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HOCKEY KOREA 발행인: 홍 문표 편집: 대한하키협회 이메일: soc8800@yahoo.co.kr 사무국 홈페이지: www.koreahockey.co.kr 발행처: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488 올림픽회관 602호 전화 02-420-4267 팩스 02-420-4138 통권 제 10호 2014년 10월 31일 제 95회 전국체전 결산 종합 1위 경기도, 2위 인천광역시, 3위 충청남도 시.도별 입상팀 및 종합점수 구 분 남 고 부 여 고 부 남자일반부 여자일반부 1 위 김해고 태장고 성남시청 KT 2 위 광주제일고 제천상고 인천시체육회 아산시청 3 위 종합 1위 계산고 부평여고 순천향대 한국체대 용산고 성주여고 한국체대 평 택시청 경기도 (2190점) 종합 2위 인천광역시 (1600점) 종합 3위 충청남도 (1528점)
2 - [대한체육회 발행 스포츠코리아] 종목별 뿌리를 찾아서 대한하키협회 편 국내 보급은 늦었어도 재일동포 가세로 경기력 급성장 인간은 지구 위에 존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생존을 위해, 또는 생활의 편리 를 위해 작대기로 무엇인가를 했을 것이다.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서는 작대 기를 휘둘렀을 것이고, 멀리 이동하기 위해서는 작대기로 땅을 짚고 움직였 을 것이다. 그 작대기가 오늘날 하키의 스틱으로 발전했다는 추론을 할 만 한 고대 자료들이 많다. 기원전 2000년 무렵 고대 이집트 유적에서 두 사람이 작대기를 겹치고 있 는 그림이 발견됐다. 겹쳤다는 것은 이들이 작대기를 이용해 무엇인가 유희 적인 행동을 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무려 4천 년 전의 일이다. 이집트와 비슷한 시기에 문명을 꽃피운 그리스 유적에서도 오늘날의 하키와 비슷한 장면이 발견됐다. 그리스 문 명은 로마 문명으로 이어지면서 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는데 이때 작대기로 하는 놀이도 함께 퍼져 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아일랜드의 헐링(huring), 스코틀랜드의 신티(shinty),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밴디(bandy)가 하키와 비슷한 경기라는 것이 그 같은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또 아시아 지역의 경우 기원전 300년쯤에 내몽골 지역에서 오늘날의 하키와 비슷한 놀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1886년 영국하키협회가 설립됐고 1895년 아일랜드가 웨일즈를 3-0으로 꺾으면서 국제 경기가 시작됐으며 1908 년 런던 대회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다. 하키는 1900년 파리 대회에서 축구와 럭비, 폴로 그리고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에서 축구가 열린 뒤 단체 구기 종목으로는 4번째로 올림픽에 진입했다. 농구(1936년 베를린 대회)와 배구(1964년 도쿄 대회), 핸드볼(7인제 1972년 뮌헨 대회) 등은 올림픽 진입을 생각하지도 못하 고 있을 때다. 그만큼 하키는 역사가 깊은 전통의 종목이다. 올림픽에 소개는 됐지만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지 않은데다 국제적인 총괄 기구가 없어 1924년 파리 대회에서 는 종목에서 빠졌다. 그러자 영국을 중심을 바로 그해 국제하키연맹(FIH)이 결성됐고 1928년 암스테르담 대회부 터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올림픽 종목으로 치러지고 있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 때 여자부가 세부 종목으로 추가돼 하키는 명실상부한 올림픽 종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뒤늦게 보급된 하키 이 땅에도 예로부터 작대기로 하는 놀이가 많았다. 공과 같은 형태의 기구는 없지만 작대기로 하는 자치기는 중 장년층에게는 추억의 놀이다. 자치기에서 조금 더 발전 한 게 장치기인데 하키와 매우 비슷하다. 그런데 축구나 야구, 배구, 농구 등과 달리 하키는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에 이 땅에 보급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도 하
3 - 키와 관련된 내용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천연 잔디 구장에서 경기를 해야 하는 시설 문제가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을 할 뿐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국 내 하키 경기는 맨땅 구장에서 열렸다. 하키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부터 인조 잔디 구장에서 경기를 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하키에서 은메달을 딴 사실을 미루어 보면 1930년대에 이 땅에서도 하키를 했을 가능성은 상당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특히 1930년대에 열린 전조선종합 경기대회(오늘날의 전국체육대회)에서는 하키 종목을 찾아볼 수 없다. 조선체육회는 제 16회 전조선종합경기대회 를 1935년 10월 개최했는데 이 대회에서는 지난 대회의 육상과 축구, 농구, 야구, 정구 등 5개 종목에 유도와 씨 름, 역기(역도), 검도 등 4개 종목을 추가했다. 또 1936년 8월에 열린 제 17회 전조선종합경기대회에서는 수상(수 영)과 권투(복싱), 탁구 등 3개 종목이 추가됐다. 일제에 의해 조선체육회가 해체되기 전 마지막으로 열린 1937년 제 18회 전조선종합경기대회에서는 야구를 빼고 배구를 새로 넣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체육계도 활기를 찾으면서 종목별 경기 단체 창립이 줄을 잇는 가운데 하키는 1947년 6월 조선하키협회(회장 정일형)를 결성했다. 이때는 각종 단체 이름에 아직 대한 이란 말이 들어가지 않 았다. 창립 멤버는 일본 유학 경험이 있는 인사들이었다. 그해 10월에 개최된 제 2회 조선올림픽대회(전국체육대회라는 명칭이 정착되지 않았던 때인데다 1948년 런던 올림픽 출전에 대한 열망이 조선올림픽대회라는 대회 명칭으로 나타났다. 이 대회는 제 28회 전국체육대회로 보면 된다)에서 시범경기로 이 땅에서 첫 하키 게임이 펼쳐졌다. 이어 1957년 재일동포팀의 고국 방문 경기는 하키 발 전에 크게 도움이 됐고 1958년에는 FIH와 아시아하키연맹에 가맹해 국제 무대에서 활동할 발판을 마련했다. 1958년 도쿄 아시안게임 더없이 소중한 동메달 1957년 9월에는 대한필드하키협회로 이름을 바꿨고 이어 1966년 다시 대한하키협회로 개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키는 보급은 늦게 됐지만 1950년대에 이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메달을 딴 빛나는 역사를 자랑한다. 이 무 렵에는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단체 구기 종목 메달을 획득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한국은 아시아경기대회에 첫 출전한 1954년 제 2회 마닐라 대회 축구에서 은메달을 땄고 1958년 도쿄 대회에 서는 하키가 동메달, 축구가 은메달, 배구(9인제)가 은메달을 차지했다. 1962년 자카르타 대회에서는 축구가 은메달, 농구가 동메달을 획득했고 배구가 은메달 3개(6인제 여자 남녀 9 인제)를 얻었다. 이런 형편에 이들 종목에 견줘 보급 역사가 훨씬 짧은 하키가 메달을 땄으니 체육 관계자들이 놀 라워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상황을 대한체육회 70년사는 아래와 같이 전하고 있다. 원문 그대로 옮긴다. 재일교포로 구성된 하키팀은 가슴에 조국의 상징을 달고 메인 스타디움을 종횡으로 질구( 疾 驅 질주와 같은 말)하면서 2위 인도, 1위 파키스탄 등 전통적인 필드하키 강호와 싸워 3위를 획득했다. 특히 이들이 세계 최강의 인도팀을 상대로 선취 득점을 올리는 등 세계 하키사에 기록될 성적을 거둔 사실과 재일교포의 성원 속에서 일본 팀을 격파한 사실은 교포 관중을 열광케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 기록에 부연 설명을 하면, 당시 대표 선수는 전원 재일동포였다. 한국은 1차전에서 말레이시아를 3-2로 물리 치며 기세를 올렸다. 2차전에서 1948년 런던, 1952년 헬싱키, 1956년 멜버른 올림픽 3연속 챔피언인 세계 최강
4 - 인도와 맞붙어 선제점을 올리는 등 분전한 끝에 1-2로 졌다. 하루 뒤 곧바로 3차전에서 또 다른 세계적인 강호 파키스탄(1956년 멜버른 올림픽 은메달 1960년 로마 올림픽 금메달)을 맞아 체력의 문제를 드러내며 0-8로 완패했다. 그러나 또다시 하루 뒤 만난 홈그라운드의 일본을 2-1 로 누르고 골득실차로 순위를 가린 파키스탄과 인도(이상 3승1무)에 이어 3위(2승2패)에 올랐다. 일본은 1무3패로 꼴찌로 밀렸다. 하키는 모든 경기가 6년 뒤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사용되는, 일본 스포츠의 심장으로 불리는 요요기국립경기장에 서 열렸다. 한국이 일본을 물리쳤을 때 요요기국립경기장의 분위기가 어땠을지는 대한체육회 70년사에 잘 표현돼 있다. 힘차게 도약하는 한국 하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 내다 1958년 도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감격의 동메달을 획득한데 힘입어 1960년대에는 용산고 광주일고 춘천고 제 천고 등 전국적으로 고교팀이 두껍게 저변을 이루면서 연세대 경희대 한국외대 성균관대 등 대학팀까지 왕성한 활 동을 했다. 그러나 국제 대회에서는 이렇다 할 승전보가 전해지지 않았다. 재일동포 선수에 국내 선수 2명을 보태 출전한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7위, 감독과 코치 그리 고 선수 모두 재일동포가 없는 팀을 꾸려 출전한 1966년 방콕 대회에서는 6위에 그쳤고 이후 아시아경기대회 등 주요 국제 대회에 나서지 못하는 암흑기가 이어졌다. 경쟁력이 없는 종목은 외화를 들여 가며 국제 대회에 보낼 수 없을 정도로 나라의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하키는 큰 시련을 겪게 된다. 1974년 서울에서 열린 제 55회 전국체육대회 여 고부 경기에서 스틱을 사용하는 싸움이 벌어져 1982년 제 63회 대회에서 부활하기까지 7년간 여고부 종목이 없 어진 것이다. 그때 사고로 크게 다친 선수는 없었지만 여자가 어떻게 스틱을 휘두르며 싸울 수 있느냐 는 호된 비판이 일어 종목 폐지라는 전무후무한 중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한국 하키는 이 같은 어려움을 이겨 내고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남녀 동반 우승의 쾌거를 이 뤘다. 여자 하키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정식 세부 종목으로 채택됐는데 한국은 그 대회에서 말레 이시아와 일본을 따돌리고 강호 인도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서울 대회에서는 인도를 3-0으로 물리치는 등 5 전 전승(45득점 2실점)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탄력을 받은 여자 하키는 이후 1998년 방콕 대회까지 아시아경기대회 4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세웠다. 2002년 부산 대회 이후 중국에 3연속 패권을 내줬는데 중국은 지도자를 비롯해 한국식 하키 로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하키에도 한류 바람이 분 것이다. 1982년 뉴델리 대회에 여자와 함께 출전해 중국을 3-1로 꺾고 5위를 기록하면서 워밍업을 한 남자는 1986년 서울 대회 결승에서 이 대회 전까지 아시아경기대회 통산 5회 우승에 빛나는 세계적인 강호 파키스탄을 2-1로 잡 고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남자도 여자 못지않게 탄력을 받아 1994년 히로시마 대회 결승에서는 또 다른 세계적인 강호 인도를 3-2로 물 리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2002년 부산 대회에서는 인도를 4-3, 2006년 도하 대회에서는 중국을 3-1로 꺾고 인
5 - 도도 이루지 못한 아시아경기대회 2연속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여자, 1988년 서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에 빛나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 하키가 남녀 모두 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일이기도 했지만 하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 았다. 뉴델리 대회에 하키 남녀부를 비롯해 전 종목을 파견한 건 4년 뒤 열릴 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2년 뒤인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여자가 은메달을 따면서 한국 여자 하키는 호주 스페인 독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호로 떠올랐다. 한국은 서울 올림픽 조별 리그 B조 첫 경기에서 1984년 로스앤젤스 올 림픽 은메달의 강호 서독을 4-1로 잡으며 파란을 예고했다. 기세를 올린 한국은 2차전에서 캐나다를 3-1로 물리 친데 이어 호주와 5-5로 비겨 조 1위로 4강에 올랐다. 준결승에서 영국을 1-0으로 잡았으나 조별 리그에 이어 결승에서 다시 만난 호주에 0-2로 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호주는 이후 1996년 애틀랜타 대회와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2연속 우승하는 등 1980년 모스크바 대회 때 처 음으로 올림픽 세부 종목이 된 여자 하키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데 한국은 서울 대회에 이어 1966년 애틀랜타 대회 결승에서 또다시 맞붙게 된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하키는 호주 한국 영국 등 8개 나라가 예선 라운드를 치러 호주가 6승1무, 한국이 4승2무1패를 기록해 예선 1위와 2위인 두 나라가 금메달 결정전을 치렀다. 한국은 서울 올림픽에 이어 조별 리그 에서는 3-3으로 비겼지만 결승에서 1-3으로 져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 무렵 세계 최강 호주와 막상막하의 승부를 펼칠 만큼 1980~90년대 한국 여자 하키는 강력한 경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남자,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은메달에 빛나다 서울 올림픽에서 여자가 은메달을 땄을 때 남자는 조별 리그 B조에서 2무3패를 기록해 순위 결정전으로 밀려난 뒤 9위 결정전에서 스페인에 0-2로 져 12개 출 전국 가운데 10위에 머물렀다.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는 출전권을 따지 못했고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는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 1위 자격으로 출전했다. 히로시마 대회에서 한국은 1986년 서울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남녀 동반 우승 의 영광을 안았다. 남자는 2002년 부산 대회와 2006년 도하 대회에서도 금메달 을 차지했지만 여자가 중국세에 밀리면서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동반 우승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은 조별 리그 B조에서 중국과 방글라데시를 4-0, 10-0으로 눌렀으나 인도에 1-3으로 져 조 2위로 4강에 올랐다. 한국은 준결승에서 조별 리그 A조 4전 전 승(19득점 2실점)의 뛰어난 성적을 올린 파키스탄과 2-2로 맞선 뒤 승부치기에서 4-1로 이겨 결승전에 올랐고 조별 리그에 이어 다시 만난 인도를 3-2로 꺾고 처음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서울 올림픽에는 개최국 으로 자동 출전했다. 파키스탄은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 직후 열린 하키 월드컵 우승으로, 인도는 1996년 1월에 열린 세계 예선 통과로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한국이 5위, 파키스탄이 6위, 인도가 9위 에 올랐다. 한국은 5위 결정전에서 파키스탄을 3-1로 눌러 히로시마 대회에서 가리지 못했던 승부를 마무리했다.
6 - 드디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인도와 치른 199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결승에서 1-1로 비긴 뒤 승부치기에서 2-4로 져 시드니행 직행 티켓을 놓친 한국은 2000년 3월 도쿄에서 열린 세계 예선에서 파키스탄, 스페인 등과 함께 올림픽행 막차를 탔다. 한국은 어렵사리 올림픽에 나섰지만 본선에서는 펄펄 날았다. 조별 리그 B조에서 조 1위 호주에만 1-2로 졌을 뿐 인도를 2-0으로 잡는 등 2승2무1패, 조 2위 4강에 올라 A조 1위인 파키스탄(2승3무)을 1-0으로 꺾고 대망의 결승전에 진출했다. 4년 뒤인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맞붙은 강호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은 올림픽 하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였 다. 한국은 송성태가 전반 9분 선제골을 넣었으나 스테판 패트릭 빈에게 연속으로 3골을 내주며 1-3으로 역전당 했다. 그러나 끈질긴 투혼을 보인 한국은 경기 종반 김경석이 추격 골, 강건욱이 동점 골을 터뜨렸고 결국 승부치 기까지 끌고갔으나 4-5로 져 금메달을 눈앞에서 놓쳤다. 1940~50년대 열악한 여건에서 출발해 세계 정상권에 올 라선 하키는 불굴의 정신력을 보여 주는 한국 스포츠의 대표적인 종목이다. 글 신명철 대한체육회 홍보위원/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스포츠코리아 9월,10호에서 발췌) <분과위원회 소식> 1. 경기위원회 제95회 전국체육대회 개최 기간 : 2014년 10월27일 ~ 11월3일 장소 : 제주도 (제주 국제대 하키경기장) 2. 경기력 향상위원회 기간 : 2014년 10월31일 (금) 10시 장소 : 제주 국제대 학생식당 회의실 안건 : ODA 진천선수촌 합동 훈련을 위한 파키스탄남자대표팀 초청 사업 선수선발의 건 3. 인조잔디 공인분과 소위원회 일시 : 2014년 10월23일 (목) 장소 : 제주 국제대 하키경기장 <각급 대표팀 소식> 1. 전략종목 U17세이하 청소년대표 합숙훈련 일시 : 2014년 11월05일~11월24일(20일간) 장소 : 목포 하키경기장
7 - < 월간하키 협회 소식 > 1. ODA 진천선수촌 합동 훈련을 위한 파키스탄남자대표팀 초청 사업 일시 : 2014년 11월20일~11월29일 (10일간) 장소 경남 김해 하키경기장 초청팀 : 파키스탄 ( 4차전 친선경기 예정 ) 2. 한일 우수청소년 스포츠교류 사업 일시 : 초청 -2014년 11월24일 ~ 11월29일 (6일간) 파견 -2014년 11월17일 ~ 11월22일 (6일간) 장소 : 동해 웰빙 하키경기장 3. 제1회 초등학교 스포츠클럽 대항하키대회 개최 가. 대 회 명 : 제1회 초등학교 스포츠클럽 대항하키대회 나. 기 간 : 2014.11.22-11.23 (2일간) 다. 장 소 : 서울 라. 재정지원 : 숙박비, 식비, 교통비 지원(1박2일 기준) 재정지원관련 세부사항은 추후 통보. 4. 제11기 클린심판아카데미 개최계획 ㅇ 과정명: 제11기 클린심판아카데미 ㅇ 장소: 수안보 파크호텔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탑골1길36, Tel: 043-846-2331~6) ㅇ 인원: 130여명 - 대상: 대한체육회 가맹 경기단체 1급 상당 심판 - 인원: 경기단체별(46종목) 3명 이상(우선순위 명시)
8 - <기 고 : 하키 기술> 제9편 : HOCKEY TRAINING Ⅸ 중앙슈팅훈련 훈련 방법 1 1번 선수는 3번 선수에게 패스한다. 3번 선수는 1번 선수에게 패스를 받은 볼을 2번 선수에게 패스한 후 앞 공간으로 이동하여 2번 선수에게 패스를 받아 빠르게 드리블하여 서클로 진입한 뒤 강하게 슈팅을 한다. 2번 선수는 3번 선수에게 패스를 받은 볼을 재차 3번 선수에게 공간 패스를 한다. 패스는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반대편도 실시하며, 선수간의 간격은 5 ~ 7m로 실시 한다. 훈련 방법 2 2번 선수는 3번 선수에게 패스를 주고 받은 후 1번 선수에게 패스한다. 3번 선수는 2번 선수에게 패스 받은 볼을 재차 2번 선수에게 패스한 후 앞 공간으로 이동하여 1번 선수에게 패스를 받아 빠르게 드리블하여 서클로 진입한 뒤 강하게 슈팅을 한다. 2번 선수는 3번 선수에게 패스를 받은 볼을 1번 선수에게 패스를 한다. 1번 선수는 2번 선수에게 패스 받은 볼을 공간으로 이동 하는 3번 선수에게 패스한다. 패스는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반대편도 실시하며, 선수간의 간격은 5 ~ 7m로 실시한다.
9 - 훈련 방법3 3번 선수는 2번 선수에게 패스를 주고 받은 볼을 1번 선수에게 패스 한 후 서클 내 1번 선수 뒤 공간으로 이동한다. 1번 선수는 3번 선수에게 패스 받은 볼을 2번 선수에게 패스한다. 2번 선수는 1번 선수에게 패스를 받은 볼을 서클 내 공간으로 이동하는 3번 선수에게 스루패스를 한다. 3번 선수는 2번 선수에게 패스 받은 볼을 강하고 정확하게 슈팅 한다. 패스는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반대편도 실시하며, 선수간의 간격은 5 ~ 7m로 실시한다. 경기력 향상을 위한 식단지침 1) 경기 전 가) 경기 전에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하키경기 바로 전에 음식을 먹는 것이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신체활동에 이익을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별한 식사들이 신체활동에서 근거없는 유익함으로 주장되어 오고 있다. 경기 전 식사는 여러 목적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이다. 1 경기의 시작 시 위를 비워둔다. 2 위의 부담을 최소화한다. 3 배고픈 느낌, 머리가 몽롱해짐, 또는 피로를 피한다. 4 적절한 연료로서 탄수화물을 공급한다. 5 물을 적절하게 공급한다. 일반적으로 딱딱한 음식은 경기 전 약 3-4시간 전에 먹어야 한다. 이것은 위가상대적으로 비어 있지만 배고픔은 최소화 되도록 하기 위해 소화에 필요한 충분한시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 전 긴장이나 흥분은 소화 시간을 늦출수 있고, 고지방이나 고단백 식사일 경우 더할 수 있다. 식사의 구성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소화를 위해 탄수화물은 높이고, 지방과 단백질은 낮추어 구성해야한다. 경기 전 식사의 구성은 더부룩함, 위 안에서 증가된 산성도, 가슴 졸임 등과 1 아침에 경기가 있을 때는 조반과 유사한 음식을 먹어라 2 이른 오후에 경기가 있을 때는 아침, 점심을 먹는다. 아침은 넉넉하게 먹고,점심은 위의 <표 2-20>의 식사B를 약간 먹는다. 3 늦은 오후에 경기가 있을 때는 아침, 점심, 간식을 먹는다. 아침과 점심은 충분히 먹고 간단한
10 - 식사가 될 만한 간식을 먹는다. 과일이나 도넛 등 쉽게 소화가 되는 것이 좋다. 4 저녁에 경기가 있을 때는 아침, 점심을 먹고 저녁을 가볍게 먹는다. 2) 경기 중 가) 경기 중에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대부분 경기에서는 탄수화물과 물 외에는 소모할 것이 없다. 더운 곳에서 경기를 계속할 경우 물을 섭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영양학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반부는 기호식품을 섭취하고 후반부는 회복 식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경기 후 가) 경기 후나 격렬한 훈련 후에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하키 경기나 훈련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고 평소와 같이 회복시키는 것은 균형 잡힌 식사만으로도 충분하다. 탄수화물과 지방은 운동 중에 소모되는 주요 영양소이며 목록에 있는 식품에서 쉽게 대체식 품을 찾을 수 있다. 에너지 소모분을 충당하기 위한 칼로리 흡수는 소량의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 그리고 전해질을 동 반하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인 회복이 가능하다. 갈증으로 인한 수분 섭취는 일상적인 상황에 대응하기 때문에 평소와 같이 회복되었는가를 알기 위해서 는 매일 아침체중을 재어야 한다. 격렬한 하키 경기 후에 당분을 섭취하면 근육의 글리코겐이 보다 빠르게 축적된다. 양질의 단백질을 소량 섭취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탄수화물이 풍부한 식품과 물 그리고 적당한 단백질 섭취에 초점을 맞춰 섭취하면 효과적이다 <그림 2-24> 세 가지 에너지 시스템의 흐름도 (출처:이명천 외, 2008
11 - 하키협회 발전기금 모금 하키를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본 협회에서는 후원회원 제도 를 통해서 하키 발전기금을 조성하여 하키 저변확대와 꿈나무 지원을 실시하고자 합니다. 하키에 대한 애정을 늘 가슴속에 간직하고 계신 모든 분들의 정성어린 후원금으로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하키 발전 사업부터 꿈나무 지원 육성사업까지 필요로 하는 곳에 소중히 사용하고자 합니다. 기금 모금을 위한 후원회원 제도 에 하키 가족 및 스포츠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적극적인 후원과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본 기금은 본협회 연간 정규사업에는 사용되지 않으며 발전기금관리위원회(가칭)에서 사용 용도를 결정 함.) ------------------------------------------------------------------------------------ (후원금 지원 신청 양식) 후원자 성명 : 후원 금액 : 후원자 주소 및 연락처 : 주소 : 전화번호 : 후원 계좌 안내 : - 은행 및 통장 번호 : 수협 / 026-01-181085 - 예금주 : 대한하키협회 후원자를 위한 혜택 : - 월간 하키소식지 송부 - 하키홈페이지에 기부자 성명 게재 - 행사에 서포터즈로 참여 기회 부여 - 연말정산을 위한 기부금 영수증 발급 문의사항 : 대한하키협회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 올림픽회관 602호/T. 02-420.4267) * 공지사항 2014년 1월부터 발간되는 코리아하키 소식지는 협회 사무국 직원이 편집위원이 되어 별도의 예산없이 발간되는 월간지로 하 키인들의 소통과 화합, 정보공유, 그리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협회를 후원해주시면서 홈페이지에 방문하지 않는 분들에게 우리 협회의 운영방향과 좋은 소식들을 알림으로서 협회와 하키에 관심을 갖고 후원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매월 다양하고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하키를 사랑하시는 모든 관계자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