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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1950년대 한국 여성인식의 실제 -여성담론과 여성성의 재현을 중심으로- 이명순 (경희대 국제한국언어문화학과 박사과정) 1. 머리말 2. 1950년대 전통론과 젠더정치 3. 1950년대 여성담론과 여성성의 재현 1) 현모양처 담론과 고전적 여성성 2) 전쟁미망인 담론과 보호와 감시의 여성성 3) 양공주 담론과 민족적 상흔의 여성성 4) 자유부인 담론과 일탈의 여성성 4. 맺음말 1.머리말 1950년대는 해방 후 근대적 국민국가 건설의 방향을 둘러싸고 전개된 극심한 이념대립과 정치 적 갈등이 한국전쟁과 분단을 거치면서 약화되고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세계 질서에 본격적 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근대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국내외적 변수가 고정됨에 따라 한국 사회는 서구적 근대를 이상적 모델로 설정하였고,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근대적 가치 의식과 소비문화가 도시의 일상을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한국사회에 도입된 서구적 근대 는 이식된 외래적 요소였기 때문에 한국적인 것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근대인 식의 욕망은 서구와는 구별되는 한국적 근대 를 지향하게 되었다. 따라서 1950년대라는 시기는 전쟁과 분단이라는 정치적 상황에 의해 조건 지워진 한국적 근대의 기점이며 그 틀이 형성된 시 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한국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사회문화적 정체성 의 틀은 1950년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1950년대는 한국적 근대의 실질적 기점이 되는 시기로서 당시 한국인의 근대인식 속에 서 구축된 여성인식을 탐색하는 것은 오늘날의 여성들을 호명하는 사회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단 서가 된다. 오늘날 한국의 성평등지수는 OECD국가 중에서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여 성에 대한 가부장적 권위의 체감도 역시 경제발전 정도나 정치적 민주화의 수준에 비해 결코 무 시할 수 없는 정도이다. 이를 감안할 때 한국 여성의 현재적 삶을 규정하는 근원적인 인자를 근 대화 과정의 역사 속에서 조명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인식의 바탕 위에서 1950년대의 근대인식 속에 유기적 구성요소로 포섭된 전 1

통론과 가부장적 남성사회에 의해 구축된 지배적 여성담론이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맞물리면서 1950년대 한국의 여성인식을 형성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 이다. 2. 1950년대 전통론과 젠더정치 1950년대는 분단과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과하면서 자주적 근대국가를 건설하고 미래 한국사회의 방향을 정초하는 중대한 시기였다. 세계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확장 과정에서 한국은 근대라는 세계사적 보편성 속에 수동적으로 진입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한국사회는 외래의 서구적 근대를 힘겹게 소화해야만 했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문화로 대표되는 서구의 향 락적 소비문화와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확산되어 한국인의 위상과 정체성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던 시기였다. 1950년대 근대인식의 주체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적 근대를 타자로 인식하는 가운 데 전통담론을 근대인식의 유기적 구성요소로 포섭하여 서구와 구별되는 한국적 근대와 민족적 정체성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된 전통론은 한국의 1950년대라는 특수한 역사적 경험과 조우하면서 다음과 같은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 1950년대의 전통론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적 근대에 대한 대항담론이었고 문화적 식 민성의 탈피와 민족적 정체성의 확인이라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었다. 1950년대에 서구적 근대의 가시적 존재로서 등장한 미국은 당시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물질적, 제도적 근대의 모델이었던 반 면 근대가 주는 이질감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타자였다. 당시 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던 미 국문화가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치와 생활문화를 위협하게 되자 보수적인 논자들은 아메리카니즘 의 무분별한 소비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소리를 드높였다. 그 비판은 주로 서구의 개인주의와 물 질만능주의, 개방적 성문화와 향락적 소비문화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이에 대한 반발로 한국적인 것과 민족적인 전통이 강하게 환기되었다. 1 둘째, 1950년대의 전통론은 근대에 대한 이분법적 가치구조를 기반으로 탄생되었다. 즉 1950년 대의 한국사회는 경제적으로 서구적 모델인 자본주의를 지향했지만 근대를 추동하는 정신적 가치 를 과거의 전통 속에서 발견하고자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1950년대 전통담론은 개인의 자유에 기반한 쾌락의 추구와 소비문화를 억제하고 집단적 가치를 중시하는 편향을 갖게 되었다. 셋째, 1950년대의 전통론은 젠더화된 방식으로 구성되어 당시의 지배적 여성담론이 여성성을 재현하는 양상을 규정하였다. 1950년대 근대인식의 주체는 근대=남성, 전통=여성이라는 근대인식 의 이분법적 계열화를 통해 여성과 가정을 민족적 전통의 소재지로 지목하였다. 이러한 배경 하 에서 1950년대에 여성에게 적용했던 전통의 원리는 전근대적 요소인 가부장적 질서를 근대적으 로 전유함으로써 구체화된다. 1950년대 젠더화된 근대인식을 기반으로 창출된 전통론은 가부장적 젠더질서를 기준으로 여성 을 이분화하고 각각의 여성범주에 기호화된 여성성을 부여함으로써 담론적 젠더정치를 전개하였 다. 1950년대 전쟁으로 인하여 사회제도적 기초가 흔들리고 미국의 향략적 소비문화로 대표되는 1 김은경(2006), 한국전쟁 후 재건윤리로서의 전통론과 여성, 숙명어자대학교 아시아여성연구소, 아시아여성연구, 제 45집, 2호, p.37. 2

서구문화의 대중화가 가부장적 질서에 균열을 가져오는 조짐을 보이자 가부장적 남성사회는 젠더 질서의 경계 안으로 여성을 편입시키기 위한 주요한 담론적 전략으로 현모양처를 소환하였다. 반 면 가부장적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여성을 범주화하여 그것에 부정성의 기호를 부여하고 가부장적 젠더질서의 경계 밖으로 추방하였다. 현모양처가 이상적인 여성상을 구축하여 당대의 여성을 가 부장적 질서의 경계 안으로 흡수하는 선택 의 기제였다면 기호화된 위험여성은 여성 타자화 전략 을 실현하기 위한 남성 지배담론의 배제 전략이었다. 당시 위험여성의 범주에 포함되어 가부장 적 남성사회로부터 우려와 비난의 시선을 받았던 여성성의 기호는 전쟁미망인, 양공주, 자유부인 등이다. 이렇듯 가부장적 남성사회는 선택과 배제라는 담론적 젠더정치의 기제를 동원하여 당시 시대적 변화로 인해 가부장적 지배질서에 가해진 균열을 봉합하고자 하였다. 3. 1950년대 여성담론과 여성성의 재현 1) 현모양처 담론과 고전적 여성성 전후 국가재건의 과정에서 도입된 미국식 자유주의의 이념과 미국문화는 가족제도에 있어서 서 구적 스위트홈을 하나의 이상적 모델로 인식하게 하였다. 자녀와 부부의 수평적 애정관계를 기초 로 하는 근대적 핵가족 제도 하에서 근대적인 지식과 교양을 겸비한 가사 전담자로서의 주부는 1950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이었다. 여성의 이상적 역할모델을 주부로 규 정하는 주부담론은 전쟁이 끝나고 남성들의 사회복귀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더욱더 지배적인 사 회담론으로서의 권위를 획득하게 된다. 전후의 심각한 실업난 속에서 사회로 복귀한 남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공적 사회로 진출한 여성들을 가정으로 귀환시키기 위한 담론이 요 구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성을 가정에 안착시켜라 2 는 메시지가 지배적인 담론으로 제출되고 여성이라면 한 남자의 아내이자 자식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인식은 여성 을 가사 전담자로 호명하는 주부담론으로 수렴하게 된다. 1950년대의 주부는 전문적인 가정관리 능력과 근대적 교양을 겸비한 가사 전담자로서의 여성 을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근대적 정체성을 담지하고 있었지만, 이 시기에 주부라는 정체성을 구성 하는 원리와 지향점으로 채택되었던 현모양처 의 기호는 전통적인 부덕의 요소가 투영된 근대와 전통의 부정합적 결합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승만 대통령 탄신일이나 공자만강일, 개천절 등에 는 각 지방의 자치단체나 향교 등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열녀와 효부가 표창을 받았고 논개나 신 사임당, 허난설헌 등 과거 역사로부터 소환된 전통적 여성들이 현대 여성들의 역할모델로 설정되 었다. 3 이러한 과정에서 근대적 주부의 규범적 원리로 채택된 현모양처에는 근대적 지식과 교양을 겸비한 여성으로서 가정을 합리적으로 이끌고 가는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인내 와 순종의 미덕을 체현하는 전통적 여인의 이미지가 보다 더 강력하게 투영되었다. 근대적 주부 담론 속에 현모양처라는 도덕적 원리가 전통의 이미지를 덧입고 개입하게 된 데는 2 여원편집부(1957), 여성을 가정에 안착시켜라, 여원, 1957.3. 3 김은경(2006), 위의 글, p.24. 3

당시 여성들의 외래풍조를 가부장적 질서의 균열로 받아들였던 남성젠더의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도시를 중심으로 미국식 소비문화가 범람하는 가운데 여성들은 사치와 허영에 들떠 양풍을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주범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며 개방적인 성의식과 서구화된 물욕 은 전통의 파괴이자 가부장적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위기의식으로 인해 가부 장적 남성젠더는 여성을 서구적 근대로부터 격리시켜야 될 필요를 느꼈으며, 여성으로 하여금 한 국의 고유한 전통을 수호하는 아내와 모성으로 거듭날 것을 강조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현모양처는 원래 근대적 주부의 규범적 원리로 제시된 이념이었으나 서 구적 근대를 가부장적 질서의 위기로 인식한 보수적 지식인들은 전통적 가치가 투영된 현모양처 를 이상적 여성상으로 재현함으로써 서구적 근대화로 인한 민족적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고 가 부장적 권위에 가해진 균열을 봉합하고자 했다. 이러한 담론적 실천으로 인하여 1950년대 현모양 처는 근대적 주부의 이미지보다는 희생하는 어머니, 열녀, 효부 등 전통적인 부덕을 체현하는 고 전적 여성상을 대표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현모양처의 표상은 1950년대 근대인식이 지향 했던 전통론의 소재지가 되고 있다. 1950년대에 개작된 다양한 장르의 춘향전은 근대적 주부의 규범적 이상으로 도입된 현모양처 에 전통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고전적 여인을 이상적 여성상으로 재현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춘향전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판본을 가지고 있으며 각 판본마다 춘향의 신분과 성격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비교적 초기 판본이라고 할 수 있는 남원고사 에서 춘향은 기생의 신분으로 등장하면서 양반들과도 대등한 위치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적극 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당시 정조권을 인정받을 수 없는 신분인 기생으로서의 춘향이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한 것은 신분적 질서를 위반하면서까지 자신의 사랑을 지키는 과감 하고 도전적인 행위가 된다. 따라서 남원고사 에서 춘향을 주체적이고 당당한 여성으로 설정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신분이 기생으로 설정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의 관념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춘향의 이미지는 당대에 금지된 사랑을 쟁취하는 도전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이 아니다. 오늘날 한국인에게 춘향은 열녀불경이부( 烈 女 不 敬 二 夫 )라는 유교적 정절 윤리를 체화한 인고의 전통적 여인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춘향의 이미지가 이러한 고전적인 색채로 정형화된 것은 근대 이후 춘향전을 개작한 작품에서 춘향을 유 교적 정절을 체화한 양반집 규수로 재현해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55년에 제작된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은 10만이 넘는 관객을 확보하면서 종전 후 한국영 화의 부흥을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1961년에는 신상옥 감독의 <성 춘향>과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이 나란히 상영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춘향전 영화들은 서사 전개와 인물설정에 있어서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전통적 부덕을 체현한 수줍고 연약한 춘 향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라는 매체는 춘향을 시각적으로 재현 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스토리의 전개 속에서 상상만 했던 춘향의 이미지는 선명한 스크린의 영상으로 대중을 압도하면서 이 시기 이상적 여성상의 이미지를 효과 적으로 재현할 수 있었다. 인고의 여인이자 전통적 부덕을 체현한 춘향의 이미지는 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더 욱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시의 지배담론은 여성을 이분화 하여 자유부인과 현모양처로 대별하고 양풍에 물들지 않고 민족의 순수한 고유성을 담지한 전통적 여인의 모델을 현모양처라 4

는 기호 속에 각인시켰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적 고전미를 담지한 전통적 여인상을 창조 했던 1950년대의 춘향은 1950년대가 현모양처 이념에 이입시킨 전통적 여성의 이미지를 시각적 으로 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의 전통론 속에는 이식된 서구적 문물이 낳은 정체성의 위 기를 극복하고 민족의 고유성을 회복하기 위한 시대적 저항의식이 내재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전통적 여인상을 대표하는 춘향의 이미지를 통해 재현하고자 했던 여성성은 당시 미국문화 의 소비를 주도했던 위험여성들 에 대한 대항과 반작용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현 모양처의 이념을 전통과 결부키고자 했던 가부장적 젠더권력은 전통적 여인상의 전범( 典 範 )으로 정형화된 춘향의 이미지 속에서 현모양처의 가시적인 재현물을 발견하였으며, 영화라는 시각적 매체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 대중적인 동의를 얻어내는데 성공하였다. 당시 춘향전 영화가 갖는 사회적 역할을 감안할 때, 여주인공인 춘향을 통해 재현된 여성의 이미지는 한국의 이상적인 여 성성을 대표하는 전범으로 작용하면서 당시 지배적 여성담론 속에서 이상화 되었던 현모양처 이 미지에 전통적 여성의 덕목을 덧입히는 역할을 담당했다. 2) 전쟁미망인 담론과 보호와 감시의 여성성 한국전쟁을 경과하면서 한국사회는 최소 30만 명이 넘는 전쟁미망인을 양산하였다. 전쟁미망인 은 전쟁의 피해자로 전국민적 동정의 대상이 되었으며 새로운 여성주체로서 당시 사회의 지배적 여성담론의 주된 소재가 되었다. 미망인( 未 亡 人 )이라는 단어는 남편을 따라 죽었어야 하는데 미처 죽지 못한 아내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시 한국사회에서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들을 표상하고 담론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던 가부장적 담론권력은 개별 가부장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전쟁미망인을 남편을 대신하여 감 시하고 규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남편의 사망으로 인해 더 이상 남편의 권위 아래 있지는 않 지만, 미망인이라는 지칭은 죽은 남편의 존재를 부각시켜 이들을 가부장적 자장 안에서 규율화 하는 효과를 생산하였다 전쟁미망인은 남편의 부재로 인하여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공적 사회로 진출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당시 전쟁미망인에 대한 사회적 담론은 이들의 경제활동의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부장적 남성사회는 전쟁미망인의 생계활동을 전쟁이 낳은 역사적 비극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전쟁미망인을 동정과 보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은 그들의 생계활동을 한 개인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회적 노동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미망인들을 공적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가부장적 남성사회는 전쟁미망인의 경제활동과 공적 사회의 진출을 성윤리의 타락과 가정 의 존폐위기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1950대는 전쟁으로 인한 남성부재의 현실이 보편화되었고 이로 인해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성화되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여성의 경 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상승되었고 이는 가부장적 남성사회에 있어서 하나의 위기로 인식되었다. 여성의 공적 사회로의 진출을 영역침탈의 위기로 인식했던 당시의 남성사회는 공적 공간의 여성 과 성적 방종을 동일시하는 관념을 유포하였다. 4 전쟁미망인의 경우에는 남편의 통제로부터 자유 4 김소영(2000), 근대성의 유령들, 씨앗을 뿌리는 사람, p.143. 5

로운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보다 더 이러한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었으며, 1950년 대 당시 미군을 상대하는 성매매 관련 업종에 종사했던 여성 중에 전쟁미망인이 차지했던 비율이 매우 높았다는 사실도 이들의 직업활동을 성적 타락과 연결지었던 시선을 강화시켜 주었다. 1950년대 전쟁미망인에 대한 사회적 담론의 주제로 부상한 것 중에는 이들의 성과 재혼에 관 한 담론이 있다.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새로운 국가를 재건해야 했던 당시 한국의 상황에서 가 부장적 지배권력의 눈에 들어온 심각한 사회문제는 여성의 윤리적 타락이었다. 서구적 외양과 행 동양식, 향락적 소비문화와 개방적인 성윤리가 대중문화 속에 자리 잡게 되자 가부장적 남성사회 는 이러한 문화를 향유하는 여성들을 이른바 아프레걸 이라는 기호로 표상하고 이들에 대해 질타 와 비난을 퍼부었다. 당시 전쟁미망인은 전쟁의 희생자이자 국민적 동정의 대상으로 표상되기도 했지만, 개별 가부장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들의 성은 감시와 규제의 대상이 되었다. 유교적 정절 관념이 남아 있던 당시의 사회적 조건 속에서 여성이 재혼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쉬 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과부의 재가는 제도적으로 허용되고 있었지만 1950년대까지도 과부의 재혼은 미풍양속에 어긋나는 것으로 금기시되었다. 5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전쟁미망인이 양산되자 개별 가부장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이들의 성은 여성의 성 통제를 기 반으로 유지되는 가부장제에 치명적인 위협요소로 인식되었다. 이들의 성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대두되면서 6 가부장적 남성사회는 가정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들의 성을 규제하기 위해 미망인의 재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불식시키고 전쟁미망인의 재혼담론을 적극적으로 유포하였다. 그러나 전쟁미망인의 재혼을 허용하는 사회적 분위기에는 자녀의 유무에 따라 상반되는 잣대가 적용되었 다. 즉 남성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여 전후 복구기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던 상황에서 자녀가 없는 젊은 여성미망인에게는 사회구성원을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재혼을 적극 적으로 권유하였다. 그러나 자녀가 있는 미망인의 경우 자녀를 양육하고 가족구성원을 부양해야 만 하는 임무가 모성애와 열녀, 효부의 이름으로 제시되었다. 이렇듯 전쟁미망인의 재혼을 장려하 는 사회적 담론은 미망인 개인의 행복과 욕망에 대한 인정과 배려의 관점에서 출발하였던 것이 아니라 이들의 성을 통제하여 가부장적 질서와 전통을 수호하고자 했던 당시 남성사회의 지배의 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또한 자녀가 있는 전쟁미망인에게 수절을 장려했던 지배담론은 모성애와 전통적인 효 의식을 강조함으로써 이들의 성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언설적 기제를 작동시 켰다. 이러한 가운데 전쟁미망인들은 독립적인 개인으로서의 근대적 주체성을 박탈당하고 가부장 적 성 통제의 대상이 되거나 무성적 어머니로 재현되었다. 1953년 전쟁이 종식되고 서울 환도가 이루어지면서 전쟁미망인은 문화영역의 중요한 키워드로 부각되었다. 전쟁미망인은 애절한 정서를 담고 있는 대중가요의 소재가 되기도 했고 소설과 영화 의 주인공으로 빈번하게 등장하였다. 7 이처럼 전쟁미망인의 존재가 사회적인 관심의 초점이 된 것 5 여성사연구모임길밖세상 지음(2001), 20세기 여성 사건사, 여성신문사, p.126. 6 전쟁미망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이들의 성이 기존의 정상적인 가정을 침해하거나 문란한 성문화가 사회적으로 만연하여 가부장적 질서에 균열을 가져오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우려는 전쟁미망인이 기혼 남성과 내 연의 관계를 맺게 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처첩간의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던 당시의 사건들을 배 경으로 하고 있다. 7 1955년에는 대중가요인 <단장의 미아리 고개>(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이해연 노래) 가 발표되어 대중적인 인기를 6

은 전후에 변화된 사회질서와 문화적 세태 속에서 보수적 남성사회가 떠안았던 시대적 과제가 배 후의 추동력이 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54년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염상섭의 소설 <미 망인>(1954. 6. 6~12. 6)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여 탄생된 작품이었다. 이 소설은 등장 인물의 관계 구도를 통해 전쟁미망인을 재현하는 당시의 상반된 사회적 시선을 잘 나타내주 고 있다. 이 소설에서 미망인 명신의 모자를 물심양면으로 보살피는 홍식은 동정과 연민의 시선 으로 전쟁미망인을 바라보는 남성사회의 시선을 대변하고 있다. 반면 다방을 운영하는 창규와 유 엔마담 으로 살아가는 금선은 명신을 부추겨 창규의 다방에 마담으로 일하게 한다. 이들과 명신의 관계 속에서 전개되는 서사는 전쟁미망인이 타락의 손길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역설하 고 있으며 그녀의 성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강변하고 있다. 따라서 창규와 금선을 둘러싼 환 경은 미망인의 성이 감시와 규제의 대상으로 발현되는 지점이다. 이 소설에서는 명신이 홍식과 재혼을 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불안정한 존재인 미망인을 사회적으로 안정화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서사적 전개를 통해서 소설 <미망인>은 전쟁미망인의 재혼을 전통적 가족관계의 복원을 통한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전쟁미망 인을 바라보는 이러한 시각은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를 온존시키고자 했던 당시 젠더권력의 이해 를 반영한 것으로서, 이러한 시선 속에서 당시 미망인들은 사회적인 편견과 통제의 대상으로 전 락하였고 사회적 가부장의 감시와 담론 정치의 억압 속에서 타자화된 존재로 살아가야 했다. 3) 양공주 담론과 민족적 상흔의 여성성 미군정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군의 주둔지를 중심으로 기지촌이 형성되었고 양공주 로 지 칭되는 미군상대 성매매 여성층이 양산되었다. 성매매 여성의 존재는 성이 상품화된 이래로 보편 화된 현상이지만, 양공주는 특별히 미국문화로 대표되는 서구적 근대의 새롭고 이질적인 경험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그것이 표상하는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전 후 남성들 이 주도했던 근대인식은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감정이 응축된 분열적 특성을 나타낸다. 즉 경제적 물신주의로 표현되는 근대적 욕망에 대한 탐닉의 감정이 의식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고 외래적 근대성이 주는 이물감과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위기의식이 그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1950년 대의 양공주라는 표상 속에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분열적 근대의식이 투사되어 굴절 없이 반영되 어 나타나고 있다. 1950년대 미국과 미국의 문화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근대성의 기표였다. 전쟁 직후 미군부대를 통해 흘러나오는 갖가지 소비물자, 사교댄스, 할리우드 영화 등은 서구 자본주의의 풍요로움과 해 방적 분위기를 한국사회에 전달했고 미국적 자본주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적 모델로서 거 부할 수 없는 유혹의 대상이 되었다. 8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풍경 속에서 절대적 빈곤의 상태로 살았던 당시 한국인들에게 화려한 서구의 소비문화는 자신의 궁핍한 처지와 대비 되면서 퇴폐적인 향락과 사치의 풍조로 여겨졌으며 우리의 고유한 전통적 질서와 정체성을 침해 누렸고 같은 해에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인 박남옥은 영화 <미망인>을 제작하여 상영하였다. 8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이 경험했던 서구적 근대는 식민 본국인 일본을 경유하여 유입되었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의 민족 주의와 친화성을 가지기 힘든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일본의 식민통치를 몰아낸 해방자 였고 전후의 절대적 빈곤 속에서도 생존을 가능케 한 우방의 나라였다. 따라서 미국이 실어 나른 근대는 정당하게 욕망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로 받아들여졌다. (김경일(2003),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 백산서당, p.195. ) 7

하는 주범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양공주의 외양과 라이프스타일은 미군을 상대 하는 특수한 삶의 조건으로 인해 미국문화로 대표되는 외래문물의 집약적 전시장이 되었다. 그들 은 외모와 일상문화 속에서 서구적이고 이국적인 문화를 소비하는 주체로서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미국문화로 대표되는 서구적 물질문화를 동경하는 한국인의 감정이 양공주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내재해 있었다. 반면 양공주가 향유하는 미국적 소비문화와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절제하고 인 내하는 전통적 현모양처의 이미지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면서 양공주는 사치와 허영에 들떠 무분별 하게 양풍( 洋 風 )을 추종하는 위험한 여성의 상징이 되었다. 1950년대에 기호화된 위험여성들을 시대의 위기적 징후로 받아들였던 남성 사회는 그들을 가 부장제 질서에 기반한 전통적 성윤리의 위반자로 표상하였다. 가족적 공동체적 속박에서 벗어난 양공주의 성은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 속에 포섭될 수 없었기 때문에 보수적 남성사회는 이들의 성을 천박하고 저속한 성의 이미지로 표상하였다. 가계의 혈통을 잇기 위한 생물학적인 도구로서 의 성이나 남성주체에게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성이 아닌 양공주의 성은 대중적 재현물 속에서 남 성을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팜므 파탈의 이미지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남성에게 치명적인 위협 과 위기의 징후로 읽혀진다. 9 양공주의 성에 부여된 이러한 의미들로 인하여 양공주는 고유한 미 풍양속을 파괴한 민족정서의 위반자로 표상되고 대중적 재현물 속에서 인간적 진정성을 결여한 괴물적 인간으로 그려진다. 비서구사회의 민족담론은 종종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소환하고 이 들에게 민족적 상징과 기호를 부여한다. 이 때 여성의 정절은 여성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주체임을 자처하는 남성이 보호하고 지켜내야 하는 민족의 자산으로 인식된다. 10 1950년 대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미군을 상대로 성을 파는 양공주의 몸과 섹슈얼리티는 민족의 불우한 역사가 기입되는 공간이자 식민화된 현실을 환기시키는 표상이었다. 1950년대에 정치적, 군사적 우위를 앞세워 상륙한 미국적 근대의 경험은 민족적 전통과 순수의 침탈이라는 상실의 의미로 한 국인에게 다가왔다. 이러한 관점 속에서 민족주의적 남성사회가 바라보는 양공주의 몸과 섹슈얼 리티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제국의 정치, 경제적 힘에 눌려 침탈당하고 깨어진 민족의 순결과 정 조를 의미했다. 따라서 양공주의 몸에는 자민족의 자산인 여성의 정절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피식 민지 한국 남성의 수치와 굴욕이 각인되었고 양공주의 섹슈얼리티는 깨어진 민족적 자존심을 상 징하는 코드가 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남성사회는 양공주라는 기표 속에 온갖 부정성의 은유를 삽입시켜 민족적, 가부장적 남성성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신상옥 감독의 영화 <지옥화>는 현모양처의 이미지로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최은희가 서구적 외양을 한 도발적인 양공주로 연기변신을 시도해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영화 <지옥화> 는 한국전쟁 후 남한에 본격적으로 진주한 미국이라는 타자가 한국 사회에 남긴 족적의 양상을 양공주의 삶을 통해 드러내며, 그것을 바라보는 한국 남성사회의 시각이 주인공 쏘냐를 통해 재 현되고 있다. 기지촌에서 밀수와 포주 노릇을 하는 영식과, 미군을 상대로 매매춘을 하면서 도덕적 억눌림 없이 살아가는 영식의 애인 쏘냐는 미국의 상품자본주의와 뒤틀린 근대성이 낳은 부정적 인물로 9 주유신(2001), 위의 글, p.34. 10 양현아(2001), 한국인 군 위안부 를 기억한다는 것, 일레인 김, 최정무 편저, 위험한 여성, 삼인, p.169. 8

묘사된다. 반면 형을 찾아 시골에서 올라온 영식의 동생 동식과, 같은 양공주이기는 하지만 동식 과의 관계를 통해 그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쥬디는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고향과 과거에 대 한 향수를 상기시키는 인물로 설정된다. 영식은 기지촌에서 살며 미군부대의 창고를 털어 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한다. 영식을 비롯하 여 기지촌에 기생하고 있는 남성들에게서 보이는 폭력성과 범죄행위는 한국에 뒤틀린 근대를 상 륙시킨 미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이들에 의해 훼손된 인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한 양공주 쏘냐를 통해 그려지는 미국의 소비문화는 성애적 욕망과 교차되면서 더욱더 화려하고 매혹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상품화되고 인공적으로 꾸며진 쏘냐의 현란한 몸치장은 미국의 물질 적 풍요를 상기시키는 소비문화가 각인되어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 근대의 기표로 그려지고 있다. 한편 순수의 고향을 대변하는 동식을 유혹하는 쏘냐의 대담한 성적 도발은 그녀가 더이상 남성 주체가 이끄는 수동적 성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성애적 욕망의 주체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지옥화>의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양공주 쏘냐의 섹슈얼리티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파괴하는 위협적인 성이다. 양공주의 성은 민족주의적 남성 사회에 자기 모멸감을 부여하는 비천 한 성이며 지켜내지 못한 전통적 질서와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상흔으로서의 성을 의미한다. 이 러한 신식민지적 남성의 무력화가 낳은 굴욕적인 민족적 감수성은 곧바로 양공주를 향해 투사되 어 양공주는 진실함이 결여된 인간, 이기적이며 성적으로 타락한 요부로 재현되며 남성에게는 파 멸을 초래하는 위험한 존재로 표상된다. 영화 <지옥화>는 결말 부분에서 결국 양공주 쏘냐와 그녀를 욕망했던 영식을 민족적 순수의 이름으로 단죄하고 죽음에 이르는 처벌로 마감하게 된다. 1950년대 양공주는 <지옥화>의 쏘냐처 럼 대부분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처벌되거나 희생되는데, 이는 남성성의 상징인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시키기 위한 희생양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11 4)자유부인 담론과 일탈의 여성성 1950년대의 자유부인은 가부장적 젠더권력이 주부의 규범적 이상으로 설정한 현모양처의 기준 을 위반하고 가부장적 질서의 틀에서 일탈한 위험여성을 상징하는 기호였다. 가부장적 지배담론 은 서구적 소비문화와 향락문화를 탐닉하고 성적으로 개방적인 의식을 소유하고 있는 부녀자들의 이미지를 자유부인이라는 기호 속에 각인하였다. 따라서 자유부인은 사치와 허영, 방종과 타락으 로 가정을 위태롭게 하는 남성의 적이자, 국가재건의 사명을 망각한 사회적 일탈자의 표상이었다. 가부장적 젠더권력은 1950년대 당시에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적 근대의 물결 속에서 여성들 이 새로운 일상적 삶을 경험하는 시대적 변화의 양상을 자유부인 현상 으로 규정하고 자유부인 담론의 서사구조를 이러한 자유부인 현상을 통해 완성시킨다. 자유부인 현상은 첫째, 가정이라는 경계를 벗어나 가부장적 질서의 보호로부터 이탈한 여성의 삶을 의미했다. 전쟁을 계기로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확대되고 여성들이 경험한 경제적 사회적 인 변화는 그들의 가정 내 지위와 여성적 정체성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여성의 경제 적 사회적 능력의 신장과 근대적 의식의 성장을 가부장적 위계질서의 위기로 읽었던 남성젠더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활동을 주부의 본분을 저버리고 가정을 등한시하는 사치와 허영이라고 비난하 11 박진호(2003), 1950 년대 한국 멜로드라마 분석, 중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p.58. 9

였다. 둘째, 당시 미국문화로 대표되는 서구적 소비문화, 이른바 양풍( 洋 風 )의 소비와 관련하여 서구적 외양을 선호하고 서양댄스에 광분하는 이른바 유한마담들의 행태는 대표적인 자유부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1950년대 중반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댄스열풍은 당시의 대중들 사이에서는 자유 와 해방, 문화와 교양의 문화적 코드로 표상되었으며 특히 여성들의 사회 경제적 활동이 활발해지 면서 그들의 여가공간이 개방되고 확장되었던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보수적 민족주의 자들에게 댄스열풍은 미국문화로 대표되는 서구문화에 대한 이질감과 민족적 정체성의 혼란을 가 져오는 문제적 현상이었다. 셋째, 당시의 자유부인 담론은 여성들이 전통과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온존하는 가정을 벗어나 면 성적 순결을 상실하고 정조를 가벼이 여기는 아푸레 한 여성이 되는 것으로 단정하였다. 가부 장적 담론권력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활동과 서구문화의 소비를 성적문란으로 비약시키면서 성적 방종과 성윤리의 타락을 자유부인 현상으로 규정하였다. 이상과 같이 다양한 의미체계로 구성되어 있는 자유부인은 당시 가부장적 지배권력이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제시한 현모양처의 표상과 대비되면서 부녀자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는 담론 적 지배의 장치로 활용되었다. 가부장적 남성사회는 이러한 자유부인 담론을 통해 서구적 외래문 화와 가치관으로부터 전통적 가족질서를 보호하고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젠더 위계질서를 유지하 고자 하였다.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 은 1954년 1월 1일부터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 향을 일으켰던 작품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대부분의 소설과 영화는 여성의 표상을 통해 순수와 타락, 이상적인 것과 훼손된 현실을 서사화하는 동일한 구조를 보여준다. 12 소설 자유부인 역시 주인공 오선영의 타락과 가정으로의 복귀의 과정 속에서 당시 남성 지식인 사회가 문제시한 무분 별한 아메리카니즘의 추종과 민족적 정체성의 상실, 여성주체에 의한 가부장적 질서의 위반 등을 고발하여 전통적 질서와 국가윤리를 재정립하고자 했던 계몽적 소설이다. 소설 자유부인 은 당시의 도덕적 타락을 대표하는 여성 인물과 이상적 가치의 소유자인 남성 이라는 상반된 인물의 설정을 통해 작가의 당대적 문제의식과 그것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오선영은 한글학자이자 대학교수인 장태연의 부인으로서 유교적 가치관에 젖어 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인물이었다. 오선영은 학문 연구에 몰두하느라 자신을 등한시하는 남편과 가부장적인 가정의 울타리가 주는 짓눌림에 염증을 느끼면서 가정 밖의 세계 에 눈을 돌리게 된다. 오선영은 자유를 찾아 나서게 된 가정 밖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 하기 시작하고 과감한 실험을 단행한다. 그러나 그녀의 실험은 매번 배신과 사기로 얼룩지면서 결국 자유부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반성과 회한으로 이어진다. 일과성의 바람으로 막을 내린 오선 영의 자유부인 실험과 그것의 참담한 결과는 가부장적 질서를 대중에게 설득하고 재확인하는 역 할을 담당한다. 즉 선영의 도발적인 실험과 좌절은 여성이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얼마 나 무모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증거하고 있고, 그렇기 떄문에 가정으로의 귀환만이 당시의 도덕적 타락과 가치관의 혼란을 봉합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고 있다. 반면 가치관의 혼란과 도덕적 무질서로 대표되는 한국사회의 정신적 공백을 청렴한 생활과 성 12 권명아(2001), 여성수난사 이야기와 파시즘의 젠더 정치학, 심철, 신영기 외, 문학 속의 파시즘, 삼인, p.306. 10

실한 학문 연구로 묵묵히 지켜나가는 장태연 교수(오선영의 남편)는 작가의 시대적 문제의식과 가 치관을 대변하는 인물로서 설정되어 한국의 근대화 과정이 담지해야 될 철학과 가치에 대한 작가 의 견해를 대변하고 있다. 장태연이라는 인물이 국어학 교수로 등장하는 것은 소설 자유부인 에 서 특별히 주목해볼 가치가 있는 대목이다. 당시 한글 간소화파동이라는 사건은 소설의 의미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배경으로 등장하게 된다. 한글 간소화 파동은 한글이라는 민족의 전 통문화가 천박한 미국추수적 성향을 지닌 권력에 의해 폭력적으로 침탈당하는 사건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권력의 시도에 맞서 한글의 순수성을 수호하는 장태연 교수는 전통과 민주주의가 결합된 정상적인 근대화의 주체로 설정된다. 13 작품 속에서 근대화를 둘러싼 갈등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오용하고 사회적 타락과 부패를 일삼 던 모든 등장인물을 좌절시키고 패배시킴으로써 종결된다. 또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댄스와 자유 연애로 착각하며 무분별한 양풍( 洋 風 )에 휩쓸려 사치와 허영을 일삼던 자유부인들은 가정과 남편 의 가치를 재발견하며 회한에 잠기거나 가정으로 복귀하게 된다. 그러나 가정의 울타리를 스스로 벗어 던진 자유부인 오선영의 뼈저린 회개와 남편 장태연의 너그러운 용서라는 의례를 통해서만 복귀할 수 있었던 가정은 전통적인 부덕을 강조하는 남성 가부장의 법이 규제하는 곳이다. 즉 정 비석이 그려내는 민주가정의 실체는 남편과 아내가 수평의 관계가 아닌 수직의 관계일 때만 안정 성을 가진다는 전근대적인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4 결국 소설 자유부인 이 오선영을 통 해 고발하고자 했던 시대적 문제 상황은 서구화로 인해 와해되어가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질서였 고 근대적 욕망과 가치의식의 전염으로부터 여성과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당대 보수적 지식인의 의지를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맺음말 1950년대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남성의 고유한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던 공적 사회에 여성의 진 출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시기이다. 이에 따라 여성들은 가정 내에서의 지위가 상승되고 새로운 근대적 경험을 통해서 여성으로서의 주체적 의식을 성장시켜 나갔다. 한편 미국의 향락적 소비문 화가 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자 당시의 여성들은 아메리카니즘의 주된 소비주체로 변모되어 갔다. 한국적 근대를 지향했던 1950년대 근대인식의 주체는 여성과 가정을 전통과 민족적 순수의 담 지자로 지목하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시대적 변화의 물결 속에서 보수적 남성사회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위계질서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가부장 적 담론권력은 전통적 질서를 위협하고 민족적 정체성에 균열을 가져온 위험여성들을 부정성의 기호로 표상하고 그 반대편에 현모양처라는 이상적 여성상을 대안으로 제시함으로써 가부장적 질 서의 회복을 위한 담론적 젠더정치를 전개하였다. 1950년대에 제시된 현모양처의 표상은 반서구 적 민족담론이자 전통담론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이는 당시 아메리카니즘에 경도된 여성들 의 소비문화와 가치의식을 비판하고 전통적 부덕과 민족적 전통을 체현하는 여성상을 통해 가부 13 권보드래 외(2009), 아프레걸 사상계를 읽다, 동국대학교 출판부, p.114. 14 임선애(2005), 전후 여성 지식인, 자유부인의 결혼과 일탈: 정비석의 < 自 由 夫 人 >을 중심으로,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p.84. 11

장적 위계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볼 때 1950년대 한국의 지배적 여성담론은 미국이 실어 나른 서구적 근 대에 맞서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를 수호하고자 했던 보수적 남성사회의 대항담론이라고 할 수 있 다. 1950년대 젠더화된 근대인식의 주체는 이러한 담론적 정치기제를 통하여 여성들을 전통의 이 름으로 호명하고 전쟁과 시대적 변화로 초래된 가부장적 질서의 균열을 봉합하고자 하였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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