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39 輯 東아시아古代學會 2015. 09
表 紙 : MATIJS QUAST(1639) Algemeen Rijksarchisf s-gravenhage 東아시아圖 헤이그國立書館 所藏 題 毫 : 故 黃浿江 先生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目 次 일반논문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이현중 / 9 삼국유사 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정효운 / 33 李勣의 騎兵과 長槍兵 -주필산 전투를 중심으로- 徐榮敎 / 65 <짐가제굿> 무가의 서사 지향과 기능 -<차사본풀이>와의 비교를 통해서- 유형동 / 89 중국 遼寧省 도서관 소장 해동명필첩 선본 연구 이광화 / 113 和隱 李時恒 詩文學 世界의 硏究 양승이 / 137 <임씨삼대록>에 나타난 구미호 화소의 의미기능 고찰 - 환상성의 의미변화 와 악녀 형상화 방식 을 중심으로 - 강우규 / 169 <태원지>의 서사적 특징과 대중문화적 가치 게임 스토리텔링과의 유사성을 중심으로 이명현 / 193 女鬼의 變移樣相 考察 -說話와 都市怪談의 比較를 通하여- 진수현 / 219 갑골문과 금문(金文)자료를 통해 본 치우의 성격 김인희 / 245 禮記 와 墨子 의 鬼神觀 -喪葬觀을 중심으로- 공병석 / 273 5세기대 木氏를 중심으로 한 百濟와 倭의 고찰 洪性和 / 297
宮内庁書陵部蔵 春秋経伝集解 鎌倉中期点의 仮名音注에 대하여 申智娟 / 331 고마(高麗) 군 건군(建郡) 1300년에 즈음한 고마약광(高麗若光)의 의미 송완범 / 357 에도 가부키의 무장(武將)형 연기 양식의 발상 강춘애 / 381 潤一郎新々訳源氏物語 의 특징 일고찰 - 蛍, 常夏, 篝火, 野分 를 중심으로- 김상원 / 413 附錄 435 彙報 435 會則 440 編輯委員會 規定 442 投稿規定 444 審査規定 449 硏究倫理 規定 452 發刊費 管理 規定 456 審査經緯 457 任員名單 461
DONG ASIA KODAEHAK Vol. 39 September. 2015 A View on the Life and World of Cheonbugyeong( 天 符 經 ) Lee, Hyun-jung / 9 A Study of the Views of Life and Death in Ancient Korea as Represented in Samgukyusa Jung, Hyo-oon / 33 General Lijik & His Pikeman Seo, Young-kyo / 65 The Orientation and Function of Narrative in JimGajegut : A comparison with ChaSabonpuri Yoo, Hyoung-dong / 89 Research into Liaoning National Library s Haedongmyeong Rare Book Li, Guang-hua / 113 A Study of HwaEun Lee's poetical works Yang, Seung-yi / 137 A Consideration of the Meanings and Functions of Gumiho Hwaso in Imssisamdaerok -Focusing on the change in the embodiment of an evil woman in fantasy- Kang, Woo-kyu / 169 A Study on the Narrative Characteristics and Popular Cultural Values of Taewonji With a focus on its similarity to the game storytelling Lee, Myeoung-hyun / 193 A Study on Variations of the Female Ghost - A Comparison of Folk Tales and Urban Legends - Jin, Su-hyun / 221 The Nature of Chiyou Examined through Oracle Bone Script and Bronze Inscriptions Kim, In-hee / 247 The Viewpoint of A Departed Soul in Yeki( 禮 記 ) and Mookja( 墨 子 ) -The Perspective of a Funeral Ceremony- Kong, Byung-suk / 275 A Study of Baekje and Wa ( 倭 ) Focusing on the Mok Clan( 木 氏 ) in the 5th Century Hong, Sung-hwa / 299 The Kanaonchu in the Middle of Kunaichoshoryobuzo Chun qiu jing zhuan ji jie Kamakura Shin, Ji-Youn / 333
1300 Years Ago The Foundation of Goma (Goguryeo)-Gun and Goma Yakgwang (ancestor of Goma Clan in Japan) Song, Whan-bhum / 359 The Idea of Acting Styles of Warrior-type Characters in Edo Kabuki Theatre Kang, Choon-ae / 383 Study on the Features of Jyunichirosinsinyakugenjimonogatri - focusing on Hotaru, Tokonatsu, Kakaribi and Nowaki - Kim, Sang-won / 415 The East Asian Ancient Studies Published by The Association of East Asian Ancient Studies 119, Academy-ro, Yeonsu-gu, Incheon, 448-772, KOREA
一般論文 이현중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정효운 뺷삼국유사뺸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徐榮敎 李勣의 騎兵과 長槍兵 유형동 <짐가제굿> 무가의 서사 지향과 기능 이광화 중국 遼寧省 도서관 소장 뺷해동명필첩뺸 선본 연구 양승이 和隱 李時恒 詩文學 世界의 硏究 강우규 <임씨삼대록>에 나타난 구미호 화소의 의미기능 고찰 이명현 <태원지>의 서사적 특징과 대중문화적 가치 게임 스토리텔링과의 유사성을 중심으로 진수현 女鬼의 變移樣相 考察 김인희 갑골문과 금문(金文)자료를 통해 본 치우의 성격 공병석 뺷禮記뺸와 뺷墨子뺸의 鬼神觀 洪性和 5세기대 木氏를 중심으로 한 百濟와 倭의 고찰 申智娟 宮内庁書陵部蔵 뺷春秋経伝集解뺸 鎌倉中期点의 仮名音注에 대하여 송완범 고마(高麗) 군 건군(建郡) 1300년에 즈음한 고마약광(高麗若光)의 의미 강춘애 에도 가부키의 무장(武將)형 연기 양식의 발상 김상원 뺷潤一郎新々訳源氏物語뺸의 특징 일고찰
http://dx.doi.org/10.17070/aeaas.2015.09.39.009 1)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2)이현중** 目 次 Ⅰ. 서론 Ⅱ. 時間性과 세계관 Ⅲ. 十五와 體用論 Ⅳ. 五十과 인간관 Ⅴ. 결론 국문초록 본고에서는 특정한 종교나 수련이론, 사상을 토대로 번역과 주해에 치중하였던 기존의 연구 성과들과 달리 천부경 자체를 대상으로 수리 철학적 관점에서 세계관 과 인간관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세계의 근원은 始終으로 표상된 시간의 본성인 終始性 곧 時間性이다. 그것을 천부경에서 十으로 표상하고 十의 본성에 의하여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시간성의 시간화와 시간의 시간성화 곧 변화의 연속된 과정이 세계임을 밝히고 있다. 十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시간성의 시간화와 시간의 시간성화 곧 변화의 과정은 一에서 九까지의 수를 통하여 표상하고 있다. 본체인 十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작용 은 五로 그리고 十五에 의하여 이루어진 결과 곧 현상은 一을 통하여 표상하고 있 다. 시간성의 시간화는 시간성의 시간으로의 分化이며, 시간의 시간성화는 개체적 존재와 시간성의 合一이다. 分化와 合一은 十을 본체로 하여 五의 작용에 의하여 * 이 논문은 2014년도 CNU 학술연구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2014-0860-01). ** 충남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10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이루어진다. 그것은 시간성의 시간화, 시간의 공간화와 시간의 시간성화, 천지인의 合一이 五가 표상하는 인간의 본래성에 의하여 이루어짐을 뜻한다. 인간을 비롯한 만물은 시간성을 본성으로 하는 점에서 一體이기 때문에 無我이 면서도 다양한 시공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점에서는 개체적이다. 無我이면서 도 有我이고, 일체적이면서도 다양한 개체적인 존재가 인간이며, 無爲이면서 有爲 인 것이 인간의 삶이다. 주제어 : 終始와 始終, 생성과 변화, 세계관, 체용론, 인간관. Ⅰ. 서론 천부경이 오랜 세월 우리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온 까닭은 그것을 통하 여 한국민족의 고유사상을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파악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1) 한국인으로써 한국고유의 사상 또는 문화를 발굴하고 정립하는 것은 중 요한 문제이다. 한국인의 과거적 본질이 곧 미래적 이상이다. 그러므로 한 국인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한국의 미래 방향을 결정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특수성과 더불어 사람 더 나아가서 다양한 존재가 공존하는 우주 안의 존재라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한국의 고유사상 또는 전통 문화를 추구할 때 한국, 한국인이라는 특수성 과 함께 인류, 우주라는 보편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요즈음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거에 비하여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바람 1) 천부경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천부경을 古朝鮮 시대의 사상을 담고 있는 위대한 전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그 내용을 崔致遠의 鸞郞碑序文에서 보이듯이 훗날의 儒佛道 三家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담고 있는 고유의 사상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儒家 나 佛家 또는 道家와 구분되는 좁은 의미의 仙道 사상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11 이 크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도 남과 다른 우리의 정체 성을 찾는 것은 물론 그것을 바탕으로 인류, 우주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들 대부분이 대종교와 같은 특정한 종교의 교리나 도교의 內丹修行 또는 현대의 仙道수행 단체의 이론체계나 음양오 행, 수학과 같은 천부경 외적인 요소들을 바탕으로 천부경을 연구하였다.2) 또한 연구 방법에 있어서도 번역과 주해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는 천 부경 자체를 대상으로 연구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개념이나 사상을 천부경 에 적용하여 그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였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3) 천부경을 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연구 성과의 예로 중국 安陽大學의 鞠 曦교수의 天符經的思想與現代意義 4)를 들 수 있다. 그는 천부경을 한국민 족 고유의 문화사상의 경전으로 규정하고, 현대 인류문명과 철학이 처한 문제들을 풀 수 있는 동양적 지혜가 녹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주역, 노자 와 같은 중국사상을 바탕으로 천부경을 고찰 함으로써 철학의 학문적 한계와 인류의 공존이라는 문제의 해결점에 접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천부경에 담긴 한국고유의 사상이 무엇인지를 드러 2) 全秉薰, 東韓神聖檀君天符經, 뺷精神哲學通編뺸 卷之一, 서울, 現代社, 1980, 1 6쪽은 道敎 의 內丹術을 중심으로 천부경을 연구한 결과이며, 최동환, 뺷천부경뺸, 지혜의나무, 2011, 34 551쪽은 수리철학을 중심으로 천부경을 연구한 결과이다. 그리고 최민자, 뺷천부경뺸, 서울, 모시는 사람들, 2011, 31 120쪽은 동학을 비롯하여 다양한 동서의 사상들을 바탕으 로 천부경을 연구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근철, 뺷천부경철학연구뺸, 서울, 모시는사람들, 2011, 15 250쪽은 철학적 관점에서의 연구를 표방하였지만 전병훈의 주해를 중심으로 內丹術의 관점에서 천부경을 연구하였다. 3) 일제 강점기 이후 천부경이 전래되고 그 후 1980년까지의 천부경에 관한 연구사를 요약하 여 그 시대는 주로 주해가 중심이 되어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하여 천부경 연구의 기초가 형성되었다. 90년대 이후 최근에는 천부경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여러 편의 학위논 문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천부경 이외의 사상이나 종교, 수련방법을 중심으 로 고찰하였을 뿐으로 천부경 자체를 대상으로 철학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연구한 성과는 많지 않다. 이에 관하여는 이형래, 천부경연구사 소고, 뺷仙道文化뺸 제2집, 국학연 구원, 2007, 29쪽에서 62쪽을 참조하기 바란다. 4) 鞠曦, 天符經的思想與現代意義 뺷仙道文化뺸 제4집, 국학연구원, 2008, 59 134쪽.
12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5) 이에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수용하면서도 道敎, 仙道, 대종교와 같은 특정한 이론체계나 주역, 노자 와 같은 중국사상의 관점이 아닌 천 부경 자체를 중심으로 그 사상적 특징이 무엇인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다만 모든 사상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바람직한 삶을 추구하는 성과라 는 점에서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고찰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천부경의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고찰한 후에 그것을 바 탕으로 본체론과 현상론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인간관이 무엇인지를 고 찰하고자 한다.6) Ⅱ. 時間性과 세계관 천부경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하여 먼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살펴보자. 천부경은 81字의 숫자와 문자로 구성되어 있다. 一에서부터 十까 지의 숫자가 모두 31회 사용되었으며, 나머지 50회는 문자를 사용하고 있 다. 숫자 가운데서 一이 11회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이어서 三이 8회 사용 되었으며, 二가 4회, 七이 2회, 四五六八九十은 각각 1회씩 사용되어 숫자는 一에서 十까지의 열 종류이다. 천부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자들은 無가 4회 사용되었고, 始가 2회, 終 5) 중국철학은 三才의 道를 밝히고 있는 뺷周易뺸이나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道를 밝히고 있는 뺷老子뺸를 막론하고 모두 공간적 관점에서 근원을 찾고 있는 점에서 한국고유사상과 다르 다. 이 점에 대하여서는 韓國易學과 中國易學의 대표적인 전적인 뺷周易뺸과 뺷正易뺸을 비교 하여 연구한 이현중의 뺷역경철학뺸, 문예출판사, 2014, 283 300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6) 이 논문은 지난 2014년 7월 24일 일본의 同志社대학에서 개최된 동아시아고대학회(제54 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자료를 바탕으 로 수정하고 보완하여 작성한 것이다.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13 이 2회 사용되었다. 그리고 化와 變, 生과 成, 往과 來가 사용되고 있다. 이 를 통하여 천부경에서 無, 始終, 生成, 往來, 變化, 變動이라는 개념이 사용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一에서 十까지의 수가 갖는 특징에 대하여 살펴보자. 一에서 十까 지의 수는 일상적으로는 계산을 하는 단위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시간을 나타내는 단위로 사용된다. 시간을 나타내는 기능을 중심으로 사용되는 수 를 책력을 구성하는 수라는 점에서 曆數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始終, 왕래, 변화, 생성, 변동이라는 개념의 공통점은 그것들이 모 두 시간과 관련된 개념들이라는 점이다. 始終은 시간적 관점에서 사건의 시 작과 끝을 나타낸다. 變化는 사건의 始終을 공간적 관점에서 나타낸 것으로 하나의 물건의 상태가 變하여 다른 물건으로 化하는 것을 나타낸다. 變化를 化하여 새로운 물건이 나타나는 관점에서 이해하면 變은 새로운 물건이 生함을 의미하며, 化는 새로운 물건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生成이 化를 중심으로 변화를 나타낸 개념이라면 변화는 始를 중심으로 始 終을 나타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變動 역시 시간의 차원에서 언급되는 개념이다. 變하여 움직인다는 것은 變하여 化함을 변함을 중심으로 나타낸 개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 妙衍이나 運, 環이라는 개념 역시 시간과 관련되어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천부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수가 시간과 관련되 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용된 개념들의 대부분이 시간과 관련된 점에서 천 부경의 내용은 시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해되어야함을 알 수 있다. 천부경을 시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해함은 시간의 차원에서 천부경을 이해함을 뜻하지 않는다. 만약 시간의 차원에서 천부경을 이해한다면 그것 은 역수의 구성법칙을 나타내고 있는 과학적인 전적에 불과하게 된다. 그 럴 경우 천부경을 통해서 세계의 본질을 나타내는 세계관이나 인간의 본성 을 나타내는 인간관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천부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수가 시간을 나타내는 曆數가 아닐 뿐
14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만 아니라 시간과 관련된 시종, 변화. 생성, 왕래, 변동과 같은 개념들을 비 롯하여 化三, 析三極, 合一과 같은 개념들이 모두 형이하적 관점에서 현상 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적 관점에서 원리를 상징적으로 나 타내는 개념들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천부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수 역시 형이상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理數7)이다. 천부경에서는 一에서 시작하였으나 一로 시작함이 없음(一始無始一) 로 시작하여 一로 끝이 나지만 一로 끝맺음이 없음(一終無終一) 로 끝을 맺고 있다. 이는 천부경의 내용을 요약하여 나타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一始無始一과 一終無終一을 서로 연관시켜서 이해하면 두 가지 점을 파 악할 수 있다. 첫째는 一로 시작하고 一로 끝맺음을 통하여 一이 始終의 세 계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둘째는 一에 의하여 시종의 세계 를 나타내었지만 시종이 없음을 통하여 一이 나타내는 세계가 始終이 없는 세계에 근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종의 세계는 변하여 움직이는 세계이다. 시가 변하여 종이 되는 세계 가 시종의 세계이다. 그러나 시종이 없는 세계는 변동이 없는 세계이다. 그 러므로 一이 묘하게 변하여 만 가지로 왕래한다. 작용은 변하지만 근본은 움직이지 않는다.(一妙衍萬往萬來 用變不動本) 고 하였다. 변화하지 않는 不動의 세계, 근본의 세계는 終始의 개념을 통하여 나타 낼 수 있다. 종시는 시종과 달리 시간적 간극이 없이 일체인 점에서 시간을 초월한 근원적 세계, 시간의 근본이 되는 세계이다. 종시의 세계가 시간의 본성, 시간의 근본을 나타내는 점에서 時間性8)으로 규정할 수 있다. 시간성 7) 수는 문자에 의하여 갖게 될 수 있는 名字相이 없는 점에서 형이상의 근원적 세계의 표상형식이 될 수 있다. 뺷周易뺸에서 天地의 數에 의하여 구성된 河圖와 洛書를 진리의 표상체계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8) 현대의 실존철학자인 하이데거는 뺷존재와 시간뺸에서 존재를 시간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天符經에서는 근원적 존재를 나타내는 十이라는 理數와 終始라는 개념을 통하여 시간성 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하이데거가 밝히고 있는 시간성의 내용에 대하여서는 최양부, 뺷하이데거 존재사유의 길뺸, 대전, 문경출판사, 1997, 73 112쪽을 참조하기 바란다.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15 은 시간의 속성을 나타내는 형이하적 존재가 아니라 시간의 근본이 되는 형이상적 존재이다. 주역 에서는 終始를 크게 밝혀서 六位가 때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9)고 하여 시종의 時位를 나타내는 重卦의 六爻가 종시원리를 표상함을 밝히고 있고, 마친 즉 다시 시작함은 天道의 운행이다. 10)고 하여 종시원리가 天 道임을 밝히고 있다.11) 그러면 不動의 근원을 나타내는 수는 무엇인가? 부동의 근원, 제일원인 을 나타내는 수는 十이다. 이는 一이 쌓이면 十이라는 큰 수를 이루면 그 것이 셋으로 化하는데 걸림이 없다.(一積十鉅無櫃化三) 고 한 부분을 통하 여 확인할 수 있다. 시종의 근원이 되는 종시의 세계. 시간성의 세계를 나타 내는 수가 바로 十이다. 十이 三極으로 化하는 근원적인 수라면 一이라는 수는 무엇을 상징하는 수인가? 처음 부분에서 一에서 시작하였으나 一로 시작함이 없다. 셋으로 나누어지지만 근본은 다함이 없다.(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 고 하였을 뿐 만 아니라 하나가 묘하게 불어나서 만 가지로 왕래하니 작용은 변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이 본체이다.(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라고 하여 一이 三極으로 化하고, 온갖 변화를 하는 근본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 一은 단 순하게 시종의 현상 세계 자체 곧 시간의 세계를 나타내는가? 그렇지 않다. 현상의 세계, 시종의 세계는 변화의 세계이다. 변화의 세계 는 결코 하나일 수 없다. 一은 시종의 관점, 시간의 측면에서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의 세 양상으로 드러나기 이전의 시간의 근원으로서의 시간성 의 세계를 나타낸다. 一은 현상적 관점에서 시간성을 나타내는 理數이다. 그러면 十과 一은 어떤 관계인가? 十은 一이 모여서 九를 이루고 그것이 9) 金東求, 뺷正本周易뺸, 명문당, 2001, 5쪽, 大明終始하면 六位時成하나니 10) 金東求, 뺷正本周易뺸, 명문당, 2001, 114쪽 先甲三日後甲三日은 終則有始天行也라. 11) 뺷周易뺸에서는 終始原理가 天道임은 밝히고 있으며, 一에서 十까지의 수를 天地의 數로 규정하고 그것이 변화원리, 易道의 표상형식일 뿐만 아니라 神道의 표상형식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천도, 신도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는 밝히고 있지 않다.
16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다시 변하여 형성된 수이다. 十은 一에서 九까지의 모든 수를 포함하고 있 는 점에서 一에서 九까지의 수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시종이 一에 의하여 이루어지듯이 나머지 二에서 九까지의 수는 모두 변화의 세계 곧 시종의 세계를 표상한다. 그러나 十은 시종을 넘어선 종시의 세계를 나타낸다. 十은 一을 나타내는 동시에 無를 나타내는 수이다. 그것은 十이 장차 一 로 나타날 근원이지만 현상을 넘어선 초월적인 존재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十은 無, 空의 의미를 담고 있다. 十의 이러한 특성은 그것을 아라비아 숫자 10을 중심으로 이해할 때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10은 有的 세계를 나타 내는 1과 無的 세계를 나타내는 0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有無를 넘어 서 있으면서도 有無를 포함하고 있는 數가 十임을 뜻한다. 十은 형이상의 차원에서 시간성을 나타낸 理數인 반면에 一은 형이하의 차원에서 시간성을 나타내는 理數이다. 그러므로 十은 형이상적 차원에서 시간성 그 자체를 나타내지만 一은 시간성을 시간의 차원 곧 형이하적 차 원에서 그 근거가 되는 근원적 존재를 표상하는 수이다. 시간의 차원에서 시간성을 나타내는 개념이 時義性이다. 그러므로 一은 시의성을 나타낸다. 시의성을 표상하는 一의 차원에서 비로소 그것이 化하여 三極이나 三才 로 나타나는 현상을 언급할 수 있다. 천부경에서 十이 셋으로 化하는 化三 을 언급하면서도 一로부터 나누어지는 析三極을 언급한 까닭이 여기에 있 다. 그것은 시간성이 시간의 차원에서 三極이라는 時義性으로 나타남을 뜻 한다. 三極은 시의성을 나타내는 세 요소이다. 삼극은 无極과 太極 그리고 皇極이다.12) 무극은 시간성을 미래의 관점에 서 나타낸 것이며, 태극은 시간성을 과거의 관점에서 나타낸 것이고, 황극 은 시간성을 현재의 관점에서 나타낸 것이다.13) 그러므로 시의성의 내용은 12) 金恒, 뺷正易뺸 十五一言 第二張, 政經學會, 대전, 1996, 2쪽, 天地之理는 三元이니라. 元降聖 人하시고 示之神物하시니 乃圖乃書로다. 圖書之理는 后天先天이오 天地之道는 旣濟未濟 니라. 龍圖는 未濟之象而倒生逆成하니 先天太極이니라. 龜書는 旣濟之數而逆生倒成하니 后天无極이니라. 五居中位하니 皇極이니라. 13) 송재국, 뺷역학담론뺸, 예문서원, 2010, 33 76쪽 참조.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17 무극과 태극 그리고 황극의 셋 곧 삼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三極은 어떤 수를 통하여 표상되는가? 十이 시간성 자체를 표상하는 수이기 때문에 無極은 十으로 표상된다. 그리고 一은 十이 시종의 세계에서 나타난 時義性이라는 점에서 一로 표상 된다. 또한 황극은 十의 중심, 중앙의 수인 점에서 五로 표상된다.14) 十이 표상하는 시간성이 무극과 황극 그리고 태극으로 변화함은 시의성 이 현상의 차원, 시종의 차원에서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라는 시간의 세 양상으로 드러남을 뜻한다. 이처럼 시간이 드러남은 곧 그것이 天地人이라 는 공간적 세계로 드러남을 뜻한다. 셋으로 나누어지지만 근본은 다함이 없다. 天이 그 하나의 첫 번째이고, 地가 그 하나의 두 번째이며, 人이 그 하나의 세 번째이다.(析三極無盡本 天一一地一二人一三) 고 한 부분은 이를 나타낸다. 天이 그 하나의 첫 번째이고, 地가 그 하나의 두 번째이며, 人이 그 하나 의 세 번째이다. 라는 것은 삼극의 관계를 나타낸다. 그것은 무극과 태극을 근거로 형성된 천지가 나타나고 마지막으로 황극에 의하여 사람이 형성됨 을 나타낸다. 이는 시간성의 세계가 시의성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다시 미 래성과 과거성으로 나타나며, 그것이 다시 미래성과 과거성 그리고 현재성 으로 나타남을 뜻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은 종시의 관점에서 그것이 시종으로 화하 는 과정을 고찰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변화, 생성의 한 면으로 시종의 관점 에서 종시의 차원으로 화하는 변화를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천부경의 내용 역시 처음 부분에서는 주로 종시에서 시종으로의 변화를 밝히고 있고, 뒷부분에서는 시종에서 종시로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一始無始一 에서 無櫃化三 까지의 내용이 종시의 세계를 바탕으로 그 14) 金恒, 뺷正易뺸 十五一言 第一張, 政經學會, 대전, 1996, 1쪽, 擧便无極이시니 十이니라. 十便是太極이니 一이니라. 一이 无十이면 无體요 十이 无一이면 無用이니 合하면 土라 居中이 五니 皇極이니라.
18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것이 시종의 세계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표상하고 있는 것과 달리 天 二三地二三人二三 이하의 내용은 시종의 세계에서 종시의 세계로의 변화 를 나타내고 있다. 천부경의 앞부분이 化三, 析三極과 같이 삼극, 천지인의 공간 세계로의 分化를 나타내고 있는 것과 달리 뒷부분에서는 天은 둘로 작용하는 셋(가 운데 하나)이고, 地도 둘로 작용하는 셋(가운데 하나)이며, 人도 둘로 작용 하는 셋(가운데 하나)여서 (天地人을 合한) 大三合인 六이 七, 八, 九를 낳는 다.(天二三地二三人二三大三合六生七八九) 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밝음을 향하면 사람 가운데서 천지가 하나가 된다.(昻明人中天地一) 고 하여 合一 (大三合의 合과 人中天地一의 一)을 나타내고 있다. 종시의 세계에서 시종의 세계로의 변화와 시종의 세계에서 종시의 세계 로의 변화는 모두 十 자체로는 표상되지 않는다. 변화는 一에서 九까지의 수를 통하여 표상된다. 이는 十이 형이상의 근원적 존재이며, 그 작용을 나 타내는 수가 一에서 九까지의 수이기 때문이다. 시간성에서 시간으로의 변화, 十에서 一로의 변화는 九에서 시작하여 一 에 이르기까지의 수에 의하여 표상하며, 시간에서 시간성으로의 변화는 一 에서 九까지의 수를 통하여 표상된다. 시간성으로부터 시간으로의 변화는 析三極, 化三으로 표상된 分化의 변화, 分生의 변화이며, 시간으로부터 시간 성으로의 변화는 合一의 변화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천부경이 一에서 十까지의 理數를 통하여 표상 하고 있는 세계는 時間性의 分化와 合一을 내용으로 하는 變化의 세계이다. Ⅲ. 十五와 體用論 앞에서 천부경에서 一에서 十까지의 理數를 통하여 시간성의 세계를 상 징적으로 나타내며, 十과 一 그리고 五가 시간성의 미래성과 과거성 그리고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19 현재성을 나타내는 無極과 太極 그리고 皇極임을 살펴보았다. 앞에서는 종시의 세계 곧 시간성의 세계를 중심으로 그것이 시종의 세계 곧 시간으로 어떻게 化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는 十을 중심으로 형이상적 차원에서 시간성의 시간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고찰한 것이다. 지금부터는 시종의 관점, 현상의 관점, 형이하의 관점에서 시간성의 시 간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자. 시종의 관점에서 시간성의 시간화 를 고찰함은 작용을 중심으로 그것을 고찰함이다. 이는 작용을 표상하는 一 에서 九까지의 수를 중심으로 시간성의 시간화를 고찰함을 뜻한다. 그것은 또한 十이 표상하는 무극이 중심이 아니라 五가 표상하는 황극과 一이 표상하는 태극을 중심으로 종시에서 시종으로의 변화를 고찰하는 작 업이다. 十이 모든 수의 근원이듯이 一이 표상하는 태극과 五가 표상하는 황극의 근원은 十이다. 이는 본체를 표상하는 十에 의하여 一에서 九까지의 수가 형성됨을 보아도 알 수 있다. 一에서 九까지의 수는 모두 十이 分化한 수이 다. 十은 장차 一로 나타날 수 있는 있는 가능성 곧 시간으로 化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시공을 초월한 점에서 無이다. 이러한 十이 分化한 一에서 九까지의 수는 十이 갖는 無的인 측면과 시간의 측면 곧 有的인 측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一에서 九까지의 수의 관계를 살펴보면 十이 갖고 있는 두 측면이 모두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로 겉으로 드러나는 수의 位相을 중 심으로 살펴보면 一의 다음에는 二가 오고, 二의 다음에는 三이 와서 一에 서 九까지의 수는 서론 다른 位相을 나타낸다. 一, 二, 三, 四와 같이 수의 순서를 통하여 표상되는 각각 다른 位相은 十 이 갖는 有的인 측면이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수를 통하여 시종의 時位로 나타나는 점에서 보면 시간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겉으로 드러난 位相과 달리 一과 二, 二와 三, 三과 四의 두 수의
20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사이는 언제나 一이다. 그것은 一에서 九까지의 어느 수를 막론하고 그 본 질이 一임을 뜻한다. 이는 十이 갖는 無的인 측면이 나타난 것이다. 一, 二, 三, 四를 통하여 一과 다른 二가 있고, 二와 다른 三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것이 표상하는 時 位가 있는 점에서 시간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一과 二의 사이에는 一이 있고, 二와 三의 사이에도 一이 있어서 실재하는 것은 오직 一뿐이라 는 점에서 보면 시위를 통하여 표상되는 시간은 없다. 十이 갖는 無的인 측면은 곧 고정됨이 없이 변화함을 뜻한다. 자신을 고 수하지 않고 자신의 상태를 벗어나서 스스로 他者로 化하는 특성이 十이 갖는 無的인 특성이다. 이러한 특성에 의하여 十이 표상하는 시간성이 자신 의 상태에서 벗어나서 시간으로 他者化하게 된다. 시간성의 시간화는 一이 쌓여서 十이라는 큰 수를 이루면 그것이 셋으 로 化하는 데 걸림이 없다.(一積十鉅無櫃化三) 고 한 것과 같이 化三으로 나 타내기도 하고 三極으로 나누어지나 근본은 다함이 없다.(析三極無盡本) 고 한 것처럼 析三極으로 나타내기도 하였다. 시간성의 시간으로의 변화는 十의 有的인 측면의 작용이다. 변화는 有的 인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十의 無的 본성에 의하여 이루어지 는 有的인 작용은 一에서 九까지의 수를 통하여 표상하게 된다. 十 자체는 변화의 세계, 시종의 세계, 시간의 세계를 초월한 본체이기 때문에 一에서 九까지의 수와 차원이 다른 점에서 十 자체로는 化三, 析三極의 分化를 표 상할 수 없다. 그런데 一에서 九까지의 수는 十이 分化하여 형성된 수이다. 十을 양분 하면 一과 九, 二와 八, 三과 七, 四와 六, 五와 五가 된다. 여기서 五와 五는 동일한 수이다. 그러므로 五를 기준으로 보면 一에서 九까지의 수가 一二三 四와 六七八九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짐을 알 수 있다. 十이 시간성 자체를 상징하고 一에서 九까지의 수가 그 작용을 표상한다 면 五를 기준으로 一에서 九까지의 수가 양분됨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21 먼저 五라는 수가 상징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五는 三極 가 운데서 皇極을 표상하는 수이다. 황극은 시간성의 측면에서는 현재의 본질 인 현재성을 표상한다. 그것은 五가 時義性의 측면에서는 현재라는 시간의 본성으로서의 현재성을 나타내는 수임을 뜻한다. 시의성이 나타난 현재성은 본질적 시간인 영원한 현재로 그것을 표상하 는 수가 五이다. 영원한 현재의 영원 은 시간성이 시의성으로 化하였음을 나타내고, 영원한 현재의 현재 는 나타난 시의성을 뜻한다. 그러므로 영원 한 현재는 시간성과 시간이 일체임을 나타낸다. 그런데 一에서 九까지의 수를 보면 五를 기준으로 一二三四와 六七八九 로 나누어진다. 두 부분을 구성하는 수의 관계를 보면 一에 五가 더하여짐 으로써 六이 되고, 그 반대로 六에서 五가 덜어져서 一이 된다. 이러한 五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수의 변화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一二三四는 先天을 상징하고, 六七八九는 後天을 상징한다. 선천과 후천 은 시간과 相卽的 관계인 그것이 나타난 공간의 세계를 함께 표상하는 개 념이다. 그러므로 시간의 측면에서는 一二三四가 과거를 상징하고, 六七八 九가 미래를 상징한다. 이는 시간성이 시간화하면서 선천과 후천, 과거와 미래라는 두 방향으로 작용함을 뜻한다. 우리는 이것을 시간의 흐름으로 이해한다. 시간은 一二三 四로 표상되는 수의 위상 변화와 같이 과거로부터 미래를 향하여 흐르는 동시에 九八七六으로 표상되는 수의 위상 변화와 같이 미래로부터 과거를 향하는 두 흐름으로 나타난다. 이 때 이러한 수의 변화와 五를 함께 살펴보면 一二三四가 변화하여 五 에 이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九八七六이 변화하여 역시 五에 이른다. 이는 五가 표상하는 황극을 바탕으로 과거와 미래를 향하는 시간의 흐름의 分化 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미래와 과거를 향하는 시간의 흐름이 合一이 됨을 나타낸다. 선천을 표상하는 一二三四와 후천을 표상하는 六七八九는 다시 선천과
22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후천으로 分化하여 이해할 수 있다. 一二三四의 一二는 선천의 선천이고, 三四는 선천의 후천이다. 그리고 六七八九의 六七은 후천의 선천이며, 八九 는 후천의 후천이다. 이는 一年의 朞數를 중심으로 이해하면 一二三四는 선천의 사계절을 표 상하고, 六七八九는 후천의 사계절을 표상한다. 一二三四와 六七八九를 양 자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해하면 一二는 生을, 二三은 長을, 그리고 三四는 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一二三四는 선천의 生長成을 표상한다. 그리고 六 七은 후천의 生을, 七八은 후천의 長을, 八九는 후천의 成을 표상한다. 그러 므로 六七八九는 후천의 生長成을 표상한다. 그런데 시간은 공간과 상즉의 관계이다. 천부경에서 셋으로 나누어지지 만 근본은 다함이 없다. 天이 그 하나의 첫 번째이고, 地가 그 하나의 두 번째이며, 人이 그 하나의 세 번째이다.(析三極無盡本 天一一地一二人一 三) 고 하여 析三極을 언급하면서 다시 그것을 천지인으로 나타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라는 시간은 곧 공간상의 地와 天 그리고 人을 상징한다. 미래는 공간적 측면에서 天으로, 과거는 地로 그리고 현재는 人 으로 나타낸 것이다. 시간이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에서 미래를 향하는 흐 름과 미래에서 과거를 향하는 흐름으로 구분되듯이 천지인의 공간적 관계 역시 天은 地를 향하고, 地는 天을 향하여 양자가 人에서 合一하는 동시에 人으로부터 分化한다. 또한 선천과 후천, 과거와 미래를 표상하는 一二三四와 六七八九는 각각 공간상의 동서남북의 四方을 표상한다. 선천과 후천의 시간과 동서남북의 사방을 결합하여 이해하면 一二三四는 선천의 동서남북을 표상하고, 六七 八九는 후천의 동서남북을 표상한다. 천부경에서는 셋과 넷으로 운용하여 五를 이루고 七로 연결한다.(運三 四成環五七) 고 하였다. 運三 四 는 셋과 넷이라는 범주 예를 들면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라는 세 범주와 춘하추동과 같은 네 범주를 운용하여 시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23 간성의 시간화, 공간화가 이루어짐을 나타낸다. 그리고 成環五七 은 시간성의 공간성 곧 시의성화, 공간성의 공간화, 시 의성의 시간화에 의하여 五가 표상하는 작용이 완성되고, 그것이 현상의 측 면에서 天地人이 合一이 되면서 형성된 大三合으로서의 六으로 드러나면서 그 작용이 七로 계속됨을 나타낸다. 六七八九의 세계를 分化, 分生을 표상 하는 一二三四와 달리 合一의 세계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시간상의 선천과 후천,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와 춘하추동을 막론하고 그것은 시간성의 顯現의 결과이다. 그것의 본질은 현상적 측면에서는 모두 태극이다. 그러므로 비록 구분하여 표현할지라도 그것은 일체이다. 시간은 모두 十이 표상하는 시간성, 無極을 본질로 하는 점에서 一體이다. 공간상의 천지인과 동서남북 그리고 만물은 모두 현상적 측면에서는 본 성인 태극의 현현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현상적 존재의 본성을 한마디 로 나타내어 性, 太極, 無極이다. 그러나 天地人을 구분하여 나타내면 太極, 본성이 天의 관점에서는 天性이 되고, 地의 관점에서는 地性이 되며, 인간 의 관점에서는 人性이 된다. 천지인의 본성이 일체이면서도 각각 구분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태극은 十이 표상하는 시간성 자체가 현현한 존재, 自化한 존재이다. 그 러므로 모든 현상적 존재는 나타난 無極, 나타난 時間性인 점에서 일체이 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상에서는 각각 시간성과 공간성, 과거성과 미래성, 현재성 그리고 天性과 地性, 人性과 같이 구분되어 표상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十과 五 그리고 一로 표상되는 시간성의 세 구 조인 무극과 황극 그리고 태극의 관계를 중심으로 시간성이 시간화하는 변 화를 살펴보면 본체는 十이며, 그 작용은 황극을 표상하는 五이고, 시간화 의 결과 형성된 천지인의 공간의 세계의 본질을 나타내는 태극은 一이다.
24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Ⅳ. 五十과 인간관 앞에서 본체와 작용 그리고 현상의 관점에서 천부경의 내용을 살펴보았 다. 지금부터는 천부경에서 인간을 어떻게 밝히고 있는지 살펴보자. 천부경의 전반부가 五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十에서 一로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는 것과 달리 후반부는 天地人이 모두 合하는 大三合을 논하고 이어서 인간 가운데서 天地가 하나가 됨을 논하여 合一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시종에서 종시로의 변화가 合一임을 뜻한다. 그것은 시간성의 시간화가 五가 표상하는 皇極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 듯이 인간 가운데서 天地가 하나가 됨으로써 비로소 天地人의 大三合이 이 루어짐을 뜻한다. 五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一에서 十으로의 변화 그것 이 바로 合一이다. 合一은 본래 둘이 합하여 하나가 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형이상적 존 재인 시간성의 차원에서는 合一의 문제가 없다. 비록 시간성의 구조를 나타 내는 태극이나 황극 그리고 무극은 개념으로 서로 구분하여 나타내었지만 본래 일체이기 때문이다. 모든 현상적 존재의 본질은 시간성이 변화한 時義性 곧 공간성이다. 그 것을 공간적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나타내면 性, 本質이며, 천지인의 관점에 서 구분하여 나타내면 天性, 地性, 人性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의 관점 에서는 천지와 더불어 일체이다. 시간성의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영원한 현재적 존재이다. 그것은 十이 표상하는 미래성과 一이 표상하는 과거성이 合德하 여 일체가 된 현재성을 본성으로 하는 현재적 존재, 五가 표상하는 皇極을 주체로 하는 존재가 인간임을 뜻한다. 書經 에서는 국가를 다스리는 일을 五가 표상하는 皇極을 주체로 이루 어지는 여덟 가지의 範疇로 구분하여 나타내고 있다. 황극 이전의 처음과 네 번째 범주는 五行과 五紀로 天文을 나타내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범주는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25 五事와 八政으로 이는 人文을 나타낸다. 반면에 황극 이후의 여섯째 범주는 三德을 논하고, 아홉 번째 범주는 五 福과 六極을 언급하고 있다. 양자는 모두 人事를 나타내는 범주이다. 그리 고 일곱 번째 범주에서 天文을 나타내는 稽疑를 밝히고, 여덟 번째 범주에 서는 庶徵을 밝히고 있다.15) 황극 이전의 네 범주를 통하여 天文 안의 人文을 나타내는 동시에 황극 이후의 네 범주를 통하여 人事 안의 天文을 나타냄으로써 皇極이 주체가 되어 天文과 人文의 合一 곧 天地의 合一이 이루어짐을 나타내고 있다. 시간성의 존재구조에서 무극이 본체가 되고, 황극이 작용하여 그 결과가 현상에서 태극을 통하여 드러나듯이 인간을 통하여 천지의 작용이 이루어 진다. 천부경에서 인간 가운데서 천지가 하나가 된다.(人中天地一) 고 한 것은 인간의 존재특성이 천지의 合德作用임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모든 현상적 존재는 시간성이 현현된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성의 존재구 조를 갖듯이 인간 역시 시간성의 존재구조를 그대로 갖고 있다. 본체로서 의 무극이 인간의 본성이 되고, 무극의 작용을 나타내는 황극이 인간의 마 음이 된다. 그리고 황극의 작용이 현상에서 태극을 통하여 드러나듯이 인 간에 있어서는 몸을 통하여 다양한 言行으로 드러난다. 不動의 본체인 本性은 마음이라는 작용으로 드러난다. 천부경에서는 작 용은 변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이 근본이다. 본심은 본래 태양과 같다.(用 變不動本 本心本太陽) 고 하여 이 점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본성과 마음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은 本心本太陽 이다. 本心本太陽 을 본성과 마음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해하면 본심은 태양 을 근본으로 한다. 고 이해할 수 있다. 이 때 태양은 인간의 본체인 본성을 15) 金東求, 뺷書傳뺸, 洪範, 서울, 명문당, 1989, 251 270쪽, 我聞, 在昔, 鯀陻洪水, 汨陳其五行, 帝乃震怒, 不畀洪範九疇, 彝倫攸斁. 鯀則殛死, 禹乃嗣興, 天乃錫禹洪範九疇, 彝倫攸敍. 初一 曰五行, 次二曰敬用五事, 次三曰農用八政, 次四曰協用五紀, 次五曰建用皇極, 次六曰乂用三 德, 次七曰明用稽疑, 次八曰念用庶徵, 次九曰嚮用五福威用六極.
26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태양은 밝음, 빛의 상징이다. 빛, 밝음은 만물의 근원 인 시간성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本心本太陽 은 본심은 본래 시간성이 다. 는 의미가 된다. 그러면 사람 가운데서 천지를 合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천부경에서는 밝음을 따르면 사람 가운데서 천지가 하나가 된다.(昻明人中天地一) 고 하 였다. 여기서 밝음은 인간의 본성인 시간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므로 昻明은 시간성을 따름 이다. 시간성은 시종의 세계에서는 時義性이 된다. 따라서 昻明은 時義性에 的 中함이다. 시의성에 적중함은 몸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言行을 대상으로 한 다. 그것은 현재라는 시간이 갖는 의미로서의 시의성에 따라서 그에 알맞 은 言行을 실천함을 뜻한다. 시의성에 적중하는 언행은 시의성이 五를 기준으로 一二三四가 표상하 는 선천과 六七八九가 표상하는 후천으로 드러나듯이 선천적 존재는 선천 적 존재로 대하고, 후천적 존재는 후천적 대함으로써 모든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줌을 뜻한다. 그것은 모든 존재의 본성인 일체성을 바탕으로 그것이 다양하게 드러난 언행이나 사물의 속성에 맞도록 대하여 줌으로써 각 존재마다의 가치를 드 러내는 동시에 그것을 통하여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도록 하고, 사물이 사물로 존재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昻明을 통한 천지와의 合一은 인위적인 修行, 修練, 修養, 學問을 통하여 이루어야할 自覺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존재를 자신으로 대하는 實踐을 통 하여 본래 천지인이 合一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체험하는 일이다. 본성의 차원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일체일 뿐만 아니라 사물과 사람, 자 연을 막론하고 모든 존재가 일체이다. 그러므로 본성의 차원에서 보면 인 간은 개체적 존재로서의 내가 없는 無我이다. 본성이 나타난 마음 그리고 그것이 몸을 통하여 나타난 언행 역시 無我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無爲이 다.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27 그러나 마음의 사고, 인식, 지각, 의지와 같은 다양한 작용이나 몸을 통하 여 드러나는 다양한 언행은 개체적이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 몸과 마음의 차원에서는 有爲的임을 뜻한다. 그러므로 천부경에서 昻明으로 표현한 인 간의 삶은 모든 현상적 존재의 가치를 드러냄으로써 만물이 만물로 존재하 도록 해주는 점에서 有爲的이지만 매 순간에 다양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시간성의 시간화의 체험인 점에서 無爲的이다. Ⅴ. 결론 지금까지 시간성을 중심으로 천부경의 세계관을 살펴본 후에 그것을 바 탕으로 본체론과 현상을 살펴보고 이어서 인간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세계의 근원은 時間性이다. 세계는 그 본성에 의하여 시간성의 시간화와 시간의 시간성화라는 변화의 연속된 과정이다. 그러므로 세계는 시간과 공간, 有와 無, 형이상과 형이하 그 어떤 범주로도 고정화하여 나타 낼 수 없다. 둘째는 모든 현상적 존재는 시간성을 본성으로 하는 점에서 일체적이다. 그것은 만물이 시간성이라는 본체가 다양하게 현현한 결과임을 뜻한다. 다 양하게 드러나는 일체적 존재 그것이 바로 만물이다. 셋째는 인간은 본질적 시간으로서의 영원한 현재를 살아간다. 그것은 인 간이 시간과 공간에 의하여 형성된 객관적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 니라 매 순간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면서 살아감을 뜻한다. 넷째는 인간은 그 본성에 있어서는 세계와 일체이기 때문에 無我이다. 그러므로 현상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有爲的인 삶은 無爲 的인 삶을 바탕으로 한다. 無爲와 有爲가 하나가 되어 有無가 없는 자유로 움 그것이 인간의 삶이다.
28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이 논문은 2015년 7월 16일에 접수되어, 2015년 8월 13일에 심사를 의뢰하여 8월 28일에 심사 완료되었으며, 2015년 9월 2일부터 9월 14일까지 수정하여 2015년 9월 16일 편집위원회 회의에서 게재가 확정되었음.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29 참고문헌 1. 자료 金東求, 뺷書傳뺸, 洪範, 서울, 명문당, 1989, 251~270쪽. 金東求, 뺷正本周易뺸, 서울, 명문당, 2001, 5~114쪽. 金恒, 뺷正易뺸, 대전, 정경학회, 1966, 1~2쪽. 全秉薰, 東韓神聖檀君天符經, 뺷精神哲學通編뺸 卷之一, 서울, 現代社 영인, 1980년, 1~6쪽. 최동환, 뺷천부경뺸, 서울, 지혜의나무, 2011, 34~551쪽. 최민자 주해, 뺷천부경뺸, 서울, 모시는사람들, 2011, 31~120쪽. 최양부, 뺷하이데거 존재사유의 길뺸, 대전, 문경출판사, 1997, 73~112쪽. 2. 논저 鞠曦, 天符經的思想與現代意義 뺷仙道文化뺸 제4집, 국학연구원, 2008, 59~134 쪽. 송재국, 뺷역학담론뺸, 서울, 예문서원, 2010, 33~76쪽. 이근철, 뺷천부경철학연구뺸, 서울, 모시는사람들, 2011, 15~250쪽. 이현중, 뺷역경철학뺸, 서울, 문예출판사, 2014, 283~300쪽. 이형래, 천부경연구사 소고, 뺷仙道文化뺸 제2집, 국학연구원, 2007, 29~62쪽.
30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Abstract> A View on the Life and World of Cheonbugyeong(天符經) Lee, Hyun-jung Unlike previous research, this paper examines Cheonbugyeong from a sheer academic perspective, not from the viewpoint of a specific religion or training theory. However, simply because every idea ultimately pursues that which is considered desirable for human life, the focus of this paper is human life. Cheonbugyeong is composed of 81 characters: ten of these are numbers from 一(one) to 十(ten), which are used 31 times, and the other 50 are characters. The words used in Cheonbugyeong are 無 (null), 始 (begin), 終 (finish), 化 (become), 變 (change), 生 (generate), 成 (make), 往 (go), and 來 (come). If we put them together, they mean 始終 (begin and finish), 生成 (generate and make), 往來 (come and go), and 變化 (change and become). When examining the contents based on the notions of 始終, 生成, 往 來, 變化, and the numbers from one to ten, a moderate and changing view on the world, an eternal worldview concerning the present, and a worldview about the three prime origins emerge. In addition, when the relevance between noumenon and phenomenon is closely investigated, based on the above-mentioned views, noumenon and phenomenon are shown to be sometimes single and the same things, sometimes divided respectively, and at other times, different things. Cheonbugyeong posits that the human is esse based on the nature of the earth and sky, and that human life is made up of noumenon - 本心 (one's real intention) being a main agent. Moreover, as one's real intention, the metaphysical noumenon, is a main agent of the
천부경의 세계관과 인간관 31 human; from the viewpoint of individual being, it is 無我 (absence of ego). Therefore, the human is an eternal being, without being born or dying. Key Words : 始終 (begin and finish), 生成 (generate and make), 變化 (change and become), view on life, view on world.
http://dx.doi.org/10.17070/aeaas.2015.09.39.033 16) 뺷삼국유사뺸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17)정효운** 目 次 Ⅰ. 머리말 Ⅱ. 뺷삼국사기뺸와 뺷삼국유사뺸 Ⅲ. 불교의 전래와 사생관 Ⅳ. 뺷삼국유사뺸의 사생관 Ⅴ. 마침말 국문초록 고대 한국인의 사생관은 어떠하였을까 하는 의문에서 뺷삼국사기뺸의 검토를 통 해 거기에 나타나 있는 당시 사람들의 사생관에 대해 살펴본 바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뺷삼국유사뺸에 보이는 한국인의 사생관에 대해 검토 하였다. 그 결과, 뺷삼국사기뺸는 유학자의 유교적 사생관이 반영되어있는 반면, 뺷삼 국유사뺸에는 유교적 내세관과 더불어 승려 일연의 윤회 와 극락정토 중심의 불교 적 사생관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래 붓다의 사생관은 무아 와 열반 이 중심사상이라 보아도 좋다. 이들 사상에서 본다면 사생관을 이루는 요소 인 영혼 과 내세 란 관념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승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 면서 유교와 도교 등 현세적인 중국 사상의 영향을 받아 변용되었고, 불교가 국가 의 통제를 받는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 중국화 된 불교가 고대한국에 전래되 * 이 논문은 2015년도 동의대학교 교내일반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과제번호 2015AA067). 또한 이 논문은 2012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 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2S1A6A3A01033504). ** 동의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34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어 한국인의 사생관에 영향을 주어 윤회 란 영혼관과 극락정토 란 내세관이 강조 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대승불교 사상에 입각하여 서술된 뺷삼국유사뺸의 사생관 도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편찬자의 사상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 한다. 이것은 결국 고대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사생관은 통일적이라든가 국가에 의해 통제된 일률적인 사생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종교와 사상 즉 유교 불교 도교 및 무교 등의 종교와 사상에 보이는 사생관의 수용 여부에 따라 계층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 점은 고대 한국인의 사생관은 내세지향적 사상보다는 항상 현세에 기반을 둔 현세 회귀적 사상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주제어 : 사생관, 삼국유사, 대승불교, 극락정토, 윤회사상 Ⅰ. 머리말 통계청 2013년 생명표1)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81.9년(남 78.5년, 여 85.1년)으로 2012년 대비 0.5년 증가 하였고, 2012년 대비 남자 0.6년, 여자 0.4년, 2003년 대비 남자 4.7년, 여자 4.2년 증가 하였 다고 한다. 생활과 위생 환경의 개선 그리고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한 국인의 수명은 이전 시대2)에 비해 상당히 늘어났다고 일반적으로 보고 있 다. 이러한 수명의 증가는 고대인들이 추구하였던 不老長生 의 꿈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문명의 발전에 따라 육체적 삶의 질은 향상되었을지 모르지 1) 2014년 12월 3일 보도자료. 2) 조선 시대 평균수명은 35세 내외였다고 한다. 조선조 임금 27명의 평균수명은 46.1세. 영조만 82세까지 장수했을 뿐 60세를 넘긴 임금은 20% 미만이다. ( 강원일보 2014.10.28. 7면 사설). 하지만 영유아 사망률과 왕의 경우 암살 등의 요인을 고려한다면 직접 비교하 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뺷삼국유사뺸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35 만 죽음의 질도 동반하여 상승하였는가 하는 점에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 는다. 노령화에 따른 노인 자살의 증가, 병원에서의 죽음 등의 문제는 오늘 날 한국사회에 또 다른 화두를 제공하고 있다. 餘命, 은퇴 후의 삶의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죽음을 마주하는 기간도 길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 어 Thanatology, 죽음준비교육, Well-dying, 생사학, 사생학 등으로 명명하 는 신생학문 분야에도 사회적 관심이 기울이게 되었다. 오늘날의 죽음에 대한 연구는 인문학뿐만 아니라 의학, 사회학 등 다양 한 분야에서도 진행되고 있지만, 종래 죽음에 대한 관념은 주로 사생관이 란 관점에 논의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현대 한국인의 사생관은 자신 의 신앙이나 종교에 의해 다양화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운 데서도 사후의 세계인 내세관을 주장하는 불교나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 고 있다고 한다. 즉, 기독교의 내세지향적 사고와 불교의 현세회귀적 사고 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대 한국인의 사생관은 어 떠하였을까 라는 의문3)에서 삼국사기 의 검토를 통해 삼국사기 에 나타 난 당시 사람들의 사생관을 살펴본 바가 있다.4) 본고에서는 이 연구의 연 장선상에서 삼국유사 에 보이는 고대 한국인의 사생관 검토를 목표한다. Ⅱ. 뺷삼국사기뺸와 뺷삼국유사뺸 현존하는 고대한국의 역사서로는 三國史記 와 三國遺事 을 들 수 있 다. 주지하다시피 삼국사기 는 1145년에 고려 인종의 명에 의해 김부식 등 이 편찬하였던 삼국시대 紀傳體의 역사서로서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정사 3) 고대 한국인의 사생관을 이해하는 자료로는 문헌 외에도 금석문이나 분묘, 사찰 등의 고고학 자료도 있지만, 이에 대한 검토는 추후의 과제로 하기로 한다. 4) 졸고, 뺷삼국사기뺸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뺷동북아문화연구뺸 40, 동북아시아문화학 회, 2014, 159 180쪽. 이 논문은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 엮음, 뺷죽음 의례와 문화적 기억뺸,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5, 251 280쪽에 재수록.
36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라 할 수 있으며, 本紀 28권5)에 志 9권, 表 3권, 列傳 10권으로 구성되어 있 다. 10권의 열전에는 왕 이외의 고대 한국인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 金庾信이 3권을 차지하고 나머지 7권에 68명의 활동이 서술되어 있다. 또한 34명이 7세기에 활동한 인물인데, 국가를 위해 순직한 인물은 21인 기 록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爲國忠節이란 유교적 사생관을 의도적으로 드 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비해 삼국유사 는 고려 忠烈王 때의 普覺國師 一然(1206 89)이 신라 고구려 백제 3국의 遺事를 모아 만든 역사서로 편찬 시기는 대체로 충렬왕 7년(1281)에서 9년(1283) 사이로 보고 있기 때문에 130여년의 시간 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 구성은 간략한 연표인 王曆, 단편적 역사서술인 紀異, 불교수용과 융성을 다룬 興法, 탑과 불상에 관한 사실을 다룬 塔像, 신라 고승의 전기인 義解, 신이한 승려들의 이야기인 神呪, 신앙의 영이 감 응을 다룬 感通, 초탈 고일한 행적을 다룬 避隱, 효도와 선행의 미담을 다룬 孝善 등으로 짜여져 있다6). 이러한 차이는 삼국사기 의 경우, 유학자인 김부식의 주도하에 만들어 졌기 때문에 거기에는 유학적 사생관이 많이 반영된 결과로 보이지만, 삼 국유사 의 경우, 일연이란 승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불교적 사생관 이 내포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삼국유사 의 사생관을 이해하기 위 해서는 불교 사생관의 검토가 필요하며, 고대한국에 불교가 전래되는 과정 과 수용, 변용되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5) 고구려 10권, 백제 6권, 신라 통일신라 12권. 6) 최재남 외, 뺷삼국유사(三國遺事)뺸 기사(紀事)와 찬(讚) 연구, 뺷인문논총뺸 12, 경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9, 6쪽. 참고로 기이 59, 흥법 6, 탑상 31, 의해 14, 신주 3, 감통 10, 피은 10, 효선 5 등의 138항목이다.
뺷삼국유사뺸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37 Ⅲ. 불교의 전래와 사생관 1. 고대한국의 불교 전래 고대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였다. 불교에 전래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전래 시기는 각각 차이를 보인다. 고구 려의 경우, 고구려본기 에 기록되어 있다. 2년 여름 6월, 秦의 왕 苻堅이 사신과 승려 順道를 파견하여 왕에게 불상과 경문을 보내 왔다. 왕이 사신을 보내 답례로 토산물을 바쳤다. 4년 阿道가 왔다. 5년 봄 2월, 처음으로 省門寺를 창건하여 순도로 하여금 머무르게 하였다. 또 伊弗蘭寺를 창건하여 아도를 머무르게 하였다. 이것이 해동 불법의 시초가 되었다. (이상 小獸林王 조) 9년 3월, 불교를 숭배하여 복을 구하라는 교서를 내렸다. 관리에게 명하여 國社를 세우고 宗廟를 수리하게 하였다. (故國壤王 조) 소수림왕 2년(372)년에 전진왕인 부견이 승려 순도를 파견하여 불상과 경문을 보내옴으로 시작되었고, 5년(375)에는 성문사와 이불란사를 창건하 여 순도와 아도를 머무르게 함으로서 불교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고국양왕 9년(392)에 이르러 불교를 숭배하라는 교서와 함께 국가 사찰을 짓게 하여 불교를 수용하고 있다. 이처럼 불교의 전달과 수용의 정치적 주체가 왕실 이었다는 점은 종교란 측면보다는 고구려와 전진 양국의 정치 외교적 이 해관계가 우선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백제와 신라도 마찬 가지였는데, 그 배경은 왕권 지배체제 구축에 필요한 사상이었기 때문으로 생각되며, 그 성격도 기복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9년(392) 3월, 불교를 숭배하여 복을 받게 하라는 교서를 내렸다. 관리들에게 명하여 國社를 세우고 宗廟를 수리하게 하였다. (故國壤王 조)
38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백제의 경우, 백제본기 에 원년 가을 7월, 晉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9월, 胡僧 摩羅難陁가 晉에서 오자, 왕이 맞이하여 궁내에 모시고 공경하였 다. 이때부터 佛法이 시작되었다. 2년 봄 2월, 漢山에 절을 창건하고, 승려 10명을 두었다. (이상 枕流王 조) 라고 하여 침류왕 원년(384)에 동진에서 온 胡僧 마라난타에 의해 전래되었 으며, 다음 해에는 사찰을 세우고 승려를 두었다고 한다. 이 기록으로 볼 때, 고구려의 경우는 북방의 전진에서 전파한 불교를 수용했던데 비해, 백 제의 경우는 백제가 적극적으로 남방 동진에 사신을 파견하여 받아들이고 자 하였다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가 불교 수용에 20여년 의 시간이 소요되었던 데 비해, 백제는 전래 즉시 수용하게 된 배경으로 작 용하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것은 선진문화였던 불교의 고구려 전래에 따 른 백제 측의 외교적 대응으로 추측된다. 한편 신라의 경우, 신라본기 에 따르면, 15년 불교를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16년 살생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상 法興王 조) 라고 하여 법흥왕 15년(528)에 불교가 시행되었다고 한 점과, 다음 해인 16 년에 살생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불교가 신라에 서 공인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용 과정은 고구려, 백제 와 달리 순조롭지 않았다. 법흥왕 조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近臣인 異次 頓의 순교라는 정치적 행위가 동반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불교의 전래 가 이전의 시기에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5세기 초 눌지마립간(재 위 417 458) 때에 고구려에서 온 墨胡子란 승려가 일선군(지금의 선산지
뺷삼국유사뺸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39 역)에 들어와 불교를 전파하려 하였으나 수용되지 못하였고, 5세기 말 소지 마립간(재위 479 500) 시기에 고구려 승인 阿道에 의해 시도 되었으나 역 시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두 번의 불교 전래가 수용되지 못하고 또한 수용에 1세기의 시간이 필요 하였던 것은 우선, 고구려와 백제의 경우 주변국의 정세와 연동된 정치 외 교적 필요성과 국왕 간의 교류의 산물이었던데 비해, 신라의 경우, 고구려 와 신라 간의 외교적 행위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묵호자와 아도란 개인적 전파였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외래 종교인 불 교 수용에 있어 갈등이 야기된 원인은 귀족층의 반발뿐만이 아니라 지정학 적 요인으로 인한 중국 불교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당시의 신라와 고구려 의 군사적 긴장관계에 따른 고구려화한 중국불교를 받아들이기에는 거부 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7) 이처럼 삼국 불교의 수용과 공인은 고대국가 체제 정비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점은 이미 많이 지적되어 왔다. 또한 고구려 불교는 因果的 교리 혹 은 求福的인 불교였으며, 백제 불교는 戒律을 중시하였고, 신라불교는 왕 이 곧 佛 이란 사상과 더불어 轉輪聖王 사상을 구현하려한 불교였다고 이해 하고 있다8). 이러한 과정을 거쳐 고대한국에 수용된 불교는 통일신라기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호국적이며 귀족적, 기복 신앙적인 불교로 변용되고 토착화 되어 유교, 도교와 함께 한국인의 종교사상을 이루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용기의 삼국불교는 정치 중심세력이나 지식층 중심이었기 때 문에, 일반 민중에 그 영향을 미치기에는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을 것 이다. 일반 민중에게는 당시의 고유신앙이었던 무속신앙이나 풍수신앙 등 의 사상과 융합하며 수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중국 북부의 불 7) 이 점에 대해서는 졸고, 앞의 글, 167 168쪽 참조. 8) 김상현, 뺷한국불교사 산책뺸, 우리출판사, 1995, 190 192쪽. 또한 鎌田茂雄 저, 신현숙 역, 뺷한국불교사뺸, 민족사, 1988, 1장 참조.
40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교가 俗信이나 巫覡 등과 결합되어 주술성을 가지면서 민중 사이에 침투한 것과 같은 양상9)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왕실의 정치, 외교 등 국가적 이해관계에 의해 고대불교가 수 용되었기에, 연기 와 무아, 윤회, 열반 등을 중심 사상으로 형성된 불교 적 사생관이 어떻게 고대한국 사회의 저변에 어떻게 침투되고 변용되었는 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가지는 사생관이나 내세관 역시 고대 한국인의 사생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불교의 사생관을 구성하는 불교의 영혼 관과 내세관을 검토하기 위해 인도와 중국불교의 사상과 전개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2. 원시불교 사상과 대승불교의 전개 고대한국에 전래된 불교는 중국을 거쳐 오면서 중국화한 불교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의 전래 과정을 살펴보면서 그 사 상의 전개와 함께 사생관의 변용에 대해 논지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간략 히 검토해보고자 한다. 불교란 인도의 고타마 붓다(釋迦牟尼)를 敎祖로 하 여 그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역사는 붓다 가 탄생한 B.C. 5세기부터 크게 원시불교와 部派佛敎, 小乘 및 대승불교로 전개되어 왔고, 각국에 수용되는 단계에서 정치, 문화적 영향에 따라 다양 하게 발전하였으며 필요한 경전과 교리도 새롭게 편찬되기도 하였다. 불교 발생 당시의 인도의 종교계는 베다 와 우파니샤드 에 근거한 브 라만 사상이 지배하던 사회로, 아트만(我)과 브라만(梵)10)의 梵我一如 의 이원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행위는 前生의 業과 연관성을 9) 鎌田茂雄 저, 장휘옥 역, 뺷중국불교사 1 초전기의 불교-뺸, 장승, 1993, 73쪽. 10) 아트만(ātman, 我)은 변화하는 물질적 自我[육체, 마음, 생각 등] 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절대 불변의 내밀하고 초월적 자아[영혼] 을 지칭하며, 브라만[brahman, 梵]은 우주의 근본원리를 지칭하는 힌두교 사상.
뺷삼국유사뺸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41 가지며, 現生의 행위가 後生의 苦樂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보는 輪廻사상이 있고, 이 윤회에서 해탈하는 것이 최고의 이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후기 인도의 業과 윤회, 해탈 사상은 불교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출가한 석가가 6년의 고행과 명상 끝에 깨달은 진리를 法이라 하고, 바나 라스(Banaras)의 鹿野園에서 처음 설법한 이후부터 부파불교 이전까지의 시기를 원시불교시대라고 하며, 중심 교리로 中道11), 十二緣起12), 四諦13), 八正道14)를 언급하였다. B.C. 485년경15) 석가가 열반에 든 후, 摩訶迦葉 등 이 중심이 되어 律과 敎法을 유지하고 정리하였는데, 이를 제1결집16) 이라 한다. 이 이후 불교는 인도의 마가다국을 중심지로 하여 각지로 전파되었 는데, B.C. 4세기경 찬드라굽타(Chandragupta)에 의해 성립된 통일국가 마 우리아왕조(B.C. 324 187)시대는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간 시대로 기록되고 있다.17) 특히, 3대 왕인 아소카(Asoka, 阿育 B.C. 272)시대에 이르 11) 쾌락과 고행의 양 극단을 지양하는 것을 말함. 12) 十二有支라고도 하며, ①無明, ②行, ③識, ④名色, ⑤六處, ⑥觸, ⑦受, ⑧愛, ⑨取, ⑩有, ⑪生, ⑫老死를 말함. 13) 四聖諦는 변하지 않는 진리로 苦諦, 集諦(苦의 근원), 滅諦(고의 해탈), 道諦(고의 해탈 방법)를 지칭. 14) 正見, 正思惟, 正言,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을 지칭. 15) 붓다의 생몰연대에 대해서는 B.C. 624 B.C. 544년, B.C. 565 B.C. 485, B.C. 563 B.C. 483년 설, B.C. 463 B.C. 383설 등으로 다양하지만, 남전불교의 485년 설로 보는 경우가 많다. BC 563 BC 483년 설이다. 이 설은 중국의뺷역대삼보기(歷代三寶紀)뺸에 전하는 중성점 기(衆聖點記), 즉 불멸(不滅) 후 최초의 율장(律藏)이 결집되었을 때 제1점을 치기 시작하 여 매년 1점씩 쳐서, 제(齊)나라의 영명(永明) 7년(AD 490)까지 975점에 이르렀으므로 불멸이 BC 485년이라는 설(BC 565 BC 485년)과도 대략 일치된다. 그외에 BC 624 BC 544년설, BC 463 BC 383년설 등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전자를 채용하고 있다. 16) 결집이란 석가의 가르침(佛說)을 묶어 정리한 것으로, 그가 입멸했을 때 500명의 比丘들 이 都城 라자그리하(王舍城)에 모여 摩訶迦葉의 사회 아래, 優髮離과 阿難이 각각 律과 法을 암송하여 서로 검증하여 경전(삼장)을 편찬하였는데, 이후 2차는 B.C. 376년 바이샬 리, 3차는 B.C. 250년 마가다국의 수도 파탈리푸트라(Pātaliputra)에서 편찬되었다. 17) 에티엔 라모트 저, 정의도 역, 뺷간추린 인도불교사뺸, 시공사, 1997, 43쪽.
42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러 불교가 통치 지도이념으로 받아들여짐으로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 다. 그 결과 카슈미라 간다라(캐슈미어 지방, 카불 계곡과 서부 펀잡), 마 히샤 만달라(중부 말와), 바나바사(북부 카나라), 아파란타(북부 콘칸), 마 하라스트라(마라트 지방), 야바나 로카(그리스 지역, 더 정확하게는 그리스 와 이란의 식민지로서 제드로시아, 아레코시아지방), 히마바트(히말라야 지 방), 랑카 또는 스리랑카 등18)의 국외 지역까지 전파되어 갔다고 한다. 하지만 불교의 이러한 급속한 팽창과 발전은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으며, 이로 인해 교파분열을 초래되었다. 석가 열반 후 100년이 지나자 부처 교설 의 수용 자세와 교단질서 확립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계율 해석의 차이로 인해 전통적 보수파인 上座部와 진보적 자유파로 지칭할 수 있는 大衆部19) 의 두 개 부파로 나누어져 대립하였다. B.C. 4세기 후반, 리차비족과 밪지 동맹의 수도였던 바이샬리(vaisali)에서 비구의 10사(事) 20)에 대한 합법과 非法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 분열이 일어났다. 이에 비법을 주장하는 700명 의 비구들이 집회를 개최했는데, 이를 제2결집 이라 한다. 상좌부의 경우, 윤회로부터의 해탈은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출가자만 이 가능하고, 그 목표는 최고성자인 阿羅漢의 경지에 있으며, 부처도 아라 한 성자의 한 사람이라고 해석하였다. 이에 반해 대중부의 경우, 중생도 부 처의 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생과 부처는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 18) 위의 책, 44쪽. 19) 장로를 중심으로 한 지도층과 젊은 승려를 중심으로 한 일반층을 지칭. 20) ①鹽事淨: 그 전날 받은 소금을 비축해 두었다가 식사 때 쓰는 것은 淨法이다. ②二指淨: 中食을 먹은 뒤에라도 해 그늘이 두 뼘 길이가 될 때까지는 먹을 수 있다. ③隨喜淨: 밥을 먹은 뒤에라도 다시 또 먹을 수 있다. ④道行淨: 도량을 떠나서는 먹은 뒤에 다시 식사할 수 있다. ⑤酪漿淨: 酥油, 蜜, 石蜜 등을 酪에 타서, 밥을 먹지 않을 때 먹을 수 있다. ⑥治病 淨: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술이 되기 직전 상태의 음료는 마실 수 있다. ⑦坐具淨: 몸이 크고 작음에 따라 좌구, 즉 방석의 크기를 조정할 수 있다. ⑧舊事淨: 그 이전 사람이 하던 일을 따라 하면 율에 위반되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 ⑨高聲淨: 따로 羯磨法을 짓고 나중에 와서 억지로 다른 이의 용서를 구한다. ⑩金寶淨: 금, 은, 돈 등을 보시 받을 수 있다.
뺷삼국유사뺸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43 이라고 주장함으로서 윤회가 곧 열반이란 이론 전개의 바탕을 마련하였다 고 볼 수 있다. 이후 부파의 분열이 지속되어 서력을 전후하여 소승 20부로 일컬어지는 11개의 상좌부파와 9개의 대중부파로 나누어졌다. 그 원인은 초기에는 계율해석의 차이에서 시작되었지만, 차츰 학설보다는 장로 중심 의 조직체계나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 20부파 및 이들 부파 소속의 經 律 論에 주장된 교설이 부파불교 로 불리는데, 대표적인 부파로서는 서북 인도에 번성한 說一切有部, 중서 인도의 正量部, 서남 인도의 상좌부(이상, 상좌부계), 남방 인도의 대중부 등을 들 수 있다.21) 이러한 부파의 확대는 결과적으로 부처의 가르침이란 본질보다 律과 經의 훈고학적 주석을 중시하는 阿毘達磨22) 불교로의 발전 을 가져왔다. 그 결과, 僧院과 출가자 중심의 학문불교는 점차 대중과 멀어 지게 되고, 일부에서는 저급한 미신적인 신앙들을 받아들임으로서 초기 불 교의 참신성을 상실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이런 불교계의 흐름에 반발하여, B.C. 2세기 무렵부터 출가자 중심인 부파불교의 현학적 인 경향을 거부하고 붓다의 사리탑을 중심으로 재가신자들의 집단이 형성 되어 대승불교운동을 전개하였다.23) 대승불교는 B.C. 1세기에 이르면 크게 발전하게 되는데, 이타적 세계관 을 바탕으로 하는 대승불교의 대두로 인해 상좌부 중심의 불교는 소승불교 로 명명되었다. 대승불교의 관점은 修行觀에 있어 자기해탈 보다는 대중의 구원에 중점을 두고, 열반 상태의 아라한 성자 대신 菩薩을 이상적 인간으 로 제시하며 열반의 과거불 대신 미래불 佛身觀을 주장하였다. 이에 本生 譚24), 譬喩文學25) 및 아비달마의 우주론과 사상을 종합한 새로운 대승경전 21) 한국사전연구사, 뺷종교학대사전뺸, 1998. (NAVER 지식백과 2015.06.14. 검색) 그리고 그 외 대표적인 것으로 犢子部 雪山部 化地部 飮光部 經量部 등이 있다. 22) 산스크리트어 abhidharma의 음사로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주석 연구 정리 요약을 일컫는 말이며, 佛典의 경 율 논 三藏 가운데 論藏을 지칭함. 23) 藤堂恭俊 塩入良道 저, 차차석 역, 뺷중국불교사 -漢민족의 불교-뺸, 대원정사, 1991, 30쪽. 24) 석가 전생의 이야기를 묘사한 것으로 자타카(jātaka)라고 함.
44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들이 만들어졌다. 부파불교의 영향이 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승불교 운동은 지속적으로 전개된 결과, B.C. 3세기부터 A.D. 1세기 사이에 많은 대승경전들이 만들어 졌는데, 그 중 般若經 과 法華經, 維摩經, 阿彌陀經, 十地經 등은 중요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반야경 의 空思想(中觀思想)은 대승불교의 기본 교리임과 동시에 불교의 근본 사조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 사상을 확립한 남인도의 龍樹는 中論頌 을 통해 부파불교의 오류를 적 극적으로 비판하였다. 용수는 불교의 기본교리인 緣起를 보다 심오한 체계 로 전개하여 경험에 나타난 모든 대립을 부정하는 절대적 일원론을 주장하 였고, 그는 대립의 圖式을 生과 滅, 오는 것과 가는 것, 중단과 계속, 같은 것과 다른 것 등으로 분류하였고 중생과 부처, 윤회와 열반은 본질적 일원 적 입장에서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 본질적 동일성을 아는 지 혜가 반야라고 하였다.26) 힌두교의 죽음관을 윤회와 해탈로 볼 때, 붓다의 죽음관은 열반으로 이 해27)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해탈과 열반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 이다. 이에 대해 대승불교 경전에서는 일반적으로 열반을 윤회와 대비시켜 언급하며, 보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붓다가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 었지만 생사윤회에 빠진 이들을 버리지 않은 것은 열반과 윤회라는 이중성 을 뛰어넘은 행위28)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불교는 1세기 후반 쿠샨왕조의 3대 왕인 카니슈카(Kanishka)는 국 내 각지에 佛塔과 사찰을 건립하는 등 적극적인 불교보호정책의 시행으로 25) 불교설화로 아바다나(avadana)라고 함. 2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뺷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뺸, 1991. (NAVER 지식백과 2015.06.14. 검색). 27) 이 점에 대해서는 케네스 폴 크레이머 저, 양정연 역, 뺷죽음의 성스러운 기술뺸, 청년사, 2015, 68 100쪽를 참조할 것. 28) 폴 윌리엄스 앤서니 트라이브 저, 공만식 역, 뺷인도불교사상뺸, 도서출판 씨 아이 알, 2009, 198쪽.
뺷삼국유사뺸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45 더욱 발전을 가져왔다. 또한 이 시기에는 북인도 대부분과 서인도 북부, 중 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광대한 지역을 지배29)하고 있었기 때 문에 중국문화와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대승 불교는 보살사상 육바라밀 등과 같은 우선적인 기본원리는 공유하면서도 다종다양한, 즉 반야사상이 있는가 하면, 정토사상이 있으며, 법화에 화엄, 종말에는 힌두교라고도 오인할 만한 밀교까지 포함하여, 그러면서도 각각 모두 불교를 표방하며 세력을 다투는 대승운동은 어디에나 대응할 수 있는 다양성을 무기로 인도로부터 주변 여러 나라로 펴져 갔다.30) 3. 대승불교와 중국 불교 붓다에 의해 인도에서 발생한 인도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시기에 대해서 는 다양한 전설과 異說이 있지만, 三國志 와 後漢書 설을 참고해 볼 때, 불교는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실크로드를 거쳐 황하유역으로 전래31)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전래 시기와 지리적 조건32)으로 볼 때, 중국불교 는 인도불교보다는 서역불교의 영향을 보다 많이 받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 불교권에 많은 영향을 미친 중국불교의 특질은 인도불교 나 남방불교, 티벳트 불교 등과는 달리 漢譯大藏經을 근거로 성립하고 있다 는 점33)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최초의 불교 경전은 後漢 桓帝34)시기에 安息国35)의 安世高(? 29) 또한 이 시기 불교는 파르티아(Parthia) 소그디아(Sogdia)지역까지 전파되었고, 이 시기 부터 이곳 學僧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불전 번역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30) 佐佐木閑 저, 이자랑 역, 뺷인도불교의 변천뺸, 동국대학교출판부, 2007, 16 17쪽. 31) 뺷三國志뺸 魏志 西戎傳 인용의 뺷魏略뺸에 前漢 元壽 원년(B.C. 2)에 大月氏王의 사자 伊存이 浮屠經을 구전 받았다고 하며, 그 후 뺷後漢書뺸 明帝 永平 8년(65)에 명제의 이복동 생인 楚王 英이 黃帝와 老子와 더불어 불교를 신봉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32) 인도와 중국 사이에는 힌두쿠시, 캐라코럼, 히말라야 산맥 등의 산맥과 파미르 고원, 고비사막 그리고 곤륜과 천산 산맥의 자연 장백이 형성되어 있다. 33) 鎌田茂雄 저, 장휘옥 역, 앞의 책, 67쪽. 34) 중국의 왕조로 25 220년간 존속하였고, 桓帝의 재위는 146 167이다.
46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168)가 낙양에 20여 년간 머무르면서 阿含部 계통의 四諦經, 八正道經, 十二因緣經 등과 禪經 계통의 安般守意経 과 陰持入経 등 34부 40권 을 한역하였는데, 이것은 모두 부파불교의 경전이다. 그가 번역한 경전의 내용은 4성제, 8정도, 12인연, 5온으로 언급되는 불교의 기초적인 사상의 보 급과 선경에 의한 불도수행을 지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36)고 한다. 또한, 靈帝37)시기에 대월지국에서 온 支婁迦讖(167 186)38)은 178년부터 13년간 낙양에 머무르면서 道行般若経 와 首楞厳経, 般舟三昧経 등 13 부 27권의 대승경전을 한역하였다. 뒤에 도행반야경 등 3부의 경전이 중 역됨에 따라 대승불교는 점차 지식인 사이에서 관심을 끌었으며, 중국 기 존의 전통적인 노장사상 위에서 이해되어 청담사상을 꽃피우게 되었다.39) 이처럼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경전이 거의 동시기에 중국에서 번역되었 다는 것은 인도불교의 소승과 대승의 대립의 역사적 배경은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 시기에는 역경승의 중국 도 래와 더불어 求道와 求法을 위해 서역으로 가는 순례승들의 교류도 활발하 게 진행되었다. 3세기경에 이르면 산스크리트 불교경전의 한역이 시작되었다. 초기 북부 의 洛陽과 長安을 중심으로 전래된 불교는 서역출신인 支謙과 康僧會에 의 해 남부 오나라 建業에도 전파되었다. 출가자가 아닌 재가 불교신자였던 지 겸은 후한 말의 혼란을 피해 오나라로 와서 維摩詰經 과 大般泥洹經, 35) 漢나라 때 서아시아의 이란족이 세운 파르티아 王國으로 현재의 카스피 해 남안지역이다. 그리고 당시의 譯經僧들은 대체로 인도 대월지국 안식국 康居國 등에서 온 이방인들 이다. 36) 藤堂恭俊 塩入良道 저, 차차석 역, 앞의 책, 53쪽. 37) 靈帝의 재위는 168년 189년이다. 38) 인도 쿠샨 왕조의 승려로 특히, 179년에 번역한 뺷도행반야경뺸과 뺷반주삼매경뺸 등은 당시 의 중국 지식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39) 藤堂恭俊 塩入良道 저, 차차석 역, 앞의 책, 55쪽.
뺷삼국유사뺸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47 法句經, 無量壽經 등 27경을 번역하였다고 한다. 지겸이 강남지역에 불 교를 처음 전한 인물이라고 한다면, 建初寺를 건립한 승려 강승회는 이를 정착시킨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는 六度集經 과 五品經 을 번역하였고, 안반수의경 과 法鏡經, 道樹經 의 서문을 썼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삼국시대의 중국불교는 지겸이나 강승회 등의 역경, 주석 및 찬술서에 의 해 불교가 단순한 신앙이나 사탑의 건립만이 아니라 사상으로서도 유포되 기에 이르렀다40)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무렵 중국 사상계에는 老莊思想이 성행하였기 때문에 이와 비 교하여 이해하려는 格義佛敎41)가 등장하였다. 이것은 불교의 空사상을 노 장의 무위 사상이나 유가사상을 빌려 설명하고 해석하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점은 외래종교인 불교가 중국에서 정착하기 위한 방편이 되기 도 하였고, 동시에 당시 중국 지식인층이 불교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었 다고 볼 수 있다. 4세기경부터 전도승인 佛圖澄(? 348)과 대승불교 경전과 중관불교 관련 서적을 번역하여 중국불교 발전에 기여한 鳩摩羅什(334 413)42) 등의 高僧 이 서역으로부터 도래하여 중국 불교를 일신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 고 중국불교 교리연구의 토대를 구축하였다고 평가되는 佛圖澄의 제자 石 道安(312 385)은 前秦王 符堅의 신임을 받았으며, 불경목록을 만들고 경전 해석을 한 그의 제자 慧遠(334 416)43)은 廬山에서 白蓮社를 만들어 염불 을 중심으로 한 結社運動을 전개하였기 때문에 중국 淨土敎의 원류로 보기 40) 鎌田茂雄 저, 장휘옥 역, 앞의 책, 242쪽. 한편, 기록상 최초의 출가자는 朱士行이며, 그는 최초의 西域求法僧이기도 하였다. 41) 대표적 승려로 支遁(314 366)을 들 수 있고, 대표 訳経僧으로는 월씨보살 혹은 敦煌菩薩 이라 불린 竺法護(239 316)였다. 42) 인도 사람으로 뺷大品般若經뺸, 뺷法華經뺸, 뺷維摩經뺸, 뺷阿彌陀經뺸 등 35종 294권을 번역한 승려이다. 43) 혜원의 뺷沙門不敬王者論뺸은 불교의 보편주의가 중국의 민족주의와 대립하는 가운데 토 착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논설로 알려져 있다
48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도 한다. 5세기가 되면 華厳経, 法華経, 涅槃経 등의 대표적인 대승불교 경 전들이 전래되어 대승경전의 연구가 보다 활발히 진행되었고, 曇鸞(476 542)에 의해 정토교도 전래되었다. 또한 불교의 윤회사상이 도입되어 전 생 현생 내세에 대한 인과응보 개념이 중국인의 생활에 깊이 뿌리를 내 린 것도 이때부터라고 한다. 한편, 이 시기 중국은 남북조시대(420 589)가 전개됨으로서 북조와 남조의 불교는 성격을 달리하며 발전하였다. 남조의 경우, 귀족적이며 학술적, 고답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는데, 그 이 유는 광대한 장원을 소유한 족벌귀족들이 정치, 경제에 있어 많은 영향력 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고전적 교양을 몸에 지니고 玄學을 숭배하며 淸談을 즐겼고, 불교도 方外隱逸的44)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유 마경 과 반야경 등이 애호되었으며, 격의불교가 성행된 것도 이때였 다.45) 이에 반해, 북조의 경우는 왕권이 귀족계층보다 상대적으로 강력하였 기 때문에, 정치, 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2번의 폐불 사건46)과 운강석불과 용문석불로 불리는 대규모 석굴불상 조성도 가능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는 북조의 불교가 황제가 곧 여래라는 이른바 王主敎從 이란 국가 우위의 성 격과 더불어 주술적, 실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다47). 그리고, 불교의 주술적 기능은 고대국가의 지배자가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고 과시하기 위해 국가적인 규모로써 행한 경우와, 불교가 민중 속 에 침투하기 위해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살아있는 종교로서 개인적으로 기 능하는 경우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48)고 볼 수 있다. 44) 세속 사람의 테두리 바깥이란 의미로 세상 밖의 뛰어난 것. 4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앞의 책. 46) 北魏 태무제(재위 423 452)와 北周 무제(재위 560 578) 시기에 진행되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불교와 도교 양교 대립 문제가 간여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47) 북조의 불교를 수용한 고구려나 신라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농후하였다고 볼 수 있다. 48) 鎌田茂雄 저, 장휘옥 역, 앞의 책, 20쪽.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수 당 이후가 되어야 가능하였다고 생각된다.
뺷삼국유사뺸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49 隋(581 618)와 唐(618 907)에 의한 남북조 혼란의 종말은 중국불교에 있어서도 새로운 통일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제공49)하였다. 그 결과 중국불교는 학파50) 중심에서 종파51) 중심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고, 이를 위해 중국인에 의한 체계화와 조직화가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 시기는 독자적 교판52)이 확립됨에 따라 종파가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 으로는 수대의 智顗(538 597)가 법화경 을 경전으로 삼는 천태종을 만들 었고, 당대의 法藏은 화엄경 을 체계화하여 화엄종을, 道宣(596 667)은 율종을, 玄奘(602 664)과 窺基(632 682)는 유가유식설을 바탕으로 법상종 을 각각 개창하였다. 또한 菩提達磨(? 528)에 의해 시작된 선종은 제4대조 道信(580 651)과 5대조 弘忍(601 674)에 이르러 기초가 확립되었고, 담란에 의해 전래된 정 토교는 제2대조 道綽(562 645)과 3대조 善導(613 681)에 의해 구칭염불이 보급되어 일반 민중들의 환영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동진시대에 전래된 밀교도 善無畏(637 735), 金剛智(671 741), 不空( 705 774) 등에 의해 교 리와 의식궤범, 曼茶羅 등이 체계화 되었다. 이처럼 수, 당 시기에 체계화, 조직화된 중국의 불교53)는 고대한국 사회 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수용 초기의 소승과 대승의 혼재, 그리고 유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수용되고 중국화한 49) 일반적으로 중국불교사의 시대구분법은 3기, 4기, 5기 설이 있는데, 4기설을 많이 수용되 며 그 시기는 1기 漢代까지(준비기), 2기 동진 남북조(육성기), 3기 수 당대(독자적 발 전기), 4기(송대 이후)로 보기도 한다. 50) 수 당 이전에 성립한 毘曇宗, 攝論宗, 成實宗, 地論宗, 涅槃宗, 三論宗 등은 종파라기보다 학파라 할 수 있다. 51) 教義나 신앙대상, 역사적 과정의 차이에 의해 생겨난 분파를 말한다. 52) 불교 경전을 설법 형식이나 교리의 특징 등을 분류, 판단하여 해석하는 연구법으로 敎相 判釋, 敎相, 判敎라고도 한다. 53) 수 당대 중국불교의 특질을 천태종과 화엄종에서 찾기도 하는데, 이러한 철학불교는 일부 지식인층의 사상이었고 일반 민중의 불교신앙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중국 초기 불교의 신앙이 현세이익사상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부처나 보살의 존재는 현세이익을 대변하는 숭배의 대상으로 여겼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
50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중국불교의 다양한 종파가 구법승이나 당유학승 등에 의해 삼국과 통일신 라(남북국)기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경전과 종파로 나뉘어 수용되었 으며, 이러한 양상은 고려시대에도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원래 보편 적이며 초국가적 성격의 인도불교가 중국에서는 국가불교적 색채를 가지 며 동아시아 및 동북아시아의 전역에 퍼졌고, 한국에서는 호국불교로서의 성격이 강한 신라불교를 만들어 내게 하였으며, 또한 일본의 奈良불교 형성 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54)고 볼 수 있다. 한편, 현재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불교의 세계관 즉, 사생관은 윤회 와 해탈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은 붓다가 탄생한 네팔지역의 종교 즉, 힌두교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주지하다시피 윤회란 무릇 살아있는 중생은 죽은 뒤에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다른 세상에서 반 복적으로 태어나고 다시 죽는다는 사상이다. 이를 불교에서는 天道, 人道, 阿修羅道, 畜生道, 餓鬼道, 地獄道의 六道輪廻55)라 하는데, 이 사상의 근저 에는 육체는 죽더라도 영혼은 불멸하다는 영혼불멸설56)이 근저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해탈이란 業에 따른 고뇌의 윤회세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 지에 이르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후대에는 이 깨달음의 경지를 열반57)이란 말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54) 鎌田茂雄 저, 장휘옥 역, 앞의 책, 19쪽. 55) 부파불교의 경우 阿修羅道를 뺀 5道라 한다. 56) 하지만 초기 붓다의 사상을 무아와 열반으로 본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따라서 영혼불멸 사상은 대승불교의 민중 포교 방편으로 제시된 윤회와 극락이란 개념과 연동되는 사고라고 생각된다. 57) 열반은 산스크리트 니르바나 의 음역이며, 滅, 滅度, 寂滅, 寂静, 無爲, 不生不滅 등으로 의역되지만, 원래 뜻은 불어서 끄는 것, 불어서 꺼진 상태 로 일체의 번뇌와 고뇌가 소멸 된 상태라고 한다.
뺷삼국유사뺸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51 Ⅳ. 뺷삼국유사뺸의 사생관 1. 뺷삼국유사뺸와 고대 한국인의 영혼관 이처럼 유교, 도교사상과 영향58)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중국의 현세적 국 가불교가 고대 한국에 전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지식층 중심의 관념 적이고 학문적 사상으로서의 불교와 현세적이고 기복적인 민간 신앙으로 서의 불교란 중층성을 띠며 한국 고대사회에 전파되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一切衆生의 濟度를 목표로 하는 대승불교의 경우, 일반 민중의 교화를 위해 서는 교학적 측면보다 미륵신앙, 아미타신앙, 관음신앙59) 등의 타력신앙의 측면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사생관에 있어서도 붓다의 무아, 열반 사상보다 극락정토 나 윤회 사상이 현실적으로 일반 민중에 수용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상의 변용은 불교 사생관에 있어 영혼관과 내세관을 형성하게 된다. 원효에 의해 주창 된 정토교가 통일신라시대 이후 확산될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고대 한국인의 사생관에 많은 영향을 미친 불교의 사생관을 삼국유사 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삼국유사 는 13세기 일연의 저술이 란 측면에서 본다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사서에는 승려 일연의 불교 적 사생관이 반영되어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우선 사생관은 크게 영혼관 과 내세관 의 두 개념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전자는 육신이 죽으면 영 혼이 존재하는가의 문제라 할 수 있고, 후자는 존재한다면 그 영혼이 거처 하는 장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58) 불상과 사찰 등이 부모의 명복을 위해 조성하는 점은 유교주의적 사고라 이해할 수 있고, 아미타불을 無量壽로 번역한다든지 하는 사고는 도교적 사상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복적이고 주술적인 면은 중국의 민간 신앙적 요소도 가미된 것이 라 볼 수 있을 것이다. 59) 관음신앙에 대해서는 라정숙, 뺷삼국유사뺸를 통해 본 신라와 고려의 관음신앙, 뺷역사와 현실뺸 71, 한국역사연구회, 2009, 153 184쪽을 참조.
52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육신에 대비되는 영혼 을 지칭하는 개념인 魂 과 靈 그리고 죽은 후의 존재 양태를 나타내는 鬼神 에 대한 의 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한자 뜻에서는 혼 은 넋 혹은 마음이란 의미이고, 정신의 陽에 속하는 부분으로 陰에 속하는 부분인 魄 에 대응하 는 개념60)이라고 한다. 영 은 신령스런(numinous) 현상이나, 신령스러운 존재에서 나오는 어떤 힘을 표현하는 글자61)로, 신령 영, 영혼 영 또는 죽 은 사람의 혼백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귀 와 신 은 모두 귀신 귀, 귀신 신 이라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전자는 陰의 신령, 후자는 陽의 신령이라고 한다. 이들 자전적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영, 혼, 귀, 신 이란 단어는 모두 죽은 형상을 개념화한 것인데, 오늘날에는 영혼 과 귀신 이란 복수 용 어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유교 경전인 예기 에서는 사람이 죽어서 된 신적 존재를 鬼 라 부 르고, 그 이외의 자연현상과 관련된 모든 신적 존재를 神 이라 부른다62)고 하여 구별하였던 것과 같이, 고려 전기까지도 魂 과 靈 그리고 鬼 와 神 이 각각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삼국사기 의 용례 검토를 통해 확인63)하였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삼국사기 가 1145년에 편찬되었지만, 삼국유사 는 1282년 전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130여년의 시간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여기서는 삼국유사 가 편찬된 시기 즉, 고려 후기에 있 어서 영혼관과 관련성을 가지는 이들 용어가 어떤 개념으로 사용되었는지 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영 의 경우는 61번 사용되고 있는데, 그 용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靈艾, 未鄒之靈, 靈廟寺, 大王之靈聖, 靈廟寺, 四靈地, 山川之靈, 靈鷲山, 靈妙 60) 61) 62) 63) 뺷漢字大字典뺸, 민중서관, 1974. 이용주, 뺷죽음의 정치학: 유교의 죽음 이해뺸,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5, 71쪽. 위의 책, 72쪽. 이 점에 대해서는 졸고, 앞의 글을 참조할 것.
뺷삼국유사뺸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53 寺, 王師之威靈, 生靈塗炭, 大王降靈, 山靈, 靈帝, 廟之威靈, 精靈, 靈應, 靈鷲山, 靈石, 乞靈, 靈塔寺, 景靈殿, 山靈, 捺靈郡, 靈迹, 靈洞, 洞靈水, 靈境, 靈鷲寺, 靈響, 靈感, 袈裟之靈蔭, 靈廟, 靈異, 靈山寺, 靈岳, 靈山祖師, 含靈, 靈烏, 靈鷲, 靈範 이처럼 영 에 대해서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절이나 산천 등의 자연물과 연관된 것이 많으며, 사람의 경우 일반 사람이 아니라 왕 등의 지 위가 높은 사람의 영혼에 사용되는 예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혼 의 경우 는 8번 사용되고 있는데, 그 용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魂魄, 聖帝魂, 二魂, 魂之妙願, 魂, 夢魂. 혼백이란 용례가 1례 보이고 있지만, 대체로 개별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 런 점에서 볼 때, 영 과 혼 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의미하는 것이기는 하지 만 혼은 협의의 의미로 육에 예속된 것이고 영은 인간의 육체를 초월한 광 의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귀 의 경우에는 35번 보이고 있는데, 그 용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鬼神, 鬼衆, 鬼橋. 辟鬼, 鬼哭, 一鬼, 天地鬼神, 神鬼干, 神鬼, 神鬼之音, 鬼神, 鬼徒, 鬼拱神扶, 狐鬼, 鬼心, 餓鬼, 一大鬼, 小鬼, 大鬼, 衆鬼, 群鬼, 天地鬼神, 鬼 귀 역시 귀신 이란 단어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본시 귀 와 신 이 구별되는 의미라는 것은 천지귀신 이란 용어가 천 과 지, 귀 와 신 의 복 합어이며, 鬼拱神扶(귀와 맞잡고 신이 도와) 란 용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래는 구별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죽은 후의 영혼의 형상을 말하는 것이지만 전자는 부정적인 관념을 내포하고 있는데 반해, 후자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포함하는 용어란 것을 알 수 있다. 신 의 경우는 292번이나 보이고 있다. 그 용례는 다음과 같다.
54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怪力亂神, 虹繞神母, 神童, 神異, 神壇樹, 神市, 神雄, 神, 山神, 神爵, 熊神山, 鬼神, 神詔, 東岳神, 大王之神聖, 鵄述神母, 神德王, 神元寺, 神衆寺, 神形, 三神, 神謀, 神丘道行軍摠管, 神劍, 天神, 神明, 神術, 神文王, 五方神像, 神龍, 神物, 五岳 三山神, 北川神, 神英大王, 神武大王, 疫神, 南山神, 北岳神, 地神, 山神, 神池, 神德 王, 五方神弓, 神鸞公主, 神興大王, 神成王后, 阿干神會, 神人, 神力, 神劍, 天地鬼 神, 神兵, 神天干, 神鬼干, 神鬼, 神天, 神道, 神物, 神聖, 神略, 神力, 神武, 神誌, 神墦, 鬼拱神扶, 神鐘, 神師, 大聖靈威, 神匠, 神笛, 神光寺, 神衛, 神孝寺, 神龍, 神仙, 精神, 神寶, 神祗, 六神通者, 神通力, 淨神大王, 神寶川, 神龍元年, 神文之子, 窟神, 五臺山神, 忉利天神, 華嚴神衆, 淨神太子, 神基, 神卓和尙, 明神, 法神, 神文 王, 佛之威神, 神器, 神聲, 神言, 神術, 神謀, 神妙, 八部神將, 金剛神, 雞神, 神童, 神印, 神志, 人神, 神州, 神印, 岳神, 神通, 神呪, 神簡, 五色神光, 四方大力神, 神通, 神通力, 白甲神兵, 黑甲神兵, 神文王, 和尙神通, 熊神, 明朗神印, 神印宗, 仙桃山 神, 五岳神君, 神祠, 神母, 神仙之術, 神驗, 神館, 貴國之神, 東神聖母, 神社, 天地鬼 神, 神方, 神心, 神烏, 通神, 岳神. 神名, 神琳 신 의 용례가 가장 많이 있는데, 신 은 영 과 같이 산천 등의 자연이나 절의 명칭에도 사용되지만, 왕의 이름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귀 의 음의 성격이 아니라 양의 긍정적인 성격을 지니는 용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초기에는 자연물의 주재자의 의미로 사용되다 불교가 들어 온 후에는 8부신장 이나 금강신 등과 같이 불교를 수호하는 신이란 의미 로도 쓰여 졌다고 볼 수 있고, 영 이 추상적인 관념이라면 신 은 인간에 직 접 영향을 주는 구체적인 형태의 관념이라 생각된다. 이상에서 삼국유사 의 영혼관을 영, 혼, 귀, 신 의 용례를 통해 살펴보았는데, 삼국사기 와 마 찬가지로 이들 용어는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 한 점은 고려 후기에도 중기와 같은 영혼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러한 영혼관을 바탕으로 삼국유사 보이는 고대인의 내세관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한다.
뺷삼국유사뺸에 나타난 한국인의 사생관 55 2. 뺷삼국유사뺸와 고대 한국인의 내세관 삼국유사 에는 사생이나 생사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이들 사료를 보면 서 당시의 사람들의 사생관과 깊은 관련성이 있다고 보는 내세관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하자. 이 문제와 관련된 죽음과 삶을 지칭하는 사생 혹은 생사 란 용어는 각각 3개씩 용례가 기록되어 있다. 먼저 사생 의 용례는 내 물왕 김재상 조와 사복불언 조, 그리고 물계자 조에 각각 남아있다. 이에 왕이 불러서 묻자 제상은 두 번 절하고 대하여 아뢰기를 신이 들은 바에 따르면 임금에게 근심이 있으면 신하는 욕을 당하고, 임금이 욕을 당하면 그 신하는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일의 어려움과 쉬운 것을 헤아려서 행한 다면 이는 불충성한 것이며, 죽고 사는 것을 생각하여 행한다면 이는 용맹이 없다고 할 것이니, 신이 비록 불초하나 명을 받들어 행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하였다. 왕은 그를 매우 가상스럽게 생각하여 술잔을 나누어 마시고 손을 잡아 작별했다. (뺷三國遺事뺸1卷 1紀異 奈勿王 金堤上條) 이 사료는 내물왕 김재상 조에 기록된 것이다.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가 있는 내물왕의 동생들을 신라에 데려오기 위한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것으로, 여기서는 사생 의 문제는 내세관의 유무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현 실적 충이 보다 선행된다는 유교적 사생관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루는 그 어머니가 돌아가니, 이때 元曉는 高仙寺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원 효가 그를 보고 예를 갖춰 맞이하였다. 蛇福은 답배하지 않고 말하기를 그대와 내가 옛날에 經을 실었던 암소가 지금 죽었으니 함께 장사지냄이 어떻겠소? 라 고 하였다. 원효가 말하기를 좋다 고 하였다. 드디어 함께 집에 도착하였다. 원효에게 布薩시켜 주게 하였다. 시체 앞 이르러 고축하기를 나지 말지니, 그 죽음이 괴롭다. 죽지 말지니, 그 남이 괴롭도다 라고 하였다. 사복이 말하기를 [그] 말이 번거롭다 고 하였다. (원효가) 이를 고쳐서 말하기를, 死生이 괴롭 다 고 하였다. 두 분이 [시신을] 메고 活里山 동쪽 기슭으로 갔다. 원효가 말하
56 東아시아古代學 第 39 輯 (2015. 09) 東아시아古代學會 기를, 지혜의 호랑이를 지혜의 숲속에 장사지냄이 또한 마땅하지 않으리오? 라고 하였다. 사복이 이에 偈를 지어 말하기를, 그 옛날 석가모니불은 裟羅樹 사이에서 열반에 드셨다. 지금 역시 그와 같은 이 있어 연화장세계에 들어가고 자 한다 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띠풀을 뽑았다. [그] 아래에 있는 세계는 晃朗 하고 淸虛하며 칠보로 장식한 난간과 누각이 장엄하여 인간세상이 아니었다. 사복이 시체를 업고 함께 들어가니 그 땅이 갑자기 합쳐졌다. 원효는 이에 돌아 왔다. (뺷三國遺事뺸4卷 5義解 蛇福不言條) 이것은 사복불언 이란 항목에 나오는 것으로 설화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원효가 포살하는 내용에 사생 즉, 죽는 것과 사는 것이 苦 라고 하는 사고 는 붓다의 사상이기 때문에 불교적 사생관이 반영된 용례라 할 수 있다. 또 한 비로자나불의 정토인 연화장세계가 언급되는 점에서도 불교적 내세관 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64). 물계자는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내 들으니 임금을 섬기는 도리는 위태로 움을 만나면 목숨을 바치고 환란을 당해서는 몸을 잊어버리며, 절의를 지켜 生死를 돌보지 않음을 충이라고 했소. 保羅[發羅로 생각되는데, 지금의 羅州다.] 와 갈화의 싸움은 진실로 나라의 환란이었고 임금의 위태로움이었는데, 나는 일찍이 내 몸을 잊고 목숨을 바치는 용맹이 없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매우 충성 스럽지 못한 것이오. 이미 충성스럽지 못한 것으로 임금을 섬겨 그 허물이 아버 님께 미쳤으니, 어찌 효라고 할 수 있겠소? 이미 충과 효의 도를 잃었는데 무슨 낯으로 다시 조정과 저자를 나다닐 수 있겠소? 그리고 머리를 풀고 거문고를 메고는 師彘山[자세하지 않다.]으로 들어갔다. (뺷三國遺事뺸 5卷 8避隱 勿稽子條) 이것은 물계자전에 보이는 사생의 용례이다. 이 역시 현재의 충에 바탕 을 둔 절의를 지키는 것은 죽음보다 더 가치를 둔다는 사고는 유교적 사생 64) 이 설화에 대해 나희라는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다[死生不二] 는 관점에 서 있는 신화적 생사관의 승화된 불교적 표현으로 해석한다.(나희라, 고대 한국인의 저승관과 지옥의 이해, 뺷죽음 의례와 문화적 기억뺸,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2015, 1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