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연구시리즈 07-06 KIEP 중장기통상전략연구 07-07-01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인 남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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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연구시리즈 07-06 KIEP 중장기통상전략연구 07-07-01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인 남 식

지역연구시리즈 07-06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인쇄일 2007년 12월 26일 발행일 2007년 12월 30일 발행인 李 景 台 발행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주 소 (137-747) 서울특별시 서초구 염곡동 300-4 전 화 02) 3460-1178, 1179 팩 스 02) 3460-1144 인쇄처 예당문화인쇄: XXXXXXXXXX 등 록 1990년 11월 7일 제16-375호 http://www.kiep.go.kr c2007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가 5,000원 ISBN 978-XXXXXXX -6 94320 978-XXXXXXX -1(세트)

국문요약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인 남 식 본 연구는 최근 독립노선을 가시화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현황을 살펴 보고, 이에 대한 우리의 정책 제안을 목적으로 한다. 팔레스타인은 1948 년 이스라엘 독립 이후 중동 분쟁의 핵심이 되어 왔다. 중동지역에 만연 한 고질적 사회갈등의 근원이 팔레스타인이었고, 따라서 현 중동정세의 안정구축을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의 안정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팔레스타인은 몇 가지 국제정치적 함의를 갖고 있다. 첫째, 이스라엘에 게 영토를 빼앗긴 아랍의 박탈감 중첩지역, 둘째, 이란이 주도하는 이슬 람 혁명 확산의 잠재적 거점화, 셋째, 글로벌 테러리즘의 온상화 가능성, 넷째, 문명담론의 격전지화, 다섯째, 미국의 대이스라엘 정책 관련 시사 점 등이다. 1993년 오슬로 프로세스 이후 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최근 정세 혼란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동 정치질서의 변화, 이란 핵문제, 이스라엘 내외의 혼란, 하마스의 등장 등 제반 여건이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의 안정화 없이는 중동평화 및 세계평화 구축이 난망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고, 한국도 이 맥락에 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시점이다.

향후 한국의 대( 對 )팔레스타인 정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해 볼 수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포럼 한국 개최, 주요인사 교류 확대 및 국제사회의 팔레스타인 평화노력 적극 동참 등 평화 관련 정책 과 더불어 SOC 구축 지원, 공단건설 지원, 국가운용 패키지 전수 및 관 광산업 투자 등 경제활성화 지원정책 등이다. 4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차 례 국문요약 3 제1장. 팔레스타인의 일반 현황 9 1. 지정학 및 인구 현황 9 2. 정치적 배경 및 현재 역학 구도 11 3. 경제 현황 15 제2장. 팔레스타인 분쟁의 성격 18 1. 냉전종식 이후 중동 분쟁 성격의 변화 18 2. 미국의 대( 對 )중동정책: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우선 정책 대 걸프 우선 정책 19 3.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좌표 21 제3장. 팔레스타인 평화협상: 과정, 쟁점, 성격 23 1. 평화협상의 전개 23 가. 마드리드 중동평화회담: 최초의 다자회담 23 나. 1 2차 오슬로 협정: 영토와 평화의 교환 24 다. 1 2차 와이리버 협정: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의 무장해제 및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26 라. 부시 행정부의 로드맵 과 아나폴리스 중동평화회의 27 2. 평화협상의 핵심 현안 28 가. 정착촌 및 분리장벽의 문제 28 나. 동예루살렘의 지위 및 귀속협상 31 다.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의 문제 32 3. 평화협상의 도전 요인 33

가. 협상 당사자의 불안정성 33 나. 중재자의 이행 감독 강제력 및 불편부당성의 부재: 엄밀한 국제중재 보장 시급 35 다. 쟁점의 비타협적 성격: 리더십의 결단 필요 36 제4장.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내외 정세 38 1. 이란의 부상과 시아파 연대의 확산 38 2. 레바논 사태와 이스라엘 내정 혼란 40 3. 파타와 하마스간의 갈등관계 증폭 41 4. 4자 중재 외교(Quartet Diplomacy): 국제사회의 공동 관심사 유도 42 제5장. 팔레스타인 문제의 국제적 함의 43 1. 아랍의 박탈감 중첩 지역 44 2. 이란 주도 이슬람 혁명 확산의 잠재 거점 46 3. 글로벌 테러리즘의 잠재적 온상 50 4. 문명(종교) 담론의 격전지 51 5. 미국의 이스라엘 안보정책 변화 52 제6장. 한국의 대( 對 )팔레스타인 정책방향 55 1. 팔레스타인 문제의 의미 55 가. 냉전시대 중동 외교의 사각지대 55 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추구와 한국의 기여 여지 56 다. 국제평화의 기여와 대중동 외교 레버리지 확보 57 2. 한 팔레스타인 정무 및 경제 관계 현황 58 가. 정무관계 현황 58 나. 경제관계 현황 60 3. 향후 대( 對 )팔레스타인 정책방향 및 제언 62 가. 평화체제 구축 관련 정무교류 확대 62 나. 공동 번영을 위한 경제교류 협력방안 65 다. 관광산업 투자 68 제7장. 결론 70

참고문헌 73 Executive Summary 77

표 차례 표 1-1. 팔레스타인 인구 현황 11 표 1-2. 팔레스타인 경제지표 현황 15 표 1-3. 대팔레스타인 해외 지원 현황 17 표 6-1. 한 팔레스타인 교역 현황(한국 기준) 61 표 6-2. 한국의 대( 對 )팔레스타인 지원 현황 61 표 6-3. 팔레스타인의 관광 인프라 관련 숙박업 통계 68

제1장 팔레스타인의 일반 현황 이재영 1. 지정학 및 인구 현황 팔레스타인은 아시아 대륙 서쪽 끝이자 지중해 동편인 레반트 지역에 위 치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영토는 이스라엘 동부 웨스트뱅크(West Bank of River Jordan, 요르단강 서안지구) 및 이스라엘 남부와 이집트 시나이반도 접경 지역에 위치한 가자지구(Gaza Strip)로 구성된다. 전체 면적은 웨스트 뱅크 5,655km2(남북 130km, 동서 40~65km), 가자지구 365km2(남북 45km, 동서 5~12km)이며, 현재 양 지역은 공식적으로는 이스라엘 점령지역(Israeli Occupied Territory)으로 규정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 부(Palestinian National Authority)령으로 인정받고 있다. 웨스트뱅크의 경 계선은 이스라엘과는 307km(그린라인), 요르단과는 97km에 걸쳐 형성되어 있으며 가자지구는 이스라엘과는 51km, 이집트와는 11km, 해안선은 62km 로 접하고 있다. 2007년 현재 잠정 추산 인구는 총 401만 6,416명으로 웨스트뱅크 251만 7,047명, 가자지구 149만 9,369명이며, 특히 가자지구의 인구밀도는 1km2 당

3,945.4명으로 세계최고수준의 밀집현상을 기록하고 있다. 웨스트뱅크와 가 자지구 외, 즉 팔레스타인 영토 밖에 거주하는 난민은 2004년 조사통계에 의하면 총 483만 4,427명으로 추산되고 있고 2007년 추정은 대략 500만 명을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1) 따라서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 내 거주 팔레 스타인인과 영토 외 거주자들을 합하면 약 900만 명 정도 인구로 예상되며, 여기에 이스라엘 국적의 아랍인이 약 140만 명으로 추산됨에 따라 전체 팔 레스타인 아랍인은 1천만 명에 이를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이스라엘 내부 유태인 인구 530만 명에 대비하여, 웨스트뱅크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400만 명에 이스라엘 내 아랍인 140만 명을 합할 경우 540만 명으로 추산되어 이 미 이스라엘 영토 내부 아랍인만 추산해도 유태인을 앞설 가능성이 있는 것 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영토 외의 난민들이 대거 귀환 할 경우 이스라엘은 인구학적 요인(demographic factor)에서 심각한 안보위 협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규정하고 있으나, 완전 독립을 달성하 는 시점까지는 라말라(Ramallah)를 임시 행정수도로 운용하고 있다. 주요 도시로는 웨스트뱅크의 예닌(Jenin), 툴카렘(Tulkarem), 나블루스(Nablus), 예루살렘(Jerusalem) 및 헤브론 등이 있으며, 가자지구에는 가자 시티(Gaza City), 칸 유니스(Khan Younis) 및 라파(Rafah) 등이 있다. 상기 주요 도시 중 웨스트뱅크의 거점 도시들은 현재 이스라엘 분리장벽 건설 및 정착촌 유 지 정책으로 인해 분쟁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 1) PCBS 공식 통계에 의하면 팔레스타인 영토 밖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인은 요르단에 279만 7,674 명, 레바논 41만 5,066명, 시리아 43만 6,157명, 이집트 6만 1,917명, 사우디아라비아 30만 9,582명, 쿠웨이트 등 걸프국가 16만 3,632명, 기타 아랍국가 6,523명 및 미국 등 서방 기타 국가 53만 7,334 명 등 총 483만 4,427명으로 추산된다. 기관에 따라 다른 추산이 나오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Salman Abu Sitta의 통계에 의하면 총 449만 3,465명, Justin McCarthy의 추산에 의하면 총 466만 7,000명이다. 통계간 오차를 인정하고 대략 추정한다면 인구증가율을 반영해 볼 때 2007년 현재 500만 명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로 추산이 가능하다. Palestinian Central Bureau of Statistics, Demographic Statistics(2004). 10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표 1-1. 팔레스타인 인구 현황 2) (단위: 명, %, 세) 팔레스타인 전역 웨스트뱅크 가자지구 전체인구 1997년 인구조사 289만 5,683 187만 3,476 102만 2,207 2005년 중반 376만 2,005 237만 2,216 138만 9,789 2007년 추정치 401만 6,416 251만 7,047 149만 9,369 2015년 추정치 509만 1,314 311만 0,489 198만 0,825 인구증가율 (2005) 3.3% 3.0% 3.8% 출생율(%/1000명, 2005) 37.3 34.5 42.2 성비 (남/녀) 103.5 기대수명 (2005) 72.3 72.7 71.6 인구밀도 (km2당) 463.5 3,945.4 실질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영토로 규정되어 온 웨스트뱅크와 가 자지구는 서로 격리되어 있어 중간지역인 이스라엘 영토를 통과해야 한다. 이는 정상적 국가운영을 어렵게 하는 요소이며, 최근 하마스와 파타 정부간 의 갈등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팔레스타인 내부의 정정을 불안하게 하는 원 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2. 정치적 배경 및 현재 역학 구도 1948년 5월 이스라엘의 전격 독립 이후 팔레스타인은 국가로서의 기능을 확보하지 못하고 요르단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불명확한 정치체(political 2) Palestinian Central Bureau of Statistics (PCBS), 2005, Projected Mid-Year Population in the Palestinian Territory by Governorate (2001-2007). 제1장 팔레스타인의 일반 현황 11

entity)를 구성함으로써 정치적 행보가 시작되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가 이스라엘 점령지역으로 편입되면서 기존 요 르단 령이었던 양 지역에 거주하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난민 신분이 되 었고, 상당수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인근 아랍국으로 흩어지면서 전 세계 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인식하게 되었다.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에 완전 병합된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는 1978 년 캠프데이비드에서 개최된 중동 평화협정 이전까지는 이스라엘의 실질적 지배하에 있었다. 특히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다시 한번 승리하면서 팔레스타인 영토 내부의 자치 및 독립 움직임은 거의 전무 했다. 그러나 요르단에 근거지를 두었던 팔레스타인 독립운동 조직인 팔레스 타인 해방기구(PLO)는 무장투쟁조직을 운용하면서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3) 1972년 뮌헨 올림픽 검은 9월단 사건 등 팔레스타인 발( 發 ) 테러리즘이 잇따르자 국제사회의 관심은 증폭되었고, 결국 미국의 중재로 체결된 이스라 엘과 이집트간의 평화협상인 캠프데이비드협정(1978년 9월 5일~17일)에 의 거하여 이스라엘은 최초로 팔레스타인 자치권에 관하여 논의를 시작했다. 팔 레스타인 자치안은 캠프데이비드협정 부속조항으로 포함되었으며, 조약 체결 쌍방이 12개월 내에 협상을 끝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부속내용에 의하면 팔레스타인 지방의회 구성 이후 대표성을 갖는 실질적 정치 지도세력이 조 직되면 5년간의 과도기를 거쳐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의 최종 지위 협상을 시작하도록 하는 선에서 타협되었다. 4) 이후 일련의 평화협상을 거치면서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한 논의들은 지 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친 인티파다(intifada, 무장봉기), 레바논 3) Deborah J. Gerner, pp. 69-73. 4) Arthur Goldschmidt Jr, pp. 351-352. 12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내전, 걸프전 등을 거치면서 팔레스타인 독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제반 도 전요인들이 등장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993년 오슬로협정의 틀 속에 서 평화와 영토교환 이라는 원칙을 중심으로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구성되어 완전 독립을 추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완전독립은 2000년 2차 인티파다 이후 등장한 아리엘 샤론 (Ariel Sharon) 전 이스라엘 수상에 의해 촉진되어왔다. 5) 그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인구변화에 주목하였다. 인구변화 양상에 의해 향후 10여년 간 에 이스라엘 및 웨스트뱅크, 가자지구 내의 아랍인이 유태인을 압도할 것으 로 예상됨에 따라 신속하게 팔레스타인을 독립시키지 않으면 국가주권이 선 거에 의해 아랍인에게 넘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샤론은 결국 팔레스타인 완전 독립 구상인 two states solution 을 추진하게 되었다. 샤론 구상에 의하여 2005년 말 가자지구 이스라엘 정착촌이 완전 철수되었고, 현재 웨 스트뱅크 정착촌 철거 문제와 분리장벽 문제를 놓고 양측이 첨예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사실상 1993년 오슬로협정 체결 및 2000년 캠프데이비드협상 등 몇차례 에 걸쳐 극적인 쟁점 타결 기회가 있었으나, 번번이 무산되던 차에 2005년 야세르 아라파트 서거 후 집권한 온건파 마흐무드 압바스의 파타 정권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입법회의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면서 6) 다시 한번 정국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에 이스라엘과의 공식 협상을 부인하고, 무장해제 요구에 응하지 않는 하마스 내각을 미국과 유럽 5) 사실상 초강경파로 분류되던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수상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완전독립을 가 장 확고하게 추구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1988년 샤브라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캠프 학살사건의 배후 조종 혐의로 국방장관에서 물러났던 샤론 전 수상은 2000년 캠프데이비드협정에서 에후드 바 라크 이스라엘 수상이 보여준 온건노선을 강력히 규탄하고 예루살렘 알 아크사 모스크를 방문하며 제2차 인티파다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론 구상을 통하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의 완전독립을 추구한 것은 결국 인구변동 위협요인 과 개인적 정치 스캔들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6) 팔레스타인 입법회의 선거결과 제1장 팔레스타인의 일반 현황 13

연합 등 국제사회가 승인하지 않게 된다. 여기에 파리조약(Paris Protocal)에 의해 매월 정기적으로 송금되던 이스 라엘로부터의 세수 수입이 중단됨에 따라 14만 명에 달하는 공공부문의 임 금지급이 중단되고, 극단적인 경제곤란 상태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스라엘 및 국제사회는 하마스에 대한 지원협상 재개를 위해서는 상기 3대 조건, 즉 이스라엘 인정, 무장해제 그리고 기존 평화협정 인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 리아에서 하마스 망명조직을 이끌던 칼레드 마샬 등 강경파 인사들은 이스 라엘과의 어떤 협상이나 대화도 거부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협상은 교착상태 로 들어갔다. 7) 결국 파타당을 이끌고 있는 자치정부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는 하마스 내 각을 해산했고, 살람 파예드(Salam Fayyad) 8) 가 이끄는 거국 중립내각을 구 성했다. 이에 반발하는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거점으로, 집권 파타당은 웨스 정당 및 정파 연합 비례득표수 비례득표비율 획득 의석 (비례/지역) 변화와 개혁 리스트(하마스) 파타 팔레스타인해방대중전선(PFLP) 대안 정당연합 독립 팔레스타인 제3의 길 기타 무소속 440,409 410,554 42,101 28,973 26,909 23,862 18,065 44.45 41.43 4.25 2.92 2.72 2.41 1.82 74 (29/45) 45 (28/17) 3 (3/0) 2 (2/0) 2 (2/0) 2 (2/0) 4 (0/4) 합계 990,873 100 132 (66/66) 최종투표율 집계: 74.6%(웨스트뱅크 73.1%, 가자지구 76.0%) 자료: 팔레스타인 선거위원회(2006. 1. 29) 7) 파타와 하마스 간 양대구도로 치루어진 입법회의 선거결과에 의하면 지역구에서는 하마스의 압승이 확 인되었으나 정당명부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거의 박빙의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기존 파타 소속원인 무 스타파 바르구티 등의 후보들이 군소 정당을 만들어 출마함으로써 사실상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소속 의원을 큰 틀에서의 온건 진영으로 분류한다면 하마스와 PLO간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파악 된다. 총선 출구조사와 동시에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전체 75% 이상의 유권자가 파타가 추진하는 대 이스라엘 평화협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 점을 미루어 볼 때, 사실상 하마스의 반이스라엘 노선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가에 관한 논쟁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인남식, pp. 2~5. 8)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세계은행 워싱턴지점 및 국제통화기금 예루살렘 대표를 지낸 인물이며, 웨스 트뱅크 아랍은행 대표를 역임하고, 2002년부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재무장관을 역임한 전형적인 경 제 테크노크라트이다. 금융거래 투명정책을 실시하고, 예산을 공개함으로써 정부의 투명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4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트뱅크를 중심으로 치열한 상호 갈등을 전개하고 있다. 3. 경제 현황 사실상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점령지역이었던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에는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만한 기반과 여력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탄화수소 에 너지자원은 물론이고 광물자원 역시 거의 없는 상태로서 부존자원은 희소하 며, 반면 인구밀도는 매우 높다. 척박한 자연환경에 기반시설이 거의 구축되 어 있지 않아 전력 수자원 통신 등 제반 인프라는 전적으로 이스라엘 측 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잠재적 적대세력인 팔레스타인에 직접 투자를 하지 않고 있으며, 사회 기반시설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한도내 에서 구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표 1-2. 팔레스타인 경제지표 현황 1995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4년 GDP(US$ million) 1인당 GDP(US$) 실질 GDP 성장률 인플레이션(%) 빈곤비율 (웨스트뱅크) (가자지구) 3,225 1,380 6.1 10.8 4,201 1,478 8.6 5.5 20 13 32 4,108 1,386-5.6 2.8 27 18 42 3,816 1,229-6.6 1.2 37 27 54 3,484 1,073-3.8 5.7 51 41 68 4,001 1,146-1.0 3.0 48 38 65 자료: UNCTAD, Report on UNCTAD's Assistance to the Palestinian People July 2005. 빈곤비율 자료는 The World Bank, Disengagement, The Palestinian Economy and the Settlements, June 2004 참조, 2005년 이후 통계는 발표되지 않고 있음. [표 1-2]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0년 알 아크사 모스크(Al Masjid al Aqsa, 예루살렘)에서 촉발된 2차 인티파다 이후 팔레스타인 경제는 급속도 제1장 팔레스타인의 일반 현황 15

로 악화되어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마이너스 5% 이하로 떨어졌다. 이후 아리엘 샤론의 등장과 함께 경색국면이 지속되었으나 팔레스타인 완전독립이 가시화되면서 상황이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마스의 집권과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원조중단, 이스라엘로부터의 차입중단 등이 겹치면서 현재 팔레스타인 경제는 최악의 국면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산유국 및 서방이 지원하여 결성한 공여국회의(Donors' conference for Palestinian National Authority)를 통하여 자치정부의 재원을 조달하고 있고, 국제 원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부가가치의 생산기반 없이 전적으로 해외 원조 및 공 여 그리고 차입에 의존하는 경제 여건은 자치정부의 자체적 경제운용 계획 수립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이는 정치적 대외 의존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1994년 파리협정을 통해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 차관 지원 및 원조를 지역 안정화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시행할 것을 약속하고 이에 준하여 집행 해왔다. 공적차관의 경우 10년 거치 40년 상환 조건으로 0.75%의 이율로 제공되고 있어 실제로 차관상환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다. 9) 사실상 팔레스 타인 자치정부는 전적으로 해외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6년 중반 이후, 하마스와 파타간 갈등으로 인해 서방권의 해 외 차입이 중단됨에 따라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심각한 자금난을 겪 고 있다. 9) 최근 통계에는 잡히지 않고 있으나 2003년 발표된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국가채무는 12억 달러 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0년 대비 7억 6,200만 달러에 비해 2년여 기간 동안 40% 이상 증가된 것으로, 우호적인 상환조건이라고는 하나 국가채무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것은 사실상 향후 심 각한 재정운용 부담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IU(2006), Country Profile. 16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표 1-3. 대팔레스타인 해외 지원 현황 (단위: 백만 달러)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전체 해외 지원액 1,527 1,404 954 1,430 1,009 정규 개발 지원 261 326 467 1,011 456 비상 예산 지원 1,266 1,078 / / / 인도적 지원 / / 171 171 389 예산 지원 / / 316 248 164 자료: World Bank: Palestinian Ministry of Planning, The Economic Intelligence Unit, 2006 2006 년 1월 하마스 정권 등장 이후 3월부터 서방의 인도적 지원은 중단됨. 한편 팔레스타인은 생산 기반이 박약하고, 투자진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 어 전체 노동인구의 59% 이상이 도소매업 및 수리공 등 서비스, 상업에 집 중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 노동력의 10%가 이스라엘 내에서 고용되어 있고 대부분 근로 현장에서의 단순 노무직 등에 투입되고 있다. 10) 전반적인 고용 지표가 좋지 않아 현재 실업률은 하마스-파타 갈등 이전에 약 45% 선이었 던 것으로 평가되었으나 현재는 이보다 더 악화된 것으로 추산된다. 국가 내 국가(state in state) 상태로 인해, 완전 자치를 획득하고자 노력 하는 팔레스타인의 교역 및 경제구조는 왜곡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의 교역은 이스라엘과 이루어지는데 전체 수출의 95% 이상이 대 이스라엘 부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인력 및 물자이동 통제, 이스라엘 기업과 아랍 하청업체와 관계, 제조업 기반 취약, 부존자원 부족, 상대적 고임금 등으로 인하여 교역증진에 애로를 겪고있다. 여타 교역상대국은 요르단, 이태리, 터 키, 스페인, 독일, 중국, 미국, 이집트, 영국 등이다. 10) 인티파다 이전에는 약 23%가 이스라엘에서 근무했으나, 점차 이스라엘 고용조건이 강화되면서 현재 10% 내외로 제한되고 있다. World Bank(2006). 제1장 팔레스타인의 일반 현황 17

제2장 팔레스타인 분쟁의 성격 재남 1. 냉전종식 이후 중동 분쟁 성격의 변화 냉전종식 이후 지구촌에는 장구한 평화의 틀이 놓여졌다는 기대 섞인 환 상이 일시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인류의 기대와는 달리 갈등과 폭력 은 여전히 존재했고, 국제분쟁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물론 냉전 을 이끌었던 이념 중심의 진영론은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이제는 양대 이념 진영이 해체된 체 단일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응하여 중국, 러시아 및 이란 등 지역 패권국가들이 힘을 모으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렇게 분쟁의 양 상과 기저가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동은 분쟁의 중심에 서 있 다. 냉전시대 친서구 진영으로 결속되었던 걸프 왕정 중심의 국가들과, 서방 과는 대립각을 세웠던 군부 권위주의 공화정이 이스라엘과 엮이며 벌였던 갈등구도가 아니다. 대신 이슬람 전통주의의 흐름이 급부상하며, 최근 이라 크 혼돈으로부터 촉발된 역내 불안정성과 맞물려 혼돈 국면이 가중되고 있 다. 이러한 맥락에서 결국 중동은 분쟁이 만성화된 지역이라는, 즉 체질적 인 불안정성(inherent quality of instability) 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동 분쟁의 원인에 관해서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한다. 오토만제국 패망 이후 중동의 근대국가 형성과정에서 배태된 식민유산에서 현대 중동분쟁이 발원한다는 외삽론( 外 揷 論, exogenous factor analysis)과 이슬람, 부족주의 등 아랍 내외 현지의 문화적 원인 때문이라는 내재적 원인론(endogenous factor analysis)으로 대별된다. 여기에 탈식민주의 논의가 영향력을 얻기 시 작하면서 등장한 문명담론 등의 국제정치환경론 과 세계화의 기치하에 전개 되고 자유무역주의로 대별되는 국제정치경제배경론 등으로 중동 분쟁은 설 명된다. 안으로부터의 문제이든 혹은 밖으로부터 강제로 이식된 원인이든 중동 분 쟁 논의에서 상징적인 존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다. 사실상 제1 차 중동전쟁이라 불리는 1948년 전쟁이 바로 이스라엘 독립과 관련된 전쟁 이었고, 이후 4차례에 걸친 중동전쟁 역시 아랍 대 이스라엘의 구도를 형성 하며 전개되었다. 이러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역사 민족 종 교 종파 및 이념의 문제가 혼재되어 있는 전쟁이다. 따라서 현안 하나를 해 결했다고 해서 일정부분 평화가 담보되는 상황이 아니다. 자존심의 문제와 역사적 트라우마가 뭉뚱그려진 고질적 사회분쟁(protracted social conflict) 의 형태를 띠고 있다. 2. 미국의 대( 對 )중동정책: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우선 정책 대 걸프 우선 정책 미국의 대중동정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핵심 단어는 석유 와 이스라 엘 이다. 즉 석유의 안정적 수급라인 확보, 그리고 이스라엘의 안전보장이라 는 양대 전략 목표가 미국 대 중동정책의 핵심인 것이다. 석유 확보, 즉 가 제2장 팔레스타인 분쟁의 성격 19

견적, 경제적 이익과 관련된 전략 목표는 산유국이 밀집해 있는 걸프지역 안 정화 우선 정책과 연결된다. 더불어 역사적 심리적 전략 목표는 바로 이스 라엘-팔레스타인 우선정책과 관련이 있다. 즉 걸프 연안의 산유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유지 확대를 추구하는 정책 은 자연스레 걸프 우선 정책으로 발현되어 지난 1991년 걸프전, 2003년 이 라크 전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우디,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UAE 등 걸프협력회의(GCC) 국가 석유 생산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호르무즈 해 협의 항행 안정성을 보장함으로써 세계 최대 탄화수소 에너지 공급원인 이 지역을 관리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최근 공화당 행정부는 이스라엘-팔레스 타인 문제보다 이 걸프지역의 안정화 프로젝트에 전력을 기울여왔으나 성공 적이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해결을 위한 미국의 전략 목표는 중동 내 에 만연한 반 이스라엘 감정을 희석시키고, 새로운 형태의 공존을 추구하기 위한 중재 성사이다. 사실상 중동 아랍국가내에 자생하는 테러리스트 조직은 이스라엘 이라는 존재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여 내부 투쟁 동력을 끌어올 리는 경향이 있다. 동족 아랍인인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겪는 고통 역시 인근 아랍국가들에게는 커다란 증오의 토대가 된다. 미국의 대중동정책이 걸프 우선 노선을 채택할 경우, 에너지 자원과 실리 확보라는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우선시하는 경우는 중동 전역에 만연한 분노와 갈등 요소의 해소라 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2007년 11월에 열린 아나폴리스 중동평화회의 의 경우 걸프 우선 정책을 펴던 제2기 부시 공화당 행정부가 이라크 사태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되자, 새로운 모멘텀을 확보하려는 의미에서 고전적인 이 -팔 분쟁 해결 성과를 추구하는 노력으로 읽혀진다. 사실상 이-팔 분쟁의 해결이야말로 중동 전역에 퍼져 있는 아랍의 분노 와 무력감해소의 원천이다. 따라서 중동의 갈등구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20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평화체제를 확립하고자 하는 국제사회의 염원을 달성함에 있어 이-팔 분 쟁은 일종의 선행조건이 된다. 이를 도외시하고, 변환외교 (transformation diplomacy)를 통한 리더십 교체로 중동 평화를 이루어내려 하는 것은 잘못 된 접근이라 하겠다. 3.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좌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단순히 양자간분쟁(bilateral conflict)이 아 니다. 이 분쟁은 비록 이스라엘로부터 고토를 회복(irredentism)하고 주권국 가로 독립하려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간의 투쟁양상을 보이고 있 지만, 사실상 중동에 편만한 분쟁 요소를 함축하고 있는 갈등 기저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아랍권 전반이 공유하고 있는 대 서구 역사, 심리적 박탈감이 팔레스타인 아랍에게 투사되어 일종의 탈식민 대리 전쟁(proxy war)의 국면 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냉전 당시 서방과 같은 진영에 위치했던 걸프 왕정 및 요르단 등이 비록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반감을 표출하긴 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는 이스라엘과의 직접적 교전당사자가 되지 않았다. 반면 친( 親 ) 소비에트 국가군인 시리아 등의 군부 권위주의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미국과 서방의 중동내 전위로 인식하는 소비에트의 영향을 받아 상대적으로 경색된 관계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1973년 전쟁 이후 레바논 내전을 제외하고는 이스라엘 은 냉전 진영론 속에서 분쟁의 핵으로 직접 작동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된 이후 1차 걸프전이 발발하면서 사담은 이라크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피하고 아랍권의 단결을 도모하고자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 일 공격을 시도했다. 물론 사담의 의도대로 아랍권이 분열되지는 않았지만 이후 9 11사태가 발생하고 지속되는 문명담론 논의 속에서 이스라엘의 고 제2장 팔레스타인 분쟁의 성격 21

립은 더욱 심화되어가고 있는 국면이다. 대다수의 아랍국가들은 팔레스타인에 관한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동족 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일부 권위주의 왕정과 공화정 정권 담지자들은 팔레스타인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국민의 증오를 우회 투사하는 일종의 희생양(scape-goats)으로 이용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어찌 되었든 서기 1972년에 예루살렘에서 쫓겨났던 이방 민족이 근 2천년이 지난 후 팔레스타인인들이 평화롭게 살던 지역에 들어와 서구 열강의 편파적 도 움으로 1948년 국가를 건설하고 분쟁 국면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은 여전히 중동 아랍인들의 분노를 재생산하는 기제가 되는 셈이다. 22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제3장 팔레스타인 평화협상: 과정, 쟁점, 성격 재남 1. 평화협상의 전개 가. 마드리드 중동평화회담: 최초의 다자회담 마드리드 중동평화회담은 1차 걸프전을 완승으로 이끈 미국이 자신감을 가지고 주도했던 중동지역 포괄 평화협상으로 아랍지역 다수 국가와 이스라 엘이 최초로 대면한 평화협상이라 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평화 정착을 위한 다자간 논의의 장을 구축함으로써 타협의 여지를 확대하려던 포석으로 부시 미 대통령,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및 팔레스타인 대표들이 회담 당사자로 참석하고, 이라크를 제외한 모든 아랍연맹 소속 국가들 대표들이 옵서버로 참석하여 평화구축 방안을 다자의 틀에서 논의하였다. 마드리드 회담에서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불가침 및 평화조

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스라엘의 점령지 반환, 팔레 스타인 영토 보장과 완전 자주독립을 추진하는 방안을 논의하였다. 이 회담 에서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를 허용할 수 있 다는 선에서 논의를 전개한 반면, 아랍에서는 1967년 전쟁 이전의 영토로 돌아가,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촌 완전철수, 그리고 시리 아의 골란고원 반환 등을 주장했다. 마드리드 회담은 사실상 팽팽하게 엇갈리는 쟁점의 이해관계로 인해 구체 적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고, 실효성있는 의사결정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전혀 대화의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아랍과 이스라엘 양측이 함께 마주하고 실질적인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은 큰 의의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일부 영토 반환 가능성 언급 등 전향적 자세 표출로 인해 향후 오슬로협정 및 중동 평화 로드맵으로 이어지는 기초가 마련되었다. 나. 1 2차 오슬로 협정: 영토와 평화의 교환 이스라엘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집권 이후 노동당 정권은 마드리드 평화 회담을 기초로, 영토와 평화의 교환(land-for-peace) 구상 을 적극적으로 추 진하기 시작하였다. 1993년 9월 13일에 미국의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중재로 라빈 총리와 아라파트 PLO 의장이 만나 합의한 역사적인 협정이다. 사실상 현재까지도 오슬로협정의 큰 틀은 이스라엘 독립 이후 계속된 분쟁 국면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협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슬로협정은 1993년과 1995년 각 두 차례 추진되었는데, 1차 협정은 이 스라엘의 PLO 공식 인정 및 웨스트뱅크의 고도 예리코(Jerico)시의 행정권 을 팔레스타인에게 이양하는 것을 결의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건국 이후 예리코는 최초의 팔레스타인 자치도시가 된 셈이다. 향후 웨스트 뱅크로부터 점진적인 이스라엘 병력 감축도 합의되었고, 이를 통하여 웨스트 24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뱅크의 예리코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구성되었다. 1차 협정을 심화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2차 협정은 웨스트뱅크 7개 도시(헤브론, 나블루 스, 라말라, 예닌, 툴카렘, 카킬랴, 베들레헴)에서 팔레스타인이 자치권을 이 양받았고, 이스라엘 군의 6개월 내 완전 철수가 약속되었다. 오슬로협정은 실제로 자치권이 이양된 첫 사례로서 향후 팔레스타인의 완전독립을 위한 첫 걸음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1994년 7월에 튀니지 에서 일종의 망명정부 역할을 수행하던 PLO 본부가 가자지구로 이전함으 로써 본격적인 자치 기반을 마련한 셈이 되었다. PLO의 귀환과 함께 가자 지구 및 웨스트뱅크 예리코를 자치지역으로 구성하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Palestine National Authority, PNA or PA)가 설립되었다. 2차 오슬로협 정이라 할 수 있는 1995년 9월 28일 협정에서는 팔레스타인이 1차 협정 당 시의 예리코 외에 웨스트뱅크 7개 거점도시의 자치권을 확보하였다. 협정 자체가 갖는 의미와 여파는 매우 컸으나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내 부 강경파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스라엘의 정통파 유태교 세력과 강 경 정당인 리쿠드는 오슬로협정의 일련 프로세스가 이스라엘 안전보장에 심 대한 위협이 될 것임을 공언하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팔레스타인 쪽에 서도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등과 같이 파타 세력과 대척점에 서 있는 세 력들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에 성사 가능성이 비교 적 높게 평가되었던 오슬로협정에 대하여 비토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본 협정을 주도했던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수상이 1995년 이스 라엘 극우파에 의해 암살당하고, 1996년 선거에서 라빈의 노선을 계승하던 시몬 페레스가 리쿠드 당의 벤자민 네타냐후에게 패배하면서 오슬로협정은 일정부분 그 동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제3장 팔레스타인 평화 협상: 과정, 쟁점, 성격 25

다. 1 2차 와이리버 협정: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의 무장해제 및 이스 라엘의 점령지 철수 라빈 암살 이후 일정부분 교착상태에 들어간 평화회담은 와이리버 협정 으로 그 모멘텀을 유지한다. 와이리버 협정은 1997년 이후 예루살렘에서의 유혈투쟁이 급증하게 됨에 따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중재 하에 체결된 협정으로 이-팔 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철군 및 테러무장조직 해체를 논의 하도록 합의하게 되었다. 특히 PLO 헌장 중 이스라엘 소멸 조항을 삭제 하고 저항조직의 무기를 회수하도록 약정하는 등 분쟁 촉발요인 감축에 집 중하였다. 주목할 점은 본 협정이 이스라엘 내 강경파 정치인인 네타냐후가 참여하여 서명함으로써 리쿠드당에서도 평화협상을 추진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례였다. 그러나 본 와이리버 협정에 대한 불만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에서 일어나고, 하마스의 투쟁이 격화되면서 네타냐후 정권은 팔레스타인과의 협 정무효를 선언했다. 결국 이러한 혼돈상황 속에서 치러진 1999년 이스라엘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게 되고 2차 와이리버 협정(샤름 알 셰이크 협정) 에 들어갔다. 2000년 7월, 캠프데이비드 협상 중 점령지 최종 지위협상에서 이스라엘의 에후드 바라크 총리가 동예루살렘의 영유권 문제도 공동관리 포 함을 제안하는 등 전향적으로 검토할 의사를 밝히면서 협상의 급진전이 예 상되었으나, 아라파트의 거부로 결렬되고 말았다. 결국 아라파트의 거부로 인한 최종 지위협상 결렬 이후 이스라엘 내 반( 反 )팔레스타인 정서가 급등하 고, 9월 말 동예루살렘의 알 아크사 모스크에서 제2차 인티파다가 발발함에 따라 2001년 2월 리쿠드당의 아리엘 샤론 강경정부가 집권함으로써 전반적 인 평화구축 논의는 중단된다. 26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라. 부시 행정부의 로드맵 과 아나폴리스 중동평화회의 마드리드-오슬로-와이리버 로 이어지는 일련의 평화협상이 교착상태로 머물자, 교착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 으로 2002년 2월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압달라 왕세제의 파격적 이-팔 일괄 타결 평화협상안이 제시되었고 인근 아랍국가 등 국제사회에서 환영받게 되 었다. 압달라 안에 관하여 이스라엘 역시 긍정적 반응을 보였으나, 팔레스타 인 협상 당사자인 야세르 아라파트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이 제안에서는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전의 영토 상태로의 회귀 및 아 랍연맹 22개국의 이스라엘 승인을 조건으로 제시했고, 동예루살렘 지위 역 시 팔레스타인에 유리하게 설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라파트는 동예 루살렘 내부 통곡의 벽과 이스라엘 거주구역 관할권을 이스라엘에 일부 귀 속시키는 안에 대하여 강력히 반대하면서 결국 압달라 안을 거부한 것이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 종전 직후인 2003년 4월, 팔레스타인 분 쟁해결 로드맵(Road Map)을 천명하고 미국, 러시아, 유엔 그리고 EU 4자 가 중재하는 평화협상 추진 프로그램을 가동하게 된다. 이 로드맵은 구체적 인 협상안이 새롭게 제시된 것이 아니라, 기존 평화협상에서 논의되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평화추진 단계에 관해 구체적인 시간계획을 설정한 것이었다. 이러한 로드맵 설정에는 당시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전에서 전술적으로 승리했다는 자신감이 반영되어 있으며, 여기에 9 11테러를 일으켰던 반미감 정의 근원적 요인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경우 부시 행정부 는 중동 평화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를 나타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 중동 거대구상은 이라크 안정화-팔레스타인 평화 구축-중동지역 자유무역지대 창설 로 이어지는 중동 민주주의 기반 조성, 즉 확대 중동구상(Greater Middle East Initiative) 으로 이어지게 된다. 제3장 팔레스타인 평화 협상: 과정, 쟁점, 성격 27

그러나 부시의 로드맵 역시 결과적으로 교착상태로 귀결되고 있다. 종전 후 이라크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팔레스타인 문제에 집중할 수 없었고, 재 선을 시도하는 대통령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서 교착상태의 팔레스타인 평화 구축 이슈가 전면에 부각되지 못하였다. 여기에 협상의 주요 당사자인 이스 라엘 아리엘 샤론 내각의 강성화(하마스 지도자 야신 및 란티시 암살 등) 및 팔레스타인 마흐무드 압바스 전 총리의 퇴진으로 인해 상호 적대감이 증폭되면서 부시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제시한 로드맵은 유명무실하게 된다. 2007년 11월 아나폴리스에서 열리게 될 쿼텟(미국, 유럽연합, 러시아, 유엔)이 중재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의 메카니즘은 사실상 부 시 로드맵과 연결된 형태이다. 다만 급변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세 흐름으로 인해 과거 다루기로 합의되었던 의제와는 완연히 다른 현재 시점 에서의 쟁점을 논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술한대로 이라크에서의 정책 실패 및 민주당의 의회장악, 이란의 급부상, 그리고 고전적 동맹관계 인 중동 걸프 왕정들의 잠재적 이탈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중 동 외교의 계기를 찾으려 하는 부시 행정부의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평화협상의 핵심 현안11) 가. 정착촌 및 분리장벽의 문제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기존의 아랍 거주지역, 즉 1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자 평화협상과 관련된 구체적 쟁점을 거너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양자간 국 경획정, 2) 예루살렘 지위, 3) 정착촌 거주 이스라엘인들의 신변안전, 4) 이스라엘 거주 팔레스타인인들의 복지 및 권익증진, 5) 상대방 영토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주시 보상방안, 6) 수자원 분배의 문제, 7) 역내 경제발전 동학, 8) 역내 안전보장 강화 방안, 9) 평화협상 타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역할 등이다(Deborah J. Gerner, p.169).: 본문에서는 저자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핵심 쟁점을 따로 추려 설명했다. 28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웨스트뱅크에 145개, 가자지구 21개 및 예루살렘 15개 등 2005년까지 약 40만 명이 거주하는 180여개의 정착단지(Settlement complex)가 조성되어 왔다. 가자지구의 경우 팔레스타인 인구가 100만 명을 상회하고, 이스라엘 정착민이 7,500명에 불과함에 따라 아리엘 샤론 수상은 자신의 팔레스타인 국가독립 구상(two states solution) 을 추진하면서 가자지구의 정착촌을 2006년 9월에 완전 철수시켰다. 동시에 웨스트뱅크에서도 전략적 요충지 일부를 제외한 정착촌에서 철수 할 것을 밝혔으나, 샤론 수상의 유고로 인해 더 이상의 진전은 없는 실정 이다. 사실상 3차 중동전쟁 후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제242호에서 이스라엘이 점령지역에서 즉각적으로 군을 철수시킬 것을 명시하고 있음에 도 오히려 점령지역에 정착촌 건설을 지속해 왔다. 특별히 자원하여 정착 촌으로 이주해 들어가는 정통유대주의자 공동체(Gush Emunim, bloc of faithfulness)의 경우 현지에서 강력한 반아랍노선을 견지하며 분쟁의 최전 선으로 자리잡아왔다. 실질적으로 이스라엘 정부 차원에서 전략적 요충지에 정착촌을 계속 유지 해 왔던 관성과, 개별적 유대 열심주의자들의 자원 거주 추세가 맞물리면서 웨스트뱅크 정착촌의 완전 철폐는 현재로서 실현이 난망한 이슈가 되고 있 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샤론 수상이 추진하고, 올메르트 수상이 계승한 가자지구에서의 정착촌 완전 철수 및 웨스트뱅크 주요 정착촌의 유 지 프로젝트에 관한 논란이 분분했다. 샤론 구상'의 일환으로 추진된 정착 촌 재배치 프로그램에 의하면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에 내주고, 대신 상대적 으로 더 중요한 지역으로 평가되는 웨스트뱅크의 주요 도시 예닌, 툴카렘, 카킬라 등의 정착촌을 유지하려는 의도였다는 비판적 평가가 있다. 더불어, 웨스트뱅크에서 안전보장을 명분으로 현재 건설되고 있는 분리장 벽 문제도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평균높이 8m에 총 연장 730km로 34 억 달러의 건설비용이 소요되는 분리장벽은 2002년 6월 웨스트뱅크 북부 예 제3장 팔레스타인 평화 협상: 과정, 쟁점, 성격 29

닌에서 건설을 시작, 2005년 말에 공사가 완료될 계획이었으나 완공이 늦어 져 2008년 중반 즈음에 완료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분리 장벽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유로운 이주를 제한하고, 사실상 영토 축소의 의미를 가진다. 유엔에서 제시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향후 국 경선이 될 그린라인(greenline)을 점유함으로써 웨스트뱅크 전략적 요충지에 서 이스라엘의 실질적 영유권을 확대하려는 의도에 가깝다. 또한 약 20여만 명에 달하는 동예루살렘 주민들이 웨스트뱅크와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미 상당부분 공사가 진척된 만큼 향후 이 장벽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 인가가 평화협상의 화두로 등장한 셈이며 쉽지 않은 쟁점으로 이미 자리 잡았다. 국제법적 규범으로 볼 때 정착촌 철수는 3차 중동전쟁 이후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242호에 기초한다. 특히 1993년 오슬로 협상 이후 명시적으 로 이스라엘의 정착촌 철수가 선언된 이래 이스라엘의 협정 불이행 상태로 남아 있다. 더불어 제네바 협약 49조 점령국은 자국의 국민을 피점령국의 영토로 강제 이주시킬 수 없다 는 조항에 의거하여 정착촌 건설은 그 자체 로 협약 위반 성격이 강하다. 명분이 약한 웨스트뱅크 주요 지역 정착촌 유 지와 분리 장벽건설은 국제사회의 비난 여지가 있으며 이스라엘의 전향적 재검토가 요구되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웨스트뱅크 정착촌 문제와 분리장벽 안건은 사실 평화협상 관련 핵심현안 중 상대적으로 타결 가능성이 높은 쟁점이라 할 수 있다. 분리장벽 의 경우 유엔 및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고와 반발이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정착촌 문제 역시 기본적인 원칙이 수립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비교적 소수 인 이스라엘 강경파 정착민을 설득할 방안이 제시된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30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나. 동예루살렘의 지위 및 귀속협상 동예루살렘의 지위 및 귀속과 관련된 쟁점은 역사 문화 종교적 의미들 이 중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법적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자간은 자 국 국내법의 규범에 의해 각기 자신들의 영토임을 선언하고 있다. 1980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영구수도법 12) 과 팔레스타인 자치의회의 2002년 팔 레스타인 수도로서의 예루살렘 관련법 양자 모두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과 팔 레스타인의 영구수도임을 명시한다. 디아스포라(diaspora)로 1900여년 넘게 방랑하던 유태민족이 이스라엘 땅 에 정주하게 되는 시오니즘 의 본원적 고향인 예루살렘에는 유태교의 핵심 인 솔로몬과 헤롯 성전의 기초가 존재하고 있다. 사실상 이스라엘의 국가형 성 과정에서 예루살렘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단순하다. 전 세계에 편만하게 흩어진 유태인들의 정신적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이자 정치적인 핵심거점이 었던 것이며 서기 77년 로마에 의해 패망한 이스라엘이 1948년에 독립을 달성하게 된 마음의 고향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2000년 동안 늘 예루살렘을 그리며 지중해 각국을 떠돌던 유태인들에게 예루살렘은 양보할 수 없는 절 대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자리잡았다. 팔레스타인인에게 예루살렘은 이슬람 3대 성지 중 하나로 과거 살라딘 시 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슬람의 영화가 용해되어 있는 역사적 지역이다. 나 아가 예루살렘은 웨스트뱅크의 주요 도시를 방사형으로 연결하는 제반 도로 와 물류시설의 중심인 전략적 요충지이므로 팔레스타인으로서는 향후 완전독 립을 이루었을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이란 측면에서 양보 가능성은 전무하다 고 할 수 있다. 12) 이스라엘이 1980년 7월 30일 선포한 이스라엘의 영구 통합수도 인 예루살렘 기본법은 다음달인 8월 20일 유엔안전보장 이사회 결의안 478호에 의해 철회를 요구받았다. 이는 4차 제네바 협약의 정면위 반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잇달았으나 이스라엘은 무시하였다. 제3장 팔레스타인 평화 협상: 과정, 쟁점, 성격 31

1차 중동전쟁 이후 예루살렘이 분할되며 동예루살렘이 요르단의 치하에 편입된 후 1973년 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했다. 이후 공식적 으로는 이스라엘의 관할하에 있지만 실질적으로 동예루살렘은 대부분 아랍 거주지역으로 고착되어 왔다. 2000년 에후드 바라크와 아라파트간 동예루살 렘 지위협상에서 이스라엘 측이 당시까지의 강경한 노선에 비추어볼 때 파 격적인 동예루살렘 구시가지 상당부분 양여방안'까지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라파트는 예루살렘 영유권의 완전한 팔레스타인 이양을 주장하다가 회담이 결렬되었던 사례가 있었다.. 결국 역사 종교적 함의와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의미를 갖는 이 지역의 영유권 문제는 사실상 공동관리 외의 적실성 있는 대안을 도출하기는 힘든 사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실질적 행정수도인 텔아비브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행정수도인 라말라를 양측의 공식적 수도로 명시하 고, 예루살렘을 종교 성시( 聖 市 )로 선언하여 종교기관에 의한 공동관리체제 로 재편하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다.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의 문제 1948년 1차 중동전쟁(팔레스타인 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나온 아랍인들이 인근 국가로 대거 유입되었다. 4 차례의 중동전쟁을 거치면서 발생한 난민들까지 2007년 현재 약 420여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인근 아랍국가 혹은 점령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공식적으로 집계된 통계에 의하 면 요르단에 171만 명, 시리아 41만 명, 레바논 39만 명, 가자지구 93만 명, 웨스트뱅크 67만 명 등으로 산재되어 거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110만 명 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서 운용하는 59개 난민수용소 에 배치되어있고, 나머지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도시 빈민생활을 전전하며 궁 32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핍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지속적인 평화협상의 의제로 등장하는 난민귀환의 문제가 실현될 경우, 이 스라엘로서는 심각한 국가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완전 분리독립이 실현되기 전까지는 현재와 같은 불안정한 국가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 입장에서 난민귀환 인정은 곧 인구비율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재 530만 유태인과 150만 아랍인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인구분포에 420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귀환할 경우, 인구 역전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이 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들 난민들의 팔레스타인 유입 은 이스라엘 안전보장에 심대한 위협이 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사실상 아리엘 샤론 전 수상이 팔레스타인 완전독립 구상 (two states solution)을 강력하게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인구변수 (demographic factor)가 가장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정착촌과 예루살렘 문제에 관한 한 협상의 여지를 보이고 있지만, 난민 귀환에 관하여는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취하며 여하한 타협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난민귀환 문제는 팔레스 타인의 완전 독립 이후 단계적인 난민 허입안이 제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 며, 이스라엘과의 불가침협정 등 고도의 안전보장 기제를 담보하여야 할 것 으로 추측된다. 3. 평화협상의 도전 요인13) 가. 협상 당사자의 불안정성 주요 당사자의 내부적 의견 균열 요소가 상존함에 따라 지속적이고 안정 13) 평화협상의 구체적 도전요인에 관하여는, 인남식, pp. 8~9 참조. 제3장 팔레스타인 평화 협상: 과정, 쟁점, 성격 33

적인 평화협상 추진을 방해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온건 노동당과 강경 리쿠드 간의 정권 교체가 지속되면서 일관된 대( 對 )팔레스타인 협상 추진에 제동이 걸리는 사례가 빈발했다. 아울러 일반적으로 불안한 연정으로 정부가 구성되는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의 특성상 쟁점 이슈로 인한 논란이 증폭 될 경우 소수 정파의 연정탈퇴가 다반사이므로 특정 리더십의 비전이 강력 하게 이행될 수 있는 토대가 매우 취약한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탈피하고자 아리엘 샤론 전 수상은 리쿠드와 노동당의 일 부 인사들과 함께 카디마(전진) 당을 결성하였으며, 샤론 수상의 유고 이후 선거에서 크네세트 제1당의 지위를 유지, 에후드 올메르트 수상이 연립정권 을 이끌고 있으나, 2006년 레바논과의 분쟁 이후 현재 올메르트 수상의 영 향력이 급속도로 저하된 상황이다. 이스라엘 내부 정치구도의 불안정성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내부의 균열 요인도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다. 사실상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35년간 모든 팔레스타인의 협상 창구는 아라파트 일인에 게 수렴되었었다. 아라파트는 망명정부 지도자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독점적 정치권력을 행사했으며 이러한 절대 권력에는 14개에 달하는 군벌들을 독립 적으로 산개시켜 운용하며 때로는 폭력적 투쟁을, 때로는 대화와 협상 등 강 온 양동전략을 구사했었다. 아라파트의 부재상태에서 등장한 마흐무드 압바스 정권은 국민들의 지지 로 정권을 잡았으나 하마스의 강력한 부상을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2006년 1월 132석을 두고 경합한 팔레스타인 입법의회(Palestinian Legislative Council) 선거에서 하마스가 74석을 차지함에 따라 행정수반과 입법부의 정파가 나뉘어지는 이른바 팔레스타인판 여소야대 현상이 나타 났다. 갈등이 지속되며 의회 해산까지 이르는 등 정치적 불안정한 팔레스타인 내부 상황도 전반적으로 이-팔 평화협상의 진전에 난항을 초래하고 있다. 34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PLO 및 파타 출신의 온건 협상파와 하마스 류의 강경 무장투쟁 노선이 극 단적인 이항대립을 표출하고 있으며, PLO와 자치정부에서 무장해제를 추진 해도 이를 강제할 만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내부 갈등이 고조되는 형국이다. 나. 중재자의 이행 감독 강제력 및 불편부당성의 부재: 엄밀한 국제 중재 보장 시급 미국 및 국제사회가 중재하는 다양한 합의 일정 설정 이후에도 이를 이 행하도록 강제하고 감독할 만한 국제사회의 개입 수단이 실질적으로 없다. 이러한 구체적 수단의 부재로 인해 합의사항 불이행에 관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입장에서는 외부 중 재세력, 특히 미국의 불편부당성이 담보되지 않음으로 인해 미국을 중재자로 서 신뢰하기 힘들다는 정서가 편만해 있다. 대표적 사례로 이스라엘의 핵문 제에 대해 미국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 데 대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권 은 반발하고 있다. 특히 2006년 7월에 일어났던 레바논과의 교전 당시, 베이루트를 폭격하고 공항과 항만을 봉쇄하는 군사작전을 감행한 이스라엘에 대해 국제사회가 과 잉대응 으로 규정하고 이를 유엔 결의안으로 상정하려 하였다. 이때 미국이 이를 내정간섭 으로 받아들이고 결의안 상정에 반대하는 등 이스라엘에 대 하여 국제사회가 표명하는 적정수준의 비판도 거부하는 행태에 불만이 폭증 하고 있는 형편이다. 2007년 11월 아나폴리스 중동평화회의는 미국의 새로운 중재 노력을 보 여주고자 추진된 국제협상이다. 4자가 주도하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대면시키고, 이를 아랍 및 유럽 등 국제사회 50여 개 국가들이 지지 한다는 형태의 대규모 중재회의이다. 결국 편파적 친이스라엘 노선이라는 비 제3장 팔레스타인 평화 협상: 과정, 쟁점, 성격 35

판을 받는 미국이 시리아를 초청하는 등 그간 대립관계를 설정하던 국가도 참여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불편부당한 모습을 보여준 회의라 할 수 있다. 다. 쟁점의 비타협적 성격: 리더십의 결단 필요 앞 장에서 기술한 평화구축 도전요인들은 사실상 타협이 거의 불가능한 사안이다. 단순히 일부 영토의 양여 차원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권과 연관 되어 있다고 믿는 필수 안보관련 쟁점에 관해서는 한발자국도 물러나지 않 으려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정착촌의 경우 웨스트뱅크 지역의 3대 거점을 반드시 유지할 것임을 선언 하고 있으며 요르단과의 접경지역인 요르단 밸리(Jordan Valley) 지역의 정 착촌들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이 지역은 향후 예측 가능한 아랍국가와의 교 전 상황에 대비하여 군사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지역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 문이다. 반면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독립 이후 자신들의 영토 내에 27만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국가 내 섬 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기에 이 쟁점은 타협점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 다. 또한 전술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귀환할 경우, 접 경지역의 안보상황 악화를 초래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이 문제 역시 타결 이 난망한 사안이다. 핵심 쟁점 중 민족적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현안의 경우에는 더더욱 복 잡하다. 사실상 이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논의되어야 할 정치적 문제에 관하 여 신앙과 신념으로 자살테러까지 감행하는 상황에서 영토 주권의 문제 등 에서의 타협을 도출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특히 예루살렘 영유 권 문제는 종교 역사 문화가 결집되어 용해된 곳으로 양자가 인식하고 있 기에 더더구나 타협이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예루살렘의 경우 양자가 공히 공동관리 혹은 분할을 인정하는 방향을 취하지 않는 한 사실상 협상 타결 36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가능성은 별무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리더십의 결단과 대국민 설득능력이 필수적으로 요청된 다. 사실상 1993년 오슬로협정의 주역 이츠하크 라빈이 암살되고, 2000년 캠프데이비드협상 대표였던 에후드 바락의 실각, 또한 마흐무드 압바스의 정 치적 곤경 등,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자 리더십 영향력을 발휘하려 하는 결정적인 순간 상황이 급반전하곤 했다. 결국 향후 양자간 풀기 힘든 쟁점들 을 다루어나가는 정치적 책임자들의 결단과 의지가 매우 중요하나, 전개되는 정치현실은 그러한 결단과 의지를 좀처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제3장 팔레스타인 평화 협상: 과정, 쟁점, 성격 37

제4장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내외 정세 이철원 신현준 1. 이란의 부상과 시아파 연대의 확산 이라크 상황이 악화되면서 현재 이란의 부상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란의 국시로 알려진 것처럼 이슬람 혁명의 수출을 통하여 중동 내 반이슬 람 세력을 해체하고, 초기 이슬람 공동체를 회복한다는 원칙론을 내세우며 이슬람 이념에 의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슬람 혁명 수출 노선과 더불 어 구체적으로 걸프 연안의 거대 시아블록 구축 가능성이 점차 현실로 드러 나고 있다. 이라크 시아파 집권층 내부의 반목과 갈등이 상존하고 있고, 과격 시아파 지도자인 무끄따다 알 사드르 계열의 영향력이 확대될 경우 이란의 이라크 개입은 현재보다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견된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걸프해안 지역인 알 하사(al Hassah) 지역은 시아파 다수 거주지역으로 비 옥하고 유전이 많이 밀집된 곳이다. 석유개발 이권을 독점하고 있는 리야드

의 사우드 왕가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상당수 감지되는 곳이 바로 이 시아 파 밀집지역이다.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향후 걸프를 가로지르고, 또 인근 이라크의 영향을 받아 시아파 정체성이 공고화될 가능 성도 배제할 수 없어 사우드 왕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란-이라크-사우디 알 하사로 이어지는 시아 벨트가 조금씩 인구에 회 자되면서 세력 동심원의 확장을 통해 이란 주도의 시아파가 아라비아 반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지로 확대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전망되고 있다. 결국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화 담론과 상충되는 의미에서, 서구식 민주주의 가 아닌 이란-이슬람 민주주의 의 수월성에 관한 중동권 공공외교(public diplomacy)가 가시화될 경우 그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더불어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 남부 헤즈불라로 연결되는 시아 초 승달지대론(Shiite Crescent)도 새로운 관찰 포인트가 되고 있다. 즉 이라크 에서 친이란세력 시아파가 확대되고, 시리아를 거쳐 레바논 남부의 시아파 정치단체인 헤즈불라가 일종의 회랑( 回 廊 ) 지대를 형성하면서 육로로 이스라 엘 북부와 연결된다. 이는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매우 큰 위협 요인이 된다. 즉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향후 3~5년 내 핵무기 를 보유하게 될 경우, 별다른 핵 투발 장치 없이도 육로로 전술핵을 이동시 켜 이스라엘을 타격할 수 있으리라는 위협 인식으로 작용한다. 이란의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멸절시 켜야 한다는 초강성 수사학을 구사하며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있고, 2006년 에는 테헤란에서 홀로코스트 허위 입증을 위한 국제회의 를 개최하여 이스 라엘 및 전 세계에 흩어진 유태인들의 공분을 초래했다. 즉 이스라엘은 이란 의 부상을 매우 위협적인 추세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란 행정부 최고 수반 의 반이스라엘 강성발언 역시 실체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4장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내외 정세 39

2. 레바논 사태와 이스라엘 내정 혼란 2006년 7월 12일 남부 레바논 이스라엘 접경지역에서 발발한 헤즈불라의 기습공격을 기화로, 8월 14일까지 한 달 동안 이스라엘과 헤즈불라간 거의 전면전에 가까운 교전이 지속되었다. 이스라엘은 헤즈불라 소유 알 마나르(al Manar) 방송국의 베이루트 본부 및 레바논 동남부 골란고원 접경지대, 그리 고 레바논 남부 전역의 헤즈불라 거점 지역을 집중 폭격했다. 이에 맞서 헤 즈불라는 이스라엘의 북부 대도시인 하이파를 타격하는 등 분쟁 강도가 급 격하게 심화되었다. 교전 개시 후 한 달간 헤즈불라측은 약 3,500여기의 로 켓 공격을 시도하였고, 개전 후 사망자는 레바논측 1,141명, 이스라엘측 124 명으로 집계되었다. 사태 악화를 우려한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레바논 남부에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UN Interim Forces in Lebanon)을 증파하여 상황을 진 정시키고 장기적으로 안정을 유지해 나갈 방침임을 천명하였고, 인근 아랍국 가 및 국제사회가 본 방침에 대하여 찬성을 표함으로써 현재 UNIFIL 증파 는 완결되어 있는 상황이다. 본 교전이 종식된 후 그 여파는 상반되게 나타났다. 레바논 남부의 시아 파 정치세력인 헤즈불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전쟁 영웅이 된 반면, 이 스라엘은 실질적 패전임을 자인하고 극도의 내부혼란 상태가 전개된 것이다. 헤즈불라의 경우 과거에 레바논 남부 리타니 강 근처에서 이스라엘에 대해 국지적 국경도발을 주로 해왔으나, 이번 교전에서는 이스라엘 3대 도시 중 하나인 하이파를 직접 타결할 만큼 무력을 갖추고 있었고, 실질적으로 이란 의 지원을 받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젤잘 2 미사일의 경우 텔아비 브도 타격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스라엘은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는 본 교전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 다는 여론이 비등함에 따라 사태의 자초지종을 파악하는 위노그라드 위원회 40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를 만들었고, 2007년 여름 첫 중간보고서가 나왔으나 아직 최종본은 발표 되지 않았다. 위노그라드 최종보고서에서 이스라엘 행정부 리더십의 오판이 나 문제점이 드러날 경우 이스라엘의 집권 카디마 당은 급격하게 약화될 가능성이 크며, 강성 지도자인 네타냐후가 정치 전면에 복귀할 가능성도 상 존한다. 3. 파타와 하마스간의 갈등관계 증폭 2006년 1월 25일 팔레스타인 입법회의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였다. 파타와 하마스 간 양대 구도로 치러진 선거에서 지역구 개표결과로는 하마스의 압 승이 확인되었으나, 정당명부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거의 박빙의 결과였다. 하마스는 집권 파타의 부패와 무능을 집중적으로 홍보하였고, 사실상 정부 수립이 10년이 넘었음에도 거의 행정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파타의 부패 로 인해 하마스가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방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에서 테러리스트 그룹으로 분류되는 하 마스가 집권하자 유럽 및 미국은 하마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내 각에게는 기존에 지원하던 원조 예산을 송금할 수 없음을 밝혔고, 실질적인 경제제재 상태로 돌입하게 되었다. 유럽과 미국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인정 하고, 테러리즘을 포기한다는 가시화된 행동을 보이지 않는 한 재정지원을 할 수 없음을 확정하면서 상황이 악화되었다. 결국 국가 운영의 한계에 부딪힌 압바스 수반은 2007년 6월 14일 내각을 해산시킴으로써 중립 비상내각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에 반발하는 하마스는 압바스가 이끄는 파타에 대하여 무쟁투쟁을 시도하였고, 폭력적 사태로 발전 하면서 현재 파타와 하마스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 다. 내전 수준의 교전이 오고 가면서 현재 웨스트뱅크 라말라에는 압바스가 제4장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내외 정세 41

이끄는 파타 정부가, 가자지구 가자시티에는 하마스가 장악한 채 기존의 팔 레스타인 자치정부 완전독립을 의미했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리독립 해 결책(two states solution) 이 3국 분할(three states solution) 로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4. 4자 중재 외교(Quartet Diplomacy): 국제사회의 공동 관 심사 유도 2007년 11월 미국 아나폴리스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 한 4자 중재 외교의 장이 마련되었다. 미국과 러시아, 유럽연합과 유엔이 함 께 참여하여 국제사회의 공식적 중재와 보장 입장에서 보다 적실성 있는 대 화의 장을 마련하려는 의도이며, 현실적으로 이러한 4자 중재 외에는 다른 형태의 중재, 개입 외교를 구상하기 힘든 형편이다. 그러나 주어진 제약조건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획기적이고 전향적인 방안이 도출될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인 견해는 거의 없다. 다만 그동안 중단되었던 국제사회의 구체적 중재를 통해,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올메르트-압바스 정례 정상회담을 가일층 격려하고, 필요한 국제사회의 지원방안을 모색하는 첫 회의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동안 중동 평화협정의 주요 중재 당사자였던 미 국과 유럽 외에 러시아가 참여하고, 유엔도 구체적인 역할을 약속함으로써 중재의 폭과 깊이가 넓어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있다. 42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제5장 팔레스타인 문제의 국제적 함의 이재영 박상남 이지은 팔레스타인 문제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는 분쟁 사안이 아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간의 반세기간에 걸친 영토 분쟁은 곧 아랍제국과 이스라엘 간 의 전면적 분쟁으로 자연스레 연결되어 왔다. 나아가 아랍제국과 이스라엘 간의 분쟁은 냉전과 맞물리면서 동 서양 진영의 개입 국면까지 초래되었 고, 이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범세계적인 분쟁의 핵으로 자리잡아왔음을 의 미한다. 현재 만성적인 갈등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랍 이슬 람 테러리즘 문명갈등 난민 등 복잡다기한 21세기의 분쟁문제가 녹아 있 는, 사실상 국제정치질서를 흔드는 불안정요인이 응축되어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역발상으로 이 지역에서의 평화노력을 국제사회가 최선을 다해 지원 하고 가시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단히 어렵긴 하지만 이러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복잡한 갈등관계를 해소하고, 중동지역 뿐만이 아닌 국제평화의 기점이 될 수 있다는 공통의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1세기 국제정치질서에서 몇 가지 팔레스타인이 안고 있 는 함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아랍의 박탈감 중첩 지역 4차에 걸친 대부분의 중동전쟁은 결국 이스라엘과 아랍간의 전쟁이었다. 이를 볼 때 팔레스타인 분쟁문제는 결국 아랍 아이덴티티라는 거대 정체성 공동체와 이스라엘이라는 특정 국가 정체성간의 대립 구도를 띠면서 전개 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아랍 정체성은 까우미야(qawmiyyah: ethnolinguistic concept of peoplehood) 개념 14) 에 기반하여 아랍간의 단결과 일 치를 통하여 구 식민시대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겠다는 아랍민족주의의 토 대이다. 사실상 1차대전 이전까지는 이러한 아랍 정체성은 그리 공고하지 못했다. 오히려 부족단위의 정체성 개념이 강했고, 이에 따라 부족 공동체가 최우선 의 정치집단을 형성했다. 여기에 특정 국가 정체성(wataniyyah identity)이 혼합되어 있던 양상이었다. 특히 무함마드 알리부터 파루크 정권에 이르는 이집트는 아랍의식과는 상관없는 전형적인 이집트 중심 정체성이 지배적이었 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독립선언과 함께 이에 대응하는 거대한 공동체 정체 성이 급격히 부상하였다. 팔레스타인 전쟁에 참전했던 아랍국가들 내부에서 아랍대의(Arab cuase) 를 강조하는 움직임이 부상하였고, 이를 구체화하고 촉진시킨 이가 이집트의 낫셀(Gamal Abdul Nasser) 대통령이었다. 낫셀이 이끌던 아랍민족주의는 크게 낫세리즘(Nasserism)과 바티즘 (Baathism)으로 대별되는데, 양자 모두 아랍의 통합, 사회주의, 적극적 중립 14) William L. Cleveland, p. 127. 44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주의 등을 내세우면서 아랍 귀속의식 을 최우선시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랍권의 공공의 적 이스라엘에 의해 핍박당하는 팔레스타인의 존재는 아랍 민족주의자들에게 가장 아픈 상처였다. 그러나 연이은 중동전쟁에서의 패퇴와 낫셀의 서거, 그리고 일련의 사건으 로 인해 아랍 대의에 의거한 민족주의는 빛을 잃게 되었다. 특히 1960년대 일련의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중동 레반트 지역의 국가들은 극단적으로 권 위주의화되는 폭압 정치의 경향을 띠게 되었고, 아랍인들 사이에서는 이들 정권에 대한 반발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취약한 정통성 문제에 시달리게 된 아랍의 왕정과 권위주의 공화정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무능과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투사하는 행태가 지속 되었다. 15) 즉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요인을 아랍세계간의 타협된 합의 라는 내부적 요인으로 지목하는 견해들이 점차 설득력을 얻었다. 구체적으로 아랍의 대동단결이 무너진 사례는 다음과 같다. 1971년 요르 단 후세인 국왕 암살기도 사건관련 PLO 축출, 1975년 레바논 내전시 시리 아의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은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와 연합하여 PLO와 좌익 아랍그룹을 공격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 은 이집트-이스라엘간의 캠프데이비드 평화협정이었다. 여기에 최근 걸프전 과 이라크 사태 등은 아랍국가들 사이에 더 이상 낫셀이 주장하던 아랍 대 의 가 존재하지 않음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담의 체포와 처형, 그리고 리비아의 무암마르 까다피(Muammar Qadafi)의 전향 등 사건을 통해 아랍민족주의의 동력은 상실되었다. 냉전종 식의 해체 이후 이념의 공백상태에서 중동 국민들은 새로운 이념을 희구하 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하여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 입장에서는 동정과 연민을 보내고 있지만, 자국의 국가 이익에 상충되고 안 15) 배리 루빈(2007) 참조. 제5장 팔레스타인 문제의 국제의 함의 45

보 위협과 연관될 경우에는 아랍 일원의 민족공동체 개념에 입각하여 행동 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확실해져가고 있는 셈이다. 아라파트가 이끌었고, 현재 마흐무드 압바스가 지도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 여당인 파타 당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지원과 지지를 획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질적으로 걸프를 중심으로 한 아랍 왕정국가의 경우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전술한대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자국의 불만에 대한 대체투사지역으로 이용하며 원만하고 종국적인 타결을 강력히 바라지 않는 측면이 있다. 즉 현상유지(status quo)를 일정부분 바라는 것이다. 동시 에 팔레스타인인들이 겪는 고통은 역시 아랍이 공유해야만 하는 고통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실질적으로 이 문제에 관한 심리적 박탈감이 매우 광범위하 게 아랍세계에 퍼져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아랍세계의 대서방, 대기독교권 적대감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단계가 역시 팔레스타인 문제의 궁극적 해결이 되어야 함은 일반적인 인식이다. 결국 중동 분쟁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작동하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아랍 대중의 심리적 박탈감과 패배 주의를 일정부분 극복할 수 있다. 이는 곧 비이성적인 증오가 양산되고, 이 로 인한 무차별적 테러리즘으로 대중을 오도하는 추세를 진정시킬 수 있는 효율적 방안이 바로 팔레스타인 안정화라 할 수 있는 것이다. 2. 이란 주도 이슬람 혁명 확산의 잠재 거점 아랍 민족주의가 최대 목표로 내세운 아랍의 통합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 고, 기존의 아랍왕정, 공화정 모두 공히 전제화되면서 아랍 의 가치를 대체 할만한 정치이념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경제 피폐, 삶의 질 저하 등 중동지 46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역의 전반적인 민생이 악화되면서 박탈감이 상승했고, 산유국과 비산유국간 격차 심화 역시 새로운 이념에 대한 요구를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서구 기독교 문명권에 비하여 발전이 지체되는 현상에 대한 역사적 패배 의식 심화와 맞물리면서 9 11테러 이후 미국에 의해 강력하게 추진되어 온 반테러 전선은 결국 이슬람권과 서구와의 문명론적 이항대립관계를 형성했 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은 이슬람의 위협을 상쇄시키고 새로운 자유민주주 의의 질서를 중동지역에 구축하기 위해 대중동정책의 핵심으로 민주주의 확 산 구상을 실현시키려 하였다. 민주주의 확산 구상인 확대중동정책(The Greater Middle East Initiative) 은 미국의 주도하에 중동 지역 각국의 정치제도에 변화를 가져오면서 단순 다수의 대표성을 원칙으로 하는 투표제도 도입 등 중동 각국의 민주주의 제 도를 착근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사우디, 이집트, 요르단 등 친미 권위주의 왕 정 및 공화정 중동 국가들은 이러한 제도화의 압박에 반응하여 정치지도자 충원과 관련된 제도와 법률을 수정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의 의도와는 달리, 개정된 선거법에 의거하여 선거를 실시한 결과 의외의 결과들이 양산되었다. 대표적으로 하마스 정권이 수립되 었던 사례와 여기에 이집트 불법 테러단체 무슬림 형제단(al Ikhwan al Muslimin)의 의석 88석 획득 16), 요르단 레바논의 이슬람 정파 의회 진입 및 사우디 지방의회의 이슬람 정파 등장이 그 예이다. 결국 민주화의 확산보 다는 오히려 이슬람 과격주의의 제도권 진입이 가속화되는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중동에서 팔레스타인의 입지는 이러한 이슬람 정치화의 상황과 연동되고 16) 무슬림 형제단은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모태가 될 만큼 중동 지역에서 강력한 영향력과 네트워크를 구 성하고 있는 단체이다. 개정 이집트 헌법에 의하면 특정 정치단체가 의회에서 60석 이상을 유지할 경우 대통령 선거에 후보를 출마시킬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차기 이집트 대통령 선거에서 중동 내 가장 강력한 반서구 무장투쟁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이 후보를 낼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제5장 팔레스타인 문제의 국제의 함의 47

있다. 즉 과거에는 아랍권이 팔레스타인을 위하여 이스라엘에 대항해왔 던 국면이라면, 이제는 이슬람 전통주의 정치노선이 팔레스타인 입지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양상은 이란의 부상과 맞물린다. 현재 중동지역 내에서는 이란이 최대 패권국가로 급부상하고 있는 실정 이다. 이는 1979년 호메이니(Grand Ayatollah Khomeini) 이슬람 혁명 이후 이슬람 법학자가 최고 권위 지도자로 옹립되는 구조(법학자 통치론, Velayat-i-Faqith System)을 기반으로 이슬람 가치를 내세워 지역 패권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라크 사태 악화과정에서 사실상 이라크 내 이란의 영향력은 급등했다. 기존의 이란은 서쪽으로는 사담의 세속주의 아랍민족주의 공화정, 동쪽으로 는 시아파를 경멸하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의해 양면 견제를 받았 었다. 그러나 9 11테러 이후 전개된 일련의 반테러 전쟁(아프간 전쟁, 이라 크 전쟁)을 거치면서 이란은 사실상 인근 접경국가로부터 위협이 사라진 상 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리 알 말리키 총리가 이끄는 이라크 행정부 는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공공연히 언급함으로써 미국을 불편하게 하고 있 을 뿐 아니라, 평화적 이용을 전제로 이란의 핵 개발을 이해할 수 있다는 발 언까지 함으로써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7) 현재는 이라크가 미국과 치안공 조를 하고 있지만, 향후 미군 철군 후 이라크 정권은 이란과의 관계개선 방 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견된다. 이라크 시아파 행정부 내부의 강온 대결구도에서 시아파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끄따다 알 사드르(Muqtada al Sadr) 계열 등 과격 시아파에게 밀 리는 국면이 지속됨에 따라 향후 이라크를 필두로 이란이 주도하는 시아파 17) 2006년 5월 26일 이란의 모타키(Mottaki) 외무장관이 바그다드를 방문하여 이라크 석유 공동개발 프 로젝트를 선언했고, 실질적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이 이라크와의 석유 공동개발을 추진한다는 사 실에 미국의 불만이 고조됨. 특히 말리키 내각 각료들이 2006년 7월 이란의 평화적 핵주권을 원칙론 적으로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미국과 이라크 간의 골이 깊어짐. 48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연대는 반미, 반서구, 반이스라엘 노선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 사실상 이스라엘의 경우 현재 이라크 상황을 비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향후 이란과 이라크 간의 협력관계가 가속화될 경우 이스라엘의 안보환경은 최악에 이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 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존립을 심각하게 위태롭게 할 수 있으므로 이에 관 하여 미국과 함께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핵무기가 완성 될 경우,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반 이스라엘 경로를 통해 바로 이스라엘 국경까지 전술핵이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더욱이 이스라엘 영토 내부에 있는 수많은 하마스 샤히드(자살테러) 전사들 이 이스라엘 내부에서 핵을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즉각적 인 강경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은 시아파 혁명노선의 수출을 국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노선은 기존 순니파 정권에게는 자신들의 정권 안위와 직결된 것으로 우려를 갖게 하기 에 충분한 움직임이었다. 이란은 지역 패권 국가 부상을 추구하면서 이슬람 정체성을 강조했고, 이에 관하여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던 아랍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공공외교를 펼치기 시작했는데, 순니-시아간 갈등관계 이상 의 심화된 갈등분쟁 상태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천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팔레스타인 외교를 펼치면서 이란은 아랍국가와의 고전적 동맹관계를 설정해오던 파타 정부와 다른 라인을 설정했다. 즉 하마스에 대한 물밑 지원 을 통해 영향력 확대를 추구했다. 실질적으로 하마스는 비록 종파는 순니파 이지만 대이스라엘 투쟁을 전개하는 데 있어, 이란의 지원을 금전적, 군사적 으로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스라엘 북부(레바논 남부) 리따니 강 이남의 블루존 근처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은 헤즈불라의 지원과 도 움을 받고 있다. 헤즈불라는 이란의 직간접적 지원을 받는 레바논내 시아파 정치세력으로서 이들이 레바논에 산개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촌과 연계되어 있 제5장 팔레스타인 문제의 국제의 함의 49

음은 이란의 영향력이 하마스, 헤즈불라 축을 통해 팔레스타인내에서 심화되 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이란은 자신들의 이슬람 노선 확대 및 순니파 설득의 기제로 공공의 적 이스라엘에게 고통받는 팔레스타인을 부각시킴으로써 자신들의 리더십을 확고히 하려는 것이다. 사실상 중동 내외의 모든 무슬림들에게 이스라엘 문 제만큼 심리적 패배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은 없으며, 이스라엘과 투쟁 전선 에 있는 하마스를 이슬람의 이름으로 적극 지원하는 본 흐름은 사실상 이란 의 영향력을 제고시키고 향후 지역 패권국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3. 글로벌 테러리즘의 잠재적 온상 또 다른 측면에서 팔레스타인은 국제 테러리즘 환경의 최적지로 될 가능 성이 있다. 이는 향후 완전 독립을 추구하는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최대 도 전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느슨한 형태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산하는 알 카 에다를 비롯한 국제 테러리스트 단체들은 미국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최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투쟁을 위해 전위대격의 팔레스타 인 영토 내에 자신들의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야세 르 아라파트 사후 등장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국 제 테러리스트 그룹과는 선을 긋고 이스라엘과의 공존 노선을 모색함으로써 테러리스트들이 웨스트뱅크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내부에 자리잡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하마스와 파타간 갈등이 격화되고 웨스트뱅크와 가자간의 갈 등 구도가 심화됨에 따라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국제 테러리즘 조직이 침투 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이집트 시나이 반도 쪽에서 터널을 뚫어 이스라엘 체크포인트를 통과하여 무기와 군수물자가 밀반입되고 있다는 50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설이 공공연히 확산될 정도로 가자지구는 현재 테러리즘 조직망이 취약해지 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가자지구에 근거지를 둔 하마스 세력은 이란과의 결속력이 강하므로 이란과 대척점에 서 있는 알 카에다 등 순니파 테러리스트 조직과 는 아직 구체적인 연대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마스와 파타간의 갈 등이 지속되고, 이스라엘 인근 접경지대에서 혼란이 심화될 경우, 현재 이라 크 중동부 지역에 거점을 두고 있는 테러리스트 조직이 팔레스타인 가자지 구 쪽으로 근거지를 이동시킬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미국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테러리스트의 진입을 막고 팔레스타인의 안정적 독립을 보장하여 역내 안정성을 정상화시켜야 한 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자칫 상황이 안정적으로 관리되지 않을 경우 테러리 즘 확산의 거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국제적 관심이 요구되는 시 점이다. 팔레스타인은 21세기 신( 新 )안보환경의 새로운 아젠다인 대테러전의 핵심 적인 요소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라크에서의 환경변화가 직접적으로 팔레스 타인 영토 내부에서의 테러리스트 거점 발호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간 과할 수 없다. 더욱이 앞에서 언급한대로 팔레스타인 문제는 테러리스트들 이 즐겨 사용하는 반이스라엘, 반미 수사학의 핵심으로 자리잡으면서 테러 리즘을 확대 재생산하는 주요 소재로 이용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와 글 로벌 대테러리즘 전선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시 급한 상황이다. 4. 문명(종교) 담론의 격전지 앞 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팔레스타인 문제는 단순히 현재시제의 고토회 제5장 팔레스타인 문제의 국제의 함의 51

복운동(irredentism)을 둘러싼 영토분쟁의 기제로만 설명될 수 없다. 신앙이 개입된 초월적인 개념으로서의 분쟁 국면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팔레스 타인 웨스트뱅크와 접경하고 있는 예루살렘 문제는 이스라엘 건국의 정신적 토대인 유대교의 시오니즘과 이슬람 제3위 성지인 알 아크사 모스크에 대 한 수호의지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쟁점이다. 여기에 기독교의 핵심 성지이 기도 한 예루살렘은 문명간 갈등과 균열 요소가 응집되어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문명담론, 즉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충돌론과 하랄트 뮬러의 문명협력론의 논리가 첨예하게 부딪혀 오면서 실제로 기독교 권과 이슬람권간의 갈등 국면이 주목되었다. 예루살렘은 이러한 문명 갈등의 상징적 고리로 작동할 수 있었고, 이를 반영하여 웨스트뱅크의 영토 경계 설 정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냉전종식 이후 새롭게 등 장한 국제정치 갈등구도인 문명담론의 구체적 사례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 으며, 아랍 대중들의 분쟁을 내면화하는 중요 기제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의 완전 자주독립과 성장동력 확보가 전제되지 않는 한, 중동 분 쟁의 인식론적 기저가 상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 미국의 이스라엘 안보정책 변화 미국의 대중동정책에서 두 가지 키워드는 석유 와 이스라엘 이다. 원유 공급의 안정성 확보는 국제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며 특 히 최근 공화당 행정부의 주요 관심 사안이다. 더불어 이스라엘의 안전보장 역시 정치적인 의미에서 핵심적인 관심사이다. 이스라엘 국가수립과정에서 영국에 비해 구체적 개입을 표출하지 않았 52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던 미국은 냉전을 거치면서 중동내 최대 우방으로 이스라엘을 설정하였다. 여기에 미국내 유대인의 영향력이 점증하면서 AIPAC(American Israelite Public Affairs Committee)등의 이익단체를 통하여 실제적인 정치 압력을 유지해왔다. 각종 로비와 영향력 그리고 정부내 핵심 위치에 유대인들의 진 출이 확대되면서 미국은 이스라엘 문제에 대하여 불편부당한 중재자의 역할 을 견지하지 못하고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친이스라엘의 편파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18) 오슬로협정 이후 미국은 일시적인 평화유지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영 구적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체제 구축을 구상하였다. 이라크 사태로 인해 한동안 지지부진하던 미국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중재노력 은 팔레스타인 리더십 교체, 즉 아라파트의 부재와 압바스의 등장, 그리고 이스라엘의 강성지도자 아리엘 샤론의 태도변화와 맞물려 희망적 징후를 발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시 행정부의 로드맵이 다시 한 번 부각되고 있으며, 이 로드맵에 의해 팔레스타인의 영구적 국가독립 방향이 설정되고 진행되고 있다. 사실상 미국은 냉전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외생적 위협에 대한 공세적 방 어를 지지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완전 독립시키고, 이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안전보장을 체계적으로 제 도화하려는 노력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대팔레스타인 인식과 이와 연관된 향후 비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으며, 이는 향후 팔레스타인의 정상 국가화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무엇보다 현재 중동지역에 편만한 반미감정의 해소를 위해서는 미국과 서방이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원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편파적 태도를 철 회하여 중동 아랍국가 대중들을 위무하여야 할 시점이라는 논의가 일기 시 18) James A. Bill & Robert Springborg, pp. 254-260. 제5장 팔레스타인 문제의 국제의 함의 53

작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평화 제도화 차원에서 접근하는 미국 의 입장과 태도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팔레스타인 문제가 평 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중동 내 평화 분위기가 급속도로 상승할 가능 성이 크다. 이를 통하여 레바논 헤즈불라 및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연관된 국제사회의 불안감을 낮추는 한편, 팔레스타인 문제가 결국 미국의 주도로 해결될 경우 평화의 도미노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54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제6장 한국의 대( 對 )팔레스타인 정책방향 고재남 1. 팔레스타인 문제의 의미 가. 냉전시대 중동 외교의 사각지대 냉전시대 미국의 동맹이었던 우리는 일부 친소비에트 아랍국과는 거리를 두며, 자동적으로 이스라엘과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해왔다. 더욱이 한국 내 기독교 교세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해 구약성서의 주인공인 유대인, 즉 이 스라엘에 대한 우호적 감정이 확산되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건국의 신화,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설움, 그리고 유대인의 민족적 우수성 및 견실한 가정 교육 및 사방의 적들로 둘러싸인 안보 환경에 관한 이야기들이 퍼지면서 자 연스럽게 국내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정서적 동질감이 전파되었던 것이다. 19) 19) 그러나 이러한 동질감의 부작용도 상존한다. 김성건 교수는 한국 개신교 사회 내에 이스라엘의 선민 의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반영하여 성서를 읽는 근본주의 세력이 강함을 역설하였다. 즉 이스

팔레스타인은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로 대표되는 폭력 테러리스트의 이미지가 유지되어 왔다. 특히 1972년 뮌헨 올림픽의 검은 9월단 사건 등 PLO와 연관되는 국제 테러리즘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이 미지는 호전적, 급진적 형태로 자리잡아왔다. 따라서 전통적 친미 우방국가인 우리에게 이스라엘은 인지적인 동맹관계 로 받아들여졌고, 반면에 이스라엘과 대립하는 PLO는 폭력집단이자 잔학한 세력 정도로 인식되어왔다. 더욱이 최소한의 자치체제를 갖지 못한 채 망명 정부 형태로 운용되어 온 팔레스타인과 관계 개선 여지가 전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상 한 중동 관계가 석유 수입 및 건설 수출로만 구성되 어 왔기에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자기 영토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팔레스 타인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은 매우 부족하였고 우호관계 수립은 요원한 일 이었다. 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추구와 한국의 기여 여지 팔레스타인에 대한 한국의 구체적 관계성립은 사실상 2000년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즉 샤론 행정부 등장 이후 그동안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점령정 책에서 탈피하여 완전한 팔레스타인 국가수립노선(two states solution)을 정 립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국제법상 실체로 인정받을 수 없는 점령지 (occupied territory)에 불과한 정치체제인 팔레스타인이 국제무대에서 공식 적인 일원으로 등장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팔레스타인은 2007년 말 현재 자치정부체제이며, 아직 완전한 독립 국가 수립을 완결하지 못했다. 현재 샤론 구상에 의거하여 국가건설과정에 있으나 여전히 앞 장에서 언급한 도전 요인들로 인해 실질적인 진전은 매우 라엘과 한국 기독교의 동질적 유대감을 강조함에 따라 이스라엘 시온주의 같은 극단적 민족주의가 한국 기독교를 통하여 투영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김성건(2007). 56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느린 편이다. 특히 현재 벌어지고 있는 파타 정부와 하마스간의 유혈투쟁 역 시 독립국가 수립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국가독립에 대해 가장 부정적이었던 이스라엘이 명시 적으로 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내부의 문제가 해결되 고 쟁점에 대한 논의가 재추진될 경우, 국제사회의 지원에 따라 팔레스타인 독립은 여하한 시점에라도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과거 팔레스타인의 애매한 지위와 대미 관계로 인해 유보시켜오던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설정을 더이상 미룰 필요가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 국가 건설 초기단계에서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을 것 으로 판단된다. 이는 현지 주요 인사들의 견해와도 일치한다. 한국은 1948년 정부수립 이래 반세기만에 세계 경제대국으로 부상했고 정치적 민주화도 달 성한 성공사례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가의 규모가 크지 않 아 정치적 부담도 적을 것이라는 판단과, 분단을 겪고 있는 민족이기에 국가 분할의 고통과 어려움을 체감했다는 점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따라서 향후 팔레스타인 내부 정세가 안정되고, 이스라엘 정부에서도 인구 요인 등 팔레스타인 독립을 적극 추진하는 분위기가 가시화될 경우, 한국은 종합적인 인프라 건설 등 하드웨어 및 국가 운용에 관한 소프트웨어 제공 등 국가건설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사전 정지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다. 국제평화의 기여와 대중동 외교 레버리지 확보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의 완전 독립을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국 가는 없다. 지난 60년 간 팔레스타인 아랍이 겪었던 질곡과 고통이 이제는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에 당위론적으로 모두 동의하는 상황이다. 사실상 이러 한 계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국제정치의 안보환경 제6장 한국의 대( 對 )팔레스타인 정책방향 57

은 급변하고 있으며, 따라서 현재 팔레스타인이 안고 있는 제반 불안요인들 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제거하여 국가건설을 완비하지 않고서는 결국 중동의 평화는 불가능한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인식이다.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의 국가건설을 위한 지원에 동의하고 있으며, 필요 한 공적개발원조 등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사실상 한국의 대팔레스타인 재건지원은 단순히 특정국가에 대한 지원이나 도움이 아니라, 국제평화의 핵 심지역 공동보조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즉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 원을 통하여 중동 전역에 편만한 아랍의 박탈감과 패배의식을 위무할 수 있 다는 점이다. 중동 최대 갈등요인인 팔레스타인 문제의 원만한 해결에 한국 이 기여한다면, 이는 구체적인 국제평화 구축 지원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이다. 더불어 대중동외교에도 레버리지를 얻게 된다. 아랍 제국은 팔레스타인에 대해 일종의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 최근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 및 아프 간 인질 사태가 중동 이슬람권에 알려지면서 중동의 우호적인 대한국 이미 지에 일정부분 손상을 입은 것이 사실이다. 한국이 팔레스타인 평화정착 및 국가건설 과정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경우 아랍권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고양 될 수 있고, 대아랍 중동외교를 전개하는 데 매우 유용한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2. 한 팔레스타인 정무 및 경제 관계 현황 가. 정무관계 현황 한국과 팔레스타인 간 공식적 정무 관계는 인사교류 위주로 진행되어 왔 다. 사실상 이스라엘 점령지 지위를 갖고 있었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적극적 58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외교 수요는 그간 전무했었고, 따라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연동되 는 수준의 관계 설정 정도에 국한되었었다. 실질적으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로 대표되는 정치 기구는 대외관계에서 대아랍권 외교 및 대미관계에만 치 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오슬로협정의 공식 발효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구성되고 독립을 향한 행보를 진행하면서, 향후 완전독립 시점을 대비하여 외교적 기 반구축작업이 시작되었다. 한국 정부는 팔레스타인내 유일의 합법자치정부로 파타 현 행정부를 인정하고 있으며, 2005년 이후 구체적인 외교관계 구축을 시작했다. 2005년 6월,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던 반기문 현 유엔 사무총장이 팔레 스타인의 자치행정수도인 라말라를 첫 공식방문하고 마흐무드 압바스 수반을 예방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은 향후 팔레스타인 독립과정에서 필요한 최선의 정치적 지원과 협조를 약속하였고, 5개월 후인 2005년 11월 라말라에 주 팔 레스타인-한국 대표부가 개설되어 마영삼 주이스라엘 한국대사관 공사가 최 초의 주팔레스타인 대표부 대표로 부임하였다. 2005년 11월에는 낫세르 알 키드와(Nasser al Kidwa) 팔레스타인 외무 부장관이 방한하여 양국 장관급 교류가 성사되었으며 2007년 6월에는 마즈 디 칼디(Majdi Khaldi) 압바스 수반 외교보조관이 방한하는 등 지속적인 고 위 인사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주요 인사 교류 외에는 뚜렷한 정무관계 현안이 발생하고 있지 않 으며 우리 정부는 첨예한 갈등구조를 내포하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제사회가 중재하는 평화협상 노선을 지지하고, 무엇보다 당사자 간 합의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사실상 팔레 스타인과의 구체적인 정무관계 활성화는 현 시점에서 제한 요건이 많고, 무 엇보다 이스라엘 측의 견제와 입장 표명이 지속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현실 에서 적극적으로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심화를 추진할 동력은 없는 셈이다. 제6장 한국의 대( 對 )팔레스타인 정책방향 59

나. 경제관계 현황 팔레스타인의 경제구조는 이스라엘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실질적으로 부존자원이 전무하고, 사회간접자본 대부분을 이스라엘에 의존하고 있는 상 황이라 이스라엘에 종속된 경제구조 속에서 팔레스타인 경제를 이해해야 한 다.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경제활동은 오슬로협정 발효 후 1994 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간에 체결된 파리 경제의정서에 준하여 이루어져 왔다. 경제의정서 체결은 이루어졌으나, 기본적으로 팔레스타인 내 부의 생산기반 시설이 전무하였기에 결국 자치정부의 주된 수입원은 국제원 조 및 웨스트뱅크, 가자지구로 이동하는 상품의 관세 수입 등으로 구성되어 왔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매년 공여국 회의를 통하여 자치정부 재정을 조달 하고 있으며 민간부문 외국인투자는 찾아볼 수 없고, 일부 해외거주 팔레스 타인 디아스포라에 의한 투자가 일정 부분 이루어지긴 하지만, 정치상황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지속되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안정 및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권고하고 있으나 정치적인 난 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실질적인 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경제교류 현황은 사실상 실질적 교역관계가 진행되 고 있다기보다는 우리 정부의 대개도국 개발경험 전수 및 무상원조 사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해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총 10,192달러를 지원하였고, 연수생 43명 및 물자공여, 긴급원조 및 프로 젝트 등을 통해 경제지원을 해왔다.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 경제 지원은 크게 3가지 목표를 중심으로 진행 되고 있다. 첫째, 자치정부 운용을 실질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자금과 기술 의 지원이다. 둘째, 상하수도와 쓰레기처리 시스템 정비, 난민캠프내 주택의 60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보수 등과 연관되는 긴급 원조가 있으며, 셋째, 장래 경제발전 기반조성에 투입되는 지원이다. 5년에서 10년이라는 장기적 비전에 기초해서 교육시설 과 금융제도 개편, 도로 항만 조성 및 국가통신 기간망 확충 등 국가 운용 에 필수적인 사회간접자본 구축에 사용되는 원조 부문이라 할 수 있다. 표 6-1. 한 팔레스타인 교역 현황(한국 기준) 연 도 수 출 수 입 (단위: 1,000 US$)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7,962 9,106 1,307 325 1,464 3,250 1,367 599 1,164 538 459 1,305 표 6-2. 한국의 대( 對 )팔레스타인 지원 현황 (단위: 1,000 US$) 연도 94 95 96 97 98 99 00 01 02 03 04 06 금액 191 231 434 1,438 2,407 350 360 21 453 637 3,671 자료: 외교통상부 홈페이지(http://www.mofat.go.kr/ek/ek_a004/ek_pist//ek_a03/ek_b13/1218776_28194.html, 검색일 2007.10.24). 미미하지만 양자간 교역내용을 살펴보면 주 수출품은 자동차(주로 중고자 동차)이며, 수입품은 이스라엘의 하청을 받아 팔레스타인에서 생산된 무선통 신기기부품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나 최근 팔레스타인 정세의 급변으로 인 해 교역규모는 상당부분 감소한 것으로 파악된다. 실질적으로 팔레스타인 민 간부문에 대한 우리의 투자는 전혀 없으며 진출기업도 전무한 실정이다. 제6장 한국의 대( 對 )팔레스타인 정책방향 61

3. 향후 대( 對 )팔레스타인 정책방향 및 제언 가. 평화체제 구축 관련 정무교류 확대 현재 원칙적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은 미국과 러시아, 유엔과 유럽연합이 참여하는 4자 중재외교의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양대 초강 대국과 양대 초국가 기구가 함께 어우러지며 국제사회의 입장을 반영하는 구도를 그리고 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근 아랍 주요 국가들이 힘 을 실어주는 형태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팔레스 타인의 양자 정무관계 방안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양자 공동의 관심사를 찾아내어, 그 주제를 매개로 양자관계 심화와 이해 증진을 추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팔레스타인과 한반도가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화두는 역 시 평화구축이라 할 수 있다. 만연한 갈등과 분쟁구조가 상존하는 안보환경 을 극복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논의는 한반도와 팔레스 타인에서 공히 진행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평화에 대한 희구 를 주제로 향 후 정무교류 방안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포럼 개최 한국은 분단국가로서 남북문제 해결과정에서 얻은 특유한 경험과 개도국 출신으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구축한 중견국가(middle power state)라는 점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독립과정에 도움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이러한 측 면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포럼 을 개최하여 한국의 평화외교 지평 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 러시아, 유엔, 유럽연합 등 4자 중심의 평화협상은 정치적 어젠다 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실무형 회담이고 현안 위주로 논의가 전개된다. 하지 62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

만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 이슈 등 포괄적인 분야를 망라하여 장기적인 시각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을 조망하는 포럼은 거의 없는 실 정이다. 분쟁지역으로부터 벗어난 한반도에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한국 및 일부 아랍국가에서 초청된 학계 전문가 및 정재계 인사들을 아우르는 포럼 멤버 들은 자유로운 논의의 장을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양끝 분쟁 지 역에서의 평화번영 구축방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 일 수 있다. 실질적으로 아랍 각국에서는 미국 주도하에 친이스라엘 노선으 로 경도된 중재에 대한 회의를 갖고 있으며, 다른 강대국의 개입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아랍 각국은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안정에 관하여 자신들이 역량 부족으로 제대로 돕지 못했다는 일종의 부담과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 데, 한국이 주 도적으로 팔레스타인 평화 논의를 시작함으로써 여타 아랍국 외교에도 의미 있는 레버리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중동 아랍지역에서의 국가 이미지가 매우 좋게 형성되어 있 고 광복 이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노하우를 나눌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전쟁 등 끊임없는 갈등 경험의 공유 가능성 등으로 미루어볼 때, 오히려 이러한 평화포럼이 쉽게 구성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 다. 포럼 주최를 통하여, 한국은 대중동외교의 주요한 자산을 만들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한국의 평화외교 역량을 제고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 을 것이다. 2) 고위급 대면외교의 확대: 주요인사 교류 확대 제도화의 수준이 서구에 비해 낮은 편이고 권위주의 왕정이나 공화정을 운용하는 중동지역의 외교는 공식적이고 제도에 기반한 고전적인 외교 라인 구축에만 의존해서는 한계가 있다. 중동 지역의 외교 핵심은 상대방 최고 책 제6장 한국의 대( 對 )팔레스타인 정책방향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