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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fication & Law 목 차 2010 / 8 특별기고 1. 북한인권법안의 검토와 제정 필요성 김 규 헌 / 1 연구논문 1. 북한 경제특구법의 변천과 전망 유 욱 / 13 2. 북한에 의한 금강산관광지구의 우리 자산 몰수ㆍ동결과 관련한 법적 쟁점 연구 한 명 섭 / 48 3. 근대 민주주의 법원리와 북한 헌법 권 영 태 / 81 4. 유럽 경제통합의 역사 : 아시아 경제통합을 위한 남북통일의 의미 강 득 록 / 111 실무 및 남북관계 동향 1. 남북관계 관련 주요 제ㆍ개정 법령 167 반출 반입 승인대상품목 및 승인절차에 관한 고시 167 남북협력기금 운용관리규정 169 2. 머리기사로 본 최근 남북관계 동향 185 3. 남북관계 주요 통계 현황 246

특별기고 북한인권법안의 검토와 제정 필요성 김 규 헌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目 次 Ⅰ. 머리말 Ⅱ. 남북간 합의와 관련하여 Ⅲ. 북한의 인권관( 人 權 觀 )과 관련하여 Ⅳ. 북한인권 관련 법률의 명칭과 입법형식에 관하여 Ⅴ. 북한인권법안의 내용상 문제점에 관하여 Ⅵ.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의 명칭에 관하여 Ⅶ. 맺는 말 Ⅰ. 머 리 말 2008년 5월 대한변호사협회가 주관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치를 위한 세미나, 같 은 해 7월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주최한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창립 2주년 기념 2008 북한인권백서 발간 세미나, 그리고 2010년 2월 대한변호사협회가 주관한 제1회 인 권 환경대회 중 북한인권에 관한 입법 필요성 세션 등에 필자가 각 발표자 또는 토 론자로 참가하게 된 기회를 이용하여 세계 최악의 수준에 빠진 북한의 인권상황을 직 시하고 그 개선방안 강구를 위한 법률적 접근의 필요성과 더불어 북한지역 내에서의 구체적 인권침해실태를 우리 정부 차원에서 수집, 기록, 보존함으로써 인류 보편의 인 권관에 기초한 사법적 대응장치를 조속히 마련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2 통일과 법률 이러한 주장을 계속 펴게 된 개인적 체험의 일단을 이 자리에서 감히 밝힌다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안 내용 중 논의의 중심에 서있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 라는 시설 설치의 기본 구상이 통일 전 서독 정부의 Zentrale Erfassungsstelle der Landesjustizverwaltungen 라는 특수기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데 위 기관을 한국 관리로서는 본인이 최초로 1990년 12월경 방문하여 그 결과를 독일통일의 법적 기초와 법률 사법의 통합 이라는 내부 문건 중에 포괄하여 보고하는 한편, 그 다음 해 2월과 3월에 걸쳐 법률신문, 법조( 法 曹 ) 지 등 법률유관 언론에 별도로 상세히 소개하는 기고를 하였기 때문이다. 독일통일이 성취된 직후의 혼돈된 상황에서 그 실체와 조직, 그리고 운영 내역 등이 대외비로 감싸져 있던 위 기관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기회에 독일의 Erfassungsstelle라는 기관을 우리도 설치하여 통일 후 북한지역에서의 사법적 정의실 현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할 것인지 여부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라고 당시 남북간 화해무드가 형성, 발전되는 분위기 속에서 과격(?)하다고 보여질만한 주 장을 본인이 펴고 또 그 무렵 관계 기관 회의 등에 참석하여 여러 차례 같은 소신을 개진한 바 있었지만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 그 이래 실로 20년 가까이 지나서야 비로소 북한지역의 인권문제에 관한 논의가 공 론화되고 또 무르익게 된 데 대하여 유감과 회오가 없을 수 없는 것이나, 우리 국회에 서 북한인권의 실상을 직시하고 장차 남북한 통합과정에서 반드시 극복하여야 할 기 본적 인권침해라는 불법 (Unrecht) 청산의 과제를 입법적 접근의 방식으로 그 해결방 안을 모색하는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음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특히, 2010년 1월 20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현 지구상 최악의 인권탄압국가로 지목 되는 북한 정치범수용소들의 생지옥과 같은 참상을 우리 국가기관 차원에서는 최초로 조사, 분석한 자료를 발표함으로써 범정부적으로도 북한지역의 인권침해 사태에 대한 중 장기적 정책 로드맵과 실천 계획을 수립하여야 할 시점이 현재화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지역 인권침해의 실상 및 주변 이해당사국의 북한인권법 제정 등 국제적 상황을 고려함과 아울러 북한 인권을 다루려면 법과 제도의 기초 위에서 이 루어져야 한다는 견지 아래 조속히 북한인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당위 론이 힘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2007년 10월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이르기까지 약 35년 동안 남 북 당국사이에 - 사실적, 법적 구속력의 문제를 떠나 -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던 합 의와 관련하여, 또한 국가 민족을 개인의 기본권에 우선시키는 북한 특유의 인권관과 관련하여 새로운 입법을 위한 논의의 발단에 관한 재성찰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며, 나

북한인권법안의 검토와 제정 필요성 3 아가 제정의 대상이 될 법률의 명칭 및 입법형식과 관련하여, 그리고 2009년 11월 국 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대안으로 제시, 올 2월 통과된 후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는 북한인권법안의 내용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문제점은 없는지, 또한 북한 인권기록보존소라는 명칭 자체와 관련하여서도 다시 논의할 여지는 없는지 검토를 요 하므로 이하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Ⅱ. 남북간 합의와 관련하여 남북 당국간 최초의 성문합의서(written agreement)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1972년 도의 7 4 남북공동성명 에서 조국통일 3대원칙으로서 자주적 해결, 평화적 실현 외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 하여야 한다 는 원칙론이 명시된 바 있음을 이 자리에서 다시 환기해 보고자 한다. 그와 같은 원칙론은 1982년 1월 대통령 국정연설시, 민족자결의 원칙에 의거하여 겨레 전체의 자주의사가 반영되는 민주적 절차와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성취하자는 민족 화합 민주통일방안, 그리고 북한을 경쟁, 적대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민족의 일부로 포용하여 상호신뢰 화해 협력을 바탕으로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민족공동체의 일원 으로 인식을 전환하자는 1988년의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7 7 대통령 특별선언, 또 1989년 9월 대통령 국회특별연설을 통하여, 민족사회의 동질화, 민족공동생활권 형성을 위한 소위 남북연합( 南 北 聯 合 ) 의 과도적 단계를 상정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으로 일응 연면하게 이어져왔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1991년 12월 양측 총리에 의해 체결된 납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약칭, 남북기본합의서( 南 北 基 本 合 意 書 ) 1992년 2월 발효) 전문에 서도 7 4 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라고 명시 되어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 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 임을 전제로 하여 남북한 당국이 정치 적인 책임을 지고 성의있는 이행을 상호 약속하는 일종의 공동성명으로서 법적 구속 력이 있는 것은 아니며(헌법재판소 1997. 1. 16. 89헌마240; 대법원 1999. 7. 23. 98두 14525 참조), 따라서 동 합의서상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 다 (제1조),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 (제2조),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 상을 하지 아니한다 (제3조)라고 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선언적 의미 밖에 지 니지 못한다 하겠으나, 남북쌍방이 합의서상의 제반 의무사항을 이행치 않을 경우 아

4 통일과 법률 무런 제재수단이 확보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국제법상 주체 간에 체결된 합의의 한 형태인 신사협정 (Gentlemen's Agreement)으로서 상호 신뢰에 기초하여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해야 할 정치적 기본 책무는 엄연히 현존한다 할 것이므로 그 구속력을 전 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타당치 아니하다. 그런데 그 후 남북 정상의 상봉을 계기로 발표된 2000년 6월 15일의 남북공동선언, 2007년 10월 4일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에서 남북관계를 통일 지 향적으로 확대, 발전시키기 위한 합의가 거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2009년 1월 소위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 남북간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들 에 대한 무효화를 일방적으로 선언하였는 바 이에 남북기본합의서 또한 폐기 선언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우세하기는 하나, 기왕의 위 합의서 체결 당시 김일성 주석에 의해 위 합의서가 조약에 준해 비준되었다는 사실관계에 비추어 위 위원회 일방의 선언만으로 무효화되었다고 해석함에는 신중을 요한다. 이러한 논의 선상에서, 통일 이전 동서독 정부간 핵심적 다툼이었던 2개 국가론 (Zweistaatentheorie) 과 1개 민족론("Zwei Staaten, aber eine Nation") 의 대립에서 새로운 입법 모색을 위한 법리적 시사를 찾아볼 수 있다고 사료된다. 1972년 12월 체결된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 사이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 (약칭, 기본조약( 基 本 條 約, Grundvertrag) )은 다음 해 6월 동 조약이 발효된 이후 동 서독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본과 베를린에 상주대표부를 각 설치하고 유럽의 안보 및 협력에 관한 헬싱키협정에 동시 서명하고 각기 적성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상호 독자적인 외교활동을 인정하는 등 정상적 선린관계 (normale gutnachbarliche Beziehungen)를 발전시킴으로써 서로의 국가적 주권을 승인하도록 하였던 두 독일 간 법적지위에 관한 합의였다. 따라서 동독정부로서는 위 조약 제6조에 양 국가의 고권(Hoheitsgewalt)이 각 국가 영토에 한정된다는 원칙에 입각한다. 각국은 대내 및 대외문제에 있어서 각자의 독립 성과 자주성을 존중한다 라고 명시된 바와 같이 당연히 각국에 재판고권이 유보되는 것이므로 동독지역 거주자들은 동독의 헌법상 국민으로서의 권리(공민권)와 의무를 누 리고 부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서독정부는 서독 기본법에서 독일인의 국적은 박탈되어서는 아니 된다 라고 규정하고 있는 독일인 (Deutscher)의 개념은 반드시 서독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동독주민도 서독과의 관계에서는 독일인으로 보아 그가 서독 국가질서의 보호영역(Schutzbereich der staatlichen Ordnung) 내에 들어오는 한 서독 법원에 그 법률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며 동독지역에서 독일인에 의하여 범죄가

북한인권법안의 검토와 제정 필요성 5 행하여진 경우 서독 형법을 적용하여 형사처벌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이러한 입장은 연방헌법재판소 1973. 7. 31. 결정에 의해서도 지지되었음). 결국, 1961년 8월 13일을 기점으로 동독정부가 일방적으로 동 서독간의 경계선을 장벽과 철조망으로 모두 봉쇄하고 탈출자들을 총격으로 사상케 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같은 해 11월 연방과 각주 법무부의 협의 아래 접경지역이 가장 긴 니더작센(Niedersachsen) 주의 작은 도시 잘츠기터(Salzgitter)에 중앙기록보존소 를 설치한 이후 위 기본조약 의 체결에도 구애되지 않고 또한 동독 측의 집요한 철폐 요구에도 미동함이 없이 이 기관을 계속 운영하였던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입장에 서 있었던 때문인 것이다. 요컨대, 서독으로서는 독일민족의 단일성이라는 명제를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재통일의 가능성을 열어 놓을 의도로 민족 (Nation) 내지 국적 (Staatsangehörigkeit)의 문제를 유보 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독의 경우와는 달리 헌법(기본법)에 아무런 변경도 가하지 않은 채 편입 ( 編 入, Beitritt)을 전제로 동독지역에 기본법이 적용 확장될 근거규정과 장차의 통일헌법 제정을 전제로 기본법의 한시적 성격을 나타내는 규정 등을 그대로 존치시 켰던 것이다( 법조 1991년 8월호 졸고, 구 동독의 법질서와 사법조직 ( 上 ) 175면 참조). 결국 우리로서도 위 남북 당국사이에 계속하여 천명되었던 내부문제 불간섭의 원칙 에도 불구하고, 우리 헌법상 북한지역의 주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된다는 당연한 해석론으로부터 논의를 출발하여야 할 것으로 사료되는 것인 바, 따라서 북한인권과 관련된 입법을 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결론을 그 모두에 명백하게 선언하는 규정을 둠 으로써 기존의 남북간 합의들과 사이에 해석상 충돌의 여지를 미리 방지하도록 조치함이 매우 중요할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Ⅲ. 북한의 인권관( 人 權 觀 )과 관련하여 북한 헌법상으로도 인신의 불가침과 법에 근거하지 않은 구속이나 체포의 금지(제79조), 언론 표현의 자유(제67조), 신앙의 자유(제68조), 거주 여행의 자유(제75조) 등 기본적 인권이 명시되어 있으며 재판의 공개와 변호권 보장도 규정(제164조)되어 있다. 나아가, 죄형법정주의가 천명되고(형법 제6조) 형사사건의 취급 처리에서 인권의 철저 보장원칙(형사소송법 제5조), 비법적인 체포 구속의 금지(동 제177조)가 규정되는 등 인권관련 규정들이 민 형사 실체, 절차법 및 가족법, 노동법 등에 산재하고 있다. 특히, 2009년 4월, 약 11년만에 개정된 북한의 신 헌법은, 국가의 임무로 근로인민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 는 규정(제8조 후단)을 추가, 명시하였는 바 이는 그 자체만 으로 볼 때 내부적인 인권관의 진일보로 보여 질 수도 있겠으나, 근자에 들어 점차 험

6 통일과 법률 악해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눈길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시각도 엄존함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본 개정 헌법은 국방위원장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영도자 (제100조),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 (제102조)으로 못박는 등 국방위원장의 역할과 권한을 구 체화, 강화함으로써 이른바 김정일 헌법 으로서 색채를 뚜렷이 하고 있음). 그러나 북한 인권을 논함에 있어서는,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라는 헌법 제63조 규정 으로부터 분명하게 알 수 있듯이 어디까지나 국가의 주권이 인권보다 우선순위에 놓 여있다는 시각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 즉, 공민은 조직과 집단을 귀중히 여기며 국가의 법과 사회주의적 생활규범을 지켜 야 하고 국가의 안전을 위하여 몸바쳐 투쟁하여야 하는 것 (헌법 제81, 82, 85조)이므 로 공민 개개인의 자유권은 국가와 민족 우선의 이데올로기 아래서 제도적, 내재적 제 약을 면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접근함에 있어서는, 북한 역시 가입된 국제연합(UN)의 헌장 제1조에서 모든 사람의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촉진하고 장려함에 있어 국제적 협력을 달성한다 라고 선명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인권이 지니는 보편적 가치가 국가 주권의 영역을 넘어선다는 인식을 명백히 함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1948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1966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채택 된 국제인권규약, 그리고 1993년 6월 유엔이 주재한 세계인권총회에서 채택된 비엔 나 인권선언 에 의하면, 인권의 보호는 국제사회와 모든 국가의 최우선적 사항이자 의 무로서 유엔의 모든 회원국은 그 실현을 위하여 국제협력을 강구하고 지속적인 노력 을 경주토록 하는 등 이미 인권문제는 특정 국가의 문제를 넘어 인류 보편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북한지역에서의 인권침해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북한 당국의 선의적 조치에 기댈 수준을 이미 넘어서고 있음이 객관적 사실로 인정되므로 이에 국제사회의 인도 주의적 개입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하여 북한주민들에 대한 인 도적,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인권문제를 정면에서 제기하여 지속적으로 이슈화함으로써 인권상황의 실질적 개선과 변화가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요컨대, 북한의 인권보호와 개선을 목표로 한 입법을 함에 있어서는 북한 특유의 주 체사상에 기초한 문화적 상대주의에 따라 국제사회의 인권개선요구를 주권침해 내지 내정간섭으로 규정하여 문제제기 자체를 근원적으로 봉쇄하려는 북한정권의 입장을 극복하여, 인권의 천부성, 보편성, 항구성을 모두에서 명시하는 선언적 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북한인권법안의 검토와 제정 필요성 7 Ⅳ. 북한인권 관련 법률의 명칭과 입법형식에 관하여 북한의 인권문제를 국내 입법화한 미국에서 2003년 처음 입안되었던 법률은 그 전년 도에 제정된 북한난민구호법 (North Korean Refugee Relief Act)에 연원을 둔 북한 자유법 (North Korean Freedom Act)이었으나 북한의 정권교체 내지 체제붕괴 의도로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한다는 지적에 따라 2004년도에 들어서 북한인권법 (North Korean Human Rights Act)이라는 다소 중립적 표현으로 바뀌었다. 이는 미국의 시각에서 또 다른 깡패국가 (Rogue State)들인 쿠바, 이라크, 이란, 미얀마 등을 대상으로 1990년대 이래 제정한 일련의 민주화 유도 법률들이 대부분 정권을 바로 겨냥하고 있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 우리 17대 국회 이래의 입법 활동을 본다면, 북한인권증진법, 북한인권재단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 등도 있으나 북한인권법 이라는 명칭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외 교통상통일위원회의 대안으로 이 번 국회에서의 심의 대상인 법안의 명칭도 북한인 권법 이다. 이는 자국민의 납치문제를 중심으로 북한인권문제에 접근하여 법률화한 일본과 달리 미국의 입법례와 유사하게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인권보호에 필요한 사항 (제1조 참조) 전반에 걸쳐 규정하고자 하는 의지가 깔려있기 때문인 소이라고 보여진다 그렇지만 독일 통일전 서독정부의 경우 동독의 인권문제 전반을 포괄하려는 입법을 한 바는 없으며, 위 Erfassungsstelle의 설치도 니더작센주 법무장관이 공포한 1961년 11월 15일자 설치령(Errichtung einer Zentralen Erfassungsstelle der Landesjustizverwaltungen ; AV d. MdJ.)에 근거하고 있을 따름이고, 더욱 위 기관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상세한 사항은 그 소장(Leiter)에게 위임되어 있을 뿐임을 참고로 할 필요가 있다(독일통일당시 위 기관 소장으로서 필자와 면담하였던 브라운슈바이크고등검찰청 검사 Heiner Sauer와 사무과장이었던 Hans-Otto Plumeyer가 공저한 Der Salzgitter Report (1991)의 부록 문서 6. 참조). 오히려 서독정부의 노력은 대가 지불의 형태인 이른바 Freikauf 를 통한 동독 정치 수용범들의 석방, 동독 탈주자(Flüchtling), 이주민(Übersiedler)들에 대한 지원, 동독 주민 들의 서독 여행과 이주 확대, 그리고 독일인권연맹, 전독( 全 獨 )연구소, 스탈린주의 희생자협회, 8 13베를린장벽희생자협회, 국제인권협회, 국제사면위원회 등 유관 단체나 조직들과의 협력 등 사실적 활동으로 계속되었음을 우리도 알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정치적 이니셔티브에 따른 입법 만능의 사고로 인하여 지나치게 추상적인

8 통일과 법률 명칭으로 많은 내용을 포괄하는 법률을 제정할 경우 자칫 그 집행의 실효성이라는 측면 이나 다른 대북정책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의문이 제기될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결국 북한인권과 관련된 입법형태로서는 북한인권에 관하여는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이 법을 적용한다 (제4조)는 식으로 포괄 입법하기 보다는 각 핵심적 항목 별로 개별 법률 및 하위 규정을 제정하여 그 소관을 명백히 하고 미구에 있을 사정변경에 탄력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 봄도 상당하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Ⅴ. 북한인권법안의 내용상 문제점에 관하여 북한인권법안에 의하면, 통일부에 북한인권자문위원회 를 설치하고, 통일부장관이 매년 북한인권증진에 관한 집행계획을 수립하여 국회에 보고하여야 하며, 외교통상부 에 북한인권대외직명대사 를 두는 한편, 통일부장관의 지도 감독을 받는 북한인권 재단 을 설립하여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한 조사 연구 등 사업을 수행토록 하며, 통일 부장관이 관련 국내 기관 단체 간의 역할을 조정하고, 관계 중앙행정기관에 대한 협조 요청을 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그렇지만 개개의 규정들을 볼 때 국가 와 정부 의 개념상 혼용이 우려됨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즉, 북한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책무의 귀속은 국가 (제3조), 북한인권대사와 북한인권재단을 두는 주체는 정부 (제7, 10조),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 적 지원과 국제적 협력, 그리고 남북교류 협력 강화의 주체는 국가 (제8, 9, 14조), 민간단체의 활성화 지원과 필요한 재원의 확보 주체는 정부 (제15, 17조)로 구구하게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 헌법의 해석론과 관련하여, 배타적 고권 내지 주권에 의한 통치조직을 지니는 사회집단으로서의 국가( 國 家 ) 가 북한불법정권에 의한 정치적 실체와의 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관념으로 상정되어야 할 것인지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할 것이며, 나 아가 위와 같이 불명료하고도 추상적으로 규정할 시 구체적 책임의 소재와 소관이 뚜 렷치 않을 수 있다는 흠마저 있으므로 입법기술상 신중한 재접근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가 설립하고자 하는 북한인권재단 에 관하여 살펴보건대,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민감성을 고려하여 북한의 인권실태 조사는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이 낫다는 고려도 반영된 결과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첫째, 북한인권의 실태조사와 문제해결을 위한 국내외적 광범위한 사업을 수 행할 대규모의 조직을 (일정 목적 실현을 위해 출연된 재산에 독립성을 부여할 따름인

북한인권법안의 검토와 제정 필요성 9 법적 인격체로서) 재단( 財 團, Stiftung)으로 함에 근본적 의문이 있다는 점, 둘째, 재단 법인은 비영리임에도 그 재원으로서 조성수단이 특정되지 않은 수입금 을 예정하고 (제11조제1항제2호), 일개 사법인( 私 法 人 )에 통일부장관의 요청에 따라 인원 수의 제약 없이 관계기관 소속 공무원이 파견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제11조제4항)도 실체는 국가의 행정목적임에도 외형은 사법관계로 포장되도록 하였다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는 점, 셋째, 공익적 목적의 법인임이 명백함에도 공익법인의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 (법 제8895호)이 아닌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 을 준용함에 그치도록 한 미비 점도 엿보인다는 점, 넷째, 북한 인권 관련 남북 접촉 및 교류협력, 국제적 교류 및 협 력, 그리고 관련 시민단체 지원 등 고도의 정책적 판단과 막대한 액수의 자금소요가 수반되는 집행기능이 몇몇 재단 임원(이사, 감사)의 결정과 판단에 일임되어도 문제가 없겠는지 의문이 있다는 점, 다섯째, 비록 북한지역의 인권이 그 대상으로 국한된다고 는 하지만, 제10조제3항에 열거된 7개의 사업이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9조에 규정된 인권에 관한 법령 제도 정책 등 조사와 연구,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조사와 규제, 인 권상황에 대한 실태조사, 인권과 관련된 국제기구 및 외국의 인권기구와의 교류 협 력 등과 상당 부분 중복되고 있으며, 나아가 정부조직법상 인권에 관한 사무는 법무부 장관이 관장한다는 규정(제27조제1항)과 인권옹호에 관한 종합정책의 수립 시행, 인 권옹호단체에 관한 사항, 인권 관련 국제조약 법령에 관한 조사 연구, 국제인권규약 에 따른 정부보고서 등 작성 등을 법무부 인권국에서 분장토록 한 규정(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11조의2제2항)과도 충돌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볼 때, 이러 한 중도반단적 형태의 조직 설립에는 신중한 정책적 재검토와 더불어 보다 치밀한 법 률적 뒷받침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2007년 12월 21일 공포, 시행된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법률 (법률 제8719호)에 의하면,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민간인 주민에 대한 식량 의약품 접 근박탈, 노예화, 강제추방 이주, 불법 감금, 고문, 성적 폭력 등 인도( 人 道 )에 반한 죄 (제9조)를 범한 내국인과 외국인, 대한민국 영역 밖에서 같은 죄를 범한 내국인을 처벌 할 수 있도록 규정(제3조)하고 있으므로 - 우리 법체계의 사실상 규범적 타당 범위에 대한 논란을 떠나 - 북한지역에서 행해지는 폭력적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사법처리의 가능성은 이미 열려져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위 사법적 처리는 당연히 공소제기 여부의 결정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증거 자료의 수집, 확보와 그 신빙성 내지 증명력 부여를 위해서는 국가소추기관의 관여가 논리적 귀결이 될 수 밖에 없다. 나아가 통일 이후 불법판결의 파기 내지 재심 청구, 복권, 피해배상 등 불법청산을

10 통일과 법률 위한 광범위한 사법적 조치의 병행이 또한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터이다. 그렇다면 북한지역에서의 구체적 인권침해 사례를 수집, 기록, 보존함으로써 장차 언 젠가의 통일에 대비하여 사물의 본성(Natur der Sache) 내지 조리( 條 理 )에 반하는 불 법( 不 法 ) 그 자체를 형사제재하고 피해를 원상회복시키기 위한 본질적 업무의 수행은 의당 북한인권법을 제정함에 있어서 핵심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결국 위와 같은 중차대한 책무를 부담, 이행하여야 할 조직으로서는 별도의 국가기 구가 새로이 구성됨이 타당하다 할 것이고 이에 통일부, 법무부, 행정안전부, 국가정보원, 국가인권위원회 등 유관부처 사이에 기관이기주의 를 떠난 긴밀한 협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바, 지난 5월에 부처간 협의를 통하여 북한인권기록보존 담당기구를 법무부 산하에 두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하니 이는 앞서 본 바와 같은 사법적 기능의 당위론에 상응한 정책적 결단이라 할 것이어서 위 법안 심의과정에서 그 결정사항이 그대로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지난 수년간 민간 베이스로 예산과 인력의 어려움 속에서 고투하여 온 북한인 권정보센터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의 업무적 성과도 국가 차권에서 차제에 정밀 점검하여 그 자료와 필요인원을 흡수, 운영하는 방향으로 새 기구가 가동된다면 그 공 신력과 효율성이 더욱 제고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비록 위 법안이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되었다고는 하지만 북한인권 보호를 위한 커 다란 걸음을 내디뎠다는 원론적 자족감에 안주하지 말고 본회의까지 가는 단계에서 여러 법리적 문제점과 시행상 예상되는 효율성의 측면을 충분히 재검토하여 졸속입법에 따른 부작용이 최소화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Ⅵ.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의 명칭에 관하여 1991년 당시 위 기관을 소개하면서 고심하였던 부분 중 하나는 그 명칭을 어떻게 번 역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독일정부 스스로 나치스정권 아래서 인권유린의 불법을 자행한 자들을 추적하기 위하여 바덴-뷔르템베르크 州 루트뷕스부르크 市 에 설치, 운영 하였던 또 하나의 Erfassungsstelle (zu den nationalsozialistischen Unrechte)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위 기관의 주된 기능은 관련 범죄인들을 형사처벌하기 위하여 그 증거, 증빙자료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 기록, 보존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독일어 erfassen 은 본디 (손으로) 쥐다, 붙잡다 라는 의미로서 그 뜻이 파악

북한인권법안의 검토와 제정 필요성 11 하다, 이해 인식하다 또는 포괄하다, 등록 기록하다 등으로 전화되기도 하는 타동 사이므로 그 명사형인 Erfassung 을 어떻게 옮길 것인지 본인으로서는 상당 기간 머리를 짜내지 않을 수 없었다(본디 개소, 장소 등을 뜻하는 'Stelle'는 이러한 경우 관서, 공무 소 를 가리키게 되므로 문제가 없음). 결국 위 기관이 수행하는 실질적 기능에 주안을 맞춰 동독정부의 정치적 폭거 내지 만행을 형사제재하기 위하여 각주 법무부에서 위탁을 받아 관련 범죄사례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준검찰기관 이라고 정의하면서 이를 줄여 중앙기록보존소 (또는, 중앙법 무기록보존소 )로 의역하였던 것이다( 법조 1991년 3월호 졸고, 獨 逸 의 ERFASSUNGSSTELLE 175쪽 및 법조 1991년 7월호 졸고, 동 서독의 주요사건 일지 195쪽 참조). 따라서 위와 같이 기록보존 이라는 용어를 썼음은 record and preserve 라는 취지 와 의미로 메카니즘 프로쎄스에 중점을 두었던 것인데, 그 후 2007년도에 민간 주도로 창립된 북한인권기록보존소 를 비롯하여 어느덧 위 명칭이 마치 보통명사처럼 정착된 데 대하여 명명( 命 名 ) 장본인으로서 감회가 깊을 수 밖에 없다 하겠으나, 최근의 논의 대상인 위 기구의 명칭은 preservation of a file (files) 와 같은 뉘앙스로 받아들여져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북한인권(또는, 북한인권침해사례)을 기록, 보존한다는 의미로 볼 것인지, 아니면 북 한인권(또는, 북한인권침해사례)의 기록을 보존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것인지 뉘앙스 상의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또한 인권의 기록, 보존 이라는 용례가 과연 문법 에 올바르게 부합되는 것인지 의문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 설치형태 및 운영 주체 여하에 따라 소( 所 ) 라는 명칭을 그대로 원용해도 문제가 없다 할 것인지, 또한 행정적 집행권한을 부여할 것인지, 수집 보존되는 자료와 그 취합과정에 공신력은 어 떻게 부여되어야 할 것인지 등 여러 관련되는 문제점 들을 아울러 고려하여 기구 명명의 점에도 신중을 기하여야 할 것이다. Ⅶ. 맺는 말 오늘의 북한은 1970년대 소련의 수용소군도( 收 容 所 群 島, Gulag Archipelago)도 비교 되지 못할 만큼 참혹한 상황 속에 놓여있는 데다가 솔제니친이나 사하로프와 같은 내 부의 양심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 조차 완전히 봉쇄되어 있으며 절대독재정의 3대에 걸친 집요한 세습연장 기도에 더하여 최근 화폐개혁의 실패로 나락에 빠진 경제상황의 심각성은 이러한 참담한 상태가 어디까지 갈지 아예 예측을 못하게 하고 있다. 분단에 이은 동족상잔 이후 6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우리로서는 통일을 민족의 지상

12 통일과 법률 과제로 그 성취를 욕구하여 왔을 뿐, 과연 통일이 성취된 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또한 통일을 예기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준비를 하여야 할 것인지 특히 법조, 사법부문에서 깊이 강구, 추진되지 아니한 아쉬움이 있다. 베를린장벽이 100년은 더 존속될 것이라고 동독 절대권력자 호네커(E. Honecker)가 호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989년 10월 동독정권 수립 40년 기념식에 참석한 고르바초프 (M. S. Gorbachev)는 너무 늦게 오는 자는 삶이 벌할 것이다 라고 압박하였고 그로 부터 불과 1년여 만에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독이라는 공산이데올로기의 정체( 政 體 )는 이윽고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 양 지역 주민간 심정적 분단상태의 봉합을 위하여는 불법정권 청산에 따른 피해자 구제 및 복권과 가해자 처벌 그리고 원상회복이라는 지루하고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하였으며 현재도 그 과정은 완료형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국회에서의 북한인권법안은 2005년 8월 처음 발의된 이후 상임위 통과에만 4년 반의 세월이 걸릴 정도로 진통을 겪었으며 이제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전체 회의에 상정이 되는 데에만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전망조차 어렵게 하고 있다. 그렇지만 독일 재통일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듯이, 평화적 통합을 성취하기 위한 가장 안정된 담보는 정치적 타결이나 정책적 지침의 강구 보다는 이질적인 양 체제의 융화와 과도적 마찰의 최소화를 객관적 기준에 따라 지향할 수 있는 법적 기틀의 치밀한 준비에 있다고 확신한다. 통일의 기회란 인위적 의도나 기대, 또는 예측과 달리 가변적인 역사의 수레바퀴 속 에서 갑자기 닥치게 될 것이다. 이 번 우리 국회에서의 입법을 위한 노력과 중론화 과정을 계기로 하여 우리 헌법 제4조에도 천명되고 있듯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에 터잡은 통일이 이룩될 훗날, 통일정부의 재판고권( 裁 判 高 權 )에 근거한 불법청산 및 원상회복을 가능토록 하기 위한 논의가 더욱 심화되어 사물의 본성과 보편적 양식에 기초한 사법적 대응체계가 조속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마련될 것임을 고대한다.

연구논문(1) 1)북한 경제특구법의 변천과 전망 * -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을 중심으로 - 유 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개성공단 법률자문위원) 요 약 문 1990년대 이후 북한경제 회생의 방안으로 추진되어 온 북한 경제특구는 핵문제, 북미관계, 남북관계의 소용돌이 가운데에서 진행되고 있다. 김일성의 유훈사업으로서 북한 최초의 경 제특구로서 북한 개방정책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의 비중으로 추진된 라선경제무역지대는 입지선정의 문제,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으로 실패하였다. 1998년 김정일 체제가 공식화하면서 라선경제무역지대는 자유경제무역지대에서 한발 물러선 퇴행적인 모습을 가 지게 된다. 2000. 6. 15. 선언과 뒤 이은 북미관계와 북일관계 진전은 북한이 새로운 경제 특구를 시도하는 기초가 되었다. 라선경제무역지대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은 북한은 입지조 건의 특성에 따라 신의주, 개성, 금강산을 상이한 특구로 지정하고 북한이 신뢰하는 특정 외국인(양빈)과 회사(현대)에 특구개발을 전면적으로 위탁하는 방식으로 경제특구의 활로 를 찾으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 역시 중국 정부에 의한 양빈 구속, 제2차 핵위기의 발생 등으로 인하여 다시 좌초되었고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만이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은 경제회생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경제특구개발을 추진하고 있고 이러한 정책은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두 차례에 걸친 핵위기 가운데에도 변함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정책기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이 최근 천안함 사태 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을 유지하고 있는 사실을 통하여 확인된다. 따라서 체제위기가 치 명적인 상황으로 치닫지 않는 한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등 경제특구를 스스로 포기 하는 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런데 북미관계, 남북관계, 북일관계라는 체제위기를 규정하는 국제정치는 경제특구 개 발의 선행조건이자 제약요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 북미관계 정상화, 북일관계 정상화 등을 통한 체제안정성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북한은 경제회생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 이 글은 2009. 4. 30. 있은 북한법연구회 창립 15주년 기념 학술대회( 북한정권 60년: 북한법의 변천과 전망 및 과제 )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한 것이다.

14 통일과 법률 경제특구를 추진하면서도 그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통제장치를 강구하여 왔고 이는 개성공업지구와 신의주특별행정구에 경제특구를 북한사회와 단절시키는 모델로 나타났다. 중국심천경제특구로 대표되는 중국 경제특구가 창구 실험 확산의 장이었던 것과 비교하여 개성공업지구에는 북한 기업의 참여가 배제되고 북한 주민은 단지 임금 노동자로서만 참 여하게 되어 북한 사회와 단절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공업 지구법과 신의주특별행정구법은 라선경제무역지대법과 비교하여 진일보하였고 어떤 의미 에서는 중국 경제특구와 비교하더라도 파격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양면성은 라 선경제무역지대의 실패 이후 북한이 경제특구를 통한 경제회생의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외부에 위탁하는 형식을 취하여 한편으로는 성공을 도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특구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는 북한당국의 복잡한 의도를 보여준다. 따라서 이러한 양면성은 긍정 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부정적인 측면은 북한사회와 단절된 특구 이기 때문에 북한이 개혁개방의 진정한 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긍정적인 면은 이러 한 진전과 파격에 비추어 북한이 일정한 조건에 부합하는 경우 보다 더 진일보한 형태로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이다. 비록 이제까지 북한이 경제특구의 실험과 관련하여 혹여 체제안정을 해칠까 노심초사하고 주저하며 회의하고 이따금 퇴행적인 모습 을 보이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일정한 방향으로 더디게 움직이고 있으며 드물게 파격적인 진보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므로 북한의 경제특구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배 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주제어 : 라선경제무역지대, 경제특구, 북한경제특구법, 금강산관광지구, 개성공업지구, 신의주특별행정구, 개혁개방 目 次 Ⅰ. 들어가며 Ⅱ.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의 입법 배경 1. 배경 - 세계사적 전환에 대한 대응 2. 라선경제무역지대 위상과 성격 3. 북한 경제특구의 공통점 - 북미관계, 남북관계의 종속변수 Ⅲ. 라선경제무역지대법 개요 및 개정 경과 1. 1990년대 이후 급증한 북한 법 채택 2.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의 구조와 개요 3. 자유경제무역지대법에서 라선경제무역지대법으로 4.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의 성과와 교훈 Ⅳ. 신의주특별행정구법의 파격과 좌절 Ⅴ. 개성공업지구법의 한계 - 진일보, 그러나 단절적인 Ⅵ. 글을 맺으며

북한 경제특구법의 변천과 전망 15 Ⅰ. 들어가며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남북정부간 대화단절과 금강산 피격사건, 키리졸브 훈련 등을 계기로 악화되어 왔고 2010. 3. 26. 천안함 사건으로 인하여 최악의 단절상 태에 들어가 남북 협력사업 중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오던 개성공단 마저 그 지속가능 성에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 지난 10년간 남북관계의 기초가 되어온 6.15 선언 및 10.4 선언의 준수여부가 논란이 되며 남북관계는 경색되어 10. 4 선언에서 언급되었던 여러 사업들은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1) 오바마 정부의 출범 이후 미국이 이란, 쿠바 등 과거 적대적인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 과 달리 북한과 미국 사이의 관계는 2009년 북한의 장거리로켓 실험과 UN 안전보장 이사회의 제재 등으로 현재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북 한이 과연 궁극적으로 핵을 포기할 것인가, 2) 또 북미관계 개선과 개혁개방의 길로 나 갈 것인가를 놓고 여러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3)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1990년대 이 후 나타난 북한의 개혁개방 관련 법제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은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 한 의지를 가늠하여 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법은 사회내 이해관계의 조정과 타 협의 결과를 반영하는 것인바, 1990년대 이후 입법된 많은 북한의 외국인투자 및 경제 특구법에는 개혁개방을 둘러싼 북한 내부의 여러 입장이 조정되고 타협된 결과가 반 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1990년대 이후 쏟아낸 수많은 투자 및 경제특구 관 련 입법은 북한에 일정한 대외 개방의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의지는 핵문제, 북미 1) 10. 4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은 개성공단의 발전에 장애가 되어 온 3통문제의 해결과 2단계 개발, 서해 평화협력지대 설치, 조선협력사업, 개성-신의주 철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및 공동이용, 백두산 관광 및 지하자원개발에 합의하였다. 이 선언에 의하면 해주경제특구, 조선단지 등 여러 경제특구가 설치 되게 된다. 2) 이종석, 북한의 비핵화 의지 평가와 함의, 세종연구소 정세와 정책 2009년 4월호, 북한이 핵을 포 기할 것인가에 관한 가설을 1 핵 고수를 통한 생존추구전략, 2 이익 극대화전략 및 3 상황편승전략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는데, 앞의 두 논의는 양극단 즉 북한은 어떤 경우든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 라는 주장과 북한은 이미 핵을 포기하기로 했고 다만 최대한 많은 것을 받아내기 위해 게임을 하고 있 다는 주장이다. 이종석 박사는 그 보다는 상황편승전략 즉 핵 포기에 대한 대가가 충분하면 핵을 포기 할 것이고 그렇지 않거나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국제적 연대가 허약하면 핵 보유를 시도할 것이라는 가 설이 이제까지 북한의 행태를 더 잘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3) 대외경제연구원의 조명철 박사는 2009. 4. 경제정책변화와 개혁개방전망 이라는 발표에서 북한이 향후 취할 수 있는 정책방향을 1 과거의 자립적 계획경제로의 복귀, 2 내부 개선형 개혁과 부분적 개방의 결합, 3 국제사회의 지원을 바탕으로 한 시장 지향적 개혁개방 세 가지로 정리한 다음 세 번째 시나 리오가 일어날 가능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켜야 가능하다는 말과 같다며 가장 가 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주기적으로 순환되면서 결국 점진적으로 붕괴가 일어나는 시나리오라고 주장하고 있다.

16 통일과 법률 관계, 남북관계 등의 파도 속에서 지난 20년간 나름대로 일정한 흐름을 나타내왔다. 일 회성, 이벤트성 입법만을 대상으로 하여 입법자의 의지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20년이 라는 기간은 입법자의 의지를 평가하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4) 따라서 북한에 개혁개방의 진정한 의지와 관련하여 성급히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지난 20년간 입법의 흐름을 통하여 드러난 북한 입법자의 의지를 읽어내는 것이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은 1990년대 이후 등장한 북한의 경 제특구법의 흐름을 살펴보고 그 중에서도 특히 최초의 경제특구법인 라선경제무역지 대법과 하위규정의 흐름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주요한 흐름 을 정리하고 평가하는데 초점이 있기 때문에 개별법과 규정에 대한 일반적인 문리해 석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이 글에서는 비교 평가의 준거 틀을 사회주의 국가 경제 특구법제의 성공모델인 중국 심천경제특구법제로 상정하고 그 입법 흐름에 비추어 북 한의 경제특구법제가 어디에 있는지, 지난 20년의 흐름 가운데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 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또한 라선경제무역지대법 의 흐름 속에서 신의주특별행정구기본법(이하 신의주특별행정구법 )과 개성공업지구 법이 갖는 의미와 한계를 살펴보고 향후 북한 경제특구법제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전 망하여 본다. 이글에서는 아래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하였다. (1) 라선경제무역지대가 1990년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은 1993년 채택된 이후 16년 동안 본래의 입법목적인 외부투자유치에 적합한 모습 으로 개선되어 왔는가? 그렇지 않다면 신의주특별행정구법이나 개성공업지구법 등 이후 진전된(어떤 의미에서는 파격적인) 입법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2) 신의주특별행정구법과 같은 파격적인 입법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특 별행정구 초대 장관으로 임명되었던 양빈의 구속 이후 법이 유야무야된 이유는 무엇인가? 4) 북한법의 규범력에 대하여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고 과거 1960년대, 70년대 남한 보다 더 심하게 현실 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현실에서 규범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명목적, 장식적 법이나 규정이 상당수 존재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컨대 공무원자격판정법(2005. 11. 23.)으로 북한 공무원자격급 수가 1~6급까지 있고(제10조) 3년마다 자격판정을 하며(제12조) 제자리급수판정에서 불합격하면 한 급 내리는 것(제16조)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북한법 역시 북한 사회 나름의 필요가 있어 만들어진 규범이 므로 북한의 현실을 상당부분 반영하고 따라서 북한법을 통하여 어느 정도 까지는 북한의 속내를 엿보는 것도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북한 경제특구법의 변천과 전망 17 (3) 개성공업지구법이 라선경제무역지대법에서 진전한 점은 무엇이며 차이는 무엇인가? 향후 북한 경제특구 확대시 개성공업지구법은 모델법으로서 확산 가능성이 있는가? (4) 라선경제무역지대법, 신의주특별행정구법 및 개성공업지구법의 공통점과 차이는 무엇이며 북한이 상이한 모델을 동시에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5) 전체적으로 북한 경제특구법제의 전망을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 경제특구와 같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 창구 실험 확산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는가? Ⅱ.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의 입법 배경 1. 배경 - 세계사적 전환에 대한 대응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은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및 체제전환, 남한의 북방 외교에 따른 남한과 소련의 수교(1990. 9.)와 남한과 중국의 관계형성과 수교(1992. 8.) 등 세계사적 전환과 그에 따른 체제 위기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로 인하여 북한은 해외시장의 70%를 일시에 상실 하게 되었고, 5) 소련의 구상무역 중단 및 경화결재 요구 6) 와 중국의 구상무역 중단 결 정 7) 등으로 인하여 식량난, 에너지난 등 심각한 경제난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북한은 남한과는 UN 동시가입(1991. 9.), 남북기본합의서 체결(1991. 12. 13.) 및 한반도비핵화선언(1991. 12. 31.), 일본과는 북일국교정상화(1991. 1.~1992. 11.까지 8 차에 걸친 회담), 8) 미국과는 북미고위급회담(1992. 1. 22.부터 시작하여 1994. 10. 21. 제네바 합의까지)을 추진함으로써 남한, 일본 및 미국과의 관계 정립을 통한 체제안정을 도모하게 된다. 당시 북측의 위기의식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는 남북기본합의서 5)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추진한 주역인 김정우가 1996년 미국의 한 세미나에서 밝힌 내용이다. 배종렬, 라진-선봉지역 외자유치정책에 대한 평가 및 전망, 주 65. 6) 소련의 경화결제 요구에 따라 북한의 대소무역액은 1990년 22.2억 달러였던 것이 1991년 6분의 1인 3.7억 달러로 급감하였고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95년부터는 1억 달러를 하회하게 된다. 배종렬, 북한의 외자도입 현황과 과제 -라선경제특구 사례분석-, 수은북한경제 2005년 겨울호, 33면. 각주 12. 7) 중국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과의 무역에서 국제가격의 절반 이하로 상대방에게 물품을 공급하 는 우호가격제와 물물교환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방식 대신에 현금결제방식을 요구했고 이러한 조치는 북한경제를 궁지에 몰아넣는 요인이 되었다. 이종석, 북한-중국관계 1945-2000, 중심(2000), 275면. 8) 신정화, 일본의 대북정책 1945~1992년, (2004) 오름 224-248면. 북한은 1990. 10. 27. 일본 자민당 및 사회당 양당과 조선노동당의 제2차 3당회담에서 국교수립을 제안하였고, 1991. 1. 30.부터 1992. 11. 6. 까지 8차에 걸쳐 북한과 일본 간에는 국교정상화회담이 진행되었으나 결렬되었다.

18 통일과 법률 협상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북측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던 사항 (예컨대 군사적 신뢰조치 구축에 관한 제12조 및 해상경계선과 관련하여 쌍방이 관할 하여 온 구역 이라는 문구 등)들도 받아들이는 파격을 보이며 협상타결을 서둘렀고 9) 이는 위기 타개를 위한 김일성의 의지였다. 10) 정치적으로는 북남, 북일, 북미관계의 정 립을 도모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외부투자유치를 위한 경제특구를 설립하여 경제회생을 모색하는 것이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경제특구방식의 채택이라는 결정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북한계획경제의 실패가 있었고 가깝게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있었 던 합영사업의 실패가 있었다. 11) 라진선봉지역이 대상지역이 된 것은 두만강지역개발 프로그램(TRADP: Tumen River Area Development Programme) 12) 이 UNDP에 의하여 동북아지역의 최우선 사업으로 지정되어 이 프로그램과 연결되어 개발의 계기를 잡을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지리적으로 평양에서 원거리에 위치함에 따라 개방의 충격을 제 한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된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은 그 명칭 자체가 파격적인 것으로 13) 이는 1991년 채택 당시 북한이 외부투자유치를 통 9) 임동원, 피스메이커, 중앙books, 200~229면에는 당시 남북기본합의서 협상과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 결과 남북기본합의서에는 현 시점에서 보더라도 북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여러 사항이 포함되게 되었고 이후 체제위기가 호전되지 않고 북미관계, 남북관계, 북일관계가 기대와 달리 풀리지 않자 남북기본합의서는 방기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한마디로 북한은 위기에 대한 대 응을 위하여 지나치게 나갔다고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입장정리가 최근 남측의 남북 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선언, 6.15선언 및 10. 4선언을 포괄하여 이행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에 대 하여 격렬하게 거부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10) 김일성은 1991. 11. 경제부문 관리들에게 세계사회주의 시장이 없어진 변화된 환경은 우리로 하여금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대담하게 진출하여 대외무역에서 전환을 일으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고 강조하 며 서방과의 경제관계 확장을 촉구했다. 이종석, 앞의 책, 267면. 한편 김일성은 1992. 2. 19. 제6차 남 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되자 성명을 발표하여 이번에 발표된 합의문건들은 북과 남 의 책임 있는 당국이 민족 앞에 다진 서약입니다. 공화국 정부는 이 역사적인 합의문건들을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길에서 이룩한 고귀한 결실로 여기고, 그 이행을 위하여 노력을 다해나갈 것 임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라고 하였다. 임동원, 앞의 책, 247면. 한편 비공개 오찬석상에서 김일성은 투자유치, 관광유치, 남북경제협력을 강조하였으며 이후 당면한 경제난 극복을 위하여 남북관계개선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와 1992. 7. 남북경제협력 시범사업을 위한 김달현 경제부총리의 서울 파견 등을 하였다. 임동원, 앞의 책, 254면. 11) 신지호, 북한의 개혁개방, 한울(2000), 90-110면에 의하면 원래 북한은 1980년대에 들어 경제악화 에 대처하기 위하여 원산, 남포 등에 경제특구 설치를 신중히 검토하였으나 부작용을 우려하여 합영 방식에 의하여 타개할 것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합영기업이 모두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경제특구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12) TRADP의 1990년대 초반 및 중반까지의 경과에 대하여는 심의섭 이광훈 두만강개발 10년의 평가와 전망, 대외경제정책연구원(2001), 26-27면. 참조. 13) 1996. 8.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김정우 위원장은 인터내셔날 트리뷴지와의 인터뷰에서 라진선봉지 대의 모델은 굳이 말한다면 싱가포르이며, 세계 각국의 자유무역지대들에 대한 연구검토결과 싱가포 르형이 가장 유용하다고 판단했다 고 말했다. 이러한 언급은 자유경제무역지대라는 명칭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짐작하게 한다. 김삼식, 싱가포르모델을 지향하는 라진-선봉,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북한 뉴스레터 1997. 7. 1면.

북한 경제특구법의 변천과 전망 19 하여 경제를 살려보려는 의지를 엿보게 하는 것이었다. 14) 2. 라선경제무역지대 위상과 성격 라선경제무역지대는 그 면적이 746km² 15) 로서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특구인 심천경제 특구 면적 391.7km²의 약 2배에 달하고 신의주특별행정구 132km², 개성공업지구 40km²와 비교하여 보더라도 엄청난 규모이다. 16) 당초 북한은 이곳에 10개 공업단지를 건설한다는 구상이었다고 한다. 17) 이와 같이 엄청난 규모의 지대 를 시도한 것은 김일 성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김일성은 사망 이틀 전에도 지대 건설을 독려 하는 교시를 남길 정도여서 지대개발은 김일성의 유훈사업으로서 위상을 갖게 되었다. 18)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많은 북한의 외국인투자법이 1990년대에 쏟아져 나온 것은 자유 경제무역지대를 위한 것이었다. 또한 라선지대는 북한 정무원 산하 대외경제위원회가 총괄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바, 대외경제위원회는 1992. 무역부, 대외경제사업부 및 대외 경제위원회의 3개 무역관련기구를 통폐합한 것으로서 대외무역 관련 권한을 전담하는 기구였다. 북한은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위하여 비정부조직의 성격을 갖는 대외경제협력 추진위원회와 산하조직인 조선경제개발총회사를, 대외경제위원회에 경제개발총국을, 지 방조직인 자유경제무역지대당국을 각각 설립하였다. 19) 투자유치를 위한 설명회도 북미간 14) 김일성은 1991. 10. 초 10일간 중국을 방문, 경제특구를 시찰하며 덩샤오핑을 비롯 중국 최고지도자들 로부터 (1) 중국처럼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 개방과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2) 외국의 자본과 기 술을 도입하려면 평화적 환경조성이 필수적이니 조속히 남북협상을 타결지으며, (3) 미국 핵무기 철수 의 호기를 활용하여 북한의 핵개발 의혹도 해소할 것을 권고 받았고 이를 받아들여 귀국 즉시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소집, 북남협상의 조속한 타결과 비핵화 합의, 경제특구 설치에 대한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임동원, 앞의 책, 205면. 15) 1991. 12. 28. 최초 지정시에는 621km²였으나, 1993. 9. 24. 746km²로 확장됨. 16) 형혁규, 새로운 북한, 중국이 대안인가, 한국학술정보, 2006, 166면. 17) 신흥(250ha: 경공업), 후창(100ha: 기계공업, 식품건재), 백학(200ha: 전기전자), 관곡(550ha:석유화학), 홍의(180ha: 자동차조립 및 부품생산 거점, 기계부품), 웅상(200ha: 목재가공, 경공업, 선박수리), 창평 (60ha: 선박수리 및 조선), 우암(300ha: 관광업용경공업), 사회(350ha: 자동차 및 부속품), 원정(140ha: 종합경공업) 등이었다. 배종렬, 북한의 외자도입현황과 과제 -라선경제특구 사례분석-, 수은북한경제 2005년 겨울호 48면 각주 52. 18) 김일성은 묘향산 담화(1990. 12. 18.~19.)에서 지대개발을 최초로 언급한 이후, 지대개발의 총계획 초 안을 직접 검토(1993. 3. 12.)하였으며 사망하기 직전에도 지대개발과 발전소건설관계부문일꾼협의회 (1994. 6. 14.), 경제부문책임일꾼협의회(1994. 7. 6. 사망 이틀 전) 등에서 지대개발을 다그칠 것을 지 시하였다. 이로써 자유경제무역지대 개발은 김일성의 유훈사업이라는 위상을 갖게 되었다. 배종렬, 북한의 외자도입현황과 과제 -라선경제특구 사례분석-, 수은북한경제 2005년 겨울호 31면 각주 4. 김일성은 나진선봉지역을 잘 개발하면 여기서 번 돈 만으로 전 국민에게 윤택한 생활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신지호, 앞의 책, 117면. 19) 배종렬, 북한의 외자도입현황과 과제 -라선경제특구 사례분석-, 수은북한경제 2005년 겨울호 50면 각주 57. 주한 EC상공회의소가 주최한 국제세미나에 라선지대 개발을 담당하던 임태덕이 보낸 메시지 내용이다.

20 통일과 법률 제네바합의(1994. 10. 21.) 이후 북경(1995. 9.), 뉴욕(1995. 10.), 워싱턴학술회의(1996. 4.), 동경(1996. 7.) 등 국제적인 대도시에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김정우 위원장이 직접 하는 등 20) 적극적으로 투자유치를 위한 노력을 하였다. 이와 같은 규모와 김일성 의 유훈사업이라는 점과 더불어 이후 북한이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위하여 들인 노력은 자유경제무역지대가 최소한 1990년대에 단순한 하나의 공단, 실험단지 정도가 아니라 북한 개방정책의 성패를 좌우하는 비중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와 같이 거대한 지대개발에는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이 소요되는 바, 북한은 이 자금을 북일관계 정상화에 따른 일본으로부터의 배상금 자금(5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로 추산), 21) 북미관계 정상화 이후 국제금융기구로부터의 지원, 22) 또는 두만강개발 계획에 따른 국제기구의 지원 및 기타 한국기업을 포함한 민간기업 투자 등으로부터 조달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라선경제무역지대는 중계무역기지, 수출주도형 경공업기지, 금융관광무역의 종합서비 스단지 등 세 가지로 규정되었다. 23) 북한 최초의 경제특구로서 외부투자유치를 위한 다양한 법제도를 실험하는 실험장으로서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라선경제 무역지대는 신의주특별행정구나 개성공업지구, 금강산관광지구와 달리 특정인이나 기 업과 무관하게 준비되었다는 점도 특징이다. 3. 북한 경제특구의 공통점 - 북미관계, 남북관계의 종속변수 다른 경제특구인 신의주특별행정구, 개성공업지구, 금강산관광지구에 관한 법이 채택 된 시기는 2002년이다. 시기적으로 자유경제무역지대법 채택 이후 9년만인데, 그 배경을 보면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의 출현과 일정한 유사성이 발견된다. 그것은 남북관계, 북미 관계, 북일관계의 일정한 진전이다. 2000. 6. 15. 선언은 북한 입장에서 남북관계 진전의 기초였다. 그것은 앞서 본 것처럼 남북기본합의서가 1990년대 세계사적 전환이라는 위 20) 배종렬, 북한의 외자도입현황과 과제 -라선경제특구 사례분석-, 수은북한경제 2005년 겨울호 34면 각주 17. 21) 북한은 나선지대에 대한 투자유치를 위한 사전작업으로서 1991. 4. 일본의 동아시아연구회와 일조무역회 대표단을 초청하여 소련과의 무역방식 변경이 북한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관계를 수립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나선지대에 경제특구를 설치할 계획이 있음을 알린 바 있다. 형혁규, 앞의 책, 162면. 각주 63. 22) 김익수, 두만강지역개발사업과 한반도 - 북한의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 진출에 관한 우리의 전 략구도를 중심으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1994. 12.), 23면. 북한은 한국기업의 투자를 나선지대 개 발유인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한국 기업간에 경쟁을 부추기고 다른 한편 ADB 등 국제금융기구에의 가입을 추진, 획득된 국제금융기구의 공공차관자금을 활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23) 김익수, 앞의 책, 27-28면. 자유경제무역지대법 제2조는 자유경제무역지대는 특혜적인 무역 및 중계 수송과 수출가공, 금융 봉사지역으로 선포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일정한 령역이다 라고 규정했다.

북한 경제특구법의 변천과 전망 21 기 국면에서 체제안정을 도모할 목적으로 서둘러 작성된 관계로 당시 남북관계의 현 실을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점, 남북기본합의서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사망 이 후 고난의 행군기 동안 북한붕괴론의 득세와 이에 따른 흡수통일의 공포를 경험하였 다는 점 등 남한에 대한 경계로 남북관계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24) 이러한 때에 채택된 6. 15선언은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남북관 계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서 북한에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편, 북미간에는 제 네바합의 이후 의회의 공화당 장악으로 인하여 제네바합의 이행에 문제가 발생하였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1998년 대포동 미사일 실험이후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인 조명록 의 방미와 북미공동코뮤니케(2000. 10. 12.),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방문(2000. 10. 23.-25.) 등으로 북한이 희망해온 북미관계정상화의 중요한 진전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 여졌다. 다른 한편 북일관계에서는 고이즈미 일본수상의 2차에 걸친 평양방문과 조일 평양선언(2002. 9. 17.) 25) 으로 역시 정상화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남한, 북미, 북일 관계의 안정화의 기초가 마련되면서 북한은 상이한 세 가지 형태의 경제특구를 시도 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 경제특구법 채택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남북관계, 북미관계, 북일관계의 안정과 진전이 경제특구를 위한 선행 조건이자 제약 요건이라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체제위기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 것인데, 그 결과 경제특구는 종속 변수가 되고 만다. 중국 경제특구의 경우 초기에 여러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6) 경제특구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이를 보장하는 일관된 정책을 취하였고 1989년 천안문 사태가 있었음에도 이후 1992년의 등소평이 남순강화를 통하여 개혁개방의 정책기조를 다시 확인하면서 경제특구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특히 심천경제특구의 경우 1992년 중국 정부로부터 전국적인 입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 입법을 할 수 있는 수권입법권을 부여받게 됨에 따라 법제도적 자율성을 누리며 안정적이고 투자자 우호적인 법제 인 24) 김정일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하여 방북한 임동원 전 국정원장에게 많은 것을 합의하려 하 기보다는 실천할 수 있는 것만 합의하자고 제안하며 과거 좋은 남북합의문건이 세 개나 있음에도 제 대로 실천된 것이 없으며 본질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비슷한 내용의 합의문건만 자꾸 만들 필 요가 없다는 발언을 하였다. 임동원, 앞의 책, 60면. 25) 조일평양선언 제2항은 쌍방은 일본측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에 대하여 국교정상화후 쌍방이 적절 하다고 간주하는 기간에 걸쳐 무상자금협력, 저리자장기차관제공 및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 등의 경제협력을 실시하며 또한 민간경제활동을 지원하는 견지에서 일본국제협력은행에 의한 융자, 신용대부 등이 실시되는 것이 이 선언의 정신에 부합된다는 기본인식 밑에 국교정상화회담에서 경제 협력의 구체적인 규모와 내용을 성실히 협의하기로 하였다 고 규정하였다. 26) 중국 심천경제특구의 경우에도 대규모 논쟁이 세 차례 있었다. 1980년대 초 벌어진 1차 논쟁의 주제는 특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는가? 였고, 2차 논쟁은 1980년대 중엽에 특구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가? 였 으며, 1990년대 중반에 있었던 3차 논쟁은 특구를 계속하여 시행할 것인가?, 계속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후자오량, 중국의 경제지리를 읽는다, 휴머니스트(2003) 402면.

22 통일과 법률 프라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심천속도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급속한 경 제특구발전이라는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27) 이와 같이 경제특구를 새로운 지식, 기술 및 자본을 받아들이는 창구로 활용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제도(노동계약제, 토지사용 권의 유상양도, 주식회사 제도 등)을 실험하며 그 성과를 타 지역에 확산한 것이 중국 경제특구 등의 모델인바, 이 경제특구의 지속적인 성장을 통한 경제회생을 위하여 중 국은 일관된 정책을 취하였던 것이다. 반면 북한의 경우 체제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깊 어짐에 따라 경제특구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하고 있고 이것은 경제특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와 경제특구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최근 금강산 관광의 중단과 개성공업지구 통행제한, 현대아산 직원 억류 및 임금인상 요구 등은 이러한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다른 한편, 북미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북한은 미국이 주도적으로 부과하고 있는 각종 경제제재를 면하지 못하고 있고 그에 따라 미국을 위시한 서방자 본의 투자에 제약이 가하여지며 세계은행, ADB 등 국제금융기구의 가입도 좌절되어 경제특구 건설에 소요되는 자금조달도 불가능한 상태이다. 1990년에 시작된 북일수교 협상은 북한 핵문제가 돌출해 북미갈등이 심화되면서 좌절하고 말았으며 이에 따라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자금조달에 실패하게 되었다. 바로 여기서 북한은 워싱턴을 경유 하지 않고는 주요 서방국가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어떠한 대외관계의 개선도 불가능 하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고 이후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대외생존전략의 주축 으로 삼게 된다. 28) 이와 같이 북미관계, 북일관계는 북한 경제특구의 발전을 근본적으 로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요컨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대응방안으로 추진 되는 북한 경제특구는 북미관계 및 북일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북미관계, 북일관계의 전개양상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여야 하는 처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경제특구의 우선순위가 체제위기 문제 보다 하위라 하더라도 경제특구는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불가피한 대안이므로 체제위기가 치명적인 상황에 이르지 아니할 경우 북한이 경제특구 자체를 포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상의 논의는 북한 경제특구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일정한 시사점을 준다. 우선 최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개성공단과 관련하여 과연 북한이 개성공단을 포기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생각하여 보면, 북한 입장에서 개성공단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1990년 이후 약 20년 가까이 지속하여 온 개방의 문을 닫는 것이 되어 정책기조를 변경하는 27) 유욱, 중국의 경제특구법제의 내용과 개성공단법제에 주는 시사점, 2005년 북한법 및 남북관계법 학술 회의 발표문, 6-9면. 이하 중국 심천경제특구법제에 관한 언급은 위 글에 근거한 것이다. 28) 이종석, 앞의 책, 269면.

북한 경제특구법의 변천과 전망 23 것이 되고 이는 외부세계에 대하여 더 이상 개방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질 것이며 이렇게 될 경우 외부로부터 자본을 조달할 방법은 없어지게 되어 결국 경제붕 괴를 막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 체제위기가 치명적인 상황에 이르지 아니하는 한 개성공단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음으로 북한이 새로운 경제특구를 시도할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대답은 10. 4 선언에서 찾을 수 있다. 10. 4 선언에 따르면 해주지역과 주변지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경제특구건설을 추진하며,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기로 되어 있다. 새로운 경제특구건설이 합의된 것이다. 이러한 합의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10. 4 선언이 6. 15 선언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 다시 말하여 남한의 화해협력에 대한 진정성이 확인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북한이 10. 4 선언에서 새로운 경제특구를 포함하여 여러 항목에 합의한 것은 6. 15 선언 이후 남북관계발전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북한에게 남한이 갖는 비중이 중대함을 시사한다. 이 점은 북한이 2005. 7. 6. 북남경제협력법을 채택한 데서 도 확인된다. 1991년 자유경제무역지대 지정 이후 18년이라는 시간이 경과하였음에도 북미관계, 북일관계 정상화가 요원한 현실 속에서 고립무원, 자력회생불가의 위기에 빠져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경제특구가 가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남한인 것이다. 결국, 북한의 경제특구는 북한경제회생을 위한 거의 유일한 방안이면서 동시에 북한 사회에 자본주의의 영향력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에 향후에도 지속될 것으 로 예상된다. 문제는 체제위기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체제위기의 파도가 경제특구의 정상적인 성장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자유경제무역지대라는 경제특구가 지 정된 지 18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북한 경제특구에서 중국 경제특구에서 보았던 창구, 실험, 확산의 성과 29) 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Ⅲ. 라선경제무역지대법 개요 및 개정 경과 1. 1990년대 이후 급증한 북한 법 채택 1990년 이전에 북한에 법 이라는 명칭의 존재가 대단히 적어 2004년 발간된 북한의 대중용 법전 에 수록된 111건의 법을 시기별로 보면, 1960년대 1건, 30) 1970년대 6건, 31) 29) 후자오량, 앞의 책, 407-408면. 30) 국적법(1963. 10. 9.) 31) 지방주권기관법(1975. 12. 19.), 민사소송법(1976. 1. 10.), 재판소구성법(1976. 1. 10.), 어린이보육교양법

24 통일과 법률 80년대 7건 32) 에 불과하고 나머지 97건이 90년대 이후 채택된 것이다. 33) 1990년대에 들 어 법 이 급격하게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1980년대말 이후 대내외적인 환경변화에 대한 북한의 대응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대외적으로 1980년대말 이후 소 련 및 동유럽 공산국가의 몰락은 북한경제와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와 북한은 체 제위기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응책으로 북한 외부자본유치를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고 이와 관련한 많은 법을 입법하게 되었다. 이 러한 필요는 1998년 개정 헌법 제18조에 반영되었다. 북한의 1992년 개정 헌법 34) 제18 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은 근로인민의 의사와 리익의 반영이며 국가관리의 기본무기이다. 법에 대한 존중과 엄격한 준수집행은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에 게 있어서 의무적이다. 국가는 사회주의법률제도를 완비하고 사회주의법무생활을 강화 한다. 고 규정하였다. 이는 북한의 1972년 개정 헌법 35) 제17조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 화국의 법은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의 의사와 리익을 반영하고 있으며 모든 국가기관, 기업소, 사회협동단체 및 공민들에 의하여 자각적으로 준수된다. 고 규정한 것과 비교하여 법이 국가관리의 기본무기 이고, 법준수 집행이 의무적이며 국가에 사회주의법률제도를 완비하고 사회주의법무생활을 강화 할 의무를 명시하였다는 점에 서 진일보한 것이다. 이러한 두 규정의 차이는 대내적으로 법준수 의무화를 헌법에 규 정하여야 할 정도로 강력한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즉 북한 내부적으로 법 체계의 혼란과 그에 따른 무질서, 법에 대한 무시 등의 현상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정상적인 국가운영을 위하여 법을 국가관리의 기본무기 로 명시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1992년 헌법 제18조는 이전과 달리 법을 국가관리의 기본무기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며 이러한 의지는 1990년대 이후 많은 법 의 채택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흐름은 수령의 교시나 지도자의 말씀을 통하여 국가관리를 하여 왔던 관행에서 벗어나 법제도적 체계화를 통하여 국가관리를 하겠다는 의지 36) 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1976. 4. 29.), 토지법(1977. 4. 29.), 사회주의로동법(1978. 4. 18.) 32) 인민보건법(1980. 4. 3.), 해운법(1980. 8. 10.), 세관법(1983. 10. 14.), 합영법(1984. 9. 8.), 환경보호법 (1986. 4. 9.), 항만법(1986. 9. 4.), 철도법(1987. 10. 22.) 33) 북한에 1990년대 이전까지 법 형태가 적었던 이유에 대하여는 여러 형식의 개별법규가 다수 존재하고 있어 그 법규들을 통하여 실생활에 대한 법적 규제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북한 사회의 폐쇄성과 특수성으로 인하여 기존의 개별법규들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부문법을 제정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법무부, 북한법의 체계적 고찰(I) -민사관계법- (1992), 30면. 34) 1992. 4. 9.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3차회의에서 수정보충, 이하 1992년 헌법 이라 함. 3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1972. 12. 27.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 회의에서 채택, 이하 1972년 헌법 이라 함. 36) 박정원, 북한 김정일체제의 법제정비 현황과 전망, 한국법제연구원 (2002) 150면.

북한 경제특구법의 변천과 전망 25 2.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의 구조와 개요 가. 적용법과 체계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은 1993. 1. 31.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결정 제28호로 채택되었 다.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의 채택은 외국인투자법제의 정비와 함께 진행되었다. 즉, 자유 경제무역지대법 채택 전인 1992. 10. 5. 합작법, 외국인투자법, 외국인기업법이 채택되 었고,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이 채택된 같은 날 외화관리법과 외국투자기업 및 외국인세 금법, 1993. 10. 27. 토지임대법, 1993. 11. 24. 외국투자은행법이 각 채택되었다. 37) 이 후 1995년에 대외경제계약법(1995. 2. 22.), 보험법(1995. 4. 16.), 대외민사관계법(1995. 9. 6.)이 각 채택되었다. 자유경제무역지대법에는 자유경제무역지대법과 하위규정 및 외국인투자관련법이 적용 된다. 자유경제무역지대에 일반적인 북한법이 적용되는가? 이에 대하여 자유경제무역 지대법은 자유경제무역지대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이 행사된다. 이 지 대에서는 국가가 특별히 세운 제도와 질서에 따라 경제무역활동을 진행한다. (제2조 제2문)고 규정하고 자유경제무역지대안에서 모든 활동은 이 지대와 관련한 공화국의 법과 규정에 따른다. 자유경제무역지대와 관련한 법과 규정에 규제되여 있지 않은 사 항은 공화국의 해당 법과 규정에 준한다. 고 규정하였다(제6조). 이 지대와 관련한 공 화국의 법과 규정 에 자유경제무역지대법과 하위규정 및 외국인투자 관련 법규가 포함 된다고 보는데 문제가 없으나 관련 한 규정이 어디까지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더구나 경제무역활동 만을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활동 이라고 되어 있으므로 더더욱 불명확하다. 제2문의 준한다 는 문구는 결국 일반법이 적용된다는 취지로 해석되는데 굳이 준한다 는 문구를 사용한 것은 제2조에서 특별히 세운 제도와 질서에 따라 경 제무역활동을 진행한다 고 규정하여 자유경제무역지대에 특별히 세운 제도와 질서에 따르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짐작되나, 입법기술상 으로는 불명확한 표현이다. 결국 자유경제무역지대법과 하위규정 및 외국인투자 관련 법규에서 명시적으로 규정한 사항은 북한 일반법의 적용이 배제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은 북한 일반법이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37) 1992. 5. 북한의 IAEA에 대한 보고서 제출 이후 미국의 문제 제기가 있자 북한은 반발하여 1993. 3. NPT 탈퇴를 하였고 1994. 봄 제1차 핵위기가 조성되었다가 1994. 10. 21.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지게 되어 일단락된다. 이러한 위기상황 속에서도 외국인투자법제의 정비가 진행된 것은 북한의 개방정책 이 일시적인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포기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성을 갖는 정책의 기본축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6 통일과 법률 이처럼 북한의 일반법이 적용되는 점은 신의주특별행정구, 개성공업지구 및 금강산 관광지구법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신의주특별행정구법은 국가는 신의주특별행정 구에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부여한다. (제2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내각, 위 원회, 성, 중앙기관은 신의주특별행정구사업에 관여하지 않는다 (제6조)라고 하여 일반 북한법이 적용되지 아니함을 명시하였다. 개성공업지구법은 제9조에서 공업지구에서 경제활동은 이 법과 그 시행을 위한 규정에 따라 한다. 법규로 정하지 않은 사항은 중앙 공업지구지도기관과 공업지구관리기관이 협의하여 처리한다. 고 하고, 금강산관광지구법 제4조는 관광지구에서 관광과 관광업 그 밖의 경제활동은 이 법과 그 실행을 위한 규정에 따라 한다. 법규로 정하지 않은 사항은 중앙관광지구지도기관과 관광지구관리기관이 협의하여 처리한다. 고 하여 역시 북한 일반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북한 경제특구법제의 진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라선지대 실패를 교훈삼아 투 자유치를 위한 법제도적 환경을 만들기 위한 북한의 진전된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중국 심천경제특구가 1992년 중국 중앙정부로부터 수권입법권을 받아 중앙 입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법제 입법권을 부여받은 이후 수백 건의 입법을 진행한 것과 대비된다. 38) 다소 단순화하여 표현하면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은 북한법과 연속 의 체계라고 할 수 있는데 비하여 개성공업지구법과 금강산관광지구법은 단절 의 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심천경제특구법제는 연속도 단절도 아닌 독자 의 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제6조는 하위법규의 체계를 규정 으로 정리하였다. 과거 외국인투자관련 하위 법규의 명칭에 세칙 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예가 있으나, 39) 라선경제무역지대법에서는 하위규정의 형식을 규정으로 정리하였고 그에 따라 아래와 같은 여러 규정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 그런데 규정의 하위법규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고 이 점은 개성공업지구법이 시행세칙, 사업준칙으로 정리한 것과 다르다(개성공업 지구법 제22조 제4호, 제25조 제9호). 자유경제무역지대법과 하위규정이라는 체계는 이후 개성공업지구법과 금강산관광지구법에도 동일하게 이어지고 있다. 나. 하위규정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의 하위규정은 아래와 같다. 40) 38) 유욱, 앞의 글, 6-9면. 39) 합영법실시세칙(1985. 3. 20.), 합영회사소득세법 세칙(1985. 5. 17.), 외국인소득세법 세칙(1985. 5. 17.) 등이 그것이다. 개성공업지구법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행세칙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0) 북한법연구회가 발간한 2008 최신북한법령집(이하 2008 북한법령집 )에 수록된 것이다. 각 하위규 정에 대한 해설은 신웅식 안성조, 북한의 외국인투자법, 한국무역협회 (1998) 참조.

북한 경제특구법의 변천과 전망 27 (1) 자유경제무역지대 외국인출입규정 41) (1993. 11. 29.) (2) 자유경제무역지대 외국기업상주대표사무소규정(1994. 2. 21.) (3) 자유무역항 규정(1994. 4. 28.) (4) 자유경제무역지대 외국인체류 및 거주규정(1994. 6. 14.) (5) 자유경제무역지대 건물양도 및 저당규정(1995. 8. 30.) (6) 자유경제무역지대 세관규정(1995. 6. 28.) (7) 자유경제무역지대 가공무역규정(1996. 2. 14.) (8) 자유경제무역지대 외국인투자기업공인조각 및 등록규정(1996. 3. 28.) (9) 자유경제무역지대 공업지구개발 및 경영규정(1996. 4. 30.) (10) 자유경제무역지대 광고규정(1996. 4. 30.) (11) 자유경제무역지대 국경검역규정(1996. 6. 18.) (12) 자유경제무역지대 경계통행검사규정(1996. 7. 15.) (13) 자유경제무역지대 관광규정(1996. 7. 15.) (14) 자유경제무역지대 외국투자가대리인규정(1996. 7. 15.) (15) 자유경제무역지대 자동차등록규정(1996. 7. 15.) (16) 자유경제무역지대 중계무역규정(1996. 7. 15.) (17) 자유경제무역지대 청부건설규정(1996. 7. 15.) (18) 자유경제무역지대 화폐류통규정(1996. 7. 15.) (19) 자유경제무역지대 가격규정(1996. 9. 1.) (20) 자유경제무역지대 기업소관리운영규정(1996. 11. 23.) (21) 자유경제무역지대 가내편의봉사업무규정(1997. 4. 12.) (22) 자유경제무역지대 조선원대부규정(1997. 4. 12.) (23) 자유경제무역지대 국내투자기업창설 및 운영규정(1997. 5. 17.) 이상 규정의 채택 시기를 보면 1993. 1. 법이 제정된 이후 1995년까지 채택된 규정이 5개이고, 1996년에 15개의 규정이 채택되었으며, 1997년에 3개의 규정이 채택되었다. 한편, 같은 무렵 채택된 외국인투자 관련 하위규정은 아래와 같다. (1) 토지임대법 시행규정(1994. 9. 7.) (2) 외국투자은행법 시행규정(1994. 12. 28.) 41) 괄호 안은 채택일자이다.

28 통일과 법률 (3) 외국인투자기업 부기계산규정(1995. 12. 4.) (4) 외국인투자기업 부기검증규정(1996. 7. 15.) (5) 외국인투자은행 부기계산규정(1996. 7. 15.) (6) 임대토지부착물의 이전보상규정(1996. 12. 30.) (7) 토지건물의 출자규정(1996. 12. 30.) 이상 규정들의 채택시기를 보면 1991년 자유무역경제지대 지정 이후 하위법규의 틀 이 갖추어지기까지 약 5년의 기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그때까지 라선경제 무역지대에 대한 투자가 법제도적 틀이 갖추어지지 아니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개성공업지구법과 비교하여 보면 개성공업지구의 16개 하위규정은 개성공업 지구법 입법으로부터 1년내인 2003년 중에 7개, 2004년 중에 4개 등 기업 입주 이전에 기본적인 법제도의 틀을 갖출 수 있었는데, 이와 같은 준비가 가능할 수 있었던 기초는 자유경제무역지대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 하위규정 입법형식의 문제 위 하위규정은 모두 정무원에서 채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점은 개성공업지구법 과 금강산관광지구법의 하위규정이 모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결정으로 채택된 것과 다르다. 42) 그런데 2008 북한법령집 에 수록된 20건의 외국인투자 관련 하위규 정의 경우 한 건을 제외하고 43) 나머지 모두 내각의 결정으로 채택되었다. 어떤 경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채택하는 규정 으로 하고, 어떤 경우 내각이 채택하는 규 정 으로 하는 것인지 알기 어려우나, 북한의 현행 헌법 제110조 제6호에 비추어 위계질 서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채택한 규정 이 상위법이라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북한이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이나 외국인투자관련 법의 경우와 달리 개성공업지구법과 금강산관리지구법과 관련한 하위규정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결정 으로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일반법 적용을 배제한 개성공업지구법 및 금강산관광지구법의 성격과 관련이 있거나 남한과의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42)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결정 으로 채택한 규정 은 굳이 남한 법체계에 맞추어 보면 시행령에 해당 하는 것인바, 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시행령에 해당하는 규정 을 제정하여 위계가 다른 두 가지 법규( 법 과 규정 )를 만드는 것이 남한 법체계와는 다른 점이다. 43) 외국투자법률사무소 설립운영규정(2004. 11. 17.)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으로 채택됨.

북한 경제특구법의 변천과 전망 29 라. 주요 입법의 내용과 한계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은 외부투자유치를 위하여 북한 입장에서 보면 과감한 특례를 포함하고 있었는바(북한 최초로 100% 단독 외국인기업 허용, 상품에 대한 협의가격제 실시, 14%의 낮은 기업소득세, 특별히 정한 물품을 제외한 수출입물자에 대한 관세면제, 기업소득세의 일정기간 감면, 입찰경매에 의한 토지임대 허용, 무비자 입국 및 재산권 보장 - 과실송금, 경영만료후 재산반출 등, 외화관리상의 자유, 외국은행지점 설립 허용 등), 그 개요 및 기타지역과의 비교는 아래와 같다. 44) <표> 자유경제무역지대 투자우대조치의 주요내용 비교항목 자유경제무역지대 비자유경제무역지대 1. 투자유형 합영 합작 100% 단독투자도 허용 합작이나 합영 2. 세율 3. 조세감면 기업소득세: 14%(중국의 경제특구:15%) 기타소득: 10% 거래세: 규정세율의 50% 제조업: 3년간 면제, 다음 2년간 50% 감면 6천만 원 이상 사회간접투자: 4년간 면제 다음 3년간 50% 기업소득세: 25% 기타소득: 20% 거래세: 규정세율 감면 없음 4. 관세면제 수출입물자에 대해 관세 면제 관세상의 특혜 없음 5. 최저노임 월 160원 월220원 6. 가격결정 7. 외화관리 8. 토지임대 판매자와 구매자의 합의로 결정 (일부 생필품은 국가가 결정) 외화유가증권거래 허용 외화현금 외화유가증권의 자유 반출입 허용 지대당국이 토지임대 입찰 경매 방법도 가능 10년 이내의 범위에서 토지사용료 감면, 면제 국제시장가격이나 국가가격 제정기관의 가격에 준거함 허용 안 됨 국토관리기관이 토지임대 협상방법으로 임대 장려부문:10년 이내의 범위 에서 토지사용료 감면 면제 9. 외국인 출입 초청장 소지자 무사증 출입 사증 소지 10. 사무소 설치 상주대표사무소 설치 허용 규정 없음 11. 은행설립 외국은행, 외국은행 지점도 설립 가능 합영은행만 설립가능 44) 제성호, 남북경제교류의 법적 문제, 집문당 (2003), 396면 <표 1>을 일부 수정.

30 통일과 법률 그러나 여전히 개방법제로서 아래와 같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노동 관련 법규에 문제가 있었다. 외국투자기업은 지대로력알선기관과 맺은 계약에 따라 필요한 로력을 채용하거나 해고할 수 있다 고 하여(동법 제21조) 노동자 의 직접 채용을 허용하지 않고 해고도 알선기관과 맺은 계약에 의하도록 했다. 또한 직업동맹조직의 활동 보장, 45) 임금의 직접 지불 거부 등으로 인하여 외국투자기업의 노동력 관리의 자율성은 거의 인정되지 않았다. 46) 이러한 부분은 개성공업지구법에서는 최소한 규정상으로는 모두 해결되어 노동계약 직접 체결, 임금직불, 직업동맹조직의 부정, 해고시 동의 불요 등이 규정되었다(개성공업지구 로동규정 제10조, 제14조, 제32조 등). 경제특구의 개발 및 관리주체와 관련하여서도 중앙당국이 주도적인 권한을 행사하 도록 되어 있어 지대의 자율성을 살리기 어려운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즉 관리기관을 중앙대외경제기관과 지대당국으로 규정하면서 중앙대외경제기관이 자유경제무역지대 의 개발과 경제관리운영을 위임받은 중앙집행기관이며 지대당국은 현지집행기관 이라 고 함으로써(제8조) 중앙대외경제기관 우위의 구조를 취하고, 중앙대외경제기관의 권 한을 1. 자유경제무역지대의 개발, 경제관리운영과 관련한 집행대책을 세운다. 2. 자유 경제무역지대의 경제관리운영사업을 정상적으로 장악 지도한다. 3. 하부구조건설부문에 서 총투자액 2천만원 이상의 대상과 그밖의 부문에서 총투자액 1천만원 이상의 대상을 심의하고 승인한다 (제9조)고 하여 중앙대외경제기관이 주도하는 구조를 취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지대당국은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지 못했고 북한 중앙정부의 지 시를 받아 움직였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 행정기관과의 협상은 매우 힘들고 시간 이 많이 소요되었다. 47) 이에 비하여 개성공업지구법은 공업지구의 개발을 개발업자가 주도하도록 하고(제10조), 중앙공업지구 지도기관은 개발업자지정(제10조), 임대차계약 (제11조), 공업지구개발총계획 심의(제13조), 시행세칙 작성, 노력, 용수, 물자의 보장, 세무관리(제22조) 등의 지원업무를 맡도록 되어 있으며 공업지구에 대한 관리는 중앙 공업지구지도기관의 지도 밑에 공업지구관리기관이 한다 (제21조)고 하고 개발업자가 관리기관을 구성할 권한을 갖도록 하여(제24조) 개발업자 중심으로 공업지구 개발과 운영이 이루어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북한의 외국인투자법은 지분 양도시 중앙무역지도기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여(합영법 시행규정 제44조, 합작법 시행규정 제52조, 외국인기업법시행규정 제31조) 자본이동 및 회수에 제약을 가하고 있고 이러한 제약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또한 주식회사, 유 45) 이러한 제약은 현행 외국인투자기업로동규정(제10조, 제14조, 제18조, 제25조)과 외국인기업법시행규정 (제61조, 제67조, 제69조) 등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46) 홍익표, 북한의 경제특구 확대가능성 및 발전방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1) 64면. 47) 홍익표, 위 책, 62면.

북한 경제특구법의 변천과 전망 31 한회사 등 회사형태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 반면 개성공업지구 기업창설운영규정 제17 조는 기업은 규약에 따라 주식, 채권 같은 것을 발행할 수 있다. 주식, 채권 같은 것 을 양도하거나 유통시킬 수 있다 고 규정하여 북한 최초로 주식회사의 도입을 허용하 였고 자본이동 및 회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토지임차자는 토지를 임대한 기관의 승인을 받아 임차한 토지의 전부 또는 일부에 해당한 리용권을 제3자에게 양도(판매, 재임대, 증여, 상속)하거나 저당할 수 있다 (토 지임대법 제15조)고 하여 토지리용권 양도시 승인을 받도록 하였고, 건물매매의 경우 당사자간 매매계약은 건물관리기관이 승인하여야 효력이 발생하도록 되어 있다(자유경 제무역지대 건물양도 및 저당규정 제28 내지 30조). 48) 이에 비하여 개성공업지구법 부동산규정은 당사자간의 계약과 등록으로 양도의 효력이 발생하도록 규정하였다(제23조, 제25조). 무사증출입제도와 관련하여서도 실제로는 이 지역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없기 때문에 북한 외교 및 영사대표부에서 발급한 비자를 가져야만 출입이 가능한 실정이었다. 49) 자유경제무역지대에서의 유통화폐를 조선원으로 규정하고(자유경제무역지대법 제30조), 외화현금을 유통시킬 수 없도록 했는바(자유경제무역지대 화폐류통규정 제3조), 이는 자유경제무역지대에서 유통화폐를 조선원으로 제한한 것은 지나친 국가의 간섭이고 외국투자자 보호차원에서 유통화폐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50) 이에 비하여 개성공업지구법은 유통화폐를 전환성 외화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동법 제41조). 이상 간략히 살펴본 것처럼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은 나름대로 외부 투자자 유치를 위 한 법제를 마련하였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문제는 이러한 문제점들이 15년이 지난 현재까지 거의 대부분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 심천경제특구가 최초로 시도된 경제특구로서 토지사용권의 유상양도, 주식 회사제도의 실험, 노동계약제 등 이질제적 요소를 선도적으로 실험하여 그 성과와 문 제점이 중국 중앙정부에 의하여 검토되어 1990년대 중반에 전국적인 법제(중국 노동 법, 주식회사법, 토지법)로 발전한 것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51) 이러한 문제는 라 선경제무역지대를 통한 실험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사정을 보여주는 것이며 북한 당국이 경제특구를 통하여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의문을 갖도록 만드는 대목이다. 48) 건물관리기관은 건물의 양도 및 저당, 건물관리와 관련하여 해당 건물에 나들 수 있으며 필요한 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자유경제무역지대 건물양도 및 저당규정 제59조)는 조항도 문제 있는 조항이다. 49) 홍익표, 앞의 책, 62면. 50) 제성호, 앞의 책, 399면. 51) 유욱, 앞의 글, 10-19면.

32 통일과 법률 3. 자유경제무역지대법에서 라선경제무역지대법으로 가. 개정의 의의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은 1999. 2. 26.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484호로 수정보 충되는 방식에 의하여 라선경제무역지대법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같은 날 외국인투자 법 등 9개 외국인투자 관련 법 52) 이 수정보충되었다. 1998년 북한은 헌법을 수정보충하 며 김정일 위원장 체제의 헌법적 토대를 마련한다. 1998년 북한 헌법은 1972년 개정헌 법이 권력을 주석에 집중시킨 권력구조를 1948년의 헌법체제로 복귀하는 구조를 취하 면서 제37조에 국가는 우리나라 기관, 기업소, 단체와 다른 나라 법인 또는 개인들과 의 기업 합영과 합작, 특수경제지대에서의 여러 가지 기업창설운영을 장려한다. 는 규 정을 두어 경제특구의 헌법적 기초를 마련하였다. 여기서 특수경제지대 는 별도로 정 의되어 있지 않지만, 현재 라선경제무역지대, 신의주특별행정구, 금강산관광지구, 개성 공업지구를 포괄하는 의미로 이해된다. 법 명칭이 1999년 라선경제무역지대법 으로 변경된 것은 1999년 시점에서 과거 자 유경제무역지대에 대한 북한 나름의 부정적인 평가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53) 주요 개정사항으로는 우선 적용법에 관한 제6조를 들 수 있다. 제6조는 라선경제무 역지대안에서 경제무역활동은 이 법과 지대관련 법규에 따라 한다. 고 변경되었는데, 동법과 지대 관련 법규에서 규정하지 않는 경우 북한의 일반법이 적용되는지에 대하 여는 언급하지 않았다. 자유경제무역지대법 제6조의 제2문을 삭제한 것인데, 그렇게 한 취지를 알기 어려우나, 제2조 제2문을 라선경제무역지대안에서는 국가가 특별히 세운 제도와 질서에 따라 경제무역활동을 할 수 있다. 고 변경한 점, 개성공업지구법 제9조 제2문과 같은 명시적인 문구를 규정하지 않은 점에 비추어 명시적인 규정이 없는 경우 일반적인 북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다음 주요 개정사항은 국가는 중앙대외경제기관과 자유경제지대 당국을 통하여 자유 52) 합작법, 합영법, 외국인투자법, 외국인기업법, 외국투자기업 및 외국인세금법, 외화관리법, 토지임대법, 대외경제계약법 및 외국투자은행법 53) 1998년 김정일 위원장이 라선경제무역지대 방문시 자유 라는 표현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1998년 헌법에서 특수경제지대 의 개념을 신설함에 따라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장명봉, 북한과 중국의 경제특구법제 연구 - 개성공업지구법과 광동성경제특구조례를 중심으로-, 법제연구 제25호. 130면 각주 4. 1998년 북한은 외국인투자정책을 정비하며 자본주의실험에 대한 평가와 부작용제거에 초점을 두었다. 그 결과 외국인투자유치 전면에 나섰던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김정우 위원장 등 관련 경제 관료가 경질되었으며 이후 국가조직 재편과정에서 라선특구 건설을 추진했던 상당수의 경제관료들이 투자유치일선에서 사라졌다. 배종렬, 북한의 외자도입현황과 과제 -라선경제특구 사례분석-, 수은북 한경제 2005년 겨울호 37-38면.

북한 경제특구법의 변천과 전망 33 경제무역지대의 개발과 관리운영사업을 지도한다 (자유무역경제지대법 제3조)를 라선 경제무역지대안에서 무역, 외국투자, 지대의 개발과 그 관리운영은 내각의 통일적인 지 도 밑에 한다 (제3조)로 변경하고 지대당국이라는 용어를 없애고 지대의 행정기관인 라선시인민위원회의 권한을 축소하였다. 54) 중앙의 통제를 강화한 퇴행적인 개정으로 평가되는 대목이다. 나아가 라선경제무역지대법 제7조 공화국령역밖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동포들도 이 법에 따라 자유경제무역지대안에서 경제무역활동을 할 수 있다 라는 규정을 외국투자 가는 라선경제무역지대안에서 합작, 합영, 단독투자 같은 형식으로 경제무역활동을 할 수 있다 로 개정함으로써 남한 주민을 제외시킨 것도 퇴행적인 개정에 해당한다. 55) 헌법 제37조에 경제특구의 헌법적 근거까지 마련하고 라선무역경제지대법 개정을 전후하여 대대적인 외국인투자 유치법제 56) 및 라선경제무역지대 하위규정 정비를 하 면서 이와 같이 중앙의 통제를 강화하고 남한주민을 배제하는 퇴행적인 입법을 한 이 유는 무엇일까? 이후 신의주특별행정구법이나 개성공업지구법에서 상당히 진전된(어떤 경우에는 파격적인) 입법을 하면서도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은 그에 따르지 않는 점에 비 추어 나름대로 라선경제무역지대의 성격을 규정하고 다른 경제특구와 성격 및 기능을 구분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된다. 즉 라선경제무역지대는 북한의 기관, 기업소, 단 체도 내각의 승인 밑에 단독, 합영, 합작의 형식으로 투자하여 경제무역활동을 할 수 있는 지역으로서 기관, 기업소, 단체는 공업지구의 사업에 관여할 수 없다. 필요에 따라 공업지구의 사업에 관여하려 할 경우에는 중앙공업지구지도기관과 합의하여야 한다 (개성공업지구법 제6조)고 하여 북한 기관, 기업소, 단체의 진출을 엄격히 제한하 고 있는 개성공업지구 보다 자본주의에 노출되는 영역과 정도가 넓고 깊기 때문에 통 제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설명이 가능하다. 54) 자유경제무역지대법에서 총투자액이 하부구조건설부문에서 2천만원까지의 대상과 그밖의 부문에서 1 천만원까지의 대상을 심의하고 승인 하던 권한(동법 제12조 제4호)을 박탈당하여 외국투자신청을 현 지에서 접수하며 그 심의 승인을 중앙무역지도기관에 제기한다 로 개정되었고(제12조 제2호), 토지와 건물을 임대 또는 기타 형식으로 양도한다 는 조항(자유경제무역지대법 제12조 제7호)도 토지, 건물 리용권의 양도를 심의하고 해당 중앙기관에 그 승인을 제기한다 (제12조 제5호)로 개정되었다. 55) 자유경제무역지대법 제7조의 공화국령역밖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동포 에 남한 주민이 포함된다는 것이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비공식적 유권해석이었다. 배종렬, 북한의 외국인투자법제: 역사적 전개와 그 특성, 수은북한경제 2006년 봄호, 33면. 56) 수정보충된 법과 규정: 주46 기재 법 이외에 대외민사관계법(1998. 12. 10.), 보험법(1999. 2. 4.), 외국 투자은행법시행규정(1999. 6. 26.) 신규 채택된 법과 규정: 외국인투자기업명칭제정규정(1999. 3. 13.), 외국인투자기업등록규정(1999. 3. 21.), 외국인투자기업로동규정(1999. 5. 8.), 대외경제중재법(1999. 7.), 외국투자기업재정관리규정(1999. 12. 4.), 합영법시행규정(2000. 3. 11.), 합작법시행규정(2000. 3. 11.), 외국인투자기업파산법(2000. 4. 19.), 가 공무역법(2000. 12.), 외국인기업법 시행규정(2000. 10. 27.)

34 통일과 법률 나. 최근 개정의 의의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은 2002. 11. 7.과 2005. 4. 19. 수정보충되어 일부 조항이 변경되 었으나, 근간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후 신의주특별행정구법이나 개성공업지구법 에서 상당히 진전된(어떤 경우에는 파격적인) 입법을 하면서도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은 그에 따라 개정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짐작컨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라선경제무역지 대법, 신의주특별행정구법, 개성공업지구법, 금강산관광지구법에 관하여 각각 성격과 기능을 입지에 따라 구분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 라선경제무역지대법 하위규정 라선경제무역지대법 개정 이후 아래와 같이 새롭게 라선경제무역지대 규정이 정비 되었다. (1) 라선경제무역지대 통계규정(1999. 3. 6.) (2) 라선경제무역지대 중계짐임자대리업무규정(1999. 3. 21.) (3) 라선경제무역지대 외국인 출입 및 체류규정(2000. 2. 19.) 57) (4) 라선경제무역지대 관광규정(2000. 4. 29.) (5) 라선경제무역지대 외국인투자기업 재정관리규정(2000. 5. 13./2005. 1. 17. 수정) (6) 라선경제무역지대 세관규정(2000. 9. 23./2005. 1. 17. 수정보충) (7) 라선경제무역지대 외국기업상주대표사무소규정(2000. 10. 27./2005. 1. 17. 수정) (8) 라선경제무역지대 중계무역규정(2000. 10. 27.) (9) 라선경제무역지대 청부건설규정(2000. 10. 27./2005. 1. 17. 수정) (10) 라선경제무역지대 벌금규정(2000. 12. 8./2001. 9. 23. 수정보충) 라. 자유경제무역지대 하위규정의 효력문제 라선경제무역지대법 채택 이후 위와 같이 라선경제무역지대 규정으로 정비된 것 이 외에 과거 채택된 자유경제무역지대 하위법규가 그대로 효력을 유지하는지 의문이 있다. 이에 대하여 북한이 2005년 발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법규집(외국투자부문) 에서 9개의 라선경제무역지대 하위법규만을 열거하고 있음을 근거로 하여 대부분 폐지된 57) 괄호 안은 채택 및 수정일자이다.

북한 경제특구법의 변천과 전망 35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58) 그러나 북한 화폐유통법 59) 은 특수경제지대에서의 화 폐유통은 해당 법규에 따른다. (제10조)고 규정하고 있는데, 라선경제무역지대 화폐류 통규정이라는 명칭의 하위법규는 존재하지 않고 자유경제무역지대 화폐류통규정만이 남아 있다. 또한 가격법 제9조는 특수경제지대의 가격은 해당법을 따른다 고 규정하 고 있으나 역시 라선경제무역지대 가격규정이라는 명칭의 하위법규는 존재하지 않고 자유경제무역지대 가격규정만이 남아 있다. 나아가 토지임대법이 건물에 대하여 규정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유경제무역지대 건물양도 및 저당규정은 필요할 것으로 보 이고, 라선경제무역지대에 진출하는 북한 기관, 기업소, 단체를 위한 자유경제무역지대 기업소관리운영규정, 자유경제무역지대 국내투자기업창설 및 운영규정, 자유경제무역지 대 공업지구개발 및 경영규정등도 일정한 필요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심천경 제특구의 경우 1992년 수권입법권을 중앙정부로부터 수여받기 전에 광동성경제특구에 서 조례를 제정하여 준 것이 불과 20개에 불과하여 내부적으로 규범성 문건이라는 것 을 만들어 입법수요를 감당하여 나갔으나 규범성 문건을 투자자들이 알기 어렵고 상 호모순 등으로 인하여 경제특구의 발전을 법이 저해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60) 개성공 업지구에서 사업준칙의 형식으로 40개가 넘는 하위법규가 만들어진 것처럼 라선경제 무역지대의 경우에도 수백 개의 기업이 활동하고 있으므로 상당한 수의 하위법규가 필요할 것이고 자유경제무역지대 하위법규는 그 수요에 응하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 4.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의 성과와 교훈 이상 살펴본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은 북한 경제특구법의 선구자이자 살아 있는 역사 이다. 경제특구별 입법체제와 하위법규의 형식 등 이후 경제특구입법은 모두 라선경제 무역지대법의 기본 틀을 기초로 하여 채택된 것이다. 또한 2002년 북한의 7.1 경제개선 조치의 상당 부분은 라선경제무역지대에서 실시했던 조치였다. 즉 화폐단일화와 환율의 현실화, 음식점 여관 등의 사적 운영(사기업) 허용, 정부보조금폐지를 통한 기업의 독 립채산제 강화, 자유시장 개설 등은 라선경제무역지대에서 실험한 것을 북한 전역에 확대한 것이다. 61) 또한 예컨대 2000. 12. 26. 채택된 가공무역법은 자유경제무역지대 가공무역규정의 기초 위에서 채택된 것으로 평가되는 등 62) 라선경제무역지대에서 실험 58) 배종렬, 북한의 외국인투자법제: 역사적 전개와 그 특성, 수은북한경제 2006년 봄호, 47-48면. 59) 1998. 11. 26. 채택, 2003. 6. 5. 수정보충됨. 60) 유욱, 앞의 글, 6-8면. 61) 임강택 임성훈, 북한의 경제특구 개발전략: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특구를 중심으로, 북한연구학회, 북한의 경제(북한의 새인식 3), 경인문화사, 492면.

36 통일과 법률 된 법이 전국적인 법으로 된 사례는 라선경제무역지대법이 경제특구 확산모델로서 기 능한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경제무역지대가 지정된 지 18년이 지난 시점에서 라선경제무역지대의 성과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려우며 실패로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과의 수교협상이 무위로 돌아간 이후 서방자본 유치 위주의 정책이 전개되었고 본격적인 투자는 북미간에 제네바 합의가 있은 이후에 전개되었으나, 63) 이후 지속된 남북갈등, 북미관계의 더딘 진전과 갈등, 지속된 경제제재, 북일갈등의 지속 등 문제와 함께 자연재해에 따른 고난의 행군과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소위 IMF 위기) 등으 로 인하여 당초 지대개발 목표를 거의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2005. 9. 2. ~ 4. 까지 중국 장춘투자포럼에서 북한의 채송학 라선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은 2005년 9월 현재 라선지대에 대한 투자는 내자 7천만유로, 외자 1억 3,000만 유로 등 총 2억 유로 이며 외국투자기업 98개사, 가공무역기업 36개사, 외국상주대표사무소 14개사, 국내투 자기업 80개사가 조업중이다. 라고 밝혔는데 이는 지극히 실망스러운 결과이다. 64) 라선지대가 실패한 이유로는 입지선정(홍콩과 같은 배후지의 부재), 인프라 미비, 북 미, 북일관계 정상화 실패와 경제제재 지속, 제도와 정책의 불합리성(지정학적 이점을 살리지 못한 특구개발정책, 불합리한 법제도 및 행정 등) 등의 요인이 지적된다. 65) 라 선지대의 실패에서 북한 당국은 교훈을 얻었고 그 결과는 2002년 새로운 형태의 특구 도입으로 나타나게 된다. 북한이 신의주특별행정구와 개성공업지구를 지정하게 된 것 을 보면, 라선경제무역지대의 교훈은 크게 보아 입지선정과 운영주체 및 방식의 문제 였던 것으로 보인다. 입지선정의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 단동 등 지역과 인접한 신의주 를 특별행정구로 지정하고 서울에 인접한 개성을 공업지구로 지정한 것, 투자유치의 책임을 지고 인프라 건설을 맡을 특정 인물(양빈)과 회사(현대)를 선정하여 개발의 책 임을 맡긴 것, 그렇게 함으로써 인프라 미비를 보완한 점, 투자유인을 위한 한 단계 진 보한 법제도를 정비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라선경제무역지대의 실패 이후 북한은 라선경제무역지대법과 다른 새로 운 경제특구를 추진하며 라선경제무역지대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상 당한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북한 경제특구법제에서도 일정한 62) 배종렬, 북한의 외국인투자법제: 역사적 전개와 그 특성, 수은북한경제 2006년 봄호, 47면. 63) 형혁규, 앞의 책, 166면. 64) 배종렬, 북한의 외자도입 현황과 과제 -라선경제특구 사례분석-, 수은북한경제 2005년 겨울호, 각주 36. 한편, 외국투자기업중 합영기업은 47개사, 합작기업은 17개사, 단독기업은 34개사로 추정된다. 65) 조명철, 북한 경제특구정책의 교훈과 정책과제 - 나진선봉 및 신의주 경제특구정책을 중심으로, 대외 경제정책연구원, 오늘의 세계경제, 2007. 9. 17.(제07-42호) 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