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산책 옛말의아름다움과사투리 강인숙 건국대학교명예교수, 영인문학관관장, 문학평론가 1. 옛말의아름다움 내가고어 ( 古語 ) 의아름다움에눈을뜬것은고 3 때 동동 ( 動動 ) 을배우면서였다. 피난시절이라고전선생님이안계셔서외부에서강사를모셔왔다. 연세가높으신남자선생님이셨다. 그선생님이칠판에다음과같은시를써놓고읊어나갔다. 正月 ᄉ 나릿므른아으어져녹져 논 누릿가온 나곤몸하 올로녈셔아으動動다리 알수있는단어가몇개밖에없었다. 무슨말인지못알아듣겠지? 국어산책 133
하시더니선생님은다시한번낭송을시작했다. 억양과장단을살려가며 낭송을하니운율이너무나아름다워감동을받았다. 모르는말이많아 주문같은것이오히려신비감을더해주는것같았다. 나릿물 = 냇물어져녹져 = 얼었다녹았다 올로 = 홀로몸하 = 몸아녈셔 = 살아가는구나 선생님이모르는단어들을풀이해주셨다. 의미를알고보니옛말들은우리가쓰고있는현대어보다훨씬유현 ( 幽玄 ) 하고음악적이어서나는곧그말들에사로잡혔다. 옛날에우리나라에그런아름다운어휘들이있었다는사실이자랑스러웠다. 그건어머니가보시던옛날성경책의어려운문장들이, 현대어보다훨씬시적이고음악적이었던것을상기시켰다. 정월나릿물이어져녹져 하며하느적거리는풍류위에 하올로 살아가는 몸 의외로움이우아하게얹히면서 동동 이라는월령가 ( 月令歌 ) 의첫달이시작되고, 그감흥은열두달내내흥청거리며이어져갔다. 거기에서는불은 켜는 것이아니라 혀는 것이고, 오얏꽃 은 욋고지 이며, 꾀꼬리 는 곳고리새 였다. 삼십년전평창동에이사왔던첫여름에, 마당에서웬새가 곳고리꼬 하는부드럽고예쁜소리를내면서울고있는것을보았다. 큰동서가그게꾀꼬리라는것을가르쳐주셨다. 나는그때다시 동동 의세계로돌아가옛날의의성어의정확함과그발음의유연함에경탄했다. 그러면서새들은아직도된소리를내지않고부드럽게우는데, 듣는사람들이마음이각박해져서그것을된소리로듣고있구나하는생각을했다. 그밖에도 동동 에는오늘날에는쓰지않는 즈이 라는인상적인낱말이있었다. 우리조상들은외모와인물의분위기전체를 즈이 라는말로표현했던것이다. 무슨연고로 를 므슴다 로축약한것도마음에들었지만, 그중에서도특히매력적이었던것은 하 라는존칭호격조사였다. 몸하, 달하, 님하, 하는발음악센트를넣어발음하면대상의사물들의 134 새국어생활제 16 권제 4 호 (2006 년겨울 )
품격이아주높아지는느낌이들어서, 친구들과다른명사에도 하 를붙이는장난을하며우리는한동안즐거웠다. 입시를위해배운옛시가중에는송강의것이압도적으로많았다. 문과대학장이송강숭배자인방종현선생이라정철의시는반드시나온다고, 조흔파선생님이서울대지망생들에게송강의시가를열심히가르치셨다. 수학을못하는나는국어를만점을받아야합격할가능성이생기기때문에송강의시가를딸딸외우고다녔다. 선생님의예상이맞아서입학시험에송강의시조가나왔다. 어와棟동樑량材지를뎌리하야어이할고 헐뜨더기운집의議의論논도하도할샤 뭇지위고자자들고헤뜨다가말녀나다 시험이끝나서동대신동의전차종점에서친구를만났는데, 공대를지망한그친구가무슨뜻인지도통모르겠어서 동량재 를 동량질 로, 지위 를 지위 ( 地位 ) 로해석해서답을써버렸다고떠들어대서줄서있던수험생들이한바탕즐겁게웃었던일이생각난다. 棟樑材 는대들보감이었고, 지위 는목수, 고자자 는목수들의연장인먹통과자였던것이다. 집은헐고뜯어져엉망이되었는데, 동량재를다룰능력이없는서툰목수들이연장통을들고허둥거리는한심한시국이눈에선하게보이게하는명시인데, 송강무렵의어휘들이오늘날의것과너무달라서그런코미디가벌어졌던것이다. 정송강은언어의마술사여서시들이무척아름다워, 입시공부는날마다기쁨을얻는환희의연속이었지만, 그중에서도훈민가의조사법 ( 措辭法 ) 이가장인상적이었다. 형제끼리의송사를말리는시조에 죵뀌밧뀌는엇기에쉽거니와어디가또어들거시라흘긧할긧하난다 라는구절이있었다. 송사를할정도로얽히고설킨혈육끼리의복잡한갈등을 흘깃할깃 이라는의태어하나로간단히처리한솜씨가탁월했다. 훈민가는교훈을목적으로하는시인데도명인의손에서나오면이런멋진시가된다는사실이감명깊었다. 국어산책 135
송강에게서는외국어처럼낯선 고자자 나 지위 같은단어이외에도 괴다 ( 사랑하다 ), 헤뜨다 ( 허둥거리다 ), 머흘다 ( 험하다 ), 하다 ( 많다 ), 소소리바람 ( 쌀쌀한바람 ), 잔나비 ( 원숭이 ), 파람 ( 휘파람 ) 같은옛말들을배웠다. 괴다 는 사랑 을표현하는말치고는덜예쁜편이지만, 아소님하도람도르샤괴이소서 ( 정과정곡 ) 처럼문맥을이루면, 다른말의음악성이그약점을보완한다. 헤뜨다 는 흘긧할긧 처럼맛깔스러운어휘이고, 머흐다 는 산인가구름인가머흐도머흘시고 라는대목에서처럼이미마음이어긋난님과나사이에암담하게펼쳐져있는장애기류를너무나실감있게표출하는어휘이며, 하다 도 많다 보다는활음조 (euphony) 가풍부하다. 대학에서는양주동선생님에게서고려가요와두시언해를배우면서고어의미학을다시터득해나갔다. 서경별곡 에서나는다음구절을특히좋아했다. 구스리바회예디신 긴히 그츠리잇가즈믄 를외오곰녀신 信잇 그츠리잇가 온 ( 百 ), 즈믄 ( 千 ) 같은고유의수사 ( 數詞 ) 를우리는그때처음으로배웠고, 그아름다움에끌려갔다. 그뿐만이아니다. 바회 ( 바위 ), 외오곰 ( 외롭게 ), 긴히 ( 끈이야 ) 등의어휘들은또얼마나시에어울리는아어 ( 雅語 ) 들인가. 이링공뎌링공 야나즈란디내와손뎌오리도가리도업슨바므란 엇디호리라 어듸라더디던돌코 누리라마치던돌코 믜리도괴리도업시 136 새국어생활제 16 권제 4 호 (2006 년겨울 )
마자셔우니노라 이것은 청산별곡 에서학생들이모두가좋아하던구절이다. 이링공더링공 의음악성과 미워할이사랑할이 가 믜리, 괴리 로압축되는고어의의미수용폭이넉넉함이매력포인트였다. 하지만그것만이아니었다. 거기에는청산을무조건유토피아로보는시조들과는다른것이있었다. 청산에서홀로밤을맞는사람의처절한외로움이그려져있었던것이다. 그뿐아니다. 누가던졌는지, 어디를향해던졌는지모르는채로느닷없이날아온돌에맞아, 믜리도괴리도없 는상태에서우니는사람의고통의질량이리얼하게표출되어깊은감동을주었다. 정읍사 의압권은 진데 라는말의압축성과다의성에있다. 질척한곳은귀로에있는길의흙탕일수도있지만, 사내들이저녁때빠지기쉬운성적인유혹의구렁텅이일수도있기때문이다. 나는이말을최근에도쓴일이있다. 혼자살면서도 진데를 디디지않고견디신어느어머니에대한찬사에서였다. 용비어천가에는 뿌리깊은나무는바람에아니흔들리고샘이깊은물은가뭄에아니그칠새 라는아름다운구절이있다. 그런데거기에서 뿌리 는 불휘 이고 흔들린다 는우아하게도 믜다 라는두음절로압축되고있다. 그밖에도 올하올하아련비올하 ( 만전춘 ) 의 올 ( 오리 ) 이나 접동새 같은새의이름도옛것이더시적이다. 그런언어적유산에서 접동접동아흐래비접동 같은아름다운현대시가생겨날수있었던것이다. 2. 사투리 가시리 에는 잡사와두어리마 선 면아니올셰라 라는대목이있다. 여기에서문제는 선 면 이라는단어다. 양주동선생님은그것을 선뜻 선선 등의 선 이라해석하셨고, 박병채선생님은 그악스러우면, 혹은까딱잘못하면 이라고풀이하고계신데, 사실은그게아닌것같다. 국어산책 137
함경도에서는나어릴적에도그말이유통되고있었는데, 뜻은 감정적으로부담을느끼는상태 를의미했던것처럼여겨지기때문이다. 현대어에서감정적인데도 덴다 는말을쓰는경우가있는데 선 면 은감정적으로가볍게데는것같은상태라할수있다. 하루쯤집에안가게할자신은있지만그것이부담이되어다시오지않을것을염려하여그리운님을보내준다는그대목은, 보내고그리는정은나도몰라하노라 ( 황진이 ) 와유사한심리상태를그린것으로, 임자있는남자를오래거느리기위한계략적인양보같은뜻도함유되어있어그말에는아주절묘한맛이있다. 이따금학자들이북한말과남한말의격차에대해서이야기하는것을보고있으면웃음이나오는때가있다. 서북지방의사투리를해방후에생겨난말로간주하는일이더러있기때문이다. 서북지방은서울에서멀어서, 중부지방에서일어난구개음화현상이나순경음의탈락같은것이일어나지않아서중세어가그대로남아있는경우가많다. 아직도평양에서 던깃불이번뎍번뎍 거리고있는이유가거기에있다. 함경도에서는순경음이없어지지않아서지금도비읍이그대로발음된다. 그래서우리아버지는 고와한다 를 곱아한다 고발음하셨다. 그래서 엄마, 할아버지가우리보고자꾸고브다고그러는데무슨뜻이야? 막내는어렸을때그런질문을한일도있다. 웃읍다 는말도마찬가지이다. 함경도에서는우습다가 웃브다 가되고 웃으워 는 웃으버 가된다. 그점에서는경상도도유사하다. 무서워서 를 무서바서 라고하지않는가. 함경도에서는아직도아저씨가 아재비 이고아주머니는 아지미 이며, 거웃은 거부지 다. 재미있는것은눈썹을 눈거부지 라고하는사실이다. 그렇다면 거부지 는음모만이아니고몸에난털전체를의미한것이아니었을까? 중세국어학자인이남덕선생님이 말배 ( 몰밤 ) 라는단어를내가알아맞히자너무신통해하시던일이생각난다. 전라도에서는또아래아의음가 ( 音價 ) 가 아 가아니라 오 였다. 군산에피난을가보니사람들은 파리 를 포리 라하고있었고, 팥 은 폿, 팔뚝 은 폴뚝 이었다. 제주도와거제도등에서울과다른어휘들이남아있는것도같은이치가아니겠는가? 138 새국어생활제 16 권제 4 호 (2006 년겨울 )
해방후에잠시같은집에산일이있는아버지의친구분이우리형제를보고북한말과남한말을다잘한다고 양개국어를하는아이들 이라고놀린일이있다. 하지만북한말은딴나라말이아니다. 중세국어의어휘들이변하지않고그대로남아있는것뿐이다. 그러니까국문과학생들이어청도나제주도같은섬으로고어채집을떠나듯이북한으로고어채집을떠날수있다면미해결의고어의의미들이밝혀질수도있을것이다. 사투리는언어유통에장애가되는지리적여건이나거리에서생겨난다. 오늘날우리나라에서는매스컴의보급으로사투리가자꾸없어져간다. 오매! 단풍들것네 라든가 가시내야가시내야가시내야각시내야 하는시구들은더이상나오기어렵게되었다. 이시점에서생각해볼것은고어의현대화다. 고어는한자어휘가쳐들어오기이전의우리말의본연의모습을지닌귀한문화적유산이다. 다행히도우리주변에는부활하여현대에도쓰이는적절한단어들이더러있다. 건널목 같은것이그좋은예다. 기차자체가일제시대의산물이기때문에옛말에는철도의건널목에해당되는단어가없었다. 그래서해방후에도오랫동안일본말로 후미키리 라고했었다. 건널목 은어색하지않으면서 후미키리 의의미망을제대로표현하는단어여서무리없이정착이된것이다. 갓길 의경우도마찬가지이다. 路肩 ( 노견 ) 이라는이상한단어가지금은 갓길 로자리가잡혔다. 21세기가열릴때태어난아이들을 즈믄동이 라명명한것도재미있다. 최근에부활하여정착된좋은어휘로는 나들목 이있다. 인터체인지라는외래어를그말이몰아낸것은뿌리가든든하고어의가적합했기때문이다. 배움집 식이아니라 나들목 식으로우리고유의아름다운말들이조금씩되살아났으면하는것이나의소원이다. 참고문헌 양주동 (1954), 麗謠箋注 ( 訂補版 ), 을유문화사. 국어산책 139
박병채 (1994), 고려가요의어석연구, 국학자료원. 박성의 (1996), 松江 蘆溪 孤山의詩歌文學, 현암사. 140 새국어생활제 16 권제 4 호 (2006 년겨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