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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보드리야르 : 현대사회와 이미지 * 1) 배 영 달 ** 2) Ⅰ. 들어가면서 최근 보드리야르는 여러 분야에서 시뮬라시옹 이론을 확대 적용시켜 나간다. 이러한 확대 적용을 시도하는 가운데, 그는 폭력과 테러리즘, 지배와 헤게모니 등에 많은 관심을 기울 이면서 이미지의 폭력,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 에 관한 글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사실 정보 와 미디어의 폭력에 관한 글들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이미지의 폭력, 특히 이미지에 가 해진 폭력 에 관한 글들은 그리 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극히 드물다. 실제로 보드리야르는 자신의 대표적 저작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에서 이미지와 실재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언급했지만, 구체적으로 이미지의 폭력,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 에 대 해서는 전혀 언급한 바 없다. 말하자면 그는 이 책에서 역사 속에서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미지의 단계를 분석하면서 이미지와 실재의 관계만을 언급할 뿐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최 근 몇 년간에 걸쳐 그가 이미지와 이미지의 폭력 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면서 우리 시대를 이미지의 폭력과 파괴의 시대 로 규정하면서, 이 점을 환기시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 다. 어떻게 보면 보드리야르는 근거 없는 이미지가 현실을 가리고 왜곡하는 상황, 즉 실체 없 는 이미지가 현실/ 실재를 대체하고 지배하는 상황을 통해 우리 시대의 징후를 읽고 있는 것 이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정보와 미디어가 조직하는 우리 시대의 징후에 주목하면서 그는 텔레비전 컴퓨터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다. 21세기 이미지 시대를 미리 예상하고 진단하는 것이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은 오늘날 우리는 이미지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우리의 이미지 시대는 어떤 양상을 띠고 전개되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미지의 폭력에 저항하는가, 이미지는 과연 모든 것을 삼키는가 라는 다양한 물음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 다. 사실 그의 이론의 핵심적 개념들은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 하이퍼리얼리티, 실재, 이미 지, 기호인데, 그는 현대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이미지 개념을 포괄적으로 사용한다. 이 점 을 고려해 본다면, 보드리야르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대사회와 이미지 의 관계를 다각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현대사회에서 이미 지는 어떤 양상을 띠고 어떤 작용을 하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미 지가 행사하는 영향력과 지배력, 즉 이미지의 폭력 과, 거꾸로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 을 분 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드리야르의 관점에서 보면 현대사회와 이미지와 관련하여 이중의 상징적 살해 가 존재 한다. 그러면 왜 이미지의 폭력,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이 생겨나는 것인가? 이제 이 이중의 * 이 논문은 2005 학년도 경성대학교 학술지원 연구비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 경성대학교 프랑스지역학과 교수

폭력, 이 이중의 상징적 살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교체 이미지들이 있는가? 더욱이 이 이중 의 폭력, 이 이중의 상징적 살해에 대한 구체적인 저항적 대안은 없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 의 연구가 지향하는 핵심적인 목적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미지의 폭력,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에 대한 대안적 해결책을 모색하려고 할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이 이중의 폭력에 저항하는 대안으로 반미디어적 매 체를 제시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범람하는 수많은 이미지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현상을 보다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필요성을 폭넓게 검 토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논의와 검토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보드리야르가 분석하는 이미지. 이미지의 폭력,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 의 골격을 해부하고 규명하여 보다 바람직 한 대안을 제시함과 아울러 그 한계와 가능성을 진단하고자 한다. 보드리야르는 현대소비사회에 대한 우려로서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를 나는 소비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로 변형시킨다. 그는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로 규정하고, 소비사회에서 상품은 이미지에 의해 가치가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현대사회에서는 사물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소비된다. 사 람들은 사물을 소비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소비되는 것은 사물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모든 사물의 기능을 이미지로 파악한 보드리야르 특유의 사유가 깔려 있 다. 따라서 어떤 사물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 소비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 즉 사물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지 사물 자체의 기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현대세계의 일상성을 표현하는 광고를 예로 들면, 이미지는 사물의 본 질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상징적 의미를 산출한다. 광고의 메시지 속에 담겨 있는 패션은 전략이고, 침대는 과학이며, 주방은 디자인이고, 화장은 유혹이다. 이는 개념적으로 상징적 의미를 지닌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가령 사람들은 왜 명품으로 통용되는 물건들을 가질려고 하는가? 그들은 명품 속에 담겨져 있는 이미지인 고급스러움 과 우아함 을 드러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비싸고 커다란 승용차를 타고 다닐려고 하는가? 그들은 비싸고 커다란 승용차에 담겨져 있는 이미 지인 사회적 권위와 위세를 드러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들은 사물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로 기능하는 사회적 이미지를 소비한다. 이는 이미지가 실재보다 더 강하 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오늘날 현대사회는 우리의 현대성이 낳은 부산물인 이미지로 넘쳐나고 있다. 하나 의 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를 산출하고, 이렇게 생겨난 다른 이미지는 또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결국 실재와 이미지를 구분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되고, 점점 더 실 재보다 더 실재적인 하이퍼리얼리티( 시뮬라크르) 가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단계에서는 이미 지는 실재와 무관한 자신의 순수한 시뮬라크르가 된다.

사실 아우에르 바흐가 미메시스 에서 재현의 역사 를 기술하는 것처럼, 보드리야르는 시 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Simulacres et Simulation 에서 이미지가 자율적인 독립성을 획득 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이미지의 연속적인 단계를 기술한다. 이미지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이미지는 실재를 반영하지만 다음 단계에서는 이미지가 실재 를 감추고 왜곡하게 된다. 이미지가 자신의 가면 뒤에는 어떤 실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 실을 감추는 단계에 이르면, 즉 이미지가 무엇인가를 감추는 단계로부터 아무것도 없음을 감추는 단계에 이르면 마침내 이미지와 실재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미지는 자율적 독립성을 획득하고 실재는 이미지의 가면 속에서 함몰되어 버린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보드리야르가 반영 왜곡 독립성에 이르는 일련의 이미지의 역사를 필연성의 역사로 바꾸어 놓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역사 속에서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미 지의 단계에 따라 그가 기획하는 시뮬라시옹의 단계는 모든 것이 기호화되고 모든 실재가 사라지는 단계이다. 2) 그러므로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가 이미지와 기호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3) 고 주장한다. 실재 사실 현대사회에서 이미지가 오고 감으로써 실재에 대한 커다란 무관심이 형성되고, 실재 가 넘쳐나는 이미지 아래 실종되고 있다. 이처럼 실재가 없는 이미지만이 넘쳐나는 세계가 바로 우리의 시대, 즉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의 시대이다. 따라서 실재보다는 이미지가 범람하여 실재를 사라지게 하는 현대사회는 그 자체로 실재가 없는 미혹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미지가 판을 치는 현실세계에서 실재는 증발하고 뒤로 밀려나며, 하이퍼리얼 리티( 시뮬라크르) 가 지배한다. 끊임없이 증식하는 시뮬라크르의 이러한 지배는 더 이상 특 수하고 신기한 현상이 아니라 어디에나 존재하는 우리 삶의 현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각 에서 보면, 우리는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고 지배하는 현상, 그리고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하이퍼리얼리티( 시뮬라크르) 에 포위되어 버린 현대사회의 존재론적인 조건에 직면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 Jean Baudrillard, Simulacres et Smulation, Galilée, 1981, p. 17. 2) 김진석, 이상현실 가상현실 환상현실, 문학과 지성사, 2001, p. 134 참조. 3) Jean Baudrillard, Cool MemoriesⅣ, Galilée, 2000, p. 208.

오늘날 다양한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질식할 정도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텔레비전 컴퓨 터 영화 사진 등의 이미지들이 넘쳐나고 있고, 모든 것이 이미지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가령 텔레비전은 나는 이미지이다. 모든 것은 이미지이다 라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들은 스크린 앞에 있게 되면 모든 것을 이미지로 이해하게 된다. 도처 에서 보이는 이러한 이미지의 범람은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사물의 황홀경 처럼 우리를 이 미지의 황홀경 에 빠져들게 한다. 이와 같이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미디어와 광고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에 의해 영향을 받 는다. 코카콜라 광고는 붉은 색 화면과 뚜껑이 열릴 때 힘차게 솟는 거품으로 젊음 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사실상 우리는 코카콜라 라는 상품이 아닌 젊음 이라는 이미지를 소 비하는 것이다. 또 나이키는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그의 이름을 새 긴 에어 조던 운동화를 광고한다. 실제로 1990년경 미국에서는 운동화에 부여된 조던의 이미지를 가지려는 욕망이 너무 커진 청소년들이 운동화를 구입한 친구를 살해하기도 했다. 실재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실재로 착각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상품소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접하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 다. 몇 해 전 개봉한 영화 트루먼 쇼 Truman Show 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세계로 방영 되는 프로그램의 주인공 트루먼은 평범한 삶을 영위하지만 사랑하는 그의 아내도, 절친한 친구도, 그가 부모라고 믿었던 사람들까지도 단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연기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트루먼은 그의 주변인물들인 배우와 그가 속한 사회인 카메라가 설치된 스튜 디오를 진실로 믿고 사는 것이다. 실재가 아닌 것을 실재로 믿고 살고 있는 영화 속 주인공 트루먼과 실재가 아닌 가상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너무도 닮아 있다. 이는 바로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고 지배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시뮬라시옹 과정은 현대 사회에서 지배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맨해튼의 밤거리를 수놓고 있는 이미지가 현 실이고 권력 이라는 어느 일본회사의 상업광고의 논리를 시뮬라시옹 이론은 뒷받침하고 있 는 셈이다. 그러면 이미지가 현실이 되고 권력이 될 때, 이미지는 어떤 형태를 띠게 되는 가?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키면서 현실/ 실재를 사라지게 하고, 가장 폭력적인 현실을 드러 내면서 현실의 실재적인 본질을 사라지게 한다. 이는 바로 이미지의 폭력 이다. 4) 그러면 보드리야르의 관점에서 현대사회의 이러한 폭력은 왜 산출되는가? 보드리야르는 오늘날 폭력을 산출하는 것이 우리의 현대성 자체이자 우리의 하이퍼모더니티 5) 라고 역설 한다. 현대성의 탁월한 분석가인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우리의 폭력은 대체로 정열과 본능 에서보다는 오히려 스크린에서 생겨난다. 우리의 폭력은 어떻게 보면 그것을 기록하고 확산 시키는 체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앞서가고 자극하는 스크린과 미디어 속에 잠재해 있다. 게 다가 어디에서나처럼 테러행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폭력에 우선하는 미디어들이 있 다. 그것은 폭력을 특수하게 현대적인 형태로 만든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폭력을 진짜 원 인(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원인) 의 탓으로 돌릴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모든 설명 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같은 방식으로 미디어들이 스펙터클을 통해서 폭력을 4) 배영달, 보드리야르와 시뮬라시옹, 살림, 2005, p. 117 참조. 5) Jean Baudrillard, Ecran total, Galilée, 1997, p. 103.

확산시킨다고 비난받는다. 그리고 폭력 이야기는 거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 상의 표면인 스크린은 어쨌든 이미지의 실제 내용으로부터 우리를 매우 잘 보호하기 때문이 다. 스크린의 연속성이 해결됨으로써 이제 스펙터클의 폭력과 행위의 폭력 사이의 연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저항할 수 없는 것은 미디어 자체의 폭력, 가상적인 것의 폭력이 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심리적인 연결이 아니라 투명한 폭력6)의 기술적인 연결 이다. 그것은 폭력의 복제 단계 이다. 이는 현대사회가 더 이상 실제의 폭력, 역사적 폭력, 계급의 폭력에 여지를 남겨놓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가상적 폭력, 반응하는 폭력을 산출하기 때문이다. 사실 폭력의 일차적인 형 태는 공격의 형태, 억압의 형태, 강간의 형태, 세력관계의 형태, 약탈의 형태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강한 자가 행하는 일방적인 폭력이다. 이러한 폭력에 모순적인 폭력, 즉 역사적 폭력, 비판적 폭력, 부정적인 것의 폭력이 대응할 수 있다. 이는 단절의 폭력이자 위반의 폭 력이다( 물론 여기에 분석의 폭력, 해석의 폭력, 의미의 폭력이 덧붙여질 수 있다). 그것들은 바로 시작과 끝이 있는 결정적인 폭력 7) 의 형태들이다. 보드리야르는 이 결정적인 폭력의 형태에 엄밀하게 말해서 폭력의 현대적 형태가 대립된 다 8) 고 말한다. 그것은 공격의 형태보다 더 미묘한 것이다. 말하자면 억지하고 중재하고 중 화하고 통제하는 폭력( 조용히 절멸시키는 폭력, 유전적 폭력, 커뮤니케이션에 의한 폭력), 미디어에 의한 정신적 조절로 악의 근원 자체와 모든 급진성을 없애려는 합의와 공생의 폭 력이다. 그것은 특이성과 부정성의 모든 형태를 몰아내는 어떤 체계의 폭력이다. 그것은 우 리에게 부정성 싸움 죽음이 금지된 것이나 다름없는 어떤 사회의 폭력이다. 그것은 증오에 의해서가 아니라도 폭력 자체를 끝장내는 폭력이다. 따라서 이러한 폭력에는 똑같은 폭력으 로 더 이상 대응할 수 없다. 이는 일차적인 폭력의 종말이자 이차적인 폭력의 종말, 즉 제3 의 형태의 폭력인 앞서 언급한 폭력의 복제 단계 이다. 이 폭력의 대표적인 것이 정보 미디어 이미지 스펙터클의 폭력이다. 그것은 투명성, 완벽한 가시성, 모든 비밀의 사라짐과 관련된 폭력이다. 그리고 신경적 생물학적 유전적 차원에 속할 수 있는 폭력이다. 이러한 폭력은 오늘날 가상의 폭력이라는 형태를 지닌다. 말하자면 육체 와 성의 질서이든, 탄생과 죽음의 질서이든 모든 자연 질서에서 벗어난 세계를 확립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러나 보드리야르는 폭력보다 더한 유독성 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인접관계 전염 연쇄반응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모든 면 역성을 없애려고 하는 암세포의 증식이나 전이처럼 작용한다는 점에서 바이러스와 같다. 그 래서 가상성과 바이러스성( 유독성) 사이에는 깊은 공모가 존재한다. 9)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미지와 정보의 이 유독성인데, 이는 내용의 폭력일 뿐 만 아니라 실제 폭력에 겹쳐지고 때때로 그것을 중화시키는 미디어의 폭력이기도 하다. 따 라서 이미지의 내용의 폭력은 미디어 자체의 폭력, 메시지가 되어버린 미디어의 폭력, 다시 말해서 미디어와 메시지의 융합과 혼동에서 생겨난 폭력과는 공통의 척도가 없다. 보드리야 6) 투명한 폭력은 모든 실재와 모든 지시 대상을 현실세계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7) 우리는 이 결정적인 폭력의 원인과 결과를 알아낼 수 있는데, 그것들은 초월성, 즉 권력과 역사의 초월성이나 의미의 초월성과 관련이 있다. Jean Baudrillard, Ecran total, Galilée, p. 103 참조. 8) 같은 책, 같은 쪽. 9) 배영달, 보드리야르와 시뮬라시옹, p. 118 참조.

르에 의하면, 그것은 바이러스의 폭력이다. 바이러스 또한 정보이긴 하지만 매우 특수한 정보이다. 그것은 미디어인 동시에 메시지이다. 바로 거기에서 바이러스의 통제할 수 없는 증식, 바이러스의 유독성 이 생겨난다. 10) 사실 폭력에 관한 문제제기는 실질적으로 끝났다. 왜냐하면 유독성이 폭력을 밀어내고 제 거했기 때문이다. 폭력( 소외 모순 세력관계의 폭력) 은 해결되지도 초월되지도 않은 채 폭력보 다 더 격렬한 무엇인가, 즉 바이러스성과 유독성에 자리를 넘기고 사라졌다. 그런데 개인이 건 집단이건 폭력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던 것에 반해, 감염이나 연쇄반응의 유독성에 대 해서는 어떠한 논의도 없었다. 고전적인 폭력은 악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악을 사라지 게도 했다. 우리 시대의 폭력, 즉 유독성은 악을 투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유독성은 투명성 의 차원에 속하며, 유독성의 논리는 투명성의 논리이다. 11) 이는 바로 보드리야르가 즐겨 말하는 악의 투명성이다. 이미지의 폭력(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 정보와 가상의 폭력) 은 실재를 사라지게 한다. 모 든 것은 보여져야 하고, 모든 것은 가시적이어야 한다. 이미지는 특히 이 가시성의 장( 場 ) 이 어야 한다. 모든 실재는 이미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실재가 사라지는 대가 를 치른다. 이것이 바로 이미지의 유혹, 이미지의 매혹을 이룬다. 그러나 이것이 또한 이미 지를 모호하게 만든다. 특히 이미지- 르포, 이미지- 메시지, 이미지- 증언이 그러하다. 심지어 가장 폭력적인 현실을 드러내면서 이미지는 현실의 실재적인 본질을 사라지게 한다. 마치 유리디케의 신화처럼 말이다. 죽음의 골짜기에서 오르페우스가 유리디케를 보려고 돌아섰을 때 그녀는 사라져 다시 지옥에 떨어진다. 이렇게 이미지가 오고 감으로써 현실세계에 대한 거대한 무관심이 확장된다. 극단적인 경우, 현실세계는 쓸모없는 기능이 되고 유령처럼 나 타났다 사라지는 형태와 사건의 총체가 된다. 오늘날 우리는 플라톤의 동굴벽 실루엣으로부 터 멀리 있지 않다.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결국 이미지는 자신의 객관성 이면에서 불법으로 실재에 침입하는 이미지에 대한 부정을 나타내는 동시에 실재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을 나타낸다. 12) 이러한 의미에서 미디어에 의한 이미지와, 시각적인 것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진정한 이미지가 아 니다. 르포, 사실주의적 진부한 표현, 미적 퍼포먼스의 이미지들만이 모든 이데올로기적 장 치에 따를 뿐이다. 이 단계에서 이미지는 가시성의 조작자일 뿐이다. 가령 텔레비전-리얼리 티, 리얼리티 쇼, 빅 브러더 Big Brother 13) 등의 이 모든 방송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미지 10) Jean Baudrillard, Violence de l'image/violence faite à l'image, in Media-City Seoul Symposium, 2002, p. 52. 11) Jean Baudrillard, La Transparence du Mal, Galilée, 1990, p. 86. 12) Jean Baudrillard, Le Pacte de lucidité ou l'intelligence du Mal, Galilée, 2004, pp. 78-9. 13) 영국 텔레비전 채널 4 의 리얼리티 포맷형식의 프로그램. 남녀 각 5명을 100일 동안 한 집에 갇 혀 있게 하고 몰래 카메라로 이들의 행동을 24 시간 보여주면, 시청자가 2주마다 온라인 투표로 집 에서 나갈 사람을 선택하는 데 마지막까지 집안에 남는 생존자 한 명에게 12만 5천 달러의 상금을

의 평범함이 삶의 평범함과 결합하는 바로 그 곳에서 이 완벽한 가시성이 시작되는데, 이 때 모든 것은 보여져야 하고, 더 이상 볼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모든 것이 보이는 가시성의 좋은 예는 빅 브러더 류의 모든 방송물이다. 그것은 평범 함의 거울이자 영도의 거울이다. 바로 거기에서 합성적인 사회성, 잠재적인 사회성이 꾸며 진다. 심지어 인간이 근본적으로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여기에 빅 브러 더의 신화, 즉 완벽한 가시성의 신화가 구경꾼 심판으로 동원된 관객의 사건이 되었다는 사 실이 덧붙여진다. 관객이 빅 브러더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권력과 통제의 원천인 가시성 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제는 사물들을 외부의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 이 문제가 아니다. 사물들을 투명하게 만들고, 통제의 흔적을 없애며, 조작자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 문제이다. 통제력은 내면화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미지의 희생물이 되어서 는 안 된다. 사람들은 가혹하게 스스로 이미지로 변한다. 사람들은 피상적인 차원에서만 존 재한다. 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읽히고 정보의 빛에 과다하게 노출되며, 어디에서나 모습 을 드러내고 자신의 생각을 요청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자기 표현의 궁극적 형태는 고백이 라는 푸코의 말처럼 말이다.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 그것은 자신의 모든 일상생활, 자신의 모든 불행과 욕망,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어떠한 비밀도 지니지 않는 것이다. 말하고 또 말하는 것, 지치지 않고 알리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이미지의 가장 강한 폭력이다. 그것 은 심층, 특이한 존재, 그의 비밀 등에 가해지는 폭력이다. 동시에 언어에 가해지는 폭력이 기도 하다. 이러한 폭력으로 인해 언어는 독창성을 잃기 때문이다. 언어는 가시성의 조작자, 미디어에 불과하게 된다. 언어는 자신이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아이러니컬한 차 원을 상실하게 된다. 이미지 또한 이미지가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잊 고 있다. 바로 거기에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 의 원천이 있다. 14) 빅 브러더 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은 가상현실, 현실의 합성이미지(image de synthèse) 이 다. 그것은 진정한 포르노, 진정한 외설스러움인 평범함의 스펙터클, 즉 평범함 무가치 무의 미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적어도 여기에 잠재적인 잔혹한 형태가 있을 수 있다. 텔레비전이 세계의 사건의 이미지를 차츰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서 가장 살인적인 사건으로서, 가장 폭력적인 뉴스로서, 완전범죄의 현장으로서의 삶의 평범함, 일상생활을 폭로하기에 이른 것 이다. 실제로 그러하다. 사람들은 볼 것 없음, 말할 것 없음, 똑같은 것에 대한 무관심에 매 료되고, 두려움을 느끼며 또 매료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있는 그대로 보이는 불가침의 권리와 욕망에 일치한 다. 보이기 위해 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도록 자신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것이 다. 바로 그것으로부터 보이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보이는, 동시적이면서도 모순적인 요구가 생겨난다. 모두가 동시에 두 장면을 연기한다. 어떠한 윤리도 이 딜레마의 끝 보려고 하는 절대적 권리와 보이지 않으려는 권리 에 이를 수 없다. 최대한으로 정보를 주는 것이 인간 권리의 일부가 되고 있다. 따라서 강요된 가시성, 정보의 빛에 과다노출되는 것도 그러하 다. 이 외설스러움, 추잡함 속에서 최악은 강요된 공유이다. 말하자면 시청자의 자동적인 공 모이다. 그것이 바로 조작의 가장 분명한 목적이다. 준다. 영국에서 최고 30% 에 이르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14) Jean Baudrillard, Violence de l'image/violence faite à l'image, p. 53 참조.

이러한 이미지와 가시성의 관계는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 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우리는 금발의 젊은 여자가 자신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무관심 한 채 계속 이야기하면서 조용히 오줌 누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장면은 완전히 쓸데없는 장 면이지만, 그것은 그 어떤 것도 현실과 허구의 오버랩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보 여지고 보고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나타낸다. 그것이 바로 가시성이자 투 명성이다. 모든 실재를 시각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사실 시선을 볼모로 삼는 것은 전시의 투명성이 아닐까? 필요성도 욕망도 효과도 없이 쓸데없이 보이는 것은 외설스 럽다. 그것은 가상(apparence) 의 매우 드물고 귀한 공간을 빼앗는다. (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이미지는 가상(apparence) 이며 가상에 연결되어 있다. 15) 이것이 바로 한 눈에 감시할 수 있는 판옵티콘을 넘어서 권력과 통제의 원천인 이 강요된 가시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미지의 살해, 즉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 이다. 이제는 외부의 시선으로 사물들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사물들을 그 자체로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이다. 보드리야르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지와 관련하여 이중의 상징적 살해가 존재한다. 즉 오늘 날 모든 것은 이미지의 형태를 취하고, 실재는 이미지의 범람 아래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지 또한 현실의 지배 아래 사라진다는 것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16) 이미지는 대개의 경우 이미지로서의 자신의 존재와 독창성을 상실하게 되며 실재와 수 치스런 공모를 맺을 수밖에 없다. 이미지가 행사하는 폭력은 대체로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 으로 상쇄된다. 말하자면 자료 증거 메시지를 위해 이미지를 이용함으로써, 그리고 도덕적 교 육적 정치적 광고적 목적을 위해 이미지를 이용함으로써 상쇄된다. 바로 거기서 동시에 숙명 적 환상과 생명의 환상으로서 이미지의 운명이 끝난다. 17) 비잔틴의 성상 파괴론자 18) 들은 이미지의 의미작용( 신의 가시적 형태) 을 사라지게 하기 위 해 이미지를 파괴했다. 오늘날 반대의 모습을 가장하여, 그리고 우리의 우상숭배에도 불구 하고, 우리는 언제나 성상 파괴론자들이다. 즉 우리는 이미지의 의미작용을 짓누르면서 이 미지를 파괴한다. 우리는 의미를 통해 이미지를 죽인다. 거울 속의 사람들 이라는 보르헤 스의 우화에는 각각의 유사함이나 재현의 이면에 패배당한 적, 패배당한 특이성, 죽은 대상 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성상 파괴론자들은 그 점을 잘 파악했으며, 성상 속에서 신을 사 라지게 하는 방법을 간파했다. 그러나 신 자신도 이미지 뒤로 사라지는 것을 택했을까? 어 쨌든 오늘날 우리의 이미지 뒤로 사라지는 것은 신이 아닌 우리이다.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우리의 이미지를 빼앗거나 우리의 비밀을 추적할 염려는 없다.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이 완전한 현실 속에 더 이상 감출 것이라 고는 없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의 최종적인 투명성이자 우리의 완벽한 외설스러움을 나타내 는 것이다. 15) Jean Baudrillard, Le Pacte de lucidité ou l'intelligence du Mal, p. 77. 16) Jean Baudrillard, Violence de l'image/violence faite à l'image, p. 55. 17) Jean Baudrillard, Le Pacte de lucidité ou l'intelligence du Mal, p. 78 참조. 18) 성상 파괴론자들은 8-9 세기의 비잔틴 기독교인들로서 예수, 성모, 성인들의 모든 형상화한 재현 을 우상숭배라 하여 반대했다. 성상 이미지에 대한 논쟁은 726-786 년, 815-843년의 두 차례의 긴 기간에 걸쳐 행해졌으며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고 결국은 성상 파괴주의자들이 이단으로 규정 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오늘날 대부분의 미디어나 사진의 이미지들은 인간 조건의 비참이나 폭력만을 반영한다. 그런데 이 비참과 폭력은 그것들이 지나치게 드러나기 때문에 그 만큼 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거기에는 정확히 말해서 의미에 대한 완전한 오해가 있다. 이미지의 내용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이미지는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하고 우리에게 자신의 독창적인 언어를 받 아들이게 해야 한다. 한 번 더 말하자면 이미지는 이미지가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실재에 대한 전이가 존재하려면, 이미지에 대한 반대전이가 필요하다. 19) 현대사회에서 비참과 폭력은 이미지를 통해 광고의 라이트모티브(leitmotiv) 가 된다. 가령 토스카니(Toscani) 는 패션 속에 성과 에이즈, 전쟁과 죽음을 복귀시킨다. 행복을 표현하는 광고는 불행을 표현하는 광고보다 덜 외설스럽지 않다. 그러나 광고의 폭력, 패션의 폭력, 미디어의 폭력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것은 광고업자들이 어떻게 실제로 할 수 없 는 것이다. 그런데 패션과 세속성은 말하자면 죽음의 스펙터클이다. 세계의 비참 역시 한 아프리카인의 해골을 연상시키는 신체를 통해서와 마찬가지로 마네킹의 선과 얼굴을 통해서 도 읽혀질 수 있다. 똑같은 잔혹성이 도처에서 파악된다. 게다가 광고의 이 사실주의적 이 미지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 죽음과 비참) 을 포착하지 못한다. 다시 말 해서 ( 이 비참을 미학적으로 그리고 상업적으로, 완전히 부도덕하게 이용하면서도) 도덕적 이고 인간주의적 관점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을 포착하지 못한다. 근본을 파헤쳐 보면 이미 지는 자신의 객관성 이면에서 불법으로 실재에 침입하는 이미지에 대한 부정을 나타내는 동 시에 실재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을 나타낸다. 20) 이미지에 가해진 결정적인 폭력은 디지털 계산과 컴퓨터의 무( 無 ) 로부터 생겨난 합성이미 지의 폭력이다. 이제 이미지의 상상이나 이미지의 근본적인 환상은 끝났다. 왜냐하면 합성 작용 속에서 지시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실재가 가상현실로 즉각 태어나 면서 그것이 더 이상 생겨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진의 마술적 환상과 이미지의 특이한 사건을 산출했던 결정적인 순간에 실제 대상이 현존하는 것도 끝났다. 이제 어김없 는 정확성, 즉 바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간 속의 점(punctum) 의 가상 이미지 속에는 아 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예전의 사진 이미지는 무엇인가가 거기에 있었으나 그것이 있었다 라는 향수로 가득한 결정적인 부재로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 늘날 사진 이미지는 오히려 현존의 향수로 가득할 것이다. 사진 이미지가 주체에서 대상에 이르기까지 현존의 최종적 증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디지털 합성이미지의 급격한 확산에 대한 최종적인 도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와 지시대상의 관계는 이미 많은 문제, 즉 재현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지시대 상이 완전히 사라질 때, 엄밀하게 말해서 더 이상 재현이 없게 될 때, 실제 대상이 이미지 의 기술적 프로그래밍 속에서 사라질 때, 순수한 인공물인 이미지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무 도 반영하지 못하고 심지어 부정의 단계조차도 거치지 못하게 될 때, 우리는 여전히 어떤 이미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우리의 이미지들은 더 이상 이미지가 되지 못할 것이고, 이 미지의 소비 자체는 가상적이 될 것이다. 만약 플라톤의 말처럼 이미지가 대상에서 나온 빛과 시선에서 나온 빛의 교차점에 있다 21) 면, 그 때는 더 이상 대상도 시선도 없을 것이 19) Jean Baudrillard, Le Pacte de lucidité ou l'intelligence du Mal, p. 78. 20) 같은 책, pp. 78-9. 21) Jean Baudrillard, L'Echange impossible, Galilée, 1999, p. 178 에서 재인용.

고, 따라서 이미지도 없을 것이다. 이는 바로 불길한 운명이다. 그리고 동시에 사진의 행위 와 사진 이미지에 사라져 가는 모든 종의 부활 같은 인위적 부활, 즉 감동적인 성공을 보장 해 주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미지에 대한 실재의 아이러니컬한 복수 같은 것이 존재한다. 실재의 사라짐 의 장소이었던 이미지는 이제 시장 투기 패션의 지배 아래, 기술적 경제적 미 적 원리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다. 여기서 순수한 상태에서 이미지를 이해하려면 철저한 명백함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는 이미지가 자체 속에서 완전히 완성되고 실재와 재현의 세계인 3차원의 세계보다 조금도 열 등하지 않은 2 차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유사한 세계이자 깊이 없는 다른 무대 이다. 22) 그리고 자신의 매력과 고유한 특성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차원이다. 따라서 입체감의 차원이든, 시간과 역사의 차원이든, 관념과 의미작용의 차원이든 이미지에 3차원 을 덧붙이는 모든 것, 그리고 이미지를 실재와 재현에 접근시키기 위해 이미지에 덧붙여지 는 모든 것은 이미지를 파괴하는 폭력이다. 그러므로 순수한 상태에서 이미지를 되찾기 위 해서는 제거하고 항상 제거해야 한다. 제거는 본질적인 것을 사라지게 한다. 즉 언어가 그 것이 의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듯이, 이미지는 그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즉 이 미지는 말하지 않는 가운데,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드러낸다. 그러면 이미지의 범람 속에서 실재가 사라지는 현대사회에서 보드리야르가 진단하는 이미 지의 폭력,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은 어디까지 나아가는 것인가? 이미지가 행사하는 폭력,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 즉 이 이중의 폭력, 이 이중의 상징적 살해에 저항할 수 있는 구체 적인 대안과 해결책은 없는가? 이러한 물음과 관련하여, 우리는 강요된 의미작용과 미적 방 향전환을 넘어 이미지의 고유한 힘과 순수한 사건을 되찾기 위해 미디어와 정보의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폭력에 맞설 수 있는 반미디어적 매체가 있는지 살펴 볼 것이다. 최근 보드리야르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미지의 폭력과 파괴의 시대 를 환기시키면서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반미디어적 매체로 사진을 강력하게 거론한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사진의 내기이다. 사진은 침묵으로 소음에 저항하고, 부동자세로 가 속에 저항하고, 비밀을 통해 정보의 분출에 저항하고, 무엇보다 이미지의 자동적인 범람과 끊임없는 연속에 저항한다. 23) 특히 그는 사진은 침묵을 통해서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고,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으려 하며, 정보 의사소통 미적인 것의 폭력에 저항하며, 저항형태로서 이미지의 순수한 사건을 다시 찾아낸다 24) 고 역설한다. 사진의 침묵은 언제나 침묵을 강요해야 하는 영화나 텔레비전과는 달리 사진이 지닌 가장 귀중한 특성 중의 하나인데, 그것은 대상의 말없는 시선에서 생겨난다. 사진의 대상은 당신 을 바라본다. 다시 말하면 사진의 대상은 당신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미지 역시 자신의 침 22) Jean Baudrillard, Le Pacte de lucidité ou l'intelligence du Mal, p. 82. 23) Jean Baudrillard, L'Echange impossible, p. 176. 24) Jean Baudrillard, Photographies 1985-1998, Hatje Cantz Publishers, 1999, p. 98.

묵 속에서 당신을 생각한다. 침묵은 비밀의 은유 혹은 모든 다른 형태의 기묘함의 은유 다 른 세계의 비유 이다. 25) 우리는 사진 속에서 우리 세계의 반영을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사진은 현실의 작용을 이루는 재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재현의 순간적인 허구에 의해 우리의 세계를 정화한다. 따라서 사진의 문제는 사실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는 것, 침묵하는 것이지만 무엇인가를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진에 관한 데리다의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은 말을 하지 않는다. 침묵은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말이 배 제된 사진의 이미지는 담론( 말)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다. 26) 그러므로 사진의 이미지는 시간도 움직임도 가장하지 않고 가장 엄밀한 비실재에 집착하기 때문에 가장 순수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다른 형태들( 영화, 비디오, 합성 이미지) 은 순수 한 이미지의 완화된 형태나 순수한 이미지와 실재와의 단절에서 생겨난 완화된 형태에 불과 하다. 그리고 사진 이미지의 강렬함은 실재의 부정과, 다른 무대의 창조에 상응한다. 하나의 대상을 이미지로 만드는 것은 대상에게서 그 모든 차원( 입체감, 깊이, 시간, 연속성, 의미 등) 을 하나씩 제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세계의 초월의 대가로, 사진 이미지는 매혹적인 힘을 지니고 순수한 객관성의 매체가 되고, 매우 미묘한 유혹의 형태에 투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오늘날 이미지의 홍수에 갇혀 있는 세계는 이미지의 반복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그 래서 현실세계 뿐만 아니라 이미지에 대한 치명적인 위험이 항상 뒤따른다. 만약 이미지가 계속 실재를 순환 사용하고 실재 속에 잠긴다면, 어쨌든 예외로서, 환상으로서, 유사한 세계 로서의 이미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사진은 이미지의 범람에 예외일 수 있으며 이미지에게 본래의 고유한 힘을 되돌려 줄 수 있는가? 이러한 가능성이 실현되려면, 우선 세계의 소란스러운 작용이 중단되어야 하고, 사물들이 우리가 거기에 있는 것을 파악 하지 못할 때 그리고 부재와 공백이 사라지지 않을 때 대상은 환상적인 순간 속에서만 파악 되어야 한다. 사실 세계 자체는 사진의 행위로 옮겨갈 27) 필요가 있다. 마치 세계가 우리 의 외부에서 출현하는 방식을 보여주듯이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상 파괴론자들이 비잔틴의 유명한 논쟁을 통해서 이미지를 열망했듯이 세 계의 특이성을 표현하는 자동기술인 이미지를 열망해 볼 수 있다. 우상 파괴론자들은 신의 얼굴을 덮어가리는 베일 속에서처럼 신성이 직접 현존하는 것 인간의 손의 개입 없이 신의 얼굴의 신성한 특이성을 표현하는 자동기술 을 진정한 이미지로 간주했다. 그와 반대로 그 들은 신의 시뮬라크르에 불과했던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모든 성상들을 격렬하게 배격했 다. 따라서 실재와 실재의 개념을 거치지 않는 빛의 자동기술 인 사진은 이 자동성에 의해 인간의 손에서 벗어난 세계의 글자 그대로 해석의 전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때 세계는 진리로서가 아니라 철저한 환상으로서, 순수한 흔적으로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거기 에 특히 인간정신의 산물이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진리와 객관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진을 찍는 것은 세계를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대상이 되게 하 고, 세계를 기이한 매력( 특이성) 으로 나타나게 하며, 이 기이한 매력( 특이성) 을 이미지 속에 고정시키는 것이다. 28) 사실 현실 세계에서 드러나는 실재 속에는 엄연히 모호함과 불분명 25) Jean Baudrillard, Violence de l'image/violence faite à l'image, p. 57. 26) Jacques Derrida/Marie-Françoise Plissart, Droit de regards, Editions de Minuit, 1985, p. 102. 27) Jean Baudrillard, Le Pacte de lucidité ou l'intelligence du Mal, p. 84.

함이 존재한다. 현실은 아직 완성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세계에 대한 수정은 객관적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대상에 대한 사진렌즈의 조절처럼 재현모델의 조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세계에 대한 결정적인 수정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이미지는 상황이나 대상이 어떻든 간에 세계의 떨림과 움직임을 설명하는 이미 지이다. 이 단계에서 이미지는 세계에 속하는 무엇인가이며, 가상(apparence) 의 변화나 동 일한 생성 속에서 파악되는 무엇인가이다. 사진의 이미지는 가장 순수한 형태 속에서 이미 지를 그 자체로서 그리고 현실세계와는 다른 환상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은 오늘 날 대체로 실시간으로 산출되고 실시간으로 사라져 버리는 합성이미지들( 디지털 혹은 비디 오 이미지들) 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이다. 실재가 사라져버리는 합성이미지는 엄밀하게 말해 서 더 이상 이미지가 아니다. 이러한 논리에서 보면 사진의 이미지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이미지 의 폭력,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에 맞설 수 있는 고유한 특성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무 엇보다도 사진은 특히 침묵을 통해서 모든 가상을 관통하고 현실세계 속에서 자신의 반향을 찾을 수 있는 순수한 객관성의 매체, 반미디어적 매체의 구실을 한다 왜냐하면 사진은 렌즈 에 의한 시선의 기술적 고행 을 통해서 대상을 미적 변화와 미디어 기술의 지배로부터 보 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진은 출현하는 대상의 윤곽을 무리 없이 뚜렷이 드러내는 렌즈 의 유연함을 지니고 있어서 세계의 떨림과 움직임을 표현하는 순수한 이미지를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보드리야르가 이미지의 이중의 폭력 에 저항하는 대안으로 제시한 사진 이외 의 다른 매체는 없는가? 우리는 순수한 객관성의 매체로서 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 다도 이미지로 말하게 하는 사진처럼 언어로 말하게 하는 텍스트는 동일한 침묵으로 둘러싸 이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침묵. 이 침묵은 모든 가상을 가로지르고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현 실 세계 속에서 자신의 반향을 찾을 수 있는 대각선 같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이중의 폭력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또 다른 대안으로 이미지를 부정하기보다는 좋은 수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넘쳐나는 이미지를 깰 수 있 는 예외적이고 진정한 이미지의 힘을 산출하기보다는 오히려 현대성의 부산물인 이 이중의 폭력을 보다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극복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이미지, 이미지의 폭력,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과 관련된 문제들은 현대사회와 현대 성을 탐구하는 본질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핵심은 실재가 사라진 이미지 를 어떻게 원래대로 포착하고 살려내느냐이며, 어떻게 이미지를 제대로 변형시킬 수 있느냐 이다. 또한 우리가 이미지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합성이미지들로 인해 사라진 실재를 되찾는 것이 관건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지, 이미지 의 폭력,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제시된 분석의 틀과 대안 의 한계를 지적함과 아울러 앞으로 그 가능성을 가늠해 볼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순 28) Jean Baudrillard, Photographies 1985-1998, pp. 81-2.

Jean Baudrillard, Simulacres et Simulation, Galilée, 1981. -------------, La Transparence du Mal, Galilée, 1990. -------------, Ecran total, Galilée, 1997. -------------, L'Echange impossible, Galilée, 1999. -------------, Photographies 1985-1998, Hatje Cantz Publishers, 1999. -------------, Cool Memories Ⅳ, Galilée, 2000. -------------, Violence de l'image/violence faite à l'imge', in Media-City Seoul Symposium, 2002. -------------, La violence du mond, Edition du Félin, 2003. -------------, Le Pacte de lucidité ou l'intelligence du Mal, Galilée, 2004. Jacques Derrida/Marie-Françoise Plissart, Droit de regards, Editions de Minuit, 1985. Régis Debray, Vie et mort de l'image : Une histoire du regard en Occident, Gallimard, 1992. Jacques Aumont, L'image, Nathan, 1990. Martine Joly, L'image et les signes, Nathan, 1994. Guy Gaulhier, Vingt Leçon sur l'image et le sens, Edilig, 1986. Annette Kuhn, The power of the image, Annette Kuhn, 1995. 배영달, 보드리야르와 시뮬라시옹, 살림, 2005. 유평근/ 진형준, 이미지, 살림, 2001. 김진석, 이상현실 가상현실 환상현실, 문학과 지성사, 2001. <Résumé> Baudrillard : la société moderne et l'image BAE Young-Dal Au point de vue de Baudrillard, il existe un double meurtre symbolique par rapport à l'image dans la société moderne : violence de l'image, violence faite à l'image. Aujourd'hui tout prend forme d'image et le réel a disparu sous la profusion des images. Mais on oublie que l'image elle aussi disparaît sous le coup de la réalité.

L'image est la plupart du temps dépossédée de son originalité, de son existence propre en tant qu'image, et vouée à une complicité honteuse avec le réel son exploitation à fin de documentation, de témoignage, de message (y compris les messages de misère et de violence), son exploitation à des fins morales, pédagogiques, politiques, publicitaires. Là prend fin le destin de l'image, à la fois comme illusion fatale et illusion vitale. Les iconoclastes de Byzance brisaient les images pour en effacer la signification (la figure visible de Dieu). Sous l'apparence du contraire, et malgré notre culte des idoles, nous sommes toujours des iconocalstes : nous détruisons les images en les accablant de signification, nous tuons les images par le sens. La plupart des images actuelles ne reflètent plus que la misère ou la violence de la condition humaine. Or, cette misère et cette violence nous touchent d'autant moins qu'elles sont sursignifiées il y a là un contre-sens total. Pour son contenu nous affecte, il faut que l'image existe par elle-même, qu'elle nous impose sa langue originale. Pour qu'il y ait transfert sur le réel, il faut un contre-transfert sur l'image. Image qui témoignent, au fond, derrière leur objectivité, d'un désaveu profond du reél, en même temps que d'un désaveu de l'image, assignée à représenter ce qui ne veut pas l'être, assignée au viol du réel par effraction. Dans ce sens, la plupart des images (mais aussi bien les images médiatiques en général, et tout ce qui constitue le visuel) ne sont pas de véritable images. Rien que du reportage, du cliché réaliste ou de la performance esthétique, asservis à tous les dispositifs idéologiques. A ce stade, l'image n'est plus qu'un opérateur de visibilité le médium d'une visibilité intégrale qui est le pendant de la réalité intégrale, le devenir-réel se doublant du devenir-visible à tout prix : tout doit être vu, tout doit être visible, et l'image est par exellence le lieu de cette visibilité. Se faire image, c'est exposer sa vie quotidienne, ses malheurs, ses désirs, ses possibilités c'est ne garder aucun secret. S'exprimer, parler, communiquer inlassablemnet. Etre lisible à tout instant, surexposé aux lumières de l'information. Cette expression de soi est-elle la forme ultime de l'aveu, dont parlait Foucault? En tout cas, c'est une violence faite à l'être singulier, en même temps qu'à l'image dans sa singularité. L'ultime violence faite à l'image, c'est celle de l'image de synthèse, surgie nihilo du calcul numérique et de l'ordinateur, C'en est fini de l'imagination même de l'image, de son illusion fondamentale, puisque, dans l'opération de synthèse, le référent n'existe plus, et que le réel même n'a plus lieu d'avoir lieu, étant immédiatement produit comme réalité virtuelle. ex

Le pire pour nous, c'est justement l'impossibilité d'un monde sans retour-image. Il y a un danger mortel pour le monde réel, mais aussi pour l'image. La photo peut-elle faire exception au déferlement des images, et leur restituer une puissance originelle? Pour cela, il faut que soit mise en suspens l'opération tumultueuse du monde, que l'objet soit saisi dans le seul moment fantastique. En fait, il faut que ce soit le monde lui-même qui passe à l'acte photographique comme si le monde se donnait les moyens d'apparaître en dehors de nous. Ecriture automatique de la lumière, sans passer par le réel et l'idée de réel, la photographie serait ainsi, de par cette automaticité, le prototype d'une littéralité du monde affranchie de la main de l'homme. 주제어 : 현대사회(société moderne), 이미지(image), 실재(réel), 이미지의 폭력(violence de l'image), 이미지에 가해진 폭력(violence faite à l'image), 사진(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