 2월 남북 간에 고위급 군사회담 개최를 위한 군사실무회담 이 진행되었으나, 회담에서 북한은 천안함 폭침을 부인하고, 연평도 포격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등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고 일방적으로 철수하였다. 정부의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무력도발 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고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와 협력에 소극적인 태 도를 보임으로써, 남북대화가 실질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고 남북대화 가 공전을 거듭하면서 대화의 여건이 악화되었다. 3. 남북 교류협력과 인도적 문제 해결 추진 노태우 정부는 1988년 7월 7일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 언(7 7 선언) 을 통해 남과 북은 분단의 벽을 헐고 모든 부문에 걸쳐 교류를 실현할 것 을 발표하였다. 이는 과거 냉전시대에서의 남북한 대 결구도를 청산하고 개방과 화해를 위한 남북 교류협력 시대의 개막을 예고한 것이었다. 이 선언의 정신에 따라 그 해 10월에는 남북 경제개 방조치 를 통해 남북 간 교역을 인정하고, 이듬해 6월에는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지침 을 제정하여 북한과의 교역과 북한주민과의 접촉이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23

124 합법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남북교류협력 관 계 를 더 욱 체 계 적 으 로 정 착 제 도 화 시키기 위 해 남 북 교 류 협력에 관 한 법률 ( ) 등을 제정함으로써 남북교류협력이 우리법의 테두리 내에서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1993년 3월 북한의 핵비확산조약(NPT) 탈퇴 선언으 로 인해 일시적으로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4년 10월 미 북 제네바 합의 로 핵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림에 따라 정부는 1994 년 11월 남북경제협력 활성화 조치 (제1차)를 통해 위탁가공교역을 위 한 시설 재반출, 식음료 제조업 등 소규모 시범적 경협사업 추진 등 남 북경제협력의 확대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정경분리 원칙 하의 남북경제협력 적극 추진 을 국 정과제의 하나로 채택하였고, 1998년 4월에는 대기업 총수 방북 허용, 대북 투자규모 제한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남북경제협력 활성화 조 치 (제2차)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1999년 10월에 남북경제교류협력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지침 을 제정하여 대북 투자, 반출입, 위탁가 공 교역에 대한 기금 지원의 객관적 기준을 마련하고 중소기업 위주로 유상대출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한편, 노무현 정부는 2000년 6 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교류협 력의 변화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을 개정 ( )하여 북한주민 접촉승인을 신고제로 완화하는 등 교류협 력 절차를 간소화하였다. 또한, 2005년 12월 남북관계발전에 관한법 률 이 국회에서 제정되어 2006년 6월 발효되었으며, 동법 시행령과 시 행규칙이 제정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시기 교류협력의 추진결과를 바탕으로 교류협 력의 내실있고 안정적인 발전을 위한 기반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교류 협력 절차 간소화와 질서 확립을 위해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등 법제를 정비하였고(2009.7), 대북 물자 반출입에 대한 투명성을 강 화하기 위해 교역물자관리시스템 도 구축하였다(2010.2). 한편, 정부 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2008.7), 개성공단 근로자 억류 사건 (2009.3) 등을 계기로 북한 지역에 방문 체류하는 국민의 신변안전보 장 강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124 통일문제이해 2012

125 (1) 남북 교류협력 현황 1988년 7 7 선언 이후 공식적으로 추진된 남북교류협력은 1990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이 제정되면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이후 1994년과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발표된 남북경제협력 활성화 조치 등 정부의 제도 마련에 힘입어 안정적인 확대 추세를 이어갔다. 남북교류협력은 크게 인적 교류와 물적 교류로 나눌 수 있다. 인적 교류는 남북한의 주민이 상대 측 지역을 방문하는 왕래와 남북한 및 제3국 등에서 직 간접적인 방법에 의한 접촉으로 대별된다. 현재 남북 주민의 왕래 경로는 육로를 통한 왕래(판문점 및 경의선 동해선 연결도 로), 해로를 통한 왕래, 항로를 통한 왕래(직항로, 제3국 경유)가 있으 며, 주로 경의선 동해선 연결도로를 통해 인적 왕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1989년 6월 12일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지침 시행 이후 시작된 남 북인적 왕래는 남북도로 연결 및 개성공단 개발 등을 계기로 큰 폭 으로 증가하여, 2006년에는 연간 왕래인원이 10만 명을 돌파하였다. 2011년까지의 남북 인적 왕래 내역 중 남한 주민의 북한 방문(금강산 개성 관광객 제외)은 98만 731명이며, 북한주민의 남한 방문은 7,881 명으로 집계되었다. 2011년에는 11만 6,061명이 왕래하였다. 한편, 남북 교역의 연도별 추세를 보면, 교역이 시작된 1988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다가, 개성공단 조성 및 가 동이 본격화된 2005년부터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2005년에는 최초로 연간 교역 규모가 1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2007 년에는 17억 9천 7백만 달러, 2008년에는 18억 2천만 달러, 2009년 에는 16억 7천 9백만 달러, 2010년에는 19억 1천 2백만 달러, 그리고 2011년에는 17억 1천 3백만 달러에 달하였다. 남북 간 교역이 시작된 이후 2011년까지 누적 교역실적은 약 163억 달러에 이른다.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25

126 표 ~2011 남북교역액 현황 남북교역액 현황 89년 집계 이후 총 163억 달러 1,797 1,820 1,679 1,912 1,713 1,350 1, (2) 경협 사업의 진행 2000년 이후 남북 간의 경제협력은 철도 도로 연결사업, 개성공단 건설사업, 금강산 관광사업 등 이른바 3대 경협사업을 중심으로 이루 어져 왔다. 1 개성공단 사업 개성공단 건설과 관련된 협의는 2000년 8월 현대와 북한의 합의서 체결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민간 차원에서 시작된 개성공단 건설 사업 은 2002년 8월 제7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 작 하 였 다. 남 북 은 제 2 차 남 북 경 제 협 력 추 진 위 원 회 ( 이 하 경 추 위 ) 에 서 북한의 개성공업지구법 제정에 합의하였으며, 제5차 경추위에서 2003 년 6월 개성공단 착공식 개최에 합의하였다. 북한은 투자와 공단 운영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2002년 최고인 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개 성공업지구법 (이하 개성공업지구법 )을 제정하였다. 개성공업지구법 은 개성공단의 경제활동에 관하여 기존 북한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공 단의 개발 및 운영이 사실상 우리 측 개발업자 및 관리기관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또한, 개성공업지구법 은 투자재산 126 통일문제이해 2012

127 의 상속권을 보장하고 국유화를 금지하고 있으며, 외화의 자유로운 반출입 등을 규정하는 등 투자자 의 권리보호에 관해서 진전된 규정을 두고 있다. 2003년 6월 30일 개성공단 착공식이 거행되었고, 착공식 이후 개성공단 설계를 위한 지형측량과 토 질조사가 진행되었다. 개성공단 1단계 부지 조성공 사는 2004년 4월 시작되어 2006년 6월에 완공되었 으며, 용수와 환경 기초시설 및 전력 통신 등 개성 공단 1단계의 주요 기반시설이 2007년 10월에 모두 완공되었다.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들의 작업 모습 2004년 6월 시범단지 9만 3천m2를 대상으로 15개 기업이 분양 계약 을 체결하였고 2004년 12월 시범단지에서 첫 제품이 생산되었다. 본 단지 분양은 두 차례(제1차 : 16만 9천m2, 2005년 8월, 제2차 : 175만 m2, 2007년 6월)에 걸쳐 실시되었다. 개성공단 사업은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2008년 12월 1일 북한은 일 방적으로 통행제한 조치를 발표하였다. 이 조치는 모든 남북 간의 교 류협력과 경제거래 목적의 인원의 육로 통행 제한, 육로 통행 시간대와 인원수 축소, 개성공단 상주인원 감축, 개성관광 중단, 그리고 남북경 제협력협의사무소 폐쇄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 사업 은 위기를 맞았으나, 2009년 8월 20일 북한이 동 조치를 해제한다고 발표하여 위기는 일단 모면하였다. 또한 북한은 2009년 3월 30일부터 8월 13일까지 136일 간 개성공단에서 근무하고 있던 우리 측 근로자 를 억류하기도 하였다. 2010년 3월의 천안함 폭침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짐에 따라 정부는 2010년 5월 24일 대북 조치를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개성공 단은 신규진출과 투자확대를 당분간 금지하고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 을 고려하여 체류하는 인원을 평소의 50~60% 수준으로 축소 조정 하기로 하였다. 또한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급격한 상황악화 가능성에 대비하여 11월 24일 개성공단 방북을 잠정 중단하였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 차지하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기존 의 생산활동은 유지해 왔다. 2011년 10월부터는 개성공단 애로해소를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27

128 위한 소방시설과 의료시설 건립 및 출퇴근 도로보수를 추진하고 있다. 개성공단에는 2011년 12월 말 현재 총 123개 기업이 가동되고 있으 며, 이들 기업은 2011년 12월 기준으로 현재 49,866명의 북한 근로자 들을 고용하고 있다. 2011년 12월 말까지 총 15억 649만 달러의 제품 생산이 이루어졌으며, 이 중 1억 9,835만 달러에 달하는 제품이 수출 되었다. 2 경의선 동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추진된 남북 철도 도로 연결 사업은 2000년 9월 18일 착공식을 개최하면서 공식적으로 착수되었다. 도로 의 경우 2003년 10월 경의선 우리 측 구간 공사가 완료되었고, 2004 년 10월 경의선과 동해선의 남북 연결공사가 완료되어 그 해 12월부터 남북 왕래 시에 이용되고 있다. 철도의 경우, 2002년 12월에 경의선 우리 측 구간 공사가 완료되 었으며, 2005년 12월 말에 경의선과 동해선의 본선 궤도 부설공사가 완료되었다. 이로써 열차운행을 위한 기본 시설을 갖추게 되었으며, 2007년 5월 17일 남북 열차시험운행이 실시되었다. 이후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총리회담 합의에 따라 2007년 12월 11일부터 경의선 우리 측 도라산역과 북측 판문역 간에 남북 화물열 차가 정례적으로 운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8년 12월 1일 북한의 육로통행 제한조치에 따라 남북 간 화물 열차 운행이 2008년 11월 28일 이후 중단되었다. 화물 열차는 2007년 12월 11일부터 2008년 11월 28일까지 총 222회(왕복 444회) 남북을 운행하였으며, 주로 개성공단 관련 반출입 물자를 수송하였 다. 2009년 8월 20일 북한은 육로통행 제한조치를 해제하면서 남북 화물열차 운행을 재개한다고 통보하였으나, 우리 측은 구체적인 운행 재개 여부 시점은 물동량 등 화물 수요를 보아가면서 결정한다는 방 침이다. 3 금강산 개성 관광 금강산 관광은 1998년 11월 18일 금강호가 동해항에서 북한의 장전 128 통일문제이해 2012

129 항을 향하여 출항하면서 시작되었다. 2000년에 20여만 명의 관광객 이 방문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던 금강산 관광사업은 2001년에 이 르러 위기에 직면하였다. 관광사업 초기에 과도한 투자비용이 소요되 어 사업자가 자금난을 겪게 되고, 해로 관광에 따른 긴 이동시간 및 관광과정의 통제로 인해 관광객이 줄어든 것이 원인이었다. 이러한 문 제를 해결하기 위해 육로관광을 조속히 실시할 것을 북한에 촉구하 여 2003년 9월부터 육로관광을 실시하였다. 관광사업자인 현대아산 도 관광상품 다양화, 관광코스 개발 및 프로그램 개선 등 자구노력 을 진행하여 금강산 관광사업이 정상화되었다. 2006년에는 외금강호텔이 개장되고(2006.7), 농협중앙회 금강산지 점이 개설( )되는 등 관광 인프라가 확충되었으며, 2007년에는 내금강 관광이 시행(2007.6)되는 등 관광 사업이 지속적으로 확대되 었다. 2008년에는 7월 11일까지 관광객이 20여만 명을 기록하였으며, 누적 관광객은 193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2008년 7월 11일 북한군의 총격에 의해 우리 측 금강산 관 광객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7월 12일부터 금강산 관광은 잠정 적으로 중단되었다. 이 사건은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았고 저항 의사 도 없는 여성 관광객에게 총격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비인도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남북 간 합 의서 등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또한 북한은 2010년 4월 금강산지 구 내 우리 측 자산을 몰수ㆍ동결하고, 2011년 4월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사업 독점권을 취소하였다. 2011년 5월 우리 측 재산권을 침해하 는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 을 제정하는 등 불법적 조치를 지속해왔 으며, 2011년 8월에는 우리 측 재산에 대한 처분 단행을 통보하고, 우 리 측의 체류인력을 전원 추방했다. 이러한 북한의 조치는 남북 간 계 약과 합의를 일방적으로 뒤집고 부정하는 것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 는 것이다. 개성 관광은 2005년에 현대아산과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개성 시범관광에 합의하여 세 차례에 걸쳐 시범관광이 실시되었다. 2007년 11월 3일 현대아산과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간에 남북관광협력에 관한 합의서 를 체결하여 2007년 12월 5일부터 개성 관광이 본격적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29

130 으로 시작되었다. 개성은 서울에서 70여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당 일 관광이 가능하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직접 볼 수 있는 등 금강 산 관광과 차별화되어 새로운 북한 관광 수요를 창출하였다. 2008년 10월 15일에는 개성 관광객이 누계 10만 명을 돌파하였으며, 2008년 11월 28일까지 누적 관광객은 11만여 명에 달하였다. 하지만 개성 관 광도 북한의 일방적인 중단조치로 2008년 11월 29일 중단되었다. 관광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이 우선 우리 측 재산권을 원상회복하고,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 진상규명, 신변안전보장 제도 강화, 재 발방지 대책의 세 가지 조건을 해결해야 하며, 남북관계에 있어서 성 의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3)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협력 사회문화교류는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 시 남북예술단이 이에 상호 동행하여 방문공연을 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방송분야에서는 2002년 9월 KBS 교향악단의 평양 공연, 2003년 8월 KBS의 전국노래자랑 평양편 공동 제작 방영, 2004년 6월 MBC 취재팀이 직접 평양을 방문하여 제작한 살아있는 고구려 방영, 2005 년 8월 SBS 조용필 평양 공연 등의 교류가 있었으며, 2007년에도 KBS 드라마 사육신 이 북한에서 주문 제작되어 방영된 바 있다. 또 한 방송위원회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5년 동아시아 축구대회 에 이어 2006년 독일 월드컵경기 대북 위성중계 지원 사업을 진행하 여, 개 폐막식 및 한국 선수들이 출전한 경기를 포함한 전 경기 화면 을 북한에 송출하였다. 한편 2008년 2월에는 뉴욕 필하모닉의 공연 이 평양에서 있었으며 MBC는 동 공연에 중계 장비를 지원했다. 학술 문화 분야에서는 2004년 2월 평양에서 개최된 일제 약탈 문 화재반환 공동학술토론회를 계기로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가 구성 되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평양일대 고구려 고분군에 대한 공 동 실태조사(2006.4~5월)를 하였으며,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사업 (2007~2012년)을 추진하고 있다.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사업은 5 24 조치로 잠정 중단되었다가, 2011년 하반기 유연화 조치의 일환으로 집 중호우로 인한 피해부분 복구작업을 실시(11.14~12.19)하였다. 또한, 130 통일문제이해 2012

131 남북은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및 봉환사업 을 위해 중국 뤼순시 뤼 순감옥 공동묘지를 함께 조사(2006.6~2008.5) 하였으며, 2008년 4 월과 6월, 2009년 12월에는 남북 역사학자 공동학술회의를 개성에 서 개최하였다. 남북의 이질화된 어문규범을 단일화하기 위해 2005 년 시작된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 은 5 24조치 이후 남북 이 각각 사전 집필 및 새 어휘 조사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추진하였 다. 2011년 11월 18에 남북이 개성에서 실무접촉을 갖고 남북공동편 찬회의 재개 및 편찬자료 교환 등을 논의하였다. 2011년 12월 말 현재 12만 개의 새 어휘 발굴, 38만 개의 1차 올림말을 선정하는 등 전체 공정의 약 65%를 진행하였다. 한편, 2011년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 독은 9.12~15일간 평양을 방문하여 남북한 음악교류 등을 논의한 바 있다. 종교 분야에서는 기독교계의 (사)기쁜소식이 북한의 조선그리스도 교연맹과 공동으로 봉수교회 재건축사업을 실시하여 2007년 말 완 공하고, 2008년 7월에는 준공기념 헌당 예배를 개최하였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2004년부터 추진했던 금강산 신계사 복원사업은 2007년 말 남북공동 낙성식 개최와 함께 최종 완료되었다. 천태종에서도 개성 영통사 복원사업을 2005년 10월 완료하였다. 2007년 5월에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와 조선종교인협의회가 남북 종 교교류 10주년 공동행사를 평양에서 개최하였다. 2008년에는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가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공동으로 2008 평 화통일 남북교회 기도회 를 평양 봉수교회에서 개최하였으며, 천주교 도 남북공동으로 평화통일 기원미사를 개최하였다. 5 24조치로 중단 되었던 종교교류는 정부가 2011년 하반기부터 순수 종교교류에 한해 대표성과 종단별 형평성 등을 고려하여 허용함에 따라 조계종의 팔만 대장경 판각 1천년 고불법회 참석(9.3~7),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의장단 방북(9.21~24) 등 부분적으로 교류가 재개되었다. 체육분야는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가 평양과 서울에서 개최되었 으며,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남북 단 일팀을 구성하여 참가하였다.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와 2003년 에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에는 북한의 선수단과 응원단이 참가하기도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31

132 하였다. 2000년 이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 아테네올림픽 개 폐막식, 장춘 동계 아시안게임 등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남북이 9차례 공동으 로 입장하였다. 한편, 2007년 3월에는 북한의 17세 이하 청소년축구팀이 제주도 등 우리 측 지역에서 전지훈련을 하였고 4월에는 북한 태권도시범단의 방 한 경기가 있었으며, 6월과 11월에는 남북유소년 축구팀 친선경기가 평양에서, 10월에는 남북 프로권투대회가 금강산에서 개최된 바 있다. 2008년 3월과 4월에 각각 제주도에서 개최된 아시아 시니어레슬링 선 수권 대회와 아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였으 며, 6월과 10월에는 남북유소년 축구팀 친선경기가 평양에서, 6월에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경기가 서울에서, 2009년 4월에 는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경기가 서울에서 개최되 었다. 지방자치단체의 대북교류사업은 1999년 제주도의 감귤지원을 시작 으로 구호물자 및 보건의료물자 지원, 산림 병해충 방제 등 인도적 지 원사업과 농축산업, 체육 등 사회문화 협력사업 위주로 추진되어왔 다. 지자체는 자체 조례제정 및 기금 조성을 통해 대북교류사업을 지 원하고 있다. 정부는 지자체 간 대북교류 사업의 정보공유 및 중복 방지, 중앙과 지방 간 효율적인 협력체계 구축을 위해 2006년도부터 지자체 남북 교류실무협의회 를 구성하여 지자체 간 남북교류 정보를 교환하며 남 북교류 협력사업 추진에 따른 애로 및 건의사항을 수렴하고 있다. (4) 인도적 문제의 해결 노력 1 이산가족 상봉 남북은 2000년부터 2010년 11월까지 18차례의 이산가족 상봉행사 를 실시하였으며, 2005년부터는 이산가족의 고령화로 인한 문제 해결 의 시급성을 감안하여 새로이 화상상봉을 도입하여 7차례 시행하였 다. 이에 따라 2000년 이후 2010년까지 총 4,321가족 2만 1,734명이 상봉기회를 가졌다. 132 통일문제이해 2012

133 정부는 당국차원의 교류와 병행하여 제3국을 통한 생사확인, 상봉 등 민간차원의 이산가족교류 촉진을 위해서도 노력해 왔다. 1998년부 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산가족들에 대해 교류 소요경비를 부분적으 로 지원해 왔으며, 2009년 2월부터는 민간 차원의 이산가족교류를 보 다 활성화하기 위해 지원금을 생사확인 100만원, 상봉 300만원, 교 류지속 50만원으로 인상하였다. 이산가족들의 북한주민 접촉 승인기 간을 5년으로 확대하였고, 또한 1998년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산 가족들에 대해 교류 소요경비를 부분적으로 지원해 왔다. 정부는 이 산가족 1세대의 생전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 향후 북한 유가족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분단의 역사적 교육적 기록으로도 보존 하자는 취지에서 2005년에 4,000여 편의 영상편지 제작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산가족 관련 자료의 체계적 관리 보존을 위해 이산가족 정 보통합시스템 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이산가족 정보통합시스템에 는 12만여 명의 이산가족들이 재북 가족사항 등을 등록하고 있으며, 이산가족 방북단 후보자는 여기에 등록된 사람을 대상으로 컴퓨터 추첨을 통해 선정한다. 2011년 12월 말 현재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는 총 128,668명이며 이중 생존자는 78,892명이다. 2009년 3월에는 남북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 률 을 제정하여 이산가족 교류활성화에 대비한 제도적 인프라 구축 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법에 따라 2011년 4월부터 11월까지 이 산가족 찾기 신청을 한 생존자 전원인 81,800명을 대상으로 전면적 실태조사를 처음으로 진행하였다. 이러한 실태조사 결과는 전면적 생 사확인과 상봉정례화에 필요한 기본자료 및 이산가족 정책수립에 필 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한편,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보다 확대하고 정례화하기 위해 북 한에 이산가족면회소 설치문제를 꾸준히 제기하여 왔다. 남북은 제 4차 남북적십자회담( ~8)에서 이산가족면회소 설치에 합의 한 이후 여러 차례의 실무접촉을 거쳐 2003년 제5차 적십자회담에서 19,835m2(6,000평) 규모의 금강산면회소를 건설 운영하기로 합의하였 다. 이후 2005년 8월에 착공하여 2007년 12월 7일 금강산면회사무소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33

134 준공식을 거쳐 2008년 7월 12일에 면회소를 완공하였으나, 북한 측 이 2010년 4월 27일 금강산관광 재개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일방적으 로 몰수한 상태이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2007년 10월 제16차 이후 북한 측의 일방적 인 파기로 상봉행사가 약 2년간 중단되었다가 2009년 9월 26에서 10 월 1일까지, 그리고 1년 후인 2010년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추석 계기 상봉행사를 금강산에서 개최하였다. 2009년 상봉행사부터 단체 상봉시는 이산가족면회소가 북한 측에 의해 몰수된 상황에서도 이산 가족면회소를 활용하였다. 2009년 상봉인원은 남북을 합쳐 195가족 888명으로 이중 남측 가족 이 554명, 북측 가족이 334명이었다. 2010년 상봉인원은 남북을 합쳐 191가족 886명으로 이중 남측 가족은 573명, 북측 가족은 313명이었다. 2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 6 25 전쟁에서 교전했던 유엔군과 공산군은 정전협정 체결을 전후 하여 1953년 4월부터 1954년 1월까지 3차례에 걸쳐 전쟁포로를 상호 교환하였다. 당시 유엔군 측은 국군 실종자의 수를 82,000여 명으 로 추정하였으나, 공산군 측으로부터 최종 인도된 국군포로는 8,343 명에 불과하였다. 실종된 국군의 상당수는 송환되지 못한 채 북한에 강제 억류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4년 10월 조창호 중위의 귀환 이후 2011년까지 총 80명의 국군포로가 탈북 귀환하였고, 국방부는 귀환 한 국군포로와 탈북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2011년 말 현재 500여 명 의 국군포로가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납북자는 크게 6 25 전쟁 중 납북자와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납북자 로 구분된다. 전시 납북자는 조사 시기와 주체에 따라 큰 차이를 보 이는데, 전체 명부가 발견된 1952년도 대한민국 통계연감에 따르면 82,959명에 이른다. 정전협정 체결이후 1955년 대성호 납북을 시작으로 2010년 12월까 지 총 3,835명의 우리 국민이 납북되었으며, 이중 87%인 3,310명이 1 년 이내에 송환되었고, 8명이 자진 탈북 귀환하여 총 귀환자는 3,318 명이다. 2011년 말 현재 북한에 억류된 납북자는 517명으로 추정하고 134 통일문제이해 2012

135 있다. 2000년 이후 정부는 지속적으로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의 해결 을 위해 북한과의 협의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국군포로의 경 우 이미 정전협정에 따른 포로교환으로 해결되었고, 납북자는 존재하 지 않는다고 강변하며 협의 자체를 거부하였다. 이에 정부는 불가피하 게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이산가족의 범주에 포함하여 생사를 확인하 고 상봉하는 방식으로 북한과 협의하였다. 이에 따라 2000년 8월의 제2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부터 2010년 추석계기 상봉행사까지 17명의 국군포로와 16명의 납북자가 가족을 상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식은 근본적인 문제해결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국민적 공감을 얻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정부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자국민 보호차원에서 국가의 기 본적인 책무로 인식하고, 이산가족 범주 내의 접근이 아니라, 송환 등 을 통한 근본적인 해결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차 원에서 2009년 8월 금강산 및 2010년 10월 개성에서 열린 남북적십자 회담에서 북측에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하 였으나 논의를 회피하려는 북한 측의 태도로 인해 진전된 합의는 도 출되지 않았다. 2010년 추석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 시 우리 측은 국군포로 10명 과 납북자 16명 등 총 26명에 대해 생사확인을 의뢰하였으나 북한 측 은 국군포로 1명 사망, 나머지 25명은 확인불가 로 회신하였다. 우리 측은 상봉행사를 앞두고 개최된 남북적십자회담( ~27)에서 북한 측에 생사확인 결과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성의 있는 확인을 요 구하였으며, 북한 측은 2010년 상봉행사에 국군출신 4명을 방문단에 포함시켜 남측 가족을 상봉하였다. 2007년 10월부터 시행된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피 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 에 따른 국무총리 소속 납북피해자 보상 및 지원 심의위원회 의 심의 의결을 통해, 2011년 말까지 총 434 건, 약 161억 원(피해위로금 425건 145억, 정착금 주거지원금 8건 15 억, 보상금 1건 67백만원)의 피해위로금이 지원되었다.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35

136 대북 비료 지원 한편, 2010년 9월 27일에는 6 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이 시행되었고, 정부차원에서 본격적으로 6 25전쟁 중 납북피해의 진상규명과 납북자 및 납북자가족들의 피해조사, 명예회복을 위한 업무에 착수하였다. 이 에 따라 12월 13일에 6 25전쟁 납북진상규명위원회 와 사무국이 출범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위원회는 2011년 말까지 1,034건의 납북피해 신고 를 접수하여 총 272명을 전시납북자로 공식 인정하 였다. 3 대북 지원 북한의 식량난은 일시적 현상이 아닌 영농체계의 비효율성, 비료와 농약 부족, 경제체제의 모순 등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 제라는 점에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인도주의와 동 포애적 차원에서 대북지원을 해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대북지원은 정부차원, 민간차원, 국제기구 등을 통 하여 이루어져 왔다. 1999년에 15만 5천 톤의 비료지원을 시작한 이 후 매년 20~30만 톤씩 2007년까지 총 255만 5천 톤의 비료를 당국 차원에서 지원하였다. 한편, 식량은 1995년 쌀 15만 톤을 무상 지원한 이래 2000년부터 는 차관방식(10년 거치, 20년 상환, 이자율 연 1%)으로 식량지원을 해 왔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대북식량 지원은 쌀 265만 톤, 옥수수 20만 톤 등 총 285만 톤이 제공되었다. 또한 정부는 대북지원의 절차 와 방법을 개선해 나감으로써 대북지원의 투명성, 실효성을 확보하고 자 노력하고 있다. 남북은 1997년 베이징에서 적십자사 간 접촉을 갖 고, 구호물자 전달 절차에 관한 합의서 를 채택함으로써 그동안 국 제적십자연맹을 통한 간접 지원방식에서 남북 간 직접 전달방식으로 전환하였다. 이와 함께 남북적십자 간 구호물자 전달에 관한 합의, 남 북 간 구호물자의 직접 전달, 수송경로와 대상지역 확대, 지원주체 명 기 및 지정기탁 허용, 분배 투명성 제고 등에 합의함으로써 대북 지원 과 관련된 제도적인 틀을 마련하였다. 136 통일문제이해 2012

137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남북관계의 전반적 상황 악화 및 투명성 문제 등으로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비료지원은 중단되었으나, 영유 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순수 인도적 지원이나 재해 시의 긴급구호 등 은 지속되었다. 2008년부터 2010년 사이 정부와 민간단체, 국제기구를 통해 영유 아 등 취약계층 중심으로 대북지원이 이루어졌다. 정부 차원에서는 2009년 북한에 신종플루가 발생함에 따라 치료제와 손소독제를 지 원하였으며, 2010년에는 북한 신의주 지역 등에 수해가 발생하여 쌀 시멘트 컵라면 등을 지원하던 중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인해 일 부 물자의 지원이 중단되었다. 2011년에도 영유아 영양식 등 수해 긴 급구호물품의 지원의사를 표명하였으나, 북한의 응답이 없어 지원을 종결한 바 있다. 민간 차원과 국제기구(WHO, UNICEF)를 통해서도 2008년 이후 영유아 임산부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보건의료 분야 지원을 지속해 왔으나,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으로 지 원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순수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동포애 와 인도주의 차원에서 조건 없이 추진한다는 원칙 하에 2011년 국제 기구(UNICEF)를 통해 취약계층에 대한 영유아 사업(영양개선, 보건) 을 지원하였다. 4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북한 식량난 심화와 함께 북한이탈주 민의 국내 입국이 증가하였으며, 입국경로도 다양화되고 가족을 동반 한 집단 탈북 경향도 보이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입국 규모는 1990 년대 초반에는 10명 내외로 비교적 적은 인원이었으나 1990년대 중반 부터는 연 50명을 상회하였고,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100명 이상 으로 증가하였다. 특히 2002년에는 연간 입국인원이 1,000명을 넘었 고, 2006년 2,000명을 넘은 후에는 매년 2천명 이상의 인원이 입국하 여 2011년 12월 말 현재까지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은 총 2만 3,000여 명에 달하게 되었다.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37

138 표 ~2011 북한이탈주민 입국 추이 북한이탈주민 입국인원 현황 (명) 총 23,000명 입국 2,809 2,927 2,544 2,423 2,300 1,894 2,018 1,138 1,281 1, * 1993년 이전까지 총 633명 입국 정부는 북한이탈주민의 성공적인 국내 정착이 우리의 통일의지와 능 력을 보여주는 시금석이라는 판단 아래 북한이탈주민이 건전한 민주 시민으로 우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립기반 조성 및 자활능력 배양에 주안점을 두고 단계적인 정착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지원은 초기 입국지원, 보호지원, 거주지 편입 지원 등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먼저 해외에 체류 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은 한국행 희망 의사를 표명하는 경우 현지 공관 등이 임시보호조치를 취하고 입국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북한이탈주민이 국내에 입국하게 되면 사회적응교육, 정착지원금 지 급 및 주거알선 등 자립 자활에 필요한 초기 자립지원을 받게 된다. 사회적응교육은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 ( 개소)에서 12주 동 안 북한이탈주민이 우리 사회에 적응하여 생활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 인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교육훈련으로 진행되 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은 정서안정 및 건강증진, 진로지도 및 직업훈 련,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이해 증진, 초기정착 지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 138 통일문제이해 2012

139 다. 또한 정부는 하나원에서 사회적응 교육을 마치고 사회로 진출하 는 북한이탈주민이 초기정착에 필요한 자립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착기본금, 정착장려금 및 주거지원금 등을 지원하고 있다. 직업교육의 취업연계효과 등을 고려하여 요양보호사, 기초전자조립, 품질관리기초, 봉제, 용접, 중장비(지게차), 자동차정비 등 직종별 단기 집중 직업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훈련기관도 두원공대, 한경대, 대우직업능력개발원, 청강문화산업대 등으로 확대하였다. 사회에 진출한 북한이탈주민은 직업훈련, 취업, 교육 등에서 제도적 지원을 받는다. 정부는 북한이탈주민의 취업을 촉진하기 위해 2011년 12월 현재 54개 고용센터에 취업보호담당관을 지정하여 운영 중이다. 취업보호담당관을 통해 진로지도, 직업훈련 안내 및 취업을 알선하고 있으며, 직업훈련에 참가하는 북한이탈주민에게는 훈련비 및 훈련수 당을 지원한다. 또한 북한이탈주민이 일정시간 직업훈련 이수 시 직업 훈련장려금, 국가자격 등 취득 시 자격취득장려금을 지급하고, 장기 근속을 장려하기 위해 6개월 이상 취업을 유지하는 경우 취업장려금 을 지급한다. 북한이탈주민을 고용하는 사업주에게는 일정한 범위 내 에서 임금의 절반을 3년까지 지원하고 있다. 2010년부터는 북한이탈 주민 사회적 기업 설립 운영 지원, 창업지원, 영농정착 지원 등을 통해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 창출에 노력 중이다. 그리고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거주지보호담당관이 지정되어 북한이 탈주민의 거주지 편입과정에서부터 주민등록, 생계급여 지급, 의료급여 대상자 지정 등 사회보장제도의 편입을 지원하고 있다. 2011년 12월 현 재 전국 223개 지자체에 거주지보호담당관이 지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이탈주민의 학습능력 개발을 위한 교육지원도 꾸준히 강화하였다. 중 고등학교 및 국 공립대학교에 편 입학한 북한이탈주민 에게는 학비 전액을 면제해 주고, 사립대학인 경우 학비의 반액은 정 부가 보조하고 반액은 본인이 부담하고 있다. 2006년 3월에는 탈북 청소년들의 정규학교 편입학 촉진을 위한 디딤돌학교 로서 중 고교 과정이 통합된 기숙형 학교인 한겨레학교 를 개교하였다. 2011년 12월 말 현재 약 180여 명의 학생이 교육을 받고 있다.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39

140 140 통일문제이해 년 3월에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을 개정하여 공무원 특별임용 시 조건을 완화하는 등 북한이탈주민이 안 정적으로 우리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였다. 기존 북 한이탈주민후원회를 확대 개편하여 북한이탈주민 2만 명 시대의 정책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을 2010년 9월 27일 설 립하였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은 민간차원에서 북한이탈주민이 하 나원 수료 후에 필요한 다양한 정착지원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집행하 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지역적응센터(하 나센터)는 하나원에서 거주지역으 로 전입하는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 로 3주간의 초기집중교육과 1년간의 밀착된 사후 지원 서비스를 통해 신 속하고 안정된 정착기반 조성에 기여 하도록 통일부와 지자체가 협력하여 선정 지정한 곳을 말한다. 하나센터 는 북한이탈주민의 자립 자활을 돕 는 종합적인 지원 서비스와 지역역량 의 통합을 통해 지역에서 북한이탈주 민 정착지원의 중심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2009년에 들어와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제도에 대하여 인도주의와 인권, 선진화와 복지, 통일과 미래와 관련된 문제라는 3대 기본방향 을 정립하였으며, 북한이탈주민의 지역사회 조기 적응을 지원하였다. 먼저 하나원 교육 기간을 2009년 3월 이후 8주에서 12주로 확대하였 고 전일제 교육을 위한 청소년반 (하나둘학교)을 9월 30일부터 운영 5 북한인권 문제 하였다. 그리고 2009년에는 6곳의 북한이탈주민 지역적응 센터(하나센터) 를 시범 운영하여 2010년에는 전국 30곳으 로 확대하였다. 또한, 2010년 9월 27일에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 착지원에 관한 법률 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 및 시행 하였다. 이를 통해서 정착도우미 운영법 마련, 취업지원 강 화방안 수립, 공무원 특별임용 범위 확대, 하나원 퇴소 후 주택배정 지연자 지원, 교육지원 범위확대 등 관련 제도를 포괄적으로 개선하였다. 민주국가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중요시하여 인권의 개념을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되는 천부적인 권리 로 정의한다. 또 한,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국가도 개개인의 자유와 보편적 인권이 존중 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개개인을 단지 전체 조직의 일부분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보다는 공민 으로서 의 의무만을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유일사상 지배체제로 인해 주민들의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종교의 자유 등 정치적 시민적 자유 권이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141 매년 국제사회에서 발표되고 있는 각종 인권보고서와 관련 인사들 의 증언 등에 따르면, 북한주민의 인권상황은 매우 열악한 것으로 파 악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인권 문제는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으며 북한인권 실태의 개선을 위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관심과 우려 및 그에 따른 대북 압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인권이 인류 보편적 가치라는 측면에서 북한주민의 인 권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이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노력 해 왔으며, 이에 따라 매년 통일연구원과 협조하여 북한인권백서 를 발간해 왔다. 특히 정부가 2006년 제61차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 결 의안에 찬성입장을 표명한 것은 식량권을 비롯한 북한의 실질적 인 권 개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협력을 촉구하는 한편, 핵실험 이 후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대화와 협력을 촉진 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2007년 제62차 유엔총회에서 는 북한인권 결의안에 기권한 바 있다. 이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가 발전을 보이고 6자회담의 진전에 따른 북한의 비핵화 이행과 정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으나, 국내외 여론으로부터 많은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3월 개최된 제7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촉구하였고, 북 한인권특별보고관(문타폰)의 임기 연장 결의안에 찬성하였다. 같은 해 11월 제63차 유엔 총회에서 일본과 유럽연합이 주도한 북한인권결의 안에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하고 찬성하였다. 2009년 들어와서도 북한인권 문제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 3월에는 제10차 유엔인권이사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인권 개선 촉구 및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임기 1년 연장안에 찬성하였다. 그리고 워싱턴에 서 4월 26일부터 5월 2일까지 개최된 제6회 북한자유주간행사에 인권 대사가 참석하여 대북 인권정책 방향과 정부의 북한인권 개선 노력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제64차 유엔총회 3위원회는 11월 19일에 북한인권 결의안을 가결하였는데, 여기서 우리 정부는 북한인권 결의안 공동 제 안국으로 참여하고 이에 찬성입장을 표명하였다. 또한, 2009년 12월 유엔인권이사회의 보편적 정례검토(UPR : Universal Periodic Review) 대상에 북한이 포함됨에 따라, 우리 정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41

142 부는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문제, 송환된 탈북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과 인권침해 문제, 인도적 식량지원의 공정 한 분배를 위한 모니터링 개선 문제 등에 대한 질의서를 제출하여 북 한 측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였다. 2010년에도 3월 제13차 유엔인권이사회 및 11월 제65차 유엔총회에 서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2010년의 북한인권 결의안에는 특 히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규모 확대 및 정례화, 2009년에 UPR에서 제기된 권고사항 수락 및 이행결여에 대한 유감표명 등의 내용이 포함 되어 있다. 2011년 3월 제16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는 북한의 중대하고 광범위 하며 조직적인 인권침해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접근 지원 보장과 적절한 모니터링을 촉구하는 내용의 북한인 권결의안을 채택하였다. 또한, 2011년 11월 제66차 유엔총회는 이산 가족 상봉행사가 중단된 점을 우려하며, 탈북자 강제송환과 관련하 여 인권보호를 강력히 촉구하고,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성폭력 및 이 에 대한 불처벌을 우려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 택하였다. 우리 정부는 2008년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시 처음으 로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이래 지속적으로 유엔 차원의 북한인권결 의안을 공동제안하고 찬성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또한 북한인권특별 보고관의 임기 연장에 찬성하고,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활동을 지지 하며 협조하고 있다. 앞으로 정부는 북한인권 문제를 정치적 차원이 아닌, 인류 보편적 가치의 실현 차원에서 접근하여 북한주민의 인권상황이 실질적으로 개선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현재 국회에서 논 의 중인 북한인권법의 제정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북한의 인 권상황 개선이 결국 북한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득 해 나갈 것이며, 북한인권 관련 자료와 정보를 체계화하여 우리 국민 들에게 북한인권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즉 향후 북한인권법 제정, 북한인권재단 설립 및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 치 등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142 통일문제이해 2012

143 6 북한 환경개선 오늘날 환경문제는 전 지구적 관점에서 논의되는 중요한 현안이다. 북한의 환경문제는 북한만의 문제 를 넘어서 한반도 전체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 리는 북한의 경제난 속에서 악화되고 있는 환경문 제의 개선을 위해, 장기적으로는 북한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민족공동체 형성을 위하여, 궁극적 으로는 통일에 대비하기 위하여 북한 환경문제에 대 처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황폐화된 산 북한의 환경문제는 북한당국의 환경의식 부재와 부적절한 개발정 책, 환경개선 투자 부족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석탄연료 사용으로 인한 대기오염, 다락밭 개간과 연료 채취에 따른 산림황폐, 광산 공장 의 폐수와 해안 간척이 초래한 수질오염 등이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것 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현재 북한의 전 체 산림면적 899만 ha 가운데 나무가 없는 황폐림 면적은 284만 ha 로 전체 산림의 32%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1999년 과 비교하면 전체 산림 면적은 17만 ha가 줄었고, 황폐림 면적은 121 만 ha(서울시 면적의 약 20배)가 늘었다.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는 최근 북한의 환경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 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 추진하고 있다. 민간 차 원에서는 1999년 평화의 숲 묘목 종자지원 사업을 시작으로 산림병 해충 방제 및 양묘장 조성사업 등이 추진되어 왔다. 한편, 정부 차원에서는 경의선 동해선 등 남북 철도 도로 연결과정 에서 환경영향 평가를 실시하였으며, 개성공단 입주업체 선정 등 제반 남북경협 사업이 환경 친화적인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또한 임진강 수해방지 일환으로 임진강 주변 산림복구 지원 사업을 위한 묘목 지원 문제를 협의하였으며, 이는 남 북당국 차원의 최초의 산림복구 사업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2007년 12월 남북경제공동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남북은 보건의료 및 환경보호 협력에 합의하고 2008년부터는 환경보호 협력을 위해 양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43

144 묘장 조성, 산림녹화, 병충해 방지 등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같은 해 12월 20일부터 21일까지 개성에서 보건의료 환경보호 분과위원회를 개최하여 환경 분야에서 백두산 화산활동 공동연구, 대기오염 피해감 소를 위한 공동협력, 한반도 생물지 사업 등 3개 항, 산림녹화 분야에 서 시범 양묘장 조성 및 산림병해충 공동방제 등 2개 항에 합의하는 등 총 10개 사업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2008년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 에 접어들면서 합의사항이 추진되지 못하였다. 이후 우리 정부는 산림녹화, 병충해 공동방제, 청정개발체제(CDM) 협력사업, 비무장지대 생태계 보전 등의 사업이 실행될 수 있도록 지속 적으로 노력해 왔다. 특히 정부는 2010년의 중점 과제 중 하나로 녹 색 한반도 구현 을 설정하고 북한 지역 산림녹화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건에 따른 5 24 조치로 중단되었다. 이와 더불 어 지금까지 분단의 상징이었던 비무장지대를 녹색 한반도의 상징으 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추진함으로써 북한지역의 환경문제를 개선하는 데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2011년에는 북한이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를 위한 남북전문가 회의 를 제의해 와서 총 2회에 걸쳐 개최하였다(제1차 3.29, 제2차 4.12). 제 2차 회의 시 학술토론회 개최 및 백두산 현지답사에 대한 합의서를 체결하였으나, 이후 남북전문가 학술토론회 개최에 대한 북한의 추가 적인 답변이 없어 무산되기도 했다. 144 통일문제이해 2012

145 제3절 남북관계의 발전방향 이후 남북관계는 한편으로는 갈등과 긴장을 한 축으로 분단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화와 교류를 한 축으로 하면서 이 두 축의 성격이 순차적으로 교차하거나 아니면 역설적으로 공존하 는 가운데 진행되어 왔다. 이는 세계적 냉전 체제와 한반도의 남북 분 단 구조가 조우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된 한반도적 현상 이 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반도적 현상이 매우 특수한 것은 세계적 냉전 체제가 해체되고 세계가 탈냉전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단 구조는 여전히 자생력을 가지고 이 이중성을 발생시키 는 구조로 온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이러한 특수한 현상은 남북 분단 이후 남북관계가 진행되어 온 역사적 과정, 북한의 퇴행적 체제, 주변강대국들의 역학과 영향력 등을 감안해야만 종합적으로 이 해할 수 있다. 한반도는 현재 주변강국과의 미래지향적인 관계설정뿐 아니라 남북 관계의 발전적인 전망이라는 중차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것은 남 북관계의 발전적 패러다임의 구축과 통일미래 비전의 확보를 위해 해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45

146 결해야만 하는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 이하에서는 우선 20세기 말 이 후 남북관계는 과연 어떠한 구도와 성격으로 변화되었는지를 검토해 보고, 이러한 검토를 통해서 현 시기와 그 이후에 남북관계의 발전 방 향과 그 과제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년대 이후의 남북관계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탈냉전 시대에 접어들면서 북한 체제는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는 냉전에 토대를 두 고 있던 진영 간의 대결 구도가 와해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더 이상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한 통일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 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세계적 탈냉전 시대에 한반도는 지난 20여 년간 진행된 세계 적 수준의 사건에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 북한 체제의 총체적 위기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적 위상의 제고에 따라 남북관계의 성격도 변화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군사적 대치 관계에 있 으며 특히 2010년의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한반 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나타난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첫째, 우리 측이 우위를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냉전 시기에는 북한이 자신의 체제 의 우월성을 자신하여 통일 논의 등을 공세적으로 전개시켜 왔다. 하 지만 20세기 말 이후에는 우리 측이 우월한 경제력과 민주주의 발전,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강화를 바탕으로 남북관계에서 주도권 을 가지게 되었다. 둘째,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해 왔으나 북한의 도발과 강경 조치로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 이다. 특히 북한이 감행한 2010년 3월의 천안함 폭침 사건이나 11월의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은 남북관계에서 대화와 협력은커녕 오히려 긴장 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146 통일문제이해 2012

147 셋째, 남북관계가 보다 더 국제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남북관계 의 국제화 현상은 북한 체제가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소진 되고, 그에 따라 발생시킨 핵문제가 국제적인 핵심 이슈로 등장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북한의 도발과 같은 사건들은 남북관계를 더욱 더 복잡하고 관리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비용 을 더욱 더 증가시키고 있기 때문에 남북관계는 향후 무엇보다도 북 한에 의한 무력 도발을 방지하고 평화를 지향해 나가는 관계로 발전 해 나가야하는 커다란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2. 남북관계의 발전방향과 과제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목표는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 로 해결하고 원칙 있는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에 대한 장기적인 구 도 아래 차분하면서도 내실 있는 실천을 통해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 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정부는 굳건한 안보를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 행위에는 강력하게 대처하는 가운데 북한의 비 핵화 추진과 함께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유도해 나가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남북관계의 전개 역사를 돌이켜 보면, 단순히 남북 간의 대화와 교류 협력이 양적 질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곧바로 통일 로 연결되거나 통일의 실현에 불가역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는 단정할 수는 없다. 해방 이후 남북한은 세계적 냉전이라는 환경 하에서 분단이 되었고 그 분단이 6 25 남침전쟁을 통해서 더욱 고착화되었으며, 이후의 남 북관계는 갈등과 대결, 대화와 협력이 공존하는 관계로 이어져 왔다. 이것이 바로 남북관계의 이중성이었다. 우리 정부는 원칙 있는 남북관계 정립을 위해 그동안 국민합의에 기 초한 일관된 대북정책을 추진해 왔다. 북한의 비핵화 원칙에 기초한 대북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면서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함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47

148 으로써,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유도하고 바른 남북관계 정립의 토 대를 마련하였다. 보편적 가치와 질서, 국민합의 등에 기초한 남북관 계를 만들어 가는 것은 미래 한반도 평화통일 준비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원칙 있는 남북관계의 범주는 크게 세 가지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첫째, 북핵문제의 우선적 해결이다. 북핵문제는 그동안 남북관계 발 전을 가로막아 왔던 핵심문제이자 남북관계의 본질적 문제이다. 지 난 20년의 남북관계 역사는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북 핵 문 제 가 반 드 시 해 결 되 어 야 한 다 는 점 을 보 여 주 고 있 다. 비 핵 개 방 3000 은 북핵문제 진전에 따라 남북협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 간다는 북핵폐기 견인전략이자 남북 간 상생공영을 실현하기 위한 남 북관계 발전 로드맵이다 둘째, 상호 존중에 기초한 호혜적 남북관계의 발전이다. 남북관계가 더 이상 북한의 의도대로 끌려가는 일방적 관계가 되어서는 남북관계 의 실질적 발전은 물론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가 정착될 수 없다. 특히 막대한 인명을 희생시킨 군사적 도발 등 명백한 잘못에 대해 아무런 책 임을 지지 않으려는 북한의 태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그러한 관행 이 계속되어서는 정상적인 남북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셋째, 남북 간 인도적 문제의 해결이다. 이산가족 상봉과 납북자 국 군포로 문제 등 남북 간 인도적 현안은 정치적 차원이 아니라 순수 인도적 차원에서 조속히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문제 는 외면한 채 우리의 일방적인 대북 지원만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정 부는 남북 간 인도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남북한 주민 모두 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원칙 있는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의 책임 있고 진정성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를 생각하고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하며 평화통일을 원한다면, 앞으로 일관된 원칙 과 의지를 갖고 북한에게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견 인해 나갈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이 핵보유 노선을 버리고 비핵 평화 노선을 채택하도록 148 통일문제이해 2012

149 해야 한다. 북한이 핵 개발을 고수하는 한 북한경제는 발전할 수 없 고, 북한주민들의 삶은 개선될 수 없다. 북한이 핵포기라는 정치적 결 단을 내려야만 북한의 안보환경은 개선되고 국제사회의 지원과 협력 을 통해 북한경제가 회생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북한 핵은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최대의 안보위협 요 인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남북관계의 최우선 과제로 삼 아야 할 것이다. 둘째, 북한이 폐쇄고립 노선이 아니라 대외개방의 길로 가도록 견인 해야 한다. 자력갱생과 폐쇄노선은 이미 실패한 정책임이 확인되었다. 북 한 은 체제 유 지 를 위해 개혁 개 방 을 거부 하 고 있지만, 과 감 한 개혁 개방을 통해 성공적 경제발전의 길을 가고 있는 중국 베트남 등 국가 들로부터 경험을 배워야 할 것이다. 북한의 경제회복은 대외개방 없이 는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의 대외개방은 비핵화와 함께 향후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가늠 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셋째, 북한이 선군노선을 버리고 민생 우선 노선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 핵무기를 비롯해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선군 우선 노선은 북한 주민들을 가난과 궁핍으로 내몰고 있는 근본적 원인 중 하나이다. 이 는 남북관계의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 인이기도 하다. 만성적 식량난에 빠져있는 북한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 선시키고 북한경제의 회생을 위해서라도 북한이 주민우선 정책으로 전환하도록 계속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북한이 이러한 방향으로 책임성과 진정성을 가지고 움직일 때, 남북 관계는 그 이전보다 더욱 폭넓게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립과 대결이 아닌 대화와 협력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앞으로도 정부는 안 보를 튼튼히 하면서 정상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해 나갈 것이다. 북한이 진정성 있는 변화를 보여 준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 한에 대한 경제협력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의지와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남북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있으며, 언제든지 대 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다만 앞으로의 남북대화에는 대화를 위한 대 화가 아니라, 현존하는 남북문제를 꼭 풀어보겠다는 의지와 진정성이 제4장 남북관계의 전개 149

150 담겨져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 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실질적으로 정착시켜 나감 으로써 평화통일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150 통일문제이해 2012

151 5 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제1절 분단국의 통일사례와 교훈 제2절 통일의 편익과 미래비전 제3절 통일을 위한 우리의 과제

152 01 베트남, 예멘, 독일 등 분단국 통일 사례에서 볼 때, 통일은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야 한다. 또한 올바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력과 안보력 등 내적 기 반, 국제협력을 통한 외적 기반, 그리고 자유민 주의 체제에 대한 신념과 통일의지 등 정신적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02 통일이 되면 분단관리 비용이 즉각적으로 소 멸되고 막대한 유 무형의 통일편익이 창출되 는 등 통일편익은 통일비용을 상쇄하고도 남 는다. 우리가 바라는 통일한국은 정치적 자유, 경제적 풍요, 사회적 신뢰, 그리고 문화적 다 원성이 보장되는 선진일류국가이다. 03 통일은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 다. 우리는 통일을 실질적이고 체계적으로 준 비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대내적으로는 통 일재원의 확충과 국민적 합의기반의 강화 등 통일의 실질적 기반을 조성하고 대외적으로는 주변국들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외교적 노 력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

153 제1절 분단국의 통일사례와 교훈 차 세계대전 후 동서 냉전체제 하에서 분단 대립해 오던 독 제2 일, 베트남, 예멘 등 3개의 국가가 통일을 성취하였다. 방식 은 서로 다르지만 베트남은 1975년, 독일은 1990년, 예멘은 1994년에 각각 통일을 이루었다. 이러한 외국의 통일사례들은 아직 분단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통일 준비를 보다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후발자의 이점 을 제공한다. 사실 이들 국가들은 서로 다 른 국내외적 상황 하에서 통일을 이루어 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사례 에 속한다. 베트남은 일방적 무력통일의 사례이고, 독일은 동독이 자 발적으로 서독에 편입된 평화적 통일이며, 예멘은 합의 통일 후 무력 에 의한 재통합의 사례이다. 1. 분단국 통일사례 (1) 독일 독일은 동독이 자체적으로 서독 체제로의 편입을 결정하고 서독이 제5장 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153

154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한 사례에 속한다. 소련 의 마지막 지도자였던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 정책의 결과 동서 냉 전 체제가 와해되고, 동유럽권 국가들이 독자적인 체제를 갖추기 시 작함에 따라 동독 주민들도 개혁을 요구하였다. 이에 동독 정권은 근 본적인 개혁보다는 지도층 교체로 대처하는 등 개혁에 소극적인 자세 를 보였다. 당시 동독을 철권통치하고 있던 공산당 서기장인 호네커가 실각되고, 크렌츠로 지도자가 교체되었다. 그러나 개혁과 통일을 염원 하는 동독 주민의 요구를 만족시켜 줄 수는 없었다. 이와 같이 지도 층이 재편되는 와중에 동독 주민들은 시위를 확산시켰으며, 급기야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다. 동서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더 이상 동독이 하 나의 독립된 국가로 존립하기가 힘들게 되었다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 낸 사건이었다. 이어 동독에 새로운 정치세력이 들어서고, 1990년 3월 동독에서 역사적인 자유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여기서 선출된 드메지 어 수상을 수반으로 하는 연립정부는 서독의 콜 정부와 신속하고 집 중적인 협상을 전개하여, 통일조약을 체결함으로써 1990년 10월 3일 공식적으로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이 조약에서 서독의 법체계를 동독 지역에 확대한다는 원칙을 세움으로써 서독이 동독을 편입하는 형태 로 통일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독일의 통일은 통일을 위한 서독 정부의 꾸준한 노력과 동독의 변 화, 국제협력, 집단안보체제를 통한 안보 불안요소의 제거, 냉전체제의 붕괴 등 통일 환경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함으로써 가능하였다. 서독은 1969년 브란트 수상이 동방정책 을 추진하 면서 동독과의 교류협력을 적극 추진하였다. 1972년 에는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하여 경제, 과학 기술, 문화, 통신, 스포츠, 환경보호 분야의 교류에 합의 하고 각각 상주대표부를 설치하였다. 베를린 장벽 붕괴 서독의 적극적 포용정책은 양독 간 교류협력의 활 성화를 가져왔다. 경제교류는 1970년대 초 50억 마 르크 수준이던 것이 1980년에는 약 120억 마르크 로 확대되었고 통일 직전에는 200억 마르크를 상회 154 통일문제이해 2012

155 하였다. 동서독 간 경제교류의 활성화는 서독 정부의 포용정책의 결실 이라고 할 수 있지만, 포용정책은 동독의 변화를 수반함으로써 지속 성을 가질 수 있었다. 사회문화적 교류를 주저했던 동독은 결국 방문 협정, 교통협정, 우편 및 통신 협정의 체결에 동의하였다. 1973~1985 년 사이 서독을 방문하는 동독 주민은 매년 130~150만 명에 달하였 으며,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직전 해인 1988년에는 거의 7백만 명에 달하였다. 서독이 적극적으로 포용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을 통하여 동독에 대해 경제적 우위를 확보하고 북대서양조 약기구(NATO) 등 집단안보체제의 확립으로 안보 불안요소가 감소하 였기 때문이다. 서독은 동독이 소련의 승인 없이 서독의 정책을 수용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소련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적극 전개하였으며, 아울러 동구권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도 힘썼다. 특 히 1975년에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개최되고 헬싱키 의정서 가 채택되면서 참가국의 주권 및 영토존중, 상호간 경제 과학 기술 환 경 분야 협력, 그리고 인권보호에 합의하였다. 독일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 일을 분할 점령하였던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의 동의를 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제외한 승전국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통일독일의 국제적 위상 강화를 경계하면서 독일의 통일에 반대하였다. 특히 소련은 독일이 통일될 경우 NATO의 병력이 동진하 면서 자국의 안보를 저해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서독은 독일 통일에 유일하게 찬성하고 있던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점차 다 른 국가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였다. 1990년 9월 개최된 2+4 회담 에서 동서독과 승전 4개국 외상은 독일문제의 최종 해결에 관한 조 약 에 합의하였으며, 이로써 독일통일에 대한 국제적 장애가 완전히 제 거되었다. 독일의 통일에 있어서 서독 정치교육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서 독은 정치교육을 통해 민주주의 체제의 우수성에 대한 인식을 공고 히 하고, 사고의 지평을 독일 중심에서 유럽의 평화와 안보 등 국제적 차원으로 확대하였다. 특히 정치교육은 동독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 제5장 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155

156 고 통일의식을 고취함으로써 독일통일의 내적 기반을 축적하였다. 결 국 독일의 정치교육은 국제환경 변화라는 결정적 시기에 통일을 성취 할 수 있는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독일통일은 통일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가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통 일 후 통합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갈등을 겪기도 하였다. 통 합과정에서 불법행위 청산작업, 재산권 문제, 동독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통일비용 문제, 동서독 주민 간 갈등 등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 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은 연방정부의 노력에 의하여 통합과정에서 점차 해소 되어 나갔으며, 동독 경제가 상당히 개선됨으로써 통일의 효과가 나타 나기 시작하였다. 통일 이후 서서히 회복기에 들어선 동독 경제는 실 질 국내 총생산이 매년 7~9% 정도 성장하였다. 1인당 소득수준을 보 면, 1991년에 서독의 47%였던 것이 1993년에는 62%로 상승했으며, 지 금은 80%를 상회하고 있다. 통일 초기 동독지역의 괄목할한 경제성 장은 자생적 시장질서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서독으로부터의 재 정 이전을 통하여 달성되었다. 그러나 점차 서독의 재정 이전은 줄어 든 반면 동독의 경제는 자생력을 찾게 되었으며, 이는 통일 초기에 우 려하였던 통일비용이나 경제통합 문제가 거의 해결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독일은 통일을 통해 경제규모가 확대되었고 유럽통합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통일은 사회통합을 달성해야 하는 과제도 가져왔다. 통일이 이루어 지는 순간에는 우리는 하나의 독일 이라는 동류의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통합이 진척되면서 동서독 주민 간 편견과 차별의식 그리고 갈 등이 심화되었다. 공산당 주도의 독재 체제에서 억압과 감시 그리고 이념적 세뇌에 익숙해진 동독인들은 갑작스럽게 서구적 가치와 생활 양식을 접하면서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었다. 또한 통일 후 안락한 삶 을 기대했던 동독인들은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과거를 그 리워하는 오스탈지(Ostalgie) 현상도 나타났다. 반면 막대한 재정지 원을 담당하게 된 서독 주민들은 가중되는 부담에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조세 부담률의 증대와 더불어 실업증가, 물가 상승, 재정적 자확대, 국제수지 악화, 외채 증가 등은 통일을 비판적으로 보는 계기 156 통일문제이해 2012

157 가 되었다. 서독인들이 동독인을 비하하는 게으른 동쪽 것(Ossi) 그 리고 동독인들이 서독인들을 비하하는 거만한 서쪽 것(Wessi) 이라 는 용어는 동서독 주민 간 편견과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통일 독일은 동독의 경제가 활성화되고 동독 출신의 정치인 이 총리가 되는 등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찾아감에 따라 동서독 주민 간 마음의 벽 도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물론 독일의 내적통합은 물 질적 정치적 기회의 균등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존중 의 가치와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시키려는 제반 사회단체의 역할도 중 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연방정치교육센터가 독일의 분단, 통일, 역 사라는 복합적 주제로 실시한 정치교육도 동서독 주민 간 갈등을 완 화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2) 베트남 장기간 프랑스의 지배 아래 있던 베트남은 1954년 제네바 협정 에 의하여 분할되었다. 북쪽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베트남 민 주공화국(북베트남)이 세워졌고, 남쪽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이 수립되었다. 분단 후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을 적 화통일 하기 위해 테러 파괴 게릴라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리고 남베트남에서 활동하고 있던 사회주의 세력을 규합하여 1960 년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베트콩)을 결성하는데 성공하였다. 베트콩 의 게릴라 전술로 인해 남베트남 전 지역이 피아( 彼 我 )를 구분하기 힘 든 전장으로 변하였다. 남베트남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전쟁을 수행하였지만, 북베트 남과 베트콩의 조직적 공세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다. 결국 미국은 남 북베트남 정부와 베트콩 대표자들과 함께 1973년 파리조 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에 의해 미군이 철수함에 따라 북베트남이 1974년 구정 대공세 를 시작으로 전면전을 재개하여 1975년 4월 남베 트남 정부를 붕괴시켰다. 북베트남이 효과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이 유가 있었다. 먼저 남베트남에 통일전선을 구축함으로써, 남베트남의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무력화시키는데 성 제5장 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157

158 공할 수 있었다. 반면 남베트남은 끊임없는 정통성 시비로 인하여 국 론이 분열되었다. 더구나 미군이 철수함으로써 전쟁수행 능력이 현저 히 약화되었으며, 만연된 사회혼란으로 인하여 국가안보에 대한 주민 의식도 상당히 약화되었다. 그런데 남베트남 지역이 공산화되자 북부 주민들은 남부의 높은 생 활수준을 알게 되었으며 남부의 문화가 북부로 스며들면서 사회주 의 체제에 대한 의구심을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반대로 남부 사람들 은 자유가 없고 경제가 열악한 북부의 상황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접한 북부의 정치 지도자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통합작업을 서두르게 되었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남부 주민에게 사회주의의 우수성을 적극 홍보 하면서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하였다. 생산수단을 서둘러 국유화 집단 화하였으며, 경제활동을 강력히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이동의 자유나 종교 활동도 통제되었다. 물론 주요 당 조직과 행정조직은 북부의 공 산당원이 거의 독점하였다. 특히 남부 주민에게는 사회주의적 인간형 을 만들기 위하여 대대적 으로 사상교육을 실시하였다. 학생들에게는 교육과정을 개편하여 개 인주의 및 자본주의의 잔재를 제거하고 사회주의 의식화에 초점을 맞 추었다. 성인들에게는 과거 남베트남 정부의 부당성을 비판하고 사회 주의 체제의 합리성을 주입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정치인, 군인, 관료, 교사 등 이른바 특수계층 들은 수용소에 구금하여 재교육을 실시하였다. 사회와 격리된 재교육 캠프에서는 비위생적 환경, 공포심 조성, 배고픔, 의료보호의 박탈, 고문, 처형 등 심각한 인권유린이 만 연되었다. 그 결과 보트피플(boat people) 이 발생하는 등 90여만 명 이 통일조국을 버리고 자유를 찾아 탈출하였다. (3) 예멘 예멘은 사우디 반도 남쪽에 위치한 국가로서 유럽-아시아-아프리 카를 연결하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역사적으로 장기간 외세를 지배를 받던 예멘은 1960년대에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각 각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북예멘에는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하는 자 158 통일문제이해 2012

159 본주의 체제가, 남예멘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주의 체제가 자리 잡게 되었다. 남북 예멘은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통합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결과 크고 작은 전쟁을 겪게 되었는데, 무력충돌이 있 을 때마다 아랍권 국가들의 중재 하에 정상회담을 갖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였다. 무력충돌-평화협정체결-통일원칙 합의가 반복되어 오다 가 1989년 정상회담을 갖고 통일헌법안에 합의하였으며, 1990년 5월 통일을 이루었다. 예멘이 합의에 의해서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남북 예 멘 간 권력배분이다. 통일조약에서 합의한 권력배분은 남북 예멘 간 대등한 배분이다. 예를 들면, 북예멘은 대통령, 국방장관을, 남예멘 은 부통령, 총리, 내무장관, 외무장관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남북 예 멘의 지도자들은 정치적 통합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통일 후에 대한 통합정책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정부기구가 확 대되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었으며, 관료나 군인의 명령계통과 책임의 소재도 불명확하였다. 또한 사회통합의 기조로 내세운 이슬람 교리에 대해 남북 예멘 간 갈등이 노정되었다. 북예멘 보수주의자들은 이슬람율법을 모든 법의 유일한 근원 으로 삼기를 바랐으며, 남예멘의 중산층들은 이슬람 율 법의 불합리성을 주장하였다. 일부다처제, 여성의 사회활동 문제, 음 주허용 여부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대립하였다. 통일 수도 사나는 정부기구의 팽창과 걸프전 이후 귀환한 해외 근로자로 인하여 인구가 폭증하여 사무실 및 주택 문제, 식수 및 전력 부족으 로 큰 불편이 생기게 되었다. 주민 간 불신과 갈등은 반정부 시위, 노 동자 파업, 주민 폭동으로 연결되었다. 남북 예멘 정치인들은 세력 과 시를 위하여 사회집단들의 시위를 부추겨 사회혼란을 가중시켰다. 남 예멘의 지도자들은 집무를 거부하고 과거 남예멘의 수도였던 아덴으 로 철수하기도 하였다. 남북 예멘 간 위기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1994년 남북 예멘의 지도 자들은 다시 회동하고 권력배분 문제 등 위기종식을 위한 평화협정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양측 간 무력충돌이 재개되었고, 결국에는 북예멘 제5장 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159

160 이 승리함으로써 무력에 의해 재통합되었다. 이처럼 예멘은 일단 합의 에 의해 통일을 달성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전쟁을 통해 무력으로 통 일을 달성한 사례이다. 2. 분단국 통일의 교훈 우리의 통일이 독일, 베트남, 예멘 등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는 보장은 없다. 이들 국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었으며, 그 문제점 또한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통일은 경 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구체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 사점을 주고 있다. 첫째, 통일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야 하며, 평화적 통일을 이 루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안보가 수반되어야 한다. 베트남의 사례로 알 수 있듯이, 전쟁에 의한 무력통일은 국토가 황폐화되고 생산시설이 파괴될 뿐 아니라 막대한 인명피해를 가져온다. 또한 주민 간 이질감 과 적대감이 증폭될 뿐 아니라, 사회통합이 강압적으로 이루어짐으로 써 국민의 자발적 동의를 얻기 힘들었다. 서독이 포용정책을 적극 추 진할 수 있었던 것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및 유럽안보협력회의 (CSCE)를 통해 안보불안이 상당부분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안 보역량을 강화하고 한반도에 실질적 평화체제가 수립될 수 있도록 노 력해야 한다. 특히 북한은 전면적으로 남침하였던 전력이 있으며, 경제 난에 허덕이는 이 순간에도 핵무기를 개발하는 등 우리의 안보를 위 협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통일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투명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어떻게든 통일만 되면 된다 는 통일 지상주의는 위험한 발상이다. 베 트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평화를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써 결국 북베트남의 통일전선전 술이 먹혀들었다. 또한 예멘의 통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통일정부 조 직을 기계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조직이 비대화되고 명령과 통제 계통 이 불명확하였다. 소수의 권력층에 의한 나눠먹기식 통일은 기득권 층의 권력을 지속시키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 통일 이후에 발생할 수 160 통일문제이해 2012

161 있는 사회문제에는 관심을 가지지 못하였다. 북예멘의 이슬람 율법과 남예멘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결코 병존할 수 없었으며, 결국 내전 으로 끝나는 졸속통일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통일도 중요하지만 통 일 후의 사회상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며, 인류의 보편 적 가치로 볼 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셋째, 통일에 대비한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 통합역량을 강화하여야 한다. 통일이 협상에 의하여 그리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 직하지만, 통일은 반드시 시나리오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렇 다하더라도 크고 작은 혼란을 피할 수 없다. 독일의 경우 통일이 이루 어지기 불과 1년 전까지도 통일을 예상하지 못했듯이, 통일의 기회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올 수 있다. 통합과정을 원활히 수행해 나가 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 등 통일에 대비하는 내적 기반 을 확충하여 야 한다. 통일 시 발생할 수 있는 남북 주민 간 그리고 계층 간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더불어 생활하는 공동체적 사회 를 건설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면서 통합역량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넷째, 통일에 우호적인 환경 조성을 위해 주변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통일은 민족 내부의 문제일 뿐 아니라 국제적 이해관계 가 걸린 문제이다. 독일은 통일독일이 주변 국가들에게 안보 위협이 되 기보다는 유럽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촉진시킬 것임을 설득하는데 성 공함으로써 통일을 성취할 수 있었다. 특히 통일에 적극적이었던 미국 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통일에 미온적이었던 소련, 영국, 프랑스의 양보 를 얻어낸 업적은 당시 콜 총리의 외교적 승리 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도 통일에 유리한 국제환경을 조성해 나가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 해 나가야 한다. 미국과는 동맹관계를 지속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중 국, 일본, 러시아 등에게는 통일한국이 자국의 안보 그리고 동북아의 번영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설득시켜 나가야 한다. 다섯째, 통일을 위해서는 국민들의 올바른 통일관이 수반되어야 한 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민족공동체 의식 그리고 건전한 안 보관을 형성하는 것이 올바른 통일관의 핵심이다. 서독이 정치교육을 통해 독일문제의 해결, 즉 통일을 달성할 있었듯이 우리도 통일교육 제5장 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161

162 을 활성화 내실화하여 통일의 정신적 기반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결 국 미래지향적인 통일관, 건전한 안보관 그리고 균형있는 북한관 의 확립은 바른 통일을 위한 기반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162 통일문제이해 2012

163 제2절 통일의 편익과 미래비전 1. 통일비용과 통일편익 독일은 통일 이후 통합되는 과정에서 이른바 막대한 통일비용의 문 제가 발생하였고, 이는 통일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사실 통일은 상이한 체제와 제도 그리고 이질 적인 주민의 삶을 통합하는 과정으로서, 여기에는 일정한 비용과 노력 이 수반된다. 그러나 통일은 비용만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상쇄 하고도 남을 정도의 편익과 혜택을 가져 올 것이다. 일차적으로 분단 관리에 소요되는 노력과 비용이 소멸되며 또한 통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유 무형의 이익이 창출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통일비용 의 문제는 통일편익과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통일비용과 통일편익을 말하기 전에 분단비용에 대해 알아둘 필요 가 있다. 분단비용은 남북한의 분단 상태가 지속됨으로 인하여 불가 피하게 발생하는 비용을 말한다. 분단비용은 눈에 보이는 유형적 비 용과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무형적 비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5장 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163

164 유형적 비용 은 막대한 군사비 지출과 안보비용, 북한에 대한 외교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외교비용, 대북관련 기관 유지비용 등을 들 수 있 다. 무형적 비용 은 남북한 간의 전쟁 가능성으로 인한 공포, 이산가 족의 고통, 이념적 갈등과 대립, 국토이용의 제한 등 지리적 제약으로 인한 기회비용 등을 포함한다. 단적인 예로 분단비용을 산출할 때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이 방위비 인데 지출규모가 엄청나며, 그만큼 다른 분야의 투자를 축소하게 되 어 국가와 사회의 균형 발전을 더디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방 위비처럼 직접적이고 유형적인 비용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다 양한 기회비용까지 포함하면 분단비용은 국가와 개인 모두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 곳곳에서 산출이 불가능할 만큼 발생하고 있다. 최 근 북한의 도발로 일어난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도 분 단이 가져온 폐해로서, 이런 비용을 추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 깝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통일비용은 통일이 수반하는 경제적 비경제적 비용의 총체를 의미하며, 여기에는 제도통합 비용, 위기관리 비용, 그리고 경제적 투자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제도통합 비용이란 정치 및 행정제도 그리고 금 융과 화폐통합 등 상이한 두 개의 체제를 통합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 이다. 여기에는 북한의 체제전환을 위한 공무원 재교육 비용과 주민의 재사회화 및 기술 교육 비용이 포함된다. 위기관리 비용이란 통일과정 에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치안 및 인도적 차원의 긴급구호 등 초기 사회문제 처리에 소요되는 비용이다. 여기에는 북한 주민의 복지를 증 진시키기 위한 사회보장성 비용이 포함된다. 그리고 경제적 투자비용 이란 인프라 및 생산시설 구축 등 북한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추진하고 북한 주민의 생활기회를 확충하는데 소요되는 투자이다. 통일비용에 대한 추정치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추정된 통일비 용이 편차가 나는 것은 통일의 시기와 방법, 가정된 북한 주민의 소득 수준, 설정된 비용지출 기간 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추정 방식은 분단국 통일의 사례를 연구하고 통일을 치밀하게 준비해 간다 면 통일비용이 상당히 절감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그 금액에 관계없이 어느 정도의 부담이 있을 164 통일문제이해 2012

165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통일이 그 부담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 도의 막대한 편익을 창출할 것이라는 점도 사실이다. 즉, 통일이 되면 분단비용의 소멸에 더하여 막대한 경제적 비경제적 보상과 혜택을 가 져오게 된다. 통일이 가져다줄 편익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통일은 곧 분단해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분단상황에서 소요되 는 분단비용을 소멸시킨다, 우리는 지난 60년 이상 분단상태로 살아 오면서 우리의 의식 속에는 이미 분단이 내재화되어 있다. 이에 따라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분단비용을 지불해 왔고 또 앞으로 얼마 나 더 부담해야 할지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분단비용을 운 명적으로 받아들여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체감할 수 없 는 것이 되어 버렸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가 분단으로 인해 부담하는 유ㆍ무형의 천문학적인 비용은 통일로 인해 소멸된다. 분단비 용의 해소는 통일 이후 즉각적으로 얻어지는 이익이며, 이는 통일비용 으로의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통일비용의 부담을 덜어주게 된다. 분 명한 사실은 분단비용이 통일비용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이다. 분단비 용은 분단이 지속되는 한 영원히 부담해야 할 소모적인 비용인데 반 해 통일비용은 한시적 부담이자 투자성 비용이기 때문이다. 통일과 함 께 이러한 분단비용이 소멸된다는 점에서 통일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 하다. 둘째, 경제적으로는 경제규모의 확대에 따른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 고 경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규모의 경제란 경제활동 규모가 증대됨에 따라 생산단가가 절약되고 이익이 증대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통일이 되어 북한의 인구가 우 리의 경제에 포함되면 총인구는 7천만 명을 넘어서게 되고 노동과 소 비시장도 확대될 것이다. 규모의 경제는 생산비의 하락을 가져오면서 우리 상품의 국제경쟁력도 높여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투자 기관인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가 북한을 리스크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통일이 될 경우 막대한 자산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한 분 석은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셋째, 통일은 남북한 공간통합으로 인해 섬 아닌 섬 생활에서 벗 어나 우리의 생활 공간을 대륙으로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남북 제5장 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165

166 간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면, 육로를 통한 대륙 진출의 꿈이 실현되면 서 우리의 생활반경과 사고 영역의 확장을 가져올 것이다. 공간통합이 우리 상품의 수송비와 수송시간을 크게 절감하는 등 경제적 편익을 창출함은 물론이다. 일례로, 벨라루시까지 선박으로 수송할 경우 26 일이 소요되며 수송비용은 약 2,100$/TEU 8 이나 철도를 이용할 경우 16일에 1,300$/TEU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시 베리아의 천연가스를 송유관을 통해 도입한다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넷째, 통일은 경제적 보상이나 이익만이 아니라 금전적으로 추정할 수 없을 만큼 무형의 이익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우선 통일은 식민지 지배, 분단, 그리고 전쟁과 대결로 이어져온 굴절된 민족의 역사를 바 로 잡는 계기가 된다. 우리 국민들이 통일을 이루었다는 성취감과 자 부심은 국민적 일체감을 고취시킬 것이다. 다섯째, 통일은 더 큰 대한민국 으로 진입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건국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기간에 이뤄낸 자랑스러운 역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선진화를 통해 부강한 선진일류 국가를 창출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통일이 되면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 종결되고 국민의 힘을 국가 발전에 결집하는 기반이 된다. 그 동안 불가피하게 부분적으로 제한되어 왔던 자유도 신장되고 사회문 화적 다양성이 증진되면서 우리 내부의 편견과 차별의식도 상당히 약 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통일은 국민의식의 성숙을 통해 국가 발전과 더불어 국격의 향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8_TEU는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있는 길이 20피트 상당의 컨테이 너 박스 1개를 나타내는 단위를 말 한다. 종합적으로 볼 때, 통일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막대한 편익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통일 비용은 한시적이지만, 통일은 분단비용의 즉각적 소멸을 가져오며 통 일편익은 영구히 창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2010년 2월 방한한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이 통일비용 문제로 다른 결정적 인 점을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 독일이 유럽 심장부에서 평화와 자유 를 누리고 산다는 사실은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 통일로 1,700만 명의 동독주민이 수십 년의 독재를 뒤로 하고 안정적 인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살 수 있게 되었고, 유럽 분단이 종식되어 166 통일문제이해 2012

167 냉전이 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이 사라졌다 는 언급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표 5-1 통일비용과 통일편익 구분 통일비용 통일편익 개념 특징 통일이 수반하는 경제적 비경제적 비용의 총체 - 제도통합비용 : 정치 행정제도, 금융 화폐 통합비용 등 - 위기관리비용 : 치안, 인도적 차원의 긴급구호, 실업 등 초기 사회문제 처리 비용 - 경제적 투자비용 : 인프라, 생산시설 구축 비용 등 총통일비용에서 통일편익을 차감한 순통일비용(net cost)으로 정의하는 것이 정확 통일의 시기, 방법 등에 따라 비용의 차이가 발생 통일 후 일정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발생 회수 가능한 투자비용의 성격 경제적 능력에 따라 신축적으로 조절 가능 통일로 인하여 얻게 되는 경제적 비경제 적 보상과 혜택 - 경제적 편익 : 분단비용 해소, 규모의 경제 실현, 시장의 확대, 산업 및 생산요소 의 보완성 증대 등 - 비경제적 편익 : 이산가족 문제해결, 국 제사회에서의 위상 제고, 전쟁 위험의 해소 등 통일이후 지속적으로 영구히 발생 통일비용 지출과 동시에 발생 통일편익이 통일비용보다 훨씬 큼 2. 통일한국의 미래비전 통일은 단순히 분단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 라 더 큰 대한민국 이라는 미래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일 제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면서 자유민주국가를 건설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기간에 달성하는 등 자랑스러운 역사를 발달시켜왔다. 그 러나 6 25 전쟁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북한의 도발과 긴장조성은 우 리 사회의 발달을 저해하고 있다. 통일이 성취된다면 분단의 폐해를 극복하고 부강한 선진일류국가, 8천만 겨레가 더불어 사는 진정한 민 족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토대 위에서 정치적 자유의 보장, 경제적 풍요, 그리고 다양성과 자율성의 신장이 실현되는 조화 로운 공동체가 될 것이다. 인류에게는 다양한 체제가 존재해 왔지만, 역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야말로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이상 적 제도임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한국은 이러한 제도의 장점을 극대화 하는 한편 그 결점을 보완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우리 민족의 잠재력 제5장 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167

168 이 최대한 발휘되고 역사의 발전을 주도하는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거듭 날 것이다. (1) 정치적 차원 통일한국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제시된 1민족 1국가 1체제 1정 부를 형성함으로써 분단체제를 종결하고 남북 간 갈등과 대결을 해 소하며, 한민족 모두의 역량을 결집하여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식민지 지배, 분단, 남북갈등을 거치면서 부득이 자유가 일부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남북 간 대결로 인해 민족의 힘이 분산될 수밖 에 없었다. 통일은 냉전시대의 유물인 이념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정치 적 시민적 자유의 신장을 가져올 것이며,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제도 를 통해 더 큰 대한민국 의 기초를 놓게 될 것이다.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통일한국은 시대착오적인 사회주의 세 습독재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자유민주국가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실을 공유하는 계기가 된다. 구체적으 로, 북한주민은 퇴행적 수령 중심의 일당독재 체제를 청산하고 억압 과 착취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같은 민족인 북한 주민이 자유민 주주의 체제에서 우리와 같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공유하고 자유와 인권 등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게 된다. 남북한 주민이 함께하는 통일 한국은 같은 민족으로서의 일체감을 확보한 가운데 국민적 역량을 결집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시킬 것이다. 분단은 민족적 역량의 낭비와 민족의 위상 저하를 가져왔다. 분단이 지속되는 한 우 리의 외교적 노력은 분단문제의 해결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통일한국은 남북 간에 진행되어온 소모적 외교전을 종결하고 국가 이 익을 최우선 시 하는 외교 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 한 단일민족국가의 성취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여론을 선도하는 등 우리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기반이 되기도 할 것이다. (2) 경제적 차원 통일한국은 경제적으로 시장경제 질서를 바탕으로 성장과 분배가 168 통일문제이해 2012

169 조화롭게 이루어지면서 풍요로운 국가가 될 것이다. 우리 겨레가 행복 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물질적 기반이 향상되어야 하며, 생산성 향상 을 추동하는 가장 효율적인 제도는 시장경제일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 는 경제 분야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합리적 선택을 보장함으로써 물질 적 풍요를 가져 올 수 있는 사실상의 최선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특 히 첨단산업과 정보산업의 융화 그리고 녹색성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통일한국은 일차적으로 한반도의 공간 통합을 의미한다. 휴전선으 로 인한 국토의 불균형 발전이 청산되며 한반도는 남과 북 그리고 동 과 서가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지역적으로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통일한국은 중국과 러시아 등 대륙국가와 미국과 일본 등 해양 국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가 될 것이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경제권은 그 규모가 확대일로에 있으며 향 후 세계 경제 속의 위상을 높여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동아시아권 경제가 팽창하면 이에 비례하여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교역 물동량도 함께 증대할 것이다. 동아시아 내 경제협력이 가속화될 경우, 통일된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무역의 요충지이자 중 개수송의 교량으로서 동북아의 무역 및 물류기지로 부상할 수 있다. 한반도가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관광 등 사회문화적 중심 으로도 발전해 나갈 것이다. 결국 한반도의 공간통합과 더불어 대륙 경제와 해양경제를 접목하는 허브국가는 통일한국의 지경학적 미래비 전이다. 통일한국은 통합의 이점으로 인해 경제 규모도 커질 것으로 기대된 다. 안보불안이 해소되면서 이른바 코리 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가 사라 지고, 시장의 규모가 확대된다. 우리의 자 본과 기술 그리고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 의 결합 등 남북한 경제가 상호 보완적으 로 작용하면서 통일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 나고 이에 따라 우리 상품의 국제경쟁력이 대폭 신장될 것이다. 일례로, 미국의 투자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반도 제5장 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169

170 회사인 골드만 삭스는 통일한국의 경제 규모는 30~40년 후에 이르면 독일과 일본을 능가하여 세계 8위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골드만 삭스는 북한은 리스크가 아니라 통일한국의 자산 이라며 그 근거로 북한의 풍부하고 경쟁력 있는 노동력, 지하자원과 인구 구조 의 시너지 효과, 그리고 북한의 높은 성장 잠재력을 들었다. 표 년 통일한국의 경제적 위상 US $ (2007) 통일문제이해 * 출처 : 골드만 삭스(GS Global ECS Research) (3) 사회적 차원 통일한국 일본 독일 프랑스 통일한국은 국민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실현될 것이다. 통 일이 되면 사회적 자원과 시설, 그리고 역할이 공정하게 배분되는 복지 정책과 분배제도가 정착될 것이다. 부와 소득의 편재, 사회적 낙오자의 생성, 그리고 이로 인한 계층구조의 양극화는 극복해야 할 시대적 과 제이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일자리가 주어지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최소한도의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 통 일이 되면 분단비용으로 지출되던 재원을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데 전환함으로써 국민생활수준의 균등한 향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통일이 되면 사회적으로는 보다 다원화되고 자율적인 사회로 진입하 게 된다. 분단은 우리 국민들 사이에 이념적 대립을 가져왔고 이에 따

171 라 제반 집단 간 불신과 대립 그리고 갈등을 초래하였다. 통일한국은 국민적 일체감을 바탕으로 상호 신뢰와 존중의 정신이 발현되고, 성 숙된 시민의식을 통해 조화로운 공동체로 거듭 나게 될 것이다. 분단은 우리의 생활반경을 한반도의 남쪽으로 제한하였지만, 통일 한국은 우리의 생활공간도 대폭 확장시켜 줄 것이다. 지금까지는 비행 기를 타야 해외로 나갈 수 있었다면 통일한국 시대에는 자동차나 열 차를 이용한 외국 여행도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멀게만 느껴지는 백 두산이나 광개토대왕비도 우리 생활속에 보다 가까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4) 문화적 차원 통일한국은 구성원 개개인의 가치관과 생활양식이 존중되는 문화적 다원주의가 정착될 것이다. 분단은 권위주의, 집단 간 편견과 차별의 식, 그리고 사고의 획일화를 가져오는 등 개인의 사고와 사회의 다양 성을 일정 부분 제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통일한국은 다양한 문 화가 조화를 이룬 가운데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확대 재생산되는 다원주의 사회가 정착될 것이다. 통일한국은 8천만 겨레의 일체감을 높여 줄 것이다. 통일을 이루었 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민족적 자부심은 고양될 것이다. 북한 주민 도 전체주의 사회의 신민적 사고에서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적 사고를 발달시켜 나갈 것이다. 물론 통일이 될 경우,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이 남북한 주민 간 편견과 차별의식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러나 이런 갈등은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보면 지엽적이고 부차적일 수밖 에 없다. 우리의 역사에 비춰 볼 때 분단의 역사는 순간이며, 통일은 새로운 민족의식을 일깨워 줄 것이기 때문이다. 고양된 민족적 일체감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통일한국 시대에는 우 리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한편 보편적 세계 주의에 입각하여 보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문화를 발달시켜 나가게 될 것이다. 세계는 더욱 좁아지고 있으며 보편적 문화의 확산은 세계적 추 세이다. 통일한국은 문화적 편견을 극복하고 열린 민족주의에 입각하 여 선진 문화를 적극 도입해 나가게 될 것이다. 또한 민족 고유의 전통 제5장 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171

172 문화를 지속적으로 발굴 보존하고 세계적 추세에 맞춰 재구성해 나감 으로써 문화의 정통성과 개방성을 접목시키게 될 것이다. 결국 성숙한 시민의식 그리고 문화적 융합을 통한 다원적 대한민국과 개방적 대한 민국은 문화적 차원에서 예견할 수 있는 통일한국의 미래비전이다. 요약컨대, 우리는 통일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하에 서 개인의 존엄성과 행복이 보장되는 사회를 꿈꾼다. 통일한국은 8천 만 겨레가 안전하고 풍요로우며 또한 더불어 살아가는 민족공동체이 다. 통일이 되면 민족통일국가가 완성되면서 안으로는 사회 구성원 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신장되고, 밖으로는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통일이 되면 남북의 경제적 보완성, 국토의 균형적 발전, 그리고 대륙과 해양을 잇는 동북아 경제 허브가 구축되면서 물 질적으로 풍요로운 국가가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성숙한 시민의식 과 공동체적 미덕을 접목시켜 국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는 복지국가 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국민적 일체감을 바탕으로 민족 의 전통문화와 세계의 보편적 문화가 융합되는 문화적 다원주의 국가 가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꿈꾸는 통일한국의 미래비전은 정치적 자 유, 경제적 풍요, 사회적 신뢰, 그리고 문화적 다원성이 보장되는 선진 일류국가이다. 172 통일문제이해 2012

173 제3절 통일을 위한 우리의 과제 깝게도 분단의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분단 질서를 당연하 안타게 받아들이고 통일에 대한 의지가 약화되는 경향이 나 타나고 있다. 우리는 분단국가의 국민으로서 통일을 달성해야할 역사 적 책무를 가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우리는 통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통일의 실질적 기반을 구축해나가야 할 것이다. 2010년 2월 방한한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생각보다 빨리 통일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미리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 는 게 필요하다 고 말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2010년 광복절 경 축사에서 통일은 반드시 온다 며 그 날을 대비해 현실적인 방안 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 고 언급하였다. 이제 우리 모두가 통일을 현실 의 문제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통일을 위 한 몇 가지 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들의 올바른 통일관을 형성하고 국민적 합의기반을 구축 해나가야 한다. 올바른 통일관이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제5장 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173

174 확고한 신념과 건전한 안보관, 그리고 민족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통일을 이룩하는데 필요한 태도와 가치관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난 세기 공산주의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자유민주주의야 말로 인간의 존 엄성과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선의 정치체제임을 확인했다. 경제체제로 는 시장경제가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재화의 분배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제도인 것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과 북이 한민족 으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기본권과 자유와 복지가 보장되는 민족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개인의 자율성이 존중되는 다 원주의 사회를 지향한다. 남북문제와 한반도 현안을 다루는 국가정 책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교환될 수 있으며, 건전한 국민 여론은 통일정책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통일은 상대가 있다는 점에서 무분별한 논의는 지양되어야 하며,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건전한 시민의식이 요구된다. 정부도 통일정책을 추진 함에 있어서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하 여야 한다. 정책의 전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국민 참여를 보장하고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투명하게 추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둘째, 북한 실체에 대해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남북 간에는 적대적 인 분단 상황에서 생성된 이질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질성 속에서 북한 사회가 지니는 여러 문제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북한에 대한 허상과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아 야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해야 통일정책이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먼저, 북한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환상을 가지고 대하거나 폄하하거나 상대방에게 유화의 성격을 보일 목적으로 실체를 외면하 고 미화해서도 안 된다. 앞으로 남북 간에는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할 수 있어야 호혜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 남북관계를 재정립하고 국민이 지지하는 174 통일문제이해 2012

175 온당한 목표를 세웠다면 함께 상호작용 해야 할 대상의 내면과 속성, 그리고 본질을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도자가 선한지 그렇지 못 한지, 국민이나 인민에 의해서 운영되는 정체( 政 體 )인지, 신뢰와 호혜 를 집행할 사회의지가 구동하는가와 같은 격위와 성품을 파악하는 작업이 그것인데, 남북관계를 보다 건전하게 꾸려가기 위해서는 이의 구체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한반도의 무력공산화 통일을 목적으로 1950년에 6 25 남침 전쟁을 일으켜서 동족을 살상하고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 지난 2010년, 6 25 전쟁이 발발한지 60주년이 되는 해에 북한은 천안함 폭 침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과 같은 두 차례의 커다란 무력도발 을 저질렀다. 이런 북한의 도발은 UN헌장, 군사정전협정, 그리고 남북 간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이며, 특히 민간인 거주 지역까지 무 차별적으로 포격한 연평도 포격도발은 비인도적 만행임을 알아야 한 다. 북한은 지난 60여 년간 자기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대남 군사공격 과 테러, 침투 도발을 남북관계를 이끄는 일종의 수단으로 활용해 왔 다. 북한은 도구적 개념으로서의 군사행동은 물론 살상행위를 저질러 왔다. 퇴행적 의식과 목적 위주의 도구적 행동양식이 습관적으로 군 사공격을 하고 위협을 가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핵 실험 으로 국제사회를 협박하고 민족공멸의 위협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생 각하는 것은 단지, 호전성에서 출발한 것만은 아니다. 셋째, 국가 안보와 대북 포용에 대해서는 원칙과 기본을 바탕으로 한 균형 잡힌 정책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남북관계에서 국 민의 안전과 국가 안보가 최우선 되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이 약속과 믿음을 저버리고 국민 안전과 신변에 위해를 가할 때에는 이와 같은 기본 원칙 안에서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 북한은 포용의 대상인 동시에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핵심 주체라 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상대 를 무조건 적대적으로만 대할 수는 없고, 포용해야 할 대상이라고 해 서 마냥 껴안을 수만도 없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안보와 포용 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남북관계는 변화하는 여건과 환경에 의해서 제5장 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175

176 지속적으로 조율되어야 할 것이다. 한민족의 상생과 공영, 그리고 평화통일은 남과 북의 교류와 협력, 그리고 대화와 같은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통일은 서로가 약속을 지키고 무력도발과 같은 비정상적인 적대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신뢰와 믿음 은 모든 당사자가 함께 지키고 노력해야 하며,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 과 인내만으로는 지켜갈 수 없다. 북한이 저지른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은 우리에 게 중요한 교훈을 일깨워 주었다. 북한의 대남 전략의 기조는 변화하 지 않았다는 사실과 북한 정권의 호전성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따라 서 우리의 생존을 지키는 안보의 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 다고 하겠다. 현 시점에서 한반도의 안보환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굳건한 안보 태세는 주도적이면서도 실효성 있는 통일 해법의 모색을 위한 선결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우리안보를 위협하는 데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그것은 협 박과 도발, 그리고 보상이라는 악순환이 그것인데, 이명박 정부의 비 핵 개방 3000 은 이러한 악순환을 끊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 정부 는 북한에 대하여 이러한 경험적 행동양식과 방식의 오류를 시정하고 근본적으로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원칙과 신뢰의 대북정책은 이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북한이 자신들의 퇴행성을 시정하고 그간의 잘 못을 사과하고 정정당당히 행동할 때 진정한 남북대화와 큰 규모의 협력이 이어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소중함을 인식해야 한다. 국민은 국가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국가단위가 모여서 국제사회를 이룬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스스로 자기생존을 추구한다. 통일을 이루는 대계는 남북한 모두에게 소중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이 먼저 보장되지 않는다면 통일도 무의미하다. 넷째, 통일에 대비하여 우리의 통일 역량을 구축하여야 한다. 통일 의지와 통일 정책이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해도 통일을 실천해나 갈 역량이 구비되어 있지 않으면 통일을 위한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176 통일문제이해 2012

177 이를 놓칠 수 있다. 통일 역량을 강화하는 문제는 다방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 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우리의 경제적 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이 다. 우리의 경제 성장은 통일을 위한 필수 항목이다. 경제 역량을 강 화함으로써 통일 과정에서 지출해야 할 통일 비용에 대한 과도한 걱 정을 없애고 통일을 적극적으로 준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통일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인적 역량의 강화도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 고 통일과정과 통일 후 통합의 시대를 주도적으로 건설할 수 있는 미 래세대에 대한 투자와 교육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통일은 경제적 부담을 수반하기 때문에 상당수 의 우리 국민은 통일비용의 문제로 인해 통일에 주저하는 경향이 있 다. 정부도 이런 점에 유의하면서 통일재원 마련을 통한 통일의 실질 적 기반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 이른바 통일항아 리 사업을 들 수 있다. 통일항아리는 남북협력기금 내에 기존의 남북 협력계정에 새로이 신설하려는 통일계정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용어이 다. 통일계정의 신설은 통일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자신감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국민들의 통일의지를 결집하며 통일시 소요되는 비용을 미리 준비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통일준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한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변국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외교 적 역량강화가 필수적이다. 한반도 통일은 우리의 민족 내부의 문제인 동시에 국제 문제라는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 두 개의 국가로 나뉘 어져 있던 한반도가 통일한국이 됨으로써 발생하게 될 불투명한 미래 전망에 대해 주변국들은 자국의 이익의 축소와 변동이라는 관점에서 우려하여 결과적으로 이를 환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들에게 통일된 한 국의 존재가 그들의 국가 이익 증대에 기여할 것임을 분명히 설득해야 할 것이다. 특히 주변국들 모두의 이익에 필수적인 동북아시아의 평화 와 안정은 한반도 통일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각인시켜 야 한다. 제5장 통일미래의 비전과 과제 177

178 요약컨대, 통일의 시기와 방법을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 는 분단국가에 살고 있으며 분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 들의 해결은 궁극적으로 통일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 양한 통일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각각에 대해 철저히 준비할 필요가 있 다. 정부는 올바른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하며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반 국민은 올바른 통일관을 배 양하고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해서는 건설적 비판과 협조를 병행하여야 할 것이다. 통일의 실질적 기반을 구축하고 통일한국의 미래비전을 달 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 간 일체감 형성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178 통일문제이해 2012

179 6 부록 1. 대한민국 헌법 남북공동성명 3.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4.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남북공동선언 6.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7. 한반도 신 평화구상 8. 그랜드 바겐 9. 3대 공동체 통일구상 10.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180 1. 대한민국 헌법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 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 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 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 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 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 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제1장 총강 제1조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2조 1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2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제5조 1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 한다. 2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 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제6조 1 헌법에 의하여 체결 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180 통일문제이해 2012

181 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2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 된다. 제7조 1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 을 진다. 2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제8조 1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2 정당은 그 목적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 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 3 정 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 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 할 수 있다. 4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 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 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 제9조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야 한다.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 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 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11조 1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 회적 신 분 에 의하 여 정치적 경제적 사 회적 문 화 적 생 활 의 모 든 영 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2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3 훈장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 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제6장 부록 181

182 제12조 1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 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보안처분 또는 강제 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2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 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3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 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범인인 경우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도 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4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 5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가 있음을 고지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 다.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자의 가족등 법률이 정하는 자에게는 그 이 유 와 일시 장 소 가 지체없이 통 지되어야 한 다. 6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적부의 심사를 법원 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 7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구 속의 부당 한 장기화 또는 기 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 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 제13조 1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 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 벌받지 아니한다. 2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 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3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 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182 통일문제이해 2012

183 제14조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제16조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 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제18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제20조 1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2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제21조 1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2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 되지 아니한다. 3 통신 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 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4 언론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 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 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 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제22조 1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2 저작자 발명가 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 제23조 1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2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3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 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제25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 제6장 부록 183

184 제26조 1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 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 2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 제27조 1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 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2 군인 또는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 대한민국의 영역안에서는 중 대한 군사 상 기밀 초병 초 소 유 독 음 식물 공 급 포 로 군 용 물 에 관 한 죄중 법률이 정한 경우와 비상계엄이 선포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지 아니한다. 3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4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5 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 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 제28조 형사피의자 또는 형사피고인으로서 구금되었던 자가 법률이 정하는 불기소처분을 받거나 무죄판결을 받은 때에는 법률이 정하 는 바에 의하여 국가에 정당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제29조 1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정당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한다. 2 군인 군무원 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 훈련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외 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 은 청구할 수 없다. 제30조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 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 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 제31조 1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184 통일문제이해 2012

185 3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4 교 육 의 자 주 성 전 문 성 정치적 중 립성 및 대 학 의 자 율 성 은 법 률 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5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 6 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32조 1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 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2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진다.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 과 조건을 민주주의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 3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4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 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5 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6 국가유공자 상이군경 및 전몰군경의 유가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우선적으로 근로의 기회를 부여받는다. 제33조 1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 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2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 단체교 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3 법률이 정하는 주요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 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를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아니 할 수 있다. 제34조 1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2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3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4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 를 진다. 5 신체장애자 및 질병 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 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제6장 부록 185

186 6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 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제35조 1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 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2 환경권의 내용과 행사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 3 국가는 주택개발정책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 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제36조 1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2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3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제37조 1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 되지 아니한다. 2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 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 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제38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 제39조 1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2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제3장 국회 제40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 제41 조 1 국회는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에 의하 여 선출 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 2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 3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 로 정한다. 186 통일문제이해 2012

187 제42조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으로 한다. 제43조 국회의원은 법률이 정하는 직을 겸할 수 없다. 제44조 1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중 국회의 동의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 2 국회의원이 회기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에는 현행범인이 아닌 한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중 석방된다. 제45조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제46조 1 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다. 2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3 국회의원은 그 지위를 남용하여 국가 공공단체 또는 기업체와 의 계약이나 그 처분에 의하여 재산상의 권리 이익 또는 직위를 취 득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할 수 없다. 제47조 1 국회의 정기회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매년 1회 집회 되며, 국회의 임시회는 대통령 또는 국회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에 의하여 집회된다. 2 정기회의 회기는 100일을, 임시회의 회기는 30일을 초과할 수 없다. 3 대통령이 임시회의 집회를 요구할 때에는 기간과 집회요구의 이 유를 명시하여야 한다. 제48조 국회는 의장 1인과 부의장 2인을 선출한다. 제49조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 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가부동수 인 때에는 부결된 것으로 본다. 제50조 1 국회의 회의는 공개한다. 다만,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거나 의장이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 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2 공개하지 아니한 회의내용의 공표에 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한다. 제6장 부록 187

188 제51조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기타의 의안은 회기중에 의결되지 못한 이유로 폐기되지 아니한다. 다만,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52조 국회의원과 정부는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제53조 1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되어 15일 이내에 대 통령이 공포한다. 2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제1항의 기간내에 이의 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국회의 폐 회중에도 또한 같다. 3 대통령은 법률안의 일부에 대하여 또는 법률안을 수정하여 재 의를 요구할 수 없다. 4 재의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회는 재의에 붙이고, 재적의원과 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 을 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5 대통령이 제1항의 기간내에 공포나 재의의 요구를 하지 아니한 때에도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6 대통령은 제4항과 제5항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된 법률을 지체 없이 공포하여야 한다. 제5항에 의하여 법률이 확정된 후 또는 제4 항에 의한 확정법률이 정부에 이송된 후 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 하지 아니할 때에는 국회의장이 이를 공포한다. 7 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을 경과함 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 제54조 1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 확정한다. 2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90일전 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전까지 이를 의 결하여야 한다. 3 새로운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한 때에 는 정부는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다음의 목적을 위한 경비는 전년도 예산에 준하여 집행할 수 있다. 1. 헌법이나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 운영 2. 법률상 지출의무의 이행 188 통일문제이해 2012

189 3.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 제55조 1 한 회계연도를 넘어 계속하여 지출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정부는 연한을 정하여 계속비로서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 2 예비비는 총액으로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 예비비의 지출 은 차기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제56조 정부는 예산에 변경을 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추가경정예 산안을 편성하여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 제57조 국회는 정부의 동의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 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제58조 국채를 모집하거나 예산외에 국가의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하 려 할 때에는 정부는 미리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 제59조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 제60조 1 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 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 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 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2 국회는 선전포고, 국군의 외국에의 파견 또는 외국군대의 대한 민국 영역안에서의 주류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제61조 1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하여 조 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 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 2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절차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 한다. 제62조 1 국무총리 국무위원 또는 정부위원은 국회나 그 위원회에 출석하여 국정처리상황을 보고하거나 의견을 진술하고 질문에 응 답할 수 있다. 2 국회나 그 위원회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무총리 국무위원 또 는 정부위원은 출석 답변하여야 하며,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이 출석요구를 받은 때에는 국무위원 또는 정부위원으로 하여금 출 제6장 부록 189

190 석 답변하게 할 수 있다. 제63조 1 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 할 수 있다. 2 제1항의 해임건의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에 의하 여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제64조 1 국회는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안에서 의사와 내부 규율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2 국회는 의원의 자격을 심사하며, 의원을 징계할 수 있다. 3 의원을 제명하려면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4 제2항과 제3항의 처분에 대하여는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 제65조 1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 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 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2 제1항의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가 있어 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다 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 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3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 4 탄핵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 그러나, 이에 의하 여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아니한다. 제4장 정부 제1절 대통령 제66조 1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 2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 호할 책무를 진다. 3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190 통일문제이해 2012

191 4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 제67조 1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2 제1항의 선거에 있어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 자로 한다. 3 대통령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 분의 1 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 4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 5 대통령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68조 1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는 때에는 임기만료 70일 내지 40 일전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2 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 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 한다.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 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 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제70조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제71조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 한다. 제72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 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제73조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 비준하고, 외교사절을 신임 접수 또는 파견하며, 선전포고와 강화를 한다. 제74조 1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 한다. 제6장 부록 191

192 2 국군의 조직과 편성은 법률로 정한다. 제75조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 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 할 수 있다. 제76조 1 대통령은 내우 외환 천재 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 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 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2 대통령은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상태에 있어서 국 가를 보위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가 불 가능한 때에 한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3 대통령은 제1항과 제2항의 처분 또는 명령을 한 때에는 지체없 이 국회에 보고하여 그 승인을 얻어야 한다. 4 제3항의 승인을 얻지 못한 때에는 그 처분 또는 명령은 그때부 터 효력을 상실한다. 이 경우 그 명령에 의하여 개정 또는 폐지되었 던 법률은 그 명령이 승인을 얻지 못한 때부터 당연히 효력을 회복 한다. 5 대통령은 제3항과 제4항의 사유를 지체없이 공포하여야 한다. 제77조 1 대통령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 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 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 할 수 있다. 2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한다. 3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 도,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 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4 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 5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 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제78조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원을 임면한다. 192 통일문제이해 2012

193 제79조 1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 감형 또는 복권 을 명할 수 있다. 2 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3 사면 감형 및 복권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80조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훈장 기타의 영전을 수 여한다. 제81조 대통령은 국회에 출석하여 발언하거나 서한으로 의견을 표시 할 수 있다. 제82조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 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또한 같다. 제83조 대통령은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 장 기타 법률이 정하 는 공사의 직을 겸할 수 없다. 제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 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제85조 전직대통령의 신분과 예우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 제2절 행정부 제1관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제86조 1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2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 3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총리로 임명될 수 없다. 제87조 1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2 국무위원은 국정에 관하여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무회의의 구 성원으로서 국정을 심의한다. 3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4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수 없다. 제6장 부록 193

194 제2관 국무회의 제88조 1 국무회의는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중요한 정책을 심의한다. 2 국무회의는 대통령 국무총리와 15인 이상 30인 이하의 국무위 원으로 구성한다. 3 대통령은 국무회의의 의장이 되고, 국무총리는 부의장이 된다. 제89조 다음 사항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1. 국정의 기본계획과 정부의 일반정책 2. 선전 강화 기타 중요한 대외정책 3. 헌법개정안 국민투표안 조약안 법률안 및 대통령령안 4. 예산 안 결산 국 유재산처분 의 기본계획 국가의 부담 이 될 계약 기타 재정에 관한 중요사항 5. 대통령의 긴급명령 긴급재정경제처분 및 명령 또는 계엄과 그 해제 6. 군사에 관한 중요사항 7. 국회의 임시회 집회의 요구 8. 영전수여 9. 사 면 감 형과 복 권 10. 행정각부간의 권한의 획정 11. 정부안의 권한의 위임 또는 배정에 관한 기본계획 12. 국정처리상황의 평가 분석 13. 행정각부의 중요한 정책의 수립과 조정 14. 정당해산의 제소 15. 정부에 제출 또는 회부된 정부의 정책에 관계되는 청원의 심사 16. 검찰총장 합동참모의장 각군참모총장 국립대학교총장 대사 기 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과 국영기업체관리자의 임명 17. 기타 대통령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이 제출한 사항 제90조 1 국정의 중요한 사항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 여 국가원로로 구성되는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 2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의장은 직전대통령이 된다. 다만, 직전대통 령이 없을 때에는 대통령이 지명한다. 3 국가원로자문회의의 조직 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194 통일문제이해 2012

195 제91조 1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대외정책 군사정책과 국내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국무회의의 심의에 앞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 하여 국가안전보장회의를 둔다. 2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대통령이 주재한다. 3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조직 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92조 1 평화통일정책의 수립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 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 2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조직 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 률로 정한다. 제93조 1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한 중요정책의 수립에 관하여 대통령 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민경제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 2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조직 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3관 행정각부 제94조 행정각부의 장은 국무위원 중에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 령이 임명한다. 제95조 국무총리 또는 행정각부의 장은 소관사무에 관하여 법률이나 대통령령의 위임 또는 직권으로 총리령 또는 부령을 발할 수 있다. 제96조 행정각부의 설치 조직과 직무범위는 법률로 정한다. 제4관 감사원 제97조 국가의 세입 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 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 령 소속하에 감사원을 둔다. 제98조 1 감사원은 원장을 포함한 5인 이상 11인 이하의 감사위원 으로 구성한다. 2 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임기는 4년 으로 하며,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 제6장 부록 195

196 3 감사위원은 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임기는 4년 으로 하며,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 제99조 감사원은 세입 세출의 결산을 매년 검사하여 대통령과 차년도 국회에 그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 제100조 감사원의 조직 직무범위 감사위원의 자격 감사대상공무원의 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5장 법원 제101조 1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 2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된다. 3 법관의 자격은 법률로 정한다. 제102조 1 대법원에 부를 둘 수 있다. 2 대법원에 대법관을 둔다. 다만,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대 법관이 아닌 법관을 둘 수 있다. 3 대법원과 각급법원의 조직은 법률로 정한다.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 한다. 제104조 1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2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 명한다. 3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 법원장이 임명한다. 제105조 1 대법원장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2 대법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 임할 수 있다. 3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의 임기는 10년으로 하며, 법률 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 4 법관의 정년은 법률로 정한다. 제106조 1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 196 통일문제이해 2012

197 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 감 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 2 법관이 중대한 심신상의 장해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퇴직하게 할 수 있다. 제107조 1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 는 법원은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그 심판에 의하여 재판한다. 2 명령 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 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 3 재판의 전심절차로서 행정심판을 할 수 있다. 행정심판의 절차 는 법률로 정하되, 사법절차가 준용되어야 한다. 제108조 대법원은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제109조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 다만, 심리는 국가의 안전보 장 또는 안녕질서를 방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할 염려가 있을 때에는 법원의 결정으로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제110조 1 군사재판을 관할하기 위하여 특별법원으로서 군사법원을 둘 수 있다. 2 군사법원의 상고심은 대법원에서 관할한다. 3 군사법원의 조직 권한 및 재판관의 자격은 법률로 정한다. 4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군인 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 초소 유독음식물공급 포로에 관한 죄중 법 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 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6장 헌법재판소 제111조 1 헌법재판소는 다음 사항을 관장한다. 1.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 2. 탄핵의 심판 3. 정당의 해산 심판 제6장 부록 197

198 4. 국가기관 상호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5.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 2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3 제2항의 재판관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 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 4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112조 1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는 6년으로 하며, 법률이 정하 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 2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3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 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제113조 1 헌법재판소에서 법률의 위헌결정, 탄핵의 결정, 정당해산의 결정 또는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결정을 할 때에는 재판관 6인 이 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2 헌법재판소는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안에서 심판에 관 한 절차,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3 헌법재판소의 조직과 운영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7장 선거관리 제114조 1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 2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 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위원장 은 위원중에서 호선한다. 3 위원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 4 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5 위원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198 통일문제이해 2012

199 6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령의 범위안에서 선거관리 국민투표관 리 또는 정당사무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으며, 법률에 저촉되 지 아니하는 범위안에서 내부규율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7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 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 로 정한다. 제115조 1 각급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인명부의 작성등 선거사무와 국민투표사무에 관하여 관계 행정기관에 필요한 지시를 할 수 있다. 2 제1항의 지시를 받은 당해 행정기관은 이에 응하여야 한다. 제116조 1 선거운동은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하에 법률이 정하 는 범위안에서 하되,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2 선거에 관한 경비는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당 또 는 후보자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 제8장 지방자치 제117조 1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 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2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는 법률로 정한다. 제118조 1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 2 지방의회의 조직 권한 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방법 기타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9장 경제 제119조 1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 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2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 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 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제120조 1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 제6장 부록 199

200 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일정한 기간 그 채취 개발 또는 이용을 특허할 수 있다. 2 국토와 자원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그 균형있는 개 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 제121조 1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 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2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 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 제122조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 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 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 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제123조 1 국가는 농업 및 어업을 보호 육성하기 위하여 농 어촌종 합개발과 그 지원등 필요한 계획을 수립 시행하여야 한다. 2 국가는 지역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 무를 진다. 3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하여야 한다. 4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 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 5 국가는 농 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 제124조 국가는 건전한 소비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의 품질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 장한다. 제125조 국가는 대외무역을 육성하며, 이를 규제 조정할 수 있다. 제126조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 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 제127조 1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200 통일문제이해 2012

201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2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 3 대통령은 제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문기구를 둘 수 있다. 제10장 헌법개정 제128조 1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2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 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제129조 제안된 헌법개정안은 대통령이 20일 이상의 기간 이를 공고 하여야 한다. 제130조 1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 하여야 하며,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 야 한다. 2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 야 한다. 3 헌법개정안이 제2항의 찬성을 얻은 때에는 헌법개정은 확정되 며, 대통령은 즉시 이를 공포하여야 한다. 부칙 <헌법 제10호, > 제1조 이 헌법은 1988년 2월 25일부터 시행한다. 다만, 이 헌법을 시 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법률의 제정 개정과 이 헌법에 의한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 기타 이 헌법시행에 관한 준비는 이 헌법시행 전에 할 수 있다. 제2조 1 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선거는 이 헌법시행일 40일 전 까지 실시한다. 2 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의 임기는 이 헌법시행일로부터 개 시한다. 제6장 부록 201

202 제3조 1 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국회의원선거는 이 헌법공포일로부터 6월 이내에 실시하며, 이 헌법에 의하여 선출된 최초의 국회의원의 임기는 국회의원선거후 이 헌법에 의한 국회의 최초의 집회일로부터 개시한다. 2 이 헌법공포 당시의 국회의원의 임기는 제1항에 의한 국회의 최 초의 집회일 전일까지로 한다. 제4조 1 이 헌법시행 당시의 공무원과 정부가 임명한 기업체의 임원 은 이 헌법에 의하여 임명된 것으로 본다. 다만, 이 헌법에 의하여 선임방법이나 임명권자가 변경된 공무원과 대법원장 및 감사원장은 이 헌법에 의하여 후임자가 선임될 때까지 그 직무를 행하며, 이 경 우 전임자인 공무원의 임기는 후임자가 선임되는 전일까지로 한다. 2 이 헌법시행 당시의 대법원장과 대법원판사가 아닌 법관은 제1 항 단서의 규정에 불구하고 이 헌법에 의하여 임명된 것으로 본다. 3 이 헌법중 공무원의 임기 또는 중임제한에 관한 규정은 이 헌법에 의하여 그 공무원이 최초로 선출 또는 임명된 때로부터 적용한다. 제5조 이 헌법시행 당시의 법령과 조약은 이 헌법에 위배되지 아니하 는 한 그 효력을 지속한다. 제6조 이 헌법시행 당시에 이 헌법에 의하여 새로 설치될 기관의 권한 에 속하는 직무를 행하고 있는 기관은 이 헌법에 의하여 새로운 기관이 설치될 때까지 존속하며 그 직무를 행한다. 202 통일문제이해 2012

203 남북공동성명 최근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며 갈라진 조국을 통일하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회담이 있었다. 서울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1972년 5월 2일부터 5월 5일까지 평양 을 방문하여 평양의 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회담을 진행하였으며, 김 영주 부장을 대신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1972년 5월 29일부터 6월 1 일까지 서울을 방문하여 이후락 부장과 회담을 진행하였다. 이 회담들에서 쌍방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하루빨리 가져와야 한 다는 공통된 염원을 안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는데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쌍방은 오랫동안 서로 만나보지 못한 결과로 생긴 남북 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긴장의 고조를 완화시키며 나아가서 조국 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완전한 견해의 일치 를 보았다. 1. 쌍방은 다음과 같은 조국통일원칙들에 합의를 보았다. 첫째,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 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둘째, 통일은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 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셋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 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2. 쌍방은 남북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 기 위하여 서로 상대방을 중상 비방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무장도발을 하지 않으며 불의의 군사적 충돌사건을 방지 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하였다. 3. 쌍방은 끊어졌던 민족적 연계를 회복하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시키 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남북사이에 다방면적인 제반교류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제6장 부록 203

204 4. 쌍방은 지금 온 민족의 거대한 기대 속에 진행되고 있는 남북적십 자회담이 하루빨리 성사되도록 적극 협조하는데 합의하였다. 5. 쌍방은 돌발적 군사사고를 방지하고 남북사이에 제기되는 문제들 을 직접, 신속 정확히 처리하기 위하여 서울과 평양 사이에 상설 직 통전화를 놓기로 합의하였다. 6. 쌍방은 이러한 합의사항을 추진시킴과 함께 남북사이의 제반문제 를 개선 해결하며 또 합의된 조국통일원칙에 기초하여 나라의 통일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이후락 부장과 김영주 부장을 공동위원 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기로 합의하였다. 7. 쌍방은 이상의 합의사항이 조국통일을 일일천추로 갈망하는 온 겨 레의 한결같은 염원에 부합된다고 확신하면서 이 합의사항을 성실 히 이행할 것을 온 민족 앞에 엄숙히 약속한다.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이 후 락 김 영 주 1972년 7월 4일 204 통일문제이해 2012

205 3.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남과 북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 라, 7 4 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여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 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 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다각적인 교 류 협력을 실현하여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 통일을 성취 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 하였다. 제1장 남북화해 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제2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 제3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을 하지 아니한다. 제4조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 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 제5조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 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 지 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 제6조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 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제7조 남과 북은 서로의 긴밀한 연락과 협의를 위하여 이 합의서 발 효 후 3개월 안에 판문점에 남북연락사무소를 설치 운영한다. 제8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에 서 남북정치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남북화해에 관한 합의의 이행 과 준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 제6장 부록 205

206 제2장 남북불가침 제9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 을 무력으로 침략하지 아니한다. 제10조 남과 북은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제11조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 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 제12조 남과 북은 불가침의 이행과 보장을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한다. 남북군사공동 위원회에서는 대규모 부대 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 및 통제문제,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문제, 군인사교류 및 정보교환문제, 대 량 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실현문제, 검 증문제 등 군사적 신뢰조성과 군축을 실현하기 위한 문제를 협의 추진한다. 제13조 남과 북은 우발적인 무력충돌과 그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당국자 사이에 직통 전화를 설치 운영한다. 제14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에 서 남북군사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불가침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 및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 제3장 남북교류 협력 제15조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전체의 복리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원의 공동개발, 민족 내부 교류로 서의 물자교류, 합작투자 등 경제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제16조 남과 북은 과학 기술, 교육, 문화 예술, 보건, 체육, 환경과 신 문, 라디오, 텔레비전 및 출판물을 비롯한 출판 보도 등 여러분야 에서 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206 통일문제이해 2012

207 제17조 남과 북은 민족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실현한다. 제18조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자유로운 서신거래와 왕래와 상봉 및 방문을 실시하고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실현하며, 기 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다. 제19조 남과 북은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로, 항로를 개설 한다. 제20조 남과 북은 우편과 전기통신 교류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 연결 하며, 우편 전기통신 교류의 비밀을 보장한다. 제21조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경제와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서로 협력하며 대외에 공동으로 진출한다. 제22조 남과 북은 경제와 문화 등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기 위한 합의의 이행을 위하여 이 합의서 발표 후 3개월 안에 남북경 제교류 협력공동위원회를 비롯한 부문별 공동위원회들을 구성 운 영한다. 제23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 에서 남 북 교 류 협력분 과 위원회 를 구 성하 여 남 북 교 류 협력에 관 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 제4장 수정 및 발효 제24조 이 합의서는 쌍방의 합의에 의하여 수정 보충할 수 있다. 제25조 이 합의서는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서로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1991년 12월 13일 남북고위급회담 북남고위급회담 남측 대표단 수석대표 북측 대표단 단장 대 한 민 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 무 총 리 정 원 식 정무원총리연형묵 제6장 부록 207

208 4.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남과 북은 한반도를 비핵화함으로써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우리나 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며 아시아와 세 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 을 하지 아니한다. 2.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 3. 남과 북은 핵재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4.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하여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 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한다. 5. 남과 북은 이 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공동선언이 발효된 후 1개 월 안에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한다. 6. 이 공동선언은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 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1992년 1월 20일 남북고위급회담 북남고위급회담 남측 대표단 수석대표 북측 대표단 단장 대 한 민 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 무 총 리 정 원 식 정무원총리연형묵 208 통일문제이해 2012

209 남북공동선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 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 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 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 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 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 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 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 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 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대 한 민 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 통 령 국 방 위 원 장 김 대 중 김 정 일 제6장 부록 209

210 6.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 장 사이의 합의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 지 평양을 방문하였다. 방문기간중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들이 있었다. 상봉과 회담에서는 6 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고 남북관계발전 과 한반도 평화, 민족공동의 번영과 통일을 실현하는데 따른 제반 문 제들을 허심탄회하게 협의하였다. 쌍방은 우리민족끼리 뜻과 힘을 합치면 민족번영의 시대,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 나갈수 있다는 확신을 표명하면서 6 15 공동선언에 기초 하여 남북관계를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6 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간다. 남과 북은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 해 나가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중시하고 모든 것을 이에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6 15 공동선언을 변함없이 이행해 나가려는 의지를 반영 하여 6월 15일을 기념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 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관계 문제들을 화해와 협력, 통일에 부합되게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 기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 확대와 발전을 위한 문제들을 민족의 염원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양측 의회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촉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문 210 통일문제이해 2012

211 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 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 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하여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간 회담을 금년 11월중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 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 19 공동성명 과 2 13 합의 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 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 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위한 투자를 장려하고 기반시설 확충과 자 원개발을 적극 추진하며 민족내부협력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 대 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 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개성공업지구 1단계 건설을 빠른 시일안에 완공하고 2 단계 개발에 착수하며 문산-봉동간 철도화물수송을 시작하고, 통행 통 신 통 관 문제를 비롯한 제반 제도적 보장조치들 을 조 속히 완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해 개보수 문제를 협의 추진해 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며 농업, 보건의료, 제6장 부록 211

212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사업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현재의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 를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로 격 상하기로 하였다. 6. 남과 북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빛내기 위해 역 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 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백두산관광을 실시하며 이를 위해 백두산-서울 직항로 를 개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2008년 북경 올림픽경기대회에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 차를 처음으로 이용하여 참가하기로 하였다. 7. 남과 북은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과 친척들의 상봉을 확대하며 영상 편지 교 환사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금강산면회소가 완공되는데 따라 쌍방 대표를 상주시키 고 흩어진 가족과 친척의 상봉을 상시적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자연재해를 비롯하여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의 원칙에 따라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8.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 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이 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남북총리회담을 개최하기로 하 고, 제 1차회의를 금년 11월중 서울에서 갖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 들을 협의하기로 하였다. 2007년 10월 4일 대 한 민 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 통 령 국 방 위 원 장 노 무 현 김 정 일 212 통일문제이해 2012

213 7. 한반도 신 평화구상(2009년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동포 여러분, 이 자리를 빌려 저는 북한 당국에 간곡히 촉구합니다. 핵무기는 북한 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의 장래를 더욱 어렵게 할 뿐입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지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북한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고 남북 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합니다. 북한이 그런 결심을 보여준다면 우리 정부는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 상을 추진할 것입니다.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국제협력 프로그램을 적극 실행할 것입니다. 남북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고위급 회의를 설치하고 관련국 및 국 제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경제, 교육, 재정, 인프라, 생활향상 분야에 걸친 대북 5대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입니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함께 남북간 재래식 무기의 감축도 논의해야 합니 다. 불과 4km를 사이에 두고 이토록 중화기와 병력을 반세기 이상 집 중시키고 있는 예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눈앞에서 총부리를 겨누면서 어떻게 화해와 협력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무기와 병력을 서로 줄이고, 뒤로 물러서야 진정한 평화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남북이 재래식 무기와 병력을 감축하면 막대한 예산과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이는 남북이 함께 경제를 일으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이런 문제들을 두고 남과 북이 만나서 대화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정부는 언제, 어떠한 수준에서든 남북 간의 모든 문제에 대해 대 화와 협력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분명히 밝혀두는 바입니다. 제6장 부록 213

214 8. 그랜드 바겐 (2009년 9월 전미외교협회, 코리아소사이어티, 아시아소사이 어티 공동주최 오찬 간담회 대통령 연설) 신사, 숙녀 여러분! 한반도는 지구상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지역입니다. 이러한 분단 상 황을 극복하고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뿌리내리는 것은 우리 한미동 맹에 남겨진 중대한 과제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핵화를 먼저 이루어야 하고 그러 기에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반드시 포기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 포기 의지를 나타내는 징후는 아직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북핵문제는 대화와 긴장상태를 오가며 진전과 후퇴, 그리고 지 연을 반복해 왔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거의 패턴을 탈피해야 합니다. 북핵의 완전한 폐기라는 본질적 문제를 제쳐둔 채, 핵 동결에 타협하 고 이를 위해 보상하고 북한이 다시 이를 어겨 원점으로 회귀하는 지 난 20년의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틀 안에서 5자간 협의의 필요 성을 제기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북핵 폐기의 종착점에 대해 확실하게 합의하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 는 행동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5자 간의 구체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통합된 접근법이 나와야 합니다. 이제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을 폐기하면서 동시 에 북한에게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 괄타결, 즉 Grand Bargain을 추진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이 핵 포기의 결심을 내린다면 북한경제와 주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새로운 평화 214 통일문제이해 2012

215 구상 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북한은 이러한 프로세스를 자신의 체제에 대한 위협이나 포위로 오해 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함으로써 미국 및 국제 사회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될 것이며, 이는 곧 북한 스스로를 살리 고 발전시키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핵을 버리고 국제사회에 나오겠다는 북한을 적대시할 국가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 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6자회담 참가국들이 더욱 긴밀하게 공 조해야 합니다. 그동안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많은 역할을 해 온 중국의 역할이 더 욱 중요해졌습니다. 우리 한국도 이러한 노력을 배가할 것이며, 앞으로 북한과 대화하고 협력을 하게 되더라도 북핵문제의 해결이 주된 의제의 하나가 될 것입 니다. 저와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에 대해 확 고하게 인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러기에 한미공조도 더욱 강화될 것 입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결의안 이행도 철저히 해 나가면서 북한의 결단을 촉구할 것입니다. 북한에게는 지금이 위기가 아닌 기회입니다. 아마도 북한은 마지막일 지 모를 이 소중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6장 부록 215

216 9. 3대 공동체 통일구상(2010년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 사랑하는 7천만 동포 여러분! 6 25 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반도는 세계 유일의 분단지역으로 남아있습니다. 남과 북이 함께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한 민족의 염원이며, 진정한 광복을 이루는 길입니다. 그러나 3월 26일 북한의 천안함 공격은 이러한 평화에 대한 여망을 저버리는 도발이었습니다.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불행한 일이었습 니다. 이제 더 이상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있어서는 안 되며, 용납하지 도 않을 것입니다. 남과 북은 더 이상 불신과 대결로 점철된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해서 는 안 됩니다. 북한은 이제 현실을 직시하여 용기있는 변화의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지금 남북관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대결이 아닌 공존, 정체가 아닌 발전을 지향해야 합니다. 주어진 분단 상황의 관리 를 넘어서 평화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우선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는 평화공동체 를 구축해야 합 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나아가 남북간의 포괄적인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 경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고 남북한 경제의 통합을 준비하는 경제공동체 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궁극적으로는 제도의 장벽을 허물고 한민족 모두의 존엄 과 자유, 삶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민족공동체 를 향해 나아가야 합 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한민족의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216 통일문제이해 2012

217 통일은 반드시 옵니다. 그 날을 대비해 이제 통일세 등 현실적인 방안 도 준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를 우리 사회 각계에서 폭넓게 논의해 주시기를 제안합니다. 정부는 한반도의 통일 비전 속에서 동북아 협력외교를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한반도와 긴밀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나라와 신뢰를 더욱 강 화하면서,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가 부여할 보다 큰 기회와 이익을 공 유하는 호혜적 파트너십을 구축해 나가고자 합니다. 제6장 부록 217

218 10.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법률 제7763호, 제정] 제1장 총 칙 제1조 (목적) 이 법은 대한민국헌법 이 정한 평화적 통일을 구현하기 위하여 남한과 북한의 기본적인 관계와 남북관계의 발전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기본원칙) 1 남북관계의 발전은 자주 평화 민주의 원칙에 입 각하여 남북공동번영과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2 남북관계의 발전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투명과 신뢰의 원 칙에 따라 추진되어야 하며, 남북관계는 정치적 파당적 목적을 위 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된다. 제3조 (남한과 북한의 관계) 1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국가간의 관계 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 이다. 2 남한과 북한간의 거래는 국가간의 거래가 아닌 민족내부의 거 래로 본다. 제4조 (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남북회담대표 라 함은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정부를 대표하여 북한과의 교섭 또는 회담에 참석하거나 남북합의서에 서명 또는 가서명하는 권한을 가진 자를 말한다. 2. 대북 특별사절 이라 함은 북한에서 행하여지는 주요 의식에 참 석하거나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정부의 입장과 인식을 북한에 전하거나 이러한 행위와 관련하여 남북합의서에 서명 또는 가서 명하는 권한을 가진 자를 말한다. 3. 남북합의서 라 함은 정부와 북한 당국간에 문서의 형식으로 체 결된 모든 합의를 말한다. 제5조 (다른 법률과의 관계) 이 법 중 남북회담 대표, 대북 특별사절 218 통일문제이해 2012

219 및 파견공무원에 관한 규정은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적용한다. 제2장 남북관계 발전과 정부의 책무 제6조 (한반도 평화증진) 1 정부는 남북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증 진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 2 정부는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한과 북한간 정치 군사적 신뢰구 축을 위한 시책을 수립 시행한다. 제7조 (남북경제공동체 구현) 1 정부는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통 하여 남북경제공동체를 건설하도록 노력한다. 2 정부는 남북경제협력을 활성화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등 남한과 북한 공동의 경제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시책을 수립 시행한다. 제8조 (민족동질성 회복) 1 정부는 사회문화분야의 교류협력을 활성 화함으로써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도록 노력한다. 2 정부는 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단체 등의 교류협력을 확대 발전시 켜 남한과 북한간 상호 이해를 도모하고 민족의 전통문화 창달을 위한 시책을 수립 시행한다. 제9조 (인도적문제 해결) 1 정부는 한반도 분단으로 인한 인도적 문 제 해결과 인권개선을 위하여 노력한다. 2 정부는 이산가족의 생사 주소확인, 서신교환 및 상봉을 활성 화하고 장기적으로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이 가능하도록 시책을 수 립 시행 한 다. 제10조 (북한에 대한 지원) 1 정부는 인도주의와 동포애 차원에서 필 요한 경우 북한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다. 2 정부는 북한에 대한 지원이 효율적이고 체계적이며 투명하게 이 루어질 수 있도록 종합적인 시책을 수립 시행한다. 제11조 (국제사회에서의 협력증진) 정부는 국제기구나 국제회의 등을 통하여 국제사회에서 남북공동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노력 한다. 제6장 부록 219

220 제12조 (재정상의 책무) 정부는 이 법에 규정된 정부의 책무를 이행하 기 위하여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제13조 (남북관계발전기본계획의 수립) 1 정부는 남북관계발전에 관 한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 이라 한다)을 5년마다 수립하여야 한다. 2 기본계획은 통일부장관이 남북관계발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를 확정한다. 다만, 예산이 수반되는 기본계획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3 기본계획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1. 남북관계 발전의 기본방향 2. 한반도 평화증진에 관한 사항 3. 남한과 북한간 교류 협력에 관한 사항 4. 그 밖에 남북관계발전에 필요한 사항 4 통일부장관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를 거쳐 기본계획 에 따른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5 기본계획 및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한 경우 통일부장관은 이 를 국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제14조 (남북관계발전위원회) 1 기본계획, 그 밖에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중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통일부에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이하 위원회 라 한다)를 둔다. 2 위원회는 위원장 1인을 포함하여 25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 며, 제3항 제2호의 위원의 임기는 2년으로 한다. 3 위원장은 통일부장관이 되고, 위원은 다음 각 호의 자가 된다. 다만, 제2호의 위원 중 7인은 국회의장이 추천하는 자로 한다. 1. 대통령령이 정하는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차관급 공무원 2. 남북관계에 대한 전문지식 및 경험이 풍부한 자 중에서 위원장 이 위촉하는 자 4 위원회에 간사 1인을 두되, 간사는 통일부 소속 공무원 중에서 위원장이 지명하는 자가 된다. 5 위원회의 구성 운영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220 통일문제이해 2012

221 제3장 남북회담 대표 등 제15조 (남북회담 대표의 임명 등) 1 북한과 중요사항에 관하여 교 섭 또는 회담에 참석하거나 중요한 남북합의서에 서명 또는 가서명 하는 남북회담 대표의 경우에는 통일부장관이 관계 기관의 장과 협의한 후 제청하고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2 통일부장관은 북한과의 교섭 또는 회담 참석, 남북합의서의 서 명 또는 가서명에 있어 남북회담 대표가 된다. 3 제1항 및 제2항의 경우를 제외한 남북회담대표는 통일부장관 이 임명한다. 4 대북 특별사절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5 2인 이상의 남북회담 대표 또는 대북 특별사절을 임명할 경우 에는 서열을 정하고 수석 남북회담 대표 또는 수석 대북 특별사절 을 지정하여야 한다. 6 그 밖에 남북회담 대표 및 대북 특별사절의 임명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16조 (공무원의 파견) 1 정부는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공무원을 일정기간 북한에 파견하여 근무하도록 할 수 있다. 2 공무원의 파견과 근무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 로 정한다. 제17조 (정부를 대표하는 행위금지) 이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누구 든지 정부를 대표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 를 할 수 없다. 1. 북한과 교섭 또는 회담하는 행위 2. 북한의 주요 의식에 참석하는 행위 3. 북한에 정부입장과 인식을 전달하는 행위 4. 남북합의서에 서명 또는 가서명하는 행위 제18조 (지휘 감독 등) 1 통일부장관은 남북회담 대표 및 파견공무 원의 임무수행, 남북회담 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지휘 감독을 한다. 2 남북회담 대표 및 파견공무원의 임무수행, 남북회담 운영 등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6장 부록 221

222 제19조 (공무원이 아닌 남북회담 대표 등에 대한 예우) 정부는 공무 원이 아닌자를 남북회담 대표 또는 대북 특별사절로 임명한 때에 는 대통령령에 의하여 예우를 하고 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 제20조 (벌칙 적용에 있어서의 공무원 의제)공무원이 아닌 자가 남북 회담 대표 또는 대북 특별사절로 임명되어 이 법에 의한 직무를 수 행하는 때에는 형법 제127조 및 제129조 내지 제132조의 적용에 있어서는 이를 공무원으로 본다. 제4장 남북합의서 체결 제21조 (남북합의서의 체결 비준) 1 대통령은 남북합의서를 체결 비 준하며, 통일부장관은 이와 관련된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한다. 2 대통령은 남북합의서를 비준하기에 앞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 쳐야 한다. 3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 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 비준에 대한 동의권 을 가진다. 4 대통령이 이미 체결 비준한 남북합의서의 이행에 관하여 단순한 기술적 절차적 사항만을 정하는 남북합의서는 남북회담 대표 또 는 대북 특별사절의 서명만으로 발효시킬 수 있다. 제22조 (남북합의서의 공포) 제21조의 규정에 의하여 국회의 동의 또 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남북합의서는 법령등공포에관한법률 의 규정에 따라 대통령이 공포한다. 제23조 (남북합의서의 효력범위 등) 1 남북합의서는 남한과 북한사 이에 한하여 적용한다. 2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 간을 정하여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 3 대통령은 국회의 체결 비준 동의를 얻은 남북합의서에 대하여 제2항의 규정에 따라 그 효력을 정지시키고자 하는 때에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222 통일문제이해 2012

223 부 칙 1 (시행일) 이 법은 공포 후 6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 2 (경과조치) 이 법 시행 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 체결 비준한 남북 합의서는 이 법에 의한 남북합의서로 본다. 제6장 부록 223

224 국토통일원,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통일원, 남북기본합의서 해설, 1992., 남북한 통일 대화 제의 비교, 통일부, 통일백서, 각 연도, 남북대화 (제67호~74호), 각 연도, 남북한 통일정책과 통일방안 비교, 2006., 경수로사업 지원백서, 2007., 남북협력기금백서, 2008., 자주 묻는 통일이야기 50, 2008., 독일, 통일에서 통합으로, 2009.,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 해설집, 2010., 독일통일 20년 : 현황과 교훈, 2010., 북한의 대남전략, 2010., 남북교류협력동향 (월간), 2011., 통일비용보다 더 큰 통일편익, 2011., 통일필요성의 재인식, 2011., 대북정책 이렇게 해왔습니다, 민족통일연구원,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이론체계와 실천방향, 1994., 예멘통일의 문제점, 통일연구원, 독일통일백서, 각 연도, 북한인권백서, 각 연도,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 : 체계와 추진전략, 2008.,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비전 및 추진방향, 2008., 비핵 개방 3000 구상 : 추진전략과 실행계획, 2009., 북핵문제의 해결방향과 북한체제의 변화 전망, 2009., 북핵해결 일괄타결(Grand Bargain) 방안 추진방향, 통일문제이해 2012

225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와 추진방향, 2010., 통일외교 과제와 전략, 2011., 통일 환 경 평 가, 외교통상부, 외 교백 서, 각 연 도 외교안보연구원, 국제정세변화와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 2009., 주요국제문제분석 (계간), 2011., 2012 국제정세전망, 국방부, 국방백서, 격 연도(2002, 2004, 2006, 2008, 2010),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2003., 한반도 군비통제, 한국국방연구원, 북핵문제와 한반도 안보, 2008., 김정일체제의 핵전략 딜레마, 2009., 2010 한국의 안보와 국방, 전략과 정책, 2009., 2009 동북아 군사력과 전략동향, 국방대학교, 2012년도 안보정세 전망, 제6장 부록 225

226 발행처 통일부 통일교육원 서울시 강북구 한천로 1307(수유동) 전화 02) ~7 / 팩스 02) 발행일 2012년 3월 디자인 (주)늘품플러스 인 쇄 신영에이전시 통일교육원 홈페이지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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