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늘 문을 여소서 본문: 마가복음 1:9-11 설교: 황권철 목사 날짜: 2012년 4월 15일 인생이 걸어가는 모든 길에는 다 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남의 집을 방문할 때 먼저 주인이 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실의 문을 열고 친 한 손님에게는 안방 까지도 내어줍니다. 매사에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 데는 길이 있고 그 길의 마지막에 문이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학문의 문이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기초학습을 배웁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나면 고등학문 을 하기 위한 대학에 들어갑니다. 누구나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자만이 가게 됩니다. 이처럼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길이 있고 그 길의 마지막 에 문이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전도에 문이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4장 3절에서,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라고 기도해 달라고 했 습니다. 우리가 이 기도를 하고 개인에, 가정에, 구역에, 전도회에, 우리 제단에 전 도의 문이 열리길 축원합니다. 기도 역시 하나님이 기도의 문을 열어 주셔야 기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누구에게나 꼭 열려져야할 문이 있는데 그 문은 바로 하늘 문입니다. 하늘 문이 열려야 배운 학문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고, 하늘 문이 열려야 사업에도 복을 주시고, 하늘 문이 열려야 주의 제단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 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늘 문이 열리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 하늘 문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사건은 마태, 마가, 누가, 공관복음에 똑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 는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강조하고(마3:16-17), 누가는 성령의 임재를 강조하고(눅 3:21-22), 마가는 주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 하늘 문이 열린 사건을 강 조하고 있습니다(막1:9-11). 그래서 오늘 저는 마가복음에 기록된 본문을 가지고 하늘 문이 열린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의 삶의 전 영역에 하늘 문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늘 문이 열립니까? 먼저, 우리가 죄를 장사할 때 하늘 문이 열립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혹시 하나님 앞에 은밀한 죄가 있습니까? 죄를 장사할 때 하늘 문이 열립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장 9~10절에,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 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졌다고 했습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세례는 나의 모든 세상의 정욕을 물에서 장사하는 것입니다. 죽이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다시 사는 것입니다. 하늘이 갈라졌다는 것은 하늘이 열린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서 수많은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 왜 우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셨습니까? 왜 우리가 죄를 짓도록 방 - 1 -
치해 두셨습니까?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왜 하나님이 하늘을 찢어서라도 임재하셔서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까? 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때 하늘이 열리고 곧 하늘 이 찢어지고 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내 소견대로, 내 욕망대로 살 때는 하늘 문 이 닫혀진 상태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범죄할 때는 하늘 문이 닫힙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 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사 59:2)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무엇이 하늘 문을 닫게 만듭니까? 죄가 하나님 과 우리 사이의 문을 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나의 은밀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장사지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어주십 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갈 때 그리스도인들을 다 예루살렘으로 끌고 가서 죽이려고 작정하고 갔습니다. 사도행전 9장 3절에,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 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하늘로부터 빛이 비치기 전 에는 흑암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기 전에는 내 이성적인 자아로, 세 상적인 가치관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에게 하늘이 열리고 빛이 임했습니 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행 9:4) 곧 바로 주님의 음성 이 들려왔습니다. 사울은 눈이 멀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아나니아가 그에게 안수하면서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행 9:17) 말했을 때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지 않으면 뭔가 우리 눈에 비늘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이 비늘 은 무엇입니까? 먼저 불신과 불신앙의 비늘입니다. 아무리 율법을 많이 알아도 불 신과 불신앙의 비늘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가족과 이웃과 동역자 간에 불신과 불신앙의 비늘이 있으면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서 최후 에는 하늘 문이 닫히고 마는 것입니다. 이 비늘은 무엇입니까? 교만으로 엉어리 진 마음입니다. 내가 자라온 가문과 배경과 학문과 경험들을 통해 쌓여진, 아무도 허물 수 없는, 내 자아만이 가지고 있는 교만의 엉어리가 있습니다. 주님이 씨 뿌리는 비 유를 말씀하실 때 돌밭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아무리 복음을 들어도 우리 심령 깊 숙이 뿌리를 내려 자라지 못합니다. 이 교만의 엉어리를 다 거두어 내야 합니다. 이 비늘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모든 염려와 근심의 비늘입니다. 우리가 땅 위에 살면 서 가시와 엉겅퀴 속에서 자라나는 씨앗이 결실하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 근심 걱정 아래에서는 주님을 온전히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 속에 감추어진 죄가 있습니까? 은밀한 죄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 혈로 정함을 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주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면서 죄를 장사 지낸 것처럼 우리 죄와 허물을 예수 보혈의 십자가로 장사지내시고, 예수님이 세례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 문이 열린 것처럼 우리 앞에 하늘 문이 열리게 되기 를 축원합니다. - 2 -
그 다음,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집중할 때 하늘 문이 열립니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위인들이 걸어간 삶들을 보면 한 곳을 올인하고 집중합니 다. 집중하면 못 이룰 일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7장 55절에,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 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했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이 돌을 맞으며 죽어가는 순교의 현 장에서 하늘을 우러러 주목했습니다. 하나님을 주목할 때 하늘 문이 열립니다. 하늘 문이 열려야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어떤 사물과 대상을 볼 때도 주목하여 봅니다. 근성으로 보면 아 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기도 하러 가는데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보았습니다. 사도행전 3장 4절에는 베드 로와 요한이 주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냥 적선만 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 지만 가만히 주목해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 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 들, 저 영혼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주목해서 봐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구역에 연약한 지체들을 정말 주목해서 봐야 합니다. 주목하여 볼 때 하나님이 그 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을 주목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 문이 열려야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주목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스데반은 하늘 을 우러러 주목하여 돌에 맞아 피를 흘려가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우 리는 매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든 삶의 범사에 하나님의 영 광에 시선을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성경은 구체적으로 우리에 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하루 일과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성경이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삶의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울 은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 삶이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합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봅시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얼굴을 말합니다. 자식이 자식의 도리를 다 하면 부모의 얼굴이 드러납니 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살 때 주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주님의 이름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난 이후 우리가 처신한 행동들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이 따라다닙니다. 우리 모든 삶을 하나님의 영광에 고정하기를 축원합니다. 스데반은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돌들을 던지고 있을 때 시선을 그들에게 두지 않았습니다. 시선을 손에 돌을 든 원수들에게 고정하면 얼마나 분노와 적개심이 일 어나겠습니까? 그러나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시선을 인간적으로 고정하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동시에 보 좌 우편에 서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은 보좌에 앉아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순교하는 순간에 주님이 보좌에서 일어났습니다. 전쟁 같은 것이 일어나면 대장은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서서 호령하며 지휘합니다. 스데 - 3 -
반이 순교하는 순간에 주님이 보좌에 앉아있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이 보 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이 왜 일어나셨습니까? 스데반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삶의 현장에서 때로는 돌을 맞기도 하고 지쳐 쓰러지는 그 순간 에 여러분의 시선을 인간적인 안목으로 이 땅에 고정하지 말고 그때 눈을 들기 바 랍니다. 주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 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친 영혼들을 향해 주님이 일어서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아, 내가 너의 지치고 상한 심령을 잘 안다. 하시면서 주님이 서서 우리를 위로하 고 격려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순복의 삶을 살 때 하늘 문이 열립니다. 신명기 28장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 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 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복이란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 순종합니까? 내 기분이 내 킬 때 순종합니까? 이성적으로 이해될 때 순종합니까? 어떤 때는 주의 일을 할 때 전혀 이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권 위를 생각해서 복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복할 때 하늘 문을 열 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들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대 충대충 근성으로 들으면 안 됩니다. 삼가 듣고 조심해야 합니다. 가정에도 효자는 부모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부모가 공부를 많이 했습니까? 세상 이론 학 문적으로 보면 부모가 자녀의 세대를 못 따라 갑니다. 그러나 부모의 말을 들어야 그 인생이 세상 어디를 가든 쓸모 있는 인생이 됩니다. 학교에서 스승이 우습게 보 입니까? 스승의 말을 듣는 자세에서 부터 벌써 인생의 진로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 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에서 벌써 축복의 승패가 판가름 나는 것입 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달라고 했습니다(왕상 3:9). 지혜가 어디서 나옵니까? 듣는 데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주의해서 들을 때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갈릴리에서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그물을 씻고 접어서 집으 로 돌아가려 할 때였습니다. 어부의 삶에서 그물을 씻고 가지런히 정리했다는 것은 하루 일과가 끝난 것입니다. 건축할 때도 장비를 다 씻고 정리했는데 다시 일을 시 작하라 하면 못 합니다. 그런데, 나사렛에서 자랐고 목수 집안의 출신인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고기잡이의 전문가인 베드로는 즉시 그물을 깊은 데로 가서 내렸 - 4 -
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5:8)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는 잡힌 고기가 많아서 좋아서 펄쩍펄쩍 뛰지 않았습니다. 고기를 챙기는 것 은 아예 뒷전이고 베드로는 주님 앞에 가서 엎드렸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들을 때는 거룩한 두려움이 생깁니다. 성도가 언제부터 신앙이 성숙해 갑니까? 하나님을 무서워할 때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롭고 인자하신 분 입니까? 그러나 그 하나님을 무서워해야 합니다. 거룩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스승의 말씀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주의 종의 말씀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거룩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 삶에, 내 사역에 하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기업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보고가 열려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청지기로 살면 하늘 문이 열립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 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 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가 하늘 문을 엽니다. 이제 하나님이 부어주 시는 복을 받아 누립시다. 쌓아 놓고 베풀 수 있는 복을 받읍시다. 하나님이 주실 때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이런 기도 를 해 봅시다. 하나님 우리 가정에 복이 쌓이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하늘 문이 열리기를 소원합니다. 존스토 트와 제임스 패커의 뒤를 이어 21세기 대표적인 복음주의 신학자로 명성을 날린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내 영혼의 자서전 이란 책을 썼습니다. 제가 읽으면서 감동 을 많이 받았습니다. 나를 치유하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안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첫째, 그는 고독한 시간일수록 더욱 그리스도께 귀를 기울여 집 중하라고 합니다. 고독은 성장의 발판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 도 언약 백성의 미래는 하나님의 장중에 있다고 했습니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후 광명의 빛을 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맡겨야 합니다. 셋째, 신앙생활의 회의가 들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으라고 합니다. 무력해 질 그때가 진정한 무사가 되는 기회입니다. 다 버려지고 쓸모없고 나 홀로 선 것 같은 그때 그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하늘 문이 열려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하 늘의 빛이 비취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기름 부으시면 빈들이지만 거기가 성전입니다. 비록 가시떨기 가운데 서 있어도 거기가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우리 은밀한 죄를 하나님께 회개합시다. 우리 시선을 하나님 께 고정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순복하며 살아갑시다. 하늘 문이 열 릴 줄 믿습니다.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