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백범 김구 회중시계 윤군은 자기 시계를 꺼내 내 시계와 교환하자고 하였다. 제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6원을 주고 구입한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불과 2원짜리입니다. 저는 이제 1시간밖에 더 소용없습니다. 나는 기념품으로 그의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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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범회보 제 38호 봄호

2 Prologue 백범 김구 회중시계 윤군은 자기 시계를 꺼내 내 시계와 교환하자고 하였다. 제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6원을 주고 구입한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불과 2원짜리입니다. 저는 이제 1시간밖에 더 소용없습니다. 나는 기념품으로 그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를 그에게 주었다. 목메인 소리로 마지막 작별의 말을 건넸다.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 백범 김구의 자서전 백범일지 중에서- 등록문화제 제441호. 윤봉길(1908~1932)의사가 한인애국단 입단 선서식(1932년 4월 26일) 직후에 구입하여 간직하다 거사일인 4월 29일 홍구공 원으로 떠나는 날 아침에 김구선생의 시계와 맞바꾼 것으로, 윤봉길의사의 유품이면서 김구선생의 유품이기도 하다. 거사에 임한 두분의 애국 독립정신을 헤아릴만한 유물로서 우리에게 상징하는 바가 크다.

3 C. o. t. e. n. t. s Special Column 남북협상 65주년, 백범이 그립다 Special History 1948년 신문 기사로 본 남북협상 Special People 통일을 위한 길에 함께 떠나다 OUTSIDE FOCUS 독립운동의 중심지 상하이( 上 海 ) 시선집중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기념일, 바로 잡아야 인연( 因 緣 ) 임시정부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빛나는 순간 백범 김구 인장( 印 章 ) 역사의 현장 근현대 역사 복원 현장, 경교장 개관 의의와 역사 속 이야기 다시 읽는 백범일지 I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시상식 다시 읽는 백범일지 II 우리는 자유를 논할 수 있는가 특별한 하루 백범신문 만들기 줌인, 현장 속으로 I 백범김구기념관 2013년 어린이날 문화행사 줌인, 현장 속으로 II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역사탐방 통일교육 가이드 2013년 우리의 통일을 생각한다 백범김구기념관 News 참여 마당 Quiz Quiz 통!통! 발행일 2013년 5월 16일 통권 38호 발행인 김 신 발행처 사단법인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기획 편집 인쇄 (주)성우애드컴 백범회보 에 실린 글 중에는 우리 협회와 의견이 다른 글도 있을 수 있습니다 봄 3

4 Special Column 남북협상 65주년, 백범이 그립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인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남북협상 65주년을 맞이해 조국통일독립에 몸을 바친 백범 김구 선생이 더욱 그리워지는 이유다. 남북관계가 6.25전쟁 이후 가장 위태롭다는 시기에 남북협상 65주년이 되었다. 백 범 김구 선생은 한반도의 운명이 위기에 놓일 때 일신의 안일을 돌보지 않고 북 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통일정부 수립을 목메이게 호소하고 북쪽 요인들과 담판 도 하였다. 1948년 4월 19일 백범은 숙소인 경교장을 떠나 북행길에 올랐다. 당일 4~5백 명이 거처인 경교장 앞마당을 포위하고 북행을 반대한다고 열변을 토하였다. 백범은 경교장 2층 거실 베란다에서 군중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독립운동을 위 해 살아왔고 이제 내 나이 70이 넘었다. 더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여러분은 나에 게 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 달라. 이대로 가면 한국은 분단될 것이고, 서로 피 를 흘리게 될 것이다. 그래도 군중들은 길을 트지 않았다. 백범은 거듭 말하였다. 누가 뭐라 해도 좋 다. 북한의 공산당이 나를 미워하고 스탈린의 대변자들이 나를 시베리아로 끌고 가도 좋다. 북한의 빨갱이도 김일성이도 다 우리들과 같은 조상의 피와 뼈를 가졌 다. 그러니까 나는 이 길이 마지막이 될지 어떻게 될지 몰라도 나는 이북의 우리 동포들을 뜨겁게 만나봐야 한다. 1948년에 접어들면서 남북 양쪽에 두 개의 정권이 들어설 준비가 진행되고 있어서 분단은 이미 기정사실처럼 굳어져 가고 있었다. 미 소공동위원회의 결렬과 한반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도 문제의 유엔 이관으로 결국 분단 상황이 눈앞에 다가오게 된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쪽 정권을 세워서는 안된다는 백범은 김규식과 함께 북한 김 04 백범회보

5 나는 이 길이 마지막이 될지 어떻게 될지 몰라도 나는 이북의 우리 동포들을 뜨겁게 만나봐야 한다. 일성 김두봉에게 남북요인회담을 제의하는 서신을 보내는 한편, 유엔한국위원단 에 남북협상방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앞서 백범은 2월10일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이란 특별 성명을 통해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 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 고 단호하게 결의를 밝혔다. 백범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남북의 분단을 막아야 하고, 한번 양쪽에 분단 정권이 들어서면 필연적으로 동족상잔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였다. 승용차를 타고 임진강을 건너 여현( 礪 峴 )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묵고 막 평양으로 출발하는데 김일성의 비서실장 김종항( 金 鐘 恒 )이란 사람이 백범을 모시러 왔다. 몇 시간을 달려 평양시내 상수리( 上 需 里 ) 지역의 일반 가정집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 김두봉이 찾아왔다. 두 분은 상해 임시정부 시절부터 막역했던 사이 였다. 회의장소인 모란봉 극장에 도착하니 인민복을 입은 김일성이 기다리고 있 었다. 첫 대면이었다. 당시 백범은 73세, 김일성은 37세였다. 김일성은 백범에게 정 중히 인사하였다. 항일독립운동의 대선배이신 김구 선생을 뵙게 돼서 대단히 영 광스럽습니다. 연석회의가 진행되고 백범이 연단에 올랐다. 일제의 침략과 항일독립운동에 이어 광복이 되었으니 동포들이 단합해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자는 내용과 함께, 남 쪽에서 단독정부를 세우려는 데 반대한다는 연설 대목에서 박수가 터졌다. 백범 은 이어서 북쪽에서도 단독정부를 세우는 것에 반대한다고 힘주어 말하였다. 그 남북협상에서 인사말을 하시는 백범 김구 선생 (평양 모란봉극장, ) 봄 05

6 런데 이번에는 박수는 커녕 싸늘한 냉기만 감돌았다. 백범은 이 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남북 양쪽에 두 개의 정권이 들어서게 되 면 영구분단으로 가게 된다면서 모두가 협력하여 통일정부를 세우자고 간곡하게 호소하였다. 평양에서는 남북한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이어 남북요인 15인이 참석하는 정치 회담 그리고 백범과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의 4김회담 이 차례로 열렸다. 이 회담 에서는 진정한 민주국가건설 사유재산 제도의 승인 통일중앙정부 수립 외국군에 군사기지 불제공 미 소 양군 철수 문제 등이 폭넓게 논의되었다. 백범은 또 이 자리에서 중국 뤼순( 旅 順 )에 있는 안중근의사 유해 봉환과 소련군 에 억류돼 있다는 조만식 선생의 석방을 제의하였다. 그리고 안창호 선생 누이동 생 안신호 여사를 만났다. 안 여사는 젊은 시절 백범과 약혼까지 했던 분이었다. 또 대동강 변에 멍석을 깔고 김일성과 식사도 하고 함께 유람선을 타기도 했다. 김 일성은 항일운동의 대선배인 백범을 극진히 모시려는 모습을 보였다. 백범이 회의를 마치고 남으로 돌아가려 하자 김일성이 만류하였다. 지금 남으로 가면 신변에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백범이 서 울 귀환의 뜻을 굽히지 않자, 김일성은 황해도 기동의 선산( 先 山 )을 들러 보라고 권하였다. 기동은 백범의 옛날 고향이었다. 38선상의 백범 김구 선생 일행( ) 가정이 빈한하면 현처가 생각나고, 나라가 어려우면 현상( 賢 相 )이 생각난다는 말과 같이, 지금 민족의 사활이 어려운 시기에 백범의 민족사랑, 결단력, 선견지명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06 백범회보

7 김일성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선산에 가는 길을 닦아놓았으니 이번에 한 번 들러 보라고 거듭 권하였다. 그러나 백범은 다음 기회에 들르겠다며 남행을 재촉하였 다.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공산당에 넘어갔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생길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백범은 5월 6일 무사히 서울로 돌아왔다. 평양을 갈 때와는 달 리 38선을 걸어서 넘어왔다. 얼마 후 남북한에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1949년 6월 26일 백범은 친일 반민 족, 분단 세력이 쏜 흉탄에 서거하셨다. 그리고 1년이 지난 1950년 6월 25일 그토 록 우려하던 6.25 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백범의 평화통일노선은 긴 세월동안 금제의 푯말이 꽂히고, 남북 간에는 증 오와 대결의 시대가 이어졌다. 다행히 분단 55년 만인 2000년 6.15선언과 2007년 10.4선언을 통해 화해 협력의 물꼬가 트이고, 금강산과 개성공단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서 다시 대결의 시대로 회귀하고, 지금 한반도는 일촉즉발 의 위기상태에 이르렀다. 금강산이 막힌데 이어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 공단까지 문을 닫는 위기에 놓였다. 가정이 빈한하면 현처가 생각나고, 나라가 어 려우면 현상( 賢 相 )이 생각난다는 말과 같이, 지금 민족의 사활이 어려운 시기에 백범의 민족사랑, 결단력, 선견지명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남북 지도자들이 백범 의 정신으로 대화를 통해 평화의 길을 열기를 촉구한다. 남북 지도자들이 백범의 정신으로 대화를 통해 평화의 길을 열기를 촉구한다. 김구, 남북협상에 임하는 결의 표명 (전략) 이번 남북회담에 대하여 큰 기대를 가지는 사람도 많고 낙관하는 사람도 있으나 참으로 금차 회단에 큰 기대를 가져야 할는지 단언하기 어려 움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그러나 과거 미소 양국의 힘으로써 조선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조상이 같고 피부가 같고 언어 와 피가 같은 우리 민족끼리 서로 앉아서 같은 민족정신을 가지고 서로 이야기나 하여보자는 것이 진의이며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깨 끗이 조국통일독립에 바치려는 것이 금차 이북행을 결정한 목적이다. 금차 이북행에 있어 사실은 나의 운명까지 어떻게 될 것인지 모르는 것 이며 이것은 과거 金 錫 璜 문제에 아무 관계없는 나를 증인으로 출연시킨 것과 나에게 모두 뒤집어 씌우려고 한 것을 볼진데 앞으로 나의 신 변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며 5월 10일을 앞두고 그러한 위험성이 농후하게 보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북조선에서는 金 九 는 金 日 成 장군 에게 굴복하러 오느니 혹은 기타 여러 가지 욕설도 많고 또 조선의 분열은 신탁통치를 반대한 자에게 책임이 있으니 하나, 나 역시 할 말이 없어 아니 한 것도 아니며 다만 내가 서한을 보내되 조선사람이 먼저 보는 것이 아니요, 외인이 먼저 보는 관계로 해서 다만 좋은 말만 써서 보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서로 다른 이국 사람의 환경 아래 있다 하더라도 5천년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다. 우리는 서로 같은 피 와 피를 통해서 서로 통사정하여 보는 길밖에 이제는 남지 않은 것이다. 만일 내가 이번 북행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金 九 는 통일독립을 위해서 끝까지 투쟁하였다고 3천만 동포에게 전하여 주기 바란다. 경향신문 조선일보, 보도/15일 오후 5시경 경교장 출입기자단 초청 회담에서 봄 07

8 Special History 1948년 신문 기사로 본 남북협상 한 나라에 두개의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북행을 결정한 백범 김구 선생. 1948년 당시 신문들은 남북협상을 위해 북으로 떠난 백범 김구를 어떻게 보도했는지 짚어봤다. 평양방송 통한 연석회의 보도와 의아심 1948년 4월 19일 김구 선생은 역사적인 북행길에 나섰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고서 처음으로 열리는 남북지도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동아일보 등 4 월 20일자 신문들은 4월 19일 새벽부터 우익 청년 학생들이 경교장에 몰려와 김 구의 북행을 저지하려 했다고 보도했다. 김구는 이날 오후 3시경 자동차로 서울 을 떠나 6시 20분에 38선 경계선인 여현에 도착했다. 일행은 잠시 쉬다가 밤중인 데도 평양을 향해 달렸다.( 서울신문, 1948년 4월 21일) 1948년 4월 19일 평양 모란봉극장에서는 남북 정당 사회단체 46개 대표 545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란 긴 이름을 가진 회의가 열렸다. 대회장에는 태극기가 붙어 있었다. 김구 북행 소식을 들은 김일성의 제의 로 20일에는 휴회하기로 했다. 김구가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판단 했기 때문이다. 김구가 연석회의가 열리게 되어 있는 19일에서야 서울을 떠난 것 은 연석회의를 무시하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신문에는 일체 보도되지 않았지만, 20일 김일성 김두봉을 만난 김구는 연석회의 주석단에 들어가지 않겠으며, 그 회 의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김일성과 단독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 이는 결코 북에 이용되지 않겠음을 명백히 한 것이다. 4월 21일 김구는 연석회의 에 참석하지 않았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한국현대사 평양에 간 기자들은 서울로 기사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남한 신문들은 평양방송 보도에 의거할 수밖에 없었는데, 평양방송은 08 백범회보

9 북한에 유리하게 보도했기 때문에 진실이나 내막에 대해서 남한 신문이 제대로 알리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 동아일보는 단정운동의 주축인 한민당과의 관계 때 문에 평양회담에 비판적이었으나, 조선일보 나 서울신문 은 김구 김규식의 북 행에 호의적이었다. 남북협상이 끝나고 기자들이 서울에 돌아왔을 때, 이미 신문 은 평양방송을 통해 뉴스를 내보냈기 때문에 중도 우파 잡지 신천지 1948년 4월 호에 실린 조선일보 특파원 최성복의 평양 남 북 협상의 인상 처럼 다른 방식으 로 북행 취재기를 남겨야 했다. 김구가 4월 22일 연석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축사 로도 보도되었음)을 한 것은 이날 평양방송에 의해 특별방송으로 보도되었고, 그 것을 조선일보는 24일자 신문에 실었다. 전문이 아니고 요지가 실린 이 인사말에 서 김구는 중요한 발언을 했다. 김구는 우리의 공동투쟁 목표는 단선을 반대하 는 것 이라고 피력하였는데, 남조선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 곳임을 막론하고 그것 을 반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 말한 것이다. 김구는 평양에서 최성복에게도 나 는 남조선 단정 단선도 반대려니와, 북조선의 그것도 반대이고, 한 번에 안 되면 몇 번이고 이야기해볼 작정이오 라고 강조했다. 4월 23일 평양방송은 22일 연석회 의에서 김구 조소앙 조완구 홍명희를 주석단에 보선했다고 보도했음을 조선일 보와 경향신문은 전했는데, 레베데프 문서 등을 검토해볼 때 김구가 주석단에 들 어가게 된 것은 북한이 일방적으로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4월 23일은 연석회의를 끝맺음하는 날이었다. 이 날도 김구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 날 낭독된 조선정치정세에 대한 결정서 와 전조선 동포에게 격함 이라는 격문 이 25일 평양방송을 통해 알려졌고, 그 내용을 남한 신문이 보도하였다. 이 때문 에 남한에는 풍파가 일었다. 결정서와 격문은 북의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남한의 단선 단정과 미국을 격렬히 비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경향신문 은 4월 28일자 신문에서 결정서와 격문은 그때까지 김구 김규식 등 민족진영이 추진해 온 근본이념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지적하고 그것이 김구의 의사와 어떠한 관계 에 있는지의 문제 때문에 국내 정계에 파문을 던진 것으로 보도했다. 김구와 김규 식의 평양에서의 움직임이나 주장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의아 심이 생기는 것은 있을 수 있었다. 조선일보, 1948년 4월 24일 신천지, 1948년 4월호 남북협상에 대한 불충분한 보도 연석회의를 외면한 김구와 김규식은 남북요인회담을 통해 통일방안을 협상할 것 을 강력히 요구했다. 북으로서는 김구와 김규식을 맨손으로 되돌려보낼 수는 없 었다. 김규식은 독재정치 배격, 총선거를 통한 통일정부 수립안 등 5개항을 북에 제시하여 4월 19일 밤 5개항을 김일성이 수락했다는 암호를 평양방송을 통해 알 봄 09

10 았지만, 21일에야 서울을 떠났고, 평양에서 김일성 김두봉의 예방을 받았지만, 칭 병을 하고 연석회의에 나가지 않았다. 철저히 연석회의를 무시한 것이다. 남북협상으로 불린 남북요인회담은 4월 26일 열렸다. 그러나 연석회의와는 달리 남북요인회담은 남한 신문에 5월에 들어와서야 보도되어 이 때문에도 의아심이 일어날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평양방송이 5월 1일 저녁에서야 4월 30일에 발표된 남북제정당사회단체 공동성명서를 보도하였고, 이 이후에야 여러 정보를 통해 남북협상의 과정이 어느 정도 알려지게 된 것이다. 4월 26일 요인회담이 전혀 보도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5월 2일자에서 동아일 보 는 조선통신특파원이 제공한 정보라고 출처를 밝히고, 26일 열린 4김 회담에 서는 김규식의 5개항이 찬의를 얻었다고 보도하면서도 김구 김규식의 북행을 부 자유신문, 1948년 5월 7일 정적으로 평가했다. 서울신문 과 경향신문 은 5월 3일자에서 김구 김규식 김일 성 김두봉의 4인 회담이 열렸음을 보도하고, 더 나아가 이날 회의에서 김구 김규 식이 공동성명과 통일 공동 대책기관의 수립을 제의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들은 이날 15인 회담에 대해 부정확하게 보도했는데, 조선일보 는 5월 3일자에서 남북 요인 15인의 회담이 27일부터 비공식으로 열렸다고 보도했다. 15인에는 4김 외에 조소앙 홍명희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4월 28일에는 김규식의 의제 제의에 따라 김규식과 김일성의 회담이 있었으나, 이것은 보도되지 않았다. 공동성명서의 확정 과정은 5월 4일에야 밝혀졌다. 5월 3일자 서울신문 은 공동성 명서 내용을 평양방송이 보도한 대로 남북제( 諸 )정당사회단체 공동성명서라고 썼 다. 그런데 조선일보 는 5월 4일자에서 김일성 김두봉이 양보 승인하여 30일 오 후에 4김의 최종적 검토를 거쳐 밤부터 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 연석하에 다시 결 의 통과되어 전체적 합의의 의의와 형식을 갖추었다고 보도했다. 명의만 빌린 것 으로, 실제는 4김 공동성명서였다. 공동성명서는 1. 소련이 제의한 대로, 미소 양 군을 즉시 동시에 철거시킬 것, 2. 외군 철거 후 내전이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북 한이 약속한다는 것, 3. 외군 철거 후 전조선정치회의 소집 -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 - 보통선거 방식에 의한 총선거 실시로 통일적 입법기관 구성 - 헌법 제정 에 의해 통일정부를 수립할 것, 4. 남조선 단선 반대로 되어 있다. 1,2,4항 모두다 3항과 관련하여 주장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남북공동성명서와 관련해 최성복은 평양 남 북협상의 인상 에서 중요한 증언을 하고 있다. 29일 밤에 김일성이 기자단회의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김일성은 1. 양군은 더 이상 주둔할 필요가 없음, 2. 인민군에 대한 불안은 절대 기우라는 것, 3. 독재적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는 것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음을 최성복은 쓰 고 있다. 다음날 발표될 공동성명서의 윤곽을 기자들에게 얘기해준 것으로 볼 수 10 백범회보

11 있다. 김일성이 밝힌 것에는 공동성명서의 핵심으로 김구 김규식이 주장한 통일 민족국가 건설의 방안을 제시한 공동성명서 3항이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은 3항을 받아들이는 것을 극도로 회피했는데, 양김의 주장이 워낙 강해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남북협상에 대한 평가 유구한 역사를 단일민족국가로 발전시켜 온 한국인은 분단 정부가 들어서는 것 은 인간의 허리를 두동강 내는 것과 같이 민족과 국가를 불구로 만드는 것이고, 반드시 참혹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야기할 것이므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분단 정 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언론인은 마음속으로는 민족적 염원에 부응하는 김구 김규식의 북행이 잘 되기를 성원했으나, 드러내놓 고 하기에는 미군정과 극우단정운동세력의 시선이 두려웠다. 이 때문에 평양방 송 보도라도 열심히 들어 알리는 것으로 자위해야 했다. 그러나 4월 30일 공동성 명서가 나오자 (남북협상에서) 진지한 토의가 계속해 왔다 이번 남북협상은 예 상대로 결정적 성과를 거둔 동시에 장차 구체적으로 진전될 남북통일 과업의 첫 단계를 누린 것으로 보고 있는 터 양김 씨는 일간 귀경할 것이고 본 협상의 금 반( 今 般 ) 성과를 계기로 남북통일의 과업은 점차 발전은 될지언정 좌절이 되거나 와해될 위구( 危 懼 )는 없다고 보고 있다 등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조선일보, , 서울신문, ) 또한 조선일보 는 5월 6일자에서 정당사회단체 대표자회의를 계기로 평양을 수부( 首 府 )로 한 북조선인민공화국 수립설을 물리 침으로써 남조선정당사회단체대표자들의 면전에서 통일운동에 대한 열의를 고무 ( 鼓 舞 )하였다고 평가했다. 신문들은 5월 5일 김구 김규식이 귀경한 소식과 양김의 담화를 싣고, 특히 5월 6 일 양김이 남북회담의 성과에 대하여 공동성명서를 발표했을 때 귀경의 과정과 함께 장문의 공동성명서를 실었으며, 5월 7일 양김이 남북회담에 대하여 공동기 자회견을 가진 것도 자세히 보도했다. 그 반면 남북협상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던 주한미군사령관 하지는 5월 3일과 5월 5일 두 차례에 걸쳐 장문의 특별성 명을 발표하여 양김이 공산당의 모략에 빠졌다고 비난하고, 5 10선거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5월 3일에 이승만은 4월 30일 발표된 공동성명서를 중 요시하지 않는다는 담화를 냈다. 그렇지만 양김의 남북협상에 호의적인 여론에 신경이 쓰여서인지 5월 7일에는 남북협상 요인들이 단선단정을 반대하지만 우매 하지 않은 우리 애국 동포는 이러한 모략과 선동에 동요되지 않을 것을 나는 확 신하는 바 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1948년 5월 4일 조선일보, 1948년 5월 7일 봄 11

12 Special People 통일을 위한 길에 함께 떠나다 1948년 4월 19일, 백범 김구 선생은 조국의 평화적자주적 통일독립을 위해 주변의 만류와 여러 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조국통일독립에 바치기 위해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향했다. 이때, 선생의 통일독립 노선을 공감하고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여러 인사들이 함께 평양행을 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부주석 김규식[ 金 奎 植, 1881~1950,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 참여] 독립운동기 민족혁명당의 대표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부주석이었던 김규식 선 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김규식 헌신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남북 양쪽에서 단독정부 수립의 움직임 이 가시화되자 이를 막기 위하여 1948년 2월 김구 선생과의 공동명의로 북의 김 일성과 김두봉에게 남북지도자회의를 제안하는 서신을 보냈으며, 4월 22일 평양 에서 개최된 남북협상에 참가하였다. 당시 신문들이 김규식 선생의 건강이 좋지 않아 북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으나, 김규식 선생은 4월 19일 북행 한 백범 김구 선생 보다 다소 늦은 22일 다음과 같이 협상 5원칙 을 제안하며, 북행길에 올랐다. 우리는 안으로 민족의 통일을 성취시키고 밖으로 연합국의 협조를 통하여 우리의 자주독립 을 전취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시할 예정이다. 1) 여하한 형태의 독재정치라도 이를 배격하고 진정한 민주주의국가를 건립할 것. 2) 독점자본주의 경제제도를 배격하고 사유재산제도를 승인하는 국가를 건립할 것. 3) 전국적 총선거를 통하여 통일중앙정부를 수립할 것. 4) 여하한 외국에서도 군사기지를 제공치 말 것. 5) 미소양군 조속 철퇴에 관하여서는 先 而 양군당국이 철퇴조건 및 기일 등을 협정하여 공포 할 것을 주장할 것. ( 동아일보 조선일보, ) 12 백범회보

13 김규식 선생이 제안한 5대 협상안 은 4월 26일과 30일 두 차례 있었던, 4김회담 (김구 김규식 김일성 김두봉)에서 논의 되었고, 5월 1일 외국군 철수 등을 내용 으로 한 남북통일에 대한 남북지도자의 공동성명 이 발표되었다. 김규식 선생은 5월 5일 오후 1시 40분 경기도 여현( 礪 峴 )을 경유하여 오후 8시 30 분경 서울로 돌아와 숙소인 삼청장에서 다음과 같이 소회를 밝혔다. 공동성명에도 있는 바와 같이 생각했던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 만큼 문을 열어 놓았으니 대중이 통일에 대해서 추진시키도 록 힘써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의 힘으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서울신문, ) 새한민보, 1948년 5월 하순~6월 상순호 5월 6일 김구 선생과 김규식 선생은 남북협상의 성과를 담은 공동성명 을 발표하 였으나,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시작으로 남북 모두에 단독정부가 수립되 면서 남북협상은 사실상 결렬되었다. 김규식 선생은 1950년 6.25 전쟁 당시 납북되어, 같은 해 12월 10일, 평북 만포진 부근에서 7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 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의 기초인 삼균주의 창시자 조소앙[ 趙 素 昻, 1887~1958, 한국독립당 부위원장으로 남북협상 참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 의장, 내무총장, 외무부장 등을 역임한 조소앙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법인 임시헌장 과 국회법에 해당되는 임시의정원 법 을 기초하며 민주공화제의 임시정부 수립에 공헌하였다. 특히, 조소앙 선생이 주창한 삼균주의 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통해 개인과 개인의 균등생활을 실현하고 이를 토대로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균등생활을 이루며, 나아가 세 계일가를 추구한다는 이론체계로 한국독립당의 강령( 綱 領 )과 임시정부의 기본이 념으로 채택되었다. 또한 1941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공표한 대한민국건국강령 은 바로 이러한 선생의 삼균주의 에 입각한 내용이었다. 1945년 8.15 광복 이후에도 조소앙 선생은 단정수립에 반대하며 남북협상안 7개 조를 발표하고 1948년 4월 22일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개최된 남북정당사회단체연 석회의에 참가하여 우리에게 결정적 승리가 올 것을 믿고 여러분에게 분투를 빈 다. 민족의 승리를 위하여 공동투쟁을 한다 고 축사하는 등 분단된 조국의 통일 을 위해 노력하였다. 조소앙 봄 13

14 그러나 남북에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단정에 참여하고자 1948년 한국독립당 과 결별하고 12월 사회당을 결성하였다. 1950년 5 30총선에 서울 성북구에서 출 마하여 3만4000여 표로 전국최고득표자가 되어 제2대 국회에 진출하여, 삼균주 의의 정책적 실현을 시도하다가 6 25전쟁 중, 납북되었다. 납북 후에도, 북한 정권에의 참여요구를 거부하고 납북인사들과 함께 독자적인 중립화통일운동 을 전개하다가, 1958년 9월 10일 숨을 거두었다.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조완구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함께한 독립운동가 조완구[ 趙 琬 九, 1881 ~ 1954, 한국독립당 부위원장으로 남북협상 참여] 조완구 선생은 1919년 4월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임시의정원의원, 내무차장, 노동총판, 내무부장 및 재무부장을 역임하며, 30여년의 세월동안 조국 의 독립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조완구 선생은 1945년 광복 이후, 12월 2일 임시정부 2진으로 입국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숙소이자 임시정부 청사의 역할을 하던 경교장에서 함께 생 활하며 임시정부 요인으로써 활동을 재개하였다. 내가 본국을 등지고 해외로 망명할 때 대단한 일을 하고자 간 것이 아니고, 나라 되어가는 꼴이 앉아서 볼 수가 없어 피해갔으며, 그 렇다고 누구들처럼 중도에 어정어정 기어들어 올 수는 더욱 없어서 떠돌아 다니다가 미군이 비행기 태워주기에 돌아왔다, 그런데 지 금 나라 꼴이 이 지경으로 두 동강이 났고 제각기 제 목소리만 높 이며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니 우리가 나라를 찾겠다고 발버둥치며 완전한 통일독립을 바라던 것이 고작 이것이란 말인가? 참으로 우리의 앞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우리가 모진 괴로움을 참 으며 수십 년을 싸운 것은 나라 없는 백성이 될 수 없어서 발버둥 친 것이지 우리나라를 여우의 손에서 뺏어서 이리나 늑대에게 나 누어 주려고 애쓴 것은 아니지 않는가. 조완구 선생은 광복 이후 만난 딸에게 이처럼 말하며,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임 시정부를 지키고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1948년 4월 20일 한국독립당 평양만경대혁명유가족학원 신축공사장 시찰( ) 조완구 이종익 김구 의 일원으로 평양으로 가 남북협상에도 참여하였지만, 남과 북의 단독정부 수립 을 지켜보며 국토의 분단뿐만 아니라 민족의 마음이 분단되는 참담한 현실에 가 14 백범회보

15 슴 아파 하였다. 조완구 선생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납북되었고 1954 년 10월 27일 평안남도 용강의 중앙병원에서 통일을 못보고 가는 게 한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89년 건국훈장 대 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실천하는 지식인 엄항섭[ 嚴 恒 燮, 1898~1962, 한국독립당 선정부장으로 남북협상에 참여] 엄항섭 선생은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저우( 抗 州 )에서 지장대학( 芝 江 大 學 ) 을 졸업하였고, 상하이( 上 海 )의 언론계에서 활동하다가 1929년부터는 청년운동 에 참여하여 재중국한인청년동맹 중앙위원이 되었으며, 1931년에는 안창호( 安 昌 浩 ) 선우 혁( 鮮 于 赫 ) 차리석( 車 利 錫 )선생과 같이 자활자위를 목적으로 하는 공 평사 운동( 公 平 社 運 動 )에도 참여하였다. 1932년에는 임시의정원 의원에 취임하였 고, 김구 선생을 보좌하여 한국독립당 선전부장을 맡기도 하였다. 1942년에는 임 시의정원 외무분과위원장에 취임하였으며, 1944년에는 임시정부 선전부장, 주석 (김구) 판공비서에 임명되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11월 23일 임정요인의 제1진으로 환국하여 경교장( 京 橋 莊 )을 중심으로 조완구 선생과 함께 김구 선생의 유일한 측근으로 김구 선생을 보좌하 였으며, 한국독립당 선전부장과 비상국민회의에서 선전위원장의 직무를 수행하 였다. 1948년 남북협상에는 4월 20일 한국독립당 대표단 5명과 함께 참가하여 전 조선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이어 개최된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지도 자협의회에 참가한 15명의 한 사람으로 공동성명 기초에 참여하였다. 이후, 남북에서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정부수립에 동참하지 않고, 통일국 가수립운동에 매진하였던 백범 김구 선생을 끝까지 곁에서 보좌하였다. 6.25전쟁 중이던 1950년 9월 납북되었고, 북한에서도 1956년 7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임위원 겸 집행위원을 지내는 등 통일을 위해 노력하다가 1962년 7월 숨을 거두 었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서훈되었다. 남북회담에 참가코자 20일 아침 38선을 넘는 한독당 조소앙 이하 3씨는 월경 감상을 다음 과 같이 술회하였다. 엄항섭 : 길가에 봄은 왔으나 쓸쓸하기 짝이 없다. 외국 사람이 뚫지 못한 38선을 우리가 뚫 고 가니 기쁘기 한량없다. 우리는 이 길을 꼭 뚫어 보겠다. 조완구 : 할 말은 많으나 다 말 못하겠다. 다만 힘껏 이 길을 우리의 힘으로 뚫어 보겠다. 조소앙 : 일로 순탄해서 만사 여의하게 될 줄로 안다. 우리나라를 전면적으로 배우고 문안하 게 된 것이 반갑다. (후략) ( 조선일보, ) 엄항섭 남북협상차 북행한 한독당 등의 명단 남북협상에 참가하기 위하여 북행한 한독(한국독립당) 민련(민족자주연 맹) 민독(민주독립당) 등의 인원수는 수원( 隨 員 )까지 50여 명에 달하며 그 대부분은 중경요인들인데 그 씨명은 다음과 같다. 민족자주연맹 : 김규식( 金 奎 植 ), 원세 훈( 元 世 勳 ), 손두환( 孫 斗 煥 ), 최동오 ( 崔 東 旿 ), 김붕준( 金 朋 濬 ), 신숙( 申 肅 ), 김성형( 金 性 馨 ), 신기언( 申 基 彦 ), 송남 헌( 宋 南 憲 ), 강무( 姜 舞 ), 박건웅( 朴 建 雄 ), 권태석( 權 泰 錫 ), 배성룡( 裵 成 龍 ), 신감규, 한태규( 韓 台 圭 ), 반일병( 潘 日 炳 ), 이병희( 李 炳 熙 ), 여운홍( 呂 運 弘 ), 김시겸( 金 是 鎌 ) 외 수원( 隨 員 ) 수명 민주독립당 : 홍명희( 洪 命 憙 ), 하만호 ( 河 萬 鎬 ), 김창엽( 金 昌 曄 ), 전봉화( 全 逢 和 ), 박명환( 朴 明 煥 ), 홍철희( 洪 鐵 憙 ), 유익열, 박병식( 朴 炳 植 ), 최성수 ( 崔 成 數 ), 김무삼( 金 武 森 ) 제씨 외 수 원( 隨 員 ) 4명 한국독립당 : 김구( 金 九 ), 조소앙( 趙 素 昻 ), 엄항섭( 嚴 恒 燮 ), 조완구( 趙 琬 九,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김의한( 金 毅 漢 ), 신창균( 申 昌 均, 한국독립당 상임 위원), 조일문( 趙 一 文 ), 최석봉( 崔 錫 鳳 ) 제씨 외 수원( 隨 員 ) 6명 < 동아일보, 1948년 4월 22일> 봄 15

16 OUTSIDE FOCUS 독립운동의 중심지 상하이( 上 海 ) 중국에서의 임시정부 활동과 백범 김구의 발자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상하이는 독립운동의 상징적 지역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 까닭은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이곳에 자리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상하 이는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의거로 말미암아 임시정부가 이곳을 떠 날 때까지 임시정부 27년의 역사 중 거의 절반의 기간을 위치하며 독립운동의 중 심지가 되었다. 박걸순 충북대 교수 한국현대사 왜 상하이였는가? 상하이에 한국인이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1880년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처 음 상하이를 왕래한 사람들은 대개 인삼 상인들이었으나, 1883년 해관 설치 이후 에는 관리들도 파견되었다. 민영익은 1885년 어명을 받아 상하이에 정착하여 홍 삼 판매에 힘썼고, 윤치호가 들린 것도 이 무렵이었다. 상하이가 한국인에게 알 려진 구체적 계기는 1894년 재기를 위해 이홍장을 찾아 이곳으로 온 김옥균이 암 살된 사건 때문이었다. 1910년경까지 상하이에 거주하는 한인은 불과 50여 명이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초 기 한인사회의 규모는 매우 작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망국을 전후하여 독립 운동의 뜻을 지닌 망명객들이 이곳을 찾았고, 동제사 박달학원 신한청년당 등 의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17년 14명의 독립운동 가가 발의한 대동단결선언 은 유일무이한 최고기관 으로서 정부의 조직을 역설 한 중요한 선언이었다. 16 백범회보

17 상하이는 1842년 난징조약의 결과 개항을 함으로써 일찍이 국 제도시가 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하이에 둥지를 튼 데에 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상하이가 국제도시로서 해상교통 과 무역의 중심지라서 내왕이 편리하였고 외교활동에 유리하였 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혁명의 핵심 거점지로서 신해혁명에 참 가하였던 신규식 등이 중국 혁명지사들과 교분을 쌓음으로써 독 립운동의 교두보를 미리 확보해 두었던 곳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도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자리한 가장 중요한 까닭은 치외법권 지 역인 조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 세력은 조계지 가운 데에서도 자유 평등을 이상으로 하는 프랑스 조계지를 선택하 였다. 1866년 개시된 프랑스 조계지는 독립운동가들에게는 활동 을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고, 임시정부는 이를 최대한 활용 하며 활동을 전개하였다.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자원한 백범 백범은 고향에서 감격적인 3 1운동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만세운동 참여를 권유하는 청년들의 발길을 돌려세웠 다. 상하이로 망명을 결심한 그였기에 전날까지 소작인들을 동원 하여 가래질을 하며 만세운동에 무관심한 척하였던 것이다. 결 국 그는 15명의 동지들과 함께 사리원과 신의주를 거쳐 안동현에 서 이륭양행 배를 타고 4월 13일 상하이에 도착하였다. 당시 44세 였던 그의 고난의 중국 망명과 임시정부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곧 임시정부를 방문하여 동지들을 만났고, 이날 내무위원 상하이가 국제도시로서 해상교통과 무역의 중심지라서 내왕이 편리하였고 외교활동에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혁명의 핵심 거점지로서 신해혁명에 참가하였던 신규식 등이 중국 혁명지사들과 교분을 쌓음으로써 독립운동의 교두보를 미리 확보해 두었던 곳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자리한 가장 중요한 까닭은 치외법권 지역인 조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봄 17

18 에 피선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내무총장 안창호에게 느닷없이 정부의 문지기를 시켜줄 것을 청원하였다. 처음에 안창호는 이를 의아하 게 여겼으나, 곧 그의 진심을 이해하고 이를 국 무회의에 회부하였다. 그 결과 백범은 문지기가 아닌 경무국장으로 임명되었다. 백범은 자신이 순사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며 완강히 고사하 상하이 마당로 청사 1930 년대 백범과 한인애국단원 최흥식, 유상근 잃는 비운을 당하기도 하였다. 였으나, 끝내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경무국은 내무총장 보좌기구였으나, 그 자신이 백범일 지 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일반국가의 보 통 경찰 행정이 아닌 일제에 맞서야 하는 특수 한 상황에서 중요한 임무가 부여되었고, 백범은 이를 성실히 수행하였다. 이후 백범은 1923년 노백린 내각의 내무총장, 1926년 국무령, 1927 년 제3차 개헌 때 국무위원이 되어 상하이 시 기 임시정부를 이끌어 나갔다. 이 시기 백범은 한 때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 으나, 1924년에는 부인 최준례 여사를 폐렴으로 일제를 놀라게 한 한인애국단 의거 1920년대에 들어 임시정부는 침체에 빠졌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1923년에 열린 국민대표회의도 실패로 끝났다. 또한 일제가 1931년 만보산사건을 왜곡하여 한 중 양 국민을 이간질하여 민족감정을 크게 상하게 하였고, 만주에 괴뢰국인 만주 국을 수립하는 등 독립운동의 내외적 조건이 모두 불리하게 돌아갔다. 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백범은 특무공작을 추진하였다. 특무공작은 일제와의 대규모 전면 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백범은 특무공작으로 의열투쟁을 구상하였고, 실행기구로서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였다. 한인애국단 소속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 8일, 일제의 심장부 동경 한복판에서, 그것도 치안을 담당하는 최고기관인 경시청 앞에서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다. 이 투탄의거는 비록 실패하였으나, 곧 그날 통신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이에 대한 중국 언론의 보도 태도는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일제는 중국 언론의 보도내 용을 빌미로 상하이를 침공하였고, 결국 상하이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18 백범회보

19 4월 29일에는 윤봉길 의거가 뒤를 이었다.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전승을 자축하 고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여 성대한 관병식을 벌이던 기념식장을 폭탄으로 응징하 였다. 이 의거로 시라카와 대장이 죽었고, 많은 일제 수뇌부가 부상하였다. 백범 은 의거 직후 거사의 주역이 한인애국단임을 당당히 밝혔다. 한인애국단 의거는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고, 특히 윤봉길 의거로 중국의 지원을 이끌어 내 독 립운동의 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상하이의 임시정부 청사 1994년 한 독지가가 상하이 최초의 임시정부 청사 를 국내로 반입하였다고 주장 하며 최초 청사의 논쟁이 일었다. 결국 이 논쟁은 중국의 지번이 수차 바뀐 것을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상하이시기 임시정부 청사는 여러 곳을 전전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곳은 하비 로 321호, 백이로 18호, 보강리 27호, 보경리 4호 등이다. 현재 상하이 마당로 306 롱 4호에 복원된 청사는 임시정부가 1926년 7월부터 윤봉길 의거로 상하이를 떠 나기까지 6년간 사용하였던 마지막 청사이다. 1920년대에 건립된 이 청사는 회색 벽돌조 기와지붕 3층으로 건축연면적은 147m2이다. 이 청사는 임시정부가 떠난 지 61년만인 1993년,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당시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재현해 복 원공사와 전시를 마치고 개관하여 지금은 상하이를 찾는 우리 국민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관광과 역사탐방의 명소가 되었다. 한편 상하이에는 윤봉길 의거 현장인 훙커우공원에 그의 호 를 딴 매헌 이란 이름의 전시관이 조성되어 관람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이 외에 상하이에는 육삼정과 황포탄 의거 현장,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 결성 장소, 신대한 발행소, 인성학교 자리 및 상하이에서 활동하다가 타계한 한인들을 모신 만국 공묘(현재 송경령능원으로 바뀜) 등의 유적지가 확인된다. 또 한 백범이 모친과 부인, 두 아들과 함께 한 때(1922~1924) 단 란한 가정을 꾸렸던 황피남로 350롱(현재 영경방 10호)도 위 치는 확인되나, 지금은 그 일대에 완전히 새 건물이 들어서 당 시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비롯하여 중국 각지에 복원된 임시 정부 청사와 한국독립운동 유적지는 과거의 한중 공동투쟁 을 상징하고 미래의 한중 우의를 다짐하는 역사적 증좌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상하이 보창로 청사 봄 19

20 시선집중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기념일, 바로 잡아야 매년 4월 13일, 정부가 주도하는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을 기념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기념일 (이하 임정수립기념일로 약칭)이다. 대 한민국은 그 뿌리와 법통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두고 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해 놓았다. 그리고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참석하여 기념식을 거행해 오고있다. 그러나 4월 13일은 대한민국임 시정부수립과 관계가 없는 날이다. 정부에서 임정수립기념일 행사를 거행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부터였다. 그 이전 에는 정부차원에서 기념행사를 하지 않고 있었다. 1987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우 리 대한국민은 3 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라 하 여,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음을 명시해 놓았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하고, 정부가 주도하여 행사를 거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4월 13일을 임정수립기념일로 정한 것이다. 4월 13일 을 임정수립기념일로 제정한 경위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 당시까지 학 계에는 임시정부가 4월 13일에 수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근거가 된 것은 1932년 상해의 일본총영사관 경찰부에서 펴낸 조선민족운동연감 이란 책자였다. 이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연표로 정리한 것으로, 1919년 4월 13일조에 內 外 ニ 獨 立 政 府 成 立 ヲ 宣 言 シ, 金 奎 植 ノ 外 務 總 長 兼 全 權 大 使 ノ 信 任 狀 ヲ 發 送 ス 이라 한 시 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임시정부가 4월 13일에 수립되었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임시정부가 언제 어떻게 수립되었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임시정부 수립 당시 20 백범회보

21 의 회의를 기록한 임시의정원 기사록 이 그것이다. 이에 의하면 1919년 4월 10일 밤 10시에 29명의 대표가 모였다. 이들은 먼저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곧바로 제1회 회의에 들어갔다. 여기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고, 정부 의 관제, 국무원 선출, 헌법 제정 등의 절차를 거쳐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한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회의를 마친 것은 4월 11일 오전 10시였다.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절차는 없었다.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국무총리와 내 무총장으로 선출된 이승만과 안창호는 미국에, 나머지 총장들도 연해주와 북경 등지에 있었다. 총장으로 상해에 있던 인물은 법무총장 이시영 뿐이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할 때는 7월 17일 제헌헌법을 공포하고, 8월 15일에 정부 수립을 선포하였다. 이것이 연 상된 때문인지 일제경찰 측이 작성한 4월 13일자 내용을 마치 임정 수립을 선포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알 고 보면 이는 임정 수립 선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김규식에 대한 신임장 발송을 말하는 것이었다. 김규식은 임 정이 수립되기 전에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되었다. 임정이 수립되면서 이미 파견된 김규식을 외무 총장으로 선임하고, 그에게 전권대사의 신임장을 발송한 것이다. 그 날이 4월 13일었다. 임정수립기념일 을 정할 때, 소홀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 최소한 당사자인 임시정부에서도 수립기념일 행사를 거행 하고 있었는지, 거행했다면 그 날자는 언제였는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또 일제 측 자료뿐만 아니라, 임시정 부의 자료를 조사 검토하는 작업도 거쳐야 했다. 임시정부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수립기념 행사를 거행하고 있었다. 임시정부가 수립기념식을 거행하였다는 것 은 임시정부에서 생산된 자료에는 물론이고, 중국 신문들의 보도를 통해서도 전해지고 있다. 그 날짜는 4월 11일이 었다. 임시정부에서 4월 11일에 기념식을 거행한 자료는 많다. 지면관계상 2가지만 소개한다. 임시정부에서 4월 11일에 기념식을 거행한 자료 이는 1938년 4월 30일자로 발 행된 韓 民 제18호에 들어 있 는 내용이다. 한민 은 백범 김 구가 이사장을 맡고 있던 한국 국민당에서 발행한 기관지였 다. 당시 임시정부는 호남성 장 사에 머물고 있었다. 4월 11일 에 성립기념식을 거행하였고, 한민 이란 잡지는 이를 축하하 는 특집호를 발행하였다. 사월 십일일이 림시헌장을 발포하고 대한민국림시정부를 성립한 기념일 이란 기사 제목이 말해주듯, 임시정부는 4월 11일에 기념식을 거행 하고 있었다. 이는 임시정부 주석 김구와 외 무부장 조소앙이 중국인사들에 게 보낸 초청장이다. 임시정부는 1942년 중경에 있을 때 기념일 을 맞았고, 기념식에 중국인사 들을 초청하였다. 초청장은 4월 11일이 임시정부 제23주년 기념 일이라는 것과 4월 10일 오후 3 시에 가릉빈관에서 다회를 개최 하니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다 봄 21

22 인연( 因 緣 ) 대한민국의 진정한 영웅들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2013년 봄호부터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노력하셨던 분들을 기억하고 되새겨 보는 칼럼을 마련하였다. 때로는 동지로서, 가족으로서, 이웃사촌으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을 그분들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그 첫 번째로 백범 김구의 어머니이자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곽낙원 여사를 선정하였다....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님이 일정한 거처도 없이 그야말로 임시로 눌러 있는 가 흥의 임정에 왔다는 것은 특히 우리 젊은 층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분이 젊은 사람처럼 독립운동을 한다 하여 여기저기 뛰어다닐 것도 아니요, 임시정부의 일 을 나서서 지휘하고 감독할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되었고, 정신적 으로도 우리의 큰 기둥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미 어느 한 사람의 어머니가 아니었 던 것이다. 위인의 어머니는 더욱 위인다웠다. 평상시에 한마디씩 건네주신 말 속 에, 때로는 눈물이 찔끔거리도록 매섭게 꾸짖는 말 속에 그분의 소박하되 의기서 린 인품이 고스란히 배어나오곤 했다. -정정화, 장강일기 1939년 4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이자 임시정부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뒷 바라지하던 곽낙원 여사가 인후염으로 돌아가셨다. 위인의 어머니는 더욱 위인다 웠다 라는 독립운동가 정정화 여사의 회고처럼 그녀는 젊은 청년과 여성들에게 어 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생일과 팔순잔치마저도 거부했던 그녀는 자신을 위한 음식 장만이나 어떤 혜택도 철저하게 금했다. 대신 그 비용으 로 단총을 구입해 임시정부에 기부하였으며, 청년들에게는 독립의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만년필을 사서 나눠 주며 독려하였다. 자신의 아들을 훌륭한 애국지사로 중국 생활의 어려움으로 인해 둘째 손자 신과 고국으로 돌아온 곽낙원 여사( ) 길러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치열한 독립 투쟁을 한 곽낙원 여사. 일생의 행적과 사상을 헤아려볼 때 의기의 인물로서 한치의 모자람이 없었다. 22 백범회보

23 01 중국 난징( 南 京 )에서 9년 만에 재회한 백범 김구 선생 가족(1934) 02 백범김구선생 서거 후 완성된 곽낙원 여사 동상(왼쪽부터 박승구, 둘째 손자 신, 둘째 손주며느리, 김덕은/ ) 02 업을 포기했다. 과거시험의 부정, 토착양반세력들이 가 지고 있는 재력 등 당시의 정황을 깨닫고 서당공부는 비 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대신, 아들 김구 선 위대한 어머니, 아들을 남다르게 키우다 곽낙원 여사는 1859년 2월 26일 황해도 장연군 목감면에 서 출생하였다. 14세에 안동 김씨 집안의 후손인 24세의 김순영과 혼인하였다. 남편인 김순영이 군역전을 경작하 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였던 탓에 이들은 항상 지역토착 양반들의 천대에 시달렸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신분차 별까지 겪으며 곽낙원의 의식은 자연스럽게 깨어났다. 17세에 난산 끝에 얻은 외아들 김구 선생은 그녀에게는 삶의 희망이었다. 너희 집에 허다한 풍파가 모두 술로 해서 생기니 너마저 술을 먹는다면, 나는 단연코 자살하 더라도 그 꼴을 안보겠다. 며 어린 아들을 일찍부터 바 른 길로 이끌었다. 천형 같은 가난을 대물림할 수 없다 는 생각에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품을 팔아 강습비 와 지필묵을 마련해 아들을 서당에 보냈다. 하지만 바람과는 다르게 아들인 김구 선생은 중도에 학 01 생은 동학에 입교하여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꿈 꾸었다. 동학농민군을 토벌하는 일제의 만행이 나날이 심각해지자 곽낙원 여사는 아들이 걱정되었지만 오히 려 성심성의껏 명주저고리를 지어주며 아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권위 있는 가장이자 강인한 어머니 1896년, 치하포에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 육군 중위 스치다를 처단한 김구 선생은 감옥에 수감되 었다. 일본영사관은 이 사건을 중대사건으로 여기고 김 구 선생을 인천감리서로 이송시켰다. 해주에서 옥바라지 를 하던 곽낙원 여사는 아들과 동행하였다. 감옥에 있 는 아들에게 하루 세끼 밥을 가져다주는 조건으로 박영 문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석방을 위해 탄원서를 제 출하는 등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다. 1898년 3월 김구 선 생이 탈옥한 후에는 대신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이후 곽낙원 여사는 항상 아들의 곁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 어주었다. 1911년 7월 비밀결사인 신민회( 新 民 會 )에 가입 봄 23

24 하여 활동한 연유로 아들 김구 선생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세 번째 옥살이를 하고 있을 때는 네가 경기감사를 한 것보다 더 기쁘다. 는 말로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 뜻이 있으면 반드시 열매가 맺는다. 며 독립의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사기를 북돋아준 그의 의기서린 인품은 강인한 모성 리더십 그 자체였다. 아주었다. 7개월 만에야 아들의 면회가 허가되었지만, 울기만 하다가 간수의 제 지로 말 한마디 못하고 헤어지던 다른 어머니들과는 달리, 곽낙원 여사는 조금도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15년 징역 선고를 받은 김구 선생은 강인한 어머니를 보고 의지를 다지고 힘을 얻었다. 아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잘못을 꾸짖고 깨달음을 준 것도 곽낙원 여사였 다. 남편 김순영을 여위고, 아들이 옥고를 치르면서 가장의 역할을 도맡게 된 그 녀는 독립운동가의 가족으로 생활하면서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분명하게 구분 하였다. 안악사건으로 체포된 후 출옥한 다음 열린 환영회 때는 김구 선생을 당 장 불러 내가 여러 해 동안 고생을 한 것이 오늘 네가 기생 데리고 술 먹는 것을 보려 하였더냐. 라며 따끔하게 꾸중하셨다. 또한 아들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로 떠 날 준비를 하면서 자신의 환갑축하연을 열려고 했을 때는 지금 네가 어려운 중 에 무엇을 준비한다면 도리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다음으로 미뤄라. 며 자신 의 뜻을 관철시켰다. 그 이후로 죽는 날까지 곽낙원 여사는 자신을 위한 음식 장 만과 잔치를 사양했다. 위대한 독립운동가 어머니들의 인연 1922년 곽낙원 여사는 아들, 며느리, 손자가 있는 중국 상하이로 향했다. 하지만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과 그 가족들과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의 나날을 보 내고 있었다. 그중에는 피토하는 고통으로 아들의 수의를 만든 안중근 의사의 어 머니 조마리아 여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31살의 젊은 나이에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이후 조 여사는 가족과 함께 노령 연해주로 망명, 교포들의 분 쟁을 해결하거나 독립운동가들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 1920년 상하이로 거처를 옮긴 조 여사는 곽낙원 여사를 보고 크게 반겼다. 모진 세월을 견뎌낸 두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마음이 컸다. 김구 선생이 동학운동의 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어느 한 쪽이 불행에 빠 지면 서로 돕는다. 는 밀약을 맺은 안태훈 진사(안중근 의사의 아버지)의 집에 의 탁하게 되면서, 곽낙원과 조마리아 두 어머니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고향에서 맺 은 인연을 멀리 타국에서 이어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만남도 잠시, 곽낙원 여사는 1924년 며느리인 최준례 여사가 세상을 떠나자, 자식의 일에 짐이 되기 싫 다며 어린 손자를 데리고 목숨 건 귀국을 감행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1925년 고향인 황해도 안악으로 돌아온 그녀는 어려운 생활 가운데에서도 절약한 24 백범회보

25 생활비를 모아 아들인 김구 선생에게 송금하였다. 그리 고 항상 구국기도를 하면서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였다. 진정한 모성 리더십으로 항일구국운동을 이끌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인해 국내에 있던 곽낙원 여사도 일본 경찰의 심한 감 시를 받았다. 임시정부 측에서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가 까스로 그를 설득하는데 성공하였다. 1934년 두 손자를 데리고 상하이에 도착한 그는 9년 만에 재회한 김구 선 생에게 나는 지금부터 너 라는 말을 고쳐 자네 라 하 고, 잘못 하는 일이 있어도 말로만 꾸짖고 회초리를 쓰 지 않겠네. 라고 인사를 대신하였다. 아들의 잘못을 두 고 가차 없이 매를 드는 어머니였던 곽낙원 여사는 다른 독립운동가에게도 똑같이 엄격하였다. 쉬운 한글 몇 자 와 아라비아 숫자를 읽을 정도로 배운 것이 없는 곽낙 원 여사이지만 어느 지식인 못지않게 침착하고 대범하 고 경우가 밝았다. 이봉창 윤봉길 의사가 피를 흘린 뒤로, 각처에서 원조 가 들어와 돈이 설사 얼마쯤 여유가 있어졌다고 하자. 그래 그 동지들 피 판 돈으로 고기사서 구워먹을 생각 을 한단 말이냐. 의사들의 혼이 무섭지도 않느냐. 며 고 기를 먹고 싶어하던 청년들을 호되게 꾸짖은 일화는 오 래도록 인구에 회자되었다. 이러한 곽낙원 여사의 청천 벽력 같은 꾸지람 덕에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의 인사들, 청년들은 큰 가르침을 얻었다. 곽낙원 여사는 청년들을 꾸짖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뜻 이 있으면 반드시 열매가 맺는다. 며 독립의 의지가 꺾이 지 않도록 사기를 북돋아 주기도 하였다. 독립운동에 매 진하는 아들을 대신해 두 손자를 키워내는 것에 그친 것 이 아니라, 장손인 인( 仁 )을 군관학교에 입교시켜 나라의 독립에 힘을 보탤 수 있도록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일 흔이 넘은 나이에도, 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에서 군사 훈련 중인 청년 20여 명의 병영생활을 돌보는 등 조국광 복을 위한 청년들을 양성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매서운 꾸지람, 따뜻한 격려, 스스로 솔선수범하는 그의 의기서린 인품은 강인한 모성의 리더십 그 자체였다. 어서 독립이 성공되도록 노력하고, 성공하여 귀국할 때 나의 유골과 인의 어미의 유골까지 가지고 돌아가 고향 에 묻어라. 는 유언을 남긴 곽낙원 여사에게 1992년 대한 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곽낙원 여사 장례식 모습(중국 충칭( 重 慶 ) 화상산( 和 尙 山 ), ) 봄 25

26 Close-up 백범 김구 인장 백범이 개인적인 용무에 사용했던 김구 인장은 등록문화재 제440-2호, 제44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국에서 환국한 이후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인장을 소개한다. 등록문화재 제440-2호 백범 김구 인장 金 九 규격(가로 세로 높이) : mm 재료 : 계혈석, 제작시기 : 1945년경 추정 백범 김구 선생이 개인적인 용무에 사용하셨던 김구 ( 金 九 )인장은 황색 계혈석( 鷄 血 石, 주홍빛 무늬를 띤 석 회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도장의 윗부분에는 해표( 海 豹, 바다표범과에 속한 동물)가 새겨져 있다. 이 인장은 중 국으로부터 환국하신 이후 주로 사용하신 것으로 보여 지며, 1946년 김상정( 金 商 玎, 1875~1954)에게 보낸 명함 과 1946년 7월 11일에 안창호( 安 昌 鎬 ) 목사에게 보낸 사 진 그리고 정인보( 鄭 寅 普 )에게 보낸 명함과 사진에 이 인장이 찍혀있다. 26 백범회보

27 등록문화재 제440-3호 백범 김구 인장 寬 和, 金 九 之 印, 白 凡 수량 : 3과 규격(가로 세로 높이) : mm, mm, mm 재료 : 옥석, 제작시기 : 1946년 김구 선생이 사용하시던 낙관( 落 款, 그림이나 글씨를 완성하 였을 때 작품에 작자가 이름이나 아호( 雅 號, 문인이나 예술 가 등의 호나 별호를 높여 이르는 말), 제목 등을 쓰고 도장 을 찍는 것 또는 그렇게 찍는 도장)이다. [ 寬 和 ], [ 金 九 之 印 ], [ 白 凡 ] 의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각각 두인( 頭 印 ), 성명인( 性 名 印 ), 아 호인( 雅 號 印 ) 으로 사용되었다. 검은 옥석( 玉 石 )에 연잎 무늬가 새 겨져 있고, 惺 齊 作, 丙 戌 仲 春 惺 齊 仿 古 라는 측관( 側 款, 인장의 옆 면에 새긴 문자)이 있어 근대기의 유명한 전각가 성재( 惺 齊 ) 김태석 ( 金 台 錫, 1875~1953)이 1946년 2월에 새긴 인장임을 알 수 있다. 이 낙관은 김구 선생이 주로 글씨를 쓸 때 사용했던 것으로 1945년 11 월 환국하신 이후에 쓴 유묵( 遺 墨 )의 대부분에 이 인장이 찍혀 있 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김태석( 金 台 錫 )_ 1875(고종 12) 서예가. 본관은 경주. 호는 성재( 惺 齋 ). 전서( 篆 書 ) 예서( 隷 書 ) 해서( 楷 書 )에 뛰어났으며, 전각( 篆 刻 )도 잘하였다. 해서는 안진경체( 顔 眞 卿 體 )를 따랐다. 일찍부터 협기( 俠 氣 )와 풍류로 알려졌으며, 중국과 일본을 만유( 漫 遊 )하였다. 중국에 갔을 때에 위안스카이( 袁 世 凱 )의 옥새( 玉 璽 )를 새겼고, 그의 서예고문을 지냈다. 항일의식을 지닌 문사( 文 士 )였으며, 광복 후 서예가 단체인 대동한묵회( 大 東 翰 墨 會 )를 조직하였다. 합천 해인사의 자통홍제존자사명대사비 慈 通 弘 濟 尊 者 四 溟 大 師 碑 ( 卞 榮 晩 撰, 吳 世 昌 頭 篆, 1947) 등 많은 비명을 썼다 봄 27

28 역사의 현장 근현대 역사 복원 현장, 경교장 개관 의의와 역사 속 이야기 I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에 위치한 강북삼성병원을 방문하면 지상 10층의 초현대식 병원 건물과 바짝 붙어 서있는 2층짜리 단아한 근대식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높이 솟은 건물들에 포위당해 더 한층 작아 보이는 이 건물이 바로 1945년 광복을 맞아 중국에서 환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마지막 활동을 전개한 역사의 현장, 경교장 ( 京 橋 莊 )이다. 2013년 3월 2일, 경교장이 약 3년간의 원형복원 공사와 전시를 마치고 임시정부 청 사 당시 모습으로 국민들 곁에 돌아왔다. 임시정부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주석 김구( 金 九, 1876~1949)가 이곳에서 서거한 후 외국 대사관(저)과 병원 등으로 사 용되며 대대적으로 변형, 훼손되어 온 지 실로 64년만의 일이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복원과 개관을 맞아 경교장의 역사적 성격, 훼손 및 복원과 정, 그리고 이번 복원이 갖는 의미와 우리에게 남은 과제를 짚어보기로 한다. 김수정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조사연구팀장 대한민국이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경교장 오늘날 대한민국의 출발점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하여 분출된 민족의 독립의 지를 민족 대표자들이 한데 결집하여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이다. 그것이 가 장 명확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헌법 전문( 前 文 )이다. 1948년 제헌 헌법은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 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라고 규정하여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1919년 건립된 대한민국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했고, 1987년 개정된 현 행헌법에서는 우리 대한국민은 3 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 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라고 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임 28 백범회보

29 시정부의 법적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음을 보다 분명히 하였다. 경교장은 바로 대한민국이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45년 환 국 후 입주하여 정식 정부 수립을 위한 과도정부 수립 시까지 최고 의사결정기구 인 국무위원회( 國 務 委 員 會 )를 수차례 개최하고 국내외 주요정세 변화에 대응해 활동해나간 실질적인 정부청사 였다. 그리고 주석 김구를 비롯한 각료들이 거주 하는 거소( 居 所 )의 성격도 겸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에서만 활동한 것 으로 알고 있어 상하이나 충칭 등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는 알면서도, 국내에 있는 경교장이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고 있다. 그것은 1945년 광복을 맞아 대한민국 임 시정부가 미군정이 실시되고 있는 조국으로 환국( 還 國 )하게 되면서 제2차 세계대 전의 전승국인 연합국들에게서 정식 정부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개인 자격 으로 돌아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45년 11월 23일과 12월 1일 1, 2진으로 나누어 환국한 임시정부는 김구 주석을 비롯한 요인들 스스로도 그랬고, 우리 국민, 각 정당 사회단체, 언론도 모두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을 정부의 환국 으로 인식하 고 환영하였다. 따라서 연합국이나 미 군정의 시각에서 보면 요인 개인 자격의 귀 국이었으나, 우리 민족의 시각에서 보면 정부 의 환국이었던 것이다. 환국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환국봉영회 를 통해 광산부자 최창학 (1891~1959)으로부터 무상 사용토록 제공받은 경교장을 중심으로, 통일된 독립 자주의 민주국가 수립을 위해 활동했다. 경교장이 임시정부 청사였던 만큼 이곳에서는 그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무위원 회( 國 務 委 員 會 ) 가 최소 8차례 이상 개최되었던 사실이 당시 신문 등을 통해 확인 봄 29

30 경교장에서의 반탁 집회(1946년 1월) 년 4월 19일 남북협상을 위해 북행하는 김구 된다. 특히, 1945년 12월 3일 개최된 환국 후 첫 국무위원회에는 이승만도 주미외 교위원부 위원장의 자격으로 참석했다. 동 회의에서는 환국 이후 다각도로 수집 된 국내외 동향을 공유하고, 향후 건국과정에서의 임시정부의 역할 등이 논의되 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신탁통치 반대운동과 남북통일운동의 산실 이후 경교장은 해방공간에서 우리민족의 진정한 독립자주와 통일정부 수립 의지 를 대내외에 알린 신탁통치 반대운동과 남북협상의 산실이 되었다. 카이로회담에서 선언된 한반도 독립의 현실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모스크바 3 상회의에서 즉각적 독립이 아닌 5년 동안의 신탁통치가 결의되었다는 사실이 1945 년 12월 28일 국내에 전해지자 당일 밤 경교장에서는 긴급 국무위원회가 소집되 었다. 주석 김구를 비롯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반탁운동을 제2의 독립운동으 로 여기고 경교장을 무대로 활발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반탁운동은 1947년 제2 차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로 신탁통치안이 폐기되기까지 경교장을 주 무대로 전 개되었다. 1947년 9월 미국에 의해 한반도 문제가 UN에 이관되고 UN총회는 인구비례에 의 한 총선거를 실시하여 정부를 구성하는 방안을 결의하였다. 북한에서 UN한국임 시위원단의 입경이 거부되고 남한에서도 1947년 정읍발언을 통해 단독정부 수립 주장을 공식화한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단정파가 우세해지면서 결국 1948년 2월 UN 소총회에서도 선거가 가능한 지역, 즉 남한에서만의 UN 감시하의 총선거가 결의되자 임시정부의 문지기 이자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김구는 김규식과 함께 남 30 백범회보

31 북 분단을 막고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김일성, 김두봉에게 남북협상을 제의 하고, 1948년 4월 19일부터 4월 30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에 참가하였다. 비록 남북협상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김구는 북한에서 돌아온 후에도 단정 반대세력을 규합, 5 10 총선 참여를 거부하고 경교장을 무대로 통일 운동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그 뜻을 제대로 펴보지 못한 채 1949년 6월 26일 대한 민국 육군 소위이자 주한미군 방첩대 요원인 안두희의 흉탄에 의해 2층 집무실 남쪽 창가에서 암살당하였다. 김구 주석 서거 후 각국 대사관과 병원으로 사용되며 원형 훼손돼 김구의 서거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청사이자 김구의 거소였던 경교장은 큰 부 침을 겪게 되었다. 서거 약 두 달 뒤인 1949년 8월 22일 김구의 유족은 건물 소유 자인 최창학의 요구로 경교장을 떠나야만 했다. 최창학은 유족을 내보낸 지 3개월 뒤인 1949년 11월, 당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 국 중 하나이자 미국 다음 가는 우리나라의 외교 상대국이었던 중화민국(일명 타 이완) 정부의 초대 주한대사인 소육린( 邵 毓 麟 )에게 다시 경교장을 무상 대여해 주 었다. 그리고 1950년~1953년 한국전쟁 기간 중에는 미군 특수부대 주둔지로 사 용토록 한다. 이후 1956년~1967년에는 월남대사관으로 사용되어진다. 이 시기까 지 경교장은 비록 용도는 임시정부와 동떨어지게 활용되고, 외부 창의 일부와 1 층 귀빈식당 내부가 다소 변형되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임시정부 사용 당시 모 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7년 오늘날 강북삼성병원의 전신인 고려병원에서 최창학 후손으로부터 경교장을 비롯한 일대 토지를 병원용지로 사용하기 위해 매입함으로써 경교장은 내외부가 결정적으로 훼손되어지게 된다. 고려병원은 경교장 후면 벽체를 터서 그 뒤쪽에 신축하는 7층 건물과 연결하고 내 부를 완전히 병원으로 리모델링해 1968년 개원하게 된다. 1996년에는 강북삼성병 원이 대규모 확장 계획을 세우면서 그나마 남은 경교장을 완전히 철거하는 것이 계획되기도 했다. 다행히 1997년 3월 25일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서 원위치 보존 을 결정함으로써 경교장은 현위치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01년~2004년 종로구에서 시 문화재위원회 심의에 상정하지 않은 채 허가한 강북삼성병원의 증 축공사로 경교장의 경관은 다시 한 번 더 악화되어지게 되었다. 1967년 고려병원 신축을 위해 경교장 후면이 변형되어지고 있는 모습 1967년 고려병원 신축을 위해 정면과 내부가 리모델링되고 있는 모습 여름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병원시설에 둘러싸여 있는 경교장 봄 31

32 다시 읽는 백범일지 I 2013년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제 200회 시상식 (계성고등학교, ) 2005년 11월 육군사관학교를 시작으로 군부대 및 전국의 중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백범 김구 선생 선양사업을 위해 실시해온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는 올해로 9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2012년까지 260회의 시상식에 총477,444 명의 젊은 미래의 주역들이 참여하였다. 2013년에는 40여개의 단체가 본 대회에 참가, 총300회의 시상식과 함께 참 가자가 5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제1회 시상식 (육군사관학교, ) 제100회 시상식 (1군단, ) 32 백범회보

33 2013년 상반기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는 17개 학교를 대상, 8,476명이 참가할 예정이 다. 특히, 지난 4월 25일에 실시한 지리산고등학 교(경남 산청군)는 서울에서 학교까지 약 4시간 이 소요되는 산골마을에 있는 전교생이 63명인 기숙형 특성화 고등학교이다. 지리산고등학교는 공부를 하고 싶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에게 무상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자 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결과, 2013년 20명의 졸업생 중 서울대 의예 과를 포함하여 명문대 5명, 서울 및 수도권 대 학 4명, 총 9명이 진학하는 등 해마다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상위대학 및 국립대학에 8~12명 이상이 진학하여 대한민국의 인재, 세계의 인재 로 자라나고 있다. 우리 백범김구기념관에서는 앞으로도 소외된 지역의 작은 학교들을 찾아 백 범 정신과 나라사랑 정신을 지속적으로 전파하 는데 노력하고자 한다. 2013년 상반기 <백범일지>독서감상문쓰기대회일정 일 정 학 교 참가인원 소재지 12(금) 김해분성여자고등학교 400명 경남 김해시 4월 25(목) 지리산고등학교 70명 경남 산청군 8(수) 동일여자상업고등학교 361명 서울 금천구 13(월) 이화여자고등학교 428명 서울 중구 20(월) 부산용인고등학교 934명 부산 동래구 5월 24(금) 서해고등학교 850명 경기 시흥시 27(월) 대영고등학교 245명 경북 영주시 29(수) 양정고등학교 450명 서울 양천구 31(금) 여수여자고등학교 400명 전남 여수시 7(금) 영일고등학교 534명 경북 포항시 10(월) 동지여자고등학교 627명 경북 포항시 12(수) 진교고등학교 150명 경남 하동군 14(금) 한림디자인고등학교 835명 충북 충주시 6월 19(수) 김해영운고등학교 351명 경남 김해시 21(금) 속초고등학교 791명 경원 속초시 24(월) 기계고등학교 150명 경북 포항시 28(금) 분당영덕여자고등학교 900명 경기 성남시 봄 33

34 34 백범회보

35 미, 남가주 애너하임에서 제2회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시상식 개최 김구재단 김호연 이사장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미주한국학교연합회와 공동으로 재미 동포 차세대들에게 백 범 김구 선생의 나라사랑을 알리고,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바른 정체성을 지니도록 작년에 이어 미주한국학교연합 회 소속 한국학교에 재학중인 4~12학년 학생들 대상으로 제2회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를 개최하였다. 올해는 28개교 학교에서 총 344명 학생들이 김구,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다 를 읽고, 194명이 응모하였으며, 그 중 18명이 최종 수상자로 선발되었다. 백범상에는 샌디에고 갈보리 한국학교에 다니는 이혜림 양이 백범이 꿈꾸는 아 름다운 나라 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를 맡은 중견 소설가인 숭실대 조성기 교수와 김미진 작가는 김구선 생의 전기를 읽으며 조국의 역사와 현실에 눈을 떠가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기특하다 고 말하며, 백범상 을 받은 이혜림 학생의 글은 자신의 생활을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책의 교훈을 잘 적용 하고 있는 점이 돋보여 백범상 수상자로 결정하게 되었다 고 심사평을 통해 밝혔다. 시상식은 5월 4일 저녁 5시 남가주 애너하임(Anaheim), 사랑의 교회 본당에서 600여 명의 한국학교 학생들과 선생 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열렸다. 시상식에는 김구재단 김호연 이사장, 천진환 부이사장, 백범선생의 친손녀인 김미 이 사가 직접 참석하여 수상자들을 축하하고 격려하였다. 수상자들에게는 상장과 상패, 상금이 수여됐다 봄 35

36 다시 읽는 백범일지 II 자 유를 주세요. 하고 외치는 학생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학생의 인 권을 무시한다고 외치는 우리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을까 우리가 과연 자유 라는 그 단어의 진정한 뜻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약 83년 전, 우리나라 대한민국, 자유 라는 이 두 단어를 위해 자신들의 목숨까지 버리면서까지, 당신 의 소원이 뭐요 하고 물어보면 언제나 한결같이 대한민국의 자주 독립이요 하고 외치는 그들 앞에서 우리는 과연 자유 라는 것을 논할 수 있는 것일까.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내내 든 이 생각들은 며칠 동안 끊임없이 나를 휘둘렀다. 살 기가 각박하다고, 내 아들, 딸 낳으면 이민 갈 거라고, 이런 더럽고 치사한 나라 엔 살기 싫다고, 자신에게 말하고 외치는 내가, 내 친구들이, 내 주변 사람들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들은 그들의 후손을 위해, 우리를 위해, 자신들같이 왜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백범상 수상삭 우리는 자유를 논할 수 있는가 구초원 지리산고등학교 3학년 놈들 밑에서, 다른 열강 국 가들 밑에서 머리를 조아 리며 살지 않게 하기 위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지식이든 행동이든 모든 것들을 다했는데 우 리는 단지 이 부조리한 사회가 우리를 너무 힘들게 한다고 출세하지 못하게 한다 고 하층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이 나라를 부정하고 천대하고 있다. 만약 생각하기도 싫지만 예전과 같이 그런 상황이 온다면, 우리나라를 뺏기는 그 순간이 온다면 과연 우리들은 우리 조국을 위해, 우리나라를 위해, 오직 이 대한 민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몸속에 폭탄을 숨겨 적에게 갈 수 있을까. 죽기보다 더 괴로운 고문을 받아가면서까지 독립 을 외칠 수 있을 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나라가 아무리 썩어빠졌다 한들 욕할 자 격이 없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이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데 무슨 수로 욕을 하 겠냐 말이다. 아직도 여전히 우리나라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이 백범일 지를 읽어 보았으면 한다. 아마 이봉창 선생님께서 마지막까지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받치고 떠나가는 그 모습을 읽는다면, 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이 일본인들의 교활한 덫에 걸려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그 모습을 읽는다면 아무리 글이라 할진 들 그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 나라를 떠나겠다, 대한민국은 망하고 말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 이들은 없어질 것이라고 장담한 다. 우리는 한 민족이기에, 수 백 년 동안 열강들의 침략을 받고도 수 없이 나라 를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에도 우리는 이겨냈고, 이 나라를 지킨 우리 선조들의 자손이기에 말이다. 36 백범회보

37 백범일지는 마냥 자신의 업적을 나열한 자서전이 아니었다. 우리들에게 희망 과 용기를 주는 단순한 에세이도 아니었다. 백범일지는 우리가 아닌 우리나라, 이 대한민국 을 위해 적혀진 것이고, 독립운동을 하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그 분들의 마음이, 열정이 이 나라에서 사라지지 않게 그들을 영원히 기리기 위 해 쓰여진 것이었다. 김구 선생님의 눈을 통해 혼란스러웠던 조선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꺼져가는 조선이라도, 왜구의 침략을 받고 정체성을 잃어가는 그 와중에서 도 나라를 지키려는 여러 독립 운동가들의 열망을 볼 수 있었다. 유교의식이 뿌리 깊이 박혀있는 이 조선에서 높은 지식을 가진 선비든, 천한 계급을 가진 노예든 천민이든 이 나라를 지키려 그들은 계층을 막론하고 의병이 되었고, 독립투사가 되었다. 눈앞에서 자신의 동료들이 죽어가도 끝까지 싸워냈고 일 본인들이 저지르는 어이를 상실한 행동에도 그들은 우리들에게 대한민국 이 라는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이를 꽉 물고 참고 이겨냈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 에게 너는 배운 것도 없고, 물려줄 것이라곤 너의 그 몸뚱아리 밖에 없으니 이 나라를 위해 너 한 몸 다 받쳐 싸워라. 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보내 는 조선의 위대한 어머니 를 보았다. 섬이라 할 수도 없고, 대륙이라 할 수도 없어 대륙으로 나가려는, 바다로 나가 려는 주변국들의 여러 침략에도 우리 조상들은 수 백 년을, 수 천 년을 싸워 서 이겨냈다. 비록 지금 이 대한민국 은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의 연속이기 도 하고 선조께서 물려주려고 한 자유로운, 사람들 사이의 계급이 없는 누구 에게나 평등한 그런 나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과 거에 여러 열강들의 침략을 이겨냈듯이 지금 이 현재에서도 대한민국의 많은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사람들 사이의 평등한, 누구에게나 자랑스러 운 위대한 대한민국 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는 불평만하고, 우리나라를 믿지 않았던 나이고, 별거 아닌 거에 자 유를 뺏는다고 인권을 무시한다고 외치던 나이지만 선조께서 자신들의 목숨 을 버려가면서까지 지킨 대한민국 이라는 이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위대한 우 리 선조의 후손으로서 우리나라를 대한민국 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펼칠 구 초원 으로 아직 남은 70여 년을 살아갈 것이다. 미 니 인 터 뷰 백범상 수상한 구초원 학생 Q 백범상을 받은 소감은? 생각도 못했는데 상을 받게 돼서 기뻤 어요! 저의 수상 소식을 듣고 저희 할 아버지가 특히 좋아하셔서 효도한 기 분이 들기도 해요 전쟁에 직접 참전하신 할아버지의 나라사랑은 정 말 특별하거든요. Q 백범일지 를 읽고 구초원 학생이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면? 감상문에도 언급했지만 우리사회에 대한 불만이 참 많았어요. 그런데 백 범일지 를 통해 우리나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거예요. 지금은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Q 고3이다. 장래의 꿈은 무엇인가?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이나 인물 중심 의 다큐를 찍는 PD가 되고 싶어요. 백범일지 를 읽고 나서는 우리나라 를 세계에 알리는 영상도 만들어 보 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Q 구초원 학생에게 백범이란? 자랑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훌륭 한 위인이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 러워요! 내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첫째는 대한 독립이오, 둘째 도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셋째도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 주 독립이오 라고 외칠 것이다. -김구 봄 37

38 특별한 하루 신사중학교 편 백범신문 만들기 백범의 정신과 사상을 체득하다 4월 12일, 신사중학교 1학년 새내기들이 진로체험활동 시간을 통 해 백범신문 만들기에 도전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어떤 분이 실까요? 학예사 정지혜 선생님의 질문으로 시작된 백범신문 만 들기는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의 관심과 호기심으로 열기가 뜨 거워졌다. 기념관에서 준비한 영상자료를 통해 신문 만드는 방법과 백범 김 구 선생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을 습득한 후, 학생들이 직접 백범 김구 선생을 취재하는 백범신문 만들기 프로그램은 학교에서 배 38 백범회보

39 울 수 없는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뿐만 아니라 교과서 속의 위인이었던 김구 선생을 보다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백범신문만들기는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 하는 신문의 기능을 중심으로 수업이 시작됐다. 모둠별로 이름 을 가진 6개 편집국은 각각 편집장과 기자 역할을 정한 후 자신 의 업무를 맡았다. 기자 신분증을 갖춘 학생들은 준비된 10개의 특종 중 3개를 선택한 후 취재를 시작했다. 주제가 확실하게 부 각되는 특종을 선택해 취재를 시작한 학생들은 각자 흩어져 1,2 층 전시관의 다양한 자료를 통해 백범 김구에 대한 취재를 마친 후 기사를 작성했다. 작성 된 기사는 타블로이드판 종이신문으 로 만들어졌다. 최고의 평가를 받은 편집국은 각자의 혈액형을 따서 이름을 지 은 ABO편집국이 차지했다. 잘 짜인 구성과 진지함으로 신문 만 들기에 임한 ABO편집국 멤버들은 발표를 통해 참석한 반친구들 의 박수를 받았다. 편집장을 맡은 황정원 학생은 처음에는 상 을 받으려고 열심히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백범 김구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 이 절로 우러났다 며 백범 김구 선생님의 희생정신 을 본받고 싶다 고 소감을 전했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백 범의 나라사랑을 깊이 깨닫고 자신도 우리나라를 더욱 사랑해 야겠다 고 다짐했다. 정지혜 학예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들 전시장에서 취재 중인 학생들 미 니 인 터 뷰 윤지원 선생님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는 모습 Q. 백범신문 만들기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학교 진로 체험활동 프로그램 중에 직업의 세계를 알아보면 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올해로 3년째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들의 평가가 높아지고 있어요. 오늘 기념관에 온 학생 들은 백범 김구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배우면서 동시에 신문기자, 학예사 등의 직업을 보고 체험하게 됩니다. Q. 백범신문 만들기 프로그램의 장점을 꼽아주신다면? 나라 사랑의 중요성, 희생정신 등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몰랐던 사실 을 알고 깨닫는 매우 소중한 시간입니다. 조별 활동을 통해 협업의 중요성을 깨 닫게 되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에요. 최고의 성적을 받은 ABO조 봄 39

40 줌인, 현장 속으로 I 백범김구기념관 2013년 어린이날 문화행사 백범김구기념관에서는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2013 백범김구기념관 어린이날 문화행사 를 개최했다. 이번 행 사는 어린이와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액션드 로잉-히어로 공연을 비롯해 영화상영, 부대행사로 태극 기 목각판 체험, 나의 소원 써보기, 풍선아트, 페이스페 인팅이 등이 진행되었다. 또 전시관에서는 행사에 참여 한 가족들이 백범 김구의 생애과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 참가자들이 전시관에서 도슨트에게 백범 김구 선생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 고 느낄 수 있도록 도슨트와 함께 떠나는 역사여행 을 3회 40 백범회보

41 에 걸쳐 진행했다. 대회의실에서 총 2회에 걸쳐 진행된 액션드로잉-히어로 공연은 경쾌한 코미디 마임과 음악, 신나는 춤이 함께 어우러져 많은 관 람객들을 감동으로 물들였다. 특히 관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이 벤트로 많은 호응을 얻어냈으며, 액션페인팅으로 김구 선생의 그 림을 선보여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컨벤션홀에서는 지구대표 롤링스타즈, 오션스, 쿵푸팬더2, 장 풍선아트는 어린이들에게 인기 최고! 화신은 고양이 등 온가족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를 상영하였다. 특히 새로운 바다 속 세계가 펼쳐지는 환상적인 영화 오션스 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가족 모두가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부대행사에는 어린이들 이 좋아하는 동물과 장난감 모양을 만들어 주는 풍선아트, 꽃 동물 문양을 그려주는 페이스페인팅은 어린이의 인기를 독차지 했다. 3.1운동 당시 쓰였던 목각판 태극기와 최초의 태극기로 알 려져 있는 박영효 태극기 찍기 체험,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 원 을 따라서 나의 소원을 직접 써보는 체험활동을 통해 우리나 라의 소중함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깨닫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번 행사에는 약 2,000여명의 어린이와 학부모가 참여하여 어린 이를 미래의 꿈나무로 아끼고 사랑하셨던 백범 김구 선생의 마 음을 함께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기념관 잔디밭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가족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형제 태극기 찍기 체험을 하고 자랑스럽게 찰칵~ 나의 소원을 또박또박 쓰고 있는 어린이와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어머니 봄 41

42 줌인, 현장 속으로 II 01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역사탐방 백범의 사상과 우리 역사의 흐름 한 눈에 파악 교과서, 위인전 속의 인물을 생생하게 느끼고 호흡할 수 있어 백범김구기념관에서는 4월 13일 임시정부수립일을 기념하여 온 가족이 함께 역사의 현장을 보고 느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가족 과 함께 떠나는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백범김구기념관, 효창원을 시작으로 안중근의사기념관, 서대문 형무소역사관을 거쳐 경교장에서 마무리 한 이번 역사탐방은 무 엇보다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애쓰신 독립투사들과 백범 김구 선생의 유적이 있는 곳을 한 번에 둘러보며 독립운동의 역 사를 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자주독 백범회보

43 립을 위해 애쓰신 독립투사들을 비롯해 백범의 생애와 사상, 업 적을 보다 가깝게 느끼고 깨닫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초등학생인 자녀와 참여한 서정원 씨는 전문 학예사의 귀에 쏙 쏙 들어오는 쉽고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눈으로 직접 보니 책 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좋다 고 말하면서 이번 프로그램의 만족 도를 표현했다. 두 자녀와 함께한 김선영 씨는 교과서 내용 이외 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흥미가 높아졌다 며 독립운동의 흐름을 파악하고 백범의 생애와 사상을 통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고 말했다. 4.19와 임시정부수립기념일을 기념하여 참가했다는 김태영 씨는 삼의사 묘 에서 진심을 다해 참배 하면서 학예사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자녀를 보며 보람을 느꼈다 고 한다. 안중근의사기념관으로 가는 자투리 시간에는 참가자 전원이 직 접 자신의 호를 정해 부르는 호 짓기 활동 을 통해 천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백범 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또 OX퀴즈를 통해 앞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복습하면서 재미와 학습을 동시에 얻는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참여한 학부모들은 자녀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공부가 되는 좋은 기회였다 며 이런 기회가 자주 있길 바란다 고 입을 모아 전했다. 교과서, 위인전 속의 인물을 생생하게 느끼고 호흡할 수 있었던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역사탐방이었다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가족과 함께 떠나 는 역사탐방 기념촬영 02 백범 김구 선생이 수감되었던 방이라 고 전해지는 곳에 직접 들어가서 밖을 내다보는 어린이들 03 OX퀴즈를 통해 배운 내용을 복습하 고 있다. 04 안중근의사기념관 입구에서 단체촬영 을 한 3조 05 참가자 전원이 경교장 복원의 의의를 듣고 있다. 06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직접 자료를 찾 고 있는 자녀와 어머니 봄 43

44 통일교육 가이드 2013년 우리의 통일을 생각한다 김민곤 경기고 교사, 화해평화통일교육 카페 회원 통일은 왜 해야 하는가? 전쟁은 우리 민족이 피땀으로 쌓아올린 모든 성취를 한 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괴물이다. 통일이 안 된 한반도는 언제든지 다시 제2차 한국전쟁의 참화에 휩쓸려 들어갈 수 있다. 만에 하나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 땅은 다시 한국전쟁 당시 북한지역을 융단폭격하고 나서 미국의 한 장군이 말했다는 석기시대 로 돌 아가고 말 것이다. 최근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한 한반도의 위기 상황을 보더라도 통일은 우리 민족에게는 바로 죽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2013년 통일을 생각하는 자세 오늘날 우리 국민 중 40%는 통일이 필요 없다 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해 실시한 국민 통일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특히 청소년들은 10명 중 2명만이 통일의 필요 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한 일간지의 조사에서도 20대 젊은 세대가 통 일을 가장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통일에 대한 기대치도 가장 낮다는 통계를 제시 했다. 이 글을 읽는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막상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의 국력 이 한층 커질 것이라는 점에는 대체로(68%, 동아일보. 2013년 4월 1일 여론조 사 결과) 동의하면서 그 가능성을 비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앞으로 통일 시대의 주역으로 살아가면서 통일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청소년들 이 그 구체적인 혜택을 알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통일 문제를 연 구하는 전문가들은 대부분 남북통일을 우리 사회, 우리 경제, 우리 문화의 blue ocean 으로 규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통일로 가는 길이 우리 사회가 품 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여 민족의 살림살이가 더 풍성해지고 국민의 행복지 수가 더욱 높아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44 백범회보

45 청소년들의 통일에 대한 인식이 변한 데에는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 퍼진 이북 사정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퍼주기 나 통일비용 과 같은 남북 화해협력과 교류증진 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정부를 공격하는 정치 담론이 흑 사병처럼 창궐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최근 상황을 보면 서 우리는 통일을 어떤 눈으로 봐야 할 것인가? 먼저 우 리는 통일을 어떤 두려운 상황 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우 리 겨레가 함께 기대할 미래 로 생각해야 한다. 한반도 에 태어나서 대대로 영원무궁 살아갈 우리 민족은 서로 공존공영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 공동체다. 비 록 지금은 갈라져 정권 차원에서 서로 불바다니 정권 소 멸이니 위협하며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역사를 긴 호흡 으로 성찰해 보면 언젠가 하나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 다. 또한 우리는 통일을 한꺼번에 완료하는 어떤 사건으 로 봐서는 안 된다. 그동안 발표된 남북 합의나 공동선 언의 내용은 흡수통일이나 전쟁을 통한 통일을 명확히 배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런 방식의 통일이 초래할 폐해를 지적하 면서 우리 민족의 통일은 이 두 방식을 절대 배격하고 평화롭게 긴 과정을 거치는 통일을 지향해야 함을 강 조한다. 통일을 위해 꼭 알아야 할 기본 개념들 통일을 하나의 긴 과정으로 볼 때, 우리는 사실 상의 통 일(de facto unification) 과 법적 통일(de jure unification) 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 남과 북은 전혀 다른 사회 정치 경제 체제위에 살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형성된 자본 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모순을 안고 있는 두 체제의 통합 은 매우 어렵다. 또 반세기가 넘는 분단체제는 남과 북 의 문화와 정서적 통일에 분단의 세월보다 더 많은 시 간을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의 나라가 되는 법적 통일 을 한참 뒤로 미루어 두고 사실 상의 통일 을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것은 1992년 남북기본 합의서와 2000년 6.15공동선언에 잘 담겨 있다. 그 속에 담긴 핵심 개념은 우리 민족의 화해 협력 교류 상호 체제 인정 불가침 내정 불간섭 등이다. 이런 합의 원칙 을 바탕으로 남북은 관계를 정상화하고 정부 간 연합기 구 를 만들어 남북이 공동 추진하는 협력 사업의 양과 질을 차츰 높여 나감으로써 통일된 것과 비슷한 상황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사실 상의 통일 이다. 이 과정을 통 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 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 다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낫다.) 그 과정 자체가 우리 경제의 성장 기반 동력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 소중한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아직 도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전쟁 상태를 끝내는 것이다. 1953년 7월 27일 미국 중국 북한이 체결한 정전협정 을 우리가 앞장서서 평화협정 으로 바꾸는 것이 선결과제이 다. 전쟁 상태를 끝내고 동북아시아 평화공동체 수립에 나서는 것이 우리나라가 21세기 세계무대의 주역으로 들 어설 문을 여는 열쇠이다. 통일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는 지금 지난 10여년 열렸던 남북의 창과 길이 모두 막혀버린 상황을 걱정한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우리 사 회를 따뜻하게 했던 민족 화해협력의 분위기는 싸늘하 게 식어버렸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시 이북에 대한 미 움과 적대감이 들어차고 있다.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목 소리는 잦아들었다. 전쟁을 부추기는 무책임한 북소리 가 울리기도 한다 남북공동선언 직후 몇 년 동안 우 리 청소년들의 통일을 향한 상상력은 마음껏 발휘되었 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결정하여 살아갈 통일된 우리나라에 대한 상상의 공간을 열어 주어야 한 다. 그 곳에서 우리 아이들은 마음껏 남북이 함께 아름 다운 삶을 살아갈 세상을 그려 낼 것이다 봄 45

46 백범김구기념관 News 2013년도 도슨트 양성과정 운영 - 우리 기념관에서는 관람객에게 쉽고 재미있는 전시해설을 제공 하고자 제3기 백범김구기념관 도슨트(전시해설사) 양성과정을 시행하였다. 도슨트의 의미와 역할, 백범 김구 선생의 생애와 사 상, 한국의 근현대사, 기념관 전시해설의 방법 등의 내용을 중 심으로 교육하였으며, 19명이 수료하였다. 수료생 중 총 13명이 도슨트 심화과정에 참가하여 전시해설을 김구기념관 도슨트로 선발되었다. 선발된 제3기 도슨트는 2013 년 5월부터 2014년 4월까지 1년간 기념관에서 활동하게 된다. 우리 기념관은 경력인증기관으로, 활동증서 및 경력인증서 발 급이 가능하며 도슨트 활동 시 소정의 활동비(교통비 및 식비) 가 제공된다. 도슨트들의 활동을 통해 많은 관람객에게 높은 문화를 가진 조국을 건설하고자 일생을 헌신하셨던 백범 김구 선생의 뜻 을 함께 나누며, 기념관이 좀 더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갈 수 있 길 기대한다. 위한 준비를 하였고, 최종 테스트를 통해 총 8명이 제3기 백범 46 백범회보

47 겨울방학 교육 찾아라! 우리역사 - 우리 기념관에서는 2013년 1월 8일부터 1월 25일까지 매주 화 ~금요일에 걸쳐 백범김구기념관 겨울방학 교육 찾아라! 우리 역사 를 진행하였다.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어린이들에게 백범 김구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알기 쉽게 전하고, 역사에 대한 올 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한 이번 교육은 김구할아버지 를 소개해요, 백범신문만들기, 나, 너 그리고 우리, 나도 역사 가, 연극으로 만나는 백범김구선생 등 저학년(1~2학년), 고학 년(3~4), 5학년 이상, 학부모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가족과 함께 떠나는 역사탐방(백범김구기 념관 안중근의사기념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과 백범 골 든벨 을 처음으로 시행하여 다양한 방법을 통해 어린이들이 백 한편, 찾아라! 우리역사 에 3회 이상 참여한 어린이에게는 수료 증과 소정의 상품을 수여하여 프로그램에 참가하였다는 성취 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고, 백범 골든벨 을 통해 백범 상, 창암상, 마음 좋은 사람상 을 수여하여 방학 동안 학습한 내용을 정리하였다. 참가한 어린이들은 이번 겨울방학 교육을 통해 김구할아버지 가 우리나라를 위해 어떠한 일을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라 를 빼앗기면 나도 독립을 위해 힘쓰겠다., 라고 이야기 하였고, 학부모들 역시 아이들과 함께 여러 곳을 답사할 수 있어서 좋 았다., 아이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등의 의견을 주었다. 우리 기념관은 앞으로도 백범 김구 선생을 알리고 우리역사를 바로 알릴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을 개발하여 어린이들에게 올바 른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범 김구 선생과 우리 역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봄 47

48 백범김구기념관 News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방문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월 6일 본 기념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기념관을 방문 하였다. 박 대통령 당선인은 연석회의가 시작되기 전, 백범 김구 선생 좌상에 헌화하고 김신 관장님과 기념 촬영을 하였다. 한선교 의원실 단체관람 - 국회의원 한선교 의원실에서 수지희망꿈터 어린이들과 함께 1월 8일, 15일, 29일 기념관을 방문하였다. 수지희망꿈터는 어 린이, 청소년과 함께 다양한 문화체험을 경험하고자 활동하는 지역 사회 봉사단체로, 전시관람과 효창원 애국선열묘역 참배 를 통해 백범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보고, 느끼고 돌아갔다. 중국 대련 여순감옥기념관 부관장 일행 방문 -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 여순감옥기념관의 왕진인( 王 珍 仁 ) 부 관장 일행이 5월 1일 본 기념관을 방문하였다. 왕 부관장 일행 은 기념관 관람 후 효창원 애국선열묘역의 삼의사 묘역을 참 배하고, 아직 허묘( 墟 墓 )로 남아있는 안중근 의사의 묘소 앞 에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반드시 찾아 고국으로 모셔오겠다 고 다짐하였다. 48 백범회보

49 각급 학교 및 단체 방문 - 유치원, 초, 중, 고 및 기타 여러 단체에서 우리 기념관을 방문하 여 백범 김구 선생의 삶과 그 숨결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신미림초, 동산초, 배문고, 석남고, 영훈고, 성남서중, 성신여고 등 각급 학교에서 기념관을 방문하여 전시관람 및 효창원 애 국선열묘역을 참배하였고, 정우유치원, 나룰초, 안평초, 신사중, 백신고 등은 기념관의 교육프로그램 중 나의 소원, 백범신문 만들기, 백범김구기념관 인물사전, 나의 사랑 태극기 등 다양 한 프로그램을 경험하였다. 그 외에 영남일보 화랑단, 옥천읍 역사탐방단, 함께 가는 답사 길 따라 등의 단체에서 기념관을 방문하였다. 학예사의 안내 에 따라 기념관과 효창원 애국선열묘역을 돌아보며 백범 김구 선생의 지고지순했던 나라사랑, 겨레사랑의 참 의미를 되새기 고 돌아갔다. 다양한 계층의 방문으로 우리 기념관은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미래를 향해 힘껏 도약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봄 49

50 참여 마당 Quiz 통! <백범회보>는 독자여러분과 함께 소통하고자 합니다. 독자 퀴즈에 참여하시면 추첨을 통해 문화상품권을 드립니다. 퀴즈! 다른 부분 찾기 다른 부분 5개를 찾아주세요. 퀴즈! 백범김구기념관 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의거로 말미암아 임시정부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 임시정부 27년의 역사 중 거의 절반의 기 간을 위치하며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도시는? 1서안 2상하이 3베이징 4길림 2 임시정부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주석 김구( 金 九, 1876~1949)가 이곳에서 서거한 후 외국 대사관(저)과 병원 등으로 사용되었 다가 2013년 3월 2일 약 3년간의 원형복원 공사를 마치고 임시정부 청사 당시 모습으로 돌아온 역사적인 장소는? 독자 퀴즈의 정답을 보내주시는 분들께는 추첨을 통하여 문화상품권을 드립니다. (6월 20일까지 마감) 보내실 곳_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255 백범김구기념관 담당자 앞 자르는 선 50 백범회보

51 교육프로그램 문의전화_ 02) ~3 백범김구기념관은 서울시교육청에서 지정한 현장체험학습기관입니다. 기념관의 모든 프로그램 내용과 예약 등 자세한 것은 홈페이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아 교육프로그램 대한민국의 상징-태극기Ⅰ Ⅱ 전시관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태극기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상징인 태극기 완성하기 5~7세, 20~30명, 1시간 나의 소원 연극놀이 활동이 포함된 전시관람을 통해 김구 선생의 소원을 이해하고 나의 소원 작성하기 5~7세, 20~30명, 1시간 주말 교육프로그램 주말가족나들이, 백범신문 만들기 영상물 시청과 전시설명을 듣고 가족과 함께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 취재하여 백범신문 만들기 20~30명, 2시간 주말가족나들이, 도슨트와 함께 떠나는 역사여행 기념관 도슨트의 전시설명을 들으며 전시를 관람한 후 효창원 애국선열묘소 참배 20~30명, 2시간 어린이 교육프로그램 김구할아버지를 소개해요 어린이를 위한 백범일지 를 읽고 생각주머니 를 완성하여 김구 선생 소개하기 초등 1~2학년, 20~30명, 1시간 30분 백범김구기념관 인물사전 전시관에서 김구 선생과 주변 인물들을 찾아보고 인물사전 만들기 초등 1~2학년, 20~30명, 1시간 30분 함께 생각해 보아요~북한의 어린이 김구 선생이 통일을 위해 어떠한 일을 하셨는지 알아보고 북한 어린이에 대한 영상물을 감상한 후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초등 3~6학년, 30~40명, 1시간 30분 통일대 한 민국Ⅰ Ⅱ 김구 선생의 통일을 위한 노력에 대해 알아보고 통일대한민국 상상하기 초등 3~6학년, 30~40명, 1시간 30분 청소년 교육프로그램 역사의 현장 속으로! 백범신문 만들기Ⅲ 전시관에서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 취재하고 모둠별로 백범신문 만들기 30~40명, 2시간 연극으로 만나는 백범 김구 선생Ⅲ 백범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에 관한 내용을 연극으로 체험하기 30~40명, 2시간 백범 김구 선생 관련 자료 휘호 도서를 찾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 관련 자료 휘호 도서를 소장하고 계신 분은 우리 협회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연락처(자료실 담당자) 02) 단체관람 영상물 시청과 전시설명을 듣고 전시관람 후 효창원 애국선열묘소 참배하기, 귀가 후 관람감상문 작성 1,000명 내외, 2시간 여름방학 프로그램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누어 진행하며 학부모 프로그램도 운영. 여름 방학 워크북 제공, 4주 수료 후 수료증 발급 초등학생 학생 학부모 20~30명,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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