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中國學會 고 문 : 성파 스님 조남규 여사 명예회장 : 이근효(경성대 명예교수) 회 장 : 이재하(경성대) 부 회 장 : 김세환(부산대) 서석흥(부경대) 이철리(경남대) 임수암(경남정보대) 감 사 : 김태관(동의대) 진광호(부산외대) 연구이사 : 김용운(동아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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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기 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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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INESE STUDIES 第 34 輯 大 韓 中 國 學 會 Korean Association for Chinese Studies
2 大韓中國學會 고 문 : 성파 스님 조남규 여사 명예회장 : 이근효(경성대 명예교수) 회 장 : 이재하(경성대) 부 회 장 : 김세환(부산대) 서석흥(부경대) 이철리(경남대) 임수암(경남정보대) 감 사 : 김태관(동의대) 진광호(부산외대) 연구이사 : 김용운(동아대) 연구윤리위원 : 김용운(동아대) 강경구(동의대) 김창경(부경대) 박재진(동서대) 유병태(인제대) 하영삼(경성대) 총무이사 : 이화범(경성대) 학술이사 : 강경구(동의대) 김윤경(신라대) 박노종(동아대) 정해용(신라대) 최낙민(한국해양대) 편집이사 : 김창경(부경대) 편집위원 : 김창경(부경대) 강경구(동의대) 김명구(명지대) 김태만(한국해양대) 문 병순(경남대) 오만종(전남대) 이규일(영동대) 이정남(고려대) 양만기 (제주한라대) 장호득(단국대) 섭외이사 : 김태만(한국해양대) 이문혁(세명대) 이중희(부경대) 기획이사 : 김언하(동서대) 김진영(부산외대) 손성문(진주산업대) 이웅길(동서대) 출판이사 : 신홍철(동아대) 오창화(경성대) 정옥근(동의대) 운영이사 : 김민정(부산정보대) 김소현(동아대) 김인호(동의대) 김종현(동아대부) 김창경(부경대) 김태만(한국해양대) 김현태(경남대) 남덕현(부산대) 류영표(경성대) 정원호(동의과학대) 박경송(영산대) 박기현(인제대) 박부열(진주보건간호대) 박안수(마산창신대) 박용래(부산경상대) 손 성문(진주산업대) 신석찬(부산여대) 왕옥지(동명대) 왕충의(부산외대) 이경미(동서대) 이상도(울산대) 이치한(창원대) 임수암(경남정보대) 정태업(부산외대, 중국어학부) 심형철(신라대) 정헌철(경상대) 최세윤 (고신대) 한종호(동주대) 연 락 처 : 총무: (051) (연구실), [email protected] 편집: (051) (연구실), [email protected] [題字] : 성파스님(通道寺 瑞雲庵 住持) 이 책은 동서대학교 공자아카데미의 학술지원비에 의하여 출판되었음.
3 第34輯 2009年 12月 目 次 정주연 의문사의 비의문용법 연구-- 哪, 哪儿, 哪里 를 중심으로 1 이수진 정주연 현대 중국어의 무표지 피동문에 대한 재고 --문두 논항이 피영향자인 경우를 중심으로 17 김정필 문두성분의 주관성 분석과 화제화 --화제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탐색 37 안성재 賦詩, 引詩 를 통한 先秦時代의 三百 認識 再考 57 최세윤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 83 정태업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 111 方珍平 美溶于水--从 红楼梦 谈到古代文学审美的 水 之意象 147 程宇昻 明清文人与男旦交往述论 163 이장휘 좌전(左傳) 문론역주 181 류영표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 209 曲金良 中國文化在中國的命運與前景 --20世紀以來的 中國文化宣言 述評 251 김언하 단재와 루쉰의 사상 비교--한국 3 1과 중국 5 4의 대표 사상 275 尙玉翠 任現品 现世梦想的观照與叙述 程青小说论 291 우강식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 --영상 예술을 중심으로 301 김명석 탈식민의 굴절된 렌즈에 갇힌 이야기--王家衛의 박승찬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와 사례조사를 통한 문제점에 관한 연구 357 규정 심사규칙 및 학문윤리위원회 규정 외 383
4 CHINESE STUDIES Volume 34 Dec.2009 A Study on Non-Question Usage of Interrogative Pronouns --An Example of 'na, naer, nali' / Chung, Ju-youn 1 A Reconsideration on the Passive without the Marker in Modern Chinese / Lee, Su-jin Chung, Ju-youn 17 An Analysis of Topicalization and Subjectivity Beginning Component in the Modern Chinese / Kim, Jeong-pil 37 Reconsider Understanding of [the Book of odes] through "Endow Poetry and Quote Poetry" at The Warring States Period / Ahn, Sung-jae 57 A Research on Ji-kang's Viewpoints of Confucianism( ) that appears in [Family Admonition] / Choi, Sae-yoon 83 The River of the Su, Dong-po( )' Ci( ) / Jung, Tae-up 111 The Water Image in which the Beauty Dissolved: A Discussion of the Water Image in Ancient Chinese Literature Aesthetics From which the Great Mention is regarded as a Case / Fang, Zhen-ping 147 On the Interaction between Literati and Female Impersonators in the Ming and Qing Dynasties / Cheng, Yu-ang 163 A Translation and Annotation of ZuoZhuan( ) Literary Theory / Lee, Jang-hui 181 A Interpretation of the Poetry by SuSong(蘇頌) during his First Visitation of Liao( )( ) / Ryu, Young-pyo 209 A Fate and Prospects of Chinese Culture in China / Qu, Jin-liang 251 A Though-Comparison of Danjae with Luxun: Representative Thought of 3 1 Movement in Korea and 5 4 Movement in China / Kim, Un-ha 275 The Introspection and Narration of Worldly Dreams--on Chengqing's Novels / Shang, Yu-cui Ren, Xian-pin 291 A Study of Acceptance and Development of Different Kind of Culture through a Theme Chivarly--Focusing on Visual Arts / Woo, Kang-sig 301 名敎 蘇東坡 遼Ⅱ 詞 左傳
5 A Study Projected by Refractive Lens of Post-Colonialism--Wong Kar-wai's 2046 / Kim, Myung-suk 333 A Case Study of Chinese Bidding System Market / Park, Seong-chan 357 Appendix Editorial Rules of Korean Association for Chinese Studies & Rules of Institutional Review Board 383
6 中國學 第34輯( ) pp.1~16 의문사의 비의문용법 연구* -- 哪, 哪儿, 哪里 를 중심으로 정주연** 목 차 1. 서 론 2. 비의문용법에 대한 기존의 분류 2.1 邵敬敏의 분류법 2.2 石毓智의 분류법 3. 인지 의미론적 고찰 3.1 고찰의 필요성 3.2 편지(遍指)용법과 임지(任指)용법 4. 특지반어문의 비의문용법 고찰 4.1 고찰의 필요성 4.2 특지반어문의 편지성(遍指性) 5. 결 론 1. 서 론 중국어에서 의문사는 의문의 기능 외, 청자의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비의문용법으로 사용된다.1)본고가 王朔의 작품(약 12만자)을 대상으로 실시한 표본조사에 따르면 哪 哪儿 哪里 가 포함된 585개의 문장 중 의문용법으로 사용된 것은 44.8%(262개)였고, 비의문용법으로 사용 * 이 연구는 2008학년도 동서대학교 신임교수 연구비 지원에 의해 연구되었음. ** 동서대학교 외국어계열 중국어학과 전임강사 [email protected]
7 2 中國學 第34輯( ) 된 것은 43.9%(257개)로 의문용법과 거의 유사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 다.1) 따라서 중국어법학계에서도 이러한 의문사의 비의문용법이 가리키 는 내용에 대해 일찍부터 주목해왔다. 黎锦熙(1924)2)는 비의문용법을 나타내는 의문사를 不定或虚指 라고 언급했고, 吕叔湘(1942)3)은 不 论 의 의미로 사용된 것을 任指 로 不知 의 의미로 사용된 것을 虚 指 로 세분하여 기술하고 있다. 이후 邵敬敏(1996)4)이 什么 에 대해 全指性 列指性 承指性 借指性 虚指性 否定性 反诘性 独用性 등 8종류로 세분할 만큼 비의문용법에 대한 끝없는 논의가 있어 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任指 용법는 학자마다 분류의 기준이 달라서, 혹은 동일한 내용이라도 명칭이 다르거나, 혹은 동일한 명칭이라고 하더라도 가리키는 내용이 달라서 이해하는데 혼란이 있다. 예를 들면, 丁声树 (1961)5), 朱德熙(1982)6) 刘月华(2001)7)는 의미를 기준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丁声树는 "언급한 범위 내 예외가 없는 것"을 任指 로 정의했 고, 刘月华는 任指 라는 같은 용어를 쓰지만 "어떤 한 사람 혹은 한 가지 사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내용이 다르다. 朱德熙는 周遍性 이 라는 표현을 쓰는데, 가리키는 것은 "언급한 범위 내에 예외가 없는 것" 즉, 丁声树와 같은 내용이다. 이는 또한 邵敬敏 1996 이 분류한 全 指性 과도 같은 의미이다. 石毓智(2001)8)는 통사론을 근거로 분류했는 데 동사의 앞에 위치하는 것을 보편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遍指 라고 했다. 따라서 중국어 학습자들이 좀 더 쉽게 의문사의 비의문용법을 이 해할 수 있도록 비의문용법을 분류하는 타당한 기준을 모색하여 명칭을 통일하고, 그 정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본고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2장에 1) 기타 10.3%는 어기사(예: 这问题真不简单哪!)나 관용표현(예: 哪里哪里!)으로 사용된 것이므로 본고의 논의 대상에서 제외한다. 2) 黎锦熙, 新著国语文法 (北京 商务印书馆 1924, 2000年版), 119쪽. 3) 吕叔湘, 中国文法要略 (北京 商务印书馆 1942, 1982年版), 182~184쪽. 4) 邵敬敏, 现代汉语疑问据研究 (上海 华东师范大学出版社 ), 229~245쪽. 5) 丁声树 现代汉语语 (北京 商务印书馆 1961, 1999年版) 164~167쪽. 6) 朱德熙 商务印书馆 1982, 2000年版) 93~94쪽. 7) 刘月华 实用现代汉语语法 (北京 商务印书馆 2001)(2002年版) 103~ 106쪽. 8) 石毓智, 语法的形式和理据 (南昌 江西教育出版社 ), 80~82쪽. 语法讲义 (北京
8 의문사의 비의문용법 연구--- 哪, 哪儿, 哪里 를 중심으로(정주연) 3 서는 의문사의 비의문용법에 대해 어법의미를 기준으로 비교적 자세한 분류를 진행한 邵敬敏 1996)의 분류법과 통사론을 기준으로 분류한 石毓智(2001)의 분류법이 지닌 한계점에 대해 살펴본다. 3장에서는 '인 지의 양'을 근거로 任指 용법과 虚指 용법으로 사용된 의문사의 의미를 재검토하고, 나타내는 의미의 차이에 따라 재분류를 시도하여 그 명칭 과 정의를 명확히 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특지반어문(特指 反問句)에 사용된 의문사가 비의문용법의 어느 의미 항에 속하는지에 대해 역시 '인지의 양'을 근거로 그 의미의 표현과정을 구체화함으로써 밝혀보고자 한다. 2. 비의문용법에 대한 기존의 분류 2.1 邵敬敏의 분류법 邵敬敏(1996)은 什么 를 대상으로 什么 가 나타내는 비의문용법을 全指性 列指性 承指性 借指性 虚指性 否定性 反诘性 独用性 등의 8가지로 분류하였다. 그는 어법의미를 근거로 분류한다고 밝혔는 데, 분류하고 있는 8가지의 용법을 살펴보면, 全指 와 虚指 는 어법의 미를 근거로 분류한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6가지 중 列指性 承指 性 借指性 独用性 은 의문사가 출현하는 구문의 구조에 따라 분류한 것으로 보여 분류의 기준이 통일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들을 나타내는 어법의미에 따라 다시 분류해보면 全指 와 承指 는 임 지(任指), 列指 借指 虚指 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허지(虛指)에 상당 한다. 邵敬敏은 否定 反诘 는 지시의 대상이 없다는 점에서 따로 분 류하였다. 그러나 본고의 조사에 따르면 의문사가 반어문에서 사용되었 을 때 반드시 지시의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반어문에 사 용된 의문사에 대해서는 4장에서 상세히 살펴보기로 한다.9) 또한, 邵敬敏은 全指 의 什么 는 반드시 전체 문장에서 주요 술어의 앞에 위치 하고 있음을, 虚指 의 什么 는 일반적으로 동사의 뒤에서 빈 9) 独用性 에 해당하는 표현은 부정 혹은 반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나, 본고에서는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고, 후일의 연구를 기대하도록 한다.
9 4 中國學 第34輯( ) 어의 역할을 한다고 밝혀, 全指 와 虚指 용법이 모두 어순 즉, 통사적 인 제약을 받음을 언급하였다. 이는 石毓智(2001)의 의견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다음을 보자. 2.2 石毓智의 분류법 石毓智(2001)는 통사론적 관점에서 의문사의 비의문용법을 遍指 와 虚指 로 분류한 후 이들이 모두 엄격한 어순의 제한을 받으며, 遍指 는 단지 술어동사의 앞에, 虚指 는 단지 동사의 뒤에 위치한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중국어에서 확정적인 대상은 술어동사의 앞에, 비확정적 인 대상은 술어동사의 뒤에 위치하는 것처럼 이미 언급한 범위를 지시 함으로써 확정(有定) 의 특성을 드러내는 遍指 는 谁他都敢批评 她哪里都去过 처럼 술어동사의 앞에, 비확정(無定) 의 특성을 드러내 는 虚指 는 我现在想吃点什么 此时想是做什么去了 처럼 당연히 술어동사 뒤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虚指 용 법에서 이와 같이 어순의 제약을 받는 것은 의문사가 동작의 대상을 나 타낼 때 즉, 受事 의 역할에 제한된다는 점이다. 好像有谁也知道这件 事 의 谁 처럼 동작의 주체자(施事)를 나타내게 되면 비록 谁 는 有 의 빈어가 되기는 하지만 문장 전체술어의 빈어는 아니므로 石毓智 가 언급한 어순의 기준이 무의미해진다. 다음 예문을 보자. (1)我哪天都这么高兴 (나는 항상 이렇게 즐겁다!) (2)哪次都是我错 都是我不好 你每次都是忍无可忍 (언제나 내가 틀렸고, 내가 나빴다. 너는 매 번 참으려고 해도 참 을 수 없었고.) (3)哪次评奖都是平衡的结果 (언제 심사를 하든 늘 비슷한 결과가 나오고, ) (4)要不说你老奸巨滑呢 哪天我叫你卖了还不知道呢 (아니면 너보고 교활하고 간사하다고 하겠니,, 어느 날 네가 나를 팔아버려도 나는 모를걸.) (5)哪天你弹段琵琶给我们听听 (다음에 네가 나에게 비파 한 곡조 타서 좀 들려주렴.)
10 의문사의 비의문용법 연구--- 哪, 哪儿, 哪里 를 중심으로(정주연) 5 (6)哪天我非得把你这游戏机砸了 (언제가 반드시 내가 너의 이 게임기를 부숴버릴 거다.) 예문 (1-3)의 哪 는 任指 를 나타내고, 예문(4-6)는 虚指 를 나타내 고 있다. 위 네 예문의 哪 는 동작의 주체자나 대상이 아니라 술어를 수식해 주는 시간부사어로 사용된 예들이다. 부사어는 기본적으로 술어 의 앞 혹은 문두에 사용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우에도 의문사의 비 의문용법이 어느 의미 항을 나타내는지 파악하기 위해 어순이 아닌 다 른 기준에 근거해야만 한다. 說完好漢說俠女, 誰最近又進入誰的手中 帶 着, 哪次有名的斗毆 其實是哪個女的引起和召集的 의 구문에서 주어로 사용된 誰 는 분명 술 또한, 어동사의 앞에 위치하고 있지만, 분명 확실하지 않거나 혹은 알고 있지 만 말하지 않는 虚指 의 용법으로 사용된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遍指/任指 는 邵敬敏과 石毓智의 말처럼 동 사의 앞에만 출현한다. 그러나 虚指 의 경우, 동사의 앞, 뒤에 모두 출 현할 수 있다. 虚指 는 중국어 어순의 제약으로 주로 동사의 뒤에 위치 하지만, 이는 동작의 대상을 나타내는 경우에 한정된 것으로서, 동사의 앞에 절대 출현할 수 없는 것은 아닌 것이다. 즉, 의문사가 비의문 기능 을 나타낼 때, 의문사의 어법의미는 어순과 상당 부분 관계가 있는 것 은 틀림이 없으나, 어순만으로 任指 와 虚指 를 구분할 수는 없다. 또 한 石毓智는 遍指 의 경우 술어동사 앞임을 명시하고 있지만, 虚指 는 문장 전체의 술어동사의 뒤인지, 아니면 동사의 뒤인지에 대해서 확실 한 언급이 없다. 그가 제시한 예문을 살펴보면 모두 문장의 술어동사의 뒤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짐작할 수는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단 문이 아닌 복문이나, 긴 수식구조를 가지고 있는 복잡한 문장에서는 파 악이 용이하지 않다. 3. 인지 의미론적 고찰 3.1 고찰의 필요성
11 6 中國學 第34輯( ) 현재 대부분의 논저에서는 대답을 요구하지 않고 구체적이지 않은 어 떤 대상을 지시할 때의 의문사를 그것이 나타내는 어법의미에 근거하여 크게 任指 와 虚指 全指 와 虚指 周遍性 과 虚指 遍指 와 虚 指, 등의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他把什么东西理了一下就睡觉了, 我现在想吃点什么 에서와 같이 의문사가 모르거나 말할 수 없는 것 혹은 말하고 싶지 않는 대상 을 지시하는 기능, 즉 虚指 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異見)이 없다. 그러나 이와 달리 这一带他哪儿都去过, 我吃什么都可以 에서와 같이 의문사가 언급한 범위 내의 모든 대 상 혹은 언급한 범위 내의 어떤 대상 을 지시할 때, 任指, 全指, 周遍性, 遍指 등 학자마다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고, "언급한 범위내 의 모든 것"과 "임의의 하나"와 같이 다른 내용을 가리키고 있음을 이 미 지적하였다.10) 분명하게 의미를 구분하기 위해 먼저 任指 와 虚指 의 의미부터 살펴보자. 다음 예문을 보자. (7) 我什么都清楚 (나는 뭐든지 다 분명하다.) (8) 掏钱呗 只要肯花钱 哪儿都能买着 (돈을 내라, 돈을 지불할 마음만 있으면, 어디서든 다 살 수 있 다.) (9) 我现在想吃点什么 (나는 지금 뭐를 좀 먹고 싶은데.) (10) 好像在哪儿见过似的 (마치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것 같은데.) (7-8)는 '무엇이든지', '어디에서든지'라는 지칭한 범위 내 '예외 없이' 의 의미이고, (9-10)는 '어떤 것', '어느 장소' 즉 '약간'이나 '하나'의 의 미를 나타낸다. 즉 (7-8)에서 什么, 哪儿 등이 지시하는 내용은 任指 의 의미이며, (9-10)에서 什么, 哪儿 등이 뚜렷이 지시하는 것 없이 막연한 것을 나타내므로 虚指 의 의미이다. 그러나 刘月华가 任指 와 10) 이하 서술의 편의를 위해 본고는 任指 周遍性 全指 遍指 를 가 장 일반화된 표현에 따라 任指 용법, '어떤'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指 용 법으로 칭하기로 한다. 虚
12 의문사의 비의문용법 연구--- 哪, 哪儿, 哪里 를 중심으로(정주연) 7 虚指 로 제시한 예문을 보자. (11) 谁都懂这个道理 (누구나 다 이런 이치를 안다.) (12) 我们班里的同学他谁都帮助过 这件事谁都知道 (우리 반 급우들을 그는 누구든지 다 도와준 적이 있다. 이 사 실을 누구나 다 안다.) (13) 你几点钟来都可以 (너는 몇 시에 오든 다 괜찮다.) 14 这个汉字有两种念法 你怎么念都可以 (이 한자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읽을 수 있는데, 어떻게 읽어도 다 괜찮다. ) (15) 这件事情好像谁告诉过我 (이 일을 누군가가 나에게 알려준 적이 있는 것 같다.) (16) 你坐哪儿等我一下 我就来 (내가 바로 올 테니, 너 어딘가에 앉아서 잠시만 나를 기다려 라.) 예(11-12)에서 谁 가 지시하는 내용을 보면 확실히 예(7-8)과 같이 범위 내의 모든 사람을 지칭하고 있다. 즉 任指 용법이다. 그러나 예 (13-14)를 보자. (13)의 几点钟 은 시간에 관계없이 아무 때나 와도 된 다는 뜻이지만, 24시간 다 와있으란 의미는 아니다. (14)의 怎么 역시 두 가지 중 어느 한 방법으로 읽어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지 두 방법으 로 다 읽어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므로 예문(13-14)는 (11-12) 와 분명 차이가 있다. 즉 범위 내의 모든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범위 내의 어느 한 가지를 지칭하고 있다. 즉 丁聲樹 朱德熙 邵敬敏 등이 주장하는 '범위 내에 어떠한 예외도 없음'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의 미의 任指 용법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막연한 대 상을 지칭하는 (15-16)의 谁, 哪儿, 즉 虚指 용법과도 같지 않다. 다음 예문을 보자. (17)什么树开什么花 什么藤结什么瓜 (邵敬敏의 예) (무슨 나무에 무슨 꽃이 피고, 무슨 넝쿨에 무슨 열매가 열린다. (나무에 따라 꽃이 피고, 넝쿨에 따라 열매가 열린다.))
13 8 中國學 第34輯( ) 위 예문은 邵敬敏(1996)이 什么 의 承指性 용법에서 사용한 것이다. 그는 이 중 밑줄로 표시된 什么1 은 任指 용법을 나타낸다고 했다. 또 한 여기서 말하는 任指 는 全指 와 다른 "임의의 지칭(任意指代)"을 가리키는 것임을 주석①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丁聲樹와 朱德熙는 예(17)과 유사한 구조로 이루어진 다음 예 문들을 '언급한 범위 내에 어떠한 예외도 없음'을 나타내는 全指 와 동 일한 개념의 任指 와 周遍性 용법에서 소개하고 있다. 18 随你喜欢什么就玩什么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따라 무엇을 가지고 놀아라.[네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놀아라.]) 19 您哪时到 哪时有您的座儿 (이상 丁聲樹의 예) (당신이 어느 때 도착하면, 어느 때 당신의 자리는 마련돼 있습 니다.[당신이 언제 오든, 당신의 자리는 항상 마련돼 있습니다.]) 20 谁愿意去谁去 (누가 가고 싶으면 누가 가라. [가고 싶은 사람이 가라.]) 21 怎么想就怎么说 (이상 朱德熙의 예) (어떻게 생각하면, 어떻게 말해라.[생각대로 말해라.])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볼 때, 任指, 全指, 周遍性, 遍指 등의 명 칭으로 대표되는 의문사의 비의문용법에는 분명 刘月华가 정의하고 있 는 "어떤 한 사람 혹은 한 가지 사물"을 가리키는 任指 의 의미가 혼재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의문사가 비의문용법으로 사용될 때 나타내는 의미에 대해서 '인지의 양'을 근거로 그 의미의 차이를 다시 검토해 보고자 한다. 3.2 편지(遍指)용법과 임지(任指)용법 먼저 일반적인 任指 용법로 분류되고 있는 哪 哪儿 哪里 등이 구문 속에서 지칭하는 대상의 인지의 량 에 대해 살펴보자. (9) 这一带我熟得很 哪块儿都去过
14 의문사의 비의문용법 연구--- 哪, 哪儿, 哪里 를 중심으로(정주연) 9 (이 일대는 어디든 다 가보았기 때문에 나는 아주 익숙하다.) (10) 一年365天 哪天都不敢放松 (1년 365일 어느 날도 편히 쉴 수가 없다.) (11) 只要工作需要 去哪儿都成 (단지 직무상 필요하다면 어디를 가든 다 괜찮다.) (12) 其实分哪儿都一样 (사실 어디로 파견되든 다 마찬가지다.) (13) 哪天我们到颐和园去看看 (언제 이허위엔으로 구경하러 가자.) (14) 好像在哪儿见过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것 같은데.) 예 (9-10)에서 哪 哪儿 哪里 는 这一带 와 一年365天 이라 는 범위 내의 모든 것 을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예(11-12)의 a와 b에 서 哪儿 은 범위 내의 임의의 한 곳을 가리킨다. 예(13-14)에서 哪 와 哪儿 은 언제인지 확실하지 않은 막연한 시간과 장소를 가리키는 虚 指 용법이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하여 이들이 지시하고 있는 인지의 양 을 도형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A:범위 내의 모든 것] [B:임의의 한 곳] [C:아무 곳] [도형1: 인지량의 차이] 도형1의 A는 범위 내의 모든 것을, 도형1의 B는 임의의 어느 한 곳 을 가리키고 있다. 도형1의 C는 뚜렷한 지칭이 없는 막연한 것을 가리 키고 있다. '이 일대의 모든 곳을 다 가 보았다'는 의미의 예문(9)와 '일 년 중 단 하루도 쉴 수 없다' 는 의미의 예문(10)의 哪 는 주어진 범위 내의 모든 것을 지칭하므로 위 도형 중 A에 해당된다. 그러나 '어느 곳 을 가도 된다'와 '어느 곳으로 파견되어도 된다'는 의미의 예문 (11-12)
15 10 中國學 第34輯( ) 에서 哪儿 이 지시하는 대상은 범위 내 임의의 어느 한 곳으로 도형 B 에 해당된다. 또, "아무 때나 한번 이화원에 가보자"와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다"는 구체적인 범위가 주어지지 않은 막연한 때와 장소를 나타 내는 예(13-14)는 도형C에 해당한다. 즉 예문 (9-10), (11-12)와 (13-14)에서 哪 哪儿 哪里 등이 지시하는 인지의 양은 분명 같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예문(9-10), (11-12)처럼 이렇게 지시하는 '인지의 양'이 다른 이들을 같은 의미 범주에 묶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이므로, 예문(11-12)에 해당하는 부분을 재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생 각된다. 본고의 분류 결과는 다음과 같다. 편지(遍指) 임지(任指 ) 허지( 虚指) [도형2:편지(遍指)용법 임지(任指)용법 허지(虚指)용법] 위 도형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이분하던 任指 와 虚指 는 별개의 의미이고, '遍指', '周遍性', '全指'로도 지칭되는 任指 는 인지양의 차이 에 따라 두 가지 어법의미가 존재함을 나타낸다. 즉 하나는 범위 내의 모든 구성원을 지칭하는 편지(遍指)용법이고, 다른 하나는 범위 내 임의 의 한 구성원 혹은 일부 구성원을 지칭하는 임지(任指)용법이다. 4. 특지반어문의 비의문용법 고찰 4.1 고찰의 필요성 반어문에 사용된 의문사는 그 의문의 기능이 상실되며, 반어문 속에 不 등의 부정사가 있으면 긍정의 의미를, 부정사가 없으면 부정의 의 미를 나타낸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런데 반어문 속의 의문사
16 의문사의 비의문용법 연구--- 哪, 哪儿, 哪里 를 중심으로(정주연) 11 는 그 지시하는 대상이 어떤 의미항목에 속하는 것일까? 邵敬敏(1996)11)은 특지반어문 속의 의문사 기능을 '반문'으로 분류 하고, 특히 哪儿 로 구성된 특지반어문에 대해 任何地方 이라는 의미 를 나타내는 实用 과 决不可能VP 의 뜻을 나타내는 虛用 으로 나누었 다. 段朝霞(1999)12)는 哪/哪里/哪儿 이 포함된 특지반어문 속에서 의문 사의 지시기능이 강할수록 遍指 의미가 강하고, 지시기능이 약할수록 반 문의 의미가 강해진다고 했다. 상술한 내용으로 볼 때 邵敬敏과 段朝霞는 특지반어문이 일반적인 任指 용법과 관련이 있다고 인식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특지반어문의 반어적 기능이 의문사에 의한 것인지, 아니라면 무엇에서 기인된 것인지, 또 이때의 의문사는 비의문용법 중 구체적으로 어느 어법의미항에 속하는지 '인지의 양'을 근거로 살펴보자. 4.2 특지반어문의 편지성(遍指性) (26 哪个父母又不是这样儿 (어느 부모인들 이렇지 않겠니?) (27) 哪次不是你主动找来的 (언제 네가 주동적으로 찾아오지 않았던 적이 있었니?) (28) 哪一个不是生下来就志向远大 (누군들 태어날 때부터 꿈이 원대하지 않았겠니?) 위 세 예문은 모두 형식상 의문문과 동일하나 앞뒤 언어환경을 살펴 본 결과 실질적인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반어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반 어문의 의미는 어디에서 기인된 것일까? 먼저 긍정과 부정형식을 모두 살펴보기 위해 위 세 예문을 다음과 같이 긍정형식으로 바꾸어 보았다. (26)`哪个父母又是这样儿 (어느 부모가 또 이렇겠니?) (27)`哪次是你主动找来的 (언제 네가 자발적으로 찾아 온 적이 있니?) 11) 5)와 동일, 176쪽 12) 段朝霞, 47쪽. 含有疑问代词的遍指句, 新乡师范高等专科学校学报, 13:1(1999),
17 12 中國學 第34輯( ) (28)`哪一个是生下来就志向远大 (누가 태어나면서부터 꿈이 원대했겠니?) 예문(26`-28`)에서 보는 것과 같이, 세 예문을 긍정형식으로 바꾸어 도 여전히 반어문으로 사용될 수 있다. 다음을 보자. 我们班同学的好几个父母都离婚了 小王的父母 还 有 乙 还有哪个父母又是这样儿 (26)``a.甲 b.甲 隔壁的小张把自己的儿子打死了 乙 天啊 全世界哪个父母(又)是这样儿 위 (26)``는 (26)`예문에 각각 다른 언어 환경을 부여한 것이다. 그 결 과 (26)``a는 '어느 부모가 또 그런데?'라는 의문문이 되고, (26)``b는 '맙 소사, 세상에 어느 부모가 또 이럴 수 있단 말인가!'라는 반어문이 된다. 따 라서 이러한 예문의 반어적 의미는 화자의 필요에 의해 특정한 언어환경을 통해 표현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위 예문들 중 긍정형반어문이나 부정형반어문에서 모두 사 용되고 있는 哪 는 대체 어떤 의미항을 나타내는 것일까? 먼저 긍정형 식인 (26)` 哪个父母又是这样儿 의 예문을 보자. 문자의미 그자체로 만 보면 이 문장은 의문문으로서 이 때 哪个 는 의문용법이다. 여기에 반어의 어기가 결합되면, 哪个 는 의문기능을 상실하고 부모라는 집단 개념 중 어느 부모인지 확실하게 모르는 막연한 대상의 어느 한 부모를 지칭하는 허지(虚指)용법을 띄게 되고, 동시에 반어문이 나타내는 부정 의 의미와 결합하게 된다. 이 때 반어문이 나타내는 부정의 의미는 哪 个 가 지칭하는 부모라는 전체 범위에 적용되어 문장의 의미는 편지(遍 指)용법의 '어느 부모도 또한 이러하지 않다.' 즉 '모든 부모가 또한 다 이러하지 않다.'는 의미를 나타내게 된다. 반어문의 부정의미가 의문사 가 지칭하는 범위에 적용되는 순환관계를 도형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 다.
18 의문사의 비의문용법 연구--- 哪, 哪儿, 哪里 를 중심으로(정주연) 13 의문용법 (의문기능상 실) ( 허 지 (虛 指 ) + 반 어 문 의 부정의미) (범위 내 모든 구성원에게 반어문의 부정의미 순차적 적용) [그림3: 특지반어문의 편지(遍指)의미 표현 과정] 부정사가 있는 (26 哪个父母又不是这样儿 은 문장속의 부정부사 不 가 반어문의 부정의미와 만나 강한 긍정의미를 나타내는 '어느 부모 인들 또 이렇지 않겠니?" 즉, '모든 부모가 또한 다 이러하다.'는 의미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다음 예문을 보자. (29) 那你问他家里去 我哪儿知道 (邵敬敏의 예) (그럼 네가 그의 집으로 물어보러 가라, 내가 어떻게 알겠니?) (30) 孩子哪有不淘气的呢 (段朝霞의 예) (별나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니?) 예문(29)은 邵敬敏이 虚用 으로, 예문 (30)은 段朝霞가 반어문의 기 능을 강화하는 의미항으로 분류한 것이다. 위 두 예문속의 哪儿, 哪 는 예문(26-29)와 비교할 때 그 지시적 기능이 많이 약화된 특징이 있 다. 그러나 我哪儿知道 를 你知道什么? 와 비교해보면, '내가 어떻게
19 14 中國學 第34輯( ) 알겠어?'와, '네가 뭘 알아?'로 즉, '나는 결코 모른다.', '너는 아무 것도 모른다.'의 뜻이다. 이들 역시 전면부정인 편지(遍指)의 어법의미를 나타 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는 반어문은 의문사의 비의문용법을 편 지(遍指)용법으로 만드는 조건 중 하나라고 여긴다. 4. 결 론 본고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비교적 자세하게 의문사의 비의문용법에 대해 하위분류한 邵敬 敏(1996)은 어법의미를 분류의 기준으로 삼았음을 밝혔지만, 그 결과를 살펴보면 어법의미와 구문의 구조를 혼용하여 분류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 분류의 기준이 통일되지 않았다. 통사론을 기준으로 분류한 石毓智의 견해는 상당부분 중국어 언어현상과 일치되는 점이 있으나, 비확정(無定) 의 특성을 드러내는 虚指 용법으로 사용된 의문사가 술어 동사 뒤에만 위치한다는 주장은 의문사가 동작의 대상(受事) 을 나타낼 때에만 설득력을 지니므로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 全指 遍指 周遍性 등으로도 호칭되는 任指 용법을 '인지 량'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두 가지 양상을 나타낸다. 하나는 범위내의 모 든 양이고, 다른 하나는 범위내의 단일 양 혹은 부분 양이다. 즉 범위 내에 어떠한 예외도 없음은 편지(遍指)용법으로, 범위 내의 임의의 한 가지 혹은 일부를 지시하는 것은 임지(任指)용법으로 세분해야 한다. 셋째, 특지반어문에서 의문의 기능을 상실하고 비의문용법으로 사용 되는 哪 哪儿 哪里 의 어법의미는 그 지시적 기능의 강약에 관계 없이 범위 내의 모든 것을 나타낸다. 즉 편지(遍指)용법으로 사용된 것 이다. 따라서 반어문은 의문사의 비의문용법이 편지(遍指)의미를 나타내 는 조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黎锦熙, 新著国语文法 北京 商务印书馆 1924, 2000年版 吕叔湘, 中国文法要略 北京 商务印书馆 1942, 1982年版
20 의문사의 비의문용법 연구--- 哪, 哪儿, 哪里 를 중심으로(정주연) 15 王力, 中国现代语法 北京 商务印书馆 1943, 2000年版) 邵敬敏, 现代汉语疑问句研究 上海 华东师范大学出版社 卢素琴, 疑问代词 什么 的特殊用法分析, 佛山科学技术学院学报 社 会科学版 石毓智, 语法的形式和理据 南昌 江西教育出版社 段 朝霞, 含有 疑 问代 词 的遍 指 句, 新乡 师 范高 等 专科 学 校学 报 13:1(1999) 刘月华等, 实用现代汉语语法 北京 商务印书馆 2001 魏丽君, 疑问代词的非疑问用法, 佳木斯师专学报 陈天序, 给予集合概念的汉语疑问代词非疑问用法研究, 北京语言大学 硕士学位论文 2007 伍雅清, 疑问词的句法和语义 长沙 湖南教育出版社 倪 兰, 特指反问句的语用分析及其修饰辞意义, 修辞学习 倪 兰, 现代汉语疑问代词的基本语义分析 北方丛书 来德强, 哪儿 的非疑问用法 河南大学 硕士学位论文 2001 <中文提要> 现代汉语疑问代词除了表示疑问外还具有几种表示非疑问的功能 在现 实语言活动中 其使用频率也十分高 汉语语法学界对疑问词的非疑问用法 一直关注 而迄今为止在非疑问用法的名称和再次划分的划分标准上存在分 哪 哪儿 哪里 为主要分析对象 从认知量的角度对 疑问词的非疑问用法 尤其是一般所说的任指用法和虚指用法进行描写和划 分 也介绍表示遍指用法的一种句法形式 本文研究的结果如下 第一 邵敬敏 1996 对疑问代词 什么 的非疑问用法进行细致分析而 得出八种引申用法 文章中明确表明以语法意义为划分标准 而研究结果却 表示用了语法意义和句子结构两种划分标准 石毓智 2001 以句法结构为 划分标准对疑问词的两种引申用法 遍指和虚指进行了分析 他的说法相 当一部分跟汉语的实际使用情况一致 但表虚指的疑问代词只能出现于动词 之后的观点只限于受事用法 因此在解释汉语语言现象上仍然具有限制性 歧 因此本文以
21 16 中國學 第34輯( ) 缺少说服力 从认知量的角度看这 种引申用法具有两种不同的量 全量和单一量 或部分量 因此 本文 认为表示不同认知量的这种用法应该划分开来 表全量的就是说所指的范围 内无一例外的应该称为 遍指 用法 表单一量 或部分量 的就是说指示范 围内的任何一个成员或者部分成员的应该称为 任指 用法 第三 特指反问句中的疑问代词 哪 哪儿 哪里 无论其指示 第二 任指用法也称为 全指 遍指 周遍性 功能强还是弱都表示范围内的所有成员 因此可以说反问句是疑问代词非疑 问用法表示遍指意义的句法形式之一 關鍵詞 : 疑问词 非疑问用法 遍指 任指 虚指 认知量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22 中國學 pp.17~36第34輯( ) 현대 중국어의 무표지 피동문에 대한 재고 -문두 논항이 피영향자인 경우를 중심으로 이수진 정주연* 목 차 들어가는 말 피동의 상(相)적 특징과 사건 구조에 따른 제약 조건 제약 조건에 따른 무표지 피동문의 분석 맺는 말 1. 들어가는 말 일반적으로 태(voice)는 사건이나 상황을 기술할 때 능동적 사건 참 여자와 피동적 사건 참여자 중에서 화자가 어느 쪽을 관점화 시키느냐 에 따라 표현 형식을 교체하는 문법 범주를 말한다. 문장을 이렇게 태 의 범주로 분류할 경우 능동문과 피동문이 기본적인 대응 형태로 설정 되는 경향이 있으며, 대체로 피동문보다 능동문이 명제를 구성하는 가 장 기본적 형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13)이는 능동문은 능동의 기능을 설명하는 형태적 요소를 따로 첨가하지 않는다는 형식적 측면에서 비롯 된 견해이기도 하고, 에너지의 능동적 흐름 이라는 인지적 측면에서 비 롯된 견해이기도 한다. 이에 반해 피동문은 여러 가지 형태적, 통사적 변이 형태를 가지기 때문에 능동문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유표적 이라는 특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화자의 인지적 태도 * 이수진: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강사 [email protected] 정주연: 동서대학교 중국어학과 전임강사 [email protected]
23 18 中國學 第34輯( ) 와 그를 표현하는 문장이 형식적으로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 는데 아래의 예가 이에 해당한다. 1) a. b. 2) a. b. The door opened. Open the door! 종이 울린다. 그가 종을 울린다. 대부분의 개별 언어들은 피동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파생이나 굴절 과 같은 문법적 장치를 활용하게 되지만 위의 예처럼 능동문과 동일한 형태의 문장 형식이 피동문에 나타나기도 한다. 능동문과 동일한 문장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들을 피동문으로 인식하는 근거는 문두 논 항이 술어와 가지는 의미역 관계에 대한 인간의 인지적 활동의 결과이 다. 즉, 피영향자 논항을 문두에 위치시키는 것은 일반적인 동작 에너지 의 흐름과 상반된 언어적 기술 형태이기 때문에 다른 피동 표지사가 없 어도 피동의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중국어에도 피동 표지사 없이 피영향자 논항이 문두에 위치함으 로써 무표지 피동문 으로 분류되는 예들이 있다. 3) a. b. 4) a. b. 门开了 他开了门 黑板擦干净了 他把黑板擦干净了 논항의 위치 역시 형태적 굴절이 약한 중국어에서 하나의 중요한 유 표적 형태임은 분명하지만 피영향자 논항의 문두 위치는 피동문을 구성 하는 문장에서만 요구되는 조건이 아니다. 동일한 통사 형식을 취하지 만 피동의 개념을 나타내지 못하는 문장도 있기 때문이다. 5) 馒头忘记吃了 6) 一句话说了八遍 물론 피영향자 논항이 가지는 원형적 속성-동작의 흐름에 대해 능동
24 현대 중국어의 무표지 피동문에 대한 재고(이수진 정주연) 19 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이 동작 동사와의 직접적 결합을 피동의 개념으 로 예측하도록 하지만 5)와 6)에서 보듯 중국어가 pro를 허용한다는 사 실을 감안한다면 화자의 또 다른 의도 또한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饭 吃了 라는 문장에 대해 饭 이 가지는 원형적 속성이 먹는 행위에 대한 피동적 참여자 이긴 하지만, 중국어의 모국어 화자들은 해당 문장을 피 동의 개념보다는 주어가 pro로 실현된 주제구문으로 더 많이 인식한다. 1) 이는 피영향자의 문두 위치는 피동의 개념 이외 다른 문법적 효과를 위한 장치도 될 수 있으며 이들에 대한 분류와 범주화가 좀 더 세분화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본고는 피동문이 가지는 상(相)적 특징과 사건의 의미구조 를 관찰하여 형식적으로 불완전한 문장들을 피동문으로 범주화시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그 근거에 따라 무표지 피동문 으로 분류되는 문장들을 재고(再考)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를 위해 제 2 장에서는 피 동문이 가지는 상적 특징을 살피고, 피동의 사건이 나타내는 의미 구조 를 분석한다. 이들은 무표지 피동문에 대한 의미상의 제약조건으로 작 용하게 될 것이며 제 3 장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피영향자 논항이 문두 에 위치하는 문장들을 피동/비피동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또한 이렇게 도출된 결과를 통해 피동문과 비피동문의 사건 의미구조와 상적 특징들 이 어떻게 구별되는 지 살펴볼 것이다. 1) 邓思颖(2003)은 무표지 피동문은 하나의 공주어를 가질 수 있으며 의미상 이 공주어는 행위주로 해석될 수 있으며 해당 문장의 피영향자는 문장의 주 제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이 견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동의할 수 없다. 만일 무표지 피동문이 행위주에 해당하는 공주어를 가진다고 가정할 경우 이 공주어를 구체적으로 외현시킨다면 Np+被+Na+VP 의 형태로 구현 하느냐, Np+Na+VP 로 구현하느냐의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일부 견해 에서는 피영향자 논항의 위치로 인해 NP+Na+VP 또한 무표지 피동문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王力, 黎锦熙, 吕叔湘은 이 문두의 NP를 목적어 전치로 보고, Li & Thomson은 주제어, 张志公은 NP를 주어, 그리고 Na+VP를 술 어로 보는 등 다양한 이견이 존재한다. 필자 역시 Li & Thomson의 의견에 동의하여 문두 논항을 주제어로 보는 입장이다. 이 유형에 대한 피동문 설정 여부는 더 많은 논의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으로 본고의 논의 범위가 지나 치게 확대될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전형적인 무표지 피동문으 로 인식되는 NP+VP 만을 논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25 20 中國學 第34輯( ) 2. 피동의 의미 특징과 상(相)적 특징에 따른 제약조건 대체로 피영향자 즉, 동작을 받는 대상 이 관점화되는 문장은 피동문 으로 규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 견해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동문은 피영 향자 논항이 문두에 위치하게 되고 이에 따라 해당 논항의 격표시를 결 정하고 동사 역시 굴절, 파생, 첨가 등을 통해 피동의 형태로 표현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피동문이 이와 같이 생성된다면 그 문장은 1차적으 로 형태적, 통사적 특징에 근거하여 판단할 수 있지만 이러한 형식 언 어학적 해석은 피동문에 대해 온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어 떤 동사는 타동사임에도 불구하고 피동문의 형태로 사용할 수 없고 또 어떤 동사는 피동의 형태로만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7) a. b. 8) a. b. 9) a. b. They speak English in Austrlia.?English is spoken by them in Austrlia. 그는 늘 죄의식에 쫓긴다. *죄의식이 늘 그를 쫓는다. 我买了一些水果 *水果被我买了一些 2) 피영향자를 논항으로 가지는 타동사는 능동문과 피동문의 대응적 관 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형식적 해석에만 근거한다면 위의 b)유형에서 보이는 오류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사건을 구성하는 명제자체를 일 반적인 인지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해당 문장들이 왜 능동문으로 혹은 왜 피동문으로 실현될 수 없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피동문을 해석하는데 형식 언어학적인 해석만으로는 부족하며 인지 언 어학적 접근이 뒷받침되어야만 해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피동문과 관 련된 문제는 상황이나 현상에 대한 인간의 인지적 판단이 개입되는 관 2) 2장에서는 유표지 혹은 무표지에 제한을 두지 않고 피동문 전체가 가지는 상(相)적 특징과 제약을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논지 전개의 용이함을 위해 피동의 개념유무에 대한 확인절차가 필요 없는, 피동의 개념이 외현되는 유 표지 피동문 위주로 예로 들어 살펴본다.
26 현대 중국어의 무표지 피동문에 대한 재고(이수진 정주연) 21 점화 와 언제나 관련 있기 때문이다.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에너지의 흐 름을 행위주 대상 이라고 인식하고 그것을 능동문으로 표현한다는 것 은 화자가 행위주 를 관점화 한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대상 을 관점 화하여 발화한다면 그 문장은 에너지의 흐름과 그에 따른 인식의 흐름 또한 능동문과 다른 형태를 전제로 하게 된다. 이 관점 이 어떠한 통사 형식으로 사상(mapping)되는지는 개별언어가 지닌 형태적, 통사적 특징 과 관련하여 각기 다르게 실현될 수 있겠지만, 이것이 표현하는 문법 개념은 대부분의 언어 유형에서 보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범언어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화자가 선택한 주어와 그에 따른 문 법 구성은 동작의 시작, 과정 및 결과 그리고 참여자들 간의 상관관계 를 설명하게 되므로, 이는 행동과 그 전체 과정 및 방향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사유 방식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장에서는 태 범주의 분석에 형식 언어학적 분석이 가지는 한계를 인정하고 인지적 관점에서 문장의 상(相)적 자질과 의미 구조를 살펴본다.3) 3) 여기서 말하는 인지적 관점은 문장의 주요 구성 성분이 되는 동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문장 전체가 설명하는 상황유형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동사에 따른 상(相)을 해석하거나 동사의 어휘 자질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 라 문장의 상황유형도 해석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일부 문장은 동일한 동사 술어가 기타 성분과의 조합에 따라 피동문으 로 구현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 a. 엄마가 실을 부지런히 감았다. b. *실이 부지런히 감기었다. c. 실이 모두 감기었다. 2) a. 李四被狠狠地打了一顿 b. *李四被在街上打了一顿 상을 동사와 관련 있는 문법 범주의 하나로 인정한다 해도 단순히 동사 자 체의 성격에 의해서만 단어의 상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동사의 상을 설명 한다고 해도 그것은 동사만의 의미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구조 또한 상적 의미(aspectual meaning)에 복합적으로 역할하게 된다. 이러한 예 들을 통해 동사의 형태만으로는 피동 범주라고 해석하기 어려우며 참여자의 외현, 부사어의 첨가와 그 내용 등 동사 뿐 아니라 기타의 구성 요소들도 피 동문의 구성에 역할함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피동문을 구성하는 동사의 상적 특징은 피동문이 구성하는 사건의 상과 직결되는 것이다.
27 22 中國學 第34輯( ) 2.1 피동문의 상(相)적 특징 인지언어학에서는 어떠한 언어적 표현 형태도 모두 개념과 관련되기 때문에 화자는 자신의 의도를 언어 구조 속에서 표출하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건에 대해 수동적 태도를 가지는 피영향자 논항을 문두에 위치시키는 화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사건과 참여자와의 관계망 속에서 일반적으로 행위주가 에너지 흐름 의 출발점이라고 한다면 피영향자는 에너지 흐름의 종착점 혹은 동작의 종착점 혹은 사건의 결과시점 등으로 인식된다. 강명순(2007:70)은 피 동문을 에너지의 흐름을 받는 대상을 주어로 세우고 상태나 작용의 직 접적 원인이 되는 동작주를 생략하거나 약화시키기 때문에 동작성이 약 화되며 대신 결과에 집중하는 문장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동작의 종착 점을 문장의 출발점으로 삼는 피동문의 형식적 전략에서 비롯되는 설명 으로 이때의 결과 는 동작이라는 과정을 거친 후의 상태 라는 상(相)적 특징을 가지게 된다. 즉, 능동이 동작의 작용을 주로 설명한다면 피동은 동작 작용의 결과에 대해 주로 설명하게 된다. 피동문의 이러한 특징은 다른 언어의 피동 형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 다. 영어와 불어는 각각 be + 과거분사 + by + 행위주, être + 과거 분사 + par + 행위주 형식을 전형적 피동문 형태로 삼고 있다. be 와 être 는 판단개념을 나타내는 동사로 사건의 속성과 상태성을 규정하게 되며 과거분사는 동작 실현으로 작용의 역할이 사라진 그 결과를 설명 하는 것이다. 동사술어가 취하는 이 두 가지 형태에서 피동문의 기본적 상(相)이 드러나는데 결과를 나타내는 상태 즉, [+RES-STATE]를 말 한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사실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여기서 말하 는 결과-상태 는 행위로 인한 영향 혹은 변화의 결과 라는 사실이다. Anderson(1987)은 상(相)적 특성이 통사 구조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 음을 보이며 명사구에서 피동문을 가능하게 하는 논항으로 피영향 논항 (affected argument)을 들고 아래와 같이 설명하였다. 10) a. The Mongols' destruction of the city.
28 현대 중국어의 무표지 피동문에 대한 재고(이수진 정주연) 23 The city's destruction by the Mongols. b. John's avoidance of Bill. *Bill's avoidance by John. a)의 the city 는 동사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 피영향 논항이기 때문 에 피동문의 문장이 가능하지만 b)의 Bill 은 동사에 의해 영향을 전혀 받지 못하여 피영향 논항이 되지 못한다. 이에 b)는 피동문의 통사구조 를 허용하지 못한다. 조은숙(2007:153)은 피동문을 행위주로부터 이동물로의 에너지 전달 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현저성이 높은 행위주가 아닌 이동물 혹은 피영 향자의 변화 를 초점화하는 구문이라고 설명한다. 화자가 피영향자 논항 을 문두에 위치시켜 사건을 피동의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도 이와 관련해서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해당 사건을 피동으로 형식화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동작의 결과가 동작의 종결로만 표시되는 것이 아 니라 동작으로 인한 영향 혹은 변화를 수반한 결과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변화는 피영향자의 성질이나 상태의 변화, 심리나 감정적 변화, 존재 방식의 변화 등 다양한 내용을 가지게 될 것이다. 11) a. *信被她写了 b. 信被他写糟了 曹道根(2009:9)은 위의 두 예를 통해 사건의 결과가 피동문의 성립여 부에 어떻게 작용하는 지 보여준다. 写 라는 동작은 이 信 의 완성을 동작의 완결점으로 하고 있다. 동작의 결과물은 동작의 완성 이전에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 상태 변화와 동작의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 설 명할 수 없게 된다. a)의 경우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결과 상황만을 알려줄 뿐 그 사건이 완성되어 가는 상태, 혹은 그 변화의 과정과 내용 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피동의 사건 구조를 형성할 수 없다. 반면 b)의 경우 문두 성분 信 이 이미 원형으로 존재하고 있고 糟 는 그 원형에 대한 상태 변화를 설명해주므로 피동의 사건 구조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에 따르면 那本书被出版了 라는 문장의 오류 또 한 설명할 수 있다. 出版 은 피동 표지사와 결합되지 않는데 出版 또
29 24 中國學 第34輯( ) 한 书 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동작의 종결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出版 이라는 동작의 완성 이전에 결 과물 书 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에 대한 상태 변화 및 동작의 영향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동문이 가지는 이러한 상적 특징과 사건의 의미 구조에 대해서는 능동문과 비교하여 아래와 같은 모형으로 도식화할 수 있다. ⅰ) 능동문 : [+ACTIVITY][+ACHIEVEMENT][+ACCOMPLISHMENT] 혹은 [+STATE] ⅱ) 피동문 : 사 사 [+RES-STATE] 표에서 화살표는 에너지 흐름의 방향을 표현하는 것으로 에너지의 출 발점과 종착점은 사건 명제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는 동작 (혹은 상황)으로써 에너지의 표출 방식이 된다. 검게 표현된 와 사 는 화자의 관점에 따라 각각의 태 범주에서 관점화되는 요소 즉, 문두에서 실현되는 요소를 말하고 있다. 이 때 피동문의 사와 사 동일한 논항으 로 화살표가 제시하듯 동작의 종착점으로써의 피영향자 논항을 지시하 며, 사 는 이 사가 동작 결과의 작용을 받아 형성된, 예측 가능한 요소 이다. 피동문은 이 사 가 바로 관점화되어 문장의 출발점이 된다. 아래의 문장 또한 같은 논리에서 설명할 수 있다. 12) *课被上完了 13) *他说的话被这孩子懂了 이들이 피동의 사건 구조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사건의 중심이 되 는 동사구의 의미와 관련 있다. 被 의 NP가 일으키는 동작이 문두의 피영향자 논항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고 못하고 아무런 변화도 유발하지 못하고 있다. 동작의 종착점에 해당하는 것은 사일뿐 사 로 설명될 수 있는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피동문이 상술한 바와 같은 상(相)적 특징
30 현대 중국어의 무표지 피동문에 대한 재고(이수진 정주연) 25 을 가지려면 동사 혹은 동사구 또한 그에 상응하는 어휘 자질을 가져야 하며, 이는 피동 표지사 被 가 없는 문장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王卫琳(2008:89)는 受事主语句 를 피동의 개념의 유무에 따 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중심 술어가 [+可控性][+强动作性][+ 可致果性]를 가진 문장만이 피동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4) 이러한 의미 특징을 지닌 동사가 致使性结构 를 생성하고 이 의미 구조가 피동 문으로 도출된다는 것이다. [+可控性]-동작은 화자의 의도 아래 이루어진다. [+强动作性]-동작이 없으면 과정, 변화가 유발되지 않는다. [+可致果性]-화자의 의도아래 이루어진 동작으로 결과를 가진다. 다시 말해 사건을 설명하는 주요 성분으로 동사와 그에 대한 보충 요 소들이 [+RES-STATE]를 가지기 위해 어휘개념상 요구하는 의미 특 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사 자체의 성질이 동작동사이든 정태동사이 든 사건의 致使性 을 나타낼 수 있다면 피동문으로 도출될 수 있다. 이 致使性 은 피동문의 상적 특징- 변화의 결과를 전제로 하는 상태 라는 상적 특징을 만들어내는 전제가 되고, 다음 장에서 제안하는 복합적 사 건 구조의 전제가 된다. 2.2 피동문의 사건 구조 Vendler(1967)가 분류한 동사의 4가지 상(相)적 자질은 이후 관련된 여러 현상에 따라 더 많은 논의로 발전하였다. 논항이나 부가어와의 결 합관계에 따라 다시 다른 형태로 굴절되는 경우 이는 동사의 상으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므로 동사구나 문장 전체가 제시하는 명제적인 상황 유형(situation types)의 상으로 확대되었다.5) 이런 상황 유형은 이후 4) 이 성질들은 다만 피동문을 구성하는 동사 자체의 어휘적 의미 자질을 말하 는 것일 뿐이며, 이들이 피동의 문장을 구성하게 되면 문장 전체는 다른 요 소와의 복합적 작용으로 [-可控性][-强动作性][-可致果性]를 표현하게 될 것이다. 5) 각주 2번 참고할 것.
31 26 中國學 第34輯( ) 사건구조(event structure)의 개념으로 전환되어 문장이 제시하는 상황 의 상(相)을 이 사건 구조와 결부시켜 분석하게 된다. McCawley(1968), Dowty(1979)등은 사건 구조의 분석을 위해 어휘 의 의미 구조를 ACT, CAUSE, BECOME, STATE 등의 개념으로 분석 하였는데 이러한 의미론적 표시 방식을 어휘 개념 구조 층위(Level of Lexical Conceptual Structure, LCS)에 적용하면 완성 동사의 경우 대 체로 두 가지 사건으로 구분되었다. 아래의 예는 Levin and Rappaport (1998)에 따라 어휘의 의미 구조로 사건 구조를 분석한 것이다. 14) Tom killed the criminal. [[TomACT<MANNER=kill>]CAUSE[[BECOME[the criminal<res-st ATE=not alive>]]] 즉, Tom이 범인을 죽이는 사건 과 범인이 살아 있지 않는 상태로 되는 사건 - 사건 구조는 이렇게 두 가지의 하위 사건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사건의 명제가 가지는 여러 구성 요소들이 어떻게 결합하고 이들이 어떻게 통사화되는지 알 수 있는데, 이지현(2009:132) 또한 Levin and Rappaport(1995)가 제안하는 어휘의미 형판 에 따라 여러 의미의 동사류를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형상화, 구조화하였다. ⅰ) 행위 동사:[xACT<MANNER>] ⅱ) 상태 동사:[x<STATE>] ⅲ) 달성 동사:[BECOME[x<STATE>]] ⅳ) 완성 동사:[xCAUSE[BECOME[y<STATE>]]] 혹은 [[xact<manner>]cause[becom[y<state>]]] 이는 동사의 4가지 상(相)에 근거하여 해당하는 상이 요구하는 의미 구조를 어휘개념 구조로 설명한 것으로써, 이들이 통사부로 사상 (mapping)될 때 일정한 연계(lingking) 규칙을 통해 동사의 논항 구조 와 관련 맺게 됨을 알려주고 있다. 앞서 무표지 피동문에서 요구하는 동사의 자질을 致使性结构 을 유도 할 수 있는 致使性 이라고 하였다. 이는 동작이 원인이 되어 피영향 논
32 현대 중국어의 무표지 피동문에 대한 재고(이수진 정주연) 27 항이 어떠한 결과를 갖게 됨에 따라 문장이 원인과 결과의 복합적 사건 구조를 형성함을 말한다. 이에 따라 위의 네 가지 동사 유형을 살펴보 면 단일 사건 구조를 형성하는 행위 동사, 상태 동사, 달성 동사는 피동 화가 불가능하며, 사건 구조상 완성 동사만이 피동화가 가능하다는 것 이다. 그러나 실제로 피동화는 더 많은 유형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위 의 동사 유형 중 상태 동사를 제외한 나머지 3가지의 동사 유형은 사 건(event) 의 성격을 표현할 수 있으나 상태 동사는 사건보다는 상태 (state)나 사실(fact)을 표현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피동문의 사건 구조를 형성하는 동사의 유형에 포함시킬 수 있 는 것은 아래 15)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때로 어떤 대상의 상태나 사실 자체가 원인 사건을 구성하는 예도 있기 때문이다. 15) 他被青苔滑倒了 이지현(2009:139)은 상태사건, 기동사건, 사동사건, 복잡한 사건들이 모두 피동의 통사 구조로 사상(mapping)될 수 있음을 보이고 있다. 필 자는 행위 동사와 상태 동사가 동작의 자연 종결점을 갖지 않는다 해도 동작의 방향을 설명하는 대상은 가질 수 있으므로 행위 동사의 의미 구 조에 하나의 논항을 더 추가하여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ⅰ') 행위 동사:[xACT<MANNER>(y)] ⅱ') 상태 동사:[x<STATE>(y)] ⅲ') 달성 동사:[BECOME[x<STATE>(y)]] 이러한 동사의 어휘개념 구조를 참고하여 동일한 하나의 사건에 대해 능동문과 피동문으로 구성하게 되면 아래와 같은 의미 구조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16) 警察抓住了小偷 [[警察ACT<MANNER=抓>]CAUSE[BECOME[小偷<STATE=抓住了>]]] 이 명제는 [警察 ACT<MANNER=抓>]과 [BECOME[小偷<STATE=抓住了>]]
33 28 中國學 第34輯( ) 라는 두 개의 하위 사건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 두 개의 사건이 원인과 결과라는 사역적 의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Levin and Rappaport(19 98)는 명제가 표현하는 내용이 두 가지 하위 사건을 가지는 복합사건 구조인 경우 그 두 사건은 사역적 관계로 맺어질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사역적 구조가 사건을 피동문으로 범주화하는데 유리하다. 여기에 피동문의 사건 구조를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재구조화할 수 있을 것이다. ⅰ) 행위 동사: [[xact<manner>(y)]cause[become[y<affected>]]] ⅱ) 상태 동사: [[x<state>(y)]cause[become[y<affected>]]] ⅲ) 달성 동사: [[BECOME[x<STATE>(y)]]CAUSE[BECOME[y<AFFECTED>]]] ⅳ) 완성 동사: [[[xact]cause[become[y<state>]]]cause[become[y<af FECTED>]]] 이에 따라 16)과 같은 명제를 피동문의 형식으로 표현한 17)은 아래 와 같은 의미 구조로 분석할 수 있다. 17) 小偷被警察抓住了 [[[警察ACT< M ANNER= 抓住 了 >]CAUSE[BECOME[y<STATE = 抓住 了>]]]CAUSE[BECOME[小偷<AFFECTED>]]] 명제를 구성하는 두 개의 사건 중 왼쪽 사건이 피영향 논항 y<小偷> 의 <AFFECTED>를 유발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이 때 <AFFECTED> 의 내용은 구체화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의미 구조에 y 를 관점화한 피동문의 상적 특징과 피동 표지사를 삽입한다 면, 완성 동사의 경우 다음과 같이 다시 구조화할 수 있을 것이다.
34 현대 중국어의 무표지 피동문에 대한 재고(이수진 정주연) 29 [y<res-state=被[[[xact]cause[become[y<state>]]]cau SE[BECOME[y<AFFECTED>]]]>] 17) 小偷被警察抓住了 [小偷<RES-STATE=被[[[警察ACT<MANNER=抓>]CAUSE[BECOM E[y<STATE=抓住了>]]]CAUSE[BECOME[小偷<AFFECTED>]]]>] 제3장에서는 이 상(相)적 특징과 사건의 의미 구조가 제공하는 제약 조건에 근거하여 문장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3. 제약 조건에 따른 무표지 피동문의 분석 현대 중국어에서 피동문은 피동 표지사의 유무에 따라 크게 유표지 피동문과 무표지 피동문으로 나누어진다. 무표지 피동문은 피동 표지사 가 외현되지 않고 피영향자 논항이 문두에 위치하는 것으로 생성되지만 중국어에서 피영향자 논항은 피동의 개념을 설명하는 경우가 아니어도 문두에 위치하는 또 다른 경우가 있다. 바로 영주어(null-subject) 구문 으로 피영향자 논항이 주제화 혹은 초점화되어 문두에 위치하는 것이 다. 이 두 가지 유형은 형식적 측면에서 볼 때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때로 하나의 유형으로 묶여지거나 다른 유형으로 나누어지기도 하는 등 그에 대해 분명한 경계가 지어지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무표적 형태의 문장에서 피영향자 논항이 문두에 놓일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형태적, 통사적 형식만으로는 이들을 범주화하기 힘들다 는 것이다. 따라서 해당 문장들이 가지는 사건 구조와 상적 특징에 근 거하여 피동의 개념 유무를 살펴보고 구분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보았던 피동문이 가지는 상(相)적 특징과 사건 구조가 무표 지 피동문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우선 살펴보기로 한다. 상(相)적 특징을 포함한 피동문 사건의 의미 구조는 완성 동사를 중 심으로 할 경우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y<res-state=被[[[xact]cause[become[y<state>]]]cau
35 30 中國學 第34輯( ) SE[BECOME[y<AFFECTED>]]]>] 그런데 여기에서 被 와 같은 표지사와 행위주 논항이 생략된다는 것 은 피동화된 문장이 나타내는 정태적 상황, 즉 resultative-state 으로 이어지기 전의 과정을 생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위주와 행위주가 유발하는 동작의 과정은 최대한 약화시키고 피동화된 문장이 나타내는 결과적 상태에 집중하여 문장을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의 구조에서 는 행위주와 동작, 그리고 그로 인한 BECOME과정이 모두 생략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被 의 외현은 사건의 행위주와 과정까지 모두 중시하 는 것이라면 무표지 피동문은 이러한 被 를 외현시키지 않음으로 해서 그것이 중시하는 바를 외현시키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 다. 18) a. 门开了 b. 门被他开了 a)는 문이 열려진 상태로 변화했음을 즉, 열려져 있는 결과적 상태를 설명하는 반면에 b)의 경우 被 와 행위주의 외현으로 인해 문이 그에 의해 열려지는 상태로 변화했음을 즉, 행위주와 변화의 과정까지 설명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무표지 피동문에서는 과정에 해당하는 원인 이 약화되므로 이에 해당하는 사건구조를 세분화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do' 로 일반화하기로 한다. 이에 따라 무표지 피동문은 아래와 같은 사건 구조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xact]cause[become[y<state>]]]cause[become[y<af FECTED>]]] [[do'[ <manner>(y)]]cause[become[y<affected>]]] 이러한 의미 구조에 피동문의 상적 특징까지 함께 표현한다면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36 현대 중국어의 무표지 피동문에 대한 재고(이수진 정주연) 31 [y<res-state= [[do'[ <manner>(y)]]cause[become[y<af FECTED>]]]>] 19) 小偷抓住了 [小偷<RES-STATE= [[do'[ <抓>(y)]]CAUSE[BECOME[小偷 <AFFECTED>]]]>] 아래의 예들은 모두 이와 같은 사건 구조와 상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 며 따라서 무표지 피동문으로 분류할 수 있다. 20) 牛肉面也煮得十分好 [牛肉面<RES-STATE= [[do'[ <煮>(y)]]CAUSE[BECOME[牛肉 面<AFFECTED>]]]>] 21) 张三调到省里去了 [张三<RES-STATE= [[do'[ <调>(y)]]CAUSE[BECOME[张三 <AFFECTED>]]]>] 22) 病人治好了 [病人<RES-STATE= [[do'[ <治>(y)]]CAUSE[BECOME[病人 <AFFECTED>]]]>] 23) 工资已经都发到工人们手里了 [工资<RES-STATE= [[do'[ <发>(y)]]CAUSE[BECOME[工资 <AFFECTED>]]]>] 24) 车子在一边扔着 [车子<RES-STATE= [[do'[ <扔>(y)]]CAUSE[BECOME[车子 <AFFECTED>]]]>] 25) 气球吹破了 [气球<RES-STATE= [[do'[ <吹>(y)]]CAUSE[BECOME[气球 <AFFECTED>]]]>] 앞서 언급하였듯 의미 구조 내의 [+RES-STATE]는 내재적인 변화 를 동반한 결과로서의 상태를 설명하게 되는데 이때의 결과는 문장 속 에서 위의 20)-25)와 같이 외현될 수도 있고 26)의 예에서 보듯 핵심 동사가 또 다른 결과를 함축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37 32 中國學 第34輯( ) 26) 车停了 [[ ACT< M A N N ER = 停 >(车)]CAUSE[BECOME[车<STATE=NOT MOVE>]]]CAUSE[BECOME[车<AFFECTED>]]] 停 이라는 동작의 실현 자체가 또 다른 결과-최소한 NOT MOVE 를 이미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아래의 예는 报告 이 <AFFECTEE>임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 가 구성 동사의 어휘개념 목록에서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27) 报告听完了?[[ ACT<MANNER=听>(报告)]CAUSE[BECOME[报告<STATE=?>]]] CAUSE[BECOME[车<AFFECTED>]]] 听完 의 서술 내용이 报告 의 변화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 문에 위의 문장은 피동의 개념을 가진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단순히 동작이 완성되거나 실현되었다고 해서, 각종 결과보어 구문을 쓴다고 해서 피동의 개념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무표지 피동문과 영주어 주제 구문 도식은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나 타낼 수 있다. ⅰ) 무표지 피동문 : 사 사 ⅱ) 영주어 주제구문 : 사 즉, 위의 도표에서 보듯 무표지 피동문과 주제구문의 차이는 술어의 작용력과 그 결과 사 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28) 你说的那本书已经找到了?[[[ ACT<MANNER=找>(你说的那本书)]CAUSE[BECOME[你说的那 本书<STATE=?>]]]CAUSE[BECOME[你说的那本书
38 현대 중국어의 무표지 피동문에 대한 재고(이수진 정주연) 33 <AFFECTED>]]] 28)의 역시 같은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사건의 성립으로 인한 결과만 을 제시할 뿐 y의 <AFFECTED>를 설명하는 요소는 찾을 수 없다. 따 라서 문장은 문두 논항에 대한 피동적 관점에서 기술된 것으로 볼 수 없다. 다시 아래의 예를 살펴보자. 29) 这孩子讨厌死了 [这孩子<RES-STATE[[ ACT<MANNER=讨厌>(这孩 子)]CAUSE[BECOME[这孩子<AFFECTED=讨厌死了>]]]>] 29)는 <AFFECTED>의 내용이 위의 구조에서 보이는 것처럼 문두 논항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외현되지 않은 행위주, 엄격한 의 미에서 경험주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다.6) 따라서 이 문장의 의미 구 조는 다시 아래와 같이 표현되어야 한다. 29) [[ ACT<MANNER=讨厌>这孩子]CAUSE[BECOME[ <ST ATE=死了>]]] 여기에 상적 특징을 삽입한다면 아래와 같은 의미구조가 예측된다. 29) [ <ACTIVITY[[ ACT<MANNER=讨厌>这孩 子]CAUSE[BECOME[ <STATE=讨厌死了>]]]>] 논항이 동사의 어휘 자질에 따라 요구되는 기본적 구조를 위배한 채 투사된다면 그 위치에 투사시켜 표현하고자 하는 화자의 의도가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 때 화자는 피영향자 논항을 관점화시켜 피동의 개 념을 나타낼 수도 있고 살펴본 바와 같이 피동 이외 다른 개념-주제화, 6) 이로 인해 보어가 가지는 의미 지향점은 사건의 의미 구조 분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39 34 中國學 第34輯( ) 혹은 초점화를 위한 장치로 표현될 수도 있다. 30) 这种花见过 [ <ACTIVITY[ ACT<MANNER=见>这种花]>] 30)에서도 这种花 는 见 의 피영향자 논항이기는 하지만 피영향 논 항은 되지 못하므로 무표지 피동문으로 보기 어렵다.7) 다만 동사 见 이 가지는 어휘 정보 개념과 다른 형태의 논항 투사가 외현된 논항에 대한 주제화 작용임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4. 맺는 말 지금까지 표지사의 유무에 관계없이 피동문으로 범주화되기 위해서는 동일한 의미 기제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피동문의 상 (相)적 특징과 의미 구조에 대한 제약 조건을 살펴보고 이것이 무표지 피동문의 범주화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피동문은 피 영향 논항에 대한 결과로서의 상태에 초점이 맞추어져 해당 논항의 관 점에서 서술하게 되는 문장이다. 따라서 그 기본적인 상(相)은 결과 상 태[+RES-STATE]를 나타내고 있으며 사건의 의미 구조 또한 이러한 상적 특징을 산출할 수 있는 구조로 분석할 수 있다. 이를 일종의 의미 적 제약 조건으로 보고 피영향자 논항이 문두에 위치하는 문장들 중에 서 이러한 제약 조건에 충실한 문장들은 무표지 피동문으로, 또한 이 제약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 경우 피영향자 논항이 주제화된 주제 구문 으로 구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상술한 유형화에 적합하지 않은 예들 7) 이지현(2008)은 비인칭성 Np+VP 를 중국어 피동문의 원형구조로 보고 유 사한 형식의 문장인 这个问题讨论过(문제가 토론된 상태이다) 또한 피동문 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Croft(1990)의 关联标记性 -무표지 형태로 결합되 는 단어 혹은 단어구 중에는 natural correlation 이 만들어져 일종의 원형을 만들어 낸다는 원칙에 따른 견해로 보인다. 비인칭 명사가 동사의 수동자가 된다는 인류의 경험에 따라 이를 피동문의 원형 구조로 본다는 점에서는 동 의할 수 있으나 그 원형 구조가 실제 문장 속에서는 다른 구조로, 즉 피동에 대한 무표지가 아니라 주제화, 초점화 등과 관련된 또 다른 구조를 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40 현대 중국어의 무표지 피동문에 대한 재고(이수진 정주연) 35 이 있음에도 본고는 이들에 대해 해석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 다. 汽车撞伤了 와 같은 문장에서도 문두 논항 汽车 가 피영향 논항으 로 伤 이라는 상태로 변화하였다는 것인지 아니면 汽车 가 간접적 행 위주가 되어 외현되지 않은 또 다른 논항에 伤 이라는 작용을 일으켰는 지 단정 지을 수 없다. 이러한 의미적 유사성과 모호함들은 다시 형태 적, 통사적 심지어는 화용적 해석의 도움 없이는 완전히 해석되기 어려 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론적 세분화를 시도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들이 어떠한 표현 기제를 나타내느냐에 따라 중국어 동사의 능격성, 주제화 기제, 논항과 의미역 설정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 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동사의 어휘 자질, 사건의 의미 구조 설 정, 형식의 개념화 등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이고 세부적인 작업을 동반 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曹道根, 汉语被动句的事件结构及其形态句法实现, 现代外语 (2009, 01期) 邓思颖, 汉语被动句的三个句法问题, 汉语被动表述问题国际学术研讨 会论文集 (2003) 王卫琳, 从 三个平面 语法理论看现代汉语受事主语句, 贵州工业大学学 报 (2008, 02期) 熊学亮 王志军, 被动句式的原型研究, 外语研究 (2002, 01期) 熊学亮 王志军, 被动句认知解读一二, 外语教学与研究 (2003, 03期) 강명순, 국어의 태 전략 (서울: 한국학술정보, 2007) 오충연, 상과 통사구조 (서울: 태학사, 2006) 이복희, 동사의 상 특성과 변환, 언어과학연구 (2006, 39집) 이지현, 피동태는 능동태의 상반되는 형식범주인가?, 중국어문학논 집 (2008, No.50) 이지현, 현대 중국어 피동 사건의 의미 구조 고찰, 중국어문학논집 (2009, No.54) 조은숙, 중첩피동의 의미기능과 인지구조, 어문론집 (2007,Vol.37) Anderson, John R. 이영애 譯. 認知心理學 (서울: 乙酉文化社,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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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中國學 pp.37~56第34輯( ) 문두성분의 주관성 분석과 화제화 --화제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탐색 김정필* 목 차 1. 서 언 2. 화제의 어법분석과 주관성 분석 3. 연계성 문두성분의 배경성과 화제화 3.1 대주어의 화제화 분석 3.2 문두부사어의 화제화 분석 4. 독립성 문두성분의 조건성과 화제화 4.1 조건절의 화제화 분석 4.2 삽입어의 화제화 분석 5. 결 어 1. 서 언 일상적인 언어의 교제과정에서 사용하는 구문은 단순히 세 개의 기본 성분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수식어와 함께 나타난다. 뿐 만 아니라 구문의 문두에는 주어를 비롯하여 화제 문두부사 삽입어 개사 구 조건절1) 등 다양한 형태의 어법범주가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구문 * 부경대, 부산대 강사 [email protected] 1) 일반적으로 조건절은 복문에서 종속절에 해당한다. 하지만, 하나의 구문이 하나의 정보를 전달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화자가 전달하는 정보는 주절이 담당하게 된다. 아울러 복문의 선행종속절은 주절의 조건이나 배경을 설명하 는 주절의 문두성분으로 간주한다.
43 38 中國學 第34輯( ) 의 문두에는 반드시 주어가 와야 된다는 필연성은 없으며, 주어에 앞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두성분들을 만나게 된다. 문두성분의 특징은 대체로 구문 내에서 직접성분 간의 논리적 의미관 계가 미약하여, 반독립적 상태로 구문 전체와 연관성을 가진다는 공통 점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어법적 논리관계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문두 성분은 구문에서 휴지나 어기조사 등의 형태표지에 의해 주절과 분리되 어 존재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문두성분은 여전히 후행하는 주절과 의미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교제과정에도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문성성분 중에서 대표적인 성분인 화제는 화용과 어법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항상 주어와 대비되어 분석된다. 유형론의 입장에 서도 주어와 화제가 완전히 다른 범주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어법화(Gra mmaticalization)된 화제가 주어라는 것으로 화제와 주어를 동일시하고 있다. 徐烈炯 劉丹青(1998)은 화제는 특정한 분포위치를 가리키는 명칭 이며, 이 위치에 속하는 성분은 의미와 정보기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 하는데,2) 최근 화제의 어법분석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만약 언어를 하나의 습관적 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면, 현재 깨뜨릴 수 없는 규칙으로 굳어진 많은 어법현상도 대개 담화 화용규칙의 고정 화를 통해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현존하는 어법규칙이 논리관계를 그 틀의 근거로 하고 있지만, 본래 언어의 사용과정에서 나 타나는 경향성 원칙(습관적 공유)의 고정화 또한 어법화의 한 측면이다. 다시 말해, 어법이란 이러한 경향성이 광범위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사용됨으로써 점차 고착화 되어 약정된 규칙으로 변화된 것이기 때문이 다.3) 따라서 화용론적 경향성 원칙을 완전히 고정화되지 않은 準어법적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화용원칙으로 파악되는 다양한 비어법적 현상, 화제화도 이와 같은 원칙으로 어법적 관점에 적용할 수 있을 것 이다. 2) 徐烈炯 劉丹青(1998), p.43 참조. 이들의 화제를 통사성분으로 간주하고 연 구한다. 3) Hyman(1984)에서는 어법규칙을 화용규칙에서 변화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沈家煊(1998), p.1 참조
44 문두성분의 주관성 분석과 화제화(김정필) 39 본문에서는 이러한 문두성분의 삽입이나 전환을 화제화(话题化)의 구 문파생과 연관시켜 주관화의 시각에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즉 주어 이 외의 다양한 문두성분들은 대개 삽입과 구문전환이라는 두 경로의 어법 과정을 거쳐 생성되는데, 이 과정을 화제화 라고 규정할 수 있다.4) 화 제화 과정을 통해 생성된 문두성분들은 논리주어가 표현하는 객관성과 는 구별되는 주관성을 표현하게 되는데, 그 주관성은 대체로 배경과 조 건으로 귀결해 볼 수 있다. 따라서 화제표지가 없는 문두성분을 연계성 문두성분으로, 화제표지가 있는 문두성분을 독립성 문두성분으로 구분 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사실 주관성은 단순히 형식이나 형태성분을 통 해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문두성분이 표현하는 이러한 주관성을 화 제화 라는 어법기제를 주관화의 과정으로 인식함으로써 새로운 방법론 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화제의 어법분석과 주관성 분석 2.1 화제의 어법분석과 화제화 지금까지 화제에 대한 일반적 견해는 구문내부의 성분인 주어와 대비 되는 구문 외부의 성분으로 파악되어 왔다. 그리하여 화제의 어법성은 언제나 주어와의 대비 속에서 검토되었다. Trask(1995)의 정의에 의하 면, 주어는 구문 중의 명사성분으로 현저한 어법관계를 통해 쉽게 확인 할 수 있으며, 다양한 어법, 의미 및 문맥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 5)으 4) 徐烈炯 劉丹青(1998)에서는 화제 위치에 특정 성분을 삽입시키는 것을 화제 화(topicalization)라고 명명하였으나, 기존 성분을 화제 위치로 구문전환을 하는 것 또한 화제화의 과정으로 규정한다. 5) Trask(1995:226)의 정의에 근거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①주어가 대표하는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이다. ②주어는 구문 중의 공(共)지시(co-reference) 성분을 제약한다. ③주어는 동사와의 일치관계를 제약한다. ④주어는 무표지구조의 화제이다. ⑤주어는 의문대명사를 사용하여 질문할 수 있고, 초점화 될 수 있다. ⑥주어는 일반적으로 형태표지가 결핍되어 있다. ⑦주어는 일반적으로 무표지구조의 施事이다.
45 40 中國學 第34輯( ) 로 설명하고 있다. 이에 반해, 화제는 구문에 표시되는 언어 환경 중의 已知성분으로, 구문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진술대상 으로 설명한다. 이 정의를 근거로 살펴보면, 화제는 우선 언어환경의 已知성분 이란 점과 후행하는 전체구문의 진술대상 이라는 점에서 주어와 차이를 두고 있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최근에 연구되고 있는 화제의 어법분석 에서 는 이러한 화제와 주어의 어법적 차이점이 있음을 전제를 깔고 있지만, 후행하는 구문전체와 진술-대상의 관계라는 것 이외에 현저한 어법관 계 라는 점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중국어의 화제연구도 주어와의 비교를 통한 어법연구의 방식으로 진 행되었다. 우선 趙元任(1968)은 모든 구문을 화제-설명 으로 파악하고, 화제(topic)를 주어와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Li & th ompson(1976)에서 화제는 주어와 분리되었고, 曹逢甫(1997)와 沈家煊 (1999) 등은 중국어 전형화제6)를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曹逢甫(1 995)는 중국어는 담화중심의 언어 라는 전제하에, 화제는 여러 개의 구 문을 동시에 연결될 수 있다 고 하여, 단순히 단문의 성분관계가 아닌 담화적 성격을 지닌 语段主题 라고 설명하고 있다.7) (1)这个英文句子真难 我不懂 他也不懂 예문(1)에서 밑줄 친 부분인 这个英文句子 는 술어인 真难 에만 연계 된 것이 아니라, 我不懂 및 他也不懂 과 모두 연계되어, 전체 문단의 주제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즉 曹逢甫(1995)의 语段主题 는 여러 문단 과 연계된 화제의 기능을 밝히는데 일조하였지만, 대주어나 단일 사건 의 화제와 주어의 관계를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미약하다.8) 최근 화제의 어법연구가 계속되면서, 화제의 어법기능은 더욱 확대되 어 가고 있다. 徐烈炯 劉丹青(1998)은 화제의 범위를 구문 내부의 부사 6) 이들의 정의를 보면, ①문두에 위치하며, ②휴지나 어기사를 형태표지로 가 지며, ③有定性을 지닌 구(已知)정보이며, ④개념상의 연속성과 의미상 후행 하는 전체 구문을 제약한다. 는 네 가지의 특징을 가진다. 7) 曹逢甫(1997), p11 8) 이것은 필자가 曹逢甫선생에게 직접 확인해 보았지만, 여전히 단일 구문에 대한 명확한 확답을 들을 수 없었다.
46 문두성분의 주관성 분석과 화제화(김정필) 41 어(특히 상어 )에까지 확대시켜, 차화제(次话题)라는 범주를 제시하고 있다.10) (2)他零钱用完了 (3)苹果已经一斤两块五了 徐烈炯 劉丹青(1998)은 예문(2)의 零钱은 목적어 전치를 통한 화제로 주화제이며, 예문(3)은 수량사를 차화제로 간주한다. 이것은 아마도 시 간사나 처소사, 수량사 그리고 어기부사가 주어와 술어 사이에서도 배 경성 부사어로 기능할 때의 어기 표현이 그 주요한 근거로 작용한 것으 로 보인다. 또 石毓智(2001)는 주어는 구문과 종속절의 두 층위에 모두 사용될 수 있으나, 화제는 구문의 층위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11)라고 하여 복 문에서 종속절로 사용될 수 있느냐의 여부를 통해 화제를 밝혀내고 있 다. (4)a.小王看完了书? b.这就是小王看书的地方 (5)a.书小王看完了? b.*这就是书小王看完的地方 예문(4)에서 a항의 小王看完了书 는 기본구문으로 b항의 종속절에서 어법에 부합되는 구문이지만, b항의 书小王看完了 는 화제구문으로 종 속절이 되었을 때는 적법하지 않다. 비록 논리적인 설명이기는 하나, 목 적어 전치를 통한 화제화는 화제구문이 기본구문이 아니라 파생구문이 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주어와의 차별성은 화제의 어법 성을 도출해내기보다는 오히려 화제의 주관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 었다. 사실 화제의 어법분석은 순수한 어법기능에 근거한 분석이라기보다 는, 오히려 주관성 표현과 더불어 나타나는 어휘의미의 주관화를 조사 10) 徐烈炯 刘丹青(1998)은 문두화제인 주화제와 차화제, 그리고 차차화제 등 다양한 위치의 화제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p39참조. 11) 石毓智(2001), p51
47 42 中國學 第34輯( ) 화와 유사한 어법화 의 한 범주로 인식하고 있는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2.2 화제의 주관성 분석과 화제화 지금까지 화제가 어법분석이 아닌 화용분석의 대상이 된 것은 화제가 구문에서 현저한 논리관계를 형성하는 직접성분이 없다는 점에서 구문 외부의 성분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기존의 담화분석과 어법분 석을 동시에 고려하여 화제구문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구문은 최소 한 하나의 구문술어 앞에 두 개 이상의 명사성 어구가 존재해야 한 다.12) 둘째, 주어는 술어와 논리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기에 언제나 화 제보다 술어에 가까이 위치하며, 의미관계가 느슨한 화제는 주어보다 술어와 먼 거리에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화제는 주어보다 문두에 오며, 이것은 어기성분이 문두나 문미에 오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다시 화제의 주관성 분석을 위해 화용론의 측면에서 접근해 보자. 우 선 화제구문은 대개 화제와 설명 을 테마와 레마, 혹은 구정보와 신 정보 등으로 해석되면서 배경과 초점의 대비 로 연구되었다.13) 즉 테 마-레마에 근거한 화제구조의 어순배열은 대개 구정보(테마)-신정보(레 마)14)의 순서로 배열된다. (6)那块田稻子长得很大; (所以)(那块田)很值钱 예문(6)에서 문두성분 那块田 과 稻子 의 관계는 대주어와 소주어 의 서로 다른 어법관계를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화용분석에서는 那块田 과 稻子 모두 테마로서 공통적 기능을 하고 있으며, 이들이 가 12) 명사성 성분이란 서술적 성격에 대비되는 것으로 단어나 구절을 모두 포함 한다. 즉 조건이나 가정 등의 종속절 또한 사건, 혹은 조건대상으로서 서술적 성격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13) 여기에서 중국어 구문에 대한 화제와 설명(평언)의 구문분석은 비록 테마레마 식 분석과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 없지만, 중국어 화제(주제)에 대한 어법분석도 여전히 구정보와 신정보로 이등분하는 정보이론과 프라그 학파의 테마(theme)-레마(rheme)의 구문분석을 기저로 하고 있다. 14) 일반적으로 화제는 주제, 혹은 주제어로, 설명은 평언으로 명명되기도 한다.
48 문두성분의 주관성 분석과 화제화(김정필) 43 지는 담화수행능력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15) 그리고 술어 长得很大 와는 화제와 설명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화용분석의 한 계점은 다음과 같은 기본구문에서 드러난 어법성분과 수식어 등 다양한 어법성분들을 해석해내지 못한다. (7)他在读书 (8)张三给了他那本杂志 위의 예문(7)과 예문(8)은 주어+술어+목적어 의 전형적인 구문구조 로 구성되어 있다. 테마-레마 식 화용분석에서는 他 와 张三 은 언제 나 테마 이며, 在读书 와 给了他那本杂志 는 레마 로 분석될 수밖에 없 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테마-레마 식 분석의 한계는 예문(7)의 두 개 의 동사 在 와 读 에 대한 어법기능의 차이라든가, 예문(8)의 동태조사 了 의 활용도를 전혀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제의 테마레마 식의 화용분석은 모든 구문을 화제-초점 의 방식으로 양분함으로 써 화제를 부각시켰지만, 정작 화제가 가지는 구문에서의 역할과 범주 에 대한 정확한 기능을 파악했다고 하기 힘들다. 따라서 화제의 정확한 기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형화제16)를 통해 화제 범주의 경계가 확정되어야 한다. 徐烈炯 劉丹青(1998)은 화제의 전형성은 단순히 의미관계로 파악할 수 없으며, 언어학의 범주를 벗어 나 있으며, 인류의 언어지식이 아닌 외부세계의 지식 을 전달하는 것17) 으로 파악한다. 胡裕樹(1982) 또한 화제와 주어의 구별에서 주어는 통 사구조에 속하며 구문의 내부구조이지만, 주제(화제)는 외부구조에 속한 다. 18)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한 외부세계의 지식 은 화제가 구문내용, 즉 사건내용이 15) 예문과 분석방업은 장태원(1997)에서 참조하였다. 16) 徐烈炯 劉丹青(1998)에서는 이러한 주어 앞에 존재하는 명사성 화제를 主 话题 라고 명명하였으며, 문중에 존재하는 화제는 대개 次话题 次次话题 로 명명하였다. 17) 徐烈炯 劉丹青(1998) p ) 胡裕樹(1982)에서는 화제 대신 주제 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본고의 용어를 통일하기 위해 모두 화제 로 대체하여 쓴다.
49 44 中國學 第34輯( ) 아닌 화자의 심리판단과 연계되어 있으며, 또 외부구조 란 바로 화제의 범주가 구문 내부의 논리관계보다는 외부의 언어환경과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어가 어기조사, 휴지 등 의 형태표지에 의해 주절과 분리되어 분포할 경우, 과연 이 주어가 내 부성분인가 아니면 외부성분인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 으로 사료된다. 구문을 벗어난, 즉 주절을 벗어난 성분에 대한 연구는 어법기능에 대한 분석보다는 주관성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 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3. 연계성 문두성분의 배경성과 화제화 3.1 대주어의 화제화 분석 중국어에는 두 개의 주어를 가진 주술술어문 구성하는 문두성분 대 주어와 소주어의 어법관계는 이들의 종속관계의 여부에 따라, 的 자의 부가여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러한 분석방법은 陳承澤(1922) 이래로 중국어 언어학계의 기본적 관점으로, 가장 전형적인 주술술어문 에서 대주어와 소주어의 관계는 전체와 부분으로 종속관계를 가지고 있 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대 중국어에서 활용되고 있는 주술술어문의 유형은 너무 다양하여 이러한 주장은 이미 그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다. 만약 주술술어문 을 화제-설명의 방식으로 분석한다면, 대주어는 술 어의 논리주어인 소주어와 대비시켜 화제로 분석될 수 있다. 이것은 바 로 소주어가 술어와 논리적으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면, 대주어 는 후행하는 주절의 진술대상으로 술어와는 직접적인 논리관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9)兔子耳朵长 토끼는 귀가 길다. (10) 예문(9)은 중국어에서 주술술어문 으로 규정되고, 예문(10)는 한국어 에서는 이중주어문, 혹은 주격중출문 으로 불린다. 우선 테마-레마 식
50 문두성분의 주관성 분석과 화제화(김정필) 45 의 분석에 의하면, 예문(9)과 예문(10)은 모두 두 개의 테마(兔子 耳朵/ 토끼 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구문의 두 테마는 동등한 기능을 가진 다. 하지만, 어법분석을 위해서는 두 개의 동등한 기능을 가진 어법성분 으로 파악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두 개의 테마는 대주어와 소주어로 구분하였다. 지금까지 중국어 구문분석에서 형식표지19) 없는 화제를 주술술어문 의 대주어로 분류한 것은 화제와 주어와 명확한 구분이 어려웠던 점 또 한 그 원인 중의 하나이다. 사실 의미적 측면에서 보면, 대주어와 소주 어의 기능차이는 크게 의미역의 제약범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대 주어는 소주어와 달리 후행하는 전체 구문에 대한 의미를 제약하고 있 으며, 또 화제표지를 넣어 주절과 분리시키면 담화범주인 화제와 동일 한 기능으로 분석할 수 있다. (11)大象 鼻子很长 (12)这间老房子 门窗都坏了 (13)这种牌子的冰箱 保修期挺长 (14)这种病人 (他的)情况很危险 (15)小张 爸爸很有钱 위에 주어진 예문들은 모두 화제표지를 제거하면, 대주어(화제)와 소 주어의 주술술어문 으로 분류된다. 뿐만 아니라, 대주어와 소주어는 소 유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에 중간에 的 자를 부가할 수 있다. 하지만, 的 자의 부가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근거는 대주어와 주어의 어휘적 의 미관계에 치중하고 있으며, 기실 억지로 的 자를 부가하는 것은 화자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므로 주관성과 결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6)那棵树 叶子很大 (17)那棵树 人们只见树干 不见叶子 20) 19) 徐烈炯 劉丹青(1998)에서는 화제성분 뒤에 오는 어기조사, 휴지 등을 화제 표지로 삼고 있다. p ) 徐烈炯 劉丹青(1998)에서 的 자를 부가여부가 초점으로 작용할 수 없는 구 문으로 제시한 것이다.
51 46 中國學 第34輯( ) 예문(16)에서 대주어 那棵树 와 소주어 叶子 의 관계는 전형적인 전 체와 부분의 종속관계가 성립함으로, 주술술어문 으로 분석이 가능하 다. 하지만, 예문(17)의 문두성분 那棵树 는 曹逢甫(1995)가 주장한 语 段主题 로 분석은 가능하나, 주술술어문의 주어로 분석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전형적 주술술어문에서는 주절의 서술어는 형용사가 담당하 는 반면, 예문(17)의 주절의 술어는 동사 见 이 담당하고 있다. 뿐만 아 니라, 문두성분 那棵树 도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서 목적어인 树干 과 叶子 의 수식어로 분석된다.21) 따라서 예문(16)과 예문(17)의 문두성분 那棵树 에는 화제표지인, (휴지)를 통해 후행하는 주절과 독립되어 있다는 점과 더불어 두 예문의 문두성분을 화제화의 과정을 거친 파생 구문으로 파악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고 일관성 있는 범주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2 문두부사어의 화제화 분석 중국어에서 화제표지가 없이 직접 연계된 성분으로 화제화 분석의 대 상이 될 수 있는 것이 문두부사어이다. 학교문법에서는 문장부사 라고 도 하며, 사물에 대한 판단이나 추측, 의심 등과 같은 화자의 심적 태 도 를 나타내는 이음절 부사인 大概 到底 果然 恐怕 难道 幸亏 也许 등이 있다.22)고 기술되어 있다. 사실 부사어는 구문에서 술어의 서술 작용에 앞서 화자의 발화의도 가 투영되는 대표적인 수식어로, 대 개 부사어의 분포위치는 문두와 문중(주어 뒤, 술어 앞)의 두 군데에 위 치한다. 하지만, 문두부사어는 술어의 동작행위에 대한 상황이나 성질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문중부사어와 달리, 후행하는 사건 전체 구도에 대한 발화조건이나 배경을 통한 주관성을 내포하고 있다. 21) Schlobinski & Schütze-Cobum(1992) 등은 예문(8)에서 那棵树 와 叶子 很大 의 사이에 的 가 생략된 것으로 관형어와 중심어의 관계로 파악한다. 이 에 반해, Li & Thompson(1976, 1981)의 주장은 那棵树 와 叶子很大 사이 에 的 가 존재하느냐에 따라 다른 구문이 될 뿐만 아니라, 의미 또한 다르다 고 주장한다. 22) 상원무 저, 중국어문법책, 2007, p.148.
52 문두성분의 주관성 분석과 화제화(김정필) 47 사실 주관성은 구문에서 특정성분이 화자의 심적 태도, 판단 등 어기 의 표현을 하게 되면 어휘의미의 허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의미 의 허화는 구체적 동작행위를 나타내는 객관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의 미의 허화는 기능화와 주관화의 두 가지 경로로 어법화가 진행되는데, 어휘의미를 완전한 상실하는 조사화와 여전히 어휘의미를 동반한 채 주 관성의 투영을 통해 드러나는 주관화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면 화제화의 각도에서 어기부사의 구문분포를 통해 드러난 주관 성의 차이를 살펴보자. (18)a.究竟你去还是他去? b.你究竟去还是他去? (19)a.难道你一直不知道吗? b.你难道一直不知道吗? (20)a.也许他已经走了 b.他也许已经走了 단순히 어법적 논리관계를 중심으로 본다면, 위의 예문에 사용된 어 기부사는 문두에 가든, 문중에 가든지 이들의 어법기능은 모두 부사어 로 규정된다. 그러나 비록 부사의 구문기능을 부사어에 한정한다고 규 정하더라도, 문두성분과 문중성분이 제약하는 의미범위는 분명히 다르 다. 사실 어기부사가 문중에 온다는 것은 오히려 화자가 의도적으로 술 어와 의미관계가 성립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문 두부사어를 화제로, 문중부사어는 부사어로 보는 것이 구문분포와 어순 의 차이가 나타내는 의미상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기부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간사나 공간사는 어순변화를 통해 문두(화제)와 문중(상어)의 상호 전환이 가능하다. (21)星期六晚上我去大使馆 (22)我星期六晚上去大使馆 예문(21)과 예문(22)에 존재하는 시간사 星期六晚上 은 담화분석에서 는 星期六와 晚上을 모두 테마로 분석하는 반면, 어법분석에서는 문두 부사어와 문중부사어로 구분된다. 하지만, 화제화 분석에서는 두 개의 시간명사 星期六와 晚上이 함께 예문(21)에서는 사건배경이 화제로, 예 문(22)에서는 동작행위의 배경성의 부사어로 구분하여 분석된다. 왜냐
53 48 中國學 第34輯( ) 하면, 구문의 분포위치의 차이는 화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배경의 제약 범주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星期六와 晚上을 모두 부사어로 분석하더라도, 분포위치를 통해 드러나는 부사어의 수식범위 가 다르기 때문에 의미범주 또한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4. 독립성 문두성분의 조건성과 화제화 4.1 조건절의 화제화 분석 조건(conditionals)범주와 화제(topic)범주의 연관성은 Li & thompso n(1976), Haiman(1978), 徐烈炯 劉丹青(1998), 袁毓林(2003) 등에서 주장되어 왔다.23) 이것은 Li & thompson(1976)에서는 어법형태의 유 사성에 근거하여, 조건절의 형태표지인 휴지(pause)와 어기조사가 화제 표지(topic marker)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주장하였다. 또 Haiman(197 8)24)은 보편적인 언어개념에서 조건절이 화제가 될 수 있다 는 주장하 였는데, 이러한 주장들은 조건절 또한 화제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는 사실을 증명한다. 뿐만 아니라, 徐烈炯 劉丹青(1998), 袁毓林(2003) 등에서도 啊 呢 吧 등 어기조사와 조건표지의 的话 등이 화제 표지로 작용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23)a.你要是饿了呢 就自己做点吃 (24)a.明天没有事的话 我一定找你去 b.院士的话 当上院士好像就不用退休了 b.你呢 想去不能去 我呢 不想又非去不可 袁毓林(2003)은 예문(23)과 예문(24)에서 각 a항의 문두성분은 조건 절로, b항의 문두성분은 화제로 분석하고 있다. 우선 구문분석의 측면 23) Hainman(1978)은 터키어나 타갈로그어를 중심으로 화제표지와 조건표지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주장하였다. 한국어 연구에서도 이러한 연구사례가 있는 데, 구현정 이성하(2001) 등은 한국어 조사의 기준을 통해 시간적 조건과 화 제의 연관성을 입증한 바 있다. 24) Haiman의 논문 <conditionals are topic>(1978) 참조.
54 문두성분의 주관성 분석과 화제화(김정필) 49 에서 살펴보면, a항은 문두성분이 종속절로서 복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 으며, b항의 문두성분은 대명사인 단어로 단문을 구성하고 있다. 따라 서 지금까지 단문과 복문을 구분하는 어법분석의 각도에서는 비록 화제 와 조건절이 동일한 형태표지를 가졌다고 해서, 구문분석에서는 화제구 문과 조건문을 동일한 구문으로 귀납하지는 않는다. 사실 가정이나 조건 등의 복문은 단순히 的话 등과 같은 어법표 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행하는 如果 假如 등과 연결되어 쓰이 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복문연결의 접속사와 다양한 각도에서 그 연 결고리를 찾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복문의 화제화는 다음 과 같은 예문에 대한 복문의 화제조건에 해당하는지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더 연구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26)要不是你叫我 我就睡着了 (25)如果他不同意 我就不去了 하지만, 하나의 구문이 하나의 정보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조 건절은 후행하는 주절의 수식어에 불과하며, 주절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화제(제시어)로 파악할 수 있다. 단순히 어법기능만을 표시하는 동 일한 형태표지의 유무가 화제구문과 조건복문을 동일구문으로 파악하는 기준은 될 수 없다 할지라도, 화제와 조건절의 관계는 화제와 주어의 관계처럼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25) 만약 좀 더 상위의 차원의 인지관계의 이해 혹은 정보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어기조사나 휴지 그리고 的话 등을 하나의 화제표지로 이끌어낼 수는 있을 것 으로 판단된다. 특히 화제가 청자의 注意집중 이라는 담화화용의 측면이나, 화자의 주관성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모두 동일한 의미를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의 논리관념을 통해 볼 때, 동 25) 고대중국어의 화제연구에서 양세욱(2005)은 비록 화제표지와 조건표지가 과연 동일한 본질적 속성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 만, 조건과 화제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사실은 두 기능이 상호 배타적 이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이 의견에 필자도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양세욱 (2005)의 주석1)부분 참조.
55 50 中國學 第34輯( ) 일한 형태표지를 가지고 있다는 성분을 화제와 설명 이나 혹은 조건절 (조건)과 주절(결과)의 두 범주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사료된 다. 4.2 문두삽입어의 화제화 분석 감탄사처럼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거의 반독립적 성분 으로 존재하는 문두성분으로 삽입어 가 있다. 삽입어 는 구문이 전달하 는 사건내용과 직접적인 논리관계가 성립하지 않아 유표적인 특징을 지 니고 있으며, 대개 구문내용, 즉 사건의 발생조건이나 배경을 통해 화자 의 심적인 태도를 표현한다. 사실 삽입어가 주관성의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孟琮(1982) 劉月華(1986) 등에서 이미 초보적인 연구가 시도 되었다. 특히 司紅霞(2006)는 삽입어의 내부구조를 통해 주관성 표현을 파악하고 있는데, 삽입어 의 구성요소인 说 가 본래의 의미인 말하다 가 능원동사인 想 의 의미로 파생된다는 것에서 착안하고 있다. (25)他老不让我说! (26)让我说 我们还是在家等他吧 (27)你还别说 这家馆子的菜真不错 司紅霞(2006)는 예문(26)과 예문(27)에서 ~说 삽입어가 어휘화를 통한 의미파생이 일어나 说 의 의미가 想 의 의미로 활용되어 주관성 을 표현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문(26)나 예문(27)의 삽입어의 일부 를 구성하는 ~说 가 말하다 가 아닌 ~하려 하다 로 해석된다고 해서 능원동사로 파생되었다고 규정할 수 없다. 다만 说 의 동작성이 상실되 는 것은 문두삽입어가 후행하는 주절의 사건에 대한 조건이나 배경으로 활용되면서, 말하다 의 동작행위가 미실현의 조건 속에 묻혀버리기 때 문이다. 다시 말해, 说 의 발화행위는 동작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화 되기 이전의 심리판단의 조건으로 想 의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 따라 서 예문(26)과 예문(27)에서처럼 문두삽입어는 주절을 이끌어 내기 위 한 심리조건이나 배경(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에, 화제표지인 휴지에 의
56 문두성분의 주관성 분석과 화제화(김정필) 51 해 주절과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28)听说小王结婚了 (29)据说小王结婚了 (30)这么说 小王结婚了 물론 예문(28)과 예문(29)처럼 삽입어가 화제표지에 의해 분리되지 않고 주절과 연계되어 존재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의미는 주절에서 표 현되는 정보의 배경과 조건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조건을 나타내는 삽입어 내에 존재하는 说 은 그 본래의 의미표현인 말하다 의 동작성이 상실되고, 심리적 상황 내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구문을 통해 그렇게 해석하고 있을 따름이다. 즉 단순히 삽입어 속 说 의 의미변화를 통해 주관성이 표현되는 것은 아니라, 전체구문에서는 삽입어가 주절의 조건으로 작용함으로써 주관성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 이다. 결론적으로, ~说 를 포함한 삽입어에서 说 의 의미가 주관성을 표현 하는 원인은 두 가지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다. 첫째, 동사 说 가 삽입 어 속에서 동작행위의 상실로 인해, 동사(说)의 어휘의미가 능원동사 (想)의 의미로 추상화 되었다는 점이다.26) 이것은 개별 어휘인 说 가 새로운 품사인 능원동사 로 품사전이가 되었다는 것은 아니며, 삽입어 가 구문을 벗어나 조건 혹은 배경을 표시함으로써 내부의 의미가 일시 적으로 허화된 것이다.27) 둘째, 의미상의 변화로 说 (말하다)의 의미가 하려 하다 로 바뀐 것은, 바로 화자의 주관성 표현에 따른 동작의미 의 심리화로 파악할 수 있다. 26) 비록 이러한 현상을 조사화 등과 같은 기능화현상으로 처리할 수 없다. 하 지만, 인지언어학에서 주관화 를 어법화의 일종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여기에 서의 说 는 이미 어휘적 특징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기능화의 일종으 로 간주할 수 있다. 27) 여기에서 삽입어의 기능을 후행하는 주절에 대비시켜 보면, 대개 원인, 조 건 등의 논리관계를 보인다. 뿐만 아니라, 독립어로서 화제와 유사한 주관성 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서 说 는 목적어를 상실함으로써 타동사로서의 기 능을 상실하게 된 것도 하나의 원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57 52 中國學 第34輯( ) 5. 결 어 대표적인 문두성분인 감탄사가 독립언으로 분류하고 있는 이유는 어 휘적 특징에 근거한 객관의미가 표현하지 못하고, 어기의미(주관성)만을 표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감탄사 또한 여전히 구문과 별개의 성 분으로 떼어놓고 구문을 분석할 수 없으며, 구문의 정보전달이라는 기 능으로 볼 때에는 오히려 화자의 주관성을 밝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우선 화제가 주어의 현저한 어법관계 와 구별되는 의미관계의 논리 적 느슨함 이란 어순을 통해 그 어법적 차별성에 있다. 따라서 문두부사 어도 문중부사어의 위치에 전환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부사어의 범주 에 귀속되었을 뿐, 그것들이 표현하는 의미는 다르다. 즉 화제가 주어 앞의 문두에 분포하는 원인은 주관성의 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특징은 구문에서 다른 성분과 논리관계가 느슨하게 형성되어 있는 이유 는 기능화가 아니라, 바로 이 주관성의 표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화제의 어법분석은 화제로 기능하는 어휘성분에 대한 객관의미가 전달하는 논리관계도 고려해야겠지만, 화제가 표현하 는 의미의 주관성을 파악할 수 있어야 정확한 의사소통의 효과를 기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제를 어법적 각도에서 분석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분포위치 를 통한 어법기능을 확정해야 한다. 즉 구문의 주요성분인 주어, 술어, 목적어 등과 수식성분인 상어, 한정어, 보어 등도 모두 각각의 특정한 분포위치가 존재하듯이, 화제의 어법기능과 더불어 분포위치 또한 확정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분석에서는 분포위치를 확정하지 않고 화제가 표현하는 화용의미를 근거로 어법적 특징을 고려하였기 때문에, 차화제(次话题), 차차화제(次次话题) 등 다양한 어법적 분포위치가 존 재하게 되었던 것이다. 본문에서 화제를 문두성분으로 제한하고, 문두성분인 문두상어, 조건 절, 문두삽입어 등을 아직 완전히 어법화 되지 않은 화제화라는 과도적 과정으로 분석한 것은 화제는 아직도 여전히 미완의 단계에 있기 때문 이다. 최근 화제의 어법분석에서 보여 주는 경향성은 여전히 담화 화용
58 문두성분의 주관성 분석과 화제화(김정필) 53 에 근거하여 화제의 범주가 설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화제의 어 법분석이 지니는 경향성은 최근 인지분석의 주관성 표현에 대한 연구 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문의 어기성은 구문전 체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특정성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 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까닭으로 인해, 화제분석이 구문에서 주관성을 표현하는 다른 분포위치의 성분까지 그 범주를 확대 해석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화제에 대한 어법분석을 위해서는 화제가 과 연 어떠한 어법기능의 범주에 속하며, 여타 다른 구문성분과 어떠한 관 계를 형성하고 있는지에 대해 좀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참고문헌] (1997) 新视觉汉语语法硏究, 北京, 北京语言文化大学出版社. 朱德熙(1982) 语法讲义, 北京, 商务印书馆. 陈承泽(1982) 国文法草创 商务印书馆. 范 晓(1984) 三个平面的语法观 北京语言大学出版社. 陆俭明(1986) <周边性主语及其他> 中国语文 第三期. 李临定(1985) <主语的语法地位> 中国语文 제1기. 袁毓林(1996) <话题化及相关的语法过程> 中国语文 제4기. 屈承熹(1984) <汉语的次序及历史变迁> 语言研究 第一期. 司红霞(2006) < 说 类插入语的主观性功能探析>, 语言文字应用 孟 琮(1982) <口语 说 字小集>, 中国语文 제5기. 刘月华(1986) <对话中 说 想 看 的一种特殊用法>, 中国语文 제3기. 史有为(1995) <主语后停顿与话题> 中国语言学报 총5기. 商务印书馆 许余龙(1992) 对比语言学概论 上海外语教育出版社. 胡裕树(1982) <试论汉语句首的名词性成分>, 语言教学与研究 제4기 赵元任( ) 汉语口语语法, 北京, 商务印书馆. 石毓智(2001) 语法的形式和理据 江西教育出版社. 김종록(1992) <국어접속문 구성에서의 주어 및 주제어 특성(Ⅰ)>, 문학과 언어 13. 김정필(2006) 현대한어 상어의 화자주관성 표현에 관한 연구, 경북대 대학원 박 사학위논문. 赵金铭 主编
59 54 中國學 第34輯( ) 남기심(1972) <주제어와 주어>, 어문학 26. 양세욱(2005) <고전중국어의 조건과 화제>, 중국언어연구 제20집. 이영길(1981) <한국어의 주제어에 대한 소고>, Taegu Review Vol. 31. 이우철(2004) <주술술어문과 중국어 교육>, 언어과학연구 제28집. 임지룡(1998) <주관적 이동표현의 인지적 의미특성>, 담화와인지 9-1. 장석진(1994) 통합문법론-담화와 화용, 서울대학교출판부. 장태원(1997) <중국어 담화분석과 테마-레마의 설정>, 중어중문학 제29집. 崔鳳娘(2004) <중국어와 한국어의 화제구조 연구>, 중국어문학 제43집. Hainman Jhon(1978) Conditionals are topics, Language 54. Langacker, R. W.(1990) Subjectification, Cognitive Linguistics 1. Li. C. N. & Thompson. S. A.(1976) Manarin Chinese : A Functional Reference Grammar,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박정구 등 역(1989) 표준중국어문법, 서울, 한울아카데미 Schlobinski & Schütze-Cobum(1992) On the topic of topic and continuity, Linguistics 30. Trask, Robert Lawrence A Dictionary of Terms in Linguistics. New York: Routledge. <中文提要> 最近对话题进行语法分析 而话题分析仍然以话语语用范畴为纲 这主 要是与话题所表现的主观性密切关系的 所以本文脱离以往的由命题为中心 的意义分析 去考察在句子意义中的 主观性 其实 这个 主观性 可以 说属于已往语法研究中的语气范畴 本来语气围绕着整个句子而表现出来 的 不过 我认为语气意义是一种主观意义 应该从句子成分或者语法成分 当中存在着其起作用的因素 例如汉语的句首成分可以说是一种说话者心理 的直接渗透的地方 原来副词在句首从当状语一般称为语气副词 这就是和 主观性表现有关的 话题的 句首性 也可以表现主观性 所以话题化也是一 种主观化的表现形式 因而一般独立句子而存在的句首成分可以归纳为话题化的结晶体 汉语 中可以充当话题功能的都在句首成分 可把大主语 句首状语 插入语和一
60 문두성분의 주관성 분석과 화제화(김정필) 55 些条件性的词语等归纳为话题 已往的研究从客观的角度考察了话题所表达 的句法功能和意义 所以忽略了话题所表现的主观性 因此在话题的研究中 句法功能以外 还考虑主观性意义 这样才可能正确分析话题结构 關鍵詞: 话题, 话题化, 主语, 主观性, 主观化, 语法化, 话语功能 语用功能 认知关系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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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中國學 pp.57~82第34輯( ) 賦詩, 引詩 를 통한 先秦時代의 三百 認識 再考 * 안성재** 목 차 1. 들어가는 글 2. 典籍내의 賦詩와 引詩 분석 (1) 左傳 의 賦詩, 引詩 (2) 國語 의 賦詩, 引詩 (3) 論語 의 賦詩, 引詩 * 附錄 左傳 國語 論語 中的 賦詩 引詩 比較表 3 나오는 글 참고문헌 1. 들어가는 글 漢代 五經博士制度가 존재하기 이전인 先秦時代는 오늘날과 같은 經 의 개념이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였다.1)따라서 오늘날 詩經 이라고 불리는 중국 최초의 詩歌總集은 詩 三百 또는 詩三百 이라는 또 다른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당시 선진시대의 사람들은 정치 및 외 교석상에서 종종 부시, 인시(賦詩, 引詩) 라는 독특한 표현법을 활용하 여 크게는 국가, 작게는 자신의 입장과 견해를 피력해 왔는데, 이러한 * 본 논문은 2009년도 市立仁川專門大學 학술연구비 지원사업에 의해 완성되었 음. ** 시립인천전문대학 중국어과 조교수 [email protected]
63 58 中國學 第34輯( ) 풍조는 단순히 한 시대에 국한된 유행이 아니라, 중대한 의의를 함축하 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부시, 인시 라는 당시의 시대 적 풍조에 착안하여 주요 典籍들에 남아있는 부시, 인시 의 기록을 분 석함으로써 선진시대 삼백 과 정치, 외교 및 사상 간의 관계를 알아보 고자 한다. 문학작품은 창작연대가 이르면 이를수록, 그 당시의 해석에 더욱 의 존할 수밖에 없고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 작가의 창작 본연의 의도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淸代의 皮锡 瑞 역시 經學通論 二, 詩經篇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경전에 대해 언급할 때는 반드시 옛 해석(의미)을 따라야 한다. 해 석이 옛 시대에 가까울수록 더욱 그 근거를 신뢰할 수 있다. 따라서 당, 송 이후의 학설은 한대의 학설만 못하고, 동한 이후의 학설은 역 시 한대 초기의 학설만 못하다. 춘추이전에 대해 언급하려면 경전으 로 경전을 증명해야 한다. 左傳 國語 禮記 孟子 荀子 등 많은 서적에서 인용한 것은 또한 한나라 초기 이전의 것이니, 더욱 옛 것에 근접하여 가히 믿을 수 있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 1) 이에 본 논문은 三百 의 창작연대와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나온 典 籍들의 내용 중에서 특히 漢代 이전의 三百 과 부시, 인시 전통 사 이의 관계에 대해 연구해 보고자 하는데, 이러한 연구과정에서 보다 객 관적인 자세를 견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三百 이 漢代 儒學派에 의해 공식적으로 經典으로 추앙받기 이전의 전적들을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본 논문은 그 연구범위를 戰國時代 이 전의 公式的 史書인 國語 左傳 과, 역시 전국시대 이전의 儒家思想 의 대표적 思想書인 論語 로 하여 조사 분석하고자 한다. 본 논문이 왜 선진시대 특히 전국시대 이전까지 다룬 전적만을 언급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하자면, 三百 은 儒家 1) 원문은 다음과 같다. 说经必宗古义 义愈近古 愈可信据 故唐宋以后之说 不如汉人之说 东汉以后之说 又不如汉初人之说 至于说出春秋以前 以经证 经 若 左传 国语 礼记 孟子 荀子 诸书所引又在 汉初以前 更近古而可信据矣
64 賦詩, 引詩 를 통한 先秦時代의 三百 認識 再考(안성재) 59 學術의 經典이자 精華이지만 戰國時代에 들어가게 되면서 백가쟁명의 국면이 전개되게 됨에 따라 다른 학파들은 诗 书 를 따르지 않았 고, 춘추시대에는 끊임없이 부시, 인시 의 관습이 이어졌지만 전국시대 에 들어 그 풍토는 홀연히 사라지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 춘추말기, 주나라의 도가 붕괴되고, 공자와 사학이 주요 표지가 됨 으로써, 서적이 서민에게까지 이르고, 학술이 개인에게까지 미치는 조류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발전하게 되어, 詩 학습과 詩 전수 의 범위는 결국 본래의 울타리를 뛰어넘게 되었고, 사회 기타 중하계층 에 까지 신속하게 확장되게 된 것이다. 시를 배우는 이들이 서민으로까 지 퍼지게 되니 漢書 藝文志, 시를 말하는 것이 더 이상 어떠한 신 분의 전유물이 되지 못하고, 사절을 보내 시를 읊조리는 것이 더 이상 열국에서 행해지지 않게 되었다 上同 라는 표현 역시 쉬이 이해할 수 있다. 2) 이제 본문에서는 주요 연구대상을 周代부터 漢代 이전의 주요 전적 다시 말해서 國語, 左傳 및 論語 로 하여, 이들 전적에 남아있는 부시, 인시 의 내용들을 살펴보고, 그 결과를 통해 선진시대 사람들의 三百 에 대한 인식을 재 고찰하고자 한다. 2. 典籍내의 賦詩와 引詩 분석 (1) 左傳 의 賦詩, 引詩 左傳 에는 적잖은 賦詩와 引詩가 나오는데, 이중에서 三百 의 작품 으로 賦詩 를 한 경우는 총 53차례로서 [國風] 25, [小雅] 26, [大雅] 1, [頌] 1차례의 순으로 분포되어 있고, 이 중 逸詩는 총4차례 나타난 다. 반면 引詩 로 쓰인 경우는 총 84차례로 [國風] 26, [小雅] 23, 2) 先秦文献与先秦文学 48쪽. 董治安 齐鲁书社 1994年11月. 원문: 春秋之 末 周道浸坏 以孔子与办私学为重要标志 开始出现 竹帛下庶民 学术下私 人 的潮流 由此而发展下去 习诗 传诗的范围遂突破原先的樊篱 迅速扩展到 社会其它中下阶层 学诗之士逸在布衣 汉书 艺文志 言诗不再成为某 种身份之所专有 聘问歌咏不行于列国 同上 也就不难理解了
65 60 中國學 第34輯( ) [大雅] 18, [頌] 17차례의 순3)으로 분포되어 있고, 逸詩는 총 9차례 나타난다.4) 이러한 左傳 에 나타나는 賦詩 引詩 는 그 형식과 특징에 따라 다 시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가 있는데, 첫째 부시, 인시 의 예와 좌전 에 기록된 내용이 主題에서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이다. 먼저 隱公三年 의 기록을 살펴보자. 卫莊公娶于齐东宫得臣之妹 曰莊姜 美而无子 卫人所为赋 硕人 也 위나라 장공이 제나라 태자인 득신의 여동생과 결혼하였는데, 장강 이라고 하였다. 아름다웠으나 아들이 없게 되자, 위나라 사람들이 그 녀를 위해 [硕人]을 赋诗하였다. 詩序 에 의하면 이 작품의 주제는 莊姜을 걱정한 것이다. 莊公이 妾에 미혹되어 교만함이 주제를 넘게 되었는데, 莊姜이 어질어 답하지 않자 결국 자식이 없게 되고 國人들이 이를 걱정하였다. 5) 이로부터 여 기에서 賦詩 를 한 작품의 주제와 左傳 에 기록된 내용이 완전히 부 합됨을 알 수 있다. 둘째, 부시, 인시 를 한 작품의 주제와 좌전 의 기록 내용이 완전 히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부분 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인 데, 隱公元年의 기록이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遂置姜氏于城潁 而誓之曰 不及黄泉 无相見也! 既而悔之 潁考叔 爲潁谷封人 聞之 有獻于公 公賜之食 食舍肉 公問之 對曰 小 人有母 皆嘗小人之食矣 未嘗君之羹 請以遺之 公曰 爾有母遺 繄我獨无 潁考叔曰 敢問何謂也 公語之故 且告之悔 對曰 君何 患焉 若闕地及泉 隧而相見 其誰曰不然 公從之 公入而賦 大隧 3) 董治安 著의 先秦文献与先秦文学 에서 이미 左傳 과 國語 그리고 論語 에 대한 賦詩와 引詩를 통계화한 바 있으나 그 수치가 올바르지 못한 경우 가 있어, 필자가 직접 내용을 확인 정리하여 통계수치를 다시 작성하였다. 4) 구체적인 사례는 (3) 論語 의 賦詩, 引詩 뒤에 附錄으로 國語 및 論語 中의 賦詩 引詩 와 함께 比較表로 작성하였다. 5) 원문은 다음과 같다. 此詩之主旨爲 閔莊姜也 莊公惑于嬖妾 使驕上僭 莊 姜賢而不答 終以无子 國人閔而憂之
66 賦詩, 引詩 를 통한 先秦時代의 三百 認識 再考(안성재) 61 之中 其樂也融融 姜出而賦 大隧之外 其樂也泄泄 遂爲母子如 初 君子曰 潁考叔 純孝也 愛其母 施及莊公 詩 曰 孝子不 匮 永錫爾類 其是之謂乎 결국 정장공은 어머니 무강을 성영에 유폐하고 맹세하여 말하기를: 황천에 가지 않고는 어머니를 절대 만나지 않으리라! 하였지만 결국 후회하였다. 영고숙은 영곡의 봉인(파수꾼)이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는 정장공에게 선물을 바쳤다. 정장공이 그에게 음식을 하사하였다. 영고숙이 음식을 남기자, 정장공이 그 이유를 물었다. 영고숙이 답하 여 말하기를, 소인에게는 어머니가 있는데 모두 소인이 먹는 것만 먹 어보았지 정장공의 고깃국은 먹어보지 못했으니 청컨대 남겨서 드리 고자 합니다. 정장공이 말하기를, 너에게는 음식을 남겨서 드릴 어머 니가 있는데, 오직 나만 홀로 없도다! 영고숙이 말하기를: 감히 여쭙 는데 무슨 말씀이신지요? 정장공이 그 연유를 말하고, 게다가 후회한 다고 말하였다. 답하여 말하기를: 무슨 걱정을 하십니까? 만약 샘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서 땅굴을 만들어 상봉하면 그 누가 황천에서 만 난 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무장공이 그 말을 좇았다. 공이 굴에 들어가 賦詩하기를: 큰 굴 안에 있으니(어머니를 만나니), 그 기쁨이 융융(화락한 모습)하구나. 무강이 굴을 나와서 賦詩하기를: 큰 굴에서 나오니(아들을 만나니), 그 기쁨이 설설(유쾌한 모습)하구나. 드디어 모자 사이의 관계가 원래대로 되었다. 군자가 말하기를: 영고숙은 지 극한 효자로다. 그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정장공에게까지 베풀어졌도 다. 시 에 이르기를, 효도가 끊이지 않으니, 길이 효자에게 효도를 하게 하는구나 하였으니, 이는 바로 이를 일컫는 것이다. 여기서 引詩를 한 것은 [大雅 既醉]의 한 구절로서, 西周時期의 작품 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歌功頌德으로, 君子와 그의 자손들이 대대손손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비록 이 작품의 주제는 孝子를 찬미하는 것이 아니지만, 引詩를 한 이가 潁考叔과 莊公之間의 故事 중에서 계발 을 받아 시구를 인용하여 찬미하였다. 이렇듯 시각을 조금 달리해서 보 면, 좌전 의 引詩와 삼백 의 작품 사이에는 어느 정도 맥락상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賦詩 引詩 는 아무리해도 그 의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는 바로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데, 부시, 인 시 의 예와 좌전 에 기록된 내용이 작품 주제나 문장 맥락상 하등 관 계가 없다. 이러한 세 번째 부류는 인용한 이가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
67 62 中國學 第34輯( ) 서 임의로 사용한 斷章取義 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가령 예를 들어 莊公六年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六年 春 王人救衛 夏 衛侯入 放公子黔牟于周 放寧跪于秦 殺 左公子泄 右公子職 乃即位 君子以二公子之立黔牟爲不度矣 夫能 固位者 必度于本末 而後立衷焉 不知其本 不謀 知本之不枝 弗 强 詩 云 本枝百世 6년 봄, 주나라 왕실의 屬官(子突)이 병사들을 이끌고 위나라를 구했 다. 여름, 衛惠公이 귀국해서는 먼저 公子 黔牟를 周로, 寧跪를 秦으 로 추방하고, 左公子 泄와 右公子 職을 죽이고는 군왕의 자리에 올랐 다. 군자는 두 公子가 黔牟를 군왕으로 세운 것은 신중치 못한 행위라 고 여겼다. 무릇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자는 반드시 本末 을 고려한 후 군왕의 자리에 세운다. 그 本을 모르면 그러한 책략을 내세우면 안 된다; 만약 그 本을 알지만 인맥이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 이라면,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 시 에 이르기를, 그 자손들이 대대 손손 번창 하리라 고 하였다. 상술한 문장에서 引詩를 한 것은 [大雅 文王]의 한 詩句로, 이 작품 은 周文王이 天命을 받아 周王朝를 세운 것을 歌頌한 詩이다. 詩中에서 引用한 本枝百世 는 본래 文王의 子孫들이 대대손손 번창하리라 라는 뜻으로, 즉 周文王의 업적을 歌頌한 것이다. 반면에 莊公六年의 기록을 살펴보면, 군왕을 세움에 있어, 만약 인맥이 없어 고립무원에 처하게 되면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 는 정치도리를 강조한 것으로, 兩者間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선진시대에는 이처럼 국정운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 및 외교석상에서 왜 굳이 三百 을 사용하여 간접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려 했을까? 또한 위에서 제시한 賦詩 引詩 의 형식과 특징에 따라 분류한 세 가지 유형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유형은 主題에서 완 전히 일치하거나 내용에서 일정 부분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부시 와 인시 의 대상으로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세 번째 유형처럼 詩序 와 비교했을 때 작품 주제나 문장 맥락상 하등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牽强附會를 하면서까지 三百 을 인용하려고 시도한 이유가 무엇이었을 까? 어쩌면 당시 사람들은 정치 및 외교석상에서와 같이 중대한 자리에
68 賦詩, 引詩 를 통한 先秦時代의 三百 認識 再考(안성재) 63 서 국가적 차원이나 개인차원에서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三百 을 사 용했고, 우리는 당시의 이러한 풍조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三百 에 대 한 인식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2) 國語 의 賦詩, 引詩 國語 중에서 부시 와 인시 의 상황이 나타난 빈도수나 쓰인 작품 수는 좌전 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國語 중에 서 三百 의 작품으로 賦詩 를 한 경우는 총 5차례로서 [국풍] 1, [소 아] 4차례의 순으로 분포되어 있고 逸诗는 1차례만 보인다. 반면에 引 詩 로 쓰인 경우는 총 22차례로 [국풍] 2, [소아] 3, [대아] 9, [송] 8 차례의 순으로 분포되어 있고, 逸詩는 역시 1차례만 보인다. 이렇듯, 국어 에서 부시, 인시 에 사용된 三百 작품의 양과 좌전 을 비교해 보면 뚜렷한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자료들을 제 공하고 있다. 國語 중에서 사용된 부시 와 인시 의 용례를 특징에 의 그것과 매우 흡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 음을 알 수 있는데 먼저 周語上의 한 부분을 살펴보자. 따라 분류하여 살펴보면, 좌전, 厲王說榮夷公 芮良夫曰 王室其將卑乎! 夫榮公好專利而不知大難 夫利 百物之所生也 天地之所載也 而或專之 其害多矣 天地百 物 皆將取焉 胡可專也 所怒甚多 而不備大難 以是教王 王能久 乎 夫王人者 將導利而布之上下者也 使神人百物无不得其極 猶曰 怵惕 懼怨之來也 故 頌 曰 思文后稷 克配彼天 立我蒸民 莫 匪爾極 大雅 曰 陳錫載周 是不布利而懼難乎? 故能載周 以 至于今 周厲王이 榮夷公을 중용하려하자, 大夫 芮良夫가 말하기를: 나라가 쇠락하려는 구나! 榮夷公은 재물 약탈하기를 좋아하여, 백성들을 수탈 하면 민심을 잃게 됨을 모른다. 利라는 것은 만물에서 소생하여 천하 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만약 천하의 利가 소수에 의해 차지하게 되 면 매우 위험해진다. 세상의 만물은 모두 利에 의존하여 퍼지는 것인 데, 어찌 소수에 의해 차지하게 될 수 있는가? 소수가 다수의 利를 차 지하게 되면, 군중의 분노를 사게 되는데, 민심을 잃으면 정권의 생존 을 위협하게 됨을 모르고 이러한 사상으로 군주를 이끌면 나라가 어 찌 长久할 수 있겠는가? 통치라는 것은 천하의 利를 세상 모든 이들
69 64 中國學 第34輯( ) 이 받게 하는 것으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고르게 가장 큰 이익을 얻 게 해야 하니, 이렇게 해도 늘 누락된 부분이 있어 혹시 백성들의 원 망을 사지 않는지를 두려워해야 한다. 고로 [周頌 思文] 중에 이르기 를: 思文后稷 克配彼天 立我烝民 莫匪爾極 이라고 하였고, [大 雅 文王]에서 말하기를: 陳錫載周 라고 하였다. 이는 利를 천하의 백 성들에게 고루 분배하지 않아 재앙을 부르게 됨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위의 문장에서 인용한 것은 [周頌 思文]과 [大雅 文王]의 诗句인데, [思文]은 周王이 上帝와 后稷에게 제사를 지내 풍년을 기원할 때 부르 던 樂歌로서 思文后稷 克配彼天 立我烝民 莫匪爾極 句는 후덕한 后稷이시여, 하늘과 함께 누리시네. 백성들이 잘살게 하시니 그 은혜를 받지 않는 곳이 없어라 라는 뜻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引詩한 부분 과 위의 내용이 잘 맞아떨어짐을 알 수 있다. 이어서 [大雅 文王]을 살 펴보면 이 작품은 周文王이 天命을 받아 周나라를 세웠음을 칭송한 작 품으로, 위에서 인용한 诗句는 널리 덕을 베푸시니, 주나라를 다지셨 네. 라는 뜻인데, 이 역시 본문의 내용과 잘 부합됨을 알 수 있다. 여기 서 芮良夫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一國의 君臣으로서 마땅히 백성들을 위해야 한다는 도리였고, 이러한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서 위의 두 작품 을 인용하여 周나라의 선왕들이 하늘의 뜻을 따라 백성들을 살리고 덕 을 배품으로써 주나라의 기초를 닦았음을 피력한 것이다. 이러한 芮良 夫의 引詩와 그의 주장은 서로 충돌하거나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명확 한 근거를 확보함으로써 설득력을 강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 周語上의 또 다른 기록을 살펴보자. 穆王將征犬戎 祭公謀父諫曰 不可 先王耀德不觀兵 夫兵戢而時 動 動則威 觀則玩 玩則无震 是故周文公之 頌 曰 載戢干戈 載櫜弓矢 我求懿德 肆于時夏 允王保之 先王之于民也 懋正其德 而厚其性 阜其財求而利其器用 明利害之鄕 以文修之 使務利而避 害 懷德而畏威 故能保世以滋大 穆王이 犬戎을 정벌하려하자, 祭公謀父가 만류하여 말하기를: 아니 되옵니다. 선왕께서는 덕행을 드러냈지 무력을 과시하지 않으셨습니 다. 군사력이란 일정한 시기까지 비축해두었다가 사용하는 것으로, 일
70 賦詩, 引詩 를 통한 先秦時代의 三百 認識 再考(안성재) 65 단 사용하면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무력을 과시하면 남용이 되고, 남용하면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周公의 [周頌 時邁] 에 이르기를: 載戢干戈 載櫜弓矢 我求懿德 肆于時夏 允王保 之 라고 한 것입니다. 선왕께서는 백성들의 덕행을 바로잡아 그들의 성품이 더욱 관대하게 하고, 재산을 키우며, 도구들을 개량시켰습니 다. 이득과 손해의 방향을 올바로 제시하고, 예법으로 정비하며, 또 백성들이 이익을 추구하고 재앙을 피하게 하며, 恩德을 그리워하고 威力을 두려워하게 함으로써 周王室이 대대손손 계승되어 날로 번창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위에 나오는 작품은 [周頌 時邁]의 한 구절로서, 이는 周武王이 商을 멸한 후 山川에 제사지낼 때 부르던 樂歌이다. 작품 중의 載戢干戈 載櫜弓矢 我求懿德 肆于時夏 允王保之 句는 방패와 창을 거두고, 활과 화살을 자루에 보관하노라. 우리 군왕은 德을 추구하여, 이 華夏지 역에 베푸시네. 군왕께서는 능히 천명을 오래토록 보전하시리라 라는 뜻으로, 이는 전쟁을 일으키지 말고 德으로 백성들을 보살펴야한다는 내용과 서로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時邁]의 다른 구절인 薄言震之 莫不震叠 句를 보면 이 載戢干戈 載櫜弓矢 我求懿德 肆 于時夏 允王保之 句는 궁극적으로는 전쟁을 일으키지 말아야한다는 권 고가 아니라, 殷紂를 討伐한 후, 천하가 모두 복종토록 한다. 즉 무력 을 사용하여 천하를 통일한 후에야 비로소 방패와 창을 거두고, 활과 화살을 자루에 보관하노라. 우리 군왕은 德을 추구하여, 이 華夏지역에 베푸시네. 군왕께서는 능히 천명을 오래토록 보전하시리라 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바꿔 말해서, 표면적으로 보면 诗句의 의미가 祭公謀父의 주 장에 부합되어 전쟁을 일으키지 말 것을 諫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품 전체의 주제를 보면 천하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것 으로, 兩者間에는 매우 큰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설득력 을 높이기 위해서 적합한 예를 찾았다기보다는, 오히려 설득력을 높이 기 위해 牽强附會나 斷章取義를 한 取所求 의 형태로 간주해야 할 것 이다. 좌전 과 국어 에 기록된 부시, 인시 의 예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 두 전적 간에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좌전 과 국어
71 66 中國學 第34輯( ) 의 부시, 인시 는 그 사용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모두가 하나같이 정 치와 외교석상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결과는 三百 이 당시 국가적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經典의 위치 로 공인받지 못했던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파격적인 대우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가 추측해낼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설은 국가 차원에서 아직 공인받지 못한 三百 이 당시 정치와 외교석상에서 인용됨에 있 어, 만약 하나의 통일된 기준이 없이 무질서하게 인용되기는 거의 불가 능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외교석상에서 부시를 한 후 그 의도가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이해되는데 있어, 단지 시경 작품에 대한 숙독 과 이해만으로는 어려웠다. 귀족학교에서는 악어(樂語) 를 가르쳤는데, 도대체 어떤 식으로 가르쳤을까? 興 중에 또 (어떠한) 규정이 있지 않 았을까? 연상하고 싶은 대로 연상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6) 여기서 부시, 인시 와 관련된 좌전 의 한 기록을 살펴보면, 齊國의 慶封이 魯國에 사신으로 갔다가, 노나라의 叔孫이 연회석상에서 [相鼠] 를 읊어 그를 질책하였으나, 그는 이해하지를 못했고, 昭公 12년, 宋國 의 華定 역시 魯國에 사신으로 가게 되어 노나라 사람들이 연회를 열어 접대하였는데, 연회석상에서 [小雅 蓼蕭]를 읊어 그를 환영하였으나 그 역시 이해하지 못하여 노나라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소를 받았다는 내용 이 있다. 이렇듯 상술한 左傳 襄公 27年에 기술된 두 가지 예는 몇몇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첫째는 당시 부시, 인시 는 통일된 규격을 갖 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으로 三百 을 교육하는 학교가 있어 그들을 가르쳤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三百 의 어떠한 작품 전체나 또는 작품의 일부를 인용함 으로써 정치적 외교적 설득력을 강화시켰다는 점인데, 이는 바로 당시 사람들이 이미 三百 을 국가적 차원에서 대단히 높은 지위로까지 격상 시켰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6) 先秦两汉诗经研究论稿 46쪽. 袁长江 学苑出版社 1999年 8月. 원문: 特 别是在外交场合赋诗 赋出之后 意图马上被对方领会 光靠对 诗经 的熟悉 还不行 贵族学校教 乐语 到底怎样教 是否 兴 中还有规定 不可能是想怎样 联想就怎样联想
72 賦詩, 引詩 를 통한 先秦時代의 三百 認識 再考(안성재) 67 (3) 論語 의 賦詩, 引詩 論語 는 사상서이자 철학서로서, 위에서 언급했던 左傳 이나 國語 처럼 正史를 다룬 歷史書와 달리 정치적 연관성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만약 논어 에서도 부시, 인시 의 예가 보인다면, 이는 左傳 이나 國語 의 그것과는 분명 다른 각도에서 접근되어야 할 것이 다. 論語 의 賦詩와 引詩를 살펴보면, 상술했던 左傳 이나 國語 와는 달리 부시 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인시 에 사용된 三百 의 작품으로는 개별적으로 [국풍] 4수, [소아] 3수, [대아] 1수, [송] 2수의 순으로 분포되어 있고, 逸诗는 단 1차례 나타난다. 그렇다면, 논어 에는 왜 부시 의 용례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 이 유에 대해서 추측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左傳 이나 國語 가 三百 의 작품들을 운용하여 기본적으로 정치 외교 석상에서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논어 는 도덕적 수양을 위주로 하는 교육과정에 서 三百 을 언급하였다. 周知하다시피 선진시대의 정치 및 외교석상에 서 부시 를 행할 때에는 반드시 공식적으로 풍악이 함께 하여 三百 작품의 가사를 노래로 부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이와 달리 孔子 가 제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는 이러한 국가적 차원의 공식행사가 아닌 개인 차원이었기 때문에 부시 는 행해질 수 없었고 필요한 부분을 인 용하는 형식의 인시 만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제 논어 인시 의 몇몇 일례들을 살펴보자 에서 사용된. 子貢問曰 貧而无諂 富而无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道 富而好禮者也 子貢曰 詩 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 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 詩 已矣 告諸往而知来者 學而篇 자공이 물었다: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 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괜찮구나. (하지만) 가난하지만 도를 즐거워하고, 부유하지만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 자공이 말 했다: 시 에 이르기를, 자르고 다듬듯이 하며, 쪼고 가는 듯이 한다 는 것은 이를 이르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자공아, 너와 더불 어 시 를 말할 수 있구나! 지난 일을 말하니, 올 일을 아는구나. [학 이편]
73 68 中國學 第34輯( ) 공자와 자공의 대화에서 인용된 것은 [衛風 淇奥]의 한 구절로서, 작 품의 詩句 본래 의미와 두 사람의 대화내용 사이에는 직접적 관련이 없 지만, 작품을 보는 시각을 달리함으로써 兩者사이의 연관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시 말해서, [衛風 淇奥]는 衛武公의 德을 칭송한 작품으로 이 구절은 군자 위무공의 모습과 생김새를 묘사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 하고 자공은 공자의 말을 듣고는 바로 [衛風 淇奥]의 如切如磋 如琢 如磨 句를 생각해냄으로써 君子가 되기 위한 일종의 피할 수 없는 수련 과정인 修身 으로 비유 묘사하였고, 공자는 이러한 자공의 연상능력을 발견하고 칭찬한 것이다. 이는 위에서 소개한 좌전 의 부시, 인시 중 에서, 기록 내용이 완전히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부분 관련성이 있 는 두 번째 부류와 흡사한 경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이와는 달리 孔子의 引詩와 실제 내용이 전혀 상관없는 즉 取所求 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 子曰 詩 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爲政篇 공자가 말하기를: 시 삼백편을 한마디로 개괄하자면, 생각에 사악 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위정편] 이 시구는 [魯頌 駉]에서 인용한 것이다. 詩序 에 따르면 이 작품의 주제는 僖公의 검소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농사에 힘씀을 찬양한 것으 로7), 論語 에 나오는 思無邪 는 바로 駉駉牡馬 在坰之野 薄言駉 者 有駰有騢 有驔有魚 以車祛祛 思无邪 思馬斯徂(살찐 수말이 들 판에 있네. 좋은 말로는 흰 털이 섞인 검은 말과 얼룩무늬 말, 종아리털 이 긴 말과 눈 부위가 흰 털의 말이 있으니, 수레가 힘차게 달리네. 그 르침이 없으니 말이 씩씩하게 달리네) 이 句의 일부만을 떼어낸 것이 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思無邪 의 思 는 語氣詞로 여겨져 어떠한 실 제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생각에 사특함 이 없다 라는 철학적인 개념을 도출해내기 위해 思無邪 句를 인용한 것이고, 이는 자신의 요구에 부합되도록 원래의 뜻을 고의로 변형시킨 7) 頌僖公也 僖公能遵伯禽之法 儉以足用 寬以愛民 務農重穀 牧于垌野 鲁人尊之 于是季孫行父請命于周 而史克作是頌
74 賦詩, 引詩 를 통한 先秦時代의 三百 認識 再考(안성재) 69 전형적인 牽强附會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상술한 바와 같이, 비록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논어 에도 역시 三百 과 관련된 문구들이 보이고 있는데, 여기서 보이는 인시 는 이미 위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국어 좌전 과는 전혀 다 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공자가 三百 에 대해 언급 한 이유는 제자들로 하여금 작품 본의를 이해하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 니라, 어떻게 하면 이론과 도덕적 차원에서 출발하여 聯想할 수 있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공자는 學以致用을 제창하여 제자들이 興觀群 怨 의 네 가지 방면에서 三百 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공자가 三百 작품들을 가르침에 있어 작품의 본의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거니와, 문학적인 부분에 대 해서도 언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三百 을 道德修養 의 교과서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춘추시대의 역사를 기술한 좌전 과 국어 의 작가는 적잖은 부시, 인시 를 빌려 쓰는 형식으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견해를 천명하였다. 이러한 부시, 인시 에 인용된 작품들이나 詩句들은 기본적으로 取所 求 즉 필요한 부분만 취하는 형태이다. 取所求 의 측면에서 좌전 과 국어 중에 나타나는 부시, 인시 를 살펴본다면, 부시, 인시 에 사용 된 어떠한 작품(혹은 詩句)들은 역사기록의 내용과 그 맥락이 상통하여 적절하게 사용되었지만, 또 어떠한 작품(혹은 詩句)들은 억지로 역사적 사건에 끼워 맞춰진듯하여 지나친 牽强附會라는 인상까지도 주고 있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비교해 보았을 때, 좌전 과 국어 에서 사용된 부 시, 인시 는 공자의 인시 보다는 나름대로 三百 의 원래 모습(작품 원문의 해석)에 더 근접해 있다고 말할 수 있고8) 또한 규율성과 통일 성을 갖춘 운용범주에도 더 근접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좌전 과 국어 특히 좌전 에서 공자가 직접 인용한 三百 작품의 詩句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좌전 에는 모두 다섯 곳(총 6首)에서 공자가 인시 를 한 내용이 보이는데, 이러한 공자의 인시 와 직접 연관되어있는 문자기록이 모두 [昭公篇]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 8) 여기서 말하는 원래 모습 이라 함은 毛詩傳 의 三百 에 대한 해석에 근 접함을 뜻한다.
75 70 中國學 第34輯( ) 은 特記할 만하다. 그렇다면, 좌전 에서 공자가 직접 인시 한 부분과 논어 에 나타난 인시 에는 또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먼저 좌전 에서 공자가 직접 인시 를 한 내용을 살펴보자. 仲尼曰 叔孫昭子之不勞 不可能也 周任有言曰 爲政者不賞私勞 不罰私怨 詩 云 有覺德行 四國順之 昭公五年 중니가 말하기를: 숙손 昭子의 竪牛를 위로하지 않는 것, 이는 일반 인들은 하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周任이 말하기를: 정권을 장악한 이 는 개인의 노고를 상주지 아니하고 개인적인 원한을 벌하지 아니합니 다. 시 에 이르기를: 정직한 덕행을 펼치면, 사방의 나라가 모두 순 응할 지어다. [소공 5년] 상술한 내용 중에서 인용한 작품은 [大雅 抑]의 한 구절인데, 詩序 에 따르면 이 작품의 주제는 衛武公이 厲王을 비판한 것이고, 또한 그 럼으로써 스스로 경계하기 위함이니라. 라고 하였다. 공자는 叔孫昭子의 결정이 칭찬받을 만하다고 여겼고, 그래서 [抑]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그를 지지한 것이다. 이러한 인시 태도와 논어 의 인시 는 서로 다 른 성격의 것으로, 治國道理의 정치색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공자의 정치색채가 농후한 인시 태도는 [昭公十有三 年]과 [昭公二十年] 및 [昭公二十有八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附錄 左傳 國語 論語 中의 賦詩 引詩 比較表9) 诗经 周南 关 雎 召南 草 虫 左传 襄公二十有七年 子展 赋 草虫 国语 论语 卷第一 泰伯 第八 关 雎 之乱 9) 필자가 여기에 賦詩와 引詩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도표화한 이유는 통계수치 의 정확성을 증명하기 위한 것임을 밝혀둔다. 물론, 본문에서처럼 각각의 賦 詩 및 引詩의 전반적인 상황과 내용들을 모두 다 언급하고 또 번역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나, 그렇게 되면 내용이 너 무 방대해질 뿐만 아니라 본 논문이 허락하는 지면상의 한계점을 벗어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76 賦詩, 引詩 를 통한 先秦時代의 三百 認識 再考(안성재) 71 甘棠 昭公二年 武子曰 遂 赋 甘棠 定公九年 蔽芾甘棠 勿翦勿伐 召 伯所茇 邶 风 柏 襄公三十有一年 威仪 舟 绿衣 棣棣 不可选也 成公九年 赋 绿衣 之卒章 匏有苦葉 襄公十有四年 赋 匏 有苦葉 10) 谷风 僖公三十有三年 采葑 采菲 无以下体 襄公二 十有五年 我躬不说 皇 恤我后 简兮 襄公十年 有力如虎 卫 风 淇 昭公二年 赋 淇澳 奥 硕人 隐公三年 曰庄姜 美 而无子 卫人所为赋 硕 人 也 郑风 将仲 襄公二十有六年 子展 子 赋 将仲子兮 野有蔓草 襄公二十有七年 子大 叔赋 野有蔓草 昭公 十有六年 子齹赋 野有 蔓草 曹 风 候 僖公二十有四年 彼己 人 豳 风 七 之子 不称其服 昭公四年 七月 之 月 小 雅 鹿 卒章 藏冰之道也 襄公四年 歌 鹿鸣 鸣 之三 昭公七年 君子是 则是效 昭公十年 德音 孔昭 视民不佻 四牡 襄公四年 四牡 鲁语下 赋 绿衣 之三章 鲁语下 及 宪 问 第 十 匏有苦葉 矣 四 深则厉 浅则 揭 学而第一 如切如磋 如 琢如磨 八佾第三 巧笑倩兮 美 目盼兮 素以 为绚兮(散佚) 晋语四 仲可 懷也 人之多 言 亦可畏也 晋语四 彼己 之子 不遂其媾 鲁语下 鹿 鸣 鲁语下 四
77 72 中國學 第34輯( ) 襄公二十有九年 王事 牡 靡盬 不遑启处 襄公四年 皇皇者 鲁语下 皇 华 皇者华 晋语 四 莘莘征夫 每怀靡及 僖公二十有四年 常棣 之华 鄂不韡韡 凡今之 人 莫如兄弟 / 兄弟阋于 墙 外御其务 每有良 朋 烝也无戎 襄公二十 年 赋 常棣 之七章 昭公元年 赋 常棣 昭公七年 脊令在原 兄弟急难 / 死丧之威 兄 弟孔怀 襄公二十年 赋 南山 有台 襄公二十有四 年 乐只君子 邦家之基 昭公十有三年 乐只君 子 僖公二十有三年 邦家之基 赋 晋语四 赋 六月 宣公十有二 六月 年 元戎十乘 以先启行 襄公十有九年 赋 六 月 成公七年 不吊昊天 楚语上 弗躬 乱靡有定 襄公七年 弗 弗亲 庶民弗信 躬弗亲 庶民弗信 襄公 十有三年 不吊昊天 乱 靡有定 昭公二年 赋 节 之卒章 僖公二十有二年 协比 其邻 婚姻孔云 襄公二 十有九年 协比其邻 婚 姻孔云 昭公元年 赫赫 宗周 褒姒灭之 昭公十 年 僖公二十有二年 不自我先 不自我后 战战 皇皇者华 常棣 南山有台 六月 节南山 正月 11) 小旻 子罕第九 唐棣之华 偏 其反而 岂不 尔思 室是远 而 泰伯第八
78 賦詩, 引詩 를 통한 先秦時代의 三百 認識 再考(안성재) 73 兢兢 如临深渊 如履薄 战战兢兢 如 冰 宣公十有六年 战战 临深渊 如履 兢兢 如临深渊 如履薄 薄冰 冰 襄公八年 谋夫孔 多 是用不集 发言盈 庭 谁敢执其咎 如匪行 迈谋 是用不得于道 昭 公元年 小旻 小宛 昭公元年 赋 小宛 晋语四 赋 之二章 鸠飞 巧言 桓公十有二年 君子屡 盟 乱是用长 文公二 年 君子如怒 乱庶遄沮 宣公十有七年 君子如 怒 乱庶遄沮 君子如 祉 乱庶遄已 襄公十有 四年 歌 巧言 之卒章 襄公二十有九年 君子 屡盟 乱是用长 昭公三 年 文公十有三年 君子如祉 乱庶遄已 四月 赋 四 月 宣公十有二年 乱 离瘼矣 爰其适归 车辖 昭公二十有五年 赋 车辖 昭公二十有六 年 虽无德与女 式歌且 舞 襄公十有一年 乐只君 晋语四 赋 采菽 子 殿天子之邦 乐只君 采菽 子 福禄攸同 便蕃左 右 亦是帅从 襄公二十 有一年 优哉游哉 聊以 卒岁 昭公十有七年 赋 采叔 黍苗 襄公十有九年 赋 黍 晋语四 赋 苗 襄公二十有七年 黍苗 赋 黍苗 之四章 大 雅 文 桓公六年 自求多福 周语上 陈锡 王 庄公六年 本枝百世 载周
79 74 中國學 第34輯( ) 文公二年 毋念尔祖 聿修厥德 宣公十有五 年 陈锡哉周 成公二 年 济济多士 文王以宁 襄公四年 歌 文王 之三 襄公十有三年 仪 刑文王 万邦作孚 襄公 三十年 文王陟降 在帝 左右 昭公六年 仪刑文 王 万邦作孚 昭公十 年 陈锡载周 昭公二十 有三年 无念尔祖 聿修 厥德 昭公二十有八年 永言配命 自求多福 襄公二十有四年 上帝 晋语四 上帝 临女 无二尔心 昭公元 临女 无贰尔心 年 赋 大明 之首章 昭公二十有六年 惟此 文王 小心翼翼 昭事上 帝 聿怀多福 厥德不 回 僖公十有二年 以受方国 恺悌君 周语中 恺悌 子 神所劳矣 成公八 君子 求福不回 年 恺悌君子 遐不作人 周语下 瞻彼 旱麓 榛楛济 济 恺悌君子 干禄恺悌 僖公十有九年 刑于寡 晋语四 刑于 妻 至于兄弟 以御于家 寡妻 至于兄 邦 弟 以御于家邦 / 惠于宗公 神 罔时恫 昭公九年 经始勿亟 楚语上 经始 庶民子来 靈臺 经之营 之 庶民攻之 不日成之 经始 勿亟 庶民子 来 王在靈囿 大明 旱麓 思齐 靈臺
80 賦詩, 引詩 를 통한 先秦時代의 三百 認識 再考(안성재) 75 文王有声 文公三年 诒厥孙谋 以燕翼子 既醉 隐公元年 孝子不匮 永锡尔类 成公二年 孝 子不匮 永锡尔类 襄公 二十有七年 赋 既醉 襄公三十有一年 朋友 攸摄 摄以威仪 泂酌 隐公三年 泂酌 昭忠信也 民劳 僖公二十有八年 惠此 中国 以绥四方 文公十 年 毋纵诡随 以谨罔极 昭公二年 敬慎威仪 以近有德 昭公二十年 民亦劳止 汔可小康 惠 此中国 以绥四方 板 僖公五年 懷德惟寧 宗子惟城 文公七年 赋 板 之三章 宣公九 年 民之多辟 无自立辟 成公八年 猶之未远 是用大简 襄公三十有一 年 辞之辑矣 民之协 矣 辞之绎矣 民之莫矣 昭公六年 宗子维城 毋俾城壞 毋独斯畏 昭 公二十有八年 民之多 辟 无自立辟 昭公三十 有二年 敬天之怒 不敢 戏豫 敬天之渝 不敢驰 驱 宣公二年 靡不有初 荡 鲜克有终 襄公三十有一 年 僖公九年 靡不有初 白圭之玷 鲜克有终 抑 尚可磨也 斯言之玷 不 可为也 襄公二年 其惟 12) 麀鹿攸伏 周语下 其类 维何 室家之 壸 君子萬年 永锡祚胤 周语下 殷鉴 不远 在夏后之 世 楚语上 作 先 进 第 十 懿 戒以自儆 一 白圭 也
81 76 中國學 第34輯( ) 哲人 告之话言 顺德之 行 襄公二十有一年 有 觉德行 四国顺之 襄公 二十有二年 慎尔侯度 用戒不虞 襄公三十有一 年 敬慎威仪 惟民之则 昭公元年 不僭不贼 鲜不为则 昭公元年 无 克维人 昭公五年 有觉 德行 四国顺之 哀公二 十有六年 无克维人 四 方其训之 桑柔 文公元年 大风有隧 贪人败类 听言则对 诵 言如醉 匪用其良 覆俾 我悖 襄公三十有一年 谁能执热 逝不以濯 昭 公二十有四年 谁生厉 阶 至今为梗 周 颂 时 宣公十有二年 载戢干 迈 戈 载櫜弓矢 我求懿 德 肆于时夏 允王保之 思文 商颂 那 长发 周语下 四牡 骙骙 旟旐有 翩 乱生不夷 靡国不泯 / 民之 贪乱 寧为荼毒 周语上 载戢 干戈 载櫜弓 矢 我求懿德 肆于时夏 允王 保之 成公十有六年 立我烝 周语上 思文 民 莫匪尔极 后稷 克配彼 天 立我蒸民 莫匪尔极 鲁语下 自古 在昔 先民有 作 温恭朝夕 执事有恪 成公二年 布政優優 晋语四 汤降 百禄是遒 昭公二十年 不迟 聖日跻 不竞不絿 不刚不柔 布 政優優 百禄是遒 10) 董治安 著의 [先秦文献与先秦文学] 35쪽에는 襄公十有四年 과 定公九
82 賦詩, 引詩 를 통한 先秦時代의 三百 認識 再考(안성재) 나오는 글 이상 우리는 賦詩 引詩 를 위주로 하여 선진시대의 用詩 상황에 대해 개략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상술한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三百 이 당시 지속적으로 중시 받은 연유가 중국 최초의 시가총집이기 때문 이 아니라 그 작품들의 내용이 당시의 정치와 외교 및 도덕수양과 밀접 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임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逸詩 의 흔적들을 통해서 현재 우리가 접하는 시경 이 원래 삼백여 편이 아니라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그 면모가 조정되었다는 점 을 엿볼 수 있는데, 바꿔 말하자면 선진시대의 三百 은 본래 삼백여 편이 아닌데 특정한 목적이 있어 삼백여 편으로 편찬된 것이라는 사실 이다. 우리는 삼백여 편으로 편찬되기 이전과 오늘날의 시경 으로 집 대성된 기간 사이에는 최소한 수백 년의 시간적 차이가 존재함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수많은 詩 작품들을 삼백 여 편으로 편 찬한 이 (혹은 이들)가 작가 본래의 창작의도까지도 완전하게 간직하지 는 않았을 수도 있음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바꿔 말해서, 三百 을 연구함에 있어 우리는 춘추시대중엽 즉 삼백 의 편찬과정이 완성된 시대부터 분석을 할 수밖에 없어야 그 논리적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이 다. 왜냐하면 三百 으로 편찬되기 이전의 수많은 작품들의 창작연대와 三百 이라는 詩歌總集으로 완성된 시대에는 수백 년간의 차이가 있었 고, 이 기간 동안에는 틀림없이 사회 사상적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총체적으로 말해서, 중국 최초의 시가총집으로서의 三百 과 현재 우리 가 접하는 시경 은 그 성격상 일정한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존 하는 시경 에는 당시 수많은 작품들을 삼백 여 편으로 집대성한 이들 年 의 引詩 내용이 一致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襄公十有四年 에서 인용한 것은 如周人之思召公焉 愛其甘棠 况其子 乎 句임. 11)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昭公十年 에도 역시 引詩句가 있으나 董治安著의 先秦文献与先秦文学 36쪽에는 이 부분이 누락되어 있음. 12)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襄公三十有一年 에도 역시 引詩句가 있으나 董治 安 著의 [先秦文献与先秦文学] 39쪽에는 이 부분이 누락되어 있음.
83 78 中國學 第34輯( ) 의 어떠한 목적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三 百 의 첫 번째 작품인 關雎篇은 詩序 를 근거로 그동안 政治詩로 분류 이해되어 왔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이 작품을 愛情詩로 분류해야 한다 는데 큰 異見이 없다. 이처럼 三百 으로 편집되기 이전의 구체적인 작품 수가 과연 얼마나 되었는지 간에, 현존하는 시경 이 본래 수많은 시 작품들의 본래 모습 은 아니라는 데에는 모두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필자는 당시 사람들이 삼백여 편을 훨씬 뛰어넘는 작품들을 굳이 삼백 여 편으로 편찬한 목적이 과연 무엇일까? 라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본디 이러한 三百 으로의 편찬과정과 정 치 및 외교석상에서 늘 부시, 인시 를 운용한 당시의 시대적 풍조 사 이에 어쩌면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이유 로 三百 의 작품들에 대한 해석은 대부분이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사 회적 풍조 때문에 처음부터 儒家를 선전하는 정치사상과 도덕관념만이 존재했고, 작가의 진정한 창작의도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소홀했기 때문 이었다. 더군다나 이러한 부시, 인시 가 성행한 시대와 三百 에 편입 된 작품들 중 그 창작연대가 가장 늦은 작품이 모두 春秋时代를 넘어서 지 않는다는 점은 필자로 하여금 위에서 제기한 의문점에 더욱 확신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國語 左傳 論語 등의 전적들 중에 나타난 부시, 인시 의 예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모순에 봉착하였다. 다시 말해서, 만약 이들 전적들 중에 나타난 부시, 인시 로서 三百 으로의 편찬과 정이 정치 및 외교석상에서 부시, 인시 를 운용하던 당시의 풍조와 상 호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부시, 인시 의 예들 중에서 적잖이 나타나는 逸詩 들은 정치 및 외교석상에서 이 미 공식적으로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편찬과정에서는 정작 누락 되었는지를 해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 가설은 자체적 논리 결함으로 인해 계속해서 연구를 진행할 수는 없었지만, 이러한 사유과정 중에서 또 다른 단서를 얻을 수 있었 다. 첫째, 國語 左傳 論語 중에 나타난 賦詩 引詩 의 예들을 분 석해보면, 毛詩傳 의 삼백 작품들에 대한 정치화 해석의 경향은 결
84 賦詩, 引詩 를 통한 先秦時代의 三百 認識 再考(안성재) 79 코 毛詩傳 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시전 은 바로 先秦 時代의 三百 에 대한 관점의 기초에서 당시의 관점들을 체계적으로 정 리한 하나의 완전한 이론서이다. 주지하다시피, 三百 에 수록된 작품들 의 창작연대는 멀게는 西周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그 하한선은 春 秋 중엽까지라고 볼 수 있는데, 國語 左傳 論語 중에 나타난 부 시, 인시 의 예들은 그 시대적 배경이 春秋時代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三百 작품들의 작가가 누구이든지 간에, 또는 작 품 창작 본연의 의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최소한 春秋時代부터 이미 三百 작품들의 내용에 대한 정치화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또한 부시, 인시 의 시대 배경과 三百 에 가장 늦게 수록된 작 품(즉 창작연대가 가장 늦은 작품) 사이의 시대적 차이가 그리 멀지 않 다는 점은 당시 三百 을 집대성한 목적에 뚜렷한 정치적 의도가 내포 되어 있었음을 증명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때는 逸詩 가 아직 존 재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三百 이 정형화되기 이전의 단계임에도 불 구하고 작품들에 대한 정치화 작업은 이미 마무리가 되어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 주지하다시피 선진시대 특히 춘추시대의 三百 이 현존하는 삼백오편 의 형태가 아닌 이유는 부시, 인시 의 예들 중 어떠한 부분 은 三百 에 편입되지 못한 逸詩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視點을 전환 하여 보면, 정치와 외교는 한 나라의 중추를 담당하는 것으로 아직 三 百 이 정형화되지 못한 시기에 이미 이들 작품들을 정치 외교석상에서 빈번하게 운용했다는 사실로도 당시 그들이 얼마나 三百 을 중시하였 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부시, 인시 가 정치와 외교방면 에서 사용된 주요 이유가 三百 의 작품들을 인용하여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고, 그러한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그들은 부득이하게 당 시 사회에서 인정받는 유력한 근거들을 차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정치적 외교적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 연관된 三百 부시 또는 인시 했던 것은 차치하고라도, 작품을 본인이 주장하고자 하는 의견 과 전혀 상관이 없는 작품까지도 동원했던 取所求 의 풍조는 당시 三 百 의 정치적 외교적 역량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가늠하게 하고 있다. 經學 은 경서를 풀이하는 학문으로, 이러한 개념은 漢武帝가 五經博
85 80 中國學 第34輯( ) 士를 세운 때로부터 존재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때부터 古代의 統治地 位에 있었다. 하지만 荀子 勸學篇 을 보면, 漢代 이전에도 사람들의 뇌 리 속에는 이미 經典 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其數則始乎誦經 終乎讀禮 학습과목은 곧 시 서 등의 경전을 통독하는 데에서 시작하고, 예 를 읽는 데에서 끝난다. 여기서 말하는 경전 이라 함은 시 와 서 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 러한 서적들은 儒家에서 중시하는 일종의 교과서였다. 비록 荀子 勸學 篇 에서 이미 經 이라는 글자가 나타났지만, 이는 엄격히 말하자면 儒 家思想 즉 諸子百家 중의 一派에 국한된 개념으로, 오늘날 일반적으로 말하는 經 즉 국가통치이념으로서의 개념은 漢代에 이르러서야 비로 소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荀子 勸學篇 중의 경 과 경전 의 경 은 그 포괄적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三百 은 制度上의 관념이 형성된 漢代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경 이라는 경전 으로 칭해졌지만, 그 이전 시기인 선진시대 에는 경전 이라는 표현으로 칭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본문에서 상술한 여러 가지 정황에 의거하여 추측해보면, 선진시대 사람들의 三百 에 대한 관념은 漢代 이후 사람들의 시경 에 대한 그것과 다르지 않았거 나 어쩌면 그보다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만 약 이러한 논리에 무리가 없다면, 우리는 선진시대 사람들이 일찍이 三百 을 지극히 중요한 지위 다시 말해서 漢代 이래로 불리는 경전 의 지위로 추앙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李學勤主編, 春秋左傳正義, 北京大學出版社, 1999年 12月 胡國文等, 國語譯译注, 上海古籍出版社, 1994年 12月 李學勤主編, 論語注疏, 北京大學出版社, 1999年 12月 司馬遷(漢), 史記 (全十冊), 1959年 9月
86 賦詩, 引詩 를 통한 先秦時代의 三百 認識 再考(안성재) 81 班固(漢), 漢書 藝文志 (全十二冊), 1962年 6月 皮錫瑞(清), 經學通論, 中華書局, 1954年 10月 朱自清, 經典常談, 三聯書店, 1980年 9月 董治安, 先秦文獻與先秦文學, 齊魯書社, 1994年 11月 袁長江, 先秦兩漢詩經硏究論稿, 學苑出版社, 1999年 8月 <中文提要> 以表达自 先秦时代 古人在政治 外交场合上经常运用 赋诗 引诗 诗 引诗 中所出现的 逸诗 之考察 试图探讨先秦时代人們對 诗经 的 看法 为了此研究 本论文以 左传 国语 论语 中出现的 赋 诗 引诗 为中心进行分析和研究 己的立场 这些风气不仅是一个时代的时尚 而且是蕴涵着一些重要意义 该文章着眼于这一点 研究 诗经 与政治 外交之间的关系 还通过 赋 關鍵詞 赋诗 引诗 逸诗 政治 编选目的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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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中國學 第34輯( ) pp.83~110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 최세윤** 목 차 1. 들어가며 2. 魏晉 시기 家誡 성행의 원인 (1) 自我覺醒에 따른 가족의식 고취 (2) 관리선발제도 3. 家誡 를 통해 드러난 名敎觀 (1) 家誡 속의 君子之道 (2) 嵇康의 名敎觀 4. 나오며 1. 들어가며 嵇康(224~263)은 魏晉 시기 완적과 더불어 당대를 대표하는 죽림파 사상가이자 문학가이다. 그는 노자와 장자는 나의 스승1) 이라 고백하며 노장사상을 좋아하고 의지2) 하면서 도가사상에 매우 심취하였다. 심지 어 그는 당시 名敎를 한 마디로 초월과 비판의 대상 이라 규정짓고 명 교를 초월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越名敎而任自然) 탕왕과 무임금을 부인하고 주공과 공자를 비판(每非湯武而薄周孔) 하면서 세상과 영합하 * 본 연구는 2009학년도 고신대학교 교내연구비(중점지원과제)를 지원받아 이루 어졌음. ** 고신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1) 老子莊周 吾之師也 ( 與山巨源絕交書 ) 이하 혜강의 작품 모두 戴明 揚 嵇康集校注 (台北 河洛 1978년)판본을 참고하였음. 2) 托好老莊 ( 幽憤詩 )
89 84 中國學 第34輯( ) 지 않으려는 고고한 인품을 드러내며 자신의 이상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렇듯 嵇康은 일생동안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지하게 삶의 목표를 따라 실천궁행하여 후대 위진 시대를 대표하는 名士로서의 독특한 풍격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嵇康에게서 단지 放誕任 性(방종하여 제멋대로 함) 하는 도가적인 성향과 행위들만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상 기저에 깔려있는 지극히 유가적인 윤리, 도덕적 가치관과 建功立業의 의지 또한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본 논 문은 그의 작품 가운데 家誡 의 내용을 분석하여 嵇康의 유가적 성 향을 알아보고 더 나아가 그의 名敎觀 을 본질적으로 파악해 봄으로써 유가를 비판한 진정한 유학자 嵇康의 진면목과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2. 魏晋 시기 家誡 의 성행 원인 일생동안 현실적 문제에 깊게 관여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위해 투쟁하 던 사람이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면 그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 특별히 그에게 아들이 있고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인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거나 이미 죽음을 눈앞에 둔 경우라면 아버지로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함에 대해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짐과 동시에 자신의 유고 시 후일을 도모할 수 있도록 자녀들 에게 많은 것들을 남기고 싶어 할 것이다. 이른바 집안의 가르침 혹은 경계할 바 인 家誡 는 이러한 심리적 공황 속에서 탄생되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지은이의 주로 평소에는 갖지 못했던, 아니 가졌더라도 겉으 로 드러내지 못했던 많은 회한과 각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家誡는 일반적으로 家訓 혹은 誡子書' 등으로 불리는데, 그 목적은 바로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집안을 가지런히 정리 하고 자손을 직접 이끌어 바로잡는 것3) 에 있다. 그러므로 家誡는 주로 전통의 예법제도와 윤리도덕규범, 그리고 일상생활의 준칙을 가지고 가 3) 吾今所以復為此者 非敢軌物範世也 業以整齊門內 提撕子孫 ( 顏氏家訓 ㆍ序致 )
90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최세윤) 85 족 내부의 각종 관계를 규정짓고 처리하며 아울러 후손들에게 어떻게 立身處世 할 것인가를 교육한다. 이러한 家誡 의 내용은 크게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후손들이 자신을 잣대로 삼고 그대 로 따라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것 을 자손들이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후손들이 자신 을 본받지 말기를, 심지어는 경계할 것을 역설한다. 이 경우 내용은 자 신이 해 왔던 일이나 소신을 부정하고 이것을 거울삼아 자식들은 그렇 게 살지 말 것을 종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편에 걸쳐 처량하고 회한의 감정이 가득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죽 림칠현의 대표격인 阮籍도 그의 아들 阮渾이 竹林 의 무리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또한 성격이 대쪽 같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혜강은 아예 家誡 라는 제목 하에 장편의 가르침 을 써 아들에게 조목조목 짚어가며 자기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 혼탁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중국의 역사를 살펴봤을 때, 특별히 魏晋 시기에 家誡가 크게 성행했던 것을 볼 수 있는데4), 그 원인을 살펴보면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 다. (1) 自我覺醒에 따른 가족의식 고취 위진 시기에 특별히 가계 혹은 가훈 등이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유 행하였는데, 이는 당시 정치, 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고 볼 수 있다. 중국고대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정치제도로서 봉건종법 제도는 국왕 또는 황제를 정점으로 계단형 질서체계를 이루고, 신분제 4) 육조시기에 작성된 가훈의 수량은 약 80여 편에 달한다. 문헌에 기록되어 전해지는 것 가운데 주요한 작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諸葛亮 誡子書 誡外甥書 曹魏王修 誡子書 王肅 家誡 嵇康 家誡 王昶 誡 兄子及子書 西晉李秉 家誡 夏侯湛 昆弟誥 羊祜 誡子書 東晉 陶淵明 與子儼等疏 命子書 宋顏延之 庭誥文 南齊任 家誡 徐勉 誡子書 張融 門律自序 王僧虔 誡子書 梁王褒 幼訓 王 筠 與諸兒書論家世集 北魏楊椿 誡子書 北齊魏長賢 復親故書 魏 收 枕中篇 顏之推 顏氏家訓 等等
91 86 中國學 第34輯( ) 도의 유지, 전통의 고수라는 형태로 개인 기량의 발휘와 내면적 인간적 권위의 존중 등이 억압된 사회를 말한다. 漢 武帝 당시 董仲舒의 獨尊 儒術 정책을 받아들여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유가사상을 채택하고 계층 간의 질서를 확립하여 명실상부한 대통일 제국의 면모를 유지하기에 힘 쓴다. 그러나 모든 사물이 정점에 다다르면 반드시 기울어지듯, 200여 년 동안 유지되어오던 漢 帝國도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쇄락 의 길로 접어든다. 이로써 지금까지 삶의 목표를 제시하고 가치관으로 삼았던 명교의 위기 속에 사람들의 관심은 국가와 종묘사직으로부터 점 차적으로 나 로 옮겨가게 되어 나 의 입장에서 모든 사물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개인의 생명과 발전을 중시하는 풍토가 조성되었 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和帝 永元 元年(89년) 이후부터 漢 왕조의 정치 는 외척과 환관들의 손에 좌지우지 되었다. 이들은 권력 투쟁의 소용돌 이 속에서 정권과 군주를 농락하며 서로를 죽이기에 급급한 나머지 정 국의 극심한 혼란을 야기시켰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황권의 안정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東漢의 사대부들은 이들의 만행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게 되자 스스로를 淸流 라고 부르며 濁流 인 환관과 외척 과의 차별화를 꾀하는 동시에 淸議 활동을 통해 서로를 본보기로 삼고 조정의 과오를 논하며 인물을 품평하는 등 당시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 을 갖춘 사회여론집단이 되었다. 그러나 東漢 중엽 이후 두 차례 黨錮 의 亂5) 을 거친 후 국가의 발전과 안녕을 자신의 소임으로 여겨왔던 사 대부들의 가치관과 믿음이 무너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사대부들의 관 심은 점차 국가에서 자아 를 중심으로 한 내면세계로 옮겨지면서 본격 적인 자아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의 전환 으로 말미암아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유가사상은 도가사상에 의해 재해 석되어 현학이라는 새로운 사조로 대체되어 개인의 유한한 생명을 탄식 하고 우주의 본원을 찾아내기 위한 시도에 해답을 제시하였다. 즉, 나 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가족과 가문에 대한 중 요성의 증대로 이어지게 되고 어려운 정치, 사회적 환경 속에서 이를 지켜 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들이 수반되었다. 이는 바로 혼란하고 5) 동한 말년 환관을 반대하던 名士들을 黨人 이라 불렀는데, 이들의 정치참여 를 제한하고 관리가 되는 것을 금지하였다.
92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최세윤) 87 어려운 환경일수록 더욱 가족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선조들의 가르침 과 학문을 대대로 전승하여 나를 지키고 더 나아가 가문을 지키자는 것 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위진 시기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했 던 시기였지만 이와는 상대적으로 사회전반에 걸쳐 공전의 자유로운 풍 토가 조성되어 학술과 문화의 극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동한 말기 환관 과 외척간의 권력투쟁이 심화되고 이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는 이에 반 한 농민봉기가 일어나고 각종 내우외환으로 말미암아 대통일제국의 기 세는 쇠락하여 당시 官學이었던 유학의 지위마저 큰 위협을 받게 되었 다. 그렇지만 兩漢 4백년간의 통치이념으로서 발전되어 왔고 전파되었 던 유학은 이미 중국전통문화의 핵심이 되어 여전히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에 따라 당시 사회의 중추세력이었던 명 문세가들은 자신들의 가문을 戰禍로부터 구하고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가족제도를 강화하는 한편, 선조들의 가르침을 숭상하여 자손들을 교육 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이렇듯 자손을 교육하는데 크게 두 가지 방 식을 들 수 있는데, 하나는 가문 내 학식과 인품을 겸비한 어르신이 자 신의 학문과 깨달음을 직접 자손들에게 전하는 것이 있고, 또 다른 하 나는 이른바 사학기관이라 할 수 있는 家館 이라는 것을 두고 자제들을 가르쳤는데6), 이로써 당시 가족교육이 발전하고 성행하는데 크게 기여 할 수 있었다. 이렇듯 가문 내 자손들의 학식을 중시하여 교육에 힘쓰 고 가르침을 전수하려했던 이유는 바로 가문을 유지하고 한층 높이는데 필수조건이었기 때문이다. 陳寅恪은 당시 문벌제도의 특징에 대해 다음 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士族의 특징은 바로 그 가풍이 아름답고 우아 하여 일반 백성들과는 달랐는데, 가풍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은 사실 학 업의 세습에 기인하고 있다.7) 또한 이른바 높은 가문이라 함은 높은 관직만을 유일한 조건으로 삼지 않는데, 반드시 높은 관직과 (이에 합 당한) 학식을 겸비해야만 비로소 이상적인 일류가문이라 할 수 있다.8) 6) 敦穆親族 乃置學館於私第 集群從子弟 晝夜講讀 並給衣食 與諸子同 ( 北史ㆍ景穆十二王傳上 ) 7) 夫士族之特點既在其門風之優美 不同於凡庶 而優美之門風 實基於學業之 因襲 ( 唐代政治史述論稿,上海 上海古籍 1980) 72쪽.
93 88 中國學 第34輯( ) 이것으로써 당시 門閥9)을 중시했던 사회 속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 는 家學이야말로 명문세족들이 그 지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있어서의 필수조건임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漢代부터 개개인의 도덕 적 품성과 행위를 관리 선발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문을 더욱 발전시키고 유지하기 위해 가족들 간의 관계를 더욱 중시하고 실 질적으로 조상을 욕보이지 않고 가풍을 계승하며 자손들에게는 더욱 모 든 면에 있어서 경계시키는 풍조가 있었다. 그리하여 유가의 仁, 義, 忠, 孝 등의 사상을 토대로 각자의 사정에 맞게 이해하기 쉬운 방법을 사용해 가족 구성원 간의 생각과 행위를 규정하고 더 나아가 治世, 治 國과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가르치고자 家誡를 썼던 것으 로 보인다. (2) 관리선발제도 위진남북조 시기에 家誡가 성행한 또 다른 원인은 당시 관리선발 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兩漢의 관리선발 방법에 는 지방정부의 察擧 와 중앙정부의 徵辟 이 있는데, 이들의 관리선 발 기준은 경학과 덕행이다. 이러한 선발기준에 부합되는지의 여부 는 각 지방의 淸議(鄉閭淸議)를 통해 결정된다. 察擧 제도는 薦擧 라고도 하는데, 이는 地方郡國의 守相 등 고급관료가 한 사람의 모 든 면을 면밀히 조사한 후 인품이 고상하고 재능이 출중한 평민이 나 하급관리를 孝廉 으로 조정에 천거하여 그들에게 중요한 관직을 8) 以具備高官及才學二條件者為其理想之第一等門第 ( 陳寅恪史學論文選 集, 上海 上海古籍 1992) 214쪽 9) 門閥은 世族 혹은 士族 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들이 관직을 대대로 물려 주기 때문에 세족이라 하며, 풍부한 문화적 배경과 학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 에 사족이라 부른다. 이러한 문벌귀족의 특징에는 첫째, 관직을 대대로 세습 하기 때문에 농후한 세습귀족의 색채를 가지고 있고, 둘째, 문벌귀족들은 유 가경전을 연구하고 예법을 따름으로써 유가사상을 그들의 정신적 지주로 삼 는다. 이렇게 漢代 儒學은 문벌귀족들과 결합하여 그들의 安身立命하는데 필 요한 家學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이 학식이 풍 부하고 명성이 있는 자를 名士 라 칭하였는데, 명사가 되기 위해서는 유가경 전에 정통( 通經 )해야 하며 그 지역에서의 평판( 品鑒 )이 좋아야 한다.
94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최세윤) 89 주거나 그 품계를 높여주는 제도이다. 이는 漢 文帝가 처음 만든 인재선발제도로서, 漢 武帝때 정식으로 확립되었는데, 구체적으로 擧孝 라 함은 효성이 지극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며, 擧廉 은 청 렴함으로 이름이 높은 관원을 선발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둘이 각각 달리 행해졌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로 통합되었고, 관리를 선발하는 중요한 경로가 되었다. 선발 인원은 엄격하게 제한되었는 데, 기본적으로 군국을 단위로 해 매년 한 명 내지 두 명을 선발했 다. 선발된 사람은 중앙정부에 들어가 郎官이 될 수 있었고, 기회가 되면 낭관을 뛰어넘어 각 부문의 관원으로 승진되거나 현령으로 나 갈 수도 있었다. 거기서 다시 주나 군의 수령이 되거나 중앙의 요 직으로 발탁될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효렴으로 선발되는 것을 벼슬길로 가는 계단에 오른 것이라 생각했다. 이와 함께 徵辟 이란 황제가 직접 우수한 인재를 뽑아 관리에 임명하 는 徵 과 조정에서 사람을 뽑아 관직을 주는 辟 으로 나뉜다. 이 관리 선발제도는 실질적으로 지방권문세가들이 대대로 가지고 있던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관리 선발과 관직수여를 조정하는데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왜냐하면 인재를 추천하고 관직에 오르게 하는 실질적인 권한이 지방정부에 있고 조정은 그들이 추천한 사람들에 대하여 일반적 으로 허가를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 선발제도의 요지는 출신배경에 구애받지 않고 획기적으로 참신한 지방인재를 발탁 하는데 있었으나 이렇게 선발된 인재나 요직을 맡은 사람은 극히 드물 었다. 특별히 동한 후기 지방의 각급행정 장관들의 관리들은 대부분 그 지역 명문대가 출신의 자제들로 충당되었기 때문에 관리를 심사하고 직 책을 정하는 기관을 통해 지방선거의 대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리하 여 사람을 선발하고 관직을 정할 때 명문대가 출신의 자제들은 자연히 우선적으로 선발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당시 관직에 오르기 위해서 학식이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이 보다 더 중시되었던 것은 사람의 성품 과 됨됨이, 그리고 공인된 品評이었다10). 10) 인물품평이 관직에 오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자 유생들은 오로지 외재적인 예법만을 추구하고 그 본질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동한 말에 가
95 90 中國學 第34輯( ) 曹魏 정권에 이르러 관리 선발제도는 漢代의 것을 바탕으로 한 九品 中正制 가 실시되었다. 東漢 말에 황건적의 난 등이 일어나 체제가 불 안정해지고 사회가 혼란해지자 각 지역 인구의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중 앙 정부 또한 지방 관리의 품평을 조사할 방법이 없게 되자 이를 보완 한 九品中正制 가 등장하게 되었다. 즉 漢代의 察擧제도는 한 사람의 德行 을 가장 중시하였다. 이 德行 은 당시 대통일제국의 통치이념이자 모든 사람들이 지키고 따르는 유가사상의 실천 항목으로서, 계층 간의 윤리질서를 중시하고 이론을 확장시키는데 있어서 시작점을 가족 구성 원간의 도덕적 행위에 두고 점차적으로 그 마을 사람들(鄕黨)로 확대시 켜 나간다. 이것을 인물품평의 기초라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행위들은 짧은 시간의 관찰로 품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 지속적인 관찰 이 있어야 하며 특별히 도덕적 행위를 받은 사람들에 의해 판단되어지 기 때문에 친족이나 같은 마을 사람들의 평가가 관리 선발의 가장 중요 하고 유일한 근거가 될 수 있다. 魏 文帝때 처음 실시된 九品中正制 역시 人物品評을 통해 선발된 인재들을 上上, 上中, 上下, 中上, 中中, 中下, 下上, 下中, 下下의 9개 등급으로 나누고 조정에서 임명한 中正官 이 각지로 파견되어 품평을 주관하였다. 여기서 상등의 평가를 받은 사 람들은 각급 정부로 가서 관리가 되었다. 이 제도는 中正官이 각 지역 의 인재들을 고찰할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초기에는 중정관이 인 물을 품평할 때 비교적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인재의 우열과 그 지역 여 론의 좋고 나쁨에 주의하여 선발하였으므로 중앙정부가 관리 선발권을 장악하는데 매우 유리하였다. 이렇듯 당시 관리선발제도는 권문세가들 의 집안배경과 家系를 중시하는 상황아래 문벌과 출신성분을 인재를 품 평하고 선발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조상 대대로 내려온 가르침을 숭상하고 집안을 단속하며 자제들의 덕행과 교육에 힘쓰기 위 해 유가사상을 바탕으로 한 家誡 혹은 家訓 등이 널리 유행할 수 있었 다. 서는 수재로 천거를 받았지만 글을 알지 못하고 효렴으로 뽑히게 되었지만 부모와 같이 살지 않는(舉秀才 不知書 察孝廉 父別居 抱朴子外篇ㆍ審 舉 393쪽)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96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최세윤) 家誡 를 통해 드러난 名敎觀 家訓이나 家誡를 쓰는 입장에서 볼 때, 가정은 사회의 축소판이고 부 자관계는 군신관계의 축소판이다. 그러므로 자식이 부모에게 불효한다 는 것은 신하가 임금에게 불충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계층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나아가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가정교육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자손 들에게 인의충효사상을 숙지시키기 위해 가계의 작자는 종종 조상의 훌 륭한 덕행을 거울삼아 위로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아래로는 종친과 화목 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다. 당시 천하의 名士로 이름을 날렸 던 혜강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었는데, 그는 자식에게 유언이나 다름없 는 家誡 를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어조로 아주 냉정하고 조심스럽 게 서술하였다. (1) 家誡 속의 君子之道 家誡 는 혜강이 죽기 직전에 아들에게 남긴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서, 전편에 걸쳐 일일이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아들에게 지향해야할 이상적인 인격상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사람을 대하는 규범 및 관리로서 지녀야 할 구체적인 행동강령 등을 의미심장하게 가르치고 있다. 비록 이 한편의 작품을 통해 그의 사상 경향을 최종적으로 결론 지을 수는 없지만 확실히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아주 솔직하고 담담 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서술해 가고 있다. 1) 立志論 : 군자의 필수조건 혜강은 家誡 의 처음 시작부터 먼저 아들에게 군자의 필수조건으 로 올바른 뜻과 신념을 가질 것을 강조하였다. 사람에게 뜻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다만 군자가 마음을 써 하고 싶
97 92 中國學 第34輯( ) 은 바를 틀림없이 행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것이 선한 것임을 헤아 리고 반드시 먼저 깊이 생각한 후에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만약 뜻이 지향하는 것이라면 입과 마음으로 맹세하고 죽음으로써 둘이 되지 않 게 지켜야 할 것이며, 그 뜻과 몸이 서로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약속해야 한다. 만약 (약속한 바에 대해) 마 음이 피곤해지고 몸이 게을러지면 혹은 사물에 이끌리거나 혹은 내적 인 욕심에 얽매이게 되며 가까운 근심을 참지 못하고 사소한 정욕에 인내하지 못하여 거취가운데 방황하게 된다. 거취를 (결정하지 못하 고) 생각해봐야 한다면 두 마음이 서로 싸우게 되고 그러면 줄곧 억눌 려왔던 감정이 승리하게 된다. (억눌렸던 감정이 승리하게 되면) 어떤 이는 중도에 포기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조금의 노력이 부족하여 성 공하지 못하고 실패하게 된다. 이런 마음으로 지키려하면 견고하지 못하고 공격하려 하면 오히려 겁이 나고 약해진다. (이런 마음으로) 맹세하면 대부분 어기게 되고 일을 도모하면 쉽게 누설하며, 즐거움 을 대하면 제멋대로 하고 편안함에 처하면 자기 뜻대로 한다. 그러므 로 이러한 사람이 설령 화려하고 찬란하게 빛나 보이는 지위에 처하 더라도 결코 좋은 성과를 이룰 공이 없고 평생의 부지런함이 하루아 침의 공만도 못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군자가 탄식하는 까닭이다. 억지로 마음으로 정한 바를 지키려 하지 않고 편안하게 자신의 뜻을 이루어 나가 마치 자연스러움에서 나온 것 같이 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뜻을 지키는 가장 높은 경지라 할 수 있다.11) 일반적으로 가훈의 내용은 당시 시대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즉, 가르침 속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덕목이나 인품을 요구 한다면 바로 그것이 그 시대에 가장 부족하고 결여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 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위진 시대 지식인들이 중시하는 이상적 인 격의 기본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원대한 뜻을 세우는 것(立志高 遠) 이다. 이들은 漢代 통치이념으로서 유가사상이 채택된 이후 유가의 11) 人無志 非人也 但君子用心 所欲準行 自當量其善者 必擬議而後動 若 志之所之 則口與心誓 守死無二 恥躬不逮 期於必濟 若心疲體解 或牽於 外物 或累於內欲 不堪近患 不忍小情 則議於去就 議於去就 則二心交 爭 二心交爭 則向所以見役之情勝矣 或有中道而廢 或有不成一匱而敗之 以之守則不固 以之攻則怯弱 與之誓則多違 與之謀則善泄 臨樂則肆情 處 逸則極意 故雖繁華熠燿 無結秀之勳 終年之勤 無一旦之功 斯君子所以歎 息也 若夫申胥之長吟 夷齊之全潔 展季之執信 蘇武之守節 可謂固矣 故 以無心守之 安而體之 若自然也 乃是守志之盛者耳
98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최세윤) 93 적극적인 入世정신의 영향을 받아 천하 를 자기의 소임으로 삼고 세상 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식이 매우 강해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 려는 사명감이 투철하다. 그래서 이들은 동한 말엽부터 시작된 각종 내 우외환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하고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일련의 가치체계가 붕괴됨에 따라 이를 바로잡기 위한 많은 노 력을 기울였다. 가훈 자체가 바로 이러한 강렬한 우환의식에서 비롯되 었기 때문에 자손에게 훈계하여 미래를 대비하고 경계하고자 했던 것이 다. 이를 위해 먼저 일련의 자기 몸을 수양하기 위한 규범과 도덕적 본 보기를 확립하여 이상적 인격을 형상화 하였는데, 대체적으로 君子 라 는 명칭으로 집약될 수 있다. 혜강 또한 家誡 의 시작부터 당시 혼 란한 정치, 사회적 환경 속에서 뜻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 요하며 이것은 군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요건임을 강조하였다. 즉, 사람 은 반드시 뜻을 가져야 하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죽음도 각오할 수 있 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각종 유혹과 갈등으로 말미암아 뜻을 이루 기 어려워져 중도에 반드시 포기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혹 겉은 화려 하게 보일지 몰라도 종국엔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뜻을 굳건하게 세우되 그것을 억지로 강압적으로 하기 보다는 그 냥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그 뜻을 자신의 행위의 표준으로 삼고 실천해 야 한다. 혜강은 이와 같은 자신의 신념을 초지일관 굳게 지켜 나가기 위해 죽 음도 불사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呂安사건이다. 呂巽이 그의 동생 呂 安의 처인 徐氏를 욕보이자 여안과 절친한 사이인 혜강은 집안 일이 외 부로 전해져 확대되는 것을 막아 패가망신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시 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呂巽의 보장을 받고 呂安에게 呂巽 을 고발하지 말도록 했다. 그러나 呂巽은 일이 발설될까 두려워 오히려 呂安을 불효죄로 고발하였고, 이에 격분한 혜강은 呂巽과 절교를 선언 하며 呂安의 무고함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변호하기에 이른다. 이 일은 결국 후에 司馬氏 집단이 당시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던 혜강 을 옥에 가두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와 같이 혜강은 일을 함에 있어 그것이 옳은 것( 善 )인지 헤아려보고 행동 에 옮기는 자신의 원칙을 몸소 실천( 恥躬不逮 期於必濟 )하며 呂巽과
99 94 中國學 第34輯( ) 같은 이른바 小輩 를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대로 일을 처리( 志之所之 則口與心誓 守死無二 )하였다. 혜강의 이 같은 立志論 은 기실 공자의 이른바 人無志則無以立 에서 말한 뜻을 세움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상 과 일맥상통한다. 즉, 공자는 뜻을 세우는 것이 한 사람에게 있어서 매 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뜻이 없으면 곧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과 힘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立志 를 통해 인생의 비전을 설정하고 그 이 상을 향해 나아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공 자는 말년에 자기의 교육철학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열다섯 살 때 학문에 뜻을 두었다12) 며 제자들로 하여금 원대한 포부와 이상을 가질 것을 가르치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은 부단히 이상과 목표를 수립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중에 완성된다. 하지만 이상은 하루 아침에 그냥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수립하고 조정하며 강화하는 과정으로서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기 때 문에 희망을 심고 뜻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청소년시기가 매우 중요하며 가능한 한 일찍부터 뜻을 세우는 것이 좋다13)는 것이다. 2) 守志論 : 뜻을 지키는 방법 12) 吾十有五而志於學 ( 論語ㆍ爲政 ) 13) 공자는 이와 같이 立志 의 중요성과 함께 뜻을 실현하는 것도 매우 중시하 여 淡泊明志 博學篤志 함으로써 뜻을 세움과 동시에 이를 실천에 옮기는 방법으로 삼았다. 淡泊 란 마음이 담담하고 욕심이 없음 으로, 공자는 만약 물질을 향수하는 것에 대한 욕구가 강하면 정신적 지경의 승화를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하길, 사대부는 뜻을 도에 두어야 하는데, 나쁜 옷 을 입는 것과 나쁜 음식을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그 뜻을)논할 수 없다.(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論語ㆍ里仁 ) 이는 곧 사 람이 늘 입는 것과 먹는 것이 좋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그 마음은 물 질적인 것을 누리려는 것만을 추구하게 되고 결국 원대한 이상을 세우기 어 렵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거친 밥을 먹고 찬 물을 먹고 팔을 구부려 베게삼아도 즐거움이 그 안에 있는 것을 중시하고 불의한 방법으로 얻는 부귀는 한낱 뜬구름과 같다고 하여 이를 경시하였다. 飯疏食飲水 曲 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浮雲 論語ㆍ述而 ). 그리고 한 사람의 비전은 그냥 아무렇게나 세워진 것이 아니라 대량의 지식을 바탕 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선택한 후에 결정된 것이기에 많이 배움으로써 자기 의 비전을 견고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자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야 말로 입지한 후 이를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 여겼다.
100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최세윤) 95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뜻을 세 운 후에 해야 할 것은 바로 본문에서 守志 혹은 秉志 로 표현된 뜻을 지켜 그것을 관철시켜 나가는 것 이다.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마땅히 마음을 깨끗이 하고 원대한 안목을 가 져야 한다. 만약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내가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게 부탁을 했을 때에는 겸손 한 말로 사양해야 한다. 평상시에는 이런 일들에 참여하지 않아도 마 땅히 서로 이해할 것이다. 또한 억울하고 급한 일이 생겼는데 그것이 마음에 참지 못하는 바라 한다면 겉으로는 거절한 뒤에 은밀하게 도 와주어야 한다. 그런 까닭은 위로는 친구들의 각종 바람을 멀리할 수 있고 그 다음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음흉하고 사악한 무리들의 요구 를 거절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론 자기 스스로 수행하는 과정 중에 한 점 흠이 없다는 소리를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릇 일을 행함에 있어 먼저 스스로 그 일이 가능한 지를 고려해야 하는데, 만약 적합하 다면 마땅히 그 일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바꾸려고 한다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이유를 말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그 사람의 말에 일리가 있다면 상대방을 비판하고 자신의 잘못을 견지한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지 마라. 만약 그 이유가 불합리하고 더 나아가 감 정적으로 너에게 부탁한다면 비록 재차 요구하더라도 마땅히 소신을 견지해야 한다. 이것 또한 뜻을 굳게 지켜가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14). 혜강은 守志 하기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첫 째, 입신함에 있어 마땅히 마음을 깨끗이 하고 원대한 안목을 가져야 한다. 세부 실천 사항으로 사람들이 내게 부탁 했을 경우 겸손한 말로 사양 하고, 억울하고 급한 일이 생겼는데 꼭 도와주고 싶으면 겉으로는 거절한 뒤에 은밀하게 도와 주어야 한다. 둘째, 일을 처리함에 있어 먼 14) 其立身當清遠 若有煩辱 欲人之盡命 託人之請求 則當謙言辭謝 其素不 豫此輩事 當相亮耳 若有怨急 心所不忍 可外違拒 密為濟之 所以然者 上遠宜適之幾 中絕常人淫輩之求 下全束脩無玷之稱 此又秉志之一隅也 凡 行事先自審其可 若於宜 宜行此事 而人欲易之 當說宜易之理 若使彼語殊 佳者 勿羞折遂非也 若其理不足 而更以情求來守人 雖復云云 當堅執所 守 此又秉志之一隅也
101 96 中國學 第34輯( ) 저 그 일이 옳은 가를 고려 해야 한다. 그리고 의로운 일이라면 상술한 바와 같이 죽음을 두려워해서도 안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자신 의 주장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이 더욱 합리적이라면 자신의 뜻을 꺾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님 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혜 강은 越名敎而任自然 할 것을 일생의 목표로 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 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명사로서의 절개를 지키며 非湯武而薄周孔 (탕 임금과 무왕을 비난하고 주공과 공자를 무시하다) 라 하면서 할 말 도 서슴지 않았다. 이것으로써 우리는 혜강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본보 기인 군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즉, 군자란 뜻을 세우고 많은 유혹과 갈등 속에서도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이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또한 군자는 일을 할 때 가장 먼저 그 일이 선한 것인가를 따져보고 심사숙고한 후에 신중하게 처리해야한다. 군자로서 이렇게 세운 뜻을 잘 지켜 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지방관리에 대해서는 다만 경의를 표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너 무 친밀해져서도 안 되며 자주 왕래해서도 안 되는데, 꼭 가봐야 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적당한 때를 정해놓아야 한다. (그곳에 갔는데) 마침 여러 사람들이 있을 때에는 혼자 끝까지 남아 있어서는 안 되며, 그곳에 유숙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해야 하는 까닭은 대체적 으로 지방 관리는 바깥일에 대해 묻는 것을 좋아하여 때론 이런 일들 이 폭로되기도 하는데, 만일 원한이 있는 사람이 (폭로된 일을) 그 자 리에 남아 있던 사람이 말해 준 것이라고 한다면 그 혐의를 면할 길 이 없게 된다. 행동함에 있어 말을 적게 하고 삼가 신중하여 스스로 지킬 수 있다면 원망과 책임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15).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관리가 되고난 후 가장 유의해야 할 것 이 바로 처신에 관한 문제이다. 즉, 하급관리로서 상사를 공경해야 하나 적당하게 거리를 유지할 줄도 알아야 되는데, 지나치게 친밀해서도 안 15) 所居長吏 但宜敬之而已矣 不當極親密 不宜數往 往當有時 其有眾人 又不當獨在後 又不當宿 所以然者 長吏喜問外事 或時發舉 則怨者謂人所 說 無以自免也 若行寡言 慎備自守 則怨責之路解矣 家誡
102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최세윤) 97 되고 너무 자주 상사의 집에 드나들어서도 안 된다. 또한 청렴한 관리 가 되기 위해서 말할 때나 일할 때 모두 신중해야 하며, 정확히 상황을 판단하여 다른 사람의 오해를 사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는 곧 長吏와 의 교유 때문에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남들의 시기와 편견, 모함 등을 사전에 차단하여 화를 면하고자 함이다. 이 단락을 통해서 우리는 혜강의 立身觀을 알 수 있을 듯하다. 혜강은 일찍이 위나라 종 실 沛穆王 曹林의 손녀인 長樂公主와 혼인하여 中散大夫의 관직을 지내 기도 했다. 그러나 正始 10년 司馬懿가 高平陵政變 을 일으켜 曹魏집단 의 많은 名士들을 주살하고 三族을 멸하자 관직을 버리고 은거생활에 들어갔다. 그 후 景元2년(261년) 司馬昭가 정식으로 山濤를 吏部郞으로 임명하자 혜강은 그 소식을 듣고 산도가 자신을 천거하여 그의 자리를 대신하도록 할까봐 서신을 써서 산도와 절교를 선언함으로써 司馬氏집 단과 결탁을 뜻이 없음을 밝힌바 있다. 이 때 혜강은 자신이 관직에 오 르지 못하는 이유를 이른바 七不堪(일곱 가지 참을 수 없는 것)16) 16) 나는 한번 누우면 늦게 일어나기를 좋아하는데 당번이 불러 깨우며 그냥 두지 않으니 이것이 첫 번째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문고를 안고 노래 를 부르며 초야에서 고기 잡고 새 잡는 것을 좋아하는데, 관리들이 그것을 지키고 있으니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니 이것이 두 번째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정좌하고 있으면 다리에 마비가 와 움직이지 못하고, 천 성이 지저분하여 몸에 이가 많아 쉴 새 없이 긁어야 하는데 관리가 되면 마 땅히 관복을 입고 상관에게 경례를 해야 하니, 이것이 세 번째 감당하지 못 할 일입니다. 그리고 나는 평소에 글을 잘 쓰는 못하고 글 짓는 것도 좋아하 지 않는데, 관리가 되면 세상의 번잡한 일들로 나의 책상엔 서류가 많이 쌓 이고 그것에 일일이 답을 하지 못하면 교화와 의리를 해치게 됩니다. 나름대 로 열심히 하려 하나 그것이 오래 못가니, 이것이 네 번째 감당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또한 문상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나 세상은 이러한 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원망을 사고 심지어는 이것으로 인해 중상모략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비록 이것이 매우 두려워 자책도 해 보지만,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아 자기를 굽혀 세상에 맞 추려 하여도 그것은 거짓이기 때문에 역시 칭찬도 비난도 받지 않는 경지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섯 번째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싫어하는데 벼슬을 하면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하고, 혹은 손 님들이 몰려와 시끄러운 소리로 귀를 어지럽게 하면서 소란스럽게 먼지를 일 으키며 냄새를 피우고, 온갖 잡기를 부리는 사람들이 눈앞에 있을 것인데, 이 것이 여섯 번째 참지 못할 일입니다. 내 마음은 번거로움을 참지 못하는데, 직무가 마음에 걸려 끊임없이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세상일은 더욱 근 심거리를 만드니 이것이 일곱 번째 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臥喜晚起
103 98 中國學 第34輯( ) 二不可(두 가지 할 수 없는 것)17) 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들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대체적으로 게으르고 태만한 성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혜강은 줄곧 자신의 어려서부터 형성된 자유분방한 성격과 행동 때문에 관직생활에 부적합하다고 토로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천성적인 성격을 구실 삼아 司馬氏집단과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협조하 지 않으려는 혜강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을 뿐이다. 하지만 혜강은 家誡 에서 이것과는 전혀 다른 어조로 자식에게 관리가 되기 위한 방법과 관리가 된 후의 처신에 대해서 진솔하게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 면 당시 사회적으로 이미 동한 말 두 차례에 걸친 黨錮의 亂 으로 말미 암아 많은 士人들은 그들의 평생소원인 열심히 학문에 정진하여 벼슬길 에 올라 자신의 포부를 펼칠 뜻이 꺾이게 되었고, 실제로 관리임용제도 의 부패와 매관행위에 따라 관직을 얻어 관리가 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상황을 경험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결국은 뜻을 굳 건히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 외에 먼저 스스로 그 일이 옳은가를 고려하여 적합할 경우 뜻을 꺾지 말고 견지하고 반대로 상대방의 의견이 맞는다면 부끄럽더라도 잘못을 따르지 않는 것18) 도 뜻을 굳게 지켜 나가는 방법이라고 말하며 뜻을 세움과 아울러 그것을 견지해야 함 또한 강조하고 있다. 而當關呼之不置 一不堪也 抱琴行吟 弋釣草野 而吏卒守之 不得忘動 二 不堪也 危坐一時 痺不得酬答 則犯教傷義 欲自勉強 則不能久 四不堪 也 不喜弔喪 而人道以此為重 已為未見恕者所怨 至欲見中傷者 雖懼然自 責 然性不可化 欲降心順俗 則詭故不情 亦終不能獲無咎無譽 如此五不堪 也 不喜俗人 而當與之共事 或賓客盈坐 鳴聲聒耳 塵囂臭處 千變百伎 在人目前 六不堪也 心不耐煩 而官事鞅掌 萬機纏其心 世故煩其慮 七不 堪也 與山巨源絕交書 ) 17) 나는 항상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을 비난하고 주공과 공자를 무시하는 데, 세상에 나가서도 이 일을 그치지 않는다면, 그 일이 드러나 명교에 용서 받지 못할 일일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관직을 맡아서는 안 될 첫 번째 이유 이다. 그리고 나는 성격이 강직하고 악을 미워하고 경솔하며 말을 직선적으 로 하여 어떤 일에 부딪히면 즉시 반응을 하는데 이것이 두 번째 관직을 맡 으면 안 될 이유이다(又每非湯武而薄周孔 在人間不止此事 會顯世教所不 容 此甚不可一也 剛腸疾惡 輕肆直言 遇事便發 此甚不可二也 與山巨 源絕交書 ) 18) 凡行事先自審其可 若於宜 宜行此事 而人欲易之 當說宜易之理 若使彼 語殊佳者 勿羞折遂非也 ( 家誡 )
104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최세윤) 99 3) 군자의 사람됨과 처세태도 혜강은 더 나아가 아들에게 매우 세심하고 구체적으로 처세의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가령, 득과 실이 분명하지 않은 싸움에는 끼어들지 말 것, 남의 사생활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말 것, 선물 받는 것 또한 신중 해야 할 것 등을 일깨워 주고 있는데, 혜강이 말하는 처세방법의 핵심 은 신중함 이다. 말은 군자의 관건으로서, 말이 한번 나오면 사물이 호응하게 되어 옳 고 그름이 바로 드러나기 때문에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상대 방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의 뜻을 말하려 할 때에는 마땅히 잘 이해하지 못한 실수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잠시 말하 기를 참아야 할 것이다. 이후에 되돌아보면 그때 이일을 말하지 않았 어도 그에게 잘못됨이 없을 수도 있고 예전에 혹 말을 했는데 잘못됨 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말하지 않을 수 있다면 옳음 을 완전히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좋은 소 식은 늦게 전하고 나쁜 일은 빨리 전하며 다른 사람의 과실을 얘기하 기 좋아하는데 이것이 바로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습관이다. 앉아 서 한 얘기들은 고상한 생각이 아니라 다만 일상의 소소한 얘깃거리 라 조그만 의견의 차이기 있을 뿐이기 때문에 단지 높이 앉아 볼뿐 일일이 화답하지 않는다. 의가 아니면 말하지 않고 자세하고 침착하 게 도를 공경하는 것이 허물이 적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19) 죽음의 문제에 직면하여 來世를 제시했던 불교와는 달리 유가에서는 육신은 비록 죽어 없어지나 그 정신은 영원하다는 이른바 三不朽 를 숭 상했다. 이 가운데 立言 이 있는데, 이는 훌륭한 말을 남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말은 모든 화의 근원이자 시작이기 때문에 항상 말을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천하의 성현군자인 공자도 주유천하할 때 말을 19) 夫言語 君子之機 機動物應 則是非之形著矣 故不可不慎 若於意不善 了 而本意欲言 則當懼有不了之失 且權忍之 後視向不言此事 無他不可 則向言或有不可 然則能不言 全得其可矣 且俗人傳吉遲傳凶疾 又好議人之 過闕 此常人之議也 坐 言 中所言 自非高議 但是動靜消息 小小異同 但當高視 不足和答也 非義不言 詳靜敬道 豈非寡悔之謂 ( 家誡 )
105 100 中國學 第34輯( ) 실수하여 자기의 허물을 인정하고 제자들에게 아 오늘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앞으로 너희들은 반드시 三思一言, 세 번 생각한 후에 말을 하 라 고 가르쳤다. 말은 한 마디로 言如其人, 즉 말은 곧 한 사람의 인격 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신중을 기해야 했으니 愼言 이야말 로 군자의 필수요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자도 군자는 먹는데 있어서 배부름만을 구하지 않고 사는데 있어 편안함만을 추구하지 않는 다. 또한 행동은 민첩하게 하고 말은 신중하게 하라20)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지만 행동은 민첩하게 해야 한다21) 고 권고하고 있다. 이들 모두 학문을 제대로 하려면 말 보다는 행동이 먼저 앞서야 함을 강조하 고 있지만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누어 볼 때 군자는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함 또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혜강 역시 군자는 말을 할 때 매우 신 중해야 함을 당부하고 있는데, 특별히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인 경우 더욱 신중해야 하며 의가 아니면 말하지 않고 자세하고 침착하게 도를 공경하는 것 이 가장 적절하며, 심지어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말하지 않는 것 이라 했다. 이 뿐만 아니라 혜강은 심지어 득실을 판단할 수 없는 싸움에 끼어들지 말 것22) 주연 참석 시 논쟁이 발생하면 형세가 한 쪽으로 기울어지기 전에 그 자리를 떠날 것23) 절친한 친구나 이웃이 아닌 경우 가급적 초대에 응하지 말 것24) 남의 사적인 일은 알려고 하지도 말고 관여하지도 말 것25), 그 러나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과의 왕래는 거절하지 않아도 될 것26) 술을 많이 마셔 취했으면 곧 그만두어야지 자기를 억제하지 못 할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될 것27) 등 처세의 구체적인 방법과 예를 일일 이 들어가면서 아들로 하여금 쓸데없는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 20)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慎於言 ( 論語ㆍ學而 ) 21) 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 論語ㆍ里仁 ) 22) 人有相與變爭 未知得失所在 慎勿預也 家誡 23) 若會酒坐 見人爭語 其形勢似欲轉盛 便當無何舍去之 ( 家誡 ) 24) 自非知舊鄰比 庶幾已下 欲請呼者 當辭以他故 勿往也 ( 家誡 ) 25) 凡人私語 無所不有 宜預以為意 見之而走者 ( 家誡 ) 26) 自非所監臨 相與無他宜適 有壺榼之意 束脩之好 此人道所通 不須逆 也 ( 家誡 ) 27) 見醉薰薰便止 慎不當至困醉 不能自裁也 ( 家誡 )
106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최세윤) 101 지고 그럼으로써 최종적으로 난세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가르치 고 있다. 결론적으로 위에서 지적한 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어떠한 시대적 상황과 현실 속에서도 신념을 갖고 뜻을 세운 사람이 그 뜻을 지켜나가고 유지하는 가장 본질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상술한 바와 같이 혜강은 家誡 전편을 통해 아들에게 각종요구와 일깨움을 권면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유가사상의 도덕적 표준에 입각하여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써 혜강은 아들이 뜻을 세우고 신념과 포부를 가질 것을 희망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유가가 지향하는 높은 지조와 절개를 갖춘 군자가 되어줄 것을 바라고 있는 것 이다. 실제로 혜강의 아들 嵇紹는 이러한 아버지의 바람과 가르침을 져 버리지 않고 후에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인 산도의 추천을 받아 관리가 되었다. 晉書ㆍ嵇紹傳 에 이르기를, 소는 그의 나이 10세 때 고아 가 되어 어머니를 극진하게 잘 모셨다28). 또는 소는 豫章內史로 발령 받았으나 어머니 장례식 때문에 부임하지 않았다.29) 世說新語ㆍ賞 譽 에는 죽림칠현의 명사들 모두 제각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들들 이 있었는데, 혜강의 아들 소가 제일 淸遠하고 雅正했다.30) 그리고 三國志ㆍ王粲傳 의 裴注가 晉代 여러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을 인용 하여 말하길 소와 산도의 아들 간 弘農楊準은 모두 그 우정이 돈독하 였는데, 그 중 혜소가 충정의 마음이 제일 많았다31) 고 전해지고 있다. 위에서 인용한 여러 인용문을 통해서 혜소는 확실히 유가의 전통사상의 교육과 훈도 아래 성장하여 그의 행동거지는 유가 명교의 도덕기준에 잘 부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혜소는 그의 아버지의 희망대 로 모친을 공경하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관직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빈소를 지켰으며 그 인품 또한 단아하고 올바른 대표적 유생이 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후대 학자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모함하여 죽인 사마씨 정권의 관리가 된 것에 대해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다만 28) 十歲而孤 事母孝謹 ( 晉書ㆍ嵇紹傳 ) 29) 紹轉豫章內史 以母憂 不之官 事母孝謹 ( 晉書ㆍ嵇紹傳 ) 30) 林下諸賢 各有俊才子 康子紹 清遠雅正 ( 世說新語ㆍ賞譽 ) 31) 紹與山濤子簡 弘農揚准同好友善 而紹最有忠正之情 ( 三國志ㆍ王粲 傳 )
107 102 中國學 第34輯( )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혜소의 행동으로써 유가의 적극적인 현실참여 사 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러한 모든 것이 다 근본적으로 혜강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家誡 는 혜강의 작품 가운데 유가적 성향이 가장 뚜렷하고 입장이 분명한 것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혜강의 아무런 것에 도 얽매이지 않는 지극히 자유분방(放達不羈) 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혜강을 줄곧 좋게 평가했던 노신조차 도 그렇게 고귀하고 오만한 혜강이 아들을 가르칠 때에는 너무나도 평 범했다32) 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2) 嵇康의 名敎觀 家誡 전편의 내용을 살펴보았을 때, 언뜻 혜강 자신이 일생을 통 해 관철시키려했던 越名敎 를 위한 어떠한 노력도 찾아볼 수 없는 듯하 다. 오히려 지금까지 와는 사뭇 다른 어조로 난세에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처세태도에 치중하여 다소 비굴하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혜강이 家誡 를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싶 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당대를 대표하는 명사답게 일관되게 주장해 온 명교에 대한 부정인가 아니면 세상에 영합하여 그저 자신의 안위만 을 걱정하는 소극적인 유생으로서의 삶이었던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건 아마도 겉으로는 철저하게 당시의 명교 를 부정하고 있지만 이를 통 해 오히려 역설적으로 보호하려 했던 전통적인 유가사상의 본질 일 것 이다. 혜강은 幽憤詩 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술회 하고 있다. 아! 참 복이 없기도 하지 어려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네. 불쌍하게도 나는 홀로 외롭고 무지한 채 강보에 싸여 있었네. 어머니와 형에 의해 교육을 받아 자애로움만 있었을 뿐 위엄은 없었네. 그 사랑에 기대 나 는 제멋대로 굴어 버릇이 없었고 어떤 훈계도 받지 않았고 스승도 없 32) 嵇康是那樣高傲的人 而他教子就要他這樣庸碌 ( 魏晉思想ㆍ魏晉風度 及文章與藥及酒之關係 ), 17쪽.
108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최세윤) 103 었네. 성년이 되어서도 총애만 믿고 방종하였으며 뜻을 높게 세우고 고인의 도를 숭상하였네. 노장사상을 좋아하여 사물을 천히 여기고 몸을 귀히 여겼으며 그 뜻을 도를 지키는 것에 두고 소양을 기르고 진심을 보존 하였네33). 유분시는 혜강이 呂安사건에 연루되어 옥에 갇힌 후 참회의 심정으로 써 내려간 유언과 같은 작품이다. 위 단락에서 알 수 있듯이 혜강은 어 릴 적 일찍부터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형의 손에 자라 성년이 되었 다. 성장 과정 중에 받아야 할 아버지의 엄한 훈계도 스승의 올바른 가 르침도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인 성격이 형성되었 으며 후에 노장사상에 심취하여 그의 가치관은 더욱 도가적 성향을 띄 게 되었다. 게다가 당시 정치, 사회적으로 曹魏 집단과 司馬氏 집단과의 첨예한 권력다툼의 상황 속에서 혜강은 사마씨 집단이 名敎를 정치이념 으로 내세우면서도 온갖 반유가적이고 불의한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것을 보고 급기야는 이런 이름뿐인 명교를 기치로 내건 사마씨 집단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자연 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명교에 대한 부정과 비판은 여러 방면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인 예로 難自 然好學論 을 들 수 있다. 難自然好學論 은 경학교육과 학습에 대해 張邈과 벌인 논쟁으로서, 혜강은 경학교육이 자연의 본성에 위배되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육경은 억제함과 인도함을 위주로 하지만 사람의 천성은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외부에서 더해지는 억제와 인도함 은 사람의 욕망과 위배되며 욕망을 따르면 자연의 본성을 얻는 것이 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연의 본성을 얻는 것은 억제와 인도함을 주 로 하는 육경에서 비롯되지 않으며 자연의 본성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의 욕망을 거스르는 예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과 의가 사람의 행위를 구속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 고 자연의 본성을 기르는데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또한 염치 와 양보는 다툼 끝에 생겨나는 것이어서 더욱 자연적인 본성이 갖고 33) 嗟余薄祜 少遭不造 哀煢靡識 越在繈褓 母兄鞠育 有慈無威 恃愛肆 姐 不訓不師 爰及冠帶 馮寵自放 抗心希古 任其所尚 託好老莊 賤物貴 身 志在守樸 養素全真
109 104 中國學 第34輯( ) 있는 속성이라 할 수 없다.34) 유가 경전에 대한 교육은 사람들이 욕망에 따라 살아가려는 자연적 본성을 규제하고 억제하기 때문에 유가 경전을 학습하는 것 또한 사람 들의 본성에 속하는 자연스러운 행위를 해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므 로 혜강은 정교를 가르치고 선양하는 명당을 보잘 것 없는 작은 방 으 로, 경전을 외우고 낭송하는 것을 쓸데없는 소리 로, 육예를 풀이 무 성한 곳의 잡초 로, 인의를 냄새나고 부패한 것 으로 여겼으며, 경전 을 보면 눈이 어지러워지고, 지나친 예의 법도로 등이 굽어지고, 예복을 입으면 몸이 뒤틀리고, 예법을 말하면 이빨에 충치가 생긴다35) 면서 유 가의 지나친 법도와 규제가 오히려 사람들의 자연적인 본성을 해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혜강의 이와 같은 비판정신은 노자의 이른바 큰 道 가 버려진 후에 비로소 仁義가 생겨났다36) 는 사상을 바탕으로 형성되 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仁과 義를 핵심으로 하는 유가사상을 정면으 로 비판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仁義라는 인위적인 규제와 법도가 필요 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큰 도의 상실 이라 보고 근본적인 문제의 해 결을 위해 자연 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래서 혜강 역 시 이러한 맥락으로 현재 사회가 혼란해진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 고 있다. 지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큰 도 역시 쇠퇴하기 시작하자 비로소 문장을 지어 그 뜻을 전하기 시작했다. 각종 많은 무리들은 제 각기 구별되어 각자의 종족에 속하게 되었고, 인과 의를 세워 사람들 의 마음을 속박하게 되었으며, 명분이 만들어져 사람들의 행위를 규 제하였다. 이렇게 되자 배움을 권면하고 글을 말함으로써 교화에 힘 썼다37). 34) 六經以抑引爲主 人性以從欲爲歡 抑引則違其願 從欲則得自然 然則自然 之得 不由抑引之六經 全性之本 不須犯情之禮律 故仁義務於理僞 非養眞 之要術 廉讓生於爭奪 非自然之所出也 ( 難自然好學論 ) 35) 今若以明堂爲丙舍 以諷誦爲鬼語 以六經爲蕪穢 以仁義爲臭腐 睹文籍則 目瞧 修揖讓則變傴 襲章服則轉筋 譚禮典則齒齲 ( 難自然好學論 ) 36) 大道廢 有仁義 ( 老子ㆍ제18장 ) 37) 及至人不存 大道陵遲 乃始作文墨 以傳其意 區別群物 使有類族 造立
110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최세윤) 105 사회가 혼란해지자 이른바 至人 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大道 역시 허물어지자 이를 대신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사람들의 안녕을 위한 제도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유가교육의 등장과 발전은 사회와 인간이 이미 타락하여 자연적 본성으로써 그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할 수 없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혜강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 며 이름만 있고 본질이 없는 명교를 초월의 대상으로 삼고 이를 표방하 는 司馬氏집단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혜강 名敎觀 의 핵심은 越名敎而任自然 에서 보는 것처럼 명교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을 통해 도가의 무위자연으로 돌아가자 는 것인가? 그의 생애나 작품을 통해 우리는 혜강이 분명 도가적 성향이 농후하고 은일자적인 삶을 동경하며 그렇게 살기 원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혜강은 한편으론 이에 못지않게 당시의 유가를 제창하는 그 어 떤 명사보다도 더 유가의 본질적인 면을 중시하였다. 가령, 옛날 왕도로써 천하를 다스린 현명한 군주는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만물을 다스렸으며, 반드시 천하의 간단하고 쉬운 도를 숭상하여 무 위의 정치를 펼쳤다. 그래서 임금은 조용히 위에 거하고 신하는 아래 에서 순종하여 오묘한 교화가 말없이 이루어져 하늘과 인간이 서로 교감하여 평안해졌다38). 또한 성인은 어쩔 수 없이 천하를 다스리게 되면 만물을 모두 자신의 마음 에 두고 백성들이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지켜보며, 도로써 백성 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보필하고 천하와 함께 즐거움을 누리며 소리 없이 무위하며 솔직하게 천하를 한 집안처럼 여기며 천하를 공으로 여긴다. 비록 군주의 자리에 있어 만국의 신봉을 받지만 오히려 소박 하기를 마치 일반 백성이 손님을 대접하듯 하며, 비록 용이 그려진 깃 仁義 以嬰其心 制其名分 以檢其外 勸學講文 以神其敎 ( 難自然好學 論 ) 38) 古之王者 承天理物 必崇簡易之教 御無為之治 君靜於上 臣順於下 玄 化潛通 天人交泰 ( 聲無哀樂論 )
111 106 中國學 第34輯( ) 발을 나무 위에 높이 내걸고 몸에는 화려한 제왕의 옷을 걸치고 있지 만 오히려 이런 것에 개의치 않기를 마치 백성의 옷을 입은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위에서는 군주와 신하가 서로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잊고 아래에서는 백성들이 집집마다 만족해한다. 그러니 어떻 게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를 존경하도록 하고 천하를 해쳐가면서 자신 의 욕망을 채우고 부귀를 가장 숭고한 것으로 삼아 마음속에 그것만 을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39) 혜강은 당대를 대표하는 현학가다. 현학이란 한 마디로 도가사상을 원용하여 유가경전을 해석하려는 사상계의 새로운 움직임인데, 시대적 상황에 따라 명교와 자연과의 관계가 다르게 표현40)되고 있지만 유가 를 사상의 중심으로 보는 현학의 근본적인 입장은 다름이 없다. 혜강 역시 노자와 장자는 나의 스승 이라고 고백하며 도가 사상에 심취했지 만 그렇다고 해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의 사상 저변에 깔려있는 유 가적인 성향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명 교를 부정하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이는 결코 명교 자 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先秦시대의 無爲自然을 주장하는 도가 사상 으로의 완전한 귀의 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서 인용한 인용문에 서 볼 수 있듯이, 혜강은 명교를 부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유가와 도가 사상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강제적인 법규도 없고 당위성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 즉 자연화 된 명교 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를 동경하고 있 다. 이러한 사회에는 도를 숭상하여 무위 정치를 펴는 이상사회, 즉 군 주는 모든 것 위에 존재하지만 규정이나 법규 등 인위적인 제도에 의거 해 사회를 다스리지 않고 말없이 조용하게 정치를 하여 그 결과 백성 들은 편안하고 한가해져 스스로 많은 복을 누리게 되지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41) 이 나타나고, 신하들도 군주의 이 39) 至人不得已而臨天下 以萬物為心 在宥群生 由身以道 與天下同於自得, 穆 然以無事為業 坦爾以天下為公 雖居君位 饗萬國 恬若素士接賓客也 雖建 龍旂 服華袞 忽若布衣在身也 故君臣相忘於上 蒸民家足於下 豈勸百姓之 尊己 割天下以自私 以富貴為崇高 心欲之而不已哉 ( 答難養生論 ) 40) 현학의 창시자격인 王弼과 何晏은 명교는 자연에서 비롯되었다(名教出於自 然) 고 주장하였고, 西晉의 郭象은 명교와 자연은 동일하다(名教即自然) 고 생각했다. 41) 群生安逸 自求多福 默然從道 懷忠抱義 而不覺其所以然也 ( 聲無
112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최세윤) 107 러한 정치에 아무런 불평, 불만 없이 그대로 순종한다. 또한 혜강은 군 주와 신하, 그리고 군주와 백성과의 관계를 단순히 지배하고 복종해야 하는 관계로 보기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서로 존중해주는 상황이 너무나 자연스런 사회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 이다. 혜강은 이와 같이 명교와 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사회 속에 서 그저 산과 연못을 노닐며 물고기와 새를 관상하면서 즐겁게 생 활42) 하고, 때론 누추하고 좁은 골목이지만 그곳에 머물며 아이들을 가 르치고 키우며 가끔씩 친구와 더불어 서로 떨어져 있어 오래 만나지 못 해 생긴 애틋한 정을 마음껏 이야기하고,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며 탁주 한 잔에 거문고 한 곡조 연주하며 살아가는43) 평온한 삶을 원했 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바로 허위도 위선도 없는 명교와 자연이 서 로 조화를 이루며 함께 공존하는 사회로서, 이는 곧 혜강이 그토록 갈 망하였던 任自然 의 진정한 의미인 동시에 명교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 이라고 할 수 있다. 4. 나오면서 위진 시기 당시 사회는 漢代 이후 200여 년간 지속되어 오던 기존의 전통 유가적 가치체계가 붕괴되어 정치적으로 매우 부패하고 위선과 기 만이 만연되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는 극심한 혼란상황에 처해있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당시의 名士들은 한편으론 적극적 으로 사회를 개혁할 의지를 가지고 불의에 대항하였는가 하면 한편으론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인지하고 저마다 가치판단의 기준을 만들어 이상적인 인물의 본보기를 제시함으로써 사회의 불합리 와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즉, 현학시대의 흐름에 맞게 이전의 이른바 文質彬彬 한 군자의 모습대신 순수 유가적인 성인의 모습을 탈피하여 유가와 도가의 성격을 지닌 王弼의 聖人 이나 혹은 세속적인 예법제도 哀樂論 ) 42) 遊山澤 觀鳥魚 ( 與山巨源絕交書 ) 43) 今但願守陋巷 教養子孫 時與親舊敘闊 陳說平生 濁酒一杯 彈琴一曲 志願畢矣 ( 與山巨源絕交書 )
113 108 中國學 第34輯( ) 를 비판하고 자아의 해탈과 자유를 그리워하는 도가적 색채가 짙은 阮 籍의 大人先生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혜강의 경우 그의 인생 중 반까지만 해도 앞에서 묘사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시비를 두지 않으며44), 생각과 의도가 도에 뜻을 두고 선을 간직함과 동시에 이를 숨김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45) 을 君子 의 가장 큰 특징으로 삼아 사회의 혼란함을 바로 잡고자 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사마씨 집단이 쳐놓은 덫에 걸려 결국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자 혜강은 家誡 를 통해 그의 마음속에 깊이 묻어두고 있었던 진심을 드러내게 되었고, 이와 함께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君子 의 본질적인 모습과 名敎에 대한 입장을 나타냈다. 이는 죽림칠현의 영수이자 당시 사마씨 집단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저지른 온갖 비도덕적인 행위와 허울 좋 은 명교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당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명사의 모습보다 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로서의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서였다. 아 버지로서 혜강은 비록 자기 자신은 사마씨 집단의 관리가 되는 것을 거 절했지만 아들에게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방법과 현 명한 관리가 되는 처세의 태도를 가르쳤고, 자기는 제멋대로 행동하며 세상을 비웃고 예교를 멸시하였지만 아들에게는 오히려 올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뜻을 가져야 하며 일구이언하지 않기를 가르쳤 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매사에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고 절도와 예 의를 갖춰야 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할 것을 당부하고 있 다. 이는 곧 방탕하고 얽매이기를 싫어하여 벌였던 많은 행위와 언론들 은 사실 난세에 처하여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의 본연의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이면에는 여전히 유가사상에 대한 진실함과 충성심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혜강이 형 집행을 위해 동쪽 시장으로 옮겨갔을 때 삼천 명이나 되는 태학생들이 그를 스승삼기를 청한 것과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상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는 사 실로써 겉으로 보기에 혜강이 비록 명교를 비판하고 멸시하는 태도를 취했지만 실상 유가사상과 명교에 대해 많은 영향력이 있었음을 알 수 44) 夫稱君子者 心無措乎是非 ( 釋私論 ) 45) 抱一而無措 則無私無非 兼有二義 乃為絕美耳 ( 釋私論 )
114 <家誡>를 통해 드러난 嵇康의 名敎觀(최세윤) 109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혜강이야 말로 그 시대 위선에 가득 찬 명교를 비판하고 이상적인 전통유가 사상을 옹호하고 지키려 했던 진정한 유학 자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문헌] 戴明揚, 嵇康集校注 (臺北 河洛出版社, ) 魯迅全集 (臺北 谷風出版社 ) 余嘉錫箋疏 世說新語箋疏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 崔富章 新譯嵇中散集 (臺北 三民書局 1998) 안지추저, 유동환역, 안씨가훈 (홍익출판사, ) 혜강저, 한흥섭역, 혜강집 (서울 : 소명출판, ) 곽복선역, 죽림칠현 : 빼어난 속물들 (서울 : 도서출판 푸른역사, 2007) 林彦妙 傅榮珂 由家誡論嵇康之處世思想 高餐通識教育學刊 2006:3(2006.6) 巴曉津 家誡 篇所見嵇康思想中的儒家底蘊 臨沂師範學院學報 30:2(2008.4) <中文提要> 嵇康( ) 是魏晉時期與阮籍相提並論的著名竹林派思想家 文 學家 他不僅坦誠告白 老子莊周 吾之師也 又說 托好老莊 沉醉於道 家思想 他甚至將當時的名教規定為超越和批判的對象 而主張 越名教而 任自然 每非湯武而薄周孔 不合群流 又不與世俗迎合 以表達高傲 的品格 繼續謀求自身的理想 如此 嵇康一生不顧生命的危險 沿著自己 的人生目標前進 實踐躬行 便成為一個能夠代表魏晉時期的名士 留下很 深刻 獨特的形象 從他的生平及其作品中 我們不難發現傾向於道家的思 想特征和種種行為 不過 除此之外 我們還不排除極為屬於儒家倫理道德 的價質傾向和建功立業的的鬥志 這到底是怎麼一回事? 這倆是否自相矛
115 110 中國學 第34輯( ) 盾? 因此 本論文著眼於此 首先 分析一下他的作品當中儒家思想最濃厚 的 家誡 內容及其意義 同時 在此一基礎上 進一步了解一下從此衍生 出來的嵇康的名教觀 以期找尋一個 批評儒家的真正的儒家的嵇康 之真面 目 關鍵詞: 家誡, 名教, 自然, 君子之道, 自我覺醒, 立志論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116 中國學 第34輯( ) pp.111~146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 정태업* 목 차 Ⅰ. 序 言 Ⅱ. 동파사에 나타난 강의 세 境界 1. 이별적 의미의 강 2. 역사적 의미의 강 3. 초월적 의미의 강 Ⅲ. 결 론 Ⅰ. 序 言 강물은 흘러간다. 인류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이전 순간부터 지금 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흘러간다. 이 도도히 흐르는 강을 단순한 현상적 모습으로 볼 때는 그것은 작은 개울이 모여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하나의 하천으로 인식되지만 이것이 인간의 思惟와 感 情이 들어가게 되면 강물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중국문학의 始原이 되는 詩經 의 첫 시작인 關雎 篇에 꾸안꾸안 물수리 강가 모래톱에 있구요(關關雎鳩 在河之洲) 라고 해서 흘러가는 강(河)을 배경 으로 모래톱 위의 정다운 물수리의 모습을 공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 중국 남방문학의 先河를 이루는 楚辭 漁父 에서도 첫 구절이 * 부산외국어대학교 중국어학부 조교수 [email protected] 1) 詩經 에는 江 이나 물을 언급한 많은 내용들이 있다. 예를 들면, 詩經 周南 의 漢廣 편에 한수의 물은 너무도 넓어서 넓어 헤엄쳐 갈 수 없
117 112 中國學 第34輯( ) 굴원이 이미 추방되어 강가를 거닐다가(屈原旣放, 游於江潭) 로 시작하 여 끝에는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濯兮 可以 濯吾足.) 고 흐르는 강을 세태에 비유해 역사와 자신의 심경으로 노래 했고 결국은 억울한 자신의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멱라강에 몸을 던졌 다. 비단 선진 시대의 시문학 작품뿐 만 아니라 한편의 시로 중국문학 사상에 큰 획을 그은 張若虛의 春江花月夜 또한 사람은 가고 또 가 고 끊임없거늘, 강에 저 달은 해마다 저 모습으로 오기로. 대체 강에 뜬 저 달은 누굴 기다리나, 장강만 출렁출렁 가는 물을 보내내.(人生代代無 窮已, 江月年年祗相似, 不知江月對何人, 但見長江送流水.) 라고 하여 무 한히 흘러가는 장강과 유한한 인생의 대비를 통해 덧없는 인생에 대해 초월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이러한 강의 모습은 바로 역사와 하나가 되 는 강이고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은 성찰의 강인 것이다. 杜甫의 萬古絶 唱이라 불리는 登高 에서도 끝없이 낙엽은 우수수 떨어지고, 다함없 는 장강 물은 도도히 흘러온다(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 고 노 래하며 뒷 구절에서는 만리타향 슬픈 가을에 외로운 나그네 되어(萬里 悲秋常作客) 라고 하여 무한한 자연의 모습과 유한한 인간사를 대비시 키며 그 속에서 인생의 짧고 덧없음을 노래했다. 이 밖에도 중국 문학 작품 속에서 강을 통해 나타내는 가치는 참으로 많다. 이러한 강에 대 한 생각은 문학적 소재일 뿐만 아니라 孔子나 老子, 莊子등과 같은 선 진사상가 들에 있어서도 道를 밝히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공자는 일 찍이 論語 雍也 편에서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 는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 고 했다. 여기서 물이란 당연히 흐르는 강물을 의미한다. 즉 흐르는 강물 속에 인생과 사물의 법칙이나 네, 한수의 물은 너무도 길어서 작은 배로 갈 수 없네.漢之廣矣 不可泳思 江之永矣 不可方思 詩經 召南 江有汜 편에 강물도 때로 돌아 흐 르니 바로 님이 돌아올 때이라, 님은 나를 원치 않으니 님은 나를 원치 않으 니 언젠가는 후회하리.江有汜 之子归 不我以 不我以 其後也悔 詩經 陳風 衡門 편에 陳나라 형문아래서는 놀고 휴식할 수 있네, 泌水가에서 즐겁게 기아를 면할 수 있네衡門之下 可以棲遲 泌之洋洋 可以樂饑 詩 經 秦風 蒹葭 편에 강가에 갈대는 푸르디 푸르고 백로는 서리가 되었네, 마음속 사모하는 님은 바로 강 저쪽에 있네.蒹葭蒼蒼 白露爲霜 所謂伊人 在水一方 등이다. 이 밖에도 많은 강물과 관련된 내용들이 있다.
118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13 원리가 들어있음을 밝히고 있다. 공자의 이런 강물에 대한 철학적 인식 은 또 論語 子罕 편에서 잘 나타난다. 공자께서 냇가에 계시면 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과 낮을 그치지 않음이여.(子 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昼夜.) 이에 대해 宋代 성리학자 朱子는 천 지의 조화는 가는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은 이어져 한 번도 쉬어 머무 름이 없으니 즉 道의 본디 그러함이다. 그러나 능히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강의 흐름과 같음이 없다. 따라서 이에 밝혀서 사람에게 보였으니 배우는 자가 때마다 성찰하여서 털끝만한 사이의 끊어짐도 없게 하고자 함이다.2) 고 해설하고 있다. 즉 공자의 이 말을 흐르는 강물이 한 순간 도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道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공자뿐만 아니라 맹자 또한 비슷한 관점으로 강물을 보고 있다. 孟 子 盡心 上에서 물을 보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보고, 해와 달에는 밝음이 있으니, 빛을 받아들이는 곳을 비춘다. 흐르는 물의 물건 됨은 모든 웅덩이를 가득 채우지 아니하면 흘러가지 못하니, 군자 가 도에 뜻을 둠에도 이 흐르는 물같이 章(완성된 하나의 德)을 이루지 못하면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3) 고 보고 있다. 즉 맹자는 不 盈科不行 이라는 격언을 통해 흐르는 물의 원리와 道의 원리가 같음을 밝혔다. 또 老子는 道德經 8장에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 水) 라고 하며 老子哲學의 본질적인 모습을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의 성질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莊子는 莊子 秋水 4)편이나 2) 天地之化 往者過 來者續 無一息之停 乃道體之本然也 然其可指而易見 者 莫如川流 故於此發以示人 欲學者時時省察 而無毫髮之間斷也 朱注 論語, 金東吉譯註, 創知社, 221쪽. 3) 觀水有術 必觀其瀾 日月有明 容光必照焉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君 子之志於道也 不成章不達 孟子 盡心 上 朱注孟子 金東吉譯註, 創 知社, 453쪽. 4) 가을이 되면 물이 불어난 모든 냇물이 황하로 흘러든다. 그 본줄기는 커서 양편 물가의 거리에서 상대편에 있는 소나 말을 분간할 수 없는 정도이다. 이에 황하신 하백은 크게 기뻐하며 흐름을 따라 동쪽으로 가 북해에 이르렀 다. 그곳에 이르러 바라보았으나 물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백은 비로소 그 얼굴을 돌려 북해신을 우러러 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속담에 백가지 도리를 알고는 자기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고 했는데 저를 두고 한 말인 것 같습니다. 지금에 와서 선생님의 끝이 없는 모습을 보고서야 저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문하를 들어오지 않았더면 위태로웠을 겁
119 114 中國學 第34輯( ) 刻意 5)편에서 흐르는 물과 도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또 순자는 荀子 宥坐 6)편에서도 공자의 말을 빌어 강물과 군자의 도에 대 해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강은 많은 문인들과 사상가들에 의해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소식 또한 강에 대 해 특별한 마음이 있었던 듯하다. 그는 蘇軾文集 灔澦堆賦并叙 에서 강물의 크고 바다의 깊음은 측량할 수 없는 것이며, 스스로가 형 니다, 저는 오래도록 위대한 도를 터득한 사람에게 비웃음을 받았을 것입니 다. (秋水時至 百川灌河 涇流之大 兩涘渚崖之間不辯牛馬 于是焉河伯欣然 自喜 以天下之美爲盡在己 順流而東行 至于北海 東面而視 不見水端 于 是焉河伯始旋其面目 望洋向若而嘆曰 野語有之曰 聞道百 以爲莫己若 者 我之謂也 且夫我嘗聞少仲尼之聞而輕伯夷之義者 始吾弗信 今我睹子之 難窮也 吾非至于子之門則殆矣 吾長見笑于大方之家 莊子今注今譯, 中 華書局, 411쪽. 5) 물의 본성은 섞이지 않으면 맑고, 흔들리지 않으면 평평하고, 막으면 흐르 지 않으니 또한 맑을 수 없다. 이것이 자연의 현상이다. 따라서 순수하면서도 섞이지 않고, 맑으면서 변하지 않으며 청담하면서 억지로 하지 않고 행동하 면서도 하늘의 운행을 따르는 것이 바로 신명함을 배양하는 도이다.(水之性 不雜則清 莫動則平 郁閉而不流 亦不能清 天德之象也 故曰 純粹而不 雜 靜一而不變 淡而無爲 動而天行 此養神之道也 莊子今注今譯, 中 華書局, 399쪽. 6) 공자께서 동쪽으로 흐르고 있는 강물을 바라보고 계셨다. 자공이 공자에게 여쭈었다. 군자들이 큰 강물을 보기만 하면 반드시 그것을 바라보게 되는 까 닭은 무엇입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강물은 두루 여러 가지 생물들을 살아나게 하지만 아무런 작위도 가하지 않으니, 그것은 덕이 있는 사람과 같 다. 그 흐름은 낮은 곳으로 꾸불꾸불 흘러가지만 반드시 그 이치를 따르고 있으니, 그것은 의로운 사람과 같다. 강물은 출렁출렁 다함이 없으니, 도를 터득한 사람과 같다. 만약 강물을 터서 흘러가게 한다면 그에 따른 빠른 흐 름이 소리에 울림이 따르는 듯하고, 백 길의 골짜기로 흘러든다 하더라도 두 려워하지 않으니, 용감한 사람과 같다. 움푹한 곳으로 흘러들면 반드시 평평 해지도록 흘러드니, 법을 잘 지키는 사람과 같다. 물이 찬 다음에도 위를 깎 을 것도 엇이 평평해지니, 올바른 사람과 같다. 유약하면서도 어디에나 숨어 드니, 잘 살피는 사람과 같다. 그곳을 들락날락하면 깨끗해지니, 잘 교화하는 사람과 같다. 강물은 이리저리 꺾이면서 흐르지만 결국은 반드시 동쪽으로 가니, 마치 뜻이 굳건한 사람과 같다. 그러므로 군자는 큰 강물을 보기만 하 면 반드시 그것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孔子觀於東流之水 子貢問於孔子 曰 君子之所以見大水必觀焉者 是何 孔子曰 夫水大 徧與諸生而無爲 也 似德 其流也埤下 裾拘必循其理 似義 其洸洸乎不淈盡 似道 若有决 行之 其應佚若聲响 其赴百仞之谷不懼 似勇 主量必平 似法 盈不求概 似正 淖約微達 似察 以出以入 以就鮮絜 似善化 其萬折也必東 似志 是故君子見大水必觀焉 ) 荀子, 김학주역, 을유문화사, 2008, 958쪽.
120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15 태를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외물을 통해서 형태를 부여 받는 것이다. 그런고로 千變萬化하며 반드시 그러한 도리를 가지고 있다.7) 고 했다. 그렇다면 소식의 詞에서는 강이 어떠한 의미로 해석되고 있을까? 본 연 구는 소식의 사를 통해 표현하는 강의 의미를 세 가지로 나누어 분석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는 만당오대와 북송사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별의 장소이고 그리움을 자아내는 회고적 장소로서의 강이다. 둘째로는 강은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벌어졌던 곳으로 그 강을 통해 지난 역사의 많은 사건들과 인물들을 소식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역사와 자신을 하나로 잇 는 역사적 의미의 강이다. 세번째로는 소식이 여러 차례 폄적당하여 좌 절하고 세상에 대한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자 했을 때 바라보이는 새로 운 境界로서의 강이다. 즉 자신과 자연을 합일하는 초월적 의미에서의 江이다. 이러한 분류가 소식 스스로는 그런 인식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 도 굴곡 많은 인생역정을 거치면서 인식한 인생관의 변화가 강을 통해 여러 다른 詞의 境界로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관점에서 소식사 나타나는 강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소식사에 나타나는 강의 세가지 境界 왕국유는 사의 경계설을 주장하며 사를 3단계로 언급했다. 그렇지만 그 경계에 대해 논리적인 정확한 구분은 없다. 단지 역대 사인들의 작 품들을 열거하며 사의 경계를 논하고 있다.8) 그렇다면 소동파라는 한 7) 灔澦堆賦并叙 : 江河之大與海之深而不可以意揣測, 唯其不自爲形, 而因物以 賦形 是故千變萬化而有必然之理 蘇軾文集 卷1, 中華書局, 1996년 1쪽. 8) 王國維 人間詞話 古今之成大事業 大學問者 必經過三種之境界 昨夜 西風凋碧樹 獨上高樓 望盡天涯路 此第一境也 衣帶漸寬終不悔 爲伊消得 人憔悴 此第二境也 衆裏尋他千百度 驀然回首 那人却在 燈火闌珊處 此第三境也 此等語皆非大詞人不能道 然遽以此意解釋諸詞 恐爲晏 歐諸公 所不許也 고금을 통해 큰 사업이나 훌륭한 학문을 이룩한 사람은 반드시 세 가지의 경계를 거쳐야만 하였다. 어제 밤에 분 서풍이 푸른 나무들을 시들게 하였구나. 홀로 높은 망루에 올라, 하늘 끝으로 아득히 뻗친 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가 그 첫째 경계이고 허리띠가 점차 느슨해져도 끝내 후회하지 않고, 그대를 위해 사람이 파리해지는 것을 감수해내겠다. 가 둘째 경계이며 대중들 속에서 그녀를 찾기를 수천 번, 갑작스레 머리를 뒤로 돌리니, 그 사
121 116 中國學 第34輯( ) 개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사의 경계는 어떠할까? 왕국유는 소동파의 사에 대해서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사가 章 質夫 사에 和韻하여 같은 사조를 사용하면서도 훨씬 뛰어난 경계를 보 인다고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9) 어쩌면 왕국유의 입장에서도 대문호인 소식의 사에 대해서는 그렇게 쉽게 언급할 수 없었을지 모르겠다. 그러 나 소식의 사에서도 분명한 경계가 나타난다. 특히 상징적 의미부여를 하기 좋은 강이라는 소재를 통해 본다면 그 경계를 잘 알 수 있다. 즉 강이라는 소재가 사 창작 시기와 자신의 인생 역정에 따라 다양한 단계 로 발전하고 표현되고 있다. 완약한 풍격의 만당오대사의 전통을 이어 받은 소식의 사에 있어서 강은 이별의 강이며 그리움의 강으로 표현된 다. 이것이 첫 번째 경계이다. 그러나 소식은 이러한 전통적 강의 상징 성과 경계를 새롭게 소화하여 한층 높은 경지로 이끌어 내었다. 즉 끊 임없이 흘러가는 강에 대해 역사의 흐름과 같다는 맥락에서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강은 이별의 강을 뛰어 넘어 흘러가는 역사의 강이 되는 것이다. 또 과거에도 흘렀고 현재도 흐르고 있는 강이기에 같은 장소에서 역사를 바라보며 다시 자신을 그 역사 속으로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있다. 이것이 두 번째 경계이다. 동파 사에 있어서 강의 세 번째 경계는 바로 초월적 의미의 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이별과 역사를 모두 아우르며 끝없이 흘러가는 강이다. 모든 것이 쉼 없이 흘 러가고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삶속의 기쁨과 슬픔도 변화해 간 다. 무궁한 억겁의 세월 속에 모든 것은 영원히 존재하지 못하고 변해 간다. 변하지 않는 것은 단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해간다는 사실 람은 도리어 등불이 쇠미해져가는 곳에 있더라. 가 그 셋째 경계이다. 이러 한 말들은 모두 위해한 詞人이 아니고서는 표현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 나 이 세 경계를 근거로 해서 뭇 詞들을 해석한다면, 晏殊와 歐陽脩 등의 詞 人들은 승인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唐圭璋, 詞話叢編, 中華書局, 4245 쪽. 번역은 이철리 人間詞話 연구(1) 中國語文學, 80쪽 인용, 1982년. 9) 王國維 人間詞話 東坡水龍吟咏楊花 和韻而似元唱 章質夫詞 原唱而 似和韻 才之不可强也如是 소식의 사 水龍吟 은 楊花를 읊었는데, 和韻 한 것이지만 원래의 詞 같고 章質夫의 詞는 원래의 詞이지만 和韻한 것 같 다. 재능이 억지로 해서 될 수 없음이 이와 같다. 唐圭璋, 詞話叢編, 中華 書局, 4247쪽.
122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17 이다. 이는 바로 끝없이 흘러가는 강의 영속적 흐름과 같은 것이다. 소 식은 자신의 제한되고 굴곡 많은 삶도 결국 큰 시각에서 보면 변화해 가는 자연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초월 적 자세에서 바라보는 경계를 사로 노래했던 것이다. 1. 이별적 의미의 강 이별은 동서고금을 통해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사건이다. 소동파는 인간의 이별과 만남에 대해 그의 사 水調歌頭 (明月幾時有) 끝자락 에서 사람에게는 슬프고 기쁘고 이별하고 만남이 있고, 달에는 흐리고 맑고 차고 기욺이 있다(人有悲歡離合 月有陰晴圓缺) 고 노래했다. 인간 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피할 수 없이 맞이해야 할 사건이 바 로 이별이다. 이별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이별이 있다. 단순히 거리적으 로 떨어져서 보지 못하는 이별이 있고, 심적으로 어떤 사람과 결별을 선언하는 이별도 있을 수 있으며, 죽음이 생사를 갈라놓아 다시는 보지 못하는 이별이 있다. 소식은 자신의 굴곡 많은 인생처럼 이런 여러 가 지 형태의 이별을 맛보았다. 그는 이런 이별의 감정을 여러 사 작품에 서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강의 이별과 헤어짐에 대한 소식의 감정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소식시집을 보면 자신의 강에 대한 마음을 잘 읽 을 수 있다. 예를 들어 游金山寺 를 보면 우리 집은 장강이 발원하 는 곳인데, 벼슬 따라 장강의 하류까지 흘러왔네. 장강에는 파고가 한 길이나 된다더니, 물 빠진 겨울에도 모래 흔적 남아 있고, 중령천 남쪽 의 비탈진 저 반석은, 예로부터 변함없이 파도 따라 출몰하네. 꼭대기에 올라가 고향을 바라보니, 강남도 강북도 청산이 첩첩이네. 객수에 젖은 나그네는 저물기 전에 돌아가려는데, 스님은 한사코 낙조를 보라고 붙 잡네. 만경창파에 미풍이 불어 신발무늬 그려 놓고, 저녁놀은 하늘 위에 고기꼬리 그려놓네. 이때 강에서 희미한 초승달이 뜨더니, 이경 되자 달 이 져서 하늘이 깜깜한데, 강 속에 횃불이 든 듯 수면이 훤하더니, 나는 화염이 산을 비춰 자던 새를 놀라게 하네. 울적하게 돌아와 자리에 들 었건만, 내 마음 알아줄 이 한 사람도 없나니, 귀신도 아닌 것이 사람도 아닌 것이 도대체 뭣이기에 내 마음을 괴롭히나? 강산이 이리 좋은데
123 118 中國學 第34輯( ) 산으로 안 돌아가니, 나의 이 완고함에 강의 신이 놀라서 괴이한 현상 으로 나무라는 것이리라. 부득이한 일이라고 신령님께 사죄하고, 돌아갈 땅이 있어도 가지 못함이 흘러가는 강물 같구나.10) 라고 했다. 비단 이 러한 시뿐만 아니라 사와 문집을 통해 수없이 많이 언급하고 있다. 陈 冬根의 분석에 따르면 사고전서 소식문집에서 강(江)이라는 글자가 나 타나는 횟수는 모두 3380번이며, 물(水)이라는 글자는 4924번, 바다 (海)는 2396번, 호수(湖)는 1864번, 하천(河)은 1620번, 샘물(泉)은 1216번, 시내(溪)는 1133번이다11). 이러한 통계적 숫자만 보더라도 자 신의 문학적 소재로서 강을 얼마나 크게 활용했는지 알 수 있다. 그 가 운데 강을 통해 가장 빈번히 표현해 낸 것이 이별의 情이다. 강의 흘러 가 버린다는 물리적 특성이 바로 시인의 사유에 있어서는 떠나가 버린 다는 이별이란 시적 이미지로 결합되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蘇 軾詞編年校注 에 수록된 첫 이별의 사로 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강을 배경으로 한 昭君怨 이다. 이는 소식이 39세 되던 熙寧7년(1074) 2 월에 金山에서 柳瑾이 靈仙으로 부임할 때 송별의 사로 지은 것이다. 昭君怨 金山送柳子玉 금산에서 유자옥을 보내며 谁作桓伊三弄12). 누가 桓伊三弄 을 불러 10) 游金山寺 : 我家江水初發源 宦游直送江入海 聞道潮頭一丈高 天寒尚有 沙痕在 中泠南畔石盤陀 古來出没随波濤 試登絶頂望鄕國 江南江北青山 多 羈愁畏晚尋歸楫 山僧苦留看落日 微風萬頃靴紋細 斷霞半空魚尾赤 是 時江月初生魄 二更月落天深黑 江中似有炬火明 飛焰照山棲鳥驚 悵然歸卧 心莫識 非鬼非人竟何物 江山如此不歸山 江神見怪驚我頑 我謝江神豈得 已 有田不歸如江水 蘇軾詩集 卷7. 시의 해석은 柳種睦 역주, 蘇軾詩 集, 서울대학교 출판부. 11) 我们可以统计到苏轼文章当中这些 水 意象的使用频率, 从而帮助我们理解苏轼 审美风格和审美心理 苏集中,名词出现次数多的依次是 雲 水 雨 江 海 流 雪 湖 河 泉 溪, 分别为 (後略) 乐山师范学院学报 水月清 明 情有独钟 - 苏轼作品中的 水 意象探微 2007년, 3월. 12) 桓伊三弄: 진나라 사람으로 피리를 잘 불었던 桓伊란 인물이 있었다. 한번 은 길을 가다 왕휘지를 만났는데 서로 알지는 못하는 사이었다. 그러나 왕희 지는 그의 유명세를 듣고 있던 터라 그에게 피리를 불어줄 것을 청했다고 한 다. 이에 桓伊는 세 곡조를 불러주었다는 데서 유래된 성어이다.
124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19 驚破绿窗幽梦. 新月與愁煙. 满江天. 欲去又还不去. 明日落花飞絮. 飞絮送行舟. 水东流. 비단 창가의 단꿈을 놀라 깨게 하는가? 초승달과 근심어린 안개가 강과 하늘에 자욱하네 떠나가려다 떠나지 못하니 내일 꽃 지고 버들개지 날리면 흩날리는 버들개지 떠나는 배 전송해주고 강물은 흘러가겠지 동파는 항주에 있을 때 비교적 많은 이별사를 지었다. 유자옥은 본명 은 柳瑾으로 소동파의 친척이다. 이후 그의 아들 柳仲遠은 동파의 백부 蘇渙의 사위가 되었다. 동파는 유자옥과 가까워서 그의 시집에도 次 韻柳子玉陳絶糧二首 등 12수의 시가 있다. 李鴻鎭교수의 분석에 따르 면 송파의 이별을 나타낸 사는 대략 50편에 달하며13) 특이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내용적으로 보면 강을 통한 이별의 정을 노래한 것이다. 상편에서는 이별을 의미하는 피리소리가 흐르고 이에 보내는 이의 처연 한 심정을 강가에 가득한 달빛과 안개로서 나타내고 있다. 즉 떠나보내 는 마음의 암울하고 서글픔이 바로 흐르는 강가를 뒤덮은 안개인 것이 다. 하편에서는 아쉬움을 어쩌지 못해 떠나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은 가 야만 하는 그래서 꽃잎과 버들개지가 떠나는 배를 배웅해 준다고 해서 아쉬운 석별의 정을 끄집어내었다. 반대로 무심히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을 통해 이별의 불가피함을 나타내었다. 이렇듯 강은 바로 떠나는 이 별의 상징인 것이다. 이 해 동파는 杭州通判으로 있다가 9월 密州知州 로 간다. 그리고 熙寧10년(1077) 徐州知州에 임명받아 간다. 그는 徐州 知州로 2년을 있으면서 많은 일들을 했다. 그리고 서주를 떠나면서 江城子 를 지었다. 天涯流落思無穷. 먼 하늘가 유랑하니 수심은 가없고 13) 李鴻鎭 東坡詞硏究 동파의 송별사는 대략 50편에 달한다. 그것은 각 각의 창작 시기에 분포되어 있지만 희녕 7년(1074) 항주 재임 중에 비교적 많이 지어졌고 집중되어 있다. 이 해에 그는 모두 24수의 송별사를 지었는데 그 대상은 두 사람 곧 陳襄과 楊繪(元素)에 집중되어 있다 퇴계학과 한국 문화 제38호 226쪽.
125 120 中國學 第34輯( ) 既相逢. 却匆匆. 携手佳人, 和淚折残红. 为问东风馀幾许, 春纵在, 與谁同. 隋堤三月水溶溶. 背归鸿. 去吴中. 回首彭城, 清泗與淮通. 寄我相思千點淚, 流不到, 楚江东. 잠시 서로 만났다 총총히 이별한다. 님의 손을 잡고 눈물로 꽃가지 꺾어 묻노니 봄바람 몇 번이나 남았는가 봄은 와 있는데 누구와 함께 하리. 삼월이라 수제에 강물은 출렁출렁 흐르고 돌아가는 기러기와 반대로 나는 남녘땅 吳中으로 간다. 머리 돌려 본 팽성은 맑은 사수와 회수가 어 우러지네. 님은 그리움에 천 방울 눈물 내게로 보내나 흐르지 못하니 강물만 동으로 흘러가네. 이 사의 제목 뒤에는 이별을 슬퍼하며(恨別) 라는 부제를 붙이고 있 다. 그리고 판본에 따라서는 서주를 떠나며(別徐州) 라고 적고 있다. 동파가 湖州知州로 이임되어 가는 元豊2년(1079)에 지은 것이다. 멀리 떠나온 타향에서 다시 떠나야 했기에 徐州와 佳人과의 이별을 아쉬워했 다. 그는 蘇軾文集 卷11 靈壁張氏園亭記 에서 내가 彭城(徐州)에 서 2년을 지내며, 그곳 경관을 좋아했는데, 떠나려하니 견딜 수 없었다. 서주 사람들도 나를 좋아했다. 장차 泗水가에 밭을 사서 노년을 지내고 싶다.14) 고 했다. 이로 볼 때 동파는 서주에 정이 많이 들었던 듯하다. 이 사의 상편에서는 떠나는 송별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편은 강물 따라 떠나는 배에서 북으로 날아가는 기러기(背歸鴻)와 반대로 자신은 남쪽으로 가면서(去吳中) 멀어져 가는 서주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마 지막 구절에서는 떠나보내는 이의 아쉬움이 방물방울 눈물이 되어 끝없 이 떨어지지만(寄我相思千點淚) 결국 흐르지 못하고(流不到) 무심한 강 물만 동쪽으로 흐른다(楚江東)고 묘사하고 있다. 그 많은 아쉬움의 눈물 이 흐르지만 결국 흐르지 못하는 것은 헤어져야만 하는 단절을 상징적 14) 余爲彭城二年 樂其風土 將去不忍 而彭城之父老亦莫余厭也 將買田于泗 水之上而老焉 蘇軾文集 卷11, 中華書局, 368쪽.
126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21 으로 표시하고 무심히 흐르는 강물은 결국 떠나가야 하는 이별을 표현 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여기서 강물은 바로 떠나가는 이별의 모습 이자 상징이다. 강물이 이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소식사 뿐만 아니라 前代의 花間詞에서도 흔히 보이는 보편적인 題材였다.15) 이별에 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서로 헤어져서 보지 못하게 되는 물리적 이별이 있는가 하면 삶과 죽음을 통한 영원한 이별도 있다. 소식의 江城子 를 통해 먼저 죽은 부인에 대한 이별의 그리움을 노래하기도 했다.16) 소식은 희녕8년 그의 나이 40세 때 먼저 죽은 자신의 부인을 그리워하며 이별 詞를 지었다. 소식의 부인인 王弗은 26세라는 젊은 나 이에 여섯 살 난 아들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때 소식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이에 대해 아버지인 蘇洵은 일찍 세상을 떠난 며느리에 대 해 소식에게 며느리가 너를 따라 고생을 많이 했으니 잊어서는 안 된 다. 다음에 너는 며느리를 반드시 네 어머니 곁에 장사지내 주도록 해 라17) 고 하면서 그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십년이 지나고 소 식은 꿈속에서 부인을 만났다. 비록 이 사가 강을 배경으로 한 이별 사 는 아니지만 소식의 죽은 부인에 대한 애절하고 그리운 감정이 잘 표현 15) 花間集 에서 강을 통한 이별을 묘사한 작품은 夢江南 (梳洗罷) 깨끗 이 머리를 씻어 빗고, 홀로 강가 누각에 기대어 멀리를 본다.梳洗罷 獨倚望 江樓. 天仙子 (晴野鷺鷥飛一隻) 물풀에 꽃은 펴 가을 강물 더욱 푸르네. 유랑이 바로 이날 선녀와 이별하고 水篊花發秋江碧. 劉郎此日別天仙. 柳含 烟 (章台柳) 바로 그대와 길 옆 강가에서 이별하니 直與路邊江畔別, 河 傳 (棹擧) 아득한 이별의 아픔에 강 소리도 흐느끼듯, 天涯離恨江聲烟, 謁金門 (留不得) 가볍게 이별하고, 쉽게 저버린 듯, 강물 위 돛에 가득 바 람맞아 떠나는 배,輕別離 甘抛擲. 江上滿帆風疾 등 다수 있다. 16) 江城子 (乙卯正月二十日夜記夢) : 十年生死兩茫茫 不思量, 自難忘 千 里孤墳 無處話凄凉 縱使相逢應不識 塵滿面 鬢如霜 夜來幽夢忽還鄕 小 軒窗 正梳牆 相顧無言 惟有淚千行 料得年年腸斷處 明月夜 短松岡 (을 묘년 정월 20일 밤에 꿈을 기록하여) 십년 세월 삶과 죽음으로 서로 헤어져, 생각지 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네. 천리 멀리 외로운 무덤, 이 처량함 말할 길 없네 설령 만난다 하더라도 알아보지 못하리니, 먼지 가득한 얼굴에 서리 같은 귀밑머리. 간밤 꿈속에서 문득 고향으로 돌아가니, 작은 창가에서 화장 을 하고 있었지. 서로 말없이 보면서 눈물만 천 갈래 흘렸네, 생각건대 나를 해마다 애끊게 하던 곳은, 밝은 달빛아래 키 작은 소나무 언덕이었네. 17) 蘇軾文集 卷15 亡妻王氏墓誌銘 中 婦從汝于艱難 不可忘也 他日 汝必葬諸其姑之側 (後略) 中華書局, 472쪽.
127 122 中國學 第34輯( ) 되고 있다. 소식은 특정한 사람을 두고 이별을 노래하기도 했지만 어떤 경우에는 구체적 대상을 두지 않고 애상에 젖는 이별사를 짓기도 했다. 章質夫의 楊花詞 에 次韻하여 지은 水龍吟 을 보자. 似花還似非花, 無人惜從敎墜. 抛家傍路, 思量却是, 無情有思. 縈損柔腸, 困酣嬌眼, 欲開還閉. 夢隨風萬里, 尋郞去處, 又還被, 鶯呼起 不恨此花飛盡, 恨西園,落紅難綴 曉來雨過 遺蹤何在? 一池萍碎. 春色三分 二分塵土 一分流水 細看來, 不是楊花 點點是離人淚. 꽃인 듯 아닌 듯 땅에 떨어져도 아쉬워하는 이 없네. 집을 떠나 길가에 나부끼니 가만히 생각해보니 무정해보여도 정이 있어 엉킨 마음 애간장 녹으니 고운 눈에 졸음 겨워 눈 뜨려다 다시 감네. 꿈은 바람 따라 만리 먼 길 임 가신 곳 찾아가다 꾀꼬리 소리에 또다시 잠이 깨었네. 꽃잎 다 날려도 안타깝지 않지만 서원에 떨어진 꽃잎 다시 붙일 수 없으리니 새벽이 되어 비 지나면 떨어진 꽃잎 자취 남은 곳 어디일까? 한 연못의 부평초 봄빛 셋으로 나누면 둘은 먼지와 흙일 테고 하나는 흘러가는 강물이리. 자세히 살펴보니 버들꽃 아니라 방울방울 떠난 사람 눈물이로다. 이 사는 元豊 4년(1081) 동파가 46세 때 황주에서 지어진 것이다. 꽃으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楊花(버들꽃)를 노래한 것이다. 또 자신의 불 우한 처지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 처럼 이 사에 대해 王國維는 人間詞話 에서 蘇軾과 章質夫를 비교하 여 소식의 사 창작의 재능을 극찬하고 있다. 또 張炎은 東坡가 章質夫 의 楊花 水龍吟 을 차운했는데 날카로운 칼끝이 서로 부딪히듯 기구에 서부터 맞닥뜨려져 장질부가 동파에게 한 걸음 양보 하더니 후편에서는
128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23 갈수록 기묘해져 참으로 고금을 압도한다.18) 고 했다. 내용적으로 이별 한 임을 그리는 여인의 마음을 묘사한 것이다. 상편에서는 버들꽃이 날 리는 정원과 적적한 봄날의 상심한 마음이 애절하게 전해진다. 하편에 서는 떨어진 꽃잎에 대한 작가의 마음을 표현했다. 즉 봄을 셋으로 친 다면(春色三分) 그중 둘은 진토이고(二分塵土) 하나는 흘러가는 강물(一 分流水)이라고 표현했다. 봄이 가버리는 것이 흘러가는 강물과 같으며 이는 떠나는 이의 이별 눈물(離人淚)이기에 그 이별의 슬픔이 강물처럼 크고 끝이 없음을 노래한 것이다. 강의 흘러가버리는 속성은 바로 떠나 가는 사람과도 같고 흘러가버리는 시간과도 같이 때문이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로 이별의 상징으로 묘사한 것이다. 강을 두고 이별 의 심정을 잘 표현한 동파의 또 한 작품으로 醉蓬萊 를 들 수 있겠 다. 이는 자신이 황주에 유배해 온 이후로 3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 을 잘 보살펴 주었던 태수 徐君猷를 떠나보내며 처연한 심정을 題序로 적고 있다. 나는 황주에 謫居한 이후, 세 번 중양절을 맞았는데, 해마 다 태수 徐君猷와 서하루에서 함께했다. 금년에 공이 장차 떠나 호남에 가기를 청하였다. 이를 생각하면 서글퍼지므로, 이 사를 짓는다.19) 고 했다. 그 작품을 보자. 笑劳生一梦, 羁旅三年, 又还重九. 华发萧萧, 对荒园搔首. 赖有多情, 好饮無事, 似古人贤守. 岁岁登高, 年年落帽, 物华依舊. 우스워라 힘든 일생 한바탕 꿈인 것을 떠돌이 생활 3년에 다시 중양절이 돌아왔네. 희끗한 머리는 듬성듬성 황폐한 정원을 보며 머리를 긁적이네. 다정한 덕분에 술 잘 마시고 일없이 지내니 마치 옛 훌륭한 태수 같네. 해마다 높은 곳 올라 해마다 바람에 날려 모자 떨구나니 아름다운 경치는 옛날과 같네. 18) 詞源 東坡次章質夫楊花水龍吟韻 機鋒相摩 起句便合讓東坡出一頭地 後片愈出愈奇 眞是壓倒今古 詞話叢編, 中華書局, 265쪽. 19) 余謫居黄州 三見重九 每歲與太守徐君猷會於棲霞樓 今年公將去, 乞郡湖 南 念惘此然, 故作是詞
129 124 中國學 第34輯( ) 此会应须烂醉, 仍把紫菊茱萸, 细看重嗅. 摇落霜风, 有手栽雙柳. 来岁今朝, 为我西顾, 酹羽觞江口. 会與州人, 饮公遗爱, 一江醇酎. 이번 연회에선 꼭 실컷 취해 줏빛 국화와 산수유를 잡고서 자세히 보고 거듭 냄새 맡아야지. 서릿 바람에 흔들려 떨어져버린 내 손수 심은 한 쌍의 버드나무 내년 이날이 되면 날 위해 서쪽을 돌아보며 날개달린 술잔으로 강어귀에 술을 따르라. 황주 사람들과 모여서 그대가 남긴 사랑인 온 강의 무르익은 술 마시리라.20) 소식이 황주로 폄적되어 온 3년 동안 그를 따뜻하게 예우해 준 사람 이 서군유다. 그들은 자주 자리를 같이했고 소식은 그를 통해 황주에서 의 폄적생활에 큰 위안을 받으며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서군유가 다시 호남으로 떠나가게 되었으니 소식의 아쉬움이 적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이 사의 상편에서는 황주에서 서군유와 해마다 같이 한 추억을 적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구에서는 그대가 비록 멀리 가더 라도 강에 술을 부으면 황주에 남아있는 동파 자신과 황주사람들은 강 을 통해 사랑을 느끼고 같이 술에 취하며 그대를 그리워하겠다는 마음 을 적고 있다. 즉 강은 떠나는 사람과 남아 있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연 결시켜주는 연결고리가 되면서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는 수단이 되고 있 다. 사람은 멀리 떠나가서 보지 못하더라도 술잔으로 술을 강에 부으면 (酹羽觴江口) 그 술은 강물을 타고 흐르고 흘러 와서 여기 있는 황주 사람들과 함께(會與州人) 그 강물을 마시게 되므로(一江醇酎) 강은 두 사람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즉 강은 떠나가는 이 별의 상징이 됨과 동시에 다시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상징이 되는 것이 다. 이밖에 소식사에서 이별을 노래한 사 가운데 강을 매개체로 한 것 은 많다. 杭州 근교 風水洞을 떠나오며 지은 臨江仙 (風水洞作)에서 또한 흐르는 강물에 사람 떠나보내니, 높은 산마루에 석양은 남았는데 20) 曹圭百譯註, 蘇東坡詞選 의 번역 참조, 문학과 지성사, 2007년, 244쪽.
130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25 풀에 맺힌 이슬은 이미 옷을 적시었네(還憑流水送人歸. 層巓餘落日 草 露已沾衣.) 라고 노래했고, 항주지주 陳述古를 떠나보내면서 그 아쉬운 마음을 虞美人 (爲杭守陳述古作)에서 밤 깊어 바람 자고 돌아가려 할 때, 밝은 달빛 강물에 가득차고, 강 수면은 푸른 유리 같구나(夜闌風 靜欲歸時 惟有一江明月碧琉璃) 라고 노래하고, 또 菩薩蠻 (西湖送述 古)에서는 가인의 천 방울 눈물, 강으로 뿌리니. 두 눈썹 찡그리지 말 게나, 전송하는 항주 백성들 더 많이 울 테니까(佳人千點淚 灑向長河 水. 不用斂雙蛾 路人啼更多) 라고 노래했다. 또 동파가 항주를 떠나 密 州知州로 부임하여 갈 때 孫洙와 潤州에서 만나 楚州까지 동행하고 이 별하였는데 이때 적은 永遇樂 (寄孫巨源)에서는 맑은 회수강에 의 지하여, 분명히 바다에 이를 것인데 그 속에 그리움의 눈물 담겨 있으 리(憑仗清淮 分明到海 中有相思淚) 라고 했다. 이밖에 滿庭芳 (三 十三年), 滿庭芳 (歸去來兮), 臨江仙 (一別都門三改火)등 강을 통 한 이별을 노래한 사들이 다수 있다. 2. 역사적 의미의 강 역사의 강은 흘러간다고 말한다. 역사를 강에 비유하는 이유는 강의 끊임없이 흘러가는 永續性과 照映性에 근거를 둔다고 볼 수 있다. 즉 시간의 역사가 끝없이 지속되는 것이나 강물이 무한히 흘러가는 것에서 인간은 동일한 이미지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모든 것을 비추 는 강물의 조영성이나 투영성은 다른 자연물에서 찾아보기 힘든 강의 특징적 모습이고 이는 역사가 시대를 반영하는 투영성과 조영성이라는 이미지와 동일성을 가진다. 즉 강물이 단순한 자연물을 넘어서 한 시인 시인의 감정적 이미지와 결합되어 질 때 더욱 뚜렷하게 새로운 시적 이 미지를 가진다. 강물의 역사성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식이라는 시인에게 있어서도 황주로의 폄적은 개인적 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좌절을 안겨 주었으며 이를 통해 인생과 역사를 새롭게 보게 되 는 계기가 되었다. 도도히 흐르는 강과 그 강에 조영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 시인은 역사 속 인물과 조우하고 역사 속 자신을 만났 다. 소식은 바로 험난한 인생역정을 겪으며 새롭게 강을 바라보게 되었
131 126 中國學 第34輯( ) 고 이는 그의 詞에서 강의 역사성이란 이미지로 표현 되었다. 동파는 烏臺詩案으로 4개월간의 옥살이를 하고 원풍3년(1080)부터 원풍7년(1084)까지 즉 그의 나이 45세부터 49세까지 황주로의 폄적을 거치면서 많은 좌절을 겪게 된다. 이러한 좌절은 그로 하여금 자신이 직면하는 운명을 道家와 佛家的으로 해소하고 새롭게 문학으로 승화시 키게 만들었다. 동파가 이러한 질고의 운명을 맞이하기 전까지 그의 작 품들에서 초연한 풍격의 작품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들이 전 대로부터 내려오는 완약한 풍격의 사들이 많았다. 동파의 사의 풍격이 바뀌게 된 것이 바로 이 시기를 통해서다. 이때 동파는 담담하고 초연 한 마음을 淸麗曠達21)한 風格으로 많이 지었다. 그 중 동파는 자신과 지난 역사적 사실들이나 인물들에 연결 지어 노래하였다. 이는 통해 역 사적 위대한 역사적 인물과 교감하고 역사적 사건들을 회고하면서 또 하나의 문학적 역사를 만들어 갔다.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 황주유배시 절에 지어진 작품들이 많다. 이는 자신이 역사의 한 일원으로 참여하고 싶지만 지금의 자신의 모습은 폄적되어 아무것도 할 수없는 사정이기에 지난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을 회고하며 자신의 처지를 문학적 역사적으 로 승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는 자신이 황주에 유배되어 지 내던 상황을 도연명이 五斗米를 위하여 허리를 굽히지 않겠다며 관직을 버리고 나가서 전원에서 생활한 모습과 자신이 동파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사는 상황을 역사적으로 결부시켜 여러 수의 사를 지었다. 예를 들어 江城子 를 보자. 梦中了了醉中醒. 只渊明, 是前生. 走遍人间, 依舊却躬耕, 꿈속이 선명하여 취중에 깨어보니 단지 도연명만이 나의 전생이로다. 인간 세상 두루 돌아보고는 옛날처럼 몸소 밭갈이 하네. 21) 柳種睦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소식이 제 1차 항주시기에는 완약사가 65% 를 차지하고 청광사가 33%를 차지하지만 밀주와 서주시기 그리고 황주 폄적 시기에는 완약사는 각각 30%와 25%로 줄어들과 그 대신 청광사가 65%로 주류를 이루게 된다고 도표를 통해 분석하고 있다. 穎州,揚州시기의 東坡 詞 동아문화 제44집.
132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27 昨夜东坡春雨足, 乌鹊喜, 报新晴. 雪堂西畔暗泉鸣. 北山倾, 小溪横. 南望亭丘, 孤秀耸曾城. 都是斜川當日境, 吾老矣, 寄馀龄. 어젯밤 동파 땅에 봄비가 흠뻑 내려 까치 기뻐하며 새로이 날씨가 갬을 알려주네. 설당의 서쪽 두둑에는 졸졸 샘물 울고 북산은 비스듬히 작은 시내 가로질러 흐르네 남쪽으로 사망정의 언덕 바라보니 증성처럼 외로이 빼어나게 솟았네 모두가 사천의 당시 경치와 같은데 내 늙었으니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라.22) 이 사의 題序에 도연명은 정월 5일 사천을 유람하였다. 물 흐름에 임해 차례대로 앉아 남쪽 언덕을 돌아보아 증성이 홀로 수려한 것을 사 랑하여, 이에 遊斜川 을 지었다. 그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으로 하여금 그곳을 생각하게 한다. 원풍 임술년 봄에 나는 東坡 땅에서 몸 소 농사를 짓고 雪堂을 지어 그곳에 거주하였다. 그곳은 남쪽으로 四望 亭의 뒤 언덕을 가까이 두고, 서쪽으로 北山의 작은 샘물과 인접했다. 개연히 탄식하기를 이것이 또한 사천에서의 노닒과 같구나. 이에 장단 구를 지어 강성자 로 노래하였다.23) 고 하여 이 사를 적게 된 배경 을 설명하고 있다. 이 사는 동파가 황주에 謫居하던 원풍 5년(1082)에 적은 것으로 도연명이 사천의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그 아름다 움을 遊斜川 으로 노래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자신 또한 같은 사천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비슷한 인생의 遭遇를 겪고 있다는 생각하면서 도연 명과 자신을 역사적으로 同類化 시켜 적은 것이다. 도연명 살던 시기에 도 흘렀을 사천이 자신이 찾아간 시기에도 의구히 흐르고 있는 것을 통 해 자신과 도연명을 역사적으로 잇고 同類化 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 사의 첫 세구에서 자신의 전생이 도연명이라고 읊고 있다. 동파는 도연 명이라는 隱者의 삶을 통해 현재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慰撫하며 동 22) 曹圭百譯註, 蘇東坡詞選 의 번역 참조, 문학과 지성사, 2007년, 177쪽. 23) 陶淵明以正月五日游斜川 臨流班坐 顧瞻南阜 愛曾城之獨秀 乃作斜川 詩 至今使人想見其處 元豊壬戌之春 余躬耕於東坡 築雪堂居之 南挹四望 亭之後丘 西控北山之微泉 慨然而歎 此亦斜川之游也 乃作長短句 以 江 城子 歌之 蘇軾詞編年校注, 中華書局, 352쪽.
133 128 中國學 第34輯( ) 시에 자신 또한 역사의 강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동 파는 이 작품이외에도 哨徧 24)을 통해 陶淵明의 歸去來辭 를 윤 색하여 역사적으로 그와 遭遇하고 있다. 동파가 역사적 인물과 강을 연 관시켜 적은 또 한 작품을 보자. 자신이 가장 존경해고 좋아했으며 자 신을 과거에 급제시킨 시킨 구양수를 그리며 적은 醉翁操 사를 보 자. 이 사는 사를 쓰기에 앞서 그는 또 아주 긴 題序를 적고 있다. 낭야의 깊은 계곡은 산천이 아름답고 샘물 소리가 텅 빈 시내에 울 려 마치 음악회에 들어온 것 같다. 취옹은 이것을 좋아하여 술을 들고 가서 그 소리를 들었는데 번번이 기분이 흐뭇해져서 돌아가기를 잊었 다. 그가 떠난 지 10여년 만에 호기심 많은 심준이라는 사람이 이 이 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서 놀다가 거문고 소리를 묘사하여 취옹조 라 고 하였다. 그 리듬이 시원스럽고 선율이 아름다워서, 거문고를 아는 사람들이 출중하다고 여겼다. 그러한 곡조만 있고 가사가 없었다. 취 옹이 비록 이를 위하여 가사를 짓기는 했으나 거문고 소리와 부합하 지 않았다. 또 초사에 의거하여 취옹인 을 지었고, 호사자가 그 가사 에 맞추어 곡을 짓기도 했는데, 비록 풍도에는 대략 어울릴지라도 거 문고 소리가 가사의 제약을 받아서 자연스럽지 못하였다. 그 뒤 30여 년이 지나, 취옹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심준 역시 죽은 지 오래되었 다. 여산의 옥간도인 최한은 거문고에 특별한 재주가 있었는데, 이 곡 조에 가사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그 소리를 악보로 삼아서 동파거 사에게 가사를 보충해 달라고 청했다.25) 24) 이 작품의 서언에 보면 도연명이 귀거래사 를 지었는데, 그 가사만 있 고 그 곡조가 없다. 내가 동파 땅을 개간하고 그곳에다 설당을 지었더니, 사 람들은 모두 누추하다고 웃는데, 유독 파양의 동의부만은 둘러보고 좋아하여 이웃이 되려는 뜻이 있었다. 이에 귀거래사 를 취하여 조금 윤색을 가해 음률에 맞도록 하여 의부에게 남겨주었다. 가동으로 하여금 노래 부르게 하 고는 때로 동파에서 서로 어울려 쟁기를 놓고 창화하며 쇠뿔을 두드리어 박 자를 맞추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랴!(陶淵明賦歸去來 有其詞而無其 聲 余治東坡 築雪堂於上 人俱笑其陋 獨鄱陽董毅夫過而悦之 有卜隣之 意 乃取歸去來詞 稍加櫽括 使就聲律 以遺毅夫 使家僮歌之 時相從於東 坡 釋耒而和之 扣牛角而爲之節 不亦樂乎 ) 蘇軾詞編年校注, 中華書 局 388쪽. (번역은 조규백역주, 소동파사선, 문학과지성사, 244쪽) 25) 琅琊幽谷 山水奇麗 泉鳴空澗 若中音會 醉翁喜之 把酒臨聽 輒欣然忘 歸 既去十餘年 而好奇之士沈遵聞之往游 以琴寫其聲 曰 醉翁操 節奏 疏宕, 而音指華暢 知琴者以爲絶倫 然有其聲而無其辭 翁雖爲作歌 而與琴 聲不合 又依楚詞作 醉翁引 好事者亦倚其辭以製曲 雖粗合韵度, 而琴聲
134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29 그리고는 구양수에 대한 감정을 주변의 경물과 강에 의탁하여 노래하 고 있다. 琅然, 清圆, 谁弹, 响空山. 無言, 惟翁醉中知其天. 月明风露娟娟, 人未眠. 荷蕢簣过山前, 曰有心也哉此贤. 醉翁啸詠, 声和流泉. 醉翁去後, 空有朝吟夜怨. 山有时而童巓, 水有时而回川. 思翁無岁年, 翁今为飞仙. 此意在人间, 试聽徽外三两弦. 낭랑한 소리 맑게 에워싸는데 누가 연주하는가 고요한 산을 울리고 말이 없네 취옹만이 취중에 자연의 음악인 줄 아네 달 밝고 바람 이슬 아름다워 사람 잠들지 못하고 삼태기 메고 산 앞을 지나며 말하길 생각함이 있는 듯하구나 이 현인이여 취옹이 읊조리니 소리가 흐르는 샘물과 화답하네 취옹이 떠나간 후 공연스레 아침에 읊고 밤에 원망하였지 산꼭대기도 때로는 민둥민둥하고 냇물도 어떤 때는 소용돌이치네 취옹을 생각함에 몇 년 되지 않은 사이에 취옹은 지금 나는 신선이 되었다네. 이 뜻이 인간 세상에 있어 시험 삼아 두세 가락 타는 것을 듣네.26) 자신을 천거하여 중앙무대로 이끌었던 구양수 또한 억울하게 연루되 어 자신처럼 滁州로 폄적되어 가 있었었다. 구양수는 있는 동안 그는 산문 醉翁亭記 와 豊樂亭記 를 지었으며 시 遊琅琊山 등을 적 었다. 또 전언에서 말하는 것처럼 음악에 맞추어 醉翁引 을 적었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나간 자리에 취옹과 심준은 죽었지만 그 음악과 聲詞所繩約 非天成也 後三十餘年 翁既捐館舍 遵亦没久矣 有廬山玉澗道 人崔閑 特妙于琴 恨此曲之無詞 乃譜其聲 而請於東坡居士以補之云 蘇 軾詞編年校注, 中華書局, 451쪽. (번역은 류종목, 동파사연구, 중문, 367 쪽) 26) 曹圭百譯註, 蘇東坡詞選 의 번역 참조, 문학과 지성사, 2007년, 264쪽.
135 130 中國學 第34輯( ) 자취는 그대로 인 것이다. 어쩌면 동파는 구양수가 폄적되어 가 있으면 서 훌륭한 작품들을 창작한 것을 회고하면서 자신도 그렇게 하고자 생 각했을 수도 있다. 이곳을 찾은 소식은 상편에서 취옹이 지냈던 모습을 그려보며 세상을 바로 잡으려는 변함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구양수 의 마음을 공자의 논어편을 들어 비유하고 있다. 즉 낭야산 幽谷의 물 흐르는 소리는 바로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入世志向의 마음을 가졌던 구 양수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소재라 볼 수 있다. 하편에서는 아 무 구애받음 없이 흐르는 강물과 자연경물을 두고 이에 능히 和音 할 수 있었던 취옹을 회고하며 또 이렇게 취옹과 和音했던 그 냇물이지만 지금은 모두 신선이 되어 떠나가 버리고 자신이 찾아온 자리에는 흐르 는 강물 소리가 화답한다는 역사적 회고를 적고 있다. 즉 취옹은 떠나 가 버렸지만 취옹이 화운하며 놀았던 그 샘물과 강은 의구하니 자신이 그 자리에서 취옹을 생각하며 새로운 가사를 적고 있다. 같은 景物과 강물을 두고 두 사람을 역사적으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소식으로서는 감 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밖에 동파가 구양수를 회고하며 역사적 공감을 느끼는 사들을 많이 지었다. 그는 水調歌頭 (落日繡 簾捲)27)에서 黃州 快哉亭28)에 올라 바라본 경치가 마치 옛날 揚州 平 27) 水調歌頭 (黃州快哉亭贈張偓佺) 落日繡簾卷 亭下水連空 知君爲我新 作 窗户濕青紅 長記平山堂上 欹枕江南烟雨 杳杳没孤鴻 認得醉翁語 山 色有无中 一千頃 都鏡淨 倒碧峰 忽然浪起 掀舞一葉白頭翁 堪笑蘭臺公 子 未解莊生天籟 剛道有雌雄 一點浩然氣 千里快哉風 낙조에 비단 주렴 걷고 열어보니, 괘재정 아래는 물이 하늘과 닿아 있다. 알았네 그대가 날 위 해 쾌재정을 새로 지었음을, 창문은 단청 윤기가 번들번들, 길이 기억하건대 구양수가 지은 揚州 平山堂 위에서, 베개를 기울여 강남 지방 안개비 보니, 가물가물 외로운 기러기가 사라졌었지. 취옹의 시어를 알게 되었네. 안개 멀 리 산색이 보일락 말락 하더라 고 했던. 만경창파 넓디넓은 강물, 온통 거울 처럼 맑기만 한데, 푸른 봉우리 그림자는 거꾸로 비추어 있네. 갑자기 파도가 일어, 일엽편주의 백발의 사공, 풍랑과 함께 출렁출렁 흔들며 춤을 추는구나. 가소롭다 蘭臺令 宋玉은 장가가 말한 자연의 음향을 알지 못하고서, 억지로 바람에 암바람과 숫바람이 있다고 우겼었지. 한 점의 호연지기, 천리의 상쾌 한 바람이여. 번역은 曹圭百譯註, 蘇東坡詞選, 290쪽. 28) 快哉亭은 張夢得이 지은 정자로 동파가 宋玉 風賦 의 한 구절인 상쾌 하구나 이 바람이여(快哉, 此風) 에서 따서 이름 지었다. 훗날 동생 소철이 쾌재정에 올라 黃州快哉亭記 를 적고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 스스로 自得 하지 못하면 장차 어디를 가도 근심이 아니겠는가. 그 마음이 아무 걱정도
136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31 山堂에서 본 강남의 경치와 같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平山堂을 지었던 취옹을 그리워하며 안개 멀리 산색이 보일락 말락 한다 는 구양수의 시어를 알게 되었다(認得醉翁語 山色有無中). 고 읊고 있다. 이어서 하편에서는 만경창파 넓디넓은 강물, 온통 거울처럼 맑기만 한데, 푸른 봉우리 그림자는 거꾸로 비추어 있네. 갑자기 파도가 일어, 일엽편주의 백발사공, 풍랑과 함께 출렁출렁 흔들며 춤추는구나(一千頃 都鏡淨 倒碧峰 忽然浪起 掀舞一葉白頭翁) 라고 하며 고요하다 다시 일렁이는 강의 변화되는 경치를 보며 바뀌어 가는 역사속의 모습들을 회상한다. 또 이는 파도를 보면서 다시금 지난 역사속의 宋玉을 비웃으면서 浩然 之氣를 발하고 있다. 그의 水龍吟 (小舟横截春江)도 역사적 의미로서 의 강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는 이 사의 題序에서 여구 대부 효종이 일찍이 황주 태수로 있을 때 서하루를 지어 군에서 절경이 되었 다. 원풍 5년(1082)에 나는 황주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월 17 일 꿈에 일엽편주로 강을 건너갔는데, 강물 흐름 가운데서 돌아보니 서 하루에서 노래와 악기 연주 소리가 뒤섞이어 들렸다. 배안의 사람이 말 하기를, 공현이 막 손님을 모아 잔치를 벌이는 중이라고 했다. 깨어나 이상하게 여겨 이 사를 지었다. 公顯은 당시 이미 벼슬을 사직하고 소 주에 있었다.29) 小舟横截春江, 卧看翠壁红楼起. 雲间笑语, 使君高会, 佳人半醉. 危柱哀弦, 작은 배 타고 봄 강을 가로질러 건너다가 배에 누워 높은 언덕에 솟아 있는 붉은 서하루 를 바라본다. 구름 사이로 웃음소리 들리니 그대의 성대한 모임에 아름다운 여인은 절반쯤 취했구나. 높은 음조에 처량한 거문고 소리 없이 물욕으로 성품을 해치지 않게 한다면 장차 어디를 가도 즐거움이 아니 겠는가. 士生於世, 使其中不自得, 將何往而非病, 使其中坦然不以物傷性, 將何 適而非快. 라고 했다. 이는 쾌재정에 올라 장강을 바라보며 淸麗曠達한 마음 을 가졌던 소식의 마음을 훗날 소철이 대변하는 문장이라 볼 수 있다. 29) 閭丘大夫孝終公顯 嘗守黄州 作棲霞樓 爲郡中勝絶 元豊五年 余謫居於 黄 正月十七日 夢扁舟渡江 中流回望 樓中歌樂雜作 舟中人言 公顯方會 客也 覺而異之 乃作此曲 公顯時已致仕 在蘇州
137 132 中國學 第34輯( ) 艳歌余响, 绕雲萦水. 念故人老大, 风流未减, 空回首, 煙波裏. 推枕惘然不见, 但空江 月明千里. 五湖闻道, 扁舟归去, 仍携西子. 雲梦南州, 武昌东岸, 昔游应记. 料多情梦裏, 端来见我, 也参差是. 아리따운 노래의 여운이 구름과 강물을 휩싸고 도는 구나. 생각건대 옛 친구도 늙었겠지만 풍류는 줄어들지 않았으리. 부질없이 머리를 돌려 안개 파도 가운데 연회를 바라본다. 일어나 베개를 밀쳐놓고 멍청히 앉았으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텅빈 강에 달빛만 천리에 밝구나. 듣자하니 오호에서 범려가 조각배를 타고 돌아갈 제 서시도 데리고 갔다지. 운몽의 남쪽 고을이요 무창의 동쪽 기슭인 이곳 황주에서 옛날에 노닐던 일 기억하겠지 짐작건대 다정한 그대 꿈속에서 정말 나를 만나러 오리란 것 아마도 그럴 테지30) 이 작품은 원풍5년(1082년) 정월 황주에서 소식이 친구인 閭丘大夫 孝終을 꿈속에서 보고 그리워하여 적은 사이다. 서언에서 밝혔듯이 꿈 속에서 公显이 강가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어는 장면을 본 것이다. 사의 내용으로 볼 때 공현과 소동파가 이 강에서 함께 풍류를 즐겼음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러나 강은 그대로인데 공현은 소주로 떠나 버렸으므로 볼 수 없는데 소동파는 그 장소에 그대로 謫居하고 있었기에 문득 꿈속 에 서 본 공현을 그리워하며 이 사를 지은 것이다. 이 사에서는 일차적 으로는 강을 배경으로 자신과 공현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역사적 회고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 강은 바로 范蠡가 西施를 만나 데 리고 떠났던 그 역사적 장소인 것이다31). 자신과 공현과 범려의 역사적 30) 曹圭百譯註, 蘇東坡詞選 의 번역 참조, 문학과 지성사, 2007년, 172쪽. 31) 越絶書 기록에 보면 오나라가 망한 후 서시는 范蠡에게 돌아갔으며 같 이 배를 타고 강호로 떠났다( 吳亡後 西施復歸范蠡 同泛五湖而去 )는 이 야기가 나오지만 이는 고사적 성격이 강하며 사실 國語 나 史記 와 같 은 역사서에는 서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낭만적인 이야기이기에 후대에 진 짜처럼 인식되고 전해진 것 같다.
138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33 사건들이 바로 황주의 적벽강에 서하루 아래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소식이 꿈속에서 보았던 상황에서 말미암는 것이다. 내용적 으로 보면 상편에서는 꿈속에서 그가 찾아올 것이란 그리움이 나타내고 있으며 하편에서는 텅 빈 강가에 밝은 달빛이 천리를 비추는 것을 바라 보며 역사적 사실을 떠올린다. 즉 이 텅 빈 강은 바로 춘추말기 越王 勾踐을 섬겼던 범려가 서시를 데리고 떠났던 바로 그 강이라는 사실이 다. 천년의 세월을 지나 과거 역사적 사실을 회고하며 범려가 서시를 데리고 떠난 역사적 장소에서 친구가 자신을 찾아와 만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즉 같은 강에 대한 역사적 회고를 통해 두 사건을 잇고 강을 통 해 자신을 역사적으로 일체화 시키고 있다. 동파의 강을 통한 역사적 회고의 최고 작품은 아마도 念奴嬌 일 것이다. 大江東去, 浪淘盡 千古風流人物. 故壘西邊, 人道是 三國周郎赤壁. 亂石崩雲, 驚濤拍岸, 卷起千堆雪. 江山如畵, 一時多少豪傑. 遙想公謹當年, 小喬初嫁了. 雄姿英發. 羽扇綸巾, 談笑間 强虜灰飛煙滅. 故國神游, 多情應笑我, 早生華發. 人生如夢, 一樽還酹江月. 큰 강물 동으로 흘러, 물결은 다 쓸어낼 듯, 역사를 주름잡은 영웅들. 옛날 보루의 서쪽은, 사람들이 말하지 삼국시대 周瑜의 赤壁이라고. 어지러이 솟은 바위 구름을 뚫고, 험한 파도는 강 언덕을 할퀴며, 천 겹의 물보라를 휘감아 올린다. 강산은 그림 같고, 한때 호걸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아득히 당시의 周瑜를 떠올리니, 소교와 결혼했을 때로, 영웅의 지략과 모습을 뽐내었지. 부채 들고 비단두건 쓰고, 담소하는 사이, 曹操의 軍隊 연기처럼 사라졌네. 옛 전쟁터 누비는 상상의 날개, 나의 이런 다정다감을 비웃겠지, 그래서 일찍 머리가 세었다고. 인생은 꿈이거늘, 한 잔 술을 강의 달에 붓노라.
139 134 中國學 第34輯( ) 이 사는 주지하듯 소동파가 황주에 폄적되어 있으면서 장강의 적벽을 찾아가 과거를 회상하며 지은 사이다. 웅장하고 도도한 장강의 흐름 속 에서 과거의 역사적 영웅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상편에서는 흘러 가는 장강을 끼고 바위에 물결치는 적벽의 모습을 묘사하며 삼국시대 당시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인 주유와 함께 많은 역사적 영웅들을 회고한다. 하편에서는 주유와 더불어 아리따운 소교와 깃부채를 들고 비단 두건을 한 주유의 모습과 더불어 조조의 수많은 군사들이 재와 연 기로 변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정신은 옛날로 돌아 가서 옛 적벽의 전쟁터를 노닐다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그러나 젊 은 나이에 세상을 풍미했던 주유와는 반대로 자신은 이렇게 황주에서 폄적의 세월을 지내고 있으니, 자신의 이런 처지와 이런 저런 많은 생 각 (多情)에 도리에 일찍 머리가 세어버리고 말았으니 비웃음 살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서는 이 모든 역사를 주름잡은 영웅들도 결국 역사의 강물 속으로 다 휩쓸려 가버리는 것이기에 인생은 꿈과 같 은 것이라 보고 동파 자신 또한 한 잔의 술을 흘러가는 강물 속으로 따 름으로서 자신도 역사의 강물 속으로 함께 흘러감을 적고 있다. 원래 酹 자의 의미는 땅에 술을 부어 제사지내는 것을 말한다. 즉 소식은 역 사의 강에 술잔을 따름으로서 지난 모든 역사적 인물들에게 제사 지내 고 꿈같은 인생의 덧없음을 회고하며 자신도 그 역사의 강 속으로 흘러 가고 있음을 표현했다. 소식은 강이란 바로 흘러가는 역사를 보는 것 같다고 인식한 것이며 이는 바로 역사적 회고의 강이다. 이 사에 대해 清代 黃蘇는 念奴嬌 작품의 처음에는 자신과 주유를 같이 이야기 하 고 뒤에 가서는 도리어 소식이 역사의 주인이 되고 주유가 객이 되었다 고 보기도 했다.32) 분명 이 사를 통해 소식은 주인과 객이 어우러져 역 32) 題는 회고이지만 자신의 장대한 마음을 헛되이 소모했음을 말한다. 처음에 大江東去 두고는 파고 속 인물을 읊으면서 자신과 주유를 모두 그 안에 놓 고 있다. 故垒 句부터 다음 闋 灰飛烟滅 句는 적벽에서 주유의 일을 적고 있다. 故國 세 구는 주유부터 자신까지 내려온다. 人生如夢 두 구는 첫 두 구에 응대하여 총결하고 있다. 총괄해 말하면 題는 적벽이나 마음은 실로 자 신을 위해 펼쳤으므로 주유는 객이고 자신이 주인이다. 객을 빌려 주인을 정 했고, 객에다 주인을 의탁해 주인인지 객인지 이상야릇하게 변화시켰으므로
140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35 사의 강에 함께 하고자 한 것임은 틀림없다. 劉乃昌은 사의 결미는 감 정이 격하게 흘러 자유분방함을 지어내니 마치 고원의 넓은 평야를 용 솟음쳐 흐르는 강물 같아서 때로는 계곡을 만나 굽어 흐르다가 다시 계 속해서 넓은 앞을 향해 달린다. 이것은 역사와 현실, 이상과 실제가 첨 예한 충돌을 거친 후 나타나는 작가의 심리적 반영이며, 이러한 감정의 자유분방함은 독자로 하여금 더욱 진실되게 느끼게 하고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읽는 이로 하여금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33) 고 했다. 이 사들 이외에도 역사적 회고를 읊고 있는 소식의 사들이 다수 있다. 예 를 들면 元豊元年(1078)에 지은 永遇樂 (明月如霜)에서는 물고기들 이 뛰어오르는 굽이진 강가(曲港跳魚) 에서 옛날 唐나라 시대 張愔의 애첩 關盼盼이 남편이 죽자 정절을 지키고 살았다는 燕子樓에서 지난 일을 회고하며 연자루는 텅비어, 미인은 어디가고, 텅비어 잠겨 있는 누대엔 제비만 있네(燕子楼空 佳人何在 空鎖樓中燕) 라고 읊고 있다. 또 원풍4년(1081) 지은 南鄕子 (霜降水痕收)에서는 구월 구일 重陽節 날 서리 내려 강물 줄어든 흔적 사라지고, 얕고 푸른 물결 잔잔하고 멀리 모래섬이 확 드러난(霜降水痕收 淺碧鱗鱗露遠洲) 모습을 보면서 옛날 도연명의 외조부가 같은 중양절날 會宴에서 뛰어난 문장실력을 발휘(破帽多情却戀頭) 했던 사실을 적고 있다. 元祐6年(1091)지은 木 蘭花令 (霜餘已失長淮闊)34)에서는 덧없이 潁水의 잔잔히 흐느끼는 강 자세히 따져 보아야 주된 뜻이 있는 곳을 알게 된다. 단지 그 사를 읊어서만 은 그 뜻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題是懷古 意謂自己消磨壯心殆盡也 開口 大江東去 二句 歎浪淘人物 是自己與周郎俱在內也 故垒 句至次闋 灰 飛烟滅 句 俱就赤壁寫周郎之事 故國 三句 是就周郎拍到自己 人生如夢 二句 總結以應起二句 總而言之 題是赤壁 心實爲己而發 周郎是賓 自己 是主 借賓定主 寓主于賓 是主是賓 離奇變幻 細思方得其主意處 不可但 誦其詞, 而不知其命意所在也 清 黃蘇, 蓼園詞選, 번역의 일부는 이종진 소식의 황주시기 사 참조, 中國文學 28집 117쪽) 33) 词的收尾 感情激流忽作一跌宕 犹如在高原阔野中奔涌的江水 偶遇坎谷 略作回旋 随即继续流向旷远的前方 这是历史与现状 理想与实际经过尖锐的 冲突之后在作者心理上的一种反映 这种感情跌宕 更使读者感到真实 从某种 意义上说 更能引起读者的思考 唐宋詞鑑賞辭典 623쪽, 上海辭書出版 社. 34) 일찍이 歐陽脩가 <木蘭花令> 詞를 지어서 潁州의 西湖를 읊었는데 소식은 이전에 구양수와 함께 서호를 유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와보니 歌妓 들이 구양수의 사를 노래 부르고 있었다. 이에 감격하여 구양수 사에 화운하
141 136 中國學 第34輯( ) 물소리를 들으며(空聽潺潺清潁咽) 나와 더불어 구양수를 아는 이, 서 호의 물결에 비치는 달 뿐(與余同是識翁人 惟有西湖波底月) 이라고 적 고 있다. 이밖에도 소식은 역사적 회고의 사들을 많이 적고 있지만 더 욱 많은 역사 회고의 글은 그의 시에서 많이 나타난다. 3. 초월적 의미의 강 강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속성이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융합적 속성이 있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속성 중 하나는 무한히 흘러간다는 무한성이다. 낮은 곳을 향해 융합되며 한 순간도 멈춤이 없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에 대비되는 무한성을 느끼게 되고 이 는 다시 초월적 이미지를 유발한다. 끊임없이 흐르며 끊임없이 새로운 물이 유입되기에 그 강물은 한 순간도 같은 강물이 아니고 끊임없이 변 화되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동파도 그랬다. 즉 동파는 인간의 유한 성을 통해 무한성을 보게 되고 그 유한함은 바로 무한으로부터 나오기 에 다시 有限함을 통해 無限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인식했다. 따라서 동파는 그러한 초월적 경지를 시적 이미지로 표현하여 詞의 새로운 경 지를 구축했다. 우리가 소식의 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은 儒家的 몸을 가지고 道家的와 佛家的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굴곡 많 은 인생사를 겪으면서 본연적으로 시공을 뛰어넘는 초월성을 간파했다. 그는 어릴적 부터 道家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어릴 때 배웠던 張易簡이 바로 道士였다. 宋史ㆍ蘇軾本傳 을 보면 그는 어릴 때 莊子 를 읽고 내가 이전에 있던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는 데 지금 이 책을 읽으니 바로 내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35) 고 했다. 그 러나 벼슬길에 나가기 위해 바빴던 그는 이후 도가에 깊이 탐미할 겨를 이 없었다. 그러다 그가 황주에 폄적되면서 道家思想은 그를 세상으로 여 이 사를 지었다. 그래서 題에 구양수의 서호운에 차운하여(次歐公西湖韻) 라고 적고 있다. 35) 吾昔有見 口未能言 今見是書 得吾心矣 宋史ㆍ本傳 卷338, 中華書 局, 10801쪽.
142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37 부터 벗어나는 초월과 出世 의 근간이 되게 하였으며 그의 마음을 치유 하는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그의 答秦太虚書 를 보면 그가 황주에 서 道家를 배우는 과정과 목적을 잘 적고 있다.36) 도가사상과 더불어 그는 황주시기에 불교사상에도 깊이 침잠했었다. 황주 폄적시기에 적은 黃州安國寺記 에서 그는 나의 도의 경지는 감정을 제어하기 부족했 고, 성품은 습관을 이기기 부족했다. 그 근본을 다스리지 못하고 그 말 단을 다루었으니 지금 비록 이를 바꾼다 하더라도 뒤에 반드시 다시 해 야 할 것이니 대저 佛僧에 귀의하여 한번 깨끗이 씻기를 구해 볼까 37) 라고 하며 불교에도 깊이 심취했다. 이렇듯 소식의 일생을 볼 때 황주 폄적 시기는 큰 좌절을 통해 失意하고 다시 내적치유를 가지게 되는 전 환기였다. 이에 대해 吳洪激은 略論蘇軾詩詞中的禪玄風味和審美情趣 에서 황주 폄적 시기는 소식이 정신적으로 가장 혼란에 처한 시기이며 또한 그가 內的超越 로 특징 지워지는 禪的 이치를 통해 정신적 해탈과 자유를 찾았기에 변화 가운데서도 놀라지 않았고 고통 속에서도 고통스 러워하지 않았으며 인연을 따라서 스스로 즐기었고 처한 환경에 적응하 며 안주한다.38) 고 말했다. 따라서 이러한 老莊이나 佛家의 哲理를 담 을 수 있는 소재인 강을 좋아했을 것이다. 西江月 은 그러한 그의 초 월적 심사를 잘 나타내고 있다. 36) 우리들은 점점 쇠미해지니 다시 젊은 모습을 지을 수 없으니 마땅히 도가 의 책과 방사의 말을 따라 수련해야 한다. 폄적되어 별일이 없기에 이미 조 금 보았다. 이미 황주의 대경관 도당 세 칸을 빌어 여러 번 와본 후 이 방에 들어와서 49일 동안 있다가 나왔으니 스스로 구속시키려 하지 않았다면 어찌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후략) 吾儕漸衰 不可復作少年調度 當速用道書方 士之言 厚自養煉 謫居無事 頗窺其一二 已借得本州大慶觀道堂三間 冬至 後 當入此室 四十九日乃出 自非廢放 安得就此 太虛他日一爲仕宦所縻 欲求四十九日閑 豈可復得耶 當及今爲之 但擇平時所謂簡要易行者 日夜爲 之 寢食之外 不治他事 但滿此期 根本立矣 此後縱復出从人事 事已則心 返 自不能廢矣 此書到日 恐已不及 然亦不須用冬至也 答秦太虛書 37) 道不足以御氣 性不足以勝習 不鋤其本 而耕其末 今雖改之 後必復作 盍歸誠佛僧 求一洗之? 蘇軾文集, 中華書局, 391쪽. 38) 貶謫黄州是蘇軾精神處于最迷乱时期 也是他从以"内在超越为特点的禅玄义理 中 寻求精神上的解脱与自由 故而能处变不惊 处苦不苦 随缘自娱 随遇而 安 吳洪激, 略論蘇軾詩詞中的禪玄風味和審美情趣, 東坡赤壁詩詞, 2008 年 4期, 57쪽.
143 138 中國學 第34輯( ) 照野瀰瀰淺浪, 横空隐隐层霄. 障泥未解玉骢驕, 我欲醉眠芳草. 可惜一溪风月, 莫教踏碎瓊瑶. 解鞍欹枕绿杨桥, 杜宇一声春晓. 달빛은 들판을 비추고 일렁이는 강물을 비추고 층층 구름은 은은하게 하늘에 걸려 있다. 말다래 풀기전에 옥총마는 좋아서 펄펄 뛰는데 나는 취한 채 풀밭에서 잠들고 싶어라. 개울 가득 선선한 바람과 휘영청한 달빛 영롱한 저 달빛을 짓밟아 부수지 말도록 하라. 안장 풀어 베개 삼아 버들잎 푸른 다리 위에 누웠더니 어느새 두견새 울음소리 봄 새벽을 알린다.39) 이 사는 그가 황주에서 謫居하던 47세 원풍 5년(1082) 3월에 적은 사다. 그는 서언에서 근래 황주에서 봄날 밤에 기수(蘄水) 주위를 가다 가, 주막에 들러 술을 마시고 취했다. 달빛을 타고서 개울에 놓여 있는 다리 위에 이르러, 말안장을 풀고는 팔을 베고 취해 누워서 잠시 쉬었 다. 깨어보니 벌써 새벽이었다. 산들이 울멍줄멍 둘러싸여 있고 냇물 소 리는 출렁출렁 들려오니 아마도 속세가 아닌 듯했다. 이에 다리 기둥에 다가 이 사를 쓴다.40) 고 적고 있다. 봄날 달빛은 온 들판과 강 물결을 비추어 반짝반짝 일렁이고 구름은 층층이 하늘에 걸려있다. 이 기분을 어쩌지 못해 말에서 내리려고 말다래를 푸니 말도 좋아서 껑충거린다. 하편에서는 강 가득한 바람과 달빛이 아름다우니, 이 강물에 비친 아름 다운 달그림자를 말이 강가에 들어가 밟아 부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말 안장을 베개 삼아 녹양방초 우거진 강가 다리위에 누웠으니 두 견새가 봄 새벽을 깨운다고 설명하고 있다. 작가가 봄날 밤에 어슬렁어 슬렁 걷다가 휘영청 밝은 달빛에 심취하여 物我相忘의 경지에 도달함을 묘사하고 있다. 그야말로 禪詩를 읽는 듯하고 해탈 에 이른 듯하다. 王國維는 人間詞話 에서 소식의 사를 논평하며 먼저 도연명의 시에 대한 소명태자의 말을 인용하여 그 시상이 자유분방하고 밝게 드러나 서 다른 시인들의 작품들을 홀로 초월하여, 그 억양이 상쾌하고 명랑해 39) 曹圭百譯註, 蘇東坡詞選 의 번역 참조, 문학과 지성사, 2007년, 195쪽. 40) 頃在黃州 春夜行蘄水中 過酒家飮 酒醉 乘月至一溪橋上 解鞍 曲肱醉 卧少休 及覺已曉 亂山攢擁 流水鏘然 疑非人世也 書此語橋柱上
144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39 서 다른 이의 것들과 견주어 비교할 수 없다. 하며 오직 소식만이 이러 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다.41) 소식의 사가 다른 일반 사인들의 경계를 확실히 뛰어넘는 것은 바로 그의 초월적 사상을 사를 통해 구현 해 내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재된 도교와 불교의 초월적 정신이 억울한 폄적을 당하고 스스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과 부딪치며 새롭게 문 학적으로 수용되고 승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초월적 사상 을 배태해내는 바탕에는 哲理를 담은 강물이 깔려 있다. 동파가 강을 통해 초월적 意境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은 아마 臨江仙 일 것이다. 夜飮東坡醒復醉, 歸來髣髴三更. 家童鼻息已雷鳴. 鼓門都不應, 依杖聽江聲. 長恨此身非我有, 何時忘却營營. 夜闌風靜穀紋平. 小舟從此逝, 江海寄餘生. 밤 깊도록 동파에서 술에 깨었다 다시 취해 돌아오니 시각은 아마 三更 이라 아이는 우레처럼 코를 골며 잠이 들었고 문 두드려도 기척이 없어 지팡이 짚고 강물소리 듣는다. 늘 내 몸이 내 몸 아님을 한스러워하노니 언제 모든 자질구레 세상살이 다 잊을까? 밤 깊어 바람도 고요하고 물결도 잠들었으니 이 길로 작은 배에 몸을 싣고서 江海에 여생을 맡겨 볼거나. 소식이 이 사를 적은 것은 원풍6년(1083) 5월이다. 자신이 개간한 동파에서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삼경이 되어서야 臨臯亭으로 돌아 와 문들 두드리지만 아이는 깊이 잠이 들어 듣지 못하고 자신은 문 밖 에서 강물 소리를 듣는다. 끝없이 흘러가는 강물 소리를 들으며 동파는 문득 유한적인 인생과 대비되는 강물의 영원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그래서 지팡이에 의지해서 강물소리를 듣고는 바로 하편의 첫 구에서 장자의 구절42)을 인용해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어떻게 주재하지 41) 詞中少陶詩薛賦氣象 : 昭明太子稱陶淵明詩 跌宕昭彰 獨超衆類 抑揚爽 朗 莫之與京 王無功稱薛收賦 韵趣高奇 詞義曠遠 嵯峨蕭瑟 眞不可言 詞中惜少此二種氣象 前者唯東坡 後者唯白石 略得一二耳 詞話叢編, 中華書局, 4246쪽. 42) 莊子 知北游 에 순이 말하기를 내 몸이 내 소유가 아니라면 누가
145 140 中國學 第34輯( ) 못함을 한탄하면서 속세의 모든 것들을 떨쳐버리고 물결 잠잠한 江海로 여생을 맡겨 떠나버리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소식의 추구하고자 했던 초월의 경지는 아마 老莊적 경지의 영원한 초월이었을 것이다. 끊임없 이 흘러가버리는 강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을 훌훌 털고 벗어나고파 한 동파의 심사가 그대로 묻어난다. 이 시기 동파가 강을 통해 인생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는 그의 적벽부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임강 선 사가 1083년 5월에 적었고 赤壁賦 와 後赤壁賦 는 바로 그 전해 1082년 가을과 겨울 두 차례의 적벽을 유람하고 지은 것이기에 적벽부 를 보면 당시 동파의 강을 통해 깨달은 초월적 인식을 잘 알 수 있다. 적벽부에서 객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다.'는 것은 曹 孟德의 시가 아닌가? 서쪽으로 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武昌을 바 라보니 산천이 서로 얽혀 빽빽하고 푸른데, 여기는 맹덕이 周郞에게 곤욕을 치른 곳이 아닌가? 바야흐로 형주를 격파하고 강릉으로 내려 감에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가니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었네. 술을 걸러서 강가에 가서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의 영웅일 진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 에서 고기 잡고 나무를 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 을 벗하고 있네. 일엽편주를 타고서 술잔을 들어 서로 권하고, 하루 살이 삶을 천지에 의지하니 아득히 넓은 바다의 한 알의 좁쌀알이구 나. 우리네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長江의 끝없음을 부러워하네. 나 는 신선을 끼고서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오래토록 하다가 마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임을 불현듯 알고 여운을 슬픈 바람에 맡 기네.43) 이것을 가지고 있습니까? 왈 이는 천지가 너에게 붙여준 형상이다 (舜曰, 吾身非吾有也, 孰有之哉? 曰, 是天地之委形也 ). 라는 말이 있다. 즉 우리 자 신은 천지의 한 일부분일 뿐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동파는 스스로가 스스 로를 주재하지 못하고 늘 외물의 지배를 받는 것을 한탄스러워 한 것이다. 43) 月明星稀 烏鵲南飛 此非曹孟德之詩乎 西望夏口 東望武昌 山川相 繆 郁乎蒼蒼 此非孟德困於周郎者乎 方其破荊州 下江陵 順流而東也 舳 艫千里 旌旗蔽空 釃酒臨江 橫槊賦詩 困一世之英雄也 而今安在哉 況吾 與子漁樵於江渚之上 侶魚蝦而友麋鹿 駕一葉之扁舟 舉匏尊以相屬 寄蜉蝣 於天地 渺滄海之一粟 哀吾生之須臾, 羡長江之無窮. 挾飛仙以遨遊, 抱明月而 長終 知不可乎驟得, 託遺響於悲風 蘇軾文集 卷1, 中華書局, 1996년
146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41 이것은 동파와 함께 적벽을 유람하던 객이 인생의 짧고 덧없음을 영 원히 지속해서 흐르는 강물의 영원성과 비교하여 이야기 한 것이다. 이 에 대해 소동파는 똑같은 강을 두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손님께서도 역시 강물과 달을 아시오? 가는 것이 이와 같으나 일찍 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으나 끝내 줄고 늘지 않으 니 무릇 변하는 것에서 보면 천지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것에서 보면 사물과 내가 모두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 하리요? 또, 대저 천지 사이의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한 터럭일지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골짝의 밝은 달은 귀로 얻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만 나면 빛을 이루어서 이를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이를 써도 다함이 없 으니 이는 조물주의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 로다.44) 즉 동파가 인식한 초월은 세상과 자연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과 자연과 함께 변하여 가면서 더불어 그 속에서 영원히 머무를 수 있 는 完成적 경지의 초월을 이야기 하고 있다. 즉 인간이 유한한 삶속에 서 늙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 자체가 자연의 법칙이며 모든 것이 변한 다는 그 법칙 만이 변하지 않는 법칙이라는 것을 깨달아 자신도 그 속 에서 유유자적하며 함께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원리를 담고 있는 것이 흐르는 강물인 것이다. 동파는 老莊과 佛學을 통한 진정한 해탈을 추구했으며 이를 詞와 賦에 접목시켜 기존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 새 로운 境界의 작품을 창작했다고 할 수 있다. 後赤壁賦 에서도 동파 는 흘러가는 강을 배경으로 흐르는 강물은 소리 내고, 깎아지른 절벽 은 천길 높이 솟아있고, 산은 높아 달은 작은데, 강물은 줄어 돌들이 드 러났다. 세월은 얼마나 흘렀기에 강산을 알아 볼 수 없단 말인가?(江流 5쪽. 44) 蘇子曰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 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 而卒莫消 長也 蓋將自其變者而觀之 則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 則物與我 皆盡也 而又何羡乎?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清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為聲 目遇之而成色 取之不禁 用之 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子之所共食 蘇軾文集 卷1, 中華書局, 1996년 5쪽.
147 142 中國學 第34輯( ) 有聲, 斷岸千尺; 山高月小, 水落石出; 曾日月之幾何, 而江山不可復識 矣!) 라고 하며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과 세월의 영원성과 경물의 변화 에 대해 노래하고 더불어 뒤에는 돌아와 배에 올라, 강물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고 멈추는 곳을 따라 쉬게 하였다.(反而登舟, 放乎中流, 聽其所 止而休焉.) 고 다분히 禪的인 비유로 이야기하고 있다. 또 마지막 부분 에 가서는 仙人을 통한 現實과 仙境을 넘나드는 超脫을 노래하고 있다. 소식이 강물을 통한 초월적 경계를 노래한 사들은 여러 작품들 속에서 나타난다. 满庭芳 을 보자. 归去来兮, 清溪無底, 上有千仞嵯峨. 画楼东畔, 天远夕阳多. 老去君恩未报, 空回首 弹铗悲歌. 船头转, 长风萬里, 归马驻平坡. 無何, 何处有, 银潢尽处, 天女停梭. 问何事人间, 久戏风波. 顾谓同来稚子, 应烂汝 腰下长柯. 青衫破, 群仙笑我, 千缕挂烟蓑. 돌아가리라 맑은 시냇물 끝없이 깊고 위로는 천길 높은 산 있는 곳으로 단청누각 동쪽에는 아득한 하늘에서 석양이 듬뿍 비치리라. 늙어감에 임금의 은혜는 갚지도 못하고 부질없이 머리 돌려 풍훤처럼 칼자루 두드리며 슬픈 노래 부르누나 뱃머리 돌아가니 만리길 긴 바람 평탄한 언덕에다 돌아가는 말을 세운다. 아무것도 없도다. 어디에 있으리 은하수 끝나는 곳에서 직녀가 베틀 북을 멈추고 묻노니 무슨 일로 속세에서 오래도록 풍파와 노니느냐고. 함께 온 아들을 돌아보며 말한다. 네 허리의 긴 도끼자루가 썩을 거라고. 푸른 적삼이 해어져 여러 신선들이 나를 보고 웃으며 안개 속 도롱이에 내 적삼의 천 가닥 실이 걸렸 다고 한다.45) 45) 曹圭百譯註, 蘇東坡詞選 의 번역 참조, 문학과 지성사, 2007년, 334쪽.
148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43 이 사는 소식이 황주의 적거 생활을 마치고 떠나면서 적은 사이다. 그는 이 사의 題序에서 나는 황주로 귀양 온 지 5년 만에 임여로 가게 되어 满庭芳 한 편을 지어 황주사람들과 작별했다. 이미 南都에 이 르러 은혜를 입고 풀려나 양선으로 돌아가게 됨에, 다시 한편을 짓는 다.46) 라고 사의 창작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소식은 황주의 적거생활 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의 사고의 전환을 가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적거 생활을 마치고 다시 入世 를 하면서도 세상살이에 전전긍긍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듯하다. 따라서 상편에서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양선의 끝 없이 흐르는 아름다운 강과 산수를 상징적으로 노래하고 하편에서는 자 신이 모든 것을 초탈하여 신선이 된 경지로 속세의 모든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따라서 묻노니 무슨 일로 속세에서, 오래도록 풍파와 노니 느냐고(問何事人間 久戱風波) 라고 자문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도다. 어디에 있으리(無何 何處有) 라고 자답하기도 한다. 확실히 소식은 황 주에서의 貶謫이라는 큰 역경을 통해 정신적으로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 게 되었고 그것들이 작품을 통해 승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강을 통한 초월적 해탈의 정신을 추구하는 작품은 비단 이 작품뿐만 아 니라 다른 작품들에서도 나타난다. 그가 황주에서 적거하던 원풍5년에 적은 調笑令 에서 강가에는 미풍 불고 가랑비도 내리는데, 푸른 도 롱이에 누런 부들 옷을 입고, 홍주에 뱅어 먹고 저녁 되어 돌아가네(江 上微風細雨 青蓑黃箬裳衣. 紅酒白魚暮歸) 라고 하여 강가에 비바람 불 지만 개의치 않고 초연한 어부의 모습을 통해 초탈의 경지를 묘사하고 있다. 같은 해에 적은 念奴嬌 (憑高眺遠)에서는 달나라 궁전에, 난 새 타고 가니, 사람은 청량한 달나라에 있네. 강산은 그림 같은데 바라 보니 안개 덮인 나무 또렷하구나(玉宇瓊樓, 乘鸞來去, 人在清凉國. 江山 如画, 望中煙樹歷歷) 라고 하여 중추절 날 감회를 人間世를 훌쩍 뛰어 넘는 초월적 정신으로 노래하고 있다. 또 원풍7년(1084)에 적은 水龍 吟 (古來雲海茫茫)에서는 강가에 서서 바라보니, 귀향 온 신선 이백의 모습, 말없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臨江一見 謫仙風采 無言心許.) 고 46) 余謫居黃州五年 將赴臨汝 作滿庭芳一篇别黃人 既至南都 蒙恩放歸陽羡, 復作一篇.
149 144 中國學 第34輯( ) 仙境의 경지를 묘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소식의 出世 的 정신은 많은 시들에서도 보인다. Ⅲ. 결 론 동파는 일생을 통해 몇 번의 폄적을 겪게 된다. 그 가운데 烏臺詩案 으로 황주로의 폄적은 그를 새로운 인생관을 가지게 했다. 기존의 유가 적 가치관을 위주로 했던 그는 황주 폄적을 거치면서 초월적인 佛老思 想에 귀의하고 달관적인 인생태도를 가지게 했다. 이러한 인생관의 轉 移는 바로 사 작품들을 통해 보여 진다. 그의 사에 나타난 강이란 소재 를 통해 보았을 때 폄적 시기를 거치기 전에는 강의 모습이 여느 다른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별과 만남의 강이었지만 굴 곡 많은 세상사를 거치면서 懷古的이고 歷史的인 측면에서 강을 바라보 게 되고 황주 폄적시기를 거치면서는 超越的 강으로 넘어가게 된다. 소 식은 바로 이런 인생에서 遭遇하는 절망과 좌절을 超脫的 경지에서 작 품으로 풀어내려 했다. 그는 대자연의 유구함과 영존하는 법칙성을 강 물을 통해 표현해 내었다. 따라서 동파는 인생에서 무수한 질곡의 세월 을 겪고 힘들고 거센 운명을 맞이해도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작품들은 천금같이 더욱 빛났으며 장강처럼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특히 詞에서 그러했다. 陳延焯은 白雨齋詞話 卷7에서 사람들이 동파의 고시와 고문이 백대에 뛰어남은 알고 있으나 동파의 사가 시문보다 더욱 뛰어 난 것은 알지 못하고 있다. 구품으로서 시문을 논한 예에 따르면 동파 의 詩와 文은 上品에 나열된다 해도 上中이나 上下에 불과하다. 그러나 만약 詞의 경우는 거의 上上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동파노인의 일생 최 고의 특기였는데 안타깝게도 전해져 오는 것이 많지 않다47) 고 했다. 본인은 만약 동파의 詞에 나타난 江을 王國維의 境界說을 빌어 표현한 다면 봄빛 셋으로 나누면, 둘은 먼지와 흙일 테고, 하나는 흘러가는 강 물이리(春色三分, 二分塵土, 一分流水) 가 첫 번째 경계이고, 인생은 꿈 47) 人知東坡古詩古文 卓絶百代 不知東坡之詞 尤出詩文之右 蓋仿九品論字 之例 東坡詩文縱列上品 亦不過爲上之中下 若詞則幾爲上之上矣 此老生平 第一絶詣 惜所傳不多也 詞話叢編, 中華書局, 3937쪽.
150 蘇東坡 詞에 나타난 江의 의미(정태업) 145 이거늘, 한 잔의 술을 강 위의 달에게 부어 바치네(人生如夢, 一樽還酹 江月) 가 그 두 번째 경계이고, 이 길로 작은 배에 몸을 싣고서, 강해 에 여생을 맡겨 볼거나(小舟從此逝, 江海寄餘生) 가 세 번째 경계라고 표현하고 싶다. [참고문헌] 鄒同慶 王宗堂著, 蘇軾詞編年校註 中華書局 2002년 柳種睦譯, 蘇軾詩集,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년 孔凡禮點校, 蘇軾文集, 中華書局 1996년 柳種睦, 蘇軾詞硏究, 중문 1993년 曹圭百譯註, 蘇東坡詞選, 문학과 지성사 2007년 唐圭璋, 全宋詞, 中華書局, 1995년 唐圭璋, 詞話叢編, 中華書局, 1993년 陳鼓應註譯, 莊子今注今譯, 中華書局, 1996년 唐圭璋等, 唐宋詞鑑賞辭典, 上海辭書出版社 1996년 金學主譯, 荀子, 을유문화사, 2008년 陳冬根, 水月清明 情有独钟 - 苏轼作品中的 水 意象探微, 乐山师 范学院学报 2007년 3월 吳洪激, 略論蘇軾詩詞中的禪玄風味和審美情趣, 東坡赤壁詩詞 2008年 任 苑, 蘇軾貶謫思想初探, 湖南廣播電視大學學報 2008년 2期 劉繼紅. 論蘇軾對佛禪思想的揚棄, 長春師範學院學報 2008년 5期 李亮偉, 論蘇軾山水詞, 寧波大學學報 2008년 2期 梁麗丹, 蘇軾黃州時期言志詞的思想意蘊, 法制與社會 2008년 09 李鍾振, 蘇軾의 黃州時期 詞, 中國文學 제28집 李鴻鎭, 東坡詞硏究, 퇴계학과 한국문화 제38호 柳種睦, 穎州,揚州시기의 東坡詞, 동아문화 제44집 柳種睦, 第一次 貶謫時期의 東坡詞, 中國文學 제27집 柳種睦, 第二次 貶謫時期의 東坡詞, 中國文學 제35집 曹圭百, 蘇軾의 詩文에 나타난 儒 佛 道 三家思想 考察(1), 中國學 硏究 1994년
151 146 中國學 第34輯( ) <中文提要> 苏东坡一生数次被贬適或外放 其中因"乌台诗案"而被贬至黄州的一 次 使他的人生观起了新的变化 他原有的儒学的价值观在经过任职黄州之 后 逐渐归依佛老思想 开始有了较达观的人生态度 这种人生观的变化在 他的词作有所表达 以 江 为形象的词作中 被贬適之前作品中江的形象与 其他诗人的作品一样是离别与相会的"江";但在经历人生曲折与艰难后 就变 成以怀古的和历史的侧面去看的 超越的"江" 苏轼就是在这样的词作超脱 的境界中去诠释他人生中遭遇到的挫折与绝望 并通过江水去表达大自然悠 久与永存的法则 所以 东坡在一生经历无数的桎梏岁月 越是直面艰辛的 命运时 其诗词 尤其是词作 越是发出宝石般的光芒 象滚滚长江一样东 流不尽 总之東坡詞所描写的"江"以王國維的境界說来说的话"春色三分, 二 分塵土, 一分流水 是其第一境也 "人生如夢 一樽還酹江月 是其第二境 也 "小舟從此逝, 江海寄餘生 是其第三境也 關鍵詞: 蘇軾, 江, 貶謫, 離別, 歷史, 超越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152 中國學 第34輯( ) pp.147~162 美溶于水 --从 红楼梦 谈到古代文学审美的 水 之意象 方珍平* 목 차 水意象的历史渊源 水意象的自然之美 纯净 水意象的生命之美 流转 水意象的德性之美 良善 水意象的文化阐释 1. 水意象的历史渊源 水在地球上广布 是与人类的繁衍生息最为密切的一种资源 也是大自 然最丰富多彩 绮丽多姿的物质 水不但予人饮用 灌溉 淘洗 舟楫和生 产等方面之利 还予人参差多态的审美愉悦与享受 使人产生强烈的感情 形成为文学意象 48) 大千世界中的事物不是孤立和静止的 水之美往往与大自然中的其他物 象如山 林 风 日 月等自然景观和亭 台 楼 阁 园等人文景观交相 映衬参合才更显现其神韵 所谓 水得山而媚 山得水而活 讲的就是这一 道理 追溯中国(山)水美学思想的萌芽 其肇始在春秋时代 诗经 中 有多首表达出关于 水之美的篇章 比如 关关雎鸠 在河之洲 窈窕淑 女 君子好逑 ( 诗经 关雎 ), 蒹葭苍苍 白露为霜 所谓伊人 在水一 方 ( 诗经 蒹葭 ) 彼泽之陂 有薄与荷 有美一人 伤如之何 ( 诗 * 上海外国语大学, 文学博士
153 148 中國學 第34輯( ) 经 河广 ) 说的都是美妙的爱情在 长满幽幽绿草的 清水边展开 少 女美丽的梦之花也在水边绽放 淇水汤汤 渐车帷裳 说的是为与心爱 之人相守一生 女人不畏深水渐车之难而勇敢赴嫁 就其深矣 方之舟 之 就其浅矣 泳之游之 ( 诗经 谷风 ) 说的是勤劳的女人在水边编 织着美丽的生活之网 她们渴望如水般纯洁 平静的家庭生活 淇水悠 悠 桧楫松舟 驾言出游 以写我忧 诗经 竹竿 说的是在碧水 荡漾的淇水之上出游 可以在水之美的氛围中消解忧愁 周易 老 子 庄子 论语 楚辞 等先秦典籍中也透露出一些关于(山) 水审美的信息 如 周易 涣 卦的结构是上 巽 风 下 坎 水 取 风行水上自然成文之象 凝结着古人朴素的审美经验 论语 先进 中 孔子的弟子曾皙曾表达出 浴乎沂 风乎舞雩 的志向 体现出对沂水秀丽风 光的审美心态 被刘勰称为得 江山之助 的 楚辞 则更直接地显示出对 山水消愁娱兴 的审美情怀 时不可兮再得 聊逍遥兮 容与 九歌 湘 君 遵江夏以娱忧 九章 思美人 这些都说明 先秦时期 人们对自然山水已萌发了审美情趣 秦汉时期 人们开始把(山)水作为满足 耳目 之娱的美妙之物对待 这一点,在独领一代风骚的汉赋中显见 汉赋有 一些对皇家苑囿山川形胜的赞美 如枚乘的 七发 中就有一段观涛的描 写 把波澜的奔腾激荡描绘得穷形尽态 作者还盛赞波涛的壮阔对人有 发 蒙解惑 的作用 显示出对水的审美感受 在中国人心灵的字典里 水具有特别的含义 流水不仅是一种自然景 色 而且是富有性灵 形象生动的载体 人与水的关系相因相倚 人为水所 滋养 水为人所赏悟 它充满着诗情画意 又不失哲学的意蕴 老子说 天下莫柔弱于水 而攻坚强者莫云能胜 以其无以易之 又说 上善若 水 水善利万物 水有小如泉池 大如江海 水也有清浊 深浅 动静等方面的不同特 点 于是在文学审美中产生许多隐喻描述 比如道家主张清静无为 特别推 崇 清 水流乎无形 发泄乎太清 庄子 列御寇 寂乎若清 以天下为沉浊 庄子 天下 在深受道家影响的中国古代文论中 清 成为一个重要范畴 曹丕 典论 论文 由水之清浊引申为文气之 清 浊 文以气为主 气之清浊有体 刘勰 文心雕龙 体性 云 文洁而体 清 文心雕龙 风骨 云 风清骨峻 篇体光华
154 美溶于水--从 红楼梦 谈到古代文学审美的 水 之意象(方珍平) 149 于是 水 作为核心节点 穿引编织了古代审美的意象之网 2. 水意象的自然之美 纯净 水是生命之源 许多古代神话 讲述水化育人类的传奇 比如女人浴水 受孕生子 山海经 海外西经 中说 女人国在巫咸北 两女人居 水 周之 梁书 东夷传 中说 扶桑东千余连里有女国 容貌端正 色甚 洁白 身体有毛 长发委地 至二三月 竟入水则妊娠 六七月产之 又 如女人浴水触物或吞食食物而生子的情况 华阳国志 南中志 中说 哀牢国 其先有一妇人 名曰沙壶 依哀牢山下居 以捕雨自给 忽 于水中触一沉木 遂感而有娠 度十月 产子男十人 再如女人饮水受孕 生子 西游记 里描述 女儿国中的女人 全凭饮用护城河河水而怀孕 生女 繁衍后代 因此 水寄托着女人做贤妻良母 延续烟火的美好愿望 而女人一旦因无所出而被休回家时 她们便将水作为此生最后的归宿 水是无色无味的 具备纯净的天然属性 能洗涤人们身体和心灵的污 垢 让人的身心保持净洁 清明的状态 古代女人将洁身寄托在水上 泾 以渭浊 湜湜其沚 ( 诗经 谷风 ) 不管丈夫喜新厌旧 她们仍保持一种 清明的状态 被辱的和遭弃的妇女常常在生前选择水这一活物为她们洁身 举身赴清池 好让自己干干净净地来 清清白白地去 水在 红楼梦 中是蕴涵丰富 处处显现的意象 水的意象之美 首先 体现在其自然纯净上 1 水风景 大观园里 曹雪芹精心营建了一个实体性的水景庄园 在 曲径通幽处穿过石洞 便见 一带清流 从花木深处曲折泻于石隙之下 往北 数步 可俯视 清溪泻雪 清溪流向潇湘馆 盘旋竹下而出 行经花溆 其水愈清 溶溶荡荡 曲折萦迂 度沁芳闸而后穿墙出园 这一脉清澄洁 静的园中小溪 名之曰 沁芳泉 有联云 绕堤柳借三篙翠 隔岸花分一脉 香 可谓道尽了水流的纯净质地 岸边花繁柳郁 水面落红片片 水因柳 色而染绿 又因花香而沁芳 它三篙之深而仍清纯澄碧 一脉之形而更显蜿 蜒曲折 泉水意象因此弥漫一派清灵芬芳 柔婉明媚的氛围 构成那 真无 一些尘土 的无比洁净之境 与大观园现实性 水 意象相对应 作者还设置了神话层面上的 水 景
155 150 中國學 第34輯( ) 观 太虚幻境有 绿树清溪 而成 飞尘不到 的仙家净土 情天 情海 警幻 仙姑用以款待宝玉的 是名为 千红一窟 的仙 茗 和 万艳同杯 的美 酒 其茗乃以仙花灵叶上所带 宿露 烹成 其酒则以百花之蕤万木之 汁 麟 髓 凤 乳 酿就 西方 灵河 岸边的三生石畔 绛珠仙草因有神瑛侍者每日 的 甘露 浇灌 得以久延岁月 修成女体 遂以蜜青果为食 灌愁海水 为 饮 如果说清溪 寒雨 冷雪 薄霜 轻露乃是实体性 水 意象的话 那么 灵河 愁海 情海则是虚拟性 水 意象 作者既赋予 水 以韵味独存的幽深 寄寓 又赋予它以风姿各异的外在形态 2 水女儿 水在古代女人的眼中 如何是 水 那么简单 女人与水似 乎有不解之缘 女人的肌肤是水嫩的 女人的眼睛是水灵的 女人的眼神是 秋波 女人的性情柔情似水 水成了美丽女人的代名词 在 女子无才便 是德 三纲五常 三从四德 的时代 女人把一切美好的向往寄托在神 奇的清水之上 她们渴望清白的爱恋 美满的婚姻 她们把自己的性命与水 关联 水是她们梦的摇篮 是世世代代都割不断的情缘 十二钗正册上画着 一片大海 一只大船 在贾宝玉心目中 女儿 无一不钟灵毓秀 得日月 山川之精华 是 清净雪白 令人一见便清爽的 人上之人 红楼梦 第 二回借冷子兴之口 贾宝玉的经典话语是 女儿是水做的骨肉 男人是泥 作的骨肉 我见了女儿我便清爽 见了男子便觉浊臭逼人 潘重规校订本 第二回十九页 从整体意义上看 这群清净雪白的女儿 居于没有尘埃的 大观园里 恰似洁净清亮的沁芳泉水 贾雨村在谈到他教的学生时 也有类 似的观点 这女儿两个字 极尊贵 极清净的 比那阿弥陀佛 元始天尊 的两个宝号还更尊荣无比的呢 流红沁芳的水流 就成了全体 女儿 的化 身 林黛玉曾阻止宝玉抛花于水 其诗有 质本洁来还洁去 不教污淖陷渠 沟 之句 以花喻人与以水喻人达成一致 追求的都是 纯净 极具象征意味的人物 花名 设计也是 水 意盎然 除了她 别人不配 作芙蓉 林黛玉傍水而生 依露而活 恰似一枝风露清愁的水中莲花 西方人对莲花意象有如下的理解 实际的莲花具有两种非凡激发了东方人 想象力的特征 它朴素纯洁的美和它神秘的水中诞生 1) 这两个特征与 林黛玉的美质妙合无痕 清水出芙蓉 天然去雕饰 宛如林黛玉的写照 1) P E 威尔赖特, 原型性的象征 [M], 叶舒宪, 神话 原型批评 [A], 北 京 社会科学研究 [J], 1999年01期, p.230.
156 美溶于水--从 红楼梦 谈到古代文学审美的 水 之意象(方珍平) 151 薛宝钗的水意象 则多为晶莹冷凝的 冰 雪 霜 露 等 薛 谐 雪 判词与曲辞俱直言 雪里埋 晶莹雪 那闻名的冷香丸调制过程 中所用的 四样水 是雨水日的 雨水 白露日的 露水 霜降日的 霜 和 小雪日的 雪 宝玉诗有 出浴太真冰作影 的比喻 宝钗亦有 冰雪招来露 砌魂 的自比 冰雪霜露的本质是水 其外在特征是晶莹透亮 冷凝轻寒 它们象征薛宝钗也和众女儿一样 高洁晶亮 契合 女儿是水 的命题 大观园中那位漂亮的青年女尼妙玉 平日所喝的水是旧年 蠲的雨水 和 收的梅花上的 雪 说是 雨水 必定自空中接来 而且还将这雨水密闭封 存使之澄清 一个 蠲 字立显此水之 洁 是 雪 而来自梅花 自然愈加洁 净 且亦 沁芳 妙玉行止如此与众迥异 其求 洁 程度远逾黛玉 其抑情 程度也甚于宝钗 故云其 太高 过洁 相对于 水女儿 男人就是反面 贾宝玉时常称自己为 须眉浊物 贾 宝玉梦游太虚幻境时 众仙子看见宝玉 也称其为浊物 实际上 在红楼 宝玉是人见人爱的角色 是为 浊物 而与之耳鬓厮磨 恰恰因为宝玉这一 浊物 是自觉映照并体认出女儿纯净的浊中之清吧 将 女儿 比作 水 自然也可以说 水 是 女儿 的象征 女儿是水 与 水是女儿 构成等式 故而 水 在 女儿是水作的骨肉 这句名言里 就 成了一个隐喻性的意象 女儿是 水 因为女儿拥有如水般 自然的风流态 度 芍药园中 史湘云酣眠初醒 慢启 秋波 寿怡红时 芳官妆扮异 常 愈显得面如满月犹白 眼似 秋水 还青 高谈阔论时的尤三姐也是一双 秋水 眼 古诗云 水是眼波横 山是眉峰聚 是以眼波之晶亮多情比喻水 波之清澄流溢 水是实象而眼波为喻象 眼如秋水 则眼波为实象而秋水是 喻象 曹雪芹以水喻女儿之态 是在传统喻象的基础上拓展了联想内涵 女 儿肌肤的柔软 线条的婉曲 气质的清纯 目光的晶亮 和纯净之 水 有太 多的相似之处 说 女儿是水 真是朴素真切 这样 落红阵阵 清流潺潺之际 水就由实体性意象升华为象征性意 象 于是 对人物的审美观照亦可取于对水 物 意象的把握 3. 水意象的生命之美 流转 水有源有流 水流有通畅之时 也有曲折 滞阻之时 滚滚向前的江
157 152 中國學 第34輯( ) 河 其流动性绵长性恰如作家这一创作主体创作时的心理状态 文思泉涌 妙笔生花 也恰如被作家赋予生命的作品人物的生存轨迹 出生入死 命运 起伏 又恰如作品本身的艺术特点 行云流水 引人入胜 甚至还恰如读者 在阅读作品时的心理体验 流韵悠悠 余味无穷 司空图 二十四诗品 特 立 流动 一品云 若纳水輨 如转丸珠 夫岂可道 假体如愚 荒荒坤 轴 悠悠天枢 载要其端 载闻其符 超超神明 返返冥无 来往千载 是 之谓乎 由水之流 还生发出 流转 流丽 圆溜 溜亮 滑 清滑 等概 念 如 好诗圆美流转如弹丸 南史 五筠传 水有姿有容 在汩汩流动的泉水之外 水 意象还往往借助一些非凡的 形态来呈现 它有时是梨花上的轻 露 有时是石径上的薄 霜 有时化为 寒 雨 淋漓在竹梢 芭蕉叶上和林黛玉寂寞的秋窗外 或凝成冷 雪 飘 舞在茫茫半空中 梅花枝头上以及众女儿欢乐的诗篇里 秋水 比喻眼睛 秋波 比喻美女的眼神 冰清玉洁 比喻高尚纯洁的品质等等 运动与变迁 正是生命的特征 于是 溪流河海 霜雪雨露 具备源流 去向与姿容变换的水 流动转形 亦如生命 千变万化 1 水形态 水之意象具有形态上的变化 太虚境中的警幻仙子 是大 观园的一个审美参照 她美到极致 她的腰肢纤细美丽 行止轻盈飘忽 仿 佛回风舞 雪 她的姿容清纯美好 气质高贵娴雅 可当 冰 清玉润 她素 若春梅绽 雪 洁若秋菊被 霜 静若松生空谷 艳若霞映 澄塘 文若龙 游 曲沼 神若月射 寒江 警幻仙子之美 是水的清澄晶莹 光灿流动之 美 冰霜雨雪意象的高洁冷凝充盈其身 女儿美的集合体警幻仙子岂不恰好 是 水作的骨肉 仿佛是警幻仙子美丽的印证 人间女儿的咏白海棠诗 也 纷纷用到了 水 的变体意象 探春之 雪为肌骨易销魂 宝钗之 冰雪招来 露砌魂 黛玉之 碾冰为土玉为盆 湘云之 秋阴捧出何方雪 雨渍添来隔 宿魂 诗句中 冰 雪 露 雨 俱用以咏白海棠花的雪白美丽 花如 冰如雪 而人又如花 则人 花 水三位一体 构成复合意象 水之清洁灵 动与花之雪白芬芳 便无声地转化为人的内在气质和精神内涵 在诗中 冰 雪 霜 露是水 是含香沁芳的水 在诗外 众女儿清洁的品格如水 芬芳的性灵如水 超凡脱俗的精神风貌如水 丰逸灵动的才思文笔如水 雨 作为水意象的常见变体 其出场以潇湘馆内为多 雨 不仅韵和 着林黛玉凄寒孤寂的心绪 还是上天对超凡脱俗的人间灵魂倾诉情爱 展现
158 美溶于水--从 红楼梦 谈到古代文学审美的 水 之意象(方珍平) 153 性灵的一种感应 人间泣声细细 泪雨涟涟 上天便寒风习习 冷雨潇潇 于是潇湘馆内 常常春雨凄凄 秋霖脉脉 窗外天之泪 窗内眼之潮 天与 人默相应和 不知风雨几时休 已教泪洒窗纱湿 第四十五回写黛玉 听 见窗外竹梢蕉叶之上 雨声淅沥 清寒透幕 不觉又滴下泪来 潇湘馆内 植有千百竿翠竹 就是为了印证林黛玉的斑斑清泪吧 潇湘馆后院有大株梨 花 芭蕉 因为梨花带雨的意象宛似黛玉的泪脸 而雨滴芭蕉的声音更暗黛 玉之悲情吧 水 的另一种非常规形态是 云雨 周易 小畜 云 密云不雨 自 我西郊 在 高唐赋 中 那位愿荐枕席的巫山神女 旦为朝云 暮为行 雨 朝朝暮暮都有云雨相伴而行 云 与 雨 相连 始终有男女欢爱的特 定内涵 大观园女儿中 与此意象息息相关的 是史湘云 湘江水逝楚云 飞 巧妙嵌入了 湘云 之名 十二钗正册之四 画着 几缕飞云 一湾逝 水 十二支曲子之六说 云散高唐 水涸湘江 云 与 水 的意蕴十分显 明 湘江水逝 一湾逝水 水涸湘江 三重意象相同 一谓史湘云之情 感性灵如流水般波动深柔 而非止水之静穆 雪霜之冷凝 二喻湘云如湘水 女神般拥有一段情爱 三则象征湘云青春即逝 情爱失所 探春所关涉的水意象 则又与众不同 三姑娘有英武之气 既无黛玉式 的缠绵哀愁 也非宝钗式的冷凝淡漠 而倾向于阔朗爽俊 神采飞扬 她会 哭 哭得刚烈 她有愁 愁与人异 离乡背井 骨肉分离的远嫁 是一种难 以言说的悲苦 这在小说中化作 江水 的意象呈现出来 是烟波浩淼的大 江和无边无际的大海 是 一帆风雨路三千 的 水 路 2 水时态 水之意象也有属性上的变迁 林黛玉 眉是 罥烟眉 淡 如青烟 弯似曲流 目是 含情目 晶亮似水 柔媚如波 泪光点点 仿 佛是那溪边水痕斑斑 又似乎是花上晨露滴滴 闲静时如姣花照水 行动 处似弱柳扶风 的描述性意象 则不仅传达了她如水波般柔曲轻盈 摇曳生 姿的体态风韵 也蕴含着林黛玉有如芙蓉般傍水而生 承露而活的生命历 程 黛玉说 你看这里的水干净 只一流出去 有人家的地方脏的臭的混 倒 仍然把花糟塌了 水在大观园中总是干净而芬芳的 它出了园子便会 污浊 这寓意大观园众女儿的清净 时态 贾宝玉天性喜聚不喜散 渴望与所有姐妹终身厮守 一有分离便深感痛 苦 这里面隐含着其 女儿三变 的思想 女儿未嫁是颗无价宝珠 出嫁便光
159 154 中國學 第34輯( ) 色顿失 成了死珠 再后便成了鱼眼珠 因为女人一嫁了人便沾染了男人气 息 而不复纯洁芬芳 迎春将嫁 并要陪四个丫头过去 宝玉得知 跌足自 叹道 从今后这世上又少了五个清洁人了 在园中是 清净雪白 的女儿 出了园子便不再是 清洁人 这正和沁芳泉在园内是净泉 出园便成污淖的 景况一样 宝玉对女儿们的感觉 是审美的而不是现实的 是性灵化的而不 是世俗化的 是天成的而不是养成的 对所有 女儿 的 水 性 他从整体上 一概予以尊重 倾慕 细心呵护 就像当年神瑛侍者悉心浇灌绛珠仙草一 样 贾宝玉虔诚地呵护着一群晶莹澄澈 芬芳灵秀的 水 女儿 并从心底期 望她们永远如此 沁芳泉是女儿泉 自然意象与人文意象相映互照 整合为 一 女儿是水 的命题便衍申出更多的蕴涵 不仅女儿的姿容体态 性情 品格之美幻化为水意象 而且女儿的青春与生命 柔情与愁绪 都融入了那 一湾鲜活洁净 深柔婉转的泉水之中 第二十三回 西厢记 妙词通戏 语 牡丹亭 艳曲警芳心 在描述了落花浮水 飘飘荡荡的景象后 集 中笔墨来指明水之象征意蕴 牡丹亭 如花美眷 似水流年 的唱词隔墙 传来 原不经意的林黛玉竟然听得 心动神摇 如痴如醉 站立不住 坐 在石上细嚼其中滋味 及待联想到古人诗词中 水流花谢两无情 流水落 花春去也 天上人间 等 加上刚刚读过的 西厢记 中 花落水流红 闲愁 万种 之句 凑聚一起 仔细忖度 不觉心痛神痴 眼中落泪 崔莺莺 杜丽娘青春与个性意识的觉醒 浓聚在 如花美眷 似水流年 和 花落水流 红 这警醒芳心的妙词艳曲里 启迪了林黛玉对生命的憬悟 对自身命运的 沉思 故而心痛神痴 潸然泪下 作者对落花满泉的描写与构思 显然是从 西厢 牡丹 的 花 水意象中衍申而来 花落水流红 是前人事 移为眼前景 心中情 飘花沁芳的水流意象 其韵味醇美 浓厚 如柔情似 水的女儿本身 林语堂说 女人是活水 不是止水 活水就会流动 从人体溢出就是 泪水 泪 是生态与动态的水意象 鲜活而缠绵 冰霜雪露 则为物态与固 态的水 泪水是女人无坚不摧的武器 红楼梦 中的宝玉对此深有感受 林妹妹一哭宝玉就身心俱溶 发出 水女泥男 的千古名叹 女人一哭 便水 土交融 难舍难分 红楼梦 可谓描写女人眼泪的经典 单以女人的哭做 标题的就有多回 如 滴翠亭杨妃戏彩蝶 埋香冢飞燕泣残红 第二十七 回 杏子阴假凤泣虚凰 茜纱窗真情揆痴理 第五十八回 苦绛珠
160 美溶于水--从 红楼梦 谈到古代文学审美的 水 之意象(方珍平) 155 魂归离恨天 病神瑛泪洒相思地 第九十八回 等等 4. 水意象的德性之美 良善 水女泥男 实际上包含着价值评判 自然之水 生命之水 由是具备了 价值观 成为德性之水 杂家著作 尸子 云 喻之水焉 水有四德 沐 浴群生 流通万物 仁也 扬清激浊 荡去滓秽 义也 柔而能犯 弱而能 胜 勇也 导江疏河 恶盈流谦 智也 君治 2) 说苑 杂言 说 夫水 者 君子比德焉 水 遍予而无私 似德 所及者生 似仁 其流卑下 句倨皆循其理 似义 浅者流行 深者不测 似智 其赴百仞之谷不疑 似 勇 绵弱而微达 似察 受恶不让 似包 蒙不清以入 鲜洁以出 似善 化 主量必平 似正 盈不求概 似度 其万折也必东 似意 借水以比 德 表明了当时人对水已有了深入细致的观察 掌握了水的某些自然规律 尽管这一 比德 的观念从本质上讲还不是以纯粹的审美心态来观照自然山水 其实质仍是一种功用论 道德功用论 但在中国美学史上 它 第一 次揭示了人与自然在广泛的样态上有着某种内在的同形同构从而可以互相感 应交流的关系 这种关系正是审美的一种心理特点 3) 1 水深情 爱是人类最基本也是最深沉最热烈的情感 对异性的追求 也是人最基本最热烈最持久的行为 因爱情而产生的愁思与感伤即是人类最 不堪承受之苦 水在诗歌中常被用来表现深陷情网的男女与男女的缠绵情 思 泪为心之 水 大观园水女儿的最优秀者林黛玉 就是这么一枝宛在水 中央 泪水淋漓的芙蓉 在她的精神生活中 泪水仿佛是她情感宣泄的最主 要的方式 初入贾府时 伤离别 恨亲远 泪光点点 是夜 便因宝玉摔 玉而流泪不止 平日又总爱在潇湘馆内临风洒泪 对月伤怀 自然界的风风 雨雨 落花飞絮 他人的欢声笑语 眼色行止 无一不是引动她 泪自不干 的诱因 愁绪满怀无释处时 她哭出了一篇凄绝艳绝的 葬花辞 题帕三 绝句 无异于三首咏泪诗 在痛感自己身世飘零 青春易逝之外 自然含有 2) 林俊宏, 尸子的政治思想 [A], 政治科学论丛 [J], 台湾:2000第12期(民 国89年6月 3) 李泽厚 刘纲纪, 中国美学史 [M], 合肥 安徽文艺出版社, 1999年版
161 156 中國學 第34輯( ) 对爱情的痛苦期待及前景茫然的悲戚 林黛玉生魂名曰 绛珠 此二字乃是 她一生 伤泪 凝就 眼中流出的泪是水 心底流出的泪是伤 绛珠 是对林 黛玉将生命与灵魂全交付与爱情的概括 在转瞬即逝的人生之旅上 她一边 行吟一边洒泪 歌声伴着泪痕 伤泪又化作歌吟 在那个没有性灵 无视情 爱的漠漠尘世里 潇湘妃子的泪流与大观园中那一脉泉流愈加显得清亮晶 莹 缠绵悲慨 作者在情节展开之先设计的三生石畔的浇灌神话 是为这淋 漓泪水所作的先验性解释 神瑛侍者用以浇灌绛珠草的 是象征清纯爱意的 甘露 绛珠草心承神受的同时 郁结了一股缠绵不尽之意 思欲下凡 还 泪 那条灵河无疑是灵界泪河 它清亮无尘 缠绵不尽 成为绛珠仙子 凡界还泪的源泉 甘露与河水创造了凡界的生命 又源源不断地给予这生命终生所需的情 爱泪水 反过来 生命又每每以性灵的泪泉冲荡顽石 涤其尘去其泥 使之 焕然而为玉 于是 林黛玉因一往情深而成了泪水女儿 2 水温存 女人温存 红楼中体现水女儿给人带来温情与善存意象 的 包含身体的温暖 奉茶 限于篇幅 不论 更包含带来心灵的温暖 容怜 老子云 上善若水 意思是说 最优良的品德象水一样 水质的女人 懂得随遇而安 懂得该承受的时候要承受 该坚守的时候要坚守 环境的变 化 世事的改变不会扰乱她 她的内心平静清澈如水 摒弃了一切的杂乱与 烦燥 如袅袅清香静静在佛前燃烧 如青青莲藕出淤泥而不染 风来疏 竹 风过而竹不留声 雁渡寒潭 雁去而潭不留影 水质的女人与人相 处 如行云流水般亲切自然 不自艾自怨 不矫情造作 不居高临下 她象 一朵温柔恬淡的解语花 给身边的人带去理解 包容 温暖 女人是水 男人是舟 水能载舟 亦能覆舟 所谓 水能载舟 拿现代 语言来说即每个成功的男人背后都有一个伟大的女人 柔情似水的女人给奔 波劳碌的男人以无穷的慰藉 无尽的动力 于是在汪洋大海里也能如履平 地 所谓 亦能覆舟 也就是男人们常说的 红颜祸水 周王为博妲己一笑 烽火戏诸侯使得众叛亲离 貂禅令董卓吕布父子争风吃醋反目成仇 西施施 展美人计使吴王国破家亡 海伦的美貌引发特络伊战争持续十年之久等等 姑且不论谁是谁非 是否夸大 如水女人的威力亦可见一斑 水女儿最终的判别是 好 与 不好 天生女人的 好 也会因为流转的
162 美溶于水--从 红楼梦 谈到古代文学审美的 水 之意象(方珍平) 157 变化 成为不是水女儿的 不好 因而 如水的女人也有好坏优劣之分 泼辣的女人被称为 洪水猛兽 浮荡多编变的女人被称为 水性扬花 愚笨 的女人便如绝堤的水 胡奔乱窜 从不三思 哪怕前方是一片沼泽 只有聪 慧宽容心怀怜悯的女人如透明的流水 她知道什么时候急什么时候缓 什么 时候直什么时候弯 她绕过心怀叵测的 礁石 躲过不怀好意的 尘林 勇 敢的奔向自己的 大海 在第五十九回里 曹雪芹借春燕之口 贾宝玉之言说道 女孩儿未出 嫁 是颗无价之宝珠 出了嫁 不知怎么就变出许多的不好的毛病来 虽是 珠子 却没有光彩宝色 是颗死珠了 再老了 更变的不是珠子 竟是鱼眼 睛了 当周瑞家带着司棋离开大观园时 贾宝玉恨道 奇怪 奇怪 怎么 这些人只一嫁了汉子 染了男人的气味 就这样混帐起来 比男人更可杀 了 可见 并非每一个女人都是水做的 或者说并非女人永远都是水做 的 她们也可能变得比浊物更浊的 按说贾宝玉是不会对水做的女人气恼的 但当史湘云劝 贾宝玉不要成年家在女人堆里斯混 应该常常会会那些为官做宰的人 多学习一些仕途经济时 贾宝玉立刻就恼了 对史湘云言道 姑娘请别的 姊妹屋里坐坐 我这里仔细污了你的经济学问 即便是薛宝钗劝他 他也 会丝毫不留情面 抬起脚就走 言道 好好的一个清净洁白的女儿 也学 的钓名沽誉 入了国贼禄鬼之流 这总是前人无故生事 立言竖辞 原为导 后世的须眉浊物 不想我生不幸 变且琼闺绣阁中亦染此风 真真有负天地 钟灵毓秀之德 由此可见 是不是水做的骨肉 似乎并不是一个简单的性 别差异 就如如今出现有以 花样 命名的男儿 当然更不是女人哭 或含 水分比例大之类的问题 水女儿之美 最终体现在德性价值上 在贾宝玉所处的时代 女人无才便是德 相夫教子 针黹纺织才是分内 之事 有钱人家的女人读读书 下下棋 原不过是为了陶冶性情 为生活增 添些情趣而已 才气名誉原是不重要的 就像薛宝钗所说的那样 咱们女 孩儿家不认得字的倒好 就连作诗写字等事 原不是你我分内之事 你我 只该做些针黹纺织的事才是 女人无才便是德 总以贞静为主 女工还是 第二件 其余诗词 不过是闺中游戏 原可以会可以不会 等等 男儿却完全不同 自生下来就要肩负光宗耀祖之重任 寒窗苦读多是为 了考取功名 是为了黄金屋 颜如玉 修身养性反倒是次要的 可有可无的
163 158 中國學 第34輯( ) 了 贾宝玉身为男儿身 却一反常理 深恶仕途经济之道 这才提出了 水 女泥男 这样的看似荒诞不经的论调 女人一旦追逐于名利 热衷于权势 贾宝玉则认为是沾了男人的气味 不再清新 因此 贾宝玉之所以说女人清 如水 是因为可以远离仕途经济这些在他看来龌龊不堪的追求 男人之所以 浊如泥 是因为男人生下来就要为仕途经济 升官发财而搏 正如林黛玉所言 贾宝玉是心里装着妹妹 但见姐姐就把妹妹忘了的多 情种子 薛宝钗品格端方 容貌丰美 性情豁达 为人安分随时 不像林黛 玉那样孤高自许 目无下尘 性情多疑 为人多愁善感 按说贾宝玉应该喜 欢姐姐多 喜欢妹妹的少 但是林黛玉自幼从不劝他去立身扬名 从来不说 经济学问 那些混帐话 这正合了宝玉的性情 给了宝哥哥最需要的 温 存 所以贾宝玉才深深敬慕黛玉 将其视为红颜知己 可见 水女泥男 并不是一种性别上的差异 是曹雪芹对自己人生 观 价值观的一种表达 水灵灵清的是不追逐名利权势 泥淖淖浊的是唯利 是图 唯名是取 5. 水意象的文化阐释 从文化历史背景上看 以水喻文 所接受的影响是多方面的 如人类长 期的历史积淀 儒道释文化 魏晋时期山水文化等等 水是生命生存 发展 的物质基础 世界几大文明古国都产生于几大河流流域 人尚未出世就是生 活在母亲的羊水中 水代表了人类未生以前在黑暗母体中的过去 那种在 羊水中的温暖感觉 反映了人与外界环境最安全最和谐最自由的关系 4)圣 经说基督本人就是通过在约旦河的洗礼 从水中和精神上再生和复活 水是 洁净的 可以使人再生 这双重意蕴与林黛玉形象寄寓的意义何等相似 她 既是 洁净 女儿 即承甘露而生 在远古神话里 女娲既炼五色石以补苍天 又化育万物 抟土造人 在 这有关我们祖先起源问题的原始意象里 泥水混合而为人 无论男女 泥性 与水性共存且浑然一体 弗洛依德把睡眠说成回到子宫 人体70%由水组 4) 程习勤 毛菌, 老庄生态智慧与诗艺 态观 视角的文艺理论 [M], 武汉 武汉出版社, 2002年6月第1版
164 美溶于水--从 红楼梦 谈到古代文学审美的 水 之意象(方珍平) 159 成 有水就有生命 就有希望 就有灵性 有水人类才能生生不息 对水的 崇拜 几乎是世界各民族的共性 维柯指出 正如古代罗马人用水和火来庆 祝婚礼 其意义就是根据天神意旨 这两件普通东西曾使人们在社会中生活 永恒的水比火还在前 因为水更是生活的必需 5)西方原型批评理论中有 关水意象的解释 水这个原型性象征 其普遍性来自于它的复合的特征 水 既是洁净的媒介 又是生命的维持者 因此水既象征着纯净又象征着新生 命 6) 曹雪芹从女娲造人的传说中得到启迪 并由此衍申出开拓性的新意象 他将女娲造人的材料 泥 和 水 断然分离 将 水 赋予了女性 而把 泥 留 给了男子 并对各自的特质作了规定 泥 不过是人世间的渣滓浊沫 浊臭 逼人 水 却是日月山川精华灵秀之所生 令人清爽 作者将人世间 极清 静极尊贵 的美质给了女性 并对她们作了深情的赞美和歌咏 在中国有五行学说 尚书 洪范 中说 五行 一曰水 一曰火 三曰 木 四曰金 五曰土 水是构成世间万物的五种元素之一 古印度的地 水 火 风的四大观念跟五行接近 水是其四大之一 7) 现代出土的刻有水 涡纹形的仰韶文化彩陶 大禹治水 的历史传说是如此 大量水偏旁的汉 字 更以遗传密码的形式 凝结了华夏民族与水相依为命 以水寄托希望的 情结 从某种意义上说 人类的历史就是一部水的历史 正是基于对水的依 赖 人类形成一种深厚的文化积淀 这一积淀也渗透在中国古代文论家的文 化心理结构中 儒 道 释文化特别是道家文化对山水有广泛的认识和体悟 儒家是比德说 赋予山水以自然属性 孔子提出 智者乐水 仁者乐 山 智者动 仁者静 智者乐 仁者寿 论语 雍也 把人的品德 才能与山水相联系 孔子之后 尚书大传 韩诗外传 说苑 荀子 等书对孔子 智者乐水 仁者乐山 的思想作了发挥 如 韩诗外 传 说 夫水者 缘理而行 不遗小间 似有智者 动而下之 似有礼 5) [意]维柯, 新科学(上册) [M], 朱光潜译, 北京 商务印书馆, 1989年6月第1 版, p.12. 6) P E 威尔赖特, 原型性的象征 [M], 叶舒宪, 神话 原型批评 [A], 北 京 社会科学研究[J], 1999年01期, p ) 敏泽, 中国美学思想史第一卷 [M], 济南 齐鲁书社, 1987年7月第1版, pp.105~107.
165 160 中國學 第34輯( ) 者 蹈深不疑 似有量者 障防而清 似知命者 历险致远 卒而不毁 似 有德者 荀子 一书说 水则载舟 水则覆舟 以水比老百姓 舟则 用来比喻君子及其相关政权 先秦时期流行的 比德说 说明当时人们已经 把自然看做道德品质的象征 尽管还没有将它作为独立的审美对象来观 赏 8) 对水体悟更深广且对后来文论影响更大的是道家 上善若水 水善利 万物而不争 处众人之所恶 故几于道 老子 第八章 天下莫柔弱 于水 而攻坚强者莫之能胜 以其无以易之 老子 第七十八章 平 者 水停之盛也 其可以为法也 内保之而外不荡也 庄子 内篇 德充 符 水静则明烛须眉 平中准 大匠取法焉 庄子 外篇 天道 水之性 不杂则清 莫动则平 郁闭而不流 亦不能清 天德之象 也 庄子 外篇 刻意 夫水之于汋也 无为而才自然矣 庄子 外篇 田子方 这些典籍记载与陕西楼观台老子讲经处 上善若水 的刻 石 赋予水最完美的生存特性 水无形 所以能 君子不器 水不择细流污 流 所以能浩瀚成海 水可为冰 为气 既能变化而又不离其本性 水之恒 可以滴水穿石 水至柔 所以抽刀难断 水性向低而能聚势 所以 高峡出 平湖 有一泻千里的浩浩荡荡 水给人许多生存智慧的启示 中国人的最 佳生存方式便是向水学习 受这些原始 尚水 思想的启迪和影响 受这些道家核心范畴的延展 文 学审美显然有水一份 中国古代文论常常以 水之道 来阐明 文之道 司空 图 二十四诗品 体貌二十四种诗歌风格 无一不以自然物如水为喻 无一 不以自然性如水之性为归 诸如 采采流水 风日水滨 之纤秾 如有佳 语 大河前横 之沉着 泛彼浩劫 窅然空踪 之高古 赏雨茅屋 上有 飞瀑 之典雅 空潭写春 流水今日 之洗炼 雾余水畔 红杏在林 之绮 丽 水流花开 清露未晞 之缜密 娟娟群松 下有漪流 之清奇 水理 漩洑 鹏飞翱翔 之委曲 大风卷水 漏雨苍苔 之悲概 如觅水影 海 之波澜 之形容 既体现出以道家自然之道为旨归的审美趣味 亦显露出老 子 上善若水 的潜在影响 9) 8) 袁济喜, 六朝美学 [M], 北京 北京大学出版社, 1999年1月第2版, pp.130~131. 9) 李建中, 儒道释文化的诗性精神与中国古代文论的诗性特征 [A], 文艺理论 研究 [J], 北京 2003年第1期
166 美溶于水--从 红楼梦 谈到古代文学审美的 水 之意象(方珍平) 161 儒道两家对水的体悟还影响后世文学家 文论家的主体人格思想的建 构 子在川上曰 逝者如斯 不舍昼夜 论语 子罕 体悟到生命的流 逝 孔子又说 民之于仁也 甚于水火 论语 卫灵公 强调仁的重要 性 对后世文论家强调文学的社会功能 庄子 逍遥游 中说 浮乎江 湖 庄子 列御寇 中说 泛若不系之舟 则启示后世作家追求个体人 格自由 水之不择地而出且随物赋形 因其自然性的充分展示而近于道 故以自 然之道为本体的文本 则必然以水之自然性来标举艺术风格 水是纯净 流转而良善的 其意象引人入胜 如此看来 美 在 水 一方 [ 参考文獻 ] 靳怀堾, 中华文化与水, 武汉 长江出版社, 2005 潘重规, 校定本红楼梦, 台湾 中国文化大学中国文学研究所, 1983 P E 威尔赖特, 原型性的象征 [M], 叶舒宪, 神话 原型批评 [A], 北京 社会科学 研究[J], 1999年01期 [意]维柯, 新科学 (上册)[M], 朱光潜译, 北京 商务印书馆, 1989年6月第1版 李泽厚 刘纲纪, 中国美学史 [M], 合肥 安徽文艺出版社, 1999年版 敏泽, 中国美学思想史 第一卷[M], 济南 齐鲁书社, 1987年7月第1版. 林俊宏, 尸子的政治思想 [A], 政治科学论丛 [J], 台湾, 2000第12期(民国89年6 月 程习勤 毛菌, 老庄生态智慧与诗艺 态观 视角的文艺理论 [M], 武汉 武汉出版社, 2002年6月第1版 袁济喜, 六朝美学 [M], 北京 北京大学出版社, 1999年1月第2版 李建中, 儒道释文化的诗性精神与中国古代文论的诗性特征 [A], 文艺理论研究 [J], 北京 2003年第1期 <中文摘要> 一部红楼 讲的是 水作的女儿 和认同水作的女儿的男儿的故事 也是 一部讲述生命如水般 质本洁来 的开场 而最终如水般 白茫茫大地真干净
167 162 中國學 第34輯( ), 的下场的今史 水 作为核心 是古代文学审美的意象 可以承载作品的主旨 和内涵 关键词 : 水 美 意象 审美 纯净 流转 良善 <Abstract> The great Chinese ancient novel, The Great Mansion, is a story of the daughters who were regarded as water and of the boy who was the guy regarded them as water. It is also a story implicated the pure beginning alike water of life and the clean ending alike snow of it. As a central concept in Chinese ancient literature, Water becomes an imago which represents the features of beauty and meanings of life. Key words: Beauty Water Imago Aesthetics Purity Circulation Goodness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168 中國學 第34輯( ) pp.163~180 明清文人与男旦交往述论 程宇昻* 목 차 一 明清男旦队伍发展概况 二 明清文人与男旦交往概况 三 文人与男旦交往简论 明清两朝 男旦演员空前走红 明清男旦演员走红于舞台 同时出入于 茶楼 酒庄 堂子等场合 男性由此成为整个娱乐服务业中当仁不让的主 角 男旦演员与文人交往 在很大程度上替代女伎成为别样的风景 这是一 种意味深长的文化现象 文人与男旦数百年间的亲密交往 不仅引导当时文 人的生理体验向陌生领域掘进 而且使他们比以往文人拥有更加多元的精神 向度和更为开阔的审美空间 传统文人是文化的重要选择者 创造者和传播 者 因此 这种交往必然对中国文化产生深刻影响 不论这种交往会使多少 人感到不适 客观结果已然如此 研究文人同男旦交往情况 有助于增加我 们对自己文化深度 厚度和多样性的把握 这种研究虽已展开 但非常欠 缺 本文主要从 史 的意义上探讨文人与男旦的交往 10) 一 明清男旦队伍发展概况 汉之 紫坛伪设女乐 魏之 辽东妖妇 北齐之 踏谣娘 唐之 弄假 妇人 宋之 装旦孙子贵 一系列的文献记载说明 宋以前不乏以男装女 * 韶关学院 文学院 副敎授 中国韶关 Shaoguan College, China) (Department of Chinese,
169 164 中國學 第34輯( ) 的现象 元代的典籍中却难以觅见以男装女的踪迹 明代宣德年间 都御史顾佐禁绝官妓 始于唐代的中国官妓制度首度遭 受重创 受禁妓牵连 女性演员减少 男性装旦现象重新出现 明代男旦较 早出现在英宗时候 吴优有为南戏于京师者 门达锦衣奏其以男装女 惑乱风俗 英宗亲逮问 之 优具陈劝化风俗状 上命解缚 面令演之 一优前云 国正天心 顺 官清民自安 云云 上大悦曰 此格言也 奈何罪之 遂籍群优于 教坊 群优耻之 驾崩 遁归于吴 1) 英宗正统 天顺 两度在位 从优语 国 正天心顺 官清民自安 可知 这件事应该发生在英宗天顺年间 国正天心 顺 官清民自安 本是戏曲舞台上的套语 此时出于优伶之口体现了吴人的 灵慧 天心顺 暗合天顺年号 所以使英宗龙颜大悦 门达锦衣耳目众多 看到吴优以男装女 认为这是惑乱风俗的事 特地 奏明朝廷 这表明英宗时男性装旦至少在京师尚属罕见 经过成化 弘治 正德 嘉靖 隆庆一百多年的孕育 男旦队伍逐渐扩 大 至万历 崇祯朝 职业戏班中女性演员已经很少了 男性装旦渐成主 流 陆文衡 啬庵随笔 可以作证 万历年间 优人演出一出 止一两零八分 渐加至三四两 五六两 今选 上班 价至十二两 若插入女优几人 则有缠头之费供给必罗水陆 2) 万历年间 戏班演出时 如果有女伶参与其中 可在正常报酬之外 获 得缠头之费 并有上好伙食招待 可见一般戏班很少用女演员了 那么 万 历时 男性装旦已成风气 文化前行总是带着强大的惯性 常常并不因为朝代更迭而立即大弧度改 1) 都穆 都公谭纂 卷下 明抄本 2) 转引孙崇涛 徐宏图著 戏曲优伶史 文化艺术出版社 1995年5月第1版 页175
170 明清文人与男旦交往述论(程宇昻) 165 变其演进轨迹 清顺治 康熙两朝 男旦演员就按照这种惯性扩大队伍 其 前提是女伶/女旦群体的进一步萎缩 自明至清 下决心禁绝官妓和女乐 将女性从娱乐圈中解放出来的帝王很多 明代 太祖 成祖 宣帝均做过很 大努力 但后续帝王耽于享乐 不思进取 在很大程度上冲消了其先人的成 果 清初 顺治帝先后两次禁女乐 顺治 十六年复改用太监 遂为定 制 3)与此同时 禁止官员宿娼 顺治五年制定并颁行的 大清律集解附 例 之 官吏宿倡 条说 凡 文武 官吏宿倡者杖六十 挟妓饮酒亦 坐此律 媒合人减一等 若官员子孙 文承荫武应袭 宿倡者罪亦如之 此慎官方而戒淫佚也 凡官吏皆有治人之职 而奸宿倡妇 则荡闲越矩 有玷官方 故杖六十 4)康熙帝也颁布过类似律条 这一时期 在男旦演 员中诞生了两位光芒四射的明星 王紫稼 徐紫云 他们走红的程度可能 一点也不逊色于后来的梅兰芳等人 男旦演员在当时的统治地位由此可知 不过 此时仍有女伶登台演出 再经过雍正帝 乾隆帝的令行禁止 乾隆以 下 城市剧场几乎见不到一个女伶/女旦 戏曲舞台成了男人/男旦的天下 女伶/女旦再次小心翼翼现身于剧场 已经是清末的事 二 明清文人与男旦交往概况 妓女 本是中国古代社会文人生态中非常重要的一环 读书人科考 游 幕 为宦时远离家乡 色艺双美的妓女可以为他们消解些许寂寞 文人一旦 蹭蹬科场 抑或失意仕途 同是天涯沦落人的妓女可以为他们构筑心灵的驿 站 若是进士及第 或者宦者衣锦还乡 醇酒酿情 香茗怡神 清歌悦耳 可人赏心 又是很多读书人梦寐求之的生活境界了 唐 宋 元皆有发达的 官妓制度 明代 习惯于娱乐陶情的士人 发现这些多才多艺而生动有致的 女人们在他们身边渐渐枯萎 更重要的是 朝廷一旦取缔官妓 即使士人身 边不乏妓女 狎妓不可避免地变得不光彩起来 狎妓行为成了一件冒险的 事 士人所需要的是不太损失人格尊严的消遣 他们无法承受眼前的事实 一方面抱怨起这种 太平缺陷 另一方面 他们在寻找新的风景 随着男旦 3) 官修 清文献通考 卷一百七十四 乐考 二十 俗部乐 清文渊阁四库全书 本 4) 朱轼 大清律集解附例 卷二十五 刑律 清雍正内府刻本
171 166 中國學 第34輯( ) 演员的增多 这种风景隐约在目 在缺页的史册中 笔者所能看到的士人与男旦演员的亲密交往出现在孝 宗弘治 年间 时 笔者注 指弘治时 朝政宽大 廷臣多事游宴 京师富家揽头诸色之 人亦伺节令 习仪于朝天宫 隆福寺诸处 辄设盛馔 托一二知己转邀 席间出教坊子弟歌唱 内不检者 私以比顽童为乐 富家因以内交 予官 刑曹 与同年陈文鸣凤梧辄不欲往 诸同寅皆笑为迂 亦不相约 既而果 有郎中黄暐等事发 盖黄与同寅顾谧等俱在西角头张通家饮酒 与顽童相 狎 被缉事衙门访出拿问 而西曹为之一玷 然若此类 幸而不发者亦多 矣 5) 文字的作者陈洪谟 字宗禹 号高吾子 明武陵人 弘 治丙辰 1496 进士 官至兵部左侍郎 作者回忆了自己亲历的一件事 弘 治年间 廷臣多事游宴 黄暐与同僚顾谧因游宴时狎比顽童 被缉事衙门拘 捕治罪 同样记录这件事的还有余继登的 典故纪闻 祖宗时法度甚严 如弘治时 郎中顾谧在校余张通家饮酒 令优人女妆为 乐 事发 即令冠带闲住 6) 余继登 字世用 号云衢 交河 今属河北 人 万历 五年 1577 进士 官至礼部侍郎摄部事 黄暐与顾谧事当在1500年左右 余继登无缘亲历 但毕竟相隔时间不算太长 他还有从长辈那里耳食逸闻的 机会 更重要的是 他曾与修 明会典 充任过正史副总裁 因而熟悉历 朝实录 尤其是明史 这样 他对这件事情的记载很有参考价值 将陈洪谟 余继登两人提供的信息放在一起 我们可以对这件 西曹为 之一玷 的事看得更清楚 弘治 正德时期是明代历史的蜕变期 朝纲开始 5) 陈洪谟 治世余闻录 下篇卷三 明万历刻纪录彚编本 6) 余继登 典故纪闻 卷十六 明万历王象干刻本
172 明清文人与男旦交往述论(程宇昻) 167 松动 文人与男旦的交往正在这历史的大背景中悄然展开 黄暐与顾谧让男 旦演员着女装侑酒于席间 与之亵闹 当时 这样的事不在少数 由 不发 者亦多矣 句可知 席间侑觞之事 本是妓家份内事 现在 男旦演员开始 承接这份差事 文人与男旦交往之初 不仅文人多少有些偷偷摸摸的感觉 男旦演员也 较为谨慎 嘉靖 隆庆间 吴江人王叔成有 跋倪歌儿歌 记录了与男旦 倪歌儿交往的一段趣事 吴兴倪歌儿者 一登优场 诸凡妇女情状 种种得之 种种佳也 歌儿进 酒 乞予一诗 偶忆李良雨以男化女 便有 笑遣东风吹变汝 之句 倪有 难色 予谓世间高官巨履 须髯而妇女其人者多矣 岂待东风吹变耶 乃 有称女中丈夫者 则男女别自有在 独不闻优孟 优旃 雷海青辈以汝曹 显名耶 倪乃嫣然一笑 7) 王叔成 生卒年不详 曾客大学士李春芳所 后与王锡爵以布衣交 诗 为王世贞兄弟所称赏 王氏嗜酒 喜纵情山水 留连歌场 引文是他赠诗于 同乡歌者倪歌儿的跋文 倪歌儿于席间侑酒 将妇人的种种情状表演得惟妙 惟肖 倪歌儿是一个聪明人 从观众反应中觉察出王叔成对自己演出的好 感 于是乘进酒之机 乞诗于同乡 王叔成有感于倪歌儿的表演技艺 有 笑遣东风吹变汝 之句 本意是赞美倪歌儿表演之真实 没料人家不领情 只得破费口舌 终于博得倪歌儿释怀一笑 从倪歌儿得诗之后的反应看 他 对别人把自己看成女性颇不自在 万历 崇祯时 文人与男旦的交往告别了青涩期 双方之间的往来非常 自然 从汪效倚辑注的 潘之恒曲话 中 就可看出徽州文人潘之恒曾与多 位男旦演员相识 并有品题之作 如 吴越石家班之江孺 邹迪光家班之潘 蓥然 江湖戏班中的郝可成 张三等 不一而足 此时 文人眼中的男旦 已经是类似于妓女的特殊的审美与怡情对象 徐熥 幔亭诗 集 中的 赠歌者 记录了他与顾大典家优男旦演员陈情交往的情况 7) 董斯张辑 吴兴艺文补 卷三十八 崇祯六年刻本
173 168 中國學 第34輯( ) 习家池上春昼长 主人爱客飞羽觞 梨园子弟纷成行 少年白晳称陈郎 何晏之粉荀令香 技掩秦青音绕梁 翩翩广袖能回翔 修眉高髻内家妆 月中一曲舞霓裳 轻敲檀板按宫商 顿令四座生辉光 苏州刺史空断肠 奈何与子非一乡 安得相从乐未央 人生及时须徜徉 莫令两鬓生秋 霜 8) 这是对陈郎色艺的陶醉与欣赏 是闹中煽情 另一首 歌者陈郎戏作姬 妆即席调赠 诗云 梨园推丽质 结束作妖姬 妙舞风前合 清歌云外迟 彩衣裁袖窄 翠钿 压眉低 何必悲黄鹄 愁多貌不移 9) 诗歌描写陈郎彩衣窄袖 头饰翠钿 作妖冶女子状 轻歌曼舞 徐熥凝 望陈郎的表演 暗里打趣 任你作女儿愁态 我也知道你是男身 此为静中 觅趣 幔亭诗集 中共有四首诗提及陈郎 两首 重集谐赏园忆歌者陈情 诗曰 龙阳窈窕胜蛾眉 埋玉空山是几时 重到园中听歌舞 不成驩乐却成悲 陈郎丰度似何郎 长袖翩 跹韵绕梁 此日重来君不见 舞裙歌扇总凄 凉 10) 诗题交待了徐熥常见到陈情的地方 顾大典家谐赏园 谐赏园中 歌舞 依旧 可是 让作者久久萦怀 窈窕胜蛾眉 的陈郎已经魂归荒山 徐熥迢 遥跋涉 只为一见陈郎 孰料陈郎埋玉空山 徐氏惟有在凄凉的歌扇舞裙中 隐约寻觅他的笑语颦眉了 人生匆忙谁能料 几年之后 徐熥惟有与陈郎冥 界相会了 他仅活到三十九岁 8) 徐熥 幔亭诗集 卷三 清文渊阁四库全书本 9) 徐熥 幔亭诗集 卷五 清文渊阁四库全书本 10) 徐熥 幔亭诗集 卷十三 清文渊阁四库全书本
174 明清文人与男旦交往述论(程宇昻) 169 万历至清初 文人与色艺双美的男旦交往已然成为士林风气 甚至不少 人藉此播撒风流 清初著名诗人龚鼎孳 钱谦益 吴伟业均与名旦王紫稼相 厚 赠诗甚多 清词三大家之一的陈维崧 更是作诗数十首 乞得冒襄家优 徐紫云为贴身书童 陈氏让名家陈鹄绘成 紫云出浴图 笔者注 今存旅 顺博物馆 并携云郎走南闯北 请数十名流在图卷上留下品题诗词 云郎 伴读陪眠 如友如妻 乾隆时 庄培因 毕沅等更是以状元身份与名旦交 往 其交游的方俊官 李桂官等人因之被称为 状元夫人 周广业 过夏续 录 描述乾隆时结拜兄弟之风盛行时说 假兄弟曰换帖 曰拜把子 此风最盛 不问气类 为势利是鹜 甚至有以 朝列下比优伶者 伶人最重旦色 但邀一顾盼 虽缠头百万不惜矣 情契 既笃 结为哥弟 公然行之书柬 扇面 称人曰第几行兄 自称曰愚弟 炫耀稠人 恬不知耻 11) 有些朝官将男旦演员列为拜假兄弟的对象 书柬往还中称兄道弟 甚 至 结交到名旦 还可成为同仁之间炫耀的资本 乾隆以下 文人与男旦的交往进入全新时期 这一时期 男旦演员有特 定的称谓 相公 他们的住处称堂子 笔者因而称这一时期为相公堂子时 代 堂子乃伶人栖身之所 是培养演员的地方 也是文人与男旦交往的重要 场所之一 相公堂子时代 是文人与男旦交往的成熟期 主要表现为交往的 近似合法化 规范化和商业化 经过乾隆时期的激荡与沉淀 自嘉庆朝始 文人与男旦的交往呈现近似 合法化的状态 所谓近似合法 指明清两朝 官员亲近妓女 为法律所不 容 为舆论所不屑 官员亲近男旦 法律无明文裁定 舆论亦可包容 简言 之 法律 道德对文人与男旦交游缺乏明确约束 这种现象一直于意识形态 的模糊地带逍遥自在 正如清末何刚德 春明梦录 所说 京官挟优挟妓 例所不许 然挟优尚可通融 而挟妓则人不齿之 12) 文人与男旦交往的规范化 从堂子的经营状况可知一二 堂子地处小巷 11) 周广业 过夏续录 清种松书塾抄本 12) 何刚德 春明梦录 话梦集 春明梦录 东华琐录 集成本 北 京古籍出版社 1995年5月第1版 页139~140
175 170 中國學 第34輯( ) 深处 有统一的外观 门外挂小牌 牌子上用金字写上堂名 大门上悬一灯 笼 堂子服务的程序也形成了既定的模式 侧帽余谭 对 打茶围 的全过 程作了细致的描述 觅醉花间 主人招邀胜侣五六人造之 仆辈入报 嘤然一声笑颜迎 侧足 侍者不知几辈 寒喧数语 主人索纸笔 侍者磨墨隆隆然 坐者挥毫索索 然 盖飞笺招各友所欢也 授急足去讫 须臾还报曰 条子就来 请主 人更室坐 团圞位置,排比已齐 山肴海物 纷纷罗列 方就坐 则搴帘 一笑 似曾相识来也 由是或行令 或猜拳 或挥麈清谈 或竹肉并奏 一视其主人之所好 所识中有膺重名者 酒数巡 登车径去 余稍留片刻 亦去 伶既去 酒亦阑矣 呼双弓米啜少许 而席撤 主人出 赏京蚨十 千以授 若辈转递仆辈 内传呼曰 某老爷赏钱若干 随有仆出磕头 谢 於厮时也 主人微疲 客颜亦酡 一声呼灯 则已排班鹄立 各持其 一以出 一席之费 除赏资外 计需京蚨三十千 旧例也 无名氏有句 云 得意一声拿纸片 伤心三字点灯笼 颇雄劲 后有人更其意曰 英雄末路拿稀饭 混沌初开灌米汤 更觉声情激越 谚以若辈媚人赚取 缠头为灌米汤 而于少年褦襶 初入京华者尤甚 13) 迎宾有讲究 打茶围时 总会有人作东 东家带着三五好友飘然而至 迎宾侍者笑语相迎 其他侍者彬彬有礼立于两旁 听候吩咐 请相公有套 路 东家索笔 侍者磨墨 东家将客人喜欢的相公的名字写在不同的红纸条 上 仆人热情地迅速分头寻找 菜上得差不多了 相公们春风满面地如约而 至 一场热腾腾的宴席开始了 宴席有明确的程序 行令 猜拳 清谈 客 人们皆畅其意 或丝竹 或肉声 相公们各逞所能 夜阑酒残 兴尽席撤 位尊者先行离去 相公继之 送客有条不紊 众宾客在仆人高唱 某老爷赏 钱若干 声中 各人从彬彬有礼的侍者手中接过一盏灯笼 心满意得而去 相公堂子时代 文人与男旦交往时 商业气息渐浓 最突出的表现是 交往能否顺畅进行以金钱为维系 道光时伶人周小凤 字竹香 以色艳动 一时 初善越中 孝廉 赠之至万金 久而竹香颇疏之 孝廉父至都下 13) 艺兰生 侧帽余谭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社 1988年12月第1版 页604
176 明清文人与男旦交往述论(程宇昻) 171 或乃以此诈竹香 索其数百缗而去 14)周小凤与某孝廉疏远的原因 很明 显是孝廉囊中已尽 陈森的小说 品花宝鉴 对这种情形也有所描绘 当士 子田春航衣服将要当完时 相公们也 渐渐的与他疏远 15) 与商业性相联系 文人与男旦交往过程中的理性较以前有所加强 才士 美人相映生辉的审美意义有所削弱 理性化指的是 在文人与男旦交往的过 程中 交往双方多采取务实的交往方式 相公中像王紫稼那样恃宠自骄者 寡 文人中像陈维崧 毕沅那样夸赏风流者较为少见 比较而言 士人的变 化更加显著 同光间浙江绍兴人李慈铭 曾在户部为官 时人称之为 理学 名儒 这位理学名儒受当时风气影响 时常观剧 与相公交往 越缦堂 菊话 是其日记的摘抄 其中有关于观剧及与伶人交往的摘录 光绪三年四 月初七日 李慈铭参加了一个宾主共十四人的宴集 各人招有相公 他招的 是早与之有所交往的钱秋蔆 朱霞芬 当日日记记道 酒边小史 小寄闲情 老辈风流 贤者不免 今者衣冠扫地 争事冶 游 其相爱者 复劝泯其事迹 若夫同集之友 所眷各殊 或隐讳 于家庭 或嫌疑于风影 其下伎之名字 亦羞污于简编 故一概略之 非 每集所招止此二人焉 16) 这一段话乃有感而作 李慈铭的同人中 很多人与相公有所交往 但因 为不想让家中人知道 也不想招致官场中人的诟病 故不透露实情 他的朋 友们也劝他不要声张事迹 堂子约始于乾隆 嘉庆之交 于嘉庆中后期成形 在道光年间走向兴 盛 道光以下 受到战事等因素的冲击 营业受到一些影响 但总体上相当 红火 这种情形几乎一直延续至清季 堂子的存在虽然满足了一些人的消费 需求 但不可抹煞其违背人性的一面 随着清王朝的老朽 堂子业的烈焰也 渐燃渐熄 民国元年四月二十日 北京外城巡警总厅刊出严禁私开堂寓的告 14) 华胥大夫 金台残泪记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 社 1988年12月第1版 页231 15) 陈森 品花宝鉴 中华书局 2004年7月第1版 页121 16) 李慈铭 越缦堂菊话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社 1988年12月第1版 页706
177 172 中國學 第34輯( ) 示 堂子退出历史舞台 随着京师相公堂子的衰落 文人与男旦的亲密交往渐渐画上句号 一般 的交往也变得谨慎和尴尬 齐如山在回忆与梅兰芳曲折而漫长的交往经历时 写的一段话 让我们有深切体会 我给他写了两年多的信 我还没跟他长 谈过 只有时在戏馆子中碰见说几句话 绝对没有上他家去过一趟 这也又 有原因 一因自己本就有旧的观念 不大愿意与旦脚来往 二则也怕物议 自民国元年前后 我与戏界人来往渐多 但多是老脚 而亲戚朋友本家等等 所有熟人都不以为然 有交情者常来相劝 且都不是恶意 若再与这样漂亮 的旦脚来往 则被朋友不齿 乃是必然的事情 所以未敢前往 17) 明清两朝 文人与男旦深切交往四百余年 民国之后 此类交游虽藕断 丝连 但已噤若寒蝉了 三 文人与男旦交往简论 从上述文人与男旦交往的历程可知 自明至清 文人与男旦演员交往 与文士之间的雅集不同 亦区别于文人同一般男性艺人的接近 二者本是同 性交往 却实践着异性交往的模式 男旦演员替代女伎 不仅承继女伎以艺 娱人的职能 同时实践着女伎以色示人 示人以色相 与以色事人 授人以 肉体 的功能 以下从培养男旦演员的色艺要求 文人与男旦交往的内容两 个方面作简要论述 家乐主人或戏班掌班选择演员 培养演员都是按照美女的标准进行的 著名的旦脚多是美男子 女性化的美少男 皮肤白皙细腻是最基本的要求 兼之身如杨柳 面若芙蓉 声似雏莺 此外 或眉弯环月 或眸贮春水 或 玉手纤纤 或齿白唇红 各尽婉娈 肩扬袖 浅颦低笑 省识芙蓉如面 18) 红儿雪面小蛮身 水剪双眸好驻春 愁煞香消酒冷后 摘花应唤玉为 亸 17) 齐如山 齐如山回忆录 辽宁教育出版社 2005年10月第1版 页141 18) 聂先 百名家词抄 之梁清标 棠村词 之 柳腰轻 观邢郎演剧 康熙绿荫 堂刻本
178 明清文人与男旦交往述论(程宇昻) 173 人 19) ---康熙间男旦演员邢郎 庆瑞 姓刘 字朗玉 幼以小曲著名 娇姿贵彩 明艳无双 态度安 详 歌音清美 每于淡处生妍 静中流媚 不惯蹈硚而腰支约素 不矜饰 首而鬟髻如仙 20) ---嘉庆间男旦演员刘朗玉 宝玉 姑苏人 原名宝琴 柔情艳骨 潇洒风流 喜作时世妆 眉月弯 环 鬓云雾舞 见之者疑为落水仙姝 凌波微步 21) ---光绪间男旦演员吴宝玉 男旦演员的美貌是父母所赐 也是后天精心呵护的结果 艺兰生 侧帽 余谭 记录同 光间梨园状况 相君之面 虽不能尽似六郎 然白皙翩翩 鲜见黝黑 孟如秋言 凡新 进一伶 静闭密室 令恒饥 旋以粗粝和草头相饷 不设油盐 格难下 咽 如是半月 黝黑渐退 转而黄 旋用鹅油香胰勤加洗擦 又如是月 余 面首转白 且加润焉 此法梨园弟子都以之 余笑曰 卿之得有今 日 亦正洗伐功深耳 22) 引文中的孟如秋 原名孟金喜 字如秋 同治十三年甲戌花榜榜眼 23) 与艺兰生交情甚厚 此前 曾被艺兰生定为花魁 24) 19) 宗元鼎 南州草堂集 卷七 诗稿 清康熙三十四年刻本 20) 小铁笛道人 日下看花记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 社 1988年12月第1版 页57 21) 黄协埙 粉墨丛谈 海上墨林 广方言馆全案 粉墨丛谈 集成 本 上海古籍出版社 1989年5月第1版 页188 22) 艺兰生 侧帽余谭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社 1988年12月第1版 页624 23) 蜀西樵也 燕台花事录 艺兰生 侧帽余谭 罗瘿庵 菊部丛谭 记为探 花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社 1988年12月第1版 页 ) 香溪渔隐 凤城品花记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 社 1988年12月第1版 页573
179 174 中國學 第34輯( ) 就艺而言 名旦多如名妓 诗 书 琴 棋 画 各显其能 乾隆间彭 万官工琴 李桂官善琵琶 秦腔旦脚名伶王湘云为墨兰妙手 吴长元 燕兰 小谱 卷一共录 画兰诗 五十四首 词三首 几乎都是对王湘云所写墨兰 的题咏 嘉庆间京师名旦王翠林 跌扑便捷 工小调 能吴语 25)同 光间 沪上名旦周凤林善诗 精音律 又是弈棋高手 值得注意的是 男旦究竟为男身 这决定了男旦演员在技艺方面有自己 的优长 豪饮 能辩的伶人广受垂青 乾隆间花部旦脚王庆官 同 光间麟 春堂主人 昆旦诸桂枝 字秋芬 即在其列 王庆官 集庆部字荐庭 直隶天津人 杨四苗之徒也 年始成童 眉目轩 爽 尝使陪饮 拇战豪呼 风生四座 似憨而黠 含媚于标 宜乎抹粉登 场 浪荡妖淫 有不待揣摹而合拍者 嗟乎 童子何知 世风不古 若王 联官之忸怩腼觍 我见生怜 不可同日语矣 悲夫 26) 秋芬磊落自喜 善饮 能手谈 拇战尤豪 然爽迈之中 仍不失绳墨尺 寸 豪而不纵 质而不俚 众香国中别调也 27) 好的相公侑酒时 全场的气氛被调动起来 皆大欢喜 文人呼妓女侑 觞 寻的是素瓷静递的幽趣 与男伶同饮 求的是酣畅淋漓的痛快 从交往的内容看 文人与男旦演员的交往类似于文人与妓女的交往 文 人亲昵男旦 主要为征色 赏艺 先说赏艺 艺兰生 侧帽余谭 言 赋艳词人于风清月白之宵 偕胜 友访艳仙于梧桐庭院 词人自拍昆曲 艳仙按笛和之 于时璧月壁人 争 相辉映 庭中木樨 拂拂吐香气 与雅韵相间发 似此清游 窃谓如水如 龙 碌碌长安市上者 皆念不及此 28)清风 明月 良宵 静庭 名士佳 25) 小铁笛道人 日下看花记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 社 1988年12月第1版 页64 26) 安乐山樵 燕兰小谱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社 1988年12月第1版 页 ) 沅浦痴渔 撷华小录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社 1988年12月第1版 页461 28) 艺兰生 侧帽余谭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社
180 明清文人与男旦交往述论(程宇昻) 175 人 竹肉并发 曲亨人雅 元人 青楼集 所载名妓 驼背 麻脸 眇目者 为数不少 一时名公如蝇附膻 显然醉翁之意在艺不在色 赋艳词人对相公 的情感有类于此 再说征色 文人把亲近男旦当成亲近女伎 征色的情况较为复杂 大致 可分三种 逢场作戏 意淫 同性恋 明清两朝 官妓 女乐渐革 狎妓沦为非法 文人与妓女共栖的人文生 态遭到破坏 人们寻找新的娱乐方式时 很快找到可以取而代之的对象 优童 尤其是扮演女性的男旦 文人与之游处 是一种权宜之计 在闲暇征 歌 文宴雅集时进行逢场作戏的心灵游戏 吴稼竳 玄盖副草 卷十八 王 季中席上呈诸君 诗云 东游拟卧赤城天 留滞无端胜事偏 树底落花春未扫 林端明月夜初悬 醉来舞荐容敧枕 歌罢优童为拍肩 不是寻常疏礼法 客狂聊见主人 贤 29) 作者在友人的宴席上听优童唱曲 并让优童为自己拍肩按摩 他之所以 这样狂放不羁 是要以此凸显主人的好客 对于没有男风之好的人来说 可 能确实 与其恋一竹筒 何如恋一女色 30)但为交游起见 为消遣起见而作 狭斜游 多数士人 及时行乐 本无成见 31)多数文人伴小旦 属于这一情 况 消闲 亵闹而已 第二种情况是 与男旦亲密交往 把男旦当成同性恋的对象 明人潘之 恒说 旦脚演员 名妓徐翩之父 当夕之价 倍于姬姜 32)姬姜为明嘉靖 隆庆间著名歌姬 让男旦侍寝 代价比请名妓还高 随着男旦队伍的扩大 明清同性相恋竞成风习 尤其是万历以下 萝摩庵老人 怀芳记 言 1988年12月第1版 页608 29) 吴稼竳 玄盖副草 卷十八 明万历家刻本 30) 易顺鼎 哭庵赏菊诗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社 1988年12月第1版 页773 31) 艺兰生 侧帽余谭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社 1988年12月第1版 页613 32) 汪效倚辑注 潘之恒曲话 中国戏剧出版社 1988年8月第1版 页51
181 176 中國學 第34輯( ) 夏天喜 字秋芙 苏长公谓食河豚值得一死 余谓秋芙倘是女子 为我 作妾 亦值得一死也 沈芷秋 有吴舍人悦之 欲购为侍史 力不能致 竟吞生鸦片以死 任小凤者 色艺可望前人 潘侍郎与水芷绝后 乃赏之 不使见客 33) 夏天喜 字秋芙 道光间春台班旦脚 丽华堂主人沈芷秋 唱昆旦 桐 华堂主人任小凤 旦脚 潘侍郎金屋藏娇 专宠美人 与今之包养情人类 似 萝摩庵老人说为夏秋芙值得一死 吴舍人欲购置沈芷秋 可惜力不能 及 竟然一死了之 上述士人有着较为强烈的同性恋倾向 他们与男旦演员 亲密接触 乃出于本能 著名文人张凤翼 陈维崧 毕沅 袁枚 郑板桥 林嗣环等亦属于此类情形 不管他们的性取向与我们大多数人的性取向如何 不同 其同性至情实际上可歌可泣 清之相公堂子时期 堂子实际上兼有妓 院的功能 只不过 一般的妓院经营女色 而堂子在出售男色而已 同性恋乃人类一种正常的性需求 中国古代 男风早已有之 汉代多位 帝王有断袖之癖 明以前 能享受同性恋的人 多是帝王 重臣 明清两 朝 同性恋的权利下移 不仅明英宗 武宗沉湎于斯 一般文人甚或平民百 姓都可以舒展自己的另类性爱冲动 可以说 明清中国社会 是男性同性恋 者的天堂 对社会中上层尤其如此 男旦群体的涌现 为此提供了极大便 利 第三种情况 文人把与男旦交往看成是一种全新的美的享受 他们对狎 旦者和不自重的旦脚颇有微词 其为贤士大夫所亲近者 必皆能自爱好 不作谄容 不出亵语 其令人服媚 殆无形迹之可指 爱身如玉 又如白鹤 朱霞 不可即也 别有一派 但以容貌为工 谑浪亵渎 无所不至 且如柳 种章台 任人攀折 此则我辈所恶 而流俗所深喜者 34)看来 这种境界 唯有知度有节的贤士大夫才配拥有 有人以诗的形式泄漏了心灵的消息 歌衫舞扇最翩翩 花月春江正少年 问字偶来花下立 片时侥幸倚香肩 33) 萝摩庵老人 怀芳记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社 1988年12月第1版 页 ) 萝摩庵老人 怀芳记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本 中国戏剧出版社 1988年12月第1版 页595
182 明清文人与男旦交往述论(程宇昻) )这是庐山旧隐赠给沪上名旦周凤林的诗 诗人老实交待借教人以字的 机会轻触香肩的美妙感觉 有人在花谱小传中记录了这微妙的时刻 想 九霄 每一发声 脆如炙雨莺簧 清俗耳 当于柳阴深处 携双柑斗洒 危坐听之 貌清妍 无俗韵 纤腰一搦 婀娜可怜 杨柳岸十七八女郎 当 亦无此柔媚 予最爱其演 红鸾喜 一折 朱颜粉颈 婉丽无双 而一种低 徊羞涩之情 时向眉稍微露 娟娟此豸 诚可儿也 及其衣轻绡 握团扇 月明林下 珊珊其来 则又如玉树一株 摇曳于瑶台仙阙 36)想九霄为沪 上名旦 读这一段文字 我们能感受到美如何在距离之间汩汩流淌 对男旦的意淫实际上是明清之际文人审美的新发现 人间美好的事物很 多 每一种至美都可能动人心弦 女有媸妍 男有丑俊 美女赏心悦目 美 男也有理由成为一道风景 明清时 美女风景暗淡成背景 在其映衬下 文 人眼前由俊男组成的风景逐渐清晰 亮丽 另一方面 男女之美类各有别 明清士人所欣赏的男旦外形之美 是男人女性化的美丽 这种美既不同于阴 柔的女性之美 也不同于阳刚的男性之美 它是一种杂交美 一种全新的有 活力的美 文人 尤其是具有艺术气质的文人 赏异好奇的禀赋使他们很难 摆脱接触另类之美的诱惑 即便他不是一个具有同性性倾向的男人 对人生 极致体验的追求 恰是很多文人的共同心理 有人憋不住了 借小说探讨这 种别致之美的理论深度 草木向阳者华茂 背阴者衰落 梅花南枝先 北枝后 还有凤凰 孔雀 野雉 家鸡 有文彩的禽鸟都是雄的 可见造化之气 先钟于男 而后钟 于女 那女子固美 究不免些扮脂涂泽 岂及男子之不御铅华 自然光 彩 这一片钟情爱色之心 却与别人不同 视这些好相公与那奇珍异宝 好鸟 名花一样 只有爱惜之心 却无褒狎之念 这些相公的好处 好在面有女容 身无女体 可以娱目 又可以制心 使 人有欢乐而无欲念 37) 35) 黄协埙 粉墨丛谈 海上墨林 广方言馆全案 粉墨丛谈 集成 本 上海古籍出版社 1989年5月第1版 页190 36) 黄协埙 粉墨丛谈 海上墨林 广方言馆全案 粉墨丛谈 集成 本 上海古籍出版社 1989年5月第1版 页 ) 陈森 品花宝鉴 中华书局 2004年7月第1版 页
183 178 中國學 第34輯( ) 逢场作戏主要为了娱乐 同性相恋出于生理与心理需求 意淫者则登堂 入室进入审美境界 一般娱乐者要求小旦陪游陪玩 侑酒于席间 同性恋者 将钟情的小旦视为心仪的性伙伴 醒教歌舞醉教眠 38)意淫者与小旦若即 若离 在剧场 堂子 酒席间凝望或轻拥小旦 陶醉于虚拟美人的一颦一 蹙 总之 女伎让位于男旦演员 服务者性别发生了变化 却没有从根本上 改变中国古代社会乐伎娼优合一的格局 男旦演员最大地隐去自己原有的性 别角色 以女性的身份出现在舞台和生活中 唱曲演剧 郊游游戏 侑酒侍 寝 优而娼 男旦演员完全不以色事人 纯粹以舞台演员的身份出现 在史 料中很难见到 在实际生活中可能也很难做到 不仅男旦演员 不少靓丽的 小生也亦娼亦优 文人与男旦交往 实际上是传统的诗 曲 酒相激相励模 式的延续 文人这种新的人文生态的出现 必定对中国文化产生深刻影响 对文人 与男旦交往情形深入研究时起 瞭望中国古代文化的另一扇轩窗业已敞开 [ 參考文獻 ] 张次溪, 清代燕都梨园史料 中国戏剧出版社, 1988年12月第1版 清文献通考, 清文渊阁四库全书本 都 穆, 都公谭纂, 明抄本 孙崇涛 徐宏图著 戏曲优伶史, 文化艺术出版社, 1995年5月第1版 陈洪谟, 治世余闻录, 明万历刻纪录彚编本 余继登, 典故纪闻 卷十六, 明万历王象干刻本 宋懋澄, 九龠集, 明万历刻本 董斯张辑, 吴兴艺文补, 崇祯六年刻本 朱 轼, 大清律集解附例, 清雍正内府刻本 徐 熥, 幔亭诗集, 清文渊阁四库全书本 周广业, 过夏续录, 清种松书塾抄本 38) 宋懋澄 九龠集 前集 诗 卷七 万历刻本
184 明清文人与男旦交往述论(程宇昻) 179 吴稼竳, 玄盖副草, 明万历家刻本 聂 先, 百名家词抄, 康熙绿荫堂刻本 宗元鼎, 南州草堂集, 清康熙三十四年刻本 汪效倚辑注, 潘之恒曲话, 中国戏剧出版社, 1988年8月第1版 陈 森, 品花宝鉴, 中华书局 2004年7月第1版 齐如山, 齐如山回忆录, 辽宁教育出版社 2005年10月第1版 黄协埙 粉墨丛谈, 上海古籍出版社, 1989年5月第1版 何刚德, 春明梦录, 北京古籍出版社, 1995年5月第1版 <中文摘要> 明代中期到清末 男旦演员走红于剧场 也出入于茶楼 酒庄等场合 替代女伎成为风月场中的主角 文人与男旦演员的交往日益增多 文人与男 旦交往 实际上类似于传统的文人与妓女的交往 是诗 曲 酒相激相励模 式的延续 关键词 明清, 文人, 男旦, 妓女, 交往 <Abstract> On the Interaction between Literati and Female Impersonators in the Ming and Qing Dynasties Cheng Yu-ang (Department of Chinese, Shaoguan College, China) From the middle of the Ming dynasty to the end of the Qing dynasty, female impersonators, in place of prostitutes, are popular in theatres, tea rooms and restaurants. Interactions between literati and female impersonators were getting more and
185 180 中國學 第34輯( ) more consequently. Basically, the mode was just as the interaction between literati and prostitutes. It was a change of traditional pattern of poetry, singing and alcohol. Key words: the Ming and Qing dynasties, literati, female impersonator; prostitute; interaction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186 中國學 第34輯( ) pp.181~208 좌전(左傳) 문론역주 이장휘* 목 차 1. 들어가는 말 2. 번역 및 역주 3. 맺는 말 1. 들어가는 말 좌전 은 은공(隱公) 원년인 기원전 722년에서 애공(哀公) 27년인 기원전 468년까지 대략 250여 년간의 춘추시대 역사를 다룬 중국 최초 의 완비된 편년체 역사서이다.1)서한(西漢)이전에는 좌씨춘추 나 춘추 라고 불렀다.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로 말미암아 좌전 은 벽 에 몰래 숨겨지거나 일부가 민간에 전해오므로 인해 한대(漢代)에는 학 관(學官)에 세워지지 않았고, 원래 고문자로 썼기 때문에 춘추고문(春 秋古文) 이나 고문춘추(古文春秋) 라고 불러서, 한대 통용되던 금문 (今文)으로 썼고 학관(學官)에 세워졌던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이 나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과는 구별하였다. 후한(後漢)의 반고(班 固)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춘추좌씨전 이라고 불렀는데, 후세에는 좌전 으로 간략하게 부른다. 좌전 의 작자에 대해 옛날에는 좌구 명(左丘明)이 지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리하여 사마천은 사기 12제후년표제2(十二諸侯年表第二) 에서 노나라 군자 좌구명은 (공 * 大邱韓醫大學校 朱子語類飜譯硏究團 專任硏究員 [email protected]
187 182 中國學 第34輯( ) 자의) 제자들이 각기 이단(사상)을 견지하고 각자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 여 그 참된 모습을 잃어버릴까 두려워서 공자가 지은 사기에 따라 상세 히 그의 언론을 논술하여 좌씨춘추 를 완성하였다. (魯君子左丘明懼 弟子人人異端, 各安其意, 失其眞, 故因孔子史記具論其語, 成左氏春秋)고 했다. 후한의 반고는 한서 예문지(藝文志) 에서 좌씨전 30권 은 좌구명이 지었는데, 노나라 태사(太師)이다. ( 左氏傳 三十卷. 左丘 明, 魯太師)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연구를 거쳐서 학 술계에서는 유가의 별파(別派)에 의해 책으로 만들어졌다고 여기며, 시 기도 위로는 노나라 정공(定公)이나 애공(哀公)과 멀지 않고, 아래로는 전국시대 후기보다 늦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대(漢代)에는 좌 전 과 공양전 곡량전 을 춘추삼전 이라 불렀는데, 모두 공자가 지은 춘추 를 상세히 해설한 책이다. 좌전 을 살펴보면 춘추시대 각 나라의 정치와 군사 외교 등의 중 대한 역사 사건을 구체적으로 기술했고, 전반적인 사상경향은 유가(儒 家)에 가까워서 계급질서와 종법윤리를 강조하였다. 오늘날 문예이론적 인 관점에서 좌전 을 살펴보면 주된 범주로 논의되는 내용은 찾아보 기 어렵고, 다만 좌전 이 책으로 만들어진 것은 춘추 보다 뒤지 지만, 실려 있는 내용은 대부분 공자보다 앞서기 때문에, 좌전 을 통 해 공자와 선진(先秦)시기 제자(諸子)들의 문론 사상이 생겨난 배경을 알 수 있을 따름이다. 특별히 시경(詩經) 과 정치의 관계에 치중해 서, 시를 지은 것이 뜻을 말하는데 있다 (賦詩言志)는 관점을 드러내었 고, 춘추시기 정치적인 왕래에서 시경 에 대한 구체적인 운용을 생 동적으로 반영하였다. 본고에서는 좌전 에서 시경 을 수용하는 부(賦) 의 의미 변화와 부시단장(賦詩斷章) 에 대한 실용주의적인 태 도로 인해 불러일으키는 문학작품의 사상이나 작품의 관계, 숙손목자 (叔孫穆子)의 삼불후(三不朽) 론, 춘추시기 정치적인 왕래에서 시 경 에 대한 구체적인 운용을 생동적으로 반영한 예들, 공자가 시를 논 하기 이전에 계찰(季札)이 음악 연주를 관람하고 인상(印象) 비평적으로 내린 문예비평에 관한 부분1), 안자의 화동지변(和同之辨) 에 관한 것 1) 좌전(左傳) 양공(襄公) 29년이면 공자의 나이 겨우 8세이므로 그 가 뒤에 논어 팔일(八佾) 편에서 말한 관저 이 시는 즐거워하되 지나치지
188 좌전(左傳) 문론역주(이장휘) 183 을 선역(選譯)한 것이다. 선진시기 문예이론을 이해하는데 나름의 귀중 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2. 번역 및 역주 [1] 衛莊公2)娶于齊3)東宫得臣4)之妹, 曰莊姜5). 美而無子6), 衞人所爲賦 碩 人 7)也. ( 은공(隱公) 3년) [1] 위나라 장공이 제나라 태자 득신의 여동생에게 장가갔는데, (그녀의 이름을) 장강이라 했다. 아름다웠지만 자식을 낳지 않아서 위나라 사람 들이 (그녀를 위해) 석인 시를 지었다. [2] 않고, 슬프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는 말 은 아마도 좌전 양공 29년에서 따왔을 것이다. 2) 위장공(衛荘公): 이름이 양(揚)인 위나라 무공(武公)의 아들로 위나라의 열두 번째 임금인데 재위기간은 23년이었다. 3) 취우제(娶于齊): 제나라에 장가가다 는 뜻이다. 사기 위세가(衛世家) 를 보면 장공 5년에 제나라 여자를 취하여 부인으로 삼았다 (莊公五年, 取齊 女爲夫人)고 했다. 4) 동궁득신(東宫得臣): 동궁 은 태자(太子)가 거처하는 궁 이고, 득신 은 제 나라 장공의 태자 이름 인데, 즉위하기 전에 죽었다. 그러므로 제나라 장공이 죽자 제나라 희공(僖公)이 자리를 계승하였다. 본문에서 희공의 여동생이라고 말하지 않고 득신의 여동생이라고 한 것은 득신이 적장자이고 그의 여동생이 정실에게서 난 딸[嫡女]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시경 위풍(衛風) 석 인 편에서 동궁의 여동생 (東宮之妹)이라고 했기 때문에 좌전 에서도 그 대로 따른 것이다. 5) 장강(荘姜): 위장공의 아내 이다. 6) 미이무자(美而無子): 아름다웠지만 자식을 낳지 않았다 는 의미이다. 7) 위부 석인 (為賦 碩人 ): 위부 는 그녀를 위해 짓다 는 의미이고, 석 인 은 시경 위풍 석인 편 을 가리키는데, 이 시는 장강의 아름다움 을 찬미한 시 이다.
189 184 中國學 第34輯( ) 冬, 楚子8)及諸侯9)圍宋, 宋公孫固如晉告急10). (晉)作三軍11), 謀 元帥12). 趙衰13)曰: 郤縠14)可. 臣亟15)聞其言16)矣, 説17)禮樂而敦18) 詩 書. 詩 書, 義之府19)也; 禮 樂, 徳之則也; 徳 義, 利20)之本也. 夏書 21)曰: 賦納22)以言, 明試23)以功, 車服以庸24). 8) 초자(楚子): 초나라 임금 을 가리키는데,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춘추시기에 초나라는 처음으로 자(子) 의 작위(爵位)에 봉해졌기 때문이다. 좌전 을 보면 초자 로 초나라의 왕을 부르는 예는 많다. 예를 들면 초문왕(文王)과 초장왕(莊王) 초공왕(空王) 초강왕(康王) 초령왕(靈王) 초평왕(平王) 초소왕(昭王) 등이다. 이곳의 초자 는 초나라 성왕(成王) 을 가리킨다. 노(魯)나라 장공(莊 公) 23년 그의 형 도오(堵敖)를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지만, 노나라 문공 (文公) 원년에 그의 아들에 피살되었는데, 재위 기간이 46년이었다. 9) 제후(諸侯): 그 당시 초나라와 함께 송나라를 포위해서 공격했던 진(陳)과 채(蔡) 정(鄭) 허(許)나라 를 가리킨다. 10) 공손고여진고급(公孫固如晉告急): 공손고 는 송나라 양공(襄公)의 서형(庶 兄) 인데 송의 대사마였다. 여 자는 가다 는 의미이고, 고급 은 직역하면 위급함을 알리다 는 것이지만, 본문의 앞뒤 문맥을 통해보면 위급함을 알리 뿐만 아니라 구원까지 요청하다 는 의미이므로 본역주자는 몇 글자를 더해서 번역하였다. 11) 삼군(三軍): 상중하 삼군 을 가리킨다. 진(晉)나라는 이군(二軍)만 있었는데, 이때부터 삼군을 갖추기 시작했다. 12) 모원수(謀元帥): 모 는 꾀하다 또는 상의하다 는 의미이고, 원수 는 중 군의 최고 사령관 을 가리킨다. 상중하 삼군 가운데 중군(中軍)을 최고로 삼 았기 때문에 중군의 최고사령관을 원수라고 했다. 13) 조최(趙衰): 진나라 대부로 자는 자여(子余)이다. 14) 극곡(郤縠): 진나라 대부이다. 15) 기(亟): 자주 와 누차 라는 의미이다. 16) 기언(其言): 그의 말 즉 극곡의 말 이라는 의미이다. 17) 열(說): 좋아하다 는 의미이다. 18) 돈(敦): 숭상하다 또는 중시하다 는 의미이다. 19) 의지부(義之府): 의 는 도의(道義) 나 의리(義理) 라는 의미이고, 부 는 곳간 이나 부고(府庫) 라는 의미이다. 이 구절은 사물의 도의나 의리는 모두 시 와 서 속에 감추어져 있다 는 뜻이다. 20) 이(利): (나라와 백성을) 이롭게 하다 는 의미이다. 21) 하서 ( 夏書 ): 상서(尙書) 가운데 하대(夏代)에 관한 부분이다. 인 용문은 상서 우서(虞書) 익직(益稷) 편에 보인다. 22) 부납(賦納): 채납(采納)하다 또는 들어서 취하다[聽取] 는 의미이다. 23) 명시(明試): 밝히 살피다 는 의미이다. 24) 거복이용(車服以庸): 거복 은 거마와 복식(服飾) 을 가리키고, 용 은 공 로(功勞) 나 공적(功績) 을 의미한다.
190 좌전(左傳) 문론역주(이장휘) 185 君其試之! ( 희공(僖公) 27년) [2] 겨울에 초나라 위왕(威王)과 여러 제후가 송나라를 둘러싸서 공격하 자, 송나라 대사마 공손고가 진나라에 가서 위급함을 알리고 구원을 요 청하였다. (진나라에서는) 상중하 삼군을 갖추고 (중군(中軍)의) 원 수에 대한 인선(人選)을 상의하였다. (진나라 대부) 조최가 극곡을 (중 군의 원수로) 삼으면 괜찮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 번 그의 말을 들었는 데, 예와 악을 좋아하고 시 와 서 를 중시하였습니다. 시 와 서 는 도의의 부고(府庫)이고 예와 악은 도덕의 준칙입니다. 도덕과 도의는 (나라와 백성을) 이롭게 하는 근본입니다. 하서 에서 (인재 한 사람을 선발해서 채용하려고 할 때는 응당 그의) 말에 따라 채용하 고, (구체적인) 공로를 밝히 살피며, (만약 성공하면) 공로에 따라 거마 와 의복을 상으로 내린다. 고 하였으니, 그대가 그를 시험해보십시오! 라고 하였다. [3] 晉侯與諸侯宴于温25), 使諸大夫26)舞, 曰: 歌詩必類27). 齊髙厚之詩不 類. 荀偃怒, 且曰: 諸侯有異志28)矣. 使諸大夫盟髙厚, 髙厚逃歸. 於是叔 孫豹 晉荀偃 宋向戌29) 衞甯殖 鄭公孫蠆 小邾之大夫盟曰: 同討不 25) 온(溫): 지명으로 오늘날의 하남성 온현 서남쪽에 있다. 26) 제대부(諸大夫): 제후의 대부 라는 의미이다. 임요수(林堯叟)는 춘추좌전 구해(春秋左傳句解) 에서 제후의 대부에게 일어나 춤추게 하여 연회를 즐겁 게 돕도록 한다. (使諸侯之大夫起舞, 以助歡宴)고 했다. 27) 가시필류(歌詩必類): 가시 는 시(詩)를 노래하다 는 뜻이고, 류 는 춤에 맞추다 또는 춤에 어울리게 하다 는 의미이다. 류 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시의 의미가 서로 유사하다 로 보기도 한다. 28) 이지(異志): 직역하면 다른 뜻 이지만, 이곳에서는 두 마음 다른 생각 을 가리킨다. 즉 고후의 시가 춤에 맞지 않은 것은 제나라가 이미 두 마음을 먹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는 의미이다. 29) 향술(向戌): 송나라의 대신인데, 좌전 에서는 좌사(左師) 나 합좌사(合 左師) 로 등장한다.
191 186 中國學 第34輯( ) 庭30)! ( 양공(襄公) 16년) [3] 진후와 제후가 온(溫) 땅에서 연회를 베풀었을 때 제후의 대부에게 춤을 추게 하면서 시를 노래할 때는 반드시 (춤에) 맞추어야 한다! 고 하였다. 제나라 고후의 시와 춤이 서로 맞지 않았다. 순언이 화가 나서 또한 제후는 다른 뜻이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제후의 대부와 고후 에게 맹세하게 하자 고후가 도망쳐 돌아 가버렸다. 이에 당시 노나라 숙손표와 진나라 순언 송나라 향술 위나라 영식 정나라 공손채 소주의 대 부가 함께 맹세하여 함께 (맹주(盟主)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들을 토 벌하자! 라고 하였다. [4] 二十四年31)春, 穆叔如32)晉. 范宣子逆33)之, 問焉34), 曰: 古人有言曰: 死而不朽, 何謂也? 穆叔未對. 宣子曰: 昔匃之祖, 自虞以上為陶唐 氏35), 在夏為御龍氏36), 在商為豕韋氏37), 在周為唐 杜氏38), 晉主夏盟39) 30) 정(庭): 정(廷) 과 같은 의미로 신하가 조정에 들어와서 임금을 알현하다 는 의미이다. 31) 이십사년(二十四年): 노나라 애공(哀公) 24년으로 기원전 549년이다. 32) 목숙여(穆叔如): 목숙 은 노나라 경(卿)인 숙손표(叔孫豹)로 시호(諡號)가 목(穆) 이었고, 숙손목자 라고도 한다. 여 자는 가다 는 의미이다. 33) 범선자역(范宣子逆): 범선자 는 진나라 경(卿)으로 이름은 개(匄)이고 시호 는 선(宣)이다. 역 자는 뜻을 반대로 해석하는 반훈법(反訓法)의 예로 맞이 하다 는 뜻이다. 즉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마주 오 는 사람의 반대방향에 있어야 그 사람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34) 언(焉): 어지(於之) 의 의미로 그 즉 목숙에게 라는 뜻이다. 35) 우이상위도당씨(虞以上為陶唐氏): 우 는 순(舜)임금 이다. 도당 은 상고 시기 원시부락의 수령이 요(堯) 였다. 씨 는 상고시기 귀족들이 종족계통을 나타내는 호칭 으로 성(姓)의 갈래이다. 진한(秦漢)이후에는 성과 씨가 하나가 되었다. 36) 어룡씨(御龍氏): 좌전 소공(昭公) 29년에 의하면 도당씨가 이미 쇠하 자, 그 후예 가운데 유루(劉累)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용을 잘 길러서 하(夏) 나라 왕 공갑(孔甲)이 이에 어룡 이라는 씨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37) 시위씨(豕韋氏): 옛 부락 이름인데, 처음에는 팽(彭)씨 성이었다가 하나라
192 좌전(左傳) 문론역주(이장휘) 187 為范氏, 其是之謂乎! 穆叔曰: 以豹所聞, 此之謂世祿40), 非不朽也. 魯有 先大夫曰臧文仲41), 旣沒42), 其言立43), 其是之謂乎! 豹聞之, 大上有立 德44), 其次有立功45), 其次有立言, 雖久不廢, 此之謂不朽. 若夫46)保姓受 氏47), 以守宗祊48), 世不絶祀, 無國無之. 禄之大者, 不可謂不朽. ( 양공 때에는 유루가 그것을 대체하였고, 상나라에 이르러 멸망했다. 유루의 후예가 다시 그 나라를 계승하여 시위씨가 되었다. 38) 당 두씨(唐 杜氏): 이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본역주자는 두 나라 이름설을 따른다. 두예는 주석에서 은나라 말에 시위가 당을 나라 로 세웠다. 주나라 성왕(成王)이 당을 멸망시키자 두로 천도하여 두백(杜伯) 이 되었다. 두백의 아들 습숙이 진나라로 달아나서 범을 식읍으로 삼았 으므로 다시 범씨가 되었다. (殷末, 豕韋國於唐. 周成王滅唐, 遷之於杜, 爲杜 伯. 杜伯之子隰叔奔晉, 食邑於范, 復爲范氏)고 하였다. 두 는 오늘날 섬 서성 서안시 동남쪽에 있다. 먼저는 당씨였고, 후에는 두씨였기 때문에 본문 에서 주대에는 당과 두씨 라고 한 것이다. 39) 진주하맹(晉主夏盟): 진 은 진나라 문공(文公)과 경공(景公) 을 가리키고, 주 는 주재하다 는 의미이며, 하 는 중원의 여러 제후 를 가리키고, 맹 은 맹주 라는 뜻이다. 40) 세록(世祿): 고대에는 세록제도가 있어서 귀족들이 대대로 록을 받는 관리 가 되다 는 의미이다. 41) 선대부왈장문중(先大夫曰臧文仲): 선 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존 칭 이다. 대부 는 경 보다 낮은 관직이다. 장문중 은 이름이 진(辰)인 춘추 시기 노나라의 명신(名臣)으로 노나라 장공(莊公)과 민공(閔公) 희공(僖公) 문 공(文公) 네 임금에게 출사하였고, 그의 언론은 좌전 에서 자주 인용되었 다. 42) 기몰(旣沒): 이미 죽었다 는 의미이다. 43) 기언립(其言立): 직역하면 그의 언론은 세워졌다 이지만, 그가 문사로 드러 낸 덕교(德敎)나 정치(政治)에 관한 견해가 폐기되지 않았다 는 의미이다. 두 예는 주석에서 입은 폐기되거나 끊어지지 않은 것이다 (立, 不廢絶)고 하였 다. 44) 대상유립덕(大上有立德): 대 자는 태(太) 자와 같은 의미이므로 대상 은 최고 나 최상 이라는 뜻이다. 입덕 은 덕행을 수립하는 것인데, 마치 황제 나 요순이 덕을 세워 세상에 모범으로 드리운 것과 같은 것 일 것이다. 45) 입공(立功): 공과 업적을 세우다 는 의미이다. 마치 우(禹)와 직(稷)이 세상 의 법칙을 세워서 세상에 모범으로 드리운 것과 같은 것일 것이다. 46) 약부(若夫): 에 대해서는 또는 과 같은 것은 이라는 의미이다. 47) 보성수씨(保姓受氏): 성을 보존하고 씨를 받다 는 의미이므로 가세(家世)를 유지하다 는 뜻이다. 48) 종팽(宗祊): 종묘(宗廟) 와 같은 말이다. 제왕과 제후 대부 사(士)가 조상을 제사지내던 곳인데, 후세에는 대부(大夫) 아래 사람들은 가묘(家廟)라고 하였 다.
193 188 中國學 第34輯( ) (襄公) 24년) [4] 노나라 애공 24년 봄에 노나라 목숙이 진나라에 갔다. 범선자가 그를 맞이하면서 목숙에게 물어 옛 사람들의 말에 죽어도 썩지 않는다. 라 고 하는 말이 있는데, 무엇을 말합니까? 라고 하였다. 목숙이 대답하지 않았다. 선자가 옛날 개(匃)의 조상이 우순이상은 도당씨이고, 하대에 는 어룡씨이며, 상대에는 시위씨이고, 주대에는 당과 두씨이며, 진대에 중원의 여러 제후를 주재하는 맹주가 된 것은 범씨였는데 아마도 이것 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라고 하였다. 목숙이 제가 들은 바로는 이것을 세록이라고 하지 불후라고 하지 않습니다. 노나라에 이미 세상을 떠난 대부(大夫)중에 장문중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죽은 이후에도 그의 말 은 (폐기되지 않고) 세워졌으니 아마도 이것을 말할 것입니다! 제가 듣 기에 최고의 (불후는) 덕을 세우는 것이고, 그 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이 며, 그 다음 다음은 말을 세우는 것인데, 비록 (사람이 죽은 지는) 오래 되었지만 폐기되지 않았으니 이것을 불후라고 합니다. 성을 보존하고 씨를 받으며, 종묘를 지키고, 대대로 제사를 끊지 않으며, 그와 같이 하 지 않은 나라는 한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작록(爵祿)이 큰 것을 불후라 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5] 鄭伯49)享50)趙孟51)于垂隴52), 石從53). 子展 伯有 子西 子産 子大叔 二子 趙孟曰: 七子從君, 以寵54)武也. 請皆賦55), 以卒君貺56), 武亦以 49) 정백(鄭伯): 정나라 간공(簡公) 을 가리킨다. 50) 향(享): (연회를 베풀어) 대접하다 는 의미이다. 51) 조맹(趙孟): 진(晉)나라 신하인데, 좌전 에서는 조문자(趙文子) 와 조무 (趙武) 등으로 등장한다. 본문의 무 자는 모두 조맹 자신을 가리키므로 저 로 번역했다. 52) 수롱(垂隴): 정나라의 지명인데, 오늘날 하남성 형택(滎澤)현 동북쪽에 있 다. 53) 이자석종(二子石從): 이자석 은 정나라의 대부인 즉인단(卽印段) 과 공손
194 좌전(左傳) 문론역주(이장휘) 189 觀七子之志57). 子展賦 草蟲 58). 趙孟曰: 善哉, 民之主也! 抑59)武也, 不足以當之. 伯有賦 鶉之賁賁 60). 趙孟曰: 牀笫之言不踰閾61), 况在 野62)乎? 非使人之所得聞也. 子西賦 黍苗 之四章63). 趙孟曰: 寡君在, 武何能焉64)? 子産賦 隰桑 65). 趙孟曰: 武請受其卒章66). 子大叔賦 단(公孫段) 의 자(字)가 모두 자석 으로 불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종 은 따르다 또는 동행하다 는 의미이다. 54) 총(寵): 총애하다 또는 존귀(尊貴)히 여기다 은총을 베풀다 는 의미이다. 55) 부(賦): 시를 짓다 는 의미이다. 56) 이졸군황(以卒君貺): 졸 은 마치다 또는 완성하다 는 뜻이고, 황 은 하 사하다 또는 은택 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임금의 은택을 완 성하다 는 의미이다. 57) 지(志): 마음의 생각 이나 그들의 지향(志向) 이라는 의미이다. 58) 초충 ( 草蟲 ): 시경 소남(召南) 의 편명인데, 자전은 이 시를 지어서 조맹이 군자임을 송양(頌揚)하였다. 59) 억(抑): 문장의 의미를 전환할 때나 잠시 멈출 때 사용하는 접속사인데, 이 곳에서는 의미를 전환하는 의미로 사용되어 그러나 라는 뜻이다. 60) 순지분분 ( 鶉之賁賁 ): 시경 용풍(鄘風) 의 편명이다. 원래는 위선강(衛宣姜)의 음란함을 풍자하기 위해 지었지만, 백유가 이 시를 지은 의 도는 사실 이 사람 선량함 메추라기보다 못하면서, 도리어 임금의 자리에 앉아 있네. (人之無良, 我以爲君)에 있으므로 정나라 임금을 증오한 것을 풍 자한 것이기 때문에 정백은 반드시 그를 원망하였을 것이다. 이러므로 조맹 은 상자지언 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61) 상자지언불유역(牀笫之言不踰閾): 상자 는 침대에 까는 자리 이므로 상자 지언 은 남녀가 침대머리에서 나누는 정다운 말 이란 뜻이다. 불유역 은 문 지방을 넘지 않다 는 뜻이다. 62) 야(野): 조(朝) 와 반대 의미인 민간 이나 재야(在野) 란 뜻이다. 63) 서묘 지사장( 黍苗 之四章): 서묘 는 시경 소아(小雅) 의 편명 이다. 사장 은 신속하게 사읍성 일을 완공하려고, 소백이 (고심하며) 그것 을 경영하네. 일하러 가는 뭇 사람들 참으로 열렬하니, 소백이 마음 써 그것 을 완성하네. (肅肅謝功, 召伯營之. 烈烈征師, 召伯成之)인데, 두예(杜預)는 주 석에서 조맹을 소백에 비유하였다 (比趙孟于召伯)고 하였다. 64) 언(焉): 어지(於之) 의 용법으로 사용되었으므로, 그보다 라는 의미이다. 65) 습상 ( 隰桑 ): 시경 소아 의 편명이다. 두예는 주석에서 사모 하는 군자를 만나면 마음을 다해 그를 섬기리. (思見君子, 盡心以事之)라고 하였다. 66) 졸장(卒章): 습상 시의 마지막 장을 가리키는데, 마음으로 사랑하거늘 어찌 말하지 않으리? 마음에 감추었거늘 어느 날인들 잊으리까? (心乎愛矣, 遐不謂矣. 中心藏之, 何日忘之)라고 했다. 조문자는 자산의 생각으로 자신을 가르치고자 했기 때문에 청컨대 그 마지막장을 받고자 한다. 했을 것이다.
195 190 中國學 第34輯( ) 野有蔓草 67). 趙孟曰: 吾子之恵68)也. 印段賦 蟋蟀 69). 趙孟曰: 善哉, 保家70)之主也! 吾有望矣. 公孫段賦 桑扈 71). 趙孟曰: 匪交 匪敖72), 福将焉73)往? 若保是言也, 欲辭福祿, 得74)乎? 卒享, 文子告叔向曰: 伯有将為戮矣. 詩以言志, 志誣其上75)而公怨之, 以為賓榮76), 其能久乎? 幸而後亡77). 叔向曰: 然, 已侈78), 所謂不及五 稔79)者, 夫子之謂80)矣. 文子曰: 其餘皆數世之主也. 子展其後亡者也, 在上不忘降81). 印氏其次也, 樂而不荒82). 樂以安民, 不淫以使之83), 後亡, 67) 야유만초 ( 野有蔓草 ): 시경 정풍(鄭風) 의 편명이다. 68) 혜(惠): 은혜 라는 의미이다. 자숙이 이 시를 지을 때는 뜻밖에 서로 만나 니, 내 원함에 적합하네. (邂逅相遇, 適我願兮)라는 의미를 취하였기 때문에 조문자가 우리 대부의 은혜입니다 라고 하였을 것이다. 69) 실솔 ( 蟋蟀 ): 시경 당풍(唐風) 의 편명이다. 70) 보가(保家): 가족을 확실히 보호하다 는 의미이다. 두예는 주석에서 경계 하고 두려워하며 지나치지 않으므로 가족을 보호한다. (能戒懼不荒, 所以保 家)고 했다. 71) 상호 ( 桑扈 ): 시경 소아 의 편명이다. 두예는 주석에서 군자 가 예악(禮樂)과 의제(儀制)가 있으므로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있다. (君子有禮 文, 故能受天之祜)고 했다. 72) 비교비오(匪交匪敖): 교 자의 의미에 대해 진환(陳奐)은 시모씨전소(詩毛 氏傳疏) 에서 교는 오와 한 가지 의미이다. (交, 傲一義)고 했다. 오 자는 오(傲) 자와 같은 의미이다. 이 구절이 오늘날의 시경 판본에는 彼交匪 敖 로 되어 있다. 73) 언(焉): 이곳에서는 의문대명사 인 어디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74) 득(得): 가능하다[可以] 또는 괜찮다 는 의미이다. 75) 무기상(誣其上): 무 는 중상모략하다 또는 헐뜯다 는 의미이고, 기상 은 자신의 임금인 정(鄭)나라 임금 을 가리킨다. 76) 이위빈영(以爲賓榮): (정나라 임금을 헐뜯는 것으로) 빈객의 영광으로 삼 다 는 의미이다. 77) 행이후망(幸而後亡): 직역하면 다행이라면 뒤에 망한다. 는 것이지만, 반드 시 먼저 망한다는 의미이다. 78) 이치(已侈): 이 자는 이미 나 너무[太] 라는 의미이고, 치 는 교만하고 사치스럽다 는 뜻이다. 79) 임(稔): 임 자는 일 년 이라는 의미이다. 옛날에 곡식 가운데 벼는 한번 익는 데는 일 년이 걸렸으므로 임 이라고 하였다. 80) 부자지위(夫子之謂): 부자 는 백유 를 가리키고, 지 자는 목적어를 동사 앞으로 도치시키는 구조조사로 사용되었다. 81) 재상불망강(在上不忘降): 재상 은 윗자리에 있다 는 의미이고, 강 은 (자 신을) 내리고 억제하다 는 뜻이다. 이 구절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196 좌전(左傳) 문론역주(이장휘) 191 不亦可乎! ( 양공(襄公) 27년) [5] 정백이 수롱에서 (연회를 베풀어) 조맹을 대접할 때, 자전과 백유 자 서 자산 자대숙 이자석이 동행하였다. 조맹이 이 일곱 대부들이 임금을 동행한 것은 저를 총애하기 때문입니다. 청컨대 (이 일곱 대부들이) 모 두 (시를) 지어 임금의 은택을 완성하면 저도 일곱 대부의 뜻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자전이 초충 을 지었다. 조맹이 좋습 니다! 백성의 주인입니다. 그러나 저야말로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합 니다. 라고 하였다. 백유가 순지분분 을 지었다. 조맹이 침대머리 말들은 문지방을 넘으면 안 되는데, 더군다나 재야(在野)에 있다니오? 이것은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자서가 서 묘 의 4장을 지었다. 조맹이 과군(寡君)께서 재위하고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그보다 능(能)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자산이 습상 을 지었다. 조맹이 저는 청컨대 그 맨 마지막 장을 받고자합니다. 라고 하였다. 자대숙이 야유만초 를 지었다. 조맹이 이것은 우리 대부의 은혜입니다. 라고 하였다. 인단이 실솔 을 지었다. 조맹이 좋습니 다! 이것은 가족을 보호하는 대부이므로 저는 희망이 있습니다. 라고 하 였다. 공손단이 상호 를 지었다. 조맹이 교만하거나 오만하지도 않 으니 복이 장차 어디로 가겠습니까? 만약 이 말들을 간직하면서 복록을 사양한들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접대를 마치고, 조문자가 숙향에게 일러 백유는 장차 살륙(殺戮)을 당할 것입니다. 시로 뜻을 말하는데, (마음의) 뜻은 자신의 임금을 무함 (誣陷)하면서 공개적으로 임금을 원망하고, 또 이것으로 빈객의 영광으 로 삼으니 (설마) 그가 장구할 수 있겠습니까? 요행이라면 뒤에 망할 낮추고 억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는 의미이다. 82) 낙이불황(樂而不荒): 황 자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가 존재하는 것 같다. 하 나는 지나치다[淫] 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황당(荒唐)하다 는 것인데, 본역 주자는 둘 다 의미가 통하지만, 이 구절은 낙이불음(樂而不淫) 과 같은 의미 로 통용해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자의 의미를 취하였다. 문맥을 자세 히 살펴보면 황당하다 로 해석하면 어색한 면이 있다. 83) 사지(使之): 그들 즉 백성을 부리다 는 의미이다.
197 192 中國學 第34輯( )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숙향이 그렇다면 그는 너무 교만하고 사치스럽 습니다! 오년이 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사람을 말한 것 일 겁니다. 조문자가 그 나머지 (몇 사람은) 모두 몇 세대까지 (전할) 대부들입니다. 자전이 아마도 제일 마지막에 망하게 될 것은 (그가) 위 에 거하면서도 (자신을) 낮추는 것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씨가 마지막 앞에 망할 것은 즐거워하되 지나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고 지나치지 않게 그들을 부리니 뒤에 멸망하는 것이 또한 가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6] 癸臣子之84), 有寵85), 妻之86). 慶舍之士謂盧蒲癸曰: 男女辨姓87), 子 不辟宗88), 何也? 曰: 宗不余辟89), 余獨焉辟之? 賦詩斷章90), 余取所求 焉, 惡91)識宗? ( 양공(襄公) 28년) [6] 84) 계신자지(癸臣子之): 계 는 로포계 로 외국으로 도망갔던 최씨(崔氏) 일당 의 일원이다. 신 은 이곳에서 동사로 사용되어 신하가 되다 는 의미에서 가 신(家臣)이 되다 는 뜻이다. 자지 는 경봉(慶封)의 아들인 경사(慶舍)의 자 이다. 85) 유총(有寵): 총애를 받다 는 의미이다. 86) 처지(妻之): 경사가 자신의 딸을 로포계에게 시집가게 하여 아내를 삼도록 하다 는 의미이다. 87) 변성(辨姓): 동성(同姓)을 구별하다 는 의미이다. 경사의 가신들이 로포계에 게 이렇게 묻는 이유는 경사와 로포계가 사실은 같은 강(姜)씨였기 때문이다. 88) 불피종(不辟宗): 동족(同族)을 피하지 않다 는 의미이다. 89) 종불여피(宗不余辟): 이 문장은 원래 宗不辟余 이었다. 그러나 대명사가 목 적어로 사용되었고, 게다가 부정부사마저 앞에 왔기 때문에 목적어인 여 자 가 동사인 피 자 앞으로 도치된 경우이다. 이 구절은 동족이 나를 피하지 않는다. 는 의미이다. 90) 부시단장(賦詩斷章): 시를 지을 때 마치 단장취의(斷章取義)하는 것에 비견 되다 는 의미이다. 91) 오(惡): 의문대명사 로 사용되어 어떻게 라는 뜻이다.
198 좌전(左傳) 문론역주(이장휘) 193 계가 경사의 가신이 되었을 때 총애를 받아 경사의 딸을 아내로 삼았 다. 경사의 가신들이 로포계에게 일러 남녀가 결혼을 할 때는 동성(同 姓)인지를 구별하는데 그대는 동족(同族)을 피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 인가? 라고 하자, 계가 동족이 나를 피하지 않는데 내가 홀로 어떻게 그것을 피하겠는가? 시를 지을 때 단장취의(斷章取義)하는 것처럼 내가 구하는 것을 취하는데 어떻게 동족을 알겠는가? 라고 하였다. [7] 吳公子札來聘92), 請觀於周樂. 使工93)為之歌94) 周南 召 南 95), 曰: 美哉! 始基之96)矣, 猶未97)也. 然勤而不怨98)矣! 爲之歌 92) 오공자찰래빙(吳公子札來聘): 오공자찰 은 계찰(季札)인데, 춘추시대 오나 라 왕 수몽(壽夢)의 둘째 아들로 연릉(延陵)과 주래(州來) 두 지역에 봉해졌기 때문에 연릉계자나 주래계자 로 부른다. 연릉 은 지금의 강소성 무진(武進) 현이다. 오(吳)나라 임금 수몽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막내아들이 계찰(季札) 이다. 계찰 은 그 형제들 가운데 가장 현명하고 재능이 있어서 수몽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고 백성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 나 계찰 은 왕위는 장자가 이어야 한다며 가족을 떠나 산골에 들어가 손수 밭을 갈면서 살아 거절의 뜻을 분명히 했다. 계찰 의 형들 역시 계찰의 높 은 인격과 굳은 절개를 칭찬하며 차례로 집권하여 왕위가 그에게까지 이르도 록 하려고 하였다. 계찰 은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순서가 되었지만, 이때도 받 지 않아서 왕은 계찰 을 연릉(延陵) 에 봉(封)했다. 그는 음악을 변별하는 데 아주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본문의 내용은 아마도 노나라 애공 29년에 그가 노(魯)와 제(齊) 진(晉) 정(鄭) 위(衛) 등 여러 나라를 차례로 방문 하였는데, 일찍이 주나라 왕실로부터 우(虞)와 하(夏) 상(商) 주(周) 4대의 악무 (樂舞)를 물려받았던 노나라를 방문해서 청하여 본 것일 것이다. 빙 은 천 자나 제후 또는 제후지간에 사신을 파견하여 방문하는 것 을 가리킨다. 고대 의 예(禮)에 의하면 방문한 나라에 가면 원래 청하여 보는 예가 있었다. 그에 관한 자료들은 본문 외에도 사기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에 실려 있 다. 93) 공(工): 악공(樂工) 을 가리킨다. 94) 위지가(爲之歌): 위지 는 계찰을 위해 라는 의미이다. 가 는 악기의 반주 가 없는 도가(徒歌) 와 악기의 반주를 해서 노래하는 현가(弦歌) 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현가 의 의미이다. 95) 주남 소남 ( 周南 召南 ): 주 와 소 는 주공(周公)과 소 공(召公)의 최초 봉지 이다. 후에는 주남 이 오늘날 낙양(洛陽)이남과 여(汝)와 한(漢) 장강일대, 그리고 호남성과 호북성 사이 이고, 소남 은 주남 의 서쪽으로 섬서성 남부와 호북성 일부분 인데, 주나라의 판도(版
199 194 中國學 第34輯( ) 邶 鄘 衞 99), 曰: 美哉, 淵100)乎! 憂而不困101)者也. 吾聞 衞康叔武公102)之徳如是, 是其 衞風 乎? 爲之歌 王 103), 曰: 美哉! 思而不懼104), 其周之東乎? 爲之歌 鄭 105), 曰: 美哉! 其細已甚106), 圖) 즉 주공과 소공이 분할해서 통치하던 곳에 속했기 때문에 그곳의 음악과 노래를 주남 소남 이라고 한 것이다. 96) 시기지(始基之): 시대서(詩大序) 에서 주남 과 소남 은 시작을 바 르게 하는 도로써 왕업교화의 기틀이다. ( 周南 召南, 正始之道, 王 化之基)고 하였다. 즉 왕업(王業)의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다 는 의미이다. 97) 유미(猶未): 왕업을 시작은 하였지만 여전히 상(商)나라에는 폭군인 주(紂) 임금이 있어서, 여전히 진선진미(盡善盡美)한 것은 아니었다. 는 의미이다. 98) 근이불원(勤而不怨): (백성들이) 피곤하지만 원망하는 말은 없다 는 의미이 다. 99) 패 용 위 ( 邶 鄘 衞 ): 세 제후 나라에서 채집한 음악과 노래이다. 패 는 19편의 노래인데,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 주 (紂) 임금의 아들 무경(武庚)을 이곳에 봉한 곳으로 오늘날 하남성 탕음(湯 陰)현 동남쪽의 북성진(北城鎭)에 옛터가 있다. 용 은 10편인데, 주나 라 무왕의 동생 관숙(管叔)이 처음으로 봉해진 곳인데, 옛터는 오늘날 하남 성 급(汲)현 동북쪽 용성(鄘城)에 있다. 위 는 10편인데, 주나라 무왕 의 동생 강숙(康叔)이 처음으로 봉해진 곳인데, 옛터는 오늘날 하남성 북부 와 하북성 남부를 포괄한다. 100) 연(淵): 깊다 또는 (음조(音調)가) 너무 낮고 둔탁하다. 심후(深厚)하다 는 의미이다. 101) 우이불곤(憂而不困): 근심스럽지만 곤혹스럽지는 않다 는 의미이다. 위나라 강숙(康叔) 때는 관채(管蔡)가 반란을 일으켰고, 무공(武公) 때는 유왕(幽王) 이 견융(犬戎)에게 살해되었으며, 그 뒤 선공(宣公)은 음란(淫亂)하였고, 의 공(懿公)은 시해(弑害)를 당했기 때문에 우(憂) 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관 채와 견융이 모두 평정되고, 강숙과 무공의 덕화(德化)가 심원해져서 비록 우환을 만났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의로움을 잡았기 때문에 불곤(不困) 이 라고 한 것이다. 102) 위강숙무공(衞康叔武公): 위강숙 은 주공의 동생인데, 사기 위강숙세 가(衛康叔世家) 에 의하면 처음에는 강(康)에 봉하여 채읍(采邑)을 먹도록 하였는데, 삼감(三監) 의 난이 평정된 다음 위(衛)로 옮겨 봉했다. 무공 은 강숙의 9세손인데 재위기간에 강숙의 정치를 닦아 일찍이 군대를 이끌고 주나라를 보좌하여 융족(戎族)을 평정하기도 했다. 즉 주공이 관채(管蔡)의 반란을 평정한 후 삼감(三監)도 위(衛)에 들어와서 다시 강숙을 봉하였기 때문에 계찰은 다만 위풍 만 말한 것이다. 103) 왕 ( 王 ): 위풍 뒤가 왕풍 인데 모두 10편이다. 주나라 평왕 (平王)이 낙읍(洛邑)으로 동천(東遷)한 후 주나라 왕실은 쇠미해져서 지위가 열국(列國)과 같았기 때문에 그 왕기(王畿)의 음악도 풍 에 열거해 놓은 것이다.
200 좌전(左傳) 문론역주(이장휘) 195 民弗堪也. 是其先亡107)乎? 爲之歌 齊, 曰: 美哉! 泱泱108)乎, 大 風109)也哉! 表東海110)者, 其大公111)乎? 國未可量也. 爲之歌 豳 112), 曰: 美哉, 蕩113)乎! 樂而不淫, 其周公之東114)乎? 爲之歌 秦 115), 104) 사이불구(思而不懼): 이 구절에 대해 두예는 주석에서 으뜸되는 주나라가 멸망했기 때문에 걱정스럽지만, 여전히 선왕의 유풍이 남아 있으므로 두렵 지 않다. (宗周隕滅, 故憂思. 猶有先王之遺風, 故不懼)고 하였다. 105) 정 ( 鄭 ): 왕풍 뒤가 정풍 인데 모두 21편이다. 유왕(幽王) 때 환공(桓公)이 견융한테 피살당하자, 그의 아들 무공(武公)이 왕위를 계승하 였으므로 여전히 정(鄭)이라고 일컬었다. 오늘날 하남성 신정일대로 천도한 후에는 동정(東鄭) 이라고 해서, 오늘날 섬서성 서안 부근에 있었던 환공 의 정나라와 구별한다. 106) 기세이심(其細已甚): 세 의 내용에 대해 양백준은 춘추좌전주(春秋左傳 注) 에서 말한 것이 대부분 남녀지간의 자질구레한 일이지 정치에 관한 것은 지극히 적다 (所言多男女之間瑣碎之事, 有關政治極少)고 했다. 하지만 세(細) 의 본래 의미가 시가의 음절이 번잡하고 자질구레한 것인데, 이곳 에서는 정나라의 정령(政令)이 지나치게 번잡하고 세분(細分)되었기 때문에 아래 문장에서 백성들이 견딜 방법이 없다 고 한 것이다. 107) 시기선망(是其先亡): 직역하면 이것이 아마도 먼저 망한 것일 것이다 는 의 미인데, 이것은 억측의 말일 뿐이다. 사실은 정나라가 주나라 안왕(安王) 26 년(기원전 376년)에 망했으므로 본문에서 계찰이 말한 후 170년 뒤의 일이 다. 108) 앙앙(泱泱): 넓고 큰 모양 또는 아름답고 성대한 모양 도량이 큰 모양 을 가리킨다. 109) 대풍(大風): 큰 나라다운 기풍 또는 큰 나라의 음악 이라는 의미이다. 110) 표동해(表東海): 표 는 사표(師表) 나 귀감 이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제 나라가 산동반도의 동해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동해일대 제후들의 사표로 삼다 는 의미이다. 111) 대공(大公): 태공(太公) 인 여상(呂尙)을 가리킨다. 그는 무왕(武王)을 보좌 하여 상(商)나라를 평정하고 천하를 얻었으므로 제나라에 봉해졌으며, 상공 업에 능통하였고, 어염(魚鹽)의 이로움을 편리하게 하자 백성들이 귀순해 와서 마침내 제나라는 대국이 되었다. 112) 빈 ( 豳 ): 주공이 동쪽을 정벌할 때의 음악과 시가인 빈풍 7편이 다. 빈풍 이 진풍(秦風) 앞에 있는 것은 아마도 평왕(平王)이 동천하 면서 빈지역이 진나라에 귀속되고, 두 나라의 기풍이 연원과 계승관계에 있 었기 때문인 듯하다. 현존하는 판본의 순서는 이와 다르다. 113) 탕(蕩): 넓고 크다 는 의미와 거리낌이 없고 사악함도 없다 는 두 가지로 번역한다. 114) 주공지동(周公之東): 주공이 관채의 반란을 만나 동쪽으로 3년을 정벌하였 는데, 성왕에게 후직(后稷)과 선왕(先王)은 감히 황음(荒淫)하지 않고 왕업 (王業)의 일을 이루었다고 진술하였으므로 계찰이 빈풍 은 樂而不淫 이
201 196 中國學 第34輯( ) 曰: 此之謂夏聲116)! 夫能夏則大117), 大之至也! 其周之舊118)乎? 爲之歌 魏 119), 曰: 美哉, 渢渢120)乎! 大而婉121), 險而易行122). 以徳輔此, 則明主也! 爲之歌 唐 123), 曰: 思深哉! 其有陶唐氏之遺民乎? 不然, 何憂之遠124)也? 非令徳之後125), 誰能若是! 爲之歌 陳 126), 曰: 國無 라고 한 것이다. 115) 진 ( 秦 ): 시경 의 진풍 시가를 가리킨다. 116) 하성(夏聲): 두 가지 설이 전한다. 하나는 두예의 설로 진(秦)나라가 원래 는 서쪽 견구(犬丘-오늘날 감숙성 천수(天水)일대)에 있다가 진중(秦仲)에 이 르러서야 비로소 거마(車馬)와 예악(禮樂)이 있게 되었고, 견융의 음악을 제 거하면서 제하(諸夏)의 음악이 있게 되었기 때문에 하성 이라고 한다. 고 하 였다. 다른 하나는 양백준의 설로 옛날에는 서쪽을 하(夏) 라고 했고 진나라 도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서방(西方)의 음악 이라고 하였다. 학계에서는 일반 적으로 중원(中原)의 음악 으로 이해한다. 117) 능하즉대(能夏則大): 두 가지로 번역이 가능한데 하나는 하성은 바로 크 다 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성을 발할 수 있으면 자연히 소리도 크다 는 것 이다. 118) 기주지구(其周之舊): 서주의 옛 땅이 대부분 진나라에 복속된 것 을 가리 킨다. 진중(秦仲)의 손자 양공(襄公)이 기원전 770년 주나라 평왕이 동천하는 것을 보좌한 공로가 있으므로 제후에 책봉되면서 그가 관할하는 지역이 서주 (西周)의 왕기(王畿)와 빈(豳) 땅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119) 위 ( 魏 ): 시경 의 위풍 시가를 가리킨다. 서주와 춘추시기 에 위나라는 오늘날의 산서(山西)성 예성(芮城)에 있었는데, 기원전 661년에 진(晉)나라에 의해 멸망당했다. 120) 풍풍(渢渢): 리듬이 가벼우면서도 떠 있고, 또 완곡하게 리듬의 높고 낮음 이 있음 을 가리킨다. 즉 중용(中庸)의 음악 을 의미한다. 121) 대이완(大而婉): 대 는 크다 또는 거칠다 소리가 크다 는 의미이다. 위풍 의 대다수 시는 풍자시(諷刺詩)여서 그 말이 비교적 완곡하기 때문에 완 이라고 한 것이다. 122) 험이이행(險而易行): 험 은 (위나라의 지역이) 좁고 함해서 백성들이 빈 곤하였다 는 의미이다. 이 구절은 현명한 임금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데, 그 땅이 좁으면 정령(政令)이나 풍속을 행하기가 어렵다 는 말이다. 123) 당 ( 唐 ): 시경 의 당풍 시가를 가리킨다. 당 은 오늘날 산 서성 남부에 있었다. 124) 우지원(憂之遠): 의미는 근심이 깊다 는 것이다. 당나라 정국(政局)의 동탕 (動蕩)으로 인해 백성들은 고통스러웠으므로 그 음악과 시가 또한 격조가 나 지막하고 우려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125) 영덕지후(令徳之後): 아름다운 덕의 후손 이라는 의미인데, 도당씨의 후손 을 가리킨다. 이다. 영덕 은 미덕(美德) 과 성덕(盛德) 과 같은 뜻이다. 126) 진 ( 陳 ): 시경 의 진풍 시가를 가리킨다. 춘추시기의 진나
202 좌전(左傳) 문론역주(이장휘) 197 主127), 其能久乎128)? 自 鄶 以下129), 無譏130)焉. 爲之歌 小雅, 曰: 美哉! 思而不貳131), 怨而不言132), 其周徳之 衰133)乎? 猶有先王134)之遺民焉! 爲之歌 大雅, 曰: 廣哉, 熙熙 乎135)! 曲而有直體136), 其文王之徳乎? 爲之歌 頌, 曰: 至矣哉137)! 直而不倨, 曲而不屈138); 邇而不偪, 遠而不攜139); 遷而不淫, 復而不 라로 오늘날의 하남성 동부와 안휘성 북부에 있었다. 127) 국무주(國無主): 두예는 주석에서 음탕한 음악과 방탕으로 인해 두려워하 고 꺼리는 것이 없기 때문에 나라에 주인이 없다 라고 했다 (淫聲放蕩, 無所 畏忌, 故曰 國無主 )고 하였다. 128) 기능구호(其能久乎): 기 자는 이곳에서는 설마[難道] 라는 반문과 힐문 (詰問)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진나라가 노나라 애공 17년에 멸망했으므로 계찰이 말한 것으로부터 65년에 불과하다. 129) 회 이하( 鄶 以下): 회 는 본래 운(妘) 씨 성의 나라였는데, 정무공 (鄭武公)에 의해 멸망당했으며, 옛 터는 오늘날 하남성 밀(密)현 동북쪽에 있 다. 시경 의 회풍 시가를 가리킨다. 회(檜) 자로 사용하기도 한다. 회 이하 에는 조풍(曹風) 이 있는데, 이 두 나라는 모두 소국(小國)이 었기 때문에 계찰이 비평을 하지 않은 것이다. 130) 기(譏): 평론하다 또는 비평하다 는 의미이다. 131) 사이불이(思而不貳): 근심하지만 (배반하는) 두 마음은 없다 는 의미이다. 132) 원이불언(怨而不言): 애원(哀怨)하는 마음이 있지만 직접 말하지 않는다. 는 의미이다. 133) 주덕지쇠(周徳之衰): 주나라의 덕행이 쇠락하다 는 의미인데, 소아 의 대부분은 여(厲)왕과 선(宣)왕 유(幽)왕 때의 음악과 시가이기 때문에 동한의 정현(鄭玄)은 시보서(詩譜序) 에서 여왕과 유왕 때에는 정치와 교화가 더 욱더 쇠락하여 주나라 왕실은 크게 훼손되었다. (厲也, 幽也, 政教尤衰, 周室 大壊.)고 하였다. 134) 선왕(先王): 주나라 문(文)왕과 무(武)왕 성(成)왕 강(康)왕 등의 여러 왕들 을 가리킨다. 135) 희희호(熙熙乎): 가락이 조화된 음악 을 형용한 것이다. 136) 곡이유직체(曲而有直體): 완곡하지만 곧은 본체가 있다 는 뜻인데, 양백준 은 주석에서 그 악곡이 높고 낮으며 멈추고 바뀌며 고하의 오묘함이 있지만 본체는 경직(勁直)된 것이 있음을 말한다. (言其樂曲有抑揚頓挫高下之妙, 而本 體則直)고 하였다. 일부 주석가들은 직체 에 대해 강건하면서도 경직된 본 체 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137) 지의재(至矣哉): 정점(頂點)에 도달했다 는 의미이다. 138) 직이불거, 곡이불굴(直而不倨, 曲而不屈): 강하고 곧으면서도 거만하지 않 고, 굽히면서도 비굴하지 않다 는 의미이다. 139) 이이불핍, 원이불휴(邇而不偪, 遠而不攜): (군주와) 친근(親近)하지만 겸손 히 물러날 때도 호되게 자르지 않고[逼切], 먼 곳에 살지만 충정은 (두 마음
203 198 中國學 第34輯( ) 厭140); 哀而不愁, 樂而不荒141); 用而不匱, 廣而不宣142); 施而不費, 取而 不貪143); 處而不底, 行而不流144). 五聲和, 八風平145); 節有度, 守有 序146). 盛徳之所同也147). 으로) 떠나지 않는다. 는 의미이다. 핍(偪) 자는 핍(逼) 자와 같은 글자이다. 휴 자는 (마음이) 떠나다 는 의미이다. 140) 천이불음, 부이불염(遷而不淫, 復而不厭): 옮겨가지만 지나치지 않고, 반복 해도 싫어하지 않게 하다 는 의미이다. 141) 애이불수, 낙이불황(哀而不愁, 樂而不荒): 슬프지만 (종일) 근심하지는 않 고, 즐거워하되 지나치지 않는다. 는 의미이다. 142) 용이불궤, 광이불선(用而不匱, 廣而不宣): (그 큰 덕을 시행하여) 사용하도 록 해도 결핍되지 않고, (그 마음이) 넓으면서도 드러내지 않는다. 는 의미이 다. 궤 는 결핍되다 또는 모자라다 는 뜻이다. 143) 시이불비, 취이불탐(施而不費, 取而不貪):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도 (자 신에게) 손해가 되지 않고, 찾아 취하지만 탐람함이 도를 넘지 않는다. 는 의 미이다. 144) 처이부저, 행이불류(處而不底, 行而不流): 조용히 살지만 정체되지는 않고 행동하지만 방탕함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는 의미이다. 저 는 정체되다 는 뜻이다. 145) 오성화, 팔풍평(五聲和, 八風平): 오성 은 오음(五音) 이라고도 하는데, 오성 음계중의 궁(宮)과 상(商) 각(角) 치(徵) 우(羽) 를 가리킨다. 화 는 조 화를 이루다 는 의미이다. 팔풍 은 두 가지로 이해한다. 하나는 팔음(八音) 인데 고대 중국에서 여덟 가지 악기를 일컫는 것으로 금(金)과 석(石) 토(土) 혁(革) 사(絲) 목(木) 포(匏) 죽(竹)이 있다. 금(金) 에는 종(鐘) 같은 것이 속하 고, 석(石) 에는 경(磬) 이 있으며, 토(土) 에는 훈(壎) 이 있고, 혁(革) 에는 고(鼓) 가 속하며, 사(絲) 에는 금(琴) 이나 슬(瑟) 이 속한다. 목(木) 에는 축(柷) 과 어(敔) 가 속하고, 포(匏) 에는 생(笙) 과 우(竽) 가 속하며, 죽 (竹) 에는 소(簫) 와 관(管) 이 속한다. 다른 하나는 팔방(八方)의 풍(風)으로 악곡(樂曲) 을 가리킨다. 팔풍 의 이름과 견해는 각기 다르지만 여씨춘 추 유시(有始) 편과 회남자 지형훈(地形訓) 설문해자 풍부(風 部) 등에도 보인다. 평 은 조화를 이루다[協調] 는 의미이다. 146) 절유도, 수유서(節有度, 守有序): 악곡의 리듬이 음률의 법칙에 부합하고, 음조는 조화를 이루어 차례가 있다 는 의미이다. 147) 성덕지소동야(盛徳之所同也):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음악과 춤에 표현된 것은 (성현의) 훌륭한 품덕(品德)과 일치 합니다. 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들은 모두 훌륭한 품덕을 가진 사람 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는 것이다.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송 의 특성상 둘 다 가능하겠지만, 계찰이 송 의 음악과 춤을 관람하 고 느낀 후 평론한 문장은 아마도 전자가 좀 더 본문의 내용에 근접한 해석 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본역주자도 전자의 의미로 번역했다. 하지만 송 의 주송(周頌) 은 문왕과 무왕을 기리는 것이고, 노송(魯頌) 은 희공을
204 좌전(左傳) 문론역주(이장휘) 199 見舞 象箾 南籥 148)者, 曰: 美哉! 猶有憾149). 見舞 大 武 150)者, 曰: 美哉! 周之盛也, 其若此乎! 見舞 韶濩 151)者, 曰: 聖人之弘也, 而猶有慙徳152). 聖人之難153)也. 見舞 大夏 154)者, 曰: 美哉! 勤而不徳155), 非禹其誰能修156)之? 見舞 韶箾 157)者, 曰: 徳 至矣哉! 大矣, 如天之無不幬158)也, 如地之無不載也! 雖159)甚盛徳, 其蔑 以加於此矣160). 觀止161)矣! 若有他樂, 吾不敢請已! ( 양공(襄公) 29 기리는 것이며, 상송(商頌) 은 성왕과 탕왕을 기리는 것이다. 각기 기리는 인물은 다르지만, 아름다운 덕을 기리고 칭송한 것은 같다 는 의미일 것이다. 148) 상소 남약 ( 象箾 南籥 ): 소(箾) 는 소(簫) 와 같다. 아 마도 사병들이 찌르는 동작을 모방해서 코끼리 춤을 추는 것이지 싶다. 약 은 피리[笛] 비슷한 악기이다. 이 구절은 퉁소를 연주하면서 코끼리 춤을 추는 것과 남악을 연주하면서 피리를 곁들인 춤을 추는 것 이라는 의미이다. 이 둘은 모두 문왕(文王)을 칭송하는 춤이다. 일부 학자들은 상소 를 무무(武舞) 라고 하고, 남약 을 문무(文舞) 라고 하여 구분하기도 한다. 149) 유유감(猶有憾): 주나라 문왕(文王)이 여전히 폭군 주(紂)임금을 토벌하여 태평성대에 이르게 하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에 느낌 중에 부족한 것이 있 다 는 의미이다. 150) 대무(大武): 주나라 무왕(武王)을 노래하고 칭송한 악무(樂舞) 이다. 151) 소호 ( 韶濩 ): 상나라 탕(湯)을 노래하고 칭송한 악무 이다. 주례 (周禮) 춘관(春官) 대사악(大司樂) 에는 대호 ( 大濩 ) 로 되어 있 다. 152) 참덕(慙徳): 참덕 은 언행에 결함(缺陷)이 있어서 마음에 부끄럽다 는 의 미이다. 아마도 탕(湯)임금이 걸(桀)임금을 정벌한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범한 것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153) 성인지난(聖人之難): 성인으로 세상에 살기가 매우 어렵다 는 의미이다. 154) 대하 ( 大夏 ): 하나라 우(禹)임금을 노래하고 칭송한 악무(樂舞) 이 다. 155) 근이불덕(勤而不徳): 직역하면 부지런하였으나 자신의 덕으로 여기지 않 는다. 는 것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우임금이 백성들을 위한 치수(治水)사업에 부지런히 힘썼지만, 자신의 공으로 여기지 않았다 는 의미이다. 156) 수(修): 세우다 또는 건립하다 는 의미이다. 즉 대하(大夏) 를 창작한 것을 가리킨다. 157) 소소 ( 韶箾 ): 우순(虞舜)을 노래하고 칭송한 악무 이다. 상서(尙 書) 익직(益稷) 에는 소소(簫韶) 로 되어 있다. 158) 도(幬): 덮다 는 의미이다. 159) 수(雖): 양백준은 수 자가 다만[只] 의 의미라고 하였으나, 앞뒤문맥을 볼 때 양보의 의미인 설령 이라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사료되어 이렇게 번역 하였다. 160) 기멸이가어차의(其蔑以加於此矣): 직역하면 아마도 이것에 더할 것이 없
205 200 中國學 第34輯( ) 년) [7] 오나라 공자 계찰이 노나라를 방문하러 왔는데, 주나라의 악무 와 음악을 관람하고 듣기를 청하였다. 이에 악공으로 하여금 그를 위해 주남 과 소남 을 노래하게 하였다. 계찰이 좋습니다! 왕업(王業) 의 기초를 놓기 시작했지만 아직 완성하지는 못했군요. 그러나 (백성들 이) 피곤하지만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를 위해 패풍 과 용풍 위풍 을 노래하게 하였다. 훌륭하지만, (음조(音調)가) 너무 낮고 둔탁합니다. 우려하지만 곤혹스럽지는 않습니다. 저는 위나라 강숙과 무공의 덕행이 이와 같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위풍 이겠지요! 라고 하였다. 그를 위해 왕풍 을 노래하였다. 좋 습니다. 염려는 되지만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주나라 왕실이 동 천한 이후의 음악일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를 위해 정풍 을 노래 하였다. 좋습니다만, 그것은 너무 번잡해서 백성들이 감당할 수 없습니 다. 이것이 아마도 먼저 멸망했던 원인이겠지요! 라고 하였다. 그를 위 해 제풍 을 노래하였다. 훌륭합니다! 소리가 크니 대국(大國)의 기 풍(氣風)입니다! 동해일대 제후들의 사표가 되었으니 아마도 태공의 나 라일 것입니다! 국운(國運)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를 위해 빈풍 을 노래하였다. 좋습니다. 넓고 큽니다! 즐거워하되 지나 치지 않으니 아마도 주공이 동쪽을 정벌할 때의 음악이겠지요! 라고 하 였다. 그를 위해 진풍 을 노래하였다. 이것을 하성이라고 합니다. 무릇 이런 하성을 만들 수 있으면 기세는 자연히 대단히 클 것이므로 정점에 달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주나라 왕실의 옛 음악일 것입니 다. 라고 하였다. 그를 위해 위풍 을 노래하였다. 훌륭합니다. (음절 이) 경쾌하면서도 날아 흩어지고 크면서도 완곡하고 절박하면서도 (아 득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부드럽고 매끄럽습니다. (만약 아름다운) 덕을 을 것이다 는 의미이다. 멸 자는 없다 는 뜻이다. 161) 관지(觀止): 직역하면 관람하는 것을 그치다 는 것인데, 소소 ( 韶 箾) 가 이미 지극한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것을 더해서 감 상할 것이 없다 는 의미이다.
206 좌전(左傳) 문론역주(이장휘) 201 지닌 사람이 이것을 돕는다면 현명한 군주일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 를 위해 당풍 을 노래하였다. 근심이 너무 깊습니다! 아마도 도당씨 의 유민이 있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생각하는 것이 왜 그토록 깊겠습니 까? 훌륭한 덕의 후손이 아니라면 누가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그를 위해 진풍 을 노래하였다. 나라에 주인이 없는데 설마 오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회풍 이하에 대해서는 평론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를 위해 소아 를 노래하였다. 아름답군요! 근심하지만 (배반하 는) 두 마음은 없고, 애원하지만 직접 말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주나라 의 국운이 이미 쇠락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여전히 선왕의 유민이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를 위해 대아 를 노래 하였다. 넓으면서도 얼마나 조화로운가! 완곡하면서도 (느리지만) 곧은 본체가 있으니 아마도 문왕의 덕행이겠지요! 라고 하였다. 그를 위해 송 을 노래하였다. 지극합니다! 강직(剛直)하면서도 거만하지 않고, 굽히면서도 비굴하지 않으며, 친근히 하면서도 (서로) 해롭게 하지 않 고, 소원하지만 마음을 떠나게 하지는 않았으며, 옮겨가지만 지나치지 않고, 반복해도 싫어하지 않게 하며, 슬프지만 근심하지 않고, 즐거워하 되 지나치지 않으며, 사용하도록 해도 결핍되지 않고, 넓으면서도 드러 내지 않으며, 베풀어도 손해를 보지 않고, 취하여도 탐람(貪婪)하지 않 으며, 거처할지언정 정체(停滯)되지 않고, 행하여도 (나쁜 데로) 흘러가 지 않습니다. 오음은 가락에 맞고, 팔음은 조화를 이루었으며, 리듬에는 일정한 정도가 있고 악기의 (연주에도) 일정한 절차가 있습니다. 음악과 춤에 표현된 것은 (성현의) 훌륭한 품덕(品德)과 일치합니다. 라고 하였 다. 상삭 과 남약 춤 공연을 보고 좋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감이 있어) 유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대무 춤 공연을 보고 좋습니다! 주나라가 성대했을 때의 모습이 아마도 이와 같았을 것입니 다! 라고 하였다. 소호 춤 공연을 보고 성인 같은 큰 (품덕을 표현 하였지만), 여전히 덕을 부끄러워함이 있으므로 성인으로 (세상 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대하 춤 공연을 보고 좋습니다! (백성의 일에) 부지런하지만 자신의 공로라고 여기지 않으니 하(夏)나라
207 202 中國學 第34輯( ) 우임금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공덕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 다. 운삭 춤 공연을 보고 덕이 지극하고 큽니다! 마치 하늘이 덮지 않는 것이 없는 것 같고, 마치 땅이 실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설령 심히 훌륭한 덕이 있다하더라도 아마도 이것에 더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관람하는 것을 그치겠습니다! 만약 다른 음악이 있다하 더라도 저는 감히 청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8] 齊侯至自田162), 晏子侍于遄臺163). 子猶164)馳而造焉165). 公曰: 唯據 與我和166)夫! 晏子對曰: 據亦同也, 焉得為和? 公曰: 和與同異乎? 對曰: 異. 和如羮焉, 水火醯醢鹽梅167)以烹魚肉, 燀168)之以薪. 宰夫和 之169), 齊之以味170), 濟其不及171), 以洩其過172). 君子食之, 以平其心. 162) 제후지자전(齊侯至自田): 제후 는 제나라 경공(景公) 을 가리킨다. 지 는 (제나라 수도인 임치(臨淄)에 되돌아오다 는 의미이고, 자전 은 사냥하던 곳에서 조정으로 돌아오다 는 의미이다. 163) 안자시우천대(晏子侍于遄臺): 안자 는 이름이 영(嬰)이고 자가 중(仲)이 며 시호(諡號)가 평(平)인 제나라 경공의 재상이다. 저서에 안자춘추(晏子春 秋) 가 있는데, 유흠(劉歆)의 칠략(七略) 과 한서 예문지 에는 유가 (儒家)에 들어가 있지만, 오늘날 전하는 안자춘추 는 위탁(僞托)한 것 이 다. 천대 는 제나라의 수도인 임치 부근에 있었던 지명 인데, 오늘날 산동성 임치현의 동쪽에 있다. 164) 자유(子猶): 제나라 대부인 양구거(梁丘據)의 자인데 아래 문장에서 거 라고 일컫는 것은 제나라 경공이 총애하기 때문이다. 165) 치이조언(馳而造焉): 치 자는 수레를 몰고 빨리 달려가서 라는 의미이고, 조 자는 찾아가 뵙다 또는 예방하다 는 뜻이다. 166) 화(和): 의좋다 또는 화목하다 는 의미이다. 167) 혜해염매(醯醢鹽梅): 혜 는 식초 를 가리키고, 해 는 고기나 생선으로 만든 장(醬)인 젓갈 이며, 염 은 소금 이고, 매 는 신맛이 나는 매실 인데, 옛날 사람들은 매실과 젓갈을 조미료로 사용하였다. 168) 천(燀): 밥을 짓다 또는 밥 지을 때 불을 때다 는 의미이다. 169) 재부화지(宰夫和之): 재부 는 반찬을 관장하던 작은 관리 였는데, 이곳에 서는 주방장 을 가리킨다. 화 는 (맛을) 조절하다 또는 (맛을) 맞추다 는 뜻이다. 170) 제지이미(齊之以味): 제 자는 제(劑) 자의 가차로 맛을 적합하게 하다 는 의미이다. 171) 제기불급(濟其不及): 제 는 이로움을 더하다[增益] 는 의미이다. 즉 맛이 없거나 부족하면 조미료를 더하다 는 뜻이다.
208 좌전(左傳) 문론역주(이장휘) 203 君臣亦然. 君所謂可而有否焉, 臣獻其否以成其可. 君所謂否而有可焉, 臣 獻其可以去其否. 是以政平而不干173), 民無爭心. 故 詩 曰: 亦有和羹, 既戒既平. 鬷嘏無言, 時靡有爭174). 先王之濟五味, 和五聲也, 以平其心, 成其政也. 聲亦如味, 一氣175), 二體176), 三類177), 四物178), 五聲, 六 律179), 七音180), 八風, 九歌181), 以相成也. 清濁, 小大, 短長, 疾徐, 哀 172) 이설기과(以洩其過): 설 은 감(減)하다 또는 줄이다 는 의미이다. 즉 맛 이 지나치게 진하면 물을 끼얹어 싱겁게 하다 는 뜻이다. 173) 정평이불간(政平而不干): 정평 은 정치적인 명령이 공정하면서도 평화롭 고 바르다 는 의미이며, 불간 은 정령(政令)이 예제(禮制)를 어기지 않다 또 는 백성으로 하여금 정령을 어기거나 범하지 않게 하다 는 뜻이다. 174) 시 왈: 역유화갱, 기계기평. 종하무언, 시미유쟁( 詩 曰: 亦有和羮, 既 戒既平. 鬷嘏無言, 時靡有爭): 시 는 시경 상송(商頌) 열조(烈祖) 편 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시는 역대로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중종 (中宗)을 제사지내는 음악 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왕(成王)과 탕왕(湯 王)을 제사지내는 시 란 것인데 후자의 설이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화 갱 은 맛있게 잘 배합된 국 이고, 계 는 계(屆) 자와 같아서 이르다 는 뜻 이므로 신령(神靈)이 강림하다 는 의미이다. 평 은 평화롭고 고요하다 는 뜻 이다. 종하 의 종 자는 주(奏) 자와 같고, 하 자는 예기(禮記) 중용 (中庸) 에서 이 시를 인용할 때 주가무언(奏假無言) 으로 표기한 이후 현존 하는 판본에 이르기까지 가(假) 자로 되어 있다. 종하 는 즉 제사지낼 때 (신의 강림을) 기원하는 것 이다. 무언 은 제사지내는 사람이 조용히 기원하 는 것 을 가리킨다. 시미유쟁 은 제사 지낼 때 다투는 시끄러움이 없다 는 의미이다. 안자가 평 자를 맛의 적합함 으로 풀이하였기 때문에 아래 문장 에 이평기심(以平其心) 이 있는 것이고, 종하 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 다 로 해석하였기 때문에 아래 문장에 화오성(和五聲)이 있는 것이다. 이것 이 바로 시를 지어 뜻을 말하다 (賦詩言志)는 것이다. 175) 일기(一氣): 두예는 주석에서 반드시 기로 움직여야 한다. (須氣以動)고 했으므로 공기(空氣) 이다. 176) 이체(二體): 문무(文舞)와 무무(武舞) 를 가리킨다. 옛날에 음악을 연주할 때는 대부분 춤을 추게 하였는데, 문무는 깃[羽]이나 피리[籥]를 쥐고 추도 록 하였고, 무무는 창[戈]과 도끼[戚]를 쥐고 추도록 하였었다. 177) 삼류(三類): 두예는 주석에서 풍 과 아 송 ( 風 雅 頌 )이라고 하였다. 178) 사물(四物): 음악에 사용하는 팔음의 악기인데, 그 사물은 하나가 아니었 기 때문에 잡다한 사방의 사물로 악기를 만들었다. 179) 육률(六律): 황종(黃鐘)과 태주(太簇) 고선(姑洗) 유빈(蕤賓) 이칙(夷則) 무역 (無射) 을 가리킨다. 180) 칠음(七音): 궁(宮)과 상(商) 각(角) 치(徵) 우(羽) 변궁(變宮) 변치(變徵) 를 가리킨다.
209 204 中國學 第34輯( ) 樂, 剛柔, 遲速, 高下, 出入, 周疏, 以相濟也. 君子聽之, 以平其心. 心平徳 和. 故 詩 曰: 徳音不瑕182). 今據不然. 君所謂可, 據亦曰可. 君所謂 否, 據亦曰否. 若以水濟水, 誰能食之? 若琴瑟之專壹183), 誰能聽之? 同之 不可也如是. ( 소공(昭公) 20년) [8] 제나라 경공(景公)이 사냥하던 곳으로부터 (수도 임치(臨淄)로) 돌아 오자, 안자가 천태에서 모시었는데, 양구거는 수레를 몰고 나아가 배알 (拜謁)하였다. 경공이 다만 거(據)만 나와 의좋구나! 라고 하였다. 안자 가 대답하여 거도 같을 뿐이지 어찌 의좋다고 하겠습니까? 라고 하였 다. 제경공이 같은 것과 의좋은 것은 다른가? 라고 하자, 안자가 대답 하여 다릅니다! 의좋은 것은 마치 국을 끓이는 것과 같아서 물과 불 식 초 젓갈 소금 매실로 물고기와 고기를 삶고 땔나무로 그것을 불 때며, 주 방장이 그것을 배합하여 맛을 적합하게 하고, 그 (맛이) 좋지 않으면 (조미료로) 조절하며, 그 (맛이) 지나치면 (조미료를) 줄입니다. 군자가 그러한 국을 먹으면 그 마음을 평안하게 합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임금께서 괜찮다고 하시는 것에도 괜찮지 않은 것이 있 고, 신하가 저 괜찮지 않은 것을 바쳐서 그것이 괜찮도록 하게도 합니 다. 임금께서 괜찮지 않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에도 괜찮은 것이 있으며, 신하가 그 괜찮은 것을 바쳐서 그 괜찮지 않은 것을 제하기도 합니다. 이런 까닭에 정치가 화평하고 (예제(禮制)를) 위반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다투고 빼앗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경 상송(商頌) 열조(烈 181) 구가(九歌): 좌전 문공(文公) 7년에서 구공과 관련된 덕행은 모두 노래할 수 있는데, 구가 라고 한다. 육부와 삼사를 구공이라고 한다. 수와 화 금 목 토 곡을 육부라고 하고, 덕행을 단정히 하고 사용을 이롭게 하며 백성 들을 부유하게 하는 것을 삼사라고 한다. (九功之徳皆可歌也, 謂之 九歌. 六府三事, 謂之九功. 水 火 金 木 土 榖, 謂之六府; 正徳 利用 厚生, 謂之三事) 고 하였다. 182) 덕음불하(徳音不瑕): 이 구절은 시경 빈풍(豳風) 낭발(狼跋) 편 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곳의 덕음 에 대해 정준영(程俊英)은 도문본시경역주(圖 文本詩經譯注) 에서 인품과 덕성 및 명예 (品德名譽)라고 하였다. 하 는 하자(瑕疵) 라는 의미이다. 183) 전일(專壹): 단일(單一) 또는 하나 라는 뜻이다.
210 좌전(左傳) 문론역주(이장휘) 205 祖) 편에서 또 알맞게 배합된 국이 있음은, 이미 주방장에게 오미(五 味)를 잘 조절토록 훈계하였기 때문이라네. 신령(神靈) 강림하여 지적 하지 않으므로, 모두들 (마음은 평화롭고 기운은 조화를 이루어) 다투지 않네.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선왕께서 오미를 잘 배합하고 오성을 조화 롭게 하여 그의 마음을 평화롭고 고요하게 한 것은 그의 정사(政事)를 완성하였기 때문입니다. 소리도 맛과 같아서 일기(一氣)로 말미암아 이 체(二體)와 삼류(三類) 사물(四物) 오성(五聲) 육율(六律) 칠음(七音) 팔풍 (八風) 구가(九歌)를 서로 이룹니다. 청탁(清濁)으로 말미암아 소대(小大) 와 단장(短長) 질서(疾徐) 애락(哀樂) 강유(剛柔) 지속(遲速) 고하(高下) 출입 (出入) 주소(周疏)를 서로 조절하는 것입니다. 군자가 그것을 들으면 그 의 마음을 평화롭고 고요하게 합니다. 마음이 평화롭고 고요하면 덕행 은 곧 조화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시경 빈풍(豳風) 낭발(狼跋) 편 에서 인품과 덕행 및 명예는 하자(瑕疵)가 없는가? 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거는 그렇지 않습니다. 임금께서 괜찮다고 말하면 거도 괜찮다고 합니다. 임금께서 아니라고 말하시면 거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약 물로 물을 조절하면 누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금과 슬이 오로지 하나의 소리만 낸다면 누가 그것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같은 것이 할 수 없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3. 맺는말 이상에서 선역(選譯)한 몇 단락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점 에서 의미가 있지 싶다. 좌전 은 춘추시기의 역사적인 사건을 기술 하였지만, 또한 당시 사람들의 창작에 대한 인식도 일부이긴 하지만 기 술하고 있다. 만약 시경 에서 중국 최초로 시가 창작에 관한 관념이 출현했다고 한다면, 시경 을 수용한 관념은 좌전 에 가장 먼저 기록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좌전 에 일부 창작 관념 들, 예를 들면 부(賦) 가 그 중의 하나인데, 이시기의 의미는 작품을 짓다 [造編]는 것이다. 후세에는 줄곧 창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동사로 사용되었지만, 부 의 또 다른 의미는 옛 것을 읊조리다 (誦古)는 것이 므로 실질적으로는 시경 에 대한 수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
211 206 中國學 第34輯( ) 실 수용하는 특징은 시를 지을 때 단장취의(斷章取義)하는 것처럼 내 가 구하는 것을 취하는 것 (賦詩斷章, 余取所求焉)이므로 기존의 옛 사 람들 작품을 인용해서 외교사령이나 변설의 논거로 삼고 또 자신의 견 해를 완곡하게 진술하기도 하였다. 조최가 극곡을 진나라 군대의 원수 로 삼도록 추천하는 말을 통해 예와 악을 좋아하고 시 와 서 를 중시한 것 (説禮樂而敦 詩 書 )은 문신(文臣)뿐만 아니라 무인(武 人) 장수에게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가 있다. 시 와 서 는 도의 의 부고(府庫)이다. ( 詩 書, 義之府)라고 한 것을 보면 이미 학 문의 근원이 되어서 시경 을 인용해서 시 를 지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이 짓거나 인용한 시를 알아들을 수 없으며,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상대방으로부터 비웃음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숙손목자(叔孫穆子)의 삼불후(三不朽) 론은 일종의 인생 가치체계가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창작이나 작문이 그때부터 이미 하나의 중요한 가치형태가 되어 명확한 자리매김이 되었음을 표명한 것이다. 비록 입 언(立言) 을 마지막에 언급했다고 해서 당시 사람들이 작문이나 창작을 충분히 중시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정치와 도덕을 더욱더 중요 한 것으로 여긴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춘추시대 사람들이 정치적인 왕래에서 시경 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용했는지를 좌전 에 기록한 것은 아마도 당시 시경 이 그 시기 에 유전(流傳)된 상황을 생동적으로 반영한 예들일 것이다. 예를 들어 안자는 시경 빈풍 낭발 편에서 인품과 덕행 및 명예는 하자(瑕 疵)가 없는가? 라는 시 구절을 인용해서 마음이 평화롭고 덕이 조화를 이룬 연후에야 음악은 진선진미(盡善盡美)한 이치가 될 수 있음을 설명 하였다. 그는 본래 시경 시 구절의 의미대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시 구절에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견이나 주장을 부연해 내었다. 이 부시언지(賦詩言志) 적 해석방식은 시경 이 사회적 교제 기능을 갖 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가 논어 계씨(季氏) 편에서 시를 배 우지 않으면 더불어 말할 수 없다 (不學詩, 無以言)라고 했을 것이다. 공자가 시를 논하기에 앞서 좌전 에 실려 있는 계찰(季札)이 음악 연주를 관람하고 인상(印象)비평적으로 내린 문예비평에 관한 부분은 현존하는 자료가운데 가장 완전한 문예비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12 좌전(左傳) 문론역주(이장휘) 207 당시 사람들은 음악을 수용하면서 점차 어느 정도 심미의식도 형성되었 을 것이므로 계찰이 관악(觀樂) 에 대해 내린 평론은 사실 음악과 시경 에 대한 평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연호(淵乎) 나 앙앙호(泱泱乎) 탕호(蕩乎) 광재(廣哉) 희희호(熙熙乎) 같은 묘사 는 계찰 심중의 숭고한 심미의식을 반영한 것이고, 대이완(大而婉) 과 낙이불음(樂而不淫) 애이불상(哀而不傷) 원이불언(怨而不言) 같은 말들은 당시 이미 형성된 중화(中和) 적 심미관을 드러낸 것이다. 이 중화 적 심미관은 후대 유가의 시교(詩敎)인 온유돈후(溫柔敦厚) 의 기초가 되었고, 수천 년 중국 시학비평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안자의 화동지변(和同之辨) 에 관한 것 또한 문학예술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중화 적 심미원칙을 체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參考文獻] 杜 預, 春秋經傳集解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1998) 楊伯峻, 春秋左傳注 修訂本 (北京: 中華書局, 1990) 楊伯峻 徐提 編, 春秋左傳詞典 (北京: 中華書局, 1985) 沈玉成, 左傳譯文 (北京: 中華書局, 2001) 陳克炯, 文白對照十三經-左傳注譯 (廣州: 廣東敎育出版社 1995) 李維琦 外 5人, 十三經今注今譯-左傳 (長沙: 岳麓書社, 1994) 王守謙 外 2人, 左傳全譯 (貴陽: 貴州人民出版社, 1990) 程俊英, 圖文本詩經譯注 上下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2006) 陳良運 編, 中國歷代詩學論著選 (南昌: 百花洲文藝出版社, 1995) 張少康 盧永璘, 先秦兩漢文論選 (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96) 諶兆麟, 中國古代文論槪要 (長沙: 湖南文藝出版社, 1991) 楊明 羊列榮, 中國歷代文論選新編 先秦至唐五代卷 (上海: 上海敎育出 版社, 2007) <中文提要> 左传 是一部涉及大约250多年的春秋时代历史的中国最初的完备的
213 208 中國學 第34輯( ) 编年体历史书 具体记述了春秋时代各国的政治与军事 外交等重大历史事 件 整体的思想倾向则接近于儒家, 故强调了阶级秩序与宗法伦理 从当今 的文学理论观点察看 左传, 则难寻以主要范畴议论的内容 左传 的 编书年代迟于 春秋, 但登载的内容先于孔子时代, 故通过 左传 可以 知道孔子和先秦诸子的文论思想产生的背景 尤其偏重 诗经 与政治的关 系, 阐明 赋诗言志, 生动地反映了春秋时期政治交往当中对 诗经 的具体 运用 本文选译了在 左传 接受 诗经 的 赋 的意义变化和因对 赋诗断 章 的实用主义态度而唤起的文学作品的思想及作品的关系 叔孙穆子的 三 不休 论 生动反映春秋时期政治交往中对 诗经 具体运用的一些例子 孔子论诗之前季札观赏音乐演奏而谈及的有关文学批评的理论 有关晏子的 和同之辨 之事 这对理解先秦时期文艺理论方面提供了珍贵的资料 关键词: 春秋, 左传, 诗经 接受, 具体运用, 文學论, 翻译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214 中國學 第34輯( ) pp.209~250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 류영표** 목 차 (1. 北宋의 使遼詩 개황) (2. 蘇頌의 出使와 文集의 版本 및 기존의 연구) 3. 前使遼詩 30수 注釋 4. 路程에 따른 前使遼詩의 再編次 5. 기존 해설과의 주요 차이점 3. 前使遼詩 30수 注釋57) 12) 過摘星嶺 (적성령을 지나며) 路無斥堠惟看日, 길에는 초소와 이정표도 없어 오직 태양만 바라보고, 嶺近雲霄可摘星. 산고개는 구름과 하늘에 가까워 별이라도 따겠다. 握節偶來觀國俗, 부절 움켜쥐고 뜻밖에 와서 이 나라 풍속 살피니, 漢家恩厚一方寧. 한나라 은혜 두터워 이역 땅 평안하다. ① 시제 摘星嶺: 賈敬顔은 摘星嶺은 辭鄕嶺 思鄕嶺 得勝嶺 등의 여러 명칭 으로 불리었으며, 지금의 大十八盤梁을 가리킨다고 했다.58) 시화 는 * 이 논문은 2009학년도 경성대학교 학술연구비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 경성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57) <前使遼詩> 제1수에서 제11수까지는 中國學 第33輯에 <蘇頌 前使遼詩 注釋>(Ⅰ)로 발표함. 각주의 일련번호도 이에 따른 것임. 58) 路振, 乘軺錄 : 五十里過大山, 名摘星嶺, 高五里, 又謂之辭鄕嶺. 및 王
215 210 中國學 第34輯( ) 摘星嶺이 현 하북성 承德市 灤平縣의 동북과 隆化縣의 서남쪽에 있다고 했다. 이 摘星嶺은 古北口와 소송의 後使遼詩에 출현하는 新館의 사이 에 위치한다. 따라서 이 시는 여덟 번째 시 和仲巽山行 바로 뒤에 편차되어야 한다. ② 제1구 斥堠: 斥 은 探測 偵察, 곧 살피다 라는 의미이고, 堠 는 정찰용 흙 보루 또는 이정표 ( 한어대사전 )를 뜻한다. 한어대사 전 은 斥堠 를 [ⅰ) 정찰하다.(偵察 候望.) ⅱ) 정찰하는 사람.(偵察 候望的人). ⅲ) 적정을 살피는 흙으로 만든 보루.(以瞭望敵情的土堡.)] 등의 의미로 풀이했다. 그러나 이 시의 제1구의 표현과 王曾의 上契 丹事 의 金溝淀59)으로부터 산길로 들어서니, 구불구불하고 오르락내 리락하여, 더 이상 이정표가 없었으며, 단지 말을 타고간 거리로 시간을 기록하여 그 이수를 짐작했다. (自此入山, 詰曲登陟, 無復里堠, 但以馬行 記日景而約其里數.)60)의 기록을 비교할 때, 이 시의 斥 과 堠 는 각각 정찰 과 里堠 를 뜻하는 말이며, 정찰을 위한 초소와 이정표를 함께 가리킨다. 시화 가 指沿途按一定距離所設之哨站. 이라고 풀이한 것 도 詩意와 통한다. ③ 제3구 偶來: 문연각본과 청초본 그리고 시화 는 偶來 로, 그리고 중 曾, 上契丹事 : 又度德勝嶺, 盤道數層, 俗名思鄕嶺. 의 疏證 참조(賈 敬顔, 앞의 책, 56-57쪽 및 94쪽). 단 賈敬顔은 摘星嶺의 현 명칭을 57쪽에 서는 大十八盤嶺 이라 했고, 94쪽에서는 大十八盤梁 이라 표기했다. 지도를 검색하면 河北省의 十八盤嶺 은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張家口市 涿鹿縣에 있고, 다른 한 곳은 秦皇島市 靑龍滿族自治縣에 있지만, 이 두 곳은 모두 사 행의 노정과는 관련 없는 곳이다. 十八盤梁 은 承德市 灤平縣에 있다. 따라 서 57쪽의 大十八盤嶺 은 명백한 誤記이다. 인터넷 자료 ( Show.asp?ArticleID=1606) 中國輕展-走 進白溝 의 摘星嶺即今灤平縣平坊鄕境内的大十八盤梁, 山梁上古道盤旋, 九曲 十八彎. 에도 大十八盤梁 이라 표기되어 있다. 59) 金溝淀은 金溝館 부근의 半濕地의 명칭. 金溝館은 金勾莊 또는 金勾屯이라 불리었는데, 지금은 密雲 저수지에 수몰되어버렸다. 沈括의 熙寧使契丹圖 抄 (賈敬顔, 앞의 책, 140~141쪽): 金溝館, 西南距檀州五十里, 自館少東北 行, 乍原乍隰, 三十餘里至中頓. 참조. 60) 賈敬顔, 앞의 책, 92~93쪽.
216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11 화서국본은 偶求 로 표기했다(중화서국본은 표기상의 차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偶求 로는 뜻이 잘 통하지 않는다. 아마도 (蘇廷玉의 刊本 및) 중화서국본의 편찬자들은 글자 모양이 비슷하여 來 를 求 로 잘못 읽은 듯하다. 13) 和晨發柳河館憩長源郵舍 ( 새벽에 유하관을 출발하여 장원의 역참에서 쉬다 에 화답하며) 君逢嘉景思如泉, 그대는 좋은 경치 맞아 詩想이 샘솟는데, 欲和慚無筆似椽. 화답하려니 부끄럽게도 서까래 같은 큰 붓이 없소. 山谷水多流乳石, 산골짜기엔 물이 많아 뿌연 바위 위로 흐르는데, 旃裘人鮮佩純綿. 가죽옷 입은 사람 드물고 순면의 복장을 하고 있다. 服章幾類南冠繫, 차림새는 거의 남방의 관을 쓴 중원사람과 비슷하니, 星土難分列宿纏. 강역은 구분하기 어렵고 별자리는 뒤엉키었다. 安得華風變殊俗, 어찌하면 중화의 風氣로 오랑캐에 물든 습속 변화시킬까? 免敎辛有歎伊川. 신유가 이천에서 탄식하지 아니하도록. ① 시제 이 시는 문연각본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柳河館: 賈敬顔은 유하는 현 伊遜河이며 유하관은 紅旗村(承 德市 灤平縣)이라고 설명했다.61) 長源郵舍: 郵舍 는 역참 을 뜻한다. 賈敬顔은 柳河館에서 打造 部落館으로 가는 길목의 중간휴식처( 中頓 )일 것이라고 추정했다.62) ② 제2구 筆似椽: 서까래만큼 큰 붓. 晉書 王珣傳 의 왕순은 어떤 사람 이 그에게 서까래처럼 커다란 붓을 주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 주 61) 沈括, 熙寧使契丹圖抄 : 三十五里至柳河館 의 疏證 (賈敬顔, 앞의 책, 145쪽) 참조. 62) 沈括, 熙寧使契丹圖抄 : 柳河館, 西距臥如館七十里. 自館循山行十里, 下 俯大川, 曰柳河, 乃北二十餘里, 至中頓. 過頓, 逾度雲嶺. 三十五里至打造館. 의 疏證 : 案: 此中頓當卽長源郵舍. (賈敬顔, 앞의 책, 145~146쪽) 참조.
217 212 中國學 第34輯( ) 위 사람에게 이는 응당 조정의 중요 문서를 작성하리라는 조짐일세. 라 고 말했다. 얼마 후 (東晉의) 孝武帝가 사망하자 哀冊과 시호의 논의에 관한 문장을 모두 왕순이 기초했다. (珣夢人以大筆如椽與之, 既覺, 語人 曰: 此當有大手筆事. 俄而帝崩, 哀冊諡議, 皆珣所草.)라는 고사를 인용 한 것이다. 椽筆 은 대문필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③ 제3-4구 乳石: 사전적인 의미는 石鐘乳, 곧 종유석을 뜻한다. 종유석은 鐘 乳洞의 천장에 고드름같이 달려 있는 석회암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시 구는 종유동이 아니라 산개울의 바위를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서의 乳石 은 석회가 허옇게 끼어있는 바위 를 뜻한다. 佩純綿: 이 시의 말미에 부기된 소송의 原注를 참조하면, 이 시구 는 燕薊 지방에서 잡혀온 漢人들이 거란족이나 奚族의 가죽옷이 아니라 漢族의 순면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청초본은 純綿 을 純錦 으로 오기했다. 純錦 으로는 뜻이 통하지 않을 뿐더러 더욱이 錦 은 韻脚에서 벗어난 글자이다. ④ 제5-6구 南冠: 南冠 은 春秋 시기 남방, 곧 楚나라의 관이다. 左傳 成公 九年 의 晉侯가 무기고를 시찰하다가 鍾儀를 발견하고 묻기를 남쪽 관을 쓰고 잡혀있는 저 사람은 누구인가? 담당관이 말하기를 정나라 사람이 바친 초나라 죄수입니다. (晉侯觀于軍府, 見鍾儀, 問之曰: 南冠 而縶者, 誰也? 有司對曰: 鄭人所獻楚囚也. )에서 유래한 말이다. 여기 서는 남쪽인 燕薊지방에서 포로로 잡혀온 漢人들이 쓰고 있는 두건을 뜻한다. 시화 는 此指滯留契丹的漢人仍稍有保留原來的服飾. 이라고 해설했다. 繫: 끈으로 묶다 또는 구금하다 의 뜻이다. 청초본은 系 로 표기했는데, 이 系 는 繫 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좌전 의 원문에는 繫 가 아니라 縶 으로 표기되어 있다. 繫(독음: 계) 와 縶(독음: 집) 은 다 같이 매다. 묶다. 가두다. 구금하다 의 뜻 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통하는 글자이지만, 좌전 에 의거하여 縶 으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문연각본이나 중화서 국본의 관련 편찬자들은 抄錄을 할 때 두 글자의 형체가 비슷하므로,
218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13 誤記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시화 는 좌전 의 관련 기록을 인 용할 때 縶 을 系, 즉 繫 로 잘못 표기했다. 星土: 예전에는 산천의 정기가 하늘의 星宿와 상응하며, 二十八星 宿는 九州의 지역 또는 제후의 封域으로 나뉘어 각각을 주재한다고 생 각했다. 이렇게 성수에 의하여 구분되는 지역이나 봉역을 星土라고 한 다. 纏: 糾纏, 곧 뒤엉키다 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청초본은 纏 을 躔 으로 표기했다. 躔 은 日月星辰이 黃道를 운행한다는 의미이다. 주석 은 纏은 곧 주위를 돌다 라는 뜻이다. 하늘의 성수처럼 나라 의 경계를 구분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하늘을 돌며 운행한다는 의미이 다. (纏: 卽圍繞. 意卽像天上的星宿那樣, 不分國界的不斷圍繞運轉.)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청초본과 주석 의 풀이로는 詩意가 잘 통하지 않 는다고 생각된다. 이역만리 요나라 땅에서 두발 양식은 현지화 되고 옷 차림새만 중원의 유풍을 보존하고 있는 漢人들을 마주쳤으니, 이는 중 원과 요나라의 서로 다른 星土 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은 탓이고, 列 宿 가 제자리를 올바로 주재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강역을 구분하 기 어렵고 별자리가 엉키었다 고 표현한 것이다. ⑤ 제8구 소송의 原注: 거란에는 燕薊에서 사로잡아온 사람이 많은데, 그 들은 거란 땅에서 여러 인종과 섞여 살면서, 모두 정수리를 빡빡 밀어 버리고 나머지 머리카락은 아래로 늘어뜨려서 현지 풍속을 따르고 있었 다. 오직 두건과 윗도리만 조금 달라, 그것으로 오랑캐와 漢人이 구분될 따름이었다. (敵中多掠燕 薊之人, 雜居番界, 皆削頂垂髮, 以從其俗. 惟巾 衫稍異, 以別番 漢耳.) 참조. 청초본은 皆削頂垂髮 을 皆明削頂垂髮 이 라 표기했는데, 여기서의 明 은 衍字이다. 辛有와 伊川: 辛有는 周나라의 大夫이고, 伊川은 현 河南省 洛陽 을 가로질러 흐르는 伊河 가운데 伊川縣을 흐르는 부분을 가리킨다. 제 8구는 左傳 僖公二十二年 의 애초 평왕이 낙양으로 동천하고, 신유 가 이천에 갔을 때, 머리를 풀어헤치고 들에서 제사 지내는 사람을 보 며 말하기를 백년이 못 미쳐 이곳 사람들은 오랑캐가 되겠구나. 이곳의 예가 먼저 망하는구나. (初, 平王之東遷也, 辛有適伊川, 見披髮而祭于野
219 214 中國學 第34輯( ) 者, 曰: 不及百年, 此其戎乎! 其禮先亡矣. )의 고사를 이용한 것이다. 시화 는 이 고사에 대하여 後用作感歎中原禮儀消亡 政權衰微的典 故. 라고 해설했다. 14) 和宿牛山館 ( 우산관에서 묵다 에 화답하며) 山深孤館迥, 산은 깊고 외로운 관사는 멀며, 部落不成城. 부락은 고을을 이루지는 못했다. 夜永人無寐, 밤은 길고 사람은 잠들지 못하는데, 冬温氣自清. 겨울은 따뜻하여 일기는 맑다. 夷音通夏楚, 오랑캐 언어는 중원과 통하고, 漢地接平營. 옛 한나라 땅은 平州 營州와 닿아있다. 恩信今無外, 은혜와 신의가 이제는 외국에까지 미치니, 戎庭肯背盟. 거란 조정이 어찌 맹약을 어기랴? ① 시제 牛山館: 賈敬顔은 현 承德縣 蒼子 동남의 北溝 일대라고 해설했 고,63) 孫冬虎는 承德縣 正北 36km 지점의 岔溝村 부근이라고 설명했 다.64) ② 제5-6구 夷音: 이민족의 언어. 문연각본은 夷音 을 邊方 이라 표기했다. 중화서국본의 校記 에도 이 사실이 밝혀져 있다. 청초본의 표기는 중화서국본과 같다. 邊方 은 요나라를 가리킨다. 漢地: 牛山館이 위치해 있던 현 承德市 일대는 西漢의 右北平郡에 속했으므로( 漢書 권28下 地理志 ) 漢地 라 표현한 것이다. 平營: 平州와 營州를 가리킨다. 요사 (권40) 地理志 南京道 63) 王曾, 上契丹事 : 東南行, 五十里至牛山館 의 疏證 (賈敬顔, 앞의 책, 99쪽): 牛山館, 在今六溝西北 三溝以南, 今蒼子東南北溝一帶. 참조. 단 蒼 子 는 倉子 의 誤記인 듯하다. 인터넷 搜狗의 地圖搜索 및 Mapbar.com에는 河北省 承德市의 蒼子 라는 지명이 검색되지 않지만, 倉子 는 여러 곳이 검색된다. 64) 孫冬虎, 宋使遼境經行道路的地理和地名學考察 ( 中國歷史地理論叢 19:4, 2004) 26쪽 참조.
220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15 에 의하면, 南京道는 南京 析津府와 平州의 둘로 나뉘는데, 平州에는 屬 州 둘(곧 灤州와 營州)과 屬縣 셋이 있었다. 灤州의 屬縣은 셋이고, 營 州의 속현은 하나이다. 平州는 秦 漢 때는 遼西郡과 右北平郡에 속했고, 隋나라 때 平州로 개명되었다가 唐 天寶 원년에 다시 北平郡으로 이름 이 바뀌었으며, 後唐 때 平州로 재차 이름이 바뀌었고, 遼 太祖 天贊2 년(923)에 요나라에 정복되었다.65) 이 平州는 현 하북성 秦皇島市 盧龍 縣이고, 營州는 현 秦皇島市 昌黎縣이다. 賈敬顔은 제5-6구를 우산관 지역이 평주 영주와 접해 있어 언어가 서로 통한다. (地與營 平二州相接 而互通言語也.)라고 풀이했다.66) ③ 제7-8구 無外: 고대의 제왕들은 천하를 하나의 집안으로 삼았다는 점을 의미한다 (謂古代帝王以天下爲一家) 또는 무궁하여 포괄하지 않는 것 이 없다 (無窮, 無所不包. 한어대사전 )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송나라 의 은혜가 요나라에까지 두루 미친다는 의미이다. 戎庭: 문연각본은 邊庭 이라 표기했다. 邊庭 은 戎庭 과 동일 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청초본의 표기는 중화서국본과 같다. 肯: 反問을 표시하는 부사로 사용되었으며, 豈 의 뜻과 같다( 한 어대사전 ). 15) 又七絶 (다시 화답하여 지은 칠언절구) 孤村四望百重山, 외로운 촌락에선 둘러보아도 백 겹의 산 뿐, 使節相陪北度關. 사절들은 서로를 도우며 북으로 관문을 넘는다. 休歎光陰懷往昔, 지난날을 그리며 흘러가는 세월을 한탄치 마시라, 且看巖石自斕斑. 햇살에 저절로 반짝이는 암석을 바라보시라. 이 시는 상대방이 지은 宿牛山館 에 詩體를 바꾸어 다시 화답 65) 遼史 地理志 南京道 : 平州, 商爲孤竹國, 春秋山戎國. 秦爲遼西 右北平 二郡地, 漢因之. 漢末, 公孫度據有, 傳子康 孫淵, 入魏. 隋開皇中改平州, 大業初 復爲郡. 唐武德初改州, 天寶元年仍北平郡. 後唐復爲平州. 太祖天贊二年取之. 참조. 66) 沈括, 熙寧使契丹圖抄 : 有大山曰牛山 의 疏證 참조(賈敬顔, 앞의 책, 148쪽).
221 216 中國學 第34輯( ) 하여 지은 것이다. 16) 和題會仙石 ( 회선석에 부치다 에 화답하며) 雙石層稜倚翠巔, 한 쌍의 바위 높이 솟아 푸른 산마루에 기대었는데, 相傳嘗此會群仙. 예전 이곳에서 여러 신선이 모였다 한다. 繫風捕影誰能問, 구름 잡는 그 이야기 누구에게 물어볼 수 있으랴만, 空見遺踪尚巋然. 신선의 자취만 오히려 우뚝하게 남아있구나. ① 시제 이 시는 시화 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會仙石: 沈括은 打造館은 서쪽으로 柳河와 70 리 거리의 조금 북 쪽에 있다. 타조관으로부터 서남쪽으로 10리 남짓 가면 중간 휴식처에 이르는데, 휴식처의 서남쪽에 큰 산이 있고, 그 위에는 세워놓은 듯한 바위가 있는데, 바라보면 마치 사람과 같으니, 그 이름을 會仙石이라 한 다. 산 아래로는 큰 개울에 물이 흐르고, 개울 사이에 바위가 있어서 우 뚝하니 산과 마주하는데, 그 바위 위에 館驛을 세워놓았다. 바위 옆으로 는 무성한 나무가 있고, 아래로는 여울지며, 큰 산과 대치하고 있다. 큰 산의 서쪽에는 단애가 있으니, 단애는 위로 수백 척이나 솟아있고, 병풍 처럼 곧게 뻗어 있으며, 콸콸 소리 나는 개울물이 그 아래로 부딪친다. 사신들이 이곳을 지나면, (요나라 측은) 반드시 그 바위 위에 술자리를 마련하는데, 마침내 관례가 되었다. (휴식처를 지나 25리를 가서, 남행 하면 우산관에 닿는다.) 67)라고 설명했다. 회선석 또는 會仙館을 읊은 使遼詩人 및 작품으로는 蘇頌의 이 시 외에도 王珪의 會仙石 ( 華 陽集 권4), 蘇轍의 會仙館二絶句 ( 欒城集 권16), 彭汝礪의 雪 後會仙洞 ( 鄱陽集 권9) 등이 있다. 賈敬顔은 회선석은 于家店 東溝 (河北省 隆化縣) 서남쪽에 있으며, 현지인들은 雙石人 이라 부른다고 67) 沈括, 熙寧使契丹圖抄 : 打造館, 西去柳河七十里少北. 自館西南行十里餘 至中頓, 頓之西南有大山, 上有建石, 望之如人, 曰會仙石. 山下大川流水, 川間有 石, 屹然對山, 乃築館其上, 旁有茂木, 下湍水, 對峙大山. 大山之西有斷崖, 上聳 數百尺, 挺擢如屛, 而鳴泉漱其下. 使人過此, 必置酒其上, 遂以爲常. (過頓二十 五里, 南行至牛山館.) (賈敬顔, 앞의 책, 146~147쪽)
222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17 했다.68) 회선석은 柳河館과 打造館을 지나서 牛山館에 닿기 전에 위치한다 (牛山館 다음의 館驛은 鹿峽館, 곧 鹿兒館이다). 따라서 行程上 소송의 이 시는 응당 9번째 和仲巽過度雲嶺 의 뒤, 그리고 14번째 和宿牛 山館 및 15번째 又七絶 의 앞에 편차되어야 한다. ② 제1구 層稜: 層 은 높다 는 뜻. 稜 은 모서리 를 뜻하지만, 돌출되 다 의 뜻으로 확대해석 될 수 있다. ③ 제3구 繫: 청초본은 系 로 표기했다. 이 系 는 繫 의 의미로 쓰인 것 이다. 17) 和宿鹿兒館 ( 녹아관에서 묵다 에 화답하며) 朔人射獵取麑麛, 오랑캐는 사냥 가서 사슴새끼 잡아오는데, 夭䴠仁心所不為. 어린 사슴 잡는 것은 어진 마음에선 하지 않는 일이다. 鳴角秋山少閒日, 뿔나팔 소리 울리는 가을사냥터는 한가한 날 적은데, 標名郵館客慵窺. 역참에 이름 써 붙여놓고 손님은 게을리 구경한다. ① 시제 鹿兒館: 鹿兒峽館 또는 鹿峽館이라고도 한다. 賈敬顔은 (承德縣 甲 山 동북의) 甲山梁이라고 설명했다.69) ② 제1-2구 朔人: 문연각본은 邊城 이라 표기했다. 중화서국본의 校記 에 도 이 사실이 밝혀져 있다. 청초본과 시화 는 胡人 이라 표기했다. 麑麛: 麑(독음: 예)와 麛(독음: 미)는 모두 사슴의 새끼 를 뜻한다 ( 한어대사전 ). 夭䴠: 夭 는 동식물의 갓 태어난 것을 뜻하고, 䴠(독음: 오) 는 68) 賈敬顔, 앞의 책 147~148쪽. 69) 賈敬顔, 앞의 책, 151쪽.
223 218 中國學 第34輯( ) 幼麋, 곧 고라니 새끼 를 뜻한다( 한어대사전 ). 夭䴠 는 문연각 본과 청초본의 표기이다. 중화서국본과 시화 는 天䴠 라고 오기했 다. 그러나 天䴠 로는 뜻이 통하지 않는다. 시화 는 淮南子 (권 9) 主術 의 기록: 그러므로 선왕의 법도는, 사냥을 해도 무리를 죄 다 잡지는 아니하고, 어린 짐승을 포획하지 아니한다. (故先王之法, 畋 不掩群, 不取麛夭.)를 인용하면서 夭는 곧 䴠이고, 사슴의 새끼이다. 또 일반적으로 어린 짐승을 가리킨다. (夭, 卽䴠, 麋子, 亦泛指幼獸.)라고 해설했다. 곧 시화 는 수록 시의 원문에서는 天 이라 표기하고, 注 에서는 夭 라고 표기한 것이다. ③ 제3-4구 秋山: 요나라 황제의 가을 사냥터, 곧 秋捺鉢이 있는 곳을 가리키 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인 거란족의 가을 사냥터를 의미한다. 소송이 이 시를 지었을 당시에는 鹿兒館에 묵고 있었는데, 이 鹿兒館은 소송의 최 종 목적지인 廣平淀은 말할 것도 없고, 주요 중간기착지인 中京보다도 4일 이전의 노정에 위치한 館驛이어서 아직 요나라 황제를 만나지 않았 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화 는 秋山 을 가을에 산간에서 사냥을 하 다. (秋天行獵于山間)로 풀이하고, 傅樂煥의 다음과 같은 논증을 예시했 다. (괄호 안의 문장은 필자가 보충한 것이다.) 傅樂煥, 遼代四時捺鉢考五篇 : 요나라 황제는 매년 봄과 가을에 반드시 어느 물가 어느 산으로 달려가 사냥을 했는데, 봄철 사냥하는 물가를 春水라고 했고, 가을철 사냥하는 산을 秋山이라고 했다. (봄 사냥의 가장 중요 지점은 長春州의 魚兒濼이고, 秋山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慶州 서쪽 경내의 여러 산이었다.) 처음에 春水와 秋山의 명칭 은 혹은 오로지 (이 두 곳을) 가리켰지만, 뒤이어 이것들로 모든 봄가 을의 수렵 장소를 널리 일컫게 되었으며, 마지막에는 거의 봄 사냥과 가을 사냥의 대명사가 되었다. (遼主每年春秋兩季必趨某水某山行獵, 乃名春獵之水爲春水, 秋獵之山爲秋山. (春獵最要地在長春州之魚兒濼, 秋山最要地在慶州西境諸山.) 最初春水秋山之稱或專指(此兩地), 嗣則以 之泛稱一切春秋狩獵地點, 最後則幾成爲春獵秋獵之代名詞.)70) 70) 傅樂煥, 앞의 책, 62쪽.
224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19 閒: 閒 (독음: 한. xia n)은 문연각본의 표기이다. 청초본은 閑 으 로 표기하여 문연각본과 동일하지만, 중화서국본은 間 으로 표기했다. 주석 은 間 으로 표기하고, 間日: 卽閑日 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間 은 閑 의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다. 중화서국본의 표기가 올바른 것이라면, 間日 은 하루를 건너뛰다 또는 하루를 거르다 라는 의미 로 새겨야 한다. 그럴 경우 제3구는 뿔나팔 소리가 가을 사냥터에서 하루라도 거를 날 없이 연일 이어진다. 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閒(閑) 이건 間 이건 모두 시구 자체로서의 의미는 통하지만, 전체적 으로는 閒(閑) 이 더욱 자연스럽다.71) 標名과 客: 標名 은 題名하다 는 뜻( 한어대사전 )이다. 客 은 아마도 張宗益을 가리키는 듯하다. 제4구는 장종익이 宿鹿兒館 시를 써서 녹아관의 벽에 붙여 놓고 거란인의 사냥을 느긋하게 구경하 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18) 和冬至紫蒙館書事 ( 동짓날 자몽관에서의 일을 기록하다 에 화답하며) 泰畤迎長日, 태치에서는 길어지는 해를 맞이하리니, 殊方展慶杯. 이역에서 경하의 술자리를 편다. 關山厭沙磧, 먼 변경에서 모래에 싫증나, 星斗望昭囘. 북두칠성이 밝게 하늘 도는 모습을 바라본다. 月共寒更永, 달은 차가운 밤과 함께 길고, 風隨協氣來. 바람은 부드러운 기운 따라 불어온다. 欲知王曆正, 우리 왕조의 역법이 옳다는 걸 알고자 하는가? 候律應孳荄. 절기는 풀뿌리의 자라남과 호응하는 법이오. 71) 平聲 閒(閑) 이건 또는 仄聲 間 이건 제3구의 평측은 모두 律詩의 격률과 부합한다. 표기가 閒(閑) 이면 제3구의 평측은 평측평평측평측 이 된다. 평평측평측 의 형식은 唐詩에서도 合律하다고 인정받은 이른바 拗句이며, 王力에 의하면 宋詩에서는 唐詩에서보다 더욱 빈번히 사용되었다(王力, 앞의 책, 103쪽). (이 시는 近體七言絶句이다. 韻脚은 平聲 齊韻인 麛, 平聲 支韻인 爲와 窺인데, 首句에 韻을 넣을 경우에 以齊襯支, 곧 齊韻을 支韻 에 짝 지울 수 있다. 王力의 같은 책, 60쪽 참조.) 표기가 間 이면 제3구의 평측은 평측평평측측측 이 되는데, 여기서의 下三仄은 율시에서 허용되는 격식이다.
225 220 中國學 第34輯( ) ① 시제 紫蒙館: 紫蒙館은 이 시의 뒤에 출현하는 就日館 神水館 土河館 등 과 함께 路振의 乘軺錄, 王曾의 上契丹事, 宋綬의 契丹風 俗, 沈括의 熙寧使契丹圖抄 등에 모두 기재되어 있지 않은 관역 의 명칭이다. 시화 는 中京의 동북쪽으로부터 遼의 永州 廣平淀으 로 향해가는 도중에 있는 관역이니, 옛 터는 대략 현 내몽고 奈曼旗의 孟克河 일대이다. (爲自中京東北向赴遼永州廣平淀途中之一館驛, 故址約 在今內蒙古奈曼旗孟克河一帶.)라고 해설했다. 胡廷榮은 이 자몽관은 宋 綬의 契丹風俗 에 기재된, 中京으로부터 네 번째 관역이었던 香山 子館 72)의 바뀐 명칭이며, 그 위치는 현 內蒙古자치주 赤峰市 敖漢旗 瑪尼罕鄕 馬頭山村 동남쪽 하천의 산 곁이라고 설명했다.73) 胡廷榮의 해설은 과학적이어서 따를 만하다. ② 제1-2구 泰畤: 漢代의 황제들이 동짓날 天神인 太一(泰一)神을 제사지내던 祭壇의 명칭. 武帝 때 長安의 甘泉宮에 처음 건립되었다.74) 제1구는 송 왕조가 圜丘에서 올리는 동짓날의 祭天 의식을 멀리서 상상한 것이다. 宋史 (권11) 仁宗本紀 의 경력4년 11월 임오, 동짓날에, 환 구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리고, 대사를 베풀었다. (慶曆四年十一 月 壬午, 冬至, 祀天地於圜丘, 大赦.) 및 권98 禮志 의 매년의 큰 제사에는 30종이 있다. 동지에는 환구에서 호천상제에게 제사를 올 린다. (歲之大祀三十: 冬至圜丘祭昊天上帝.) 참조. 시화 는 漢書 郊祀志 를 인용하여 泰畤를 설명했다. 제2구는 소송이 자몽관에서 요나라의 接伴使 일행과 동지 축하연 을 베푸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장편 (권284) 熙寧10년 8월 己丑: 관례에 의하면, 요나라에 파견되는 사신은 동짓날에 요나라 인사들과 72) 宋綬, 契丹風俗 : 七十里至香山子館, 前倚土山, 依小河. ( 長編 권97 眞宗 天禧五年 九月 甲申 및 賈敬顔, 앞의 책, 114쪽) 참조. 73) 胡廷榮, 앞의 논문, 53~54쪽 참조. 74) 漢書 武帝紀 (권6): 元鼎五年 十一月辛巳朔旦, 冬至. 立泰畤于甘泉, 天子親郊見.(師古曰: 祠太一也.) 참조.
226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21 서로 축하를 한다. (故事: 使北者冬至日與北人交相慶.)의 기록 참조. ③ 제4구 星斗: 일반적으로 하늘의 별 을 뜻하는 말이지만, 특별히 북두 칠성 을 가리키기도 한다. 昭回: 별이 밝게 회전하다(星辰光耀回轉) 또는 별(星辰) 또는 해와 달(日月) 을 뜻한다( 한어대사전 ). 여기서는 첫 번째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주석 은 昭回, 借指日月 이라 했지만, 제4구는 음력 18 일 또는 19일의 밤풍경을 묘사한 것이므로 주석 의 풀이는 그리 잘 통하지 않는다. ④ 제5구 寒更: 차가운 밤의 물시계 소리(寒夜的更點) 또는 차가운 밤(寒 夜) 을 뜻한다( 한어대사전 ). 주석 은 寒夜 로 풀이했다. ⑤ 제7-8구 王曆: 송 왕조의 曆法. 주석 은 제7구를 要想知道春天的到來 라고 풀이했는데, 이는 王曆 의 의미를 전혀 새기지 않은 풀이이다. 胡 廷榮의 연구에 의하면 이 구절은 宋 遼의 역법의 차이를 표현한 것이다. 그의 해설은 상세하고 과학적일 뿐 아니라 이 시의 대의 파악에 결정적 인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어 그의 논문의 관련 문장을 인용한다. 胡廷榮, 遼中京至廣平甸捺鉢間驛館考略 : 소송의 전사료시 和 冬至紫蒙館書事 로부터, 그가 희녕 원년의 동짓날에 자몽관에 도달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해의 동짓날은 宋曆으로는 11월 19일이었다. 다시 欲知王曆正 으로부터, 이 해의 동짓날은 宋 遼의 曆法에 차이가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국과학원 南京 紫金山 천문대 연구원 張 培瑜는 이 해의 동짓날은 遼曆으로는 11월 18일이었으니, 宋曆에 비 하여 하루가 빨랐다고 했다. (由蘇頌前使遼 和冬至紫蒙館書事, 知 他此年冬至到紫蒙館, 此年冬至宋曆是十一月十九日. 再由詩中 欲知王 曆正 語, 可判斷此年冬至日宋遼曆有別. 中科院南京紫金山天文臺硏究 員張培瑜先生認爲此年冬至遼曆十一月十八日, 比宋曆早一日.) 소송과 관련된 宋 遼 간의 동짓날의 역법 논쟁은 정작 소송이 제2 차로 使遼한 희녕10년에 발생했다. 희녕10년에는 희녕 원년과 달리 宋 曆의 동짓날이 遼曆보다 하루가 빨랐다. 이 논쟁의 발생과정 및 소송의
227 222 中國學 第34輯( ) 대처방식은 宋史 (권340)의 蘇頌傳 과 長編 (권284)에 두루 기재되어 있으며, 소송은 神宗으로부터 까다로운 역법 논쟁을 잘 처리 했다고 칭찬받았다. 희녕10년의 이 논쟁은 이 시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장편 의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長編 (권284) 熙寧10년 8월 己丑: 이 해에, 우리 왕조의 역법은 거란보다 하루가 빨랐는데, 거란은 자신들의 역법이 옳다고 고집했다. 소송은 曆學家의 계산법은 서로 조금씩 다르니, 늦고 이름도 서로 다 르오. 예를 들면 亥時에 절기가 서로 교차하면, 여전히 오늘밤인데, 만약 一刻이 지나면, 子時에 속하게 되니, 다음날이 되는 것이오. 앞 날이 되기도 하고 뒷날이 되기도 하니, 각자 자신의 역법을 따르면 되 는 것이오. 라고 말했다. 거란은 소송을 굴복시킬 수 없어서, 마침내 각자의 날짜를 동짓날로 삼았다. 사신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고 했더니, 신종은 기뻐하면서 짐 역시 생각해보았는데, 이는 가장 어려 운 점이요. 경의 답변은 매우 타당했소. 라고 말했다. (是歲, 本朝歷先 契丹一日, 契丹固執其歷為是. 頌曰: 歷家算術小異, 則遲速不同. 謂如 亥時節氣當交, 則猶是今夕, 若踰刻, 則屬子時, 為明日矣. 或先或後, 各 從本朝之曆可也. 北人不能屈, 遂各以其日為節. 使還, 奏之, 上喜曰: 朕思之, 此最難處, 卿對極得宜. ) 候律: 候 는 節氣 또는 時令 의 뜻으로 확대해석 될 수 있으 며(引申爲節候 時令), 律 또한 節氣 나 時令 의 뜻이다( 한어대사 전 ). 이 候律 은 문연각본과 청초본 그리고 시화 의 표기이다. 중 화서국본은 候津 으로 표기했다. 주석 은 津 을 물가 로 풀이하 고, 제8구를 意卽水邊應該生草了 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候津 은 매 우 어색한 단어의 조합이어서 시의 의미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아마 도 중화서국본의 點校者들 및 주석 의 저자들은 宋 遼의 동짓날과 관련된 역법 논쟁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했던 듯하다. 시 화 는 王曆 및 候律 에 관하여 아무런 해설을 하지 않았다. 孳荄: 孳 는 자라나다, 荄 는 풀뿌리 의 뜻이다. 19) 和就日館 ( 취일관 에 화답하며) 戎疆迢遞戴星行, 오랑캐 강역은 멀고멀어 별을 이고 길을 가니,
228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23 朔騎奔馳束火迎. 북쪽 기병 바삐 치달려와 횃불 엮어 맞이한다. 人向萬山峰外過, 사람은 만 겹 산의 봉우리 밖으로 지나가는데, 月從雙石嶺間生. 달은 두 개의 바위 있는 산마루 사이로 떠오른다. 馬蹄看即三千里, 말발굽을 살피니 3000 리를 지나왔고, 客舍今踰四十程. 객사에 묵은 지 40일 여정이 넘었다. 每念皇華承命重, 皇華의 시 생각할 적마다 부여받은 임무는 무거워지는데, 愧無才譽副群情. 사람들의 바람에 부합할 재능 없어 부끄럽소이다. ① 시제 就日館: 시화 는 취일관이 順義縣(현 북경) 동남쪽이라고 추정 했고,75) 주석 은 현 하북성 平泉縣 경내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 나 시화 의 해설에 의하면 소송은 아직 현 北京 일대를 벗어나지 않 은 것이고, 주석 의 해설에 의하면 소송은 아직 요나라의 中京을 지 나지 않은 셈이 되니, 이 해설들은 믿을 수 없다. 근년에 胡廷榮은 이 취일관은 宋綬의 契丹風俗 에 기재된 羖䍽河館의 바뀐 명칭이며, 中 京 바로 다음 차례의 관역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고력하관의 옛 터 는 현 遼寧省 建平縣의 海棠河 부근에 있었다고 주장하고,76) 보다 구체 적인 장소는 소송의 이 시의 自注를 인용하여 봉우리가 둘인 산이 있는 扎蘭城村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宋綬의 契丹風俗 에 나타난 관 역의 명칭과 소송의 사료시에 나타난 관역을 비교할 때, 中京에서 廣平 淀으로 가는 관역 가운데 就日館이 中京에 가까이 있으므로, 소송이 최 종 목적지인 요나라의 冬捺鉢이 있는 곳, 곧 廣平淀에 닿기 위한 시간 상의 순서로는 응당 和就日館 이 和冬至紫蒙館書事 의 앞에 편차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77) 필자는 胡廷榮의 해설을 따른다. ② 제1-2구 75) 全遼詩話 王珪使遼詩 의 注31: 據蘇頌前使遼詩注云: 館之東南有雙 峰山. 昌平山水記 (필자 주: 淸 顧炎武撰)載, 順義縣(遼爲順州治所)東南三 十里爲丫髻山, 二峰高聳. 或是. 참조. 76) 賈敬顔 또한 宋綬의 契丹風俗 의 凡六十里至羖䍽河館 의 疏證 에서 羖䍽河는 곧 지금의 海棠河라고 추정했다. 賈敬顔, 앞의 책, 113쪽. 77) 胡廷榮, 앞의 논문, 52~54쪽 참조.
229 224 中國學 第34輯( ) 迢遞: 아득히 먼 모양. 朔騎: 북쪽 요나라의 기병. 문연각본은 驛騎 로 표기했다. 중화서 국본은 校記 에서 이 사실을 밝혔다. 청초본 및 시화 는 胡騎 로 표기했다. ③ 제4구 原注: 관의 동남쪽에 봉우리가 둘인 산이 있었는데, 일행이 막 관역에 닿으려 할 때, 달이 갓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館之東南有雙 峰山, 行李將至, 見月初上.) 참조. 제6구에 대한 소송의 原注를 참조하 면, 소송은 취일관에 보름날에 도착했으므로, 여기서의 달 은 보름달이 며, 그가 취일관에 도착한 시각은 초저녁이다. 청초본에는 行李將至 앞에 之 자가 부기되어 있는데, 이 之 는 衍字이다. ④ 제6구 原注: 10월 5일에 개봉을 떠나, 오늘에까지 41일째이다. (十月五 日出都, 迨今四十一日矣.) 참조. 胡廷榮의 계산에 의하면, 소송이 就日館 에 닿은 날짜는 11월 15일이었다.78) ⑤ 제7구 皇華: 詩經 小雅 의 皇皇者華 시를 가리킨다. 毛詩序 는 임금이 사신을 보냄에 예악을 베풀어 전송하는 시이다. 멀리 사신으로 가면 임금의 명을 환히 꽃피우리라는 의미이다. ( 皇皇者華, 君遣使 臣也, 送之以禮樂. 言遠而有光華也.)라고 해설했다. 20) 和過神水沙磧 ( 신수 사막을 지나다 에 화답하며) 沙行未百里, 사막 길 백 리도 가지 못했는데, 地險已萬状. 땅은 험하여 벌써 온갖 형상 드러낸다. 逢迎非長風, 나를 맞이하는 건 거센 바람 아니고, 狙擊殊博浪. 장량이 저격했던 博浪沙와도 다르다. 昔聞今乃經, 예전에 소문으로만 듣다가 오늘에야 지나가니, 既度愁復上. 다 건너자 근심이 다시 인다. 幸無漲天災, 바라기는 하늘의 재앙 발생하지 않아, 78) 胡廷榮, 앞의 논문, 53쪽 참조.
230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25 日月免遮障. 해와 달이 가려지지 않기를. ① 시제 神水沙磧: 磧 은 얕은 물속의 모래와 자갈 또는 사막 을 뜻하 므로 沙磧 은 곧 사막 을 가리킨다. 神水 에 관하여 시화 는 대 략 현 내몽고 奈曼旗 서부에서 老哈河 일대에 이르는 사막이다. 老哈河 는 요나라 때 土河라고 불리었다. (約在今內蒙古奈曼旗西部至老哈河一 帶的沙漠. 老哈河, 遼時謂土河.)라고 설명하고, 이어서 遼史 地理志 의 永州와 관련된 기록을 인용하면서 따라서 요나라 사람들은 土河를 신성한 강물로 생각했으니, 이곳의 사막은 곧 神水沙磧이라 일컬어졌 다. (故遼人視土河爲神水, 此處沙漠卽以是稱.)라고 해설했다. 이 永州와 관련된 요사 지리지 의 기록은 神水沙磧 뿐 아니라 木葉山과 冬捺鉢 및 다음번의 시에서의 土河館 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다. (단 괄호 안의 문장은 필자가 보충 인용한 것이 다.) 遼史 地理志 上京道 永州 (권37): : (永州는 永昌軍이며, 관찰사가 설치되었다. 承天皇太后79)가 건립했다. 태조가 이곳에 南樓80)를 세웠 다. 乾亨3년(필자 주: 遼 景宗, 981년)에 황자 韓八의 묘소 옆에 本州 를 설치했다. 동쪽에 潢河가 있고, 남쪽에 土河가 있으니, 두 강이 합 류하므로 永州라고 불렀다. 겨울철 황제의 牙帳은 이곳에 머무는 경 우가 많은데, 이를 冬捺鉢이라 불렀다. 木葉山이 있는데, 산 위에는 거란의 시조 사당이 있으니, 기수가한은 남묘에 모셔져있고, 가돈은 북묘에 모셔져 있으며, 두 성인과 여덟 아들의 神像이 채색으로 소조 되어 있다.) 전하는 말로는 神人이 백마를 타고 馬盂山으로부터 土河 를 타고 동쪽으로 오니, 천녀가 푸른 소가 끄는 수레를 몰고 平地松林 으로부터 潢河를 타고 내려왔다. 목엽산에 이르러 두 강물이 합류하 니, 두 사람이 만나서 짝이 되어 여덟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 뒤로 79) 承天皇太后: 遼史地理志匯釋 (張修桂 賴靑壽, 合肥: 安徽敎育出版社, 2001, 39쪽)은 遼 太祖의 后인 應天皇太后이어야 한다고 고증했다. 80) 新五代史 (권72) 四夷附録第一 에 기재된, 阿保機가 건립한 四樓 의 하나이다. 木葉山에 소재했다. 四樓 에 관한 보다 상세한 해설은 소송의 後 使遼詩 08) 牛山道中 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231 226 中國學 第34輯( ) 족속이 번성하여 여덟 部로 나뉘었다. 매번 행군을 하거나 봄가을의 時祭 때 반드시 백마와 푸른 소를 제물로 사용하여, 근본을 잊지 않는 다는 점을 표시했다. ([永州, 永昌軍, 觀察. 承天皇太后所建. 太祖於此 置南樓. 乾亨三年, 置州于皇子韓八墓側. 東潢河, 南土河, 二水合流, 故 號永州. 冬月牙帳多駐此, 謂之冬捺鉢. 有木葉山, 上建契丹始祖之廟, 奇 首可汗在南廟, 可敦在北廟, 繪塑二聖并八子神像.] 相傳有神人乗白馬, 自馬盂山浮土河而東, 有天女駕青牛車由平地松林泛潢河而下. 至木葉 山, 二水合流, 相遇為配偶, 生八子. 其後族屬漸盛, 分為八部. 毎行軍及 春秋時祭, 必用白馬青牛, 示不忘本云.) 이러한 시화 의 해설 및 요사 지리지 의 기록을 참고할 때, 주석 이 神水: 在鹿峽館東南, 卽今之平泉縣境內. 라고 해설한 것은 명백한 오류임을 알 수 있다. ② 제3-4구 長風: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 또는 폭풍이나 큰 바람 의 뜻이다 ( 한어대사전 ). 이 長風 은 宋玉의 高唐賦 : 먼 바람 불어와 물 결을 일으키니, 산에 붙어있는 높다란 밭이랑 같다. (長風至而波起兮, 若麗山之孤畝.)나 杜甫의 龍門閣 : 큰 바람이 높은 물결 몰고 오니, 넓디넓음은 태고 적부터 그러했다. (長風駕高浪, 浩浩自太古.)의 용례에 서 보이듯이 흔히 물결을 크게 일으키는 바람이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 되었다. 博浪: 張良이 자객을 사서 철퇴로 秦始皇을 저격한 곳으로서 현 河南省 新乡市 原阳县 동쪽에 있다. 河南通志 (권5) 名宦 中 開封 府 의 장흥조는 常州 宜興 사람인데, 휘종 때 陽武의 지현이 되었다. 양무현은 옛 박랑사가 있는 곳인데, 흙의 결이 무르고 푸석푸석하며 황 하가 그 남쪽을 치고 있어서 오랜 비에 범람하면 제방이 모두 붕궤되어 버린다. (蔣興祖, 常州宜興人, 徽宗時知陽武縣. 縣古博浪沙地, 土脈脆惡, 大河薄其南, 積雨泛溢, 埽具輒潰.)의 기록을 참고하면, 박랑사 부근을 흐 르는 황하는 물살이 센 곳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博浪, 곧 큰 물결 이라는 문자적인 의미와도 서로 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3-4 구는 神水의 강물을 건널 때 거센 바람도 불지 않고 큰 물결도 일지 않 아 마음이 놓였다는 점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주석 은 幷沒
232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27 有像過去張良在博浪沙刺殺秦始皇那樣驚險的事. 라고 풀이했는데, 이는 시의 원의와는 거리가 있는 해설이라고 생각된다. ③ 제7구 滿天災: 주석 은 出現滿天的巨大風沙災害. 라고 풀이했는데, 필자도 이러한 풀이에 동의한다. 21) 和土河館遇小雪 ( 토하관에서 자국눈을 만나다 에 화답하며) 薄雪悠揚朔氣清, 자국눈 펄펄 날리며 북쪽 찬 기운 맑은데, 衝風吹拂毳裘輕. 거센 바람 불어와 모피옷 스치어 가볍다. 人看滿路瓊瑶跡, 사람들은 길 가득 반짝이는 발자국 보고는, 盡道光華使者行. 문명국의 사신이 지나갔다 죄다 말하리라. ① 시제 土河館: 시화 는 대략 현 내몽고 奈曼旗 서북의 烏蘭圖格 북 쪽, 老哈河의 남안에 있었다. 혹시 宋綬가 언급한 水泊館일지 모르겠다. 송수는 上契丹事 81)에서 中京을 출발하여 60리를 가서 羖䍽河館 에 닿았고, 또 70리를 가서 楡林館에 닿았으며, 또 70리를 가서 訥都烏 館에 닿았고, 또 70리를 가서 香山子館에 닿았으며, 향산자관으로부터 사막을 건너고 白馬淀을 지나 90리를 가서 水泊館에 닿았고, 土河를 건 넜다고 했다. (約在今內蒙古奈曼旗西北烏蘭圖格之北, 老哈河南岸. 疑卽 宋綬所云水泊館. 宋綬 上契丹事 云: 自中京出發, 六十里至羖䍽河 館, 又七十里至楡林館, 又七十里至訥都烏館, 又七十里至香山子館. 自香 山子館涉砂磧, 過白馬淀, 九十里至水泊館. 過土河 )라고 설명했다. 그러 나 胡廷榮은 요나라가 1021년에서 1033년 사이에 中京에서부터 廣平 淀에 이르는 驛路과 館驛을 변경했으며, 이 토하관은 곧 宋綬의 契丹 風俗 에 기재된, 水泊館에서 다시 80리 일정에 있는 張司空館에 해당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胡廷榮에 의하면 이 土河館은 현 內蒙古 翁牛 特旗 동부의 白音套海鄕에 있었다.82) 이 土河館에서 다시 하루 일정의 81) 上契丹事 : 앞서 인용한 契丹風俗 을 가리킨다. 契丹風俗 은 虜 中風俗 이나 宋綬使遼行程錄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82) 胡廷榮, 앞의 논문, 54~55쪽.
233 228 中國學 第34輯( ) 거리에 木葉館이 있었고,83) 木葉館은 소송의 使行의 최종 목적지인 廣 平淀에 소재했다. 즉 소송의 이 시는 廣平淀에 닿기 하루 일정 전에 지 은 것이다. ② 제2구 衝風: 폭풍이나 거센 바람 을 뜻한다. 이 衝風 은 중화서국본과 문연각본 및 청초본의 표기이다. 시화 와 주석 은 銜風 이라 표 기했다. 중화서국본은 校記 에서 銜과 衝은 형체가 가깝다. 상하 시 구의 뜻을 살펴보면 衝이 옳다. 楚辭 와 漢書 에 모두 衝風 이라 는 단어가 있다. ( 銜 衝 形近致. 尋上下文義以 衝 字是. 楚辭 漢 書 均有 衝風 一詞.)라고 밝히고 있다. 이 校記 로부터 文瀾閣本과 蘇廷玉의 刊本에는 銜風 이라고 표기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 다. 毳裘: 毳 는 鳥獸의 가는 털 또는 짐승의 모피 를 뜻한다. 毳裘 는 모피로 만든 의복이다. 22) 和檀香板 ( 향기로운 박판 에 화답하며) 鏤檀芬馥貫縚衺, 아로새긴 박판은 향기 풍기며 꿰인 끈은 비스듬하고, 擊玉敲金一串花. 옥경을 치고 편종을 울리며 모두가 꽃을 꽂고 있다. 自與麗妃親記曲, 아름다운 배필과 친히 곡을 기록한 이후로, 後來傳玩幾人家. 훗날 전해져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즐기게 되랴? ① 시제 檀香板: 박달나무로 만든 향기로운 拍板. 胡廷榮은 前使遼詩 에 나타난 館驛의 명칭 및 순서로 볼 때, 이 시는 응당 종점인 광평전에서 지은 것이다. (當爲廣平甸終點作.)라 고 주장했다.84) 필자도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② 제1-2구 83) 傅樂煥의 앞의 책 26~27쪽의 宋臣使遼所經館驛名稱表 에 의하면, 宋綬 의 契丹風俗 에 기재된 張司公館(곧 土河館)의 다음 관역이 바로 木葉館이 다. 84) 胡廷榮, 앞의 논문, 50쪽.
234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29 鏤檀: 鏤 는 아로새기다 의 뜻이고, 檀 은 檀板, 즉 拍板을 가 리킨다. 芬馥: 芬 과 馥 은 모두 향기 또는 향기롭다 는 뜻이다. 시화 는 芬 을 芳 이라 표기했으나, 이는 글자 모양이 비슷하여 발생한 誤字로 생각된다. 貫縚衺: 貫 은 꿰다 또는 잇다 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縚 는 絛와 같은 글자로 비단실로 된 끈 또는 韜와 같은 글자로 작은 물건 을 끼우거나 담아 두는 집 을 뜻하는데( 한어대사전 ), 여기서는 박판 의 여러 나무 조각을 꿰어낸 긴 끈을 가리킨다. 衺 는 사특하다 또 는 기울다 의 뜻인데( 한어대사전 ), 여기서는 박판을 치면서 박판에 달린 끈이 비스듬히 드리워있는 상황을 나타낸다. 시화 는 縚는 칼 집이니, 속자는 套라고 쓴다. 衺는 邪와 같은 글자이니, 바르지 않은 것 이다. 이 구절은 檀板이 집 속에 비스듬히 꽂혀있는 모습을 가리킨다. (縚: 劍衣, 俗作套. 衺: 同邪, 不正. 此指檀板斜揷在套子裏.)라고 풀이했 다. 그러나 제2구가 본격적인 악기의 연주 상황을 묘사하고 있으므로 제1구는 박판을 침으로써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고 생각된다. 따라서 박판이 아직 집 속에 꽂혀있다고 하는 시화 의 풀이는 그리 잘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주석 은 縚 를 帶子 로, 衺 를 邪 자로 풀이하고, 鏤雕 芳香也穿着帶子的檀香板 이라고 설명했는데, 필자는 주석 의 풀이에 동의한다. 擊玉鼓金: 玉 은 玉磬, 金 은 編鐘을 가리킨다. 擊玉鼓金 은 옥 경을 치고 편종을 울리는 연주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이는 요나라 황제 의 생신축하연에서 散樂을 연주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遼史 (권54) 樂志 散樂 의 皇帝生辰樂次, 즉 황제 생신에 연주 되는 散樂의 연주 순서에 술을 여덟 번째로 마시고, 노래를 하며 宮架 樂을 연주한다. (酒八行, 歌, 擊架樂)라고 했는데, 이 架樂 에 사용되는 악기가 곧 나무틀에 매달아 연주하는 편경과 편종이다.85) 주석 은 發出的聲音像敲打金器玉器那樣, 非常悅耳動聽. 라고 풀이했으나, 이는 시의를 제대로 파악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85) 遼史 에서 架樂 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은 오직 散樂의 연주에서만 보인 다.
235 230 中國學 第34輯( ) 一串花: 一 은 모두 또는 한결같이 의 뜻이고, 串 은 꿰다 라는 뜻이다. 이 구절은 생신축하연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手伎, 곧 伶 人들이 두건에 한결같이 장식용 꽃을 꽂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 고 생각된다. 근래의 고고학 발굴의 결과 요나라 무덤에서 악기 연주자 들이 모두 幞頭(두건의 일종)를 쓰고, 幞頭에는 해당화를 꽂고 있는 모 습을 그린 벽화가 발견되기도 했다.86) ③ 제3구 麗妃: 아름다운 배필. 이 시에서는 道宗의 황후를 가리키는 듯하 다. 시화 는 此處似指南朝陳後主之寵妃張麗華. 라고 풀이했다. 陳 書 張貴妃傳 은 陳 後主가 張貴妃(이름은 麗華)와 함께 연석에서 짓게 한 시를 골라 새로 만든 음악의 가사로 삼아 즐겼다고 기록하고 있 다.87) 그러나 필자는 제1-2구가 생신축하연의 실제 악기 연주상황을 묘사하고 있으므로 제3구의 麗妃 또한 현실의 인물이어야만 전체적인 詩意가 무리 없이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張麗華는 훗날 陳後 主와 함께 비참한 말로를 겪게 되는데, 요나라 황제의 생신축하연을 읊 은 시에서 이러한 인물을 출현시킨다는 것은 두 나라의 우호를 중시한 소송의 외교적 성향과도 어울리지 아니한다.88) 妃 는 황제의 姬妾, 곧 첩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사용되지만, 說文 解字 는 妃, 匹也 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妃 의 原義는 배필이다. 左傳 桓公二年 의 嘉耦曰妃. 그리고 儀禮 少牢饋食禮 의 以某妃 86) 沈軍山 李海風, 遼音樂之散樂考略 : 近些年在河北省張可口市宣化區下八 里村先後發掘了5座遼壁畵墓(五 六 七 九 十號), 內均有散樂圖, 第五號墓壁畵位于 墓前室東壁外, 其他均在前室西壁. 畵面人數爲5-9人不等, 奏樂者皆戴幞頭, 上 揷海棠花, 各穿黑靴, 身着各種顔色的長袍. 참조. 文物春秋, 2003년 6기, 36쪽. 87) 陳書 張貴妃傳 : 後主張貴妃, 名麗華. 後主每引賓客對貴妃等遊宴, 則 使諸貴人及女學士與狎客共賦新詩, 互相贈答, 采其尤艶麗者以爲曲詞, 被以新聲, 選宮女有容色者以千百數, 令習而歌之, 分部迭進, 持以相樂. 其曲有 玉樹後庭 花 臨春樂 等. 참조. 88) 뒤이어 서술할 道宗의 宣懿皇后는 咸雍(1065~1074) 말년에 도종과 사이가 소원해졌고, 太康 원년(1075)에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그러나 소송이 이 시를 지은 희녕 원년(1068)에 이미 宣懿皇后와 道宗의 관계가 나빴기 때문에 소송이 일부러 이 시에서 도종의 황후를 張麗華에 비긴 것이라고 생각할 수 는 없을 것이다.
236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31 配某氏. 에 대한 鄭玄의 注 : 某妃, 某妻也. 등은 妃 를 배필 배우 자의 뜻으로 사용한 예이다. 특히 天子의 妃 는 后 라고 일컬어졌다. 禮記 曲禮下 의 天子之妃曰后 또는 詩經 關雎序 의 關雎, 后妃 之徳也 에 대한 朱熹의 詩序 (卷上)에서의 해설: 후비는 문왕의 妃 태사이다. 천자의 妃를 后라 한다. (后妃, 文王之妃大姒也. 天子之妃曰 后.) 등이 그 예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麗妃 는 아름다운 道宗의 배 필, 즉 道宗의 皇后를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이 시는 제3구 제4자( 妃 )를 제외하면 나머지 글자의 平仄은 모두 近體詩의 平仄 격률과 합 치하며, 押韻(韻脚: 衺 花 家. 平聲 麻韻) 또한 근체시의 격률과 합치한 다. 따라서 이 시는 近體絶句이다. 麗后 가 아니라 麗妃 라고 표현한 까닭은, 去聲인 后 자를 사용하면 平仄의 격률에 어긋나기 때문에 平 聲인 妃 자를 사용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소송의 이 시가 지어진 송 신종 희녕 원년(1068)은 遼 道宗 咸雍4년에 해당하는데, 咸雍4년 때 道 宗의 황후는 宣懿皇后이었다.89) 宣懿皇后는 용모가 빼어나고 詩에 뛰어 났으며 스스로 악곡의 가사를 짓기도 했고 특히 琵琶를 잘 탔다.90) 沈 軍山 李海風에 의하면, 宣懿皇后는 사냥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道宗을 간 했다가 도리어 道宗의 미움을 받고 관계가 소원해지자 咸雍 (1065~1074) 말년에 스스로 回心院 詞를 지어 管弦으로 연주하며 道宗의 마음을 돌리려는 뜻을 기탁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91) 따라서 89) 宣懿皇后는 道宗의 太康 원년(1075)에 宮妃와 敎坊 伶人의 모함을 받고 自 盡의 처형을 받았다. 遼史 刑法志下 : 然自太康元年, 北院樞密使耶律 乙辛等用事. 宮婢單登等誣告宣懿皇后, 乙辛以聞, 即詔乙辛劾狀, 因實其事. 上 怒, 族伶人趙惟一, 斬高長命, 皆籍其家, 仍賜皇后自盡. 및 后妃列傳 : 太 康初, 宮婢單登 敎坊朱頂鶴誣后與惟一私, 樞密使耶律乙辛以聞. 詔乙辛與張孝傑 劾狀, 因而實之. 族誅惟一, 賜后自盡, 歸其屍於家. 참조. 90) 遼史 后妃列傳 道宗宣懿皇后 : 姿容冠絶, 工詩, 善談論. 自制歌詞, 尤善琵 琶. 참조. 91) 遼 王鼎, 焚椒錄 : 國俗, 君臣尚獵, 故有四時巴納. 上既擅聖藻, 而尤長弓 馬, 往往以國服先驅, 所乗馬號飛電, 瞬息百里, 常馳入深林邃谷, 扈從求之不得. 后患之, 乃上疏諫曰云云. 上雖嘉納, 心頗厭遠. 故咸雍之末, 遂稀幸御, 后因 作詞曰囘心院, 被之管絃, 以寓望幸之意也. ( 遼史拾遺 권19, 列傳第一 后 妃 道宗宣懿皇后蕭氏 에 인용됨.) 상세한 해설은 沈軍山 李海風의 앞의 논문, 35쪽 참조. 한편 이 기록은 遼史拾遺 에 앞서 元 陶宗儀의 說郛 권 110下에 이미 보인다.
237 232 中國學 第34輯( ) 이 시의 제3구는 혹시 道宗이 그의 황후와 함께 생신축하연에서 음악을 즐기고 기록한 상황을 묘사한 것일 가능성이 없지 아니하다고 생각된 다.92) 23) 和神水館逢齊 葉二國信 ( 신수관에서 齊 葉 두 國信使와 만나 다 에 화답하며) 幾旬馳傳困風埃, 수십 일이나 역마를 치달리며 흙먼지에 시달리다가, 忽聽南軺病眼開. 문득 남쪽 사신의 소식 들으니 피로한 눈이 뜨인다. 千里邊疆難際遇, 천 리 먼 이역 땅에서는 우연히 만나기 어렵거늘, 一封京信况同來. 한 통의 서울 소식 하물며 함께 가져옴에랴. 論情不異聲投谷, 마음을 논하자면 골짜기에 울리는 메아리와 다르지 않고, 適意過於渴望梅. 기분을 푸니 갈증에 매실을 바라는 것보다 더 시원 하다. 談笑未終催命駕, 담소가 끝나지도 않아 출발을 재촉하니, 歸心雖切且徘徊. 돌아가는 마음 급박하지만 잠시 머뭇거린다. ① 시제 神水館: 胡廷榮에 의하면 神水 는 현 內蒙古 敖漢旗 북부에 있는 響水瀑布 부근의 老哈河를 일컫는 말이며, 神水館 은 현 敖漢旗 敖潤 蘇莫蘇木 부근에 있었다.93) 廣平淀을 떠나 土河館을 지나면 이 神水館 에 도달하게 된다. 주석 은 神水館이 현 河北省 平泉縣 境內에 있었 다고 설명했으나, 이는 신빙성이 없다. 齊 葉二國信: 두 사람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史書에 기록이 없다. 92) 소송과 장종익 두 사람은 부여받은 공식직함은 각각 皇太后生辰國信使와 契丹國主生辰國信使로 서로 달랐지만, 요나라로 동행하며 모든 일정을 함께 했던 듯하다. 이는 宗天태후의 생일(12월 3일)과 道宗의 생일축하연이 거행 되는 날짜(12월 7일)가 근접해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요나 라 황태후와 황제의 생일축하연에 모두 참석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이 시의 제3-4구의 표현으로 미루어보아 이 시는 황제의 생신축하연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93) 胡廷榮, 앞의 논문, 55쪽.
238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33 傅樂煥도 遼史叢考 (213쪽) 宋遼聘使表 의 熙寧元年條에서 宋 史 神宗紀 와 蘇魏公文集 에 근거하여 八月丁卯, 遣張宗益 蘇頌 齊 賀遼主生辰正旦 이라고 기록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소송의 이 시의 시제에 의하면 齊와 葉은 모두 국신사의 신분이었다. 宋 遼 시기에 출행 한 양국의 사신들이 상대방의 조정에서 머무는 기간은 일반적으로 열흘 이었다.94) 소송은 그러한 관례에 따라 廣平淀에 열흘 정도 머물렀을 것 이다. 시제의 神水館 은 廣平淀에서 이틀의 노정에 위치한 관역이므로 齊와 葉은 소송보다 열나흘 정도 늦은 날짜에 冬捺鉢에 닿게 된다. 그 렇다면 송사 신종본기 에서 張宗益 (및 소송)이 生辰正旦 의 축하사 절이었다고 기록한 것과는 달리, 소송과 장종익은 生辰使, 그리고 齊 葉 두 사람은 正旦使의 직함이었음이 분명해진다. 이 시는 시화 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 시 이후의 前使遼詩 는 모두 歸路에 쓴 것이다. ② 제1-2구 馳傳: 역참의 거마를 몰아 빨리 달리다 의 뜻( 한어대사전 ). 傳 은 去聲이다. 軺: 사절이 타는 수레. ③ 제3구 邊疆: 邊疆 은 문연각본의 표기이다. 청초본은 胡疆 이라 표기 했다. 중화서국본은 故疆 이라 표기하고, 校記에서 四庫本作 邊疆. 이 라 밝혔다. 그러나 故疆 은 원래의 疆域 (原有的疆域. 한어대사 전 )을 의미하는 단어이어서 시의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혹시 故疆 을 故土, 즉 송나라의 강토 의 의미로 새기어서 제3구를 천 리 멀 리 송나라 강토에서도 만나기 힘들었거늘 이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요 나라로 파견된 使臣들이 송나라 조정에서 함께 활동했을 인물들이었음 을 감안할 때, 그리 타당성이 있지는 않다. 따라서 문연각본의 邊疆 94) 宋 遼의 사신들이 상대방의 조정에 체류하는 기간에 대해서는 傅樂煥, 앞의 책, 241쪽의 注2 참조. 그러나 체류기간이 열흘 이었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 황일 뿐, 결코 고정되어 있지는 않았다. 즉 체류기간이 짧거나 긴 경우도 적 지 않았다. 이에 관해서는 졸고 王安石의 使行詩考 ( 中國文學 43집, 2005년 5월), 58~59쪽 참조.
239 234 中國學 第34輯( ) 또는 청초본의 胡疆 이 올바른 표기라고 할 수 있다. 際遇: 우연히 만나다. 때마침 만나다. ④ 제5-6구 聲投谷: 주석 은 像聲音在深山谷中那樣深遠 이라고 풀이했으 나, 소리가 골짜기에 울리어 메아리치며 서로 호응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適意: 이것은 중화서국본과 청초본의 표기이다. 문연각본은 適 遇 라고 표기했지만, 이때의 遇 는 제3구의 遇 와 서로 중복될 뿐 아 니라 제5구와 對仗의 구조를 이루지도 못한다(이 시는 平仄과 韻의 사 용상 律詩이다). 適意 가 올바른 표기이다. 渴望梅: 행군을 하던 중 군사들의 갈증이 심했을 때 시큼한 매실 을 떠올리게 하여 갈증을 풀게 했다는 曹操의 고사를 이용한 것이다. 世說新語 假譎 에서 유래했다. ⑤ 제7구 未終: 이것은 중화서국본과 청초본의 표기이다. 문연각본은 未 經 이라 표기했다. 그러나 談笑未經 은 담소를 아직 하지도 아니하 다 의 의미가 되어, 전체적인 시의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未終 이 올 바른 표기이다. 命駕: 수레와 말을 몰도록 명령하다. 24) 使回蹉榆林侵夜至宿館 (사행에서 돌아오며 유림관을 지나 밤 중에 숙소에 도착하다.) 使還兼道趣南轅, 사행에서 돌아오며 길을 도와 남으로 수레를 치달리니, 朝出沙陁暮水村. 아침에 울룩불룩한 모래언덕을 떠나 저녁에 물가 마을에 닿았다. 邊落蕭疏人自少, 오랑캐 마을 쓸쓸하여 사람 저절로 드물고, 朔天淒慘日長昏. 북쪽 하늘 차갑기 그지없고 태양은 늘 어둡다. 鵶聞宿客驚如閙, 까마귀는 객사의 나그네 기척 알고는 놀라 소란을 떨고, 馬識歸途去似奔. 말은 돌아갈 길을 알아 말굽이 달리듯 한다.
240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35 屈指開年到京闕, 손꼽아 헤아려보니 새해엔 서울에 도달할 텐데, 夢魂先向九重閽. 꿈속의 혼백은 먼저 구중궁궐로 달려간다. ① 시제 原注에는 十二月十七日 이라 하여 이 시를 지은 날짜를 밝혔다. 蹉榆林: 楡林館을 지나가다(통과하다). 楡林館은 宋綬의 契丹風 俗 에 의하면 中京에서 60리 동북쪽으로 羖䍽河館을 지나 惠州를 거 쳐 70리 노정에 있는 관역이며, 다시 70리 노정에는 訥都烏館이 있었 다.95) 胡廷榮은 이 楡林館이 현 (遼寧省 朝陽市) 建平縣 馬場鄕 楡樹林 村이라고 설명했고,96) 孫冬虎는 그곳의 인근인 馬圈子村 북쪽이라고 설 명했다.97) ② 제1-2구 兼道: 하루에 이틀 치의 길을 걷다. 陁: 이 시는 律詩이므로 陁 는 平聲으로 읽혀야 한다(독음: tuó). 고르지 않은 모양 ( 한어대사전 : 不平貌)을 뜻한다. 暮水村: 청초본은 暮 를 宿 이라 표기했다. 그러나 宿 은 제5 구의 宿客 의 宿 과 중복된다. 暮 가 올바른 표기이다. ③ 제3-4구 邊落蕭疏: 이것은 중화서국본의 표기이다. 문연각본은 雪嶺迢遥 (눈 덮인 산마루가 멀다)라고 표기했다. 중화서국본의 校記 에도 이 사실이 밝혀져 있다. 청초본과 시화 는 邊落 을 夷落 이라 표기했 다. 朔天: 이것은 중화서국본의 표기이다. 문연각본은 氷天 이라 표 기했고, 청초본과 시화 는 胡天 이라 표기했다. 淒慘: 淒 는 차가운 바람이 불고 비가 심한 것 ( 玉篇 : 寒風 雨極也.)이고, 慘 은 사납다 ( 玉篇 : 慘, 痛也, 愁也, 恨也. 説 95) 宋綬, 契丹風俗 : 由古北口至中京北, 皆奚境. 凡六十里至羖䍽河館. 過惠州, 七十里至楡林館, 館前有小河, 屈曲北流. 七十里至訥都烏館. (賈 敬顔, 앞의 책, 112~114쪽.) 96) 胡廷榮, 앞의 논문, 53쪽. 97) 孫冬虎, 앞의 논문, 33쪽.
241 236 中國學 第34輯( ) 文 曰毒也.)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문연각본은 凄慘 이라 표기했는데, 이 悽 는 차갑다 ( 옥편 : 凄, 寒也.)는 의미이기 때문에 淒 와 통 한다. 청초본은 悽慘 이라 표기했는데, 이 悽慘 을 처량하다 또는 쓸쓸하다 는 의미로 풀이한다면 시의는 통할 수 있지만, 제3구의 蕭 疏 와 의미가 중복된다. 따라서 중화서국본 또는 문연각본의 표기가 올 바르다. ④ 제5구 宿客: 이것은 중화서국본과 청초본의 표기이다. 문연각본은 宿 舍 라 표기했다. 25) 和使回過松子嶺 ( 사행에서 돌아오며 송자령을 지나다 에 화 답하며) 石徑縈紆甚七盤, 돌길은 구불구불 칠반령보다 심한데, 披榛策馬上煙巒. 덤불 헤치고 말 채찍질하며 안개 낀 산등성이에 오른다. 囘頭却見臨潢境, 고개 돌리니 오히려 임황의 경계가 보이는데, 千里猶如指掌看. 천 리 길이 마치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① 시제 松子嶺: 賈敬顔은 현 (하북 承德縣의) 甲山이라고 설명했고,98) 시화 는 劉敞의 松子嶺 題下注에서 松子嶺이 中京 서남쪽의 澤 州 서쪽 약 50리 지점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松子嶺은 牛山館과 鹿 兒峽館 사이에 위치한다. 이 시는 노정에 있어서 다음 시인 和遊中京鎭國寺 와 和富谷 館書事 뒤에 편차되어야 한다. ② 제1구 七盤: 四川省 廣元縣의 동북과 陝西省 寧强縣의 경계에 있는 七盤 嶺을 가리킨다. 고개에는 七盤關이 있었는데, 이것은 四川과 陝西를 잇 98) 松子嶺은 沈括의 熙寧使契丹圖抄 (賈敬顔, 앞의 책, 149쪽) 및 陳襄의 神宗皇帝卽位使遼語錄 (趙永春, 앞의 책, 63쪽)에 출현하는 지명이다.
242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37 는 古蜀道의 중요 關隘의 하나였다. ③ 제3구 臨潢: 遼나라의 上京인 臨潢府를 가리킨다. 현 內蒙古 巴林左旗 남쪽의 波羅城이다. 26) 和遊中京鎭國寺 ( 중경 진국사를 구경하다 에 화답하며) 塔廟奚山麓, 절은 해산 기슭에 있어, 乗軺偶共登. 사신의 수레 타고 우연히 함께 오르게 되었다. 青松如拱揖, 푸른 소나무는 마치 두 손 맞잡고 읍을 하는 듯, 棟宇欲鶱騰. 용마루는 날아갈 듯하다. 俗禮多依佛, 세속의 풍속 불교에 많이 기대니, 居人亦貴僧. 주민들 또한 스님을 존경한다. 縱觀無限意, 여기저기 살펴보며 감회는 끝없는데, 紀述恨無能. 그려내려 해도 재주 없어 안타깝다. ① 시제 中京: 中京 大定府는 遼 聖宗 統和25년(1007)에 건립되었으며, 옛 터는 현 內蒙古 寧城縣의 大明城에 있다. 李錫厚에 의하면 中京에는 상 당한 규모의 궁전이 건축되어 있었지만, 중경은 예의상의 도읍일 뿐이 었다. 가령 遼 聖宗은 평시에는 捺鉢에 머물렀고, 宋이나 高麗의 사신을 접견하기 위하여 中京에 잠시 들를 때에도 궁궐 안에 거처하지 않고 성 밖에 車帳을 설치하여 머물렀다.99) ② 제2구 共: 청초본은 同 이라 표기했다. ③ 제5구 俗禮: 요나라 세속의 풍속. 문연각본은 邊禮 라고 표기했고, 청초 99) 李錫厚, 앞의 책, 342쪽: 中京雖有相當規模的宮殿建築群, 但遼聖宗及以下 諸帝幷不住在宮內. 中京作爲都城, 僅僅是禮儀上的. 例如遼聖宗, 他平時住在 捺鉢, 往往只是爲了會見宋朝和高麗等國使節才來中京, 而且就是這樣一個短暫期 間, 他也幷不住在中京大內, 虜所止之處, 官屬皆從, 城中無館舍, 但于城外就車 帳而居焉. 참조.
243 238 中國學 第34輯( ) 본은 夷禮 라 표기했다. 27) 和富谷館書事 ( 부곡관에서의 일을 기록하다 에 화답하며) 迢迢歸馭指榆津, 귀로의 말은 아득히 楡河의 나루를 가리키니, 日淡西風起塞塵. 태양은 흐릿하고 서풍 불어 변새의 먼지 일으킨다. 沙底暗氷頻踠馬, 모래 밑 숨겨진 얼음에 자주 말발굽이 구부러지고, 嶺頭危徑罕逢人. 고갯마루 험한 길에는 마주치는 사람 드물다. 客心牢落偏多感, 나그네 마음 쓸쓸하여 마침 감회에 젖는데, 天意融怡漸發春. 하늘의 뜻은 화락하여 차츰 봄기운이 움튼다. 珍重詩翁饒藻思, 진중하신 시옹께선 아름다운 시상 넘쳐나, 剪裁風物見長新. 경물을 잘라와 기다란 새 시에 내보인다. ① 시제 富谷館: 賈敬顔은 현 河北 平泉縣 高家溝 부근이라고 했고, 이 시 제3구의 嶺 은 馬雲山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100) 또 孫冬虎는 (필자 주: 高家溝 인근의) 五十家子라고 설명했다.101) 시화 는 范鎭使遼 詩 (注4)에서 位于遼中京大定府西南歸化縣南(今河北平泉北與內蒙古交 界之五十家子附近), 在由中京經長興館南下赴鐵漿館之中途. 라고 설명했 다. ② 제1-2구 楡津: 시화 의 指楡河(今遼寧凌源西大凌河上游支流)渡口, 遼時 置楡州, 位于中京之南, 其西爲富谷館. 참조. 日淡: 이것은 중화서국본과 청초본의 표기이다. 문연각본은 日 日 이라고 표기했다. 塞塵: 청초본은 塵塞 라고 도치된 표기를 했다. 塵塞 는 押韻에 어긋난 誤記이다. ③ 제3구 소송의 原注: 길에 얼음이 얼어 흔히 모래 밑에 숨겨져 있는데, 100) 富谷館은 沈括의 熙寧使契丹圖抄 및 王曾의 上契丹事 에 기재된 관역이다. 각각 賈敬顔, 앞의 책, 153쪽 및 100쪽 참조. 101) 孫冬虎, 앞의 논문, 27쪽.
244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39 요나라 사람들은 이것을 暗氷 이라고 했다. 말을 몰고 가기에 무척 위 험하다. (道路氷凍多在沙底, 彼人謂之暗氷, 行馬危險百状.) 참조. 原注의 구절 가운데 危險 을 문연각본과 청초본은 難險 이라 표기했다. ④ 제7구 제7구는 張宗益의 詩才를 찬양한 것인 듯하다. 28) 和奚山偃松 ( 해산의 누운 소나무 에 화답하며) 亂枝轇轕翠陰圓, 어지러운 가지 마구 얽혀 푸른 그늘 둥글고, 倚岫垂崖盡偃然. 산봉우리에 기대고 절벽으로 드리워 죄다 넘어질 듯하다. 不為深根生觸石, 깊은 뿌리 자라면서 바위에 부딪치지 않았다면, 定應髙幹上摩天. 틀림없이 높은 줄기 저 하늘 위에 닿았으리라. ① 제1구 轇轕(독음: 교갈): 뒤얽히다 또는 어지럽다 는 뜻( 한어대사 전 ). 翠陰圓: 소송이 이 시를 지을 당시의 시각은 정오 무렵이었음을 알 수 있다. ② 제3구 不為深根生觸石: 청초본은 不為生深根生觸石 이라 표기했는데, 여기서 세 번째 글자인 生 은 衍字이다. 29) 和過打造部落 ( 타조부락을 지나다 에 화답하며) 奚夷居落瞰重林, 해족의 부락에서 빽빽한 숲을 내려다보니, 背倚蒼崖面曲潯. 퍼런 절벽을 등지고 굽이진 개울을 앞에 두었다. 澗水逢春猶積凍, 계곡물은 봄이 왔어도 아직 얼어붙어 있고, 山雲無雨亦常陰. 산 구름은 비도 뿌리지 않으면서 언제나 침침하다. 田塍開墾隨髙下, 밭두둑은 산세 따라 높고 낮게 개간되었고, 樵路攀緣極險深. 나무꾼의 길 타고 오르자니 험하기 그지없다. 漢節經過人競看, 한나라 사신 지나가니 사람들은 다투어 구경하는데, 忻忻如有慕華心. 즐거워하는 그 모습 마치 중화를 사모하는 듯하다.
245 240 中國學 第34輯( ) ① 시제 打造部落: 打造 는 제조하다 는 의미이다. 王曾은 上契丹事 에서 송정령을 지나면 매우 험준한데, 70리를 가면 타조부락관에 도달 한다. 이곳에는 오랑캐 가옥 백여 채가 있는데, 싸리를 엮어 울타리로 삼았고, 쇠를 단련하여 병기를 만든다. (過松亭嶺, 甚險峻, 七十里至打造 部落館. 有蕃戶百餘, 編荊爲籬, 鍛鐵爲軍器.)라고 했다. 賈敬顔은 타조부 락관은 韓麻營(현 河北省 隆化縣)에 있었다고 설명했다.102) ② 제1구 奚夷: 이것은 중화서국본과 청초본의 표기이다. 문연각본은 邊 人 이라 표기했다. ③ 제8구 忻忻如有慕華心: 이것은 중화서국본과 청초본의 표기이다. 문연각 본은 可能知得使臣心. (사신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로 표기했는데, 중화서국본의 校記 는 이러한 사실을 밝혔다. 30) 新歲五十始覺衰悴因書長句奉呈仲巽少卿 (새해에는 나이 쉰이라 비로소 늙었다는 걸 깨달아 긴 시를 지어 중손 소경에게 드리다) 始衰心事自堪嗟, 이제는 마음마저 쇠잔해져버려 스스로 탄식만 나오는데, 但覺時光似轉車. 세월은 굴러가는 수레바퀴 같다는 느낌만 들 뿐이오. 白傅開經五秩滿, 백거이는 經筵에 참석한 뒤로도 다섯 번의 벼슬을 더 했고, 仲尼學易數年加. 공자는 몇 살 더 먹은 다음 주역을 공부하고자 했소. 負薪筋力誠難强, 근력으로 나뭇짐을 짊어지자니 억지로 하기 몹시 어려웠고, 報國功名事轉賒. 공명을 세워 나라에 보답하려도 일마다 어긋났소. 若問信書何所得, 책을 믿어서 얻는 것이 무어냐고 물어온다면, 樂天知命任生涯. 하늘의 이치 즐기고 천명 알면서 나의 삶을 맡기겠 102) 賈敬顔, 앞의 책, 98~99쪽.
246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41 노라 답하리다. ① 시제 소송은 1020년생이어서 희녕2년(1069)의 새해에는 50세가 된다. 이 시는 시화 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② 제2구 時光: 이것은 중화서국본과 청초본의 표기이다. 문연각본은 光 陰 이라 표기했다. ③ 제3-4구 白傅: 白居易를 가리킨다. 그는 노년에 太子少傅 벼슬을 하여 白 傅 라고도 불린다. 開經: 經 은 經筵 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開經 은 경연을 열 다 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경연에 참가하다 는 뜻이다. 朱金城의 白 居易年譜簡編 에 의하면 文宗은 大和 원년(827년, 백거이 56세) 생일 날 백거이와 佛僧 義林 및 道士 楊弘元을 麟德殿으로 불러들여 儒 釋 道 三敎의 교의를 강설케 했다.103) 五秩: 다섯 번의 벼슬. 朱金城의 年譜簡編 에 의하면 백거이는 秘書監으로 봉직하던 56세에 경연에 참석했고, 이후 57세에 刑部侍郞, 58세에 太子賓客, 59세에 河南尹, 62세에 太子賓客, 64세에 太子少傅를 역임하다가 70세(武宗 會昌 원년)에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75세에 사망 했다. 청초본은 五秩 을 白秩 로 오기했다. 白秩 로는 의미가 통하지 않을 뿐더러 白 은 白傅 에서의 白 과 중복된다. 仲尼學易: 論語 述而 의 공자 가로되, 내가 몇 살을 더 먹어, 쉰 살에 易을 공부한다면, 큰 잘못이 없으리라. (子曰, 加我數年, 五十以 學易, 可以無大過矣.)에서 나온 말이다. ④ 제5-6구 負薪: 등에 나뭇짐을 지다 는 뜻. 흔히 지위가 미천한 사람을 가 리킨다. 제5구는 그동안의 관직이 낮아 제대로 뜻을 펴지 못했다는 自 103) 朱金城, 白居易集箋校 (4034쪽, 上海古籍, 1988) 白居易年譜簡編 : 文宗大和元年 十月十日, 文宗誕日, 詔居易與安國寺沙門義林 太淸宮道士楊 弘元于麟德殿論儒 釋 道三敎敎義.
247 242 中國學 第34輯( ) 歎을 표현한 것이다. 强: 이 시는 율시이다. 따라서 强 은 上聲으로 읽히며(독음: qiǎnɡ), 강박하다; 억지로 하다 의 뜻이다. 賖: 어긋나다(差失) 또는 위배하다 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한 어대사전 ). 주석 은 아득하다 (渺茫)라고 새겼는데, 이것 또한 통 한다. 청초본은 제5-6구를 負薪筋力誠難報, 强國功名事轉賒 라고 잘못 표기했는데, 이는 報 와 强 두 글자의 순서가 바뀐 것이어서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4. 路程에 따른 前使遼詩의 再編次 소송의 사료시는 모두 蘇魏公文集 권13에 수록되어 있으며, 대체 로 소송이 開封을 출발한 뒤 요나라의 廣平淀에 도달하여 사신의 임무 를 수행했다가 다시 개봉으로 귀환하기까지의 노정의 순서에 따라 편차 되어 있다. 그러나 소송의 前使遼詩의 일부 시들은, 이미 필자가 개별 시에서 해설한 바와 같이, 이러한 노정과는 조금 다르게 편차되어 있다 고 생각되어 왔다. 그 시들은 和仲巽過度雲嶺, 過摘星嶺, 和題 會仙石, 和就日館, 和使回過松子嶺 등의 다섯 수이었다. 송대 사신들이 국경인 白溝驛을 지나 북행하는 노선은 路振의 乘軺 錄, 王曾의 上契丹事, 宋綬의 契丹風俗, 陳襄의 神宗皇帝卽 位使遼語錄, 沈括의 熙寧使契丹圖抄 등에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고, 현대의 학자들은 그 노선 및 館驛의 위치를 상세히 고찰하고 있 다. 예를 들면 傅樂煥은 上契丹事 武經總要 契丹風俗 薛映 記 神宗皇帝卽位使遼語錄 등의 각종 行程錄에 근거하여 각 사신 들이 사행의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館驛을 정리한 宋臣使遼所經館 驛名稱表 宋臣使遼路線系統圖 104)를 작성했고, 孫冬虎는 각종 行程 錄에 기재된 지명들을 상세히 고찰하고 白溝驛에서 中京까지, 그리고 中京에서 上京까지와 中京에서 廣平淀이 있는 木葉山까지의 노선을 일 104) 傅樂煥, 앞의 책, 26~28쪽.
248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43 목요연하게 정리한 도표를 작성했다.105) 그 가운데 孫冬虎의 도표를 참 조하여 白溝驛에서 中京을 거쳐 목엽산에 이르기까지의 노선을 다시 표 시하면 아래와 같다. 단 胡廷榮이 고찰한 바와 같이, 中京에서 목엽산까 지의 館驛은 宋綬와 蘇頌이 거쳐 갔던 관역의 명칭 및 관역의 수효에 서로 차이가 난다. 따라서 中京에서 목엽산까지의 노선은 孫冬虎의 도 표에 나타난 관역의 명칭을 앞에 표기하고, 다시 胡廷榮의 연구결과에 의한 관역의 명칭을 [ ] 속에 병기한다. 또 소송의 시에 나타난 관역에 는 밑줄을 그어 표시하고, 아울러 관역은 아니지만 소송의 사료시에 출 현하여 해당 시가 지어진 장소를 알게 하는 지명을 속에 표시한다. 또 소송이 광평전을 떠나 귀환할 때 거쳐 갔던 관역 및 지명은 앞의 것 들과 동일한 부호를 사용하되, 중고딕체 기운꼴의 글자로 표시한다. 또 한 * 표시는 蘇頌의 노정 가운데 後使遼詩에만 출현하는 지명이다. 白溝驛 - 新城縣 - 涿州 - 幽州 - 孫侯館 - 順州 - 檀州 - 金溝館 - 古北口 - 摘星嶺 - *新館 - 臥如來館 - (*摸斗嶺) - 柳河館 - 度 雲嶺 - 打造部落館 - 會仙石 - 牛山館 - 松子嶺 - 鹿兒峽館(鹿兒 館) - 鐵漿館 - 富谷館 - 通天館(長興館) - 中京 - 羖䍽河館[就日館] - 惠州( - 楡林館)- 訥都烏館 - 香山子館[紫蒙館] - [白馬館] - 神水 沙磧 - 水泊館[神水館] - 張司公館[土河館] - 木葉館(즉 *會同館) 위의 도표에 의거하여 소송의 前使遼詩에 나타난 지명을 그가 白溝驛 을 건너 廣平淀에 도달하고, 다시 귀환하기까지의 노선에 따라 다시 표 시하면 다음과 같다. 白溝驛 古北口 摘星嶺 柳河館 度雲嶺 會仙石 牛山 館 鹿兒館 就日館 紫蒙館 神水沙磧 土河館 木葉館 (이후는 歸路임) 神水館 楡林館 中京 富谷館 松子嶺 打造部落館 105) 孫冬虎, 앞의 논문, 28쪽의 圖1: 路振王曾自白溝驛至中京所經驛館州縣示 意圖 및 31쪽의 圖2: 薛映自中京至上京 宋綬自中京至木葉山所經驛館州縣 示意圖 참조.
249 244 中國學 第34輯( ) 따라서 요나라 境內를 읊은 소송의 前使遼詩를 노정의 순서대로 다시 편차하면 다음과 같다. 06 初過白溝北望燕山 07 和仲巽過古北口楊無敵廟 08 和 仲巽山行 12 過摘星嶺 10 奚山道中 11 和仲巽奚山部 落 13 和晨發柳河館憩長源郵舍 09 和仲巽過度雲嶺 16 和題會仙石 14 和宿牛山館 15 又七絶 17 和宿鹿兒 館 19 和就日館 18 和冬至紫蒙館書事 20 和過神水沙 磧 21 和土河館遇小雪 22 和檀香板 (廣平淀에서 제작됨) 23 和神水館逢齊 葉二國信 24 使回蹉榆林侵夜至宿館 26 和 遊中京鎭國寺 27 和富谷館書事 25 和使回過松子嶺 28 和奚山偃松 29 和過打造部落 30 新歲五十始覺衰悴因書長 句奉呈仲巽少卿 소송이 白溝驛을 건너기 전, 즉 송나라 경내에서 지은 前使遼詩는 모 두 5수이다. 그중 지명이 출현하는 시는 제1수(澶州), 제2수(德淸, 즉 澶州 조금 북쪽의 淸豊縣), 제3수(瀛州, 즉 河間) 등이다. 제4수와 제5 수는 비록 지명이 출현하지 않지만, 모두 瀛州에서 지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다섯 수의 편차는 神宗 元豊3년(1081)까지 宋使들이 이용했던 노선의 순서와 일치한다.106) 5. 기존 해설과의 주요 차이점 106) 開封에서부터 白溝驛까지 宋使들이 거쳐 갔던 송나라의 관역에 대해서는 이미 필자가 王安石의 奉使詩를 고찰하면서 적시한 바 있다. 그 노선은 다음 과 같다. [開封 - 陳橋 - 長垣 -滑州(韋城) - 澶州 - 南樂 - 大名 - 館陶 永濟 - 臨淸 - 宋城( 宗城 의 誤記라고 추정됨) - 貝州(恩州) - 冀州 - 深州 (靜安) - 河間(瀛州) - 莫州 - 雄州 - 白溝驛] 졸고, 王安石 奉使詩 考辨, 中國語文論叢 29집, , 46쪽. (이른바 王安石의 奉使詩 는 왕안석 이 仁宗 嘉祐5년(1060) 정월에 귀국하는 요나라의 正旦使 일행을 국경 너머 涿州까지 전송하고 돌아오기까지 지은 送伴詩를 가리킨다.)
250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45 이 논문의 고찰내용 가운데 중화서국본과 문연각본 그리고 청초본의 표기가 서로 다른 것, 기존의 해설과 다른 것, 주된 고찰내용 등을 간략 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00) 희녕 원년 출사할 때의 소송의 신분 張中澍는 宋 鄒浩의 故觀文殿大學士蘇公行狀 에 의거하여 소송이 道宗의 모친인 宗天太后의 생일(12월 3일)을 축하하는 사절이라고 고증 했다. 필자는 그의 견해를 따른다. 01) 和國信張宗益少卿過潭州朝拜信武殿 詩題: 중화서국본과 문연각본의 표기인 潭州 는 澶州 의 誤記이 다. 장중주의 해설 또한 필자와 합치한다. 제2구(文明運算高): 장중주는 文明 이 眞宗을 가리킨다고 주장했 지만, 이 文明 은 文采光明 한 송 왕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제3-4구(三冬馳日御, 一夜隕星旄.): 宋軍의 床子弩 공격으로 遼의 統領 撻覽의 대장기가 꺾이고, 그날 밤 撻覽이 사망한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 장중주 및 주석 의 해설은 통하지 않는다. 제5구(從此通戎賂): 장중주는 通戎賂 를 세폐의 제공이라고 설명 했으나, 이는 요나라와의 재화 교류를 의미하는 말로 풀이해야 한다. 제7-8구(威靈瞻廟像, 列侍冩賢豪): 信武殿에 모셔진, 眞宗과 寇準 을 비롯한 澶淵의 전투에서 공을 세운 신하들의 초상화를 묘사한 것이 다. 장중주의 해설은 필자와 유사하나, 공신들을 李沆 王旦 李繼隆 등으 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필자와 차이가 난다. 제11구(金繒比干櫓): 중화서국본의 千櫓 는 干櫓 의 誤記이다. 문연각본 및 청초본의 표기가 옳다. 02) 和張少卿過德清憶郎中五弟 제2구의 原注(昆仲同舉進士, 至南宫請試明經.): 장중주는 明經 을 明經科로 풀이했지만, 이 明經 은 경술에 밝은 점을 인정받기 위하여 張宗益 형제가 경술 시험에 자원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04) 和安撫王臨騏驥見寄 제3구(邊侯顧遇勞紆軫): 王臨이 소송의 숙소로 찾아준 사실을 감 사하는 표현이다.
251 246 中國學 第34輯( ) 05) 和王大觀寄張仲巽 제5구(舊德朝端方見用): 장중주는 舊德 을 老臣 이라고 풀이했 지만, 이것은 장종익이 예전에 세운 공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8구(幾見新頭代故頭): 장중주는 頭 를 머리에 쓰는 官帽로 풀 이했다. 필자는 그의 풀이에 동의한다. 06) 初過白溝北望燕山 장중주는 白溝 를 安肅軍 북쪽에 위치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북송대의 봉사노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 시에서의 白溝는 雄州 북쪽에 위치한 것이다. 10) 奚山道中 제1구(山路縈回極險屯): 險屯 을 문연각본과 청초본은 險難 이 라 표기했으나, 이 難 은 이 시의 韻脚에서 벗어난 글자이다. 중화서국 본의 표기가 옳다. 12) 過摘星嶺 제3구(握節偶來觀風俗): 偶來 는 문연각본과 청초본의 표기이다. 중화서국본의 표기인 偶求 로는 뜻이 잘 통하지 않는다. 13) 和晨發柳河館憩長源郵舍 제6구(星土難分列宿纏): 列宿纏 은 별자리가 뒤엉키다 의 뜻이 다. 17) 和宿鹿兒館 제2구(夭䴠仁心所不為): 夭䴠 는 문연각본과 청초본의 표기이다. 중화서국본의 표기인 天䴠 는 誤記이다. 제3구(鳴角秋山少閒日): 閒日 은 문연각본의 표기이다. 청초본은 閑日 으로 표기했다. 중화서국본의 표기인 間日 은 하루를 건너뛰 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어느 쪽이든 의미는 통한다. 18) 和冬至紫蒙館書事 제7구(欲知王曆正): 王曆 은 송 왕조의 역법을 가리킨다. 이 해에 遼曆의 동짓날은 宋曆보다 하루가 빨랐다. 제8구(候律應孳荄): 候律 은 문연각본과 청초본의 표기이며, 절 기 의 뜻이다. 중화서국본의 표기인 候津 으로는 문맥이 통하지 않는 다.
252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 和過神水沙磧 제2구(狙擊殊博浪): 소송이 건너고자 하는 神水의 물살이 博浪沙의 황하처럼 거세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22) 和檀香板 이 시는 廣平淀에서 베풀어진 遼 道宗의 생신 축하연의 散樂 연주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제1구(鏤檀芬馥貫縚衺): 拍板에 꿰인 끈이 비스듬함을 묘사한 것 이다. 제2구(擊玉敲金一串花): 玉磬과 編鐘의 연주 및 伶人들이 두건에 꽃을 꽂은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제3구(自與麗妃親記曲): 아마도 용모가 빼어나고 詩와 歌詞에 능 통하며 특히 琵琶를 잘 탔던 道宗의 宣懿皇后의 음악 기록을 언급한 것 인 듯하다. 23) 和神水館逢齊 葉二國信 詩題: 齊 葉二國信 은 正旦使인 齊氏와 葉氏를 가리킴이 분명하 다. 따라서 소송 및 張宗益은 각각 宗天太后와 道宗의 생신을 축하하는 生辰使이었다. 필자의 이 논문은 宋과 遼의 역사와 제도 및 지리 등의 연구와 밀접 한 관련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분야에 관한 필자의 학식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논문의 고증과 해설에는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이다. 삼가 제현들의 아낌없는 질정 있으시길 빈다. [참고문헌] 蘇 頌, 蘇魏公文集 (文淵閣四庫全書本) 蘇 頌, 蘇魏公文集 (北京: 中華書局, 제1판; 2004, 제2차 인쇄, 1988) 蘇 頌, 蘇魏公文集 (淸鈔本)(四川大学古籍研究所, 宋集珍本叢刊 12冊, 線裝書局, 2004) 蔣祖怡 張滌云, 全遼詩話 (長沙: 岳麓書社, 1992) 賈敬顔, 五代宋金元人邊疆行記十三種疏證稿 (北京: 中華書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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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蘇頌 前使遼詩 注釋(Ⅱ)(류영표) 249 <中文提要> 本文之重要注釋內容如下: 和國信張宗益少卿過潭州朝拜信武殿 : 詩題 潭州 應爲 澶州 之訛; 第二句 文明運算高 之 文明 應指宋王朝; 第四句 一夜隕星旄 應指遼統軍 撻覽的陣亡; 第八句 列侍冩賢豪 之 賢豪 指的是締結澶淵之盟時的寇準等 功臣; 第十二句 金繒比干櫓 之 干櫓, 中華書局本訛作 千櫓 和張少卿過德清憶郎中五弟 : 對蘇頌原注 昆仲同舉進士, 至南宫請 試明經 之 明經, 張中澍認爲是指 明經科, 但這裏的 明經 應爲 明曉經 術 的意思 和王大觀寄張仲巽 : 第五句 舊德朝端方見用 之 舊德 應指張宗益 往日樹立的功德 初過白溝北望燕山 : 詩題之 白溝 應指雄州之白溝, 不是指安肅軍 之白溝 和冬至紫蒙館書事 : 第七句 欲知王曆正 之 王曆 指着宋王朝的曆 法 熙寧元年的冬至, 遼曆比宋曆早得一日 和檀香板 : 這首詩描寫了賀遼道宗的生辰而演奏散樂之情況 第二 句 擊玉敲金一串花 之 玉 和 金 應指玉磬和編鐘; 一串花 意味着伶人都 揷花在頭巾上而跳舞的情況 第三句 自與麗妃親記曲 之 麗妃 應指遼道宗 之宣懿皇后 關鍵詞: 蘇頌, 使遼, 使遼詩, 前使遼詩, 澶州, 香壇板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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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中國學 第34輯( ) pp.251~274 中國文化在中國的命運與前景 * --20世紀以來的 中國文化宣言 述評 曲金良** 목 차 0. 引 言 1 中國文化的 本性 2 20世紀的論爭 3 21世紀的疾呼 4 簡短的結論 0. 引 言 一個國家 一個民族 一個區域的文化 本來是這個國家 這個民族 這個區域自身在長期歷史上創造與選擇 積澱與傳承的思想觀念 社會制度 與生活方式 在多種文化共存共榮的世界上 每一種文化應該是一個國家 一個民族 一個區域不同於另外的國家 民族 區域的標誌 1)儘管各文化 之間不可或缺相互交流與影響 但這種交流和影響只能是 只應是 客 對 主 的關係 不可以 也不應該反客為主 甚至把對方吃掉 世界歷史上各 文化之間的交流和影響比比皆是 但一種主體文化對另一種客體文化的吸納 和接受 無非有兩種形態和方式 一種是主動的 一種是被動的 主動的接 受表現出的是一種文化對外來文化有選擇地吸收 消化 利用的自覺 其形 態和方式自然是和平的 友善的 漸進的 而被動的接受表現出的是一種文 化對外來文化被迫地變革 讓位 歸順的無奈 其形態和方式往往是殘暴 * 中國海洋大學 敎授, 海洋文化硏究所 所長
257 252 中國學 第34輯( ) 的 無情的 迅猛的 並且往往是兩個文化主體之間的戰爭的產物 戰敗的 一方如果是一個較小的國家 較小的民族 較小的文化區域 那麼即使人口 沒有被對方消滅 其文化也會很快被對方消亡 歷史上不知有多少也曾經輝 煌一時過的較小區域的文化 就是在這樣的人口戰爭和佔領 文化侵吞和變 革之後消失得無影無蹤的 而對於大區域的文化 情形卻大不然 異文化主 體的侵入和佔領 既不能消滅這一大區域的人口 甚至無力佔領和控制這一 大區域的地盤 更不能滅亡這個大區域的文化 結果往往是首先導致這個大 區域中文化上的一片混亂 和在混亂之中不斷產生的原生主文化對外來客文 化的抗爭 然後是 土著文化派 或曰 國粹文化派 與 外來文化派 以及中間 騎牆派或調和派之間在主張 觀點和理念的不斷論爭 應該說 土著文化 派 或曰 國粹文化派 也好 外來文化派 也好 人們關心的都是這個本土 國家 民族 區域文化的命運與前途 只是文化理想與文化設計的不同 儘 管主張 外來文化 的一派往往被指斥為 洋奴文化派 漢奸文化派 中國 文化之在中國 在世界進入近代歷史之後出現的問題 就是上述一個大文化 區域在受到西方強盜侵略 被動和被迫 接受 西方外來文化之後遇到的問 題 即 中國自近代遭受西方軍事侵略 經濟侵略 文化侵略之後 很多中 國人自己開始對中國文化的認同發生了動搖 乃至有許多人開始否定甚至全 盤否定之 因而基礎于對中國文化的生存與發展 命運與前途問題的關注 才一直成為人們不斷論辯 論爭的至關重大命題 尤其是隨著近些年來世界 上有西方所主導的 全球化 愈演愈烈 中國在經濟快速發展的同時卻面臨著 亟需解決的幸福指數的提高與和諧社會的建設問題 因而中國文化作為主體 文化的回歸與發展 越來越擺在了中國的面前 1 中國文化的 本性 中國文化本來是承續發展了上下五千年 在世界上所有的文化類型中歷 史最為悠久 內涵最為豐富 影響最為廣遠的泱泱大國文化 但自從中國歷 史走進近代之後 卻先是被動的 後是主動地接受了西方文化 與此同時對 中國固有文化開始了口誅筆伐的歷史 從此截斷了中國文化自身傳統的承 續 發展的路徑 擇其大端舉之 先是洋務運動 後是維新運動 再後是五 四運動 再後是對中國傳統文化的不斷的批判運動 但是 這種對西方文化
258 中國文化在中國的命運與前景--20世紀以來的 中國文化宣言 述評(曲金良) 253 的接收與接受 畢竟是在中國這個有著數千年悠久歷史 自成體系的古老而 鮮活的文化傳統 有著原本遠遠高於西方文明水準的泱泱大國中發生的 而 不是在一個原本弱小國家 文化根基甚淺的落後民族那裏發生的 更不是在 原本一片文化沙漠上移植的 在原本弱小國家 文化根基甚淺的落後民族那 裏 外侵的文化很容易將土著文化趕盡殺絕 夷為平地 在一片文化沙漠 上 植入的文化更容易在那裏生根開花 但中國文化有著五千年不滅 生生 不息的 頑固 的本性與能量 不管歷史上如何改朝換代 不管入主中原掌控 中國政權的曾經是 華 是 夷 中國文化的傳統文脈從未中斷過 自上古以 降 殷革夏命 周革殷命 結果都是 殷因于夏禮 周因于殷禮 雖然改 朝換代不斷 而主流文化依然承續 中國自秦漢統一 最根本的是文化的整 合統一 自此 劉漢推翻了贏秦 結果是漢承秦制 其後任王朝更迭 中國 文化傳統一直在延續 發展 並且被周邊地區乃至海外地區所仰慕 學習模 仿 自覺地納入中國文化系統 即使外族入主中原 也無不自視為中國文化 道統的承繼者 無不在中國奉行中國文化傳統 其本民族的自身文化 無不 被中國文化傳統所同化 而 這一次 面對近代以降的西方文化的侵入和反 客為主 中國文化傳統被入侵 自戕得 國將不國 而西方文化是不是就是 適應於中國這一文化土壤?如果不能適應 中國文化自身應該怎麼辦 其命 運到底將會怎樣?其路向應該如何?從晚清 民國直至今日 人們不斷地進行 著思考 思辨 主張和論戰 中國文化發源於上古 中國文化的精華釀成於先秦 中國文化的成熟 延續和發展開始於西漢 從總體而言 自漢代確立了儒家的文化正統地位之 後 中國文化的思想核心 價值體系和禮儀規範的主體內涵 是處於多民族 多元文化主導地位的儒家文化 是儒家文化這種核心文化 主導文化維繫著 中華民族的精神世界和生命意義的完整統一 支撐著中華民族歷史地靠近積 聚成為一個龐大的佔據世界五分之一乃至四分之一的人口 並至今有著頑強 的 鮮活的生命力的偉大民族 中國歷史上不管是中原人建立的帝國王朝也 好 少數民族入主中原建立的帝國王朝也好 都自覺地維繫 承繼和發展了 中國的儒家文化這一核心文化 主導文化 這就是中華民族的歷史 中國文 化的歷史 如果中國幾千年來沒有一個共同的價值信仰和文化體系 中華民 族形成和發展的歷史將無從談起 如果中國幾千年來所已經形成和發展著的 這樣一個共同的價值信仰和文化體系被取締 推翻 中斷 分崩離析 那麼
259 254 中國學 第34輯( ) 中國這樣一個泱泱大國 中華民族這樣一個多民族的大家庭 就必將是一盤 散沙 分崩離析 有人說 儒家文化並不絕對保證中國的大一統 在中國歷 史上分裂割據的局面也是有的 這實際上是一個認識上的誤區 這裏的問題 是 一個國家 民族的主體文化的傳承發展與政權的更迭興替是兩個概念 一個政權的執政既可能很好地代表 體現中國的主體文化思想與規範 又可 能與此背道而馳 不管這個政權是一開始就與此背道而馳 還是後期與此背 道而馳 它的很快被推翻或最終被推翻 都是與中國文化的主體思想與施政 規範背道而馳的結果 漢代之後歷史上每一次出現分裂割據 都是前一個大 一統的王朝政權在執政的後期不得人心 或經民間起義造反 或由內部倒戈 反叛 一時群雄四起 導致了一個王朝政權的垮臺 而各個新建立的政權 則或因其自身的非正統性而難服天下 或因各自的政治 經濟 軍事實力不 足以實現大統一局面 這才導致政權的 割據 並存 但無論哪個政權 尤其 是中原政權 甚至不少少數民族政權 大都以中華正統自居 大都欲以中國 的主體文化思想與規範統一天下 治理天下 而絕少自甘於一方 圖謀長期 與正統合法的國家政權分列門戶 別立一 國 由此可見 不但以儒家文化 為主體內涵的中國文化思想及其政治觀念與倫理道德規範可以治理天下 使 得天下可以民得其所 長治久安 天下共用太平之福 而且也正是以儒家 文化為主體內涵的中國文化及其政治觀念與倫理道德規範 能夠把中國已分 裂割據的局面重新拉回到一統中來 任何一種文化 都是一個國家 一個民族乃至多個民族共同歷史地積澱 形成的深入人心的知識話語系統和觀念信仰系統 對於這個國家 這個民族 的文化主體自身而言 具有不可替代的價值 各種文化之間 只有內容形式 的不同 沒有高低優劣之分 西方人使用刀叉做餐具 中國人使用筷子做餐 具 西方人吃麵包 中國人吃饅頭 基督教徒禮拜上帝 中國人敬天法祖 西方人際之間講求契約 中國人際之間講求親情 如此等等 不一而足 哪 個高明 哪個低下 西方國家中世紀原本落後 黑暗 至極 其作為 暴發 戶 的歷史很短 靠的只是製造出來的洋槍洋炮 用之四處侵奪 四處殖 民 西方國家殖民美洲所造就的 美國 其自身200多年來的 富國 史 也 是甚至更是在世界上進行領土擴張和財富掠奪 大發戰爭之財的歷史 日本 明治維新 之後 脫亞入歐 所走的道路同樣是軍國主義的四處侵略 中國 為日本的這種 成功 被迫付出了3000多萬炎黃子孫的生命
260 中國文化在中國的命運與前景--20世紀以來的 中國文化宣言 述評(曲金良) 255 中國自鴉片戰爭受辱 西方文化侵入之後 就開始了 中國到底應有什 麼樣的文化 中國文化應該何去何從 的大論爭 即所謂 中學 與 西學 之 爭 當時被西學派稱之為 舊學 與 新學 之爭 而洋務派與國粹派 維新 派與保守派之爭的結果 實際上就開啟了中國文化傳統讓渡於侵入 植入而 來的西洋異質文化的歷史 如果說19世紀下半葉這種 中學 與 西學 之爭尚 在朝廷與官僚士紳等上層社會 流行 那麼進入20世紀 隨著西方所主導 的世界整體性的近代化 現代化潮流一步步彌漫中國 對中國文化影響越來 越深 中國文化不斷地被西方文化蠶食和吞噬 也就日甚一日 下移民間 了 但即使如此 關於中國文化的是非判斷 棄揚取捨的走向與命運的論爭 論戰 不但沒有一日消歇 而且持續了整整一個20世紀 其間不斷掀起高 潮 進入21世紀之後 恢復中國文化傳統主體地位的 宣言 建議 呼 籲 更是接連不斷 大有一浪高過一浪之勢 2 20世紀的論爭 20世紀20年代初 就是那位曾積極主張中國 維新 的文化大將梁啟超 遊歷歐洲之後 於一九二 年三月在上海 時事新報 發表長文 歐遊心影 錄 宣佈 西方文明破產 論述了中國文化的優越 1921年 梁漱溟的 東西文化及其哲學 1) 提出 回歸中國文化 的問題 進而爆發了一場持續 了十年之久的關於 東西文化觀 的大論戰 主張全盤西化的 以胡適為最者 之一 他在1929年為英文 中國基督教年鑒 寫的 文化的衝突 中寫道 總而言之 我們對中國文明究竟有什麼真正可以誇耀的呢 我們國家在過去幾百年間曾產生過一位畫家 一位雕刻家 一位偉大詩 1) 東西文化及其哲學 商務印書館1999年版 內容提要 介紹說 東西文化及其 哲學 首次出版於1921年 距今已七十餘年 在當時的東西文化論戰中曾引起思 想學術界的重視 自七八十年代起 隨著海內外現代新儒學研究的興起 此書再 度受到人們的注意 並被視為現代新儒學的開山之作 現在以橫排本重新問世 也主要是為適應人們瞭解和研究現代新儒學這一中國當代重要思潮的需要 此書 首次於1921年10月由北京財政部印刷局出版 1922年1月起改由上海商務印書館出 版 至1930年先後印行八版 1987年2月 商務印書館為紀念建館九十周年 又根 據小字本影印出版一次 現在這個版本即以小字本為准 又將大字本中的兩則著 者告白補入 並勘正個別錯字與標點 這個版本還收入了著者1980年所寫的跋 記 刪去了已失時效的 時論彙編 約四萬字 又增加了兩篇附錄
261 256 中國學 第34輯( ) 人 一位小說家 一位音樂家 一位戲劇家 一位思想家或一個政治家 嗎 2) 他在1930年發表的 介紹我自己的思想 中又說 我們必須承認我 們自己百事不如人 不但物質機械上不如人 不但政治制度上不如人 並且 道德不如人 知識不如人 音樂不如人 藝術不如人 身體不如人 3) 面 對西方的科技文明和物質文明的強勢入侵 在這種東西文化是非優劣的論戰 中 西方論者拿西方的長處比中國的短處 很自然地明確提出了全盤西化的 主張 從而引發了當時中國思想文化界關於中國文化出路到底是中國本位還 是全盤西化的一場集中 激烈的大討論 大論戰 1929年 胡適在上述 文化的衝突 一文中分析說 當時的中國人對待 西方文化有三種態度 第一種態度是抗拒 第二種態度是全盤接受 第三 種態度是有選擇性的採納 陳序經1933年12月29日在中山大學發表了 中 國文化之出路 的演講,也認為中國文化建設的路向有三派 一 復古派 主張保存中國固有文化的 二 折衷派 提倡調和辦法中西合璧 的 三 西洋派 主張全盤接受西洋文化的 他說 中國的問題 根 本就是整個文化的問題 為中國的前途計 我們要為它尋找一條出路 兄弟是特別主張第三派的 就是要中國文化徹底的西化 4) 即所謂 全盤 西化 隨後 反駁批評的文章陸續出現 1934年下半年 陳序經還在商務 印書館出版了 中國文化的出路 一書 緊接著 1935年初 王新命 何炳 松 陶希聖 薩孟武等十位知名教授聯合署名發表了 中國本位的文化建設 宣言 5) 這一 十教授宣言 或稱 三五宣言 一十宣言 文雖不長 卻標誌著一場直接關涉到中國文化路向選擇和中國文化建設戰略實施的全國 範圍內的大論戰達到了高峰 十教授宣言 共有三部分 即 沒有了中國 一個總清算 我們怎 麼辦 宣言 基於對中國五千年來所積澱形成的價值信仰和文化生態已呈 整體性 根本性的坍塌與崩潰的認識 開宗明義地指出 在文化的領域 中 我們看不見中國了 中國在文化的領域中是消失了 所以 從文 2) 轉引見羅榮渠主編 從西化到現代化 北京大學出版社1990年版 第367頁 3) 葛懋春 李興芝編 胡適哲學思想資料選 (上) 華東師大出版社1981年版 第345頁 4) 陳序經 中國文化之出路 廣州 民國日報 1934年1月15日 現代青年 版 5) 王新命 何炳松 陶希聖 薩孟武等 中國本位的文化建設宣言 文化建 設 第1卷第4期 1935年1月10日
262 中國文化在中國的命運與前景--20世紀以來的 中國文化宣言 述評(曲金良) 257 化的領域去展望 現代世界裏面固然已經沒有了中國 中國的領土裏面也幾 乎已經沒有了中國人 而要使中國人成為中國人 就必須從事 中國本位的 文化建設 宣言 認為 復古派的錯誤在於忽視了歷史不能重演 西化派的錯誤在 於忽視了中國是中國 為此 宣言 提出了進行 中國本位的文化建設 的五 點主張 三個原則 其五點主張是 1 中國是中國 不是任何一個地域 因而有它自己的特殊性 同時 中國是現在的中國 不是過去的中國 自有 其一定的時代性 所以我們特別注意於此時此地的需要 就是中國本位的基 礎 2 徒然讚美古代的中國制度思想 是無用的 徒然詛咒古代的中國制 度思想 也一樣無用 必須把過去的一切 加以檢討 存其所當存 去其所 當去 其可讚美的良好制度偉大思想 當竭力為之發揚光大 以貢獻於全世 界 而可詛咒的不良制度卑劣思想 則當淘汰務盡 無所吝惜 3 吸收 歐 美的文化是必要而且應該的 但須吸收其所當吸收 而不應以全盤承受 的態度 連渣滓都吸收過來 吸收的標準 當決定于現代中國的需要 4 中國本位的文化建設 是創造 是迎頭趕上去的創造 其創造目的是使在文 化領域中因失去特徵而沒落的中國和中國人 不僅能與別國和別國人並駕齊 驅于文化的領域 並且對於世界的文化能有最珍貴的貢獻 5 我們在文化 上建設中國 並不是拋棄大同的理想 是先建設中國 成為一整個健全的單 位 在促進世界大同上能有充分的力 其三個原則是 不守舊 不盲從 根據中國本位 採取批評態度 應用科學方法來檢討過去 把握現在 創造 未來 目的是 使中國在文化的領域中能恢復過去的光榮 重新占著重要的 位置 成為促進世界大同的一支最勁最強的生力軍 十教授宣言 發表之後 遭到了全盤西化論者的激烈批評 為此 不但 王新命發表 全盤西化論的錯誤 6) 十教授還又聯合發表 我們的總答 復 7) 起而反擊 指出全盤西化論的主要錯誤在於 一 是忘記了中國幾 千年歷史四萬萬民族也是文化的產物 二 是忘記了全盤西化的結果會把 西方人垃圾箱中的垃圾來替代中國人飯碗中的白米飯 三 是忘記了聰明 相等的民族縱有其不相如的地方 而在文化的創造上 決不會甲種民族的創 6) 王新命 全盤西化論的錯誤 晨報 1935年4月3日 7) 王新命 何炳松 陶希聖 薩孟武等 我們的總答復 文化建設 第1卷第 8期 1935年5月10日
263 258 中國學 第34輯( ) 造完全是構成天堂的材料 乙種民族的創造完全是構成地獄的材料 四 是只看到了西洋的好處 沒有看到其罪惡 五 是忘記了中國近世文化上 出現的許多惡端 正是接受西化的中毒狀態 這次論戰 高峰時期持續了一年有半 參與大論戰的文章 有150多篇 收入到了馬若芳編選出版的 中國文化建設討論集 8) 一書之中 其後 由於自1937年日本全面侵略中國 中國面臨著亡國滅種之憂 抗 戰遂成為中國的主要問題 但關於中國文化的命運的思考與論爭 並沒有停 止 只是由於人們的注意力焦點已被抗戰轉移 因而很少形諸於文字 1958年之初 牟宗三 徐複觀 張君勱 唐君毅四先生在臺灣發表了聯 合署名的 為中國文化敬告世界人士宣言 我們對中國學術研究及中國文 化與世界文化前途之共同認識 9) 相對於1935年 十教授宣言 亦被稱之為 三五宣言 四先生此 宣言 也被稱之為 五八宣言 主要的主張是儒家 文化的 返本開新 宣言 為長篇大論 分十二部分 一 前言 我們發表此宣言之理 由 二 世界人士研究中國學術文化之三種動機與道路及其缺點 三 中國 歷史文化之精神生命之肯定 四 中國哲學思想在中國文化中之地位及其與 西方文化之不同 五 中國文化之倫理道德與宗教精神 六 中國心性之學 的意義 七 中國歷史文化所以長久之理由 八 中國文化之發展與科學 九 中國文化之發展與民主建國 十 我們對中國現代政治史之認識 十 一 我們對於西方文化之期望 及西方所應學習于東方之智慧者 十二 我 們對於世界學術思想之期望 宣言 開宗明義 在此宣言中 我們所要說的 是我們對中國文化 之過去與現在之基本認識及對其前途之展望 與今日中國及世界人士研究中 國學術文化及中國問題應取的方向 並附及我們對世界文化的期望 宣 言 明確指出 我們之所以要把我們對自己國家文化之過去現在與將來前 途的看法 向世界宣告 是因為我們真切相信 中國文化問題 有其世界的 重要性 我們姑不論中國為數千年文化歷史 迄未斷絕之世界上極少的國家 8) 馬若芳編 何炳松序 中國文化建設討論集 (上下編) 上海國音書局1936年版 9) 牟宗三 徐複觀 張君勱 唐君毅 為中國文化敬告世界人士宣言--我們對中 國學術研究及中國文化與世界文化前途之共同認識 民主評論 1958年元旦 號 再生 1958年元旦號
264 中國文化在中國的命運與前景--20世紀以來的 中國文化宣言 述評(曲金良) 259 之一 及十八及十八世紀以前的歐洲人對中國文化的稱美 與中國文化對於 人類文化已有的貢獻 但無論如何 中國現有近於全球四分之一的人口擺在 眼前 這全人類四分之一的人口之生命與精神 何處寄託 如何安頓 實際 上早已為全人類的共同良心所關切 中國問題早已化為世界的問題 如果人 類的良心 並不容許用原子彈來消滅中國五億以上的人口 則此近四分之一 的人類之生命與精神之命運 便將永成為全人類良心上共同的負擔 而此問 題之解決 實系於我們對中國文化之過去現在與將來有真實的認識 如果中 國文化不被瞭解 中國文化沒有將來 則這四分之一的人類之生命與精神 將得不到正當的寄託和安頓 此不僅將招來全人類在現實上的共同禍害 而 且全人類之共同良心的負擔將永遠無法解除 儘管 宣言 受到這樣那樣 思想認識的界限 但在西方強勢文化面前所宣示出來的對中國文化的價值 命運與出路的憂慮 顯示出了四學者力圖從學理上對中國文化的由衷的信 仰 熱愛與關懷 與對西方文化的由衷的冷靜思辨與分析批判 在今日科 學已發展至核子武器 足以毀滅人類之時期 人類之前途乃惶惶不可終日 此皆近代西方文化之突飛猛進所帶來之後果 則我們今日對西方文化 畢竟 應如何重新估價?並對之應抱有何種希望?應為吾人所認真思考之問題 宣言 引述羅素斯賓格勒之說 一針見血地指出了西方文化的本性 西 方人在其膨脹其文化力量於世界時 同時有一強烈的權力意志 征服意志 於是引起被征服者之反感 並進一步指出 真正的西方人之精神之缺點 乃在其膨脹擴張其文化勢力於世界的途程中 他只是運用一往的理性 而想 把其理想中之觀念 直下普遍化於世界 而忽略其他民族文化的特殊性 基於此 宣言 指出了 西方人應向東方文化學習 的五個方面 第 一 是 當下即是 之精神與 一切放下 之襟抱 中國以知進而不知退為人 生之危機 而此正西方文化之特點 第二 是 圓而神的智慧 第三 是 溫潤而怛惻或悲憫之情 第四 是 如何使文化悠久的智慧 因為 中國 文化是世界上唯一歷史久而又自覺其久 並原于中國人之自覺的求其久 而 複久的文化 中國人在一切文化生活上 皆求處處有餘不盡 此即所以積 蓄人之生命力量 使之不致耗竭過度 而 近代西方世界 帶著整個人類奔 馳 西方近代文化之只求效率之快速 這中間正有一大問題存在 此並 未得人類文化以及西方文化自身真正長久存在之道 最終西方人會發現 人並不能安居樂業於此世界 則星球中亦不可容居 西方人亦終當有一
265 260 中國學 第34輯( ) 日會感到只有上帝之永恆而無歷史文化之悠久 因而 如何能免於如希臘羅 馬文化之衰亡 已有不少的人憂慮及此 西方人應向東方人學習之第五 點 是天下一家之情懷 東方人實更富於天下一家之情懷 中國人自來喜言 天下與天下國家 為養成此情懷 儒家 道家 墨家 佛家之思想皆有所貢 獻 墨家要人兼愛 道家要人與人相忘 佛家要人以慈悲心愛一切有情 儒 家要人本其仁心之普鳩普遍涵蓋之量 而以 天下為一家 中國為一人 本 仁心以相信 人皆可以為堯舜 本仁心以相信 東西南北海 千百世之上 千 百世之下之聖人心同理同 儘管 儒家之講仁 與基督教講愛 有相通處 但是基督教要先說人有原罪 其教徒是本上帝之意旨 而由上至下 以救 人 儒家則多信人之性善 人自身可成聖 而與天合德 基督教有天堂觀 念 亦有地獄觀念 異端與不信者 是可入地獄的 則各宗派間 永不能立 於平等之地位 而在自己之教會者與不在者 即分為二類 而一可上天堂 一可入地獄 如此 則基督教對人之愛雖以一無條件 仍可以有一條件 即 信我的教 此處實有一極大之問題 照儒家的意思 則只要是人 同有能成 聖而與天合德之性 儒家並無教會之組織 亦不必要人皆崇拜孔子 因人本 皆可成聖而同於孔子 此即使儒家之教 不與一切人之宗教成為敵對 萬 物並育而不相害 道並行而不相悖 乃儒家之信仰 則人類真要有一 天下 一家 情懷 儒家之精神實值得天下人之學習 以為未來世界之天下一家之 準備 此外 東方之印度之佛教婆羅教 同有一切人可成佛 而與梵天合 一之思想 而可足養成人之天下一家之情懷者 鑒於上述 四先生指出 由於現在地球上的人類 已經由西方文化之 向外膨脹 而拉在一起 並在碰面時彼此頭破血流 我們想現代人類學術的 主要方向 應當是我們上面所謂由各民族對於其文化缺點之自己反省 把人 類前途之問題 共同當作一整個的問題來處理 我們記得在十八世紀前的 西方曾特別推崇過中國 而十九世紀前半的中國亦曾自居上國 以西方為蠻 夷 十九世紀的後半以至今日 則西方人視東方之中國等為落後之民族 而 中國人亦自視一切皆不如人 此見天道轉圜 絲毫不爽 但是到了現在 東 方與西方到了應當真正以眼光平等互視對方的時後了 四先生的上述 宣言 實際上是現代 新儒學 的濫觴的 宣言 被認 為是 現代新儒家的綱領性文章 只是由於其長文洋洋大觀 太過於學理闡 述 且僅僅發表於上個世紀五十年代中國海峽兩岸處於緊張狀態的臺灣 因
266 中國文化在中國的命運與前景--20世紀以來的 中國文化宣言 述評(曲金良) 261 而限制了其得到中國大陸廣大區域和廣泛社會層面的呼應的可能性 事實上 在中國大陸地區 自1949年之後直至進入90年代之前 中國傳 統文化儘管其中有許多被視為 封建殘餘 四舊 的東西被不斷批判 剷 除 但一方面 傳統文化中許多優秀的道德倫理 美好的情操思想依然是被 提倡 被弘揚著的 另一方面 傳統畢竟是傳統 哪怕是一些被 批判 掃除 的東西 也依然得以在基層社會傳承延續 與此同時 尤其重要的 是 在70年代中日建交 中美建交之前 由於那時並沒有 改革開放 的國際 環境條件 中國大陸的幾乎一切都是在 自力更生 地發展著的 在沒有引進 西方 現代化 技術與冰冷的人造機械及至 高科技 造物的同時 也沒有引進 西方的思想 觀念等文化層面的東西 即使是自80年代中國開始 改革開放 之後 最初開始引進的也只是西方 現代化 的 科學技術 及其產品 其後才 接著引進西方的 管理 其後又一發而不可收 引進 的已遠遠不限於 管 理 層面 於是 進入90年代之後 西方的現代文化對中國文化的侵蝕 才 開始鋪天蓋地彌漫起來 這 未幾即引起了中國文化界的深深的甚至是普遍的憂慮 並很快就做 出了反映 3 21世紀的疾呼 西方文化的對外侵蝕和霸權 是個世界性的問題 不僅僅在中國 在世 界各民族文化那裏出現了不適應症 進入21世紀的第一年 2001年11月2日 聯合國教科文組織(UNESCO) 鑒於 認識到教科文組織在聯合國系統中擔負著保護和促進豐富多彩的文化 多樣性的特殊職責 第31屆大會在巴黎總部通過並發佈了 世界文化多樣 性宣言 (Universal Declaration on Cultural Diversity)10) 重申應把文化 視為某個社會或某個社會群體特有的精神與物質 智力與情感方面的不同特 點之總和 除了文學和藝術外 文化還包括生活方式 共處的方式 價值觀 體系 傳統和信仰 主張 文化在不同的時代和不同的地方具有各種不同的 10) 聯合國教科文組織 UNESCO 世界文化多樣性宣言 Universal Declaration on Cultural Diversity 聯合國教科文組織網站
267 262 中國學 第34輯( ) 表現形式 這種多樣性的具體表現是構成人類的各群體和各社會的特性所具 有的獨特性和多樣化 文化多樣性是交流 革新和創作的源泉 對人類來講 就象生物多樣性對維持生物平衡那樣必不可少 面對著世界全球化潮流一浪高過一浪 西方的文化霸權愈演愈烈 中國 面臨全球化時代一邊倒的西化浪潮及其文化殖民的威脅 中國文化獨立與文 化主權面臨嚴峻的挑戰的局面 2004年9月 甲申之年 在大陸 由著名學 者許嘉璐 季羨林 任繼愈 楊振寧 王蒙五人發起 中華民族文化促進會 於該年9月3日至5日在北京舉行了 2004文化高峰論壇 9月5日聯名簽署發 表了 甲申文化宣言 11) 參加簽名者達70餘人 這是中國文化界對中國文 化的又一個宣言 宣言 指出 文明多樣性是人類文化存有的基本形態 不同國家和民 族的起源 地域環境和歷史過程各不相同 而色彩斑斕的人文圖景 正是不 同文明之間相互解讀 辨識 競爭 對話和交融的動力 我們期待 經歷過 全球化的洗禮 原生狀態的 相對獨立的多樣文明將獲得更為廣泛的參照 更為堅定的認同 文明既屬於歷史範疇 既已成為不同族群的恒久信仰 行 為方式和習俗 則理應受到普遍的尊重 我們為世界上許多古老民族 經 濟次發達地區的文化命運深感憂慮 我們反對文化沙文主義和文化歧 視 宣言 明確指出了中國文化對於中華民族 對於世界文化的重要價值和 獨具品涵 華夏56個民族共同創造的中華文化 至今仍是全體中國人和海 外華人的精神家園 情感紐帶和身份認同 應當認識 中華文化五千年生生 不息 綿延不斷的重要原因 在於她是發生於上古時代多個區域 多個民 族 多種形態的文化綜合體 她不但有自強的力量 而且有相容的氣度 靈 變的智慧 我們確信 中華文化注重人格 注重倫理 注重利他 注重和 諧的東方品格和釋放著和平資訊的人文精神 對於思考和消解當今世界個人 至上 物欲至上 惡性競爭 掠奪性開發以及種種令人憂慮的現象 對於追 求人類的安寧與幸福 必將提供重要的思想啟示 為此 我們呼籲包括中 國政府在內的各國政府推行積極有效的文化政策 捍衛世界文明的多樣性 理解和尊重異質文明 保護各國 各民族的文化傳統 實現公平的多種文化 11) 許嘉璐 季羨林 任繼愈 楊振寧 王蒙等70學者 甲申文化宣言 大 地 2004年第十八期
268 中國文化在中國的命運與前景--20世紀以來的 中國文化宣言 述評(曲金良) 263 形態的表達與傳播 推行公民教育 特別是未成年人的文化 道德教育 以 及激勵國家 民族和地區間的文化交流 但是 主張西化者依然不乏人在 甲申文化宣言 發表未久 袁偉時 評<甲申文化宣言> 徐國進 甲申文化宣言 與中華民族文化建 設 等就給予批評 展開論戰 12) 然而近20年來隨著外國產品 外國資 本 外國資本家 外國管理模式 外國生活方式 外國文化口味鋪天蓋地的 侵入中國 中國優秀的文化傳統被蠶食愈發普遍 一味地 發家致富 向錢 看 導致物欲橫流 進而導致色欲氾濫 社會公德倫理敗壞 是非義利觀念 喪失 中國數千年承傳下來根深蒂固地傳承著的優良的文化傳統和人格 品 格修養正被忽視 蔑視 陷於崩潰的危機 這種現狀不容忽視 這正是西化 的罪過 這是西化論者所不能解決 靠西化找不到出路的 於是 緊接著 2005年底 高鴻鈞以其主編的 清華法治論衡 第七 八輯 中華法文明的當代省思 中的卷首語 題名 中國文化復興宣言 13) 開宗明義 要 把我們的血肉 築成中國的長城 用我們的文化 鑄 成華夏的靈魂 是對中國文化出路的又一個長篇巨制的宣言 宣言 指出中國文化的獨具特點和原本優勢 天生烝民 有物有則 民之秉彝 好是懿德 天道天理 世道人心 上通千古 下達萬世 我華 夏文明道統一脈 古今相通 誠所謂人同此心 心同此理 格物 致知 誠 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這是中國文化的人生理想 自強不 息 厚德載物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這是中國文化的人 格理想 君臣有義 父子有親 夫婦有愛 兄弟有情 朋友有信 這是中國 文化的人倫理想 國家統一 社會安定 人際和諧 經濟繁榮 政治清明 司法公道 生活富裕 這是中國文化的社會理想 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 民聽 民貴君輕 君賢臣忠 官清吏廉 國泰民安 這是中國文化的政治理 想 大道之行 天下為公 人不獨親其親 不獨子其子 老有所終 壯有所 用 幼有所長 衿寡孤獨廢疾者 皆有所養 世界大同 這是中國文化的未 來理想 顯然 它們其中大部分是常情常理 在今天仍然閃閃發光 熠熠生 12) 袁偉時 評<甲申文化宣言> 南方都市報 2004年9月21日 徐國進 甲申文化宣言 與中華民族文化建設 南方都市報 2004年9月27日 13) 高鴻鈞 中國文化復興宣言 清華法治論衡 第七 八輯 中華法文明的 當代省思 前言 清華大學出版社 2005
269 264 中國學 第34輯( ) 輝 中華文明 五千年來一脈相承 一以貫之 炎黃血脈代代相傳 華夏精 神前後承繼 歷史上 朝代雖然不斷更迭 但文化卻萬變不離其宗 中國文 化雖然異彩紛呈 但儒 道 釋始終成為主流 佛教雖然為外來文化 但其 早已同華夏文化融為一體 外族雖然幾度入主中原 但它們都未能擺脫文化 上 夷入中統 的命運 作為仁義之國 禮儀之邦 中國曾經威震四夷 澤惠 萬鄰 宣言 分析了中國文化近代以降受到西方入侵之後的式微歷史及其原 因 近代西方世界發生的一場 現代化的激變 使西方文化 從天國回到了 塵世 從內求轉向了外逐 由此科學取代了信仰 人權取代了神權 物質取 代了精神 肉體取代了靈魂 個人取代了團體 契約取代了身份 效率取代 了公平 自由取代了束縛 多元取代了一致 民主取代了專制 法治取代了 人治 於是 當西方勢力東侵之後 隨之而來的割地賠款 喪權辱國 使 華夏文明經歷了怎樣的屈辱 炎黃子孫遭受了怎樣的塗炭 曾幾何時 人們 還以天朝的國民而自豪 轉眼間便成為了只能與狗為伍的賤民 曾幾何時 中國人還是東亞文明的 模特 轉眼間卻變成了不可救藥的 東亞病夫 曾幾 何時 日本還是中國的虔誠學徒 轉眼間卻一躍而成為東亞豪強 竟把 師 傅 當作嘲笑的物件和施虐的玩偶 於是 一些不無善良的文化精英們 開 始把疑問的目光投向了傳統文化 於是一場對傳統文化的審判和討伐就開始 了 於是 在對傳統的 反攻倒算 中 遺產成為了包袱 傳統成為了累 贅 歷史成為了罪過 文化成為了垃圾 於是 儒教成為了 吃人 的罪魁禍 首 它的創始人自然難逃口誅筆伐的厄運 就連他的頭形也成了罪狀之一 道教成為了玩世不恭的替罪羊 老子獲得了 滑頭鼻祖 的封號 佛教被作為 封建迷信 和蒙人鴉片 釋迦牟尼具有了江湖騙子的惡名 人們帶著一種文 化負罪感反省 原罪 背負沉重的歷史歉疚感懺悔過去 黃河成為了受到詛 咒的對象 因為它代表著黃色文明 黃色文明是失敗和落後的標誌 而藍色 文明則是勝利和先進的代表 龍的圖騰成為了一種原始凶兆 作為龍的傳人 是一種恥辱 長城是怯懦的遮風牆 築就了國人天生的軟弱性格 成為了中 華民族悲劇的紀念碑 愛好和平是膽小懦弱的藉口 提倡和諧是逃避矛盾的 遁詞 謙讓意味著不思進取 含蓄代表了是非不分 於是 人們恨不得用自 由女神替代觀音菩薩 把龍的圖騰換成狼的圖案 把孔廟換成教堂 用耶穌 替代孔子 一些人恨不能使黃河倒灌 黃水變藍 把長城換成迪士尼公園
270 中國文化在中國的命運與前景--20世紀以來的 中國文化宣言 述評(曲金良) 265 把天安門換成凱旋門 把紫禁城改成盧浮宮 把莫愁湖改成多瑙河 這是多 麼悲壯的 文化獻祭 多麼徹底的 傳統掘墓 多麼勇敢的 歷史鞭屍 多麼 偉大的 精神放逐! 我們進入了一個 西風壓倒東風 的時代 由此出現了 文 化的改朝換代 於是乎黃發優於黑髮 白皮優於黃膚 西裝優於唐裝 短 裙優於旗袍 麵包優於饅頭 可樂優於龍井 油畫優於國畫 陽曆優於陰 曆 聖經 優於 論語 民法大全 優於 唐律疏議 平安夜優於 除夕夜 情人節優於鵲橋會 蝌蚪文優於方塊字 在不知不覺中 我們的 文化被 西風 吹得七零八落 甚至連 韓流 也抵擋不住 一種文化失語症正如 同瘋牛病一樣四處蔓延 它們披著 時尚 的外衣 舉著 先進 的標牌 大行其 道 暢通無阻 似乎西方的月亮圓 中國的月亮扁 中國的馬屁臭 西方的 馬屁甜 西方的跳蚤眼皮雙 中國的跳蚤眼皮單 西方的蟑螂酒窩深 中國 的蟑螂酒窩淺 宣言 客觀地指出 同西方文化相比 中國文化尚含蓄而不尚外露 尚自然而不尚雕琢 尚質樸而不尚奢華 尚均等而不尚差異 尚安穩而不尚 變動 尚中庸而不尚極端 尚和平而不尚武力 尚和諧而不尚衝突 尚調和 而不尚鬥爭 尚天人合一而不尚天人分立 尚物我兩忘而不尚主客分明 尚 心物一體而不尚心物兩分 尚主體互動而不尚個人獨行 尚人際共用而不尚 個體自足 冷靜思之 中西兩種文化各有千秋 然而令人遺憾的是 我們 早已把自己的文化當作 封建遺毒 和 歷史渣滓 批得體無完膚 罵得狗血噴 頭 打倒 之後還要踏上一萬隻腳 讓它們永世不得翻身 於是 我們在破 舊立新 棄舊圖新的一片歡呼聲中 高歌猛進地步入了一個禮崩樂壞的時 代 權力腐敗 翻雲覆雨 金錢惡爭 波詭雲譎 爾虞我詐 防不勝防 天 天過愚人節 驕奢淫逸 趨之若鶩 夜夜是狂歡夜 弱肉強食 小民求告無 門 張冠李戴 冤者呼天不語 父子不親 夫妻無愛 兄弟薄情 朋友無 信 唯利是圖 人格大減等 瘋狂索取 欲望大比拼 凡此種種 如果不是 危言聳聽 不是禮崩樂壞又是什麼?! 當傳統文化被掃蕩殆盡 當華夏的美 德被洗劫一空 當本土的價值被徹底顛覆 我們的生活世界 落了片白茫茫 大地真乾淨!它不能再提供生命的意義 不能再生成正當的規則 不能再培 育健康的人格 於是乎現代的中國人被連根拔起 喪失了立命的根基 人生 的方向 生活的意義 健全的人格 懸浮在欲望的太空間 漂流在本能的激 流上 遊蕩在精神的荒漠中 呻吟在靈魂的廢墟裏 這一切都是現代化的產
271 266 中國學 第34輯( ) 物 都與西化密切相關 都是傳統文化失落的副產品 現代化雖然為我們提 供了發達的器物和精巧的技術 為我們提供了高樓廣廈的舒適和聲光化電的 便利 卻沒有為我們提供精神的家園 沒有為我們提供靈魂的棲所 沒有什 麼能夠安頓我們的心靈 沒有什麼能夠撫慰我們的心性 沒有什麼能夠滋潤 我們的心田 西化把我們驅趕到極端的效率軌道 功利主義的競爭與個人主 義的角逐愈演愈烈 而這導致了人心失衡 人身失調 人際失和 人世失 安 致使我們心性煩躁 心氣浮躁 心情急躁 心靈枯燥 歷史和現實都一 再昭示 上帝並不能拯救我們的靈魂 因為我們的文化一向是人本取向 耶 穌不能救贖我們的 原罪 因為我們從不相信人生而有罪 耶誕節和復活節 對我們生活的意義不大 因為它們不屬於中國人的故事 宣言 分析了全球化進程中西方文化霸權下的危害 指出 全球化是西 方作莊的遊戲 全球化正在變成西方化 莊家正在把英語變成國際語言 把 西裝變成世界服裝 把可樂變成人類飲料 把麥當勞變成全球食品 把基督 教變成地球宗教 把華盛頓變成聯合國的首都 把美國總統變成宇宙大 帝 伴隨全球化的進程 衝突越來越多 種族衝突 民族衝突 利益衝 突 文明衝突以及意識形態衝突等 五花八門 對於愛好和平的民族來說 這些衝突理應通過和平方式來解決 理性的談判 平等的對話 自由的討 論 良性的溝通 善意的和解 都是優先選項 在一個多元的世界 多極的 文化和多樣的文明本可互相理解 彼此寬容 取長補短 互惠互利 共同發 展 然而對於西方的某些經濟強權 政治霸主和文化帝國主義者來說 他們 已經習慣於在人類世界中獨佔鰲頭 獨領風騷 獨霸天下 獨斷專行 於 是 現代化的狂飆摧枯拉朽 橫掃世界 一頂頂王冠落地 一個個部落消 失 一片片森林倒下 一座座都市興起 現代化的衝擊驚魂未定 全球化的 風暴業已襲來 天下大勢和世界大局發生了巨變 對此不可不察 正所謂人 無遠慮 必有近憂 無論我們是否喜歡 世界都著魔般走向一體化 東京打 噴嚏 紐約感冒 夏威夷蝴蝶的翼動 新奧爾良便可能掀起颶風 遂導致世 界石油漲價 國際經濟動盪 香港一家銀行出錯 巴黎金融市場就會振盪 巴西一宗大型交易違約 倫敦的股市就可能狂跌 全球化為人類提供了新的 機遇 但也提出了新的挑戰 人類變得比以前更加強大 但同時也變得更加 脆弱 世界大戰 經濟危機 政治動盪 人口爆炸 能源枯竭 生態惡化 凡此種種都困擾著人類 全球化不僅導致了經濟危機的全球化 還導致了環
272 中國文化在中國的命運與前景--20世紀以來的 中國文化宣言 述評(曲金良) 267 境污染的全球化 傳染病的全球化 能源危機的全球化 核威脅的全球化 恐怖主義的全球化以及黃 賭 毒的全球化 這預示未來更不確定 更不穩 定 也許更不安定 無論如何 現代化的 魔瓶 既然打開 脫逃之魔無法收 回 全球化的 紅舞鞋 已經套牢 人類無法脫下 宣言 在激憤之餘 十分理性地指出 我們並不反對改革開放所帶來 的多元與多樣 也不主張回到一致和單調的時代 我們所擔憂的是 在西化 的大潮之下 中國的文化已經被吞沒 由此喪失了文化的自主性和話語的主 動權 西方文化有其特定的意義向度和價值取向 他們是西方歷史傳統的 產物 與西方的社會結構和社會關係密切關聯 這些意義系統和價值體系對 於西方人來說也許是 真經 但是它們未必適合東土 中國人有著自己的文 化 傳統和生活方式 並有著不同於西方的社會情境 西方的意義系統無法 安頓中國人的心靈 西方的價值體系無法為中國人的生活提供指導 在生活 世界中 中國傳統文化的失落導致了生活意義的喪失 傳統價值的顛覆導致 了社會的混亂 而西化無法彌補這種意義缺失 無法消除這種價值混亂 西方文化所導致的惡果是 自然生態日漸破壞 人類生存環境不斷惡化 連 新鮮空氣也成為了稀缺資源!人類中心主義的狂妄已經得到天公的報應 挑 戰和征服自然的莽撞已經自食惡果 於是人們開始自問 天人合一和物我兩 忘的理念是否比天人對立和主客分明的哲學更富遠見 現代社會中個人主義 的取向雖然增加了個人自由 但同時導致了人際疏離 人情冷淡 人心孤 獨 於是人們逐漸反思 主體互動和人際共用是否比個人獨行和個體自足更 勝一籌 以現代的眼光來打量 中西傳統文化都有污點 古羅馬皇帝尼祿 的驕奢淫逸絕不下於殷紂 中世紀宗教裁判所對異端的鎮壓足使秦始皇的焚 書坑儒相形見絀 莊園中的農奴比中國的農民更不自由 領主對農奴的初夜 權比女人裹腳更不人道 日爾曼人的神明裁判並不比中國古代的神判更多理 性 天主教的禁止離婚主義比中國的 七出 和 三不去 更不符合自由精神 路 易十四的荒淫殘暴與隋煬帝不相上下 西歐封建的等級制與西周的世卿世祿 制度頗相類似 除此之外 現代兩次世界大戰的始作俑者都是西方國家 而 法西斯暴政竟發生在20世紀的民主時代 僅僅這兩大悲劇就足以使 西方文 化優越論 的大王及嘍囉們感到無地自容 宣言 因而得出的結論是 如果說傳統文化的解體導致了價值真空 如 果說現代化和西化都不能填補這種真空 那麼 請回被放逐的傳統文化 恢
273 268 中國學 第34輯( ) 復已失落的傳統美德 是否一種現實的選擇?我們高興地看到 構建和諧社 會的觀念已經成為國人的共識 而這正是復興傳統文化的觀念起點 我們開 始意識到 建設之世不需要破壞之論 發展之日不需要倒退之言 安定之邦 不需要衝突之說 和諧之國不需要鬥爭之理 和諧 是華夏文明的遺傳密 碼 是中國文化的內在精髓 是中國人的精神歸宿 與天合神 其樂無窮 與地合德 其樂無窮 與人和睦 其樂無窮! 宣言 進而指出 文化是社會的 軟體 沒有它 硬體 將無法運行 文 化是制度的環境 沒有它制度將形同虛設 文化是人類的精神的家園 沒有 它我們將無家可歸 文化是意義的資源 沒有它我們將變成孤魂野鬼 行屍 走肉 因此 中國文化是我們的精神長城 華夏文明是我們的血脈黃河 中華民族是我們的靈魂泰山 中華民族要在未來的文明衝突中能夠得以延 續 必須萬眾一心 臥薪嚐膽 勵精圖治 不斷增強文明的實力 而要做到 這一點 必須恢復中國文化 沒有中國文化的偉大復興 就不會有中華民族 的偉大復興 為回應高鴻鈞教授的 中國文化復興宣言 清華週刊 2005年11月 20日轉發了上述 十教授宣言 四先生宣言 甲申宣言 等一組文化宣 言 至2006年9月19日 以湯一介先生 龐朴先生 張立文先生等人領銜 由中國海內外54位知名學者聯合署名的 以孔子誕辰為中國教師節建議 書 又在中國當代文化研究網 儒學聯合論壇等8個學術論壇與網站上聯 合發佈 並迅速被轉載 成為中國文化問題思辨與論爭中的一個重要的文化 事件 眾名人的 建議書 儘管直接起因和目標是建議將中國目前例行的 每年的教師節由9月10日改為中國的 至聖先師 孔子的誕辰日9月28日 但其 關涉的內涵 實際上是又一個 中國文化宣言 建議書 主體內容分為三塊 一是肯定中國文化的合理的 恒久的價 值 提出中國文化復興與中華民族復興的內在關聯性問題 二是肯定中國文 化是化解目前中國社會上諸多衝突與矛盾的寶貴的思想資源 三是肯定以孔 子誕辰日為教師節可以解決目前中國教育界存在的一些不良現象 建議書 指出 中國文化是中華民族的精神生命 儒家文化是中國 文化的主流血脈 而孔子則是儒家文化的集大成者和中國文化的象徵符號 也是人類文明史載以來的第一位教師 國於天地 有與立焉 一個國家
274 中國文化在中國的命運與前景--20世紀以來的 中國文化宣言 述評(曲金良) 269 和民族必須有自己的文化根基和價值持守 中國是一個歷史悠久 傳統深厚 的文化大國 中國文化與中華民族凝為一體 互相涵育 榮辱與共 生生不 息 已有五千餘年 我們確信中國文化自有其內在的 合理的 恒久的價 值 我們反對文化上的民族虛無主義 我們憂慮西方文化大行其道而中國文 化漸行漸遠 我們呼籲國人對中國文化採取溫情和敬意的立場 我們主張繼 承和發展 弘揚和光大中國文化 我們也相信 隨著中華民族的偉大復興 中國文化必然會走上復興之路 我們認為 以孔子誕辰為教師節 可以增進 國人 尤其是作為中國未來之希望的大 中 小學生 對孔子的瞭解和同 情 對中國文化的認同和皈依 進而增進國人對中華民族的歸屬意識 為中 華民族的偉大復興提供厚實的文化基礎和強大的精神動力 中國目前存在 的一些倫理失范 道德滑坡 誠信不足 禮儀缺失 人際疏離 生態惡化 貧富分化等不和諧因素 正在危害著社會的健康發展 中國文化 特別是儒 家文化 其核心思想是以人為本和以德為先 強調修身養性和修齊治平 把 培養和塑造有道德 有責任的健全的完人作為學問的根本 追求全社會的團 結友愛 同舟共濟 風俗敦睦 禮儀規範 以及天人合一 貧富均衡 政治 清明 天下大同 我們認為 中國文化的這些價值理念 是化解中國社會乃 至人類世界各種危機與衝突的彌足珍貴的思想資源 以孔子誕辰為教師節 不但是以節日的形式來緬懷與追思這位文化巨人 更重要的是通過這種形式 來喚醒和促進國人對中國文化的價值擔當和身體力行 為建設一個和諧美好 的社會而不懈努力 為人類文明做出中國人應有的貢獻 建議書 指出 令我們尷尬的是 早已經有一些國家和地區把孔子 誕辰作為法定的教師節 而孔子的母國卻遲遲不得實行之 難道需要等到其 他國家和地區再把孔子誕辰搶注為 世界非物質類文化遺產 之時 我們才會 感到焦慮和不安嗎 同年12月26日 又有來自中國政法大學 清華大學 中國人民大學 武 漢大學 北京大學 中國科學院等高校和科研單位的 十博士 就 耶誕節 問 題聯名發表了 走出文化集體無意識 挺立中國文化主體性 的 呼籲書 鄭重呼籲國人慎對 耶誕節 走出文化集體無意識 挺立中國文化主體 性 指出 在中國的 耶誕節 等西洋文化的盛行 其 根本原因在於中國文 化的主位性缺失和主體性沉淪 亦即經過百餘年來國人對自家歷史文化傳統 系統而又激烈地批判和顛覆之後 中國文化特別是儒家文化已經呈建制性退
275 270 中國學 第34輯( ) 場和整體性崩潰 導致中國缺少主幹性的價值信仰和文化形態 進而導致中 國現代文化的荒漠化和混亂化 從而為 西風勁吹 和 諸神亂舞 打開了方便之 門 為此 十博士 呼籲和建議 要 打破 古非今是 和 中劣西優 的文化偏 見 改變 以今非古 和 崇洋媚外 的文化心態 對中國文化持以 瞭解之同情 與 溫情和敬意 的立場 回歸傳統 承續斯文 創新與發展 恢弘與光大中 國文化 樹立中國人的自尊心和中國文化的自信心 重建中國人的信仰體系 和意義世界 這將是一個綜合性 長期性 艱巨性的文化事業 需要全社會 的共同努力與全方位的積極參與 每個有著擔當意識的中國人 都應自覺肩 負起這一神聖的文化使命 除了上述 宣言 呼籲 之外 許多著名學者如錢穆 季羨林 李慎 之 蔡尚思 馮友蘭 費孝通 張世英 杜維明等 都在多種文章 著作中 反復強調中華文化對於世界的重要意義 14) 學界眾多的學者或潛心研究 思考 著書作文 或翻譯紹介國外論著 以資借鑒 或為政府決策出謀劃 策 提供參考 翻譯紹介者 如美國撒母耳 亨廷頓的 文明的衝突與世界 秩序的重建 荷蘭馮 皮爾森的 文化戰略 撒母耳 亨廷頓等主編的 文化的重要作用 價值觀如何影響人類進步 哈拉爾德 米勒的 文 明的共存 對撒母耳 亨廷頓 文明衝突論 的批判 等 潛心研究者 如 曹世潮的 文化戰略 一項成為世界一流或第一的競爭戰略 郭潔敏的 文化戰略 立足綜合國力的宏觀選擇 胡惠林的 在積極的發展中保 障中國的國家文化安全 15) 等 各地學者還與政府規劃與決策結合 就文 化發展戰略問題召開過不少研討會 如上海早在1985年即召開過文化發展戰 略研討會 廣州 深圳其後相繼多次召開類似的研討會 等等 學者們不僅 14) 參見杜維明 全球化與文明對話 載 開放時代 2002年第1期 15) [美國] 撒母耳 亨廷頓著 周琪等譯 文明的衝突與世界秩序的重建 新華出版社1998年版 [荷蘭] 馮 皮爾森著 劉利圭等譯 文化戰略 中國 社會科學出版社1992年版 撒母耳 亨廷頓等主編 程克雄譯 文化的重要作 用--價值觀如何影響人類進步 新華出版社2002年版 哈拉爾德 米勒著 酈 紅 那滇譯 文明的共存--對撒母耳 亨廷頓 文明衝突論 的批判 新華出 版社2002年版 曹世潮著 文化戰略--一項成為世界一流或第一的競爭戰 略 上海文化出版社2001年版 郭潔敏 文化戰略--立足綜合國力的宏觀選 擇 載花建等 軟權力之爭 全球化視野中的文化潮流 上海社會科學院出 版社2001年版 胡惠林 在積極的發展中保障中國的國家文化安全 載 文 藝報 2002年10月10日
276 中國文化在中國的命運與前景--20世紀以來的 中國文化宣言 述評(曲金良) 271 關注中國文化發展的學理 提出不同民族的文化特性 文化自覺是民族參與 世界競爭的 核心競爭力 更多的是面對西方文化的盛行為中國文化的現狀 擔憂 以為政府決策出謀劃策者尤多 4 簡短的結論 近些年來 隨著世界現代化 經濟全球化進程的迅速推進 人類生活的 地球暴露了越來越多的環境 資源 精神與社會問題 因而人們的關注熱 點 由以往對經濟發展的重視 對科技發展這一 工具理性 的重視再度更多 地轉向了文化 20世紀90年代美國政治學家撒母耳 亨廷頓 未來學家托夫 勒和哈拉爾德 米勒從 文明的衝突 和 文明共存 的不同視角考察當今世界大 趨勢所提供的文明即文化分析的框架 引起了越來越多的世界性的關注和重 視 人們用文化因素來解釋世界各國各民族不同的發展類型與路徑 解釋全 球化進程中所產生的一系列國家之間 民族之間 人與人之間 人與環境之 間 物質與精神之間等一系列問題 並試圖用文化的理論與方法探求其解決 方案 由此 文化問題 文化戰略問題正越來越成為世界性關注的熱點與重 點 世界進入近代化尤其是現代化的近100多年以來 科技 工業 經濟的 迅猛發展帶來了唯 泛 科學主義的氾濫 唯 泛 經濟主義的成災 科技 及其工業特別是化學化工業 尤其是化肥 農藥工業 汽車工業 高科技 特別是核武器 基因技術 已經給人類帶來了和醞釀著難以估量和難以預測 的災難 工具理性 過於發達 價值理性 過於貶值 對科學技術的崇拜取 代了對人生意義的感悟 對物質利益的追求導致了實用主義乃至拜物主義的 盛行 幾乎所有的傳統價值觀都受到縱欲主義 私利主義 消費主義的挑 戰 物質贏餘過剩而精神家園荒蕪 人生手段高超卻人生目迷茫 繼 上 帝 死了 之後 人 也 死了 信仰危機 信用危機 道德危機 價值危機 人情危機 人生危機與資源危機 環境危機相伴而來 成為20世紀全球性的 世紀病態 人類正陷入一種 無心 狀態 人們越來越對文化問題及文化戰 略問題給予重新關注 目的就是要找到解決這些問題的鑰匙 給人類的發展 找回這顆 心 文化發展戰略以 人文價值理性 作為基本原則 建構發展的終極目的意
277 272 中國學 第34輯( ) 義 用以統領發展方向 改變現代化過程所導致的 世紀病態 以求得世界 不同國家之間 族群之間 階層之間 人種之間 亦即世界上的人與人之 間的長期和諧合作發展關係 推進人類文明的持續發展 因此 文化發展戰略須有以下基本內涵 1 致力於和諧社會的建 設 注重人際和諧 社會和諧 族際和諧 國際和諧 尊重各自自身的選 擇 己所不欲 勿施於人 縮小貧富差別 實現利益均等 溫情祥和 天 下共用太平之福 2 致力於審美型社會的建設 注重人類的精神感受 審美感受 幸福感受 而不是物質刺激 貪占享受 3 致力於可持續發 展社會的建設 注重資源 環境的可持續利用 資源 環境優先 而不是侵 奪效率第一 避免相互競爭掠取 4 致力於休閒型社會的建設 注重予 民以休養生息 以替代快節奏快速率 緊張疲勞型社會的運轉 5 致力 於文化傳承型社會的建設 注重歷史文化資源保護與民俗文化傳承 使傳統 文脈不斷 而不是動輒批判 破除 推翻 以維新是求 6 致力於安全 型社會的建設 注重社會安全 消費安全 身心安全 衛生長壽 一句話 將人類社會建設發展成為擁有 人的文化 而不再是 物的文化 的社會 這樣的文化發展戰略所要創造的文化發展範式 將從根本上改變近代以 來總體上以西方文化為主導的發展範式 是人類發展戰略的一次革命性轉 變 而這樣的文化發展範式需要有一種合于這種文化范式的文化傳統作為基 礎支撐與參照 並且最好在人類歷史上可以找到合于這種文化範式的已有社 會運行經驗可資借鑒 通觀人類發展的歷史 無他 就在中國文化這裏 就 在儒家文化這裏 [ 參考文獻 ] 陳序經 中國文化的出路 商務印書館 1934 馬若芳編 何炳松序 中國文化建設討論集 (上下編) 上海國音書局 1936 梁漱溟 : 東西文化及其哲學 商務印書館 1999 葛懋春 李興芝編 胡適哲學思想資料選 (上下) 華東師大出版社 1981 袁偉時 評<甲申文化宣言> 南方都市報 杜維明 全球化與文明對話 開放時代 Vol., 2002 花建等 軟權力之爭 全球化視野中的文化潮流 上海社會科學院出版社 2001
278 中國文化在中國的命運與前景--20世紀以來的 中國文化宣言 述評(曲金良) 273 胡惠林 在積極的發展中保障中國的國家文化安全 文藝報 [美國] 撒母耳 亨廷頓著(周琪等譯) 文明的衝突與世界秩序的重建 新華出版社 1998 [美國] 哈拉爾德 米勒著(酈紅 那滇譯) 文明的共存 對撒母耳 亨廷頓 文明衝突論 的批判 新華出版社 2002 [荷蘭] 馮 皮爾森著(劉利圭等譯) 文化戰略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92 聯合國教科文組織 UNESCO 世界文化多樣性宣言 (Universal Declaration on Cultural Diversity) 聯合國教科文組織網站 <한글제요> 세계의 글로벌화가 신속하게 진행됨에 따라, 환경과 자원적인 측면에 서 또 정신적 사회적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이에 사람들은 이러한 경제발전의 중시에서 벗어나 문화적 측면의 중시로 관심을 돌리 게 되었다. 그래서 문화발전전략문제는 이제 세계적 관심의 이슈로 되 었다. 문화전략은 인문가치적 이성 을 원칙으로 하여, 화합 심미형 지속발 전형 문화계승형 안전형 사회를 구축하는 힘써야한다. 이러한 문화발전전 략으로 창출하려는 문화발전 모델은 서구 문화 위주로 발전해온 근대적 모델에서 벗어나, 중국 문화 속에 내재해 있는 유가문화에서 찾아야 한 다. 주제어: 문화발전전략, 문화발전모델, 인문가치적 이성, 유가문화, 글로벌화, 문화충돌, 신유학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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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中國學 第34輯( ) pp.275~290 단재와 루쉰의 사상 비교 --한국 3 1과 중국 5 4의 대표 사상 김언하* 현실에서 도피하는 자는 隱士이며, 굴복하는 자는 노예이며, 격투하는 자는 전사이니, 우리는 위의 三者에 서 그 하나를 선택하지 안할 수 없는 경우에 선 줄을 자각할지니라.( 大黑 虎의 一夕談 ) 목 차 민족혼(民族魂) 과 청구(靑邱)의 정기(正氣) 사상의 고통성에 대한 자각 노예근성 비판과 대안의 제시 단재의 민족주의와 루쉰의 계몽주의가 갖는 특수성 루쉰과 단재의 죽음 1. 민족혼(民族魂) 과 청구(靑邱)의 정기(正氣) 단재(1880~1936)와 루쉰(1881~1936)은1)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 반기에 이르는 격동의 근대전환기를 함께 살면서 한중 양국에서 각기 * 동서대학교 중국어학과 부교수 [email protected]
281 276 中國學 第34輯( ) 자기 민족의 생존의 혈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평생을 분투했던 문화적 거인들이다. 단재는 한국에서 근대사학을 탄생시켰으며, 루쉰은 중국에 서 현대문학을 출발시켰다. 그들은 각기 사학과 문학을 자신의 본령으 로 다르게 선택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통해 시대가 요구하고 있던 반 전통적인 철학적 각성이 자기 민족의 영혼에 일어나기를 염원했다는 측 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다. 문학, 사학, 철학이 자유롭게 넘나들던 동 양문화의 전통은 이처럼 전환기 지식인들의 전통을 부정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20세기 초엽의 한국과 중국이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야기된 망국멸종 (亡國滅種)의 위기감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지만, 식민지와 반식민지 라는 한중 양국이 처했던 당시의 현실적 조건의 차이 때문에 단재와 루 쉰의 사상적 면모 또한 치중점이 다르게 나타났다고 보여 진다. 단재가 1910년 일제의 강점으로 야기된 식민지 현실의 극복에 치중하여 반제 국주의 민족주의자로 일관했다면, 루쉰은 1911년 신해혁명의 실패로 확인된 봉건적 현실의 극복에 치중하여 반봉건주의 계몽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견지했다고 하겠다. 이는 단재가 한국의 근대화를 가로막는 결 정적 장애가 일본의 식민통치라고 인식했고, 루쉰이 중국의 반식민지화 를 초래한 결정적 요인이 자국의 봉건적 현실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겠다. 루쉰에 대한 중국민족의 평가는 그의 장례식 때 관을 덮었던 천에 쓰 여 있던 민족혼 이라는 한 마디로 집약된다. 단재에 대한 한국민족의 평가는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1)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시 속 에서 불렀던 청구(靑邱)의 정기(正氣) 2)를 대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1) 김창숙(1879~1962)은 이 땅의 마지막 선비 로 한국 유림을 대표한 항일독 립투사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일제의 통 치를 인정하지 않아 변호사도 항소도 거부했다. 일제의 고문으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해방 후 민족통일운동과 반독재운동을 주도했던 한국현대사 의 거인이다. 마지막 선비-심산 김창숙, KBS 인물현대사 ( ) 참조. 2) 심산의 추도시 단재 신채호를 애도하며 의 전문은 이렇다. 들으니 군 (君)의 뼈를/ 금주(金州)의 불로 태웠다 하는데/ 군이 감에 청구(靑邱)의 정기 (正氣) 거두어졌구나./ 천상 세계의 문형(文衡)으로 군은 잘 갔으나/ 마치 하 루살이와도 같이/ 뒤에 죽어 갈 사람들/ 부끄러워 어찌하랴// 들으니 군의 영
282 단재와 루쉰의 사상 비교--한국 3 1과 중국 5 4의 대표 사상(김언하) 277 이처럼 중한 양국에서 각기 민족의 영혼 과 민족의 정기 로 평가받는 다는 것은 루쉰과 단재가 단순히 뛰어난 문학가나 사학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자기 민족 의 영혼을 구제하고 정기를 바로잡는데 바침으로써 오늘날까지도 민족 의 현재를 검토하고 미래를 구상하는 사상적 자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 이 기적처럼 여겨질 뿐이다. 2. 사상의 고통성에 대한 자각 단재와 루쉰의 사상을 비교해서 살펴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공통 점은 사상의 고통성에 대한 자각이다. 물론 사상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사회적 삶이 고통스러운 까닭일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삶의 고통이 존 재하고 있는 한, 그것이 어떤 것에 관한 사상이든 사람이 사상을 가진 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 을 회피하듯 사상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한다. 가능하면 사상 따위는 잊 고 사는 것이 고통을 줄이는 길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상을 가지 고 살지 않으면 인간은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요행히 고통 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지라도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 수는 없을 것이 다. 사회적 삶의 고통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이것은 막대한 고통이다. 삶이 근본적으로 딜레마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목표가 극심한 고통을 그 대가로 지불하고서야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루쉰과 단재는 동일한 통찰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루쉰은 사상가 루쉰과 중국 현대문학의 탄생을 동시에 알린 문제 작 광인일기(狂人日記) (1918)에서 식인 사회 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느끼는 극심한 고통을 병적 공포--피해망상증--의 형태로 표현했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사회, 그것도 가장 가까운 가족관계에서조차 그런 구(靈柩)가/ 청주로 돌아왔는데/ 오직 한 줌 재뿐이라고?/ 고향 동산에 묻혔 음에/ 한 마디 물어보리./ 군의 혼백도/ 따라 돌아왔는가?/ 군이여, 아무래도/ 부재(溥齋) 노장 따라 노닐리라. (임중빈, 단재 신채호 일대기 (서울: 범우 사, 1987), 226쪽에서 재인용.)
283 278 中國學 第34輯( ) 일이 일어나는 데서 느끼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주인공인 광인은 광기 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광인은 진지한 연구를 통해 자신의 무의식적인 식인 욕망과 식인 이력을 발견하고, 자신도 참된 인간(眞的人) 이 아니 라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광기에서 풀려나는 극적인 과정을 경험한다. 우리는 광인이 겪어냈던 극심한 고통에서 비범한 사상가의 탄생을 예감 하게 된다. 단재는 사상가 단재와 한국근대사학의 창시자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알린 환상적인 자전소설 꿈 하늘(夢天) (1916)에서 우주의 참혹함 과 대면하고 느낀 극심한 고통을 눈을 감는 것으로 표현했다. 현실 속 에서 한도를 넘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직면했을 때, 인간이 현실을 떠나 광기에 빠지거나 눈을 감고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불가피한 귀결 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만일 우주의 본면목 이 다음과 같이 참혹한 마 당 이라면, 소설의 주인공 한 놈 처럼 눈을 감고 외면하고 싶어 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칼이 칼과 싸우며 활이 활과 싸우며 불과 불이 서로 치다가 나중에는 사람을 맞히니, 그 맞은 사람은 목이 떨어지면 팔로 싸우며 팔이 떨어 지면 또 다리로 싸우다가 끝끝내 살이 다 떨어지고 뼈가 하나도 없이 부서져야 그만두는 싸움이라. 몇 시 몇 분이 못 되어 주검이 천리나 덮이고 비린내 땅에 코를 돌릴 수 없으며, 피도 하도 뿌려 하늘까지 빨갛게 물들였도다.3) 광인이 광기에 의지해서 중국 사회와 역사에 만연한 가공할 식인 욕 망을 발견하듯이, 한 놈 또한 어떤 천관(天官)의 지도에 의해 눈을 뜸으 로써 참혹한 싸움뿐인 인간세상의 현실을 직시하고 우주의 본 면목을 깨닫게 된다. 이로써 한 놈은 자신의 나약함을 이기고 신의 명령과 같 은 지상 명령에 따라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지 않고 싸움에 참가하기로 결심한다. 한 놈이 천관의 지도에 따라 감은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에게서 다음과 같은 깨달음의 세례를 받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 3) 신채호, 꿈 하늘, 단재 신채호 전집 (개정판)(하)(서울: 형설출판사, 1975), 177~178쪽.
284 단재와 루쉰의 사상 비교--한국 3 1과 중국 5 4의 대표 사상(김언하) 279 다. 인간에게는 싸움뿐이니라. 싸움에 이기면 살고 지면 죽나니 신의 명령이 이러하다. 4) 광인이 광기에서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식인 욕망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놈이 싸 움터로 나가는 과정에서 각종 함정(고통, 황금, 시기, 절망, 투항)으로 인해 꼭 같이 생긴 여섯 명의 친구를 모두 잃고 혼자 싸움에 참가하지 만, 결국 자신도 적의 미인계에 걸려들어 지옥으로 떨어지고 전장에서 밀려남으로써 투쟁의 간고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한 놈이 결국 지옥에 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 또한 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 즉 참된 애국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라밖에는 딴 사랑이 없어야 애국이어늘,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써 몸이 쇠사슬에 묶이어 있는 것처럼 지옥에서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이치를 크게 깨치게(大徹大悟) 되자 본래 묶이지 안한 몸을 어디에 풀 것이 있으리오. 하고 몸을 떨쳐서 지옥을 빠져나오게 된다.5) 식인 사회 와 참혹한 싸움뿐인 인간세상 은 루쉰과 단재가 파악한 감당할 수 없는 극심한 삶의 고통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다. 루쉰은 반식민지 중국에서 봉건적인 식인 사회 를 폐지하고 근대적인 인간의 나라(人國) 를 세우기 위해 식인 관습을 합리화하는 주장들에 맞서 끈질 긴 사상투쟁을 멈추지 않았고, 단재는 참혹한 싸움뿐인 인간세상 에서 망국의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싸움을 회피하려는 딴 사랑이 있 는 주장들을 폐기하고 근대적인 자주독립의 꿈하늘(夢天) 을 건설하기 위해 참절장절(慘絶壯絶) 한 전사의 길을 걸어갔다. 사상의 고통성에 대한 루쉰의 자각은 자신의 뼈와 살로 칼날을 무디 게 하고, 피로 불을 끄는 희생을 감수할 때, 비로소 칼날과 불길이 빛 을 잃고 스러지는 사이로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 즉 신 세기의 서광을 보는 6)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인식한 데서 드러난다. 사상의 고통성에 4) 신채호, 꿈 하늘, 단재 신채호 전집 (개정판)(하)(서울: 형설출판사, 1975), 176쪽. 5) 이상 인용문은 모두, 신채호, 꿈 하늘, 단재 신채호 전집 (개정판)(하) (서울: 형설출판사, 1975), 212쪽. 6) 루쉰, 수감록 59-신성한 무력(聖武), 루쉰전집 (북경: 인민문학출판사, 1981), 356쪽.
285 280 中國學 第34輯( ) 대한 단재의 자각은 主義의 看板을 붙이며 自由ㆍ改造ㆍ革命의 名詞 외우는 形式的 人物의 마음보다, 主義대로 名詞대로 血戰하는 精神的 人物이 하나라도 있어야 할 것 7)이라는 주장으로 드러난다. 고통이 따 르지 않는 사상, 즉 자기희생이 따르지 않는 사상에 대한 불신을 루쉰 은 이렇게 표현했다. 인도주의에 대하여 일 수밖에 없는 사람의 머리 위에는 절대 인도주의가 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도주의란 것은 각자가 힘써 쟁취하여 길러내고 보호해야 하는 것이지, 남이 보시 하거나 찬조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8) 마르크스는 일찍이 독일이데올로기 (1846)에서 공산주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공산주의란 우리에게 있어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 가 아니며, 혹 은 현실이 따라가야 할 하나의 이상 도 아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현재의 상태를 폐기해 나가는 현실의 운동 이라 부른다. 이 운동의 여러 조건들 역시 지금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전제들로부터 생겨난다.9) 공산주의를 어떤 상태 또는 이상 으로 파악하지 않고, 현재의 상태 를 폐기해 나가는 현실의 운동 이라고 부른다. 고 했을 때, 이런 의미 에서의 공산주의라는 말은 모든 종류의 참된 사상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어떤 주의가 참된 사상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것의 구체적인 형태가 계몽주의이든, 민족주의이든, 민주주의이든, 공산주의 이든, 무정부주의이든 막론하고, 한 나라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 공통적 으로 영향력과 생명력을 지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거꾸로 어떤 주 의이더라도 그것이 참된 사상이 아니라면 현재의 상태를 폐기해 나가는 현실의 운동이 되지 못하고 말 것이다. 단재와 루쉰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은 그것들이 모두 한중 양국에서 식인 사회 와 참혹한 싸 7) 신채호, 낭객의 신년만필, 단재 신채호 전집 (개정판)(하)(서울: 형설출 판사, 1975), 31~32쪽. 8) 루쉰, 수감록 61-불만, 루쉰전집 (북경: 인민문학출판사, 1981), 358 쪽. 9)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박재희, 독일 이데올로기1 (서울: 청년 사, 1988), 67쪽.
286 단재와 루쉰의 사상 비교--한국 3 1과 중국 5 4의 대표 사상(김언하) 281 움뿐인 인간세상 이라는 당시의 현실을 폐기해나가는 현실의 운동 을 대표했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3. 노예근성 비판과 대안의 제시 위에서 이미 보았듯이 사상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우선 사회적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것이 사상을 가진 개인에게 고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삶이 고통스러울수록 사상을 가진 개인에게 요구되는 고통은 더욱 극심해진다. 간고한 봉건적 현실 또는 식민지 상 태에서 사상가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가 이것으로 어느 정도 설명된다고 하겠다. 루쉰은 이러한 의미에서 중국에 사상가가 없다는 이야기를 여 러 번 반복했다. 단재는 한국에서 참된 애국자를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극심한 고통을 대가로 지불하고 사상을 얻는 대신, 가능한 한 고통을 피하고 사상 없이 살고자 한다. 루쉰은 이것을 불과 칼을 피 해 달아나며 폭군의 신하로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비판했다. 단재는 이 를 온 朝鮮사람이야 다 죽든 말든 나 한 몸 한 家族이나 살면 고만이 라고 鄭鑑錄의 十勝地를 찾아다니는 피난심리(避難心理)라고 불렀으며, 토멸(討滅)해야 할 대적(大賊)으로 간주했다.10) 루쉰은 폭정에 저항하지 않고 복종하는 국민성을 노예근성이라고 불렀다. 루쉰이 보기에 노예근 성은 식인 사회 를 존속시키는 심리적 기초이고, 근대적인 인간의 나 라 의 출현을 가로막는 열악한 국민성의 표본이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중국민족이 노예근성을 지닌 노예에서 인간성을 지닌 인간으로 거듭나 지 않는 이상, 중국의 미래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 루쉰의 생각이었 다.11) 중국민족이 지닌 노예근성에 대한 심각한 해부와 풍자적 비판은 그의 대표작 아Q정전 속에서 집중적으로 구현되었다. 루쉰이 얼마나 노예근성이라는 주제에 집착했는가 하는 것은, 그가 임종의 순간까지도 10) 신채호, 낭객의 신년만필, 단재 신채호 전집 (개정판)(하)(서울: 형설 출판사, 1975), 31쪽. 11) 이에 대해서는 김언하, 루쉰의 문학 세계와 광기 주제, 중어중문학 35집(서울: 한국중어중문학회, ) 500~502쪽 참조.
287 282 中國學 第34輯( ) 매달렸던 마지막 원고가 고골리의 죽은 혼 의 번역이었다는 데서 단 적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루쉰은 노예근성을 유구한 봉건사회가 중국민 족에게 남겨준 가장 심각한 정신적 노역의 상처로 인식했으며, 이것의 철저한 폐기 또는 완전한 개조 없이는 새로운 중국의 탄생이 불가능하 다는 사실을 투철하게 인식했다. 단재의 삶을 두고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熙)12)는 이렇게 평가했다. 살아서 귀신이 되는 사람이 허다한데 단재는 살아서도 사람이고 죽어 서도 사람이다. 13) 여기서 귀신의 의미는 무엇일까? 귀신은 죽은 사람 을 가리킨다. 따라서 살아서 귀신이 되는 사람이란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이란 바로 목숨은 붙어 있지 만 사람 구실을 못하는 노예를 가리킨다.14) 즉 노예란 살아 있는 죽은 사람이다. 식민지 현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노예로서의 삶을 강요당 했다. 단재는 식민지 현실에 필사적으로 저항함으로써15) 사람으로 살다 가 사람으로 죽을 수 있었다는 것이 벽초의 판단임을 알 수 있다. 단재의 노예근성 비판은 당시 한국이 처했던 일제의 식민지라는 엄준 12) 홍명희(1888~1968)는 일제하 민족운동의 지도자로서, 1927년에 결성된 항일독립운동 단체 신간회의 부회장을 지냈고, 장편역사소설 임꺽정(林巨 正) (1928~1939)의 저자이다. 13) 홍명희, 곡단재 (김삼웅, 단재 신채호 평전, 시대의 창, 2005), 454 쪽에서 재인용. 14) 귀신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단재의 글은 이렇다. 保國論을 主張 하는 者는 曰 羈絆을 受하여 奴隸가 되며, 牛馬가 될진댄 卽此 奴隸되고 牛 馬되는 人種은 비록 滅絶하는 境遇에는 不至하더라도 便是萬劫地獄에 陷入하 여 天日을 不見하여 頭出頭沒에 呼號叫痛할 而已니, 雖生이라도 是死요 雖人 이라도 是鬼라. 故로 人種의 保 不保는 姑舍勿問하고 保國 二字나 硏究하자 하나니, 此 二說이 果然 宿是한가. 保種 保國의 元非二件, ( 단재 신채 호 전집 (개정판)(하)(서울: 형설출판사, 1975), 53쪽. 15) 필사적 저항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단재의 글은 이렇다. 모든 權利는 다 빼앗기었지만 오직 自己 生殺할 權利는 남아 있다. 이 權利는 大院君 뿐 아 니라 곧 秦始皇 弓裔 나폴레옹 윌리암第二世가 다 올지라도 빼앗지 못할 權利 이다. 이것이 人生의 最後까지 따라다니는 唯一한 權利가 아니냐. 그러나 이 權利는 濫用하지 말지어다. 刎頸과 伏釰이 何難이리오마는, 輕易히 行하면 世 事를 厭避하는 隱士같이 死로써 責任을 逃避함이니 不可하니라. 다만 이 權 利의 使用을 忘却하지 말지어다. 그리하여야 軍艦 飛行機 大砲 金錢 모든 勢力 에 굽힐 것이 없을지니라. 人道主義 可哀,( 단재 신채호 전집 (개정판) (하)(서울: 형설출판사, 1975), 375~376쪽.
288 단재와 루쉰의 사상 비교--한국 3 1과 중국 5 4의 대표 사상(김언하) 283 한 현실로 인해서 민족적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사대주의 식민주의 비판으로 드러난다. 단재의 사대주의 식민주의 비판은 앞서 살펴본 꿈 하늘 에서 집중적으로 구현되었다. 이후 용과 용의 대 격전 (1928)에서 더욱 집중적이고, 더욱 철저하고, 더욱 직접적인 형 태로 드러난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지로 전락한 국민에게 있어서 민족의 독립과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참혹한 투쟁을 불사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명령과 같은 지상 명령이라는 것이 단재의 생각이라고 하겠다. 이런 측면에서 국권 회복을 위한 반제 민족 해방투쟁을 부인하는 모든 주장, 예를 들어 미국이나 국제연맹의 중재 에 의지하려는 외교론, 실력을 양성하여 후일을 기약하자는 준비론, 식 민지 현실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다소간의 권리를 얻어내고자 하는 자 치론과 참정권론, 문화운동론 등이 단재에 의해서 예외 없이 비판받은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고 하겠다. 루쉰이 중국민족이 지닌 개인적 노예근성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단재는 한국민족이 지닌 집단적 노예근성, 즉 사대주의 식 민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어떤 행위와 수단을 막론하고 우리 민족 과 국가의 이해(利害)를 표준으로 삼아 생존의 혈로를 개척하자고 주장 했다. 칼을 가지고 殺戮을 부름이 우리에게 利하거든 이대로 하며, 눈을 감 고 平和를 찾음이 우리에게 利하거든 이대로 하며, 倫理 道德으로 터 를 잡아 前途를 開拓함이 우리에게 利하거든 倫理 道德을 힘쓰며, 暴 動 暗殺로 先鋒을 삼아 敵의 治安을 흔듦이 우리에게 利하거든 暴動 暗殺로 일하며, 佛을 좇음이 利하다 하면 좇으려니와 屠刀를 잡고 佛 의 목을 베임이 利하다 하거든 佛의 목을 베이며, 耶蘇를 믿음이 利하 다 하면 믿으려니와 猶太 사람들을 따라 耶蘇의 머리에 못 박음이 利 하다 하거든 耶蘇의 머리에 못 박아, 이 世界 안에 무릇 우리에게 利 되는 것이라 하거든 歡迎하며 輸入하고, 害되는 것이거든 排斥하여 抹殺할지라. 무엇에 躊躇하며 무엇에 恐怕하리오.16) 16) 신채호, 이해, 단재 신채호 전집 (개정판)(하)(서울: 형설출판사, 1975), 146~147쪽.
289 284 中國學 第34輯( ) 한국민족의 이해(利害)가 취사선택의 유일한 표준이 될 뿐이고, 살육 과 평화 윤리도덕과 폭동암살 부처와 예수는 모두 한국민족이 취사선 택하는 수단이나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단재의 생각이라고 하겠 다. 단재의 이와 같은 주장은 유이해무시비론(有利害無是非論) 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단재 사상의 핵심은 이러한 유이해무시비론을 민족적 차원에서 주체적으로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주의 사 상가로서의 단재의 면모를 극명하게 읽어낼 수 있다. 루쉰 또한 중국민족의 생존과 발전에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이 옛날 것이든 오늘날 것이든, 중국 것이든 서양 것이든, 친구의 것이든 적의 것이든 막론하고 무엇이든지 가져와서 써야 한다고 하면서 나래주의 (拿來主義) 를 일관되게 주장했다. 루쉰의 나래주의와 단재의 유이해무 시비론은 표현방법과 강조점은 각기 다르지만, 형식주의를 부정하고 참 된 의미에서의 민족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사상적 기조는 동일하다는 사 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단재는 민족주의적 유이해무시비론을 일관되게 적용하여 한국민족의 집단적 노예근성을 이렇게 비판했다. 우리 朝鮮 사람은 매양 利害 以外에서 眞理를 찾으려 하므로, 釋迦가 들어오면 朝鮮의 釋迦가 되지 않고 釋迦의 朝鮮이 되며, 孔子가 들어 오면 朝鮮의 孔子가 되지 않고 孔子의 朝鮮이 되며, 무슨 主義가 들어 와도 朝鮮의 主義가 되지 않고 主義의 朝鮮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道 德과 主義를 위하는 朝鮮은 있고 朝鮮을 위하는 道德과 主義는 없다. 아! 이것이 朝鮮의 特色이냐, 特色이라면 特色이나 奴隸의 特色이다. 나는 朝鮮의 道德과 朝鮮의 主義를 위하여 哭하려 한다.17) 한국민족은 가령 석가의 불가(佛家)와 공자의 유가(儒家) 같은 외래의 주의와 도덕을 수용할 때, 민족의 이해(利害)를 표준으로 그것들을 취사 선택하고 국정에 맞추어 변용하지 않고, 오히려 민족의 이해와 국정의 차이를 무시하고 외래의 주의와 도덕을 추종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따 라서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 은 있지만,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 17) 신채호, 낭객의 신년만필, 단재 신채호 전집 (개정판)(하)(서울: 형설 출판사, 1975), 26쪽.
290 단재와 루쉰의 사상 비교--한국 3 1과 중국 5 4의 대표 사상(김언하) 285 의 는 없다는 것이 단재의 판단이다. 단재는 한국민족이 드러내는 외래 의 주의와 사상에 쉽사리 압도되는 경향을 노예의 특색, 즉 집단적 노 예근성이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외래의 주의와 도덕을 수용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는 단재와 루쉰이 다소 다른 양상을 드러낸다. 단재는 한국민족의 이익에 이바지 하고 민족화된 도덕과 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루쉰은 중국 민족이 외래의 도덕과 주의를 우스꽝스럽게 변질시켜 제대로 가져다 쓸 수 없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이는 소국과 대국, 식민지와 반식민지라는 국정의 차이가 단재와 루쉰으로 하여금 민족의 이해(利害)라는 표준을 다르게 적용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노예근성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도 단재가 한국민족의 집단적 근성에 치 중하고, 루쉰이 중국민족의 개인적 근성을 부각시킨 것도 동일한 이유 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보인다. 4. 단재의 민족주의와 루쉰의 계몽주의가 갖는 특수성 루쉰의 반봉건 계몽주의와 단재의 반제 민족주의가 가지는 철저성과 특이성은 어디서 근원한 것인가? 루쉰의 노예근성 비판과 단재의 사대 주의 비판이 가지는 모골이 송연한 깊이와 불가사의한 힘은 어디서 생 겨난 것일까? 반식민지 중국에서 5 4의 시대정신이었던 계몽주의는 왜 루쉰에 의해서 대표되었으며, 식민지 한국에서 3 1운동의 시대정신이었 던 민족주의는 왜 단재에 의해서 완성되었던 것일까? 루쉰의 반봉건주 의가 식인 관습에 대한 비판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까닭은 무 엇이며, 단재의 반제국주의가 아나키즘이라는 또 다른 극단적인 모습으 로 귀착된 이유는 무엇일까? 요약한다면 단재의 민족주의와 루쉰의 계몽주의의가 갖는 특수성을 해명하지 않고는 이 모든 의문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단재의 민족주의와 루쉰의 계몽주의는 일종의 과포화 상태 의 것이라고 하겠다. 그것들이 비록 민족주의와 계몽주의라는 외피를 걸치고 있지만, 민족주의와 계몽주의라는 용어로는 결코 충분히 포괄할 수 없는 어떤 낯선 것이 그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이면서
291 286 中國學 第34輯( ) 동시에 민족주의를 뛰어 넘는 그 어떤 것에 근거해서 제국주의 비판이 이루어지고, 계몽주의이면서 동시에 계몽주의를 뛰어 넘는 그 어떤 것 에 근거해서 봉건주의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런 특이한 현상이 단 재와 루쉰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사상의 모순성을 담아낼 적당한 용어는 찾기 어려워 보인다. 하 지만 단재와 루쉰의 사상이 가지는 깊이와 생명력의 근원은 이것으로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고 하겠다. 루쉰의 반봉건주의는 봉건주의의 무 의식적 기초까지 부정했으며, 단재의 반제국주의는 제국주의의 무의식 적 기초까지 부정했다. 봉건주의와 제국주의가 가진 근본적 한계는 자 신의 무의식적 기초를 오인하고 전도하는 데서 드러난다. 이데올로기가 갖는 이러한 숙명적 오인과 전도에 대해서 마르크스는 일찍이 이렇게 지적했다. 의식이란 의식되어진 존재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며, 인간이 존 재한다는 것은 곧 실제의 생활을 영위한다는 뜻이다. 만약 모든 이데 올로기 속에서 인간 및 그들의 관계가 마치 카메라의 어둠상자에서처 럼 거꾸로 선채 전도되어 나타난다면, 이런 현상은 마치 눈의 망막에 비친 대상물들의 전도(거꾸로 서 있는)가 눈의 육체적인 생명과정 (life-process)에서 기인한 것과 똑같은 이치로, 인간의 역사적 생활 과정 때문에 생겨난다.18) 따라서 인간의 역사적 생활과정 때문에 생겨난 불가피한 전도와 오 인은 모든 이데올로기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모든 이데올로기 속에서 인간과 그들의 관계는 전도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봉건주의와 제국주의는 불가피하게 자신의 역사적 우연성을 부인하고, 불변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선악을 전도시킨다. 만일 봉건주의가 자신을 식인 사회라고 인정하거나, 자본주의가 자신을 착취 사회라고 인정하거 나, 제국주의가 자신을 수탈 기구라고 인정한다면, 그것들은 자신의 존 립기반을 스스로 붕괴시키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봉건주의 자본주 의 제국주의는 불가피하게 자신을 인의도덕 자유평등 세계평화와 문 18)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박재희, 독일 이데올로기1 (서울: 청 년사, 1988), 48쪽.
292 단재와 루쉰의 사상 비교--한국 3 1과 중국 5 4의 대표 사상(김언하) 287 명을 구현하는 체제라고 자신의 본질을 전도시키고 자신의 실상을 오인 할 수밖에 없다. 꼭 같은 이치로 만일 자신의 무의식적 기초에 대한 자각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설사 봉건주의에 반대하는 계몽주의나 제국주의에 반 대하는 민족주의라고 할지라도 역시 동일한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단재의 민족주의와 루쉰의 계몽주의는 자신의 무의식 적 기초를 자각한 민족주의와 계몽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와 계몽주의가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아닌 그 어떤 것으로서의 민족주의와 계몽주의라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민족주의와 계몽주의는 곧 참된 사상으로서의 민족주의와 계몽주의라는 말의 동의어이다. 또 이는 앞에서 말한 어떤 상태 또는 이상 으로서의 민족주의와 계몽주의가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폐기해 나가는 현실의 운동 으로서의 민족주의와 계몽주의라고 하겠다. 단재의 민족주의와 루쉰의 계몽주의에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참 된 사상 또는 현실의 운동 으로서의 성격은, 그들의 출세작 꿈 하 늘 (1916)과 광인 일기 (1918)를 통해서 구현되었다. 이런 의미에 서 단재의 사상은 1916년 이후에, 루쉰의 사상은 1918년 이후에 근본 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약간의 시적인 표현이 허용 된다면, 그들은 이제 사상의 고요한 중심을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 다. 이 해에 그들의 사상은 일종의 과포화 상태의 것으로 완성되었으며, 이후 자신들이 어떤 사상을 가지게 되어도 그것은 항상 자신들의 사상 이 갖는 무의식적 기초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단재의 사상이 민족주의에서 무정부주의로 변했다든지, 루쉰의 사상이 계몽주의에서 마르크스주의로 변했다든지 하는 논법은 어디까지나 절반 만 정당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루쉰과 단재의 죽음 루쉰과 단재는 죽음의 모습조차 동질적으로 보인다. 루쉰은 죽음을 앞두고 유언처럼 쓴 글 속에서 자신이 생전에 싸웠던 자신의 적들을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적들도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고 말했다.
293 288 中國學 第34輯( ) 루쉰의 적들에는 봉건주의자, 민주주의자, 민족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들이 다 들어 있었다. 죽는 순간까지 편협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참된 사상가, 사상의 고요한 중심을 가진 채 투쟁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하겠다. 단재는 외국환 위조이체 사건으로 체포되어 수감 생활 끝에 병고로 죽었다. 대련 법정에서 공판을 받았을 때, 자신의 행위가 사기 행각이 아니라, 아무런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정당한 행위라고 진술했다. 혁명 가로서의 생애에 오점을 남기는 파렴치한 행동이었다는 비난을 받을 수 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무국민의 특별 도덕 의 하 나인 무공포적 도덕 을 실천한 것이다. 義兵을 하다가는 朝鮮의 人口가 줄리라는 算盤的 思量을 버리며, 殘 行을 하다 죽으면 身後의 名譽가 없으리라는 倫理的 論評을 끊고, 우 리의 道德 信條를 따로 定하여, 이 길로 나아갈지라. 第三者의 云云이 야 어찌 돌아보리오.19) 단재의 말을 빌려 단재의 죽음을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단재는 파렴치한 사기 행각을 벌이다 죽으면 죽은 뒤에 명예가 없으리라는 윤 리적 논평을 스스로 끊어버리고, 국권을 상실한 식민지 망국민으로서 국권 회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정당하다는 도덕 적 신조에 따라 무국민의 특별도덕을 실천하며 죽음의 길로 나아갔다. [참고문헌] 신채호, 단재 신채호 전집 (상)(서울: 형설출판사, 1972) 신채호, 단재 신채호 전집 (하)(서울: 형설출판사, 1975) 신채호, 단재 신채호 전집 (별집)(서울: 형설출판사, 1977) 루 쉰, 루쉰전집 (북경: 인민문학출판사, 1981) 임중빈, 단재 신채호 일대기 (서울: 범우사, 1987) 19) 신채호, 도덕, 단재 신채호 전집 (개정판)(하)(서울: 형설출판사, 1975), 142쪽.
294 단재와 루쉰의 사상 비교--한국 3 1과 중국 5 4의 대표 사상(김언하) 289 임중빈, 선각자 단재 신채호 (고령신씨대종약회)(서울: 형설출판사, 1986) 김삼웅, 단재 신채호 평전 (서울: 시대의 창, 2005) 안병직편, 신채호 (서울: 한길사, 1979) 김병민, 신채호 문학연구 (서울: 아침, 1988) 최홍규, 신채호의 민족주의사상-생애와 사상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 업회)(서울: 형설출판사, 1983) 최홍규, 신채호의 역사학과 민족운동 (서울: 일지사, 2005) 조세현, 동아시아 아나키즘-그 반역의 역사 (서울: 책세상, 2001) 강만길편, 신채호 (서울: 고려대학교출판부, 1990)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박재희, 독일 이데올로기1 (서울: 청 년사, 1988) 신용하, 신채호의 사회사상 연구 (서울: 한길사, 1984) 최광식, 단재 신채호의 천고 (서울: 아연출판부, 2004) 김언하, 루쉰의 문학 세계와 광기 주제, 중어중문학 35집(서울: 한 국중어중문학회, ) 마지막 선비-심산 김창숙, KBS 인물현대사 ( ) <中文提要> 丹斋( )与鲁迅( )是共处于19世纪末到20世纪前半 叶这一剧变的近代转型期 在韩中两国为了开拓各自民族的生存血路而奋斗 一生的文化巨人 丹斋在韩国使韩国近代史学诞生 鲁迅在中国使中国现代 文学启动 他们各自以史学和文学作为自身不同本色 但盼望通过它们在自 己民族的灵魂里能够引起时代要求的反传统哲学觉悟 在这一点上他们却没 有两样 这或许是文 史 哲自由通往的东方文化传统影响了转型期知识分 子否定传统的方式 20世纪初叶韩国与中国共有着帝国主义侵略所引起的亡国灭种的危机意 识 但由于殖民地和半殖民地这种韩中两国所处的当时现实条件的不同 似 乎丹斋与鲁迅的思想面貌也呈现了各异的着重点 丹斋着重于克服1910年日 本帝国主义强占所引起的殖民地现实 贯穿反帝国主义民族主义立场 鲁迅
295 290 中國學 第34輯( ) 着重于克服1911年辛亥革命失败所证实的封建现实 坚持反封建主义启蒙主 义面貌 这些可能是因为 丹斋认为阻碍韩国近代化进程的决定性障碍就是 日本的殖民统治 鲁迅觉得引起中国半殖民地化处境的决定性因素即是祖国 的封建现实 中国民族对鲁迅的评估 一言而蔽之 为举办他的葬礼仪式时盖棺布上 写着的 民族魂 三个字 韩国民族对丹斋的评价 则是心山金昌淑在哀悼他 的死亡而写的一首诗中所称的 青邱的正气 可作为代表 这样他们在中韩两 国各自被评为 民族魂 及 民族正气 此一事实就证实了鲁迅与丹斋决不停 留于单纯的优秀的文学家或史学家 他们将自己的一生奉献于民族灵魂的救 济与民族正气的光复 直至目前仍然成为检讨民族现在与构思民族未来的思 想资源 看来这简直是一种不可思议的奇迹 주제어: 단재, 루쉰, 문화적 거인, 반제국주의 민족주의자, 반봉건주의 계몽주의자, 민족혼, 청구의 정기, 참된 사상, 광인 일기, 꿈 하늘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296 中國學 第34輯( ) pp.291~300 现世梦想的观照与叙述 ---程青小说论 尙玉翠 任现品* 目 次 一 引 言 二 现世梦想的观照 三 现世梦想的叙述 四 小 结 一 引 言 无论从哪个角度看 程青在当代中国女性作家群里都显得独特 她在创 作生涯之初 曾有一段时间的停顿 这在中国作家是少见的 而在当下女作 家乐于强调自己的性别角色 并纷纷用感觉 躯体写作时 程青却选用头脑 写作 使用日常笔调描绘当下人们的普通生活 而且她的作品拥有好看的故 事外壳 明白晓畅的语言和非常机智的细节 当然 所有这些可以指称的独 特都只是表层的 程青的独特更在于内隐的小说精神 即她对于当下生存现 实的深刻把握和出色叙述 并由此洞察了人类的梦想心态 正因为如此 对 程青的解读只有对她文本的多层内涵和巧妙叙述进行有效的梳理和总结才能 令人信服 20) * 尚玉翠, 烟台大学 中文系 讲师 任现品, 烟台大学 中文系 教授
297 292 中國學 第34輯( ) 二 现世梦想的观照 阅读程青的小说 我们首先遭遇的就是在她的文本世界里那个绵延不绝 的梦想者家族 无论是都市的老人 乡村的孩子 还是小镇的少女 他们都 怀有或大或小的梦想 而且他们的梦想都是中国社会转型所激发的内心隐秘 的骚动和欲望 泡沫 中两个同叫于洁的女孩 经历命运各不相同 但都 在梦想的牵引 驱使下 努力拚搏 寻找着自己的罗马之路 狱中于洁的梦 想是成为一名记者 而记者于洁则不懈地追求着符合感觉的婚姻 而 艾琳 简历 中那个出生在苏北小城的少女艾琳 一心想借助文学创作出名 梦想 成为当代的 天才作家 帐篷 中的图书馆员黄英整日梦想着成为 爱而 不得所爱 式的爱情悲剧主角 今晚吃烧烤 中的王必盛 则把自己梦想 成一个有钱有闲有人情味为不同格调的女人所爱慕的男人 并付诸实践 在 自己的梦想中生活了三年 画像 中八岁的放羊娃小盐粒 在目睹了美术 学院的大学生为村民画像的过程后 萌生了对现代都市的强烈向往 更令人 难忘的是 脸上露出幸福的笑容 中的吕非 则梦想体验一切人生悲欢 包 括同性恋 什么我都想尝尝 我最看重体验 不体验就是浪费 是暴殄天 物 1) 由此 梦想 不仅成为程青观察社会 探寻人类本性的特殊艺术视 角 而且成为她小说文本最重要的一个主题 当然 程青对当代普通人的梦想描绘是和对转型期社会的剖析紧密联系 在一起的 她准确无误地把握了时代跳动的脉搏 即传统价值体系散落后的 商品大潮给中国大众所带来的冲击或解放 这种影响不仅表现在有形的物质 生活层面 而且渗透到隐秘的个人心理和社会心态 并令人信服地把人们的 梦想或希望书写成了特定文化语境的产物 具有很大的合理性和可信度 在 这样的语境中 人们的梦想不再是稳定的工作 完整的家庭 富足的生活 而是渴望获得更多的机遇 刺激 体验与自由 在这样一个任何幸与不幸随 时都可能发生的时代里 个人的梦想不再是基于生存的需要 而是基于心灵 的躁动 焦虑 基于对自身生活的日常性 平淡性的厌倦 基于对更高的发 展平台与更大的自由空间的追求 上海夜色下的36小时 中雪荔与陆海平 1) 程青 脸上露出幸福的笑容 时代文学 1999年05期
298 现世梦想的观照与叙述---程青小说论(尙玉翠 任现品) 293 的婚姻之所以发生危机 是因为他们已不满足于以往的幸福家庭观念 而产 生了更高的要求 或者说他们的生活已达到预期的小康水准 再向前发展的 余地就只剩下更换配偶 做媒 中李薏费尽周折获得的满意婚姻 却在转 眼之间消失 究其原因却是丈夫苏东平觉得 婚姻的责任是时时要负的 而 婚姻的那点利益却很有限 2)在责任与自由之间 人们开始偏向自由 艾 琳简历 中的艾琳企图通过 裸露地写作 来成名 恋爱课 中的陈陈 难 以忍受婚后婆媳 妯娌 夫妻间的无休止的细小龌龊 期望借用新的情感慰 藉来摆脱内心失落 所有这一切人的希望和梦想 无不表明它们是扎根于中 国社会这块广沃厚实的土地上 并吸取着20世纪90年代的风雨而成长起来的 大树 这在二十年前 甚至十年前都是不可能的 也是不可思议的 每个人都怀有自己的梦想 正如尤金 奥尼尔所说 无论你堕落到何种 地步 即使到最底层 也会保持一种梦想 最后一场梦想 3) 程青文本世界 里的人物不仅怀有梦想 而且梦想成了他们活着的依据 梦想是黑暗生活中 的明灯 是纷乱心灵的抚慰 不仅凝聚了他们零散的生命激情 启动了他们 突破自我的心理机制 而且赋予他们的现实存在以意义 使他们能忍受苦 难 战胜挫折 艾琳简历 中艾琳为了 天才作家 的梦想 不惜身体力行 地去体验师生恋 婚外恋 单相思 多角恋等 还从故乡小城奔波到南京 上海 北京去发展自己 推销自己 最后干脆辞去赖以生存的工作 用父母 半生的积蓄换来了 一间自己的屋子 开始做 自由作家 十周岁 中 的唐冬青 为了能进宣传队舞蹈组 用尽了一个十岁孩子所能有的心思算 计 今晚吃烧烤 中的王必盛尽力扮演着自己梦想的角色 在不同的女人 面前有着不同的名字 不同的职业与头衔 并给她们每人以相应方式的讨好 与关心 整日忙于五六个女人及其家庭的需要 且小心谨慎地以免 撞车 还有 泡沫 中的两个于洁 狱中于洁为了成为记者的梦想 在报社做勤杂 工时 竟能弃绝过去的恶习 脱骨换胎般地勤恳工作 在梦想可能化为泡影 时又铤而走险 而记者于洁则在一次又一次的结婚离婚中追逐着符合感觉的 婚姻 总之 梦想成为他们的生命所在 不仅越来越多地占据他们的心灵 而且支配着他们的生活 改变着他们的命运 可贵的是 程青并未把自己对民众心灵的画像停留在这个层次上 她在 2) 程青 今晚吃烧烤 花山文艺出版社 2000年2月版 3) 转引自陈晓兰 奥尼尔悲剧的 梦幻 主题 戏剧研究 1992年第4期
299 294 中國學 第34輯( ) 把梦想 欲望最大化的同时又昭示了它的虚妄 换言之 程青一面让她笔下 的人物做尽美梦 一面又坚决地不动声色地击碎这个梦想 帐篷 中的黄 英喜欢做菜和做梦 并按照自己的梦想设计恋爱过程 不幸的是 在她的精 心安排与狂追不舍下 邵力很快就被她的一手好菜和一腔火热所俘虏 致使 她那成为爱情悲剧主角的梦想也象肥皂泡一样破灭了 有雾的小岛 中八 岁的女孩珞珞 在父母离婚后 与爸爸 后妈生活在一起 亲妈会来接自 己 的梦想成了她生活的支撑和情感的寄托 当然也妨碍了她与后妈的沟 通 最后亲妈终于要来接她了 但此时的亲妈已又结婚生子 我们可以想 象 即使回到亲妈身边 珞珞的处境也不会有多少改变 只不过后妈换成后 爸 梦想的虚幻性不言自明 脸上露出幸福的笑容 中的吕非 为了尝试 多彩的人生 多角恋 同性恋等 完全放弃了应有的责任感 但当他对 小 歌星 动了真情 并 打算从一而终时 小歌星 将吕非利用完后也毫无责 任感地宣布自己压根不曾爱过他 恋爱课 中的陈陈 在经历了与北星的 纯真美好的两心相悦 与彭小竹的灵肉一体的欢情 与大梁 何先生的性 经济的互惠后 不仅没有消除内心的失落 反而失却了自我 最后走进了与 祁老师的无爱无性的世俗婚姻 今晚吃烧烤 中的王必盛利用离婚女人的 心理 借助谎言行骗 在自己的梦想中生活了三年 最终他也厌倦了奔波与 作假 打算安安稳稳地与情人谢蓉过日子 并答应谢蓉四岁的儿子 今晚在 家里吃烧烤 当吃烧烤的一切原料准备就序时 警察来了 现实是无情 的 梦想是虚妄的 王必盛以诈骗罪被起诉 而 今晚吃烧烤 也就成了永远 无法兑现的诺言 其他还有于洁 艾琳 李薏等 总之 程青笔下的人物无 一例外地体验到了梦想的破灭与虚妄 如果说希腊神话中的 潘多拉的盒子 在放出灾难 战争 瘟疫 疾病之 后 被骤然关上 从而把 希望 留在了里边 那么程青则在自己的小说中让 我们窥视了那个盒子 里面空空如也 潘多拉的盒子是对人性的洞察 即 在任何困境中人都怀有希望或梦想 程青又对这种人性加以冷静观照 认为 梦想只是那个挂在驴子面前的萝卜 时刻在眼前摇晃不停 却永远也吃不到 它 这不仅使她与那些沉溺于抒写个人情爱挫折而欲罢不能的女性作家区别 开来 而且使她的小说同整个人类的心理状态相关联 并闪耀着一种智慧理 性的光芒
300 现世梦想的观照与叙述---程青小说论(尙玉翠 任现品) 295 三 现世梦想的叙述 对普通人现世梦想的理性观照 得自于程青对世事的体察和人性的了 悟 她以自己特有的智性叩问当代生存的方式 使我们接近了中国人甚至人 类的生存状态的真实 而紧贴日常生活的程青 是怎样将如此深远的意蕴融 入细密驳杂的感性经验中的呢 在此 我们无法忽略她那举重若轻的叙述谋 略 视角的选取 人物的设置 结尾的安排等构成了精心别致的叙述结构 不仅有力地强化了小说的主题诉求 而且直接化成为小说魅力的重要来源 作为一个理性型作家 程青与林白有着鲜明的区别 林白的小说更多地 书写女性感性世界的丰富与美丽 与此相应 她的叙事方式也呈现为非中心 化的零散 片断式形态 并借助情绪与感受的层叠聚合 在无序中显露出深 情灵动的轻盈美感 而程青的小说常能超乎性别 年龄的限制 多方位 多 层面的选取生活片断 来观照当代人的精神状态 并用巧妙多样的叙述视 角 对比呼应的人物设置 逆转开放的故事结尾等叙事策略 在严谨有机的 结构形态中突现深邃恒定的人性内核 巧妙多样的叙述视角 与陈染的自叙式小说不同 程青能保持与描写对 象的适当距离 这使她的观察冷静而具有尖锐的穿透力 也使她的故事叙述 可以采用巧妙多样的切入视角 程青的文本叙述人不管是以 我 还是以 他 的面目出现 总是自觉以某个特定人物的观察为切入点 采取限知视角 而 且叙述人的身份是复杂多样的 年轻女性 老人 小女孩 男性骗子等 让 这些不同阶层 不同年龄的普通人体验 感受 言说生活 不仅真实可信 而且具有深广的社会内涵 泡沫 以年轻女记者 我 的视角来观察和叙述 两个于洁的内心梦想和现实经历 同样 脸上露出幸福的笑容 也选择第 一人称 我 的视角见证吕非的爱情历程 我 与他们都有密切交往 甚至是 比较要好的朋友 所以对他们的现世梦想既能给予同情理解 也能给予冷静 思考 这样 叙述人 我 对于小说主题的言说就既能入乎其内 又能出乎其 外 还能反观 审视自我 并联想扩展到人类的心理状态 梦想不得实 现 有雾的小岛 中 我 是个八岁的小女孩 父母的离婚与再婚带来了一 系列的生活变化与相应的心理转变 以孩子的视角为切入点来体验 言说她 自己的现世梦想及其结局 画像 也以八岁的小盐粒为贯穿始终的中心人
301 296 中國學 第34輯( ) 物 并通过他的眼光去观照城里来的几个大学生 去感应周围各种人物的心 理波动 而 老乔的某年夏天 则以老乔为视角切入点来叙述老年人的现世 梦想 老乔越往前生活 越发现梦想就在昨天 而且一去不返 今晚吃烧 烤 以男性骗子王必盛为叙述口吻 从内觉的情感诗意的一面来书写他的现 世梦想的实施与落空 与外在社会对他的评价形成鲜明的对照 从而游离了 传统的道德评价层面 使读者和他一起历经梦想的美好强大和现实的真实残 忍 巧妙恰当的切入点 使单个故事的言说具有真实性 独特性 而在我们 阅读了程青的绝大部分作品后 就能更深刻地体会到 多样的叙述视角能多 角度 多层次地展现不同的生活场景 在真切地复活了生活原貌的同时全面 透视当代人的心理状态 从而使小说的梦想主题变得澄清而自明 当然 这 也面临一定的危险 作者究竟能在多大程度上趋近儿童 老人 男性骗子的 感知世界 使作品摆脱观念控制的痕迹 并获得独立的生命 这恐怕是程青 无法回避的挑战 也将是她今后努力的方向 对比呼应的人物设置 程青之所以能在饱含生活气息的日常叙事中揭示 人类深潜的心理状态 除选取精妙的切入视角外 还在于精心设置的人物形 象关系 一般而言 她小说文本里的人物不多 但每个人物都是不可或缺 的 而且人物之间既相互差异构成对比关系 又相互关联构成呼应关系 他 们互相说明与强化 又相互否定与消解 从而使读者在清晰地洞察到当代社 会普通男女形形色色的内心生活的同时 体悟到小说主题的深层意蕴 泡 沫 中的两个于洁 生活境遇和梦想希望各不相同 形成一种鲜明的对照 但两者又都是在欲望泡沫的牵引下追求 挣扎 狱中于洁梦想成为一名记者 最后却进了监狱 记者于洁纷乱苦恼的现世生活则呼应了狱中于洁的梦 想 暗示即使狱中于洁实现梦想 成为记者也不会获得期望中的幸福 记者 于洁对何辉的爱迷恋得死去活来 但在 我 这个旁观者眼里 何辉只不过是 个相貌才华平常 在妻子出国期间难耐寂寞的凡夫俗子 这就消解了记者于 洁的梦想 两个于洁的故事相互对照生发 从而使读者感悟到梦想泡沫的普 遍性与虚妄性 在 上海夜色下的36小时 中 作者设置了雪荔 陆海平和 红莲 晓月 刘佳两类人物 他们生活在全然不同的两个世界 并通过 我 的游走联系起来 前者生活在一应俱全 富有情调的豪华住宅里 却因厌倦 了生活的日常性而梦想婚外恋 后者挤住在黑暗潮湿的破旅馆里 却为了生
302 现世梦想的观照与叙述---程青小说论(尙玉翠 任现品) 297 活富裕的梦想而相濡以沫 但这两类差异对比的人物又有着极大的相似性和 呼应性 他们都被现世梦想占据心灵并付之行动 而且在红莲夫妇 刘佳与 晓月身上我们似乎看到了几年前的雪荔 陆海平辛苦奔波的身影 而雪荔夫 妇今天的生活正是红莲她们梦想实现后的将来 雪荔夫妻现实生活的苦恼确 凿无疑地消解了红莲们的梦想 而 今晚吃烧烤 中王必盛与五个女人之间 也构成了对比呼应的关系 从社会现实层面看 王必盛是说谎者 行骗者 与他相爱的女人们则是受骗者 从而构成了对比关系 从社会心理层面看 王必盛之所以把自己梦想 打扮成一个有钱有闲有地位有爱心而又多情的男 人 是因为女人们都梦想嫁给这样完美的男人 两者又是相互关联的 王必 盛把自己假扮成浪漫 温柔 体贴的男人 结果是通情达理的谢蓉 浪漫考 究的李素素 美丽绝伦的唐心虹 精明能干的蔡菊花和单纯热烈的王菱都爱 上了他 他也同时爱着这些不同格调的女人 但是他与其中任何一个女人的 关系都消解了其他女人的梦想 而他的假冒身份则使所有女人的梦想化为泡 影 王必盛周旋在五六个女人之间所感到的辛苦疲惫也显示了他那美妙梦想 的虚妄 而他那以诈骗罪被起诉的结局 则是无情的现实打破了所有人的梦 想 现实的实在 梦想的虚妄 由此可见一斑 逆转开放的故事结尾 程青小说的魅力还在于运用逆转式的结尾来结束 故事叙述 这是一种浑然天成而又别具匠心的结尾方式 它在小说行将结束 之际把故事所演进的趋向性推翻 并预示出一种新的可能性 这既使观照人 的梦想心理的主题得到进一步的深化 为小说带来了出奇不意的阅读效果 也使小说文本具有了意蕴上的无限性 结构上的开放性 上海夜色下的36 小时 中 我 之所以到上海出差 很大程度上是为了解除昔日密友雪荔夫妇 的婚姻危机 但在上海的36小时 一切都未按 我 的预想发展 小说随着 我 的离开上海而结束 这样 我 出差前的使雪荔夫妇言归于好的强烈愿 望与最后心安理得的无功而返形成鲜明的逆转 而且故事并未随着小说的结 束而结束 故事将通过读者的想象继续发展 即上海的朋友仍将在梦想的召 唤下按各自的轨道生活下去 该搞推销的搞推销 该搞婚外恋的搞婚外恋 一切都不会因为 我 的出现而有所改变 小说只是截取生活的一个片断 而 故事则向无限的未来延伸 帐篷 的结尾更是言有尽而意无穷 一句 从 这天起 邵力开始跟踪黄英 结束了小说 开启了故事 换句话说 它结 束了已写出的故事 开启了未写出的故事 小说具体描述了黄英与邵力的交
303 298 中國學 第34輯( ) 往过程 其中一直是黄英追求跟踪邵力 但与邵力的结婚使黄英成为爱情悲 剧主角的梦想破灭 婚后她又开始了新一轮的追求过程 这就使故事发生逆 转 邵力不得不开始跟踪黄英 这种逆转式结尾表明 小说书写的只是黄英 的一次梦想过程 在此前已有过 而且此后还会继续追求下去 梦想下去 所以故事还将继续 其他如 艾琳简历 有雾的小岛 等作品 主人公 都在旧的梦想破灭之际 升腾起一个新的梦想 小说在最富有包蕴性的一刻 结束 既承接着故事的过去 又暗含着故事发展的未来 使读者获得了广阔 的想象空间 也强化了小说的主题 即人的心灵总是被不断破灭又不断再生 的梦想所占据 而且梦想是虚妄的 永远得不到实现 四 小 结 可见 程青借助巧妙多样的叙述视角 对比呼应的人物设置 逆转开放 的故事结尾使小说的叙述精简整一 且最大限度地深化 提升了小说的主题 内涵 使我们在对当下人们的心理状态有了真切把握的同时 也在她那理性 之光的烛照下 看到了自己灵魂的姿态 程青虽然是写于洁 艾琳 黄英 王必盛梦想的追求与失落 但由于这样的故事在今天这个时代具有一定的普 遍性 所以作者是在审视于洁们 其实也是在反观 剖析自我 是在写你 我以及我们每一个人 在这个经济发展 文化转型的时代 追逐梦想并为此 付出代价 程青的文本无疑为我们提供了当下人们梦想心态的范本 泡沫 成了今天人们内心梦想的象征 这是历久不熄的梦想在今天的新面孔 新姿 态 带着社会转型所特有的躁动不安 当然这种象征意蕴不是对人性的简单 图解 而是作者对纷繁散乱的当下生活的感觉与发现 并用自己的方式把它 叙述出来 从而成为一种独特的艺术创造 在她的小说中 我们感悟到了人 性的普遍状态 同时也更深切地洞悉了自己心灵深处的奥秘 当然 程青对 现世梦想的冷静观照和有效叙述是与她的语言风格密不可分的 她那干净利 落的文风和明白晓畅的语言 不仅使文本简洁干练而内蕴悠长 而且具有很 强的可读性 冷静 机智 善于观察是程青最显著的优点 这与其记者身份密不可 分 而不知疲倦地苦心经营将是其获得更大成功的有力保障 艺术以束缚为 生 而死于自由 束缚 指作家自我的克制 自由 指杂乱无章 一个不会
304 现世梦想的观照与叙述---程青小说论(尙玉翠 任现品) 299 克制的艺术家便破坏了她的艺术自由 善于将自己的主观性控制在隐忍克制 状态的程青 随着艺术感悟力的提高 生活深广度的增加 文学创作也一定 能达到 随心所欲不逾矩 的境地 我们期待着 参考文献 程 青 今晚吃烧烤 花山文艺出版社 2000年 程 青 脸上露出幸福的笑容 时代文学 1999年05期 陈晓兰 奥尼尔悲剧的 梦幻 主题 戏剧研究 1992年第4期 <Abstract> The Introspection and narration of worldly dreams --On Chengqing s Novels Shang, Yu-cuiㆍRen, Xian-pin Chengqing s novel is unique in that she depicts and meditates on the latent state of human existence, if compared with other contemporary female novelists. To be more exact, she penetrates into the mental world of human beings with her outstanding depiction of the present existential reality. She dramatizes their dreams and desires yet meanwhile exposes the absurd and fantastic nature of them. She, on the one hand, grants her characters the right to dream to their heart s content, and smashes their dreams silently but resolutely on the other. Furthermore, her various writing techniques, including the clever and diverse narrative perspectives, the echoing of characters, and the reverse but open endings, not only strengthen and highlight the themes, but also reinforce the charm of the novels.
305 300 中國學 第34輯( ) Key words Chengqing; Worldly dream; Absurd; Introspection; Narrative style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306 中國學 第34輯( ) pp.301~332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 --영상 예술을 중심으로 우강식** 목 차 들어가는 말 무협영화의 정의와 구성요소 시기별 무협영화 수용양상 무협영화의 수용배경 한국 무협영화의 형성과 발전 나오는 말 1. 들어가는 말 무협소설을 성인의 동화 라 일컫는 것같이 무협을 소재로 한 영화는 대중의 사회적 욕구를 충족케 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무협영화는 대 중들에게 화려한 액션 등 시각적 볼거리와 함께 심리적 만족감을 제공 한다는 것인데, 무협을 소재로 한 영상 작품은 바로 대중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4)본고는 이러한 무협영화 장르의 특성을 바탕으로 * 이 논문은 2008년 정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 임(KRF A00163) ** 서라벌대학 국제비지니스과 전임강사 [email protected]
307 302 中國學 第34輯( ) 하여 한국 대중사회에 무협영화의 수용과 발전 양상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한국에서의 중국 무협영화의 수용은 먼저 한중 양국 이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면서 국민 정서 가운데 역사적으로 문화적인 동질감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만 6 70년대 이후 한국에서 무협소설이 유행하고 더불어 胡金銓과 張徹 등의 무협영화와 7 80년대를 풍미한 李小龍과 成龍의 영화에서 오늘날 무협블록버스터영 화에 이르기까지 무협 테마가 국내 시장에 유행하게 된 것은 문화적 동 질감 이면에 무협이라는 異種文化 에 대해 한국의 대중사회가 동경을 표현한 것이며,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라 하겠다. 20세기 후반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고 본격적인 문화 교류의 장이 마 련되자 그간 축적된 양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 거침없이 발산되었다. 한 국을 배우고 모방하며 동경하는 중국의 대중사회가 있었다면, 부지불식 간에 이미 무협류를 비롯한 중국의 대중문화를 받아들인 한국의 대중사 회가 있었다. 주목할 것은 양국 간에 다양한 장르의 문화가 교류되고 있지만, 그 가운데 영상작품은 파급 효과가 빠르면서 영향력 있는 장르 라 하겠고, 특히 무협을 소재로 한 영상 작품은 이러한 분위기를 주도 한다는 점이다. 영상 예술은 곧 대중문화와 도시문화를 대표하는 것으 로 이에 대한 고찰은 漢風 으로 거론되는 문화 현상에 대한 진단과 의 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60년대 김광주의 정협지 (1968)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한국에 소개된 중국의 무협문화는 현재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무협을 소재로 한 영화는 <방랑의 결투(大醉俠)>(1966, 胡金銓),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獨臂刀)>(1967, 張徹) 등의 고전무협에서 오늘 날 <와호장룡(臥虎藏龍)>(2000, 李安)과 <영웅(英雄)>(2002, 張藝謀) 등의 무협 대작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한국의 관객들에게 소개 되었다. 그리고 臥龍生과 金庸 등의 무협소설이 유행한 이후, 무협은 단 순히 받아들여 향수하는 단계를 넘어 한국 작가의 손을 통해 재창조되 고 있는 상황이다. 또 근자에 성황리에 방영되었던 <주몽>과 <대조영>, <연개소문> 등 TV 대하사극들은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가운데 무협과 애정의 소재를 담고 있다. 여기서 무협의 요소는 플롯의 긴장감과 생동 감을 이끌어내는 주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작용한다.
308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303 본고에서는 먼저 무협영화의 장르적 의미를 살펴보고, 각 시기별로 국내에 소개된 작품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를 토대로 한국에서의 중 국 무협영화의 수용배경을 탐색하고, 한국 무협영상의 형성과 발전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2. 무협영화의 정의와 구성요소 1) 무협영화의 정의 중국영화는 중국 대륙과 타이완의 이념 대립, 그리고 홍콩의 귀속 등 정치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초기에는 대륙과 타이완 그리고 홍콩의 영화를 지칭하는 삼중국 영화 라는 용어가 통용 되었지만, 홍콩이 중국으로 귀속된 이후 이 용어는 의미를 잃었다고 하 겠다. 대신 현재는 주로 영화에서 사용된 언어와 배경 등에 근거하여 중국어 영화 혹은 중국권영화, 華人映畵 등의 개념으로 중국영화를 둘레 짓고 있다.5) 본고에서는 중국어 영화의 개념에서 중화권 출신 감 독들에 의해 연출된 무협영화와 무협 소재를 지닌 한국 무협영화를 연 구 범주에 놓고자 한다. 그렇다면 무협영화란 어떤 영화인가. 陳墨의 말을 빌리자면 무협영화 는 武가 있고 俠이 있는 영화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협과 武는 곧 중국 전통의 무공과 독특한 격투 형식, 그리고 중국 고유의 俠義精神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를 체현하고 있는 협객을 소재로 하여 구성된 영화 가 무협영화인 것이다.6) 말하자면 약자를 대신해 불의에 대항하며 정의 를 펼치는 협이 있고, 그 협이 사용하는 무공이 있으며, 그들의 활동공 간으로 강호가 있는 것이 바로 무협의 세계인 것이다. 미국에 서부영화, 일본에 무사영화, 그리고 서구에 기사영화가 있는 것 같이 무협영화는 俠文化라는 중국의 전통 문화를 담고 있는 영화장르인 것이다. 최근 <와호장룡>을 필두로 한 무협대작들이 세계무대로 진출을 꾀하는 것은 5) 임대근 외, 중국영화의 이해 (서울: 도서출판동녘, 2008), 22~36쪽 참조. 6) 陳墨, 刀光俠影蒙太奇 - 中國武俠電影論 (北京: 中國電影出版社, 1996), 10쪽 참조.
309 304 中國學 第34輯( ) 바로 무협이 중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세계무대에 내보일 수 있는 소재라는 것에 인식을 같이 한 결과라 하겠다. 무협영화는 무협소설과는 달리 영화에서 사용된 재제와 내용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진다. 초기에는 주로 무협소설에 근거하여 협의 행위를 중시한 영화를 武俠片이라 하였다. 또 무술을 연마한다는 광동 어에서 의미를 딴 功夫片이 홍콩을 중심으로 통용되었는데, 권각을 통 한 격투의 묘사가 주가 되는 功夫片은 李小龍의 영화와 <黃飛鴻> 계열 의 영화 등을 통해 발전하였다. 국내에서도 功夫片은 바로 무협영화를 지칭하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또 대륙에서 무협영화에 대한 보편적 인 용어로 武打片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격투를 위주로 한다 는 것에서 功夫片과 유사한 개념이라 하겠다. 이 밖에도 무술을 위주로 한다고 하여 武術片이라는 명칭이 있고, 각종 과학기술을 운용하여 볼 거리를 제공한다고 하여 動作片이라는 명칭이 있다. 易劍東은 용어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무협영상 작품을 두루 아우르는 武俠影視片 7)이 란 용어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는 비교적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는 하지만, 용어의 정의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고 하겠다. 이처 럼 다양한 명칭이 있지만, 본질적인 의미에 있어서 무협영화는 전통의 俠義思想과 尙武精神을 바탕으로 하여 발전한 영화장르라는 것이다. 그 래서 협을 강조하거나 武를 강조하는 비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협의 요소 곧 협이 있고 武가 있는 강호의 이야기가 바로 무협영화인 것이 다.8) 2) 무협영화의 구성요소 무협영화의 주된 구성요소로는 주체로서의 협과 도구로서의 武, 그리 고 배경으로서의 강호를 들 수 있겠다. 협은 오랜 역사를 지닌 중국의 7) 易劍東, 武俠 (廣州: 南方日報出版社, 2001), 139~145쪽 참조. 8) 예를 들면, <英雄本色>(1986, 吳宇森) 같은 영화에도 일부 武와 俠의 색채를 지니고 있지만, 무협류의 영화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명장(投名 狀)>(2007, 陳可辛)은 관부와 전쟁터를 배경으로 하여 사나이들의 우정과 인 성을 武의 측면을 통해서 표현한 또 다른 형태의 강호 이야기로 비록 전통의 협의 정신에 근거한 협객의 흔적은 약하지만, 무협류의 영화인 것이다.
310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305 전통 문화 정신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협의 탄생은 春秋戰國 의 혼란한 사회 환경 속에서 武를 지닌 士의 계층이 발전한 것인데,9) 협의 무장역량은 통치권에서 줄곧 경계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원인이 되 기도 하였다.10) 그렇지만 의리를 숭상하며 사사로운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이웃을 위하는 협의 기질은 민간을 통해서 이어져 왔다. 司馬遷이 史記 에서 협으로 傳을 세운 근본적인 이유는 위난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휼하니, 인자라고 불릴 만하다. 또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자기가 한 말을 어기지 않으니, 이 역시 의로운 사람들 이라 할 수 있다 11)는 협의 기질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렇게 협의 사상 은 利他主義를 실천하는 것에 있다고 하겠고, 봉건 체제 아래서 통치 받아왔던 하층 백성들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을 협에 기탁하여 심 리적인 안위를 도모했던 것이다. 그래서 협은 義를 통해 이야기 되었고, 義의 실천자로 협을 이야기하였던 것이다. 대저 俠이라는 것은 비상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비록 이미 허락한 것 은 지키지만, 반드시 절도와 기개를 근본으로 한다. 義는 俠이 아니면 세우지 못하고, 俠은 義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겸하기가 어려 운 것이다.12) 李德裕가 언급한 협은 바로 義를 실천하는 기질을 지닌 자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협은 줄곧 제도권 속에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信義 를 중시하는 기질과 利他主義 사상은 긍정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협은 민간뿐만 아니라 살아서는 벗들 따라 노닐고, 죽어서 俠骨의 향기 풍 기네 라고 노래되는 것처럼 문인 사회에서도 협의 기질과 사상은 흠모 하는 대상으로 수용되었다.13) 金庸은 협의 본질을 작중 인물 郭靖의 입 9) 陳山, 中國武俠史 (上海: 上海三聯書店, 1992), 1~20쪽 참조. 10) 협은 무력으로 금함을 범한다.(俠以武犯禁. 韓非子 五蠹 ) 11) 救人於厄, 振人不贍, 仁者有乎. 不旣信, 不倍言, 義者有取焉.( 史記 太史公自 序 ) 12) 夫俠者, 蓋非常之人也. 雖以然諾許人, 必以節氣爲本. 義非俠不立, 俠非義不 成, 難兼之矣.(董誥編, 全唐文, <豪俠論>(上海: 上海古籍出版社, 1990), 3224쪽) 13) 生從命子遊, 死聞俠骨香. (張華, <博陵王宮俠曲>二首 其二) 협을 노래한 시
311 306 中國學 第34輯( ) 을 빌어 언급하길, 협이 강호에 나와 무공을 연마하여 俠義를 행하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구제하는 것은 협의 본분이지만 이는 협의 작은 것이고, 진정한 大俠이란 바로 국가와 백성을 위하는 것이라 하였다.14) 협이 추구하는 행위 목적과 사상적 영역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라 하 겠다. <영웅>(張藝謀)에서 자객 無名이 결국 秦王 암살을 포기하고 죽 음을 받아들인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천하 백성을 염두에 둔 大俠의 관 념을 따른 것이라 하겠다. 협의 탄생이 尙武精神에 근간을 두고 있는 것처럼 무공은 협이 목적 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수단으로 의미를 지닌다. 비록 무협소설가 梁羽 生은 협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협은 武보다 더 중요하며, 협은 영혼이 고, 武는 육체라 하였고, 또 협이 목적이라면 武는 협을 달성하는 수단 이라 하면서, 심지어 武는 없을지언정 협은 없어서는 안 된다고까지 하 였다.15) 그렇지만 荊軻와 聶政 등 역사에 등장하는 협객은 물론 무협소 설과 무협영화에서 협은 武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었고, 武가 없 는 협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라 하겠다.16) 武를 지향하는 협의 이미지 는 1949년 신중국 성립 이후 80년대 개방이 있기까지 대륙에서는 무협 을 혁명정신에 반하는 봉건적인 잔재를 지니고, 또 청소년들의 정신 건 강을 해치는 精神鴉片 으로 규정하여 금지했던 것처럼 폭력을 미화한 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였다. 분명 무공 자체가 지닌 폭력성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악을 징벌하고 정의를 펼치는 협객의 도구로 사용된 가에 대해서는 <中國古典詩歌에 나타난 俠>(이치수, 中國語文學 28, 1996)과 <詠俠詩歌의 창작을 통해본 俠文化의 문인사회 수용 양상 고찰 魏晉南北朝와 隋唐 시기를 중심으로->(우강식, 인문학연구 76, 2009) 등 의 논문 참조. 14) 我輩練功學武, 所爲何事? 行俠仗義 済人困厄固然乃是本份, 但這只是俠之小 者. [ ] 只盼你心頭牢牢記著 爲國爲民, 俠之大者 這八個字, 日後名揚天下, 成爲受萬民敬仰的真正大俠.(金庸, 神雕俠侶 (北京: 三聯書店, 1999), 749 쪽.) 15) 劉維群, 梁羽生傳 (武漢: 長江文藝出版社, 1999), 346쪽. 16) 金庸의 鹿鼎記 와 王晶의 <鹿鼎記 1, 2>(1992)에서 韋小寶는 비록 영화 <鹿鼎記>에서 마지막에 절세무공을 얻어 은원을 해결하기도 하지만, 전체적 으로 韋小寶는 무공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며, 각종 술수를 통해 강호의 분쟁 을 해결한다. 곧 韋小寶를 통해 강호 세계를 풍자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312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307 무공은 질서파괴자의 도구가 아닌 질서수호자의 도구의 의미를 지닌다 고 하겠다.17) 무협영화의 또 다른 구성요소로 협의 활동 공간인 江湖가 있다. 강호 는 본래 長江과 洞庭湖 등을 지칭하는 보통 지리명사였는데, 이후 傳奇 와 話本소설을 거치면서 세속과 분리된 고유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劉延武는 中國江湖隱語辭典 에서 강호는 중국 역사 속에 존 재하는 특수한 함의를 지닌 사회현상으로 보았는데, 이곳은 은사들이 거주하는 장소이며, 사방각지로 떠돌면서 기예를 팔아 생활하거나 약을 팔거나 점을 보는 등의 방식으로 삶을 도모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 활하는 곳이라 하였다. 그래서 강호는 봉건통치자와 서로 대응하는 일 종의 민간세력이 있는 곳으로 조정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 하는 개념을 담고 있다고 하였다.18) 무협소설과 무협영화에서 협객들은 세속과 분리된 강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긴장과 갈등은 모두 이곳에 서 전개된다. 그래서 객잔과 사원, 초원과 산악은 물론 심지어 조정과 관부에까지 협객들이 거닐고 사건이 전개되는 곳은 모두 강호의 공간이 며, 이곳에 등장하는 각종 인물과 사건은 바로 강호를 구성하는 요소들 이라 하겠고, 이것에 대한 묘사가 무협소설이며 무협영화인 것이다.19) 3. 시기별 무협영화 수용 양상 한국에는 1960년대 胡金銓과 張徹의 무협영화를 시작으로 중국의 무 협영화가 소개되었다. 중국에서는 1928년 <火燒紅蓮寺>20)가 무협영화 의 시작이었지만, 한국에서는 1967년 <방랑의 결투>가 국내에 소개된 최초의 중국 무협영화로 기록되어있다.21) 이후 7 80년대는 李小龍과 成 17) 嚴家炎, 金庸小說論稿 (北京: 北京大學出版社, 1999), 14~31쪽 참조. 18) 劉延武, 中國江湖隱語辭典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3), 1~4쪽 참 조. 19) 林崗, <江湖 奇俠 武功 武俠小說史上的金庸>, 金庸小說與二十世紀中國文 學 (香港: 明河社出版有限公司, 2000), 122쪽 참조. 20) 平江不肖生의 江湖奇俠傳 을 明星영화사가 영화한 것으로 이후 18편 속 편이 제작되는 등 초기 무협영화 열풍을 주도했다. 이후 徐克의 <火燒紅蓮 寺>(1993)가 1994년 국내에 개봉되기도 하였다.
313 308 中國學 第34輯( ) 龍 등이 출현하여 고전 무협 형식을 탈피한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 국내 에 소개되었다. 90년대 한중 수교 이후 <와호장룡>, <영웅> 등과 같은 무협 대작들이 소개되었고, 무협의 흥행에 편승하여 경인방송 등의 방 송사들이 2000년 <황제의 딸(還珠格格)>(1997), <협녀틈천관(俠女闖天 關)>(2000)과 같은 장편 무협드라마를 방영하기도 하였다.22) 본고에서 는 무협영화라는 새로운 문화의 수용을 내용과 형식의 변화에 의거하여 초기 유입단계와 변모한 새로운 형식의 무협영화, 그리고 대작 무협영 화의 유입 등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서술하고자 한다. 1) 정통무협단계 이 시기에는 胡金銓과 張徹의 무협영화를 중심으로 소개되었다. 최초 에 소개된 <방랑의 결투>는 女俠 金燕子가 자신의 오빠를 구하기 위해 악당들과 대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경극 배우의 부드러운 몸놀 림과 산수의 여백을 무협의 세계와 접목하여 표현하였다. 그 가운데 결 투장면의 긴장감은 물론 장풍으로 바위를 쪼개기도 하고, 혹은 담을 뛰 어넘기도 하는 장면은 무협영화를 대하는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 을 것이다. <방랑의 결투>는 무협영화가 예술성과 함께 대중성을 추구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었다. 연이어 개봉된 <용문의 결투 (龍門客棧>(1968, 胡金銓)가 당시 흥행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을 보더라 도23) 무협영화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반응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부천국제영화제(2001) 胡金銓 회 고전에서 그의 작품은 시네마스코프 화면에서 무협활극의 상상적 공간 을 세상의 풍경 안에 인간이 조화롭게 함께 존재하기 위하여 보존해야 하는 여백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24)고 하였다. 이러한 무협의 세계를 잘 표현한 작품으로 <협녀(俠女)>(1970)25)를 들 수 있겠다. <협녀>는 21) 김영덕, <황홀했던 추억과의 재회>, 씨네21 308( ) 참조. 22) <황제의 딸>은 당시 방영된 중국 드라마들 가운데 시청율 1위를 기록하기 도 하였다.(최양호, <중국 TV 프로그램에 대한 한국 젊은이들의 이용동기에 관한 연구>, 한국방송학보 17-2(2003)) 23) 김영덕, 앞의 글. 24) 정성일, <호금전 감독의 작품세계>, 씨네21 308( )
314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년 칸 영화제에 출품하여 기술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는데, 胡金 銓이 추구한 동양적인 여백미와 자연미, 그리고 佛家적 세계관이 무협 과 어울려 국제무대에 공인받은 것이라 하겠다. 느리게 전개되는 화면 과 그 속에 전해지는 긴장감, 그렇지만 결투장면이 주가 되는 것이 아 니라 주변의 산수와 자연이 중심을 이루는 文人化된 무협영화의 시작이 라 하겠다. 胡金銓의 영화는 <영춘각의 풍파(迎春閣之風波)>(1973)와 <충렬도(忠烈圖)>(1975), <공산영우(空山靈雨)>(1979), <산중전기(山中 傳奇)>(1979) 등으로 이어지며 초기 무협영화 흥행의 분위기를 이끌었 다. 부드러운 동선과 자연미를 강조했던 胡金銓의 영화와는 달리 張徹은 陽剛의 미학을 스크린에 담아내었다. 홍콩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獨臂 刀>(1967)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상영되었고, 이후 <돌아온 외팔이(獨臂刀王)>(1969), <신외팔이(新獨臂刀)>(1971) 등이 연이어 소개되면서 외팔이 시리즈 를 유행시켰다.26) 張徹은 胡金 銓이 추구했던 정적이고 여성스런 무협을 유혈이 낭자한 남성중심의 동 적인 무협으로 표현하였다. <대협객(大刺客)>(1967)을 비롯한 <단장의 검(斷腸劍)>(1968), <심야의 결투(金燕子)>(1968), <복수(報仇)>(1970), <십삼인의 무사(十三太保)>(1970) 등이 소개되었는데, 인간의 처절함의 극한을 보여주는 張徹식 무협영화의 이미지는 대중들에게 선명하게 각 인되었다. 張徹의 영화가 추구한 주된 주제는 무협의 주된 테마 가운데 하나인 복수로 표현된다. 곧 나의 가족 혹은 사부를 죽였으니 죽음으로 보답한다는 단순한 목적을 지니고 그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한결같이 죽 음을 향해 질주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특히 주인공의 잘려진 팔, 그리고 그들의 처참한 죽음으로 이어지는 설정은 권선징악의 큰 틀에서 완전하 25) 이 영화는 蒲松齡의 聊齋志異 의 <협녀> 편의 내용에 근거한 것인데, 원래는 4시간가량 분량이었다. 칸 영화제에 출품한 것은 200분으로 축약된 것이며, 국내에 출시된 것은 이를 다시 편집한 90분 분량이다. 2001년 들어 187분 분량의 와이드스크린 방식으로 재 출시된다. 특히 대나무 숲에서 벌이 는 결투장면은 영화의 백미로 이후 <와호장룡>, <연인(十年埋伏)>(2004, 張 藝謀) 등에 리메이크된다. 26) <황야의 외팔이>(1970, 김영효), <외팔이 권왕(獨臂拳王勇戰楚門九 子)>(1978, 이정호, 徐增宏)이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제작된 영화이다.
315 310 中國學 第34輯( ) 고 아름다운 대단원을 기대하는 무협의 전통적인 관념을 뒤엎는 것이었 다.27) 그렇지만 張徹이 추구한 報의 관념은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구성 하고 유지시켜주는 주요한 관념으로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것이었다.28) 魯迅도 다른 사람의 이나 눈을 해치면서 보복에 반대하고 관용을 주장 하는 사람은 절대 가까이 하지 마라 29)고까지 하면서 報의 관념을 긍 정하기도 하였는데, 한국의 대중들에게도 이런 報의 관념은 거부감 없 이 수용되었다. 張徹이 표현한 報의 관념은 바로 전통에 근거한 古典俠 의 사상적 근간을 이루는 행위목적이라 할 수 있으며, 張徹은 이를 근 거로 폭력의 미학과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2) 퓨전무협단계 70년대로 접어들면서 무협영화는 형식의 변화를 추구하였다. 바로 <용호의 결투(龍虎鬪)>(1970, 王羽)30)를 시작으로 기존의 도검을 사용 한 결투에서 권각을 통한 결투를 묘사한 쿵푸무협영화(功夫片)로의 변 모가 그것이다. 쿵푸무협영화는 李小龍의 출현으로 한층더 발전하는데, 李小龍은 <당산대형(唐山大兄)>(1971, 羅維), <정무문(精武門)>(1972, 羅維), <맹룡과강(猛龍過江)>(1972, 李小龍), <용쟁호투(龍爭虎 鬪)>(1973, 로버트 클라우스)와 유작인 <사망유희(死亡遊戱)>(1978, 로 버트 클라우스)까지 다섯 편에 불과한 영화를 남겼지만, 홍콩은 물론 세계에 중국의 무술을 각인 시켰다.31) 외세에 핍박 받는 중국인을 대신 27) 이후 李小龍의 영화에서 표현된 폭력의 미학과 吳宇森의 <영웅본색> 등을 통해 연출된 영웅주의의 부정은 張徹 영화의 맥을 있는 것이라 하겠다. 28) 禮記 曲禮上 에는 아버지의 원수와는 하늘을 같이하지 않고, 형제의 원 수에는 병기를 거두지 않으며, 친구의 원수와는 같은 나라에 있지 않는다.(父 之讐, 不與共戴天, 兄弟之讐, 不反兵, 交遊之讐, 不同國.) 라고 전하고 있다. 29) 損着別人的牙眼, 却反對報復, 主張寬容的人, 萬勿和他接近.(金隱銘校勘, 魯 迅散文全集 (桂林: 灕江出版社, 2005), 172쪽) 30) 배우가 감독을 겸한 영화의 시작이기도 한 영화는 외세에 대항하여 민족의 식을 고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李小龍의 <정무문> 등의 내용과 형식에 영향을 주었고, 국내 남한산성 근처를 촬영지로 하기도 하였다. 31) 李小龍에 대한 추모 열기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이소룡 본가 박물관 된다-중 광동성 순덕시서 개조 추진>(<국민일보>, 면.) 또 슈퍼액션 TV는 2003년 7월 21일부터 매주 월요일 밤 12시40분에 李小龍의
316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311 해 민족의 자존을 지킨다는 영웅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李小龍의 영화 는 엄밀히 말하면 전통 무협영화의 형식에서는 벗어나 있다. 그렇지만 武의 요소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선악의 대립을 통해 영웅의 형상을 표현한 것은 앞서 언급한 功夫片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 李小龍의 영화는 형식적인 면에서 張徹이 추구했던 폭력의 미학을 계승한 것인 데, 관객들은 영화의 플롯이나 미장센, 혹은 역사나 미학을 감상하는 것 이 아니라 바로 분노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과 살기어린 눈빛, 그리고 죽음의 포효가 절제된 무술동작을 통해 표현된 순수 분노 를 감상한 것 이라 하겠다.32) 李小龍의 영화는 감독 중심의 영화에서 배우 중심으로, 그리고 고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현실의 이야기로, 개인영웅주의에 서 민족영웅주의로의 무협영화의 내용과 형식이 변모한 것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李小龍의 부재로 중국 무협영화는 소강기를 보였다. 그렇지만 <신 당 산대형>(1977, 김진태, 羅維)을 통해 李小龍에 대한 대안으로 지목되기 도 하였던 成龍은 <취권(醉拳)>(1978, 袁和平)을 통해 새로운 형식의 무협영화를 선보였다. 무협과 코믹을 접목한 이 영화는 코맥션 (Comaction)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는데, 당시 서울 개봉 관에 89만 여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했을 정도로 <취권>에 대한 관심 은 폭발적이었다. <취권>의 흥행은 <사형도수(蛇形刁手)>(1978, 袁和 平)33), <남북취권(南北醉拳)>(1979, 袁和平)과 같이 成龍이 출연하였거 나, 혹은 <취권>류의 영화들이 연이어 소개되게 하였다. 송희복은 <취 권>의 성공은 바로 한국의 관객들이 비장한 영웅과 함께 세상을 고민하 작품과 그의 일대기를 다룬 <드래곤>을 추모특집으로 방영하였다. <'무술의 전설, 이소룡 부활' 슈퍼액션TV 30주기 추모특집>(<세계일보>, ), <李小龍 30주기 전시회 등 열려, 홍콩 추모열기>(<경향신문>, ) 등이 있겠다. 또 <말죽거리 잔혹사>(2004, 유하)에서 주인공 현수 가 동경하는 대상은 바로 李小龍이었는데, 이에 대해 감독은 <말죽거리 잔 혹사>는 그 자신이 살아왔던 70년대, 이소룡 세대 에 바치는 헌사다 라고 창 작 배경을 설명하였다.(양성희, <억압받던 70년대 이소룡은 내 탈출구>, <문 화일보>, 면.) 32) 강경석, <분노의 주먹>, 플랫폼 09( ,6) 참조. 33) 원제는 <(사형조수)蛇形刁手>이나 국내에 출시될 때는 刁 를 刀 로 오독하 여 <사형도수>로 소개되었다.
317 312 中國學 第34輯( ) 기 보다는 무협을 일회용 즐김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 징표라고 하였다.34) 말하자면, 선혈이 낭자하는 결투와 사건의 긴장감을 해학적인 무공에 희석하여 대중성을 확보한 것으로 무협이 단 순한 異種文化의 소재가 아니라 상업적 수단으로서의 가능성 또한 확인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취권>의 흥행이 당시 무협영화의 한 축을 이루었다면, 소림사를 소 재로 한 무협영화 또한 이 시기 무협영화의 주된 소재가 된다. 주로 권 각을 사용한 소림무술을 묘사한 쿵푸무협영화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소림사 18동인의 관문을 통과하면서 소림사 무술을 획득하 는 과정을 묘사한 <소림사의 18동인(少林寺十八銅人)>(1976, 郭南宏)이 흥행에 성공하였고, <남소림여북소림(南少林與北少林)>(1978, 張徹), <소림사(少林寺)>(1982, 張鑫炎) 등과 같이 소림사를 소재로 한 무협영 화가 이에 편승하여 소개되었다. 80년대 <영웅본색>으로 시작된 홍콩느와르의 유행으로 무협영화는 다소 침체기를 겪는다.35) 그렇지만 90년대 들어 대륙이 개방되고 홍콩 반환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는 시점에서 무협영화는 중국과 서양 문명의 충돌 속에서 민족의 자존심을 되돌아보는 내용을 담게 되는데, 바로 <황비홍(黃飛鴻)>36)(1991, 徐克)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영화는 중국 반환을 목전에 둔 홍콩인들이 내 안의 서구를 밀어내어 중국적인 것을 되살려 자신의 뿌리를 상기하고자 하는 그들의 자화상을 그려낸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는데,37) 결국 중국 귀속이라는 심리적인 불안을 황비홍이 라는 민족 영웅을 통해 해소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외세에 대항하여 민 34) 송희복, 무협의 시대 (부산: 경성대학교 출판부, 2008), 410쪽. 35) <열혈남아(旺角卡門)>(1987, 왕가위), <첩혈가두(喋血街頭)>(1989, 吳宇 森), <첩혈쌍웅(喋血雙雄)>(1989, 吳宇森) 등은 암흑가 사내들의 우정을 다룬 내용으로 이를 현대판 무협영화라고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홍콩누아르 작 품은 고전적 의미를 현대적의미로 옮겨와 강호는 곧 현대 도시로, 도검은 총 으로, 강호의 분쟁은 조직간의 계파 분쟁 등으로 표현하였고, 의리를 강조하 는 등 닮은 점은 있지만, 무협영화의 범주에 놓기는 어렵다. 36) <황비홍> 계열의 무협영화는 1949년 이래 10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되어진 대표적인 소재 가운데 하나이다. 37) 안시환, <무협영화, 후 진취앤에서 장 이머우까지>, 플랫폼 09( ,6)
318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313 족의 자긍심을 회복하고자 한다는 주제는 항일이나 반공 등에 낯익은 국내 관객들에게 크게 낯설지 않는 주제였을 것이며, 한국의 관객들은 배우(李連杰)의 현란한 무술을 통해 표현된 무협의 요소에 보다 더 매 료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황비홍>과 더불어 새로운 형식의 무협영화가 소개되는데, 바로 <소 오강호(笑傲江湖)>(1990, 徐克)를 시작으로 한 신무협영화가 그것이다. 주로 新 자를 붙여 새로운 무협영화의 시작을 알리기도 하였는데, 주요 한 특징은 바로 특수촬영 기법을 무협에 도입하여 SF무협영화를 제작 하였다는 것이다. 무협영화 형식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인데, <촉산(蜀山 -新蜀山劍俠)>(1983, 徐克)으로 시작된 이러한 시도는 <신용문객잔(新 龍門客棧)>(1992, 李惠民), <동방불패(東方不敗)>(1992, 程小東), <절대 쌍교(絶代雙驕)>(1992, 曾志偉), <백발마녀전(白髮魔女傳)>(1993, 于仁 泰) 등으로 이어지면서 무협 자체가 지닌 환상적인 요소를 특수촬영을 통해 효과를 배가하였고, 무협영화의 새로운 흥행을 주도하게 된다.38) 그렇지만 <신용문객잔>, <동방불패> 이후 지나친 특수촬영에의 의존은 결국 시각적 효과만 추구된 나머지 협과 武의 흔적이 희미해지는 결과 를 초래했고, 관객들이 외면하는 것은 물론 영화 장르의 발전도 한계를 보였다고 하겠다. 3) 대작무협영화단계 2000년대 들어 중국 무협영화는 또 다른 변모를 꾀하는데, 무협을 통한 인성의 탐색과 대작화가 그것이다. <와호장룡>은 이런 변화의 시 작이 되는 블록버스터 무협영화라 할 수 있다. 王度廬의 <와호장룡>을 각색한 영화는 강호를 떠나려는 협객을 두고 발생되는 각종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강호의 이야기로 표현한 것으로 2001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미술상 등을 수상하면서 국제무대에서 공인을 받기도 하였다. 38) SF무협영화의 환상적인 요소는 특히 林靑霞의 중성적인 매력과 함께 흥행 하게 되는데, 92년 당시 홍콩영화 74편의 편당 수입가는 16만 4천 달러이었 고, 160편의 미국영화의 편당 수입가는 11만 3천 달러라는 것을 통해서도 당시 관객들의 관심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겠다.(이동진, <국내 수입 역사>, <조선일보>( )
319 314 中國學 第34輯( ) 영화에서는 선악의 분명한 대립구도 속에서 무공을 겨루고 결국 선이 승리하면서 갈등이 해소된다는 전통 무협의 틀을 깨고 선과 악이 엇섞 이는 가운데 인간의 인성과 욕망이 드러나고 이를 동양적인 여백의 아 름다움과 함께 표현하였다. 영화의 국제적인 인정과 흥행의 성공은 기 존에 있어왔던 무협영화의 상업성과 예술성에 대한 가능성을 재확인하 는 것이었다. 張藝謀가 중국은 영화 제작을 위한 무수한 소재를 가지 고 있지만, 현재 세계 시장에서 어필할 수 있는 것은 고전극뿐이다 39) 고 한 것처럼 까다로운 검열에서 오는 제작 환경의 문제를 해소하고 동 시에 상업성과 예술성을 국제무대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중국적인 것 에 대한 소재 찾기는 결국 무협이라는 소재에 귀착되었다는 것이다. 이 러한 점에서 <와호장룡>은 무협이라는 소재가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동시에 무협영화 장르의 격조를 한 차원 높 였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영화가 서구에서는 흥행 에 성공한 반면 정작 중국과 한국에서는 주목할 만한 흥행 성적을 내지 못했다는 점으로, 이는 동양적인 선율과 색채로 포장된 무협을 대하는 동서양 관객들의 눈높이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40) <와호장룡> 이후 張藝謀는 진시황 암살을 시도한 荊軻의 이야기를 네 사람의 자객 이야기로 재구성한 <영웅>을 제작하여 흥행에 성공하 였다.41) 영화는 역사를 토대로 하여 이야기를 구성하였지만, 결국 누구 를 위한 암살이며, 명분은 무엇이냐는 반문과 함께 천하 백성을 위해 검을 던지고 죽음을 택한 협객의 행위를 부각시키고 있다. 곧 협이 추 구하는 바는 바로 국가와 민족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 바로 <영웅>에서 표현한 협의 궁극적인 목표라 하겠다. 이후 대작 무협영화들은 연이어 소개 되는데, <연인>(張藝謀)을 비롯 한 <무극(無極)>(2005, 陳凱歌), <황후花(滿城盡帶黃金甲)>(2006, 張藝 39) 노수연, <중국 대작영화 제작열풍 현황 점검>, 영화진흥위원회( ) 재인용. 40) 서울 기준 23만 7천여 명.(영화진흥위원회 <1977~2007년 개봉 한국/외국 영화 정보> 참조. 이하 개봉관 관객인원은 이 자료를 참고함) 41) 이 영화는 중국에서도 흥행 기록을 세운 것은 물론 한국에서도 서울에서만 명, 전국에서 190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 했다.
320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315 謀), <야연(夜宴)>(2006, 馮小剛), <명장>(陳可辛), <적벽(赤壁)>(2008, 吳宇森) 등이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제작된 작품들이다. 무협은 張 藝謀가 고전에서 소재 찾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던 것처럼 중국을 대 변하고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문화코드로 자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그렇지만 중국식 블록버스터는 소재면에서 무협에 치우치면서 소재 의 빈약성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표현 기법 면에서도 동작과 배경, 미술 등에 의존도가 높은 반면 서사는 함축적으로 표현되었다. 또 강렬한 색채를 동원하여 장대한 스케일을 전개하고 있지만, 중국적인 것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점은 극복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고 하겠 다.42) 고전을 소재로 한 대작 무협과는 다른 한 축으로 관객들을 대상으로 패러디를 통한 은밀한 말 걸기 43)로 고유한 영화 영역을 고집했던 周 星馳의 영화 또한 주목할 만하다. 그는 <녹정기Ⅱ와 신룡교(鹿鼎記II-神 龍敎)>(1992, 王晶)44), <서유기 월광보합(西遊記 第壹伯零壹回之月光寶 盒)>(1994, 劉鎮偉), <주성치의 007(大內密探零零發)>(1996, 谷德昭) 등을 통해 이미 국내 관객들에게도 周星馳식의 패러디 코믹영화로 알려 져 있었다. 그러나 周星馳가 출연한 영화들은 대부분 작품성과 상업성 에서 모두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는 B급 영화로 치부되어 왔었다. 그렇지만 무협과 코믹을 접목하여 선보인 <소림축구(少林足球)>(2001, 周星馳)와 <쿵푸허슬(功夫)>(2005, 周星馳) 등의 흥행에 성공은 이러한 이미지를 재고하게 되었다.45) 이는 패러디를 통한 周星馳식의 코믹영화 가 무협과의 접목을 통해 대중성을 확보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 가 무협을 통한 새로운 장르의 개척에 대한 가능성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42) 노수연, 앞의 논문 참조. 43) 박부식, <아이콘으로서의 주성치>, 플랫폼 09호( ,6.) 44) 홍콩에서는 1992년 <鹿鼎記>와 <鹿鼎記 II - 神龍敎>로 개봉되었지만, 국 내에서는 <녹정기Ⅱ>에 <녹정기>를 소개하는 축약본을 담아 소개되었다. 45) <소림축구>는 2002년 개봉되어 서울 관객 285,203명을 동원했고, <쿵푸 허슬>은 2005년 개봉하여 서울에서 357,292명, 전국에서 963,580명의 관객 을 동원했다.
321 316 中國學 第34輯( ) 4. 무협영화의 수용배경 중국의 무협영화는 胡金銓과 張徹의 고전무협으로부터 현재까지 몇 번의 형식과 내용의 변화를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최 근 국내 영화제에서 고전무협에 대한 회고전이 열리는 등 무협에 대한 새로운 평가의 움직임이 있기도 하였다.46) 국내에서는 상술한 바와 같 이 먼저 홍콩의 무협영화로47) 異種文化에 대한 낯익히기를 하였고, 90 년대 이후 대륙의 무협영화가 소개되었다. 이치수 교수는 60년대 중국 무협소설이 국내에 성행한 배경으로 한국 義賊小說의 전통과 새로운 읽 을거리로서의 무협소설, 한국 현대사회의 상업주의 문화와 대중심리, 그 리고 중국 무협영화의 영향 등을 들고 있다.48) 무협이라는 異種文化의 유입이라는 측면에서 무협영화의 수용배경은 무협소설의 수용 배경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 1) 탈정치성 무협영화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성향이 약하다는 장르의 속성을 지니 고 있다. 대륙에서 사회주의 체제 아래 무협을 금지하였고, 또 대륙과 대만이 각기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홍콩 문화계가 무협을 선택한 것은 바로 무협의 약한 정치적 성향에 기인한 것이라 하겠다.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경제 여건과 불법 복제판의 유 통, 그리고 당국의 까다로운 검열 등의 시장 환경은 볼거리도 많고 검 열에서도 자유로운 시대물의 제작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49) 최근 46) 부천국제영화제(2001, 4회~2004, 8회)에서 胡金銓과 張徹 등의 고전무협 영화에 대한 회고전이 있었고,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2009년 6월 홍콩무 협영화 특별전-강호의 도를 묻는다 는 제목으로 고전무협영화를 상영하였다. 47) 엄밀히 말하면, 홍콩무협영화는 <용문의 결투>가 臺灣聯邦 영화사에서, <협녀>가 臺灣國際影片有限公司 영화사에서 제작된 것처럼 대륙을 제외한 홍 콩을 기반으로 한 영화를 말한다고 하겠다. 48) 이치수, <중국무협소설의 번역 현황과 영향>, 대중문학연구회編, 무협소 설이란 무엇인가 (서울: 예림기획, 2001), 68~72쪽 참조.
322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317 張藝謀를 비롯한 중국의 5세대 감독들이 기존의 현실주의 영화에서 무 협영화로 전이하게 된 것도 바로 시장 환경에서 초래되는 문제를 피하 고자 한 것이 주요한 원인이 된다. 한국의 시장 환경 역시 마찬가지였 는데, 6 70년대 반공과 유신 등의 정치적 이념이 영화계를 통제하는 상 황에서 무협영화의 선택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겠다. 이는 협 자 체가 역사적으로 정치의 중심에 나아가기보다는 시종 정치의 변두리에 위치하면서 타인의 억울함과 불의에 맞서는 대중 영웅의 이미지를 지니 고 있었다는 기질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그래서 무협영화의 주된 주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권선징악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을 지 향하는 것이라 하겠고, 胡金銓과 張徹의 무협영화는 물론 현대 무협영 화들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주제는 이어진다. 그렇지만 주목할 것은 선과 악이 대립하고 결국 선이 강호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무협의 이상이지만, 이러한 구도는 후기로 오면 그 경계 가 모호해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소오강호>(徐克) 에서 善의 진영인 華山派와 嵩山派의 장문인들과 惡의 진영인 任盈盈에 게서 선악은 전도되어 표현되었고, <녹정기>에서는 正도 邪도 아닌 韋 小寶로 하여금 이러한 강호인들을 풍자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와호장 룡>과 <영웅> 등에 이르러서는 선악의 경계는 더욱 불분명해진다. 또 <연인>에서 반군과 관군의 대립 속에 애정의 갈등을 겪는 협이 있었다 면, <명장>에서는 권력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협이 묘사된다. 이러 한 설정은 무협영화에서 협은 기존의 기계적인 강렬한 성격을 지니는 것에서 인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正과 邪의 대립이라는 정통 무협영화의 틀에서 발전하여, 협으로 하여금 인성을 지닌 불완전한 가운데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탈정치적인 성격에서 출발한 협은 전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면서 또한 결점과 약점을 아울러 지닌 형상으로 발전한 것 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정의만 부르짖는 기계적인 협에서 보다 인간적 인 이미지를 지닌 협과 강호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정무문>(羅維)과 <황비홍>(徐克) 등에서 협을 통해 중화민족주의를 지 49) 김소민, <영웅 대신 인간 담은 블록버스터>, <한겨레신문>( 면) 참조.
323 318 中國學 第34輯( ) 향하는 색채를 지닌 것과 <영웅>에서 이를 더욱 부각시킨 것은 협의 탈정치성 가운데 정치성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 무협영화의 또 다른 수용배경으로 상업성을 들 수 있겠다. 이는 무협 영화가 오락성을 지니고 볼거리를 추구한다는 장르의 기능적인 측면과 도 연관이 된다. 한국에는 중국의 협과 유사한 성격을 지닌 洪吉童과 林巨正 같은 義賊의 이미지가 있었고, 1962년 尉遲文의 劍海孤鴻 이 김광주에 의해 정협지 로 소개되어 한국의 대중들은 소설의 형식 으로 무협을 수용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소설을 통해 상상된 협객의 무 공과 강호의 세계를 스크린을 통해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무협영화는 비 교적 순조롭게 수용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하겠다. 무협영화는 무협소설과 달리 협의 요소보다는 武의 요소를 강조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는데, 이는 무협영화가 스펙터클 곧 볼거리를 추구한다 는 장르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관 객의 시각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고 바로 영화의 본성이기도 한 것 이다.50) 무협영화에서 현란한 무공과 화려한 색채의 묘사는 바로 관객 들의 시각적 욕망을 충족시키고자하는 장르의 본질을 극도로 추구한 것 이다. 강호의 세계에서 추구하는 것은 무력을 통한 사건의 해결인데, 이 과정에서 협의 인격과 정의감은 사건을 진행하는 동기가 되겠지만, 결 국 武의 요소는 협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절대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李小龍의 영화와 <황비홍> 계열의 영화가 분명 중화민족주의를 지향하 고 있는 점은 있지만, 李小龍과 李連杰의 현란한 무공이라는 시각적 효 과 속에 중화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의미는 희석되며 전면에 부각되지 않 는다. 張徹의 영화에서 선혈이 낭자하는 강렬한 이미지와 李小龍과 成 龍의 무술은 물론 SF무협영화는 바로 볼거리 제공이라는 장르의 목적 을 충실히 따른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무협영화가 볼거리 제공이라는 상업적 목적을 앞세워 특수촬영에 의존하게 되면서 결국 관객들은 배우 50) 김수현, <미학: 중국영화의 스펙터클>, 임대근 외 지음, 중국영화의 이 해 (파주: 도서출판동녘, 2008), 177쪽.
324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319 의 진정한 무술연기를 감상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서사의 빈약성과 함께 협의 상실은 물론 武의 상실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여 무협영화에 대한 식상한 이미지를 남기게 되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는 없겠다.51) 그렇지만 SF무협영화 붐이 있었던 72년 당시 홍콩무협영화의 편당 수입가가 미국영화를 상회하기도 하였고,52) 무협영화의 새로운 흥행을 주도했던 <취권>은 서울에서만 89만여 명에 달하는 개봉실적을 기록하 였고, <사형도수>는 57만여 명(서울), <사제출마(師弟出馬)>(1980, 成 龍) 43만여 명(서울)의 개봉실적을 기록하였으며, <동방불패> 39만여 명(서울), <황비홍> 43만여 명(서울), <영웅> 16만여 명(서울), <황후 花> 31만여 명(서울), 95만여 명(전국) 등의 개봉실적을 기록했다는 단 편적인 자료를 통해서도 무협영화는 두터운 관객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볼거리 제공을 통한 상업성의 추구라는 장르적 특성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3) 현실도피와 대리만족 무협영화의 또 다른 수용배경으로 대중의 현실도피에 대한 욕구의 충 족을 들 수 있겠다. 김현은 무협소설을 읽는 이유를 두고 무협소설을 통해 중산층은 이유 모를 불안감으로 휩싸여 있는 그들의 세계에서 도 피하여 동면의 시간을 즐긴다 53)고 하였다. 대중은 강호의 세계에서 펼 쳐지는 협객들의 정의로운 행위, 곧 권선징악의 행위를 통해 현실에서 오는 불만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6 70년대 정치 사회적 불안은 대중들 에게 심리적인 불안을 안겨주었을 것이고 대중들은 현실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으로 무협을 선택했다고 하겠다.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하는 권선 징악의 이상은 당시의 반공영화나 에로영화 등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이었고, 무협은 바로 한국영화에서 찾을 수 없었던 대중의 욕망을 해소 하기 위한 대안이었던 것이다.54) 司馬遷은 史記 에서 지금의 유협 51) 오현리, 중국무협영화 1 (서울: 한숲출판사, 2001), 25쪽 참조. 52) 이동진, 앞의 기사 참조. 53) 김현, <무협소설은 왜 읽히는가 - 허무주의의 부정적 표출>, 월간세대 ( )
325 320 中國學 第34輯( ) 은 그 행위가 비록 정의에 들어맞지는 않지만, 그 말에는 반드시 믿음 이 있으며, 그 행동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고, 이미 허락한 것은 반드시 성실히 하고,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으며, 선비가 곤경에 처한 것을 보 면 달려간다. 生死存亡은 버려두고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으며, 그 공덕을 부끄러워한다 55)고 협의 기질을 정의하였다. 義를 지향하고 이 웃을 위하는 협의 기질은 무협영화가 비록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 로 하였지만, 단지 중국적 상상에 그치지 않고 관객들은 협의 기질에 근거하여 자신이 처한 현실의 불만을 해소하고자 하는 공감대를 형성하 였던 것이다. 염찬희는 무협영화가 주는 즐거움의 요인을 억압된 욕망 의 투사와 여색을 멀리하는 남성 협객과의 동일시 기제 통한 여성들의 욕구 충족의 대상으로, 그리고 강호의 영역에 개입한 저항적 즐거움과 코믹과 멜로 등을 가미한 영화 형식에서 오는 즐거움에서 찾았다.56) 억 압된 욕망의 투사는 곧 협객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으로 관객은 불의에 맞서 악을 징벌하는 협객을 자신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6 70년대 한국에 무협영화가 소개되고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奸惡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당시 한국 관객들은 王 羽와 李小龍과 같은 무협영웅을 추종하면서 현실도피의 욕망을 비롯한 다양한 욕망을 충족하고자 했던 것이다.57) 5. 한국 무협영화의 형성과 발전 앞에서 무협영화의 장르의 특성과 사회적 환경에 비추어 중국무협영 화가 한국에서 수용된 원인을 살펴보았다. 60년대 중국의 무협영화가 국내에 소개되고 장르의 상업성을 확인한 이후 국내 영화계에서도 꾸준 히 무협영화 제작의 움직임이 있었다.58) 무협소설이 국내에 소개된 이 54) 임대근, 중국영화 이야기 (서울: 살림, 2004), 27~28쪽 참조. 55) 今游俠, 其行雖不軌於正義, 然其言必信, 其行必果, 已諾必誠, 不愛其軀, 赴士 之阨困. 旣已存亡生死矣, 而不矜其能, 羞伐其德.( 史記 游俠列傳 ) 56) 염찬희, <홍콩 무협 영화 구조 분석: 즐거움, 그리고 이데올로기>, 현상 과 인식 4(1996) 57) 송희복, 무협의 시대 (부산: 경성대학교 출판부, 2008), 413~416쪽 참 조.
326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321 후 일정기간 소설의 배경과 소재 등이 모두 중국의 무협소설을 모방하 는 단계를 거쳐 최근에 들어 한국 무협소설이 창작되고 있는 것처럼,59) 한국 무협영화의 발전 역시 무협소설의 발전 과정과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크게 중국 무협영화에 대한 모방이 있었다면, 합작을 통한 상호교류가 있었고, 한국식 무협영화 제작의 시도가 있었다. 1) 중국 무협영화의 모방 張徹의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돌아온 외팔이> 등의 흥행으로 외 팔이 시리즈 가 유행하면서 한국에서도 신체의 결함을 지닌 외팔이 혹 은 외다리 협객을 소재로 한 무협영화가 제작되었다. <대검객>(1968, 강범구)을 비롯한 <황야의 외팔이>(1970, 김영호), <돌아온 외다 리>(1974, 이두용), <외팔이 권왕> 등이 그것이다. 비록 유행에 편승하 여 제작된 모방작을 두고 국적 불명의 작품이라는 혹평이 있기도 했지 만, 시대극과 무협을 접목한 한국식 무협영화의 가능성을 탐색했다는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60) 또 李小龍의 영화가 흥행하면서 그에 대한 모방작도 제작되었는데, <속정무문>(1977, 남석훈)과 <신 당산대 형>, <최후의 정무문>(1977, 김시현), <불타는 정무문>(1977, 남기남) 등이 있다. 대체로 일본 고수에게 해를 입고 난 후에 한국의 정통무술 로 무장한 주인공이 이를 물리친다는 내용인데, 크게 <정무문>의 이야 기 구조 속에 한국적인 무협의 소재를 담은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취 권>이 흥행에 성공함에 따라 <취팔권 광팔권>(1981, 이영우)과 <팔대 취권>(1981, 강범구)과 같이 <취권>을 모방한 영화가 제작되었고, 사랑 과 무협을 접목한 <애권>(1980, 이형표), 웃음과 무협의 <소권>(1980, 이혁수), 배치기와 무협의 <복권>(1980, 김정용) 등과 같이 코믹과 무 58) <홍길동전>(1934, 김소봉), <임꺽정>(1961, 유현목) 등 의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있었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무공을 선보이는 무협의 소재를 지니고 있지만, 본격적인 무협영화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영웅을 소재로 한 시 대극이라 하겠다. 59) 이치수, 앞의 논문. 이진원, 한국무협소설사 (서울: 채륜, 2008), 317~335쪽 참조. 60) 박봉희, 1970판 영화연예연감 (국제영화사, 1969), 434쪽 참조.
327 322 中國學 第34輯( ) 협을 접목한 <취권>의 형식을 모방한 작품들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소림사의 18동인>의 흥행은 소림사를 소재로 한 모방작들이 제작되게 했다. <소림신방>(1982, 고응호)을 비롯한 <소림사 주방장>(1981, 김 정용), <돌아온 소림사 주방장>(1982, 김정용), <소림사 용팔이>(1983, 김시현), <소림사 물장수>(1982, 임원식), <소림사 귀천귀동>(1982, 김 종성), <소림사 왕서방>(1982, 조명화), <소림대사>(1983, 남기남), <소림과 태극문>(1983, 이영우), <북소림 남태권>(1983, 왕호) 등이 그 것인데, 소림사를 소재로 한 무협영화가 다량으로 제작되면서 80년대 무협영화를 주도하는 테마의 하나가 되었다. 중국 무협영화를 모방한 영화의 제작은 주로 7 80년대에 성행하였는 데, 처음 무협영화가 소개된 이후 관객들의 무협영화에 대한 얼마간의 경험이 축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행과 상업성에 편승하여 중국 무협 영화의 틀을 답습하여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라 하겠다. 재창조 없이 단 순 모방에 그친 무협영화의 성행은 국내 영화계에서 무협영화들이 저질 영화로 취급되면서 한국 무협영화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 다.61) 그렇지만 중국 무협영화를 모방하는 가운데 꾸준히 한국의 역사 와 전통 무술에서 소재 찾기를 하였다는 점은 한국 무협영화 발전에 중 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2) 합작영화의 제작 한국 무협영화의 발전에서 합작을 통한 제작은 무협영화가 소개된 초 기부터 현재까지 비교적 오랜 기간 진행되어온 제작 형태이다. 현행 영 화진흥법에 의하면 공동제작영화라 함은 한국영화제작업자와 외국영화 제작업자가 공동으로 제작비용을 출자하여 제작한 영화를 말하는데, 구 체적으로는 참여국이 2개국일 때 제작 자본의 출자 비율은 20% 이상으 로 하며, 각기 감독과 배우 등 인력의 참여도와 촬영지, 그리고 영화의 주제와 내용 등에 비추어 일정 기준 이상이면 한국영화로 인정하고 있 다.62) 이렇게 합작영화는 공동출자와 기획, 제작 과정을 공유하는 공동 61) 오승욱, 한국 액션영화 (서울: 살림, 2006), 63~65쪽 참조. 62) 합작영화에 관한 법령은 일부 개정되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유지
328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323 제작을 뜻하는 것으로, 영화 제작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해 외 진출과 해외 로케이션이 용이하다는 점, 그리고 자국영화로 인정되 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다양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63) 무협영화의 공동제작은 이상과 같은 합작영화의 이점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그렇 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무협영화가 한국에 소개된 후 상업성은 확인 되었지만, 제작에 있어서 異種文化인 무협영화 장르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와 기술적인 문제, 그리고 경험의 부족에서 오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정책적인 면에서도 1963년 당시 국내 영화를 육성한다는 목적으로 제정된 영화법에 국산영화업자가 아니면 영화의 수입과 수출을 금지하는 외화수입쿼터제 로 인해 국산영화 제작 의 질적 저하와 함께 외화수입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합작 영화는 제작환경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고, 쿼터제의 제약을 피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상업성을 추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라 하 겠다.64) 6 70년대에는 당시 무협영화 제작이 성행하였고, 정치적으로 자유로 운 교류가 가능하였던 홍콩과 주로 합작이 이루어졌다. 2004년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의 뿌리를 찾아서: 한홍 합 작 시대>라는 제목으로 6 70년대 한홍 합작영화 회고전을 열기도 하였 는데, 당시 합작영화 사업에는 정창화, 신상옥, 김진태 감독을 비롯한 박노식, 이준구, 황정리 등 다수의 감독과 배우들이 참여하였다. 그래서 <용문의 여검>(1969, 안현철, 이관장), <석양의 협객>(1969, 라식), <아랑곡의 혈투(餓狼谷)>(1970, 정창화)와 무협소설의 유행에 편승하여 제작된 <쌍용검>(1969, 권영순, 孫亞夫), <비호(飛虎)>(1969, 권영순, 孫亞夫) 등이 합작영화로 제작되었다. 홍콩과의 합작영화 제작은 70년대 들어 더욱 성행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흑객(惡客)>(1972, 張徹)을 비롯한 <흑권(黑拳)>(1973, 黃 되고 있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법률 제9676호, 일부개정) 제2조 4항, 제27조, 시행령 제10조, 시행규칙 제2조 참조. 63) 김혜준 외3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 국제 공동 제작에 관한 연구, 영화진흥위원회( ), 19~24쪽 참조. 64) 한국종합예술학교 한국예술연구소, 한국현대 예술사대계 (서울: 시공사, 2006), 234~235쪽 참조.
329 324 中國學 第34輯( ) 楓), <유성검(流星劍)>(1977, 김진태, 羅維), <신 당산대형> 등이 있다. 또 <소림사 18동인>의 흥행에 편승하여 다수의 합작영화가 제작되었는 데, <외팔이 권왕>을 비롯한 <소림통천문(少林通天門)>(1978, 남석훈, 田豊), <천하제일권(贊先生與找錢華)>(1978, 최동준, 洪金寶), <중원대 협>(1978, 권영순) 등이 있다. 합작영화는 당시 한국 영화계가 처한 쿼터제라는 관련법령과 상업적 목적 속에서 추구할 수 있는 대안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1970년 한국영화인협회 제7차 임시이사회에서 한홍 합작영화치고 위장 합작이 아닌 것이 없다고 성토했던 것처럼 영화제작자들은 합작영화로 인정받을 감독 1인, 배우 3인 이상 등의 요건에 맞추기 위해 홍콩의 완 제품 영화에 국내 배우의 얼굴을 뜯어 맞추거나 혹은 자막에 한국 감독 의 이름을 끼워 넣는 식으로 합작영화를 만들어 내었다.65) 이러한 풍토 는 특히 70년대가 심하였고 80년대까지 이어진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도 흥행에 성공하였고, <킬빌>(2003, 쿠엔틴 타란티노)에도 영향을 준 <철인(天下第一拳)>(1972, 정창화)은 합작영화 기준에 맞추어 안양영화 사와 쇼브라더스가 합작한 영화로 되어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더빙만 새로이 하여 배급한 합작을 가장한 외화였다.66) 71년 개봉된 <철수무 정(鐵手無情)>(張徹) 역시 본래 69년 개봉된 순수 홍콩영화였지만, 영화 배급사가 합작영화로 인가받기 위해서 억지로 감독과 배우를 끼워 넣어 합작영화로 개봉하였다. 그리고 1980년 개봉된 <쌍웅>(吳思遠)은 본래 1976년 홍콩에서 제작된 중국영화였지만, 국내에 개봉될 때에는 이두 용 감독이 참여한 합작영화로 되어 있다. 이 밖에도 <철수무정>의 리메 이크작인 <노명검(萬人斬)>(1980, 桂治洪) 역시 김선경 감독이 참여한 합작영화로 개봉되었고,67) <13인의 무사>는 한국 배우가 출연하고 한 국어로 더빙되어 합작영화로 개봉되었다. 이렇게 상업성을 염두에 둔 무협영화의 수입을 위해 억지로 합작영화의 틀에 맞추었기 때문에 영화 의 작품성에 대한 문제는 물론 진위도 상당부분 엇섞여 있다고 하겠다. 65) 이영진, <짝퉁 영화 전성시대>, 씨네 ( ) 66)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 자료집, <정창화 감독 인터뷰>, 50쪽. 한국영상 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참조. 67)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자료와 비교.
330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년대 들어 홍콩느와르 작품을 비롯한 SF무협영화 등 새로운 형식 의 영화의 도입으로 합작영화 제작의 분위기는 다소 진정되었다. 그렇 지만 <돌아온 용쟁호투>(1981, 박우상)와 <생사결(生死決)>(1982, 程 小東, 이형표), <외팔이 女神龍>(1982, 이혁수, 侯錚) 등이 합작영화의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90년대 이후에는 한중 수교와 중국 시장의 개방, 그리고 한류의 분위 기에 편승하여 거대 자본과 스타들을 대거 투입한 합작영화가 제작되었 다. 무협을 소재로 한 작품은 <비천무>(2000, 김영준)를 비롯한 <무 사>(2000, 김성수), <천년호>(2003, 이광훈), <무영검(無影劍)>(2005, 김영준), <삼국지: 용의 부활(三國之見龍卸甲)>(2008, 李仁港) 등이 있 다. 이밖에도 <칠검(七劍)>(2005, 徐克)에 김소연, <신화: 진시황릉의 비밀(神話)>(2005, 唐季禮)에 김희선, <무극(無極)>(2005, 陳凱歌)에 장 동건, <묵공(墨攻)>(2007, 張之亮)에 안성기 등의 스타들이 참여한 것 은 바로 한류라는 시대적 조류에 편승한 것이라 하겠다. 합작영화 제작은 오늘날 영화계의 중요한 화두임에는 분명하다. 로컬 영화시장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를 시장으로 하여 제작된 영화는 장르의 외적인 성장과 소재의 개발을 가져왔지만, 투입된 자본과 인력 그리고 스타를 동원한 기대치에 비해 주목할 만한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하였 다.68)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안성기가 한국의 관객들 의 눈높이가 가장 까다롭다고 토로했던 것처럼 무협을 대하는 한국 관 객들의 기대치가 이미 많이 향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작무협영화 가 이 점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69) 말하자면 무협이라는 공통 소재를 가지고 한국과 중국의 국민 정서를 두루 아우 를 수 있는 플롯과 볼거리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3) 한국적 무협영화의 제작 68) <천년호>(서울: 10만여 명, 전국: 39만여 명), <무극>(서울: 21만여 명, 전 국: 79만여 명), <무영검>(서울: 15만여 명, 전국: 60만여 명), <묵공>(서울: 8만여 명, 전국: 30만여 명) 69) 이준목, <합작영화, 왜 한국에서만?>, 데일리안 ( ) 참조.
331 326 中國學 第34輯( ) 한국은 모방과 합작의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한국적 무협영화 제작 을 모색해 왔다. 한국적 무협영화란 무협이라는 외래문화가 한국의 정 서에 수용된 것으로 武와 협을 비롯한 무협의 요소에 한국적인 것을 담 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70) 60년대에는 주로 무협을 접목한 시대극이 주로 제작되었는데, 광해군을 둘러싼 여덟 검객의 활약상을 그린 시대 극인 <팔검객>(1963, 이강천)이 있었고, 조선말 암행어사의 활약상을 그린 <마패와 검>(1963, 유심평)이 있었다. 그리고 홍길동의 활빈당의 활약상을 담은 <활빈당>(1965, 강중환), <일지매 필사의 검>(1966, 장 일호) 등이 있었는데, 대체로 시대극의 틀에 무협의 소재를 담고 있는 것이다. 70년대 이후 홍콩 무협영화의 성행으로 한국의 무협영화는 그것을 모방한 것이 주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독립군의 활약상을 담 은 <용호대련>(1974, 이두용)은 한국 정통무술을 소재로 한 무술영화 의 선구적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후 <돌아온 외다리>(1974, 이두용) 를 비롯한 <죽엄의 다리>(1974, 이두용), <분노의 외발>(1974, 이두 용), <흑룡강>(1976, 김선경) 등은 한국 정통무술을 가지고 외세(일제) 를 물리친다는 이야기 구조를 따르고 있다. 6 70년대 사회적으로 강조 된 반공 애국 사상이 외세에 대항하여 민족의 자존을 찾는다는 단조로 운 서사구조를 이끌어내었지만, 한국 정통 무술을 영화에 담아내어 한 국식 무협영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의의가 있다. 80년대 들어 한국적 이미지를 지닌 협객, 민족의식과 정통무술 등의 발굴은 한국 무협영화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표적인 예로 시 라소니를 소재로 한 <협객 시라소니>(1980, 이혁수)와 김두환을 소재 로 한 <장군의 아들>(1990, 임권택)이 있으며, 독립투사들의 활약상을 담은 <대형출도>(1981, 곽소동), <해결사>(1982, 이두용), <무 인>(1985, 최기풍)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이들은 새로운 소재 찾 기를 통한 한국적 무협영화의 시도라는 의의는 있었지만, <장군의 아 들>이 흥행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을 제외한다면, 시장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해결사>가 2만 7천여 명, <무인>이 7천여 명의 저조한 개봉 70) 이진원, 앞의 책, 317~335쪽 참조.
332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327 실적을 거둔 것에 비해 비슷한 시기 개봉한 <용소야>(1982, 成龍)는 29만 여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하였고, 成龍이 출연한 <쾌찬차(快餐 車)>(1985, 洪金寶)는 30여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70년대 이후 제작된 한국의 무협영화들이 내용과 형식에서 여전히 중 국적인 것을 모방하고자했다는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면, 무협영화에 대 한 도식화된 이미지를 지닌 관객들의 기대치 또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결국 한국의 무협영화가 단조로운 서사구조에 머물면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관객들의 기대치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것 이다.71) 최근 <영웅>을 비롯한 중국의 일부 무협 대작들이 한국무협영 화에 비해 흥행에 성공하는 반면 한국의 무협영화들이 주목할 만한 성 과를 내지 못한 것은 자본과 제작 기술 등 외적인 성장이 있었지만, 동 시에 무협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기호와 수준 또한 향상되었다는 것이 다. 때문에 무협의 형식과 사상을 화면에 담아내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 만, 동시에 한국의 정서에 맞는 협객의 형상과 이야기를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은행나무 침대>(1995, 강제규)를 비롯한 <비천무>, <무사>, <화산고>(2001, 김태균), <천년호>, <낭만자객>(2003, 윤제균), <거칠 마루>(2005, 김진성) 등이 거대 자본을 투입하여 공동제작을 통한 영화 의 대작화와 국제화를 추구하거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무협과 판타지, 또는 무협과 코믹을 결합한 형식의 무협영화 제작을 시도한 것은 바로 한국 무협영화가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6. 나오는 말 이상의 논의를 통해 무협을 테마로 한 영화의 한국에서의 수용과 발 전과정을 살펴보았다. 산업화와 국제화에 대한 요구는 민족과 국가의 고유한 문화 영역을 확대하게 했고, 대중은 영상 매체의 빠른 전파력에 편승하여 자유롭게 이를 향수하게 되는 것이다. 무협영화는 비록 한국 에 중국의 협과 유사한 義賊의 형상이 있기도 하지만, 중국의 전통문화 71) 7 80년대 개봉된 무협영화 자료는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참조. 이진원, 앞의 책, 409~414 도표 참조.
333 328 中國學 第34輯( ) 인 협과 武, 그리고 강호를 담고 있는 異種文化의 하나라고 하겠다. 주 로 홍콩으로 대표되는 중국무협영화는 강한 대중성을 지닌 장르의 특성 으로 인해 크게 문화적 충돌을 거치지 않고 한국 대중사회에 수용되었 다. 胡金銓, 張徹의 무협영화에서부터 오늘날 무협블록버스터영화에 이 르기까지 꾸준히 형식과 내용의 변화를 추구하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한 축을 이루어왔다. 무협영화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와 화려한 선율은 한 국 관객에게 새로운 볼거리가 되었고, 관객들은 그것을 통해 현실의 불 만을 해소했다. 또 권선징악의 이상을 지향하는 무협영화의 약한 정치 적인 성향은 각종 법적인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게 했다. 이 러한 요인들은 상업적인 목적과 부합하여 무협영화의 수입과 제작을 이 끌어내었다. 이러한 요인들은 각기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 하겠고, 볼거리 제공이라는 오락적 요인이 있었다면, 특수한 사회적 환경에 처 한 대중의 심리가 무협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오늘날 상업적 이 익을 목적으로 스타들을 대거 기용하고 화려한 색채와 방대한 스케일을 지향하는 대작 무협영화들이 제작되는 것은 바로 장르의 이러한 특성에 근거한 것이라 하겠다. 무협은 중국 영화의 주요한 소재임에는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국내 영화계에서도 무협은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 그것은 최근의 중국 무 협영화들이 중국이라는 로컬영역을 벗어나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곧 무협의 전통과 사상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서 사 대신 그 형식만 빌린 복합적인 문화요소가 도입된다는 것이다.72) 그 렇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중국의 무협영화는 사상적 영역의 확대를 꾀하면서도 중화주의를 지향하는 문화민족주의의 요소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무협영화 또한 중국을 모방하거나 합작을 통해 꾸준히 촬 영 기술의 발전과 시장 환경의 확대라는 외적인 성장이 있었지만, 무협 영화를 대하는 관객들의 요구조건 또한 향상된 상황에서 단순히 무협의 외피를 입고 볼거리제공만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와 전통무술의 도입,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플롯과 협의 이미지의 창조는 한국의 무협영화가 고유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요건이라 하겠 72) 장동천, 영화와 현대중국 (서울: 고려대학교출판부, 2008), 356쪽 참조.
334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329 다. 협문화 자체는 중국의 전통과 사상을 담고 있는 異種文化의 하나이지 만, 義를 지향하는 협의 성격과 대중성은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상업적 이익이 앞서 무협류의 작품이 일 부 과대 포장되기도 하거나 혹은 정통성에 관한 논의는 있을 수 있겠지 만, 협을 통해 단지 상상된 중국을 체득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무협물의 재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곽수경, <중국의 한국드라마와 한류스타 현상>, 중국연구 35(2005) 김미정, 영화로 보는 중국문화이야기 (서울: 신아사, 2008) 김소민, <영웅 대신 인간 담은 블록버스터>, <한겨레신문>( ) 김영덕, <황홀했던 추억과의 재회>, 씨네21 308( ) 김지석, 강인형, 홍콩영화의 이해: 香港電影 (서울: 한울, 1995) 김 현, <무협소설은 왜 읽히는가 - 허무주의의 부정적 표출>, 월간세 대 ( ) 김 현, 현대 한국 문학의 이론/ 사회와 윤리 (서울: 문학과 지성사, 1991) 김혜준 외3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 국제 공동 제작에 관한 연 구, 영화진흥위원회( ) 김혜준 외3, <아시아 영화 산업 현황과 지역내 협력방안 연구--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 보고서( ) 나병철, 문학의 이해 (서울: 文藝出版社, 1997) 남종호, <중국 韓流 현상과 활용방안>, 인문과학연구 10(2005) 노수연, <중국 대작영화 제작열풍 현황 점검>, 영화진흥위원회( ) 대중문학연구회, 무협소설이란무엇인가 (서울: 예림기획, 2001) 박봉희, 1970판 영화연예연감, 국제영화사(1969) 박부식, <아이콘으로서의 주성치>, 플랫폼 0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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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 무협(武俠) 테마를 통한 이종문화(異種文化)의 수용과 발전 고찰(우강식) 331 정성일, <호금전 감독의 작품세계>, 씨네21 308( ) 최양호, <중국 TV 프로그램에 대한 한국 젊은이들의 이용동기에 관한 연 구>, 한국방송학보 17-2(2003년)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 영화로 읽는 중국 (파주: 동녘, 2006)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 임대근 외, 중국영화의 이해 (파주: 도서출판 동녘, 2007) 한국종합예술학교 한국예술연구소, 한국현대 예술사대계 (서울: 시공 사, 2006) 金隱銘校勘, 魯迅散文全集 (桂林: 灕江出版社, 2005) 劉維群, 梁羽生傳 (武漢: 長江文藝出版社, 1999) 金 庸, 金庸全集 (北京: 三聯書店, 1999) 劉延武, 中國江湖隱語辭典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2003) 陳 墨, 刀光俠影蒙太奇-中國武俠電影論 (北京: 中國電影出版社, 1996) 陳平原, 千古文人俠客夢 (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92) 陳 山, 中國武俠史, 上海: 上海三聯書店, 1992年. 陶弘景, 古今刀劍錄 (北京: 中華書局, 1991) 程大力, 中國武術歷史與文化 (成都: 四川大學出版社, 1995) 鄭春元 張志和, 中國文史中的俠客 (北京: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94) 吳士餘, 中國文化與小說思維 (上海: 上海三聯書店, 2000) 蕭之尊 戴翼軍 陳爾訓, 中國武俠小說大觀 (上海: 雲南人民出版社, 1993) 周光慶, 中國讀書人的理想人格 (武漢: 湖北敎育出版社, 1998) 葉洪生, 論劍 (上海: 學林出版社, 1997) 嚴家炎, 金庸小說論稿 (北京: 北京大學出版社, 1999) 易劍東, 武俠 (廣州: 南方日報出版社, 2001)
337 332 中國學 第34輯( ) 中文提要 考察武俠爲主題的異種文化的容納和發展 --影像藝術爲中心 本文考察了武俠爲主題的電影的容納和發展過程 雖然韓國有著類似于 俠的義賊的形象 但是武俠電影內涵著中國傳統文化的俠和武 江湖的異種 文化之一 由于武俠電影具有强烈的大衆文化類型的特點幷沒有經過多大的 文化衝突所以比較順利的被韓國大衆所接納 武俠電影以强烈的形象和華麗 的色彩給韓國大衆社會增添了新的看點 還有武俠電影追求懲惡勸善主題帶 著比較弱的政治性因素避免在各種法律上的的限制 觀衆們也是盼望通過武 俠電影解除在現實當中的各種不滿情緒 由于這些類型的特徵和商業性的目 的才有了武俠電影的進口和製作 韓國的武俠電影或者模仿中國的武俠電影 或著通過和中國合作的方式 在堅持不懈的努力下達到了攝影技術的發展和市場環境的擴大的效果 但是 觀衆們對武俠電影的要求隨著提高的情况下 只是單純的提供了武俠形式多 樣的可看的影片沒有實際上的意義 俠文化本身內涵著中國傳統思想的一類 異種文化 可是追求義的俠的性格和大衆性卻形成普遍的共識 就是超越武 俠只停留在吸取想像中的中國的地步而是要重新創造韓國式的武俠電影的可 能性 關鍵詞: 武俠, 異種文化, 電影, 大衆文化, 商業性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338 中國學 第34輯( ) pp.333~356 탈식민의 굴절된 렌즈에 갇힌 이야기 --王家衛의 2046 김명석* 목 차 꽃처럼 화려했던 시절 에서 2046년 으로 디아스포라 기억에서 망각으로의 질주 탈식민의 언어로 말하기 소통과 고통의 질주 홍콩인에서 트랜스아시안으로 1. 꽃처럼 화려했던 시절 에서 2046년 으로 1997년, 홍콩은 꽃처럼 화려했던 시절(花樣年華) 을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1국가 2체제 하에서 50년 동안 홍콩인 스스로 홍콩을 책임지 는 정책(港人港治) 이 시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불안을 느 낀 많은 홍콩의 영화인들은 홍콩을 떠났다. 영국의 식민주의는 끝났지 만 홍콩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새로운 오 십년(2046)에 진입한 것으로 느끼는 모양이다. 그러나 王家衛는 1.5세 대 홍콩인으로서 홍콩을 떠나지 않고1) 지난 백년(花樣年華)과 앞으로의 * 위덕대 중국어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1) 1984년 영국의 홍콩반환협정 조인 후에는 대략 60여만 명이 홍콩을 떠났다. 그러나 1997년 홍콩반환 이후에도 홍콩에 남아 영화제작을 한 감독들로는 陳可辛, 張之亮, 王家衛 등이 있다. 이들은 홍콩영화사에서 Post New Wave 세대로 불린다.
339 334 中國學 第34輯( ) 오십년(2046)을 고스란히 영화 속 알레고리로 담아냈다. 이런 王家衛의 영화세계는 플롯의 해체와 이미지의 창출, 귀에 익은 음악과 선율, 나레이션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여지를 제공한다. 관 객으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이런 스타일은 일찍이 1930년대에 플 롯없는 영화를 구상했던 에이젠슈테인의 난해함을 닮아 있지만, 후기 산업사회로 진입한 홍콩의 포스트모던한 분위기와도 겹쳐진다.2) 첫 번 째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을 때 이미 두 번째 이야기 조각을 삽입하는 꼴라쥬기법은 포스트모던 기법을 연상시키는 것이다.3) 완성된 시나리오 도 없이 배우들과 대사를 맞추어가며 시나리오를 수정, 보완해 촬영하 고 인물과 에피소드가 겹치는 여러 편의 영화를 동시다발적으로 제작하 는 이런 방식은 2046(2004) 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렇게 전편 에 해당하는 花樣年華(2000) 의 주인공이었던 周慕雲은 2046 에 서도 기자 겸 작가로 등장한다. 그는 오리엔탈호텔 2047호에 기거하며 삼류 도색소설을 쓴다. 바로 花樣年華 에서 옛 연인이었던 루루(劉 嘉玲 분)가 살았던 2046호 바로 옆방이었는데 2046과 2047은 나중에 그가 쓰게 되는 미래소설의 제목이 된다.4) 2) 에이젠슈테인과의 공통점은 김경욱,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에이젠슈테인에 의한 王家衛, 영화연구 제13호(한국영화학회, ), 341~362쪽을 참고할 것. 王家衛 영화가 포스트모던 텍스트라는 것은 필자가 王家衛 영화 를 보는 시각이다. 불확정성, 파편화, 전위적 실험성, 비역사성, 비정치성, 자 아와 주관성에 대한 새로운 입장, 패러디와 패스티시, 임의성과 우연성, 주변 적인 것의 부상, 탈장르화, 자기 반영성 등 포스트모던 현상과 일치하는 특징 이 王家衛의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물론 이 말은 王家衛의 영화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후기 산업사회 홍 콩에서 만들어진 그의 영화에 포스트모던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의미이다. 바 로 임대근이 王家衛 영화의 새로운 독법으로 제시하는 불확정성의 원리도 포 스트모더니즘 현상에 포함되어 있다. 이런 측면은 본고의 논의 속에서 다시 언급될 것이다; 임대근, 경합하는 장: 웡카와이 王家衛 영화의 독법들, 외국문학연구 제29호(한국외국어대학교외국문학연구소, ), 317쪽. 3) 김종현, 시간의 흐름과 기억이 만드는 것들Ⅰ, 중국현대문학 제43호 (중국현대문학학회, 2007, 12), 314쪽과 임춘성, 홍콩영화에 재현된 홍콩 인의 정체성과 동남아인의 타자성, 중국현대문학 제33호 (중국현대문학 학회, 2005, 6), 169쪽을 참고할 것. 4) 周慕雲이 루루가 살았던 2046호가 아니라 2047호에 묵는 것은 왕사장이 2046호를 내어주지 않아서이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2046호에서 루루는 남 자친구의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이후 2046호에는 白玲(章子怡 분)라는
340 탈식민의 굴절된 렌즈에 갇힌 이야기--王家衛의 2046 (김명석) 은 영화의 제목이면서 영화 속에서 周慕雲이 쓰는 소설제목이 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周慕雲이 겪는 세 가지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는 2047 이라는 미래소설의 이야기가 SF영 화처럼 극화되어 삽입된다. 그것은 마치 소설 속 소설인 액자소설처럼 영화 속 소설로, 소설 속 소설로 장치된 것이다.5) 이와 같은 영화 2046 의 독특한 다층적 구조의 텍스트에는 현실과 영화가 차등 공 간화된 서술층위를 넘나들고 이질적 미래소설 텍스트인 2047 까지 교차중첩된다. 즉 꼴라쥬기법 등 담론주체(王家衛)의 담론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2046 의 서술층위는 다음과 같은 중층적이고 상호 침투적 인 구조로 도식화될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서술층위를 따로 단계 별로 구분해 모자이크화하면 다음과 같다. ① 액자 단계 서술층위 영화 2046 ② 액자 단계 서술층위(현실) ③ 내부이야기 1단계 서술층위 : 周慕雲과 白玲 의 사랑 ④ 내부이야기 2단계 서술층위 : 王静雯과 TAK 의 사랑 ⑤ 내부이야기 3단계 서술층위 : 周慕雲의 王静 雯 짝사랑 ⑥ 내부이야기 4단계 서술층위 : 2047 에서 TAK의 wjw1967 짝사랑 영화 2046 의 서술층위 중층화 단계 영화 2046 은 위와 같이 ① 영화 2046 의 액자단계 서술층위 에서 ② 현실의 액자단계, 즉 ③, ④, ⑤의 周慕雲이 겪는 내부이야기 3 단계(周慕雲과 白玲의 사랑 王静雯과 TAK의 사랑 周慕雲의 王静雯 짝사랑)을 거쳐 ⑥ 영화 속의 또 다른 미래소설인 2047 에서 내부 콜걸이 들어와 살게 된다. 한편 본고에서 영화제목은 2046 으로, 영화 속 의 미래소설 제목은 2046 과 2047 로 표기하기로 한다. 5) 지금까지 영화 2046 에 관한 논문들은 공통적으로 미래소설 2046 에 만 치중하지 영화의 말미에 액자소설처럼 삽입된 2047 의 메타공간은 거 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본고에서는 2047 에 주목하고 있다.
341 336 中國學 第34輯( ) 이야기(TAK의 wjw1967 짝사랑)까지의 4단계 층위를 거쳐 현실로 돌 아온다. 周慕雲이 겪는 현실 속 사랑이야기가 소설화되면서 周慕雲이 쓰는 소설내용은 현실과 뒤섞이면서 진행된다. 현실과 소설(허구) 속에 서 과거와 현재는 교차 중첩되는 병렬로 연결되어 있는데, 소설세계와 현실계가 뒤섞인 메타픽션6)적 구성으로 王家衛는 사랑은 현실이면서 허구이며 과거이자 미래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허구인지 현 실인지 미래인지 현재인지 알 수 없는 영화 2046 의 시공간과 2046 이라는 周慕雲의 글쓰기, 그리고 2047 이라는 영화 속 사 랑이야기는 허구를 감싸고 있는 허구, 혹은 허구에 대하여 말하는 허구 라는 메타적 방식을 취한다. 이렇게 허구가 현실을 침범하고 현실이 다 시 허구화되는 것 역시 포스트모던 텍스트의 특징에 다름아니다. 플롯이 없어 보일 만큼 관객들에게 낯설었던 王家衛의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어 왔다. 본고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王家衛영화를 홍콩 의 중국반환과 연관지어 보는 내셔널 알레고리의 관점에 기반하고 있 다 은 제목 그대로 21세기 하고도 46년이 지난 날, 미래로 가는 기차에 대한 내용의 소설에 착안한 영화다. 王家衛가 2046 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1997년 홍콩이 반환되었을 때 50년 뒤에도 과 연 모든 것이 변하지 않고 남아있을까 라는 의문을 느끼면서라고 한 다.7) 홍콩 반환으로부터 50년 뒤면 2047년인데, 그것은 영화 속 미래 소설인 2047 의 제목이다. 그리고 2046년은 그로부터 한 해 전 연 도가 된다. 그래서 2046 은 해피 투게더(1997) 처럼 내셔널 알 6) 김용희, 王家衛와 사랑의 기호, 2046, 비교문화연구 제8집 (경희대학 교부설비교문화연구소, 2004), 169쪽 참고; 메타픽션이란 픽션과 리얼리티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한, 가공물로서의 그 위상에 자의식적이고 체계적 으로 시행하는 글쓰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작가 자신이 자기가 쓴 글에 대해 의심하고 불신하며 환상, 상상 등을 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 7) 김수연기자, 스틸이미지로 미리 보는 2046, Movie week (중앙 엔터테인먼트&스포츠, 2004, 9. 22), 104~107쪽 참고; 본고에서 요약한 花樣年華 와 2046 의 관계도 여기서 참고했다. 王家衛는 2046 을 花樣年華 의 캐릭터와 阿飛正傳(1990) 의 대화를 사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阿飛正傳 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본고의 논의대상에서 제외 하기로 한다.
342 탈식민의 굴절된 렌즈에 갇힌 이야기--王家衛의 2046 (김명석) 337 레고리의 차원에서, 홍콩반환 이후 50년간 일국가이체제를 겪고 난 뒤 에 대한 홍콩인의 불안을 소재로 삼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임대근이 王家衛 그리고 홍콩의 모든 영화들이 홍콩반 환에 대한 알레고리를 즉자적으로 구축하고 제작되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8) 그러나 王家衛의 영화 속에 항상 등장 하는 도시가 홍콩인 이상, 97년을 전후한 홍콩사회의 변동양상이 王家 衛영화 이해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王家衛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홍콩이다. 사람들은 같은 생활공간 안에서 오고가며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내일은 또 다른 이야기를 시 작하지만 홍콩만은 영원히 변하지 않은 채 묵묵히 그곳에 있으며 이 런저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바라본다.9) 홍콩의 삶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떨치기 힘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영화 속 Tak의 나레이션에 그대로 묻어난다. 2046에서 모든 사물은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짜인 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 아무도 돌아온 적이 없었는데 내가 유 일한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에서 모든 사물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데, 이것이 정말 인지는 알 수가 없다는 Tak의 독백에는 홍콩이 반환되고 50여년이 지 8) 王家衛는 예술영화로서 자신의 영화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한 바 있 다. 이것은 경합하는 장 이라는 임대근의 표현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임대근 은 王家衛 영화가 내셔널 알레고리 외에 무협이나 느와르 등 장르에 치중해 서 보는 방식과 섹슈얼리티의 재현으로 읽는 독법으로 다양한 경합의 장 을 이룬다고 한다; 임대근, 경합하는 장 : 웡카와이 王家衛 영화의 독법들, 외국문학연구 제29호, 309~312쪽을 참고하고 王家衛의 말은 陳墨, 生 命的呢喃, 當代電影 (2001年3號), 21쪽 참고. 9) 인터뷰 참고. 한편 王 家衛 자신이 홍콩의 정치적 운명에 관한 메타포가 아닌 현대 도시사회를 사 는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고 한 바 있다. 이처럼 그의 영 화를 도시영화의 범주로 보고 그 요소를 추출하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일 것 이다.
343 338 中國學 第34輯( ) 난 뒤에도 지금까지의 정치적, 경제적 안정이 지속될지에 대한 불안감 이 묻어난다. 여기에는 홍콩 반환 후에도 홍콩의 번영이 지속되어 아시 아의 선진도시로 계속 남기를 바라는 홍콩인들의 소망이 중첩되어 있기 도 하다. 이처럼 1997년 영국의 식민통치는 종언을 고했지만 영화는 중국의 1국가 2체제 정책 속으로 급속히 편입되어 가는 사회적 분위기 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王家衛는 홍콩반환 이전 홍콩인의 정체성 이 두드러진 대표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 반영폭동이 일어났던 1960년 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통해 식민이 종식된 지금도 떨치지 못 하는 식민지시절 탈식민의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 2046 을 이해하는데 우리는 60년대 말 식민시기의 탈식민 요소와 홍콩이 반환된 뒤 영화가 제작된 시기의 급속한 사회변화 분위기를 연 결시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10) 영화 속에 미래소설이 영상으로 펼쳐질 만큼 王家衛가 홍콩반환 이전 에 찍은 무협이나 느와르 장르와 2046 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영 화다. 무협이든 느와르든 이전의 영화에서 王家衛는 서구영화의 요소와 俠義라는 전통적 정서를 결합하여 세기말 홍콩사회의 분위기를 혼종적 으로 투영하고 있다. 그러나 2046 은 홍콩반환 이후 똑같이 60년대 말을 시대배경으로 찍은 전편 격인 花樣年華 와 달리 과거와 미래가 혼재된 완전히 상이한 풍격의 영화인 것이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周慕雲, 蘇麗珍, 白 玲, Tak 등은 60년대 홍콩사회를 사는 소시민들의 만남과 이별을 그려 낸다. 이들은 홍콩생활에 정착의 어려움을 겪고 홍콩에서 일본, 싱가포 르 등지를 오가며 방랑한다 에서 Tak(木村拓哉 분)은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바라고 우주열차에서 안드로이드에게 나와 같이 가지 않을래? 라고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잃어버린 사랑을 찾기 위해 떠나 려는 이 시도는 디아스포라11)의 표출에 다름아니다. 이처럼 王家衛의 10) 홍콩의 중국 반환에 대한 불안감과 199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독주로 홍 콩영화가 경쟁력을 상실하자 홍콩의 많은 영화인들이 홍콩을 떠났다. 각주 1 에서 언급한 대로 王家衛는 홍콩에 남아 있기로 한다. 김종현이 王家衛의 작 가의식에 홍콩인의 불안감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한 것처럼 2046 에는 영화인으로서의 막연한 불안과 고립감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시간의 흐름과 기억이 만드는 것들Ⅰ, 중국현대문학, 316~317쪽.
344 탈식민의 굴절된 렌즈에 갇힌 이야기--王家衛의 2046 (김명석) 339 영화에는 가족이나 연인에게 버림받고 내버려진 인물형상이 언제나 등 장한다. 그것은 중국에서 태어나 홍콩으로 이주한 독특한 이력(디아스 포라)을 통해 1.5세대 홍콩인으로서 그가 정체성의 분열과 해체를 몸소 체험하고 이를 영상예술로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2046 은 격동의 시절 60년대든, 97년 반환 이후든 홍콩에서 사람들의 이주 와 정착이 이미 끝나버린 역사가 아니라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진행 중인 다이내믹한 과정임을 잘 보여준다.12) 혹자는 1997년 홍콩의 중국반환으로 영국의 식민통치가 종언을 고하 면서 홍콩에서 식민자, 피식민자가 사라졌는데 탈식민의 시도를 고찰하 는 것은 무의미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梁秉鈞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홍콩이 명목상 식민지가 아닌 시각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식민의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13) 11) 디아스포라(diaspora) 는 이산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원래는 이주와 식민지 건설을 의미하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가졌다. 유대인의 유랑을 의미 하는 경우 Diaspora 로 표기하지만 점차 다른 민족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최근에는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로 부터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용어 로 사용되거 나 모국으로 귀환하려는 희망을 포기하였거나 또는 처음부터 그러한 생각을 갖지 않은 이주민 집단도 디아스포라로 간주되는데 미루어보면 본고에서 홍 콩인의 처지를 디아스포라라고 하는 데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디아스포라 의 정의에 관해서는 윤인진, 코리안 디아스포라 (고려대출판부, 2005), 5 쪽과 정은경, 디아스포라문학 (이룸, 2007), 14쪽과 서경식, 김혜신 옮김, 디아스포라 기행 (돌베개, 2006), 14쪽 및 김명석, 홍콩 대중문학에 나 타난 홍콩인의 정체성 연구①, 중국학논총 제25집(고려대학교 중국학연 구소, 2009), 115쪽 참고. 12) 해외로의 華人 이주사를 살펴보면 19세기에 홍콩을 경유하여 이주한 경우 가 대부분이다. 지난 150여 년간 홍콩은 출발지로서의 중국 대륙과 종착지로 서의 세계 각지의 화교사회를 서로 이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중화권 이라는 것이 지리적 영토적 개념은 아니지만 중국이라는 네트워크의 가장 중요한 그 물코로 홍콩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영화 2046 에 등장하는 필리핀화교 의 존재와 周慕雲등이 홍콩과 싱가폴을 오가는 배경도 이렇게 이해하면 될 것이다. 13) 也斯, 香港文化 (靑文書屋, 1995), 20쪽.
345 340 中國學 第34輯( ) 홍콩이 정치적으로 식민통치에서 벗어났을지 몰라도 피식민자들에게 식민의식은 벗어나지 못할 굴레처럼 씌워져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46 에서 등장인물들이 겪는 만남과 이별에는 기억의 왜곡, 디아 스포라, 언어장애, 정체성의 문제 등 다양한 식민주의 현상들이 혼종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홍콩반환 이후에 제작되었을지라도 王 家衛의 영화를 분석하는데 탈식민의 시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이 전의 어떤 영화보다도 식민통치 종언 이후의 불안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탈식민이론은 2046 에서 가장 적절한 접근방법일지도 모른 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2046 에 숨겨진 식민주의의 요소를 되짚어 봄으로써 진정한 탈식민과 해방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2. 디아스포라 기억에서 망각으로의 질주 王家衛의 영화는 집요하게 1960년대에 집착한다 에도 반영 폭동등 60년대 홍콩사회의 격동기를 생생하게 드러내기 위해 영화의 중간중간에는 기록필름이 삽입된다 에 삽입된 기록필름은 흑 백으로 촬영된 것으로 주로 과거를 표상한다. 1966년 홍콩에 되돌아갔다. 오래지않아 도처에 폭동이 일어났다. 나도 내가 얼마나 있게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1958년 중국 출생인 王家衛는 반영폭동을 몸소 체험한 바 없 다. 1963년에야 홍콩에 이주한 1.5세대 홍콩인인 그에게 중국의 文革 이나 반영폭동은 유년시절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타카하시 키타토 지는 이에 대해 현실세계와 가능세계 혹은 기억세계를 포함하는 비상 식적 시간을 만들어낸다. 14)고 했다. 그렇다면 60년대 홍콩에 대한 王 家衛의 노스탤지어는 그 자신의 경험이라기보다는 피식민자의 의식 속 에서 상상된 홍콩의 혼란기를 회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비상식적 시 14) 王家衛 작가 연구 :사회심리학으로 본 캐릭터(character)분석을 중심으 로, 11쪽 참고. 타카하시의 말은 경합하는 장 :웡카와이 王家衛 영화의 독법들, 외국문학연구 제29호, 320쪽에서 재인용함.
346 탈식민의 굴절된 렌즈에 갇힌 이야기--王家衛의 2046 (김명석) 341 간 이 될 것이다. 영화에는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연단위의 시간이 한 해, 한 해 날 짜와 함께 제시되고 1시간, 10시간, 100시간, 1000시간 이후 식으 로 제시되기도 한다. 어느 해, 몇 시간 뒤처럼 시간에 대한 극단적인 집 착은 특정한 시공간에 실존하는 특정한 존재에 관한 물음으로 이어진 다. 이렇게 王家衛는 피식민자의 존재적 고립감을 표출해내고 그가 현 존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15) 2046 에서 연 단위로 제시되는 시간은 홍콩역사에서 격동의 시기지 만 周慕雲에게는 여러 여성의 품을 전전하는 방황의 여정일 뿐이다. 또 한편 周慕雲은 무협이나 미래소설 등 글쓰기로 이를 해소하려 하지만 난관에 부닥치게 되고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면서 周慕雲의 고립감은 깊어만간다 에 삽입된 흑백화면으로 눈의 띄는 것은 영화의 전편 격인 花樣年華 에서 周慕雲이 蘇麗珍(장만옥 분)의 어깨에 기대던 화면인 데 역시 과거를 표상한다. 그리고 花樣年華 에도 잠시 등장한 바 있 는 망각의 구멍도 흑백화면으로 주목할 만하다. 영화의 곳곳에 삽입된 이 구멍은 말미에 이르러 갑자기 흑백의 구멍으로 색깔이 바뀐다. 망각 의 구멍은 처음 2046 의 서두에서 흑백이 아니라 컬러로 나타나는 데 王家衛는 Tak의 목소리를 통해 구멍에 얽힌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일본어로 설명한다. 예전에 누가 마음속에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으면 깊은 산 속으로 달려가 나무 한 그루를 찾는다, 나무 위에 구멍을 내고 그 구 멍에 비밀을 속삭이고는 진흙으로 막아버리는 것이다. 이 비밀은 영 원히 아는 사람이 없게 될 것이므로.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나무 원래의 컬러에서 흑백으로 변색된 데는 다음과 같은 상황의 변화가 전제되어 있다. 白玲은 周慕雲과 마지막 밤 을 보내고 떠나간 뒤에 이 흑백의 구멍이 부각되는 것이다. 周慕雲은 15) 경합하는 장 : 웡카와이 王家衛 영화의 독법들, 외국문학연구 제29 호, 319~320쪽 참고.
347 342 中國學 第34輯( ) 그녀가 어렴풋한 미래를 향해,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러 갔을 거라고 여 긴다. 그가 쓰는 미래소설 2046 에서 상실한 기억을 되찾기 위해 미래로 가는 기차를 탔던 자신과 연계지으려는 것처럼 미래로 가는 기 차의 종착점까지 가도 돌아온 사람이나 기억을 되찾은 사람은 없었다. 영화에서 흑백이 과거를 표상하는 것처럼16), 망각의 구멍은 흑백으로 변색되고 이를 통해 王家衛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영화에서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의 허물어진 경계는 도시를 자유로이 오가는 교통망으로 연결된다. 영화의 서두에는 미래의 철도망 을 표상하는 화면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나레이션이 삽입된다. 2046년에 전세계에는 무한히 펼쳐진 공간 철도망이 빽빽이 깔려 있 었다. 그는 줄곧 고개도 돌리지 않고, 기나긴 열차에 앉아 망망한 밤 속에 몽롱한 미래를 향해 가는 듯했다. 王家衛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과거와 미래의 경계를 무화시키기 위해 점프컷이나 컷어웨이를 즐겨쓰고17) 미래도시의 모습에 CG를 활용 했다. 60년대 말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는 周慕雲이 밤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루루가 걸어 들어가 사라지는 빨간 색, 파란색 조명은 영화가 제작된 2004년 홍콩야경의 시뮬라크르18)와 16) 이밖에 싱가폴에서 만난 프로 도박사 蘇麗珍이 끝까지 검은 장갑을 벗지 않는 것도 끝까지 과거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7) 점프컷은 두 장면 사이의 부자연스러운 절단으로 편집하여 뚝뚝 끊기게 해 서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것이고 컷 어웨이는 한 컷과 다음 컷이 연관이 없는데 연결시키는 것이다. 월간 키노 ( ), 170쪽에는 점프컷을 즐 겨쓰는 데 대한 王家衛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18) 영화 속 CG샷은 매트릭스 2, 3의 CG를 담당했던 프랑스 BUF사에서 담당했다. 시뮬라크르란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이미지를 말한다. 이 원본 없는 이미지가 그 자체로 현실을 대체하고, 현 실은 이 이미지에 의해서 지배받게 됨으로써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경우가 있다. 관객이 인공이미지에서 무수한 이미지들을 창출해내고 그것을 소비하는 것을 시뮬라시옹(시뮬라크르의 동사형)이라고 한다. 관객은 60년대 말 밤무대의 조명에서 현재와 미래 홍콩의 야경을 떠올리며 시뮬라시옹하게 된다; 쟝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민음사, 1992), 15쪽, 27쪽 참고. 60년
348 탈식민의 굴절된 렌즈에 갇힌 이야기--王家衛의 2046 (김명석) 343 다를 바 없다. 또 한편 휘황찬란한 클럽의 붉은 조명은 영화 속 미래소 설 2046 의 열차 속 모습과도 무척 닮아있다. 60년대 말 밤무대의 조명은 2046 의 미래도시의 모습과 겹쳐지고 영화가 제작된 시기 홍콩의 모습을 시뮬라시옹한다. 이렇게 도시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영화 속에 서 상행, 하행으로 나뉘어 운행되는 열차의 여정은 홍콩인의 디아스포 라를 표상하게 된다. 이들이 미래로 가는 기차를 타는 이유는 디아스포 라 의식, 즉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러 가는 것이었다. 신비로운 전용열차 하나가 2046을 향해 정기 운행한다. 2046으로 가 는 승객들은 모두 한 가지 목적 밖에 없다. 바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 찾는 것이다. 모든 기억은 다 눈물에 젖어있다.19) 또 하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신분(정체성)과 각자의 관계를 헷갈리 게 하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周慕雲은 영화 속에서 여러 여자의 품을 전전하면서 얼굴만 닮은 사람인지, 자신 이 아는 사람인데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명이인일 뿐인지 여 자의 이름과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일례로 1966년 12월 24일 周 慕雲은 싱가폴 친구 루루(鞏俐 분)를 만난다. 폭동이 일어난 이후 개명 했다고 하는 그녀는 周慕雲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周慕雲은 루 루에게 아직까지 당신 이름도 모르는데 라고 말하지만 왠지 그녀는 자 기 이름을 가르쳐주려 하지 않는다. 그녀가 정말로 周慕雲을 아는지는 영화 속에서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사랑에 사실 비판이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난 그녀에게서 계속 이전 의 蘇麗珍을 찾았다. 비록 나 자신은 몰랐지만 그녀가 어떻게 모를 수 대말 文革과 SF미장센에 대해서는 박은영, 王家衛의 화려하고 비장한 오 페라, 2046, 씨네 21리뷰 ( ,12)에서 언급된 바 있다. 19) 그렇다면 아무도 돌아온 사람이 없다는 기차 2046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그것은 홍콩에 있어서 제1의 길도, 제2의 길도 아닌 제3의 길 일 것이다. 중 국에 반환된 홍콩의 일국가 이체제가 제1세계 국가에서도, 제2세계 국가에서 도 찾아볼 수 없기에 그러하다. 제3의 길에 대해서는 본고의 4장에서 상론하 기로 한다.
349 344 中國學 第34輯( ) 있을까? 花樣年華 의 蘇麗珍은 2046 에도 등장한다. 그런데 王家衛가 관객들을 일부러 헷갈리게 하려 했는지 2046 에는 蘇麗珍이 동명이 인의 도박사 흑거미(鞏俐 분)로 설정되어 있다 에서 蘇麗珍과 흑거미, 루루는 1인 2역 또는 3역을 한 것처럼 얼굴 또한 무척 닮아있 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 周慕雲과 여자들이 서로를 잘 기억 못하는 것 은 건망증 또는 기억상실증을 연상케 한다. 또 2046 에서 등장인물 들의 현실이 소설 속 제3자처럼 이야기되고, 이들이 周慕雲의 무협이나 SF등 미래소설에 등장하는 것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의 기억을 헷갈 리게 하는 장치이다. 알아도 모른 척 하는 등장인물들, 이들은 바로 서로 떳떳하게 呼名하 지 못하고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는 식민지 홍콩의 보통사람들이다. 기 억이란 지금 여기 매 순간의 해석에 의해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다. 그 러나 어떤 사실의 기억이 괴롭거나 불안을 야기시킬 때 이런 고통으로 부터 도피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망각이다. 기억은 무의식 속의 여 러가지 콤플렉스와도 깊은 관련이 있어서 왜곡되기도 한다. 기억은 언 젠가는 망각되지만 시효가 지나면 회복되기도 하기에 망각은 뫼비우스 의 띠처럼 기억과 연결된다 의 등장인물들에게는 술과 담배가 망각을 일으키는 매개체 로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수시로 장면의 전환점에서 담배를 피우고 때 로는 술잔을 함께 기울인다. 영화 속 곳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은 현실을 망각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려 한다. 이렇게 술과 담배를 통한 자기최면으로 기억은 의식, 무의식적 굴절을 겪게 된다.20) 기억의 의도적인 왜곡과 망각은 홍콩이라는 식민환경에서 일어나는 현실에 대한 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 梁秉鈞은 엘라 쇼핫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말한다. 탈식민의식은 식민환경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된다. 식민환경의 자각 20) 王家衛 작가 연구 : 사회심리학으로 본 캐릭터(character)분석을 중심으 로, 52쪽.
350 탈식민의 굴절된 렌즈에 갇힌 이야기--王家衛의 2046 (김명석) 345 은 인간관계와 문화에 대한 왜곡을 발생시키며, 각종 권력의 불평등 한 소통과 접촉을 발생시킨다. 이는 현실 정치가 변화되기 전에 시작 될 수도 있지만 현실 정치보다 또 훨씬 늦게 생겨날 수도 있다.21)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기억과 왜곡, 망각은 홍콩의 정치상황과 무관 한 것 같지만 식민환경의 정치적 지형과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중 국의 文革시기, 반영폭동을 겪던 이들이 현실에 침묵하는 데는 기억을 거부하는 모종의 의도 22)가 개입되어 있다. 이들은 또한 홍콩에서 싱가 폴로, 일본으로 옮겨다녀야 하는 이주와 정착에 대해서도 종내 침묵으 로 일관한다. 디아스포라, 즉 이산의 처지에 대해 이들이 침묵하는 것은 자신들의 비극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기억과 망각은 개 인이 아닌 집단의 기억과 망각이며 이는 피식민자로서 홍콩인들이 강요 당한 집단기억23)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사회 에서 극명한 신념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성향들 즉 의식의 저변에 깔 여 있는 뿌리 깊은 집단정신 이 영화 속에 반영된다고 했다.24) 의 등장인물들에 나타나는 기억과 망각도 홍콩인의 집단무의식에 대 한 기억과 왜곡, 망각에 다름 아니었던 셈이다. 3. 탈식민의 언어로 말하기 소통과 고통의 질주 주로 廣東語로 녹음되고 上海 이주민이 사용하는 上海語가 간간이 삽 입된 花樣年華 와 달리 2046 의 인물들은 廣東語와 普通話로 자 유롭게 대화를 나눈다.25) 홍콩관객을 위해서는 普通話 대사가 나오는 21) 香港文化, 20쪽. 22) 망각과 기억에 대해서는 최문규, 고규진, 김명목 외, 기억과 망각: 문학과 문화학의 교차점 (책세상, 2003), 211쪽 등을 참고할 만하다. 23) 집단기억 에 대해서는 장정아, 우리의 기억, 우리의 도시: 집단기억과 홍 콩정체성, 동북아문화연구 제17집(동북아문화학회, 2008)의 제2장에 잘 정리되어 있으나 본고에서는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한다. 24) Robert C. Allen & Douglas Gomery著, 유지나, 김혜련 譯, 영화의 역 사: 이론과 실제 (까치글방, 1998), 241쪽. 25) 본고에서 花樣年華 와 2046 은 홍콩인들을 위해 제작된 廣東語판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본고에 인용한 대사의 번역은 필자가 廣
351 346 中國學 第34輯( ) 대목에 廣東語 자막을 삽입하겠지만 이미 이런 방식에 익숙한 홍콩의 관객들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별 문제는 없다. 廣東語와 함께 普通話, 일 본어가 가끔씩 혼용되는 2046 에는 여러 언어가 함께 쓰이는 국제 도시 홍콩의 다중언어 환경이 잘 드러난다 에서 여러 언어의 혼용은 하얼빈출신 왕사장과 白玲, 蘇麗珍 등 중국출신 배우들이 쓰는 普通話와 周慕雲, 王静雯 등이 쓰는 廣東語, 그리고 일본남성이 쓰는 일 본어가 서로에게 발화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홍콩이 반환된 이후에 제작된 두 영화는 불과 4년의 차이지만 그 동안 홍콩사회의 분위기가 중국으로 급속히 경도된 점이 잘 드러난다. 바로 최근 홍콩영화의 경 향26)을 반영하듯이 중국출신 배우가 대거 참여해 대사의 절반 정도가 普通話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이 시행한 일국가 이체제 정 책 속으로 홍콩사회가 급속히 편입된 데 기인한다. 그러나 등장인물들 사이에는 항상 소통의 문제가 가로막혀 있다. 王 静雯(王菲 분)와 Tak 두 사람이 처음 알게 되어 가까워지게 된 계기도 소통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周慕雲이 오리엔탈호텔에 오기 몇년 전, 홍콩지점에 파견된 한 일본 남자(Tak)가 王静雯에게 길을 묻는다. 王静 雯은 廣東語로 되물으며 주소를 가르쳐주지만 일본남자는 못알아듣고 다시 일본어로 되묻는다. 이것은 廣東語를 못하는 외국인이 홍콩에 갔 을 때 겪을 법한 소통의 문제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일본남자와 딸의 결혼을 반대하는 왕사장은 딸을 야단칠 때 남 이 들을까봐 오페라를 크게 틀어놓는다. 그것은 다른 입주자들에게 남 부끄러운 집안사정을 알리고 싶지 않은 체면 때문이다. 홍콩에 가본 사 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비좁은 건물에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홍 콩인의 생활여건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여기서 우리는 서로 마주치더라도 내밀한 사정을 감추고 차단해야 하는 홍콩인들의 소 東語를 모르는 관계로 普通話의 더빙된 대사를 참고했다. 26) 중국 출신 여배우들은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홍콩 영화산업을 장악하 고 있다. 영화제작사나 투자사들도 남자 주인공은 홍콩인을 쓰되, 여자 주인 공은 본토 출신을 쓰는 캐스팅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급팽창하고 있는 중국 본토의 박스오피스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반면 홍콩 여배우의 경우 林靑 霞, 王祖賢 이후 대형 여자스타 부재현상이 15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참고.
352 탈식민의 굴절된 렌즈에 갇힌 이야기--王家衛의 2046 (김명석) 347 외와 소통의 문제를 직감하게 된다. 미래소설 2047 에서 Tak과 안드로이드 간에도 소통의 장애가 발 생한다. Tak에게 안드로이드는 자신의 삶의 갈피 속 말 못할 아픔을 감당하는 위로자이다. 周慕雲은 안드로이드에게 995번 이상 반복해서 2046에 함께 갈 수 있냐고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그가 주저주저하며 던지는 이 동시다발적인 질문들은 홍콩인의 미래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소통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인관계를 힘들어하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우울이나 불안장애를 느끼면서도 일정한 거리두기(detaching)를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2046 에서는 누군가에 의해 훔쳐보는 시선으로 공간이 연결되는 장 면이 자주 등장한다. 周慕雲은 王静雯을 몰래 관찰하고 白玲은 周慕雲 을 훔쳐보고, Tak 또한 누군가에게 관찰된다. 그리고 액자소설 에서 Tak은 안드로이드와 다른 남자와의 정사를 훔쳐보며 가슴 아 파한다. 엿보기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극중 인물의 깊숙한 내부 를 들여다보고 싶은 관객의 비밀스런 욕구와 충동을 만족시킨다. 그러 나 엿보기는 인물간에 마주봄으로써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 방적인 관계인 것이다. 엿보는 장면으로 공간은 연결되지만 그것은 부 분만을 제시하는 제한적 공간의 성격일 뿐이다. 이밖에 영화에는 직접적인 1:1 대화가 아니라 메모지나 편지같은 소 통의 매개체를 이용한 의사소통 방법도 등장하는데, 周慕雲이 개인적 부탁을 메모에 써서 왕사장에게 전해달라고 다른 입주자에게 부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周慕雲은 Tak의 편지를 중간에서 차단하는 왕사장의 눈을 피해 王静雯과 일본 남자친구 간에 편지를 주고받게 한 다. Tak의 편지는 벽을 넘어 전달되는데 그 때마다 등장하는 벽은 영 화 속에서 소통의 장애물로 기능하는 알레고리라 할 수 있다. 周慕雲을 통해 王静雯에게 전해진 일본 남자친구의 편지는 廣東語나 普通話를 모 르기 때문에 당연히 일본어로 쓰여졌을 것이고 일본어로 낭송된다. Tak 의 일본어를 통한 나레이션은 영화 속에서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 백의 역할을 하고 廣東語 자막이 삽입된다. 그러나 일본어를 잘 못하는 王静雯은 어찌된 영문인지 다 알아듣고 감격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영 화 속 등장인물들이 廣東語와 普通話로 제각기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353 348 中國學 第34輯( ) 일본어로 쓴 편지를 읽고 알아볼 리가 만무한 王静雯이 내용을 다 이해 하는 장면은 그들의 사랑이 식민지의 언어장애를 넘어섰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는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자막이 올라오는데 그 배경으로 2047년 홍콩의 야경이 삽입된다. CG를 활용해 만든 미래 도시의 야경에는 廣東語 언론보도가 중얼거려지고 곧 이어 영어방송도 몇 마디 중첩된다. 홍콩반환 뒤 앞다투어 영어를 배우던 시대는 가고 이제 普通話를 배워야 하는 언어교체(language shift)가 이루어졌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50년 뒤 미래에도 廣東語와 영어가 공식언어로 사용 됨을 암시한다. 원래 언어의 조종은 전형적인 식민화 전략이다. 홍콩의 식민정부가 영어를 사용하게 하는 언어조종을 통해 표준과 변형이라는 구분을 만들 었듯이 중국 반환 뒤에는 普通話가 공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홍콩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매개체인 廣東語의 흔적은 지워 지지 않는다. 사실 홍콩인들 대부분이 이름을 廣東語 발음으로 표기하 고, 영어식 이름에도 성을 廣東語로 표기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廣東 語 사용은 홍콩인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이다. 영국의 식민통치는 종언 되고 홍콩사회는 중국의 1국가 2체제 정책에 급속히 동화되고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타자로서 존재하는 모양이다. 타자로서 중국이 강요하는 普通話의 문법체계, 그 완강한 체계와 규율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홍콩 의 언어장애가 위의 장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언어장애의 문제는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등장한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2046에 대한 설명이 일본어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런 다음 周 慕雲의 목소리를 통해 廣東語 나레이션을 중첩시키는데 이는 여러 시점 이 섞인 방백처럼 기능한다 의 인물들이 대사가 아니라 나레 이션으로 플롯에 개입하는 것은 피식민자가 타자와 서로 소통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영역에 갇혀 있는 고립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법은 식민 지배체제에서 작가의 권위 27)를 드러내고자 하는 피식민지 지식 27) 식민지에서 작가의 권위 란 관습을 지키고 패턴을 유지하면서 받아들여질 만한 제도화된 방식으로 사회의 과정을 글로 쓴 것이 될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김성곤 정정호 옮김, 문화와 제국주의 (창, 1995), 159쪽.
354 탈식민의 굴절된 렌즈에 갇힌 이야기--王家衛의 2046 (김명석) 349 인 王家衛의 과잉된 자의식 표출에 기인한다. 王家衛는 영화 곳곳에 이 러한 외부음 서술(voice over)을 사용함으로써 기승전결의 단선적 내러 티브는 파괴되고 관객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된다. 또 그는 나 레이션의 중첩뿐만 아니라 여러 언어로 중복된 대사를 사용함으로써 관 객의 마음에 공명할 수 있는 다성적 효과28)를 얻는다. 영화 속의 액자 소설 2047 의 내용을 영상화한 장면에서 미래로 가는 기차 2047의 차장은 다음과 같이 普通話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절대로 그녀들을 사랑해선 안 됩니다. 안드로이드를 진짜 사랑하지 마라는 당부의 말은 곧이어 普通話와 일 본어로 반복되면서 의도적인 다성적 효과를 표출한다. 기차의 차장은 또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 열차 위의 승무원들은 모두 일류의 설계를 거쳤습니다. 그러나 내가 문제를 하나 발견했는데 장시간 여행을 하기 때문에 쇠퇴기가 올 수 있다는 겁니다. 무슨 뜻이냐면, 웃고 싶을 때 여러 가지 웃음소 리가 나오고, 울고 싶을 때도 있지만 눈물이 다음날이나 되어서야 나 온다는 겁니다. 지금 그들의 상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앞서 普通話와 일본어로 여러 번 반복되던 차장의 육성에서 다성적 효과가 드러났지만, 안드로이드에게는 웃을 때 몇 가지 웃음소리가 같 이 나오는 현상으로 감정표출의 장애가 다성적으로 나타난다. 王静雯의 언어장애는 아버지의 반대로 일본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에 잘 드러난 다. 그녀는 실연의 충격에 정신 나간듯 혼자 스텝을 밟으며 いきまし よ? いいでしよ? わかりました 같은 말들을 일본어로 중얼거린다. 28) 대화성을 다성성으로 처음 논의한 사람은 바흐친이다. 대화성을 상호텍스트 성으로 소개한 사람은 크리스테바이며 바르트는 이를 구체화시켰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바흐친의 개념과 달리 다중언어의 나레이션과 대사의 중복 등을 발화와 수용이라는 다성성의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바흐친의 문학이론 으로서 다성성 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영화 속에서 중복된 발화의 다성적 효 과에 주목한 것이다; 김명석, 탈현실적 언술과 현실적 언술의 대화성, 중국어문논총 제31집(중국어문연구회, ), 390, 401쪽 참고.
355 350 中國學 第34輯( ) 홍콩여인의 무의식은 일본어라는 타자화된 언어에게 자신을 완전히 내 어준 상황이다. 넋 나간 王静雯의 웅얼거림은 식민환경에서 언어장애의 상황이며 이런 이중언어의 상황에는 홍콩인의 말하고자 하는 욕망과 고 통, 또 소통의 문제가 전제되어 있다. 사실 王静雯의 일본어는 일본어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유치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관객을 위해 이 말들의 의미는 廣東語자막으로 제시되고 周慕雲은 이를 다음과 같이 구술한다. 나는 자주 옆 방에서 이, 야, 야 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 廣東語자막이라는 매개는 홍콩의 무수히 들끓는 타자들의 언어 속 에서 일본어에서 廣東語로의 경계표시 가 된다. 周慕雲에게 이, 야, 야 로 들릴 뿐인 일본어는 일본남성이 이방인으로 남긴 흔적이다. 알아듣 지 못할 이 웅얼거림은 王静雯을 떠나간 연인이 王静雯의 무의식에 남 겨놓은 다성적 목소리였다. 넋 나간듯 일본어를 반복해 뇌까리는 언어 현상은 디아스포라의 분열의식에서 출발하며 그 이면에는 홍콩인의 타 자성 에 대한 고뇌가 감지된다. 그런 측면에서 분명하게 발성되지 않는 웅얼거림이야말로 이별의 아픔, 즉 이산의 체험, 그것을 상징하는 디아 스포라의 언어 인 셈이다. 王家衛는 일본어라는 타자의 언어로 디아스포 라의 아픔을 표현하고 또 廣東語자막을 통해 자기 식으로 되받아쓰며 탈식민을 시도했던 것이다. 4. 홍콩인에서 트랜스아시안으로 2046 의 등장인물들은 디아스포라의 굴곡진 삶 사이에 숨겨진 남 모르는 상처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영화 내내 떨쳐낼 수 없는 외로움 에 시달린다. 주인공 周慕雲은 애정결핍에 시달린 것처럼 여러 여자의 품을 전전하고 함께 등장하는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2046 에서 식민 순응형으로서 인물형상과 등장인물들이 보여준 기행의 연속 은 또 다른 식민주의로 귀결될 위험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의 현실도피는 현실의 망각일 뿐, 홍콩인, 나아가 해외 華人 전체의 기억의 복원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356 탈식민의 굴절된 렌즈에 갇힌 이야기--王家衛의 2046 (김명석) 351 현실로부터의 탈주가 때로는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진정한 해방의 힘은, 역시 정확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다. 해방의 힘은 고통을 벗어던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 을 직시하고 현실을 포용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고통의 포용이란 현실 에 대한 탐구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타력에 의해 비자율적으 로 고향을 상실하고 이산의 삶을 살아야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작 업이기도 하다. 오리엔탈호텔에는 홍콩인, 중국인, 일본인이 함께 살지 만 2046이라는 열차는 차별과 고통이 망각된 곳이라는 점에서 상상된 고향이다. 홍콩반환 이후에도 떨쳐버릴 수 없는 홍콩인의 불안감은 2046이라는 유토피아의 환타지를 꿈꾸게 했다. 2046년 미래로 가는 기 차를 타는 이유가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한 목적이라면 이 열차는 1997년의 홍콩반환이라는 지점을 반드시 지나게 된다. 홍콩인, 중국인, 일본인이 모두 탑승하는 이 열차는 홍콩인도 중국인도 아닌 아시아인이 등장하는 상상된 고향으로, 그것은 동양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의 인물들은 장면의 전환점에서 항상 오 리엔탈 이라는 호텔의 간판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고뇌하고 탈주를 꿈꾼다. 영화의 후반부에 실연의 아픔에 힘들어하던 王静雯이 결국 일본남성 과 결혼에 성공하는 극적인 반전은 홍콩인의 정체성이 트랜스아시안으 로 완성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21세기 홍콩인의 궁극적인 지향이 일본 인과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트랜스아시안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이다. 가 라타니 고진의 말에 따르면, 코스모폴리탄(세계시민)은 어떤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향성 으로 존재한다고 한다.29) 동아시아라는 29) 본고에서는 임대근이 사용한 트랜스아시안 이라는 용어가 아시안 이나 오 리엔탈 보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2046열차를 탄 홍콩인, 중국인, 일본인 등 영 화 속 등장인물들을 형용하는데 적합하다고 보고 사용하기로 했다. 21세기 홍콩인의 지향점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시민으로 가는 노정에 있다고 보는 것 은 이전 王家衛 영화에서도 국제주의자로 비치는 인물들이 잠시 등장하는 데 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임대근은 글로벌리스트 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본고에서는 세계시민이라는 의미를 살려 코스모폴리탄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 는 점이 다를 뿐이다; 경합하는 장:웡카와이 王家衛 영화의 독법들, 외 국문학연구 제29호, 312쪽과 가라타니 고진, 송태욱 옮김, 윤리21 (사회 평론, 2001), 85쪽 참고.
357 352 中國學 第34輯( ) 논의를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대응이라는 문맥에서만이 아니라 세계화 에 대한 대응이라는 문맥에서도 고찰해야 한다는 전형준의 말30)처럼 트 랜스아시안이라는 것도 코스모폴리탄으로의 이행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아시안으로서의 의식은 세계시민으로 거듭나는 하나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2046 에서 일본인을 내세운 트랜스아시안이라 는 설정이 과거 일제 침략기 일본이 내세웠던 大東亞共榮을 연상케 하 는 건 왜일까? 그것은 아마 디아스포라인으로서 홍콩인의 半정체성이 소속 국가(중국)나 문화를 괄호 에 넣기에 보편성을 확보하기 힘들고, 디아스포라 개인 들이 트랜스아시안의 유토피아를 상상할 뿐 현실을 외 면하기에 그럴 것이다.31) 60년대 말 격동기를 살아가는 홍콩인 누구도 주체가 타자의 품을, 타 자가 주체의 품을 전전하는 시대적 상황을 만들어 내는 역사 현실에 대 해서는 무감각하다. 중국과 홍콩의 회색지대를 딛고 살아야 하는 중간 자로서 디아스포라인의 방랑은 관객의 가슴 한 켠을 허망함에 젖게 한 다. 모든 기억은 다 눈물에 젖어있다 는 자막32)처럼 홍콩인의 개별자의 식은 영화 속에서 눈물방울처럼 빛난다. 이들이 시대의 아픔, 삶의 근원 에 관한 문제를 넘어서 진정한 개별자의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주체의 타자화, 타자의 주체화가 이루어질 때 가능할 것이다. 디아스포라인, 경 계인으로서 홍콩인의 자기성찰과 그 운명적 한계를 체득할 때 트랜스아 30) 전형준, 동아시아적 시각으로 보는 중국문학 (서울대출판부, 2004), 129 쪽. 31) 본고에서는 2046열차의 종착점, 즉 반환 이후 50년간 홍콩이 걸어야 할 길 을 제3의 길이라고 본다. 중국에 반환된 홍콩의 1국가 2체제가 제1세계 국가 에서도, 제2세계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에 그러하다. 이런 관점은 레이 초우가 홍콩 반환 이후 홍콩인이 제3의 공간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과 묘하게 일치한다. 그는 홍콩이 식민자 영국과 중국의 주류 민족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제3의 공간 사이를 드나들고 응대하면서 자아의 공간을 찾아야지 구차한 노리개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본고에서 인용한 전형준과 周 蕾의 탈식민적 견해에 대해서는 임춘성이 이미 언급한 바 있고 본고 5장은 여기서 착안했음을 밝힌다; 周蕾, 寫在家國以外 (Oxford Univ Press, HongKong, 1995), 102쪽과 임춘성, 홍콩의 문학현상과 영화 텍스트를 통 해 본 홍콩인의 정체성 그리고 탈식민주의, 역사문화학회 학술대회 발표 자료집 (역사문화학회, ), 48~51쪽. 32) 각주 19의 대사 참고.
358 탈식민의 굴절된 렌즈에 갇힌 이야기--王家衛의 2046 (김명석) 353 시안, 나아가 코스모폴리탄의 자유로움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영화] 王家衛 감독, 阿飛正傳 (影之杰, 1990) 王家衛 감독, 花樣年華 (春光映画, 2000) 王家衛 감독, 2046 (春光映画, 2004) [논문 및 단행본] 황보성진, 王家衛 작가 연구: 사회심리학으로 본 캐릭터(character)분 석을 중심으로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학 석사학위논문, ) 김경욱,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에이젠슈테인에 의한 王家衛, 영화연 구 제13호(한국영화학회, ) 임대근, 경합하는 장: 웡카와이 王家衛 영화의 독법들, 외국문학연 구 제29호(한국외국어대학교외국문학연구소, ) 김종현, 시간의 흐름과 기억이 만드는 것들Ⅰ, 중국현대문학 제 43호(중국현대문학학회, 2007, 12) 임춘성, 홍콩영화에 재현된 홍콩인의 정체성과 동남아인의 타자성, 중국현대문학 제33호 (중국현대문학학회, 2005, 6) 임춘성, 홍콩의 문학현상과 영화 텍스트를 통해 본 홍콩인의 정체성 그 리고 탈식민주의, 역사문화학회 학술대회 발표자료집 (역사문화 학회, ) 김용희, 王家衛와 사랑의 기호, 2046, 비교문화연구 제8집 (경희 대학교부설비교문화연구소, 2004) 김명석, 홍콩 대중문학에 나타난 홍콩인의 정체성 연구①, 중국학 논총 제25집(고려대학교 중국학연구소, 2009) 김명석, 탈현실적 언술과 현실적 언술의 대화성, 중국어문논총 제 31집(중국어문연구회, ) 박은영, 王家衛의 화려하고 비장한 오페라, 2046, 씨네 21리 뷰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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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탈식민의 굴절된 렌즈에 갇힌 이야기--王家衛의 2046 (김명석) 355 <中文提要> "2046"是电影题目 也是电影中周慕云写作的小說題目 在电影的末尾 加进去仿佛科幻片的未来小说 2047 王家衛香港回归以后也不离开香 港 透影过去一百年与将来五十年当作影片中的寓言 观众不容易理解的风 格仿佛1930年代早已构思"摆脱情节的影片"爱森斯坦的晦涩 难以理解 但 与已进入後期产业化社會的香港的后现代气氛不谋而合 本书稿立足于 国 家寓言 的观点 是将王家衛影片与香港的中国回归联在一起的 在 2046 的登场人物之间悲欢离合中記憶和歪曲 离散 语言障碍与认同性问题等 多种多样的殖民主義現像是混杂性因素 如在影片中黑白镜头表象過去 以 忘却之窟窿变黑白色王家衛展示出抹杀時空之界限 且王家衛为跨越时空而 抹杀过去与未來之界限多用跳切 在未來城市镜头还运用计算机图形 影片 中登場人物之间記憶的歪曲与忘却会引起在殖民環境香港对現實的歪曲 2046 的登場人物之间发生的記憶与忘却 可以说是对香港人的集体潜意识 的記憶与歪曲, 忘却 既用粤语, 又时而混用国语与日语 在 2046 展现 出各种语言混用的國際城市香港的多种语言环境 在此 可见香港回归后向 往二十一世紀的香港人的意识不局限于中國而扩展到全亚洲 但影片的最后 场景暗示在五十年后未来也用共用语言粤语与英语 如此在影片中不能抹杀 象征香港人认同性的代表媒介粤语痕迹 但登場人物之间常出现沟通问题 或许因此 在 2046 加进去被有人偷看的視線连接空間的場面 真正的解放来自正確的現實認識 在东方饭店香港人 中國人与日本人 一起登场 且2046列车是忘却歧视与痛苦的地方 由此可以说是想像的故 乡 到影片的下半场 被失戀的王静雯终于与日本男友結婚 此戏剧性的逆 转是香港人的认同性完成为亚洲人的时刻 亚洲人是到世界主义者的过渡进 程 从而只有作为离散人 边际人体会香港人的反省与其命运界限 才能达 到亚洲人, 进而获得世界主义者的自由 關鍵詞: 认同性 离散 后殖民 記憶, 忘却 沟通 亚洲人, 世界主义者
361 356 中國學 第34輯( )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362 中國學 第34輯( ) pp.357~382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와 사례조사를 통한 문제점에 관한 연구 박승찬* 목 차 서 론 중국 입찰제도 현황과 특징 중국 입찰제도의 문제점 사례 연구 결론 및 시사점 1. 서 론 1988년 정부조달제도가 도입된 이후 중국 정부조달시장규모가 급속 히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1981년 31억 위안에서 2004년 2,136억 위안, 2006년 3,682억 위안, 2007년 4,000억 위안으로 연평균 약 88% 성장하였다.1) 특히, 지역균형발전전략이라는 모토 아래 전국적으 로 인프라 건설이 집적되고 있고, 국유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관련 기계설비의 교체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이다. 또한 2008년 북경 올림픽 을 시작으로 2010년 상해 EXPO 및 광주 아시안게임 등 크고 작은 행 *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조교수 [email protected] 1) 서창배, <중국의 정부조달 시장개방에 대한 연구>, (서울: 서석사회과학논총, 제2권 1호, 2009), 1쪽 참조.
363 358 中國學 第34輯( ) 사가 연이어 있어 중국 정부조달 시장진출은 우리기업의 입장에서 큰 호기로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조달시장 진출을 위한 중국 입 찰제도를 이해하고 그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 다. 중국 정부조달 시장접근(Market Access)과 관련된 건설 및 기계설 비 시장 진입장벽이 매우 높기 때문에 중앙 및 지방정부별로 그 특징과 메커니즘을 정확히 분석할 필요성이 있다. 중국은 2000년 <입찰법>, 2002년 6월 <정부조달법>을 제정하고, 2003년 1월부터 시행하고 있으나, 중국 지역의 특수성으로 인해 각기 다른 면허제도, 신고제도, 지방 보호주의 등으로 인해 외국기업의 시장 진입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에서 이루어지는 입찰은 대부분 정 부와 기업간 이루어지는 정부조달 형태로 특히, 중국은 법률 혹은 제도 보다 개인적인 인정, 꽌시 가 의사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과거 기존 문헌에서는 이러한 관행적 특징을 중국 <입찰법>을 근 거로 입찰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있으나, 본 연구는 중국 입찰제도 가 <입찰법> 및 <정부조달법> 시행 이후 투명성과 규범화 면에서 어떻 게 변화되고, 진행되고 있는지를 사례조사를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 와 불법성, 비합법성 조사를 위해 우선 국내외 문헌조사를 진행하고, 그 바탕위에 현지기업을 방문하여 조사하였다. 둘째 WTO-GPA 규정에 맞 지 않는 중국 정부조달 및 입찰제도의 특성에 따라 우리정부 및 기업의 전략적 대응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현재 미국과 EU는 중국 정부 조달과 입찰제도의 개선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상태로2), 글로벌 경 제의 리더로서 중국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또한 현재 진행 중인 한 중 FTA 정부조달 분과협상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연구라고 생각된다. 본 논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2장은 중국 입찰제도의 현황과 특징 을 설명하고, 3장은 드러나지 않는 입찰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4장 에서는 현지사례를 중심으로 중국 입찰제도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마지 2) USCBC. China's Implementation of Its World Trade Organization Commitments An Assessment by the US-China Business Council (Trade Policy Staff Committee Hearing September 27, 2007). The US-China Business Council
364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와 사례조사를 통한 문제점에 관한 연구(박승찬) 359 막으로 5장에서는 결론을 맺고, 그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2. 중국 입찰제도 현황과 특징 2.1 개혁 개방 이후 중국 입찰제도의 발전 중국의 입찰제도는 1998년 정부조달이 시행되기 전 1978년 개혁 개 방과 함께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11기 3중전회 이후 당 중앙이 5개 경 제특구를 제정하고, 국제자본 및 선진 생산기술과 설비, 관리경험이 대 거 중국으로 유입되면서 선진국의 무역 및 교역방식은 중국에 많은 영 향을 끼쳤고, 국제입찰의 선진 경험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국정부의 거시적 지도아래 국무원이 <건축업과 건설관리체제 개혁에 관한 문제의 잠정규정>을 제정함으로서 중국 역사상 최초로 입찰 이라는 단어를 공 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3) 중국은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국제입찰 참가, 입찰제도의 제정 등 건축영역의 입찰활동을 전개하였고, 1985년 초 중국 대외무역경제합작 부 산하에 <중국 기전설비(機電設備)4)입찰센터>를 설립하여, 전문입찰 기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에서 입찰제도는 사회주의 통일시장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기업 활력 을 불러일으키고 생산재의 유통대리제도를 촉진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대리제도는 시장경제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마케팅 방 식으로 유통효율을 제고시키는 선진모델로서 특히 생산재 유통영역에 많은 발전을 보여 왔다. 또한 입찰제도는 투자효용을 제고시키고, 국유 자산의 유실을 방지하는 중요한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해왔다.5) 과거 중 국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하에서의 입찰메커니즘 모형은 정부추진+사 회감독+업종별 협조+입찰기구운영 의 입찰운영메커니즘과 정부관리+ 입찰기구에 의한 입찰제 시행 의 바탕 위에 투자자 입찰심사 제도 를 보조로 하는 입찰관리제도로 진행되었다.6) 중국 입찰관리체제는 종합적 3) 何增科, <政府采购招标投标法的适用>, (北京: 企业管理出版社, 2002) 89쪽. 4) 機電設備라 함은 기계, 전자 관련 설비를 말함. 5) 罗德明외 <我国政府采购管理体系探析> (北京 经济体制改革, 2003) 15쪽.
365 360 中國學 第34輯( ) 인 입찰행정 주관부서인 국가 및 분야별 입찰관리위원회 와 전국별 업 종항목별 조직으로서 입찰전문 관리부서인 국가 및 업종항목별 입찰협 회, 그리고 입찰기구로 나누어지는데 이러한 입찰기구는 1984년부터 전국과 지방에 각각 설립되고 있다. 이는 또한 전문입찰기구와 업종항 목별 입찰대리기구7)로 나누어진다.8) 전문입찰기구 란 국가권한을 부여 받은 기구로서 입찰사무를 가진 비영리기구 혹은 정부, 금융기구 또는 기업의 위탁을 받아 전문적으로 국내외 입찰업무를 진행하는 전문기관 을 말하고, 업종항목별 입찰대리기구 란 구체적 물자조달 혹은 업종항 목 건설에 대해서 업종항목별 업체의 주관 부서로 입찰업무를 진행하는 입찰대리기구를 말한다.9) 이러한 중국특유의 메커니즘은 WTO 가입을 준비하면서 점차 변화되 기 시작하여, 2000년 <입찰법>이 시행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 게 되었다. 이는 WTO 가입을 위한 필수 진행단계로 WTO GPA 규정 에 어느 정도 근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아래 이루어진 개혁단계로 이로 인해 지방정부 및 국영기업 조달의 경우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었다. 사실 그 동안 중국 지방정부 및 국영기업에서 진행된 입찰방식은 투명성 있는 공개입찰방식이라기 보다는 일명 꽌시(關係) 속에 진행된 꽌시 입찰방식 이었다.10) 이러한 입찰방식의 제도적 문제점 개선을 위 한 중앙정부 차원의 입찰 부정부패 단속반 을 구축하는 등 변화의 조짐 이 생겨나고 있으나, 방대한 지역의 감독관리가 결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2.2 입찰법의 주요 내용과 특징 중국의 입찰제도는 2000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입찰법(招標 投標)>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각 지방정부는 <입찰법>을 근거로 현지 6) 谷辽海 中国政府采案例评析 (北京 群众出版社, 2005) 58쪽. 7) 건설 및 기계전자 입찰대리기구가 대표적인 형태. 8) 马海涛외 我国政府采购制度研究 (北京 北京大学出版社, 2007) 21쪽. 9) 罗德明외 <我国政府采购管理体系探析> (北京 经济体制改革, 2003) 3쪽. 10) 谷辽海 中国政府采案例评析 (北京 群众出版社, 2005) 10쪽.
366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와 사례조사를 통한 문제점에 관한 연구(박승찬) 361 입찰관련 정책 및 법률을 자체적으로 제정하여 적용하고 있다. <입찰 법>은 입찰활동의 규범화를 통해 국가와 사회공공의 이익과 함께 입찰 활동 당사자들의 합법적인 권익을 보호하고 경제효용과 프로젝트의 질 적 제고를 위해 제정된 것으로서 중국 내에서 시행되는 모든 입찰활동 에 대해 이 법이 적용된다. <입찰법> 제3조에 의하면 중국 내에서 시 행되는 프로젝트 가운데 ①대형 기초시설, 공익사업 등 사회의 공공이 익과 대중안전에 관계되는 사업 ②사업의 전부 또는 일부분이 국유자금 투자 또는 국가융자자금을 이용하는 사업 ③국제기구 또는 외국정부의 차관, 원조자금을 이용하는 사업 등은 조사부터 설계, 시공, 감리 및 중 요설비, 소재 구입까지 반드시 입찰제를 시행해야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입찰의 구체적인 범위와 규모기준은 국무원 발전계획 주관 부문이 국무원 주관부문과 협의하여 제정한 후 국무원의 비준을 받아야 하며 기타 기존 법률에 이미 규정되어 있거나 또는 반드시 입찰공고를 해야 한다는 국무원의 규정이 별도로 있는 프로젝트(입찰 필수 프로젝 트)는 계속 그 규정을 따라야 한다. 중국의 입찰관련 제도는 국무원 산하기관들이 공포한 20개가 넘는 내부규정에다 각 지방정부 및 산하기관들이 만든 시행규칙까지 합칠 경 우 150개 넘는데, 문제는 지방 규정자체가 많다는 것보다 <규정>들이 각각 <규정> 발표기관이 입찰관련 최고 책임기관으로 규정하고 입찰자 격 및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는 것으로, 각 내부규정이 모든 자기부서를 책임부서라고 설명하고 있어 외국기업의 경우 어느 내부 규정에 따라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표1> 중국입찰 범위 및 금액표준 규정의 주요 내용 반드시 입찰을 해야 하는 사업의 범위 ㅇ 사회의 공공이익 및 공중안전과 관계된 기초시설 건설사업 -에너지, 교통, 운수, 우편, 통신, 수리, 도시시설, 생태환경보호 등 ㅇ 사회의 공공이익 및 공중안전과 관계된 공공사업 -市政, 과학기술, 교육, 문화, 위생, 사회복리, 주택 등 ㅇ 국유자금을 사용한 투자사업
367 362 中國學 第34輯( ) -각종 재정예산자금, 재정관리에 편입된 특별건설기금, 국유기업의 자체 자금 등 ㅇ 국가융자사업 -국채발행자금, 대체차관, 담보이용자금, 국가정책금융, 국가 수권기 관(授權機關)의 융자, 국가가 특별히 허가한 융자 등 ㅇ 국제기구 또는 외국정부의 자금이용사업 -세계은행(WB) 및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가기구의 자금, 외국정 부 및 기관의 자금, 국제기구 또는 외국정부의 원조자금 등 상기 범위에 속하는 각종 건설사업 중 반드시 입찰을 해야 하는 금액의 표준 ㅇ 단일건설계약금액이 200만 RMB 이상 ㅇ 중요설비, 재료 등 단일구매계약금액이 100만 RMB 이상 ㅇ 단일계약금액이 상기표준에 미달하지만 총 사업 투자금액이 3,000만RMB 이상 특히 전액 국유자금을 사용하는 사업 또는 국유자금을 통해 주식 통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 기관을 제한해서는 안 되며, 잠 재 응찰자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음 *자료: 중국 정부조달망( 자료를 재정리 <입찰법>총칙은 이밖에도 어떤 단체, 개인이든 입찰필수 프로젝트를 몇 개의 소형 프로젝트로 분할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 11), 입찰활 동은 마땅히 공개적이고 공평해야 하며 성실신용의 원칙을 지켜야 한 다. 12), 입찰 필수 프로젝트는 지방 또는 부문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해당지방 및 부문 외의 법인 또는 기타 조직의 응찰을 제한, 배척해서 는 안 되며 불법적으로 입찰활동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 13), 입찰활동 및 당사자는 마땅히 법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유관 행정감독부분은 법 에 따라 입찰활동을 감독하고 불법행위를 조사 처벌한다. 입찰활동에 대한 행정감독 및 유관부문의 직권범위는 국무원에서 별도로 정한다. 14) 등의 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11) 중국 <입찰법> 제4조 참조. 12) 중국 <입찰법> 제5조 참조. 13) 중국 <입찰법> 제6조 참조.
368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와 사례조사를 통한 문제점에 관한 연구(박승찬) 중국 입찰방식 및 절차 중국의 입찰방식은 정부형태의 조달형식과 기업형태의 조달형식에 따 라 다르게 규정되고 있다. 정부형태의 조달형식은 중국 <정부조달법> 규정에 따라 ①공개입찰 ②초청입찰 ③경쟁성 담판(경쟁성 협상 구매방 식) ④단일공급자 구매방식 ⑤가격조회 구매방식 ⑥기타 방식으로 구분 된다. 한편, 기업형태의 조달형식15)(일반적으로 국유기업 )은 정부조달 형식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업종별 지역별 특성에 따라 여러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을 정리하면 크게 5가지16)로 나눌 수 있다. ①일반경쟁입찰(공개입찰) ②선택입찰(선점입찰, 초청입 찰) ③한정입찰 ④쿼터입찰 ⑤議標입찰17)( 협의 조달 형태) 이것도 대상 을 한정하느냐, 그리고 그 대상도 국내 혹은 해외 공급상 여부에 따라 국제경쟁, 국제제한, 국내경쟁, 국내제한입찰 등으로 분류되어지기도 한 다. 그러나 WTO GPA 가입을 위한 협상작업이 진행되고, 각 지방별 입 찰로 인한 부정부패가 심각18)해지면서 중국정부는 입찰관련 방식을 <정부조달법>이 규정한 6가지 형태로 규정화하도록 선도하고 있고, 이 의 계도를 위해 지방별로 구매 및 입찰관련 교육과정을 설치 운영하고 14) 중국 <입찰법> 제7조 참조. 15) 2003년 중국 <정부조달법> 규정이 발표되기 전에는 중앙 및 지방정부조달 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 16) 좀 더 세분화하면 심사입찰, 구매입찰, 일차완성입찰, 2차(혹은 단기별)입 찰, 합작제도 입찰, 쿼터입찰, 중점선택입찰 등 7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17) 공사 및 건축 관련 입찰에서 자주 사용했던 방식으로 담판성 조달 형태 로 볼 수 있다. 즉, 조달자와 공급상이 일대일 협상을 통해 최종 조달목적 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비공개성 비경쟁성이라고 볼 수 있어, <정부 조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쟁성 담판 과는 차이점이 있다. 한편, 공개 입찰과 초청입찰의 경우 응찰가격 및 기술적 조항 등에 대해 협상을 진행 할 수 없으나, 議標 는 제시가격 및 기술적 조항에 대해서도 일대일로 협 의할 수 있어 과거 소규모의 공사 및 건설 입찰에 자주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로 인한 공무원 및 기업담당자의 부정부패가 매우 심각하였다. 지금은 議標 형태의 입찰을 금지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일부 지방의 경우 소규모 공사 및 건설입찰은 議標 를 통해 입찰을 진행하고 있다. 18) <중국경제보>는 중국 경제범죄사건의 40%가 정부 및 기업형태의 입찰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도하였다.
369 364 中國學 第34輯( ) 있다.19) 한편 모든 입찰에 이런 방식이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나 일반 적으로 지방별 업종별 규정에 따라 입찰의 종류방식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중국시장 진출 전 반드시 이에 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 <표2> 중국 국유기업의 입찰종류 및 방식 입찰정보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① 일 반 경 쟁 입찰문서에 규정한 조건에 부합되 입찰(공개입 는 모든 법인 또는 기타기관이나 찰) 개인이 차별없이 참가할 수 있는 대부분 불특정다수를 대 상으로 함. 입찰행위 일반 경쟁입찰로 적격업 ②선택입찰 (選點입찰, 초청입찰) 입찰의 성공가능성을 보장하기 위 해 일정한 자격을 구비한 업체만을 대상으로 입찰에 참가할 수 있도록 공고하는 것 체가 선정되지 않았을 경우 또는 최초부터 일 정한 자격을 갖춘 업체 및 특수경험을 갖춘 업 체들을 대상으로 할 때 사용 일정한 전제조건 하에서만 시행되 고 있는데, 먼저 필요한 물품이나 공사 혹은 서비스가 고도의 복잡성 초청입찰의 한 형태로, 혹은 전문성을 요구하여 적어도 적 자격요건을 강화시켜 일 ③한정입찰 격업체 선정에 대한 정밀검사가 필 정한 능력이상을 겸비한 요할 경우 그리고 발주기관에서 상 불특정 다수 기업을 대 급기관의 승인에 의해 일정한 능력 상 을 보유한 업체만 입찰참가가 가능 하도록 요구하는 경우 등에만 시행 다른 나라와 협정으로 할당 받은 ④쿼터입찰 수출량을 희망업체에게 배분하는 방식의 입찰 방직품과 경공업 품목을 매년 초 국제상보나 인 민일보 해외판을 통해 입찰공고 ⑤議標입찰 공사 및 건축 관련 입찰에서 자주 사 입찰 실시 초기에는 많 19) 중국 입찰망(
370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와 사례조사를 통한 문제점에 관한 연구(박승찬) 365 용했던 방식으로 담판성 조달 형태 이 사용되었으나, 담합 로 볼 수 있다. 즉, 조달자와 공급상이 및 부정부패의 심각성이 일대일 협상을 통해 최종 조달목적에 대두되면서 현재는 엄격 (협의입찰) 도달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비공개성 히 그 사용을 제한하고 비경쟁성이라고 볼 수 있어, <정부조 있으나, 일부 소규모 건 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쟁성 담 설입찰의 경우 사용되고 판 과는 차이점이 있다. 있다. *자료: 중국 입찰망( 자료 참고하여 재정리 예를 들어, 기계전자 입찰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입찰의 유형을 국내, 국제, 공개, 초청 4가지만 규정하고 있고, 건설입찰의 경우에는 공개, 초청, 議標 3가지만 규정하고 있다.20) 입찰공고(招標) 응찰(投標) 개찰(開標) 평가(評標) 낙찰(中標) 계약체결(簽訂合同) [그림1] 중국 입찰절차 흐름도 중국의 입찰절차는 입찰방식에 따라 각기 다르게 진행된다. 초청입찰 의 경우 입찰초청장 발송, 입찰서류 접수, 평가위원회 심사, 최종 경쟁 업체 선정, 재평가, 낙찰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한편, 공개입찰 방식의 20) 중국 입찰망( 참조
371 366 中國學 第34輯( ) 절차는 입찰공고, 응찰, 개찰, 평가, 낙찰, 계약체결의 순서로 6단계로 진행된다.21)(그림1참조) 3. 중국 입찰제도의 문제점 3.1 복잡한 입찰구조 및 방식 정부조달의 복잡한 입찰구조 및 방식으로 중국 공사 프로젝트의 경우 현행 입찰제도에서는 설계도면을 입찰참가 업체에 주어 입찰참가 업체 가 공사량을 계산하고 이를 근거로 단가를 제시하도록 하고 있어22) 참 가업체는 입찰 전에 이미 공사량 계산과 단가 산출에 적지 않은 인력 및 자금을 사용하게 되어 전체적으로 입찰 원가가 상승하게 되고, 특히 낙찰되지 못한 기업의 경우 그 손실이 더욱 커지는 문제점이 있다. 일 반적인 국제 입찰방식에서는 입찰 시행자가 전문 대행업체에 위탁하여 공사량을 계산한 후 입찰 설명서와 같이 제공하고 있어 입찰 참가기업 은 이를 근거로 입찰 단가를 제시하게 됨으로 인력 및 자금의 절약뿐만 21) 공개입찰 중 기계설비 관련 물품 조달절차의 경우 중국에서는 아래와 같이 5단계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크게 受標(접수), 修訂(수정), 개찰(開札), 評標 (평가), 中標(낙찰), 通報(통보) 등의 6단계로 나누어지는데 評標와 中標가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定標(정표)로 불리어지며, 이에따라 실제로는 5단 계로 진행되고 있다. 한편, 개표(開標)를 기점으로 내부절차와 외부절차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 受標(접수) : 상급기관의 승인 후 발주기관이 입찰대리기구를 선정하는 절차로서 일부입찰의 경우 발주기 관이 자유롭게 입찰대리기구를 지정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중앙부서에서 산하 입찰대리기구를 강제 지정하고 있다. ② 修訂(수정) : 입찰발주기관과 입찰대리기구가 입찰방식, 방향, 진행절차에 대해 협의하는 과정으로 대개 입찰진행은 입찰대리기구가 맡고 기술적인 측면은 발주기관이 책임진다. ③ 開標(개찰) : 입찰 광고후 投標方(참가기업)을 모집하고 입찰서류를 접 수받는 과정이다. ④ 定標(評標 및 中標) : 발주기관과 입찰대리기구가 공 동으로 적격업체를 찾기 위하여 실사하고 적격업체를 결정하는 절차로서 가격과 기술적인 측면, 그리고 기타 무역조건을 비교하여 적격업체를 결정 한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⑤ 通報(통보) : 결과를 선 정업체에게 통보하는 절차로서 낙찰 통보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 선 정업체를 상급기관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22) <중국 입찰법> 제27조 참조.
372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와 사례조사를 통한 문제점에 관한 연구(박승찬) 367 아니라 전체적인 입찰 절차의 간소화 및 시간 단축으로 효율성이 높다 고 볼 수 있다.23) 3.2 공개입찰의 공고방식 문제점 중국 <정부조달법> 제35조에 의하면 입찰공고는 입찰공고서류 발송 일로부터 응찰자가 응찰서류를 제출한 날까지 20일 이상이어야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시간이 너무 짧아 외국기업의 경우 제도 및 언 어상의 이해 부족으로 인해 정부조달 시장 참여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 고 볼 수 있다.24) 이는 입찰공고 전에 발주자와 이와 관련된 정보자를 통해 사전정보를 입수해야만 그에 맞는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의 미이다. 또한 각 지방정부조달은 전국적인 언론매체 보다는 지방 언론 매체에 정부조달 입찰정보를 발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타 지역 공급상이나 외국기업 공급상에게는 조달정보를 획득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정부조달 시장 내의 입찰정보 불균형 문제는 중국 특 유의 지방보호주의에 기인한 것으로 현재 미국, EU 등 WTO 회원국들 은 중국이 WTO 가입 당시 약속한 바와 같이 정부조달 시장개방과 입 찰제도 투명성 제고와 관련한 WTO-GPA 가입 협상에 조속히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25) 왜냐하면 이러한 중국 특유의 폐쇄적 환경 속에 23) KOTRA, 중국 정부조달시장 진출전략, (서울: KOTRA, 2003) 16쪽 참 조 24) 정하영(2007), 중국 정부조달제도,(서울: 한국정책연구, 제5권) 181쪽 참조 25) EU는 중국이 WTO-GPA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정부조달법>과 <입 찰법>의 대폭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조달협정에 가입하려면 발주처가 정부단위인지 민간단위인지를 명확히 해야 하는데, 중국의 <입찰 법>은 공사계약이 기관의 성격(정부 또는 민간)이 아니라 프로젝트별로 구 분되어 있다. 게다가 <입찰법>의 대상과 <정부조달법>의 대상이 불명확하 게 중복되어 있다. 이들 규정에 따르면 공공 이익, 공공사업 및 이와 관련 된 물자, 서비스, R&D 공급은 반드시 <입찰법>에 적용을 받아야 하며, 그 외 정부기관의 물자, 서비스, R&D 공급은 <정부조달법>에 따르게 되어 있 다. 따라서 현 제도상에서는 프로젝트가 <입찰법>의 소관인지, <정부조달 법>의 소관인가 불분명하다. 현 제도 하에서는 정부기관이 공공의 목적으 로 건축공사를 발주할 경우 <정부조달법>이 아닌 <입찰법>에 따라 진행되 어야 하고, 따라서 정부조달 시장을 개방하더라도 외국기업의 참여는 제한
373 368 中國學 第34輯( ) 서 조달자 조달센터 공급상은 그 지역정부이므로 낙찰에 있어서 당연히 꽌시망 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 즉 현지인 혹은 현지기업이 낙찰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3.3 입찰관련 정액관리 제도의 문제점 현행 정액관리제도의 문제점으로 현행 중국의 건설 프로젝트 입찰은 정부지정 금액을 가격계산 근거로 삼아 고정된 비용으로 낙찰 예상가를 정하고, 이에 가장 근접한 입찰가격을 제시한 참가 기업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주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26) 그러나 이러한 정부조달 입찰방 식은 과거 중국 계획경제 시스템의 유산물로 기업의 관리수준에 따른 원가 우위 등의 경쟁력을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입찰시행자가 가 장 적은 비용으로 우수한 도급자를 고르는데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변화와 개혁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27) 3.4 입찰가격의 누출문제 특히 지방정부조달의 경우 입찰최저가격의 누출문제가 종종 있다. 규 정에 따라 최저기준가격을 편성하는 단위와 인원은 상응하는 기술자격 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區정부 및 縣급정부에서는 전문 인력이 부족하 여 최저기준가격을 편성하는 단위와 인원은 상대적으로 한정되어 있어, 담당자의 신분이 이미 시장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응찰 공 급상은 입찰가격을 제시하기 전에 미리 꽌시망 을 통해 입찰최저가격을 관련 담당자를 통해 미리 알아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28) 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EU는 현재의 정부조달 및 입찰 제도는 정부의 정책적 선택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만큼 정부기구를 소유 권이나 법률적 형태보다 기능적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중앙정 부, 기타 정부, 기타 기관으로 구분해야 하며, 이들 정부기관의 조달은 <입 찰법>이 아닌 <정부조달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법 률은 <정부조달법>은 정부기관의 모든 조달 업무를 담당하고, <입찰법>은 정부기관 이외의 입찰에 적용되도록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6) 马海涛외 我国政府采购制度研究 (北京 北京大学出版社, 2007) 36쪽. 27) KOTRA, 중국 정부조달시장 진출전략, (서울: KOTRA, 2003) 16쪽.
374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와 사례조사를 통한 문제점에 관한 연구(박승찬) 불명확한 입찰평가기준의 문제점 지방정부 조달시 불명확한 입찰평가기준으로 중국의 현행 입찰제도는 전체 전문가 DB에서 관련 전문가를 선정하여 평가 위원회를 구성하도 록 하고 있으며, 이러한 방법이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매우 효 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각 분야의 분류가 세분화되어 있지 않고 정확 하지 않아 특정 영역의 공사 프로젝트에 그 분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는 인원이 평가 위원회에 선발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따라 서 외국기업의 중국 공사 입찰 프로젝트 참여시 불공정한 평가 심사기 준에 의해 유찰되는 사례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29) 초청입찰의 경우 평 가위원회는 조달자 대표, 기술감독국, 정부조달센터의 각자 1인으로 구 성하고 전문가를 초빙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縣級정부 혹은 區정 부 에서는 일반적으로 금액이 적은 상품은 조달자와 區 정부조달센터가 개표를 조직하고, 조달센터는 조달자와 사전에 소통하여 낙찰자를 내정 하는 경우도 있다.30) 입찰평가 관련 <정부조달법>의 경우 조달자는 정부조달에 참가한 공급자에게 관련 자질 증빙서류와 실적상황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본 법이 규정한 공급자 조건과 조달항목에 대한 특정요구에 따라 공급 자의 자격을 심사할 수 있다 31)는 추상적인 규정만이 존재하고 있다. 즉, 공급자 및 서비스 제공자의 자격심사규정과 같은 자격심사절차 (Qualification of suppers and service providers)에 대한 규범적 규정 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WTO GPA 제9조에서 밝히고 있는 정부조달에 대한 공급자 및 서비스 제공자의 자격심사와 관계되는 내용은 입찰 공표에서부터 언급되고 있다. 입찰공표는 자격심사를 위한 충분한 여유를 갖고 공표되어야 하며, 심사과정에서 입찰참가 자격요건 28) 谷辽海 中国政府采案例评析 (北京 群众出版社, 2005) 42쪽 참조정 리. 29) 谷辽海 中国政府采案例评析 (北京 群众出版社, 2005) 124쪽. 30) 중국 정부조달망, ( <县级政府采购的问题及出路> 31) 중국 <정부조달법> 제23조 참조.
375 370 中國學 第34輯( ) 은 해당 계약의 이행을 보장할 수 있는 기업의 능력을 확인하는데 필수 적인 것들에 대해서만 국한되며, 국내의 공급자 및 서비스 제공자 사이 의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32) 그리고 입찰에 대한 심사결과나 결정은 당사자에게 통지해야 하고, 각 조달기관 및 그 산하 조직은 구체적인 필요에 의해 상이한 자격심사절차를 사용해야 하는 경 우를 제외하고는 단일한 자격심사절차를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 다. 따라서 입찰이 보다 공개적이고 투명해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중국 <정부조달법>상에서 공급자 및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자격심사에 대한 구체적인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정부조달법>내에 구체적인 입찰평가 방법에 대한 규정이 미비 되어 있기 때문에 입찰평가방법에 대해서는 중국의 <입찰법>에 나타나 있는 입찰 평가조항에 근거할 수 밖에 없다. <입찰법>에 나타나 있는 입찰평가규정(評標)을 기준으로 볼 때 그 평가는 발주자가 법에 따라 구성한 입찰평가위원회를 통하여 비 밀리에 이루어지게끔 되어 있다. 입찰평가위원회는 입찰기관의 대표와 관련 기술 경제전문가들로 구성 된다.33) 위원수는 5명 이상의 홀수이어야 하며, 그중 기술 및 경제 분 야의 전문가가 적어도 2/3이상이어야 한다. 여기서 전문가는 관련분야 에 8년 이상 종사하거나 또는 이와 동등한 전문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발주자가 국무원 관련부문 또는 성 자치구 직할시 인민정부 관련 부문 에서 제공한 전문가 명단 또는 입찰대리기관의 전문가 DB에서 선정한 다. 전문가 선정방법으로 입찰 프로젝트에서는 무작위 추출방식을 채택 할 수도 있고, 특수 입찰 프로젝트에서는 발주가가 직접 정할 수도 있 다. 물론 응찰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관련 프로젝트 입찰평가위원 회에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 34)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방 의 경우 입찰평가 위원회 명단이 이미 노출되거나 특정기업에 유리한 32) Cao Fuguo, John Colling, Peter Trepte(2007). China's Accession to the Government Procurement Agreement and Oppertunities for Domestic Reform: a Study in the Light of EU Experience. EU-China Project.( 33) 중국 <입찰법> 제37조 및 <입찰평가 전문가 및 전문가 데이터 관리 잠정 방법> 제7조 규정 참조. 34) 중국 <정부조달법> 제37조 참조.
376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와 사례조사를 통한 문제점에 관한 연구(박승찬) 371 평가기준이 선정되는 경우가 있다.35) 3.6 낙찰 원칙의 문제점 중국 <정부조달법> 입찰절차 중 낙찰(中標)과 관련해서도 중대한 문 제점이 있다. 현재 <정부조달법>에서는 낙찰원칙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 지 않다. 만약 <정부조달법>상에서 공개입찰의 낙찰원칙을 찾자면 이러 한 정부조달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채택원칙을 적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중국의 <정부조달법>에서는 정부조달이 평균시장 가격인 하(lower-than-average market price)로 조달된 상품이나 서비스 중 에서 효율성이 높으며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채택함을 규정하고 있 다.36) 하지만 이러한 채택원칙을 낙찰원칙으로 사용할 경우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즉, 평균시장가격이라는 낙찰원칙은 WTO GPA 新규정 제15조 제5항에 존재하는 최저낙찰가 조항과도 위배되며37), 현재 중국 <정부조달법>에서 공개입찰의 경우 채택하게끔 규정하고 있는 <입찰 법>상의 응찰가격이 가장 낮아야 한다는 낙찰조항38)과도 충돌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러한 관행과 원칙을 채택하더라도 정부의 가격평가 에 대한 공정성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규정과 시행세칙이 마련된 이후에 실시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3.7 음성조항 문제 국제입찰규정 혹은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정을 두어 많은 외지 공급상 과 외국계 공급상의 정부조달 시장진입을 제한하거나 배척함으로서 특 정의 꽌시망 에게 낙찰되도록 하는 것을 음성(陰性)조항 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현실에 맞지 않는 입찰조건을 요구하거나, 지나친 애프터서 35) 谷辽海 中国政府采案例评析 (北京 群众出版社, 2005) 98쪽 참조. 36) 중국 <정부조달법> 제17조 참조. 37) WTO GPA 제13조 4항에서는 낙찰은 입찰공고나 입찰 설명서의 주요 요 건에 합치 또는 부합하는 최저가격을 제시하거나 또는 평가에서 가장 유리한 입찰자를 낙찰자로 선정해야 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38) 중국 <입찰법> 제41조 참조.
377 372 中國學 第34輯( ) 비스를 요구하거나, 약속위반 책임을 엄격히 적용하는 규정을 두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 지불방식과 기한요구의 규정을 둠으로서 외지 공급상 과 외국계 공급상에게 많은 심리적 부담감을 갖게 함으로서 응찰을 포 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은 특정 관계의 기업을 낙찰하게 하 기 위한 것으로, 이후 경쟁자들에게 불만을 미리 없애고 또한 감독관리 기관의 감독을 회피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불공정 입찰의 경우 대부분의 공급상들은 이러한 음성 조항으로 인해 응찰 참여의 피 로감을 느끼게 되고 정부조달 활동을 소극적으로 하게 만든다. 반면에 특정관계에 있는 꽌시 네트워크 는 종종 높은 가격으로 입찰에 참가하 기 때문에 조달비용이 증대되고 조달의 질을 확보할 수 없는 문제점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음성적 관행으로 인해 지방정부의 부패행위가 더욱 창궐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39) 4. 사례연구 중국의 입찰제도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도입과 함께 발생하였지만, 법 률과 제도상의 미비로 정부와 기업간 결탁과 이에 따른 불법과 탈법이 공공연히 진행되고 있어, 미국, EU등 서방 주요 국가로부터 이에 대한 지속적인 시정 요구가 뒤따르고 있다. 중국정부는 WTO-GPA 규정과 FTA 체결 확대를 위해 입찰제도의 규범화를 위한 점진적인 노력이 진 행되고 있다. 이번 사례연구는 각종 문헌조사와 현장방문을 통해 작성 되었다. 현장방문은 2007년 9월부터 2008년 6월까지 북경, 상해, 요령 성 등 대도시에서 진행하였으며, 일부 기업명은 요청에 의해 밝히지 않 기로 한다. 4.1 건설업체의 중국진출 사례 (1) 개황 39) 중국 정부조달망, ( <对隐性条款说不> 기사 참조.
378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와 사례조사를 통한 문제점에 관한 연구(박승찬) 373 한국기업의 중국 건설관련 입찰 사례는 대부분 대기업 형태의 투자개 발형 공사 입찰에 참여하고 있는 상태이다. 성공 사례로는 삼성물산 및 삼성엔지니어링이 추진한 고급주택시장, 도시기반시설(상해시 내부순환 선 프로젝트), 대림이 남경(南京)시에서 수주한 석유화학플랜트 분야, 삼능건설의 산동성 청도시 주택건설 및 연태시 부동산 개발 등 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소규모의 환경설비 분야 입찰에 최근 낙찰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정부조달 건설시장 진출은 고속도로관리공단의 요녕성 심양시 도로건설 사업 진출이 있는데 도로건설 사업 분야에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이다.40) 고속도로관리공단은 1999년 심양시 산하 국유기업 인 沈陽高等級公路建設總公司와 합작하여 沈陽極東公路工程有限公司를 설립하였다. 이 회사는 중국 지방정부가 발주한 요령성 관내 도로건설 사업에 입찰, 요령성 금주-조양간 5,485km 도로를 공사하는 등 지금까 지 고속도로, 지방도로 등의 건설과 노면개보수 작업을 수주하였다. 그 러나 동 회사는 중국측 합작파트너가 국유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전환 되고, 입찰경쟁 격화, 그리고 고속도로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 입찰할 수 있는 건설사의 자격이 강화되면서 최근 들어 지방도로와 같은 중소 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는데 그치고 있다.41) 2002년 해외건설협회와 한 국건설 산업연구원이 중국 진출 경험이 있거나 계획 중인 국내 건설업 체 27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중국 건설시장 진출의 장애요인으로는 시장의 불확실성(24.7%)과 사회주의체제 특유의 체제 적 특성(24.4%), 하도급공사관리 등 시공 상의 어려움(18.1%), 꽌시 구 축과 관리(16.1%), 국내기업의 열악한 경영여건(12.8%), 정부의 해외건 설지원 미흡(4.2%) 등이 지적되었다.42) 따라서 합작 형태로 진출한 고 40) 한국 기업이 중국 관공서를 건설한 실적이 없고, 정부관련 건설도 기술공정 이 까다로운 발전소, 플랜트임을 감안하면, 중국기업과 입찰 경쟁하여 단순 건설 공사를 수주한 예는 거의 없다고 현지 기업들은 애기했다. 41) 담당자와의 인터뷰 내용으로, 중국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1급 도로건설자격증(道路施工资质证书)가 필요한데, 이 회사는 2급 자격증만을 갖 고 있어 대형 프로젝트 참여가 쉽지 않았다. 1급 자격증을 받으려면 6천만 위엔의 등록비와 고급엔지니어 20명, 중급엔지니어 80명, 기술자 200명을 갖 춰야 하며, 2급 자격증은 절반 정도의 인력만 있으면 된다. 42) 홍준표 외. 중국 건설시장 중장기 진출전략, (서울: 건설교통부, 2002) 참조.
379 374 中國學 第34輯( ) 속도로관리공단의 경우에도 중국 현지 기업에 비해서는 하도급 관리나 인적 네트워크 구축 측면에서 열세에 있을 수밖에 없다. (2) 시사점 외국기업의 중국 건설시장 진출조건을 보면, 외국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분야에 한해 중국정부가 발급해 주는 외국기업공사도급 자격증 (外國企業承包工程資質證) 은 외국인의 전액투자 및 기부프로젝트, 국제 금융기관 차관프로젝트, 중국기업이 수행하기 어려운 분야의 J/V 프로 젝트로 제한되어 있다.43) 따라서 외국기업이 진출한 분야는 금융이 수 반된 BOT사업과 부동산 투자개발사업, 그리고 현지기업이 수행할 수 없는 특수기술 플랜트 공사분야 정도이다. 따라서 중국특유의 꽌시 메 커니즘, 즉 인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입찰관련 구조에 대한 이해가 선행 되어야 하고, 정부차원의 한중 FTA 정부조달 분과 협상에서 중국정부 의 내국민대우 원칙에 대한 적극적인 준수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4.2 북경 H 오수처리장 입찰 성공사례44) (1) 개황 자본금 14억 원의 H2L 주식회사는 북경 H오수처리장에 섬모상담체 를 이용한 고도처리공법(CNR Process)으로 진출한 기업으로, 북경 방 장오수처리장의 설계유량은 100 /日, Pilot 규모는 약 100평 정도이 다. 이 업체는 2002년 4월에 섬모상생물막을 이용한 오수 및 페수처리 방법 으로 중국 내 특허를 취득하였고, 이러한 기술력이 북경시 정부에 의해서 인정되어 Pilot 방식으로 중국 현지 입찰에 성공한 경우이다. 43) <공사 건설 프로젝트 화물 입찰방법> 정리. 44) 환경관리공단, 중국 환경시설 입찰제도 분석 및 국내기업 진출확대방안, (서울: 환경관리공단, 2004), 103쪽 참조 및 2008년 1월 14일 현장 인터 뷰 내용정리.
380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와 사례조사를 통한 문제점에 관한 연구(박승찬) 375 (2) 시사점 H2L의 H 오수처리장 수주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지 시장에 진출했 다는 점과 전시관을 적절히 활용했다는 점, 마지막으로 1년간의 Pilot을 통한 진출 전략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우리기업들이 중국시장에 효과적 으로 진출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우선 중 국정부의 특허를 취득함으로써 기술력을 인정받은 후 1년간의 Pilot 운 영을 통해 신뢰감을 증대하는 한편 기술력을 입증한 H2L의 진출 전략 은 효과적이라고 평가된다. 국내기업의 기술력은 가격과 노하우면에서 경쟁이 있지만 현지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현지 특 허 취득으로 해결하였다. 한편 진출방법에 있어서도 전시관을 활용함으 로써 현지 진출을 보다 수월히 했다는 점도 성공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4.3 쓰레기 매립장 건설 입찰사례(낙찰자 바꾸기)45) (1) 개황 H사는 하수 분뇨 축산폐수 등 유기성 폐수의 오염물질 처리를 전문으 로 하는 수처리 환경전문기업으로 낙찰경험이 많은 국유기업이다. 최근 이 회사는 중국 후난성 침주시와 4만 톤의 처리가 가능한 150억원 규 모의 쓰레기 매립장 건설 입찰에 참여하였다. 그런데, 결과는 민영기업 인 B사가 H사에 비해 공사경험과 규모가 작다고 과소평가한 결과 낙찰 에 실패하였고. 해당 시정부의 가격은 450만 위엔 으로 낙찰받았다. H 사는 520만 위엔을, B사는 430만 위엔을 적어냈었다. 그러나 이후 H사 는 B사에게 접근하여 낙찰을 포기하게 하고, 재입찰을 통해 500만 위 엔으로 낙찰 받았다. H사는 B사에게 430만 위엔으로 이윤창출이 어렵 다고 강조하고, 낙찰포기 대가로 20만 위엔을 주기로 하였다. 이렇게 되면 B사는 5만 위엔의 보증금을 포기하더라도 15만 위엔의 순수입이 발생하고, H사 역시 이 공사로는 수익을 낼 수 없지만, 정부조달시장에 45) 2008년 1월 20일 H사와 면담한 자료를 근거로 작성하였다.
381 376 中國學 第34輯( ) 서 수주 실적이 늘어나므로 다른 공사의 입찰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것 이다. (2) 시사점 H사는 쓰레기 매립장 건설에 성공적으로 낙찰되었지만, 중국 <정부 조달법> 제77조 3항을 위반하였다.46) 따라서 조달금액의 05-1%의 벌 금을 부과하고, 향후 최대 3년간 입찰참여자격을 박탈하며, 불법소득은 몰수된다. B사 역시 <정부조달법> 제77조 규정에 따라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하며, 입찰보증금도 몰수된다. 그러나 B사의 경우 입찰보증금만 몰수당하였고,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본 사례를 통해 알 수 있 는 것은 첫째, 중국 지방정부의 경우 아직도 <정부조달법>과 <입찰법> 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은 중앙정부가 새로운 법 률을 제정하더라도 본 법이 지방정부로 내려가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 게 일반적이다. 둘째, 내부 고발자가 없는 상태에서 두 회사의 담합행위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낙찰자인 B사가 가 낙찰을 포기함으로서 자연스럽게 H사가 낙찰되는 것으로 되었기 때 문에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셋째, 중국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꽌시 입찰에 어느 정도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동 사례에서 보았듯이 만약 <정부조달법>과 <입찰법>에 대한 교육이 반복되고, 다른 지역에서 불법행위로 처벌을 받는 사례가 발생하게 된 다면 국영기업들이 쉽게 입찰담합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처 럼 현재 중국 입찰 관련 프로젝트에서 합법과 비합적 상황이 상존하고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지방정부 산하 국영기업이 발주 공사를 거 의 대부분 수주하는 양상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에 H사 와 경쟁하였던 B사는 국영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전환된 회사로 사실 상 H사와 동등한 위치에서 입찰경쟁을 하였다. 따라서 향후 국영기업의 46) 중국 <정부조달법> 제77조 3항에 의하면, 조달자, 기타 공급상 또는 조달 대행기관과 악의로 내통할 경우 조달금액의 0.5% 이상 1%이하의 벌금을 부 과하고 불법행위 기록명단에 기입하는 동시에 1-3년간 정부조달 활동에 참 여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며, 불법소득은 몰수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382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와 사례조사를 통한 문제점에 관한 연구(박승찬) 377 독점형태로 진행되었던 입찰 시스템도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5. 결론 및 시사점 중국 입찰제도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서 많이 연구되지 않은 분야이 다. 본 연구는 중국 입찰제도의 구조적 문제점 및 특징을 기존 문헌조 사를 기초로 중국 현지조사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 다. 현지조사를 통해 아직까지 중국 지방정부 입찰의 경우 어느 정도의 중국적인 상관행과 꽌시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47) 그리고 이것은 사회주의 적인 것도 아니고, 시장 경제적이지도 않은 점진적인 개혁이 야기한 중국식 특유의 분야라고 할 수 있다.48) 따라서 중국 입 찰방식과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중국의 경우 입찰방식에서 발주자의 권한이 크게 남용되고 있는 점, 이것은 WTO-GPA 제7조에 의거한 입찰절차에서 공개입찰구매, 지명경 쟁 입찰구매 및 제한 입찰구매 등을 주요한 구매방식으로 규정하면서, 협상입찰 방식을 보충방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조 달법> 제26조에서 '정부조달 시 ①공개입찰 ②초청입찰 ③경쟁성 담판 (경쟁성 협상 구매방식) ④단일공급자 구매방식 ⑤가격조회 구매방식 ⑥국무원 정부조달 관리 부문이 인정한 기타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그 중 공개입찰방식을 주요 방식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 질적으로 물품조달 부문에서 일반경쟁 방식보다 경쟁성 담판 등 발주자 권한이 강한 방식을 채택함으로서 외국기업의 중국입찰 참여를 우회적 으로 차단하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례조사를 통해 2007년 12월 중국정부가 WTO-GPA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이후 부분적으로 나마 중국정부조달 시장에서의 입찰 절차와 방식의 투명성이 제고되고 있고, 점차 관련 법률을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47) 현지조사 대상기업의 80% 이상이 중국 지방정부 입찰의 경우 특수 지역관 행과 꽌시가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48) 최의현, 邹超, <사례조사를 통한 중국 정부조달시장의 변화에 관한 연구>, 중소연구 (서울: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2008) 120쪽.
383 378 中國學 第34輯( ) 본 연구가 현재 진행 중인 한중 FTA 협상 차원에서 한국정부에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 정부조달 시장에 대한 정보 및 커뮤니 케이션 구축이다. 정부조달의 국산품 우대정책으로 인해 해외에서 조달 하는 품목은 중국 내에서 조달이 불가능한 품목 서비스로 제한하고 있어 해외로부터의 조달은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 질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 서 의료첨단설비, 통신첨단설비, 생물공학 첨단장비, 우주항공 첨단설비 등 품목은 진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중국의 대형 국 책사업에 따른 기회를 활용하는 것이다. 2010년 상해 EXPO 및 광주 아 시안 게임 관련 행사장, 경기장, 환경, 통신건설사업, 관련 소프트웨어 구매 등의 정부조달시장이 확대될 전망이다. 또한 서부대개발 관련 도로, 철도 등 운송망 건설 프로젝트, 중서부 지역의 중소도시 개발 사업, 환경 보존 사업 등 건설 분야 및 굴삭기 등 건설장비, 발전설비 및 송배전 관 련 설비 분야의 입찰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 중국정부 정보화 사업에의 참여 기회 모색이다. 중국 각급 교육기관의 정보화에 따른 컴 퓨터 및 관련 기자재 시장의 확대가 기대된다. 이외에 중앙 및 지방정부 가 조달하는 사무용품, 공무차량 및 정부 사무실 등의 규모는 매년 3,000억 위엔 정도로 추정된다. 넷째, 국유기업의 구매시장을 우선 공략 이다. 정부조달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되기 전까지는 국유기업의 시설개 조 사업, 외국정부 또는 국제기구의 차관으로 추진되는 사업을 중심으로 중국시장을 공략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중국은 WTO 가입과 더불어 국 유 혹은 국유투자 기업에 의한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입이 상업목적이고 정부용이 아닐 경우 시장접근을 허용하고 최혜국대우 요건에 따르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단시간적으로 정부조달 시장보다 중국 현지 국유기업 입찰에 참가하는 게 더욱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KOTRA, 중국 정부조달시장 진출전략, (서울: KOTRA, 2003) 박승찬, <중국 정부조달 시장의 개방과 한국에 미치는 영향 분석>, 중 국과 중국학, (경산: 영남대학교 중국연구센터, 2008) 변희석, <중국 정부조달협정(GPA)가입협상 주요 고려사항>, (서울; 주중
384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와 사례조사를 통한 문제점에 관한 연구(박승찬) 379 한국대사관, 2007) 양평섭, <중국 정부조달법 제정의 의미와 시사점>, 한국무역협회 무역연 구소, 7월, (서울: 한국무역협회, 2002) 서창배, <중국의 정부조달 시장개방에 대한 연구>, (서울: 서석사회과학 논총, 제2권 1호) 조달청, <중국의 조달업무 및 법규현황>, 조달시장동향, (서울: 조달 청, 2008) 주중한국대사관 조달관, <중국의 조달업무 현황과 정부조달 정책 활용방 안>, (북경: 주중한국대사관, 2008) 중국 정부조달망( 중국 입찰망( 장동식, <중국의 정부조달법과 WTO 정부조달협정에 관한 비교연구>, 통상법률, (서울; 2005) 정하영, 중국의 정부조달제도, 한국정책연구, 제5권 제2호, (서울; 2007) 최의현, 邹超, <사례조사를 통한 중국 정부조달시장의 변화에 관한 연 구>, 중소연구 (서울: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2008) 홍준표 외. 중국 건설시장 중장기 진출전략, (서울: 건설교통부, 2002) 환경관리공단, 중국 환경시설 입찰제도 분석 및 국내기업 진출 확대방 안, (서울: 환경관리공단, 2004) 谷辽海 中国政府采案例评析 (北京 群众出版社, 2005) 姜 晖 <WTO 政府采购协议与我国政府采购法比较研究>, 国际商务研 究 2003年 第6期, (北京 : 2003) 何增科 政府采购招标投标法的适用 (北京 企业管理出版社, 2002) 罗德明 都东跃 <我国政府采购管理体系探析> 经济体制改革 2003年第3期, (北京 经济体制改革, 2003) 马海涛 姜爱华 我国政府采购制度研究 (北京 北京大学出版社, 2007) 肖北庚 国际组织政府采购规则比较研究 (北京 中国方正出版社, 2003)
385 380 中國學 第34輯( ) 肖北庚 政府采购之国际规制 (北京 法律出版社, 2005) 中國國際招標網, 如何開啓政府採購之門 ( Cao Fuguo, John Colling, Peter Trepte. China's Accession to the Government Procurement Agreement and Oppertunities for Domestic Reform: a Study in the Light of EU Experience. EU-China Project. ( 2007) USCBC. China's Implementation of Its World Trade Organization Commitments An Assessment by the US-China Business Council (Trade Policy Staff Committee Hearing September 27, 2007). The US-China Business Council <中文提要> 通过案例调查研究中国招标制度的问题和变化 到2000年为止, 中国政府正在与40多国家和地区缔结或进行FTA谈判 中国现在以地区均衡发展为目标 全国性的更换和采购了社会间接设备 尤 其是随着2008年北京奥运会 2010年上海世博会 广州亚运会等国际型的活 动即将到来 对韩国企业来说, 参加中国政府采购市场的非常好的机会 因此 为了进军中国政府采购市场了解中国招标投标制度是非常重要的 关于政府采购市场的市场接近(Market Access)方面 中国一直采取了 建设以及机械设备市场的进入壁垒 而且中央和地方政府都有着不同的特点 和管理机制 比如 不同的申报和许可制度 地方保护主义等 中国政府已 经制定和实施了2000年 <招标投标法> 2003年 <政府采购法> 因此 本论文是研究和分析中国<招标投标法> <政府采购法>实施以 后 在招标投标过程中的透明度和规范化方面的问题和变化 为了进一步分 析其问题和变化采取了案例调查方法 本人搜集了庞大的有关资料以及亲自到中国去进行实地考察 在中国进行招标投标时 大部分政府和企业之间的行为 一般来说 有 中国特点的招标机制上不是按照有关法律和政策来决定 而是大部分按照个 人的人情和关系网来决定中标的可能性较大
386 중국 입찰제도의 변화와 사례조사를 통한 문제점에 관한 연구(박승찬) 381 本论文的特点是第一 有关研究中国投标招标的制度的非法性 非合理 性方面 可以说头一次进行实地考察 第二 在韩中FTA谈判方面给韩国政 府提供了实质性的资料 与此同时 给韩国企业提供了战略性的进军方案 关键词 政府采购 投标招标, FTA, 案例调查, 地方保护主义, 韩国企业 투 고 일 : 심 사 일 : 게재확정일 :
387
388 附錄 中國學 발행 규정 383 : 中國學 발행 규정 제 1조 (명칭 ) 본 학회지의 영문 명칭은 학 한자 명칭은 中國學 으로 한다 Chinese, Studies, 한글 명칭은 중국. 제 2조 (발행처 ) 학술지의 발행처는 대한중국학회이며 출판인쇄는 본 학회와 계 약한 출판사로 한다,. 제 3조 (발행회수) 본 학회지의 발행회수는 년 회로 한다 3. 제 4조 (발행일정) 본 학회지의 발행은 년 회 발행하되 다음과 같은 일정에 의해 발행한다 학술지 발행 시기 학술지는 매년 월 일 월 일과 월 일 회 발간한다 원고 마감 시기 월 일 발행분은 월 일 월 일 발행 분은 월 일 월 일 발행분은 월 일을 원고 마감일로 한 다 단 우송된 원고는 우송일자 소인을 기준으로 위의 기준을 적용 한다 학술지의 발행과 관련한 구체적 일정은 다음 표와 같다 3. 1) 31 :, 3 30, ) : , , 심사 절차 및 일정표 발행월 월 원고마감 월 일 편집위원회 개최 심사위원 선정 월 일 논문 및 심사표 발송 4 월 월 일 월 일 10 월 월 일 월 일 11 10
389 384 中國學 第34輯( ) 평가 의뢰 논문심사 논문심사 결과 취합 및 게제 여부 결정 결과 통보 게제여부 및 수정지시 통보 원고 수정 및 반송 수정 원고 재심사 중국학 편집 및 인쇄 중국학 발간 월 월 월 월 월 월 월 ( ) 일 일 일 일 일 일 일 월 월 월 월 월 월 월 일 일 일 일 일 일 일 월 월 월 월 월 월 월 일 일 일 일 일 일 일 제 5조 (논문의 투고, 심사, 게재확정일의 표기 ) 소정의 심사절차에 의해 게재가 확정된 논문에 대해서는 개별논문에 대해 심사절차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당해 논문의 투고일, 심사개 시일, 1차 수정일, 2차 수정일, 게재확정일 등 심사단계를 표기한다. 제 6조 (원고 수집, 검토 및 채택 ) 원고 수집은 본 학회 편집위원회에 일임한다 원고 검토 및 심사 게재 여부는 학회 편집위원회에 일임한다 인쇄 전 기타 제반업무는 본 학회의 사무국에서 논의하여 시 행한다 ,. 3.. 제 7조 (심사료 및 게재료 ) 논문 투고시 만원의 심사료를 납부한다 논문의 게재 확정시 저자는 게재료 만원 연구비 수혜논문은 만원 을 입금해야 한다 학회는 출판 후 논문 권과 별쇄본 부 를 저자에게 우편 발송한다 단 별쇄본의 추가인쇄비용은 저자가 부담한다 기타 발행비용 및 수입에 관련된 사항은 학회 사무국에서 논 의하고 학회의 동의를 얻어 결정한다 ). ( 1.,
390 附錄 大韓中國學會 會則 385 : 大韓中國學會 會則 第1章 總 則 第1條 本會는 大韓中國學會라 稱한다. 以下 本會라 稱함. 第2條 本會의 本部는 會長所屬校內에 둔다. 第3條 本會는 中國學 관련 분야를 硏究함으로써 韓國의 학술문화 發展 에 寄與함을 目的으로 한다. 第4條 本會는 第3條의 目的을 達成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活動을 한 다. 1) 國內 國際學術會議 및 學術講演會 開催 2) 會誌 및 其他 出版物 發刊 3) 國內外 學術團體와의 學術 및 文化交流 4) 其他 必要한 事業 第2章 會 員 第5條 本會의 會員은 正會員 準會員 名譽會員 團體會員으로 한다. 第6條 本會의 會員은 다음과 같은 資格을 가지고 本會의 趣旨에 贊同하
391 386 中國學 第34輯( ) 는 자로서 正會員 2명 以上의 推薦으로 任員會의 承認을 얻어 정한 다. 1) 正會員 : 大學 및 이와 同等한 敎育機關에서 中國學 관련 講 議를 맡고 있는 講師 以上의 사람, 또는 이와 同等한 資格을 갖춘 사람. 2) 準會員 : 大學院에서 中國學 관련 분야를 專攻하는 사람. 3) 名譽會員 : 本會의 目的에 贊同하고 本會의 發展에 功勞가 顯 著한 사람. 4) 團體會員 : 本會의 趣旨에 贊同하는 단체. 第7條 本會의 會員은 다음과 같은 權利와 義務를 가진다. 1) 正會員은 總會에서의 議決權과 任員의 選擧權 및 被選擧權을 가지며 本會의 活動을 위한 會費納付 및 會則을 遵守할 義務를 가 진다. 2) 準會員 名譽會員 團體會員은 本會가 主催하는 各種 行事에 參 與할 수 있으며 準會員은 總會의 議決에 따른 所定의 會費納付 義 務를 가진다. 第8條 本會에 加入한 會員은 本人의 事情에 따라 任意로 脫退할 수 있 다. 第3章 任 員 第9條 本會는 會長 副會長 運營委員 理事 監事 등의 任員을 두고, 顧問 名譽會長을 둘 수 있다.
392 附錄 大韓中國學會 會則 387 : 第10條 任員의 任期는 2년으로 하며, 1회에 한하여 連任할 수 있다. 단, 顧問과 名譽會長의 임기는 예외로 한다. 第11條 會長 1명 副會長 약간 명 運營委員 약간 명 監事 2인은 總會에서 選出하며 理事 약간 명은 任員會의 認准을 얻어 會長이 任命한다. 顧問 名譽會長의 경우는 會長이 추천하고 總會에서 추대한다. 第12條 會長은 本會를 代表하며 本會의 諸般業務를 統轄하고 總會 및 任 員會의 議長이 된다. 第13條 副會長은 會長을 補佐하며 會長 有故時에 首席 副會長이 이를 代 理한다. 第14條 運營委員은 總會에서 委任된 事項이나 其他 重要한 會務를 協議 하고 處理한다. 第15條 理事는 會長을 補佐하며 總務 學術 編輯 出版 硏究 涉外 企劃 등 本會의 會務를 分擔하여 擔當한다. 第16條 監事는 本會의 會計를 監査한다.
393 388 中國學 第34輯( ) 第4章 會 議 第17條 本會의 會議는 定期總會 臨時總會 任員會 編輯委員會 硏究倫理委 員會로 하고 構成會員 1/3 以上의 出席으로 成立된다. 第18條 本會의 會議는 다음과 같은 경우 會長이 이를 召集한다. 1) 定期總會: 每年 8월중 2) 臨時總會: 會長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및 正會員 3분의 1 이상이나 任員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개최할 수 있다. 3) 任員會: 會長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나 任員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단 任員會 任員은 會長 副會長 理事에 한하며 顧 問 名譽會長 및 監事는 除外된다. 第19條 本會의 議決은 出席會員 過半數의 贊成으로 한다. 第20條 總會의 議決事項은 다음과 같다. 1) 會長 副會長 運營委員 監事의 選出 및 顧問 名譽會長 추대 2) 豫算 및 決算 3) 會則改正 4) 事業計劃의 議決 5) 其他 必要한 事項 第21條 任員會의 議決事項은 다음과 같다. 1) 總會에서 委任받은 本會의 運營 및 事業의 執行에 관한 事項
394 附錄 大韓中國學會 會則 389 : 2) 會則改正案 3) 事業計劃案과 豫算決算案 4) 新入會員 審査 및 理事의 認准 5) 其他 必要한 事項 第22條 編輯委員會는 本會의 論文集 및 기타 刊行物의 編輯을 주관하고 論文審査委員을 委囑한다. 1) 編輯委員會는 會長이 任命한 中國學 關聯分野의 專門家 10명 전후의 委員으로 構成한다. 2) 編輯委員長은 編輯委員會에서 선임하되, 編輯理事를 겸하며, 委員會의 當務를 主宰한다. 3) 編輯委員會에서 委囑하는 論文審査委員의 構成과 論文審査에 관한 細則은 別途로 정한다. 第23條 硏究倫理委員會는 本會의 論文集 및 기타 刊行物의 연구윤리 관 련 사항을 주관하고 필요시 調査委員會를 구성한다. 1) 硏究倫理委員會는 硏究理事, 編輯委員長, 學術理事를 포함한 5 인 이상의 委員으로 구성한다. 2) 委員長은 會長이 임명하며, 硏究理事를 겸한다. 3) 委員은 會長이 임명하며, 임기는 2년으로 하되 연임할 수 있 다. 4) 기타 자세한 事項은 별도로 제정된 硏究倫理 규정에 따른다. 第5章 財 政 第24條 本會의 經費는 入會金 會費 贊助金 및 其他 收入金으로 充當한다.
395 390 中國學 第34輯( ) 단, 入會金과 會費는 定期總會에서 決定한다. 第25條 本會의 會計年度는 每年 9월 1일부터 翌年 8월말일까지로 한다. 第6章 附 則 第26條 本會則의 改正은 總會에서 正會員 過半數의 出席과 出席會員 3분 의 2 이상의 贊成이 있어야 한다. 第27條 本會則의 施行上 必要한 細則은 總會와 任員會에서 別途로 정한 다. 第28條 本會는 本會則 第4條의 事業을 위하여 必要에 따라서 약간의 分 科를 둘 수 있다. 第29條 本會則에 明示되지 않은 事項은 一般慣例에 따른다. 第30條 本會則은 通過日로부터 그 效力을 發生한다. 제정 개정 개정 개정 개정 1984년 10월 23일 2000년 2월 26일 2001년 8월 20일 2007년 11월 24일 2009년 10월 31일
396 附錄 편집위원회 규정 391 : 편집위원회 규정 편집위원회의 구성 회칙 제4장 제22조에 의거하여 편집위원회를 구성한다. 2) 편집위원회의 임무 편집위원회는 본 학회의 학회지인 中國學 의 편집발행에 관한 제 반 사항을 심의 의결한다. 3) 위원의 선정 기준 가. 전국 각 대학 전임강사 및 박사학위를 소지한 중국학 전공자 나. 연구 활동이 왕성하고 학문적 성취가 탁월한 자 4) 위원의 선정 절차 가. 편집위원은 임원회의에서 토론을 거쳐 선정한다. 나. 전공, 지역, 연령 등을 고려하여 20명 이상의 인원을 추천받아 최 종 10명 전후의 인원을 선정 위촉한다. 다. 최종 선정 위촉된 편집위원 중에서 1인을 이사로 선임한다. 5) 위원의 임기 2년을 원칙으로 하되 횟수의 제한 없이 연임할 수 있다. 6) 위원회의 개최 가. 편집위원회는 편집위원장이 주재한다. 단 심사위원의 위촉에 관한 사항은 학술이사와 협조하여 당무를 주재한다. 나. 매호의 학회지 발간을 위한 제1차 편집위원회는 4월 30일 발행분 은 3월 10일, 8월 31일 발행분은 7월 10일에, 12월 31일 발행분은 11월 10일에 개최한다. 다. 이후의 편집위원회는 학회지의 발행 준비에 따라 편집위원장이 적 절한 시기에 적절한 횟수로 소집 개최한다. 1)
397 392 中國學 第34輯( ) 논문심사 규정 1) 2) 심사의 취지 학회지에 게재될 논문의 질적 수준을 높여 국내외의 중국학 학술발 전을 촉진한다. 심사 시기 매년 4월 30일 발행분은 3월 10일 편집회의를 거쳐 심사를 의뢰하 여 3월 31일 심사를 마감하고, 8월 31일 발행분은 7월 10일 심사를 의뢰하여 7월 31일 심사 마감, 12월 31일 발행분은 11월 10일 심 사를 의뢰하여 11월 30일에 심사를 마감한다. 심사위원의 자격 가. 전국 각 대학의 전임강사 이상, 또는 박사학위를 소지한 중국학 전 공자 나. 투고된 원고와 같은 분야에 관한 저서나 논문을 발표한 자가 있는 자 3) 심사위원의 선정 및 위촉 가. 선정 시기: 심사위원은 매호 학회지 발간을 위한 제1차 편집위원회 에서 위 3)의 심사위원 자격 에 의거 선정한다. 나. 심사위원의 수: 투고된 논문의 1편 당 심사위원 수는 3명을 원칙으 로 한다. 다. 심사위원의 위촉: 선정된 심사위원에 대해서 편집위원장은 지체없 이 일정한 양식의 심사의뢰서와 심사서 양식 및 해당 논문의 사본을 발송하여야 한다. 4) 5) 심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조처 편집위원장은 심사논문 발송 전 당해 논문의 저자를 인지할 수 있는
398 附錄 논문심사 규정 393 : 각 항목, 예컨대 필자 성명, 소속, 그리고 각주 및 참고문헌 중 졸 고 등으로 표기된 부분을 제거하여 필자를 확인할 수 없도록 하여 심 사의 공정성을 확보한다. 심사의 항목 및 배점 가. 심사항목은 체제의 적합성, 논리전개의 명확성, 연구내용의 독창 성, 논문제목의 적합성과 논문의 완성도, 학문적 기여도 의 5항목 으로 한다. 나. 항목 당 배점은 20점으로 한다. 다. 심사의 객관성과 효율성을 위해 필요하다면 심사항목을 변경하거나 증감할 수 있다. 라. 심사항목의 개정은 편집위원회에서 한다. 6) 심사결과의 처리 가. 심사위원 3인의 평가결과가 평균 80점 이상을 득한 논문을 게재하 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나. 편집위원회는 심사위원의 의견을 존중하여 최종 게재 여부를 결정 한다. 다. 편집위원회는 심사결과를 문서를 통해 투고자에게 통고하여야 한 다. 라. 심사결과 심사위원의 의견제시와 편집위원의 판단에 의해 투고자에 게 수정을 요청할 수 있다. 마. 수정 요청에 응하지 않는 논문에 대해서는 게재를 거부할 수 있다. 바. 투고자가 수정 요청에 동의하지 않을 때에는 그 사유를 문서로 개 진하도록 하고 이를 근거로 재심을 할 수 있다. 7) 표절 및 중복게재 금지 가. 심사과정, 혹은 게재이후 표절이나 중복게재의 혐의가 있는 논문은 심사위원회에 통보하여야 한다. 8)
399 394 中國學 第34輯( ) 나. 심사위원회는 편집위원회 회의를 소집하여 통보된 논문의 혐의점을 심사하여야 한다. 다. 표절이나 중복게재가 확인되면 학회에서는 본인의 소명절차를 거쳐 게재불가 혹은 게재취소의 판정을 내린 뒤 최소 3년 이상 논문발표 및 게재를 금지한다. 라. 본 학회지에 투고하고자 하는 자는 연구윤리 규정준수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윤리확약서 제출을 의무화한다. 라. 기타 자세한 사항은 별도로 제정된 <대한중국학회 연구윤리규정> 을 따른다. 9) 심사의 면제 학회에서 초청한 국내외 저명 학자의 원고 및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외국인 초청학자의 논문은 심사를 면제할 수 있다. 심사일정 명시 게재가 확정된 개별논문에 대해 심사절차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당해 논문의 투고일, 심사개시일, 1차 수정일, 2차 수정일, 게재확정 일 등 심사단계를 기재한다. 10) 기타 사항 기타 자세한 사항은 별도로 제정된 <대한중국학회 논문심사세칙>에 따른다. 11)
400 附錄 논문심사 세칙 395 : 논문심사 세칙 대한중국학회 학술지 中國學 의 논문심사 규정 및 편집위원의 선 정기준과 절차를 다음과 같이 정한다. 본 학회지에 게재되는 논문은 중국학 전반과 관련된 각 분야의 연 구논문을 대상으로 한다. 2) 본 학회지에 투고된 논문에 대해서는 다음 항목에 따라 심사하여 게재 여부를 결정한다. (1) 체재의 적합성(20%) (2) 논리 전개의 명확성(20%) (3) 내용의 독창성(20%) (4) 논문제목의 적합성과 논문의 완성도(20%) (5) 연구 결과의 학문적 기여도(20%) 3) 심사 결과는 ⑴ 게재 적합 ⑵ 수정 후 게재 ⑶ 수정 후 재심사 ⑷ 게재 부적합 등으로 나눈다. 4) 상기 3)항의 ⑵에 해당되는 논문은 심사평가서에 의거, 투고자에게 수정 및 보완을 요구할 수 있고, ⑶에 해당되는 논문은 차기 논문집 의 심사 대상에 우선 포함한다. 5) 편집위원회는 학계의 분야별 전공별로 학술 업적이 뛰어난 자를 추 천하여 총회의 인준을 거쳐 구성한다. 6) 편집위원회는 원고의 게재여부를 심사하여 결정한다. 7) 편집위원회는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별도의 논문심사위원회 를 둔다. 1)
401 396 中國學 第34輯( ) 8) 9) 논문심사위원회는 각 분야별로 두되, 3인 이상의 홀수 인원으로 구 성한다. 논문심사위원회는 심사 대상자가 근무하는 대학의 교수는 반드시 피하여 구성하도록 하며, 각 분야의 권위자로 구성하여야 한다. 10) 논문심사위원회에는 외국의 학자도 참여할 수 있다. 11) 편집위원회는 논문심사위원회의 명단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12) 편집위원회는 논문심사위원회의 심사 결과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편집위원회는 논문심사위원회의 동의를 얻은 원고를 게재함을 원 칙으로 한다. 13) 편집위원회 혹은 논문심사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투고된 원고의 수 정을 요구할 수 있다. 14) 본 학회에서 개최한 각종 학술대회에서 발표되고 공개토론을 거친 완성된 논문은 심사를 면제할 수 있다. 15) 원고 작성 규정에 맞지 않는 원고는 편집위원회에서 논문심사를 의뢰하지 아니하고 필자에게 반송할 수 있다. 16) 17) 원고 작성 요령은 별도의 투고규정을 참조한다. 18) 위에 규정되지 아니한 사항은 일반적인 관례에 따른다. 19) 이상의 심사 규정은 편집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수정할 수 있다.
402 附錄 논문투고 규정 397 : 논문투고 규정 1) 2) 3) 4) 5) 6) 원고의 내용 중국학 전반에 관한 연구논문과 번역, 서평 및 학술활동 보고서, 그 리고 연구 자료를 게재한다. 이 중 논문은 학술적 가치를 갖는 내용 과 학술논문의 체재를 갖춘 것을 대상으로 하고, 번역은 중국학에 대 한 고전적 저술 중 학술적 역주를 갖춘 글을 그 대상으로 한다. 사용언어 우리말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할 경우 편집회의의 의결을 거쳐 기타 의 외국어로 된 원고도 게재할 수 있다. 인용문 원전을 표시하여야 하며 외국어의 인용문은 우리말 번역을 제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필요한 경우 인용문에도 주석을 가한다. 분량 논문은 당 학회의 원고작성요령을 준수하여 편집 기준 20쪽을 기준 으로 하고, 이를 초과할 시 초과분에 대한 별도의 조판비는 본인이 부담한다. 게재료 게재된 원고에 대해서 투고자는 소정의 게재료를 납부하여야 하며, 학회에서는 해당 학회지 약간 부와 추인본 약간 부를 증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이버 논문 공개 본 학회지에 게재된 모든 원고는 학회에서 개설한 홈페이지 혹은 관 련 사이버 공간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403 398 中國學 第34輯( ) 7) 초록 논문은 중국어 또는 영어 초록(반쪽 분량)과 주제어(5개~10개)를 첨 부하여야 한다. 심사절차 및 일정 가. 원고마감: 4월 30일 발행분은 2월 28일, 8월 31일 발행분은 6월 30일, 12월 31일 발행분은 10월 30일로 한다. 나. 심사의뢰: 4월 30일 발행분은 3월 10일, 8월 31일 발행분은 7월 10일, 12월 31일 발행분은 11월 10일 이전에 완료한다. 다. 심사기간: 4월 30일 발행분은 3월 20일, 8월 31일 발행분은 7월 20일, 12월 31일 발행분은 11월 20일 이전에 완료한다. 라. 게재결정: 4월 30일 발행분은 3월 31일, 8월 31일 발행분은 7월 31일, 12월 31일 발행분은 11월 30일로 한다. 마. 결과통보(수정지시): 4월 30일 발행분은 4월 10일, 8월 31일 발행 분은 8월 10일, 12월 31일 발행분은 12월 10일로 한다. 바. 수정원고마감: 4월 30일 발행분은 3월 17일, 8월 30일 발행분은 8 월 17일, 12월 31일 발행분은 12월 17일로 한다. 사. 게재최종결정: 4월 30일 발행분은 4월 20일, 8월 31일 발행분은 8 월 20일, 12월 31일 발행분은 12월 20일로 한다. 아. 편집 인쇄: 4월 30일 발행분은 4월 27일, 8월 31일 발행분은 8월 27일, 12월 31일 발행분은 12월 27일 이전에 완료한다. 자. 발간: 4월 30일, 8월 31일, 12월 31일 3회 발간한다. 8) 9) 기타 저자명과 논문 제목은 영문을 병기하여야 한다. 기타 원고 작성과 관 련된 자세한 사항은 원고작성요령 에 따른다.
404 附錄 원고작성 요령 399 : 원고작성 요령 학회지의 원활한 편집과 출판을 위해서 투고규정을 아래와 같이 알 려 드리오니 꼭 규정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1. 한글 워드는 글 프로그램(2005 이상 권장)을 사용하여 주십시오. 중문 워드나 낮은 버전의 글을 사용한 파일은 편집자 임의로 코드 를 변환합니다. 이에 따르는 출력사고는 본인이 책임져야 합니다. 2. 중문으로 작성한 원고의 경우 번체자 또는 간체자 출력을 명기하시 기 바랍니다. 별도의 요구가 없을 시에는 일률적으로 간체자 출력을 합니다. 3. 논문의 작성 양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체여백(F7) 위쪽 60 왼 쪽 50 제 본 스타일(F6) 머리말 10 오 른 쪽 50 본문 왼쪽여 0 0 백 문단 오 른 쪽 0 2 Alt+T 여백 들 여 쓰 10pt(韓) 27pt 기 20pt(中) 줄간격 아래쪽 60 꼬리말 0 4. 인용문 각주 글자 대표 바탕 한자 SimSun SimSun 장평 95 Alt+L 자간 -1 글자크 10 기 바탕 pt 120 바탕 S im S u 95-1 n 전체제목, 장 제목, 절 제목, 이름 및 참고문헌 등 3번에서 언급되지 않은 부분의 양식은 편집부에서 일괄 조정합니다.
405 400 中國學 第34輯( ) 논문 제출 시 논문의 영문제목과 본인의 영문이름, 연락처를 반드시 기재해 주시기 바랍니다. 6. 글에서 지원하지 않는 벽자나 기호, 사진 등은 본인이 직접 스캔 하여 파일 안에 첨부하여 주시고 출력본 1부에 해당 부분을 붉은색 펜으로 표시하여 제출해 주셔야 합니다. 7. 각주의 처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단행본의 배열순서: 저자 및 역자명, 서명 (출판지, 출판사, 출 판연월), 인용 쪽수. 예) 胡雲翼 저, 장기근 역, 중국문학사 (서울: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74), 5쪽. ② 논문의 배열순서: 논자명, 논문명, 논문집명 권수: 호수(출 판연월), 인용쪽수. (예) 楊尙梅, 節操意識, 三峽大學學報 23:4(2001.7), 44쪽. 8. 참고문헌의 처리는 각주와 동일하게 처리하되 쪽수는 표기하지 않 으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단행본: 胡雲翼 저, 장기근 역, 중국문학사 (서울: 대한교과서주 식회사, 1974) ② 논문: 楊尙梅, 節操意識, 三峽大學學報 23:4(2001.7) 9. 초록은 반드시 첨부해야 하며 한글원고는 중국어 또는 영어로, 중국 어원고는 한글 또는 영어로 작성하셔야 합니다. 10. 논문 제출자는 논문 제출과 동시에 심사료 3만원을 납부해야 하고, 교내외 연구비를 지원받은 논문일 경우에는 조판비 15만원, 그 외에 는 7만원을 별도로 납부해야 합니다. 11. 논문 등재자가 받을 수 있는 별쇄본은 10부이며, 추가로 필요시 별도의 인쇄비를 부담해야 합니다. 12. 서명은 (HNC 문자표 전각기호 일반: 3416, 3417), 논제, 작품 명 및 편명은 (HNC 문자표 전각기호 일반: 3414, 3415), 중간점 은 (HNC문자표 전각기호 일반: 3404)를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집부 5.
406 附錄 대한중국학회 연구윤리 규정 401 : 대한중국학회 연구윤리 규정 제정 대한중국학회의 회원은 일체의 학술연구활동에 있어서 다음의 연구윤리. 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 제1조 (표절의 금지) 1. 표절이라 함은 타인의 독창적인 연구 결과나 의견을 자신의 것인 듯 표현하는 행위를 말한다. 2. 연구자가 타인의 연구 결과나 의견을 인용할 경우에는 반드시 인 용부호나 인용문의 형식을 사용하여 출처를 명시하거나 자신만의 표 현으로 바꾸어 기술해야 한다. 3. 연속된 20음절 이상의 내용을 인용 표현 없이 사용할 경우 표절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표절 여부에 대하여 논란이 있을 경우 윤 리위원회에서 최종 판단한다. 제2조 (자기 복제의 금지) 1. 자기 복제라 함은 연구자가 기존에 출판했던 연구의 결과와 동일 한 내용을 다시 출판, 혹은 투고하는 경우를 말한다. 2. 연구자는 자신이 출판했던 연구 결과와 완전히 또는 상당한 정도 로 일치하는 연구 결과를 다시 출판, 혹은 투고해서는 아니 된다. 3. 연구자가 자신의 학위논문을 축약 또는 일부에 해당하는 논문을 투고할 경우, 그 사실을 명시하여야 하며, 그 사실을 밝히지 않은 논 문은 자기 복제로 규정한다. 4. 연구 결과를 표시하기 위하여 부득이하게 자신의 기존 연구 결과 를 기술할 필요가 있을 경우, 연구자는 주석 등을 통해 그 내용을 반 드시 밝혀야 한다. 5. 연구자가 전문 학술지에 게재한 연구 논문을 다시 자신의 단행본
407 402 中國學 第34輯( ) 에 수록할 경우는 자기 복제로 보지 아니한다. 단, 이 경우에도 해당 연구 결과가 이미 연구 논문으로 출판된 적이 있음을 밝힐 것을 권장 한다. 6. 연구자가 국문으로 작성한 연구 결과를 외국어로 번역하여 해외에 서 출판하는 경우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널리 소개하고 학술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행위이므로 자기 복제로 보지 아니한다. 7. 연구자가 외국어로 작성한 연구 결과를 국문으로 번역하여 국내에 서 출판, 혹은 투고하는 경우, 해당 연구 결과의 번역임을 명시하여야 한다. 8. 연구자가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기 위해 프로시딩에 게재하였거나 인터넷 사이트에 초고 형태로 발표한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는 경우 는 자기 복제로 보지 아니한다. 제3조 (연구 자료의 변형, 조작 등 금지) 1. 연구자는 자신이 입수한 객관적 형태의 연구 자료를 임의로 변형, 조작하거나 가공해서는 아니 된다. 2. 연구자가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부득이 연구 자료를 변형할 필요 가 있을 때에는 그 사실을 명시하여야 한다. 제4조 (공동 연구자의 표기) 1. 연구자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연구 수행에 참여하고 연구 결과의 도출에 기여한 경우 해당 연구 결과에 자신의 성명을 표기할 정당한 권리를 갖는다. 2. 연구자는 연구 결과의 도출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은 경우, 해 당 연구 결과에 자신의 성명을 임의로 표기하거나 다른 연구자에게 이를 요구해서는 아니 된다. 3. 연구 결과에 공동 연구자의 성명을 표기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연 구 수행 및 결과 도출에 있어 기여가 클수록 해당 연구자의 성명을 앞에 배열한다. 기여의 정도가 동일할 경우에는 성명의 가나다순에
408 附錄 대한중국학회 연구윤리 규정 403 : 따라 배열하되 가운뎃 점( )으로 각 연구자를 구별한다. 4. 공동 연구자의 성명을 표기함에 있어 책임연구자는 해당 연구자에 게 사전에 동의를 구해야 한다. 5 ( 제 조 연구윤리 위원회 ) 연구윤리 위원회는 본 대한중국학회의 학회지 中國學 에 투고된 논문의 연구윤리와 관련된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심의ㆍ의결한다. 1. 연구윤리 확립에 관한 사항 2. 연구부정행위의 예방, 조사에 관한 사항 3. 제보자 보호 및 비밀 유지에 관한 사항 6 ( 제 조 위원회의 구성 ) 1. 위원회는 편집이사, 학술이사를 포함, 5인 이상의 홀수 위원으로 구성한다. 2. 위원장은 회장이 임명하며, 간사는 위원회에서 호선한다. 3. 위원은 회장이 임명하며, 위원의 임기는 1년으로 하되 연임할 수 있다. 7 ( 제 조 위원회의 회의 ) 1. 위원회의 회의는 필요한 경우에 위원장이 소집하고 주재한다. 2. 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으로 성립하며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 으로 의결한다. 3. 필요한 경우 위원이 아닌 자를 회의에 참석시켜 의견을 들을 수 있다. 4. 회의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8 ( 제 조 연구부정행위 조사 1. ) 위원회는 구체적인 제보가 있거나 상당한 의혹이 있을 경우에는. 연구부정행위 존재 여부를 조사하여야 한다
409 404 中國學 第34輯( ) 2.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조사는 예비조사, 본조사, 판정의 단계로 진행 하되 전체 조사 일정은 6개월 이내에 종료됨을 원칙으로 한다. ① 예비조사는 연구윤리위원회에서 실시하며 제보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착수한다 ② 본조사는 부정행위의 사실 여부를 입증하기 위한 절차를 말하며.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실시한다 ③ 판정은 본조사 결과를 확정하고 이를 제보자와 피조사자에게 문 서로써 통보하는 절차를 말한다. 제보자 또는 피조사자가 판정에 불복 할 경우에는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30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으 며 그 신청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재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 제9조(조사위원회의 구성) 1. 예비조사를 통해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 는 경우 위원장은 즉시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 2. 조사위원회는 5인 이상의 홀수 위원으로 구성하되 당해 연구 분야 에 전문적인 지식 및 경험이 풍부한 자를 50% 이상 포함시켜야 하며, 조사위원회의 20% 이상을 본 학회 외부의 인원으로 위촉한다. 3. 당해 조사 사안과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조사위원으로 위촉할 수 없다. 제 1. 10조(조사위원회의 권한과 책무) 조사위원회는 조사과정에서 제보자ㆍ피조사자ㆍ증인 및 참고인에. 대하여 출석과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2. 피조사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 또는 자료 제출을 거부할 경우 에는 혐의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3. 조사위원회는 연구기록이나 증거의 상실, 파손, 은닉 또는 변조 등 을 방지하기 위하여 상당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4. 조사위원회는 조사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조사대상 연구와 연구자
410 附錄 대한중국학회 연구윤리 규정 405 :. 에게 부당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제 11조(기피ㆍ제척ㆍ회피) 제 12조(진술 기회의 보장) 1. 피조사자 또는 제보자는 위원 또는 조사위원에게 공정성을 기대하 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때에는 그 이유를 밝혀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기피신청에 대한 결정시 기피신청된 위원은 배제된다. 2. 당해 안건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안건의 심의 의결 및 조사에 관여할 수 없다. 3. 제1항 또는 제2항의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는 위원 및 조사위원은 회피를 신청할 수 있다. 조사위원회는 혐의 사실에 대해 피조사자에게 의견을 제출하거나 해. 명할 기회를 부여하여야 한다 제 13조(조사결과에 따른 조치) 1. 학회와 관련된 연구윤리 위반이 고발된 경우, 위원회는 그 혐의에 대한 적절한 조사와 처리를 해야 한다. 2. 조사위원회가 연구부정행위라고 판정한 경우, 위원회는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 출석위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이에 대한 처리를 의결 한다. 3. 연구윤리 위반 혐의를 받는 자는 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대하여 반 론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위원회는 이를 적절히 보장해야 한다. 4. 연구윤리 위반에 대한 조사의 결과는 학회에 보고해야 하며, 그 기록은 처리가 종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3년간 학회에 보관한다. 5. 위원회는 필요한 경우 연구윤리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자를 출석 시켜 자신을 보호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윤리위원회는 징계와 관련된 안건을 처리함에 있어 반드시 해당 대상자의 소명 내용을 구두 또는 서면으로 청취하여야 한다. 3회
411 406 中國學 第34輯( ) 이상의 소명 요구에도 불구하고 해당 대상자가 응하지 않을 경우 위원 회가 상정한 안건의 내용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 6. 위원회는 대상 논문의 학술지 수록ㆍ출판을 막론하고, 그 사실이 밝혀진 날로부터 1개월 안에 안건을 처리해야 한다. 7. 조사 결과 연구윤리 위반이 확정될 경우, 이를 공표하고 다음과 같이 조치한다. ① 연구윤리를 위반한 논문은 학회지 게재를 불허한다. 게재 논문 의 경우에는 학회지의 논문목록에서 삭제하고, 학회는 이 사실을 회원 및 관련 학술기관에 공지한다. ② 연구윤리를 위반한 논문의 저자에게는 이후의 학회지 논문투고 를 최소 3년 이상 금지한다. 제 14조(결과의 통지) 위원장은 조사결과에 대한 위원회의 결정을 서면으로 작성하여 지체. 없이 피조사자 및 제보자 등 관련자에게 통지한다 제 15조(재심의) 피조사자 또는 제보자는 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할 경우 통지받은 날부 30일 이내에 이유를 기재한 서면으로 위원회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터 제 16조(비밀유지의 의무 등) 1. 위원회와 조사위원회는 제보자의 보호를 위해 제보자의 신원에 관 한 사항은 정보공개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제보자가 신고를 이유로 불 이익을 받거나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신원이 노출될 경우 제보자의 소 속기관과 함께 제보의 접수와 검증에 관계된 연구기관이 이에 대한 책 임을 진다. 2. 위원회와 조사위원회는 피조사자의 명예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 도록 부정행위에 대한 의혹은 판정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외부에 공
412 附錄 대한중국학회 연구윤리 규정 407 : 개되어서는 아니 된다. 3. 제보ㆍ조사ㆍ심의ㆍ의결 및 건의 등과 관련된 일체의 사항은 비밀 로 하되 공개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공개할 수. 있다 4. 위원, 조사위원, 혹은 조사에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한 자는 조사 중 혹은 조사 후, 위원회 활동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 17조(연구윤리확약서) 투고자의 연구윤리 규정준수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윤리 확약서 제출 을 의무화한다. 따라서 투고자는 학회지에 논문게재를 신청할 때 연구 윤리 확약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제 18조(운영지침) 기타 위원회 운영에 필요한 세부사항은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회장이. 따로 정한다 부칙 1. 본 연구윤리규정은 총회의 승인을 받아 2007년 11월 1일부터 시행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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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年三刊 第 34 輯 2009년 12월 24일 인쇄 2009년 12월 31일 발행 編輯人 大韓中國學會 會 長 李 在 夏 發行處 釜山市 南區 大淵3洞 ( ) 慶星大學校 文科大學 中語中文學科內 TEL (051) H.P [email protected] 印刷處 中文出版社 (053) ISSN
<B3EDB9AEC0DBBCBAB9FD2E687770>
(1) 주제 의식의 원칙 논문은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야 한다. 주제 의식은 논문을 쓰는 사람의 의도나 글의 목적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협력의 원칙 독자는 필자를 이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논리적 엄격성의 원칙 감정이나 독단적인 선언이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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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순화의 역사와 전망
전문용어의국어화 강현화 1. 들어가기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 사용의 전형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전문 용어의 사용자가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포 될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출발점을 시작으로 과연 전문 함 용어의 국어화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2. 전문 용어 연구의 쟁점 2.1. 전문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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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 2 - - - - 4 - - 5 - - 6 - - 7 - - 8 - 4) 민원담당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의 결과와 함의 국민신문고가 업무와 통합된 지식경영시스템으로 실제 운영되고 있는지, 국민신문 고의 효율 알 성 제고 등 성과향상에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치 메 국민신문고를 접해본 중앙부처 및 지방자 였 조사를 시행하 였 해 진행하 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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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20 2011.2.16 5:53 PM ` 3 여는 글 교육주체들을 위한 교육 교양지 신경림 잠시 휴간했던 우리교육 을 비록 계간으로이지만 다시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 선 반갑다. 하지만 월간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솔직히 나는 우리교 육 의 부지런한 독자는 못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깨너머로 읽으면서도 이런 잡지는 우 리
#7단원 1(252~269)교
7 01 02 254 7 255 01 256 7 257 5 10 15 258 5 7 10 15 20 25 259 2. 어휘의 양상 수업 도우미 참고 자료 국어의 6대 방언권 국어 어휘의 양상- 시디(CD) 수록 - 감광해, 국어 어휘론 개설, 집문당, 2004년 동북 방언 서북 방언 중부 방언 서남 방언 동남 방언 제주 방언 어휘를 단어들의 집합이라고 할 때,
<28C3D6C1BE29C7D1B1B9BEEEB9AEB9FDB7D028317E3134292D3132303232312E687770>
한국어 문법론(제1차 시) 한국어 문법론 개 요 * 주제 제1장 한국어 문법의 개요 제2장 문장의 구조 제3장 문장 성분(주어, 목적어) * 학습 내용 1. 강의 개요, 강의 목표 2. 한국어 문법의 개요 3. 문장의 구조 : 어순, 기본 문형 4. 문장 성분 1 주어, 2 목적어 * 학습 목표 1. 한국어의 특징과 문법, 문장 구조를 안다. 2. 한국어 문장
자연언어처리
제 7 장파싱 파싱의개요 파싱 (Parsing) 입력문장의구조를분석하는과정 문법 (grammar) 언어에서허용되는문장의구조를정의하는체계 파싱기법 (parsing techniques) 문장의구조를문법에따라분석하는과정 차트파싱 (Chart Parsing) 2 문장의구조와트리 문장 : John ate the apple. Tree Representation List
³»Áö_10-6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이 책에서는 단순히 가난한 관리들의 이야기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사심 없이 헌신한 옛 공직자들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공과 사를 엄정히 구분하고,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공무를 처리한 사례,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최부, 송흠
41호-소비자문제연구(최종추가수정0507).hwp
소비자문제연구 제41호 2012년 4월 해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용약관의 약관규제법에 의한19)내용통제 가능성* : Facebook 게시물이용약관의 유효성을 중심으로 이병준 업 요약 업 규 규 논 업 쟁 때 셜 네트워 F b k 물 규 았 7 계 건 됨 규 규 업 객 계 규 므 받 객 드 객 규 7 말 계 률 업 두 않 트 접속 록 트 른징 볼 규 업 내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발행일 : 2013년 7월 25일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정]--------------------------------------------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 평균 ( 만원 ) 자녀상태 < 유 자 녀 > 미 취 학 초 등 학 생 중 학 생 고 등 학 생 대 학 생 대 학 원 생 군 복 무 직 장 인 무 직 < 무 자 녀 >,,.,.,.,.,.,.,.,.
. 대상자의속성 -. 연간가수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평균 ( 만원 ) 전 국,........,. 지 역 도 시 지 역 서 울 특 별 시 개 광 역 시 도 시 읍 면 지 역,,.,.,.,.,. 가주연령 세 이 하 - 세 - 세 - 세 - 세 - 세 - 세 세 이 상,.,.,.,.,.,.,.,. 가주직업 의회의원
도약종합 강의목표 -토익 700점이상의점수를목표로합니다. -토익점수 500점정도의학생들이 6주동안의수업으로 점향상시킵니다. 강의대상다음과같은분들에게가장적합합니다. -현재토익점수 500점에서 600점대이신분들에게가장좋습니다. -정기토익을 2-3번본적이있으신분
도약종합 -토익 700점이상의점수를목표로합니다. -토익점수 500점정도의학생들이 6주동안의수업으로 100-200점향상시킵니다. -정기토익을 2-3번본적이있으신분. -수업도많이들어봤고, 문제도많이풀었지만문법정리가제대로되지않은분. 강의특징수업시간에토익과관련없는사적인잡담으로시간낭비하지않는수업입니다. LC : 파트별집중정리한문제풀이로유형을익혀나가는수업입니다. 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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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 2. 3. 4. 제2장 아동복지법의 이해 12 4).,,.,.,.. 1. 법과 아동복지.,.. (Calvert, 1978 1) ( 公 式 的 ).., 4),. 13 (, 1988 314, ). (, 1998 24, ).. (child welfare through the law) (Carrier & Kendal, 1992). 2. 사회복지법의 체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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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s p x f p (x) f (x) VOL. 46 NO. 12 2013. 12 43 p j (x) r j n c f max f min v max, j j c j (x) j f (x) v j (x) f (x) v(x) f d (x) f (x) f (x) v(x) v(x) r f 44 r f X(x) Y (x) (x, y) (x, y) f (x, y) VOL.
08학술프로그램
www.kafle.or.kr Foreign Language Teachers Expertise 01 01 02 03 04 05 06 07 한국외국어교육학회 2008년 겨울학술대회 학술대회 관련 문의 좌장: 이강국 (대학원 309호) 13:30~14:00 명사구 내 형용사의 위치와 의미 유은정 이상현 곽재용 14:00~14:30 스페인어 문자체계의 발달과정 연구
Drucker Innovation_CEO과정
! 피터드러커의 혁신과 기업가정신 허연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Doing Better Problem Solving Doing Different Opportunity ! Drucker, 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 1999! Drucker, 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나하나로 5호
Vol 3, No. 1, June, 2009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KACPR) Newsletter 01 02 03 04 05 2 3 4 대한심폐소생협회 소식 교육위원회 소식 일반인(초등학생/가족)을
<312E20C0AFC0CFC4B3B5E55F5352444320C0FCC0DAB1E2C6C720B1B8B8C5BBE7BEE7BCAD2E687770>
페이지 2 / 6 첨부 1. 공급품 목록 및 납기일정 번호 품명 모델명/사양 Vendor 단위 수량 납기 비고 1 (샘플기판) 6Layer, FR-4, 1.6T, 1온스, 2 (샘플기판) 3 (샘플기판) 4 (샘플기판) 5 (샘플기판) FRONT PANEL BOARD 3종 1. 샘플기판은 Board 별 성능시험용 2. 샘플 기판 후 Board 별 육안점검 및
Red Dot Award: Communication Design 에 참 하기 결정해 주셔서 기쁩니다. "성공을 위한 안내서"는 등 절 에 대해 안내 니다. 지체 말고 언 든지 연 해 주 오. Red Dot 은 등 절 또는 등 후 절 를 기꺼 와드 겠습니다. 01 Int
Your Guide to Success Interface Design Red Dot Award: Communication Design 에 참 하기 결정해 주셔서 기쁩니다. "성공을 위한 안내서"는 등 절 에 대해 안내 니다. 지체 말고 언 든지 연 해 주 오. Red Dot 은 등 절 또는 등 후 절 를 기꺼 와드 겠습니다. 01 Interface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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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캠퍼스 문화 조성을 위하여... 고려대학교 양성평등센터 는 2001년 6월에 제정된 성희롱 및 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 에 의거하여 같은 해 7월에 설치된 성희롱및성폭력상담소 를 2006년 10월 개칭한 것입니다. 양성평등 센터 로의 개칭은 교내에서 발생하는 성피해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과 상담 제공뿐만 아니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양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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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140242-000001-08 2013-927 2013 182 2013 182 Contents 02 16 08 10 12 18 53 25 32 63 Summer 2 0 1 3 68 40 51 57 65 72 81 90 97 103 109 94 116 123 130 140 144 148 118 154 158 163 1 2 3 4 5 8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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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02 8 9 32 33 1 10 11 34 35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원만한 생활과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다양한 기능 사회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가구 가족 규모의 축소와 가족 세대 구성의 단순화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 1인 또는 1인 이상의 사람이 모여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 타나는 가족 구조의
2002report220-10.hwp
2002 연구보고서 220-10 대학평생교육원의 운영 방안 한국여성개발원 발 간 사 연구요약 Ⅰ. 연구목적 Ⅱ. 대학평생교육원의 변화 및 외국의 성인지적 접근 Ⅲ. 대학평생교육원의 성 분석틀 Ⅳ. 국내 대학평생교육원 현황 및 프로그램 분석 Ⅴ. 조사결과 Ⅵ. 결론 및 정책 제언 1. 결론 2. 대학평생교육원의 성인지적 운영을 위한 정책 및 전략 목
CR2006-41.hwp
연구책임자 가나다 순 머 리 말 2006년 12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 i - - ii - - iii - 평가 영역 1. 교육계획 2. 수업 3. 인적자원 4. 물적자원 5. 경영과 행정 6. 교육성과 평가 부문 부문 배점 비율(%) 점수(점) 영역 배점 1.1 교육목표 3 15 45점 1.2 교육과정 6 30 (9%) 2.1 수업설계 6 30 2.2
Jkafm093.hwp
가정의학회지 2004;25:721-739 비만은 심혈관 질환, 고혈압 및 당뇨병에 각각 위험요인이고 다양한 내과적, 심리적 장애와 연관이 있는 질병이다. 체중감소는 비만한 사람들에 있어 이런 위험을 감소시키고 이들 병발 질환을 호전시킨다고 알려져 있고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을 호전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런 믿음을 지지하는 연구들은
= " (2014), `` ,'' .." " (2011), `` ,'' (.)"
학습목표 Finance Lectue Note Seies 파생금융상품의 이해 화폐의 시간가치(time value of money): 화폐의 시간가치에 대해 알아본다 제강 화폐의 시간가치 연금의 시간가치(time value of annuity): 일정기간 매년 동일금액을 지급하는 연금의 시간가치에 대해 알아본다 조 승 모 3 영구연금의 시간가치(time value
<5BB0EDB3ADB5B55D32303131B3E2B4EBBAF12DB0ED312D312DC1DFB0A32DC0B6C7D5B0FAC7D02D28312E28322920BAF2B9F0B0FA20BFF8C0DAC0C720C7FCBCBA2D3031292D3135B9AEC7D72E687770>
고1 융합 과학 2011년도 1학기 중간고사 대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빅뱅 우주론에서 수소와 헬륨 의 형성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4 서술형 다음 그림은 수소와 헬륨의 동위 원 소의 을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 우주에서 생성된 수소와 헬륨 의 질량비 는 약 3:1 이. (+)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전기적 중성인 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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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October 2005 현 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새롭 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 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 면,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의 믿음이나 지식에 제한을 받는다. 이미지는 언어, 혹은 문자에 선행한다. 그래서 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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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2012.7.25 6:14 PM 페이지1 2012년 8월 1일 수요일 16 종합 고려대장경 석판본 판각작업장 세계 최초 석판본 고려대장경 성보관 건립 박차 관계기관 허가 신청 1차공사 전격시동 성보관 2동 대웅전 요사채 일주문 건립 3백여 예산 투입 국내 최대 대작불사 그 동안 재단은 석판본 조성과 성보관 건립에 대해서 4년여 동안 여러 측면에 서 다각적으로
33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문 * 웅 입주자격소득초과 34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송 * 호 입주자격소득초과 35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나 * 하 입주자격소득초과 36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최 * 재 입주자격소득초
1 장지지구4단지 ( 임대 ) 59A1 김 * 주 830516 입주자격소득초과 2 장지지구4단지 ( 임대 ) 59A1 김 * 연 711202 입주자격소득초과 3 장지지구4단지 ( 임대 ) 59A1 이 * 훈 740309 입주자격소득초과 4 발산지구4단지 ( 임대 ) 59A 이 * 희 780604 입주자격소득초과 5 발산지구4단지 ( 임대 ) 59A 안 * 현
2. 4. 1. 업무에 활용 가능한 플러그인 QGIS의 큰 들을 찾 아서 특징 설치 마 폰 은 스 트 그 8 하 이 업무에 필요한 기능 메뉴 TM f K 플러그인 호출 와 TM f K < 림 > TM f K 종항 그 중에서 그 설치 듯 할 수 있는 플러그인이 많이 제공된다는 것이다. < 림 > 다. 에서 어플을 다운받아 S or 8, 9 의 S or OREA
1 경영학을 위한 수학 Final Exam 2015/12/12(토) 13:00-15:00 풀이과정을 모두 명시하시오. 정리를 사용할 경우 명시하시오. 1. (각 6점) 다음 적분을 구하시오 Z 1 4 Z 1 (x + 1) dx (a) 1 (x 1)4 dx 1 Solut
경영학을 위한 수학 Fial Eam 5//(토) :-5: 풀이과정을 모두 명시하시오. 정리를 사용할 경우 명시하시오.. (각 6점) 다음 적분을 구하시오 4 ( ) (a) ( )4 8 8 (b) d이 성립한다. d C C log log (c) 이다. 양변에 적분을 취하면 log C (d) 라 하자. 그러면 d 4이다. 9 9 4 / si (e) cos si
고3-02_비문학_2_사회-해설.hwp
비문학 기출 제재별 문제 모음 (2007~2011학년도 학력평가) 정답 및 해설 사회 2 비문학 사회 01 사회 2011 학년도 10 월학력평가 정답과해설 사회 1 2012 학년도 11 월모의평가 ( 대전 ) 1. 이해한내용으로추론하는능력을파악하는문제이다. 1 7. 유사한사례를파악한다. 5 [ 오답풀이 ] 2. 이해한내용을바탕으로적용할수있는능력을파악하는문제이다.
트렌드29호가제본용.hwp
- 309 - - 310 - - 311 - - 312 - - 313 - - 314 - 외부적 탐색단계 새로운 정보에 자극받는 외부적 탐 색단계 새로운 광고 메시지에 의하여 소비자가 제품 및 브랜드 평가를 하는 대안의 평가 단계까지의 일련 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그림 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소비자의 구매태도형성 어느 단계에서도 상품 광고가 미치는 영향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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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48.6% 남 51.4% 40대 10.7% 50대 이 상 6.0% 10대 0.9% 20대 34.5% 30대 47.9% 초등졸 이하 대학원생 이 0.6% 중졸 이하 상 0.7% 2.7% 고졸 이하 34.2% 대졸 이하 61.9% 직장 1.9% e-mail 주소 2.8% 핸드폰 번호 8.2% 전화번호 4.5% 학교 0.9% 주소 2.0% 기타 0.4% 이름
- 89 -
- 89 - - 90 - - 91 - - 92 - - 93 - - 94 - - 95 - - 96 - - 97 - - 98 - - 99 - 있다 장정임 ( 2009). Toylor 와 Betz(1983) 의 진로결정자기효능감 척도 와 및 등이 개발 (career 와 한 진로결정자기효능감 척도 단축형 은 미래계획수립 문제해결과 같은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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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hipping Association 조합 뉴비전 선포 다음은 뉴비전 세부추진계획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 조합은 올해로 창립 46주년을 맞았습니다. 조합은 2004년 이전까 지는 조합운영지침을 마련하여 목표 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추진해왔습니 다만 지난 2005년부터 조합원을 행복하게 하는 가치창출로 해운의 미래를 열어 가자 라는 미션아래 BEST
[NO_11] 의과대학 소식지_OK(P)
진 의학 지식과 매칭이 되어, 인류의 의학지식의 수준을 높 여가는 것이다. 하지만 딥러닝은 블랙박스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는 단지 결과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의학지 식의 확장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실제로 의학에서는 인공지능을 사용하게 될 때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이해
USC HIPAA AUTHORIZATION FOR
연구 목적의 건강정보 사용을 위한 USC HIPAA 승인 1. 본 양식의 목적: 건강보험 이전과 책임에 관한 법(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 HIPAA)이라고 알려진 연방법은 귀하의 건강정보가 이용되는 방법을 보호합니다. HIPAA 는 일반적으로 귀하의 서면 동의 없이 연구를 목적으로 귀하의
기본소득문답2
응답하라! 기본소득 응답하라! 기본소득 06 Q.01 07 Q.02 08 Q.03 09 Q.04 10 Q.05 11 Q.06 12 Q.07 13 Q.08 14 Q.09 응답하라! 기본소득 contents 16 Q.10 18 Q.11 19 Q.12 20 Q.13 22 Q.14 23 Q.15 24 Q.16 Q.01 기본소득의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세요. 06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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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구 http://www.kbc.go.kr/ 방송 콘텐츠는 TV라는 대중매체가 지닌 즉각적 파급효과에도 불구하고 다 양한 수익 창출이라는 부분에서 영화에 비해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 사실 이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 이 엄청난 경제적 파급 효과를 창출해 내 면서 방송 콘텐츠의 수익 구조에도 큰 변화가 오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드라마 은
연구노트
#2. 종이 질 - 일단은 OK. 하지만 만년필은 조금 비침. 종이질은 일단 합격점. 앞으로 종이질은 선택옵션으로 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종이가 너무 두꺼우면, 뒤에 비치지 는 않지만, 무겁고 유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두꺼우면 고의적 망실의 위험도 적고 적당한 심리적 부담도 줄 것이 다. 이점은 호불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단은 괜찮아 보인다. 필자의
와플-4년-2호-본문-15.ps
1 2 1+2 + = = 1 1 1 +2 =(1+2)+& + *=+ = + 8 2 + = = =1 6 6 6 6 6 2 2 1 1 1 + =(1+)+& + *=+ =+1 = 2 6 1 21 1 + = + = = 1 1 1 + 1-1 1 1 + 6 6 0 1 + 1 + = = + 7 7 2 1 2 1 + =(+ )+& + *= + = 2-1 2 +2 9 9 2
= Fisher, I. (1930), ``The Theory of Interest,'' Macmillan ,
Finance Lecture Note Series 학습목표 제4강 소유와 경영의 분리 효용함수(utility function): 효용함수, 한계효용(marginal utility), 한계대체율(marginal rate of substitution) 의 개념에 대해 알아본다 조 승 모2 (production possibility curve): 생산가능곡선과 한계변환율(marginal
2015년9월도서관웹용
www.nl.go.kr 국립중앙도서관 후회의 문장들 사라져 버릴 마음의 잔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해에도 배추농사에서 큰돈을 남은 평생 머릿속에서 맴돌게 될 그 말을 다시 떠올려보 만졌다 하더라도 지난 여름 어느 날 갑자기 들기 시작한 았다. 맺지 못한 채 끝나버린 에이드리언의 문장도 함께. 그 생각만은 변함없을 것 같았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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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anhak Foundation News VOL. 150 * 2011. 12. 30 논단 이슈별 CSR 활동이 기업 충성도에 미치는 영향 : 국가별 및 산업별 비교분석 최 지 호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Ⅰ. 서론 Ⅰ. 서론 Ⅱ. 문헌 고찰 및 가설 개발 2. 1. 호혜성의 원리에 기초한 기업의 사회적 투자에 대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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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렇게까지 군대를 가려고하냐,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조차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군대는 하루하루를 소종하게 생각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슬라이드 1
1 주차. 我是大学生 강의소개 > 학습목표 학습내용 是字文의형식익히기是字文의문장확장연습是字文의단어교체연습 동사是의문법기능을이해할수있다. 1 학습목표 동사是의부정표현을활용할수있다. 2 1 주차. 我是大学生 본문학습 > 구문설명 1 我是大学生 Wǒ shì dàxuéshēng. 핵심포인트 (1) 동사是는어떤사실에대한 판단 이나 긍정 을나타낸다. 1 我是大学生 Wǒ
< 大 韓 中 國 學 會 > 고 문 : 성파 스님 조남규 여사 명예회장 : 이근효(경성대 명예교수) 회 장 : 이재하(경성대) 부 회 장 : 김세환(부산대) 서석흥(부경대) 이철리(경남대) 임수암(경남정보대) 감 사 : 김태관(동의대) 진광호(부산외대) 연구이사(겸 위
CHINESE STUDIES 第 39 輯 大 韓 中 國 學 會 Korean Association forchinesestudies 2011.8.31 < 大 韓 中 國 學 會 > 고 문 : 성파 스님 조남규 여사 명예회장 : 이근효(경성대 명예교수) 회 장 : 이재하(경성대) 부 회 장 : 김세환(부산대) 서석흥(부경대) 이철리(경남대) 임수암(경남정보대) 감
춤추는시민을기록하다_최종본 웹용
몸이란? 자 기 반 성 유 형 밀 당 유 형 유 레 카 유 형 동 양 철 학 유 형 그 리 스 자 연 철 학 유 형 춤이란? 물 아 일 체 유 형 무 아 지 경 유 형 댄 스 본 능 유 형 명 상 수 련 유 형 바 디 랭 귀 지 유 형 비 타 민 유 형 #1
= Fisher, I. (1930), ``The Theory of Interest,'' Macmillan ,
Finance Lecture Note Series 금융시장과 투자분석 연구 제4강. 소유와 경영의 분리1 조 승 모2 영남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2015학년도 2학기 Copyright 2015 Cho, Seung Mo 1 기본적으로 Fisher, I. (1930), The Theory of Interest, Macmillan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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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85 86 87 88 89 1 12 1 1 2 + + + 11=60 9 19 21 + + + 19 17 13 11=60 + 5 7 + 5 + 10 + 8 + 4+ 6 + 3=48 1 2 90 1 13 1 91 2 3 14 1 2 92 4 1 2 15 2 3 4 93 1 5 2 6 1 2 1 16 6 5 94 1 1 22 33 55 1 2 3 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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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 int main(void) { int num; printf( Please enter an integer "); scanf("%d", &num); if ( num < 0 ) printf("is negative.\n"); printf("num = %d\n", num); return 0; } 1 학습목표 을 작성하면서 C 프로그램의
= ``...(2011), , (.)''
Finance Lecture Note Series 사회과학과 수학 제2강. 미분 조 승 모2 영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 학습목표. 미분의 개념: 미분과 도함수의 개념에 대해 알아본다. : 실제로 미분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본다. : 극값의 개념을 알아보고 미분을 통해 어떻게 구하는지 알아본다. 4. 미분과 극한: 미분을 이용하여 극한값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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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60 1 1 200 2 6 4 7 29 1975 30 2 78 35 1 4 2001 2009 79 2 9 2 200 3 1 6 1 600 13 6 2 8 21 6 7 1 9 1 7 4 1 2 2 80 4 300 2 200 8 22 200 2140 2 195 3 1 2 1 2 52 3 7 400 60 81 80 80 12 34 4 4 7 12 80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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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102 103 104 105 혁신 17과 1/17 특히 05. 1부터 수준 높은 자료의 제공과 공유를 위해 국내 학회지 원문 데이 >> 교육정보마당 데이터베이스 구축 현황( 05. 8. 1 현재) 구 분 서지정보 원문내용 기사색인 내 용 단행본, 연속 간행물 종 수 50만종 교육정책연구보고서, 실 국발행자료 5,000여종 교육 과정 자료 3,000여종
2016년 신호등 10월호 내지.indd
www.koroad.or.kr E-book 10 2016. Vol. 434 62 C o n t e n t s 50 58 46 24 04 20 46 06 08, 3 3 10 12,! 16 18 24, 28, 30 34 234 38? 40 2017 LPG 44 Car? 50 KoROAD(1) 2016 54 KoROAD(2), 58, 60, 62 KoROAD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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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물류정책의 통합 조정 기능이 필요하다 문화도 경제다 미국의 선박 밸러스트 수( ) 규제 동향 최근 세계 양식업의 명암 35,000 31,564 30,000 23,040 25,000 20,000 15,000 10,149 9,486 10,743 9,373 금액(US$M il.) 중량(천 M/T) 10,000 5,000 5,590 1,646 452 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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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내지(6장~8장)최종 2007.8.3 5:43 PM 페이지 168 in I 덕수리 민속지 I 만 아니라 마당에서도 직접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장팡뒤의 구조는 본래적인 형태라 고 할 수는 없으나, 사회가 점차 개방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폐쇄적인 안뒤공간에 위치하던 장항 의 위치가 개방적이고 기능적인 방향으로 이동해가는 것이 아닌가 추론되어진다.
04 특집
특집 도서관문화 Vol.51 NO.5(2010.5) 시작하는 말 18 특집 :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 도서관 서비스 소셜 네트워크란? 19 도서관문화 Vol.51 NO.5(2010.5) 20 특집 :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 도서관 서비스 소셜 네트워크, 환경에 따라 변모하다 21 도서관문화 Vol.51 NO.5(2010.5) 소셜 네트워크와 도서관을 결합시키다
1.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2009. 2. 6. 법률 제944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도시정비법 이라 한다) 제4조 제1항, 제3항은 시 도지사 또는 대도시의 시장이 정비구 역을 지정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미한 사항을 제외한
대 법 원 제 1 부 판 결 사 건 2012두6605 사업시행계획무효확인등 원고, 상고인 원고 1 외 1인 원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담당변호사 이인재 외 2인 피고, 피상고인 서울특별시 종로구청장 외 1인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외 3인 원 심 판 결 서울고등법원 2012. 2. 2. 선고 2011누16133 판결 판 결 선 고 201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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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 exp exp exp exp exp exp exp exp exp exp log 第 卷 第 號 39 4 2011 4 투영법을 이용한 터빈 블레이드의 크리프 특성 분석 329 성을 평가하였다 이를 위해 결정계수값인 값 을 비교하였으며 크리프 시험 결과를 곡선 접합 한 결과와 비선형 최소자승법으로 예측한 결과 사 이 결정계수간 정도의 오차가 발생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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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台 俊 의 學 術 硏 究 와 國 故 整 理 作 業 *1) - 朝 鮮 漢 文 學 史 서술을 중심으로 崔 英 成 ** ` Ⅰ. 머리말 Ⅱ. 天 台 山 人 의 생애 개관 Ⅲ. 天 台 山 人 의 학문 역정 Ⅳ. 조선한문학사 의 위치 Ⅴ. 조선한문학사 의 방법론과 한계 요 약 1930년대 국문학자, 문학사가( 文 學 史 家 )로 활약했던, 전설적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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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60년기념전 시련과 전진 주 최 :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주 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중앙일보 후 원 : SK Telecom, (주)부영, 다음 일 정 : 2005.8.14(일) ~ 8.23(일) 장 소 : 대한민국 국회 1. 내용의 일부 혹은 전체를 인용, 발췌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저자와 출처를 밝혀 주셔야 합니다. 2. 본 자료는 http://www.kdemocracy.or.kr/kdfom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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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구 http://www.kbc.go.kr/ 프로그램 선택은 다단계적인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본 연 구는 TV시청을 일상 여가행위의 연장선상에 놓고, 여러 다양한 여가행위의 대안으로서 TV시청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과, TV를 시청하기로 결정할 경우 프로그램 선택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지 밝히고자 했다. 27) 연구 결과, TV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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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구 http://www.kbc.go.kr/ 이 논문은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는 디지털 미디어시대에 한국 TV방송의 전 통적인 뉴스가치를 고찰해 보았다. 디지털 미디어의 미래는 일부의 장미빛 기대와는 달리 여전히 불투명하다. 일반 수용자가 디지털 TV세트를 구입하 며, 디지털화된 뉴스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데는 최소한 10년 정도의 시간 이 필요하리라 예상해
4 7 7 9 3 3 4 4 Ô 57 5 3 6 4 7 Ô 5 8 9 Ô 0 3 4 Ô 5 6 7 8 3 4 9 Ô 56 Ô 5 3 6 4 7 0 Ô 8 9 0 Ô 3 4 5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 선거의 의미와 필요성 ① 선거의 의미`: 우리들을 대표하여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을 말합니다. ② 선거의 필요성`: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일을 의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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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어의두가지모습과언어학 5 1. 언어수행 (linguistic performance): 실제대화상황에 서사용하는언어 (the actual use of language in concrete situations) 2. 언어능력 (linguistic competence): 머릿속에저장되어 있는언어지식 (the mental knowledge that a spe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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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학년도 교육과정안내 P A R T 0 중국비즈니스 교육목적 대학의 교육목적 탁월한 실용전문인 양성 화합하는 민주시민 양성 연계전공 교육목적 학제적 연계 프로그램을 통하여 교과과정을 운영함으로써 종합적인 사고 능력과 실무능력을 구비한 유능한 인재를 양성 교육목표 대학의 교육목표 연계전공 교육목표 봉사하는 리더십 함양 건강한 육체와 정신함양 중국 사회,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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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별 욕구조사 설문지 예시 자료 3 장애인영역 평택시 사회복지시설 욕구조사 실무도움서 _ 201 202 _ 평택복지재단 영역별 욕구조사 설문지 예시 자료 2 3 2 3 평택시 사회복지시설 욕구조사 실무도움서 _ 203 204 _ 평택복지재단 영역별 욕구조사 설문지 예시 자료 2 3 4 평택시 사회복지시설 욕구조사 실무도움서 _ 205 2 3 4 5 6 7
강의계획서 과목 : JUN s TOEIC 700+( 도약 ) 2017년 3차강사 : 황준선 교재 : ETS 토익기본서 (RC&LC)+ 수업부교재 (JUN s TOEIC 700+) + 품사별추가문제 +Mini Test 수업목표 : LC & RC 필수기본전략수립및 GRAM
강의계획서 과목 : JUN s TOEIC 700+( 도약 / 단과 ) 2017년 3차강사 : 황준선 교재 : ETS 토익기본서 (RC)+ 수업부교재 (JUN s Toeic 700+)+ 추가문제 + 품사별추가문제 수업목표 : 총체적문장구조의이해 & 확립을통한품사 + 어휘유형 100% 정답및 Part 7 Key Word Location 훈련을통한 350+ 목표
(중등용1)1~27
3 01 6 7 02 8 9 01 12 13 14 15 16 02 17 18 19 제헌헌법의제정과정 1945년 8월 15일: 해방 1948년 5월 10일: UN 감시 하에 남한만의 총선거 실시. 제헌 국회의원 198명 선출 1948년 6월 3일: 헌법 기초 위원 선출 1948년 5월 31일: 제헌 국회 소집. 헌법 기 초위원 30명과 전문위원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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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구 http://www.kbc.go.kr/ 텔레비전의 폭력행위는 어떠한 상황적 맥락에서 묘사되는가에 따라 상이한 효과를 낳는다. 본 연구는 텔레비전 만화프로그램의 내용분석을 통해 각 인 물의 반사회적 행위 및 친사회적 행위 유형이 어떻게 나타나고 이를 둘러싼 맥락요인들과 어떤 관련성을 지니는지를 조사하였다. 맥락요인은 반사회적 행위 뿐 아니라 친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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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Group 2006 AUTUMN Volume. 02 Focus Group 2006 AUTUMN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 모두를 가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 곳에 서서 한쪽 길이 덤불 속으로 감돌아간 끝까지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쪽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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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290 5 291 1 1 336 292 340 341 293 1 342 1 294 2 3 3 343 2 295 296 297 298 05 05 10 15 10 15 20 20 25 346 347 299 1 2 1 3 348 3 2 300 301 302 05 05 10 10 15 20 25 350 355 303 304 1 3 2 4 356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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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객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8호) 객사는 영조 35년(1759년)에 지어진 조선 후기의 관청 건물입니다. 원래는 가운데의 정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대청, 오른쪽에 서대청, 앞쪽에 중문과 외문 그리고 옆쪽에 무랑 등으로 이 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정당과 동대청만이 남아있습니다. 정당에서는 전하 만만세 라고 새 긴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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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의 여성인력 현황 및 전문화 방안 연구 한국여성개발원 발간사 Ⅰ....,.,....... .. Ⅱ. :...... Ⅲ.,,. ..,.,.... 9 1 1.. /.,. PD,,,,, / 7.93%. 1%... 5.28% 10.08%. 3.79%(KBS MBC), 2.38 %(KBS MBC) 1%...,. 10. 15. ( ) ( ), ( ) ( )..
소식지수정본-1
2010. 7 통권2호 2 CONTENTS Korea Oceanographic & Hydrographic Association 2010. 7 2010년 한마음 워크숍 개최 원장님께서 손수 명찰을 달아주시면서 직원들과 더욱 친숙하게~~ 워크숍 시작! 친근하고 정감있는 말씀으로 직원들과 소통하며 격려하여 주시는 원장님... 제12차 SNPWG 회의에 참석 _ 전자항해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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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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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5 128.491 156.559 12 23 34 45 안녕하십니까? 본 설문은 설악산과 금강산 관광연계 개발에 관한 보다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귀하께서 해주신 답변은 학문적인 연구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다가오는 21세기 한국관광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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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희은 강 석우의 커버스토리 인기코너 남자는 왜 여자는 왜 를 이끌어 가고 있는 김용석, 오숙희 씨. 2007 06 I 여성시대가 흐르는 곳 I 04 >>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의 소순임 씨를 찾아서 I 창 가 스 튜 디 오 I 08 >> 여성시대의 남자 김용석, 여성시대의 여자 오숙희 I 편 지 I 14 >> 아이들의 용돈 외 I 여성시대 가족을
연구보고서 2009-05 일반화선형모형 (GLM) 을이용한 자동차보험요율상대도산출방법연구 Ⅰ. 요율상대도산출시일반화선형모형활용방법 1. 일반화선형모형 2 연구보고서 2009-05 2. 일반화선형모형의자동차보험요율산출에적용방법 요약 3 4 연구보고서 2009-05 Ⅱ. 일반화선형모형을이용한실증분석 1. 모형적용기준 < > = 요약 5 2. 통계자료및통계모형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2 목차 편집자의 말 ------------------------------------------------------------------------------------- 3 한국의 * 상1 개괄 한국의 병역거부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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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교원을 위한 교수법 특강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폐강을 피하는 몇가지 팁! 조 승 모1 영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 2016년 8월 23일 Copyright 2016 Cho, Seung Mo 1 영남대학교 상경대학 경제금융학부 조교수; (우) 38541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영남대학교 상경관 224호; [email protected]; http://financialeconomics.tistory.com
Speaking Cue 1 Unit 1 About Myself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이름과 국적, 좋아하는 음식 등에 대해 답하며 1,인칭 표현을 구사함으로써 자신 있게 자 기 소개를 할 수 있다. 1. Speaking Cue를 시작하는 첫 시간, 학급 친구들을 처음
Speaking Cue Speech Note 활용법 매 Unit의 다섯 번째 위치하고 있는 Speech Note는 잡지 표지 만들기, 길 찾기 게임, 날씨 및 스 포츠 리포터 되기, 바자회 계획하기, 잃어버린 강아지 찾는 포스터 만들기 등의 다양한 확장학습 을 통해 학생들이 좀 더 쉽고 다양한 방법으로 Speaking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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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차 발 간 등 록 번 호 11-1490100-000057-14 고 령 자 고 용 촉 진 기 본 계 획 2 0 1 2 제2차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2012-2016) M i n i s t r y o f E m p l o y m e n t a n d L a b o r 2012-2016 제2차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 Basic Plan for Promo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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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산업중분류, 조직형태 및 동별 사업체수, 종사자수 단위 : 개, 명 금정구 서1동 서2동 서3동 Geumjeong-gu Seo 1(il)-dong Seo 2(i)-dong Seo 3(sam)-dong TT전 산 업 17 763 74 873 537 1 493 859 2 482 495 1 506 15 519 35 740 520 978 815 1 666 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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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 6 7 여행 스테인드글라스 을 노래했던 하느님의 영원한 충만성을 상징하는 불꽃이다. 작품 마르코 수사(떼제공동체) 사진 유백영 가브리엘(가톨릭 사진가회) 빛은 하나의 불꽃으로 형상화하였다. 천사들과 뽑힌 이들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하며 세 겹의 거룩하심 가 있을 것이다. 빛이 생겨라. 유리화라는 조그만 공간에 표현된 우주적 사건인 셈이다.
Microsoft PowerPoint - chap05-제어문.pptx
int num; printf( Please enter an integer: "); scanf("%d", &num); if ( num < 0 ) printf("is negative.\n"); printf("num = %d\n", num); 1 학습목표 제어문인,, 분기문에 대해 알아본다. 인 if와 switch의 사용 방법과 사용시 주의사항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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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장프로젝트 프로젝트2 단어장 select * from address where address like '% 경기도 %' td,li,input{font-size:9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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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과056-094 2013.1.9 7:22 PM 페이지67 MDPREP_RipControl 2007 개정 5학년 검정 지도서 각론 알짜 정리 67 영양소 힘을 내는 일(탄수화물/지방/단백질) 몸의 조직 구성(지방/단백질/무기질/물) 몸의 기능 조절(단백질/무기질/비타민/물) 식품 구성 자전거의 식품과 영양소 식품군 곡류 탄수화물 우리가 활동하는데 필요한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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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보고서 2000-10 기업집단의 부실화 원인과 부도예측모형 분석 기업집단의 부실화 원인과 부도예측모형 분석 3 4 5 6 7 제1장 서 론 1 11 12 제2장 기업집단의 내부시장과 기업집단의 부실화 2 15 16 2 17 18 2 19 20 2 21 22 2 23 24 2 25 26 2 27 28 2 29 30 2 31 32 2 33 제3장 기업집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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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고를읽고소중한조언을주신여러분들게감사드린다. 소중한조언들에도불구하고이글이포함하는오류는전적으로저자개인의것임을밝혀둔다. 2) 대표적인학자가 Asia's Next Giant: South Korea and Late Industrialization, 1990 을저술한 MIT 의 A. Amsden 교수이다. - 1 - - 2 - 3) 계량방법론은회귀분석 (regress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