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시는 다 함께 일어서서 * 경배와 찬양 Worship and Praise * 신앙 고백 Confession of Faith 주일 예배 순서 Sunday Worship Service 오전 11시 다 같 이 다 같 이 찬 송 Hymn 기 도 Prayer 교회 소식 Announcement 성경 봉독 Scripture Reading 91장 다 같 이 누가복음 7장 11-17절 Luke 7:11-17 인 도 자 Presider 인 도 자 Presider 인 도 자 Presider 주일학교 모임 Kids Bible Study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You are like a tree planted by stream 다 같 이 설 교 Sermon 나인성 과부의 아들 (복음서 강해 #51) 박용철 목사 Rev. Park * 찬 송 Hymn 축 도 Benediction 친 교 Fellowship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다 같 이 박용철 목사 Rev. Park 예배 후 체육관 Gym * 헌금과 방문 카드는 입구에 준비된 헌금함에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비전 아카데미 Vision Academy 1 교시 (1:10pm) 한글 A 음악 A 태권도 A 체육관 및 2 교시 (1:40pm) 한글 B 음악 B 태권도 B 각 교실 3 교시 (2:10pm) 비전오케스트라 연습 성가대실
비전교회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비전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나 방문하신 분들은 카드를 작성하신 후, 헌금함에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때는 카드에 표시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배 후 체육관에서 친교가 있습니다. 꼭 참석해 주시기 바랍 니다. 교회 소식 및 기도 제목 한글교실 후에는 7월 22일(수) 10시 30분에 계획된 양로원 방문을 위해 오케스 트라 연습이 예배실에서 있습니다. 유스 그룹 Lock in이 8월 9일(주) 저녁 6시에 교회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10일(월)에는 유초등부와 유스그룹이 캐로윈즈를 방문할 계획입니다. 9월 20일(주)에는 전교인 탁구대회가 있습니다. 탁구대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교제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수요일 오전 11시에 갖는 성경공부를 기억하시고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간은 요나서 강해입니다. 7월 22일(수)은 양로원 방문으로 쉬고, 29일 (수) 성경공부는 Eric & Anna 교우 집에서 집들이와 함께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전도 대상자들에게 주보를 우편과 이메일로 발송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전도 대 상자들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신앙 상담이나 심방을 원하시는 분들은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출타한 성도들과 환자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십일조 지난 주 헌금자 명단 박용철 이지은 조길남 이지선 박고은 감사 및 주일 헌금 박용철 이지은 조길남 이지선 정의석 정순주 김민석 박현정 박세찬 박조은 한민혁 김혜나 Eric 5Anna 리수 정빈 무명 * 비전 교회 재정의 50%는 교회 운영비로, 나머지 50%는 교육과 선교, 구제비로 쓰일 것을 목표로 합니다.
주일 설교 요약 성경 : 누가복음 7장 11-17절 제목 : 나인성 과부의 아들 (복음서 강해 #51) 사람들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에 못 미치거나 넘어서면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 을 합니다. 사람의 눈은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운 것은 볼 수 없습니다. 물론 1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는 손가락의 지문이 보이지 않겠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도 볼 수 없습니다. 설교: 박용철 목사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청주파수가 있습니다. 사람 들은 시속 1670km로 돌아가는 지구 자전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물론 우주에 는 공기가 없어서 소리가 나지 않지만, 대기층과의 마찰에서 일어나는 소리는 너무 나도 크지만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를 넘어가기 때문에 들을 수 없는 것 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정상적인 것만 보고 들으며 정상적인 것만 받아들이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것은 거부감을 느끼거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이 정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 서 성경에 말도 안 되는 말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성경에 일어난 기적들도 믿지 못하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서 죽으셨는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성경에 나타난 기적들 가운데 죽었던 사람을 다시 살리는 기적이 총 7번 나 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정말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오늘날에는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가? 많은 질문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나인성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누가가 기록을 했습니다. 누가는 이 사 건이 일어난 당시에는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과 바울을 통 해서 이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주의 깊게 연구하고 조사하 여 이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눅1:3). 직접 이 사건을 보지 못했지만, 제자들이 전 했던 이 사건을 위해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하여 데오빌로 총독에게 써 보냈던 것입 니다. 1. 가장 슬픈 죽음. 나인성은 갈릴리 호수 옆에 있는 모레산이라는 작은 산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습 니다. 이 동네의 이름은 매우 아름다운 혹은 매력적이라는 뜻을 가진 성입니다. 예수 님께서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신 후에 이 나인 성을 향해서 복음을 전 하러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아름다운 도시에 들어가시는데, 한 억울한 죽음의 행렬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한 과부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죽음이었다고 말합니다. 한 때, 이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식을 올린 후에 아들을 낳고 인생에 있어서 가장 달콤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남편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힘들지만, 그 당시 여자가 과부가 되었다는 것은 앞날에 엄청난 시련과 극 심한 가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신에게 남겨진 유일한 소망인 아들을 위해 열심히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 아들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그 아들이 죽자 동네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는지 모릅니 다. 무슨 죄가 커서 남편도 보내고, 이제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마저 보낼까? 그리고 그녀를 도와 장례 준비를 하여 장지로 가기위해 성을 막 빠져 나가던 중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얼마나 큰 절망감에 빠졌을까요?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보낸 유족들에게 아무리 우리가 아름다운 말로 위로를 한다고 해도 그 깊은 절망감을 메워줄 수는 없 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이루 설명할 수가 없 는데, 그 자식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가족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 니다. 2. 울지 말라. 그런데 나인성을 향해 걸어가시던 예수님의 눈에 그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 리는 듣기만 해도 슬픈데 예수님은 직접 보셨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겠습니까? 본문 13절에 예수님께서는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그 여인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은 영어로 Compassion 인데, 함께 아파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헬라어 스플랑크논 은 내장(가슴, 간장, 허파)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 런데 왜 하필 내장이 그 어원일까요? 그것은 창자가 끊어질듯 한 아픔을 함께 느끼는 것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아들을 잃은 어미의 마음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그녀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지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슬픔 을 함께 나누시고 울지 말라고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빈말이 아니 었습니다. 그 한마디는 가장 깊은 곳에서 애통하는 한 여인을 위로하시는 약속의 말씀 이었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3. 청년아 일어나라.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셔서 그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관에 손을 대었다는 것은 죽은 자를 만진다는 것의 우회적인 표현인데, 율법에는 부정한 시체를 만지지 말 라는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청년을 살리시기 위해 멈추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그 장례 행렬이 지나갈 때까지 옆으로 비켜서 있었다고 하면 어땠을까요?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그 죽음을 피했다고 하면 그 누구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행렬과 마주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이 말을 할 때에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장례 행렬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 라 예수님을 따라가던 무리들도 하나같이 웅성거렸을 것입니다. 아니 죽은 사람이 어 떻게 일어나? 정말 말 같지 않은 말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그 한 마디에 청년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앉아서 말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만나게 함으로 그녀의 애통이 기쁨 으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4. 이 말씀을 주신 이유 그런데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⑴ 생명의 주 그것은 죽음의 사자들이 걸어 나오는 그 현장에 생명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이 그 들을 만나셨기 때문에 반드시 그 아들을 살려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 앞에 그리스도만이 죽음을 이기신 생명의 주인이요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는 것이 이 사건 의 목적입니다. 온 세상을 향하여 나는 죽음을 이기었노라, 내가 생명의 주가 되느 니라 고 선언하시는 하나의 사건이었고, 그 말씀대로 죽은 자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⑵ 죽음을 향해 가는 자들에게 이 세상에는 영원한 죽음을 향해서 걸어가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저 넓고 편 한 길을 걸어가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영원한 지 옥불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육신은 살아있는 것 같으나 그 영혼은 죽어서 지옥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에게 한 가지 살 수 있는 방법은 우리를 만나 주 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과부와 아들의 신앙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백부장에게는 믿음이 있었고 그의 믿음대로 그의 하인을 구 원해 주셨지만, 과부와 아들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 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예 수님이 그들을 만나주셨고, 말씀으로 그 청년을 살려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 자리에 나와 있다는 것, 복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영원 한 지옥 불을 향해 걸어가는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 예수 님이 나를 살려 주신다는 것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그 믿음 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지만, 마음에 주저함이 있을 때 예수님을 믿는다고 외쳐 보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의 말씀이 다 이해 될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보고 듣고 믿을 수 있는 범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 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⑶ 지금도 소외된 우리를 위로하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시고, 눈물을 닦아 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독자를 잃고 울고 있는 과부를 눈 여겨 보시던 주님께서 오늘 우리가 울고 있을 때 우리를 주목 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크고 작은 문제와 아픔을 앉고 남모르게 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울며 왔다가 울며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수 님께서는 나인성 과부와 같이 절망하며 슬퍼하며 울 수밖에 없는 우리를 주목하시고 위로하십니다. ⑷ 말씀이 우리를 살린다. 청년을 일으키신 예수님은 다른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말씀 으로만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백부장의 하인도 말씀으로만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다 믿지 못하면 내 신앙이 약해진 증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확실히 믿는다 면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것입니다.
목회 칼럼 - 유혹(?) 1. 목회 칼럼을 준비하다가 아주 멋진 글을 발견했다. 특별히 아직 신앙에 확신이 없는 학생들에게 너무나도 꼭 필요한 멋진 예화였다. 그 내용은 마치 'God is not dead'에서 한 교수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논쟁하는 학생의 모습과 오버랩 되면 서 아이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이었다. 2.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 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 하였는가?" 한 학생이 용감히 대답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교수가 다시 물 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 하셨는가?" 학생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교수 님." 교수가 말했다. "만약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 하셨다면 악(evil, 惡 )도 존재 하므로 하나님은 악도 창조 하셨네. 그리고 우리의 성과(work)가 우리가 누군지를 규정짓는다는 원리에 근거 한다면, 하나님은 악( 惡 )이다." 학생은 이 말에 조용해졌 다. 교수는 스스로에게 대단히 만족해하며 학생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미신임 을 다시 한 번 증명 했다며 으쓱해 했다. 다른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교수님,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교수가 말했다. 학생이 일어서서 물었다. "교수님, 추위가 존재합니까?" "무슨 질문이 그런가? 당연히 추위가 존재하지. 자넨 추운 적 없는가?" 교수가 말했다. 학생들은 젊은이의 질문에 킬킬거렸다. 젊은이가 말했다. "사실은, 교수님, 추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리학 법칙에 의하면, 우리가 추위라고 간주하는 것은 실상은 열의 부재입니다. 누구나, 그리고 무엇이든 에너지를 전달 할 때 연구 가능한 것입 니다. 절대 0도 (섭씨 -2730도)는 열의 완전한 부재입니다. 그 온도에서는 모든 것 이 반응 할 수 없거나 쓸모없어 집니다. 추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열이 없을 때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묘사하기 위해 인간이 창조한 것 입니다."(중략) "교수님, 악( 惡 )은 존재하지 않거나 적어도 스스로 존재하진 않습니다. 악은 단순 히 하나님의 부재입니다. 마치 어두움과 추위와 같이 하나님의 부재를 묘사하기 위 해 인간이 만들어낸 단어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악( 惡 )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빛, 열과 같은 믿음, 사랑과 악은 다릅니다. 악은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 을 때 벌어지는 결과입니다. 이것은 마치 열이 없을 때 추위가 오고 빛이 없을 때 어두움이 오는 것과 같습니다." 교수는 주저앉았다. 3. 문제는 너무나도 멋진 논증을 펼쳐 보인 이 학생은 앨버트 아인슈타인이라는 것이다. 그의 서신들을 통해서 밝힌 하나님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과학 자들의 철학을 종교적인 입장으로 해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멋진 논증을 펼친 아인슈타인이 신자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어쩌면 그 의 신앙과는 상관없이 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설교나 글로 좋은 결과를 도출하고 싶은 유혹이 목사에게 있을지 모른다. 4. 설교를 더욱 힘 있게 하기 위해서 목사는 많이 준비할 것이다. 어쩌면 성경보 다도 더 가슴에 확 와 닿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은 목사의 열정이 너무 커 앞뒤도 재보지 않고 설교하고 싶은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또 점검하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예배 안내 모임 시간 장소 주일 낮 예배 주일 오전 11시 Learning Center 성경 공부 수요일 오전 11시 목사님 집에서 아침 기도회 오전 8시(월-금) 체육관 아침 기도회 후에는 10시까지 체육관에서 운동도 하실 수 있습니다. (조깅, 탁구, 배드민턴, 농구 등) 주일학교 모임 시간 장소 영어 성경 공부 주일 오전 9시 30분 Children's Wing 유초등부 주일 예배 주일 오전 11시 체육관 중고등부 성경 공부 주일 오후 1시 체육관 비전 아카데미 1 교시 (1:10pm) 한글 A 음악 A 태권도 A 2 교시 (1:40pm) 한글 B 음악 B 태권도 B 체육관 및 교실에서 3 교시 (2:10pm) 비전 오케스트라 연습 성가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