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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남대학교 산악회

2 2002년 제12집

3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그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도 잊었노라.

4 지도교수 인사말 산은 인생의 도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산은 無 言 속에서도 自 然 의 理 致 를 가르쳐주고, 또한 많은 智 慧 를 줍니다. 그러나 生 活 의 편이성 때문에 힘든 일은 멀리하고, 쉽고 달콤한 일만 추구하다 보니 산은 우리 곁을 떠나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학인들이 추구하는 산악 운동은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이해하고 또한 미지의 세계를 도전하며 강인한 인내력으로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데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하여 이번 악우지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 전남대학교 산악회는 긴 잠을 자다가 이제야 기지개를 켜면서 새로운 산악운동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남대학교 OB산악회 회원들을 비롯하여 박향식회장님의 열의에 힘입어 저희 재학생 산악회는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으면서 실행에 옮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발간한 악우지는 이 지방 산악운동에 조그마한 발자취를 남기는 일로 판단됩니다. 아무쪼록 아직은 서툴지만 꺼져 가는 대학산악회의 위상을 찾고 새로운 산악운동의 씨를 뿌릴 수 있게 힘을 모아 볼 것입니다.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2002년 11월 전남대학교 산악회 지도교수 이 계 윤

5 발 간 사 하계의 기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벌써 계절은 겨울이 되었습니다. 푸르름을 머금었던 산의 나무들은 단풍으로 그 자태를 곱게 바꾸어 입더니 이제는 낙엽이 지고 겨울을 나기 위해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산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지만 그 내면을 보면 다시 찾아올 봄을 위해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한해 동안 자신의 반성과 발전을 위해 준비하는 듯이 말입니다. 저희도 그러한 나무들처럼 지난 일년의 시간들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며 내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된 듯합니다. 한해를 끝마치면서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함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올 한해 동안 저희들이 해온 산행의 많은 기억들과 마음속에 있었지만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한곳에 모아 보았습니다. 부족하고 서투른 점은 많지만 저희들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소중한 것들입니다. 작지만 저희들의 마음이라 생각하시고 조금이나마 저희들과 같이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제는 하얀 눈이 내린 산으로 가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이젠소리, 바일찍는소리 헉헉대는 악우들의 소리들이 벌써부터 제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늘 하얀 산에 대한 갈증들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저희들의 발걸음은 힘찰 것입니다. 끝으로 이 책을 위해 많은 도움 주신 지도교수님과 OB회장님, 선배님, 재학생 여러분께 지면을 통해서나마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전남대학교 산악회 재학생회장 한 성 필

6 격 려 사 그동안 중단되었던 악우지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등산동호인은 폭발적으로 늘어가고 있으나 산악인 산사랑운동은 많이 부족하며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키고 있는 시점에서 전남대학교 산악회 악우지 발간은 신선하고 반가운 소식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전국유명대학의 학생산악회 해체와 신입회원을 확보하지 못한 대학산악부의 현실에서 산악회 홈페이지 개설과 더불어 새로운 진전이라 하겠습니다. 1958년에 창립된 전남대학교 산악회에서 배출된 회원들이 산악연맹 및 단위산악회에서 묵묵히 담당해 온 역할은 전국 산악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이 모든 것이 전남대학교 산악회에서 시작된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또한 여러분도 선배님들의 뜻을 이어 더욱 변화된 산악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침체된 전국 대학 산악회 활성화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全 南 大 學 校 山 岳 會 OB회장 박 향 식

7 차 례 지도교수님 인 재학생회장 인

8

9 2 제12집 2002년 동계를 다녀와서 1월 13일 일요일 동계장기산행에 들어가는 날이다. 식량, 장비, 대원, 최종점검을 하고 등산학교 동계반 장비와 자체장비를 분류를 해서 배낭을 쌌다. 오늘을 포함해서 7박8일의 등산학교를 하고 13박14일의 우리학교자체를 마치면 동계훈련등반이 끝난다. 처음 가보는 동계 훈련등반이다. 떨릴 뿐만 아니라 너무나 걱정이 된다. 무등경기장내 연맹에서 입교식을 하고 버스에 올라탄다. 창균형은 끝까지 제 발 다치지 말고 와라 하시고 연주는 언제 나을지도 모르는 퉁퉁 부은 발을 하고 나와서 꼭 자체 들어갈 테니까 믿고 잘하고 있으라고 한다. 00학번 44기 박지순 1월 14일 월요일 비 별명: 빡곰 새벽 5시에 설악동 C지구 야영장에 도착했다. 지난 여름에 아픔과 추억을 남겨 성격: 곰다움 두고 갔던 이곳에 계절이 바뀐 겨울에 다시 초보산악인이 되어 들어온다. 아직은 생활: 2년째 조장 밤처럼 어둡다. 겨울에 비가 온다. 기대감인지 아님 두려움인지 떨린다. 이번 겨울에는 이곳 설악산에서 지난 여름에 남겨 두고 온 두려움을 모두 걷어 수상: 갈 수 있을까? 동계등산학교 최우수상, 2년연 3보 이상 구보! 속( 01, 02) 대통령기 등산대 너무나 오래간만에 외쳐보는 말이다. 우린 3보 이상 구보를 외치며 이리저리 회 우승 뛰어다니고 각 학교별로 텐트를 부랴부랴 친다. 참, 올해는 특이하게 중 고등학생들이 몇 명 들어왔다. 우리학교에도 샛별이와 특기: 솔환이가 함께 하도록 배정되었다. 배낭나르기 등 힘쓰는 일 솔환이는 어제 아침에 장비점에서 본 적이 있다. 조대이공 형이랑 같이 있었기 때문에 선배인줄 알고 넙죽 인사하고 내 소개까지 했던 걸 생각하면. 꿈: 공업선생님으로 변신 아침에 떡국을 먹고 조배정을 받았다. 큰일날 뻔했다. 난 내가 떡국을 못끓인다 는걸 몰랐다.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다행히도 아는지 모르는지 경호형이 간맞추 고 대충 떡국을 끓여먹었다. 천만다행이다. 빡찌순 바보같으니. 난 내심 우리학교 형들이랑 한 명쯤은 같은 조가 되겠지 기대했었는데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러나 마지막 히 든카드 경환형이 우리조 부담임강사가 된 것이다. 푸하하~. 어쩌면 형들이랑 떨어져 있어보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 조는 조장 목대97 용기형, 조대98 상진형, 일반인 김수영언니, 순대01학번 인복 이, 해양대01학번 상현이, 고등학생 우연이, 그리고 나 빡지순 이다. 참 담임 강사님은 김미곤 강사님, 부담임 강사님은 방경환 강사님이다. 5박6일의 비박을 위한 짐분배를 하고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죽음의 계곡으로 떠난다. 작년에 동계반을 다녀온 연주 말에 의하면 첫날 죽음의 계곡까지 이동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가는 도중 중간중간 쉬고있는 다른 조 형 들이랑 마주쳤다. 힘들어하는 종천형의 표정. 크크 아마도 형이 포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형 우리 먼저 가 요 얼렁 오세요!!! 김수영씨랑 우연이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이런 산행은 처음일텐데 악으로 깡으로 아무런 말없이 너무나 잘 간다. 우연인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힘들단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우리 조는 별탈없이 죽음의 계곡까지 4시 30분쯤에 도착했다. 계곡에는 다른 연맹에서 먼저 야영을 하고 있 었다. 우린 계곡에서 조금 올라가서 막영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조가 있어 지도자반 형들은 마중나가야 했다. 난 우연이와 밥을 하기로 하고 다른 조원들은 비박지를 만든다. 나도 밥보다는 비박지 만드

10 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역할을 분담해야 했으므로 내가 밥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설악산은 굉장히 높은 모양이다. 다른 산에서 밥할 때보다 훨씬 밥이 되질 않는다. 자신 있게 밥한다고 했는 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윽~~~~. 내일부터는 코펠을 나눠서 밥해야겠다. 분임토의 시간에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불침번을 정하고 취침이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원래 는 동계 때는 물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올해는 너무 따뜻하기 때문이라며 올해 동계를 걱 정했다. 1월 16일 화요일 새벽에 비 갬 올해는 따뜻하다지만 왜이리 추운지 추위를 참아가며 오기로 자고 있는데 누가 흔들어 깨운다. 으~ 새벽2시 앞시간에 불침 서던 상현이다. 추워서 정말 일어나기도 싫다. 감은 눈으로 앉아있는데 비는 계속 쏟아지고 자꾸 천장에 물이 고여서 여기털 고 저기털고 하다보니 추운지도 모르고 한시간이 다갔다. 내가 하도 돌아다니고 물을 질질 흘리는 통에 형들도 한번씩 깨고, 다음타자 우연이를 깨우고 잠에 들었다. 자다가 우연이 땜에 한번 깼는데 우연이가 물을 털어내 고 있었다. 앉아서 졸고만 있을 것 같았는데 자식. 5시에 일어나서 떡국을 먹고, 비가 오는 덕에 오전에는 어제 어긋난 비박지를 다시 고쳐야 했다. 아래에 있 던 팀들은 새벽에 비 때문에 철수 했다고 한다. 오후에는 먼저 오장민 강사님의 동계장비 이론수업을 들었다. 나는 죽어라 잤다. 그 추운 곳에서도 나는 잘 졸았다. 가끔 형들의 이름이 불려지는 걸 들은 것 같다. 경환형 눈치가 보였으나 눈꺼풀이 이기고 말았다. 그리고는 설상 훈련을 했다. 어렵게 눈이 있는 곳을 찾아가 설상훈련을 했다. 올포인트 꽝꽝!! 발은 십일자!! 옆 조에서 성필형과 미애언니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성필형의 올포인트는 정말 올포인트다. 교육종료하고 다시 비박지로 돌아왔다. 날씨 때문에 일정에 변화가 생겼다. 비선대에 모든 식량을 데포시키고 2박3일 것 만 가지고 왔는데, 아무래 도 이곳 비박이 3박4일로 늘어날 것 같다. 식량점검을 했는데 가능할 것 같다. 오늘은 난 비박에서 빠졌다. 조 원들이 밥하느라 고생했다며 빼줬다. 진짜로 고맙습니다.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 참 첨 신어보는 이중화는 정말 무겁고 아팠다. 저녁때는 상진이 형이랑 눈에다 발을 씻었다. 실은 눈벽에다 대고 문질렀다. 킁킁 발냄새 진동~~~. 1월 16일 수요일 눈 와!!! 드디어 눈이 온다. 아이젠과 스패츠를 차고 죽음의 계곡으로 향한다. 설상 보행법과, 활락정지, 글리세딩, 확보물 설치 등을 배웠다. 활락정지는 정말 힘들었고, 솔직히 겁이 많이 났다. 글리세딩은 재미있었지만 다시 올라오는건 정말 끔찍했 다. 무엇보다 끔찍 했던건 김미곤강사님의 연이어 대는 선착순이었다. 계곡 저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선착순으 로 뛰어 올라 오는 건 으악!!! 아~~~지친다. 나보다 더한 놈은 아마도 우연이인것 같다. 자꾸 실수투성이다. 장갑이 떨어져서 앉았다 섰다, 말 잘못 해서 아이젠 꽝꽝!! 아빠한테서 관광이란 말만 듣고 왔다는데 얼마나 죽을 맛일까? 정말 어제까진 너무 편한 거였구나. 그래도 죽음의 계곡에서 건너보이는 반대쪽 설악산의 설경이 참 시원해 보인다. 역시 겨울엔 눈이 와야 하는구나. 아까 벗어둔 아이젠을 다시 신어야 하는데 끈이 얼어서 너무 짧아져 버렸다. 손으로 해도 안되고 결국은 이 빨로 녹여서 겨우 신고 내려왔다. 아이젠을 신고 보니 다들 내려가고 나만 계곡 중간에 서있었다. 이렇게 창피 할 때가. 우리학교 형들이 안 봤으면 좋겠다. 그럼 역시 또 지순이 곰이 제일 늦는구나 하겠지. 오늘은 물을 뜨기 위해 피켈을 가지고 가야 한다. 얼었기 때문에 얼음을 깨야 한다. 이런 게 동계라지. 물뜨

11 4 제12집 러 상현이와 인복이가 간다. 자식들 참 굳은 일도 잘하지. 저녁땐 이중화를 말리고 우연인 가죽화를 말리기 위해 수영언니가 여자들의 생리대를 거꾸로 해서 깔아줬다. 형들이 가르쳐 준 방법이다. 첨엔 참 민망했지만 뭐~. 오늘은 동계반 비박 마지막 밤이다. 솔직히 힘들기 때문에 이 밤이 빨리 가고 어서 비선대 산장에서 잠을 자 고 싶다. 흐흐흐. 1월 17일 목요일 어제도 눈이 많이 왔다. 오늘은 오전만 죽음의 계곡에서 설상 훈련하고 비선대로 하산한다. 오늘 아침도 우연이는 스패츠 차느라 고생하고 있고 수영언니는, 제 스패츠 어디갔어요? 용기형, 잘 챙기셔야죠. 나 역시 얼어붙은 스패츠를 최대한 펼쳐서 착용하느라 힘들다. 겨울엔 모든 게 얼어붙는다. 최소한 젖은 오버 자켓은 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베고 잤지만 스패츠는 쌕에 넣어뒀는데 전혀 녹지는 않고 얼어서 무슨 동태 같다. 오전 교육은 금방 끝나 버렸다. 모두 철수하고 다른 조는 행동식만 먹고 하산했지만 우린 따뜻하게 라면을 끓여먹고 철수하기로 했다. 라면이 진짜 맛있다. 비선대에 도착했다. 역시 비선대 오기전에 다리에서 오리걸음 과 성실, 인내, 안전! 을 여러 번 외치고서야 산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등산학교 교육생 3분의 1은 모두 목 이 잠겨서 소리도 엄청 이상하다. 저녁먹기 전에 우린 비선대에서 동동주를 마시고 편안한 분임토의를 나눴다. 다 좋은데 여기 동동주는 좀 내 비위에는 안 맞는 것 같다. 그냥 막걸리가 더 좋은데. 밥 먹고 점호 시간이 있다. 비박보다 안 좋은게 딱 한가지 있다면 점호인 것 같다. 우린 점호때 행동 느릿하게 했다고 한바탕 맨발로 뛰어다녀야 했다. 첨엔 끔찍했지만 모든 걸 포기하고 뛰다보니 참을만 하다. 내일은 토막골에 간다고 한다. 토막골에서 드디어 빙폭을 한다. 기 대된다. 1월 18일 금요일 맑음 새벽 5시에 일어나 떡국을 끓인다. 동계 첫날이 생각난다. 담날 아침에 떡국을 끓여야 하는데 소금이 없는 거다. 비상식을 터야 하나 걱정을 하는데 상진이 형이 어디서 소금을 한 웅큼 얻어왔다. 그때 생각했다. 상진이 형은 소금같은 존재같다고. 아끼고 아껴서 그 소금을 먹었는데 마지막날 상현이가 지 배낭에서 나왔다며 소금 한봉다리를 꺼내 놓는 거다. 내 원. 소금땜에 얼마나 궁상을 떨었는데...웬수. 오늘 아침도 상진이 형은 빨리 일어나서 떡국 끓이는데 코펠을 지키고 있다. 큰 소금 봉지를 옆에 두고. 첨으로 빙폭이란걸 하러 토막골로 간다. 오늘부터는 중.고등학생들은 기초반을 따로 만들어서 지도자과정, 일반과정 기초반으로 갈리게 된다. 토막골에 도착했다. 우린 편하게 갔지만 지도자 과정은 앞에서 러셀하느라 무척 힘들었던 것 같다. 도착하고 한참 지나서야 중.고등부들이 온다. 우연이의 어제와 너무나 다른 모습. 목소리도 커지고 행동도 빨라졌다. 많이 갈굼 당한 것 같다. 후후 토막골 상단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린 하단만 한다. 퀴즈를 맞춰서 빙폭 할 사람을 뽑는데 이론할 때 잠

12 잔걸 무척 후회하고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아래에서 아이젠 꽝꽝만 하고 있는 것 보단 빙폭을 하는게 더 좋았다. 솔직히 무서웠지만 그래도 다 올라가니까 너무 좋다. 올라가니 경준형, 경환형, 종천형, 경호형 많이 본 형들이 다 있다. 등산학교 4박5일 동안 다들 첨 본 것 같 다. 괜히 심술이 막 난다. 이 많은 형들이 다 어디 숨어 있었을까? 꼭 우리학교 자체동계같다. 대단한 것도 아 니지만 이런 우리 형들을 엄청 자랑스러워했었다. 항상 많은 형들과 왠지 폼나 보이는 든든한 백그라운드 같 은. 그런데 오늘은 그냥 심술이 난다. 동계반 동안 옆 텐트에 있으면서도 한번도 본 적없는 종천형, 어쩌다 경호형이 우리텐트까지 찾아왔다 했는 데 지순아 이 닦게 물 좀 주라. (그런데 솔직히 이 말도 좋았더라니.) 그리고 참 무심한 성필형. 좀 웃기는 생각이지만 내가 동계 들어올 때 내가 형들을 자랑스러워하고 고맙게 느끼는 것 만큼 나 역시 믿 음 가는 후배가 되고 싶다는 야무진 생각을 가지고 들어 왔었다. 근데 동계라는게 그렇게 반듯한 생각을 잊지 않고 살기가 힘들더란거지. 하루하루 날이 가기를 바래지는 거야. 쿠~, 오늘 하루도 다간다. 오늘은 내가 불침이다. 초번이다. 이건 경환형의 빽이다. 일부러 나 좀 편하게 할 려고 초번 세워놓은 거다. 얼른 조금 서고 자라고. 말 안 해도 이 정도는 알 수 있다. 몇 몇 아픈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잔다. 왠지 사람들의 자는 모습이 마음을 조금 아프게 한다. 아마도 피곤한 모습이 가장 숨김없이 내보여지기 때문 인지도 모른다. 침낭 위로 비춰진 감지 않아 달라 붙어 있는 머리카락들과 피로와 난로 열기 때문에 달아올라 붉게 부어 있는 얼굴들 그리고 코고는 소리...이런 것들이 왠지 찡하게 한다. 간식이 남기 때문에 두유를 몇 개 꺼내놨다. 나도 하나 마시고, 다음번 불침번인 우연이와 성필형을 깨우고 준비해둔 두유도 하나씩 건네주고 나도 잠자러 가야겠다. 내일은 오전에 토막골을 갔다가 이젠 정말 하산이다. 내 침낭이 다 젖어서 오늘은 수영언니 침낭을 같이 덮고 자기로 했다. 2002년 1월 19일 토요일 오늘도 토막골이다. 오늘은 빙폭을 두 번했다. 오전교육은 빨리 끝났다. 내려오면서 수영언니랑 동계반 끝나도 연락하자고 내일 헤어질 준비를 하며 내려왔다. 비박짐을 다 챙기고 이제 C지구로 간다. 저녁땐 모두 모여서 술이랑 고기를 먹었다. 참 언제 일주일이 다가나 했었는데 이렇게 가버릴 줄은 몰랐다. 너무 어려워서 얄밉기까지 했던 용기형도 이젠 제법 편해졌다. 그리고 아쉽다. 소금같은 상진이형, 너무나 굳 은 일을 잘해준 상현이와 인복이, 작은 체구에 악으로 깡으로 버틴 수영언니, 그리고 항상 우릴 챙기고 봐준 김미곤 강사님과 방경환강사님. 새삼스럽게 이렇게 아쉽게 느껴질 줄이야...참 이상하다. 어라 그러고 보니 비박 때는 술안마신다고 하던 우 연이 혼자 지금 홀짝홀짝 맥주 캔을 몇 개 비우고 있는거다. 이런 능청스러운 오늘은 각 학교 텐트에서 잠을 잔다. 우리도 돌아와서 형들이랑 소주 한잔을 더하고 자기로 했다. 솔환이랑 샛별이는 한 쪽 구석에서 먼저 잠들었다. 내 침낭은 여전히 젖어있기에 종천형 침낭을 같이 쓰기로 했다. 올 하계 용아장성에서의 비박이 생각이 난다. 너무 추워서 잠이 안 들어 뒤척이다가 종천형이랑 어깨를 맞대 고서야 잠잘 수 있었던. 오늘도 종천형의 체온을 빌러 자는군. 종천형이랑 산행을 많이 했나보다. 전혀 어색하지도 않고 따뜻하고 좋네. 울 엄마들으면 다 큰 여자애가 겁도 없다고. 집에 돌아온 기분이다. 모두 안녕히 주무세요. 1월 20일 일요일

13 6 제12집 날씨가 참 좋다. 따뜻하다. 오늘이 드디어 수료식이 있는 날이다. 모두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밥을 먹고 텐트를 철수한다. 치~~~, 왜이리 서운하지. 우리학교는 자체훈련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예비일이다. 수료식을 했다. 목대 소리 는 몸이 매우 안 좋은 것 같다. 수료식때 매우 신기한 일이 일어 났다. 음 최우수상을 지순이가 탄거다. 왜 탔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쁜 사람 준 것 같진 않은데. 그런데 좀 당황했던 건 상장을 주는데 생년월일을 불러줬다. 용기형이 듣고 놀랬던 모양이다. '너 도대체 몇 살이야? 하며 물어온다. 이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용기형은 몰랐던 모양이다. 놀랄 만도 하지... 기념촬영을 하고 제 23회 등산학교 동계반은 정말 끝났다. 우연이가 찰떡아이스 먹고싶다고 했는데, 야영장 오면 사줘야지 했는데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광주로 가는 사람은 차를 탔고, 나머지 자체가 남은 학교는 남아서 배웅을 했다. 나역시 오후에 있을 목욕과 외식을 기대하며 동계반을 마쳤다. 속초시내에 나가서 짜장면도 먹고 겜방도 가고 보충해야할 식량도 샀다. 간혹 길에서, 마트에서 타학교 사람 들을 만나곤 한다. 다들 외식하고 목욕도 하고 뽀얀 얼굴들이다. 히히 좋다. 오늘 저녁땐 경호형이 설거지도 해 줬다. 이 왠 호강이냐?!! 흐흐 1월 21일 월요일 맑음 오늘까진 예비일이다. 타학교들도 대부분 예비일이다. 식량을 점검하기 위해 있는 모든 식량을 텐트에서 꺼내서 말리고 수량을 파악한다. 햇볕에 한가롭게 식량 널어 놓는게 기분에 평화롭게 느껴져서 참 좋다. 해대 동기 석후가 와서 자꾸 말시킨다. 일은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그래도 만만한게 동기라고 이일 저일 시키 기도 한다. 인복이가 와서 간식을 한 주먹 들고갔다. 나도 저런 후배 있었음 정말 좋겠다. 저녁준비하기 전에 순천대 상건형이 놀러와서 형들은 고스톱한판 하고 있다. 난 인복이가 천만다행으로 차 한잔 하라고 불러줘서 인복이랑 청암대 01학번 이랑 순대 창고 텐트에서 쪼그 리고 앉아 차한잔 한다 간식쪼가리랑 함께... 크~~~딱까리들의 작은 즐거움이군. 인복이는 그 와중에도 이 텐트 저 텐트 왔다갔다하며 잔심부름을 하고 있다. 쿠~~~ 그러고도 시간이 조금 남아서 나만의 유일한 기쁨을 찾아간다. 지난여름에 길을 잃어서 알아두었던 비밀장 소... 설악동 성당. 하지만 성당문이 닫아져 있다. 하는 수 없이 성당 마당에 있는 성모상에 인사만 하고 돌아 온다. 좀 쓸쓸한 기분이 든다. 오다가 내 친구 진아한테 전화도 한 통화했다. 오늘밤도 안스런 조대 춘길이의 노랫소리가 설악동 야영장에 울린다. 1월 22일 죽음의 계곡으로... 아침 5시에 일어나 떡국을 끓여야 한다. 오늘부터 다시 산행이 시작된다. 으~~~바람은 왜이리 불어대는지 텐트 플라이 문은 고장나서 바람이 다 들 어오고. 결국 혼자 이리저리 버둥거리다 바람에 코펠이 넘어지고 말았다. 윽~~~열받아!!! 곧 종천형이 일어나 자리를 만들어 줬기 땜에 텐트 안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부터는 모든 학교가 운행시작이다. 순대도 목대도 모두 출발한다. 그러나 순탄치가 않다. 입산통제다. 우 린 모두 모여서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결국 렌트카를 빌려서 다른 계곡으로 가기로 하고 돈을 걷었다. 렌트카를 기다리고 있는데 통제가 풀려서 우

14 린 계획대로 죽음의 계곡을 향해 출발한다. 그 지겨웠던 계곡으로. 가는 길에 난 몇 번의 쇼를 해야 했다. 매표소를 들어 설 때부터 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무게를 줄여야겠단 생각에 식량을 너무 줄였고, 예 산이 머릿속에 들어와 있지 않아 어리버리해야 했다. 이런 것들이 날 너무나 한심하게 만들었다. 아니 한심했다. 너무 내 자신이 이런 상황이 답답하고 화가나 눈 물이 나와 버리려 한다. 경호형이 눈치채 버렸다. 내가 꽁해서 울고 있다는 걸. 나 땜에 분위기 침울해져 버렸다. 또 산행에서도 사고의 연속이다. 쉬는 동안 화장실 갈려다가 미끄러져서 물에 빠졌다. 장갑 젖고 이중화 속 으로 물도 들어갔다. 내가 진짜 동물처럼 느껴진다. 극구 이중화에는 물이 안 들어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너무 한심해서. 그리고 또 잘 챙겼다고 생각했던 미튼이 없다. 갈수록 태산, 첩첩산중, 한숨만 나온다. 이렇게 양폭에 도착했다. 하지만 죽음의 계곡은 들어가지 않았다. 왜냐면 사고가 났다. 눈사태. 타지방 연 맹이 훈련중이었는데 눈사태로 실종된 사람도 있다한다. 우린 양폭에서 1박하기로 했다. 저녁은 산장아저씨 배려로 매점 안에서 했다. 난 젖은 장갑을 말리고 밥이랑 국은 형들이 해줬다. 설거지도 경호형이 도와준다. 그래도 오늘은 맘이 무겁다. 낼은 여섯시에 출발하자는 성필형의 지시를 듣고 잠에 들었다. 1월 23일 다른식구들 들어온날.. 여섯시 출발을 위해 나는 네 시에 일어나서 떡국을 끓였다. 이젠 떡국이 끓이기가 진짜 편하다. 우린 네 시 사십분에 일어나 둘러앉아 떡국을 먹는다. 밖은 밤이나 다름없다. 어느 누구 말한마디 하지 않는다. 떡국이 입 으로 들어가는지 머리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약속이나 한 듯 형들이 한 명씩 떡국을 먹고 옆으로 쓰러진다. 에라 모르겠다. 난 내 할 일 다한 거다. 출발시간 못맞춘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도 쓰러진다. 결국 우린 8시에 출발한다. 첫 코스로 건폭을 했다. 미튼이 없어 장갑을 두 개 꼈지만 손가락이 깨질 것 만 같다. 그러나 티를 낼 수는 없다. 그럼 미튼을 두고 온게 더 불거지기 때문에. 계곡을 치고 대청을 향해 올라간다. 경호형과 종천형이 돌아가며 러셀을 한다. 경준형이 쉴 때마다 쵸코바 를 조금씩 잘라 준다. 이 험난하고 삭막한 산행에 경준형이 있다는건 나에게 너무나 큰 위로가 된다. 아이고. 겨우 능선을 밟는구나. 대청은 정말 추웠다. 기념사진 한 컷! 즉시하산. 양폭에 들러 맞겨뒀던 짐을 다시 짊어지고 부산나게 하산했다. 히히~~~소공원에서 버스도 다 끊길 무렵!! 왠지 우리를 보고있는 듯한 저분들은. 영필형과 헌주형이다. 와 신난다. 설악동에 들어와 보니 연주랑 현주언니 형관형이 들어와서 우릴 반긴다. 너 무너무 좋다. 아 이제 나도 동기없는 외로움은 안녕이다. 히히. 오늘밤은 먹고 마시고, 북대 알이랑 은미도 찾아와서 한잔. 축제의 밤이구나. 으하하 1월 24-25일 토막골 올해는 날씨가 따뜻하기 때문에 얼음이 얼어 있는 폭포가 거의 없다. 결국 우린 또 토막골로 향한다. 등산학교때는 토막골 상단에 폭포가 흐르고 있었는데 이젠 상단도 제법 얼어 있다. 왠지 자체 들어오고 기분이 좀 이상하다. 한번 주눅이 들어서 그런지 자꾸 기분이 축축 쳐지곤 한다. 이제 막 들어온 연주가 부러워 보인다. 막 산행을 시작하는 표정이 부럽다. 난 자체 첫날과 다르게 자꾸 형들 이 어려워져만 가는데. 형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시처럼 와서 박힌다. 이런 날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 했으면 좋겠다. 일박이일 비박중 첫날은 오후에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하단만 하고 내려오고 둘째 날은 상단까지 등반하기로 했다. 토막골 하단은 성필형이 선등하고 상단은 종천형이 선등하기로 했다.

15 8 제12집 종천형이 성필형 확보를 보는데 자일을 사려줘야 할 것 같다. 현주언니가 나보고 가보라는 눈짓을 하지만 나 는 가기 싫다. 뭔가 또 잘못하면 종천형이 또 한마디 쏴버릴 것 만 같다. 진짜 가기 싫다. 이런 내 맘을 전혀 모르는 현주언니 계속 눈짓하고, 또 모르는 연주 다른 일만 하고 있다. 결국 종천형이 불러서야 나는 가야 했다. 예상과 달리 종천형 오늘은 말투가 꽤 부드러운 편이다. 아마도 형 이 선등을 해야 하는 상단에 신경이 쏠려 있는 것 같다. 종천형도 긴장되는 모양이다. 형은 흥분 된 건지, 긴장 된 모습을 감추려는 것인지 토막골 중턱에서 짱구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고 있다. 물론 아래에 있는 연주나 현주 언니, 형관 형, 경준 형은 어이없어 다들 웃고 있지. 하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누가 뿌려놓은 것인지 핏자국이 있다. 윽. 올라간 건지 올려진 건지 그렇게 드디어 토막골 상단에 도착했다. 노래 한곡을 했고 종천형과 성필형은 짱구 춤을 추고. 오래간만에 실컷 웃었다. 일박 이일의 산행이 끝났다. 소공원으로 가는 길이 차분하다. 달빛 속에서 노래를 부르며 나가는 기분이 좋다. 1월 26일 토요일 토왕폭 구경을 갔다 왔다. 토왕폭 아래에는 엄청나게 큰 얼음덩어리들이 있었다. 모두 토왕폭에서 떨어진 거 라는데 맞으면. 우리가 갔을 때 한 팀이 등반을 하고 있었다. 고드름 하나하나에 바일을 걸고 올라가는 모습이 보는 사람도 긴장되게 만들었다. 멀리서 바라보았던 토왕폭은 한국화 같았었는데 바로 아래서 바라보니 외국의 산같다. 오후에는 비가 왔다. 우리가 동동주 한잔씩하고 소공원에 도착했을 때 는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 간단하게 눈싸움 한판하고 말뚝박기 한판으로 들어갔다. 왠일인지 오늘은 가위바위보가 잘 받는다. 계속우리 가 말 탄다. 승부욕에 불타는 우리의 형관형, 형팀이 이길 때까지 계속하려 하지만 계속 못 이긴다. 좋은 내 동기와 언니 형들이 있어 너무 행복하다. 1월 27일 일요일 예비일 동계의 마지막 예비일이다. 다들 오늘은 늦잠이다. 난 오늘 다른 사람들이 늦잠 자는 틈을 타서 시간 맞춰서 몰래 아침 미사나 볼 수 있을까 했다. 오늘은 주일이므로 산에 오면 절대 지킬 수 없는 날 이지만 왠지 한번 가보고 싶었다. 사실은 예비일이니 만큼 특별한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그 찬물로 머릴 감았다. 좀 깨끗하게 갈려고, 그런데 이런 내 맘을 알리 없는 우리의 몇 몇 형들 왠일이냐며 따라서 머릴 감는다. 그리고 진짜 절대 내 맘을 모르는 착한 경준형, 지순아 아침에 심심한데 밥이나 할까? 우린 아직 일어나려면 당당 멀은 종천형을 위한 미역국을 끓이고 아침밥을 했다.(오늘은 종천형 생일이다.) 착한 경준형과 함께. 예비일답게 오늘도 속초 시내로 나갔다. 점심은 탕수육에 자장면, 참 그리고 오늘은 종천형 생일이다. 형관형 이 케익과 샴페인을 쐈다. 생일축하노래도 불러주고, 케익불도 끄고 즐거운 파티를 할 수 있었다. 오후엔 목욕을 했다. 아침에 찬물에 머리 감았던 게 억울하다. 겜방도 가고 계절학기 성적도 확인하고. 좋 은 날은 다지나간다. 낼부터는 정말 빡센 4박5일의 종주다.

16 내일을 위해 오늘 저녁은 삼계탕이다. 1월 28일 월요일 오늘부터 설악동의 생활은 철수하고 종주에 들어간다. 다른 팀들도 이젠 거의 철수했다. 처음 들어올 때 그 북적거리던 야영장은 마지막 비박을 나간 팀을 기다리고 있는 몇몇 텐트들과 아침마다 밥 을짓고 저녁이면 술한잔에 얼굴 붉어져 노래에 이야기에 젖었던 기억만을 담고 있다. 우리 학교도 종주 중 짐을 최대한 간소화하기 위해 남은 식량을 정리하고, 빙벽장비와 필요없는 개인장비들 을 포장해 택배로 광주로 보낸 후다. 성필형이 지난 토왕폭때 다친 발목이 여전히 아파서 병원에 갔기 때문에 햇볕아래서 마지막 여유를 즐기고 있다. 한참 후에야 성필형이 왔고, 결국 성필형은 부상 관계로 종주에서 빠지기로 했다. 형도 우리도 모두 아쉬웠다. 그 동안 함께한 정과 습 관, 앞으로 종주의 추억이 얼마나 클지를 알기 때문에 또 마지막까지 함께함의 뿌듯한 정을 알기 때문에. 눈도 많이 녹았고 날씨가 풀렸기 때문에 이중화를 신 지 않고 운행을 시작했다. 3킬로그램 가까이되던 돌덩 이같던 이중화를 벗어 던지니 양말만 신고 걷는 것 같 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땅의 느낌도 시원하고 좋다. 정 C지구 야영장에서 말 날아갈 듯 하다. 야호!!!~~ 와선대쯤 갔을 때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갈 줄 알았는데 우연찮게 비박을 나갔다 돌아오는 전북대팀을 만날 수 있었다. 나의 동기 알이, 남주, 은미가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고 형들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우린 그 길목에서 마지막 이별주를 한잔씩 하고 서로의 장비를 교환하기도 했다. 난 이어밴드를 알이에게 줬고 알이의 동계의 흔적이 흠뻑 젖어있는 낡은 장갑을 받았다. 연주는 기창형한테서 네발 꼬마아이젠을 받았는데 꼭 아이젠에서 발톱만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꽤 귀엽다. 앞으로 유용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부럽구만. 사진 한 장 찍고 헤어졌다. 비선대에서 라면을 먹은 뒤 발이 가벼워선지 길이 좋아져서인지 처음 죽음의 계곡 갈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빨리 양폭을 지나 희운각에 도착했다. 작년에는 날씨 때문에 양폭부터 희운각까지 반나절 걸렸다던데. 처음에 오늘일정은 희운각에서 막영하자는 말이 있었다. 난 어디서 막영 하나 싶어서, 형 어떻게 하실거예요? 하며 흘낏흘낏 눈치를 봤다. 종천형 단호하게 얼른 출발해. 또 나의 그런 모습에 뭔가 화가 난 모양이다. 그런 것 같다. 가라면 가야지 뭐, 가면 되지 화낼 건 뭐람. 흠 하지만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아까의 그 힘은 다 어디로 갔는지 소청을 향하는 길은 쉽지가 않다. 밧데리가 다 되가는 모양이다. 소청 가는데 자꾸 미끄러지다 눈속에 얼굴을 파묻고 힘은 더 빠지고 꼭 기분에 덫에 걸린 곰같다. 연주는 날 위해서 노래를 불러준다. 윽~ 너무 감상에 젖어서리 더 처절하게 미끄러진다. 죽겠구만. 종천형, 노래 그만, 야 똑바로 안가?

17 10 제12집 으 비참해 작년으로 돌아가 버렸구만. 힘들게 소청에 올라섰지만 이번엔 바람에 추위에 얼어 죽을 것만 같다. 등산화도 다 젖을 대로 젖어서 발도 장난이 아니다. 우린 사진 한 장 박고 얼른 소청대피소로 향했다. 중청대피소로 안 간 것도 천만 다행이라 생각 한다. 눈사람이 되어 들어간 소청대피소는 천국이라 하기에도 표현이 다하지 못할 만큼 포근한 곳이었다. 헌주형은 연거푸, 아 우리 여자 후배들 대단하다. 며 예전에 여자에게 가졌던 편견이 사라진다는 칭찬을 하셨고, 물도 형이 직접 떠다 주셨다. 종천형은 역시 아까 희운각에서의 우리의 태도에 대해 지적했다. 등산화를 신어서 눈밟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며 의외의 감상적인 말을 했다. 나 역시 간만에 속이 확 풀릴 만큼 신나는 산행을 한 것 같다. 어쩜 낼부터는 정신이 확 풀려버릴지도 모르지만. 보름달이 떠서 눈이 더 추워 보인다. 바닥의 얼음도. 1월 29일 화요일... 한계령까지 다섯 시에 밥을 하기 위해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는데 영필형이 곧 뒤이어 일어나신다. 영필형은 원래 늦잠을 자지 않는 모양이다. 형은 바람 쏘인다며 밖에 나갔다오신다. 그리고 연주가 일어나 같이 밥을 해서 먹었다. 중청을 향해 가는데 참 사람이 간사하기도 하지, 여태 이중화를 신다가 단지 어제 하루 안 신었을 뿐인데 오늘 이중화를 신었더니 왜 이리 한발 한발이 힘들고 머리가 핑핑 돌고 무거운지. 중청까지 가는데 난 정말 정신을 못 차리고 어리버리 가야만 했다. 중청대피소 에서 난 짐을 다시 한 번 고쳐 싸고 다른 사람들은 대청에 다녀왔다. 이젠 정말 한계령을 향해 간다. 그 말로만 듣던 노래로 듣던 한계령. 끝청을 가다가 목포대팀과 해양대팀을 만났다. 서북주능종주를 하고 오는 모양이다. 상현이는 더 까메졌다. 용기형이랑 씩씩한 선화도 함께 있다. 무척 반갑다. 소리는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나갔다고 한다. 끝청에 올라와서 헌주형은 자꾸 독도실력을 시험해 보신다. 사실 난 완전 꽝이다. 무조건 몸으로만 산행을 해 왔다. 머리는 텅 비어 있다. 귀떼기청을 찾아보라고 하고 망대암산을 찾아보라고 하지만 나의 시각은 너무나 조잡하다. 헌주형은 저정도의 봉우리는 지도에 표시되지도 않는다고 시야를 넓혀서 봐야 한다고. 부끄럽지만 어쩔 수 있나, 사실인걸. 종주시작 전날 밤에 형들과의 대화가 문득 문득 떠오른다. 경호형의 그 따갑던 말 산행에서 체력은 그렇다 치고, 너희들 산행 지식이 얼마나 되는지 너희 수준에 맞게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던. 기분 좋을 리 없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날씨는 무척 따뜻하다. 맑아서 앞의 정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참 예쁘다. 운행 중엔 덥지만 10분의 쉬는 시간 엔 그 땀식는 기분이 싸늘한 게 으~~~ 라면을 먹으며 유자차도 마셨다. 참 라면을 먹는데 헌주형이 형의 예쁜 배낭을 앉으라고 깔아주셨다. 황송하긴 했지만 예쁜 배낭에 앉아보니 기분은 좋았다. 점심을 먹고 이젠 한계령을 향한 내리막을 내려간다. 헌주형의 그 걸죽한 산가 메들리를 들으며, 마지막으로 영필형의 멋드러진 한계령 노래를 들으며 한계령에 내려선다. 한계령 휴게소가 있다. 맛있는 거 먹었으면 좋겠다. 키~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호프 영필형과 헌주형이 술이 랑 전이랑 오뎅이랑 맛있는 걸 사주셔서 실컷 먹고 마셨다. 그리고 다시 정자로 올라와 부리나케 텐트를 쳤다. 정말 추위에 빠르게 텐트 치고 밥을 준비하는 건 정말 으~ 짧은 순간이지만 짜릿하다. 5인용 텐트에 열 한명이 구겨 앉아서 밥을 먹고 이야기한다. 오늘은 연주가 몸이 많이 안 좋다. 이유인즉 여자이기 때문에 한달에 한번의 행사가 찾아온 것이다. 연주가 너무 힘들어했고 형들의 이해가 필요했기에 하는 수 없이 현주언니가 종천형에게만 이 말을 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종천형, 아주 당당한 목소리로, 아~ 연주가 오늘 여자들 그 날이랍니다. 그러니 우리 이해해 줍시다.

18 텐트 안은 조용해 졌다. 종천형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긴 여기에 쓰고 있는 나도 좀 그렇군. 할 수 없지 뭐. 종천형한테 배운 게 이런 거니까. 우린 장민형의 배려로 관리공단 사람들의 처소에서 잘 수 있게 되었다. 따뜻한 보일러와 텔레비전까지. 처 음 잘 땐 정말 좋았다. 그러나 얼마쯤 잤을까? 현주언니랑 나는 윽~놀래며 일어나야 했다. 장민형의 팔이 현 주언니 등 밑을 지나 내 등 밑까지 들어와 꿈틀거렸으므로. 그러나 정작 본인은 편히 자고 있는 장민형이 좀 얄밉다. 1월 30일 수요일 시커먼 새벽에 일어나 물을 떠오는 일은 역시 끔찍하다. 아래 텐트에서 코펠과 밥할 거리를 챙겨서 올라와 아침을 했다. 보니 헌주형의 배낭 옆에 두유가 나와 있다. 연주랑 나랑 둘이 한 봉지씩 얼른 마셔버렸다. 경호형이 오늘은 무척 안 좋아 보인다. 어젯밤에 젖은 침낭을 덥고 잤다고 한다. 텐트는 무척 추웠을 텐데, 경호형의 힘들어하는 모습은 첨 본다. 맘이 아프다. 밥을 먹고 휴게실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사랑해도 될까요 라는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으 ~ 이 순간이 계속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린 또 눈을 헤치고 망대암산을 향해 가야지. 열심히 헤치고 또 헤치고 지나갔다. 눈도 눈이지만 망대암산 가는 오전의 길은 암릉구간이다. 으 얼어있는 바위에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고 배낭 부리고 올라가서 끌어올리기를 몇 번 한 후에야 우린 겨우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배낭을 부리고 점심을 준비하는 그 순간은 정말 짜릿하다. 물을 올려놨는데 코펠에 물이 조금밖에 들어있지 않다. 얼른 다 올려놓은 다음에 물을 더 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경호형한테 걸렸고 종천형의 이것들이 빠졌네! 소리를 듣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얼른 밥을 먹고 배낭을 싸고 사진한번 찍었다. 형관 형이 어깨를 툭 친다. 힘내라는 무언의 격려로 느껴진다. 나도 언젠가 나의 후배에게 힘내라고 어깨를 쳐줄 수 있는 선배가 될 수 있을까?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는 정말 금방 간다. 종천형도 이젠 길이 다 완만할 거라며 망대암산 가기 전에 적당한 곳이 있으면 막영 할 만한 곳이 있으면 찾아보라고 말해준다. 아까 화낼 때랑은 사뭇 다른 부드러운 말투다. 망대암산을 눈앞에 두고 텐트 두 동을 넉넉히 칠 수 있는 널찍한 곳이 나왔다. 우린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웠다. 눈을 퍼 모아서 물을 만들고 연주랑 난 밥을 하는데 자꾸 잔손이 많이 가고 밥이 빨리 되지 않는다. 달이 참 밝다. 음 화장실 가기가 참 힘들군. 오늘은 형관형의 임용고시 최종 합격자 발표날이다. 헌주형이 전화로 확인을 해본다. 우린 모두 긴장이다. 물 론 형관형만 못하겠지만. 아쉽게도 불합격이란 소릴 들어야 했다. 지금 형관형 기분은 어떨까? 많이 아주 많 이 허탈하겠지? 힘 빠지겠지? 어쨌든 겉모습으론 잘 모르겠다. 다른 형들은 먼저 들어가 자고 헌주형과 영필형, 종천형만 남아서 숯불에 라면을 끓여먹었다. 달빛과 빛나는 눈과 모닥불과 라면, 그리고 산의 낭만에 젖어있는 헌주형의 말과 표정이 분위기를 한층 더 자아낸다. 난 구멍난 옷을 조금 꿰메고 나 역시 잠에 든다. 오늘은 헌주형과 영필형은 이 시간에 이 분위기에 잠자는 게 너무나 아까우신 듯 좀처럼 주무시려 하지 않는다. 1월 31일 목요일 드뎌 점봉산을 향해 간다. 점봉산만 넘으면 이제 우리의 동계는 끝이 난다. 형관형이 뒤에서 답답했는지, 기분이 좋아서인지 자꾸 한번만 조장하게 해 달라고 하더니 함성을 지르며 앞 장서서 뛰어가 버린다. 뒤에서 보는 모습이 참 명랑하게 느껴진다. 점봉산 가는 길은 마치 과수원 같았다. 얼음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얼음 열매들. 지나 칠 때마다 쨍그랑 쨍그랑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린다. 점봉산에서 점심을 먹었다.

19 12 제12집 오늘의 막영지, 단목령을 향해 내려간다. 시원하게 엉덩이를 깔고 내려가는 그 기분이란. 히~ 다행이다. 이 길고 긴 내리막길을 내가 올라가지 않고 내려가고 있다는 게. 단목령에 도착했다. 꿈만같다. 아~~드디어 동계의 종주가 막을 내리는 구나. 그런데 오늘 좀 힘들었나보다. 막영 준비를 하는데 머리가 핑 돌고 너무 한기가 들고 몸이 좀 이상하다. 그럴 수록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아 텐트 안으로 빨리 들어가고 싶은데 이중화 끈이 얼어서 좀처럼 풀러지지가 않는다. 속도 모르는 현주언니, 내가 텐트밖에 있다는 이유로 이것저것 가져오라고 시킨다. 으~ 돌겠다. 종천형과 경호형이 물 뜨러 갔다가 단목령 아저씨를 모시고 올라왔다. 밥도 많이 해 놨는데 우린 밤에 대이 동을 해야 했다. 내가 어떻게 그집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미친 듯 뛰어서 도착했다. 아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정말 그곳은 그림 같은 집이었다. 특히 그 뜨끈뜨끈한 아랫목은. 아~~~ 말로 표 현할 수가 없다. 아저씨가 고기를 내주셔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술도 마시고 모두들 술기운이 올라와서 얼굴이 다들 불그스레하다. 정말 놀라운 도균형의 그 화려한 사회!!! 정말 도균형의 분위기 띄우는 솜씨는 장난이 다니다. 정말 이 밤을 뜨겁게 달궈놓았다. 마지막으로 쾌지나 칭칭나네 를 신나게 불렀다. 그리고 그 노래에 맞춰서 산행반성도 함께 했다. 그 동안 특히 오늘 현주언니한테 했던 뚱한 행동을 꼭 사과하고 싶었다. 흥에 겨웠던 형관형! 내일 아침밥은 우리가 한다. 라고 해버렸다. 연주랑 나는 악쓰고 박수치고 난리가 나버렸다. 행복한 밤이 간다. 아 정말 잊을 수 없는 밤이 될 것 같다. 이 자리에 없는 성필형이 아쉽다. 2월 1일 마지막날 아침부터 부시럭부시럭 소리가 시끌시끌하다. 도균형이 형관형 깨우는 소리, 또 형관형이 경호형 깨우는 소리, 결국 95형들끼리 누가 텐트까지 가서 쌀이 랑 코펠이랑 가져올지 가위바위보하는 소리. 연주랑 나는 웃음이 나오는 걸 꾹 참고 둘이 손 꼭잡고 절대 일어나지 말자고 한다. 오늘은 단목령 아저씨 생일이므로 미역국을 끓였건만 아저씨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시고 우리끼리 식사를 하 고 일어났다. 늦게 일어나신 아저씨와 사진 한 장 찍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부랴부랴 텐트를 철수했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다. 형관형의 수통이 없어진 거다. 우린 험한 분위기 속에 텐 트를 풀었다 쌌다를 해야 했다. 그래도 수통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린 오색으로 떨어졌다. 우리의 동계는 정말로 이제 막을 내렸다. 처음 와본 동계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춥고 힘들어 오늘 하루가 어서 가기를 빌며 오늘까지 왔다. 처음 들어올 때의 다부진 마음과는 다르게 많이 약해지기도 하고 형들의 한마디에 상처도 받고, 또 한번의 다독거림에 감동도 받았다. 현주언니와의 무언의 트러블도 있었다. 항상 함께 산행을 해왔는데 이젠 각자의 생 각이 생긴 모양이다. 아니 어쩜 나의 생각이 생긴 것 같다. 언니의 방식에 반항하고픈 나의 방식을 갖고픈. 형들과의 대화에서 반성도 했고 서운함도 느껴야 했다. 이번 산행이 나에게 산악회적인 면에서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겨울을 지냈으므로. 가는 시간을 붙들고 싶다. 이제 겨우 2학년이 지나갈 뿐인데 왜 이리 시간이 아쉬운지 모르겠다. 이 산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도 하루하루가 떠올라 자꾸 웃음이 나올 것 같다. 그리고 좀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항상 산행 중에 고생도 즐거움도 때론 미움도 함께 하는 형들, 언니들, 연주 모두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 행복의 큰 부분이 산악회식구들과 함께 하고 있네요.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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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4 제12집 경환형 등에 업혀서 이랴이랴~(신입생 환영등반) 입회원서를 쓴지 얼마 되지 않아 난 신입생 환영등반을 가게 되었다. 현주누나가 그날 산행은 산악회의 산행 중 가장 부드러운 산행이라고 했다. 평소의 산행은 어떻길래???? 어쨌든 아침에 산수오거리에서 나는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온 건가 맘이 불안했지만 곧 있어 형들이랑 누나들이 오셨다. 낮선 얼굴이 많았다. 난 현주누나랑 종천이형이랑 도균이형이랑 경환이형이랑 밖에 몰랐었는데 거 기에는 지순이누나, 현주누나, 원석이, 가영이, 복희, 장민이형, 영필이형, 경준 이형, 준현이형, 선희누나, 경호형, 경환이형, 도균이형등. 너무 많이 오셔서 헷갈렸다. 그리고 참 신기한 것이 여느 동아리와는 다르게 46기 02학번 손용주 나이 드신 분도 많았다. 어쨌든 우리는 산을 올라갔다. 현주누나가 산을 올라 갈 때는 한 줄로 서서 올라간다고 하셨다. 생활신조 그리고 쉴 때도, 출발할 때에도 구호를 외쳤고 우리는 그것을 따라서 했다. 산악회에 뼈를 묻겠다 그리고 물마실 때에도 윗기수 형들이랑 누나먼저 드리고 우리가 마셨다. 산악회 의 규칙이 그때는 나에게 참 낮설게 느껴졌었다. 김가에 이은 산악회산행최 산을 올라가면서 지순이 누나가 그러셨다. 산행은 즐거워야 한다. 자, 내가 다참가. 먼저 노래를 부를테니까 뒷사람이 하나씩 부르도록. 지순이 누나는 꿈의 궁전 39기 김현준회원과 국화빵 을 불렀다. 그리고 가영이가 지순이누나 다음 자리라서 불러야 되는데 갑자기 궂은 일을 마다 않는 당대 가영이가 나랑 자리를 바꾸어 버렸다. 하지만 난 노래를 준비한 것이 있었기에 최고의 따까리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가영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달팽이를 불렀다. 그 노래 고운심성이 앞날을 기대하 는 후에 가영이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모두 다 노래를 부르고 우리는 신선 게 함. 대에 올랐다. 대개의 신입생 환영등반을 여기에서 한다고 했다. 형들이 이곳의 지뢰(?)를 조심하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건 소똥이었다. 곳곳 에 소똥이 깔려있었다. 우리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먹을 것을 뺐다. 술이랑 초밥이랑 과일이랑 김밥 등등 이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게임을 했다. 스테레오 게임을. 난 그 게임을 몰랐기에 술을 엄청나게 마셔야 했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마음놓고 논 것 같아서 즐거웠다. 그 다음은 축구를 했다. 난 축구를 못한다. 하지만 술기운에 열심히 뛰었던 것 같다. 그리고 복희와 가영이의 철벽수비가 커서 의외로 득점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즐긴 후 말뚝박기 놀이를 했다. 내가 엉덩이에 살이 없어서 말뚝을 박고 있던 형들이 아팠던지 나를 뾰 족 궁뎅이 라고 부르셨다. 그 후로 OB형들께서는 내 기억이 나지 않으면 뾰족궁뎅이로 부르셨다. 그렇게 말뚝박기에서 진쪽이 이긴 사람을 업어주기로 했었다. 경환이형께서 나를 업어 주셨는데 술기운에 난 경환이 형 엉덩이를 때리면서 이랴이랴! 해버렸다. 헉! 내가 왜 그랬을까????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 질 않는다. 필름이 끊겨 벼렸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날은 정말 즐거운 날이었다.

22 첫 산행의 설레임...(십년지우) 드디어 내가 첫 산행을 간다. 산행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암벽도 타고, 선운 사도 갈꺼다. 가기 전날, 산악회 동방에 가서 짐을 챙기고, 연주언니한테 여러 가 지 도구들 이름과 팔자매듭, 옭매듭을 배웠다. 새로 들어온 여자 동기 2명도 볼 수 있었다. 이번 주는 모두 약속이 있어서 못갈 것 같다고 하니 무척 아쉬웠다. 이번 주에 가는 동기 중 나만 여자여서 약간 심심할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는 내일 암벽탈 생각에 벌써부터 내 마음은 산에 가 있었다. 기숙사의 아침이 어 느 때보다도 빨리 찾아온 토요일. 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새로운 얼굴을 2명이나 보았 다. 같은 46기 동기라고는 하지만 얼굴들이 범상치 않다. 나중에 알아보니 나보다 나이가 한두 살 많았다. 흠. 요즘 항상 고민하는 게 산악회 사람들을 만나면 호칭을 어떻게 할지, 존대를 써야할지, 정말 헛깔린다. 46기 02학번 김가영 대충 반말을 섞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버스를 타고 광천 터미널로 가서 다른 산악회 사람들을 만났다. 내 짐이 제일 별명: 무거운 줄 알았는데 지순언니 배낭을 보니까 장난이 아니다. 어떻게 저걸 짊어질 기숙사 추리닝, 거지, 김가 수 있을까? 나중에 내가 저런 모습이겠지?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있는 내 모습 을 상상해 보았다. 산악회 사람들을 한 번 만났다고 해서 친해지는 것은 역시 아 좋아하는 것: 니었다. 이 낯선 사람들과, 낯선 분위기에 빨리 대처를 해야겠다. 내 성격상 천천 냅다 뛰기,밥먹기,잠자기 히, 서두르지 말고 편하게 친해지자! 그렇게 생각하고 처음부터 쓸데없는 말들은 생략했다. 산에 가는 이유: 밥먹으러 장성을 들러 고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홍길동의 고장, 장성! 전에 메일을 보내던 친구가 장성에 살았었는데 그 장성이 홍길동 출몰 지역이 입회동기: 였나? 지나가다 보니 보해소주 공장도 있었다. 멀리서 보니 소주 공장도 멋있어 테니스 칠까 산에 갈까 20분 보였다. 내가 살던 목포보다는 논밭이 더 많은 것 같았다. 편안해 보이는 장성의 고민끝에 먼저 산악회방에 들 분위기가 자꾸 내 눈을 빼앗아 갔다. 다음 번 그 친구한테 멜을 보낼 때에는 장성 어옴. 그 뒤로 딴데는 귀찮아 에 대해 아는 척 좀 해야겠다.^^ 서 안갔음. 고창 할매바위는 내가 생각하던 동방 인공 암벽과는 터무니없이 달랐다. 진짜 산을 깎아 내린 거칠어 보이는 암벽! 아~ 가슴 벅차 올라! 암벽 앞에 사람들이 파 요즘 좋아하는 가수: 서 만든 것 같은 호수도 암벽타는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이브, 부활 (CD한장 부탁) 어제 가르쳐 준대로 벨트를 메고 화이바를 쓰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형과 언니 들이 암벽을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오메~ 저걸 어 떻게 올라가지? 나는 죽었구나. 처음 타는 우리들도 두세 번씩은 모두 올라가라는 말에 다시 한번 머리가 어지 러웠다. 동기 선호가 맨 처음으로 올라갔다. 그 다음으로 내가 올라갔는데, 내 쪽은 선호가 올라간 곳보다 좀 더 쉬웠다. 어쩌다 보니 내가 먼저 올라가고 말았다. 다들 잘 한다고 칭찬해주셨다. 나는 그게 정말 잘하는 건지 알고 암벽을 우습게 볼 뻔했다. 두 번째로 탄 암벽은 첫 번째 것보다 오른쪽에 있고, 좀 더 높았다. 지순 언니가 내려오고 내가 올라갔다. 자꾸만 외쳐지는 슬립! 마지막 부분이 제일 어려웠다. 몇 십분을 암벽을 더듬으며 갈 곳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내 팔이 조금만 길었더라 면 저길 잡을 수 있을 텐데. 어렸을 때 운동을 많이 하지 못한 게 한스러웠다. T.T 포기하려고 했을 때 확보자인 언니가 많은 도움을 주셨다. 정말 고마웠다. 끝까지 올라가서 뒤를 돌아봤을 때는 별로 실감이 안났다. 솔직히 말하면 에게게, 이 정도 높이밖에 안된 걸 나는 왜 이렇게 쩔쩔맸나? 하고 생각했

23 16 제12집 다. 세상사는 것도 마찬가지일텐데. 올려다볼 때는 너무 높지만, 막상 올라가 보면 별거 아닌 것들. 그것들을 위해서 나는 얼마나 힘을 들이며 올라가고 있을까? 내려와서 손 마디마디를 보니 다 찢어지고, 퉁퉁 부어있었다. 아쉽지만 암벽을 타려면 손 미용에는 신경을 꺼야겠다. 오후동안 동기들과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사람을 사귄다 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암벽 후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거기서는 10년지우( )라는 것을 한다. 처음엔 그게 뭔지 몰랐지만, 가서 보니까 사람들이 장난이 아니게 많다. 20기 선배들까지 만났다. 산악회는 정말 대단하다. 내 친구들이 들어간 동아 리는 고작 보았던 선배가 01, 00학번이었는데, 40이 넘으신 선배들까지 본 내이야기를 하면 다들 입을 벌리겠지? 흐흐, 자랑거리가 생겼다. 술자리에서 술을 돌리는 것에 이젠 많이 익숙해졌다. 많이 마셔보지는 않았지만, 난 참 술에 강하다. 내가 잘 조절을 하는 것인가.-_- ㅋ 아무튼 별 탈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모두들 건강하니 다행이다. 또다시 해가 밝았다. 오늘은 선운사에 올라간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동백꽃이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집에서 키우던 동백꽃 뿌리와 비교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두께다. 아직 위에까지 꽃이 피지 않았지만, 아래쪽 동백꽃 숲 앞 에서 산악회 사람들과 사진도 찍고, 물도 마시고, 절 안도 구경해 보았다. (사진발은 내가 잘 못 받는데 잘 나올지 걱정이다) 우리나라에는 교회와 절 중에 어느 것이 더 많을까? 갑자기 떠오르는 엉뚱한 물음! 아무리 19C부터 교회가 많이 생겼다고 하지만 옛부터 우리 나라는 불교국가가 아니었나!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 곳곳의 산 속에 절이 더 많이 숨어있을 것 같다. 도솔암을 지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왼쪽에 나 있는 조그만 문으로 들어갔다. 위쪽으로 쭈욱 올 라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끝이 없을 것 같은 그 계단을 올라가다가 옷에 다 베어버렸다. 하나의 소원이 이루어진 다 그 사원 앞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원래 그런 거 믿지는 않지만 빌어보는 게다. 내가 앞으로 선택할 그 길 에 내 스스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 다른 사람들은 이 앞에서 어떤 소원을 빌고 가는 걸까? 참 궁금하 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은 정말 시원했다. 바람이 옷의 오른팔로 들어갔다 왼팔로 나간다는 지순언니 말에 그대로 따라했더니만 사실이 아니었다. ㅡㅡ; 산에서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의 2배의 속도로 내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산악회 활동을 하면 서, 많은 산들을 돌아 다녀 보고 싶다. 그게 내가 이 동아리에 들어온 목적이니까. 광주로 돌아오기 전 점심은 소내장탕! 국물도 참 맛있었다. 국물에다만 밥을 먹은 것 같다.ㅡㅡ; 산악회는 공동체 생활을 하니까 목욕탕도 같이 간다. ㅋㅋ 재미있다. 산악회에 들어오면서 내 생활은 많이 달라 지기 시작했다. 산에 올라가면서 느끼는 점도 많고, 사람도 전보다 더 많이 알고, 서로들 챙겨주며. 아쉬운 점은 스케줄 관리가 약간은 힘들어진다는 것. 하지만 내 성격 그대로 생활할 수 있는 곳 같아서 정말 맘에 든다. 히히~ 다음 번 산행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부터 내 맘은 다시 설레이기 시작한다. 선운사

24 월출산 암벽등반을 다녀와서 46기 손용주 4월5일 맑음 오늘은 식목일이다. 그래서 아침에 월출산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난 신입생 환영 등반 이후 처음으로 가는 산행이었다. 또한 암벽등반도 처음이었다. 난 처음에 산악회에 들어올 때 암벽을 하는 줄도 몰랐었다. 어쨌든 이 번 산행은 저번 신입생 환영 등반과는 달리 46기가 참 많이 참여했었다. 준영이, 가영이, 성관이, 원석이, 민재, 그리고 나. 월출산이 광주와 의외로 가까웠다. 그리고 터미널과도 가까웠다. 우리는 차에서 내린 후 월출산을 향했다. 그렇게 가다가 무슨 이유였을까? 지순이 누나가 갑자기 배낭을 맨 채로 앉더니 모두다 오리걸음을 하게 되었 다. 내가 제일 뒤에서 따라가는데 정말 디지는 줄 알았다. 날씨는 덥고 배낭은 무거워 죽것는디 오리걸음이라 니. 그렇게 가다가 다시 일어서서 월출산을 향했다. 그렇게 가서 우리는 조를 나누어서 암벽길을 향했다. 나랑 준영이는 우선 검정 슬랩을 했다. 경환형이 검정 슬 랩은 원래 색이 까만색인데 너무 등반자가 많아 색이 변했다고 하셨다. 슬랩을 하기 전에 경환이형에게 교육을 받았다. 올라가서는 제일 먼저 자기 확보를 하고, 암벽을 할때는 발을 11자로 하고, 등반! 의 3요소는 리듬, 밸런스, 삼지점확보라는 것 등등. 그때 난 타대형의 암벽화를 신고 올랐다. 고무라서 그런지 코스가 미끄러워도 그렇게 잘 밀리지 않았다. 그렇게 검정슬랩를 한뒤 우리는 위치를 바꿔서 전 남슬랩를 했다. 거기에서 경준이형께서 확보를 보고 계셨다. 내가 먼저 올라갔는데 경준이형이 나보고 준영이 확보를 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항상 오른손은 놓으면 않된 다고 하셨다. 확보 중에 내가 자일을 빨리빨리 당겨주지 않아 준영이가 매우 불안해했다. 그리고 경준이형에게 자일 던지는 법도 들을 수 있었다. 그 후로는 시루봉을 했다. 나는 공전길을 갔는데 한참 잘 가다가 한곳에서 막 혔다. 지순이 누나는 거기에 손톱만한 곳이 있으니깐 잡으라 하시는데 도저히 잡을 데가 없었다. 거기에서만 20~30분정도 게기고 나니깐 경환이형이랑 지순이누나도 포기하셨는지 그냥 나를 끌어 올려 주셨다. 참으로 안 타까운 일이었다. 그날 저녁 우린 술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게임을 했다. 스테레오를. 그날의 도균이형의 모션은 정말로 특이했 다. 앗싸 쪼그려뛰기. 모두가 다른 사람 것이 생각이 안나면 그걸 했다. 정말로 함부로 해서는 안될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품바 게임을 하려는데 방법의 차이가 있었다. 법대는 한템포가 빨랐는데 자연대는 한템포가 느렸다. 결국 우리는 법대로 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자연대 방식이 맞았었다. 그래서 민재는 엄첨 분해했었다. 어쨌든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4월 6일 오늘은 릿지를 하게 되었다. 나랑, 민재랑, 지순이누나랑, 경환이형이랑, 종천이형은 사자봉으로 가고 다른 나 머지 사람은 형제봉으로 갔다. 날씨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햇볕은 쬐지 않았지만 비는 내리고 있지 않았으니 까. 우리는 처음 위험한 곳은 안자일렌으로 갔다. 조금씩 올라가는데 가스가 몰려왔다가 물러갔다. 그와 동시에 영 암의 풍경이 보였다가 가렸다가 했다. 종천이형은 그 광경을 보시면서 너희가 산악회에 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 런 모습을 볼 수 있었겠냐고 하셨다. 정말 맞는 말이었다. 계속 가다보니 어려운 코스도 나오고 그래서 난 오토 바이를 때때로 타야했다. 그리고 가끔씩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부니깐 점점 추워졌다. 옷이 그렇게 따뜻한 것이 없 어서 정말 고생했었다. 암벽등반할 때는 춥지는 않았지만 몸이 힘들었고, 올라와서 쉴 때에는 몸은 편했지만 추 웠다. 너무 추워서 원석이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나랑 같이 붙어서 있었다. 난 그 외에

25 18 제12집 도 추워서 박수도 치고 앉았다 일어났다가도 했다. 밑에 서 생각하면 웃긴 일이었지만 위에서는 그게 자연스럽 게 됐다. 계속 가는데 경환이형께서 화를 내는 횟수가 늘어났다. 점점 밤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었다. 릿지를 하다가 밤이 되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 때문에 저녁이 되기 전에는 하강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재빨리 서둘렀다. 그래서 거의 어두워 졌을 때쯤 우리는 하강을 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그때의 산행은 정말 평생 잊지 못할 산행인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암 벽이나 바위를 하면 꼭 사자봉이 떠오른다. 그리고는 다 음번에 가는 사자봉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며 꼭 다시 그곳에 가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4월 7일 오늘은 시루봉을 하기로 했다. 날씨가 무척이나 맑았다. 사자봉을 하고 난 후라서 그런지 비만 않온 것에도 감 사했다. 그 날은 정말 타대 사람들이 참 많아서 복잡했었다. 난 그날 추울까봐 옷을 하나 가져갔었다. 2피치정도 올랐을 때 교대의 얘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좀 추었지만 나 혼자 옷 입기에도 좀 그래서 입지 않고 있었다. 그 런데 그 모습을 본 지순이 누나는 나에게 누나 옷을 주셨다. 그래서 난 내 옷을 영구에게 주고 난 지순이 누나옷 을 입었다. 나중의 얘기지만 지순이 누나는 옷이 없어서 엄청 떨었다고 하셨다. 헉! 누나 미안해요. 어쨌든 그 렇게 3피치까지 올랐다. 거기에서 간식을 먹고 뒷쪽길로 하산을 했다. 거의 하산을 했을 때쯤 약간 애매한 길이 나왔다. 두 갈래 길이었는데 한쪽 길은 약간 빨리 갈 수 있지만 약간 위험한데 반해 한쪽 길은 느리지만 안전한 길이었다. 가영이가 약간 위험한 곳으로 갔는데 중간정도 내려가다가 갑자기 스르슥하고 미끄러져 버렸다. 그 순 간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스쳐갔다. 그런데 미끄러진 순간 밑에서 계시던 지순이 누나가 팍하고 잡아버렸다. 순 식간의 일이었다. 그런 후 밑에서 라면을 먹은 뒤 우린 하산을 했다. 정말인지 짧지만 긴 시간이었었던 것 같다.

26 힘든 만큼 남는 것은 46기 김가영 ㅎㅎ 아직까지 밥 먹을 때 미세하게 떨리는 내 손을 보니, 3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긴 났나 보다. 겉으로는 상처만이 남았다. 맘속에는 무엇이 남아있나? 솔직히 지금 생각나는 건 춥고 힘들었다는 것과 몸으로 새겨 넣은 3곡의 산가 - 검푸른 산악, 적막가, 백두대간, 그리고 나보다 엄청 높고 가파른 시루봉 암벽코스만이. 첫째 날은 먼저 배낭에 익숙해져야 했다. 경환형의 야광녹색 책가방에 피식 한번 웃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 리걸음을 하는 지순언니 모습에 우와~ 감탄 한번하고. ^^ 월출산 야영장이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나는 그 날 암벽 절대 못했을 거다. 텐트 치는 법도 배우고, 점심을 먹 고 바로 시루봉 쪽으로 올라갔다. 전남 슬랩, 검정 슬랩, 시루봉 1피치. 할매 바위 때도 한번 타봤고, 암벽 좋아 하는 나로서는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준영이는 암벽이 처음이라 상당히 고생을 했던 모양이다. 저녁 때, 1시간만에 담배 한 갑을 싸그리 다 피워댔으니.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 주름살이 생겨나는 준영이는 형들 눈초리에 힘들었다고 한다. 밤에는 다른 학교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앗싸 츄리닝 겜도 신나게 즐겼다. 머리를 써서 기숙사에서 츄리닝으로 바꿨드만, 사람들이 자꾸 헛깔려서 틀리는 것이다. 술을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ㅋㅋ 목포 사람 한 명이 산악회에서 처음으로 나를 짜증나게 했을 뿐. 텐트에서는 옷을 갈아입고 바로 잠이 들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잠을 여기서는 줄여야 한다는 게 약간 아쉽다. 2박 3일동안 집에 있었다면 그 시간 들은 모두 내 잠들로 채워졌겠지? 비가 내린다. 텐트에 물이 찼는데 모르는 척 도균이형만 화장실로 대피를 했다! 너무해. 둘째 날은 비 때문이 라도 정말 힘들었다. 월출산에서 산에 올라가는 길을 통제를 해서 못 올라가게 했지만, 우리는 두 조로 나누어서 형제봉과 사자봉에 올랐다. 형제봉은 암벽과 종주가 섞여 있는 거고, 사자봉은 주로 암벽 등반이었다. 나는 성필형 조가 되어 형제봉에 올랐다. 처음 올라가는 길부터가 장난이 아니다. 큼직큼직한 돌덩이들을 이 짧은 다리를 올려가며 기어간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중간에 하강하는데 쫄았다. 하강하는 법을 하루 사 이에 잊어버린 게야. ㅡa 손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본 다음부터 나는 정신을 잃었다.@.@; 바위 하나를 손 짚 고 내려오다 또 왼손에 3cm짜리 길다란 상처가 생겼다. 아프다. 형제봉을 올라가고 아래를 보는데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 있어서 경치 감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정말 아쉬웠다. 전대 산악회 구호가 참 멋있다. ALPINE~ 알프스 산과 관련이 있나? 시간이 남아서 겸사겸사 천왕봉도 올라갔다. 올라가는 도중, 비가 많이 내려서 춥기도 많이 추웠다. 바위 올라가는 것보다 계단을 올라가는 게 나에게는 더 어려웠다. 나 때문에 뒤에 오는 사람 들이 많이 늦어진 것 같아서 미안했다. 대피소에서 라면 6개를 끓여먹는데 이렇게 맛있는 라면은 처음이 야~ 품바게임을 다시 했는데 추운 게 다 없어져버렸 다. 내려오다가 사자봉조 격려도 해주고, 구름다리도 멋있게 건너왔다. 형제봉도 장난 아니게 힘들었는 데~~ 사자봉 쪽에서 너무 추웠고, 그것도 10시에 들어와 서 우리 쪽은 말짱 꽝인 것처럼 말하는 거다. 쩝! 어쩔 수 없지. 다음에 사자봉은 내가 가는 거다. 3시 반에 잠자리에 들어서 자지도 않았는데 깬다. 언니가 시계를 잘못 봐서 5시에 깼다는 거다. 그럼 1시간 반 밖에 못 잔거야. 내 생애 처음이다 T.T 고3때도 8시간씩은 꼬박꼬박 잤었는데, 이게 왠말? 언니.

27 20 제12집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좋다. 세 번째 날은 시루봉 정상에 올라서는 게 목표! 올라가려구 하는데, 지나가 는 아저씨가 내가 제일 못하게 생겼다구 나보구 빨리 올라가 보라구 갈군다. 원래 가벼운 사람들이 더 잘 올라간 다구 내가 말했더니 더 빨리 올라가랜다. ㅡㅡ; 첫째 날 해봤던 코스라 1피치는 가볍게 올라갔다. 2피치를 올라 가려구 기다리는데, 교대 언니가 반팔만 입고 있어서 내가 입던 파일로 둘둘 휘감겨 주었다. 왜 반팔만 입고 올 라온 거야~ 얼마나 추운데... 나한테는 2피치 부분이 제일 힘들었다. 담 넘듯이 올라가는 턱도 하나 있었고, 용 주가 오줌싸서 물 흐르는 곳도 손으로 짚어야 했고,,, ^^; 3피치 올라가려구 1시간 정도 기다린 것 같다. 내가 앉 은 바위에 그늘이 져서 너무 추웠다. 손으로 바지를 그렇게 비벼도 추운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멋있게 자일 이빨 로 물다가 이빨 깨진 성필형 보구 자지러지게 웃어주었지. ㅋㅋ 1+1은 2인데 수학을 못하나. 왜 자꾸 3이라 고 하는지. ㅎㅎ 추워서 노래도 많이 불렀다. 주현미의 러브레터까지 나올 뻔했으니, 얼마나 많이 불렀겠어? 하 나가 트롯 부르는 손동작을 좀 가미했더니만, 반응이 좋다. ^ㅡ^ 보고싶은 하나. 재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을까? 3피치는 길이 나 있어서 대충 쉽게 올라간 것 같다. 막 판에 주마링 할 줄은 미처 경준형은 역시 암벽 기술을 잘 가르쳐 주신다. 정말 좋다~~ 주마도 자 일을 밀면서 하는 거라는 소리를 듣고 그대로 했을 때 정말 잘 되었다. 근데 막판에 뒷길로 시루봉 내려오다 내 가 발이 미끄러져서 모두들 놀랐을 거다. 내가 더 놀라서 다른 사람들 걱정할까봐 죽도록 웃었다. 내가 이렇게 놀랐는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겠어? 얼굴에 상처가 생겼다. 안 그래도 별볼일 없는 얼굴에 상처가 생기다 니. 허걱! 빨리 나아야지. 시루봉 암벽등반은 날씨도 맑아서 정말 재미있었다. 다음에 올라갈 때는 다리에 멍 안들이고 더 잘 올라가야지! 용운형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산을 산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의 인생으로 생각하며 산을 오르라고. 그 렇게 하고 싶었지만, 너무 힘들어서 단순 무식하게 산행을 했던 게 참 아쉬웠고,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산 위에서 나 내려와서나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경치구경할 시간을 별로 갖지 못했다는 거다. 나라는 인간, 알고 보면 참 원 초적인 동물이다. 힘들면 힘든 생각밖에, 밥 먹으면 배가 차고 있다는 생각밖에, 잠들면 이제 잠든 그뿐. 이것 이 따까리의 슬픔인가? -_-;; 텐트치고 2박 3일 동안 하는 1학년 첫 산행이여서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암튼 이 조잡한 모든 글의 결론은 언니를 본받고 싶다는 거다. 떨어질 때 잡아줘서 고마워요 언니!

28 내가 가는 이 길이 월출산가는지, 뒤로 back하는건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나는 계속 걸어야만 하네. 46기 김가영 춘계에서 돌아온 지도 어언 일주일. 그러나 생각나는 건 도무지 조가밖에 없으니, 내 머리 속은 어떤 구조로 되어있나? 중요했던 내용들이 빠져 있으면 어쩌지 하는 조바심과 함께 시작하는 이 글은 키보드에 손을 맡긴 채 형식 없이 줄줄이 써간다. -.-; 생각해보자. 그 높게만 보이던 땅끝기맥의 능선에 올라서던 춘계의 첫날 밤. 재우 형과 현주 누나는 벌써부터 back을 몇 번이고 외쳐대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밤 공기를 마시며 10분 걷고 배낭위에 앉아 한숨 쉬고, 10분 채 못걷고 배낭위에 다시 나자빠지고. 나의 기분은 한마디로 황홀했따~~~. 맨날맨날 이렇게 해요 우리.^ㅡ^ 하지만 조장이란 게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알 수 있는 날이었다. 아무것도 알 지 못하는 햇병아리 같은 1학년들을 위해 지도를 보며 길을 찾고, 능선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정말 힘들꺼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시작했던 과수원까지 뒤로 back을 하고 나서야 우리는 산을 30분 정도 쉬고 올라갈 수 있었 다. 텐트 치고 밥을 먹고 모여 앉아 이야기하는 도중, 춘계에서는 하루에 한 명씩 강의를 한다고 한다. 우와~ 역시 훈련등반이라 다르구나, 강의 같은 것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잠시 하고, 재우형의 이야기를 들었다. 산 악회에서 지켜야 할 예절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해봤다. 산악회 사람들은 두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한분류는 옛날과 같이 꽉 짜여진 위계체계를 유지하며 이런 질서의식이 변하지 않 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또 하나는 전과는 다른 산악회의 생활을 이끌고자 하는, 좀 더 유연하고 개방 적인 산악회를 만들고 싶어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어떤 것이 좋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좀 더 산 악회를 접해봐야 답이 나올려나? 암튼 군인들의 말투란 이런거였다! ~습니다 로 끝나는 말투! 사회 생활하는 우리로써는 약간은 어색한 대화였다. 텐트 속에서 재우형이 계속 여자소개시켜 달랜다. 미치겠다. 여태껏 아는 여자애들 열손가락으로 세는 판인데 어떻게 하나? 왕따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놀리면서 또 소개시켜주라고 한다. 다시 미친다. 형, 기숙사 언니는 어때요? 안심시키고 잠이나 자자. 피곤하지도 않고, 술도 안 들어가서 잠이 안온댄다. 나 역시 마찬가지. 수다를 떨다 어느새 재우형이 코를 곤다. 잠을 자야하는 건가?Z-z 잠시 비가 오고, 다시 짐을 꾸리고 멋있게 출발하자! 근데 아침부터 배낭 풀고 싸기를 4-5번 한 것 같다. 느그적대는 우리가 맘에 안들었나 보다. 무조건 시킨대로 한다. 에고에고~ 마지막에 침낭이 항상 애를 먹인다. 딱 들어가면 침낭 방수포가 찢어지도록 세게 잡아당겨도 나오지를 않는다. T.T 다시 풀지 않게 해주세요. 둘째 날의 목표! 종천형과의 재회 오늘 못 만나면 형은 혼자서 쓸쓸히 비박을 해야 한다. 그렇게는 둘 수 없다. 우리는 나무숲을 걷어차며 열심히 올라간다. 으쌰 으쌰! 묘자리 잡는 법을 배웠다. 경치 좋고, 물 없는 곳에다 가 남쪽을 바라보게 관을 잡고, 옆에 나무들은 적당하게 쳐주고. 사람들이 땅끝기맥까지 와서 벌초를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묘가 참 많은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다~~. 또 텐트 3-4번 치고, 라면도 끊이고 고기도 구워 먹었 다. 산을 올라가는데 골프장이 새로 생기고 있었다. 산을 깎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나? 좁은 한국 땅에 도대체 골프장이 몇 개나 있는 건지 모르겠다. 현주 언니가 골프장이 세워지는 것을 보며 참 아쉬워했다. 땅끝기맥이 사라지고 있어요. 나도 무척 안쓰러웠다~ 진흙 구덕에 새로 산 고어텍스 두 짝이 퐁당 하고 빠졌으니 말이다. 아침에 넘 늦게 올라왔나? 날은 저물어 가고 가스가 너무 많이 끼어서 길을 잃고. 종천 형 미안해요. 비도 오는데 혼자 비박하게 내버려 둘 수밖에. 우리는 텐트에서 곤히 잤다. 다시 셋째날 목표! 종천형과의 재회 & 못갔던 코스 단번에 오르기 4시에 일어났다. 빨리 자서일까? 일어나는 게 월출산 때보다 쉬웠다. 어디서 길을 잃고 헤메고 있었을까? 지도를 봐도 모르지만 그냥 한번 봤다. 재우형이

29 22 제12집 괜히 핀잔을 준다. 봐도 아느냐고. 모르지만 그냥 볼꺼예요. ㅡ.ㅡ 도로를 타고 가다 9시쯤 드디어 종천형을 만났다. 우리가 너무 반갑단다. 트럭 아저씨랑 닭고치 7개를 술안주 로 먹어버렸다는 소리에 몹시 실망했던 나. 아무튼 만나서 정말 좋았다. 이때 트럭을 3분 탔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빠르더군. 전날 도로 한 번 탔을 때는 거의 죽음이었는데 트럭때문에 구보 안하니까 넘 좋다!! 근데 그건 잠시 기쁨. 낮에 찌는 더위에 구보 엄청 하고, 오렌지 쥬스 한 모금에 눈이 반짝반짝 *.* 논물이 그렇게 맛나게 보일 수가 없다. 제방을 돌아 어떤 고개에 도착했다. 금귤이 오렌지였으면 얼마나 좋았 을까? 오렌지가 너무 먹고 싶었다. 길가에 널려있던 과일은 정말 먹으면 안되는 거었나? 언니가 이제는 표식기를 따라 올라가기만 하면 길이라고 했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종천형 배낭 속에 는 딸기쥬스, 사과쥬스, 오렌지쥬스가 있다고 했다. 믿고 싶었던 거짓말. 가시나무가 너무 싫다. 긴 팔을 입었어도 그 속을 뚫고 들어오는 장미의 송곳 같은 가시와 딸기나무의 압정 가시가 너무 싫었다. 가시 나무의 맥을 잡고 휘어버리는 기술을 그 때야 터득했다. 대신 뒤에 오는 놈이 그 반동으로 가시를 몸에 박아야하 겠지? ㅋㅋ 암튼 미안했다. 이 날이 제일루 힘들었던 같다. 현주 언니 따라 높은 경사길을 올랐는데, 거기서 BACK을 하라고 하고, 경사진 산 아랫길로 내려갔는데 또 BACK을 하라고 해서 올라가고,, 저녁밥이 절대 안들어 간다. 잉. 나도 먹고 싶은데 안들어가는 걸 어떡해요. 종천형, 갈구지 마세요. 정말 땅 좋은데서 텐트 치고 자 고 싶은데, 하는 수 없이 올라간다. 올라가다 길을 못찾았던 것 같다. 비박한다~. 무등산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쇠고기수프도 끓여먹고 둘러앉아 술을 마시는데 넘넘 잠이 왔다. 꾸벅꾸벅. 그 꾸벅임은 다음날 아침밥을 지을 때까지 계속 되었다. 현주 언니가 잠을 깨자! 20번 하라구 했다. 솔직히 그거하고도 잠은 깨지 않았다. 된장국이 맛있는데, 재우형 똥이야기에 약간 비위가 거슬린다. 뜨아~ 똥을 된장 취급해서 똥국 만드는 법을 자 세하게도 설명한다. 코펠에 똥을 싸고 똥을 풀고. 뜨아~~~ 변비는 아닌데 산에 와서 한번도 똥을 싸지 못했 다.-_-; 오늘은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월출산 야영장까지는 꼭 가야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른다, 오른다, 올랐다. 1시간 넘게 쉬지 않고 올라갔던 어떤 봉우리 모습이 떠오른다. 묘지 앞에서 쉰 것 같은데... 뒤로 우리가 지나왔던 봉우리들이 넓게 펼쳐졌다. 포즈잡고 찍었는데 나중에 도균형 이 그 사진 보고 내가 뽀빠이 같단다. 뽀빠이? 성( )으로 봐서는 내가 올리브가 아닌가? 난 올리븐데. 매봉에서 여태껏 만든 조가를 연습했다. 기막힌 조화다. 안무는 재우형. 개사 B조 모두, 혼성 3 인조 그룹 CNUAC! ㅋ 두 번째 올라가는 천황봉이라 길이 눈에 익었다. 힘이 딸려서 늦게 올라가긴 했지만 말이 다. 내려오다 눈물을 글썽인 것 같다. 천황봉에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가서 그걸 배낭 위에다 짊어지는데, 짊어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배낭을 잘못 싸서 고개가 뒤로 안 젖혀지는 것이다. 죽음이다~~ 어떻게 내려왔는 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앞에서 산가 시키는 현주 언니만 제 발 이제 그만. ㅡ.ㅡ; 에고에고.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수고한 다고 좋은 일 한다고 했을 때에는 참 기분이 좋았다. 여태껏 1/3 침낭, 1/3 텐트본체, 1/3 텐트 플라이였던 내가 마지막에 그렇게 무거운 쓰레기를 들고 내려갔으니~ 처참한 그 때의 내 모습. 콧물이 나 와서 긴 팔로 그냥 코 팅팅 풀고, 그 뒤 그 긴 팔은 걸레가 되었지. A조와 만났을 때 별 느낌을 갖지 못 했다. 내려갔을 때 A조 모습이 너무 깨 끗해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하

30 지만 나중에 나온 사진을 보니까 장난이 아니더군. 흐흐 씻고 밥 먹고, 조가도 한바탕 부르고 따까리 전수식을 했다. 그 당일 전까지는 따까리 전수식이란 게 있는 지도 몰랐다. 동기가 많아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우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다행히 배낭이 가벼워서 춘계를 잘 마친 것 같다. 아니었음 나는 아직도 어느 병실에서 닝겔을 꼽고 잣죽을 씹 어먹고 있었겠지. 정말 나는 연약한 사람인데. -_-; 괜시리 요즘 하계에 기대를 품고 있는 나. 정말 산을 좋아하고 있는 걸까? 아님,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는 걸까? 에고에고, 춘계 생각에 오늘도 잠 못 이루겠구나

31 24 제12집 춘계훈련등반 46기 손용주 5월 2일 날씨: 흐리고 비옴 며칠 전부터 준비해 오고 기다려 왔던 5월 2일이 왔다. 산악회 활동 중 제일 중요하다는 춘하추동중의 하나인 춘계훈련등반. 나는 저 6자중에 빼꼼히 들어 있는 '훈련'이라는 두자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산속에 들어가기 전에는 미쳐 몰랐다. 으~ 끔찍해. 어쨌든 학교에서 '희망이 있는 조'와 사진을 찍은 후 월출산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채 우린 광 천 터미널로 향했다. 여행을 하기 전에 민재와 상의를 했다. 춘계 때 먹을 것을 사가자고. 민재는 음료수를 사 서 날씨가 더워 땀나고 힘들 때 그것을 꺼내서 점수를 따자고 했다. 짜식 정말 영리하군 우리는 빨리 신세계 식품코너로 갔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10m전방에 누나와 형들이 있었다. 우린 잽 싸게 피해서 약간의 오렌지와 음료수를 사서 먼저 도착했다. 그런 후 바로 강진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민재와 미리 복사해온 산가를 외었다. 상현이에게도 주었지만 필요 없다고 했다. 짜식, 아직 산가에 시달려보지 못했군 민재는 어제 새벽 5시까지 친구들과 술을 먹었다고 하더니 차 속에서 잘 잔다. 차에서 내리고 나니 하늘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우린 버스를 타고 갈까 하다가 택시를 타고 산 근처에 가 기로 했다. 배낭 때문에 빡빡해진 택시 속에서 지순이 누나가 물었다.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나는 지금은 별로 느낌이 없 고 산에 오면 지금 내 생활이 좀 혼란스러운데 그런 것을 잊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는 누나도 1학년 춘계 갈 때의 기분을 말해줬다. 누나도 1학년 초의 생활이 혼란스러웠다고, 춘계 갈지 말지 망설여졌다고 등등. 음. 지순이 누나는 동방에서 보기도 힘들고 만나도 필요한 얘기를 빼고는 거의 안한다. 좀 무뚝뚝하다고 할 까? 그러다 가끔 농담을 하는데 그럴 땐 이렇게 생각한다. 누나가 기분이 좋은가 보군 택시에서 내려 민가에서 물을 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물 많이 못 마신게 무척 아쉽다. 어쨌든 그런 후에 랜 턴을 켜고 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런? 등산로라고 할만한 곳이 없다. 누나는 우리를 데리고 이리저리 길 을 찾더니이렇게 외쳤다. 빽! 난 그 말이 처음에는 무슨 뜻인 줄 몰랐다. 산악회 들어와서 처음 들어본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은 이번 춘계에서 속보!, 앞으로 밀착 과 함께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였음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길도 없고 비도 올 거 같아서 빨리 텐트치고 밥을 먹었다. 그런 후 뒷풀이를 했다. 힘든 산행 뒤의 뒷풀이는 언 제나 재미있다. 낮에는 힘들고 화를 낼지언정 그때만큼은 모두가 마음 편히 먹고 웃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난 이런 자리를 많이 갖자고 건의를 했지만 그 뒷풀이가 춘계의 마지막 뒷풀이였다. 5월 3일 금요일 날씨 : 서늘하니 등산하기 딱 좋음 3시간 정도를 잤지만 아주 개운하게 잤다. 헉! 그런데 이럴 수가 침낭이 흠뻑 젖었다. 이 일 때문에 춘계 내내 난 침낭을 쓸 수 없었다. 오늘 아침 정리가 늦어서 내 동기, 그러니깐 상현이와 민재가 얼차레를 받았다. 동기야 빨리해라, 동기야 빨리 해라! 이 소리가 내 귀엔, 용주야 빨리 해라, 용주야 빨리 해라! 로 들렸다.(실제로 옆에서 경환이 형이 용주야 빨리 해라, 용주야 빨리 해라! 라고 했다.) 어쨌든 얘들아, 미안~~~~ 짐을 챙긴 후 계속 산행을 했다.

32 그런데 솔직히 그 이후로는 기억이 않난다. 단지 단편 단편의 기억, 지순이 누나의 속보!, 앞으로 밀착!, 속보!, 앞으로 밀착! 그 소리밖에. 지순이 누나의 별명이 빡지순 이라더니 정말 잘 지은 것 같다. 오르막 길 숨차게 올라가면 내리막길에선 좀 편히 갈 줄 알았더니 연신 속보 와 앞으로 밀착 을 외친다. 누나, 좀 살 살 좀 가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저녁에 장민이 형과 도로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힘든거 보다 더 괴로운 건 물을 않준다! 산 속에서 물을 안 주면 어찌자고? 근데 도균이 형이 말씀하셨다. 이번 산행이 춘계 훈련등반이라고. 괜히 훈련이란 글자가 들어간게 아니라고. 그 말을 듣고 머리는 납득을 했지만 내 목은 납득을 하지 못했다. 정말 목말랐다. 산행 도중 점심 시간 때 써니 누 나와 텐트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얼차레를 받았다. 오리걸음 할때 누나가 했던말, 선배를 존경하는 마음도 없고, 동기간에 우애도 없고. 음. 전부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때의 써니 누나는 어제 뒷풀이 때 술과 게임에 약한 모습을 보였던 그때 그 누나가 아니었다. 어쨌든 장민이 형과 만나기 위해 우리는 산행을 서두르려 고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도 그리 많이 못 간 것 같았다. 도대체 산에 길이 없다!!!! 형들과 누나들이 땅끝기맥에 온 목적은 여기에 길을 만들기 위함이었을까? 어쨌든 날이 어두워질 때쯤 도로로 내려왔다. 어? 현주 누나가 우리 조는 도로 보기가 힘들거라고 했는데? 어쨌든 그때부터 산행이 아닌 야간 국토 대장정이 시작됐다. 3,40분 걷다가 쉬고 걷다가 쉬고를 반복했다. 그 래도 오르막길, 내리막길, 나무 헤치고 가는 산행보단 나았지만 너무 지루했다. 그리고 항상 목 말랐다. 길을 가 다가 성필이 형이 그러셨다. 만약에 길 가다가 편의점이 나오면 내가 콜라 사준다! 하지만 그때 시간은 11시를 넘어 12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때였다. 과연 시골에 지금까지 열어있는 슈퍼가 있을까 라고생각하며 포기반 기대반으로 갔는데 앗싸!! 편의점이 있었다. 덕분에 형이 콜라를 사줘서 상형현이와 민재와 1병을 마시는데 의외로 콜라가 안들어 갔다. 결국 약간 남겼다. 저거 내일 마시면 않돼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조금 더 걸어간 뒤 밭에 막영을 했다. 잠잘 때보니 물집이 잡혔었다. 생전 처음 잡혀본 물집이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5월 4일 토요일 날씨 : 허뻘라게 좋음. 워매... 쪄죽긋네. 잠을 별로 못잤다. 2시간 정도 잤나? 아침 만드는 거나 텐트 치는 거나 여전히 서툴었다. 그래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월출산 때처럼 지순이 누나가 혼자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들이 꽤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린 우리도 모르게 점점 '진짜' 산악회 46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약간 도로를 걷다가 산으로 올라 갔다. 다른 동기도 목말랐겠지만 특히 내가 유별났던 것 같다. 그날 따라 괜히 계속 목말랐고 괜히 힘도 나지 않 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간식을 먹고 싶은데 씹어도 침이 안 나와서 고생을 했다. 물을 먹을때 도균이형이 형 몫 도 나에게 줬다. 흑흑.. 형 고마워용~~~ 그래도 목말라서 길 가다가 풀잎에 있는 이슬을 마셨다. 길 가다가 물 이 많이 고여 있는 풀잎을 지나칠 땐 정말인지 안타까웠다. 우리는 점심을 먹기 전에 이상한 산을 지나쳐야 했다. 릿지 비슷한 곳이었는데 사자봉에 비하면 짜실했지만 배 낭은 무겁고, 날씨는 더워서 쪄죽것고, 땀나고, 목마르고, 힘들고.ㅠㅠ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평소엔 힘들어도 아무 말하지 않던 민재가 조용조용히 지순이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날씨 뜨거울 때 땀 많이 흘리고 탈진될려고 할 땐 어떻게 해야 되요? 라고. 나는 속으로, 당연히 물마셔야제 를 외쳤다. 그러나 상황이 워낙 급해서 누나는 대답을 못했다. 다만 조금만 더 참자 로 대신했다. 바위산을 넘고 나서 우 리는 밥 먹을 곳을 향했다. 그때는 누나도 그리고 동기들도 완죤히 찐이 빠져 있었다. 특히 내가 더 그런 것 같 았다. 라면을 끓여야 하는데 할 의욕도 힘도 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아래쪽에 논 사이로 흐르는 물이 있었다. 나는 지순이 누나와 함께 그릇을 씻으러 갈 때 누나 옆에서 몰래 마음껏 그 물을 마셨다. 그리고 몸을 씻고 나니 기운이 완전히 솟는 것을 느꼈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정말 놀라웠다. 형들과 누나들은 내가 농약물을 마셨다고

33 26 제12집 했지만 글쎄? 그 물을 안 먹었다면 아마 두고두고 후회 했을 것 같다. 밥을 먹고 나서 길을 찾아 갔다. 그런데 웬일인가? 길이 없었다. 아마 거기에서 3~4시간 정도 있었던 것 같다. 형들과 누나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땐 정말 편했다. 길을 내려온 후 또 다시 야간 국토 대장정이 사작되었 다. 그냥 계속 걸었다. 그리고 내일을 위해 조가도 준비했다. 이번에 갈 곳은 월출산 야영지였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을 것 같던 길도 끝은 있었다. 어쨌든 월출산 야영지 로 도착했다. 거기에서 물을 뜰 때 지순이 누나가 미리 준비해 온 바나나 우유를 줬다. 누나는 우유를 주면서 원래 너희가 이번 훈련등반에서 물을 조금 마셔야 하는데 너무 많이 마셔서 이 우유가 별로 필요 없을것 같다. 라고 했다. 하지만 그 우유는 몇 초만에 내 목을 타고 들어갔다. 정말로 물 귀하다는 것을 이번 춘계 때 뼛속 깊 이 새긴 것 같다. 그리고 나선 비박을 했다. 처음으로 하는 비박이었다. 5월 5일 일요일 날씨 : 아주 좋음 월출산 등산로를 따라 갔다. 여기는 길이 다 있어서 올라가기가 편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back하면서 갔던 땅끝기맥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길은 좋았는데 처음에 내가 배낭을 잘못 싸서 어깨에 짐의 무게 가 느껴지는 게 아니라 허리에 자꾸만 짐의 무게가 느껴졌다. 정말인지 입에서 쉰소리가 나왔다. 잠시 쉬는 시간 에 다시 재빠르게 배낭을 고쳐 쌓다. 그래서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곧바로 하중훈련을 했다. 가방에 돌덩이를 넣는데 정말인지 올라가는 도중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너무 힘들어해서 그랬는지 하중훈련은 약 15분 정도 하고 끝났다. 지순이 누나는 그것을 더 높은 곳에 쌓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쉬워했다. 그래서 좀 미안했다. 돌 빼 고 나니깐 살 것 같았다. 길도 좋고 가방도 가볍고. 근데 재미는 없었다. 내려 올 때 왠지 낯익은 봉오리를 봤 다. 알고 보니 사자봉이었다. 하강했던 곳을 보니 아, 그때 그랬지! 라는 생각을 했다. 밑에 내려와서 따까리 전수식을 했다. 나는 따까리 전수식이라 해서 선배님들이 후배들에게 손에서 손으로 넘 겨주는 건줄 알았다. 그런데 헉! 역시 산악회라서 그런지 약간 거칠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힘들어도 모두 잘 해 낸 것 같다. 나중에 회의 때 나온 말이지만 경환이형은 땅끝기맥이 훈련하기는 좋은데 자신은 다시 가기 싫다고 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다시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번 춘계는 같이 있기만 해도 힘이 되는 동기들, 그리고 우리 땜에 고생하신 선배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에 한 고비를 넘은 것 같다. 훈련등반이 끝났으니 이제부턴 즐길 일만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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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8 제12집 하계장기등반(A조, 백복령~설악산) 46기 김가영 7월 26일 하계의 첫날 정말 좋은 막영지는 시멘트 바닥이었다. 설렌 것도 아니지만, 그런다고 여유롭지는 않았던 하계의 준비가 끝나고 우리 A조는 백봉령을 향해 지도를 보 며 달려가고 있다. 서울 강남에서 다시 동해로. 두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 지금은 텐트 안! 호상이가 성필형과 종천형의 갈굼을 당하고 있다.ㅋㅋ 마지막 도로를 따라 연주 언니 뒤를 쫒아갈 때 드디어 내 짐의 무게가 이정도 구나.-- 하는 걸 느꼈다. 두렵다. 내일은 도로가 아닌, 이렇게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7월 27일 하계의 둘째 날 - 드디어 하계 첫 산행의 시작 (배낭 속을 깨끗이!) 어제는 차편 때문에 출발 지점인 백봉령에 못 갔지만 오늘은 꼭 산에 올라야 한다. 5시 기상 7시 버스 오르기 실패! 다시 강릉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할 수 없이 삽당령으로 갔다. 삽당령 가기 전 도로 건너에 물 뜨는 곳이 있어서 연주 언니와 피트 한가득 물을 채웠다. 오전 늦게 출발한 산행이었지만 하계의 첫 산행다운 산행을 했다. 약간의 잡목들이 나를 다시 오월의 춘계 산행으로 가게 했다. 대간이라고는 하지만 토요일 날 갔던 지리산 길과 는 판이하게 달랐다. 호상과 1m 간격을 유지하며 걷고 또 걸었다. 손톱에 낀 흙들하며, 호상이의 암기실력이 내 가슴을 아프게 하네. 비가 온다. 쌔-- 하게 내리는 비에 우리 조는 귀신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내일은 내 무거운 짐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까? 7월 28일 하계 셋째 날 - 드디어 힘든 하계 ( 화란봉 - 닭목재 - 고루포기산 ) 배낭 무게가 갑자기 늘어났다는 것에 민감한 나머지 마음만 급하고 발은 안 나가고. 우리 조는 대장조니까 빡 세게 일정대로 가야하는 거다. 종천형한테 갈굼 당할까봐 눈치를 본다. 밥 남겼다고 코펠을 저 꾸석탱이로 던진 다. 그덕에 다행이 남은 밥은 안 묵었지만. T.T 왜 이렇게 오늘은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빨리 잘 생각밖에 안 든다. 형들은 밖에서 라디오 틀고 모기장 치고 잔다. 웃통도 벗는다. 부럽다. 7월 29일 하계 네번째 날 - 대관령서 반나 절 예비일 햇빛이 쨍쨍 내리쬔다. 헥헥. 드디어 대관령 휴게소. 앗싸~ 근데 뭐지, 이 분위기는? 문 닫 았단다. (더 이상 가면 저 쓰러집니다.) 다행히 휴게소 적당한 곳에 짐을 풀고, 햇빛에 배낭 속 짐들을 말렸다. 매트리스에 연주 언니랑 쓰 러졌다. 깨고 보니 형들이 우유랑 맛난 고기를 사오셨다. 그 때 우유는 정말 맛있었다. 호상 이는 옷을 잘 안 벗는다. 몸통 구조가 남들과 다르게 생겼나보다. 우리는 게임도 하고 즐겁 게 보냈다. 호상이가 준 만원으로 캔맥주에 반 찬거리를 사러 갔다. 덕분에 바나나 우유도 사 먹고. 고기 꿔먹고, 술도 마시고, 밤에는 별

36 도 보며 술에 취해 샤워도 하고. 7월 30일 하계 다섯번째 날 - 19km 종주 (대관령- 매봉 - 소황병산 - 노인봉) 으하하! 기록에 남을 만한 산행을 했다. 대관령 어제 반나절 예비일을 하고 거기서부터 진고개까지 23.xx km! 어떻게 이렇게 갈 수가 있나? (자화자찬--a) 정말 나에 대해서 감회가 새롭다. ㅋ 대관령은 참 멋있다. 넓게 뻗어 보이 는 능선길하며,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나무하며. 알핀! 을 몇 십번 부르다 목이 새버린 종천형은 다시는 우리와 떨어지지 않는단다. 호상이가 바둥바둥 잘 걷질 못한다. 발이 무지 아픈가 보다. 잘 가야 할 텐데. 오늘 무리를 했나? 오늘은 성필형 안경이 깨져서 갈굼을 많이 당했던 날이다. 결국 그 범인은 연주 언니였다. ㅋㅎㅎ 저는 절 대루 안깼어요. 글구 처음으로 떼거지로 몰려있는 젖소도 보고 산돼지 소리도 들었다. 꿀꿀! 우리는 맘속으론 쫄 았지만 나름대로 크게 보일려구 일렬로 덕지덕지 붙어 갔다. 찌는 날씨에 살이 많이 탔지만 풍경도 좋고, 산행도 많이 하고, 빡셌지만 참 좋았다. 내일도 이만큼씩 열심히 산행해야지. 7월 31일 하계 엿새째 - 아름다운 밤이예요 ->술에 취해... (진고개 - 두로봉 - 신배령) 아침부터 이상한 할아버지가 오셔서 폴대를 빼간다. 지금 시각 5시. 이 시간에 순찰 도는 할아버지 대단하고, 그 시간 전에 아침밥을 후딱 먹어치운 우리는 더 대단하다. 진고개 휴게소에서 쉬는 동안 형들은 다시 back 해 서 폴대를 찾아오셨다. 호상이는 참 꼬불쳐 놓은 돈이 많다. 나는 돈 한푼 안가져 갔는데 말이야... 그 돈으로 바 나나 우유를 사줬다. 연주 언니랑 맛나게 꿀꺽!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었다. 겁나게 가파른 산길을 웃으면서 간 것도 처음이고, (형들을 내가 간 봤던 것일까?) 호상이가 퍼진 것도 처음이고. 텐트 속 분위기도 정말 좋다. 나 는 무조건 집의 냉장고를 생각하면서 무조건 앞을 향해 돌진했다. 목적지인 신배령까지는 못 갔지만 정말 좋은 산행을 한 것 같다. 날마다 까는 소주 1피트에 난 곯아 떨어진다. 8월 1일 일곱 번째 날 - 마음만 빡셋던 산행 (신배령 - 응복산 - 약수산 -구룡령) 신배령 백두대간 코스라고 표지판도 붙여져 있고, 큰 쓰레기 봉지도 있다. 거기다가 쓰레기 버리라고. 구룡령까지 열심히 갔습니다. 휴게소 내려갈 땐 조심히 내려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돈을 무니까요. 우리는 카 메라를 피해 구석지에다가 비박 장소를 정했습니다. 내려가서 화장실서 헹건을 빠는데, 아저씨가 머라 그럽니다. 더러운 등산화를 신고 화장실 들어오지 말라고. 쫒겨났대요~ T.T 노인봉 산장 할아버지랑 한통속 같아요. 막판 에 호상이는 물피트 내기를 했습니다. 어디서 또 꼬불쳐 놓았던 만육천원빵 내기를. 그걸로 또 맛난 걸 사먹을 수 밖에요^^ 허나 도중 일이 발생했습니다. 수낭 사건! 그렇게 뒤지고 두리번거려도 없던 수낭. 따깔이 씻고 연 주 언니가 피트 세 개를 구해 올 때까지 없어졌던 수낭. 그게 있답니다. 허허. 허탈할 수밖에. 오늘은 적으 로는 안 힘들었지만 적으로는 힘든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반나절 산행을 하는군요. 히히. 모레는 현조형이 들 어온답니다. 기대되는군요. 왜냐? OB는 무조건 좋은 거니까! 8월 2일 여드레... - 예비일다운 예비일. Full로 쉬는 예비일도 괜찮은 거구나!! 아침에 일어나 수박을 먹고, 저녁에는 후르츠 파인애플까지 터버렸다. 정 말 짱인 하루구나! 감기 기운만 조금 없었더라면. 운행 중에 아무리 나를 갈구더라도, 아무리 빡센 산행을 하더 라도 울지 않던 내가 아플 때나 울 줄이야. 침낭을 뒤집어 쓰고 울다 지쳐 잔다. 흑흑흑. 왜 꼭 예비일날만 퍼지는 것일까? 호상이는 참 힘들겠다. 복희 랑 갔음 널널하게 갔을텐데. 게임만 하면 호상이는 눈에 생기가 돈다. 하늘에 뜬 별보다도 더 반짝거린다. 우리 조 주된 겜은 자기소개 게임이다. 성필형과 종천형이 또 기숙사 츄리닝을 헤깔려한다. 그러다 형들이 소주 1 피트 다 마셔버렸다. 흐흐 역시 성필형은 나랑 하면 안 된다니까. 조가는 그땐 그랬지 로 결정난 것 같다. 멋있는 조가를 만들어야지~ 호상이가 연주언니 보둠어 주며 잔댄다. 나는 누가 그렇게 해주나? --; 호상이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다. 내일 산행도 열심히 해야겠다. 이번 하계를 다녀보며 느낀 게 암벽만이 재미있 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종주도 참 재미있는 것 같다.

37 30 제12집 8월 3일 9일째다. 종주가 언제 끝나려나 - 쉰 내가 물신 풍기던 날.(구룡령 - 쇠나드리) 윽! 이게 무슨 냄새지? 호상이 뒤를 열심히 따라가던 나는 쉰 내 나는 까리한 냄새를 맡고. 이자식 냄새 참 많이 나는군. 호상이가 발이 너무 안 좋아 성필형과 구룡령으로 다시 나갔다. 아직도 나는 까리한 냄새, 윽! 이건 내 냄새였단 말인가? 비도 한참 내렸던 오늘. 여태껏 목욕 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나한테서 나는 냄새. 정말 싫다.-.- 쇠나드리까지 가는 도중 연주 언니 독도 주의! 왠 놈의 길이 짧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거다. 생각에 몇 십 번은 한 것 같다. 죽을 뻔했다. 현조형이랑 성필형이랑 호상이가 보인다. 되게 반갑다. 쇠나드리 근처에서 막 영지가 좋은 곳이 있다더니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이상한 조그만 모기들이 나를 문다. 이것들은 모기 장도 뚫고 올 정도로 작아 보인다. 역시 OB선배님은 먹을 것을 많이 가져오신다. 수박에다 맥주랑 된장 푼 오이 냉채. 정말 맛있다. 역시 난 하계를 먹으러 온 것 같다. 넘넘 좋다. 8월 4일 종주 10일 - 단목령에서 처음 보낸 날 (조침령 - 북암령 - 단목령) 털보 아저씨가 텐트로 내려오기 전까지 우리는 또 포식을 하고 말았다. 단목령에 먼저 도착했던 종천형이랑 현 조형이 어디선가 닭을 구해 왔나보다. 닭털을 처음 뜯어봤다. 처음으로 계곡에서 나름대로 깨끗하게 씻어도 보 고, 첨으로 닭칼국수란 것도 먹어보고, 모든 게 처음이다. 도중에 비가 와서 약간 아쉬웠다. 안 그랬음 시원하게 밖에서 별보며 술파티 했을텐데. 종천형이 그렇게 말하던 털보 아저씨를 보았다.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그 큰 눈이 맘에 든다. 또 노래부르 라고 성필형은 갈군다. 할 수 없이 부르고 수박을 배 터지게 먹었다. 그게 잘못이었다. 이 날 나는 텐트 안을 붉 은 국물로 가득 채웠다고 한다. 여기서부터는 호상이의 말을 믿어야 할 것 같다. 난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아--- 8월 5일 열 한번 째 날 - 텐트를 3번이나 치네 (단목령 - 점봉산 - 오색) 점봉산 오름길은 또 왜 이렇게 가파르냐? 오르다 퍼진다. 헥헥. 가는 길도 좀 무섭다. 위에는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 쇠못같은 비가 얼굴을 내리칠 때는 죽을 맛이다. 헉!! 내려가는 길에 호상이는 거의 정신을 잃은 것 같 다. 넘 잘 간다. 그 이유는? 뒤에서 성필형이 스틱으로 두둘겨 패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잘못가나 보다. 내 려가는 도중에는 배낭을 하나씩 내려야 하는 곳도 있었고, 나뭇가지 같은 내리막 사다리도 타야 하고, 줄잡고 내 려가는 길도 있고,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나는 또 웃지 않아야 할 곳에서 웃다가 팔굽혀펴기를 한다. 하나, 둘, 셋. 한계령 내려가는 곳에 매표소가 있었다. 거기를 무사히 내려와야 하는데, 호상이가 너무 커서 걸려버린 것 같다. 키 큰게 죄인가? 국립공원 차가 어련히 와서 태워다 준다. 근데 끝까지 아줌마처럼 재잘재잘거리신다. 미안합니다 6번에 한 사람당 50만원씩의 과태료가 해결됐다. 대단하신 형들이다. 오색으로 가서 텐트를 치는 데도 그 아저씨가 재잘거린다. 만난 쫄면을 먹고 잘 자고 있는데 그 아저씨가 새벽 3시쯤에 또 깨운다. 비가 온 다고, 텐트를 걷으라고. 비상 연습 제대로 했던 날이랄까? 8월 6일 종주 열둘째 날 - 설악산 BC가 눈에 보인 날 별 일 없이 슈퍼 앞에서 버스를 타고 설악산 베이스캠프로 왔다. 힘든 일도 없이 텐트 속에서만 지낸 오늘은 정말 예비일 같은 날이었다. 현조형이 안 가셔서 우리는 멋있는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옆 조대 텐트랑 같이 밤에 노래도 부르고, 성필형도 노래를 연달아 3곡이나 뽑으셨다. 역시 짱이다. 8월 7일 설악산 1일 째 - B조와 만나다 현조형과 헤어지는 대신 B조와 만났다. 우리 조는 할 일이 없어서 아침부터 한따까리를 하고 술 한 피트를 마 셨다. 헐, 이러면 안되는뎅. 비틀거리며 속초까지 가서 안경을 맞추고 돌아왔다. 그 정신으로 PC방 가서 카페에 다 글을 올렸다니, 친구들이 미쳤다고 할게야. 지환이형 계신 B조가 와서 넘 반가웠다. 전대 의대의 현식이 형이랑 같이 맛난 통닭도 먹으며 재미있게 놀았 다. 나보고 박경림이라고 한다. 각진 내 턱을 보고. 서럽다. 내일 뭘 할지는 모르겠다. 비가 오지 말아야 할텐데

38 8월 8일 설악산 둘째 날 - 예비일의 극치 용주는 아침부터 깨어나지를 못한다. 그 놈의 술 때문에 어제 돌아버렸나? 오늘은 곰탱이 란 말을 수도 없이 외친다. 느끼한 눈웃음을 지으며. 어젠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난다고 발뺌을 하고 있다. 믿어야 할지. 하긴 나도 단목령 때 일이 생각나질 않으니까. 흐흐 잠도 많이 자고, 복희랑 합세해서 성필형 맛사지도 해 주고 고스톱도 친다. 예비일 날은 이제 설악산에서 살 정 리정돈을 하는 날이다. 부족한 간식도 보충해주고, 먹거리도 푸짐하게 해 놓는다. 나는 또 기분이 좋다. 먹을 게 많으니까! 8월 9일 설악산 셋째 날 - 노적봉 1피치 첨으로 조금 개인 날씨를 보고 드디어 우리는 암벽을 하러 나간다. 첨엔 까리한 길 때문에 대체 뭘 보고 가고 있는건가 했는데 도착해보니 갑자기 입가에 미소가 돈다.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암벽을 할 수 있다니 기뻤다. 또 이 놈의 방정맞은 웃음과 실수 때문에 성필형한테 얼차레를 많이 받았다. 복희를 도우려다 오히려 화만 사고. T.T 어찌해야 할지! 노적봉 1피치.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는데 비가 계속 내려서, 복희가 하던 도중에 하강해야만 했다. 비룡폭포에서 사진도 찍고 비선대로 돌아가 OB선배님들을 뵙고, 맛있는 부침개도 배터지게 먹었다. 비야 제발 오지 마라 - 그래야 내가 장군봉, 천화대에 피어있는 에델바이스를 볼 게 아니냐! 오늘 밤은 땀 뻘뻘 흘리 며 바위하는 내 모습을 꿈꿔야겠다. 오늘은 저녁이 참 한가하다. 항상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8월 10일 설악산 네 번째 날 - 슛~ 골인! 오늘도 비가 내린다. 우리는 또 발목이 붙잡혀 산에 못가는 건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밥을 먹고, 과자도 먹고, 경환형이랑 도균형이 와서 넘 기분이 좋았다. 매듭법 강의를 신나게 하시는 경환형이 멋져 보인다. 팔자 매듭에서부터 프루지끄 매듭, 사각매듭, 보울라인이랑 이중피셔매듭 등등 복습도 철저하게 했다. 라면도 맛나게 먹고, 전대 의대팀과 축구하러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추운데 왠 축구야. 첨엔 싫었는데 하다보니 왜 이렇 게 재밌는건가? 여자 4명이서 수비를 얼마나 잘 했는지!! 모두들 치를 떨었을게야. 나도 골키퍼 호상이의 몸놀림 에 치를 떨었지. 도균형의 멋진 어시스트에 제가 처음으로 한 골을 터뜨렸습니다! 넘넘 기분이 좋았다. 의대 형 들 이름은 잘 몰라도 수비하며 많이 친해진 것 같다. 저녁에 먹은 카레도 맛있었다. 내일 비가 안 와서 설악산 어디든 갔으면 좋겠다. 8월 11일 설악산 다섯째 날 - 대청봉을 찍다 드디어 설악산을 정복한 날이 왔다. 근영이 형도 오셔서 같이 설악산에 올랐다. 첨엔 아무 말없이 비선대까지 빡세게 올라가더니, 양폭을 지나 희운각에 올라가면서 용주와 내가 종주 때 갈고 닦은 솜씨로 멋지게 싸가 를 불렀더니 형이 반했나보다. 희운각 산장에서 차랑 음료수를 쏘셨다.^^ 희운각에서 소청봉까지 올라가는 길은 참 재미있었다. 쌕이 가볍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산행을 즐길 수가 있다니 놀랍다. 허허... 복희가 콧물 흘리 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3단계까지 안가서 다행이다. 소청봉에 올라 라면을 끓여 먹었다. 한 따까리 밖에 못 먹어서 조금은 배고팠다. 대청봉 올라서니 운해가 조금씩 걷히더니 동해가 한 눈에 보였다. 정말 멋졌다. 오색으 로 떨어지며 음미하는 하계시, 설악시도 그렇게 운치 있을까? 내려오며 산새 날아 라는 산가를 배웠다. 좋은 노래인 것 같다. 퍼질 대로 퍼진 나는 말없이 묵묵히 내려간다. 짜장 카레에 먹었던 한 따까리의 밥도 참 맛있었 다. 내일은 천화대 릿지를 하러 간다. 기분 좋다. 8월 12일 엿새 째 - 맑았다 다시 흐린 어느 날 아침 빡센 산행 준비로 한바탕 욕설을 치르고 올라선 비선대. 정말 빡세더구나!! 호상이가 발이 아픈데도 정말 잘 갔다. 나는 성필형이랑 도균형이랑 그 때의 월출산 조로 출발했다. 이런 우연이! 50cm 사이를 두고 좌우로 떨어진 절벽들은 나를 미치게 했다. 2번이나 트래바스로 넘긴 게 아쉬웠다. 그곳이 가장 난코스라고 했는데... 나로선 다행이었을까? 하강을 두 번 정도 한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 흑범을 잡고 있 는 B조의 알핀 소리를 들었는데, 빨리 끝내고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으려나? 매운탕을 잘 끓이려고 했는데 간

39 32 제12집 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밤에 비가 오는데 B조가 고생을 많이 했다. 경환형이 들어간 조는 죽음의 조가 된다는 걸 새삼 느낀다. 8월 13일 일곱 번 째 날 - 용아 장성에 올라 비선대까지 올라가서 가파른 오르막을 쭉쭉 오른다. 준철형도 같이 올랐다. 마등령을 지나 오세암을 지나. 멀 리서 본 오세암은 정말 멋있었다. 점심을 빨리 먹어서 그런가? 엄청 배가 고팠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배고 픔. 수렴동 계곡에서 발 담그며 잠시 쉬고. 사람들 몰래 오른 가파른 능선길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용 아장성 첫 어프로치는 왜 이렇게 힘든 거야? 호상인 그럴 때마다 성필형의 갈굼을 당한다. 조용히 가야할 곳에서 는 항상 목소리가 우렁차진다. 새로운 마음으로 드디어 용아장성에 올라 2시간 쯤 걷다 비박지를 정했다. 용주랑 복희는 칠형제봉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별들도 많이 떳다. 하계의 하루하루가 너무나 아쉽다. 알찬 내일 을 만들어야지. 8월 14일 8일 째 - 이게 릿지냐, 종주냐? 성필형과 배낭커버에서 자다 질식할 뻔 했던 나는 어제의 비박을 땀나 게 보냈다. Full로 용아장성을 뛴 날이다. 가다가 단국대 예비역 2명이랑 아저씨를 만났다. 같이 도와가며 개구멍을 통과했다. 그 사람들은 어택을 메고 가는 거라 우리랑 같이 도와가며 가야 했다. 까리한 곳이라고 오르 던 그 곳은 별로 힘들지 않았는데 먼저 오르던 단국대 아저씨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봉정암에서도 보이지 않은 걸 보면 혹시 무슨 일이? 아무 사고 없이 잘 갔어야 할 텐데. 그 때의 축구로 인해 도균형 발이 많이 아픈가보다. 희운각에서부터 내려올 때 성필형이 무섭게 해가지구 좀 힘 들었지만 비선대서부터 부르는 호상이의 밤바라바라바밤 클라이머의 기 쁨 때문에 정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길이 되었다. 용아장성 8월 15일 오늘도 예비일! 형, 언니들이 밥 먹으라고 깬다. 우왕... 이런 날도 있구나! 닭도리탕에다 고등어조림에다가, 넘 좋다. 4시 정 도에는 지환형이랑 속초 해수욕장에 놀러 갔다. 물가에서 놀기엔 너무 추워서 우리는 모래 속에 파묻힌 지환형의 머리에 공찍기 놀이를 시작했다. 용주랑 내가 같은 편이고 복희랑 성필형이 우리의 적이 되었다. 생쑈를 하며 열 심히 했건만,, 결과는 우리가 져서 핫도그를 사야 했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정말 아쉽습니다. 하계가 끝이란게... 정말 아쉽습니다.

40 하계 장기등반(B조, 이화령 ~ 화방재, 설악산) 하계! 학기 내내 산행을 많이 해보지 못했던 나는 하계가 어떤 커다란 꿈과 기대를 안겨 주었다. 그래서 하계 한달 전부터 하계만 가기를 학수고대했다. 물론 하계 를 간 후의 일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무서운 아빠도 하계에 대한 나의 기대를 꺾 지는 못했다. 하계를 가기 위해서는 일사불란하게 일을 도모해야 했다. 일단 하계비를 마련 해야 했는데 이달치와 다음달치 용돈을 가불해서 60만원이 생겼다. 하계비 20 만원, 암벽장비 마련하는데 10만원, 등산화에 6만원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 장비들 모두가 빨~간색이었다. 크크, 뭐 어때! 두 번째 문제는 하계 46기 02학번 김복희 를 뭐라고 뻥치고 가야하는 거였다. 결론은 농활!(나중에 들켰지만 ㅡ.ㅡ) 이렇 게 하계가기 전에는 장비준비를 하며 보냈다. 별명: 하계가기 2~3일전, 세상에 동방에 도둑이 들었다. 범인은 누구일까? 일부 사 복자, 복길이, 떡볶이 등 람들은 내부자 소행이라는데. 라면 2박스와 간식거리와 무전기가 사라졌다. 어 복자가 들어가는 단어는 아 째야 쓸까. 할 수 없이 다시 사는 수밖에. 무거나 하계 하루 전날 최종 마무리 검사가 있었다. 지순언니가 내가 들고 갈 짐들을 가르쳐 주었다. 세상에! 이게 다 내가 메고 갈 짐들이란 말인가? 하지만 재빨리 입회동기: 마음을 가라앉히고 단순히 배낭이 무겁다는 것이 하계에 대한 나의 꿈을 꺾을 여기가 내가 놀데다. 수는 없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난관에 부딪혔다. 뭐냐구? 바로 배낭 싸기. 도저히 이 많은 짐들이 배낭에다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지순언니가 땀을 뻘뻘 흘리며 내 배낭 싸는 것을 도와주었다. 고마워요 언니~. 여기서 나의 1학년 조원들을 읊어보면 현주언니, 형관형, 지순 언니, 용주, 나다. 지환형은 중간에 들어오기로 했고~.^^ 드뎌 하계 첫날~! 배낭을 다시 싸야 했기 때문에 동방에 일찍 와야 했다. 또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 배낭싸기를 끝마쳤다. 이제 한 번 들어 봐야지. 근데, 얼라? 문제는 배낭을 혼자 들 수가 없는 거였다. 옆에서 누군가 도와줘야지 간 신히 들 수가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이제야 하계에 대한 실감이 오기 시작했다. 동방을 떠나기 직전, 창균형이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살아서 돌아와라 그때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하 계가 얼마나 힘들겠어 이런 생각이었다. 크ㅡ,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철없는 생각이었다. 하계 첫날은 그래도 아~주 좋았다. 왜냐구? 당연히 하루 종일 차만 탔으니까. 얼마나 좋았는지. 꿈같은 시간 이었다. 버스에서 실컷 잠도 잤다. 우리의 출발지는 이화령! 버스와 히치를 통해서 도착! 근데 약간의 산행을 한다는 현주 언니의 말. 그러나 결국은 못했다. 왜냐면 날이 저물어서 이화령에서 첫날밤 을 보내기로 했다. 텐트를 치고 밥을 하고ㅡ, 용주와 나는 아직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몇 번 지순 언니한테 혼나기도 했다. 형관형이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서 용주와 나는 만두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형관형과 현주 언니가 만두와 고기를 사오셨다. 감격.^^ 첫날이라서 피곤하지도 않고 맛있는 것도 먹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내일부터의 산행이 얼마나 힘들지도 모르고 마냥 헤헤거렸다. 하계 둘째날 아침부터 분주하게 왔다갔다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마역봉. 힘차게 출발 후 한 1킬로미터는 길이 좋아서 별로

41 34 제12집 힘든 줄은 몰랐다. 그런데 한 두 개의 봉우리를 넘자 정말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배낭의 무게로 몸은 땅으로 푹 꺼질 것 같았고 비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인해 끝없이 물을 마시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게다가 앞으로 밀착! 하 는 지순언니의 목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내가 하계를 왜 왔을꼬. 이 생각을 하계 둘째, 셋째, 넷째 날에 가장 많이 했을 것이다. 나의 늦은 발걸음 때 문에 물론 마역봉까지 도착하지는 못했다 봉우리 정도에서 잠을 잔 것 같다. 힘들고도 힘든 하루였다. 이 날 아침에는 보다 못한 형관 형이 내 배낭에 있는 쌀을 3개나 들어 주셨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이때부터 형관 형에 대한 존경심이 싹텄을까?.^^ 목적지까지 도착하지 못한 우리는 비박을 해야만 했다. 능선 상에 있었기 때문에 물을 구할 수가 없어서 얼마 나 목말라 했는지. 종주 중했던 비박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비박날이었다. 바람이 얼마나 몰아치던지 우리 조 원들이 이러다가 날아가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판쵸우의로 바람을 아무리 막아도 어디선가 새어 들어오는 바람들. 바람의 위력을 여기서 실감했다. 피곤한 와중에도 무시무시한 바람 때문에 자는 도중 5번은 깼다. 그런 데 깰 때마다 지순 언니도 깨어있어서 날 웃기게 했다. 셋째 날 물이 부족했던 우리 조는 얼른얼른 물을 구해야 했다. 또 다시 이른 아침의 분주함ㅡ. 어제 지났어야할 조령 3 관문을 오늘에서야 지나게 되었다. 여기까지 올라오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는 분은 알 거다. 까리한 바윗길과 무거운 배낭. 정말 아슬아슬하 고.(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아찔한 바윗길에 거의 기다시피 했다. 조령 3관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도저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 할 것 같았다. 땀은 비오듯하고 목은 말라 죽겠고. 보다 못한 현주 언니는 큰 결심에 나섰다. 나의 비상식량을 꺼내시더니 포카리를 마시라는 것이다. 포카리를 먹고 힘내서 조령 3관문에 도착. 도착하자마자 물을 미친 듯 이 먹어댔고, 형관 형이 사준 2%의 맛도 잊을 수 없다. 크~. 여기서 아침밥을 먹고 또다시 출발. 그러나 나의 앞 에는 마역봉이 기다리고 있었다. 울고 또 울고, 콧물 닦을 기력도 없고, 게다가 이쯤해서 사건 하나가 터졌다. 까 리한 길을 힘겹게 올라가는 나를 위해 마음씨 좋은(?) 현주 언니가 스틱을 건네 줬는데 힘들어서 울컥 치솟는 감 정에 탁! 쳐버린 것이다. 순간적으로 흐르는 정적 ㅡ.ㅡ;;. 잠시 후 들리는 형관형의 웃음소리.(물론 기분이 좋아 서 웃지는 않았겠지만) 그 때 나는 속으로 얼마나 뜨끔했던지 여기서 인생 종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얼마나 태연한 척 했는지. 나중에 이 사건을 지순 언니가 말하길 현주 언니가 마음이 좋아서 그렇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얼차레 한 번 받았을 거라고. 이렇게 해서 마역봉을 찍고 하늘재를 향해서 열심히 갔지만 일정에 비해 거의 하루 정도가 늦어져버렸다. 그래 서 우리가 선택한 것은, 흐흐 마을로 떨어지는 거였다. 마을이름도 뭐였냐 하면 박마을 이었는데 지순언니 가 박씨라서 우리 모두 지순언니 같은 사람들만 살 거라고 농담으로 주고받았다. 계곡을 타고 박마을로 떨어지는 데 내려가다 보니 곧 계곡을 만났다. 용주와 나는 물에 굶주려 어여 빨리 물을 마시고 싶은데 세상에 지순언니가 쉬자는 소리를 안하는 거였다. 물먹고 싶어 헐떡이고 옆에서는 물이 졸졸 흐르고 있고. 결국 계곡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마을로 떨어졌다. 박마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맛있는 사과였다. 형관형과 현주 언니가 몰래 가져와서 모두들 하나씩 먹었는데 내가 먹은 사과를 형관 형이 깎아줘서 또다시 감격! 이화령에서 마패봉까지 까리한 바위는 내 배낭을 내려서 아래까지 옮겨줬던 형관형,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또 형관형은 OB선배님들 같이 않게 배낭도 우리들만 큼 무거워서 형관형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하늘을 치솟았다. 아무튼 박마을에서 막영을 하는데 어느 마음씨 좋은 아줌마 덕분에 샤워도 할 수 있었다. 모기장을 치고 길가의 가로등 때문에 어둡지도 않았고 씻고 나니 어찌나 세 상이 밝아 보이던지. 그렇게 그 날의 하루는 저물어 갔다. 예비일 하루 전날 우리는 박마을에서 히치를 해서(교회 목사님의 차였다) 벌재까지 들어갔다. 현주 언니가 말하길 오늘일정은 쪼 금밖에 안 된다고 했다. 지도를 보니 과연 그렇더군. 내일 지환형을(그땐 누군지도 몰랐지만) 저수령에서 만나기

42 로 했기 때문에 벌재에서 저수령까지만 가면 됐다. 이날 잊지 못할 사건이 생겼다. 나의 느린 걸음 때문에 형관형이 하나의 내기를 하자고 한 것이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2시간 이내로 가면 내 소원하나를 들어 준다는 거였다. 도착 못하면 쌀 하나를 내가 짊어지기로 하고. 지도를 몇 번이나 보고, 거리도 대충 가름해 봐서(또 현주 언니도 적극 권장해서) 내기에 응하기로 했다. 그 길 이 오르막길이라면 절대로 응하지 않았겠지만 대부분이 내리막길이었다. 2시간 동안 미친 듯이 갔다. 그 결과? 물론 내가 이겼쥐~. 소원을 뭘 말할까 하다가 나를 여태껏 열심히 도와줬던 용주의 소원을 들어주라고 했다.(용 주없는 하계는 생각할 수도 없다.) 용주의 소원은 2% 한 PET. 하지만 용주는 자신의 소원이 너무 하찮다며 그냥 내소원을 말하라는 거였다. 그래서 자신있게 모두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고 한 말이, 오늘 저녁 국 끓여 주세요! 그 순간 모두들 어이없는 표정들. 하지만 나는 그때의 소원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우리가 이날 저수령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 정도 된 것 같은데 이날 오후와 내일 하루가 우리들의 자유시간이었다. 점심을 재빨리 해치우고 밀린 빨래를 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빈둥거리고, 간식먹고, 이것저것 하다가 저녁 시간이 됐다. 저녁에 형관형이 끓여줄 국을 기대에 차서 바라보며 밥을 했다. 예비일 하루 전 저녁 시간이라 모든 게 한가롭고 형관형이 사온 먹을 것들도 한쪽 구석에 가득 찼다. 형관형이 끓여준 국은 한마디로 good!(재료가 좋아서 그러나?^^;) 저녁을 먹고도 먹을 것은 아주 풍족했다. 과자도 많고, 음료수도 많고, 고기도 많고, 술도 많고ㅡ. 헤헤 내일이 예비일이니깐 술을 적게 마셔야 한다는 걱정도 없었다. 부어라, 마셔라~! 술 마시고 게임하고(우리가 하계 중 주로 한 게임은 찡콩땅콩과 쿵쿵따였다.) 이야기하고, 특 히 이야기 할 때 내가 무서운 얘기 2개와 재밌는 얘기 2개를 준비해 와서 해줬는데 세상에, 무서운 얘기를 할 때 지순 언니가 귀를 틀어막고 안 듣는 거였다. 무서운 걸 싫어하는 지순언니라. 전혀 상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 래서 분위기 조성을 해야 하는데 지순 언니를 보면 너무 웃겨서 얘기가 중단되곤 했다. 게다가 지금 땅에서는 열 대야로 잠 못 이루는데 우리는 추워서 침낭을 똘똘 뭉치고 자야 한다는 아이러닉한 상황이 나를 웃기게 했다. 드뎌 예비일 이날 아침만큼은 늦잠 자도 된다는 지순 언니 의 말이 있었기 때문에 제일 늦게까지 누워 있 었다. 물론 잠은 빨리 깼지만 최대한 떼굴떼굴 굴러다니며 누워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고스 톱을 치기로 했는데 누가 땄을까? 흐흐. 내가 무려 1200원이나 땄다. 용주는 돈만 날리고. 아! 금같은 예비일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야 하는 게 싫었지만 달리 뭐 해야 할 게 없었다. 산행을 안해도 간식시간만 되면 왜 이렇게 배가 고픈 건지. 먹는 게 남는 것. 먹고 또 먹고. 오후 5시 정도 나의 다크호스 지환형이 들어 오셨다. 지환형의 첫 인상은? 크크, 정도를 지키는 사나이 외모 상으로 볼 때 지환형이 저수재 예비일날 얼마나 모범적으로 생겼던지. 이렇게 해서 예 비일 날 밤은 거의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모두들 즐겁게 마시고 놀았다. 그러나 밤이 깊어갈수록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내일부터의 일정에 또다시 깝깝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이 시간의 휴식을 최대한 즐기는 수밖 에. 예비일날 찍은 사진이 유일하게 하나 있는데 모두들 그 사진이 너무나 편안해 보인다고 한다. 내가 봐도 그 렇지만. 이렇게 해서 하계 첫 번째 예비일을 지환형의 합류와 함께 모두들 즐겁게 보냈다. 예비일 다음날

43 36 제12집 또다시 분주해지는 아침시간. 서둘러 배낭을 싸고 메는 순간, 얼라? 왜 이렇게 가벼워? 정말 그랬다. 우리가 예비일날 많이 먹어서인지 모두들 배낭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여태까지는 배낭이 무거워서인지 나의 기술이 부족해서인지 배낭을 혼자 메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드디어 배낭을 혼자 멜 수 있을 정도로 가 벼워진 것이다. 또다시 힘차게 출발! 또 한 명의 OB선배님의 합류로 인해 더 열심히 가야 한다는 부담이 들었다. 오늘의 목적 지는 죽령. 도착했을까? 물론 못했다. 정말 열심히 갔는데도 죽령에 도착하지 못하고 도솔봉에서 막영을 했다. 또다시 부족해진 물. 항상 도착해야 할 곳까지 못 가니깐 물 부족은 항상 있었다. 물 한 피트만 먹었으면. 능선 꼭대기의 헬기장에서 막영을 했는데 이날도 사건이 터졌다. 물을 구하기 위해 내려간 지순 언니와 용주,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거였다. 다시 지환형과 형관형이 찾으러 내려갔고 한참을 걱정하고 있을 때 지환형이 헐레 벌떡 오더니 형관형과 떨어져서 행방불명이고 길이 엄청 까리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실종신고하러 지금 죽령으 로 가야 한다는 거였다. 현주 언니와 나는 기겁을 하고 뜸들이던 밥의 불을 끄려던 찰라, 윽!! 이게 모두 지환형 의 장난이었을 줄이야. 현주 언니와 나의 어이없는 표정. 잠시 후 형관형과 지순언니와 용주가 물을 떠서 도착했다. 특히 용주는 완전히 녹초가 돼서 얼마나 처량해 보 였는지. 물 뜨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은 그 때 처음 알았다. 암튼 모두들 무사히 도착한 모습을 보니 정말 기뻤 다. 모두들 둘러앉아 뒤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그때가 밤11시 정도 됐을까? 식사를 맛있게 끝내고 떠온 물을 마 시는데 지환형이 하는 말, 무슨 물이 이렇게 미지근하냐? 모두들 어이없는 표정ㅡ.ㅡ 죽을 고생해서 떠온 물을 마셔보고 한다는 말이.(물론 장난으로 하신 거였다) 여 기서 용주는 얼마나 피곤했으면 귀신까지 봤다고 했다. 몸은 없고 발만(그것도 검정색으로) 저쪽으로 막 걸어가 더라는 것이다. 그걸 보면서 용주도 이런 곳에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이상히 여겼다고. 지순 언니는 귀신 봤다는 용주말에 더 열받아하고.(지순 언니는 무서운 걸 아주 싫어한다) 이렇게 해서 그날 하루도 무사히 끝났다. 그 다음날 우리 일행은 죽령을 향해 출발. 점심때 정도에 죽령에 도착했는데 하계 출발하 기 전에 창균형이 하는 말이 죽령에서는 양식집에 꼭 가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양식집 대신에 우리 가 먹은 것은 산채 비빔밥! 지환형이 카드를 긁어 서 사주신 거였다. 항상 점심은 라면만 먹었는데 오랜만에 밥을 먹으니 진짜 꿀맛이다, 꿀맛! 그 때 먹었던 산채비빔밥의 맛을 잊을 수 없다. 또 여기 서 음료수도 개인당 2개씩 사줘서 나중에 아주 유 용하게 먹었다. 점심밥을 든든하게 먹고 출발. 죽령에서 천체 관측소에 도착할 때까지는 길이 포장도로다. 포장도로라고 해서 산행이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더 미치겠다. 따가운 햇살에 땀 죽령에서 천문대 가는 길의 시멘트포장길 이 비오듯 흐르고 제발 히치를 해야 하는데. 오 직 이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무정한 차는 오지 않고 계속 올라가는 시멘트포장길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여기서 또 한바탕 울고. 현주언니와 지순언니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그렇게 했는데도 나의 발걸음은 한 없이 축축 늘어져만 갔다. 그때 바람같이 나타난 용달차! 거의 필사적으로 차를 세우는데 다행히 차는 멈췄고 용달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었다. 방금까지 펑펑 울다가 차를 타니깐 웃는 내 얼굴을 보며 지환형이 또 한마디 했다. 인간은 참 간사한 동물이야 속으로 맞는 말이라고 응수하고 고등학교 때 배운 차마설이 생각났다. 용달차를 타고 가다가 도중에 내려 천체 관측소까지 좀 걸어야 했는데 내리막길이 많아서 그나마 양호하게 도착했다. 천체 관측소를 전후로 경치가 끝내

44 주게 좋았는데 여기서 막영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들었다. 하지만 사진 몇 장 찍고 또 부지런히 갔다. 제1연화봉 까지 가는데 세상에 이건 또 뭐람. 무슨 계단이 이렇게 많아? 계단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오르막길 계단. 계단을 올라갈수록 점점 안개는 차오르고 바람도 장난이 아니었다. 얼마나 안개가 지독하던 지 한 2미터 앞은 보이지도 않았다. 혹시 나 혼자 떨어져서 길 잃어버릴까봐 열심히 쫓아갔는데 다왔다고 생각하 면 또 계단이 나타나고 끊임없는 계단. 진절머리가 났다. 거센 바람에 현주언니가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내 손을 꼭 잡고 현주언니가 걸음을 재촉했다. 이렇게 무서운(?) 안개와 강풍의 계단길을 마치고 이제 우리는 막영 할 곳을 찾아 부지런히 갔다. 비로봉을 못가서 막영을 한 것 같은데 또 다시 부딪히는 물 부족 문제. 이번에는 형관형과 지순언니가 물을 구하러 갔다. 다행히 이번에는 핸드폰 덕택으로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었고 형관형과 지순 언니가 무사히 물을 떠서 돌아왔다. 이날 물맛은? 한마디로 Very Good! 또다시 날은 밝아오고 우리 일행은 출발. 국망봉을 찍고 마당치까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푹푹 쪄오르는 헬기장의 열기로 두 번 다시 헬기장에서 밥을 먹나봐라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고치령까지 쉼없이 가서 조금만 더 가면 도로와 맞닿는 곳이 나오는데 여기가 막영지다. 이 곳에서 다른 OB선배님들과 만나기로 했다.. 우리의 종주모습을 신문 에 실으려고. 나를 이뻐해 주시는 영필형도 오셨다. 이날 저녁 또한 광란의 파티 분위기. 새로운 OB선배님들 덕 분으로 먹을 것은 넘쳐나고 (술, 고기, 과일) 크~ 정말 환상의 밤이었다. 거기에 먹고 싶었던 만두까지, 술도 실 컷 먹고 맘껏 놀고 싶었지만 내일의 산행을 위해서 일찍 자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또 다시 출발 ㅡ. 마구령을 향해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마구령을 찍고 조금 더 가면 도로와 만나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누굴 만났냐 하면 선희언니를 만났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곳에서 선희언니가 사온 수박과 음료수를 먹고 점심을 먹 었다. 세상에 선희언니와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쉽게도 그곳에서 언니와 헤어져야 했다. 얼마나 섭섭 했는지. 여기서 또다시 사건이 터졌다. 글로 써야 한다는 사실이 복잡하지만 이곳에서 용주의 선택이 달린 일이 생겼 다. 오늘의 막영지는 늦은목이였는데 이대로 순조롭게 막영지까지 가느냐 아니면 이곳에서 히치를 해서 도래기 재까지 가느냐였다. 단! 히치를 할 경우 다음날 쌈박하게 가는 조건으로. 이 중요한 선택이 용주에게 맡겨졌다. 용주의 선택은? 당연 용주는 히치를 하는 쪽으로 선택했다. 이날은 그 유명한 연속 네 번 히치한 날이다. 히치 하는 것도 정말 장난 아니더군. 히치도 잘 안되서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히치를 끝내고 무사히 도래기재에 도착했다. 여기서 이날 막영을 했다. 낮동안 종주 할 때는 무지 덥더니만 밤만 되면 왜 이렇게 추운지. 우리는 2개의 텐트에 현주언니, 지환형과 내가 한조, 형관형, 지순언니, 용주 이렇게 정해 놓고 잠을 잤다. 여기서 잠깐! 두 개의 텐트에는 밤마다 비명소 리와 헐떡이는 숨소리가 그치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크크. 우리 텐트에서는 안마한답시고 내가 지환형의 허리를 주물렀기 때문에 나의 힘이 세서인지 지환형이 밤마다 비 명을 질렀고, 용주네 텐트에서는 일명 B조 몸 가꾸기 라고 열심히 푸쉬업을 해서 헐떡이는 숨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얼마나 몸이 가꿔졌는지는 모르지만.^^ 다음날 아침 쌈박하게 가야한다는 지순 언니의 말이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지도를 보니 도래기재에서 구룡산까지 (1345.7m) 끝없는 오르막길이다. 헉! 돌겄다. 하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다행히 이 오르막길에서는 돌을 넣지 않았 다. 아마 구룡산을 찍고 돌을 넣은 것 같다. 돌을 넣었지만 체력이 많이 향상돼서인지 배낭이 아주 무겁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돌을 넣는 대신에 지순 언니가 선택한 것은 오리걸음. 오리걸음이 이리 힘들 줄이야.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오리걸음을 하는데 우리가 오리걸음을 하는 사이에 형들은 뒤에서 더덕을 캐왔다. 지환형이 벗겨주는 더덕을 먹

45 38 제12집 으며 마음을 달랬다. 고직령과 곰넘이재, 신성봉을 지나가는데 이날은 왜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지. 현주 언니와 용주가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사진을 찍었는데 아쉽게 이 사진은 현상이 안 된 것 같다. 암튼 신선봉을 지나 지도상으로 움푹 들어간 곳이 있는데 이날 이곳에서 막영을 했다. 이 날은 지환형과 현주 언니와 내가 물을 뜨러 갔다. 한 번의 시행착오 끝에 물을 발견, 바 위에서 졸졸 흐르고 있었다. 커다란 나뭇잎 하나를 대고 물을 받는다는 사 실을 그때 알았는데 확실히 물받기가 훨씬 수월했다. 우리가 떠온 물맛 은? 당연히 좋았쥐~. 내일은 대망의 태백산! 태백산 정상에 올라 들고 온 돌을 쌓는다는 현주 구룡산 가는 길에 캔 더덕들 언니의 말씀! 하지만 그날 저녁, 몰아치는 비바람 때문에 우리 쪽 텐트 안 은 물바다가 되고 물을 빠지게 하기 위해 지환형이 쓴 수법은 경사진 텐트 아래쪽에 조그맣게 구멍을 뚫는 거였 다. 장비담당 연주언니가 알면 무지 열받을 텐데. 암튼 쏟아지는 빗속에 다음날 아침을 맞았다. 아직도 비는 몰 아치고 있었고 일정을 빨리 해야 했기 때문에 돌을 넣는 것은 취소가 되었다. 흐흐.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았 군. 무작정 빨리빨리 가야 했다. 태백산 정상까지 엄청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태 백산. 내가 태백산 정상에 올라오다니. 크~ 감격! 태백산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살으리라는 주목 군락 한강 발원 오십천 물줄기 모두 천제단 아래 무릎 꿇고사 망경, 백단, 유일사 천년 고찰의 풍경 소리가 그대 향한 부름으로 목청 돋우어 단군 성전 뜨락을 향해 가슴을 타고 흐르는 시조 단군의 넋을 기린 그토록 설쳐댄 가슴하며... 부소산 삼거리에 경북 봉황땅 꼬리 내려 화방재 지신 랍은 태백산에 얽힌 내력으로 쉬임없는 역사의 깃발 앞세우고 책에서 읽은 거다. 좋아서 그냥 한번 올려 본 거다. 태백산을 넘어서 막영할 곳을 찾았다. 이제 종주가 끝나간 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절 이름은 모르겠지만 암튼 그곳에서 막영을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곳 아줌마가 우리를 안 받는다는 거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아줌마한테 정이 뚝 떨어져서 빨리 그곳에서 나오고 싶었다. 결국 좀더 내려와 텐트 칠만한 곳을 발견했다. 비는 계속 오고 있었고 우리는 재빨리 텐트를 쳤다. 이렇게 우리 는 종주의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되었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몸을 따뜻하게 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 텐트 안에서 또 빗물이 새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날 밤도 편안하게 자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그랬다. 자고 있는 한밤중에 지환형이 걸레를 찾는다. 걸레 저쪽 텐트에 있는 데요. 하고 말하 자 지환형 목청껏 봉순아!~ 하고 부른다. 잠결에 일어나서 걸레를 던져주는 지순 언니와 걸레로 열심히 텐트 의 고인 물을 빨아내는 지환형. 그 와중에도 현주언니는 시체같이 잠만 자고 있다. 그걸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종주의 마지막 밤도 그럭저럭 보낼 수 있었다. 종주 마지막 날 오늘 산행은 태백산만 내려가면 끝이다. 얼씨구나 좋아라고 하고 있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으니 바로 조가 만들기 였다. 미루고 미루다가 아직껏 만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아침밥을 재빨리 해치우고 조가 만들기에 전념했다. 분명 A조에서는 엄청난 조가와 설악시까지 외워서 들어올 거라는 언니들의 말에 일순간 기가 죽었다. 하지만 우리는 현주 언니의 도움으로 산행도중 1시간 반만에 설악시를 외웠고 하계시 도 지환형의 도움으로 외울 수 있었다.(지금은 많은 부분을 잊어버렸지만 ) 설악가를 용주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계가를 만들어서 부르기로 했다. 막상 일이 다급하다보니 하계가와 조가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이걸 설악산 으로 들어오는 차안에서 외우느라 고생 좀 했다.(잠이 너무 와서 ) 가사가 길지 않으므로 적어보고 싶다.

46 하계가 1절 : 굽이져 흰띠 두른 능선길 따라 강풍에 비박하던 첫날의 여운을~ 내 어이 잊으리오 이 황당한 산행을~ 잘 있거라 하계야 내 다시 오리니~ 2절 : 저 멀리 능선 길에 뙤약볕 쬘 적에 너와나 다정하게 오리걸음 걷던 길~ 내 어이 잊으리오 이 좆같은 산행을~ 잘 있거라 하계야 내 다시 오리니~ 조가 (참고로 조가는 컨츄리꼬꼬의 콩가 를 리메이크 함) 태백산 정상을 향해 달려라~ 출발이 싫다. 막영이 좋다. 매일 밤 한딱갈이 소주한잔 내게 너무 힘들어서 싫다. 잠 이나 자자. 모두가 잠들 때 도망 한번 해보고싶다. 그래 가라가라가라 도망 한번 가봐라. 하고 싶은 데로 하고 너의 집에 찾아가. 그래 바이바이바이 과연 만족할는지. 다시 잡혀오겠지. 나는 확신했었지. 한번의 히치를 꿈꾸던 용주 알 고 보니 히치만 네 번을 하네. 멈출래야 멈출 수 없네. 난 히치에 맛 들었나봐. 안돼 히치 안돼. 빨랑빨랑 걸어가라. 용주 또 복희 돌뎅이 집어너라. 복희야 그만 울어 콧물좀 그만 흘려. 태백산 정상을 향해 달려라~. 이렇게 가사를 외우며 설악산 C지구에 도착! 성필형, 연주언니, 가영이, 호상이 모두들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 지 모른다. 특히 동기로서 가영이가 그렇게 보고 싶었었다. 하지만 지환형과 형관형과 현주언니가 집으로 돌아가 신다는 거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섭섭함과 동시에 뭔가 허전하고 썰렁해진 기분이었다. 그 다음날은 예비일. 지환형이 서울로 가시기 전에 탕수육과 자장면을 사주셨다. 맛있게 먹었지만 막상 지환형을 보내려고 할 때 가 슴 한쪽 구석이 싸리하게 아팠다. 애써 태연한 척 지환형을 보내드렸다. 그 다음 언니들과 용주와 나는 설악산 릿지할 때 쓸 간식거리를 사러 마트에 갔다. 쇼핑을 좋아하는 나지만 몇 시간씩 있다보니 다리가 아팠다. 시간이 남아서 시장에도 갔는데 순대도 먹고 젓갈도 샀다. 이틀 후 이제 캠프장에는 예전의 그 썰렁함이 사라졌다. OB선배님들과 경환형과 도균형이 합류한 지금 캠프장은 시끌 벅적하다. 오랜만에 날씨가 그런 대로 좋아져서 릿지에 들어갔다. 우리 조의 목적지는 흑범 이었고 조원은 경환형과 지순언니와 용주와 나였다. 경환형과는 한번도 산행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약간의 기대가 됐다. 흑범길 초입으로 들어가는 길. 나는 설마 이렇게 까지 끝없이 올라야 하는 줄 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우리 외에도 흑범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경환형이 기어이 우리가 1등으로 가 야한다는 것이다. 오르고 또 오르고. 드디어 초입에 들어섰을 때 힘은 다 빠지고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언니, 간식 먹고 가면 안되요? 혹시나 거절할까봐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간식을 먹을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찔했던 순간이 흑범길릿지였을 것이다. 엄청난 고도에 머리가 빙빙 돌고 내게는 너무나도 고난이도의 암벽 같 았다. 바위 하나 올라가는데 1시간동안 파묻혀있고, 경환형과 용주는 아래서 추위에 떨고. 그 사이에 경환형이 용주에게 가르쳐 준 노래. 동지섣달 찬바람이 너무나 매서워~ 크크 용주는 지금도 이 노래를 톡톡히 써먹는 다. 암튼 바위를 하나 둘 넘으며 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4시 정도 지순언니가 알핀을 해 보란다. 별 생각 없이 알핀 을 하는데 어머 어디선가 연주언니의 대답 소리가 들린다. A조가 근처에 있구나 하는 생각에 두리번거렸지만 모 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들리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기쁘고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연주 언니 거기 끝났어요? 전방을 향해 큰소리로 물어본다. 응~ 거의 끝나가! 곧 이어 연주 언니의 대답 소리가 들려 왔 다. 우리는 아직 멀었어요 밥 해주세요 나는 저녁밥을 당부해 놓았다. 경환형이 슬링 하나를 놓고 와서 다시 가지러 가는 동안에 나는 노래를 4곡 정도 불렀는데 A조가 그 노래를 들으며 산을 내려갔다나. A조는 벌써 BC 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자 부럽기도 하고 빨리 끝내고 나도 산을 내려가고 싶었다.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멀었고 부지런히 간다고 갔지만 날은 어두워지고 개스는 차올랐다. 할 수없이 중간 탈출을 해야 하는 상황.

47 40 제12집 하강을 하고 나서도 비선대까지 가는 게 만만치 않았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한참동안 가다가 낯익은 길이 나오 고 비선대에 도착하니 9시 정도 된 것 같았다. 여기서 사먹은 오뎅과 감자전의 맛, 크~ 끝내 줬다. 이렇게 무사히 BC에 돌아온 우리. 따뜻하게 반겨주는 형과 언니 덕분에 다시 가운이 났다. 밥과 국을 해놓고 기다려준 모든 사람들이 정말 고마웠다. 특히 이날 밤은 지환형이 다시 합류한 날이기도 하다. 두 번째 릿지 기존의 인원에서 지환형이 추가된 우리 조! 이번의 목적지는 칠형제봉. 이번에는 1박 2일로 가기 때문에 비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지환형이 있어서 든든하고 아무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칠형제봉은 첫날은 암벽도 어렵지 않았고 트래버스를 한 번 해서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점심으로 준 볶음밥도 맛있었고.(지환형은 불평이 많았지만 ) 일정도 순조로웠다. 그날 저녁 비박지에서 빵을 싫어하는 지환형과 경환형은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는데 물이 부족해서 1개밖에 못끓였다. 그걸 둘이서 나눠 먹는 처량한 모습들이란 말로 표현은 못한다. 그날 저녁도 많이 추웠는데 지순언니 가 가져온 오리털 침낭이 유용하게 쓰였다. 다음날 새벽 지순언니와 경환형은 가운데가 솟아오른 자리 때문에 양 쪽으로 굴러 떨어져 있었고, 얼마나 춥게 잤을지 상상이 간다. 분주하게 아침밥을 먹고 출발, 40미터 하 강을 하게 됐는데 자일이 걸려서 경환형과 지순언니가 다시 돌아가서 자일을 회수하 게 되었고 그동안 용주와 나는 지환형한테 몽둥이로 얻어맞으며 노래를 배웠다. 공룡 능선을 저멀리 눈앞에 둔 지금 지환이형한 테 그토록 말로만 듣던 말잔등이 나왔다. 지순 언니한테 자일좀 당겨주라고 울고불 고 사정하며 겨우 올라갔다. 휴~, 긴장이 한순간에 풀린다. 지환형 겨우 2분 만에 올 라오고 경환형도 곧 올라온다. 그리고 두 번의 하강 후에 두시간을 더 걸어서 우리는 공룡능선에 들어섰고 칠형제봉 릿지를 완 칠형제봉 릿지 중 첫날 비박예정 봉우리에서 수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하계 마지막 예비일 ㅡ.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고 밥을 해야 하는 걱정도 없었다. 왜냐면 형과 언니가 밥을 해 주기로 되어 있었기 때 문이다. 이날 점심은 정말 거하게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유일하게 닭도리탕과 오뎅국이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환상적인 점심 식사를 하고 우리 모두가 간 곳은 속초 해수욕장. 드디어 바다에서 놀 수 있겠구나 버스 에서 썬 크림도 바르고 누굴 물에 빠뜨릴까 생각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드디어 도착. 지환형과 성필형과 가영 이와 내가 주로 물에서 놀았는데 성필형은 배영을 보여줬고 가영이와 합심해서 성필형 물 좀 먹이려 했더니만 그게 잘 안된다. 지환형 물 먹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물 먹을게 뻔하니까. 늦은 오후여서 물 속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고 밖으로 나와 지환형 모래찜질을 해 드렸다. 지환형 위에서 지순 언니 뛰어 놀 고. 이러다가 성필형과 나, 가영이와 용주가 편이 돼서 축구를 했는데 성필형의 맹활약(?) 으로 우리팀이 이겼 고 결국 용주가 사주는 핫도그를 얻어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설악산에서의 마지막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아쉽기만 하는지. 이렇게 나의 1학년의 잊지 못할 하계가 끝났다.

48 하계 장기등반(B조, 백두대간, 설악산) 46기 손용주 하계 첫날 어제 정국이형께서 내일 하계가는 기념으로 맥주를 사주셨다. 난 원래 늦게 일어나는데다가 술까지 먹으면 세 상모르게 자기 때문에 전날밤 엄청나게 긴장하고 잤다. 그 덕분에 새벽 4시정도에 일어날 수 있었다. 그때 자면 계속 자버릴 것 같아서 얼른 샤워를 하고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집을 나섰다. 나만 그런 걸까? 다른 사람도 그런 걸까? 산에 있을 때 보다는 동방에 있는게 훨씬 더 긴장되었다. 그때 복희 는, 그리고 다른 동기들은 기분이 어땠을까? 터미널에서 가영이랑 호상이랑 서로 설악산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했다. 호상이는 평소 때처럼 무덤덤하게 설악산에서 보자고 하고, 가영이 또한 평소때 처럼 밝게 웃으며 설악산 에서 보자고 했다. 성필이형은 나보고 복희를 많이 도와주라고 하셨다. 어제 경준이 형도 그러셨는데. 주위에 서 복희를 생각해 주시는게 알게 모르게 많이 느껴졌다. 이화령에 가기 위해 버스를 여러번 갈아탔다. 그동안 난 미리 프린트 해온 노래가사를 외우고 있었다. 정말인 지 산에서 노래 부르는 것은 고역이었다. 형관이형은 노래 가사를 보시더니 허허허 웃기만 하셨다. 형도 나 같 은 걱정을 해본 적이 있을까? 이화령에 가려는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이화령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없었던 것이다. 누나와 형은 약간의 고민을 하다가 이화령으로 가기로 했다. 이화령으로 걸어가는 도중 다행히도 지나가는 차가 있어서 힛치를 할 수 있었다. 이화령에서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밥을 먹었다. 휴게소에서 물을 얻으려는데 아저씨가 정말 물을 아 꼈다. 설거지도 못했다. 으~~~ 너무해. 그래서 화장지로 닦았다. 현주누나랑 형관이 형이랑 만두랑 고기랑 사오 셨다. 첫날이라 그런지 반찬이 푸짐했다. 이제 보니 그날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산행 내내 누나랑 형이랑 OB형 들 덕분에 항상 맛난걸 많이 먹을 수 있었다. 모든 걸 마치고 침낭에서 잠을 자는데 그때까지도 하계에 온 실감 이 안났다. 산행을 하지 않아서 그러나? 밤에 형관이형과 지순이누나 텐트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이글을 읽고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일명 몸 만들기반이었다. 형관이형의 주도아래 자의인지 타의인지 지순이누나도 함께 팔굽혀펴기 운동을 했다. 나도 밖에 서 한번 해봤는데 밤마다 하는건 고역이라 생각했다. 하계 2일째 하계 둘째 날이 밝았다. 지순이 누나의 시계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너무 더워서인지 아니면 긴장이 되서 그런 지 잠이 깊이 들지 않았다. 난 복희와 지순이 누나랑 밥 준비를 했다. 난 국을 맛있게 못 끊인다. 그래서 복희와 같이 밥 준비를 할 때면 내가 재빨리 밥을 한다. 그러면 복희가 자연스럽게 국을 끊였다. 복희가 있었던 것이 나 에겐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다. 오늘 출발시간은 원래 7시였는데 7시 20분정도에 출발했다. 거기에 내가 한몫했다. 짐을 싸면 항상 내가 늦는 다. 다른 사람 짐 다 싸고 쉴 때 나 혼자만 짐을 싸야 했다. 그것이 한두번이 아니고 계속 반복되니깐 나도 짜증 이 났다. 하지만 어쩌랴? 몸이 안따라 주는데. 누나가 갈구면 히히히 하고 웃음으로 때우는 수 밖에. 산행을 하는데 복희가 많이 힘들어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자인 내가 들어도 입이 벌어질만한 배낭을 산행을 별로 않해 본 복희가 들고 가고 있으니. 힘들게 가는 복희를 보니 저번 춘계 때 하중 훈련 하던 때가 생 각났다. 나도 그땐 눈물이 핑 돌았는데. 복희가 그때 나와 같은 일을 겪는 걸 보니 약간 안쓰러웠다. 그날의 코스는 릿지를 하는 기분이었다. 심심할 때마다 바윗길이 나왔다. 그것 때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하지만 날씨도 좋고 선배님들도 별로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아서 난 아무 걱정도 없이 걸어가기만 했다. 그런데 곧 어둠이 찾아 왔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가야하는 듯했다. 길도 좋지 않았다. 게다가 날씨가 더워서 물을 많이 먹 어 물도 없었다. 말이 하계지 춘계와 다를 바 없었다. 물이 없어서 저녁밥도 못 먹었다. 그래도 춘계 땐 3끼는 꼬

49 42 제12집 박 먹었는데. 그리고 연속으로 하강하는 곳에선 너무 위험해 배낭 먼저 내리고 사람이 내려갔다. 거기서 시간을 너무 오래 끌어 현주누나는 더 이상 가는 게 위험하다고 여겨서 비박을 하자고 하셨다. 그날 참 바람이 많이 불 었다. 그래서 배낭과 판쵸우의로 바람을 막았다. 그날 저녁 손으로 눈을 살짝 비볐는데 손이 더러워서 그랬는지 한쪽 눈에서 눈물이 계속났다. 왜 그랬지? 갑작스럽게 한 비박이었지만 난 별로 위급하다곤 생각되진 않았다. 아마도 그 상황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했던 누나들과 형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계 3일째 이튿날까지는 기억이 잘 나는데 셋째날 산행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내 생각에는 산행만 너무 열심 히 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한다. 크~ 이 일을 잘 했다고 해야 하나? 못했다고 해야 하나? 기억이 남지 않은 산행 이라니. 쩝, 아직의 내 머리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린 열심히 산행을 해서 약 6~7시 정도에 하늘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산행 최대의 깜짝장비 모기장을 폈다. 와~, 정말 좋드만. 시원하고 텐트도 안치고. 우린 얼른 밥 을 먹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하계 B조의 최대의 히트게임 찡콩땅콩을 시작했다. 처음에 할때는 먼저 게임을 제시한 복희도 쑥쓰러워했지만 잠시 후,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우린 그 게임을 하 게 됐다. 어제의 힘든 산행 이후의 휴식이라서 그런지 아주 편하고 좋았다. 종주 4일째 날이 밝았다. 우리 모두는 출발준비를 했다. 여전히 내가 가장 느렸다. 그것 때문에 난 지순이 누나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렇게 다 챙기고 나서 출발하려는데 이럴수가. 내가 양말을 안신어 버렸다. 지순이누나는 참았던 화를 그때 폭발시켜버리셨다. 용주. 돌가지고 와!!! 그렇게 난 돌 하나를 넣어 버렸다. 그날 저녁 우리는 이런 얘기를 나누었다. 나랑 복희랑 산행을 할때 너무 목이 마르다고. 그랬더니 누나들이랑 형관이형이 그럼 수낭을 채워 넣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난 다음날 아침 수낭을 넣기로 했다. 그래서 돌을 넣을 때 수낭이 터지지 않도록 돌을 넣고 수낭을 넣었다. 그렇게 산행을 하다가 무슨 이유인지는 생각이 잘 나진 않지 만 또 다시 돌을 넣게 되었다. 너무 급히 넣는 바람에 난 그 돌을 수낭 위에 올려 버렸다. 그렇게 돌을 넣고 가는 데 갑자기 배낭에서 조금씩 조금씩 물이 나오는게 느껴졌다. 난 누나에게 수낭이 터진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내 불길하고도 기분좋은 예감은 들어맞았다. 그래서 그 수낭의 물을 먹고 나머지는 버렸다. 그리고 다시 올라 가다 가 돌을 버렸다. 정말 후련했다. 그렇게 계속 올라갔다. 여전히 복희가 많이 힘들어했다. 그런데 복희가 그때부터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쉴 때마다 복희는 지순이누나 와 현주누나가 가지고 있는 지도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틈틈히 누나 지금 어디에요? 오늘 어디에서 막영해요? 몇시간 더 가야해요? 등등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끔씩 앞코스 탐사도 가보고 활기를 띄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다가 우린 점심을 먹었다. 라면에다가 그리고 처음으로 낮잠을 잤다. 아! 산행 중에 자는 낮잠이 이렇 게 맛있을 줄이야. 그렇게 낮잠을 잔 후에 다시 갈려고 하는데 형관이형은 조금 더 쉬었다가 가신다고 했다. 그 래서 우리는 먼저 빨리 갔다. 약 40~50분정도 산행을 하고 배낭을 내려놓는데 배낭끈이 우드득하고 뜯어져 버렸 다. 이럴수가. 내가 평소에는 배낭을 매우 조심히 놓는데 그땐 왜 그렇게 놨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일이 일어나 려면 어떻게든 일어난다더니. 그래서 지순이 누나랑 형관이형이 내 배낭을 꿰매 주셨다. 그렇게 시간이 어영구 영 많이 흘러 버렸다. 그래서 누나들이랑 형들께서는 어려운 결정을 하셨다. 마을로 떨어지기로. 그렇게 우리는 마을로 떨어졌다. 약2시간 정말 쉼없이 내려갔다. 목말라 죽겠는데 바로 앞에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건 정 말 고통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마을로 떨어졌다. 그곳에는 과수원이 참 많았다. 사과를 몇 개 따서 주셨는데 와~, 정말 꿀맛이었다. 거기에서 막영을 하려고 모기장을 펴려는데 방송이 들렸다. 거기는 상수원이라서 막영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할 수없이 조금 내려와서 막영을 했다. 정말인지 짧고도 긴 하루였다. 종주 5일째 아침에 일어나서 얼른 모기장을 치고 산행 준비를 했다. 배낭을 거의 쌀 때쯤 갑자기 코에서 액체가 나오는 것

50 을 느낄 수 있었다. 코피였다. 앗싸!!! 요 코피로 인해 앞으로 펼쳐질 시나리오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앞으 로, 그러니깐 적어도 하루 이틀은 산행이 편해질거란 생각이 코피가 코속에서 코밖으로 나올때 스쳐지나갔다. 아 니나 다를까 일정이었겠지만 그날 반나절 예비일을 했다. 그리고 현주누나가 특히 안쓰러운 모습을 보였다. 근데 그게 오래가니깐 나도 조금은 부담이 갔다. 어쨌든 우선 우리는 삼거리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오랜만에 도로를 걸으려니깐 확실히 발바닥이 아팠다. 그 후론 힛치를 할 수 있었다. 어떤 교회에 다니는 아저씨였는데 친절하게도 우리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었다. 벌재 에 가는 도중에 박마을이란 곳이 있었는데 지순이 누나가 괜히 찔려하다가 박마을의 한 아이를 보고는 오바를 했다. 지금와서 얘기지만 하계 뒷풀이 감자탕집에서 그말을 했더니 지순이 누나가 내 뒤통수를 때리는 것이 아닌 가? 어쨌든 벌재에서 우린 다시 대간 길로 붙었다. 갑자기 가스가 끼더니 비가 내렸다. 그리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 졌는데 그래서 그런지 물 없이도 간식이 잘 들어갔다. 그런데 간식을 거의 먹을 때쯤 형관이형이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저수령까지 2시간내로 가면 복희의 소원을 한 가지 들어준다고 하셨다. 복희는 흔쾌히 응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 꾸준히 걸어갔다. 사진 찍는 시간까지 아껴가면서. 그리고는 결국 2시간 만에 와 버렸던 것이 다. 형관이형은 순간 긴장했다. 그리고 나머지 우리 모두도 긴장했다. 형관이형은 자기 선에서 가능하다면 다 들 어 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복희는 한참동안 말을 않다가 말했다. 용주 소원 들어주라고 했다. 헉!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정말 허탈했다. 복희는 자기의 특별한 소원도 없이 내기하고 달려 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소원만은 들어 줄 수 없었다. 어떻게 두시간 동안의 노력과 이프로 한피트와 바꾼단 말인가??? 그래서 난 복 희보고 끝까지 자기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한참 후 형관이형에게 국을 끊여달라고 했다. 이프로 한피 트보다는 더 나은 소원이었다. 그날 저녁은 삼겹살도 있고 다른 건 잘 생각이 안나지만 어쨌든 굉장히 반찬이 좋 았던 걸로 기억이 된다. 거기엔 내 코피가 알게 모르게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산행이 힘들면 가끔씩은 코 피 흘리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종주 6일째 오늘은 말로만 듣던 진짜 예비일이었다. 어제 현주누나께서 눈뜰 때까지 일어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난 아침에 가끔씩 깼었는데도 눈을 감고 잤다. 근데 지순이 누나는 깨어 있었다. 누나는 잠을 많이 자는 체질이 아 닌가 보다. 가끔씩 눈이 떠지는 것은 오기로 참고 잠을 잤지만 화장실 가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난 조용히 화장실 갔다온 후 잠을 자려했지만 헉!, 이럴수가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누나들이랑 형관이 형이 깨 어있었다. 잠은 다잔 것 이었다. 잠잔 후 밥먹고 나니 할일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스톱을 하기로 했다. 처음 에는 형관이형 돈을 빌려서 했다. 처음에는 나랑 복희가 선전을 했다. 의외로 현주누나랑 형관이형이 계속 돈을 잃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칠 때쯤 갑자기 누나가 돈을 따기 시작하고 덩달아 형관이형도 따서 나는 돈을 다 잃 어 버렸다. 게임이후 그림 찾기 놀이도 하고 찡콩땅콩 놀이도 하고 서로 카드를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씩 빼가지 는 놀이도 했다. 그렇게 놀다가 할 일이 없어 쉬고 있을 때쯤 지환이형께서 오셨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그리고 저녁에 술마시 면서 이야기를 했다. 지환이형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산행은 우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거니까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우리만의 즐거움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그 말씀을 듣고 나니 우리조가 예정되었던 일정대로 못가서 찝찝했던 느낌이 확 풀어졌다. 그리고 지환이형은 내가 현준이형이랑 똑같다고 자꾸 그러신다. 그때 학산인의 한마당 뒷풀이때는 아무 말씀도 없더니 오늘은 말을 많이 하셨다. 특히 옛날 하계얘기, 도균이형 김치 버린 얘기나 경환이형 1학년때 춘계간 얘 기, 그리고 칠형제봉 말잔등같은 코스에서 옥랑이 누나가 얼어버리셨던 얘기 등등, 현 우리 산악회의 왕고형들의 숨겨진 비화가 쏟아져 나왔다. 큭큭 그런 일이 있었군. 하지만 그날까지는 지환이형이랑 별로 안지내봐서 그런지 약간은 부담이 갔었다. 종주 7일째

51 44 제12집 오늘의 산행이 끝났다. 우리는 도솔봉에 막영을 하기로 결정했다. 지순이 누나는 복희랑 나랑 둘 중에 한 명과 같이 물을 뜨러 가자고 하셨다. 그래서 난 내가 물을 뜨겠다고 했다. 물을 뜨러 가면 몇몇의 이점이 있기 때문이 었다. 물도 실컷 마실 수도 있고 씻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순이 누나를 따라갔다. 약 15~20분 정도 내려간 후에 지순이 누나가 왼쪽에 귀를 기울였다. 물소리가 들릴까 해서였다. 나도 같이 들어 보려고 했는 데 바람소리인지 물소리인지 구분이 안갔다. 지순이 누나는 함부로 떨어져서 길을 잃어 버릴까봐 섣불리 계곡 방 향으로 떨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누나는 조금 더 내려가 보기로 했다. 어두워질까봐 누나는 빨리빨리 내려갔는데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나는 옆에 나무에 기댄 채 숨을 골랐다. 그런데 그 순간 어떤 검은색의 다리가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난 누나에게 그걸 말했다. 누나가 그걸 듣 더니 그 방향으로 알핀 을 외치고 거기 누구 있냐고 외쳤다. 그래도 사람이 나오지 않자 누나는 나에게 짜증 을 냈다. 확실하지 않으면 말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땐 날도 밝았는데 누나가 과민반응을 하자 난 누나에게 그 랬다. 누나 날씨도 밝은데 왜 그러세요? 나중의 말이지만 누나는 그 말이 더 무서웠다고 한다. 어쨌든 약 1시간 정도 내려간 다음 누나가 확신을 갖고 옆으로 떨어졌다. 계곡에 물이 콸콸 넘쳤다. 그런데 누나는 매우 서둘렀다. 물을 약간 먹은 다음 평소에는 내 발 이 더럽다고 말한 누나가 씻을 시간도 주지 않고 출발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걸 이렇게 생각했다. 위에 형들이 기다리고 있을까봐 이렇게 서두르고 있구나. 라고. 그래서 난 아무 말없이 따라갔다. 하지만 누나가 빨리 올라가려고 했던 일차적인 이유는 중간에 무덤을 날이 밝을 때 지나치기 위해서였다. 난 그때 그걸 몰랐기 때문에 중간에 지순이 누나에게 장난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 다. 그렇게 2~3시간을 올라가니깐 형관이 형의 에코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들리니깐 안심했다. 지환이형께서 는 복희랑 현주누나에게 용주랑 지순이가 안온다고 얼른 죽령으로 가서 신고해야겠다고 장난을 치셨다. 그날 물 을 뜨러가는게 쉬운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저녁에 지환이형께서 말씀하셨다. 물 같은거 뜨러 갈 때는 시간을 정해놓고 그때가 넘으면 조원들이 너무 흩어 지지 않도록 다음 조치를 조심스럽게 취해야 한다고. 그 말을 들으니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종주 8일째 또다시 산행을 열심히 했다. 그래서 우리는 죽령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지환이형께서 비빔밥을 사 주셨다. 차려 진 밥인데다가 내가 좋아하는 비빔밥이라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런 후에 우리는 소백산으로 향했다. 처음에 올라 갈 때는 날씨도 쨍쨍하고 시멘트 길에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다같이 올라 갈려고 하는데 형관이 형이 나랑 같이 올라가자고 하셨다. 정말 빡쎘다. 올라가면서 형과 같이 설악시도 외워보고 설악가도 배웠다. 한참 올라가 서 쉬려는데 아래서 용달차가 올라왔다. 그런데 그 차가 우리를 안 태워줬다. 그래서 그냥 다시 오르려고 하는데 또 한 대의 용달차가 따라왔다. 거기에 누나들이랑 복희가 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탈 수 있었다. 그렇게 해 서 2시간을 절약 할 수 있었다. 그 후로 계속 소백산에 올라갔다. 천문대를 지나고 나니 날씨가 점점 안 좋아졌다. 계단을 갈 때쯤에는 가스가 끼고 바람이 엄청 불었다. 하지만 소백산은 정말 예뻤다. 경치도 좋고. 그렇게 가다가 국망봉 밑에서 우린 막영을 했다. 형관이 형이랑 지순이 누 나가 물을 떠오셨다. 이번에도 물 뜨는데 2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으~, 물 한번 뜨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산행 하겠나? 또다시 물 뜨기가 쉽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경험이었다. 종주 9일째 우리는 국망봉을 지나 계속 산행을 했다. 그런데 안개도 많이 끼고 길도 험해서 다른 길로 내려갔다. 계속 내려 가다 보니 마구령이 나왔다. 거기로 OB형들께서 오신다고 했다. 오래간만에 손과 다리를 씻을 수 있었다. 그리 고 곧 형들께서 오셨다. 저녁에 형들께서 가져오신 과일과 고기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헌주형 하계때 이 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는 억지로 무겁게 들고 산행을 했다니 늦게 태어난 것이 다행인것 같다. 그리고 그 때는 OB형들께서 별로 안들어 오셨다고 하셨다. 헌주형 뿐만 아니라 다른 형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랬다. 최 근 들어서 OB형들께서 많이 들어오시는 듯했다. 정말 난 행운아인 것 같다.

52 종주 10일째 아침이 밝았다. 다시 우린 산행을 시작했다. 헌주형과 영필이형도 함께였다. 헌주형께서 신문기사에 필요한 사 진을 찍으셨다. 복희 물마시는 포즈, 내가 힘들어하는 포즈, 멋진 풍경과 함께 전 대원이 함께 찍은 것 등등.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내가 빳다 맞는 포즈.ㅜ.ㅜ 사진을 찍은 후에는 형들께서 돌아가셨다. 우리는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몇 시간동안 산행을 계속하다가 지순이 누나가 무슨 소리를 듣고서는 갑자기 뛰 어가기 시작했다. 누나말로는 누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알고 보니 써니 누나가 기다리고 계셨던 거였다. 난 너무 기뻐서 달려가다가 그날 처음으로 넘어져 버렸다.(절대 발을 헛딛어서 넘어진 게 아니다.) 내려 가 보니 써니누나가 머리 두개 크기만한 수박과 음료수들을 가지고 오셨다. 크~, 맨날맨날 이렇게 맛있게 먹으 니 산에서 내려가면 서운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있다가 현주누나께서 제안을 하셨다. 첫째는 그냥 일정대로 산행을 할 건지 아니면 힛치를 한 후에 빡 세게 산행을 할건지. 난 물론 힛치를 하고 싶었다. 이번 하계에 힛치다운 힛치를 한번도 못해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 복희 생일이었다. 어쨌든 후자로 하기로 결정을 봤다. 그리하여 하계 역사상 기록에 남을 힛 치는 시작 되었다. 우선 소백산 국립공원을 내려가기 위해 한번의 힛치를 했다. 그런데 내려와 보니 지환이형 말씀이 실감났다. 산에 있을 때는 서늘했었는데 밑으로 내려와 보니 찜통더위가 아닌가! 우리는 빨리 물품을 사고 나서 힛치를 하 기로 했다. 처음 힛치를 하려는데 사람들이 우리를 태워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우리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우리 를 태워주지 않는 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두 조로 나누었다. 작전은 이랬다. 한쪽이 차를 잡으면 그쪽으로 다른 조도 몰려가기로. 그래도 사람들이 태워주지 않았다. 알고 보니 앞에 검문소가 있어서 태워주지 않았던 것이었 다. 하지만 운좋게도 앞조가 차를 잡아서 우리 조도 그 차를 타고 오색약수탕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오색약 수탕에서는 다시 앞조가 차를 잡아서 또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런 후 또다시 힛치를 해서 결국 도래기재로 올 수 있었다. 거기는 막영 장소로는 아주 좋았다. 약간 냄새는 났지만 계곡에 물이 철철 흘렸다. 그날 저녁 우리는 개 운하게 씻고 밑에서 사온 것도 먹으면서 그날 밤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마치 MT를 온 기분이었다. 종주 11째날 드디어 또 아침이 밝았다. 그리고 오늘은 복희생일이었다. 처음에 올라갈 때 지순이 누나가 먼저 복희에게 생 일축하노래를 불러주고, 그런 다음 모두 다함께 생일축하노래를 불러줬다. 음, 산행중에 생일을 맞는 것도 괜찮 군. 그런데 오늘은 빡세게 가는 날이었다. 그것을 의식한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산악의 형제 를 부르다 자 꾸 틀리니깐 오리걸음을 하게 되었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복희가 그때 운 것은 힘들어서가 아니라 생일날 오리 걸음을 하게 된 것이 너무 서러워서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참 올라가다가 형들께서 더덕을 캐주셨다. 우리가 오리걸음 하고 있을 때 뒤에서 더덕을 캐오셨다고 했다. 난 그때 처음 먹는 거였는데 맛은 없었다. 그렇지만 몸 에 좋다고 하니 잘 들어가더군. 그렇게 가다가 고직령에서 돌을 넣게 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무거웠다. 복희가 그때 많이 힘들어했다. 하 지만 예전과는 비교도 못하게 잘갔다. 음, 이게 하계의 성과인가? 그렇게 가다가 쉬는 시간이었다. 다 쉬고 지 순이 누나가 일어설 때 돌때문에 휘청해서 뒤로 넘어지셨다. 그 때 내가 누나에게 그냥 무의식적으로 그랬다. 누나 무리하지 마시죠. 지금 내가 생각해도 하필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것 때문에 열받은 지순 이 누나 때문에 난 큼지막한 돌 한 개를 또 넣어야 했다.ㅠ.ㅠ 그런 후 계속 가다가 신선봉을 넘어서 삼거리에서 막영을 했다. 저녁부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누나랑 형들이 나오시더니 갑자기 배수구를 파기 시작했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리고 한참 텐트에 있는데 텐트와 플라이가 붙어서 물이 스며들었고 텐트 한개는 플라이천 장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정말 텐트를 잘 쳐야하는 이유를 실감하게 했다 종주 10일째 그날 비는 행운의 비였다. 아침에도 계속 내렸다. 그래서 현주누나가 10시까지 텐트에서 쉬기로 결정 하셨다.

53 46 제12집 못난이(^^) 부부. 고직령을 넘어서 비에 젖어 점심 중 그리고 현주누나께서 날씨도 안좋고 길도 안 좋고해서 돌을 두고 가시기로 했기 때문이었 다. 우리는 그때부터 정말 정신없이 갔다. 가 고가고 계속 갔다. 별로 쉬지도 않고. 그리고 태백산 정상에 올랐다. 얼른 사진 한판 찍고 또 갔다. 계속 갔다. 그런데 절이 보였다. 거기 에서 자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아래쪽 에서 막영을 했다. 비가 와서 텐트가 젖어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주 좋았다. 그 날 저 녁에 우리는 조가를 지었다. 그리고 예전의 기 억을 되살리며 하계가를 지었다. 정말인지 우 리의 하계가 여실히 드러난 조가와 하계가인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종주를 마치며 조가를 짓다보니 종주가 참 빨리 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주 마지막날 오늘이 드디어 종주 마지막 날이었다. 시간은 13일이 훌쩍 지난 것 같은데 그 때 당시에는 별로 한 것이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도래기재로 힛치한 것이 좀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힛치는 해버렸는데. 오늘 아침은 현주누나께서 아침을 해 주셨다. 난 하계 마지막날 형들이랑 누나랑 밥을 해 주시는 걸로 알고 있 었는데 조금 뜻밖이었다. 김치찌개를 해 주셨다. 똑같은 김치로 해주셨는데 맛은 달랐다. 이게 바로 쌓아온 실력 차이인가? 어쨌든 밥을 먹고 하산을 시작했다. 축축하게 젖은 옷을 다시 입는 기분이란. 으, 다 알거라고 믿는다. 태백 산을 얼른 내려온 후 버스를 타기 위해 도로를 걸었다. 도로를 지나가는데 옆으로 차들이 쌩~쌩~ 지나가니깐 밖 으로 나온 것이 실감났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차가 별로 없었다. 태백으로 와서 임계로 가는 차를 기다리는 동 안 지환이형께서 삼겹살을 사 주셨다. 정말인지 미친 듯이 먹었다. 오랜만에 차려준 밥을 2번이나 먹었다. 이게 이렇게 좋을 줄이야. 흐흐흐 -.- 설악산으로 이동하는 동안 조가랑 하계가를 외었다. 근데 너무 피곤해서 도중에 잠만 잤다. 드~~~~디어 설악산! A조를 만났다. 근데 무덤덤했다. 호상이는 여전히 덤덤하게 안녕 이라고 하고 가영이 는 출발때처럼 웃고만 있었다. 짐을 얼른 정리하고 드디어 저녁. 산악회 멤버 모두 모였다. 이렇게 저렇게 술이 한잔씩 들어가고 나니 자연스럽게 스테레오 게임이 시작되었다. 정말인지 아쉽게도 내가 구멍이었다. 성필이형의 비호아래 내일은 예비일! 을 외치며 게임을 즐겼다. 그 이후는 생각이 안난다. 오~늘은 예비일!!!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내가 있는 곳은 에코로바 텐트 안이었다. 어제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속이 울렁거렸다. 오 늘 현주 누나랑 종천이 형이랑 형관이 형께서 광주로 내려가셨다. 형관이 형은 알고 있었지만 현주 누나까지. 어쩐지 누나가 어제 밥을 해 주시더니. 아침밥을 먹었다. 하지만 그 아침밥은 몇분 후에 어쩔 수 없이 화장실에서 확인해야만 했다. 지환이형 가시는 거 배웅할겸 장도 볼겸 야영장을 나섰다. 버스를 타니 속이 울렁거렸다. 꾹꾹 참았다가 버스 내리고 헛구역질을 했다. 누나들께서 그걸 보고 약을 사주셨다. 그 후에 지환이형께서 짜장면을 사주셨다. 먹고 싶었지만 도저히 속이 좋지 않아 먹을 수 없었다. 그냥 아쉬움을 접어둔 채 간간이 탕수육만 조금씩 먹었다. 그 런데 몇 개 들어간 순간 또 속이 울렁거려 금방 먹은 탕수육과 약을 확인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곧 좋아지겠 지 생각하고 복희와 지순이누나 연주누나랑 마트에 갔다. 물건을 사는데 가끔씩 헛구역질이 나왔다. 마트간 다음 에 여벌 비닐을 사기 위해 시장에 갔다. 누나들 따라다니는데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그날따라 무슨 놈의 날씨

54 는 그렇게 추운지. 야영장에 돌아온 나는 운 좋게 잘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헛구역질이 또 났다. 급해서 텐트 바로 바깥쪽에 했는데 노란 국물이 나왔다. 나로써도 의외였다. 이제 나올게 없는 줄 알았는데. 그리고는 또 잤다. 깨어나 보 니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내 밥은 미음이었다. 연주누나가 해주신 거였다. 내 생에 두 번째의 미음이었다.(누 나~~ 고마워용~~) 어쨌든 오늘은 오바이트로 시작해서 오바이트로 끝난 날인것만 같다. 노적봉 이야기 지금까지는 비가 와서 허가가 나지 않았었는데 유일하게 노적봉만 허가가 났었나보다. 우리는 노적봉을 향했 다. 계속 비만 와서 하기 싫어했던 바위도 그날만큼은 즐겁게 갔다. 우리는 한사람씩 노적봉 바위를 올랐는데 오 르지 않는 사람은 매듭법이나 장비쓰는 방법에 대해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 옆에는 산악회인지 아니면 다른 소속 사람인지는 몰라도 주마로 계곡을 건너는 연습을 하고 있었 다. 모두 노적봉 1피치정도 하고나서 시간이 없어서인지 비가 와서인지 우리는 철수를 했다. 그리고는 워킹을 했 다. 비선대, 천불동계곡, 귀면암, 비룡폭포 등등을 보며 올라갔다. 그리고 나서 내려왔는데 천화대를 갔다 오신 OB형들께서 계셨다. 그래서 우린 전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자꾸 비가 오니 큰일이었다. 축구 이야기 아침에 비가 와서 오늘 산행을 못했다. 잠시 비가 안 올 때쯤 형들이 야영장에 있는 인공암장에나 가자고 하셨 다. 그래서 거기로 가서 하는데 높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좀 많이 미끄러웠던 것 같았다. 어쨌든 거기서 운동을 하다가 갑자기 도균이 형이랑 경환이 형께서 의대팀이랑 축구를 하자고 하셨다. 날씨도 춥고 비도 보슬보 슬 내리고 바람도 불고해서 그 말이 나올 땐 정말 하기 싫었다. 하지만 형들께서 계속 추진해서 축구를 하기로 했다. 축구를 하는데 약간의 전력차이가 났나보다. 자꾸만 우리 팀이 밀렸다. 이렇게 해서 한 골 먹고 저렇게 해 서 한 골 먹고 게다가 호상이 발톱이 안 좋아서 충분히 힘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 호상이가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는 폼이란. 흐흐흐. 하지만 계속 하다보니 나름대로 축구를 즐기는 듯 보였다. 거기다가 우리도 골을 많이 넣었 으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쩝. 자꾸 골을 먹으니깐 우리는 작전을 변경했다. 우리 팀 여자를 모두 앞으로 진출 시켰다. 그런지 20분정도 지났 을까? 가영이가 한 골을 집어넣었다. 그때 경환이 형이 이렇게 말하셨다. 우리가 져도 괜찮다. 저기는 여자한테 골 먹었다! 하지만 10분 정도 있은 후에는 우리가 그쪽 여자에게 골을 먹어버렸다. 헉! 마지막 골든 골을 먹은 후 시합을 끝냈다. 이 시합은 우리 멤버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경환이 형과 도균이 형은 다리부상을 크게 당 했고 나머지는 발뒷꿈치 부분이 많이 벗겨졌다. 의대팀도 상당히 많이 다쳤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번 종주기간 때보다 이번 축구 시합 때 더 많이 다쳤다. 정말인지 이번 하계의 뜻하지 않은 변수였다. 대청봉 이야기 오늘은 그렇게 비가 내리진 않고 날씨가 서늘했다. 성필이 형은 릿지나 바위는 안하기로 결정하고 대청봉에 올 라가기로 결정하셨다. 내가 릿지나 바위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좋아했는데 자꾸 일이 그렀게 되지 기분이 조 금 찝찝하기도 했다. 산에 올라가다 평소 때처럼 지순이 누나가 46기인 우리에게 노래를 시키셨다. 그리고 자연 스럽게 지순이 누나랑 연주누나도 부르시고, 도균이형이랑 근형이 형도 부르시게 되었다. 거의 모두다 한곡씩 불 렀지만 성필이 형은 끝까지 오르막에서 부르신다고 말씀하시며 노래하는 것을 꺼렸다. 모두가 성필이 형의 노래 를 듣길 원하는 분위기가 되자 나는 총대를 매고 자꾸 성필이 형이 노래를 부르게 부추겼다. 무기는 룰루랄라룰 루라~~ 하나둘셋넷 시~~작 으로.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난 성필형에게 따로 불려서 돌을 넣을 뻔했다. 그 이 후로는 성필이 형에게는 노래불러주라는 말을 못하겠다. 우리는 한참 산을 올라 소청에서 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날씨가 좋았다. 머리위로는 아무 나무도 없 어 더웠지만 오래간만에 보는 햇빛이라 반가웠다. 그리고 거기에서 운해를 봤다. 정말 바다인가 하고 착각될 정 도로 넓고 아름다웠다. 밥을 먹은 후 우리는 대청을 향해 갔다. 그런데 왠지 가는 길이 무등산의 중머리재와 비

55 48 제12집 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곳은 왠지 무등산을 갈 때마다 생각날 것 같았다. 대청에 오르니 동해바다가 보였 다. 설악산에서 동해바다가 보인다더니 정말이었다. 그런 후 우리는 하산을 했다. 흑범길 릿지 이야기 오늘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날씨가 좋아 드디어 설악산 릿지를 할 수 있었다. 장소는 천화대, 그리고 흑범길. 크~, 근데 오늘 아침 출발시간이 늦어졌다. 그래서 약간 서둘렀다. 나랑 지순이 누나랑 복희랑 경환이형이랑 흑 범길을 갔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초입에 들어서기가 너무 힘들다. 초입 들어가기도 전에 자일을 깔았으니. 축구의 타격이 커서일까? 아니면 지순이 누나가 선등을 서보고 싶어서 일까? 지순이 누나가 선등을 서고 우리 는 그 뒤를 따라가게 됐다. 좋은 날씨에 릿지를 하니 오랜만에 옷에서 땀냄새가 났다. 크~, 영원히 안맡았으믄 좋겠구만. -.- 지금 와서 생각이지만 역시 바위보단 릿지가 훨씬 좋은 것 같다. 바위는 올라가면 바로 바위고 또 바위고 한데 릿지는 바위를 하면 걸을 데가 나오고 걷다가 심심하면 또 바위가 나오니깐. 설악산이 좋다는게 바로 이것 때문일까? 경치랑 고도감이 장난이 아니다. 와~~~~ 여기서 떨어지면 진짜 끔찍하겠다. 흑범길을 하다가 좀 까리한곳을 만났다. 릿지를 할땐 대개 복희가 먼저 올라가고 내가 따라 올라갔다. 거기를 복희가 먼저 올라갔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복희가 힘이 빠졌는지 종주 이후론 안녕일줄 알았던 울음을 터트렸 다. 뒤에선 경환이 형까지 갈구니 크~~~~ 정말 흑범 잡기가 쉽지 않구만. 복희가 올라간 후 내가 올라가려는데 경환이형이 그랬다. 시간이 없으니깐 안자일렌으로 가자. 슬립 먹으면 않된다. 너 떨어지면 나도 떨어지고 확보 보는 사람도 위험하니깐. 정말 200% 부담되는 말이었다. 거기를 올 라가려니깐 정말 잘 안올라가지는 데가 있었다. 그래서 난 나도 모르게 오토바이를 타버렸다. 뒤에서 경환이형이 보더니, 용주! 오토바이 헬멧 쓰고 오토바이 타 부러?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잘 안올라 가진디 어떻게 하라고? 한참 재밌게 릿지를 하는데 갑자기 하늘에 구름도 끼고 가스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반정도 밖에 안한 것 같던데. 그리고 저 멀리서 천화대팀은 이미 하산하는 듯 했다. 그리고 곧 있어 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했다. 형과 누나는 고민했다. 계속 할까 말까? 나는 말자고 했다. 또다시 릿지하면서 박수치며 뛰기는 싫으니깐. 그리고 지순이 누나가 그랬다. 경환이형이랑 산행하면 꼭 빡쎄지는 것 같애! 그렇다!!! 사실이다. 꼭 경환이형이랑 하면 비가 온다. 오늘도 날씨가 쨍쨍하지 않던가?!!! 어 쨌든 중간에 하강을 했다. 점점 날씨가 어두워졌다. 힘이 빠져서 그랬을까? 아니면 어두워서 그랬을까? 복희 따 라가기가 힘들어졌다. 누나는 나보고 퍼졌다고 놀렸다.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단지 따라가기가 좀 힘들었을 뿐이다. 다 내려와서 비선대에서 오뎅을 먹었다. 왕창 먹었다. 밑에선 삼겹살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내려가보 니 OB선배님들께서 와 계셨다. 후~, 어쨌든 즐거운 산행이었다. 칠형제봉 릿지 이야기 흑범길에 이어 오늘은 칠형제 봉이다. 어제 저녁 평상에서 술을 먹을 때 경환이 형께서 지순이 누나보고 술잔 을 따라 주시면서 그랬다. 칠형제는 맨정신으로는 톱 못선다. 성필이 형도 그러셨다. 칠형제봉은 고도감이 장 난아니라고. 으~, 약간 긴장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긴장됐던 건 내일 또 경환이형이랑 가야 한다 는 것이었다. 그럼 또 비오지 않을까? 경환이 형은 정말인지 비를 몰고 다니는 사나이인것 같다. 흑범길 멤버가 또 한명이 늘었다. 지환이형이다. 역시 제일 좋아하는 건 복희였다. 지환이형은 거의 복희 아빠 다. 어쨌든 성필이형 조와 헤어지고 우리는 칠형제봉을 향해 갔다. 칠형제봉 초입은 의외로 가까웠다. 초입에 바 위하나가 나왔다. 거기에서 경환이 형이랑 지환이형에게 암벽화 늦게 신는다고 꾸중을 들었다. 정말인지 그럴 때 마다 행동 느린 내가 원망스러웠다. 어쨌든 지순이 누나가 톱을 섰는데 중간에 후렌드를 썼다. 음. 후렌드를 쓸 때도 있군. 후렌드 쓰는건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초입 바위를 잘 올라온 것 까진 좋았는데 지순이 누나가 밑으로 자일을 던질 때 자꾸만 나무에 걸려서 시간을 지체하게 됐다. 그것을 보니 예전에 월출산 전남 슬랩에서 경준이형께서 자일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 말씀

56 이 생각이 났었다. 지환이형께선 이번이 칠형제봉이 4번째라 고 하셨다. 형은 가는 중간중간마다 옛날 생각이 나셨는지 우리들에게 종종 예전 이 야기를 해 주셨다. 현준이형이 2시간 동안 못올라가고 개긴 이야기, 또는 말잔등에서 옥랑이 누나가 1분여동안 꼼짝 못한 이야기 라던지. 형도 여기에 추억이 많으신 듯 싶 었다. 적당한 곳에서 오후 늦게 점심밥을 먹고 난 후 얼마가지 않아 비박을 하게 됐 다. 경환이 형이 정성들여 자일로 집 뼈대를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바람을 막을 판쵸우의 가 별로 없었다. 거기선 물이 모자라 라면 칠형제봉 초입부분 을 끊여 먹지 못했다. 그냥 빵 하나로 때웠 다. 지환이형은 그것도 안드시고 라면을 끊 여 먹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라면을 한봉 끊여서 경환이 형이랑 나랑 한 젓가락씩 나눠 먹었다. 그 후 준철이 형께서 사주신 소주 3병을 마시게 됐다. 지환이형께서 많이 드셨는지 얼굴이 빨갰다. 그리고 기분이 좋으셨는지 노래를 계속 부르셨다. 거의 모두가 잠을 원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환이형께선 계속 노래를 부르셨다. 혹시 예전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아 그러셨던 것일까? 다음날 출발을 했다. 그래서 하강하는 곳을 만났다. 거기가 하강길이 약간 오버행이어서 쌍자로 하강을 했는데 모르고 하강 준비하다가 오른손을 놔 버렸다. 경환이 형께서 지적해 주셨는데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밑에서 쪼그려 뛰기 100회를 해야만 했다. 모두 하강을 한 뒤 자일을 당기는데 자일이 바위틈에 끼어 버렸다. 이 럴수가. 마치 춘계 때 형이랑 누나들이 길잃어 버린 것과 쌤쌤인 일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좋았다. 형 이랑 누나가 자일 가지러 가는 것이 위험하지 않을까 해서 약간 걱정했지만 덕분에 지환이 형한테 몽둥이로 맞 아가며 노래를 배우면서 1~2시간을 보내 버렸다. 우리는 중간에 탈출하지 않고 끝까지 공룡능선으로 붙자고 하셨다. 근데 마지막 트래바스 길이 너무 안좋았다. 춘계를 회상하게 했다. 중간에 뱀도 보게 되었다. 공룡능선을 타고 내려오면서 양폭산장에서 지환이형이 이프로 를 사주셨다. 정말 인생의 참맛을 느끼게 했다. 이번에도 비선대에서 오뎅을 먹으려고 했는데 너무 늦어서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버스도 못탔다. 우린 설 악산 입구에서 비상식을 까먹었다. 그럭저럭 맛있었다. 야영장에 돌아와서 우린 술을 마셨다. 그리곤 얘기를 나 눴다. 성필이 형은 오늘 저녁이 가는 게 너무 아쉽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46기들을 밖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곤 우리 보고 하계산행이 즐거웠냐고 물어 보셨다. 우린 즐거웠다고 했다. 형도 즐거웠다고 했다. 그런데 형이 너무도 즐 거워서 우린 대가리를 박아야만 했다.

57 50 제12집 너무나 행복한 산행(천화대 릿지) 무지하게 내린 비는 늘 마음속에 묻어놓았던 설악산의 산행을 막지나 않을까 졸여왔는데 영필이가 형님 갑시다 하는 말에 그래 가보자 혹시 아냐 하면서 망설이고 있는 민수 형을 보채고 하여 설악산으로 갔다. 헌주, 장민이도 함께 하였고 당진에서 근무하고 있는 용욱이도 출발했다. 내가 대학 1학년 때 했던 하늘의 꽃이라 불리우는 천화대의 17년만의 등반인 데 하면서 바위에 매달려 오르고 까리한 바위능선, 산행길 주변 기암절벽들의 상상은 너무나 행복했다. 광주에서 출발해 7시간만인 새벽 2시에 설악산 야영장에 도착하였고 얼른 잠 을 청하였지만 설레임 때문인지 자는 둥 하다 아침을 먹고 6시 무렵에 천화대 로 향했다. 다행히 이슬비만 내리는 탓에 입산이 가능하였고 날씨 탓인지 한적 29기 백두인(OB) 한 설악산 모습이 좋았다. 천화대가 시작되는 설악골에 도착하니 나의 꿈을 알 전남대 총무과 근무 았는지 구름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하였고 등반하는 동안 구름이 걷히면서 보이 91년 동계북알프스등반 는 폭포, 절벽들은 너무나 좋아 얼른 카메라에 담았고 봉우리하나 하나 계곡 93년 알프스3대북벽등반 하나하나 이름들을 기억해 내면서 옛 산행을 이야기하는 서로의 모습들이 너무 나 아름다워 보였다. 천화대 릿지등반에 함께 참 여하신 선배님들: 하산길에 계곡을 건너면서 27기 한민수, 30기 김용 어쩔 수없이 온몸을 다 적셔야 욱, 32기 김영필, 36기 오 했지만 행복했다. 설악산 등반 장민 을 하면 늘 다리쉼 하던 와선 대에서 막걸리 파전을 끝으로 설악산 등반을 마치고 야영장에 도착했고 저녁식사 후 그 동안 종주했던 재학생 후배들과 함께 했다. 자랑스럽고 힘차게 보이 기도 하였지만 처음으로 힘든 산행을 하였던 어떤 후배는 발가 락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웠다. 다음날 아침 비가 심하여 삼척국제동굴탐험대회에 가기로 결 천화대 하강중(30기 김용욱) 정하고 동굴대회장에 잠깐 들렀다. 부대행사장인 환선동굴의 모습은 중국의 계림과 해리슨 포드 가 주연했던 인디아나 존스의 영화의 장면들이 연상되었다. 친구의 간곡한 만류로 일출이 아름다운 속초 물치 바닷가에서 높은 파도를 감상하면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낙산사 부근에서 해장국으로 시작으로 고원도시 태백으로 향했다. 태백으로 가는 동안 스위치백 기차 가 가는 모습은 이곳이 알프스를 오르는 그 기차였다.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 있나. 탄광의 그곳 사북을 지나 정선으로 갔다. 차창으로 보이는 저 힘찬 계곡물이 동강을 지나 단양을 거쳐 서울의 한강으로 흐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아름 다워 보였다. 굽이쳐 흐르는 동강과 남한강에서 래프팅하는 모습은 정말 좋아 보였고 간혹 지나는 그 기차, 정선 아우라지 로, 태백으로 가는 기차는 그 주변 절경과 함께 최고였다. 죽령을 넘어 중앙고속도로 진입하여 사과 인삼으로 유명한 풍요로운 풍기읍을 지나 소백산 자락에 위치하고 태백의 정기를 받았다는 영주 부석사에 들러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오래된 건축 배흘림의 기둥 무량수전을 보

58 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감탄해 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구를 거쳐 광주로 향하는 88고속도로에서도 많은 비는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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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북한산 인수봉등반 46기 전보배 금요일 저녁, 8시를 조금 넘어 동방에 도착했다. 지각이었다. 동방 안은 장비점검과 기타 준비물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이번 산행이 첫산행인 내게는 무거운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11시 40분 서울행 열차인지라 우리는 일 찍 동방을, 그리고 학교 안을 나왔다. 축제의 열기로 학교안 사람들은 흠뻑 취해있었다. 사실 나는 많이 떨렸다. 첫 산행에 대한 두려움과 처음 맨 그 무거운 배낭에 서러움마저 들어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역에 도착해 배낭을 사리고 열차를 기다리면서 이번 산행 멤버들과 김밥을 나눠 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ᄏ ᄏ 이 순간 그 어느 누구보다도 행복한 마음이었다. 드디어 우리를 태우고 갈 열차가 광주역에 도착했다. 짐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니 체념이다-이젠 가야하 는 수밖에. 하는. 책 속에서 북한산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참 설레였다.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북한산 전경에 매료되어 이번 산행에 동반하기로 결심한거였는데 막상 서울행 기차를 타고 자리에 앉으니 두려움과 초조함에 머릿속이 하얬다. -4시 30분 서울역 도착- 잠자는 동안 제발 이 열차가 멈추지 않기를 얼마나 바랬는지 모른다. 그러나 서울은 너무 가까웠다. 밖은 어두 컴컴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뭐랄까, 살아있는 기분이랄까?^^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고서 우리는 북한산에 도착했다. 좋은 날씨였다. 전날 언니들이 싸주신 김밥으로 아침을 든든히 했다. 드디어 산행이 시작됐다. 많이 힘들었다. 나 때문에 산행 속도가 자꾸만 느려지는 것 같아 마음 또한 무거웠다. 죽을 것 같았다. 아니 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산장에 배낭을 사리고 암벽 등반을 위한 장비들과 개인 필수품 을 챙겼다. 좀 전까지는 죽을 것처럼 힘들었는데 그곳에서 한숨 돌리니 신기하게도 다시 웃음이 나왔다. 산행은 또 다시 시작되었다. 우리 산악회 사람들은 여전히 기운이 팔팔 솟나보다. 내가 엄살을 부리는 것 같았다-정말 아닌데 -.-;; 암벽 앞에 도착했다. 그 거대한 바윗돌 앞에 우리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전남대학교 산악회 46기 전보배 등반 준비 완료! -.-으읔 암벽화가 아닌 등산화로 암벽등반을 하니 어찌나 힘들던지. 자꾸만 미끄러지는 발때문에 혼났다. 암벽화로 갈아 신고 다시 등반을 시도했다. 발이 많이 아팠지만 훨씬 등 반이 쉬었다.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더니 역시 성필이형 말씀이 맞았다. ᄏᄏ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산위에서 보는 산은 가히 눈부셨다.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사람의 손으로 그린 그림은 이런 큰 감흥을 주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너무 멋졌다. 이래서 산을 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위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사람들은 잘도 매달려서 암벽 위를 올라갔다. 크랙을 타는 게 제일 힘들었다. 그 사이에 발을 끼우고 올라가면 된다고 쉽게쉽게 설명해주셨지만 너무 난감했 다. 정신병 걸리는 줄 알았다. 내려가지도 못하고 올라가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 꿈에서 자주 경험해봤지 만 실제상황에선 더더욱 괴로웠다. 성필이 형에게 못하겠으니 내려달라고 막 조르니까 형이 정말 화났나보다. 무서웠다. 거의 다왔다며 저기서 쉬고 있으라고 지순언니가 말했다. 거기서 인천대 사람들을 만났다. 사과쪼가리-정말 쪼 가리였음-를 줬다. 맛나게 먹었다. 좋은 사람들같아 보였다. ᄏᄏ 그 뒤로 한번도 못봐서 아쉽다.

61 54 제12집 어디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다. 많이 올라왔다 싶을때 그래서 성필이 형과 민재와 내가 젤 위에서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 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져 우리들을 적셨고 그 거대한 산마저 적셨다. 번개도 쳤다. 빨리 하강하고 싶었다. 추웠 고 단지 이 순간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다지 떨리지도 않았다. 형들과 언니들을 믿고 싶었 다. 그리고 믿었다. 무사히 하강을 했다. 모두들 무사했다. 다행이었다. 휴우~~^^ 해냈다는 마음으로 어두운 산길을 헤치며 기분좋게 내려왔다. 먼저 하강한 사람들이 밥을 다 차려놨다. 맛있었다. 그리고 술을 한잔씩들 했다. 참 따뜻한 분위기였다. 등반하 는 동안에는 무서워서 혼났지만 -울 동방 사람들이- 참으로 정겨웠다. 기분 좋은 밤이었다. 용욱이 형의 술사오 라는 심부름을 쾌히 받아들이고는 선희언니와 술을 사러 나섰다. 길을 잃거나 하는 두려움보다는 귀신이 나올까봐 넘넘 무서웠다. 혹시나 내 뒤에 귀신 따라 오는건 아닌지..- 나의 건장한 체격 때문에 믿지들 않겠지만 나는 정말 겁이 많다. 귀신, 넘 무섭다. 힘들었다. 선희언니의 따뜻한 손을 꼬옥 아니 꽈악 잡고서 수퍼머켓에 도착해 술을 샀다. 다행히 수퍼 문이 화알짝 열렸 있었거든. 힘겹게 술 을 사와 텐트에 도착하니 사람들의 이미 조촐한 잔치는 끝나있었다. 조금 서운한 맘이 들긴 했지만 어쩔수 없지 뭐. 깨워서 억지로 먹일 수는 없으니까. ᄏᄏ 절벽에 홀로 서있는데 자꾸만 발이 미끄러지는 느낌으로 잠이 들었다. 껌을 씹으며 잠이 들어서 다른 사람들이 아침에 말하기를 밤새 껍씹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다시 아침이다. 으윽! 다시 산행을 해야 한다. 이기적인 욕심에 비가 다시 쏟아져주길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지..아침을 먹고 사 람들과 이런 저런 얘길 하다가 성필이형의 지시에 다시 산행 준비를 했다. 용욱이 형이 좋은 암벽장소를 알아놨다며 선봉(?)을 텄고 그 뒤를 따라가는데 이번에 진짜로 죽는 줄 알았다. 가면 또 암벽을 해야 하는데 암벽을 하러 그 험한 길을 가니 죽을 맛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따라갔다. 오늘도 느리다고 혼났다. 경치 좋다며 모두들 신나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내 눈에는 뵈는 거 하나 없었다. 비가 쬐 금씩 내렸다. 오예~ 어찌나 반갑던지. 그러나 암벽을 탄단다. 으윽! 사람들은 다시 분주해졌다. 그때만큼은 정말 산이 싫었다. 두려웠고 무서웠다. 그리고 정말 증오했다. 결국 지순언니가 봐줬다. 넘넘 고마워요 ㅠ.ㅠ* 그날도 암벽을 탔더라면 정말 산을 싫어하게 되었을지도 모른 다. 사실 동기들에게 자꾸만 나약한 모습 보이는 것 같아 많이 부끄러웠지만. 그날 내내 울퉁불퉁 화난 표정으로 있어서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창피하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내려오는 길은 정말 신났다. 역시나 힘든 길이었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텐트를 정리하고 다시 배낭을 쌌다. 그 리고 산을 내려왔다. 앙~~~~ 넘넘 좋았다. 배낭은 여전히 무거웠지만-내 배낭이 제일 가볍긴 했다-마음은 가 벼웠다. 산을 내려오니 OB선배님께서 감자탕을 사주셨다. 정말 맛있었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다른 선배님들께서 나오셔서 술을 사주셨다. 다들 등반 얘기를 하며 웃고 떠들며 시끌벌쩍 했지만 나는 피곤도 하였고 중요한건 할 말이 없었다. 이제 겨우 한번 산행한 내가 무슨 할말이 있으랴. 살짝 취기 어린 몸으로 열차를 타고서 광주에 도착했다. 몸은 더없이 피곤했고 누구에게인지는 모르겠지만 화 까지 났다. 씩씩거리며 기숙사에 도착했다. 후다닥 씻고 잠이 들었다. 2박3일의 북한산 등반 일정이 끝났다. 세상을 살면서 되돌릴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번 산행을 통해 내가 절실히 느낀 것은 그 길을 걸은 자만이 되돌아올 길 또한 있다는 것, 가지 않은 자는 돌아올 길 또한 없다는 것이다. 힘든 산행이었다. 얼굴에 온통 짜증으로 일그러져 2박 3일을 보낸 것 같다. 살아서 돌아온 지금, ᄏᄏ 이번 산 행에 동반한 것을 결단코 후회하지 않는다.

62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산악회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시 내 눈에 들어왔다. 어리숙하게 보이던 동기 녀석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 우리 산악회 사람들 하나하 나가 얼마나 멋진 사람들인지. 함께 산행하지 않고서는 모를 것이다. 산을 탄다는게 어찌나 멋진 일인지 아주 조 금은 알 것 같다^^. 인수봉 대슬랩 초반부

63 해외등반, 여행

64 큰 꿈을 안고 작은 히말라야 속으로(안데스 오지탐험) 인간은 항상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어한다. 산은 삷의 전부가 아닌 일 부분이지만 역경의 고비를 넘겼던 수많은 순간들이 떠오를 때마다 때론 아찔하 기도 하고, 그때가 그리워 아련하기도 한다. 난 지금 아련한 기억들을 되새기며 작은 히말라야 속으로 또다시 여행을 떠나고 있다. 39기 방경환(95학번) 자칭 브래드피트 산에서 가장 먹고 싶은 것: 베이비복스 2000,2001년도 광주학생산 악연맹학생위원장 월요일, 무더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장비는 형근(조선이공 92)이 형한테 도움을 받고, 대한산 악연맹까지 배웅까지 해 주었다. 나랑 체형이 비슷해서(내가 좀 더 큼)인지 형장 비가 편하고 맞춤복 같다. 산에 다닐 때가 좋을 때다. 는 말을 하고 유유히 발걸음을 젖히는 형의 뒷모 습이 웬지 씁쓸했다. 부럽다는 말인지, 한심하다는 말인지, 한심하다는 말은 아 니길 바란다. 출국을 하루 앞두고까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회비 때문에 심난 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댄다. 다행히도 평소에 잘 쌓아둔 인간 관계 때문에 해 결은 했지만, 항상 준비된 자세로 만사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 도착해 모둔 장비와 물품을 카고백에 패킹한다 오지탐험참가 광주, 전남등산학교 강사 화요일. 후덥지근 2002전대c-c우승 롯데월드 앞에서 15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공항버스를 탔다. 1시간 30분 후 웅장한 인천 신국제 공항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실감이 백도에서 철도공무원 시험 준비중 나기 시작한다. 이번에 떠나면서 난 한꺼번에 두 가지 것을 갱신하게 된다. 아직 제주도도 못 가 봤는데,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을 간다는 것과 비행기를 신발 벗고 타는지 신고 타는지를 비로소 내 눈으로 확인 할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이윽고 오후 3시 드디어 출국이다. 비행기가 뜨는 순간, 한국에서 걱정해야했던 모든 근심거리들이 일순간 쓸려 내려간다. 원정은 비행기 타기까지가 힘들다는 말이 맞는가보다. 대신에 온통 생 각은 산에 대한 싸움으로 채워진다. 아무튼 기분이 묘~ 하다. 이게 진정 나라를 떠나는 기분이란 말인가? 한참 을 자고 먹고 또 자고, 잠과의 12시간 사투 끝에 박찬호로 더더욱 유명해진 LA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시간은 과 거로 흘러가고 있었다. 한국에서 오후에 출발했는데 미국에 오니 오전이 되었다. 대한항공이 타임머신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곳의 면세점에서 고글을 살려고 일부러 한국에서 준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비자가 없는 관계로 면세점은 먼발치에서만 봤을 뿐, 화장실 가는 것조차 허락이 필요했다. 물론 담배 피우러 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갓 자대 배치 받은 이등병처럼 느껴졌다. 갑갑했던 시간의 대기가 끝나고 우리는 페루행 비행기에 올라탔 다. 한국과는 달리 외국의 스튜어디스는 외모와 상관없이 뽑는 것 같다. 우리는 또 잠을 청한다. 이번엔 8시간 동안. 정말로 비행기 처음 타는 놈 신고식 한번 톡톡히 하는 것 같다. 이 윽고 페루에 도착하고 두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잠은 오지 않는다 수요일. 맑음 시차적응을 위해 페루에서 휴식 겸 관광을 하기로 했다. 수도 리마에는 그리 볼 것은 없었다. 이곳의 차들은 대 부분이 일본차지만 한국차도 꽤 있다.

65 58 제12집 특히 택시의 1/3은 대우차 티코이다. 한가지 우스웠던 것은 대통령궁을 구경하는데 갑자기 대통령궁 문이 멋들 어지게 열리면서 삐까 번쩍한 검은 차들이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의 이름은 현대차 엘란트라였다. 정말 코리아인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저녁에는 근처의 한 국 식당에서 김치두부찌개를 먹었다 화요일 맑은 후 흐림 저녁 비행기로 우리는 최종 목적지인 볼리비아로 향한다. 정오에 체크아웃을 하고 시간이 남아서 근처 해변가 로 바람을 쐬러 갔다. 한국청소년 오지탐사대 라는 이름 아래 주목적은 우리가 안 가봤던 곳을 등반하여 경험 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자료로써 남기고자, 또한 2002년 한 일 월드컵을 적게나마 홍보하고자 하는 부수적인 목 적도 있다. 해변가에서 우리는 두 번째 목적을 달성하고자 축구공과 뱃지를 가지고 갔다. 뱃지를 한 두개씩 나누어 주자 동양에서 잘생긴 청년들이 와서 선물을 나눠준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뱃지가 그리 좋은지. 그러나 마을 아낙네들한테는 소문의 꼬리가 잘렸는지 끝내 오지 않았다. 비행기의 계속되는 연착에 밤 10시에 볼리비아로 향했다. 바로 이웃 나라라서 그런지 1시간 반만에 도착했다. 볼 리비아의 밤은 페루와는 달리 추웠다. 라파즈(볼리비아의 수도)의 고도는 3800m나 되었다. 몇 시간 전의 산소와 는 양적으로 분명 차이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세계 축구강국인 브라질 축구 대표팀도 고소적응에 실패해 이곳에서는 몇 차례 졌던 사례가 있다고 한다. 호텔에 도착했는데 난방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오리털 침낭이 있다. 그런데 콧속이 팍팍해서 잠을 설친다 금요일. 맑음 라파즈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는 일찍 기상했다. 이곳의 기후는 4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진 다.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지금은 겨울인 건기이다. 그리 춥지는 않지만 고도가 높고 건조하여 코와 입 속이 마르 고 나의 곱고 깔끔한 얼굴이 트기 시작한다.. 좀 지저분한 얘기지만 코 후비다가 코피 난 대원들도 많이 있다. 숙소가 난방이 되지 않아 다른 숙소로 옮기기로 했다. 옮긴 곳은 전과는 달리 대단히 깨끗하고 취사시설도 갖 추어져 있었다. 오후에 현지 등산 가이드와의 미팅이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거의 모르겠지만, 우리를 환영한다 는 말, 대충 그러했다. 우리는 내일 이곳 적응을 위해 관광하면서 하루 쉰다고 한다. 팍팍한 코를 후비고 취침에 들어간다 토요일. 굉장히 건조 기상 후 배낭을 정리하고 덜 익은 고기와 딱딱한 빵으로 버무려진 속을 달래기 위해 카고백 속에서 잘 익혀진 알타리김치와 라면을 꺼내어 정신없이 먹었다. 신토불이가 얼마나 좋은 말인지를 몸으로 알게될 줄이야. 우리가 오늘 갈곳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티티카카 호수이다. 가는 도중 정부에 불만을 품은 인디오들의 시 위에 계속해서 늦추어진다. 인디오들은 정부에 대한 항의표시로 도로에 큰 돌들을 깔아버린다. 우리들의 시위문 화에 비유하면 원시적이지만, 너무나 많은 돌들 때문에 도로는 거의 마비상태이고, 군인들에 의해 돌들이 제거된 후 우리는 조금씩 전진하는 형식을 반복한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하긴 했는데, 돌아갈 때도 만만치 않을 거라 한다. 호수를 본 순간 우리는 돌아갈 걱정은 일단 접어두고 한참동안 넓게 펼쳐진 수평선에 빠져들고 만다. 호수가 아니라 바다인 것 같다. 정말 내 눈처럼 맑고 내 마음처럼 넓고 깊었다. 보트를 타고 인디오 마을의 섬을 가기로 했다. 섬에 도착하자 마음의 어린 꼬마들이 우리를 반겼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초코리트 를 외치며 손을 내민다. 너 무나도 귀엽다. 한편으론 처량해 보이기도 한다. 볼리비아는 빈부의 격차가 너무 심하다. 한쪽에서는 인터넷이 난무하는데, 다른 한쪽은 우리나라 50년대의 배고팠던 시절을 보는 것 같다. 우리는 인디오들의 시위에 대비해 일찍 관광을 마치기로 했다.

66 일요일. 맑음 평화로운 일요일이다.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등반이다. 이 얼마나 기다렸던가? 일리마니산(6486M)과 사히마산 (6545M)을 오르기 위해 콘드리리 국립공원으로 고소 적응을 떠난다. 간단히 대원을 소개하면, 술을 너무나 사랑 하시는 박주환 대장 (진주 히말리얀 클럽)을 비롯한, 오세민(대전대 95), 마림(강원대 96), 조상희(천안공전00)대 원과 그리고 나, 부산일보기자와 현지 가이드 2명과 쿡 2명, 이렇게 서로 말은 잘 안 통할지라도 서로 몸을 부대 낄 것을 인사로써 약속했다. 사람 사는 것이 비슷해서인지 언어와 문화가 다르더라도 간단한 영어로도 다 통하는 것 같다. 우리는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해 서둘러 베이스캠프로 떠난다. 이초(건조한 고산지대의 풀)로 둘러싸인 넓은 산 세를 보면서 모든 게 신비롭기만 하다. 약 4시간을 소요하고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베이스 캠프(4465M)는 맑 은 호수를 끼고 아름다운 지형에 위치했다. 여기에서 3일 동안의 생활이 기대된다. 저녁이 되자 대원 모두 머리 를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애써 안 아픈 척 머리를 조금씩 흔들어 본다. 대장님은 내일 되면 괜찮을 거라 하면서 차를 권한다. 우리는 쉴 새없이 차를 타 먹는다. 차는 빠른 고소적응의 일등공신, 즐거운 대화와 함께 열잔 정도 타 먹고 취침에 들어간 다 월요일. 맑음.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개운해졌다. 쿡들의 요리도 계란 요리가 나와 입맛이 한층 나아진다. 고산에서는 부지 런한 활동과 많이 먹어야 된다는 것을 알기에 이것저것 집어먹는다. 고소 적응 대상지로 쟌쟈리니산(5300m)을 재물로 삼기로 했다. 쟌쟈리니는 대체적으로 수월했다. 내가 캠코더를 담당했기에 이래저래 왔다갔다 한다. 캠코더가 짜증나기는 하 지만 체력이 강한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라고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출발한지 4시간 만에야 정상은 우리 에게 모습을 보여 준다 정말 아름답다. 남서쪽으로는 우리가 마지막에 정복할 사하마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며칠 전에 관광했던 티 티카카 호수가 펼쳐졌다. 촬영과 간단한 휴식을 취한 뒤 하산 시작. 그런데 30분도 안되어 문제가 발생했다. 대원 한 명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정상에 대한 욕망 때문에 내려올 때의 체력까지 다 써버린 것 같았다. 부축 을 번갈아 가며 무사히 하산은 했지만, 모두가 힘들었다. 첫 등반이고, 고생했으니 고향의 향수가 물씬 묻어나는 소주를 한 잔씩 했다. 우리는 어느덧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화요일. 맑음 오늘은 눈떠질 때까지 자라는 대장님의 말에 모두 늦장을 부린다. 실은 오늘도 등반을 하기로 했는데 어제의 무리한 체력 소모와 더 중요한 산을 위해서 오늘은 쉬면서 고속 적 응을 하기로 했다. 대장님의 현명한 판단이지만 산에서 하루종일 쉬는 건 정말 곤욕이다. 이곳 콘드리리는 믹스 클라이밍 코스가 많이 있다. 호주, 미국, 벨기에 등반대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우리 옆 에는 덩치는 산만한 미국 등반대가 있는데 먹는 걸 보면 가히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빵쪼가리와 육포같은 것만 먹고 엄청난 힘을 발휘하다니. 화려한 반찬 문화에 길들여진 우리로써는 배워야 할 점인 것 같다. 오후에 고도리 타임을 가졌다. 시간 때우는데 이것만큼 좋은 게 없다. 근데 인체의 신비한 현상을 발견했다. 조금 전까지 고소 에 부대끼며 힘들어하던 대원이 고도리 할 때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심지어 혼자서 싹쓸이했다. 뭐니뭐니 해 도 머니(Money)는 최고인 것 같다. 모두가 한바탕 웃는다 수요일. 맑음 다시 숙소로 복귀해서 내일 본격적인 등정 사냥에 나선다. 또 국립공원 입구까지 걸어 나가야 했다. 대장님과 먼저 둘이 오면서 언덕을 넘어 달려오는 안데스 소녀 두 명을 만났다. 씻지도 않아 얼굴엔 딱지 투성이지만, 눈 망울이 초롱초롱한게 순수하고 다른 어떤 아이보다 예뻐 보였다.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산행 중에 남았던 간식

67 60 제12집 을 모두 주었다. 간단한 점심(빨간 치킨)을 먹고 숙소로 향했다. 창가로 보이는 대부분의 집들은 짓다 만 것처럼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따뜻하고 안락하면 됐지 미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가 보다. 나중에 졸업하고 갈 데 없으면 이곳에 와서 페인트만 팔아도 한몫 챙기겠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 도착해 내일 산행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가 갈 사 하마산과 일리마니산의 가는 길이 인디오들의 시위에 의해 모두 통제 됐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말을 한다. 우리가 이들 산을 위해 왔건만. 가이드는 일단 가봐서 협상을 해 보겠다고 한다. 잘 되기를 바랄 뿐이다 목요일. 맑음 갈 길이 멀기에 일찍 출발했다. 정부에 항의하는 인디오들의 첫 번째 장애물을 만났다. 우리는 볼리비아 정부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몇몇 인디오들이 우리 차에다 돌을 던졌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꼼짝 말라는 말을 하 고 협상을 하러 갔다. 돌아오는 가이드의 얼굴에는 왠지 그늘이 졌다. 우리는 아쉽지만, 산도 아닌 돌에 맞아 죽는 것보단 낫다는 생 각에 일단 철수하기로 했다. 이들 산과 버금가는 다른 대상 산을 찾기로 했다. 가이드는 괜찮은 산이 있다고 우 리를 위로하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씁쓸한 마음을 잠으로 대신했다. 베이스(4510M)에 도착하니, 화이너 포터씨 (6088m)의 웅장함이 보인다 생각과는 달리 눈도 많이 있고 거대해서 적게나마 위안이 된다 금요일. 맑음 화이너 포터씨의 안전한 등정을 위해 자키니 남봉(5400m)으로 적응 훈련을 나간다. 처음 입구에 살벌한 낭떠 러지 길을 1시간 정도 걷는다. 87년도에 이곳에서 어떤 이스라엘 청년이 모터사이클을 몰고 횡단하다 떨어져 죽 었다고 한다. 정말 어리석다. 자꾸만 위험한 산을 추구하려는 산악인과 별반 다를 건 없지만 말이다. 가이드는 올라가면서 내일을 위한 안자일렌을 연습하면서 가자고 했다. 짜증은 났지만, 이쪽 가이드 입장도 배려해야겠다. 별 성취감은 없었지만, 정상의 경치는 역시 장관이다. 하산을 하면서 안자일렌 추락연습과 활락정지도 하고, 모 두가 결의를 다짐하면서 힘차게 내려왔다 토요일. 맑음 정상을 향한 high캠프로 떠난다. 일리마니(6486m)와 사하마산(6545m) 가는 길이 통제되어 이곳으로 산악인들 이 많이 몰려들었다. 짐은 포터들이 들고 갔다. 휴식시간에 담배 한가치를 피우는 포터들에게서 이곳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묻어나온다. 그리고 밥먹듯이 하는 일이라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high캠프(5550m)에 도착 해서 막영 준비를 했다. 현재 오후 5시인데도 엄청 기온이 떨어졌다. 저녁을 먹고 내일 새벽 2시 기상하여 3시 출발이므로 알아서 자기로 했다. 텐트로 돌아와 오늘 챙길 수 있는 건 최대한 챙기기로 했다. 지금도 이렇게 추 운데 내일은 정말 기대된다 일요일. 맑음 새벽 03시. 새벽이라 그런지 춥긴 추웠다. 더구나 안자일렌으로 새벽 밤을 가르려니 보통 때 보다 더 힘들다. 첫 번째 쥬마링 코스를 넘어서 어렴풋이 희미하게 거대한 설벽이 보인다. 마지막 정상까지는 총 4피치로 나뉘 어 오른다. 돌아가면서 선등을 서고 나머지는 쥬마링으로 올라갔다. 햇살이 따사해 지면서 설벽이 윤기나는 얼음 으로 변하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는 적어도 오전 11시에는 하강을 해야 한다고 한다. 마지막 피치는 가이드가 선등을 서고 그 다음 내가 쥬마링으로 오른다. 정상(6988M)에 오르니 설벽에는 없던 바람이 사정없이 불어댄다. 폭 2M에 앞뒤로 모두 낭떠러지다. 뛰어다닐 힘도 없지만, 함부로 까불었다간 황천행이다. 캠코더를 꺼내어 주위와 올라오는 대원들을 찍는다. 이윽고 전 대원이 올라와 기념 촬영을 하고, 얼음으로 변 하기 전에 서둘러 하강을 했다. 하강은 두 번에 걸쳐서 이루어 졌고 바닥까지는 클라이밍 다운으로 내려왔다. 클라이밍 다운도 고산에서 하니 힘든 노동을 하는 것 같다. high캠프에 도착해서 우리는 허기진 배를 추스렸

68 다. 참치 덮밥에 알타이 김치. 어느덧 이곳의 쿡들이 한국 요리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서둘러 base까지 내려가 차로 숙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래야 내일 하루는 푹 쉴 수가 있다. 숙소에 도착하니 피곤함과 먼지로 쌓인 몸을 풀기 위해 모두가 분주하다. 샤워를 하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워낙 열정으로 데워진 뜨거운 남자들이라 그런지 물이 금방 따뜻해진다 월요일. 역시 맑음 모두가 늦잠을 잔다. 키크려고 그러는지 아침부터 배가 고프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혼자서 라면을 끓여 먹는다. 갖은 양념을 넣어 먹는 한국에서의 맛은 아니지만, 조식으로 나오는 딱딱한 빵과 쥬스보다는 몇 배 낫다. 저녁에 가이드 내외들과 외식을 했다. 볼리비아식 스타일이어서 걱정을 했는데 고향의 향수가 나는 돼지 바비큐가 있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먹었던 것 보다 더 맛있었다. 능숙하지 않은 영어로 서로 인사를 했다. 이곳의 여성들은 우리 와는 달리 자유스럽게 담배를 핀다 한국에서는 건방지다고 느껴지는 것이 이곳에서는 아무 거리낌도 없고, 부부 간에 더 친숙해 보였다. 그렇다고 우리도 좋지도 않은 담배를 부부가 함께 피우자는 말은 아니다. 맥주 일잔과 함께 즐거운 대화가 오가고 내일 산행에 대해 얘기가 나왔다. 인디오와 정부가 지금 협상 중이라 우리가 가고자 하는 산을 갈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러나 시간 관계상 일리마니산과 사하마산 둘 중에 하나를 선 택하라 했다. 볼리비아 두 번쨰 봉인 일리마니(6486m)산은 정말 아름답고 우리나라의 지리산 같은 민족의 영산이라 불리고, 볼리비아 최고봉인 사하마산은 일리마니산보다는 난이도가 조금 있다. 정말 중국집에서 자장면 먹을까, 우동 먹 을까? 고민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 매력적인 일리마니산이 가고 싶었다. 결과는 사하마 산 으로 결정 났다. 대장님은 최고봉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아직까지 우리 현실이 일등만이 존재하고 이 등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던 것 같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내일 떠날 짐을 정리한다 화요일. 맑음 볼리비아 최고봉을 향한 상쾌한 아침이다. 가는 도중에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아침 겸 간식을 먹었는데 샌드위 치 속의 고기가 껌인지 고기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질기다. 정말 삼겹살이 눈물나게 보고 싶은 순간이다. 오 후2시에 입구에 도착해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베이스를 향해 출발했다. 오늘은 우리의 철인 뮤라(당나귀 비슷함) 가 비실비실 하다. 오후5시 정도에 베이스(4600M)에 도착했다. 비실비실 뮤라의 짐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텐 트를 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다른 베이스보다 바람이 강하다. 사하마산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계속 부는 바람 이고 다른 하나는 접근하지 마라 (get out of here) 라는 왠지 위엄 있고 신성스 럽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한 발짝, 한 발짝 접근하고 있다 수요일. 태양 조금 여유 있게 high캠프(5500m)로 출발한다. 가늘고 긴 나라로 유명한 칠레 국경을 왼쪽으로 마주하며 올라 간다. 바람이 심하다. high캠프에 도착하니 바람이 더 심하다. 텐트 싸이트도 좋지 않고, 포터들은 내려갈 시간이 없 다고 텐트치는 걸 도와주지도 않고 다운해 버렸다. 먹을 것도 주면서 내가 그렇게 잘 해 줬건만, 하는 수 없이 우리들은 얼음을 깎아내고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너무 추워 땀도 나지 않는다. 얼른 텐트로 들어가고 싶었다. 대원들 모두 코밑이 헐었다. 텐트가 날아 갈 것 같다. 낮부터 부는 바람이 그칠 줄 모른다. 작은 히말라야에 온 것 같다는 대장님의 말. 텐트싸이트가 너무도 안 좋은데 히말라야는 더 심하다고 한다. 내일은 새벽01시 기상이 다. 이런 바람속에서 출발 할 마음이 생길지 의문이다 모두가 열심히 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바람은 잠잠해줬으면.

69 62 제12집 목요일. 검은 태양이 뜰 것 같다. 새벽 1시.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바람은 그치지 않는다. 정상 공격 때는 대장님은 항상 우리 입맛에 맞는 음 식을 하나씩 꺼내 놓으신다. 역시 많은 원정을 통해 묻어 나오는 노하우인 것 같다. 대장님께서 제안을 했다. 마 지막 힘든 산인만큼 가고 안 가고는 자신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한다.. 느껴보고 싶었다.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 힘든 고산에서 추위와 싸우며 서로 부대끼는 산우애를. 그리고 접근하지 마라 라는 닉네임을 가진 거만한 사 하마산의 머리를 감히 건방지게 올라서고 싶었다. 가이드 1명과 대원 3명이 가기로 했다. 우리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거친 바람 속을 가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사하마(계속 부는 바람)는 자기의 이름을 실망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불어댄다. 설상 면이 강한 바람으로 인해 날카롭게 깎여나가 마치 땅속에서 고드름이 자라나는 것 같 다. 우리 키만한 것도 있다고 한다. 모든 길을 안내한 가이드는 정상을 조금 남겨두고 하산했다. 흐릿한 날씨 탓인지 강한 바람 사이로 검은 태양 이 뜰 거 같다. 보기에는 10분이면 올라가겠지 생각 했던 게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1시간이나 걸렸다. 드디어 아침 8시 45분, 사하마 머리에 올라섰다. 정상(6545m)의 바람은 더욱 거셌다. 어디가 확실한 정상인지 는 분간이 안갈 정도로 편평하면서도 잠실 운동장만큼 넓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바람과 하늘뿐, 절대군주라는 K2 의 독립봉 같다. 너무 과장됐나? 아무튼 서둘러 캠코더를 꺼냈다. 배터리가 얼었는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사진 촬 영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추워 우리는 이만 사하마 머리와 작별하고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끝났다는 생각에 내려오는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땅 속에서 솟아오른 고드름은 우리를 더욱 지치게 한다. 미국등반대는 이 제 올라가고 있었다. 정상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는데 조심하길 바란다. high캠프에 도착하자, 모두가 우리를 반겼다. 대장님은 넓 은 가슴으로 한번씩 포옹을 해 주셨다. 마치 14좌 중하나를 등정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이런 저런 얘기를 반찬 삼아 점심을 먹고 base로 하산한다. 베이스는 바람도 잔잔하고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평화로웠 다. 가이드와 쿡 들과 산에서의 마지막 저녁 만찬이다. 그리고 포도주와 소주 일잔. 이때만큼은 세상 어떤 것도 부러울 게 없었다. 잠도 맛있게 올 것 같다. 그런데 새벽에 강한 바람으로 인해서 눈이 빨갛고 따끔거린다. 이게 한국에서 2달 동 안 고생했던 볼리비아 눈병의 신호탄이다 금요일. 맑음 여기 와서 흐린 날이 한번도 없는 거 같다. 우리는 그동안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자연그대로의 온천. 사하마산 근 처에 있는 sajama spring으로 행했다. 개발을 하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지만 완전 자연 무료온천이다. 시 원한 맥주와 함께 우리는 사하마의 강한 바람을 말끔히 씻어 버리기 위해 제각기 풍덩 빠진다. 저 멀리 사하마가 외롭게 서 있다. 언젠가는 또 그리워지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다. 숙 소로 돌아와 모든 이들과 송별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장소는 중국식 레스토랑. 그리운 자장면은 없었지만, 동양권이라 그런지 입맛에 딱 이었다. 저녁을 마치고 2차는 환상여행을 떠났다 토요일. 볼리비아의 마지막 태양. 이제 라파즈를 떠나는 날. 기상해서 대충 아침 먹고 서둘러 쇼핑을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거리는 시가 행 렬과 축제분위기로 북적북적하다. 살 것도 구경 할 것도 많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볼리비아 미인들이 죄다 모 인 것 같다. 가벼운 쇼핑을 마치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이곳의 도로는 거의 모두 일방통행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좀처럼 정 면 충돌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비행기가 3시간 연착이 된다 일요일. 맑음 새벽 1시 30분에 비행기를 탔다. 이로 인해 페루 리마에서 LA가는 게 빠듯하게 됐다. 볼리비아여!! 안녕. 페루 리마에 도착해 우리는 바쁘게 움직였다. 바로 LA행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동양의 잘생긴 청년들이 공항을

70 이리저리 뛰어다니니 사람들은 영화 촬영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우리의 애타는 속도 모르고 서리. 결국 우리는 항공사 측의 잘못으로 LA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이제 돈도 거의 바닥인데 국제 미아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다. 항공사측의 전적인 잘못이므로 항공사가 제공하는 모든 시스템에 움직였다. 호텔도 수준급이다. 이곳에 하루 더 머무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날이 밝고 아침을 먹으니 할 일이 없어졌다. TV를 보아도 알아먹을 수 없으니 재미도 없고, 볼만한 거라고는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남미 축구뿐이다. 거리에 나가니 리마(페루 수도)는 축제 분위기와 함께 휴일이다. 어제 페루의 원주민 출신인 새 대통령이 취임을 했다. 우리는 역사적인 순간에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저녁에는 처음 페루 올 때 들렸었던 한국 식당으로 삼겹살을 먹으 러 갔다. 삼겹살, 그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 모두 정신 없이 먹는다.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민족애를 느끼셨는지 고기를 끊임없이 준다. 정말 행복하다 월요일 공항에서 공항으로 새벽 03:30분에 LA행 비행기를 탔다. 이제 남미를 떠나는구나!! 20여일 간의 작은 히말라야 속의 아련한 추억들을 되새겨 보았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제는 진짜 히말라야에 가고 싶다. 모든 걸 포기하고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면서까지 자꾸만 힘든 산을 추구하려는 히말라야의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 그리고 이게 무엇일지라도 도전하는 삶은 아름다우니까.

71 64 제12집 광주전남등산학교 알프스 3대북벽 원정대 등반기 프랑스 월드컵 경기여운이 가시지 않은 샤모니에 도착한지 여러 날이 지났건 만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에 간간히 비가 내려 고소 적응차 오르려는 몽블랑행 발걸음을 자꾸 붙잡는다. 매번 시내에 나갈 때마다 장비점에 들리지만 갈 때마다 장비점의 규모와 다양 함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36기 이현조(93학번) 특기: 산행요리, 오이냉채, 칼국수, 해물탕 등등 성격: 대장, 조장, 쿡커 등 다중성격 99 히말라야 마칼루등반 00 히말라야 마칼루등정 00 브로드피크 등정 00 시샤팡마 등정 01 남미 아콩카구아 등정 01 유럽 알프스 3대북벽 등 반 후배들에게 자주하는 말: 딱 식욕 돋울 만큼 뛰는가? 꿈:14개봉 등반 까지 쳐서 하산을 결정했다. 7월20일 문종국대장(조대 이공대OB),진상건(순천대94),함경준(전남대95), 박상훈( 순천 제일대97), 류승현( 조대이공대97) 그리고 필자 등 6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고 소 적응차 몽블랑 등반을 시작했다. 3842M의 에귀디미디까지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 만 급히 고도를 높여서 인지 두통을 호소하는 대원도 있다. 꼴뒤미디를 거쳐 몽 블랑 뒤 따꿀봉 아래 도착했을 땐 강풍과 눈보라가 심해 더 이상 운행을 할 수 없어 눈을 파내고 다져 텐트를 치고 바람이 지길 기다렸으나 밤새도록 텐트 밖 을 나갈 수 없을 만큼 몰아 쳤다. 알프스의 첫인사를 혹독하게 받고 하산결정. 서로 자일에 의지하고 앞사람 발자국도 보이지 않는 화이트 아웃 속을 나침반 을 보며 내려와 코스믹 산장 아래에서 이틀째 밤을 보내고 내려 왔다. 다음날 가 이드 회관에서 새벽과 오전엔 맑고 오후에 흐린 날씨가 삼일 정도 반복된다는 날씨를 확인하고 7월23일 그랑드 조라스로 출발했다. 몽땅베르까진 등산열차로 가고 거기서부턴 걸어서 약 네시간이 걸리는 빙하지 대가 이어진다. 렛쇼산장 아래에서 야영을 준비하는 동안 필자와 상건이는 북벽 아래까지 정찰을 다녀왔다. 아직 기온이 올라가지 않아 크레바스가 많이 벌어지 지 않았다. 새벽 별빛에 보이는 북벽을 목표로 출발 히말라야 마지막 캠프를 출발할 때처럼 손발 시 리지 않아서, 숨헐떡거림이 없어서 행복하다. 종국형 지시로 여섯명의 대원들 순서가 정해지 고 등반을 시작했다. 현지가이드들이나 등반온 다른 원정대들도 여섯 명이 같이 등반한다면 다들 한번씩 더 우리를 쳐 다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벽등반에 여섯은 무리인지 첫 피치부터 속 도가 더디다. 서서히 벽에 해가 들고 레뷰파크랙 가는길은 낙 빙이 폭포를 만들어 떨어져, 루트에서 벗어나 직 등을 시도해 보았지만 실패. 선등을 섰던 종국형 을 포함해서 모두 흠뻑 젖었고 하늘은 컴컴, 번개

72 여섯시간의 하강 후 산장아래 도착하니 저녁 12시다. 다음날 샤모니까지 내려왔다. 쉬면서 각자 수영장으로 암장으로 다니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며 다음 등반을 준비 했다. 가이앙 암장에서는 할아버지들이 손자 손녀와 등반을 하고 온가족이 바위를 오르는걸 보며 산을 즐긴다는 것과 프랑스 산악계 저력의 바탕을 실감할 수 있었다. 7월31일 2차시도, 지난번 등반 때와 달리 산장아래에는 여러팀이 북벽을 바라보며 등반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전 경험을 살려 최대한 빨리, 낙빙이 떨어지기 전에 레뷰파크랙을 돌파했지만 우리가 계획했던 비박지엔 이 미 한팀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75m 디에드로가 끝난 지점에 배낭고리가 떨어져 장비를 잃은 상훈이에게 각자 옷을 나눠주고 바위에 엉덩이만 걸친 채 침낭커버에 몸을 구겨 넣고 비박을 했다. 막 눈을 감을 찰라 꿍하는 소 리와 함께 낙석이 우리를 덮쳤다. 세 명의 중앙으로 떨어지는 바위 덩어리를 보며 눈감는 일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다행히 돌출부위에 충돌하면서 깨져 우리를 피해갔다. 하지만 그때부터 온밤을 자지 못하고 별만 헤아렸다. 다음날 다시 등반을 개시, 간밤의 추위로 바위가 차가워 선등자가 애를 먹는다. 피치 끝내고 손을 겨드랑이에 넣고 다음 사람이 올라 올 때까지 비비는 일을 반복하며 검 정슬랩을 통과할 즈음부턴 기온이 올라가 등반이 쉬워 졌다. 주위의 산들이 발아래로 보이고 멀리 마터호른이 보 이는 지점에선 낙수가 제법 심해 자켓을 입고 신발도 다시 이중화로 갈아신고 올랐다. 회색암탑을 오르고부터는 낙석의 공포에서 벗어났는데 정상 여섯피치 전 지점부턴 다시 돌들이 부서지고 어떤 바위도 믿을 수가 없어 몇 번을 확인하면서 잡고 딛어야 했다. 마지막 세 피치는 믹스 클라이밍을 해야했다. 정 상에 서니 새벽 두시 달과 별빛에 보이는 이탈리아 마을들이 아름답다. 일행중 한사람의 아이젠 없는 하산길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지 절감하며 아홉시간걸려 죠라스 산장에 도착해서야 우리는 안심할수 있었다. 그랑드 죠라스 등반 후 진해에서 작년 몽블랑 등반 시 조난 당한 분의 사체를 찾기 위해 온 등반대와 그리고 이번 원정을 꾸려주신 류재선단장님 이하 고향분들이 격려차 들러 등정을 자축했다 8월4일 째르마트로 이동 야영장에 짐을 풀고 북벽을 찾았으나 구름에 숨이 보이지 않는다. 8월5일 훼른리 산장으로 이 동, 필자와 경준이가 마터호른 북벽 슈미트 루트의 등반초입까지 정찰을 다녀왔다. 오후 햇살을 받아 스노우볼이 생겼으나 내일 아침이면 걷기 좋은 상태이리라. 8월6일 새벽 이번에는 세 명씩 2개조로 편성 30분 간격으로 출발했다. 눈 상태가 등반하기 아주 좋다. 세 명이 연등하니 일곱 시에 설벽을 돌파하고 앞조와 합류했다. 암빙설이 혼합 된 구간이 나오니 정체되어 두 개조가 함께 운행하여 그랑드죠라스 등반과 같이 되었다. 원정을 자주 다닌 사람은 육감이 발달하나 보다. 종국형이 무전으로 산장에 있는 미애를 자주 찾아 날씨를 물 어보는 것이 하산을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등을 섰던 상훈의 비명 같은 낙석! 이라는 외침과 함께 중간에 대기하던 형과 상건 위로 모든게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큰 바위가 떨어졌다. 잠 깐의 적막이 흐르고 신음소리 (여지껏 살아오며 신음소리가 반가왔던 경우는 처음) 살아 있구나 모든 것에 앞서 살아있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구조헬기가 상건이를 싣고 간 자리엔 온통 붉은 핏자국만 남았다. 내려오며 종국형은 등반을 그만하자고 말했 고 난 아이거를 보기라도 하고 가자 말씀 드렸다. 형은 내려가는 대로 짐을 꾸려 병원에 가자고 지시를 내렸는데 야영장에 도착하니 상건이가 자고 있었다. 신속한 후송 덕에 입술 봉합만으로 치료가 끝났다는 것이다. 새로이 힘을 얻은 우리는 구름에 싸여 비를 뿌리는 마터호른을 두 번 보지 않고 아이거로 향했다.

73 66 제12집 아이거를 오르고 싶은 욕심과 낙석에 대한 두려움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이거, 아이거, 아이거. 알프스와 동일어로 내게 각인된 산이다. 개인적으론 93년 학교 원정 때 교통사고로 못 가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던 산. 8월7일 그린델발트에서 바라보는 아이거는 잔뜩 구름을 이고 있다. 마을에는 간간히 비가 내리고 가이드 사무실에서는 이번 주 등반은 사실상 불가란다. 마터호른 사고를 떠올리 는 농담으로 그래도 우리가 등반하러 가면 자기들이 헬기를 가지고 따라 온다나. 구름사이로 망원경을 통해보는 북벽은 그들 말대로 눈이 깊고 물이 많이 흘러내린다. 몽블랑부터 시작된 날씨와 우리의 맞지 않는 궁합을 탓하 며 산에 다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대로 기다렸다. 하지만 조바심에 그린델발트에 있지 못하고 클라 이넥 샤이데로 올라가 목초지에 텐트를 치고 먹고 자고 간간히 구름 사이로 북벽이 보이면 망원경을 드리대며 기다렸다. 장비점에서 나흘치 날씨를 알아온 형이 내일 출발하는 게 어떠냐고 의중을 물어와 하루만 더 날씨를 지켜보며 눈 녹는 것을 기다리자 했더니 형이 OK! 최초 출발하기로 한날 하늘은 화창하고 구름 한 점 없다. 만약 마지막날 날씨가 나빠져 하산이 어렵게 되면 오늘 하루 그냥 보낸 것이 천추의 한이 되리라. 그리고 난 '죽일 놈'이 되고. 드디어 8월12일 북벽을 보며 맥주 한잔을 마시며 전의를 불태우고 융프라후에 오 르는 막차에 올랐다. 아이거 봔트역에 내리려 하니 승무원들이 난리다. 우리도 그곳에서는 5분 동안만 정차하여 창 너머로 경치를 보는 곳이란 걸 잘 알지만 버티고 사정해서 겨우 기 관사의 허락을 구했다. 짐을 풀고 가져온 밥을 먹고 내일의 편리를 위해 해지기전 길을 찾아 줄을 설치하기로 했 다. 산에서 내려오는 막차라 여겨지는 열차를 내려 보내고 컴컴한 동굴을 따라 내려갔다.(혹시 열차가 올라오거나 내려 와 깔려 죽으면 어쩌나 하는 큰불안감을 안고) 갱도의 문을 열고 시원한 북벽의 바람을 맞으며 3동의 자일 을 설치하고 내려오며, 여섯 명이 오를 땐 초입에서 길을 잘 찾는 것이 등정의 관건임을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얻 었기에 등정 예감이 들었다. 새벽 04시, 따뜻한 곳에서 편한 잠을 자고 등반을 시작해서 인지 감이 아주 좋다. 어제 설치한 자일 덕에 속도 도 빠르다. 거기다 두 명씩 한 조로 해서 쉬운 구간은 같이 등반을 하니 등반 시간이 줄었다. 길 찾는 어려움이 이전 등반 보다 적어 죽음의 비박지에 일찍 도착했으나 오후 햇살을 받은 북 벽은 람페 초입 을 온통 폭포와 낙빙 구간으로 만들어 더 이상 등반을 불가능하게 했다. 비박지가 넓어 푹 쉬고 북벽이 얼어 있는 새벽에 일어나 등반을 시작했는데 선등자와 2등 사이의 로프가 걸려 한시간 반을 소비하고 나니 벌써 날이 밝아와 정상 리스 부위에 쏟아질 폭포수를 생각하며 마음만 조급해진다. 엑시트 크랙부터 쏟아지는 물로 옷이 젖었었는데, 역시 그 위의 리스는 시도도 못하게 큰 폭포를 이루고 있다. 등반루트를 오른쪽으로 틀어 물을 피하는 방법 으로 올라가니 낡았지만 하켄이 있어 누군가는 갔다는, 그래서 여기도 길이다 라는 확신에 안 도감을 느끼며 엑시트 설원 아래 테리스에 옷을 말리며 비박 자리를 잡았다. 다음날 새벽 네시에 출발해서 별 어려움 없이 일곱시에 정상에 섰다. 여섯명이 몰려다니니 어 디서나 시선 집중과 감탄사를 받는다. 가이드들을 따라 두 명씩 미델레기릉을 통해 오른 산악인들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하산. 이제 푹 자고 싶다.

74 '2001 광주 전남 학생산악연맹 ALPS 3대 북벽 원정대 39기 함경준(95학번) 00년 산악회회장역임 광주, 전남등산학교강사 목대C-C 2회 우승 특징: 여자모델에 버금가는 2% 늘씬한 몸매 성격: 알잖아!를 외치며 설명을 압축함 바람막이사건주동자 사는 곳: 백도 or 동방 생활상: 용주와 인터벌하기 통닭쏘기, 이력서 남발 꿈: 흰 산 원정한번 가보기 좌우명: 일체유심조 -그랑드죠라스- 7월 21일 (토) 몽블랑에서 고소적응훈련을 하고, 바로 날씨확인과 식량구입을 한 후 바로 그 랑드죠라스 B C로 이동한다. 산악기차를 타고 몽땅베르에 도착하니 바로 왼쪽으 로 드류가 구름 속에서 손짓을 한다. 이것이 바로 빙하라는 거구나! 감탄에 감탄을 한다. 피곤함을 이끌고 랫쇼산장까지 힘들게 4시간 걸려서 도 착. 트래킹온 사람이 굉장히 많다. 국내에서 배낭을 새로 구입 후 처음으로 무겁 게 맸더니만 어깨가 많이 아프다. 등반도 하기 전에 퍼지는줄 알았다. 휴~. 본대와 조금 뒤쳐져서 열심히 따른다. 렛쇼산장 아래 설사면에 막영. 산 장은 겨울에는 개방을 하지 않고 여름철에만 개방하고, 철로 된 콘테이너 박스 다. 산장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7월 22일 일요일 맑음 휴식을 하면서 루트관측을 한다. 아무래도 눈이 많다. 하루 종일 루트 개념도 를 보며 루트를 확인해 본다. 지도를 가지고 렛쇼산장에 올라서 멀리 보이는 산들도 보고 여기저기 구경한 다. 현조형과 상건형은 출발지점까지 올라가서 루트확인을 한다. 사진에서 보는 것 보다 엄청나게 눈이 많이 보인다. 저녁에는 모두 모여서 장 비확인, 식량확인을 하고 등반방식에 대해서 논의, 인원이 6명이다 보니 선등자 한 명이 선등으로 오르면 나머지 인원은 쥬마를 걸고 등반하며 자일을 최대한 선등자에게 지원하란다. 죽을 힘을 다해서 최대한 빠른 등반을 할 것. 이것이 우 리의 등반 방식이다. 쥬마링엔 자신이 있는데, 과연 어떨지... 출발하기전 모선배님은 그랑드죠라스 가 낙석이 너무 심하다며 아주 조심하라고 한 그 말이 내 머리을 빙빙 돈다. 그 래도 파이팅을 외치며 이른 잠을 청한다. 7월 23일 월요일 맑음 00:10 상건형이 잠을 깨운다. 자 이제 시작이다. 한번 열심히 올라보자. 장비를 챙기고 기분 좋게 사진도 한방 찍고, 미애의 배웅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며 출발지점으로 이동. 04:20분 도착. 스타트로 종국형 세컨드 상건형 경준 상훈 승현 현조형 순으로 출발이다. 종국형 파이팅!! 모두들 긴장감 에 싸여 있다. 1피치는 설사면으로 왼쪽바위에 확보지점이 있다. 쥬마를 걸고 열심히 올라본다. 숨이 차다. 휴~ 죽을 힘을 다 해서 가자. 정상으로.. 2피치는 믹스등반으로 눈이 없으면 아이젠을 벗으면 그냥 걸어서 올라갈 수 있다. 3피치 는 직등 90m설사면 이어서 자일한동을 연등시켜서 등반한다. 종국형이 여기를 엄청 힘들게 아니 무섭게 오른다. 한번 슬립이면 아마도 저기 바닥일거다. 완전한 설사면 이다 보니 중간에 확보물 설치하기가 힘들다. 바일 하 나를 박고는 확보지점을 만들고 바일 하나로 등반한다. 그리고 나서 왼쪽으로 3피치 가량을 트래버스한다. 다음 코스가 레뷰파크랙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는다. 한 피치 왼쪽으로 더 가려다가 낙빙과

75 68 제12집 눈사태로 포기하고 조금 어렵게 보이는 크랙으로 종국형이 암벽화로 올라간다. 멀리 슬링도 보이고 하니 길이 맞 는 거 같기도 하고, 도대체 길을 못 찾겠다. 개념도를 다시 봐도 이상하다. 종국형은 아무래도 여기가 아닌 것 같 아 하면서도 크랙으로 열심히 간다. 낙빙이 장난이 아니다. 찐짜 총알소리 같이 삐웅!! 삐웅! 표현하기가 힘들다. 한 대 맞으면 황천행 일거다. 한 피치를 오르고, 내가 다음으로 올라서 루트를 확인해도 레뷰파 크랙은 보이지 않는다. 모르겠다. 너무 난감 하다. 그냥 계속해서 오르기엔 바위코스가 어렵다. 상황이 좋지가 않다. 낙수가 심해서 종국형 옷은 온몸이 젖었다. 형의 고민하는 눈빚이 심상치 않다. 종국형은 철수를 결정! 날씨도 심상치 않고 길도 찾지 못하고 탈출시작. 어! 초반부터 어찌 일이 풀리지 않네. 어쩔 수 없이 프렌드 1개와 비너 1개 슬링 몇 개를 버리면서 하강. 현조형이 먼저 하강하면서 탈출로을 찾는다. 아마도 다른 몇 팀도 여기에서 탈출한 팀이 있었나보다. 여기저기 슬링들이 많이 보인다. 구름들이 갑자기 우리를 덮친다. 우박이 장난이 아니게 내린다. 이게 무슨 날 벼락인가? 더욱 빠른 속도로 하 강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오른 코스가 아닌 길로 하강하니 하강 길 찾기가 힘들다. 마지막 하강지점에선 자일이 모자라서 매우 위험했고, 또한 크레바스가 우리를 향해 입을 쫙 벌리고 우릴 째려 보고 있다. 휴 이제야 살았다. 땅이 이렇게 그리울 수가 텐트에 밤12시가 넘어서야 도착. 낼 아침 일찍 샤모니로 나가기로 하고 늦은 저녁을 먹고 우리의 아늑한 집에서 누워본다. 7월 29일 일요일 점심식사 후 렛쇼 산장으로 이동. 이번엔 내일 새벽에 바 로 출발하려고 등반장비, 식량만 준비해서 이동한다. 아예 BC를 구축하지 않고 비박을 감행. 짐도 가볍고 맘도 가볍다. 이번에 실패하면 다음이란 없다. 신이 있는 한 우리는 성공할 것이다. 대원들 모두가 덕을 많이 쌓아 놨으니까. 날씨도 가이드 회관에선 좋다고 한다. 우리는 가이드회관에서 말해주는 일기예보를 거의 절대적 으로 신뢰한다. 몽블랑에서 보았듯이 정확성이 거의 환상적 이다. 몽땅베르역에서 2시간 30분만에 랫쇼 산장에 도착. 산장 에는 그랑드죠라스를 등반하러 온 팀이 2팀이나 있었다. 어 그런데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쳐댄다. 비가 조금씩 내린다. 날씨가 갑자기 왜이런다냐. 내일 새벽 엔 꼭 출발해야 할텐데. 산장 바로 아래 헬기장에서 비박 을 한다. 내일은 날씨가 좋기를 바라며. 7월 30일 월요일 새벽 01:50출발. 출발 지점에서 다른 팀 2명(다른 코스로 오르려하는)을 만났고 철수하는 2명(파트너 한명이 컨디션이 좋지 않단다)을 만났다. 이번에도 1차 시도와 같은 방법으로 출발. 상건형,종국형,경준,상훈,승현,현조형 순으로. 우리 팀이 1피치에서 2피치로 오르는 중. 다른 팀 2명은 자일도 설치하지 않고 설벽을 그냥 오른다. 와! 저렇게 오르는 것이 무모한 것인지? 실력이 있어서인지? 엥! 저러다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물론 저렇게 오르면 시간을 절약할 수야 있겠지만 계속 의문이 생긴다. 그네들은 우리를 바로 앞지른다. 우리가 닦아놓은 발자국을 밝으며 땡큐을 외치며. 저번에 찾지 못했던 레뷰파 크랙을 이번에는 금방 찾았다. BC에서 많이 생각하고 자료를 참고한 결과 왼쪽으 로 한 피치 더 트래바스하면 되었다. 눈도 1차시도 때보다 많이 녹았다. 종국형이 뛰어난 암벽실력으로 조금 다 리를 떨며 금방 오른다.

76 뒤따르는 난 쥬마를 걸고 정말로 죽을힘을 다 해서 오른다. 와 진짜 죽는 줄 알았다. 힘들어서. 레뷰파크랙을 오르니 앞지르던 팀이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내려와 오른쪽으로 트래바 스중이다. 우리는 바로 오른쪽으로 트래바스. 다행이다. 히히 앞 팀이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면서 간다. 길찾기도 쉽고, 아이 좋아라. 자세히 보면 각 피 치마다 슬링이나 하켄이 한 두개가 있다. 시야를 넓혀서 찾아보라. 위로 두피치를(낙석이 매우 심 한 구간이므로 매우 조심할 것) 오르니 75m디에 뜨르가 나온다. 물이 많이 흐르고 있다. 목을 축 이고, 상훈이가 선등으로 오른다. 설벽등반의 끝 낙수가 조금 많다. 세 번째로 오르던 종국형이 갑자기 낙석! 을 엄청 크게 외친다. 배낭이 저기 아래 바닥까지 떨어진다. 상훈이가 배낭을 확보 줄에 달고 오다 가 떨어뜨린 거다. 이를 우째! 상훈이 얼굴이 어두워진다. 울려고 한다. 등반을 포기해야 하는건 아닌지. 옆에서 계속 총알소리가 들린다. 낙빙, 낙석들이 장난이 아니다. 어떡하나. 상훈이의 장비가 날아갔다. 다행히 가죽화는 남아 있다. 믹스로 한 피치를 더 오르고 다음 피치에선 아이젠 없 이 20m 정도 오른다. 오른쪽으로 트래바스하며 등반을 하고 있는데 어둠이 찾아온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여기 까지 등반한다. 자일을 고정시킨 후 다시 디에뜨르 정상까지 하강 후 비박, 비박자리가 마땅치 않다. 자일은 고정시켜서 확보 후 거의 엉덩이를 절반만 걸친다. 오늘밤을 어떻게 보내나 걱정이다. 스프만 먹고 잠 자리에 든다. 앞에 가던 다른 팀은 검은 슬랩 아래에서 비박하는게 보였다. 벽에서 비박이라. 처음 해보는 거라 무언가 다 를 줄 알았더니만 그냥 비박색에 들어가서 가만있으면 된다. 별거 아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난 추위는 많이 타지 않으니. 갑자기 꽝하며 번개가 위에서 쳤다. 뭐다냐. 낙석! 모두들 벽으로 죽어라 붙는다. 큰 바위가 우리를 향해 구르 는가 싶더니 방향을 바꿔 왼쪽으로 구른다. 휴! 낙석조심. 그랑드 2피치 설벽 등반의 끝 7/31(화) 5시 출발. 발이 조금 시러웠지만 그런 대로 참을 만 했는데, 엉덩이가 계속 미끌려서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어제 설치해둔 자일을 쥬마링한다. 검은슬랩 밑부분이 비박 지점으로는 아주 그만이다. 어제 여기까지 왔으면 좋았을걸. 물론 이런 게 좋은곳을 그냥 지나 칠 수가 있나 모두들 여기서 크고, 작은 일을 본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검정슬랩을 쥬마를 걸고 엄청 힘들게 오른다. 고도가 조금 높아서인가 쥬마링이 너무너무 힘들다. 숨도 많이 차고. 쥬마링은 자신이 있었는데. 쥬마가 하나라서 인가. 아니 슬링을 사용해도 마찬가지다. 쥬마링 연습을 더해야 겠다. 현조형이 빠른 속도로 선두를 선다. 회색 암탑에 오르니 앞에 가는 팀이 보인다. 그 팀은 우리보다 4피치 가량 앞서 있다. 저기위로 정상이 보이는 듯 하다. 거의 다왔다. 조금만 더 힘내자. 4피치를 더 오르니 직등하는 꿀르와르는 얼음이 있고, 매우 어렵게 보여서 오 른쪽으로 오르면서 트레버스 한다. 세 피치를 오르니 벌써 날이 어두워진다. 이를 어쩌나! 워메 힘든거. 그냥 여 기서 비박하면 안되나. 협의 끝에 오늘 밤 정상을 오르기로 하고 랜턴불빛으로 출발한다. 밤이라서 주변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현조형이 길을 맞게 가고 있는 건지. 코스가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이 마구 든다. 칠흙같은 어둠 속으로 아무 생

77 70 제12집 각이 없어진다. 모두들 피곤 한 것 같다. 정신이 없다. 다섯 피치을 오르니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곳. 현조형은 더 이상 오 를 곳이 없단다. 드디어 정상! 정상에서 포옹은 정말 오랜 세월 잊지 못할거다. 새벽 2시3O분 8/1(수) 밤에 정상에 오르니 느낌이 야릇하다. 기분도 상쾌하다. 정상에서 약간 의 간식을 먹고,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 쪽으로 발자국이 있어서 그쪽을 향한다. 정상바로 밑에선 우리 앞에서 가던 팀이 눈을 파고 비박하고 있었다. 서로 축하합니다. 을 외친 다. 상훈이가 아이젠이 없어서 현조형, 상훈, 승현이는 서로 안자일렌을 하고 내려간다. 그런데 하산길이 심상치 않다. 엄청나게 어렵게 보인다. 밤이라서 그런가. 종국형이 날이 밝으면 그때 내려가잔다. 모두들 그 자리 에 앉아서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며 졸고 있다. 그랑드조라스 2피치 상훈이가 아이젠이 없어서 자일로 하강을 하기로 한다. 바위 쪽에 확보 물을 발견하고 하강을 하고 있는데, 아까 정상에서 봤던 팀은 그냥 안자일렌도 하지 않고 클라이밍 다운을 하고 있다. 와! 또한번 놀란다. 우리도 3번을 하강하고 난 후 클라이밍 다운을 한다. 다행히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설사면에 발자국을 내줘서 쉽게 내려 간다. 설사면을 다 내려가니 바위 로 하강지점이 나 온다. 하산하는데 너 무 시간이 많이 소비된다. 모두들 피곤해서 앉았다 하면 졸고 있다. 자일 깔고 하강을 시작한다. 그런데 다른 등반 팀은 안자일렌으로 그냥 걸어서 내려간다. 에잉! 그런데 우리는 그냥 자일로 하강하기로 하고 계속 하강. 현조형은 안 자일렌하는 팀쪽으로 한번 가본다고 하선 소식이 없다. 하강이 끝나는 지점에 서보니 와 이럴 수가! 우리가 하강을 다른 지점으로 하다니. 여긴 안자일렌으로 내려가면 훨씬 빨리 설사면까지 갈 수가 있었다. 밑 설사면은 온통 큰 크레바스로 이루어져서 길 찾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어떻게 된 것이 등반하는 것보 다 하산이 더 힘들다. 우여곡절 끝에 현조형을 만나서 열심히 다시 하산을 한다. 안자일렌을 하고 가는데 히든크레바스가 여기저기에 있다. 잘못하면 크레바스에 빠지겠다. 모두 안자일렌으로 아주 조심히 하산한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됬다. 난 너무 지쳐서 거의 끌려 다니다시피 걷는다. 정신이 하나 없다. 이건 완전히 글리세딩이 아니고 미끄럼이다. 설사면 끝나는 지점에 죠라스 산장이 있다. 우 리는 이제 이탈리아에 온 것이다. 산장에서 라면을 먹고, 다시 하산을 시작한다. 지친 몸을 끌고, 맛있는 밥과 따뜻한 잠자리를 향해서.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정말 아무런 사고 없이 등반이 끝난 것에 대하여 신에게 감사 드린다. 6명 전원이 정상을 밟았으니, 형들 말을 인용하면 이건 거의 엽기에 가깝단다.

78 다른 등반대는 많으면 3명이 등반한다니 말이 다. 그러나 6명이라는 인원이니 만큼 훨씬 위험 도가 높다. 한꺼번에 모여있으니 사고가 나면 엄청 큰 사고가 날것이 뻔하다. 그러나 우리는 해낸 것이다. 아마 이건 신의 뜻이였으랴. -마터호른- 8/5(일) 우리 팀은 그랑드 죠라스에서 너무 많은 시간 을 뺏겨서 짧은 시간 안에 마터호른을 등반해야 하는 관계로 쩨르마트에 도착하자마자 다음날 바로 BC로 이동한다. 점심을 먹고 케이블카로 이동 후, 헤른리 산장까지 2시간에 걸쳐 도착. 현조형과 내가 먼저 도착해서 스타트지점 루 회색 암탑 전 너덜지대 트를 확인하러 갔다. 산장에서 오른쪽 설면으로 내려간 다음 물이 흐르고, 크레바스가 보이는 쪽 위로 오르면 된 다. 약 80 가량의 빙벽으로 안자일렌으로 오르고(약 60m),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초입이 보인다. 갑자기 현조형이 어 여기 바일! 하면서 바일을 줍는다. 이럴 수가 내가 앞에 가면서 그걸 못보다니. 아깝다. 개념도에 초입은 크레바스 끝지점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으나 우리 팀은 중간지점에서 크레바스을 넘어 그지점 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다시 헤른리 산장으로 하산. 등반 자체는 그렇게 어렵게 보이지는 않는다. 거의 하루면 끝나지 않을까. 모두들 그랑드 죠라스를 올랐으니 마터호른은 조금 쉽게 생각한다. 저녁을 먹고 벤치에서 비박. 여긴 많은 사람들이 올라온다. 일반인들도 노멀루트로 많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낼 새벽 등반 하려는 팀들도 몇 팀 보이기도 한다. 8/6(월) 상훈이가 일어나라고 깨운다. 12시 30이다. 너무 편한하게 잤나보다. 몸이 가뿐하다. 화장실 문 앞에는 역시나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다. 등반은 1조는 종국형, 경준, 상훈, 2조는 현조형, 상건형, 승현으로 구성하고 30분 간 격을 두고 출발한다. 우리 조가 먼저 내가 선두로 하고 힘차게 출발. 어제를 상기하며 어둠 속을 헤멘다. 조심해서 초입까지 이동. 으악 슬립 갑작스런 상훈의 외침이다. 초입 바로 밑에서 갑자기 미끄러진다. 초입부 터 불안. 초입은 500m가량의 설벽으로 되어있어서 안자일렌으로 출발한다. 내가 설사면을 오르고나니 으악! 갑자기 상훈이가 슬립을 외친다. 손으로 겨우 자일을 잡아 제동을 한다. 상훈이가 크레바스에 빠졌단다. 처음부터 심상 치 않네 종국형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오르라고 다그치는데 상훈이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 2조가 벌써 크레바스 를 넘어서 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고, 다른 팀이 우리를 앞질러서 오른다. 설벽 거의 끝지점은 빙벽으로 되어서 스쿠류를 박고 확보을 한 후 세피치을 더 오른다. 바위에 닿아서는 상훈이가 아이젠을 벗고 오른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린다. 벌써 2조는 우리 바로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너무 느렸기 때문이다. 경험이 부족한 걸까. 다음 피치는 바위에가 눈과 얼음으로 덮여서 너무 오래 걸 려서 오른다. (거의 2시간). 내가 먼저 오르고,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2조 자일을 고정시키고, 상훈이가 다음 피 치를 오른다. 종국형과 상건형이 쥬마을 걸고 오른다. 내가 다음 피치를 오르는 사이 종국형은 무전기로 산장에 남아있는 미 애에게 무전으로 날씨를 묻는다. 날씨가 심상치 않아서 말이다. 낙석! 낙석! 낙석! 상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난 위를 한번 쳐다보고는 바로 벽에 죽어라 붙는다. 쏴아아~ 바위들이 마구 떨 어진다. 상황 종료. 종국형은 괜찮았고, 상건형에게 괜찮냐고 묻는다.

79 72 제12집 으으으~ 상건형은 말 대신 신음소리를 낸다. 바닥엔 시뻘건 피가 보인다. 종국형은 바로 미애에게 무전을 보낸다. 미애야! 빨리 구조요청해라 형 무슨 일이에요? 상건이가 돌에 맞었다. 빨리 구조 요청해라 형 알았어요 난 최대한 빨리 쥬마로 올랐고, 상건형을 우리가 있는곳으로 쥬마링으로 오르게 한다. 어디선가 헬리콥터소리가 들린다. 와 진짜 빠르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역시 우리나라하곤 다르다. 구조체계가 확실하다. 구조대는 우리를 관측하더니 다시 내려갔다가 구조대원 한 명을 달고는 우리가 있는 곳에 내린다. 상건형이 올라오자 상훈이는 응급처치를 하고(단지 코밑에 찢어진곳을 밴드로 붙이는 정도), 종국형은 쥬마링 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10m가량을 구른다. 으악! 갑자기 왜 그랬을까. 형은 팔꿈치, 허리가 아프다며 확보를 요 청했다. 쥬마링을 하지 못하겠단다. 그러는 사이 상건형을 로프에 메달고 헬기로 구조한다. 구조대원이 옆에서 도와준 다. 그리고 한 피치 아래 있는 현조형과 승현이가 한명씩 구조되고 있다. 종국형이 다 올라와서는 죽는 줄 알았 단다. 확보지점에 있던 하켄이 빠져서 떨어졌단다. 아마도 아까 낙석의 충격으로 하켄이 빠졌나보다. 우리는 종국형, 나, 상훈 3명이 동시에 로프에 매달려서 구조된다. 처음 타보는 거라서 엄청 무섭게 느껴졌으나 막상 타보니 와 우 느낌이 아주 좋다. 재미있다. 오~와우! 모두들 소리를 지른다. 헤른리 산장에 내렸다.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고, 일본인 한명은 죽었고, 한 사람이 많이 다쳤단다. 분위기가 침통하다. 헬기는 상건형과 다친 사람을 싣고 곧바로 병원으로 향한다. 휴 다행이다. 그나마 빨리 구조되어서. 산장에 와서는 구조대원과 헬기 보험문제로 이야기를 한후 점심을 라면으로 먹고 하산준비 한다. 날씨가 가스 가 끼고 눈발이 조금씩 날린다. 종국형은 아이거 등반은 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사고가 났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BC에 도착해서 배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한다. 모두들 피곤하고 늦었으니 오늘은 종국형과 미애만 Brig로 가서 상건형에게 간단다. 모두들 지친 얼굴이다. 힘들다. 우리 에게 우째 이런 일이. 미애가 짐을 챙기려고 텐트를 열어 보더니 형 누가 우리텐트에 있어요! 한다. 설마 누굴까. 상건형 같은데요 설마. 상건형은 병원에 있어야 하는데. 장난치지마라. 기분별로다. 어디? 정말이다. 상건형이 텐트에서 얼굴을 내민다. 이럴수가! 모두들 놀란다. 너 왜 여기 있냐? 종국형이 다그치자 상건형은 병원에서 그냥 그러라고 해서 왔단다. 상건형은 여기까지 오는 게 더 힘들었단다. 차비도 없고, 말은 통하지 않으니, 어떤 아줌마와 같이 겨우 여기 까지 왔단다. 슈퍼로 바로 가서 오늘 먹을 것 을 구입한다. 고생했으니 맛있는 걸로 먹어야지... 상건형을 특별히 생각해서 부드러운 음식을 장만한다. 마터호른은 특히 낙석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가만있던 돌들이 마구 떨어진다. 예측 불가능하다. 인간의 본성은

80 정말로 대단하다. 등반 내내 기분이 이상하더니만 사고를 당했으니 말이다. 이번 사고로 느낀 점은 바로 구조하 는 요령이다. 정말로 빠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헬기 한번 뜨려면 정말 힘들지 않는가. 사고접수 후 거의 5분이 않되서 사고 지점으로 헬기가 오는 것으로 봐서도 알 수 있지 않는가. 구조대원들도 아주 숙달이 되어있어서 아주 침착 하게 도움을 준다. 우리나라도 빠른 시일 내에 구조체계를 바꿔야 하겠다. 아이거- 8/12(일)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오늘 드디어 등반을 결정하고, 장비, 식량을 정비한다. 루트를 열심히 공부한 탓인지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큰 사진까지 구해서 루트를 그려가면서까지 공 부를 했으니 말이다. 기차는 아이거 반트에서 정차를 하기는 하지만 거기에서 내릴 수는 없단다. 우리는 그래도 몸으로 삐대자며 마 지막 기차에 승차하고, 아이거 반트에서 기차가 서면 알아서 화장실같은 곳에 숨기로 한다. 기차가 도착하자마자 모두들 가방을 들고 마구 도망(?)을 친다. 승무원이 바로 우리를 보고 내리면 안된다며 뭐라뭐라 한다. 모두들 어쩔 줄 몰라 하며 화장실 쪽으로 들어간다. 역무원들은 빨리 돌아오란다. 종국형이 설명 을 하며 설득을 해보지만 막무가내다. 이거 큰일이다. 아이거에 붙어보기도 전에 다시 내려가야만 하는가? 전화를 걸던 역무원이 알았단다. 됐단다. 와우 우리는 땡큐 를 연발 외쳐댄다. 겨우 아이거 반트에 내린 우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난 후 저녁을 먹기로 하고 국을 끊이려고 하다가 그만둔다. 미애가 나온다던 물이 한 방울도 없다. 화장실에서 물을 구하려 노력했으나 실패. 아무리 봐도 없다. 어쩔 수 없이 해온 밥에 반찬을 겨우 먹는다. 종국형은 내일 등반을 위해서 자일을 깔아놓는 게 좋겠다며, 종국 형과 현조형, 상건형은 갱도 입구로 향한다. 남은 우리들은 화장실로 들어가 비박에 들어간다. 최상의 비박 자리 다. (특히 여자화장실이) 따뜻하고. 20시30분경 형들이 돌아왔다. 8/13(월) 3시에 출발. 아이거 반트에서 약 5분정도를 내려오면 갱도입구가 보인다. 문이 조그맡게 열리고 나니 기분이 묘하다.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는 문같다. 어제 설치해놓은 자일로 이동해서 출발한다. 1조는 상건형, 상훈, 2조는 현조형, 승현, 3조는 종국형, 경준순으로 출발한다. 세 번째 피치를 오르면서 과연 이 크랙이 힘든 크랙인가하며 아리쏭하다. 날이 밝아 오니 여기가 힘든 크랙이 확실하다는 느낌이 든다. 자일이 설치되어서 인지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음 피치부터는 각 조별로 알아서 오른다. 우리 조가 마지막으로 오른다. 앞 팀과 거리가 멀어지지 않도록 열심히 오른다. 두피치 가량 오르니 힌토이셔 트레버스다. 픽스로프가 깔려서 너무 쉽게 느껴진다. 2~3가닥의 로프가 있다. 조금만 힘을 주면 끊어질듯. 트래버스 끝지점엔 제비 둥지처럼 보인다. 비박지점으로 해도 좋겠다. 다음 피치는 암벽화를 신고 등반한다. 간간히 픽스로프와 하켄이 보인다. 두피치를 오른다. 제2설원이 넓게 보이고 저 멀리 람페에서 한 팀이 등반하 는 게 보인다. 눈이 많이 녹아서 등반하기엔 꼭 알맞다. 야 우리 빨리 등반하면 저 팀을 앞지르지 않을까? 종 국형 말이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1조가 2설원을 직등으로 오른다. 100m가 넘으려나. 자일을 연등해서야 겨우 닫는다. 왼쪽으로 세피치을 트래버스하고 나서 다시 직상하는 꿀르와르를 향해서 자일을 연등해서 한 피치를 오르고, 왼쪽으로 두피치를 트래버스하니 죽음의 비박지이다(오후 6시 도착). 역시나 비박하기는 그만이다. 근데 어떤 놈이 응아를 여기에 쐈다. 쉬 냄새. 잘못했으면 자일에 뭍을뻔 했다. 모두들 등반 중에 응아를 하면 잘 처리할 것. 뒷사람에게 불편을 제공하지 말고. 볼트가 엄청 박혀있다. 여기서 영화라도 찍었나보다. 이른 시간

81 74 제12집 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비박준비를 한다. 내일을 위해서 람페 초입까지 자일을 설치하려다가 워낙 낙수, 낙빙 이 심해서 거의 접근이 힘들어 포기한다. 조별로 저녁을 간단히 마치고 비박에 들어간다. 아직 어두워지지도 않 았다. 자리가 넓어서 배낭을 깔고 편안하게 누웠다. 야 천국이다 그랑드 죠라스에 비하면. 저 아래 2설원지점에 는 두팀이 열심히 오르다가 중간에 비박하는 모습이 보인다. 등반하는 사람이 많으니 왠지 편안한 느낌이다. 8/14(화) 4시에 출발. 낙수와 낙빙이 거짓말처럼 조용하다. 람페 초입까지 가는데 날이 밝아온다. 트래버스가 약간 힘들 었다. 차라리 하강 후에 다시 오르는 게 더 좋았을 것을. 람페의 워터폴 크랙아래 까지 조별로 알아서 오른다. 눈이 거의 없어 암벽화를 신고 오른다. 어려운 구간에서만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자일을 함께 쓰기로 한다. 바위 곳곳에 아이젠으로 열심히 오르려했던 자국들이 흥건하다. 하얗게 워터폴크랙엔 다행히 얼음이 없어서 암벽화로 간단히 넘는다. 낙수가 많다. 아마도 살얼음이 살짝 얼면 엄청 힘든 코스 일 것이다. 아이스 벌지에선 고드름이 거의 녹아서 약간 어렵게 보인다. 상건형이 쉽게 올라버린다. 와! 역시 상건형이 얼음은 엄청 잘한다니 까. 파이팅! 나머지는 쥬마를 걸고 오르고. 다음은 60 정도 설사면이 쫙 보인다. 한 피치를 오르니 오른쪽으로 트래버스하는 픽스로프가 보인다. 트래버스하고 한피치를(약간 어렵다) 직등으로 오르면 신 들의 트래버스다. 와우! 너무 아름답다. 시야가 확트이면서 풍경이 죽여준다. 물론 여기서 마지막 등반자는 주의를 해야한다. 슬립이 면 바로 절벽에 대롱대롱 메달려야 하니 말이다. 약간의 픽스로프 와 하켄이 보이고, 3피치를 트래버스하니 거미다. 낙빙이 무척 심 하다. 왼쪽 꿀르와르로 최대한 빨리 등반을 한다. 연등까지 하면서 죽을힘을 다해서.(연등한 자일에 모두 붙어 있다) 휴. 그러나 여기에도 낙빙이 조금 심하다. 등반자가 낙빙떨치 는 이 전부 여기를 향한다. 조심조심 낙빙이 일어나지 않도록 오른 다. 엑시트 크랙이다. 온통 낙수로 장난이 아니다. 한피치를 낙수를 맞고 오른다. 약간 오버다. 우리가 오르려는 코스엔 거의 폭포가 흐르고 있었다. 이걸 어째. 고민하던 차에 현조형이 암벽화를 신고 왼쪽 크랙으로 오른다. 여 기가 길이 맞단다. 다행이다. 저 폭포를 맞으면서 올랐으면 거의 죽음 이였을 텐데. 다음 피치는 꿀르와르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붙으면서 등반. 오른 신들의 트래버스 편엔 물이 많이 흐른다. 엑시트 크렉 끝지점에서 비박 준비를 한다. 비박 지점은 2~3명은 가능하지만 우리 인원이 자기엔 부족했다. 난 거의 자일에 의지하며 비박에 든다. 바로 옆으로 정상이 보이고, 아래로는 클라이네 샤르덱이 한눈에 보인 다. 우리 텐트도 보이고, 미애가 랜턴을 비친다. 깜빡깜빡. 우리들은 너무 반가워 랜턴으로 답례를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일로 미애는 우리가 구조 신호를 한 것으로 알고 구조대 연락까지 했단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8/15(수) 3시 30분 출발. 허리가 조금 아프다. 어제 밤은 다행히 바람도 거의 없었고, 날씨도 최상 이였다. 그러나 형들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단다. 난 푹 잤는데. 어떻게 된 거지. 정상으로 향하는 리스엔 눈이 거의 다 녹아서 우린 아예 왼쪽의 바위로 향한다. 푸석 바위로 낙석이 매우 심해서 아주 조심해야한다. 2피치를 오르니 설사면에 도착한다. 이젠 정상까지 설사면을 오르면 된다. 날이 밝아온다. 오랜만에 보는 일출

82 이다. 지금부터는 조별로 운행한다. 현조형 조가 먼저 정상을 향한다. 텔레미 기능을 통해서 정상에 도착(7시 20분 도착). 텔레미기능으로 오른 가이드 와 일반인들이 몇 있다. 신기하다. 일반인들이 이런 곳까지 오를 수 있다 는 것이. 알프스의 산맥들이 한눈에 쫙 들어온다. 장엄한 광경들. 각 단체기들을 꺼내 촬영에 들어간다. 1시간 가량. 사진 찍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퍼지는 줄 알았다. 9시가 되어서 하산을 시작한다. 노멀루트. 칼날능선으로 하산을 시작한 다. 역시나 조별로 운행한다. 현조형조가 먼저 출발. 조심조심 천천히 하산을 한다. 중간에 하강용 긴 고리가 있어서 자일을 걸고 손으로 잡고 내려오는데 다른 외국 등반대는 여자가 앞장서서 안자일렌으로 그냥 무지막지하게 막 내려간다. 엄청난 속도다. 에잉? 충격이었다. 이럴 수가 아니 저 여자는 겁도 없나 여기서 떨어지면 바로 저기 아래까지인데. 종국형은 안되겠다며 하강하는걸 포기하고 우리도 그 냥 안자일렌하고 그냥 달려가잔다. 아이고 불안하다. 중간에 길을 몰라서 4피치를 하강을 하고 나서 또 달려 간다. 저기 아래 아이거 글래쳐가 보인다. 현조형은 먼저 내려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힘을 내서 하산을 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마지막 하강을 하 고 설사면을 글리세딩으로 하산 완료. 15시30. 글래쳐 역에서 라면을 먹고, 그 라면 맛은 과히 환상에 가까웠 다. BC까지 가서는 짐을 챙겨서 그린델발트 까지 내려와 서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 모두들 정말 수고 하셨습니 정상능선 다. 이젠 배낭여행 할 준비을 해야지. 재미있게. 아이거는 조금 쉽게 느껴졌다. 아마도 4일간 열심히 루트공부를 한 탓일 거다. 책과 보고서에 아주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다. 내가 느낀 알프스 등반은 우리나라 릿지 등반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약간의 눈이 있는 것과 중간에 비박 을 해야하는 을 제외하고. 물론 한순간의 실수가 큰 사고를 가지고 온다. 준비는 되도록 많이 하는 게 좋다. 운동도 하고 보고서도 열심히 읽고. 한사람의 실수 로 등반대가 큰 사고을 당할 수 있으니. 등반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등반대원간의 팀웍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등반이 었다. 기억에 두고두고 남는 등반이었다. 등반이 끝난 지 벌써 1년하고 몇 달이 지났다. 모 두들 잘 지내고 있는지. 종국형, 현조형, 상건형, 상훈, 승현, 모두들 산에 서 옛 이야기하며 술한잔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83 76 제12집 <등반식> -그랑드 죠라스- 구분 첫째날 둘째날 셋째날 아침 차한잔+비스켓1개 점심 샌드위치 오렌지1/2 초코렛 오렌지1/2 사탕, 삶은 달걀 라면1봉 저녁 삶은감자1개 소세지1/2 고기, 스프 쏘세지1/2 -마터호른- 구분 첫째날 둘째날 아침 점심 저녁 제과점빵1개 레몬1/2 고기, 스프, 비스켓 차한잔+비스켓+바게뜨빵1/2 사탕 라면 레몬1/2 초코렛 -아이거- 구분 첫째날 둘째날 세째날 아침 차한잔 + 비스켓1개 점심 바게뜨빵1/3 쵸코렛1/2 오랜지1/2 초코렛1/2 오랜지1/2 라면 1봉 저녁 고기 스프 스프 쏘세지 <등반식 반성> 아마 모든 대원이 먹는 것에 대해서 힘들었을 거다. 등반도 식량과의 싸움이다. 등반식의 가장 중요 한 점은 역시나 무게와 열량이다. 모든 등반 식들은 이 두 가지 모두를 두루 갖추어야 하 나 대부분이 그렇지 못하다. 준비하다 보면 두 가지 중 한가지는 조금 부실하게 된다. 우리 팀은 무게에 비중을 두고 준비했다. 아침을 모두 비스켓과 차로 정했는데, 이는 아침에 조금 더 일찍 출발 을 하기 위함이다. 차 역시 전날 저녁에 끓여서 보온통에 보관 후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장비챙기고 출발했다. 그리곤 아무 때나 먹고 싶을 때 아침을 먹는다. 대부분 대원들은 등반 식을 자기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것을 알아서 먹었다. 등반식 중에서 고기가 무엇인가 궁금 할건데 그건 현지에 가보면 알 것이다. 고기를 말려놓은 것으로 처음엔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먹을수록 괜찮았다. 저녁에 먹는 스프는 우리 몸을 따뜻하게 보온해주면서 굶주린 배 을 채우기엔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마지막 날에 등반을 끝내고 끓여먹던 라면은 정말로 맛있었고, 추천할 만한 등반식이다.

84 중 국 여 행 기 38기 한창균(94학번) 98년 산악회회장역임 99년 백두대간 단독종주 광주전남등산학교강사 6/9 준비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이 기회가 아니면 외국에 나가기 어렵다는 생 각이 들었다. 그래서 형관이에게 트레킹을 가자고 제안했다. 형관이도 나름대로의 계획을 갖 고 있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여러 여건과 주머니 사정을 고 려해 중국으로 배낭여행을 가기로 했다. 원정을 가는 것도 아니고 산을 가는 것도 아니고 해서 조용히 다녀오려고 했다. 결국 여권을 가지러 은호형 사무실에 갔다 가 영필이형에게 말하게 됐다. 괜실히 은호형에게 미안한 생각이든다. 나는 조기성선배님의 배려로 연호전기에서 케이블과 씨름을 하고 형관이는 꽃 배달을 했다. 서로 만나기가 힘들어 메일과 전화통화로 계획과 정보를 아야기했다. 결국 체류비 50만원에 3주 버티기로하고 여행은 의외의 변수가 재미있다. 라 는 생각으로 최소한의 정보만 갖고 떠나기로 했다. 가문의 영광: 6/10 출발 대를 이은 해병대 이런저런 일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던 나는 형관이에게 여행취소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특징: 술취한척하고 대들기 아침에 눈을 떠보니 그동안 준비한 것도 아깝고 너무 미안해서 하루도 되지 않 아 번복을 했다. 말없이 따라준 형관이가 고맙다. 그래서 오후가 되서야 주섬주섬 짐을 쌓다. 집을 나서는데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집에 말도 않고 나서는 거라 안 그래도 찜찜한데 비까지 내리니 마음까지 가라앉는다. 열차 안에서 형관이가 저희 아버지가 중국에 다녀오셨 는데 내륙 쪽은 아직 개발이 덜되 떼강도도 많고 치안이 엉망이랍니다.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래요 계획대로 할 수 있을까? 비만 계속 쏟아 붇는다. 6/11 아~이제 시작이구나! 너무 일찍 인천에 도착해서 준연형을 찾았다. 그 전날 야근을 했던 형은 예전의 각 잡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구겨진 제복에 아주 초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린 아침 사다라고 우겼지만 속 버린다는 모닝커피로 입 을 씻고 만다. 여객터미널은 배낭족, 보따리상들로 북새통이었다. 정신없이 승선을 하여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국어와 중국어 로 된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중국인들의 대화 소리가 너무도 생소하고 긴장되게 만든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우리 옆 침대의 보따리상 아주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50만원으로 일주일 버티면 잘하는 거라고 겁을 준다. 우린 술렁이기 시작했다. 책하고 틀린데. 일주일만에 오면 쪽팔리는데. 남은 기간은 산에나 짱 박혀 있을 까? 그래 유일한 방법은 헝그리다! 헝그리! 속으로 다짐을 했지만 얼마안가 우리는 돈을 펑펑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식사시간. 식당은 너무 한산했다. 4천원짜리 밥을 먹고 나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도시락, 주먹밥, 컵라면으로 끼 니를 때우고 있었다. 짜식들 돈 몇 푼이나 한다고. 근데 그게 아니었다. 그 돈이면 싸브싸브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85 78 제12집 6/12 북경에 가다. 바닷물이 흙탕물처럼 탁해지더니 멀리 탕구항이 보인다. 드디어 중국이다. 나의 첫 외국나들이다. 입국 수습을 마치고 나오니 허름한 옷에 까만 얼굴, 기름기 흐르는 머리, 노란 앞니를 갖은 택시기사들이 이상한 입 냄새를 풍 기면서 호객 행위를 한다. 그것도 나이롱보다 질기게. NO! 라는 같은 말을 되풀이 하니 여행의 설렘보다는 짜증 과 불쾌감마저 든다. 북경행 고속버스 표를 사는데 아무리 회화책에 나와 있는 대로 말해도 알아 듣지 못한다. 그래서 한자는 그리고 부족한 것은 판토마임을 해서 요란하게 표를 구했다. 아이고! 이 짓을 몇 번이나 해야 할까! 걱정된다. 걱정되. 차창 밖으로 보이는 중국은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아크로폴리탄과 ***처럼 부조화스러웠다. 그리고 고속도로 사이에 간간이 보이는 LG와 삼성의 광고판이 유난히 돋보였다. 베이징에 도착하니 해가 지려한다. 숙소에 전화해 보니 바빠서 데리러 올 수 없다며 대략 위치만 가르쳐준다. 서두러 숙소를 찾으려고 약도를 보여주고 한자를 써보 아도 모두 모른다고 한다. 한양에서 이 서방 찾기다. 다행히 배낭족들의 도움으로 숙소를 찾았는데 전형적인 ㅁ 자 건물이다. 그리고 그 뜰에서는 마작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영화에 나오는 장면 같다. 고려여관은 조선족이 운영하는 곳이고 배낭족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곳 이여서 정보를 교환하기 좋은 곳이다. 대충 허기를 채우고 중국의 압구정이라는 왕부칭 거리를 갔다 온 걸로 하루를 마감했다. 북경의 아가씨들은 액 면은 별로지만 쭉쭉빵빵에 옷도 쌈빡하게 입고 노출은 연예인 뺨친다. 도저히 공산국가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6/13 북경 황제의 도시 자금성은 너무 TV나 사진을 통해 자주 접했던 터라 별 느낌이 없다. 단지 엄청난 규모에 놀랄뿐이다. 그리고 그 걸 짖기 위해 피땀을 흘렸을 백성들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 자고로 문화유산이 많은 나라치고 폭정을 일삼지 않는 나라가 없다니 오죽 못살게 굴었을까? 이화원이라는 황제의 여름 집무실은 인공호수인데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바닥의 흙으로 산을 쌓았으니. 무식 한 놈들. 열심히(?) 호수주위를 걷는데 묵묵히 따라오는 진희가 대단해 보인다. 우리 걸음이 얼마나 빠른데 그것도 한시간 걷고 10분 사진 찍는데 아무 불평없이 따라온다. 진희라는 애는 자료 모으려고 가입한 중국 여행동호회에서 채팅 을 한번 해본 애였다. 그때는 서로 일정이 틀려서 각자 알아서 가기로 했는데 배에서부터 숙소, 그리고 지금까지 줄곧 우리와 동행을 하고 있다. 참 세상이란 게 좁은 것 같다. 북경은 황제의 도시다. 뭐든 크고 화려하다. 중국 공산당이 문화혁명 때 뭐라 뭐라 하면서 그렇게 무시하던 황제 덕에 많은 관광객이 오고 그들이 쓰는 달러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걸 보면 씁쓸한 생각이 든다. 한편 수많은 외 국 관광객들을 보면 과연 우리나라가 이처럼 많은 외국인들을 끌어 올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외국인들이 중국 과 비교해서 실망하지나 않을까? 아무리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그것의 가치를 알기 전에는 크고 화려한 것에 끌리 기 마련인데. 자꾸만 바보 같은 비교를 해본다. 북경대 앞으로 맥주한잔 하러가다가 학교도 구경할 겸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고풍스런 분위기에다 연 못 등 조경이 참 잘 돼있다. 그리고 혼자서 책을 읽거나 영어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열라 티내면 서 공부하네. 쪽팔린 줄도 모르고. 라고 욕은 했지만 왠지 찔린다. 오후 7시가 넘는 시간인데도 강의실에선 열심 히 수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변엔 술집도 별로 없고 심지어 담배 피우는 사람도 별로 없다. 전대 후문과는 사뭇 다르다. 어렵사리 학생식당에 들어갔는데 몇 백개의 눈동자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웃는사람, 신기해하는 사람. 배 낭여행 온 사람들이 대학교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신기했을까!. 뜨거운 시선을 꾹 참고 메뉴판 앞에 섰는데 난감하 다. 메뉴가 너무 많다. 회화책에 있는 메뉴와 비교도 않고 그저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종업원이 뭐라뭐라 가르쳐 주 는데 통 감이 안온다. 근데 눈치 빠른 형관이는 능숙하게 주문을 하고 계산까지 해버린다. 짜식 똘똘하데. 어렵게 음식을 받아 들고 식사시작!. 윽! 그 맛있어 보이던 것이 도저히 목에서 넘어가질 않는다. 이상한 향, 느 끼함, 기름기. 구역질이 나온다. 오만 인상을 쓰며 먹고 있는데 주위에서는 키득키득 웃음 소리가 들린다. 옆에 있던 형관이도 거든다. 형 나처럼 야채 시키지 무슨 고기를 시킨가. 형 많이 먹소, 산악회가 남기면 안되제.

86 빌어도 못 먹을놈. 밥먹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문제는 집에 가는 거였다. 집에 가는 버스 승강장을 못찾고 헤메는데 막 차 시간까지지 한 시간 가량 밖에 남지 않았고 버스 정류장에는 전문(숙소)라는 글씨가 안 보인다. 시간은 없는데 의사소통이 안되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뻥 뚤린 도로, 자욱한 먼지, 유난히 북경이란 데가 더욱 낯설어 보인다. 다행히 한 여자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버스를 탈수 있었다. 버스 좌석의 그 안락함. 벤츠가 안 부럽다. 6/14 만리장성 버스투어 지금까지의 북경은 우리에게 별 다른 감동을 주지 못했다. 화려한 상가와 큰 빌딩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게 없 고 산들의 변화무쌍하고 경이로움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화려하고 웅장한 고궁 또한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형관이와 의논한 끝에 빨리 북경을 떠나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광경이 수려한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 래서 만리장성으로 가는 것은 이동시간을 고려해 투어를 결심했다. 계약조건에는 케이블카를 안타도 된다고 했지 만 막상 걸어서는 못 올라가게 한다. 이곳 여행패키지는 예정에 없는 일들이 많아 돈을 추가로 더 지불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찝찝한 마음으로 청룡열차(?)를 탔지만 이내 간만에 타는 거라 모두들 즐거워한다. 명13인릉에 가는 길은 어릴 적 신작로처럼 비포장길이 많다. 버스가 일으키는 뿌연 연기사이로 콩타작을 하는 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문득 여행을 떠나기 전 형관이 아버지가 했다던 말이 생각났다. 젊은이는 선진국을 가봐야 된다. 그래야 미래를 볼 수 있다. 후진국은 과거의 향수에 젖게 하지만 젊은이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점점 그 말의 뜻이 조금씩 마음에 와 닿는다. 중국인들은 일생에 북경에 한번 가보는 게 소원일 정도로 여행다니기가 어렵다고 한다. 같이 투어하는 사람중에 토막손에 찢어지고 검게 기름때가 묻은 손마디, 주름진 얼굴 고된 일상에 찌든듯한 사람이 있다. 온종일 해바라기 씨를 입에 물며 싱글벙글이다. 잠깐 들른 기념품가게에서 부인이 짝퉁인 것 같은 반지를 고르며 좋아 하는 것을 보며 흔쾌이 값을 지불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사람아 이런걸 왜사! 할텐데 그 분들은 마냥 좋은가 보다. 그분 을 보니 아버지가 생각난다. 왠지 모를 안쓰러움과 한없이 속아주시는 아버지. 오늘은 월드컵16강 진출이 달린 포르투갈과의 경기가 있다. 그래서 우린 북경역 앞에 대형 멀티비전이 있을거 라는 생각에 가보았으나 멀티비전에는 뉴스만 방송대고 있어서 혹시나 해서 역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볼수 없었 다. 대신에 깨끗하고 선진화된 역사만 보고 재빨리 숙소로 돌아와 같은 배낭족끼리 한판 멋진 응원을 했다. 졸전이 었지만 붉은 악마의 응원소리와 젊은그대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16강 진출로 더더욱 좋았다. 6/15 바가지와 합리사이 토요일이란 걸 잊고 환전을 안했다. 나중에 동인당이라는 큰 약방에서 환전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환전하는 것 보다 훨씬 후하게 위엔화로 바꿔 주었다. 달러로 많이 가져와서 원화로 바꾸는 것이 수수료면이나 환율로도 훨씬 유리하다. 북경 박물관엔 한 송 요대의 그림, 도자기등 많은 유물이 있었다. 하지만 난 빨리 나가고 싶었다. 어떤 사연이 있 고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과 재질 그런 것으로 평가 했으므로 신기한 물 건쯤으로 밖에 안보인다. 나에게는 진열장에 상품이나 다름없었다. 단지 어줍고 답답한 느낌만 들었다. 감성이 부 족한건지 지식이 부족한건지 몰라도 너무 화려한 것을 많이 봐서 물린 모양이다. 모택동 기념관에 가려고 했는데 짐 하나에 맡기는데 5위엔, 카메라 5위엔, 각각 요금을 받는다. 장사속인 것 같 아 기분이 나쁘지만 중국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심지어 공중 화장실요금도 그렇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어떤 것은 다시 입장료를 내야하는 경우 등 어떻게 보면 필요한 것만 보면 더욱 쌀 수도 있으나 바가지 씌우려면 한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당연시 여기는 게 나로서는 이해가 안간다. 결국 다른 박물관의 입장객의 몇 배나 많은 사람이 줄서 있는 모택동 박물관을 뒤로 하고 숙소를 향했다. 숙소에 가는 길에 과일을 사는데 거의 모든 과일을 근으로 판다. 물론 한국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싸지만 아주머 니의 말이 믿기지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현지인 구입 가격의 20배가 넘는 값으로 기념품을 산 사람도 있으니 더 더욱 믿기지 않는다. 속는 셈치고 과일을 사가지고 와서 숙소의 조선족 누나에게 제 값을 주고 샀는지 물었다. 그 누나는 아주 씁쓸한 표정으로 제값을 주고 샀고 더구나 비싼 과일도 섞었다고 말한다. 마치 우리 중국인들은 그

87 80 제12집 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북경오리도 못 먹었는데 싸브싸브나 먹으로 가자고 해서 숙소의 한국 배낭족들 8명이 단체로 식당을 향했다. 역 시 모이면 싸고 흩어지면 비싸다는 말은 맞다. 1인당 15위엔에 배 터져라 먹었다. 뒤이은 술자리에서는 먼저 중국 에온 배낭족들의 사기당한일, 황당한일, 음식이야기등 무용담이 웃음을 자아낸다. 모두들 가장 많이쓰는 말은 팅 부동(모르겠다), 타이꿰이러(너무 비싸다), 부요우(필요없다)정도다. 일행 중에는 한국미술을 전공한 부산 여학생 이 있었는데 다퉁의 유명한 석불을 보고 왔지만 우리의 석굴암처럼 정교한 불상은 없다고 한다. 다퉁의 불상은 크 지만 거칠고 투박하다며. 나는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술기운에 묻혀버렸다. 6/16 가쟈 내몽골 초원으로 택시를 못잡아 웃돈을 준것과 택시가 돌아간 것 같아서 아침부터 기분이 꽝이다. 열차는 12시간이 걸렸지만 월남뽕하느라고 시간 가는줄 모랐다. 열차는 직쾌의 하드배드라도 불편함을 몰랐다. 그리고 사람들도 많이 지나다니지 않아 월남뽕하는데 전혀 불편도 없을뿐더러 조용하기까지 했다. 일행 중 한 누나는 열차안에서 담배를 피는데 정말 보기 싫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엄두도 못내면서 중국이고 외 국인이라서 인지 아니면 여행을 오래 해서 얼굴이 두꺼워 진 건지 몰라도 좀 심한 것 같았다. 주위의 중국인들도 인상을 찌푸릴 정도니깐.(중국인들은 좌석칸에서는 담배를 피워도 침대칸에서는 안핀다.) 험한 협곡에 굴을 뚫어 기차가 다니는데 차창 밖은 그야 말로 절경이다. 비옥하지는 않으나 드넓은 평야, 탁트인 시야,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 속까지 후련하다. 후아우토에 도착해서 초원투어의 가격을 흥정하는데 누군가가 우리를 유심히 보더니 와서 혹시 전대생이세 요? 하고 말을 건다. 우리가 입은 CC티를 보고 말을 건낸건데 현식이(의대산악회)와 같은 학번이란다. 세상에 여기서 학교후배를 만나다니 세상 정말 좁다는걸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후아우토의 거리는 북경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물가 도 훨씬 싸고 한자와 몽고어로 쓰인 간판도 이색적이 다. 사람들은 한족과 짧은 머리에 조금 통통한 몽골리 안, 그리고 이상한 모자를 쓴 이슬람교도로 보이는 카 자흐스티언(?)이 눈에 띈다. 중국에 이렇게 다양한 인 종이 살고 있다니 정말 놀랍다. 언어도 중국어와 몽고 어 두 가지를 쓰는데 몽골리안들은 자신들의 언어와 방송을 갖고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한다고 한다. 조선족 은 거기다 대학교까지 갖고 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울 까? 열차 안에서 6/17 재수 없는날 후아우토에서 두 시간을 가니 희람목인초원이 나왔다. 상당한 고도에 푸른초원은 대관령을 연상시킨다. 근데 이 곳에는 소도 양도 안보인다. 초원의 사막화를 막기 위해서 방목을 규제한다고 한다. 그리고 초원의 상당부분을 개 간하여 밭농사를 짓고 있어서 갈수록 그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숙소인 파오나 경마시범, 몽고씨름 모두 너무나 형식적이었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상술같아 보인다. 그리고 유목민의 집이라고 가보았는데 그곳은 꼭 시골 점빵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은 더 이상 유목민은 아닌 듯 보인 다. 일행모두 말을 타기로 했다. 말 뒤에는 가지마라, 말은 항상 좌측에서 타라는 주의를 듣고 각자 맘에 드는 말 을 골라 탔다. 왠지 찝찝하다. 말을 타고 가는 도중에 내가 탄 말이 좀 작아서 다른 사람에게 내주고 나는 옆집에서 빌려온 말로 갈아 탓다. 덩 치도 크고 매끈한 것이 힘 꽤나 쓰겠다 싶어 내심 기분이 좋았다. 달그락 달그락 정말 재밌다. 드넓은 초원에서 내 가 말을 타고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짱이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 말은 안듣는다. 다른 말과는 뚝 떨어져서 지 멋대로 움직인다. 점점 고삐를 세게 당기지만 통 말을 안듣는다. 그러더니 이상한 집으로 가버린다. 그리곤 물을 먹으려고 물통쪽

88 으로 가버린다. 너도 힘드나 보구나! 그래 물먹어라!.짠한 마음에 내 버려뒀는데 말이 갑자기 횡하니 돌더니 다 른 말들을 메놓은 말뚝을 향해 움직인다. 그것도 다름 말들의 뒤쪽으로 들어가버린다. 고삐를 당겼지만 이미 늦었 다. 나의 말은 다른 말의 뒷다리 쪽에 있었고 다른 말들은 이미 놀라 있었다. 그러더니 헤행 하는 소리와 함께 앞 말이 뒷발차기를 하는 것이었다. 급히 말을 돌려 빠져 나왔는데 정강이 에서는 뭉퉁한 느낌과 함께 정강이가 시원 해진다. 씨팔 피다. 내려서 다리의 상태를 보고 싶은데 내리는 법을 안배웠다. 저 멀리 떨어진 일행들을 보며 소 리도 지르고 손짓도 하고 했지만 아무도 보질 않는다. 가이드 자식은 아가씨하고만 꽉붙어서 다닐 뿐 이쪽은 쳐다 도 안본다. 한 일행이 내가 손짓 하는 걸 보더니만 자기도 손만 한번 흔들더니 가버린다. 씨팔. 어쩔수 없이 처음 말을 탄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말이 이 개같은 집을 벗어나려고 하질 않는다. 겨우 벗어나 일행을 만났는데 쪽팔려 서 아프다는 말은 못하고 빨리 내릴 궁리만 했다. 내려서 보니 말 편자 에 맞아서 조금 깊이 상처가 났다. 근데 몽고인 가이드와 말 대여업자는 별것 아니듯 그냥 술만 한번 부어주고 만다. 개새끼들. 무책임하게 약도 안갖다 놓는 씨팔 놈들. 소독약을 주라고 하니 여기에는 약국이 없으니 조금 나가야 한다고 참으란다. 안그래도 열받아 죽겠는데 형관이가 한술 더뜬다. 형 뭐 이런 것 같 고 그런가! 형 다시 봤네! 산에서는 안그러더니만. 윽 개새끼야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날도 더운데 염증나면 골 치아프다. 쪽팔려서 화도 못내고 꾹 참고 숙소로 이동했다. 나는 오만가지 인상을 쓰며 씨팔씨팔 욕하고 있는데다 들 옆에서는 말탄 게 재미있다고 난리들이다. 조 금 뒤 약국에 들렀는데 세상에 진열대에는 연기가 쑤북히 싸여있고 약 몇 개만 덜렁 있었다. 그리고 약사인지 가게 주인인지 몰라도 그 행색하고는. 게다가 사다준 소독약은 약인지 빨간 물감인지 분 간이 안 될 지경이다. 그리고 백반같은걸 주면서 바르라는데 이 돌팔이를 믿어도 되는지 약발을 믿 어도 되는지. 갑자기 한국 생각이 난다. 밤에 일행 중 한명의 생일 이라고 술을 한잔 했다. 화났던 마음도 조금 수그러들 들고 초원의야경도 대충 볼만하고. 그 래도 정떨어진다. 6/18 사막에서 비를 맞다. 어제 소독약(중국) 과 후시딘를 바른곳이 녹색으로 변해있었다. 빨간거하고 흰거하고 섞었는데 녹색이라니 정말 웃긴다. 무슨 반응이 일어났나? 에이 씨팔 중국약. 쿠부친사막으로 가는 길의 큰도시에서 약국을 찾았다. 초원의 약국보다는 천배는 나아 보였다. 조선족 가이드를 대동하고 약을 샀는데 sodium chloride이라고 써있다. 지성이(전대의대96)보고 건성으로 sodium chloride가 뭐냐 고 물었는데 하는 말이 소금물 같은 데요 한다. 이런 씨팔 소금물을 소독약이라고 팔아? 이번엔 지성이를 데리고 약국에 갔다. 아무리 과산화수소 주라고 말해도, 화학식을 써도 모른다. 결국 포타딘 하니깐 알아 먹는다.이번에 약사가 손수 치료를 해주는데 가위로 털을 깍아내고 소금물로 상처부위를 씻고 조그만 주사약 깨서 소독하고 포타 딘바르고 가루약 뿌리고 끝. 깔끔하게 마무리까지. 기분 열라 좋다. 타지에서 조그만 친절이 얼마나 객지인들을 감동시키는지 뼈저리게 느겼다. 쿠부치 사막으로 가는길은 한없이 가도 사막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모래밭에 풀들이 자라고 있고 비까 지 오고 있으니깐. 설마 이놈들이 운동장 같은 곳을 사막이라고 하진 않겠지. 황하 상류를 경계로 해서 갑자기 사막이 나타난다. 강렬한 태양, 뜨거운 모래는 없어도 사막은 사막이었다. 거대 한 모래언덕, 카~. 곤도라로 황하상류를 건너 사막의 모래를 밝을 수 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모래는 딱딱하게 굳어 발로 밟아도 빠 지지 않는다. 낙타 등에 올라서서 본 사막은 정말 볼만하다. 낙타를 두 마리씩 묶어서 이동하는데 낙타 입에서 나 오는 침은 정말 더러워 못 봐주겠다. 제발 뒤 좀 안쳐다 봤으면 좋겠다. 오아시스를 찍고 오는데 점점 빗방울이 굵

89 82 제12집 어지고 추워지기 시작한다. 싸늘한 사막! 정말 엽기다. 돌아오는 길에 낙타를 묶어둔 파오는 정말 장관이다. 덩치 좋은 낙타들 수십 마리가 저 멀리 회색빛 무리를 지고 그 가운데 우뚝 솟은 각양각색의 깃발들.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한국이 8강 진출에 성공했다. 뜨아! 6/19 티벳을 느끼다. 시내에 있는 오탑사는 건물 옥상에 있는 것도 그렇고 몽고어 아라비아어 중국어 등이 섞여있어 독특하다. 오탑사 밑의 전시장에는 음식모양의 돌들을 모아 상을 차려 놓은 형식으로 전시해 놨다. 질감과 빚 그리고 끈적함까지 영 락없는 실제 음식이다. 대소사는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최고다. 이 내몽고 땅에서 티벳의 사찰과 똑같은 절을 볼 수 있다니. 너무 너무 인상적이다. 법륜을 돌리는 재미와 외벽에 있는 수미산 그림과 지옥그림은 나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 히 지옥그림은 과녁같이 원이 많은데 중앙은 비참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 있고 제일 밖에는 부처들이 그려져 있다. 해탈을 하라는 말같은데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근데 출소 머리의 라마승은 별로 인상이 좋지않다. 그리고 사찰은 음침해 보이고 노란천등 이상한 천들 때문에 덥고 칙칙해 보인다. 심지어는 음산한 느낌까지 든다. 다퉁으로 떠나기 전 친절한 약국 아저씨에게 하회탈 펜던트를 선물로 주면서 한국의 미소라고 말했더니 입이 찢 어질 정도로 좋아한다. 6/20 소문난 잔치 먹을것없다.-현공사 점점 시골로 올수록 물가가 싸진다. 그리고 현지인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가깝게 접할수 있어서 대도시의 여 행보다 의미 있는 것 같다. 다퉁에서 현공사까지 가려면 나무가 거의 없는 황토 산을 꾸불꾸불 곡예를 하듯 넘어 가야한다. 산골의 집들은 굴을 조금파고 나무로 출입문을 만들어 흙으로 벽을 만든 모양새를 하고 있다. 간간이 사람이 사는 것 같은 집을 볼 수 있고 대부분은 굴만 덩그라니 파져있다. 그냥 딱 봐도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척박한 땅같이 보인다. 현공사 매표소에서 신용카를 학생증이라고 속여서 반값에 들어갔다. 말로만 들었는데 실제로 성공하니 돈도 굳 고 스릴도 있고 재밌다. 항산 자락에 있는 현공사는 말 그대로 공중에 매달려 있다. 바위에 홈을 내서 통나무를 지 지대 삼아서 30m 정도 떠서 바위에 딱 달라 붙어있다. 통로는 좁고 지지대는 너무 오래 되서 부식되있고 눈알이 제대로 붙어있는 토우(흙인형)가 없을 정도다. 돈만 받지 말고 문화재 관리 좀 해야 할 것 같다. 6/21 여유인가 무시인가? 만만디 꼭 선운산같이 야트막한 야산에 빙 둘러서 있는 바위들 틈에 위치한 운강석굴은 둔황의 막고굴과 버금가는 곳이 다. 멀리서 보면 큰 바위 덩어리가 대포 맞은 것 같이 보이고 굴 내부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조각이 새겨져 있다. 대부분 지방 호족들이 만든 것으로 몇 백년 동안 대를 이어 만든 것도 많다고 한다. 어떤 것은 만들다가 손을 뗀 것처럼 투박한 것도 있는데 마치 화순 운주사의 불상들을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채색이나 규모는 더 화려하고 웅 장하지만 부처의 표정과 주위의 배치들이 너무 일괄적이어서 운주사만은 못한 것 같다. 서안으로 가는 열차의 침대칸 자리가 없지만 축구를 보기 위해 20시간이 넘는 거리를 앉아서 가기로 했다. 그동 안 동행했던 일행들과 헤어지고 처음으로 우리만의 여행이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비둘기호 같은 이 열차칸은 좌석 번호도 없고 의자는 쿠션도 없을뿐더러 직각이라서 앉은지 얼마 돼 지도 않아 허리가 아프다. 열차 안은 정말 가관이다. 담배피우는 사람, 남들은 자리가 없어 서있는데 혼자 누워있 는 사람, 뜨겁게 포옹하고 있는 남녀. 완전 시장통에다 남들에 대한 배려라고는 전혀 찾아 볼수 없는 곳이다. 도 저히 안되겠다 싶어 침대칸으로 바꾸려고 환표구에 갔는데 환표구의 역무원(?)은 만만디가 무었인지 나에게 보여 주었다. 승객하고 말하다가 갑자기 서랍을 뒤적거리질 않나 서랍을 쾅 닫고 나갔다가 한 참 뒤에 와서는 담배 한 대를 피고 다시 나가고, 동료들과 잡담하고 돌아와서는 볼펜 정리한답시고 꼼지락 꼼지락댄다. 내보기에는 볼펜 정리 하는데 30분은 걸린 것 같다.내가 줄에서 다섯 번째였는데 표바꾸는데 2시간 걸렸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몰 라도 내보기에는 30분이면 떡을 치고도 남을 시간이다. 역무원보다 한 술 더 뜬 사람은 줄을 선 승객들이다. 아무

90 불평도 없이 그냥 무심한 얼굴이다. 침대칸에서 후이밍이라는 지적인 사람을 만났다. 전자공학 책을 읽고 있던 그는 좌석칸의 중국인들과는 매우 달 라 보였다. 그는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 축구 +엄지 손가락=한국축구 정말 잘한다 며 한국 축구를 높이 평 가했다. TV에서는 한국선수들의 몸싸움과 심판의 오심, 퇴장선수들의 억울하다는 얼굴만 몇 번이고 틀어주는걸 보 면 많은 중국인들은 우리가 16강 올라간 것도 주최측의 농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 가 그는 한국 연예인이나 차범근 같은 운동선수도 많이 알고 있었고 심지어 김정일보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다. 후이밍에 대한 경계심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오히려 친근감에 사로잡힌다. 6/22 서안에 도착하다. 후이밍이 숙소를 찾아 준다며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는데 우리 맘에 안 찬다. 우리에게는 축구를 봐야 하기 때문 에 무엇보다도 케이블TV가 잘나와야 했다. 귀찮을 정도로 친절을 베풀어준 후이밍과의 헤어짐은 매우 섭섭했다. 중국 서북의 중심지이고 실크로드의 시작인 서안은 지금까지의 다른 곳과 비교해서 매우 풍요로운 것 같다. 시 장에 농산물과 수산물도 풍부했다. 많은 외국인들과 이슬람 교도로 보이는 호떡 같이 생긴 모자를 쓴 사람도 많고 일본 사람들도 많았다. 유명한 병마용을 보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 인 것 같다. 한국축구 4강진출! 꿈인가 생신가!!!!!! 형관이와 나는 숙소가 떠나가라 소리치고 하이파이브하고 난리를 쳤다. 저녁이 되서야 야경도 구경할 겸 골동품 거리를 찾아 나섰다. 말이 골동품 가게지 공산품 같이 공장에서 제조된 가짜 골동품과 기념품 가게만 들어서 있다. 아이 쇼핑을 하고 나니 배도 슬슬 고프고 서안의 샤브샤브가 맛있다는 말이 언뜻 기억이 나서 샤브샤브를 먹기로 했다. 식당 지배인의 능숙한 영어 실력에 우리의 짧은 영어 실력이지만 의사소통이 잘된다. 그래서 맘도 편하고 음식도 맛있어서 서로 얼굴도 안쳐다보고 먹고 있는데 난데없이 지배인이 와서 이상한 쪽지를 내밀며 뭐라뭐라 한다. 그 쪽지에 적힌 I love you"를 보는 순간 뭐 이런 호모 놈이 있어 하며 걸죽하게 욕을 하고 있는데 지배인이 뭐라뭐라 한다. 알고 보니 한국말로 그게 뭐냐고 물은 것이었다. 어쩔수 없이 나중에 맘에든 여자 생기면 하려고 20년 넘게 아껴둔 말은 처음으로 느끼한 지배인에게 하고 말았다. 음식을 다 먹고 콜라 한잔 하니 42위엔이 나왓다. 잔돈까지 탈탈 덜어 계산하고 나니 딸랑 차비만 남는다. 결국 형관이와 나 는 돈이나 굳히자고 배 꺼져라 숙소까지 걸어왔다. 6/23 중국! 정말 모르겠다! 병마용에 전시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다. 모든 외국인들이 사진기 후레쉬를 터트리는데 그러면 색채 가 손상되서 안 좋다는데 아무도 제재를 하지 않는다. 그치만 이런 것을 모조로 만들기는 불가능 해 보이는데. 중 국인들은 이화원같은 호수도 인공으로 만드는 애들인데 이쯤이야. 아무튼 모르겠다. 진시황 이전에는 생매장을 하는 게 유행했는데 유교가 멀리 전파되면서 생매장이 금기시 되면서 어쩔수 없이 흙 으로 빚었다고 한다. 화청지라는 양귀비의 유적지가 있다. 양귀비의 초상화를 보니 영 아니다. 토실토실한 볼 짝 찢어진 눈 하고는 어 디 술집 작부같다. 현종의 취향도 정말 특이하다. 이곳 서안은 성 안과 밖이 너무 대조적이다. 성안은 현대식 백화점에 호텔에 휘황찬란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민소득이 850달러 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4인 가족으로 친다면 일년에 27000위엔 정도의 소 득을 갖고 있는데 윗도리 옷 하나에 100~60위엔인데 상점에 들른 사람들은 아무런 부담없이 사는 것 같다.대체 뭐하는 나라여. 성밖의 사람들은 꾸질꾸질 사는데 이 많은 휘황찬란한 상점들 먹여 살릴 정도로 돈쓰는 사람은 뭐야! 정말 모르겠다. 부탄가스를 사러 몇 시간을 돌아다녀도 구할 수 없어서 장비점을 찾기로 했다. 큰 백화점에도 등산 코너가 없다. 물어물어 어렵게 찾았는데 아웃도어 코너에 조그맣게 하나있다. 그곳 직원들 말로는 여기가 서안에서 유일한 곳이 라고 한다. 근데 부탄가스는 북경에서 주문해야 한다며 없다고 한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이 큰 도시에 부탄가 스 하나 없다니. 내가 이곳 문화를 몰라서 그런지 아니면 나의 잣대로 평가해선지 몰라도 이해가 안 간다. 서안의 서점에도 영어 학습코너에는 사람이 드글드글대는건 우리와 비슷하다.

91 84 제12집 6/24 그래도 자야한다. 계림으로 가려면 24시간동안 기차를 타야 한다. 정말 지겹다. 둘이 치는 포카와 월남뽕은 아무리 돈내기라 해도 밋밋하다. 혹시 같이 포카칠 한국 배낭족없나 하고 열차를 한참 뒤진 끝에 한국어로 된 가이드북을 읽고 있는 남녀 를 발견했다.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다 어렵게 말을 건냈는데 말투가 영 이상하다. 내가 두 남녀사이에 끼어들어서 열받은 건지 원래 바보인지 요상하게 말을 한다. 이야기를 해보니 남자는 한국 교포인데 한국으로 교환학생으로 왔고 여자는 일본 애인데 역시 한국으로 교환학생으로 왔다고 한다. 그래서 서로 한국말로 말하고 한국 책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말로 하다가 막히면 영어로 대화하는 그런 **한 애들이다. 미국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머 리 속에는 뭐가 들었는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먹어주는 상황이니 괜히 자격지심도 생기고 여자애한테 온갖 이 해안가는 행동하는 것도 눈에 거슬리고 맘에 안들었다. 그들 역시 우리에게 별로 관심도 없고 경계하는 빛이 역력 하고 해서 몇마디 하고 돌아왔다. 근데 할 일이 없으니 괜히 욕이 나온다. 니는 아메리칸도 아니고 코리언도 아니 다! 반쪽인 주제에 병신, 한국이 어려울 때는 곧 달려올 것 같이 말하면서 막상 미국 시민이라는 것 버리지 못하 는 것들이 일부러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어두운 열차 안에서 형관이와 나는 뒤적거리며 잠을 자려고 애를 쓰 지만 생각 같지가 않다. 간간이 아무 의미도 없는 얘기를 주고 받지만 형관이와는 산악회 선후배사이라 평소에도 얘기도 많이 하고 같이 보낸 시간도 길어서 별로 특별히 새로운 내용도 없다. 이 지루함을 잊기 위해서는 자야한다. 자야한다. 6/25 甲 天 下 계림 계림은 예전에 리아시스식 해안 이었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바위산들이 제각기 홀로 불끈 솟은 모양이다. 산도 천하제일 물도 천하제일이라는 갑천하라는 말이 전혀 손색이 없다. 야경을 구경할 겸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무슨 축제 같은 것을 하고 있다. 조금 기대는 했는데 특별한 내용은 없고 그냥 관광객의 주머니를 털기 위한 목적인 것 같다. 6/26 무서운 삐끼들! 계림에서 양수오로 가는 왕복 여객선을 타고 싶은데 너무 비싸다. 하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가는데 돈 좀 아끼 려다가 이곳의 절경을 놓치는 건 아닌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창 밖의 광경은 그 마음을 달래고도 남는다. 양수오는 계림보다 멋있다. 도도히 흐르는 릴리강과 가마우리로 고기를 잡는 어부, 울끈 불끈 솟은 바위 봉우리 들은 우리가 마치 화폭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자전거를 한 대 빌려서 월경산까지 하이킹을 하는데 날아갈 것 같은 같다. 한참 재밌게 가고 있는데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따라오는 것이다. 어느 틈엔 가 우리에게 다가와 호객행위를 한다. 아무리 필요 없다고 말해도 막무가내다. 따돌리려고 속도를 높이니 한 5분 따라오다 이내 사라져버린다. 진드기같은 놈. 오랜만에 산을 오른다며 우리는 조금 들떠있었다. 정상 쪽으로 돌길이 만들어져서 한적한 산사를 걷는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런데 조금 걷고 있으니 어떤 노파 한 분이 물과 콜라를 내보이면서 사라고 호객행위를 한다. 돈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하고 다시 걷고 있는데 그 노파가 아이스박스를 메고 쫒아온다. 삐끼들. 정 말 지겹다. 얼른 도망가자며 형관이와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는데도 오히려 그 노파는 백발을 휘날리며 거리를 좁 혀온다. 우리는 있는 힘껏 걸었다. 아미 이쯤 되면 포기하고 안 따라오겠지 싶어 뒤를 돌아보면 곧 숨이 머질 것 같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따라오고 있었다. 산 중턱까지 이런 상황은 계속되었다. 이렇게 더운 날 저 할머니 우리 따라오다가 숨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할머니가 걱정됐다. 참으로 엄청난 상술이다. 짜증남을 측은함으로 돌려 버리는 그 노파!!!!!.그리고 그 엄청난 체력!!!! 더 이상 가면 노파가 죽을 것 같아서 눈 찔끔 감고 콜라 한 병 사주 었다. 이젠 안 따라 오겠지 그건 착각이었다. 그 콜라 할머니는 죽을힘을 다해 따라 오고 있었다. 할머니 왜 따라오세요! 콜라도 사드렸잖아요! 그 노파 왈, 두 명인데 한 병밖에 안 샀잖아!,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두 병은 사줘야지!

92 하며 버럭 화를 내는 것이다. 이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정말 짜증이다. 우리는 그 할머니를 무시하고 전력을 다해 정상으로 가버렸다. 다 올라와서 땀을 닦고 있으니 그 콜라 할머니가 올라오고 있었 다. 무서운 집념이다. 콜라하나 팔아 얼마나 남는다고. 우리가 콜라를 안 사줬지만 같이 사진찍자는 제의에 흔쾌이 허락한다. 월경산은 정상 부근에 큰 바위가 있는데 선 운산의 투구바위를 생각나게 한다. 마치 큰 교각밑에서 위를 쳐다봤을 때의 모양이다. 정 상에서 바라보는 월경산은 비경중의 비경이 다. 싸구려 카메라를 욕할 정도로. 양수오 6/27 또다시 만난 만만디!!!! 양수오에서 계림까지 배를 타고 가려고 씽핑이라는 촌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너무 비싸서 그냥 돌아 가기로 했 다. 여기의 차로는 일차선 밖에 안돼는 비포장길이어서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피하기가 어려울 정도고 울퉁불퉁해 서 이게 버스인지 경운기지 모를 정도다. 날은 덥고 습기가 많은데다 에어콘도 없어서 땀이 줄줄 흐른다. 불쾌지수 가 110은 족히 되어 보인다. 그런데 잘 가던 버스가 갑자기 멈춘다. 마을 전봇대 공사 때문에 작업차량이 앞을 가 로막고 있었다. 30분이 지나도 비켜줄 생각을 않는다.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한낮의 버스 안에 있으려니 화 가 불끈 솟아오른다. 개놈들 적당히 하고 비켜주고 다시 하면 될 것을 무슨 큰일 한다고. 욕을 하고 차밖으로 나왔다. 내려와서 보니 양방의 차들이 상당히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도 경적을 울리는 사람, 따지는 사람도 없고 나처럼 덥다고 나온 사람도 없었다. 정말 기가 막힌다. 전부 바보 아니면 부처일 것이다. 한 시간 넘게 기다 린 끝에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역시 만만디다. 상해로 가기 위해서는 26시간 동안 기차를 타야한다. 그래서 만화책도 사고 장기도 사고 술까지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열차에 올라섰다. 그런데 장기도 세판 두니 재미도 없고 해서 술을 먹었는데 턱없이 부족하다 나중에 옆에 있는 중국인과 고량주 한 병을 다 먹고서야 곯아떨어질 수 있었다. 6/28 나이트를 가다. 아시아의 유럽이라는 상해는 유럽식 건물과 잘 정돈된 시가지가 참 깨끗해 보였다. 우리 숙소는 캡틴 호텔이라는 호스텔인데 미국인이 많이 있었다. 짧은 영어로 미국인들과 이런 애기 저런 애기 하다가 같이 나이트를 가기로 했다. 나이트에는 외국인이 대부분이고 오렌지족으로 보이는 요상한 복장과 머리를 한 중국인도 가끔 보였다. 서양인들은 맥주를 들고 몸을 흔들며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노는데 도저히 우리는 거기 에 낄수가 없었다. 말이 통하길 하나 음악이 맘에 들기를 하나. 괜히 따라왔다는 생각뿐이다. 뭐가 그렇게 즐거울 까?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문화적인 차이가 이렇게 크다니. 형관이와 나는 중간에 빠져나와 숙소에서 술을 한잔 더하기로 했다. 방에는 다카하시라는 일본인이 있었는데 서 양인들하고 놀다 동양인하고 노니 말도 잘 통하고 맘도 편하고 사람도 좋아서 술을 계속 퍼부었다. 그리곤 기억이 안난다. 6/29 항저우-술먹고 퍼지다. 눈을 떠보니 열차시간이 다 되간다. 급하게 서두르는데 어제 먹은 술 때문에 죽을 맛이다. 형관이는 몸 괜찮냐며 계속 걱정을 한다. 내가 자다가 오바이트를 했단다. 형관이는 그걸 치우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잔 모양이었다. 고맙다 형관아. 어제 같이 먹은 다카하시는 비행기를 놓쳐서 몇 일 더 있겠다며 우리를 배웅해준다. 어떻게 항저우에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모든 걸 형관이한테 맡기고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월드컵 3.4위전 이 있었는데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얼마나 끙끙대며 앓았는지 붉은악마 응원소리보다 더 컸다고 한다.

93 86 제12집 6/30 중국의 영어열풍 서호는 무지막지하게 크다. 근데 밋밋하다. 서호 주변에서 많은 중국인들이 외국인을 가운데 놓고 서로 한마디씩 영어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무슨 모임인 지는 모르겠는데 그들만의 영어 학습법인 것 같다. 전에 이런 관경은 TV를 통해 본적이 있었는데 직접 눈으로 보 니 이들의 영어학습에 대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세계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쓰는 게 중국어인데 그들은 영어 를 배우려고 난리들이다. 배우는 사람들의 목적이야 무엇이든 간에 국제화에 대한 준비라기보다는 한국이나 일본 이나 중국모두 서양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단 씁쓸한 생각이 든다. 참 이 동네는 2층 기차도 있다. 골 때린다. 7/1 집으로 탑승권을 끊기 위해서 상해에 있는 대한항공 지사를 찾아 나섰다. 전철역을 잘못 내려서 상해 시내지도의 절반 을 걷고서야 찾을 수 있었다. 여행의 끝이라고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간신히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면세점에서 기념품을 사려고 했는데 미리 예약을 해야 하며 거리가 가까워서 취급하지 않는단다. 광주다! 광주! 막상 광주에 오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싫다. 굳이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이번 여행은 단순히 바람 쐬러 가는 거였지만 다른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을 통해 나를 볼 기회를 갖을 수 있었고 중국이라는 나라를 통해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우리나라를 볼 수 있어서 의미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돌아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똥은 여러 군데서 봐봤다는데 의미를 둔다. 형관아! 고생 많이 했다. 알지!!! 7/2~ 후기 중국에 다녀왔다니 항상 똑 같은 질문을 한다. 과연 중국이 우리를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인지, 그렇다면 몇 년이 걸릴 것인지?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나 따라 우리가 따라 잡힐 것 이라고 생각한다. 15억의 인적자원, 풍부한 자연 자원. 그리고 수많은 유형 무형의 문화유산 들. 중국에 대해서 전무한 상태로 여행을 다녀왔고 지금도 따로 공부는 않지만 언론매체에 보도 되는 그곳의 이야기들에 관심을 갖게된 것과 조금이나마 넓어진 시야를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인 것 같다.

94 여 행 일 정 6월 11일(1일째) 6월 12일(2일째) 6월 13일(3일째) 6월 14일(4일째) 6월 15일(5일째) 6월 16일(6일째) 6월 17일(7일째) 6월 18일(8일째) 6월 19일(9일째) 6월 20일(10일째) 6월 21일(11일째) 6월 22일(12일째) 6월 23일(13일째) 6월 24일(14일째) 6월 25일(15일째) 6월 26일(16일째) 6월 27일(17일째) 6월 28일(18일째) 6월 29일(19일째) 6월 30일(20일째) 7월 01일(21일째) 인천(07:00)-인천항(13시) 탕구항(14:00)-탕구터미널(16:30)-북경터미널(19:00)-고려여관(19:30) 왕부친거리(20:40)-숙소(23:00) 자금성(09:00)-경산공원(11:00)-동물원(12:00)-이화원(13:30)-북경대(19:30)-숙소(22:00) 숙소(06:00)-만리장성(08:00)-명13인릉(14:00)-서문(16:30)-북경역(17:30)-숙소(20:00) 북경박물관-시내(?) 숙소(07:30)-북경남역(07:45)-후아오토(19:45) 숙소-히라목인초원(12:30)-유목민 가옥(15:00)-파오(17:00) 히라모인초원(09:00)-후아오토(11:00)-쿠부치사막(16:30)-숙소(18:30) 오탑사,대소사-후아오토(16:00)-다퉁(20:00) 숙소(10:00)-현공사(12:00)-숙소(17:00) 숙소(10:00)-운강석굴(12:00)-숙소(15:00) 서안(17:00)-숙소(18:00) 숙소(12:00)-병마용(14:00)-화청지(17:00)-야시장-숙소(21:00) 숙소-열차 계림(14:00)-숙소(16:00)-야시장-숙소 계림(09:00)-양수오(11:00)-월경산(15:00)-숙소(18:00) 야수오-씽핑-양수오-계림(16:00) 상해(17:00)-숙소(19:00)-나이트-숙소(24:00) 상해(09:00)-항주(17:00) 서호-야시장 항주-상해-광주((16:00) 준비물 내역 물 품 단 가 수량 가 격 유용성 비 고 필름 \ 2,445 9 \ 22,000 선택 중국산은 질이 나쁜관계로 구입.많이 사용않음 썬크림 \ 11,500 1 \ 11,500 불필 한번도 사용하지 않음 고추장 \ 48,200 1 \ 48,200 필수 병으로 된것이 좋다 기념품 \ 25,800 유용 부채 \ 3,000 선택 가이드북 \ 12,000 1 \ 12,000 필수 영어로된것이 좋다 의약품 다수 \ 7,500 필수 대일밴드.후시딘,소화제,모기약,지사제-소독약 회화책 \ 9,000 1 \ 9,000 필수 라면 \ \ 2,500 선택 담배 \ 8,000 선택 면도기 \ 1,550 1회용 카메라약 \ 1,420 1 \ 1,420 필수 전자수첩 \ 9,000 1 \ 9,000 선택 사용해보지못함 계산기 \ 4,700 1 \ 4,700 필수 세면도구 필수 35리터배낭 필수 개인의류 필수 카세트 선택 코펠(소) 무용 비자 \ 54,000 필수 여권 필수 사본1부,여권사진 여행자보험 \ 13,200 필수 사본1부 여객권 \ 115,000 필수 항권권 \ 171,600 필수 사본1부 기록장 필수 아미나이프 선택 공항에서 뺏김 국제 전화카드 필수 긴급버튼 카드번호#-상대전화# 161-번호-비밀번호-001-국가-지격-상대-#

95 88 제12집 일본 북알프스 등반기 26기 이종호 <14일> 아침 8시 30분경,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는 아내를 남겨두고 북알프스를 향한 부푼 가슴으로 김재율 교수님 을 만나기로 한 기후현 우주선관측소를 향해 출발하였다. 날씨는 구름이 약간 끼어있는 다소 후덥지근한 여 름날씨였으나 차를 타고 산을 향해 가는데 아무렴 어떠랴. 야마가타를 지나 까지는 예상외로 막히지 않고 나아갔으나, 에서 까지는 곳곳에서 정체되어 시간 이 조금 지체되었다. 에서 까지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현은 이름대로 높은 산이 많아서인지 도로에 30여개의 터널이 이어져 있는데, 그 중 긴 것은 4560m에 달 하는 것도 있었다. 오후 5시경 시를 통과하여 를 향해 41번 국도로 접어들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5시 50분경 에 도착 김재율 교수님과 반갑게 상봉 목적지인 히라유( )온천을 향해 곧장 차를 달려, 7시 10분 히라유온천에 도착하였다. 북알프스 산행의 기점은 여러 곳이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에서 올라가서 상고지나 로 내 려오는 것이다. 우리의 이번 코스도 상고지에서 출발 다시 상고지로 내려오기로 하였다. 그런데, 상고지는 평탕온천에서 차로 40여분 거리인데, 가는 길이 좁고 긴 터널로 되어 있어서 일반 차량은 평 탕온천까지만 갈 수 있다. 평창온천에서 상고지까지는 셔틀버스가 운행되는데, 상고지행 버스는 4월말부터 11월 초까지 아침 5시부터 오후 6시까지 20-3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으며, 상고지까지는 약 40분이 소요된다. 요금 은 왕복요금으로 1800엔이다. 평탕온천은 일본에서 유명한 온천휴양지로 숙박시설이 여러 곳 있지만,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사실 을 몰랐던 우리는 결국 좁은 승용차 안에서 밤을 샐 수밖에 없었다. 새벽 4시 밤새 뒤척이다 털고 일어나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 메고 상고지행 버스 정거장으로 갔다. 6시 상고지 도착, 6시 30분 산행 시작. 상고지에서 산장까지는 평탄하고 넓은 산책길이다. 왼쪽으로 넓은 계곡과 그 뒤로 펼쳐진 암봉등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을 차례로 지나 어느새 산장에 이르게 된다. 앞마당에서 김 교수님께서 한국에서 가져온 신라면에 밥을 말아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9시경 다시 출발, 9 시 50분 횡미산장에 도착하였다. 상고지에서 명신까지는 3.1km, 명신에서 덕택 3.4km, 덕택에서 횡미까지 3.9km로 여유있게 걸어도 각각 1시 간씩이면 닿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일반관광객들에게 산책코스로도 인기가 있어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 다. 지난 장마비에 길들이 많이 파여있지만, 평소때라면 자동차도 다닐만한 길이다. 산장 앞에서 잠시 다리쉼하고 다시 출발하니, 보슬보슬 내리던 빗줄기는 점차 굵어지기 시작한다. 횡미산장에 서 창악방면과 수고악방면의 길이 갈라진다. 반듯이 가면 창악, 왼쪽으로 붉은 색의 멋진 다리를 건너가면 산장을 지나 수고악에 이르게 된다. 본격적인 산행은 여기서 부터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여기서부터 길은 좁아지고 거칠어지며, 경사는 점차 그 도를 더해간다. 계곡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은 본곡교( )에서 계곡을 건너 학택산장까지 이어진다. 학택휘테100미터쯤 아래에서 학택휘테로 가 는 길과 학택산장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산장과 휘테는 약 100미터 가량 떨어져 있으며, 모두 약 200명씩을 수용할 수 있고, 식사와 침구가 제공된다. 산장숙박시 5인 이하는 미리 예약하지 않아도 되지만, 5인 이상의 경우는 예약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숙박료 는 저녁과 아침식사를 포함 1박2식에 8500엔이며, 이튿날의 점심 도시락도 주문할 수 있다. 물론 산장 앞에서 막영도 가능하다.

96 휘테에 도착할 즈음부터 빗줄기는 이미 굵어질대로 굵어지고, 바람까지 불어재끼니 체온이 급속히 내려간다. 산장안 난로가에서 몸을 녹이고 매점에서 우동과 빵으로 점심을 해결했으나, 비바람은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 는다. 기온은 더 떨어져, 긴팔을 입고도 난로가를 떠나기 싫을 정도다. 그대로 한 시간 가량 더 기다려도 비가 멎 거나 바람이 잦아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산장의 안내원에게 내일의 일기예보를 물어보니 예보상으로는 좋아질 것으로 보도되었으나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허나 어이하랴, 내친걸음이니 가보는 수밖에. 1시 50분, 젖은 오버트라우저를 다시 입고, 빗속을 힘차게 출 발. 학택휘테에서 등산로는 파노라마코스와 학택산장을 거쳐 곧바로 수고악으로 오르는 노말코스로 나누어진다. 파노라마코스는 산장 앞의 넓은 꼴을 횡단하며 수고악과 북수고악의 경관을 감상하면서 오르는 코스로 학택산 장 위쪽에서 다시 노말코스와 합류한다. 고도 2350미터의 학택 산장 앞에 다다르니, 빗줄기가 잠시 가늘어지면서 주변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산장 아랫 쪽으로 아직도 남아있는 눈더미들이 작은 빙하처럼 보인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 북알프스에서의 첫 사진을 기록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학택산장 앞에서 북수고악가는길과 수고악산장가는길이 나누어진다. 우 리는 곧바로 수고악산장으로 가기로 하였다. 길은 아직 생각보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 순조롭게 진행된다. 40여분을 오르니, 수고악산장 870미터라는 표지판이 있다. 이 정도 거리라면 30분이면 오를 수 있는 거리가 아닌가? 잠시 다리 쉼 하면서 의외라는 생각을 하였다. 왜냐하면 지도상의 산행시간은 학택산장에서 수고악산장 까지 2시간 30분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산행은 여기서부터였다는 것을 우리는 곧 알게 되었다. 고도 2500미터 이상에서 급한 바위능 선길 870미터는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 곳곳에 사다리와 사슬이 있어 운행이 더딘데다 몇 걸음만 걸어도 금방 호흡이 가빠져 쉬엄 쉬엄 오를 수 밖에 없다. 비와 가스 때문에 시계는 제로이고, 가도가도 수고악산장은 나타나 지 않는다. 가친 숨을 헐떡이며 팍팍한 바윗길과 씨름한지 1시간 30분, 마침내 수고악산장에 도착하였다. 4시 10 분. 결국 1킬로도 안 되는 길을 1시간 30분이나 걸려 오른셈이다. 얼른 산장에 들어가 숙박계를 쓰고 방을 배정받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젖은 옷은 건조 실에 널어놓고 난로가에 앉으니, 오늘 하루가 꿈처럼 느껴진다. 궂은 날씨에도 산장 안은 일본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곳 수고악산장도 저녁과 아침 식사 를 포함 숙박료는 8500엔, 다음날 점심도시락도 주문가능하며, 가격은 1000엔. 300여명 수용가능한 산장의 숙박 시설 및 식사는 매우 깔끔하고 맛도 훌륭한 편이며, 종업원들도 친절하다. 몇 가지 기념품도 팔고 있다. 산장에서 주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자리에 누우니, 한여름에 비바람과 추위에 지친 몸뚱이는 금방 잠에 곯아떨 어진다. 16일 새벽 4시 잠에서 깨어나니 밖이 의외로 조용하다. 어제 그토록 괴롭히던 비가 그친 것일까? 산장 앞 테라스에 나가보니 아직 동트기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어 사방은 아직 어두우나, 비는 그친지 오래이고, 하늘은 듬성듬성 개어 있었다. 4시 50분경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구름 사이사이로 붉은 기운이 터져 나오며 사방으로 퍼져 나간 다. 하늘 위의 붉게 물든 구름과 발아래 깔린 운해와 3000이터라는 고도감 때문인지 여느 산에서 보던 해돋이와 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수고악산장 앞 테라스는 전망이 좋기로 유명하다. 테라스에 서면 우선 학택산장과 주변의 꼴(Cole)이 한눈에 굽어보이고 주변의 암릉과 멀리까지 펼쳐진 크고 작은 능선들이 장관을 이룬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6시 북알프스 최고봉인 (3190m)정상을 향해 출발. 오늘 일정은 오수고악에서, 휘테를 거쳐 어제의 출발지인 로 하산하는 것이다. 수고악산장에서 오수고악까지는 이른시간임에도 오르고 내리는 사람의 행렬로 가득하였다. 7시, 드디어 북알프스 최고봉인 에 도착하였다. 날씨가 깨끗하게 개어있어, 북으로는 북수고악, 서로

97 90 제12집 는 서수고악 남으로는 전수고악이 그리고 동으로는 창악 연봉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남서쪽 멀리로는 남알 프스, 그리고 남쪽으로는 어렴풋이 후지산까지 보인다. 한번도 2000미터 이상을 올라보지 못한 나로서는 3200미터에 오른 감회가 어찌 다른 사람과 같을 수 있으랴. 그곳에 있는 돌멩이 하나 하나, 바위에 끼어있는 이끼까지도 신비하고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 찬란한 풍경 앞에 잠시 말을 잃었다. 특히 하늘을 찌르듯이 서있는 창악연봉의 장관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 조금 더 긴 시간이 허락된다면 북수고악을 지나 창악연봉까지 밟아보고 싶었으나, 다음 기회로 돌리기 로 하고 아쉽지만 내려가야 한다. 흔히들 고도 3000미터부터는 고소증세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개인차가 있을 터이지만, 우리의 경우 귀가 약간 먹먹하거나 호흡이 조금 가쁘다는 것 외에 별다른 자각증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상에서 30여분을 머물다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우리가 선택한 하산길은 오수고악 정상에서 상고지로 내려오 는 최단코스인데, 그만큼 경사가 급하고 험하였다. 특히 전수고악 갈림길에서 악택휘테까지는 사다리와 사슬이 셀 수 없이 많아서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무릎이나 발목에 하중이 많이 걸려 주의를 요한다. 동절기에는 특히 주의를 해야할 것이다. 10시경 악택휘테 도착, 운치 있게 만들어진 통나무발코니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악택휘테도 약 150여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여타의 조건은 다른 산장들과 비슷하다. 악택휘테에서 상고지까지는 내려올수록 길이 완만해져 비교적 수월한 길이다. 대신 우거진 수목에 가려 경치가 그다지 보이지 않으므로 다소 팍팍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12시 드디어 상고지에 도착하였다. 시원한 계곡물에 1박 2일 거친 산행에 수고한 발을 씻으며 산행을 갈무리 하노라니 몸은 피곤하나 마음은 뜨거운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돌아보니 어제, 오늘 산행이 꿈만 같이 느껴진다. 정말 갔다 온 것일까??? <후기> 일본 북알프스는 나가노현과 기후현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혼슈 중서부에 있는 히다산맥의 일원으로, 유 명한 산악국립공원중의 하나이다. 히다산맥은 남알프스와 북알프스를 비록하여 다테야마( ), 아사히( )연봉 등 여러개의 3000미터 이상의 고봉을 거느리고 있어 일본의 지붕이라 불리고 있다. 한국에서 북알프스를 가고자 할 때는 서울-동경-마츠모토( )-히라유( )온천으로 들어오는 방법과 서울 -토야마 ( )-히라유온천으로 들어오는 방법이 있는데, 첫 번째 코스가 교통편이 많아서 보다 편리할 것으로 생각된다. 동경역이나 신쥬쿠역에서 히라유온천까지 직접 오는 버스편도 있다. 북 알프스는 계곡과 능선의 고도차가 매우 크며, 능선은 거의 암릉으로 설악산의 Ridge처럼 되어 있다. 겨울에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눈이 매우 많이 내리므로 동절기 산행시 특히 주의를 요한다. 김재율 교수님과 이번 산행을 같이 하면서 교수님으로부터 참으로 많은 것 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교수님에 비하여 거의 20여년 가까이 젊은 내가 무색할 정도의 체력과 산을 향한 뜨거운 정열, 까마득한 후배에 대한 자상한 배려.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98 산행일정표 일정 : 2002년 8월 14일 ~ 8월 17일 산행코스 : 히라유( )온천- - 산장- 산 장- 산장- - - 휘테-상고지-히 라유온천 산행 : 김 재율 교수님, 이 종호 기록 : 이 종호 14일 8시 30분 12시 20분 5시 5시 50분 7시 10분 센다이 ( ) 출발 니이가타 ( ) 토야마 ( ) 모즈미 ( ), 김재율교수님과 랑데뷰 히라유( )온천 15일 산행 ( ~ 산장) 5시 20분 출발(버스) 6시 30분 출발 7시 10분 도착 산장 8시 도착 아침식사후 9시 출발 산장 9시 40분 도착 10시 30분 도착 산장(휫테) 12시 10분 도착 점심후 1시 50분 출발 산장 16시 10분 도착. 산장숙박. 16일 산행 ( 산장 ~ ) 산장 6시 출발 정상 6시 50분 도착 갈림길 8시 10분 도착 산장(휫테) 10시 20분 도착 12시 10분 도착 14시 30분 도착 토야마( )시 17시 30분 도착

99 92 제12집 캐나다 여행기 34기 최지환 8월 14일 수요일 갈까 말까? 하계를 다녀오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귀찮아졌다기보다는 그 다음은 뭘 해야 할지 목표가 떠오르지 않았다. 외 국여행을 가겠다고 집에 말을 했지만 막상 갈려니 준비하는 게 귀찮았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잡은 휴식의 기회를 놓치기는 싫어서 인터넷으로 캐나다 토론토왕복표를 예매해버렸다. 여기저기 알아보면 더욱 싸게 구입할 수 있는데 그냥 귀찮은 생각뿐이다. 기간은 8월 21일부터 2주간 정말 가게 될까? 아직은 모르겠다. 아직 일주일이 남았다. 8월 19일 월요일 귀찮다 자꾸 사소한 몇 가지 일들 때문에 가는 게 귀찮아진다. 마침 핑계거리가 생겼다. 아버지 생신이 다음 주 월요일이라 다시 날짜를 옮겼다. 8월 28일. 뭘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8월 25일 일요일 광주를 들러서 집에 내려갔다. 8월 26일 월요일 마시자~! 다시 광주로 올라왔다. 서울로 오늘 올라갈려고 했으나 결국에 후배들과 술을 푸다가 밤을 넘겨서 다시 하루를 더 있다 서울로 가게 됐다. 모레가 출국인데. 8월 27일 화요일 뭘 챙겨야 하는겨 서울로 올라왔으나 뭘 준비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여행가면 기본이 쌕하나에 여행가방 하나 던데 밀레 48리터 쌕에 오버자켓과 옷 두벌을 넣고 나니 더 이상 챙길 게 없다. 이상하다. 뭐가 빠진 걸까? 왜 짐이 없는 걸까? 8월 28일 수요일 왜 이리 짐이 작아? 저녁 7시 30분에 비행기가 출발하기 때문에 4시쯤에 공항에 도착해서 표를 찾은 다음 수속을 마치면 될 거 같 다. 2시쯤에 출발하면 될 거 같아서 낮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2시 반이다. 늦었다는 생각에 준비물을 더 이상 생각할 틈도 없이 그냥 싸놓은 쌕을 들고 후다 닥 집을 나와 버렸다. 전철과 공항버스 안에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안 챙긴건 없는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헐렁 한 쌕 때문에 이상하다. 도대체 뭘 챙겨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짐이 적다고 불필요한 것들을 일부러 채워 넣을 이유는 없으니 그냥 이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빠진 게 있더라도 이미 늦었다.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했기 때문에 인천공항 대한항공 카운터에서 표를 찾아서 출국수속을 30분만에 마치니 아

100 직도 2시간이나 남았다. 그냥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비행기를 탔고 드디어 한국을 떠난다. 대한항공 안내책자를 보니 토론토는 뉴욕다 음으로 멀리 가는 노선이다. 한국의 야경이 아름답다. 그리고 일본 쪽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동해바다의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이 보 인다. 일본 동경근처를 지나서 이제 태평양으로 들어섰다. 기내식도 먹고 나니 할일도 없고 잠도 오지 않는다. 자전방향과 반대로 가다 보니 금새 해가 떠오르기 때문에 알래스카에 접어들 무렵 스튜어디스가 창문가리개를 다 내리라고 한다. 다시 오후해가 되었을 때 창문 틈으로 살짝 들여다보니 캐나다가 보인다. 인공물이라고는 간간이 도로만 보이고 호수들만 보인다. 정말로 캐나다 위쪽은 아무도 안사나 보다. 그리고 13시간이 지나서 토론토에 도착했다. 여기는 한국과 시차가 13시간이라서 여전히 28일 오후 7시다. 이제부터는 정말 혼자다. 말이 통하건 말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그래도 캐나다 입국수속은 왕복티켓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별탈없이 이루어졌고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외사촌동생이 마중을 나오기로 했는데 정말 나왔을지 모르겠다. 전화로 한것도 아니고 그냥 메일로만 연락을 했으니. 안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사람들 틈으로 빠져나와서 공항 밖으로 나오는데 뒤에서 잡는다. 후유, 겨우 만 났다. 승용차로 30분을 더 달려서 외사촌여동생 둘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외삼촌은 토론토에서 100여킬로 떨어 진 도시에 계시고 외사촌 동생들은 이곳 토론토에서 학교와 일 때문에 따로 나와 살고 있다. 비행기 안에서 느끼 한 기내식을 먹어서 그렇잖아도 입이 징글징글한데 라면을 끓여준다. 막내는 생전 처음 본다. 그래도 어색한 느 낌이 안든다. 토론토에서 미용사를 하고 있기 나에게 나중에 머리염색을 해주겠다고 한다. 아이고 조아라. 오늘은 여기서 자나 싶었는데 외삼촌이 10시가 다 되어서 데리러 오셨다. 다시 외삼촌이 살고 계신 브랜트포드 (BrantFord)로 이동. 8월 29일 목요일 안졸리네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졸리지 않는다. 한국시간으로 오후 한시라서 그런가 보다. 그래도 어거지로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아침에 이젠 개가 침대로 올라와서 놀아달라고 자꾸 앞발로 긁어댄다. 개는 좋아해도 방안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은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넘은 하는 게 귀여워서 마음에 든다. 8월 30일 금요일 거참 고민되네 어떻게 캐나다를 구경해야 할까 고민이다. 비행기나 열차는 예약 때문에 귀찮을 거 같고 그레이하운드로 해볼 까 생각중인데 그것보다는 왠지 차를 렌트해서 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외삼촌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했더니 내일 한 번 렌트카를 알아보 러 가자고 하신다. 8월 31일 토요일 헉, 폭포 무지 크당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왔다. 너무 커 서 카메라에 담기도 힘들다. 미국쪽과 캐나다 쪽 폭포가 있는데 캐나다쪽에서 보는 경치가 더 좋아서 사람이 더 몰린다고 한다. 렌트카를 알아보러 갔으나 토요일은 쉰다.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9월 1일 일요일 시간 무지 안간다. 나이아가라 폭포로 접근하는 MAID of the MIST호

101 94 제12집 9월 첫째 월요일은 노동절이라고 한다. 화요일로 늦춰지게 됐다. 자꾸 조바심이 난다. 하는 일도 없이 자꾸 시 간이 흘러가는 거 같다. 그래도 날마다 김치에 갈비를 먹을 수 있어서 영양보충이라 생각하고 편안한 나날을 보 내고 있다. 9월 2일 월요일 오늘도 쉬는 날 노동절이다. 하루만 더 기다리면 된다. 오늘은 에리(Erie)호를 보고 왔다. 남한 땅보다 더 커서 그런지 호수로 보이지 않고 바다로 보인다. 9월 3일 화요일 드뎌 여행시작! 드디어 차를 빌리러 가는 날이다. 그런데 하루 거리제한이 200km라서 초과하면 요금이 꽤 나온다고 한다. 하 루에 1000km이상을 가야 할 거 같은데 아무래도 거리무제한 옵션이 있을 거 같은데 이곳은 없는 것 같다. Hertz 나 Budget같은 큰 곳을 알아보면 될 거 같은데 이곳은 소도시라서 없다. 해밀턴(hamilton)까지 가서 알아보면 될 거 같은데 귀찮아서 12일에 10000km정도를 감안해서 계약을 했다. 1600달러라니 120여만원에 육박한다. 담당자인 Brian Voke는 비행기나 열차로 가면 600달러 정도면 되는데 왜 차로 가느냐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하 지만 그래도 왠지 차로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차를 받았다. 이제 겨우 10000여km를 달린 일제 Mazda Protege승용차다. 소형인데 서양인에 맞추어 서 좌석을 낮추었는지 내가 타니 원숭이 한 마리가 앉아있는 것 같다. 승차감도 별로 안좋아 보이는데 외삼촌은 오히려 승차감이 안좋은 게 장거리 운전에는 도움이 될 거라 한다. 점심을 먹고 오늘 출발할까 아니면 내일 출발할까 고민 중인데 아무래도 오늘부터 요금이 나가니 아까운 마음 에 오늘 출발하겠노라고 했다. 씨없는 포도와 외삼촌가게에서 가져온 과자 몇 개와 지도 몇 장을 가지고 출발한다. 이제 며칠동안은 김치하고 도 이별이다. 뭘 먹고 살게 될지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아마 패스트푸드로 버티게 될 거 같다. 아직은 캐나다의 운전스타일에 적응이 안되서 토론토까지 가는 길에 자꾸 추월을 당한다. 제한속도는 한국과 비슷해서 100km/h일 경우는 120km/h까지는 가능하다고 하지만 자꾸 망설여진다. 토론토시내를 관통하면서 다른 하이웨이로 바꿔야 하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다. 토론토에 서는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인데 도로 왼쪽으로 빠진 것 같으니 가다가 오른쪽으로 가면 될 거 같은데 자꾸 맴도 는 느낌이다. 쇼핑몰 앞에 차를 세우고 용기를 내서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다만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할 뿐이다.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라는 거 같다. 가다 보니 도로번호가 보인다. 이제 알 거 같다. 그리고 드디어 69번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Trans Canada Highway)에 들어섰다. 신난다. 중앙분리대도 없이 아예 상행선과 하행선을 벌려놓아서 사고걱정을 덜 해도 될 거 같다. 탁 트인 도로를 달리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라디오를 트니 신나게 컨츄리음악이 나온다. ㅡ.ㅡ;;... -_- 두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똑같은 길을 운전 중이다. 포도도 다 떨어졌다. 손발 빼고는 하는 일이 없으니 심심한 한쪽 손이 자꾸 담배에 손이 간다. 저녁 7시에 토론토에서 300여km떨어진 써드베리(Sudbury)에 도착했다. 원래는 여기서 자고 갈려고 했는데 왠 지 더 가고 싶어진다. 게다가 17번 하이웨이로 바꿔야 하는데 아무래도 지나쳐서 자는 게 다음날 길을 찾기에 나 을 듯싶어서 그냥 지나쳐버렸다. 80여km를 가니 에스파뇰라(Espanola)라는 소도시가 나온다. 캐나다 하이웨이는 대부분이 톨게이트가 없는 무 료도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도로 옆에 휴게소나 주유소가 있는 경우가 드물다. 표지판을 잘 보고 도시로 들 어가서 해결하고 나와야 한다. 시내로 들어갔으나 모두들 No Vacancy다. 다시 하이웨이로 나와서 휴게소에서 햄버거를 하나 사먹고 출발한다. 길가에 있는 모텔을 찾아야 할 것 같다.

102 막 휴게소를 지나서 가려는데 휴게소 아르바이트로 보이는 애가 태워달라고 손을 흔든다. 그냥 지나치다가 아무 래도 그 애한테 물어보는게 나을거 같아서 다시 차를 돌려서 태웠다. 다시 돌아와서 태우니 그가 의아해 한다. 햄버거를 먹고 남은 감자튀김은 별로 않좋아 해서 먹으라고 줬더니 싫다고 한다. 어디에서 왔냐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런 나라 모른다고 한다. 쓰벌XX. 일본 옆에 있다고 하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나이를 물으니 열일곱이라고 한다.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모텔을 찾는다고 혹시 아느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한다. 뭐가 좀 이상하 다. 아무래도 얘는 나를 호모(?)로 보는 것 같다. 차를 돌려서 와서 태운 것도 그렇고 모텔을 찾 는 것도 그렇고 나이를 묻는 것도 그렇고. 아예 몸을 파묻듯이 자세를 잡고 말도 하지 않 는다. 그렇게 썰렁하게 20여분을 태우고 가서 내 려주니 도망가듯 가버린다. 씹새. 이미 밤 9시가 넘었는데도 숙소를 못구해서 계 여행 첫날의 모텔주인이 만든 전봇대에 충돌한 마귀할멈 속 가야 한다니. 3개의 모텔을 찾았으나 모두 빈방이 없다. 한 시간여를 더가서 콘테이너박스같은 모텔을 겨우 찾아서 45달러를 주고 방을 잡았다. 온지 일주일정도가 됐지만 여전히 시차적응이 안되는지 새벽까지 잠을 잘 수가 없다. 첫날이라서 그런지 370여킬로미터를 달렸다. 9월 4일 수요일 겨우 이틀째인데 이리 힘드노... 8시에 일어나서 9시에 출발이다. 모텔주인에게 500원짜리 동전을 기념으로 줬더니 좋아라고 한다. 12시에 250여km정도 떨어진 수생뜨마리(Sault Ste. Marie)를 지났다. 어제 밤에 잠을 설쳐서 그런지 졸린다. 졸음을 참고 가다가 보니 허름한 주유소가 하나 보인다. 그곳에서 차를 세우고 잠시 밖에 나와 있는데 조그만 트럭하나가 와서 서더니 동양인 부부가 내린다. 중국인같 기도 하고 한국인같기도 한데 그쪽에서도 나를 자꾸 쳐다본다. 다가가서 물었더니 한국인이란다. 이런 외딴곳에서 한국사람을 만날 줄이야 토론토에서 사는데 캘거리에 아들을 만나러 간다고 한다. 그럼 내일쯤 캘거리에 도착하시겠네요? 했더니, 그건 어렵지. 할말이 없다. 나는 내일까지 캘거리까지 가야 할 예정인데 어렵다니. 일정이 자꾸 뒤틀리는 것 같다. 내 목적지를 물으니 밴쿠버까지 갔다가 다시 토론토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더니 어이없는 표정이다. 대단한 용기군. 그 한마디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아무래도 내가 무모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도 여긴 식사할 데가 없으니 가다 보면 와와(WaWa)라는 도시가 나올 테니 거기에는 맥도날드햄버거가 있 을 것 같다고 거기서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한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먼저 출발했는데 제기럴, 당연히 맥도날드햄버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갔는데 표지 판은 못보고 주유소와 다른 패스트푸드점만 있는 바람에 아닐 거라 생각하고 그만 와와를 지나쳐 버렸다. 아쉽 다. 한국사람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계속 졸음이 쏟아진다. 5대호 중에서 가장 큰 수피리어호(Lake Superior)를 계속 끼고 돌고 있다. 아직도 목적

103 96 제12집 지인 썬더베이(Thunder Bay)까지는 얼마나 남은지 모르겠다. 지도를 봐도 다음장으로 넘어가 버린다. 아직도 500여 km정도 남은 거 같다. 이미 한국에서의 거리에 대한 감각은 잊어 버렸다. 그냥 길이 있으니 계속 갈뿐이다. 오후 네 시가 되어서야 차를 세우고 휴게소에서 오늘의 첫 식사를 했다. 달랑 햄버거 한 개에 콜라 한 잔. 졸려서 도저히 못갈 거 같아서 식사 후에 차에서 좀 자고 가려는데 자세가 불편해서 잘 수가 없다. 괴롭다. 계속 허벅지를 꼬집고 뺨만 후려갈기면서 가는 수밖에 없다. 오늘은 계속 1차선 도로에 커브가 많아서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양쪽으로 가끔씩 보이는 호수들이 아름다울 뿐이다.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는다. 사고내기 딱 좋은 상황이다.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 것 같다. 썬더베이를 100여km를 남기고 이젠 코피까지 나온다. 이래저래 괴롭다. 밤 9시가 되어서야 썬더베이에 도착했다. 어쨌든 오늘 목적지까지는 왔다. 그런데 자꾸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하루반 동안 온게 1/3을 왔다. 원래 목표는 4일이었는데 하루나 이틀이 더 걸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어느새 썬더베이를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시간대가 동부표준시각에서 중 부표준시각으로 바뀌면서 1시간이 늦춰졌다. 길가에 있는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집에 전화를 하고 나니 천둥번개에 비가 오기 시작한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 자고 English River에 도착해서 자고 갈까 그냥 갈까 고민하다가 출발해버렸데 아무래도 후회뿐이다. 지도를 봐도 호수밖에 없고 58km를 가야 Ignace라는 소도시가 나온다. 이젠 여행이 아니고 서바이벌 게임이 되어버렸다. 표지판에 Ignace 50km라고 나온다. 차 미터계를 보니 12222km가 되면 도착한다. 그리고 110km/h 이상으로 달리면 11시 45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캄캄한 이 밤에 가끔 그물처럼 뻗어내리는 벼락을 보면 당장이라도 차를 버리고 도망치고 싶다. 캄캄하 던 주위가 금세 환하게 밝아졌다가 다시 어둠에 잠긴다. 자동차는 벼락이 떨어져도 접지가 되기 때문에 안전하다 고 하지만 막상 주위로 떨어지는 벼락들을 보면 그 엄청난 소리에 미쳐버릴 것 같다. 이따금씩 벼락들이 비추어 주는 주변경관이 여기가 산이 아닌 드넓은 평원임을 알려준다. 과연 썬더(Thunder)베이답다. 앞에 승용차가 한대 보인다. 너무 느리다. 1차선이라서 추월선까지 기다렸다가 추월, 다시 앞에 굴뚝트럭이 있 다. 나는 지금 공포에 떨고 있는데 저 트럭운전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날씨에도 일상적인 일처럼 그냥 껌이나 씹으면서 가고 있을까? 라디오도 잡히지 않는다. 앞의 트럭이 계속 물보라를 만들어 내느라 안개 낀 도로를 가는 기분이다. 더욱 안좋은 건 반대편에서 간간이 지나가는 트럭들의 불빛이 시야를 가리고 지나간 후에도 물보라가 몇초동안 앞을 가린다는 거다. 와이퍼를 죽어 라고 흔들어도 소용없다. 내 앞에 가는 트럭도 앞차를 추월 못해서 속도를 못내는 것 같다. 드디어 추월2차선이 나왔고 추월할까 생각하 는데 앞의 트럭이 먼저 1차선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 앞의 닷지(Dodge)차량도 빼앗기기 싫은지 나란히 가다가 결국 트럭이 추월에 성공했다. 이제 모든 물보라는 내 바로 앞의 닷지(Dodge)가 뒤집어쓰고 있다. 그리고 디지털계기판이 정확히 12222km가 되었을 때 Ignace가 나왔다. 밤 11시 41분. 주변에는 모텔들 뿐이다. 이미 12시가 다되어서 돈쓰기는 아깝다. 차에서 짱박혀 잘 데를 찾아봐야겠다. 내일 은 무슨 일이 있어도 캘거리까지 가야 한다. 아 막막하다. 오버자켓을 모자까지 뒤집어쓰고 주머니에 월마트에서 산 거버나이프와 헤드랜턴을 넣고 잠을 청한다. 1104km를 달렸다. 9월 5일 목요일 오늘 도대체 얼마를 간거야??? 새벽 12시 50분. 시차적응이 아직도 안된 데다가 차가 소형이라서 몸을 웅크리니 아무리 용을 써도 잠이 안온다. 지금까지 새벽 세시 이전에 잠든 적이 없다.

104 모르겠다. 비도 그쳤고 벼락도 안치는데 가는 데까지는 차라리 가는 게 좋을 거 같다. 다시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채우면서 위니펙(Winnipeg)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5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럼 4시간이면 될 거 같 다. 지도를 보니 온타리오(Ontario)주만 벗어나면 바로 2차선으로 도로가 넓어지는 것 같다. 항상 밤운전에는 익숙하다. 한국에 있을 때도 서울에서 광주를 내려갈 때 낮보다는 밤에 운전할 때가 많아서 그러한 것 같다. 1차선 도로를 마구 달린다. 늦은 밤이라서 트럭들도 잘 안보이고 계속 110km/h에서 130km/h를 유지하면서 중앙선을 밟아가면서 달린다. 그래도 왠지 고요해 보인다. 주위는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오 른쪽 차창으로 보이는 북두칠성이 내가 가는 방향이 북서쪽임을 조용히 알려주고 있다. 이젠 졸린 건지 아닌지 알수가 없다. 잠을 제대로 못자서 제정신이 아닌건 확실하다. Drygen이란 표지판과 야생동물조심표지판이 나온다. 속도계를 보니 120km/h다. 한손으로 핸들을 잡고 잠시 지도를 보다가 고개를 드니 바로 코앞에 여우가 한 마리 서있다. -_-;; 얼떨결에 그놈을 피하려고 핸들을 확 꺾어버렸더니 차가 휘청한다. 차선을 벗어나서 갓길의 자갈들을 넘어서려 고 해서 다시 반대편으로 꺾으니 이젠 차가 전복될 것처럼 휘청한다. 몇 번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준 다음에서야 겨우 자세를 잡았다. 차라리 깔아뭉개버리고 갈 걸. 아마 그 놈은 그 자리에 계속 있다간 아마 내 뒤에 따라오는 트럭에 깔려 죽었 을 것이다. 왜 도로에 그토록 동물 시체가 많은지 알겠다. 저렇게 멍하게 서있는 야생동물들을 피하다가는 딱 죽 기 좋은 것 같다. 너무 갑자기 핸들을 꺾어서 무리가 가서 그런지 차가 오른쪽으로 자꾸 쏠린다. 어쨌든 새벽 1시 55분에 Dryden에 도착했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길가에 Extra Food와 월마트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행운인 것 같다. 주차장도 널찍해서 아무데나 차를 세우고 잘 수 있을 것 같다. 이틀 동안 달랑 햄버거 두개만 먹었더니 몸도 영 아니다. 일단 차를 세우고 알아봐야겠다. 맥도날드도 보인다. 그러나 모두들 영업시간이 아니라서 아침이 될 때까지 기 다려야 할지 고민이다. 잠을 청하려고 했으나 역시 별로 잠이 오지 않는다. 2시 45분 다시 출발. 아~ 쓰 돌아버리겠다. 3시 20분에 Kenora에 도착, 이제 위니펙까지 가는 길에 마지막 도시같다. 도시라고 해봐야 인구 몇천인 소도 시일 뿐이다. 도시의 도로를 천천히 지나가는데 건너편에 PC방이 보인다. 그걸 쳐다보느라 잠깐 차를 움찔했는데 뒤에서 뭔가가 반짝거린다. 경찰차다. 두 명의 경찰이 차에서 내려서 곤봉과 총에 손을 얹고 다가온다. 한명은 후레쉬로 나를 비추고 또 한명은 뒤에 서 여전히 총에 손을 얹고 있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데 위니펙까지 가다가 잠시 차를 세우고 쉴 장소를 찾는다 고 하니 술을 마셨느냐고 묻는다. 그것도 아니고 내가 아니라 차를 쉴 곳을 찾는다고 하니 가라고 한다. 처음으로 경찰과 마주쳤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지나가니 안심이 된다. 다시 햄버거가게 앞 공터에 차를 세우고 잠을 청하나 여전히 잠이 오지 않는다. 정말 미치겠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출발이다.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다. 새벽 4시 25분, 드디어 온타리오주를 벗어나 중부인 매니토바(Manitoba)주로 들어섰다. 그리고 17번 도로에서 1번 도로로 바뀌었다. 이제 1번 도로만 따라가면 언젠가는 밴쿠버가 나오리라. 도로도 2차선으로 넓어졌고 반대편차선은 중앙분리대도 없이 저 멀리 멀찍이 분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충돌위 험도 없어서 좋다. 신나게 속도를 올리나 싶은데 또 앞에 여우 놈이 길가에 서서 쳐다보고 있다. 이젠 여우만 보 면 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는다. 짜증나는 넘들. 5시 40분. 위니펙 입구 주유소에 서있다. 여행안내책자를 보니 위니펙에는 서울가든이라는 유일한 한국식당이 있다고 한다. 그동안 굶주린 밥을 어떻게든 보충하고 싶은 마음에 9시까지 기다렸다가 다운타운으로 들어가서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오버자켓을 뒤집어쓰고 잠이 청하니 이번에는 정말로 피곤에 지쳐 스르르 잠이 든 다. 3시간 정도를 자다가 깨어나서 위니펙시내로 진입해서 다운타운으로 가는 도로를 제대로 잡았으나 아무리 둘

105 98 제12집 러봐도 한국식당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아쉽지만 그대로 빠져나와서 다시 1번 도로로 들어섰다. 도시를 빠져나오는데 캐나다인 한 명이 배낭을 메고 차를 태워달라고 손을 흔든다. 따분한데 잘 됐다 싶어서 태웠는데 목적지가 서스캐처원(Saskatchewan)주의 새스커툰(Saskatoon)라고 한다. 지도를 보니 그곳을 지나치지 않아서 리자이나(Regina)까지 태워주겠다고 하니 괜찮다고 한다. 570여km정도 되는 것 같다. 이름은 Duncan Mcnairnay. 첫날 태운 그 이상한 애와는 다르게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월드컵때 한국팀이 참 놀라웠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언젠가는 한국에 가서 기회가 되면 영어강사를 해보고 싶다 한다. 그래도 제일 가보고 싶은 데는 일본이란다. 한국을 그래도 잘 아니 한시간 여를 재잘거리다 보니 더 이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 배가 고파서 Subway에 들러서 샌드위치를 두개를 사서 하나 주고 콜라 한잔을 사서 빨대 두개를 꽂으니 좀 어색하다. 또 호 모로 오해를 받을 거 같다. ^^ 위니펙을 지나서 리자이나로 가는 길은 끝없는 밀밭이다. 어쩌면 단순해 보일 수도 있으나 한번도 보지 못한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광경은 눈물겹게 아름다워 보인다. 여행책자에는 하루 내내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에 지루 함을 느낄 거라고 했으나 나는 오히려 가슴이 확 트여 좋기만 하다. 차를 렌트해서 여기까지 죽어라고 몰고 온 것도 이런 광경을 보고 싶어서였으니까. Mcnairnay에게 졸리면 자라고 했더니 정말 자버린다. 옆사람이 자니 같이 졸려서 안되겠다 싶어서 차를 하이 웨이 옆 샛길로 빼서 밀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출발이다. 대평원이 하도 멋져 보여서 한손으로는 핸들을 한손으로는 카메라를 들고 계속 셔터를 눌러대니 옆에서 잠들었 던 Mcnairnay는 화들짝 놀라 깨서 연신 It's too dangerous! 만 연발한다. 나는 Don't worry. It's Korean style! 라고 답하며 계속 셔터만 눌러댄다. 짜식~ 잠이 확 달아났는지 내가 카 메라만 들면 안절부절한다. 정말 피곤한건 나다. 며칠째 제대로 잠도 못자고 운전 중인데다가 아무데나 세우고 잠을 자고 싶어도 혹시 옆 에 넘이 고추라도 만지거나 목에 칼이 들어 올까봐 그러지도 못한다. 물론 캐나다라는 나라가 그럴만한 나라가 아닐 거라는 건 지금까지 경험으로 알 수 있지만. 리자이나란 도시이름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자기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 영국왕실 여왕의 이름일거라고 한다. 어쨌든 평평하기만 한 대평원을 그 전보다는 훨씬 빨리 달려서 매니토바주를 벗어나 서스캐처원주 리자이나에 도착해서 Mcnairnay를 내려주고 다시 외로 운 여행을 하려니 기분이 우울해진다. 옆에 있다가 사라지면 유난히 외로워진다. 담배하나를 꺼내 물고 씁쓸한 기분에 차를 몰고서 다시 리자이나를 빠져나오는데서 또 한사람이 손을 흔든다. 이번에는 스무 살짜리 고등학생이란다. 500여km 떨어진 Medicine Hat까지 태워달 라는데 심심한김에 잘됐다 싶어서 태웠는데 의외로 떡대가 커서 차가 잘 안나간다. 3주전에 리자이나에 놀러왔다가 돈도 잃어 버리고 이제야 히치하이킹으로 돌아가는 길 이라 한다. 아무리 봐도 모범생은 아닌 것 같 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모른단다. 그런 놈이 핸 위니펙을 벗어나면서 만난 캐나다인. 도로 옆 밀밭에서 취한 포즈 드폰은 삼성이다. 차에 타자마자 벨트도 차지 않고 바로 곯아떨어진다. 환장하겠다. 같이 꾸벅꾸벅 졸다 보니 이넘이 자다가 깨서 혹시 졸려서 힘들면 말하란다. 자기도 면허증이 있으니 대신 해

106 줄 수 있다 한다. 미친 또라이 쉐이 '. 졸려서 쉬었다 갈 겸 주유소를 찾아들어가니 담배 한 대만 주라고 하더니 저쪽으로 가서 피고 온다. 쓰벌 넘, 난 열심히 차유리를 닦고 있는데. 어쨌든 우리는 다시 출발해서 꾸벅꾸벅 졸면서 서스캐처원주를 지나서 앨버타(Alberta)주의 Medicine Hat에 도 착해서 그를 내려주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저런 애를 태우느니 차라리 혼자가 낫겠다. 오늘도 여전히 샌드위치 한번으로 끼니를 때우고 가고 있다. 이제 오늘 목적지인 캘거리(Calgary)까지는 400여km 남았다. 지금 오후 4시이고 또 다시 시간대가 산악지대 표준시각으로 바뀌면서 한 시간을 벌었기 때문에 여유가 있을 것 같다. 이틀 동안 온 거리보다 더 많은 거리를 하룻만에 오다 보니 주유를 네 번이나 했다. 아직도 두 번 정도 는 더 하게 될 거 같다. 캘거리까지 가는 길은 이제 밀밭은 없고 여전히 대평원이다. 이젠 정말 아무것도 없이 어디를 둘러봐도 지평선만 보인다. 아직 이런 광경이 여전히 지겹지는 않다. 온타리오주를 달리면서 그만그만한 산과 호수들을 보고 오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캘거리 도시 입구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나니 비가 쏟아진다. 회사직원이 소개해준 유학중인 친구라는 사람 에게 전화를 하니 록키산맥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아마 내일까지 밴쿠버에 들어오기는 힘들 거라 한다. 그건 내 가 알아서 갈거니까 신경쓰지 말고 내일 들어갈 거니까 숙소나 알아봐 달라고 하니 그러마고 한다. 캘거리에서 밴쿠버까지는 지도상으로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데 아무래도 록키산맥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 릴 것 같다. 비가 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동계올림픽 때문에 도시지명이 익숙한지라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 하고 1번 하이웨이를 벗어나서 시내 로 진입했다가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 빗속에서 이리저리 찾아도 계속 같은 데만 나온다. 일단 눈에 띄는 월마 트 안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어가서 햄버거 하나를 사서 먹고 다시 차분히 1번 도로가 나올 때까지 북쪽으로 올 라가니 1번 하이웨이가 나온다. 다만 내가 왔던 길이라서 턴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가야 한다. 제기럴. 빗속이라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차선을 바꾸다가 보도블럭을 박고 차에서 파열음이 난다. 으흑 -_-;;, 기스나 면 배상해야 할텐데. 그래도 쏠리지 않는 걸 보니 천만다행으로 펑크는 나지 않은 것 같다. 캘거리에 진입하기 전에 도로가에서 숙소를 잡아야 하는 건데 이미 캘거리를 벗어나서 이젠 록키산맥으로 향하 고 있다. 주유소에서 다시 주유를 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누군가가 밴쿠버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가서 보니 늘그막한 아저씨다. 가긴 가는데 오늘은 가다가 이 근처에서 잘거라고 했더니 일단 같이 가자고 한 다. 그래서 태워줬는데 딱 한마디, I have no money!????? 나보고 워쩌라구? 나도 지금 돈이 그리 많지 않고 며칠째 잠을 못자서 근처에 모텔을 찾아서 잘거라고 하니 그럼 자기는 차안에 서 기다릴 수 있다고 한다. 아~ 잘못 걸렸다. -_-;; 다른 차를 알아보라고 해도 계속 버틴다. 자기도 운전면허증이 있으니 대신 운전을 해줄 수 있고 그리고 조금 만 가면 밴프(Banff)가 나오니 거기서는 숙박을 할 데가 많으니 가자고 한다. 정말 돌아버리겠다. 나는 그냥 이근처에서 잘거니까 내리라고 하면서 20여분간 실갱이를 해서 결국 내리고 나 는 다시 캘거리쪽으로 가서 모텔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또다시 차를 돌려 밴프로 향한다. 이틀째 잠을 못자고 가니 머릿속에 돌이 들어차 있는 것처럼 무겁기만 하다. 벌써 밤 12시가 넘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잘만한 곳은 나오지 않고 결국 새벽두시까지 운전을 하다가 The dead man's flat이란데서 66 달러씩이나 내고 겨우 방을 잡았다. 이넘의 나라는 세금만 없으면 무지 쌀텐데 뭐든지 세금이 15%가 붙어서 맛 가게 한다. 1968km를 달렸다. 점점 미쳐가는 것 같다. 내일 밴쿠버까지 가지 못하면 정말로 머리가 돌아버릴지도 모르겠

107 100 제12집 다. 9월 6일 금요일 서쪽 끝 밴쿠버(Vancouver)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밖으로 나오니 햇빛이 따갑다. 고개를 들어보니 구름사이로 록키산맥이 보인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올 만큼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밴프는 휴양도시라서 그런지 차들이 많다. 주위경관도 깔끔하면서도 아름답다. 록키산맥과 그 아래 펼쳐진 호 수들은 사진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장면들이다. 첫날과 둘째 날은 호수를, 셋째 날은 광활한 대평원을, 그리고 오늘은 장대한 산과 아름다운 호수가 조화를 이 룬 록키를 보고 있다. 지도를 보니 도로가 록키산맥을 넘어간다. 꼬불꼬불 이리저리 도는데다가 경찰차도 자주 보이니 속도를 내기도 어렵다. 그래도 이미 록키산맥을 넘는 순간 밴쿠버가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주에 들어섰다. 꾸역꾸역 지나서 Golden이란 소도시를 지나니 또다시 시간대가 산악지대 표준시각에서 태평양 표준시각으로 바뀌면서 다시 1시간을 벌었다. 이제 토론토와는 3시간 차이가 난다. Kamloops까지 가면 어느 정도 여행이 마무리단계가 될 것 같은데 오늘은 유난히 속도가 안난다. 산악지대라서 어쩔 수 없다. Kamloops에서 오늘의 마지막 주유를 만땅으로 하고 지도를 보니 1번 하이웨이보다는 5번을 타는 게 더 가까워보인다. 게다가 2차선 이상의 도로같다. 비록 유료도로이긴 하지만 빨리 도착해서 차를 팽개치고 싶 다. 참 희안하다. 능선으로 길을 냈으면서도 우리나라처럼 꼬불길이 아니라 그냥 직선도로다. 산이 완만해서 그러 하겠지만 내리막길에서는 정말 브레이크파열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 번 내려가기 시작하면 수십킬로미 터를 쭉 미끄러져 내려가니 위험천만이다. 그래서 Run away lane이라는 희안한 탈출구를 만들어 놓았는데 도로 오른편으로 오르막비포장도로를 만들어 놓고 행여나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면 그곳으로 차를 돌진하란다. 누가 해보았을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게 유일한 방법이겠지만 그곳으로 돌진하는 것도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통행료로 10달러를 내고 1번 하이웨이와 만나는 Hope에 도착 이젠 정말 밴쿠버가 코앞에 있는 기분이다. 차들 도 유난히 많다. 무엇보다도 라디오방송이 많이 잡히는 걸 보니 정말 거의 다 오긴 온 것 같다. 아 지겹다. 이 많은 차들. 그들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고 마구 달린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저 멀리 불빛들이 보인다. 드디어 인구 180만의 캐나다 제3의 도시 밴쿠버에 들어섰다. 이 젠 밴쿠버 시내가 나온 지도를 꺼내들고 다운타운까지 찾아 들어가면 끝이다. 물론 한방에 찾지 못했다. 어디서인가 도로를 바꿔야 하는데 그만 지나쳐버려서 밴쿠버 북쪽으로 열심히 달리 는 중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데 차들이 많아서 돌리지도 못하고 미친 듯이 휘슬러(Whistler)로 향하고 있 다. 30여분을 달리다가 겨우 차를 돌려서 이번에는 제대로 다운타운에 진입했다.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전화를 걸고 기다리는데 이 밤시간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절반 정도는 한국유학생 들이다. 복장이나 하는 짓들로 봐서는 그냥 하루기분내서 마시는게 아니고 일상적인 생활같아 보인다. 이 도시는 아무리 봐도 만만한 도시가 아닌 것 같아서 자꾸 호주머니 안의 나이프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20여분을 기다리니 드디어 회사직원 친구(여자)가 나타났다. 근처에 유스호스텔을 잡아주겠다고 하는데 여기서 좀 멀다고 한다. 너무 멀면 차가지러 오기도 힘들고 하루만 쉬었다가 그냥 갈거니까 아파트에 짐만 가져다 놓고 PC방에서 날샐 거라고 하니까 망설이더니 그러라고 한다. 일단 한국식당에서 라면을 하나 사먹고 제발 어디든지 처박혀 잠 좀 푹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아파트까지 따라가니 그냥 자기들은 방에서 자고 거실에서 회사를 휴직하고 유학중인 남자가 있다고 말해 놓을 테니 같이 자라고 한다. 히히 역시 작전대로 됐다. 대강 씻고 그냥 곯아 떨어 져버렸다. 아 편안하다. 제발 누군가가 차를 훔쳐가 버려라. 오늘은 주행거리 900km로 마무리를 했다.

108 9월 7일 토요일 한국음식 먹은날 아침에 주차비를 내기 위해 일찍 일어나서 주차장을 가니 차 가 그대로 있다. 그대로 있는게 당연한 거지만 다시 돌아갈 생 각을 하니 머리가 아프다. 오늘 출발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되면 제정신에 못갈 것 같아서 하루 더 쉬어야 할 것 같다. 가볍게 카메라만 들고 해변가에서 다운타운까지 걸어서 구경 을 하다가 돌아왔다. 한국음식을 해준다. 김치에 불고기에 밥. 정말 눈알이 돌아간다. 유스호스텔로 갔으면 어떻게 됐을 까? 9월 8일 일요일 북미최고의 스키리조트 휘슬러 도시구경은 별로 재미가 없다. 그래서 오늘은 밴쿠버에서 120여km 떨어진 휘슬러(Whistler)를 갔다 오기로 했다. 길거리 묘기 휘슬러는 리조트도시로 2010년 동계올림픽 신청을 했는데 우리나라 평창도 유치신청을 했기 때문에 경쟁중이지만 토론토에서 듣기로는 거의 휘슬러가 확정적이라는데 이 곳 분위기는 유치를 원치 않는다고 한다. 밴쿠버에서 휘슬러까지 가는 도로가 편도 1차선인데 차선을 넓히기 위 해서 재원마련 때문에 몇몇 도로를 유료화하고 세금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루를 푹 쉰 애마를 다시 몰고 해안도로를 따라서 신나게 달린다. 비록 곤돌라는 못탔지만 차로 이곳저곳 돌 아보는 것도 괜찮다. 어디를 가보아도 깔끔하고 아름답다. 돌아오는 길에 앞쪽에서 충돌사고가 나서 1시간여를 못움직이는데 이곳 사람들은 느긋하다. 구태여 알려고 하지도 않고 문제가 있으니까 못가는 것 아니겠냐는 식으로 차밖으로 나와서 그냥 느긋하게 몸 이나 풀면서 옆차하고 이야기하면서 기다리다가 출발한다. 오늘도 역시 밴쿠버를 떠나지 않았다. 이틀째 한국음식을 먹으니 움직이기가 싫다. 그래도 염치가 있으니 내일 아침에는 떠나야 할 것 같다. 9월 9일 월요일 다시 동쪽으로 출발, 미국국경을 따라서. 어쨌든 토론토로 돌아가야 모든 것이 끝날 테니 여기서 뭉그적거리고 있어봐야 좋을 게 없을 것 같다. 마지막 으로 쌀밥과 김치를 뱃속에 꾹꾹 채워 넣고 밴쿠버를 빠져 나온다. 또 몇시간이 지나면 지루함을 느끼게 될까? 아니 오늘은 얼마나 가게 될까? 이제 절반만 가면 되는 건지 아직도 절반이 남은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외로운 여행이다. 밴쿠버를 빠져 나올 무렵 이번에는 여자 둘이서 차를 태워달라고 손을 흔든다. 안태우면 사람이 아니쥐. 돌아가는 길은 미국국경 근처 쪽 도로로 갈려고 했는데 얘네들은 목적지가 켈로나(Kelowna)라고 한다. 돌아가 는 길이긴 하지만 그쪽에 포도농장으로 유명한 오카나간(Okanagan) 밸리가 있다고 하니 그곳으로 지나쳐도 될 것 같다. 다만 10달러를 내고 유료도로를 한번 더 지나쳐야 하는 게 걸리긴 하지만 일단 따분하지 않게 갈 수 있으니까. 둘 다 집이 퀘벡(Quebec)인 18살짜리 프랑스계 여자다. 그냥 여행 중이라고 한다. 나하고 이야기할때는 영어를 쓰면서도 지들끼리는 불어를 사용한다. 불어를 고등학교 때 배우긴 했지만 기억나 는 거라곤 동서남북하고 숫자세는거 밖에 없어서 쟤들이 뭐라고 중얼대는지 모르겠다. 얘네들한테는 익숙힌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둘이서만 빵에 잼을 발라서 나눠먹는다. 아 낯짝도 두껍다. 배고파 죽겠는데 주란 말도 못하겠고. 먹을 거냐고 물어보지도 않넹 ㅡ.ㅡ 이젠 더 이상 태우는 것도 지겹다. 켈로나에 그들을 내려주고 이젠 남쪽으로 향한다. 길다랗게 나있는 호수 바

109 102 제12집 로 옆으로 몇 시간째 달리지만 너무도 흔하게 본 광경이라서 멋지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국경 옆으로 꼬불꼬 불 나있는 도로를 몇 시간 째 달리다가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는데 옆에서 주유를 하던 사람이 온타리오주 번호 판에다가 외국인 것이 신기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묻는다. 토론토에서 차를 빌려서 밴쿠버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Great! 를 연발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악수를 청한다. 그의 행동에 기분이 좋기는커녕 돌아버리겠다. 이런 여행이 평범하지 않으니 저러는거 아닌가. 이젠 아무 생각 도 없이 당연히 야간운전을 준비한다. 준비랄 것도 없다. 그냥 오버자켓만 걸쳐입으면 끝이다. 도대체 이놈의 록키는 얼마나 큰산일까? 한번만 꼭대기까지 올라가기만 하면 몇 시간을 스키활강하듯이 120km/h의 속도로 직선으로 쭈욱 미끄러져 내 려간다. 한밤중이라서 오로지 앞만 보고 가야 하는데 브레이크가 파열될까봐서 밟지도 못하고 그냥 신나게 활강 만 할 뿐이다. 0시 15분. Cranbrook란 도시에 도착했다. 이젠 지갑에는 달러보다 주유소에서 받은 영수증이 더 많다. 다시 주유를 하고 나니 피곤에 지쳐 주저앉는다. 오버자켓의 모자를 뒤집어쓰니 스르르 잠이 든다. 아! 하계용 침낭만 가져왔어도. 내가 정신이 나갔지. 도대 체 뭘 가지고 온건지. 자세도 불편하고 온몸이 찌뿌둥하다. 이제 3일만 가면 되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 아 유난히 우울하고 암담한 밤이다. 995km를 달렸다. 9월 10일 화요일 아무리 봐도 지루하지 않은 중앙대평원. 4시 10분, 가위에 눌려서 다시 잠이 깼다. 자세가 불편하니 세시간 여를 자도 꿈을 몇 번이나 꾼 지도 모르겠다. 다시 달린다. 이젠 록키를 넘어서 다시 대평원의 먼동이 기다리고 있다. 넓디넓은 평원에서의 일출이 장관이다. 차가 동쪽으로 가고 있으니 마치 떠오르는 태양을 마중 나가는 기분이다. Lethbridge를 지나서 밴쿠버를 갈 때 지나쳤던 Medicine Hat으로 가고 있다. 아직 여전히 앨버타 주다. 그래 도 어쨌든 오늘 새벽에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를 넘 었다. 태양을 마주보고 가는데 너무 강렬해서 선글래스 를 껴도 앞은 윤곽만 보인다. 빨리 정오가 지나야 운전이 수월해질 것 같다. 오후 네 시에 서스캐처원주의 리자이나에 도착. 진도가 잘 나가는 만큼 마음도 급해진다. 저 앞에 길가에 흰색차가 있다. 아무래도 경찰인 것 같아서 엑셀레이터에서 발을 떼니 천천히 속도 가 줄어든다. 정말 경찰이다. 다행히 앞을 지나갈때 는 120km/h이하로 지나쳤다고 생각했는데 젠장. 경광등이 빙글빙글돌고 하이빔을 비춘다. 결국은 걸리는구나. 서스캐처원주의 끝없이 펼쳐진 밀밭 벌금이야 내면 되지만 시간이 아깝다. 또 권총에 손을 얹고 다가온다. 이러다가 차밖으로 나가서 목덜미에 손을 얹고 몸수색까지 당하는건 아닐까? 몇으로 달린 줄 아냐고 물으니 120km/h로 달린 것 같다고 하니 118km/h로 달렸다고 답해준다. 면허증을 달라고 해서 여권과 국제운전면허증을 주니 한참을 쳐다보다가 차량등록증을 달라고 한다. 내가 그걸 워찌 아남. 서랍에서 서류뭉치를 한웅큼 집어서 주니 필요한 것만 빼서 가져가더니 다시 차로 돌아가서 어디론가 열심히 무전을 친다. 외국나와서 이게 무슨 창피람. 한국에서도 여태까지 딱 한번 걸렸는데.

110 뭔가 빨간 종이딱지를 가져오더니 뭐라고 열심히 설명한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120km/h을 넘지 않았 기 때문에 벌금은 아니고 경고장이란다. 다음에 또 걸리면 얄짜리 없단다. 어쨌든 다행이다. 기분이 좋아서 악수를 하고 다시 출발이다. 다만 속도를 100km/h로 고정시키니 유난 히 느리다. 나를 추월하고 달리는 다른 차들이 부럽다. 다시 어둑어둑해질 무렵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이젠 걸리면 차라리 도망을 가리라. 밤 10시 30분 다시 위니펙에 도착.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계속 가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그 악몽같은 썬더베이까지는 가야 내일 홀가분할 것 애마와 함께 개폼을... 같다. 계속 달린다. 이제 조금만 달리면 온타리오주가 나온다. 위니펙은 가장 가보고 싶었던 도시 중의 하나였는데 오고 가면서도 겨우 가솔린을 채우기 위해 내린 것 빼고는 차안에서 보고 지나치기만 해서 아깝다. 1500km를 달렸다. 9월 11일 수요일 가장 힘들었던 길, 썬더베이에서 수쌩뜨마리까지 800km. 일주일이 넘게 같이 붙어 있다 보니 처음에는 영 미심쩍던 이 마쯔다(Mazda)넘이 정이 든다. 지금까지 단 한번 도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내 말을 잘 듣는 넘이다. 제발 하루만 더 말썽을 부리지 말고 잘 버텨다오. 1시간 동안 직선경사도로를 내려와서야 온타리오주로 진입한다. 인디언어로 아름다운 호수 라는 뜻의 온타 리오(Ontario). 0시 30분, 썬더베이까지 555km다. 새벽 1시에 케노라(Kenora)에 도착 아직 썬더베이까지는 515km가 남았다. 여긴 밴쿠버로 가는 길에도 한밤중 에 지나쳤는데 돌아가는 길도 여전히 한밤에 지나친다. 지도를 보면 온통 호수뿐이지만 알 수가 없다. 그냥 울창한 삼림같아 보일 뿐이다. 계속 가다가 문득 옆을 보니 뭔가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마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밑에서 서치라이트를 비추는 것처럼. 저게 오로라인가 싶은데 여긴 오로라가 보일만한 지역은 아닌 것 같다. 너무나도 황홀한 경치에 차를 옆에 세우고 비상깜빡이를 켜고 구경을 하면서 카메라에 담으려는데 그냥 까맣게 나온다. 어떻게 하면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뒤에서 차가 한대 온다. 경광등이 돌아가는게 또 경찰 차량이다. 아무래도 지나가던 트럭이 비상깜빡이를 보고 신고를 한 것 같다. 그렇다고 차를 세운지 5분도 안되었는데 어 디선가 경찰이 나타나다니. 더구나 이 새벽에, 이 깊은 산속으로. 천연덕스럽게 내가 먼저 말한다. I have no problem! 그리고 저게 오로라냐고 물으니 뭐라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다만 위험하니 차를 길가에 세우지 말라 고 한다. 오케이 하고 출발하는데 이런, 헬기까지 출동했다. 헬기가 탐조등으로 여기저기 비추는게 아무래도 나를 찾는 것 같다. 오밤중에 이게 무슨 짓이람. 쪽팔려서 빨리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정말 대단한 경찰들이다. Dryden에 도착해 다시 주유를 하고 썬더베이로 향한다. 새벽 4시에 Ignace에 도착하니 도저히 졸음 때문에 갈 수가 없다.

111 104 제12집 시동을 끄고 오버자켓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으니 저절로 잠이 든다. 세시간여를 자고 일어나니 밤새 추위에 몸이 찌뿌둥하다. 차밖으로 나가서 몸이라도 풀면 좋으련만 그것도 귀 찮다. 그냥 달릴 뿐이다. 도로 옆 호수마다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른다. 어미곰 한 마리와 새끼곰 두 마리가 도로를 건너고 있다. 여기 동물들은 대체적으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썬더베이에 도착했다. 아니 지나치고 있다. 이제 수생뜨마리까지 800km가 고비일 것 같다. 5대호 중에 가장 큰 수피리어(Superior)호를 끼고 돌아야 하니 유난히 지루한 여정이 될 것 같다. 마음만 급해서 자꾸 과속을 하다가 다시 경찰에 걸리고 말았다. 밴쿠버까지 가는 길은 이러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경찰과 맞닥뜨린다. 마을입구라서 제한속도가 60km/h였는데 그냥 지나치다가 언덕에서 경찰차가 오는 걸 보고 속도를 줄였을 때 는 너무 늦었다. 내 차를 지나치기 무섭게 바로 차를 돌려서 쫓아온다. 이젠 쫄지도 않는다. 방탄복을 드러내고 걸어와서 유난히 물어보는 것도 많았지만 그래도 외국인 여행자인데다 가 I'm sorry를 연발하니 천천히 다니라며 순순히 보내준다. 아~ 정말 너무도 지루한 길이다. 썬더베이에서 8시간이 넘게 쉬지 않고 달리니 이제야 오후 6시가 넘어서 수생뜨마리가 나온다. 주유소에서 다시 주유를 하고 오늘의 첫 식사를 햄버거로 때운다. 햄버거를 사오면서 차 앞대가리를 보니 차가 바보가 되어 있다. 온갖 곤충들 시체 수백 마리가 붙어있다. 메뚜 기, 깔따구, 나방. 도대체 왜 이넘들은 내차에 이렇게 박치기를 해대는 것일까? 고민이다. 사흘 째 잠을 제대로 자지 않고 가는 건 아무리 봐도 무리일 것 같다. 지금까지 혼자 운전하면서 사 고도 없이 온 것도 기적같은데 여기서도 쉬지 않고 가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도 계속 나아간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자서 이미 머리는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져 있 고 그냥 기계적으로 손발만 움직일 뿐이다. 그래도 가는 데까지는 가는 게 좋겠다. 이미 머릿속은 이성적인 사고 가 불가능해져 버렸다. 그냥 오로지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지배할 뿐이다. 외삼촌 집에 오랜만에 전화를 해서 오늘 새벽쯤에 들어갈 것 같다고 하고 다시 출발이다. 드디어 정각 밤 10시에 서드베리에 이르렀고 토론토로 빠지는 69번 도로로 바꿔탔다. 토론토까지 388km! 정신 좀 차리자. 가는 길에 다시 기름을 채운다. 이것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주유가 될 것이다. 아직 토론토까지는 230여km가 남았는데 머리가 아주 멍하다. 거의 다 왔는데 너무 힘들다. 이젠 백미러나 사이드미러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앞만 보고 멍하니 달린다. 머리도 무겁고 졸음도 쏟아지고 너무 괴롭다. 토론토가 가까워지면서 차들도 많아졌고 도로도 4차선으로 넓어졌다. 조심하지 않으면 사고가 크게 날 것 같은데 이미 쉴 곳도 모두 지나쳤고 그냥 무감각하게 다른 차들 속도에 맞 춰서 가기만 할 뿐이다. 새벽 1시 30분 드디어 토론토로 들어섰다. 아직 브랜트포드까지는 100여km가 남았지만 너무도 힘들었던 기억 에 이유모를 눈물이 흘러내린다. 도시의 야경이 무사히 돌아온 여행을 축하해 주는 느낌이다. 400하이웨이에서 401도로로, 다시 나이아가라 폭포로 들어가는 QEW(Queen Elizabeth Way)로, 다시 해밀턴으 로 가는 403도로로 아무 실수 없이 제대로 바꿔탔다. 이제 정말 100km만 가면 된다. 몇 번 왔다갔다했다고 익숙한 도로들이 나온다. 드디어 새벽 두시 반에 브랜트포드에 도착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브랜트포드시내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한시간째 빙빙 맴돌다가 결국은 콤파스와 지도를 꺼내들고 거리이름을 맞춰가 면서 독도를 한 끝에 겨우 외삼촌 집을 찾아냈다. 아~ 날아갈 것 같다. 일주일만에 본 애완견 모젤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바닥에 오줌을 갈긴다.

112 이젠 정말 끝났다. 아무 기억도 나지 않고 그냥 발만 씻고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새벽에 모젤이 놀아달라고 발로 비벼대다가 반응을 안하니 결국은 포기하고 옆에서 쭈그리고 같이 잠들고 만 다. 오늘은 2122km를 달렸다. 9월 12일 목요일 아~ 행복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기만 했다. 차는 내일 반납해야겠다. 9월 13일 금요일 차반납 실패 -_- 다시 몬트리올로 차를 반납하러 갔다가 오히려 3일을 더 연장하고 왔다. 운전하기 싫은데. 그래도 전에 비하면 거리도 왕복이 1500여km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부담은 덜할 거 같다. 오후 2시 반에 다시 출발이다. 이젠 토론토 동쪽으로 달린다.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Ottawa), 북미의 파 리 라는 캐나다 제2의 도시이자 파리 다음으로 불어를 많이 쓰는 도시인 몬트리올(Montreal), 캐나다 속의 프 랑스 라는 성곽도시 퀘벡(Quebec)을 구경하고 올 예정이다.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으니(그래도 몇 백km를 가야 하지만) 마치 교외로 드라이브 나온 기분이다. 토론토에서 또 한 번 길을 잃었으나 이젠 능숙하게 다시 되돌아와서 다시 길을 찾아낸다. 오늘 목적지는 오타와지만 모텔에서 잘 것인지 차안에서 잘 것인지는 가다가 결정해야겠다. 그러나 또 실수를 했다. 오타와까지 들어가면 안되는데 얼떨결에 또 들어가 버렸다. 오타와 시내는 모텔은 안보이고 모두들 100달러가 넘는 Inn이나 호텔들 뿐이다. 비록 저녁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내로 들어간 김에 차로 구경을 하고 다닌다. 가장 이상적이라는 소도시답게 깔끔하다. 다시 오타와를 빠져나와서 몬트리올로 향했고 도중에 78달러씩이나 내고 길 가의 모텔에 방을 잡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는 빨래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다. 9월 14일 토요일 영어도 힘든데 불어까지 ㅡ.ㅡ 어제 밤에 빤 양말, 빤스 등을 차의 대쉬보드에 널어놓고 달린다. 퀘벡주에 들어서니 모든게 불어로 바뀌었다. 그 전까지는 영어와 불어가 함께 표기되었는데 여긴 오로지 불어 뿐이다. 게다가 라디오까지 모두 불어를 쓰니 환장하겠다. 알아먹기는 힘들지만 그나마 고등학교 때 조금 배워서 거부감이 없어서 다행이다. 몬트리올은 생각과는 다르게 그리 깔끔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시 퀘벡으로 향한다.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답다는 퀘벡은 유명한 만큼 기대도 크다. 그런데 여기는 다른 캐나다도 시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주민들이 영국계가 아니고 대부분이 프랑스계라서 그런 것 같다. 귀걸이 코걸이는 기본이고 배꼽에 피어싱을 한 걸도 자주 보인다. 스프레이로 도배가 된 삭막한 골목의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배낭을 메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하지만 나중에 차 를 대놓은 장소를 찾기가 힘들 것 같아서 멀리는 못갈 것 같다. 왜 난 도시구경은 별 흥미를 못느끼는 걸까? 아 직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저녁때 쯤 다시 차를 몰고 퀘벡시를 빠져나와서 다시 몬트리올로 향한다. 여행이 느긋해지니 차에서 자는 것도 유난히 싫어서 다시 몬트리올 근교의 한 소도시에 도착해서 모텔을 찾아들어갔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카운터 여자가 남자친구를 껴안고 질질 짜고 있다. 부러운 것뜰. 그 여자가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려니 생각하고 여행자수표로 계산하면서 여권을 보여주니 자기도 한국인이라며 반가워한다. 그런데 한국말은 전혀 못한다. 무슨 말인지는 못알아 듣겠지만 아마 이민 2세나 입양아 같아 보인 다. 가격은 45달러이면서도 다른 모텔에 비해서 유난히 시설이 좋다. 드디어 여행이 끝나간다. 9월 15일 일요일 자동차 여행의 마지막날.

113 106 제12집 아침부터 비가 쏟아진다. 몬트리올 시내로 다시 들어섰으나 비 때문에 내려보지도 못하고 그냥 다운타운을 관 통해서 빠져나와 버렸다. 다시 토론토를 거쳐서 브랜트포드로 돌아간다. 9월 16일 월요일 왜 난 자꾸 이 작은 도시에서 길을 잃는 걸까? 정들었던 나의 애마 MAZDA Protege를 반납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이틀 남았다. 차를 반납하고 걸어서 돌아오는 길에 또 길을 잃었다. 인구가 적다고 결코 도시가 작은 건 아닌 것 같다. 이 널 널한 땅덩어리가 부러울 뿐이다. 토론토로 가는 내일아침 열차표를 예매하고 집에서 푹 쉬었다. 9월 17일 화요일 여유로움. 7시 30분발 토론토행 열차를 탔다. 열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리어카가 와서 깨우길래 서비스인줄 알 고 홍차를 시켰는데 돈을 받는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아까워서 홀짝홀짝 마신다. 한 시간 만에 토론토에 도착해서 이젠 걸어서 관광이다. 토론토는 인디언어로 만남의 장소 라는 의미를 가 지고 있다고 한다. 그 의미에 맞게 인종의 모자이크 라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70여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 는 인구 350만의 캐나다 제1의 도시이다. 한국에서 올 때 이곳 토론토를 통해서 왔지만 막상 구경은 맨 마지막 에 하게 되었다. 토론토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CN타워(553m)가 있기 때문에 제일 먼저 그곳을 찾았다. 일찍 가지 않으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단다. 타워꼭대기 근처까지 올라가니 아름다운 온타리오 호수와 토론토 시내 가 보인다. 시간이 지나니 사람들이 바글거리는데 동양인이 많이 보인다. 대부분 중국관광객이다. 영국에서 온 흑인여행자와 어울려서 재잘거리다가 같이 사진을 찍고 헤어진다. 못알아 듣는데도 알아듣는 척 고개 끄덕이는 것도 힘들다. 다시 내려와서 다운타운 관광을 하는데 건물들이 모두 개성이 있고 아름답다.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걷다 보니 지루해서 31달러를 내고 뚜껑이 없는 2층짜리 시내투어버스를 타고 2시간 동안 관광을 하는데 꾸벅꾸벅 졸 다가 하마터면 만화의 한 장면처럼 굴다리 아래를 지나치다가 머리통이 날아갈 뻔 했다. 브랜트포드로 돌아가는 아직도 4시간 이 상 남아있어서 뭘 해야 하나 돌아다니는데 선착장이 보인다. 유람선 한번 타는데 5달 러라니 시간도 때울 겸 구경을 하기로 했 다. 온타리오 호수위에서 본 CN타워를 배 경으로 한 토론토가 아름답다. 대부분의 관광엽서사진을 여기서 찍는 것 같다. 40분간 관광을 한 뒤에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이젠 경비행기를 타볼까 하다가 어 차피 내일이면 지루하게 비행기 안에 있어 야 한다고 생각하니 발길이 열차역(Union Station)으로 향한다. 두 시간여를 꾸벅꾸 벅 졸다가 열차를 타고 브랜트포드로 돌아 온다. 이제 정말 여행이 끝나는구나. 온타리오호수에서 바라본 토론토의 CN타워와 다운타운의 빌딩들 9월 18일 수요일 이 아름다운 나라를 떠나는 날 비행기 시각이 밤 11시 50분이다. 하루 내내 일부러 잠을 자다가 다시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오후 6시 30분에 며칠 전에 예약해 놓은 Air Link차량으로 피어슨(Pearson)국제공항으로 출발한다. 바쁘게 생활하시는 외삼촌 외숙모님께 죄송한 생각이 든다.

114 예약한 사람이 달랑 혼자라서 기사 옆에서 함께 가다가 기념으로 1000원짜리 지폐를 한 장 주니 1000이란 숫 자에 당황해서 받지 않으려다가 1달러 조금 넘는 돈인데 그냥 기념으로 준다니 고맙게 받는다. 너무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지루한 시간을 기다리다가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가 이륙하니 그동안의 여행이 너무도 크게 감동으로 다가 오는 것 같다. 다시 이곳을 올 수 있게 될까? 사실 별 준비도 없이 왔기 때문에 이곳저곳 많이는 돌아다녔지만 자세히는 들여다보지 못했다. 아니 계획을 제 대로 세우고 왔어도 20여일이라는 기간동안은 이 광활한 나라 중 몇군데만 보고 갔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캐나다 어디도시를 가면 뭐가 좋냐고 물으면 답을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캐나다의 아름다운 자 연과 광활함을 이야기 하라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즐거움보다는 고통과 외로움이 더 많은 모험같은 여행이었지만 아직은 젊은 날의 사서하는 고생이었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 다시 이곳을 찾게 되면 이런 멋진 고생은 다시는 못하게 되리라. 이방인에게 항상 친절하게 설명하고 대해주면서 작은 정성에도 감동스런 표정으로 미소를 머금어 주던 여유가 넘치는 이곳 캐나디안을 잊기는 힘들 것 같다. 언젠가 여기를 다시 찾아서 그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하리 라. 이제 다시 다이나믹코리아로 돌아간다. 수도: 온타리오 주 오타와(Ottawa) 인구: 약 3천만명 넓이: 남한의 약 100배, 북미대륙의 40%,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 언어: 영어, 불어 공용, 퀘벡주는 불어 전용 1 캐나다달러(CN$): 약 800원 물가: 우리나라와 비슷. 담배는 무지 비싸다(약 4천원정도), 기름값은 우리나라 1/3정도. 디젤차량은 거의 없다. 캐나다 동서 시간차: 6시간 치안: 무지 좋은 편, 히치하이킹 일반화 추천하고 싶은 곳: 아무데나 다. 그래도 록키와 중앙부의 대평원, 온타리오주의 크고작은 호수들은 필수. 평소에 경찰들은 거의 안보이나 문제가 생기면 귀신같이 어디선가 짠~ 하고 나타난다. 후회되는 것들: 텐트와 침낭을 안가져 간 것(캠핑장은 많다, 하다못해 침낭이라도 있었으면 차안에서 약간 편하게 잘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 출발할 때 밴쿠버로 가지 않은 것(밴쿠버는 서쪽 끝이기 때문에 비행 기값으로 30만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다), 차량렌탈옵션을 잘못한 것(무제한 옵션을 못해서 돈 무 지 깨졌다).차밖으로 별로 안나간 것, 돌아다니면서 햄버거만 사먹은 것. 캐나다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인상: 나쁘지는 않다. 아니 캐나다인들은 인종에 대한 편견이 거의 없다.

115 수필, 시, 생활

116 無 等 山 愛 心 지도교수 이계윤(17기) 필자가 무등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약 30여년 전의 일이다. 대학 산악부에 입회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무등산을 찾곤 했다. 요즘에야 버스 노선도 많고, 여러 편리한 시설이 많아 마음만 먹으면 쉽게 무등 골에 안길 수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무등산을 찾으려면 상당한 수고를 들여야 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학 동 삼거리에서 내려 증심사 입구까지 십여 리의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이상 터벅터벅 걸어야 비로소 산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귀찮게만 느껴질 때, 아니면 마음이 쓸쓸하고 공허할 때면 조그마한 륙색에 심란한 속세의 정들을 꾸려서 무등의 품에 묻어 두고 왔었다. 무등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항상, 어미의 품에 안긴 어린 자식 마냥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무등산은 나의 벗이었으며, 안식처였고, 부 모, 스승이었다. 이런 마음은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보았으리라. 이런 무등산이 어디, 나만의 소유이던가? 그런 무등산이 최근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찢겨나가고 있다. 아파트 건설, 순환도로, 온천 개발, 명목도 어찌나 많은지, 안타깝기만 하다. 이러한 개발들은 무등산 자락이 아니어도 광활한 빛고을 구석구석이 수용 해 낼 수 있다. 국토개발이 한창이던 70년대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 그 당시 대구, 포항, 울산 등의 도시들 에 공단이 지어지고, 개발되는 과정을 우리는, 빛고을은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한 풍경을 얼마나 부러워 했던가?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당시의 소외와, 그로 인한 빈곤함이 오늘날에 와서는 얼 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것을 볼 때마다 환경을 볼모로 잡혀 사는 인간의 행복은 허구라 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인류의 발전은 과학 기술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 기술을 무분별하게 남용한다면 우리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인류는 자연 환경의 파괴로 나날이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근대의 서양인들은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이라 여겼다. 자연을 정복해야만 인류의 행복이 도래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자연을 인간의 자원 제공자로만 보았던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통일을 무시한 개발은 자연 생태계를 무자비하게 파괴하였다. 그러나, 이와 반하는 동양식 자연관은 어떠한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우호적인, 공존하는 관계로 본 것이 우리네 자연관이다. 그런데 서구 문명과 사 고가 유입되면서, 우리 역시 개발을 보존보다 우 선시하게 되어 난 개발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 지 우리가 보아온 난 개발은 자연의 재앙만을 불러오고 있지 않은가? 인간사 실수는 세월 따 라 잊혀지지만, 환경사 실수는 세월로 해결되지 않는다. 환경은 결코 인간의 실험 대상이 될 수 없다. 무등산, 이는 우리의 소중한 자연 환경이 다. 산악인이라면 모두가 무등산의 정을 느끼고 무등산을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무등산에서 교수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117 110 제12집 동아마라톤 후기 1. 열림글 출발선에 서서. 먼지가 뽀얏게 일어나던 운동장. 하얀 색 횟가루로 그어놓은 줄에 발끝을 대고 기다리고 있다. 100미터 저편에서 체육 선생님이 빨간색 깃발을 내리면,그때부 터는 무조건 달려야만 했다. 하지만 달릴수록 난 점점 뒤쳐져 지기만 했다. 어느새 같이 출발한 친구는 저 만치 앞서 달리고 있다. 길지 않은 십 몇여 초의 시간동안 난 몇 번이고 주저앉 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35기 김정국(91학번) 기록을 부르는 체육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 마라톤동호회 회원으로 다. 또 한번 지옥을 통과해온 느낌. 요즘은 마라톤에 푹~빠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다시는 그 출발선에 서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성격: 따닷포근 교복을 벗은 후 10여년. 생활상: 마라톤뛰고 공주님 100미터달리기 보다 훨씬 더 힘든 경주를 여러 차례 해야만 했다. 여러번의 만나기 지옥을 힘들게 통과해내고서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하고 체념할 때쯤 이제는 편 미래상: 안한 마음으로 난 한 사람과 함께 달렸다. 그리고 그는 기꺼이 나와 함께 어느 무역업에 종사 지옥이든 함께 할 줄 알았다. 열심히 달렸지만 항상 그랬듯이 달릴수록 그 사람은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숨이 차 올랐지만 난 겁나지 않았다. 내가 견딜 수 없다면 주저앉아 버리면 된다. 그래도 그 사람은 숨을 고르며 날 기꺼이 기다려 줄 것임을 확신했기에. 숨을 고르며 그와 함께 달리고 있는 나를 향해 저만치 앞에서 달리던 그 사람이 내게 말을 한다. 이제 달리기 를 멈춰 달라고. 같이할 수 있는 운명은 자기가 아니라고. 내 말을 듣기도 전에 외면하며 달려가는 그 사람을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며 여러 날을 고민해야만 했다. 내가 하고 있던 달리기는 경주가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겠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하얀 색 줄에 발끝을 대고 기다린다. 진정한 달리기를 위해서. 2.바탕글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려진 축포와 함께 앞사람들이 빠져나가며 나도 조금씩 달리기 시작한다. 축제 분위기 속에 서 밝은 표정으로 달려나가는 사람들. 달리는 이유는 제각각 이겠지만 이제 만 이천 명은 하나의 목표점을 향해 각자의 최선을 다 하겠지. 나도 다짐한다. 최선을 다하자!!! 서울역을 지나 약 3Km쯤 달렸을까 먼저 출발한 등록 선수들과 외국 유명 마라토너들이 반환점을 돌아와 반대 차선에서 엇갈린다. 아마도 이들은 내 100미터 전력질주의 속도로 풀코스를 뛰겠지. 모두들 그렇듯 그들에게 목 청껏 응원을 보낸다. 어쩌면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이리라.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나도 5Km 반환점을 돌았다. 시계를 보니 약 28분. 사람이 워낙 많아 초반 오버 페이스 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또 너무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페이스 인 것 같다. 스피드 칩이 만들어 내는 소리에 언제나 그랬듯이 내 신발에 묶인 스피드 칩이 기록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약간의 불안감이 스쳤지만 무시하고 즐거운 생각만으로 머릴 채워본다. 이제 나도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달린다. 동호회 분들을 찾아 자꾸 눈길이 왼쪽으로 돌아 가지만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모두 나보다 먼저 달리시나? 나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데 고맙게도 형석이가 나를 부르며 힘차게 파이팅을 외쳐 준다. 적당히 몸도 풀렸다고 생각되어져 속도를 조금 내어 달려 보기로 하지만 이

118 런, 화장실에 가고 싶어진다. 출발 전 화장실에 한번 더 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바보 같이 또 사소한 것을 놓치 는 나를 확인해야 했다. 남대문을 지나 10Km지점 음료수 테이블에서 목을 축이고 4시간 페이스 메이커 뒤에서 주유소(화장실)만을 찾 아 뛰고 있다. 이곳은 조금 눈에 익은 길이라 사람이 많아 보이는 주유소는 지나치고 달리다 보니 한세정님, 민 병락님, 그리고 염창인님까지 여러 분들을 만난다. 첫 풀코스 도전이라 4시간 페이스 메이커 뒤만 달리다 보면 35Km 이후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고 결국은 페이스 메이커 보다 쳐져 목표인 Sub-4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그리고 내가 연습 때 달리는 속도 보다 조금 느려서 거의 숨도 차지 않으므로 지금 4시간 페이스 메이커 앞에서 뛰어 놓으면 후반에 쳐짐을 만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러 분들을 제치고 앞으로 달려 나선다. 그리고 화장실 에 들려 무겁던(?)몸도 가볍게 한다. 이후 20Km 지금까지는 Fun Run 하면서 응원 나온 시민들에게 손도 흔들어 보이며 파이팅도 외치며 즐겁게 달린다. 사실 성격이 예민하여 새벽에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서 회원님들 주무시는 것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던 가. 그리고 출발 전에 약간의 두통에 걱정했는데 그 어느 때 보다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달리고 있다. 20Km 기록은 약 1시간 39분. 썩 괜찮은 기록에 스스로에게 기특하다. 이대로만 계속 달릴 수 있다면. 동서울 터미널을 지나 잠실대교. 차를 타고 지나치던 이곳을 바람 맞아가며 내가 뛰고 있다. 정말 긴 다리. 결 승점이 다리의 끝에라도 있는 듯 속도를 내 보지만 쉽게 잠실대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실대교 마지막 지 점에선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잡아 준다. 그리고 물어본다 아이 미디어 맞죠? 오른편에 잠실 주경기장은 가까이 있지만 내가 달려가야 할 길에 이제 절반을 약간 더 달렸을 뿐이다. 추억이 많이 있는 롯데월드를 지나쳐 이제 올림픽 공원을 크게 돌아 가락동으로 빠지는 코스를 머리에 그리며 마음만 자꾸 앞서 나간다. 평화의 문을 지나치면서 이어지는 쭉 뻗은 직선에서부터는 맞바람이 많이 불어 달리는 데 상당히 부담이 된다. 하지만 모두들 묵묵히 달리는데 나도 힘을 내본다. 30Km 지점을 통과했다. 이곳은 스피드 칩 센서가 설치되어 있어서 통과하면서 나도 시간을 체크 하니 2시간 36분. 남은 거리가 약 12Km이고 Km당 6분 페이스로 달린다면 Sub-4는 물론이거니와 3시간 40분 벽도 깰 수 있다는 머릿속의 얄팍한 계산. 음료수 테이블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파워젤을 먹으며 짧은 스트레칭으로 피곤한 다리도 풀어 준다. 힘들지만 외롭지 않게 달릴 수 있었다. 20여 미터 앞에 노병섭님이 노란 우리 동호회 유니폼을 입고 달려 주고 계시기 때문에. 저번 광야하프에서도 뒤에 따라가다 결국 쳐진 기억이 있어서 약간의 무리를 감수하면서까지 노 선생님 보다 쳐지지 않기 위해 뛴다. 힘들게 힘들게 35Km 음료 지점까지 따라 갔는데, 노선생님이 음료를 드시 고 앉아 버리신다. 걱정스럽게 괜찮으시냐고 물었더니 스트레칭 하신 다며 아직 힘도 많이 남아 있다 하신다. 난 죽을 맛인데. 마치 마지막 무기처럼 파워젤을 먹으며 잠깐 서 있는데 오른쪽 허벅지에 쥐가 난다. 그래도 무거운 배낭 메고 산에 다니며 꾸준히 단련한 다리인데, 3시간 달렸다고 다리에 쥐가 나다니. 노선생 님이 자꾸만 눈에서 멀어진다. 따라 가야지 하면서도 한발한발 내딛는 건 고통 그 자체다. 그래도 쉬지 않고 달 린다. 하지만 37.5Km 지점 물 스펀지 지점을 통과하고는 결국 걷고 말았다. 걷기만 해도 뭉치는 왼쪽 근육 그리 고 고통도 마찬가지다. 김남주 시인이 떠오른다. 불꽃처럼 살다 가신 분. 췌장암으로 고생하며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불알을 평 평한 돌 위에 올려놓고 돌로 내려쳐 끝내고 싶은 고통이라 했던 분. 이런 생각을 하며 이게 정말 내게 한계 상황 인가를 스스로 묻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부른다. 뒤돌아보니 한세정님이 정국아 힘들어도 절대 걷지마! 그렇게 앞서 가시고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어쩜 평소 걷는 속도보다도 느리겠지만. 고개 숙이고 땅만 보고 뛰고 있는데 ꡒ이제 다 오셨어요. 조금만 힘내세요.ꡓ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신다. 응원 나온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걸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곧 결승점이라는 건 다른 대회의 경험으로 알 수 있다. 그래 후회하지 말고 마지막 힘을 내자. 다시 고개를 들고 최대한 바른 자세로 속도를 조금 내어 달린다. 그러자 다리 고통도 잊혀진다. 오직 결승점을 빨리 통과하고픈 욕망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잠실 경기장 트랙을 지나 결 승점을 통과했다. 허망하게. 3. 맺음글

119 112 제12집 살아가는 일은 어쩜 언제나 시작하는 무엇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뒤돌아보니 그 누구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심정으로 풀 코스를 뛰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또다시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무엇이든. 동아를 향해 출사표를 던졌던 날의 글로 끝냅니다. 어쩌면 오기인지도 모른다. 살면서 쉽게 잊어버리는 길들여진 일상에선 더욱 그렇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엉겨 붙은 내 식대로의 삶의 방식에 이제 무언가 자리 잡아야 할 때다. 가슴에 묻어 두었던 애착만큼 주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여유도 없고 더 이상 물러설 자리도 없기 때문이다. 시간 속의 자신과 치열하게 싸웠지만 꾸 준히 고민하고 사고하며 달리는 과정에서 땀 흘리는 나를 이겨보지 못하리라. 노력했는데도 되지 않고, 믿고 있지만 기댈 수 없고, 사랑하는데도 허전하고, 진실했는데도 의심받고,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이룬 것 없는 내 모습.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 *지난 3월22일 제 73회 동아 마라톤 대회 참가 후 제가 활동하는 광주달리기동호회에 올렸던 글입니다. 첫 풀 코스 출전이었고 3시간 55분 30초의 기록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글이 책으로 나올 때쯤이면 춘천 마라톤을 뛰었 겠네요.

120 누군가가 누구에게 한참동안 멍하니 과거를 되짚어 봅니다. 그런데 웃음밖에 나오질 않아 다시 되짚어 놉니다. 40기 정종천(96학번) 2001년도 YB회장 별명: 뚜껑^^(이유불명) 특 기 : 전남대산악회 술값 쏘기, 산행 보고서는 안쓰지만 비망록에 는 수필 쓰기 한참동안 현재를 이러저리하다가 결국에는 다시 이리저리가 됩니다. 그래서 그냥 놔둡니다. 좋아하는 낱말: 혼돈, 카오스, 뇌리 신체 특징: 개미허리(여자회원들의 눈총 대상) 생활상: 전,조대에서 토익공부 한참동안 미래를 들썩들썩하니 뭔가가 보입니다. 결국에는 전남대학교 산악회더군요. 그래서 그냥 놔둡니다. 미래계획: 대학원진학+03년 동계참가 예 약

121 114 제12집 항상 느끼고 싶은 것 40기 정종천 땀방울이 더운 공기에 밀려 2등이 된다. 1등이 되어야 좀 더 시원해질 나 바람이라는 응원이 없어 홀로 고군분투해야 하는 땀발울 거기에 모자의 그늘도 없어 갑자기 뒤에서 1등을 앞지른다. 전남대 산악회라는 보이지 않는 것이. 월출산에서 벚꽃과 함께

122 비망록 글모음 와~ 가을이당^^ 쿠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만큼 새로운 마음과! -.- 새로운 각오로! 돈을 모아 연습장이랑 이 볼펜을 샀습니다 ㅜ.ㅜ 아깝군요. 펜 하나 잘못 골라 2000원이나 띠끼다니... 근데 얇고 부드러운 것이 조쿠마... 쩝! 용주랑 복희랑 민재랑 가영이는 이제 2열에서 살 겁니다. 점심땐 형, 언니들 각오하셔요~ 케케 7시 반까지 오자고 한 걸들이... 제가 늦게 갔던 것일까요? 벌써 모두들 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대요. 허허 기특한 것들. 2학기가 되서 모두들 처음엔 공부해야지... 하며 뾰로롱 동방을 나가시는데. 몇 주 뒤에, 아니 며칠 뒤에도 그럴랑가는 두고 봅세! 마무리 얼릉하고 우리 복자가 분식점에 가자고 보채네... 이쁜 연습장이랑 쓰고 픈 맘이 콸콸 넘치네용~ 자주 씁시다. 산이 있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다. 내겐 젊음이 있기에 에 간닷! - 김가 (월) 날씨 아주 좋음 태풍 루사가 지나갔나 봅니다. 참 오랜만에 날씨가 맑군 요. 쩝! 모두들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없었나 걱정입니다. 어제 할 일도 없고 해서 학교에 왔습니다. 곧 이어 가영이도 오더군요. 아마 제가 혼자 학교에 있다 고 지순 언니가 보냈나 봅니다. ^0^ 가영이랑 뭐할까 하다가 용주와 민재를 불러냈습니다. 가영이가 한 턱 쏜다고요... 흐흐 그렇게 우리 넷이서 후문에 나갔죠. 나가서... 먼저 팥빙수를 먹고 그 다음엔... 떡볶이, 쫄면, 라면, 김밥... 무지무지 먹어댔죠. 배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부풀더군 요. 이 배를 꺼트리기 위해서 그 다음으로 우리들이 간 곳

123 116 제12집 은... 오락실이죠. ^^ 헤... 오락도 열라게 하고 넷이서 합동으로 잘못된 곳 찾는 게임도 했죠. 우리 네명은 패밀리를 결성해서 낼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자고 했지요.(얼마나 갈지는..) 아무튼 그 덕에 저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행여나 늦을까봐 부랴부랴 준비해서 백도로 향했 죠. 도착해 보니 용주만 나와 있더군요. 이쁜 것! 우유까지 준비해서... 근데 시작은 좋았는데 3시간을 못 앉아 있겠더군요. 오랜만에 의자에 앉아보니 엉덩이뼈가 너무 아픈 거예요. 바로 일어나서 동방으로 와버렸죠. 크... 아휴 첫날부터 이래서야 이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아무튼 우리는 그래도 열심히 할겁니다. - 뽁 날씨 : 더워 죽겠음 비가 며칠째 안 옵니다. 살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지리산 산행이 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못갈 것 같습니다. 인수봉에 가기 위해서 근신해야 하걸랑요. 도서관에 안 나간지 오래 됐습니다. 정신 차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겠습니다. 모두들 얼굴 보기가 힘듭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는지... 특히 현주 언니 얼굴 보기가 어렵네요. 얼굴 좀 보여 주세요. 언니~ 요즘 아침 저녁으로 푸삽을 합니다. 하루에 50개씩 하면 암벽을 잘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50개를 한 번에 하기는 엄청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나눠서 하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의 한가로움을 맘껏 즐기고 싶습니다. 곧 보고서 쓰느라 바빠지고 중간 고사가 오면 엄청 바빠지겠죠. 모두들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한가로운 여가 시간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세요. 도서관에만 처박혀 있다가는 냉방병에 걸립니다. 그러면 사람이 무기력해지고 짜증만 납니다. 이 한창 나이에 도서관에만 있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인생을 즐기며 살아 야죠.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다고요? 그렇게 생각 한다면 야 굳이 반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늘하루도 파이팅! - 뽁 - 잼 있는 이야기 키스단계) 눈치 (--+)(+--) 키스단계) 딴청 (-- )( --) 키스단계) 민적 (^.^)(*^^*) 키스단계) 접근 ( --)(-- ) 키스단계) 키스 ( ^><^ ) ^*^ 껌 씹고 있네

124 ^0^ 풍선껍이네 골뱅이잖아 + 시험기간 동안 환장 : 열심히 중이에 쓰고 예행연습까지 했건만 그날 따라 선생님이 자기 주변만 돌아다닐 때. 2. 열심 : 컨링하다 들켜서 반성문 100장 쓰면 부모님 부르지 않는다고 할 때. 3. 치사 : 그래놓고 반성의 기미가 안 보인다고 결국은 부를 때. 4. 창피 : 이런 학생 되지 말라고 교내 방송 때릴 때. 5. 엽기 : 쫌 있으니까 반 전체가 짜고 컨닝해서 들어올 때. 6. 다행 : 걔네 들은 엎드려 뻗치기 할 때. 7. 예술 : 선생님이 발로 차자 42명이 환상질주 도미노 가 펼쳐질 때. 8. 눈물 : 그 도미노 대열에 나도 끼라고 할 때. 우리가 공부를 못하는 이유 1. 1년은 365일이다. 그 중에 일요일이 52일이다. 일요일은 노는 날이다. ----> 313일 남았다. 2. 여름방학(대학이랑, 초중고를 평균으로 놨을 때) 60일 여름...덥다... 공부 절대 못한다. ----> 253일 남았다. 3. 하루에 8시간의 수면 122일 잠은 자야 하잖아. ----> 131일 남았다. 4. 하루에 한 시간동안 운동 및 다른 행사 15일. ----> 116일 남았다. 5. 2시간 동안 식사 및 군것질 시간 30일 ----> 86일 남았다. 6. 평균 시험기간 30일. 원래 공부는 이때 하는게 아니다. 시험은 평소 공부한 걸로 보는 거다. ----> 56일 남았다. 7. 겨울방학(초중고랑 미국대학을 평균으로 놨을 때) 20일 정부에서 난방비 아깝다고 쉬라고 정해줬다. ----> 31일 남았다. 8. 다른 빨간 날(광복절, 추석...) 20일 일요일과 더불어 노는 날이다. ----> 11일 남았다. 9. 아파서 미치는 날 (마법에 걸리는 날 포함) 8일 아픈데 쉬어야지 무슨 공부냐 ----> 3일 남았다. 10. 성적표 나오는 거 기다리는 기간 3일. 성적표 낚아채야 한다. 이별할 때 반드시 버려야 하는 열 가지가 있다.

125 118 제12집 첫째, 사랑했던 기억. 둘째, 다시 돌아올 거라는 기대 셋째, 내가 아니면 안될 거라는 자만 넷째, 친구라도 함께 하고픈 욕심 다섯째, 날 오랫동안 기억해 주길 바라는 이기심 여섯째, 다른 사람 만나지 않길 바라는 희망 일곱째, 함께 있을 때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 여덟째, 우연을 바라는 집착 아홉째, 널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인연 그리고 열번째, 이직도 널 사랑하는 내 마음 담배가 애인보다 좋은 이유^^ 1. 천백 원이라는 돈을 투자해서 앤에게 귀염받기란 엄청 힘들지만, 담배는 적어도 스무 번의 즐거움을 준다. 2. 앤은 양다리(?) 잘 못 걸치면 좆되는 수가 있지만... 담배는 88피다가 디쁠러스로 바람 (?) 펴도 절대 삐지지 않는다. 3. 앤은 밥 먹고 키스하믄 짐승(?) 처럼 쳐다보지만, 담배는 식후에 더 땡긴다. 4. 앤은 화장실 같은 진실한(?) 곳에서 만날 수 없지만, 담배는 그런 곳에서 만날 때... 더 삶의 심오함을 느낀다. 5. 앤은 아무리 좋아도 계속 가슴에 품어 둘 수 없지만, 담배는 늘~ 품어두면서... 든든함(?)을 느낀다. 6. 앤은 화날 때 만나면 화난 척(?) 하기도 어려울지 모르지만, 담배는 늘~~ 기분을 풀어준다. 7. 앤과 함께 걸을 땐 한눈 팔기 힘들지만, 담배를 피면서는 한눈 파는게... 자연스럽게 보인다. 8. 앤은 한달에 한번 마법에 걸리지만, 담배는 절대로 걸리지 않는다. 9. 앤은 비싸게 놀면 할 수 없지만, 담배는 싼 것도 있다. 10. 앤이 싫다고 하면 할 수 없지만, 담배는 싫다고 해도 필요 없다. 무조건 내맘대로 필수 있다. 아침에 기숙사에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정말 가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늘도 맑고 바람도 신선하 고, 구름도 새털처럼 예쁘게 하늘 높이 떠있네요. 이대로 책가방 메고 어디로 확 가버릴까 하는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게 하는 날씨 같아요. 오늘 오전엔 응급소생술(?)이란걸 배웠어요. 다들 간호학과라고 하면 누구나 첨부터 인공호흡을 할 줄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랍니다. 인공호흡은 3학년 2학기때 배워요. 디따 큰 앤 이라는 마네킹에다 대고 인공호흡 했습니다. 숨을 불어넣으면 가슴이 올라왔다 내려 갔다하고 제대로 하면 맥박까지 살아나는 아주 비 싼 마네킹이랍니다. 이제 하계 마지막 날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물에 빠져 숨이 멈춰 있으면 제가 인공호흡 해 드릴 테니까. 왠지 이 말듣고 모두 무에 안 들어갈 것 같은...

126 -연주- 10월 18일 (금) 오늘 드디어 자전거를 잃어버렸다. 내 자전거가 보고 싶다. 내가 그제부터 도서관 앞에 세워두고 집에 안 가지고 갔다. 한동안 외면했더니 녀석이 사라져 버렸다. 잃어버린 사실에 짜증나고 날씨에 경환형 책분실에 내가 한심해서 짜증이 머리끝까지 찼었는데. 조금 생각해보면 내 탓인 거 같다. 자전거가 한 동안 아니 어쩜 오랜 전부터 저를 아끼지 않고 필요할 때만 타고 다니는걸 눈치채고 사라져 버렸나보다. 치...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게 이제 막 익숙해 졌는데... 구두도 안 신으려고 했는데.. 치... 현주 언니가 2박 3일로 순천에 갔다. 내~참. 나도 웃기지... 왜 짠한 척을 하고 난리지... 빡곰!!!!!! 이번 주 동안 장민형이 한번도 안 보인다. 흠... -빡곰- 그저께까지는 우울함이 만 땅이었는데 어제 추월산을 다녀온 뒤로 많이 좋아졌다. 담양댐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괜찮은 산이었다. 가을 냄새가 나는 산을 가본 적이 얼마나 됐더라... 기말고사가 끝나면 그런 모습을 보기가 힘들 거 같아서 엄마아빠를 따라 나섰다. 역시 가길 잘했지. 내 우울증 치료제는 산인가 보다. 다음주부터 기말고사가 시작된다. 한시도 쉴틈없이 몰아치는 시험들... 그래도 이번만 넘어가면 한숨 돌릴 수 있겠지. 산에도 많이 갈 수 있고, 시간이 없다 는 말은 정말 시간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일까 아니면 마음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일까. 자신과 타협해 가면서 한발 두발 물러서다 난 여기까지 와버렸나보다. 아 슬퍼라. 그래도 이렇게 계속 타협하면서 살겠지. 누군가에게 떳떳하기보단 내 자신에게 떳떳하면 된다는 아주 비겁한 변명을 위안으로 삼으면서... 다음주엔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 정일형 결혼식 날엔 맑겠지! - 연주 - 추계를 무사히 끝마치고 왔다. 또 집에서 혼났다. 재우형과의 첫 산행을 정말 뜻 깊었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재우형의 이미지와는

127 120 제12집 다른 면을 많이 발견했다. 앞으로의 산행도 기회가 된다면 재우형과 함께 가고 싶다. - 뽁 -

128 특 집

129 122 제12집 앙케이트로 알아보는 우리들 속마음 43기 전현주(99학번) 수학통계학부 별명: 날카리 역대 가장 탁원한 조장, 운행, 곰탱이 4마리중 1마리 이번 제 12호 악우지를 위해서 모두들 글을 하나씩 쓰기로 했다. 난 어떤 글 을 올릴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데.. 글 솜씨도 없고 글 쓰는 걸 싫어하는 나에겐 정말 그 어떤 레포트보다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갑자 기 아!! 하고 생각난 게 있었다. 설문지를 만들어서 그 결과를 분석하는 것 이다.(내가 통계학과니까 배운 것도 써 먹을겸^^) 이렇게 생각하니 문항들이 하나씩 떠오르고 이것도 물어보고 싶고 저것도 물어보고 싶고...(혼자 신났 다)^^ 처음으로 만들어본 설문지라 설문내용이 엉성하고 문항들도 너무 주관 적이라 처음에 의도했던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응답할 때도 하나씩만 골라야 하는데 해당하는 것 다 골라서 나중에 분석하는데 아주 애 를 먹었다-.-;; 아직 많이 미흡하지만 그래도 내가 4년동안 배운 것을 총 동원해서 멋진 설문지 그리고 멋진 설문분석을 통한 결론을 내려 보겠습니 다^^. 조사대상: 전남대학교산악회재학생(막 졸업한 재학생같은(?) OB 3명 포함 ) 남자 : 10 명 여자 : 6 명 그럼 이제부터 설문지 분석에 들어가 볼까요..^^ ** 산악회의 시작 ** 첫 번째 질문... 산악회 들어와서 학기초에 가장 많이 듣는 질문.. 너!! 산악회 왜 들어왔냐? 이젠 너무나 많이 들어 대답하기 좀 식상한 질문 그렇지만 꼭 물어보고 싶은 질 문... ^^ 1. 산악회에 들어온 이유는? 여행 다니고 싶어서 산이 좋아서 다른사람의 권유로 기 타 설문 응답 결과 여행 다니고 싶어서 가 31.3%(5명) 가장 크게 나타났다. 그리고 기타의견이 37.5%(6명) 이나 나왔는데 재밌 는 기타 의견으로는 그때 제정신이 아니어서, 실컷 걷고 싶어서, 멋진 남에 반해서... 등 여러 가지 답이 나왔습니다^^ 두 번째 질문... 너 아직도 안 빠졌냐? ( 많이 들어봤죠?) 산악회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서 우리 회원 대부분(50%)이 산이 좋아서 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이 사람이 좋아서 로 나타났다. 세 번째 질문... 힘든게 남는거야. 과연 가장 힘들었던 산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산행일 까요? 가장 힘들었던 산행 에 대한 질문에서 1학년 춘계 와 하계 가 각각 43.8%(7명) 로 나타났다. 그리고 가 장 기억에 남는 산행 에 대한 질문에서는 하계 가 무려 62.6%(10명) 로 반면 춘계는 18.8%로 나타났

130 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가장 힘든 산행은 1학년 춘계훈련등반이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산행은 2학년 하계장 기등반입니다. 춘계는 산악회 들어와서 처음으로 가장 힘든 산행, 가장 힘든 분위기 적응...등 처음 겪는 (?) 거라 힘든 산행이라고 한 것 같고, 하계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산행이라고 한 건 일단 장기등반이다 보니 이런저런 사건도 많고 그만큼 재밌는 일도 많고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그리고 힘든 산행이 기 억에 남는 산행이다 는 말은 이제는 좀 맞지 않는 것 같다... **우리의 생활공간...동아리방에 대한 조사 ** 우리 회원들이 하루에 동아리 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평균 2시간30분으로 나타났다. 주로 1학년들은 평균보다 많은 시간을 동아리방에서 보내고 고학년으로 갈수록 동아리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별로 새로운 결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선배들도 동아리방에 관심을 갖고 자주자주 들렀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동아리방에 오는 주된 이유( 꼭 이유가 있어서 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괜히 오진 않을 것 같아 서 )를 물어봤더니 놀랍게도 밥먹으로 온다 가 31.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동아리방에 빨리 밥해먹기 편 한 전기밥솥을 들여 놔야할 것 같다^^ 특이한 기타 의견으로는 회의하러 온다 ( 김모양의 응답으로 보통 회원들과 다른 곳에서 수업을 받다보니 이런 엽기적인 응답이 나온 것 같다.), 습관적으로 온다( 한모형의 응답입니다 이 응답을 보니 괜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건 무엇 때문일까요^^) ** 동아리방 금연이후 어떻게 변했나 ** 올해 3월달부터 동아리방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됐습니다. 우리 산악회의 흡연자 : 비흡연자 비율이 1 : 4 로 비흡연자가 월등히 많고, 그리고 좀더 나은 동아리방의 공기를 위해서 대장님의 선포 하에 금연구역으로 지정됐습니다. 그래서 만약 동아리방에서 담배를 피다 걸리 면 벌금 만원을 내야 합니다. 이렇게 벌칙까지 정해놓고 시작한 동아리방 금연!!... 처음에는 잘 지켜진 것 같았다. 아니 계속 잘 지켜지고 있었다. 한 명만 빼고...-.-;; 그 한 명은 바로 바로 재학생도 아니요 왕고도 아니요 바로바로 얼마 전에 졸업한 오 장 민 형 이다. 형이 동아리방에서 담배 필 때마다 장민형!! 담배 좀 피지 마세요...그만 피세요..빨리 만원 주세요!! 등등.. 계 속 말을 했지만 도무지 먹히지가 않았다. 오히려 아무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는 사람 장민형!! 심지어는 홈 페이지 게시판에 올린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윽...정말 누가 장민형 좀 말려주세요...오늘(10월 23일 수요일)도 아무 꺼리김없이 여전히 동아리방에서 담배를 피셨어요-.-;; 흡연자중 동아리방 금연이후 동아리방에서 담배를 몇 번이나 폈나? 흡연하는 형들 대분분이 한 두 번 은 폈 다고 실토했다. 그리고 몰래 담배를 폈을 때의 느낌... 조금 미안하다..., 아무느낌 없다..., 아주 엽기적 인 대답!! 고등학생이 된 느낌이다..^^ ( 누굴 까요? ) 아무튼 형들 우리 동아리방은 우리가 사랑하고 소중히 지켜야할 공간이니까 아무도 없다고 해서 담배피시면 안돼요~~~ 알았죠!! **산악회와 나의 생활** 산악회를 열심히 하다보면 시간도 많이 뺏기고 알게 모르게 돈도 많이 들고(장비 사랴..산행 비 내랴...후 배들 밥, 술 사주랴..등등)...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산악회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입니까?

131 124 제12집 우리 회원들 대부분이 학업과의 병행이 어렵다 라고 대답했다. 산악회 생활하면서 학업과의 병행이 가장 어렵다. 물론 저도 동감하는 부분이고 특히 저학년으로 갈수록 더욱더 동감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산에 가기 전에 산행준비하고 주말마다 산에 가고 그러다 보면 주중에 좀 피곤해서 수업 빠지고 이러이러하다가 시험기간 다가오고... 누구나 다 동감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몸이 적응이 되고 또 조금만 더 부지런해지면 이 부분은 조금 해결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많이 나타난 것으로는 가족과의 마찰,"분위기 적응 으로 나타났습니다. 특이하게 함모형 만이 산행 중 노래 라고 대답했습니다^^ **술에관한 앙케이트** 산악회 하면 술...땔래야 땔 수 없는 부분이죠^^ 그렇다면 우리 회원들은 어떤 술 어떤 안주를 가장 좋아할까요? 놀랍게도(?) 선후배 상관없이 모두 맥주를 좋아한다고 했다. 제 생각엔 후배들은 맥주를 좋아하고 선배들은 소주를 더 좋아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선후배 모두 맥주를 더 선호했다. 8 반면 기타가 33.3%(5명)나 나왔는데 기타의견 모두 술이면 다 7 좋다... 가리지 않는다... 등 좋아하는 술을 꼭 찍어서 말하지 않는 애주가들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안주에 관한 질문에서는 과일안주가56.3%로 압 도적이었다. 그 다음이 아무거나로 25%차지...!! 이제부터 회 의 끝나고 또는 산에 갔다와서 뒷풀이 할 때는 소주 먹을지 맥 빈 1 도 0 결측값 소주 맥주 막걸리 기타 주 먹을지 고민하지 말고 맥주 집으로 가면 될 것 같다^^ 그리 고 안주시킬 때도 고민하지 말고 바로 과일안주로 시키면 오케 SQ6.1 이~~ 재미로 우리 산악회에서 YB중 술을 가장 잘 마시는 사 람을 뽑았는데 바로바로 올해 회장을 맡고 있는 한성필 형이 1 등을 했다. 역시 대장님은 술을 잘 마시는 것 같다.^^ ( 참고로 술을 가장 못 마시는 사람은 도균형이래요~~) 이렇게 해서 제가 준비한 설문조사분석은 다 끝났습니다...휴...금방 할 수도 있었는데 하루 이틀 미루다가 마지막에 겨우 마감일 을 맞췄습니다... 분석하면서 혼자 웃기도 하고, 전공 레포트 보다 더 머리가 아프 기도 하고...그래도 이렇게 마치고 나니 맘이 시원하긴 하네요.. 재밌게 읽으셨어요?

132 대학 산악문화 발전 방향에 관한 모색 논문 (크로스 컨트리전 세미나에서 발표했던 논문 내용입니다. 생각나는 데로 쓴데다가 따로 교정을 받지 않아 이상한 문장이 많지만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주 제: 대학 산악문화 발전 방향에 관한 모색 소주제: 산악회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수평적 역할 분담 체계를 만들고 작은 산악회를 만들어 결속력 강화시키자! 42기 안선희(98학번) 중어중문학과 별명: 알카바 생활상 :졸업하면 뭐할까 생각 만 함 지위:곰팅이네마리중 1인 좋아하는 동물:나옹이 98크로스컨트리 1위 99목대C_C1위 99암벽등반대회1위 01대통령등산대회1위 좋아하는 것:칠성사이다 싫어하는 것: 빠따 미래 꿈: 중국보따리장수 대학산악부는 최근의 신입생감소와 함께 재학생 선배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광주 전남 대학산악부의 공통점으로는 재학생 회원감소로 인해 대부분의 산악 부가 두 자리 수를 넘기지 못하고 있으며 재정부족과 산행경험이 풍부한 산악인 부족으로 유지 또한 어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작년도의 경우 전남대학교 산악회는 신입생을 받지 못했으며, 송원대, 동강대 는 현재 재학생이 없는 실정에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광주, 전남 대학산악부 가 신입생유치에서 1, 2명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재학생이 없는 산악회는 OB선배님이 직접 신입생을 모집하는 경우도 어제, 오 늘의 일이 아니었고, 설사 모집했다 하더라도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경 우가 다반사입니다. 신입생뿐만이 아니라 재학생 선배들 역시 전적인 산악회 방식에 반발을 가지 고 탈퇴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산악회 내의 산행이외의 많은 행운으로 학업과 생활에 지장을 받고 탈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현재, 대학 산악부가 이러한 침체의 위기에 놓여 있는 반면 인터넷 산악회, 백두대간 동호회를 비롯한 테마산행 동오회 및 일반 등산문화는 더욱 보편화되 고 있는 추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산에 대한 관심이 늘고 산에 가고 싶어하고 산에 가는 법에 대 해 알고 싶어하지만 산에 다니기 위해 무언가에 소속되어 자신의 다른 생활을 희생 내지는 포기하고 일정기간 이상 계속해야만 한다는 부담과 짐을 갖기는 싫 어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반된 견해에 고리를 끊을 수 있다면 산악회의 신입회원 확보 및 내부적으로는 재학생들의 고민을 해 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해 대학산악부내의 문제점에 대해 하나 하나 짚어보고 해결방법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산악부의 침체를 가져오는 문제점으로는 몇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로 가장 큰 문제인 신입생감소를 들 수 있습니다. 원인으로는 산악회 특성상 가지고 있는 위험하다는 이미 지, 힘들다는 이미지, 강압적인 이미지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미지의 선입견은 산악회의 본질인 알피니즘과 적극 적 자유정신 산악회의 장점인 선배를 믿고 따라주고 후배를 아끼고 챙기는 선후배간의 연대를 느끼기도 전에 신 입생들로 하여금 겁에 질리게 하고 대학산악부에 적대감을 갖게 합니다. 이러한 첫 이미지를 갖게 하는 요소로는 동아리방의 분위기와 첫 산행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행장비인 자일, 피켈, 대형배낭이 노출된 동아리방은 위험하고 힘들다는 이미지를 갖게 합니다. 따라서 동아 리방의 산뜻한 인테리어는 첫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좋은 해결방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남

133 126 제12집 대의 경우 올해 동아리방을 새로 인테리어 하였습니다. 수납을 늘려서 모든 장비의 노출을 막았고 어두운 계열의 무거운 분위기의 가구를 밝은 색상으로 덧칠하였으며 동아리방 내를 금연구역으로 하였습니다. 생화나 조화를 이용해 밝은 분위기 조성에 노력하였습니다.(카페 같은 분위기조성) 결과적으로 작년도와 비교해 많은 신입생이 들어 왔습니다. 이러한 동아리방 인테리어를 위해서는 재학생들의 관심과 O*B선배님들의 지원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입 니다. 다른 문제로는 첫 산행을 들 수 있습니다. 산행 기초 지식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선택된 방법인 강압적인 교육 위주의 첫 산행은 산악회의 무거운 이미지를 형성하는 또 다른 요인입니다. 따라서 부담 없는 코스의 놀이위주의 산행으로 개강등반이나 신입생 환영등반등으로 첫 산행을 꾸려 신입생들의 산행 관을 들어주고 이해해준다면 신입생이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접하기 시작 할 것입니다. 훈련등반이나 하계를 첫 산행으로 들어가게 되는 신입생이 있다면 출발 전 무 등산등 가벼운 산행을 계획해 보는 일도 고려해 볼만한 방법중의 하나입니다. 대학산악부의 침체를 가져오는 두 번째 문제점으로는 재학생의 인원부족과 편 중된 역할분담을 들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산악회의 산행준비 및 일 처리 과정을 보자면 대장은 명령을 내리고 이에 조장은 1학년을 데리고 몸으로 뛰며 중간기수는 점검을 하다가 미진한 부 분을 발견하면 집합이나 얼차례를 통해 다시 조장을 시킵니다. 이러한 조직체계는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결과적으로 모든 일의 짐을 조장에게 떠넘기는 것이 되어버리고 맙니 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신입생들이 산에 가고 싶어하면서도 산악회를 들기 꺼려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조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회원에게 산악회의 행정이 편중되어 왔던 이유로는 산행은 습관으로써 익혀지는 것이 고 산행 및 산행준비 그에 따른 모든 부분들을 습관화 될 때까지 몸으로 익히고 반복하는 것이 최고로 좋은 방법 이라는 학습적 명분이 있었습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산악회 내 많은 행정으로 학업과 생활에 지장을 받아서 탈퇴했던 대부분의 회원이 조장의 직 책을 맡고 있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탈퇴했던 회원의 생활관리능력을 비판하기보단 이러한 편중된 역할 분담의 변화를 고려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형태로 역할분담이 이루어져야 할까요? 좋은 예로는 해외원정 준비시 역할 분담을 들 수 있습니다. 산행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역할분담이 함께 이루어 지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등반지원을 위한 원정대장, 등반계획을 위한 등반대장, 항공 및 기차 이동에 관한 운행 대원, 체력관리를 위한 훈련대원, 장비대원, 식량대원, 기록대원, 의료대원으로 나뉘어 맡은 바를 준비하여 산행 을 꾸리고 각각의 맡은 분야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여 진행과정과 결과를 무리 없이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효율적인 역할 분담을 본받아 대학 산악부 역시 산행 계획을 할 당시 대장의 직책을 맡은 회원은 회의 를 통하여 재학생들간의 차량이동, 식량, 공동장비, 운행장비, 개인장비, 회원간 연락망, 총무등으로 역할을 분담 하고 서로 진행과정을 점검하며 각자의 분야별에서 가르쳐야 할 사항을 신입생들에게 돌아가며 가르친다면 산 행준비에 관한 신입생 교육 역시 보다 더 체계적이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산행 마무리 역시 회원연락과 장비, 총무 그리고 가장 중요한 1학년 관리를 나눈다면 조장에게 편중된 짐 을 효율적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산행준비의 역할분담에 관한 내용이었으며 실제 산행에 있어서는 어떤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 을까요? 실제 산행에 있어서는 대학 산악부는 공통적으로 잘 짜여진 뚜렷한 역할분담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입회원은 집중된 짐분배와 딱갈이를 배우고 조장회원은 1학년 교육 및 선등과 독도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가며 운행회

134 원은 조장과 함께 신입회원 교육과 산행방법과 일정을 조절하게 됩니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힘든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산행경험이 중요한 요인이라서 서로 공유 될 부분 역시 별로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위치가 대학 산악부에서는 학번을 위주로 주어지기 때문에 여성회원의 경우 군복무를 마친 남성회 원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데서 오는 갈등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산행보다는 준비와 마무리 과정에서 오는 경우가 일반적이므로 역할분담이 잘 이루어질 수 있고 책임감 있는 산행참여로 극복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뚜렷한 산행 속 역할부담은 개인의 위치역할이 너무 중요시 여긴 나머지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될 부분이외의 다른 회원의 위치에 역할참여 불가능으로 창의적인 산행이 결여되고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대학 산악부의 침체를 가져오는 세 번째 문제점으로는 부족한 산행일수와 운동부족을 들 수 있습니다. 클라이밍 클럽의 신입회원이 단 몇 달만에 놀라운 등반능력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그 비결이 궁금해질 때가 있 습니다. 대학 산악부 회원 역시 열심히 산에 다니고 있고 많은 시간을 산악회에서 보내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 러나 산악회를 위해 쓰고 있는 시간에 비해 대학 산악부의 실제 산행일수와 운동시간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이유는 산악회가 학생들이 하기에는 벅찬 행정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악부는 특성상 몸으로 익혀야 할 점들이 매우 많고 때문에 산행과 트레이닝은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산악 회의 목적인 알피니즘과 적극적 자유정신 산악회의 장점인 선배를 믿고 따라주고 후배를 아끼고 챙기는 선후배 간의 연대 역시 산행과 트레이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학산악부는 좀더 산행과 트레이닝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정된 시간을 잘 활용하고 산악회의 행정을 줄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산행과 트레이닝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현재 산악부는 겉으로 너무 많이 커져 있고 안으로 해야 할 일 역시 많기만 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누군가의 선배의 희생으로 산악회가 유지되고 커질 수 있었고 그 댓가로 지금 우리들이 산을 다닐 수 있다는 것 역시 너무 나 고마운 일이지만 겉을 포장하기 위한 과다한 행정은 산행일자를 줄이고 결과적으로 산악회의 본질을 잃어버 리고 산악회의 침체를 초래하는 보이지 않는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히말라야의 14개봉을 완등한 박영석씨는 산행준비에 3일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원정 대가 산행 후 쓰는 보고책자 역시 내지 않습니다. 이유는 그만한 시간을 좀더 실제 산행에 집중시키기 위해서 입 니다. 산악회의 행정들이 불필요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산행이 끝나면 보고서도 쓰면 좋고 계획서 발송하는 것 도 좋으며 안내산행을 하거나 크로스컨트리를 열어 산악인의 한마당을 여는 것도 모두 좋은 일이며 악우지나 무 진악를 만들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재학생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산악회의 행정과 실제 산행은 상반된 길을 걷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적절한 조화로 비율을 맞추기 위해선 좀더 작은 산악회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좀 더 작은 산악회란 산행과 트레이닝으로 회원 간에 만나고 행사나 술자리를 줄이고 산행이 중심이 되는 산악 회 생활 속에서 선배와 후배의 연대가 이루어지고 재학생과 OB선배님이 부담 없이 가볍게 만나며 타대산악부와 의 연합도 열 수 있는 작은 모양으로 작아서 자주 산에 가고 자주 만날 수 있는 그러한 산악부를 말하는 것입니 다. 지금까지 대학산악부의 침체를 가져오는 문제점과 해결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신입회원 확보를 위한 산악회는 이미지 변화에 노력하고 산악회에서 선배와 후배는 수직적인 관계이지만 산행 을 꾸리는 과정의 역할분담은 수평적 관계로 바뀌어야 하며 좀더 작은 산악회를 만들어 잦은 산행과 만남으로 강한 결속력을 가진 산악부를 만들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산을 1, 2년이 아닌 대학생활 4년 동안과 그리고 졸업 후 역시 산에 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지금까지 대학 산악부는 순수한 알피니즘을 추구하며 산에 다녔으며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산사람간에 맹목적 인 지원과 사랑을 공유하는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이어왔습니다. 많은 회원들의 산에 다니는 생각과 방법은 다르지만 산과 산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만큼은 서로 다를 바 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135 128 제12집 앞으로도 우리의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산악회의 발전을 위해서 이러한 산악발전 세미나자리를 만들 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여해주신 산악회 여러분 감사합니다. 끝으로 질문이나 의견 있으신 분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후기 세미나 이후로 저의 주장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참 많았어요. 불가능하다 가능하다 불필요하다 필요한 것 같지만 바뀌진 않는다 등등. 저는 곧 졸업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은 산악회의 많은 행정을 맡고 있는 재학생들 사이에 앞으로 좀더 유연한 역 할분담 관계를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회원간에 트러블을 일으킬 소지가 있음 포기하 는 게 좋고요. 개인산행 등 정기산행을 제외한 여러 산행에서 앞으로 많은 기회가 있으니까요~ 지금 고민하고 계시는 회원 있다면 중단하고 운동장이라두 10바퀴 뛰심이 옳은 행동일 거랍니다~ ~ *^^* 체력이 제일 중요합니다.

136 후 기 코끼리 다리: 부러진 의자에서 작업하다가 몇 번이나 자빠졌는지 모르것다. 7년전에 하던 짓을 아직도 해야 한다... 얘들아 내년에는 꼭 니들이 다해라. 연주하고 씨봉아. 알카바: 악우지 제작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힘써주신 OB선배님들과 성필형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바쁘 신 와중에두 원고까지 써주신 박향식 OB회장님, 이계윤 지도교수님,백두인 선배님,이종호 선배님, 최지환 선배님, 김정국 선배님, 이현조 선배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특히 전자북의 레이아웃부터 표지디자인과 산행사진편집 원고수정및 PDF변환등 악우지 전반에 관심을 가져주 시고 힘써주신 최지환 선배님께 더욱 감사드립니다. 선배님들께서 즐겁게 읽어주신다면 재학생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영광이고 기쁨이 될 것입니다. 모쪼록 재미있 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현주: 휴~~~ 드디어 악우지가 일단락 됐다^^ 이번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악우지를 발간하겠다고 다짐을하고 선희언니랑 총대를 맸는데... 말처럼 쉬운게 아니 었다. 회원들이 원고도 잘 안내고... (실은 나도 마감일날 12시에 원고를 냈으니...) 원고가 다 수거되면 편집이 문젠데.. 얼른 편집해야 한다는 마음은 드는데 몸이 안따라 주는것이다.(왜그렇게 하기가 싫었는지..레포트는 또 왜그렇게 많았는지..) 선희언니의 독촉...나중에는 선희언니의 전화를 일부러 안받은적도 있었다..(언니 죄 송해요-.-;;) 이래저래해서 악우지가 완성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솔직히 내가 한건 별로 없지만) 12호 악우지를 위해서 원고를 내주신 OB선배님들, YB 선후배님들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악우지 발간을 위해 제일 고생하신 선희언니 진짜 수고하셨구요, 악우지를 무사히 우리 홈페이지에서 볼수 있게 해주신 지환형 정말 로 감사합니다. 선배님들, 후배님들 악우지 재밌게 읽어 주시구요 앞으로는 매년 발간할 계획이니까 내년에는 글 도 마니마니 주세요^^ 원고 내주신 모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137 제 12집 발행인: 40기 한성필 편집: 34기 최지환, 42기 안선희, 43기 전현주 발행: 2002년 11월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 300번지 제1학생회관 400호 062)

138 History 2002/11/27-1차 초안완성, 발간 2002/11/30 - 지도교수인사말 및 수필 추가 2002/11/30 - 동아마라톤 후기(35기 김정국)추가 2002/12/02 - 일부 회원 프로필사진교체 2002/12/06 - 중국여행기 추가(38기 한창균, 39기 이형관) 2002/12/07-2차 보완판 업로드 2002/12/11 - 오탈자 수정 및 최종판

낙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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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2 3 4 5 6 또한 같은 탈북자가 소유하고 있던 이라고 할수 있는 또 한장의 사진도 테루꼬양이라고 보고있다. 二宮喜一 (니노미야 요시가즈). 1938 년 1 월 15 일생. 신장 156~7 센치. 체중 52 키로. 몸은 여윈형이고 얼굴은 긴형. 1962 년 9 월경 도꾜도 시나가와구에서 실종. 당시 24 세. 직업 회사원. 밤에는 전문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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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련(華以戀) 141001.hwp 年 花 下 理 芳 盟 段 流 無 限 情 惜 別 沈 頭 兒 膝 夜 深 雲 約 三 십년을 꽃 아래서 아름다운 맹세 지키니 한 가닥 풍류는 끝없는 정이어라. 그대의 무릎에 누워 애틋하게 이별하니 밤은 깊어 구름과 빗속에서 삼생을 기약하네. * 들어가는 글 파르라니 머리를 깎은 아이가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불 옆에 앉아 있다. 얼음장 같은 날씨에 허연 입김이 연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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ÆòÈ�´©¸® 94È£ ³»Áö_ÃÖÁ¾ 사람 안간힘을 다해 행복해지고 싶었던 사람, 허세욱을 그리다 - 허세욱 평전 작가 송기역 - 서울 평통사 노동분회원 허세욱. 효순이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에 대 해 미국은 사죄하라는 투쟁의 현장에 서 그 분을 처음 만났다. 평택 대추리 의 넓은 들판을 두 소녀의 목숨을 앗 아간 미군들에게 또 빼앗길 순 없다며 만들어 온 현수막을 대추초교에 같이 걸었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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