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중단에 관한 규범적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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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포럼 제2권 제4호 (2013) 황우석 사태 이후의 한국 언론 강 양 구 프레시안 기자 1. 들어가며 며칠 전, 알고 지내던 국제 과학 저널의 기자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황우석 사태 이후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놓고서 기사를 준비 중인데 도 움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기자는 간헐적으로 들리는 한국의 상황이 약간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표현은 달랐지만 그는 이렇게 묻고 있었다. 도 대체 한국에서 무슨 일이 진행 중인 거야? 전 국민이 이른바 황빠 와 황까 로 나뉘어서 난리 법석을 부린 지 벌써 8 년이 지났다. 하지만 앞의 외국 기자가 당혹스럽게 느끼는 것처럼, 황우석 사 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우선 황우석 박사부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 며 대법원의 최종 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상당수 황 박사 지지자는 대법원 의 판결이 재기의 신호탄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알다시피, 황우석 박사는 서울대학교에서 퇴출당하고 나서 사설 연구 기관 을 만들었다. 이 연구 기관은 그간 논문과 같은 제대로 된 연구 성과를 발표 한 적이 없음에도 수시로 국내 유력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급기야 최근 황 박사는 약 3000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매머드 복제를 호언 하기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반 시민의 상당수도 황우석 박사를 일종의 희생양 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난자 매매 혹은 논문 조작 같은 사소한(?) 흠 을 덮었다면 지금쯤 노벨상 수상에 필적할 만한 대단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 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정치학을 공부한다는 한 재외 동포가 <동아일보>에 실은 다음과 같은 글은 그 방증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역시 황 박사의 연구 해금 을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 의 질과 직결된 문제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 가 미래의 먹을거리뿐 아니라 의료 치료용으로 상용화될 때 인류에 어떻게 - 1 -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보고서 기여할지에 대한 당위성은 충분히 제시되었다고 본다. 이대로 간다면 한국이 앞섰던 기술은 영영 미국 일본에 내주고 이 분야에서 기술 종속국이 될 것이 다. 황 박사의 해금을 통해 우리가 현재 가장 앞서 가고 있던 분야에 대한 재선점을 시도해야 할 때다. 1) 황우석 박사의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실체가 없었음이 명백하게 드러났음에도 만 8년이 되도록 상황이 이 지경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 중 하나를 한국 사회에서 생명 윤리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데서 찾는다. 심지어 한국 사회에서 생명 윤리를 공론화하는 큰 계기가 되었던 황우석 사태 때도 난자 매매 와 같은 생명 윤리를 둘러싼 문 제는 지극히 사소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한국 언론의 책임이 크다. 2. 난자 매매 vs. 논문 조작 먼저 2005년 황우석 사태 때를 살펴보자. <프레시안>, <PD수첩>이 황우석 박사의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난자 매매와 같은 심각한 생명 윤리 문제가 있다고 지적할 때만 해도, 언론을 비롯한 여론의 대부분은 황 박사 편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가장 솔직하게 대변했던 이는 당시 각각 <중앙일 보>와 <연합뉴스>에 몸담고 있었던 홍혜걸, 김길원 기자의 다음과 같은 칼럼 이다. 줄기세포 연구는 반만 년 이래 한민족이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다. 우리가 뿌린 씨앗인데 남들에게 열매를 빼앗길 수 없다. 먼저 분열된 국론을 통일해야 한다. 지금은 윤리적 비판보다 황우석 박사에 대한 격려가 우선이다. ( ) 그들에게 다시 기회를 줘야 한다. ( ) 황우석 박사는 연구에 더욱 매진해 난치병들을 하루빨리 정복해 주길 바란다. 그것만이 자중지란으 로 땅에 떨어진 한국의 위상을 회복하는 길이다. 2) 1) 최연혁, 황우석 박사에게 연구 기회를 주자, 동아일보 2013년 5월 25일. 2) 홍혜걸,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 중앙일보 2005년 11월 24일. 홍혜걸 기자는 2005년 11월 24일 한 공중파 방송의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진실보다 국익이 중요하다 고 목 소리를 높였다. - 2 -

생명윤리포럼 제2권 제4호 (2013) 줄기 세포 연구가 앞으로 한국을 먹여 살릴 미래 기술로 가치가 있다면 과감히 (황우석 박사를) 용서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 ) 이제 과학에서 뒤 지면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 윤리 문제를 집중 거론하는 일 부 언론에 글을 쓰는 이들은 과연 이전에 나온 황 박사의 과학적 연구 성과 에 대해서는 얼마나 깊이 있게 생각을 해 봤는지 궁금합니다. 윤리 문제도 중요하지만 무한 경쟁 시대에서 자국의 과학적 진보를 이뤄내기 위한 독자적 인 국가 성장 모델과 국민들의 지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입니 다. 3) 이 칼럼이 쓰이던 2005년 11월 말의 시점만 하더라도 <PD수첩>과 제보자 를 비롯한 소수를 빼놓고는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의혹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때였다. (필자를 포함해) 홍혜걸 기자나 김길원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 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언론은 공통적으로 난자 매매 같은 윤리 문제 는 덮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에게 생명 윤리를 둘러싼 문제는 국익이나 과 학 발전을 위해서 언제든지 덮을 수 있는 문제였다. 이것은 12월 초부터 일부 언론의 입장이 바뀌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더욱더 명확해진다. 12월 4일 YTN이 <PD수첩>의 취재 윤리 위반을 거론하고, 이 에 문화방송(MBC)이 <PD수첩> 방송 유보 선언 을 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PD수첩>에 불리한 쪽으로 전개됐다. 흥미롭게도 이 즈음부터 그전까지 황 우석 박사에게 호의적인 기사를 썼던 몇몇 언론이 조심스럽게 논조를 틀기 시작했다. 4) 그 진짜 이유는 당시 <PD수첩> 최승호 PD의 회고를 통해서 확 인할 수 있다. 최승호 PD는 12월 4일 저녁 (절망감에 못 이겨) 회사 앞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두 명의 기자들이 찾아왔다 고 증언했다. 5) 방송은커녕 존폐 위기 3) 김길원, 진실은 무엇일까요 김길원 블로그(blog.yonhapnews.co.kr/scoopkim) 2005년 11월 22일. 4) 물론 이런 논조 변화에는 2005년 12월 5일부터 <프레시안>을 통해서 보도된 황우석 박 사 <사이언스> 논문의 사진 조작(12월 5일), DNA 지문 분석 조작(12월 8일), <PD수첩> 의 김선종 연구원 녹취록(12월 10일) 등의 보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이런 보도에도 불구하고 황 박사 지지 입장을 고수했다. 5) 최승호, <PD수첩>의 선택, 신화의 추락, 국익의 유령, 한나래, 2006, 98쪽. 최승호 PD는 이 두 기자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개인적으로 확인한 바로는 이들은 12월 들어서 이른바 황빠 기자에서 황까 기자로 극적으로 입장 변화를 시도했던 이들이다. - 3 -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보고서 에 내몰린 <PD수첩>은 그 이후에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황 박사의 논문 조 작 의혹을 가리키는 일부 취재 내용을 (술자리에 찾아온 두 기자를 포함한) 몇몇 기자들과 공유했고, 이때부터 일부 기자들은 이른바 황빠 대열에서 이 탈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중에 황우석 사태에서 비교적 중립적인 보도를 했다고 알려진 언 론(<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한국일보>)의 기자들조차도 <PD수첩>의 논 문 조작 의혹 취재 내용을 접하고 나서야 머뭇거리며 입장 전환을 시도했다. 즉, 황우석 박사가 난자 매매와 같은 생명 윤리를 위반한 사실이 명백했음에 도 불구하고, 대다수 언론은 줄기세포만 진짜라면 덮고 갈 수 있다 는 공감 대가 있었다. 당시 피츠버그 대학교 이형기 교수의 아래와 같은 입장에 공감 하는 이들은 정말로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는 11월부터 줄기차게 생명 윤리 문제가 과학 연구에서 왜 핵심에 놓여야 하는지를 강조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었다. 필자가 더 염려하는 것은 한국적인 상황의 특수성을 내세워 비록 윤리적 인 하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서구적 잣대를 들이댔기 때문이라 는 주장이다. 이는 주로 줄기세포에 관련된 연구 팀에서 보이는 반응이다. 그 러나 임상 연구에서의 윤리적 기준과 잣대는 더 이상 특정 지역에만 적용되 는 국지적 규범이 아니다. 이 분야에서 과거 10여 년 동안 진행돼 온 범세계 적 조화 및 일치는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병원에서 실시되는 임상 연구도 모 두 동일한 윤리적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선 지 이미 오래다. 만일 이 전제가 만족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세계의 유수한 의학 잡지들은 우리 손으로 실시한 임상 연구의 결과를 게재해 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한 국적인 특수성을 말함으로써 지금 당장 배포는 편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전략적인 실패라는 것이다. ( ) 필자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과학에는 규제가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법의 한계가 있다. 6) 3. 생명 윤리의 계속된 부재 6) 이형기, 난자 의혹 해결 못하면 세계 과학계 왕따 된다, 프레시안 2005년 11월 17 일. - 4 -

생명윤리포럼 제2권 제4호 (2013) 황우석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언론의 생명 윤리 경시 경향은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지난 5월 미국의 슈크라트 미탈 리포프 박사가 세계 최초로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어낸 사실이 알 려지자 한국 언론이 쏟아낸 보도에서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한국 언론 은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서 뒤진 것은 신선한 혹은 건강한 난 자를 쓰지 못하도록 한 엄격한(?) 윤리 규제 탓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내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황우석 사태 이후 급격히 위축됐다. 배아 줄 기세포 연구를 위해서는 수백 개가 넘는 난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서 생긴 윤리적 논란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 률(생명윤리법) 을 강화해 인공 수정을 위해 채취한 난자 중에서 쓰고 남은 것을 제공자의 서면 동의를 거쳐야만 연구에 쓸 수 있게 했다. ( ) 반면 미 국과 영국은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도 건강한 난자를 쓸 수 있도록 규정을 완 화한 상태다. 7)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지속하는 한국의 일부 과학자를 통해서 유포된 이런 주장은 현장의 과학자 또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전하는 언론이 생명 윤리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에게 생명 윤리는 대수롭지 않은 연구의 장애물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시각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사실에 부합한지도 의문 이다. 황우석 박사의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8년 전에 이미 실체가 없는 것으로 확인이 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분야의 국제적인 경쟁력은 분 명히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다. 더구나 이번에 미탈리포프 박사의 성공 요인 을 난자가 아닌 다른 데서 찾는 시각도 있다. 8) 더구나 이렇게 생명 윤리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시각은 인간 복제 배아 줄 기세포 연구를 정확히 평가하는 것도 어렵게 만든다. <네이처>는 미탈리포프 7) 이재웅, 美 연구진, 체세포 복제 방식 인간 배아 줄기세포 추출 성공, 동아일보 2013 년 5월 17일. 8) 이번에 미탈리포프 박사는 황우석 박사의 난자를 눌러써 핵을 짜내는 방법 대신에 아주 가는 피펫을 넣어서 핵을 빨아내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 방법은 인간 복제 배아가 될 난 자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렇게 미탈리포프 박사의 성공에는 난자뿐만 아니라 인 간 복제 배아를 만들어내는 기술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 줄기세포 연구의 현주소 : 황우석의 덫 에서 탈출하라!, 프레시안 2013년 9월 27일. - 5 -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보고서 박사의 성과를 보도하면서, 그가 3000~7000달러의 적지 않은 돈을 주고 난 자를 구매한 것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9)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지 속할 때, 많은 난자 확보가 얼마나 큰 장애물인지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 다. 국내에서 이런 점을 정확히 지적한 언론은 한겨레 뿐이었다. 10) 4. 사회 밖의 과학, 사회와 떨어진 생명 윤리 앞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황우석 사태 이후 8년간 생명 윤리를 경시하는 한국 언론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명 윤리에 한국 언론 이 유독 둔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에 제대로 답하려면 한국의 과학 문화 전반에 걸친 점검이 필요할 것이다. 이 작업은 나중으로 미루고 여기서 는 특히 기자들의 기사 생산 관행을 염두에 두고서 한 가지 가설을 제시한 다. 과학 담당 기자는 기사를 생산할 때 해당 분야 전문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 다. 예를 들어, 미탈리포프 박사의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 성과를 놓 고서 국내 과학 담당 기자들은 박세필 제주대학교 줄기세포연구센터장과 이 동률 차병원 줄기세포연구소 부소장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다.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과학자가 객관적인 입장에 서 자신의 연구 분야의 성과와 한계를 정확히 말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경우 대개의 과학 담당 기자는 취재원인 과학자의 확성기로 전락한다. 2005년에 황우석 박사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며 그 목소리를 전하는 데만 주 력했던 기사 생산 관행이 전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이런 사정을 놓고서 흔히 국내 과학 담당 기자들은 기사 생산 과정의 어려 움을 토로한다. 한국은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비롯한 대다수 과학 분야 공동체의 규모가 작다. 그러다 보니, 특정 과학 분야를 놓고서 논평을 할 만 한 과학자가 기껏해야 한두 명에 불과하다. 기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몇몇 과학자의 논평에 기대서 기사를 생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현실 이 생명 윤리 문제까지도 특정한 이해관계를 가진 과학자에게 답을 구하는 9) David Cyranoski, US scientists chafe at restrictions on new stem-cell lines, Nature 04 June 2013. 10) 김양중, 줄기세포 원하는 세포 만들기가 더 난관 치료 적용 먼 길, 한겨레 2013 년 5월 17일. - 6 -

생명윤리포럼 제2권 제4호 (2013) 기사 생산 관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똑같은 환경에서 생산된 앞의 <한겨 레> 기사는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관계자의 논평을 통해서 균형 잡기를 시 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정이 이렇게 된 원인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이와 관련해 과학부에서 정치부로 자리를 옮긴 <뉴욕타임스> 기자의 다음과 같은 고백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정치 관련 기사를 쓰니 예전에 과학 기사를 쓰던 때보다 훨씬 더 자유롭 게 느껴진다. (과학부 기자가) 과학계로부터 거리를 두기란 매우 어렵다. 지 금은 내가 지닌 기자로서의 타고난 감각을 동원해서 대통령에 관해 기사를 쓸 수 있다. 하지만 과학부에 있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11) 정치 담당 기자는 기본적으로 정치가 여당, 야당, 이익집단, 시민 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호 충돌하는 영역이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아무리 사소 한 사안이라도 경쟁하는 여당과 야당 또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를 기사에 담으 려고 노력한다. 기자로서, 또 시민으로서 자신의 경험과 식견도 기사에 반영 된다. 하지만 과학 담당 기자는 과학을 기본적으로 과학자의 영역 혹은 정부 나 기업이 주도하는 과학기술 정책의 효과로만 파악한다. 이런 인식 속에서 과학 담당 기자의 역할은 최대한 그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으로 국한된다.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과학 기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 과 학을 쉽게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 혹은 정부나 기업 정책을 정확히 홍보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학 담당 기자가 그토록 쉽게 애국주 의 나 성장주의 를 무비판적으로 기사에 담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 다. 12) 이렇게 과학 기자의 역할이 제한된 상황에서 생명 윤리가 홀대받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생명 윤리는 과학을 사회 속에 위치시킬 때 비로소 그 중요성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이런 상황은 역으로 생명 윤리 담 론이 협소해지는 결과로도 이어진다. 최근의 생명 윤리를 둘러싼 논의가 지 11) 도로시 넬킨, 과학과 언론 보도, 대중과 과학기술, 김명진 편저, 서울 : 잉걸, 2011, 165쪽. 12) 사실 이것은 현대 과학기술이 낳은 과학 문화의 중요한 특징으로 파악해도 무리가 없 다. 왜냐하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과학 기사 생산 관행은 외국 역시 다르지 않기 때 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 7 -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보고서 극히 절차적인 문제(피험자의 동의 문제 등)로 귀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생명공학과 같은 현대 과학이 사회와 유리되어 논의되면서, 그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생명 윤리마저도 사회와 유리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5. 나가며 황우석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에서 생명 윤리를 둘러싼 상황은 특정한 이벤트를 통해서 바뀌지 않는다. 황우석 사태 이후에 과학기술과 생 명 윤리를 둘러싼 수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앞에서 살펴봤듯이 대중의 반향 은커녕 과학 언론의 변화조차 이끌어내지 못했다. 앞으로도 과학 문화의 근 본적인 변화가 전제되지 않고서 이런 상황이 바뀔 가능성은 적다. 그렇다면, 변화의 물꼬를 어디서부터 틀 것인가? 거칠지만 차원이 다른 두 가지 제안을 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우선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훨씬 더 강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는 환자, 일반 시민을 비롯한 여러 이해당사자가 연구의 내용을 감시할 수 있도록 시민 참여 장치 를 마련했다. 제도를 통해서 과학 연구를 사회 속에 위치 시켜 놓고 다양한 상호 작용이 가능하도록 보장한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과학자는 훨씬 더 많은 이해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언론을 통한 생 명 윤리 담론도 풍부해질 가능성이 있다. 언론의 과학 담당 기자의 역할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과학 담당 기자의 역 할이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둘러싼 다양한 수준의 사회 적 논쟁을 생산하는 것으로 변해야 한다. 13) 과학 담당 기자가 언론을 통해서 이런 논쟁을 촉발하고, 가능한 한 많은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도록 이끈다면 과학 또 생명 윤리가 사회 속에 자리를 잡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14) 13) 한국의 과학기술학(STS) 연구에서 논쟁 연구 분야가 좀 더 활발해져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4) 이런 관점에서, 현재 과학 담당 기자의 조건을 실체도 불분명한 전문성 에서 찾는 한 국 언론의 최근 풍토는 우려스럽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성 이란 기껏해야 과학자가 말 하는 것을 잘 받아쓰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 대중화를 표방하는 국내 과학 기사의 수준을 보면 이것조차 잘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