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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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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fication & Law 목 차 2013 / 11 편집자논단 1. 통일법제 연구의 성과와 전망 장 소 영 / 1 연구논문 1.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 연구 김 광 길 / 21 2. 남북 4대 합의문에 대한 검토 유 욱 / 41 3.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과 과제 임 성 택 / 67 4. 경제분야 남북합의서의 분석 박 훤 일 /108 5. 남북한 환경협력합의서 모델 이 효 원 /131 실무 및 남북관계 동향 1. 남북 주요 제 개정 법령 : 북한 경제개발구법 (2013) 161 2. 머리기사로 본 최근 남북관계 동향 173 3. 남북관계 주요 통계 현황 258

편집자논단 통일법제 연구의 성과와 전망 * 1) - 법무부 통일법무자료검색시스템 ** 2)보유 논문을 대상으로 - 장 소 영 (법무부 통일법무과 검사) 目 次 Ⅰ. 서 론 Ⅱ. 시기별 연구 현황 1. 1960년대 및 1970년대 - 통일법제 연구의 태동기 2. 1980년대 - 통일법제 연구의 안착기 3. 1990년대 - 주제 3) 다양화 시기 4. 2000년대 이후 - 양적 성장 및 질적 심화기 Ⅲ. 주제별 연구 현황 Ⅳ. 저자별 연구 현황 1. 1세대 연구자들 2. 2세대 연구자들 3. 3세대 연구자들 Ⅴ. 결어 - 전망과 과제 * 이 글은 2013. 6. 21. 서울대학교 헌법 통일법센터, 법학연구소 주최 남북관계의 변화를 대비한 통일 법의 과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원고를 보완한 글이다. ** 이 시스템은 법무부 통일법무과에서 구축한 온라인 상의 자료검색시스템으로 정식 명칭은 같은 과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명칭과 동일한 통일과 법률 이다. 통일에 대비하여 생산 수집한 자료 및 연구 성과 등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마련의 필요성에서 출발하였으며 연구 성과 공유를 통한 저변 확대 및 연구 효율화를 도모하여 통일기반을 조성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법무부 통일법무과가 창설된 이후 21년간 축적된 연구 성과물 및 수집 자료 등을 모두 디지털화하여 인터넷 기반 자료 공유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정부부처 간 자료의 공유는 물론 민간 연구단체 및 학계 에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타 부처 및 민간 연구단체에 대하여도 관련 자료를 업로드할 수 있도록 하 여 자료 수집의 활성화도 도모하고 있다. 본 발표문은 데이터베이스 상의 자료 중 법무부 생산자료와 단행본을 제외하고 개별 논문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시스템 구축을 위한 외부 논문의 수집과 분류실무 는 서울대학교 헌법통일법센터에서 수행하였다. 3) 발표문에서 사용하는 주제 라는 용어는 통일법무자료검색시스템상의 54개 소분류 항목 각각을 하나의 주제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2 통일과 법률 Ⅰ. 서 론 이 발표문은 법무부 법무실 통일법무과에서 2012년 사업을 시작하여 2013년 8월 20일 오픈한 통일법무자료검색시스템의 구축작업에서 수집, 분류한 논문 2,604건(중복 제외 저자 1,057명)을 대상으로 하였다. 통일법무자료검색시스템에서는 수집한 논문 2,604편을 1)남한법제, 2)북한법제, 3)외 국법제, 4)통일대비법제로 대분류하고 18개의 중분류 1) 하에 총 54개의 소분류 2) 항목을 통해 정리하였는데, 사업시행의 기간, 저자들의 협조 정도, 예산, 분류체계 등의 한계가 있어 국내에서 간행된 모든 논문을 수집하고 분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관련 연구의 시기별, 주제별, 저자별 경향을 파악하고 향후 과제를 도출할 수 있을 정 도의 자료 구축은 된다고 보고 발표문을 작성하였음을 밝힌다. 발표문에서는 현재 수집된 1963년부터 2013년까지의 논문들을 살펴보고자 하며, 연 구성과를 시기별, 저자별로 가능한 다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향후 통일법제 연구에 있 어서 조금이라도 유용한 시사점을 도출해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다만, 시기를 나누는 기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대기적인 기준으 로 10년 단위로 나눌 것인지, 남북관계의 주요 사건들을 기준으로 시기를 나눌 것인지 는 발표문의 구상 단계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문제였다. 최종적으로 10년 단위의 구 분을 통해 시기별 특징을 추출하기로 한 것은 다른 영역의 연구에서도 광범위하게 통 용되는 간명한 분류라는 장점과 함께 주요 사건별로 시기를 구분한다는 것은 연구와 1) 18개의 중분류는 국가안보법제, 남북교류협력법제, 남북한관계, 남북합의서, 북한인권법제(이상 남한법 제), 개혁개방법제, 공법, 민사법, 북한법제 일반(이상 북한법제), 독일, 베트남, 예멘, 중국대만, 체제전 환국가의 법제정비(이상 외국법제), 통일대비 법제정비, 통일방안, 통일이후 법제통합, 통일헌법(이상 통 일대비법제)이다. 2) 54개의 소분류는 국가보안법, 동북아평화체제, 미사일, 경제교류협력법제, 남북교류협력 일반, 사회문화 협력법제, 이산가족, 인도적 대북지원, 남북한특수관계론, 기타 합의서, 남북기본합의서, 정치군사합의서, 국제적 지원, 북한이탈주민의 인권, 북한주민의 인권(이상 남한법제), 경제특구법제, 대외경제법제, 체제 전환법제, 행정관계법, 헌법, 형사법, 가족상속법, 민법민사소송법, 상사법, 지적재산권 관련법, 북한법이 론과 체계, 북한법제의 동향, 사회주의법이론과 체계(이상 북한법제), 독일통일 일반, 동서독교류협력법 제, 통일독일의 법제통합, 개혁개방법제, 베트남통일 일반, 예멘통일 일반, 통일예멘의 법제통합, 개혁개 방법제, 교류협력법제, 양안관계 일반, 홍콩마카오 경제특구법제, 기타국가, 러시아, 중동부유럽국가(이 상 외국법제), 급변사태 위기관리, 남한의 법제정비, 북한의 체제전환과 법정비, 평화협정, 분단국가의 통일방안, 경제법통합, 공법통합, 국제법통합, 민사법통합, 사회법통합, 통일합의서, 통일헌법의 제정개 정(이상 통일대비법제)이다.

통일법제 연구의 성과와 전망 3 사회상황과의 상호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류라는 생각 3) 과, 수집된 자료의 시기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주요 사건이 연구에 미친 영향이 사건별 시기 구분을 필요로 할 만큼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Ⅱ. 시기별 연구 현황 수집된 총 논문 2,604편을 10년 단위로 살펴보면서 그 시기에 연구가 시작된 주제들, 10년간 발표된 논문의 총 숫자 및 연구주제의 다양성 등에 비추어 시기별 특징을 추출 하고자 하였고 남북관계의 주요 사건일지에 비추어 연구주제들이 사회상황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리고 입법 등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파악하려고 하 였다. 1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끊어서 본 결과 시기별로 연구용어, 연구주제의 세분화, 심화, 다양화, 논문의 숫자 등에서 차이를 감지할만한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시기별 특징을 반영하여 1960년대 및 1970년대를 통일법제 연구의 태동기, 1980년대를 통일법제 연구의 안착기, 1990년대를 주제 다양화 시기, 2000년대 이후를 양적 성장 및 질적 심화기로 칭하기로 한다. 1. 1960년대 및 1970년대 - 통일법제 연구의 태동기 1963년 박동운 4) 이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아세아연구 제6권 제 2호에 북한공산정권헌법의 제정과정과 그 성격 을, 1964년 같은 잡지 제7권 제1호에 북한최고인민회의의 구성과 운영 을 각 게재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국내 통일 법제에 대한 연구는 6, 70년대를 거치면서 총 13개 주제에 대한 55편의 논문으로 이어 졌다. 60년대에는 위 논문 이외에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 구성과 운영 (1964, 박동운), 헌 법과 국가통일문제 (1966, 김도창) 등 4편의 논문이 더 나왔는데, 모두 북한의 헌법문 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아마도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있었던 이 시기에 3) 평소에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에 있어서 사회상황과의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것이 흥미롭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에도 그러했다. 4) 이하 연구자의 직책 및 존칭을 생략한다.

4 통일과 법률 북한법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는 단계이니 만큼 가장 거시적인 시각에서, 사회를 구 성하는 기본적인 법에 대한 탐구로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에는 총 49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 시기에 새로이 연구가 시작된 주제 들은 북한 형사법, 북한 가족 상속법, 사회주의 법이론과 체계 등 모두 북한법제에 속 하며 북한의 헌법개정 (1973, 김운용), 북괴의 행정법질서 (1975, 윤세창), 북괴의 노 동정책과 신노동법 (1978, 이원준), 북한 헌법과 공산제국의 헌법과의 이동에 관한 연 구 (1978, 김철수/신영준) 등 북한의 헌법, 행정관계법 등 전통적인 공법분야에 대한 연 구 이외에도 국제법에 대한 북괴의 태도 (1977, 김찬규), 국제법상으로 본 북괴의 군 사수역 (1977, 김찬규), 북한의 경제수역 선포와 서해5도 -국제법 이론을 중심으로 - (1977, 김명기) 등 북한법제에 대한 국제법적 시각에서의 접근이 시작되었음이 눈에 띄는데, 이는 1977년 8월 북한의 200해리 경제수역 실시 발표, 해상군사경계선 설정 발 표로 휴전선 인근 해상에 대한 긴장이 고조되었던 사회상황을 법적 측면에서 파악하 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사회의 틀을 이루는 공법 분야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이와 균형 을 이루려는 듯 사회 구성원인 개인에 대한 가장 미시적인 시각에서의 연구도 시작되 었는데, 1972년 최달곤에 의해 북한혼인법 연구 -주로 혼인의 성립과 효과를 중심으 로- 가 발표되면서 북한의 가족제도와 중공의 가족제도 비교 (1973, 이희봉), 북한의 친자법 (1975, 김철자) 등이 뒤를 이었다. 통일법제 연구의 태동기로서 대부분 연구자들이 개론적 연구를 진행하던 이 시기에 돋보이는 논문은 1979년 발표된 강구진의 북한형법상 인신침해에 관한 죄의 고찰 이 다. 강구진은 길지 않은 이 논문에서 북한형법상의 인신침해에 관한 죄를 6가지 항목 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남한형법과 비교하는데 성적 범죄와 명예를 침해하는 범죄를 인신침해에 관한 죄로 고찰함으로써 인신침해를 인격침해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 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이채롭다. 2. 1980년대 - 통일법제 연구의 안착기 이 시기에 새롭게 연구가 시작된 주제는 6개에 불과하다. 10년간 발표된 논문의 수 는 160편으로 지난 시기에 비해 세 배 이상 증가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여전히 지난

통일법제 연구의 성과와 전망 5 시기에 계발된 주제들인 북한법제에 대한 탐구에 경사되어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연 구주제의 프리즘은 넓지 않지만 각 주제에 대한 분야별 연구가 쌓임에 따라 통일법제 연구가 안착되어 간다. 또한, 초기 연구 중에는 공산정권/북괴 5) 지칭도 있었던 것에 비 하여 이 시기에는 비교적 객관적 용어라고 할 수 있는 북한 으로 지칭이 통일되어 가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 헌법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개론적인 소개를 벗어나 사회주의 국가간 헌법 에 대한 비교연구로 나타났다. 공산권 헌법의 이론과 헌법질서 -소련헌법과 북한헌법 을 중심으로- (1981, 장명봉), 중공 북한 헌법상의 권력구조 (1982, 구병삭) 등을 비롯 하여 헌법상의 구체적인 분야에 대한 비교연구인 공산주의 헌법상의 기본권에 관한 고찰 -북한헌법을 중심으로- (1985, 소진운) 까지 나아갔다. 또한 북한헌법에서의 권력 구조를 살핌 : 북한체제에서의 헌법규범과 헌법현실에 나타난 권력구조를 중심으 로 (1981, 김영삼)와 같이 헌법규범과 헌법현실이라는 틀을 사용하여 북한사회를 이해 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같은 분단국가의 상태에 있다가 1970년대 통일이 된 베트남에 대한 법제적 관심도 이 시기에 생겨나 베트남 통일 일반을 다룬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태동기부터 출발한 북한 가족법에 대한 연구도 이어져서 북한 양자법 -그 분석적 연구를 중심으로 (1980, 최달곤), 북한 혼인법 개관 (1988, 김진) 등 북한법에 대한 탐 구에서부터, 한걸음 나아가 남북한 법제통합의 첫 걸음이라고 할 한국 북한 가족법 의 이질성과 동질성 (1989, 최달곤)이라는 비교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최달곤은 위 논 문에서 가족법 분야에 대한 북한의 자료가 매우 한정되어 있고 그나마 입수하기 쉬운 형편도 아니라는 점 때문에 북한법의 내용을 소개한다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다고 토 로하고 있어 연구의 어려움을 짐작하게 하며 이러한 어려움이 현재까지도 그다지 개 선된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 안타깝다. 북한 가족법 이외의 민법분야에 대한 연구가 이 시기에 시작되어 북한민법의 구조 와 내용 (1982, 최달곤), 북한 채권법의 개관 -1973년 심의용 민법(Ⅰ)을 중심으로 - (1984, 이종복), 북한민법상의 계약원리와 그 특수성 (1985, 정동호), 북한민법의 변 화와 그 내용상 특징 (1987, 최달곤), 북한계약법의 내용과 그 특색 (1988, 최달곤) 등 5) 북한공산정권 헌법의 제정과정과 그 성격 (박동운, 1963), 한국과 북괴의 법적 체계 비교 (강구진, 1972), 국제법상으로 본 북괴의 군사수역 (김찬규, 1977) 등 1970년대까지는 공산정권, 북괴 라는 용 어를 사용한 여러 편의 논문이 발견된다.

6 통일과 법률 이 세상에 나왔다. 이 시기는 북한이 통일적인 민법전을 가지고 있지 못한 시기였지만 이 당시 연구자들의 분석의 탁월함에 힘입어 이 논문들은 지금도 북한민법 연구의 기 본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한편, 북한 노동법 비판 (1987, 박홍규), 북한의 노동법 (1988, 신홍), 북한의 경제 법 (1988, 권오승), 북한의 법학과 법사상 (1988, 최종고), 북한의 합영법 (1989, 이기 수) 등 헌법과 민법을 벗어난 개별법 분야의 논문들도 눈에 띈다. 북한의 경제법과 합 영법에 대한 관심은 그 무렵 시작된 북한경제의 제한적인 대외개방조짐으로부터 촉발 된 것으로 보이며, 북한의 노동법에 대한 연구가 개별법 중 이른 단계에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사회주의 국가의 법체계에서 노동법이 헌법과 더불어 사회주의 혁명에 의해서 쟁취한 새로운 법의 전형으로서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서 근본적인 목표들을 선언하고 있는 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북관계에 있어 80년대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1983년 발 표된 남북이산가족 재회에 관한 연구 (김명기/지봉도)라는 간략한 논문 이외에는 1985 년 최초로 성사되어 전 국토를 뒤흔든 감정적인 사건이었던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이 를 법의 틀 안에서 제대로 품어보려는 시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3. 1990년대 - 주제 6) 다양화 시기 이 시기는 연구주제가 폭발적으로 분화된 시기이다. 숫자로만 보자면 앞선 30년 동 안 19개의 주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이 시기에 새로 연구가 시작된 주제들은 21개에 이른다. 매해 고르게 수십편 씩의 논문이 발표되었으며 10년간 총 620건의 새 로운 통일법제 관련 논문이 세상에 나왔다. 새로이 연구되기 시작한 주제들은 교류협력법제 일반, 인도적 대북지원, 경제특구법 제, 남북기본합의서, 북한이탈주민의 인권, 지적재산권 관련법, 급변사태위기관리, 평화 협정, 분단국가의 통일방안, 통일합의서, 북한의 체제전환과 법정비, 독일 예멘 중국 대만 등 통일법제 전 영역에 걸쳐 있으며 1990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이 제정 되면서 경제적, 사회문화적 교류가 활성화됨에 따라 교류협력법제에 대한 연구의 비중 6) 발표문에서 사용하는 주제 라는 용어는 통일법무자료검색시스템상의 54개 소분류 항목 각각을 하나의 주제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통일법제 연구의 성과와 전망 7 이 높다는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1992년 2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이하 기본합 의서 라고 한다)가 체결됨으로써 이를 분석하려는 시도가 줄을 이었다. 조약의 등록과 남북기본합의서 (1992, 김명기/지봉도), 기본합의서의 법적 성격과 효력 (1992, 제성호),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성격과 정치적 의의 (1992, 정세현) 등 기본합의서가 체결된 해에 발표된 논문들을 비롯하여 그 이후에 발표된 논문들도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성질 (1993, 김명기),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성격과 실천방안 (1998, 이장희) 등 기본 합의서의 법적 성격과 효력을 밝히는 데에 주력하는 가운데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른 인적 교류 (1992, 이재운),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에 따른 남북교류협력법령의 보완 발 전방향 (1993, 박윤흔), 남북기본합의서와 평화체제 전환문제 (1996, 제성호) 등 기본합 의서를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과의 결합을 모색하는 연구들도 있었다. 특히,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남북관계가 나라 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 계'임을 전제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해야 할 공동의 정치적 책무를 지는 남북한 당국이 특수관계인 남북관계에 관하여 채택한 합의문서로서 남북한 당국이 각기 정치 적인 책임을 지고 상호간에 그 성의 있는 이행을 약속한 것이기는 하나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를 국가 간의 조약 또는 이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는 것도 아니 라는 1999년 대법원 판결(98두14525)과 같은 취지의 원심 판결(97구18402)이 1998년 7월 선고됨에 따라 기본합의서의 법적 구 속력을 부인한 위 원심판결의 취지를 법리적으로 비판하면서 남북기본합의서의 규범 성을 제고하자는 대정부 건의를 담은 제성호의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성격 (1998)은 논문을 통해 사회에 적극 개입하려는 시도로 눈에 띈다. 1992년 북한의 합작법, 외국인기업법, 외국인투자법이 제정되고 1993년 외국투자기업 및 외국인세금법이 제정됨에 따라 이에 대한 분석이 속속 선보였다. 북한의 외국인투 자관련 법령 분석 및 평가 (1993, 제성호), 북한의 외국인투자 관계법 (1993, 권오승), 북한의 대외경제에 관한 법제도 (1993, 윤대성), 북한의 합영법 및 경제관련 법령의 검토 (1993, 박헌목), 북한대외경제법의 회고와 전망 (1995, 정동윤) 등이 그것이며, 그 연장선상에서 최영택은 북한의 외국인투자법과 중국의 외국인투자법 비교연구 (1997) 를 통해 사회주의권 국가 중 경제개혁개방의 대표모델인 중국법제와의 비교까지 나아

8 통일과 법률 갔다. 1980년 중외합자경영기업법을 제정하여 운영하면서 경제개방을 시작한 중국과의 비교분석은 북한의 경제개방법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접근이었으며 북한의 합 영기업과 중국의 합자기업, 북한의 합작기업과 중국의 합작기업, 북한의 외국인기업과 중국의 외자기업을 경영권, 출자형태, 장려업종, 관리기구, 이사회구성, 인력관리, 과실 송금, 해산에 이르기까지 비교하여 기업형태별로 법령의 모호성, 미비점을 보여주었다. 동서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인 1990년 독일통일의 영향으로 통일독일의 분야별 실태연구 (1992, 김영윤/여인곤/황병덕), 독일통일 후 동독지역에서의 사유화 정책 연구 (1993, 황병덕), 독일통일 과정에서의 법 행정의 통합에 관한 연구 (1998, 홍준형/김병기) 등 독일통일 일반 및 통일독일의 법제통합 등에 대한 논문이 쏟아졌다. 독일통일에 대한 관심은 궁극적으로 같은 분단국가로서의 남북한의 통일이라는 주제 로부터 촉발된 것인 연유로 남북한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으며 통일헌법에 대한 연구가 잇따랐다. 통일헌법의 기초에 관한 연구 -남북한의 권리 의무의 승계조 항 문제를 중심으로- (1991, 박용현), 한국통일과 통일헌법 제정문제 (1992, 김철수), 통일헌법상의 권력구조에 관한 연구 (1992, 최용기), 통일헌법상의 경제사회질서 -헌 법이론적 분석과 헌법정책적 제안- (1993, 전광석), 통일헌법의 성립절차에 관한 연구 -독일 및 예멘의 통일사례와 관련하여- (1996, 박정원) 등 다양한 시각에서 통일헌법에 대한 접근이 이뤄졌다. 일찍이 분단국 헌법과 통일문제 (1978)를 통해 서독기본법, 독일헌법의 통일조항과 대한민국 건국,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제4공화국 헌법, 북한헌법의 통일조항을 비교하 면서 분단국의 통일방안에 대한 법적인 접근을 적극적으로 요망한다고 밝혔던 김철수 는 독일통일 이후 동독헌법과 통독헌법 (1997)을 통해 시민혁명에 의한 북한의 남한 에의 흡수통일, 국가연합체제에 의한 통일, 통일헌법의 제정이라는 세 가지 방식의 통 일방안을 구체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법학자로서 스스로 제기한 시대적 소명에 대해 응 답하는 면모를 보였다. 1990년대에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들의 탈출실태가 알려지면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법적인 조망이 시작되었다. 북한탈출동포의 법적 지위와 처리방 안 (1994, 제성호), 북한이주민의 조기정착을 위한 법정책론 (1996, 정영화), 탈북자지 원법안의 문제점과 대안 (1996, 이종훈), 재중 탈북주민의 법적 해결방안 (1997, 지봉 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지원법제 현황 및 문제점 (1997, 이상철), 북한이탈주민의

통일법제 연구의 성과와 전망 9 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 (1997, 박기갑), 국제법상 탈북자의 법적 지위에 관한 연 구 (1997, 김명기), 해외체류 북한이탈주민의 법적 보호 및 실효적 지원방안 (1999, 김 명기) 등이 그것이며 특히 제성호는 이 문제를 최초로 법적으로 다루면서 1993년 제정 된 귀순북한동포법 을 적용할 경우 향후 예견되는 탈북자 증가사태에 제대로 대처하 기 어려울 것임을 지적, 재정수준을 감안한 적정한 지원, 북한에서 취득한 학력과 경력 인정, 직업교유과 사회적응교육 실시의 필요성 등을 주장하는데 이 주장은 1997년 1월 북한귀순동포법을 폐지하고 새로이 제정 시행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에 대부분 수용된다. 한편,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이 제정된 이후부터는 논문에서 사용되던 탈북자, 북한탈출동포 등의 용어가 북한이탈 주민으로 통일되어 간다. 4. 2000년대 이후 - 양적 성장 및 질적 심화기 2000년 이후 14년간 새롭게 연구가 시작된 주제는 중국 대만 간의 관계, 북한인권 에 대한 국제적 관심, 통일 이후 경제법 민사법 통합 등 14개 항목이다. 1963년 통일 법제 연구가 시작된 이래로 가장 많은 논문이 발표된 연도는 2006년 217건, 2012년 202건, 2011년 159건 순이며 처음으로 세자리 숫자 이상의 논문이 발표된 해는 2003년 으로 이때부터 해마다 백편이 넘는 논문들이 발표될 정도로 통일법제 연구분야의 양 적 성장이 두드러진다. 2000년 이후 연구가 시작된 위 14개 주제들에 대해서 이후 10 여 년간 같은 주제로 대부분 10편 미만의 논문이 발표된 것은 1990년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연구가 전문화되고 주제가 세분화됨에 따라 특정 주제에 연구자가 편중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남북경협의 본격적 의지를 담고 있는 6 15선언 이 발표되고 분야별 회담이 활성화되었으며 각종 합의서가 채택되는 등 교류협력 분 위기가 무르익음에 따라 남북경협에 대한 논의가 심화된다. 남한기업의 개성공업지구 진출에 따른 법적 고찰 -개성공업지구법을 중심으로- (2002, 이상철), 개성공단 관련 법제 인프라와 한국 진출시 법적 고려사항 (2004, 제성호), 북한 법률의 국내법적 효 력 -개성공단에서의 적용 가능성과 범위 한계- (2005, 이효원), 개성공단의 인력관리 실태와 노동법제 분석 (2006, 문무기), 민족 내부거래 관점에서 본 개성공단 관련 법 제 (2007, 유욱), 개성공단 토지이용권 보호를 위한 제도화 방안 (2008, 김상용), 개성

10 통일과 법률 공단 활성화를 위한 FTA 원산지 특례규정 활용방안 (2009, 고준성), 개성공단 노동법 제 개선방안 (2010, 유욱), 개성공단 부동산 집행을 위한 법제정비 방안 (2010, 임성택) 등 해마다 많은 논문이 발표되었으며 개성공단 관련 법제의 개관에서 시작하여 개별 법제의 분석 및 개선방안으로 연구의 초점이 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성공단 관련 법규 자체의 규정에 집중하여 분석을 수행하고 개선방안을 도출한 대개의 논문 들과 달리 헌법 제3조와 제4조라는 헌법규범적 틀에 의거하여 북한법률의 국내법적 효 력을 규명하고자 하는 이효원의 시도가 눈에 띈다. 한편, 경협에 따른 분쟁이 발생함에 따라 분쟁해결 문제에 대한 연구가 나타나는데 개성공단에서의 분쟁해결을 위한 중재규칙의 제정방향 (2007, 이주원), 개성공단 투자 보장과 분쟁해결절차의 법적 문제점과 개선방안 (2010, 신현윤), 개성공단 관련 법규 와 계약이행 확보 방안 (2010, 유욱), 개성공업지구의 분쟁해결을 위한 사법제도 (2011, 임성택) 등이 대표적이다. 교류협력에 관한 논의도 개별 분야로 구체화된다. 북한 관광협력의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정비방안 (2000, 박정원), 남북스포츠분야 교류협력에 관한 법적 과제 (2001, 이상철/임규홍), 환경친화적 남북경협사업 추진방안에 관한 연구 (2003, 정회성), 남북 농업협력 및 지원을 위한 입법적 고찰 (2007, 김종회), 남북 학술교류협력에 관한 법 적 연구 (2008, 이현조), 남북관계 발전과 북한과의 사법공조 방안 (2008, 이효원), 남 북한간 통신교류를 위한 법제정비 (2008, 장호익), 남북 문화교류와 저작권 문제 (2008, 전영선) 등이 그것으로 이 외에도 지자체별 교류, 세대별 교류 등에 관한 다양한 논의 가 계속되었다. 남북한 교류협력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남북한과 비슷한 문화권에 있으면서 보 다 이른 시기에 상이한 체제간 교류협력을 활성화한 중국 대만간 교류협력법제에 대 한 관심으로 확산되었다. 양안(중국 대만)간의 교류협력법제에 관한 고찰 (2004, 최명 길)은 쌍방간 정치적 대립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반관반민 차원의 교류협력을 지속함으 로써 교류협력의 범위를 확대해나간 양안간의 정책적 판단을 높이 평가하고, 중국이 대만인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하여 마련한 법제를 분석하여 투자의 범위와 특혜요소 등을 추출함으로써 남북 교류협력법제에 주는 시사점을 도출해내고자 하고 있어 이 시기에 양산된 양안간 교류협력법제에 대한 논의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통일법제 연구의 성과와 전망 11 남북간 체결된 각종 합의서와 관련된 논의도 활성화된다. 6 15 남북공동선언의 이 행과 새 남북관계 정립을 위한 법적 과제 (2000, 박정원), 6 15 남북공동선언과 후속 문서의 법적 성격과 효력 (2001, 제성호), 남북기본합의서 및 남북경협합의서의 법적 성격에 관한 고찰 (2003, 이상훈/금창섭), 남북합의서의 법적 성격과 효력 (2004, 이효 원), 남북합의서의 법적 성격 및 효력에 관한 연구 (2006, 이규창), 개성공단에 대한 이중과세방지합의서 적용방안 (2008, 오윤), 남북합의서의 법적 성격과 법제화 방 안 (2011, 한명섭) 등을 꼽을 수 있다. 한편,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과 개성공단 근로자 억류사건을 계기로 신변보호 관 련 남북합의서와 이행을 위한 제도화 문제 (2009, 고성호),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국제인도법 (2009, 김명기), 북한 체류 남한 주민의 신변안전보장에 관한 연구 (2009, 김병기), 북한 형사법과 개성공단 억류자 신변안전 문제 (2009, 한명섭) 등 북한 체류 남한 주민의 신변보장 문제가 부각되기도 한다. 90년대에 헌법과 국제법 분야에서 제기되었던 통일 이후를 대비한 통합법제 연구도 이 시기에 다양화된다. 통일대비 여성관련 법제연구 (2000, 김영희/장영아), 남북한 통 일상법체계 연구 (2000, 서규석/최상철), 남북한 법제통합의 방향 모색 (2001, 제성호), 남북한 보건의료분야 통합을 위한 남북법제의 비교와 통합방안 (2002, 신상환), 남북 통합에 대비한 토지재산법제의 쟁점 (2002, 정영화), 통일헌법상 권력구조에 관한 연 구 (2007, 성낙인), 통일 이후 한중국경문제에 관한 국제법적 고찰 (2010, 이근관), 남 북통일 이후 사법조직의 통합방안 (2010, 이효원), 통일 후 북한 국공유재산의 처리와 관련한 법적 문제와 해결방안 (2011, 김성욱), 교육법제 통합을 위한 남북한 협정방안 에 관한 연구 (2012, 박재윤) 등으로 보건의료, 권력구조, 국경문제 등 개별 분야에서 구체적 방안을 고심한 연구들이 대부분이다. Ⅲ. 주제별 연구 현황 2,604건의 논문을 분류하면 남한법제, 북한법제, 외국법제, 통일대비법제라는 4대 분 류 중 북한법제에 해당하는 연구가 1,374건으로 52.7%를 차지한다. 소분류 항목별로는 1)북한법제의 동향(321건), 2)북한헌법(211건), 3)북한행정관계법(207건), 4)북한주민의

12 통일과 법률 인권(167건), 5)북한법 이론과 체계(144건)로 상위 5개 소분류 항목 중 남한법제의 하위 항목으로 분류된 북한주민의 인권 항목 이외에는 북한법제의 하위 항목이 4개를 차지 하고 있어 북한법제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1960년대에 연구가 시작된 주제는 3항목, 1970년대는 10항목, 1980년대는 6항목, 1990년대는 21항목, 2000년 이후 시작된 연구주제는 14항목으로 주제가 폭발적으로 세 분화, 심화된 것은 1990년대이지만 한편, 연구의 양을 보면 1970년대 시작된 주제들에 대한 연구가 누적 1,123건으로 전체 연구의 절반 정도를 차지함으로써 연구자들이 지 속적인 관심을 갖는 주제들은 대부분 1970년대에 연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또한, 1980년대에 연구가 시작된 주제들은 6개 항목, 누적 논문수 354건으로 1990년 대에 연구가 시작된 주제들이 21개 항목, 누적 논문수 648건임에 비추어 연구가 새로 이 시작된 주제의 숫자도 매우 적고, 이후 연구편수도 90년대보다 10년 더 누적된 연 구기간을 감안할 때 이례적으로 적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정치적 수사로서의 회담제의와 간헐적 실무접촉이 있기는 했지만 80년대 내내 남북간에 아웅산 테러 등으 로 인해 조성된 냉각기가 전반적으로 지속됨에 따라 기존의 연구자들이 남북관계, 통 일 등의 문제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하지 않았고, 새로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연구 자가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는 다음 항목인 저자별 연구현황에서도 확인된다. 다수 연구작을 낸 새로운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배출된 시기는 1990년대이다)인 것으로 분 석되며 한편, 1980년대 남북관계 최대의 화해 이벤트였던 이산가족 상봉(1985년)이 그 당시의 연구주제로서 연구자들의 흥미를 그다지 끌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된다. 이산가족에 대한 연구는 90년대와 2000년대에 골고루 나타나는데 특기할 만한 사례 로는 이산가족의 재결합에 따른 가족법상의 문제 (1995, 신영호), 이산가족의 재결합 에 따른 가족법상의 제문제 (1996, 소제선), 이산가족 재결합시의 가족법적 문제 -남 북한 가족법과 관련하여 (1999, 곽동헌), 이산가족 상봉 등 인적교류확대에 따른 법제 적 대응방안 (2000, 조정찬/강성출), 이산가족 재결합에 따른 법적 분쟁과 그 해결방 안 (2002, 신영호), 남북한 이산가족 재결합에 따른 가족법상 제문제에 관한 연구 "(2003, 강은희) 등 이산가족의 재결합에 따른 법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연구가 꾸준히 발표됨으로써 2009년부터 검토가 시작되어 2012년 시행된 법무부 소관법률인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통일법제 연구의 성과와 전망 13 관련 논문 중 특히, 2005년 발표된 이병욱의 논문 이산가족과 혼인에 관한 법률문 제 는 이산으로 인한 중혼의 취소제한, 양혼 배우자간의 동등한 상속권 추구는 물론 북한의 상속인이 남한내에 재산을 가지게 되는 경우의 국가관리까지 논의하고 있어 현재 시행되고 있는 특례법의 구체적 내용에 대하여 그 필요성을 예견하고 앞서 논의함 으로써 법학과 사회와의 상호작용 중 적극적 측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만 하다. 2000년 이후 연구가 시작된 주제들은 14개 항목이며 누적된 연구논문 숫자는 총 71 편으로 한 주제 항목당 10편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수의 연구자에게만 매력이 있을 정도로 주제의 세분화가 심화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주제별 연구추이를 보면 어떤 현상을 접하는 인간의 사고과정이 대체로 사실을 파 악하고, 분석하고, 종합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과 같이 통일법제 연구도 북한에 대한 기 초적인 정보를 파악하고(북한법제 일반에 대한 기초 연구), 남북간 법제를 비교하거나 외국의 사례를 연구하여 현상을 깊이 분석한 연후에 비로소 통일 이후 법제통합방안 등 종합적인 대책수립에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연구의 과정은 인간의 사고과정 이므로 수많은 사람에 의해서 개별적으로 수행되는 연구의 흐름도 개별 인간의 사고 와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는 흥미로운 결과를 볼 수 있었다. 또한, 북한법제 일반에 대한 연구가 법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북한이라는 사회를 이 해하고 수용하려는 시도라고 할 때 그 시도는 공법 등 북한사회의 뼈대를 이루는 주제 에서부터 출발하여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연구역량이 축적되고 뼈대 관련 저작물들이 늘어나면서 차차 북한사회의 피와 살을 이루는 사법관계 전반으로 확산되어 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Ⅳ. 저자별 연구 현황 저자들이 발표한 논문이 모두 수집된 것은 아니며, 저자별로 수집되지 아니한 논문 편수에 차이가 있다는 점 때문에 특히 저자별 현황을 논의하면서는 이 발표문에서 검 토한 기초 자료에 위와 같은 한계가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밝히게 된다. 법무부의 통일법무자료검색시스템은 통일법제 분야를 최종 54개의 소항목으로 분류 하였는데, 다수의 논문을 발표한 중복 저자를 제외한 전체 저자숫자는 1,057명이었다.

14 통일과 법률 1,057명의 저자들 중 항목을 망라하여 5편 이상 발표한 저자를 다작 저자로 추출한 결과 39명이 이에 해당되었다. 다수작 10명을 보면, 최다작의 저자는 71편을 발표한 장 명봉, 다음은 59편을 발표한 제성호였고, 42편의 박정원, 21편의 최은석, 19편을 발표한 김동한과 이규창(가나다 순, 이하 동일), 18편의 이효원, 16편의 최달곤, 15편의 신현윤, 이장희, 최종고가 그 뒤를 이었다. 14편에서 11편을 발표한 저자들로는 김명기, 김영규(각 14편), 김성욱(13편), 김찬규, 손희두, 신영호, 정영화(각 12편), 김병기, 유욱, 윤대규(각 11편)이 있었고 10편 이하 5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한 이들은 5편 저자는 2명(정응기, 최영택), 6편 저자는 10명(김 상용, 김상호, 김운용, 김철수, 도회근, 이계만, 이은정, 장병일, 조정찬, 지봉도), 7편 저 자는 3명(김일수, 박훤일, 이상철), 8편 저자 1명(민경배)으로 나타났다. 다수작 저자들이 통일법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한 시기를 기준으로 보면, 1970년대가 7명(김명기, 김운용, 김찬규, 김철수, 장명봉, 최달곤, 최종 고), 80년대가 4명(김동한, 김일수, 도회근, 최영택), 90년대가 19명(김병기, 김상호, 김 영규, 박상철, 박정원, 박훤일, 손희두, 신영호, 신현윤, 윤대규, 이계만, 이상철, 이은정, 이장희, 장병일, 정영화, 제성호, 조정찬, 지봉도), 2000년대 들어서 논문을 발표하기 시 작한 저자가 9명(김상용, 김성욱, 민경배, 유욱, 이규창, 이효원, 정응기, 최은석, 한명 섭)이다. 편의상 1970년대에 통일법제 분야의 연구를 개척한 저자들을 1세대 연구자로, 1990년대에 통일법제 분야의 관심 주제를 크게 다양화하면서 연구 활성화에 기여한 저 자들을 2세대 연구자로, 2000년대 들어서 통일법제 분야 연구를 시작하면서 전 세대에 축적된 성과를 바탕으로 심화된 연구를 통해 질적 변화의 초석을 다진 저자들을 3세대 연구자로 칭하기로 한다. 1. 1세대 연구자들 1970년대에 연구를 시작하고 다수의 논문을 발표한 1세대 연구자 7명 중 5명(김명 기, 김찬규, 장명봉, 최달곤, 최종고)은 2000년대 이후, 또는 2012년까지도 논문을 발표 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 사실상 이 분야의 기틀을 다져온 연구자들이라고 할 수 있 다. 이들은 선행연구가 거의 없고, 자료입수조차 어려운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북한의 국제법, 해상법, 헌법, 가족법, 법사상 분야 연구의 초석을 놓았으며 30여년 이상의 세 월 동안 북한이탈주민, 북한주민의 인권, 통일 이후의 국경문제(김명기), 국제법(김찬

통일법제 연구의 성과와 전망 15 규), 북한헌법, 특구법, 선거법(장명봉), 북한민법, 가족법, 이산가족재결합에 따른 문제 (최달곤), 북한법제사, 법사상(최종고) 영역에서 다양한 연구를 진척시켜 왔다. 2. 2세대 연구자들 2세대 연구자들은 숫자면에서 다른 시대를 압도한다. 10년 동안 19명의 연구자가 새 로이 통일법제 분야에 등장하여 262편의 논문을 쏟아냄으로써 5편 이상 다수작 저자들 중 49%, 위 저자들의 논문수 총계의 48%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제성호, 박정원, 신현윤, 이장희, 김영규, 손희두, 신영호(이 상 다수작 순서) 등 현재까지도 통일법제 각 분야 연구를 대표하는 저자들이 대부분이 다. 제성호는 남북교류협력에 따른 법적 문제와 대응방안 (1992), 대북투자보호 및 분 쟁해결방안 연구 (1993) 등 경협 관련 연구, 기본합의서의 법적 성격과 효력 (1992), 6 15남북공동선언과 후속문서의 법적 성격과 효력 (2001) 등 합의서 관련 연구는 물 론 2000년대 이후에는 법제통합에 대해서도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1990년대 중반 부터 꾸준히 인권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 (1994), 북한의 인권침해 -법제도적 측면 을 중심으로- (1995),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제협력방안 -국제인권기구의 활용을 중 심으로- (1998), 북한의 형사법제와 국제인권규약 (2001), 북한의 인권실태와 구체적 개선방안 모색 -법적 제도적 측면에 착안하여- (2003), 북한의 인권실태와 국제사회의 대응 (2004), 미국의 북한인권법안 통과 의미와 전망 (2004), 북한의 인권정책과 법규 정 (2006) 등 북한인권에 대해 천착함으로써 북한인권에 대한 사회적, 국제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에 일정한 기여를 한 것으로 여겨지며 위 시기별 현황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양한 주제를 망라하여 시의적절한 의제설정 면에서 발군의 능력을 보여준다. 박정원은 북한의 1992년 헌법과 최근의 입법동향 (1996), 북한헌법(1998)상 경제조 항과 남북한 경제통합 -중국헌법상 경제조항과 관련하여- (1999), 1998년 개정헌법의 의미와 전망 (2002), 북한의 2009년 헌법의 주요 내용과 의의 (2009) 등 매번 북한의 헌법 개정에 따른 분석을 지속하고 있으며 북한법률용어의 분석3 -민사법편 (1997), 북한법률용어의 분석4 - 상사 및 대외경제법편 (1998), 북한의 입법체계 -입법기관 및 입법절차를 중심으로- (1999), 북한 김정일 체제의 법제정비 현황과 전망 (2002) 등 개 괄적이고 기초자료로 사용될 수 있는 연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16 통일과 법률 신현윤은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거시적인 접근에서 출발하여 미시적인 접근으로 나 아가는 것과는 달리 1990년 동 서독 통화통합의 은행법적 문제 라는 당시로서는 초 미시적인 접근으로 통일법제 연구를 시작하여 독일통일에 있어서의 국유기업 사유화 에 관한 연구 (1993), 기업법 분야에서의 독일통일의 법적 문제 (1995), 동구권 사회 주의 국가의 국유기업 사유화와 경쟁법의 역할 (1996), 동구권 구사회주의 국가의 경 제법제 현대화 (1997) 등 구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법제에 대한 분석을 계속하다가 북 한이 본격적으로 개혁개방법제를 갖춘 이후에는 북한 개방 관련 법제의 현황과 문제 점 (2000), 북한의 기업소 제도 (2000), 북한 외국투자 관련 법제정비의 최근 동향과 평가 (2006), 북한 외국인투자법의 변천과 전망 및 과제 -합영법 합작법 외국인기업 법을 중심으로- (2009) 등 분석대상을 북한으로 옮겨 경제법제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장희의 논문들은 특정 주제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돋보이는데 북한의 조약체결 당사자능력 인정에 따른 법적 문제 연구 (1996)에서 북한에 대해 조약체결 당사자능력 을 인정함으로써 남북기본합의서 및 제반 세부합의서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다하게 하고, 국제법원칙 및 기본합의서 위반의 경우 국가책임을 묻도록 하자는 주장을 펼친 이래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성격과 실천방안 (1998), 남북기본합의서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1998),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방안 (2002), 남북합의문서의 법적 쟁점과 정책과제 (2007)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기본합의서의 조약성 인정문제 를 검토하고 있다. 김영규는 북한민법에 대해 천착하고 있는데 북한 가족법상의 후견제도 (1997), 최 근 남북한 가족법의 변모와 그 접근가능성 (2008) 등 가족법에서부터 북한민법의 물 권제도 (1993), 남북한 물권법의 차이점 (2009), 남북한 채권법의 차이점 (2011) 등 남 북한 민법 전반을 비교연구해 왔으며, 특히 중국 - 북한 민법상 계약일반과 그 성 립 (2006), 중국과 북한 민법상의 불법행위책임 (2006), 중국과 북한 민법상의 상속제 도 (2006), 중국과 북한의 부동산용익권의 변모와 그 특징 (2009) 등 중국법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서 사회주의 법체계 내에서 북한민법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손희두는 폭넓은 분야에서 북한의 개별법제를 연구하고 있다. 북한의 국적법 (1997) 을 시작으로 북한의 무역 관련 제도에 관한 연구 (2000), 북한의 회계법제에 관한 연

통일법제 연구의 성과와 전망 17 구 (2005), 북한의 손해보상법에 관한 연구 (2006), 북한의 해양관련 법제와 남북한 협력방안 연구 (2008), 남북한 의약품관리법제 비교연구 (2009), 북한의 자원개발법제와 남북한 협력방안 연구 (2011) 등 연구분야의 다양성 면에서 독보적인 면모를 보인다. 신영호는 북한민법 특히 가족법 분야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북한 가족법의 제정 과 그 특색 (1992), 북한 가족법의 내용과 그 특색 (1993), 북한 가족법의 회고와 전 망 (1995), 북한의 제정 상속법의 동향과 평가 (2005) 등 북한 가족법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왔으며, 전통에 기초한 규범이나 남녀평등 자녀의 이익보호 가족내 약자의 보호와 같은 현대 가족법의 일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규범영역에서는 남북한 가족 법의 동일성 동질성을 논할만한 분야가 적지 않다고 하면서 친족 및 가족의 범위와 가족의 성과 본, 혼인, 친자, 후견, 부양, 상속의 승인과 포기, 유언과 유류분 등의 영역 에서 남한 가족법의 북한지역 적용을 구체적으로 고찰한 통일단계에서의 민법 친족상 속편의 북한주민 적용방안에 관한 연구 (2011)를 발표하여 정책, 실무적인 접근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3. 3세대 연구자들 3세대 연구자들은 다수 연구자 숫자 및 그들의 논문 총수를 분모로 할 때 연구자 숫 자 면에서는 23%, 논문 숫자면에서는 20%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현재 이 분야 연구를 선도하는 새로운 기수로 떠오르고 있는 연구자들이다. 2004년 남북합의서의 법적 성격과 효력 을 발표하면서 이 분야에 등장한 이효원은 논리적 사고와 명료한 문장으로 사회과학적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준다. 북한 법률의 국내법적 효력 : 개성공단에서의 적용가능성과 범위 한계 (2005), 남북한 형사사건의 합리적 해결방안 (2006), 개성공단의 법률체계와 남한 행정법 적용 여부 (2008), 개성 공단의 법질서 확보방안 (2011) 등 실무적 접근이 돋보이는 논문 뿐 아니라, 남북한 특 수관계론이라는 헌법이론을 규범적 기초로 남북한관계와 남북한 교류협력에 적용되는 법체계를 분석함으로써 남북교류협력의 규범적 체계를 정립한 남북한 특수관계론의 헌법학적 연구 (2006) 등 공법 분야의 다양한 주제로 연구를 지속하면서 대체로 고른 수준의 다작을 보여주고 있어 2000년대 이후 등장한 3세대 연구자의 핵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18 통일과 법률 유욱은 개성공단 법제의 현황과 과제 (2005)를 발표한 이래 중국심천경제특구법제 의 개요와 개성공업지구법제에 대한 시사점 (2006), 민족내부거래 관점에서 본 개성공 단 관련법제 정비방안 (2007),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의 시행과 향후 보완과 제 (2007),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성격과 개요 (2007), 개성공단 노동법제 개선방안 (2010) 등 개성공단에 대한 현실적 과제들을 검토해 왔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개성공단 관련 법규와 계약이행 확보방안 -북측의 관련 법규와 계약무효 선언과 관련 하여- (2010)를 통해 북측 요구의 법적 성격과 문제점을 남북투자보장 합의서에 비추어 검토하고 입법적 개선책을 제시하는 등 경협 분야 특히 개성공단에 집중하여 적실성 있는 연구를 시도함으로써 세분화, 전문화 사례로 꼽힐만하다. 저자들의 연구현황을 살펴본 결과 다수작 저자들이라고 해도 공법/사법의 전공분야 를 크게 넘어서는 논문은 찾기 어려워서 전방위적인 논문을 쓰는 저자보다는 대체로 자신이 전공한 분야를 중심으로 관심주제를 조금씩 확산해가는 유형과 한두가지 주제 를 지속적으로 천착하는 유형으로 대별되는 것으로 보이며 시기별 주제별 분석에서 보았듯이 통일법제 연구가 활성화된 시기는 1990년대라는 점이 저자별 분석을 통해서 도 확인된다고 하겠다. 현재 활발히 활동하지 않지만, 다수 논문을 발표한 저자 7) 를 발견하는 성과도 있었으 며 헌법, 형법, 민소법 등 각 분야의 대가들 8) 이 북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관련 분야 논문을 발표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분단국가에서 법률을 전공한 지식인들이 자 신의 시대가 처한 도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대응하고자 했음을 엿보게 한다. Ⅴ. 결어 - 전망과 과제 지난 50년간의 연구 현황을 살펴본 결과 법학자 일변도의 연구에서 법률전문가 전 반으로, 추상적 논의에서 구체적 대안제시로 연구인력이 증가, 다변화되면서 연구주제 7) 김운용( 북한법률제도의 연구, 1977 등 6편), 김일수( 남북한 형사소송법의 비교연구, 1989 등 7편), 김 철수( 분단국 헌법과 통일분제, 1978 등 6편), 최영택( 북한의 후계체제 등장과 법제정비의 과제, 1995 등 5편) 등이다. 8) 강구진( 북한의 법체제 연구 : 형법상의 재산범죄에 관한 고찰, 1981 등), 김도창( 헌법과 국가통일문 제, 1966), 김철수( 남북한 헌법의 비교 등), 성낙인( 통일헌법상 권력구조에 관한 연구, 2007 등), 정 동윤( 북한 민사소송법의 주요 내용과 특색, 1990 등) 등이 있다.

통일법제 연구의 성과와 전망 19 가 세분화, 심화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연구인력의 증가 및 다변화는 수많은 연구와 토론을 통한 심도있는 연구를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연구성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획득에도 순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존재의 무의미가 횡행하는 시대에 통일이라는 지상목표를 통해 역사적 세계관을 유지할 수 있는 통일법제연구 분야는 별을 보며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했던 시대 9) 를 아직도 살 수 있게 해주는 몇 안되는 분야라는 점 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므로 소명의식에 목마른 신진 연구자들이 향후에도 지속적 으로 유입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연구인력의 저변확대는 주제의 세분화 및 심화 경향 을 강화시키고 치밀한 법제도적 통일기반 조성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내실있는 통일정 책의 추진을 견인하는 역할까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통일법제 연구는 남북관계와 관련된 다양한 법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실 천적인 성격이 강한 분야이니만큼 향후 연구에 있어서는 지난 세월 동안 축적된 학술 적 성과를 실용적 성과로 변용,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법무부에서도 심층적 토론과 검증을 거쳐 그동안의 다양한 연구성과를 실제 활용할 수 있는 법령안 또는 합의서안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병행하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이전의 연구자들의 논의, 남북주민 사이의 가족관 계 및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의 제정과 그 이전에 입법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촉구한 연구자들의 논문이 끼친 영향과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 치는 연구도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남북관계는 어떤 분야보 다 정치상황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연구자에 따라서는 학문적 소신이나 의지 가 현실에 의해 무력해지는 경험이 잦을 수도 있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더욱 불안 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통일된 국가에서 지금 내가 하는 연구 가 어떤 역할을 할지를 그려보면서 별을 보며 길을 찾아가는 심정으로 소명의식을 가 지고 현실의 벽에 부딪쳐도 포기하지 말고 부단히 정진할 필요가 있다. 연구를 통해 시대적 소명에 응답하겠다는 자세는 개인으로서는 존재이유의 증명이자 역사적 과제 의 수행으로서 역사와 개인을 행복하게 합일시키는 미래를 만들어 낼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사람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진정한 사람은 오직 사람으로서 고유하게 9) 게오르규 루카치가 그의 저서 소설의 이론 에서 소설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존재가 고유의 의미를 가 지는 시대였던 서사적 시대에 대한 향수를 표현한 대표적 구절이다.

20 통일과 법률 지닌 능력을 가지고 자기자신을 더 뛰어난 형태로 발전시키는 자 뿐 10) 이라면 역사적 과제, 시대적 소명과 마주 서서 사색과 연구를 지속하는 이 분야 연구자들이야말로 진 정한 사람이라고 불릴 만하다. 10) 한나 아렌트가 그녀의 저서 활동적 삶 에서 사색에 대하여 서술한 문장이다.

연구논문(1)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 연구 김 광 길 (수륜아시아 법률사무소 변호사) 요 약 문 이 글은 남북합의서의 성격을 둘러싼 기존 논의를 먼저 정리한 후, 남북관계 발전에 관 한 법률 에 따라 남북합의서의 성격을 논의하면서 남북합의서를 분류하여, 그 분류에 따른 각각의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에 대해 논의하였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에 따를 때 남북합의서는 국가간 합의인 조약과 달리 국가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 인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문서로 합의된 사항을 말하는 것으 로, 헌법이 아닌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에 따라 체결되고 효력이 발생하는 문서를 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북합의서는 1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체결 비준하여 공 포하는 남북합의서(이하 국회 동의 필요 합의서 ), 2국회의 동의 없이 국무회의 심의만을 거쳐 대통령이 체결 비준하여 공포하는 남북합의서(이하 국회 동의 불필요 합의서 ), 3남 북회담대표 또는 대북특별사절의 서명만으로 발효되는 남북합의서(이하 기술적 합의서 )로 분류할 수 있다. 국회 동의가 필요한 합의서의 체결 및 발효절차는 합의서 체결계획(정책)의 수립 합의서 문안의 교섭 합의서 문안의 확정(문안에 대한 교섭완료)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합의문에 대한 서명(문서교환) 국회 동의 합의서 발효 합의서 공포 순으로 진행될 것이며, 국회 동의가 필요없는 문서는 이 절차에서 국회 동의 절차만 생략된다. 한편 기술적 합의서는 합의서 체결계획의 수립 합의서 문안의 교섭 합 의서 문안의 확정 및 서명의 절차를 거쳐 체결 발효될 것이다. 주제어 남북합의서, 신사협정,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체결절차

22 통일과 법률 目 次 Ⅰ. 서 론 Ⅱ. 남북합의서의 성격을 둘러싼 기존 논의 Ⅲ.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에 따른 합의서의 성격과 분류 1. 합의서의 성격 2. 합의서의 분류 Ⅳ. 국회 동의 필요 합의서 체결절차 Ⅴ. 국회 동의 불필요 합의서 체결절차 Ⅵ. 기술적 합의서 체결절차 Ⅶ. 결 론 Ⅰ. 서 론 남과 북은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체결한 이후 최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합 의서 체결까지 수많은 합의서를 체결하였다. 남북간 합의에는 남한의 현대아산과 북한 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같은 민간 주체간의 합의도 있으나, 이는 통상의 계 약법의 법리에 따라 해석되면 될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특별하게 논의하지 않고 남북 당국간 합의에 한정해 논의를 하겠다. 이 글에서는 남북합의서의 성격을 둘러싼 기존 논의를 먼저 정리한 후, 2005년 12월 29일 공포되고 2006년 6월 30일 시행된 남북관 계 발전에 관한 법률 에 따라 남북합의서의 성격을 논의하면서 남북합의서를 분류하 여, 그 분류에 따른 각각의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에 대해 논의하도록 하겠다. Ⅱ. 남북합의서의 성격을 둘러싼 기존 논의 남북합의서에 대한 기존 논의의 핵심은 남북합의서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지 특 히 1991년 체결되고 1992년 2월 19일 발효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 에 관한 합의서 (이하 남북기본합의서 )가 헌법 제6조 제1항의 조약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 및 남한의 적 극적 북방정책으로 인한 소련 등 사회주의권과의 수교 등의 국제정치 환경변화와 남 한의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 등의 적극적인 대북정책의 결과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 연구 23 물이었다. 남한의 1988년 6월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제안에 따라 몇 차례의 예비회담 을 거쳐 본회담을 통해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였다. 이 남북기본합의서에는 남북상 호간에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공존관계를 수립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성격에 대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단은 1992. 2. 19.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는 조약의 효력을 가지는 법률이고, 신법우선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남 북기본합의서에 반하는 국가보안법 조항이나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조항 은 헌법 에 위반이라는 주장 에 대한 판단에서 나왔다 1). 이들 판결에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남북기본합의서는 일종의 공동성명 또는 신사협정에 준하는 성격을 가짐에 불과하여 법률이 아님은 물론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있는 조약이나 이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없 으므로 국가보안법 조항이나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조항 이 남북기본합의서에 반하더라도 위헌이나 무효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일반적으로 국가간 합의는 조약과 비조약으로 나뉘는데, 비조약은 정치적 합의, 신 사협정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지 않으며 위반시 국제법상 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런데 판례처럼 남북기본합의서가 신사협정에 불과하다면, 남북 이 남북기본합의서를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된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2). 조약 은 국가간의 의무 인 동시에 국내적 규범 으로서 이중적인 기능을 하는데, 헌법재판 소와 대법원은 남북기본합의서의 국내적 규범으로서의 효력을 다투는 사건에서 대외 적 법적 구속력 여부를 의미하는 신사협정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국제법 과 국내법의 효력관계에 대한 소위 일원론과 이원론으로 입법례가 구분되어 있으며 헌법 제6조 제1항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규와 같은 효력을 가진다 라는 규정에 대해여 국내의 학설과 판례는 대체로 일 원론에 입각하여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3). 이와 같은 일원론에 입각하여 조약 의 성격을 바라보면서 남북기본합의서의 효력에 대해 판단할 때, 남북기본합의서의 국 내적 규범으로서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면 당연히 대외적 법적 구속력도 없는 것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같은 결론은 약속은 지켜야 한다 1) 헌법재판소 1997. 1. 16. 선고 92헌바6 결정, 대법원 1999. 7. 23. 선고 98두 14525 판결, 헌법재판소 2000. 7. 20. 자 98헌바63 결정 등 2) 배종인, 남북합의서의 처리절차 및 국내법적 지위, 국제법 동향과 실무(2006) 통권 제14호에서 동일한 취지의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3) 헌법재판소 2001. 4. 26. 선고 99가13결정 참조.

24 통일과 법률 (Pacta sunt servanda)라는 법언이나 남북합의의 준수가 남북간 신뢰회복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보면 납득하기 힘든 것으로 생각된다. 남북간 교류가 상징적이고 매우 제한적이었던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부터는 남북간 교류가 활성화되었으며, 이에 대한 제도적 보장을 위해 2000년 12월 16일 남북한 장관 급회담에서는 남북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 남북사이의 소득에 대한 이중과 세방지 합의서, 남북사이의 상사분쟁해결절차에 관한 합의서, 남북 사이의 청산결 제에 관한 합의서 등 소위 4대 경협합의서가 체결되었다. 이 4대 경협합의서는 2001 년 5월 22일 제20회 국무회의 심의, 같은 해 5월 28일 대통령 재가, 2003년 6월 30일 제240회 국회본회의 의결, 2003년 8월 20일 남북한 당국간 문본교환, 2003년 8월 23일 공표라는 일련의 절차를 거쳐 발효하게 되었다. 4) 남북 상호간의 합의문이 단지 신사 협정 에 불과하다면 일방 당사자가 이를 어기더라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어 경제협력에 잠재적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4대 경협합의서에 대해 법적 효력 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으며, 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방식에 대해 우리 정부내에서는 4 대 경협합의서를 조약에 준하는 것으로 보아 국회 비준동의를 받는 방안과 4대 경협합 의서의 이행을 위하여 별도로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하였으나, 조약방식으로 체결하기로 결정하여 위와 같은 절차를 거쳐 4대 경협합의서를 발효시 켰다 5). 이와 같이 4대 경협합의서를 조약에 준하는 것으로 보고 조약방식으로 체결 발효 하였지만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에 비추어 북한과 국가간 합의인 조약 체결이 가능한 지 여부나 남북합의서가 조약과 완전히 동일한 절차를 거쳐 발효되어 조약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할 수 없었다. 이러한 배 경하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이 2005년 12월 29일 공포되고 2006년 6월 30일 시행되었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내지 제23조 및 부칙에서 남북합의 서의 체결, 비준, 공포 및 효력에 대해 규정하고 있으며, 동법 시행령 제20조부터 제23 조에서 남북합의서의 법제처 심사, 공포, 관리 및 효력정지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4) 배종인, 헌법과 조약체결-한국의 조약체결 권한과 절차, (서울, 삼우사 2009) 244쪽 5) 이상훈, 남북경협합의서의 법적 성격에 대한 고찰(법제, 2003. 12); 배종인, 헌법과 조약체결-한국의 조 약체결 권한과 절차, (서울, 삼우사 2009) 243쪽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 연구 25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중 남북합의서 관련 부분 제21조 (남북합의서의 체결 비준) 1대통령은 남북합의서를 체결 비준하며, 통일부장관은 이와 관련된 대통령의 업무 를 보좌한다. 2대통령은 남북합의서를 비준하기에 앞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3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 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 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4대통령이 이미 체결 비준한 남북합의서의 이행에 관하여 단순한 기술적 절차적 사항만을 정하는 남북합의서는 남북회담대표 또는 대북특별사절의 서명만으로 발효 시킬 수 있다. 제22조 (남북합의서의 공포) 제21조의 규정에 의하여 국회의 동의 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남북합의서는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의 규정에 따라 대통령이 공포한다. 제23조 (남북합의서의 효력범위 등) 1남북합의서는 남한과 북한사이에 한하여 적용한다. 2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 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간을 정하여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 3대통령은 국회의 체결 비준 동의를 얻은 남북합의서에 대하여 제2항의 규정에 따라 그 효력을 정지시키고자 하는 때에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부 칙 2(경과조치) 이 법 시행 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 체결ㆍ비준한 남북합의서는 이 법에 의한 남북합의서로 본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시행령 중 남북합의서 관련 부분 제20조 (남북합의서안에 대한 법제처 심사) 1통일부장관은 남북합의서안에 대하여 국무회의에 상정하기 전에 법제처장에게 심

26 통일과 법률 사를 요청하여야 한다. 2법제처장은 제1항에 따라 심사를 요청받은 남북합의서안의 내용이 헌법 에 위 반될 소지가 있거나 법리적으로 명백한 문제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사유 를 명시하여 이를 반려할 수 있다. 제21조 (남북합의서의 공포) 1법 제21조에 따라 체결 비준된 남북합의서 공포문의 전문에는 국회의 동의 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뜻을 기재하고, 대통령이 서명한 후 대통령인을 날인하고 그 일자를 명기하여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 2남북합의서는 제1항의 대통령 서명일자에 따라 번호를 붙여 공포한다. 제22조 (남북합의서의 관리) 통일부장관은 법 제22조에 따라 공포된 남북합의서의 원본을 관리하되, 남북합의서의 관리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통일부장관이 정한다. 제23조 (남북합의서의 효력정지) 1대통령이 법 제23조제2항에 따라 남북합의서의 효력을 정지시키고자 하는 때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치고, 북한에 이를 통보하여야 한다. 다만, 법 제23조제3항에 따라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경우에는 이를 행한 후에 북한에 통보하여야 한다. Ⅲ.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에 따른 합의서의 성격과 분류 1. 합의서의 성격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4조 제3호는 남북합의서라 함은 정부와 북한 당국 간에 문서의 형식으로 체결된 모든 합의를 말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의 문 언상 우리 정부와 북한 당국에 문서의 형식으로 체결된 모든 합의는 남북합의서에 해 당되고 그것의 효력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3조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고 판단된다 6).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 연구 27 그런데 문제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에는 헌법 제6조 제1항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규와 같은 효력을 가진다 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에는 남북합의서 의 국내법적 효력에 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대신에 제23조 제1항에서 남 북합의서는 남한과 북한사이에 한하여 적용한다 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법률은 상당부분 남북합의서가 조약의 연장이라는 전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중략) 결국 남북합의서의 국내법적인 효력은 헌법상 조약에 관한 조항의 유추적용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라는 견해 7) 가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에 남북합의서의 국내법적 효력에 관해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은 것 은 남북합의서에 대해 국내법적 효력을 부여하지 않고 대신에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3조 제1항에 따라 남북관계에서의 대외적 효력만을 인정하겠다는 의미로 해 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남북합의서에 대해서도 조약과 유사하게 국내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방안이 가능할 수도 있으나, 이를 두지 않은 것은 남북합의서에 국내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것에 반대 하는 의견이 있었고 이런 상황이 입법에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즉 일각에서는 국 회의 동의를 거친 남북합의서는 법률과 동위의 효력을 부여하는 명문규정의 신설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원칙적으로 합의서의 법률적 효력 부여에는 찬성하지만 이는 남북간 합의가 북한 내부에서도 법적 효력을 부여 받을 수 있는 장치, 즉 북한 내 동종의 개별 법률에 의하여 합의에 대한 법적 구 속력을 보장받음을 전제로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라고 남북합의서에 국내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것에 반대하는 견해 8) 가 있었고 이러한 반대견해를 고려하여 남북합의서에 6) 그런데 그 동안 남북회담에서 남북간에 발표된 문서중 합의서란 명칭외에 공동보도문이란 형식의 문서 가 있다. 이 공동보도문은 각종 남북회담의 진행상황이나 회담결과 등을 언론에 공개하여 보도되게 하 기위한 문서로서 법적 구속력이 없는 문건이라는 점에 대하여 특별한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런데 공동보도문 중 일부는 합의 라는 문구를 사용하지 않고 단지 회담 진행상황만을 안내하는 것도 있으나(2007. 2. 15. 장관급회담 대표접촉 공동보도문 등), 일부는...(전략)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라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있다(2007. 5. 11. 제5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 공동보도문 등), 이러한 합의 라는 문구를 사용하는 공동보도문도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4조 제3호의 남북합의서에 해당되 는 지 검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에 관하여 논의하는 이 글의 성격상 공동보 도문의 성격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생략하고,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4항의 남북회담 대표 등의 서명이 없는 문서인 공동보도문의 발표절차는 일단 제외하고 논의하기로 한다. 7) 배종인, 남북합의서의 처리절차 및 국내법적 지위, 국제법 동향과 실무(2006) 통권 제14호

28 통일과 법률 국내법적 효력을 부여하지 않은 것으로 입법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 같이 남북합의서는 국내적 효력은 없으며 남북관계에서만 법적 구속력 있는 문서인데, 남북사이의 법적 구속력도 남북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일정한 탄력성을 부여 하는 것이 필요했으며 그에 따라 입법된 사항이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3조 제2항과 제3항인 것으로 판단된다. 즉 대통령은 사정변경이 있는 경우 남북합의서의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는데, 그 중 국회의 체결 비준 동의를 얻은 남북합의서의 효력 정지는 국회의 동의를 거치도록 규정하여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른 대통령의 탄력적 대응을 규정함과 아울러 국회 동의를 거친 합의서에 대해서는 대외 적 법적 구속력을 더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국회의 동의를 거쳐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 도록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이 해석한다면 남북합의서는 국가간 합의인 조약과 달리 국가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 9) 인 남한과 북한 사이 에서 문서로 합의된 사항을 말하는 것으로, 헌법이 아닌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에 따라 체결되고 효력이 발생하는 문서를 말하는 것이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를 입법함에 있어 남북합의서와 조약의 유사성을 고려하 며 헌법상 조약체결에 관한 규정의 일부를 참조하여 입법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 같은 남북합의서는 국내법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견해는 국제법과 국내 법의 관계에서 조약에 국내법적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국내입법절차가 필 요하다는 이원론적 입장에서의 결론과 결과적으로 유사하다고 할 것이다 10). 이와 같은 견해에서도 남북합의서에 국내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것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 다. 남북합의서에 국내법적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개별 남북합의서의 국회 동의 절차시에 국내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입법을 동시에 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8) 김병기, 남북관계발전기본법(안)의 문제점 9)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10) 조약이 체결 공포되면 국내법에 자동적으로 편입된다는 일원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 헌법의 해석에 있어서 조약의 국내법적 효력의 실제적 의미에 대해서도 논의가 여전히 진행중인 것으로 생각된다. 지방의회 조례가 WTO 협정에 위반되어 효력이 없다는 취지의 판례(2005. 9. 7. 대법원 선고 2004추10 판결)도 있고, 반덤핑부과처분이 WTO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인이 직접 국내법원에 회원국 정부를 상대로 그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거나 위 협정위반을 처분의 독립된 취소사유로 주장할 수는 없다 고 한 판례(2009. 1. 30. 대법원 선고 2008두 17936 판결)도 있다.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 연구 29 이다. 향후 남북관계가 진전되어 모든 남북합의서에 조약과 같이 국내법적 효력을 부 여하는 것이 필요할 경우에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에 헌법 제6조 제1항과 유 사한 규정을 추가하는 개정을 통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2. 합의서의 분류 남북합의서는 합의서의 적용대상, 중요성 등 여러 기준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분 류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합의서 체결절차를 논의하는 이 글에서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에 따라 체결절차에 따라 남북합의서를 구분해본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1항 대통령은 남북합의서를 체결 비준하며 통일부장관은 이와 관련된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고, 동법 제21조 제4항은 대통령이 이미 체결 비준한 남북합의서의 이행에 관하여 단순한 기술적 절차적 사항만을 정하는 남북합의서는 남북회담대표 또는 대북특별사절의 서명만으로 발효시킬 수 있다 라고 규정하여 남북합의서는 먼저 대통령이 체결 비준하는 것과 대통령의 체결 비준없이 남북회담대표 등이 서명만으로 발효되는 것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어 동법 제21조 제3항은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 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 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라 고 규정하여 대통령이 체결 비준하는 남북합의서는 국회 동의를 필요로 하는 것과 국 회 동의가 필요없이 국무회의 심의(동법 제21조 제2항)만으로 충분한 것으로 나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동법 제22조는 제21조의 규정에 의하여 국회의 동의 또는 국 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남북합의서는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의 규정에 따라 대통 령이 공포한다 라고 규정하여 대통령이 체결 비준하는 합의서는 공포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남북합의서는 1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체결 비준하여 공포하는 남북 합의서(이하 국회 동의 필요 합의서 ), 2국회의 동의 없이 국무회의 심의만을 거쳐 대통령이 체결 비준하여 공포하는 남북합의서(이하 국회 동의 불필요 합의서 ), 3남 북회담대표 또는 대북특별사절의 서명만으로 발효되는 남북합의서(이하 기술적 합의 서 )로 분류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은 분류는 조약을 국내절차의 형식을 기준으로 분류하면 1헌법 제60조 제1항에 따라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서 체결 하는 조약, 2국회의 동의없이 대통령이 스스로 체결하는 조약, 3외교통상부장관이 직

30 통일과 법률 권으로 체결하는 조약(소위 고시류 조약 )으로 구분하는 것에 대응한다 11). 이하에서는 이와 같이 분류된 남북합의서에 따라 각각의 체결 및 발효절차의 구체 적 내용에 대해 서술하도록 하겠다.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에 대해서는 남북관계 발 전에 관한 법률 및 동법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절차에 대해 소개한 공 개된 문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하에서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및 일반적 조약체결절차 12) 를 참조하여 남북합의서 체결절차를 구상하여 제안해보도록 하겠다. Ⅳ. 국회 동의 필요 합의서 체결절차 국회 동의가 필요한 합의서의 체결 및 발효절차는 합의서 체결계획(정책)의 수립 합의서 문안의 교섭 합의서 문안의 확정(문안에 대한 교섭완료)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합의문에 대한 서명(문서교환) 국회 동의 합 의서 발효 합의서 공포 순으로 진행될 것으로 생각한다. 각각의 절차에 대해 구체 적으로 살펴본다. 먼저 합의서 체결 계획의 수립이다. 이는 합의서를 교섭하기 위한 최초의 단계로서, 어떠한 내용의 합의서를 어떤 회담을 통해 체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단계이다. 이 때 는 합의서 내용, 합의서 체결을 위한 남북회담의 대표 장소 회담절차 등이 계획될 필 요가 있다. 이 때 합의서의 내용에 따라 필요한 경우 관계기관 협의를 거칠 필요가 있 을 것이며 13) 합의서 문안의 초안이 준비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조약체결절 차는 양 당사국의 회담이 당연히 진행된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는 반면, 남북간에는 남북회담 자체의 성사를 위한 계획을 별도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남북회 담 개최에 대한 합의는 일방의 통지문에 의한 제의와 상대방의 수용, 상위회담 혹은 직전회담에서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11) 배종인, 헌법과 조약체결-한국의 조약체결 권한과 절차, (서울, 삼우사 2009) 42쪽 12) 배종인, 헌법과 조약체결-한국의 조약체결 권한과 절차, (서울, 삼우사 2009) 161쪽부터 205쪽 13) 법령안 제개정시에는 법령안 주관기관의 장은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하여야 하며, 법령안을 입안하였 을 때에는 해당 법령안의 내요을 관계기관의 장에게 보내 그 의견을 들어야 한다(행정절차법 시행령 제24조의2, 법제업무 운영규정 제11조 제1항).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 연구 31 다음으로 합의서 문안의 교섭이다. 남북회담을 통해 합의서 문안을 교섭하는 단계이 다. 남북회담은 통상 수석대표간의 환담, 기조발언, 대표접촉 등의 순서로 진행되며, 회 담에 앞서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대표단의 명단, 숙소, 교통편, 통신 문제 등에 대해 협의한다고 한다. 남북은 비교적 작은 회담의 경우 판문점 연락관 접촉에서 일반 적인 행정사항을 협의하고 곧바로 본 회담을 개최하지만, 총리회담과 같이 큰 회담의 경우 연락관 접촉 이외 사전에 예비회담 또는 실무대표접촉을 갖고 본회담의 의제 등 에 대해 조율한다고 한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에는 합의서 문안을 교섭하는 주체로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정부를 대표하여 북한과의 교섭 또는 회담에 참석하거 나 남북합의서에 서명 또는 가서명하는 권한을 가진 자 인 남북회담대표(제4조 제1호) 와 북한에서 행하여지는 주요 의식에 참석하거나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정부의 입장 과 인식을 북한에 전하거나 이러한 행위와 관련하여 남북합의서에 서명 또는 가서명 하는 권한을 가진 자 인 대북특별사절(제4조 제2호)로 구분하고 있다. 대북특별사절은 대통령이 임명하며(제15조 제4항), 남북회담대표는 통일부장관이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 한 후 제청하고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제15조 제1항), 통일부장관(제 15조 제2항), 통일부장관이 임명하는 자(제15조 제3항)로 구분된다. 제15조 제1항의 남 북회담대표는 북한과 중요사항에 관하여 교섭 또는 회담에 참석하거나 중요한 남북합 의서에 서명 또는 가서명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제15조 제2항의 남북회담대표인 통일 부장관은 중요도에 상관없이 모든 북한과의 교섭 또는 회담참석, 남북합의서의 서명 또는 가서명 의 임무를 수행하며, 제15조 제3항의 남북회담 대표는 제1항에서 명시한 중요사항을 제외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법 제15조에 따라 임명된 남북 회담대표 및 대북특별사절에게 신임장을 발급할 수 있다. 이 경우 법 제15조 제1항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는 남북회담대표와 대북특별사절의 신임장에는 대통령이 서명하 고 국무총리 및 통일부장관(필요한 경우에 한한다)이 부서하고, 법 제15조 제3항에 따 라 통일부장관이 임명하는 남북회담대표의 신임장에는 통일부장관이 서명한다( 남북관 계 발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5조). 통일부장관은 남북정상회담 등 중요한 남북회 담의 운영 또는 대북특별사절의 파견 등에 관한 사항을 협의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에는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차관급 공무원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운영할 수 있으며, 남북회담 그 밖에 남북한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행사의 운영을 위하여 관계 기 관의 장 등에게 필요한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관계 기관의 장 등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7조).

32 통일과 법률 다음으로 합의서 문안의 확정(문안에 대한 교섭완료)이다. 국회 동의가 필요한 남북 합의서의 경우, 문안의 확정은 가서명으로서 회담대표가 최종적으로 문안(실제적 내용) 에 확정된 문안본의 매 페이지에 서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합의서 문안이 확정된 경우 국내체계에서 이루어지는 대내적 절차를 거치게 된다. 대내적 절차의 첫째 단계는 법제처 심사이다. 통일부장관은 남북합의서안에 대하여 국무회의에 상정하기 전에 법제처장에게 심사를 요청하여야 한다. 법제처장은 심사를 요청받은 남북합의서안의 내용이 헌법 에 위반될 소지가 있거나 법리적으로 명백한 문제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사유를 명시하여 이를 반려할 수 있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0조). 조약의 경우 법제처는 조약의 심사시에 해당 조약 이 헌법 제60조 제1항의 국회 동의 필요조약인지 여부에 대한 의견을 외교통상부장관 에게 제시하여 왔다고 한다. 법제처장이 헌법 위반 등을 이유로 반려한 남북합의서 안은 재협상되어야 할 것인데, 문안이 확정된 후 재협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므로 문안 확정 전에 사전 협의 등의 절차가 진행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으로 국무회의 심의이다. 대통령은 남북합의서를 비준하기에 앞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2항). 긴급한 의안은 예외 로 하되 국무회의에 제출될 의안은 먼저 국무조정실장이 의장이 되는 차관회의의 심 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국무회의 규정 제5조 제1항). 국무회의에 제출될 남북합의서 안은 차관회의 개회일 3일 전까지 안전행정부에 제출하여 모든 부서에 배포되도록 한 다(국무회의 규정 제3조). 다음은 대통령의 재가이다.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남북합의서안은 통일부장관인 국무위원과 국무총리에 의해 부서된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음으로서, 남북관계 발전 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2항의 대통령의 비준을 받은 것이 된다. 여기서 비준이란 교 섭대표가 서명한 남북합의서안을 대통령이 최종확인하는 행위 를 의미하는 것으로 행 정부 차원에서는 남북합의서 체결의사가 확정된다. 국회 동의가 필요한 조약의 경우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조약은 상대국과 정식으로 서명된 후, 국회로 송부되며 국회의 동의를 얻으면 대통령에게 송부된다. 이때 대통령은 다시 어떠한 문건에 서명하지 않 으므로 국무회의 직후의 대통령 재가를 일종의 정지조건부 최종의사 확정 이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 연구 33 다음으로 합의문에 대한 서명(문서교환)이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남북합의서안은 권한을 위임받은 자가 서명을 하게 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4대 경협합의서의 경 우, 국회 동의절차를 거친 후 문본 교환을 하여 합의서를 발효시켰다.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조약의 경우 통상 조약을 서명한 후에 국회의 동의를 얻은 후 조약을 발효시킨 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국회 동의가 필요한 남북합의서의 경우, 합의문에 대한 서명과 문서교환절차를 분리하여 대통령의 재가를 얻은 후 남북합의서에 정식으로 서명하고, 국회의 동의를 거쳐 문서교환하여 발효하는 방식을 취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국회 동의이다.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 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 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남 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3항).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비준동의안은 국회의 장(국회사무처 의사국)에 제안되며, 일반안건의 심사절차와 같이 상임위에 회부되어 심 사를 마친 후 본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의결된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이 제정 된 후 국회의 동의를 받아 공포된 남북합의서는 없다(2007년 11월 16일 체결된 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이행에 관한 1차 남북총리회담합의서 에 대해 국회 의 비준동의를 받기 위해 2007년 11월 23일 임시국무회의와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2007년 11월 27일 국회 동의안-의안번호 제177957호-을 제출되었으나, 2008년 5월 29일 제17대 국회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자동폐기되었다고 한다). 헌법 제60조 제1항은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할 조약으로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조약, 중요 국제조직 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 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 을 규정하고 있는데 반 해,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3항은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할 남북 합의서로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 만을 규정하고 있다. 중요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은 남북간에 합의서로 체 결될 가능성이 없어 별론으로 하더라도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 우호통상항해, 주권 제약, 강화 등에 관해 남북합의서가 체결된다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 다 14). 14) 주권제약, 강화 등에 대한 남북합의서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정치적 부담으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정시 제외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34 통일과 법률 다음은 합의서의 발효이다. 우리나라가 체결한 조약은 다양한 형태의 발효방식에 관 한 조항이 있다. 서명과 동시에 발효하도록 한 조항, 서명한 후 일정기간이 경과한 후 에 발효하도록 한 조항, 서명한 후 각서를 교환함으로써 발표(또는 각서를 교환한 날 로부터 일정기간 뒤에 발효)하도록 한 조항, 서명한 후(각자 필요한 국내절차를 완료한 후) 외교공한으로 통보함으로써 발표(또는 통보한 날로부터 일정기간 뒤에 발효)하도록 한 조항, 서명한 후(각자 필요한 국내절차를 완료한 후) 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발효 (또는 각서를 교환한 날로부터 일정기간 뒤에 발효)하도록 한 조항 등 여러 가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15). 4대 경협합의서의 경우 합의서는 남과 북이 서명하고 각기 발효에 필 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교환한 날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16) 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북합의서의 공포이다. 국회의 동의 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남북 합의서는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의 규정에 따라 대통령이 공포한다( 남북관계 발 전에 관한 법률 제22조). 남북합의서 공포문의 전문에는 국회의 동의 또는 국무회의 의 심의를 거친 뜻을 기재하고, 대통령이 서명한 후 대통령인을 날인하고 그 일자를 명기하여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 남북합의서는 대통령 서명일자에 따 라 번호를 붙여 공포한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1조). 남북관계 발 전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 총 10건의 합의서가 공포되었다.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 률 에는 헌법개정, 법률, 조약, 시행령 등에 대한 공포절차를 규정하고 있을 뿐 남북합 의서의 공포절차에 대해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1조에서 구체적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령에 따라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공포된 남북합의서를 남북합의서 제( )호 의 형식으로 공포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공포된 남북합의서의 원본을 통일부장관이 보관한다 (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 률 시행령 제22조).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 공포된 조약과 일반적 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고 규정하고 있어 헌법상 절차 에 따라 체결된 조약은 공포를 거쳐서 비로소 국내법으로 수용,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남북합의서는 별도의 입 법조치 없이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면, 남북합의서의 공포란 조약의 공포와 달리 이미 성립된 남북합의서를 국민에게 대내적으로 알리는 기능을 15) 배종인, 헌법과 조약체결-한국의 조약체결 권한과 절차, (서울, 삼우사 2009) 195족 16)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 제12조 제1항 등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 연구 35 할 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Ⅴ. 국회 동의 불필요 합의서 체결절차 국회 동의가 불필요한 합의서의 체결 및 발효절차는 합의서 체결계획의 수립 합 의서 문안의 교섭 합의서 문안의 확정(문안에 대한 교섭완료)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합의문에 대한 서명(문서교환) 합의서 발효 합의서 공포 순으로 진행될 것으로 생각한다. 국회의 동의절차를 생략한다는 점을 제 외하고는 국회 동의가 필요한 합의의 체결절차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한다. Ⅵ. 기술적 합의서 체결절차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4항은 대통령이 이미 체결 비준한 남북합 의서의 이행에 관하여 단순한 기술적 절차적 사항만을 정하는 남북합의서는 남북회 담대표 또는 대북특별사절의 서명만으로 발효시킬 수 있다 라고 규정하여 기술적 합의 서는 대통령의 비준이나 공포절차 없이 체결 발효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 기술적 합의서는 조약중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및 필요시 국회의 동의 등 헌법 규정이 요구하는 일련의 조약체결절차를 거치지 않고 외교부장관이 체결하고 고 시하는 조약인 소위 고시류 조약 과 유사한 남북합의서이다. 국내법령의 경우 상위법 령이 하위법령에 위임한 사항에 대하여 구체적 사항의 변경을 용이하게 한 제도적 장 치가 있는 반면 조약이나 합의서는 구체적 사항을 용이하게 개정이나 변경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미 체결 발효된 남북합의서를 행정적 기술적으로 구체화하는 부류의 합의서까지 다시 한번 공식적인 절차를 반복하는 것은 행정적인 낭비라 할 수 있어 이러한 고시류 조약 또는 기술적 합의서의 현실적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으 로 생각한다. 이와 같은 점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4항은 대통령 이 이미 체결 비준한 남북합의서의 이행에 관하여 단순한 기술적 절차적 사항만을 정하는 남북합의서는 남북회담대표 또는 대북특별사절의 서명만으로 발효시킬 수 있 다 고 기술적 합의서의 범위와 그 체결절차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36 통일과 법률 다만 이와 같이 간이한 절차를 통해 체결되는 기술적 합의서의 체결은 이미 체결 비 준한 남북합의서의 이행에 관하여 단순한 기술적 절차적 사항 에 한정해야 하며 그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되어 사실상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이 정한 남북합의서 체 결절차를 탈법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한다. 기술적 합의서는 합의서 체결계획의 수립 합의서 문안의 교섭 합의서 문안의 확정 및 서명의 절차를 거쳐 체결 발효될 것이다. 각각의 절차에 대해서는 위에서 설 명한 바와 같다. 이 기술적 합의서에 대해서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2조에 따르면 공포가 필요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기술적 합의서도 국민에게 알릴 필 요가 있으며,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2조의 공포절 차는 조약의 공포와 달리 이미 성립된 남북합의서를 국민에게 대내적으로 알리는 기 능을 할 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22조의 공포 대상 합의서에 대통령이 비준하는 합의서(국회 동의 불문)뿐만 아니라 기술적 합의서도 포함하는 개정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Ⅶ. 결 론 이 글에서는 남북합의서를 둘러싼 기존 논의를 살펴보고,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 률 에 따라 남북합의서의 성격을 분석하고 남북합의서를 체결절차에 따라 분류하였다. 이러한 분류에 따라 국회 동의가 필요한 합의서,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합의서, 기술 적 합의서의 체결절차에 대해 살펴보았다.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에 대해서는 남북관 계 발전에 관한 법률 및 동법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절차에 대해 소개 한 공개된 문헌은 없어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및 일반적 조약체결절차를 참조 하여 남북합의서 체결절차를 구상하여 제안해 보았다. 후속논의를 기대한다. 결론을 대신하여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와 관련하여 남북합의서 체결과정의 비밀유 지와 남북합의서에 대한 국민적 합의 또는 민주적 통제 사이의 갈등에 대해 말하고 싶 다. 일반적인 조약도 협상의 구체적 내용을 국민 일반에게 공개한다면 자칫 감정이나 자존심의 문제로 흐를 위험이 있으므로 최종적인 타협을 도출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조약 체결과정이 비공개되는 것이 관행이다 17). 남북합의서는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 연구 37 적대관계란 측면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비추어 보면 합의서 체결과정에 대한 비공개의 필요성은 더욱 클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남북관 계의 특수성 때문에 남북간 합의의 이행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더욱 필 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민적 합의를 위해서는 남북합의서 결과 뿐만 아니라 남북합의서 체결과정에 대한 공개가 일정부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일반에 대한 공개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적어도 남북합의서 체결과정에서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 회와의 밀접한 협의를 통하는 것이 불필요한 논란을 예방하고 남북관계의 안정적 발 전을 위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논문접수 : 2013. 10. 7. / 심사개시: 2013. 10. 8. / 게재확정 : 2013. 11. 11.) 17) 이에 대해 조약이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므로 민주적 통제가 강화되어야 하고, 조약협상과 정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공개되어야 한다는 반박도 있었으며 이러한 의견대립이 뚜렷하게 드러난 것 은 한미FTA 협상과정의 공개를 둘러싼 상황이었다.

38 통일과 법률 참 고 문 헌 이효원, 남북교류협력의 규범체계 (경인문화사, 2006) 배종인, 남북합의서의 처리절차 및 국내법적 지위, 국제법 동향과 실무 (2006) 배종인, 헌법과 조약체결-한국의 조약체결 권한과 절차 (서울, 삼우사 2009) 이상훈, 남북경협합의서의 법적 성격에 대한 고찰 (법제, 2003. 12) 김병기, 남북관계발전기본법(안)의 문제점 외교통상부, 알기쉬운 조약업무 (외교통상부 조약국, 2006)

남북합의서의 체결절차 연구 39 <Abstract> A Study on the Signing Procedures of the Agreements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Kim, Gwang-gil First, this paper examines the previous discussions on the nature of Agreements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And then, based on the North-South Relations Development Act(NSRDA)', it classifies these Agreements into three categories and explores the characteristic features of each category's signing procedures. According to NSRDA', the Agreements' are different from treaties and deal with the tentatively formed relationship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that pursue reunification. As written consensus between South and North, the Agreements' become effective not by Constitution but NSRDA. Agreements' can be divided into three types; 1the agreement ratified and promulgated by the President, with the consent of the National Assembly ( agreement with assembly consent'); 2the agreement ratified and promulgated by the President only after consideration by the State Council, without the consent of the National Assembly ( agreement without assembly consent'); 3the agreement effective only with the sign of the representative or the special envoy of Civil talks to North Korea ( technical agreement'). The signing procedure of the agreement with an assembly consent' is as follows: Establishing the plan (Policy) of an agreement coordinating the text of the agreement settling down the text (completion of negotiations on the text) examination by Ministry of Government Legislation examination by State Council President's approval signing the agreement (exchange of the document) the consent of the National Assembly agreement effective promulgation of the agreement. Meanwhile, the signing procedure of the agreement without assembly consent' does not require congressional consent. Lastly, the signing procedure of the technical agreement is as follows: Establishing the plan (Policy) of an agreement coordinating the text of the agreement settlement of the text and signing the agreement.

40 통일과 법률 Key Words agreements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gentleman s agreement, North-South relations development act, signing procedures

연구논문(2) 남북 4대 합의문에 대한 검토 유 욱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변호사) 요 약 문 남북관계의 제도화는 남북관계에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법이고 그 핵심은 남북간 합의이다. 그간 30년 동안 7. 4 남북공동성명(1972), 남북기본합의서(1991), 6. 15 선언(2000) 및 10. 4 선언(2007)이 있었으나, 이들 합의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불안정한바, 문제는 이 들 문건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7. 4 남북공동성명은 남북 모두 처음부터 실행할 의지 가 없이 만들어낸 것이고 절차적으로 정부당국자간 비밀회담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국 민적 여론수렴과 합의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 관계 전반에 합의한 것이지만, 남한의 경우 국회 비준동의를 받지 않았고 우리 대법원, 헌법 재판소는 신사협정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남한의 경우 국회의 비준동의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의지가 결여되어 있었고, 북측 역시 이행의지 자체가 부족하였다. 근본적으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의 현실과 거리가 있었고 남한 내부적으로도 국민적인 합의 가운 데에서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6. 15 선언은 적대적 남북관계를 청산하고 남북관계의 물꼬를 열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나, 동 선언은 불과 6개항의 선언적인 규정에 불과하다. 이는 당 시 남북관계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것으로 남북 정상이 서명한 문서라는 점에서 남북간에 현실의 규범력을 가진 최초의 문서이다. 그러나 남한의 진보정부에 의하여 작성되었다는 점 에서 남한 내부의 국민적 공감대 또는 지지 확보라는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10. 4 선언은 3통문제 등 남북경협 전반에 관한 종합적인 청사진을 제시한 문건으로 남북관계 제도화의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그 의도와 달리 후속 정부에 의하여 외면되었는 바, 이는 국내 정치적 요인이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요소라는 점, 그리고 국민적 합의의 기반 위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10. 4 선언에 대하여 국민적 합의의 헌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방법은 국회의 동의를 받는 것이었다. 향후 북한과 합의를 할 경우 그 내용이 국민적 지지의 토대를 확보할 수 있는가, 그리고 절차적으로 국민적 합의를 어떻 게 얻을 수 있는가라는 점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주제어 남북관계 제도화, 국회 동의, 국민적 합의의 헌법적 기반

42 통일과 법률 目 次 Ⅰ. 들어가며 Ⅱ. 7. 4 남북공동성명 1. 배경 2. 주요내용과 경과 3. 의의와 한계 Ⅲ. 남북기본합의서 1. 배경 - 세계사적 전환에 대한 대응 2. 개요 및 경과 3. 의의와 한계 Ⅳ. 6. 15 선언 1. 배경 2. 개요와 경과 3. 의의와 한계 Ⅴ. 10. 4 선언 1. 배경 2. 개요와 경과 3. 의의와 한계 Ⅰ. 들어가며 이명박 정부 5년간 남북관계를 돌아보면, 6. 15, 10. 4 선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문 제제기, 금강산관광객 피살사건, 천안함, 연평도 포격사건 및 5. 24 조치 등 개성공단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남북관계는 단절되었고, 그 귀결은 북한의 대 중국 의존 심화(대중 국 무역의존도 증가, 북한 지하자원에 대한 중국의 개입 확대 및 황금평 및 라선경제 지대의 북중 공동개발 등)였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에 대한 기대와 달리 남북관계 는 악화일로를 걸은 것이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된 지 21년, 2000년 6. 15 선언이 있은 지 12년이 경과되었음에도 남북관계는 여전히 안정적이지 못함을 이명박 정부의 5년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지난 5년은 향후 어떻게 하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북한 의 변화(경제성장과 국제화)를 유도할 수 있는가 라는 과제를 제기한다. 그와 관련하 여 남북관계의 제도화는 안정성 확보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고 그 핵심은 남북간 합의 이다. 그간 3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7. 4 남북공동성명(1972), 남북기본합의서(1991), 6. 15 선언(2000) 및 10. 4 선언(2007)이 있었다. 문제는 이들 합의에도 불구하고 남북관 계가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이들 남북간 합의가 지켜졌더라면 좀 더 안정적인 관계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이들 문건이 왜 실행되지 않았는가

남북 4대 합의문에 대한 검토 43 하는 점인데, 아래에서는 각 합의의 개별 내용에 대한 분석보다는 실행되지 않은 이유 와 향후 개선방안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Ⅱ. 7. 4 남북공동성명 1. 배경 1) 가장 오래 된 남북합의 문건은 7. 4 남북공동성명이다. 7. 4 남북공동성명의 배경으 로는 닉슨 독트린(1969)과 그에 따른 미군의 철수(1971), 1972. 2. 미국과 중국의 국교 정상화 등 당시 급변하던 동북아 정세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미국은 1960년대말 핵무 기개발 경쟁과 베트남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막대한 군사비 부담에서 벗어나야 하는 절박한 과제에 있었는바, 1969년 괌에서 발표된 닉슨 독트린은 해외주둔 미군의 단계 적 철수, 동맹국의 자주국방노력 강화와 미국의 지원을 골자로 하는 것으로 이에 따라 1971년 약 2만 명의 주한미군이 철수하였다. 또한 미국은 소련에 대한 견제를 위하여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추진하였다. 2) 미국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질서의 안정화를 추구하 고 긴장재발을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남북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화를 통 하여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였다. 국제적 냉전체제에 조응하여 상대방 과의 무제한적 대결에 매달려 왔던 남북에 있어서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는 큰 충격 으로 다가왔다. 박정희 정권은 1971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에서 야당이 약진함에 따라 정치 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있었는바, 특히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후보인 김대중 후 보가 남북화해 및 교류와 평화통일론을 제기하고 3) 이에 대한 상당한 국민적 여론의 흐름이 형성됨에 따라 지속적인 집권명분을 창출하기 위하여 통일논의를 선점할 필요 가 있었다. 4) 또한 국가안보 차원에서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고 군사력 강화의 시간도 1) 이하 7.4 남북공동성명의 배경에 대한 설명은 김형기, 남북관계변천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2010, pp. 58-94를 주로 참고하였다. 2) 미중 국교정상화의 배경과 과정에 대한 상세는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중국이야기, 민음사, 2011. 참조 3) 김대중 자서전 1, 삼인, 2010. pp. 217-220. 4) 김형기, 앞의 책, p. 61.

44 통일과 법률 벌겠다는 판단도 남북대화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군사력 증강과 중공업 우선정책이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서 내부 자원을 경제발전에 돌리기 위하여 군사적 긴장을 완화함으로써 남한의 군사력 증강을 막을 필요가 있었고, 미국의 베트남 철수와 주한미군 2만 명 감소라는 상황을 맞아 주 한미군 철수를 촉진할 필요가 있었으며 남한의 정치적 상황이 새로운 통일전선전술을 펴는데 적합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본 점 등이 배경으로 거론된다. 5) 2. 주요내용과 경과 7. 4 남북공동성명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의 통일원칙(제1항), 상호 중상비방과 무력도발금지(제2항), 다방면적인 교류(제3항), 적십자회담의 조속 성사(제4항), 상설 직 통전화설치(제5항), 남북조절위원회 운영(제6항)을 규정하였으며 마지막 제7항에서 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민족 앞에 약속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제1항은 김일성의 제안에 의하여, 제2-5항은 이후락의 제안에 의하여, 제6항의 남북조절위원회 는 이후락의 정상회담 제안에 대한 김일성의 수정제안에 의한 것이었다. 6) 서명자는 국호나 남과 북의 표시도 없고 직책의 표시도 없이 자연인 이후락, 김영주 가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서명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서로의 실체를 인정 하지 않는 냉전의 체제논리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이후 서명방법은 변화하여 가는 데, 초기단계에는 oo 회담 남측 수석대표 로 표기하다가 1990년대 초반 이후 oo 회담 남측 수석대표, 대한민국 oo 장관 등 국호와 직책을 병기하였고 2000년대 이후 바로 국호와 직책만으로 서명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7) 남북은 1972. 11. 30. 남북조절위원회를 정식으로 발족시켰고 남북조절위원회는 1972. 11. 30. 이후 1973. 6. 13.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전체회의를 진행하였다. 이후 1973. 8. 28. 북한의 남북대화 중단 성명이 있었으나, 1973. 12. 5.부터 1975. 3. 14.까지 모두 10회의 부위원장 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등 선행조건을 내세웠고 그에 따라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5) 김형기, 위 같은 책, pp. 64-65. 6) 김형기, 위 같은 책, p. 73. 7) 김형기, 위 같은 책, p. 74

남북 4대 합의문에 대한 검토 45 3. 의의와 한계 7. 4 남북공동성명은 서로의 의중을 탐색하는 모양을 보이다가 결국 남북 양 진영의 권력기반만을 강화시키게 된다. 7. 4 남북공동성명이 있은 후 3개월 후에 박정희 정권 은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7. 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대화를 유용한 국 내 정치수단으로 활용하여 북한과 협상을 하려면 그 전에 남한의 국력증강과 국민의 일치단결이 불가피하다며 유신체제를 정당화하였다. 8) 북한도 1972. 12. 27. 최고인민회의의 무력화와 국가주석에 대한 권력집중을 주된 내 용으로 북한헌법을 개정하여 김일성 독재권력체제를 정당화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7. 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대화가 외교적 고립을 타파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서유럽 5개 국가로부터 국가승인을 받았고 이후 단 4년 만에 북한을 승인한 국가가 93개국으로 증가 하였으며 세계보건기구 회원국이 되었고 미국과도 최초로 직접 교류에 나서게 되었다. 9) 결국 남북 모두 처음부터 실행할 의지가 없이 상대방에 대한 전략적 차원과 국내정 치적 목적을 위하여 만들어낸 것이 7. 4 남북공동성명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은 남 한 정권을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떼어놓고 미군철수를 성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 하였고, 박정희 또한 남북접촉과 대화를 통한 결실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이 단지 적 어도 한쪽 손이라도 서로 붙잡고 있으면 적이 공격해 올 것인지 아닌지 그 여부를 알 수 있다 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0) 절차적으로도 7. 4 남북공동성명은 정부당국자간 비밀회담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으 로 국민적 여론수렴과 합의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상부의 뜻을 받들어 그것도 정보기관의 장이 서명 주체가 된 것은 바로 절차와 과정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다. 공동성명이 우리 법체계상 어떻게 자리매김하여야 하고 법 적 구속력의 문제, 공포의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전혀 고려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 4 남북공동성명은 최초의 남북대화를 통한 합의문건으로서 한 반도 냉전사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했고 남북이 상호협력을 통해 궁극적으로 평화 8) 존 오버도퍼, The Two Koreas, 길산, 2002, pp. 82-83. 9) 존 오버도퍼, 같은 책, pp. 83-84. 10) 존 오버도퍼, 같은 책, pp. 55-56.

46 통일과 법률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하였다는 점, 기존의 대결지향적인 통일 노선을 거부하고 평화통일의 원칙을 도출해냈다는 점, 그 결과 향후 남북기본합의서 등 남북 합의문건의 작성에서 일정한 지침의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Ⅲ. 남북기본합의서 1. 배경 - 세계사적 전환에 대한 대응 남북기본합의서는 1990년대 초반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및 체제전환, 남한의 북방외교에 따른 남한과 소련의 수교(1990. 9.)와 남한과 중국의 관계형성과 수 교(1992. 8.) 등 세계사적 전환과 그에 따른 북한의 체제위기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나 온 것이었다.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로 인하여 북한은 해외시장의 70%를 일시에 상실하게 되었고, 11) 소련의 구상무역 중단 및 경화결재 요구 12) 와 중국 의 구상무역 중단 결정 13) 등으로 인하여 식량난, 에너지난 등 심각한 경제난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북한은 남한과는 UN 동시가입(1991. 9.), 남북관계 정상 화(기본합의서 체결(1991. 12. 13.) 및 한반도비핵화선언(1991. 12. 31.)), 일본과는 북일 국교정상화(1991. 1.~1992. 11.까지 8차에 걸친 회담), 14) 미국과는 북미고위급회담(1992. 1. 22.부터 시작하여 1994. 10. 21. 제네바 합의까지)을 추진함으로써 남한, 일본 및 미 국과의 관계 정립을 통한 체제안정을 도모하게 된다. 정치적으로는 북남, 북일, 북미관 계의 정립을 도모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외부투자유치를 위한 경제특구를 설립하여 경 제회생을 모색하는 것이 큰 그림이었던 것이다. 11)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추진한 주역인 김정우가 1996년 미국 의 한 세미나에서 밝힌 내용이다. 배종렬, 라진-선봉지역 외자유치정책에 대한 평가 및 전망, 주 65. 12) 소련의 경화결제 요구에 따라 북한의 대소무역액은 1990년 22.2억 달러였던 것이 1991년 6분의 1인 3.7억 달러로 급감하였고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95년부터는 1억 달러를 하회하게 된다. 배종렬, 북한의 외자도입 현황과 과제 -라선경제특구 사례분석-, 수은북한경제 2005년 겨울호, p. 33. 각주 12. 13) 중국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과의 무역에서 국제가격의 절반 이하로 상대방에게 물품을 공급하 는 우호가격제와 물물교환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방식 대신에 현금결제방식을 요구했고 이러한 조치는 북한경제를 궁지에 몰아넣는 요인이 되었다. 이종석, 북한-중국관계 1945-2000, 중심(2000), p. 275. 14) 신정화, 일본의 대북정책 1945~1992년, (2004) 오름 pp. 224-248. 북한은 1990. 10. 27. 일본 자민당 및 사회당 양당과 조선노동당의 제2차 3당회담에서 국교수립을 제안하였고, 1991. 1. 30.부터 1992. 11. 6. 까지 8차에 걸쳐 북한과 일본 간에는 국교정상화회담이 진행되었으나 결렬되었다.

남북 4대 합의문에 대한 검토 47 2. 개요 및 경과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라는 제 목으로 전문과 제1장 남북화해, 제2장 남북불가침, 제3장 남북교류 협력, 제4장 수 정 발효 등 총 25개 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문에서 남북관계를 규정하고, 제1장에서는 전문에서 규정한 남북관계를 바탕으로 남북 상호간에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공존관계를 수립하도록 하고 있으며, 제2장은 제1장의 평화공존관계에 대한 지속적 보장 장치의 역할을 하고 있고, 제3장은 전문의 남북관계, 제1장의 평화공존관계의 수립, 제2장의 평화공존관계의 지속적 보장을 바탕 으로 남북교류 협력의 내용을 약속하고 있다. 15) 제4장은 위의 내용에 대한 발효에 관 한 내용을 규정한다. 개별조문에 대하여는 아래에서 10. 4 선언과 비교하며 살펴본다. 당시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가 헌법상의 조약은 아니지만 남북 당국간의 공식적인 합의라는 점과 향후의 남북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국가정책이라 는 점을 고려하여 1991. 12. 16. 국무회의에서 의결하였고, 같은 날 정원식 국무총리는 국회 본회의에, 최호중 통일원장관은 국회 상임위원회에 각 출석하여 보고하였으며, 1992. 2. 17. 대통령이 최종 재가를 하였다. 한편 북한은 그 발효를 위한 내부절차로 연형묵 정무원 총리가 1991. 11. 24. 중앙인 민위원회 전원회의에 보고하였고 1991. 12. 27. 중앙인민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 의연합회의에서 각각 심의의결절차를 거쳐 김일성 주석이 최종 재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 남북기본합의서는 1992. 2. 19. 평양에서 개최된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이 그 문본을 교환함으로써 정식 발효하게 되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발효 후 1개월 안에 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부속합의서를 작성하 게 되어 있고 3개월 안에 이행을 위한 기구로 부문별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어 있 다(제8조, 제12조, 제14조, 제22조, 제23조). 이에 따라 남북간에 분과위원회가 수시로 열려 1992. 9. 17.자로 3개 부속합의서가 타결이 되었고 화해공동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서도 발효가 되었다. 15) 이장희, 남북 합의 문서의 법적 쟁점과 정책과제, 2007년, p.103 참조 16) 이상훈 금창섭, 위 논문, pp. 274-275

48 통일과 법률 그러나 8차 회담에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사업과 판문점 면회소 설치, 동진호의 납 북선원 송환과 이인모 노인의 송환을 어떻게 타결짓느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훈령 조작사건이 발생하였고, 이후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이라는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 터졌 으며 1993년 팀스피릿 훈련이 실시되는 것이 확실해지자 북한은 1993. 1. 29. 남북간 모든 대화를 중단하였고 이에 따라 남북기본합의서는 한 조항도 실천되지 못하였다. 3. 의의와 한계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의 기본성격, 관계의 발전방향 및 원칙을 포괄적 으로 규정한 것이지만, 남한의 경우 국회 비준동의를 받지 않았고 이에 대하여 우리 대법원, 헌법재판소는 신사협정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함에 따라 법규범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17) 동서독 기본조약이 1972년 제정되어 양독 의회의 승인을 받고 이 기본조 약의 바탕 위에서 경제 과학 기술 교통 우정 보건 문화 스포츠 환경보호 및 그 밖의 분야에 대한 협정이 체결되어 18년 뒤 통일을 달성하는 밑거름이 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18) 현시점에서 보더라도 남북기본합의서는 어떻게 1991년이라는 시점에 그와 같은 합 의를 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내용이 충실하고 상세하며 이상적이다. 특히 남북기 본합의서는 단순한 합의에 그치지 않고 이행을 위한 남북간 여러 기구를 구성하도록 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제도화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하였다. 실제로 남북화해공 동위원회, 남북군사공동위원회, 남북교류협력공동위원회 및 남북연락사무소 등 주요한 기구의 구성 운영을 위한 합의서가 체결되었고 그 합의서에 기초하여 각 위원회가 구 성되어 일정 기간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1992. 10. 영변 핵위기가 발생하고 남북관계가 경색됨에 따라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은 중단되고 말았다. 19) 그후 2000. 6. 15 선언 당 시 남한 정부가 남북기본합의서의 기본원칙을 존중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려고 하였 17) 헌법재판소는 남북기본합의서는 한민족 공동체 내부의 특수 관계를 바탕으로 한 당국간 합의로서 남 북당국의 성의 있는 이행을 상호 약속하는 일종의 공동성명 또는 신사협정에 준하는 성격을 가짐에 불과 하다는 입장이고(헌법재판소 1997. 1. 16.자 92헌바6 결정), 대법원도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 당국이 각기 정치적 책임을 지고 상호간에 그 성의 있는 이행을 약속한 것이기는 하나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를 국가간의 조약 또는 이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국내법과 동일 한 효력이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는 입장이다(대법원 1999.7.23.선고 98두14525판결). 18) 김철수, 독일통일의 정치와 헌법, 박영사, 2004. pp. 102-104 및 pp. 154-155. 19) 이장희,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 외법논집 제20집(2005. 11.) pp. 117.

남북 4대 합의문에 대한 검토 49 으나 북측의 반대로 무산되고 만 것 20) 은 북측이 남북기본합의서를 남북관계의 기본장 전으로 보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왜 남북기본합의서는 이런 운명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볼 필요 가 있다. 우선 남한의 경우 국회의 비준동의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의지가 결여되어 있었다. 동서독 기본조약 제10조가 이 조약은 양독 의회의 비준을 요하며 비준 후 비 준서의 교환과 함께 효력을 발생한다. 21) 고 명시한 것과 달리 남북기본합의서는 양측 의회의 비준에 대한 아무런 규정도 두지 않았는바, 이는 당시 남북기본합의서를 추진 한 정부가 국회의 비준동의의 필요에 대하여 인식과 의지가 결여되어 있었던 문제점 을 보여주는 것이다. 22) 북측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의지 자체가 부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측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던 사항(예컨대 군사적 신뢰조치 구축에 관한 제12 조 및 해상경계선과 관련하여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 이라는 문구 등)들도 받아들이 는 파격을 보이며 협상타결을 서둘렀는바, 23) 이는 위기타개를 위한 김일성의 의지였 다. 24) 북측은 사회주의 붕괴에 따른 체제위기의식이 심각한 상황이었고, 북미관계, 북 일관계 정상화를 위하여 남북관계 정상화가 필수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남북기본합의 서의 체결 자체가 시급한 형편이었다. 북측은 남북기본합의서 제17조의 자유로운 왕 래와 접촉을 실현한다. 는 규정을 합의하였고, 교육과 언론분야 교류와 협력에 대하여 도 합의하였으며(기본합의서 제16조), 우편과 전기통신교류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 연 결하며 우편 전기통신 교류의 비밀을 보장한다 (기본합의서 제19조)고 합의하였다. 그 20) 이효원, 남북교류협력의 규범체계, 경인문화사, 2006. p. 141. 21) 김철수, 앞의 책 p. 155에서 인용. 22) 이상훈 금창섭, 남북기본합의서 및 남북경협합의서의 법적 성격에 대한 고찰, 2003. 12. 법제처, 2003 남북법제개선연구보고서, p. 305에 따르면 당시 정부에서 그 법적 형식이나 효력에 대한 충분 한 사전검토나 내부합의가 없었다고 한다. 23) 당시 남북기본합의서 협상과정에 대하여는 아래 자료 참고. 임동원, 피스메이커, 중앙books, pp. 200~229; 노태우 회고록(하) 전환기의 대전략, 2011, 조선뉴스프레스 24) 김일성은 1992. 2. 19.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되자 성명을 발표하여 이번 에 발표된 합의문건들은 북과 남의 책임 있는 당국이 민족 앞에 다진 서약입니다. 공화국 정부는 이 역사적인 합의문건들을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길에서 이룩한 고귀한 결실로 여기고, 그 이 행을 위하여 노력을 다해나갈 것임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라고 하였다. 임동원, 앞의 책, p. 247. 한편 비공개오찬석상에서 김일성은 투자유치, 관광유치, 남북경제협력을 강조하였으며 이후 당면한 경제난 극복을 위하여 남북관계개선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와 1992. 7. 남북경제협력 시범사업을 위하여 김달 현 경제부총리를 서울에 보내기도 하였다. 임동원, 앞의 책, p. 254.

50 통일과 법률 러나 2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개성공단에서조차 자유왕래와 서신왕래는 허용되지 않고 있으며 통신비밀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 과연 현 시점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다시 확인하자고 하면 북측이 동의할 수 있을 까. 2000. 6. 15 선언 당시 남한 정부가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문구로 삽입하려고 하였으나 북측의 반대로 무산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남북기본합의서에는 현 시점에서 보더라도 북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여러 사항이 포함되어 있는바, 이후 체제위기가 호전되지 않고 북미관계, 남북관계, 북일관계가 기대와 달리 풀리지 않자 남북기본합의서는 방기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은 위기에 대한 대응을 위하여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지나치게 양보한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를 한반도비핵화선언, 6. 15 선 언 및 10. 4 선언과 포괄하여 이행방안을 논의하자는 제안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결 국 북측은 남북기본합의서를 남북관계의 기초로 삼으려는 의지가 없었거나 희박하였 던 것으로 보인다. 25) Ⅳ. 6. 15 선언 1. 배경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후 남북정상회담, 적십자회담, 특사교환, 상설대화기구 창설, 국제체육경기대회에 남북단일팀 참가, 경평축구대회 부활 등을 연이어 제의했지만 북 한은 이를 계속 거부하며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는 태도를 견지하였다. 그러다가 2000년 정상회담에 호응하여 왔는바, 그 배경으로는 파탄지경에 이른 북한경제의 회생을 위하 여 남한으로부터 자본과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에 대한 신뢰, 클린턴 미국 대통령 임기 만료 전에 북미관계정상화를 위하여 남북정상회담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카드라는 점 등이 거론된다. 26) 25) 한명섭, 남북합의서의 법적 성격과 법제화방안, 통일과 법률 2011 봄호(통권 제5호) 황장엽 전 노동 당 국제비서는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은 90년대초 옛 공산권국가가 무너질 때 도미노 현상을 우려한 김 일성이 일시적으로 위기를 넘기기 위해 대화에 참여한 것에 불과했다며 남북기본합의서는 체결 즉시 북에서 사문화됐다고 증언했다고 함. p. 95 26) 김형기, 앞의 책, pp. 238-247.

남북 4대 합의문에 대한 검토 51 2. 개요와 경과 6. 15 선언은 자주적 통일(제1항), 남과 북의 통일방안의 공통점 존중(제2항), 8. 15 이산가족 교환상호방문(제3항), 경제교류 등 다방면 교류(제4항), 이를 실천하기 위한 당국간의 대화재개(제5항),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수락(제6항) 등 6개항으로 구성 되어 있다. 언뜻 보면, 7개항으로 구성된 7. 4 남북공동성명과 분량이나 항목이 유사한 점이 발 견되는바, 두 문건을 비교하여 보면 아래와 같다. 제1항(자주적 통일) - 7. 4 남북공동성명의 제1항(통일원칙) 제3항(8. 15 이산가족 교환상호방문) - 7. 4 남북공동성명의 제4항(적십자회담) 제4항(경제교류 등 다방면 교류) - 7. 4 남북공동성명의 제3항(다방면적인 교류) 제5항(당국간의 대화재개) - 7. 4 남북공동성명의 제6항(남북조절위원회) 그러나 6. 15 선언은 남북 정상간에 7. 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반 성적 고려 가운데 현실적으로 실행되는 합의문건을 만들자는 의지에 의하여 작성된 것이다. 즉 7. 4 남북공동성명이 나온 지 28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지 8년이 경 과되었으나 아무것도 실천된 것이 없다는 데에 두 정상이 인식을 같이하면서 실천할 수 있는 합의문건을 만들자는 데에 동의하는 가운데 각 항목에 대하여 심도 있는 논의 를 거쳐 합의에 도달하였다는 점이 앞의 합의문건들과는 다른 점이다. 27) 6. 15 선언 이후 남북은 소위 4대 경협합의서를 체결하고 남북경협추진을 위하여 여 러 합의서를 체결하는 등 남북관계의 제도화를 진행하였다. 북은 2002년 개성공업지 구법, 금강산관광지구법 을 제정하고 2005년에는 북남경제협력법 을 제정하였으며 개성공업지구법 제정 이래 최근까지 16개에 달하는 하위규정을 제정하는 등 입법적 인 뒷받침을 하여 왔다. 남한도 2005년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 남북관계발전법 ) 제정,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 남북교류협력법 ) 개정, 2007년 개성공업지 구 지원에 관한 법률 ( 개성지원법 ) 제정 등 남북관계의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한 입법을 하여 왔다. 27) 6.15 선언의 작성과정에 대하여는 임동원, 앞의 책, pp. 93-121과 김대중 자서전 2, pp. 264-293 각 참고.

52 통일과 법률 3. 의의와 한계 남북기본합의서의 경우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한 이상을 규정하였으나, 남북관계의 현실과 거리가 있었고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지 못함에 따라 규범력을 인정받지 못하 였다. 남북교류협력이 거의 없었던 1991년이라는 시점에 마련된 남북기본합의서는 대 단히 의욕적인 것이긴 하였으나 남북관계의 현실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고 남한 내부 적으로도 국민적인 합의 가운데에서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6. 15 선언은 적대적 남북관계를 청산하고 남북관계의 물꼬를 열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동 선언은 불과 6개항의 선언적인 규정에 불과한 한계가 뚜렷하다. 남북 기본합의서가 남북화해(제1장), 군사문제(제2장 남북불가침), 경협, 사회문화교류(제3장 남북교류협력)의 전 분야를 망라하였고 그 이행을 위하여 3개의 부속합의서를 둔 반 면, 6. 15 공동선언은 군사문제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고 경협, 사회문화교류에 대 하여도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의 선언을 규정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이는 당시 남북관계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언상 으로만 보면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오히려 후퇴한 것이지만, 남북관계의 현실을 반영하 는 것으로서 남북 정상이 서명한 문서라는 점에서 6. 15 선언은 남북관계의 현실에서 사실상의 규범력을 발휘하였고 이 점에서 남북간에 현실의 규범력을 가진 최초의 문 서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남북 합의의 일정한 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이와 같은 현실의 규범력을 가진 문건이 남한의 진보정부에 의하여 작성 되었다는 점은 남한 내부 보수 세력의 동의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남기 게 된다. 단적인 예가 6. 15 선언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아무도 동행하지 않았고 이후 보수세력들은 6. 15 선언 제2항이 북의 연방제 통일방안에 동조한 것이라거나 김 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퍼주기 라며 공세를 펴더니 급기야 이명박 정부에서는 6. 15 선언과 10. 4 선언의 이행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그러자 북한이 이명박 정부 에 대하여 위 선언의 이행의지가 있는지 문제 삼으며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빌미를 제 공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렇게 되고 보니 과거 7. 4 남북공동성명에서는 남과 북 공히 실행의지가 없었고, 남북기본합의서는 북의 실행의지가 희박하였던 데 비하여 6. 15 선언의 경우 남한 내 부의 국민적 공감대 또는 지지 확보라는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남북 4대 합의문에 대한 검토 53 문제는 당시 6. 15 선언을 추진하였던 김대중 정부에 이러한 문제의식이 부족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이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2000. 4. 13. 총선을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발표를 하는 등 정략적 차원에서 추진한다는 비난을 초래하는 등 떨어지는 지지도를 역전하고 만회하는 카드로 남북정상회담을 활용하는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 권이 바뀔 수 있다는 점과 정권이 바뀌어도 대북정책이 지속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 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다. Ⅴ. 10. 4 선언 1. 배경 참여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여 기존 남북간 합의와 회담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대북지원도 지속하였다. 그러나 그 전반기에는 민간 교류와 이산가족 상봉이 꾸준히 진행되고 개성공단 사업은 진행되었으나, 당국간 회담이 장기간 중단되는 등 남북관계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참여정부가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을 수용한 점,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미 강경책과 2003년 제2차 북핵위기 이후 핵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북미관계가 악화된 점, 이와 같이 북핵문제가 문제됨에 따라 핵문제 해 결 단계에 맞추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정책을 추진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던 중 2005. 9. 19 공동성명으로 핵문제 해결의 단초가 마련되었으나, 미국이 BDA 북한 계좌를 동결하고 9. 19 공동성명이 이행되지 아니하자 북한은 2006. 7. 미사 일 실험에 이어 10. 핵실험을 강행하였으며 이에 대한 UN의 제재결의에 따라 참여정 부 역시 식량과 비료지원을 중단하고 민간교류협력사업을 통제하였다. 그러다가 미국 이 2006. 11. 중간선거를 계기로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을 완화하고 2007. 2. 13 합의를 통해 초기단계 조치를 취해 나가자 남북관계도 화해협력의 분위기를 복원할 수 있었 다. 북한은 보수정권이 남한의 차기 정부를 맡을 가능성이 커지게 되자 차기정부가 화 해협력을 지속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두려고 하였다. 28) 28) 김형기, 앞의 책, pp. 388-390.

54 통일과 법률 2. 개요와 경과 10. 4. 남북관계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한 남북정상 공동선언( 10. 4 선언 )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1 6. 15 선언의 적극 구현 - 6월 15일을 기념하는 방안 강구 2 상호 존중과 신뢰의 관계로 전환 - 내정문제 불간섭 - 각기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통일지향적으로 정비 - 남북 의회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촉을 적극 추진 3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보장을 위한 협력 - 전쟁반대, 불가침 의무 준수 - 서해 공동어로수역 지정 및 군사적 신뢰구축조치 협의를 위해 국방장관회담 개최 4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및 관련국 정상들이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 추진 - 9. 19 공동성명, 2. 13 합의 이행 공동노력 5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경협사업 확대, 발전 -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해주경제특구 건설, 한 강하구 공동이용 등 추진 -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착수, 문산-봉동간 철도 화물수송 시작, 통행 통신 통관 등 제도적 보장조치 조속히 완비 -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협의,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 단지 조성 -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운영 6 사회문화 분야 교류협력의 발전 - 서울-백두산 직항로 개설 및 백두산 관광 실시, 베이징올림픽에 경의선 열차를 이용하여 남북 응원단 참가

남북 4대 합의문에 대한 검토 55 7 인도주의 협력사업 적극 추진 - 이산가족 상봉 확대, 영상편지 교환사업 추진, 금강산 면회소에 쌍방 대표 상주 및 상시 상봉 진행 - 자연재해 등 재난발생시 적극 협력 8 국제무대에서의 협력 강화 그런데 10. 4 선언의 기본틀은 남북기본합의서에 근거한 것으로 남북기본합의서의 조항들을 가져오거나 현실에 맞게 수정 또는 구체화한 것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이를 비교하면 아래 표와 같다. 남북기본합의서 10. 4 선언 비고 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 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제2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 부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 제3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을 하지 아니한다. 제4조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 괴 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 지 아니한다. 제5조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 를 남북사이의 공고한 평화상 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 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상 태가 이룩될 때까지 현 군사정 전협정을 준수한다. 제2항 1문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 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제2항 2문 남과 북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관계 문제들을 화해와 협력, 통일에 부합되게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제3항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 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 며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하 여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간 회담을 금년 11월중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56 통일과 법률 남북기본합의서 10. 4 선언 비고 제4항 1문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 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 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 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 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제6조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 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제7조 남과 북은 서로의 긴밀 한 연락과 협의를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판 문점에 남북연락사무소를 설치 운영한다. 제8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 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두 리 안에서 남북정치분과 위원 회를 구성하여 남북화해에 관 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 제9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 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략하지 아니한다. 제10조 남과 북은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제8항 1문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 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제2항 3문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 제 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제2항 4문 남과 북은 남북관계 확대와 발전을 위한 문제들을 민족의 염원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양측 의회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 촉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제8항 2문 남과 북은 이 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남북 총리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제 1차회의 를 금년 11월중 서울에서 갖기로 하였다. 제8항 3문 남과 북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들 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들을 협의하기 로 하였다. 제3항 3문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 하며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 였다. 제3항 2문 남과 북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 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 의회 접촉, 총리 회담, 정상회담 명시

남북 4대 합의문에 대한 검토 57 남북기본합의서 10. 4 선언 비고 제11조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 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 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 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 제12조 남과 북은 불가침의 이 행과 보장을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남 북군사 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한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는 대 규모 부대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 및 통제문제, 비무장지대 의 평화적 이용문제, 군인사 교류 및 정보교환 문제, 대량 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실현문제, 검증문제 등 군사적 신뢰조성 과 군축을 실현하기 위한 문제 를 협의 추진한다. 제14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 두리 안에서 남북군사분과 위 원회를 구성하여 불가침에 관 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 및 군 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 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 제13조 남과 북은 우발적인 무 력충돌과 그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당국자 사이 에 직통전화를 설치 운영한다. 제15조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전체의 복리향상을 도모하 기 위하여 자원의 공동개발, 민족내부교류로서의 물자교류, 합작투자 등 경제교류와 협력 을 실시한다. 제3항 4문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하 여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간 회담을 금년 11월중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제4항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 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 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 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 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 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 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 제5항 1문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 동의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사업을 공리공 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 고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측 국방부 장 관과 북측 인민 무력부 부장간 회담 명시 종전선언 언급 핵문제해결을 위한 노력 명시

58 통일과 법률 남북기본합의서 10. 4 선언 비고 제5항 2문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위한 투자를 장려 하고 기반시설 확충과 자원개발을 적극 추진하며 민족내부협력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기로 하였다. 제16조 남과 북은 과학 기술, 교육, 문학, 예술, 보건, 체육, 환경과 신문, 라디오, 텔레비젼 및 출판물을 비롯한 출판 보도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 을 실시한다. 제17조 남과 북은 민족구성원 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실현한다. 제18조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자유로운 서신거래와 왕래와 상봉 및 방문을 실시하 고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실현하며, 기타 인도적으로 해 결할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 한다. 제6항 남과 북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빛내기 위해 역사, 언어, 교육, 과 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 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 였다. 남과 북은 백두산관광을 실시하며 이를 위해 백두산-서울 직항로를 개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2008년 북경 올림픽경 기대회에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처 음으로 이용하여 참가하기로 하였다. 제7항 남과 북은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적극 추 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과 친척들의 상봉 을 확대하며 영상 편지 교환사업을 추진 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금강산면회소가 완공되는데 따 라 쌍방 대표를 상주시키고 흩어진 가족 과 친척의 상봉을 상시적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자연재해를 비롯하여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 상조의 원칙에 따라 적극 협력해 나가기 로 하였다. 2문에서 구체적 사업 명시 이산가족 문제 현 실에 맞게 수정 자연재해 발생시 원조 근거 마련 제19조 남과 북은 끊어진 철도 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로, 항 로를 개설한다. 제5항 3문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 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 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 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 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구체적으로 규정

남북 4대 합의문에 대한 검토 59 남북기본합의서 10. 4 선언 비고 제20조 남과 북은 우편과 전기 통신교류에 필요한 시설을 설 치 연결하며, 우편 전기 통신 교류의 비밀을 보장한다. 제5항 4문 남과 북은 개성공업지구 1단계 건설을 빠 른 시일안에 완공하고 2단계 개발에 착수 하며 문산-봉동간 철도화물수송을 시작하 고, 통행 통신 통관 문제를 비롯한 제 반 제도적 보장조치들을 조속히 완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제5항 5문 남과 북은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해 개보 수 문제를 협의 추진해 가기로 하였다. 제5항 6문 남과 북은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며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등 여 러 분야에서의 협력사업을 진행해 나가기 로 하였다. 제21조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 서 경제와 문화 등 여러 분야 에서 서로 협력하며 대외에 공 동으로 진출한다. 제22조 남과 북은 경제와 문화 등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기 위한 합의의 이 행을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 후 3개 월 안에 남북경제교류 협력공 동위원회를 비롯한 부문별 공 동위원회들을 구성 운영한다. 제23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안에 본회담 테 두리 안에서 남북교류 협력분 과위원회를 구성하여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 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 한다. 제8항 1문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 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제5항 7문 남과 북은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현재의 '남북경제협력추진위 원회'를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 회'로 격상하기로 하였다. 부총리급 남북 경제협력공동위 원회 로 격상

60 통일과 법률 한편, 2007. 11. 14.부터 16.까지 사이에 열린 남북총리회담에서는 10. 4 선언 이행을 위하여 세부사항에 관한 합의서( 2007 남북총리 합의서 )를 채택하였으며 정부는 이 합의서에 대하여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제21조에 따라 국회 동의를 받기로 방침을 정하였으나, 29) 대통령 선거 이후 동력을 상실하면서 국회 동의는 무산되었다. 10. 4 선언 이후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2008. 2.까지 불과 4개월의 기간 동안 남 북 간에는 회담과 접촉이 30회 개최되었고, 20건의 합의서가 채택되었다. 2007 남북총리 합의서 2007 남북총리 합의서는 이행을 담보하기 위하여 이행기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추진위원회(제2조제10항),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제3조5), 이하 남북경협공동위 ), 남북사회문화협력추진위원회(제4조제1항)라는 남북 협의기구 를 설치하기로 하고 각 위원회 산하에 분과위원회를 두기로 하여 남북경협공동위 산 하에 남북조선 및 해운협력분과위원회, 남북도로협력분과위원회, 남북철도협력분과위 원회, 개성공단협력분과위원회, 남북농수산분과위원회, 남북보건의료 환경보호협력 분 과위원회를 두기로 하였다. 2007 남북총리 합의서와 같은 일자에 체결된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구성 운영 에 관한 합의서 부칙은 1. 본 합의서의 효력발생과 동시에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와 남북농업협력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는 효력을 상실한다. 2.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남북경추위 ) 산하에 구성되었던 분야별 실무협 의회와 실무접촉의 사업은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산하의 분과위원회 또는 실무접촉 에서 담당하여 계속 진행한다. 3.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와 그 산하의 실무협의회 및 실무접촉, 남북농업협력위원회 합의서는 계속 효력을 가진다 고 규정함으로써 남북경 협의 추진체계 중심이 남북경추위에서 남북경협공동위로 변경된 것을 기초로 그간 만 들어진 남북경협 협의 및 이행기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과거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체계를 비교하여 볼 필요가 있다. 남북기본 29) 연합뉴스 2007. 11. 23.자 2007 남북정상선언은 정치선언에 가깝고 재정부담이 따르지 않아 국회 동의 가 필요 없다는 법무부 등의 의견에 따라 국회 비준동의를 받지 않았지만 이번 총리 회담 합의서는 어느 정도 프로젝트 재원 추계가 가능해 국회 동의를 받게 됐다고 함.

남북 4대 합의문에 대한 검토 61 합의서 및 그 이행을 위한 3개 부속합의서는 이행을 위한 여러 기구를 다음과 같이 규 정하였다: 1남북연락사무소 2남북정치분과위원회 3남북군사공동위원회 4남북군사 분과위원회 5남북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 6남북경제교류협력분과위원회 7남북화해 공동위원회 8남북화해공동위원회 산하 법률실무협의회 9남북화해공동위원회 산하 비방중지실무협의회 10남북사회문화교류협력공동위원회 기본적으로 2007 남북총리 합의서의 이행체계는 남북기본합의서의 틀을 따르고 있 다고 할 수 있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상세한 이행체계를 합의해 놓고도 6. 15 선언 이 후 그와 전혀 무관하게 남북경추위를 중심으로 남북경협이 진행되어 온 것은 남북관 계의 현실과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기본 적인 한계가 있었는데 2007 남북총리 합의서가 정한 남북경협공동위는 부총리급을 위 원장으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구성 운영에 관한 합의 서 제1조제2항) 보다 효과적인 남북경협추진이 가능한 틀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3. 의의와 한계 가. 의의 10. 4 선언은 3통문제 등 남북경협을 가로막아온 장애요인을 제거하고 남북경협의 협상창구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하는데 합의하는 등 남북관계발전을 위한 제도화의 계 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6. 15 선언 이후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가 뚜렷하였다. 남 북교류협력이 개성과 금강산에 한정되고 개성의 경우 3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정 치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진행이 지연되는 등의 문제가 있어 6. 15 공동선언 이후 7년이 경과한 2007년 개성공단에 불과 40여 개 기업이 가동 중일 정도로 더디게 진행 되었다. 30) 이러한 상황에서 10. 4 선언은 남북교류협력의 전면화, 제도화를 위한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개성공단의 발전에 장애가 되어 온 3통문제의 해결과 2단계 개발, 서해평 30) 2007. 10. 초 현재 45개 기업이 가동 중이고 북측 근로자 19,433명이 근무하였다(통일부 개성공단사업 지원단, 개성공단 총생산 2억불, 남북근로자 2만명 상회 등, 통일부 홈페이지 통일소식 오늘의 개성 공단 참조). 2012. 11. 현재 123개 기업이 가동 중이고 북한 근로자 5만 명이 넘는 인원이 일하고 있다.

62 통일과 법률 화협력지대 설치, 조선협력사업, 개성-신의주 철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및 공동 이용, 백두산 관광 및 지하자원개발과 남북경협의 추진체계에 대한 정리(총리회담, 부 총리회담 및 국방장관회담 등)는 남북경협의 폭을 과거에 상상할 수 없었던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나. 한계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 3000과 상생공영정책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제시하였는바, 6. 15 선언과 10. 4 선언에 대하여 남북기본합의서를 앞세우면서 합의정신을 존중한다고 만 할 뿐 그 자체에 대한 이행의지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실제 이행은 협의해 봐 야 한다거나 전체 합의사항 이행에 40억 - 60억 불이 들 것이라는 등을 부각시키며 북 핵문제의 진전 등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웠는데 이는 결국 6. 15 선언과 10. 4 선언을 이 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31) 북한은 이에 대하여 강하게 반발하였고 이러한 대결국면은 2008년 금강산관광객 피살사건을 계기로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그 후 천안함, 연평도 포격사건 등으로 이어진 흐름은 남북관계가 과거 냉전시대로 회귀할 수 있다는 가능성마저 보여준 것이었다. 결국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조를 묶어두기 위한 의도로 40여 개 항목에 합의한 10. 4 선언은 그 의도와 달리 이명박 정부에 의하여 외면되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 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국내 정치적 요인이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요소임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정권교체에 따른 대북정책의 진폭이 너무 크다는 점인데, 이명박 정부 가 6. 15, 10. 4 선언을 무시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질문하여야 한 다. 대북정책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의 6. 15, 10. 4 선언에 대한 입장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지만, 다른 한편 그와 같은 입장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6. 15, 10. 4 선언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였던 사정을 엿보게 한다.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국민적 합의의 문제는 어려운 문제인바, 단적으로 김대중 정부 와 참여정부가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실행하지 못한 것은 남북 관계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이 지난한 과제임을 보여 준다. 그간 국민들 사이에 북 31) 김형기, 앞의 책, pp. 345-346.

남북 4대 합의문에 대한 검토 63 한에 퍼주기만 했다, 북한에 질질 끌려 다녔다, 북한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고 남남 갈등만 가져왔다, 민족공조만 강조하고 한미동맹은 약화시켰다 는 등의 불만과 우려 가 있어왔고, 그 근저에는 북한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자칫 북의 의 도에 휘말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경계심이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동서독과 달리 남북은 전쟁의 참화를 겪은 결과 공포와 트라우마가 국민정서를 아직도 지배하 고 있고 북한이 거듭하여 불신을 받을 만한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인바, 이와 같이 국민들의 의식 가운데 북한에 대한 불신의 깊이와 넓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해 하고 균형의 점을 어디에서 찾아 국민적 합의의 기반 위에서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인 지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10. 4 선언에 대하여 국회의 동의를 얻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다. 국회의 동의를 얻는 것은 헌법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인데, 이는 절차적으로 보면 국민적 합의의 기반을 확보하여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10. 4 선언이 차기 정부 에 의하여 이행되기를 바랐다면 차기 정부가 부인할 수 없는 국민적 합의의 기반을 마 련하는 작업에 대하여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준비되었어야 하는 것이다. 안타 깝게도 남북기본합의서를 준비할 때나 6. 15 선언을 준비할 때, 그리고 10. 4 선언을 준비할 때 국민적 지지의 토대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하여 깊이 있는 검토와 준 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향후 북한과 합의를 할 때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 내용이 국민적 지지의 토대를 확보할 수 있는가, 그리고 절차적으로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논문접수 : 2013. 10. 28. / 심사개시: 2013. 10. 29. / 게재확정 : 2013. 11. 12.)

64 통일과 법률 참 고 문 헌 김대중 자서전 1, 삼인, 2010 김대중 자서전 2, 삼인, 2010 김철수, 독일통일의 정치와 헌법, 박영사, 2004 김형기, 남북관계변천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2010 노태우 회고록(하) 전환기의 대전략, 2011, 조선뉴스프레스 배종렬, 라진-선봉지역 외자유치정책에 대한 평가 및 전망 배종렬, 북한의 외자도입 현황과 과제 -라선경제특구 사례분석-, 수은북한경제 2005년 겨울호 신정화, 일본의 대북정책 1945 ~ 1992년, (2004) 이상훈 금창섭, 남북 합의 문서의 법적 쟁점과 정책과제, 2007 이상훈 금창섭, 남북기본합의서 및 남북경협합의서의 법적 성격에 대한 고찰, 2003. 12. 법제처 2003 남북법제개선연구보고서 이장희,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방안, 외법논집 제20집(2005. 11.) 이장희, 남북 합의 문서의 법적 쟁점과 정책과제, 2007 이종석, 북한-중국관계 1945-2000, 중심(2000) 이효원, 남북교류협력의 규범체계, 경인문화사, 2006 임동원, 피스메이커, 중앙books 존 오버도퍼, The Two Koreas, 길산, 2002 한명섭, 남북합의서의 법적 성격과 법제화방안, 통일과 법률 2011 봄호(통권 제5호)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중국이야기, 민음사, 2011

남북 4대 합의문에 대한 검토 65 <Abstract> Legal issues of 4 major South-North Agreements Yoo Wook The institutionalization of inter-korean relations is one of the effective waysto bring stability to the relations between the two Koreas, and South-North agreements are the essential element to it. In fact, for the past 30 years, agreements have been made in the forms of the July 4th South-North Joint Statement (1972), the Inter-Korean Basic Agreement (1991), the June 15th South-NorthJoint Declaration (2000) and the October 4th Declaration (2007). Yet, in spite of these agreements, the South-North relations are still unstable. The problem lies in the fact that the two Koreas did not make good on these agreements. Specifically, the July 4th South-North Joint Statement bearsproblems in that the two Koreas did not have an intention to perform the agreements in the first place and that they were made by government officials at a closed-door summit without going through procedures to collect public opinions and build public consensus. In the Inter-Korean Basic Agreement made in 1992, the two Koreas reached an agreement on general matters about inter-korean relations. However, this agreement did not earn the National Assembly s approval and ratification in South Korea and it was simply regarded by the Supreme Court and Constitutional Court as a gentlemen s agreement, which shows that South Korea had neither awareness about the necessity of ratification nor a willingness to ratify the agreement. North Korea also lacked a willingness to fulfill the agreement. Fundamentally, the Inter-Korean Basic Agreement was out of touch with the reality of Inter-Korea relations, while it also did not earn national consensus within South Korea. On the other hand, even though the June 15th South-North Joint Declaration is meaningful in that it served to resolve hostile inter-korean relations and open a door to new level of inter-korean relations, this declaration is nothing more than six provisions of

66 통일과 법률 declaratory regulations. Of course, this declaration, which precisely reflected the reality of contemporaneous inter-korean relations, was the first-ever document that had realistic regulatory power over the two Koreas because it was signed by the heads of two Koreas. Yet, given that the declaration had been signed by South Korea s then-progressive administration, there emerged a new issue of getting public consensus or support. Lastly, the October 4th Declaration also carries a big significancein that it presented a comprehensive blueprint for general matters about inter-korean economic cooperation, including, among other things, the issues of passage, communications and customs procedures, etc., providingan opportunity for institutionalization of inter-korean relations. However, unlike what had been intended, this declaration was left neglected by the successor administrations. This shows that internal political factors are what define inter-korean relations and that the policy toward North Korea needs to be pursued based on national consensus. The way to lay constitutionalfoundation with respect to the national consensus on the October 4th Declaration could have been to obtain approval and ratification from the National Assembly. In sum, we need to prepare ourselves to deal with the following two questions that can possibly arise in the future: i) can we secure national support for the details of agreements with North Korea in the future? and ii) how can we build national consensus as a matter of procedure? Key Words Institutionalization of South-North Relations, National Assembly s Approval and Ratification, Constitutional Foundation with respect to National Consensus

연구논문(3)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과 과제 임 성 택 (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 요 약 문 북한은 1991년 나진 선봉지역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한 이래 신의주와 개성, 금강 산에 이르기까지 경제특구전략을 계속 추진해 왔다. 최근에는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하여 경 제특구를 전면적으로 확대할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경제특구 중 남북간 협력으로 만들어진 것은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이다.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는 남 북협력과 평화의 상징이고, 남북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생의 협력사업이며, 남북통합 의 출발점이었다. 경제특구 관련된 남북합의서로는 통신, 통관, 검역, 출입체류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되었 다. 6 15 선언 이후에 체결된 각종 경협합의서(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상사분쟁절차, 청 산결제)도 특구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하고 있다. 10 4 선언과 후속합의서는 남북 사이에 경제특구를 통한 협력사업이 그 폭과 깊이를 한층 더해 갈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하였다. 경제특구는 북한의 일반 지역과는 달리 노동제도, 회사제도를 비롯한 각종 법제에서 자 본주의의 요소를 도입한 장점을 가지고 있고, 세제 등에서도 특별한 혜택이 따른다. 다만 금강산관광 중단, 개성공업지구의 가동 중단 사태에서 보여주듯이 투자자 보호, 신변안전, 분쟁해결절차 등 많은 부분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나아가 경제특구의 개발과 운영에 관한 체계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보완은 결국 남북간 합의서에 의하여 뒷받침되 어야 한다. 합의서를 잘 보완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합의서, 예컨대 UNDP의 두 만강 개발계획과 라진선봉 등 특구에 관한 북한, 중국간 협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라진 선봉 등 특구에서는 북한이 중국과 공동의 지도체계, 관리체계, 개발체계를 세워나가는 점 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중국과 싱가폴이 함께 만든 현대적 국제공업지구인 소주공 업원구의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68 통일과 법률 결국 경제특구의 개발 및 운영에서 남한 당국이나 기업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시 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나아가 투자자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을 수 있도록 섬세한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결할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 다. 신변안전 문제도 후속합의서 등을 통해서 세심하게 보완되어야 한다. 이렇게 합의서를 통한 문제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경제특구에 안정적인 투자를 가져오고, 나아가 해당 특구가 남북협력의 진정한 공간으로 발전하며 국제적 특구로 발전할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이다. 주제어 북한, 경제특구, 개성공단, 금강산, 남북합의서, 투자자 보호, 신변안전, 분쟁해결절차 目 次 Ⅰ. 서 론 Ⅱ.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 1. 개성 및 금강산 관련 남북합의서 2. 4대 경협 합의서 3. 기타 실무 합의서 4. 10. 4 선언과 후속합의서 Ⅲ. 북한과 다른 나라간의 경제특구 관련 합의서 1. 다자간 합의 - UNDP의 두만강 개발 2. 양자간 합의 - 조중간 라선, 황금평 합의서 Ⅳ. 중국의 소주공업원구 사례 1. 개괄 2. 싱가폴, 중국 정부간 합의의 과정 3. 소주공업원구 합작개발 건설에 관한 합의서 (이하 합의서 )의 내용 4. 개발의 체계 Ⅴ.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과제 1. 개괄 2. 특구개발, 운영의 체계 3. 투자보장 4. 분쟁해결 5. 신변안전 Ⅰ. 서 론 북한의 경제특구정책은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고, 남한이 소련 및 중국과 수교하는 등 냉전체제가 종식되는 과정에서 그 대응의 일환으로 등장하였다.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과 과제 69 북한은 1991년 나진 선봉지역을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하고, 1992년에 자유경제무 역지대법을 만든 이래 신의주와 개성, 금강산에 이르기까지 경제특구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하였다. 북한에서 경제특구는 경제무역활동의 질서가 북한의 일반 지역과는 달리 설정된 지역 을 말한다. 급기야 북한의 1998년 개정헌법에도 특수경제지대가 규정되기 도 했다. 최근 북한은 경제개발구법 1) 을 제정하여 경제특구전략을 보다 전면적으로 확 대할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기존 경제특구 이외에도 중앙과 지방에 공업개발구, 농업개발구, 관광개발구, 수출가공구, 첨단기술개발구 같은 다양한 경제특 구를 만들고자 계획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특구 중 남북간 협력으로 만들어진 것은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 구이다. 1998년에는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었고, 2000년 6 15 공동선언 이후 개성공단이 만들어졌다.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의 특징은 남북 당국간 합의에 의하여 창 설된 것이 아니라 현대그룹이라는 민간사업자가 북한과 합의하여 시작하였다는 점이 다. 즉 민간의 합의로 시작되고, 뒤이어 북한의 근거 법률인 개성공업지구법과 금강산 관광지구법이 만들어졌으며, 남북 당국간 합의서는 통행, 통관, 출입 체류 등을 뒷받 침하기 위하여 체결되었다. 2007년 10 4 선언에서는 해주 지역과 주변 해역을 포함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를 설치하고, 안변과 남포에는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는 것이 합의되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남북 사이에 경제특구를 통한 협력사업이 그 폭과 깊이를 한층 더해 갈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된 뒤 금강산 관광객이 피살되는 사건 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었으며,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는 개성공업지구 운 영이 한 동안 중단되는 심각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는 남북협력의 상징 이고, 남북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생의 협력사업이며, 남북통합의 출발점이다. 경 제특구는 북한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노동제도, 회사제도를 비롯한 각종 투자법제에서 자본주의의 요소를 도입한 장점을 가지고 있고, 세제 등에서 특별한 혜택이 따른다. 다 만 금강산관광 중단, 개성공업지구의 가동 중단 사태에서 보여주듯이 투자자 보호, 신 변안전, 분쟁해결절차 등 많은 부분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이러한 보완은 남북간 합의 서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 1) 2013년 5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3192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제개발구법

70 통일과 법률 최근 개성공단 사태 이후에 남과 북은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개성공 단과 관련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각종 현안 문제를 협의를 통해 해결하기로 하였다. 특히 공동위원회 산하에 출입 체류 분과위원회, 투자보호 및 관리운영 분과위원회, 통행 통신 통관 분과위원회, 국제경쟁력 분과위원회 를 두어 해당 분야의 제도개 선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는 결국 남북간 합의서로 귀결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경제특구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현황을 살펴보고, 어떠한 과제가 있는지 연구해보기로 한다. 이를 위하여 북한과 다른 나라 사이에 이루어진 경제특구 관련 합 의, 중국과 싱가폴이 공동으로 만든 소주공업원구의 사례도 살펴보기로 한다. Ⅱ.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 1. 개성 및 금강산 관련 남북합의서 가. 개괄 개성공업지구는 2000년 6 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공동 협력사업의 하나로 추진되었 다. 구체적으로는 2000년 8월 남측의 현대아산과 북측의 아태, 민경련 사이에 개성공 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 가 체결되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 에서 당국간에도 장관급회담이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개성공단건설실무협의회 등 을 통하여 개성공단 건설을 위한 도로, 철도 연결 등 합의가 이루어졌다. 2002년 11월 북한은 개성공업지구를 경제특구로 지정하였으며, 개성공업지구법도 제정하였다. 나아 가 남북 당국 사이에는 개성공업지구의 통신, 통관, 검역, 출입체류 분야에서 의미있는 합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3통(통행, 통신, 통관)에 관한 합의서들이다. (1) 개성공업지구 통신에 관한 합의서(2002. 12. 8, 이하 통신합의서 ) (2) 개성공업지구 통관에 관한 합의서(2002. 12. 8, 이하 통관합의서 ) (3) 개성공업지구 검역에 관한 합의서(2002. 12. 8, 이하 검역합의서 ) (4)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의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2004. 1. 29, 이하 출입체류합의서 )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과 과제 71 금강산관광은 1998년 현대그룹과 북한간의 합의에 따라 그 해 11월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은 2002년에 금강산을 관광지구로 지정하였으며, 금강산관광지구법 2) 을 채택하였 다. 금강산관광지구도 개성과 같은 통신, 통관, 검역의 문제가 발생하며, 관리체계 등도 개성과 유사하지만, 개성공업지구와 같은 합의서를 체결하지 않았다. 가장 늦게 체결된 출입체류합의서만 개성뿐 아니라 금강산관광지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개성과 금강산은 남한의 민간사업자가 북한과 합의하여 시작되었음을 특징 으로 한다. 또한 북한의 법률에서 그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 다만 남북 당국의 합의서 는 통행, 통신, 통관, 검역과 같은 부분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체결되었다. 나. 통신합의서 통신합의서에서는 개성공업지구에서의 통신에 관한 기본원칙과 주요내용들을 담고 있다. 합의서에서 정한 남북간 통신의 기본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측지역과 공업지구 사이의 우편 및 전기통신교류는 국가간의 교류가 아닌 민족내부간의 교류라는 것이다(민족내부교류의 원칙). 둘째, 쌍방은 공업지구 내부 및 공업지구와 남측지역 사이의 자유로운 우편과 전기통신을 보장한다(통신의 자유 보장). 셋째, 남측지역과 공업지구 사이의 우편 및 전기통신은 제3국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교환 및 연결한다(직접교환 및 연결의 원칙). 넷째, 쌍방은 공업지구 내부 및 공업지구 와 남측 지역 사이의 우편 및 전기통신 내용에 대하여 비밀을 보장한다(비밀보장의 원 칙). 다섯째, 쌍방은 공업지구 내부 및 공업지구와 남측 지역 사이의 우편 및 전기통신 과 그 시설을 정치군사적 목적에 이용하지 않는다(정치군사적 목적 이용금지의 원칙). 우편물 교환에 관하여 1 쌍방은 우편물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전달하도록 하고, 2 쌍방은 공업지구의 우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관리기구 설치와 우편물 교환에 대한 질서를 협의하여 정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같은 날 체결된 통관합의서에서는 우편물의 통관절차는 공업지구 세관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하였다(제6조 제1항). 다만 통관 이후 의 우편물 관리를 세관이 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2) 북한은 2011년 5월 31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1673호)으로 금강산관광특구법을 채택했다. 이 로써 2002년 남측이 금강산 관광사업을 하는 근거였던 금강산관광지구법의 효력을 상실시켰다.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이 생기고, 그 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었다. 그러자 북한은 현 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에 대한 독점권 취소 통보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금강산 관광사업을 재개하 고자 하는 의지를 비춰왔다.

72 통일과 법률 전기통신망의 설치 및 운용에 대해서는 1 쌍방은 공업지구의 전기통신교류가 원활 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정된 사업자가 필요한 시설을 설치 운영하도록 하고, 2 통 신사업자는 남북이 합의한 장소를 통하여 전기통신망을 직접 연결하며, 3 쌍방은 전 기통신망 장애에 대처하기 위한 비상통신보장체계를 세우며 통신망을 신속히 복구하 는데 협조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쌍방은 우편 및 전기통신과 관련한 상대측의 법률제 도를 존중하고, 나아가 국제협약 및 국제관례를 존중하며, 관련하여 발생하는 문제는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또는 그가 위임하는 기구에서 협의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 위 합의를 이행하기 위하여 2004년 6월 남북의 통신사업자인 남측의 주식회사 케이 티(KT)와 북측의 조선체신회사는 개성공업지구 통신공급에 관한 합의서 를 맺었다. 이 합의서에서는 1 통신망 연결경로를 개성공업지구 개성전화국 문산으로 정하고, 2 통신요금은 1분당 0.5 미국달러의 범위 안에서 정하며, 3 우선 전화 팩스 서비스만 제공하고 초고속 인터넷은 시범단지 전화가 개통되는 대로 협의하기로 했다. 또 4 주 식회사 케이티와 조선체신회사는 시범단지 통신을 공급하기 위한 통신설비와 자재들 을 공동으로 투자하여 건설한다는 것 등을 정하였다. 이 합의에 따라 현재 유선통신 653회선이 공급되고 있다. 다. 통관합의서 통관합의서는 물자 반출입과 우편물, 차량 및 왕래인원의 휴대품에 대한 통관절차를 구체적인 내용으로 한다. 육로를 통하여 물자와 사람이 왕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통관질서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우선 남과 북은 도로 및 철도의 출입통로를 협의하여 지정한다. 그리고 북측은 공업지구세관을 설치하고 운영한다. 차량의 통관과 관련하여 차량등록 및 출입확인제도 를 마련하였다. 남북은 왕래하 는 차량(철도차량 제외)에 대하여 쌍방의 세관당국이 지정하는 세관에 사전 등록하게 하고 등록된 차량에 대하여는 통행차량증명서를 발급한다. 통행차량은 열차 차량운행 사무소에서 통행차량증명서를 제시하고 출입확인을 받아야 한다. 쌍방은 통행차량에 대하여 모든 세금을 면제하고, 통행차량에 대한 세관수속은 따로 하지 않는다. 반출입물자와 우편물에 대한 통관절차는 공업지구세관에서 담당한다. 다만 공업지구 에 출입하는 인원의 휴대품 및 통행차량에 대한 세관검사는 열차 차량운행사무소에 서 실시한다. 공업지구세관은 기업의 요청에 따라 반출입물자에 대한 검사를 물자의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과 과제 73 도착지 또는 출발지에서 실시한다. 공업지구에 반출입하는 물자에 대한 통관절차는 특 별한 이유가 없는 한 간편하고 신속하게 처리하여야 한다. 공업지구세관은 반출입 물 자에 대하여 모든 세금과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반출입 절차를 보면, 1 남측 열차 차량운행사무소에서는 반입물자에 대하여 사전 에 제출받은 세관 신고서류에 공업지구 반입물자임을 확인하여 운송인에게 교부하고, 2 공업지구세관에서는 반출물자에 대하여 사전에 제출받은 세관 신고서류에 공업지 구 반출물자임을 확인하여 운송인에게 교부하며, 3 세관 신고서류에는 반출입물자의 송하인 수하인 품명 수량 가격 운송기간 출발지 도착지 및 운송인 등을 기재 한다. 4 반출입 물자의 운송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컨테이너로 운 송하며, 컨테이너는 출발하기 전에 공업지구 반출입 물자임을 확인한 세관에서 봉인한 다. 5 쌍방 세관은 컨테이너에 봉인을 한 경우 봉인번호를 세관에서 확인한 신고서류 에 기재하여야 한다. 6 쌍방 세관은 열차 차량운행사무소에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세관신고서류와 세관봉인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운송물자의 세관통과를 허용한 다. 7 쌍방 세관은 세관봉인에 이상이 있거나 컨테이너 개장 등 사고가 발생하였을 경우 즉시 상호 통보한다. 나아가 쌍방의 세관당국은 상호 교류협력하고, 정보제공을 하기로 하였다. 라. 검역합의서 검역합의서는 공업지구에 반출입되는 물자, 인원 및 운송수단에 대한 검역절차를 대 상으로 한다. 우선 쌍방은 검역대상과 기준, 방법을 합의로 정하도록 하였다. 북측의 검역은 공업지구 검역소가 전담한다. 검역의 대원칙은 검역절차를 간소화하여 물자를 신속히 통과시키는 것이다. 관리기 관은 검역에 협조할 수 있다. 검역대상이 아닌 인원, 운송수단, 물자를 특별히 검역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남측 열차 차량운행사무소와 협의한다. 검역을 실시한 대상에 대 해 검역요금을 받으며 그 기준은 관리기관과 협의하여 정한다. 반입물자에 대해서는 검역신청에 따라 검역을 하고 합격한 경우에는 검역증을 발급 하고, 불합격한 경우에는 소독, 반송, 사용중지 같은 처분결정을 할 수 있다. 반출물자 에 대한 검역절차도 정하고 있으나, 남측에서 검역을 요구하지 않는 반출물자는 검역 하지 않고 반출할 수 있도록 하였다.

74 통일과 법률 마. 출입체류합의서 2003년 12월 11일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개성공업지구법의 하위규정인 개성공업지구 출입 체류 거주규정 (이하 출입체류규정 )을 제정하였다. 출입체류규 정 제정 이후인 2004년 1월 29일 남북 사이에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의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 (이하 출입체류합의서 )가 채택됨에 따라 일부 내용은 합의서 의 규정에 따라 시행되고 있다. 이 규정과 합의서에 따라 출입과 체류의 절차가 이루 어지고 있다. 출입체류합의서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기본원칙 남과 북은 인원과 통행차량 등의 신속하고 안전한 출입과 체류를 보장하기 위하여 적극 협력한다. 특히 북측은 인원의 신변안전과 출입 및 체류 목적 수행에 필요한 편 의를 제공한다. 인원은 지구에 적용되는 법질서를 존중하고 준수한다. (2) 출입통로 남과 북은 철도, 도로, 해상로의 출입통로를 합의하여 정한다. (3) 출입 및 체류절차 인원은 남측 당국 및 관리기관이 발급한 증명서를 소지하고 출입할 수 있다. 다른 나라 국적의 인원은 여권과 함께 관리기관이 발급한 증명서를 소지하여야 한다. 북측 은 출입장소에서 필요한 출입심사, 세관검사와 검역을 한다. 출입체류합의서에 의하면 북측은 인원과 통행차량의 출입상 편의를 보장하며, 남과 북은 지구의 안전과 간편하 고 신속 정확한 심사와 검역을 위하여 적극 협력하여야 한다(합의서 제6조). 인원은 공업지구 도착 후 48시간 내에 체류등록을 하여야 한다. 다만 7일까지 체류 하거나 장기체류 또는 거주하는 경우 등은 체류등록을 할 필요가 없다. 90일을 초과하 여 체류하거나 1년 이상 거주하는 경우 장기체류 또는 거주등록을 하여야 한다. (4) 제한대상 공업지구에는 1 국제테러범, 2 마약중독자, 정신병자, 3 전염병환자, 전염병 감 염이 의심되는 자, 4 위조하였거나 심히 훼손되어 확인할 수 없게 된 증명서를 가진 자, 유효기간이 지난 증명서를 가진 자, 7 남과 북이 체류를 금지하기로 합의한 자는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과 과제 75 출입 및 체류를 금지할 수 있다. 다만 증명서를 소지한 인원에 대하여 북측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출입을 보장한다(합의서 제8조, 제4조 제1항). (5) 출입체류자의 신변안전보장 및 사건처리절차 공업지구에 체류 거주하는 자는 신체, 주거, 개인재산의 불가침권을 보장받는다. 인 원이 지구에 적용되는 법질서를 위반하였을 경우 북측은 이를 중지시킨 후 조사하고 대상자의 위반내용을 남측에 통보하며 위반 정도에 따라 경고 또는 범칙금을 부과하 거나 남측 지역으로 추방한다(합의서 제10조). 다만 남과 북이 합의하는 엄중한 위반행 위에 대하여는 쌍방이 별도로 합의하여 처리한다. 북측은 인원이 조사를 받는 동안 그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한다. 남측은 법질서를 위반하고 남측 지역으로 추방된 인원에 대하여 북측의 의견을 고려하여 조사, 처리하 고 그 결과에 대하여 북측에 통보하며, 법질서위반행위의 재발방지에 필요한 대책을 세운다. 남과 북은 인원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인적 및 물질적 피해의 보상문제 에 대하여 적극 협력하여 해결한다. 외국인이 법질서를 위반하였을 경우에는 북측과 해당 국가 사이에 맺은 조약이 있을 경우 그에 따른다. (6) 공동위원회 출입체류합의서에서는 출입, 체류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전반적인 문제들을 협의, 해 결하기 위하여 남과 북이 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한다(합의서 제12조). 2. 4대 경협 합의서 가. 개 괄 2000년 6. 15 선언 이후에 채택된 남북경협 4대 합의서는 남북경협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서지만, 개성공업지구 및 금강산관광지구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규범이다. 이른바 4 대 경협합의서는 남북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경제교류 및 상호협력을 구체적으로 실천 하기 위해 2000년 12월 16일 남북한 장관급회담에서 서명한 아래의 것을 말한다. (1) 남북 사이의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2000. 12. 16, 이하 투자보장합의서 ) (2) 남북 사이의 소득에 대한 이중과세방지합의서(2000. 12. 16, 이하 이중과세방지 합의서 )

76 통일과 법률 (3) 남북 사이의 상사분쟁해결절차에 관한 합의서(2000. 12. 16, 이하 상사분쟁해결 절차 합의서 ) (4) 남북 사이의 청산결제에 관한 합의서(2000. 12. 16, 이하 청산결제 합의서 ) 4대 경협합의서는 2003년 6월 30일 남북간 합의문건으로는 최초로 남한 국회에서 그 체결동의안이 통과되었으며, 그 합의서에 내용에 따라 남북한 당국이 같은 해 8월 20 일 남북간 발효통지문을 교환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하게 되었다. 3) 4대 경협합의서의 체 결은 남북한 경제교류와 상호협력을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남북관계가 안정적이고 규범적인 틀 내에서 발전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실질적인 후속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한 한계도 있다. 나. 투자보장 합의서 이 합의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투자보장합의서다. 이 합의서에 따르면 남과 북은 각자의 법령에 따라 상대방 투자자에 의한 투자를 허가하고, 상대방 투자자의 투자자 산을 보호한다. 투자자 및 투자자산에 대하여는 최혜국대우를 부여하도록 함과 아울러 투자 및 기업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인원들의 출입, 체류, 이동 등과 관련한 문제를 호 의적으로 처리한다. 특히 남과 북은 상대방 투자자가 행한 투자에 대한 수용의 경우에 는 적법절차에 따르도록 하되,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한다. 특히 무력충돌 등 비정상적 인 사태로 상대방 투자자의 재산이 손실을 입게 되는 경우에 회상회복 또는 보상에 있 어서 자기측 투자자나 다른 나라 투자자보다 불리하지 않게 대우하여야 한다. 또한 이 합의서에서는 송금을 구체적으로 보장하며, 어느 기관이 투자와 관련하여 보상을 한 경우 대위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남과 북의 일방과 그 상대방 투자자간에 발생하는 분쟁은 협의에 의하여 해결하도록 하되, 협의에 의하여 해결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남북상사중재위원회에서 이를 해결하도록 하였다. 다. 이중과세방지 합의서 이 합의서에서는 소득에 관한 이중과세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규정을 두고 있다. 이 3) 한편 북한도 2002년 7월 2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4개 경협합의서를 채택하는 결정을 함으로 써 남북한간 합의서의 내용에 따라 합의서의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쳤다고 남한에 통보하였다. 그러 나 이를 대외적으로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다.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과 과제 77 를 위해 거주자 판정에 관한 규정, 고정사업장 판정에 관한 규정, 각종 소득 및 이윤 등에 관한 이중과세 방지를 위한 구체적 규정을 두고 있다. 일방의 기업이 상대방의 고정사업장을 통하여 얻은 기업이윤 중 그 고정사업장에 귀속시킬 수 있는 이윤에 대하여는 상대방이 과세할 수 있도록 하며, 일방의 기업이 자동차 열차 배 비행기 같은 수송수단을 통하여 얻은 이윤에 대해서는 일방이 과 세하되, 상대방에서 얻은 이윤은 세액의 50퍼센트를 감면하여 그 상대방이 과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일방에서 발생하여 상대방의 거주자에게 지급되는 배당 이자 및 사용료에 대하여 는 그 상대방에서 과세할 수 있되, 소득이 발생하는 일방에서도 그 소득총액의 10퍼센 트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과세할 수 있도록 하며, 일방의 거주자와 기업은 동일한 여건 하에 있는 상대방의 거주자와 기업보다 불리한 세금을 부담하지 아니하 도록 하였다. 라. 상사분쟁해결절차 합의서 남북간 경제교류에서 중요한 부분이 분쟁해결절차다. 이에 따라 이 합의서가 체결되 었다. 이 합의서에서는 우선 경제교류 협력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사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각각 위원장 1인 및 위원 4인으로 남북상사중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남 북상사중재위원회는 당사자가 동 위원회에 제기하여 해결할 것을 서면으로 합의한 상 사분쟁사건과 투자보장합의서 제7조 제1항 에 규정된 상사분쟁사건을 관할토록 하였 다. 상대방 정부와의 분쟁도 관할에 포함시킨 것이 특징이다. 중재판정부는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선정되는 중재인 3인으로 구성하되, 당사자가 합의하지 못한 때에는 남북상사중재위원회에서 작성한 중재인명부에서 각각 1명의 중 재인을 선정하며, 그 2명의 중재인이 의장중재인 1명을 선정하도록 하며 중재인이 합 의하지 못하는 경우 쌍방 중재위위원장이 합의에 의해 의장중재인을 선정(순차추첨방 식도 활용가능)한다. 중재위위원장이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 가 중재위의 의 뢰에 따라 의장중재인을 선정하고, 남과 북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중재판정을 구속 력이 있는 것으로 승인하고 해당지역의 확정판결과 동일하게 집행하도록 한다.

78 통일과 법률 이 합의서의 후속으로 남북상사중재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가 2003. 10. 12. 체결되었으나, 상사중재위원회는 명부를 서로 교환한 이래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마. 청산결제 합의서 이 합의서는 경제거래를 할 때 청산결제를 통하여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즉 남과 북이 합의하여 정하는 거래상품의 대금과 이에 동반하는 용역거래의 대금에 대하여 적용하도록 하며, 남과 북은 각각 청산결제은행을 선정한 후 상대방 은행의 이 름으로 청산계정을 개설하도록 하되, 결제통화는 원칙적으로 미달러화로 함을 원칙으 로 하나 남북합의하에 다른 화폐로 할 수 있다. 청산결제 이외의 대금결제는 국제관례 에 따른 일반결제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한다. 3. 기타 실무 합의서 그 밖에도 아래의 실무합의서가 개성공업지구 및 금강산관광지구에 적용된다. (1) 남북 사이에 거래되는 물품의 원산지확인절차에 관한 합의서(2003. 7. 31, 이하 원산지 확인절차 합의서 ) (2) 남북 사이 차량의 도로운행에 관한 기본합의서(2002. 12. 6, 이하 도로운행 합의서 ) (3) 남북 사이의 열차운행에 관한 기본합의서(2004. 4. 13, 이하 철도운행 합의서 ) (4) 동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임시도로통행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잠정합의서(2003. 1. 27) 원산지 확인절차 합의서는 남북교역규모 확대에 따라 원산지 위장반입을 방지하고 교역질서를 확립하여 교역을 더욱 활성화시킬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주요 합의내용을 살펴보면, 원산지증명서 발급기관은 남측은 세관 및 상공회의소, 북측은 조선민족경제 협력연합회(민경련)으로 하고(제2조), 원산지증명서에는 송하인, 수하인, 생산자, 생산장 소 등을 기재하되 유효기간은 1년으로 하며(제3조), 물품의 전부가 남 또는 북에서 생 산 가공 제조되거나, 물품의 본질적 특성을 부여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실질적인 생 산 가공 또는 제조과정이 최종적으로 남 또는 북에서 수행된 경우에 남 또는 북을 원 산지로 인정하기로 하였다(제4조).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과 과제 79 도로운행 합의서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북도로운영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영, 동 위원회는 남과 북 각각 대표 1명을 포함 5명 으로 구성 상대측 지역에서 차량운행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측 차량운행사무소 책임자에게 차량운 행허가신청서를 제출 차량운행사무소 책임자는 이를 심의, 승인결과를 운행날짜 이전에 상대측 차량운행사 무소에 통보 운전사는 상대측 교통규정과 신호체계를 준수, 차량에는 도로운영공동위원회가 합의하여 정한 표지를 부착 남과 북의 차량운행사무소 책임자는 차량의 출발 및 도착 사실을 즉시 상대측 차량운 행사무소에 통지 열차운행 합의서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열차운행을 위한 기술적 실무적 문제는 남북철도운영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하여 정하며, 공동위원회는 각각 실무협의회 대표 1명을 포함하여 5~11명으로 구성 운행구간의 열차운행시간을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하며, 열차를 운행하는 기관차 승무원 차장은 상대측 지역 운행시 상대측의 열차운행 관련 규정과 지시를 준수 매월 20일까지 다음 달의 수송요구서와 내용을 반영한 월수송계획을 상대측 분계역장 에게 통지하고 합의하며, 매일 다음날의 열차편성 및 운행계획을 상대측 분계역장에게 통지하고 합의 수송운임과 각종 요금을 각기 자기측이 제정하는 운임체계에 따라 미달러 또는 유로화로 계산하여 징수, 관련 비용을 사후에 정산 4. 10. 4 선언과 후속합의서 2007년에 이루어진 10 4 선언 4) 및 그 이후 체결된 후속합의서에서도 개성공업지구 등에 관련된 합의가 있다. 나아가 서해경제협력지대와 조선단지 등 경제특구를 확대하 는 것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4)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졌 다. 정상회담에서는 6 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고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민족공동의 번 영과 통일을 실현하는데 따른 제반 문제들을 협의했으며, 10월 4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8개 항을 발표하게 된다.

80 통일과 법률 우선 10 4 선언에서는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 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개성공업지구와 관련해서 남과 북은 개성공업지구 1단계 건설을 빠른 시일 안에 완 공하고 2단계 개발에 착수하며 문산-봉동간 철도화물수송을 시작하고, 통행 통신 통 관 문제를 비롯한 제반 제도적 보장조치들을 조속히 완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아울러 남과 북은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며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사업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10. 4 선언의 후속조치를 위하여 이루어진 총리회담 합의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 이행에 관한 제1차 남북총리회담 합의서 )에서도 개성공업지구에 관 련된 구체적 합의가 있다. 이 합의에 따르면 그 동안 과제로 등장하였던 남과 북은 통 행절차를 개선하고, 2008년부터 인터넷, 유 무선전화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한 1만 회 선 능력의 통신센터를 금년 내에 착공하며, 통관사업의 신속성과 과학성을 보장하기 위한 물자하차장 건설 등을 추진하는 문제를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다. Ⅲ. 북한과 다른 나라간의 경제특구 관련 합의서 1. 다자간 합의 - UNDP의 두만강 개발계획 가. 경과 북한의 특구 관련 합의로는 우선 다자간 합의로 UNDP의 두만강 개발계획을 들 수 있다. 두만강개발계획(TRADP; Tumen River Area Development Programme)은 두만강 하 류를 중심으로 동북아지역의 교통, 에너지, 관광, 환경 분야의 개발과 투자유치를 도모 하기 위한 사업으로, 1992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지원을 받아 시작되었다. 1995년 12월 두만강 접경국인 북한, 중국, 러시아와 비접경국인 남한, 몽골이 두만강권 지역 개발 에 관한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공식 추진되었으며, 다자간 경제협의체로 각국 차 관급 대표로 구성된 5개국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사업지역 범위는 북한 청진, 중국 옌지, 러시아 나홋카를 연결하는 삼각지역으로, 국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과 과제 81 가별 거점을 정하여 자체개발을 하고, 외자유치를 통한 국제합작으로 지역발전을 이룬 다는 계획에 따라 교통 물류 인프라 구축, 경제특구 조성, 투자환경 개선에 중점을 두 었다. 이를 통해 북한의 나진 선봉, 중국의 훈춘, 러시아의 나홋카 특구가 조성되었으 나 북한, 중국, 러시아 위주로 추진되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2005년 광역 두만강개발계획(GTI ; Greater Tumen Initiative)으로 전환되었다. 광역두만강개발계획은 사업대상지역을 한국의 동해안 지역(강원, 경북, 울산, 부산), 북한 나진 선봉 경제무역지대, 중국 동북 3성(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과 내몽고 자치구, 러시아 연해주와 하바롭스크, 몽골 동부로 조정 확대하였다. 2009년 중국이 이 사업을 동북 3성 개발계획과 연동하여 중앙정부사업으로 격상시키고, 중국과 러시아가 두만강 접경지역의 운송 인프라 확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활기를 띠었으나, 2009 년 11월 북한이 탈퇴함으로써 핵심사업인 교통과 물류 분야 협력에 차질이 생겼다. 5) 나. 다자간 합의의 주요내용 1995년 12월 남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사이에 체결된 두만강 경제개발지역 및 동 북아시아 개발을 위한 협의 위원회 설립 협정 (Agreement on the Establishment of the Consultative Commission for the Development of the Tumen River Economic Development Area and Northeast Asia)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이 조약은 동북아시아, 특히 두만강 경제개발지역과 관련한 체약국간 협력이 동북아시아 특히 두만강 경제개발지역 국민과 국가의 상호이익을 증대하고, 경제 및 기술 협력을 강화하며, 성장과 지속 가능한 개발을 달성하고자 하는 각 정부의 공동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임을 확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체약당사자는 동북아시아, 특 히 두만강 경제개발지역이 국제투자, 무역 및 사업상 유망한 지역이 되도록 노력한다. 나아가 두만강 경제개발지역 및 동북아시아 개발을 위한 위원회 를 설립하기로 하 였다. 이 위원회는 각 체약당사자의 차관급 정부인사와 기타 3명의 관리로 구성된다. 이 위원회는 동북아시아, 특히 두만강 경제개발지역의 개발을 위한 지원을 촉진하고, 5) 2013년 6월에는 강원도 강릉에서 회원국과 일본, 캐나다, 미국 등의 500여 기업이 참가하는 GTI 국제무역 투자박람회가 개최되었다. 2013년 현재 북한을 제외한 4개 회원국과 1개 옵서버국(일본)이 참여하고 있 다. 조직은 4개국 차관협의체인 당사국위원회와 6개 분과위로 구성되어 있고 2개의 상설포럼이 운영된 다. 사무국은 중국 베이징에 있다. 해마다 1회씩 국가별로 순회하며 총회와 상설포럼을 개최한다.

82 통일과 법률 동북아시아 특히 두만강 경제개발지역내 국민과 국가간 협의, 상호이해와 이익 및 경 제 환경 기술협력을 증진한다. 위원회는 설립 후 최초 2년간 정기적으로 연 2회 회 합하며, 그 이후에는 위원회의 총의에 의한 결정에 따르나 적어도 연 1회 이상 회합하 여야 한다. 위원회는 체약당사자의 전문가로 구성되는 사무국을 설치하며, 하부기관을 둘 수 있다. 이 협정은 발효일자로부터 10년간 유효하며, 당사자가 협정 종료 6월전에 달리 합의 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10년 단위로 갱신된다. 한편 체약당사자는 여타 체약당사자에 6월전에 탈퇴의사를 서면으로 통고함으로써 이 협정으로부터 탈퇴할 수 있다. 통고후 6월이 경과하면 탈퇴 효력이 발생한다. 2. 양자간 합의 - 조중간 라선, 황금평 관련 합의 가. 경과 북한과 중국은 나진 선봉 및 황금평 경제특구와 관련하여 양자간 합의를 체결하였 다. 즉 2010년 11월 1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사이 의 라선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 위화도경제지대 공동개발 및 공동관리에 관한 협정 (이 하 조중라선협정 )이 먼저 체결되었고, 이를 기초로 조중 라선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 경제지대 공동개발총계획요강 (이하 계획요강 )이 마련되었다. 나. 양자간 합의의 주요내용 (1) 조중라선협정의 주요내용 조중라선협정은 라선경제무역구와 황금평, 위화도경제구(이하 두 경제구 )를 공동개 발하고 공동관리하기 위하여 체결되었다. 협정은 합작개발을 위한 계획요강을 통하여 내용을 구체화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 특히 계획요강은 양 당사자의 비준을 받은 후 협정의 별첨 서류로서 협정과 동등한 법적 효력을 갖는 것으로 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다. 우선 양국은 정부 간 공동업무체제를 구축하여 공동으로 두 경제구 에 대한 개발과 관리 업무를 지도하고 조율한다. 나아가 양국은 두 경제구 에 각각 해당 지역을 관리 하는 공동관리기관을 설치한다.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과 과제 83 북한은 중국과 2005년 3월 22일에 체결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 국 정부간의 투자촉진과 보호협정 및 관련 법규를 근거로 두 경제구 내에서 중국 투자자의 투자활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신체적 안전과 재산적 안전 및 기타 적법한 권 리를 보장하여야 한다. 한편 중국 투자자는 북한의 법률, 법규를 존중하여야 하며 북한 의 국가안전, 주민의 건강, 건강한 사회윤리 생활과 환경 보호에 반하는 투자활동을 하 여서는 아니된다. 본 협정 체결 후 북한의 법률, 법규의 제정 또는 개정 또는 국제의무의 이행으로 제 3의 투자자가 본 협정보다 더 유리한 혜택을 적용받는 경우 두 경제구 개발에 참여 한 중국 투자자도 동등한 혜택을 누릴수 있어야 한다. 북한은 두 경제구 에 적용되는 법률을 특별히 제정하고 또한 두 경제구 에 적용되는 법률, 법규 및 그 집행 절차가 안정적이고 투명할 것을 보장한다. 한편 본 협정 체결일로부터 5년 내에 중국측은 두 경제구 의 개발과 관리를 위하여 필요한 북한측 전문가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 또한 북한측은 본 협정 체결 전에 북한측이 두 경제구 의 개발문제와 관련하여 다른 국가, 회사 간에 체결한 협정, 협의서, 계약으로 발생하는 모든 분쟁을 책임지고 해결한다. 이 협정은 서명일로부터 효력을 발생하며 유효기간은 50년이며, 만료 1년 전에 서면 통지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연장된다. (2) 계획요강의 주요내용 계획요강에서는 조중 두 나라 중앙정부, 지방정부 및 각 기업들이 실용, 실무, 효 율 의 원칙에 따라 전면적으로 참여할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며 정부간 협조지도체계, 공동관리체계, 개발경영체계의 3단계로 개발협조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우선 정부간 협조지도체계로는 조중공동지도위원회를 구성한다. 이 위원회는 경제지 대 공동개발, 공동관리를 위해 설립하며, 조중라선협정 집행과정에 생기는 중대한 정 책과 원칙적인 문제들에 대해 협상과 조정을 진행한다. 또한 두 나라의 해당 성, 도 (시) 사이에 공동사업위원회를 구성하여 개발관리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업을 책임지고 지도한다. 공동관리체계로는 경제지대 공동개발관리위원회가 있다. 이 위원회는 쌍방의 지방정 부들로 구성되며, 북측이 경제지대 개발협조를 위해 전문적으로 제정한 법률(지대법)과 공동지도위원회의 해당 결정에 근거해 계획요강 및 상세한 계획의 실시를 책임진다.

84 통일과 법률 아울러 두 경제지대의 투자, 개발, 건설, 운영과 관계되는 투자유치, 대상심사 비준, 기 업설립, 환경보호 등 관리권을 행사하며 토지의 1급 개발, 상업개발, 기초시설개발 운 영방안을 심사결정하며 쌍방 정부가 합의한 기타 행정관리 직책을 행사한다. 개발경영체계로는 경제지대 투자개발공사가 있다. 공사는 각 지대 내에서 토지와 해 안선의 1급 개발, 상업개발을 책임지도록 하며 동시에 상응한 투자권, 경영권, 수익권 을 향유하도록 한다. 계획요강에 따르면 세무정책으로는 일정한 기한의 세금반환정책(지대내 기초시설 건설에 쓸 수 있음) 기업 설비와 물자(기업의 개발건설과 생산에 필요한 설비, 물자) 수입관세 면제 기업과 개인소득세 최대특혜세율 실시, 일정 기한내 감면 기초시설 건설 관련 세금 및 비용 감면 외국투자가와 개인의 합법적 수입 자유송금, 세금 면 제 중국 오가는 인원, 물자, 차량의 통행비와 해당세금 및 비용 감면 등 세금 우대정 책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토지정책을 보면, 두 경제지대 내의 토지는 특혜적인 사용정책을 실시하며 전략적 이고도 집약적으로 사용한다 는 원칙 아래 1차 계약한 기업용지 및 해안선의 개발사 용은 최대연한이 협정 에 규정한 연한과 일치하며 확정된 사용기한 내에는 법에 따라 양도, 임대, 재임대, 청부, 저당, 상속을 할 수 있다 고 명시하고 있다. 금융정책으로 두 경제지대 내에서는 기업이 인민폐와 조선원, 또는 두 경제지대법 에서 규정하는 화폐로 결제하는 것을 허용 하며 외국투자가가 두 경제지대 내에서 단 독은행, 합영은행, 기타 금융기구를 설립하고 두 경제지대법에 따라 공동개발관리위원 회의 비준범위 내에서 경영활동에 종사하는 것을 허용 한다고 밝혔다. 출입국, 체류 등 인원정책으로 중국측 인원들의 경제지대 출입에 편리를 제공하고, 북측과 제3국 인원들의 출입의 편리를 제공하는 것을 기본으로 장기거주해야 할 중국 측과 기타 제3국 인원들에게 장기거주의 편리를 제공하고, 노동시장을 마련하며 전체 종업원을 대상으로 한 노동계약제를 실시하여 기업과 노동자간의 자주적인 상호선택 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통관정책으로 두 경제지대 내에 설립한 세관, 검사, 검역기구는 법에 따라 두 경제 지대에 출입하는 화물과 인원에 대하여 관리를 실시 하며 중국 무역화물선이 라진항에 입 항해 중국의 무역화물을 싣고 부리는 것을 허용하며, 북한 연해항로 통과를 허용한다.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과 과제 85 투자보호정책으로 외국투자가의 자산 등 합법적 권익은 두 경제지대법의 보호를 받 으며 법에 따라 양도, 상속할 수 있고, 국유화하거나 징수하지 않는다고 명시했으며, 법에 규정된 것을 제외하고는 외국투자기업에 대해 별도로 비용항목이나 비용기준을 정할 수 없도록 명기했다. 기업경영정책으로 기업은 자금, 현물자산, 무형자산으로 출자하여 단독, 합영기업을 창설할 수 있다 는 기본 권리부터 기업경영 과정에서 노동력 채용과 해고, 제품의 국 내외 판매비율, 가격의 확정, 병합재조직, 파산, 청산 등 행위는 기업이 시장원칙에 따 라 자주적으로 결정한다 고 못 박았다. Ⅳ. 중국의 소주공업원구 사례 6) 1. 개괄 중국은 경제특구, 특별경제구 등을 조성하여 중앙의 법제와는 상대적으로 차별적인 법제를 실험 운영하고 이를 전국에 확대하면서 개혁 개방을 전개하였다. 특히 소주공 업원구( 蘇 州 工 業 園 区, 이하 소주공업원구 또는 공업원구 )는 중국과 싱가폴이 합작하 여 건설한 공업지구로서, 중국에서 유일하게 국제간 정부합작에 의하여 조성된 개발구 로 지칭된다. 바로 이러한 측면이 소주공업원구가 중국내 수많은 경제특구와 구별되는 지점이다. 1992년초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와 1994년 소주공업원구 합작개발건설에 대한 합의서 체결 이후 소주공업원구가 보여준 발전상은 대내외적으로 주목 받을 만큼 매우 놀랍 고 훌륭하며 특별한 것이다. 중국은 소주공업원구를 중국 개혁 개방의 중요한 창구 이며 국제적 합작의 성공적인 사례이자, 세계에서 발전속도가 제일 빠르고, 최고의 경 쟁력을 갖춘 개발구 중의 하나 라고 자랑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소주공업원구는 중 국과 싱가폴 양국 정부의 폭넓은 지지와 지원에 의하여 조성, 운영되고 있고, 특수한 정책을 시도하였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소주공업원구의 관계당국자에 의하면 소주공업 원구는 유일한 특수정책을 많이 시도해 특별하지 않는 것도 특별하게 처리하고( 不 特 6) 이하, 법무법인 지평, 소주공업원구 법제에 관한 연구, 통일부 2006년도 정책연구개발사업보고서

86 통일과 법률 有 特 ), 특별한 것은 더욱 특별하게 처리( 特 中 有 特 ) 하고 있다고 한다. 소주공업원구가 중국과 싱가폴 정부에 의하여 국제적 합작개발, 운영을 하고 있다는 점은 남북이 공동으로 개발, 운영하고 있는 개성공업지구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생 각된다. 소주공업원구의 개발은 (i) 자본주의사회체제 인 싱가폴 정부와 사회주의시장 경제체제 인 중국 정부의 합작사업이라는 점, (ii) 싱가폴 기업 과 중국의 국영기업 위주의 합작사업이라는 점 및 (iii) 도시계획, 공공관리, 인재양성 등에서의 싱가폴의 개 발 경험을 소주공업원구로 이전한다는 점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이 자본주의적 제도를 도입하여 개방한 경제특구인 개성공업지구 를 남한과 북한이 함께 조성하고 관리함에 있어서 소주공업원구의 발전사례는 훌륭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2. 싱가폴, 중국 정부간 합의의 과정 가. 덩샤오핑의 싱가폴 방문과 남순강화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시작되던 해에 덩샤오핑은 싱가폴을 방문하였다. 1992년 초 덩샤오핑은 무창, 심천, 주해, 상해 등 중국 남부를 순시하면서 유명한 남순 강화를 남겼다. 이 남순강화의 내용 중에는 소주공업원구 개발의 시발점이 된 싱가폴 의 사회질서는 좋다. 그들은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의 경험을 차용하 여 그들보다 훨씬 더 잘 관리해야 한다 는 언급이 있었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중국의 비공식적인 사절단 수백명이 싱가폴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녹음기, 비디 오 카메라 및 노트북 등을 들고 싱가폴을 찾아와 관심 있는 분야를 연구하고, 싱가폴 의 경험을 배워 중국에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는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에 북경의 싱가폴 대사관을 통 해 어떻게 싱가폴이 강력한 도덕적 기준과 사회적 규율을 유지하고 있는지, 특히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서구 과학기술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모순을 경험하지는 않았는지, 사회적 안정은 어떻게 유지하였는지에 관해 설명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후 선전국 부장관 우웨이청이 이끄는 사절단이 10일간의 일정으로 싱가폴을 방문하기도 했다.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과 과제 87 나. 소주공업원구 개발에 관한 논의와 정부간 합의 소주공업원구의 개발에 관한 구체적인 시도는 1992년 후반기에 시작된다. 1992년 9 월 리콴유 수상과 옹텅청 부수상이 소주를 방문했을 때 소주 시장인 장신성은 리콴유 일행에게 싱가폴이 소주에 투자할 경우 특별한 혜택을 주겠다는 제의를 하였다. 그러 나 리콴유는 시장이 바뀌면 정책의 일관성이 보장될 수 없다는 이유로 중앙정부의 힘 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듬해인 1993년 4월에는 고촉통 수상이 중국을 방문해 리펑 총리와 장쩌민을 만나 소주 프로젝트에 관해 논의하고, 같은해 5월에는 리콴유가 주룽 지 부총리와 싱가폴의 경험과 지식을 이전하는 정부간 기술지원계약에 관해 논의하였 다. 중국 중앙정부는 1993년 10월 싱가폴 제도를 연구하기 위하여 국무원과 강소성 관 리로 구성된 2명의 대표단을 싱가폴에 파견하였다. 이 대표단의 연구 결과 싱가폴의 제도들이 중국에 적합하다는 점을 확인하고서, 마침내 중국 정부는 싱가폴의 개발 경 험 이전을 통한 소주공업원구 개발에 관해 합의를 하게 된다. 1994년 2월 26일 중국의 리란칭 부총리와 싱가폴의 리콴유는 리펑 총리와 고촉통 수 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주공업원구 합작개발 건설에 관한 합의서 ( 关 于 合 作 开 发 建 设 苏 州 工 业 园 区 的 协 议 : Agreement on the Joint Co operation and Development of the Suzhou Industrial Park) 및 싱가폴 경제 및 공공관리 경험 도입 및 운용에 관한 합의서 ( 关 于 借 鉴 运 用 新 加 坡 经 济 和 公 共 管 理 经 验 的 协 议 : Agreement on Adaptation & Implementation of Singapore s Economic and Public Administration Experience)에 서명하였다. 3. 소주공업원구 합작개발 건설에 관한 합의서 (이하 합의서 )의 내용 합의서는 소주공업원구 개발건설 사업을 강소성 소주시와 싱가폴 개발재단이 합자 형태로 진행하는 것으로 하고, 1기 개발의 범위를 소주시 금계호 지역의 8km2로 정하였 다. 소주공업원구의 기본적인 목표는 하이테크, 현대 공업 및 사회공익 사업이 조화롭 게 정비된 일정 규모의 현대화 공업원구를 건설하는 것이다(합의서 제1조). 소주공업원 구 개발건설과 관련하여 중국과 싱가폴 양국 정부는 소주시 인민정부가 싱가폴 기관 으로부터 싱가폴의 경제발전, 도시계획, 건설과 관리 및 기타 공공행정관리에서 얻은 성공적인 경험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하였다(합의서 제2조). 중국은 싱가폴로부터 무조건적으로 모든 경험과 제도를 이전받는 것으로 하지는 않

88 통일과 법률 았다. 중국은 싱가폴의 경제와 공공행정관리 측면의 지식과 경험을 중국의 국정과 실 제 수요에 맞게 선별하여 점진적으로 도입하여 사용하기로 하였고, 합작 과정에서 싱 가폴 정부기관 및 관료는 중국의 주권을 존중하도록 하였다. 아울러 합의서는 소주공 업원구의 개발, 건설과 관리활동이 중국의 헌법과 관련 법률규정에 부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합의서 제3조). 소주공업원구 개발 프로젝트를 위하여 중국, 싱가폴 양국 정부는 연합조정이사회를 설치하고 양국 정부가 각각 부총리 1명을 파견하여 담당하기로 하였다. 연합조정이사 회에는 양국 정부의 관련 부서, 중국측 강소성 인민정부와 소주시 인민정부 및 싱가폴 측 주롱개발공사가 참가하여 소주공업원구에 싱가폴의 경제, 공공행정관리의 경험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대한 문제의 조정을 책임진다. 이사회 아래에 소주시와 주롱개발공사측 업무위원회를 각각 설립하여 위원회 쌍방이 정기적인 연락을 취하면 서 싱가폴의 경제와 공공행정관리경험 도입 업무에 관한 협상을 진행하고 각각 이사 회 양국의 부총리에게 업무를 보고하도록 하였다(합의서 제4조). 4. 개발의 체계 가. 개발을 위한 기구의 구성 소주공업원구 개발기구 구성의 가장 큰 특징은 행정적인 관리주체와 개발사업을 진 행하는 주체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소주공업원구에 대한 행정적인 관리는 정 부기관인 소주공업원구 관리위원회(Suzhou Industrial Park Administration Committee : 이 하 관리위원회 )가 담당하고, 공업원구 개발사업의 진행은 민간기업인 소주공업원구 개발공사(China Singapore SIP Development Co., Ltd. : 이하 개발공사 )가 담당한다. 관리위원회와 개발공사는 협의서에 따라서 설치된 상급기관인 연합조정이사회(Joint Steering Council), 쌍무위원회(Joint Working Committee) 및 싱가폴 경험 이전과 관련한 중국, 싱가폴의 업무연락 사무소와 더불어 소주공업원구를 운영해 나가는 기구들이다. 이들 기구들의 상호 관계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북한 경제특구 관련 남북합의서의 현황과 과제 89 [소주공업원구 조직 기구 구성표] 나. 관리위원회의 성립, 구성 및 역할 관리위원회는 소주공업원구에 대한 행정적 관리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으로서 1995 년 2월 21일에 설립되었다. 소주공업원구가 소주시에 소속되어 있어 관리위원회도 독 립적인 지방정부를 구성하지는 못하고, 소주시 정부를 대신하여 소주공업원구에 대한 행정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관리위원회는 독자적인 입법권 역시 확보하지 못하고 소주시 정부 또는 성정부의 입법권에 의존하여 규정 등 을 제정하고 있다. 다만, 비자업무 및 프로젝트 비준권한 등 일부 경제 관련 관리권한 을 중앙정부 또는 성정부로부터 직접 위임받아 실행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소주시 정부 또는 성정부보다 더 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소주공업원구 개발은 싱가폴의 도시개발 경험의 이전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하고 있 고, 이러한 경험의 이전은 구체적인 개발사업과 같은 하드웨어적 측면만이 아니라 법, 제도적인 차원의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중국과 싱가폴측의 이 해가 일치하였다. 관리위원회는 싱가폴 경험 이전을 통하여 전수받은 내용을 구체적인 법 및 제도로 정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소주공업원구 관리위원회의 구체적인 관리권한은 다음과 같다. (1) 공업원구 및 주변지역의 계획관리권, 건설행정관리권과 환경보호 행정관리권

90 통일과 법률 (2) 국가, 강소성과 소주시의 관련 법률, 법규와 규장을 근거로 싱가폴 경험을 도입 하여 소주공업원구의 실정에 맞게 공업원구의 관련 행정법규와 관리제도를 작성 한 후 소주시의 비준을 받아 실행 (3) 공업원구 내에서 국가의 수권을 받아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비준 (4) 공업원구 및 주변지역의 토지 및 기타 자연자원에 대한 통일적인 계획과 관리 (5) 수입쿼터, 허가증과 관련되거나 국가에서 지정한 비준 품목 외에 공업원구 관리 기구와 공업원구 내 기업이 수입하여 자체 사용하는 건축 자재, 생산 설비, 원재 료, 부품, 교통도구, 사무용품 등의 비준 (6) 공개 채용 및 공평경쟁의 원칙에 따라 공업원구 인원에 대한 자체 채용 (7) 공업원구의 대외경제무역 출국팀, 초청한 싱가폴 관련인원, 비즈니스로 중국을 방문하는 경외인원의 출입국 비준권과 대외초청권 (8) 세관, 세무, 금융 등 기구의 공업원구 내 지사 설립 및 관련 업무 조율 (9) 공업원구 내의 사회공익사업 관리 (10) 사회질서와 사회안정 유지 관리위원회의 구성은 설립 이래로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왔 는데, 현재의 조직 구성은 다음과 같다. [관리위원회 조직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