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섭된, 신화에대한도전 나약한언니들의 < 언프리티랩스타 > 와강인한소녀들의 < 프로듀스 101> 김자양 센언니들의집합소 대한민국예능에서 센언니 란캐릭터는꾸준히진화해왔다. 과거에는코미디언이영자와같이물리적으로힘이센사람이이캐릭터를현시하였다면, 근래에들어센언니의의미는확대및변형되었다. 여권이신장됨에따라이말에정치적이고문화적인의미가포함되었기때문이다. 이후텔레비전에서남성권위적체계가상정한여성표상을거부하고남성들에게할말은하는여성들이센언니란닉네임을얻기시작했다. 즉남성우월주의코드를당연시여기지않고, 기호적으로이에저항하는여성들을지칭하는용어로사용된것이다. 더불어특정한패션, 헤어, 화장법등도이캐릭터를구성하는중요한요소로자리매김했다. 그리고이제특정음악장르가센언니의이미지와직결되기에이르렀다. 바로힙합장르다. 올해로세번째시즌을맞이한 < 언프리티랩스타 > 는기존의힙합장르에대한인식을뒤집은프로그램이다. 사실그동안한국음악계에서힙합은일종의마초성을표출하면서남성중심적장르로정착해왔다. 단적으로국내에서대부분의힙합가사는남성중심의세계관을담고있고, 이로서여성이지나치게대상화되는부작용을낳았다. 힙합장르가남성과여성에대한낡은이데올로기신화를재생산하는데기능한셈이다. 그러나 < 언프리티랩스타 > 는여성랩퍼를전면에내세우면서이러한신화에도전했다. 원형적으로힙합은반체제성과자유로움을그특성으로한다. 그렇기에같은힙합도여성이주체가될때그것은완전히다른의미를획득할수있다. 남성우월주의문화를그뿌리로하는한국힙합도여성랩퍼들이주축이되면변화할수있는것이다. 실제로오랫동안언더그라운드에서는여성랩퍼들이힙합이란매체를통해자신들만의콘텐츠를만들고있었고, < 언프리티랩스타 > 가선두가되어이를수면위로끌어올렸다. 그속에서제작진은새로운여성상을실험했다. 프로그램은여성랩퍼들의성장과그들사이의경쟁을조명하면서힙합이남성들만의장르가아님을보여주었다. 특히매시즌소위센언니라불리워진출연자들은이러한메시지의효과를증폭하는역할을했다. 시즌 1에서제시와치타가구축한이캐릭터의유 - 1 -
령은이후의시즌에서도다른탈을쓰고어김없이등장했다. 이번시즌 3에서이몫을톡톡히수행한인물은바로 나다 였다. 그녀는기존의센언니의캐릭터에돌발적인말과행동과같은사차원적인요소를가미했고, 그결과시즌 3의이슈메이커로등극했다. 춘장립스틱, 와사비립스틱과같은그녀의독특한화장법도이캐릭터로서그녀를돋보이게하는데효과적으로작용했다. 이외에도 미료 나 자이언트핑크 와같은랩퍼들역시센언니의전형성을보여주었다. 포장지속소녀들 한편올상반기에처음선보인 < 프로듀스 101> 은여성아이돌이라는가장상업적이고대중적인소재를활용한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은프로그램아이템을단순히여성아이돌가수에서아이돌연습생으로까지발전시켰고, 이시도는적중했다. 데뷔라는일생일대의중요한기회를놓고벌이는이들의도전과경합은많은이들의호기심을불러일으키기에충분했다. 무엇보다아이돌연습생들만이경험할수있는상황과감정은전에는볼수없었던신선한이야깃거리였다. 101명의연습생사이에서발생하는관계와에피소드또한매혹적이었다. 여기에제작진은국민프로듀서라는장치를더해시청자들의적극적인참여까지이끌어냈다. 이러한연출력에힘입어 < 프로듀스 101> 은 4.4% 라는최고시청률을이뤄낼수있었다. 그러나동시에프로그램은수많은손가락질을당해야했다. 비판의날은출연자들을상품화한제작자들을향해있었다. 즉, 제작진이시청자들의관심을얻기위해선정적요소를과도하게끌어들인것이문제가됐다. 선정주의는별다른고민없이쉽게시청자들을꾀는장치이기때문에텔레비전이빈번하게사용하는미끼이다. 하지만동시에텔레비전이쉽게빠질수있는함정이기도하다. 도가지나칠시에방송의공익성을침해하기때문이다. < 프로듀스 101> 도이함정에빠지고말았다. 실제로제작진은초반부터출연진들의몸매를강조했고, 외모지상주의에입각한장면들을많이집어넣었다. 출연자들중에서는미성년자들도있었기에이사안은결코가볍게넘길수있는것이아니었다. 사실남성들에게건전한야동을만들어주고싶어서프로그램을기획했다는해당방송국국장의발언은애초에프로그램이어떤의도하에만들어졌는지가늠할수있게한다. 대표적으로프로그램의공식노래인 pick me 는이러한말초적코드를적나라하게표출하고있다. 다른누구도아닌바로자 - 2 -
신을뽑아달라는내용의다소낯부끄러운가사를담고있는이노래는프로그램의콘셉트자체를상징하고있다고봐도무방하다. 이렇듯제작진은여성아이돌연습생을남성판타지의객체로인식했고, 이를바탕으로남성적관점에서소구되는여성아이돌의캐릭터와이미지를제조했다. 프로그램은연습생들의주체적인캐릭터와이미지를말소하고소녀들을포장지속상품으로전락시킬위험성을내포하고있었다. 뒤집어보기 지금까지, < 언프리티랩스타 > 가남성중심적인힙합문화에도전한반면 < 프로듀스 101> 은여성의상품화현상에일조했다는견해는널리받아들여졌다. 이러한입장은그논리가탄탄했고당위성도분명했기에대세론이될수있었다. 그결과많은사람들은 < 언프리티랩스타 > 를전통적인여성표상에도전한진보적프로그램으로간주했던것과달리 < 프로듀스 101> 은남성들에의해상품화된여성이미지를재생산한보수적프로그램으로치부했다. 그러나이러한분석으로두프로그램을모두설명했다고단정짓기에는뭔가석연치않은지점들이남아있다. 이도식만으로는프로그램깊숙이잠재해있는복잡한코드를놓칠수있기때문이다. 한번뒤집어생각해보자. 어쩌면 < 언프리티랩스타 > 가역설적으로남성적우월주의를확고히하는데기여했다는생각이터무니없는이야기가아닐수있다. 또한 < 프로듀스 101> 이새로운여성주의의비전을제시하고있다는견해가상당히일리있을수있다. < 언프리티랩스타 > 는애초에 < 쇼미더머니 > 의여성판으로출발했다. 이과정에서 < 쇼미더머니 > 의전반적인분위기와기본구조를그대로차용했다. 그러한분위기와구조는앞에서언급한한국힙합의고질적문화와무관치않다. 즉, 마초성과약육강식의논리가프로그램의근간을이루게된것이다. 여기까지는좋았다. 이러한콘셉트가여성랩퍼에의해구현될때색다른매력으로작용할수있기때문이다. 그런데 < 언프리티랩스타 > 의제작진은 < 쇼미더머니 > 와의연결고리를직접적으로드러내는전략으로까지나아갔다. < 쇼미더머니 > 에서활약했던프로듀서들과랩퍼들을프로그램에섭외했고, 이들을여성랩퍼의멘토로서위치시켰다. 남성힙합과별개로서여성힙합을상정하지않고그둘을수직적으로배치한것이다. 또한중요한순간들에서여성랩퍼들의생사여탈권을쥐고있었던이는 - 3 -
다름아닌남성프로듀서였다. 그들은여성출연자의퍼포먼스를평가하고누가자신들의트랙을가질지선택했다. 그결과여성출연자들의실력은곧남성프로듀서로부터의인정과동일시되었다. 이러한조건들은여성랩퍼들이진실로주체적이며독립적인존재가되는것을방해했고, 그녀들로하여금남성프로듀서들을만족시키기위해랩을하게끔만들었다. < 언프리티랩스타 > 속여성출연진의진취적인역할에도불구하고프로그램이여전히여성에대한남성의시각을견지하게된것이다. 다른집합의원소로전락하다 그런데미시적으로프로그램을살펴보면문제는복잡해진다. 특정한지점들에서 < 언프리티랩스타 > 속여성랩퍼들의주체적이고독립적인면이부각되고있기때문이다. 에피소드 5에서이러한면이잘드러난다. 이편에서여성랩퍼들은남성랩퍼들과무대공연순위를놓고경합하였다. 처음에남성랩퍼들은여성랩퍼들을자신들과견줄수없는상대로백안시하였다. 여성랩퍼들또한동료남성랩퍼들을자신들보다더나은실력을가진상대로인식했고, 그들에대한두려움을공공연하게표현했다. 그러나공연이전개되면서상황은반전되었다. 자이언트핑크를필두로몇몇여성랩퍼들이남성랩퍼와의대결에서선전하면서그들과어깨를나란히할수있다는것을증명했기때문이다. 제작진이의도했던메시지가빛을본순간이었다. 그리고시청자들은이타이밍에서일종의카타르시스를느꼈다. 대중들은바로이러한장면들을근거삼아 < 언프리티랩스타 > 가남성중심의신화를해체하는프로그램이라고여겼다. 실력대실력으로붙어비등한모습을보여준그녀들은진정으로센언니같아보였다. 그러나신화에대한도전은오래가지못했다. 이러한도전이더강력한다른신화로인해무력화되었기때문이다. 프로그램의남성권위적체계에대한저항이약한정도에서멈춰버린것이다. 이러한지점이잘드러났던에피소드 7을살펴보자. 7화에서는여성랩퍼들간의디스배틀이주요한내용이었다. 여성랩퍼 4 인은 2대 2로편이갈려서디스배틀을해야했다. 그런데여기서눈여겨봐야할것은무대와관객석이어떻게배치되었냐는점이다. 그중에서도디스배틀을지켜보는남성프로듀서와랩퍼들이위치하는장소는프로그램이초반에의도했던신화에대한도전이위협받고있음을강력히암시한다. 우선디스배틀을치르기위한격투기링과같은무대가보인다. 여성랩퍼 - 4 -
4인은그무대위에서있다. 배틀이시작되고, 그녀들은랩을통해서로가서로에게험한말들을쏟아낸다. 강렬하고짜릿하다. 센언니가강림한순간처럼느껴진다. 이런그녀들을저위에서누군가가지켜보고있다. 그들은다름아닌남성프로듀서와랩퍼들이다. 이러한구조는판옵티콘과닮아있다. 판옵티콘은죄수들이보이지않는감시자, 혹은없을지도모르는감시자를내면화하여자발적감시에이르도록고안되었다. 위에서한눈에죄수들을내려다볼수있게한설계는여기서기인한다. 그런데여성랩퍼들이그러한판옵티콘속죄수와겹쳐보인다. 그녀들은자신들을응시하는남성프로듀서와랩퍼들의존재를내면화했다. 그들의반응과평가는그녀들이다음단계로넘어가기위해받아들여하는권위로서작동하였다. 그녀들은이렇게남성중심의힙합체계를자신들이처한자연스러운조건으로서인정하게된다. 이러한이데올로기적장치들로인해초반에카리스마넘쳤던센언니들도어느새남성힙합의권력체계에포섭되고만다. < 언프리티랩스타 > 는신화에대한진보적인도전이사회내에서큰힘을발휘되지않도록미리예방하는임무에충실했을뿐이었다. 피상적으로프로그램속여성랩퍼들은힙합이라는채널을통해자신들만의고유한스토리를만들었고, 이는해방구로서기능하는듯했다. 그러나이통로는다시남성힙합이란권위에의해차단되고, 호기로운도전은문화적으로예방접종의효과를내는정도에서그쳐버렸다. 프로그램에서의도했던여성랩퍼들의주체적이고독립적인이미지는나중에가면온데간데없다. 종국에 < 언프리티랩스타 > 와그안의여성랩퍼들은 < 쇼미더머니 > 로상징되는남성힙합의수직적배열그아래에위치하게된다. 대중들기억에남는건그녀들의감정적이고충동적인, 그래서센언니라느껴지는잔여이미지일뿐이다. 그자체로하나의집합이되다 이와달리 < 프로듀스 101> 과그안의멤버들은 < 언프리티랩스타 > 와는완전히다른판을만들어냈다. 모두가처음에 1등에서 101등까지줄을세우는방식으로인해소녀들이원자화될것이라예상했다. 여기에선정주의가더해지면서그러한걱정은더욱심화되었다. 그러나이는기우가되었다. 소녀들은척박한조건속에서뜻밖의수평적유대를생성해냈다. 그녀들은매주주어지는미션을동료들과협력하여수행하였고, 서로가서로를보듬었다. 약육강식의논리가아닌연대와유대의논리가프로그램을지배했다. 비 - 5 -
록방송이거듭될수록소녀들이포장지속상품이되어가는상황에도불구하고, 그안에서수평적관계를유지하면서연대의가치를포기하지않음으로써인간적인면이존속될수있었다. 더불어소녀들의멘토역시여성이었다는점도차별화되는전략이었다. 여성멘토들은소녀들이남성적권위에서완전히벗어나게하는조력자역할을하였다. 그결과소녀들은어디에도종속되지않고그자체로하나의온전한집합이되었다. 처음에유약해보였던소녀들은프로그램이진행될수록동료연습생들과의협력과여성멘토의도움으로자신들만의독립적인이야기를완성할수있었다. 여기에남성귄위의체계가끼어들여지는없어보였다. 진정한센언니를향해서 여성학자주디스버틀러에따르면젠더란태어나면서주어지는 자연 이아니라일종의문화적 산물 이다. 이는단순히생물학적인여성 / 남성의이분법으로포괄할수없는여러부류의이질적존재들이있다는의미이다. < 언프리티랩스타 > 가제시하는여성상과 < 프로듀스 101> 이보여주는그것은서로다르다. 전자가힙합이란문화적토양에서생성된모델이었다면후자는아이돌문화에서탄생한표상이었다. 최초에 < 언프리티랩스타 > 의제작진과출연진들은여성 / 남성의이분법에정면도전했다. 무엇보다프로그램속센언니캐릭터는여성이주체가된힙합문화가잉태한한국사회의새로운젠더모델이었다. 그러나프로그램이진행될수록센언니들은 < 쇼미더머니 > 로대표되는남성우월주의힙합시스템에종속되고말았다. 반면에 < 프로듀스 101> 속소녀들은수평적관계와연대의식을통해자신들만의고유한체계를생성및유지했다. 진짜센언니는다른데있었다.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