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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6일

Transcription:

WORLD VIDEO BIBLE SCHOOL JOHN MOORE 著 BCC 譯

We are thankful to the Lord for the opportunity to produce this material for the sake of the Kingdom. He makes all things possible. Thanks to those who financially made Searching for Truth possible. World Video Bible School Searching for Truth Korean edition translated by BCC Visit lib.bible.kr to view online "Searching for Truth" series. 본 소책자는 약 네 시간 분량의 온라인 진리를 찾아서 (Searching for Truth) 비디오 시리즈의 한글 자막을 위한 원고입니다. 본 번역본의 최종 수정 날짜는 2014년 6월 25일입니다. 한글판 진리를 찾아서 시리즈는 美 World Video Bible School의 허락을 받아 제작했으며 한글판의 저작권은 BCC에 있습니다. 본 시리즈의 비디오는 아래 BCC e도서관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으며 한 영 PDF 원고를 내려 받을 수 있습니다. 2014년 여름 이후에는 BCC 모바일 앱을 통해서 도 비디오와 원고를 제공해 드립니다. lib.bible.kr

차례 (한글판) 소개... 1 창조주 하나님... 6 신앙의 권위... 17 교회란 무엇인가... 32 하나님의 집... 46 세례... 61 Contents (영문판) Introduction... 79 About the Creator... 85 About Authority in Religion... 97 About the Church... 114 About the House of God... 129 About Baptism... 146 본 소책자는 한글판, 영문판, 한영판 등 세 가지 형태로 제작되며 BCC e도서관 (lib.bible.kr)에서 한영판 PDF 파일을 내려 받을 수 있습니다.

소개 진리를 찾아서 비디오 시리즈 첫 장면은 묘지에 운구차가 들어오면서 어메이징 그레이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아카펠라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것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제 이름은 잔 모어입니다. 우리 인생의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함께 살펴보시기를 권면 드리고 싶습니다. 이 순간에도 매 분마다 107명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이렇게 죽는 사람의 숫자는 하루에도 15만 3천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 렇게 많은 사람이 매일같이 죽는다니 믿기 어렵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죽음은 늙은이와 젊은이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인생을 사는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죽음 이후의 삶이 존재할까요? 그것은 어떤 삶일까요? 천국은 존재할까요? 지옥도 존재할까요? 당신이 죽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이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았느냐 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이 당신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으면 천국에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 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 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 니라. (마태복음 7:13-14) 예수의 말씀을 주의해 들어보셨습니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을 찾는 이는 적지 1

만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을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이 적 은 부류에 속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많은 부류에 속하는 사람입니까? 당신의 영 원한 운명에 대해 확신을 갖고 계십니까? 우리가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말씀은 예수를 그들의 구세주로 믿은 사람들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 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 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종교적인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할 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단지 주의 이름만 불러서는 그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 기에 부족합니다. 21절 말씀을 보면 천국에 들어가려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반 드시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습니까? 오늘 당신이 죽어 예수 앞에 선다면 당신에 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나를 떠나라.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실 까요? 아니면 어서 천국에 들어오너라. 하고 반겨주실까요? 예수께서 어떤 말 씀을 하실지 굳게 확신하고 계십니까? 내가 정말 구원 받았는지 아닌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의심이나 두려움 혹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죽음 이후의 삶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고, 정말 구원 받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았더라도 인생의 목적에 대한 질문은 갖고 계실 것입니다. 왜 내가 여기 존재 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에 어떤 목적을 갖고 계시는가? 역사 이래로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철학자, 신학자, 화학자, 어머니, 아버지, 목 수, 변호사 할 것 없이 모두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질문들에 대해 서로 다 른 많은 답변들이 주어졌는데, 그 가운데는 서로 모순되는 대답이 있습니다. 이 것이 사람들을 매우 힘들게 하고 혼란스럽게 합니다. 같은 질문에 대해 서로 다 른 대답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질문에 대한 참된 답변은 무엇 일까요? 어떤 신앙이 올바른 것일까요? 이 세상에서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사느냐 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일까요? 이 점을 정말 확실하게 알고 싶지 않 으십니까? 진리를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런 의문들 때문에 인생을 방황하며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에 살았던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 분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답변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의문과 두려움과 걱정에 대한 답변을 주십니다. 2

우리가 구원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에 대한 답변도 주십니다. 이 대답이 하나 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이 위대한 책에서 예수께서 진리를 말씀해 주시고, 그 진 리가 어떻게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지도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의 말씀을 들어보 십시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 게 하리라. (요한복음 8:31-32) 이는 참으로 능력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진리에 대한 다음 세 가지 사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이 말씀에서 예수는 우리가 진 리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진리가 실제로 존재하며 깨달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이것을 혹은 저것을 믿든지 상관없이 진리는 실제로 존재하며 진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객관적 표준이 됩니다.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 보여줍니다. 저나 다른 사람이 진리를 말하고 있는 지 그렇지 않은지 염려 않으셔도 됩니다. 진리는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가 진리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 습니다. 죄의 노예, 죄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 셨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죄 와 싸우고 계십니까? 그 죄의 짐이 무겁습니까? 당신이 돈의 노예, 알코올의 노 예, 마약의 노예, 포르노의 노예는 아닙니까? 당신 배우자와의 관계는 어떻습니 까? 결혼생활에 어려움은 없습니까? 자녀양육에 실패하셨습니까? 분노 때문에 힘들어하십니까? 시기, 미움, 인종차별 때문에 힘드십니까? 이런 것들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를 수 있습니다. 커다란 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망이 있다는 말씀을 저는 드리고 싶습니다. 진리가 그런 억누름으로부 터 당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불의한 행동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뿐 아니라 거짓 종교행위와 사람의 전통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줍니다. 1세기에 바리새인들의 거짓된 종교 행위 때문에 큰 짐을 졌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마가복음 7장, 마태복음 23장에 나옵니다. 오늘날에도 성경에 나타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여러 종교적 의식이나 행위 때 문에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만든 전통과 의식이 우 리를 지치게 하고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전통이 우 리의 예배를 헛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마태복음 15장 9절에서 예수는 성경에 없는 바리새인들의 전통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3

당신은 어떻습니까? 종교적 전통이나 사람의 의식에 얽매어 계십니까? 그런 가르 침이나 사람의 계명에 얽매여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요구한 적이 없는 종교의식을 강요받은 적이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소망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 니다. 왜냐하면 진리가 이와 같은 속박과 제재에서 우리에게 자유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깨달으면 더 이상 불확실한 것이나 두려움에 갇혀 살 필요가 없습니다. 분명한 죄악의 행동이나 거짓된 종교행위가 그렇듯 죄는 우리를 구속 합니다. 우리를 노예로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와 그의 말씀이 우리를 거기서 자 유롭게 해 줍니다. 온갖 거짓말과 악행의 아버지인 사탄이 우리의 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리이며 우주의 주권자이신 예수께서 우리의 주님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우리가 진리를 알 수 있고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예수 안에 이 진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자 신 밖에는 진리가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 느니라. (요한복음 14:6)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예수가 진리이며 진리를 찾기 위해서는 예수께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와 그의 말씀 안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진리에 대해 하신 말씀을 다시 들 어보십시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 게 하리라. (요한복음 8:31-32)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의 말씀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이 귀한 보화입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처럼 우리가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23:23) 성경에 나타나는 진리는 이처럼 우리에게 정 말로 소중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 말씀을 보면 진리가 우리 영혼을 깨끗하 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7-9절에서는 우리가 진리 에 순종해야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생은 불확실합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전 연령층에 걸쳐 죽음이 찾아왔음을 이 묘지가 보여 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은 때에 갑자기 죽었습니다. 아 무런 경고도 없이 말입니다. 이 가운데 진리를 모르고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 지 궁금합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이 땅에서 언제까지 살 수 있다 보장받은 사 4

람은 없습니다. 80세, 90세, 더러는 100세까지 사는 사람도 있지만 한 가지 확 실한 것은 땅 위에 사람이 사는 한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죽음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성경에 따르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로마서 2장 2절과 16절 말씀을 보 면 사도 바울은 우리가 복음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진리의 말 씀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 입니다.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나는 진지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내 느낌을 볼 때 나는 이미 진리를 발견했다 하고 말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이미 진리를 발견하셨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진지함 그 자체로는 구원받기에 불충분합니다. 복음의 진리에 순종하기 전에도 사도 바울은 대단히 종교성이 강했으며 자신의 믿음에 매우 진지한 사림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 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도행전 22장을 보면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죽일 만큼 자신의 믿음에 열심이었 습니다. 그에게 진지한 열심은 있었지만 그 열심만큼이나 잘못도 저질렀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도 그런 믿음의 열심을 갖고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믿고 확신하는 것들이 성경이 가르침과 일치하는지 한 번도 점검해 보지 않으셨을지 모릅니다. 당신은 정말로 진리를 아십니까? 그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 을 갖고 계십니까? 저와 함께 그 진리가 무엇인지 더 살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5

창조주 하나님 우주와 지구, 경이로운 인체를 살펴보면 이와 같은 것들이 우연히 생길 수 없다 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것들은 모두 지적 존재인 창조주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창조주가 누구일까요? 우리가 그 창조주에 대해 정말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그 창조주는 자기가 만든 피조물을 돌보시는 분 일까요? 창조주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으며, 우리가 그를 알 수 있을까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로 가야 이 창조주에 대한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있 을까 입니다. 창조주에 대한 이와 같은 질문을 잔 모어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인생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 대한 참 된 해답을 가장 귀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질문의 해답을 찾는 일을 저는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름답게 나타나는 이런 곳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저는 이런 자연 속에 들어오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복잡한 고속도로 와 시장을 벗어나 이런 곳에 오면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 지만 우리가 이런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여기서 하나님을 발 견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 진리가 무엇인지 그 해답을 찾고 있는 중인데 먼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첫째, 자연은 하나님 에 대해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가? 둘째,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셋째,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가? 그럼, 첫째 질문부터 보겠습니다. 자연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가? 오랜 역사를 통해 많은 철학자, 과학자,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해 왔습니다. 그들은 자연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윌리엄 페일리는 18세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자연의 근거로 논증한 유명한 신학자입니다. 자연현상은 주의 깊게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위대함에 놀라게 된다. 방대한 규모로 진행되 는 작용 속에 드러나는 사실을 통해 지적 존재의 능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자연 생명체 속에 생명의 유지와 번식을 가능케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는 사실은 창조주가 피조물을 돌보고 있음을 증거해 준다. 우리는 이와 같은 유 기체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이들을 자세히 살피고 비교해 보면 놀라울 정도 로 다양하다. 이런 유기체들은 어디나 분포하고 있으며, 자연사를 총망라해 지적 창조주의 존재증거를 제시하는 것만큼 큰 주제도 없다. (윌리엄 페일리의 자연신학 ) 6

이렇듯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성경도 이 사 실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연이 하나님의 계심을 증거한 바울의 말을 들 어보십시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 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로 마서 1:20) 이 구절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해 핑계를 댈 수 없다고 했습니 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분명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과 우주와 우리 자신의 몸을 살펴보면 이 모든 것이 창조주가 계시다는 증거임 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어떻게 말하는지 들어보십시오. Brad Harrub, Ph.D. (신경생물학자): 시인 없는 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건축가 없는 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지적인 디자이너가 없는 디자인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세포의 복잡성, 대기의 복잡성, 행 성간의 거리 등 이 모든 것이 정확하게 제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손길 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경조직을 예로 들면 문자 그대로 수 십 억 개가 넘는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모든 세포들이 각기 어떤 의도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신호를 몸의 한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전달해 줄 수 있습니 다. 이 세포 하나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하나의 세포 안에도 이온 채널이 있고 전기가 통하는 채널이 있고 세포막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특별한 기능을 위해 고안된 것으로 그 기능은 곧 한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신호를 전달해 주는 것입 니다. 세포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세포 핵 속에는 생명코드인 DNA가 들어있어 자신의 세포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세포 속에도 살아있는 생명코드 가 있는데 이것이 우연히 생겼다고 믿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자연을 관찰하면 할수록 지적인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리켜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설계 한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 속에 우리를 향해 외치고 계십니다. 내가 여기 있다. 나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자연이 그분의 어떤 면을 보여줄까요? 자연은 그가 지적 존재이며, 모든 것을 다스리는 분이고, 이 복잡한 우주를 보존유지하 시는 뛰어난 설계자임을 보여줍니다. 눈에 보이는 유기체들을 지으신 분이고 복 잡하기 그지없는 구조를 지으신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분임 을 보여줍니다. 7

하지만 우리가 경이로운 피조물을 보면서 감탄할 수는 있으나 나무나 기타 자연 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알 수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발밑에 있는 풀만 쳐다봐서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 알 길 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요? 나를 위한 하나님 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가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는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어 떻게 알 수 있는가?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이 바로 이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마 음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 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 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고린도전서 2:11-13) 이 구절을 통해 첫째로 우리는 사람이 그 자신의 힘만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길이 없다는 사실을 봅니다. 이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거나 자연만 바라보고서 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 을 성령으로 나타내셨음을 봅니다. 성령이 사람의 힘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을 나 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셋째로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마음은 성령의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의 느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말씀 안에서 가르쳐 주심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이 이 성경에 나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 게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럼, 이 성경의 유래와 목적을 성경에서 찾아보겠습 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 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 기에 온전하게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3:16-17) 바울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감동의 문자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숨을 불어 넣으셨다. 입니다. 8

Chuck Horner (성경 교수): 신약성경을 기록한 그리스어 원어를 보신다면 이를 데오뉴타스 라고 합니다. 이것은 합성어로 데오는 하나님 을 뜻하고 뉴타스는 숨을 불어넣다 라는 뜻입 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여기서 한 말은 모든 성경에 하나님이 실제로 숨을 불어 넣으셨다는 뜻입니다. Keith Mosher Sr., D.Min. (성경 교수, 전도자):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이 사람의 코에 숨을 불어넣으시자 그 사람이 살아있 는 영이 된 것처럼 하나님이 메시지에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우리가 성경을 가리켜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성경은 살아있고 활동력이 있습니다. 그러 므로 우리가 여기 죽어 있는 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직접 온 살아 있는 메시지를 우리가 갖고 있습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예언자가 자의로 푼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 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 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베드로후서 1:20-21)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의 산물이 아니라 성령의 산물임을 여기서 밝히 알 수 있습 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보고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세 번째 큰 질문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성 경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도 바울이 그리스 아테네에 위치한 마르스 언덕에서 행한 연설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 연 설이 사도행전 17장에 나옵니다. 먼저, 이 연설을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사울이 그리스도에게 개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에 대한 복음을 전하기 시 작했습니다. 루스드라, 빌립보, 데살로니가 같은 도시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예 수와 하나님을 전하는데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테네에 들렀는데 이 곳은 온통 우상으로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대단히 종교적이었습 니다. 얼마나 우상을 숭배하고 미신적인 사람들이었는지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치는 제단 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혹시라도 알지 못하는 신 에게 경배하는 것을 빠뜨린 나머지 그 신의 노여움을 살까 봐 두려워 세운 제단 이었습니다. 바울은 거기서 여러 철학자들과 당시 학식 많은 지식층도 만났습니다. 이 도시는 철학으로 유명했고, 정치, 문학, 학문을 중시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종교 9

나 도덕에 관련된 토론이 가끔 열리던 마르스 언덕에 서서 우주를 지으신 참 창 조주가 어떤 분인지를 설명했습니다. 그의 이 연설은 참으로 흥미롭고 우리 인간 사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그럼, 여기서 아덴 사람들이 말한 알지 못하는 신 에 대한 바울의 연설을 들어보겠습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 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 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 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사도행전 17:22-26)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의 답변이 여기 에 나옵니다. 첫째로 바울의 연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온 만물의 창조주라 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온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이처럼 아 름답고 복잡한 우주를 생각해 보면 이것이 그냥 우연히 생긴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바울 당시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 음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한 대로 이 모든 만물을 창조한 신 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바울이 연설에서 말한 대로 우리가 이 하 나님을 잘못 알고 섬기면 안 됩니다. 자신의 양심에 따라 헛된 예배를 드린 아테 네 사람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주의 주권자이고 만물의 창 조주이심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그 분께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를 잘 알지 못한 채 헛 된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이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만물의 창조주라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사도행전 17장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가까이 계시다는 사실을 살펴보도 록 하겠습니다. 바울의 연설을 계속해서 들어보십시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 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 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10

(사도행전 17:26-29)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신 이 지은 피조물에 관심을 갖고 계시다고 하셨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의 경계 를 정하시고, 인간사와 나라의 흥망에 관여하십니다. 우리 삶 가운데 나쁜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쓰십니다. 이와 같은 모든 일들이 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아 발견케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하나님을 깨닫게 된다면 그 하나님은 이교도의 신들과는 다르 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신들과는 전혀 다른 분입니다. 유일하신 참된 하나님은 바울이 말 한 것처럼 금이나 돌이나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건물 안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유일하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을 갖고 계십니다. 유일하고 참되며 살아계신 하나님은 사람의 일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 분입니다. B. J. Clarke (전도자):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공급해 주시는 분입니다. 육적인 필요와 영적인 필요 를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십니 다. 그리고 불의한 우리를 위해 죽을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로 하여 금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설명하거나 이해하기도 불가능하 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사랑스런 가 족의 모습을 상기시켜 줍니다. 요한일서 4장 8절에서 사랑의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심이라. 이렇듯 하나님은 사랑이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 는 사실도 보여줍니다. 그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피조물인 자녀와 관계 맺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 서로 속해 있기를 갈망합니다. 서로 관계를 가지기를 원합니다. 이런 사랑의 관계 를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이 주실 수 있습니다. Dr. Stephen Springer, LPC (교수, 전도자, 공인전문상담사): 역사를 통해 인류는 항상 뭔가를 고대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어딘가에 소속되기 를 갈망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바벨탑 당시의 사람들도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고 했지만 그들의 목적은 부도덕한 것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의 또 다른 시대들을 살 11

펴보아도 사람들이 잃어버린 사랑을 항상 갈망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추 구했지만 정작 자기들 앞에 있는 것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가족과 친구와 맺는 올바른 관계인데, 바로 그들 앞에 있는 이런 것들은 버리고 올바르지 못한 것들을 계속 추구했습니다. 심리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곳 에는 이런 잃어버린 사랑을 찾기 위해 오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카운슬러, 정신 과 의사, 심리학자 등을 매일같이 찾아갑니다. 자신이 추구하고 얻으려는 해답을 얻으러 이런 전문가를 찾아다닙니다. 그들이 찾으므로 그 해답이 어렴풋이 보이긴 하지만 사실 그 사람들이 찾는 해답 은 바로 그들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사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우리가 성장하고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 기회를 무시하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 기회를 주셨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까지 우리에게 주 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심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고 사랑의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 니다. 우리가 여러 책을 읽고 그대로 행함으로 도움을 얻을 수도 있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이 위대한 사랑을 성 경이 보여 줍니다. 이게 우리에게 주어진 올바른 해답이기 때문에 다른 것을 찾 아 나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깊이 돌보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과 마음의 상처를 다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 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이것은 우리 의 존재 목적을 하나님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만 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분이고,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원하는 분입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사도행전 17:30-31) 방금 들은 말씀처럼 언젠가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젠 가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므로 우리 모두에게 구원 얻을 길도 예비해 주셨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 12

수의 부활을 통해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셨습니다. B. L. Clarke (전도자): 우리가 깨달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인들을 사랑하신다는 점입니다. 어느 곳에 있는 죄인이든, 무슨 죄를 저질렀든, 죄를 아무리 크게 짓고 많이 저질렀다 해도 우리 구원의 장애물이 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죄 인 중의 괴수라고 했던 사도 바울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고 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그가 한 말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사도 바울은 자기가 교회를 잔해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은 그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Garland Elkins (전도자, 성경 교수): 주님께서는 진실로 당신에게 돌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다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 말씀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렇듯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 개하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보내 어 죽임을 당하게 하신 것은 여러분과 제가 영원한 형벌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 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면서 우리 모두 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사도행전 17:30)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게 뭔지 들으셨지요? 바울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 대하는 것이 회개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도 귀를 기 울여 보십시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누가복음 13:3) Alfred Washington (전도자): 회개란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바꾸어 하나님 이 명령하신 것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회개했다 할 수 있습니다. 13

Keith Mosher Sr., D.Min. (성경 교수, 전도자): 회개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므로 나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행하겠다는 마음의 결심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아들 을 보내셨고, 나를 사랑하시는데 내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하 는 것이므로 나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하나님이 무엇을 명하시든 그대로 행하겠다 는 결심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회개가 행하기 어려운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부터는 내 방식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겠다는 결 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회개란 경건한 슬픔에 기초한 마음의 변화입니다. 회개는 누구나 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나 부자나 교육받은 사람이나 그렇지 않 은 사람이나 다 해야 합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다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났든 우리가 어떤 자녀를 두었든 상관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하 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왜 회개가 필요할까요? 하나 님이 왜 여러분과 저를 불러 회개하라고 하실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 도행전 17:31)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 악 간에 그 몸으로 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고린도후서 5:10-11) 이러므로 회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한 일과 행하지 못한 일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 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짓된 길에서 돌 아서고 거짓된 생각에서 돌아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그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면 왜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벌하시는가? 이에 대한 대답이 요한계시록 15장 3절, 로마서 2장 5절에 나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 님이자 의로운 분이라고 말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잘못을 반드시 벌하셔야만 합니다. 의로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배역한 사람들을 징계하셔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지역사회에서 판사가 범행을 저지른 범인 에게 형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 판사를 공의의 판사로 여길 수 있습니 까? 그렇다면 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을 공정하게 판단하라고 그 판사에게 요구 하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그의 법을 지 14

키지 않는 사람들을 벌하실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 기를 간절히 원하시지만 동시에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벌하셔야만 합니다. 그럼, 여기서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보여준 심판장면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 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0:12) Curtis Cates, Ed.D. (전도자, 성경 교수)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4:11-12, 고린도후서 5:10을 보면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심판이란 이처럼 심각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심판에 당신도 예외가 아닙니다. 언젠가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이 땅에서 한 일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회개 한다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영생을 누릴 수 있습 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이번 진리를 찾아서 에서 다룬 세 가지를 정리해 봅시다. 첫째, 우리는 피 조물만 살펴봐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피조물 자체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는 하지만 나무 같은 피조물만 봐서는 하나님의 마음 을 알 수가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 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 습니다. 셋째,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 분이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분이심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 은 당신을 구원하기 원하십니다. 이 우주를 지으신 위대한 창조주께서 당신을 사 랑하시며 당신이 하나님의 이런 뜻에 응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 런 뜻에 응답하시겠습니까? 바울 시대에도 창조주에 대한 이와 같은 진리를 거절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들은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올바른 길을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진리를 찾아서 이 강좌를 통해 당신이 지금까지 배운 것 이나 당신이 믿고 있었던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과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했 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거기서 돌아서고 바꾸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시겠습니까? 진리를 찾아서 이 과정을 통해 당신이 참으로 올바 른 믿음에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 15

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2) 16

신앙의 권위 오늘날 세계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문제에 관해 매우 큰 논란이 있습니다. 특히 신앙에 관한 문제일 경우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편의 주장이 옳을까요? 어떤 것이 옳다는 결정은 누가 내리는 것일까요? 교회가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인지, 성경이 결정을 내리는 것인지, 교리집이 그런 결정을 내리는지, 아니 면 신학위원회에서 결정을 내릴까요? 신앙에 관한 일을 결정할 때 누가 어디서 권위를 갖고 있을까요? 이를테면 누가 그런 규정을 정하며, 이에 대한 대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잔 모어와 함께 하는 진리를 찾아서 이번 과정에서는 신앙의 권위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규정을 알고 그 규정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은 어떤 경기서든 절대적으로 필요 한 요소입니다. 이곳과 같은 경기장에서는 정해진 규정집과 심판의 권위가 반드 시 필요합니다. 여러 팀이 어떤 경기장에서 겨루기 위해 만날 때는 권위 있는 심 판이나 경기위원회가 승인한 규정집과 그 권위를 따르겠다고 동의하는 셈입니다. 정해진 규정과 권위를 지켜야 된다는 원리는 그것이 운동경기든 시민 조직이든 학교활동이든 교회든 혹은 국민이 있는 나라든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인정된 권위와 정해진 규정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누구나 다 공감하고 있습니다. Charles Smith (심판): 어떤 경기든 공인된 권위와 정해진 규정이 필요합니다. 규정집이나 공인된 심판 혹은 위원회 없이 경기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년마다 세계 각국의 여러 지 역에서 열리는 하계올림픽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각국 선수들이 통일된 방식 에 따라 경기에 참여합니다. 표준이 되는 권위와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필요성에 모두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경기에 있어 표준이 되는 권위와 규정은 최고 권위 기관인 국제올림픽 위 원회에 있습니다. 여기서 위원들 가운데 위원장과 집행위원회를 선출합니다. 그 위원장과 집행위원회가 지침을 정하고 사무총장을 임명합니다. 또, 규정을 제정하 고 그 집행을 지원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규정집이 만들어집니다. 이 규정집이 제반 범위와 경기에 대한 규정과 경기를 어떻게 심판할지를 결정하는 권위 있는 문서가 됩니다. 이런 권위체계와 규정집이 없다면 하계올림픽을 치를 수 없습니 다. 규정집이 없다면 혼란과 무질서가 생길 것입니다. 합의를 통해 만든 권위의 기준과 규정집은 이렇듯 절대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럼, 어떤 운동경기보다 중요한 일에 눈을 돌려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신앙의 영역에 우리의 관심을 돌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신앙에도 유 일한 권위가 존재하는가? 신앙생활에도 권위 있는 문서 혹은 규정집이 있는 17

가?" 교회에 적용할 규정, 이를테면 어떻게 교회를 조직하고 예배는 어떻게 드릴 지를 결정한다고 할 때 어떤 이는 교리집을 살펴보고, 어떤 이는 교단회의에서 정한 규정을 보고, 어떤 이는 자기 마음에 옳다고 느끼는 대로 행한다면 이 사람 들은 어떤 적절한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자리에서 경기 를 할 수 없고 분열과 부조화만 생기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일치와 동의, 이를 테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며, 어떻게 예배 드려 야 하는지에 대한 절대적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누가 이런 규정을 정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그 규정이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지 찾아봐야만 할 것입니다. 이런 권 위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 니다. 신앙의 권위가 어디 있는지 찾는 것은 이렇듯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 서 다음 네 가지 큰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1. 권위란 무엇인가? 2. 신앙의 권위 는 누구에게 혹은 어디에 있는가? 3. 이 권위는 어떻게 우리에게 전해지는가? 4. 오늘날 신앙에 관련해 여러 권위가 존재하는가? 먼저, 다음 질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권위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권위 라는 단 어를 몇 차례 언급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권위란 복종하게 만드는 권한 또는 힘 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최종 결정을 내리거나 명할 수 있는 권한, 도덕적 혹은 법적 우월성 을 의미합니다. 권위의 정의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마 태복음 8장 9절에 있는데, 예수께 자기 종을 고쳐달라고 부탁한 로마 백부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 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마 8:9) 권위란 명령 내릴 수 있는 권한과 이를 법으로 제정하는 권한을 내포하고 있습니 다. 권위 는 저자 라는 단어에 그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것을 만들고 고안한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권위 에는 다음과 같은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1) 최종 결정을 내리거나 명할 수 있는 권한 (2) 도덕적, 법적 우월성 (3) 무언가를 만들거나 고안한 사람 그런데 신앙의 권위가 무엇일까요? 신앙의 권위에 대한 진리를 살펴보면서 이제 두 번째 주제를 보겠습니다. 2. 신앙 의 권위는 누구에게 혹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예배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 명령을 내리고 규정을 만드는 권한을 누가 갖고 있을까요? 누가 이에 관한 도덕적, 법적 우월성을 갖고 있을까요? James Meados (성경 교수): 18

하나님이 근본적인 권위의 근원입니다. 예수께서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대답을 거절하신 적이 있습니다. 빌라도가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사형에 처 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 할 권한이 없었을 것 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권위와 권한의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Ben Mosley (대학 교수): 사도행전 17장 24절은 하나님이 궁극적인 권위를 갖고 계시다고 말합니다. 그는 천지의 주님이시고 땅을 만드신 분입니다. 인간과 온갖 동물은 그에게 복종해야 하고 그의 명령과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시편 95편 6절은 온 땅이 주님께 속 했다고 합니다. 그의 집이고 하나님이 그 창조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에 살고 있는 모든 것이 그의 명령과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손수 집을 짓고, 돈을 들여 가구들을 들여놓고 당신과 자녀들 이 사는 집이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그 집에서 무엇을 하면 되고 안 되는지 당신이 규정을 만들 권한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 켜야 할 규정을 만들 권한이 있지 않겠습니까? 틀림없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당신 집에 사는 사람들은 당신의 허락 없이는 당신이 이미 만들어놓은 규정을 바꿀 권한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규정과 지침을 주 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그는 우주의 창조주이십니다. 이 것들은 그의 집이며 그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의 집에 사는 우리는 그 규정을 바 꿀 권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만드신 분이며, 이렇게 위대하고 놀라 운 피조물을 보존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생사를 주관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에게 모든 권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 우리가 더 알 수 있는 것 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특별히, 하나님 외에 모든 피조물 위에 권위를 행사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는지도 보겠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 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 라. (히브리서 1:1,2). 이 구절을 보면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해 피조물을 다스리고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그를 선택하셨다고 했습니다. 2절에서는 예수께서 만유 의 상속자 로 임명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참 아들로서 예수 19

는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을 받으셨습니다. 이 진리는 요한복음 3장 35절에서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들으셨지요? 만물 곧 모든 것을 예수의 손에 주셨다고 했습니 다. 예수께서 받으신 모든 것에는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세도 포함됩니다. 다음 구절을 들어보십시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한복음 17:1,2). 우리는 이 구절과 또 다른 구절들로부터 하나님이 참으로 모든 권위의 궁극적인 근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께도 이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모든 것 을 예수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Curtis Cates, Ed.D. (전도자, 성경 교수): 우리 신앙의 권위는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 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마태복음 28장 18,19절에서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신 것 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 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 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 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 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 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에베소서 1:19-23) 방금 우리가 들은 말씀을 보면 참으로 예수께서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그는 모든 통치를 주관하는 권위를 갖고 계십니다. 그는 참으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납니다. 만물이 그의 발아래 있습니다. 그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모든 권위를 갖고 계심이 분명합니다. 이 권위는 그의 말씀처럼 특별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태복음 28:18) 20

여러분, 예수께서 얼마나 많은 권위를 갖고 계시나요? 맞습니다. 모든 권위를 다 갖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질문 곧 신앙의 권위는 누가 갖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이 권위의 궁극적 근원이시고 그의 아들 예수께 이 권 위를 주셨음을 단정해 말할 수 있습니다. Bobby Liddell (전도자, 성경 교수): 그리스도가 신앙에 있어 우리의 권위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하신 말씀 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권위)를 내게 주셨으니 하나님이 예수에 대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7:5)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이 권위가 어떻게 알려졌는가? 이는 그리스도가 어떻게 피 조물을 다스리는가 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가 그의 법을 피조물에게 어 떻게 집행하시는가? 이 점에 대해 운동경기를 잠깐 또 다른 예로 들겠습니다. 여 러분과 제가 운동경기에 함께 참가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가 경기규정을 몰 라도 괜찮을까요? 규정은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누가 권위를 갖고 있 는지 누가 권위 있는 위원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경기에 임해야 하는지 정보를 들어야만 합니다. 이 는 마치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선수들과 심판과 각 참가국에게 규정과 규칙이 무엇 인지를 알려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신앙에 관한 일도 하나님이 권위임을 아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경주를 하려면 규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 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예수께서 원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주님 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통해 주신 규칙과 명령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합니다. 그런 데 예수께서 그의 명령을 어떻게 우리에게 주실까요? 그는 권위를 어떻게 행사하 실까요? 이는 그가 우리에게 하기 원하는 일을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하게 만드 는가 라는 뜻입니다. 그는 당신의 뜻을 어떻게 우리에게 알려 주실까요? 꿈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실까요? 우리 마음속에 뭔가 중요한 메시지로 채워주실까 요? 이 점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오래 전에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특별한 방법 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에게는 하나님이 불붙은 떨기나무를 통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4) 야곱에게는 꿈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1:11) 한번은 바 벨론 왕이 연회를 베풀 때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 중요한 메시지를 쓰 21

는 것으로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다니엘 3장) 한번은 나귀에게 말을 하게 해 발람 선지자에게 전하게 한 적도 있었습니다. (민수기 22:28) 하나님께서 오늘날 에도 이 같은 방법으로 말씀하실까요?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이런 방법으로 직접 명령하고 지시하실까요? 성경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십시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 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 라. (히브리서 1:1,2) 옛날에는 하나님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신 게 사실이지만, 히브리서 1:1,2 를 보면 오늘날에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의 규칙과 명령을 알 수 있는 방법도 그의 아들을 통해서입니다. 예수께서 땅에 계실 때 직접 당신의 입으로 하신 말씀으로 명령과 규칙을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38절을 보면 주님의 공생애는 전도와 가르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는 진 실로 동정을 베푸는 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지극히 염려하셨고 사람들이 행복하 고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가 르치셨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동기를 부여하고 동정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권 위가 있었습니다. 그가 행한 설교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경건한 행동에서 돌아서고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종교적 관습에서 떠날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셨습니다. 그는 사 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죄를 피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명령으로 가르치셨습니 다. 사람들은 그의 능력 있는 말씀을 놀라움으로 받아들였는데, 이것을 마태복 음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산상설교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 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태복 음 7:28,29) 진실로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은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는 말씀으로 노한 파도를 잔잔케 하고,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했으며, 죽은 자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 럼, 여기서 죄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그의 말씀의 능력과 필요성에 대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 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한복음 5:25) 22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 라. (요한복음 6:63) 들으신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힘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우 리는 그가 모든 권위를 갖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땅에 계실 때 그는 사람들 에게 그의 뜻을 따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직접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하셨 습니다. 전도와 가르침을 통해 그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궁극적 권위를 따를 것 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그 당시 사람들에 게 명하신 것입니다. 그럼, 오늘날에는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땅에 계실 때 입으 로 직접 말씀하심으로 당신의 권위를 보여주셨다면 오늘날은 그 권위를 어떻게 보여주실까요? 예수께서 이제는 몸의 형체로 더 이상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으시 므로 누가 무엇이 우리의 권위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 위해 신약성경 저자들이 그들의 기록에 대해 그 유래와 저작권을 어떻게 말하는 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 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갈라디아서 1:11,12) 사도 요한이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 쓸 것을 예수께로부터 명령 받은 내용도 들어보십시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 으니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아 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라. (요한계시록 1:10,11) 요한은 본 것을 기록하라는 예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신약성경의 다른 저자들 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기록하는 책임을 부여 받았습니다. 이들이 성경을 쓸 때 성령의 인도와 지도 아래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예언자가 자의로 푼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 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 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베드로후서 1:20,21) 방금 들으신 이런 구절들은 이 책에 기록된 말씀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계시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뜻을 기록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 다. 23

Chuk Horner (성경 교수): 모든 선지자들이 (성경을 쓴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성령이 그들의 기록 속에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숨 결입니다. 하나님의 명령, 우리 삶을 위한 그의 규칙들입니다. 주님이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육체로 계시지 않으므로 우리 행동과 우리 발걸음을 인도할 기록된 말씀을 주셨습니다. 신약성경이 꼭 순종하고 따라야 할 권위 있는 문서입니다. 그 말씀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고, 그 법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입니 다. 갈라디아 6장 16절에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법 혹은 기준 에 반드시 순종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평화와 자비를 얻으려면 말입니다. 이것을 올림픽경기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권위가 어떻 게 행사되고, 그 권위가 규정집에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펴보십시오. 선수와 심판 이 무엇을 하면 되고 안 되는지 알고 싶다면 규정집을 보아야만 합니다. 그들이 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말이죠. 신앙에 관한 일도 하나님이 모든 일에 최종 권위자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권위) 가 주어졌습니다. 땅에 계실 때 예수는 사도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성경을 쓸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그것 이 우리가 아는 성경입니다. 이 성경이 우리에게 규정집 혹은 안내서로 주어진 것 인데,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며, 하나님의 규정을 알고, 누가 우리의 최종 권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올림픽경기에서 공식 규정집을 연구하고 잘 살펴본 후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선 수가 어떤 경기든지 합법적으로 참가해 메달을 따려면 그래야 합니다. 마찬가지 로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 합니다. 교회와 우리 각자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을 살기 원 한다면 말씀을 잘 연구하고 그 원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디모데에게 보낸 바 울의 서신에서 하나님의 규칙과 하늘의 상을 얻기 위해 어떻게 경주해야 하는지 를 기록했습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디모데후서 2:3-5) 24

성경이 바로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경주에 대한 규정을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원한다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규정집입니다. 만약 성경에 있 는 규정을 거절한다면 우리자신을 그리스도인의 경주 하는 데 게을리 한다면 우 리는 자격을 잃고 맙니다.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할 때 바로 이를 지 적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 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27) 우리가 자격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살펴볼 수 있는 규정집이 바로 예수 그리스 도의 신약성경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요한복음 12:48) 이 말씀을 보면 신약성경에 나오는 그의 말씀이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우리 각자 를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께서 모든 권위를 갖고 계 십니다. 그 권위가 기록된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고, 지금도 그 말씀이 우리를 다 스립니다. 그러므로 이 권위가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되었나? 라는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 변은 하나님이 기록된 말씀 성경을 통해 그의 권위를 계시하셨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 니다.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규칙과 안내를 보여주기 때문입니 다. 여기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와 생명을 위한 그의 명령을 보여 줍니다.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규정집인 가? 그리고 본 과정 마지막 주제로 오늘날 권위의 기준이 하나 이상 존재하는 가? 라는 질문도 다루어 보겠습니다. 신약성경에 덧붙여서 혹은 신약성경을 대 신하는 권위의 기준을 갖고 있는 신자들이 있을까요? Carl Carner (전도자, 성경 교수):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성경을 더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 은 과거의 일을 강조하고, 사람이 기록한 것에 중점을 두는 부류도 있고, 사람이 말한 것에 중점을 두는 부류, 사람들이 동의한 것에 중점을 두는 부류의 사람들 도 있습니다. 25

저한테는 우리가 방금 언급한 주제를 다룬 두 권의 책이 있는데요. 이 책은 한 특정 교단의 장정입니다. 여기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 장정은 본 교회의 헌법 이다. 이것은 오랜 역사를 걸쳐 개최된 교회 회의를 통해 나온 것으로 본 교회를 태동시킨 것이다. 이 장정은 본 교회를 치리 하는데 필요한 법과 절차를 세우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성경 외에 덧붙이는 책이 이렇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성경만 유일한 권위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또 다른 책이 있습니다. 사실, 성경을 그들의 유일한 권위로 보는 사람들보 다 다른 책을 첨가하는 경향이 훨씬 더 일반적입니다. 이 책은 믿음의 신조라는 책인데 이런 글이 나옵니다. 교회의 표준 사역은 권위로 기록된 다음 교리 문서 에 따른다. 이 조항의 뒤 부분 내용입니다. 교회의 투표로 결정된 믿음과 교리 의 권위 있는 지침은 다음 네 개다. 그러면서 언급하는 네 책이 있는데 성경은 그 네 책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교단에 자신들만의 책들이 있 습니다. 자신들만의 규정이 있고 법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마땅히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다른 책들이 정말 필요한가? 제가 성경을 아는 대로 대답하겠습니다. 아니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성경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보니 권위의 표준으로 신약성경 외에 다른 것들을 사용하는 교단과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교리서, 신조, 교회 지침서, 교회 전통, 총회, 협의회, 신앙고백서, 장정들이 교회의 규정과 권위 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와 같은 다른 기준이나 규정이 정말로 필요할 까요? 우리가 오로지 성경으로만 돌아가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 는지 알 수 없을까요? 성경만 읽고는 교회조직을 어떻게 하고 무엇을 가르치며 예배는 어떻게 드리는지 알 수 없을까요? 하나님의 말씀만 자세히 읽어서는 어떻 게 좋은 남편, 아내가 되고 부모가 될 수 있는지 배울 수 없을까요? 하나님의 말씀만 보아서는 우리의 문제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을까요? 이런 질문에 대 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 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 3:16,17)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세워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성경은 교훈(교리) 곧 가르치는 것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고 모든 선한 일을 지도하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 베드로의 하나님에 대한 26

고백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그의 신기한(신적)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베드 로후서 1:3) 여러분, 우리 발걸음을 인도하는데 있어 성경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성경은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랑이 무한하신 하 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가 행복하기를 간절히 원하셔서 주신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도시대 이후에도 성령께서 추가적 인 계시를 주지 않으셨나요? 그 성령이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성경말씀에 없는 메 시지를 계시해 주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질문 곧 진리의 성령에 대해 예수께 서 하신 대답을 들어보십시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 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6)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자기 권위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 게 알리시리라. (요한복음 16:13) 이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마음에 두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진리가 있습 니다. 첫째,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기억나도록 성령의 인도를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둘째, 사도들은 성령으로 모든 일에 가르침을 받고, 모든 것을 기억하 게 되고, 모든 진리로 인도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신앙 면에서 모든 진리로 인도를 받았다면 우리가 오늘날 또 다른 계시를 받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모든 것은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신앙에 관한 모든 진리가 사도들 시대에 다 계시되었다고 가르 치고 있습니다. 유다서에서 말한 대로 믿음 은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바 ( once for all delivered to the saints ) 되었습니다. (유다서 1:3) 믿음은 제1 세기에 부분적으로 주어진 게 아니고, 세월이 지나 19세기 혹은 그 후에 완성된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단번에 (한번에) 모두 전달된 것입니다. 진실로 믿음의 모 든 진리들이 제1세기에 다 계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어떤 다른 복음도 전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바울이 이 점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귀를 기울여 보십 시오. 27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 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8) 들으셨지요? 다른 복음을 전하면 안 된다 했습니다. 바울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 사라 할지라도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그 것을 거절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생존했던 시기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신앙의 권위에 있어 표준이라는 결론을 내 려야만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를 통해 궁극적인 권위를 행사하심을 알 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거룩한 말씀 성경이 오늘날 신앙의 권위에 있어 표준이라 는 점도 배웠습니다. 그럼, 나머지 시간은 성경과 두 언약을 살펴보는데 할애하 겠습니다. 진리를 찾아서 이번 주제는 신앙의 권위인데 여러분은 우리가 성경전체 를 다루기보다는 신약성경을 오늘 우리의 신앙적 권위로 강조하는 점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구약성경은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구약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이지 않은가? 틀림없는 지적입니다. 구약성경도 신약 성경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 경도 신약성경과 함께 연구해야 합니다. 로마서 15장 4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했 습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전의 기록은 구약을 의미함) 우리의 교 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 지게 함이니라. 그러나 여기서 구약에 대해 알아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왜 그것을 구약 (옛 언약)이라 부를까요? 구약에 기록된 법을 오늘날 우리도 꼭 지켜야 할까요? Denny Petrillo, Ph.D. (구약학 및 유대학 교수): 구약( 舊 約 ) 이라고 해서 더 이상 소용이 없거나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계약서를 다시 쓰면 옛날 계약이 있고 새 계약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면 당신의 백성과 새 계약(언약)을 맺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히브리서 기자가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옛날 유대인에게만 한정된 계약을 우리는 그냥 지나치는 것입니다. 신명기 5장을 보면 옛 계약은 시내산에 있던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31-34절에서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새 계약을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 히브리서 8:13이 바로 예레 미야 31:31을 인용한 구절인데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언약 아래 있는지를 말해 28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법을 따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약해서 말하면 구약을 옛 언약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더 이상 강제되 는 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습니 다. 그리고 일시적인 법이었습니다. 옛 언약의 목적은 길을 예비하고 그리스도 예 수가 주시는 새 언약의 기초를 닦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 등교사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갈라디아서 3:24,25) 방금 들은 말씀처럼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초등교사 (혹은 가정교사) 아래 있지 않습니다. 제1세기에 가정교사는 주인의 자녀에게 도덕을 가르치고 학습을 지도 했던 주인이 신임하던 종이 더러 있었습니다. 종의 임무 가운데 아이에게 가정교 육을 시켜 학교에 들어가게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또, 어른이 될 때까지 보살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이런 가정교사가 필요 없 게 됩니다. 그러면 더 이상 가정교사의 권위 아래 있지 않게 됩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의 문맥을 보면 옛 언약의 법을 초등교사 혹은 가정교 사로 비유했습니다. 이 옛 언약은 인류가 장성할 때까지 준비시키는 역할을 했습 니다. 옛 언약의 목적은 그리스도에게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 도가 세우신 믿음의 체계로 인도하는 데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2절과 고린 도전서 9장 21절을 보면 그 체계를 그리스도의 법 이라고 했습니다. 그 법이 오늘날 영적으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옛 언약 의 권위 아래 있지 않습니다. 옛 언약은 예수께 인도하는 가정교사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곧 우리가 출애굽기에 기록된 십계명 아래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할까요? 아니면 오늘날 우리도 그 십계명 아래 있는 것일까요? 엄밀하게 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 십계명은 모세의 법 가운데 일부분으로 이 법은 폐지되었습 니다. 에베소서 2장 15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 시고 (에베소서 2:15) 29

십계명, 레위기에 나오는 피 제사, 성막 예배, 분향, 특별 절기 같은 것은 그 속 성상 모두 일시적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을 보면 그와 같은 것들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단지 이스라엘 백성과 온 인류에게 메시 아의 오심과 그의 새 언약을 준비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새 언 약을 가져오셨을 때 옛 법(옛 언약)은 끝난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옛 율법 은 사라지는 것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새 언약 때문에 그것은 옛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8:13) 그렇다면 옛 언약이 사라졌으므로 옛 법은 폐해졌으므로 간음을 저질러도 괜찮을 까요? 거짓말 하고 도둑질해도 괜찮을까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아홉 계명은 그리스도의 새 언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외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뿐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이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 곧 유대인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새 언약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만찬을 지킵니다. 이 만찬은 마태복음 26:26-28을 보면 예수님이 제정하셨고, 사도행전 20:7을 보면 매 주 첫날 지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 가운데 아홉 계명은 그리스도의 새 언약에도 나오고 거기서 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성경에 포함된 이 새 언약(신약)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 람들이 기록한 그리스도의 새 언약입니다. 우리가 예레미야 31:31과 같은 성경구 절을 읽으면 그 선지자들이 장차 그리스도의 새 언약이 세워진다고 예언한 구절 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그 새 언약이 세워졌습니다. 옛 법은 사라졌습니다. 오늘 날 우리는 기록된 말씀 곧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럼, 진리를 찾아서 이번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1. 권위 라는 단어는 통 치 혹은 다스리는 권리를 뜻한다. 2. 하나님이 권위의 궁극적인 근원이시다. 3.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 4. 그리스도의 새 언약은 오늘날 모든 사람이 따라 살아야 할 법이다. 5. 그리스도가 그의 권위 와 뜻을 기록된 말씀 성경으로 알려주셨다. 그 기록된 말씀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충분한 안내자입니다. 성경이 우 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법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바울은 우리의 영적 성장 유지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30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 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2)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7) 여러분, 영적으로 성장하기 원하신다면 이 책 성경을 꼭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스 도인의 경주에 있어 어떤 규정이 필요한지 알기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공 부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에 있어 우리의 권위가 무엇이고 누구인지를 배웠습니다. 그 권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권위가 하나님의 메시지와 지침 안 에 들어 있는데, 그리스도인의 삶과 경계 설정에 대한 것들을 신약 곧 그리스도 의 새 언약 안에서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 언약이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심판 의 기준이 된다고 요한복음 12장 48절에서 말합니다. 여러분, 진리를 찾아서 이 시리즈에 계속 저와 동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당신 삶에 있어 가장 중요 한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저와 함께 진리를 찾는 여정에 동참해 주시기를 권면 드립니다. 31

교회 교회 는 신약성경에서 100 번 이상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러니 만큼 참으로 중 요한 단어임에 틀림없지만 이 단어의 정확한 뜻이 무엇일까요? 교회가 단지 예배 를 드리는 장소일까요? 모든 교파를 총망라해서 교회라고 합니까? 아니면 좀 더 인격적이고 영적인 어떤 것일까요? 더 나아가 이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살펴 봅시다. 또, 우리가 구원 얻기 위해 속해야 할 교회를 예수께서 세우셨는지도 살 펴보겠습니다. 교회에 관한 이런 내용을 잔 모어와 함께 탐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 하면 이런 건물을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물로 교회를 생각합 니다. 사전에서 교회 의 정의를 살펴보아도, 공적 예배를 위해 따로 마련된 건물 혹은 거룩하게 구별된 건물로 정의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저 나무나 돌로 만든 건물일까요? 아니면 그 이상이겠습니까? 진실로 교회는 그 이상입니다. 교회 곧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신 교회는 이 교회 건물이나 다른 어떤 교회의 건물이 생기 기 훨씬 전에, 교파나 그리스도인들이 세운 기관들이 생기기 전에 이미 존재했습 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과연 무엇이며 이 교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 겠습니까? 진리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살펴보면서 이 문제에 접근해 보겠습니다. 이 점을 살펴보면서 다음 세 가지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 보겠습니다. 1. 교회란 무엇인가? 2. 교회가 본질적인 것인가? 3. 교회는 반드시 일치되어야 하는가? 그럼, 첫째 질문부터 보도록 합니다. 교회 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 을 하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교회는 그리스어 에클레시아 에서 유래된 단어인데 이 단어에 얽힌 흥미로운 역사가 있으며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가 중요하게 적용 되어 쓰였습니다. Keith Mosher Sr., D.Min. (성경 교수, 전도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를 건물로 생각합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church) 라는 단어는 원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 로 교회에 대한 가장 좋은 정의가 사도행전 8:1과 9:1에 나옵니다. 바울이 이 교 회를 핍박했습니다. (사도행전 8:1) 사도행전 9:1에서는 바울이 주님의 제자들을 핍박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교회 와 주님의 제자 는 같은 뜻을 갖 고 있습니다. 이렇듯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 라는 단어는 문맥상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 니고 있습니다. 이 단어가 마태복음 16장에 처음 나오는데 여기서 사도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32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 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태복음 16:18,19) 교회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볼 때 첫째, 그리스도가 이 교회를 소유하고 계심을 주목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가 이 교회의 설립자이심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셋째,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이 나라 (교회)의 열쇠를 갖고 있음을 보겠습니 다. 그런데 세 번째 항목에서 언급한 열쇠는 권위의 상징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 니다. 주님이 교회를 세우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약 1년이 지난 후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이 권위의 열쇠를 갖고 나라의 문을 열었음을 봅니다. 이렇게 해서 교 회가 세워졌습니다. 이 사건은 유대인들의 명절인 오순절에 일어났습니다. 이 내용은 누가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사도행전 2장에 나옵니다. 이 장을 읽어보면 열 두 사도들 이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성령을 기다리고 있을 때 위로부터 성령이 열 두 사도들 에게 내려 능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9-11에 기록된 대로 사 도들이 전에 외국어를 배운 적이 없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여러 언어(방언)로 여러 나라에서 온 민족에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전한 복음의 메시지는 성령에 관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나타내 주었고, 예수께서 주( 主 ) 되심 을 알려주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부활의 중요성과 다윗의 왕위에 예수께 서 높이 들리셨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설교를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 은 사람들이 이 말을 믿고 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사도행전 2:37) 그들이 어떻게 해야 죄 사함 (구 원)을 얻을 수 있는지 베드로가 한 말을 들어보십시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 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사도행전 2:38,39)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받아들인 사람들 곧 구원받기를 원한 사람 들이 세례를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어디에 속한 사람들이 되 었을까요? 그 날 세례 받은 사람들이 한 교파에 들어갔을까요? 아닙니다. 어떤 교파도 그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33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 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사도행전 2:40,41)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 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행전 2:46,47) 누가가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 말을 들으셨습니까? 누가는 세례를 받 은 사람들이 구원 받은 사람들 수에 더해졌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더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교회에 등록 한 것이 아닙니다. 또, 당시에 는 어떤 교파도 없었기 때문에 교파에 더해진 것도 아닙니다. 대신에 죄인들이 세례를 받을 때 구원받았다고 했습니다.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그 사람들을 이미 구원한 사람들 가운데 더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들 의 집합체를 교회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2:47) 이를 쉽게 설명하면 교회 는 공 동체로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고, 구원받은 사람들 이 교회 의 구성원이 되 었습니다. 사도행전과 신약성경의 다른 책들을 살펴보면 이 구원받은 사람들을 교회 라고 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전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교회 라는 단어가 구원받은 사람들을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로 묘사하고 있음 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 처럼 지역적인 의미로 쓰였습 니다. 우주적인 의미로는 온 세상의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리 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에베소서 5:23) 이렇게 표현했고 또, 성경은 구 원받은 사람들이 예배를 위해 함께 모이는 것을 가리켜 구체적으로 교회라고 했 습니다. 이 세 가지 모두 교회 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성경에서는 구원받은 이 사람들을 가리켜 매우 의미 있는 용어로 묘사합니다. 이 런 용어들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받은 이 사람들의 사역 곧 교회의 사역과 그 속 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예를 들어 구원받은 사람들 을 "교회"라고 하는데 그리스어 교회 라는 단어의 뜻처럼 그들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 이기 때문입니다. 곧 어둠의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영적 빛 가운데로 들어 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또 나라 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나라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왕과 그 나라에 있는 시민과 종들을 마음속에 떠올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은 사람들로서 예수의 왕국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왕 되신 그리 스도의 법아래서 그 영토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을 나라라고 할 뿐만 아니라 성전 이라고도 부릅니다. 세속 문화에서 성전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신이 거하는 장소나 집을 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34

교회 안에 거하신다고 합니다. 그의 성령이 각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십니다. 또, 구원받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권속(가정) 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족 은 종종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로 구성된 가족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가족 으로 보면 그 구성원은 우리 하늘 아버지 하나님과 형님이신 그리스도 그리고 구 원받은 형제자매들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가족일 뿐만 아니라 그들 을 몸 으로도 불렸습니다. 사람의 몸이 머리와 지체로 구성되어 있듯이 구원받 은 사람들도 그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몸의 각 지체인 각각의 그리스도 인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몸이 온 지체가 연결되어 움직이며 일치와 하나 됨을 보여주듯이 구원받은 사람들 곧 교회도 일치와 하나 됨을 보여주는 한 몸입니다. 교회가 몸이라고 하는 사실은 고린도전서 11:27에서 교회가 구원받은 사람들 곧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임을 보여주는 구절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럼, 이 점에 대해 바울이 말한 다음 두 구절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로새서 1:24)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린도전서 12:27) 그렇습니다. 몸과 교회는 하나이며 똑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사 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몸 이라고 했습니다. 고 린도 성읍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교회 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이 그 지역사회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 답은 교회란 예배를 드리기 위한 건물이 아니다 라는 결론을 내려야만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 교회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속성과 본질을 더 자세히 묘사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디모데라는 젊은 전 도자에게 보낸 편지를 주목해 보십시오.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디모데전서 3:14,15) 여기서 바울이 하나님의 집 이라고 할 때 문자 그대로 물질적인 집을 의미했을 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영적 집 곧 하나님이 지으신 집인 교회, 하나님의 35

백성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으로서 교회는 견고한 반석 주님의 신성 위에 세워졌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라는 위대한 고백을 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에베소서 2:20에서는 예 수를 가리켜 모퉁이 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 은 그 기초입니다. 베드로전서 2:5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신령한 집을 이루 는 산 돌임을 봅니다. 또, 디모데전서 3:15에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 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교회는 온 세상에 가서 진리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집의 문입니다. 그가 문이라는 것은 곧 사람들이 영생을 얻 으려면 반드시 그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문으로 인도하는 것이 구원의 발걸음입니다. 그것은 죄인이 교회에 들어가려면 누구나 반드시 올라가야 할 곳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기본 구조이며 얼개입니다. 교회는 예수 곧 모퉁이 돌과 그의 거룩한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인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무엇일까요?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믿고 세례 받은 사람들로 구성된 지체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이제 교회가 무엇인가 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두 번째 질문입니다. 교회가 본질적 이며 중요한가? 종종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한테 예수만 주세요. 교회는 필요 없어요. 인자 예수는 좋지만 구원의 계획은 필요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 꼭 교회의 일원이 될 필요는 없다. 이것이 정말일까요?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교회의 본질적 속성과 가치를 다음과 같이 강조 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 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 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에베 소서 2:14-16) 이 구절에서 우리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만 단절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 님과 사람 사이에도 한때 단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59:1, 로마서 6:23을 보면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떨어지게 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한 것이 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 덕분에 예수의 죽음, 장사, 부활의 복음 때문에 다시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 36

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 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10,11) 화목하다 혹은 화목 이라는 단어는 다툼으로 나누어진 양쪽이 다시 합쳐져 하나가 됨을 뜻합니다. 에베소서 2:16에서 죄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단절 이 있었는데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이 둘이 화목하여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1장에서는 사도 바울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했습니 다. 하나님께서 그를 만물 위에 교회 곧 그의 몸의 머리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와 몸은 하나이며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 한다면, 하나님과 화해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몸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중요하 며 본질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원한다면, 하나님과 화해하고 싶다면, 반 드시 몸 안에 곧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왜 그렇게 가치 있고 중요한지 에베소서를 좀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 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에베소서 3:8-11) 이 구절에서 우리는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점을 배웁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여러 지혜라는 점부터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교회가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내 준 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독특한 조직부터 시작해서 교회예배의 독특한 형 태는 교회가 역사상 어떤 기관보다도 가장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교회가 얼마나 위대한지는 모든 문화와 모든 나라를 아우르는 친교의 특성에서 볼 수 있습니 다. 이와 같은 독특한 친교는 우리가 전에 살펴 본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단절 이라는 배경을 통해 볼 때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14에서 바울이 중간에 막힌 담 이라고 말할 때 이 단절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37

Alfred Washington (전도자): 바울이 에베소서 2:14에서 말한 담은 어떤 면에서 문자 그대로 담이라 할 수 있 습니다. 이런 담이 헤롯성전 안에도 세워졌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이 성전 안뜰 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단절 때문에 이방 인들은 유대인들과 참된 친교를 나눌 수 없었다는 점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처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구약 아래서 하 나님의 영적 복과 약속을 받지 못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단절이 사라진다고 구약의 두 선지자 이사야와 다니엘이 예언했습니다. 두 선지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단절을 하나님이 무너뜨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하나님의 나라 곧 교회를 통해 회복하리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예언했습 니다. Alfred Washington (전도자): 에베소서 2장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중간에 막힌 담이 허물어졌다고 했습니다. 이제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하나님의 영적 복과 약속 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국적이나 사회적 신분, 정치적 입장, 교육 정도, 성별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몸 곧 그의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 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국적이나 인종을 뛰어넘어 포괄적인 사람들의 지체로 구성되었 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교회는 이렇듯 온 세상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이사야 2:2) 오늘 날 사람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 며 이 가족의 일원이 됩니다. 한때는 국적과 사회적 신분이 이것을 갈라놓았지만 이제 그런 담은 사라졌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 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27,28) 그렇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함께 어울리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빛나는 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통해 온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가 됩니 다. 경제적 차이와 정치적 입장을 떠나 한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가족으로서 교 회는 구성원끼리 서로 돌보고 염려해 줍니다. 성경을 보면 사람이 한 마음이 되 고 관대한 사랑의 정신이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특별히 세상의 가족으로부 터 버림받았거나 학대 받는 사람들을 위해 행복과 선의 피난처가 교회입니다. 많 38

은 형제, 자매, 아버지, 어머니들이 그들을 도와주고 영적 자녀들을 돌봐줍니다. 참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지혜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3:11을 보면 교회가 하나 님의 영원한 목적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설립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하나님의 마 음속에 있었습니다. 교회는 오늘날 더러 논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주님이 당신의 나라를 건설할 수 없게 되니까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신 것 이나 마지 막 순간에 내린 결정 이 아닙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살펴 본 대로 하나이고 동일한 것입니다. 이 나라 는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선지자들이 예언했고, 예수께서도 예언하셨으며, 하나님 께서 세우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놀라운 계획에 따른 것이었는데 이것이 제1세 기에 성취되었으며, 이 교회가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계시된 이 나라는 제1세기에 나타났습니다. 골로새서 1:13, 데살로니가후서 1:15, 요한계시 록 1:9를 보면 성경 기자들은 그들의 생전에 이 나라가 실재했음을 말하고 있습 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그 나라가 로마제국 시대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 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다니엘 2:44) 이 말씀의 앞뒤 문맥을 보면 이 열왕의 때 가 로마제국을 가리킴을 알 수 있습 니다. 다니엘은 세상의 네 제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할 것이지만, 네 번째 제국 때 (역사는 이 시기를 황제들이 통치한 로마제국이라고 기록함) 그리스도의 교회(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다 했습니다. 그럼, 에베소서를 통해 이 하나님의 교회가 지니는 기본적인 속성과 가치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 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에베소서 5:23)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 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에베소서 5:25) 이 구절에 나타난 소중한 진리가 많지만 교회의 중요성과 가치라는 관점에서 예 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몸 된 교회의 구주이심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의 위대한 모범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셨다면 우리도 마땅히 교회를 사 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우리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당신 39

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여 그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으니 우리가 마땅히 그 교 회의 일원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디모데후서 2:10 말씀처럼 참으로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리스도의 몸 이 그리스도의 교회 와 같은 것이므로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는 교회 안에 있을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중요하고 가치 있을 뿐만 아니라 절대로 필요하고 본질적인 것임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에베소 서에 나오는 교회의 특징 가운데 마지막 부분을 보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룰 마지막 질문입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 르심을 입었느니라. (에베소서 4:4) 바울이 한 말을 듣고 나면 한 하나님, 한 성령, 한 믿음이 있는 것처럼 몸도 오 직 하나라는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교회와 몸은 동일한 것이므로 (에베소서 1:22-23) 오직 하나의 교회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 한 교회 에 대해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8) 예수께서 여러 교회들을(복수형) 세운다 하셨습니까? 그의 교회를(단수형) 세운 다 하셨습니까? 맞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교회(단수)를 세운다 하셨습니다. 그런 데 오늘날 서로 너무 다른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교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는 바가 서로 다릅니다. 도덕적 이슈와 교회 조직, 예배 면에서도 서로 생각과 믿음이 다릅니다. 만약 전화번호부를 자세히 살펴보신다면 서로 다른 교회 이름들과 종류가 있다는 것을 금방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 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서로 교회가 나뉘어졌음을 보게 될 것입 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서로 다른 많은 교회들이 있다 는 사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인가요? 예수가 세우겠다고 약속하신 교회는 어 떻게 되었을까요? 이런 분열이 용납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한 몸 이 사람 이 만든 교회와 교파들로 나뉘어도 괜찮은 것일까요?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있 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른 이름을 취하고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교 40

리와 교리서와 철학들을 받아들이고 서로 나뉘어져도 괜찮은 것일까요? 이 질문 에 대한 답변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질문으로 교회는 반드시 연합해 야하는가 라는 질문도 던져보겠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큰 분열이 있습니다. 이 분열을 교파주의 라는 개념으로 용납 하고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파주의란 무엇일까요? Keith Mosher Sr., D.Min. (성경 교수, 전도자): 교파주의 라는 단어는 간단히 말해 뭔가 이름을 짓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자 신을 다른 그룹과 분리할 때 그것이 이름을 붙이는 행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부류의 그리스도인이냐고 물으면 나는 이런 부류의 그리스도인이다. 대답 할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에게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 결과 교파주의가 그리스도교를 수많은 몸으로 나누었는데 얼마나 많은지 그 이름을 다 들 수 없 을 정도입니다. 미국에서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서로 이름을 달리한 교파가 600개가 넘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들이 서로 다른 이름을 짓는 이유는 서로 다른 신조, 교리, 도그마를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파로 나누는 것은 그리스 도가 위하여 죽고 그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쪼개고 부수는 행위입니다. (사도행 전 20:28) 그러므로 교파주의는 분열과 종파주의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와 같은 개념이 성경 어디에도 언급이 없는 점입니다. 사실, 사람이 만든 교리나 사 람의 평판에 따라 분열하는 개념은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정죄한 부분입니다. 예 를 들면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행전 18장에서 누가 는 바울이 선교여행 중에 고린도에서 교회설립을 도왔다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 해 줍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소아시아로 점차 이동해 에베소 교회를 세우기 위 해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에베소에 머물 때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 문제 가운데 하나가 자기들이 좋아하는 전도자들 때문에 일어난 분열이었습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 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 니 (고린도전서 1:11,12) 바울은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듣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고린도전서를 썼습니다. 편지에서 바울은 그런 행위를 정죄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 41

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 린도전서 1:10) 유감스럽게도 고린도 교회 일부가 선호하는 전도자들 때문에 분열을 일으켰습니 다. 세례를 받고 난 후 일부 사람들이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 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 하면서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바울은 편지를 써서 이런 분열의 죄악에 다음 세 가지 질문을 하면서 비난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고린도전서 1:13)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분명합니다. 첫째, 그리스도는 나눠지지 않았습니다. 마 가복음 3:22-26에서 예수는 그의 연합된 본질의 속성을 강조했습니다. 둘째 질 문에 대한 답변도 아니다. 입니다. 바울이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 습니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들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 받지 않았습니 다. 마태복음 28:19에서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점들을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가리켜 바울파 라고 부르면 잘못된 것일까요? 교회 이름에 바울의 이름을 붙이면 죄가 될까요? 그렇습니다. 잘못입니다. 하나님께 죄 짓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교회에 유명한 설교 자로 알렉스 캠블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 있고 역동적으로 전하는 사람 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가 교육을 잘 받은 성경학자이고 수 천 명을 그리스도 에게 개종시킨 전도자라고 합시다. 우리가 그를 명예롭게 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캠블파 라고 부른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을 하나님이 받아주실까요? 고린도전서 1장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가리켜 캠블파 라고 부르려면 다 음 세 가지가 사실이라야 합니다. 첫째, 그리스도가 나뉘어졌어야 합니다. 둘째, 알렉스 캠블 이름으로 우리가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셋째, 알렉스 캠블이 우 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어야 합니다. 이러면 우리 자신을 캠블파라 부름으로 서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게 되고,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는 대신 알렉스 캠블에 게 영광을 돌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고린도전서 1:31에서 바울이 말했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그리 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베드로전서 4:16) 자신이 좋아하는 설교자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