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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T E N T 목 차 요약 / 4 Ⅰ. 서론 Ⅱ. 주요국별대형유통망현황 / Ⅲ. 시사점및진출방안 ( 첨부 ) 국가별주요수입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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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마이더스

2011년 제21권 제3호

2009_KEEI_연차보고서

한류 목차2

Transcription:

제20차 한러 국제학술회의 (2008.10.6-7, 서울) 아태지역연구센터(한양대학교)-극동문제연구소(러시아과학원) 08-3 APRC Proceeding pp. 95-104 김 영 웅 (러시아과학원 극동연구소, 한국학센터) 한국의 해외무역진흥공사가 21개 국에서 수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는 한국에 서 두 번째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5점 만점의 평가에서 러시아는 4.06 점을 받아 4.11점을 받은 인도 다음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다른 연구결과에 따르면 42%의 영 국인들이 한국의 위치를 전혀 모르며, 한국이 위치한 장소를 동북아가 아닌 다른 곳으로 지칭 하였다. 43%의 카나다인들은 한국어가 중국어와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반해 러시아인 들의 98%가 한국의 위치를 알며, 한국어가 독자적인 언어임을 인지하고 있다. 한국 시민들은 전체적으로 러시아를 합당하게 대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러시아를 자신을 위협할 어떤 위험의 원천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수행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47.1%가 러시아를 우호적으로 대하고 있다(자신의 군사-정치적 동맹인 미국에 대해서는 51.1%가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한국에서는 특히 무용(발레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무용 예술에서), 음악, 문학, 회화, 연극예 술 등의 영역에서 러시아 교육과 문화의 높은 수준이 인정되고 있다. 반면에 러시아의 영화는 한국에 덜 알려져 있는 편이다. 한국인들은 몇 가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시아와 소련의 노래들( 까튜샤, 오치 쵸르늬예(О чи черные), 모스크바 교외의 저녁 무력 등)을 알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차이코프스 프키와 도스토예프스키, 조금 덜하게 뿌슈킨과 톨스토이를 알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오드리 헵번이 나타샤 로스토바야 역으로 출연했던 미국 영화 전쟁과 평화 를 통해 톨스토이 를 알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많은 한국 사람들이 레프 톨스토이를 토스토예프스끼와 비교하 여 이등급의 작가인 양 간주하고 있다. 소련 문학 및 현대 러시아문학은 실제로 한국에 알려 져 있지 않다. 한러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수립된 후 한국의 여론은 음악가들과 가수 등 상당수의 러시아 공연자들과 대면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저명한 발레단과 오페라단의 공연 그리고 연극 공연들 을 보게 되었다. 연극 상연은 모두 러시아어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러시아 발레 예술의 선전에는 한국의 유니버설발레단 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유니버설발레단 에는 1990년대 초부터 키예프 발레단의 거장 비노그라도프(Виноградов)가 예술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모스크바콘세르바토리야, ВГИК, 연극 및 발레 학원 및 학교 등에 많은 수의 한국 학생들 이 공부하러 온다는 사실은 한국 사람들이 러시아 문화의 높은 수준을 인정한다는 것을 방증 - 95 -

하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강요된 부정적인 러시아의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중들의 의식 속에는 소련 시대의 삶에 대한 많은 신화와 전설이 살아 남아 있다. 그 당시에 많은 한국 사람들은 소련에서는 주민들에게 무료로 교육, 의료 서비스, 아파트 뿐만 아니라 음식까지 제공하였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니 이미 1960~70년대에 연금, 통상적인 육체노동자들을 위한 2주 이상 기간 의 유급 휴가 등에 대해서는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그들은 그러한 휴 가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전에 러시아에서는 주민들의 대다수가 한국에 대해 참으로 혼란스러 운 인식을 갖고 있었으며, 한국을 낙후된 탈식민지 국가로 간주하였다. 한국의 열성 팬들이 러시아의 운동선수들을 적극 지원하고 후원한 것이 러시아 시민들의 인식에 긍정적인 한국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더구나 1988년 올림픽 전과 올림픽 기간에 소련의 언론과 텔레비젼은 한국에 대한 엄청남 정보들을 보여주었다. 이 대량의 정보들은 소련 사람 들에게 한국의 보통 사람들의 생활뿐만 아니라 공업, 건설, 기술, 학문, 문화 및 스포츠 등에 서 한국이 성취해 온 바를 가감 없이 전달하였던 것이다. 지금 이 학술회의 자리에 그 당시 소련 언론단의 일원으로 한국이 달성한 성취와 한국인들 의 소련 선수들에 대한 태도를 객관적이고 호의적으로 보도하는 데 종사한 당사자가 참석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르 줴빈(А. З. Жебин)이 바로 그 사람으로서 지금 러시아연방 과학아카데 미 극동연구소 한국학 센터의 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이 달성한 성취와 한국인들의 소 련에 대한 태도를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데 기여한 또 다른 주인공은 소련에서 온 최초의 학술 연구소 대표단입니다. 이 최초의 대표단을 이끌고 오신 분은 현재 러시아연방 학술원회원, 아 카데믹 미하일 티타렌코 원장님이십니다. 그렇게 하여 소련과 러시아의 지도자들과 보통 시민 들이 한국에 대해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신 분들과 지금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꼭 마찬가지로 나는 러시아의 학자들과 최초로 학술 접촉을 이룬 한양 대학교의 지도자와 학자들의 역할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특히 러시아학술원 극동연구소의 명 예박사인시며 한양대학교 설립자이자 전 총장이셨던, 고 김연준 이사장님, 그 뜻의 계승자이신 한양대학교 김종량 총장님, 유세희 교수님, 그리고 한국에서 러시아에 대한 객관적인 의견 형 성에 기여한 많은 다른 학자들을 상기하고자 합니다. 한국인들의 러시아에 대한 태도는 한국인들의 러시아인들에 대한 태도와 연관된다. 과거에 러시아인들에 대한 정보는 주로 서방 국가들의 책과 언론들로부터 획득되었으며, 그것은 바로 그 정보 획득의 원천으로부터 기원한 모든 부정적인 결과들을 수반하였다. 한러 양국간의 외 교관계의 수립 후에 러시아인들의 성격적 특징을 밝히는 한국 저자들의 작업이 등장하게 되었 고, 역시 서방 작가들의 작업 역시 많이 출판되었다. 서방 작가들의 작업에서도 역시 어느 정 도 러시아인들의 성격과 심리적 특징들을 개관적으로 기술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러한 작업들 가운데 나는 2005년 서울에서 한국어로 출판된, 박명룡과 박범이골의 책 보드카, 체홉 그리고 백조의 호수 를 주목하고자 한다. 박명룡은 현재 모스크바에 살고 있 으며, 러시아 여성(Нина Каишаури)과 결혼하였는데 1990년대 모스크바에서 보낸 자기 가족 의 경험을 윤색없이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박명룡은 자신의 책에 제사( 題 詞 )로서 튜트체 - 96 -

프(Ф. Тютчев)의 유명한 시, 머리론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으며, 그저 믿을 수밖에 없다 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으나, 그는 러시아 시민들의 많은 긍정적인 특성들을 주목하고 있다. 러시 아에서 가정교육은 개인의 정신적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간주하면서, 특히 러시아 부모 들의 높은 수준의 책임의식, 자녀들에 대한 관심에 주의를 집중한다. 가정 교육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시와 동화를 읽어 주기, 유치원에서 시 읽어 주기 등의 자세한 사항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러한 읽기와 들려주기는 아이들의 기억을 개발하고, 단어의 리듬을 잡아주며, 기억 력을 강화하고, 책과 독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박명룡은 러시아 문화와 문 학의 높은 발전 수준이 가능했던 이유를 상당 부분 이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외국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중간수준의 작업은 러시아의 2등급 작가의 작업 수준보다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 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러시아인들의 호의적인 성격, 한국인을 존중하는 태도 등을 지적한다. 그런 러 시아인들의 태도는 한국인들이 미국인들과의 사귄 경험에서 느낀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난다. 자연히, 모든 작가들이 러시아에서 음용되는 엄청난 술의 량에 대해 경계의 지적을 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러시아 시민의 한국인들에 대한 태도는 호의적이다. 대부분, 이것은 고려인(러시아화한 한국 인)에 대해 형성된 긍정적인 관계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러시아인들은 자동적으로 고려 인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모든 한국인들에게 이전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역 할을 수행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대단한 경제성장에 대한 지식이다. 어떤 종류의 대재앙에 대 한 것이 아니라면, 러시아에서 한국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자료들을 찾기는 어렵다. 필자는 한국의 대내 정책이나 대외정책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적인 성격의 자료들을 언론에서나 인 터넷 대중매체들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그런 성격의 자료들을 접하고 한다.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자료들은 주로 소위 자유주의적 언론사들의 필진들이 작성한 것들이다. 때마침, 이러한 자유주의 언론에서 한국인들을 부정적인 분위기로 재현하려는 명백하면서도 은밀한 시도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시도는 주로 해당 언론인들의 교양이 부족한데서 기인 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의 개고기를 식용을 언급하는 것 등이다. 러시아의 보통 시민 들은 한국의 문학, 민속, 음악, 저명한 작가, 운동선수, 음악가들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외국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와의 작업, 자신의 역사적 조국의 시민들과의 작업도 그리고 마 찬가지로 거주국가의 시민들과의 작업도 한 국가 이미지의 구성 부분이 된다. 국가이익의 옹 호, 곤경에 처한 자국 시민의 구호 등은 아무리 시간과 자원이 소요된다고 할지라도 국가가 맡은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일례로 푸틴 대통령이 오만에서 재판을 받은 러시아 시민들이 러 시아에서 형기를 마칠 수 있도록 데려 올 목적으로 오만의 통치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했 다는 것을 지목할 수 있다. 더 최근의 예를 들자면, 중국의 서부 지방에서 실종된 러시아인 관광객들을 구하기 위해 러시아의 비상대책부와 군대의 강력한 무력이 가동되었던 일을 상기 할 수 있다. 다시 한 가지 예를 더 들면, 미국은 아직까지도 한국전쟁 동안에 북한에서 사망 한 미군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정부는 유해 수색을 촉진하면서 발견된 유 해들은 미국으로 가져가 군인의 예를 갖추어 국립묘지에 매장한다. - 97 -

2007년 여름 탈레반에게 인질로 잡힌 자국 전도사들을 구출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한국의 국가 이미지의 각별히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고 생각한다. 자국의 국민들을 구하기 위해 한국 의 첩보기관이 자신의 귀중한 요원 한사람과 지역에 거주하는 현지 거주민의 신분을 공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한국 문제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특수작전기관 종사자들이 정당하게 평가하였다고 생각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런 정도의 전문 요원을 훈육하고 실전에 배치하는 데는 장기간의 다단계 과정이 요구된다. 그러나 한 국가가 그런 조 치를 취할 만큼 인간의 생명의 가치는 소중한 것이다. 이 사례는 참으로 자국 시민을 보호하 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경우이다. 물론 필자는 한국이 어디에서나 그렇데 일관되게 그렇게 하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와 관련하여 소말리아 연안 해상에서 해적들에게 납치당한 자국 선원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반 년 동안 한국 정부가 보인 이상할 정도의 수동적인 태도에 대해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납치된 한국 선원들은 미국의 해군함대의 도움을 받아 2007년 11월에야 풀려났다. 여러 나라들에서 다른 나라에 대해 대중 매체에서, 교과서에서 그리고 공식적인 국영 출판 사들과 언설 등에서, 다른 나라에 대한 이해 혹은 관념을 조명하는 관점에서 모두 정상적이라 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러시아의 교육부가 중등학교의 교과서로서 추천한 민속학 교과서에서 한국 항목의 핵심적인 기술( 記 述 )은 70년 전의 한국의 발전 수준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한국인들 의 농업 부문에서 아직도 사람들의 근력 이용률이 매우 높다. 제일 먼저 들판에 물을 공급하 는 데 인력에 의존한다. 사람의 힘으로 물레방아를 돌리는 것이다. 동력은 제한적으로 이용되 고 있다. 이러한 터무니 없는 언급은 해당 교과서의 집필 시점에 전 세계적으로 11번째의 공 업 강국의 위상을 가진 나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당시 한국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인터넷 을 이용하고 있었으며(지금은 95%), 아마도 취학 이전의 아동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주민 들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나라였다. 그처럼 사실과 동떨어진 무지하고 심지어 모욕적인 묘사를 초중등 교과서에 싣고 있다는 것을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동시에 예를 들면, 한국관광공사(이것은 국가기관이다)가 외국인들을 위해 매년 발간하는 한국 핸드북(Handbook of Korea) 란 책에 왜 러시아의 섬 사할린이 일본의 영토로 묘사 되어 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사할린 섬은 일본과 같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반면 러시아는 다른 색으로 표시됨). 언론에서, 학술적인 문헌들에서, 그리고 가장 위험한 것으로, 초중등학교의 교과서에서 러시 아의 역사 그리고 한-러 양국 관계의 많은 중요한 순간들을 해석하고 해명하는 작업은 한국 에서 러시아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무엇보다 먼저 그 문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까지 러시아의 대한반도 정책에 대한 해석, 일본의 압제로부터 한반도가 해방되는 과정에서, 1950-53년 한국전쟁에서 소련의 역할 에 대한 해석, 그리고 역시 21세기에 러시아의 발전 경향에 대한 해석 등과 관련된다. 예를 들어 저명한 소련연구 학자인 김학준의 작업 러시아혁명사 (2005년 간)을 보면, 1003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서 많은 부분이 레인의 추억에 할애되고(100쪽 이상) 있는데 - 98 -

레닌 본인의 작업에 대해서는 단지 한 번의 인용이 있을 뿐이다. 이 작업에서 자주 인용되는 트로쯔끼는 그의 세 가지 저작이 인용되는 경의를 받고 있다. 여담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유 감스럽게도 저자는 러시아에서 출판된 러시아 혁명의 문제에 대한 소련 및 러시아 저자들의 작업에 대해서는 단 하나도 알고 있지 못하다. 특정한 연구 주제와 관련하여 해당 나라의 학 술적ㆍ사회적 문헌 및 학자들의 평가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어떻게 그 나라에 대해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러시아와 북한의 교육 문제 관련 저명한 연구자인 신효숙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러시아에서 개혁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교과서 구성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 의 기술에 대해 중대한 수정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한국사 기술이 훨씬 더 객관성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한국에서는 교과서들에서 러시아에 대한 시각이나 지식에서 거의 어떤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효숙 박사는 한국에서 고착된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러시아사와 현대 러시아의 상황을 조명하는 데 있어서 한국의 교과서와 대중 매체는 얼마나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있는가? 한국의 교과서 저자들은 모든 시대의 러시아 대외정책을 예외 없이 공격적이고, 팽창적이 며, 식민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경우, 한국의 교과서들은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 탄, 키르기스스탄 등의 나라들이 현재의 국경 형태로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리는 일은 잊고 있다. 그루지야는 1991년부터 1992년까지를 제외하고는 2008년 8월 8일의 국경 형태 로 역사에서 단일한 정치적ㆍ문화적 완결체, 즉 국가로서 존재했던 적이 없었다. 그루지야는 많은 민족들로 구성된 영토적-정치적 공동체이다: 카헤찌네쯔, 민그렐, 헤브수르, 스반, 아드 자레쯔, 아브하즈, 오세틴, 아르먄, 그리스, 유대인, 러시아인 및 다른 민족들 등. 그루지야의 영토적 완전성과 동일성은 제정러시아와 소련에 대한 복속을 통해 그리고 하나의 단일한 지방 으로서 그 속에 편입됨으로써 보장되었던 것이다. 그루지야라는 단일한 지방은 중앙집권적인 통치 그리고 제국의 수도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 대한 정치적 복종을 겸비한 것이었다. 이 민족들 중에서 몇 몇은 러시아 국가의 한 구성 부분으로 편입되기 위한 독자적인 협정을 러시아와 체결하였다. 개별 민족의 짜르, 공후 그리고 예를 들어 아브하지야와 밍그렐 공후의 경우에는 포로로 잡힌 지도자들이 러시아와 협정 체결의 주체로 나섰다. 18세기에 그루지야는 정확히 말해 카르틸리야 짜르 가문(짜르 카르틸리이스키와 카헨틴스키 이라클리이)은 당시 페 르시아에 예속된 분봉국의 지위에 있었는데 세 차례나 러시아에 복속해 줄 것을 요청하였던 바 있다. 예카테리나2세는 두 차례나 이를 거절하였는데, 동 영토를 복속함으로써 러시아가 과잉 부담을 지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카테리나2세를 설득하기 위해 합병을 주장하 는 이들은, 그 곳에는 러시아인들과 동일한 종교, 즉 정교를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루 지야가 러시아로 편입되지 않은면 얼마 못가 페르시아나 투르크에 복속될 것이고, 그루지야 민족은 종족적 단위로서 사라져 벌릴 수 있다고 주장하였던바, 이 이야기를 듣고 여제는 마침 내 그루지야의 러시아 편입에 동의하였던 것이다. 그루지야 측의 요청에 따라 그루지야의 러 시아 병합을 규정한 게오그리예프조약(1783년 8월 4일)에서는 러시아의 의무가 포함되어 있 - 99 -

다. 러시아의 의무는 페르시아와 투르크로부터 그루지야의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4문의 대포 를 장비한 2개 보병 대대를 보내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군대가 주둔함으로써 그루지야는 남쪽 으로부터의 공격적 도발로부터 영원히 벗어났다. 게오그리예프조약에 따라, 그루지야인들은 러 시아 영토 내에서 교역ㆍ이동ㆍ정주하는 권리들에 있어서 러시아인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았 다. 그건 그렇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조약의 규정에 따라 짜르 이라클리이11세는 동 지역에서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짜르 이메레티야 솔로몬과 관계를 정상화하도록 할 의무가 있었다. 아르메니아의 동쪽 지방은 투르크에게 2세기 동안 압제를 받았는데, 러시아가 압력을 가하 여 투르크가 이 지방의 자치권을 복원하는 데 동의하도록 만들었다. 나중에 아르메니아 동부 지방은 스스로 러시아에 편입될 것을 요청하였다. 투르크의 구성 부분으로 그대로 남아 있던 아르메니아 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1915년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당 시 투르크에서 150만명의 아르메니아 인들이 학살당했다. 유럽연합, 그리고 지금은 미국 의회 가 이 사건을 투르크가 저지른 대량 학살의 만행으로 규정하였다. 말이 나온 김에, 오늘날의 영토 경계에서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와 소련의 도움 덕분에 생겨났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음을 상기하고 싶다. 키예프 루시(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루 시임을 주목할 것) 이후에 오늘날 우크라이나 영토에는 소공국들이 난립하였다. 소공국들은 수세기 동안 폴란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투르크에 예속된 크림한국 등의 일부분이었다. 1654년 러시아와의 합병 조약을 통해 우크라이나 영토의 상당 부분이 폴란드의 압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1919-20년에 오늘날의 도네츠크,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하리코프 지방들 이 우크라이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 지방들은 1917년 혁명 이전에는 제정러시아 영토의 일 부분이었으며, 러시아인들이 여기에 거주하였다. 1939년이 되어서야 갈리찌야(이바-프란코프 지방)가, 1946년에 카르파토루시공화국(오늘날 의 자카르파트 지방)이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동 공화국의 주민과 지배층이 러시 아와의 합병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1954년에 소련공산당중앙위원회 서기장 니키타 흐루시쵸 프가 자의적으로 크림을 우크라이나공화국에 편입하였다. 1991년 우크라이나소비에트사회주 의공화국의 영토는 1654년 러시아에 복속되던 당시 소러시아 영토의 4배가 넘을만큼 확장되 었다. 어원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크라이나란 명칭은 폴란드어 우크라이나, 즉 변경 이란 말로부터 유래하였음을 언급하고자 한다. 우크라이나는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의 동쪽 변경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교과서들에서는 한반도의 해방과정에서 소련군의 역할에 대해 상기하고 있 지 않다. 다만 항복한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해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로 들어왔다고 언급 하고 있을 뿐이다. 2007년 제2판이 나온 500쪽 분량에 달하는, 한국 저자 김경묵의 러시아 사 이야기 에는 소련은 대일전에 참여해 달라는 미국의 부탁을 거절했으며, 미국이 히로시마 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 다음에야 비로소 극동지역에서 전쟁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쓰고 있다. 그리하여 소련은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은 채 만주와 한반도 북쪽을 장악했다 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의 저자들에게는 1945년 일본 정부가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하지 않는 - 100 -

대신에 소련에 쿠릴열도뿐만 아니라 홋카이도를 양도하겠으며, 그 대신에 한반도를 일본의 몫 으로 그대로 남겨 달라고 제안했다는 알고 있는가? 혹은 얄타회담 전에 카이로에서 장개석이 루즈벨트와 만나 한반도가 중국의 통제 하에 들어오도록 협의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또 다른 고통스러운 문제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1950-53년 동안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 스탈린은 김일성과 마오쩌둥의 설득에 넘어가 비극적인 실수를 저질렀 다. 동시에 러시아의 저자들은 한국전쟁은 대내외적 성격을 띤 복합적 원인들로 발발하였다고 생각한다. 한국 측 저자들은 전쟁 발발의 모든 책임을 외부 세력, 특히 소련에 전가함으로써 국내적 원인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서울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 전시관에는 손으로 쓴 러시아어 육필문서( 手 稿 ) 하나가 전시되 어 있다. 이 문서에는 서명이 되어 있으며,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러시아어로 된 보 안기관의 명령 이라고 되어 있다. 추측건대, 이 전시를 조직한 사람들은, 이 문서는 해당 명령 이 소련군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증명하며, 소련군이 직접적으로 한반도 군사작전에 참여하 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인 양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당 명령은 서울 지역의 적 들의 군사력 상황에 대해 정보 수집을 하라는 것으로 군 참모장 그리고 군보안기관의 대장이 내린 명령(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부대인지가 불분명함)이라는 데, 명령권자의 성도 군부대 내 의 직위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이상한 문서이다. 실제로 이것은 첩보활동을 나간 2사단의 본 부에 대해 (어떤 군인지 불명확한) 군 참모장과 군보안기관 대장이 내린 명령의 번역이다. 이 문서의 하단에는 육필로 중국어로부터 번역(!) 최 일리야 라고 쓰여 있다. 정말, 이상하지 않 은가? 언제부터 중국어로부터 러시아어로 번역된 문서를 소련군에 속하는 문서로 사칭( 詐 稱 ) 할 수 있는가. 번역가가 쓴 육필로 번역된 문서를 어떻게 러시아어로 쓰여진 명령이라고 사칭 할 수 있는가? 민족에 상관없이 러시아의 시민들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평가에서 한국의 대 중 매체들이 미국의 입장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무관심할 수는 없다. 한국의 많은 언론인들이 미국의 동료 언론인들이 쓴 것을 모두 진실이라고 단순히 수용하고 이것을 한국의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러시아의 대외정책, 국내정 치적 상황에 대한 평가와 관련되는 것만은 아니다. 러시아 국내 문제 평가와 관련하여 일례를 들면,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와 관련해서 한국의 대중 매체들은 단순 히 미국 혹은 영국 언론인들의 말을 빌어 평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미국과 영국 언론인들 이 내린 반러시아적 결론 역시 함께 부가한다. 또 다른 예로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들 수 있 다. 한국의 대표적인 영자신문으로서 자유주의적 입장을 견지한다는 <Korea Herald>는 러시 아연방 국가두마 선거의 결론을 상당히 성급하고 반러시아적 기고문을 실어 평가하였다. 이 기고문들의 저자는 미국 저자 윌리엄 파파(2007년 12월 4일)와 엔더스 에슬룬드(2007년 12 월 6일, 15일)이다. 최근에 일어난 남오세티아에 대한 그루지야의 침략과 러시아의 대응 조치들을 둘러싼 상황 을 한국의 언론들이 어떻게 조명하고 있는가를 예로 들어보자. 8월 8일 하루 종일 한국의 대 - 101 -

중매체들은 그루지야 군대의 남오세티야 침공에 대해 단 하나의 정보도 전달하지 않았다. 8월 9일 미국 방송 CNN의 자료들을 중계하기 시작하였다. 통신사 <연합뉴스>는 8월 12일 다음 과 같은 해설이 달린 사진을 배포하였다: 12일 오전 그루지야 고리시와 트빌리시를 잇는 도 로에서 러시아군 헬기의 공격을 받아 전파된 그루지야 민간인 자동차가 길가에 버려져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길가에 서 있는 것은 궤멸된 보병 전투차량이라는 사 실이다. 아직도 그러한 정보왜곡을 고안할 필요가 있는가! 군복부를 하지 않은 여성들은 군사 장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그런 방식으로 속일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한 국 성인 남성들은 군 복무를 마쳤으며, 그들은 언제나 군사차량과 민간 차량을 구분한 수 있 다. <연합통신>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이용자들로서 누구를 상정하고 있는가? 그런 정 보에 대해 어떤 신뢰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이 사진 자료는 <조선일보>의 웹사이트에 다시 등장하였다. 한국에서 러시아의 사건들을 어떻게 조명하고 있는가의 예를 들어 보자. 필자는 <조선일보> 와 <Korea Herald>의 기사들을 주의 깊게 추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러시아에 대한 대부분 의 출판 내용들이 부정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 전 검찰관 예블로에프를 살해한 수수께끼 같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예블로에프는 갑자기 인권운동 가가 되었으며, 미국에 등록된 웹 사이트를 통해 인구셰티야의 현 대통령 무라트 쟈지코프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조선일보>는 저명한 언론인 살해 사건에 대해 보도하였다. 99.99%의 러시아 시민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를 그토록 파렴치한 방법으로 죽였 기 때문에 이 저명한 언론인 에 대해 알게 되었던 것이다. 고 예블로에프는 처음에는 인구셰 티야의 초대 대통령 루슬란 아우쉐프를 적극적으로 지지였으나, 그 다음에는 그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후 그는 선거에서 쟈지코프의 선거운동을 지원하였으나 얼마 후에는 다시 그에 반 대하여 나섰던 것이다. 미국 대중매체는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단순히 침묵하거나 의도적으로 은폐하 는 경향성은 모두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전 세계가 미국 국가이익 의 무대가 된 상황에서, 미국 외교의 메시아주의적 증후군은 이런 저런 사건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이중적 기준의 적용과 결합되는 것 같다. 미국에 사는 12세 오세티야 소녀가 폭스 뉴 스에 출연하여 벌어진 이야기는 충분히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소녀는, 때마침 8월 7-8일에 인 구쉐티야의 수도 쯔힌발에 있었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요청받았다. 그런데 그녀가 그루지아 군 대가 공격을 하자 러시아 군인들은 양민들을 구했다고 말했을 때, 진행자는 인터뷰를 중단해 버렸다. 미국 대중매체들의 뒤를 좇아 서유럽의 많은 대중매체들 역시 유사한 정책을 실행하 였다. 예를 들면, 유럽방송연맹의 관할 하에 모든 TV 회사들이 접근 가능한 비데오테이프가 있었는데 그 내용 속에는 그루지야 병사들이 2008년 8월 8일 쯔힌발의 거주지구를 향해 총 격을 가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 테이프는 누가 전쟁을 시작하였으며, 어떤 방법으로 군사적 목표물이 아니라 남오세티아의 양민들을 살상했는지를 논박할 수 없게 증명하고 있다. 서유럽 과 동유럽의 어떤 TV 방송사도, 한 방송사를 예외로 하고는, 그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지 않 았다. 왜냐하면 그 전쟁에 대한 진실한 정보는 그들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 102 -

비디오를 보여준 한 방송사는 스페인 방송사 RTVE인데 다음과 같이 코멘트를 하였다: 여기 서 보여주는 장면은 러시아 군대가 남오세티야의 수도 쯔힌발에 진입하는 바로 그 순간입니 다. 결과적으로 이 방송사는 마치 러시아 병사들이 쯔힌발의 주택들에 총기를 난사한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어허, 냉소주의의 극치! 꼼짝 할 수 없게 된 그 방송사는 어쩔 수 없이 사죄하 였다. 미국의 메시아니즘에 대해서라면, 전형이 여기 있다. 2007년에 작성된 미국국가보안회의의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미국 정부는 제일 먼저 몽골의 알콜 중독이 워싱톤 의 국가이익을 위협하는 주된 요소들 중의 하나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몽골은 어디 있으 며, 미국은 어디 있는가? 그렇다면 흥미롭게도, 한국의 섹스 산업의 매출이 14조원에 달한다 는 것 역시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가? 여러 나라들의 언론인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평가를 제공하고, 미국발 정보 원천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도록 된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군사-정치 동맹은 군사-정치 동맹으로서 족한 것이 지 모든 일에서 자신의 동맹자의 입장에 의존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단지 한 국가 만을 지향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상황으로 귀결될 수 있다. 우리는 미국만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 및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강화하려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는 행보라고 간주한다. 한국에게 중국은 많은 점들에서 다각적인 전략적 동반자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해 현재까지 한국에게 러시아는, 보건대, 그냥 다각적인 동반자인 것 같다. 러시아는 한국과 전략적 동반자로서 밀접한 관계를 수립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한국 정부가 남오세티아 를 그루지야가 침공한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미국이 가진 이유가 아니라 자신의 독자적인 입장 을 견지하고 러시아에 대해 어떤 비난도 하지 않은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우즈베키스탄 의 안디잔에서 있었던 유명한 사건(유혈 시위 진압 사건: 역자)에서도 한국 정부는 미국의 주 도하에 서방 국가들이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을 비난하는 합창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다. 국 제문제들에 대한 이러한 독자적인 입장의 견지는 한국에게 적지 않은 이득을 가져오고 있다.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양국 외교부간 협의의 정례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카리모프 대통 령이 참석하였다는 사실, 2008년 봄 한승수 국무총리의 우즈베키스탄 방문, 그리고 다가오는 2009년에 에너지외교의 일환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방문 예정 등은 바로 그 점 을 증명하는 것이다. 한러 양국의 상호 이미지 증진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제안될 수 있다: -러시아와 한국의 교육부가 상응하는 역사 및 국가정보 교과서들에서 해당 국가의 항목 집 필을 폭넓은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뿐만이 아니라 특정 국가에 대한 전문가 혹은 전문 연구자 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양국에서 상호 이미지 제고를 위해 공동 전문가 그룹을 형성하는 것이다. - 103 -

-러시아의 역사, 철학, 종교, 학술 및 예술 문학에 대한 번역 작업의 량을 늘리는 것이다. 한국어에서 러시아어로의 번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텔레비전으로 러시아의 다큐 필름과 러시아의 문화 등을 보여 줄 기회를 늘리는 것이다. -국가 기관과 조직의 참여를 포함하여, 대등한 조건에서 양국에서 다양한 전시회, 예술 회 화 순회 전시회, 주제에 따른 영화 및 연극 축제, 무엇보다 젊은이들을 겨냥하여 연예인들의 공연과 방문 등을 확대하는 것이다. -한국의 예를 따라 국제교류를 위한 러시아펀드의 창설을 전제하고 양국 간에 학술 교류를 증진하는 것이다. 러시아펀드는 러시아 문제와 역사를 탐구하는 외국의 연구작업을 지원할 수 있다. 또 러시아펀드는 한국을 포함하여 해외 전문가들을 러시아로 연구 목적의 초청을 할 수 있도록 해주며, 한러관계사의 핵심 문제들에 관하여 학자, 교과서 저자, 언론인 등이 공동의 단일한 입장을 제시할 수 있도록 공동 연구와 국제학술회의를 조직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잠정적으로 5년의 기간을 정하여 이 동안에 러시아와 한국의 교과서에서 양국관계사의 기 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석을 통일하기 위하여 양자위원회를 조직하고, 정례적으로 이러한 문 제들에 대해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러시아의 한인 디아스포라 문제에 대하여 필수적인 연구진을 구성하여 한국 사람들에게 한인 디아스포라의 객관적인 역사를 모든 정보 채널을 통하여 전달하는 것이다. -10년에 한 번 한국에서는 러시아의 해 를 러시아에서는 한국의 해 를 정하여 이를 기념하 는 것이다. 이 행사의 수행을 위해 조직위원회의 의장으로 총리를 임명하면 될 것이다. 최초 의 한러 양국의 해 는 러시아연방과 대한민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한 20주년 기념 해를 지정하 면 될 것이다. 즉 첫 번째는 2010년과 2011년이 차례로 지정되며, 두 번째는 10년 후인 2020년과 2021년에 양국의 해를 기념하면 될 것이다. 번역: 강봉구(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HK교수) - 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