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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 철학논집(제38집) 같다. 인간 존재가 가지고 있는 고통과 불행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지속적 인 관심이 있어 왔으며 인간을 불행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여러 가지 차 원의 노력이 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어떤 이는 의사의 길에서, 어 떤 이는 교육자, 정치

Transcription: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최경아(동국대학교 강사) <차 례> I. 들어가는 말 II. 붓다 당시 고대 인도의 종교사회 III. Tevijjasutta 성립시기에 관한 쟁점 IV. Tevijjasutta의 주요 내용 V. Tevijjasutta에 나타난 브라흐마나의 종교관 재정립 VI. 나가는 말 국문요약 떼비자숫따(Tevijjasutta)는 빠알리 니까야 가운데서도 비교적 고층에 해당 하는 경전으로 추정되며 붓다의 기존 종교에 대한 입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의미 있는 경이다. 본 논고는 붓다의 기존 브라흐마니즘에 대한 비판과 이에 따른 종교관의 재정립을 떼비자숫따를 통해 살펴본다. 초기불교 연구자 들이 四 梵 住 로 한역되어 알려진 브라흐마비하라(brahma - vihāra)를 논할 때 자주 언급하는 이 경에는 실제로 이 용어가 아닌 브라흐마사하브야따(brahma - sahavyatā)만 나타난다. 브라흐마사하브야따는 브라흐마와 함께 함 을 말하 며, 브라흐마(Brahmā)의 거주처에 머뭄을 암시하는 브라흐마비하라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계를 구족한 비구가 慈 悲 喜 捨 를 행함으로써 브라흐마와 동등한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신들에게 제식을 올리고, 재물과 아내를 소

150 선문화연구 제11집 유한 사제계급인 브라흐마나(Brāhmaṇa)가 아닌, 브라흐마처럼 브라흐마짜리 야(brahmacariya; 淸 淨 梵 行 )를 행하는 비구가 바로 브라흐마사하브야따의 주 체이며 진정한 브라흐마나라고 주장한다. 상대종교 최고신의 품위를 손상시 키지 않고 추종자들의 무지와 무능을 지적하는 점, 브라흐마짜리야와 브라흐 마사하브야따 등 상대 신의 이름을 적용하여 최고의 경지를 표현하고자 한 점 등은 상대종교에 대한 존중과 화합을 위한 노력으로 비춰진다. 이러한 양 상은 브라흐마가 접두어로 활용된 다양한 복합어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본 논고에서 떼비자숫따의 성립시기가 초기불전 가운데서도 고층임을 규명하고 자 한 까닭은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브라흐마니즘(Brahmanism)과 그들의 신 브라흐마에 대한 다양한 입장 가운데 극단적인 부정의 양상들이 붓다의 본래 의 입장은 아니었음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이 논고를 통해 초기불교가 초기우빠니샤드의 영향을 받았다는 기존 학설의 문제점도 지적하고자 한다. 주제어: 떼비자숫따, 삼명경, 범천, 바라문, 사범주, 브라흐마와 함께 함, 청정범행. I. 들어가는 말 브라흐마니즘의 주요신인 브라흐마(Brahmā, 梵 天 )에 대한 붓다의 거부와 냉소는 초기불전 도처에 나타난다. 반면 수행의 계위에 있어 서나 우주관에 있어 브라흐마의 경지는 상당히 높은 위치에서 존중 받 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또한 브라흐마는 복합어의 접두어로서 활 용되어 완벽한 상태를 묘사하는 단어를 형성하여 니까야(Nikāya) 도처 에서 등장한다. 디가니까야(Dīgha Nikāya)의 떼비자숫따(Tevijjasutta; 이 하 TS) 에서 브라흐마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브라흐마에 이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51 르고자 하는 브라흐마나(brāhmaṇa) 1) 들의 무지몽매함을 탓하는 모습 이 묘사되어 있다. TS에는 다른 초기불전에서 쉽게 조우되는 창조주로 서의 브라흐마에 대한 비난은 보이지 않는다. 붓다는 TS에서 브라흐 마사하브야따(brahma - sahavyatā), 곧 브라흐마와 함께 함 을 알 지 못 하는 브라흐마나들에게 그들이 추종하는 브라흐마니즘(Brahmanism)의 궁극적 목표가 불교와 어긋나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다. 단 그 방법을 그 들이 알지 못할 뿐이다. 본 논고는 붓다 당시의 종교계의 상황을 사실적 으로 묘사하고 있는 디가니까야의 실라칸다박가(Sīlakhandhavagga) 가 운데 열세번째 경인 TS를 근거로 붓다의 기존 브라흐마니즘에 대한 비판과 이에 따른 종교관의 재정립을 검토한다. II. 붓다 당시 고대 인도의 종교사회 초기불전에 나타난 붓다의 기존 종교에 대한 입장을 연구하기 위해 서는 먼저 붓다 재세시의 인도 종교사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아리안의 유입 이래, 인도문화는 그들이 확립한 베다(Veda) 신 관과 그에 바탕을 둔 소위 브라흐마니즘(Brahmanism)이라 통칭되는 종 교관에 의해 장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베다(Veda) 이래, 인도종교계는 브라흐마나(Brāhmaṇa)기에 접어들며 일상이나 종교를 망 1) Brahman과 Brāhmaṇa는 동의어이다.(sāmānārthāvetau brahmanśabdo brāhmaṇaśabdaś ca.) The Vyākaraṇa-Mahābhāṣya of Patañjali, Vol. Ⅱ, p.339, ll.11-12. Śatapatha Brāhmaṇa(13. 1. 5. 3) 역시 동의어임을 확인한다. Brāhmaṇa라는 용어는 본래 사제계급 을 의미하며, 제식의례를 자세히 다룬 Brāhmaṇa 문헌으로도 사용 된다.

152 선문화연구 제11집 라하여 제식에 몰입하는 양상을 보였다. 일방적인 제식주의에 대한 탐착은 베다 문화권 안에서도 반감을 유발하여 아란냐까(Āraṇyaka)와 우빠니샤드(Upaniṣad)라는 문헌에 기초한 철학사조의 도래를 이끌었 다. 니까야(Nikāya)의 도처에서 붓다는 제식주의의 폐해를 고발함과 동시 에 형이상학의 무의미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불교, 자이나, 우빠니샤 드 문헌들은 예외 없이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보편적인 불만족은 고( 苦, duḥkha)관으로 표출되었는데 이는 갠지스 강 유역에 거주하던 주민들의 전반적인 심리상태를 시사하며, 출가의 길로 인도하는 주요소로 작용하였다. BC 6세기 무렵, 인도사회는 도시 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빈부의 격차를 실감하게 된 일반 민중 들은 극심한 상실감과 절망을 느끼게 되었고, 베다 말기에 이르러서는 개척하기 힘든 새로운 지역까지 인구가 이동해 가면서 염세적 세계관 이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2) 아리안의 점차적인 동진과 더불어 인도 동 북부의 갠지스 유역의 신흥왕국을 기반으로 불교가 흥하게 된 반면, 브라흐마니즘은 여전히 북서부의 베다 전통과 연계되어 있었던 것으 로 보인다. 3) 이 무렵 갠지스강 유역의 북인도에는 부모로부터 사제로 서의 신분을 세습 받는 브라흐마나 계급과, 세습을 통해서가 아닌 다 양한 사회계급 출신으로 형성된 또 다른 지식층을 발견하게 된다. 그 들은 브라흐마나의 선민의식, 특권의식과 더불어 그들의 세습주의도 거 부했다. 그들이 바로 슈라마나(Śramaṇa), 곧 끊임없이 수행하는 자들 이며, 그들은 출신계급과 무관하게 세속적 삶을 포기하고 탁발걸식하 2) Pande, G. C., Studies in the Origins of Buddhism, Delhi etc: Motilal Banarsidass, 1974, p.264, 328. 3) Bailey, G. and I. Mabbett, The Sociology of Early Buddhism,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p.23.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53 는 遊 行 者 의 삶을 영위하였다. 그들은 브라흐마나와는 달리 자발적으 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고, 공동체를 결성했다. 불교나 자이나 문헌 등을 통해 우리는 당시 고행이 상당히 유행했 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독신주의와 탁발걸식 등도 수행자의 덕목으 로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여전히 브라흐마나의 권위는 존중 받고 있 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문헌자료에서 당시 종교계와 철학계 사조를 이 끌었던 양대 세력으로 브라흐마나(Brāhmaṇa)와 함께 거명되는 것을 볼 때 슈라마나가 급부상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두 그룹은 한역 阿 含 에 婆 羅 門 과 沙 門 으로 음역되어 등장한다. 인도학자 빤데(Pande)는 그의 저서에서 인도문화의 철학 사상적 근 저를 이루는 토대는 베다에 근거를 둔 브라흐마니즘이라기 보다, 멀리 는 아리안(Aryan) 유입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아란냐까(Āraṇyaka) 우 빠니샤드(Upaniṣad) 시대의 인간 내면에 대한 주관적 탐구라는 철학적 조류를 이끈 슈라마니즘(Shramanism), 곧 자아성찰과 명상에 주로 가 치를 둔 자유사상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4) 기존의 베다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슈라마니즘은 불교나 자이 나교와 같은 당대의 신흥종교의 촉매가 되었다. 당시 슈라마나가 이 끈 다양한 신흥사상들은 기존의 베다 전통 밖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실질적인 삶의 문제 해결을 갈구하는 대중들의 요구에 응하고자 했다. 이 신흥사상은 제식을 통해 투영되었던 신의 절대적 권능과 이 를 관장하는 브라흐마나의 절대 권력에 반기를 들게 되었고, 이로 인 해 신적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유물론적 사고와, 현실의 고를 합리화 시키는 윤회사상을 부정하는 신흥사상들이 대거 등장하는 계기가 되 4) Pande, 앞의 책, pp.251-309.

154 선문화연구 제11집 었다. 기존의 가치에 대한 타파와 기득권의 포기를 의미하는 출가주 의가 성행하게 되면서 현실의 고를 신에 대한 찬미와 제사로써 극복 하도록 하는 브라흐마나의 지배이데올로기로서 활용되었던 苦 觀 은 개 인의 수행의 적극적 동기 부여라는 형태로 다시 강화되는 측면도 갖게 되었다. 슈라마나, 곧 사문은 그 외에도 무니(muni), 야띠(yati), 산냐신 (sannyāsin), 문다까(muṇḍaka), 빠리브라자까(parivrājaka) 등으로 불리 며 당대에 수행자로서 존경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붓다 또한 타종교인 들에게 사문 고따마 로 호칭되었다. 당시 도시 주변의 공원이나 농원 인 꾸뚜할라살라(Pāli. kutūhala - sālā 또는 kūṭāgāra - sālā) 에서는 이들 신흥철학자들에 의한 공개 논쟁과 같은 이벤트도 성행했다. 5) 이는 대 중 앞에서 가르침이나 논쟁을 펼치지 않았던 베다 전통과는 사뭇 다 른 환경으로, 이러한 다양하고 경쟁적인 사상의 출현은 도시 생활이 정착했음을 알리는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브라흐마나와 슈라마나는 비록 경쟁관계에 있었지만 그들의 사상적 교류는 불가피했으며, 상호간 영향을 주고 받았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점차 균열되어 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법가 빠딴잘 리(Patañjali)는 그의 마하브하샤(Mahābhāṣya)에서 śramaṇa-brāhmaṇa를 집합병렬복합어(samāhāra - dvandva)의 단수 형태로 보고 있다. 이는 이 들 둘의 적대관계가 영원할 때 쓰여지는 용법으로, 마치 뱀과 몽구스 의 관계와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 6) 인도인들은 우리나라의 족제비와 유사한 몽구스가 맹독성의 코브라마저 쉽게 잡아먹는 뱀의 천적으로 5) Chakravati, Uma, The Social Dimensions of Early Buddhism, Delhi etc: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p.47. 6) The Vyākaraṇa-Mahābhāṣya of Patañjali, Vol. I, edited by F. Kielhorn, 1880, pp.474, 476.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55 알고 있다. 이는 마치 자칼과 개, 부엉이와 까마귀처럼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관계를 표현할 때 쓰는 용법이다. 빠딴잘리는 BC 150년경에 생존했다고 추정되며, 따라서 빠딴잘리의 기록은 당시 종교계의 분위 기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러한 분위기가 붓다 재세 당시 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디가니까야의 몇몇 경에는 오만한 브라흐마나에 대한 힐난과 조소가 등장하고, 7) 자따까에는 그 들이 추종하는 최고신인 브라흐마에 대한 냉소적인 조롱도 보이지 만, 8) 초기불전 가운데 고층에 해당한다고 보여지는 운문경전이나 이 와 연계된 니까야의 숫따들을 검토해 보면 그들이 경쟁관계에 있지만 상호간에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양상을 볼 수 있다. 9) 설법 대상으로 빈번히 언급되는 슈라마나와 브라흐마나 가 바로 이러한 상태를 시사하 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브라흐마나가 슈라마나와 더불어 붓다 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청중을 구성한다는 것 자체가 이들 양자간에 첨 예한 대립이 있을 때는 예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빠딴잘리의 śramaṇabrāhmaṇa에 대한 문법적 분석은 불멸 이후 교단의 형성과 교세의 확 7) Ambaṭṭhasutta, DN i, p.87. 8) The Jātaka, Vol.Ⅵ(No. 543 Bhūridatta Jātaka), p.110. 9) Sn p.79-86(455-486게). 일예로 숫따니빠따의 경우를 보면, 제사에 올렸던 음식을 공양할 만한 다른 브라흐마나를 찾던 브라흐마나 순다리까바라드와 자(Sundarikabhāradvāja)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옷으로 머리를 완전히 가린 붓다를 발견하고는 접근하지만, 그의 접근을 알고 붓다는 일부러 삭발한 머리를 드러낸다. 이 사람은 삭발((muṇḍa)을 했구나. 이 사람은 삭발수행자(muṇḍaka) 이구나. 그는 발걸음을 돌리려다, 문득 브라흐마나 중에도 삭발한 자가 있 지. 그의 출신(Jāti)을 물어봐야겠다 며 다시 붓다에게 가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당시 인도사회에서 슈라마나와 브라흐마나의 관계와 위상을 추정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브라흐마나 순다리까는 붓다가 브라흐마나가 아니라 슈라마나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공양 받아 마땅한 자라고 확신한 다.

156 선문화연구 제11집 장 과정에서 교리와 종교노선의 차별성을 확립하려는 불교 상가와 기 존의 종교적 사회적 기득권을 유지하려던 브라흐마나들의 대립이 반 영된 시대적 상황을 시사하는 해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III. Tevijjasutta 성립시기에 관한 쟁점 불교는 주지적이며 엘리트를 위한 종교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불교 발생기에 소위 학식이라 받아들여졌던 내용들이 대부분 형이상학이었 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종교철학 사조를 비판한 붓다의 교설이 오히려 주지적이라는 지적은 뭔가 모순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교가 주지적이라는 비판 자체가 잘못 된 것인지, 아니면 주지적 성격의 불 교가 붓다의 본래 가르침(Buddhavacana)과 다른 것인지 확인해 볼 필 요성이 있다. 초기불전의 여러 경을 통해 볼 때, 경험할 수 없고 검증 할 수 없는 지식에 대한 붓다의 입장은 확고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그러한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초기불교 자료, 곧 상좌부의 남전 빠알리 삼장과 아함으로 대표되는 북방 부파 전승의 한역본 등 을 주로 근거로 한 것으로, 이들 경들이 실제로는 부파적 각색이 어느 정도 가해진 채로 전수되었다는데 기인할 것이다. 더불어 부파적 이 해에 바탕한 논서와 주석서는 자파의 논지를 차별화하기 위해 보다 더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어 갔다. 특히 주석서(aṭṭhakathā) 는 붓다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한 지침서로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 으며 때로는 그 이상의 권위를 갖기도 했다. TS는 디가니까야 가운데 열세번째 경이며, 디가니까야는 붓다의 교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57 설 가운데 고층에 해당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경전으로 추정된다. 와 더(Warder)와 같은 학자는 디가니까야의 산문텍스트가 붓다의 교설이 나 대화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정통적이라고 주장한다. 10) 반면, 나까무라는 가타(gāthā; 게송)로 이루어진 숫따니빠따(Suttanipāta), 담 마빠다(Dhammapāda), 테라가타(Theragāthā), 테리가타(Therigāthā) 등 의 불전이 산문으로 이루어진 불전보다 먼저 성립되었다고 주장한 다. 11) 학자들은 대체로 숫따니빠따, 담마빠다 등 운문형태의 경전이 가장 먼저 성립했을 것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어쨌든 빠알리어로 기술된 테라바다(Theravāda)의 니까야는 현존하는 경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그리고 가장 완벽히 보전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실제 로 TS는 숫따니빠따의 와셋타숫따(Vāseṭṭhasutta) 12) 와 멧따숫따(Mettasutta) 13) 에 해당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전개될 내용상의 요 소와 구성상의 요소를 고려해 볼 때 TS가 고층에 해당된다고 추정하 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듯이 보인다. 그러나 붓다가 실제로 설한 내 용과 기록된 내용이 일치하는 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신중하 게 분석되어야 한다. 붓다가 설한 내용이 누락되거나 다른 가르침이 살짝 개입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양한 견해가 난무하는 가운데, 불설의 진위성에 관한 문제는 입증불가라고 보는 것이 대세이 다. 14)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전수된 교리 가운데 어떤 부분 10) Warder, A. K., Introduction to Pali, London: PTS, 1984, Preface. 11) Nakamura, H., Indian Buddhism: A Survey with Bibliographical Notes, Delhi: Motilal Banarsidass, 1996, pp.26-27. 12) Sn pp.24-26(143-152게). 13) Sn pp.115-123(594-656게). 14) Lamotte, Étienne, History of Indian Buddhism: From the Origins to the Śaka Era, English translation by Sara Webb - Boin under the supervision of Jean Dantinne,

158 선문화연구 제11집 이 가장 붓다의 본래 가르침에 가까운 지를 합리적인 선에서 추측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전해진 초기불전 은 대부분 부파불교의 소산으로서 니까야의 경우는 비밧자바딘(Pāli. Vibajjavādin)이라고도 알려진 스리랑카의 테라바다의 전승이며 산스끄 리뜨어나 중인도어로 쓰여진 아가마(Āgama) 또한 부파에 따라 일부만 이 불완전하게 전승되었을 뿐이다. 한역 아함경의 경우 4아함이 동일한 기원도 아니다. 한역으로의 번 역이 행해졌을 때는 이미 경전이 유실된 경우도 있었으며, 이 또한 서 로 다른 부파에 속한 여러 다른 번역가들에 의해 행해진 것으로 카쉬 미르 출신이거나 또는 그와 연계된 승려에 의해 4세기 초 중반이나 5 세기 초에 수행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함경은 어떠한 것도 빠알 리 원전에 기초한 것은 없으며 대개 산스끄리뜨나 쁘라끄리뜨본을 저 본으로 한 것이다. 이들 저본이 이미 오래 전에 성립되었다 하더라도 거의 유실된 채 한역만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다. 라모떼(Lamotte)에 따 르면, 장아함은 다르마굽따까(Dharmaguptaka, 法 藏 部 )계에 속한 경을 원전으로 한 것으로 보이며 원본의 언어는 아마도 북서인도 지역의 쁘라끄리뜨어로 추정된다. 15) TS의 경우 장아함의 三 明 經 이 한문본으 Louvain - La - Neuve: Institut Orientaliste, Université Catholique de Louvain, 1988, p.368 참조. 라모떼에 따르면, BC 35에서 BC 32 사이 스리랑카에서 문자화되 기까지 Buddhavacana는 구전으로 전승되어 왔다. 오백년에 이르는 구전의 세월에 붓다의 본래 가르침이 완벽하게 보전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15) Lamotte, 앞의 책, pp.153-156 참조. 라모떼에 의하면 장아함은 法 藏 部 (Dharmaguptaka) 에 속하고 원래의 언어는 북서인도의 지방 쁘라끄리뜨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중아함과 잡아함은 說 一 切 有 部 (Sarvāstivādin)에 속하고 산스끄리뜨로 쓰여 졌으며, 증일아함은 大 衆 部 (Mahāsaṃghika)에 속하고 쁘라끄리뜨로 쓰여졌 을 것으로 믿어진다; Warder, A. K., Introduction to Pali, London, PTS, 1984,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59 로 존재한다. 16) 주요부분들은 대체로 일치하지만 세세한 면에서는 다 소 차이점이 발견된다. 빠알리본과 한역본 중 어느 편이 불설을 더 정 확히 옮겼는지 또는 보다 일찍 성립되었는지의 문제는 보다 전문적인 연구를 요하며, 정확한 결론의 도출은 이 시점에서 기대하기 힘들다. 우 리가 아는 형태의 빠알리 니까야도 5세기 무렵에 붓다고사(Buddhaghosa) 에 의해 주석서가 성립되면서 이와 함께 싱할리어 저본에서 빠알리어 로 재정립 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17) 한역 아함이나 빠알리 니까야 어 pp.1-464; Indian Buddhism, Delhi: Motilal Banarsidass, 2000, p.6 참조. 와더도 같은 견해이지만, 증일아함에 대해서는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 하다고 지적한다. 일부는 법장부에, 다른 이들은 대중부에 속한다고 본다; Encyclopedia of Indian Philosophies, Vol.Ⅶ, p.24 참조. 리트(Reat)는 간단히 장아함과 증일아함도 설일체유부에 속한다고 한다. 16) 大 正 藏 1, 107a - 109c. 17) Warder, 앞의 책, pp.307-308 참조. 와더는 설일체유부 전통에 따르면 주석 서들은 불교가 처음으로 실론에 소개 되었을 때 마헨드라에 의해 삼장과 함 께 전해졌다고 한다. 이후, 실론에도 싱할리어로 된 주석서가 성립되었다. 와더는 이에 관해 아디까람(Adikāram)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이들 싱할리 주석서들은 어느 것도 현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국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AD 5세기에 제작된) 빠알리본으로 대체되었기 때문 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빠알리본들은 번역자에 의한 서론부와 결 론부, 그리고 드물게 번역자에 의해 첨가된(자신의 것이라고 기술된), 싱할 리 자료들에는 명료하게 되지 않은 점에 대한 주석 외에도 싱할리 주석서들 의 전체 혹은 일부 내용들을 재생한다. 그것들은 특정 문헌들의 정확히 글 자 그대로의 번역이 아니다. 왜냐하면 삼장문헌 개개에 해당되는 단일 빠알 리본으로 축소된, 번역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선별한 古 주석서들은 다수 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집 과 위에서 지적한 예외들에도 불구하고, AD 5세기의 새로운 저작이라고 널리 추정된 것과는 달리, 그것들은 사실상 그 자체보다 훨씬 오래된 자료에 대한 번역들이다. (3) 싱할리 원본들의 저 작 기간은 AD 1세기에 끝났으며, 이후에 추가되었을 것으로 알려졌거나 보 이는 것은 실제적으로 없다. (4) 실론에서의 AD 1 세기까지의 부가에도 불

160 선문화연구 제11집 느 쪽도 먼저 성립되었다고 주장할 처지가 못 된다. 단, 빠알리 니까 야의 경우 삼장이 모두 완비된 채로 총괄적으로 전승되었다는 장점을 부정할 수 없다. 본 논고의 경우 인도 고유의 지명과 인명 등이 자주 언급되는 내용 상의 특성상 음역과 의역이 혼용되는 한역 경전은 혼란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TS에 나타나는 인명인 와셋타의 경우는 니까야의 도처에서 나타나는 인물로, 18) 등장하는 경들에서 계속 브라흐마나 또 는 그 출신의 불제자로서 그 역할과 성향이 일관적이다. 19) 삼명경이 브라흐마나가 관상이나 길흉을 점치고 제식을 올린다는 식의 독자의 이해를 위한 사족을 나열한 반면, TS는 그에 대한 언급이 없고, 오히려 그 지역출신의 유명한 브라흐마나의 이름을 열거함으로써 당시 인도 종교상황에 보다 친숙함을 시사하는 면모를 보이고 있다. 또한 삼명 경에 비해 TS의 내용이 비유도 다양하고 구체적임을 알 수 있다. 기후 나 풍토, 관습 등이 중국에 비해 인도에 더 가까운 스리랑카에서의 불 전 전승이 문화적 친근도에 있어서 더 유리할 것임은 재론할 여지가 구하고 이들 주석서들의 형성은 (그들이 속한) 부파의 문헌을 해설하는 더 오래된 인도의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 많은 상좌부 스승들의 이름이 해석에 있어서 그들의 개인적 견해로 인해 언급되고 있으며, 그들 대다수는 BC 1 세기와 AD 1세기에 실론에서 살았다. 18) Sn pp.115-123.; MN ii, pp.196-209.; DN ii, p.147 참조. 바라드와자와 함께 등장 하며 배경과 내용이 유사한 숫따니빠따의 Vāseṭṭhasutta와, 이와 동일한 경이 맛지 마니까야에도 있다. 디가니까야의 Mahāparinibbānasutta에서도 Vāseṭṭha가 등장한다. 19) 반면 삼명경에서는 와셋타가 바실타로 음역된 것으로 보이는데, TS에서 그의 동료이자 논쟁상대인 바라드와자가 파라타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는 들리 기에 따라서는 바라드와자의 음사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치 않다. 또한 TS에 서 와셋타와 바라드와자 각각의 스승인 뽁카라사띠와 띠룩카도 삼명경에서 각기 비가라바라와 다리차라고 표기되어 있다.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61 없다. 따라서 본 논고에서는 주로 빠알리 TS를 중심으로 하여 논지를 전개해 나가기로 한다. 곰브리치는 TS를 니까야 가운데 최고층에 속하는 텍스트로 보고 있 다. 20) 그는 그 성립시기를 초기우빠니샤드 이후, 특히 브리하드아란냐 까우빠니샤드(Bṛhadāraṇyaka Upaniṣad; 이하 BU) 이후에 성립되었다 고 보고 있다. 이는 TS의 내용이 마치 BU의 한 구절(6.2.15)에 대한 응 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아는 자들, 그리고 숲속에서 믿음으로써 진리를 명상하는 자들, 그들은 빛 을 지나고, 빛을 지나서 낮에 이르고, 낮을 지나서 만월의 반달에 이르고, 그 리고 나서 마음으로 이루어진 사람은 빛의 구역으로 가서 그들을 브라흐마의 세 계로 인도한다. 브라흐마의 세계에서 그들은 오래 오래 살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Te ya evam etad viduḥ, ye cāmi araṇye śraddhāṃ satyam upāsate, te rcir abhisambhavanti, arciṣo haḥ, ahna apūryamāṇa-pakṣam tān vaidyutān puruṣo mānasa etya brahma - lokān gamayati, te teṣu brahma - lokeṣu parāḥ parāvato vasanti. teṣāṁ na punar āvṛttiḥ) 21) 그 증거로서 그는 복합어 brahma - lokān과 TS의 brahma - sahavyatā 를 연계시키고 있다. 22) 이들 세 베다에 통달한 브라흐마나들이 이것이 바로 도다. 이것이 바로 바른 도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태양과 달과 함께하게 된다. 라고 태 양과 달과 함께 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와셋타여, 이와 같이 20) Gombrich, R. F., How Buddhism Began, London & Atlantic Highlands: The Athlone Press, 1996, p.58. 21) The Principal Upaniṣads, pp.313-314. 22) Gombrich, 앞의 책, p.59; DN i, p.235 참조.

162 선문화연구 제11집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브라흐마나들 가운데 어느 한 브라흐마나도 브라흐마를 직접 본 자가 없다.(ayameva ujumaggo ayam añjasāyano niyyāṇiko niyyāni takkarassa candimasuriyānaṃ sahavyatāyāti. Kiṃ pana, na kira tevijjehi brāhmaṇehi brahmā sakkhi diṭṭho) 23) 곰브리치는 여기서 해와 달에 대한 언급이 BU(6.2.2; 6.2.16)에 나타나 는 사후의 두 갈래의 길, 곧 신의 길(devayāna)과 조상의 길(pitṛyāna) 에 대한 농담조의 은유로 보고 있다. 24) 그러나 곰브리치의 지적과 제 시한 증거는 옳지 않다. 떼비자숫따에서 그가 제시한 인용문은 해나 달을 보고 기도하던 그들의 관습을 언급한 것이지 사후의 행로를 구 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위 五 火 二 道 說 이라고 알려진 우빠니샤드의 인용문과는 차이가 있다. 초기우빠니샤드가 불교발생기 이전에 성립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 만, TS를 포함한 니까야 어디에도 우빠니샤드의 명칭이나 우빠니샤드 선인들의 이름이 명확히 언급된 곳은 없다 25) 는 지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TS에는 아다리야브라흐마나(Addhariyā Brāhmaṇā), 띠띠리야브라흐 마나(Tittiriyā Brāhmaṇā), 찬도까브라흐마나(Chandokā Brāhmaṇā) 26) 등 브라흐마나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이를 각묵스님은 각주를 통해 23) DN i, p.240. 24) Gombrich, 앞의 책, p.59. 곰브리치가 말하는 사후의 두 갈래의 길, 곧 조상 의 길과 신의 길은 우빠니샤드 뿐만 아니라 Ṛgveda(X. 8. 15; dve srutī pitṝṇām devānām ), ŚB(12. 8. 1. 21; dve sṛtī devānāñcaiva pitṝṇāñceti ) 등에도 나타난다. 25) Nakamura, 앞의 책, pp.133-134. 26) Wijesekera, O. N. De A., Buddhist and Vedic Studies, Delhi: Motilal Banarsidass Publishers Pvt. Ltd, 1994, pp.277-278.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63 각각 아이따레야(Aitareya), 따이띠리야(Taittirīya), 찬도갸(Chāndogya)우 빠니샤드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27)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는 각기 야주 르베다(Yajurveda), 흑야주르베다(Black Yajurveda), 사마베다(Sāmaveda) 를 추종하는 브라마나들을 일컫는 것이지 우빠니샤드의 이름이 아니다. 28) 그 외에도 TS에는 아타까(Aṭṭhaka), 와마까(Vāmaka), 와마데바(Vāmadeva), 웨싸밋따(Vessāmitta), 야마딱기(Yamataggi), 앙기라사(Aṇgirasa), 바라드 와자(Bhāradvāja), 와셋타(Vāseṭṭha), 까싸빠(Kassapa), 바구(Bhagu) 등 선 인(Skt. ṛṣi; Pāli. isi)의 이름이 언급된다. 29) 그들은 모두 베다 만뜨라 (mantra)의 작자나 암송자로 알려진 자들이라고 한다. 만뜨라는 일반 적으로 주문을 일컫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베다의 신에 대한 찬가를 말한다. TS는 이를 만든 자나 암송하는 자 모두 브라흐마와 직접 대면 한 자는 아무도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위제세케라(Wijesekera)는 이들 이름 가운데 야즈냐발꺄(Skt. Yajñavalkya Pāli. Yaññavakkā)의 이름이 부재함을 주목한다. 우빠니샤드의 대표선인이라 할 수 있는 야즈냐발 꺄는 연대기적으로도 상당히 근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많은 추 종자를 거느렸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30) 야즈냐발 27) 각묵 스님, 디가니까야 1권, (울산: 초기불전연구원, 2005), 588면, 주 630. 28) Wijesekera, 앞의 책, p.277 참조. Addhariyā는 adhvarya (adhvara(제사)의 denominative verbal base) 에서 파생된 용어로, 이로부터 adhvaryu라는 용어가 파생되었으며, 그 의미는 Yajurveda의 추종자들 이다. Tittiriya (Tittiri+ya)는 Taittiriya와 같은 말이 분명한데, 이는 흑( 黑 )Yajurveda의 추종자 를 말한다. Chandoka는 Vedic Chandogāḥ(hymn - singing)를 말하며, Sāmaveda의 추종자들 을 일컫는다. 29) DN i, p.238; Vinaya i, p.245; AN iii, p.224; MN ii, p.169, 200. 니까야 도처와 비나야에 이들 이름들이 열거되어 있다. 이들 이름이 열거된 모든 경들을 고층이라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 이는 세밀한 검토를 요하는 문제이지만, 이미 여러 정황상 고층임이 거의 확실시 되는 TS에 이들 이름들이 등장한 것은 보다 강력한 증거로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164 선문화연구 제11집 꺄는 샤따빠타브라흐마나(Śatapatha Brāhmaṇa; 이하 ŚB)의 주요 저자 로도 알려진 인물로서 인도철학사에 있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의 하나로 추앙 받는 자이다. 그가 등장하는 문헌에는 그가 비데하 (Videha)국 출신임을 명시하고 있다. 31) 비데하는 붓다가 활동하며 가 르침을 전파했던 꼬살라국과 마가다국에 근접해 있다. 한편 ŚB는 BU 의 모본이라 할 수 있는데, BU의 세 깐다(kāṇḍa; 장) 가운데 하나가 바 로 야즈냐발꺄 깐다이다. 이처럼 영향력 있는 인물이 붓다와 근접한 지역에서 활약했다면, 여러 유명한 브라흐마나들을 열거하면서 그 이 름을 빼 놓을 리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역적 시대적 근접성 과 그의 영향력을 강조한 위제세케라의 주장은 일면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야즈냐발꺄의 철학과 성향을 고려해 볼 때 위에 언 급된 베다의 선인들과 연계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야즈냐발 꺄는 다른 브라흐마나들과 달리 제식주의를 강조하기 보다는 인간 내 면의 탐구에 보다 집중했던 우빠니샤드 선인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위제세께라는 TS의 성립이 야즈냐발꺄 이전이거나 아니면 그와 동시대였기 때문에 그를 고대의 브라흐마나짜라나(brāhmaṇacaraṇa) 32) 계보에 넣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흔히 까르마(karma)와 상사라(saṃsāra), 목샤(mokṣa)와 같은 주요 개 념들을 우빠니샤드와 초기불교가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연관성 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은 BC 6세기 무렵 인도의 철학 써클에서 널 리 공유되었던 개념이다. 우빠니샤드의 대표적 개념인 아뜨만(ātman) 과 브라흐만의 합일, 곧 범아일여는 초기불전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 30) Wijesekera, 앞의 책, p.282. 31) The Principal Upaniṣads, pp.211-212(bu 3. 1. 1-2). 32) 권위를 인정받는 정통 브라흐마나 가문이라고 할 수 있다.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65 으며, 33) 중성 브라흐만(Brahman) 개념은 초기불전 어디에서도 나타나 지 않는다. 34) 초기우빠니샤드가 불교에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은 학계 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나, 실제로 초기불교와 직접적으로 연 관되어 있는 베다전통의 텍스트나 사조는 브라흐마나(Brāhmana)문헌 이라고 보는 것이 논자의 견해이다. 대표적 우빠니샤드 선인인 야즈 냐발꺄나 웃달라까(Uddālaka), 샨딜리야(Śāṇḍilya) 등은 우빠니샤드기 에 갑자기 등장한 인물이 아닌, 이미 브라흐마나기에서 활약하고 있던 33) Norman, K. R., A Note on Attā in the Alagaddūpama - sutta, in Studies in Indian Philosophy, Ahmedabad: L.D. Institute of Indology, 1991, p.23 참조. 이 문제에 관해서는 노만이 그의 논문 A note on Attā in the Alagaddūpamasutta 에서 초기 불교가 우빠니샤드의 ātman과 brahman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며 알라가두빠 마숫따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Bronkhorst, Johannes, Greater Magadha: Studies in the Culture of Early India, Leiden - Boston: Brill, 2007, p.217 참조. 그의 주 장에 대해 브롱코스트는 견해가 다름을 밝히고 있다. 그는 먼저 이 경에서 (노만의 주장에 따르면) 비판 대상이어야 할 brahman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붓다에 의해 비판 받고 있는 문제는 윤회업보와 연계된 것 임이 분명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경의 내용에 영원하고, 고정적이고, 항 상하며, 불변하는 ātman에 대한 개념정의가 있음은 사실이지만, ātman에 대 한 이와 같은 관점은 우빠니샤드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초기우빠니샤드에 ātman의 불변성 이라는 개념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며, 이러한 사고가 본래 마가다국의 정신문화에서 브라흐마나들이 차용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34) Bronkhorst, 앞의 책, p 269 참조. 브롱코스트는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가 운데, 마가다 정신문명에서 자아(self, ātman)는 근본적으로 인간 내면의 부 동의 핵심(inactive core)으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 부동성 때문에 업 보에 의해 결정되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제공되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반면 초기우빠니샤드는 이러한 외부 사상의 영향을 받지 못한 채, 마가다문 명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관념으로 추정되는 요소인 대우주(macrocosm) 와 소우주(microcosm)의 합일이라는 베다적 사변에나 걸맞는 자아관을 전개해 나갔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66 선문화연구 제11집 선인이다. 또한 초기경전에 중성 브라흐만(Brahman)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초기우빠니샤드에 대한 이해가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브롱코스트는 그의 최근 저서에서 초기불교 경전의 작가들이 초기우빠니샤드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아직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35) 어쨌든 초기우빠니샤드의 주요 내용이 이미 전대의 ŚB 등 다른 브라흐마나에 나타나 있다면 굳이 초기불교 에 영향을 준 문헌으로 우빠니샤드를 거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초기불교 경전은 우빠니샤드가 어느 정도 정착하기 전의 작품으로, 우 빠니샤드와의 연관성 보다는 브라흐마나문헌과의 관계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TS가 초기불교 경전 가운데서도 비교적 고층에 속한다고 보고 있는 곰브리치의 견해는 무난히 수용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 러나 TS의 주요부분을 굳이 BU와 연계시키는 그의 주장은 이상에 언 급된 이유로 논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반면, 보다 구체적으로 TS의 성 립시기를 BC 5세기 또는 4세기 경이라고 추정한 위제세케라의 주장은 참고할 여지가 있다고 보여진다. 36) 전장 붓다 당시 고대 인도의 종교 사회 에서 붓다 재세시의 브라흐 마나와 슈라마나의 관계가 문법가 빠딴잘리 생존 당시인 BC 150년 무 35) Bronkhorst, 앞의 책, pp.211-218 참조. 브롱코스트는 초기불교와 우빠니샤 드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곰브리치를 맹렬히 비판하며 심지어는 브라흐마나 문헌과의 연계성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도 인정했듯이 텍스트에 나타나는 몇몇 반대의 증거들은 어떻게 해명되어야 할 것인가? 36) Wijesekera, 앞의 책, p.283 참조. 이 무렵은 우빠니샤드의 주요 가르침이 완 전히 정착하기 전으로 아마도 새롭게 전개된 가르침보다는 브라흐마나와 같은 전대문헌에서 전수된 가르침이 주로 통용되었던 시기로 보인다. 그는 초기 빠알리경과 브라흐마나 문헌의 연대기를 비교해 볼 때, 적어도 디가니 까야 가운데 오래된 숫따들은 브라흐마나기 말엽, 즉 우빠니샤드가 아직 독 자적인 문헌으로서의 성격을 인정받기 전에 성립되었던 것으로 단언한다.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67 렵과는 다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붓다 재세시의 상 황을 정확히 기록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현재 우리에게 전수된 니 까야는 그보다 훨씬 후대에 성립되었으며, 그 세월 가운데 다소의 첨 삭과 편집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붓다가 설법 중에 직접 화법으로 브라흐마나와 슈라마나를 자주 언급한 것을 편집이나 첨가 라고는 보기 힘들 것이다. 이장에서 우리는 TS의 성립시기에 대한 여 러 쟁점을 검토하면서 TS가 니까야 가운데 고층에 해당된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또한 니까야의 경전들은 연대기적으로나 혹은 다루고 있는 사상 개념을 검토해 보거나, 우빠니샤드문헌 보다는 브라흐마나 문헌과의 관련성이 농후하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니까야 어디에도 중 성으로서의 브라흐만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은 이러한 측면에서 시 사하는 바가 크다. TS는 숫따니빠따와 일부 내용을 공유하고 있는데 37) 이는 TS를 고층으로 분류하는 또 다른 증거로도 작용한다. IV. Tevijjasutta의 주요 내용 TS에는 다른 초기불전에서 쉽게 조우되는 창조주로서의 브라흐마에 대 한 비난은 보이지 않는다. 붓다는 브라흐마사하브야따(brahma - sahavyatā), 38) 37) 각주 12)와 13) 참조. 38) Dialogues of the Buddha, Part I, p.301 참조. 리스 데이비즈는 a state of union with Brahmā 로 영역했는데, 이는 동사어근 i에 접두어 saha( in conjunction with, together, accompanied by )가 붙은 형태이다. 그러나 결합을 의미하는 union 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는 불필요하게 범아 일여(union of Brahman and Ātman; union of jiva - ātman and parama-ātman)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168 선문화연구 제11집 곧 브라흐마와 함께 함 을 알지 못하는 브라흐마나들에게 그들이 추 종하는 브라흐마니즘의 궁극적 목표가 불교와 어긋나지 않음을 설한 다. 단, 그 목표에 이르는 법을 그들은 모르고 붓다는 알고 있을 뿐이 다. TS는 브라흐마사하브야따의 다른 명칭이며 우리에게는 四 梵 住 또 는 四 無 量 心 으로 더 많이 알려진 브라흐마비하라(brahma - vihāra) 39) 로 인해 자주 언급되는 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브라흐마비하라라는 용어 자체는 TS에 나타나지 않는다. 40) 꼬살라(Kosala)국의 마나사까따(Manasākaṭa) 41) 에 사는 두 브라흐마나 와셋타(Vāseṭṭha)와 바라드와자(Bhāradvāja) 42) 는 도(magga)와 도가 아닌 것(amagga)에 대해 논하면서 각기 자신의 스승이 제시한 길이 브라흐 마와 함께 함 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며, 결국 붓다에게 시비를 가려달 라고 요청하게 된다. 붓다는 삼베다에 능통한 브라흐마나 43) 가운데 39) brahma - vihāra라는 용어 자체는 맛지마니까야의Makhādevasutta와 디가니까 야의Mahāsudassanasutta 등에서 나타난다. MN ii, p.76, 78 등; DN ii, p.196 참 조. ahaṃ,brahmavihāraṃ bhavemi ānāpurisasevitaṃ. Theragāthā 649게. brahmametaṃ vihāraṃ. Sn p.26(151게). 40) brahma - sahavyatā가 언급된 경은 다음과 같다. DN i, p.18; ii, p.250; MN ii, p.195, 207; AN iv, p.135. 직접 용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내용이 언급된 경은 다수이다. SN v, pp.118-221; SN iv, p.296; MN i, p.38, 297; MN ii, p.76; p.206; MN iii, p.146 참조. 41) 大 正 藏 1, 104c 참조. Manasākaṭa라는 지명은 다른 곳에는 보여지지 않으 며, 삼명경에는 伊 車 能 伽 羅 라고 되어 있다. 42) Sn pp.115-123; MN ii, p.196 참조. 이 가운데 와셋따는 니까야에서 꽤 알려 진 인물로서 숫따니빠따와 맛지마니까야에도 등장한다; MN ii, pp.196-209 참조. 실제로 숫따니빠따와 맛지마니까야의 Vāseṭṭḥasutta는 동일내용이며 디 가니까야의 Tevijjasutta, 맛지마니까야의 Subhasutta(Subha는 이름이고 성은 Bhāradvāja이다) 등도 서로 연계되어 있다. 43) 大 正 藏 1, 105b 참조. Tevijja는 물론 세 Veda, 곧 Ṛgveda, Yajurveda, Sāmaveda 를 말한다. 삼명경에서는 삼명바라문은 여러가지 도를 말하니 곧 자재욕도, 자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69 브라흐마와 직접 대면한 44) 자도 없으며, 브라흐마가 어디에 있는지 어 떻게 있는지 언제부터 있는지 알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45) 지적한다. 여 기서 만뜨라를 짓고 암송한 옛 선인으로 아타까(Aṭṭhaka), 와마까(Vāmaka), 와마데마(Vāmadeva), 웨싸밋따(Vessāmitta), 야마딱기(Yamataggi), 앙기라사 (Aṅgirasa), 바라드와자(Bhāradvāja), 와셋타(Vāseṭṭha), 까싸빠(Kassapa) 와 바구(Bhagu) 등의 이름이 언급된다. 46) 이들 이름은 함께 묶여 초기 불전 도처에서 발견된다. 47) 실제로 이들 대부분은 베다의 선인으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와마까만 베다 문헌에서 신원 확인이 안될 뿐이 다. 48) 붓다는 삼베다에 능통한 브라흐마나들이 결국 그들이 알지도 보지도 못한 브라흐마에 대해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가르치겠다 고 허세를 부렸다고 지적한다. 이는 마치 장님 줄서기와 같고, 보통 사람들처럼 태양과 달을 보며 빌고 절을 하면서 이것이야 말로 바른 길이며 태양과 달과 함께하는 길 (candimasuriyānaṃ sahavyatāya magga)이라며 가르치는 것도 합당치 않 다고 한다. 곰브리치는 이 구절을 인용하며 이를 우빠니샤드의 소위 오 작도, 범천도이다.( 諸 有 三 明 婆 羅 門 說 種 種 道 自 在 欲 道 自 作 道 梵 天 道 ) 라고 한다. 44) DN i, p.238. 그런데 와셋타여. 삼베다에 능통한 브라흐마나 가운데 한 브라 흐마나라도 브라흐마를 직접 본자가 있는가?(kiṃ pana vāseṭṭha atthi koci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ekabrāhmaṇo pi yena brahmā sakkhi diṭṭho?ti) 45) DN i, p.238. mayametaṃ jānāma mayametaṃ passāma yattha vā brahmā yena vā brahmā yahiṃ vā brahmā ti? 46) DN i, p.238. 삼명경에서는 선인의 이름이 나열되지만 거명되는 숫자도 다르 고 이름도 정확히 일치되지 않고 있다; 大 正 藏 1, 105b. 阿 咤 摩 婆 羅 門 婆 摩 提 婆 婆 羅 門 毘 婆 審 婆 羅 門 伊 尼 羅 斯 婆 羅 門 蛇 婆 提 伽 婆 羅 門 婆 婆 悉 婆 羅 門 迦 葉 婆 羅 門 阿 樓 那 婆 羅 門 瞿 曇 摩 婆 羅 門 首 脂 婆 羅 門 婆 羅 損 陀 婆 羅 門. 47) 위의 각주 29 참조. 48) Bronkhorst, 앞의 책, p.211.

170 선문화연구 제11집 화이도설과 연계하려 했지만, 전장에서 이미 그의 주장이 문제가 있음 을 지적하였다. 이어, 알지도 못하는 나라 안의 최고의 미녀와의 사랑을 꿈꾸는 자, 누각이 어디 있는 지도 모르면서 누각에 오르기 위해 사다 리를 만들고자 하는 자, 물이 넘실대는 강둑에서 반대편에 이르고자 하면서 강둑이 이리 와 달라고 빌기만 하는 자 등에 빗대어 브라흐마 나들의 무능과 허세를 힐난한다. 붓다는 삼베다에 능통한 브라흐마나가 행해야 하는 법을 버리고 브 라흐마나가 행해서는 안되는 법을 취하면서 인다(Inda; Skt. Indra), 소마 (Soma), 와루나(Varuṇa), 이사나(Isāna), 빠자빠띠(Pajāpati; Skt. Prajāpati), 브라흐마(Brahmā), 마힛디(Mahiddhi), 야마(Yama)를 소청한다고 49) 비 판한다. 또한 마치 저쪽 강둑에 이르고자 하는 자의 손을 사슬로 꽁꽁 묶어 놓은 것과 같다고 비유하면서, 이 사슬은 다름 아닌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 이끌린 욕망(kāma - guṇa)이라 한다. 비나야(Vinaya)에서는 이를 사슬(andu) 또는 속박(bandhana)이라고 부른다고 지적하기도 한 다. 이어, 삼베다에 능통한 브라흐마나가 행해야 하는 법은 버리고 브 라흐마나가 행해서는 안되는 법을 취하면서 이에 얽매어 있게 되면 사후에 브라흐마와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재차 강조한다. 붓다는 또한 다섯가지 장애(nīvaraṇa)를 설한다. 이와 같이 다섯가 49) DN i, p.244. tevijjā brāhmaṇā ye dhammā brāhmaṇa karaṇā te dhamme pahāya vattamānā, ye dhammā abrāhmaṇakaraṇā te dhamme samādāya vattamānā evamāhaṃsu: indamavhayāma, somamahvayāma, varuṇamavhayāma, isānamavhayāma, pajāpatimavhayāma, brahmamavhayāma, mahiddhimavhayāma, yamamavhayāmā ti. 신들의 이름을 포함한 이 부분은 삼명경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들 신들은 모두 베다(Veda)의 신으로 TS가 고층에 해당됨을 증빙하는 단서가 될 수 있 다. 특히 빠알리경전에서 Sakka로 알려진 Indra(Pāli. Inda), 곧 제석천이 그대 로 호칭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71 지 장애가 있으니 성스러운 비나야에서는 이것을 아바라나라고도 부 르고 니바라나라고도 부르고, 오나하라고도 빠리오나하라고도 부른다. 무엇이 다섯인가? 까마찬다(성욕), 브야빠다(성냄), 티나밋다(태만과 아 둔함), 웃다짜꾸꿋짜(들뜸과 후회), 비찌낏차(의심)의 장애이다. 50) 이 들 다섯 가지 장애에 매어있는 삼베다에 능통한 브라흐마나들은 사후 에 브라흐마와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이어, 브라흐 마는 소유물이 없고, 원망하는 마음이 없고, 적대하는 마음이 없고, 번 뇌하는 마음이 없으며, 자유자재함을 문답을 통해 확인한 후, 51) 삼베 다에 능통한 브라흐마나는 그렇지 않음을 다시 문답으로 유도하고, 그 들이 사후에 브라흐마와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음을 또 한번 강 조한다. 붓다는 이 삼베다가 결국 브라흐마와 함께 하는 길을 제시하 50) DN i, p.246. pañcime nīvaraṇā ariyassa vinaye āvaraṇā ti pi vuccanti, nīvaraṇā ti pi vuccanti, onāhā ti pi vuccanti. Pariyonāhā ti pi vuccanti. Katame pañca? Kāmacchandanīvaraṇaṃ vyāpādanīvaraṇaṃ thinamiddhanīvaraṇaṃ uddhaccakukkuccanīvaraṇaṃ vicikicchānīvaraṇaṃ. 초기불교의 주요 개념인 이 다섯 가지 장애는 한문으 로 주로 五 蓋 라고 번역되는데, 삼명경에는 이 부분이 나타나지 않는다. 51) DN i, p.247. Sapariggaho vā brahmā apariggaho vā ti? Apariggaho bho Gotama. Saveracitto vā averacitto vā ti? Averacitto bho Gotama. Savyāpajjhacitto vā avyapajjhacitto vā ti? Avyāpajjhacitto bho Gotama. Saṃkiliṭṭhacitto vā asaṃkiliṭṭhacitto vā ti? Asaṅkiliṭṭhacitto bho Gotama. Vasavatti vā avasavattī vā ti? Vasavatti bho Gotama. 삼명경에서는 이 다섯 가지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TS가 소유물이 있는지를 먼저 물은 반면, 삼명경에서는 성내는 마음이 있는 지를 먼저 묻는다. TS는 진정한 수행자는 소유물, 특히 아내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TS가 당시 인도 종교사회의 실상을 꿰뚫고 있 었기 때문으로, 아내가 있는 브라흐마나는 브라흐마짜리야를 완벽히 수행할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브라흐마나 전통에서는 결혼하기 전 에 독신자로서 베다공부를 하는 기간을 브라흐마짜리야 기간으로 상정하고 있었다. 이 기간이 지나면 대를 이을 아들을 낳기 위해 결혼하는 것을 당연 시 했다.

172 선문화연구 제11집 지 못함을 지적한다. 붓다는 여래(tathāgata)가 세상에 출현한 의미를 먼저 설하는데, 이는 법을 설하고 브라흐마짜리야(brahmacariya)를 실천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브라흐마짜리야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머리와 수 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52) TS에는 사만냐팔라수따(Sāmaññaphalasutta)에 나오는 짧은 길이, 중간 길이, 긴 길이의 계가 중복되는데 이들 계를 모두 구족한 비구는 다섯가 지 장애을 제거한 후 삼매(samādhi)에 든다고 설한다. 잘 알려진 사범주 혹은 사무량심은 이 후에야 소개되는데, 멧따(mettā; 慈 ) 까루나(karuṇā; 悲 ) 무디따(muditā; 喜 ) 우뻬카(upekhā; 捨 )와 함께하는 마음이 브라흐 마와 함께 함 으로 나아가는 길(brahmāṇam sahavyatāya maggo)이라는 것 이다. 붓다는 다시금 비구의 덕목을 문답으로 확인한다. 곧 소유물이 없 고, 원망하는 마음이 없고, 적대하는 마음이 없고, 번뇌하는 마음이 없 으며, 자유자재함이다. 이는 이전에 같은 식으로 브라흐마나들에게 확 인했던 브라흐마의 덕목으로서, 붓다는 브라흐마와 비구를 동일 선상 에 올려놓은 것이다. 따라서 자유자재한 비구가 사후에 자유자재한 브라흐마와 함께 하는 것은 지당하다고 53) 결론을 내린다. 52) DN i, p.250. 재가의 삶이란 묶여있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청정한 소라고동처럼 빛나 는 브라흐마짜리야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 을 깍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Sambādho gharāvaso rajāpatho. Abbhokāso pabbajjā. Nayidaṃ sukaraṃ agāraṃ ajjhāvasatā ekantaparipuṇṇaṃ ekantaparisuddhaṃ saṃkhalikhitaṃ brahmacariyaṃ carituṃ. Yannūnāhaṃ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eyya nti.) 53) DN i, p.252. 와셋타여, 참으로 자유자재한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자유자 재한 브라흐마와 함께 하는 경우는 존재한다.(so vata vāseṭṭha vasavattī bhikkhu kāyassa bhedā parammaraṇā vasavattissa brahmuno sahavyupago bhavissatīti ṭhānametaṃ vijjati.)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73 V. Tevijjasutta에 나타난 브라흐마나의 종교관 재정립 4장에서 요약된 TS의 주요 내용은 2장과 3장에서 검토한 시대적 배 경과 경전의 성립시기와 조합되어 다음과 같이 정리 분석될 수 있다. 1. TS에는 붓다 재세 당시의 종교 사회상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 다. 다양한 인명과 지명이 언급되며 당시에 브라흐마니즘에서 숭배되 었던 신들의 이름도 열거되어 있다. 브라흐마나의 계보라던가 그들의 사고와 사유방식 및 가치관들이 반영되어 있다. 2. 베다 선인들의 이름이 여러 차례 열거된 것에 반해, 새로운 사상 가인 야즈냐발꺄, 샨딜리야 등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TS의 성립시 기가 아직 베다 제식주의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던 시기로, 야즈 냐발꺄의 출현 이전이나 그와 동시대이었음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붓다 재세 당시의 갠지스강 유역의 국가들은 북서인도의 브라 흐마니즘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브 라흐마니즘의 본산인 인도북서부에서는 범아일여로 상징되는 브라흐 만(Brahman; macrocosm)과 아뜨만(Ātman; microcosm)의 합일이나, 브 라흐만을 궁극적 원리로 보는 중성 브라흐만에 대한 개념이 전개되어 갔는데, TS에 나타나는 브라흐마니즘은 아직도 제식에 열중하는 모습 이다. 또한 TS에 열거된 신의 이름도 모두 베다의 신들로서 마하바라 타(Mahābhārata)나 라마야나(Rāmāyaṇa)가 성립되기 이전의 브라흐마 니즘의 신관을 엿 볼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인도 북서부에서는 베다 이 래 브라흐마나기, 우빠니샤드기가 점진적으로 전개되어 간 반면, 지리 적으로 상당히 거리가 있는 동북부의 갠지즈강 유역까지 그 문화가 확대되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174 선문화연구 제11집 한다. 곧 붓다 당시에 인도의 북서부에서는 브라흐마나 제식주의에서 우빠니샤드의 철학으로 넘어가고 있었으나 동북부는 아직도 제식주의 가 만연하는 브라흐마나기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갠지즈문명이라 할 수 있는 마가다국의 문화, 특히 슈라마나의 전통은 이 지역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언급한 야즈냐발꺄도 이 지역 출신으 로 또 다른 우빠니샤드 대표선인인 샨딜리야와는 다른 지리적 철학적 배경을 보이고 있다. 3. 베다 선인들의 권위가 계속 인정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슈라마나 의 도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1) 브라흐마나들은 그들이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 브라흐마와의 함 께하는 것을 꿈꾸는 무모한 자들로 비난 받는다. 2) 브라흐마나들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다고 비판 받는다. 여기서 해서는 안되는 일이 다름 아닌 신들에게 제 식을 올리는 일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그들이 제식을 올리는 신으로 인다, 소마, 와루나, 이사나, 빠자빠띠, 브라흐마, 마힛디, 야마를 열거하 는데 이들은 모두 베다의 신들이며, 이들 가운데 인다가 사까(Sakka) 가 아닌 본래 이름으로 등장한 점 등은 TS가 니까야에서도 고층에 속 함을 시사한다. 주지하고 있듯이 브라흐마나는 신에게 제식을 올리는 제사관이다. 그런데도 브라흐마나에게 신들을 소청하는 일이 그들이 행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붓다는 여기서 브 라흐마나들이 행해야 할 법을 버리고 행하지 말아야 할 법을 행하면 서, 단지 신에게 간청했다는 이유로 사후에 브라흐마와 함께 할 수 있 겠냐며 그런 경우는 없다고 단언한다. 제식은 바로 그들의 본분인 것 인데 그들의 정체성이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브라흐마나들은 아직도 욕망에 얽매어 있는 상태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욕망 등의 다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75 섯가지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브라흐마나들의 풍요로운 생활, 특히 결혼 생활이 슈라마나나 일반인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붓다는 브라흐마와 함께하는 길은 그를 찬양하고 소 청하는 것이 아니라, 브라흐마처럼 (Brahmā -alike) 되는 것이라는 것 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들이 함께 하고자 하는 브라흐마는 소유물이 없고, 원망하는 마음이 없고, 적대하는 마음이 없고, 번뇌하는 마음이 없고, 자유자재 한 반면, 브라흐마나들은 그렇지 않음을 문답을 통해 확인한다. 반면, 출가한 비구는 이들 브라흐마나들과 달리 소유물이 없고, 원망하는 마 음이 없고, 적대하는 마음이 없고, 번뇌하는 마음이 없으며, 자유자재 하므로 브라흐마나가 아닌 비구가 브라흐마 같다 (Brahmā - alike)라는 답을 유도한다. 여기서 첫 번째 질문인 소유물은 사실상 아내를 말하 며, 이는 브라흐마와 비구의 가장 극명히 대립되는 점을 부각시킴으로 써, 비구의 종교인으로서의 윤리적 우월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비구는 궁극적으로 브라흐마와 동일시된다. 5. 붓다는 완벽한 깨달음을 세상에 전하고 가장 이상적인 삶을 제시 하기 위해 세상에 출현했다. 그 이상적인 삶을 다름 아닌 브라흐마짜 리야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브라흐마짜리야는 힌두 교의 이상적인 인생관인 인생의 4주기 가운데 하나로, 결혼 전의 독신 기로서 학습에 열중해야 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이는 고대인도 종교 문화의 주류였던 베다에 기초한 브라흐마니즘이 슈라마니즘의 영향을 받은 이후의 관습으로 추정된다. 54) 붓다 당시에도 그 원형으로서의 사회규범이 존재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단, 브라흐마니즘에서 말하는 54) Chakravarti, 앞의 책, p.39 참조.

176 선문화연구 제11집 브라흐마짜리야는 단지 독신기를 의미할 뿐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출 가의 삶과는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다는 재가의 삶을 버 리고 출가할 것을 권고하는데 브라흐마짜리야라는 용어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TS에서 브라흐마짜리야를 실행하는 주체는 비구 로 규정된다. 6. 이어 모든 계를 구족한 비구는, 다섯가지 장애를 제거한 후, 삼매 (samādhi)에 든다고 설한다. 사범주는 이 후에야 등장한다. 이 늦은 소 개가 브라흐마사하브야따의 수행 수순을 시사하는지 아니면 그렇게 해석되어야 하는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TS에 소개된 이들 멧따, 까루 나, 무디따, 우뻬카라는 네 가지 마음의 상태는 지극히 심리적인 것으 로 보이며, 이들을 통해 심해탈(ceto - vimutti)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두 브라흐마나들이 알고 싶어 했던 브라흐마와 함께하는 길이다. 네 덕목을 통칭하는 사범주 또는 사무량심은 불교 내에서 널 리 알려진 수행도이다. 다른 유행승(Pāli. paribbājakā)들도 이 수행도를 행했다는 기술이 니까야에 나타나는 점으로 55) 미루어 볼 때 불교 이 전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브라흐마니즘이라기 보다는 슈라마니 즘 전통에서 행해졌던 수행도로 추정된다. 현학적이고 도그마에 빠져 있던 브리마니즘의 허상을 날카롭게 지적한 붓다는 브라흐마나들이 갈망하던 브라흐마와 함께 하는 방법, 곧 그들 가운데 누구도 알지도 보지도 못했던 브라흐마세상(Brahmloka)에 이르는 길을 TS에서 구체 적으로 제시한다. 멧따, 까루나, 무디따, 우뻬카라는 심리적 상태(state 55) Mettāsahagatasutta, SN v, pp.115-121 참조. 여기서 붓다는 다른 유행승 등의 사범주 수행법과 불교의 차이를 목적지, 궁극적 경지, 결실, 귀결점 등에서 차 이가 난다고 지적하며, 사범주 위에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등이 있음 을 설한다.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77 of mind)가 56) 바로 브라흐마사하브야따, 곧 브라흐마와 함께 함 으로 이르게 하는 길인 것이다. 종교적으로 승화된 보편적 윤리관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는 브라흐마사하브야따를 통해 브라흐마나의 권위주 의, 현학주의, 형식주의, 제식주의, 배타주의, 비밀주의 등에 분명히 반대한다. 반면, 그들이 믿고 따르는 최고신 브라흐마(Brahmā)는 타도 나 불신의 대상이 아닌 지고의 상태를 제시하는 기준으로서 초기불전에 서 적극 활용하였던 것이다. 그 증거로서 브라흐마비하라(brahma - vihāra), 브라흐마짜리야(brahma - cariya), 브라흐마짝까(brahma - cakka), 57) 브라흐 마브후따(brahma - bhūta) 등 58) 다양한 복합어를 초기불전에서 접할 수 있 다. 붓다는 기존 슈라마나의 전통을 수용 내지 변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행도와 브라흐마라는 이름을 쓰는 기존의 개념을 연관지음으로써 기존의 종교관에 직접적으로 반하지 않으면서도 윤리와 실용이 접목 된 보편적 종교관을 제시했던 것이다. 56) 멧따, 까루나, 무디따, 우뻬카의 상태는 정신(mentality)적 경지와는 구분되어 야 한다고 생각된다. TS에서도 이를 심해탈(cetovimutti)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정신적이라기 보다는 심리적 또는 윤리적 측면이 더 강조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SN의 Mettāsahagatasutta는 사범주 위의 경지로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 소유처를 들고 있다. 이는 사범주를 사선으로 간주한 것처럼 보이며, 비상 비비상처정을 제외한 사무색정을 그 위에 두고 있다. 붓다의 깨달음은 사선 에서 나왔으며, 붓다는 깨달음 이전의 수행의 과정에서 만난 알라라깔라마 (Āḷārakālāma)의 무소유처정과 웃다까라마뿟따 (Uddakarāmaputta)의 비상비 비상처정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정의 계위에서 사무색 정을 사선 위에 올려놓은 것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57) MN i, p.69; AN ii, p.9; AN iii, p.417; AN v, p.33. 58) Theragāthā 831게; DN iii, p.84; MN i, p.111; MN iii, p.195; SN iv, p.94; AN v, p.226.

178 선문화연구 제11집 VI. 나가는 말 TS에 기술된 브라흐마의 덕목 어디에도 기존의 다른 니까야에서 보 여지는 창조주로서의 특성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TS에서 브라흐마 는 비난 받을 여지도 필요도 없다. TS에서의 브라흐마는 붓다가 제시 하는 바른 종교대상으로서의 브라흐마인 것이다. 따라서 브라흐마니 즘에 문제가 있다면 그러한 브라흐마를 잘 못 알고 있는 추종자들의 무지를 탓해야 할 것이다. TS에서 붓다는 다수의 추종자를 거느린 베 다의 선인들을 거론하며 그들 가운데 브라흐마와 일대일로 대면한 사 람이 있냐고 반문하면서 제식주의 권위에 대한 브라흐마나들의 무비 판적 수용을 비판한다. 브라흐마나가 행해야 할 법은 버리고 행해서 는 안 될 법을 행한다며, 브라흐마짜리야를 실행해야 할 그들이 재물이 나 아내를 소유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브라흐마짜리야의 주체였던 브라흐마나의 자리를 비구로 대체시킨다. 따라서 TS에서 브라흐마짜 리야의 주체는 비구이다. 이들 비구는 브라흐마사하브야따를 성취함 으로서 브라흐마니즘에서 말하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브라흐 마가 강등된 것이 아니라 비구의 입지가 강화된 것이다. 붓다는 TS에서 베다 권위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처법을 시도하고 있 다. 정통성을 중시하는 기존 종교에 대해 그들의 최고신을 비난하는 것은 극단적인 처방이며 즉각적인 반격을 초래한다. 붓다는 TS에서 상대종교의 최고신을 오히려 합리적이고 정당한 모습으로 장엄해 주 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한 최고신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은 베다의 선인들과 그 가르침을 전수한 브라흐마나들이며, 자신들의 최 고신을 롤모델로 삼지 못한 브라흐마나는 브라흐마짜리야의 주체로서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79 의 자격을 상실한다. 결국 계와 정을 갖춘 비구만이 慈 悲 喜 捨 를 통해 심해탈에 이르러 브라흐마와 함께 함 을 성취하게 된다. 이와 같이 TS는 상대종교의 최고신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정당하 고 보편적인 가치관으로 장엄해 주면서 온전히 불법으로 인도하는 붓 다의 지혜를 보여준다. 다른 초기불전에서 냉소나 비판의 대상이 되 었던 브라흐마의 모습은 TS에서 찾아볼 수 없다. 발표자가 논문의 앞 부분에서 TS의 성립연대를 논했던 이유도 바로 이점에서 찾을 수 있 다. 빠알리불전 가운데서도 보다 고층으로 분류되는 게송으로 이루어 진 숫따니빠따, 담마빠다, 테라가타, 테리가타 등과, 이들과 소재나 스 토리를 공유하는 디가니까야와 마짓마니까야(Majjimanikāya)의 일부 숫 따들을 분석해 보면, 브라흐마에 대한 거부감이나 적의를 찾아보기 힘 들다. 브라흐마나에 대한 입장 역시 상대의 오만과 불손에 대한 상식 적인 대응 이상의 어떠한 부정적 반응을 보기 힘들다. 59) 오히려 암바 타숫따(Ambaṭṭhasutta) 60)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붓다에 대한 브라흐마나 의 태도가 공격적이고 비판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붓다의 입멸 이후, 붓다의 카리스마가 더 이상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즈음에 상가 와 브라흐마나, 그리고 다른 슈라마나 등과의 관계가 경쟁자로서 더욱 첨예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상가의 조직이 강화되고 교리 의 정비도 함께 수행되었을 것이다. 그 시대의 최고신인 브라흐마에 대한 붓다의 입장은 초기불전을 통해 볼 때 양면적이었음을 확인 할 59) Bailey and Mabbett, 앞의 책, p.118 참조. Bailey와 Mabbett 역시 이점을 지적하 고 있다. 곧 초기 운문형태의 불전에서는 브라흐마나를 덕성을 갖춘 현자나 고행자로서 묘사하고 있는 반면, 후의 산문형태의 불전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희박하다는 것이다. 60) DN i, pp.87-110.

180 선문화연구 제11집 수 있다. 브라흐마가 브라흐마나 가운데 으뜸인 베다의 브리하스빠띠 (Bṛhaspati) 측면으로 수용될 경우는 존경과 경의로서 대접되었던 반 면, 쁘라자빠띠(Prajāpati)적 요소, 곧 창조주로서 비춰졌을 때는 단호 하게 거부되었다. 61) 상대종교의 최고신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고 추 종자들의 무지와 무능을 지적하는 점, 최상의 뜻을 함축하는 상대신의 이름이 포함된 브라흐마짜리야와 브라흐마사하브야따 등과 같은 기존 의 용어를 활용하는 점 등은 상대종교에 대한 존중과 화합을 위한 노 력의 흔적으로 비춰진다. 붓다의 타종교에 대한 입장, 특히 당대에 정 통임을 내세웠던 브라흐마나 권위주의에 대한 입장이 거부와 배격만 이 아니었음이 TS에 분명히 나타난다. 반면, 실질적인 내용에서는 슈 라마나로서의 붓다의 철학과 가치관이 반영된 새로운 관념, 곧 출가주 의, 지계, 보편적 윤리 등을 이들 용어에 주입시킴으로써 제식주의로 부터의 탈퇴를 시도하였다. 결과적으로 붓다는 큰 마찰력 없이 종교 관의 재정립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고 보여 진다. 61) Encyclopaedia of Buddhism, vol.Ⅲ. p.29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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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선문화연구 제11집 <Abstract> Reestablishment of the Perspective of Religion as Shown in the Tevijjasutta Choi, Kyung - ah Tevijjasutta (TS), postulated to belong to the older strata among the suttas of the Nikāya, reflects the stance of the Buddha on the contemporary religion of ancient India. This paper examines the critics of the Buddha on the Brahmanism and the subsequent reestablishment of the perspective of religion shown in the TS. We come across the term brahmasahavyatā being in companionship with Brahmā instead of the well - known brahmavihāra abode of Brahmā in the sutta. Brahmavihāra is said to be the moral conduct consisted of four mental states - mettā, karunā, muditā and upekhā. Using the term brahmasahavyatā indicates that the one who practices the above four becomes a companion of Brahmā. TS says that the Bhikkhus who practice them along with the observance of the norms of Bhikkhu can achieve the same state as Brahmā, the supreme God in Brahmanism. The subject of brahmasahavyatā, therefore, is the Bhikkhus who practice brahmacariya, not the Brāhmaṇas who possess wife and property. Meanwhile, we could find some meaningful effort trying to treat the counterpart respectfully and harmoniously. Instead of degrading

떼비자숫따(Tevijjasutta)에 나타난 종교관의 재정립 / 최경아 185 counterpart s supreme God Brahmā, the Buddha rebuked the followers of Brahmanism, i.e. Brāhmaṇas, for their blind belief. Unlike the cases where Brahmā as the Creator God has been strongly rejected, the name Brahmā has been positively adopted by the Buddha in the sutta. It is reflected in the use of the concepts like brahmacariya, brahmasahavyatā etc. which bear the sense of the supreme. Consequently, we come across various compounded terminologies throughout Pāli cannon such as brahmacakka, brahmabhūta, brahmacakkhu etc. Key words: Tevijjasutta, Brahmā, Brāhmaṇa, Brahmavihāra, Brahmasahavyatā, Brahmacari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