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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관증언과자료를중심으로한 - 5 18 민주화운동과정전남경찰의역할 전남지방경찰청 (5 18 민주화운동관련경찰사료수집및활동조사 TF)

5 18 민주화운동과경찰 전남지방경찰청장 강성복 경찰은 민주화운동과정에서주요당사자적인위치에있었으면서도 혁명등역사적경험을교훈삼은지휘부의비무장조치와무분별한공권력행사의자제로경찰에의한시민들의직접적인피해가없었고 계엄하경찰역할의위축과보조적소극적업무수행으로그간수차례진상규명과조사과정에서큰비난없이한걸음비켜서있었다 당시전남경찰국소속수많은경찰관들은 일간의비극적현장을 함께하며생명이위협받는위험한상황속에서직접업무를수행하면서 많은것을경험하고목격하였다 아직도광주진실에대한논란이끝나지않는현실에서당시현장에 있던경찰관들의객관적이고생생한증언과자료는진실규명에큰도움이 될것이다 그러나아쉽게도 년이흐르는동안대부분의주요증언대상자들이 사망하고관련기록과자료는상당수사라졌으며 당시경찰활동에 대한자체보고서한번정리한적이없었다 이런와중에지난대선을앞두고 월초전두환회고록이발행되면서 광주사태초기경찰력이무력화되고계엄군이시위진압전면에나설

수밖에없게된것은전남경찰국장의중대한과실때문이었다 라는 경찰책임론이주장되었으나 경찰활동에대한진상조사는물론 자료와기록이없는우리경찰은침묵할수밖에없었다 아쉽지만더늦기전에생존해계시는분들의증언을확보하고혹시남아있을지모르는자료를수집해서역사왜곡을바로잡고진실규명에도움이되도록 에대한경찰의주체적보고서한권은남겨야되겠다는생각에소수인원으로 팀을꾸려금년 월부터 개월간의활동기간을거쳐전남경찰의 관련기록을남기게되었다 의성격과역사적의미에대한정치적 법률적판단과평가는어느정도정리되었으나 당시광주시민들의민주화항쟁을폭도들의난동으로매도하는주장이계속되어광주시민들에게아픔과상처를주고있다 자료를수집하고 관련자들의증언을종합한결과 과관련된 몇가지사항에대해꼭경찰이말하고밝혀야할내용들이있다 첫째 직전광주시내의상황이학생시위로무질서와혼란이 극에달해군의개입이없어서는안될상황이었는지에대하여 당시광주시내의상황은타지역과마찬가지로민주화 학원자율화등을요구하는학생시위가계속되었고폭력행위로부상자가발생하기도하였으나 경찰과학생들은일정한룰이있었으며서로배려하는분위기하에항상대화채널이가동되어있었다

특히 직전인 월 일은경찰의보호아래평화적가두시위가 있었으며 월 일은대부분의진압부대가휴식과야유회를실시하는등 평온한분위기였다 둘째 학생과시민들의공격에흥분한공수부대의과격진압은우발적 이었고 이것이광주항쟁으로이어졌다는주장에대하여 당시투입된공수부대의공격적검거위주의진압방식과잔혹행위가 상황을악화시켰다는내용에대해서는어느측이든별이유없이 동의하는사실이다 다만 신군부집권세력은의도성없는현장병사들의우발적과격행위였다고주장하고있으나 치안당국인경찰과협의없이경험없는흥분된공수부대를시내작전에투입하여한두시간만에 여명이넘는인원을검거하는등무차별적인폭력을자행하여초기시민감정을크게자극하고 시가지투입작전실시전이미공수 개여단을증파하는등광주에대한군부대의지속적증원을지속하였으며 악화되는상황에서길고위협적인진압봉으로긴급히교체지급하는등강경일변도의작전을계속하여상황을극단화시켰다는점에서 당시계엄확대조치에대한국민저항을광주시민들의초기반발을 이용하여공포감을조성하고억누르려하는의도성을의심하지 않을수없다

또한 기간중많은유언비어가떠돌았고당국에서는유언비어를 의주요원인으로발표하였다 언론이제기능을못하고고립된공포상황하에서유언비어의발생은 자연스러운현상으로원인과그현상은구별되어야한다 따라서신군부를중심으로한정치세력이목적을가지고군을동원하여시민들에게극단적인폭력을행사하는것에대해저항한것이발생원인이라면그과정에서유언비어가생성된것은자연스러운현상으로보아야한다 또한당시계엄당국에서지역감정이포함된유언비어내용을역으로 이용하여광주시민과일반국민을분리시키고이간질하는고도의 심리전을전개한측면도있어보인다 셋째 시민들이총기를탈취하여무장하고발포하여자위권차원의 군발포가불가피하였다는주장에대하여 당시대부분의사망자는총격전에의해발생되었다는점에서 총기발사책임자규명과시민군총기피탈무장시점에대한논란이있다 발포책임자규명은아직진행중이나당시시민들의무장총기대부분이 경찰관리무기라는점에서 직후치안본부에의해무기피탈경위 조사가이루어졌다 당시광주시내경찰무기는 월 일소산이완료되었으며 월 일

야간광주세무서칼빈 정이피탈되었으나실탄이없었으며 최초무기실탄피탈은 월 일 시 분경나주서남평지서에서발생하였고 이후나주 화순에서동시다발적으로피탈되어시민들의무장이이루어진것으로군의도청앞집단발포가이루어진 월 일 시전까지는시민군의총기발사는없었던것으로판단된다 또한군의발포는 월 일야간광주역부근에서이미이루어졌고 그로 인해사상자가발생하였다는점에서도시민들의발포로군의자위권 적인발포가불가피하였다는주장은설득력이없다 넷째 북한군수백명이광주에잠입하여시위를주도하고사라졌 다는북한군개입설에대하여 이주장은 당시에는언급된적이없으며 당시작성된군과정보 기관작성서류어디에도없는내용으로최근일부인사들에의해주장 되고있으며 전두환회고록에도많이암시되어있다 당시경찰의가장중요한업무는집회시위관리였으며시위상황이 발생하면경찰은시위대의인원 구성성향 주장 시위용품등을세밀히 분석하여대응방향을정하였다 이런업무는주로정보보안형사들에의해이루어졌고당시광주에는약 여명의정보보안형사들이활동함과동시에시내주요지점 개소에정보센터를촘촘하게운영하였는데 이런형사들의눈을피해광주라는한정된지역에서수백명의북한군이활동했다는것은불가능한상식밖의주장이라는한결같은증언이다

또한 계엄상황하에서경찰들뿐만아니라타정보기관의활동도 최고조에달해있었으며 월 일이후에도경찰의기본적인정보활동은 이루어지고있었으며 당시경찰통신요원들은시민군이점령하고있던도청에대간첩작전 통신망복구명목으로수시로출입하였는데이에협조하는시민들의행동에서도 이런문제를주의하고경계하는내용들이보인다 다섯째 계엄군철수이후광주시내는무장시민군에의해살인과 약탈등범죄가판치는무법천지였는지에대하여 과관련하여광주시민들이자부심과긍지로삼는것은무정부상태하의공포와생필품부족속에서도서로돕고배려하는공동체정신을보여주었으며어려운환경속에서도큰혼란없이질서를유지하였다는내용이다 당시계엄당국과정보기관등에서대표적사례로들고있는시민군에의한 건의일가족집단살인사건은확인한결과하나의사건을부풀리고그내용도왜곡되었으며 그밖에당시수많은금융기관도피해를입은사실이없었다 종료후신고내용 기록 증언등에의하면당시광주시내는 비교적안정적이었고질서를유지하고있었다는점에대해서광주 시민들의높은시민정신은평가받아야한다

특히 월 일 시경부터전남경찰국장의지시에의해아무런보호안전대책없이개인별로무작정대피하였던 여명이넘는도청경비경찰관들은광주시민들의헌신적인도움과보호로단한사람의희생도없이무사히복귀하였으며 지금도당시경찰관들은시민들에대한감사의마음을잊지못하고있다고증언하고있다 당시전남경찰과관련하여빼놓을수없는인물이당시전남경찰국장이던안병하경무관이다 당시계엄당국과전두환회고록에근무지를무단이탈하고진압업무를실패하여광주의불행을야기한무능한지휘관으로언급되어있으나 확인결과안국장은 을맞이하여단한번의근무지이탈없이최선을다하여수습을위해노력했고 상부의강경진압을거부하고시민의안전을강조하는소신을유지하였으며초기에광주시내무기를소산시켜탈취방지뿐만아니라경찰무장으로인한더큰비극을막았다는점에서사후그공적이평가되어순직과 유공자로처리되었으며금년도경찰영웅으로선정되어흉상제막을준비중이다 금번조사과정에서알게된것은당시관계기관에서작성된상황일지등문서와기록의왜곡 편향기재등신빙성의문제가심각하다는점이다 계엄정국이라는특수상황속에서계엄군의과오나잘못을기록하는것은한계가있었으며시위대와시민의부정적인면은과장 부각되거나왜곡되어기록되었다

전두환회고록은 과관련된수많은기록과진술들을역사의진실을말해줄소중한기록 이라고주장하고있는데 바로가해자의입장에서작성된수많은기록과수사과정에서확보된대상자들의책임회피성 변명성진술등이이런자신감의근거로보인다 기존기록들에의해밝혀지거나인용된내용들에대해서도오류와진위를 잘살펴보아야하고무엇보다도 의바른진상은기존기록에의존하기 보다는관련자들의증언과참여를통해서만이이루어질수있다고본다 광주민주화운동과관련하여지금까지도많은일반국민들이가장이해하지못하고 당시계엄당국과일부인사들이광주시민의폭도성을주장하는확실한근거로인용하는것이교도소에대한시민들의지속적공격이다 대규모정예특전부대가주둔하는요새화된시설에칼빈총으로무장한소수시민군의지속적공격은상식적으로이해되지않는무모한행위임에도기록에의한군의주장과교도소부근사망자발생등으로인해객관적인사실로인정되는분위기였다 이번활동중총기피탈조사과정에서광주인근모든경찰서가피해를입었으나유독담양으로시작하는동부권경찰서는아무피해가없었으며시민군의활동도타지역에비해미약하였던점에주목한결과 당시광주교도소의위치가담양으로통하는지방도로와고속도로사이에위치하여교도소경계부대에의해시민군의담양권진출이원천적으로차단되었으며담양권으로진출하려는시민군이나

일반시민들의활동을교도소공격으로오인하였거나의도적으로왜곡 하였을것으로추정된다 결론적으로시민군공격의무모함과비현실성뿐만아니라교도소공격이없었다는당시교도소장등관계자의증언과담양경찰서의피해경미 담양거주비무장일반시민의총격피해등을종합하여보면시민군의교도소지속공격은오인 과장되었거나왜곡된것으로보인다 당시전남경찰의활동과업무수행과정에서잘못된점은 먼저 공수부대의초기과격진압과시민들의무차별적폭력행위를 적극적으로제지하지못한점이다 계엄군의행위를제지하던많은경찰관들이봉변을당하였다는수많은증언도있으나시민보호의무한책임이있는경찰이보다적극적으로계엄당국과군책임자들에게문제점을지적하고시정을요구하는조치가필요했던것으로보인다 광주외곽경찰서의좀더신속하고체계적인무기소산조치와경찰관서피습에따른대비가이루어졌어야했으며 급박하고체계적이지못한경찰철수지시로많은경찰관들이위험에노출되었으며시위진압중순직한동료경찰관들의주검을제때수습하지못하고장기간방치한사례등은아쉬움으로남는다 또한기록과자료를정리보관하고참여경찰관들의생생한증언등을 통해 에대한경찰자체진상조사의의지와노력이없었던점과

포고령위반자검거등계엄업무참여과정에서있었을지모르는경찰관의 과잉행위등에대해서도반성이필요하다 전남경찰 팀은금년 월초부터아무런뒷받침없는어려운여건하에서생존선배한분한분을수소문하여 명의소중한증언을확보하였고 국가기록원에보관된치안본부작성전남사태관계기록발굴과함께사실관계가잘못된내외부의경찰기록들을찾아내는등당시자료의왜곡편향성에대해서도확인하였다 금번조사과정에서확보된객관적인증언과수집된자료 보고서는국가기관인경찰이주요당사자입장에서스스로직접작성한 관련보고서라는점에서의미가있으며역사적으로 과관련된진실을알리는데많은도움이되리라확신하며계속적으로자료를찾아내고증언등을확보하여미흡한점을보완해나갈것이다

目次 Ⅰ. 5 18 이전시위상황및경찰의대응 (5 월초 ~ 5.17.) Ⅱ. 계엄군투입이후경찰의역할 (5.18. ~ 5.21.) Ⅲ. 시민군점령기간경찰활동 (5.22. ~ 5.27.)

Ⅳ. 軍재진입이후경찰활동 (5.27. ~ ) Ⅴ. 5 18 이후신군부의조치 Ⅵ. 기타

Ⅰ. 5 18 이전시위상황및경찰의대응 (5 월초 ~ 5.17.) 전남대 조선대등대학가를중심으로교내에서시국성토대회를개최한후학교밖진출을시도하였고 일부는시가지로진출하여산발적시위를벌이다해산을시도하는경찰에투석하는등대치반복 경찰은기동대 개중대와전경대 개중대를기본으로시위에대처하였고 상황에따라광주서 서부서와광주인근경찰서직원들로구성된임시편성부대를운영하며시위상황안정적으로관리 경찰과시위대간다소격렬한공방은있었으나 대규모시위가예상되었던 에는다양한경로를통해주최측과대화하며불법행위방지에최선을다하였고 시위대는경찰의통제에잘따름으로써관공서습격 방화등불법행위없이평화롭게마무리주요시위상황및경력운용 - 5.3. 어용교수장례식 ( 전대 150여명 ) - 5.8. 교내민족민주화대성회 ( 전대 2,000여명 ), 모의총장장례식 ( 조대 500여명 ) - 5.13. 민주회복성토, 어용교수퇴진요구 ( 전대 650명 ) - 5.14. 13:00, 전남대, 5,000 여명참석, 민주화성회비상학생회의시국성토대회 - 5.15. 도청일대 9,600여명참석, 시국성토대회 ( 경력 1,497명, 부상 11) - 5.16. 19:40, 도청일대 8,000여명 1) 참석, 야간횃불행진 ( 경력 1,699명, 부상 1) 경력운용 전남대상황은서부서 조선대상황은광주서에서주로담당하였으며진압전담부대로기동 중대 전경대운용

상황에따라광산화순 나주등인근지역경찰서에서순차적으로동원하여원거리부대는여관등지에서숙영인근식당매식 근거리부대는일일이동및급식추진 광주권동원병력현황 광주권 기동대 지원부대 개서 본국 광주서부 중대 중대 중대 중대 함광곡담화나영영장여순구광평산성양순주암광성수천례양 진압부대 시위양상과경찰의대응기조 까지는전남대 조선대등에서교내시위위주로진행하였으나 이후에는시가지행진등도심권으로진출 교내시위위주로진행할때에는교문에각 개중대 후문에각 개중대씩배치하여학교밖진출차단을중점으로집회관리 하였고 이과정에서시위대의격렬한투석으로부상자발생 에는각부대가교문을책임저지하였으나 시위대는월담하거나분산하여학교밖진출 전남도청에집결하여시위전개

안병하전남경찰국장은지휘부대책회의를주재하며안전한집회관리를강조하고시위학생에게피해가가지않도록반복지시 동원지휘관등이참석하는대책회의를주재하여안전한집회관리를강조하는한편 필요시무전지시를통해안전진압기조유지 * 안병하국장은시위진압시안전수칙을잘지키라고강조하였고, 특히시위학생들에게돌멩이를던지지말고도망가는학생들을쫒지말라고하는등시위시민이다치지않도록각별한생각을갖고있었음 ( 김 1중대장 ) * 국장주재회의에서특별히시위시민에게절대로자극적인언행을삼가고시민들의야유와비난이있어도절대대응하지말고일절말을하지말라고당부하는등시위시민과우리경찰의안전을최우선에두었음 ( 이 곡성서장 ) * 진압에나서기전에부대지휘관들이과격한행동을금하고시위대를추격하지말아라, 사과탄도안면에던지지말고공중에투척하라, 최루탄도각도를유지해서발사하라는등안전진압에대한교양을수시로받음 ( 모 2기동대 ) 교문밖진출차단이불가능하여부득이한경우화학탄사용하고 시내대치상황시가스사용억제하여학생들자극하지않도록지시

경찰은다양한경로를통해시위주최측과대화하며준법집회를유도함으로써과열된 상황과는달리횃불집회 를안정적으로마무리 대학측에서는학교담당정보형사를통해평화시위를약속하며경찰이시위대를자극하지않도록당부 * 횃불집회를할때박 총학생장에게양해를구했음. 시민들보기에평화롭게해야하니감시조 ( 자체질서유지인 ) 를많이둬서질서있게하고, 나는너희들을자극하지않도록경찰에게이야기하겠다고하고학교에상주하던경찰정보관을통해경찰국장과통화를함 ( 김 전남대교수평의회대변인 ) 분수대앞시위시작전윤형용광주서장은대학생대표 명을만나평화행진을한다면에스코트를해주겠다고약속하며평화시위유도 * 대학생대표가집회가종료되면횃불을들고행진하려는데안전사고의위험이있으므로경찰이에스코트를해달라고부탁. 서장이흔쾌히평화행진을한다면당연히에스코트를해주겠다고하였고, 행진이시작되자경찰차가선두에서에스코트를하고좌우측에기동대가엄호하고시위대후면을경찰동원병력들이따라가면서보호 ( 김 영광서 )

야간횃불집회전행진시에는김 서부경찰서장이직접시위주최측과접촉하여방화및화염병투척등불법행위없도록유도 * 안국장이나에게전남대총학생회장을만나불법행위를하지않고경찰관의뜻에따르겠다면시위를허가해주겠다고이야기하라고하여내가직접박 을만났으며, 그점에대해서는책임을지겠다고하면서각서를기록해주어시가지행진을허용 ( 김 서부경찰서장 ) * 5.16. 야간에학생들이횃불을들고도청을출발하여금남로, 유동사거리, 양동시장을거쳐천변으로행진하였는데학생들의요청으로기동대원들이행진좌우를보호하는등평화롭게진행 ( 고 서부서정보2계 ) * 광주경찰서경찰차가선두에서에스코트를하고금남로중앙을행진하는시위대를기동대가좌우에서보호해주면서평화적인시위를유도하는등경찰만으로충분히시위를관리할수있었음 ( 안 광주서수사과 ) 한편 치안본부는교문저지를고수하지말고도심권에저지선을설정하라는 학원데모진압에대한긴급추가지침 을전국적으로하달 하였는데 현장에서는지시배경에대해의아해하기도함

* 80년도 5월들어잦은시위로감찰업무를담당하던나도동원을나가조대앞에서학생들을차단하였는데무슨이유인지대학교정문앞차단을하지말라는지시에의해철수를하였음. 그래서학생들이시내로몰려들어시위를하게된것 ( 김 광주서 ) * 사실 4월말인가 5월초에전통 ( 전언통신문 ) 이내려왔는데대학생들의시위를학교정문에서차단하지말고 ( 교문봉쇄를풀어라 ) 사람이많은곳이나관공서밀집지역, 즉시가지로끌어들이라는것이었음. 국장에게이를즉보하자 큰일났다, 왜그런지시를하는거냐 고걱정을하셨고, 우리상황실직원들은무슨일이터지고야말것이라는예감을가졌음 ( 최 전남경찰국상황실 ) 계엄군투입직전시위현장분위기 까지는학교별 여명수준의대학생중심의시위였고 에는고등학생과일반시민이가세하여최대 만여명이운집하였지만 경찰은주최측과소통을통해평화롭게마무리 * 당시시위양상은학생들이정문을나오려고하면우리경력이이를차단하는수준으로최루탄이거의사용되지않았으며, 끝나면서로고생했다고하면서내일보자고인사를나누고음료수를나눠먹기도함 ( 모 2기동대 ) * 5 18 당시전남대학생이었는데경찰들이강하게진압하지않았던것으로기억하며, 시내방면으로행진할때는시위대가불법행위를못하게하는, 소위옆길로새지않게하는것에만신경을썼음 ( 김 現 5 18기념재단상임이사 ) * 대학생들이개학한이후통상적인시위와진압 ( 투석을하면최루가스를분사하는정도 ) 이이루어지고있었으며, 5.16. 은학생들의횃불행진과화형식을하는등평화적으로끝나고경찰들정말고생하였다면서즉석에서모은돈십만원을위로금으로전달 ( 박 전남경찰국경비계 ) * 횃불집회는평화시위를조건으로경찰이시위를보호하였으며, 이자리에서학생들은자신들의요구조건에대한정부의화답이있을때까지시위를중단한다고선언. 즉석에서고생하는경찰관들에게준다면서위문금을

걷었음 ( 이 전남경찰국경비계 ) * 전남대와조선대정문을경찰이차단하면그안에서시위를하던학생들이시위를마치고기동대원들에게빵과우유를나눠주기도하는등원만한관계를유지, 정문봉쇄를해제하자분수대앞으로진출하여시위를하였던것이며이때도경찰과큰충돌은없었는데공수부대가투입 ( 최 전남경찰국상황실 ) * 5 18이일어나기전광주로많이동원을나갔는데시위학생들이경찰버스가오면박수를치면서마중도하였고, 경찰봉급올려주라고구호를외치기도함 ( 한 화순서수사과 ) * 5.16 시위행진이심각한상황으로경찰력으로서는진압이불가능한상황이었다고증언했으나, 시위자체는폭력화되거나확산된상황은아니고평화적인시위는사실 (5 18 청문회시임 31사단중령증언 ) 11) 하지만 일부자료에서는 야간상황을극도로혼란한것으로묘사하며 계엄군의투입을정당화하고있음 경찰은동원부대에대하여휴식을주거나지원부대를복귀시키는등광주시내는안정을되찾음 * 5. 17은경비계분직근무를섰는데아무일도없었던평화로운날이었던것으로기억 ( 박 도경찰국경비계 )

* 5. 16. 집회가끝나고부대원끼리백양사로야유회를갈정도로치안엔문제가없었는데 18일광주로돌아오려하니군이시내전역에배치 ( 최 3기동대 ) * 5. 16. 학생들의대규모시내횃불집회가끝나자부대특박이떨어져서고향인무안으로갔는데, 5월 18일아침에긴급소집명령이떨어져서부대복귀를하였음 ( 모 2기동대 ) Ⅱ. 계엄군투입이후경찰의역할 (5. 18. ~ 5. 21) 정부는비상계엄확대선포를의결하고포고령 호를발표 광주에 여명의계엄군투입 계엄군투입이후해산위주경찰작전과달리추격 폭행후검거및연행으로이어지는계엄군의공세적진압작전이전개되었고 이후시위군중급속증가 경찰은계엄분소장의지휘감독을받아계엄군의후미를지원하는 선을담당하거나연행된시위대를호송하는역할을하였고 부터는노동청 금남로입구 충장로입구 방향 선에서시위대의도청방면진출을차단하는임무수행 이기간중 개경찰중대로계엄군의작전을지원하였으며 시내주요지점에정보센터개소를운영하며시위진행사항을파악하였고 입수한관련첩보는치안본부에보고함과동시에도지사 사단장 보안부대장에게통보하며유관기관과협조체제구축

주요상황 경찰 예비검속 에동원 대학생주요간부등검거작전지원 새벽도내대학및중요시설에계엄군배치 전대정문앞 여명집결 계엄확대와휴교조치에 항의하며투석하다공수부대의강력한해산조치에도심으로진출 경금남로로진출한 공수여단 대대가최초로광주 도심에서시위대해산작전전개 파출소 개소집기류파손 투석 페퍼포그 대전소피해발생 명체포 시위진압과정에서김 남 세 이후두부찰과상및 열상을입고치료중 사망 최초사망자 야간부터시위군중급속증가 일부터는도심곳곳에서계엄군 경찰과격렬하게충돌하였고 경찰관서최초로임동파출소방화 광주고부근동원예식장길건너편에서공격을받던

장갑차의장교가 소총발사하여김 세 조대부고 년 이 대퇴부총상 광주권 개서무기실탄및비밀문서소산완료 연행자계엄분소인계총 명 연행자 명추가 시위군중급속증가로 부터도청주변노동청 금남로입구 충장로입구 개방향에최후저지선각설정하고방어작전전개 이후차량시위시작택시여대 버스등 주요피해상황 개파출소파괴 함평서직원사망 명 등전소 광주역인근시위진압과정발포로 명사망 명총상 오후 광주세무서 정절취 단실탄은가져가지않음 계엄군의집단발포 경찰해산및계엄군퇴각 국민은행앞군중이 정 여정에장전 도청앞쪽으로거치 학생 명총기칼빈정 실탄발 휴대 우체국쪽으로진격

시위상황및경력운용 30) - 5. 18. 10:50, 전남대정문앞 200여명계엄군에투석 - 5. 18. 11:25, 학생 200여명, 충장파출소유리창 7매파손 - 5. 18. 14:55, 기동1중대곡차, 학생이던진휘발유병에지붕에불 - 5. 18. 20:15, 카톨릭센터앞 1,000여명경찰, 계엄군에투석 - 5. 19. 14:30, 학생 2천여명이도청쪽으로시위 - 5. 20. 18:50, 금남로광주은행앞 5만여명시위 * 차량시위전개 : 택시 200여대, 버스, 트럭등 - 5. 20. 21:00, 버스 1대가노동청앞저지선을뚫고진입, 경찰관 4명사망 - 5. 21. 10:57, 시위군중 20만명추산 - 5. 21. 12:59, 계엄군의시위대에대한집단발포 - 5. 21. 13:30~, 시위대, 무기고및화약고에서무기 탄약탈취시도 - 5. 21. 16:00, 각서동원부대동원해제 - 5. 21. 17:21~17:34, 기동대철수지시및경비본부철수 경력운용 경찰경력현황 광주권동원병력현황 광주권 기동대 지원부대 본국 광주서부 중대 중대 중대 중대 광산중대 무안중대 장흥중대 화순중대 영광중대 진압부대 채증체포감독관

전남권 경찰서경력지원경찰서별 명규모로 개 를묶어 개중대를구성하였으며 근무휴식시간구분이없었고 포위된이후급식추진도중단 * 별도의휴식시간도없이선두에서후미로교대되면길바닥에쓰러져자는것이전부, 20일부터는급식추진이불가능하여헬기로주먹밥공수 ( 최 1기동대 ) * 처음에는정상적으로밥이추진되다가나중에는단무지가들어있는김밥이추진되고마지막에는소금으로간을한주먹밥이나옴 ( 천 1기동대 ) 시간대별경력운용 고등학생들의시위참여로시가지에경력추가배치 오후부터시위대가도청주변으로집결하자도청주변으로경력집중배치

시내중심가또는집결용의장소 개소에정보센터운영 각종시위상황파악및전파 * 시내중심가내지데모군중집결용의장소 23개소에경비전화를가설, 1개소당경찰관 2명씩을배치하여군중의조기집결및동태를파악케하는정보센터운영 34) 계엄령하경찰역할한계 계엄령이확대된시점에서경찰은계엄법에따라군의지시를받을수밖에없는상황으로시위관리 치안유지의보조적역할을수행 * 5.18. 00:00 이후는모든작전지휘권이군에이관됨 ( 안병하전남경찰국장 ) * 군인들이들어오고난다음부터경찰부대는군인들의후미를받쳐주는 2선개념으로운영 ( 군인들이시위대방향으로돌격하면경찰부대가그후미를경계해주는형태 )( 모 2기동대 ) 보안사 진입전일정보경찰등동원하여 사전검속조 운영 * 5. 17. 23시경정보외근형사들 40여명이화정동보안부대로비상소집되었는데, 전대학생회간부등요주의인물들을검거하러가는보안사요원들의길안내를하게하였음 ( 장 광주서정보과 ) * 5. 17. 22시경광주서와서부서정보형사들이화정동보안사로비상소집되었으며, 감시조와체포조로나뉘어활동을하게되었고, 경찰들이보안사요원들에게협조하지않았음 ( 고 서부서정보과 ) 상황관련입수된첩보는즉시치안본부에보고함과동시에도지사

사단장 보안부대장에게통보하며유관기관과관련첩보공유 * 도청철수전에는광주주둔군부대 31사단장과직통전화를가설하고경찰국상황실에첩보전달을위하여 31사단연락장교가수명파견되어있으며중요첩보는수시로 31사단에통보. 계엄분소정보참모인임장군실에간부 1명을연락관으로고정적으로파견, 업무연락을취해옴 ( 안병하국장 ) 경찰의병력지원요청관련 전두환회고록등일부자료에서는전남경찰국의요청으로계엄군이시위진압전면에나섰다고주장하고있으나 군동원의필요성을외면한채단순경찰병력만으로저지가능하리라는안일한판단으로사태를악화시켰다 는안국장에대한수사결과와 군에최초로병력지원을요청한시점은계엄군의과격한진압작전으로인해시내상황이악화된후인 경 이라는경찰기록및전남경찰국경비과관계자증언등으로볼때 * 19 일로기억되는데노동청과전대병원사이에우리경력이고립되자 공수부대에지원을요청하여공수부대의도움으로포위망을빠져나왔으며, 20 일저녁무렵이미시위대가시내전역을장악하고도청으로밀려왔기

때문에군지원을요청하였는데. 경찰이군에지원을요청한것은단두차례이며, 지시를받아내가직접요청 ( 이 전남경찰국경비계 ) 새벽계엄군의대학점령및공수부대의시내진압작전의전면적투입은경찰의요청과는무관하게이루어졌음을알수있음 * 18일새벽부터예상치못한보고가올라오기시작. 산수파출소에서공수부대 280명정도가조선대에진주하였다고전화보고가오고서부서에서는공수부대 320명정도가전남대에진주하였다는전통이와서안병하국장에게즉보를하였는데국장도무슨영문인지를몰랐음 ( 최 전남경찰국상황실 ) 안국장은시위가확산된후강경대응하라는상부의지시를여러차례받았으나 경찰이시민과정면충돌하여경찰의희생이발생하면계엄군이강력한진압을위한명분으로삼을수있다는생각에거부 * 5.19. 관계자대책회의가끝나고안국장이나에게 경찰이사태수습은커녕방관만하고있어사태가더욱악화되고있다는것이계엄사의시각이라며경찰이강력하게보다적극적으로수습하라는내무부장관의불호령이있었다 고이야기함 ( 정 중앙정보부전남지부장직무대리 ) * 안국장이시위진압과관련, 무장을해야되느냐고물어왔는데당시태도로보아상부로부터무장할것을재촉받고있는것으로보였으며, 5.20. 오전상부에서상황을물어와무장을하지않는것으로보고했는데또물어보면어떻게대답해야할지난감해하는모습 이었음 ( 안 화순서장 ) 특히 과거경찰이국민을향해발사한총탄이어떤결과를가져왔는가를떠올리며참모들과의협의끝에무장하지않기로결정 * 4.19때김주열의시체에최루탄이박힌모습이생생하고경찰이역사의죄인이될수없으며, 경찰이피해를당하더라도민중에게총부리를겨눌수없다는신념을가지고있었음 ( 정 중앙정보부전남지부장직무대리 ) * 5.20. 안국장이참모회의에서경찰도무장을해서시위대에대처하라는치안본부장의지시가있어많은고민중이라고하자참모들은시위진압경찰관을무장해서는안된다고건의 ( 김 기동1중대장 )

당시계엄당국은경찰책임자가소임을다하지못해사태가악화되었다며 과정에서발생한비극의책임을경찰에게전가 하지만 안국장이취한일련의행동은소극적이고무기력한태도가아닌 시민의생명과안전을보호하고인권에유의한집회시위관리를강조한것으로이에대한올바른평가가필요 계엄군의강경진압과경찰의대응, 시위의확산 계엄군은투입시부터해산위주가아닌체포위주의진압방식을 취하는등과격진압양상

투입부대는수개월전부터시위진압훈련인 충정훈련을받아왔으며 훈련의강도는대단히높았음 * 당시경찰은국민안전이우선이었기때문에시위진압이아니라시위해산이목적이었고달아나는시위대는절대쫒지않았으나, 공수부대는소총을뒤로맨상태로시위대가던지는돌을피하다가공격명령이떨어지면미리정해둔시위대를끝까지추적하여구타후연행 ( 문 광주서학원계장 ) * 경찰부대앞에서공수부대가 1개분대 12명단위로돌격작전을전개하였는데, 착검한 M16 소총을등에가로로매고, 1미터가량되는목봉 ( 경찰봉은 50센티미터가량의플라스틱봉 ) 으로시위대를무차별적으로가격 ( 조 화순서중앙파출소 ) * 공수부대가보이는사람을가격하여길바닥에쓰러뜨린후군홧발과목봉으로실신상태를만든후기절한사람의다리와머리부위를군인두명이잡아서트럭에올리는식으로트럭에태웠음 ( 구 전남경찰국상황실전경 ) 또한 계엄군은 원래사용하던것보다더길어진진압봉 개를공수하여시위진압중인공수부대에게배분하는등강경일변도의작전전개 계엄군의공격적진압관련문헌내용 국방부 사건조사결과보고서 출동부대가초동단계에신속진압 군이진압을위해투입되면 인명을상하지않는범위내에서과감하고무자비할정도로타격 데모대원의간담을서늘하게함으로써군대만보면겁이나서

데모의의지를상실토록위력을보여야한다는내용의 부마지역 학생소요사태교훈집 이 민주화운동진압작전에영향 실제 공수여단 대대는 에진압작전을전개해 명체포 대대는 에 명체포 에도 광주시내골목을다니며가택을수색하면서시위진압 또한 광주시내의시위진압에투입된공수부대원들은시민들은 진압봉이나총개머리판으로무차별구타하고 대검으로찌르고 옷을벗기는등과격진압을자행 서울지검 관련사건수사결과 학생들은계엄확대와휴교조치에항의하면서돌을던지고 이에 공수부대원들은학생들을향해함성을지르며돌진하여해산을 시도하였는데 일부공수부대원들은도주하는학생들을쫓아가 진압봉으로어깨 머리등을가격하고체포한학생들을난폭하게연행 공수부대원들은돌격명령이내리면함성을지르며시위대를향하여 돌진하면서진압봉으로시위대를가격하는방법으로시위대를 해산시켰는데 시위대의투석으로부상자가발생하자흥분한공수 부대원들은인근점포나골목 건물안까지추적하여시위대를체포

경시위중이던학생들이공수부대원에쫓겨 로들어가자 공수부대원들은직원이내린셔터를올리고안으로들어가진압봉으로가격하면서학생들과신용협동조합직원들까지끌어내도로에무릎을꿇리고머리를땅에처박게함 동구청상황일지 조선대학입구철로변에서공수부대군인이지나가는학생 명을총개머리판으로구타 조선대학으로군트럭에학생들을연행 갑바를씌워일어나면발로차고감 금남로통은공수부대들이곤봉으로때림으로시민들없음 일반시민 명정도가충금지하상가쪽및각처에서팬티만입고관광호텔앞에있으며등어깨다리는곤봉및워커발태죽이보이며빨갛게되었음 경찰은무차별적으로강경진압하는계엄군을제지하거나항의하기도하였으나오히려욕설과폭행을당하는등수모 * 금남로일대에서계엄군이연행한학생 4~5명을경찰에인계하였는데, 훈방했다는이유로공수부대대위가도경찰국작전과장의조인트를까기도함 ( 염 나주서 ) * 전일빌딩으로가는길은학원가가많았는데공수부대원들이학생들을무자비하게목봉으로구타하며연행하였고, 이를목격한광주서경비과장이제지하다오히려가격당하자이를목격한경찰관들이공수부대원에항의 ( 맹 광주서 ) * 학생들을잡으면목봉으로두들기면서신체아무곳이나가격하여피투성이로만들었는데이렇게무자비한진압을보고당시광주서경비과장이

이를제지하자공수부대가군화발로두어차례차기도하였으며이런내용이시민들에게펴져경찰에대한우호적인인식을심어주는계기가됨 ( 최 1기동대 ) 계엄군의비인격적행동에도불구하고보조적역할을수행할수밖에없었던한계를절감 * 공수부대들이검거한학생들을싣고와서광주경찰서에인수인계를하였는데, 트럭문을열고피투성이상태인학생들을발로차면아래로떨어지는식으로하차를시켰음. 우리는이럴수가있냐고흥분을하여화를냈으나지켜보는것말고는할수있는일이없었던것으로기억 ( 김 영광서 ) * 공수부대진입후사복을입거나계급장도없는보안사군인이서장실에들어가안하무인격으로이래라저래라지시 ( 안 광주서수사과 ) * 경찰국작전과장이공수부대에폭행당하고경찰서경비과장도강경진압을말리다폭행당했다는이야기를듣고광주서직원들은공수부대와자주충돌하였으며만약경찰에게무기가있었다면공수부대와교전상황이벌어질수도있었을것 ( 신 광주서청옥파출소 ) 계엄군의공격적진압방식에저항하는시민들의합세로인해시위군중이계속증가하다 도청주변에는 만명까지운집 시위군중의급속증가와과격화원인에대해군 안기부등각기관보고서는유언비어의확산때문이라고분석한반면 현장을목격했던경찰관들은공수부대의잔인한진압방식이근본원인이라고증언 * 공수부대의과격한진압으로시위양상이전투적으로바뀌었음. 경찰부대

앞에서공수부대가 1개분대 12명단위로돌격작전을전개하였는데, 착검한 M16 소총을등에가로로매고, 1미터가량되는목봉 ( 경찰봉은 50센티미터가량의플라스틱봉 ) 으로시위대를무차별적으로가격함 ( 조 화순서 ) * 공수부대가진입하기이전의학생들의시위를경찰이잘관리를하고있었는데, 공수부대가진입하여무자비한시위진압으로구경꾼에불과하던시민들을시위주체로만들어버린점에아쉬움 ( 장 광주서정보과 ) * 정보외근형사의관점으로보면, 대학생들의민주화운동이시작되었고이러한민주화운동을잠재우기위해투입한공수부대가오히려사태를악화시키자시민들이무장 ( 우 나주서정보과 ) * 공수부대가나온후, 상황이달라졌음. 방패도없이긴곤봉을들고젊은사람들을무자비하게때려서차에실어서서부서로후송을하면, 고개도못들고차에서내리면또곤봉으로때려서피투성이를만들었음. 이러한공수부대의잔인한진압방식에시민들이분노하여거리로나오고, 차량등을탈취하여돌진하는등시위가과격하게변질 ( 정 광주서부서 ) * 경찰이충분히학생시위를관리할수있었음에도어떤이유인지공수부대가투입되었고, 이들이광주시민을자극하여불행한사태가터진것 ( 오 서부서 ) * 공수부대를투입하여강경진압을하면부마사태처럼끝이날것이라생각했는지모르겠지만, 광주는부산과다른양상을보였음 ( 문 광주서 ) 인원이증가하고시위가격해지자도청을중심으로금남로 노동청 충장로 개방면에서시위군중과대치하며 최후저지선방어작전수행 * 노동청앞에서무안병력과함평병력이배치되어서로교대 (1선 2선 ) 하면서도청으로진입하려는시위대와밀고밀리는공방전이하루종일계속 ( 장 무안서 ) * 5. 20. 밤에우리 2기동대가노동청방향을선두에서차단하고있었는데버스가돌진하는바람에선두에서있던우리는피하였는데, 우리뒤에서잠을자던경찰관을덮처서 4명이현장에서즉사하는것을목격 ( 모 2기동대 )

경찰의사전무기소산 계엄군투입에따라사태가확산되고 무기피탈로인해피해가커지는것을막기위해안국장은사전에여러차례에걸쳐무기소산을지시 합수단의 직무유기피의사건수사결과보고서 에따르면 안국장은치안본부장에게건의하여경찰서및기동대무기를별도장소로이동 * 무기소산관련해서는도경국장이심오한판단에의해작전과와협의하여시위대에총기피탈을대비하여소산하도록작전2계에서예하경찰서에직접전통처리 ( 배 도경찰국작전2계장 ) * 군이투입된다음날인 19일로기억되는데안병하국장이경찰관서보관중인모든무기를 31사단으로소산하라고지시하였고만약그때무기를소산하지않았다면여러가지참혹한일들이생겼을것이라생각함 ( 안 광주서수사과 ) * 생각해보면안병하국장이무기를미리소산시킨것은아주잘한일. 경찰에게무기가있었다면시민에게발포할상황이생길수도있었을것이고그렇게되면시민과적이되었을것 ( 최 전남경찰국상황실 ) 예비군무기에대하여는 경 장성 담양 화순 광산 나주 영암 개서예비군무기탄약군부대소개지시 이후 관내예비군무기탄약군부대이관조치지시하달

시위대의경찰관서등무기탈취 전반적피탈상황 최초무기피탈관련경찰자료는 광주세무서무기탈취 실탄없음 로 이아닌 정만분실확인 으로기록하고있으나 실탄은탈취당하지않아 무장으로보기는곤란하고 이역시계엄군의최초총격사망자발생시간대 이후인것으로확인 실질적인무기탈취시점은 경계엄군의집단발포이후로시위대는계엄군에대응하기위해광주외곽지역경찰관서 예비군

무기고등을습격 총기 실탄을탈취하였으며근거리에위치한나주화순지역의피해가컸음광주권경찰관서는 무기소산 이외에도시위대는조를편성하여 영암 강진 해남 방면 광산 함평 무안 목포 방면등지로이동하며 오후까지무기탈취 이에반해 담양서는 차례피습당하였을뿐피해가발생치않았는데 계엄군이담양으로가는시위대를광주교도소길목에서차단하였기때문으로보임 * 담양을가려면구도로든고속도로든모두문흥동쪽을거쳐야하고그쪽에광주교도소가있음. 5.21.17:00 이후 3공수가오면서사망자도발생하고문제가심각해짐 ( 정 前 5 18유족회장 ) 광주권경찰서는대부분무기를소산시켜피해가없었으나 전남권각경찰관서에서는무기를소산과정중에피탈당하거나이미소산시킨무기가발각되어피탈 * 지서차석과주민들이합세하여무기를지서앞블록공장에숨기는등한참무기를소산중일때유리가깨진버스여러대를타고온시위대수십명이습격, 무기고문이열려진상태에서시위대가들이닥쳤기때문에속수무책 ( 한 나주남평면예비군소대장 ) * 반남지서에서경찰관들과함께일을하였는데지서장이무기를숨기라고전화를하여총을지서뒤에묻었는데몇시간후데모대가와서다파가지고가버렸음 ( 김 나주반남지서사환 ) 무기피탈관련사실의왜곡 시위대의무장시점에대해계엄군의집단발포 이후계엄군에대응하기위해무장하였다는것이정설로되어있고 여러

수사결과나조사결과등에서도이를인정하고있으나 세부적으로들여다보면 집단발포이전무기탈취를기록한검증되지않은자료를인용함으로써사실왜곡에큰영향을미치고있음 국방부과거진상규명위원회조사결과보고서에인용된 전남도경 상황일지 는 나주반남지서와남평지서에서 무기가피탈되었다고기재하고있는데 보안사가보존하고있는 전남도경상황일지 는집단발포이전시간대에시민에의한총기피탈을기록 인쇄 하고있으나 당시경찰이보유하고있지않던 경찰장갑차가피탈되었다는등상황에맞지않는내용이기재되어있고문서의불완전성 생산기관 년도미기재 표지와본문의내용상이등 무기피탈관련치안본부감찰기록및당시근무경찰관의증언등으로볼때조작된것으로판단됨

* 광주에서 내려 온 시위대가 지서를 습격했을 텐데, 지리적으로 나주 끝에 있는 반남지서가 8시에 피탈 당하고, 광주에서 가까운 남평지서가 9시에 피탈됐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음(염 나주서) * 지서장이 경찰 무기를 땅에 묻자고 하여 무기고에서 칼빈을 뒤뜰 마당에 묻은 기억이 있으며, 그 다음날 오후 무렵 시위대들이 와서 무기를 찾아 가지고 가버렸음. 그 날짜가 21일인지, 22일인지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으나 오후 시각이었다는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음(나 나주 반남 예비군 소대장) * 9시에 지서 경찰관 무기가 털렸다는데 21일은 남평 장날이었고 시간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으나 점심 무렵에 지서장이 나에게 빨리 무기를 소산시켜야 한다고 했음(한 나주 남평 예비군 소대장) 표지와 본문 내용 및 작성방식 등 차이 제목 작성 방식 기재 방법 표지 * 한자 오기 세로 수기 全南道敬 狀況日誌 (道警) < 전남도경 상황일지 표지 > 본문 중요사건 수사진행 가로 인쇄 < 전남도경 상황일지 본문 > 왜곡 사례 < 5.21. 08:00, 반남지서 무기 피탈 > < 5.21. 09:00, 남평지서 무기 피탈 > 63) 경찰청 감사관실, 전남사태 관계기록2 322, 331쪽 - 38 -

* 도경찰국상황일지라고한문으로표지를작성하였는데, 경자를보면아래말씀언 ( 言 ) 이빠져있음. 경찰관이라면경 ( 警 ) 이라고쓰지이렇게경 ( 敬 ) 으로쓰지는않음. 당시에는타자가많지않았기때문에타이핑문서도흔하지않았고, 활자체도이렇게진하게나오지도않을뿐더러글자체도이렇게세련되지는않았음 ( 김 나주경무과 ) * 이문건은당시경찰타자기에없는활자체라는생각이들며아무리보아도 80년도에만들어진문건으로보여지지않음. 제목을한자로써놓았는데, 경찰이 敬 이라고쓰지않고도경이란표현은다른기관에서부를때쓰는명칭 ( 이 광주서경무계 ) 이는시민의무기탈취가집단발포이전에이루어짐으로써시민에대한군의발포행위가 자위권행사차원의정당한행위라는논리를구성하기위해관련자료를왜곡한것으로추정 * 나도그자료를봤는데명백히군에서경찰자료를조작한것. 시민군이먼저무장한것으로하여군의집단발포를정당화하려는의도이며급박한순간을기록하는상황일지가타이핑으로되어있는자료는추후에특정한목적을가지고작성되었을가능성이높음 ( 정 前 5 18 유족회장 ) 여러관련자증언에따르면 전남도경상황일지는 년 청문회를앞둔시점에서군내부에설치된 분석반에서조작했다는가능성 * 88년 5 18청문회를앞두고군내부에서는 511분석반이라는단체가만들어졌고거기서청문회에서의답변을위해조직적으로관련자료를조작, 집단발포이전에무기피탈이있었다는자료역시조작된흔적이여럿보인다는것이전문가와관계자의입장 ( 정, 신문기자 ) * 5 18에대한모든조작은 511에서이루어졌다. 88년경국정감사와청문회를대비해서만들어진조직이 511이다.( 정 前 5 18유족회장 )

* 당시이런타이핑문서는보기힘들었으며, 전동타자기로친것같다는생각이듬. 반남지서는나주경찰서관내에서가장안쪽에있으며, 지서에예비군무기가있는데경찰무기와따로털렸다는것은조작된것으로생각됨 ( 김 나주보안과 ) 광산하남파출소 와 함평신광지서 무기피탈역시경찰감찰기록등관련자료와증언을종합해볼때신빙성이떨어지며실제사실과다르다는것을추정할수있음 * 당시하남파출소는없었고하남지서가있었음. 당시광산경찰서에는동부, 명동, 서부, 역전등 4개파출소가있었다 ( 임 광산서수사과 ) * 하남파출소에서칼빈 9정이피탈되었다 는기록이있는데이는잘못된기록이라생각함. 그이유는당시 4명이근무하는데총이 9정이있을필요가없으며도로포장도안되어있고, 버스가하루에서너번다니는오지였으며, 당시시위대에의해피해를입은것이전혀없었던것으로기억 ( 양 광산서하남지서 ) * 시위대오기전날지서무기와예비군무기를공항무기고로전부가져다놨으며실탄은면사무소민원실창고에보관하고. 그다음날지서장하고둘이지서에앉아있는데자네 ( 홍 ) 가시위대가온다고전화를해줘서, 참외밭으로도망을갔으며하남은무기하나도안털렸음 ( 이 하남면예비군중대장 ) * 지서무기고는지서바로뒤편에있었고, 예비군무기고는지서바로옆에있었으며지서직원이 3~4명에불과하고야간에는우리소방대원 2명이지서에서함께잠을자며근무를했기때문에신광지서무기가피탈당했다면내가모를수없음 ( 김 함평신광의용소방대장 ) * 오일팔당시함평경찰서무기는하나도피탈당하지않았음. 날짜는모르겠지만관내지파출소무기를경찰서무기고로소산하게한후 ( 경찰서에올때대로를이용하지말고소로를이용하여가지고오라함 ) 지파출소무기와경찰서무기를양림리에있는 702 전경대대로옮겨놓았다가, 다시함평예비군대대로옮겨놓았기때문 ( 임 함평서경무계 )

무기피탈주요현황 주요경찰관서무기피탈현황 전남도경상황일지 군보존왜곡자료 사건조사결과보고서 국방부 관련사건수사결과 검찰청 경찰서상황일지 전남경찰사 전남사태관계기록 경찰청감사관실 나주 화순 광산 함평 본서 반남 남평 영산 본서 동복 광업소 능주 하남 신광 칼빈 정 구경 정 구경 정 칼빈 정 구경 정 구경 정 칼빈 백여정 백여정실탄 발 칼빈 정 구경 정 구경 정 엽총 정공기총 정 경찰무기 정청경무기 정민유총포 정 칼빈 정 칼빈 정 무기 정 칼빈 정 구경 정 탈취시도 체포 칼빈 정실탄 상자 무기 칼빈정칼빈정 구경 정 구경 정 칼빈 정 칼빈 정 칼빈 정 칼빈 정 정 정 정 정 정 정 정 정 정 수류탄 개수류탄 개 칼빈 정 칼빈 정 구경 정 구경 정 차 칼빈 정칼빈 정칼빈 정 무기 트럭 칼빈 정청경칼빈 정 차 피탈실패 시간미상 칼빈 정 칼빈 정 칼빈 수량미상 칼빈 정 칼빈 정 칼빈 정 시간미상 오후 총기 여정 총기 여정 무기피탈내역없음실탄 박스실탄 박스

경찰관서별무기피탈시점조사결과 당시감찰기록 나주서경찰관과예비군중대장 전투소대장등관련자증언등종합한바 과정경찰관서최초무기피탈은 경나주경찰서남평지서에서발생하였고 하남지서와신광지서에서는무기피탈이전혀없었던것으로확인됨 또한 전남도경상황일지 보안사 및동기록을인용한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결과보고는화순광업소예비군무기고가 경피탈칼빈 정된것으로기재 하고있으나 화순서상황일지및전남경찰국상황일지 집단사태발생및조치상황 에는 이후로기재하면서피탈과정을보다세부적으로나타내고있음 영산포지서에서칼빈 정실탄없음이피탈되었다는기록 도있으나 피탈된무기가없다는기록 도있고 당시

지서장에대한감찰또는징계기록확인되지않는등시위대의무장관련기록으로보기에는어려운것으로판단됨 * 영산포지서장오삼렬이고영산포지서는무기가피탈당하지않았는데, 이것은엉터리다. 영산포지서장이그해에승진을했는데무기피탈당했다면승진을하지못했을것 ( 나 나주서경무계장 ) 계엄군의발포와경찰의해산 발포직후현장상황시위대의사전무장관련 군은사전무장한시위대에대응하기위해자위권발동차원에서발포했다고주장하나 군기록에는시위대의발포와계엄군의사상에대한내용은있으나공수부대원의발포로인한시민들의사망보고는없으며 군의여러기록 공수여단 공수여단전투상보 육군본부 사단 전교사상황일지 에는 도청앞발포상황이일괄적으로누락 경찰의진상보고 도 계엄군이철수한것으로기록하는등계엄군의발포상황을의도적으로누락하였음을알수있음

시위대에대한집단발포 피해를줄이기위해해산명령및경력소산조치 이후경찰은동원경력인명 계엄군의집단발포이후시위대가무장을하고도청을향해반격을 취하며다가오자경찰지휘부는동원경력의안전을위해해산결정 * 5.21.15:00 경치안본부장에게병력을철수하겠다고건의한바, 현지계엄 분소장과상의하여결정하라고지시하므로계엄분소장에게지방지원 3 개 중대우선철수를건의하고지원중대장에게원대복귀지시함 75)

안국장은 경 개서지원부대복귀지시하달 경광주서부서장 개기동중대장에게군의철수상황에맞춰철수지시 경공수단과함께철수한후경찰헬기를이용항공대로철수한것으로진술 * 21일 17:30경경비과장이무전으로호출하여 1,2중대장과국장실로갔음. (3중대장은고립되어오지못함 ) 경찰국장은부대해산을지시하면서계엄군에의해삼사일내에회복될것이니대원들을잘소산시켜서피해가없도록하고무등산일대가괜찮을것이므로그쪽으로소산하여부대관리를하라. 자신은송정리경찰항공대에있을것이다. 소집지시하면집결하라는명령을받음 ( 송 118전경대장 ) * 5.21.16:30 경경찰국장님께서강진서장님을위시한출동했던각서장님께폭도는무장포위하고있고도청을경비하는군부대도철수한다고하니각서별로철수하여귀서하라는지시..( 양 강진서 ) 상황일지에는 에순차적경력해산지시후 에경비본부가최종적으로도청에서철수한것으로기록되어있고 당시동원경찰관은 시경부터해산을시작했다고증언 * 5. 21. 15시경도청을선회하는경찰헬기에서안병하국장이직접무전기로장비를도경에반납하고해산하라는무전을몇차례반복 ( 김 조영광서 ) 경력소산지시는무전이나구내방송으로하달되었으며 급박한상황에서일부직원들은전달받지못하고주변상황에따라해산 * 시민군이도청으로진입하려하니빨리대피하라는취지의구내방송이울려사복으로갈아입고도청담을넘어대피. 지방에서동원된직원또한작업복과장비를벗어던지고사복차림으로정신없이어디론가도망 ( 강 전남경찰국대공분실 )

* 5. 21. 16시에서 17시사이에경비계직원들이해산하였는데별도의해산지시를들은것은없으며총소리에놀라서알아서도망가는식으로해산 ( 박 전남경찰국경비과 ) 한편 천여명이넘는대규모동원경력이단시간에피해없이해산하는데시민들의도움이결정적인역할을했다는것이동원경력의일치된의견 * 장비와진압복을벗어던지고츄리닝차림으로문화방송과전남여고를지나동명동인근에다다르자, 주민들이전투경찰대원인것을알아보고, 내새끼들고생한다며서로집으로데려갔으며복귀후들은이야기지만, 각기흩어져들어간집에서하루이틀밤을자고, 옷을얻어입고귀가하였다고함 ( 이 기동3중대장 ) * 도청뒷담을넘어서골목길로몰려드는경찰들에게광주시민들이사복을내주었음. 어떤시민들은골목길로대피하도록안내까지해주었고나는나주병력서너명과함께대인동인근민가로대피. 집주인은생면부지인우리들에게저녁과아침은물론잠까지재워주고사복도주었음 ( 김 나주서 ) * 당시시민들은경찰에매우우호적이었음. 기동대원들에게물도떠다주고, 화장실도이용하게해주었으며, 천명이넘는경찰관들이도청을탈출하는과정에서대다수가사복을얻어입었으며, 그무렵시위대가총을들고중요사거리등을모두장악하고있었으나, 탈출하는과정에서한사람의경찰관도다치지않았음 ( 김 전남경찰국경비과경비계 ) 만약경찰이계엄군과같은진압방식을취했다면해산과정에서많은경찰피해가있었을것으로추정 * 시위대들이총을들고도청에들어오는것을보고도청뒷담을넘어도망쳤으며, 골목길로뛰다가아무집에나들어갔는데주인아주머니가반지하같은연탄창고로들어가라해서, 들어가보니도청직원으로보이는사람 2~3 명과경찰복을입은사람 4~5 명이있었음 ( 구 전남경찰국상황실전경 ) * 도청에서빠져나올무렵 2천명가까운경찰이안에있었는데, 동시에탈출하면서도모두사복을갈아입을수있었고한사람도피해를입지

않았던것은당시경찰과시민과의관계를단적으로말해주는것 ( 천 1기동대 ) * 광주로동원됐던경찰관들은걸어서경찰서로복귀하였고, 그들은하나같이시민들의도움으로사복을얻어입고, 밥도얻어먹을수있었던것으로보아시민들이경찰을적대시하지않았다는것을알수있음 ( 우 나주서정보과 ) Ⅲ. 계엄군의철수이후경찰활동 (5.22~5.27) 집단발포이후계엄군이철수하고시민군이도청을장악하자계엄군은광주외곽을봉쇄 새벽재진입작전 충정작전 전개 전남경찰국은항공대로 광주서와서부서는상무파출소로 를옮겨비상근무체제유지하였고 이기간에도정보형사들은시내상황을파악하여보고하는임무를지속수행 일부직원은계엄군에파견되어재진입시지리안내를담당하기도함 도청에서철수한지방경찰서의경력은현장에서해산후 순차적으로복귀하여각서자체경비 정보활동등기초치안활동전개 무기탈취를위한전남권경찰서피습과탈취총기를이용한강력사건이몇차례발생하였으나대체적으로안정적인치안유지 주요상황 집단발포후계엄군퇴각 경찰 경력소산 치안본부로부터경찰관자위권발동지침하달 시민수습위대표 명 상무대계엄분소방문 개수습안전달 지원동주남마을앞소형버스에공수부대총격 승객 명사망 차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개최

안병하국장 지휘포기및직무유기혐의로보안사로압송 * 5.26. 안前국장은신임도경국장이타고온헬기편으로바로준비도없이치안본부로갔음. 당시 CP에는직원 50 60여명이있었으나거의몰랐기때문에이임인사도하지못함 ( 이 전남경찰국항공대장 ) * 5.26. 13:00경상경하여국장님께서정보과장실로들어가정보2계장실에서이야기하고있었는데그사이에보안사령부로갔다고했음 ( 권 부속실장 ) 충정작전개시 광주재진입 개부대 여명투입 경찰의비상근무체제돌입 계엄군철수와함께해산한경찰은전남경찰국 를이전 익일 부터비상근무에돌입하는한편 군재진입을앞두고검문소운영및정보 보안등상황대비에중점을둔치안활동전개 광주서와서부서는 를상무파출소로이전하고 최소경력으로기초치안활동전개 비상연락체계를유지하면서직원들이교대로서내에출입하며상황파악 야간에는시민군과의충돌을피하기위하여일부만잔류 * 사복으로경찰서에출근하여국에서하명하는폭도들의동향, 주동자에대한채증, 계엄사에서지시되는각종업무등을최소한으로수행 ( 안병하국장 ) 78) * 시민군점령기간에도총각경찰관들몇명이서사복을입고경찰서를지켰는데, 중간중간과장이나서장등간부들이수시로경찰서에나와서상황을점검 ( 안 광주서수사과 )

시위대의동향파악을위해대공 정보기능활동전개, 첩보입수및보고 * 5. 21. 18:00경시내양개서장과일반전화로통화하여소재를확인후서부서병력은상무대파출소로집결시키고, 광주서병력은광주서주변적당장소로병력을집결시켜대공및정보요원은폭도들의동향파악과주동자에대한채증활동을강력히하라고지시 ( 안병하전남경찰국장 ) 83) * 해산한다음날연락이와서경찰서로갔는데, 경찰서안으로들어가지는못하고, 경찰서바로건너편 2층치과에서정보2 과장과정보형사들이집결. 정보형사들이앞장서서경찰서를지키고경찰의역할을해야한다고독려,

정보형사들은시내에나가서지속적으로시위대움직임을파악하여보고 ( 김 광주서정보2과 ) * 광주는무정부상태가되었으나, 23일인가 24일부터는낮에는사복을입고파출소에나가서파출소도관리하고동태도파악 ( 노 기동1중대 ) 작전거점현황을파악하여보고하고경찰관을계엄사파견 통신요원들은도청에직접출입하며통신망을복구하는등이기간가장적극적역할을수행함으로써비상체제의빠른안정에기여함 경찰국폐쇄직후경찰항공대에경비전화회선개설하고 일치안본부와비상통신망구성 일에는 에일반전화회선을증설 광주시내첩보활동망으로사용케하는등지원활동 * 5.21이후폭도들점령하에서도통신기술자들은 18명까지수시로출입하면서통신유지에노력하였고...( 안병하전남경찰국장 ) 86) 그밖에시위대가탈취한무전기로교신한내용을각중계소를통해입수 경찰국상황실에제보하는등정보활동수행 계엄군은시민과대립관계였고지역지리에취약했기때문에사전선무활동및재진입시경찰정보 보안기능을동원하였음

* 계엄군이들어올때까지외근형사들은광주시내를돌며시내상황을파악하여보고하였고, 일부직원들은계엄사에동원되어비무장으로목숨을걸고계엄군을안내 ( 한 광주서정보2계장 ) * 5.23. 상무대로집결하여헬기를타고무등산자락으로이동, 주둔해있던공수부대원들과생활하다가 27일 00시경사복비무장상태로광주시민회관까지선두에서길안내 ( 장 광주서정보과 ) * 5.26. 경찰서를지키고있는데, 경찰서에서밤을새고새벽에진압군이오면도와주라는지시가내려옴 ( 안 광주서수사과 ) 해산경찰의복귀및활동 해산된경찰경력은복귀명령이후순차적으로복귀하여 광주서 서부서 복귀 기타동원 개서 명 는 명을 제외한전원복귀 한반면 기동대원은 명중 명만복귀 * 소산된경력에대해라디오나전화를통해경찰관등공무원복귀명령을내렸으며 복귀시간을넘겨복귀한직원일부는징계를받기도했음 ( 최 3 기동대 )

경찰은복귀한경력으로자체경비 피탈무기회수등의임무를수행 이기간시민군과마주치기도했으나별다른위해입지않고업무수행 * 젊은직원들은피탈무기회수및시위대차단을위하여나주대교에서근무했으며, 나는피탈무기회수담당이었는데총번마다카드를만들어놓고총기가회수되면하나씩찾아서정리 ( 김 나주서보안과 ) * 시청을지나는데 임시상황실 이라는간판이보여들어가서신분을밝히고경비전화를하자상무대쪽에있는경찰상황실과연결이되었고, 계속상주하며상황을유지하라고지시를하여시청임시상황실로들어오는내용을경찰상황실로보고함 ( 최 전남경찰국상황실 ) * 광주비행장으로피신하였다가 23일경경찰서로복귀하였던기억이있으며시위대가경찰서에들어오기도하였지만대부분아는얼굴들이라기물을부순다거나피해를입히지는않았음 ( 임 광산서수사과 ) * 도청을시위대가점령하고있을때나는매일도청으로나가서상무관우리부대막사도둘러보았는데내방에들어가자시민군이있었으며, 그가되려나를보고누구냐고물어서 내가중대장 이라고답하자계면쩍어하면서자리를피해주어몇가지내소지품을챙겨나오기도하였음. 내가소년계장을하였기때문에넝마주이와불량배등을많이아는데, 그들이총을들고다니면서도나를보고는모르는척해주었음 ( 이 기동3 중대장 ) 경찰의자위권발동 전남경찰국은치안본부로부터내려온 경찰관자위권발동지침을일선서해안전경대등에하달 이는추가적인경찰관서피습및무기피탈을방지하여사회불안을수습하기위한조치였으며 자위권발동이후피습및무기피탈급감 * 5. 23. 부터는총기를휴대하고경찰서자체방어를실시하였으며, 경찰서옥상에 LNG를설치 ( 김 나주서보안과 )

특히 전남경찰국에서는자위권발동대상 요건과한계 구체적발동 방법을세부적으로적시 해산과방어목적위주의자위권행사를각경찰서 예하부대에하달함으로써시위대와의유혈충돌방지에최선을다함

* 24일경학교사거리차단지시에따라경찰관칠팔명이무장하여차단을하였는데, 학야교방향에서올라오는시위대차량을발견하고 100여발의공포탄을발사하여퇴각시켰던기억도있다.( 임 함평경찰서경무과 ) * 장흥관산지역에서해안경계를하고있었는데대대장이시민군이내부로진입하면하반신이하사격을지시하였음 ( 공, 212전경대 ) 광주시내경찰서는무기를미리소산시켜무장이불가능하였으나전남지역경찰서는동원경찰관의복귀상황에따라순차적으로자위권발동태세완비 * 5. 24. 10:00 경다시금경찰서자체무기를전경대로부터가져와전직원에게분배하였음 ( 정 목포서경무과 ) * 당시경찰은무기가없었는데도자위권행사차원에서무릎아래를조준사격하라는식의조금엉뚱한지시를받은기억이있음 ( 맹 광주서 ) 시민군점령기간광주시내치안상황 사건 사고등범죄발생추이 계엄군에의한충격적인유혈사태가발생한인구 만의대도시에 대량의무기가유출됨에따라총기관련사건 사고가발생할개연성이 농후했지만 경찰기록에따르면유일하게서부서상황일지에구체적 피해기재없이강도사건발생사실만두차례기록 되는등전반적으로 안정된치안상태유지

당시합동수사본부에서바로처리한사건이많아범죄사건기록부를통해서도사실여부를확인할수없는가운데당시법원판결문등으로실제확인된강력사건은다음과같음

* 5.21~27간치안은그전보다는오히려나았으며, 그때도금남로는금융가였고한국은행, 상업은행, 조흥은행등이있었는데한군데도털리지않았음. 은행에서혹시총을들이대면줄려고준비하는데도있었음 ( 정 前 5 18 유족회장 ) 하지만국방부, 국가안전기획부에서는특정사건을반복해서기재하거나, 구체적피해사실이확인되지않는사건을나열함으로써계엄군철수이후무장폭도에의해광주시내가극도의혼란상태에빠진것처럼기술

학운동일가족 명사망사건은 실제가족내원한에의한일회성의우발적사건이었음에도군과안기부기록에는무장폭도에의한여러개의사건처럼기재하는등사실을왜곡하고있음 * 사건이있긴있었으나시위대가죽인것은아니며, 젊은방위병이개인적감정으로계모, 이복동생, 친아버지를죽인사건. 가해자는현직군인이었기때문에군사재판에서사형선고를받고집행이되었는데 5 18 시민군중사형이집행된사람은없었음. 5 18을비하하는세력들은이사건을시민군의소행이라고주장하는데엄연히잘못된것 ( 정 前 5 18 유족회장 ) * 상무대영창에서가해자최 과 4~5개월정도함께수감생활을함. 당시최 에게사건경위를물어보았는데새벽에자기집담을넘어들어가다가계모와이복동생이뭐라고하니까깜짝놀라서방아쇠를당겼다고했음. 이후남한산성으로이감되어사형이집행됨 ( 윤 現 518구속자회지회장 ) * 침입강도가 3명을총으로살해했다면수사본부가꾸려졌을것이며, 폭력반장이라항상무전기를들고다녔기때문에시내상황을다알수있었는데그런일은없었음 ( 전 광주서수사과 ) 광주사태의실상에서도 일발생한황금동박승휴비뇨기과병원강도사건을 일세차례나발생한것으로반복기재 < 광주일가 3명총격피살 ( 동아일보 1980. 5. 26.) >

시위대의외곽진출과교도소습격설 계엄군은 오후시내에서철수하면서광주외곽지역을차단하기 위해외곽봉쇄작전을수행 일부문헌에서 시위대의폭도화 를주장하기위한핵심사건으로 광주교도소습격사건 을들고있으나사실관계왜곡추정 오후부터다음날까지 차례의공격을받았다는주장이있으나 당시시위대의무장수준을볼때실제교도소 개공수여단이 무장한채삼엄한경계를서고있던교도소를습격하여재소자의 탈옥을계획했다고보기에현실성이떨어지며 * 시민군이교도소를습격했다면교도소주변에시체가있어야지어떻게도로에 있을수있겠냐, 당시교도소에는 3 공수여단병력이중무장하고있어서 교도소습격이란상상할수도없었고, 계엄군이시인근지역의시위확산을 막기위해무차별발포한것으로알고있다 ( 당시광주교도소장한 ) 104)

시위대는집단발포이후계엄군에대응하기위해화약고광업소등무기보관장소로이동중이었으며 광주교도소방면진출또한재소자탈옥목적이라기보다무기확보를위한것으로보여짐 또한담양방면으로진출하려는시위대를교도소를향해간다고전파한사례가확인되는등오인 또는왜곡가능성농후 * 광주교도소쪽에서총격이일어났다는이야기를듣고갔더니아마계엄군들이광주교도서인근에서광주의참상을알리러나가는사람들을못나가도록저지하면서그쪽을뚫고나가려는저희시민들을향해서무차별총격을가한것같음. 도로변에군데군데시체가널려있는데계속사격을하기때문에시체를가져올수없었음 (5 18 청문회시시민군박 ) 109) 오히려전남대에서광주교도소로이동배치된 공수여단의연행자강경진압및단순통행자등에대한총격으로다수사망자발생 * 광주교도소에 31사단이주둔하고있다가 5.21. 17:00 이후에는전남대에있던 3공수여단이들어오게된다. 31사단은향토사단이라과격하게하지않았는데 3공수가오면서사망자도발생하고문제가심각. 담양대덕에거주하는사람들이차를타고집에가다가먼거리에서쏜총에맞아숨지기도함 ( 정 前 5 18 유족회장 )

철수과정에서발생한시체및교도소인근교전과정에서사망한시체등 구의사체를교도소부근에가매장 특히 외곽봉쇄작전을수행했던주요지점에서계엄군에의한피해가발생했던점으로보아외곽통제를위한무력행사를정당화하기위한시도로추정 5 18 당시북한군개입설 일각에서북한군개입설이꾸준히제기되고있으나 의전과정을현장에서직접보고들었던정보형사의증언 거동수상자의신원확인등당시시민군의자구노력과관련기록등을검토한바 신빙성이떨어짐

정보형사및현장경찰관의견 정보형사들은지정장소에배치되어상황을전파하거나 시위대를따라이동하며이동상황 주요참가자 시위내용 특이사항등을공중전화나정보센터개소를이용하여전파 * 당시광주서정보과학원반형사 4명은전남대부근에여관방을얻어놓고기거하면서전남대시위상황을파악하여서에보고하였고, 시내진출이후에도시위대를따라다니며동향을수시로유선보고 ( 장 광주서정보과 ) 계엄군철수이후에도정보형사들은광주시내에남아관내상황을수시전파하였고 재진입시지리안내역할을수행할정도현장에밀착된근무를하여누구보다상황파악이정확했음 * 광주서정보과에외근형사가 15명, 정보2과에 15명정도가있었는데시위가발생하면사복으로시위대와함께이동하며상황을보고하였고, 경찰해산한이후에도정보형사들은시내에나가서지속적으로시위대움직임을파악하여보고 ( 김 광주서정보2과 ) * 경찰이해산되고계엄군이들어올때까지나와정보2계외근형사들은시내상황을파악하여보고하였고, 일부직원들은계엄사에동원되어비무장으로목숨을걸고계엄군을안내하기도하였음 ( 한 광주서정보2계장 )

시작부터계엄군이들어오는전과정의현장에있었으나 관계기관이나현장경찰관들끼리도북한관련첩보는전혀거론된바없었다고증언 * 5 18 당시북한군 600명광주침투설은말도안되는소리. 600명이나내려왔는데경찰들이모를수없는일이며, 설령당시에몰랐을지라도나중에라도파악이됐을것 ( 정 전남경찰국인사계장, 전 광주서수사과폭력반장, 김 광주서감찰 ) * 안기부에서공작비, 활동비, 수사비등이모두나왔음. A급공작 ( 간첩검거공작 ) 도해야했는데공작비가아니라실적때문에없으면억지로만들기도했는데북한군이나왔다는첩보가있었으면완전 A급공작이되는데그것을그냥넘어갈대공형사가어디있겠나 ( 강 전남경찰국정보과대공분실 ) * 5 18당시북한군 600명이내려왔다는것은말도안되는소리. 광주시민들이다알고있는사실이며, 민주화를위한것이지북한을동조하기위함은아니었음. 북한군이왔다는것은순엉터리 ( 박 광주지검수사관 ) * 5 18때정보형사들이시위대에근접해따라다녔고, 군과경찰이철수한뒤로는먼발치에서라도다지켜보았다. 그당시경찰근무한사람들한테물어봐라. ( 북한군을 ) 봤다는사람이없었음 ( 고 광주서부서정보과 ) * 그렇다고북한군특수요원 600명이광주에들어왔다고하는것도너무터무니없는말. 내가경찰재직기간동안정보와대공업무를오래했는데 5 18 당시전혀들어보지못했음. 당시경찰보다정보력이강했던보안사나정보부에서북한군이들어왔다면그사실을인지하였을것이고, 인지하였다면어떻게든경찰에게지시하여소정의조치를하게하였을것임 ( 한 광주서정보2계장 ) 북한군개입설의신빙성을상쇄하는정황및기록 나주 화순등지에서시민군들이간첩용의자를잡아경찰에신고

인계하였고 서부서강경섭이간첩으로오인받아끌려간사실등시민군들이당시대공용의점을가진사람을내부적으로적발하는활동을펼침 * 5. 22. 6시경데모대차가경찰서앞에정차하므로총을겨누고접근하면발포한다고고함을지르자간첩을잡았다며인계를받으라고하여 40대후반으로보이는여자한사람을인계받아정보3계나천일에게인계한기억도있음 ( 김일성운운하며횡설수설하는여자로당시대공혐의점없어석방 ) ( 염 나주서보안 ) * 5.24. 15:40 농성동에서주민들이경장강경섭을붙잡아폭도찝차에태워어디로가버렸음 / 16:15 경장강경섭을간첩으로오인하여체포후집에가서주민등록증확인후석방함 ( 서부서상황일지 ) * 5.24. 00:15경신고자최 (55년생 ) 의거동수상자출현신고에따라군부대와합동수색한결과, 보성군벌교읍벌교리 212에서 2명을발견하였으나대공상용의점없음으로확인됨 ( 화순서상황일지 ) 전남경찰국통신요원들은시민군으로부터출입증을받아대간첩작전에필요한통신망을회복시킨다는명목으로도청을출입 전남경찰국에서작성한 광주사태진상 경 을보면 계엄군투입 강력히해산시키던중부상자속출로시민들자극하였고 유언비어유포등으로시민들이학생시위에가세하여계엄군에폭력으로대항한것으로정리하였을뿐 북한군관련내용전혀없고

국가안전기획부가작성한 광주사태상황일지및피해현황 에는시민군의세세한활동까지시간대별로기재될정도로상세한기록임에도불구하고 북한군관련내용은전혀언급되지않음 결국 직후어떤기록에서도확인할수없는 북한군개입설 의의도적거론은 민주화운동의역사적의미를훼손하려는시도로보임 Ⅳ. 軍재진입이후경찰활동 (5.27. ~ ) 경찰은 재진입과함께업무재개하고민심수습활동전개 특히 광주사태수습방안 등을통해 의격화원인과문제점 향후우려사항등을분석하는한편경찰피해점검및피탈무기회수등수습작업전개 계엄사령부는광주재진입이후 관련자에대한검거및처벌 홍보활동을통해진압작전의정당성확보시도하였으며경찰에는포고령위반자검거활동지시 5 18 과정경찰피해상황 117)

관련경찰관피해 순직 공상 현황 사망 부상 순직경찰관 명에대하여실제수여일은확인할수없으나 자옥조근정훈장수여한것으로기록 기무사와경찰기록상부상자수에차이가있어실제 과정에서 부상을당하였음에도공상처리가제대로되지않았을가능성이 있다고추정됨 물적피해 경찰무기 탄약피탈 경찰관서피습 차량피탈

민심순화, 수습활동및진상보고 전남경찰국은지역의빠른안정을위해현장여론을담은 광주사태수습방안 을마련하고민심순화활동계획을수립, 전개 특히 광주사태수습방안에서는 현존문제점이라고표현했지만 광주시민이느끼는억울하고비통한감정을비교적생생하게나타냄으로써유언비어와폭도성부각에치중한군이나안기부기록과는차별성이엿보임 광주사태수습방안

민심순화활동 경찰주도

경찰의이같은민심수습및순화활동계획에도불구하고계엄당국은 치안유지방침지시를통해가택수색을통한저항폭도체포를강조

광주사태진상보고 앞서작성된수습방안이나민심순화활동계획과달리광주사태 진상보고는철저하게계엄당국의논리에맞춰구성된것으로보임 계엄확대발표와김대중연행 학원점거 학생시민자극 계엄군투입후시위학생과시민에게위력과시로피해자속출하고 유언비어가난무하게된것을발단동기로분석 계엄군이투입 강력히해산시키는중부상자속출로 시민들자극하였고 유언비어까지유포지역감정으로화하자시민들이 학생시위에가세 계엄군에게폭력으로대항한것으로분석 특히 상황에대하여시위대가 광주주변예비군 무기등탈취기도하고 계엄군철수한상황에서무장한시위 군중의협공으로 경찰병력철수한것으로기재함으로써 발포당시사실관계를왜곡한군 안기부기록과궤를함께하고있음 또한 광주교도소습격시도하였으나실패 불량배

불순세력가세약탈행위빈발시민불안 시내중심가및변두리지역약탈행위성행등시위대의폭력성을부각피탈무기회수조치 경찰은치안질서유지와함께피탈되었던무기군예비군무기포함 회수작업을실시 단기간내에상당수피탈무기를회수 하고탈취주동자및가담자검거활동 * 손달용치안본부장이헬기로나주서를방문하여회수담당자인나의어깨를치면서총기 3정회수하면특진한다며격려를해주었던기억 ( 김 나주서보안과 ) * 오일팔이끝나고국감찰이나와서감찰조사를했음. 무기를소산하는과정에서피탈당하였고, 주민들과유기적인협조가인상적이었는지감봉 1월의징계를받음 ( 박 나주남평지서장 ) * 화순은무기피탈과관련하여미제처리된것은없고, 피탈장소별로가담자한명만검거해도해결된것으로인정을해주었음. 동면화순광업소의화약이피탈당했는데화순광업소에서화약발파업무를담당하던사람이가담하였던것이확인되어검거해서구속한기억 ( 한 화순서수사과 ) 포고령위반자검거활동 경찰은계엄사지시에따라포고령위반자를검거하고 검거된자는 개등급으로나누어직업별 연령별일일보고

검거자는수사과를거쳐계엄사합동수사단지휘를받아신병조치 * 5.27. 이후경비계직원들은한달여간퇴근을하지못하고사무실에서 숙식해결, 국보위및상급관서에서거의매일경찰국을방문 ( 김 전남경찰국경비계 ) * 국에서시위가담자명단이내려왔고형사 1 명당 3~5 명정도가배당되었으며 실적을독촉했기때문에어떤수를쓰든검거해야했음 ( 정 서부서 ) 포고령위반자검거활동으로인해경찰에대한일부부정적인식발생 * 시위때문에체포된사람들은경찰에게고문을많이받았다. 군사정권때라 경찰도軍의말을듣지않으면안되는시기였고, 시위와관련되었다는 것을밝혀내면 1 계급특진을시켜줬기때문에...( 정 前 5 18 유족회장 ) Ⅴ. 5 18 이후신군부의조치 경찰은 이후계엄분소장의지시에따라단계적으로시위진압 주요시설물경비 최후저지선 도청 방어등최선을다해작전을수행했으나 신군부는자체 진상규명을통해치안책임자인경찰및공무원의직무유기를 원인의일부로평가 아울러 신군부는 사회정화 명목으로대규모공직자 숙정 및민간인을대상으로삼청교육대를운영하면서군사정권기반공고화

신군부에의한 5 18 진상조사 신군부는 의책임을추궁하기위해 광주사태진상규명계획 을수립조사 계엄군의초동진압미진 그리고치안책임자인경찰및공직자의직무유기상황에서일부불순분자들이지역감정을이용하여선동하고악성유언비어를날조 유포시킴으로써폭도화된것으로분석 경찰은계엄령전국확대이후계엄분소의지휘를받아시가지시위진압 주요건물경비 최후저지선방어임무를수행하였으나신군부는경찰이소극적으로대처했고군에대한협조가미비했다고판단 * 5.18부터모든경력운영은군의지시에의한것이었다. 18일 10시에지방경찰서경력동원명령을하달하였으며, 이미전남대에서는학생들과공수부대원들의충돌이발생하였음 ( 이 전남경찰국경비계 ) * 학생들이역전을거쳐시내로진입하자모든경력을금남로일대에배치하고, 공수부대가금남로에진입한후에는경찰을군부대뒤로빠지게하였고나중에는도청과광주서를방어하는수준으로경력운영 ( 이 전남경찰국경비계 )

특히 이후초기시위상황에서계엄군의과격한진압방식으로 인해상황이급격히악화되었음에도불구하고 초기진압의실패 원인을경찰에게있다고규정하고 폭도들의시외탈출시도경및예하 경찰관서의차단지시등조치사항 경찰서 예비군무기실탄피탈경위 등을조사하며압박 반면 진입작전실패오인총격전으로인한자체피해등군의 과오에대한언급은전무 경찰등에책임전가시도정황 조사결과에따라안병하국장및참모 경찰서장등지휘부 명에 대해지휘책임을물어직위해제및의원면직 ʼ 신군부에의한경찰관해직 신군부는 종료후 사회정화업무 명목으로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이하국보위를통해전국경찰관 명해직

전남청의원면직자는 명 전국의 으로이후 년국정감사시해직공무원복직및보상이논의되어 명이복직되었으며합리적기준없이주먹구구식으로대상자를선정 내부갈등요인으로작용 * 광주가회복되자곧바로숙청이시작되었으며경찰서별로인원을정한후경찰서장의사표를받아놓고정해진인원을숙청하지못하면서장의사표를수리한다는이야기가들릴정도로분위기가살벌 ( 장 함평서수사과 ) * 타지에서담양서로와서근무했는데 5 18이끝나고담양서에는 2명을숙청하라는지시가내려와별다른이유없이경남에서온지얼마안되고젊은내가대상이되었고, 90년도에복직되어고흥으로발령 ( 최 담양서 ) * 충청도에서는제비를뽑았다고하였고화순에서는순찰 1회안돌았다고숙청되었다고하였으며어느서에서는늦게복귀한순으로숙청을하는등인원을채우기위해여러가지수단을강구함 ( 김 보성서 ) 한편 국보위는공직자해직후 삼청계획 호를수립하여삼청교육대를설치하고일선경찰서에검거대상자를파악토록지시 Ⅵ. 기타안병하경찰국장면직처분 안국장은군인출신으로 전쟁에참전후중령으로예편 총경으로특채ʼ 경무관으로승진하여강원경기경찰국장을거쳐전남경찰국장으로부임ʼ 안국장은평소부하직원들에게부드럽고따뜻하게대하고 경찰의역할에대한확고한신념을가지고있었음 * 모시게된기간은몇개월밖에안되지만정말인성이좋으시고군출신답지않게부드러우셔서직원들이잘따랐음 ( 배 도경작전2계장 )

당시시위를강경하게진압하지않았다는이유로 직무유기 및지휘포기 혐의로직위해제 계엄사합동수사본부연행되어 고문당한후강제사직 평소건강했던안국장은신부전증등고문후유증으로사망 ʼ * 군출신이라젊은부하직원들도부러워할만큼체력이뛰어났으며조퇴나 결근은물론병원에간적도없을정도로건강 ( 권 국장부속주임 ) 당시안국장가족들은아무런보상을받지못하였고 수년간의 투병생활로인해경제적으로어려운처지에놓여있다가 ʼ 년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결정 ʼ 년보상금지급 경찰청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안국장의민주화순직진상규명건 채택 ʼ 전남청에서 개월간재조사후국가보훈처신청 국가 유공자등록 ʼ 고문후유증으로인해순직하기전자필로 광주비망록 작성 ʼ

한편 전두환회고록등일부기록은안국장이 당시지휘권을포기하고연락두절되었다고기재하고있고 경찰내부일각에서도이에동조하는견해가있으나사실과달라바로잡을필요있음 안국장은 사령관만나기위해도청을떠나 경다시 복귀하였고 이후여러차례상황관련지시를하였으나계엄군의 집단발포로인해상황이악화되자치안본부와계엄분소장에게 철수를건의 하였으며 * 다시 12:50 경사무실에당도하니긴급대피하라는방송이있어밖으로뛰어 나갔다가경찰헬기에서지사님과국장님이내리시기에상황이극히불리하지는 않다고생각되어 13:20 경사무실에들어와전화를들었음 ( 김 전남경찰국작전과 ) 비상시재집결장소를알려주며해산하라고지시를내리는등 지휘관으로서필요한조치를취하기위해노력하였음 * 기동대는제 1 집결지로기동대원대로복귀하되폭도들이점거중이면지산유원지로 집결, 경찰국요원들은경찰항공대로집결, 경찰서장및기동대장에게도 비상시 CP 위치를알려줌 135)

* 21일 17:30경경비과장이무전으로호출하여 1,2중대장과국장실로갔다. (3중대장은고립되어오지못함 ) 경찰국장은부대해산을지시하면서계엄군에의해삼사일내에회복될것이니대원들을잘소산시켜서피해가없도록하라. 무등산일대가괜찮을것이므로그쪽으로소산하여부대관리를하라. 자신은송정리경찰항공대에있을것이다. 소집지시하면집결하라는명령을받았다. ( 송 118전경대장 ) * 5.21.16:30 경경찰국장님께서강진서장님을위시한출동했던각서장님께폭도는무장포위하고있고도청을경비하는군부대도철수한다고하니각서별로철수하여귀서하라는지시..( 양 강진서 ) 한편 경찰청은 민주화운동당시강경진압지시를따르지않고안전에유의한시위대응기조를유지함으로써인권경찰의귀감이된고인을 년올해의경찰영웅으로선정 추모흉상제작 함평경찰서경찰관사망사고 경도청인근노동청주변에서대기중이던함평경찰서 직원 명이시위대가몰던버스에치어사망 사망 중경상

노동청반대방향에영광서장이지휘하는중대함평 영광장성서 가 선에배치되었는데버스가 선을뚫고 선으로돌진 당시운전자는야간시간대이고사고장소주변이최루가스로인해눈을뜰수없어사고를인지하지못하였다고주장 심전교사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살인소요혐의로사형 상고하였으나대법원에서사형확정ʼ 광주사태관련자에대해특별감형 특별사면또는복권조치로피의자는무기감형후석방ʼ 이후재심법원에서헌정질서파괴범죄군사반란및비상계엄에저항한정당한행위로보아무죄선고ʼ 5 18 이후경찰조치과정상미흡한점 사망부상경찰관에대한예우보상미흡 년경찰에서파악한 당시순직공상경찰관은 명사망 명부상에불과 명부상자가발생한것으로파악되는다른자료와상당수의차이가있어 사망경찰관과부상자에대한지원이나보상등이적절히이루어졌는지의문 특히 순직한함평서경찰관 명에대한시신안치등사후수습이제대로이루어지지않은것은지휘부를비롯한동료경찰관들의과오 * 27일상무관에는 20일순직한함평서경찰관들의시신이상무관과장비계

사이노상에순직당시와같이방석복을입은상태로방치되어있었음 ( 나와많은경찰관들이매우분노했었다 )( 이 전남경찰국경비계 ) * 전대병원에갔을때는버스에깔려순직한함평서직원들의시신이한쪽구석에방치되어있었는데시민이죽으면태극기를덮었고경찰은순직당시착용한방석복상태로방치되어서가슴이아팠음 ( 오 서부서정보과 ) * 함평서직원사망자 4명에대한조치는 5.20. 11:00경 2구는전남대부속병원에안치시키고다른 2구는안치코자하였으나폭도들의공격강화로거두지못하고철수시까지시체를방치하였음 ( 안병하국장진술조서 ) * 광주가회복되고순직자시신이운구되어각기초상을치뤄조문을갔고미망인의싸늘한눈빛에서둘러나온사실이있는데, 그들이순직한후몇년에걸쳐가족들도모두함평을떠남 ( 장 함평서수사과 ) * 이들의순직처리가안되어서방상훈과장과조기웅계장이나서서유족들명의로치안본부에진정을하였으나, 경찰관신분으로의무적으로해야할일을하다가사망하였기때문에순직처리가안되다 는황당한사유로반려. 우여곡절끝에간신히순직이인정되어현충원에안장되었는데과연이들유족들에게적정한보상이이루어진것인지의문 ( 장 함평서수사과 ) * 5 18당시사망하였던함평서경찰관 4명에대해서도경찰에서는관심이없어경찰유족회에서처음으로추모행사를해줌 ( 안 안병하국장子 ) 안병하국장에대해서도퇴직후명예회복등경찰청차원의적극적움직임이없었으며 * 아버님이억울하게돌아가셨어도 05년까지경찰청이나국가가해준것은거의없었음. 가족들이직접정부부처찾아다니고절차를알아보곤했음 ( 안 안병하국장子 ) 부상경찰관에대한정확한통계조차파악되지않아그에대한보상이나지원은전무하다시피함

* 27일모든공무원들은출근하라는방송을듣고걸어가는중누군가쏜총이내우측하복부를관통하여, 기독병원에서수술을받았으나우측다리가틀어져서균형이잡히지않은채로살고있음 ( 노 광주서 ) * 당시피해를입은경찰관에대해서도적절한보상이이뤄진것인가하는의문이듦 ( 오 서부서정보계 ) * 노동청앞에서버스에압사당한함평경찰서직원들생각이난다. 그들은정말나라를지키다숨진사람들인데마땅한처우를받고있는지의문 ( 염 광산서동곡지서 ) 기록에의한진상규명의한계 경찰기관은경찰사편찬자료가될주요사항을빠짐없이충실히치안일지에기록하고 관련자료를문서집중관리소에영구보존하도록되어있으나 당시전남경찰국을비롯한경찰서별치안일지내용이부실하거나 일부경찰서치안일지가망실되는등관리부실 * 경찰은무엇인가남겨놓으면나중에화를입는다는뿌리깊은문화가있는것같음. 그래서각종귀중한자료들이멸실되어버렸음 ( 유 전남청경무계 < 전남경찰사작성자 >) 특히 관련상황일지등중요자료들이 ʼ년광주청개청및 ʼ년전남청사이전시분실되거나임의폐기처분되어사라짐 * 02년부터 03년까지 5 18 보상심의가이루어질때당시상황일지를열람하여사실여부를회신해주었고, 캐비넷 3개에넣어관리하고있었는데그상황일지가현재남아있지않다는것은이해가되지않음 ( 이 곡성서 ) 또한경찰및타기관에서보존하고있는일부경찰관련문서또한성립의진정성이의심되는등오염되었을가능성이많아기록에의한진상규명은한계

* 집단사태발생및조치상황 은원본이아니라필사본. 원본은 8절지크기로기재할내용이많아횡으로기재. 추후국보위에서상황일지복사본을요구하여복사가가능한 A4용지에재작성하였는데이때감찰조사가예상되고보안사등에서예민하게지켜보아무기피탈과정등일부가삭제되거나추가되었음. 단시간대별상황, 부대이동등은변경없음 ( 이 전남경찰국경비계 ) * 오일팔이끝나고국보위조사를받는등, 복잡한일들이벌어졌기때문에경찰에불리하거나, 민감한사안들은빼버린것. 단, 시간이나상황, 부대배치사항등은기본적인사실은원본과같이기록하고, 경찰에불리하거나민감한사항은기록하지않은것이므로, 큰틀은달라진것이없을것 ( 박 전남경찰국경비계 ) 특정상황에대한객관적자료가없다면경찰에대한각종명예훼손 폄하등왜곡에대한적절한대응곤란하므로철저한기록관리필요 일부경찰관서무기소산및피탈과정조치미흡 전남경찰국지휘부는계엄군투입에따라사태가확산되고 무기피탈로인해피해가커지는것을막기위해무기소산을지시하였으나 광주권경찰관서에대해서만사전무기소산지시 를하고전남지역경찰서는계엄군집단발포이후 무기소산지시하달 로무기소산을위한시간부족으로소산곤란 * 무기를지서앞블록공장에숨기는등한참무기를소산중일때유리가깨진버스여러대를타고온시위대수십명이습격, 무기고문이열려진상태에서시위대가들이닥쳤기때문에속수무책 ( 한 나주남평면예비군소대장 ) 계엄군투입이후상황이악화되고지방경력상당수가동원되어

치안부재가우려되는시점에서적절한대비책강구치못하였으며 일부경찰관서에서지역주민과함께설득하는등최소한의조치조차취하지않았던것은아쉬운조치로판단됨 * 당시공수부대와시민군의대결구도였으므로경찰들이경찰관서를버리고무조건도망간것은잘못된것이며, 군이관리주체라는이유로예비군무기고를그대로둔것도잘못되었다고생각함 ( 한 광주서정보계장 )

[ 붙임 1] 참고문헌목록

[ 붙임 2]

[ 붙임 3] 전남도경국장직무유기피의사건수사결과 139) 1. 개요 80.5.14. 전남대, 조선대생등 3,000여명이중심이된시국성토가과열, 교내시위가광주시내로진출하게되었고점차적으로동시위가폭력 폭동화함에따라급기야민족적비운의 5 18 광주사태를유발시키게되었고, 이어 5.21 폭도들이광주시를장악함에따라지역내국민의생명과재산을보호하며치안질서유지의지휘책임을갖고있는전남도경국장안병하 (52세) 의직무유기여부를조사하였으나동피의사실을발견할수없어치안본부에이첩, 지휘책임을물어면직시킨사건임 2. 수사결과 당초광주사태는 5.14. 부터전남대생학생들이어용교수퇴진, 재적학생복교, 이사장퇴진, 재단과학원운영분리등을주장하며총장실점거농성을계속하여조선대에서는자체휴교조치를취하였으나주동학생 200여명은휴교중에도잔류하여농성을계속하였으며당시경찰은총학장요청에의하여교내에진입저지토록한방침에의거교문에서시내진출저지에전력을기울였으나전남대와조선대는교내울타리가없는관계로시내진출이용이하여전문대생들이가세함에따라경찰의제한된병력으로완전저지가불가하였으며,

전남도의치안책임자인본명은관할계엄분소장에게군동원의필요성을외면한채단순경찰병력으로만저지가능하리라는안일한판단으로사태가악화되는오류를저질렀으며, 5.17. 22:00 경관내 31사단작전계획에따라군이시내에진주하여대학과공공건물은군이담당경비한다는기본방침에만의존, 구체적인군과의협조를소홀히하여경찰병력배치계획을수립치않았고, 5.18. 계엄군진주시경찰은도로변을담당, 11:00경부터작전에임하였으나계엄군에만의존한소극적작전계획과협조미비로데모저지에미진하였으며또한 100여명의무분별한시위주동자의연행으로시위군중의감정을유발시킨사실이있으며 시위가폭력 폭동화할경우에대비하여지역내국민의재산과생명을보호할의무가있는치안책임자임에도불구하고경찰무기를폭도들로부터피탈을방지하겠다는소극적인발상하에치안본부장에건의한후경찰 2개서및 4개기동대의무기약 1,300정을도경안전가옥에이동, 소개 ( 疏開 ) 시킴으로서 5.21. 진돗개둘 이발령되고 5.22. 자위권 이발동되었음에도광주시내에근무하는전경찰의무장을불가능케하였고, 5.21. 사태가악화되자계엄분소장의사전승인을득하고도청에서철수하였으나이후병력을재정비, 시위진압을위한진입을결행하여야하나 5.18. 무기를소개시킨사실과철수시병력에대한집결지를명시하여지시하지않음으로써사태수습을위한경찰의재정비가불가능하였음

3. 수사관소견본명에대한수사결과이상과같은작전지휘의실패로인하여국민의생명과재산을보호할책임이있는지역치안책임자로서경찰관순직 4명, 부상 144명, 경찰무기 200여정피탈등많은인적, 물적피해를입혔고그외에막대한도민의인명과재산의피해가발생하였으며 1주일에치안부재라는역사적민족의비운을초래하는결과의간접적요인이되었음

증언과자료정리를마무리하면서 마음한구석에남아있던숙제를끝낸것같은홀가분한기분입니다 수집된증언과자료는영구보존하고계속발굴보완해나가겠습니다 팀의일원으로 개월여간어려운여건하에서증언과자료수집에고생한전영득 김기웅경감과바쁜업무속에서도팀장으로서의제역할을다해준임준영경정 시간을아껴자료정리에참여한안대환경감 강성곤경장 서명진순경과활동을뒷받침해준이명호총경을비롯한 팀전원과활동을성원해준모든전남경찰청동료여러분께감사드리며 잦은방문에도성실히조언해주신 관련단체임원여러분과힘든기억을되살려증언에참여해준여러선배님 그리고안병하국장의경찰영웅선정과흉상제막등을통해전남경찰의명예를높이고격려해주신이철성경찰청장님께도감사의말씀을드립니다 전남지방경찰청장강성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