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리뷰 07-03 한국여성개발원 Korean Women's Development Institute 2007. 2. 1 FGM 철폐의 국제적 제도화 정혜선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원 hsjeong@kwdi.re.kr 1. 들어가며 매년 2월 6일은 세계 FGM 철폐의 날(International Day on Zero Tolerance to FGM)이다. 일부 부족사회에서만 일어날 것처럼 생소하기만 한 여성할례 는 유엔에서 그 철폐의 날을 지정할 만큼, 사실상 세계 각 지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FGM은 시술률이 높은 사회에서 도 다소 비공식적인 관습이고 또 제국주의, 문화 상대주의 논란 등 민감하 고도 정치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가 쉽게 발전 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여성할례 로 더 잘 알려져 있는 FGM은 여성성기절단(female genital mutilation)의 약자이다. 최근에는 mutilation을 cutting으로 대체한 FGC 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mutilation이라는 단어에 여성성기 절단이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해로운 풍습이라는 가치판단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성폭력적 풍습에 대한 유엔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Traditional Practices Affecting the Health of Women and the Girl Child)은 FGM에 대한 반대가 이를 행하는 사회 집단에 대한 낙인으로 작용하여 오히려 이들을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격리시키고 음지로 몰아넣음으로써 여성의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기도 하였 다. 유엔은 FGM에 대한 국제적 동향을 두 가지로 관찰한다. 첫째는 FGM을 시 술하는 지역에서 시술 대상 여아의 연령이 점차로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는 것이고, 둘째는 각국에서 FGM 금지법을 제정하고 국제기구에서 FGM 근절에 활동의 우선순위를 두는 등 국제적으로 FGM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FGM의 실태와 의미를 살펴보고, FGM 근절을 위한 제도화의 국제적 동향을 분석한다. 2. FGM의 실태와 의미 FGM은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지역에서 주로 시행되며 오늘날에는 광범 위한 이주로 인해 세계 각지에서 FGM이 행해진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억에서 1억 4천만여 명이 FGM을 받았으며, 매년 2백만 명이 FGM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대략적으로 하루 6000명의 수치이다. 하지만 시술률이 높은 국가에서조차 FGM은 제도적으로 권장되지 않는 관습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는 집계되지 않는다. 유럽의 이민자 가정에서는 FGM을 시술받기 위해 여아를 본국에 보내거나 FGM 시술자가 유럽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FGM은 클리토리스에 칼자국을 내어 피를 흘리거나 포피를 제거하는 의식의 형태에서부터 클리토 리스와 소음순, 대음순 대부분을 잘라 내고 대음순의 남은 부분을 단단히 봉해버리는 음부봉쇄술 (infibulation)까지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WHO는 전체 시술되는 FGM의 약 80%가 클리토리스와 소음순을 제거하는 형태로 행해지고 있으며, 가장 잔인한 형태인 음부봉쇄술이 약 15%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의 유명한 패션모델이자 UN 인권대사인 와리스 디리(Waris Dirie)가 5살 때 받은 FGM이 바로 음부봉쇄술로, 그는 FGM의 실태를 알린 자서전을 통해 성인 이 되어 생식기 재생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편하게 소변을 볼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FGM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보통 이슬람교의 풍습 이라고 알려진 바와 달리 FGM의 역사는 이슬람교보다 길다. 일례로 여성의 90%가 FGM을 경험 하는 이디오피아에서는 이슬람교인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과 유대인도 FGM의 관습을 지킨다. FGM은 여아가 태어나자마자 약 40일 이전에 시술되거나 사춘기에 행해지는데, 일반적으로 4~8 세가 시술 연령이고 간혹 성년이 되어 결혼을 앞두고 시술을 받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최근에는 시술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성년식의 의미는 사라지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 들은 FGM을 여성할례 라고 부르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보통 성년식의 의미로 이해되는 할 례 는 남성 성기의 포피를 절제하는 풍속이지만, 여성의 성기 대부분을 잘라내는 FGM은 통과의 례의 상징성에 비해 여성의 몸과 마음에 영구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FGM은 저소득국과 도시화되지 않은 지역에서 주로 행해지기 때문에 시술자는 의료적 지식이 없 을 뿐만 아니라 마취와 소독 없이 면도칼 하나로 이루어지는 시술 환경은 위생적이지 못하다. 따 라서 FGM을 받은 여성은 다양한 합병증을 경험하거나 심각한 경우 출혈과 감염으로 사망에 이르 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앞서 설명한 음부봉쇄술의 경우 여성의 생애주기 동안 계속해서 봉합과 재 개를 경험해야 하기 때문에 그 피해는 치명적이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FGM은 여성에게 주어진 유일한 통과의례이기 때문에 가족은 물론 시술을 받는 여아 본인도 FGM을 갈망하게 된 다. FGM을 받지 않은 여성은 부도덕하고 더러운 여성으로 낙인되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상실하기 때문에 결혼도 할 수 없다. FGM을 시행하는 이유는 문화에 따라 다양하지만 그 근본적인 목적은 여성에 대한 통제에 있다. 남성성을 상징하는 클리토리스를 제거하여 여성성을 배가시키고 여성을 더욱 순종적이게 하며, 여 성의 성적 욕망을 제거하여 순결과 정조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음부봉쇄술을 시행하는 문 화에서는 혼인 후 첫 성관계 시 봉쇄 부분을 재개하는 것이 남편의 권리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여성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진다. FGM을 시행하는 문화에서는 이를 정당화하는 다양한 미신과 통 국제리뷰 FGM 철폐의 국제적 제도화 2
념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의 50% 이상이 FGM을 경험하는 나이지리아에서는 클리 토리스는 창녀의 모자이다, 어렸을 때 클리토리스를 제거하지 않으면 커서 남자(페니스)가 고 생한다 등의 속담이 전해진다. 이들 통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클리토리스, 즉 여성의 성적 자의식이 남성 우월주의에 크게 해가 된다는 믿음이다. FGM은 여성의 인격적, 성적 자유에 대한 남성의 통제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며, 여성의 리비도를 거세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통제를 확보하는 기제로 활용된다. 3. FGM 근절의 제도화 FGM을 둘러싼 논의가 갖는 정치적 민감성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다소 신중한 특징을 보 인다. 1958년 WHO는 FGM이 WHO의 업무 영역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던 적도 있으며, 1967년 유엔여성차별철폐선언은 여성이 열등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모든 행위 라는 문구로 FGM의 폐 지를 조심스럽게 주장하고 있다. 80년대 이후로는 WHO, UNICEF, UNFPA 등을 중심으로 FGM 에 대한 교육 사업과 연구 등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엔에서 FGM 철폐를 명시적으로 주장한 것은 1994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인구개발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n Population and Development)로서, 당시 CNN이 이집트에서 10살짜리 여아에게 FGM을 시술하 는 장면을 방송함에 따라 FGM의 실태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결과였다. 학자들은 1980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2차 세계여성대회 이후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FGM 금지를 제도화하기 시작하였다고 분석한다. 일례로 영국에서는 1985년에 FGM을 형사상 범죄로 규정하고 불법화하였다. 이 법은 최근 개정되었는데, 불법적으로 FGM을 시술한 자의 형량을 늘리고 여성 할례 대신 FGM이란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여아가 외국에서 FGM을 받을 수 있도록 보호자가 조 치한 경우도 범죄로 규정하였다. 이처럼 서구의 제도는 영토 내에서 FGM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자국민과 자국의 영주민은 외국에 서도 FGM을 시도하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를 이 용하여 간접적인 압력을 가하기도 하는데 미국에서는 1996년 연방 이민법에서 FGM을 범죄로 규 정하고, 개발도상국 중 FGM 방지를 위한 교육적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나라에 대해서는 국제금 융기구의 차관을 지지하지 않도록 하였다. 벨기에에서도 2000년 FGM을 형사상 범죄로 규정하고, 지난 2004년 의회에서는 특히 벨기에 정부의 공적개발원조 자금이 집중적으로 지원되는 국가를 포함하여 외국에서 시행되는 FGM을 근절하도록 정부가 모든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 노력을 다하 도록 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국제의원연맹(International Parliamentary Union)에서는 각국의 관련 제도의 추이를 지속적으로 수집해오고 있는데, 각국의 제도를 분석해보면 FGM을 금지하는 근거는 (1) 여성의 신체 및 정신 적 복지를 침해, (2) 비인간적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 (3) 아동의 복지를 침해하는 등과 같이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들 제도는 FGM 시술자에 대한 형벌이 피시술자의 사망과 같 은 FGM의 의료적 결과에 따라 가중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국제리뷰 FGM 철폐의 국제적 제도화 3
지난 2006년 말 영국 상원은 시에라리온 출신의 망명자 여성에게 FGM에 근거하여 난민 지위를 부여하였다. 상원은 신청자가 속한 부족에서는 모든 여성이 FGM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이를 거 부하는 여성은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인식되므로, 신청자는 난민지위협정에서 정의하는 학대 위 험이 있는 특정 사회 집단 에 속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에 앞서 내무성은 신청자가 난민의 조 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망명을 허가할 수 없으나, 인도적인 차원에서 영국에 영주할 수 있도록 결정한 바 있었다. 내무성의 판결을 뒤집은 이 결정은 성차별과 성적 학대도 인종, 종교, 국적에 근거한 탄압과 마찬가지로 망명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한 사례이다. 난민지위협정(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에 따르면 인종, 종교, 국적, 특 정 사회 집단에 소속한 신분이나 정치적 견해로 인해 박해받을 우려가 있어 고국에 돌아갈 수 없 는 자에게 난민의 지위가 주어진다. 여성계에서는 특정 사회 집단에 소속한 신분 이 FGM 피해 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FGM과 같은 여성에 대한 폭력 을 특정 사회 집단 에 대한 박해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법적 해석이 분분하다. UN과 서구 법제 도 하에서 FGM은 여성의 몸과 인권에 대한 폭력이지만 FGM으로 인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 례는 매우 적다. 최초로 FGM에 근거한 망명을 인정한 사례는 1994년 캐나다였다. FGM에 근거한 난민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았던 사례는 1996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이 같은 난민을 인정한 경우이다. 1984년에 미국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한 토고 출신 여성이 십여 년이 지 난 후에야 난민의 지위를 부여받게 된 이 사례에서는 FGM 피해자를 난민으로 인정할 경우, 저개 발국에서부터 망명을 신청해 오는 여성들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논란이 되었다. 당시 망명자 여성의 변호인은 (1)전 세계적으로 난민 신청자 중 여성의 비율은 매우 낮다는 점과 (2)대부분의 경우 FGM은 매우 어린 여성에게 행해질 뿐만 아니라 소득도 정보도 없는 저개발국의 여성이 외 국으로 망명을 시도하기는 극히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4. 나가며 최근 FGM을 금지한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정부가 2000년 발표한 여성폭력근절을 위한 국가행동 계획에서 FGM을 여성에 대한 폭력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으며, 2006년 보건부 장관령을 통해 여 성부와 종교부가 함께 FGM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의료진을 위한 지침서를 마련하도록 하였다. 케냐에서도 2001년 NGO 연합과 정부가 협력하여 2019년까지 FGM 시술률을 40%까지 감소시키 도록 하고, 440만 달러에 달하는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선진 공여국들은 개발도상국의 양성평등 을 위하여 해외개발원조를 통해 이와 같은 움직임에 함께 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이주의 시대에는 인권의 보호와 갈등해소를 위한 각국의 노력이 특히 요구되고 있 다. 전문가들은 FGM과 같이 보편적 인권과 충돌하는 관습에 있어 국제사회가 해당 사회의 문화 적 권리와 요구를 존중함과 동시에 개인의 존엄성과 복지를 보호하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한국사회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경제 성장과 함께 국내로 이주하는 인구가 국제리뷰 FGM 철폐의 국제적 제도화 4
급증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며, 양성평등하고 균형적인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문화 내부에서 FGM이 갖는 상징성을 다른 방식을 통해 보존하는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 다. 국제리뷰 FGM 철폐의 국제적 제도화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