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라틴아메리카에서하위주체는말할수있는가? 이성훈 2008년발간된 라틴아메리카문화연구 (Journal of Latin American Cultural Studies) 17권 1호에논쟁적이고주목할만한두편의글이실렸다. 존베벌리 (John Beverley) 와마리오로베르토모랄레스 (Mario Roberto Morales) 사이에벌어진과테말라마야원주민들의정체성과재현을둘러싼뜨거운논쟁이그것이다. 이들사이에서벌어진격렬한논쟁과입장차이는로베르토모랄레스가존베벌리를지도교수로피츠버그대학에서박사학위를썼다는사적인인연외에도현재라틴아메리카연구의특정사안에대한쟁점을넘어서, 라틴아메리카연구가지향해야할목표가무엇인가를묻는, 보다본질적인물음으로이어진다는점에서흥미롭다. 미국내라틴아메리카문학및문화연구의대가로평가받는존베벌리와 1970년대과테말라의유명한좌파게릴라출신으로, 이후게릴라활동을접고작가, 저널리스트, 문학이론가로활발한활동을하고있는로베르토모랄레스의대립적 웹진트랜스라틴 http://translatin.snu.ac 서울대학교라틴아메리카연구소 (SNUILAS)
라틴아메리카에서하위주체는말할수있는가? 93 인입장을따라원주민정체성논란을살펴보자. 주지하다시피, 존베벌리는하위주체의경험과목소리를드러내는증언서사에주목하는하위주체연구그룹에속한다. 하위주체연구틀을통해침묵당한목소리를복원하는것이야말로라틴아메리카사회의민주화에기여할수있다는것이다. 하위주체와증언서사에대한그의관심은자연스럽게과테말라현실에대한관심으로이어지고, 자신의 존베벌리 이론적틀을통해과테말라현실을이해하고이른바 연대 를통해과테말라현실에개입하고자한다. 이러한과테말라에대한관심에비추어볼때, 그가전직게릴라였던로베르토모랄레스의박사논문지도교수라는점은매우자연스러워보인다. 이렇듯사적인관계와지적경향성을고려할때, 이들사이의감정적인논쟁과불화를이해하기는쉽지않다. 시작은이논쟁이실린 2008년이아니라, 훨씬전인 10여년전으로거슬러올라간다. 로베르토모랄레스에따르면, 1998년박사학위최종발표를앞둔한달쯤전으로이때부터그와존베벌리는입장을달리하게된다. 로베르토모랄레스는이과정에케이워런 (Kay Warren) 을비롯한과테말라원주민운동과관련된미국학자들, 원주민운동가와정치인그룹과관련되어있다고본다. 즉이들에대한자신의비판적인관점을과테말라좌파운동에대한배신으로해석하는특정그룹들의정치적인움직임이그배후에있다는것이다. 하위주체에주목하는존베벌리와달리로베르토모랄레스는기본적으로범 ( 凡 ) 마야민족주의에기반한 정체성정치 를미국
94 마리오로베르토모랄레스 다문화주의의기계적이전의결과물로간주한다. 다문화주의가갖는종족 (ethnic) 본질주의와근본주의는과테말라의상호문화성을민주화하는데에도, 더나아가과테말라의종족간혼종성이라는복합성을이해하는데에도기여하지못한다는것이다. 이런맥락에서그는상호문화적인 종족간협상 (negociacioń intere tnica) 을주장한다. 이러한그의입장은곧과테말라뿐 만아니라미국내일부진보진영의비판을야기했는데, 원주민이아닌라디노 (ladino) 를위한이론이며, 원주민의권리를훼손하면서메스티소혹은라디노정체성을추구 한다는것이다. 결국, 인종주의적인것이고, 과두세력과전통적인지배세력을위한이론화라는혐의를받게된다. 존베벌리를중심으로한미국내의 정치적으로올바른 이론가들역시그의견해를비판하는데, 로베르토모랄레스는이를 종족간협상 이라는가정이원주민과메스티소라는이분법적인대립에기초한그들의이론틀과학문네트워크를잠식하는데서오는위기의식의발로로간주한다. 이러한입장차이는증언서사에대한대립되는평가에서시작한다. 로베르토모랄레스는리고베르타멘추와그의증언이베벌리와같은 정치적으로올바른 학자들에의해 하위주체나다문화주의 라는이름으로정전화되고권력화되었다고비판한다. 또한멘추의학문적정전화가과테말라내에서범마야문화민족주의와정체성정치담론의정당화라는효과를가져왔다고본다. 멘추의증언서사가범마야문화민족주의에기여하고있다는점에서증언서사장르가갖는한계를지적하고, 하위주체성이아닌
라틴아메리카에서하위주체는말할수있는가? 95 메스티사헤 (mestizaje) 개념을중시하는것이다. 다시말해, 하위주체성에의거하여범마야민족주의를긍정적으로평가하고있는베벌리에맞서모랄레스는하위주체연구가원주민정체성을본질화하는경향이있다고비판한다. 또한 마야정체성정치 노선은과테말라사회의진정한다문화적민주화보다는, 원주민엘리트, 지방정부, 글로벌시스템사이의거래만을가져올것이라고우려한다. 따라서원주민 / 라디노, 지배 / 하위주체라는이분법적인구조대신에상호문화적메스티사헤가과테말라사회의현실을이해하는데훨씬더적절하고유의미하다는것이다. 베벌리가 라틴아메리카문학과문화비평의신보수주의적인전환 이라는글에서로베르토모랄레스의입장을신보수주의적이라고비판하는것은시대사적맥락과결부되어있다. 이른바신자유주의적인교육정책에의해손상되고저평가된인문학영역에서새로운이데올로기가등장하는데, 이것이바로국가나이데올로기국가기구가신자유주의에의해유발된정당화위기에대응하고자하는기제라는것이다. 이러한신보수주의적인이데올로기를 중상위계층이고고등교육을받은, 본질적으로백인, 크리오요, 라디노지식인들 이 신자유주의헤게모니, 시장과대중문화의영향력, 그리고정체성정치에기반한사회운동이나정치적움직임으로부터자신들의문화적이고해석학적인권위를재획득하는과정 으로파악하는것이다. 이러한존베벌리의비판에대한모랄레스의입장은앞에서대략설명한것처럼, 베벌리가미국의 강단좌파 의틀에갇혀라틴아메리카를 이상적으로 전유한다는것이다. 또한모랄레스는존베벌리가미국내쇠락해가는문화주의좌파입장을가지고, 본질주의를비판하는모든사람을신보수주의적이라고비난하고있다고지적한다. 나아가원주민과라디노사이의 차이 를
96 무화시키고있다는베벌리의지적에대해단지대립적인이분법을지양하고있을뿐, 차이에기반한새로운생성의가능성을간과한것은아니라고답한다. 또다른비판, 즉증언서사에대한비판을들어로베르토모랄레스가 지식인, 백인, 헤게모니적, 근대-자본주의적 심지어, 반혁명적이라고비난한데대해, 멘추의증언서사가갖는구체적한계이외에도베벌리의하위주체이론에대한본질적인질문을던진다. 인도에기반한이론과테말라원주민리고베르타멘추의증언서사, 내이름은이라틴아메리카에도유효한지, 영국과인리고베르타멘추... 의표지도의사례가과연라틴아메리카의메스티소와인디오사이에그대로적용가능한것인지를묻는것이다. 그리고베벌리의이러한입장을자신의학문적영향력을유지하기위한전략적인것으로간주한다. 더나아가자신이과테말라민족혁명연합 (URNG: Unidad Revolucionaria Nacional Guatemalteca) 을비판하고우파로전향했다는비판에대해, 이는과테말라좌파에대한비판이지좌파일반에대한비판이아니며, 자신은여전히좌파적인관점을유지하고있다고주장한다. 오히려그는베벌리를문화주의자라고비판한다. 즉하위주체의권리에대해이론화할때, 경제에대해문화를특권화한다는것이다. 또한베벌리가 자신의경력과그것을가능하게하는시스템을위해봉사하고있다 고비난하면서, 자신은 문화적으로이상화된민중개념과무비판적인연대가아니라, 먼저경제적요구를중심으로, 두번째는문화적요구를중심으로정치적결합을만들어낼수있도록민중들사이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하위주체는말할수있는가? 97 투쟁함으로써민중에게봉사한다 고말하면서이데올로기적인차이를드러낸다. 결국, 로베르토모랄레스는자신에대한베벌리의비판을 도덕주의적인린치 로간주하고, 하인은두주인을섬길수없다는성경구절을인용하면서미국의출세주의 (gringo careerism) 와라틴아메리카민중사이에서자신은후자를선택하겠다고말한다. 한마디로, 존베벌리의비판을미국내강단좌파의출세주의로간주하는것이다. 다음호 (17권 2호 ) 에실린베벌리의재반론은모랄레스의관점이 라틴아메리카에관해서 / 라틴아메리카에서 (writing about/from latin america) 라는발화위치를둘러싼라틴아메리카연구진영의해묵은이분법에기반하고있다는것이다. 또한멘추의증언서사를둘러싼논쟁에대해서도결과적으로우파의문화적헤게모니에기여했다는것에서좌파의대의에서이탈하고있다고주장한다. 심지어이런전통은바스콘셀로스, 파스, 바르가스요사, 보르헤스등에서발견할수있는것으로라틴아메리카지성사에서그리낯설지않은전통이라고말할때, 존베벌리와로베르토모랄레스는이제더이상화해가불가능해보인다. 베벌리가신보수주의적인전환을아니발키하노가정식화한 권력의식민성 결과로파악하고, 이것은 지역적 이라는주문과북미지식인이나연대활동가들에대한희비극적인환상 을가지고는해결되지않는다고결론처럼말할때, 그의지적은의미있다. 그러나로베르토모랄레스가말하는것처럼 1세계강단좌파의입장에서라틴아메리카를전유하고있는것은아닌가라는혐의또한유효하다. 이런맥락에서이둘사이의논쟁은단순한특정사안에대한문제제기가아니라, 라틴아메리카연구자체에대한본질적인물음으로확장된다. 라틴아메리카원주민의문화적정
98 체성과재현의문제가바로그것이다. 따라서이둘사이의불화는 10여년전에시작한것이아니라, 500여년전으로거슬러올라간다. 참고문헌 John Beverley, The Neoconservative Turn in Latin American Literary and Cultural Criticism", Journal of Latin American Cultural Studies, 17:1(2008). Mario Roberto Morales, Serving Two Masters, or, Breathing Artificial Life into a Lifeless Debate(a Reply to John Beverley)", Journal of Latin American Cultural Studies, 17:1(2008). John Beverley, "Reply to Mario Roberto Morales", Journal of Latin American Cultural Studies, 17:2(2008). 이성훈 - 서울대학교라틴아메리카연구소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