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속우리말 판소리문학의음성상징어 류수열 한양대학교국어교육과교수 1. 새로운음성상징어의출현 부끄부끄, 쓰담쓰담. 스마트폰의문자메시지창에서예전에보이지않았던음성상징어 (?) 가빈번하게눈에들어온다. 각각 아주부끄러워하는모양, 손으로쓰다듬는모양 을흉내낸말이다. 아주쑥스러워하는모양 을뜻하는 쑥스쑥스, 욕심사납게마구먹는모양 을뜻하는 처먹처먹 이란말도있다. 우리말어법에맞지않은신조어이긴해도, 이모티콘 (emoticon) 을대용하는말로는아주제격이다. 이것도음성상징어인가하는질문에대해선뜻그렇다고대답하기는어렵다. 그러나장면이나동작을눈에보이듯이그려내는음성상징어의역할을고스란히수행하고있다는점만은부인하기어렵다. 새로운음성상징어의출현인셈이다. 기호를기표 ( 記標 ) 와기의 ( 記意 ) 의결합으로보는것은언어학의공리이다. 그리고그결합이자의적 ( 恣意的 ) 이라는점또한널리알려진상식이다. 그러나음성상징어로총칭되는의성어와의태어는여기에서예외로간주되곤한다. 의성어와의태어는물리적, 정신적사태를청각적시각적으로모사한언어기호이다. 쉽게말하면소리나모양을흉내낸말이다. 140 141
그러니의성어와의태어는기의와기표사이의유연성 ( 有緣性 ) 을보여주는사례인것이다. 우리의다양한문학갈래중에서의성어와의태어가가장빈번하게구사되는것은단연판소리가아닐까싶다. 판소리는기본적으로 들려주는 소리를통하여 보여주는 효과를낳는구연문학이기때문이다. 이에 < 춘향가 >( 김여란창본 ) 의한대목이다. 휘모리장단에얹혀서불리는이대목은수청을거절한춘향을하인들이동헌뜰로끌어내리는장면을묘사한것이다. 시간적으로는지극히짧은순간이지만, 그만큼정황은다급하고분위기는긴장된다. 이러한정서적효과는기본적으로정황자체가빚어내는것이겠지만, 그효과의창출을적극적으로보조하는것은바로 판소리사설에서의성어와의태어가어떠한효과를낳게되는지살펴보기로한다. 2. 음성상징어의형상화효과널리알려진대로판소리에서는개별장면을최대한다채롭게묘사하려는예술적지향을보여준다. 다양한색채어와감각어가허다하게등장하고있는사실에주목하면쉽게동의할수있다. 특히판소리사설이문자로정착되면서지속적으로개작된소설의문체와비교해보면이점은두드러진다. 의성어와의태어가무수히구사되고있는것도이런맥락에서이해될수있다. 골방에수청통인우루루루달려들어춘향의머리채를휘휘칭칭감아쥐고, 급창, 춘향잡아내리랍신다. 벌떼같은군로사령와르르르르달려들어춘향의머리채를전전시전연줄감듯휘휘칭칭감어쥐고훨씬너른동헌뜰에내동댕이쳐, 잡아내렸오. 형리들라. 형리는쌍창앞에엎드리어벌벌벌떨고서있을적에, 벌떼같은군로사령들은전후좌우로늘어섰것다. 급창이받아춘향주니, 춘향이붓대를받아들고벌벌벌떠는디, 죽기가무서워떠는것이아니라, 한양삼청동이몽룡씨못보고죽을일과, 칠십당년노모앞에죽을일을생각하여사지를벌렁벌렁떨더니한일자마음심자를드르르긋고붓대를내어던지는구나. 여덟개에이르는음성상징어라할수있다. 그런데위의장면에서음성상징어가이정도로많이동원되는것은우선그것이정황에서나오는긴박감에어울리기때문으로볼수있다. 그긴박감을조성하기위해빠른장단에속하는휘모리장단이활용된것도여기에썩잘어울린다. < 춘향가 > 의어사출또대목이나 < 적벽가 > 의전투장면도분위기의측면에서이와유사해보인다. 그러나음성상징어는장면의성격과무관하게대부분의사설에서두루나타나고있다. [ 진양조장단 ] 향단이는앞을세우고걸인사우는뒤를따러옥으로내려갈적, 밤적적깊었난듸인적은고고허고, 밤새소리는푸푸, 물소리는주루루루루루루, 도채비는휫휫, 바람은우루루루루루루루지둥치듯불고궂인비난퍼붓난듸, 귀신들은둘씩셋씩짝을지어이히이히이히이히이히, 춘향모친기가막혀, 아이고내신세야. 아곡을여곡헐듸여곡을아곡허면내울음을뉘가울며, 아장을여장헐듸여장을아장하면내장사는뉘가허여줄거나? 옥문거리를당도허여, 사정이! 사정이! 사정이도대답이없네. 옥형방! 옥형방을아무리불러봐도옥형방도대답이없네. 아이고, 이원수놈들. 또투전허로갔구나. 아가, 춘향아. 정신차려라. 에미왔다. 그때여춘향이는내일죽을일을생각을허여홀연히잠이드니, 비몽사몽간으남산벽호가옥담을뛰여넘을양으로주홍입쩍, 어헝어르르르! 깜짝놀래깨달으니무서운마음이솟끗허며, 지지개치면서, 몸에서땀이주루루루루루루루루루, 가삼이벌렁벌렁, 부르난소리가얼른얼른들리거 142 143
늘, 모친인줄을모르고귀신소리로송기허여, 아이고, 이몹쓸귀신들아! 나를잡어갈려거든조르지말고잡어가거라. 내가무슨죄있느냐? 조상현창본의 < 춘향가 > 이다. 변사또의생일을하루앞두고춘향모가이도령과더불어옥에갇힌춘향을만나러가는대목이다. 죽음을예감하는춘향과그러한딸의목숨을염려하는춘향모의심리로보더라도, 이대목은지극히비감한장면이아닐수없다. 그리고장면의비감한정조는진양조의리듬에의해더욱강화된다. 이장면을묘사한사설에도음성상징어가적지않게등장하고있는바, 여기에서의음성상징어는정황이빚어내고있는비감한정조를북돋우는데크게기여한다. 이점은음성상징어가일반적으로긴박하고심각한장면보다는한가하고여유있는장면에잘어울린다는의미론적특성과배치되는것이기도하다. 그러나적어도이장면에서는음성상징어가오히려긴박감과심각성을더욱강화해주는방향으로작용하고있다고볼수있겠다. 이렇게보면음성상징어는그자체로어떤특정한분위기를창출하기보다는, 객관적정황이빚어내는분위기를강화확대해주는보조적역할을수행하는것으로보인다. 그리고그역할이음성상징어의일반적인제약을벗어나작용한다는특성을갖는다. 이때그역할은시각적혹은청각적심상을형성하고제시하는것으로귀결된다. 이는음성상징어의형상적기능에해당된다고하겠다. 음성상징어는기본적으로소리나모양을그대로모사해낸말이기때문에구체적인형상을환기하는데는가장직접적인효과를가진다. 특히시에서도의성어와의태어는많이쓰면쓸수록운율효과만이아니라그것의표현성까지도그것에비례해서증가하게된다. 의성어와의태어구사를일종의금기로여기고있는한시에서도생동감있게재현하려할때는불가피하게음성상징어를쓰게되는경우가있다. 이는모두음성상징 어가지닌표현적기능을압축적으로보여준다. 이도령이춘향의방에서목격한그림들을묘사한대목에서도음성상 징어는예외없이동원된다. 그리하여그그림들이마치살아움직이는듯 한착각을줄정도로생생한현장감을부여한다. 지극히쓸쓸하고고독한 장면에서한인물의독백이주를이루는 < 춘향가 > 의 망부사 도예외가 아니다. 이도령이 와락뛰어달려들어나의허리부여안 는과거를회 상하면서도, 겨울철 뚜루루루루끼룩울고가는기러기소리 에도임을 생각하는현재상황에서도의성어나의태어는뚜렷한형상을제시하는 데결정적으로기여하고있는것이다. 판소리는광대가청 관중을직접대면한상태에서말로이야기를전 달하는연행예술이다. 이러한장르적특성상의성어와의태어의구사는 궁극적으로청 관중의정서적감응을유도하는기능을맡는다. 이점은 조선창극사 에서전하는과거명창의일화들을통해서도충분히확인 된다. 명창이날치 ( 李捺致 ) 는 < 춘향가 > 를할때에나팔소리나인경소리를 내면꼭실물처럼들렸고, 새타령을할때내는새소리에실제로같은종 의새가날아올랐다고한다. 김창록 ( 金昌祿 ) 또한오작소리를내면완연 히벽공 ( 碧空 ) 에서떠오는듯하였다고전한다. 이들기록은의성어를얼마 나실제에가깝게소리를내느냐하는점이판소리창자들의한능력으로 간주되었음을말해준다. 물론그효과는청 관중의정서적감응으로나타 날것이다. 그런데음성상징어가아무리형상표현의효과를증대시킬수있는언 어적장치라하더라도무작정구사되지는않는다는점을알려주는일화 도있다. 김찬업 ( 金贊業 ) 에대한이야기이다. 어느때정창업 ( 丁昌業 ) 명창 이모처에서 < 흥보가 > 중 도승이내려오는데장삼소매는바람에펄렁펄 렁 이라고하였다. 이에김찬업이평하기를, 장삼소매는바람에펄렁펄 144 145
렁 하는데는광풍이대작한바도아니요, 광승 ( 狂僧 ) 이동작하는것도아닌데소매가그리펄렁펄렁할리가있겠느냐. 화난 ( 和暖 ) 한춘풍에도승의 장삼소매는바람에팔팔팔 하는것이이치에맞다. 라고하였다. 정씨도그평에수긍하였다한다. 음악으로나사설로나이면에맞는표현을추구하는것이판소리일반의지향인바, 음성상징어의표현적효과도이면을벗어날수는없는것임을시사해준다. 청관중의감응정도가판소리창자의능력을가늠하는 병불능살인일더니약이모두원수로다. 약그릇을번뜻들어방바닥에부딪치고, 섰다꺼꾸러져데그르르르르궁글러보고, 가슴을쾅쾅치고머리도찌걱찌걱두발을둥둥둥둥, 여광여취실성발광남지서지를가르쳐, 아이고마누라, 마오. 죽지마오. 평생의정한뜻을사생동거보잤더니염라국이어디라고날버리고가랴시오? 아이고, 마누라, 마누라, 마누라, 마누라, 이게웬일이요? 인제가면언제와요? 목제비질을덜컥덜컥이리저리헤매이며 아이고마누라, 아이고이를어쩔거나. 주요한기준임은주지의사실이다. 의성어와의태어를사실적으로, 그리고정황에맞게구사하여장면을형상화하는것이그러한능력중의한부분임을알수있다. 3. 음성상징어의유희효과판소리에서음성상징어의역할은형상을제시하는표현적효과에만머무르지않는다. 음성상징어의성립요건으로유사음 ( 類似音 ) 의반복이꼽히는데서알수있듯이, 음성상징어는그자체로반복적율동감을갖는다. 이점에서음성상징어는정보제공이라는언어의한기능과는무관하며, 감정과유희를기호화한결과라하겠다. 특히주목할점은음성상징어의유희적효과가일반적인통사론적의미론적기능을배반하는데서비롯되는경향이강하다는것이다. 아래인용된사설은음성상징어의이러한특성을적절하게보여준다. 아이고이것이웬말이냐? 워따동네사람들, 우리마누라가죽었소? 허허허어참으로죽었소? 아이고마누라, 죽을줄알았으면약지러가지말고머리맡에앉었다극락세계로가라고염불이나해줄것을. 약능활인이요, 한애순창본 < 심청가 > 의한대목이다. 처를잃은심봉사가극도로비장한심경을토로하는이대목은심봉사자진사설로불린다. 이사설에서주목되는것은심봉사라는인물의말과서술자의말이어조면에서커다란차이를보여주고있다는점이다. 심봉사는상황의심각성에어울리지않게 약능활인 ( 藥能活人 ) 이요, 병불능살인 ( 病不能殺人 ) 이라는문식까지발휘하면서탄식한다. 그런데서술자의목소리는인물이처한상황과무관하게해학적어조로일관하고있다. 여기에서그해학적인태도를한껏강화해주는언어적장치가바로음성상징어이다. 이는음성상징어가일반적으로부정적인함축을포함하면서묘사하는데쓰이는표현이며, 동시에행위나태도를과장하는효과를가진다는점과관련된다. 특히이사설에서는 여광여취, 실성발광, 남지서지, 이리저리 등음성상징어가아닌어휘들마저도유사음의반복을통해음성상징어와동일한기능을함으로써해학적분위기를한층고조한다. 한편경어법을써야하는대상에게는음성상징어를쓰기어렵다는일반적인특성이해학적분위기의창출을겨냥하는판짜기의전략으로용해되면, 음성상징어는상당한신분적위치를차지하고있는사람들을비아냥거리거나비꼬는장치로활용되기도한다. 이점은변사또나뺑덕어멈, 놀보, 조조등주로관객들의입장에서동화되기어려운인물들의행위를묘사하는대목에서잘드러나는특성이다. 146 147
그러나음성상징어의유희적기능은전체적으로발랄하고경쾌한느낌을발산하는장면에서가장극명하게발휘된다. 발랄함과경쾌함은음성상징어가소리나모양을모방한말이라는특성에의해자연스럽게형성되는느낌이다. 4. 맺는말이상에서살핀대로판소리에서의성어와의태어가빈번하게쓰이는것은형상을최대한실감나게표현하려는지향이나, 청각적음향이빚어내는물리적율동감의유희성을활성화하려는지향의소산이라할수있 [ 중중모리장단 ] 광한루머지않고, 녹음은우거지고방초는푸르러, 앞내버들은청포장두르고뒷내버들은유록장둘러, 한가지는찢어지고또한가지는늘어져, 춘비춘흥을못이기어서흔들흔들너울거리고춤을출제, 외씨같은늬발맵시는백운간으해뜩, 홍상자락은펄렁, 선웃임빵긋, 입속은해뜩, 도련님이너를보시고불렀지, 내가무슨말을허였다는말이야? 잔말말고건너가자. 조상현창본 < 춘향가 > 에서가져온사설이다. 이사설은춘향에게가서이도령이명령을내린이유가춘향자신에게있음을설파하는방자의말이다. 여기에서 흔들흔들 을제외한나머지, 즉 해뜩, 펄렁, 빵긋, 해뜩 이비록유사음반복에의해성립된음성상징어는아니라하더라도 발맵시, 홍상자락, 선웃음, 입속 과각각만나면서생기발랄한춘향의모습을선명하게드러내는데는부족함이없다. 적어도방자의입장에서는춘향의모습이매력적일수록이도령이춘향을부른이유는더욱명분을얻을수있을것으로판단했던것이다. 여기에서간과할수없는것은청각적울림에의해생성되는율동감이다. 소리꾼이 해뜩, 펄렁, 빵긋, 해뜩 을표정연기와함께발화하는현장에서라면, 그율동감에서나오는유희적효과가어떠할지상상에맡겨둔다. 여기에 중중모리장단 이곁들여졌으니그효과는굳이부연할필요가없을것이다. 다. 긴장감이도는심각한장면에서나해학적인분위기의발랄한장면에서나음성상징어는제각기그해당장면의전체적인분위기에적절하게조화되었던것이다. 음성상징어가소리나형상을그대로모방한말이라는것은그만큼대상을실제에가깝게재현하고자하는지향이그자체에담겨있음을뜻한다. 그리고판소리에서음성상징어가허다하게구사되는것은판소리의언어또한그러한지향을뚜렷하게보여주고있다는의미이기도하다. 판소리에서는실재하는사상 ( 事象 ) 을음성언어로재현하고자하는극적욕구를 너름새 로설명하곤한다. 신재효는 < 광대가 > 를통해 너름새라하는것이귀성지고맵시있고경각의천태만상위선위귀천변만화좌상의풍류호걸귀경하는노소남녀울게하고웃게하는이귀성이맵시가어찌아니어려우며 라고하면서 너름새 를소리꾼의주요한자질로규정하였다. 여기에서확인되듯이너름새는창자의연행에대한청관중의호응도나정서적감응에관한한여타의요소에비해서도결코가볍지않은핵심적인요소라할수있다. 음성상징어는이너름새를위해요구되는가장핵심적인요소중의하나로자리매김할수있을것이다. 문자메시지창에서종종목도하는, 우리시대의새로운음성상징어들이혹어법에맞지않는다고해서얼굴을찡그릴필요는없을듯하다. 직접대면하지않은상태에서이루어지는의사소통에서라면음성상징어의표현효과는오히려더욱더증폭될것이기때문이다. 148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