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논집 제45집 2016년 5월 Sogang Journal of Philosophy Vol.45, May. 2016, pp. 297-322 10.17325/sgjp.2016.45..297 297 외부세계 회의론과 의미론적 극복 19) - 인식론적 충돌을 넘어 창조적 해결책으로 - 김진희(서강대 석사과정) 주제분류 인식론, 언어철학 주제어 외부세계의 회의론, 퍼트남, 비트겐슈타인, 축-명제, 충돌, 창조 요약문 본 논문에서 필자는 외부세계 회의론이라는 철학적 문제에 대해 언어철학 적(의미론적)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고에서 정당화 하려는 주장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외부세계 회의론의 원인은 표상주의 도식에 있다. 2) 외부세계 회의론에 대한 인식론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3) 외부세계 회의론에 대한 의미론적 해결은 가능하다. 논문의 핵심은 3)에 있으며, 3)은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부분에선 퍼트남의 <통 속의 뇌 논증(Brain in a Vat argument)>이 외부세계 회의 론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검토하고, 비판할 것이다. 두 번째 부분에선 비 트겐슈타인(3기)이 확실성에 관하여(Über Gewissheit) 에서 도입한 축-명제 개념 을 통해 외부세계 회의론 반박 논증을 구성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I. 들어가기 전통적으로 철학은 끊임없이 외부세계에 대한 앎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해 왔다. 세계의 구성 원리가 무엇인지, 세계에는 어떤 존재자들이 있는지, 그 존재자들이 따르는 질서는 무엇인지와 같은 철학적 물음들은 오늘날에 도 여전히 유의미해 보인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철학적 물음들에 답하는 과 정에서 강력한 반론으로 제기되곤 하는 외부세계 회의론 에 대해 다루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투고일: 4월 30일, 심사완료일: 5월 17일, 게재확정일: 5월 18일 * 이 논문은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BK21플러스 사업의 장학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결과임.(22B20130012614)
298 철학논집(제45집) 본고에서 필자는 크게 세 가지 주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외부세계 회 의론의 원인은 표상주의 도식에 있다. 2) 외부세계 회의론에 대한 인식론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3) 외부세계 회의론에 대한 의미론적 해결은 가능하다. 세 가지 주장에서 사용된 개념어들이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로 쓰이곤 하는 말들이므로, 본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1), 2), 3)의 주장들에 사용된 주된 개 념어들을 간략하게 설명해보겠다. 먼저, 1)을 살펴보자.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외부세계 회의론 이란 무 엇인가? 주체 외부의 세계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입장 이다. 이 입 장은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버클리, 흄, 칸트 등의 근대 철학자들이 다루었 던 중요한 회의론적 입장이었으며, 현대에는 퍼트남의 통 속의 뇌 가설 이 이러한 입장에 속한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외부세계 회의론이 표상주의 1) 를 선제한다는 주장을 논증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2)를 살펴보자. 인식론적 해결 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본 논 문에서 사용할 인식론적 해결 이라는 말은 특정한 종류의 인식에 대해 외 부세계에 대한 인식이라는 인식론적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외부세계 회의론 을 극복하려는 입장을 말한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인식론적 차원의 시도 가 독단론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논증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3)을 살펴보자. 의미론적 해결 이란 무엇인가? 이 입장은 외 부세계 회의론의 주장들이 무의미 하거나 자기논박적 이라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외부세계 회의론의 문제를 해소하는 치유적(therapeutic) 입장이다. 본고의 핵심은 3)을 입증하는 데에 있다. 3)을 다루는 III장에서, 필자는 퍼트남과 3기 비트겐슈타인 2) 의 입장을 외부세계 회의론에 대한 의미론적 1) 본고에서는 박제철이 외부세계 회의론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하는 도식을 중심 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외부세계 회의론 을 중심 주제로 다루는 논문으로는 박제철의 논문이 국내에서 유일한 논문이 기에 해당 논문의 문제 틀을 수용함으로써 관련 논의를 활성화시키기 위함이 다. 둘째, 그가 도입하는 도식이 문제 상황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도식이기 때 문이다. 물론 본고에서 다루는 외부세계 회의론은 박제철이 문제 삼는 외부세 계 회의론과는 영역이 다르지만, 두 회의론은 동일한 도식을 선제하므로 박제 철의 도식을 빌려오는 것은 유효해 보인다.
외부세계 회의론과 의미론적 극복 299 접근 방식으로서 소개할 것이다. 특히, 3기 비트겐슈타인의 해결책을 다루 는 부분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축-명제 개념을 통해 하나의 논증을 구성 하고, 이 논증이 외부세계 회의론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논증할 것이 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퍼트남 식의 해결책이 가지는 맹점을 3기 비트겐슈 타인 식의 해결책이 극복해 줄 수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함으로써, 3기 비트 겐슈타인 식의 해결책이 갖는 이론적 장점을 보여줄 것이다. 본 논문은 외부세계 존재에 대한 무어 논증 비판 (2015)이라는 박제철 박사(이하 박제철)의 논문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그가 외부세계 회의 론을 도식화하는 구도나 용어들은 적확하다고 판단되기에 본 논문에서도 그 구도 및 용어들을 일부 차용했다. 그러나 본고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외 부세계 회의론은 박제철이 문제 삼고 있는 외부세계 회의론과 층위가 다르 다. 박제철은 표상세계 내부에서 성립하는 회의론에 치중했지만, 필자는 표 상세계와 실제세계 사이에 성립하는 외부세계 회의론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먼저, 외부세계 회의론이 선제하는 도식을 알아보고, 박제철이 문제 삼는 회의론과 필자가 문제 삼는 회의론의 차이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II. 외부세계 회의론의 원인과 인식론적 해결의 가능성 1. 실제적 외부세계 회의론과 인식론적 딜레마 철학은 전통적으로 주체-객체, 마음-세계, 현상-실재 등의 이분법적 도식 을 받아들여 왔다. 철학자들은 이 도식 위에서 주체로서 객체를 온전히 그 려내고, 표상하고, 지시하는 언어들을 발견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왔다. 이 도 식 위에서 객체는 항상 표상의 형태로만 주체에게 주어질 뿐이었다. 흔히 표상주의라 불리는 이러한 인식론적 도식에서 세계는 세 영역으로 구분될 2) 3기 비트겐슈타인(The Third Wittgenstein) 이라는 용어는 모얄-셔록(D. Moyal-Sharrock)이 도입한 용어로서 철학적 탐구 2부 이후의 시기를 가리킨다. 3기에서 중심이 되는 저서는 확실성에 관하여(Über Gewissheit) 이며 본고에 서도 이 저서를 중심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300 철학논집(제45집) 수 있다. 박제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세 영역은 각각 주체 외부의 세계 인 실제적 외부세계,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적 세계인 표상적 외부세계, 주 체의 사고 속에서 만들어진 세계(예를 들어 꿈의 세계)인 표상적 내부세계 로 구분된다. 3) 문제는 우리의 언어적 진술들이 객체로서의 세계를 온전히 그려내고 있 는지에 대한 확인이 신적 관점(God s eye view)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데 에 있다. 왜냐하면 인식론적으로 표상주의 도식 속에서 인식주체인 우리에 게 주어진 세계는 항상 언어에 의해 매개되는데, 언어에 의해 매개된 표상 으로서의 세계(표상적 외부세계, 표상적 내부세계)가 객체로서의 세계(실제 적 외부세계)를 온전히 그려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두 세계를 동 시에 바라볼 수 있는 메타적 관점에 설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표상주의 도식을 전제하면서, 신적 관점을 취하지 않게 되면 우리가 경 험하는 세계는 어디까지나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머물게 된다. 외부세계 회 의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누구도 신적 관점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에 참된 세계 인 인식주체 외부의 세계에 대해 정당하게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철학자가 자신의 주장이 세계에 대한 참된 진술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인식주체 외부의 세계에 대한 회의론의 문제를 극복해야만 한다. 박제철은 일종의 표상주의적 모델을 외부세계 회의론의 모델로 선제하 며, 동시에 신적 관점이 불가능하다는 입장 또한 받아들인다. 이 두 가지 주장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그의 입장은 필연적으로 물-자체 회의주의로 불 려왔던 종류의 외부세계 회의론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그는 이 문제를 다 루지 않고, 외부세계 회의론을 표상적 외부세계와 표상적 내부세계 사이에 성립하는 회의론으로 한정한다. 그는 실재론, 개념 도식론, 외부세계 회의 론, 이 셋은 서로 간의 이론적 우위 없이 난립할 수 있다 4) 는 입장에서 실 제적 외부세계에 관한 탐구일반을 불가지의 영역으로 넘기면서, 논문 후반 부 내내 표상적 외부세계와 표상적 내부세계 간에 성립하는 종류의 회의론 3) 박제철, 외부세계 존재에 대한 무어 논증 비판, 철학탐구, 제40집, 중앙대 학교 중앙철학연구소, 2015, 215. 4) 박제철, 외부세계 존재에 대한 무어 논증 비판, 215.
외부세계 회의론과 의미론적 극복 301 을 다루고 있다. 반면, 본고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종류의 회의론은 실제적 외부세계와 표 상적 외부세계 사이에 성립하는 회의론이다. 이는 철학사적으로는 칸트 식 의 물-자체 회의론에 해당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표상세계만 을 알 수 있고, 우리의 앎이 표상에 한정된다면, 그 표상적 앎들 사이에 성 립하는 회의론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그 표상(representation) 이 대 상을 제대로 재현하는지의 문제, 곧 실제적 외부세계와 표상적 외부세계가 어떤 관계를 갖는지 해명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물음 으로 표현될 수 있어 보인다. 나의 표상은 실재를 그려내고 있는가? 이 물음은 기본적으로 인식론적 딜레마 상황을 함축한다. 박제철도 지적 하고 있듯이 실제적 외부세계에 대한 회의론은 우리가 신적 관점을 취하지 않는다면 해결될 수 없다. 그리고 신적 관점은 정당화되지 않는 관점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실제적 외부세계에 대해 자신이 알 수 있다고 주장하 거나 실제적 외부세계가 곧 표상적 외부세계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신적 관점을 취하고 있으므로 철학적으로 독단론이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즉, 우리는 회의론을 피하기 위해 독단론을 택해야 하는 인식론적 딜레마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제기된 물음에 대해 그렇다 고 대답하는 쪽은 독단론에, 아니다 라고 대답하는 쪽은 회의론에 빠지게 된다. 로티는 이러한 인식론적 딜레마 상황을 독단론과 회의론 사이에서 흔들 리고 있는 진자(pendulum) 5) 로 비유한다. 철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독단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외부세계 회의론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은 독단 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진자의 운동을 멈추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 다. 로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점점 더 따분해지는 진자운동을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철학이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에 적합한 활동인가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다 6) 5) R. Rorty, Truth and Progress, Vol. 3. Cambridge, 1998, 4. 6) R. Rorty, Truth and Progress, Vol. 3. 4.
302 철학논집(제45집) 2. 딜레마의 원인과 해결 딜레마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식의 해결책 이 제시될 수 있다. 한 가지 방식은 제시된 딜레마 상황이 거짓 딜레마인지 검증해 보는 방식이고, 또 다른 방식은 딜레마 상황의 근본 전제를 논파하 는 방식이다. 본 절에서는 외부세계 회의론에 얽혀 있는 인식론적 딜레마 상황에 대해 두 가지 방식의 해결책을 모두 시도해 보고자 한다. 우선, 회의론과 독단론의 인식론적 딜레마 상황이 거짓 딜레마 상황인지 검증해 보도록 하자. 이전 절에서 언급했듯이, 표상주의 도식에서 세계는 실제적 외부세계와 표상적 외부세계, 표상적 내부세계로 구분된다. 이 구분 이 함의하는 명제들을 정식화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인식주체에게 인식된 세계와 구분되는 객체로서의 실제적 외부세계 가 존재한다. 2. 인식주체에게 인식된 세계는 표상적 세계에 한정된다. 3. 두 세계를 비교하는 유일한 길은 신적 관점을 취하는 길이다. 4. 인식주체가 실제적 외부세계와 표상적 세계 밖의 신적 관점을 취하 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인식론적 딜레마 상황이 거짓 딜레마인지 검증하기 위해서는 이상의 전 제들에서 다른 방향의 해결책이 등장할 수 있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우 리는 그 여부를 d)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d)는 회의주의를 함축한다. 신적 관점을 취할 수 없다 는 전제를 받아들이게 되면, 곧바로 c)에 따라 인식주체와 실제적 외부세계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도 사라지게 된다. 따라 서 인식주체는 실제적 외부세계와 표상적 외부세계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 는지, 표상적 외부세계가 실제적 외부세계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 말할 수 없게 되며,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본고에서 문제 삼고자 하는 외부세계 회의 론의 입장이 도출된다. 이 주장은 곧, a), b), c), d)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실제적 외부세계와 표 상적 외부세계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하게 되면 독단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외부세계 회의론과 의미론적 극복 303 는 사실을 함의한다. 왜냐하면 전제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영역은 실제세 계와 표상세계 두 영역뿐이며, 두 영역을 비교하는 방법은 두 영역 밖에서 신적 관점을 취하는 단 하나의 방법뿐인데 c)에 의해 그 유일한 방법이 정 당화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어진 전제들로부터 회의론과 독단론 이외의 결 론이 나오기란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주어진 전제 속에서 회의론과 독단론 이라는 딜레마는 참된 딜레마로 판명된다. 이상의 논의에서 우리는 딜레마 상황의 근본 전제인 a), b), c), d)를 논파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진자는 어디에 매달려 있는가? 진자의 축은 어디인가? 바로 a), b), c), d)이다. 네 가지 전제들 중 핵심적인 전제는 무엇인가? a)와 b)이다. c)와 d)는 a), b)로부터 자연스레 도 출될 수 있는 전제들이기 때문이다. a)와 b)를 통해 주체가 접할 수 있는 표상적 세계와 실제적 외부세계는 완전히 분리되게 되기에 c)가 도출되며, 다시 a), b)와 c)에 의해 d)가 도출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검토해보아야 할 후보는 a), b)로 좁혀진다. a) 인식주체에게 인식된 세계와 구분되는 객체로서의 실제적 외부세계 가 있다. b) 인식주체에게 인식된 세계는 표상적 세계에 한정된다. 두 명제를 자세히 살펴보자. 문제의 핵심 개념은 실제적 외부세계 라는 개념이다. b)에 의해 우리는 실제적 외부세계를 알 수 없다. 그런데 알 수 도 없는 세계에 대해 a)에서처럼 있다 고 말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만약 우리가 표상적 세계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면, 실제적 외부세계에 관한 모든 진술은 일종의 가정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가정 이 인식론적으로 제공하는 유익은 불분명한 반면, 외부세계 일반에 대한 회 의론이라는 큰 문제를 함의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실제적 외부세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도입되었는지, 그것을 상 정하지 않는 철학적 체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논하는 것은 본고의 기획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서두에서 언급 했던 주장들을 구체화함으로써 인식론적 딜레마의 해결 방안을 제시해보도
304 철학논집(제45집) 록 하겠다. 1) 외부세계 회의론의 원인은 표상주의 도식에 있다. 외부세계에 대한 회 의론은 a), b)의 전제에 따라, 실제적 외부세계를 상정하면서도 그 세계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정당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발생했다. 달리 말하면, 외부세계 회의론은 접근 불가능한 외부세계 가 있다는 전제 위에서만 성립 할 수 있다. 이는 곧, 외부세계 회의론이 객관적 실재나 실제적 외부세계를 상정하는 표상주의 도식을 선제한다는 사실을 함의한다. 접근 불가능한 외 부세계를 상정하지 않는다면 회의론은 발생하지 않는다. 2) 외부세계 회의론에 대한 인식론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표상주의 도식 을 받아들이게 되면, 앞서 살펴본 것처럼 회의론과 독단론이라는 인식론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는 곧, 외부세계 회의론이 어떤 인식적 증거를 제 시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a), b)에 따라 우리가 제시하 는 모든 경험, 지각, 인식, 의식 등등은 이미 표상세계에 속하는 증거들이며 따라서 실제적 외부세계를 알 수 있다는 증거로는 제시될 수 없게 된다. 그 러므로 직접적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식론적 차원의 시도는 원리상 독단론에 빠지게 되며, 실패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볼 때, 표상주의 도식은 외부세계 회의론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는 도식이라기보다는 외부세계 회의론의 원인이며, 그 도식 내에서는 회의론과 독단론의 진자운동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 해 보인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인식론적 차원에서 이 모든 문제는 바로 실제적 외부세계라는 원리상 불가지한 표상주의적 개 념을 도입함으로써 발생했다. 그러므로 이 도식을 선제하는 인식론적 탐구 의 영역에서, 외부세계 회의론 문제를 완전히 극복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3) 외부세계 회의론에 대한 의미론적 해결은 가능하다. 본고에서는 외부 세계 회의론에 대해 인식론적 차원이 아니라 언어철학적 차원, 특히 그 중 에서도 의미론적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필자는 외부세계 회의론을 주장하는 모든 진술들이 무의미(nonsense) 하다는 사실을 밝힘으 로써 외부세계 회의론이라는 문제 자체를 해소시키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외부세계 회의론에 대해 퍼트남이 자신의 논문 통 속의 뇌(Brain In a Vat) 에서 내놓은 해결책과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저서 확실성에 관하여
외부세계 회의론과 의미론적 극복 305 (Über Gewissheit) 에서 내놓은 해결책을 논증적으로 재구성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는 이 두 철학자의 해결책이 모두 외부세계 회의론에 대한 의미 론적 해결책이라 불릴 수 있다고 보며, 단순히 문제의 해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문제 자체를 해소시켜 주는 철학적 치유책이라고 본다. 이어 지는 장에서 이상의 견해들을 정당화하도록 하겠다. III. 외부세계 회의론에 대한 의미론적 해결책 1. 퍼트남의 지칭주의적 해결책 (1) 퍼트남과 통 속의 뇌 가설 퍼트남 7) 은 자신의 저서 이성, 진리, 역사(Reason, Truth and History) 의 첫 장 통 속의 뇌 에서 통 속의 뇌 가설(이하 BIV) 이라는 유명한 사고실 험을 제시했다. 그는 외부 세계의 존재에 관한 회의론이라는 고전적인 문 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해 보고자 8) BIV를 제시한다. 실제로 이 가설은 현대판 꿈의 가설(데카르트)로 여겨지기도 한다. 논의에 앞서, 퍼트남이 BIV를 설명하는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철학자들에 의하여 그 가능성이 많이 논의되는 과학적 공상의 예 하나를 들어보자. 어떤 인간이(당신 자신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사악한 과학자에게 수술을 받았다고 하자. 그 사람의 두뇌가 육체에서 분리되어 두뇌를 계속 살아 움직이게끔 해줄 영양분이 가득 담긴 통 속에 옮겨졌다고 하자. 신경 조직은 그대로 초과학적 컴퓨터에 연결되어 이 컴퓨터가 그 사람으로 하 여금 모든 것이 완벽히 정상적인 듯이 보이는 환각을 일으키도록 한다고 7) 본고에서 퍼트남을 다루는 이유는 퍼트남의 통 속의 뇌 논증 이 외부세계 회 의론에 대한 대표적인 현대적 논증이기 때문이다. 논문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본 장에서 필자는 퍼트남 식의 논증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고, 3기 비 트겐슈타인 식의 논증이 그런 한계에 부딪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 써 후자의 이론적 장점을 보여주도록 하겠다. 8) H. 퍼트남, 이성, 진리, 역사, 김효명 옮김, 민음사, 2002, 27.
306 철학논집(제45집) 하자. [ ] 신경 세포는 그 두뇌의 주인공으로 하여금 이런저러한 환상을 일으키도록 하는 초과학적 컴퓨터에 연결되어 있다. 9) BIV는 정확히 우리가 다루고자 했던 외부세계 회의론의 상황을 명료하 게 보여주고 있다. BIV에서 문제시 되는 회의론은 실제적 외부세계(통과 뇌가 있는 세계)와 표상적 세계(뇌가 인식하는 세계) 사이에 성립하는 회의 론이다. 그리고 앞선 장에서 외부세계 회의론에 대한 인식론적 해결에 관해 논했던 것처럼, BIV를 주장하는 외부세계 회의론자를 논박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인식론적 증거들을 제시하더라도 원리상 논박은 불가능하다. BIV를 주장하는 사람은 그런 모든 종류의 증거들에 대해 당신이 제시한 그 모든 인식론적 증거들은 초과학적 컴퓨터가 제공한 전기 자극에 불과합니다 라 고 반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본고의 개념들로 바꾸어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당신이 제시한 그 모든 인식론적 증거들은 표상적 세계에 대 한 정보만을 제공합니다. 퍼트남은 BIV를 통해 정식화된, 외부세계 회의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미론적 접근법을 채택한다. 그는 BIV가 자기논박적 가정 10) 이라고 주장 함으로써 BIV식의 가설을 받아들이는 외부세계 회의론자들을 논박하고자 한다. 그는 궁극적으로 외부세계 회의론자들의 주장이 항상 거짓이라는 주 장을 정당화 하고자 한다. 이 주장이 어떻게 도출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그의 논변을 자세히 검토해 보도록 하자. 퍼트남의 논변은 후대 학자들에 의해 여러 형태로 재구성되기 도 했지만, 논변의 가장 표준적인 형태는 다음과 같다. (CC) 어떤 용어는 오직 그 용어와 대상 사이에 적절한 인과적 관계가 성립하는 한에서 대상을 지칭한다. 11) i) 우리가 통 속의 뇌라고 가정하자. ii) 만약 우리가 통 속의 뇌라면, 뇌 는 뇌를 지칭하지 못하며 통 은 통을 지칭하지 못한다. [CC에 의해] 9) H. 퍼트남, 이성, 진리, 역사, 26~27. 10) H. 퍼트남, 이성, 진리, 역사, 29~30.
외부세계 회의론과 의미론적 극복 307 iii) 만약 통 속의 뇌 가 통 속의 뇌를 지칭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통 속의 뇌다 는 문장은 거짓이다. iv)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통 속의 뇌라면, 우리는 통 속의 뇌다 라는 문장은 거짓이다. [i), ii), iii)에 의해] 12) 퍼트남은 이 논변을 통해 우리가 정말로 통 속에 있는 두뇌에 불과하다 는 가정이 물리적 법칙에 위배되지 않고 우리가 경험해 온 모든 것과 전혀 모순되지는 않더라도 절대 참이 될 수 없는 가정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13) 고 말한다. iv)에서 잘 드러나 있듯, 그의 논변을 따른다면 우리가 통 속에 뇌인 상황에서조차 우리는 통 속의 뇌다 는 문장은 거짓으로 판별되 게 된다. 즉, 퍼트남의 논변이 정당화 된다면 우리는 그 논변을 통해 외부 세계 회의론자들의 진술이 항위명제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게 되며, 본고 에서 다루고자 했던 외부세계 회의론의 문제가 해소될 수 있는 길이 열리 게 될 것이다.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퍼트남의 BIV 반박 논변을 자세히 분 석하고, 비판점들을 제시해보도록 하겠다. (2) 맥락주의적 지칭론과 지칭주의적 의미론 퍼트남의 BIV 반박 논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논변의 전제가 되는 (CC)이다. 논변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BIV명제 14) 가 항위명제인 이유 는 통 속의 뇌 라는 언어가 실제 통 속의 뇌를 지칭할 수 없기 때문이고 (ii) 참조.), 양자 간에 지칭이 성립하지 않는 궁극적인 이유는 (CC)에 기대 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먼저 (CC)를 설명한 이후에 ii)의 의 미를 자세히 다루겠다. (CC)에서 핵심이 되는 표현은 적절한 인과적 관계 라는 개념이다. 퍼트 11) (CC)는 인과적 제약(Causal Constraint)의 약자이다. 12) Internet Encyclopedia of Philosophy(http://www.iep.utm.edu/brainvat/)의 The Brain in a Vat Argument 항목 참조. 13) H. 퍼트남, 이성, 진리, 역사, 28. 14) 본 절에서는 우리는 통 속의 뇌다 라는 명제를 BIV 명제 라고 표기하겠다.
308 철학논집(제45집) 남은 통 속의 뇌 에서 BIV를 제시하기에 앞서, 마술적 지칭이론을 논박하 는 작업을 수행했다. 마술적 지칭이론이란 이름이 이름의 소지자와 필연적 으로 연관된다고 보는 입장 을 일컫는다. 이를 인식론적 용어들로 표현하자 면 표상은 외부대상과 필연적으로 연관 된다 고 보는 입장을 말한다. 우리는 일상적 사례들 속에서 쉽게 마술적 지칭이론의 반례들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개미가 지나간 자국이 처칠과 닮았다고 해서 그 자 국이 처칠을 지칭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재채기를 하다가 나온 소리가 비 슈누 로 들렸다고 해서 그 소리가 힌두교의 비슈누 신을 지칭한다고 생각 하지 않는다. 이 예시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지칭에도 맥락이 선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소리나, 이름이나, 그림, 표상 등이 그 자 체로 무언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퍼트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름 과 이름의 소지자 간의 관계가 단지 문맥적(contextual), 우연적(contingent), 그리고 규약적(conventional)일 뿐이라는 점을 깨닫고 나면 왜 이름에 대한 지식이 어떤 신비적인 의미를 가져야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15) 그러므로 (CC)에서 언급하고 있는 적절한 인과적 관계 란 적절한 맥락 에서 이루어지는 인과적 관계를 의미하며, 적절한 맥락이란 퍼트남이 명시 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연이나 최면, 무지(대상을 모르 는 경우), 환각 등의 상태가 아닌 상태를 의미한다. 지칭을 단순히 인과작 용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맥락에 영향을 받는 인과작용으로 보았다는 점에 서 퍼트남의 이론은 마술적 지칭이론보다 더 많은 사례들을 설명할 수 있 다는 설명적 이점을 갖는다. 지칭이론에 있어서 퍼트남은 맥락주의적 면모 를 보이고 있다. 이제 ii)를 살펴보도록 하자. (CC)의 논의와 연관하여 ii)를 풀어 쓴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CC)에 따라 지칭은 적절한 맥락을 선제하는데, BIV 명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지칭이 불가능하다. 이 주장을 이해하기 위 해 BIV 명제가 성립한 상황을 생각해 보자. BIV가 성립한다면 우리는 통 속의 뇌이다. 해당 상황에서 세계는 통 속의 뇌가 느끼는 세계(표상세계)와 통과 뇌가 위치해 있는 세계(실제적 외부세계)로 완전히 분리된다. 그런데 15) H. 퍼트남, 이성, 진리, 역사, 22.
외부세계 회의론과 의미론적 극복 309 BIV 명제, 우리는 통 속의 뇌다 라는 명제에 포함된 이름 통 과 뇌 에 해 당하는 대상은 실제적 외부세계에 위치한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적 외부세 계를 경험할 어떤 방법도 없다. 그러므로 (CC)에 따라, 해당 상황에서 통 과 뇌 의 지칭은 실패한다. iii)은 ii)에 의해 지칭이 실패한 문장의 의미가 곧 거짓 이 된다는 사실 을 지적하고 있다. 퍼트남은 분명히 이 부분에서 지칭이 실패함 으로부터 거짓 이라는 문장의 진리치를 이끌어내고 있다. 논문의 다른 부분 16) 을 고 려할 때, 이때 쓰이는 거짓 이라는 말의 의미는 말이 안 됨 정도로 이해 될 수 있어 보인다. 필자는 퍼트남이 이 부분에서 일종의 지칭주의(referentialism) 의미론을 채택하고 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우선 퍼트남은 세계와의 대응에 의해 BIV 명제가 가진 의미가 결정된다고 보고 있다. 통 이 실제적 외부세계의 통을 가리켜야 하고, 뇌 가 실제적 외부세계의 뇌를 가리킬 때만 우리는 통 속의 뇌다 는 BIV 명제가 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형적인 지칭주의 언어관의 사고방식이다. 거짓 의 의미를 말이 안 됨 정도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퍼트남은 분명히 BIV 명제를 진술로 취급하고 있으며, 세계 내 대상과 대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다. 지칭에 있어서 는 맥락주의적인 접근방식을 보여줬던 퍼트남은 정작 핵심적인 논지를 전 개하는 과정에서 지칭주의 의미론에 의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바로 이 부분에서 퍼트남의 논변이 가진 균열이 시작된다. (3) 퍼트남식 해결책에 대한 비판 퍼트남의 의미기준에 따르면 BIV가 성립한 세계에서 진술들의 참은 실 16) 통 속의 두뇌에 관한 가능적인 이야기가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 함은 두 가지 잘못에서 기인한다 (H. 퍼트남, 이성, 진리, 역사, 43.) 등의 구 절 등에서 김효명이 무의미 로 번역한 어구는 원문을 고려하면 말이 안 됨 (makes no sense) 라는 의미로 번역될 수 있어 보인다. 퍼트남이 BIV 논증을 자기논박적 이라고 평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퍼트남이 사용하는 거짓 이라 는 표현은 결국 말이 안 됨 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보인다.
310 철학논집(제45집) 제 세계를 잘 지칭하고, 그려냄으로서 성립한다. 퍼트남은 우리는 통 속의 뇌다 는 명제가 주장되게 되면, 통 과 뇌 가 실제 대상을 올바로 지칭하지 못하므로 해당 주장은 거짓이며, 자기논박적이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퍼트 남의 논변이 지칭주의 의미론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대한 문제를 떠안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BIV 명제는 일반적인 진술들과 다르다. 퍼트남은 이를 간과했다. BIV가 성립한 상황을 상정해보자. 우리는 통 속의 뇌로서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고, 감각기관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느낀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느끼며, 우리의 모든 진술들이 세계를 잘 지칭한다고 느낀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우리는 통 속의 뇌다 라는 주장을 펼친다면, 우리는 그 진술을 이것은 빨간 컵이다 라는 일상적 진술들과 동일하게 여 길 것인가? BIV 명제를 주장하는 사람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외부세계 회의론을 주 장하는 데에 있다. 우리는 통 속의 뇌다 라는 주장은 i)에서도 볼 수 있듯, 어디까지나 가정 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BIV를 주장하는 사람은 우리는 통 속의 뇌다 라는 문장이 참 이라고 주장하려고 하는 것 이 아니다. BIV를 주장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이러한 가정을 도입함으로 써 우리의 인식 일반이 회의에 부쳐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통 속의 뇌다 라는 주장은 이것은 빨간 컵이다 라는 진술 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예시로서, 가정으로서, 비유로서 통 속의 뇌 를 상 정하는 문장일 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BIV 명제는 우리는 독 안에든 쥐다 라는 문장을 이해하 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된다. 두 문장은 모두 발화자를 포함한 집단 이 처한 곤경을 드러내기 위해 일종의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 가 우리는 독 안에 든 쥐다 라는 문장을 이해할 때, 외부에 독 이 있고, 우리가 그 안에 들어있는 쥐 라면 참이라는 식으로 이해하지 않듯이, BIV 명제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통 과 뇌 의 지칭 여부를 따지는 것은 도움 이 되지 않는다. BIV 명제를 이해할 때, 우리는 그 주장을 객관 세계에 대한 진술로서 받 아들이지 않으며, 오히려 인식 일반의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언
외부세계 회의론과 의미론적 극복 311 어활동 으로 받아들인다. 화용론적 의미를 고려하게 되면 BIV 명제는 다음 과 같은 문장으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우리가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고, 정 상적으로 감각하며, 세계를 지칭할 수 있다는 이 모든 감각은 다 허상일 수 있다 이렇게 번역하게 되면 더 이상 퍼트남 식의 지칭주의 의미론이 의미 기준으로서 적용되지 않게 된다. 둘째, 퍼트남의 해결책은 BIV와 동일한 성격을 가진 외부세계 회의론의 주장들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못한다. 아주 간단한 예로 데카르트의 꿈의 가 설을 살펴보자. 이 모든 것이 꿈이다(혹은 꿈일 수 있다) 라는 주장은 BIV 와 동등한 성격을 가진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퍼트남식으로 해결이 불가능 하다. 그 안에는 어떤 통 이나 뇌 같은 어떤 구체적인 지칭물도 없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퍼트남의 BIV 비판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고 할지 라도, BIV 비판 논증이 곧 외부세계 회의론 일반에 대한 비판 논증이 되지 는 못한다. 퍼트남의 실책은 다양한 언어사용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 는 BIV명제를 세계를 그려내는 일반적인 진술들과 동일한 종류의 진술로 보았고, 문장에 포함된 표현들의 지칭 관계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해당 문장의 기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퍼트남이 내놓은 해결책은 다른 종류의 외부세계 회의론 가설들에는 적용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퍼트남의 실책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좀 더 다양한 언어사용을 고려 하는 맥락주의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해 보인다. 다음 장에서 필자는 3기 비 트겐슈타인의 축-명제 개념이 외부세계 회의론에 대한 맥락주의적 해결책 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논증하도록 하겠다. 2. 비트겐슈타인의 맥락주의적 해결책 2004년을 기점으로 다니엘르 모얄-셔록(Danièle Moyal-Sharrock)에 의해 도 입된, 3기 비트겐슈타인(The Third Wittgenstein) 이라는 용어는 논리-철학 논고 17) 와 철학적 탐구 18) (특히 1부)에 집중되어 있었던 연구 경향을 뒤집 17) L. Wittenstein,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London, 1922. 18) L. Wittenstein,,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Oxford, 1953.
312 철학논집(제45집) 고 확실성에 관하여(이하 확실성 ) 19) 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모얄-셔록의 저서들과 논문집은 확실성 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으며, 그 중에서도 어브룸 스트롤(Avrum Stroll), 마이클 윌리 엄스(Michael Williams), 던컨 프리챠드(Duncan Pritchard) 등의 학자들은 확 실성 에 나온 주장들을 인식론적 회의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해결책 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20) 국내에서는 박병철(2001, 2008), 이영철(2010), 김 화경(2006) 등에 의해 확실성 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진 바 있으나, 위에서 언급한 학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회의주의 극복 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는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고에서 다루게 될 개념들이 다 소 생소할 수 있기에, 이 절에서는 다소 번잡하더라도,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기본적인 개념들을 설명하면서 구도를 잡아나가도록 하겠다. 특히 이 어지는 항에서는 3기 비트겐슈타인의 축-명제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반드 시 필요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관을 간략하게 설명하도록 하겠다. (1)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관은 잘 알려져 있듯이 언어게임이론으로 대표 된다. 언어게임이론은 이름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언어활동이 일종의 게임이 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언어는 어떤 점에서 게임과 유사한가?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들 수 있다. 1) 언어의 규칙 지배적 특성 언어와 체스는 모두 일정한 규칙에 따라 진 행된다. 일반적인 체스게임에서 나이트를 비숍처럼 쓰는 일이 허용되지 않 듯이, 사회에서 쓰는 언어들은 모두 어떤 규칙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언어는 항상 단일한 규칙체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수많은 규칙체계를 유연하게 따르는 게임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 서 언어는 체스, 장기, 마작, 카드게임, 온라인게임 등등의 수많은 게임이 모여 있는 집합체에 비유되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 19) L. Wittenstein,, Über Gewissheit, Oxford, 1969. 20) 해당 논의에 관해서는 참고문헌에 기재한 윌리엄스와 스트롤, 프리챠드의 논 문들을 참조하라.
외부세계 회의론과 의미론적 극복 313 하면서 수많은 언어게임들을 수행하며, 각각의 언어게임들은 각각의 규칙을 따른다. 2) 언어의 맥락 의존적 특성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언어게임 이라는 말은 주로 두 가지 의미 21) 로 사용되곤 한다. 한편으로는 언어의 다양한 역할(명 령하기, 기술하기, 보고하기, 추측하기 등 22) )을 일컬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상황 및 공동체(공사장, 교실, 시장, 집 등)를 가리 키는 말로도 쓰인다. 언어게임이라는 용어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트 겐슈타인은 언어가 사용되는 방식, 언어가 사용되는 상황을 중요하게 다루 었다. 비트겐슈타인이 이처럼 언어가 사용되는 다양한 방식과 상황을 중시한 이유는 그가 같은 언어 표현이라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체스에서 한 말의 움직임이 주변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듯이, 나이트를 전진시키는 행동이 항상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 이 아니듯이, 언어적 표현 역시 사용 맥락에 따라 의미가 변한다. 공부 잘 한다 는 말은 어떤 방식으로 발화되는지, 어떤 상황에서 발화되는지에 따라 비아냥거림을 의미할 수도, 칭찬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언어적 표 현의 객관적 의미는 없으며, 그 표현의 의미는 맥락 의존적으로 결정된다. 3) 언어의 공동체적 특성 보통 게임은 두 사람 이상의 사람이 수행하는 활동이다. 언어 역시 주로 두 사람 이상의 사람이 함께 하는 활동이다. 물 론, 혼잣말이나 혼자 언어적으로 생각하는 활동도 가능하지만, 그런 상황에 서조차 우리는 이미 공동체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행여 개인 언어를 만 들어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언어 역시 공동체 내에서 소통 가능할 때 에만 언어로 취급받을 수 있다. 나만이 아는 언어, 나만이 사용할 수 있고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언어를 사용한다 는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조차 우리는 공동체적 기준을 따른다. 다음과 같은 크립키 의 비트겐슈타인 해석은 언어의 공동체적 특성을 잘 설명해 준다. 이것[사 21) 철학적 탐구, 7 등에 따르면 언어게임이라는 용어는 세 가지 이상의 의미 를 갖는다고도 할 수 있지만, 본 절에서는 핵심적인 의미들만 짚고 넘어가도 록 하겠다. 22) L.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이영철 옮김, 책세상, 2006, 23.
314 철학논집(제45집) 적 언어의 불가능성]이 섬에 고립된 로빈슨 크루소가 무엇을 하든 간에 아 무런 규칙도 따를 수 없다고 말해야 함을 뜻하는가? 나는 그런 결론이 따 라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 나오는 것은 만일 우리가 크루소가 규 칙을 따른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를 우리의 공동체 안으로 데려오면서 규칙 따르기를 위한 우리의 기준을 그에게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23) 비트겐슈타인은 이 특징들을 이론적으로 구조화하여 제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유화를 그리듯이 철학을 전개했다. 그러므로 이 항에서 제시한 짧은 설명들이 비트겐슈타인의 그림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 하다. 다만, 필자는 이상의 개념설명을 통해 다음 항에서 제시할 외부세계 회의론 극복 논증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했다. (2) 3기 비트겐슈타인의 축-명제 개념을 통한 외부세계 회의론 비판 던컨 프리챠드는 자신의 논문 회의주의와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On Scepticism) (2011)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확실성 은 비트겐슈타인이 출판에 동의한 책이 아니라, 그가 남긴 마지막 노트의 편집본이다. 그러므 로 이 텍스트에서 추출된 단 하나의 정합적인 논제들을 찾아내려 하는 일 은 그리 현명한 작업은 아닐 것이다. 24) 폴 호르위치는 비트겐슈타인의 메타철학(Wittgenstein s Metaphilosophy) (2012)에서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출 판 의도를 갖고 썼던 글은 탐구 의 1부 뿐이었기 때문에 나머지 저작들 보 다 탐구 1부가 우위를 갖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25) 분명, 확실성 은 완 성된 책이 아니며, 출판 의도를 가지고 일관성 있게 저술된 책도 아니다. 그러므로 필자는 주석가들처럼 확실성 을 정합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초점 을 맞추기 보다는, 본고의 주제인 외부세계 회의론 극복 과 관련해서 확 실성 이 제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살펴보는 데에 주력하고자 한다. 23) S. A. 크립키, 비트겐슈타인 규칙과 사적 언어, 남기창 옮김, 철학과 현실사, 2008, 178. 24) D. Pritchard, Wittgenstein On Skepticism, Oxford Handbook to Wittgenstein, Oxford, 2010, 1. 25) P. Horwich, Wittgenstein's Metaphilosophy, Oxford, 2012, xi 참조.
외부세계 회의론과 의미론적 극복 315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비트겐슈타인이 확실성 에서 제시한 축-명 제 개념과 그의 후기 언어철학적 구조를 통해 외부세계 회의론을 극복할 수 있는 논증을 구성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논증은 다음과 같다. i) 언어는 축-명제를 의미 조건으로서 선제한다. ii) 우리의 발화가 의미를 얻기 위해서는 이 선제조건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i)에 따라] iii) 외부세계 회의론의 주장은 모든 것을 회의한다. iv) 모든 것을 회의하는 주장은 축-명제에 대해서도 회의할 수밖에 없 다. v) 따라서 외부세계 회의론의 주장은 무의미하다. [i) ~ iv)에 따라] 이 논증을 이해하기 위해 i)과 iv)에서 언급한 축-명제 개념에 대해 이 해할 필요가 있다. 축-명제 는 무엇인가? 축-명제란 i)에서 언급된 규칙 에 해당하는 명제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탐구 에서 언급했던 언어적 규칙, 곧 문법 개념을 확실성 에서 축-명제(hinge proposition) 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자. 341. 즉 우리가 제기하는 물음들과 우리의 의심들은, 어떤 명제들이 의심 으로부터 제외되어 있으며 말하자면 그 물음들과 의심들의 운동 축들이라 는 점에 의거하고 있다. 26) 343. 그러나 그 때문에 우리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탐구할 수는 없고 따라 서 어쩔 수 없이 그 가정에 만족한 채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내가 문들이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축들은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27) (밑줄은 인용자) 341절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물음, 의심을 제기할 때조차도 의심으 로 제외되어 있는 명제들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 명제들은 무 엇인가? 343절에서는 의심을 할 때조차 전제되는 그 명제들을 회전문이 돌 26) L. 비트겐슈타인, 확실성에 관하여, 이영철 옮김, 책세상, 2006, 341. 27) L. 비트겐슈타인, 확실성에 관하여, 343.
316 철학논집(제45집) 아가기 위해 필요한 축들에 비유하고 있다. 모얄-셔록은 비트겐슈타인의 <확실성에 관하여> 이해하기(Understanding Wittgenstein s On Certainty) (2004)에서 바로 이 구절을 언급하며 회전문이 돌아가기 위한 축 역할을 하 는 명제를 축-명제(hinge proposition) 28) 라 칭하고 해당 명제들의 특징에 대 해 탐구한다. 축-명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유의미한 언어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받아들이고 있어야만 하는 명제들을 의미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명제들이 무언가에 대해 의심하는 명제를 발화할 때도 항상 확실하게 선제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여러 구절들에서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 면, 114. 어떤 사실도 확신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말뜻도 역시 확신할 수 없다. 29), 122. 의심을 하기 위해서는 근거들이 필요하지 않은가? 30) 등 의 구절들이 있다. 특히, 이런 구절들 중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논증을 구성 하는 데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구절은 115절이다. 115. 모든 것을 의심하 려는 사람은 의심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의심하는 놀이 자체는 이미 확실성을 전제한다. 31) 축-명제는 일상적 언어게임은 물론, 의심하는 언어게임에서조차 전제되는 확실성, 의심을 하기 위한 근거 등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그런 명제들은 어 떤 특징을 갖는가? 모얄-셔록은 축-명제들의 특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 28) 비트겐슈타인은 문법적 역할을 하는 확실성 명제들을 가리키고자 우리 사고 의 비계(the scaffolding of our thougts) (OC, 211), 토대 벽들 (foundational-walls) (OC, 248), 축들(hinges) (OC, 341), 또는 반석(hardrock) (OC, 99) 등의 다양한 메타포를 사용한다. 모얄-셔록은 이런 명칭들 중 축들 (hinges) 이나 축-명제(hinge proposition) 라는 말을 선호한다.(박병철은 2009년 논문에서 hinge proposition 이라는 표현을 경첩-명제 로 번역하고, 축-명제 라 는 말이 더 정확하다는 주장을 했는데, 사실 영어의 hinge 라는 표현은 중심 점 이라는 의미 역시 가지므로 해당 지적은 부차적인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 서는 hinge proposition 을 축-명제 로 번역하도록 하겠다.) 29) L. 비트겐슈타인, 확실성에 관하여, 114. 30) L. 비트겐슈타인, 확실성에 관하여, 122. 31) L. 비트겐슈타인, 확실성에 관하여, 115.
외부세계 회의론과 의미론적 극복 317 한다. (1) 의심 불가능(indubitable): [축들에 대한] 의심과 오류(mistake)는 논리적 으로 무의미하다. (2) 토대적(foundational): [축들은] 정당화의 결과로 도출되지 않는다. (3) 비경험적(nonempirical): [축들은] 감각으로부터 비롯되지 않는다. (4) 문법적(grammatical): [축들은] 문법 규칙들이다. (5) 말할 수 없음(inefferable): [축들은] 말해질 수 없다. (6) 드러남(enacted): [축들은] 오직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 속에서 자신 들을 드러내 보인다. 32) 이상의 여섯 가지 특징은 적절한 분류이고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전부 설명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본고에서는 논점을 흐리지 않 기 위해서 위에서 구성한 논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1), (2), (4)에 대해 서만 다루도록 하겠다. 이 세 가지 특징들은 다음과 같이 연관된다. (1)을 살펴보자. 우리가 축-명제들을 의심하는 것은 왜 무의미한가? 그것은 방금 인용한 115절에서도 논하고 있듯이, 의심하는 언어게임을 하기 위해서도 그 언어게임의 규칙이 되는 문법적 명제들을 선제해야 하기 때문이다.((4)) 문 법이 되는 명제들은 정당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 명제들을 정당화하기 위 한 새로운 언어게임이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그 언어게임은 또 다시 문법이 되는 명제들을 선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2)) 그러므로 적어도 해당 언 어게임 내에서 발화하는 동안, 나는 내가 속한 언어게임의 축이 되는 명제 들에 대해 의심할 수도, 정당화할 수도 없다. 그 명제들은 그저 문법적 명 제로서 선제될 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애인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에 대해 의심하는 A라는 사 람을 생각하자. A가 자신의 친구 B에게 B야 아무래도 내 애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아 라고 한다면, 그 말은 적어도 내게는 애인이 있다, B는 지금 내 앞에 있다, 나는 현재 꿈을 꾸지 않고 있다 등의 명제들을 의미 조건으로 가질 것이다. 이 명제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나열할 수 있는 32) D. Moyal-Sharrock, Understanding Wittgenstein's On Certainty, New York, 2004. 72.
318 철학논집(제45집) 가에 관한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므로 차치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떤 명제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다른 어떤 명제를 부정하게 되면 주장이 무의미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일상적인 조건에서 A가 B에게 건넨 말이 의미를 가지려면 적어도 A에게는 애인이 있어야 한다. 만약에 A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B야 나는 애인이 없지만, 아무래도 내 애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 같아. 이 문장은 적어 도 우리 언어공동체 속에서는 부당한 문장으로 여겨진다. 33) 다른 예를 들어보자. 체스를 두기 위해 체스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 은 자명해 보인다. 만약, 체스말을 가지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하더라도, 그 움직임이 체스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 활동을 체스 라고 부 르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체스를 둔다면, 체스를 두는 상황에서 체스 규 칙에 대해 의심하는 활동은 무의미하다. 확실성 의 다음 구절은 이런 맥 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내가 당신을 부르면, 문으로 들어오라 고 하는 언 어놀이를 생각해 보라. 거기에 실제로 문이 있는가 하는 의심은 어떠한 통 상적인 경우에도 불가능할 것이다. 34) 우리가 적어도 부르면 문으로 들어 오는 게임 을 한다고 말하려면, 문이 존재한다는 명제에 대해 의심해서는 안 된다. 축-명제란 바로 그런 명제들을 일컫는다. 우리는 이제 iii)과 iv)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iii)을 살펴보 자. 외부세계에 대한 앎이 불가능해지게 되면 우리의 표상은 임의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지며, 이는 주관주의로, 지식 회의론으로 이어지게 된 다. 외부세계 회의론은 지식 회의론의 충분조건이다. 왜냐하면 외부세계 회 의론은 결국 외부세계에 대해 우리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이며, 외부세 계 회의론이 선제하는 표상주의 도식에 따르면 이 주장은 곧 우리는 어떤 참된 것(외부세계)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는 주장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 서 외부세계 회의론은 모든 지식의 불가능성을, 모든 확실성의 불가능성을 함축한다. 즉, 외부세계 회의론자의 주장은 모든 명제의 확실성을 부인하는 주장이다. 33) 스트롤은 축-명제의 이러한 특징을 가리켜 부정부당성(negational absurdity) 이 라고 부르기도 한다. 34) L. 비트겐슈타인, 확실성에 관하여, 391.
외부세계 회의론과 의미론적 극복 319 모든 명제의 확실성을 부정하는 외부세계 회의론자들은 결국 iv)처럼 축- 명제의 확실성도 부정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이는 일종의 거짓말 쟁이 역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이다 라고 주 장하는 크레타인처럼, 외부세계 회의론자들은 자신들이 선제하는 축-명제들 까지도 회의해야만 하는 딜레마 상황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외부세계 회의 론의 주장들은 i), ii)에 따라 무의미한 주장들로 밝혀지게 된다.[v)] 우리의 언어는 항상 특정한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체스가 체스를 둘 줄 아는 사람 둘이 모였을 때, 체스 규칙을 지키며 움직일 때 체스로서 의미가 있듯이, 의심하는 언어게임 역시 특정한 명제들을 규칙으로서 받아 들인 상태에서만 의심하는 언어게임으로서 의미가 있다. 어떤 사실도 확신 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말뜻도 역시 확신할 수 없다 35) 이상의 논변에 따르면 우리는 더 이상 회의론과 독단론 사이에서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외부세계 회의론자들의 주장은 의미론적 규칙을 어기고 있으며,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소되었다. (3) 퍼트남식 해결책과 비트겐슈타인식 해결책 본고의 주장에 따르면, 퍼트남은 통 속의 뇌 논증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지칭주의 의미론 을 핵심적인 의미 기준으로 적용했다. 이는 소위 BIV명제 를 세계에 대한 진술 로 취급하고, 해당 명제의 지칭이 실패함을 보여줌으 로써 명제의 진리치를 거짓 으로 확정짓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이었다. 그러나 퍼트남의 해결 방식은 본고 III장의 1절 (3)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1) BIV명제의 성격을 진술로만 고려했다는 점에서, 2) 외부세계 회 의론의 다른 형태에는 적용되지 않는 논변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 해결 방식이었다. 한편, 3기 비트겐슈타인의 축-명제 개념을 사용해서 본고에서 제시한 논 증은 퍼트남 식의 해결책이 갖는 한계를 갖지 않는다. 본고의 해결책은 모 든 종류의 언어게임이 갖는 기초적인 요소인 축-명제 개념을 통해 이루어 졌기 때문에 언어의 진술적 사용 외에도 다양한 사용을 고려할 수 있는 해 35) L. 비트겐슈타인, 확실성에 관하여, 114.
320 철학논집(제45집) 결책이었다. 그리고 또한, 이 해결책은 모든 종류의 회의론의 언어게임 에 적용될 수 있는 해결책이므로 적용 범위 또한 넓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 다. 따라서 본고에서 구성한 3기 비트겐슈타인의 축-명제 개념을 이용한 외 부세계 회의론 극복 논증은 퍼트남식 접근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외부세 계 회의론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갖는다. IV. 나가기 본 논문은 외부세계 회의론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향 제시를 위한 논문이었다. 본고에서 필자는 외부세계 회의론의 원인을 분석 하고, 인식론적 해결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이고, 언어철학적-의미론 적 차원에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 논 문에서 제시한 논증의 설득력과는 별개로, 우리는 3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으로부터 회의론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철학적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모든 명제는 그것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라도 항상 배경이 되는 다 른 명제들을 선제한다. 다른 어떤 명제도 선제하지 않는 명제는 의미를 가 질 수 없다. 이 아이디어는 회의론과 싸우는 철학자들에게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외부세계 회의론과 의미론적 극복 321 참고문헌 박병철, 비트겐슈타인의 확실성에 관하여 다시 보기, 철학적 분석, 제 19권, 한국분석철학회, 2009, 89~118. 박제철, 외부세계 존재에 대한 무어 논증 비판, 철학탐구, 제40집, 중앙 대학교 중앙철학연구소, 2015, 211~233. Kripke, S. A. Wittgenstein On Rules and Private Language, Cambridge, 1982; 비트겐슈타인 규칙과 사적 언어, 남기창 옮김, 철학과현실사, 2003. Moyal-Sharrock, D. Understanding Wittgenstein's On Certainty, New York, 2004. Pritchard, D. Wittgenstein On Scepticism, Oxford Handbook to Wittgenstein, Oxford, 2010. Putnam, H., Reason, Truth, and History, Cambridge, 1981; 이성, 진리, 역사, 김효명 옮김, 민음사, 2002. Stroll, A. Why On Certainty Matters, Readings of Wittgenstein s On Certainty, New York, 2005, 33~46. Williams, M. Why Wittgenstein Isn t a Foundationalist, Readings of Wittgenstein s On Certainty, New York, 2005, 47~58. Wittgenstein, L.,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Oxford, 1953; 철학적 탐구, 이 영철 옮김, 책세상, 2006. Wittgenstein, L., On Certainty, Oxford, 1969; 확실성에 관하여, 이영철 옮 김, 책세상, 2006.
322 철학논집(제45집) <Abstract> Skepticism about External World and Semantical Solution - From the Epistemological Dilemma to Semantical Dissolution - Kim Jin-Hui (Sogang Univ.)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uggest a solution to the philosophical (problem, skepticism about the external world, with a synthetical argument. In this paper, I ll try to justify next three propositions. First, the cause of skepticism about the external world is rooted in the representational scheme. Second, we cannot solve the problem with the way of epistemology. Third, we can dissolve the problem with the way of Philosophy of language(semantical considerations). I ll handle these propositions in each part, and the third part will be the most important part consisted of two verses. In the first verse of the third part, I ll introduce a kind of skepticism about external world, Brain in a Vat(BIV) of Hilary Putnam, and his argument on BIV. In the second verse, I ll construct an argument on skepticism about the external world with Hinge proposition concept of 3rd Wittgenstein. Key words: Skepticism, Putnam, Wittgenstein, Hinge Proposition, Certainty, Collision, Cre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