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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Copyright c 2008 라브리선교회 L'Abri Fellowship Korea Downloaded from http://www.labri.kr 그리스도의 유일성 딕 카이즈 (Dick Keyes) 성인경 옮김 그리스도의 유일성이란 말을 듣고 사람들은 우리가 편견을 가진 사람이거나 교만하다고 말합니다. 또는 순진하고 무식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다는 이론은 많은 기독교 인들에게조차도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만약에 당신은 예수가 유일한 길이라고 믿 고 계신다면 왜 그런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예수가 유일한 길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왜 믿지 않는가에 대한 것을 자신이 알아야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원인은 '종교 다 원주의'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네 종교만 옳다고 하고 다른 종교는 그릇된 것이라 고 이야기 할수 있는가? 둘로 나누어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는 '상대주의'라는 것을 통해 '종교 다원주의'가 이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왜 예수님께서 특이하고, 유일한 길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합 니다. 적어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종교 다원주의'는 현실입니다. 이 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에도 종교는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기독교인으로서 이런 많은 종교인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이해할 것인가? 하나의 아주 기초적인 방법이 나타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방법을 잊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적 상대주의'라는 것입니다. 뒤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두 가지 예화를 먼저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산'의 예입니다. 하나님은 산 꼭대기에 계시지만 모든 세상의 종교들은 산 꼭대기에 이르 는 다른 길일뿐이라는 것입니다. 각각의 많은 종교들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택한 길을 따라 올라 갑니다. 다른 종교가 가는 길은 보이지 아니하기에 자기가 믿고 가는 길이, 유일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꼭대기에 올라가면 다른 모든 종교인들이 다 모일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 다원주의'에서 믿고 있는 모든 각각의 종교의 구체적인 면에서는 다른 점은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다 같다는 귀결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라는 것은 진리에 이르는 '상대적인 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론은 마음이 열리고, 관대한 것처럼 보입니다. 두번째 예화를 말해 보겠습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들은 장님이 어떤 큰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 다는 것입니다. 여러 장님들이 코끼리의 여러 부분들을 만지면서, 자기가 만진 부분이 '이게 코끼리 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장님은 코끼리의 코를 만지면서, 다리와 꼬리를 만지면 이 문서는 라브리 웹사이트에서 내려받은 것으로, 개인 및 그룹 공부를 위해서만 인쇄, 복사, 배포 등이 허가되었습니다. 그 밖의 용도로 사용하려면 별도의 허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용은 라브리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This document was downloaded from L'Abri Korea. Printing and distribution are permitted only for study purposes. For all other uses, please obtain permission from L'Abri. L'Abri does not endorse the contents of this document. - 1 -

서 이것이 코끼리라고 말합니다. 각자가 잡고 있는 부분을 만지면서 이것이 코끼리의 전부라고 주장 합니다. 이것이 세계 종교의 현상입니다. 그래서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종교 는 큰 진리의 한 일부분이다. 모든 종교가 연합하면 총체적인 큰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라고 주장 합니다. 그래서 어떤 한 종교가 그것만이 전체적인 것을 표현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생각합니 다. 각 종교에서 가르치는 교리는 그들이 만지고 있는, 착각하고 있는 교리들의 진리들의 일부분만 을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예화를 들어 보신적이 있습니까? 아주 유명한 얘기들이 있는 데 "당신은 당신의 신을 믿고 나는 나의 신을 믿으면 되지 않느냐?" 저희들은 상품들을 선택하고 정 치인들을 선택하고 뽑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선택해서 자기 좋은대로 믿으면 되지 않느냐? 어떤이들 은 종교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고 복지의 일만을 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들이 사회 참여를 하고 좋은 일만 하면 그들에게 조금 다른 면들이 있다고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강력한 주장은, 자기네 종교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인종차별을 하 고, 남녀를 구별하는 일들을 하며 노예제도를 가지고 왔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가지고 있 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불공평하고 부정한 일들을 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진리라고 할수 있겠 는가? 자기 종교만이 좋다고 믿는다면 고집쟁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만을 정말 믿는다면 당신은 참 교만스러운 사람이라고 봅니다. 이것이 '종교다원주의' 저변에 깔려있는 그들의 생각들입니다. 상대주의라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는 것 그 자체를 부인합니다. 상대주의의 긍정적인 면 - 진리를 탐구한다는 것 - 은 우리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다시 부연하자면 정말로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을 그들의 문화적 경험과 역사를 통해 찾아보려 는 노력뿐입니다. 이런 생각은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사람(특히 미국, 유럽)들이 이렇게 생각하며 이 러한 생각을 자명한 것으로 여깁니다. 저희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다원주의 상태에 있는 것을 어 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이런 작업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어떤 목적지 로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 예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세계 다른 모든 종교들은 꼭대기에 올라가는 다른 길일 뿐입니다. 그들은 많은 길이 있다고 허락함으로서 관대한 면을 보입니다. 그래 서 어떤 다른 사람들의 종교를 개종하거나 내가 믿고 있는 종교를 믿게 하는 그런 노력을 아주 이 상하게 바라봅니다. 이런 모델은 다원주의를 이해하고 축하(격려, 추종)합니다. 이는 상대주의적인 다원주의를 용납하는 모델을 우리가 선택하면 다른 모델을 우리가 배척하는 것이 되고, 또한 이런 모델을 믿는다면 실제로 어떤 하나의 절대적인 것을 믿는 격이 됩니다. 그 진리라는 것은 다원주의 라는 진리 밖에 없다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믿으면서 자기는 이것만이 진 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모든 세상의 종교를 해석하는 것이 한 길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은 상대주의가 아닌 절대적인 진리주 의입니다. 모든 종교를 다 포함하는 하나의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델을 믿는 사람은 그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산'과 '코끼리'의 예화를 이야기 하는 사람은 자기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다는 가정 하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화를 주장하는 사람은 이러한 것들을 가정합니다. 자기는 비행기 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서 산을 내려다 보면서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무식한 사람들을 보고 이 - 2 -

야기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의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는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은 인간적인 무식과 고통 속에서 제외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인간은 다 무식하게 땅에 서 각자의 길(종교)을 걷고 있는데 자기도 인간이면서 어떻게 혼자서 그 산 꼭대기에 올라갈수 있는 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코끼리의 예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코끼리의 예화 또한 하나의 모델을 통해서 종교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모든 종교를 종합하려는 노력일 뿐입니 다.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장님을 이야기하면서 자기 혼자 눈뜨고 있다는 자기 혼자 코끼리의 전 체를 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세상의 종교가 장님을 상징하고 있는데 어떻게 자기 혼자만 눈뜨고 있을 수가 있습니까? 자기 자신은 인간이 아닙니까? 상대주의가 이런 것으로 설명하려는 것을 볼 때 상대주의가 사실상 오류가 있는 이론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상대주의의 해석은 마치 마음이 열리고 아주 관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경직되고 자기 나름대로의 고집을 가진 것이라 볼수 있습니다. 상대주의자는 자기도 한 길을 택하여 가고 있는 순례자인 것을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주의자는 다원주의를 용납하고 축하하는 반 면에 자기의 상대적인 이론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양한 종교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다양 하게 보지 못하고 결론은 하나의 획일적인 종교로 결말 짖고 맙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 중에 하나를 믿으면 한 곳으로 귀결된다고 믿는 것은 참으로 고상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습니다. 불교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지 않는 동시에 하나님이 계시 냐? 그렇지 않으냐?를 아주 모호하게 말하는 종교입니다. 무신론자는 어떤 신이라도 존재하는 것을 부인합니다. 만약에 무신론자, 불교 신자, 다원주의라는 종교도 다원한 것인데 이러한 것이 한 곳으 로 귀결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세 가지 종교가 한 곳으로 간다고 한다면 우리는 사 실상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음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획일적인 강제성을 그 위에 주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들 대부분도 우리의 종교와 같다고 말하는 종교는 없 습니다. 종종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종교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도 합니다. 상대주의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종교가 옳다고 믿는 것을 다 무시하는 것이다. 상대주의는 다원주의를 존경하고 지지하는 것이 아닌 무시하는 태도롤 다원주의에 접근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 니다. 이런 모든 다른 종교가 당신의 어떤 면에서 도와줄 수 있다면 참 종교라고 할수 있지만 사실 은 그게 전부 진리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상대주의라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관용스럽 게 보이지만 실상 저변에는 획일적인 독재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하는 이유는 예수를 믿 고, 예수만이 오직 진리라고 주장하는 우리가 종종 상대주의자들에게 당하는 이유는 그들은 고상하 고, 마음이 트이고, 관대하나 우리는 고집스럽고, 무식하고, 순진한 바보라고 가끔 느끼지 않습니까? 이 말을 통해 우리 자신을 격려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런 절대적인 진리가 있 다고 믿지만 우리가 믿는것과 그 사람들이 믿는 것은 진리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구약에서 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런즉 너는 오늘날 상천하지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 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신4장 39절) 구약에 이런 표현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여호와가 오직 한 하나님이시고 이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는 하나님 이라고 하시며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만 헌신하고 다른 신에게 헌신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우리가 - 3 -

질투한다는 말에서 보통 경험하는 부부의 관계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다른 남 자(여자)와 관계를 가진다면 집에 남아있는 한 사람은 굉장한 질투가 생길 것이다. 신약에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씀하십 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만이 시간을 초월하시고 시간이 있기 전에 존재하셨다고 주장하십니 다. 그리고 자시 자신만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7)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 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 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왜 성경에서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했을까요? 이런 주장을 한 사람들의 마음이 교만해서, 협소하 기에 또는 무식해서 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요? 저희가 이것을 확신 하기 위해서 내적인 논리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먼저 기독교를 실랄하게 비난하는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엘렌와츠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는 영국 성공회의 목사였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버리고 힌두교의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모 든 종교가 다 같다고 설명하는 책을 4권이나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책을 쓰면서 내 가 큰 실수를 했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자인하기를 기독교만은 네가 전에 이야기 한 것에 맞아들어 갈 수 없는 종교라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그전에 기독교에 대해서 모든 종교는 다 같다고 비난한 것 은 틀렸는데, 그 이유는 네가 기독교의 독특한 점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아주 고집통으로 주장하고 굉장히 진리를 주장하고 끝까지 고집부리는 종교입니다. 흥미 있는 것은 그가 기독교를 버린 이유를 3가지를 듭니다. 첫째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분에 대해서이고, 그리고 우주에 있는 악한 영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는 예수님의 독특한 점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사람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보 다는 기독교에 대해 더 확실히 이해한 것 같습니다. 다른점이 기독교와 세상의 모든 종교와 확실히 다른점이 있다는 것을 이 사람은 분명히 보았습니다. 3가지를 설명해 드리고, 그러나 그 이전에 제 가 생각할것을 먼저 이야기 하겠습니다. 저의 의견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포인트는 계시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모든 종교보다 더 우월하다는 이유는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머리가 더 좋다거나 명석한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다른데서 우리가 이 계시를 받았다는데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머리가 좋아서 박사학위를 받고 믿게 되었다면 이것은 우리가 교만하고 진실 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시하였기에 우리가 믿습니다. 우리는 다르게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계시하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거부하는 그 자체에 우리가 교만한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엘렌다츠의 3가지 포인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조물주와 피조물의 구분에 대해서 입니다. 창조주로서의 하나나님에 관 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거룩하고 사랑스럽지만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피조 - 4 -

물을 만드셔서 자기와는 구분해서 놓아두셨습니다. 이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관심있게 참여하시지만 일부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가지를 소외시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질서가 없는 찬스라 는 질서가 없는 세계에 산다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것은 또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셨다는 교리를 거부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예상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생의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포인트는 우주의 악한 영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알렌다츠는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악이라 는 것이 현실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악이라는 것은 무식한 잘못된 허물로만 설명될수 없다는 것입 니다. 혹은 우리 인간의 재현 위에서 연약하면서 그것을 단지 악이라고 핑계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악이라는 것은 현실로서 도덕적인 악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도덕적인 악이 우리 인간에게 들어오 는데 우리는 그것을 죄라고 말하고 이 죄가 인간의 문제인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에게 반항 을 해서 하나님에게 분리되어서 떨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역시 다른 여러가지를 거부합니다. 저희 인간들의 화학적인 물질에 더해진다는 그런 설을 거부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희랍 사람들이 오 래 전에 생각했던 것과 같이 우리들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 가 힌두교가 생각하는 우리 자신이 다른 피조물과 똑같은 본질이라고 믿는 믿음을 거부합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교육을 못 받아서 문제다라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근본 적인 문제는 우리가 피조물로서 인정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하나님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앉으려는 것에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과 악은 확실히 두 가지의 다른 존 재이고 이것은 서로 만날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는 또한 선과 악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계신다 면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때 우리는 핑계를 댈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죄책감, 수치심 이런 것들이 현실로 존 재한다는 죄라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사회에서 보는 악과 부정의 등을 보고 분노를 한다는 것은 세상이 악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알렌다츠의 세번째 포인트로 예수님의 유일하신 점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소외 된것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중요한 것 을 기억해야 하는데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 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 께서 오신 것은 성경에서 인간을 진찰하신 결과, 다시 말해서 죄라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것 입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좋은 말씀들을 많이 가르치셨으나 가르침이 주는 목적은 아닙니다. 또한, 섬기는 모델도 보이셨지만 그 본보기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는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받을 벌을 다 받으시고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가 벌 받아야 할 자리에 대신하여 서서 벌을 받으심으로 우리가 해방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있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를 예수께서 지셨기에 우리의 죄가 없 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아도 이 문제는 해결할수 없습니다. 누가 사형선 고를 받고 그 사람이 감옥에서 살아나올 수 있도록 하고 그 사람을 가르쳐야 교욱의 효과가 나겠죠? 그래서 예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이 복음의 진수입니다. 성경은 아빠 없는 어린 아이가 새 아빠를 만나서 입양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그 자체가 예수를 특이하게 만든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힌두교에서도 - 5 -

성육신된 여러 사람이 있습니다. 또 예수께서 가르치는 것을 주목적으로 오셨다면 그것을 기독교의 주된 교리가 아닐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전해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의 특이성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한한 죄를 대신해서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의 거장들을 보면 그들은 자기의 생명을 바 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바치는 목숨을 무시하시고 못본척 하십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을 예 수님 같이 잘 가르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수 많은 사람들의 죄를 해결할수 있는 능력은 없기 때 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굉장히 혁명적인 해답이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 는 아주 어려운 문제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우리가 그렇게 죄를 많이 지었단 말인가? 하고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죽어야만 할 정도로 내가 그렇게 큰 죄인인가?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다고 했을때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바라 는 것은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데 정치적으로 조금만 도움을 주십쇼? 하는 그런 태도였습니다. 그들 이 깨닫지 못한 것은 제자들 각자 각자를 위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서 수 많은 흉악한 죄를 위 해 흉악한 죽음을 죽으셨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인간의 문제가 얼 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깨닫게 될 때에만 왜 예수님이 돌아가셨는지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면 예수님만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돌아 가셨다는 것이 무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우리의 도덕적으로 잘못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돌아가신 것이 아닌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마음의 위로를 위해서 돌아가셨다고 이해할 수 밖 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은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감정적인 평화가 아닌 실제로 맞는 도덕적인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해결책은 성경에서 정의하는 심각한 죄의 문제 를 직시하지 않으면 어처구니없는 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문제를 바로 이해할 때에만 예수님의 복음이 바로 이해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죄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는 진리라고 믿을 때에 예수님만이 유일한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결국 죄를 지으면서 예수님의 유일하심을 부인하는 사람들과 그분을 받아들이는 사람 들에게 질문을 함으로 끝내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상대주의자 밖에 안 되는데 상대주의 안에도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도 참으로 정 직하다고 말한다면 모든 종교가 다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히틀러의 성스러운 정치적 선교를 하나님께서 주신 성스러운 선교라 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듯이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이런 종교, 종교인들이 아무리 신실하게 헌신한다고 해 도 그것이 진짜 종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그런 생각들이 틀린 생각이라면 우리들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그들을 판단해야할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진리라는 것은 이 세상의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그에 대한 올바른 해답으 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예수님의 유일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예수의 유일성을 믿는다면 그것을 믿을 때에 교만하게 표현해서는 안됩니다. 믿지 않는 이 들에게 우월감을 갖고 나타내면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유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교만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만하게 예수님의 유일성을 믿고 표현한다면 이는 기 독교를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교만하게 전도하면 안 믿는 사람이 그것을 듣고 기독교를 무시하게 됩 - 6 -

니다. 우리의 말을 듣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교만한 사람이 교만한 이야기를 말하는구나'라고 밖에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에 상대주의는 도덕적으로 큰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고 말했습 니다. 사실 인정은 안하지만 상대주의자들 그들은 절대적인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단지 여러 종교들이 있는 것을 한 가지 방법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가 유일하다고 믿는 것이 왜 합리적인지, 논리적인지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사 회에 다원주의 종교가 퍼져있습니다. 다원주의를 우리는 존경하면서 각각 다른 점은 인정해야합니 다. 참으로 기독교인이 살기 힘든 험한 세상이지만 성경의 사도 바울과 같이 이방인에게 다른 문화 권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좋은 모범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질문과 대답 질문: 상대주의와 종교 다원주의를 연결시켜 이야기 하셨는데 우리는 상대주의를 삶의 모든 영역 에서 포기해야 하는지 아니면 상대주의가 종교 다원주의와 연결되어 복음 자체를 상징적으로 받아들 이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방이 따뜻하다, 체온에 적당하다의 차이와 예절에 대한 개개인의 시각과 견해의 차이는 제한된 인간의 사고 때문에 이것은 상대적으로 생각해야 하지 만 복음만은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해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말씀하신 부분에서는 모든것 이 절대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들립니다. 대답: 예수님께서 인간이 가진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러 오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에 한한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고 다른 것은 상대적으로 생각할수 있습니다. 구원에 관해서는 절대적이고 다 른 것은 상대적입니다. 그리고 도덕과 구원의 영역에서 절대적입니다. 도덕면에서 예수님의 옳고 그 름에 관한 말씀은 유일합니다. 죄라는 것이 하나님의 법을 어긴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대사람과 우리와 같이 율법은 가지지 않고 다른 것을 기준으로 해서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에 관한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한 반응의 삶에 대해 심판하십니다. 이방인은 이방인의 양심에 따라, 그런 의미에서 상대적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율법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죄와 구원에 관해서는 절대적입니다. 롬 1:18 이하에 보면 모든 사람이 하 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자연계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만큼의 하나 님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핑계 될 것이 없습니 다. 2장에서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 법을 지키지 못하며 사는 사람들도 핑계할 것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질문: 알렌다츠의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 관한 문제인데, 쉐퍼는 하나님 밖에 피조물을 지었 다고 했는데, 알렌다츠가 하나님이 자기와 구분해서 만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대답: 하나님이 피조물을 하나님 밖에서 창조했다는 말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역사상 에서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아 비유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조각가가 조각 을 하는데 많은 시간과 정열을 들여 만들어도 그 조각품이 조각가의 일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 - 7 -

로 격리된 다른 하나의 존재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구분해서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것은 다른 종교 에서 말하는 모든 인생들은 모든 존재들과 절대적인 존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에 대한 반 대입니다. 다른 설은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이 아닌, 이미 있던 혼란된 무질서의 세계를 하나님이 질서 있게 잘 정돈했다는 설을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상은 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질문: 종교다원주의가 상대주의에 기초해 있다고 하셨는데, 상대주의자의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고 하는 것을 진리로 인정하는 경우에 닥쳤을때에 그 원인에 대해 간단한 모델을 제시해 주셨으면 좋겠 습니다. 대답: 매우 어려운 질문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첫째로 어떤 종교는 그 종교 자체안에 상대주의적인 철학이 들어있습니다. 힌두교가 그렇습니다. 둘째로 유럽이나 서구에 가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을 더 이상 믿지 않은 결과로 상대주의로 간 것입니다. 미국과 구라파에서 상대주의가 생긴 두 요건 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말하기를 이제 우리는 성경이 필요없다. 우리 인간의 두 뇌와 노력으로 진리를 발견할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계몽주의자들은 상대주의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과학과 지혜로 절대적인 진리를 발견할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 적인 진리를 발견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로 여러 가지 다른 사상들은 그것을 주워모아 상대주 의적인 노력을 해왔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동시에 백년전쟁이라는 프로테스탄트와 천주교와 의 종교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이 끝난 후에 서로가 자기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이런 관계로 백년전쟁도 서로 자기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생 긴 전쟁이기에 그 사람들이 깨달은 것은 누구든지 내가 절대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람이 나오면 그 다음부터는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상대주의가 나왔습니다. 충분한 답변은 아니지만 그것이 시초라 생각합니다. 질문: 다원주의적인 종교이야기에 대해 질문하려 합니다. 우리 민족의 특수성이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은 샤머니즘 영향이 깊은 민족이고, 5000년의 역사 속에 샤머니즘 종교의 영향이 명명히 살아있 으며 우리의 생활 중심면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들어 지식인 자체 내에서도 종교 다원주의적인 입장의 영향을 받아서인지는 몰라도 샤머니즘을 하나의 민족종교로 삼으려는 정 신적인 특성을 나타내려 하는데 종교 다원주의의 입장에서 여타의 종교들은 분명히 하나님이 다른 종교로서 기독교가 이기고 나가야할 영적 전쟁인데 우리의 입장에는 잘 맞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 가 있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라 보십니까? 대답: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존경해야 하는 것은 분명히 성경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하라는 세례를 주자는 명령도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 하라는 명령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명령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복음화 한다는 것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대 전제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 명령이 옳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살전2:5-8에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 하시느니라. 우리 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 8 -

우리가 이 같이 너희를 사모해서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 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여기에 두 가지 말씀이 있는데 첫째로는 진리라 하면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전한 말은 그들에게 칭찬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한 말입니다. 그 다음에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이 우리가 너희에게 그런 말을 정직하게 말했 지만 그 하는 방법이 마치 어미가 아이에게 젖 먹이듯이 아주 온유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것입니 다. 이것이 바로 비밀인데 복음은 타협하지 않고 정직하게 전해야 하지만 방법은 사랑으로 온유하게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사랑하면서 해야됩니다. 저희가 양극단으로 가기가 쉽습니다. 타협하지 않으 려고 하면서 강직한 방법으로 전도할 수 있고, 또 다른 극단은 사람들에 대해 포용을 너무 많이 하 면서 무슨 일이든 다 좋다고 타협을 하는 태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그림은 어 린아이나 아픈 사람이 있을때 밤새도록 돌보아 주는 그런 태도입니다. 두 가지 모두가 균형이 잡혀 서 하기란 우리의 힘으로 할수는 없지만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예로 샤머니즘을 볼때 타협하지 아니하고 저항해서 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 고자 하는 의도는 존경을 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한 민족의 역사를 재창조하기 위한 단군신화는 한 국 사람으로서는 할만 합니다. 그러나 그 의도는 좋지만 그들이 하는 방법이나 저변에 깔려있는 철 학은 잘 이해하고 캐내고 도전해야 하지만 도전하는 방법이 사랑으로 해야되는 것입니다. 질문: 한국 기독교와 샤머니즘의 조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한국인처럼 예배를 많이 드 리고 또한 시기에 따른 기도회 등이 한국적인 기독교의 특성이라 할수 있지만 문화는 과거의 우리의 어머니들이 돌부처나 지성을 드리던 것이 변형된 형태로 기독교라는 터울을 쓰고 나타나지 않습니 까? 이것이 과연 샤머니즘입니까? 만약 이것이 샤머니즘이라면 이를 완전히 배격해야 되는 것인지 아니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가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만약에 이것이 샤머니즘이 아닌 기독교라고 생 각한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대답: 형식이나 습관과 같은 좋은 전통은 우리가 받아들여 내용만을 바꾸어 그 안에 복음을 집어 넣어서 겉은 한국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목사가 넥타이 대신 한복을 입고 설교를 해도 된다는 이야 기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일주일에 그렇게 자주 모이는 것이 샤머니즘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 자 체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중에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사람이 그것은 하지 아니하고 후퇴해서 자기 고향에 돌아가 서로를 위로하거나 눈물을 흘리며 찬양이나 하는 것은 위험 한 일입니다. 이것을 후퇴해서 하나의 기독교 부족을 형성해야 합니다. 주님은 세상에 나가라고 하 셨습니다. 유럽을 보면 천주교는 문을 열어 놓고 주중에 언제든지 들어가서 기도하게 하지만, 개신 교는 문을 닫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주중에 나가서 싸우고 주일에 나와서 위로받고 힘을 얻으라 는 것입니다. 미국의 교회를 예로 들면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면 묘지도 사고, 기도원도 사고, 수영 장, 볼링장도 만들어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오락까지 다할 수 있기 때문에 세상에 나갈 필요가 없습 니다. 그러면 예배를 드리고 수영을 하고 오락 생활할 때의 사고생활이 바탕이 되고 가족이 흩어지고 세상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끼리만 모이기에 세상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 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전도를 합니까? 세상 친구를 만나야 전도를 할 터인데 이런 폐단 - 9 -

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너무 많이 만나는 것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것은 목사의 욕심 때문입 니다. 교회에 사람이 와야 하고 사랑이 있어야만 뭐 하는 것 같이 보이고 자기의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서이다. 교회가 썰렁하며 이상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샤머니즘안에서 하는 행사라면 가 능하면 기독교인은 세상에 나가서 살라고 했기 때문에 이는 부적절하다. 또 하나 어려운 영역은 음 악이다. 멜로디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가. 잘 연구해야 된다. 기독교 가사만 붙이면 찬양이 되는가? 하는 복잡한 문제가 있는데 이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질문: 상대주의를 이야기할 때 유사점을 찾았습니다. 저는 상대주의가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차 방정식을 할 때 답은 하나인데 풀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입니다. 똑같 이 종교적인 진리로 바꾸어 생각하며 어떤 사람들은 절대적인 진리는 하나인데 거기에 이르는 방법 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경우는 한가지만 있을수 있는데, 첫번째와 세번째의 경우에는 그 여러가지 방법들의 하나가 기독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경우는 다른 길이 틀렸 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까? 대답: 윤리 도덕적인 영역과 구원에 관한한 절대적인 진리가 기독교입니다. 여기에는 타협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 외에 모든 것에는 상대주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위의 것을 설명할 때 중요한 것 은 논의한 이유중의 하나가 비기독교인에게 그리스도가 옳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이 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이것을 충분히 깨 우쳐 주려면 예를 들어 지하철로 생각을 한다면 지하철 2호선의 처음과 끝이 어디입니까? 이렇게 질 문하는 이들에게 (지하철 2호선만 아는 사람) 지하철의 처음과 끝이 어디라고 이야기하면 그 사람은 이해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논리가 충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먼저 보여주고 그 사람은 그 길 밖에 볼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이론 안에서 그것이 잘못되 었음을 보여 주어야 되는데 그 증명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 사람의 이론대로 따라 갔을때 그것이 진리에 이를수 없다는 것이니다. 또 하나는 그 사람의 가정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증명 방법이 먼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 것이 첫번째 작업이고 쉐퍼 박사가 이야기 하는 방법입니다. 두번째 작업은 그들의 방법이 틀렸음을 깨우친 다음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다라고 말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행해야 할 것은 유일한 길이 하나밖에 없음을 안 사람에게 그 다음 기독교가 유일한 것임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유일성을 설명할 때는 유일한 것임을 증명한 다음 유일성과 기독교가 동등한것임을 증명해 주어야 합니다. 이 동등한 것임을 증명할 때는 성경이 인간 이성의 이상의 것으로 쓰여진 것인데 그 이상의 것이라면 인간의 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면 설명해야 되고 인간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체도 설명할 수 있어야 됩니다. 동등성을 증명할 때 기독교의 진리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의 이성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 다. 그 증명 방법에 있어서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인데,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첫번째 문제 는 그 사람들의 논리대로 갔을 경우 그것이 틀렸음을 보여 주려면 100개면 100개 다 따라가서 두 경우중의 한 경우임을 증명해주고 그것을 다 증명해준 다음 두번째로 기독교가 과연 동등이냐를 증 명할 때 이것을 인간의 이성으로는 계속해서 증명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비 기독교 인에게 믿으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믿어야 하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