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귀농목회이야기 @ 나의귀농목회이야기 정규성 ( 목사, 충주늘푸른교회 ) 저는고교시절작은소망을가지고있었습니다. 농촌에서태어나서농부인아버지밑에서소년시절을보내며 나도커서아버지처럼땅을일구며땀흘려농사짓는농부가되겠다 고생각했습니다. 그러나막상고등하교에진학할때는농고를가지못하고인문계고등학교를가게되었습니다농고를나와서농사를짓기보다는농대를나와서과학영농을하는것이좋지않겠느냐는학교선생님과주변분들의충고가있었기때문입니다. 고등학교를졸업하고농대를지원했지만떨어졌습니다. 낙방후나는 대학진학을포기하고본격적으로농사일에매진하여 2년동안열심히농부의길을갔습니다, 그때만해도새마을운동이한창이어서농촌을잘살게할수있다는희망을가졌었습니다.4 -H활동도열심히하고마을문고를만들어여기저기서책도후원받아작은도서관을열기도하였습니다농번기에는탁아소를마련하여부족한일손을덜어주는활동도하고여러가지일을의욕적으로벌려보았습니다그러나농사를짓는마음한구석에는대학진학에대한미련이계속남아있었습니다. 마침내 2년동안의농촌생활을정리하고장로회신학대 나의귀농목회이야기정규성 83
학에입학을했습니다신학공부를하면서도항상마음은농촌에머물러 있었고, 언젠가는농촌에내려가겠다는꿈을간직하고있었습니다. 신학교졸업후목사안수를받고목회의길에접어들었습니다. 처음 에는경기도안산상록수역에서반월공단으로가는중간지점의, 아랫 감자골이라고하는공단주변에서개척교회를시작했습니다교회이름도상록수의뜻그대로늘푸른교회로지었고, 공장의노동자들을위한민중교회였습니다. 그런데주로프로그램중심으로젊은노동자들을만나고목회를하다보니평일저녁에는사람들이북적거리고뭔가되는듯한데막상주일예배때는저희식구들밖에없었습니다교회라기보다는노동자들의모임방수준을넘지못하고, 내모습역시목사라기보다는어떤모임의실무간사정도밖에는아니라는생각이들면서목회에대한회의가생겼습니다. 목회전반에대해점검하는시간을가졌습니다. 어떤목회를할것인가?, 내가하고싶은목회는무엇일까?, 생활의방편으로목회를하고있는것은아닐까?, 나의첫사랑, 초심은무엇인가?" 많은생각들이오갔습니다. 1주일쯤기도원을다녀오며응답받은것은 첫사랑을회복하라 였습니다 나의첫사랑은무엇이었을까?" 이질문을가슴에안은채일단모든것을중단하고사모와 2살난딸 ( 예지 ) 을봉고차에태우고전국을떠돌아다니기시작했습니다무조건나의초심을찾아서, 첫사랑이무엇인지를알기위해서선배목사님들의목회현장과공동체를운영하고있는단체와교회들을방문하였습니다. 농촌목회를하는선배목사님들을만나며칠씩함께농사일을하면서흙에대한사랑이회복되었습니다. 내가있어야할자리가바로농촌임을깨달으며처음신학을시작하면서가졌던마음들이나를뜨겁게달구었습니다흙에대한사랑이나의첫사랑인것을알게되었습니다.6개월정도떠돌이생활을한후목회에대한전반적인전환에들어갔습니다. 결국보따리싸서농촌으로내려가기로결심하였습니다. 안산에있는교회와 84 놓흔과묵획꽤 57 호
전셋집을정리하여내가태어나고자랐던시골로내려왔습니다 농촌에내려와처음부터교회를시작하지는않았습니다. 먼저농촌생활 에적응하는것과시골사람들과함께살아가는것이무엇인지를알아야 하기에농사일부터시작하고사람들과함께어울려서할수있는일이 무엇인지를찾으며지역활동을시작했습니다. 예배는집에서하우스를 짓고주일예배만드렸습니다, 1 년쯤지나자주변에몇분이예배에참여하셨고, 명색이교회간판을 달았는데예배당은있어야되지않겠느냐?" 는말씀에 그럼건축을합시 다 " 하고의기투합하여지금의예배당을지었습니다. 동네사람들과함께 집들이입당예배를드 렸습니다. 처음모습은교회를 중심으로하는신앙공 동체라기보다는동네 사람들과함께하는지 역공동체의성격이었 습니다. 이지역공동 체가신앙공동체로발 전하기를바라는마음 늘푸른교회강단 에서지역을열심히섬기며과수원으로논두렁으로돌아다니며농민들과 함께하는시간을보냈습니다, 자연스럽게동네일을많이하게되었습니다. 동네에어린이들과청소년 들에게필요한공부방이있어야하겠기에마을회관 2 층에 청소년공부방 을개설하고, 교회에는 작은도서관 을만들었습니다. 동네일을하다보니 이장을맡아달라고하기에못할것이없겠다싶어마을이장도맡았습니 다또하나, 지역에나와비슷하게농사짓는목사님들이몇분계시기에 나의귀농목회이야기정규성 85
함께모임을자주하였는데, 이모임이발전하여자연스럽게영농조합을만들게되었습니다. 도시교회와농촌교회가상생할수있는방안을모색하면서생산과판매도함께하게되고, 여러가지프로그램을개발하여교인들도함께모여연합행사를매년하게되었습니다작은농촌교회들이목회자를중심으로연합하고협력하여야외예배를드라고추수감사절한마당잔치를열어농사일에지친봄과마음을달래고추수려서어우러지는모습이 하나님이보시기에심히좋았다 라는맡씀과딱맞아떨어지는것같아기쁘고감사했습니다, 제가농촌에내려와빠르게적응하고농사를본격적으로지을수있었던것은내가태어나고자랐던시골이고, 아직도부모님께서농사를짓고계시며농사지을수있는땅이있었기때문입니다그래서그리힘들지않게농사일을시작할수있었습니다. 모든농민들의고민은 올해는무슨농사를지으면돈을벌수있을까.?" 일것입니다저도역시같은고민을할수밖에없었습니다다시시작하 는농사일이서투르고영농기술이부족하기에농협에서실시하는영농교 육을따라다니며지역에맞는작목을선정하려고노력하였습니다, 이미지역에서는사과를주작목으로육성하여 충주사과 를명품화하 기위한지원들이늘어갔고, 더불어복숭아도점점늘어가는추세였기에 저는과수원으로시작했습니다. 농협안성교육원에서실시하는 1 년과정 의복숭아재배전문화과정의교육을통하여복숭아재배의전반적인 지식을습득하고, 충북괴산의자연농업학교에서실시하는기본연찬과 복숭아전문연찬을통하여자연농업을접하게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농사지으시는밭에복숭아를심으면서그동안알고지내던 지인들을초청하여복숭아묘목을한그루씩분양하여이름표를붙여주고 3 년후에복숭아를주기로익 h 속을했는데이것이농사체험의시작이되었 습니다. 복숭아괴수원은 3년동안때주를심어점차늘려나갔으며, 사과 는 1,(0) 여 평의밭에 300 주를심어사과와복숭아과수원의면모를갖추 86 놓촌과묵획쩨 57 호
었습니다농촌에서농사를짓는것보다중요한것이생산한농산물을잘파는것입니다대부분의경우농협을통한계통출하를하는데이경우는중간유통마진이너무크고, 한꺼번에농 산물이 몰리는현상으로 복숭아꽃이만발한모습 가격이폭락하게됨으로써정작농민들이생산한농산물이헐값이되는경우가허다합니다농민들이힘들게생산한농산물이제 값을받아농민들에게생산비라도보전되기위해서는유통마진을줄이는 농산물의직거래운동이 더욱활발히이루어져야 탐스럽게익은사과 할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농사를 시작하는이른봄에적과 ( 網果 ) 를하고, 복숭아봉지를씌우고나면가을에수확하는복숭아와사과의값을결정하여공지합니 다. 대체로복숭아봉지를 씌우고나면그해수확힐 사과체험활동중인어린이들 나의귀농목회이야기정규성 87
복숭아의양을알수있습니다. 투입된생산비와내노동력을계산하면 대략한박스의값이나옵니다. 소비자들에게올해복숭아한박스에 얼마가된다고공지하고수확한후판매하는것입니다사과의경우도 역시봄에사과한박스의가격을결정하여공지하고판매합니다. 특히 사과는과수원체험을통해전량현장에서판매합니다. 과수원사과따기체험은어린이집, 유치원, 교회, 가족등단체로과수원에와서점심으로도시락을먹기도하고, 다양한체혐을겸하게되어자연속에서환경교육과올바른먹거리교육도병행하게됩니다직거래운동이나체험활동은소비자와생산자간에신뢰와믿음이전제되어야합니 다안전한먹거리를생산해야 "Ot 는것은기본이고, 농산물가격도시세에 때라등락이심하면안되고일정한수준을유지하는것이바람직합니다. 논농사의경우는대단위단지로묶어농사짓는것이편리합니다. 얼마 안되는논농사를위해서수천만원씩하는트랙터나콤바인를개인이구입하기는어렵습니다. 그래서우리동네는공동으로논농사를짓습니다못자리를만들때부터함께하여모내기, 벼베기까지함께합니다. 수확한벼는농협을통해공동으로수매합니다작년부터새롭게시작한농사가있는데자연란양계입니다. 인근목회자들을중심으로조직된영농조합에양계사업단을꾸려함께교육을받고시작하였습니다. 작년 2월에자연양계의양계장을짓고 3월에병아리를입식시켜 9월부터유정란이나오기시작했습니다. 양계장을짓는일부터 사료를만드는일, 계란을수거하여택배로보내는일, 소비자들을만나고 판로를개척하는모든일을철저하게목회자들이합니다. 농사짓는목사 요, 농촌을지키는목사이니, 참좋습니다. 이제까지저의지난날을이야기했다면이제부터는이야기를바꿔앞으 로의이야기를하려고합니다. 농촌에비전이있느냐? 물으신다면, 저는 확실하게대답합니다. 없습니다 라고그러면 농촌교회는미래가있느 냐?" 는물음에는어떤답을해야할까요? 88 놓촌과묵획꽤 57 호
경제적인측면으로만따져본다면농촌을포기하는것이맞겠지만우리의먹거리를포기하는것은우리의생명을포기하는것과같기때문에그럴수없습니다. 우리의식탁을남의나라에만의지하는것은우리의생명을남의나라에맡기는꼴이되는것입니다그러므로우리의농촌을지켜내는것은이땅에살아있는모든사람들이중요한과제로삼아야할일입니다농촌을지켜내 는 일은농민의 모마으 0 1..1,:] 켜이 L 1 2.? 닙 니다 또한농촌 교회를지켜내는것도농민과농촌목회자만의몫이아닐것입니다. 농촌과농촌교회 를지켜내는것은 도시사람들과도 지난해에시작한자연란양계 시교회의몫이되어야합니다. 서로지켜주고서로살려내는 상생의 몫 이되어야하는것이지요. 이땅을사는기독인들은하나님께서말씀하선 서로사랑하라 는지상명령을겸손하게받아들여야할것입니다. 도시교회는농촌교회를살리고농촌교회의농민들은안전한먹거리를생산하여국민들의식탁을지켜내야하는것입니다. 그나마다행스러운것은농촌을지켜내려는움직임이일어나고있다는점입니다. 농촌목회자들역시농민과농촌을지키려고계속몸부림을치고있습니다. 아직늦지않았습니다. 농촌이이대로방치된다면희망이없지만, 서로사랑하며, 우리의식탁을지키려는실천이이루어진다면희망의불씨를살려낼수있을것입니다뽑 나의귀농목회이야기정규성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