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학생 출신이어서 방위군 내에서 행정업무 및 보급임무를 맡았다. 그 과정에서 방위군에 가해진 살인적인 대우를 몸소 체험한 장본인이었다. 화자에 의하면 하루 동안 걸어 도착할 숙영지에 미리 연락해 숙식을 알아서 해결했다고 하며 거의 거지떼와 다름없는 몰골로 남하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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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방위군 사건의 실상 자 료 명 : 20131216서성석(인천) 조 사 일 : 2013년 12월 16일 조사시간 : 90분 구 연 자 : 서성석(남 33년생) 조 사 자 : 김경섭, 김정은, 박샘이 조사장소 :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릉대로 6.25참전유공자회 인천연수구지회 [구연자 정보] 서성석 할아버지는 국민 방위군 사건을 몸소 겪은 분이다. 그는 1950년 12월 20일에 국민 방위 군으로 차출되어 걸어서 부산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그들 국민 방위군에게 제대로 보급품이 제공되 지 않아 방위군의 행렬은 거대한 거지떼와 같았다고 한다. 1952년에 논산훈련소 1기생으로 다시 정식으로 입대하였고 간부후보 시험을 거쳐 임관하였고 줄곧 군 생활을 하다가 1968년에 제대했 다. [이야기 개요] 국민 방위군 사건은 인민군의 병력 차출를 대비하고 국군 병력을 미리 확보한다는 목적아래 1950년 12월 20일부터 1951년 3월까지 18세에서 45세 사이의 남성을 대상으로 매일 수백명의 장 정들을 뽑아 도보로 남쪽으로 남하시킨 일종의 특별대 사건이다. 국민 방위군은 혹독한 대우와 보 급으로 수많은 장정들이 기아에 시달려 죽어갔던 한국전쟁의 또 다른 비극적 사건이었고, 그 책임 을 물어 당시 사령관이었던 김윤근 준장이 군법에 회부되어 사형에 처해 진 바 있다. 화자는 50년 12월 20일 첫 차출시 뽑힌 병력으로 도보로 한 달을 걸어 부산 구포에 도착했다. 당시 선린상고

재학생 출신이어서 방위군 내에서 행정업무 및 보급임무를 맡았다. 그 과정에서 방위군에 가해진 살인적인 대우를 몸소 체험한 장본인이었다. 화자에 의하면 하루 동안 걸어 도착할 숙영지에 미리 연락해 숙식을 알아서 해결했다고 하며 거의 거지떼와 다름없는 몰골로 남하했으며, 철교를 건너 갈 때는 떨어져 사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후 화자는 52년 3월에 논산훈련소 1기 생으로 다시 정식 입대해 병으로 1년간 지내다가 간부후보 시험을 거쳐 53년 9월 임관하여 68년에 제대했다고 한다. 6.25 때 빽(뒷 배경)없는 사람은 군에 끌려가 인민군 총 맞고 악 이 아닌 빽 하는 소리를 지 르며 죽어 간다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 키워드 : [인천시 / 참전담] 국민 방위군, 참전용사, 의용군, 특별대, 굶주림, 아사, 김윤근 준장, 선린상고, 거지떼, 논산훈련소 [1] 의용군에게 차출당하지 않게 하려고 국민방위군을 만들다 [조사자 : 국민방위군 사건 저희도 들어는 봤습니다. 책에서] 들어봤죠. [조사자 : 그거 이상도 그거 이하도 아닙니다. 잘 몰라요. 무슨 사건인지.] 근데 그 방위군 사령관이 책임을 지고 계곡에 총살당했던 그러한 기록이 그건만 얼능 나와 있지. 실제 내용은 하나도 안 나와 있어. [조사자 : 몇 년도에?] 50년도지. 50년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해 가지고 서울에 거주하는 장정들이 6.25가 나면서 쟤네(인민군)들이 6월 28일 날 서울을 점령하고 나서 9월 28일까지. [조사자 : 세 달 정도 사이에] 석 달 동안 걔네들이 점령하고 있었어요. 서울에. 그래가지고 1.4후퇴가 되면서 서울시에 있는 장정들을 전부 국민 발굴 서준 영장을 발휘해서 이 사람네들이 하루 500명씩 나갔어요. 서울 서는, 남하를했어요. [조사자 : 전선으로 파견된 거예요?] 전선이 아니고 소위 병력을 차출해 가지고 쟤네들이(인민군 이) 3개월 동안 점령하고 있을 동안에 서울 시내에 있던 장정들을 전부 의용군으로 뽑아갔단 말이 야. 의용군으로 뽑아가고 나서 3개월 동안 뻐팅기고 있던 사람들을 다시 이제 우리 한국에서 소집 영장을 내 보내 가지고 하루 500명씩 남하를 시켰단 말이에요. 그래가지고 이제 경상도 요소요소 에다가 방위군 교육대를 창설해서 거기서 수용을 하고 있다가 수용하고 있는 중에 제주도에 현역 들이 와서 그 방위군 수용대에 있는 장정들을 와서 차출해 가지고 제주도 훈련소에 입교를 시켜서 현역을 맨들어가지고 전선에 보낸 거예요. 우리 한국군이. 서울에 6월 28일 날 쟤네들이 점령을 하고 나서 9월 28일 날 우리 인천상륙작 전을 해 가지고, 수도 서울을 탈환하기 전까지 3개월 동안은 걔네들이 서울을 지배했다. 이거야. 그 지배하는 동안에 우리 서울에 있는 장정들을 전부 의용군으로 강제로 의용군으로 잡아간 거지. [조사자 : 차출?] 차출이 아니라 강제로 잡아 간 거야. [조사자 : 그게 국민 방위군?] 아니, 그것이 그런 사태가 벌어지니까 1.4후퇴가 다시 나오니까 그 재원을 뺏기기 싫어서 서울에 있는 장전들을 하루에 500명, 하루에 500명씩 남하를 시키는 거야. 그것이 이제 방위군 국민방위군 시초가 되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경상도 각 요소요소에 수용을 시켜가지고 있으면서 필요한 병력을 제주도 훈 련소에서 와가지고, 거기서 장전들을 자기네들이 봐서 선출해 가주고 제주도로 입교를 시켰다고 훈련소로 그래서 훈련시킨 다음 현역으로 해서 전선에 배치하는 거예요. 그 기간이 언제냐면 9월 28일 날 서울이 수복되고 나서 1.4후퇴 때 하루 500명씩 남하를 해서 가는데, 51년도 3월까지 국 민 방위군이 유지가 됐었어요. 그 당시에 사령관이 김윤권 중장이야. 근데 그때 당시에 방위군으로 수용되어 있던 인원들을 내가 수용하고 있을 당신데. 그때 비참했지. [조사자 : 아! 그러면 국민 방위군이 그럼 정규 국군하고 좀 다른 성격이죠?] 다르지. 그건 소위

군대 용어로 말하게 되면 예비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쟤네한테 뺏기지 않기 위해서 이걸 소개한 거야. 소개. [조사자 : 이제 제가 알아듣겠습니다. 이게 뭔지 국민 방위 위원회라는 게 뭔지.] 그게 그래서 이제. [조사자 : 이런 제도가 있었구나! 51년에 51년 3월까지 이걸 했다고요?] 그렇지. [조 사자 : 혹시 또 뺏겼을 때 차출 당할 것을 데려갈 것을 예비해서 다 빼놓은 거구나! 병력을 미리] 병력을 미리 쟤네들한테 안 빼기기 위해서. [조사자 : 이제 이해했습니다. 51년 3월 까지요.] 네. 51년 3월까지 수용하고 있을 당시에 그 생활 이모저모가 말로는 형언할 수가 없어. [조사자 : 주로 경상도에 가 있다가 제주도에 가서 훈련받고] 전선에 배치되고 [조사자 : 전선에 배치되고. 제가 다른 데서 듣기로는 제주도 쪽으로 훈련을 많이 간걸로 알고 있거든요. 육군 병력들이?] 그 당시에 는 논산 제2 훈련소가 창설이 안 될 당시니까. [조사자 : 국군 정규도 제주 쪽으로 갔고 이 병력도 제주도 쪽에서 훈련받고 그런 겁니까?] 그렇지. [조사자 : 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국민방위 군이 수용되어 있던 그 장소에 제주도에서 현역들이 와서 봐서 이 사람은 현역으로 훈련받고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체력을 유지했다. 판정이 나가 되면 그 사람들은 다 그리로 데리고 가는 거야. [조사자 : 그랬구나! 그러면 나이 가 좀 어린] 그때는 18세에서 45세까지. [조사자 : 18세에서 45세까지, 처음 자세히 듣는 것 같아 요. 그 국민방위군이라는 거에 대해서] 그걸 내가 실제 수용도 하고 내가 거기서 생활을 한 사람이 니까. [조사자 : 그 얘기를 들어야겠어요. 어르신 그러면 6.25때 연세가?] 18살, 만 18살 [조사자 : 그 러면 32년생?] 33년, 전부 학업을 중지하고. [조사자 : 성함이?] 서성석 [조사자 : 그러면 원래 고 향은 어디세요?] 서울이지. [조사자 : 서울 어느 쪽이십니까?] 종로5가. [조사자 : 아! 정말 서울이 시네요.] 50년 12월 20일 날 창경원에서 집결을 해서. [조사자 :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시네요.] 집결을 해서 500명이 법으로 부산까지 내려 간 거야. [조사자 : 그게 제일 처음으로 국민 방위군이겠네요? 거의] 그렇지. 우리보다 먼저 내려간 사람이 있는데. 내가 내려간 것은 12월 20일 날, 50년. [조사 자 :더 먼저 내려간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요. [조사자 : 걸어서 부산까지] 걸어서 부산까지. [2] 일요일 교회를 가다 6.25 전쟁 소식을 듣다 [조사자 : 근데 전쟁 날 때 초기부터 잠깐 얘기해 주시면 안 돼요? 처음 전쟁 서울에 인민군 몰 려왔을 때 어떻게 하고 계셨어요. 서울에서] 그러니까 6.25 나가지고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 등학교 3학년이야. 우리가 [조사자 : 그렇지요. 18살] 고등학교 3학년인데 졸업을 앞두고 대학 진 학을 해야 될 사람인데. 대학 진학을 못 하고 소집을 당해서 이제 나가는 거야. 12월 20일 날. 그때 이제 6월 28일 날 인민군이 들어와서 서울을 점령했을 때는 인민군이라는 걸 생전 처음 보지 않아? 이북이. 학생 시절에 한국군의 우리가 전방에 진지 구축 작업을 나가서 진지를 구축해 주는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도움이 사업이지. 도움이. 도움이 역할도 하다가 6.25가 딱 터지니 까 친구가 미아리에 사는 사람도 있었고 돈암동에 사는 사람도 있었고 근데 6.25일 날 아침인데 우리가 그 당시에 기독교, 학생 기독교 가입이 되어 있어 가지고 교회를 갈라고 그러는데 저 돈암 동 신설동 이쪽에서 사는 학급 친구들이 와가지고 야! 지금 전쟁 났어. 그래. 포 소리는 들었지. [조사자 : 포 소리는 들리고?] 그런데 우리는 그걸 실감을 못 하고 야! 전쟁이 무슨 전쟁이야. 오늘 일요일인데. 아니야. 지금 저 의정부 방면에서는 날 리가 벌어졌다. 는 거지. 그래서 자기는 피난 나왔다는 거지. 그래가지고 교회를 갔다 나오니까 문제가 심각해지

는 거야. 막 피난들 가고 서울 시내에 차량에는 마이크를 전부 대가지고 외출 나온 한국군은 빨리 원대 복귀하라! 고. 그러고 마이크로 막 선전을 하고 그래서 막 부랴부랴 가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니까 서울 시 내가 갑자기 이상해졌지. 그러고 인민군이 6월 28일 날 아침에 딱 왔어. 들어왔어. 그러니까 인민 군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고 해방되가지고 45년도 8월 15일 날 해방 되가지고 50년도에 전쟁이 났으니까 38선이 생겨가지고 이북과 이남이 이렇게 갈라져 있어가지고 왕래를 못 하고 있다는 것 만 알고 있었지. 뭐 자세한 내용은 모르잖아. 원래 또 서울서 낳아서 서울서 자란 사람이 이북 갈 시간이 없었잖아. 그러니까 이북에 대한 지식은 하나도 없었단 말이야. 공부만 하고 있었는데. 그 전쟁 났다고 하니까 이상하다. 뭐, 하여튼 일은 벌어지긴 벌어졌는데. 뭔지 피부로 느껴지는 못하 잖아. 더군다나 열여덟살 학교, 학생 신분인데. [3] 인민군이 서울에 들어와 의용군을 강요해, 겨우 빠져나오다 그러니까 인민군이 탱크를 몰고 동대문을 들어오고 [조사자 : 그거 보셨구나!] 그냥 뭐, 탱크도 그때 사실 처음 본거지. 탱크도 아이 인민군이 부상을 입었는데 부상, 붕대를 딱 감고 말이야. 아 주 보면 당당히 들어오더라고. 그런가 보다 했지. 그래 놓고 3개월이 지나는 거야. 3개월을 지나는 데. 소위 지방 빨갱이들, 지방 빨갱이들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친북 사상이 있는 사람들이 그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동사무소야. 동사무소, 동사무소에 인민 치안대가 거기에 들어가 가지고 그 종북자들을 이렇게 포섭을 해서 그 사람네들의 조언을 받아 가지고, 반역한 사람들, 소위 이북 의 노선에 반기를 들거나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또 좀 생활이 부유하게 지냈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이제 파악을 하는 거야. 파악을 해 놓고 쟤네들이 9월 28일 날 철수를 하게 될 그럴 당 시에는 병역 손실에 대한 병역을 쟤네들이 수집해야 될 것 아니야. 그러니까 학교로, 학교로, 학교 로 이제 연락을 해 가지고. [조사자 : 거기서 데려가려고] 학생들을, 학생들을 등교하라고 그래요. 그래 가지고 등교를 하려고 가서 봤더니 우리 학생 중에 뻘갱이들이 있어 가지고 [조사자 : 학생

중에서, 어느 고등학교였어요?] 어. [조사자 : 고등학교 어디 고등학교였어요?] 선린 상고. [조사자 : 아!, 그러셨구나!] 갔더니. 빨갱이들이 의용군으로 전부 나가야 된다는 거야. [조사자 : 그렇게 말 하고] 조국 전선 통일을 시키려면, 통일을 시키려면 성전을 완수하려면 우리는 [조사자 : 해야 된 다.] 우리는 지금 용감한 인민군에 가서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이래 가지고 거기서 걔네들 무리들이 감시를 하는 가는데 데리고 가는 거야. 근데 우리는 이제 운동 좀 하고 그러고 있던 사람들이니까 낌새가 이상하잖아. 이북으로 갈 지금 단계야 의용군으로 가게 되면 [조사자 : 그렇죠.] 완전히 집안이고 뭐고 이제 전부 헤어지고 인민군으로 가는 판이데. 가서는 안 되잖아. 거기에 친구들 몇몇이 이탈을 하는 거지. [조사자 : 학교 나가셨다가 이렇게 빠 져나오셨구나!] 그렇지. 의용군으로 몰고 가던 중에 이제 친구들 마음에 맞는 친구들 야! 가면 안돼! 빠져. 이래가지고 빠질 사람들은 빠지고. [조사자 : 잡혀간 사람은 그대로 또 친구 중에 있었습니까?] 잡혀간 사람은 지금 소식도 몰라. [조사자 : 소식도 모르겠네요.] 그래 난 동창도 없어. 지금 동창 도, 동창도 없어. 산 사람을 휴전 되가지고 두 사람인가 만났는데 그 사람들 어디가 있는지도 모르 고 아무것도 몰라. [조사자 : 대부분 끌려간 것 아니에요? 그러면은?] 그럼. 그때는 엄청나게 끌려 갔지. 그때 그 끌려간 사람들이 서울 시내에 지금 초등학교, 초등학교 학교 교사 건물에 전부 수용 이 되어가지고 거기서 맨날 저 뭐야 거 인민군 장교들한테 세뇌 교육을 받아 가면서 나는 인민군으로 가겠습니다. 헐 때까지는 세뇌 교육을 받고 거기서 자기가, 난 인민군 해군으로 가겠습니다. 하는 사람은 해군으로 가고 육군으로 가겠다 하면 육군으로 가고 그렇게 해서 다 끌려간 거야. 그 사람 내 들은 하나도 몰라. [4] 1.4후퇴 때 국민방위군으로 차출되어 부산까지 걸어가다 그러고 나서 1.4후퇴가 나니까 아까 얘기했던 500명이 이제 우리가 후퇴하는 거지. 민간 복장 입고 민간인들이 전부 모여서 이제 편성을 해가지고 내려가는 거야. [조사자 : 그러면 그걸 주관하 는 사람들은 군인들이?] 그건 방위군, 그 당시에 방위군이 장교들이 있었어요. [조사자 : 나눠요. 방위군 장교라는 것도?] 방위군 장교는 그 당시에 계급장이 무궁화 일자 하나 소위가, 둘은 중위, 셋은 대위, 영관 장교는 어떻게 됐더라. 기억이 안 나네. 하도 오래돼서. 그런 사람들이 이제 우리 를 인솔에 가는 거예요. 나는 같이 가면서 우리 인솔하고 가는 사람하고 쫓아서 이제 한 달에 걸려서, 한 달에 걸려서 이제 부산을 갔어요. 부산 구포라는 데에 갔어요. 구포에 [조사자 : 구포?] 구포에 갔는데. 구포에 그때 협동조합. 지금 농협이야. 지금. 협동조합 빈 창고에 우리가 수용이 돼. 그러고 이제 수용되 기 전에는 그거 지금 구포에 수용된 것은 해산 직전에 환자들만 수용되는 데가 구포고 여기서 내 려가 가지고 수용되어 있을 때는 김해가 있었어. 나는 [조사자 : 김해] 김해, 김해 [조사자 : 다 내 려갔네요. 부산까지 김해도] 김해에 가가지고 김해에서 이제 그 사람 내들을 수용하고 있는데. 김 해에서도 어디 한 공한을 이제 하나 얻어 가지고 [조사자 : 주둔할] 밑에는 짚을 깔고 위에는 거죽 을 쌀가마니가 그때는 거적이니까 그걸 뜯어 가지고 깔아서 거기서 가지 간 이불하고 자기 입은 옷하고 그걸 가지고 생활하는 거야. [조사자 : 그러면 따로 피복이나 식량 같은 게 지급된 그런 건 별로 없고?] 식량은 이제 그 부대 가고 형성되고 나서 수용되고 나서 취사장도 만들고 임시 건물

에 들어가 있는 막사 [조사자 : 막사 같은 거] 같은 거. 거기서 수용돼 있는 사람들이 인원에 의해 서 국민방위군 사령부에서 일정을 타다 밥을 해주는 거지. 밥을 해 주는 게 달걀만 한 것. 주먹밥 을 이렇게 해서 주는 건데. 오리 알 만해. 오리 알 [조사자 : 양이요?] 응, 근데 그것이 부식이 있 어 가지고 반찬이 있어 가지고 먹는 것이 아니고 소금물을 타가지고 소금물을 손에다 집어넣어서 이렇게 주먹밥을 만들면 그 손에 묻은 소금기가 이렇게 만져서 간이 맞어. 그것만 먹는 거야. 국도 없이. 그렇게 먹고 있다가 아까 얘기했었지 제주도 훈련소에서, 제주도 훈련소에서 현역들이 오게 되면 이제 자기네들이 쭉 육안 검사를 해서 색출을 해내는 거지. [조사자 : 뽑는구나!] 그래가지고 몇 명, 인수해서 인수증을 우리한테 주면 그 사람네들이 데리고 가서 부산에서 LST 타가지고 제 주도 훈련소로 입격 시키는 거야. 우리는 수용하고 있다가 그 사람 내들이 오게 되면 그 사람 내 들이 필요한 인원을 선발해서 가주 가게끔 항상 수용하고 있는 거지. [5] 부식 비리로 방위군 사령이 총살되고 국민방위군이 해산되다 [조사자 : 그러면 어르신은 거기 수용소 관리하는 걸로 계셨구나!] 그렇지. 그것도 우리 선배가 거기 장교로 있기 때문에 도움을 받았지. [조사자 : 그러셨구나!] 그래가지고 이제 51년도 3월 달 까지 있다가. 그 문제가 장정들이, 저 국민 방위군 수용된 인원에 대한 급식, 부식비 이것을 그 당 시에 관여하고 있던 사람이 부정을 해서, 부정을 해서 수용된 인원들을 잘 못 먹인 것에 대한 책 임을 그 당시 사령관 김윤근 중장이 있어. 스포츠맨이야. 씨름 선수. 근데 그 사람이 군에 일찍 들 어가 가지고 우리 국민 방위군 사령이 됐는데. 그 책임을 지고 그 사람이 총살형을 당한 거지. [조사자 : 아!, 그러면 그때 해체됐습니까? 국민 방위군이] 그렇지. 그렇게 문제가 있어 놓으니 까. 해체됐지. 해체가 되가지고 남은 인원들이, 남은 인원이 각 처에 얼마씩 다 남았을 것 아니야. 그것을 우리 구포에 전부 수용을 했다고 구포에 수용되어 있는 인원이 한 일개 중대나 되나. 한 200명 그래서 내가 수용하고 있는 그 환자들 최후에 그 사람네들은 수용하고 있을 때 영양실조에 걸린 것. 또 부산에 물이 그 당시에 물이 굉장히 나빠요. 상수도가 제대로 돼 있지가 않아. 그래 가지고 논에 가서 논을 파가지고 논에서 고인 물, 물이 지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비눗물 만양 뿌- 예. 그 물을 가지고 밥을 지어먹고 국을 끓여 먹고 그래 놓으니까 전부 이질이 걸려 또. 이질이 걸 리는데 아픈 사람 약을 줘야 될 것 아니야. 아픈 사람 [조사자 : 약도 제도로 쓰지 못했겠네요?] 그러니까 그때 의무대라는 데가 없어. 약을 줘야 하는데 약줄 물품이 있어야지. [6] 국민방위군이 해산되어 한강을 헤엄쳐 건너오다 그래가지고 51년도 3월, 3월 해산을 할 무렵에 각자 고향으로 가게끔, 쌀 8kg [조사자 : 1인당] 1인당 쌀 8kg. [조사자 : 그때로는 꽤 많이] 그러니까 8kg 주고. [조사자 : 지고 가는 것도 힘들겠 다.] 짊어지고, 짊어지고 가면서 거지 생활을 하면서 1달 동안 걸어서 서울을 오는 거야. 서울 오 니까. 서울 오니까. 한강을 건너질 못해. 그때는 도강증이 없으면 안돼. 그때는 주민등록이 아니라 그때 당시에 그 뭐야. [청중 : 도민증 아, 뭐에요?] 도민증이지. [청중 : 도민증] 도민증에 직업란에 농부라고 쓴 사람은 건너 줘. [조사자 : 농부] 왜냐하면 농사를 지어야. 생산되니까. 학생 하게 되 면 학생은 보류 야. 우리는 잠실로 밤에 몰래 빤스 만 입고 물로 그냥 [조사자 : 헤엄을 치셨어 요?] 응, 물로 건너서 서울로 들어가는 거야. [조사자 : 한강을요? 대단들 하시다.] 지금 잠수 [조 사자 : 잠수교 다리 밑에] 잠수교 다리 있는 대가 물살이 세요. 유속이 빠른데. 가다가 잘못 밤에 가게 되면 그 당시에 아줌마들이나 부인들은 잘 못 디뎌 가지고 미끄러져 나가떨어지게 되면 그냥 뚝섬으로 떠내려가는 거야. [조사자 : 익사한 사람들도 많았겠네요?] 많지. 그래 난 한강을 건너서

집을 찾아 들어갔지. 그래가지고 들어가 났더니 학교를 이제 복학을 해야 할 거 아니야. 9.18 수복 됐으니까. 근데 그 당시에 학교들이 전부 개학을 해야 할 땐데. 학교 인원이 있어야지. 인원이 없으니까 그 당시 문교부 장관이 이상문이던가. 그 사람인데. 서울 시내를 동부하고 서부 이렇게 두 개로 나눴어요. 그래서 동부에 소속되어 있는 학교들은 어느 학교가 됐든지 간에 동부로 다 집결시키고 서부로 소 속되어 있는 학교들은 서부로 집결을 해가지고 그 당시에 뭐라고 했느냐면 동부 훈육소 학교가 아 니야. 훈육소야, 훈육소. [조사자 : 동부 훈육소, 서부 훈육소] 서부 훈육소. 그래 가지고 이제 공부 를 시작한 거야. 거기서 [조사자 : 전쟁이 끝나기 전이죠. 그지요. 아직은 51년?] 51년도 3월달이 니까. 그래서 이제 거기서 공부를 해가지고 52년도 3월에 내가 학교 졸업증을 받았어요. [조사자 :52년 3월에요?] 52년도 3월 에 이제 졸업을 하는 며칠 앞두고 소집 영장이 또 나온 거야. [조사 자 : 그치요. 졸업하니까.] 그때는 현역 [조사자 : 현역] 현역 소집 영장이 나온 거야. [조사자 : 그 러면 어르신 동부 훈육소 나오셨습니까?] 그렇지 동부 훈육소 나왔지. 지금 덕수상고 [조사자 : 덕 수상고에서 동부 훈육소였구나!] 응 [조사자 : 훈육소라 것도 처음 들었습니다. 어르신한테] 훈육소 [조사자 : 그런 말 들은 적이 없어요. 이런 걸 알아야 하는데.] 그게 전부 물알로 가라앉아서 이런 걸 뭘라. [조사자 : 이런 걸 알아야 하거든요. 지금의 덕수 장소에서 동부 훈육소가 있었구나!] 그 렇지. 서울운동장 바로 건너편에 있는 덕수상고 [조사자 : 그러면 서부 훈육소는 어디에 있었을까 요?] 서부 훈육소는 모르지 나하고 관계가 없으니까. 그건 마포 어디 쪽에 있었다고 그러던데. [조사자 : 고등학교 졸업할 때 또 영장이 나오고, 고등학교 졸업하니까 영장이 나오지요?] 낼 모래 졸업식인데 졸업식이 이제 내가 3월 15일 날 입대를 했거든. 현역으로 입대를하는데 3월 초 승 경에 현역 이병장이 나왔다고. 그래가지고 현역 일병 장이 나오니까 졸업장을 이제 가 졸업장 을 써서 준거야. 이제 안정이 되게 되면 그걸 가져와서 정식 졸업장을 받아라. 그식이지. 들어가 고 나니까 계속해서 전쟁이 일어나잖아. 52년도 [조사자 : 8월, 53년에 끝나잖아요?] 53년도 7월 27일 날까지 전쟁이 났잖아. 그러니까 52년도 3월 논산 제1 훈련도 내가 1기생이야. [조사자 : 논 산 훈련소 1기생이시구나! 그때 논산이 생겼구나!] 그때 논산이 처음 생겨 가지고 우리가 입소하면 서 건설을 하면서 우리가 훈련을 받은 거지. [7] 국민방위군의 희생이 참담했지만 보상은 하나도 없다 [조사자 : 그러면 방위군 갔다 오고 이런 거 전혀 참작이 안 되고요?] 그건 아무 소용도 없는 거 지. [조사자 : 아무것도 없는 건데 고생만 하셨구나! 그 당시엔 군번도 없고?] 그 당시에 군번도 없 고 그건 하등에 도움이 되는 게 하나도 없고 그 당시에 그 많은 장정이 당했던 그 고통에 대한 것 을 어느 누가 인정도 안 해줄뿐더러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 [조사자 : 그러네요. 괜히 부산까지 걸 어만 갔다 오시고 군대 거의 2번 가신 거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서울서 부산까지 내려가는 동안 에 당한 희생들이 얼마나 많겠어. [조사자 : 방위군 걸어서 내려가실 때] 방위군으로 이제 소집돼서 내려가면서 걸어서 내려가는데 하루 40리 50리. [조사자 : 하루 40리, 50리] 최고로 걸을 때가 충주에서 문경 넘어갈 때. [조사자 : 아! 힘들었겠다. 진짜 새재] 새재, 그 당시에는 도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전쟁 당시기 때문에 [조사자 : 큰길로 못 다녔겠어요.] 큰길로 보급 수송을 하는 바람에 인간들은 전부 국도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 [조사자 : 산길로?] 전부 샛길로 가는 거야. 우리 전부 샛길로 해서 물 건너, 산 건너 그냥 그렇게 가는 거지. [조사자 : 그러면 이때는 보급이 거의 없었겠네요? 걸어 내려 갈 때는?] 저 500명이 서울에서 출발하게 되면 다음 이제 유영지를 여기서 얘기를 해줘요. [조사자 : 어디까 지 가서 묶는다.] 어디 가느냐 하게 되면 서울 창경원에서 그때 눈이 여기까지 왔어. 창경원에서

출발해 가지고 어디까지 가게 됐냐 하면 음 처음에 어디를 갔느냐. 양평으로 갔나. [조사자 : 그쪽 으로 가셨어요? 천안 쪽이 아니라 양평 쪽으로 가셨어요?] 그렇지. 지금 중앙고속도로 있는 쪽으 로 시골 길로 가는 거야. 망우리를 넘어서, 망우리를 넘어서 덕소를 거쳐 가지고 아니 우리가 덕소 가서 하루져녁을 잤을거야. [조사자 : 아! 덕소요. 그다음에 여주 이천 이쪽으로 해서 내려가셨나. 그러면] 응, 그렇지. 서울에서 출발하게 되면 다음 숙영지가 덕소면 덕소에다 여다가 연락을 해서 몇 명이 내려간다 그러면 거기서 이제 행정구역별로, 행정구역별로 몇 명이 도착 되니까 무슨 동 네는 몇 명, 무슨 동네는 몇 명 이렇게. 분할을 해가지고 [조사자 : 준비하라하고 먹을 걸 같은 걸] 먹을 것을 준비하라고 해서 가게 되면, 가게 되면 저녁에 민간 부락에 방을 전부 이제 해가 지고 거기서 잠을 자고 [조사자 : 잠자리도 그렇게] 그 집에서, 그 집에서 [조사자 : 밥을 먹고] 저녁을 먹고 그 다음 날 아침에 아침을 먹고 그 집에서 이제 점심 주먹밥을 [조사자 : 주고] 만들어 주게 되면 가주고 가면서 점심을 먹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가면서 점심을 먹는 거야. 그러니 이제 주머 니에다 집어넣은 사람은 얼어서 그냥 얼음 씹어 먹는 거 모양 아작아작 씹어 먹고 [조사자 : 겨울 이니까.] 그렇게 해서 다음지를 숙영질 가게 되면 여주 다. 그러면 여주에 가서 이렇게 하고. [조사자 : 동상 걸린 사람들도 되게 많아겠다.] 응. [조사자 : 거의 뭐 이렇게 떼거지 같은 몰골 로 다녔겠네요?] 그 완전히 뭐 저 거지 집단이지. 뭐! [조사자 : 그렇네요. 폭격은 안 당하셨어?] 폭격은 이제 내려가는 거니까 남쪽으로 남하하는 거니까 전선하고는 머니까 [조사자 : 멀어서] 그 런 건 안심이지. [8] 비참한 행군으로 철길에 떨어져 죽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고 산길을 가기 힘들 때에서는 밤에, 밤에 철길을 따라서 가는 거야. [조사자 : 밤에는 철길] 철길을 따라가다가, 철길을 따라가다가 철교가 나오잖아. 철교를 나가게 되면 별빛도 없고 깜깜한 데 후라시가 있어 뭐가 있어. [조사자 : 아! 무섭다.] [조사자 : 떨어지면 바로] 떨어지면 가는 거 야. [조사자 :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섭다!] 그러니까 열여섯부터 마흔다섯 살까지 인원이 지금 가는 거니까. 그 당시에 마흔다섯 살 이래면 노인이야. 노인 [조사자 : 거의 노인이지요. 그 당시에는, 네, 노인 맞습니다.] 마흔다섯 살 먹은 그 영감님들하고 우리 허고 같이 가는 거야. 그러면 거기에 삼촌도 있고 작은아버지도 있고 전부 짬빵(짬뽕)이 되가지고 동네 어른들 아니야. 한동네에서 소집 되어서 가니까. 아무개 삼촌 아무개 삼촌 이러고 그러면서 가는 거야. [조사자 : 어르신은 제일 어린 나이?] 그렇지. 그 당시에 내가 제일 어린 나이지. 그래 가지고 가면서 이제 그런 희생을 당 한 사람이 많지. 근데 지금이나 그 당시나 행군하면서, 술 먹지 마! 술을 안 먹어야 할 것 아니야. 자기가 살라면 추우니까, 추우니까 말이야. 막걸리, 막걸리 한 두 잔 먹고 가면 좋은데. [조사자 : 많이 먹으니까.] 그게 또 가면서 배고프니까 이게 술 배를 채우 는 거예요. 농사짓던 사람들은 도시에서 산 사람들하고 양이 틀려요. 우리는 요만한 거 하나 먹어 도 견디지만, 농사짓는 사람들은 새참 먹지, 아침 먹지, 점심 새참 먹지 또 막걸리 먹지 이러던 사 람들은 응, 밥도 이렇게 산더미같이 사발을 하나 부어도 두 사발이 될 정도로 먹는다고, 그걸 제 대로 못 먹지 가니까 술이라도 먹고 가면서 [조사자 : 그러니 사고가 더 많이 나지.] 사고가 더 많 이 나지. [조사자 : 어떻게요. 깜깜한데.] 우리가 이제 철교를 이렇게 밟고 건너가다 보면 무슨 소 리가 들려. 그러면 뭔가 하고 이렇게 들어보면, 사고요, 사고요. 그래. [조사자 : 떨어져서] 가서 보게 되면 철로 밑에 물이 있는데 얼음이 잔뜩 얼어 있는 것도 아니고 [조사자 : 살캉 얼어져 있구나!] 그냥 두께가 떨어지게 되면 퐁 들어가게끔. 들어가기 좋

게끔 얼음 두께가 얼어 있어요. 그럼 이렇게 철교 위에서 내다보게 되면 사람이 빠진 것이 머리가 보여요. 머리가 보여요. 이렇게 보게 되면 그러면 급하니까 이제 새끼고 뭐고 전부 연결을 해가지 고 내려 줘가지고 잡으라고 소리소리 지르니 물속에 있는 사람이 그게 들려 그래 얼마 안 있다가 는 물을 거기서 먹고 그냥 그대로 [조사자 : 가라앉고] 가라앉고. 그래 우리는 갈 길이 바쁜 사람 들이니까는 가고 나머지 있는 사람들이 수습하게 되면 사망자로 이제 끄집어내는 거지. 그런 비참 한 행군을 했다고. [9] 거지몰골을 하고 다니며 일주일에 시체 아홉을 매장하기도 했다 우리가 그러고 아까 51년도, 51년도 3월달 이전에 우리가 환자를 수용하고 있을 당시는 환자들 이 전부 우리한테 모였잖아요. 모였는데. 그 사람네들이 내가 봤을 때는 배는 고프지, 입고 간 옷 은 이가 득실득실하지, 여기다 집어 넣어가지고 이렇게 홅아 내면 이가 한주먹씩 나와요. 이걸 일 일이 죽일 수가 없으니까 쏟아 놓고 발로 비벼 그러면 콩 볶는 소리가 나 태우면 그런 것을 50년 도, 50년도 12월부터 51년 3월까지, 근 4개월, 4개월 입고 갔던 그 옷 그대로 빨아 입지도 못하고 세수도 못 하고 이발도 못 하고 마흔다섯 살 먹은 수염은 이 수염이 스탈린 수염은 저리 가라야. 밥을 먹어야 하는데 수염 때문에, 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이걸 벌려가지고 숟갈을 집어넣어. 그 러고 마지 못해서 바리깡을 하나 이발기를 가져오게 되면 이발을 시키는 게 아니라 [조사자 : 수염 을] 수염을 깎아줘야 밥을 먹잖아. 그런 아주.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한 그런. 지금 그런 얘기하 면 누가 곧이 들어 안 들어. 뭐 그런 일이 있느냐고. [조사자 : 당군에 있으면 그러면 그 제주도 현역으로 차출되기를 오히려 바랐겠네요? 워낙 처후가 안 좋았어서.] 거기서 내가 마지막 수용하고 있던 사람 중에 내가 일주일 동안을 아홉 사람을 죽은 것을 갔다 버렸어요. 생각해봐 나이 스무살 도 안 된 총각이 초상을 일주일에 아홉 번을 치르는데 아침에 죽은 사람은 그래도 대접을 해줘가 지고 가마니에다 말아서 갔다 버리는데 매장을 하는데 저녁에 죽은 사람은 밤인데 어떡해 갔다 묻 어야 할 것 아니야. 묻어야 되는데 전부 환자들인데 누가 나와. 들고 가야 하는데. 쌀가마니에 당

과를 만들어 가지고 거기에다가 거죽을 말아서 거기에다 당가에다 싣고 호미고 뭐, 고깽이고 얻어 서 그것도 경상도에 가가지고 그 당시에 호미나 고깽이 하나 빌려 달라면 외면하는 것이 보통이 야. 안 빌려줘. 빌려주는 사람도 있어서 우리가 하긴 했지만 그걸 빌려 오기가 힘드니까 안 갖다 줘. [조사자 : 그러니까 또 안 빌려주고] 그걸 갖다 주고 또 빌려 다 쓸려면 저번에 빌려 갔는데 뭘 또 가져가느냐고 안 빌려 준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걸 안 갖다줘. 그러니까 서로에 [조사자 : 불신 아주] 서로에 불신이 거기에서 생겨가지고 국민 방위군이 뭐하러 왔다 하게 되면 있어도 없 다고 그러는 거야. [조사자 : 그러겠네요?] 그런 갈등이 있었어요. 아홉 사람을 갔다가 매장을 시켰 는데 뭐가 있어야 기록을 남길 수가 없잖아요. 난 아홉 사람을 갔다 버리고도 그 사람이 어디 출 신이면 이름이 무엇이며 생년월일 난 지금도 몰라. 그 당시에 같이 있던 사람들은 전국에서 이남 전체에서 모여든 사람이라 누가 누군지도 모르잖아. [조사자 : 서로 모르니까.] 죽었으면 이 사람이 어떡해서 죽었다 하는 진단서를 끊을 사람도 없을 거고. 또 가족에서 통보해줄 그런 여력도 없잖 아. 그 당시에 전쟁이니까. 그냥 갔다 묻으면 그만이야. 그런 비참한 방위군 생활을 하고 나는 살 아난 사람이라고. [10] 52년에 현역으로 다시 입대하고 53년에 장교 배치를 받고 휴전되다 그래서 이제 아까 얘기한 것을 쭉하게 되면 52년도에 현역으로 가가지고 현역에서 사병 생활을 한 1년하고 전쟁을 하는 동안에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산다. 내가 배운 건 한 번이라도 써먹고 죽어야 될 거 아니야. 그래서 시험을 친거야. 간부후보생 시험을. [조사자 : 그 당시에 고학력자시 잖아요.] 응. 그럼 고학력이지. 그래 가지고 53년도 9월에 내가 임관을 했어요. [조사자 : 53년 몇 월에 임관하셨어요?] 9월. [조사자 : 전쟁 끝나고 이신 거죠.] [조사자 : 그러면 전쟁 지나고도 계 속 군 생활 좀 하셨겠네요?] 그렇지 68년도까지 했지. [조사자 : 정말 오래 하셨다. 그러면 68년이 면 최소한 대령?] 나는, 나는 53년도에 임관해 가지고 전후방 다 댕기면서 근무를 하다가 68년도 에 5.16군사 혁명 나가지고 68년도에 내가 자원예편 했어요. 대위에 예편했어요. [조사자 : 대위하 셨구나!] [조사자 : 시기, 시기가 어르신은 또 전쟁 끝나자마자 장교 생활을 하신 거네요?] 그렇지. [조사 자 : 그러면 전쟁 바로 직후에는 어디에서 강원도 쪽에서 근무하셨어요. 어디서 근무하셨어요?] 저 뭐야. 우리가 바로 임관하기 직전에는 전선이 아주 저 뭐야 오르락, 내리락 하던 그 찰나야. [조사 자 : 시들할 때] 시들할 때. 그러니까 우리가 임관하기 전에 미리 졸업을 하고 전방에 투입할 그럴 예정이었어. [조사자 : 장교가 한 명이라도 급하니까.] 응, 그러니까 53년도 7월달에 7월 27일 날 휴전되는데, 휴전이 되는데 휴전이 되는지도 모르고 우리는 훈련을 받고 있는데 완전 무장을 꾸려 가 지고 출동 준비를 시키더라고 그러니까 훈련도 이것으로써 끝마치고 전방에 가는구나! 우리 전 기에 있던 사람들은 헬리콥터를 다 타고 전방에 투입됐어요. [조사자 : 헬리콥터 타고 가셨구나!] 근데 우리는 7월 27일 날 다행히 휴전이 되는 바람에 남은 훈련 기간을 마치고 9월에 임관을 했 지. [조사자 : 첫 부임지가 어디신지?] 제2 훈련소. 내가 [조사자 : 논산, 아!] 내가 논산 가서 신병 훈련을 시켰지. [조사자 : 어르신이 손수 지었던 막사에 그냥 다시 가신 거예요?] 그렇지. 내가 갈 당시에는 벌써- [조사자 : 좀 많이 번뜩해졌겠어요?] 그 당시에는 우리가 전부 저 뭐야! 흙벽돌이 죠. [조사자 : 네.] 그 흙벽돌을 찍어 가면서 막사를 건축하고 그러고 반듯한 막사를 다 지어서 들 어오는 훈련병들이 우리가 훈련받았던 그 시절하고는 천지 차이지. [조사자 : 그때만 해도.] 그러다가 55년도에 전방에 가가지고 전방 근무를 했지. [조사자 : 어디로 가셨어요?] 전방, 문산 [조사자 : 아! 문산, 서부 전선 쪽에 계셨구나!, 그때만 해도] 동두천 [조사자 : 살벌했지요? 55년도 이때는] 우리가 들어갈 때는 [조사자 : 전쟁 직후라서] 전쟁 직후가 돼 가지고 거기가 연합군이 있

어 자리라, 연합군이 있던 자리라 거기는 뭐야 지뢰 매설이고 뭐고 [조사자 : 그런 게 잘 돼 있었 구나!] 그것을 정확하게. [조사자 : 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기록을 해서 우리한테 넘겨줘야 하 는데 저 왜 외국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알면 고만이야. 남겨 준 것도 정확하게 우리가 인수를 받으 면 좋은데 그냥 아우트라인 에리아만 이렇게 설정을 해가지고 여기가 지레 지대다 이렇게 해서 했 는데 가다 보면 밟아 가지고 떠져서 [조사자 : 아!, 그런 일들이 많았고] 비전투 손실이 그때부터 일어나는 거야. [조사자 :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전방에 올라가니까, 전방에 올라가니까, 이 안전 사고가 무척 많고 [조사자 : 무척 많고] 전방에 그래서 또 다행히 내가 사단 사령부에 떨어져가지 고 그런 행정 조사 기간에 내가 근무를 하기 때문에 밤이고 낮이고 맨날 조사를 하러 댕기는 거 야. [조사자 : 사건 사고가 되게 많았겠네요?] 그러니까 비전투 소실이 그렇게 많은 일어났어. 그러 다가 이제 초등군사관 교육받고, 고등군사관 교육받고 그러고. 내가 11사단에 갔을 때에는 전방 11사단 갔을 때에는 [조사자 : 11사단이요. 저 11사단이요.] 11사단 출신이야. 몇 연대? [조사자 : 20연대] 9연대에 있고 [조사자 : 9연대] 13연대 [조사자 :13연대] 최초에는 9연대 갔다가 후방에 왔다가 다시 갈 때는 13연대. [11] 국민방위군에서 80%정도가 다시 현역으로 가다 [조사자 : 국민방위군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응. [조사자 : 그쪽에서도 아마도 행정 일 좀 하셨을 것 같아야 지고 대강 짐작 해가지고 몇 퍼센트 정도 정규군으로 제주도를 넘어 갔고 몇 퍼 센트 정도가 비전투 선수인 것처럼 부식이나 후생이 안 좋아서 사망했는지. 퍼센트로 한다면 어느 정도 될까요? 정규군으로 넘어 간 사람이 백 명 중에 몇 명 정도 될까요? 30명] 아니지. [조사자 : 그 정도도 안 됩니까?] 더 되지. [조사자 : 50%로 이상은 넘어 갔나 봐요?] 60~70% [조사자 : 정 규군으로 넘어갔고?] 80%로는 갔다고 봐야지. [조사자 : 거의 다 그러면] 거의 다 병력 그때는 부 족한 상태니까. [조사자 : 80%로는 그렇게 갔구나!] 어지간한 사람은 45세 된 사람을 포함해서 환 자만 남겨놓고 거의 다 갔다고 봐야지. [조사자 : 실제로 사십 이상은 잘 뽑아가기 그렇겠네요?] 안되지. 그 사람들은 벌써 동작이 다르잖아. [조사자 : 그 당시에는 노인 나인데.] 그 당시에 30세 만 되도 빠릿, 빠릿하지 못해. [조사자 : 많이 정규군으로 넘어간 거예요.] 우리가 서울서 500명 내 려갈 때는 소졸, 중졸자리가 없어. 전부 다 고등학교, 대학교 재학 중, 또 대학교 졸업 맡은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합해서 내려 간 거니까. [조사자 : 굉장히 고학력 경력이네, 인재들이 그냥] 그 당시 에 인재들이니까 내려가면서 전부 필요한 [조사자 : 중간 중간에 다 빠져나갔구나!] 빠져나갔지. 나 모양 구포에 가서 기관 요원으로 근무하고 그러고 그중에 있던 사람 중에는 학력들이 다 좋으니까 [조사자 : 그랬겠네요.] 방위군 사관으로가 가지고 방위군 훈련을 받고 제2 국민병 관리자로다 전 부 근무를 했지. 그러다가 그 사람네들이 다급하니까 현역으로 전부 들어왔고 그래요. 6.25 때 그 서울 시민에 한 사람이 겪은 과정이 그런 과정이야. [조사자 : 그러네요. 그러면 원 래 위대 어른 신들도 다 서울 사셨습니까?] 그렇지. [조사자 : 서울 토박이시네요. 사대문 안에 사 셨던 분이셨네. 잘사셨나 보다. 그래도] 아니. [12] 의용군에 잡혀가지 않으려고 도망 [조사자 : 그렇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조금 궁금했던 게 의용군 도망가셨잖아요. 그동안 잡으러 오거나 인민군 치하였는데 그런 일은 없었어요?] 아 참 [조사자 : 그때 얘기도 조그만] 그 당시에 [조사자 : 계속 숨어계셨겠네요?] 그 당시에 지금 얘기하던 친북자들, 지방 빨갱이지. [조사자 : 지 방 빨갱이.] 동네 빨갱이지. 동네 빨갱이지. [조사자 : 바닥 빨갱이라고 할머니들 그러시던데.] 그런

사람네들이 내 친구도 있고 또 우리 형 친구도 있고 또 동사무소에 근무하던 직원들이 가정에 사 정을 다 안단 말이야. 그 사람 네들이. 그러면 예의 감시를 한다고 그 사람네들이. 야! 성석이가 오늘 보이던데 오늘 저녁에 급습하면 그놈 잡으러 갑시다. 응? 그러면 또 나를 숨겨주려고 하는 사람이 있잖아. [조사자 : 미리 알고 도망가고 그렇게] 야! 너 너희 집에 있지 마! [조사자 : 간다더라.] 수상한 얘기가 들리니까 너 톡겨라. 그러면 시골로 가는 거야. 밤에 [조사자 : 어디로 가셨어요?] 금곡. [조사자 : 금곡.] 그 당시에는 금곡이 저 제일 가까운 시골이니까 [조사자 : 제일 가까운 시골] 거기 가다가 거기 오게 되면 고쪽 에서도 눈독을 들이는 사람이 있어. [조사자 : 거기도 있으니까.] 거기서 낮에는 꿈쩍도 안 하고 그 런 얘기 들으면 또 밤에 서울로 또 잠입하는 거야. [조사자 : 금곡에 거기 연고가 있으셨어요?] 작 은 누님이 거기 살았지. [조사자 : 아! 거기 사셨구나!]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3개월이 지나는 바람에 [조사자 : 6월 28일부터 9월 28일까지 주로 그렇게 왔다 갔다, 왔다 갔다] 그렇지 그러고 그 당시에는 먹을 게 없잖아. 먹을 게 없으니까 걸어서, 걸어서 양평까지 와야 해. 왜 오느 냐 여름 아니야. 여름 [조사자 : 예, 여름이죠.] 그러니까 시골은, 시골을 여름옷이 없어. 그러니까 동네 문 시장 종로 5가 시장에 러닝구, 빤스 그러한 내복을 가지고 가가지고 식량하고 맞바꿔. [조 사자 : 바꾸느냐고, 그러셨구나!] 식량하고 맞바꾸는 거야. 맞바꿔 가지고 그 식량을 가지고 와가지 고 우리 식구들이 먹고사는 거야. 그렇게 3개월을 버티는 거지. [조사자 : 그 와중에도 그렇게 하 셨구나!] 그러니까 지금은 서울 시내에 지리가 그 당시에 지리하고 다 다르잖아. [조사자 : 그렇지요.] 집 도 많이 생기고 전찻길도 다 없어지고 뭐 저 지금은 요만한 땅도 빈자리가 없잖아. 우리 학교 배 속 장교가 종로3가 파출소에서 부역하고 있더라고 살아야 할 거 아니야. 그 사람도 그러니까 배속 장교 하던 사람이 살래니까 할 수 없잖아. 나는 가면서 이렇게 봤지. 보면 아니까 응 아는 척을 하 면 안 되잖아. [조사자 : 그렇죠.] [조사자 : 그러면 결혼은 언제 하셨어요?] 55년도 [조사자 : 그러면 임관하고 나신 다음에 하신 거구나! 임관하고 난 다음에] 응 [조사자 : 원래 형제가 어떻게 되셨어요? 어르신 형제가] 둘이지. [조사자 : 누님하고] 누님이 둘 [조사자 : 누님이 두 분이 계시고] 두 분이고, 형님하고 나하고 밑 에 누이동생이 하나 있었어. [조사자 : 그러면 2남 3녀] 그렇지. [조사자 : 5남 매셨네요.] 5남매지. 지금 저 뭐야 장녀하고 장남은 세상 뜨고 나하고 금곡에 있는 작은 누님하고 김포에 살고 있는 내 누이동생하고 셋이 있지. [조사자 : 형님도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형님도 같이 끌려가셨어요? 어 떻게 하셨어요? 형님은 그 당시에] 그저 영장이 나와서 바로 해병대 들어갔지. [조사자 : 바로 해 병대 하셨구나! 형님은?] 9.28 수복되면서 즉시 해병대 입대해 가지고 해병대에서 근무하다가 제대 하고 나와서 [조사자 : 그러셨구나!] 나 중위 때, 나 중위 때 제대하고 나와서 가업에 종사하시다가 지금 세상 뜬지 가가 10여 년이 넘나. [조사자 : 어르신은 정정하시네요?] 응 [조사자 : 정정하시다 고 올해 흙 나이로 여든하나, 여든하나 시잖아요?] 저 뭐 [조사자 : 장교 출신이라 그러신가?] 때 려잡아야 할 거 아니야 끝까지. [13] 군대 가서 총 맞아 죽을 때 빽 하고 죽었다, 빽 이 없어 죽는 거라고 [조사자 : 그러면은 서울에서 계셨을 때 아시는 분 중에는 인민재판 가거나 그런 분들은 없었어 요?, 끌려가거나 그랬던 일들은] 인민 우리 또래나 우리 친구들 우리 형에 친구 뭐 이런 사람들이 인민재판에 회부 됐다. 그런 얘기는 내가 못 들었어. [조사자 : 그러지는 않으셨구나!] 그러니까

서울 깍쟁이들 아니야. [조사자 : 아! 잘사는구나!] 잘 피하는데 미꾸라지는 저리 가지. [조사자 : 아! 그렇구나. 또] 요리 빼고 저리 빼고 해서 [조사자 : 그 학교, 학교에 동기생 중에서도 좀 저쪽 북한으로 넘어간 유명한 사람들 좀 있었줘. 선린상고만 해도 명문이니까?] 많지. [조사자 : 많이 배 운 사람들이 많이 했잖아요? 그렇죠.] 그렇지. 내가 축구를 했는데. [조사자 : 축구를 하셨어요?] 우리 축구부 주장이 빨갱이야. 박태환이라고. [조사자 : 그러면 월북했습니까?] 고 자식이 저 학교 불도 두 번 내고 선린 상업이 그래서 망했어. 그 자식이 불을 내가지고 일본 시대 때에 저 뭐야 지어 놓은 학교를 그 당시에 선린상고 들어가려면 최하가 33:1이야. 그러고 졸업하겠다 하게 되면 그 당시에 뭐야 한국은행, 조선은행, 조선은행 자가용이 와서 졸업과 동시에 모시고 가가지고 근무 를 하던 시절이거든. 그런데 이놈의 세끼가 빨갱이가 되가지고 불을 냈어요. 학교에 그래 우리는 몰랐지. 우리는 나중에 조사하는 과정에 보니까 그 자식이 잡혀가지고 왔다 갔다 하더라고 학교에 왜 그랬느냐 하는 것을 궁금하니까 물어봤을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박태환이가 불을 질었다는 거 야. 그래가지고 6.25가 났어. 6.25가 나니까 그 이제 다시 풀려서 나왔잖아. 그래 가지고 학교에 나 와 가지고 이 자식이 학교를 새로 건축을 했어요. 이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건축물은 [조사자 : 다 없애고] 불이 타서 없어졌는데 새로 공구리 학교를 건축 해 낳는데 거기에 또 불을 냈어. [조 사자 : 왜 그랬을까?] 그래 가지고 학교가 불이 났으니까 공부할 때가 없잖아. 강당을 이렇게 지금 얘기하게 되면 저 뭐야 동네 마을 회관 이렇게 나누듯이 나눠가지고 1학년 몇 반은 여기 몇 반은 여기 이래가지고 공부를 했다고 그니까 공부가 제대로 됐겠어? 그 빨갱이가 그 지랄하는 바람에 그 새끼가 활게 치는 거지. 빨갱이들이 왔으니까 학교에 통보를 해가지고 아까 얘기하듯이 다 등교하라 이거야. 등교하라고 해가지고는 지들 실어가 데리고 가는 거야. 그러니까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 리 학교 동창이라는 게 없어. [조사자 : 이젠 그러셨구나!] 인민군에 끌려간 사람이 있는가 하게 되 면 한국군에 편입되어 가지고 전사한 사람들 그중에 내가 하나 살아서 지금 남아 있는 거야. [조사 자 : 그러셨네. 그 사람은 월북했겠네요?] 월북이 아니라 끌려갔지. [조사자 : 박태환인가? 그 사 람] 그건 아주 뭐 데리고 가니까 지가 데리고 가니까 [조사자 : 앞장 셨으니까.] 앞장 셨으니까 가 겠지. [조사자 : 선린상고였구나!, 몇 반이나 있었어요? 그런 것도 궁금하네.] 우리가 [조사자 : 한 학년에] 우리가 저 일반, 이반, 삼반 [조사자 : 몇 명씩, 한 반에] 어 한 반에 그때가 50명. [조사자 : 적었네. 그래도 생각 보다, 그러면 150명 정도 되네요. 150명 중에 지금 거의 안 남아있다고] 그 렇지. 어딘가는 한 두 사람 있겠지. 대한민국 전체를 틀어서 나만 해도 이렇게 인천에 와서 박혀 있으니까 [조사자 : 몇 회신 거에요?] 몇 회지도 몰라. [조사자 : 그러면 어르신 연배 그때는 다른 학교도 많이 그렇겠네요? 서울 시내 다른 학교도] 눈 에 불을 썼지 걔네 들이 [조사자 : 선린처럼 그런 사정이 많을 테니까?] 그 당시에는 별명이 돈 없 고 빽 없고 그런 사람은 전선에 가서 인민군 딱궁총 맞으면서 죽을 때 악하고 죽은 게 아니라 빽 하고 죽었다고 빽-이 없어 죽었다 고 [조사자 : 그런 말씀들 하시고] 그러니까 내가 임관해가지고 훈련소에 가가지고 훈련병 교육시킬 때 들어 온 사람들 학력 조사를 하게 되면 중졸이 하늘의 별 따기 야. 문맹자가, 문맹자가 많이 있어가지고 문맹자는 전부 선출을 해가지고, 선출을 해가지고 국민학교라는게 훈련소에서 분대 만 양 만들어가지고 [조사자 : 훈련소 안에서 한글 가르쳤습니 까?] 응, 훈련소에서 국민학교라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조사자 : 훈련소 안에 그런 것이 있었구 나!] 응 [조사자 : 논산에요?] 논산에 그래가지고 내가 거기에 선발되서 국민학교 거기에 [조사자 : 선생님처럼 가르치셨구나!] 부임해 가지고 [조사자 : 가갸겨거 가르치셨겠네!] 지금 학교로 말할 것 같으면 교무주임이야. 교육관. 그래서 초등학교 교육과정 중학교 교육과정 그걸 작성해가지고 교육

을 시키는 거야. 문맹자들 [조사자 : 입대한 사병들 대상으로] 응 문맹자들, 문맹자들을 전부 우리 한테 보내니까. [조사자 : 그런 것까지 같이 하셨구나!] 응 그건 휴전되고 난 후에 일이야. [14] 전쟁 전 선린상고를 다니며 지점장의 꿈을 꿨었다 [조사자 : 어르신, 선린상고 다니셨을 때는 나중에 뭐 해야겠다. 하는 그런 것 있을 셨어요? 군 인은 아니셨을 것 아니야.] 장경희 알죠? [조사자 : 네] 장경희가 한국일보 사장 아니야. 거기에다 5.16 군사 혁명 나가지고 한국은행 총재로 왔지. 그 사람이 우리 선배야. [조사자 : 꿈이 크셨을 것 같데.] [조사자 : 선린 상고 나오신 분 중에 훌륭하신 분들 많잖아요?] 지금 저 뭐야. 전주에 미 원, 미원 하는 박 사장, 저기 저 삼양라면인가 광주사람 하도 오래되니까 이름도 다 잊어버렸어. 그런 뭐 재력가들이 사업가들이 많이 나오고 [조사자 : 거기가 그랬었구나!] 우리 장경희라는 분은 5.16 군사혁명 나가지고 그 사람이 한국은행 총재로 들어가면서 확 바꿔 놨잖아. 금융시스템을 응 그러니까 나는, 나는 연대 상과를 내가 목표로 했거든. [조사자 : 공부하셨고] 연대 상과를 가가지 고 졸업하고 되면 내가 최하는 지점장을 해 먹어야 하겠다. [조사자 :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는데.] 그러고 선린이라는 학교 타이틀이 선배들이 우리 금융기관에 짝 깔렸기 때문에 [조사자 : 그렇지 요.] 나가기만 하면 앞에서 끌러주고 뒤에서 밀어주고 자기 할 탓 아니야. [조사자 : 그러면 전쟁 후에 임관 하시고 그럴 때 다시 그냥 금융 쪽으로 나오실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 못했지. [조사 자 : 이미 늦었어요?] 늦었지. [조사자 : 아! 아쉬웠겠다.] 그래가지고 그 당시에 내가 이를 악물고 시험을 친 이유가 전쟁 동안 에 아까 얘기했지만 [조사자 : 너무 배운 게 아까워서] 너무 써먹지도 못하고 한스럽고 이게 가서 [조사자 : 아쉬우셨을 것 같아.] 죽으면 너무 억울하다. 그러니까 죽어도 내가 국군묘지에 가서 무 쳐야 하겠다. [조사자 : 그때는 그런 생각으로] 그래가지고 사병 생활을 하면서 장사병들 병력을 내가 전부 다 볼 수 있는 그런 위치 아니야. 보면 그 당시에 장교들이 3개월 만에 소위에서 중위 되고 또 3개월만 되면 대위 되고 괜찮아 진급이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내가 그 당시에 스물한살 인데 내가 십년을 투자하자 [조사자 : 그렇게 생각하셨구나!] 서른살이면 나 하길 다려서 무엇이나 내가 스타를 하나 꿈꿀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던 것이 전두환이 11기들이 나오는 바람에 우리 갑 종 출신들은 다 찌그려 진 거지. [조사자 : 그런 일이.] 그러니까 그때 내가 신경질이 나가지고 여 기 있어 봤자 소용이 없구나. 68년도에 5.16 군사혁명 다 끝나고 나서 육군 본부에 가서 내가 자 원 예편을 했지. [조사자 : 그렇구나! 갑종 출신이라도 별 다시 받으신 분들 꽤 있지요?] 있지. 우 리 동기생들은 최상 진급한 사람들은 대령이야. 장군은 없어. [조사자 : 어르신 동기생들은, 장군이 없으시구나!, 그때 겹치는구나!] 그러니까 [조사자 : 겹치는구나!] 우리가 육군 중위때 전두환이가 이제 소위 달고 나왔어요. 나오니까 우리하고 같이 근무하면서 전부 추월하는 거야. 걔네들이 [조 사자 :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한참 짬밥이 밑인데. 어르신 너무 말씀을 너무 재미있게 처음 듣 는 얘기가 많았어요. 하도 좋은 얘기를 많이 들어서 너무 중요한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15] 국민방위군의 비참한 생활과 죽음이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 나는 항상 지금도 국민방위군 생활 면모가 이렇게 묻혀있고 알려 있지는 않으니까 너무 아쉬워. [조사자 : 정말 고생, 보상도 하나 못 받고] 거기에서 고생한 사람들이, 고생한 사람들이 한국을 지 금 지키면서 6.25 참전 유공자가 다 된 사람들이요. 그 사람네들이. 그러니까 지금 남아있는 6.25 참전 유공자들은 나를 위시해서 다 무식해. [조사자 : 무식하지 않으신데요.] 아니, 지금 학력 수준 에 비해서 이렇게 비교하자면 아주 무식하지. [조사자 : 아니에요.] [조사자 : 그때 그 김윤] 김윤근

[조사자 : 근 자니까?] 빛날 윤 자에 [조사자 : 빛날 근자에] 뿌리 근자 [조사자 : 그 사람이 비리를 많이 저질은 거죠] 그 사람이 비리는 저질은 게 아니고 그 휘하에 있는 사람들이 [조사자 : 휘하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비리를 질러서 그 사람이 [조사자 : 책임지고] 책임지고 총살을 당한 거야. 하도 여론이 빛발 치니까 국민방위군들이 저 현역도 못 가서 병력 손실이 되니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 그러니까 그 당시에 여론이 너무 비등하니까 김윤근님이 희생되는 거지. [조사자 : 그때는 전쟁 당시] 전쟁 중이지. [조사자 : 전쟁 중이었겠네요.] 응. [조사자 : 그러면 국민방위군이 대략 몇 명 정도 되었을까요?] 그건 모르지. [조사자 : 숫자가 많 았을 것 같아요?] 그건 전국적으로 국민방위군들이 전부 남하해가지고 몰려서 각 지역에 수용되어 있는 거니까 내가 국민방위군 본부에 있던 사람이 아니니까 모르지. [조사자 : 그러면 한 50년] 50 년 12월부터 [조사자 : 50년 12월부터 51년 3월 까지면 몇 달 한 건 아니네요.] 그렇지. [조사자 : 그러면 추울 때 하셨잖아.] [조사자 : 3, 4달 정도 전국적으로 쫙 모집한 거네요. 소개 시키려고] 어. [조사자 : 인민군이 또 내려왔을 때 차출 당할까 봐] 어. [조사자 : 취지가 그거였구나!] 그렇 지. 국민방위군 취지가 우리 병력 손실을 최소화시키자. [조사자 : 병력 손실을 최소화시키자. 미 리 빼놓자] 그렇고 우리 한국군 예비 병력을 확보하자. [조사자 : 예비 병력을 확보 하자] 그 취 지야. [조사자 : 서울에서 김해까지 걸어가는 데 한 달 걸렸어요?] 한 달 [조사자 : 도보로 가니까.] 올 때도 한 달. [조사자 : 그것도 겨울에 내려가시니까. 그러니까 너무 힘드셨지. 동상 걸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어.] 서울서 부산까지 부산에서 서울까지 왕복 행군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조사자 : 진짜 왕복 행군하셨네요.] 행군하는, 행군하는 도중에서 그 피 참상은 말할 수 없어. 걸 어가는 도중에 물집이 생겨가지고 절뚝절뚝하고 간 사람 여기에 물집이 생겨가지고 여기를 딛지 못해가지고 뒤 금치에 딛게 되면 뒤 금치에 물집이 생겨가지고 걷지를 못해가지고 질질 끌고 가 그러고 성냥불을 거기에 대가지고 화약을 대가지고 지져. 구워버리는 거야. 그래 가지고도 가. [조 사자 : 거기서 도망간 사람 없어요?] 거기서 도망가야. 남쪽으로 도망가지 북쪽으로 도망갈 수가 없지. 도망가야 먹을 것도 없고 그래도 여기에 쫓아 내려가게 되면 다음 숙영지에 가서 [조사자 : 먹을 수는 있고.] 따뜻한 방에 배정을 받고 먹을 것이 나온다. 그런 희망이라도 있잖아. 근데 나가 봐, 거지 생활이지. 아까 얘기하듯이 8킬로 가지고, 짊어지고 부산서 서울까지 올 때는 거지 중에 그런 거지가 없 어. [조사자 : 그랬겠네요.] 가지고 내려간 것 전부다. 4개월이 되니까 너덜너덜하지 입은 건 몸속 에는 먹지도 못하는 지들 먹고 살겠다고 이가 득실거리지. 발은 아파서 걷지 못 하지. 추워서 더 입을 내야 입을 것도 없지. 밥을 지어 먹을 내야, 지어 먹을 내야 지어 먹을 기구가 없잖아. 옛날 뭐 돌아무스통이라고 있어. 미군들 돌아 무스 깡통 지금 두레박 많이 쓰던 것. 요만 한 것 있잖아. 그걸 얻어다가 거기다가 씻어서 쌀을 집어넣고 돌멩이 이렇게 세 개 받쳐서 우리가 나무 주워서 떼 가지고 밥을 해 먹어. 밥을 해 먹는데 국이 있어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잖아. 반찬이 그니까 민간 집에 가가지고 밥 좀 먹게 소금 조금만 주시오. 해가지고 소금 조금 얻어서 먹는 거야. 그 소 금을 찍어서. 그래 가지고 그렇게까지 서울까지 올라오는 거야. 올라오면서도 영양실조가 심하게 걸린 사람은 오다가 또 죽은 사람도 있어요. 그것도 묻어 주고 왔어요. [조사자 : 누군지 모르는 그런 사람들을 그냥] 누군지도 모르지. [조사자 : 그렇게] 우리 같 은 방위군 생활을 하던 동네니까 묻어나 주고 가자 그래서 묻어나 주고 온 거지. 실제 이렇게 지 금 얘기를 하니까 그렇지 그 실상을 이렇게 우리가 입체화 시켜서 얘기하자면 눈물 나서 얘기를 못 해. 지금도 내가 그 얘기를 하려면 목이 메 불쌍해서 전부(눈물을 흘리며)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눈치나 살살 보면서 먹을 것 찾고 이질이 걸려 가지고 화장실에 가게 되면 맨 피똥 천지

고 그게 얼마나 불쌍하냐 말이야. 지금 사람들은 그런 것 하나도 몰라요. 휴전되어가지고 그런 얘 기를 열차간에서 얘기하니까 라면이라도 삶아 드시지 불난 속을 휘발유를 끌어 주는 소리지. 그 게. 지금도 마찬가지야. 지금도 우리 6.25 참전 유공자들이 팔십이 넘은 사람 아니야. 그중에는 포로, 포로 석방해 가지 고 나온 사람들이 지금 6.25 참전 유공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우리 회원이 [조사자 : 소위 말하는 반공포로] 반공포로지 그 사람네 들은 기반은 잡은 사람들은 사는데 기반을 잡고 살다가 마누라 세상 뜨고 자식은 자식 대로 나가 살고 혼자 사는 사람들 사방을 둘러봐야 뭐 누구 하나 먼저 오 는 사람 없어. 비참한지. 자식들은 기반이 있어 가지고 무슨 기반 위에서 생활하는 것도 아니고 아 버지 생계 지원을 할 여력이 없어. 그런 사람들이 지금 있는데. 그 사람네들이 지금 우리 12만원 6.25참전 수당 12만원하고 구청,시청에서 주는 8만원하고 지금 20만 원을 받고 연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비교를 한번 해봐, 비교를 5.18 민주화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수억씩 받아가지고 그 사람네들은 떵떵거리고 지금 살아 6.25 참전해 가지고 고생한 사람들은 20만 원을 가지고 연맹을 하고 있고 그래도 지금 아무 말 안 하고 우리 조국을 위해서 그래도 6.25를 알려야 하겠다 하는 정신을 살아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6.25 참전 유공자란 말이야. [15] 군 생활의 여러 가지 사연 [조사자 : 그러면 11사단에 중대장 하셨어요?] 11사단 9연대에서 중대장 했지. [조사자 : 중대장 하셨구나!] 13연대 가서는 수색 중대장 [조사자 : 아!, 수색 중대장 하셨구나!][조사자 : 저는 20년 지나서, 거기 홍천에 있거든요. 지금 주둔지가 9연대 주둔지가 제일 더 추워요. 홍천도 더 추워요. 그래도 9연대는 같은 11사단이라도 잘 안 갈라고. 걷기는 많이 걷는데. 지금은 다 바꿨습니다. 지 금 기계 화사들이 되어요. 거기 가면 탱크만 볼 수 있어요. 화천까지 안 걷고 탱크만 타고 다닙니 다. 저도 제대한 지 꽤 돼서 잘 모르는데] 우리 아들이 저 뭐야 11사단 개가 저 몇 년도에 나왔더라 9연대 나왔어. 9연대 내가 9연대 있 었는데 [조사자 : 그런데 우연에 일치로] 동기생이 육군 본부에 저 인사과장으로 있었거든 우리 아 들이 저 35사단 전주에서 훈련을 받았어요. [조사자 : 그런데 어떻게 홍천까지 갔어요.] 어 근데 이제 입대를 하고 나서 배치를 받아야 하는데 이 자식이 군대 들어가고 나서는 편지도 안 하고 아 무것도 안 해. 뭐가 삐쳤나 어디로 갔느냐 알 길이 없잖아. [조사자 : 정말요.] [조사자 : 몰라 알 수 없어.] 그렇다고 해서 35사단 가서 군번대로 이 사람 어디로 갔느냐고 물어볼 수는 없고 내가 인사과장한테 내가 얘기했지. 야 얘가 우리 아들인데 지금 배치 지가 어디에 근무하느냐. 좀 알아 봐 달라고 했더니. 전화가 왔어. 11사단 9연대 있어. [조사자 : 그런데 그렇게 멀리까지 올라가지.] 그 이제 11사단 9연대 가가지고 10중대 건물, 10중대 이제 뭐야 행정병으로 근무하고 있어. 내가 가서 대장 만나고 내가 여기 몇 년도에 중화기 중대장을 하던 사람이다. 그래서 만나서 얘기하고 그래 이제 유대를 가졌지. [조사자 : 그게 우연에 일치가 싶지 않은데. 자제분이 같은 연대에, 중화 기 중대장 하셨구나!] 그러다가 13연대 후방에 왔다가 다시 11사단에 가가지고 13연대 수색중대 정보주임 하다가 [조사자 : 그래 보통 그렇게 한 사단을 나왔다가 다시 그 사단으로 발령 날 때가 많습니다.] 그 렇지. 나 같은 케이스가 있지. 그래서 13연대 가니까 전방으로 저기 저 서하리 현거봉 밑에. [조사 자 : 화천입니다. 거기가] 인제, 인제 가면 언제 오야. 하는 [조사자 : 원통에서 못 오겠네.] 원통해 서 못 오겠네. 그 거기 들어가서 내가 수색중대 정보 주임을 하는데 연대 수색중대장이 갑자기 전 후방계로 나가 그러니까 수색중대 전방이 DMZ에 있던데. [조사자 : 아! 그때는 화천에 있었습니 까? 11사단이 60년대는 화천에 있었습니까?] 그 치 저 원통에 있지. 원통에 [조사자 : 원통] 우리

13연대는 서하리 향로봉 밑에 [조사자 : 저희 때는 홍천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우리 아들도 홍천 에 내려왔을 때 거기 있었어. [조사자 : 그때도 화랑부대였습니까?] 그럼 화랑부대지. [조사자 : 우 리 부대 구호가 멋있어. 단결, 충성이 이런 게 아니고 화랑이야.] [조사자 : 화랑 진짜 멋있네.] 6.25 나가지고 전투 경험이 있던 사단이 11사단 15사단, 15사단 까지만, 전투 경험 있는 사단 그 밑으로 있는 사단은 [조사자 : 아! 번호 상으로 1부터 15까지요.] 응 [조사자 : 전투 경험이 있고] 그러고 20사단이 있었는데 내가 20사단에 최초로 부임했었거든. 거기 갔을 때에는, 갔을 때는 거 기 갔을 때는 그 사단이 노출이 많이 되어서 해체가 됐어. 사단 해체가 됐어. 사단 해체가 20사단 22사단하고 해체가 됐어. 해체됐다가 나중에 다시 20사단하고 22사단이 복귀됐지. 다시 창설돼 가 지고 다시 돼 있는데. 그 당시에 20사단이 전투를 참가한 기간이 조금 있어. 그래서 휴전되어가지 고 공비토벌 다니느냐고 무척 고생했어. [조사자 : 어디로 가셨어요. 공비토벌을] 여기 저 뭐야 [조사자 : 원주, 치악산?] 아니. 67년도 68년도에 무장간첩들 한참 나왔잖아. [조사자 : 김신조] 응 김신조는 62년도에 파주로 나온 사람이 고 왜 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조사자 : 동해 삼척 저기] 동해 삼척 [조사자 : 울진] 울진 삼천 [조사자 : 울진 삼천] 공비 토벌을 11사단이 했어. [조사자 : 그랬구나! 군 막바지에 거기 계셨구 나!] 응 그때는 11사단 수색 중대장이 거기서 또 전투도 많이 했지. [조사자 : 공비 맞상대로 실제 전투도 많이 벌어졌습니까?] 그 치 그때는 엄청 많이 벌어졌지. 게네들은 울진 삼천 그 작전을 11 사단이 해서 전과를 올린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