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의은총 ( 막 6:30-34) 현대인들의일상생활의공통점은피곤한삶을살아가고있다는것입니다. 그래서사람들은 만나면 피곤하다 는말을입버릇처럼합니다. 이런저런일들로스트레스를받으면서정신 적긴장과무력감때문에신경성설사를하게되고아니면소화불량과불면증으로고생하고 있다는호소를많이듣게됩니다. 무엇때문에모두들그렇게바쁜지모릅니다. 바쁜것으 로말하면한국인보다더바쁜민족은없다고들합니다. 해외여행을하면서경험하는것이 지만모든외국인들이한국인을연상하는것가운데하나가 빨리빨리 입니다. 해외여행을 하면서한국인으로자괴지심에얼굴을들수없는것은호텔에투숙하기위하여버스에서 내리면호텔직원들이우리말로 빨리빨리 가왔다고자기들끼리웃으면서우리짐을옮기 는것을종종경험합니다. 한국관광객을 Korean이라하지않고 빨리빨리 로인식하는그 들을보고고소 ( 苦笑 ) 를금치못했습니다. 무엇이든빨리빨리가일상적인문화가되어버렸고그러다보니건축도출세도돈버는것도빨리빨리하다보니부실공사는물론실패적인삶을마무리하는경우를많이보게됩니다. 그래서한강다리가무너지고아파트가무너지고백화점이무너지는웃지못할사건들이이나라에서일어났고지금도도처에그와같은부끄럽기그지없는일들이전개되는것을봅니다. 성장제일주의가만들어내는어처구니없는병리현상은경제나정치나사회는물론교회에도해당되는일입니다. 어떤교회는목사가부임한 3년이되던해교인이늘어나지않는다고교인들에게무능한목사로인정되어시무를하지못하게되었다는슬픈이야기도한국교회에서나들어볼수있는어처구니없는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엿새동안일하시고다음날쉬셨다는것은인간생활의아름답고건강한삶을위한하나님의인간사랑의극치라고도할수있는것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하나님을믿는다는그리스도인들조차도거기에대한대답도하지못한채바쁘게살아가고있는실정입니다. 마음의평안과쉼 바쁘다는말의한자어는 忙 ( 바쁠망 ) 을사용하는데이말은조급하다, 겨를이없다는말과 같은뜻입니다. 그런데 忙 은원래?+ 亡으로서마음 (?) 이바쁘면망한다 ( 亡 ) 는교훈적인뜻 을담고있는것입니다. 마음이바쁘면몸도자연스럽게바쁘고생활도바쁘게되는것은 당연한이치입니다. 결국은영혼까지병들어결국사망에이르게되는것을우리는깨달아 야합니다. 잠언 17:22절에서는 마음의즐거움은양약이라도심령의근심은뼈로마르게 하느니라. 고했으며 4:23절에서는 무릇지킬만한것보다더욱네마음을지키라. 생명의 근원이이에서남이니라. 했으니일생을살아가는동안행복한삶을위해서는무엇보다마 음자리를잘다듬는것이중요한것임을깨닫습니다. 다시말하면행복과불행의근원이 마음이라는것입니다.
마음의즐거움은바쁜마음에서는생각할수없는것을깨달아야합니다. 이에반하여쉼을뜻하는한자어는休 ( 쉴휴 ) 인데이는?+ 木으로서사람과나무의어우러짐을뜻하는글자입니다. 그래서휴가 ( 休暇 ) 라는말은사람이나무가우거진한적한곳에서한가하게, 느긋하게 ( 暇 ) 지내는것을뜻하는것입니다. 그런데중요한것은육체적피곤이풀린다고해서정신적영적인피곤이함께풀리는것이아니라는것입니다. 그러나반대로영적인피곤이풀리면희한하게도정신적, 육체적인피곤도풀리는것을우리는살아가면서경험하게됩니다. 그래서다윗은시편 23편에서여호와는나의목자시니내가부족함이없으리로다. 그가나를푸른초장에누이시고잔잔한물가로인도하시는도다. 고그의삶과신앙을아름답게노래했습니다. 서양사람들은휴양이라는말을세가지뜻으로사용합니다. 첫째는 Recreation입니다. 둘째는 Vacation입니다. 셋째는 Holyday입니다. 이단어의공통점은오직한가지하나님안에서라는어근을갖고있는것입니다. 그런데문제는 Holyday가 Holiday로변질되어가고있는것인데 Holyday 즉거룩한날, 하나님께영광을돌림으로진정한쉼을누릴수있는인간이 Holiday 즉육체적즐거움을목적으로하는축제일로, 휴일로, 휴가로변질되면서인간은진정한쉼의기쁨을잃어가고있는것입니다. 사람이살아가면서평안과안식을얻기위하여어떤이는술로, 어떤이는스포츠로, 어떤이는도박으로, 어떤이는오락을인생의푸른초장으로생각하지만거기서진정한평안과안식을누릴수없음을우리는살아가면서경험하게됩니다. 일과쉼의관계성 하나님은모세를통하여인간생활의근간이되는일과쉼에관해서분명하게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8-9절입니다. 안식일을기억하여거룩히지키라, 엿새동안은힘써네모든일을행할것이나, 제칠일은너의하나님여호와의안식일인즉너나네아들이나네딸이나네남종이나네여종이나네육축이나네문안에유하는객이라도아무일도하지말라. 이말씀은일과쉼의관계성입니다. 즉안식일, 곧쉼의전제조건으로엿새동안힘써일하는것입니다. 오늘본문에서도이와동일한메시지가있습니다. 31절입니다. 이르시되너희는따로한적한곳에와서잠깐쉬어라하시니이는오고가는사람이많아음식먹을겨를도없음이라. 제자들이복음사역에관한보고를하였을때주님이일에지친제자들에게한적한곳에서쉬라고말씀하신것은일과쉼의관계성을분명하게말씀하신것입니다. 극단적인표현이지만일하지않은자는쉴자격도없습니다. 더욱가혹한표현을사용하면부자라고해서일도하지않고먹고자고쉬는사람이있다면이는기독교신앙과윤리에어긋난잘못된삶을살아가는사람입니다. 왜하나님이안식일과, 안식년과희년을제정하셨습니까? 안식일에관해서도분명한것은안식일은복을주사거룩하게하셨다라는것입니다. 하나님이엿새동안창조하시고일곱째날에안식하신것은피곤해서입니까? 그야말로그것은어불성설입니다. 안식일의제정정신은세상의일을쉬고하나님을예배하고성도간에교제하며영적으로육적으로쉼의기
쁨을누리라는것입니다. 그런데하나님이제정하신이쉼의은총을인간이자의적으로무시하고인생을살아간다면어떻게진정한삶의감격과쉼의은총을경험하면서살아갈수있겠습니까? 안식일과안식년과희년의제정정신은바로진정한삶의평안과축복은쉼을통해경험됨을일깨우는것입니다. 그러므로적당히쉬는것은하나님의창조질서요법칙입니다. 그러기에동식물과자연도쉼의법칙으로우주질서를이루어생명윤리를이루어가는데하물며인간이쉼의은총을누리지못한다는것이얼마나잘못된것인가를새삼느끼게됩니다. 진정한쉼의원리 중요한것은이쉼을하나님의창조질서에순응하지않고인간적인욕구에초점을맞추면그것은진정한쉼의은총이아닙니다. 오늘본문에는이와관련된아주중요한말씀이있습니다. 31절의잠깐쉬어라라는말씀입니다. 우리교회도 1년동안안식년을갖는것이아니라 1년에 2개월정도해외교회를견학하고연구하면서목회행정을잠깐쉬도록배려하는것입니다. 또한지난정책당회에서장로님들이너무아름다운결정을하였는데그것은부목사님들에게도 6년시무한이후에는단 1개월이라도평안히쉼을가질수있도록부목사안식년제도를결의한것입니다. 일만하는한국교회목회자들이젊은나이에지치고스트레스를받아쓰러지는일들이많아지는것은교회부터진정한안식, 곧쉼의은총을잃어버린불행이아닐수없습니다. 진정한쉼의원리가여기에있습니다. 즉쉼이란다음일을더욱능률적으로극대화하기위한, 다음일의연장선입니다. 그러기에진정한쉼의은총은시간의허비가아닙니다. 시간의낭비가아닙니다. 더나은다음일을위한준비의개념이진정한쉼의은총입니다. 이것을바로깨닫지못할때다윗같은범죄를하게됩니다. 전쟁중인상황에서다윗이열심히일을하고난후의쉼이아닌낮잠을자고일어나지울수없는밧세바와의잘못된관계를갖게되는것이바로잘못된쉼의대표적인사건입니다. 그것은오늘날도마찬가지입니다. 일을할때는일을해야하고쉴때는쉬어야하는데일할때와쉴때를분별하지못하고일할때쉬고쉬어야할때일하는어리석은삶을살아가는경우들이있습니다. 오늘본문에서도식사할겨를도없이일을했던제자들에게한적한곳에서쉬라고말씀하신예수님의말씀은쉼의은총을일깨우고하나님의창조질서를유지발전시키는메시지가되는것입니다. 우리교회의좋은것가운데하나가동호인선교회입니다. 그가운데 20여부서가넘는동호인선교회가운데볼링, 등산, 바둑, 축구, 테니스, 골프동호인선교회가있습니다. 20년전만해도교인들이볼링을한다면경망스러운것으로이해했고 30년전만거슬러올라가도바둑을둔다는것은못할짓으로알았습니다. 10년전만해도골프를치는것은기독교인으로서는쉬쉬하면서했습니다. 그렇게비복음적인사고에서벗어나지를못하고마치그런것을하면죄를짓는것으로이해하고정죄하고심판하였던것이우리의역사였습니다. 우리교회에골프선교회가있다고하면대부분의목사님들장로님들이그래도괜찮으냐
고질문을합니다. 그럴때마다저는반문합니다. 성경몇장몇절에등산도되고, 볼링도되고, 수영도되는데, 골프는안된다고기록되어있습니까? 그래도아직은골프는... 그렇습니다. 그래도아직이라는말이문제가있는용어입니다. 골프가문제가아니라때가문제라는말입니다. 그렇게대화는마무리되면서우리교회를부러워합니다. 그런데문제는부러워하면서도고개는좌우로흔들고있다는사실입니다. 복음은주안에서진정한자유함을누리는것입니다. 그래서바울은고린도전서 10장에서복음과비복음적인그리스도인의상반된삶의내용을설명하고난후에10:31절에서복음의삶을정의하였습니다. 그런즉너희가무엇을먹든지마시든지무엇을하든지다하나님의영광을위하여하라. 낚시를하는사람은등산하는사람을이해잘못합니다. 사냥을좋아하는사람은바둑좋아하는사람을잘이해하지못합니다. 꽃꽂이좋아하는사람은수지침좋아하는사람을잘이해못합니다. 찬양을할때도손뼉치는것을좋아하는사람이있고손뼉치면서찬양하는것을죽기보다싫어하는사람이있습니다. 찬양대봉사도소프라노를좋아하는대원도있고알토를좋아하는대원도있습니다. 테너를좋아하는대원도있고베이스를좋아하는대원도있습니다. 주방에서봉사하는것을최고의즐거움으로생각하는사람이있는가하면, 죽어도주방에서봉사하지못하는사람이있습니다. 기도할때도소리소리질러가면서기도하는것을좋아하는사람이있는가하면, 조용히묵상기도를좋아하는사람이있습니다. 그렇다고이것이저것보다좋고저것이이것보다못한것이아닙니다. 인간생활은각자의취미활동을통하여삶의의미와가치를가꾸어갑니다. 이것하는사람은저것하는사람을비판해서안되고저것하는사람은이것하는사람을무시해서도안됩니다. 무슨일을하든지자기양심에거리낌이없어야하고그양심이다른사람에게비판을받을일이되어서도안됩니다. 그래서바울은고린도전서 10장에서진정한복음의삶을자세하게설명했던것입니다. 무슨일을하든지자신과남에게유익을주는삶이어야하고, 내가하는일이다른사람에게거치는일이되어서도안되고, 무엇보다내가하는일이영적으로손상이되는일이되어서는안됩니다. 영적쉼의은총 언젠가운전을하면서당시제가즐겨부르던팝송Sea Of Heartbreak를틀었을때함께가던집사님이목사님도팝송을부르십니까? 라고놀라는것입니다. 저는한마디더건넸습니다. 추풍령도잘부릅니다. 좀더이해를돕기위해칼바르트가한말을소개하고자합니다. 천사들이하나님앞에있을때는바하의음악을듣지만자기들끼리있을때는모차르트의음악을듣는다. 음악을하신분들이야금방알아들으시겠지만바하의음악은경건함과웅장함이있는교회음악의대명사이고모차르트의음악은사랑과낭만과감정을따뜻하게하는음악입니다. 바르트의
논리에의하면천사들도하나님앞에서는경건을자기들끼리있을때는편안함을즐겼다는것입니다. 이것은일과쉼의관계성을이해하는데아주좋은이야기입니다. 진정한영적쉼은육신적쉼과함께조화를이루는것입니다. 주님이제자들에게한적한곳에서쉬라고말씀하신것은단순히쉼의이야기를하는것이아닙니다. 인간에게율법의사슬에서벗어나복음의삶을살아갈수있도록십자가를지신주님의구속의은총이무엇인지를바르게이해할수있을때우리는영적으로진정한쉼의은총을누릴수있습니다. 다시말하면끊임없이율법이라는사슬에얽매여진정한복음의자유함을누리지못하고일평생바리새인처럼살아가는것을주님을결코원하지않으시는것입니다. 진정한쉼은그냥일하지않는다는뜻이아닙니다. 진정한쉼이란변화된삶의기쁨입니다. 우리가상용하는바캉스라는말은불어인데그것은라틴어바칸테라는단어에서온말입니다. 바칸테는변화라는뜻입니다. 게으름에서부지런함으로, 자기를위한삶에서이웃을위한삶으로, 율법주의에서복음주의로의변화된삶이진정한바캉스입니다. 더나아가세상적인욕망에서하나님에게로나아가는삶, 그안에서의쉼이진정한바캉스입니다. 그래서진정한쉼의은총은주님과함께라는것입니다. 주님이함께하지않는그어떤휴식도진정한쉼은아닙니다. 하나님의말씀의묵상과기도생활과감사하는마음이우리로하여금인생의푸른초장에서평안과안식을누리게합니다. 주님안에서우리는진정한삶의안식과평안을누릴수있는것입니다. 그것이쉼의은총입니다. 일상의분주한시간들을벗어나가족들과함께쉴수있는시간을통하여다윗이고백한여호와는나의목자시니내가부족함이없으리로다. 그가나를푸른초장에누이시고쉴만한물가로인도하시는도다라는고백이여러분의삶의고백이되기를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