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한국인의 모습, 나를 감동시키다 3 양해승 값진 경험, 소중한 추억으로 8 타타우 나에게 성공이란 13 Rahil Ahmadova 한국봉사활동을 통해 느낀 행복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길! 17 Abou AbdouLaye Tall 즐거운 만남으로 한국을 배워라! 22 재키 한국유학생활의 뜻을 찾았다! 27 선저이 꾸마르 꿈을 향해 32 인진륀 응답하라 2012 36 라시드 라파엘 울릉도, 독도 탐방 41 부티투짱 나만의 무대를 세우기 위한 발돋움 44 아리운자야 매순간 황금같은 추억들 48 니키아 브라운 1
GKS 유학생활의 소중한 재산 52 BUI THI BICH THUY 휼리아, 희망의 날개를 펴서 한국을 날다 56 휼리아 울지 마! 정신을 차려라, 너도 이제 남자다 59 AFOLABI AANUOLUWAPO OKIKI 공부도 열심, 경험도 열심, 모든 것에 전력 질주한 내 한국 유학 생활 62 MIZUMA IKUMI 가봉에서 강남스타일 나라까지 66 Gislain Mossavou(기슬라인) 오늘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날 73 수파펀 분룽 Quest for Acceptance 77 Amirhossein Goudarzi Life of a Student Reporter: My Place under the Sun 81 Rigoberto Banta Jr. Arrays of Insightful Academic, Cultural, and Social Engagement I have in Korea 85 Suray Agung Nugroho 한국에서의 아름다운 유학생활 90 LE HOANG THU TRANG 한국과 밝은 미래 (Korea and Bright Future) 94 소 분티안 한국이 이래서 좋다. 98 WAIYATHIRA PRANOT 보람차게 끝나가는 1년, 넘치는 열정과 자긍심으로 기대되는 3년. 103 마마자노브 조히드 2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최우수상 한국인의 모습, 나를 감동시키다 양해승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세월이 쏜살같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어를 배운 지 10년이 다 되었습 니다. 이번 한국에 유학하러 온 것은 세 번째입니다. 이번에 한국에 온 지도 눈 깜빡할 사 이에 벌써 1년이 다 되어갑니다. 한국어를 처음 배웠을 때 한국을 전혀 모르면서도 그냥 한국어의 부드러운 뉘앙스와 아름다운 리듬감에 깊이 반하고 그렇게 밤낮없이 열심히 공부 해 왔습니다. 유학하기 전에 한국친구를 많이 사귀면서 다정한 한국 사람의 성격에 점점 반하고, 한국을 소개하는 책 및 한국친구를 통해 배우면서도 아는 듯 모르는 듯 했습니다. 그래도 한국 친구덕분에 꼭 한번 한국에 가서 한국 풍토경험을 실컷 느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한 끝에 학부 때 한국에 연수하러 온 첫 번째 귀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비록 6개월밖에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저에게 한국 에 대해 직접 느끼는 소중한 인생 시기가 되었습니다. 6개월 연수 기간이 한국생활을 즐기 며 충실하게 지내는 저에게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지금도 한국친구의 손을 꼭 잡 고 아쉬워하면서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그 때의 추억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였지만, 6개월 한국 연수 기간 덕분에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 국 전통 문화에 완전히 빠져 버렸습니다. 제가 경험한 한국의 매력 때문에 결국 저는 대학 원에 진학해서 계속 한국어를 공부했고, 석사 때 다시 한국에 연수하러 오는 귀중한 기회 를 또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3
GKS 아무래도 학부 때보다 언어소통이 더 잘 되기 때문에 한국 전통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사 회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친구들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 았지요! 한국어를 배운 지 10년이 거의 다 되었는데 질리지 않니? 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제가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바로 한국어를 좋아하기 때문에 질리지 않다 고 대답할 수 있 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대답하기가 좀 어렵게 되었습니다. 글쎄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 는 이제 한국어를 배운 지 10년이 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빠져 들고 있나? 이제 저 는 서울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하면서 똑같은 질문을 가지고 자신에게 많이 되물어봤습니 다. 지금까지 박사과정을 한지 거의 1년이 다 되면서 점점 그 답을 찾게 된 것 같습니다. 바로 저를 감동시키는 한국인 모습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점점 제가 앞 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은 정이 많다는 걸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한번 정이 들게 되면 영원히 친하다 는 것입니다. 박사 과정으로 진학한 후에 얼마 안 되었을 때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에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런 참에 선배님께서 제 고민을 눈치 채시고, 주말 때 스터디가 끝나고 나서 저를 위해 신입생 환영회를 같이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냥 신입생이 올 때마다 이런 환영회를 거듭 가지는 게 당연한 일인 줄 알 았습니다. 왜냐하면 며칠 전에 과에서 저희 신입생을 위해 환영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 때 선배님을 따라 식당으로 가는 길에서 저보다 1학기 먼저 들어온 석사생 두 명은 선 배님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오빠, 왜 저희들은 과에 들어왔을 때 이런 대우를 못 받았지요? 그때 우리는 그냥 과에서 신입생 환영회만 받았을 뿐이었잖아요. 해승 오빠는 좋겠어요. 라고 했습니다. 선배님 말씀이 너희들도 외국학생이니? 수업을 듣는 것이 그렇게 힘드니? 해승이는 매번 수업 들을 때 눈살 찌푸리는 것 못 봤니? 우리는 해승 덕분에 맛있는 거나 먹자. 그날 선배님 덕분에 마음에 걸렸던 것이 다 풀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삼차까지 갔 습니다. 우리들은 건배할 때 해승, 파이팅! 이라는 말을 듣고 감동을 못 이겨서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스터디 한국친구들과 친하게 되었고, 선배님 덕분에 저도 때로는 선배답 게 후배들에게 술도 사 주기도 하며, 후배가 힘들 때는 위로를 해 주기도 합니다. 이제는 저도 형 오빠 소리를 과에서 항상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정은 외국인인 저로 하여 금 한국 사회의 따뜻함을 느끼게 되었고, 한국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한국에 유학 오면 올 수록 그윽이 풍기는 그런 향기에 완전히 반해 버렸습니다. 4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한국 사람은 항상 긍정적인 생활태도를 가지고 사는 모습도 감동적입니다. 가족마다 나 름대로 뜻 깊은 가훈도 있고, 유교 사상인 오륜사상도 한국 사람의 일상생활에 깊이 배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볼 때 거의 다 폼이 있는 여행이나 음 악 감상 식으로 나오기 마련입니다. 이러고 보니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한국 사람 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 사람이 죽을 때까 지 배우자 는 긍정적인 생활태도가 제일 인상적입니다. 저는 한국어학계 대가이신 이익섭 선생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계기는 제가 중국 대 련외국어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공부할 때 저희 대학원에서 이익섭 선생님을 석학 강좌로 모셨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해 주신 강좌는 2시간이었지만, 저에게 큰 학문과 인생격려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연세가 69세이셨습니다. 2년 후에 저는 교환학생 으로 한국학 중앙연구원에 연수하러 왔을 때 다행히 이익섭 선생님의 수업을 한 학기 동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국어학개설 이라는 대작을 가지고 저희들에게 가르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선생님에 관련된 어린 시절 이야기, 학문 닦는 길 등 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눠 주셨습니다. 매번 수업은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 한 학기 동안 선 생님과 같이 지내는 것은 저에게 학문 닦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71세 이셨습니다. 작년에 2012 국어학회에서 다시 이익섭 선생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그 때 선 생님께서 석학강좌로 나오셨는데, 역시 정정하시고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방언 조사에 관련된 방법, 태도 그리고 성과를 강의해 주셨습니다. 학문연구에 미친 듯이 공부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논단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후학들에게 몸소 그렇 게 실천해 오고 계십니다. 올해 선생님께서는 연세가 75세이신데 학문에 대한 열정이 하나 도 덜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더 열심히 논문을 쓰시고 책을 열심히 내시는 분입니다. 저는 공부가 힘들 때마다 선생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피로감이 싸~악 사라지고, 다시 정 신을 차려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운이 좋게 이익섭 선생님 같은 분 을 많이 만나 뵈었고, 예를 들면, 이광호 선생님, 이현희 선생님 등입니다. 덕분에 많은 것 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배우자 는 정신은 이익섭 선생님, 이광호 선생님 등 훌 륭하신 분들을 비롯하여 온 한국 국민들의 정신입니다. 이것 덕분에 한국 사회의 내적 발 전 원동력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 사회가 나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 가를 따져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배워서 이 사회에 어떻게 더 기여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 5
GKS 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세가 많으신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들을 생각하 면, 외국인인 저로서는 어떻게 감동을 안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저는 한국 사람과 더 잘 어울리기 위해 많은 행사활동에 적극적으 로 참여해 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한국 사람을 단합이 잘 된다 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는 속담이 있는데 이걸로 한국 사람의 단합을 말하면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한국 친구들은 같이 식사를 하고, 같이 스터디를 하고, 같이 회식을 하고 같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주최했던 2012 겨울방학 영어 캠프 활동이 저에게 매우 인 상적이었습니다. 그때 한국친구들과 같은 팀으로 편성되었고, 처음에 저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니까 그냥 들러리로 서 주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실제로 아니더군요. 저는 영어 를 잘하지 못하지만 영어 대신 한국어로 주장을 팀에게 제출하고 관련 한글 자료도 저에게 맡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제에 관련된 중국 자료도 저에게 맡겨 주었습니다. 다른 분들 도 자기의 약한 부분을 피하고, 잘하고 자신 있는 것을 살려서 서로 격려해 주면서 같이 준비해 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같이 회식했고, 같이 토론했고, 같이 자료를 준비했고, 같이 발표 연습했습니다. 같이 주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팀원들은 저에게 격려를 많이 해 주었 습니다. 덕분에 제 약한 영어도 점점 나아졌습니다. 결국 우리 팀은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 지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단합덕분에 1997년에 한국 외환위기에 처해 있을 때도 국민들은 스스로 황금제품을 200톤을 모아서 정부에 기증해 주고, 온 한국 국민들은 같이 큰 난관을 넘겼습니다. 또한 이런 의지와 단합덕분에 역사상 외국의 침략을 많이 당했는데 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일어서 점점 강국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인구가 5000천만 명밖 에 안 되는데 경제실력이 이제는 세계 11순위로 올라가게 되는 것은 우리 문화, 즉 단합 정신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답니다. 공부 외에 저는 한국인이 사는 모습을 더 잘 느끼려고 삼천리금수강산 여행도 많이 다 녀봤습니다. 서울에 있는 궁전들, 남이섬, 죽녹원, 남원, 월정사, 불국사, 석굴암, 설악산, 속리산, 관악산 등 여러 곳을 가 봤습니다. 저에게 정말 너무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남겨 주었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인상이 아주 깊은 것은 세 가지가 있는데, 즉, 첫째, 한국 사 람은 환경보호 의식이 대단합니다. 지금도 월정사, 설악산 공원에 흐르는 거울처럼 맑고 깨끗한 계곡물, 죽녹원에서 담배꽁초를 줍는 소년, 설악산 밑에서 모래 주머니를 메고 산 정상으로 가서 흙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 밖으로 드러난 나무뿌리를 덮어주는 아줌마들이 6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환경을 마치 자기 생명처럼 대해 주는 한국인 모습을 보고 저는 많 이 부끄럽고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중국 사람도 이렇게 환경을 보호해 주면 얼마나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둘째, 한국 명승지는 중국보다 작지만 공을 많이 들여 정교하게 만들어 냈습니다. 곳곳마 다 역사의 미가 향기를 풍기면서 아름다운 전설이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스토리텔링 식으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세계 사람에게 전해 주고, 세계 사람들은 그런 뜻 깊은 줄거리 나 재미있는 이야기 때문에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담양에 있는 소쇄원에 가 봤습니다. 사실 소쇄원을 공간적으로 보면 얼마 안 되어서 너무 좁다고 생각합니다. 하 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의 생활모습을 상상하면서 서서히 산책하면 그 안에 담겨 있는 건축 물과 조경물의 조화, 자연과 인공의 조화, 석축과 담장의 조화, 나무들과 풀들의 조화가 바 로 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셋째, 가는 곳마다 축제를 맞이할 때 거의 다 사물놀이나 판소리나 농악무를 공연합니 다. 한국 사람이 자기의 고유문화재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며, 보호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중국 사람으로서 정말 많이 반성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옛 문화에 대해 거의 다 먼 저 없애 버리고, 그 다음에 새로운 문화 형태를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즘 중국에 서도 한국처럼 옛 문화를 현대문화와 어울리게 개선화하며 많이 보호하지만, 그래도 한국 보다 좀 뒤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방면에 있어서 중국은 아직도 노력해야 할 것이 많고, 한국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감동시키는 한국인의 모습들은 더 많이 있는데, 예를 들면 사회봉사정신, 이웃사랑 정신, 다문화존중정신, 예의와 겸손 정신 등이 담겨 있는 여러 감동적인 모습들입니다. 저 는 한국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더 이상 그 언어 자체가 배어 있는 매력이 아니라 그 사회에 서 사는 사람들, 즉, 한국인들이 풍기는 아름다운 향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저는 꼭 이런 한국인 모습들을 제 학생, 제 친구 내지 모든 중국 사람에게 전해 주며, 더 크게는 그런 뛰어난 한국적 정신을 더 멀리 전해 주며 이걸로 우리나라를 부흥시 키는데 한 평생을 기여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7
GKS 우수상 값진 경험, 소중한 추억으로 타타우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2008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벌써 5년이 지나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식으로 체험 수기를 작성하면 다 함께 공감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난 5년간 유학생활을 하면서 행복했던 추억들이 있는가 하면 힘들고 괴로워했던 시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의 경험과 추억들을 외국인 장학생들, 국립국제교육원의 KGSP 운영자 선생님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이번 체험 수기를 작성했습니다. 한국으로 유학을 오기까지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입학시험을 치기 몇 달 전에 아버지께서는 심장 마비로 세상 을 떠나셨고, 얼마 후 함께 살아온 외할머니께서도 암에 걸리셔서 불행이 연속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공무원(감사원)이셨는데, 미얀마에서는 공무원들의 월급이 적은 편이라 혼자 서 모든 식구의 생계를 유지하기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의 비싼 치료비, 저와 언니의 교육비 등으로 가난에 처하게 되었고,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 머니한테 막내딸인 저를 대학교 보내지 말고, 전문대나 보내서 취직 시키는 것이 낫다고 계속 충고를 했습니다. 그 분들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미얀마에서 의대가 아닌 8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한, 어느 대학교를 졸업하든 좋은 월급을 받아 성공하기가 어렵고, 앞길이 그리 밝지가 않 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결코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저를 믿어 저에게 대학 교육 이라는 날개를 달아 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돈이나 부동산 같은 재산을 줄 수는 없지만 교육을 마지막 재산으로 줄 것이니 최선을 다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서 탈출하라 고 말 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가을동화 드라마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을 알게 되었는데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매우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대학입학 했을 때 자연스럽게도 만달 레이 외국어 대학교 한국어학과에 들어가서 공부했습니다. 한국어학과에 들어가 공부하면 서 여러가지 고민을 하였는데, 끝내 그때 당시로서 제가 최선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으로 유학을 떠나 더 배워서 큰 사람으로 성공하는 것이 어머니께 보답하는 것이다 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독재정부와 억압적인 사회, 아이들의 알 권리와 창의 력을 금지하는 교육제도 하에 자란 저는 KOICA를 통해 봉사활동 하러 오시는 한국 선생님 들로부터 교육을 받게 되면서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 빠른 경제 성장으로 유명한 한국에 서 유학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또한 미얀마는 경제가 아직은 성장되지 않아 국민소득이 매우 낮았는데, 보통 미얀마 국내 대학을 졸업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기 가 어려워 보였고, 국제 사회로 나가 더 좋은 교육을 받아 지식을 넓히고 스스로를 발전시 킬 필요가 있다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양곤시에서는 매년 12월에 전국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리는데 그 대회에서 대상, 또는 금상을 타는 자에게 한국 유학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미얀마에는 2개의 외국어 대학교가 있는데 총 200명쯤 되는 학생들, 그리고 이미 졸업한 선배들과 경쟁하여 최종 우승자 2 명 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종 말하기 대회까지 뽑혔는데 대상이 나 금상을 놓치면 다시는 도전할 수 없는 엄격한 규칙도 있었습니다. 우선 한국어 능력시 험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모아 예선을 거친 후에 최종적으로 양곤시에서 본선 말하기 대회가 열리게 됩니다. 저는 여러 단계를 이겨내고 모든 선후배 친구들과 경쟁하여 최종 말하기 대회에서 대상을 타게 되어, 저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날 밤 무대에서 상을 받았을 때의 순간을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5년 동안 열 심히 공부했고, 한편으로는 장학금으로 받는 생활비를 알뜰하게 사용하여 아르바이트도 하 면서 어머니와 가족에게 4년 동안 용돈을 보내줄 수 있었습니다. 힘들고 외로운 시간들, 지쳐서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에는 한국에 오기 전에 간절했던 마음을 다시 생각하면서 9
GKS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남들에게는 그저 장학금일 뿐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지옥 탈출의 기회,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한국정부 초청 장학생이라는 기회를 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의 한국 유학 생활 5년 동안 저의 유학생활을 정리해 봤을 때 물론 아쉬운 점들도 있었지만 만족하고 좋았 던 점들이 더 많았습니다. 우선 그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지식들을 습득할 수 있었고, 해방적 상상력과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어 좋습니다. 물론 미얀마가 지금은 민주주의로 이행중이지만 제가 한국으로 유학을 오기 전만해도 독재정부가 철저히 통제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의 작은 도시에 있는 평범한 집안에 서 자란 저는 많은 지식을 접근할 기회가 잘 없어 좀 무식한 편이었고, 사고방식도 자유롭 지 못한 보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한국이라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 속에 생활 하면서 개인/국민의 권리와 그에 따른 책임감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학교 수업 및 강좌, 조 별 활동, 토론과 개인 보고서 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줄 알게 되었고, 사 회와 세상을 분석하여 비판적으로 보는 법도 배웠습니다. 미얀마에서 과외를 하는 것 외에 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잘 없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유학을 안 했으면 아르바 이트를 해볼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들고 속상한 일들도 있 었지만 그런 모진 경험들이 피와 살이 되어 오늘의 저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아르 바이트를 하면서 한국의 고객을 모시는 서비스 문화를 몸으로 배우게 되었고, 겸손하게 행 동하는 것도 배웠으며, 인생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한국과 경북대학교 는 단순히 학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사회와 인생에 대한 지식과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글을 쓰기 위해서 유학생활 동안에 있었던 좋았던 점, 만족했던 점들을 정리해보던 중 에 어떤 교수님의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과제를 많이 내주시는 편인 데, 과제 하나 하나 주실 때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많이 고민하고 괴로워하시기를 바 랍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뜻은 학생들이 과제물을 받으면 고민을 해서 자 신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의견들을 꺼내게 되고, 그것을 노력과 결합하여 글을 작성하게 10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따라서 과제물이나 보고서들이야말로 진정한 우리 머릿속의 생각 들과 우리의 노력들이며, 한 학기 동안 많은 양을 작성했다면 그만큼 많이 생각했고, 노력 했다는 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당시에 그 말씀이 너무 싫었고, 원망하기도 했었는 데 이제 생각해 보니 정말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제 컴퓨터에 5년 동안 제가 작성한 과제물과 보고서들을 파일별로 정리해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물론 많이 부족하겠지만 그래 도 그동안 내가 그만큼 고민해서 생각해 냈고, 노력해서 작성했구나! 라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남은 것은 행복했던 소중한 추억들입니다. 미얀마로 가는 비행기 티켓 이 비싸고, 또 방학동안 아르바이트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시간과 돈관계로 5년 동안 고향 에는 한 번만 다녀왔습니다. 그 대신 학교 국제교류원을 통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리더 십 캠프와 탐방 여행 등에 참여했고, 개인적으로도 한국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캠 프와 프로그램들에 참석하고,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여러 나라 친구들과 문화 교류를 할 수 있어 정말 좋았고,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던 것 같 습니다. 부산과 서울은 물론, 안동, 포항 호미곶, 보성 녹차 밭, 지리산, 설악산, 동해, 제주 도, 울릉도, 독도까지 전국 여행을 친구들과 함께 다니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아름 다운 자연경치들을 저의 추억상자에 담아 보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은 여행은 2008년 12월 서울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KGSS 시상식 및 송년의 밤, 2010년 여름에 참여했던 독도 일일 등대장 체험 프로그램, 2010년 가을 무주에서 참여했던 LCIS (leadership conference for international students) 프로그램, 2012년 초가을에 갔던 한국 DMZ 탐방 여행 등입니 다. 여행을 다니면서 만나게 된 많은 분들과, 여행을 통해 보고 느꼈던 것들이 저에게 지식 과 경험뿐만 아니라, 충분한 휴식과 앞으로 살아가기 위한 희망을 주었고, 제 마음속에 영 원한 추억들로 남겨질 것입니다. 한국 국립국제교육원(NIIED)에서 5년 전에 저를 믿고 기회를 주신 덕분에 한국에서 유 학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지난 5년간 행복했던 시간들이 많았지 만, 외롭고 힘든 시간들도 가끔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에게 주신 기회의 소중함을 다 시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어려운 시간들을 견뎌내곤 했습니다. 이제 졸업을 앞둔 채 저 는 후련한 마음과 함께 슬프고 그리운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5년간 KGSP라는 프 로그램을 통해서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우정이 넘치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 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매년 맞이하는 것이 매우 기쁜 일 11
GKS 이었고, 가을의 은행나무, 단풍나무, 겨울의 눈꽃, 봄의 신선한 바람과 꽃들이 한국에서 제 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동안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된 경북대학교, 정이 많은 한국 분들과 사랑하는 친구들, 한국의 사계절이랑 결국 이별해야 겠구나! 라고 생각하 니까 마음이 슬프고, 벌써부터 모든 것이 그리워지는 듯합니다. 한국 유학 생활동안 어렵 고 힘들어했던 것도, 즐겁고 행복했던 것도 결국은 다 값진 경험이자 소중한 추억이 되어 제 가슴속에 영원히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12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우수상 나에게 성공이란 Rahil Ahmadova 계명대학교 경영학과 성공 사람들은 누구나 다 성공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하는 성공 이라는 욕구를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궁금해온 질문이 있습니다. 성공 이란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돈을 많이 벌고 명예를 가지는 것?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 아니면 건강한 몸을 가지는 것?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개인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대상이 다를 뿐일 것이고, 공통점은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얻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과연 성공한 인생일까요?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 아 래 글을 쓰려고 합니다. 성공한 사람이 되지 말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리라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있습니다. 성공 은 나 자신을 위해서만 노력한다고 될 것이 아니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진정 한 성공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온 24년의 세월 동안 여러 가지 인생 경험을 많이 했 습니다. 부모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으며 어머니-아버지와 떨어져 산 적이 없었고 늘 부모 님의 보호를 받고 자랐습니다. 이러한 삶은 편하고 안전했습니다만 나의 미래에 도움이 되 지 않으며, 마치 우물 안 개구리 와 같은 삶을 사는 생각이 들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 을 한 것뿐이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고등학교 마치고 대학교 진학하면서 세 상을 더 넓은 시야로 보아야 한다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그 당시 공부 중이었던 한국어 학 과에서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대한민국 정부초청장학생 프로그램에 대 13
GKS 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이나 영화를 통해 알게 되고 소문으로만 들었던 한국이라는 나 라에 갈 수 있다는 소식에 너무나 설레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멀리 떨어진 적 없는 부모님과 사랑스러운 우리 집, 친구들을 떠나고 멀리 가는 것은 제일 어려운 결정이었습니 다.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동기는 우리 어머니의 말씀에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귀하 게 키운 딸을 멀리 보낸다는 생각에 비록 어머니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셨지만 나의 미래를 위해서,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참아내셨습니다. 저의 꿈은 한국과 아제르 바이잔의 대외 관계에 큰 도움이 되는 대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꿈을 가지며 2008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창밖을 보며 새로운 꿈이 활짝 피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 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약속을 자기 자신에게 속삭이었습니다. 처음에 많이 서툰 한국 어 때문에 의사소통도 잘 안되었고, 아는 곳도,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세상이 매우 두려웠 습니다. 알고 믿을 사람은 학교 선생님들뿐이었습니다. 모든 것 하나하나를 학교에서 지원 해준 도우미 친구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에게 여쭤보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당에 열심히 다니며 하루 빨리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문화도, 음식도, 언어도 다른 나라 삶에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첫 6개월 동안 음식 때문에 힘들 어하고, 몸이 많이 약해졌으며, 몸살도 자주 나곤 했습니다. 어머니와 가족도 보고 싶고,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그러나 곧 깨달은 것은 이러한 마음을 다른 외국인 학생들도 똑 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가족 그리워하고, 음식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은 공통점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친구들과 친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숙사 식당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다 같이 다른 식당을 찾아가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았습니다. 이러한 삶이 갈수록 재미있어지기 시작하며 이제는 덜 힘들어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이 지났는 데도 적응을 못하여 공부 포기하고 고향 돌아가려고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며칠 에 걸쳐 이야기를 나누어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친구도 먹을 수 있는 식당 알아보고 한국 삶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같이 놀러 다니곤 했습니다. 문화와 생활 습관이 완전히 다른 나라에 와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 친구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외국인 친구들에 비해서 빠른 시간 내에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을 먼저 이해하고, 한국의 문화에 빠져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 습니다. 한국인의 생활 방식을 이해 못하고 내 나라 문화의 입장에서만 고집한다면 한국에 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4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저의 응원과 그 친구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한국을 안 떠났고 열심히 노력하며 유학 생 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유학 생활한 지 1년이 지나고 나서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어로 소통이 어느 정도 되었기 때문에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었습니다. 한국어학당을 마치고 경영학과에 진 학하였습니다. 교수님들의 말을 이해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가장 앞자리에 앉아 교수님 말씀에 집중하였고, 필기를 하는 동시에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녹 음하였고 공부를 할 때 좋은 자료로 사용했습니다. 다른 외국인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한 국어를 잘한다는 칭찬을 교수님들에게 자주 들었습니다. 2-3학년에 올라가 학교 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을 하면서 효율적인 유학 생활을 보냈습니다. 여러 봉사 단체에 가입하였 는데 그 중에 하나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영어 지도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강의 첫날에 공부에 관심 없고 안색이 어두웠던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공부를 사 랑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나서 아이들의 알차게 웃는 얼굴과 열심 히 하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 외에도 대한적십자사의 봉사원이 되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러 달리고 있습니다. 대구 지역에 사는 외국인들로 구성된 적십자 봉사 단체를 만들어 봉사활동을 하 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였는데, 그것을 꼭 실천하라는 대구적십자사 처장님의 말씀에 기뻐져 그러한 단체를 만들기 위해서 지금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봉사활동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경력을 많이 쌓았습니다. 대구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하는 외국인 통상모니터링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2011년 5 월부터 12월까지 대구상공회의소에서 대구광역시의 국제통상 및 교류활동을 지원하기 위 한 프로그램인 통상모니터요원으로 활동하였는데, 저는 그 기간 동안 아제르바이잔의 무 역, 통상 현황 그리고 한국과의 관계를 매달 파워포인트로 보고했으며, 프로그램의 일환으 로, 대명동에 위치한 DG Entertainment라는 게임 콘텐츠 회사에 파견되어 2달 동안 SDK 문서 작성 및 통-번역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저의 업무는 주로 게임을 제작하는 데 필요 한 서류를 번역하는 것이었고, 업무와 관련된 이메일 번역 및 해외 업체와 영어 등으로 통 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돈을 번다는 생각은 버리고 평생 한번 있을지 모르는 기회 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였고 이러한 저의 노력의 결과 DG Entertainment가 아시아 지 역 최초로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비즈스파크원 (BizSpark One) 정회원사로 승인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이러한 내용은 신문에도 보도되었습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 대 15
GKS 구시장님에게 다른 20명의 요원 중 가장 우수한 1등상을 수여받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 정부초청 장학생 조교로 선정되어 새로 들어오는 정부초청 후배들을 위해 개최하 는 오리엔테이션 때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활동하였습니다. 또한, 이번 달에 NIIED 선생님들이 우리 학교를 방문하러 서울에서 내려오셨는데 저는 그 분들과 함께 버 스를 타고 캠퍼스 투어를 하며 우리 학교 소개를 해드렸습니다. 저는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저의 한국어에 대한 사랑입니다. 대부분의 친 구들이 대학교에 진학을 하면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 하는 국제경영학과로 진학하였지 만, 저는 한국에 온 이상 비록 힘들더라도 한국어로 수업을 듣고 싶어 그냥 경영학과로 진 학하여 한국 학생들과 똑같이 공부하였습니다. 그 결과 저는 한국어능력시험 6급과 우수한 성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학업에 대한 욕심의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 어를 너무나 사랑하며 한국어 공부는 계속해서 열심히 하고 있으며 저의 후배들에게도 한 국어 공부를 할 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정부초청 장학생으로서 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도록 한 한국 생활이 진정한 성공한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 자신만을 위해서 노력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주변 사람들을 도우려는 가치 있는 삶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 무엇을 하든지 저의 옆에 있 고 저의 인생에 빛을 비춰준 한국 정부, 학교에서 저를 가르친다고 고생하신 선생님들, 제 가 감기 걸려 아플 때 따뜻한 대추차를 타 주신 옆집 할머니, 멀리 있지만 늘 저를 응원하 고 있는 아제르바이잔 정부,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분들 중 한명이라도 없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옛날에 이미 포기했 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인)이라는 한자는 사람은 서로 기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 분들에게 기대어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이번 학기는 제가 한국 정부초청 장학생으로 서 보내는 마지막 학기입니다만, 졸업하고 나서도 그들의 가르침을 있지 않고 그분들처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모든 것들에 진 심으로 감사하며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16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우수상 한국봉사활동을 통해 느낀 행복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길! Abou AbdouLaye Tall 부경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 저는 이름도 생소한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 아프리카 모리타니아에서 온 아부라고 합니다. 한국에 온지 2년 반이 지났고, 지금은 부경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맨 처음 한국정부초청장학생 프로그램에 합격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한국정부 에서 받게 될 장학금과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뻤습니다. 인터넷에서 사 진으로만 보던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국의 발전된 모습과 좋은 교실, 친절한 사람들 에게서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부경대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열심히 들어 1년 만에 한국어능력시험 4급을 땄습니다. 그리고 지금 정보통신공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사실 모리타니아에서는 지질학을 공부했 고, 모리타니아에는 정보통신공학 관련한 학과가 없어서 수업 내용이 생소했지만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한국어로 하는 수업이라 알아듣기 힘든 내용이 많았습니 다. 하루는 학과 교수님에게 제가 힘들다고 말을 하니 교수님께서 한국 친구들을 소개시켜 줘서 지금은 모르는 것은 물어보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제외하고 한국 생활에 서 어려운 점이 있거나 머리 아픈 일이 있으면 저는 축구동아리 스타피쉬 에서 동아리 친 구들과 축구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풉니다. 마지막으로 학교생활에서 힘든 점이 있으면 학 교 국제교류본부에 있는 선생님을 찾습니다. 선생님들은 바쁘시지만 항상 친절하게 제가 궁금해 하는 것을 잘 알려주십니다. 17
GKS 스타피쉬 활동 그렇습니다. 저는 한국에 있으면서 너무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는 충분한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있고, 학과에서는 교수님과 학과 친구들에게 공부하는 데에 도움을 받고 있고, 동아리에서는 정말 좋은 친구들과 한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에 도움을 받고 있고, 학교에서는 제가 궁금해 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이 모든 게 제가 먼 외 국에서 온 유학생이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동안 이것들을 너무 당연하다 고 생각해왔습니다. 나는 외국사람이니까 한국사람들이 나를 도와주는 것이 당연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작년 여름 학교 선생님을 통해 부경대학교에서 하는 UN SUPPORTERS (PKNU) 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습니다. UN SUPPORTERS 는 세계 평화를 지키는 대 학생 봉사단이라는 의미를 가진 프로그램입니다. 부경대학교 근처에 있는 세계에서 유일 한 UN 평화군 공동묘지인 UN 공원을 기념하며,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뜻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처음에는 왠지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참가자 대부분이 한국 친구들이었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온 제 임스, 세네갈에서 온 아네스, 인도네시아에서 온 티아와 같은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있었 습니다. 18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UN SUPPORTERS 발대식 UN기념공원 추모식 처음 프로그램 발대식에서 많은 친구들도 만나고 부경대학교 총장님도 만났습니다. 총장 님을 만나서 악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제가 더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 고 처음 봉사활동을 갔습니다. 처음에 간 곳은 김해에 있는 요양병원이었습니다. 30명의 19
GKS 친구들과 같이 요양병원 청소를 했습니다. 침대도 청소하고 쓰레기통도 비우고 병실을 하 나씩 청소했습니다. 청소가 끝나고 할아버지, 할머니 식사 준비를 도와드렸습니다. 특히 어 떤 할아버지는 혼자 식사하시기 어려우신 것 같아서 제가 옆에서 식사를 도와드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식사를 다하시고 양치질도 도와드렸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바람을 쐬고 싶다고 하셔서 휠체어로 병실 밖을 나와 산책도 하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낯선 외국인에게서 받는 도움을 처음에는 꺼려하셨지만 그 다음에는 제 게 궁금한 것도 물어보시고 하셨습니다. 산책을 끝내고 다른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는 매일 오라며 밝게 웃 어주셨습니다. 저에게 아들 같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내내 아쉬웠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이 계속 떠올랐 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도 많이 생각났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 할아버지, 할머 니에게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UN SUPPORTERS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봉사활동이 있었지만 다시는 같은 요양병원에 갈 일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제 마음에 항상 남아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 니께 다시 찾아가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할아버지, 할머 니께서 기다리지 않으실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해에도 프로그램을 신청했습니다. 사실 같은 프로그램에 두 번 신청할 수 없었지만, 담당하는 선생님께 계속 부탁을 드려 다 시 한 번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김해에 있는 그 요양병원을 방문했습니다. 병원 앞에서 그 때 그 할아버지 와 할머니들께서 계속 계시는지 걱정되는 마음도 들었고, 뵙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 렸습니다. 병원을 들어서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이 두 눈에 들어왔습니다. 반가운 마 음에 얼른 달려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무래도 눈에 띄는 외모라서 그런지 할아버지, 할 머니께서는 저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우리 학생, 또 왔네 하시는데 고마 운 마음에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반가운 재회를 뒤로 하고, 예전처럼 침대도 청소하고 바닥도 청소 하고, 똑같이 청소를 했지만 두 번째라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처음이라 서툰 한국 친구들 에게 어떻게 해야 된다고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작년처럼 청소가 끝나고 음식을 준비해서 식사를 도와드렸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웃고 저도 웃었습니다. 큰 방에서 한국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습니다. 노래는 서툴렀지만 열심히 불렀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저의 20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노력에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도 즐거웠습니다. 고향에 있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과 같이 즐겁고 편안한 기분이었습니다. 다시금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다시 또 놀러오라고 하셨습 니다. 저는 당연히 다시 오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인사를 나누는 데 섭섭하지 않았습 니다. 제가 한국에 있는 동안 한 번씩 찾아와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만나서 기쁘게 해드 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제가 한국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모두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힘들었지만 한국어도 빨리 배울 수 있었던 것이나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는 것 들, 한국 생활에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들 모두가 다 제가 잘 해서 그런 것이라 기보다는 친구와 선생님, 교수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봉사활동은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진 것에 고마워할 줄 알게 되었고,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 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제가 한국에 올 수 있게 해주고 더 성숙할 수 있 는 기회를 주신 한국정부에는 더욱 고맙습니다. 앞으로 저는 남은 UN SUPPORTERS 프로 그램도 열심히 참여하여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작게나마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도 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초청장학생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더 열심히 공부할 것입니다. 마지막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제 고향 모리타니아에 돌아가서 한국을 알리고 양 국이 더욱 발전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21
GKS 장려상 즐거운 만남으로 한국을 배워라! 재키 강릉원주대학교 지역개발학과 석사과정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쌀쌀한 날씨로 시작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나곤 한다. 그 때 가 바로 나에게 있어서는 처음 맞는 가을이었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나의 꿈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나의 꿈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이 발전을 한 것에 대해 많이 궁금해서 대학교에 다녔을 부터 한국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뜻밖에 운이 참 좋아서 드디어 2010년에 한 국에 오게 되었다. 한국으로 멀리까지 공부하러 왔는데 여기저기 아직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힘든 느낌이 자꾸 들었다. 한국이 나의 꿈이라도 새로운 분위기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고민이 되었다. 왜 한국에 왔냐고, 왜 한국에서 공부를 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봤 었다.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계속 자문했다. 자문만 했지 해답은 없었다. 고민하 면서 기온이 점점 떨어지고 찬바람도 많이 불었다. 친구가 옆에 있어도 추운 가을 날씨처 럼 나의 마음이 차갑고 기분이 외로웠다. 공부가 무엇인가? 한국까지 멀리 와서 왜 공부하려고 했는가? 이것은 쉬운 질문이 아니 다. 그런데 나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특히 춘천 한림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동안 좋은 대답을 찾아냈다. 공부는 즐거운 만남이다. 한국어를 공부했을 때 새로운 언어를 배 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친구가 생기고 새로운 세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또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나고 다른 외국인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하면서 즐거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 다. 언어 수업을 들으면서 제일 재미있는 것은 한국 문화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 22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를 다양하게 볼 수 있어 신기하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그 다양한 문화에 대해 잘 몰랐지만 한국어를 통해서 그 문화를 다시 보게 되고 더 재미있게 알아듣게 되었다. 살펴보면 공부 는 바로 즐거운 만남으로 인해서 우리가 모르는 것들을 배우면서 아는 것으로 변화는 과정 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때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고 밖은 너무 추웠지만 나의 가슴은 따 뜻하고 즐거웠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첫 겨울을 맞았다. 처음 겨울을 접했을 때 한 단어가 마음속 깊이 들어왔다. 눈! 바로 그것이었다. 본국에 사계절이 없기 때문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펑펑 내리는 하얀 눈을 보자 순수한 느낌이 찾아왔고 마음이 평온해져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인간과 눈 은 다르지 않다. 원래부터 인간은 순수하게 태어나고 배우는 과정을 거쳐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눈처럼 하늘에서 내리면서 원래는 하얗고 깨끗하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땅과 같이 섞여서 더럽게 변화했다. 여기에서 그 더러운 변화란 말은 바로 배우 는 과정이란 뜻이다. 인간이 살아오면서 교육을 받고 또 계속 배우고 죽을 때까지 배울 거 라고 믿는다. 배우는 것을 통해 모르는 것에서 아는 것으로 변화해서 인간이 다시 태어나 고 더 상세하게 알게 될 수 있다. 언어를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 을 때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나의 모국어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우고 더 알 수 있어서 세상이 더 넓게 보인다.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매일매일 새로운 단어를 외워야 한다. 가끔씩 실수를 만들고 그 실수를 고치고 반복하면서 알게 되 었다. 연습을 통해서 몰랐던 것들을 배우고 한국에 대해 새롭게 깨달았다. 1년 4개월동안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한국의 사계절처럼 나의 인생도 많이 변화했다. 우 선은 말이다. 말이나 언어는 사실 우리의 생각이다. 그래서 한국어로 말하면서 나의 생각 도 바뀌었다. 뭐가 바뀌었는가? 한국 사람은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유이다. 한국어로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 이유가 보통 항상 앞에 놓아야 하지만 우리말로는 보통 문장 뒤에서 붙어야 한다. 문법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상태가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의 생각 은 이유가 먼저 나오면 결과를 아마 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 배가 아파서 학교에 못 갔다, 그럼 배가 아픔 은 이유이고 그 결과는 학교에 못 갔다 라고 나타냈다. 이 결과는 이유를 말하면서 미리 생각할 수 있다. 나의 인생에서 이런 표현을 처음 만났는 데 이 표현을 통해 나는 한국 사람의 사고방식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이런 표현에 대한 만남은 내게 즐거운 만남이었다. 23
GKS 그리고 또,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나는 공부할 마음도 자연스럽게 익혀졌다. 한국어를 매 일 공부해서 매일은 시험인 것 같다. 그런데 쉽게 생각하고 싶어도 한국어는 쉬운 시험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마음속에서 항상 한국어는 장애물이 아니라 도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라고 반복하여 말했다. 즉, 모두 시험이 바로 도전이다. 한국어능력시험도 마찬가지 다.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 한국어능력시험 3급을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 나 어려운지 모르겠지만 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하면서 나의 한국어 실력은 점점 늘고 이 시험으로 한국 문화에 대해 더 재미있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사계절이 지나는 동안 3급 을 아직 못 받아서 기분이 속상하고 자신도 없고 정말 슬펐다. 시험이 자꾸 떨어지는 바람 에 고민이 많고 포기할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겨울이 지나 봄을 만나고, 세상의 색깔이 새롭게 바뀌고, 답답한 여름이 지나가고 드디 어 두 번째 가을이 왔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그 때는 한국어능력시험이 계속 떨어졌는데 나는 예전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어떤 한국 어 선생님은 나에게 아름다운 속담을 가르쳐 주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 라는 속 담이었다. 나는 아직은 실패이지만 나중에 성공할 거라고 믿는다. 나는 한국어 덕분에 긍 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더 많이 배웠다. 한국어능력시험을 자꾸 불합격해도 배운 것들이 더 많아지고 유리한 점도 많아서 불합격이 나의 실패는 아닌 것 같다. 나는 한국어 를 공부뿐만 아니라 김치를 담그는 비법도 배우고 한지를 만들고 판소리도 깊이 알아듣고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해 많이 이해했다. 그렇게 때문에 속상한 마음이 필요 없다고 생각 했다. 실패도 배우는 과정이다. 나는 이런 경험으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사람이 될 거라고 믿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은 약이다. 점점 나의 사고방식이 변화되 고 새로운 자신이 생겼다. 드디어 나는 네 번째 도전한 한국어능력시험을 합격할 수 있었 다. 그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사람은 도 전으로 자신을 극복할 수 있다. 그 때는 얼음이 아직 녹지 않아도 나의 마음이 활발해서 모든 겨울 얼음이 녹은 것처럼 느껴졌다. 두 번째 봄이 왔다. 이것이 제일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그 때 강릉원주대학교에서 나의 대학원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의 전공은 지역개발이다. 대학원생활은 어학생활보다 많이 달 라졌다. 수업 시간, 공부하는 방법, 그리고 공부하는 내용은 모두 변화해 가지고 새로운 생 활이 또 다시 시작됐다. 강릉에 봄이 시작되었을 때 강풍이 심하게 불어 내 마음도 다시 흔들렸다. 착한 교수님들을 만나고 즐거운 만남으로 다시 느껴져도 눈물을 흘렸다. 밖에서 24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벚꽃들이 피웠는데 그 때는 내 마음이 너무 속상하고 답답했다.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항상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대학생활을 어학생활과 자꾸 비교했기 때문에 새 로운 분위기가 쉽게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가 아니다. 대학원생이 되어서 수업 내용에 대해 스스로 준비해야 하고 어려운 것이 있으면 빨리 물어보고 빨리 알아야 된다. 이것은 쉽지 않지만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살펴보면 다른 친구가 나보다 더 어 렵고 힘들다고 생각됐다. 어떤 친구는 수업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형편 문제도 있어서 스트 레스를 더 많이 받았다. 내 문제는 수업만 열중하면 되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비교하면 내 문제는 별일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수업을 아직 어렵게 알 아들어도 대학원생활을 즐기고 추억을 만들자고 결심했다. 여름이 시작되었을 때 내 첫 학 기가 끝났다. 그 때 바람이 많이 불어 하늘에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여름 방학 이 시작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나갔다. 사실은 여름방학도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도 공부하라고 했다. 나는 여름방학 동안 춘천에서 살아온 추억을 모으고 일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은 보통 일기가 아니었 다. 나는 춘천에서 세계로 보여주고 싶어서 어떤 국제 웹 사이트에서 그 춘천 도시의 이야 기를 출판하였다(www. urbanvignettes.com). 3개월동안 일주일에 한번 춘천의 이야기를 영어로 쓰고 웹 사이트에서 세계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춘천시는 내가 첫 번째 살았던 도시다. 그래서 춘천의 추억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고 그 추억이 떠오르면 기분이 즐겁고 이 추억을 쉽게 잊지 못했다. 나는 춘천의 이야기를 다른 외국인에게 알려주는 반면에 나 도 다른 도시의 이야기를 읽고 매주 새로운 이야기를 재미있게 배웠다. 여름방학동안 나는 춘천 이야기를 통해 세계를 즐겁게 만날 수 있었다. 세상의 색깔이 다시 한 번 바뀌면서 세상에 가을이 나왔다. 강릉은 가을이 되면 정말 아 름다워서 이 기간은 강릉에서 많은 축제가 열렸다. 잎색깔이 변색되면서 흥미롭게 보이고 내 인생도 그렇게 느꼈다. 이 가을이 엄청 바빴다. 수업은 더 어렵고 새로운 과목을 집중해 야 했는데 한편 이번 가을에는 새로운 경험을 열심히 해 봤다. 어떤 친구가 나를 추천해 2012년 강릉 ICCN 세계무형문화축전에서 통역사 자원봉사자가 되었다. 십일 동안 땀이 빠 르게 났을 뿐만 아니라 눈물날 만큼 기분이 즐거웠다. 축전 때 나는 인도네시아의 유산에 대한 특히 바틱과 와양을 소개해 줬다. 이런 문화축전에서 우리나라의 대표 유산을 세계적 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정말 자랑스럽게 여겼다. 통역사가 되면서 분명히 쉽지 않지만 나 는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서 어려운 것들은 극복하며 끝날 때까지 함께 했다. 한국인과 25
GKS 외국인들에게 바틱을 직접 가르치고 한국방송도 직면해야 해서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그 리고 또 새로운 한국 친구와 많이 사귀고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고 정말 아름다운 추억이었 다. 그 때도 착한 시청 분들을 만나 나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 사람과 일하면 서 한국 사람의 특징을 많이 배웠다. 한국 사람은 약속 시간을 잘 지킨다. 이번 경험으로 배운 것은 반드시 잊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이 가을도 그렇게 도전하고, 극복할 것이다. 한국의 사계절을 통해서 나는 즐거운 만남으로 한국을 배울 수 있었다. 원래부터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고 호기심도 많았지만 한국을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국을 공 부하는 것은 즐거운 만남이라고 믿는다. 사계절처럼 내 마음도 가끔 변화해도 모든 배움의 과정을 극복하며 내 인생을 더 아름답고 즐겁게 만들 것이다. 26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장려상 한국유학생활의 뜻을 찾았다! 선저이 꾸마르 강원대학교 일반대학원 외국인을위한한국학과정 유학생활은 인생에 있어서 매우 뜻 깊은 기회입니다. 왜냐하면 유학생활은 그 나라의 문 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초청 학생으로서 저도 한국유 학생활을 하면서 한국문화의 많은 것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27
GKS 우리는 할 수 있다! 한국에는 세계유산이 많습니다. 그 중 제가 가장 먼저 가 본 곳은 경주였습니다. 그 중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에 가 보았습니다. 사실 2년의 한국 유학 생활기간 동안 한국의 문 화유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사 수업 시간에 조선의 종묘 역 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것과 요즘도 옛날처럼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점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2011년의 활기찬 여름날이었습니다. 종묘에 가보려고 기회를 찾던 중 국가브랜드위원회 의 웹 사이트에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문화재청과 국가브랜드위원회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청년유네스코 세계유산 지킴이 의 모집 공고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지킴이 라는 단어는 저 의 첫인상은 영어의 가드 guard 였습니다. 그래서 무척이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문화재의 보디가드가 되는 것인가? 어떻게 하는 거지? 꽤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지킴이의 뜻을 알고 봤더니 한국의 세계유산보존에 대한 책임감과 지킴이라는 자부심도 생기고, 세계유산이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대한민 국정부초청학생으로서 한국학을 공부하는데도 종묘를 몰랐다는 점이 속상했습니다. 주변 의 다른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지킴이 활동을 하면 종묘도 방문할 수 있고, 조선시대문화에 대한 지식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생 각했습니다. 또 이런 저의 노력으로 한국의 세계유산을 더욱 널리 알릴 수 있다면 정말 보 람 있는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종묘를 알아보자! 인도, 중국, 몽골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한 팀을 만들었습니다. 한국문화글로벌화 팀입 니다. 우리 팀은 글로벌 시대이니 만큼 종묘를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 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 일은 아니었습니다. 팀원들은 몽골, 인도 그리고 중국 등 큰 나라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우리들의 고국에 한국의 세계유산을 알리는 것 도 매우 보람찬 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우리 유학생들 이 최선을 다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28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먼저 우리는 한국에서 세계유산을 경험하고 공부해야 했습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종묘를 더 널리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한국 에 거주하는 외국인과 한국에 여행 온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그리고 소셜 미디어 등을 이용 해 종묘를 알렸습니다. 종묘에 가서 우리는 그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만나서 종묘에 대 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조사했고 종묘를 소개했습니다. 관광객들의 반응, 특히 서양 관 광객들의 반응은 정말 좋았고 우리의 지킴이 활동을 신기해했습니다. 우리에게 편지를 보 내준 이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국인유학생이 한국의 세계유산을 홍보한다는 것이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한국인들 가운데 종묘가 세계유산인지 모르는 분들도 많 았고 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는 지역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는 분도 있었습니다. 안타 까웠습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에게 종묘에 대한 안내를 했습니다. 봉사활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종묘의 중요한 전통을 잘 알아보고 그를 스토리텔링해서 다른 사람 들에게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종묘에서 진행하는 제사 교육 행사 등에도 참여해 일손을 보탰습니다. 특히 한국어에 서 툰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제사문화에 대해 많은 설명을 했습니다. 종묘 밖에서도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들에게 종묘를 알아보자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학교 친구들과 교수님들께도 종묘가 세계유산임을 알리고 꼭 방문해보기를 권했습니다. 정보화시기의 매우 중요한 도구 가 된 SNS와 블로그도 종묘를 소개하는데 활용했습니다. 우리는 블로그를 비롯해서 페이 스북에 세계유산인 종묘 팬클럽 까지 만들어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종묘를 알리는 역할을 29
GKS 했습니다. 인터넷 상의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이 작은 웹페이지를 통해 종묘가 더 사랑받 는 공간이 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국의 친구, 가족들에게도 편지를 보내 종묘를 알려주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팀원 중 몽골학생인 보이나의 어머니가 깊은 관심을 갖고 한국 그리고 종묘를 찾았습니다. 몽골의 제사문화와도 비슷해 더욱 친근 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몽골에 돌아가서도 지인들에게 종묘를 많이 자랑하셨다고 합니다. 종묘에서 지킴이 활동하면서 저는 효도에 대한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종묘의 제사전통은 인도에 아직 남아 있는 카스트제도와 집안의 매우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저를 교육시 킨 부모님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저같은 하층계 급학생에게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한국은 하늘이 내려주신 기적의 산물이며 종묘는 저에게 도덕성과 은혜에 대하여 깨닫게 해 준 소중한 기억이었습니다. 또한 지킴이 활동하면서 인류 역사의 변화 속에 사라진 문화유산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 해볼 수 있었습니다. 또 고국의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에 있는 동안 타지마할 등 인도의 세계유산을 수시로 방문했지만 그 가치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인도로 돌아간 후에도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알리는 홍보대사 로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는 나와 팀원들이 한국 문화에 젖어 들었기 때 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저는 온고지신이라는 말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이 활동을 통 해 저는 자연 속의 한국 옛날 유교사상과 조선의 모습을 익힐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당 시대 세계유산으로서 종묘의 가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니 종묘의 전통을 엿본 것이 책 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정말 살아있는 한국의 정말 살아있는 역사를 배운 것이라고 생각합 니다. 또한 종묘에서 배우게 된 삼강오륜과 사단칠정의 개념은 한국사회와 문화를 이해하 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유학생활의 주요 목적은 그 나라의 언어와 학문을 익히는 것이지만 지킴이 활동을 하면 서 4천 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국에 대한 이해도를 많이 높일 수 있었습니다. 그 리고 한국유학생활을 하면서 인류의 기록과 옛 문화를 보존하는데 작더라도 기여하는 것이 매우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30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제수 준비 시간 종묘는 한국의 세계 그 어떤 문화유산보다도 도덕 윤리적인 면으로 저에게 잊을 수 없 는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원래 저는 한국을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연구하고 살펴보고 싶었는데 그 이유는 한국이 21세기에 들어서 국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세계에 끼치는 영 향력이 커져서였습니다. 그러나 종묘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지면서 더욱더 한국에 대한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한국학연구생으로서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 열심히 공부하면서 한국의 세계유산을 더 널리 알리고 더 의미있 는 한국유학생활을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31
GKS 장려상 꿈을 향해 인진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사람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꿈이 있기 마련입니다. 꿈은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려는 꿈도 가질 수 있고, 매우 가난한 사람이 세계 제1위의 부자가 되고 싶은 꿈도 가질 수 있습니다. 꿈은 이루지 못하더라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하 게 해 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꿈이 있었고, 그 꿈의 제목은 지금까지 제 방 책상 벽에 써져 있습니다. 제 평생 꿈꿔 왔고 지금도 간절히 그 꿈을 향해 날마다 숨을 쉬고 있습니다. 저는 경찰이신 아버지와 선생님이신 어머니의 외동딸로 엄격하고도 자상한 사랑을 한 없이 받고 자랐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형제가 없는 저에게 때로는 무서운 선생님이 되고, 친구가 되어주고, 때로는 제 인생의 지도자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저희 집이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족함이 없는 가족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어려서 부터 부모님께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셨고, 모든 일에 있 어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신중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신뢰해 주셨습니다. 자식의 의견을 존경해주시고 믿고 맡겨주심에 저 또한 부모님을 존경 하며 책임감 있는 행동을 배웠습니다. 사실 제가 어렸을 때 제 부모님께서 제가 의과대학 을 입학해서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한국어와 인연이 있었던 저는 대학교에 한국어과 전공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미얀마의 교육정책에 따르면 대학이나 전공은 점 32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수에 의해 정해져 있습니다.) 그때 제 부모님은 졸업하면 무엇을 할 것이며, 또 앞날이 어 떨지 모를 저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제 부모님께 말씀 한 마디만 했 습니다. 제가 언제가는 꼭 엄마, 아빠가 자랑스러운 딸이 되도록 노력하겠으니까 엄마, 아 빠 저를 믿어주십시오 라는 말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때 제 스스로도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몰랐습니다. 다른 기술학과, 컴퓨터 학과 등에 입학이 가능했지만 한국어과를 다니기로 했 습니다. 그 때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TV드라마 몇 개를 통해 아는 것 밖에 없었지만, 제 마 음 깊숙히 한 가지 굳게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뭐냐면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 하면 언제가 는 보람을 느끼게 되고 최고가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다짐했기에 한국어를 처음 배 우는 날부터 피눈물 나게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2학년 때 한국어 능력시험 4급을 합격하여 주 미얀마 대사관에서 운영하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2006년 제4차 한국어 말하기대회에서 제 친구 2명을 제외한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저의 1년 선배들이었습니다. 선배들과 경쟁하기 위해 어느 때 보다 더 열 심히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과 동상을 수상했습니다. 비록 동상이었지만 저에게는 금상 이 상의 소중하고, 아주 귀한 가치였습니다. 그리고 수상한 그 날 밤은 정말 즐겁고 행복한 밤 이었습니다. 그 말하기 대회를 개최하는 식장에 저의 아빠는 출장 가셔서 못 오셨지만, 저 의 엄마가 나와 주셨습니다. 그날 밤 한국어 말하기대회의 저의 발표주제는 저에게 소중 한 사람 이라는 제목으로 저의 엄마, 아빠에 대한 얘기로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제가 엄마 얘기를 하면서 엄마를 보는 순간 엄마는 매우 뿌뜻한 표정,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보 고 있었습니다. 저의 엄마는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이지만 엄마라는 소리만 듣고, 그리고 저의 표정을 보고 제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눈치를 챈 것 같았습니다. 그날 집에 가서 제 가 대상을 못 받아서 죄송하다고 아빠에게 연락을 드렸는데, 아빠는 그런 대회에서 당당 하게 아빠, 엄마 얘기를 해주어서 우리 딸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고 저 에게 말했습니다. 그날 밤에 한국어는 저에게 발전의 열쇠이자 제 꿈을 실현시켜주는 유일 한 길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졸업하고 한국국제협력단 코이카에서 마련해 주신 2008년도 코이카 프로 그램에 참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받았습니다. 그때 저의 나라 미얀마에서 저 혼자만 참 가할 수 있었습니다. 제 평생 다시 생각해도 행복하고 정말 보람 있는 그 코이카 프로그램 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그때 제 부모님을 위해 제 나라를 위해 제가 최선을 다했기 33
GKS 에 그 결실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 아빠에게 수료식이 끝나자마자 전화해서 알려 드렸습니다. 엄마, 아빠의 기뻐하시는 웃음소리는 저에게 세상을 다 가진 듯했습니다. 또한 2008년 코이카 프로그램에서 인진륀이 최우수상을 받는 것보다 미얀마학생 인진륀이 최우 수상을 받는다는 말이 더 귀에 달콤했습니다. 그 프로그램 끝난 후 미얀마 다시 돌아가는 날 언제가는 한국에 다시 와서 한국 대학에 서 공부해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미얀마에 다시 돌아간 후 저는 미얀마 현지 코이카, 굿네이버스라는 한국 NGO, 미얀마에 들어가 있는 한국 회사 중 최고 한국 회사라고 할 수 있는 미얀마 포스코 회사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한국어와 한국관련 경험들을 꾸준히 쌓았 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싶은 저의 다짐은 그 사이에 하루도 변하지 않았습니 다. 그러다가 경희대에서 제가 연수를 다녔을 때 가르쳐주셨던 한국 선생님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국립국제교육원(NIIED) 장학생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싶은 생각 이 있으면 지원해 보라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너무 간절한 마음으로 경희대에 대학 추천 으로 국립국제교육원 장학생을 지원했습니다. 해외에 그렇게 대학원을 다닐 수 있다는 기 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기회라 정말 많이 기대하며 지원했습니다. 몇 주 후에 제가 최종 합격자 중에 선발됐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습니다. 미얀 마의 한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저 같은 사람이 저의 자비로는 공부 못할 값진 기회이었습 니다. 그 기회가 제 꿈을 실현시켜 줄 기회였다는 것은 제가 경희대학교에서 지금 대학원 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매일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처음 2012년 정부초청장학생 오리엔 테이션 하는 날에 미얀마에서 오는 친구들과 함께 Talent Show에 미얀마 전통옷을 입고 한국 노래를 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수많은 친구들 중에 미얀마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친구들도 아마 많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 앞에 미얀마를 조금이나마 알 릴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저의 자랑스러움으로 시작한 한국 유학생 활은 지금이면 거의 1년쯤 넘었고 이제 3학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유학 생활을 하면서 한국을 본격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미얀마와 같은 더운 나라에서 온 저에게 제일 힘든 한국의 추운 겨울에도 열정이 넘친 한국 학생들을 본받아서 저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 습니다. 한국어학 전공인 저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 역사, 문학 등도 다양한 수 업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때에 따라 학교에서 친절하게 마련해 주신 수학여 행 및 행사 등도 많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의 제일 가까운 친구이라고 할 34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수 있는 경희대의 멋진 도서관 무엇보다 소중하고 아낀 곳입니다. 미얀마에서 그렇게 크고 대단한 도서관이 없는 것을 많이 아쉬움을 느끼며 언제가는 저희 미얀마에도 경희대 도서 관처럼 좋은 도서관들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늘 생기곤 합니다. 무엇보다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다양한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고 미얀마를 전 혀 몰랐던 친구들에게 미얀마에 대해서 알려 줄 수 있고, 그 친구들의 나라에 대하여 제가 잘 몰랐던 것들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미얀마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이라는 것을 외국인에게 알려 줄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정말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미얀마 사람을 처음 본다고 하는 친구들에게 최대한 좋은 인상을 주도록 노력하고 있습니 다. 왜냐하면 그때마다 제 마음에 저는 미얀마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매일 그 마음을 품고 한국의 많은 좋은 것들을 생활하면서 배우고 유학 생활에 하루 하루 가 후회 없도록 사는 것이야말로 저에게 국립국제교육원(NIIED)에서 주신 최고의 상이자 평생 다시 생각해도 제일 가치와 보람 있는 멋진 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으로 오는 날 공항에서 펑펑 우시던 엄마에게 그 눈물만큼 다시 웃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보다 더 한 노력을 통해서 제 엄마, 아빠가 저를 위해서 웃을 수 있도록, 또한 저의 나라 의 명예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렸을 때 가졌던 저의 유일한 꿈이 고 이제 그러한 저의 꿈에 한 가지 꿈이 더 추가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밝은 길을 열어 주 시고, 제가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국립국제교육원(NIIED)의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제 새로운 꿈을 향해 약조합니다. 35
GKS 장려상 응답하라 2012 라시드 라파엘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2012년은 정말 다사다난한 해였습니다. 저의 2012년은 두 가지 큰 일로 나누어 볼 수 있 습니다. 제가 학부를 다닐 때, 제 전공은 일본학, 한국학이었지만 기본적인 내용만 배우고 깊이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어 실력도 늘리고, 석사 학 위 과정을 하기 위해 한국에 오기로 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어떤 일들이 저를 기다 리고 있을지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오늘까지도 저는 잊지 못 할 추억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한국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그것들은 대부분 부정적이거나 북한에 관한 뉴스 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들이 한국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 항상 충격적인 소식만을 들었기 때문에 북한이 핵 보유국가라는 것 이외에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과 매우 가까운 그 나라를 알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북한 사람(새터민)들을 만나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남한에서 여 러 선입견으로 인해 힘들어 하고 남한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매우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남한에서 10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았었던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많은 선입견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2012년 1월, 고려대학교 어학당에서 한 학기 동안 한국어 실력을 쌓고, 저는 탈북 주민 에게 자원봉사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신촌으로 봉사활동을 갔는 36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데 그곳에서 저와 또래인, 4년 전에 탈북한 한 여학생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고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연세대 동아리를 하 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 동아리에서는 남북한 학생들이 함께 어울리며 밝은 분 위기 속에서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서로가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저는 그 동아리에 가입했고 그들의 따뜻한 환영에 매우 감동하였습니다. 제가 남한 출신도 북한출신도 아니었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동아리에 갈 때마다 더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려고 노력했 습니다. 매주 우리는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북한의 대학생활, 북한 요리, 북한에서 있었던 로맨스 이야기까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엠티를 포함해서 함께 재 미있는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이 경험으로 인해 한국과 한국 사회에 대해 여러 중요한 점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첫 째로,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통 일에 대해서 남한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동아리 사람들은 가족들이 부끄러워할까봐 동아리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비밀로 했습니다. 왜 그랬 는지 이해는 되지만 그런 차가운 인식을 가진 상태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북한 과 통일 이라는 단어들은 굉장히 정치적이고 위험한 용어입니 다. 하지만 저는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3자이고 외국인이기 때문 에 다행히 사람들이 북한과 통일에 대한 저의 가치관을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친한 고대 호랑이들을 동아리에 초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 저는 이화여대, 서강대, 그리고 외대에까지 비슷한 동아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제 학교인 고대에는 왜 그런 동아리가 없는지 궁금했습니다. 너무 위 험해서 없는지, 아니면 쓸모가 없어서 없는지, 고대에는 북한 사람들이 있는지, 그리고 다 른 고대 친구들은 그런 동아리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 궁금증을 없애기 위 해 저는 직접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5월에 학교 축제가 있었는데, 저와 제 친구들은 부 스를 설치하고 동아리를 만들기 위해 상의했습니다. 고대에 다니는 북한 사람은 아무도 모 르는 상태였습니다. 어느 날 어떤 여학생이 저에게 연락했습니다. 그 친구는 연세대에 다 니는 자신의 친구로부터 우리가 동아리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 사 실이 그 친구가 입학한 뒤 들은 가장 행복한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 사람 이 되었고 재교육도 받았지만, 대학생활이 버겁다고 했습니다. 적응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37
GKS 고 했고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 친 구는 북한에서 온 다른 고대생들을 소개해주었고 우리는 부스를 만들기 위해 2주 동안 열 심히 일했습니다. 우리 동아리의 목표는 고려대에 다니는 북한과 남한 학생들이 모두 게임 도 하고,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며 친하게 어울리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 떤 교수님은 그 일이 시간 낭비일 것이라고 했고 아무도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노력했고 밤을 새우며 일한 결과, 드디어 모든 준비를 끝냈습니다. 우 리의 목적은 동아리에 사람들을 가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런 동아리에 관심 을 가지는지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지 궁금했습니다. 결국, 그 날이 왔습니다. 두부밥과 토마토 화채를 팔면서 우리는 북한의 놀이도 했고 많 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습니다. 남한 사람들이 만약 자신들이 북한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을 했지만, 사실 그들이 이야기나누던 상대 는 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날은 저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감동적이고 보람찼습니다. 지나가시던 많은 고려대 선생님들도 저희를 축하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이 통일이 무엇인지 도 모른 채로 통일을 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때의 부스 행사 를 통해 저는 사람들이 충분한 관심이 있으나 단지 어디서 그러한 것들을 찾아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에는, TV 방송사, 라디오 쇼, 심지어 신문사에서 도 저희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제가 조금이나마 고려대를 아니, 한국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정말 기뻤습니다. 우 리가 이 동아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많은 남한 친구들은 북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친구들은 동아리를 통해서 서로 좋은 친구들이 되었습니다. 아직 우리 동아리가 작고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지만 저는 한국의 미래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프로젝트의 일원이라는 것이 너무도 기쁩니다. 축제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동아리 모임을 가지며 고려대학교 내의 새터민들과 교류를 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해의 또 다른 사건은 제가 한국에 대한 웹사이트를 만든 것입니다. 저는 영국에 있 을 때 항상 KPOP과 김정일에 관한 뉴스만을 듣는 데 질려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단편적 인 시각만을 전달하는 서양 언론들에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지난 2월 저는 친구와 함 께 koreabang이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이 사이트의 컨셉은 단순합니다. 한국 사 회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가장 많이 논해지는 한국의 뉴스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입 38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니다. 처음에는 취미활동으로 사이트 운영을 시작했기에,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상 상하지 못했었습니다. 몇 주 후에, 저희는 한 유명 신문사에 특집으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 습니다. 그리고 5월에는, 한 영국 방송사에서 한국 패션에 대한 다큐멘터리의 토픽을 찾기 위해 저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이러한 접촉을 통해, 저희는 연예인들, 한국의 유명 디자 이너들과 성형외과 전문의들과도 만났고 영국의 유명 다큐멘터리의 공식적인 협력자로서 활동했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사이트가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곧, 방문자 숫자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많은 한국인들이 적극적으로 이 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 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더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 었습니다. 하지만 KPOP을 제외하고는 서양사회에서 한국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매 우 적습니다. 사람들은 꼭 예쁜 아이돌 가수들이나 김치 이외에도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싶 어합니다. 이것이 아마도 제 웹사이트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번은 저희 사이트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본 웹사이트 top 2000에도 뽑힌 적 이 있습니다. 이것은 외국인들이 그만큼 외국인들에 의해 전해지지 않는 뉴스라 하더라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운영을 시작 한 이래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저희 사이트에 도움을 주고 있고, 그 중 반은 자신들의 나라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하는 한국인들입니다. 또한 더 놀라운 사실은, LA TIMES, WALL STREET JOURNAL, NBC NEWS 등을 비롯한 세계의 유명신문사들이 제 사이트를 참조한 기사들을 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라디오 방송에도 인터뷰이로 나오게 되었 고, 영국 유명 잡지를 도와 한국에 대한 기사도 만들었습니다. 앞서 얘기한 한국 생활의 두 에피소드를 통해 개인적으로 한국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매일 한국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같이 활동하고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것들이 교실 밖에서, 교과서 밖에서 한국문화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또 거의 매일 제 웹사이트를 통해 한국의 기사들을 번역하는 것 역시 영국 신문사들이 전달해 주는 것들을 넘어서 한국의 소식들을 알아가고 여기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또 사람들 이 어떤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들 이 제 학업적인 성공에도 아주 중요한 것들이 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9월에 대학원을 진학했습니다. 제가 듣는 수업들은 국제 인권, 남북한 관계 그리고 한국 정치입 니다. 저는 지난 몇 해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더 39
GKS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권 수업에서는 우리는 북한의 탈북자와 기근 문 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실제로 경험을 했던 제 친구 들로부터 이야기들을 종종 들었기 때문에, 이 수업의 토론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 습니다. 남북한 관계 수업에서는 대부분의 반 친구들은 시대가 지난 책들에서 읽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저는 책들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가 직접 들었던 진짜 이야기들을 논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치학 시간에는 매일 같이 한국의 기사들을 읽고, 이해하고, 번역한 덕분에 현재 한국의 정치적인 분위기와 대선에 대해 자세하게 리포트를 써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해왔던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서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고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을 통해서 고려대학교와 한국 사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러한 경험은 제가 미래에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통 일부에 인턴십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내년 여름방학 기간에 인턴을 하기 위해 서 인턴십에 지원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의 2012년은 저에게 정말 환상적이었고 내년 2013년에는 무슨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40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장려상 울릉도, 독도 탐방 부티투짱 대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너는 사랑이다/ 너는 우리의 희망이다/ 너는 외롭지 않다/ 네 곁에 내가 있고/ 조국의 뜨거운 가슴이 있다/ 동해바다 푸른 물결/ 힘차게 가르자/ 사랑하는 독도여/ 거친 파도를 타고 동해바다/ 끝까지 달려 나가자 장수남의 내가 좋아하는 독도에 관한 독도, 사랑 이 라는 시이다. 독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잘 표현해주는 이 시의 어조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독도문제는 연일 언론에 핫이슈로 오르내리고 있어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는 독도 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외국인들이 독도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굉 장히 궁금했다.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에서 온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여서 The Rising Sun" 팀을 지어 대구대학교에서 개최한 2012 외국인 독도 사랑 말하기 대회 에 나가기로 하였다. 대회 날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국적이 다른 12팀의 외국인 학생들이 두말 할 필 요 없이 하나같이 독도문제와 울릉도에 대해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었다. 내 이름은 독 도, 독도는 누구의 땅인가?, 독도-세상을 향한 날갯짓 독도의 영토권 분쟁 등 다양한 주제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모든 팀은 독도가 한국 땅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하였으나 우리 팀은 유달리 시를 통하여 아름다운 울릉도와 꿈과 희망의 상징인 독도를 소개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시( 詩 )로 보는 울릉도와 독도 라는 주제를 잡아 발표하였다. 한국을 하면 흔히 한복, 사물놀이 혹은 태극기가 떠올랐지만 이제 한국 사람의 사랑에 대해 한층 더 알 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독도이다. 한국인들이 독도를 막내 땅 이라고 부른다. 정말 정겹고 41
GKS 친근감을 주는 부름이 아닐까. 한국에서 해가 처음 뜨는 곳도 독도라고 한다. 독도의 시민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도 그 태양으로부터 강렬한 힘과 굳은 믿음을 받아서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기며 희망이 찬 미래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 거친 파도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는 배들의 모습처럼! 대회가 끝난 다음에 울릉도, 독도를 탐방하러 경상북도 울릉군으로 떠났다. 투어가이드 가 그곳에서 신비로운 섬의 맛과 멋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고 해서 기대감이 가득 찬 마음 으로 썬플라워호 를 탑승했다. 울릉도에 도착할 때 점심시간이 다 되어 섬의 별미 홍합밥 을 맛보았다. 제일 보람을 느꼈던 것은 바로 널리 알려져 있는 한국의 유일한 영토박물관 인 독도 박물관 을 방문하는 것이다. 박물관에 올라가면서 울릉도는 오르막길과 계단만을 지닌 섬의 특징을 실감하였다. 그칠 줄 모르는 비 때문에 그리 가고 싶었던 독도까지 못 가게 됐지만 독도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 자체도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곳에서 <팔도총도>(1530년), <조선국지리도 소재 팔도총도>(1592년), <삼국접양지도>(1785 년)등과 같은 지도들하고 값진 역사증거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어 이를 통해서 독도와 울 릉도에 대하여 처음 알게 된 것은 수두룩하다. 실은 독도는 한국의 땅인지 아닌지 오랫동 안 회의를 품었으나 삼봉도를 형상화한 독도 박물관은 내게 진실을 말해주었다. 독도는 한 국의 고유 땅이라는 진실! 이러한 귀중한 자료들은 한국 사람에게 조국의 영토의식과 민족 정신을 고취할 뿐더러 외국인한테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사실까지 알리는 데 요긴한 역할 을 한다. 우리나라 베트남은 남중국해에 위치한 스프래틀리 군도(쯔엉사 군도-베트남명) 영 유권 문제 때문에 다른 나라와 긴장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한국처 럼 영토박물관 하나가 생겼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다음날 버스로 울릉도 한 바퀴를 돌아봤다. 창밖을 내다봤더니 울릉도 섬 전체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는 부지깽이나물이 울릉도를 초록빛으로 뒤덮고 있었다. 이들이 빗속 에서 더더욱 신선해 보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뿐더러 죽도 또는 관음도와 같은 주변에 있 는 작은 섬들도 볼 수 있었다. 울릉도, 독도, 죽도, 관음도와 같이 동해에 있는 섬들과 육지 에 떨어져 있는 하나의 섬 가족을 이루는 것인 것만 같았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나는 이 섬들이 외로운 섬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 날 탐방의 가장 인상 깊은 것이 다름이 아닌 해안 산책로 도보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한걸음 한걸음씩 걸어가면서 눈앞에서 펼쳐 있는 푸른 바다와 한쪽은 우뚝 서 있는 드높은 산이 육지에서 보기 여간 힘들지 않은 절경을 이 루었다. 기가 막혔다. 울릉도의 멋은 바로 이곳이 아닐까. 저녁에 숙소에 들어가서 독도사 42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랑 퀴즈대회에 나갔다. 모든 외국학생들이 다 같이 하는 것이다. 대회라기보다는 재미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새로운 지식을 섭취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독도사랑의 열정은 대회 의 분위기를 뜨겁게 끌어올려주었다. 마지막 날이었다. 일단 울릉도의 평지인 나리분지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안개가 자 욱해 멋진 풍경을 연출해 주었다. 울릉도의 대표적인 너와집을 볼 수 있었다. 너와집과 처 음 만났을 때 우리 나라의 초가집과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너와집은 지 붕에 너와가 얹어져 있다는 특징 때문에 불린 이름이며 너와의 재료로는 소나무, 전나무, 굴참나무라고 한다. 이로써 한국 문화에 대해 한층 더 알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칠 줄 모르는 비는 오히려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또 다른 울릉도의 멋진 절경을 즐길 수 있었다. 봉래폭포였다. 잠시 폭포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폭포소리 가 골짜기를 무상무념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떨어지는 물줄기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며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철썩철썩 치는 파도 소리, 시원한 바닷바람, 널따란 나리분지, 봉래 폭포 그리고 인상 깊 은 너와집 등 모두가 한 폭의 우아한 풍경화를 연상케 하였다. 육지에 동떨어져 있는 이 섬들이 많이 외롭겠고 생각했으나 직접 가보니 그러한 것은 헛생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나 는 깨달았다. 울릉도, 독도, 죽도, 관음도는 동해에 있는 다른 섬들과 같이 하나의 섬 가족 을 이루는 것을 봤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섬들은 외로운 섬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한국엔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라는 속담이 있다. 오감으로 섬의 모든 것을 체험 하고 몸소 독도박물관에 가서 자료들을 목격하는 것은 내게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 었다. 섬에 첫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돌아올 때까지 늘 같은 생각이었다. 독도는 다름이 아 닌 한국인의 막내 땅이라는 생각! 너는 사랑이다/ 너는 우리의 꿈과 희망이다/ 너는 외롭 지 않다 시가 또 다시 노래처럼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43
GKS 장려상 나만의 무대를 세우기 위한 발돋움 아리운자야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2012년 2월 23일, 나는 기대에 부푼 가슴을 안고 한국에 도착했다. 나에게 나만의 무대 를 세우기 위한 밑거름이 될 정부초청장학생이라는 큰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기회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하여 그간 나는 더욱 책임감 있게 생활해왔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한국에서의 생활도 벌써 1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고, 나는 그와 같은 변화들에 울고 웃으며 이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때로는 미처 예상 치 못했던 난관을 만나 슬퍼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생각지 못하게 찾아오는 소소한 기쁨 들에 행복하게 하기도 하면서. 낯선 환경, 새로운 문화, 그리고 정 많은 한국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이에 나는 이 글을 빌어 앞으로 한국에서 생활하게 될 유학생 친구들과 나의 한국에서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한국으로의 유학은 나에게 있어 부모님의 곁을 떠나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 왔다. 천방지축의 10대를 지나 스무 살이 되던 날, 나는 부모님의 안전한 품에서 나와 스스 로 인생을 개척하고,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멋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 였다.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기보다 자기 스스로 서고 싶다는 자립심이 생긴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 나는 나만의 무대를 세우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정부초청장학생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은 일종의 도전이었다. 이후 정부초청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한국에 와 서 생활하면서 나는 누구도 가르쳐 준 적 없었던 자립심과 독립심을 스스로 키울 수 있는 44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는 유학 생활에는 물론, 나의 인생 전반에 있어서도 가장 값진 경험 이 되리라 믿는다. 외국에서 이처럼 오랜 기간 생활해보는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이전에 외국 여행을 해보 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 짧은 기간이었고, 또 늘 부모님과 동행했었기에 고향을 그 리워하는 마음은 그리 크지 않았었다. 내가 이처럼 조국을 절실하게 사랑하고 고향을 그리 워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극복하며 낯선 환경에 적응 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친구들 덕분 에 나는 곧 새로운 환경에서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고, 지금은 한국이 너무나 편해졌다. 마치 제2의 고향이 된 듯하다. 한국문화를 조금씩 접하면서 모국의 문화에 관심이 더 커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 다. 한국인 친구들은 물론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도 친해지면서 나는 내가 단순히 한 개인 이 아니라 몽골 이라는 한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 몽골을 알릴 의무가 부여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에 나의 책 임이 막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책임이 부담스럽다거나 싫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조국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뿌듯했 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종종 몽골을 세계 역사 속에서 잠깐 반짝였다가 이제는 다른 나라 에 속하게 된 것으로 오해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배웠지만 크게 관심이 없어 그간 신경 쓰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유학이라 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애국심이 더 커진 것이다. 예전에는 너무나 지루하고 딱딱하기만 했던 뉴스, 읽다 보면 세상에 살기가 무서워졌던 신문 기사들, 거의 강제적으로 외워야 했던 시와 뻔하게만 느껴졌던 문학들도 한국에서 생 활하게 되면서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사회와 문학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접하 게 되면서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무시했던 것들은 얼마나 중 요한 것이었던가! 지루하다 생각했던 인문사회 지식들은 내가 한국사회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대학수업에서 만난 교수님과 친구들은 내가 몰랐던 것을 친 절하게 설명해주어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나 또한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 하는 동시에, 이와 같은 호의가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설명을 듣고, 새롭게 접한 지식들을 외우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 1학기 때 대학국어를 수강했었는데, 교수님은 외국친구들이 한국어로 학술적인 글을 쓸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지만 많은 학생들을 제한된 시 45
GKS 간 안에 효율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힘들 것이라 판단하셨다. 그래서 수강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튜터링 프로그램에 지원하도록 권유하셨다. 튜터들은 외국인 친구들의 글을 일 차적으로 교정해주거나 새로운 단어를 설명해주고, 교수님은 이차적으로 글을 다듬거나 튜 터가 설명해주지 못한 부분을 설명해주셨다. 이러한 시스템은 외국인 나에게 여러모로 도 움이 되었다. 나는 튜터와 기사를 읽고 요약하거나, 한국의 문학을 읽고 감상문 쓰고, 한국 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에서 체험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튜터의 열정으로 나 는 기사읽기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할 수 있었고, 한국의 문학을 통해 한국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기사들을 읽으면서 나는 한국사회를 조금이나 알 수 있었고 이와 동시에 우리나라의 기사와 사회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가 현재 마주 하고 있는 문제점들과 이에 대한 개선 방안 등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그 뻔한 스토리를 가졌던 문학을 이제는 사랑하게 되었다. 특히, 한국과 몽골의 고전문학 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두 나라의 고전문학을 비교하면서도 그 안에서 지혜를 얻는 것이 즐겁다. 한국에 와서 정부초청장학생으로 생활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푹 넓은 인 간관계를 가지게 된 것이 큰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다른 정부초청장학생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하여 알아가고자 하였다. 너무나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대학교에서 같은 학과이자 같은 반인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 다행인 일이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길을 걷는 동 반자이고 비슷한 목표를 꿈꾸기도 한다. 그들이 있어서 너무나 든든할 때가 많다. 처음에 는 친구들과 친해지기 어렵기도 했지만, 여러 활동을 통해서 친구들과 더욱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또한 한국대학생들의 문화를 같은 반 친구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너 무나 새로운 문화였으나, 너무나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처음에는 잦은 만남을 꺼려했지만 그 친구들과 조금 친해진 후에는 오히려 만남이 좋아졌다. 함께 장터, 일일호 프 등을 하고, MT를 가면서 하면서 친구들과 더욱 친해질 수 있었고 대학생활의 즐거운 추억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또한 한국에서는 선후배 사이가 돈독하고 질서가 있다. 그래 서 이 점은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고 후배들 은 선배들을 존경하고 따른다. 이러한 점은 우리나라의 대학생활에서도 있었으면 하고 바 라게 되었다. 이제 몇 달이 지나면 일 년 전의 나와 같은 신입생들과 만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선배들이 보여준 모습처럼 신입생들에게 멋진 선배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신 46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입생이기도 하면서 유학생이었던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었으면 한다. 한국에 와서 겪었던 특별한 경험 중에는 공동체 생활이 있다. 나는 외동딸로 태어나 부 모님,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랑 살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또래 친구들과 같이 생활한 기억이 많지 않다. 비록, 몽골에서 방학 때 또래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10일간 갔던 경험이 있으나, 지금처럼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진 않았다. 나는 기숙사에서 같은 신입생 한국인 4 명과 우리보다 선배인 한국인 3학년언니와 같이 생활한다. 그렇다고 한방에 6명이 함께 사 는 것은 아니고, 2명씩 한방에서 생활하고 6명이 공동으로 거실이나 욕실, 화장실을 사용 한다. 이는 재미있으면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은 환경이다. 거기다 나는 운 좋게도 사이 가 참 좋은 룸메이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들 한국인이지만 관심과 학과는 서로 다 다르 고 생활 패턴도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배우려고 하며 생활 패 턴을 서로 맞추려고 노력한다. 나의 룸메이트 친구는 부산에서 온 친구다. 그래서 처음에 우리는 서울이라는 곳에서 처음 산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이 통했고 서울대에 2012년에 입 학한 신입생이라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지금은 나에게 기숙사는 집과 다를 바 없는 편한 곳이고 룸메이트 친구들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특히, 매일 얼굴을 보며 같이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는 룸메이트는 이제는 가족과 같은 친구이다. 나는 나만의 멋진 무대를 세우기 위한 발돋움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성 숙할 것이고, 값진 경험들로 다듬어질 것이며, 멋진 사람들과 교류하며 꿈은 더욱 커지고, 목표는 뚜렷해져갈 것이다. 정부초청장학생이 된 것은 지금까지 나의 삶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고, 내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멈추 지 않고 나는 나 자신을 더 크게 키워나갈 것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는 말처럼 비록 처음에는 한국에 와서 서툴고 힘들었지만 적응하고 극복하면서 더 멋진 나로 변하는 과정 이 흥미롭다. 나는 나를 빛낼 수 있는 나만의 무대를 끊임없이 만들어갈 것이다. 47
GKS 장려상 매순간 황금같은 추억들 니키아 브라운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석사과정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선생님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추억은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추억이다. 추억은 마음 속에서 그림을 그 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한국에 두 번이나 오는 기회를 누 릴 수 있었고 많이 소중한 추억을 갖게 되었다. 첫 번째는 일 년 동안 인천 영어 마을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왔었다. 딱, 일 년동 안 한국에서 살 줄 알았는데 2년이나 살았다. 한국에서 살아보기 전에는 한국이 그렇게 매 력적인지 몰랐기 때문에, 한국에 빠져가는 내 모습에 스스로 많이 놀랐다. 2년간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을 때, 나의 마음이 너무나 슬퍼서 한참 을 울었었다. 내 고향인 미국에 돌아갔을 때도 한국에서 겪었던 많은 경험과 소중한 인연 을 맺은 친구들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이 매 순간 떠올랐다. 그때마다 한국에 다시 올 기회 가 생길지 아닐지 몰랐기 때문에 마음이 참 허전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의 고향이었 던 미국에 있음에도 나는 미국과 한국, 두 나라에서 동시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 의 마음 속에 한국이 늘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한국의 NIIED 장학금 프로그램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한국에 다시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발전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겨났다. 나는 NIIED 48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장학금 프로그램을 신청하면서 합격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는 없었지만, 이 길이 나의 운 명이라면 꼭 내게 올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합격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한국이 내 삶 에서 중요한 운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10년 8월,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첫 번째 한국에서의 내 모습과는 역할이 바뀌게 되었다. 첫 번째는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 로 왔는데 이번에는 배우는 학생이 된 것이다. 그 때, 왠지 모르게 나의 한국에서의 첫 경 험과 두 번째 경험이 많이 다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2012년, 한국에서 공부한지 벌써 2년에 접어들었다. 미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재미있 게 놀면 시간이 빨리 간다. 그런데 나는 공부할 때도 시간이 꽤 빨리 간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가 성균관어학원에서 1년 반 동안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이다. 한 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힘들 때마다 도와주시는 선생님들과 한국에 유학 온 든든한 친구들이 늘 옆에서 응원해 주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다 극복해 낼 수 있었다. 또한 한국어를 처음 배웠을 때 말이 너무나 서툴러서 한국 사람과는 같이 이야기하기도 싫었다. 나는 원래 남들에게 나의 틀린 점과 약점을 보여주는 것을 창피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어 학원 선생님께서 이런 나를 아시고, 언어는 실수를 통해서 늘 수 있고 지금 한국어를 연습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시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애정 어린 말씀을 해 주셨다. 그 선생 님의 한 말씀 덕분에 내가 남들 앞에서 언제든지 한국어 말해보기에 도전하였다. 그렇게 하면서 한국어 공부에 관심과 열정이 많이 생겨났다. 그 결과, 한국어 과정 1급 때 한국어 사랑상도 받게 되었고, 2급 때도 일등을 하였다. 또한 우정상 2번을 수상하였고, 4급 때도 재학생들을 대표해서 6급 선배님들 앞에 영광스러운 송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 모든 것이 운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노력에 대한 결과를 돌려받은 것 같다. 성균관어학원에서 보낸 시간들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한국어 과정 1급 때에 선생님들과 유학생들과 모두 다 같이 용인의 한국 민속촌에 갔을 때 이다. 그 날, 여전히 서먹하고 낯설었던 반 친구들과 한국 옛날 모습을 구경하고 한국 전통 게임도 같이 하면서 다양하고 맛있는 한국 음식도 먹었다. 우리들 모두는 함께 했던 그 시 간이 너무 너무 즐거워서 그 날이 다 가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한국 민속촌 체험을 마치고 우리끼리 삼삼오오 모여 노래방으로 가 밤늦게까지 신나게 놀았다. 그 날의 시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기억에 남는 일은 어학원에서 개최한 한국어 한마당 행사였다. 그 날은 늘 수 업만 하는 장소로 생각했던 어학원 교실에서 여러 나라의 음식과 게임 등으로 웃음소리 가 49
GKS 득한 하루를 보냈다. 한국어를 배우기 전에는 선생님들 그리고 반 친구들과 이렇게 가족처 럼 지내게 될 줄 몰랐는데 그런 일이 실제로 내 눈 앞에서 일어나니 정말 놀라웠다. 내가 한국어 과정을 수료하게 되면서 얻게 된 나의 한국어 실력과 그 과정에서 함께 했던 모든 시간과 친구들은 내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2012년 3월. 나는 드디어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긴장을 많이 하였는데 교수님들과 동기들이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어 한결 편안해 질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첫 학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신적으로나 감정적 으로 많이 힘들었다. 내 스스로에게 뿐만 아니라 교수님과 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자랑스 러운 내가 되어야겠다는 부담감이 컸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면서 걱정 을 많이 했다. 수업들이 한국어로 진행되면서 나는 열심히 들어도 잘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꽤 많았다. 특히 첫 학기 때, 내게 가장 쉽지 않았던 통계학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이 과목을 통과하기 위해서 일주일 1-2번 정도 밤을 새워가며 과제를 했다. 당연히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 지만 그럴 때마다 주변 친구들의 격려를 받으면서 더 열심히 노력하였다. 통계학을 남들만 큼 잘하지는 못했어도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였고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어서 마침내 통계학 강의를 이수하였고 교수님께도 칭찬을 받았다. 이를 통해 노력과 믿음 그리고 인내심이 있 으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첫 학기 끝나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도시 사회학의 김석호 교 수님께서 부산에서 열리는 가을 학기 인구학회에서 내가 발표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 다. 교수님의 그 말씀을 듣자마자, 첫 학기에 가졌던 부담이 없어지려는 순간 다시 어깨가 무거워졌다. 물론 교수님이 나한테 그런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도 실력이 부족한 내 가 그런 자리에서 발표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짧은 시간에 몰려왔다. 첫 학기가 끝난 다음에 교회 선생님들과 교회 청소년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러 태국에 갔다. 치앙라이에 가서 내가 다니던 교회와 연결이 되어 있었던 고아원에서 열흘 동안 다 양한 일을 했다. 고아원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공예를 가르쳐 주고 숙제를 도와주는 등의 여러 가지 손으로 하는 일을 같이 했다. 일이 좀 힘들었어도 귀여운 아이들을 사랑하 고 돌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태국에서 돌아와서 인구학회 학술대회의 발표를 계속 준비했고 8월에 MC (Multicultural) 50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Korea 아주 특별한 친구 라는 캠프에 참석했다. 내가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캠프에 대해 알게 되자마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바로 생겼다. 그 프로그 램은 2박 3일로 이루어진 일정이었는데 다양한 외국 사람들을 초대해서 한국 아이들에게 다양한 세계의 문화를 보여 주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 아이들과 다양 한 나라에서 온 외국 사람들과 모두 다 같이 게임을 했다. 개인적으로 내 문화 배경을 그 들에게 알려 주었고 그리고 팀의 일을 진행하면서 교육계획을 만들었다. 그 시간은 너무 교육적이고 즐거웠다. 내 문화에 대해 가르쳐 줄 수 있었던 만큼 배운 것을 돌려주었으니 확실히 값진 경험이었다. MC Korea의 캠프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서 인구학회 학술대회의 발표를 마무리했고 9 월에 교수님과 선배님들과 함께 부산에 내려가서 준비했던 주제에 대해서 발표했다. 내가 발표를 하는 동안 온몸이 긴장이 되어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끝까지 발표를 할 수 있었고 살아남았다. 드디어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날 밤에 우리 모두 다 모여서 부산의 유명한 해운대 바다에서 산책하면서 야경을 구경했다. 그리고 부산에 있는 맛있고 신선한 해산물을 먹지 않고 부산을 떠나면 안 된다고 하여 생선과 여러 가지 해산물을 잘 먹고 편 히 이야기하면서 함께 부산에 갔던 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한국에 다시 올 때도 다양하고 힘들면서도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나에게 한국에서 너무 외롭거나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솔직 히 말하면 후회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어느 곳에 있어도 의미 있게 살 면 후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유일한 소원은 한국에 남아 있는 동안 매 순간 아 름답고 잊혀 질 수 없는 황금같은 추억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51
GKS 장려상 유학생활의 소중한 재산 BUI THI BICH THUY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 석사과정 인생은 들어옴과 떠남이 끊임 없이 잇단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간 곳마다 우리 의 기억 속에 어떠한 인상이나 추억이 남아 있어 우리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베트남에 한 유명한 시 중에 우리가 살고 있을 때 그 곳은 사는 장소일 뿐이나 우리가 떠 날 때 그 곳은 영혼도 갖게 되었다 란 말도 있었다. 그 영혼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그곳 에서 우리가 만나게 된 인연들이다. 나는 한국에 유학 와서 생활하면서 이 말의 깊은 의미 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정부초청 장학생으로 한국에 다시 와서 석사과정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의 기쁨은 아직 머릿속에 생생한데 내가 한국에 온지 벌써 2년이나 넘었다. 졸업논문을 준 비하면서 조금만 있으면 졸업하고 귀국해야 하겠지 란 생각이 자꾸 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섭섭하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은 나한테 남의 나라가 아니라 나의 삶이되었기 때문 이다. 또는 한국은 나한테 소중한 재산인 인연들을 만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그 인연들, 그 사람들에 대해서 자랑하고 싶다. 2006년도 가을학기의 첫 수업시간이었다. 두려운 마음과 궁금한 눈빛으로 수업에 들어 간 한 외국학생이 있었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교실 끝에 혼자서 자리를 잡고 수업 을 들었는데 교수님의 명령에 따라 팀을 갖게 되었다. 그 후에 처음의 모든 어색함은 발표 준비를 위한 모임들과 함께 사라지고 우리 팀원들이 국적과 상관없이 서로 친한 친구가 되 52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었다. 그 중에 한 여자가 지금까지 나의 6년 친한 친구가 되어 버렸다. 한국에서 첫째 추석 연휴를 보내게 되었다. 짐을 들고 고향을 향해 컴퍼스를 떠난 학생들을 보고 가족을 그리 워 나는 눈물을 흘렀는데 그 친구는 언제부터 내 옆에 와서 활짝 웃으면서 엄마 보고 싶 지? 추석 때 우리 집에 올래?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있게 놀자! 라고 초대했다. 내가 주저 한 시간도 안 주고 버스를 타기 전에 전화해. 나는 마중하러 나갈게. 그러나 추석 때의 교통체증 때문에 그 친구가 3시간동안 나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 친구 덕분에 베트남에서 보냈던 설날의 분위기와 가족의 행복함을 느끼게 되었고 용돈도 받았다. 특히 한국은 베트 남과 같이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를 유사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한 국과 같은 현대적인 사회에서도 가정의 여성들이 명절 때 음식을 준비하는 데에 참으로 힘 든 모습을 보고 한 여자로서 여러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 생활이 얼마나 바쁘다 해도 여성들이 그 전통적인 가치를 유지하고 본인의 전통적인 역할을 잘 해 나가고 있다는 자긍 심과 명절인데 그 음식을 준비한 시간을 조금 줄여 가족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늘렸으 면 좋겠다는 아쉬움이었다. 최근 2010년에 정부초청장학생으로 한국에 다시 와서 그 친구 의 집에서 또 추석을 보내게 되었다. 그 친구의 가족은 다시 만났는데 할머니를 비롯해 모 두가 나를 기억해 주고 내가 놀러온 외국인이 아니라 오래 만에 집에 들어온 자식으로 반 가워해 주었다. 그 4년 전에 느꼈던 가족의 사랑, 가족의 행복함이 그대로였는데 예전의 아쉬움이 없어졌다. 현재 한국 사람들이 명절 때 전통적인 제사와 가족의 모임을 하면서도 시간을 내서 평소에 시간이 없어 못하는 가족여행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평소에 바쁜 일 때문에 서로 챙겨 주지 못한 부분을 채워 주고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은 더 밀접하게 해 주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는 귀한 기회가 된다. 이는 역시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베 트남 사람인 나에게 부러움을 주는 것이다. 두 번째, 우리 한국 오빠를 소개해 주고 싶다. 그 사람은 업무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던 35살 남자다. 한국 드라마에서 나온 키도 크고 잘 생긴 남자들과 달리 나의 한국 오빠는 키도 별로 안 크고 잘 생기지도 않았으나 첫 만남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뜻한 관심을 주고 잘 챙겨준 남자다. 민감한 남녀관계라서 아무 오해가 없도록 나는 모든 행동 과 말에 조심했고 업무 이외에 사적인 생활이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오빠는 본 인 고민부터 꺼내면서 이야기했기에 나도 친근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어느새 우리가 남녀관계가 아닌 남매의 친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나는 유학 생활을 하면 서 겪게 된 모든 어려움과 고민을 들어 주고 좋은 조언도 많이 주며 직장 생활부터 연애, 53
GKS 결혼까지 모든 문제에 대한 본인의 생각도 나누어 주었다. 특히 그 오빠를 통하여 한국의 직장 문화를 알게 되기도 하고 이는 역시 한국 생활에 있어 안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은 자원이 없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많이 노력하지 않았으면 국가가 이렇게 고 속도로 성장할 수 없다 라는 설명은 종종 듣게 되고 이에 대해서 나도 공감하는데 한국 사 람들이 조금만 더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8시에 출근하 여 저녁 9시나 10시에 퇴근하는 그 오빠의 피곤한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직장 인뿐만 아니라 한국 초등학생도 그렇게 바쁘게 지내는 것이 외국인으로써 나는 감복하기도 하나 이해할 수 없는 점도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회식 문화다. 회식 문화는 고유 의미 는 좋지만 술을 못 먹는 사람한테 악몽이 되곤 했다. 최근에는 회식 문화는 술이 없는 회 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많이 봐서 기분이 참 좋다. 회식 문화가 고유한 의미 를 되찾게 될 것이며 특히 내국인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외국인한테도 그러한 회식의 자리 를 통하여 새로운 직장에 들어온 두려움을 없애 주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한국을 나한테 만나게 해 준 소중한 사람은 우리 교수님이시다. 2011 년 3월에 한국어연수 과정을 마치고 열망하는 마음을 갖고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초등학생 이 처음으로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나도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육환경에 대한 기대와 설 렘에 푹 빠져 있었다. 드디어 첫 수업이 한 시간이 왔다. 내가 상상했던 교수님들의 엄격한 모습과 달리 우리 교수님이 밝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교실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첫 수업을 마치고 나를 연구실로 부르셔서 이야기를 나누셨다. 신입생의 궁금증과 그 수업에 참가한 단일한 외국인 학생의 걱정을 모두 풀어 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특히 베트남과 같은 개발 도상국에서 온 유학생이라서 유학 생활에 대한 깊은 관심을 주셨으며 어려운 점이 있으면 주저 없이 도움을 요청하라고 하신 말씀에 내 마음 속에 고마움을 새겨 두었다. 과연 대학 원 수업이 만만치 않고 또한 나한테 새로운 분야라서 하나도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교수 님과 선배들의 도움 덕분에 나는 이제 4학기까지 원활하게 왔다. 학업뿐만 아니라 기숙사 문제도 들어 주시고 맛있는 것도 사 주시고 나는 유학 중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으며 그 대신에 나의 유학생활이 참으로 의미 있게 가고 있다. 이제 4학기에 들어와 논문을 완 성하고 베트남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 내가 베트남을 떠났을 때 부모, 친구 들을 이별해야 했던 마음과 똑같이 느낀다. 그래도 만나는 인연이 있었다면 또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고 나는 최선을 다 노력해서 성공한 모습으로 베트남이든 한국이든 교수님을 다시 뵐 것이라는 결심을 했다. 그때 교수님이 좋아하시는 베트남 커피를 타 드리면서 교 54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수님과 같이 이 시기의 모든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만 해도 나한테 이 석사과정을 완성하는 과정에 큰 힘이 된다. 한국에서의 유학 과정은 최종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학업을 마무리하면서 그 2년 동안 내가 만났던 사람들, 내가 경험했던 추억들을 되돌아봐 참 많은 귀한 것들을 얻게 되었다 는 생각이 든다. 상기 내가 소개해 준 3명 이외에도 내가 자랑하고 싶고 고맙다는 말을 전 해 주고 싶은 사람이 많은데 이 글 안에 다 표현할 수 없어 내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했다.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은 한국 친구, 교수님, 선후배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베트남 친구들, 다른 나라의 친구들도 만나게 해 주었다. 그 사람들은 나의 가족과 기존 친구들과 함께 가 장 소중한 재산이며 모두가 나의 인생을 아름답게 꾸며 주었다. 이 글을 마치기 위하여 나한테 그러한 멋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해 준 한국 정부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55
GKS 장려상 휼리아, 희망의 날개를 펴서 한국을 날다 휼리아 숭실대학교 한국학과 석사과정 안녕하십니까. 저는 터키에서 온 휼리아입니다. 2011년 NIIED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숭 실대학교에서 한국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먼저 이렇게 장학생으로 뽑아주신 NIIED 관계자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돼서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제부터 제 한국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장학금을 받았을 당시 제 마음은 복권에 당첨된 사람과 같았습니다. 저는 장학생이 되기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였고 선발이 되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낯선 땅에서 무 슨 일이 일어날까라는 즐거운 호기심이 가득 찬 채로.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인천공 항에 도착해 게이트를 나왔을 때 예쁘게 데코레이션을 하여 Welcome, Hulya TASPINAR 라고 적혀 있는 피켓을 들고 있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에게 다가가 수줍지만 최대한 밝게 인사했고 그 분도 저를 활짝 웃으며 반겨주셨습니다. 그렇게 2011년 9월에 숭실대학교 어학원에서의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어학원 생활은 마 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고 할까요. 다시 어린 아이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말 도 제대로 못 하고 친구들도 다 외국인이고 주변에 신기한 것이 많아서 세상을 처음 접해 본 아이가 점점 커가는 것 같았습니다. 행복하고 재미있었던 일 년이었고 제 한국 생활의 기초를 마련해준 그 때가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배려해주며 다양한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만들 56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도 터키에 관한 지식을 최대한 알려주었으며 터키에 대한 좋은 인 상을 심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또한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 터키 전통 음식 인 케밥도 팔고 전통 의상도 입으며 터키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한국어 교수가 되고자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아주 재미있는 봉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터키문화원, 미지 센터 등등 많은 센터에서 터키에 대해 알려주고 다양한 얘기도 나누면서 문화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면서 알차고 보람 있게 보내는 것이 정말 보람되고 즐겁습니다. 한국에서 살면서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본 결과 느 낀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저는 국가대표라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터키를 대표하는 사람 을 말합니다. 제가 이 머나먼 한국 땅에서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항상 속으로 생각하는 것 이 있습니다. 국가대표라면 국가대표답게 더 열심히 해야 되지 않을까? 박태환, 김연아처 럼. 분야는 다르지만 터키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열정을 가지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에게도 잘 알리도록 항상 노력해야해. 1년 넘게 한국에서 그리고 숭실대학교에서 지내면서 어려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안 좋은 기억보다 행복하고 재미있었던 일이 훨씬 많습니다. 가족이나 다름없이 가까워진 사람도 많았고 나중에 귀국하고 나서도 계속 연락할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은 참 다행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신기하고 이색적인 일들이 참 많았지만 대표적인 것이 술 문화입니다. 한국은 술 문화가 굉장히 발달되어 있습니다. 어디서든 술이 빠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놀 라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슬람 종교를 믿어서 술을 한 번도 마셔 본 적이 없기 때문입 니다. 그때 제 기분이 어땠을까요? 상상할 수 있으신가요? 저도 반드시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아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술을 안 마신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나중에는 자 연스럽게 술을 주문할 때 "휼리아! 뭐 마실래? 콜라? 사이다?" 라며 술 대신 탄산음료를 시 켜줬고 저도 즐겁게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또 한국에서 놀란 것 중에 하나가 한국 학생들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또 어디에 도서관을 이렇게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 즘 제가 그들을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가게 되고 공부를 57
GKS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정말 술도 잘 마시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열정적인 젊은이들의 나라입니다. 앞으로 NIIED 장학금을 받아서 한국에 올 다른 친구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만나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두 인연이 있기에 만나는 것이며 그 인연을 좋은 쪽으로 끌어가는 것은 본인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유학생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아마 친구 사귀는 것일 겁니다. 친구는 저 절로 사귀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유학생의 입장에서는 어울리고 밥 먹는 것조차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느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워낙 잘 웃고 처음 만나도 말을 잘 걸 수 있으니까요. 이런 장점 덕분에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번 강조하는 게 부담 갖 지 말고 다가가야 그들도 나에게 마음을 열어준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언어를 제일 빨리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나라 사람들의 일부가 되어 그 언 어에 계속 노출되어 끊임없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터키에서 배운 한국어와 한국에 서 쓰는 한국어는 큰 차이가 있어서 부담을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자연스럽게 한국어 실력이 부쩍 늘었고 한국인 친구들도 저와 대화하는 것이 무리가 없다고 말해주었습 니다. 또한 꿈에서 한국어로 말한 적도 있고 요즘은 한국어로 혼잣말도 합니다. 게다가 한 국의 멋과 재미도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민속촌, 서대문 형무소, 놀이동산, 광화문, 당 진, 삼척, 제주도 등을 다니며 책으로만 봤던 곳을 직접 다녔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 통을 배울 수 있는 행사도 참여하고 음식도 만들었으며 전통 악기를 배웠습니다. 그렇게 함 으로써 뜻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도움의 길이 열린다는 말을 누구보다 절감했습니다. 한국은 이제 제게 두 번째 고향이 되었습니다. 이 만남과 경험이 모두 NIIED 덕분입니다. 한국에 온지 벌써 16개월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배울 게 많습니다. 제가 공부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분들 중 첫 번째로 NIIED 관계자들, 그 다음에 선생님들과 친구들 그리 고 가족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NIIED은 든든한 후원자였고 앞으로도 제 미래를 응원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서 한국에서의 공부와 생활을 마무리 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지금까지 배운 지식과 앞으로 배 울 경험으로 한국과 터키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도록 강한 의지로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58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장려상 울지 마! 정신을 차려라, 너도 이제 남자다 AFOLABI AANUOLUWAPO OKIKI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나는 나이지리아의 시골에서 왔고 이름은 아포라비 아누 라고 한다. 내가 한국에 온 지 거의 일 년 9개월이 되었는데 한국에 들어온 것이 엊그제 같다. 나는 한국에 오기 전에 다른 나라에 가 본 적도 없고 한국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심지어 가, 나, 다 조차 몰랐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친구나 친척도 없는 열 여덟 살 아이가 혼자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이 우리 부모님에게 너무 걱정스 러운 일이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공항에서 우리 아버지조차 눈물을 흘리셨다. 그래서 나 도 울었다! 나는 어떤 공항 직원한테서 울지 마! 정신을 차려라, 너도 이제 남자다 라는 말을 들으면서 우리 가족에게 bye bye 하고 라고스에서 비행기를 탔다. 아시다시피 다른 나라에 가면 적응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내 상황도 마찬가지였 다. 한국어를 못하고 친구도 없고 외로운 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 께서 거의 날마다 전화를 해주셨고 너 혼자 살기가 힘들지 않니?, 필요한 것이 없니? 라고 항상 물어보시면 난 괜찮다 고 대답했다. 사실은 힘든 일이 많았는데 걱정을 많이 하실까 봐 말을 못했다. 그래서 혼자 견뎌내었다! 내가 거리를 걸어가면 아프리카사람이라 서 그런지 초, 중, 고등학생들이 자꾸 쳐다봐서 기분이 나빴다. 특히 어느 날 어떤 고등학 생이 나한테 몸을 돌렸고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좀 알려 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웃으면서 내가 남자라고 대답했다.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나는 기분이 나쁘고 화가 많이 났다. 59
GKS 다행히 한국 음식이 입에 잘 맞아서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김치라든가 김치찌개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를 것이다. 참, 비빔밥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러나 내가 한국 음식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바로 삼겹살이다. 친구들이랑 보통 저녁 식사를 같이 할 때 삼겹살 먹는 것을 좋아한다. 또는 뼈 해장국을 정말로 좋아한다. 내가 기분이 나쁠 을 때 뼈 해장국을 먹으면 기분이 확 좋아진다. 뿐만 아니라, 한국 친구 덕분에 김치찌개 를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우리 학교 앞에 있는 아줌마처럼 잘 만들지는 못하지만 먹 을 만하다. 대한민국 정부초청 장학금 때문에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일 년 동안 한국어를 배울 수 도 있고 한국 문화도 깊이 접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행복의 시작 은 아니었다. 한국어 배 우기가 너무 어려워서 어학원에서 1급을 다시 했고 일 년을 넘겨서 일 년 반 동안 한국어 를 배웠다. 내 인생에서 같은 수업을 다시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때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울지 마! 정신 차려라! 너도 이제 남자다. 라는 말을 기억 하면서 힘을 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이지리아에 돌아갈 수 없다. 나이지리아에 돌아가도 할 일이 없고 대학교도 포기하고 왔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야 되고 남자가 되기 위해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점점 한국어 실력이 늘었고 5급까지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토픽(한 국어능력시험) 4급을 합격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래서 가, 나, 다 말 고도 한국말을 더 알게 되었고, 혼자 쇼핑도 할 수 있었다. 어제도 혼자 시장에 갔다. 그리 고 친구가 엄청 많아져서 우리 과에서 내가 진짜 유명하다. 정치외교학과 귀염둥이 라고 하면 바로 나 이다. 12월에 잠깐 나이지리아에 돌아가기로 했는데 그 때 우리 부모님한테 다 말해 줘야겠다. 드디어 이젠 난 남자가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한국 문화를 많이 접했다. 특히 어학원에 있었을 때 문화 체험으로 한복을 입을 기회가 생겼고 사물놀이를 해볼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어학원에서 보통 한 학기에 한두 번 문화체험을 했다. 뿐만 아니라, 박물 관에 방문해서 한국 역사를 배우게 되었다. 또한, 수원 청소년센터에서 내가 스무 살이 되 었을 때 성년식 행사에 참여했다. 솔직히 일 년 9개월 동안 해 본 것이 엄청 많아서 다 못 쓸 것이다. 또한, 대학교에 들어왔을 때 한국 친구들 덕분에 한국문화를 더 깊이 배우게 되 었다. MT에 같이 갔고 치킨과 맥주도 같이 먹었다. 추석 때 친구 가족이 나를 초대해줘서 광주로 여행을 갔다. 친구 가족이 잘 챙겨주셨고, 5.18국립묘지의 박물관을 방문했고 여러 관광지를 같이 돌아다녔다. 마지막 대명 리조트에서 친구 가족이랑 친구 할머니 생신을 축 60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하해 드렸다. 특히, 5.18국립묘지의 박물관을 방문한 것은 나한테 큰 도움이 되었다. 전공 이 정치외교학이고 한국 민주 역사도 깊이 배우게 되어서 정말 감동적이었다. 또한, 광주 에서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배를 타 봤다. 또한, 나는 한국에 와서 세 번의 결혼식에 참석 했다. 사실은 어떤 결혼식에서 축하 노래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경험을 해 못 봤 다. 이제 나는 한국에 형, 누나, 동생 등 많은 가족이 생겼다. 특히 여러 가족 덕분에 날마 다 한국 생활이 더 좋아지고 있다. 또한, 한국에 와서 청와대에 가보았다. 그 때, 어떤 한국 가족과 함께 갔었다. 그리고 사진을 많이 찍었고, 청와대 앞에 있는 박물관에도 방문했다. 그 박물관 안에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부터 현재 대통령까지 볼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나오는 동영상을 볼 때 는 마치 이명박 대통령과 마주보고 얘기를 나누는 듯 했다. 또한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서 많은 추억들을 남겼고, 아직까지 핸드폰 안에 간직하고 있다. 사실은, 한국 사람들이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 봤을 때, 나이지리아라고 대 답하면 나이지리아가 어느 나라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나이지리아가 어 떤 나라인지 알려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예를 들면, 자원봉사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수원 청소년센터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중 고등학생들에게 나이지리아가 어떤 나라인지 자세히 알려주었 다. 나이지리아 음식, 나이지리아 문화 등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다 알려주었다. 한마디로 하면, 한국 생활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 생활 때문에 내가 5년 전 에 상상도 못했던 것을 경험하고 있어서 대한민국 정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머나먼 나 이지리아의 시골에서 온 아이한테 좋은 미래를 선물로 주었는데 왜 감사하지 않겠는가? 61
GKS 장려상 공부도 열심, 경험도 열심, 모든 것에 전력 질주한 내 한국 유학 생활 MIZUMA IKUMI 연세대학교 대학원 한국학협동과정 2년간의 한국 생활을 뒤돌아보면 정말로 많은 한국 문화를 경험했음을 깨닫게 된다. 아 니 경험했다기보다는 스며들다 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만큼 나는 2년간의 한국 생활을 통해서 온몸으로 한국 문화를 흡수하고 배웠으며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지고 알찬 시간을 보 낼 수 있었다. 나의 대학원 생활은 연세대학교 대학원 한국학협동과정 입학과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한국학협동과정에서 한국어교육을 전공하기로 했다. 대학교 때 한국에 1년 교환학생으로 온 적이 있던 나는 그 후 계속 한일 교류에 관심이 있었고 내가 어떻게 그것에 공헌할 수 있을까 내 비전을 찾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우리 과 한국학협동과정의 한국어교육이었 다. 한국학협동과정에서는 한국 문화를 폭넓게 배우면서 한국어교육의 지식도 쌓을 수 있 다는 점이 다른 학과에 개설되어 있는 한국어교육 분야와 다른 점이다. 한국어교육뿐만 아 니라 한국 문화도 많이 배우고 싶다는 공부의 욕심이 많았던 나는 한국어교육관련 수업은 물론 일반 문화 수업뿐만 아니라 한국의 식문화를 배우는 수업도 들었고 한국의 역사나 현 대사회를 배우는 수업도 들을 수 있었다. 대학교 시절 1년의 교환학생의 경험이 있었고 TOPIK 6급도 있었지만 처음에는 대학원 수업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인 학생과 같은 자리에 앉아 토론하는 것이 두려웠고 교수님께서 나에게 질문을 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수업 내내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한 62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국어 실력 문제가 나에게 불안을 가져왔고 그 불안이 열등감 같은 것이 되면서 과연 나는 앞으로 대학원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릿속에 서 고민해도 그런 불안은 없어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불안은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없어지는 것이니까. 불안의 요인이 한국어 실력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한국어 실력 이 많이 떨어지니 한국인 학생보다 2배, 3배로 공부해야겠다. 고 다짐하면서 매일 수업 시 간 이외에는 도서관에 머물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처음에는 논문 한 편을 읽는 데에도 6시 간 정도 걸렸다. 논문에서 나오는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한 문장 읽는 것도 많이 힘이 들 었다. 어떤 일이든 대충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의 성격상 과제도 대층 넘어갈 수가 없어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리고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 했다. 그 노력의 열매가 성적 에도 나타나기 시작해 2년간 30학점의 평균 성적은 96.2/100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어떤 과목에서는 원하는 성적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모 든 과목에 전력 질주했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우리 과는 한국인 학생과 외국인 학생이 아주 친하고 한국인 학생들이 외국인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한국인 학생들은 내가 보고서를 쓸 때 틀린 맞춤법을 고쳐주거나 이 부분은 좀 이해가 안 가니까 수정해야 돼. 이렇게 쓰면 더 좋을 것 같다 고 조언을 주 며 자기들도 바쁘면서도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을 기꺼이 도와주었다. 내가 좋은 성적으로 학기를 끝낼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인 학생들의 아낌없는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그냥 내버릴 수 없는 따뜻한 한국 사람 의 정을 느낄 수 있던 대학원 생활이었다. 성격이 활발하고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나는 학업뿐만 아니 라 학교 밖에서도 많은 경험을 했다. 설날이나 추석, 연말연시에는 꼭 한국인 친구와 같이 집에 내려가 한국 명절을 보내곤 했다. 친한 한국인 친구가 나를 위해서 직접 만들어 준 한복을 입고 세배를 하거나 설날 음식을 만들거나 가족들과 어울리고 윷놀이나 화투를 한 것은 교과서에서 배운 한국문화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매주 가는 교회에서는 한국 사람들의 공동체에 외국인 나 혼자 들어가서 같이 성가대를 했다. 한국어로 찬양하는 것은 나에게 아주 신선하고 한국어 공부도 일석이조의 좋은 기회 였다. 또한 교회를 통해서 한 달에 한번 씩 몸이 불편한 친구들이 있는 시설을 방문하고 밥을 만들어 먹여주거나 청소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 친구들은 일본인 나에게 관심을 가 63
GKS 져주고 내가 말을 걸면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그 친구들의 맑은 미소에 감동 한 것을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 지원해서 SOS children's villages라는 아동복지시설에서 초등학생 아이 들에게 일본문화와 일본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도 몇 번 했다. 일본의 대학교에서 일본어 교육을 전공한 나는 외국인한테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가르치는 것에 관심이 있는데 한국의 어린 아이들에게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가르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내가 담당한 아 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4학년 아이들이었는데 처음에는 말을 잘 안 들어서 정신이 없었지 만 점점 아이들이랑 친해지면서 아이들도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좋은 교류를 할 수 있었다. 지난해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연세대학교 일본유학생회에서 모금활동도 했 다. 고국 일본의 비참한 모습을 외국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답답함에 주저 없이 동참 하고 나선 모금활동이었다. 일본에서도 유니세프나 어려운 이웃에 모금을 하곤 했지만 스 스로 일어나 모금활동을 한 적은 처음이었다. 모금활동은 몇 번이나 회의를 하고 의견을 나누고 준비했는데 이 과정은 앞에 서서 우리 단체를 이끄는 선배들의 모습을 존경하고 배 우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자기의 부족함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26 년 동안 이미 만들어진 공동체에 들어가서 일을 한 적은 있었지만 새로 공동체를 만들고 시작하는 과정에서 일한 적은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리더십이라는 것 이 어떤 것인지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My Friend Festival (참석자는 매번 100명 내외)이라는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교 류회에서 사회자를 맡아서 행사를 진행한 적도 있었다. 그 때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진 행했는데 원래 사람들 앞에 거리낌 없이 설 수 있는 나는 사회자의 역할을 즐기며 할 수 있었다. 또한 지난번에 열린 한가위 큰 잔치에는 대략 200명이 모였는데 행사 내내 한일통 역자로서 봉사활동을 했다. 대학원 생활을 2년 보낸 나는 이제 대접을 받는 손님 이 아니 라 새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챙겨주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는 동시에 이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조금이나마 나도 뭐 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처럼 나의 유학 생활은 학업뿐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의 활동에도 전력 질주한 날들이 었다. 그리고 그것은 열심히 했던 만큼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은 날들이었다. 한국이라는 나 라에서 외국인으로서 사는 데에는 물론 좋고 즐겁고 재미있는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화 64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가 나고 슬프고 외로운 일도 있었다. 그러나 喜 怒 哀 樂 희로애락 많은 경험을 하면서 나는 나 라는 인간을, 그리고 내 고국 일본 이라는 나라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었고 또한 통신매체나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조그마한 정보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 경 험을 통해서 이웃 한국, 한국사람 에 대한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나의 유학 생활이 가져다 준 재산이고 앞으로 나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한일 교류에 내가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 나의 유학 생활. 나는 이제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닌 사람으로서 앞으로 한국으로의 유학을 희망 하고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할 수 있고 반대로 일본으로의 유학을 희망하고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대학교에서 전공한 일본어교육의 지식을 살려서 한국 사람에게 일 본어와 일본 문화를 가르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원에서 전공한 한국어교육의 지식을 살려서 일본 사람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일본과 한국 양 국의 문화도 잘 알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서서 양국의 문화를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 유학 생활을 통해서 특히 청소년의 한 일 교류에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라는 나라를 짊어지고 갈 신세대 가 서로에 대한 치우침이 없는 이해와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보다 좋고 성숙한 관계를 맺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정부초청장학생으로서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에서 받은 많은 도움에 감사하며 이제 는 내가 다른 사람을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국 사람처럼 말이다. 65
GKS 장려상 가봉에서 강남스타일 나라까지 Gislain Mossavou (기슬라인) 원광대학교 생물학과 박사과정 1. 드디어 한국 2010년 9월 13일. 대한민국에서의 첫 발걸음을 시작했다. 인천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일이다. 수화물을 찾기 위해 레일 앞에 서있던 나에게 낯 선 아저씨 한분이 말을 걸어왔다. 한참을 뚫어져라 나에게 시선을 주시더니 짐을 찾아 걸 어가던 내게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하고 물으셨다. 낯선 나라 한국에서 두려움이 앞서기 도 하고 한국말도 서툴러 아무 대답도 없이 서있었다. 그러자 아저씨는 Where are you from? 하고 다시 물으셨다. 그때서야 나는 I am from Gabon. 이라 답할 수 있었다. 입국절차를 밟고 자동문을 통해 걸어 나왔을 때, 큰 플랭카드 위에 내 이름을 한눈에 알 아봤다. 그 분을 만나 서툰 한국말로 날 소개하고 함께 버스를 타고 익산이라는 곳에 왔다. 내 기억에 익산으로 가는 대형 버스 안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던 거 같다. 가봉에 서 한국까지 오는데 비행기로만 이틀이 걸리는 탓에 버스가 인천공항을 출발하고 채 10분 이 되지 않아 난 이미 잠들었다. 날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때 그곳은 익산 IC였 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나를 보고 활짝 웃으시며 맞이하시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재훈 선생님이었다. 나에게 기슬라인이냐고 물어본 후 함께 차를 타고 원광대학교에 갔다. 원광대학교에 도착해서는 국제교류팀 사무실에 방문하여 다른 선생님들의 소개를 받고 66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나의 부모님께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드린다고 했다. 다음으로 재훈 선생님과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국 학생 두 명과 함께 기숙사에 갔는데, 중국 학생들은 나에게 기숙사를 자세하 게 알려줄 뿐만 아니라 내 룸메이트를 소개해주었다. 이렇게 한국에서의 첫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룸메이트와 함께 짐을 정리하면서 가지고 온 신발을 벽에 걸고 방안에서 신발을 신고 있 었다. 한국에 온지 첫 날이라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신발을 신고 있는 나에게 룸메이트는 아니오 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나에게 다시 천천히 말을 건넸다. 기슬라인, 한국에서는 방에 들어오면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것이 문화야. 그것은 한국 문화라고 했다. 처음 접해보는 한국의 문 화였다. 집을 정리한 후 선생님과 중국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갔는데 그곳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줄을 서있었다. 그 학생들을 보고 놀란 나는 중국 친구에게 왜 저 학생들은 이 시간에 온 것이냐 물었다. 지금이 저녁 식사 시간이라 학생들이 밥을 먹기 위해 나온거야 라는 말을 듣고 나는 한국은 원래 오후 5시에 저녁을 먹는 건지 너무 놀랐다. 그런 반응에 중국 친구들이 더 놀라며 가봉에서는 몇 시에 저녁을 먹느냐고 물었다. 나는 오후 7시반이 라 대답했다. 중국 학생의 생각에 가봉의 저녁 시간은 너무 늦은가 보다. 이들은 나에게 아 침식사, 점심식사 그리고 저녁 식사의 시간을 알려주고 기숙사 식당에서 식사하는 법을 함 께 밥을 먹으며 알려주었다. 한국은 기숙사 식당에서 셀프 서비스로 식사를 하지만 가봉에 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한국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음식이 매 워 위도 아플 뿐만 아니라 먹기에도 힘들었다. 그렇게 첫 식사가 끝난 후 중국 학생들과 내일 국제교류팀 사무실에 같이 가자는 약속을 하고 재훈 선생님의 명함을 손에 들고 기숙 사 방에 들어왔다. 내가 한국어와 영어에 능숙하지 않아 재훈 선생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 를 걱정하는 선생님의 표정을 읽고 괜찮다 는 대답을 하며 헤어졌다. 내가 한국에 오기 전, 원광대학교에는 3명의 가봉학생들이 다니고 있었다. 여자 2명은 대학로에서 하숙집에 살고 있었고, 남자학생은 기숙사에 나와 같은 층에 살고 있었다. 내 가 원광대학교에 도착한 날은 가봉의 독립 기념일이라서 3명의 학생들은 가봉 대사관에 갔 기 때문에 그날은 만날 수가 없었다. 기숙사에서 샤워를 빨리 하면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샤워실에 갔는데, 그 때 나는 또 한번 놀랐다. 기숙사 샤워실에는 67
GKS 모든 학생들이 함께 샤워를 하고 있었다. 가봉에서는 샤워를 같이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같이 샤워 하는 것이 크게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신발부 터 식사, 샤워까지 가봉과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한국에서의 첫 날밤이 금방 지나갔다. 2. 자마엘을 만나다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샤워실이 붐비면 불편할까봐 샤워부터 하고 아 침식사를 하러 갔다. 식당에 가는 길에 빵, 계란, 치즈, 햄, 우유, 쥬스 등의 아침메뉴를 상 상하며 갔다. 하지만 식당에 도착해서 또 다시 놀랐다. 학생들은 밥, 고기, 김치 등의 음식 을 먹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러면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에 대한 차이가 없다고 생 각했다. 익숙지 않은 한국식 아침을 거르고 국제교류팀 사무실로 향했지만, 길을 잘 못 찾 았다. 그냥 누구에게든지 사무실 위치를 물어 가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한국어도 서툴 고 영어에도 서툴러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난감했다, 아침 등교길에 많은 학생들을 만났지만 국제교류팀 사무실의 위치를 아는 학생들이 없었다. 다행히 길을 가던 아저씨 한 분의 도움으로 국제교류팀 사무실을 찾을 수 있었고 그곳에서 재훈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 님은 내게 왜 중국 학생들을 만나 같이 오지 혼자 왔느냐고 물으시면서 캠퍼스 지리가 익 숙해 질 때까지는 중국 학생들과 함께 다니라고 하셨다. 10분 후에 드디어 자마엘이라는 가봉 여학생이 왔다. 우리는 서로 소개한 후 원광대학교의 캠퍼스를 알려주기 우해 함께 나갔다. 학생회관, 은행, 우체국, 병원, 서점 그리고 어학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히고 자마엘과 함께 대학로에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그녀에게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겠다고 말하니 나를 좋은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식당의 이름은 그랑 드와 였는데 음식가격도 싸고 맛도 좋아 한 달 동안 식사를 하러 자주 갔었다. 그랑드와에 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치즈소고기인데 정말 맛있다. 3. 떨리는 첫 수업 나의 첫 수업. 나는 이 날을 절대 잊지 못한다. 한국에서의 첫 수업이라 교실에 늦게 도 착하기 싫어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하고 준비했다. 전날 자마엘이 어학원에 가는 길을 알려 주었지만 막상 기숙사를 나와 보니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지 몰라 한걸음도 뗄 수가 없었다. 68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가봉에서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 비해 원광대학교는 너무 클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건물 들이 나에게는 다 똑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길을 헤매던 나에게 방글라데시 학생이 다가와 뭘 찾느냐 물었지만, 나의 상황을 어떻게 영어로 설명해야 하는지 몰라 난감했다. 그러다 손 에든 시간표를 보여주었더니 그는 내가 어학원에 가고 싶다는 걸 빨리 이해하고 나를 그곳 으로 안내 해 주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수미트 라고 했다. 수미트와 함께 어학원에 도착해 서 보니 이미 수업이 시작한 후였다. 그래서 노크를 하고 선생님께 내 소개를 하니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다행히 수업에 늦었지만 반갑게 맞아주셔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우리 반은 파키스탄 1명, 캄보디아 2명, 잠비야 1명, 케냐 1명 그리고 몽골 친구 1명이었 다. 그 친구들은 프랑스어를 잘 못해서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반 친구들보 다 한국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2주전에 어학원 수업이 시작되어서 슬펐지만, 모든 친구 들과 한국 선생님이 나를 잘 도와주시겠다고 말해주셨다. 어학원 수업 시간표는 오전 10시 에 시작해서 점심식사 후 오후 1시30분에 다시 수업이 진행되지만, 한 달 동안 나는 9시에 먼저 와서 1시간동안 선생님과 따로 한국어를 배웠다. 나는 처음 기초반에 들어갔을 때 한 국어를 쓰는 것은 잘했지만 말을 하는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계속 노력해서 발전 하는 모습을 보고 선생님들은 모두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4. 음식주문에 성공하다 매운 한국 음식에 적응이 안 되서 자꾸 위가 아팠다. 한국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나를 위 해 친구들은 항상 나를 위해 점심식사 주문을 해줬다. 그들은 그렇게 여섯 달 동안이나 음식 주문을 해주었다. 하지만 하루는 친구들이 모두 일이 있어 혼자 남게 되었다. 배가 너무 고 파서 음식 주문을 해야 하는데 한참을 망설인 끝에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통화를 했는데 다 알아들으시고 나는 15분 후에 음식 배달을 받았다. 그 날 너무 기분이 좋아서 다음 날부터 혼자 음식을 주문하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 일을 계기로 한국어로 이야기도 걸어보고 친구들과 일상생활 얘기도 하면서 한국어에 재미를 느꼈다. 5. 한국친구와 신나는 노래방 나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시간이 있을 때면 힙합 노래를 듣고 따라 부 69
GKS 른다. 특히 샤워 할 때와 빨래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참 재밌다. 기숙사 내 방 앞에 나처럼 힙합노래를 좋아하는 한국 학생이 살았는데, 그 친구도 가끔씩 노래를 부르곤 했다. 샤워 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던 어느 날, 그 친구가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게 힙합노 래를 좋아하냐고 물어 너무너무 좋아한다 고 반가운 마음에 대답했더니 대학로 노래방에 간 적이 있냐고 질문했다. 내가 아직 못 가봤다고 하니 다음날 함께 노래방에 가자고 시간 을 물어왔다. 약속대로 다음날 저녁밥을 먹고 함께 대학로에 노래를 부르러 갔다. 그 친구 의 이름은 김현호 였는데 좋아하는 힙합노래 스타일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가수도 같았다. 그 날 우리는 함께 많은 노래를 부르고 처음 가본 노래방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 후로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고 시간이 날 때 마다 함께 노래방에 갈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현호는 내게 한국어 문법을 자주 설명해주고 다른 한국 학생들도 소개해주었다. 나는 현호에게 무엇을 해 주면 좋을까 고민하다 프랑스어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어느 날은 함께 만나 노래를 쓰기도 했다. 그 친구는 한국어로 나는 프랑스어로 작사했다. 서로 만든 곡을 부르며 비디오를 찍기도 했는데, 요즘에도 그 비디오를 보면 달콤한 추억이 있다. 내 친구 김현호를 절대 잊어버릴 수 없고 낯선 한국 땅에서 음악으로 이렇게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행복했다. 6. 무주 여행을 떠나다 한국에 도착하고 한 달이 지났을 때, 우리는 무주로 여행을 떠났다. 3박4일간의 여행이 었는데 가기 전날부터 너무 떨려서 잠이 오지 않았다. 전국에 있는 많은 대학교에서 학생 들이 왔는데,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 정부에서 나 같은 외국인 학생들을 무주로 초대한 여행이었다. 무주의 경치 는 아주 아름다웠고, 많은 산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한국에서 스키를 타고 싶으면 무주에 가야 한다고 들었다. 그 때가 겨울이라 많은 사람들이 무주에 왔었다. 무주에 도착한 후 버 스에서 내렸을 때 모든 학생들이 노란 재킷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우리는 4일 동안 함께 재미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 행복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에는 할로윈 파티가 있었는데, 나는 가봉에서 할로윈 파티를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모 두 모여 재미있는 게임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며 기억에 남는 여행을 보내고 왔다. 70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7. 새마을운동 한국에 새마을 운동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새마을운동은 한국의 경제 개발에 기 여했다. 가봉에는 광물자원이 풍부하지만 한국에는 광물자원이 거의 없다. 하지만 가봉이 훨씬 가난하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은 항상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의 이 런 노력 덕분에 한국 경제는 발전했다. 오늘날에는 모든 나라 사람들은 삼성, 기아(KIA), 현대 (HYUNDAI), LG에 대해 알고 그들의 제품을 사용한다, 새마을운동 관련 협회에서는 매년 외국인 학생들을 자주 초대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새마을운동에 대해 알려주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노력하고 개발해야 한국처럼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공부하게 해준다. 우리 대학교 외국인 학생들도 2일간 새마을운동 세미나 트레이닝 에 참여했다. 거 기에서 많은 외국인 학생들을 만나 친구가 되었고, 함께 토론하고 회의에 참석하면서 새마 을운동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세미나 마지막 날에는 각자 자신의 고향 노래를 부르며 놀았고, 그날 그곳에서 나는 가봉 힙합 노래를 불렀다. 모든 학생들은 기분 좋게 세 미나를 즐겼고 나도 그들과 함께 춤을 추며 그 시간을 즐겼다.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8. 축제를 즐기다 나는 파티를 정말 좋아한다. 가봉에서는 주말마다 친구들과 함께 클럽에 가서 춤과 노래 를 즐겼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났지만 클럽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었 다. 그러던 어느 날 어학원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한국 학생 5명을 만났 다. 항상 힙합 스타일의 옷을 입고 다니는 나에게 그들은 내 힙합 스타일 옷이 너무 좋다 고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너무 부끄러워했다. 아 마 한국말을 해야 할지 영어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한국 말로 인사했다. 그들은 행복하게 대답하며 모두 스스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기숙사로 데려갔다. 그들과 함께 기숙사에 가는 길에 오늘이 우리학교 축제날이라고 설명해주면서 학교 내 행사장을 소개해주었다. 그들은 나를 오늘 밤 축제에 초대하고 싶어 했고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날 밤 8시에 기숙사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진 뒤 8시에 그 친구들의 전화를 받고 기 71
GKS 숙사 건물 밑에서 만났다. 나는 기쁜 마음에 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갔고, 그날 밤 우리 대 학교 축제 때문에 평소보다 더 많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떤 학생들은 술을 마시면 서 이야기를 하고, 어떤 학생들은 춤을 추며 놀고, 어떤 학생들은 쿠폰을 팔며 음식을 만들 고 있었다. 나의 새로운 친구들은 대학로에 삼겹살을 먹으러 가자고 했고 그 식당 삼겹살 은 정말 맛도 좋았고 값도 쌌다. 한국 식당은 대부분 손님들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 같다. 가봉에서는 대부분 만들어진 요리를 먹는데 한국은 직접 고기를 요리해서 먹기도 하고 좋았다. 내 친구들은 나에게 삼겹살 요리를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주고 재미있는 축 제 이야기도 하면서 즐거운 식사를 했다. 힙합노래와 춤을 좋아한다는 내 말을 듣더니 오 늘 클럽에 가보겠냐고 물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클럽에 가보고 싶었다고 말 을 하니 친구들이 역 근처에 있는 클럽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6명이였기 때문에 택시 2대 를 나눠 타고 클럽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앞에 서있던 아저씨가 우리를 클럽 안 테이 블로 안내했고 그 안에서 춤을 추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10분 후에 술과 과 일이 우리 테이블로 왔고 노래를 들으며 그 분위기를 즐겼다. 한국에 온지 몇 개월이 지났 지만 나는 아직 미국 음악밖에 몰랐다. 그래서 미국 노래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 춤을 추 러 나갔다. 내가 미국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을 때 내 친구들과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 이 다 놀랐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에 나는 춤을 정말 잘했던 거 같다. 사람들이 함께 사진 을 찍고 함께 춤을 추자고 말을 걸었다. 신나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우리는 다시 대학 로로 돌아왔다. 대학로에서 맥주를 마셨는데, 한국에서는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도 많이 하 고 게임도 많이 한다. 가봉에서 술을 마실 때는 이런 게임이 없다. 또 가봉과 다른 점은 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술 한 병을 함께 마신다. 또한 그들은 한 병을 다 마시면 모두 같 이 새로운 병을 마실 것이다. 가봉에서는 술 한 병을 혼자 마신다. 그래서 밤에 한 사람이 10병 이상 마실 수 있다. 그렇게 맥주를 먹으면서 게임을 하고 우리는 노래방에 갔다. 노 래방에서 함께 노래도 부르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후에 기숙사에 돌아갔다. 한국 학교에 서 처음으로 보내는 축제를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보내서 정말 기뻤다. 먼저 다가와서 인 사를 건네고 말을 걸어준 그 친구들과 지금도 가끔 만나는데 너무 재밌고 행복하다. 강남스타일 나라 한국까지 와서 공부하는 모든 정부초청 외국인 유학생들! 모두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72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장려상 오늘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날 수파펀 분룽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과 박사과정 저는 태국에서 온 수파펀 분룽이라고 합니다. 지난 2004년에도 대한민국 정부초청 외국 인 장학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해서 2007년에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전공을 마친 덕분에 2007년 3월에 태 국 최고의 명문대인 왕립 쭐랄롱꼰대학교에 한국어과 교수로 임용돼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 니다. 또한, 2010년도에 다시 대한민국 정부초청 장학금 박사과정을 신청하여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저는 태국 푸껫에서 동물원의 부장님이신 아버지와 한국요리사이셨던 어머니의 4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하신 부모님이시지만 어린 시절부터 항상 저희 네 자매에게 예의바르고 원만한 여성이 되기 위해, 공부가 인생에서 반드시 필 요하고 또 중요하다는 것과 무슨 일이든 항상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마무리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한 부모님의 가르침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밑바탕이라고 생 각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편은 아니였지만 제가 맡은 일과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울 때부터 한국어를 가르치고자 하는 염원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저는 한국어와 관련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었고, 기 회가 될 때마나 참관했던 한국어 교육 세미나 혹은 학술대회도 제가 한국어를 알아가는데 73
GKS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 중 제가 참관했던 한국어 세미나는 제 한국어 학문에 중요 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대학교 4 학년때 참석했던 태국의 한 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어 세 미나에서 한국에서 오신 교수님 한 분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때 교수님을 뵈며 저의 한국 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굳은 의지가 생기게 되었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제가 미래 에 이루어야 할 이상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과의 만남을 계기로 외국어로 서의 한국어 교육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님이 바로 저의 대학원 지도교수님 이셨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때는 한국의 곳곳에 눈을 돌릴 때 마다 보이는 붉게 물든, 노랗게 물든 알록 달록한 낙엽을 감상하는 것은 저에게 너무나 신 비롭고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단풍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사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함께 제가 지금 낙엽이 지는 한국에 혼자 와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 다. 앞으로 한국에서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모든 것을 혼자 해나가야 할 뿐 아니라 대학원 수업을 잘 이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두려움과 외로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면 두려움보다 설레임과 함께 한국어 교육 연구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생깁니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일찍 시작하는 사람이 일찍 성공한다 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 말은 저의 한국생활에 많은 영감이 되었습니다. 마 찬가지로 사회적에서의 성공은 성공적인 생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생활을 해야 하나 라고 저 스스로에게 다음 질문을 하게 되었 습니다. 한국에서 공부하게 될 저에게는 어떻게 하면 가장 최선의 유학생활을 할 수 있나, 어떻게 하는 것이 한국에서 잘 지내는 것이고 한국 사람과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것인가 가 핵심 화두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 사람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한국에 공부하러 올 때만 해도 한국어에 대한 저의 생각은 매우 간단했습니 다. 태국에서 한국어 선생님이 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기 때문에 한국어만 열심히 공부하 고 태국에 돌아오면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에 곧장 현실로 다가 오며 여러 가지 힘든 일에 부딪히게 되면서 한국어 이외에 더 배우고 알아가야 할 새로운 일들이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한국어는 언어측면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 사람, 역사 등 한국의 모든 것에 한국어가 배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에 처음 와서 한국 사람의 사고방식과 한국의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습니 74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다. 그래서 이제는 한국어를 잘 가르치려면 한국어만 잘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라는 생 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을 알아갈수록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이렇게 사계절이 있는 것처럼 다양한 한국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계 절의 변화가 있는 만큼 한국 사람도 열심히 살며 변화에 맞춰 성공하기 위해 항상 시간과 싸우고 바쁜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제 머리 속에 항상 떠오르는 한국 사람의 이 미지는 한국 사람들이 매일 김치를 먹어서인지 김치 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한국 속담 중에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라는 말처럼 한국 사람도 마음이 성 급해서 무엇이든지 하면 빨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반면에 김치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한국 사람의 능력도 여러 가지 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김치를 먹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김치를 별로 안 좋아 하거나 맛이 이상해서 못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살다가 보면 김치 없이 밥 을 먹으면 무엇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나 밥을 제대로 못 먹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런 것처럼 한국 사람도 처음에 만날 때는 별로 좋지 않거나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생활을 같이 하면서 어느 날 못 만나거나 오랫 동안 연락이 없으면 허전하고 무엇인가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게다가 한국 사람은 정이 아주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사는 동안 답사 때문에 한옥에 여러 번 가봤는데 가 볼 때 마다 받은 한옥에 대한 인상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 기 힘들 정도로 한옥은 개성적이었습니다. 제가 본 한국 사람도 한옥과 마찬가지로 특성이 있습니다. 처음에 만나거나 잘 모르는 사람에게 절대로 말을 걸지 않고 무뚝뚝한 얼굴로 이야기합니다. 한옥은 돌로 쌓은 담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 집 안을 보기가 쉽지 않은 듯이 처음에는 한국 사람의 마음까지 알기가 힘들었습니다. 말도 잘 하지 않고 표정을 전혀 바 꾸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친해지게 되면 힘껏 도와주고 항상 신경을 써주고 잘 챙겨 주는 것들이 바로 한국 사람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과 친하 게 되기 전에 '한국 사람은 정이 아주 많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정이 어떤 것 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한국 친구와 만나고 서로 이야기해 보고 사귀다가 보니 '정'이 란 말을 차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정'은 항상 서로 도와주고,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 하고 며칠 동안 연락이 없으면 걱정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귀거 나 함께 지내어 생기게 되는 친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은 '정'이란 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75
GKS 이제 저는 김치가 없으면 밥을 제대로 못 먹는 것처럼 정이 많은 친구들을 오랫 동안 못 보면 허전하고 그리워지게 될 것입니다. 힘든 유학생활을 하면서 정이 많은 한국 친구들 덕분에 두렵거나 힘든 일들을 잘 해 왔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유학생활은 새로운 사회 속에 들어가서 그릇에 따라 담기는 물과 같이, 잘 적응하고 다른 사람에게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좋은 한국어 선생님, 한국어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제 한 국어 실력은 예전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어느 정도 채워졌다고 생각하는데도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합니다. 특히 태국에서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어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더 많은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새로운 지식을 공부하고 열심히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추억 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에게는 한국에서 지냈던 생활을 시간이 지나더 라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추억이 현재를 밝게 비춰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는 한국 유학생활의 행복한 추억들이 쌓여서 오늘의 저를 있게 해주었기 때문에, 오늘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76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장려상 Quest for Acceptance Amirhossein Goudarzi 서울대학교 전기컴퓨터공학부 I had just arrived at the Incheon Airport from a very long and tiresome trip through skies on a plane that I was riding for the very first time. It is difficult to explain how my body reacted throughout - the bumpy ride brought out elements of both thrill and excitement. One thing was certain though; the next time I boarded the blue endless sky, I would have had a taste of bitter medicine before to suppress anything that was coming from within. The grandeur of all the mechanics that was in front of took some time to register and swallow. I was looking at the most splendid view I have had the pleasure of observing for a very long time. The bustling, random noise from the airport that I left had behind was a sharp contrast of what was front of me. Futuristic structures, friendly assistants and more importantly, spotlessly clean washrooms accepted me with much vigor. Everything seemed comforting. I was finally here in Korea. Time seemed to pass by quickly than I thought and after a year s worth of Korean language, I was accepted to the most prestigious school in the peninsula. I had my doubts about Seoul National University at first but once I got a good understanding of the school and got to know my way around it, I was quite content with what it had 77
GKS to offer. The resources were exponentially better than the once back home, the library was well equipped, the research being done was world class and there was nothing more that I could have asked for. A very few individuals get this opportunity and I appreciated that. I was slowly but surely adjusting to life in Seoul. Or so I thought. When I grew up back in my home country, I was used to being around people. I took pleasure in getting to know total strangers, hearing out their stories and at the same time, sharing mine. In a way, people considered me to an enthusiastic extrovert who seemed to be interested in almost all aspect of their lives. I was heavily involved with student bodies, frequently organizing programs that interested the majority. Unfortunately though, I could never imitate that ambience here. It took time for me to accept the fact that I was actually lonely. I found it increasingly difficult to spark up a conversation with my peers as I could see that some deliberately avoided me. The longest discussion would be self-introduction and nothing seemed to extend from that point on. The fact that I came from a totally different culture, a severely contrasting religion with strict values and norms and my behavioral pattern was not helping me to get a firm grip on any human relationship. There were hints that a connection between two diverse individuals was taking place but it would run out of much needed fuel. I was in a state of utter despair as I seemed to make no friendship last. As days went on as usual, I was increasingly under pressure to change myself and stay as introvert as possible. For an outward person like me, I had never fathomed such a state. I was quietly confident that where ever I ended up, I would garner the trust of people around me but reality was taking harsh bite on my ego. The frustration took a toll on how I performed in the class and results showed a carbon print of just that. I had to get advice and untie this complicated knot. I came to understand that each student had a faculty advisor whom you could talk to. I found myself indebted to my advisor as he took me under his protective, 78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nurturing wings the minute I stepped into his office. He listened carefully to what I had to complain about, stood up, went over to the windowpane and took his time to think it all through over. He then briefed me about how he faced the exact same problem when he was back in the US and how he struggled with both the language and culture. His only advice at that time was to keep trying. He explained it in terms of simple probability; I just needed to meet more people and the chances that I would fit in would greatly increase. To be honest, I was aware of this but didn t know how exactly to do that. He had the easiest of answers for that- Join a club. The idea seemed to have slipped right through me. The student center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is proliferated with clubs. Each room brings out a distinct touch to what they are about and it is interesting to see how busy they all seem to look. Posters regarding ongoing and upcoming events are ubiquitous, all pasted elegantly on the corridors leading to each room. I was frankly surprised by the sheer volume of student related activities that was going on. I had to find something for suited my taste. A week of exasperated search meant that I was running out of luck. According to the official website, clubs should have absolutely no problem accepting anyone. However, things turned out to be more complex than I initially perceived. There were a handful of clubs that were surprisingly honest about how they felt about a foreigner joining their club for the first time. They explained, after much hesitation, that it would be weird to have an alien amongst them and that most of the members would be uncomfortable having me around. All could do was thank them for being brutally honest. There was no time for feeling apologetic about my situation. I understood that I needed to accept the reality and adapt. I had to acclimatize to conditions that were on offer although I never gave up looking for one. I had to somehow channel my disagreement with the mundane world around me onto something and so, I began working on a blog. After much dedicated writing, I received a text message stating whether I was interested in writing for SNU s English 79
GKS Magazine, the Quill. The blog had somehow come to the editor s attention. A week later, I was officially a junior writer. The Quill not only gave me chance to express myself in text, but allowed me to mingle with like-minded, entertaining individuals. Like me, they all loved what they did and in a way the connection with the members was instantaneous. The cliché a match made in heaven nicely sums that up. I felt comfortable, my words had gravity and I felt my confidence surge back again. The more I worked, reported and interviewed people, the more connections I made. Opportunities were in abundance. One after the other, they linked up perfectly like a chain. I got exposure to more people, from all walks of life and they valued my friendship with open arms. As I progressed through the ranks, people got to understand me better. All the differences that had gulfed relations before didn t seem to matter at all. I was a loner no more. As I look back in time and think about that faithful day when I was eagerly waiting for that text message after a brief interview for the Quill, I remember being hopeful about how things would change around me if I got in. The magic happened, I turned my life around and now I have friends that I can truly trust. But all this could have never happened without that simple feeling of being accepted. And for that, I am forever grateful. 80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장려상 Life of a Student Reporter: My Place under the Sun Rigoberto Banta Jr. 전남대학교 경제학과 What will I write today? This is the first thing that I see myself thinking every morning. Amongst the myriad of experiences that I have as a Korean Government Scholar, being a student reporter in something that I will never forget. Counting all of them, one by one still very vivid, being a student reporter has helped me fulfill my duties as a scholar chosen by the Korean government, a student that my home country has relied on to represent the nation. Let me recall special experiences that made me who I am today. Being a student reporter changed my whole stay here in Korea. My once plausible schedule was changed indefinitely as I was required by my new position to be in different places in different occasions. This experience really excites me, being mobile and always full of life. With my notebook and pen, I am always on the go when I need to write a news article. It was an opportunity for me to know more about the university, get to know more people, go to different places which in turn provided a well-rounded Korean experience for me. 81
GKS Me together with the CNU Press and Broadcasting at Doshisha University, Japan I remember the special coverage that I did in 2011 about the General Student Council of CNU. Two parties were fighting for a single spot and a long bout between the two had emerged. The administration party was on their toes using everything in their possession (including paraphernalia relating the other party to the communist North and financial scandals) while the opposition party, together with their legal counsel, was already preparing for a legal battle. In the middle of the fight, I was there, a student reporter, a foreign student, trying my best to know about the situation in the best way that I can. My passion carried my feet to different places in order to deliver the right information to CNU students. Moreover, this experience developed a burning in my heart: as equal-footing students, foreign students have the right to know regardless of their language ability! I was determined that through writing, I can provide the information that foreign students need in order to improve their situation. Writing became my passion. Reading news feeds on social networking sites at any possible time to follow news and deliver it straight for students became a habit. I believe that through this small action that I am doing will provide foreign students a chance to look deeper into the university unbounded by the language barrier. 82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As part of the CNU Press and Broadcasting Winter Overseas Coverage, I went to Kinki University, Osaka, Japan to cover their programs for international students. I was sent to Japan as an official envoy of Chonnam National University. The CNU Press and Broadcasting Team with our Adviser, Professor Yoo. 83
GKS Through this experience, I was able to represent foreign students in my own way. Being the first foreign editor-in-chief of Chonnam Tribune, the English newspaper of CNU, and the first in any English newspaper offices in Korean universities, signals to me that change is on its way. Knowing the fact that I was able to provide understanding between foreign students and Korean students at least in a small way, I feel that another day s job is finished well. Me, as well as other KGSP students should live lives such as student reporters: they need to strive to be the stimulus of change in their communities. Whether it s in school or in the local community, KGSP scholars, as representatives of their own countries, should be aware that they are attested with the role of being leaders wherever they are. The life of a student reporter taught me how to take responsibility and to lead. My efforts as a student reporter paid off and I was sent in the Kansai Region of Japan in the early part of 2012 for an overseas coverage. This experience taught me that hard work pays off, but there is no other way but up. Going to Japan as the official envoy of Chonnam National University, I had heavy load on my shoulders to do my best in front of the foreign partners of CNU. As we visited Doshisha University, Osaka University and Kink University, hard work paid off as words of praise and adoration came out from the officials of the partner universities of CNU. CNU is really lucky to have an excellent reporter such as you! most of them exclaimed. I was thrilled to see how my efforts paid off, but more than ever, I realize my duty to my dear alma mater. What I will not forget is how I and my fellow reporters work together as a team. This is an experience that I will never forget. We go together in hardship, work together, cry in our downs, laugh in our ups. I will never forget how my experience in Korea is changed because of my fellow reporters, as well as our adviser. They were always there for me. If I compare myself not being a student reporter and being a reporter, I am thankful that I came across this opportunity. As I look to other KGSP students, I always try to share my experience and uplift them, and say challenge yourself and make the best out of your stay. May other KGSP students all over the peninsula bring out the best out of themselves and be leaders in their fields. For now, a new coverage is waiting for me. 84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장려상 Arrays of Insightful Academic, Cultural, and Social Engagement I have in Korea Suray Agung Nugroho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한국학과 Recollecting the time when I had to struggle to apply for Korean Government Scholarship Program last year and recollecting the hard--but at the same time--fun time I had when I still had to learn Korean language at Ohaktang, I could now proclaim myself to be one of the blessed students to study and learn in a country called: Korea. The reason is simple. I could not think a better place to get myself mingled academically, culturally, and socially in both local and international atmosphere than right here in Korea where I am now. Now I am still in the first semester of my PhD program in Korean Studies, and yet it would be impossible to count the amount of excitement I have while studying here. To say that Korea is just a good place to study is an understatement. In fact, what Korea offers me as a foreign student is beyond words. Through this essay, I would like to proudly and happily share what I did, have been doing, and am currently doing in Korea as one of the recipients of NIIED Scholarship. Here are the arrays of excitement I have been enjoying as a student in Korea: being exposed to more than what I expected through my classes; volunteering in a Korean language class for Indonesian migrant workers; and having marvelous experiences as Korea Brand Communicator. First thing first, I am so grateful to get myself exposed to HUFS with its academic tag line 85
GKS "Come to HUFS, Meet the World". Some may wonder what it means, but this is just exactly what I get. Not only when I was learning the Korean language at Ohaktang, but also where I am currently studying--the Graduate School itself--have been the catharsis of my yearning for international exposure where I could meet fellows from other countries with different cultural background. Seeing myself in the midst of other international students at my campus made me more aware as a global citizen in which cross-cultural understanding and open-mindedness are the two things I treasure the most. Since there would be not enough space to jot down my academic experiences one by one, I think two subjects that I am currently attending this semester would best describe how lucky and blessed I am to study here. The classes are " Issues & Problems of Global Economy" and "The Korean Wave & World Pop Culture". All I could say is that both classes have urged me to delve more into the current international and local issues. Moreover, with both Korean and foreign students in the class, my perspectives are widened since I also learn how other fellows think about the issues concerned. The first class has given me an insight into Korea's place in the world economic stage in the midst of economic downturn in other parts of the world. While the second class is like an updated and on-the-spot version of Hallyu since I am studying in the birthplace of Hallyu and at the same time when PSY's worldwide phenomenon stuns the world even as I am writing this. This has been a priceless class in itself. But, that is not the only thing that I admire most from the classes. It turns out that both of my professors in those two classes give us chances to dare ourselves to get involved in activities beyond classes. This is where my stories begin. Professors would more than happy to acknowledge our off-campus activities that would help us understand Korea and perceive other world issues. That is what brought me to participate in the GLOBAL HR FORUM 2012 on October 23-25 at Lotte Hotel, Seoul. I may have to pay a few hundreds bucks just to participate in a large-scale international academic event like Global HR Forum in other places or countries. But, I paid not a single Won to participate in this year's Global HR Forum. This is something that I think should be worth-noted in the first place. For an event that hosted distinguished speakers and prominent experts in varied fields, I think this is something that Korea could be 86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proud of. In its 7 th consecutive years of facilitating such an event, Korea has successfully laid a sound foundation to keep its significant existence in the world as a country that nurtures its citizens and future generation with ample 'ammunition' to face the ever-changing world. And for me, as a foreign student, being mingled with other fellow students, participants, and delegates in this event was such an insightful experience worth sharing. This is why Korea should be proud since this country has been eager to keep on learning from the best by inviting scholars from around the globe to come to Korea and share and discuss the current issues in the world. That is the way I see it. The second thing that I would love to share is a voluntary work I did in Uijeongbu. As many people may have already known, there are thousands of Indonesian migrant workers who work at small and medium enterprises or factories across Korea, especially at the outskirts of Seoul like Uijeongbu. Apart from the fact that they have learned basic Korean before coming to Korea, they still find it hard to keep on learning the language. At times they had difficulties in terms of expressing their ideas in the workplace. Seeing this fact, along with other Indonesian students and one Korean friend, from spring to summer I went to Uijeongbu every Sunday to help them learn Korean language. Each week as many as 20 students came to the shelter where they usually met and did other activities. Started off with a simple plan of just helping them out in learning Korean culture and language, apparently I am the one who have learned a lot from them. Befriending and meeting them every week had somewhat made me more realized how hard it must have been for them to struggle and earn a living. But, I also came to admire their perseverance in pursuing happiness while working in Korea. All in all, I am the one who thanked them for letting me and trusting me to be within their boundaries and to some extent it also signifies a true friendship between Indonesian students and Indonesian migrant workers in Korea. The third thing and surely the most invigorating thing to date is the time when I was selected as one of the members of Korea Brand Communicator (KBC) since February this year. All I could sum up is that as one of the programs under The Presidential Council on Nation Branding (국가브랜드위원회), this KBC activities have extensively and completely reshaped and somewhat changed the way I see Korea. I thought I knew Korea before, but I 87
GKS did not. By becoming a Korea Brand Communicator, I have visited places in Korea that I would not have imagined of visiting, had I not been a member of KBC. Now, let me share how I came to be involved in this. It all began when I noticed an announcement at my campus about World Students in Korea recruiting any foreign students who love to explore Korean culture and who love blogging. That was the "aha" moment that brought me into this academically and culturally fascinating activities related to Korea. Since I have been blogging about Korea even before coming to Korea, I was more than excited to be a part of KBC. Moreover, as I found out that it was under the Presidential Council on Nation Branding, I expected that I would learn a lot from this. And I did, I am and I have been. I am learning how Korea has transformed itself in term of branding itself in the world. I have been learning also from the best through workshops and seminars on Korea Branding held by the Presidential Council on Nation Branding. Apart from that, issues like management, marketing, branding, and other related nuances have also become a part of me now. This is beyond my expectation. I came to Korea to learn Korean Studies and it turns out that I am also learning immensely from outside classes. In fact, I can now declare that associating myself with my Korean friends and foreign friends in Korea Brand Communicator is something precious that I cherish. Whats' more? KBC activities have brought me to the must-visit island of Jeju, the Dynamic Busan, Yeosu Expo, Panmunjeom, an unexpected visit to a seoju factory, and many other places and even remote villages in Korea--not to mention varied cultural activities. It does not stop there. As a task and responsibility of becoming a Korea Brand Communicator, we make a report or content to be disseminated through SNS or other media to tell others especially those in Korea and in other parts of the world about those places that we visited. During the process of making a content for our blog or report, I have been blessed to meet more than energetic and spirited Koreans and other foreign friends who are more than willing to share and exchange ideas with me. This is--i think--more than just what I hoped for. In short, If I have to summarize what I have been experiencing as a member of Korea Brand Communicator, it is a once-in-a-lifetime untradable privilege of being a student in Korea. 88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Now it all comes around to where it all began: I came to Korea as a KGSP student to pursue my study in Korean Studies in HUFS. However, through all of the activities and programs that my campus and Korea have been offering to foreign students like me, I have come to experience beyond my expectation. Now I am still in my first semester and what lies ahead of me is a time full of more endeavors to explore and hopefully with all of these, I can successfully learn about and experience Korea to the fullest. After all, Korean Studies that I am learning is right in front of my eyes--be it in and out of my campus life. 89
GKS 장려상 한국에서의 아름다운 유학생활 LE HOANG THU TRANG 전남대학교 경영학과 한국 속담에 세월이 쏜 살처럼 빠르다 더니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내가 한국에 온 지도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5년이란 기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참으로 많을 것을 느끼고 경험했던 소중한 시간들이다. 2008년 4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은 겨울이었다. 따뜻한 베트남에 살다가 한국에 오 니 얼마나 추웠는지 마치 한국은 사람이 살 곳이 못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하 15-18도가 되는 날들이 많았고 추운 바람이 불거나 길이 얼음으로 얼 때는 베트남이 그리워지고 고향 부모님 생각이 나서 많이 울기도 하였다. 감기가 매우 심하게 걸려서 집에 누워 있을 때는 내가 왜 이렇게 추운 나라에 와서 고생을 하고 있는가 하고 슬픈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 러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여기저기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그 아름다운 모습들은 내가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이었다. 베트남에는 일 년 내내 나무들이 녹색으로 자라고 있지만, 이렇 게 여러 가지 꽃이 동시에 피지는 않기 때문에 나에게는 참으로 새롭고도 꿈속에 있는 기 분이었다. 길거리마다 노란 개나리꽃, 하얀 목련꽃이 피기 시작하고 벚꽃도 활짝 피었다. 나는 색 깔이 있는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베트남 유학생들과 함께 학교캠퍼스에서 개나리꽃을 배경 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벚꽃 축제가 열리는 광주상록회관 동산으로 놀러가서 하얀 벚꽃 핀 모습에 감탄을 하였다. 가을이 되니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나뭇잎들이 빨간색, 갈색, 90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노란색으로 변하는 모습은 여기서 처음 보았는데 참 신기하였다. 어떻게 나뭇잎들이 색깔 이 예쁘게 변할 수가 있는가? 교수님들과 같은 과 학생들과 내장산에 단풍구경을 갔는데 빨갛게 물든 단풍은 기억 속에 많이 남았다. 두 번째 겨울이 왔을 때는 추위에 적응을 해서 눈 내린 경치를 볼 수가 있었다. 베트남 에 있을 보았던 겨울연가 영화처럼 눈 속에서 사진도 찍고 눈사람도 만들고 눈 장난도 많이 했다. 베트남 친구들에게 이메일로 사진을 보냈더니 나를 많이 부러워했다. 한국에 와서 다양한 축제들을 보고 참가하는 것도 재미있는 추억이었다. 광주에서 열리는 김치 축제에 갔을 때는 김치의 종류가 무척 많은 것에 놀랐다. 거기에 서 김치를 담는 방법도 공부해볼 수 있고 직접 담아도 봤다. 이렇게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서 실감나고 재미있으며 이제 혼자서도 좋아하는 김치를 담글 수 있게 되니까 기분이 참 좋아졌다. 한국에 와서 여러 나라 친구들을 사귀었다. 한국, 중국, 일본, 몽골, 태국, 캄보디아 친구 들인데 그 친구들이랑 잘 사귀고 좋은 우정을 나누었다. 내 생일 때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 을 같이 먹고, 노래방에 가서 생일 축하합니다! 라는 노래를 여러 외국어로 처음 들어봤는 데 정말 기쁘고 행복했다. 선물도 받고 축하의 말도 받는 속에서 다문화 교류의 장이 되는 것을 제대로 느꼈다. 그리고 한국을 생각하면 내 머릿속에 안 떠오를 수밖에 없는 추억은 바로 하숙집 주인아 저씨와 아주머니에 대한 추억들이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좀 어색해서 주인집 아저씨와 아주머니하고 많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주인집에서 초대해서 저녁을 같이 먹 게 되었다. 그 때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30년 전에 베트남에 있는 호치민 도시에서 6개월 동안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베트남에서 왔다고 하니까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해 주 셨다. 아저씨는 63살 아주머니는 60살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저씨는 술을 마시면서 베트남 에 있을 때 이야기를 계속하시면서 나한테 어떻게 베트남에서 한국에 왔느냐, 한국은 어떠 냐, 전공은 무엇이냐, 베트남 고향은 어디냐, 부모님은 무엇 하시느냐, 베트남 사람이 한국 말을 그렇게 잘 하냐 하면서 여러 가지 물어보셨다. 그러면서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는 광 주에는 베트남 사람이 적은데 이렇게 만나게 되니까 너무 반갑고 내가 조카처럼 느껴진다 고 하셨다. 나도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무척 반갑게 느껴졌고 베트남 사람과 베트남 생활을 아는 한국 사람을 만나서 반가웠다. 그 날 이후로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나를 무척이나 좋 91
GKS 아하셨고, 어린 사람이 타향에서 고생을 한다고 하면서 시장에서 과일이나 옥수수, 오이 등 을 사올 때마다 가져다 주셨다. 여름철이면 수박도 몇 조각 가져오시고, 명절이나 생일, 친 척들이 온 날에 음식을 만들면 음식도 갖다 주셨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친절하고 정이 많아서 내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고향생각이 많이 나고 외로울 때 위로가 많이 되었다. 한번은 시험을 잘 못 보아서 힘들고 지쳐서 울고 있었다. 성적이 좋아야 장학금을 받고 계속 공부를 할 수 있는데 한 과목을 시험을 잘 못 보았기 때문이다. 그 때 아주머니가 오 셔서 어깨를 두드리면서 위로를 해주셨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음에 잘 보면 된다고 하 면서 아주머니가 젊을 때 고생한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나도 지금 타향에서 고생을 하고 있 지만 여기서 열심히 하면 베트남에 가서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그 날 저녁에 아주머니가 밥을 해서 가져오셨다. 그날 나는 지치고 실망해서 밥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지 않았는데 아주머니가 밥을 가져다주시니 정말 고맙고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정 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나이가 많은데도 기억력이 좋고 일상생활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많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유머감각이 있으면서도 진지한 이야기들도 잘 털어놓는다. 아주머니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재미있고 많은 의미가 있는 배움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는 나는 가장 기억에 남은 그 아주머니의 말은 인생이란 것은 길지 않은데 살면서 양보할 줄 알아야 된다. 는 말이다. 예를 들면 부모자식 간에 서 로 양보하면 겸손한 도리를 유지할 수 있다, 부부간에 서로 양보할 줄 알면 자식이 쓸쓸하 게 지내는 날이 없을 것이고 형제간에 잘 양보하면 가족 분위기가 편안해진다며 친구 간 에 양보할 줄 알면 우의가 두터워진다고 설명해주셨다. 아주머니의 말이 일리가 있고 도리 가 깊으며 배울 만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열심히 들었다. 이렇게 친어머니처럼 모 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나는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인지 모르겠다. 한국 에서 공부하는 동안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는데 이렇게 사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삶의 의미 도 더욱 깊게 느끼게 되었다. 아저씨는 보통 말이 많지 않지만 이야기를 하면 농담을 잘 하신다. 아저씨는 시간이 있 을 때마다 마당에 있는 조그만 정원을 가꾸신다. 나무들을 조그만 가위로 잘 다듬고, 조그 만 가지들을 잘라내고, 흙을 쌓아주고 물을 뿌려주고 정성을 쏟으셨다. 그래서 봄과 여름 철에는 조그만 정원에 장미꽃, 철쭉꽃도 피고 나무들도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다. 이처럼 집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 덕분에 자취생활이 재미있고 보람을 느끼며 어려움이 없었다.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나에게 베풀어준 친절한 마음은 잊지를 못할 것이다. 92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6개월이 지자면 한국을 떠나야 할 예정인데 그날을 생각 만 해도 마음이 슬프고 섭섭하며 허전해진다. 한국에서 유학생활은 나한테 아름다운 추억 들을 남겼고 영원히 잊지 못할 의미로 남을 것이다. 93
GKS 장려상 한국과 밝은 미래 (Korea and Bright Future) 소 분티안 중앙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캄보디아에서 온 소 분티안이라고 합니다. 현재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석사 1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주신 국립국제교육원에게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부터 한국에 유학하는 동안에 받은 도움과 경험을 이야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한국에 유학생과 한국 정부초청장학생이 되기 전에 저의 생활배경과 교육배경을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고향은 시아누크빌이라고 합니다. 저희 가족 은 4명입니다. 엄마, 형 두 명과 저입니다. 가족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중앙대학교에서 GKS 장학 금으로 일 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중앙대학교에 공부하는 동안에 저는 항상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어떤 어려움이나 힘든 것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로 저는 중앙대학교에 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고 교수님께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좋은 결과를 보면서 저는 더 희망이 있고 기대하는 마음은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에 국립국제교육원에 서 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은 외국인 학생을 위해서 마련해 주는 정부 초청장학금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저의 꿈이었습니다. 저의 꿈은 한국 정부 초청장학금을 받고 대학원 유학생으로서 유학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식을 들은 후,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런 다음에 중앙대학원에 장학금을 지원하려고 중요한 서류를 94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준비했습니다. 지원하고 기다리는 마음은 너무 설레었습니다. 드디어 발표가 되었고 저는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대단히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한국 정부 덕분에 저 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한국 정부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 특히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 니다. 정부초청학생은 1년 동안 한국어연수하고 2년 동안 학위 과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 1년 동안 한국어연수를 받아야 했습니다. 중앙대학교 한국어 교육원에서 한국말을 배웠습니다. 거기에서 저의 한국말 능력이 많이 향상되었고 한국어능 력시험 중급을 딸 수 있었습니다. 1년 내내 한국어연수 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여러 활 동도 참석했습니다. 한국에서 한국말을 잘 하는 외국인으로서 보람이 있고 참으로 자랑스 럽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 단체가 외국인을 모집하려면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인학생한테만 특권을 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도 그런 일도 생겼습니다. 실제로 작년에 국 가브랜드위원회가 외국인을 모집했었습니다. 거기서도 외국인인데 한국어를 잘 하는 사람 만을 택할 거라고 공지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캄보디아 친구가 이렇게 저는 한국 말을 잘 하는 것이 너무 부럽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얘기했던 단체는 너무 중요하 고 재미있는 단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저는 많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국가 브랜드위원회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관심을 갖도록 노력해 나가는 단체입니다. 저는 이것 을 통하여 한국에 유명한 관광지, 중요한 행사,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여러 활동에도 참석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거기서 한국 친구도 만날 수 있고 같은 외국인도 만날 수 있었 습니다. 이렇게 같이 생활하고 일도 같이 하다 보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국 사람이 매 우 친절하고 잘 챙겨주고 신경도 잘 쓰는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교환학생과 한국어연습을 받는 동안 한국 사람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일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저는 교회사람 덕분에 한국 생활을 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교회 사람들은 저를 잘 챙겨 주고 영적인 도움과 생활적인 도움도 잘 채 워주었습니다. 교회에서 한국 친구가 정말 친절하고 차별 없이 저를 사랑해주고 많이 가르 쳐주어서 다른 유학생보다 어려움 점이나 힘든 점을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말 잘 하게 된 비결은 교회를 자주 다니다 보니까 생겼습니다. 교회에서 여러 활동을 할 때 주로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교회 친구랑 여기 저기 자주 다녔기 때문에 저의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 등이 쉽게 향상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곧 저의 집과도 같습니다. 95
GKS 교회 사람들은 가족처럼 저를 사랑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가끔 교회 사람들이랑 같이 생활해서 한국의 문화나 한국 가족의 문화를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생활습관은 아주 순수하고 부지런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식생활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고 어디 가서나 한국 사람들은 저를 보면서 참 예의 바르고 섬세한 사 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유학생활이 나빠지지 않고 항상 바람작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참 고마웠습니다. 게다가 교회에서는 유용한 활동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스포츠 활동, 캠핑 수양회, 여름과 겨울 방학 훈련 프로그램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학생활이 지루하지 않고 공부하는 데에 매우 도움이 된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거의 2년 6개월 동안 생활하면서 한국은 특별한 점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여러 독특한 것과 재미있는 것이 많이 있다고 봅니다. 특히 캄보 디아에는 이런 활동이 없고 한국에만 있습니다. 이런 독특한 활동은 바로 대학교 축제입니 다. 한국에서 여러 대학교가 해마다 축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대학교 같은 경우, 대 학교 축제가 너무 크고 재미있습니다. 축제가 열릴 때마다 교수님이나 대학생이 적극적으 로 참여하고 많은 행사가 진행됩니다. 학생들이 자기 전통 문화 게임을 하거나 재미있는 게임을 보여줍니다. 특히 학생들이 직접 장사하는 것도 대단히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학교 축제 때 제일 인상이 깊었던 것은 밤에 있는 콘서트입니다.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학교가 여러 유명한 연예인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엄청나게 좋아하고 같이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이렇게 한국 학생들이 어떤 일을 한 마음으로 합쳐 서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자랑스러운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대학교 축제가 열리는 이유는 학생들이 서로 친해지고 즐겁게 놀면서 공부에 대한 모든 스트레스를 풀게 만드는 것입니 다. 저도 이렇게 경험해 보니까 앞으로 고향에 돌아가서 한국처럼 유용하고 즐거운 대학교 축제를 캄보디아 대학생들한테 만들어주고 싶을까 합니다. 이외에도 한국에서 음식의 종류가 여러 가지 있고 대부분은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고 생 각합니다. 고대시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람이 건강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기 때문에 대부분 음식의 재료가 건강에 좋고 깨끗한 재료로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음식의 재료는 캄보디아 음식이랑 많이 다릅니다. 맛도 다르고 재료도 다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 고 저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 음식을 먹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처음 한국에 온 다른 외국인 입장에서 적응하지 못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캄보디아에 있을 때는 몸과 건강이 많이 약해지고 좋지 않았지만 한국에 와서는 좋은 환경 가운데 좋은 음식을 96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먹게 되어서 건강도 좋아지고 체력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좋은 점만 있었고 어려움 점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저는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생활해 봤더니 여러 사람도 만날 수 있었고 좋은 경험도 쌓고 여러 활동을 접 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 제가 가장 보람이 있는 활동은 캄보디아 아이를 도와주는 봉사 활동이었습니다. 최근에 한국 정부가 캄보디아 심장병이 있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한국에 있는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는 한국어를 아는 캄보디아 사람이 없어서 의사 소통할 때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병원 소식을 듣고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공부도 해야 돼서 매일 못 가지만 시간이 있을 때마다 갔습니다. 가서 통역하는 책임 을 할 뿐만 아니라 아이랑 같이 놀고 아이의 부모님을 위로해줘서 정말 기뻤습니다. 마찬 가지로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 시간, 힘, 돈 등을 아끼지 않고 우리나라를 무조건으로 도와줘서 정말 감동이 되고 매우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저는 한국어 능력과 공부를 열심히 하고 더 성장해 나가서 한국 사람이 우리를 위해서 봉사하듯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 람을 도와주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봉사활동 외에 저는 요즘 한국과 캄보디아 동 화책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봉사활동 목표는 한국과 캄보디아에 있는 초등학생들에게 많은 동화책을 더 볼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한국과 캄보디아 번역된 교재가 많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하면 한국과 캄보디아 사람들은 서로 자기 문화를 이해해서 앞으로도 한국과 캄보디아의 관계가 더 친해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끝으로 한국 정부 초청장학생으로서 저는 참으로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부 초청장학금 덕분에 저는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제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다 채워주었습니다. 유학 생활할 때 어려움 없이 필요한 모든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공부하는 데 도움을 받고, 숙박, 숙식, 생활비, 그리고 이외에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런 도움을 받은 저는 지금부터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좋은 학생, 좋은 자녀, 좋은 시민,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잘 도와주시는 한국정부, 국립국제교육원 직 원께 감사드리고 교수님과 어학원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97
GKS 장려상 한국이 이래서 좋다. WAIYATHIRA PRANOT 청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면 한국정부초청장학생으로 한국에 온 첫날의 생각이 저절 로 떠오르게 된다. 새빨간 단풍가로수길을 걸으면서,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고 담백한 공기 에 마음의 안정을 취해가며 문득 뒤를 돌아보면 외모가 우락부락,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나에게 비록 완벽하게 구사하지를 못하지만, 자랑거리가 될 만한 한국어 실력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에 뿌듯한 웃음이 지어졌다. 장학금 합격 통보를 받은 날에 얼마나 기 뻤는지 지금도 기억이 엊그제 생긴 일처럼 생생하다. 말하면 조금 부끄럽지만 내가 세븐이 란 한국가수의 와줘 라는 노래를 듣고 한국과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내가 흔한 한류메니아가 아니다. 한국어를 너무 좋아해서 박사까지 한국어를 공부하려고 하는 내가 한국어가 어디 좋은지 왜 그리 공부하고 싶어하냐는 질문에 뚝 부러지게 대답할 수 없어서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한국어가 좋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좋다. 솔직히 한국인처럼 공부하라고 하면 내가 못 할 것 같다. 나는 하루종일 책만 보면 정신 과를 방문해야 할 체질이다. 한국어를 처음 배웠을 때도 다른 친구처럼 책에 적혀있는 대 사를 암기하거나 진도를 나간 후에 주어진 연습문제에 몰두하는 것은 선생님이 검사한다고 하시지 않는 이상 절대 안 하지만 시험을 볼 때면 꼭 톱쓰리에 들어간 학생이었다. 다른 친구가 자꾸 공부 잘 하는 비법을 묻지만 내가 노래를 듣거나 한국인과 대화하면서 궁금하 거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물어보거나 네이버에서 검색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습득 98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되는 타입이라 비법같은 것이 없다고 해도 믿어준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내가 한국 정부초청장학금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기쁘면서도 조금 두려웠다. 2009년에 한번 한국에 서 교환학생 생활을 해 봐서 얼마나 한국어를 잘 한다고 해도 외국인은 외국인이라 이해의 한계가 있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 학부가 아니라 석사 과정이기 때문에 그때와 비교가 안 되게 학습내용의 난이도가 확 올라가지 않겠나 싶어서 더욱 걱정되었다. 그래도 인생의 단 한 번 온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성을 다하면 실패돼도 부끄럽지 않은 패배니까 한 번 도전해 보자고 다짐해서 한국에 왔는데 한국에 와 보니까 괜히 걱정 하지 않았나 싶다. 발음이 부정확해서 의사소통이 잘 안 될 때만 고생하지, 평소 그렇지 않 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려서 지내는 것도 흥미롭고, 한 국인인 룸메이트와 이야기하는 것 자체도 한국어 공부이니까 매일 의미 있게 한국유학생활 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 좋다. 한국이 태국처럼 아시아 나라라서 그런지 문화가 다르긴 다르지만 불편에 불과하지, 문 화충격을 받을 정도에 도달하지 못하다. 한국어를 전공하느니만큼 한국어를 올바르게 써야 되는 내가 아직도 단어선택에 조금 헷갈린 부분이 많고 존댓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다 보니까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괜찮지만 교수님과 만나게 되면 긴장되고 스트레스를 받는 나머지 말실수를 범하곤 하다. 외국인 학생이라 교수님들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시긴 하는데 내가 내 자신이 부끄럽다. 그리고 태국에서는 선후배 사이나 형동생 사이면 말을 편하게 해도 괜찮은 반면에 한국은 조금 그렇지 않다. 내가 나랑 이야기할 때 편하게 말하 라고 해도 한국에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둥 존댓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둥 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에 반말로 말하라고 그랬다. 존댓말로 이야 기하는 사이여서 다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들 아무리 한국인이 설명해줘도 머리로는 알겠는 데 상대방이 자꾸 존댓말을 써주니까 멍때리다가 갑자기 아는 사람이 눈앞에 보이면 머리 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는 나로서 가끔 자기도 모르게 존댓말로 대답한다. 그 렇게 상대방을 황당하게 한 적이 한두 번 아니라서 제발 말을 좀 놓으라고 한 것이다. 해 주는 사람도 있고 못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몇 번 망신당하다 보니까 요즘 잘 구별해서 잘 하는 것 같다. 불편하지만 외국인인 우리도 함부로 막말을 하지 않고 존중해 줘서 한국이 좋다. 식당에 갈 때 홀서빙 아주머니들이 우리한테 미움을 사기 쉽다. 태국에서는 손님이 원하 는 것을 제공하고 손님이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는 손님이 원하는 99
GKS 것만 제공되고 홀서빙 아주머니가 식사의 순서를 지켜주며 요리도 해준다. 한국인인 경우 는 이야기하거나 핸드폰을 만지면서 홀서빙 아주머니가 와서 요리해 주는 것을 기다리는가 하면 외국인들이 자꾸 음식에 손을 대려고 한다. 그때 홀서빙 아주머니가 보게 되면 재빨 리 달려와 음식을 해준다. 사장님이 손님이 직접 요리하게 되는 것을 보면 큰일이라고 들 어서 그 부분을 이해하지만, 고기가 많이 들어가는 볶음밥을 먹고 싶어서 일부러 고기를 많이 남겼는데 홀서빙 아주머니가 양을 보고 더 먹으라는 것에 이해가 안 가는 외국인이 꽤 많다. 나도 처음에 그랬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식당에서 홀서빙 아주머니들로 하여금 벌어지는 모든 상황이 당연하듯이 태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다. 오히려 홀서빙 아주머니가 해야 할 것을 안 해주면 요리하는 것이 너무 불편해서 짜증이 나고 만다. 그래서 친절하게 요리해 주고 손님이 식당을 떠날 때까지 챙겨주는 홀서빙 아주머니들이 가득 있는 한국이 좋다. 여행 갈 때 가끔 입장료를 내야 내부로 통과할 수 있는 곳을 발견된다. 태국에는 내국인 을 위한 태국어로 된 안내문이 따로 있고 외국인을 위한 영어로 된 안내문이 따로 있는데 입장료 부분에 서로 다르게 적혀 있다. 숫자까지 태국어로 돼 있다면 괜찮은데 아라빅 숫 자로 적혀 있어서 외국인들이 알아채고 뭐라고 한다. 그때 태국인으로서 매우 창피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런 경우가 없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똑같이 내고 들어가기 때문 에 너무 보기가 좋다. 이것이 문화차이라기보다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진 사고방식이 달라 서 그러는 것 같다. 그래서 상쾌한 여행 환경을 제공하는 한국이 좋다. 한국의 인터넷 쇼핑이 너무 잘 되어 있어 외국인들에게 너무 좋은 것 같다. 한국말을 잘 못 하는 친구들이 매점을 방문해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러나 인터 넷 쇼핑에서 모든 것을 해결되니까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시내에 한번 나가보고 아이쇼핑 하면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디자인을 기억하고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서 뒤집어보는 것이 정상인 듯하다. 가끔 개인 쇼핑 사이트에 회원 가입하는 데 어려움이 있거나 불가능한 경 우가 있겠지만 큰 회사의 사이트에 가보면 비슷한 것이 많이 있으니까 기분나빠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 쇼핑 해 보니까 인터넷 속도에 대한 것도 이야기해 봐야 될 것 같다는 기분 이 든다. 사진이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 인터넷 속도가 거북이 수준이면 끝장이라고 생 각해서이다. 인터넷도 잘 되고 사이트도 잘 되어 있는데다 사이트에 참고할 만한 댓글들이 뭉쳐있어서 매우 매력적이다. 시간이 없는 사람도 어디서나 쇼핑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한국이 좋다. 100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한국의 대중교통수단이 매우 잘 발달된 것 같다. KTX는 좀 비싸서 몇 번 밖에 못 타봤 지만 시외버스를 많이 타봤다. 좌석도 나쁘지 않고 가격도 저렴한데다 멀리 가는 버스면 중간에 청결한 화장실과 아울러 먹을거리가 잘 마련돼 있는 휴게소에 들르게 돼 있어서 너 무 좋다. 한국의 휴게소를 왜 그리 좋아하냐고 하면 태국은 아직도 먼 지방을 도시화시켜 주지 못해서 멀리 가면 괜찮은 휴게소를 보기가 어려워서 다소 불편하기 때문이다. 태국 정치인들이 한국 와서 경제적인 이야기만 하지 말고 한국의 대중교통수단이 얼마나 잘 되 어있는지를 보고 태국 것을 업그레이드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통행인을 생각해서 교통수 단과 편의시설이 잘 마련된 한국이 안 좋을 리가 없다. 내가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직장 생활을 하게 됐다. 자격 외 활동 허가를 받고 한국산업 인력공단(이하 공단)에 통 번역원으로 입사하게 됐는데 업무 내용은 태국어를 한국어로, 한국어를 태국어로 통역이나 변역해 줌으로서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사용자 사이에서 벌 어진 갈등 해소 및 중재 다. 내가 듣기로는 양 나라의 직장 문화가 서로 다르고 의사소통 도 원활하지 않다 보니 마찰이 생기기 마련인데 정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 동자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외국어 가능 한국인이나 외국인을 고용하기 시작 한 걸로 알고 있다. 공단에서 근무하면서 특별히 힘든 것 없이 지금까지 순조롭고 재미있 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출장 나갈 일이 생각보다 적은 것이다. 사무실에 있어도 미흡한 한국어 실력과 다른 팀의 업무 이해 부족으로 전화를 받을 수 없고 동료들이 워낙 바쁜데 출장 나가게 되면 도착지까지 동행하는 사람과 계속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출장지에서 나의 한국어 실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솔직히 내가 많이 출장 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공단과 의 근로계약기간은 올해 3월부터 11말까지인데 업무누적을 살펴보니까 지금 내가 태국인 근로자 200여 명을 도와준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그동안 건강적, 정신적으로 많이 피로하 고 스트레스를 다소 받았었는데도 큰 보람을 느꼈다. 그래서 소중한 첫 직장생활 경험을 선사해준 한국이 좋다. 많은 한국정부초청장학생 친구에게 외국 생활이 처음이고 한국이란 나라의 문화가 생소 해서 적응하기 다소 어려운 점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한국어능력시험 4급까지 합격하라는 졸업조건에 불만스럽게 여기는 친구도 적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어 학습 7년차인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모국에서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을 만날 때 그 불편함을 떠오르면서 한 국사람도 우리랑 소통하고 싶은데 말이 안 통하면 얼마나 불편할까 역지사지하면 한국어를 공부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하고 싶다. 나라가 다르니까 문화가 다른 101
GKS 것을 아무나 아는 사실이고, 가끔 외국사람에게 우리 모국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경우가 있 는데 외국인에게 있는 우리 모국에 대한 가려움을 해소시켜줘야 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다. 영국에 가 있는 사람들은 영어로, 중국에 가 있는 사람들은 중국어로 지인에게 자기 모국 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제공해야 된다고 치면 한국에 와 있는 우리들이 한국사람에게 한국 어로 자기 모국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도록 해야 되지 않을까 한번 생각해 보라고 감히 제안한다. 우리 모두가 그랬으면 살기 좋은 한국이 훨씬 더 천국에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한국사람도 우리 외국인을 잘 알게 되고 우리도 한국사람과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 리 모두가 그랬으면 다같이 한국이 좋다고 외칠 수 있을 것 같다. 좋다는 이유는 장황해서 일일이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내가 한국이 한국이라서 좋은 것 같다. 한국이 이래서 좋다. 102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장려상 보람차게 끝나가는 1년, 넘치는 열정과 자긍심으로 기대되는 3년. 마마자노브 조히드 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정보학부 2012년 초. 저는 하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정부초청장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때 는 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습니다. 제가 대한민국 정부초청장학생으로 뽑힌 것은 그동안 했던 수많은 고생의 아름다운 성과였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정부초청 장학생으로 뽑힌 것은 저에게 무궁무진한 기회의 길이 열린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많은 꿈을 품에 안고 설레는 마음과 약간의 고민으로 2012년 3월부터 한국외국 어대학교 언론정보학부에서 저의 학위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생활, 저의 국가와 다른 교육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을까, 외국대학생활에 익숙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 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친절하고 예의바른 언론정보학부 친구들과 같이 수업을 듣고 친 해질수록 대학생활에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강의를 듣는데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거 나 과제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부담 없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학 기 초에 과 친구들과 함께 동기 MT를 가고 서로 더욱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대학에 온 이상 반드시 동아리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동 아리는 한국대학들의 하나의 매력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격상 저 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해서 한국대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ADLINE 이라는 광고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러 가지 동아리 중에서 광고 동아리에 들어간 이유는 평소에 광고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동아리에 들어간 이후에 103
GKS 동아리 선배, 동기들과 자주 만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다 보니까 한국과 한 국인 그리고, 한국문화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동아리 친구들과 같이 광고제, 공모전, 세미나 등을 준비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같이 기뻐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함께 고생했습니다. 저는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가끔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동아리를 통 해서 얻고 있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생활이 하루하루 색다르고 다양한 경험으로 가득차고 흥미로워졌습니다. 한편, 지난 1학기에 저는 우리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생회(International Student Organization)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세계의 여러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만나서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들을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 국제학생회는 우리 한국외국어대 학교에서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제 학생회 친구들과 같이 한 학기 동안 서울의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 라 다양한 행사에도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매일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하는 동시에 학교 강의를 들으면서 지식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한국에 오기 전에 가보고 싶었던 한국 의 아름다운 곳들을 틈틈이 다니고 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직접 보고 느끼게 되었습니 다. 또한, 한국의 다양한 지역을 다니면서 각 지역만의 특성을 실감했습니다. 앞으로도 시 간이 나는 대로 계속 한국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을 더 잘 알고 많은 경험과 추억을 만들었 으면 합니다. 저는 한국대학에서 첫 학기를 적잖은 고민으로 시작했지만, 주변의 친절하고 예의바른 한국친구들과 언제나 충고를 아끼지 않고 잘 챙겨주는 선배들 덕분에 저의 고민이 어느새 기쁨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한국대학에서의 첫 학기 동안 저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새로운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한국외국어대학 교에서 보낸 첫 학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습니다. 여름방학에는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여유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 고 틈틈이 여행도 다녔습니다. 또한 저의 고향인 우즈베키스탄에서 저에게 한국어를 가르 쳐주신 선생님들을 드디어 여름방학에 시간을 내서 찾아뵙고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 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한 욕심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잘 활용해서 뭔가 또 새로운 것을 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삼성그룹의 대학 104
2012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 유학 체험 수기 수상작 생기자단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것은 주로 한국대학생들이 하는 활동 이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삼성그룹 대학생기자단에 한번 지원을 해 보았습니다. 운이 좋아서 그런지 저는 캠퍼스 리포터로 선발되었습니다. 캠퍼스 리포터 합 격자 명단에서 저의 이름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또 하나의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한국에서의 첫 대외활동을 삼성그룹 대학생기자단의 캠퍼 스 리포터로서 시작했습니다. 대외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대학에 다니는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고 같이 활동함으로써 서로 의견교환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가면서 저의 시야를 더 넓히게 되었습니다. 삼성그 룹의 대학생기자단에서 활동하면서 얻고 있는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예를 들면, 다양한 대학의 친구들과 친분을 쌓아가면서 다른 곳에서 하기 어려운 경험을 얻고 있는가 하면, 매달 다양한 주제로 직접 기사를 씀으로써 익혀가고 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남은 활동 기간에도 계속 적극적으로 활동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저는 원래부터 스포츠, 특히 축구에 관심이 많습니다. 공을 보기만 하면 차고 싶 고 축구 안 하면 가끔 허전한 느낌이 듭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얼마 동안 축구를 안 했습니다. 그러나 운동장에서 자주 축구하는 친구들을 보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 다. 그래서 우리 언론정보학부 축구팀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 과 선배들과 동기들이랑 함께 매주 반드시 한두 번 모여서 축구를 합니다. 물론, 축구를 하면 재미있고 신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배와 친구들과 축구하면서 더욱 더 친해지게 된다는 것 입니다. 요즘 공부하랴, 대외활동 하랴, 동아리활동 하랴 조금 바쁩니다. 하루가 정말 짧은 것 같 습니다. 그래도 저는 행복하고 마음이 뿌듯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에 오기 전에 4년이란 소 중한 시간을 잘 활용해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만약에 저는 대한민국정부초청 장학생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보내고 있는 보람찬 대 학생활을 못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의 대한민국정부초청 장학생으로서 자 긍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온지 벌써 1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볼 때 어느 정도 만족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정적이고 활발하게 대학생활 을 보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에게는 모든 가능성이 있고 제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노력일 뿐입니다. 남은 2, 3, 4학년에는 지금의 1학년보다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고 지속적으로 자기계발 105
GKS 에 힘을 쓰겠습니다. 공부와 다양한 활동에 열의를 가지며 대한민국 정부의 하나의 장학 생으로 뽑힌 이상 자긍심과 의무감으로 진정한 글로벌 인재가 되겠습니다. 모든 것이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저의 넘치는 열정과 장학생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최 선의 노력으로 남은 3년을 활기차게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