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권위체계와 질서체계
2 재정 방침 이 책의 가격은 무료입니다. 성경을 배우고 싶어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금전적인 부담 없이 저희의 책들을 무상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제공해주시는 분은 모든 것을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입니다. 저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여러분들에게도 반영하고자 합니다. 기타 상세한 자료를 원하시는 분들은(모든 자료는 무료입니다.) www.maxklein.org 를 방문하시거나, 다음 우편 주소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P.O Box 319, C.P.O., Chiangmai, Thailand 50000 발행일: 2009 년 7 월 이 책에 실린 모든 성경 구절들은 특별한 언급이 없는 이상 한글 개역성경에서 인용하였고,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구절에는 현대인의 성경과 현대어 성경을 병기하였습니다.
3 목 차 1. 하나님의 질서체계...7 2.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본적인 제도와 권위...7 (1) 개인...7 ㄱ. 구원과 자유의지...8 ㄴ. 영적 생활과 자유의지...20 ㄷ. 죄와 자유의지...21 ㄹ. 자기훈련...22 ㅁ. 자기훈련에 있어서 올바른 동기...26 ㅂ. 자유의지에 대한 요약 및 결론...27 (2) 결혼...28 ㄱ. 결혼 생활에서의 권위...28 ㄴ. 개인적인 사랑과 무조건적인 사랑...34 ㄷ.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40 ㄹ. 결혼 생활과 영적 생활...41 ㅁ. 배우자의 선택...44 (3) 가족...45 ㄱ. 가정 내에서의 권위...45 ㄴ. 체벌...46 ㄷ. 가정교육을 통해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사항...48 ㄹ. 남편과 아내로서의 모범...49 ㅁ. 부모의 우선순위...50 ㅂ. 결론...52
4 (4) 국가...53 ㄱ. 독립 국가 체제와 국제주의...53 ㄴ. 국가의 권위...55 ㄷ. 정부의 기능...59 ㄹ. 내부의 적들로부터 국가를 보호...60 ㅁ, 외부의 적들로부터 국가를 보호...62 ㅂ.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죽이면 안되는가?...65 ㅅ. 세금...67 ㅇ. 바람직한 국가의 모습...68 ㅈ. 교회와 국가의 분리 원칙...69 ㅊ. 자유기업 경제체제...71 3. 질서체계를 거스르게 되면...72 4. 혁명은 정당한가?...74 5. 사회 속에 존재하는 각종 권위...78 (1) 학교에서의 권위...78 (2) 군대에서의 권위...79 (3) 직장에서의 권위...80 6. 세 가지 선( 善 )...82 7. 국가의 버팀목...83 8. 사악한 자들이 계속 존재하는 이유...85 9. 결론 및 요약...88
5 머리말 성경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라면, 은밀한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께 지은 죄를 자백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알고 있는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알고 있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모르고 있었던 죄, 잊어버린 죄]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 장 9 절) 위 말씀대로 죄를 자백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 있게 되고,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이며,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교훈과 교리를 배울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 장 24 절) 그러나,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있지 않다면, 죄의 자백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우선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란 사실을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이러한 믿음뿐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복음 3 장 36 절)
6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브리서 4:12)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16-17)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디모데후서 2:15)
7 1. 하나님의 질서체계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한 이후 모든 인간들은 죄성을 갖게 되었고, 이 죄성은 각 사람의 육체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도록 유혹합니다. 만약 이러한 죄성의 활동이 억제되지 않고 방치된다면 인간 사회는 죄성과 사탄의 영향력으로 인해 대 혼란에 빠지게 되고 결국에 가서는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영원한 과거부터 이미 알고 계셨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보호해 주시기 위해 질서체계의 법칙들을 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이 질서체계의 법칙들은 인간 사회를 질서 있고 안정되게 해 주는 법칙들로써 신자와 불신자의 구분 없이, 인종, 국가, 성별 등에도 관계 없이 모든 인간들이 지켜야 하는 법칙들입니다. 이러한 질서체계 하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개인, 결혼, 가족, 국가 라는 네 가지 제도를 정해주셨고, 각 제도마다 권위를 정해주셨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이 네 가지 제도를 기초로 한 질서체계의 법칙을 잘 이행하면, 그 사람들이 속한 국가는 질서 있는 사회가 구현되어 번영을 누리게 되며 자유와 사생활이 보호됩니다. 그러나 만약, 사람들이 하나님의 질서체계를 무시하게 되면 그 나라의 질서체계는 무너져 내리고, 외적의 침략을 받게 되어 자유와 사생활이 파괴되고, 최종적으로는 멸망에 이르게 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본적인 제도와 권위 (1) 개인 개인, 즉, 각 사람의 본질을 이루는 무형의 존재는 혼(soul)입니다. 혼이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인식할 수 있게 해 주는 자의식,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지성, 도덕, 윤리, 성경말씀 등의 기준과 척도로써 자신을
8 평가해 주는 양심, 어떤 것을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게 해 주는 자유의지 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람의 본질을 이루는 무형의 존재입니다. 이 중, 자유의지는 자기자신에 대하여 결정권한(권위)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의 질서체계 법칙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요소입니다. 인간의 지능이나 재능은 개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자유의지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요소이며, 인간은 본능이 아닌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또한, 사람이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주변 사람들이나 상황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모두 자유의지의 동의 하에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자신이 내린 잘못 된 결정에 대하여 주변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 회피입니다. 모든 권위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각 사람은 자신의 자유의지가 내린 결정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ㄱ. 구원과 자유의지 인간의 인생에서 자유의지를 통해 내려야 할 결정 중 가장 중대한 결정은 복음을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유의지를 가진 이성적인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들로 하여금 자유의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로봇과 같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실행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강제적인 방법은 원치 않으시고, 각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여 진심에서 우러나와 자유의지에 의해 스스로 하나님을 따르는 결정을 내리길 바라십니다.
9 모든 인간들은 육체에 죄성을 갖고 태어나고, 태어나는 순간 아담의 원죄가 전가되어 태어날 때부터 정죄를 받은 죄인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태어난 인간들은 죄의 열매들을 맺어내고, 아무리 선행을 쌓으려 노력하여도 하나님의 완벽한 기준을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이 분은 바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성이 없으실 뿐만 아니라 33 년 동안의 인생 동안 하나님의 뜻을 완벽히 이행하셨고, 단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으신 흠 없고 점 없는 하나님의 완전한 어린 양이셨습니다. 구약 시대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흠 없고 점 없는 완전한 동물을 죄에 대한 희생제물로 바침으로써 죄 사함의 그림자로 삼았었습니다. 이 흠 없는 동물은 죄 없는 완전한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성 없는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고,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단 한번의 죄도 짓지 않으심으로써 완전함을 유지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는 전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직접 하나님께 완전한 희생제물로 바치심으로써 그림자가 아닌 실제적으로 인간들의 모든 죄(현재, 과거, 미래의 모든 죄)의 값을 대신 치러 주셨습니다(히 9 장, 10 장). 죄에 대한 심판은 예수님께서 인간들을 대신하여 모두 받으셨기 때문에 일사부재리( 一 事 不 再 理 ) 의 원칙에 따라 더 이상 죄에 대한 심판은 없습니다. 인간은 단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믿음의 결정을 내리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왜 단순히 믿기만 하면 될까요?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구원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완벽히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 형사 소송법에서, 한번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하여서는 다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원칙.
10 그리스도의 완벽한 구원사역에 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이 추가된다면, 이 구원사역은 더 이상 완전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공의로우시고 완벽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를 받아들이실 수 없습니다. 인간들은 예수님의 완전한 구원사역에 인간적인 선행이나 노력 등 그 어떠한 것도 보태서는 안되고, 그저 완성된 구원 사역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이처럼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모든 공로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있고, 이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공로가 없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을 자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입니다. 무한한 영광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겨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유한한 피조물인 인간의 몸을 입으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들에 의해 온갖 수모와 고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사실상, 죄로 얼룩진 인간들에게 모두 불못의 심판을 내려도 하나님의 의와 공의에는 어긋나는 사항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 인간들을 구원해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공의에 손상을 주지 않고 인간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의 몸을 입고 모든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심판을 받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이 길만이 하나님의 의와 공의, 사랑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수고를 개의치 않으시고 최대의 희생을 자청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실 수 있는 최대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구원의 손길을 거부하는 인간은 유일한 해결책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한 파멸을 자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천천히 침몰하고 있는 배에 타고 있는 승객들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배는 이미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파손되어 침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배를 수리하기 위해 모든
11 수단을 동원하여 열심히 노력해 보지만 침몰을 막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배가 침몰중인 사실도 모른 채 여전히 쾌락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속히 구명보트로 옮겨 타 다른 큰 배로 옮겨 가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침몰하는 배의 선장은 주변에 있는 새로운 큰 배에 연락을 하여 현 상황을 설명해 주고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도록 부탁하였는데, 이 배의 소유주는 사람들을 구조해 주는 조건으로 막대한 양의 금액을 미리 송금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선장은 엄청난 금액이 심히 부담되었지만 시간이 촉박한 이 상황 속에서 모든 승객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이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선장은 자신의 전 재산을 바로 송금해 주어 새로운 배의 소유주로부터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선장을 비롯한 모든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현재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며 배가 곧 침몰하니 속히 탈출 준비를 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일부 승객들은 경고의 말을 믿고 선장의 말대로 구명보트로 옮겨 탔습니다. 하지만 많은 승객들은 선장과 승무원들의 경고를 비웃고, 구명보트로 옮겨 타는 사람들을 조롱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렇게 크고 튼튼한 배가 어떻게 침몰할 수 있겠어?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난 아무것도 못 느끼겠고, 이 배는 여전히 튼튼해 보이는걸? 저 사람들의 말은 도저히 못 믿겠어. 내가 이 배를 설계한 사람을 잘 아는데, 이 배는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게 지어진 배라고 했어. 무엇보다도 이 배의 시설과 서비스는 너무나도 멋지고 훌륭해서 떠나고 싶지 않아. 그리고 나보고 저런 초라한 구명보트에 타라고? 오히려 저 구명보트가 더 위험해 보이는군! 라고들 하며 구명보트에 타기를 거부합니다. 다급해진 선장은 직접 이 사람들에게 가서 아직 늦지 않았으니 더 늦기 전에 빨리 탈출하라고 설득합니다. 선장은 배가 침몰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12 지금 당장은 저 초라한 구명보트를 타야 하지만, 새로 옮겨 타게 될 배는 이 배보다 훨씬 더 큰 시설과 서비스를 자랑하는 배라고 친절히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탈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비록 거액이지만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이미 대신 지불했으니 승객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비용은 전혀 없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선장의 이러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처음엔 믿지 않았던 승객들 중 일부는 생각을 바꿔 선장의 말을 믿고 구명보트로 옮겨 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승객들은 선장의 말을 믿지 못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 사람이 우리를 놀리고 있군. 이 배보다 큰 배가 세상에 어디 있다고 그래? 그리고 탈출하는데 무슨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든다고 그래? 내가 가진 돈만으로도 충분할걸? 게다가 저 사람이 뭔데 전 재산을 팔아가면서 까지 우리 대신 그 엄청난 비용을 대신 내 주는 거야?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저 사람은 거짓말로 우리를 납치해서 팔아 넘기려는 게 분명해! 자, 모두들 저 사람이 다시는 헛소리를 못 하도록 본때를 보여주자! 라며 선장을 조롱하고 마구 폭행하여 밖으로 쫓아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장은 계속해서 승객들을 설득하러 객실로 들어가지만 승객들은 그때마다 선장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쫓아냅니다. 결국 선장은 너무 많이 맞아 기절하고 승무원들에 의해 구명보트로 옮겨집니다. 이처럼 선장은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고집 세고 교만한 승객들, 배가 침몰하건 말건 신경 안 쓰는 천하태평인 승객들은 끝까지 선장의 말을 믿지 않고 계속 배에 남아 흥청망청 놀다가 결국엔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배에 남은 승객들이 익사한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요? 바로 교만한 승객들의 불신과 잘못된 선택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선장은 어쩔 수 없이 배와 함께 가라앉는 승객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13 위의 예화에서 천천히 침몰중인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로, 태어날 때부터 정죄를 받아 육체가 죽은 후에는 영원한 불못의 심판을 받게 될 운명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배의 선장은 최고의 희생을 자처하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그 배가 제공하는 훌륭한 시설과 서비스는 세상이 주는 쾌락을 의미합니다. 또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조건으로 엄청난 대가를 요구한 또 다른 배의 소유주는 타협하지 않는 하나님의 공의를 의미하고, 소유주의 허락은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돈 만으로도 탈출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하는 승객들은 인간의 의를 내세우며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선장의 말을 믿고 구명보트로 옮겨 탄 승객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며, 구명보트로 옮겨 타기를 거부하고 끝까지 배에 남아 배와 함께 침몰된 사람들은 끝까지 복음을 거부한 불신자들을 뜻합니다. 사실, 불신자들이 영원한 불못의 형벌을 받는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죄값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이미 모두 완전히 지불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재차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영원한 불못의 형벌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제공해 주신 유일한 해결책을 그들 스스로가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스스로 영원한 파멸을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아마 그렇다면, 복음이 전파되기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나 어린 아기들은 하나님의 해결책을 제시 받지도 못한 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우선, 복음이 전파되기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일단 발견된 역사적 기록에만 의존하여 판단을 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복음이
14 공식적으로 전파되지 않았던 곳에 살았던 옛날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에 대하여 전혀 알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아무도 확실히 말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역사에 기록이 안 되었거나, 관련 자료들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함부로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상, 역사에 기록된 사건들은 극히 일부분이고, 기록된 사건들 보다는 기록되지 않은 진실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인간들을 사용하여 기록하신 오류 없고 진실된 성경 기록과는 달리, 일반적인 역사 기록은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고, 정확한 역사 기록이라 해도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흔적도 없이 소실될 수 있습니다. 즉, 진실은 역사 기록 밖에 더욱 많이 존재하므로 역사 기록에만 의존하여 진실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나라에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전파되기 이전에도 사람들은 소문을 통해 복음을 듣거나 다른 나라를 여행하며 복음을 알게 되는 등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접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기독교가 아직 공식적으로 전파되지 않은 나라에 살았던 옛날 사람들 중에는 평생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은 모든 인간들에게는 창조주를 알만한 것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입니다(롬 1:19-20). 즉, 인간은 누구나 세상의 만물을 바라보며 과연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정확히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태양과 달, 하늘의 수많은 별들, 인체의 신비, 다양한 모양의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 아름다운 바다 속 세계, 각종 동물들 등등 자연의 모든 것들은 우연에 의해 생겨났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인간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합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뭇잎만 해도 그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매우 정교한 구조와 기능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경이로운 자연의 모든 만물을 통해
15 창조주가 존재함을 인식할 수 있고, 창조주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며, 그분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창조주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등을 들어가며 창조주의 존재를 부정하고, 세상은 단지 우연에 의해 생겨나고 진화 했다고 합리화 시켜버립니다. 그래서 창조주를 찾으려 하지도 않고 멋대로 상상해 버립니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주인 없이 버려진 아름다운 장식과 무늬로 가득한 집을 발견하고는, 실질적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집을 구성하는 각종 다양한 물질들은 바람에 의해 이곳으로 운반되었고, 비나 습기 등으로 인해 서로 결합하고 진화하여 약 수 억년 정도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 약 수 천만년 정도의 오차는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고, 상하수도, 가구 등 각종 시설이 완비되어 있어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이 집이 정말 비바람과 같은 자연 현상에 의해 우연히 생겨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용자를 위해 잘 설계되어 있고,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는 집은 그 집을 만든 사람이 그렇게 설계하고 장식했기 때문입니다. 즉, 완성된 집이나 건물을 통해 설계자의 존재와 솜씨를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정확하게 돌아가는 우주의 질서, 생명의 신비,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 등을 바라보며 창조주의 존재와 솜씨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연에 의해 생겨난 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든 글자들이 적혀 있는 카드를 상자 속에 가득 집어 넣고 섞은 후, 손으로 카드를 한 움큼 꺼내 아무 생각 없이 바닥에 쫙 뿌렸을 때 언젠가는 그 글자들이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시구를 형성하며 배열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물론 수치로써 그 확률을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통계놀음, 숫자놀음에 불과합니다. 아무렇게나 뿌린 글자들은 결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시구를 형성하며 배열될 수 없습니다.
16 이렇게 창조주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자유의지를 통해 창조주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므로, 하나님께는 이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어야 할 책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히 11:6), 창조주를 인식하고 찾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아직 공식적으로 전파되지 않은 곳에 있다 할 지라도 어떠한 방법으로든 이들에게 복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예를 들어, 이웃 나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복음을 접할 수도 있고, 복음을 알고 있는 상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거래를 하며 사람들에게 비공식적으로 복음과 말씀을 전해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세상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들에 의해 복음이 전파될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나라를 여행 하면서 복음을 듣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옛날의 수많은 기록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기록이나 서신 등을 통해서도 복음이 전파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성경 기록이 완성되기 이전,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경우 직접 인간에게 말씀하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무책임한 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직 복음이 공식적으로 전파되지 않은 지역이라 할지라도, 창조주에 대하여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이들을 위해 복음을 전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어디에나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에 대하여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위치를 항상 정확히 알고 계시고, 이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해 줄 적절한 시기, 적절한 장소, 적절한 방법 등을 모두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뜻하시는 바를 모두 능히 이루어 낼 수 있는 분이십니다. 자, 잠시 여러분이 원하는 바를 아무거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도 좋고, 여럿도 좋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는 죄가 되지 않는 이상 그 원하는 모든 바를 매우 쉽고 간단하게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17 만약 그러한 능력이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않겠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생각만으로 부, 명예, 지혜, 건강, 순간이동 등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손쉽게 이루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은 이런 능력이 있는데도 원하는 바를 이루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능력이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지 할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는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어지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러한 능력을 가진 분이 한 분 계십니다.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지극히 원하시는 바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고(딤전 2:4), 아무도 멸망하지 않게 되는 것(벧후 3:9)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곳의 누가 창조주인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지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실 수 있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무한한 영광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유한한 피조물인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이 창조한 인간들에 의해 엄청난 고통과 멸시를 받으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자신을 업신여기고 비웃는 자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해주기 위해 자원하여 33 년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고, 치열한 전투를 치르며, 끝내는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하며 생을 마감하실 분이 혹시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수고를 감수하시면서 까지 인간들을 구원하고 싶어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분인데, 과연 자신을 알고 싶어하는 자들에게 자신에 대해 알게 해 주지 않으실 이유가 있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나라에 복음이 공식적으로 전파되어야만 사람들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편, 창조주의 존재를 거부하며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귀한 복음의 말씀을 전해주실 책임이 없습니다.
18 이러한 자들은 복음의 말씀을 접한다 해도 그 진가를 모르고 관심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평생 동안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창조주를 찾는 대신 세상의 어리석고 헛된 종교, 헛된 사상 등을 따르며 창조주를 거부하고, 창조주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이들을 버리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아직 제대로 생각할 수 없어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을 할 수 없는 어린 아기들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공정한 판결을 내려주십니다. 아기가 세상에 막 태어났을 때에는 아직 혼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지만, 차차 말을 배우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혼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자유의지가 발동됩니다. 하지만, 만약 어떤 아기가 자유의지가 발동되기도 전에 죽게 되어 복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에게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책임을 물을 수 없으므로 이 아이는 천국에 가게 됩니다. 다윗 왕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밧세바와 간음하여 낳은 첫 번째 아기가 병에 걸려 심히 앓게 되었을 때 다윗은 그 아기를 위해 하나님께 간청 드리며 금식하고,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기가 죽자 다윗은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성전으로 들어가 주께 경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차려오게 하여 식사를 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신하들이 다윗에게 그 이유를 묻자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혹시 아이를 살려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소. 그러나 이제는 아이가 죽었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금식하겠소? 내가 그를 다시 살릴 수 있겠소? 언젠가 나는 그에게로 가겠지만 그는 나에게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오(삼하 12: 22-23/ 현대인의 성경). 다윗은 자신이 죽은 아기가 있는 곳으로 갈 수는 있어도, 죽은 아이는 이
19 세상에 있는 자신에게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죽어서 어디로 가겠습니까? 당연히 천국에 갈 것이고, 다윗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다윗의 죽은 아기는 다윗이 훗날 가게 될 천국에 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유의지를 통한 선택의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은 채 죽은 어린 아이들은 지옥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공의롭고, 공평하신 분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선택권이 주어지지도 않은 사람에게까지 책임을 물어 영원한 불못의 형벌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러한 분이시라면 공의의 하나님이 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영원한 불못의 형벌을 받는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제공해 주신 구원의 손길을 거부한 사람들뿐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는 사람들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거나, 자유의지의 사용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뿐입니다. 부당하게 영원한 불못의 형벌을 받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구원 받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결코 조정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인간들로 하여금 스스로 선택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항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밖에 없는 로봇과 같은 존재로 짓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인간의 자유의지만큼은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임의로 조정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는 결코 손대지 않으십니다. 이처럼, 인간의 자유의지는 각 개인을 주관할 수 있는 권위가 있지만, 모든 권위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의지에 따른 결정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인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선택을 하는 자들은 올바른 선택의 대가로 하나님의 왕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20 거부하고, 사탄의 뜻을 따르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자들은 그에 대한 책임으로 결국 사탄과 함께 불못 속에서 영원히 고통 받게 될 것입니다. ㄴ. 영적 생활과 자유의지 인간의 자유의지는 구원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일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이후 영적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인간의 자유의지는 계속 활동하기 때문에 인간은 계속해서 많은 결정을 내리며 살게 됩니다. 따라서 영적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지, 순종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여부 또한 각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생활을 위해서도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 주십니다. 인간이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음식물을 섭취하고 운동을 해야 하듯이, 그리스도인들이 건강한 영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영적 음식 을 섭취 하고 영적 운동 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영적 음식 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섭취 하는 행위는 말씀을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영적 운동 은 이해하고 기억하는 말씀을 삶 속에 적용시키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의 실행 여부는 각 사람의 자유의지에 달려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자유의지를 통해 영적 생활을 영위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그에 따른 보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영적 생활을 영위하는 대신 죄성에 의해 지배되는 삶을 살게 되면, 그에 대한 대가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며, 결코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즉, 영적 생활도 구원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에 따라 그 길을 달리합니다.
21 ㄷ. 죄와 자유의지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신자, 불신자 여부를 막론하고 육신 안에 죄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 신자들의 영적 성숙 정도나, 그 밖에 다른 요인들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신자들은 살아있는 한 계속 죄를 지으며 넘어지게 됩니다(요일 1:8). 중요한 점은 죄란 항상 자유의지의 허락이 있어야만 성립된다는 사실입니다(약 1:13-15). 따라서 죄에 대한 책임은 그러한 선택을 한 자신의 자유의지, 즉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가며 자신의 죄를 합리화 시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흔히 저 사람이 저렇게 내 속을 뒤집어 놓는데 어떻게 화를 안 낼 수가 있겠어? 라는 식으로 어떠한 사람이나 상황과 같은 특정 외부 요인이 자신을 자극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자동적으로 화가 날 수 밖에 없다며 자기의 죄를 합리화 시키곤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자신이 선택한 생각과 행동에 대한 책임회피입니다. 이와 관련이 있는 외국의 실화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앞으로 끼어든 운전자들에게 거칠고 상스러운 욕을 해대며 상습적으로 난폭 운전을 하다 적발된 한 남자가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았습니다. 처벌 내용에는 정기적으로 정신과 의사의 진찰을 받을 것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찾은 이 남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건 제 의지로 어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운전 중 다른 차가 제 앞으로 끼어들기만 하면 항상 자동적으로 분노가 솟구쳐 올라 주체할 수가 없는걸요. 이 말을 들은 정신과 의사는 그럼, 저와 함께 드라이브나 한번 해 볼까요? 라고 제안하며 남자에게 차를 운전하도록 했습니다. 도로에 진입하기 전 의사는 운전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다른 차가 선생님 앞으로 끼어들면, 그 때마다 제가 20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차 한 대가 이 남자가 운전중인 차 앞으로 끼어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남자는 평소와는 달리 전혀
22 화내지 않았고, 의사로부터 20 달러를 받게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화를 냈다는 것은 자신의 자유의지가 화를 내는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화를 내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각 사람은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해서 결코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위의 이야기에서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다던 남자는 의사가 돈을 주겠다는 약속 을 믿었고, 돈 이라는 보상에 동기 부여를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화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이라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의 약속 보다는 신실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 을 믿고, 돈 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한 보상, 즉 징계의 면제, 마음의 평화, 영적 성장의 기회 등과 같은 것들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어 죄를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죄는 각 사람이 가진 자유의지의 선택에 의해 성립되며, 모든 사람은 자유의지로 내린 자신의 결정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일 경우,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죄를 범하게 되면 그에 따른 책임으로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해야 합니다(요일 1:9). 그리고, 자기 자신을 꾸준히 훈련시켜 나가 동일한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죄를 지으면 또 자백하지 뭐. 와 같이 교만하고 안일한 생각을 품으며 죄에 빠져 산다면, 하나님의 호된 징계를 받게 될 것입니다. ㄹ. 자기훈련 각 개인을 주관하는 자유의지를 잘 통제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자기훈련이 필요합니다. 자기훈련이란, 목표를 향해 집중하여 결단력 있는 자세로 꾸준히 마음을 다잡으며 나아가는 자세이며, 목표를 이루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거나
23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면 이를 멀리 하고, 단호한 마음으로 자신 스스로를 부단히 채찍질하며 훈련시켜나가는 자세입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은 이러한 자기훈련이 잘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배우고 적용하며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하게 성장해 나가는데 있어서 자기훈련은 필수적입니다. 인류 역사상 이러한 자기훈련을 가장 완벽히 이루어 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고난을 몸소 겪음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히 5:8 / 현대어 성경). 참고로, 위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神 性 )이 인간의 몸을 입었음을 의미하기 위해서이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이나 성령 하나님보다 더 낮은 수준의 존재라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삼위일체( 三 位 一 體 )에서 성자 하나님 인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 과 동일하게 위대하시고 동일한 권능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이 세 분은 지금까지 항상 동일한 존재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동일하신 분들입니다. 다시 말해, 성자 하나님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삼위일체 중 한 분으로서 완전하고 영원하신 창조주이심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인 인간의 형상을 입고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들어오신 분입니다. 모든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심판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존재는 먼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어야만 합니다. 또한 인간 중에서도 죄인이 아닌 의인(자유인)만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값을 치러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한 이후 모든 인간들은 죄성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들 중에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죄인이 아닌 자유인의 신분으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한,
24 예수님께서는 신성( 神 性 )과 인성( 人 性 )이 결합된 인격체(Hypostatic Union) 로서, 무한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신성과, 죄 없는 순수한 인간의 인성을 모두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에 늘 순종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으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순종하신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영적 생활을 통해 꾸준히 영적으로 성장하셔야 했고, 각종 시험과 유혹을 이겨내셔야만 했습니다. 한편,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는 죄성 없이 창조되었지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지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죄성은 없으셨지만 아담과 하와처럼 죄를 지을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예수님의 완전한 인성을 파괴하기 위해 예수님을 끝없이 유혹하며 공격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은 예수님의 자기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성경 말씀을 배우시며 자기훈련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해 오셨고, 각종 시험을 겪으시는 동안 단 한번의 죄도 짓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외부로부터 오는 죄의 유혹에 굴하여 단 한번이라도 죄를 지으셨다면, 예수님께서는 흠 없는 완벽한 희생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셨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인간을 위한 구원 사역은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사실상, 흠 없는 완벽한 희생물로서의 자질을 유지하고,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심판 받는 일이란 정말로 힘든 일이었으며, 막중한 책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인생 33 년은 마치 혹독한 군생활과도 같았습니다. 평상시에는 엄격한 자기훈련을 통해 영적인 힘을 키우셔야 했고, 외부의 유혹이나 사탄과 마귀들의 시험을 맞닥뜨릴 때에는 배운 말씀을 잘 적용하여 항상 죄 없는 완벽함을 유지하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사소한 실수라도 용납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중압감을 견디며 살아오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들을 대신하여 죄의 심판을 받으실 때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셔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혹독한
25 환경 아래서도 단 한번의 죄도 짓지 않으시며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셨고, 생애 동안 항상 완벽한 행복을 유지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수고와 고통을 오래 전부터 이미 알고 계셨지만, 이를 개의치 않고 모든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처벌받는 희생양의 역할을 자원하셨습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통이라도 감내해내실 수 있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고통스럽고 험난한 십자가 사역을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어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와 의를 손상시키지 않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뿐이었고, 인류를 아끼고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의 마음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처벌받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는 길을 택하신 예수님께서는(빌 2:8) 영적 생활과 자기훈련을 통해 죄에 대한 모든 유혹을 물리치셨고,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에 늘 순종하심으로써 영적인 삶뿐만 아니라 인생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도 완벽하고 행복한 삶의 모범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영적 생활을 통한 자기훈련을 통해 영적인 힘과 지혜를 키워나가고, 각종 유혹과 시험을 이겨내며 행복한 삶을 누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6 ㅁ. 자기훈련에 있어서 올바른 동기 성공적인 자기훈련을 이루기 위해서는 올바른 동기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훈련이 잘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의 동기는 다양합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자신 스스로를 채찍질 해 가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얻고자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존경을 받기 위해 자기훈련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저 자기만족을 위해 스스로를 훈련 시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동기를 가지고 자기훈련에 임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그분의 자녀로서 여기시기 때문에 믿는 이들에게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쏟아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은혜 가운데서 제공해 주시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보다 많은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반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징계를 내려 주시는데, 이 징계의 목적은 불순종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 주기 위한 것입니다. 즉, 징계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상황을 통한 시험을 허락하셔서 그 사람이 영적으로 더욱 강건해 지고 성숙해 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과 보살핌 가운데 있으므로 아무것도 걱정하거나, 근심할 필요 없이 하나님께서 제공해 주시는 모든 것들을 감사히 잘 누리며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배워가며 영적 생활을 꾸준히 영위해 감에 따라 더욱 자세하고 명확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깨닫고 숙고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연히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될
27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이 자기훈련을 하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동기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거나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기훈련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에 보답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하는 마음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어 영적 생활을 영위하고 자기훈련에 임해야 합니다. 물론 아직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이해해 나가며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다 보면 차차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이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행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인생에 있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자들이며,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ㅂ. 자유의지에 대한 요약 및 결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지만, 자유의지에 따른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만약 인간이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선택을 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구원받은 이후에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면 그에 따른 축복과 보상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선택을 한다면, 불신자의 경우에는 영원한 불못의 형벌을 자초하게 되고, 신자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징계를 자초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유의지는 구원 및 영적 생활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유의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체계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이며, 인간 사회 속에 존재하는
28 가장 기본적인 권위입니다. 만약 한 나라에서 신자, 불신자 여부에 관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질서체계의 법칙에 순종하는 선택을 한다면, 그 나라 사람들의 자유와 사생활은 보호되며, 국가는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질서체계의 법칙을 무시하며 불순종하는 선택을 한다면 그 나라는 내, 외적으로 각종 문제가 발생하게 되며 결국에 가서는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 (2) 결혼 한 쌍의 남녀는 결혼제도를 통해 하나로 결합하여 사회의 최소 단위를 형성하고 가족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 결혼제도는 두 남녀간의 사랑에 적절한 테두리를 형성해 주고,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는 행위들(간음, 간통, 무분별한 성행위, 동성애, 집단혼, 일부다처제, 경솔한 이혼 등)을 금함으로써 가정과 국가를 보호해 주고, 기본적인 사회 안정을 다져주는 하나님의 제도입니다. 이 결혼제도 하에서 부부간에는 서로 합법적인 성관계를 나눌 수 있는데,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부부간의 육체적 관계만이 하나님께 죄가 되지 않는 합법적인 성관계입니다. 결혼한 자신의 배우자 이외의 상대와 나누는 성관계는 그 어떠한 경우라 해도 하나님께 죄가 되는 행위입니다. ㄱ. 결혼 생활에서의 권위 하나님께서는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두 사람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는 곳에는 항상 권위체계를 세우십니다. 따라서 한 명의 남편과 한 명의 아내, 이렇게 두 사람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결혼 관계 속에도 엄연한 하나님의 권위체계가 존재합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아내들로 하여금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29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고전 11:8-9)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골 3:18)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 지니라. (엡 5:22-24) 위 구절에서 복종하라 라는 말은 υ ποτάσσω (후포타소) 라는 헬라어에서 번역된 말입니다. 이 υ ποτάσσω (후포타소) 라는 단어는 가장 낮은 계급의 병사가 사령관의 명령을 따르는 것처럼 복종하다 라는 의미의 군대용어로, 복종 및 순종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는 마음 내킬 때만 선택적으로 순종하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경우에 있어서 남편의 권위에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아내들에게 주님께 복종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내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법칙을 불공평하게 생각하고, 아내를 남편의 권위 아래 두는 것은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위치에 놓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권위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 보다 우월하게 보시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권위 아래에 있다고 해서 결코 권위를 가진 자들 보다 열등하게 보시지도 않습니다. 사람을 우월하게 하거나 열등하게 하는 것은 권위가 아니라 각 개인이 가진 인격입니다. 최고의 권위를 가진 국가의 통치자라
30 해도, 그 중에는 매우 어리석고 사악한 자들도 있는 것처럼, 사람의 자질이나 인격은 권위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사실상, 모든 합법적인 권위에 순종하는 겸손한 자세는 하나님의 뜻이며, 행복하고 성숙한 인생의 기본 바탕이 됩니다. 반면, 합법적인 권위를 무시하며 순종하지 않는 교만한 자세는, 하나님의 징계와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만약 아내 된 여성이 이러한 하나님의 권위법칙에 순종하기를 거부한다면, 결코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한편, 모든 권위 중 최종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이고, 사람이 가진 모든 권위는 모두 하나님의 권위 아래 놓여있습니다. 따라서, 권위를 가진 자들은 주어진 범위, 즉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범위 내에서만 자신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남편이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들을 하라고 요구할 경우, 아내는 이를 거부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만약 남편이 아내에게 강도, 유괴, 살인 등의 범죄 행위에 가담할 것을 요구한다면, 아내는 당연히 이를 거부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남편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합당한 권위를 행사한다면, 아내는 남편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에 순종해야 합니다.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으로써 잘 이끌어 준다면, 아내는 이러한 남편의 사랑과 배려에 대한 반응으로 남편을 믿고 순종하게 되며, 이를 통해 큰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이 교만하고 인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남편과 함께 사는 아내는 매우 힘이 들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겉으로는 순종할 수 있겠지만, 남편의 교만한 인격은 결코 마음 속 깊이 따를 수 없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남편을 사랑하기가 매우 힘들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있는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려운 상황에 적용하여 비통함과 같은 반발심이 생기기 않도록 해야 하며,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도록
31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히 반응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들에게 부여된 권위는 아내의 자유를 억압하며 하인처럼 부릴 수 있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남편은 권위를 가진 자로서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며 보호해 주고 최대한의 자유를 허락해 주어야 마땅합니다. 사실상, 남편에게 주어진 권위는 아내를 항상 사랑하고 보호해주어 아내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권위이기 때문에 남편은 아내보다 더욱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골 3:19)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 5:25) 하나님께서는 남편들로 하여금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냥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권위 앞에 겸손히 순종하셨고, 훌륭한 인격과 성품을 지니셨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랑을 펼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자신을 믿게 될 교회의 지체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대신하여 기꺼이 죄에 대한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즉, 자신의 신부가 될 교회를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최대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남편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러한 사랑을 아내에게 펼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편은 아내에 대한 권위를 갖고 있다고 해서 이를 악용하여 아내를 괴롭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권위가 주어진 만큼 막중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몸과 마음을 사랑 가운데서 평생토록 지켜주고 보살펴 주어 아내가 행복하고
32 자유롭게 잘 지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아내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아내에게 권위를 행사할 때에는 항상 아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선하고 올바르게 행사하는 것이 남편으로서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남편으로서 권위를 이렇게 올바르고 적절하게, 그리고 꾸준히 행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 영적 생활을 면밀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착실하고 꾸준히 실행하여 의롭고 고결한 성품을 지닌 성숙한 그리스도인 만이 제대로, 그리고 꾸준히 지켜낼 수 있습니다. 또한, 훌륭한 남편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의 권위를 겸손히 따르며 자기훈련에 충실히 임해야 합니다. 만약, 자기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교만한 남편이 권위를 사용하게 되면 이를 악용하여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협박을 하는 등 추한 횡포를 부리게 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남편은 자신을 존중하도록 만들기 위해 폭력과 폭언 등을 사용해가며 아내를 못살게 굴곤 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아내의 반감만 사게 될 뿐입니다. 아내는 이러한 남편에게 마지 못해 겉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어도 진심으로 남편을 존중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인격적 소양이 결여된 사람이 휘두르는 권위는 횡포에 불과하며, 융통성 없이 원리원칙만을 고집하여 아내를 숨막히게 하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남편은 아내에게 사려 깊고 섬세하게 대해 줄 수 없으며, 권위를 올바르게 행사할 수 없습니다. 반면, 아내를 아끼고, 배려하며, 잘 보살펴주고, 선하고 올바른 모습, 평온하고 합리적인 모습, 다정다감하고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꾸준히 보여 준다면, 아내는 이러한 남편의 모습에 반응하여 남편을 진심으로 존중하게 되고, 남편을 기꺼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한편, 남편은 필요한 경우 자신에게 주어진 합당한 권위를 제대로 행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아내가 옳지 못한 일을 하려고 한다면, 남편은 권위를 가진 자로서 이를 막아야 합니다. 아내는 이러한 남편의 권위를
33 무시하여 제멋대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남편과 아내로서의 이러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먼저, 아담은 아내인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나무의 열매를 먹으려 할 때 권위를 사용하여 이를 하지 못하게 막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아내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아 주지도 않았고, 아내가 주는 금지된 열매를 함께 먹는 어리석은 죄를 범하고 맙니다. 이는 아내의 지시에 승복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와 또한 아내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사탄이 뱀의 형상으로 하와에게 말을 걸며,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거짓된 정보를 알려주고 있을 때, 하와는 이를 수상히 여겨 남편에게 알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와는 이 수상한 자에 대해 남편과 상의하지도 않았고, 결국엔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 자기 마음대로 결정을 내려 남편의 허락도 없이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뿐만 아니라, 남편인 아담에게도 그 열매를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결혼 생활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서로 뒤바뀌는 경우가 흔히 생길 수 있습니다. 만약 아내가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며 잘못된 주장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계속 고집하려 들 때, 남편이 이러한 아내에게 적절한 권위를 행사하지 못하고 아내의 뜻에 계속 휘둘린다면, 아내는 점점 남편을 얕보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남편을 손에 넣고 주무르게 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각각 주어진 위치와 역할이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에 대한 권위를 가진 자로서 아내를 잘 이끌어 주어야 할 책임이 있으며, 아내는 이러한 남편의 권위를 존중하고, 남편의 결정에 순종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고전 7:3) 남편은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하고, 아내는 주님께 하듯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결혼 관계에서는 남편과 아내
34 모두 각각 지켜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결혼 생활의 성공, 실패 여부는 이들 각자에게 주어진 의무를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러한 부부 사이의 성경적인 원칙을 거부하는 부부는 결코 행복해 질 수 없고 불행과 고통을 자초하게 됩니다. ㄴ. 개인적인 사랑과 무조건적인 사랑 성공적인 결혼 생활 및 영적 생활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사랑(Personal love) 과 무조건적인 사랑(Unconditional love) 에 대하여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사랑(Personal love) 이란 상대방이 가진 조건에 이끌려 생기는 사랑으로 조건적인 사랑 이라고도 하며, 인격이나 영적인 성숙도와는 관계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상대방의 조건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이 개인적인 사랑은 상대방이 지닌 특정한 점을 자기 자신이 개인적으로 사랑하거나 존경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나, 자신이 보기에 사랑할 만한 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불완전한 인간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이 개인적인 사랑은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사랑입니다. 완벽한 인간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계속 지속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해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 받게 되고, 상대방 또한 자신으로 인해 인내력의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갈 때는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만, 각 사람의 다양한 약점을 자극하는 상황이 찾아오게 되면 각종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35 우리는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배우자나 연인, 친구들의 교만함과 질투심, 비통한 마음, 욕심, 이기심, 과도한 경쟁 등의 결점이나 잘못으로 인해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날 수 있고, 상처를 입거나 실망하게 될 수 있으며, 때로는 배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 또한 자신의 결점이나 잘못으로 인해 짜증이 나거나 상처받고 실망하는 등 힘들어 할 수 있고, 단순한 성격차이로 인한 갈등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러한 문제점들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관계가 충분히 오래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 개인적인 사랑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것은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에, 만약 상대방이 지닌 조건이 계속 유지되지 못하고 점점 매력을 잃어간다거나, 실망스러운 모습이 발견된다면, 그 조건을 사랑했던 사람의 개인적인 사랑도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즉, 모든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결점을 갖고 있으며, 잘못을 범하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한 상대방의 조건에만 의존하는 개인적인 사랑만으로는 사랑을 오래도록 유지해 내기가 힘들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낼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사랑은 불완전한 자신이나 상대방으로 인해 쉽게 파괴될 수 있고, 문제 해결 능력이 없으며, 상대방에 따라 쉽게 변하는 안정적이지 못한 사랑입니다. 반면, 무조건적인 사랑(Unconditional love) 은 상대방이 가진 조건과는 상관 없이 자기 자신의 인격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에 대하여 펼치는 사랑입니다. 개인적인 사랑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사랑의 대상)이 가진 매력이나 장점을 자신이 좋아해야 하는 반면, 무조건적인 사랑은 상대방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도 성립될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사랑과는 달리, 무조건적인 사랑은 영적 생활을 통해 의로운 성품과 성숙한 인격을 갖춘 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펼칠 수 있는 사랑입니다.
36 영적 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완전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꾸준히 알아가고, 이를 통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해야만 합니다. 불완전한 인간들을 상대로 하는 개인적인 사랑과는 달리, 영원히 변치 않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며, 모든 인간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개인적인 사랑을 제대로 키워나가기란 생각처럼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성경 기록이 완성된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예전과 같이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말씀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성경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꾸준히 배움으로써 하나님에 대하여 알아갈 수 있습니다. 신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갈 수 있고, 이에 대한 합당한 반응으로 하나님을 향한 개인적인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됩니다. 한편,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 없이 감정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감정은 결코 사랑의 판별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찬송을 부르거나 기도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울부짖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러한 감정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객관적인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기뻐할 수 있고, 때로는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정적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우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감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 없이 인위적으로 고무된 감정은 아무런 의미 없는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에 대한 기준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37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21)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요 1:24) 아무리 입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부르짖고,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흘린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단지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감정이 아닌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판단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바르게 배우고 적용해 나가는 영적 생활을 꾸준히 영위해 나감으로써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열매들을 맺어나갈 수 있고, 이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축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을 깨달아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개인적인 사랑은 이러한 영적 생활에 대한 합당한 반응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그리고 바르게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펼칠 수 있게 됩니다. 상대방이 어떻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개인적인 사랑과는 달리, 무조건적인
38 사랑은 자신이 영적으로 얼마나 성숙했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사랑입니다. 이 무조건적인 사랑의 대상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랑스럽거나 존경할 만한 점이 전혀 없는 사람들, 자신을 멸시하며 괴롭히는 사람들, 대적들이나 원수들 등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조건적인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매우 안정적이고 강력한 사랑으로,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사랑을 보호해 주고 보완해 주어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줄 뿐만 아니라, 이기적이고 교만한 사람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게 해 줍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 19:19 / 마 22:39 / 막 12:31 / 롬 13:9 / 갈 5:14) 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펼치라는 의미이지, 모든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자신의 인내력을 시험하며 힘들게 하는 사람들, 교만하고 악한 자들에게까지도 개인적으로 매력을 느끼거나 존경을 하여 사랑한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일입니다. 또한,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말을 많이 하고 외향적인 사람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각 사람의 취향이기 때문에 미움이나 증오와 같은 마음의 죄를 짓지 않는 이상 특정한 성격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되지 않으며 결코 비난 받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과 맞지 않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까지도 억지로 매력을 느껴 개인적으로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행위이며 위선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개인적으로 사랑할 수 없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펼쳐야 할 사랑은 개인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불가능한 것을 지키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39 무조건적인 사랑은 불완전하고 단점이 있는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대신 완전하고 의로우신 하나님께 집중하여 말씀을 적용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기 때문에, 하나님(말씀)에 대하여 잘 알고 있고, 말씀을 감사히 받아들일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입니다. 이렇게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성품 및 은혜와 사랑을 개인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을 대할 때 이들의 성격이나 행동 등 사소한 것에 집착하여 짜증을 낸다거나 화를 내지 않고, 말씀에 집중하여 진리를 통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방이 아무리 악하고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라 해도 성령으로 충만 된 상태에서 말씀을 적용하여 상대방을 미워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와 잘못을 용서하신 것처럼 상대방의 잘못을 용서하며, 상대방을 긍휼히 여겨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기꺼이 도와주는 등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상대방에게도 베풀어 줍니다. 이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성숙하여질수록 그 범위도 점점 넓어지게 되어 보다 많은 종류의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 부당하고 불공평한 대우를 받게 되어도 이를 비통해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항상 의롭고 공평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드림으로써 자신이 겪는 불공평한 처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에 의해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해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공의 등을 생각하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며 인생의 모든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자들입니다.
40 ㄷ.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완전한 사랑은 완벽하고 변치 않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고, 이를 통해 불완전하고 쉽게 변하는 모든 인간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사랑을 가장 완벽히 보여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항상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고, 모든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이러한 완전한 사랑 덕분에 예수님께서는 끔찍하고 혹독한 십자가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오셨지만, 오히려 피조물인 인간들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으셨고, 엄청난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과 손바닥으로 치며 조롱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금속 조각이 달린 채찍으로 채찍질 하고, 머리에는 가시로 엮은 왕관을 눌러 씌워 온 몸을 피투성이인 만신창이로 만들어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습니다. 사실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들은 거룩하신 예수님의 옷깃 조차도 함부로 만져서는 안되는 존재들인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아무리 악행을 저지른다 해도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빌 2:8).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무례함에 반발하지도 않으셨고, 어떠한 마음의 죄도 짓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셔서 이들에게도 구원의 길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완전한 사랑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며 육체적인 고통을 당해도 수치를 개의치 않으셨으며, 이들의 악을 악으로 되갚지도 않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교만함을 이미 알고 계셨고, 자신의 구원사역을 전혀 감사히 받아들이지 않을 거란 사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죄악으로 가득 찬 교만한 이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대적한다 해도 예수님께서 이들을 향해 펼치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41 결코 줄어들거나 파괴될 수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인격으로부터 나오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개인적인 사랑과는 달리 매우 안정적이고 강력한 사랑이기 때문에 이 세상 그 누구도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한편, 완벽하신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교만한 자들을 개인적으로 사랑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죄 없고 의로우신 분께서 죄악과 교만함을 개인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모순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완전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셨고, 은혜롭고 의로운 성품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자신을 해치려는 자들까지도 불쌍히 여기시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셔서 이들에게도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끔찍한 고통과 수치도 능히 견디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위대했습니다. 비록 구원을 받을만한 자격이 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을 갖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죄값을 십자가에서 대신 치러주심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믿음으로써 받아들이는 자들은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 해도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완벽하신 하나님께는 개인적인 사랑을, 불완전한 인간들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부부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은 물론, 모든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ㄹ. 결혼 생활과 영적 생활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상대방의 죄성이나 성격, 습관 등으로 인해 갈등과 마찰을 겪게 되곤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만약, 상대방의 잘못이나 결점,
42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등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써 덮어주지 못하고, 은혜를 적용하여 서로를 용서해주지 못한다면, 그 부부의 사랑은 오래 유지되지 못합니다. 변하기 쉬운 개인적인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보호해 주어야 부부간의 사랑은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으며, 이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꾸준한 영적 훈련을 통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꾸준한 영적 생활을 통해 성숙한 인격을 갖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권위와 말씀을 최우선시 하기 때문에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적용하려 노력합니다. 이러한 신자들은 상대방이 아무리 못되게 굴고 자신을 괴롭힌다 해도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히 여기며 의지하기 때문에 쉽게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비록 상대방이 자신을 미워하며, 불공평하고, 함부로 대한다고 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께서 항상 자신을 사랑하시고, 공정하게 대해 주실 뿐만 아니라, 항상 필요를 채워주시며 잘 돌봐주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인 사랑을 토대로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펼치기 때문에 결혼 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행복한 부부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과 아내 모두가 영적 생활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이를 통해 성숙한 인격을 갖는 것입니다. 이처럼 결혼 생활과 영적 생활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영적 생활에서 성공하는 부부는 결혼 생활에서도 성공하고, 영적 생활에서 실패하는 부부는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결혼 생활을 제대로 해 내지 못하고 실패하게 됩니다. 성공적인 결혼 생활은 남편과 아내 모두가 영적 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해 나가며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잘 이행해 나갈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43 사실,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며 결혼 생활을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인류 최초의 부부인 아담과 하와는 죄성도 없었고, 완벽한 환경 속에서 지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죄성을 갖고 있고, 불완전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결혼 생활을 해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제공해 주신 영적 생활을 통해 꾸준히 영적인 힘을 키우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해야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남편과 아내로서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생활을 영위하지 않는다면 결혼 생활에서 끊임 없이 크고 작은 문제들을 겪게 될 것입니다. 한편, 결혼 생활에서 발생되는 각종 문제들은 병의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많은 부부들은 각종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병의 증상들을 완화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이렇게 증상만을 완화시키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단순히 증상만을 완화시킨다면 오래 가지 못해 또다시 동일한 증상이 반복되거나 새로운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병든 부부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은 영적 생활을 통해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해 나가는 것이지, 증상을 완화하거나 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상, 결혼 생활 자체가 그리스도인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인 사랑을 키워나가며,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영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영적으로 깊은 교제를 나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외부적 조건에 관계 없이 언제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고, 사람들에게 무시 받으며, 가진 것도 없고, 아픈 곳도 많으며, 나쁜 배우자를 가졌다고 해도,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간직하고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44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나 항상 주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ㅁ. 배우자의 선택 인생에 있어서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받아들이는 결정 다음으로 중요한 결정은 일생을 함께 살아가야 할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일 것입니다. 배우자 선택의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이므로 어떠한 사람을 선택해야 옳은지는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지만,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 피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우선, 신자들은 불신자와 결혼해서는 안 되며(고후 6:14-15),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생각하고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신자는 말씀을 소홀히 여기며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신자와는 결혼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단순히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나, 상대방의 재력, 외모, 사회적 지위 등 표면적인 것들에 이끌려 결혼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아이를 원하기 때문에, 주변에서의 결혼 압박 등과 같은 이유로 결혼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남편과 아내 모두가 불신자였던 상태에서 결혼을 하였는데, 그 중 어느 하나가 예수님을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이혼하지 말고 배우자에게도 적절한 시기에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남자는 저 여자가 과연 평생 나의 권위를 존중하며 순종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저 여자를 평생토록 아끼고 사랑하며 보살펴 줄 수 있을까? 저 여자가 나와 함께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협력자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점들을 생각해 보아야 하고, 여자는 저 남자가 과연 평생 동안 나를 사랑으로써 잘 이끌어 주고, 나를 존중하며 적절한 권위를 행사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저 남자의 권위에 평생 순종할 수 있을까? 저 남자가 나와 함께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협력자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점들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45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자기 자신이 영적 생활을 통해 훌륭한 배우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결혼 할 나이가 되었다고 해서 조급해 하지 않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 훌륭한 남편, 또는 훌륭한 아내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자신에게 맞는 가장 적절한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훌륭한 배우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하였는데도 잘못된 가치관과 동기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상대와 성급히 결혼해 버리면 매우 힘든 결혼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솔함과 성급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예비해 두신 가장 완벽한 배우자를 놓치는 우를 범하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일생을 함께 살아가야 할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신중히 생각해야 하며, 결혼한 후에도 남편과 아내는 상대방에게 훌륭한 배우자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3) 가족 ㄱ. 가정 내에서의 권위 가족은 아담과 하와가 카인을 낳았을 때(창 4:1) 최초로 형성되었습니다. 가족제도 또한 결혼제도와 마찬가지로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설립해 주신 제도입니다. 부부 사이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기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때문에 누군가가 옆에서 보살펴 주며 아이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의식주 등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 주어야 하는데, 이는 부모가 담당해야 할 책임입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물질적인 것들을 제공해 주어야 하는 기본적인 책임 외에도 아이가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아이에게 권위를 행사하며 지도해 주고 훈육시켜주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부모의 경우에는,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책임이 추가적으로 뒤따르게 됩니다.
46 이처럼, 자녀에 대한 권위를 갖는 부모에게는 수많은 책임이 뒤따르지만, 가정 내에서 자녀들이 지켜야 할 책임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1-3)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골 3:20) 위의 말씀처럼 자녀들은 부모의 권위를 존중하고 이에 순종해야 합니다. ㄴ. 체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자녀로 여기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잘못을 범할 경우 이를 바로 잡아주시기 위해 징계하십니다(히 12:6-9). 이처럼, 부모들 역시 자녀들이 잘못 하였을 경우에는 적절히 징계하여 이를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매를 드는 체벌을 통해 어린 아이들을 훈육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잠언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체벌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 懲 戒 )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참고(현대인의 성경): 아이들은 미련한 짓을 하기가 일쑤지만 징계의 채찍으로 이런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잠 22:15)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잠 29:17)
47 초달[ 楚 撻, 매를 들어 때리는 것]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 13:24)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 22:6)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잠 23:13)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잠 29:15)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쉽게 교만해 질 수 있기 때문에 위의 성경 말씀처럼 부모는 어린 자녀들에게 매를 들어가며 가정교육을 시켜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종종 울고 불며 생떼를 부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죄가 되는 행위이며 부모의 권위에 불순종하는 행위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어린 자녀가 부모의 권위에 불순종하는 행위를 한다면 부모는 권위를 사용하여 따끔하게 체벌을 가해 아이의 나쁜 버릇을 고쳐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체벌을 할 때 부모는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매를 들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부모는 화를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아이에게 욕설을 가하며 따귀를 때린다거나 무차별적으로 구타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며 부모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갖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체벌이 아니라 폭력에 불과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매를 들 때에는 아이에게 체벌을 받는 이유를 명확히 이해시켜주어야 하고, 아이를 바로 잡아 주고자 하는 부모의 사랑이 아이에게도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아이는 부모의 체벌이 사랑 가운데서 이루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체벌을 달게 받을 수 있습니다.
48 한편, 체벌은 아이의 정신이 번쩍 들도록,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충분한 강도로 행해져야 합니다. 어떤 부모는 아주 약하게 솜방망이 식으로 체벌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체벌을 받는 아이는 체벌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고, 부모의 권위 또한 가벼이 여기게 되기 쉽습니다. 체벌을 할 때에는 아이의 엉덩이가 시퍼렇게 멍이 드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가 체벌의 고통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강도로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아이가 체벌을 통해 부모의 권위를 함부로 여기지 않고 존중하게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체벌을 통해 아이가 나중에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따끔한 체벌을 받은 후에는 의기소침 해지며 부모님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이러한 생각이 들지 못하도록 엄하게 체벌한 후에는 다시 예전과 같이 아이를 사랑으로 대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부모들은 진보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상에 흠뻑 젖어있기 때문에 아이에게 매를 든다면 아이의 성격 발달에 악영향을 끼치고 자신감이 없어지게 될 거라는 누군가의 잘못된 생각에 속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며 아이를 마치 상전처럼 모시며 아이의 시중을 듭니다. 또한, 자녀들이 잘못해도 대충 말로만 타이를 뿐 체벌을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권위에 대한 개념 없이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다른 사람들의 권위를 받아들이기가 아주 힘들어집니다. 그리하여 학교에서 선생님의 권위를 무시하게 되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법의 권위 까지도 무시하는 교만한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ㄷ. 가정교육을 통해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사항 신자, 불신자 여부를 막론하고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권위에 대한 중요성을 가르쳐 주어야 하고, 세상의 모든 합법적인 권위에 순종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부모라면 자녀가 어릴
49 때부터 복음을 잘 설명해 주어 자녀 또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부모이자 영적 선배로서 아이에게 바른 말씀을 잘 가르쳐 영적 생활을 올바르게 영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할 책임이 추가적으로 뒤따르게 됩니다. 만약 자녀가 권위에 불순종할 경우, 부모는 사랑의 매를 들어 이를 바로 잡아주어야 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든 체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이 밖에도 타인의 사생활과 재산 및 권리 등을 존중해 주는 자세, 책임을 지는 자세, 바람직한 자기훈련의 자세,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자세, 애국심, 올바른 가치관과 생각 등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어린 자녀들의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해결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들의 활발한 상상력을 자극시켜 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요구하며 너무 사소한 것들까지 제약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적절한 범위의 자유를 허용하는 대신, 행동의 한계선을 명확히 설정하여 이를 어겼을 때는 권위를 행사하여 체벌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한편,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을 충실히 잘 받은 자녀가 성장하여 십 대가 되면, 부모는 권위적인 모습을 다소 완화하여 자녀에게 보다 많은 자유를 허용해 줄 수 있고, 18 세 정도가 되면 대부분의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며, 자녀가 독립하여 부모의 슬하를 떠나게 되면 부모는 더 이상 자녀에게 권위를 행사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ㄹ. 남편과 아내로서의 모범 아이들은 부모가 서로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직접 보고 배웁니다. 항상 아내에게 친절하고 온화한 모습을 보여 주고, 늘 관심을 갖고 챙겨주며, 사려 깊게 대해줄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써 아내를 아끼고 보살펴 주는 남편의
50 모습. 그리고, 이러한 남편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을 감사히 여겨 언제나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의 모습. 어린 아이들은 이러한 부모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배우게 됩니다. 특히, 나중에 남편이 될 남자 아이의 경우에는 어머니께 공경하고, 다른 여자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이러한 사항을 잘 가르쳐 주어야 하며, 이를 잘 지킬 수 있도록 훈육시켜 주어야 합니다. 만약, 어린 아들이 어머니에게 버릇없이 군다거나, 누나나 여동생, 또래 친구들 등 다른 여자 아이에게 함부로 대하며 손찌검을 한다면, 아버지는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사랑의 매를 들어 아이를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올바르게 여자를 대하는 방법을 가정에서 직접 보고 배우며 자란 남자 아이는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아내에게 이기적으로 대한다거나, 신체적, 언어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괴롭히는 등의 잔인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모습처럼 아내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아 주며 잘 보살펴 줄 것입니다. 또한, 항상 남편의 권위를 존중하며, 남편의 결정에 순종하는 아내의 모습을 어머니로부터 직접 보고 배우며 자란 여자 아이도 훗날 어머니가 보여주었던 모습처럼 남편의 권위를 존중하며 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성품은 본능에 의해 습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정 교육을 통해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훈육시켜 주어야 하는 사항이며, 부모는 아이가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이러한 모습을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ㅁ. 부모의 우선순위 아이를 키우는 부부들 중에는 모든 관심과 신경을 아이에게만 집중시켜 부부 사이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 남편은 아내보다 아이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아내 역시 남편보다 아이에게 더욱
51 많은 관심을 쏟아 아이를 가정의 최고 우선순위로 만들곤 합니다. 이렇게 어린 아이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부모들은 아이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려 하는데, 이는 완전히 잘못된 개념입니다. 어린 아이는 쉽게 교만해지기 때문에 부모는 자녀들에게 필요 이상의 지나친 관심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사실상, 아이는 가족 내에서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올바른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자랄 수 있도록 가르치고 훈육시켜주어야 할 대상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아이 때문에 부부로서의 책임을 등한시 하고, 서로에게 소홀히 대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부부는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양육해야 하지만, 부부가 가장 많은 사랑과 관심을 쏟아주어야 할 대상은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입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사이가 안 좋아지는 부부들이 많은데, 바람직한 부부의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랑이 깊어지고 성숙해 지며 사이가 좋아지는 부부입니다. 또한,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부모들은 자식들이 자신의 뜻과 어긋나는 길을 걷게 되면 크게 실망하고 불행해 하며 자식의 뜻을 막으려고 애를 쓰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녀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부모는 자식을 통해 자신의 꿈과 야망을 실현시키려 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자녀가 아직 어릴 때에는 가정교육과 적절한 체벌을 통해 어느 정도 자녀를 통제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이 점점 성장해 감에 따라 부모는 자녀들에게 원하는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자식의 뜻은 고려하지 않고 부모의 바램 대로 자식의 인생 행로를 강요하는 것은 자식의 행복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자녀를 둔 그리스도인들은 자녀, 또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여 행복을 추구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진정한 행복은 주님과의 영적 교제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52 그리스도인 부모가 주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면, 이러한 부모는 자녀들을 올바르게 사랑하고 지도할 수 있으며, 자녀들을 통해 보다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나 친구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더욱 성숙한 사랑과 우정을 나눌 수 있습니다. ㅂ. 결론 부모는 어린 자녀들에게 사랑의 매를 들어가며 권위에 순종하고, 바른 생각을 가지며, 올바르게 자기훈련을 할 수 있도록 훈육시켜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부모가 이러한 가정교육을 제대로 시켜 준다면, 그 아이는 부모의 권위를 존중하고 이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되며, 권위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자녀에게 어릴 적부터 권위에 대한 개념을 잘 인식시켜주면, 아이는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세상의 다양한 권위들을 더욱 쉽게 존중하고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은 부모의 올바른 가정교육은 아이들에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커다란 역량을 갖출 수 있게 해 주고, 훗날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게 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이 사회로 많이 배출될수록 그 사회는 법과 질서가 잘 지켜지고, 자유와 권위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안정적인 사회가 됩니다. 하지만, 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게 되고, 순종하지 않으며, 자기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버릇이 잘못 들어있어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은 이후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다른 모든 권위들도 쉽게 무시하게 되며, 이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성인이 되어도 이를 바로 잡기가 매우 어렵게 됩니다.
53 오늘날 사회를 보면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좌절감에 휩싸여 있으며,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 폭음, 마약, 부적절한 성관계, 폭력, 범죄 등을 일삼는 청소년이나 성인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고 싶은 대로 제멋대로 행동하지만 인생에 대한 역량이 부족해 사실상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어릴 때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가정교육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사회로 많이 배출 될수록 사회 곳곳은 병들고 부패하게 되며,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어 종국에 가서는 무너져 내릴 수 있습니다. (4) 국가 ㄱ. 독립 국가 체제와 국제주의 인간의 정부는 노아의 홍수가 끝난 직후에 설립되었습니다(창 9,10 장). 대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정해진 땅의 경계를 따라 흩어져 다시 정착하였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점점 증가함에 따라 노아의 후손들은 더 이상 멀리 흩어지기를 원치 않게 되어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비옥한 평야에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창 11:2). 한편, 아담으로부터 세상의 권세를 잡은 사탄은 국가를 미혹하고 그 기능을 약화시켜 예수님께서 갖고 계신 세상의 총 지배권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계략을 품고 있습니다. 사탄의 이러한 악한 계략과 영향력은 당시 하나로 사탄은 인간이 가졌던 세상의 지배권을 획득하기는 했지만, 사탄의 지배력은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범위 내에서만 행사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총괄적으로 주관하시는 분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54 통합되어 있는 언어를 통해 세상 사람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질 수 있었습니다. 사탄의 악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로 뭉쳐 국제주의를 부르짖으며 도시를 건설하고, 하나님께 도전하여 바벨탑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바벨탑은 세계 종교의 초석이 될 거대한 탑으로, 세상의 권력들을 집중시키고 악의 세력을 하나로 뭉쳐 하나님께 대항하기 위한 장소였습니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었다면, 인간들은 사탄의 악한 영향력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자멸해 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로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언어를 여러 개로 나누셨고, 그들을 온 지면에다 멀리 흩어 독립된 여러 국가들로 나누심으로써 인류의 자멸을 막아주셨습니다(창 11:1-9). 하지만, 사탄은 지금도 자신의 사악한 영향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퍼뜨리기 위해 국제주의를 추구하며 전 세계를 하나로 통합시키려고 노력 중입니다. 세상을 하나로 통합시키려는 국제주의 사상이 널리 퍼지게 되면, 사탄의 악한 영향력은 세상에 더욱 빠르게 퍼질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은 독재자에 의한 전제정치에 빠지게 되기 쉽고, 공산주의와 같은 악한 사상들이 급속도로 퍼질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자유와 사생활은 파괴 되어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사탄의 악한 영향력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전 세계를 하나로 통합시키려는 국제주의 사상은 사탄의 사악한 계략이 담겨 있는 위험한 사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국가의 체제는 여러 국가들이 통합되어 있는 체제가 아닌, 서로 분리되어 있는 독립된 국가 체제입니다. 독립 국가 체제는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담긴 체제로써, 전 세계의 권력이 소수의 개인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해 주고, 세계의 힘들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 줍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국가의 악한 지도자가 공산주의와 같은 악한 사상을 다른 나라로 확산시키려 해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명예로운 국가들이 이를 저지하는 장벽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탄의 악은 다른 나라로 쉽게 퍼지지 못합니다. 즉, 국가가 각각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면, 사탄의
55 악한 사상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어도 세상 가운데 쉽게 퍼지지 못하도록 하는 억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권세를 잡고 있는 이 세상 속에서 인류를 보호하시기 위해 세상을 나누어 여러 개의 국가로 분할하셨습니다. ㄴ. 국가의 권위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 褒 奬 )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 方 伯 )에게 하라 (벧전 2:13-14) [참고(현대어 성경): 주님을 위해서 국가의 모든 법률에 복종하십시오. 또한 나라의 주권자인 왕뿐 아니라 총독에게도 복종하십시오. 총독은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벌하고 착한 사람을 표창하려고 왕이 보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롬 13:1-2) 위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국가의 모든 권위(권세)에 순종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이 로마서의 말씀이 쓰여진 시기는 로마 제국 사상 최악의 폭군이자 불의한 지도자로 악명 높은 네로 황제가 제위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정( 暴 政 )이나 악정( 惡 政 )을 정당화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56 권세에 순종하라는 성경 말씀은 그 권위를 휘두르는 자의 인격이나 도덕성이 아무리 악하고 부당하다 할 지라도,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것이므로 순종해야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세상은 불공평하고, 타락과 부정부패가 존재하며, 모순투성이입니다. 따라서 세상적인 관점과 기준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도 불공평하며 모순이 있다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 중에는 문제점에만 관심을 집중하여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권위체계를 우습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국민들을 억압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지도자는 더 이상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는 비합법적인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지도자의 권력을 박탈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권위체계를 뒤엎는 악한 혁명행위입니다. 이들은 권위를 부여하거나 박탈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권위체계를 뒤엎는 행위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하고 교만한 지도자들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고, 원하신다면 이러한 지도자를 언제든지 쉽게 제거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악한 지도자들을 모두 제거하시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교만하고 악한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괴롭히며 착취하는 것을 허락하시곤 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지도자들을 통하여 신자와 불신자들에게 벌이나 징계를 내리시고, 연단과 시험의 도구로써 악한 자들을 사용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의 자유의지를 마음대로 조정하신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악한 지도자들은 자신의 교만함과 악함으로 인하여 스스로 폭정을 행하며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폭정을 행하라고 명하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롬
57 8:28). 따라서 악한 지도자들의 폭정과 악행 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나빠 보이는 상황이라도 이를 인간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고, 아무리 좋아 보이는 상황이라도 이를 신자나 불신자를 벌하기 위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런 압박감도 없는 편안한 상황 속에 있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타락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많은 불신자들은 세상의 좋은 것들을 누리느라 정신이 없고, 인생의 쾌락에 취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되기 쉬우며, 보다 많은 세상적인 쾌락을 얻기 위해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게 되곤 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도 없고,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복음을 거부하게 되기 쉽습니다. 길어야 100 년도 채 못 되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며 세상의 좋은 것들을 아무리 많이 누리며 편하게 산다 해도, 쾌락만을 추구하다 구원받지 못하여 죽은 후 불못 속에서 영원히 고통 받게 된다면, 그 사람이 인생에서 누렸던 쾌락은 하나님께 이르는 길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에 불과하며,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하는 연막에 불과할 뿐입니다. 신자의 경우에도 아무런 문제 없이 편하게만 산다면 세상의 쾌락에 취해 영적 생활을 등한시 하게 되기 쉬우며, 말씀을 배우며 삶 속에 적용하고자 하는 열심도 줄어들게 되기 쉽습니다. 이처럼, 잠시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것들을 아무리 많이 누린다 해도, 그것들을 적절히 누릴 수 있는 역량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세상의 좋은 것들은 결과적으로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억압받거나, 천재지변이나 질병 등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세상에 대한 헛된 애착을 버리고, 현실적이 되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곤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찾아 구원을 받고, 영적 생활을 재개 하는 사람들 중에는 고통 중에 있으며, 무시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비록 인생을 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