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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1월 7일 성명을 통해 샤를리 엡도 공격은 범죄 라며 이슬람은 어떠한 폭력에 도 반대한다 고 밝혔다. 이런 테러 규탄 분위기 속에 아나 샤를리(나는 샤를리다) 라는 아랍어 구호도 등장했다. 유럽인들과 더불어 일부 세속적 무슬림들도 표현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시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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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박 단*1) <국문초록> 본 논문의 목적은 시리아 난민 사태로 악화된 프랑스사회가 2015년 11월 13일 파리테러 이후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를 살펴본 후, 그 파리 테러의 배경을 실제적/역사적 맥락 하에서 고찰하는 데 있다. 프랑스 사회는 시리아 난민 사태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을 보여 왔는데, 이는 反 이민, 反 유럽통합을 강조하는 극우정파 민족전선의 인기에서도 충분 히 가늠할 수 있으며, 광역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우파정당 및 사회당 정부 또한 이러한 정서에 편승하고 있음을 숙지할 수 있다. 집권 사회당 정부가 제출한 비상사태 법안과 이중국적자의 국적박탈을 위한 헌법 수정에 정당을 불문하고 과반수 이상의 의원들이 찬성한 것은 바로 이러한 분위기를 대변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이러한 대응을 이해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 테러가 왜 프 랑스에서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 다. 2005년을 전후로 한 프랑스 무슬림 2-3세들의 사회적 컨텍스트를 이해하 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알제리와의 역사적 관계 및 알제리 전쟁에 대한 기억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 런 분석의 바탕 위에서 우리는 왜 프랑스의 무슬림들이 파리 테러의 협조자 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솅겐 조약, 알제리 전쟁, 비상사태법, 이중국적법 * 서강대학교 사학과

2 제7권 1집(통권 제12호, 2016년 3월) 차 Ⅰ. 문제제기 II. 시리아 난민 및 이슬람에 대한 프랑스사회의 반응 1. 난민에 대한 프랑스사회의 반응 2. 난민 및 테러에 대한 프랑스정당의 대응 례 III.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실제적 배경과 역사적 배경 1. 프랑스무슬림의 급진화-실제적 배경 2. 프랑스사회의 무슬림 차별- 끝나지 않 은 알제리전쟁 IV. 맺음말 I. 문제제기 2015년은 프랑스인이 이전에 겪지 못했던 사건들로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 게 된 해였다. 역사상 수많은 테러를 겪었던 프랑스인이지만, 2015년 새해 벽두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테러사건의 충격과 연말 바타클랑(Bataclan) 극장 등에서의 동시다발적 테러는 그 어느 사건보다도 프랑스인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특히 11월 13일에 일어난 파리 테러는 대통령을 포함 약 8만 명이 프랑스-독일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있던 생-드니 스타디움(le Stade de France)과 금요일 저녁 젊은이들로 붐비던 카페들, 그리고 락밴드 공연으 로 붐비던 극장 등 6곳 이상에서 동시다발 총격으로 13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프랑스 역사상 가장 큰 테러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IS(Islamic State) 1) 는 왜 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아닌 프랑스를 한 해에 두 차례나 대규모 테러의 대 상으로 삼았는가? 그리고 테러의 주인공들 대다수는 왜 유럽 출신의 무슬림 들, 특히 프랑스 출신의 무슬림들이었는가? IS를 공격하는 데 최전선에 선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오랜 우방인 캐나 다,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함께 유럽국가에 앞서 IS를 공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S는 프랑스를 테러의 최우선 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대해서는 다 1) IS에 대한 이름은 프랑스에서는 IS를 프랑스어로 바꾼 형태인 Etat Islamique으로 도 표기하지만, 아랍어에서 온 Daech(영어로는 Daesh)를 쓰기도 한다. IS도 ISIS, ISIL 등 다양한 표기 방식이 있지만, 본 논문에서는 지금까지 언론에서 가장 익 숙하게 사용해온 IS로 표기하고자 한다.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3 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우선적으로 지리적 원인을 고려할 수 있겠다. IS의 대원들이 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로 침투하기 위해서는 많은 나라들을 거쳐야 하지만, 프랑스로 가기 위해서는 단지 터키와 지중해를 건너기만 하 면 될 뿐이다. 솅겐조약(Shengen Agreement)은 이들이 그리스에서 프랑스로 넘어오는 데 거의 모든 장애물을 일시에 제거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솅겐조 약과 관계없이 해당국 국민이 테러리스트로 입국할 가능성은 더 높다. 실제 두 차례 프랑스 테러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IS에 자발적으로 가입한 프랑스 출신의 이민자 2세대들이었다. 한 통계에 따르면, IS 대원 가운데 프랑스 출 신은 약 1,200여 명, 영국과 독일 출신은 각각 600여 명, 벨기에 440, 네덜란 드 250, 미국은 130여 명, 캐나다, 에스파냐 출신 각각 100여 명 등이다. 2) 게다가 IS는 프랑스를 여전히 제국주의 국가로 간주하고 있다. 최근 몇 년 간만 하더라도 말리 공화국,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등에 군대를 파견하였을 뿐 아니라, 3) IS에 대한 공습도 유럽 국가 가운데에서는 가장 먼저 실행에 옮 긴 나라가 프랑스였다. 잠시 제국주의 역사를 뒤돌아보더라도 프랑스는 지 난 두 세기에 걸쳐 영국과 함께 제국주의 국가로서는 거의 쌍두마차 역할을 하였다. 알제리를 위시한 북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소위 블랙아프리카로 불리 는 사하라 이남 수많은 나라 또한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게다가 이번 공습 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시리아, 그리고 이웃한 레바논 또한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으로 실질적인 식민 통치를 겪은 바 있다. 프랑스 는 이미 나폴레옹 3세 시절 레바논 시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 기독교도 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파견한 경험이 있기도 하다. 4) 한편 프랑스 내 알제리 출신 2세대들은 프랑스를 여전히 식민통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나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날 과거 식민지 지역에 대한 프랑스 2) How the flow of foreign fighters to Iraq and Syria has surged since October,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worldviews/wp/2015/01/27/map-how-the-flow-of-forei gn-fighters-to-iraq-and-syria-has-surged-since-october/ (검색일자: 2016.1.4). 3) 프랑수아 올랑드(François Hollande) 프랑스 대통령과 아프리카를 연결한 책들이 여러 권 출간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대표적으로 Christophe Boisbouvier, Hollande L Africain(Paris: Ed. La Découverte, 2005)을 들 수 있다. 4) 프랑스 역사교과서에는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진출로 표기되어 있다. (Histoire T, Collection Guillaume et Quintrec, Nathan, 2012), p.256.

4 제7권 1집(통권 제12호, 2016년 3월) 군대의 또 한 차례의 진출은 그들의 눈에 프랑스가 여전한 제국주의 국가로 보였을 것이다. IS는 프랑스 테러의 원인으로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 바로 프랑스가 표현의 자유 그리고 라이시테(lai cité)를 빙자하여 무함마드를 모욕하고, 무슬 림들의 종교 행위를 탄압한다는 것이다. 실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묘 사된, 샤를리 엡도의 무함마드 풍자는 전세계 무슬림들을 분노하게 하였고, 이는 이 신문의 편집인들을 비롯한 경관들의 무참한 살해로 이어졌다. 이 여 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IS는 프랑스를 다시 한 번 타격하였는데, 이번에도 테러의 명분은 이전과 유사하였다. 단지 프랑스의 IS에 대한 공습과 프랑스 거주 무슬림들의 차별, 프랑스사회의 퇴폐성 등이 더해 졌을 뿐이다. 5) 사실 IS의 주장들은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프랑스무슬림 2세대들이 자국 을 테러하는 데 적극 가담한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 들은 프랑스 내에서의 다양한 차별을 통해 자신들이 무슬림임을 느끼고 있 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 하에서 필자는 프랑스 내 무슬림들이 어떠한 이유로 이러한 테러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 금까지 거론되어 온 문화적 차별, 사회경제적 차별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되, 이들의 역사적 기억 또한 놓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별 상황을 알아보기 전에, 우리는 먼저 난민문제에 대한 프랑스사회의 반응, 그리고 프랑스 정치권의 다양한 반응을 살펴볼 것이다. 특히 현 사회당 정부가 내놓은 우편향 정책을 분석하고, 극우정당인 민족전 선(Front National)이 지방선거 등 최근 상승세를 타는 데 있어 난민 현상과 테러 사건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찰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프랑스사 회의 우경화 문제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사회의 우경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인 것으로 보인다. 사회당 정권에서 주창되는 국적취소 문제 및 공습강화, 국가비상사태 연장 등의 정 책들은 좌파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에 많은 의문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특히 극심한 테러를 두 차례나 겪은 프랑스로서는 솅겐조약과 같은 유럽연합(이 5) L OBS, 2015년 11월 14일, Attentats à Paris : pourquoi la France est la première cible de Daech. (검색일자: 2016.1.4).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5 하 EU)의 확대와 관련된 여러 조약의 실천에 대해서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 다. 6) 프랑스가 독일과 함께 EU를 이끄는 쌍두마차인 것을 감안하면 이는 EU의 장래에도 먹구름을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II. 시리아 난민 및 이슬람에 대한 프랑스사회의 반응 시리안 난민문제와 파리에서의 테러는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이 슬람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난민문제와 테러는 프랑스 사회를 더욱 우경화로 몰고 가고 있다. 이 장에서는 프랑스사회가 난민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이와 연관된 테러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는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난민에 대한 프랑스사회의 반응 2015년 사상초유의 난민사태로 인해 EU의 회원국들은 심각한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같은 해 8월부터 10월까지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슬로 바키아는 난민의 유입을 막기 위해 자국으로의 국경 통행을 막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는 또 하나의, 아니 차원이 다른 테러를 겪게 되었다. 이 테 러 이후, 프랑스도 상기 나라들의 움직임에 편승하게 되었다. 프랑스 정치권 일각에서는 파리 테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회원국 간 통행을 자유화한 솅겐조약을 지목하고 있다. 솅겐조약에 대한 비판은 프랑스의 다양한 정치 지도자로부터 이미 표출된 바 있었다. 프랑스의 전 대통령이자 현 공화당(Les Républicains) 당수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는 솅겐은 죽었다. 라고 말 했으며, 민족전선의 마린 르펜(Marine Le Pen) 당수는 국경이 없다는 것은 곧 범죄를 촉발하는 광기를 의미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일어서라 프 6) 현재 차기 대선 여론조사 1위인 마린 르펜은 2016년 2월 8일 한 언론(TF1)과의 인터뷰에서 만일 자신이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유로 사용과 솅겐 조약과 관련하여 브뤼셀 과 협상할 것이며, 최종적으로 EU 탈퇴와 관련된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Libération, 2016년 2월 8일.

6 제7권 1집(통권 제12호, 2016년 3월) 랑스 (Debout la France)의 니콜라 뒤퐁에냥(Nicolas Dupont-Aignan)당수는 지하 디스트들(djihadistes)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강화해야 한다. 고 주장하기 도 하였다. 솅겐조약에 대한 비판은 이러한 우파 혹은 극우파 지도자들에게 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현 정부의 책임자인 마뉘엘 발스(Manuel Valls) 총리 또한 유럽이 제대로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솅겐지역 전체를 폐쇄할 수밖 에 없을 것 이라고 주장하였다. 7) 사실 이러한 주장이 이번 테러사건으로 처음 촉발된 것은 아니다. 이미 2011년 소위 아랍의 봄 시기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사르코지는 솅겐조약의 비효율성을 강력하게 지적한 바 있었다. 보트피플 입국이 급증하자, 2011년 에 이탈리아 정부는, 지중해를 통해 자국으로 몰려드는 외국인 행렬을 차단 할 수도 없고, 무한정 수용하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에 처하면서, 입국자의 주 요 출신국인 튀니지 정부와 조약을 체결하였다. 즉, 2011년 4월 5일 이전까 지 입국한 25,000명의 튀니지인들에게 6개월의 임시 체류증을 발급한 것이 다. 이탈리아 당국은 임시 체류증 보유자들에게 솅겐지역에서 자유로운 이 동이 가능하도록 비자에 상응하는 여행문서를 발급하였다. 이에 대해 프랑 스와 독일은 이탈리아를 무책임하다고 비난하였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타고 자국에 도착한 튀니지인들의 입국을 거부하면서 솅겐원칙에 정 면으로 도전하였다. 8) 이와 같이 이탈리아가 솅겐지역에서 제3국 국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인정 하자 솅겐 회원국들은 즉각적으로 우려를 표명하였으며, 프랑스는 이탈리아 와의 국경에서 국경 통제조치를 도입하였다. 이 사건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심각한 외교적 마찰을 야기하였다. 이처럼 두 나라 사이에 외교적 분 쟁이 발생하자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 니(Silvio Berlusconi) 총리는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유럽 통행 자유화 조약 개정 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9) 이 문제에 EU 집행위원회가 개입하여 유럽 내 7) 브누아 브레빌, 밀려드는 난민들... 비판의 표적이 된 솅겐조약, 르몽드 디 플로마티크, 88호(2016호 1월). 8) Le Monde, 2011년 4월 23일. Migrants tunisiens : la France envisage de suspendre les accords de Schengen. 9) 이전까지 자국의 치안이나 공공질서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경우 에만 국경을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7 자유로운 통행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자국의 치안이나 공공질서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경우 에만 국경을 폐쇄할 수 있다는 조약이 2013년 이후로는 다른 회원국이 EU 외곽 국경 통제에 심각하고 지속적인 결함 을 보이는 경우에도 국경을 폐쇄할 수 있다는 조약으로 변경되었다. 이 는 바로 11.13 파리 테러에도 해당되었다. 9명의 테러리스트 가운데 한 명이 난민 틈에 끼어 입국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 차례 심각한 국경 폐쇄 위기 가 발생하였다. 그러자 EU는 즉각 터키 정부와 난민 협상에 돌입하여 터키 에 30억 달러를 지원해 주고 터키인에 대한 비자를 면제해 주는 한편 EU 가 입 협상도 재개하기로 약속하였다. 10) EU 국경통제 부활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입국 불허 대상이 파리 테 러의 주범들과 같은 지하디스트이기도 하겠지만, 궁극적 목적은 주로 난민 혹은 이주민들, 더 구체적으로는 시리아, 이라크, 아프간 그리고 아프리카에 서 오는 무슬림이민자들의 입국 방지이다. 사실 유럽이 무조건 이주민을 거 부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2013년 EU 회원국이 받아들인 합법 이민자 총수 는 약 150만 명에 달했다. 프랑스만 보더라도 전년도보다 13,000명 늘어난 20만 9,782명으로 집계된다. 11) 하지만, 난민의 형태로 혹은 불법이민의 형태 로 들어오는 사람의 상당수가 무슬림이거나 혹은 사하라이남 출신인 것으로 판단되며, 유럽 사회 혹은 프랑스 사회는 이들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프랑스의 민족전선은 솅겐조약과 이민이 실업, 테러, 사회 복지재정 약화의 주범이라고 오래전부터 비난해 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 신들의 지지율을 담지해 왔다. 민족전선의 이러한 주장들은 좌파 정당마저 反 이민 정서를 지닌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난민 문제 에 대해 극우정당과 보조를 맞추게 하였다. 1936년 에스파냐 내전 당시 공화 주의자 유입이나 1970년대 베트남 전쟁 후 보트피플 환대와 비교해 난민유 폐쇄할 수 있었다면, 2013년 이후로는 다른 회원국이 EU 외곽 국경통제에 심 각하고 지속적인 결함 을 보이는 경우에도 국경을 폐쇄할 수 있게 된다. 브누아 브레빌, 밀려드는 난민들... 비판의 표적이 된 솅겐조약, 르몽드 디플로마 티크, 88호(2016호 1월). 10) 같은 글. 11) 같은 글.

8 제7권 1집(통권 제12호, 2016년 3월) 입에 소극적이었던 프랑스가 터키 보드룸(Bodrum)의 해변가에서 발견된 아 일란 쿠르디(Aylan Kurdi) 사체 발견 이후 한 때 난민 유입에 적극적이 되었 으나, 11월의 파리 테러는 이 모든 논의를 잠재우고,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치 러진 지방선거에서 극우정당의 돌풍을 뒷받침했다. 2. 난민 및 테러에 대한 프랑스정당의 대응 프랑스 사회는 난민문제 이전에도 이미 이슬람문제에 민감한 상태였다. 2015년 갑자기 이슈화된 시리아 난민문제, 그리고 프랑스사회의 반이슬람 정서를 더욱 강화시킨 무슬림에 의한 파리 테러는 프랑스 사회 전반을 보수 적으로 만들어 갔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프랑스 국민들은 적어도 일시적 으로는 여론조사에서 보수적 안건에 절대적 지지를 보였다. 정치인은 여론 을 중시하지만, 국가수반은 여론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12) 는 주장이 나오고 도 있지만,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파리 테러 이후 누구보다 앞서 여론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9.11 테러사건 이후 조지 부시(Georges W. Bush) 미국대통령이 표현한 테러와의 전쟁, 테러리스트의 완전박멸 을 반복하면 서 공포분위기 속에서 여러 가지 비합법 조치들의 시행을 역설하였다. 테러를 프랑스와 프랑스의 가치에 맞서는 전쟁행위 로 규정한 올랑드 대 통령은 11.13 테러 일주일 후 국가비상사태(l Etat d urgence)를 3개월간 실시하 는 국가비상사태 관련법 을 국회에 상정하여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키 고, 13) 이를 다시 3개월 연장하는 안을 국회에 상정하여 통과시켰다. 이 조치 들에는 야간통행금지, 상시가택수색, 인터넷통제강화, 공공장소폐쇄, 시위금 지, 12시간 동안 지정된 거주지에 머물 것을 강제하는 거주 지정, 전자기록 장비를 통한 감찰확대, 공공질서 침해활동을 하는 협회나 비공인단체의 해 12) 프랑수아 미테랑이 언급한 것을 릴 시장인 마르틴 오브리(Martine Aubry)가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 http://www.ouest-france.fr/politique/parti-socialiste/decheance-de-nationalite-martine-aubry-ps -passe-loffensive-3969672 (검색일자: 2016.2.4). 13) https://fr.wikipedia.org/wiki/%c3%89tat_d%27urgence_en_france#pol.c3.a9miques_au_ sujet_de_l.27.c3.a9tat_d.27urgence (검색일자: 2016.2.4).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9 산 등 폭넓은 강제조치 등이 해당된다. 14)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행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헌법 에 포함시키려는 행위는 비상사태라는 예외적 상태를 합헌화 함으로써 이를 법률적 차원에서 관리하려는 시도이다. 이들은 시민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 는 모든 상황을 미리 예측하여 헌법에 포함시켜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통상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률과 예외적 상황이 상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국가비상사태와 같은 예외적 상황을 헌법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헌 정 질서를 어지럽힐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가비상사태는 두 가지의 심 각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경찰의 권력이 남용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비상사태를 항구적으로 발동하기 위해 이 비상사 태를 수차례 반복해서 연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존재한 다. 즉, 프랑스 현 행정부가 추진 중인 헌법 개정안이 국가비상사태의 선포 와 실행에 명백한 근거를 제공할 것이라는 것이다. 15) 2016년 2월 8일 저녁, 프랑스 국민의회는 마침내 비상사태체제(régime de l état d urgence)를 기본법 안에 삽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헌법개정안 1항(l article ler du projet de révision constitutionnelle)을 녹색당, 좌파전선(Front de gauche) 그리고 일부 우파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시켰다. 이로써 국가비상사태는 공공질서 를 위해하는 긴급재해 혹은 자연재앙의 경우, 각료회의에서 선포될 수 있게 되었다. 16) 논란이 되고 있는 또 하나의 헌법개정안은 테러범으로 판결 받은 이중국 적자의 프랑스 국적취소 가능성이다. 사실 이 문제가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여당인 사회당 내 분열뿐만 아니라 법무부 장관의 사퇴까지 몰고 왔다. 우파정당 및 극우정당이 그동안 계속 주장해온 이 조치 는 법률적 목적에는 합치하지만 위헌 가능성을 내포 하고 있는 것으로 보 인다. 그러한 이유로 정부로서는 이 조치를 헌법에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해 14) https://fr.wikipedia.org/wiki/%c3%89tat_d%27urgence_en_france#pol.c3.a9miques_au_ sujet_de_l.27.c3.a9tat_d.27urgence (검색일자: 2016.2.4). 15) 장자크 강디니, 기본적 자유를 경찰에 위임한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 티크, 88호(2016호 1월). 16) 103명 찬성, 26명 반대, 7명 기권. 의원의 1/4정도 참석. Le Monde, 2016년 2월 9일.

10 제7권 1집(통권 제12호, 2016년 3월) 졌다. 일단, 우파 및 극우파는 그동안 자신들이 요구해온 주장이기에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이중국적자의 국적취소 에 적극 찬성하지만, 이 조치는 법 무부장관직을 박차고 나간 토비라(Christiane Taubira)를 비롯 전 총리인 장-마 크 에로(Jean Marc Ayrault), 17) 안느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 뿐만 아니 라 마르틴 오브리(Martine Aubry) 릴(Lille)시장, 올랑드대통령 하에서 교육부장 관과 사회당 대변인을 지낸 브누아 아몽(Benoi t Hamon) 등 상당수 진보적 인 사들이 반대함으로써 국론을 심대하게 분열시키는 상황이다. 현행 헌법으로는 시민권 취소는 귀화한 국민을 대상으로만 할 수 있지만 그것마저도 거의 시행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새 법안은 이를 모든 이중 국적 자들, 즉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중국적자들에게까지 확대하는 안이지만 프랑 스 단일 국적자에게는 적용될 수가 없다. 단일 국적자들은 자칫 무국적자가 될 수 있기에 정당화될 수도 없고(injustifiable), 법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juridiquement impossible). 따라서 반대론자들은 이번 법안이 국민을 이중국적 이었다가 프랑스 국적을 잃는 사람, 프랑스 국적이 취소될 수 없는 사람, 이 두 가지 경우로 분리하는 정책, 즉 차별정책이어서 프랑스 헌법정신에 위배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사실에 부합한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한대로 현재에도 여전히 귀화한 이중 국적자(les binationaux naturalisés) 는 국적취소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18) 또한 이 조치가 테러리즘을 막을 수 있다거나 미래의 자살폭탄 테러범을 방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단지 상징적인 조치일 수 있을 뿐이다. 많은 전문가들도 이에 동의하며, 이 조치는 실제적 조치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피에 따 른 프랑스인(les Français du sang) 혹은 주류 프랑스인(les Français du souche) 이 라는 것을 구분하려는 비시정권 시절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비난하고 있 다. 19) 즉, 프랑스의 전통적 속지주의에 대한 배신일 뿐이다. 20) 그럼에도 불 17) 장-마크 에로 전 총리는 2016년 2월 12일자로 외무부장관이 되면서 2월 9일 이 루어진 국적법 관련 투표에서 기존의 반대 입장에서 찬성으로 돌아섰다. Le Monde, 2016년 2월 13일. 18) L OBS, n.2670, 2016년 1월 7일-13일. Entretien avec Gilles Kepel, Génèse du Djihad français. 19) L OBS, n.2670, 2016년 1월 7일-13일. Entretien avec Farhad Khosrokhavar.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11 구하고, 2016년 2월 9일 프랑스 하원인 국민의회는 이 헌법개정안을 통과시 켰다. 비록 우파 내에서도 프랑수아 피용(François Fillon) 전 총리의 주도로 반 대파가 형성되어 있지만, 우파가 다수인 상원에서도 이 개정안이 통과되는 데에는 커다란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최종적으로는 베르사유에서 열리는 상하합동회의에서 총 925명 가운데 3/5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헌법이 개정 된다. 21) 이렇게 볼 때, 국적취소 문제를 두고 프랑스 국론이 그 어느 때보다 분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민족전선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민 족전선의 최대 목표는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대내적, 대외 적 환경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리아 난 민 문제와 파리 테러는 그들에게 있어 최상의 기회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실 제 2015년 12월 지방선거의 1차 투표 결과에서 민족전선은 6개 지방에서 선 두 22) 를 차지하는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웠고, 공화당이 사회당과 2차 투 표에서 모든 협의를 거부하는 상황이라 민족전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체 장 획득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사회당이 경합지역에서 공화당에 후보를 양보함으로써 민족전선 대신 공화당이 단체장을 쓸어 갔다. 23) 그럼에도 민 족전선이 1차 투표에서 평균 30%를 상회하는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언급한 난민 문제와 파리 테러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조금 20) 프랑스 최대 일간지 Le Monde에 따르면, 2016년 2월 7일 현재, 상원 및 하원의 원 총 925명 가운데 417명, 즉 전체의 45.08%가 이 주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 였는데, 그 가운데 212명(50.84%)이 이 조치에 반대이고, 173명(41.49%)이 우호 적이며, 32명(7.67%)이 불분명하였다. 이 법안이 통과하기 위해서는 상하원 총 925명 가운데 555명인 3/5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일부 우파의원들도 이 안에 반대하고 있다. 게다가 사회당 의원이 총 925 가운데 397명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한 의원 60%가 이 법안에 적대적이었고 30%만이 우호적이었다. Le Monde, 2016년 2월 8일. 21) Le Monde, 2016년 2월 10일. 22) 6개 지역은 다음과 같다. Nord-Pas-de-Calais/Picardie, en Paca en Alsace/Lorraine/ Champagne Ardenne, Centre, Languedoc-Roussillon/Midi-Pyrénées et en Bourgogne/ Franche-Comté. 23) http://www.lefigaro.fr/elections/regionales-2015/2015/12/06/35002-20151206livwww000 01-en-direct-elections-regionales-les-resultats-du-premier-tour.php (검색일자: 2016.1.4).

12 제7권 1집(통권 제12호, 2016년 3월)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프랑스 전국이 모두 이러한 외부환경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민족전선이 2015년 12월 지방선거의 1차 투표 결과에서 마린 르펜이 주도하여 압도적 1위(41.5%) 24) 를 했던 프랑스 북부의 노르-파드 칼래-피카르디 지방과 그녀의 조카 마리옹 마레샬-르펜(Marion Maréchal-Le Pen, 40.5%) 25) 이 주도한 프랑스 동남부의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지방의 경우, 그 영향 정도가 미묘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앞의 북 부지방이 경제 문제에 좀 더 민감하다고 한다면, 동남부지방은 이민문제에 좀 더 민감하다고 할 수 있다. 26) 선거의 결과로 본다면, 사회당정부의 테러에 맞선 강경한 조치들이 원래 의 목표와는 달리 이슬람극단주의로 기울 위험이 있는 사람들을 자극할 수 있다. 또한 사회에 불신풍조를 조성할 수도 있다. 공포에 굴복하지 않는 것 도 중요하지만, 자유를 담보로 안전을 확보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 지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III.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실제적 배경과 역사적 배경 프랑스는 왜 급진적 이슬람세력의 목표물이 되었는가? 이에 대한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이장에서는 이에 대한 실제적 이유와 역사적 기억을 중심 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프랑스무슬림의 급진화-실제적 배경 파리 테러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프랑스무슬림의 급진화는 2005년 24) http://www.lefigaro.fr/elections/regionales-2015/2015/12/06/35002-20151206livwww000 01-en-direct-elections-regionales-les-resultats-du-premier-tour.php (검색일자: 2016.1.4). 25) http://www.lefigaro.fr/elections/regionales-2015/2015/12/06/35002-20151206artfig00208 -en-paca-la-montee-en-puissance-de-marion-marechal-le-pen.php (검색일자: 2016.1.4). 26) 조엘 공뱅, 프랑스 국민전선 지지층의 3가지 얼굴, 르몽드 디플로마티 크, 87호(2015년 12월).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13 을 전환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2005년은 프랑스무슬림들에게 내부적으 로 특수한 시점일 뿐만 아니라 이들이 다른 세계의 급진화된 무슬림과 연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2005년은 여러 측면에서 제3의 물결 을 반영하는 해로 볼 수 있다.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은 2005년에 프랑스에서 성장한 시리아 출신의 아부 무삽 알-수리(Abu Musab al-suri)가 인터넷에 게시한 호소문이다. 흔히 지하디스트 제3세대(djihad 3G) 27) 창시자로 알려진 그는 전 세계적 차원의 이슬람 저항 운동에 대한 호소 (Appel à la résistance islamique mondiale)라는 제목으로, 약 1600쪽이나 되는 긴 내용을 아랍어로 작성하였다. 28) 한 때 오사마 빈 라덴 (Oussama Ben Laden)의 측근이기도 했던 그는 노르웨이 연구자 브륀냐르 리 아(Brynjar Lia)의 표현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 지하드의 설계자(archiecte du djihad global) 이다. 특히 많은 전문가들이 IS가 파리 테러를 아부 무삽 알-수 리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행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타격의 대상지를 미국이 아닌 유럽을 삼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위의 <호소문>에 따르면, 그는 2001년 세계무역센터에서의 테러처럼 눈길을 끄 는 테러리즘 (terrorisme spectaculaire)에 반대하고 있다. 그의 생각에 이러한 테 러의 결과는 이슬람세계에 재앙이라는 것이다. 그 테러의 결과가 미국의 아 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 알카에다 일부의 궤멸이기에, 그는 결국 빈 라덴 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하게 되었고 새로운 표적을 찾게 되었다. 그에게 있 어 미국은 너무 멀고, 너무 강하기 때문에 서양세계의 취약점(ventre mou)인 유럽을 타격해야 하는 것이었다. 29) 그는 전술적으로도 방향을 선회했다. 서 양의 정보당국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작은 독립적인 세포조직이 감행하 는 테러를 주장했다. 그는 피라미드 구조의 수직적 조직이 아닌 수평적 지하 디스트를 중요시했는데, 그는 이를 조직이 아니라 시스템이라고 명명했다. 27) 제3세대는 1983년 뵈르의 행진 (Marche des Beurs) 이후로 태어나 프랑스 이슬람 의 세 번째 세대를 구성하는 사람들로 2005년 경 막 성인이 된 이들을 지칭한 다. 이 용어는 주로 이 분야의 전문가인 질 케펠(Gilles Kepel)에 의해 사용되었 다. http://www.slate.fr/story/112465/djihad-francais (검색일자: 2016.2.4). 28) https://ia600303.us.archive.org/25/items/dawaaah/dawh.pdf (검색일자: 2016.2.4). 29) http://www.lematin.ch/monde/ecrit-bible-djihadistes/story/13193575 (검색일자: 2016.2.4).

14 제7권 1집(통권 제12호, 2016년 3월) 그는 항상 감시의 대상이 되는 모스크의 이맘처럼 개개인의 인간을 통하지 않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한 자발적 급진화 혹은 교화를 중요시 하였다. 프 랑스를 떠나 에스파냐 여성과 결혼하여 에스파냐 국적을 획득한 그는 유럽 사회에 네트워크로 구성된 지하디즘을 침투시키고 그곳에서 테러리즘을 이 론화하는 것을 생각하였고, 이민자로서 유럽사회에 덜 통합된 젊은이들을 도구로 이용하고자 하였다. 그의 최종 목표는 유럽에서 이슬라모포비아를 확대하여 유럽 내부에 내전을 일으킴으로써 유럽 자체가 내부적으로 폭발하 도록 하는 것이다. 30) 우연히도 아부 무삽 알-수리가 추구한 새로운 전술에 부합하는 디지털 환 경이 2005년에 만들어졌다. YouTube.com이라는 인터넷 도메인이 2005년 2월 15일 전 세계적으로 처음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31) 이 혁명적 디지털 발전 으로 유럽 내 네트워크로 구성된 세포조직들이 개별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는 고립되어 있던 프랑스 이슬람 3세대 지하디스트들이 단숨 에 전세계 지하디스트 3세대와 직접적으로 연계할 수 있게 되었다. 32) 게다 가 이러한 직접적 접촉으로 인해 많은 프랑스의 젊은 무슬림들이 이슬람국 가로 떠나는 히즈라(hijra) 33) 를 실행하게 되었다. 이 배경에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선교 여파로 프랑스 내 모스크에 도입, 확산된 살 라피즘(salafisme)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살라피즘은 이슬람 수니에서 극보수 적 근본주의 개혁을 추구하는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이론을 추종하는 사 람들은 종교적 개혁을 거부하고 이슬람법인 샤리아의 이행을 지지한다. 살 라피스트의 한 분파가 지하디스트들이다. 프랑스 일부 방리유 지자체에서는 청소년 범죄나 마약에 대항하기 위해 살라피즘을 용인하기도 하지만, 살라 피즘은 무신앙 사회와 문화적 장벽을 쌓게 되고, 민주주의, 라이시테, 남녀 평등 등에 반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발생시킨다. 결국 일부 젊은 무슬림들 30) L OBS, n.2670, 2016년 1월 7일-13일. 31) History of YouTube in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youtube (검색일자: 2015.12.15). 32) Le Monde, 2014년 9월 30일 Le djihad 3.0. 33) 히즈라는 622년 무함마드가 자신의 추종자와 함께 메디나에서 메카로 이주한 것을 일컫는다.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15 은 이슬람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이슬람 국가로 떠나는 히즈라를 실행하게 되는 것이고, 이들이 지하디스트가 되어 프랑스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몇 가지 상황이 덧붙여진다. 그 하나는, 2005년 10월 우리에게 커 다란 충격을 준 프랑스 소요사태 를 생각할 수 있다. 이 사태는 2015년 파리 테러 때와 유사한 정부의 반응을 보여준다. 이 당시는 우파정권이었고, 2015 년은 좌파정권이지만 그 대응에 있어서는 거의 차이가 없으며 오히려 현 좌 파정권의 대응이 더 보수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겠다. 우선 국가비상사태 실시에 관해 살펴보자. 촉발은 프랑스 경찰과 이민자 청소년 사이의 사소한 갈등에서 일어났지만, 그 사회적 파장은 걷잡을 수 없 었다. 프랑스에서는 약 20일간(10월 27일부터 11월 17일) 전국적으로 대략 300개 도시에서 자동차 및 공공건물 방화를 포함하는 과격한 소요사태가 발 생했다. 언론에 나타난 사건 개황을 살펴보면, 소요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 다고 선언된 11월 17일 현재, 2,921명이 체포(최연소 피검자 10세)되었으며, 민간인 1명이 사망하였고, 장애인 1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공권력 측의 피해 도 만만치 않았는데, 경찰 및 소방관 115명이 부상당하였으며, 시위자로 오 인하여 한 청년을 집단 구타한 경찰 5명이 정직, 그 가운데 1명이 구금당하 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또한 차량 9,071대가 불탔으며, 지급 예상 보험료만 최소 2억 유로(2500억 원)로 추측되고 있다. 10월 27일에 시작된 소요가 그칠 줄 모르자, 프랑스 정부는 2015년 현재 프랑스에서 발효되고 있는 국가비상 사태, 즉 1955년 알제리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안되었으나 1984년 누벨- 칼레도니(Nouvelle-Calédonie)의 소요 때 한 번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 았던 <비상사태 법> 34) (l'état d'urgence)을 정부 직권으로 12일간 발효시켰다. 그 후 정부는 의회의 승인을 얻어 11월 21일부터 3개월간 그 기간을 연장함 으로써 이 소요를 잠재울 수 있었다. 그 만큼 정부로서도 소요를 진정시키기 에 다급하였던 것이다. 35) 이 당시에 우파정부에서 국가비상사태를 헌법 개 정과 연계시킨다고 하였다면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의 반응은 어떠하였을까? 다음으로 소요사태 주인공들에 대한 처리문제이다. 이 부분도 오늘날 논 34) 1955년 4월 3일 법. 35) 이 조치는 2006년 1월 4일 조기 해제되었다. Le Monde 2006년 1월 4일.

16 제7권 1집(통권 제12호, 2016년 3월) 의되고 있는 테러리스트의 국적취소문제와 연계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당 시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소요를 주도하는 쓰레기들을 진공청소기로 쓸어버 려야 한다(nettoyer au Ka rcher) 고 강경하게 발언하며 물리력 동원을 지휘했 다. 36) 그의 직설적인 발언은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너무 심하다 는 비판을 받았지만 일단 대중의 주목을 끄는 데는 성공하였다. 사르코지 장관은 2005 년 11월 9일 소요사태 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은 외국인은 모두 추방한다고 밝혔다. 그는 하원에서 체류의 합법성 여부와 관계없이 유 죄판결을 받은 외국인은 지체 없이 프랑스 영토에서 추방하도록 각 도지사 들에게 요청했다. 며 여기에는 체류 허가증을 가진 사람도 포함된다고 강조 했다. 37) 이 당시만 해도, 소요에 참가한 자국민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 었다. 하지만 이 번 테러 사건의 경우 당장 이중국적자의 국적 취소가 사회 당정부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물론 단순 소요 가담자와 테러범의 경우 차이 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발상이 좌파에서 나왔다는 점이 올랑드 대통령과 마 뉘엘 발스 총리의 정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2005년 소요사태로 분출된 것은 무슬림2세대들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차 별 철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사건은 그 이전부터 프랑스 주류사회 에 대해 사회적 정치적 불만이 매우 컸던 이주자들이 한 계기를 기회로 삼 아 폭력적으로 터뜨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차별에 대한 상징적 항거로 우리는 1983년 뵈르의 행진 (Marche des Beurs)을 예로 들 수 있다. 그 해 여름 21명 38) 의 마그레브 출신 젊은이들이 인종 폭력으로 사망함에 따라 일부 성직자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 행진의 원래 명칭은 평등을 위한, 인 종주의에 반대하는 행진 (Marche pour l égalité et contre le racisme)이었다. 39) 이 들의 행진 이유는 자신들도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투표권을 부여 36) 사르코지 장관은 68년 5월 혁명 이후 1970년에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의결된 <반파괴자법>(loi anticasseurs)의 새로운 버전을 준비하였다. Libération, 2005년 11 월 29일. 37) Le Monde, 2005년 11월 11일. 38) 경찰은 5명, 인종차별투쟁조직은 21명을 주장. https://fr.wikipedia.org/wiki/marche_pour_l%27%c3%a9galit%c3%a9_et_contre_le_racisme (검색일자: 2015.12.15). 39) 1983년 10월 15일에 시작되어 12월 3일까지 지속됨.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17 해달라는 것 40) 과 당시 민족전선이 지방자치선거에서 선전하는 것을 보고 그 에 대한 경각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41) 이주자 혹은 이주자의 2세대 들로서 투표권을 갖지 못해 정치적 권리가 제한된 것을 뼈저리게 느낀 이들 은 드루(Dreux)에서 민족전선이 선전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크게 보아, 뵈르 의 행진 은 정치 활동에 입문할 수 없었던 자신들의 환경을 미테랑 사회당 대통령의 당선을 계기로 개선할 방법을 찾기 위한 첫 시도로 볼 수 있겠다. 사회적 차별은 마그레브 이주민들의 종교 문화적 차별과 맞물린다고 할 수 있다. 1989년 10월 우아즈도( 道 )의 크레유(Creil)에서 무슬림여중생 3명이 수업시간에 히잡을 벗지 않아 퇴학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순 식간에 전국적인 사건으로 비화되었고, 10여 년 간의 사회적 갈등 끝에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마침내 종교적 상징물을 학교 내에서 드러내놓는 것을 금 지 하는 법안 작성을 지지하였으며, 2004년 국회에서 이 법안이 여야의원들 의 거의 대다수 찬성으로 채택되었다. 이는 10년 이상 지속되어온 프랑스 내 무슬림 여학생들의 히잡 착용 문제를 일단락 짓는 것이기도 했지만, 프랑스 내 이슬람단체의 분열과 한계를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프랑스 내 이슬 람단체는 사분오열되어 있었는데, 2003년 프랑스 내 이슬람의 공식단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이슬람 위원회 (Le Conseil Français du Culte Musulman)가 구 성되었다. 이 단체는 니콜라 사르코지가 내무부장관 시절 라이시테 문제가 한창 쟁점이 되자, 나름대로 프랑스의 이슬람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스크 別 로 분열되어있는 이슬람 단체들을 하나의 대표체를 구성케 해 만든 조직이 다. 42) 이 조직은 자연스럽게 친프랑스정부 정책을 취함으로써 상당수 급진 40) 이민자들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요구한 것은 이미 1981년 미테랑이 선거공약(프 랑스를 위한 110개 제안 가운데 80번째)으로 외국인들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 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La 80e proposition n'aboutira pas à ce que soit accordé le droit de vote aux immigrés lors des élections municipales.) https://fr.wikipedia.org/wiki/110_propositions_pour_la_france (검색 일자: 2016. 2. 1). 41) 1983년 지방자치선거에서 민족전선은 장-피에르 스티르부아(Jean-Pierre Stirbois) 가 선전한 드루(Dreux)에서 정통우파 공화국연합(RPR)과 연합하여 시를 장악하 였다. 이는 민족전선으로서는 최초의 승리였고 프랑스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https://fr.wikipedia.org/wiki/marche_pour_l%27%c3%a9galit%c3%a9_et_contre_le_racis me (검색일자: 2015.12.15).

18 제7권 1집(통권 제12호, 2016년 3월) 적 무슬림들을 대변하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2004년 8월 이라크에서 프랑 스인 두 명이 인질로 잡혀있을 당시 CFCM이 이 사건에 개입하였다. 43) 당시 프랑스의 기자들이 한 이슬람 무장단체( 유일신과 성전 )에 의해 납치당하였 는데, 이 단체의 요구사항은 프랑스 공립학교에서 히잡을 금지시키는 법 을 제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44) 이 때, 바로 CFCM이 개입하여 인질들을 석방 시킨 사례가 있었다. 45) 이 사례는 CFCM이 프랑스의 무슬림 단체임을 명확 히 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었다. 46) 이러한 일은 2004년 3월 15일 히잡 금지 법 과 맞물려 급진적 무슬림을 지지하던 프랑스 내 무슬림 단체 UOIF(Union des Organisations Islamiques de France)의 동력을 잃게 만든 상황을 초래하였다. 이처럼 히잡 착용을 고집하는 급진적 무슬림세대 의 마지막 절규가 바로 2005년의 소요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프랑스 내 일부 급진적 무슬림 젊은 이들은 프랑스 사회에서 자신들이 더 이상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쉽지 않다 고 생각하게 되었고, 실제 프랑스사회가 자신들이 선거에 출마하여 정치적 입지를 세우기도 힘든 구조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렇게 자신의 모국 을 적대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테러의 동조자 혹은 테러리스트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테러 협력자들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알제리와 연관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47) 2015년 1월 발생한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 의 테러범, 11월 3일 발생한 생-드니 스타디움, 11구 의 카페들, 바타클랑 극장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에서 보듯이 그 테러리스트 들의 상당수가 프랑코-알제리인들이었다.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에서 11명 42) http://fr.wikipedia.org/wiki/conseil_fran%c3%a7ais_du_culte_musulman (검색일자: 2015.10.1.). 43) Rémy Leveau et Khadija Mohsen-Finan (ed.), L Islam en France et en Allemagne. Identité et citoyennetés(paris: La Documentation Française, 2001), p.2. 44) 박단, 프랑스의 문화전쟁-공화국과 이슬람 (책세상, 2005), p.6. 45) http://www.rfi.fr/actufr/articles/057/article_30235.asp(검색일자: 2015.9.9). 46) http://www.rfi.fr/actufr/articles/057/article_30235.asp(검색일자: 2015.9.9). 47) 질 케펠은 자신의 저서 서문에서 파리 테러범의 면면을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대다수 알제리 혹은 모로코계 이민자로 프랑스 혹은 벨기에서 태어나고 교육을 받은 자들이다. Gilles Kepel avec Atoine Jardin, Terreur dans L Hexagone : Genèse du djihad français(paris: Gallimard, 2015), pp.i-iv.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19 을 살해한 사이드와 셰리프 쿠아치 형제(les Kouachi)는 알제리 이민2세대로 이라크, 예멘, 시리아 등지에서 훈련을 받고 프랑스로 돌아온 경우이고, 11 월의 파리 테러를 일으킨 9명 가운데에도 5명이 프랑스 국적자이며, 이들 대 다수도 알제리계 2세대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2년 3월 19 일 유대인을 살해한 모하메드 므라(Mohamed Merah) 또한 프랑코-알제리인이 었으며, 2014년 5월 24일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유대인 박물관 테러범 메 흐디 네무슈(Mehdi Nemmouche)도 시리아에서 1년을 체류한 프랑코-알제리인 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이들의 행동이 알제리를 위시한 식민지 문제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프랑코-알제리인 모하메드 므라가 유 대인을 살해한 2012년 3월 19일은 알제리전쟁이 끝난 50주년 기념일이었다. 그 자신이 그 날을 기억하고 일을 벌였는지는 알 수 없다. 48) 하지만 그 상징 성은 엄청나다. 앞서 우리가 언급한 아부 무삽 알-수리는 식민주의에 강력히 반대하는 것을 감정의 촉매제로 이용하였다. 어쩌면, 이것이 IS에 합류한 지 하디스트에 프랑스인이 가장 많은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2. 프랑스사회의 무슬림 차별- 끝나지 않은 알제리전쟁 무슬림이민자의 급진화를 프랑스가 테러의 대상이 된 이유 가운데 하나 로 판단할 때, 이들의 역사적 기억 또한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주지하 다시피, 알제리의 탈식민화문제와 관련하여 상당수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와 알제리를 하나로 보았기에 알제리의 독립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130여 년 동안 하나의 나라 였기 때문이 아니다. 프랑스의 입장 에서는 알제리에서의 석유 발견과 핵실험장으로 유용한 광활한 사하라 사막 을 놓치는 것이 못내 아쉬웠을 뿐만 아니라 49) 알제리가 프랑스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은 프랑스의 민족주의적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히는 것이 48) 프랑스의 대표적 이슬람 및 테러 전문가 질 케펠은 테러범이 이 날을 의식했 을 것으로 생각한다. Gilles Kepel, L Etat islamique cherche à déclencher une guerre civile, Le Monde, 2015년 11월 14일. 49) Benjamin Stora avec Alexis Jenni, Les mémoires dangereuses-de l Algérie coloniale à la France d aujourd hui(paris: Albin Michel, 2016), p.102.

20 제7권 1집(통권 제12호, 2016년 3월) 었다. 이는 공화국의 원칙 가운데 하나인 하나이면서 분리될 수 없는 프랑 스 (une et indivisible)가 실질적으로 훼손되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프랑스의 단일성을 지상의 목표로 하는 자코뱅주의(jacobinisme) 의 위기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50) 알제리전쟁으로 인하여 제4공화국은 6번이나 내각이 교체되었고 마침내 는 공화국이 바뀌었다. 그후 새로이 등장한 샤를르 드골은 결국 알제리의 독 립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오늘날 프랑스인들에게 나타나는 反 이슬 람 망탈리테는 바로 알제리독립을 승인한 드골주의자 뿐만 아니라 상당수 프랑스인들이 보인 소극적 행위, 즉 프랑스영토로서의 알제리 ( Algériefrançaise)를 보존하는 데 일부 프랑스인들이 보여준 실망스러운 투쟁의 결과 로 보인다. 51)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 일부 프랑스인들이 보이는 행위는 식민 지 시절 알제리전쟁에서의 패배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나올 뿐 아니라, 알제 리인들을 여전히 자신들의 식민지인으로 여기고 있는 데서 나오는 행위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알제리전쟁은 프랑스 침략에 맞선 무슬림들의 또 하 나의 전쟁 형태로 오늘날 프랑스인들 마음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52) 그러므 로 이슬람에 반대하는 현 프랑스의 사회적 분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 로 알제리와 관련된 탈식민화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프랑스 극우파들은 식민지시절부터 알제리무슬림들의 동화 문제를 거론 함으로써 그들이 진정 프랑스인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알제리전쟁 중 이었던 1955년 자크 수스텔(Jacques Soustelle) 알제리총독이 알제리인들이 프 랑스시민이 되기 위한 방식으로 통합 (intégr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반면, 장 마리 르펜은 이 때 이미 동화(assimilation)를 주장했는데, 동화 는 자신의 기원과 종교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제리인들이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한 주장이었다. 53)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극우파 50) Benjamin Stora avec Alexis Jenni, p.145. 51) L OBS, n.2670, 2016년 1월 7일-13일. Le Fanto me de l Algérie coloniale, Benjamin Stora-Alexis Jenni. 52) Benjamin Stora, Le Transfert d une mémoire-de l Algérie française au racisme anti-arabe(paris: Ed. La Découverte, 1999), p.76. 53) 동화와 통합, 편입(insertion) 등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박단, 프랑스의 이민자정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21 들은 그들은 동화될 수 없는 자들(inassimilables)이다 라고 지속적으로 반복하 여 주장하였다. 그들은 독립 이후 프랑스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을 향해 오늘 날 똑 같은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동화주의 담론은 불가능한 통합 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54) 민족전선 창당의 주역인 장 마리 르펜이 바로 이러한 망탈리테를 대변하 는 사람이었다. 그가 늘어놓는 반유대주의적 주장들은 별도로 하더라도, 국 민의회 의원직을 잠시 접어두고, 알제리독립전쟁에 참전하였으며, 고문에 참 여까지 했던 르펜(Le député tortionnaire) 55) 은 이후 극우정당의 책임자로써 이 민자=마그레브인=알제리인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 정서를 자신의 정당에 주입해 왔다. 사실 공화국에 대한 대안적 비전 을 제시하고 있는 민족전선의 본질은 식민지 시절 프랑스 행정체계 안으로 편입되어 있는 알제리의 세 개 의 도( 道 ) 56) 를 특별하게 다루었던 것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세 개의 도는 1848년부터 독립하던 1962년까지 공식적으로 공화국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공화국의 모든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단지 인종차별을 하나의 숙 명으로 알고 견뎌야 했던 지역이었던 것이다. 57) 이러한 숙명이 알제리가 독 립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탈식민화가 일어났지만, 완전 히 식민지도 아니고 완전히 공화주의적이지도 않은 상황이 지속된 것이다. 뱅자맹 스토라는 이러한 현상을 미국역사 속에서 흑인들이 겪은 일을 빗대 어 미국사에서의 남부주의(sudisme à l histoire américaine) 라는 말을 차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현대 프랑스사회에는 식민지 알제리의 유령 이 남아 있는 것 으로 보인다. 이 개념이 프랑스사회 내에서 세대별로 전해질뿐만 아니라 확 책과 공화국 통합모델, 이화사학연구, 35집(2007)을 참조하라. 54) L OBS, n.2670, 2016년 1월 7일-13일. Le Fanto me de l Algérie coloniale, Benjamin Stora-Alexis Jenni. 55) Benjamin Stora avec Alexis Jenni, pp.106-109. 56) 프랑스령 알제리(Français d'algérie)는 프랑스 본토와 연계된 행정구역 도( 道 )의 고 유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 département d'alger(91), département d'oran(92), département de Constantine(93) https://fr.wikipedia.org/wiki/d%c3%a9partement_fran%c3 %A7ais_d%27Alg%C3%A9rie (검색일자: 2016.2.4). 57) L origine ethnique était un destin. L OBS, n.2670, 2016년 1월 7일-13일. Le Fanto me de l Algérie coloniale, Benjamin Stora-Alexis Jenni.

22 제7권 1집(통권 제12호, 2016년 3월) 산되기까지 한다. 이는 민족전선과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인 또한 알제리전쟁을 진정으로 인정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프랑스의 유명 역사가 피에르 노라(Pierre Nora)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프랑스인 모두가 전쟁을 잊 고자 했고, 적어도 잊은 척하려 했다 고 지적했다. 58) 프랑스는 동거정부 시 절, 사회당의 조스팽(Lionel Jospin)이 정권을 잡은 1999년에 가서야 국민의회 에서의 표결을 통해 질서유지작전 (opérations de maintien de l'ordre)이 아닌 알 제리전쟁 (la guerre d Algérie)이라는 명칭을 승인했다. 59) 명칭을 승인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이 이후 프랑스사회는 기억 대립의 시 대 (une période d affrontement des mémoires)로 접어들었다. 프랑스나 알제리 모 두 둘 다 희생자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60) 과거에 대한 침묵, 은폐에 서 나오니, 현실에서는 상처에 대한 치유(cicatrisation)가 기다리기보다는 양자 사이의 분열(séparation)이 기다리고 있었다. 61)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사회에 서는 프랑스인들과 알제리인, 프랑스인과 무슬림 사이의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레 민족전선의 인기상승으로 연결되기까지 하였다. 왜 민족전선이 30%대의 표를 얻는지에 대해 사회학자들은 실업률, 고용불안 정, 계층하락 등을 주요 원인으로 설명하지만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식민지 문제와 탈식민지화 이후의 현상 또한 이 못지않게 중요할 것이다. 62) 58) Pierre Nora, L Algérie fanto me, L Histoire, n.43(mars 1982). 59) Libération, 1999년 6월 10일. La France reconnaît qu'elle a fait la «guerre» en Algérie. L'Assemblée vote aujourd'hui un texte qui enterre le terme officiel d'«opérations de maintien de l'ordre». 이는 조스팽 개인의 이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스팽 은 1957년 18살의 시앙스포 학생으로 프랑스 전국학생연합(UNEF)의 가입하여 알제리전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그는 1982년 사회당 서기장이 되었을 때 대통령 미테랑이 알제리전쟁 중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던 장군들을 사면하려는 조치에 끝까지 반대한 경력도 있다. Benjamin Stora avec Alexis Jenni, p.103. 60) 국내에서 알제리전쟁과 기억 에 대한 연구로는 이용재, 알제리전쟁 과 프랑 스인-식민통치의 상흔과 기억의 정치학, 역사비평 63호(2003, 여름)를 참 조할 수 있다. 61) L OBS, n.2670, 2016년 1월 7일-13일. Le Fanto me de l Algérie coloniale, Benjamin Stora-Alexis Jenni. 62) Ibid.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23 한편, 탈식민화를 지지했던 드골주의자들(Gaullistes)과 공산주의자들의 세 력 약화도 오늘날 민족전선이 상승하게 된 한 이유로 볼 수 있다. 오늘날 드 골주의자들이 더 이상 알제리의 독립 이라는 유산을 수호하지 않는다는 사 실이 극우파에게 힘을 보태 준 것처럼 보인다. 사르코지가 행한 무슬림이민 자에 대한 정책, 알제리에 대한 입장은 전통적 드골주의자들과 극우파의 경 계를 사라지게 한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극우파들의 다 음과 같은 주장뿐이다. 탈식민화는 실수였다. 과거의 프랑스(la France d avant), 그것이 진실로 나은 것이었다. 우리는 존중받았고, 강력했으며, 제국 이었다. 우리는 우리 를 헐값에 팔아넘긴 드골에게 배신당했다. 63)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의 무슬림들, 알제리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기 억하고 있는 프랑스사회 내 500만 64) 중 그 일부가 IS에 가입하고, 지하디스 트가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지하디스트들이 알제리전쟁의 유산 을 직접적으로 의식한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프랑스는 여전히 모 국으로 생각되지는 않은 것 같다. 샤를리 엡도 테러와 11.13 테러 그리고 지 속되는 테러의 위협이 2015년 12월 치러진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 족전선의 엄청난 득표를 보장한 것을 보면, 민족전선과 급진적 지하디스트 의 동시 성장, 즉 적대적 공존 논리가 전혀 무의미하지는 않은 것 같다. IV. 맺음말 지금까지 우리는 시리아 난민과 파리 테러 그리고 이에 대한 프랑스의 반 응과 그 원인을 살펴보았다. 필자가 이 글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시리아 난민 문제, 파리 테러 등으로 야기된 프랑스사회 및 정치권의 반응이 내포하 고 있는 역사적 함의이다. 시리아 난민 문제가 프랑스인들의 보수화를 재촉 하고 파리 테러가 이들을 패닉 상태로 몰고 감에 따라 2017년 대선을 앞둔 올랑드 사회당 정부는 더욱 보수화된 정책을 제시할 수밖에 없고, 민족전선 63) Ibid. 64) Benjamin Stora avec Alexis Jenni, p.146.

24 제7권 1집(통권 제12호, 2016년 3월) 은 2015년 지방선거에서 자신들의 기존 논리를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피적 현상일 뿐이다. 그러한 측면에 서, 우리는 난민 문제와 테러의 이면에 깔려있는 프랑스사회의 反 이슬람 경 향을 심도 있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는 식민지 알제리문제에 대한 이 해를 바탕으로 한다. 한편, 솅겐조약으로 무방비가 된 프랑스 를 강조하고, 무슬림이민자들이 프랑스를 침공 하고 있다는 민족전선의 그간의 주장은 난민 속에 숨어든 테 러리스트 라는 현실로서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이에 우리는 왜 일부 프랑스의 젊은 무슬림들이 테러리스트가 되었는지, 어떻게 다른 세계의 지 하디스트들과 쉽게 연계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들의 행위와 역사적 기억 과는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볼 수밖에 없었으며, 이를 해명하기 위 해 젊은 무슬림들의 급진화와 식민지 알제리문제와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사실, 민족전선은 그 창당 멤버들부터 알제리전쟁과 깊숙이 연계되어 있 었다. 알제리를 무기력하게 놓쳤다 고 생각하는 이들은 오늘날 무슬림이민 자들을 여전히 식민지인 으로 차별하고 있으며, 그로부터 야기되는 갈등을 오히려 민족전선 발전의 내적 동력으로 삼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시리아 내 전이 지속되고, 무슬림들에 의한 또 다른 파리 테러가 모의되는 한, 민족전 선의 인기는 더욱 힘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프랑스 국내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마린 르펜이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유로 및 솅겐 조약을 브뤼셀과 협상하겠다. 65) 는 최근 인터뷰에서의 발언은 프랑스 내 무슬림 문제가 EU 차원에서도 커다란 위기일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 고 있다. 2015년 초 발간된 미셸 우엘백(Michel Houellebecq)의 소설 66) 이 보여 준 2022년 대선에서 이슬람정권이 들어서는 것은 과도한 상상력의 결과일 수 있지만, 결선투표에서 만난 상대 당이 민족전선이라는 가설은 허구가 아 닐 수도 있다. 65) 2016년 2월 9일 TF1과의 인터뷰. Marine Le Pen veut négocier avec Bruxelles sur l'euro et Schengen. http://lci.tf1.fr/jt-20h/videos/2016/invitee-du-20h-de-tf1-marine-le-pen -se-declare-candidate-de-la-verite-8714049.html (검색일자: 2016.2.12). 66) 미셸 우엘백, 복종(soumission) (문학동네, 2015).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25 참고문헌 박단, 프랑스의 문화전쟁-공화국과 이슬람 (책세상, 2005). 박단, 프랑스의 이민자정책과 공화국 통합모델, 이화사학연구, 35 집(2007). 우엘백 미셸, 복종(soumission) (문학동네, 2015). 이용재, 알제리전쟁 과 프랑스인-식민통치의 상흔과 기억의 정치학, 역사비평 63호(2003, 여름). Boisbouvier, Christophe, Hollande L Africain, Paris: Ed. La Découverte, 2005. Histoire T, Collection Guillaume et Quintrec, Paris: Nathan, 2012. Kepel, Gilles avec Atoine Jardin, Terreur dans L Hexagone : Genèse du djihad français, Paris: Gallimard, 2015. Leveau, Rémy et Khadija Mohsen-Finan (ed.), L Islam en France et en Allemagne. Identité et citoyennetés, Paris: La Documentation Française, 2001. Nora, Pierre, L Algérie fanto me, L Histoire, n.43, mars 1982. Stora, Benjamin, Le Transfert d une mémoire-de l Algérie française au racisme anti-arabe, Paris: Ed. La Découverte, 1999. Stora, Benjamin avec Alexis Jenni, Les mémoires dangereuses-de l Algérie coloniale à la France d aujourd hui, Paris: Albin Michel, 2016. 강디니 장자크, 기본적 자유를 경찰에 위임한 프랑스, 르몽드 디플로 마티크, 88호(2016호 1월). 브레빌 브누아, 밀려드는 난민들... 비판의 표적이 된 솅겐조약, 르몽 드 디플로마티크, 88호(2016호 1월). Libération, 1999년 6월 10일. Libération, 2005년 11월 29일. Libération, 2016년 2월 8일. Le Monde, 2011년 4월 23일.

26 제7권 1집(통권 제12호, 2016년 3월) Le Monde, 2014년 9월 30일. Le Monde, 2005년 11월 11일. Le Monde, 2015년 11월 14일. Le Monde, 2006년 1월 4일. Le Monde, 2016년 2월 8일. Le Monde, 2016년 2월 9일. Le Monde, 2016년 2월 13일. L OBS, 2015년 11월 14일, Attentats à Paris : pourquoi la France est la première cible de Daech. in http://tempsreel.nouvelobs.com/attentats-terroristes-a-paris /20151114.OBS9488/attentats-de-paris-pourquoi-la-france-est-la-premiere-ciblede-daech.html L OBS, n.2670, 2016년 1월 7일-13일. Le Fanto me de l Algérie coloniale, Benjamin Stora-Alexis Jenni. L OBS, n.2670, 2016년 1월 7일-13일. Entretien avec Gilles Kepel, Génèse du Djihad français. L OBS, n.2670, 2016년 1월 7일-13일. Entretien avec Farhad Khosrokhavar.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worldviews/wp/2015/01/27/map-how-the-flow-of-forei gn-fighters-to-iraq-and-syria-has-surged-since-october/ (검색일자: 2016.1.4.). https://fr.wikipedia.org/wiki/%c3%89tat_d%27urgence_en_france#pol.c3.a9miques_a u_sujet_de_l.27.c3.a9tat_d.27urgence (검색일자: 2016.2.4.). https://fr.wikipedia.org/wiki/%c3%89tat_d%27urgence_en_france#pol.c3.a9miques_a u_sujet_de_l.27.c3.a9tat_d.27urgence (검색일자: 2016.2.4.). http://www.lefigaro.fr/elections/regionales-2015/2015/12/06/35002-20151206livww W00001-en-direct-elections-regionales-les-resultats-du-premier-tour.php (검색 일자: 2016.1.4.). http://www.lefigaro.fr/elections/regionales-2015/2015/12/06/35002-20151206livww W00001-en-direct-elections-regionales-les-resultats-du-premier-tour.php (검색 일자: 2016.1.4.). http://www.lefigaro.fr/elections/regionales-2015/2015/12/06/35002-20151206artfig0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27 0208-en-paca-la-montee-en-puissance-de-marion-marechal-le-pen.php (검색일 자: 2016.1.4.). http://www.slate.fr/story/112465/djihad-francais (검색일자: 2016.2.4). https://ia600303.us.archive.org/25/items/dawaaah/dawh.pdf (검색일자: 2016.2.4). http://www.lematin.ch/monde/ecrit-bible-djihadistes/story/13193575 (검색일자: 2016.2.4).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youtube (검색일자: 2015.12.15.). https://fr.wikipedia.org/wiki/marche_pour_l%27%c3%a9galit%c3%a9_et_contre_le_r acisme (검색일자: 2015.12.15.). https://fr.wikipedia.org/wiki/110_propositions_pour_la_france (검색일자: 2016. 2. 1). https://fr.wikipedia.org/wiki/marche_pour_l%27%c3%a9galit%c3%a9_et_contre_le_r acisme (검색일자: 2015.12.15). http://fr.wikipedia.org/wiki/conseil_fran%c3%a7ais_du_culte_musulman (검색일자: 2015.10.1). https://fr.wikipedia.org/wiki/d%c3%a9partement_fran%c3%a7 ais_d%27alg%c3%a9rie (검색일자: 2016.2.4). http://www.rfi.fr/actufr/articles/057/article_30235.asp(검색일자: 2015.9.9.). http://www.rfi.fr/actufr/articles/057/article_30235.asp(검색일자: 2015.9.9.). http://lci.tf1.fr/jt-20h/videos/2016/invitee-du-20h-de-tf1-marine-le-pen-se-declare-candid ate-de-la-verite-8714049.html (검색일자: 2016.2.12.).

28 제7권 1집(통권 제12호, 2016년 3월) <Abstact> Syrian refugees, Paris terror attacks, and France Dahn Park*67) The aim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possible reasons for the Paris terror attacks, which are related to the Muslim immigrants residing within France. It seems very important to know that most terrorist attacks recently occurred in France were committed by third generation of Algerian immigrants(jihad 3G). The reason why some of them became the terrorists is strongly related to the unresolved Algerian war. It s one of the factors of the Paris terror attacks. Most far right extremists haven t recognized the independence of Algeria from France in 1962 and they still consider Algerian immigrants as colonist. As the National Front, far right wing of France, became more popular, the discrimination against the immigrants has become increasingly severe. For another factor for the Paris terror attacks is the radicalization of young Muslims. In the short term, the year 2005 is the symbol of this radicalization. In 2005, there were several incidents concerning radicalized young Muslims. Abu Musab al-suri who was considered by many as 'the most articulate exponent of the modern jihad and its most sophisticated strategies' wrote the 1600-page book <The Global Islamic Resistance Call> which appeared on the Internet in January 2005. You Tube, which enables the Jihadists to share strategies across the world, was founded in May of 2005, and the civil unrest in French suburbs during November 2005 etc. Since this year, young French Muslims became drastically radicalized. * Sogang University

시리아 난민, 파리 테러 그리고 프랑스: 파리 테러의 내적 배경을 중심으로 29 In response to the attacks, the French government have proposed laws in regard to the state of emergency and has put forward legislation for revoking citizenship of dual nationals. These laws are related to the discrimination and racism towards the Algerian immigrants which are associated with the aftermath of the Algerian war. key words: Syrian refugees, Paris terror attack, Shengen Agreement, Algerian war, States of emergency in France, French citizenship of dual nationals 원고접수일: 2016. 2. 14. 심사마감일: 2016. 2. 25. 게재확정일: 2016.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