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보도 톺아보기 김양중 한겨레신문사 1. 들어가며 지난 9월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등 정부를 상대로 메르스 유행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국정감사를 별도로 열기로 했다. 하지만 국정감사는 시작 뒤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정회됐 다. 간신히 6시간 뒤에 다시 열린 국정감사는 여야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 고 추후에 논의하기로 한 뒤 막을 내렸다. 여야가 논쟁을 벌였던 이유는 야당이 증인으로 채택하려 했던 청와대 관계자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0일 국내에서 첫 메르스 환자가 확진된 뒤 거의 두 달 동안 186명의 환자가 생겼던 메르스 유행은 이제 잠잠해졌다. 메르스 바이러스 가 아직 검출되는 환자는 1명 남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처럼 메르스 유행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고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우는 일은 현 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온 국민을 슬픔의 도가니에 빠뜨렸던 세월호 참사 에 대한 책임과 대책을 촉구하는 것도 현재 진행형인 것처럼 말이다. 두 달 동안 온 국민의 생활 행태마저 바꿔 놓았던 메르스에 대한 언론 보도는 너무 많았다. 때로는 국민들에게 정보를 주기도 했지만, 오보를 써 서 과도한 겁을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메르스 환자들의 인권을 무시 하는 보도도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앞으로 이 보도들에 대한 언론학계의 차분한 평가도 필요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메르스 보도를 하는 현장 기자의 입장에서 언론의 기사를 돌아보건대 잘못 다뤘거나 부족했던 점 - 1 -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정기간행물 을 몇몇 사례를 중심으로 쓴다. 2. 본론 (1) 보도 경쟁 메르스 유행이 한창이던 6월 11일 저녁 시간이 다 됐을 무렵 속보가 나 왔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다가 메르스에 걸린 이른바 35번째 환자가 뇌사에 빠졌다는 속보가 한 언론을 통해 나왔다. 2시간쯤 흘렀을 까? 이번에는 뉴스전문채널의 한 방송사가 35번째 환자가 사망했다고 보 도했다. 파장은 컸다. 의사이면서 30대로 젊고 평소 아무런 질병이 없었는 데도 메르스 감염으로 사망했다니, 온 국민이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 다. 게다가 이 환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도 심각한 갈등을 보여 정치적으 로 쟁점화도 될 수 있었다. 이 환자가 증상이 나타난 뒤 서울시민 1500여 명이 모인 모임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박 시장이 밤 10시30분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 환자는 이에 대해 당시는 증상이 없었던 시 기이기에 서울시가 과도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일부 인터 넷 매체나 보수언론들은 이 환자를 인터뷰하면서 박 시장과의 대립각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하지만 이 환자는 메르스를 극복해 가고 있는 과정이다. 폐 손상이 있 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망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에 와 있다. 결국 언론의 보도 경쟁으로 말미암아 환자의 사망이라는 대형 오보를 낳기에 이르렀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비록 보건복지부를 취재하는 기자라 할지라도 뇌사나 사망의 판정에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뇌사는 뇌사판정위원회에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판정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런 절차가 전혀 없었음에도 사망 또는 뇌사로 기사 를 쓴 것이다. 혹시라도 병원에서 또는 35번째 환자의 가족에게 뇌사나 사망과 같은 정보를 들었더라도 관련 의료진 또는 뇌사판정위원회에 확인 - 2 -
취재를 했으면 대형 오보는 피할 수 있었다. (2) 병원 정보 공개 메르스에 걸린 환자들이 본격적으로 확인되기 시작한 6월 4일 오후 5시 무렵 인터넷 언론인 <프레시안>에는 메르스 환자들이 거쳐 간 6개 병원 의 명단이 공개됐다. 그동안 메르스 환자들이 방문했거나 입원해 있는 병 원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일부 감염내과 전문의들에게서 나왔고, 야당 의원들도 공개적으로 촉구했었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에서도 병원 이름을 공개하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당시 병원 이름을 공개하게 되면 병 원들이 메르스 환자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다소 많 았다. 즉 병원 이름 공개로 오히려 메르스 유행을 막기 힘들 것이라는 지 적인 셈이다. 또 병원을 공개하게 되면 해당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에게도 큰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일부 의견은 메르스 유행이 병원에서 나타나는 병원내 감염 으로 볼 수 있으므로 병원 이름을 공개해 국민들의 과도한 불안을 줄여 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 해당 병원에서 메르스 유행에 대 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의 알 권리를 위 해서라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두 가지 주장 다 나름 메르스 유행을 막기 위한 합리성이 있었지만, 의 사 결정의 중요한 주체인 국민들이나 환자들이 빠져 있었다는 사실은 지 적될 만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메르스 환자들 이 거쳐 갔거나 입원해 있던 병원들을 모두 공개했다. 이에 때늦은 공개 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3) 환자 정보 공개 국민들이 원했던 메르스 유행 병원의 이름을 공개하는 데에는 적극적이 지 않았지만, 일부 언론은 환자들의 정보를 공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 성서울병원에서 이른바 슈퍼 전파자 로 불렀던 환자다. 이 환자가 이 병 - 3 -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정기간행물 원 응급실에서 많은 환자들에게 감염을 전파할 수 있었던 이유는 100kg 이 넘는 거구였기 때문에 기침을 할 때에도 많은 분비물이 나왔다거나, 흡연자라서 응급실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등 많이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이 환자는 메르스가 완치된 뒤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내가 삼성 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많은 환자들에게 감염을 퍼뜨렸던 환자인지는 몰랐 다 고 말했다. 그 환자 역시 평택성모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려 했던 이유는 몸이 아픈 환자였고, 치료받기 위해 입원한 일이 죄라면 죄 일 것이다. 단지 환자였을 뿐이었고, 우리나라 국민 다른 누구라도 마찬가 지 상황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언론은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마치 이 환자가 비만해서 또는 담배를 많이 피워서 메르스를 전파시킨 것 처럼 보도한 격이 됐다. 첫 번째 환자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환자는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 해 치료를 받을 때 의식이 혼미한 상태까지 빠졌지만, 다행히 메르스는 완치가 됐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 은 뜻밖에 부정적이었다. 첫 번째 환자 때문에 결국 185명의 메르스 환자 가 생겼고 그 가운데 일부가 숨졌는데, 어떻게 최초 원인 제공자는 완치 됐을 수 있느냐 는 반응이었다. 첫 번째 환자의 주치의는 한 언론과의 인 터뷰에서 완치됐다고 해도 첫 번째 환자의 신변이 걱정돼 퇴원시키기가 겁난다 고 말하기까지 했다. 10번째 환자 역시 국민들과 언론에서 크게 비난한 환자다. 메르스에 감 염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보건당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국으 로 출장을 갔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이 환자는 지역 보건소 등에 메르 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 등을 요청했다고 밝히고 있어 앞으로 진위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10번째, 14번째 환자들이 국민들과 언론의 비판을 받았기에, 감염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는 비난의 화살을 덜 받았을 수 있다. 방역에 최선을 다했지만 첫 번째 환자가 중동에서의 행선지를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거나, 10번째 환자는 메르스가 의심될 때 - 4 -
중국으로 출장을 갔다거나, 14번째 환자는 담배를 피우러 응급실 밖을 자 주 다녀왔다거나 하는 등과 같은 정보로 정부 방역의 잘못보다는 환자에 게도 책임이 있음을 말해 왔던 것이다.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은 우리 국민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상황이었고 이에 대해 충분히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국민에게 정부의 방역 책임을 논 하기보다는 일부 환자들의 잘못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는 지적을 피하 기는 힘들다. (4) 감염 환자들의 아픔 메르스 유행으로 모두 36명이 숨졌다. 이들 가운데에는 80대 부부가 메 르스에 감염돼 둘 다 숨진 사례도 있었다. 먼저 남편은 36번째 환자로 천 식과 세균성 폐렴을 앓다가 지난 6월 3일 건양대병원에서 숨졌다. 당시 격리 상태였기 때문에 가족들은 임종을 지켜 볼 수 없었다. 이후 82번째 환자로 확진된 부인 역시 보름 뒤에 숨졌다. 메르스 유행으로 부모를 한 꺼번에 잃은 자녀들은 부모의 임종조차 지켜 볼 수 없었다. 사랑하는 가 족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는 이와 같은 사례는 여러 건 있었다. 감염을 차단하기 위한 격리 등 많은 조치들이 인간에 대한 도리를 다 못하도록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강릉의료원 간호사 등 23명에 이르는 많은 의료진도 메르스에 감염됐 다. 삼성서울병원에서는 메르스 감염을 막을 수 있는 방호복이 뒤늦게 지 급됐으며, 강릉의료원 간호사도 등급이 한 단계 낮은 방호복을 입었다가 메르스에 감염됐다. 의료진과 함께 환자 가족은 65명이나 메르스에 감염 됐다. 환자들을 돌보다가 같이 감염된 것이다. 이들 의료진, 간병인, 환자 가족들은 입원 환자를 제대로 돌보며 병원 감염을 막을 수 있는 의료 체 계만 제대로 갖추고 있었어도 감염을 막을 수 있었던 사례들이다. (5) 감염병 보도 준칙 2003년 중증호흡기증후군(SARS),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 사태를 - 5 -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정기간행물 겪은 보건복지부 출입 기자들은 2012년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 학회와 함 께 감염병 보도 준칙 을 만들었다. 이는 사스나 인플루엔자 유행을 때론 과장 보도하고 때론 감염인의 신상마저 적다 보니 폐해가 많았다는 반성 에서 나왔다. 이 때문에 이 안에는 감염병을 과장해서 보도하지 않고, 감 염인의 신상에 대한 보도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적어 도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과 낙인은 막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보도준칙은 일반 국민들은 물론 언론에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아, 준칙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언론인들도 많았다. 자살예방 보도준칙 의 경우 자살 보도가 오히려 자살을 유도할 것으로 보이면, 이에 대한 알 림 메일을 자살예방센터나 협회가 보내는데, 이를 감염병 보도준칙에도 활용할 만하다. 3. 마치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는 말이 마치 한심한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많은 공공정책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 감염병 유행 등 어 떤 사건이 생기면, 이를 개선하는 정책을 펴야 다음에 그와 같은 유행 사 태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제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야 한다. 메르스와 같이 해외 유입 감염병이 아예 유입되지 않도록 하는 방역 체 계는 물론, 메르스 유행과 같이 병원 감염이 창궐할 수 있는 의료 체계의 개선 역시 중요한 과제다. 주치의의 부재, 과밀한 응급실, 보호자가 상주 하는 병원, 망가진 의료전달체계, 빈약한 감염 관리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 는 말이다. 이런 의료계 체질 개선과 함께 감염병 환자들 또는 그 주변의 가족들이 나 지인들이 감염병 유행 사태에서 격리되거나 격리에 준하는 조치를 통 해 이들의 인권이 침해되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환자들이나 감염 의심자들을 비판하고 이들에게 잘못 을 돌리려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면밀한 조사도 진행돼야 한다. - 6 -
누구나 예측하듯이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인류의 운명에 서 볼 때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유행 사태는 다시 올 것이다. 그러나 우 리는 감염병 유행을 잘 막아내면서 감염자나 그 주변 사람들의 인권은 침 해하지 않고 그들의 정당한 치료받을 권리를 지켜주는 길 역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