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TRINITY 22 MAY 2016 Romans 5:1-5, John 16:12-15 오늘은많은목사님들사이에서는짧은휴가를선택하거나또는다른급한용무를가집니다. 여러분들은아마제가여기에있어서행운입니다! 오늘은삼위일체주일이며, 우리가오랜신학적용어들에휘말릴수있는날이고추상적인개념들을우리의삶에충분히이해시킬수는없었지만, 우리의믿음을격려하는날입니다. 그리고오늘은기독교신앙의측면중가장중요한날중의하루입니다. 우리는너무깊이들어가는것을좋아하지는않습니다. 이삼위일체주일은상당한영향력을주고있습니다, 그렇지않나요? 예수님의부활출현후, 그리스도의승천, 오순절, 그리고오늘삼위일체주일입니다. 이이후우리는안정적으로진행하며긴성령강림절기간은교회력의끝까지우리를데리고갑니다. 오늘은아마어쩌다교회를방문하시는분들을어리둥절하게만들수도있는주일입니다. 우리는이세분의인격인복된삼위일체인하나님전에 cherubim 과 seraphim 이아래로떨어진다는찬양을불렀습니다. 언어들을다이해하기가힘든많은언어들이있습니다. 우리는세명의인격이삼위일체로하나가되는것에대해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은창조된것이아니라태어나셨다는것에관한것, 그러나저는초대교회신부들이씨름해온그개념을보여주기시작하는것을의도하는것은아닙니다
어디에서부터시작해야하나요? 우리가그세가지를하나로합하기전에, 잠시멈춰봅시다. 여러분은 하나님 이라는단어를들으시면무엇을생각하나요? 저는여러분들에게지금우리모두가같은방식으로대답하지않을것이라고말할수있습니다. 우리중에어떤분들은본능적으로 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 경우에따라어머니를포함하면넓어집니다, 물론그것이종종현대의발명으로, 성경적이지않다는등으로보여지기도합니다. 그리고지금우리는그것을논의할시간은아닙니다. 그러나 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 는우리중많은사람들의생각과마음에처음으로떠오르는것입니다. 다른이들은예수를우리가본능적으로향할믿음의중심으로강조할것입니다. 아직도다른이들은성령에의해서사로잡힌상상을찾을것입니다, 그것에서삶에에너지를주고이끌고갑니다. 분명히말해서, 이것은옳고그름의문제가아닙니다. 우리삶에서우리가그것들중에하나를다른것보다더볼때가있습니다. 그리고그렇게할수있는것이제가생각할때진정한축복이라고생각합니다. 우리들대부분은삼위일체를인정합니다. 그것은우리가세가지가하나로가는두뇌의마술묘기와같은것일겁니다. 우리는세가지를보는것에익숙하지않습니다. 우리는두개를하나로보는, 한쌍, 이진법의사고방식을가지고있습니다. 우리는계속그렇게합니다 : 검은색과흰색, 옳고그름, 왼쪽과오른쪽, 딱딱하고부드럽고, 짧고길고, 등등. 아주자주옳고그름의차원이지배합니다. 우리는두가지가있을때쉽게결정을해야되는것에부딪히게됩니다, 우리는하나를다른하나보다더선호해야된다는생각을합니다. 제가생각할때우리는두가지를하나님과관련해서
더쉽게다룹니다. 아버지와아들을함께, 하나로, 그것은이해하기에그렇게어렵지않습니다. 결국예수님께서아버지와함께하나가된다고이야기한것과우리에게하나의수수께끼가되는것은예수님께서하나님의성육신, 말씀이육신이되신것으로보는것입니다. 우리는또한하나님이아버지와성령으로함께하는것을다루어야합니다, 왜냐하면성령은역사하시는하나님같이보입니다. 그리고는예수님과성령입니다. 결국, 우리는지난두주동안예수님께서지지자이신성령을보내주시겠다는성령께서그에게권한을주시는약속에관해서들었습니다. 그래서그것은두가지가하나인것으로보기에는쉬워보입니다. 그러나우리가세가지를다룰수있을까요? 하나님께서세분이시라는것을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은그들자신을유일신교의전통의일부라고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의확고한믿음에기초한세계의많은신들가운데하나뿐인진실한하나님. 여러분이아시다시피우리에게하나이신하나님의개념은수세기가지난후인전세계의기독교로묘사된위치에서있는것이자연스럽습니다. 오직최근에우리주위에한분이신하나님을따르지않는다른종교들을인식합니다, 그리고우리는아직도종종우리의이웃인힌두교, 시크교도, 불교또는다른종교를향해서우월성을추정합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들의유일신교의신앙은그들을구분시키고분리시키는신앙입니다. 예수님시대에통치권은로마였습니다, 그능력있는제국은어떻게인간이살아야하는지를지시했습니다. 사람들은그들의집안에신들과그들의회당의다른신들을가졌습니다, 황제들이신이라고선언하는것은아무것도아닙니다. 유대인들에게오직유일신을선언하는것은쉽지만은않았습니다.
그리고예수님이나타나셨습니다, 그는하나님의아들이라고주장함으로비난을받습니다. 하나님의아들이라는이름은처음세개의복음서들에서, 그자신스스로이름을이야기하진않았습니다. 예수님의세례때하나님의음성이예수를하나님의아들로불렀습니다. 그리고심지어그자신을하나님의아들로이야기하는요한복음에서는그의자식의신분은그의제자들이또한경험하기를원하는것이었습니다. 성령에관하여서는히브리서성경에많은참조가있습니다. 그러나그것은사실하나님을하나가아닌사실세가지다른것으로이야기하는것입니다. 성삼위 라는말이성경에는한번도응급되지않았습니다. 마태복음서마지막부분에서, 이말씀이마지막에포함됩니다, 예수님의제자들에게가서사람들에게아버지와아들과성령의이름으로세례를줄것을이야기합니다. 그러나마태는아버지와아들과성령을하나로만들지않았습니다. 성삼위의교리는 4 세기까지는나타나지않았습니다물론사람들이아버지와, 아들과그리고성령에대해서이야기를훨씬전부터해왔음에도불구하고말입니다. 그렇게작용했던것이충돌이일어나고 325 세기콘스탄티누스황제에의해서니케아의회가소집되면서다른부분들을해결하는것을돕기위해서교회의다른부분들사이에서일어났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그의다스림동안어떠한분열이나불일치를원하지않았습니다. 의회는첫번째공인된신조어떻게하나님이세분이하나가되는지를표현하는것을시도합니다. 회의가일어나야하는것과그들이언어를해결하려고하는것을상상하는것은힘이들었습니다. 이첫번째니케아신조는 381 년에개정되었습니다.
사도신경은 8 세기부터아마더빈번하게사용되었습니다. 어떻게아버지, 아들그리고성령이동일하게하나가된다는것을이해하기위한투쟁이사실오랫동안은일어나지않았습니다. 사실사람들은아마그들자신의경험으로부터발견한것을그냥받아들였을것입니다. 요즘많은사람은이런신조의진술에불편해합니다, 왜냐하면, 어떻게정말우리개인신앙의경험을표현할수있을까요? 우선먼저그들은예수님의생애와사역에대해서아무것도말하지않습니다. 그들은바로예수님의출생에서부터그의 본디오빌라도에게고난을받으사 로넘어갑니다. 우리가그사이에무엇을적을것인지를생각하는것은정말흥미있는연습입니다. 그러나우리는아마삼위일체에대해서생각하거나또는생각하지않을것입니다, 만약여러분들이기독교에관해서좋아한다면그것은, 헤드라인 에있습니다. 제가 Charles Sturt 대학에다니는무슬림학생과함께몇주전에이야기를하다가, 삼위일체는그들이우리로부터설명듣기를원하는것이었습니다. 세사람이하나? 어떻게? 무슬림은모하메드의신성을주장하지는않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또한인간이신예수님은아주큰도전입니다. 심지어믿음의문제로서받아들이면서, 우리에겐아직도 세사람들 이남아있습니다. 사람 이라는단어는우리가의미하는우리가그단어를주로사용할때각각개인을의미하진않습니다. 그것은사실 모습 을의미합니다. 우리는때때로사람들이다른시간에다른모습을
가진다고이야기합니다. 여러분들은세익스피어같은영화나연극에서배우가 마스크를그들의얼굴앞에가리고다른성격을나타내는것을본적이있습니까? 그것은이런것과같습니다. 우리가묘사하는용어를사용하면우리는아마더잘 이해할수있을것입니다 : 창조자, 구원자, 부양자. 하나님은명사가아니라동사라고 종종이야기있습니다. 만약여러분이그것을제대로파악한다면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그것에대해생각해보기를원합니다, 요점은삼위일체를이해시키기위해서얼마나많은고통을주느냐가아닙니다. 반면에그것은우리에게무엇을의미하느냐에관한것입니다. 그리고, 제가생각할때, 여기이장소가삼위일체가역사하는곳입니다! 우리가예배를드릴때우리는자주 하나님께서우리를여기에부르셨다. 라고이야기합니다. 그것은우리의인성에관한것을지적합니다. 우리모두는어떤면에서는세가지가하나입니다. 우리모두는몸, 정신그리고영혼입니다. 제가생각할때우리는그안에서진리를느낍니다. 우리는감정적으로올라가거나내려갑니다, 우리삶의매일의문제들가운데두가지모순되는비유를사용합니다. 우리의몸들은놀라운창조물입니다그러나우리를지치게도만듭니다. 우리는우리신체의약점뿐만아니라강점도절실히의식하고있습니다. 그리고우리가아플때, 우리의신체는굉장한관심을요구합니다. 우리의마음은계속적으로활동합니다, 너무나많은정보를가집니다 ( 지금까지설교에서우리가무엇을했는지보세요 ), 결정들에대한스트레스를우리에게주고, 직장에서, 집에서, 심지어교회에서도
우리에게필요한모든것을기억해야합니다. 우리의생각들과우리의신체들은함께우리의관심을요구합니다. 그것이일어났을때, 우리는또한이것이인생을의미하는것만은아니다라는것을인식하게됩니다. 우리는더많은것에, 더깊이궁핍해합니다. 우리는어떤더신비로운것을갈망하고그것이우리를다르게보도록허용합니다, 우리매일의삶의일상과활동들보다더많은의미를찾기위한것입니다. 저는이굶주림에대해찬양으로적어서표현했습니다 우리마음의깊은곳에우리안에하나님형상의공간을채울것을갈망합니다, 그러나우리마음들의모든노력들은증명하지만몸짓은약합니다. 하나님형상의공간을인식함으로, 저는하나님이우리를부른것을믿습니다. 하나님은우리마음에더많은필요의굶주림을주셨습니다, 그리고그것이제가바라기는우리가예배를드림으로조금씩공급되는것을발견할수있습니다. 그러나하나님의형상의공간은또한사랑에대한우리의굶주림에관한것입니다, 관계를위한우리의아주기본적인필요입니다. 우리의관계들은우리를정박할수 있고, 확언할수있습니다. 그것들은또한우리에게공백들을인식하도록만듭니다. 우리의관계들은항상올라갔다내려갈수있습니다. 우리는또한그들사이에게혼자라고느낄수있습니다. 우리가혼자라고느낄때우리는상실감에빠집니다. 우리는우리가누구인지를그리고무엇인지를, 우리삶은무슨목적을가지는지를상기시켜주는표지를잃게됩니다. 그것은우리삶의어떤나이에서나단계에서도일어날수있습니다, 왜냐하면그것은진정인간적인것이기때문입니다. 아마도, 더넓게인정받을수있는것중의하나는연세가드신분들이그들의독립성을
잃어버리고, 더문제가되는것은돌봄을받던안정된장소에서정시에약을복용하고식사를하는것은그사람에게아직도어떤가치가있다는것을아는것입니다. 그러나우리가늦었던젊었던간에, 우리모두는우리의가식과변장을통해서보는우리를이해하는사랑에굶주려합니다. 그것은영적인필요이고그것이충족되지않을때육체적그리고정신적결과를가지게됩니다. 우리는여기에왜있나요? 제가생각할때우리는하나님께서우리를부르셔서여기에있습니다, 우리에게속삭이십니다, 다정하게그 / 그녀를찾도록우리를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우리가사랑의관계를발견하기를원하십니다그것은다른어떤것보다의미가있습니다왜냐하면그것은하나님형상의공간안에서만충족될수있습니다. 삼위일체안에서우리는항상상관관계에있는하나님이있습니다. 하나님은고정적인 하나 가아닙니다그러나계속적으로움직이는세가지가섞여있는것입니다, 우리의삶안에연결되어있습니다, 사랑의동적인에너지를통해서되살아나고그것이하나님의진정한본성입니다. 삼위일체는때때로창조주, 구원자그리고부양자의춤으로표현되었습니다, 새로움을만드시고, 우리가고정되어있기를원하지않으시고항상새로운것을발견하기위해서준비하시고계시고우리가배운것같이삼위일체는사랑의에너지입니다. 삼위일체는집행자는아닙니다, 그러나초청하시는하나님은우리를보시기위해서부르시는하나님이시며재창조를위해서역사하십니다. 때때로우리는눈이멀어볼수없거나우리의방식으로보기위해서너무고정되어있습니다, 그러나그것이하나님의활동을멈추게할수없습니다. 그렇게할수없습니다. 그리고또한우리가꼼짝하지
못한다고느낄때, 우리가어느방향으로돌아야할지모름을느낄때, 우리가우울해하고또는실패감으로염려할때, 이사랑이신관계의하나님은항상우리옆에서인내심으로기다리시고, 옳은순간이올때우리귀에속삭이시길준비하십니다, 우리의어깨를두드릴준비가되셨고그리고우리가돌아보도록하시고어떤것들을다른방식으로보도록깨닫습니다. 하나님은우리가함께하도록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공동체임으로우리를공동체로부르셨습니다 : 우리의아버지가되시고어머니가되시는하나님은, 삶의원천과지혜그이상이되십니다 ; 예수님은우리의인간성을나누고우리세상의고통을길을걸으시고, 어떻게사랑해야하는지, 어떻게용서해야하는지, 치료와정의평화를어떻게발견할수있는지우리에게보여주시고 ; 성령님은아직도역사하시고, 권한을주시고새롭게하시고 이하나님은진정하나님의존재에관계합니다. 그리고우리가보는그관계는독점적이거나내부적인것이아니라인간에게전달되는것입니다그래서우리자신의관계들의사랑과우리공동체의돌봄을창조할수있습니다. 그러나항상그것보다도역시더많은것이있습니다, 왜냐하면우리가지금나누고있는이세상은하나님의좋은창조물안에한부분을나누는것입니다. 이연약한지구와경외감을주는우주또한우리가사랑하고보호하며관계를하기위해서부르심을받았습니다. 우리는아마이러한책임을제대로하고있지는않는것같습니다, 그러나어떻게생명이그안에서갑자기계속되는지를봅니다, 가능한곳에서채용하고, 그리고심지어그것이죽었을때, 대부분더많은새로운생명이
됩니다! 그예로나무들이불이난후에다시자라기시작하는것은부활하는삶의 멋있는이미지를나타냅니다. 우리는이것에관해서낭만적으로해석하기위해서불리어지지않았습니다. 우리는우리자신의삶과세상의우리주위에현실이무엇인지보기위해서초청받았습니다. 그러나우리는하나님의믿음안에서이것을하도록초청을받았습니다그분의부르심은진정한하나님과의관계에있습니다. 그러면우리는우리의굶주림이충족되고우리의영혼이양육을받습니다. 그러면우리는진정한치유의의미를배우게됩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사랑이시고, 하나님은또한우리를만질수있을만큼까지닿는관계입니다그래서우리는계속우리자신을발견할수있습니다. 우리는아마신조의진술들을만들것입니다, 그리고우리는이제막그것을하려고합니다, 그러나이러한것들이세기를통해서세상으로우리를사람들과연결하려고그것은우리가우리자신을위해서, 자신의삶에서, 발견한하나님을절대압축할수없습니다. 그러나여러분은하나님을생각하시고, 여러분과의사랑과관계를생각하고, 여러분이누구이시던그리고여러분의삶이어떻게되어야한다고느끼시던그것은삼위일체의모든것에관한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