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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페이지 본 자료는 이번 전시의 대표 작품 및 초. 중. 고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중심으로 어린이들의 전시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한 워크북으로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작품 해설을 실었습니다. 한국 근현대회화 1920년~1970년 유럽 1945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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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Daegu Gyeongbuk Studies Vol.14. No.1 2015. 4. pp.13~31 13 죽농 ( 竹儂 ) 서동균 ( 徐東均, 1903-1978) 산수화연구 * 이인숙 ** Study on Landscape painting by Juknong( 竹儂 ) Seo Dong-gyun( 徐東均, 1903-1978) Lee, In suk 국문요약근현대기대구는서화의수준이높았으나구체적내용에대해서는사군자화가주류를이루었다는사실정도가알려져있을뿐이다. 그러나산수화또한기석 ( 箕石 ) 허섭 ( 許燮, 1878-1934) 이 묵산수 ( 墨山水 ) 로지칭되었던개성적인수묵표현의관념산수화풍을이룬이래작가고유의필묵적개성이산수화를통해드러나는특징을가지고지속적으로전개되었다. 죽농 ( 竹儂 ) 서동균 ( 徐東均, 1903-1978) 은사군자화로명성이높지만산수화에도일가를이룬산수화가이기도하다. 허섭을고모부로두었던서동균은 1930년대부터허섭풍의묵산수를그렸고, 독자적인화풍을모색하는시기를거쳐자신의산수화풍을이루어 1970년대까지꾸준히산수화를그렸다. 서동균의산수화는 1930년대-1940년대에허섭의묵산수를학습하고이를심화시켜간초기, 1950년경-1965년경실경의현실미를추구하고, 자신만의표현법을탐색하는등독자적화풍을모색한중기, 1966년경부터작고하기까지담채를도입해수묵과조화시키고관념경에실경을복합하여개성적인화풍을이룬후기로나눌수있다. 서동균은후기산수화에서정형산수의공인된회화적장치를활용한관념미를위주로하면서중기의실경사생에서얻은현실미표현을절충하여현대적인맛이있는고전풍산수화를이루었다. 대구화단산수화는현실경의사생에기반한수묵풍경화의성격을갖는중앙화단동양화나사의화풍이면서도감각적인호남화단남종화와달리작가고유의서예적이고, 추상적인필묵미가산수화라는장르를통해나타나는점이특징이다. 주제어 : 죽농서동균, 산수화, 대구, 기석허섭, 근현대기산수화 * ** 이논문은 2014년 12월 13일사단법인죽농서단주관 제2회죽농서단정기학술대회 에서발표한내용을보완한것임. 대구대학교강사 (Lecturer, Daegu University), E-mail : de4e@daum.net, Tel : 053-764-0098 Journal of Daegu Gyeongbuk Studies

14 이인숙 Abstract It is not well known, with Seoul and Pyongyang, that Daegu in modern times was considered as a city, in which economy and culture was flourishing with high standard of painting and calligraphic works, and the capacity continued to contemporary times. It is known that the Four Gracious Plants was the mainstream, and only a bit of research is done on Seokjae( 石齋 ) Seo Byeong-oh( 徐丙五, 1862-1936) and Juknong( 竹儂 ) Seo Dong-gyun( 徐東均, 1903-1978). But since 'Muk-san-su(Landscape in black and white, 墨山水 )' called by Kiseok( 箕石 ), Heoseop( 許燮, 1878-1934) formed a characteristic ink landscape painting. Seo Dong-gyun learnt Muk-san-su from Heoseop, who was the husband of Seo Dong-gyun's aunt, and painted high-quality landscapes. Seo Dong-gyun's landscape paintings can be divided into three stages; 1930s-1940s, the early stage when he learnt and deepened Heoseop's Muk-san-su, from 1950 till about 1965, during this middle period he pursued the beauty of reality of the actual view and tried to seek his own independent painting style by exploring some techniques of expression, during the latter part, from 1966 till his death, he harmonized ink with light coloring and achieved the ideal sceneries by adding the actual view to the conceptual scenes, which is the classical beauty of landscape painting. Seo Dong-gyun's late landscape paintings gained the general classicality of the beauty of landscapes by combining the natural features of the season which enhances the reality as well as by applying the accredited picturesque device of typical landscapes. KeyWords : Juknong Seo Dong-gyun, Landscape Painting, Daegu, Kiseok Heoseop, Modern Landscape Painting Ⅰ. 머리말 근대기대구는서울, 평양과함께 3대도시로꼽혔던경제와문화가융성한지역이었다. 대구는 1601년경상감영이설치된이래경상도의행정, 사법, 군사중심지였고, 낙동강수운과함께경부철도의거점역이라는교통의편리성으로인해상업또한활발하였다. 칠곡, 성주, 경산등향리의전답을관리하면서도심에거주한대지주출신을비롯한근대기대구의부유층은한학을익히고시문과서화의교양을갖춘유교지식인이많았다. 1900년대초이후약령시와서문시장의물류유통등으로부를축적한신흥상업자본가들또한기존지역유지층의문화취향을추수하여유교적교양을갖추고시서화를향유하는경향을띠었다. 대구에는일제강점기에도경상도청이존속하였고대구복심법원, 대구사범학교와대구의학전문학교등고등교육기관을비롯한남선 ( 南鮮 ) 유일의여러상급기관이있어고위관료나지식층일본인또한다수거주하였다. 근대기대구는서예와전통회화애호층이폭넓게분포했고그런만큼서화계의역량과 대구경북연구제 14 권제 1 호

죽농 ( 竹農 ) 서동균 ( 徐東均, 1903-1978) 산수화연구 15 수준또한높았다. 1) 1922년후진양성, 전람회개최, 상설전시관설치등을목적으로교남시서화연구회가창설되기도하였다. 2) 그러나대구전통화단의내면은사군자화가주류를이루었다는정도가알려져있고, 작가로는석재 ( 石齋 ) 서병오 ( 徐丙五, 1862-1936), 죽농 ( 竹儂 ) 서동균 ( 徐東均, 1903-1978) 에대한연구가약간이루어졌을뿐이다. 3) 필자는근현대기대구서화계에관심을갖고수년간연구를진행해왔다. 4) 그러한가운데기석 ( 箕石 ) 허섭 ( 許燮, 1878-1934) 의산수화를주목하게되었다. 허섭은사군자화중심의근대기대구전통화단에서특이하게도산수화를그려 묵산수 ( 墨山水 ), 먹산수 로지칭되었던자신의고유한산수화풍을이루었다는사실을인식하게되어허섭에관한최초의논문을쓰게되었다. 5) 대구산수화는허섭의묵산수로부터본격적으로시작되었고, 이후 1980 년대까지전개되었다. 그러나그간허섭이나대구화단산수화에대한인식과연구는이루어진바없었다. 서동균은사군자화가로명성이높다. 그러나서동균이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지속적으로산수화를그렸으며자신의화풍을이룬산수화가이기도하다는사실은그간주목되지못하였다. 서예와사군자화로출발한서동균이산수화를그리게된것은허섭이고모부였다는사실도한이유가되었을것이다. 6) 서동균은허섭보다 25년이나나이가아래였지만근대기전통화단에서함께활동하며 1934년서양화그룹인향토회전람회에나란히찬조출품도하였다. 7) 서동균은많은산수화를남겼을뿐아니라대구산수화의근대기에서현대기로의이행에큰역할을하였다. 서동균의서예와회화는 1986년 죽농서동균서화집 이출간되어작품세계가알려졌고약간의연구가이루어졌다. 8) 1) 필자는근대기부터 20세기후반까지대구서화계의전개를서병오의사승을중심으로파악해본바있다. 이인숙, 2010, 20 세기 대구문인화파 ( 大邱文人畵派 ) 의형성과변천연구 참조. 2) 동아일보 1922.1.27, 서화연구회조직, 교남시서화연구회는 1922년 1월 15일창립하였고인적구성은회장서병오, 부회장박기돈, 강사정용기ㆍ서병주, 총무이영면ㆍ김재환, 이사김홍기, 회계서창규이다. 3) 石齋徐丙五 (1862-1936) 는시와서예, 사군자화등에능하였던시서화삼절의서화가이다. 서병오의작품은 1989년예술의전당에서 석재서병오회고전 이열렸고, 1998년 석재서병오시서화집 ( 이화문화출판사 ) 이대형도록으로간행되었다. 연구논문은다음과같다. 박근술, 1992, 석재의사군자화연구, 논문집 15, 한양여자전문대학교 ; 김정숙, 2001, 석재서병오의서예에대한연구, 경주대학교석사학위석사논문 ; 이인숙, 2010, 석재서병오 (1862-1936) 와 교남시서화연구회 의재인식, 민족문화논총 45, 영남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 김지영, 2010, 석재서병오 (1862-1936) 의서화연구, 고려대문화재학협동과정석사학위논문 ; 이인숙, 2011, 석재서병오 (1862-1936) 의시서화와대구의문인화 상ㆍ하, 월간墨家 69ㆍ70, 묵가 ; 이인숙, 2012, 대구인, 석재서병오 (1862-1936년, 75세 ), 근대예술의재발견, 학진출판사 ; 이인숙, 2013, 석재서병오 ( 石齋徐丙五, 1862-1936) 의기명절지화연구, 민족문화논총 55, 영남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 이인숙, 2014, 석재 ( 石齋 ) 서병오 ( 徐丙五, 1862-1936) 묵란화연구, 영남학 26, 경북대학교영남문화연구원. 4) 필자는주4) 의서병오, 주9) 의서동균에대한연구외에도근현대기대구전통화단에대한에대해여러편의논문을발표한바있다. 이인숙, 2012, 1900년대대구화단죽석화 ( 竹石畵 ) 연구, 영남학 22, 경북대학교영남문화연구원 ; 이인숙, 2012, 근대기근대기대구의문인화가긍석김진만 ( 肯石金鎭萬, 1876-1933) 기명절지화연구, 민족문화논총 52, 영남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 이인숙, 2013, 20세기대구전통화단기명절지화의전개와표현양상, 영남학 24, 경북대학교영남문화연구원 ; 이인숙, 2013, 사람이만든장소, 장소가만든사람들-근대기대구의복합문화공간, 근대와현대의만남, 대구미술비평연구회. 5) 이인숙, 2014, 근대기대구의산수화가기석허섭 ( 箕石許燮, 1878-1934) 의 묵산수 ( 墨山水 ) 연구, 민족문화논총 58, 영남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6) 달성서씨현감공파보 10, 964면. 7) 동아일보 1934.11.22, 대구향토회미전, 역전상품진열소에서열린제5회전은 금년부터는특히대구에있는동양화권위자제씨의찬가출품이이십여점이나있어금상첨화의미술전당을이루리라한다. 라고하고서병오, 고김진만, 서동균, 허섭등을언급하였다. 8) 서동균의산수화에대한연구는없으며서화에대한연구는다음과같다. 정치환, 죽농서동균연구 : 문인화를중심으로, 1982, 경희대교육대학원석사학위논문 ; 이국희, 1992, 서동균의사군자연구, 영남대동양화과석사학위논문 ; 김령희, 1995, 죽농서동균과죽사이응로의묵죽화비교연구, 성신여대교육대학원석사학위논문 ; 신규열, 1996, 죽농서동균의작품연구 : 사군자를중심으로, 전주대미술학석사학위논문 ; 최금진, 2004, 죽농서동균서화연구, 대전대서예학 Journal of Daegu Gyeongbuk Studies

16 이인숙 이연구는서동균의산수화가로서의위상을정립하기위한것이다. 서동균의산수화화풍이형성되는과정을기년작을중심으로초기, 중기, 후기로나누어시기별로파악하였다. 초기는 1930년대 -1940년대로허섭의묵산수를소화하면서이를심화하는시기이며, 중기는 1950년경-1965 년경으로실경을사생하며자연의현실미를추구하고, 수묵표현의기법을탐색하는등자신의독자적화풍을모색하는시기이다. 후기는 1966년경부터작고하기까지로수묵에담채를조화시키고관념경에실경을절충하여고전풍의산수미를이룬시기이다. 아울러현대기대구산수화에대해서도서동균의제자들에의해전개된상황을살펴보았다. 서동균은근대기서화시대부터현대기미술시대를모두경험하며서화의제반환경이급변했던 60여년을지필묵연의매체를고수한서화가로서살았다. 서동균의산수화는 20세기를통해지속된전통회화로서한국미술사에서중요한의미가있다. 한국근현대미술사연구에서서화분야에대한관심은미진한형편이다. 지방작가의경우는연구의시선이더욱미치지못하였다. 전통회화와지역미술의구체적내용에대한연구는한국미술사의균형잡힌이해와지역미술사정립을위해반드시필요하다. 이연구는그간주목되지못하였던서동균의산수화를통해그의산수화가로서의작가적위상을정립하고, 근현대기대구에서전개된산수화의양상을밝힘으로서대구미술사와한국미술사를더욱풍부하게이해하고자하였다. II. 화풍의형성과정 1. 초기 : 1930년대-1940년대, 허섭 (1878-1934) 묵산수 의학습과심화한국미술사에서지역에서유명작가가나타나이름이전국으로알려지고지역서화계가형성되는것은 18세기말경이다. 19세기전반기가되면전주의창암 ( 蒼巖 ) 이삼만 (1770-1847), 평양의눌인 ( 訥人 ) 조광진 (1772-1840) 등은서울의추사 ( 秋史 ) 김정희 (1786-1856) 못지않은명필로서의명성을지역에서누리게된다. 9) 전주와평양에비하면그시기가늦고이름도전국적으로알려지지못했지만팔하 ( 八下 ) 서석지 (1829-1906) 를대구에서작가가출현하는시작으로볼수있다. 그러나 20세기전반기대구서화계는서병오의존재로인해서예와사군자화를중심으로융성하게되었다. 서병오는사군자뿐아니라서예적필치의문인화풍으로괴석, 화훼, 기명절지등수묵화를그리는가운데산수화도그렸고, 서병오와교유하며대구를자주드나들었던석강 ( 石岡 ) 곽석규 (1862-1935), 백송 ( 白松 ) 지창한 (1849-1920), 석하 ( 石下 ) 김우범 ( 金禹範 ) 등의수묵산수화도지역에알려져있었다. 많은작품이남아있지는않지만대구의서화가인석초 ( 石樵 ) 정안복 ( 鄭顔復, 1833?-?), 추범 ( 秋帆 ) 서병건 ( 徐丙 과석사학위논문 ; 정태수, 2007, 죽농서동균의묵죽화연구, 서예학연구 10, 한국서예학회 ; 김현미, 2012, 죽농서동균 (1920-1978) 의서화연구, 한국학논집 49, 계명대학교한국학연구원 ; 이인숙, 2013, 20 세기대구의문인화가죽농서동균 (1903-1978) 기명절지화연구, 서예학연구 22, 한국서예학회. 9) 19 세기후반부터 20 세기초지방화단의태동과확대에대해서는유홍준, 개화기ㆍ구한말서화계의보수성과근대성, 구한말의그림, 학고재, 1989, 77-93 면참조. 대구경북연구제 14 권제 1 호

죽농 ( 竹農 ) 서동균 ( 徐東均, 1903-1978) 산수화연구 17 建, 1850-?) 등도산수화를그렸다. 그러나허섭이전대구에는본격적인산수화가가없었다. 허섭의 1933 년작인 < 그림 3> 을보면허섭이 1930년대에자신의개성이뚜렷한묵산수화풍을이루고있음을알수있다. < 그림 1> 을보면일찍이서병오에게배워 1920년대중반서예가, 사군자화가로서입지를세우고있었던서동균이 1930년대에산수화를그렸음을알수있다. 10) 서동균의산수화는 죽농서동균서화집 에 66점과참고도판 16점등 82점이수록되어있고 오정ㆍ소정컬렉션 에 6점, 대구미술관에 1점이소장되어있으며, 개인소장도많이있을것이다. 죽농서동균서화집 에서보면기년작은 50대 5점, 60대 4점, 70대 10점으로많지않은데다 70대에편중되어있고 30대, 40대의기년작은실려있지않다. 특히그가자신만의표현법을모색하며고민했던 40대와 50대기년작이많지않아화풍의형성과정을면밀히추적하기어려운점이있다. 현재알려진가장이른산수화는 1934 년 3월의 < 귀로 >< 그림 1> 이며, 1935년겨울안동에서그린 < 산수 >< 그림 4> 도초기기년작이다. 오정ㆍ소정컬렉션 의 6점은 1930년대중반의작품으로여겨지며 죽농서동균서화집 도판287 로수록된 < 산수8폭병풍 > 도화풍으로보아 1930년대작품일것이다. 모두허섭의화풍과밀접한초기의산수화들이다. 11) 같은횡피형식인서 < 그림 1> 서동균, < 귀로 ( 歸路 )>, 1934, 지본수묵, 21.5 86cm, 개인동균의 1934년작 < 그림 1> 과허섭의 1933년작 < 그림 3>, 비슷한시기로판단되는 < 그림 2> 를비교해보면서동균이허섭의묵산수를충실히학 < 그림 2> 허섭, < 산수 >, 지본수묵, 52 156cm, 영남대박물관습하였음을알수있다. < 그림 1> 과 < 그림 2> 는화면중앙에다리를건너는점경인물이있고, 다리의양안 ( 兩岸 ) 으로키가큰수목사이에가옥 < 그림 3> 허섭, 김진만題, < 산수 >, 1933, 지본수묵, 50 154cm, 영남대박물관 10) 서동균은서석지와교유하였던조부徐瑢默 (1846-1911) 에게어려서부터서예를배웠는데, 우연히어릴때글씨가서병오의눈에띠어 붓으로농사짓는사람 이라는죽농 ( 竹農 ) 으로호를받고 18 세때부터본격적으로서화를배우게되었다. 서동균은남다른자질과노력으로 1926 년 24 세때전람회를열었고 25 세때초청전람회를갖는등약관에작가로입신하였으며, 1928 년제 7 회와 1929 년제 8 회조선미술전람회에서묵죽으로입선하였다. 서병오는작고할때당시 34 세의젊은서동균에게자신의명정을쓰게하여후계자로인정하였다 ( 매일신문 1974.8.18, 書畫六十年竹儂徐東均回顧錄 8). 서동균은 72 세때인 1974 년 8-9 월 20 회에걸쳐대구 매일신문 에 書畫六十年竹儂徐東均回顧錄 을연재하였고, 이글은 예술평론 ( 대구예술평론가협회, 1992) 에수합되어실렸다. 11) 서동균이허섭의산수화에화제를써서합작한작품은오정ㆍ소정컬렉션에 4 점이있으며, 개인소장의 12 폭병풍도있다. Journal of Daegu Gyeongbuk Studies

18 이인숙 을배치하였으며화면상단으로여백을남기면서완만하게중첩되는원산이있는유사한구도이다. 필묵사용에있어서도경물묘사에먹점을반복하여찍어먹으로덮인부분이많은검은화면을이루는점, 굵고진한서예적필선을윤곽선처럼덧대어형태감을뚜렷하게한점등이유사하다. 차이도있는데산과물의화면점유비율에있어서허섭이물을중심으로산수를구성하는데비해서동균은산과언덕이많은부분을차지하며, 나무표현에서허섭이농담과엽법 ( 葉法 ) 을다양하게구 < 그림 4> 서동균, < 산수 >, 1935, 지본수묵, 11.6 76cm, 대구미술관사하며수목을풍성하게배치하는데비해 < 그림 5> 허섭, < 산수 >, 지본수묵, 97 48cm, 개인서동균은마른나뭇가지를많이그렸고, 산과언덕의입체감을붓질을중첩하여표현하고있어화면이훨씬복잡하다. 화제의구성과배치에서서동균은 < 그림 1> 에서는제목두글자를상단가운데에예서로썼고 < 그림 4> 는상단에가로로길게화제를배치하며역시예서로썼다. 이는허섭의작품에화면상단좌우의적절한여백에 5언시나 7언시 2구가행서로써넣어져있는방식과다르다. 유사한구도인서동균의 < 그림 4> 와허섭의 < 그림 5> 를비교해보면서동균이경물의구성이나화면의구도등허섭의묵산수를충실히배웠음을알수있고, 한편섬세한붓질이나다양한발묵에서자신의개성또한드러나고있음을알수있다. < 그림 6> 은 오정ㆍ소정컬렉션 에소장된 2폭가리개 3건중하나이다. 이컬렉션은오정 ( 梧庭 ) 이종면 ( 李宗勉, 1870-1932) 과아들소정 ( 小庭 ) 이근상 ( 李根庠, 1903-1934) 의유품을이근상의아들인이기환 ( 李基煥, 1925-?) 의부인안영주 ( 安英株, 1927-) 교수가영남대학교박물관에기증한서화민속유물 1,356 점으로 오정ㆍ소정컬렉션 에수록되어있다. 이종면은경제인으로활동한성주출신의자산가로서병오와시회모임을함께한한시작가였고, 12) 이근상은이상화 (1901-1943), 이장희 (1900-1929), 백기만 (1902-1967) 등과함께문학활동을한시인이었다. 13) 서동균은이근상을비롯해또래인이들문학가친구들과친하게지냈다. 이근상과는동갑이었고, 14) 2살위인이상화와는이상화가작고할때까지가까이어울렸다고하였다. 15) 부유한지역유지이자문학인이었던이종면, 이근상부자가각기친하게지냈던서 12) 1920 년 10 월경의한조사에의하면대구는경성에이어두번째로자산가가많은도시였다. 1930 년대초이종면은정재학, 이장우, 서병국, 서병조, 정해붕등과함께대구의 50 만원이상자산가로거론되었다 ( 오미일, 2002, 한국근대자본가연구, 한울아카데미, 156-157 면 ). 13) 이종면과이근상의시문은 1987 년영남대학교박물관에서 梧庭詩集, 小庭文集 으로간행하였다. 14) 서동균의생년은 1903 년이다. 그간 1902 년으로잘못알려져있었다. 이에대해서는이인숙, 20 세기대구의문인화가죽농서동균 (1903-1978) 기명절지화연구 324 면참조. 이근상, 이상화, 서동균의교유는 오정ㆍ소정컬렉션 에소장된서동균의서예작품을통해확인할수있다. 이작품은이상화가서동균에게부탁하여 一洲 에게증정하려하였던것인데어떤연유인지이근상이그대로소장하고있었던것이다 ( 오정ㆍ소정컬렉션 86 면참조 ). 대구경북연구제 14 권제 1 호

죽농 ( 竹農 ) 서동균 ( 徐東均, 1903-1978) 산수화연구 19 병오, 서동균을비롯한주변서화가들의작품을후원의의미에서수장하였던것이이컬렉션의중요부분을이룬다. 허섭의산수화 19건 34점이소장된것은이근상이친구인서동균을매개자로하여서동균의고모부인허섭을후원하는의미에서였다고생각한다. 이근상이 1933년화제를쓴허섭의대작이남아있는데이때는이종면이 1932년 5월작고한이후외아들이근상이집안의경제권을모두가졌을때이기때문이다. 16) 이근상은다음해인 1934년 32세의나이에심장병으로작고하게된다. 그러므로 < 그림 6> 을비롯한오정ㆍ소정컬렉션의서동균산수화 6점은이근상이작고하기이전에그려지고수장되었다고판단된다. 17) < 그림 7> 은 < 산수8폭병풍 > 중의한폭으로허섭묵산수화풍의영향이짙은 1930년대작품으로여겨진다. < 그림 6> 동균, < 산수 > 2폭, 지본수묵, 182 54cm, 영남대박물관한편 1930년대로추정되지만위에서언급 < 그림 7> 서동균, < 산수8폭병풍 > 중 1폭, 지본수묵, 127 34cm, 한허섭풍수묵산수화와성격이다른수묵담개인채풍경화 < 차창소견 ( 車窓所見 )>< 그림 8> 이있다. 멀리연기를뿜고있는공장굴뚝과근대건축물이있는도시풍경이있고, 앞쪽에는초원에서풀을뜯는말두마리가그려져있다. 오른쪽아래예서체제목은여행중차창으로본경치임을알려주지만근경과원경은매우대비되는광경이아닐수없다. 실경사생에대한자각적인식에서 < 그림 8> 서동균, < 차창소견 ( 車窓所見 )>, 지본담채, 42.5 72cm, 개인 15) 매일신문 1974.8.13, 書畫六十年竹儂徐東均回顧錄 3. 16) 오정ㆍ소정컬렉션, 71면. 17) 오정ㆍ소정컬렉션의서동균작품은산수 6점, 기명절지 4점, 서예 16점등총 26점이다. Journal of Daegu Gyeongbuk Studies

20 이인숙 시도된것이라기보다여행중의일시적감흥에서나온것으로보인다. 대구의 1세대양화가들인김용준, 최화수, 서동진, 박명조, 서병기등과어울리며향토회를창립하던시기의작품이아닐까추측된다. 18) 서동균은 1930년향토회창립전에 < 풍경 > 을출품했다고하였다. 19) 1940년대기년작은파악하지못하였는데 < 그림 9> 는 1930년대묵산수와비교해보면이시기와그리멀지않은유사성이보이며, 1950년대초작품과는차별되는관념적분위기를보여주고있어 1940년대화풍일것으로여겨진다. 1930년대작품과비교하면담채가부가되었고, 습윤한묵점대신까슬까슬한갈필로경물을묘사하였으며, 의고적인점경인물은사라졌다. 그러나가옥의형태, 수목의표현, < 그림 1> 에서처럼길의표현에짧은가로선을그려넣은점등의세부는 1930년대화풍과그리멀지않음을보여준다. < 그림 9> 는서동균이허섭의묵산수를학습하던시기에서진전하여자신이추구하는방향으로표현의기량을심화 < 그림 9> 서동균, < 산수 >, 지본담채, 75 75cm, 개인시켜가고있음을보여준다. 그방향은 < 차창소견 > 과같은실경사생에기반한사경산수가아니라정형적인관념산수여서 1940년대서동균은 동양화가 가아니라 서화가 로자신의입지를설정하고있음을알수있다. 서동균은 1919년해성보통학교를졸업한후처남이있던오사카로가서시립중학교를다니다곧그만두고도쿄로가서나카무라후세스 ( 中村不折, 1868-1943), 고무로스이운 ( 小室翠雲, 1874-1946) 등에게잠시서화를배운일이있다 ( 김현미, 2012: 102-103). 다시한국으로돌아왔다가 1938년가족이모두옮겨가자다시오사카로갔다가쓰지모토시유우 ( 辻本史邑, 1895-1957) 의소개로서예구락부의사범을맡았으나병으로 1941년귀국하였다. 20) 일본에서그린소, 말등의동물스케치가남아있는데일본에서의소묘학습은그가중기에사생풍산수화를시도할수있었던자산이되었을것이다. 21) 2. 중기 : 1950 년경 -1965 년경, 현실미추구와독자적화풍의모색 1953 년 51 세때작품인 < 그림 10>< 그림 11> 은 < 그림 9> 와는완연히다른현실감과생동감이물씬 18) 향토회에대해서는윤범모, 향토회와대구화단, 6-99 면참조. 19) 매일신문 1974.8.22, 書畫六十年竹儂徐東均回顧錄 11, 창립기념전람회를대구역앞의상품진열관에서열었다. 서동진은나의초상화 ( 현재보관중 ) 를출품했고나는동양화로 < 풍경 >< 장미 >< 공작 > 등소품을냈었다. 20) 매일신문 1974.8.23, 書畫六十年竹儂徐東均回顧錄 12. 21) 김현미, 2012, < 그림 22>-< 그림 24> 대구경북연구제 14 권제 1 호

죽농 ( 竹農 ) 서동균 ( 徐東均, 1903-1978) 산수화연구 21 풍긴다. 산수화의역사속에서의미상징이공인된경물들로구성된정형산수대신현실의구체적풍경을소재로삼았고, 관조와사색의대상으로전형화된계절성이아니라생생하게체험되는역동적인날씨를극적으로묘사하였다. 이러한변화는서동균이이상미의현현이아니라현실미의반영으로산수화에대한인식을전환하고새로운방향을모색했음을알려준다. < 그림 10> 서동균, < 산수 >, 1953, 지본담채, 100 130cm, 개인 < 그림 11> 서동균, < 추강취우 >, 1953, 지본담채, 66 106cm, 개인 한국의현실경치를그리고자한근대적사실주의는안중식 (1861-1919) 의 1915년작품인경복궁과광화문을주제로삼은두점의 < 백악춘효 ( 白岳春曉 )>, 호남의 < 영광풍경 > 등에서나타나고, 1920년대에신진작가들에의해새로운시대정신에입각한창조적자기실현의의지로서추구되었다. 22) 1923년이상범 (1897-1972), 변관식 (1899-1976), 노수현 (1899-1978), 이용우 (1902-1952) 등이중국화풍을탈피하고일본화풍을배격하여새로운 우리조선화 를시도하자고모였던동연사 ( 同硏社 ) 는결성에그쳤지만그들은자신들의의지를이후각자작품을통해실현하였다. 일제강점기 1세대동양화가들과달리관념산수로방향을설정했던서동균이 1950년대초실경사생으로전환한획기적변화는시대가완전히달라졌기때문일것이다. 1940-50년대한국은일본의지배를벗어나광복을맞이하였고, 육이오동란을겪는등엄청난변화가있었다. 일제가패망하고대한민국이수립된역사적상황은예술적상황또한일변시켜많은작가들은문부성전람회, 조선미술전람회등을목표로했던일본화의영향, 향토적사실주의등일제기의작풍을재정립하였다. 조국의광복은많은작가들에게새로운예술을창출하는원동력이되었고, 서동균에게도새로운시대정신에입각한주체적회화의식과조국산천에대한감회를불러일으켜자신의산수화풍에대한새로운비전을갖게하였을것이다. 서동균은광복후경북여고에서미술교사로교편을잡았고, 중등교원양성소에서동양미술사를가르치기도했으므로교학상장을통해자신의작업에대한성찰의기회를가질수있었을것이며이또한변화의계기가되었을것이다. 1946년결성된경북미술연구회, 1950년시작된대구화우회에참여하는등지역미술가들과의교류도활발하였다. 23) 이승만대통령의작품주문과이를계기로영남서화원을개원하여본 22) 1910-1920 년대전통화단의전개에대해서는이구열, 1976, 제 2 장 - 제 4 장참조. 23) 1946 년대구미국공보원 (USIS) 에서창립전을연경북미술연구회의이사장은주경, 부이사장은박인채, 회원은장영복, Journal of Daegu Gyeongbuk Studies

22 이인숙 격적으로후진을양성하게된것또한서동균에게성취감과자부심을주었을것이다. 24) 서동균은 해방후부터그무렵까지가내생애가운데가장작품활동이왕성했던때가아닌가한다. 라고하였다. 25) 또대구는동란중임에도전화가미치지않았던지역이어서전국의예술인들이피난하여전시임에도오히려예술적활력이풍부했다. 1953년작인 < 그림 10>< 그림 11> 은광복후부터 1950년대초반의새로운시대적분위기, 피난예술인들로인해풍요했던예술적환경, 작가로서인정받고영남서화원을개원한안정된개인적여건등여러계기가복합되어서동균이자신의예술적진로를재정립한결과로여겨진다. < 그림 10> 은가운데에돌담과원추형초가지붕의물레방아간이있고그앞에는포대기로아이를업은한복입은여인이머리에함지를이고비탈길을올라가는모습이그려져있다. 화면왼쪽홈통에서물이힘차게쏟아지고오른쪽아래로는얕은시내가흐른다. 초가지붕과돌담, 죽림과잡목등향토적풍경과동시대시골아낙으로그려넣은점경인물은이전작품에서찾아볼수없던한국적정취의현실미가가득하다. < 추강취우 ( 秋江驟雨 )>< 그림 11> 은갑작스런소나기에연잎으로비를가린인물이다리를건너급하게집으로향해가는장면이다. 사선으로세차게쏟아져내리는빗줄기, 그사이로보이는육중한산세, 비바람에흔들리는나뭇가지와잎들, 넘실거리는개울물등이습윤하고운동감있는필치로현실감있게그려져있다. 26) 산수화에는각계절의전형적특징을회화화하여계절감자체를영원의자연경으로감상했던사시도 ( 四時圖 ), 사계산수도 ( 四季山水圖 ) 의전통이있다. < 그림 11> 은이러한계절적풍광에기반하면서계절감의전형이라기보다소나기의기상적정경을순간적인시각적구체성으로실감나게그려냈다. < 그림 12> 서동균, < 백두산천지 >, 1957, 지본수묵, 70 80cm, 개인 < 그림 13> 서동균, < 산성모색 >, 지본담채, 60 80cm, 개인 백팔용, 서석규, 변종하, 김창락, 서동균등이다. 서동균이 1920 년대부터지역미술인들과교류가많았던것은대구양화운동을주도했던서동진 (1900-1970) 이같은달성서씨현감공파로 11 촌형이었던까닭도있다. 24) 서동균이영남서화원을열게된것은경북도지사신현돈을통해이승만대통령이위촉한병풍작품을보낸후서동균이창작에전념하도록배려하라는이대통령의지시로인한것이었다고한다 ( 매일신문 1974.8.27, 書畫六十年竹儂徐東均回顧錄 15). 申鉉燉 (1903-1965) 이제 3 대경상북도도지사로재임한기간은 1951-1955 년이다. 한편서동균의대한민국문화훈장서훈을보도하는신문기사에는 56 년에는이승만대통령의특별지시로영남서화원을지도경영, 많은후진을양성했다. 고하였다 ( 경향신문 1975.10.21). 25) 매일신문 1974.8.27, 書畫六十年竹儂徐東均回顧錄 15. 26) < 그림 11> 의화면오른쪽위에 秋江驟雨三友堂題 으로해동서화협회회장을지낸동년배의서예가三友堂김종석 (1904-1973) 이화제를썼고, 서동균은그아래에 癸巳重陽節竹農徐東均寫 로낙관하였다. 대구경북연구제 14 권제 1 호

죽농 ( 竹農 ) 서동균 ( 徐東均, 1903-1978) 산수화연구 23 < 사진 1> [ 동아일보 ] 1921년 8월 29일 ( 양력 ) < 그림 12> 는 1957년광복절에백두산천지를그린것으로해방의감격이 1950년대후반까지도생생했음을짐작하게하는작품이다. 백두산천지는 1921년동아일보사가등산대를조직하여 백두산이생긴이후처음 으로신문지상에사진을실은이래민족의상징으로널리유포된이미지이다. 27) < 산성모색 ( 山城暮色 )>< 그림 13> 은나무들이쓰러질듯거센바람을맞고있는가운에멀리옛산성의성곽위로기와를올린문루 ( 門樓 ) 가높다랗게자리하고있으며, 근경에는한국산야에서흔히볼수있는얕은개울이흐르고있다. 성문을향해나있는산길에는봇짐을꿴작대기를둘러멘인물이그려져있다. 실경에기반한풍경, 현실성있는점경인물, 거센바람이몰아치는저물녘의날씨를현장감있게표현하려한점등은 < 그림 11> 과유사한화의 ( 畵意 ) 이다. < 그림 10>-< 그림 13> 은서동균이 1950년대에이전과는달리실제풍경과실감나는날씨표현으로현실적산수미를그려내고자했음을보여준다. < 그림 10>, < 그림 11> 이 1953년그려졌다는사실은의미깊다. 이때대구에는청전이상범이피난하고있었다. 1951년중공군의공세로정부가서울에서철수한일사후퇴때많은피난민들과마찬가지로고희동을비롯하여김은호, 변관식, 노수현, 장우성, 배렴, 김영기, 이유태등의화가들이부산에피난해있었다. 이상범도처음엔부산으로내려갔다가여름무렵대구로왔고, 1954년서울로돌아갈때까지대구에거주하였다. 피난이듬해인 1952년 9월이상범은생활고해결을위해대구미국공보원에서 < 효종 ( 曉鐘 )> 등 25점으로개인전을열었다 ( 이구열, 1992: 204-222). 이상범의 1952년대구개인전은서동균이 1953년작품들에서보여준화풍전환에영향을미쳤다고생각된다. 이시기는 청전양식의형성과정착 이이루어진이상범화풍의제4 기 (1950-1972) 이다 ( 이성미, 1997: 20). 이상범은 1920 년대부터꾸준히개척해온산수화의근대적화풍모색을이시기에자기화시키고현실주의적시각으로우리의향토적정경과시골의삶의모습을독자적인예술경지로실현하고있었다. 그런데 1960년대초작품인 < 그림 16>< 그림 17> 두점의 < 취우 > 는같은모티프인앞서의 < 그림 11> 에서보여준시각적리얼리티의생생한현실적날씨묘사와달리수묵의형식미라는조형언어가핵심을이루고있다. < 그림 14>-< 그림 17> 은주제와소재에대한탐구가아니라 산수 의표현기법에대한탐구로서동균이방향을바꾸었음을보여준다. 28) < 그림 14>< 그림 15> 는다양한크기와형태, 농담의미점 ( 米點 ) 등을실험하며자신의필법과묵법을찾아내려하고있음을보여주며, < 그림 16>< 그림 17> 은 취우 의주제를변주하면서묵필의사의화풍수묵화를보여주고있어 1950년대의현실미추구와사경에기반한사실적화풍과다르다. 1960년대전반기서동균은 1950년대와달리담채없이수묵만사용하고있 27) 동아일보 1921.8.21. 白頭靈峰에감격한등산대- 靑於藍靜於鏡한聖池의秘境 - 28) < 그림 14>-< 그림 21> 은모두개인소장임. Journal of Daegu Gyeongbuk Studies

24 이인숙 으며, 현실미를추구했던 1950년대와달리다양한묵법과필법의사의적표현기법을실험하며필묵미중심의독자적화풍을모색하였다. 3. 후기 : 1966년경-1978년, 수묵담채의고전풍산수화 후기의이른기년작으로 1968년작인 < 그림 18>< 그림 19> 를들수있지만, 1960년대초이후의기년작을찾지못해 1960년대중반경으로여겨지는후기의시작을정확히설정하기는어렵다. 필자는임의적으로서동균이죽농 ( 竹農 ) 을죽농 ( 竹儂 ) 으로개호한 1966년경을후기의시작으로설정하였다. 29) 서동균은 1960년대전반기의수묵실험을거쳐수묵과담채를결합하고, 실경과관념경을복합한산수화풍을이루었다. 후기산수 < 그림 14> 서동균, < 산수 > 화의특징은관념적인이상경의구도에 < 그림 15> 서동균, < 산수 >, 지본수묵, 131.5 32.5cm < 그림 16> 서동균, < 취우 >, 1961, 지본수묵, 127 70cm 사실풍의경물표현을절충시킴으로서 < 그림 17> 서동균, < 취우 >, 1962, 지본수묵, 35 127cm 획득한현대적인회화미의고전풍산수화라고할수있다. 서동균의후기산수화는수묵의기조위에엷은색채를조화시킨격조높은담채미를보며주며, 부드러우면서도힘있는서예적필치와세련된묵법으로생략과함축을구사한여백미가뛰어나다. 서동균의후기산수화는안개속에높이솟은원경의산봉우리, 중경의수목과가옥, 근경의토파와수면등을기본구성으로하여주로종축의화면형식으로그려진다. 화보풍의관념적인구도지만일부경물은사생에기반하고있어자연스러운풍경의분위기또한보여준다. < 그림 19>< 그림 20> 의계류와언덕, 소나무등은한국의현실자연에서느끼는친근한사실감을전해주고있어화보풍과사생풍이복합된절충적화면을이루고있다. 가옥이나인물이화보풍의중국식인경우도있고 < 그림 19>< 그림 20>, 한국적인현실시각의사생풍인경우도있다 (< 그림 22>< 그림 23>). 점경인물은 < 그림 18>< 그림 20> 29) 서동균은만년에호竹農을竹儂으로바꾸었고, 改號하였다는사실을 1969 년 67 세때의작품에서 我本平生戱筆墨作農晩年因筆墨飜爲儂 이라고밝혔다 ( 죽농서동균서화집 도판 3). 그러나정확히언제부터였는지는그간밝혀지지않았다. 필자는서동균의紀年作을조사하여살펴본바 1966 년 64 세때부터竹儂으로서명한것을확인하였다. 1966 년작인 < 그림 19> 에서 六四翁竹儂 이라고하였고, 1965 년작에서 六十三叟竹農試毫 라고하여 農 을사용하고있기때문이다 ( 죽농서동균서화집 도판 305). 당호는다양하여眉南精舍, 看山齋, 大鳳齋, 看山讀畵齋, 白石蒼苔室, 壽石山房등이작품에보인다. 대구경북연구제 14 권제 1 호

죽농 ( 竹農 ) 서동균 ( 徐東均, 1903-1978) 산수화연구 25 < 그림 22> 에서보이듯현실적인물인지, 화보속의은자 ( 隱者 ) 인지명확하지않기도하다. 서동균의후기산수화는이러한복합과절충을통해관념과현실이조화된고전풍의산수미를이루었다. 초기의근대기전통산수화학습, 중기의사생적현실미추구와필묵표현탐구등의시기가있었기에이러한복합과절충이가능했을것이다. 산뜻하고세련된담채가주는색채의아름다움은서동균후기산수화의한특징이다. 서동균은청색, 황색, 홍색등몇안되는색채를먹을보조하는미묘한담채의방식으로사용하여수묵의느낌을벗어나지않으면서산뜻하고정감있는화면을이루었다. 먹색과어울린은은한담채는수묵만으로는나타내기어려운자연미에대한공감을친근하게보여준다. 서동균의후기산수화는극소수의만년작이외에는대부분수묵담채이다. 수묵담채는사의화풍산수화에서오래전부터정착된기법이다. < 그림 18> 서동균, < 취우 >, 1968, 지본담채, 127 34cm 그러나허섭의묵산수로부터 < 그림 19> 서동균, < 산수 >, 1968, 지본담채, 127 35cm 산수화를시작했고, 먹이상징 < 그림 20> 서동균, < 산수 >, 지본담채, 127 34cm < 그림 21> 서동균, < 산수 >, 지본담채, 127 34cm 하는문한 ( 文翰 ) 의문화대한존중과애호의심상이뚜렷한대구의문화적분위기, 서예와사군자화의수묵전통이강한대구서화계에서서동균이담채를도입하여전통회화에친근성을부여한것은의미가크다. 서동균의필치는두툼하지만적확하며, 부드럽지만힘이있다. 굵고투박한서동균의필선은묘사의핵심을벗어나는법이없다. 서동균의산수화는서예가로서사군자화가로서의숙련된붓사용에서나온필선미의세계이기도하다. 화제또한적절한내용과서법으로화면의운치와격조를높여준다. < 그림 18>-< 그림 21> 은상단과하단모두여백이풍성하며, 원산의운무 ( 雲霧 ) 공간을비롯하여경물의사이사이에도미묘한함축과대담한생략의여백이있어그려진부분과비워진부분이모두필요불가결한회화적공간으로서의존재감을획득하고있어조형적밀도가풍부하다. 1976년 74세작인 < 산정방우 ( 山亭訪友 )>< 그림 22> 는다양한색채와농담의담채로모필을자유자재로사용한부드럽고힘있는필치를보여준다. 한국식기와집과둥근창이있는화보풍의가옥이혼재하 Journal of Daegu Gyeongbuk Studies

26 이인숙 고, 완만한산봉우리들과나지막한둔덕, 소나무와잡목등은실경을회화화한듯한사생풍의친근감과현실감을화면에주고있다. 바람에나부끼는나뭇가지와잎들이풍부한표정으로그려져있다. 30) 1950년대초실경산수를그렸던시기가있었기에이러한사생풍을자연스럽게복합할수있었을것이다. 지팡이를짚고다리를건너는인물은제목을보면친구를찾아가는화보속의은일고사 ( 隱逸高士 ) 일것이지만, 한편산사로돌아가는노승으로보이기도한다. 서동균의산수화속화보풍가옥과점경인물은세속을초월한세계를표현하려는회화적장치로서 운치있고탈속적인고전스타일 의이상적이미지로읽힌다 ( 고연희, 2007: 284). 서동균은관념적, 정형적산수화양식속에현실시각의사생요소를자연스럽게조화시켰다. 서동균후기산수화가보여주는고전풍산수미는이러한절충적복합이주는공감과설득력이라고생각한다. < 그림 22> 서동균, < 산정방우 ( 山亭訪友 >, 1976, 지본담채, 45 127cm, 개인 자연으로회귀하고자연과합일하고자하는고상한정신을시각화한장르인산수화는동아시아인의자연관과인생관을높은차원으로승화시킨예술이다. 오랜역사시기를거치며다양한이념적, 양식적변주속에서확고해진산수화의위상은서세동점의근대기에 동양화 로상대화되었고, 1920년대중반부터는화보풍의양식에실제경치를사생하는절충적시도가나타나게된다. 근대기에산수화는 종래의우주적조화물인탈속적군자풍의산수경물 로부터 일상적이며생활적인현실경을창작주체의시각적사실성에기초한원근법과입체법에의해나타낸수묵풍경화인사생적산수화 로전환을시작하였다 ( 홍선표, 2009: 14). 반면이러한새로운흐름과상반되는군자 ( 君子 ) 가지향하는탈속적이상경으로서의자연이라는동아시아산수화의고전적이념과모티프는호남지역에서일관되게지속되었다. 20세기한국미술사의시각에서보면서동균산수화의후기화풍은호남화단의남종산수와맥락을공유한다. 소치 ( 小癡 ) 허련 (1809-1892) 로부터시작되는호남화맥은 1938년광주에서연진회 ( 鍊眞會 ) 를조직한의재 ( 毅齋 ) 허백련 (1893-1977) 과할아버지허련, 아버지허형 (1862-1938) 의화업을이어 1930년부터줄곧목포에서작품생 30) < 그림 22> 의화제는 山亭訪友丙辰除夜燭下寫于白石蒼苔室爲金兄容昊大仁雅囑竹儂時年七十又四試眼 이다. 대구경북연구제 14 권제 1 호

죽농 ( 竹農 ) 서동균 ( 徐東均, 1903-1978) 산수화연구 27 활만하였던남농 ( 南農 ) 허건 (1908-1987) 을양대거장으로한다. 호남전통화단의뚜렷한역사적전통과지역적화세 ( 畵勢 ) 로인해남종산수는현대기에도일정한인정을받을수있었다. 서동균은어려서조부에게한문과서예를배웠고, 이후에도서당식교육방식으로한학을배우다 1917년 15세가되어서야해성보통학교에편입하여약 2년간신식교육을받았다. 그의친구들인이상화, 백기만, 서동진등이신문학으로, 수채화와유화등서양미술로나아간데비해그가 20대부터줄곧서화가의삶을고수한것은어릴때조부에게한문과서예를배웠고서병오, 허섭등의곁에서서화시대의정서를직접경험하였기때문일것이다. 이런체험으로인해서동균은전통과고전을존중하고, 현실미대신시대를초월하는보편성으로서의고전풍산수화로귀결하게되었다고생각한다. 서동균의 70대작품중에는담채를구사한일반적인후기작들과차별되는간결한필치의수묵산수가약간있다. 서예에서말하는인서구로 ( 人書俱老 ) 의경지를보여주는특별한작품들로서이시기에는담채의후기화풍도병행되고있으므로시기를구분하기보다후기의일부예외적인작품으로언급하고자한다. 73세작인 < 그림 23>, 74세작인 < 그림 24> 가 < 그림 23> 서동균, < 산수 >, 1975, 지본수묵, 그러한예이다. 31) 이두작품의모티프는 51세때의 < 그림 127 34cm 10>< 그림 11> 과같다. 20여년전창작열이가장왕성했던 < 그림 24> 서동균, < 취우 >, 1976, 지본수묵, 크기미상시기에그렸던소재를 70대의무르익은필력으로자신의기억을스케치하듯그린것같다. 특히 50대, 60대, 70대의기년작이모두있는 5점의 취우 는그의예술사고와표현양식이전개되는과정을살펴볼수있는데, 서동균에게각별한소재였던것같다. 서동균의 70대수묵화는필세의강약과억양이노필 ( 老筆 ) 의무심함속에자연스럽게나타나는스스럼없는필묵의세계를보여준다. 모산 ( 慕山 ) 심재완 (1918~2011) 은 죽농 ( 竹儂 ) 시기의작품을 의식적인구도나기교의범주를넘어붓가는대로맡겨도제자리제격 ( 格 ) 에들어맞는자연스럽고도신묘한예술성을보이는경지의시대 라고하였는데 70대의수묵화야말로이러한표현에걸맞는서동균만년의필묵 세계를보여준다 ( 심재완, 1986: 235). 31) < 그림 23> 의화제는 隨手亂抹安望合則乙卯夏日無如女史淸囑竹翁, < 그림 24> 의화제는 驟雨寫爲根燮兒囑丙辰立冬後日竹儂 이다. Journal of Daegu Gyeongbuk Studies

28 이인숙 III. 현대기대구산수화 현대기대구전통화단산수화는서동균과그의제자인청농 ( 靑儂 ) 김익풍 ( 金益豐 ), 긍농 ( 肯農 ) 임기순 ( 任璣淳, 1912-1994), 해정 ( 海亭 ) 홍순록 ( 洪淳鹿, 1916-1983) 등에의해전개되었다. 서동균의산수화를가장잘계승한인물은김익풍으로여겨진다. 서동균은 1974년자신의작가인생 60년을회고하면서김익풍은처음부터자신이가르쳤는데당시이미사망하였다고하였다. 32) 김익풍은대구경북지역에서요절한천재작가로알려져있으나생몰년을비롯한생애관련자료는찾기어렵다. 1930-40년대에서동균에게배워 1950-60년대에활동하였을것으로추측된다. 그의작품은 근대교남서화전 에실린 < 산수10폭병풍 > 을비롯해산수병풍여러틀이보여산수화를가장잘하였던것같다. 아울러서예와사군자화, < 고사인물10폭병풍 > 등도전하고있어전문서화가로서의수업을서동균에게착실히받아작화의범주가넓었던것같다. 김익풍의산수화는수묵을기조로하면서담채를약간가미하였고관념적인구도에부분적으로실경적요소를절충하여서동균의화풍을따르고있음을알수있다. < 그림 25> 는 6폭으로함께전하는병풍체산수중한폭으로구도와준법은화보풍이지만근경의나룻배와사공, 중경의절벽위소나무, 원경의초가등에서는풍경화적인시각을볼수있다. 홍순록은동경센슈대학 ( 專修大學 ) 에서수학한교직자출신으로서양화개인전을열기도했으나서예와수묵화로방향을바꾸었고서화연구실을운영하였다. 33) 홍순록은서예를비롯하여사군자, 화훼, 기명절지등다양한수묵화를그리는가운데 1950 년대부터 1980 년대까지지속적으로산수화를그렸다. 초기작은서동균의 < 그림 15> 와유사한붓질이많은섬세한화풍이었으나후기에는수분이많은부드럽고풍성한발묵의과감한필치를구사하였다. < 그림 26> 은홍순록의후기작으로경물을큼직큼직한붓질로대범하고단순하게표현하였다. 김익풍, 홍순록, 임기순등은 1930-50년대에서동균에게배운초기제자들로이시기에서동균이산수화를많이가르쳤음을짐작해볼수있다. 34) 이들은수묵화의분위기를벗어나지않는범주내에서담채를약간씩사용하고, 관념적인이상경의구도속에사생적경물을절충하고있어서동균의영향을받아들인가운데각자의필묵법과필치에따른나름의산수화풍을보여준다. 서동균과비슷한연배인희재 ( 羲齋 ) 황기식 ( 黃基式, 1905-1971) 은경산자인출신으로산수, 기명절지, 사군자, 화훼등여러분야의그림을그렸고개성적인서풍의글씨도잘썼다. 동생효재 ( 曉齋 ) 황기완 ( 黃基完 ) 도그림을그렸던형제서화가로 황부자 로불렸던대지주집안이다. 황기식은 1930년대부터서화활동을하여허섭의산수화에화제를써서합작한작품도남아있다. 1963년대구경북서화가들의모임인해동서화협회회장을지냈고, 1969년 65살때공화회관에서개인전을여는등평생서화에심취하였다. 황기식의산수화는서동균과달리지필묵을사용한풍경화의성격이강하여실경스케치에의한작품이 32) 서동균은김익풍은처음부터자신이가르쳤고, 서병오생존시부터杜雲李命龍, 斗人李源一등을지도했는데육이오때월북하였다고하였다 ( 매일신문 1974.8.16, 書畫六十年竹儂徐東均回顧錄 6). 33) 홍순록의업적을기려 1986 년대구경북서예가협회주최로대구시민회관에서 해정홍순록선생유작전 이열렸고, 2006 년 향토출신작고작가회상 - 김수명, 손일봉, 홍순록전 이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열렸다. 34) 서동균은 젊었던시절에산수, 기명절지, 영모절지, 사군자, 서예등을했으나후에사군자와서예에집중하였다. 고하였다 ( 대구일보 1963.7.10, 가장아끼고싶은그작품 ). 대구경북연구제 14 권제 1 호

죽농 ( 竹農 ) 서동균 ( 徐東均, 1903-1978) 산수화연구 29 여럿보인다. < 그림 27> 은금강산도 2폭으로구성한가리개중의한폭이다. 임기순은대죽을많이그린사군자화가로화분에담긴매난국죽을주요모티프로하는기명절지화도그렸고개성적인초서도잘썼다. 35) 1950년대에서동균에게배웠던임기순은처음에는산수화를많이그렸던듯다수의산수화가전한다. < 그림 28> 은횡폭의수묵담채로폭포가있는산속의물가풍경을사생에기반하여회화화하였다. 36) 1970-80년대대구에는풍경화풍의수묵산수화를그린작가들이여럿있었다. 청도출신인소산 ( 小山 ) 박대성 (1945-) 은 20대초인 1960년대중반서동균에게배우기도했고, 국전에연이어입선하며대학에도출강하는등대구에서활동하다, 37) 1975년매일신문부설화랑개관기념전을끝으로서울로올라갔다. 38) < 그림 25> 김익풍, < 산수 > 6폭중, 견본담채, 136 34cm, 개인또동경우에노 ( 上野 ) 미술학교를 < 그림 26> 홍순록, < 산수 >, 지본담채, 139 52cm, 개인졸업하였으나한의사로활동하다 < 그림 27> 황기식, < 금강산 > 2폭중, 지본담채, 110 57.5cm, 개인 < 그림 28> 임기순, < 산수 >, 지본담채, 32 95.5cm, 개인만년에다시붓을든벽성 ( 碧星 ) 국명웅 (1907-1987) 도북화풍산수화를그려 1980년세종문화회관에서개인전을갖기도하였다. 허섭의묵산수로부터시작된근대기대구산수화는서동균에의해수묵담채화풍으로변모되어 1980년대까지전개되었으나, 39) 홍순록이후찾아보기어렵게되었다. 40) 서병오로부터시작된근대기사군자화가현재 5세대, 6세대작가들에게까지직접사승으로이어지고있는것과는다른현상이다. 전통회화에 35) 계명문화대학교수를지낸미술평론가權沅純 (1940-) 은 1956년자신이고등학교 1학년때서동균에게서화를배우러가니임기순이배우고있었고, 얼마후박근술이배우러왔다고하였다 (2009년 10월 21일구술 ). 36) 화제는 飛流直下三千尺疑是銀河落九天肯農 으로이백의시 < 望廬山瀑布 > 중의구절이다. 37) 서동균의아들로계명대학교서예과교수를지낸野丁徐根燮 (1946-) 은 1966년서울의국전출품장소에서박대성과만나알게되었는데이듬해대구로찾아왔고서동균에서배웠다고하였다 (2014년 12월 13일구술 ). 38) 동아일보 1975.4.3. 대구매일화랑서소산박대성씨동양화귀국전 39) 1970년대이후로는영남대, 계명대, 대구대, 대구가톨릭대, 경북대등의미술대학에동양화과, 한국화과가설치되어교과과정의일부로산수화를가르치기도했다. 40) 산수화로알려진홍순록의제자는없는것으로여겨지고아들묵농 ( 墨儂 ) 홍종표 ( 洪宗杓 ) 의묵죽화등이전하고있으나자세한내용은잘알수없다. Journal of Daegu Gyeongbuk Studies

30 이인숙 대한일반의호응도와수요의측면에서산수화가사군자화보다우위에있는한국근현대미술사의상황에서볼때대구는산수화보다사군자화, 문인화가더선호된특이한현상을보여준다. 20세기대구전통회화의전개에서근대와현대를연결한서동균이사군자화와산수화를모두다잘하였던사실을고려해보면더욱그렇다. IV. 맺음말 근현대기대구는서화애호계층이폭넓게존재하였고전통화단의역량이매우높았다. 산수화는대구전통화단에서근대기에서현대기로이어지며지역적특징을가지고전개되었으나그내용은잘알려지지못했다. 이연구는 1930 년대부터 1970 년대까지지속적으로산수화를그렸으나사군자화가로서의위상에가려주목되지못했던서동균의산수화가로서의위치를정립하고그의산수화풍의형성과정을살펴보고자한것이다. 근대기대구산수화는허섭으로부터본격적으로시작되었다. 허섭은한학과시문서화애호계층이많았던지역의문화적분위기와서예와사군자화등필묵자체의표현성을중시하는대구서화계의특성과상통하는묵산수화풍을이루었다. 허섭이전에정안복, 서병건등산수화의뿌리가지역에있었고, 서병오도산수화를그렸으며곽석규, 지창한, 김우범등의수묵산수화가지역서화인들에게알려져있었다. 41) 그러나허섭이전대구에는본격적인산수화가가없었다. 허섭을고모부로둔서동균은근대기에허섭의묵산수로부터출발하여수묵과채색, 관념경과현실경을복합한독자적인화풍을이루었고, 대구화단에서산수화가근대기에서현대기로이어져전개되는데가장큰역할을하였다. 서동균의산수화는 1930년대 -1940년대에허섭의묵산수를배우고이를심화한초기, 1950년경-1965년경실경의현실미를추구하고, 표현기법을탐색하는등자신의독자적화풍을모색한중기, 1966년경부터작고하기까지수묵과담채를조화시키고관념경에실경을절충하여고전풍산수미를이룬후기로나눌수있다. 서동균은오랜역사성을지닌정형산수의공인된회화적장치를활용하면서사실감있는경물을복합하여보편적이상경의산수미를획득하였다. 현대기대구산수화는서동균과그의제자인김익풍, 임기순, 홍순록등에의해 1980년대까지그려졌다. 이들은수묵과색채, 관념경과현실경을절충한서동균의화풍을따르면서각자자신의고유한필묵적개성을나타낸산수화를보여주었다. 근현대기대구화단산수화는현실경의사생에기반한수묵풍경화의성격을갖는중앙화단동양화나사의화풍이면서도감각적인호남화단남종화와달리산수경물을통해나타나는필법과묵법자체의서예적, 추상적아름다움을중시하는필묵성을특징으로한다. 41) 이에대해서는이인숙, 20 세기 대구문인화파 ( 大邱文人畵派 ) 의형성과변천연구, 469-473 면참조. 대구경북연구제 14 권제 1 호

죽농 ( 竹農 ) 서동균 ( 徐東均, 1903-1978) 산수화연구 31 참고문헌 고연희, 2007, 조선시대산수화, 아름다운필묵의정신사, 돌베개. 김현미, 2012, 죽농서동균 (1920-1978) 의서화연구, 한국학논집 49, 계명대학교한국학연구원. 대보사, 2001, 달성서씨현감공파보. 서동균, 1986, 죽농서동균서화집상ㆍ하, 서울 : 삼성출판사. 석재시서화집간행위원회, 1998, 석재시서화집상ㆍ하, 서울 : 이화문화출판사. 심재완, 1986, 죽농그의인간과예술, 죽농서동균서화집, 삼성출판사. 영남대학교박물관, 1999, 오정ㆍ소정컬렉션. 오미일, 2002, 한국근대자본가연구, 경기 : 한울아카데미. 유홍준, 1989, 개화기ㆍ구한말서화계의보수성과근대성, 구한말의그림, 서울 : 학고재. 윤범모, 1996, 향토회와대구화단, 한국근대미술사학 4, 청년사. 이구열, 1976, 근대한국화의흐름, 경기 : 미진사. 이구열, 1992, 근대한국미술사의연구, 경기 : 미진사. 이성미, 1997, 한국인의정서, 청전이상범의회화, 청전이상범, 호암미술관. 이인숙, 2010, 20세기 대구문인화파 ( 大邱文人畵派 ) 의형성과변천연구, 영남학 18, 경북대학교영남문화연구원. 이인숙, 2010, 석재서병오 (1862~1936) 와 교남시서화연구회 의재인식, 민족문화논총 45, 영남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이인숙, 2013, 20세기대구의문인화가죽농서동균 (1903~1978) 기명절지화연구, 서예학연구 22, 한국서예학회. 정태수, 2007, 죽농서동균의묵죽화연구, 서예학연구 10, 한국서예학회. 최금진, 2004, 죽농서동균서화연구, 대전대서예학과석사학위논문. 홍선표, 2009, 한국근대미술사, 시공아트. 매일신문, 1974.8.10.-9.3. 서화육십년죽농서동균회고록 1-20. 논문접수일 :2015. 02. 23, 심사완료일 :2015. 03. 31, 최종원고 :2015. 04. 10 Journal of Daegu Gyeongbuk Stu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