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대교육의 힘, 그 역사와 미래 정재걸(대구교육대학교) 1.격대교육의 시대적 요청 2.교육의 궁극적 목적-인성교육 3.격대교육의 개념과 교육적 원리 4.미래사회와 격대교육 5.양로원 안의 유아원 1. 격대교육의 시대적 요청 우리 사회도 압축적 근대화를 겪으면서 핵가족이 일반화되었다. 핵가족이 되면서 부모의 자식사랑에는 어떤 제한도 사라졌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부모의 자식 사랑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 있었다. 공자의 아들 교육에 대한 과정( 過 庭 ) 그리고 맹자의 역자교지( 易 子 敎 之 ) 와 같이 유교문화권에서는 절제되지 않은 부모의 자식 사랑이 갖는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가 되면서 그 제한이 사라졌다. 부모의 절제되지 않은 자식사랑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정보화로 인한 노동의 감소에 따른 취업경쟁은 두 가지 극 단적인 형태의 자식 사랑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 한 가지는 자식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산후우울증에 걸리거나 심하면 아이를 안고 아파트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것이다. 자식이 앞 으로 겪어야 할 경쟁과 이를 위한 부모의 지원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자녀로 하여금 미래의 취업 경쟁에서 한 발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 부모가 자 식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철저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소위 헬리콥터 맘 이라고 부르는 엄마 가 그것이다. 요즈음 자조적으로 쓰이는 말, 조부모의 재력과 아버지의 무관심 그리고 엄마 의 정보력이 아이의 학력을 결정한다. 는 말은 현대 자녀교육의 병폐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 다. 우리나라 전통사회에서의 가정교육에서는 조부모의 역할이 매우 컸다. 할머니가 손자, 손 녀의 배변 습관에서 옷 입기, 밥 먹기, 말버릇, 놀이, 동요 등을 가르치는 교사 노릇을 담당 했다. 1) 유안진은 아이들이 할머니의 무릎 위에 안기거나 그 둘레에 모여 앉아서 받는 이러 한 교육을 무릎학교 라고 일컬었다. 2) 또 손자가 할아버지와 함께 기거하면서 각종 심부름 을 통해 실질적인 가르침을 받는 것을 김미영은 견문교육 이라고 하였다. 3) 한마디로 아이 들의 육아와 교육이 조부모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4) 것이다. 그러나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오늘날 이러한 격대교육의 전통은 거의 사라졌다. 대부분의 엄마는 아이가 어렸을 때 유아용 동화를 읽어주고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가 하면, 조기 영 1) 임재해,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생태유아교육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 원고, 2012, 6쪽. 2) 유안진, 한국 전통사회의 유아교육, 서울대학교출판부, 1990, 285 286쪽 및 323 324쪽 3) 김미영, 조손관계의 전통과 격대교육, 실천민속학연구 제16호. 69-72쪽. 4) 유안진, 위의 책, 372 373쪽. - 1 -
어교육을 시도하다가 3-4살만 되면 아예 아이를 유아원에 맡겨버린다. 유아원에서도 전통 육아보다 구몬학습, 몬테소리, 뱅크 스트리트, 헤드스타트, 디스타(DISTAR) 프로그램 등 서구에서 들어온 유아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가르친다. 조부모들은 물론 신세대 부모들조 차 잘 알지 못하는 교육 내용과 방식들이 유아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부모 는 오히려 조부모가 있으면 아이들 교육에 장애가 된다고 여긴다. 조부모들의 전통 지식은 곧 전근대 지식으로서 요즘 아이들을 기르는 데 장애가 된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5) 이처럼 우리에게 오랫동안 잊혀졌던 격대교육의 전통이 최근 관심을 끌고 있다. 격대교육 이 최근 주목받고 있는 까닭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 한 가지는 젊은 부부들, 소위 88만원 세대들의 경제적 어려움이다. 소비 증가에 따라 맞벌이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 되면서 젊은 부부들은 어쩔 수 없이 손자 손녀의 양육을 조부모에게 맡 기는 경향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를 신핵가족 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본가나 처가 근처에 따로 집을 사거나 전셋집을 얻어 아이의 양육을 친가나 처가 부모에게 맡기고 있다. 또한 일자리 부족에 따른 젊은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부모의 집으로 들어와 사는 젊은 부부 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캥거루족 이라고 부른다. 격대교육에 관심이 커진 또 두 번째 요인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보육시설의 열악함 때문 이다. 1990년 1,919개였던 어린이집 수는 2012년 4만 3천여 개로 급증하였고, 어린이집 이용 아동수는 1993년 15만 명에서 2012년 148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특히 0-2세 어린이 집 이용률을 2002년 11.8%에서 10년 후인 2012년에 63%로 급증하였다. 6) 이런 급격한 증 가의 결과 이들 보육시설과 이 시설에서 아이들을 관리하는 보육교사들의 처우는 매우 열악 해졌다. 7) 보육교사들의 연령을 보면 선진국들과는 달리 30세 이하의 보육교사들이 77.9% 에 이르고 또 10년 미만의 경력을 가진 보육교사가 94.7%에 이른다. 8) 또 법적으로 보육교 사 1명이 15명 이하의 아이들을 가르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 일부 사립보육시설에서는 23명의 어린이까지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9) 2012년 통계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시설과 보육교사 처우가 좋은 국공립보육시설은 2,204개로 이는 전체 보육시설의 5.2%에 불과하 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 라고 할 수 있다. 신고된 아동학대 건수는 2010년 100건에서 2013년 202건으로 2배 이상 증가하였다. 특히 최근 일부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 되면서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겨야 하는 젊은 부부들의 걱정은 크게 늘었다. 이처럼 경제적 어려움과 보육시설의 열악함으로 인해 자녀를 친가나 외가의 부모에게 맡기는 젊은 부부가 늘어나게 되었다. 자녀로부터 손자, 손녀의 양육을 요청받는 경우 대부분의 부모들은 거절 5) 임재해, 위의 글, 7쪽. 6) UPKOREA, <전희경 칼럼>, 규제개혁은 보육정책에도 필요하다., 2015년 3월 3일. 7) 육아정책연구소가 2012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보육교사들의 평균 근무시간은 9.9시간이고 월 기본급여는 144만 3,677원이었다. 민간 어린이집은 더욱 열악하여 119만 2,283원에 불과하였다. 또 전체 어린이집 29.4%에서 임시직 교사를 채용하였고 이들의 급여수준은 40만 5,250원에 불과했다. 8) 한국일보, 선진국 보육교사들은 아이를 어떻게 돌볼까?, 2015년 1월 29일자. 9) YTN FM, 2013년 5월 29일. - 2 -
하지 못하고 아이를 맡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격대교육이 반드시 긍정 적인 것만은 아니다. 부모-자식 간 문화의 차이와 양육 방식의 차이로 인해 부모와 자식 간 의 갈등도 동시에 늘어나고 있다. 10) 조부모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노후로 황혼육아 가 꼽 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격대교육은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젊은 부부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친 조부와 외조부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는 오히려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조부모가 손자 손녀의 양육을 맡는 경우가 많다.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 중 취학 전 50%, 취학 직후에는 60%, 중학교에 진학할 즈음에는 80%가 조부모와 일정 시간을 보 낸다고 한다. 11) 2009년 영국의 Grandparents plus 조사에 따르면 47%의 조부모가 손자 손녀들의 학교 행사에 참여했고, 44%의 10대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조부모와 상의했으며, 27%의 10대들은 부모와도 상의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조부모와 상의했다고 한다. 그리 고 85%의 10대들이 조부모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답했다. 12) 격대교육에 관심이 늘어난 세 번째 요인은 격대교육의 주체인 노인들의 경제적 정서적 어 려움이다. 최근 평균 수명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노인 인구의 비중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또한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전체 인구에서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빠른 속 도로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에는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의 비중이 15.1%에 이르고, 2030년에는 23.1%, 2040년에는 30.1%, 2050년에는 34.4%에 이를 것이 라고 전망하고 있다. 13) 65세 이상의 인구를 14세 미만의 인구와 비교한 노령화지수는 2050년에는 328.4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렇게 급증하고 있는 노인인구의 증가와 함께 노인 소외 현상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적 관점에서 노동은 궁극적인 가치를 가지며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은 쓸모없는 존재로 간주된다. 즉 생산력을 지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현대의 관점에서 노인은 생산력을 상실한 쓸모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또 욕망 충족이라는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에 도 노인은 무력한 존재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욕망충족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인 간다운 사람으로 간주된다. 돈이 많은 사람,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 멋진 외모를 갖고 있는 사람 등이 욕망충족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측 면에서 노인은 모든 면에서 무력하고 열등한 존재일 따름이다. 또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죽음이란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을 뜻한다. 현대적 인간이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근 원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존재이다. 이런 죽음관 속에서 나이 들어감이란 곧 자신의 존재가 무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지극히 고통스럽고 비관적인 현상인 것이 다. 14) 노인복지의 취약함과 노후 준비의 부족으로 우리나라 노인들의 상황은 매우 비참하다. 이 10) 김미혜 성기옥 팽경희 최희진 최소영, 손자녀 양육 조부모와 자녀와의 갈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조부모의 특성을 중심으로, 한국노년학, 31-4, 2011, pp.905-923. 11) SBS 스페셜 제작팀, 앞의 책, 33쪽. 12) SBS 스페셜 제작팀, 앞의 책, 150쪽. 13) 홍승표, 노인혁명, 2007년, 68쪽. 14) 홍승표, 위의 책, 73-74쪽. - 3 -
런 비참함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노인 자살률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1.2명으로 OECD국가 평균 자살률 11.3명보다 3배 가까이 많다. 15) 특히 OECD 국가 평균의 8배에 달하는 노인 자살률은 우리나라의 현재 노 인의 소외가 세계 최악임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격대교육은 이런 상황에 처한 노인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안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어르신 무릎교육 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키 겠다는 이야기 할머니 사업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야기할머니 사업은 56-70세의 여성 가 운데 선발된 할머니들을 2박 3일 동안 합숙교육을 시켜 동화 구연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에 게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업이다. 또 2015년 5월 27일 대전 유 성구 의회는 격대교육 확산을 위한 세미나 를 열고 격대교육의 통해 육아와 노인문제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16) 또 박철홍 전남도의원은 격대교육과 방과후학 교를 접목하여 격대교육의 장점과 외로움에 떠는 노인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 다. 17) 2002년 방송된 SBS 스페셜 격대육아법의 비밀 도 격대교육에 관심을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방송의 내용은 2013년 9월 책으로 발간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격대교육의 장점 을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입증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펜 주립대학에서 대만의 한 중 학교 사례 분석을 통해 조부모와 함께 사는 중학생들의 인지능력 점수가 핵가족 가정의 아 이들보다 월등하게 높게 나타났으며, 조부모와 함께 산 기간이 길수록 인지능력 점수도 비 례해서 높게 나타났다고 하였다. 18)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이들은 핵가족 그룹에 비해 졸 15) 2012년 9월 9일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 국내 자살자는 1만 5,566명으로 집계됐다. 매일 평균 42.6명이 자살하는 셈이다. 특히 청소년 사망자 중 13%가 자살을 택했다. 이 비율은 청소년 사망 원인 중 1위였다. 16) 대전투데이, 2015년 5월 27일. 17) 전남일보, 2014년 12월 11일. 18) SBS 스페셜 제작팀, 격대육아법의 비밀, 경향미디어, 2013, 13-14쪽. - 4 -
업률도 높았고, 알코올, 약물 의존도가 낮았으며, 졸업 성적도 월등히 높았다. 19) SBS 제작팀에서는 부모의 자녀교육과 조부모의 손자 교육의 차이점을 결과 칭찬 과 과 정 칭찬 의 차이로 설명하였다. 즉 아이들은 어른들이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싶을 때 쓰는 칭찬과 진정한 관심과 애정에서 나오는 칭찬을 구별하여 그에 따라 동기부여를 받기도 하고 반대로 반항심을 갖기도 한다고 보았다. 20) 조부모들이 손자 손녀에게 과정칭찬을 할 수 있 는 까닭은 아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에서 나온다. 부모와 달리 조부모는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그 일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했는지 지켜보았기 때문 에 과정칭찬에 능한 것이다. 최근에 격대교육이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이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부모와 조 부모의 해결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주로 학원 정보에 의존하여 선택을 하지만 조 부모들은 아이가 어떤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파악한 후 아이가 문제를 극복하는 동안 시간을 함께 한다. 물론 후자의 교육적 처방이 훨씬 더 바람직하고 효율적이 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교육의 궁극적 목적-인성교육 서양교육 체제에 따라 발행된 교육학개론 에는 격대교육과 같은 전통교육이 아예 없다. 교육학과의 교과과정에도 격대교육의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전통육아나 전통교육에 관한 교과과정도 없다. 전통육아와 유아교육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최근에 비로소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21) 그러나 유아교육학과 교과과정에도 전통육아 관련 교과과정이 없다. 그러므로 교육학과 또는 유악교육학과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조차 전통육아를 배울 길이 없 다. 오히려 교육학 전공은커녕 학교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할머니들이 전통육아에 더 밝다. 22) 우리의 전통사회에서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이를 사랑의 존재로 키우는 것이었다. 즉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속의 무한한 용량을 가진 사랑[ 仁 ]을 발현시키는 것이었 다. 그러나 현대교육에서 교육의 목적은 몸값, 즉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되 었다. 노동력의 가치를 높이는 교육은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그 한 가지는 소품종 대량 생산에 적합한 노동력을 양성하는 주물모형의 교육이고, 또 한 가지는 다품종 소량 생산에 적합한 도토리모형의 교육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후자의 교육 에 매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강조했던 창의 인성교육과 박근혜 정부에서 강조하는 창조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리프킨이 주장하고 있듯이 정보화의 진척으로 인해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그가 주장한 대로 한계비용 제로사회 가 되면 더 이상 취업을 위해 자신의 19) 위의 책, 18쪽. 20) SBS 스페셜 제작팀, 위의 책, 43쪽. 21) 柳 岸 津, 韓 國 의 傳 統 育 兒 方 式, 서울대학교출판부, 1986. 柳 岸 津, 韓 國 傳 統 社 會 의 幼 兒 敎 育, 서울대학교출판부, 1990 등이 그러한 연구의 보기이다. 22) 임재해, 앞의 글, 11쪽. - 5 -
노동력의 가치를 높이는 일은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교육의 목적도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즉 교육의 본래 목적인 아이를 사랑의 존재로 키우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유학에서 교육의 목적은 인간의 본성인 인( 仁 ), 즉 사랑을 발현하는 것이다. 인성이란 말 그대로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 따라서 인성교육의 본래 의미는 인간의 본성인 사랑을 발견 하고 발현하는 것이다. 맹자는 인의 샘물론을 통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무한한 용량을 가진 사랑의 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샘물이 한 번 솟아나기 시작하면 주변에 있는 구덩이를 채우고 들판을 적시고 넓은 바다에 이른다고 하였다. 23) 문제는 이 샘 을 막고 있는 바위가 있다는 것이다. 그 바위 이름이 바로 나( 己, 我, 身 )이다. 그래서 공자 는 그의 수제자 안회가 인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자기를 이겨 예로 돌아가면 저절로 인이 실현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처럼 유학에서 인이란 내가 없는 사랑( 無 我 之 愛 ) 을 말한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본능적인 것이다. 이런 본능적인 사랑이 나 라는 바위를 치움으로써 발현되는 본성의 사랑으로 되지 못하면 그 사랑은 불구적이 것이 된다. 불구적인 사랑은 폭 력적이며 자기 상실과 파괴를 초래한다. 불구적인 사랑은 자기중심적이며 상대방에 대한 진 정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은 이런 불구적인 사랑을 아이들 에게 베푼다. 부모는 누구나 다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지만, 자녀들을 깊이 이해해주고 존 중하는 부모는 의외로 적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의 자녀 사랑은 폭력적인 성격을 띠고 자녀 들에게 고통과 불행을 안겨 준다. 24) 그러나 본성은 본능과 다르다. 본능은 나 의 생존을 위한 것인데 반해, 본성은 나를 극복 함으로써 발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 이 본능은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이를 에리히 프롬은 자아팽창(ego-inflation)이라고 했다. 이 런 부모의 자아팽창은 바로 자식에게로 확장된다. 자식은 부모의 자아팽창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유학에서 부모의 자식 사랑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두는 까닭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불구적 사랑과 달리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그 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특성을 존중한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더욱 나다워지 고 네가 더욱 너다워지도록 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성과 주체성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 진다.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과 상대방의 개성을 실현시켜 나갈 수 있다. 따라서 진정 한 사랑은 상대를 자유롭게 한다. 상대방을 구속하고 간섭하면서 자신의 마음대로 하려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이성이나 자녀에 대한 사랑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우리에 게 주는 느낌을 사랑한다. 즉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이다. 이런 사랑을 에고의 사랑이라고 한다. 엔소니 드 멜로 신부 는 에고의 사랑을 사랑으로 변장한 감정들이 거래되는 장터 풍경 이라고 했다. 25) 그는 다 23) 徐 子 曰 仲 尼 亟 稱 於 水 曰 水 哉 水 哉 何 取 於 水 也 孟 子 曰 原 泉 混 混 不 舍 晝 夜 盈 科 而 後 進 放 乎 四 海 有 本 者 如 是 是 之 取 爾. 24) 홍승표, 노인혁명, 예문서원, 2007, 167쪽. 25) 엔소니 드 멜로, 2013,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이현주 옮김, 샨티, 163쪽. - 6 -
음과 같이 말했다. 26) 너 없이는 못 산다고? 그게 사랑이라고? 아니다. 굶주림이다....사랑은 무엇보다도 명 징하게 인식하고 정확하게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고의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절대적으로 나만을 선택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를 사랑하던 그가 사 랑하는 사람도 그를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무언가를 원하고 갈망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사랑은 아무 것도 부족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고, 상대방을 구속하지도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조부모의 손자 사랑은 부모의 자식 사랑과는 달리 진정한 사랑에 가깝다. 조부모와 손자의 관계는 부모 자식과의 관계와는 달리 무언가를 원하고 갈망하는 것이 적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원하고 갈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전통사회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가문의 품격, 즉 가격( 家 格 )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과거 일본에서도 인쿄[ 隱 居 ]라고 하는 가독양도제( 家 督 讓 渡 制 )가 있었다. 부모는 일정 나이가 되면 가장권과 주부권을 아들 부부에게 상속하고 자신은 그들과 동거 내지 별거하면서 부양을 받게 되는 제도를 말한다. 27) 이처럼 부모에게 자식이 중요한 존재인 만큼 그 만큼 자식에 대한 기대는 클 수밖에 없 다. 이런 기대로 인해 부모는 자기 자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게 된다. 대학( 大 學 ) 에는 사람들이 그 자식의 악함을 알지 못하며, 그 싹의 큼을 알지 못한다. 라고 하였다. 농 사를 지어본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남의 밭의 작물이 항상 자신이 농사지은 것보다 좋아 보인다. 반면에 자식의 경우에는 자신의 자식이 남의 자식보다 더 잘 난 것처럼 착각 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자식에게 원하고 갈망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의 허물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이처럼 자식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기 때 문에 자식에게 보다 많을 것을 요구하게 되고, 자식이 이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더욱 분 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조부모와 손자의 관계는 이런 원망과 갈망이 적기 때문에 조부모의 손자 사랑에는 보다 요구와 구속이 적다. 또한 조부모는 부모와 달리 나이가 많기 때문에 욕망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롭다. 홍승표는 나이 들어감에 따른 긍정적인 변화를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제시 하였다. 28) 첫째, 노인이 되면 욕망의 노예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해진 다. 노년기에 이르러 성욕을 포함해서 모든 욕망이 수그러든다. 이 때문에 노인들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욕망의 그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재물, 권력, 지 위, 명성, 인기 등과 같은 욕망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추게 된다. 26) 위의 책, 165쪽. 27) 홍승표 외, 동양사상과 노인복지, 집문당, 2013, 94쪽. 28) 홍승표, 위의 책, 123-129쪽. - 7 -
둘째, 노인이 되면 한가한 시간이 많아진다. 직장에서 은퇴해서 그때까지 자신의 삶을 얽 매어왔던 생산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이런 한가한 시간을 통해 노인들은 바깥으로 치닫던 의식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때까지 무관심했던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고, 자신과 세계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셋째, 노인이 되면 유머 감각을 가질 수 있다. 노인은 죽음에 더 가까이 있기 때문에 오 만과 삶에의 몰입에서 벗어나 자신의 유한함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우주의 영원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에 비추어 볼 때 노인은 인간이 얼마나 미소한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유 머감각을 가질 때 우리는 겸손할 수 있다. 넷째, 노인이 되면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에서 우러나는 지혜를 가질 수 있다. 틱낫 한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29) 당신이 지금 20대이고 세상의 많은 철학 서적과 문학 작품을 읽어서 사상의 깊이가 깊고 인간의 무수한 희로애락을 다양하게 경험한 사람이라고 하자. 그렇다고 당신이 삶을 안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주름 깊이만큼이나 아득한 절망의 나락에도 떨어져 보고 산봉 우리 같은 높은 기쁨도 체험해 본 80대 노인만이 알고 있는 삶과 20대인 당신이 아는 삶이 같을 수 있을까? 삶은 오직 체험으로만 알 수 있다. 다섯째, 노인이 되면 누구나 실존 위기에 직면한다. 노인이 직면하는 실존 위기는 나 라 는 피부 밑 자아(skin-capsuled ego)'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나이 들어 가면서 노인은 그 때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삶을 안정시켜 주던 많은 것을 상실한 다. 육체의 노쇠, 직장 생활의 마감, 자녀의 출가, 배우자나 친구의 죽음 등 노년기가 되면 누구에게나 이런 실존 위기가 찾아온다. 죽음을 모르면 삶을 알 수 없으며, 이별을 모르면 만남을 알 수 없다. 질병을 모르면 건강을 알 수 없으며, 가난을 모르면 자신이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모른다. 몰론 모든 노인들이 나이 듦에 따른 이런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많은 조부모는 젊은 시절의 자아팽창을 경험했고, 또 그것이 결국 좌절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을 깨달았기 때문에 결코 손자를 자신의 자아팽창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다. 3. 격대교육의 개념과 교육적 원리 우리나라 조손가정의 수는 2000년 45,225세대, 2005년 58,101세대, 2010년 68,135세 대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30) 이는 일반가구에 비해 0.36%에 불과한 미미한 숫자이지만 실 제 조손가정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에 따르면 영유아 정서 등을 고려해 생활실태를 숨기는 현상을 고려할 때 2014년 조손가정은 22만 명을 훨씬 웃돌 것 29) 틱낫한, 진우기 옮김, 힘, 명진출판, 2003, 100쪽. 30) 정아란, 김영철, 조손가정의 격대교육에 대한 보육교사들의 인식, 한국보육학회지, 14집, 2014, 107-108 쪽. - 8 -
으로 추산되며, 31) 실제로 2005년 전라남도가 자체 조사한 조손가정은 통계청의 수치보다 더 많다. 격대교육은 부모를 대신하여 조부모가 손자나 손녀의 교육을 담당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격대교육은 유학의 전유물은 아니다. 격대교육은 전통사회의 모든 공동체에서 나타난다. 그 이유는 전통사회에서 부모는 생산력을 담당함으로써 자녀교육은 조부모가 담당할 수밖에 없 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인류학자 크리스틴 혹스는 지구상에서 인간을 제외한 암컷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출산을 할 수 있는데, 인간은 폐경이 빨라 생식 기능이 없는 상태로 30-40년을 더 사는 이유를 연구하였다. 연구 결과 그녀는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hothesis) 을 내 어 놓았다. 즉 할머니가 폐경을 함으로써 힘을 보존하고 자식과 출산 경쟁을 하지 않으며, 자식을 키워 본 경험으로 손자들을 잘 돌보는 역할을 함으로써 유전인자를 효과적으로 이어 간다는 것이다. 즉 할머니의 격대교육은 진화의 일종이라는 주장이다. 신영복은 이런 할머 니 가설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32) 농본 사회에 있어서 노인의 존재는 그 마을에 도서관이 하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 요. 노인들의 지혜와 희생이 역사의 곳곳에 묻혀 있습니다. 할머니 가설이 그렇습니다. 할머 니들은 자기의 자녀가 아니라 자기의 자녀가 낳은 자녀 즉 손자손녀를 돌보고 자녀 양육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을 전수함으로써 가족 집단을 번창시켰다는 것이지요. 최근의 연구 결 과에 의하면 약 3만 년 전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크로마뇽인)는 그 이전의 네안 데르탈인에 비하여 노년층의 비율이 무려 다섯 배나 증가했음을 밝혀낸 것이지요. 노인 세대 의 비율이 급증한 시기는 바로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있었던 시기였으며 인류가 장신구를 사용하고 동굴벽화를 그리고 장례 행위를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 이 든 세대의 경험과 역할이 현생 인류의 양적 팽창과 질적 발전을 가져온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성경 구절에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어버이는 자식의 영광이다.(잠언 17:6) 라는 구 절이 있다. 이 구절은 손자를 기준으로 할아버지에게 손자는 그 존재 자체로 자랑스러운 일 이고, 그 손자에게 그의 아버지도 존재 자체로 자랑거리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 니까 손자에게는 아버지가 자랑거리이고 또 할아버지에게는 손자가 자랑거리라는 뜻이 되겠 다. 이 구절은 같은 성경의 뒷 구절에 아이 꾸짖는 것을 삼가지 말아라. 매질을 한다고 하 여 죽지는 않는다. 그에게 매질을 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목숨을 스올에서 구하는 일이다. (잠언 23:12-14) 는 구절과 대비된다. 또 상처가 나도록 때려야 악이 없어진다. 매는 사람 의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잠언 20:30). 는 구절이나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혀 있으나 훈계의 매가 그것을 멀리 쫒아낸다(잠언: 22: 15). 는 구절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매질을 아끼지 말라고 하는 조언하는 대상은 물론 아이의 부모이다. 이처럼 손자교육을 조부모가 담당했다고 해서 무조건 격대교육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격대 31) 위의 논문, 104쪽. 32) 신영복, 강의, 2004, 돌베게. 77쪽. - 9 -
교육의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는 부모의 자식 사랑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다. 앞에 인용한 잠언서에서 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13:24) 라고 했듯이 부모의 자 식 사랑에는 엄격한 제한이 따랐다. 주역 풍화가인괘( 風 火 家 人 卦 )의 구삼 효사에서도 구 삼은 가족에게 엄하게 소리 지르면 후회도 있고 위태롭기도 하지만 길하고, 어머니와 아들 이 헤프게 웃으면 마침내 부끄럽다. 고 하였다. 33) 군자는 손자는 안지만 자식은 안지 않는 다. 든지 아버지와 자식을 결코 같은 방을 쓰지 않는다. 든지 하는 것들은 모두 자식 사랑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두기 위함이었다. 이덕무의 사소절( 士 小 節 ) 에는 지나친 자식 사랑을 경계하는 내용들이 많다. 특히 <동규( 童 規 )> 경장( 敬 長 )편에는 친구와 같이 자녀와 격의 없 이 지내는 것을 아이를 어리석게 만드는 일이라고 경계하고 있다. 부모의 자식 사랑에 대해서 엄격한 제한을 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 단서를 공자의 자식 교육인 과정( 過 庭 ) 과 맹자의 역자교지( 易 子 敎 之 ) 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공자 의 자식교육인 과정( 過 庭 )을 살펴보자. 34) 진항이라는 제자가 공자의 아들인 백어에게 아버 지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받았는지 물어보니 백어는 마당을 가로질러 갈 때 아버지가 자신을 불러 시와 예를 읽었는지 물어본 것 말고는 다른 가르침을 받은 것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공자가 외아들인 백어의 교육에는 왜 그렇게 무심했을까? 시와 예를 공부하라는 이야기는 제자들에게 수없이 말했던 것이었건만 아들인 백어는 단 한 번, 그것도 우연히 정원에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 들었을 뿐이다. 공자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아 서 그랬을까? 하여간 이 예화는 유학에서의 자녀교육의 하나의 모범이 되었으며, 과정( 過 庭 ) 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맹자는 자식교육이 어려워 자식을 바꾸어 가르치는 이유를 부모-자식 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교육의 효과에 대한 부모의 조급함과 이에 따른 자녀에 대한 질책, 그리고 그 결과 로 나타날 수 있는 자녀의 반감 등을 설명하며 이것이 유학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해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35) 公 孫 丑 가 말하였다. " 君 子 가 <직접> 자식을 가르치지 않음은 어째서 입니까?" 맹자께서 말 씀하였다. 形 勢 가 행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자는 반드시 올바름으로써 하는데, 올 바름으로써 가르쳐 행하지 않으면 노여움이 뒤따르고, 노여움이 뒤따르면 도리어 <자식의 마음을> 해치게 된다. <자식이 생각하기를> ' 夫 子 (아버지)께서 나를 올바름으로써 가르치시 지만 夫 子 도 올바름에서 나오지 못하신다.'한다면 이는 부자간에 서로 해치는 것이니, 부자 간에 서로 해침은 나쁜 것이다. 옛날에는 자식을 서로 바꾸어 가르쳤었다. 부모 자식 간에는 善 으로 꾸짖지 않는 것이니, 善 으로 꾸짖으면 멀어지게 된다. 멀어지면 상서롭지 못함이 이 보다 더 큼이 없는 것이다. 스승이 제자를 가르칠 때와는 달리 부모가 직접 자식을 가르칠 때에는 노여움이 생긴다. 33) 九 三 家 人 嗃 嗃 悔 厲 吉 婦 子 嘻 嘻 終 吝 34) 論 語 < 季 氏 13> 35) 맹자 < 離 婁 章 句 上 > - 10 -
왜 그럴까? 앞에서도 언급한 자식에 대한 기대와 열망 때문이다. 물론 부모는 이러한 기대 와 열망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이 기대와 열망에 부응하지 못하는 데 따른 노여움 으로 인해 부모와 자식 간에는 돌이킬 수 없는 틈이 생기게 된다. 예기( 禮 記 ) 에는 삼생( 三 生 )이라고 하여 부모는 낳아주고, 스승은 가르쳐주고, 임금은 먹 여주는 관계라고 하되 각각의 관계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대응을 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즉 부모에 대해서는 숨기는 일은 있어도 대들어서는 안 되고[ 有 隱 無 犯 ], 임금에 대해서는 대들기는 해도 숨기지는 말아야 하며[ 有 犯 而 無 隱 ], 스승에 대해서는 숨기지도 대들어서도 안 된다[ 無 犯 無 隱 ]고 하였다. 또 논어( 論 語 ) 에는 자식이 도둑질을 했을 때 아버지가 자식 을 관가에 고발해야 하느냐 하는 질문이 있다. 공자는 이에 대해 아버지는 자식을 숨겨주 고 자식은 아버지를 숨겨주는 데 의로움이 있다. 고 하였다.( 子 路 篇 ) 맹자( 孟 子 ) 에서도 순 ( 舜 ) 임금의 아버지 고수가 살인을 저질렀다면 순 임금은 아마도 아버지를 업고 멀리 달아 나 먼 바닷가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盡 心 上 ). 이것은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옳고 그름보다 우선시되는 유학의 입장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유학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그 무엇보다도 중요시하기 때문에 역설적으 로 부모의 자식 교육에 대해 엄격하게 제한했던 것이다. 공자라고 해서 자신의 외아들인 백 어를 사랑하지 않았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그 사랑이 여과되지 않고 그대로 자식에게 교 육 이라는 형태로 전해질 경우 부모를 원망하는 자식이 반드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고 해도 사랑은 쉽지 않다. 아니 오히려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더욱 어렵다. 부모의 입장에서 부모의 눈높이로 자식을 위한다면 그것은 진짜 사랑 이 아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기 자식을 사랑한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라면 또 누구나 자 식의 입장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은 공자와 맹자의 주장에 따라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상층사회에서는 특히 부모가 육아에 깊이 개입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서 엄격하게 제한했다. 조선 사회의 반촌 에서는 자식이 아무리 예쁘고 귀여워도 아버지가 아기를 안을 수 없었다. 조부모가 계시는 집에서는 어머니도 젖을 먹을 때나 안을 뿐 평소에는 안고 어를 겨를도 없고 시어른들이 그 럴 기회도 주지 않았다. 양반가문의 종가에서는 더욱 심했다. 36) 어미가 아이들에게 너무 관심과 사랑을 쏟으면 버릇이 없어진다고 해서, 마음속으로만 관심과 사랑을 가질 뿐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따라서 어른들 보는 데는 자녀를 얼르지도 않고 심지어 젖을 먹을 때 외에는 잘 안지도 않는다. 아기를 안고 얼르는 것은 할머니 몫이다. 아버지는 자녀 를 안아보는 일이 없다. 어른들 몰래 아이를 안고 있다가도 어른들의 기척이 나면 얼른 내려놓는 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아버지와 가까운 정을 느끼기 어렵다. 검제 종손 37) 어른의 경우 모친의 등에 업혀봤거나 안겨본 기억조차 없다고 한다. 주로 형제나 아제(삼촌), 그리고 조카들과 함께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38) 36) 임재해, 한국 전통육아, 왜 잊혀졌는가?, 생태유아교육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 원고, 8쪽. 37) 검제 종손 은 학봉 김성일 선생 종손을 안동지역에서 흔히 일컫는 말이다.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학봉종택 이 있는데, 학봉 종택이 있는 금계리를 지역주민들은 흔히 검제 라고 하여 검제 종가 또는 검제 종손 이라 일컫는다. 이 진술을 한 검제 종손은 학봉 14대손인 김시인( 金 時 寅, 82세)씨이다. 임재해, 위의 글, 같은 쪽. 38) 임재해, 안동 양반의 일생과 삶, 안동양반의 생활문화,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2000, 70 71쪽. 임재 - 11 -
현리마을 인천 채씨 문중의 경우에는 더 철저했다.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조차 아기를 안지 않는 것이 규범이었다. 어디 상놈들 하듯이 지(자기) 자식을 끌어 안노! 하고 나무라 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조차 보듬어 안지 않고 젖만 물렸다고 한다. 39) 부모와 아이가 피부접촉도 긴밀하게 하지 못하게 했다. 아기를 껴안고 볼을 비비는 따위의 행위를 아주 상스러운 일로 간주했다. 40) 반면 조부모와 손자의 관계는 이런 조급함과 질책이 없다. 기대와 열망의 대상인 자식과 는 달리 조부모에게 손자는 그 자체로 사랑스러운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손자의 모든 행 동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또 풍부한 삶의 경험을 통해 조부모는 설사 손자가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즉각적인 분노보다는 사랑으로 감싸 안을 수 있다. 물론 조선사회 의 경우 앞에서도 언급한 가격( 家 格 )의 유지를 위해 자식뿐만 아니라 손자에게도 과도한 기 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경우 한없이 너그러운 사랑보다는 조급함과 엄격함이 앞서게 된다. 퇴계의 손자 사랑에서 보여주는 엄격함은 이런 기대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격대교육의 교육적 원리는 단순히 조부모가 손자나 손녀를 가르 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격대교육의 원리에 반드시 포함되는 것이 바로 부모의 절제 된 사랑이다. 따라서 격대교육은 부모의 절제된 사랑과 조부모의 무한한 사랑의 결합을 의 미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4. 미래사회와 격대교육 2015년 6월 14일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65세 이상의 노령인구가 26%를 넘었다. 우리나 라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다. 홍승표는 노령인구의 증가는 향후 노인적 삶 의 보편화를 가져온다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노인적 삶이란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가 시간이 중심이 되 는 유한적인 삶을 살아감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유한적 삶은 노령인구의 증가와 함께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그것은 생산 자동화 라는 생산력의 변화이다. 리 프킨이 노동의 종말, 그리고 최근 저서 한계비용 제로사회 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사물인 테넷의 발달로 근대사회가 그렇게 중요시하던 노동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 중요한 또 한 가 지 요인이다. 노동의 종말이란 이러한 근대 문명의 개인 노동이 정보화의 진척과 함께 사라져 가고 있 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제 인류는 다시 한 번 최초의 인류와 같이 노동이 없는 사회로 진입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이 아닌 다른 것으로 자신의 자아정체감을 형성해야만 하 는 시기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리프킨은 그의 최근 저서 한계비용 제로 사회 에서 향후 자본주의 생산성 증가로 재화 나 서비스를 한 단위 더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추가비용을 뜻하는 한계비용이 제로 수준이 해 위의 글, 같은 쪽. 39) 임재해, 머리말: 두 문화의 전통이 꿋꿋한 현리 마을, 반속과 민속이 함께 가는 현리마을, 한국학술정보, 2003 참조. 40) 임재해, 위의 글, 8쪽. - 12 -
되어 상품을 거의 공짜로 만드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휴대전화나 인터넷 을 이용해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으로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이 그 사례를 직접 목격하고 있다. 한계비용 제로사회는 자본주의의 자체모순의 필연적인 결과다. 자본주의는 생산성을 최대한 높이는 것을 목표로 기술혁신을 하게 되는데, 결국 치열한 경쟁으로 기술 은 계속 발전하고 그에 따라 생산성이 최고점에 달해 판매를 위해 생산하는 각각의 추가 단 위가 제로에 가까운 한계비용으로 생산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41) 리프킨은 이전의 저서 3차 산업혁명 을 통해 앞으로 모든 개인이나 기업이 태양력, 풍 력, 지열 등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자체 생산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그 에너지를 저장하고 교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변화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되며, 또한 한계비용이 제로사회의 토대가 된다. 리프 킨은 한계비용 제로 혁명이 비디오나 오디오 텍스트를 넘어 재생 에너지와 3디 프린팅 제 조, 온라인 고등교육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한다. 리프킨이 특히 주목하는 부문이 사물인 터넷인데 그는 커뮤니케이션 인터넷과 에너지 인터넷, 그리고 물류 인터넷이 통합될 것이며 이것이 한계비용 제로 혁명을 모든 산업 분야로 확대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리프킨의 주장 대로 지능형 로봇이 인간 노동의 대부분을 담당하게 되면 시장 자본주의에는 과연 어떤 일 이 발생할까? 리프킨은 다음과 같이 예상한다. 42) 첫째로 부상하고 있는 한계비용 제로 경제는 경제 과정에 대한 우리의 개념 자체를 급진 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소유주와 노동자, 그리고 판매자와 소비자로 분리되는 낡은 패러다 임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프로슈머들은 협력적 공유사회에서 제로를 향해 접근하는 한 계비용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며 서로의 재화와 서비스를 공유할 것이다....둘째, 시장 경제 모든 부문에 걸친 작업의 자동화가 이미 인간 노동을 해방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인간 노동 은 진화하는 사회적 경제로 이동할 것이다. 다가오는 시대의 협력적 공유사회에서는 자신의 놀이에 심취하는 것이 시장경제에서 열심히 일했던 것만큼이나 중요해지고 사회적 자본을 모으는 것이 시장 자본을 축적했던 것만큼이나 높이 평가받을 것이다. 리프킨은 한계비용 제로혁명의 결과로 자본주의는 소멸하고 그 대신 협력적 공유사회라는 새로운 사회가 나타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공유사회는 민주적으로 운용되는 모든 비공식 조직을 말한다. 흔히 시민 사회 혹은 비영리 부문 이라고 부르는 조직이 협력 적 공유사회의 토대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물인터넷의 플랫폼을 토대로 자동차와 집, 심지어 옷까지 공유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시장의 교환가치는 갈수 록 협력적 공유사회의 공유가치 로 대체될 것이라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소유가 어떻게 공유로 바뀌는가를 리프킨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자동차, 주택, 장남감, 의 류 심지어 농지까지 공유하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공유사회에서는 모 두가 의사가 되고, 광고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43) 41) 제레미 리프킨, 안진환 옮김, 한계비용 제로 사회-협력적 공유사회, 민음사, 2014, 11쪽. 42) 위의 책, 215쪽. 43) 그러나 리프킨은 장기적으로 모든 노동이 사라지겠지만 단기 및 중기적으로는 세계 곳곳에 사물인터넷 인프 - 13 -
한계비용이 제로인 사회가 되면 노동력을 생산하는 교육은 의미가 없어진다. 대신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인 사랑의 존재로 키우는 것이 새롭게 부각될 것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의 격대교육은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인 사랑의 존재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향후 어른이 되면 실제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들도 학습할 수 있었다. 조부모의 일을 돕고, 또 조부모의 심부 름을 함으로써 배우는 일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전통사회의 격대 교육과 같이 조부모와 함께 생활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손자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력의 양성으로서의 교육이 의미를 상실한 뒤에는 양상이 달라질 것이 다. 영화 집으로 에서 할머니에게 남겨진 아이가 할머니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무시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아이는 할머니 를 통해 사랑의 존재 로 거듭난다.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깨달음으로써 아이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 깨어나는 것이다. 부모에 비해 조부모가 갖는 손자에 대한 너그러움과 여유로움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인 생을 오래 살아온 노인은 자신이 기대한 일의 대부분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사실 삶에 대해 무엇인가를 기대하거나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삶의 다양한 측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기가 바라는 것만 일어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과 낮이 있어야 하루가 되고, 앞면과 뒷면이 있어야 동전이 되듯이 삶의 어느 한쪽만을 취한다면 그것은 삶을 온전히 사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삶을 온전히 산다는 것은 전체를 사는 것이지 어느 한 면을 버리고 다른 한 면을 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노년의 삶이란 밖으로 향하던 모든 관심을 거두어들이고 지금까지 거부하고 회 피하고 없애려 했던 자신의 감정들과 경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인위적인 노력 없이 오 직 지금 여기 를 살아가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실제로 존재하는 유일한 삶을 사는 것이자 아름다운 노인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44)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노년기는 삶의 쇠퇴기이다. 늙어가고 있다는 것은 삶이 점점 끝 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육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늙어감이란 몸과 마음이 활력을 상실하 는 과정이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늙어감이란 젊은 시절 획득했던 것들을 상실해가는 과정 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노인은 잉여 인생을 살고 있는 골치 아픈 존재, 무능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된다. 따라서 노인들은 필연적으로 사라져가는 젊음에 매달리게 된다. 이런 집 착이 노인을 추하게 만들며, 탐욕스럽고 인색하며 편협한 존재로 만들게 된다. 그러나 유학에서는 노인에 대한 공경을 교육의 바탕으로 삼았다. 예기 禮 記 <향음주의 鄕 飮 酒 儀 >에서는 백성이 들어가서는 효제하고 나와서는 어른을 존중하고 노인을 공경할 수 있은 다음에야 가르침이 이루어지고 가르침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나라가 편안해진다. 45) 고 라를 대규모로 구축하는 과정에서 임금노동자들의 수요가 마지막으로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이런 노동의 급증이 앞으로 약 40년간 지속되리라고 예상한다. 특히 글로벌 에너지 체제를 화석연 료와 원자력발전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대단히 노동집약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위의 책, 435쪽. 44) 홍승표 외, 앞의 책, 119쪽. - 14 -
하였다. 그래서 천자도 나라를 순찰할 때는 먼저 백 세 된 노인을 알현하고 팔 구십된 노인 이 동쪽으로 가고 천자가 서쪽으로 가도 감히 지나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46) 그러나 이러한 유가의 경로제도는 중요한 조건이 있다. 즉 무조건 나이가 많다고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이 그에 상응하는 인격과 지혜를 갖추어야 하였다. 즉 공자와 같 이 자신에게 주어진 명, 사회적 책무를 끊임없이 성찰한 인간만이 경로의 대상이 될 수 있 었던 것이다. 순자( 荀 子 ) <유좌( 宥 坐 )>에는 다음과 같은 공자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있고, 야비하게 여기는 것이 있으며, 위태롭 게 여기는 것이 있다. 어려서는 힘써 배우지 못하고 늙어서는 가르칠 것이 없다면 나는 이를 부끄럽게 여긴다. 또 공자는 자신을 찾아온 어린 시절 친구 원양을 어려서는 공손하지 않고 자라서는 하는 일이 없고 늙어서는 죽지도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도적이라 하겠다. 47) 고 하였다. 이처럼 유가에 있어서 노년은 지금까지의 삶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 는 시기이자 동시에 새로운 세대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전하는 시기였다. 유가에서 노 인이 단순한 양로의 대상이 아니라 경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성숙된 인격과 지혜 때문이었다. 이승연은 노탐( 老 貪 )이란 늙어서 이상을 잃어버린 인간, 삶의 지향점, 목표를 상실한 인 간이 자신의 되돌릴 수 없는 생에 집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 하였다. 48) 이런 노탐을 버린 도가의 이상적인 노인의 모습을 장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49) 옛날의 진인은 그 모습이 우뚝 높이 솟아도 무너지지 않고, 모자라는 듯하면서도 아주 충 실하다. 한가하게 홀로 있어도 완고하지 않고, 휑하니 넓고 비어 있으면서도 겉치레를 하니 넓고 비어 환히 밝게 기뻐하는 듯하고 닥쳐야 하는 수 없이 한다. 덕이 가득 차서 그 얼굴빛 을 더욱 돋우고, 한가로이 그 덕에 머문다. 널찍하여 매우 큰 것 같고, 초연하여 얽매이지 않는다. 줄곧 입을 다물고 있기를 좋아하는 듯하고, 멍하니 말을 잊고 있다. 홍승표는 노인이 되면 깨달음이 깊어질 수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5가지로 설명하였 다. 50) 첫째, 욕망의 노예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둘째, 노인이 되 면 한가한 시간이 많아져 참된 자기 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셋째, 죽음에 다가감에 따 라 유머 감각을 갖기가 용이해진다. 넷째, 삶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우러나는 지혜를 가질 수 있다. 다섯째, 실존 위기에 직면함으로써 깨달음의 계기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바람직한 격대교육이 가능한 조부모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45) 民 入 孝 悌 出 尊 長 養 老 以 后 成 敎 成 敎 以 后 國 家 安 也 46) 禮 記, < 祭 義 > 47) 論 語, < 憲 問 > 48) 이승연 유가에 있어서 노인, 유교사상연구, 42집, 2010, 45-46쪽. 49) 莊 子 < 大 宗 師 > 50) 홍승표, 동양사상과 탈현대, 예문서원, 2005, 238-239쪽. - 15 -
- 사랑으로 충만한 조부모 손자 손녀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조부모는 자신과 세계를 무한한 긍정과 사랑의 눈으로 바 라볼 수 있어야 한다. 주역 <계사전>에는 사랑이 충만한 노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 하고 있다. 51) 하늘을 즐거워하고 명을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으며, 편안히 거처하고 인을 돈독히 하 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과 상대편의 마음에 드는 점만을 골라서 선택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또 그것은 일시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 원히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이 충만한 조부모는 자신과 손주가 가지고 있는 소심함, 약함, 추함, 무능력함, 교활함, 야비함 등을 포함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모습을 따뜻하게 품 어줄 수 있어야 한다. - 감사할 줄 아는 조부모 손주를 잘 가르칠 수 있는 조부모는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에 모든 것에 대 해 깊은 감사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또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또다시 새로운 하루가 선물로 주어졌음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늙은 아내의 손을 잡고 아름다운 가을 길을 걸을 때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잎에 대해서 언제나 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는 아내에 대하여, 늘 새로운 얼굴로 나를 맞아주는 아름다운 하늘에 대해 깊은 감사를 느껴야 한다. - 겸손한 조부모 손자 손녀를 잘 가르칠 수 있는 조부모는 매사에 겸손해야 한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쫒 는 학식, 재물, 외모, 인기, 권력과 같은 것들이 얼마나 하찮고 무상한 것인지를 알기 때문 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없다. 그는 어떤 자리에 있건 개의치 않고 도 를 즐기는 삶을 살아간다. - 평화로운 조부모 손주를 잘 가르치는 조부모는 마음이 항상 평화로워야 한다. 노인은 자신과 세계를 따뜻 한 미소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천천히 호흡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 수 있어야 한다. 조부모는 마음이 한가로워 언제나 여유가 있으며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가 도달하고자 하 는 목적지이기 때문에 서두를 일이 없다. 51) 周 易 < 繫 辭 下 傳 > 4장 - 16 -
- 지혜로운 조부모 손자 손녀를 가르칠만한 조부모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는 탐욕이나 분노, 무지나 편견 등으로부터 벗어나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 다. - 자유로운 조부모 손자 손녀를 잘 가르칠 수 있는 조부모는 칭찬과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한 다. 또한 욕망에 대한 집착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삶에서 경험한 실패나 좌절, 갖가지 고통과 불행으로부터 자유롭다. - 유연한 조부모 손자 손녀를 가르칠 자격이 있는 조부모는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고집하지 않으며 늘 자신과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우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자신이나 상대방이 저지를 잘못에 대해 너그럽다. 5. 양로원 속의 유아원 직업교육으로서의 현대교육의 의미가 퇴색되는 미래사회에서 사랑의 존재로 거듭나기 위 한 격대교육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양로원과 유아원을 병설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유로복합시설( 幼 老 複 合 施 設 ) 이라고 부른다. 北 村 安 樹 子 의 연구에 따르면 1997년 1.4%였던 유로복합시설은 2000년에 2.5%로 늘어났다. 52) 이런 시설의 증가는 노인 인구의 급증과 한편에서는 출생율의 급감에 따른 유아원에 대한 수요 감소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항상 우리나라보다 앞서가니 향후 우 리나라에서도 유아원의 구조를 일부 변경하여 유로복합시설을 만드는 일이 크게 유행할지도 모른다. 미국 시애틀의 세인트 빈센트 양로원도 양로원 안에 유아원을 부설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미국의 경우 43%에 이르는 노인들이 사회적 외로움을 경험하는데 세인트 빈센 트 양로원처럼 양로원 안에 유아원을 개설하는 것은 노인들의 사회적 외로움을 치유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53) 노인과 어린 아이가 교류하는 것은 특히 노인들의 정서적 풍요 로움에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런 시설을 통해 아직 노인과 어린이의 교류는 한정적이 다. 일본의 경우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함께 매일 아침 합동체조를 하거나 행사에 함께 참석 하는 것, 아이들이 노인들이 있는 방을 방문하는 것, 그리고 노인들이 유아원을 방문해서 아이들을 보육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다. 54) 그리고 유로복합시설의 증가도 아이들을 위한 것 이라기보다는 노인들을 위한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어쨌거나 이러한 노력은 격대교육의 의 미를 사회적 차원에서 되살리려는 하나의 노력으로 평가된다. 52) 北 村 安 樹 子, 幼 老 複 合 施 設 における 異 世 代 交 流 の 取 り 組 み. LifeDesign REPORT, 2003. 9, 7쪽. 53) 2015년 6월 28일자 사랑밭 새벽편지 에 소개된 동영상 참조. 54) 위의 논문, 9쪽. - 17 -
격대교육에 대한 중국의 반응도 뜨겁다. 중국의 격대교육에 관한 사이트를 검색하면 손주 를 가르치기 위한 학원 광고가 많다. 이들 학원에서는 분유 타기부터 기저귀 갈기까지의 기 초적인 실습부터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 요령, 아기 마사지 등의 다양한 내용들을 가르친다 고 한다. 한 자녀밖에 없는 중국의 상황에서 손자 손녀에 대한 중국인의 사랑은 남다른 것 이기 때문일 것이다. 2050년에는 60세 이상의 인구가 20억 명에 이르고 전세계 인구의 1/5이 100세 사회가 된다고 한다. 격대교육이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되는 것이 꼭 바람직 한 것만은 아니지만 이러한 경향이 격대교육의 활성화와 진정한 격대교육의 발견에는 도움 이 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격대교육의 진정한 교육적 의미를 이해하고 또 격대교육의 교사가 되는 훌륭한 인격의 노년이 되기 위한 노력들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 이다. 향후 부모의 절제된 자녀사랑과 훌륭한 인격의 조부모라는 두 가지 조건이 잘 갖추어 진 격대교육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論 語. 孟 子. 荀 子. 禮 記. 周 易. 朱 子 語 類. 김광호, 조미진, 오래된 미래 전통육아의 비밀, 라이온북스, 2012. 김미영, 조손관계의 전통과 격대교육, 실천민속학연구 16, 2010. 김미혜 성기옥 팽경희 최희진 최소영, 2011. 손자녀 양육 조부모와 자녀와의 갈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한국노년학 31-4. 김석진. 1997. 周 易 傳 義 大 全 譯 解 (상 하). 대유학당. 김종석 역주. 1999. 心 經 講 解. 이문출판사. 北 村 安 樹 子, 2003. 9. 幼 老 複 合 施 設 における 異 世 代 交 流 の 取 り 組 み. LifeDesign REPORT, 성백효 역주, 1996. 論 語 集 註, 전통문화연구회. 성백효 역주, 1996. 孟 子 集 註. 전통문화연구회. 신영복, 2004, 강의, 돌베게. 안경식, 2003, 우리 조상들의 아이 키우기 집안 에서의 유아교육, 생태유아교육연구 2-1. 에리히 프롬, 1999, 건전한 사회, 김병익 옮김, 범우사. -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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