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Journal of the Korean Magnetics Society 23(4), 144-148 (2013) ISSN (Print) 1598-5385 ISSN (Online) 2233-6648 http://dx.doi.org/10.4283/jkms.2013.23.4.144 한국사속의자기 ( 磁氣 ) 관련기록에대한조사연구 ( 자석의한방응용기록을중심으로 ) 이근우부경대학교사학과, 부산시남구용소로 45, 608-737 권해웅 * 부경대학교재료공학과, 부산시남구신선로 365, 608-739 (2013 년 7 월 9 일받음, 2013 년 8 월 12 일최종수정본받음, 2013 년 8 월 15 일게재확정 ) 만유인력등이발견되기전에, 자석은서로떨어진물체사이에작용하는유일한 ( 특이한 ) 힘을보여주는마법적인물질로생각하였다. 그런특성때문인지, 동아시아에서는자석이약재로서도널리쓰였다. 이글에서는한국사속의자기에관련된기록중자석의한방응용에관련된기록을정리하였다. 자석이약재로서어떤효능을가진것으로이해하였는지에대한기록을정리하고, 자석을약재로하는처방에대한기록, 그리고실제로우리역사속에서자석이들어간약제를복용한사례에대한기록을문헌을중심으로정리하였다. 주제어 : 자석, 자석의한방응용, 본초강목, 조선왕조실록, 신력탕, 백호인삼탕, 영조 I. 서론한국사속에자기ㆍ자석에관한많은기록이있음에도불구하고이에대한체계적인조사가이루어지지않아많은아쉬움이있었으나, 다행스럽게도저자등이이에대한조사연구를실시하여이를발표한바있다 [1]. <Table I> 은참고문헌 [1] 에서확인된자기에관한기록을연대순으로나타낸것이다. 표에서보는것처럼우리의역사기록속에는상당히많은양의자기에관한기록이남아있음을확인할수있었다. 조사결과, 자석은크게항해, 측량, 천체관측을위한나침반으로쓰인사례, 금창약을비롯한한방의약재로쓰인사례, 조선시대후기에실학자들이자석의원리를밝힌사례등 을확인할수있었다. 한국사속의기록을조사하면서흥미롭게느낀점은자석을한방의약재로썼다는기록이가장많다는점이었다. 따라서저자등은이러한자석의한방응용이라는특정분야에대한기록을따로조사하여남겨두는것이큰의미가있을것으로판단하였다. 이미삼국시대에도자석은금창 ( 金瘡 ) 즉쇠붙이에의해서생긴상처를치료하는대표적인약재였다. 이글에서는한방에서자석이어떤약효를가진것으로이해되었는지, 또한어떤증세를치료하는데사용되었는가에대한기록을찾아정리하고자한다. 우선한방속에서논의되고있는약효와처방법을 본초강목( 本草綱目 ) ㆍ 동의보감( 東醫寶鑑 ) 등을통해서정리한다음, 실제로자석을포함한약제를복용한사 Table I. 한국사속의자기관련기록일람표 출전 시대 내용 용도 비고 삼국사기 통일신라시대 자석 ( 磁石 ) 금창약 ( 金瘡藥 ) 669년 조선왕조실록 조선시대 범철 ( 泛鐵 ) ㆍ윤도 측량용나침반 1451, 1712년 조선왕조실록 조선시대 지평환 ( 地平環 ) 천체관측용 1490년 조선왕조실록 조선시대 자석 약재 1766년 조선왕조실록 조선시대 윤도 ( 輪圖 ) 항해용나침반 1790년 오주연문장전산고 조선시대 자석 자석과지남의원리 19세기중엽 기측체의 조선시대 자석 자석의원리 1836년간행 The Korean Magnetics Society. All rights reserved. *Corresponding author: Tel: +82-51-629-6362, e-mail: hwkwon@pknu.ac.kr 144
연구논문 Journal of the Korean Magnetics Society Vol. 23, No. 4, August 2013 145 례를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에서 확인해 볼 것이다. 다만 자석을 약재로 언급한 것은 이미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 經集註) (陶弘景, 南朝 梁)에서 확인되기 때문에, 삼국시대 이 래로 약재로 쓰기 시작하였을 것이지만, 삼국시대에서 고려시 대까지의 문헌이 극히 부족한 관계로 조선시대의 사료를 중 심으로 조사하였음을 밝혀둔다. II. 자석의 약효와 처방에 대한 기록 자석(慈石)의 약효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밝혀놓고 있는 문헌 으로는 명(明)의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 (1596 년)을 들 수 있다. 먼저 자석이 풍습(風濕)의 사기(邪氣)에 의 하여 온몸이 저린 증상(周痺), 관절이 아프고 물건을 들지 못 하는 증상(關節中痛)을 치료한다고 하였다[2]. 나아가 자석이 신기(腎氣)를 보하고 놀란 것을 그치게 하며[3], 칼 따위로 상 처를 입어 장이 빠져 나왔을 때 다시 들어가게 할 수 있으며 [4], 자궁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증상을 치료하는[5] 등 실 로 다양한 효능을 언급하고 있다. 동의보감 에도 자석은 신기(腎氣)와 신허(腎虛)를 기르고 더하며, 귀가 어둡고 눈이 어두운 데 쓴다고 하였다[6]. 또한 약재 중 석부(石部) 즉 돌 종류의 약재 55종을 설명하면서 자석(磁石)과 자석모(磁石毛) 를 들고 있다. 자석은 신장(腎臟)을 기르고 골기(骨氣)를 강하 게 하며, 정(精)을 더하고, 가슴에 열이 나고 답답한 증세(煩) 를 없애고 이롱(耳聾)을 고치며, 관절(關節)을 통하게 하고, 옹 종(腫)과 서루(鼠瘻) 경핵(頸核) 후통(喉痛)을 삭인다고 하였 다. 한편 자석모는 자석에 붙어 있는 가는 털처럼 생긴 것인 Fig. 1. (Color online) 보제방 에 기록되어 있는 자석을 이용한 대표적인 약제 중의 하나인 신력탕에 관한 기록(Description of the SHINRYUKTANG which is a typical magnet-containing medicine for kidney filtering failure. The word enclosed by circle means magnet). 데, 신(腎)을 기르고 기(氣)를 더하고 정수(精髓) 신허(腎虛) 이롱(耳聾) 목혼(目昏)을 보전(補塡)하는데, 그 효능이 더욱 뛰 신력탕에 관한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어나다고 하였다[7]. 이처럼 한방에서는 자석에 다양한 약효가 있는 것으로 여 2. 백호탕(白虎湯) 겼고, 동시에 자석을 사용한 여러 가지 처방이 기록으로 남 백호탕은 폐(肺)의 기운이 힘들고 상하였을 때 쓰는 약제이 아 있다. 대표적인 처방으로는 신력탕(腎瀝湯)과 지황탕(地黃 다. 열은 있지만 춥지는 않으며 조갈증이 나는 경우에도 쓸 湯), 백호탕(白虎湯) 등을 들 수 있으며, 그밖에도 다양한 종 수 있다. 약재로는 용골(龍骨), 백석영(白石英), 백복령(白茯笭), 류의 처방이 있다[8]. 그 중 대표적인 몇 가지만 정리해 보면 상근백피(桑根白皮), 인삼, 백합(百合), 자석, 현삼(玄蔘), 대두 다음과 같다. (大豆)를 쓴다[14]. 1. 신력탕(腎瀝湯)[9] 3. 자석산(磁石散) 신장풍(腎臟風)으로 인한 언어장애나 말더듬을 치료하는 데 자석산은 정신을 안정시키고 상승된 간장의 양기를 내리며 쓰는 한의학 처방이다[10]. 사용되는 약재는 양신(羊腎) 1구 신장을 보호한다. 또한 숨이 찬 것을 멈추고 귀와 눈을 밝게 (양쪽), 생강, 자석, 현삼, 백작약(白芍藥), 백복령(白茯笭), 황 한다. 머리가 어지럽고 아플 때, 가슴이 답답하거나 할랑거릴 기(黃), 천궁(川芎), 오미자, 계심(桂心), 당귀(當歸), 인삼, 방 때, 수면 장애, 전간, 귀울음, 귀가 들리지 않을 때, 숨가쁨 풍(防風), 감초, 지골피(地骨皮)를 쓴다[11]. 이 신력탕과 비슷 등에 사용한다. 한편으로 자석산은 탈항(脫肛)[15], 자궁(子宮) 한 것으로는 자석양신환이 있다[12]. Fig. 1은 보제방 [13] 이 들어가지 않는 증세[16] 등 여러 가지 증세에 폭넓게 사 에 기록되어 있는 자석을 이용한 대표적인 약제 중의 하나인 용하는 약제이다. 자석을 불에 달구어 식초에 담그기를 여러
146 한국사속의자기 ( 磁氣 ) 관련기록에대한조사연구 ( 자석의한방응용기록을중심으로 ) 이근우 권해웅 번거듭한다음수비 ( 水備 ) 하여복용한다. 4. 보신자석환 ( 補腎磁石丸 )[17] 보신자석환은신장의기가약해서눈이흐려지고눈동자에흰점이생길때이용한다. 구기자, 술에찐길짱구씨, 닥나무열매, 술에담갔던산딸기, 석곡, 술에적셔약한불에건조한육종용, 오미자, 찐지황, 여러번불에달구고식초에담그기를반복한자석, 술로법제한새삼씨, 침향, 소금등을분말로만들어꿀과섞어알약을만든다. 설명되어있다 [22]. 이밖에도신 ( 腎 ) 의실열 ( 實熱 ) 과소복 ( 小腹 ) 의포만감등을치료하는청원탕 ( 淸源湯 )[23], 소갈증이나하초 ( 下焦 ) 가냉하고소변이뜨물같은것을치료하는육종용탕 ( 肉蓉湯 ), 보허보골지 ( 補虛補骨脂 )[24] 등을비롯하여실로다양한종류가있다. 자석을사용하는처방을보면모두신 ( 신장 ) 의기능에이상이있거나신 ( 신장 ) 의기운을보해야할때, 혹은심열 ( 心熱 ) 을낮추거나상초 ( 上焦 ) 가실하고하초가허하여생기는증세에사용됨을알수있다. 5. 침향자석환 ( 沈香磁石丸 )[18] 상초 ( 上焦 ) 가실하고하초 ( 下焦 ) 가허하여어지럽고귀에서소리가나면서잘들리지않는데쓴다. 즉정신적으로과로를하거나심하게긴장을하면상체쪽은열이많아지고하체쪽은냉하게된다. 즉상체는기능이항진된상태가되지만하체는기능이저하되는것이다. 이명과이롱에도쓴다. 약재는천파극 ( 川巴戟 ), 호로파 ( 葫蘆芭 ), 감국화 ( 甘菊花 ), 조피열매 ( 川椒 ), 산수유, 마 ( 山藥 ), 자석 ( 火醋 7차례 ), 양기석 ( 陽起石 ), 부자, 침향 ( 반兩 ), 순비기나무열매 ( 蔓荊子 ), 소금 ( 靑鹽 ) 을쓴다. 6. 냉보환 ( 冷補丸 )[19] 냉보환은신음 ( 腎陰 ) 의부족으로입이건조하고시력과청력이저하되며허리가아플때이용한다. 약재는천문동, 맥문동, 생건지황 ( 마른지황 ), 숙지황 ( 찐지황 ), 우슬 ( 쇠무릎풀 ), 백작약 ( 집함박꽃뿌리 ), 지골피 ( 구기뿌리껍질 ), 석곡, 현삼, 자석, 침향을쓴다. 7. 보골지환 ( 補骨脂丸 )[20] 일을많이하여 ( 勞虛 ) 이롱 ( 耳聾 ) 이생긴것을치료한다. 약재는토사자 ( 兎絲子 ), 자석 ( 磁石 ), 당귀 ( 當歸 ), 두충 ( 杜 ), 날계 ( 辣桂 ), 백지 ( 白芷 ), 백질려 ( 白藜 ), 숙지황 ( 熟地黃 ), 창포 ( 菖蒲 ), 천궁 ( 川芎 ), 총백 ( 白 ), 파고지 ( 破古紙 ), 호로파 ( 胡蘆巴 ), 천초 ( 川椒 ) 이다. 8. 사신탕 ( 瀉腎湯 )[21] 여러가지임병 ( 淋病 ) 으로소복 ( 小腹 ) 이심하게불러오르는것을치료하고신 ( 腎 ) 에실열 ( 實熱 ) 이있어허리와등이굳어서잘풀어지지않고소변이황색이고혀가마르고사지 ( 四肢 ) 가청흑색 ( 靑黑色 ) 으로변하고이롱 ( 耳聾 ) 이나몽설 ( 夢泄 ) 이있는등의증상을치료한다. 자석, 망초 ( 芒硝 ), 대황 ( 大黃 ), 석창포 ( 石菖蒲 ), 복령 ( 茯 ), 생지즙 ( 生地汁 ), 현삼 ( 玄蔘 ), 황금 ( 黃芩 ), 감초 ( 甘草 ), 세신 ( 細辛 ) 을쓴다. 동의보감에는사신탕을달이는방법이구체적으로 III. 복용의실례각종한방의학서에보이는자석을이용한처방중에서실제로복용한사례를 승정원일기 등에서찾을수있다. 대표적인예로신력탕과인삼백호탕을들수있다. 이두처방을중심으로복용의실례와자석의효능에관하여논의한기록을살펴보도록하자. 1. 신력탕실제로신력탕을복용한사례로는영조와순조의대왕대비인정순왕후를들수있다. 1761년 ( 영조 37년 ) 12월 4일오후에도제조 ( 都提調 ) 홍봉한 ( 洪鳳漢 ), 제조 ( 提調 ) 한익모 ( 韓翼 ), 부제조 ( 副提調 ) 홍명한 ( 洪名漢 ), 의관 ( 醫官 ) 김리형 ( 金履亨 ) 등이영조의성후 ( 聖候 ) 를알아보기위하여입시하였다. 홍봉한이몸의상태를묻자, 영조는종일누워서지냈으며묽은담이있고변소를무수히드나들었으며, 잠깐잠이들었다가깨니머리가어지럽다고하였다. 또한변은쉰된장같아서변을보고도불쾌하였으며, 바지속에수건을깔았다고하였다. 이에김리형이영조를진맥하고나서맥이고르지않으며체한기운이있다고하고어제대전에앉아계실때찬기운때문에생긴증상이라고하였다. 탕제를올리고나자영조는신력탕 ( 腎瀝湯 ) 도효험이없다고하였다. 그러자홍봉한은이철보 ( 李喆輔 ) 최진해 ( 崔鎭海 ) 가모두신력탕의효험을크게보았다고하였고, 영조가그러냐고되물었다 [25]. 이처럼국왕에대한진찰과건강관리는 약방 ( 藥房 ) 즉내의원 ( 內醫院 ) 이담당하였다. 영조당시영의정이었던홍봉한이내의원도제조를겸직하여총책임을맡았고, 내의원의실무적인운영과관리는승지가겸직하는부제조가맡았다. 승지들은닷새마다한번씩이루어지는문안진후 ( 問安診候 ) 에어의와함께입시해서국왕의건강상태를자세히묻고또한진맥등을통하여세밀하게점검했다. 그러나실제로는거의매일국왕의안부가확인되었다. 현종은재위 15년동안 49회내의원입진을받았고, 숙종은재위 46년동안 865회, 경종은재위 4년동안 180회, 영
연구논문 Journal of the Korean Magnetics Society Vol. 23, No. 4, August 2013 147 조는재위 52년동안 7,284회에걸쳐입진을받았다. 특히영조 49년부터승하하는 52년까지 4년동안은무려 1,817회 ( 연평균 454회 ) 의입진을받았다 [26]. 영조는대보탕 ( 大補湯 ), 건공탕 ( 建功湯 ) 등많은약제를복용하였는데, 신력탕도여러차례복용하였고, 그효능에대해서도관심을가졌다. 그렇지만신력탕은특별한때만복용하는약으로가볍고쉽게쓸수없었다. 영조가신력탕이건공탕보다못한것이아니냐고묻자, 의관이태원 ( 李泰遠 ) 이자석 ( 磁石 ) 이 순하기도 ( 順下氣度 ) 의효능이있다고하였다. 즉자석이몸속의기운을순조롭게아래로내린다는것이다. 다시영조가자석이어떤것이냐고묻자, 이태원은자석이따뜻하기도하고차기도하며말이나걸음걸이에어려움이있을때이로운약재라고하였다. 이에영조는나를보하는약재로는으뜸이라고하였다. 이로미루어볼때, 영조는이시기에풍으로말과걸음걸이가불편하였음을알수있다. 또한영조가간간이어지러운증세가있자신력탕을복용할것을권하면서, 이약제에는생강과인삼을많이들어가있어서, 비록머리로올라가는기운이있어도충분히진정시킬수있으며, 또한기와혈을동시에보하는약제이므로원기를보하고비위 ( 脾胃 ) 를도우면, 담 ( 痰 ) 이저절로해소될것이라고하였다. 이처럼자석을포함하는신력탕은기가머리로올라가서어지러운증세가있을때그기운을아래로내려서치료할수있는약제로기록되어있다. 2. 인삼백호탕 ( 人蔘白虎湯 ) 백호탕은상한 ( 傷寒 ) 으로큰열은없으나입은조갈증이나며마음이어지럽고, 등에는가볍게오한이드는증세를치료하는약제이다 [27]. 이약제를복용한사례로는효종을들수있다. 효종이갈증을느낀다고하여먼저황금탕을복용하였는데, 그런데쾌차하지못하자다시백호탕을복용하는과정이 승정원일기 에자세하게나타난다. 그과정은다음과같다. 효종 9년 3월 7일, ( 전략 ) 그날곧약방에서의론하여효종에게아뢰기를, 황금탕은오로지폐의열을치료하는약제인데여러첩을드시고도아직쾌차하지못한것은위열 ( 胃熱 ) 이다스려지지않은때문인것같으니, 인삼백호탕에맥문동황련생지황을조금더넣어 4~5첩을써서함께다스려야마땅할것같다고하고이약 3첩을먼저들이고자한다고하였다. 이에효종이허락하였다 [28]. 3월 9일에다시약방에서인삼백호탕을며칠드신후에갈증이줄어드는효험이있는지, 오늘약이떨어지는데더지어올릴것인지를물었다. 효종이이에대하여백호탕이효험이있다고하고더지어올리라고전교 ( 傳敎 ) 하였다 [29]. 3 월 12일에인삼백호탕을연이어드신후에갈증이어느정도 줄어들었는지를묻고추가로지어올린 3첩이오늘떨어지게되는데더지어올릴지아니면다른약을의론할지를여쭈었다. 이에대하여효종은거의평상시와같아졌다고하고더이상약을올리지말라고하였다 [30]. 그밖에도 승정원일기 에자주보이는약제로익기탕 ( 益氣湯 ), 양위탕 ( 養胃湯 ), 건비탕 ( 健脾湯 ) 에이어서많이등장하는것이지황탕 ( 地黃湯 ) 이다. 지황을주약재로하는지황탕에도역시자석이들어간다 [31]. 지황탕은소신력탕으로여겨지기도하였다 [32]. 그러나일반적으로지황탕에는자석을반드시넣어야하는것으로보이지는않는다. V. 맺음말 한국사기록속에는상당히많은양의자기에관한기록이남아있으며, 자석의한방응용에대한기록이가장많은것을확인할수있었다. 한방에서는자석이다양한약효를가진것으로기록되어있으며, 또한신 ( 腎 ) 의이상으로말미암은증세를치료하는데주로사용되었음을확인할수있었다. 곧자석은한방에서오행 ( 五行 ) 중수 ( 水 ) 에해당하며오장 ( 五臟 ) 중신 ( 腎 ) 을관장하는것으로여겼으며, 신의기운을보하거나신의이상으로생기는증세에효능이있는것으로간주하였음을알수있었다. 한편심열 ( 心熱 ) 을가라앉히는등심 ( 心 ) 을조절하는기능도있는것으로보았다. 대표적인약제로는신력탕, 지황탕, 인삼백호탕등이기록되어있었다. 또한자석이든약제를효종이나영조와같은조선의군주들이실제로복용한사례도기록으로확인할수있었다. 참고문헌 [1] 이근우, 권해웅, 한국자기학회지 22, 142 (2012). [2] 李時珍, 本草綱目, 권3상, 磁石, 周痺風濕肢節中痛. [3] 李時珍, 本草綱目, 권4하, 磁石散, 養腎止驚. [4] 李時珍, 本草綱目, 권4중, 慈石, 金瘡腸出納入. [5] 李時珍, 本草綱目, 권4하, 磁石, 子宮不收名疾, ( 하략 ). [6] 許浚, 東醫寶鑑 內景篇권3 單方, 磁石, 養益腎氣腎虛耳聾目昏皆用之. [7] 許浚, 東醫寶鑑 湯液篇권3 石部, 磁石養腎臟强骨氣益精, 除煩療耳聾, 通關節, 消腫鼠瘻頸核喉痛., 磁石毛, 養腎益氣補塡精髓腎虛耳聾目昏, 功用更勝. [8] 古今圖書集成 醫部에는자석을약재로쓴 118종의처방을확인할수있다 (http://www.krpia.co.kr/pcontent 醫部集成 ). 동의보감 에도이롱 ( 耳聾 ) 을치료하는자석양신환 ( 磁石羊腎丸 ), 보골지환 ( 補骨脂丸 ), 익신산 ( 益腎散 ), 소신산 ( 燒腎散 ), 신체가허약하여귀가잘안들리는증상 ( 耳重聽 ) 에지황탕 ( 地黃湯 ) 등이보인다 ( 권2, 耳聾 ). [9] 신력탕은英祖가여러차례가복용한바있다 承政院日記 ( 英祖 42년 4월 19일조 ).
148 한국사속의자기 ( 磁氣 ) 관련기록에대한조사연구 ( 자석의한방응용기록을중심으로 ) 이근우 권해웅 [10] 朱, 普濟方 ( 四庫全書 ), 권 180, 腎瀝湯. [11] 각약재의구체적인분량및조제방법은이논문에서다루고자하는범위가아니므로생략하였다. [12] 자석, 총백, 목통 ( 으름덩굴 ), 천궁 ( 궁궁이 ), 백출 ( 삽주 ), 천초 ( 조피열매 ), 조육 ( 대추의과육 ), 방풍, 백복령 ( 흰솔풍령 ), 세신 ( 족두리풀 ), 서여 ( 마 ), 원지, 오두, 목향, 당귀, 녹용, 토사자 ( 새삼의씨 ), 황기, 육계, 숙지황 ( 찐지황 ), 석창포를쓴다. [13] 중국명나라朱 ( 周定王 ), 碩, 劉醇등이 15 세기초에편찬한의서로 168 권에이르는방대한분량이었다. 명나라이전의의서와기타관련된서적을광범위하게모아분류정리한것이다. 四庫全書 에수록되어있다. [14] 聖濟總錄纂要 ( 四庫全書 ) 권 13, 白虎湯. [15] 仁齋直指 ( 四庫全書 ) 脫肛證治. [16] 世醫得效方 ( 四庫全書 ) 磁石散. [17] 普濟方 ( 四庫全書 ) 권 29, 補腎磁石丸. [18] 玉機微義 ( 四庫全書 ) 권 35, 沈香磁石丸. [19] 普濟方 ( 四庫全書 ) 권 29, 冷補丸. [20] 허준, 동의보감 外形篇권 2, 補骨脂散. [21] 備急千金要方 ( 四庫全書 ) 권 59, 瀉腎湯. [22] 허준, 동의보감 內景篇권 4 小便寫腎湯. [23] 三因極一病證方論 ( 四庫全書 ) 권 8, 淸源湯. [24] 本草綱目 ( 四庫全書 ) 권 3 하, 補虛補骨脂. [25] 承政院日記 영조 37 년 12 월 14 일, sjw.history.go.kr 에의함 ( 이하같음 ). [26] 김범, 왕의건강관리, 승정원일기를읽는다, 경향신문 2006 년 10 월 10 일자. [27] 傷寒論注釋 ( 四庫全書 ) 瓜散方. [28] 承政院日記 효종 9 년 3 월 7 일. 再啓曰, 卽伏承大勢減歇之後, 尙未快差, 湯藥則或仍或改議處之敎, 臣等不勝憫慮之至. 卽與趙徵奎 朴及諸御醫等商議, 則前進御黃湯, 乃專治肺熱之劑也, 而連進累貼, 終未收快效, 似是胃熱未治而然也. 人蔘白虎湯, 加麥門冬二錢, 黃連 生地黃各一錢, 連用四五貼兼治宜當云, 此藥三貼, 爲先劑入, 何如? 答曰, 依啓. [29] 承政院日記 효종 9 년 3 월 9 일. 藥房都提調元斗杓, 提調許積, 副提調趙啓遠啓曰, 伏未審數日來, 聖候調攝, 何如? 再昨之劑入人蔘白虎湯, 連日進御後, 渴候有漸減之效耶? 此藥當盡於今日, 加劑入乎? 敢稟. 傳曰, 此藥似爲有效, 加劑入. [30] 承政院日記 효종 9 년 3 월 12 일. 藥房都提調元斗杓, 提調許積, 副提調趙啓遠啓曰, 風雨連宵, 伏未審聖候調攝, 何如? 人蔘白虎湯連進之後, 煩渴之候, 幾分減歇耶? 追劑入三貼, 當盡於今日, 此藥加劑入乎, 更議他藥乎? 敢稟. 答曰, 幾至如常, 勿爲劑入. [31] 지황탕에는여러가지종류가있다. 血地黃湯六味地黃湯, 淸心地黃湯, 獨活地黃湯, 犀角地黃湯, 生地黃湯, 荊防地黃湯, 升麻地黃湯등이있다 (www.hanndoctor.com 및 sjw.history.go.kr). [32] 承政院日記 영조 42 년 4 월 28 일. 上曰, 地黃湯可謂小腎瀝. Survey on Records about Magnetism in Written Korean History (Records Regarding the Applications of Magnet for Oriental Medicine) Kun Woo Rhee Department of History, Pukyong National University, Busan 608-737, Korea Hae-Woong Kwon * Department of Materials Science and Engineering, Pukyong National University, Busan 608-739, Korea (Received 9 July 2013, Received in final form 12 August 2013, Accepted 15 August 2013) Until the discovery of universal gravitation, a magnet had been considered to be a unique and magical stuff which exhibited an interacting force between two objects separated afar. Perhaps because of this belief, magnets were used widely as a medicinal stuff in East-Asia. In the present article, the records regarding the applications of a magnet for oriental medicine in written Korean history were surveyed. The records were categorized in terms of efficacy, prescription, and clinical case of taking-medicine. The records revealed that a magnet was used as an important component in the medicine for curing kidney filtering failure. Magnet was also prescribed to heal heart problems. Typical magnet-containing medicines included the SHINRYUKTANG, JIHWANGTANG, and INSAMBAEKHOTANG. Interestingly, it was revealed that some of the kings (Hyojong, Yungjo) in the era of Josun dynasty (1392-1910) believed the efficacy of the magnet-containing medicine and took it for curing their health problems. Keywords : magnet, magnet-containing medicines, Compendium of Materia Medica. Annals of Joson dynasty. Decoction of kidney filtering (SHINRYUKTANG), Decoction of white tiger with jinseng (INSAMBAEKHOTANG), King Yong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