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기획특집 우리사회는얼마나위험한가? 생활속의화학물질, 과연안전하게사용하고있는가? 서강대학교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이덕환 1. 들어가기 화학물질에대한극단적인거부감이걷잡을수없이확산하고있다. 일상생활에서모든화학물질을거부하겠다는 노케미 (No Chemi) 족 이등장하고, 모든화학물질을혐오하고두려워하는 케모포비아 (chemophobia, 케미포비아 아님 ) 가빠르게퍼지고있다. 일상생활에서어쩔수없이사용할수밖에없는화학물질에대한우리의인식이심각하게악화하고있다는뜻이다. 화학이우리의삶을엉망으로망치고안전을심각하게위협한다고느끼는소비자들이늘어나고있다. 그런소비자들은가공식품은건강에해로운 첨가물 덩어리이고생활화학용품은인체에치명적인 살생물질 범벅이며우리가마시는물과호흡하는공기도 유해물질 로가득차있 이덕환 생활속의화학물질, 과연안전하게사용하고있는가? 1
다고믿는다. 국민의안전을국정의최우선과제로내세우고우리사회를 안심 사회로만들겠다는정부의노력은아무힘을발휘하지못하고있다. 유해화학물질에대한정부차원의관리를강화하겠다는 화평법 ( 화학물질평가및등록에관한법률 ) 과 화관법 ( 화학물질관리에관한법 ) 은소비자를안심시키지도못하면서기업들에게감당하기어려운부담만안겨주고있다. 인체에피해를주는 살생물질 (biocide) 을철저하게규제하겠다는환경부의노력이나가공식품과생활화학용품을안전하게관리하겠다는식품의약품안전처의정책도소비자를안심시키지못하고있다. 이글에서는소비자를극도로불안하게하는대표적인사회문제들을간단하게살펴보고, 소비자들의케모포비아를해소하기위한대책에대해알아본다. 소비자가화학물질을거부하는것은현실적으로불가능하다. 정부언론 기업의책임을강조하는것은당연하다. 그러나소비자의합리적인노력이없으면화학물질에대한공포를극복하는일은영원히불가능하다. 2. 케모포비아를부추긴사례들 소비자들이화학물질에대해불안을느끼고두려워하는것은괜한일은아니다. 소비자의입장에서는화학물질에대해부정적으로인식할만한이유가충분히있었다는뜻이다. 실제로많은소비자가화학물질에의한끔찍한피해를직접경험하거나목격했다. 2011년에불거진가습기살균제참사는피해규모조차정확하게파악할수없는형편이고, 2012년에일어난구미불산폭발사고도화학물질에대한공포와거부감을증폭하기에충분했다. 눈앞의이익을챙기기위해소비자의불안을의도적으로키우는 노이즈마케팅 도상황을악화시켰다. 정부의책임도가볍지않다. 작년여름에겪은살충제달걀파동은온전하게정부의무능과무책임으로벌어진황당한소동이었다. 선정적인황색저널리즘의유혹을떨쳐버리지못하는 2 기획특집 우리사회는얼마나위험한가?
언론 과인터넷과 SNS 를통해걷잡을수없이퍼지는무책임한 괴담 의피 해도심각하다. (1) 가습기살균제참사 2011년 8월질병관리본부의 원인미상폐손상증후군 이라는애매한발표로시작된가습기살균제참사는우리사회에화학물질에대한공포를퍼뜨린최악의사고이다. 1994년겨울 세계최초로개발한인체에무해한제품 으로등장한 가습기살균제 는 2011년유통이금지될때까지 17년동안 20여종제품으로개발되어연간 60만여개가소비될정도로폭발적인인기를누렸다. 무려 800만명소비자가가습기살균제의위험에노출된것으로추정된다. 가습기살균제의위험성을확인한정부가환경부를주무부처로결정하고피해자확인과구제작업에착수했다. 심각한폐질환으로사망한경우도적지않았고, 회복이불가능한폐섬유증과천식등다양한질병으로고통에시달리는피해자들도많았다. 2018년 2월 28일까지환경부에피해사실을등록한소비자가 5995명에이른다. 그러나실제로가습기살균제를사용하였지만피해사실을인식하지못한피해자들도많은것이분명하다. 소비자의 15% 에해당하는 120만명이목숨을잃거나다양한질병에시달렸을것이라는분석도있다. 최악의화학참사로알려진 1984년인도의보팔폭발사고의피해자가 50만명인것을고려하면가습기살균제참사의심각성을짐작할수있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당시 유공 ( 현 SK디스커버리 ) 의바이오사업부팀장이던노승권의순진한발상으로개발된황당한제품이다. 당시우리사회에처음등장한초음파가습기의물통에서발생하는세균증식과물때를제거하는것이목적이었다. 제조사는독일산 프리벤톨 RI-80 이라는살균성분을이용한 가습기메이트 를 어린이에게도안전한제품 이라고광고하고, 산업자원부산하기술표준원에는 가습기세정제 로등록했다. 정 이덕환 생활속의화학물질, 과연안전하게사용하고있는가? 3
부에서 세계최초로개발된창의적인제품 이라고인정을받고 KC 마크도획득했다. 물론 언론 도가습기살균제의창의성 우수성과함께기업이강조하는 안전성 을적극적으로알렸다. 화학물질의독성에대한상식이턱없이부족한소비자들은가습기살균제의안전성을신뢰할수밖에없는상황이었다. 무려 17년동안이나그랬다. 그러나소비자에게공급된가습기살균제의정체는황당한것이었다. 가습기의물통에생긴물때를제거하는데필요한세척성분 ( 계면활성제 ) 은전혀들어있지않았고, 물통의세균번식을막는다는 MIT/CMIT, PHMG/ PGH, BKC 등의살균성분도충분히들어있지않았다. 가습기물통에대한세척력은물론 살균력도기대할수없는 맹물 에가까운엉터리제품이었다. 다른나라에서그런엉터리제품을개발하지않은것은당연한일이었다. 그런엉터리제품을세계최초로개발했다고인정해준정부와언론 의무책임은어처구니없는수준이었다. 많은소비자가맹물에가까운엉터리제품때문에끔찍한피해를입게된이유는따로있다. 기업이소비자들에게제시한사용법이 살인적 이었다. 물통의물때나세균을제거하는것이목적이라면세정제나살균제로물통을씻어낸뒤맑은물로헹구고깨끗하게말리고나서깨끗한물을넣어사용하는것이일반상식이다. 그런데가습기살균제를판매한기업들은모두소비자들에게물통에든물에가습기살균제를넣은후에가습기를작동하라고했다. 소비자의입장에서편리한사용법이라고할수는있겠지만, 현실적으로물통의세척 살균효과는기대할수없는해괴한사용법이었다. 결과적으로가습기살균제에들어있는살균성분을건강이좋지않은소비자들이생활하는밀폐된공간에살포하도록강요한것이다. 아무리적은양이라고하더라도살균성분을초음파에의해생성되는미세물입자와함께호흡을통해 장시간 에걸쳐 지속적 으로흡입하면건강에문제가생길수밖에없다는과학적상식은완전히무시해버렸다. 가습기살균제를개발 생산한기업도그런상식을무시했고, 정부와언론 은물론 화학 의학분 4 기획특집 우리사회는얼마나위험한가?
야의전문가들도기업이제시한살인적인사용법의문제를알아차리지못했다. 참사는예고된것일수밖에없었다. 가습기살균제의피해를확인하고난뒤정부와기업의대응도실망스러웠다. 피해자구제에필요한업무를떠맡은환경부는 7년이흘렀지만피해자에대한적극적인구제와보상을못하고있다. 2018년 2월 28일현재피해신고를한 5995명중 67% 인 3995명만이피해사실을인정받았을뿐이다. 그나마도폐섬유증외의증상으로고통받는피해자들은대부분피해사실조차인정받지못하고있다. 더욱이가습기살균제를가장먼저개발한기업에는아무책임도묻지못하고있다. 환경부의경직한업무처리와오로지자신들의이익챙기기에만매달리는독성학 환경학 의학분야전문가들의이기주의때문에상황이더욱어렵다. 장기간에걸쳐지속적으로살균성분을흡입해서발생한만성질환의원인을밝혀내는방법으로흰쥐에대한동물실험을고집하는독성학전문가들의전문성은몹시실망스러운것이다. 피해증상을흰쥐에서확인된폐섬유증에만한정하겠다는결정도어처구니없는것이다. 가습기살균제참사의부작용이엉뚱하게나타나기도했다. 소비자들이가습기살균제에사용한살균성분이들어있는생활화학용품에거부감을나타내기시작했기때문이다. 환경부는문제를 살생물질 전체로확대해서소비자들을더욱불안하게한다. 살생물질을보존제로사용할수밖에없는물티슈 치약 샴푸 스프레이제품에대한소비자의불안은더욱악화하고있다. 심지어보존제를전혀사용하지않은물티슈가유통과정에서부패 변질하여쉰내가나는경우까지생기고있다. (2) 화학조미료괴담가습기살균제참사가모습을드러내기전인 2008년은광우병논란으로혼란스러운해이다. 그러나 2008년은우리사회에케모포비아가본격적으로퍼지기시작한원년이기도하다. 중국에서생산되는우유가식당용식기 이덕환 생활속의화학물질, 과연안전하게사용하고있는가? 5
의재료인 멜라민 으로오염되었다는소식때문에한바탕소동이일어나기도했다. 우리가수입하는중국산가공식품원료도멜라민으로오염되었다는보도가있었기때문이다. 결국멜라민으로오염된제품을확인하지못하면서혼란은흐지부지가라앉아버렸다. 그러나 2008년은그동안 화학조미료 나 인공조미료 로알려진 MSG ( 상품명 미원 이나 미풍 ) 에대한사회적거부감이폭발한해이다. 정부가공식적으로안전성을검증해서사용을허가한합법적인 식품첨가물 인 MSG( 글루탐산나트륨 ) 가화학적인공적으로합성된것이고장기간섭취하면인체에심각한피해를준다는 괴담 을종편의선정적인프로그램이퍼뜨렸다. MSG가뇌의기능을심각하게망가뜨리는 흥분독소 (excitotoxin) 라는과학적근거가없는엉터리괴담도내놓았다. 결국혼란에빠진일부지자체에서는대중식당에서 MSG 사용을금지하는정책을추진하기도하고, 특히공군에서는장병들이이용하는식당의주방에서 MSG를사용하지않겠다고결정하는황당한일도벌어졌다. 정부가합법적인절차를거쳐공인한식품첨가물을소비자의건강을위협하는심각한 유해물질 로낙인을찍어버린것이다. 가공식품의안전을관리하는막중한제도적책임이있는식품의약품안전처의권위는나락으로추락했다. MSG 괴담을확산시킨종편의프로그램에서단순히 MSG 사용여부만을근거로 착한식당 을선정해서대대적으로홍보해주면서소비자들의불안은폭발직전에이르게되었다. 사태는매우심각했다. MSG에대한거부감만문제가되는것이아니었다. 모든가공식품의안전성을의심하게하는식품괴담이선정적인황색저널리즘의단골메뉴로자리를잡았다. 가공식품의위해성은전문성이턱없이부족한시민단체들에도흥미로운주제였다. 그러나정말심각한문제는괴담을이용해서이익을챙기려는비양심적인기업의 노이즈마케팅 이었다. 경쟁사의제품에대한의혹을제기해서소비자들의관심을끌고불안을부추기는 공포마케팅 이기업의입장에서는매출을증가시키는훌륭한 6 기획특집 우리사회는얼마나위험한가?
마케팅전략으로자리를잡아버렸다. 소비자들에게이름이낯선화학성분의정체와유해성이노이즈공포마케팅의핵심이다. 기업의입장에서는거의모든식품에들어있을수밖에없는 인산염 이나우유의핵심단백질인 카제인 이건강에해로울수있다는황당한의혹을제기하는것만으로도충분했다. 밀가루에든 글루텐 을제거했다는주장으로이익을챙기려는시도도있었다. 생활화학용품과가공식품에반드시들어있는 보존제 를인체에치명적인 살균제 나 방부제 로둔갑시키기도한다. 엉터리제품인가습기살균제에사용된살균성분은보존제로도사용할수없는살인성분으로낙인이찍혀버렸다. (3) 살충제달걀, 생리대, 살생물질파동정부도케모포비아의확산에적지않은기여를했다. 2017년에벌어진살충제달걀, 생리대, 살생물질파동들이모두정부의무능과부실한대응으로일어난안타까운일이었다. 기업의탐욕에서소비자의안전을지켜야할정부의전문성부족이적나라하게드러난부끄러운사건들이기도하다. 살충제달걀파동은공휴일심야에발표된식약처의달걀출하금지와전수조사라는초강력극약처방으로시작됐다. 양계장에서사용이금지된살충제인피프로닐로오염된달걀이발견되었다는것이그이유였다. 유럽의어느양계장에서작업자의실수로시작된살충제달걀파동이갑자기우리나라까지퍼져버린것이다. 정부가전국의달걀출하를금지하고, 3일동안 1239개산란계농장에대한전수조사에착수했다. 당연히부실하고믿을수없는조사였다. 허겁지겁미국과동남아시아에서달걀을수입하는소동까지벌어졌다. 그러나살충제달걀파동의끝은허망했다. 양계장에서생산되는달걀의 95.7% 는멀쩡하다는것이었다. 그런데기준치이상의살충제가검출된달걀도못먹을정도로오염된것은아니라고했다. 소비자의입장에서는쉽게받아들이기어려울정도로불편한주장이지만어쨌든식약처와의사협 이덕환 생활속의화학물질, 과연안전하게사용하고있는가? 7
회의발표가그랬다. 온나라가괜한호들갑을떤셈이었다. 물론 국민안전을최우선으로지키겠다는정부의의지를탓할수는없지만, 3일만에국민을안심시키기에는정부의전문성이황당할정도로부족했고행정력도엉망이었다. 금지된살충제가검출되었거나허용된살충제라도기준치이상으로검출된양계장이대부분정부에서 친환경 인증을한양계장이었다는사실도충격이었다. 심지어 동물복지 인증을받은양계장에서 DDT가검출되었다는사실도밝혀졌다. 그러나 1979년이후전세계적으로사용이금지된 DDT가친환경양계장의토양에서검출된이유도밝혀내지못했다. 피해는막심했다. 달걀소비가 25% 나줄었고달걀값은폭락했다. 양계업자와소비자가모두엄청난피해를입었다. 그러나극심한혼란을경험하고 8개월이지난현재의사정도안타깝기는마찬가지다. 그런데정부의살충제와양계장관리제도가얼마나개선되었는지에대해서는아무도관심을보이지않는다. 농가에공급되는살충제를포함한농약의관리가더강화되었다는이야기도들어본적이없다. 사실달걀파동의혼란을기억하는소비자를찾아보기어려운형편이다. 언론 도흥미를잃어버렸다. 결국우리사회가살충제달걀파동으로얻은것은아무것도없었다. 생리대파동도크게다르지않았다. 여성의필수품인생리대에서인체에해로운휘발성유기물질 (VOC) 가검출되었다는여성단체와환경공학전문가의발표는충격적인것이었다. 그런데여성단체의의뢰로국립대학의연구실에서수행했다는검출실험의결과는놀라울정도로허술했다. 검출실험의오차가상식을벗어날정도로컸고, 검출량도상식을벗어날정도로적었다. 생리대에서검출되었다는 VOC가과연여성의피해를걱정해야할정도로유해하다는근거는어디에서도찾을수가없었다. 그런어설픈자료를공개한대학의전문가가특정기업의특정제품의이름을공개하면서상황은걷잡을수없이증폭되어버렸다. 그런데식품의약품안전처의대응은더욱황당했다. 정부기구가자신들이책임질수도없는여성단체의검출결과를스스로나서서발표했다. 정 8 기획특집 우리사회는얼마나위험한가?
작자신들은그런자료를신뢰하지않는다는입장도밝혔다. 어설픈자료를제공한것으로알려진대학교수도자신은 VOC의농도를측정해주었을뿐이지생리대의유해성여부를직접판단한적은없다고주장하기시작했다. 문제를제기한여성단체에대한의혹도제기되었다. 뒤늦게식약처가시중에유통중인생리대에대해전수조사를했지만소비자들이겪은혼란을해소하는데에는아무도움이되지못했다. 결국생리대파동도아무소득없이흐지부지되고말았다. (4) 불산폭발사고유해하고위험한화학물질을대량으로취급하는화학공장에서일어나는사고도소비자들을불안하게한다. 2012년 9월에일어난구미불산폭발사고가대표적인경우이다. 작업자의어처구니없는실수로일어난사고였지만소비자들에게미친파장은엄청났다. 정부의대응은시작부터엉망이었다. 공장에서폭발한화학물질의정체도제대로파악하지못했다. 구미의공장에서작업중이던탱크로리에서폭발한것은실제로 불산 이아니라 불화수소 ( 플루오린화수소 ) 였다. 반도체디스플레이제약산업에서대량으로사용되는불화수소는끓는점이 19.5 도인액체이다. 정부가폭발했다고밝힌 불산 은불화수소를물에녹인수용액으로폭발가능성도없고가스상태로유출될가능성도없다. 더욱이일반적으로사용하는불산수용액은금속에대한부식성이매우강하기때문에금속으로만든탱크로리로는운반할수없는물질이다. 폭발사고현장의모습은끔찍했다. 흰색가스가 10여미터높이까지치솟았고, 탱크로리상단에있던작업자 2명은곧바로목숨을잃었다. 작업자가실수로탱크로리배출구의밸브를열었다고하더라도그런규모의대량분출은불가능했다. 실제로사고가일어난과정은정부의발표와는달랐다. 작업자가탱크로리의배출관을공장의탱크에연결하지도않은상태에서탱크로리에고압압축공기를주입해버린것이사고의직접적인원인 이덕환 생활속의화학물질, 과연안전하게사용하고있는가? 9
이었다. 사고조사가끝난후에도정부는그런사실을정확하게확인하지못했다. 사고현장의관리와사후처리도엉망이었다. 제독제인소석회를살포하고소방차로물을살포하는것은수용액상태의불산유출에사용되는대응수단이다. 고압압축공기에의해기체상태로공기중으로날아가버린불화수소의독성을제거하는데에는아무도움이되지않는다. 환경부와환경전문가들에의한사후대책도허술했다. 탱크로리에서누출한불화수소가공기중으로확산하여사라져버렸다는사실은고려하지못했다. 인근마을의나무와가축에대한 2차피해 도걱정할이유가없었다. 그러나정부는앞장서서멀쩡한가축을살처분하고과일나무를베어내버렸다. 구미폭발사고로화학사고에대한우리정부의준비가얼마나허술한지적나라하게드러났다. 사고의구체적인내용을파악할능력도없고사고를제대로수습하고사후처리를할능력도갖추지못했다. 심지어칸막이로막힌정부부처들이자신들의역할도제대로이해하지못하고있었다. 구미폭발사고에서는압축가스관리업무를맡은지경부, 유해물질의관리를담당하는환경부, 유해물질을취급하는작업자들을관리하는노동부가모두제역할을하지못하고서서로책임떠넘기기에골몰했다. 국민들이화학사고를걱정하고두려워하는것은아주당연한일이다. 그런데도구미불산폭발사고는감당하기어려운 화평법 과 화관법 을제정하는빌미가되었다. 3. 화려한화학의시대에필요한지혜 우리사회에빠르게퍼지는케모포비아는우리가화려한 화학의시대 에살고있다고믿는화학자들에게몹시난처한것이다. 세상의모든것이 원자 와원자들의화학결합으로이루어진 분자 라는 화학물질 (chemical) 로되어있다는것은아무도부정할수없는명백한과학적사실이다. 우리의 10 기획특집 우리사회는얼마나위험한가?
몸도화학물질로구성되고우리가생존을위해반드시먹어야하는음식도화학물질로이루어진것이다. 심지어우리가숨쉬는공기도질소와산소라는화학물질로채워져있다. 심지어우리가사용하는인터넷과사회관계망서비스 (SNS), 아무런실체도없이전세계를뒤흔든비트코인 ( 암호화폐 ) 마저도화학물질로만들어진반도체가있어야만가능한것이다. 실제로현대과학에따르면우주만물이화학물질로이루어져있다. 우리가모든화학물질을거부하고살아가는것은현실적으로불가능하다는뜻이다. 더욱이화학공장에서인공적인화학기술로생산한 합성물질 이모두우리에게치명적인독성을나타내지는않는다. 오히려우리의건강을증진하고생활에도움이되는합성물질도넘쳐난다. 반대로자연에서얻을수있는 천연물질 이모두우리에게아무독성을나타내지않는만병통치약이되지도않는다. 실제로자연에는인체에치명적인독성물질이지천이다. 인간에게도움이되는화학물질을기꺼이생산하는친 ( 親 ) 인간적인생물은찾아보기어려운것이냉혹한자연의현실이다. 지난한세기동안우리의삶은놀라울정도로풍요롭고편리하며건강하고안전하게바뀌었다. 극단적인굶주림에시달리는사람들이완전히사라지지는않았지만그수가믿기어려울정도로줄어든것은사실이다. 인구의기하급수적증가에따른식량부족으로인류가멸망할것이라던 19세기 인구론 의우려는괜한것이었다. 건강과안전에대한우리의우려도크게과장된것이다. 한세기전까지만해도 30대에머물던평균수명이이제는 70대를훌쩍넘어서버렸고, 11명중 7명이성인으로성장하지못하던참혹한비극도대부분사라졌다. 계절마다찾아오던감염성질병도대체로자취를감춰가는추세다. 지난한세기동안우리가이룩한놀라운 발전 의핵심이다름아닌 화학 이었다는사실은쉽게부정하기어렵다. 화학물질에대한우리의인식을바꾸기위한적극적인노력이필요하다. 어차피화학물질을멀리할수없다면무작정화학물질을거부하고두려워하는것이현명한선택일수는없다. 오히려화학물질의정체를정확하게 이덕환 생활속의화학물질, 과연안전하게사용하고있는가? 11
이해하고거부감과두려움을극복하기위해노력하는것이훨씬더현실적이고지혜로운선택이다. 절대어려운일이아니다. 화학물질이 안전한가 라는질문은무의미한것이다. 모든화학물질은인간에게위험할수있다. 인간에게 100% 안전이보장되는화학물질은세상어디에도존재하지않는다. 3대영양소인탄수화물 지방 단백질도지나치게많이섭취하면건강에치명적인피해를입힌다. 심지어 탄수화물중독 이라는말도있을정도다. 우리의생존에꼭필요하다는산소도마찬가지다. 우리가호흡하는공기중의산소의농도가 23% 를넘어서면인체에치명적인독성을나타낸다. 산소의강한산화력이생리작용을엉망으로만들어버리기때문이다. 그런데자동차도위험하다. 목숨을앗아갈정도로위험하다. 자동차를운전하는운전자와동승자에게만그런것이아니다. 멀쩡하게길을가던아무죄없는사람들의안전도심각하게위협할정도다. 그렇다고자동차를포기하거나멀리하자는주장은설득력이없다. 단순히자동차가편리하기때문에그런것은아니다. 아무리편리하더라도안전을보장할수없으면포기할수밖에없다. 죽음을각오하고라도자동차를쓰겠다는주장은무모한것이다. 대안이없지는않다. 자동차의안전성강화에필요한기술을개발하고, 자동차를안전하게활용하기위해필요한도로 신호등 안내표지를설치하고, 합리적인교통법규를마련하는것이대안이다. 화학물질의경우에도마찬가지다. 이제우리의관심을바꿔야한다. 화학물질이위험하다고불평만할일이아니다. 그런불평을계속한다고화학물질이더안전하게바뀌지도않고, 위험이줄어들지도않는다. 오히려화학물질의위험성을정확하게파악하고안전성을강화하기위한기술과관리제도를개발하는일에더많은관심을가지고더적극적으로노력해야한다. 우리가화학물질을안전하게관리하고활용할수있다는자신감이필요하다. 위험하다는이유만으로멀리하고포기하는패배주의적인자세로는 70억이넘은인구가좁은지구에서공존할수가없다. 화학물질의생산 활 12 기획특집 우리사회는얼마나위험한가?
용 폐기의모든과정에서인체와환경에대한안전성을충분히고려한 녹색화학 (Green Chemistry) 이대안이라는뜻이다. 정부 기업 언론 의전문성과사회적책무성도획기적으로강화해야한다. 소비자들이모든화학물질에대한정확한정보와올바른사용법을모두파악하는것은현실적으로불가능하다. 기업은제품의개발과생산과정에서소비자의안전을최우선으로삼아야하고, 실수가드러날경우에는마땅한책임을다해야한다. 정부의책임도무겁다. 기업이눈앞의이익에눈이멀어서소비자의안전을소홀히여기는일이없도록엄격하게관리를해야만한다. 시장에대한감시를더욱강화해서소비자가가공식품과생활화학제품을안심하고사용할수있도록해줘야만한다. 언론 과소비자단체의사회적책임도강화해야한다. 그러나소비자스스로합리적인태도로화학물질에대한상식을갖추기위해적극적으로노력하는것이무엇보다중요하다. 건강과안전에대한일차적인책임은개인에게있기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학교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교수. 서울대학교자연대화학과를졸업하고, 미국코넬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 대한화학회회장을지냈으며, 이덕환의과학세상 (2007) 등다수의저서와 같기도하고아니같기도하고 ( 개역판, 2018), 거의모든것의역사 (2003) 등다수의역서가있다. 이덕환 생활속의화학물질, 과연안전하게사용하고있는가?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