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이경자 선교사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는 김완중 담임목사. September 2013 지난 9월9일부터 20일까지 김완중 담임목사가 아프리카 케냐 선교 지 탐방을 다녀왔다. 케냐에는 우리교회 소속 이경자 선교사가 15년 째 활동하고 있다. 이경자 선교사는 우리교회에서 10여년 간 전도사 로 사역하다, 지금은 케냐의 에이즈 여성들과 그들의 자녀를 위한 사역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을 위한 센터와 고아원, 케냐 선교 를 위해 찾아오는 이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 건설을 위해 노력하 고 있다. 김완중 담임목사는 우리교회에서 처음으로 이경자 선교사 의 사역지를 방문하였으며, 선교센터 예정부지를 방문하고, 토요 어 린이 사역 현장을 둘러보았다. 이번 방문에서는 다음세대에서 선교저금통을 통해 모금된 후원금 1146달러와 성도들의 후원헌금 5300달러 등 총6446달러를 전달되었 으며, 케냐 나이로비의 감리교 선교사 7가정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였다. 9월 1일(주일) 생태교실을 시작으로 2013년도 가을학기 다음세대 마이스쿨이 개강하였다. 이번 학기에는 전래놀이와 어린이 성경읽기 가 새롭게 개설되어, 생태교실, 찬양대, 워십팀, 주산교실 등 총 6개 의 강좌가 개설되었다. 각 반마다 10명에서 30명까지 주일 오후 어린이들의 즐겁고 신나 는 배움의 터전이 되고 있다. 생태교실은 지난 학기 감자, 상추 등 의 파종과 수확에 이르는 과정을 경험한데 이어, 이번 학기에는 배 추를 심고 거두기까지 밤, 대추 따기와 가을 곤충 찾아보기 등 생태 활동을 진행한다. 준비된 찬양과 율동으로 여름성경학교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어린이 워십팀은, 이번학기에도 스트레칭에서 간단한 율 동, 성탄절 워십까지 몸으로 찬양하는 기쁨을 배우게 된다. 부모님 들의 어린 시절 놀이를 다시 배워보는 전래놀이교실은 남자아이들 이 중심이 되어, 땀 흘리며 노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5세에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 다양한 과정으로 진행되는 다음세대 마이스쿨은 주일 오후2시에 진행되며, 12월 첫 주에 종강한다.
02 프랜시스 베이컨은 책을 넓고 넓은 바다를 지나가는 배 로 표현했다. 윌리엄 채닝은 우리는 주로 책을 통해서 위인들과 대화한다. 위인들은 양서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 야기하고, 그들의 귀중한 사상들을 우리에게 전해 주며, 그 들의 정신을 우리에게 쏟아 부어 준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인해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지식과 지혜를 얻지 못한다. 지식과 지혜는 깊은 사고(thinking)의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 시대가 더 욱 감정에 치우치는 행동을 하는 이유는 생각의 깊이가 얕 기 때문이다. 생각이 깊지 못하면 가벼운 행동을 하게 되고, 이성이 아닌 감정에 이끌리게 된다. 이런 양상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 열심히 살아가지만 공허감과 불안감만 갖게 되는 것이다. 리처드 포스터는 오늘날 절실히 요청되는 사람 은 지능이 높거나 재능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깊이가 있는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은 깊은 사고를 통해서 이뤄진다. 책 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의 깊이를 깊게 하는 것이고 이로 자기 세계를 확장하고 성숙하게 한다. 생각이 곧 그 사람의 세계 라는 말처럼 생각의 변화 없이 삶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생 각의 변화는 곧 자기 세계의 변화이고 그 변화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이다. 한 책은 그 책을 저술한 저자의 세계, 삶, 사상을 담고 있 기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세계, 삶, 사상과 대면하 고 소통하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저자가 다른 100권의 책 을 읽는다는 것은 100명의 삶과 소통하고 교제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성숙되며 새로워지기 원한다면, 책 을 펴서 읽기를 권한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지 말고, 책을 손에 들고 다니 면서 자투리 시간을 통해서 읽도록 하기 바란다. 책을 펼치 는 순간 새로운 삶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독서의 습관을 몸에 지닌다는 것은 인생의 거의 모든 불행으로부터 당신을 지켜주는 피난처를 마련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 서머셋 모옴 9월 5일(목) 저녁 7시30분 지난 4월 목양조찬기도회에서 말씀을 전했던 손기철 장로를 다시 한 번 초청하여 치유집 회를 열었다. 시작 30분 전부터 사람들은 예배당에 자리를 잡고 기도하며 집회를 기다렸고, 10분 전 헤븐리터치 찬양 팀의 찬양으로 집회가 시작되었다. 차희자 권사의 대표기도 와 이전 치유집회에서 있었던 다리 다친 사람의 치유 영상 을 시청 후 손기철 장로의 말씀선포가 있었고, 말씀이 선포 되는 중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치유사역과 감사의 기도, 하 나님을 찬양하는 외침이 계속되었다. 우리교회 성도 외에도, 평소 치유집회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이웃의 성도들이 참석하여 은혜를 경험하였다. 이날 집회에서는 비 염과 위염 등 각 종 질병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났고, 성 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손 장로는 집회 내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머 리로만 아닌 몸 전체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강조했다. 기도 를 할 때도 하나님의 영과 사탄의 것과 자기 자신의 생각을 구분하여 간구할 수 있도록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기다리 라고 요청했다. 때로 고요히 머물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 험하도록 권면하면서, 하나님의 만지심을 기대하라고 했다. 치유집회를 통해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서, 각자 자기 삶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치유하심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손기철 장로 초청 치유 집회에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목양성도들. 목양나눔공동체 주관으로 9월 6일(금) 목양 아카데미가 시작되었다. 이번 가을학기에는 유스 오케스트라와 플롯 앙 상블이 개설되어 매주 금요일 오후에는 학생들의 연주 소리 가 교육관 3층을 가득 채운다. 목양 아카데미는 지역주민들 과의 문화 나눔을 통해 지역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복음제 시의 통로를 목적으로 이제 막 시작되었다. 취지가 잘 살려 져 지역과 좋은 소통의 통로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03 나는 1942년에 태어나 6 25가 나던 해에 아홉 살이었습니다. 합덕읍에 살던 나는 동 생과 함께 이불을 짊어지고 피난을 갔습니다. 어릴 적 교회에 다니지 않던 나는, 아버 지가 돌아가신 후에 서울에 올라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에 올라 온 후, 당시 피어 선 신학교를 졸업하여 지금은 감리교 목사님의 사모님인 손위 누이가 나를 전도했습 니다. 나는 누님의 말을 따라 처음에는 장로교회를 나갔고, 노량진으로 이사 오면서 감리교회를 찾아가라는 말씀에 노량진 감리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1973년 광성교 회에서 세례를 받고, 74년에 심덕진 권사를 만나 결혼한 후, 노량진 교회에 다니게 되 면서,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누님이 심덕진이라는 처녀를 소개해 주면서 사람이 참 순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순종하여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되어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량진 감리교회에서 대치동 목양교회로 지금까지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에서는 주 로 재무부원으로 봉사했습니다. 20년 넘도록 재무일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성물을 만진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고, 항상 조심하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시편23편의 말씀을 항상 암송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가 실패하고 어려움을 겪을 때에 도 함께 하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예레미야 33장3절의 말씀도 내게 큰 힘이 되었습니 다. 사업에 실패했을 때에도, 집 때문에 사기를 당했을 때에도 말씀과 기도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대치동 시절, 사순절 40일 새벽기도를 하면서 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해에는 허리 디스크로 머리를 감지도 못하고, 제대로 움 직이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상태일 때가 있었습니다. 몇 년간 계속되던 디스크가 점점 심해져서, 심권사가 머리를 감겨줄 정도였으니 아주 심각한 상태였지요. 병원에서는 수술하라고 했지만, 수술하지 않고, 새벽기도를 결심했습니다. 당시 우리교회 성도님들 이 나를 위해 많이 기도해 주었습니다. 배상길 목사님 사모님이신 이정정 사모님께서 도 자주 안수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방배동에서 대치동까지 버스타고 먼 길을 걸어서 특별새벽기도를 지켰는데, 그 때 하나님이 내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처음에는 40일을 채울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새벽기도가 시작된 지 20일이 우리 교회에서 1989년 배상길 목사님 살아계실 적에 잠실운동장을 빌려서, 1만 명 초대하는 총동원 예수 전도의 날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동대문에 서 의류도매업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서 진행하는 큰 전도축제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우리교회를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동대문에 있는 상인들을 다 찾아다니면서 우리 교회 전도 축제 하니까 오라고 초대했습니다. 초대를 하면서 그냥 할 수가 없어서, 내 이름으로 오는 사람에게 주려고, 우산100개를 준비했습니다. 교회에서 45인승 차를 대절해서 준 비하고, 우산에 이름을 새겨서 준비해 놓고,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적극적으 로 전도했습니다. 100명을 목표로 열심히 전도했는데, 70여명이 참석해서 전체에서 3등 1991년 장로 취임식 때 가족 친척들과 함께 찍은 사진. 함께 취임한 7명의 장로들과 부인들. 가운데 고 배상길 목사와 이정정 사모의 모습이 보인다. 넘어서면서부터 내 몸이 점점 달라졌습니다. 특별새벽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수도 없이 병원과 한의원, 보약재를 먹으러 다녔었는데, 전혀 낫지 않고, 몇 년간을 고생했습니 다. 새벽기도를 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아주 확신이 들게 해 주셨습니다. 신경 이 당겨 아프고, 저리고, 때로는 무감각했던 허리가, 심지어 다리도 한쪽이 가늘 정도 로 심하게 아팠지만,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도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는 믿음을 갖 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전혀 불편 없이 건강합니다. 하나님이 고쳐주셨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그 치료의 순간을 경험한 후, 나는 더욱 열심히 주의 일에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우리교회에서 목표했던 인원을 훨씬 넘어 큰 전도 축제를 진행 했습니다. 아무래도 그 열심 때문에 장로가 된 것 같습니다. 91년에 장로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목양교회 35년을 다녔지만, 그 때처럼 기억에 남고 열심히 했던 때가 있을 까 싶습니다. 목양교회 노량진에서부터 지금까지 35년 이상을 섬겼습니다. 지금은 주로 3남선 교회 회원들과 가까이 지내고 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대치동 인근에서 속장을 맡아서 담당했던 남성속회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방배동, 대치동, 고덕동까 지 밤늦게 일 끝나고, 버스 타고 다니면서 몇 십 년을 계속해온 남성속회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목양교회에서 열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내 아내 심덕진 권사 의 덕분입니다. 나는 항상 심권사에게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삽니다. 나보다 믿음이 좋아서 철야를 하면서 기도하는 아내, 영육 간에 힘을 주는 내 조자, 사랑과 정성을 다해 내 건강을 챙겨주는 아내가 고맙습니다. 남 들처럼 잘 해주지 못하는데도, 장로가 되고, 장로로 은퇴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아내의 덕분입니다. 장로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그리고 또 은퇴하면서 목사님 들께 감사한 것이 많았습니다. 봉사할 때마다 자상하게 챙겨주시고, 기도해주시던 목사님, 덕분에 이제까지 건강하게 신앙생활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미 은퇴했지만, 앞으로도 교회를 위해 기도하 고, 목사님과 성도님들을 잘 섬기는 일을 위해 열심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차창밖으로 내다 본 무르익는 황금들녘 04 새벽 공기를 가 르며 달려갔지만, 보통의 주말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려 고향인 아 산에 도착했다. 한 달에 2번 정도 가는 고향길이지만 추석 명절에 간다는 것이 더 설레고 마음 이 가벼워진다. 시골의 명절 풍경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북적이며 큰 소리로 떠드는 아 이들 때문에 시끌벅적했던 명절 하루의 시작은 조용하고 차분한 아침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오 랜만에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이 마을 어르신께 인사를 는 황금색으로 발하고, 빨강과 초록이 적당하게 어우러 져가는 과일의 색깔은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색을 띨 수 있을까!하고 감탄하기에 충분한 예쁜 모습으로 결실 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전의 추석명절이나 지금이나 변 함없이 가을은 우리에게 풍성한 결실을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햇빛과 공 기를 선물로 주시고 다스림을 주셨는데, 어떤 이는 감 사함을 어떤 이는 불평을 어떤 이는 아무런 느낌 없이 감사의 때인 추석명절을 보내곤 한다. 감사하게도, 하 나님께 감사함을 잊고 지났던 시간들, 베풀어주신 풍 성한 들녘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셨다. 그렇게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추석명 절이었다. 풍성해지는 들녘은 시골의 고향사람들에게 추석 명절이라고 몸까지 편하게 쉬게 하지는 않는다. 추석 아침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나면, 양복바 다녔다. 그래서 마을 어른들은 모두 이번 명절에는 누 가 고향을 왔다 갔는지 자연스레 알았다. 최근에는 그 런 모습이 없어졌다. 그저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마을 의 누구의 자식일거야 하고 추측만 하게 되는, 자가용 의 붕붕거림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렇게 사람 사는 모습은 변하고 있 지만, 들녘의 모습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올 해는 유난히도 자연의 색이 아름다웠다. 햇빛을 받은 고개 숙인 벼는 물감으로 흉내 낼 수 없 지는 작업복 바지로 바뀌고, 따가운 햇빛을 막아줄 모 자를 쓰고 들녘으로 향 하는 것이 시골의 추석 명절 모습이다. 그렇게 들녘을 향해 나갈 수 있음이 감사하다. 고 배상길 목사 16주기 추모예배 9월 25일(수) 오후3시 故 배상길 목 사의 16주기 추모예배가 소예배실에서 드려졌다. 故 배상길 목사는 1975년 노 량진 중앙교회 제7대 담임자로 부임 하여 1980년 교회를 대치동으로 이전 하고, 교회이름을 목양교회로 개명하 였다. 우리교회에서 23년간 목회를 하 시다, 용인 수지로 교회 이전과 건축 을 진행하시던 중 1997년 소천 하셨 다. 故 배상길 목사님의 추모예배는 매 년 배상길목사 기념사업회 의 주관 으로 드려지는데 지난해 15주기와 이 번 16주기 추모예배를 우리교회에서 드리게 되었다. 이날 예배는 김완중 담임목사의 인도로, 서울영광교회 담 임 박수락 목사가 대표기도를, 배상 길목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전용범 목사(룻교회 담임)가 말씀을 전하였 다. 그리고 감리교신학대학 이성민 교 수와 뉴저지 연합감리교회를 담임하 고 있는 이상규 목사가 추모사를 하 였고,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 회 이사장인 강병훈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이날 추모예배에는 故 배상길 목사님의 유족이신 이정정 사모님과 며느리, 손주들 그리고 생전에 함께 했던 동역자와 우리교회 성도 등 100 여명이 참석하였다. 현재 이정정 사모는 감리교 홀사모 모임인 예자회(예수자랑 사모선교 회)의 회장으로 어려움과 고충을 겪 고 있는 홀사모들을 위해 활발히 사 역하고 있다. 큰 아들 배동희 형제는 종로에서 유명한 토익 강사로 이름을 알리고 있고, 딸 배송희 목사는 등대 선교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05 아프리카 하면 부시맨이나 뿌리 의 주인공이었던 킨타쿤테 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역사 속에서 억압받고, 피해를 많이 당한 흑인들의 땅, 노예살 이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온갖 설움과 핍박을 받아 피와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들, 지금도 세계에서 경제적 으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대륙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많은 아픔과 상처 속에 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내면 깊은 곳에는 분노와 저항의 식이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사람들 의 얼굴을 보면, 그렇게 천진난만하고 평안한지 모릅니 다. 더구나 어린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 마치 유리구슬 처럼 맑고 영롱하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 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될 정도입니다. 이번에 제가 선교지로 돌아본 곳은 동부아프리카의 중 심이 되는 케냐입니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아프리 카 전체의 허브역할을 할 정도로 아프리카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중심적 위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나이로비는 해발 1,700m 정도의 고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적도 에 위치하고 있어도 기온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 이며, 습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기온이 높은 날씨에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에 찾아오는 선교 팀들이 적은 비 용으로도 선교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합니다. 또 이 경자 선교사님은 매주 토요일마다 유치원과 교회가 있는 곳에 가서 어 린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유치원생이 95명 인데, 토요일에는 초등학생들까지 약 300여명이 매주 와서 1시간은 예배를 드리고, 1시간은 성경공부를 하며, 그 다음에는 빵과 음료를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재정적으로 매 주 지원이 되어야 하는 이 선교사님 의 중요한 사역입니다. 밖에 나가서 전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매주 비 록 먹기 위해서라도 교회로 찾아오 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이 아이들 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더 중요하 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지금 케냐에는 한국감리교 선교 사님들이 7가정이 사역을 하고 있 이곳에 우리교회에서 10여 년간 심방전도사로 사역을 하다가 1999년 1월에 파송되어 지금 15년차 선교사로 사 역하고 있는 이경자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주로 에이즈 에 걸린 여성들을 돌보며 그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기술 을 가르쳐주는 일이 주요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 이즈라는 병은 법적으로 본인의 허락이 없으면 검사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에이즈 환자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보다 숨겨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 니다. 이경자 선교사님의 추측으로는 약50% 정도의 여성 들이 에이즈에 걸려있지 않을까 생각되고 있다고 할 정 도입니다. 후천성 면역결핍증 이라고 불리는 이 병은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작은 병에도 걸리면 잘 낫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좋은 약들이 있어서 사는데 크게 지장을 받지 않고 생활하는 분들도 많이 있 다고 합니다. 이분들이 믿음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도록 우선 이분들을 지지해주고, 격려해주고, 사 랑해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또한 당장에 먹을 것을 주는 일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분들이 자립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재봉과 같이 그분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주 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작은 사무 실을 빌려서 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 인 사역이 되기 위해서는 센터가 필요한데 독지가의 후 원이 있어서 용기를 내어 1에이커 즉 약1,200평 정도의 땅을 매입을 했습니다. 케냐는 현재 땅값이 많이 오르고 있답니다. 10년 전에 비해서 10배 정도가 오를 정도로 심한데 지금보다는 절반 정도의 값에 땅을 매입을 했으 며, 이곳에 에이즈에 걸린 여성들을 돌보는 건물을 짓기 를 꿈꾸고 있습니다. 또한 고아원을 지어서 아직 때 묻 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으로 바 르게 잘 기르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더 욕심을 낸 다면 일종의 게스트하우스 같은 건물을 지어서 나이로비 습니다. 이 분들 중에는 24년 동 안 케냐에 와서 사역을 하면서 현지 감독이 된 송충석이라는 기 적 같은 지도자가 있습니다. 또한 케냐에 와서 사역을 하다가 암에 걸려 치료를 위해 귀국하였다가 10 년 만에 다시 케냐에 들어와서 선교 사역을 시작하는 감동스런 선교사님 이 가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목회를 하면서 케냐 선교에 관심을 가 지고 지원을 하다가 은퇴를 하고 케냐 에 들어와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목사 님 내외분도 있습니다. 탄자니아에 파 송을 받아 4년 정도 사역을 하다가 케 냐로 선교지를 옮겨 1년 정도 된 젊은 선교사님 부부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 7가정을 나이로비 시내에 있는 좋은 식당에 모시고 저녁 식사를 접대했습 니다.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우리 이 경자 선교사님 소속 교회인 목양교 회의 담임목사가 방문을 했으니 당 연히 제가 대접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우리 목양 교회의 이름으로 대접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한 목사님들이 정성을 함께 모아서 선교사님들 각 가정별 로 선교비를 전달을 하기도 했습니다. 매우 보람이 있었 습니다. 뿌듯한 마음을 안고 돌아왔는데, 저희가 떠나온 바로 다음날 나이로비 시내의 웨스트게이트 쇼핑몰에서 테러 사건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부상을 당한 일이 발생이 되었습니다. 까딱하면 위험한 일을 당할 뻔 했 구나! 하는 생각이 하니 아찔하기도 합니다. 너무나 안 타까운 일입니다. 해외에 나가 선교를 한다는 일은 언제 나 위험을 안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서 담대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님 들을 위해 늘 기도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우리 교회 소속으로 선교하고 있는 이경자 선교사님과 그 사 역을 위해서도 기도 많이 해 주시고, 협력해 주시길 바 랍니다. 긴 선교여정 속에서도 안전하게 지키시고 인도 해 주신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기도로 헌금으로 함께 해 주신 모든 성도 여러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 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선교보고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06 샬롬_ 찬양이 아닌 지면으로 인사하게 되니 무척이나 어색하고 쑥스럽습니다. 10월 12일에 결혼하는 예신 (예비 신랑) 문경욱 전도사입니다. 함께 결혼할 여자 친구를 만나기 전, 제 이상형은 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 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는 사람, 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 이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신학을 시작해서, 타 지(대전)에서 공부와 사역 을 병행하다 보니 조금씩 외로워졌던 것 같습니다. 그 래서 그전까지는 배우자에 대한 기도를 전혀 하지 않다 가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때 지금의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 사역하고 있던 대전선교교회에서 만나게 되 었는데, 안 믿으실지 모르겠지 만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느 낌을 받았습니다. 여자친구가 새신자로 등록하고 얼 마 되지 않아, 우리의 첫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여기 새벽기도회는 몇 시인가요? 네, 5시입니다.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 후 만남의 기회가 잦아지게 되었고 서로 호감 을 느낀 우리는 교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역하고 있는 곳에서의 교제라 조심스러웠기에 주위 사람들 에게 알리지 않고 지냈고, 목양교회로 사역지를 옮 긴 후로는 공개하고 정식으로 교제하기 시작했습니 다. 교제 초반에는 나이차도 있고, 제가 사역자라는 이유로 여자 친구의 어머님이 반대하시기도 했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불안도, 어머님의 반대의 이 유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기에 기도하며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이제 저의 든든한 기 도의 후원자가 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 혜이지요. 결혼을 준비하는 시기에 많 이들 싸운다고 들었는데 저 희는 다툼 없이 아주 순조롭 게 모든 일들이 진행되었고, 결혼식이 한 달 안 남았습 니다. 우리 부모님은 저보 다 요즘 예비 며느리를 더 챙기십니다. 저의 예비신부는 세상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이도 많고, 좋은 차도 집도 없는 저를 선택했습니다. 또 본인이 전공해 왔던 미술(옻 칠)을 더 이상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환경이지만, 지금까지 저만 믿고 따라와 주었습니다. 그래서, 고 맙고 사랑한다는 말, 이 지면을 통해 하고 싶습니다. 36살, 적지 않은 나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 저는 나보다 하나님을, 자신 의 가족과 우리 가족을,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저의 이상형 그 이상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9월 28일 교회 오빠님^^ 과 결 혼예배를 드리게 된 황보라(황준선, 김은주 권사 차녀)입니다. 목양교회에서는 고등부와 청년부를 다녔고, 현재는 충무로 신광교회에서 유아 유치 부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목양신문 에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무척이나 반갑 고, 감사합니다. 저희들은 모교회(마산 합성감리교회)출신 커플 입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교회 안에서 결혼하 는 커플이 많은 편인데, 저희는 모교회를 떠나 각 자 신앙생활을 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결혼까지 하게 된 신기한 케이스의 커플입니다. 중고등부를 다닐 때에는 나이차(6살) 때문에 친 한 오빠동생으로만 지내다가 제가 성인이 되어서 맛있는 밥을 사주시는 교회 오빠님(병우) 의 관 심과 사랑으로 교제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등학생 때 아빠를 따라서 같은 동네에 사는 성도님들의 가정에 구역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특히 같은 구역이셨던 손 장로님 댁에 가는 것을 좋아했었는데요, 장로님과 권사님이 저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주 셨습니다. 유독 손장로님 댁에만 가면 찬양도 더 크게 부르고 성경도 더 많이 읽었던 기억이 있을 정도로 손장로님 댁에 예배 드리러가는 것을 좋아 안녕하세요~ 2013년 10월 12일에 결혼하는 예비신 부 박차리미입니다.^^ 저의 결혼이야기를 이렇게 쓰려니 다시 한 번 되 돌아보게 되고 쑥스럽네요 ^^;;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그동안 결혼에 대해 방관하 며, 회의적인 마음이 컸었는 데,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모임 에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 게 되었습니다. 한동네에서 자 랐고, 학교도 가까워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다 같았는데 서로만 몰랐다는 것에 놀라워 하며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얼 마 지나지 않아서 남자친구는 저에게 교제 요청을 해왔고,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같이 있 으면 항상 즐겁고,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기에 크게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남자친구와 교제하면서 같이 있는 시간이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대화를 많이 나누었고, 소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서로 살아온 방식과 가치관이 달라 서 이해하지 못하던 부분들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 다 서로가 이해하며 존중하려고 노력하였고, 이러 한 과정에서 남자친구가 저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항상 작은 것에 도 배려하고 신경써주는 모습은 매일 저에게 감동 이었고 감사했습니다. 남자친구는 저와 교제를 시작하면서 제가 태어날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온 우 리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나와 만나려면 꼭 교회에 다녀야 한다고 했는 데, 남자친구는 선뜻 따라주 었지요. 길지 않은 교제기간 이었지만 결혼준비에 이르기 까지 난관 없이 물 흘러가듯 진행되고, 마음의 큰 요동 없 이 해내가는 우리 둘을 보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남이 구나 라는 확신이 생깁니다. 이제 결혼식이 보름 남짓, 인생의 큰 변화를 앞두 고 있는 이 시기에 예쁘고 은혜로운 가정이 되길 더 욱 기도하며, 설레임이 가득합니다. 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봄, 저는 16년 만에 예전 그 자리 그대로에 살고계시는 손장로님 댁에 예 비 손자며느리 로서 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그저 구역 예배 후에 먹는 맛있는 다과와 어른들의 사 랑을 받기 좋아하던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생이 이젠 스물여섯의 숙녀가 되고, 신학생이 되어 방문 하게 되었는데요, 손장로님(할아버님) 내외와 저에 게 아주 뜻 깊고 감회가 남다른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여러 계기와 이유들이 있지만,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서로의 어린 시절을 함께 추억하고 교회학교 생활을 나 누며 신앙생활을 나눌 수 있다는 것과, 서로의 가 족을 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잘 알고 있었던 부 분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시아버지와 저희 아버지는 같은 남선교회에서 돈독한 사이셨습 니다). 개인적으로 예비신랑의 한결같은 사랑과 듬직함 에도 감사하지만,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한 가정 에 시집가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혹시, 교회에서 교제하는 것을 고려하고 계신분 이 있으신가요?! 특히 교회학교를 같이 다닌 교회 동생, 교회오빠 중에서는 어떤지 다시 한 번 눈여 겨보세요, 강력 추천 합니다.
07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드린 것에 대하여는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하나님이 가인의 제 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이유에 대하여 피의 제사와 연결시키는 경우가 있다. 아벨 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희생제사를 드렸 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으셨고, 가인은 땅의 소산으 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라는 것 이다. 제사는 항상 그리스도의 피 와 연결되어 있다. 는 것을 강조하 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히브리서 11장4절에서는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를 아벨 이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 때문이 라고 말한다. 아벨의 제사는 믿음으로 드려진 제사 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으신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성경에는 아벨의 제물을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다. 라 받지 않으신 것이다. 하나님이 자 신의 제사를 받 지 않으시자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 합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 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 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 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 님은 그가 이전에, 평소에 행했 던 범죄의 모습으로 인해 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기에 기록된 제사에 관한 규례는 성경 의 역사에서도 훨씬 더 후대에 와서야 이루어 진 것 이다. 뿐만 아니라, 설사 제사에 관한 규례가 후대의 기록이고 이전에 있었던 것이라 하더라도, 성경에는 분명히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가 있기 때문에 피의 고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여호와 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제물만 받고,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제물을 드린 사람, 그들 자체, 그들의 전인격을 받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무엇을 드렸는지가 중 요시 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며, 죄를 다스리는 사람, 그의 전 삶과 인격을 다한 제사를 하 나님이 받으신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제 사 드리는 사람의 모습이다. Nurturing Global Christians 새로이 목양교회 청소년 영어목회를 위해 부름을 받았을 때, 제가 가장 깊이 고민하 고 또 기도했던 것은 무엇을 위해 영어목회를 하는가? 라는 원론적인 문제였습니다. 이는 우리 목양교회 뿐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 안에서의 영어목회의 존재 이유에 관한 서 자라다가 한국으로 온 영어로 함께 예배하고 신앙교육을 받을 곳이 필요한 친구들 입니다. 두번째는 본인 혹은 부모님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글로벌 크리스천으로서 국제 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꿈을 가진 친구들입니다. 마지막은 기존 신앙교육 경험이 부족하지만 본인 혹은 부모님이 글로벌한 인재로 양육되기를 열망하는 친구들이라 이 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아직도 많은 고민이 있지만, 원론적으로 저의 답은 목양교회의 청소년 영어 질문이며 동시에 그 사역의 목적 및 지향에 관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목양교회 청소년 영어목회는 국제화 시대를 사는 우리 자녀들을 글로벌 크리스천들로 즉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복음을 들고 국제 사회를 향해 선한 영향을 끼치며 세계를 변화시킬 하 나님 나라의 역군들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양육하는 것을 그 목적 으로 한다 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한가지 더, 제가 고민하고 기도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던 부분은, 그 양육의 주요 대상이 누가 되어야 할 것인지 였습니다. 이 질 문에 대한 답이 있어야 영어목회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일단은 세 부류로 가늠 되어졌습니다. 첫쨰는 기존에 영어권에 목회는 영어사역의 목회적, 교육적, 선교적 측면을 모두 감당해야 한 다 로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어목회의 대상들을 소개하고 저의 영 어목회의 지경을 공유하는 것을 통해, 영어목회가 누구를 섬길 것인 지(어떤 성격일지) 에 대한 확실한 상을 궁금해 하셨을 성도들에게 영 어목회를 위한 보다 구체적인 기도제목들을 제공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목양교회를 통해 이 시대 한국의 영어목회의 본을 세 워 나가실 것을 믿습니다. 또한 이를 위해 우리 성도님들도 전체 사역 과 일선에서 수고하시는 선생님들 및 우리 아이들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한 기도와 지지 및 관심으로 우리 청소년 영어목회에 동참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선교사님, 마음이 여 리고 따뜻한 분일 것 같다. 살아가는 순간순간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 하나님의 은혜 를 경험하게 될 때면 주체 없이 눈물이 흘러내 리는, 감성이 풍부한 분. 이분과 대화를 나누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 를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선교사님이시 기 때문에, 이러한 신앙의 내려놓음 이 가능하 지 않았을까? 선교사님의 유학생활은 광야였다. 젊은 시절에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광야였다. 글로 읽기에는 사소한 것들이지만, 삶으로 읽어보면 다급하고 무거운 것들이 광야를 이루게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개인적인 욕심 을 내려놓고 보니, 광야를 건너는 일이 그리 큰 어려움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선 교사님의 작은 기도제목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 생각되는 것은 하 나님이 들으시고 채워주셨다. 이끄는 말은 내려놓음 이었지만, 그 안에는 채우시 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감사와 신뢰가 담겨있었다. 가장 어렵고 힘든 순간에 선택한 내려놓음 의 고백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이 되고, 하늘의 신 령한 복으로 채우시는 하나님과 맞닿는 길이 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절대로 내려놓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 나와 내 자녀의 미래, 의식주를 위 한 물질, 생명과 안전에 대한 염려, 세상살이의 기본적인 경험과 지식, 죄 와 판 단 의 짐, 명예와 인정과 칭찬과 사랑, 그리고 사역의 열매. 생각하기엔 아주 조금 인 듯 느껴지지만, 사실 이것들이 우리의 삶을 휘감고 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 우리를 성장시키신다. 광야의 길을 걸으면서 신앙이 자라고, 부모가 되어 자녀를 키우는 어려움을 느껴봐야 철이 든다고 한다. 그런 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광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광야에 내몰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움츠러들게 된다. 내려놓음 은 우리에게 스스 로 광야를 향해 걸어가며, 신앙의 훈련으로 내 것을 비우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 우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한다. 책을 눈으로 머리로 읽지 말고, 삶 으로 연습하며 읽어야 할 필요가 느껴진다. 절대로 내려놓 기 싫은 것들을 찾아, 내려놓기를 연습하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순간에 스스로 무너짐을 경험하도록 요 구한다. 삶의 짧은 선택의 순간에 천국 노마드 를 꿈 꾸며 내 안의 성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눈을 감고, 감 은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자. 맑은 가을하늘 아래, 마 음으로 읽고, 믿음으로 책을 읽으며, 하나님 앞에 내려 놓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배우는, 순례자 신앙의 기쁨을 연습하자.
08 부부가 몇 년을 살면,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마음 을 갖게 되는 것일까? 부부 일심동체라 했는데, 한 마 음과 한 뜻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부부가 된 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큰 복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 는 부부가 한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 되는 인생 의 과정을 부부에게 허락하신다. 때로 괴롭고 힘든 경 험을 하게 되더라도, 그 과정을 겪어낸 후에 경험하게 되는 기쁨은 느껴본 사람만이 아는, 하나님의 축복 이 된다. 지난 6월 셋째 예찬이를 낳은 안미옥 자매는 늘 바쁘 다. 셋째 출산 기념으로 가족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말하 는데도, 가정탐방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애가 셋 이라 그렇겠거니 했는데, 막상 가보니, 미옥자매는 벌써 남편과 함께 일하는 회사에 출근하고 있었다. 친정어머 니에게 백일도 안 된 아기를 맡기고, 위로 예준이(5)와 예빈이(4)는 어린이집에 보내놓았다. 김철호 형제와 안미옥 자매는 다음세대 토요나들이에 서 빠지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씩씩하고 부지런한 부부이 다. 뱃속에 셋째를 가지고서도, 한참 걷고 뛰며 돌아다 니는 꼬마 둘을 잘도 따라다닌다. 부부는 2010년 고기동 으로 이사와 6개월 동안 등록도 하지 않고 우리교회에서 매주 예배를 드렸다. 알파코스를 통해 성령의 역사하심 을 체험하고 난 후에는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교회에 음을 만져주셨다. 어떤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상 황이었지만, 부부의 마음은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있 었다. 오랜만에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나온 남편도, 난생 처음 예배를 경험하는 아내도 모두 매 주 하나님의 은 혜 를 경험하게 되었다. 2012년 알파코스에 참여하면서, 부부는 매 시간 하나 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다. 남편은 성령수양회를 통 것이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함께 일을 하면서부터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고, 기다려주며, 힘이 되어 주어야 겠다는 깊은 마음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성실하면서 심지가 굳은 사람이다. 항상 신중 해서 어떤 질문에도 쉽게 대답하지 않고, 깊이 생각했다. 아내는 남편의 뚝심과 성실이 좋았는데, 사업이 어려워 지면서 가장 어렵게 하는 모습이 되었다. 아내는 무엇이 든 잘하면서 욕심도 있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어디를 가든 모임을 만들고 중요한 일을 맡아온다. 그렇지만, 한 가지 사업에 몰두하는 성향의 남편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아내가 부담스럽다. 이러한 현실이 신앙 을 통해, 사업을 통해 하나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아내의 재능과 능력이 남편의 뚝심을 지지하면서, 서로 돕고 이 해하고 사업을 같이 하게 되었다. 정직한 하나님의 사업 을, 더욱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모으 고 있다. 아이 셋. 아직도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제멋대로 반응 서 하는 어떤 일에도 빠지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도 하지 않았 다. 부모님이 계신 곳에도 1년에 한두 번, 매번 우리교회 에서 주일을 지켰다. 모태신앙으로 자란 김철호 형제, 종교를 전혀 알지 못 했던 안미옥 자매. 부부가 되고 나서도 교회를 등지고 살았다. 우연히 어머니가 새벽 내내 아들의 신앙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을 듣고 난 다음에도 한참을 신앙과 관계 없는 삶을 살았다. 낚시를 즐겨할 땐 부부가 함께 낚시 를 했고, 직장생활에 바쁠 땐 주일이 잠자는 날이었다. 그러던 부부에게 2009년 감당할 수 없는 큰 시련이 닥쳐 왔다. 가족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배 신을 당하면서 부부는 세상에서 고립되어 있었다. 함께 하던 사람들에게 조차 말할 수 없었다. 물론 가족들에게 도 말할 수 없었다. 부부는 밖에서 입을 다물었다. 둘이 서로의 힘겨움을 말하며 삭혀야만 했다. 경제적 손실, 사람에게 배신당한 상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그 모든 것을 들고, 교회로 찾아왔다. 하나님은 부부의 마 해 오랫동안 미워하고 싫어했던 사람을 생각했다. 용서 하는 어린 아기들을 상상하며 찾아 갔는데, 부부는 인생 라 할 것도 없었지만, 먼저 전화를 하고, 오랜 시간 쌓여 또 하나의 고비를 넘고 있었다. 세상 풍파 가운데서 예 왔던 앙금을 풀어버리게 되었다. 아내는, 난생처음 누군 배의 자리로 인도하시며 인생의 전환점을 주신 하나님 가에게 사랑받는 행복을 경험하였다. 저를 위해 노래를 이 이제 부부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고 계셨다. 부부가 불러주고, 완벽하게 준비된 곳에 마치 공주처럼 들어가 신앙으로 하나 되어, 정직한 사업에 매진해야 하는 것이 사랑을 받는 경험이요. 매주 맛있는 저녁식사도 정말 최 다. 펼쳐진 사업 속에서, 적자를 흑자로 바꿔내기 위해 고였어요. 말씀이 때로 어렵기도 했지만, 배려를 받으며 달려가는 두 번째 부부인생의 고개를 올라가고 있었다.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이러한 인생의 숨 가쁜 과정 가운데 세 아이가 건강하 5년의 연애, 9년의 결혼생활 부부는 벌써 14년을 함께 고, 이 가정을 하나님이 돌보고 계시다는 사실이 너무나 하고 있다. 이제 겨우, 부부에게 신앙으로 하나 되는 것 감사했다. 부부는 똑같이 말한다. 우리는 세 아이를 똑 이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부부의 상황은 그리 쉽지 않 같이 33%, 33%, 33%씩 사랑해요. 누구도 더도 덜도 아니 다. 100일 된 아기, 엄마손 많이 가는 두 아이, 10년 넘게 게, 볼 때마다 다 너무 예뻐요. 세상의 걱정과 염려가 한 길을 추구하며 정직하게 지켜온 사업의 경제적인 문 가득한 가운데에도 웃게 하신 이는, 둘에 하나를 더하여 제. 그리고 그 일을 돕고 있는 부모님들의 어려움. 모든 자녀의 복을 100%로 채워주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 목양교회 7대 핵심 가치 다음세대 신앙교육을 통한 글로벌 인재 양성 예 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예배 소 그 룹 목장을 통한 가정회복과 지역사회 구원 평신도 양육과 훈련 사 회 봉 사 국 내 선 교 해 외 선 교 제자훈련을 통한 평신도 사역자 양성 복지센터 통합 운영 전도학교 운영을 통한 만인 구원 단기선교를 통한 해외선교 활성화 목양교회 오시는 길 예배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