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릉에서 용장까지 경주 남산 둘러보기 펴낸 이 (사)경주남산연구소 펴낸 날 2012년 11월 펴낸 곳 (사)경주남산연구소 기획 및 디자인 AllThatPlan 窓 인쇄 성전기획 4 경주남산가이드북① 삼릉에서 용장까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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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당중학교 감사 7급 ~ 성동구 왕십리로 189-2호선 한양대역 4번출구에서 도보로 3-4분 6721 윤중중학교 감사 7급 ~ 영등포구 여의동로 3길3 용강중학교 일반행정 9급 ~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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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 이 가이드북은 경상북도와 경주시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경주 남산 가이드북 ❶ 경주남산 삼릉에서 용장까지 2 경주남산가이드북1 삼릉에서 용장까지 3

삼릉에서 용장까지 경주 남산 둘러보기 펴낸 이 (사)경주남산연구소 펴낸 날 2012년 11월 펴낸 곳 (사)경주남산연구소 기획 및 디자인 AllThatPlan 窓 인쇄 성전기획 4 경주남산가이드북① 삼릉에서 용장까지 5

삼릉에서 용장까지 코스 안내 코스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삼릉 냉곡 석조여래좌상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삼 릉계곡 선각육존불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선각마애여래상 상선암 선각보살상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금송정터와 바둑바위 상사바위 와 소석불 금오산 정상 대연화대(삼화령) 탑기단석 용장사곡 삼층석탑 용장 사지 마애여래좌상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용장사터 탑재와 석등대석 용장계 절골 석조약사여래좌상 코스 해설 소요시간 5시간(해설사 동행시 6.5시간) 배동 석조여래삼존불입상에서 시작하여 산기슭을 따라 삼릉을 답사하고, 냉골(삼릉계곡) 을 따라 금오산 정상을 거쳐 용장계곡으로 하산하는 과정이다. 산을 오르면서 문화유적 답 사도 겸할 수 있는 코스다. 등산복 차림에 도시락과 음료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편의상 서 찾아가는 길 남산주차장에 주차하고 삼릉에서부터 출발해도 좋다. 이 코스는 신라시대의 석불을 시대적으로 모두 만날 수 있는 신라 석불의 보고이다. 먼저 삼 국시대의 대표적 걸작인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통일신라의 문화적 성숙기에 조성된 풍만 하면서도 늠름한 기상이 보이는 냉곡 석조여래좌상, 하늘에서 하강하는 모습의 마애관음보 대중교통 경주시내에서 내남행 버스(500, 501, 503번)를 타고, 삼불사 앞(또는 삼릉)에서 하차하면 된 다. (약 15분 소요) 돌아올 때는 용장리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약 15분 소요) 살상, 힘 있는 붓으로 한 번에 그린 듯한 선각육존불, 미완성으로 추정되는 신라 말의 선각 여래좌상, 8세기 중엽 문화적 성숙기의 기세를 반영한 듯 힘차게 타오르는 불꽃이 아름다 운 광배를 가진 최근에 얼굴이 복원된 석조여래좌상, 산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살며 시 그림자를 보여주는 듯한 선각마애여래상,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크며 바위 속에서 나오는 듯한 순간을 새긴 마애석가여래좌상,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이면서도 거대한 바위산을 하층기단으로 삼고 우뚝 선 용장사곡 삼층석탑, 남산에서 가장 씩씩하고 아름다운 청년기 의 마애여래좌상, 대현스님께서 기도하면서 돌면 불상 또한 고개를 돌렸다는 용장사지 삼 륜대좌불, 김시습이 머물면서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 를 집필한 용장사지, 신라 하 대의 특징이라 할 방형대좌에 앉아 계신 약사여래좌상 등 실로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말 기까지의 불상을 두루 만날 수 있다. 승용차 고속도로에서 나오면 보이는 산이 남산이며, 세 번째 신호등 못 미쳐 우회전을 하면 포석정. 삼릉 방향이 된다. 우회전하여 1.3km 정도 가면 왼쪽에 포석정 주차장이 있으며, 2.2km 지 점에는 오른쪽에 서남산 주차장이 있다. 경주시내에서는 오릉을 지나 계속 가면 포석정과 서 남산 주차장이 있다. 차량은 서남산주차장에 주차하고(주차비 1일 소형 2,000원, 대형 4,000원), 배동 석조여래삼존불입상에서부터 답사하면 된다. 삼불사에도 무료주차장이 있으나 좁다. 돌아올 때는 용장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삼릉에서 내리면 된다. 6 경주남산가이드북1 삼릉에서 용장까지 7

삼릉에서 용장까지 그 길에서 만나는 문화유적들 (보물 63호)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삼불사 옆에 있는 이 세 석불은 이 주변에 흩어져 묻혀 있던 것을 1923년에 지금의 자리에 모아서 세운 것 이다. 본존불은 높이가 2.75m이며 좌우의 보살상은 높이 2.28m, 2.2m이다. 삼존이 모두 명랑하고 천진스 러운 어린 아기들처럼 보인다. 풍만한 얼굴에 크게 반원을 그린 눈썹이 깊이 패어졌고 그 밑에 눈두덩이 부 풀어 올라 가느스름한 눈자위에 그늘을 지우면서 두 눈이 천진스럽게 웃음 짓는다. 짧은 코 아래 두툼한 입 술, 그 양가에 언덕을 이룬 두 뺨에 어려 화사한 미소가 피어난다. 두 눈썹 사이에 백호가 뚜렷하고, 나발은 구슬띠처럼 표현되어 있다. 네모난 발은 평평하게 대좌를 밟아 편안하고, 두꺼운 가사에는 굵은 옷주름이 듬성듬성 U자형의 대칭으로 표현되어 있다. 수인은 시무외인( 施 無 畏 印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약속)과 시여 원인( 施 與 願 印 :원하는 바를 모두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삼국시대 불상은 대개 이러한 수인을 하고 있는 데 통인이라 한다. 좌협시보살상은 오른손은 설법인을 하고 왼손은 정병을 힘껏 움켜쥐고 있다. 가느 스름한 작은 눈이며 조용한 코, 상현달 모양으로 내민 입술은 모두 조그맣게 나타나 있는데 비해 두 뺨은 널 따랗게 언덕을 이루었다. 보름달 같이 둥그런 얼굴에 부드럽고도 강한 미소가 넘친다. 두광은 장식이 없고 머리에는 관대를 두르고 삼면두식( 三 面 頭 飾 )으로 장식되었다. 목에는 세 개의 영락( 瓔 珞 )이 달린 목걸이를 걸었고 가슴에는 승기지가 비스듬하게 가려져 있다. 우협시보살상은 이중의 연화대 위에 서서 오른손은 영 락을 잡고 왼손은 경책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몸은 삼굴자세를 하고 있으며, 어깨는 약간 움츠리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눈은 가느스름하여 양 눈에는 웃음이 서려 있고, 코는 삼각으로 짧고 입술은 조금 큰 편인데 양가가 깊게 파여져 두 뺨에 언덕을 이루면서 부드러운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둥근 두광의 테두리에는 두 줄의 선을 돌리고 5구의 화불과 두 송이의 보상화가 배치되어 있어 특이하다. 세 줄로 된 영락은 아래쪽 에 큰 연꽃이 한 송이 달려 있고, 허리를 감은 군의 자락을 동여맨 끈이 화려하게 드리워져 있다. 본존불과 좌협시 보살은 7세기 중엽, 우협시 보살은 7세기 후반에 조성된 신라불상의 대표작이다. (사적 219호) 삼릉 삼릉계곡의 입구에 있는 이 세 왕릉은 아래에서부터 8대 아달라왕(154 184), 53대 신덕왕(912 917), 54대 경명왕(917 924)의 능으로 주변이 송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능의 구조는 신덕왕릉이 1963년 도 굴 후 조사에 의하여 깬돌로 축조한 횡혈식석실분( 橫 穴 式 石 室 墳 )으로 확인되어 모두 횡혈식석실분으로 추 정하고 있다. 현실은 정방형을 하고 있으며, 남벽 중앙에 널길을 설치하였고, 높이 35cm, 길이 2m의 자연 석 시상대가 놓여 있어 2인용으로 추정된다. 무덤 내부의 북 동 서 벽면에 높이 1.4m 높이로 12폭을 상하 로 나누어 24면에 일정한 순서 없이 주 황 백 군청 감청의 5색을 배색하였다. 이는 신라 고분에서 채색이 확인된 유일한 무덤이기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왕릉들은 1730년에 지정되었으나, 삼국사기 에는 아달라왕의 장지 기록은 없으며, 신덕왕은 죽성에 장사( 삼국유사 에는 화장하여 잠현 남쪽에 묻었다)지냈 다고 하였으며, 경명왕은 황복사 북쪽에서 장사( 삼국유사 에는 황복사 북쪽에서 화장하여 성등잉산 서쪽 에 뿌렸다)지냈다고 하여 왕릉의 진위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계곡 너머 솔숲에는 55대 경애왕릉(924 927)이 있다. 8 경주남산가이드북1 삼릉에서 용장까지 9

(지방유형문화재 19호)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머리 없는 여래상에서 북쪽 산등성이를 쳐다보면 뾰족한 바위기둥들이 솟아 있는데 그 중 한 바위에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하계를 내려다보고 있는 관세음보살입상이 새겨져 있다. 살결 이 풍만한 얼굴은 미소를 머금었고 오른손은 설법인을 하고 왼손은 정병을 들고 있다.머리에 쓴 보관에는 화불을 배치하여 관세음보살임을 표시하였는데 목걸이와 가사를 동여맨 끈은 나비날개처럼 매듭을 짓고 그 자락이 아래로 드리워져 있다. 발가락 끝에까지 피가 도는 듯 섬세하게 조각된 이 불상은 따스한 촉감을 일으키는 복련( 覆 蓮 ) 위에 서 계신다. 이 관세음보살상이 서 있는 자리에는 전각을 지을 만한 곳도 없고 기 와조각도 떨어진 것이 없으니 처음부터 노천불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을 비바람이 치는 노천에 세 운 것은 무슨 뜻일까? 바위 벼랑에 불상을 새기고 산기슭에서 올려다보며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소리를 듣 고 내려오시는 그 감격을 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내려 함이 아니었을까? 광배를 따로 만들지 않고 뒤쪽의 비 스듬한 바위를 광배 삼아 보살상을 조각했기에 방금 하늘에서 하강한 듯한 모습이다. 이 불상이 가장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순간은 석양 해질 무렵이다. 단풍이 드는 가을철 석양 때가 더욱 좋다. 보살상의 높이는 154cm, 어깨너비는 54cm이며,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냉곡 석조여래좌상 삼릉에서 개울을 따라 계곡으로 약 500m쯤 올라가면 길 옆 바위 위에 머리 없는 석불좌상이 앉아 계신다. 높이가 1.6m에 무릎 너비가 1.56m나 되는 큰 좌불이다. 계곡에 묻혀 있다 1964년 발견되어 지금의 장소 에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마멸이 거의 없고 옷 주름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머리가 없어지고 두 무릎이 파괴되어 수인은 알 수 없다. 편안히 앉은 자세며 힘 있게 주름 잡힌 삼도, 당당한 가슴, 넓은 어깨, 탄력 있 는 조각, 위풍당당한 자세로 보아 8세기 중엽 신라 전성기의 불상이다. 특히 왼쪽 어깨에서 가사 끈을 매듭 지어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영총수실은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매듭 공예가 먼 신라 때 부터 전해 왔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부처님의 군의(치마) 역시 예쁜 매듭으로 묶여져 있다. 이 불상의 대 좌는 파괴된 것이 아니라 거칠게 치석된 것으로 추정되어 특이하다. 이 불상의 원 위치는 지금처럼 어느 곳 큰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자연과 어우러져 있던 모습이 아닐까 한다. 10 경주남산가이드북1 삼릉에서 용장까지 11

(지방유형문화재 21호)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지방유형문화재 159호)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계곡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골짜기 왼쪽에 자리 잡은 넓은 바위에 선각으로 새겨진 불상이 있다. 동서로 펼쳐진 넓은 바위 면에 선각( 線 刻 )으로 새겨져 있는 불상으로, 마치 신라의 불교 회화를 보는 듯하다. 동쪽 바위 면에는 설법하고 있는 석가모니 삼존불을 새기고, 서쪽 바위 면에는 아미타삼존불을 새겨, 현생과 내 생을 나타내었다. 아미타불의 수인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수인이며, 좌우 보살상은 한 쪽 무릎 을 꿇고 앉아 두 손 가득히 연꽃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니다. 우협시 보살상은 연화좌대를 생략하여 바위 속 에서 나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거친 바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선각으로 조성하여 더욱 신비감이 느껴지는 조각이다. 바위 윗면에 목재를 결구( 結 構 )한 흔적과 빗물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물길 을 파 놓았고, 바위 앞면에 많은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목조 전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9 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선각육존불에서 바위 위 등성이로 200m쯤 올라가면 높이와 너비가 각각 10m쯤 되는 넓은 절벽바위가 서 쪽을 향해 솟아 있다. 그 암벽 중앙에 지름 2.5m쯤 되는 연꽃 위에 초전법륜인을 하고 앉아 계신 여래상이 있다. 몸체는 모두 선각으로 나타내고 얼굴만 깎아 내어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다. 두 눈썹과 눈은 아주 가 깝고 코는 길고 입술은 두텁고 커서 균형 잡힌 얼굴이라 할 수 없으나 소박한 위엄이 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모두 표현하였다. 연화대와 광배 등은 굵은 선으로 그었고, 옷주름 같은 것은 가는 선으로 변화를 주 었다. 상 전체에서 재주를 부리지 않은 소박함을 느낄 수 있는데, 머리 위의 육계, 얼굴의 투박함, 귀부분 등 세련된 마무리가 안 되어 있어 미완성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남산의 마애불 중 가장 늦은 10세기의 작 품으로 추정된다. 여래좌상 옆의 바위는 부부가 안고 있는 모습 같아 부부바위라 불리고 있다. 12 경주남산가이드북1 삼릉에서 용장까지 13

(보물 666호)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선각여래좌상에서 오른쪽으로 난 능선 길을 따라 100m정도 가면 솔숲에 많은 바위 무리가 있고, 그 가운데 순백 화강암으로 조성된 여래상이 화려한 연화대석 위에 앉아 계신다. 연화대좌는 투박하 게 팔각으로 깎은 하대석과 면마다 안상을 새긴 중대석을 놓고 그 위에 화려한 보상화 연꽃을 올려 놓았다. 안상이란 귀인들이 앉는 평상을 말하는 것이니 중대석 위는 절대로 존엄한 세계라는 뜻이 다. 이렇게 존귀한 평상 위에 보상화로 장식된 화려한 둥근 연꽃송 이를 얹어 놓았으니 이 연꽃은 수미산 위에 핀 하늘의 꽃송이인 것 이다. 이 불상의 가장 큰 특징은 하대석이다. 보통 불상의 하대석에 는 복련을 새기는데, 이 불상은 하대석을 팔각으로 거칠게 깎고 말 았다. 불상이 바위 속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을 표현한 듯하다. 이 불 상 주위에도 건물을 지었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처음부터 노천불이 었을 걸로 짐작된다. 주위 분위기와 조화되지 않을 경우에는 부처 님께서 눈비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전각을 짓지 않았던 옛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광배의 안쪽에는 부드러운 넝쿨무늬를 새기 고 바깥쪽은 힘 있게 활활 타오르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광배는 윗 부분이 조금 깨진 채로 불상 후면에 세워졌으나 1963년 겨울 무지 한 사람들에 의해 산산조각 나버려, 2008년 12월 상호와 광배를 복 원하였다. 8세기 후반에 조성된 불상이다. 불상 앞 쪽 평평한 곳에 있는 작은 단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진 탑의 원위치이다. 바위 를 탑의 기단으로 삼아 세운 삼층석탑이다. 선각마애불 석조여래좌상의 왼쪽 개울을 건너면, 상선암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타난다. 개울 건너 무덤 주변에서 바 라보면 석조여래좌상의 뒤쪽 30여 m의 바위 절벽 면에 얼굴 부분만 선각으로 새겨진 마애불상이 있다. 부 드러운 선으로 새겨져 원만한 상이다. 바위 면에 비해 불상이 너무 커서 본래 완전한 모습은 아니었던 듯하 다. 바위 속에 숨어 있던 부처님이 이 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 반겨주는 듯한 모 습은 아닐까? 9세기에 조성된 불상이다. 이 바위의 오른쪽 바위 절벽 중턱에는 1915년 국립중앙박물관으 로 옮겨진 석조약사여래좌상이 있었다. 그 곳에는 기와조각들이 흩어져 있어 작은 건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4 경주남산가이드북1 삼릉에서 용장까지 15

상선암 마애선각보살상 바둑바위 (지방유형문화재 158호)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상선암은 옛 절터에 90여 년 전 세워진 사찰 이다. 절 뒤쪽 부서진 바위에 하반신만 선각 으로 남아 있는 조각이 있는데, 화려한 옷주 름과 구슬. 리본 등이 새겨져 있어 보살상임 을 알 수 있다. 완전할 경우 6m가 되는 대불 이다. 냉골 암봉 바위산 꼭대기에는 금송정터라고 전해오는 건물터가 있다. 그 옆 바위 벌판에 는 옛날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며 놀았 다고 하며, 동경잡기 (1669년)에는 신라 때 옥보고가 거문고를 켜던 곳이라고 한다. 전망이 좋아 서라벌 벌판과 북남산이 모두 보인다.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면, 상사바위 를 돌아보고 이곳에서 왔던 길을 돌아 내려 가거나, 삼불사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상선암에서 150m 쯤 올라가면 거대한 자연 암반의 벽면에 6m 높이로 양각된 불상이 있다. 이 여래좌상은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큰 불상이다. 얼굴의 앞면과 귀 부분까지는 고부조로 원만하게 새겨진 반면, 머리 뒷부 분은 투박하게 바위를 쪼아 내었다. 짧은 목에 삼도는 없고, 건장한 신체는 네모난 얼굴과 잘 어울린다. 오른 손은 가슴 앞에서 설법인을 짓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불상의 몸 부분은 거칠고 억세게 선각하였고, 좌대 부분은 부드러워지다 희미하게 사라져 버린 듯한 모습이다. 대좌는 중대석이 생략된 채 앙련과 복련이 서로 맞붙어 있으며, 앙련의 연잎 안에 다시 화문( 花 紋 )을 장식하였다. 이 러한 조각 수법은 불교가 바위신앙과 습합하여 바위 속에서 부처님이 나오시는 순간을 표현하였다고 생각 된다. 입체감이 없는 신체표현, 힘이 빠진 옷주름 선 등으로 보아 9세기 불상양식을 반영하는 거대 불상이 다. (지금은 낙석 위험으로 길을 돌아가도록 하여 바둑바위를 지나서 상사바위에서 내려다 보아야 한다.) 상사바위와 소석불 상선암 뒤로 높이 솟아있는 남산신 상심이 살고 있는 바위로서 동쪽면은 남근석과 기도처, 남쪽면은 산아당 으로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아들 낳기를 기도하는데 영험이 있다. 1856년에 새긴 산신당( 産 神 堂 )이라는 명 문이 남아있다. 남산신 상심은 신라 49대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했을 때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기도 하였 다. 상사바위의 동쪽 면은 기도용 감실이 있고 그 앞에 머리와 연화대를 잃어버린 작은 석불이 1구 있는데, 남 산에서 발견된 가장 작은 석불이다. 통인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고신라 불상일 가능성도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판단하기 어렵다. 상사바위 앞 공간도 옛 절터이다. 여기서 금오산 정상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16 경주남산가이드북1 삼릉에서 용장까지 17

금오산 정상 해발 468m로서 이곳은 냉골, 포석계, 지바 위골, 비파골, 약수골 등의 분수령이 된다. 용장사지 가는 길은 도로 내려가서 화장실 쪽으로 가야 한다. 탑 기단석 용장사지 최상부에 있는 석재 기단인데, 탑 의 기단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대연화대 (삼화령) (보물 186호) 용장사곡 삼층석탑 용장골 정상에 있는 높은 암반 위에 거대한 연화대좌가 있다. 그 위에는 유려무비한 솜씨로 대연화가 새겨 져 있다. 원래는 그 위에 석불이 안치되었을 것이다. 이 봉우리는 용장사 쪽으로 뻗어내린 장엄한 산맥과 남 으로 뻗어내려 고위산에 연결되는 산맥, 금오산정에서 굽이쳐오는 세 갈래의 큰 산맥을 모아 꽃송이처럼 솟아오른 봉우리이기 때문에 삼화령이라고 한다. 이 봉우리에 올라서면 앞으로는 고위산이, 동쪽으로는 토 함산 불국사까지, 그리고 서쪽으로는 단석준령이 바라보인다. 대좌 앞으로도 한 단의 계단이 더 마련되어 있지만 몇 걸음 아래가 낭떠러지라 겨우 참배가 허락될 정도의 여유만 있는 곳이다. 아마도 이곳을 천혜의 성스러운 부처님 땅으로 여겨 불상과 연화대를 새겨 그대로 예참 정진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곳이 삼 국유사 에 등장하는,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생의스님이 찾아내고, 35대 경덕왕 때 충담스님이 차공양을 올리고 안민가를 노래하던 삼화령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찾아가기가 번거로워 용장계곡으로 내려가다가 건너다보는 모습도 절경이다. 용장사지 동편 능선 위에 자리하여 이 계곡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이 탑은 현재 3층 옥개석까지 남아 있는데 높이가 4.5m이 다. 멀리서 보면 마치 높이 350m 가량 되 는 산의 바위 전체를 하층기단으로 삼은 듯 해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아마도 수미산 꼭대기에 탑을 세운 듯하다. 바위에 6cm 정도되는 괴임을 2단으로 마련하고 기단의 한 면은 1장의 큰 석재로, 나머지 3 면은 2매의 석재로 결구시켰다. 탱주는 한 개이다. 위에는 탑신괴임이 2단 마련되었 고, 기단갑석은 2매의 판석으로 되어 있다. 탑신과 옥개석은 각각 1매의 석재로 되어 있고, 2층 탑신은 1층에 비해 체감 효과를 크게 주어 전체적인 안정감을 꾀했다. 옥개 받침은 모두 4단으로 되어 있고 옥개석의 상면에는 탑신괴임이 2단씩 마련되어 있 다.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고 삼층 옥개석 가운데에 찰주를 세웠던 구멍이 남아 있다. 1924년에 쓰러져 있던 탑을 복원할 때 2층 탑신 상부에서 네모난 사리공이 확인되었다. 이 탑은 거대 한 바위산을 기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내려가다가 꼭 올려다 보아야 한다. 8세기 후반에 조성되었다. 18 경주남산가이드북1 삼릉에서 용장까지 19

(보물 187호)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 앞에는 우리나라에서 유례가 없는 삼륜의 대좌에 머리가 없는 좌불이 있다. 지대 석은 자연석을 윗면만 고르게 가공하여 쓰고 있는데 지대석이자 곧 기단으로 보인다. 높이 1m 남짓한 기단 위에 둥글게 다듬은 북 모양의 중대석을 얹고, 그 위에 쟁반 모양의 둥근 반석 을 놓았다. 다시 그 위에 중대석과 반석을 놓았고, 세 번째의 중대석을 결구시키고 앙련의 둥근 반석대좌를 마련한 위에 화려한 연꽃방석을 얹고 결가부좌로 앉은 불상을 모셔 놓았다. 불상의 높이는 연꽃방석 밑에 서 목까지가 141cm이고 대좌의 총 높이는 3m에 달한다. 불상은 결가부좌로 앉고, 오른손은 선정인, 왼손 은 무릎 위에 얹은 역항마촉지인상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양어깨를 덮고 흘러내린 가사 깃 사이엔 승기지가 비스듬히 가슴을 가리고 매듭이 맵시 있게 조각되어 있다. 또 왼쪽 어깨에 드리워진 가사끈의 수 실 때문에 이 불상을 승상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흘러내린 가사의 자락들이 물결처럼 펄럭이며 무릎을 덮고 흘러내려 상현좌를 이루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삼국유사 의 현유가해화엄( 賢 瑜 伽 海 華 嚴 ) 조에 의하면, 옛날 용장사에 유가종의 대덕이신 대현스님이 계셨는데, 그 절에는 미륵장륙석상이 있어, 대현스 님이 그 미륵부처님께 기도하면서 돌면, 미륵부처님 또한 대현스님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는 이야기가 있 다. 이 부처님이 바로 대현스님께서 기도하면서 돌던 그 미륵부처님이 아닐까 한다. 이 불상이 미륵불이라 면, 자연석 하층기단은 수미산이요, 기단석 위 첫 둥근 반석은 제석천왕의 도리천, 두 번째 반석은 야마천 이 되며, 마지막의 연화 원반대좌는 미륵보살이 계시는 도솔천이 아닐까.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 정된다. (보물 913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뒷편 동쪽으로 높이 5.5m, 폭 3.6m 가량 되는 바위면이 남향을 하고 있다. 그 바위 면에 고운 연꽃 위에 결가부좌하고 항마촉지인을 한 여래상이 있다. 이 마애불은 얕은 돋을새김으로 되어 있는데 대좌의 연꽃을 보면 가운데 꽃잎은 비교적 크게 나타내고 양 가장자리로 가면서 차츰차츰 작게 하 여 끝에서는 구름처럼 사라지도록 하였다. 불상은 풍만하고 건장한 위엄을 느끼게 하고 결가부좌로 앉은 두 무릎과 넓은 두 어깨는 당당하다. 상호는 머리를 반분한 자리에 눈썹이 길게 그어졌고 양 눈썹에 이어 아 래로 뻗어 내린 예리한 콧등은 얼굴 길이의 ⅓쯤에서 고운 코를 형성하였다. 굳게 다문 입술은 양가에 힘을 주어 긴장된 표정인데 풍성한 두 뺨과 군살 어린 턱의 부드러움은 자비롭기 그지없다. 육계는 얼굴과 조화 롭게 덩실 솟았고 머리카락은 나발로 표현되어 있다. 옷자락은 속이 다 비칠 것 같은 얇은 느낌으로 잘게 주 름을 잡아 놓고 있다. 두광은 무늬 없이 두 겹의 원으로 표현되었고 신광 역시 마찬가지이다. 신광 좌측에 명문이 3행으로 10여 자 있으나 판독이 어렵다.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0 경주남산가이드북1 삼릉에서 용장까지 21

용장사지 용장골 어귀에 있는 마을 이름이 용장리이고 계곡 이름도 용장골이니 모두가 용장사에서 비롯한 이름들이 다. 용장사는 이 계곡의 주인격일 뿐 아니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대가람이었다. 용장골의 남쪽 면은 수리산을 정상으로 하여 흘러내린 여러 갈래의 계곡들로 되었는데 열반골의 기암과 괴암들이며 은적암 부 근의 삼각봉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비해 금오산에서 뻗어 내린 여러 산맥들로 구성된 북쪽 면에는 이 렇다 할 잘생긴 봉우리들이 별로 없다. 하지만 용장사가 자리 잡은 그 봉우리만이 거대한 바위들로 첩첩이 솟아 있다. 용장사는 어느 시대에 폐사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초 설잠 스님(매월당 김시습)이 이 곳에 오래 머물면서 금오신화 를 썼다고 하니 조선 중기까지는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절터 축대들과 기와 조각들만이 폐허를 뒹굴고 있다. 탑재와 석등대석 용장계 절골 석조약사여래좌상 현재는 기단갑석과 2층 옥개석, 석등대석만 남아 있다. 이 탑재로 보아 이곳에도 석탑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석등대석은 밤에 이곳을 찾는 사람을 위한 등대로서의 석등 이다. 이곳에서 올려다보는 삼층석탑은 하 늘의 부처님 나라를 우러러보는 듯한 상상 을 불러일으키는 절경이다. 설잠교를 지나 하산하다가 절골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약 150m 정도 올라가면 계곡을 가로지르는 무너진 축대가 2개 있고 좀 더 올라가면 큰 축대가 나타난다. 법당터 한가운데 남향으로 앉으신 이 불상은 1940년 에 산에서 흘러온 모래와 자갈돌에 묻혀 있었던 것을 발굴 조사한 것인데, 머리와 광배는 찾지 못하고 대좌 와 몸체만 발견되었다. 불상은 결가부좌로 앉아 왼손에 약 그릇을 들고 오른손은 촉지인상을 나타내어 약 사여래임을 나타내고 있다. 조각의 선은 부드럽고도 유려하게 흘러내리고 있으며, 신체에 탄력이 없는 것 으로 보아 9세기에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삼단으로 된 이 불상의 대좌는 불상 아래에 묻혀 있으며, 남산 에서 셋 밖에 없는 희귀한 네모난 대좌이다. 축대 아래에는 석탑 옥개석이 1개 굴러 떨어져 있다. 22 경주남산가이드북1 삼릉에서 용장까지 23

삼릉에서 용장까지 지바위골 가는길 쉽게 찾아가기 포석정 가는 도로 통일전 가는 도로 사자봉 갈림길로 가지 마세요 헬기장 마애석가여래좌상 내려다 보는 곳 800m 내리막길 용장골 시작 도로 길통제(돌아감) 삼불사 가는 길 개울건넘 바위 위로 올라감 120m 개울건넘 폐불 폐탑 500m 나무데크길 망월사 계곡 공동묘지 시내 무덤 주변에서 마애불을 올려다 본다 그냥 올라가는 등산로 내려가는 길이 매우 험하다 400m 이곳에서 능선으로 바로 내려가면 된다 70m (화장실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다) 400m 칠불암 가는길 간이화장실 (삼층석탑 올려다 보는 곳) 400m 설잠교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 (전망이 좋지 않음) 약수골 가는길 경주남산안내소 운영 1850m 서남산주차장 공휴일 요일_ 목/금/토/일/ 후 5시(하절기) 시간_ 오전 9시~오 (동절기) 오전 9시~오후 4시 150m 통일전주차장 요일_ 토/일/공휴일 시간_ 오전 9시~오 후 5시(하절기) 오전 9시~오후 4시 (동절기) 500m 경애왕릉 서남산주차장 용장리 남산안내소 24 경주남산가이드북① 용장주차장 언양 삼릉에서 용장까지 25

경주남산 유적 답사 안내 답사일 시간 답사유적 출발장소 삼릉골 매주 토, 일, 공휴일 13:30~17:00(토요일) 09:30~13:00(일/공휴일) 삼불사, 삼릉골 서남산주차장 삼릉 가는 길 매월 1, 3, 5토요일 13:30~17:30 월정교-삼릉 월정교 동남산 산책 동남산 코스 서남산 코스 남남산 코스 경주남산 달빛기행 매월 2, 4토요일 13:30~17:30 불, 탑, 미륵곡, 서출지 염불사지 통일전주차장 매월 2일요일 09:30~15:30 국사골, 지바위골 통일전주차장 매월 3일요일 09:30~16:00 매월 4일요일 09:30~16:00 삼불사, 삼릉골, 용장골 열암골, 칠불암, 심수골 서남산주차장 서남산주차장 매월 보름 직전 토요일 19:00(19:30)~23:30 별도공지 별도공지 사단법인 경주남산연구소는 많은 사람들이 경주 남산의 아름다움과 곳곳에 깃들어 있는 가치를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경주 남산의 문화유적을 널리 알리고, 유적을 보존하고 연구하며, 아울러 남산의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경주남산연구소는 남산안내소 운영, 남산유적답사, 남산달빛기행을 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남산의 문화유적 보존과 자연보호, 남산 관련 자료 수집과 정리 및 전산화 등 각종 연구 사업의 밑바탕이 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습니다. * 모든 답사는 참가비 무료이며 전문해설사가 동행하여 안내합니다. 답사 전날까지 코스별로 선착순 50명에 한하며, 참여신청은 (사)경주남산연구소 홈페이지(http://www.kjnamsan.org)에서 하시면 됩니다. * 여름방학 기간에는 주중에도 매일 운영합니다. 방학 중 월. 수. 금요일 삼릉골 코스 방학 중 화. 목요일 동남산 산책 www.kjnamsan.org kjnamsan@hanmail.net 경북 경주시 태종로 711번길 15(노서동) Tel. 054-777-7142 Fax. 054-776-7142 26 경주남산가이드북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